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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일본 한국 중국 순방이 10일 막을 내렸다. ‘미국 우선주의’를 부르짖는, 예측 불가하고 충동적인 미국 정상을 맞은 3국은 트럼프 대통령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경쟁적으로 의전에 많은 공을 들였다. 모두가 다 국익을 지키기 위한 노력이었다. 우리나라는 동서양의 조화를 꾀하는 절제된 의전과 이심전심(以心傳心)으로 통하는 ‘진심 의전’으로 트럼프 대통령과 멜라니아 여사에게 잊지 못할 추억을 선사했다. 특히 멜라니아 여사는 백악관 관계자들이 “이렇게 말을 많이 하는 것을 처음 본다”고 했을 정도로 3국 중 한국에서 가장 많이 말하고 웃었다는 평이 뒤따랐다. 이번 아시아 순방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가장 먼저 맞이한 일본은 특유의 ‘오모테나시(극진한 대접)’ 외교를 선보이며 정상 간 친밀감을 끌어올리는 데 주력했다. 특히 일본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5일 골프광인 트럼프 대통령을 위해 세계적 골퍼 마쓰야마 히데키를 섭외해 황제 골프 접대를 펼쳤다. 중국은 8일 오후 미국 대통령 부부만을 위해 자금성을 통째로 휴관하는 ‘황제급 의전’과 284조 원짜리 돈 보따리를 내밀어 껄끄러웠던 미국과의 관계를 원만하게 전환하는 성과를 거뒀다. ‘총성 없는 전쟁’이 펼쳐졌던 한중일 의전의 세계로 들어가 보자.》● 품격과 절제취타대-사물놀이 가락에 트럼프 어깨 들썩… 청와대 만찬땐 술 대신 다이어트 콜라 준비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아름다웠다. 영원히 기억될 것”이라고 극찬한 전통 의장대의 환영 퍼레이드는 사실 작은 실수와 함께 시작됐다. 7일 오후 미 대통령 전용 리무진인 ‘캐딜락원’이 청와대 인근 분수광장에 다다르자 조선시대 ‘왕의 위엄’을 세웠던 취타대가 아리랑 연주를 시작했다가 이내 멈췄다. 의전팀이 탄 차량을 트럼프 대통령이 탄 차량으로 착각한 것. “아! 아니었네.” 짧은 탄식이 흘렀지만 취타대는 긴장하지 않고 트럼프 대통령 내외가 도착하자 힘차게 연주를 시작했다. 캐딜락원은 조선시대 어가행렬처럼 호위를 받으며 청와대 본관으로 들어서 ‘국빈방문’의 서막을 올렸다. 트럼프 대통령은 방한 기간 내내 이 장면을 여러 차례 언급하며 감사의 뜻을 표시했다. “검이불루 화이불치(儉而不陋 華而不侈·검소하되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되 사치스럽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을 맞았던 한국 정부의 마음가짐을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은 이렇게 표현했다. 트럼프 대통령 취향에 맞추려고 했던 일본이나 화려함을 앞세운 물량공세로 나온 중국과 달리 한국적 색채를 담은 절제된 의전을 선보였다는 것이다. 특히 국빈만찬은 동서양의 조화를 표현하기 위해 노력한 결과물이었다. 메인 메뉴인 가자미구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가장 좋아하는 생선요리인데, 문재인 대통령의 고향인 거제도 가자미로 만들었다. 미국은 6월 백악관 만찬에서 문 대통령을 위해 가자미구이를 내놓았다. 만찬 공연에서 연주자 정재일 씨와 유태평양 씨는 ‘축원과 행복’을 기원하는 비나리를 사물놀이 가락 위에 현대적으로 재구성해 연주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리듬을 타면서 어깨를 들썩거렸고, 공연 후 손을 높게 들어 박수를 치며 호응했다. 청와대 의전비서관실은 술을 마시지 않는 트럼프 대통령을 위해 ‘다이어트 콜라’를 내놓는 세심한 의전을 준비하기도 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참가자들이 서로 술을 따라주다 보면 트럼프 대통령도 잔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의전팀이 직접 만찬 초반 트럼프에게 콜라를 담은 잔을 서빙했다”고 설명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화려함보다는 정성스럽게 우리 색채를 충실히 전함으로써 한미동맹을 강조할 수 있는 의전을 고려했다”고 말했다. 절제된 의전 속에서 의외의 장면이 연출되기도 했다. 7일 김정숙 여사와 멜라니아 여사는 청와대 경내를 산책했다. 자연스러운 대화 분위기를 연출하기 위해 통역 없이 걷는 구간을 준비한 것인데, 김 여사가 적극적으로 영어로 대화에 나서자 멜라니아 여사가 편안함을 느꼈던 것으로 전해졌다. 청와대 관계자는 “멜라니아 여사가 그렇게 웃는 것을 백악관 관계자들이 처음 본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문 대통령은 중국 베이징으로 향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출국이 다소 지연되자 인도네시아로 가는 자신의 출국 시간을 15분가량 늦출 만큼 트럼프 대통령 예우를 끝까지 챙겼다. 미국 언론의 방한 취재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일부 차질이 생겼지만 양측의 협조로 잘 마무리된 일도 있었다. 미국 대통령이 방한할 때 백악관은 청와대에 풀기자단(전체 기자단 중 대표로 행사에 들어가 취재하는 기자) 명단을 방한 일주일 전에는 보내는 게 관행이다. 하지만 이번에 백악관은 명단을 방한 당일인 7일 제출했다. 미국 측의 실례였지만 청와대는 빠른 행정처리로 업무 공백을 메웠고, 차후 백악관 측으로부터 “미안했다. 진심으로 감사했다”는 인사를 들었다. ● 위엄과 과시황제 건륭제 걸었던 동선따라 자금성 안내… 베이징 동물원 문닫고 멜라니아에만 개방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맞은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정상외교 코드는 ‘극진한 대접 속에 감춘 역사적 우월감 과시’로 요약된다. 200여 년의 역사를 가진 미국의 대통령에게 수천 년간 세계 최강국으로 군림했던 중국의 찬란한 역사를 보여줌으로써 중국은 결코 만만한 나라가 아니라는 인식을 심어주려는 계획이었다. 여기에는 2050년 미국을 뛰어넘는 세계 1위 국가를 꿈꾸는 시 주석의 ‘중국몽(中國夢)’을 은연중에 과시하려는 의도도 숨어 있었다. 트럼프 대통령 부부만을 위해 8일 베이징(北京) 자금성을 휴관해 통째로 비우는 ‘황제급 의전’을 베푼 것도 이런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철저히 계산된 것이었다. 시 주석은 청나라 최전성기 황제 건륭제의 전용 동선을 그대로 따라 걸으며 트럼프 대통령에게 자금성 구석구석을 안내했다. 그러고는 문물보존센터에 들러 화려하고 정교한 도자기와 서화 등을 보여줬다. 시 주석은 대뜸 트럼프 대통령에게 황금색 종을 가리키며 “들어보라”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무게 때문에 들지 못하자 시 주석은 그제야 “(실은 들지 못할 정도로) 정말 무겁다”며 웃었다. 9일 오전 베이징 인민대회당 앞에서 펼쳐진 화려한 의장대 사열에 감동한 트럼프 대통령은 인민대회당에 들어서며 또다시 놀랐다고 한다. 전통악기 연주가 울려 퍼지며 장중한 분위기를 연출했기 때문이었다. 베이징 외교 소식통은 “자금성은 중국의 최전성기 황제의 공간이다. 역사가 상대적으로 짧은 미국 대통령에게 이를 보여준 것은 ‘현재는 미국이 강하지만 중국이 역사 문화적으로 유구하고 강력한 국가였다’는 사실을 말하려 했던 것”이라고 풀이했다. 실제로 중국은 중화민족 부흥을 내세울 때마다 아편전쟁 이후 100여 년 동안 서방으로부터 당한 굴욕을 딛고 굴기하고 있다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AFP통신에 따르면 8일 자금성에선 미중 정상 사이에 흥미로운 대화가 오갔다.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 역사가 5000년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다”고 하자 시 주석이 “기록된 역사는 3000년”이라고 설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그러면 8000년의 이집트가 더 오래된 것이군요”라고 하자 시 주석은 “중국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 지속된 단일 문명이다. 우리는 스스로 ‘용의 자손’이라 부른다”고 받아쳤다. 중국의 ‘역사 우월감’ 의전 코드를 극대화하는 장치는 비밀주의다. 중국 정부는 외신들이 시 주석과 트럼프 대통령이 방중 첫날(8일) 만찬을 자금성에서 함께한다고 잇따라 보도해도 트럼프 대통령의 자금성 방문 때까지 이를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7일 테리 브랜스태드 주중 미국대사가 관영 중국중앙(CC)TV 인터뷰에서 “Forbidden City(자금성)”라고 말한 대목을 ‘명승고적’이라고 번역해 자막에 넣었을 정도였다. CCTV는 10일 멜라니아 여사의 만리장성과 베이징 동물원 방문 계획 역시 애써 감췄다. 8일 저녁 보도에서 두 곳이 10일 하루 개방하지 않는다고 공고했다는 사실만 전하는 방법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방중과 연관이 있을 것이라는 분위기만 풍겼을 뿐이다. 중국은 자국에 비판적인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되자 트럼프에게 영향력이 큰 것으로 알려진 장녀 이방카와 사위 재러드 쿠슈너의 환심을 사기 위해 상당한 공을 들였다. 중국은 이방카만을 위해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 알리바바와의 행사까지 준비했지만 이방카의 중국 방문은 이번엔 성사되지 못했다. ● 배려와 감성골프-햄버거로 ‘정상 대 정상’ 친밀함 강조… 트럼프 딸 이방카의 지난 생일까지 챙겨줘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정상외교는 ‘정상 대 정상’의 개인적 친밀함을 강조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왔다. 가장 많은 공을 들여온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는 사실상 ‘절친’ 사이가 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한중일 순방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트럼프 대통령이 일본 방문 첫날인 5일 아베 총리와 느긋하게 골프를 즐기며 장시간 환담을 나눈 것이 대표적이다. 2월 미국 마러라고에서 첫 골프를 친 뒤 두 번째 라운드였다. 이를 성사시키기 위해 일본 측은 트럼프 대통령의 첫 방문국을 일본으로 할 것과 주말을 낀 일정을 잡아 달라고 미국에 거듭 요청했다고 한다. 아베 총리는 6일 만찬에선 자신의 외할아버지 기시 노부스케(岸信介) 전 총리와 골프를 쳤던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전 미국 대통령이 남긴 “골프는 좋아하는 사람하고만 칠 수 있다”는 발언을 소개하며 “두 번이나 함께 골프를 치는 건 굉장히 좋아하는 사이가 아니고는 어렵다”고 특별한 관계를 강조했다. 일본 의전의 특징은 세심한 배려와 철저한 준비로 요약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2박 3일 일정으로 일본에 머물면서 아베 총리와 4차례 함께 식사했다. 쇠고기를 좋아하는 트럼프의 식성을 고려해 5일 점심은 미국산 쇠고기 햄버거를, 만찬은 와규 철판구이를 내놓았다. 순방 기간이 기니 친숙한 음식(햄버거)을 대접하기로 했다거나, 굽기 정도로 ‘웰던’을 좋아하는 트럼프를 위해 눈앞에서 고기를 구워주는 철판구이를 골랐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쇠고기도 낮에는 미국산, 밤에는 일본산을 대접해 양국 간 균형을 맞췄다. 사실 트럼프에 대한 접대는 아버지에 앞서 2일 ‘국제여성회의 2017’ 참석차 일본을 찾은 장녀 이방카에서부터 시작됐다. 트럼프에 대한 영향력이 큰 이방카의 마음을 사기 위해 아베 총리가 직접 만찬을 대접했고 나흘 전에 지나간 생일까지 챙겨주기도 했다. 아베 총리가 ‘이방카 기금’에 5000만 달러 출연을 약속하자 이방카는 연설에서 “아베노믹스는 우머노믹스(여성이 주도하는 경제)”라고 화답했다. 아베 정부의 외교력이 제대로 발휘된 예는 2016년 11월 미 대선 직후 뉴욕 트럼프 타워를 방문했을 때였다. 주미 일본대사관은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의 당선을 예상하면서도 공화당 후보로 나선 트럼프 쪽에도 네트워크 만들기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사사에 겐이치로(佐佐江賢一郞) 주미 대사는 개표 당일 트럼프 당선이 확실해지자 즉각 ‘막후 실세’로 불리던 트럼프의 사위 재러드 쿠슈너 인맥을 동원해 트럼프와 아베 총리의 면담 일정을 잡았다. 아무리 철저히 준비해도 돌발 상황은 발생하기 마련이다. 5일 골프 중에 아베 총리가 벙커에서 나오다 구르는 장면, 6일 두 정상이 잉어에게 먹이를 주다 트럼프 대통령이 먹이를 한꺼번에 쏟아붓는 장면 등이 취재 카메라에 포착됐다. 일본 정부는 행사의 홍보를 생각하고 방송 취재를 허가했겠지만 예기치 않은 망신살이 뻗친 꼴이 됐다. 극진한 대접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대통령이 일본의 불공정 무역을 비판하고 방위장비 구매를 종용한 것에 대해 비판론도 적지 않다. 9일 발간된 한 주간지 제목은 ‘아베 총리, 트럼프 부녀의 발을 핥았다’였다. 또한 아베 총리가 트럼프 대통령에게 ‘다걸기(올인)’하는 것에 대해서도 일본 내에서 “위험하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유근형 기자 noel@donga.com / 베이징=윤완준 / 도쿄=서영아 특파원}
지난달 일본 중의원 선거에서 압승을 거둔 집권 자민당이 그간 주춤했던 개헌 스케줄에 다시 시동을 걸고 있다. 8일 요미우리신문에 따르면 자민당은 전날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속한 호소다(細田)파의 회장인 호소다 히로유키(細田博之) 의원을 헌법개정추진본부장에 임명했다. 호소다 본부장은 다음 주부터 당 차원의 개헌 논의를 재개할 계획이다. 아베 측근인 하기우다 고이치(萩生田光一) 자민당 간사장 대행도 같은 날 기자회견에서 “연말까지 개헌 관련 4개 항목을 밀도 있게 살펴볼 것”이라며 “내년 정기국회를 목표로 개헌안을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4개 항목은 자민당이 중의원 선거에서 공약으로 내건 개헌 항목을 말한다. 헌법 9조 개헌, 교육무상화, 대규모 재해 등의 경우 국회의원 임기를 연장하는 ‘긴급사태 조항’, 참의원의 선거구 조정 등이다. 아베 총리와 자민당은 이 중 헌법 9조의 개정에 공을 들이고 있다. 5월 아베 총리는 헌법 9조의 기존 1항(전쟁 및 무력행사 포기)과 2항(전력 보유와 교전권을 인정하지 않는다)을 그대로 둔 채 추가로 자위대의 존재를 명기하자고 제안한 바 있다. 이를 두고 일단 개헌을 성사시킨 뒤 2항을 없애는 2단계 개헌으로 자위대가 교전권을 갖게 해 전쟁 가능한 국가로 변신시키려는 구상이라는 분석들이 많다. 올해 안에 자민당 내 개헌안을 정리하고 내년 정기국회에 제출한다는 일정은 아베 총리의 개헌 스케줄과 일치한다. 아베 총리는 7월 도쿄도의회 선거에서 참패한 뒤 “개헌 일정에 집착하지 않는다”고 반복해 말해 왔으나, 결국 자민당은 아베 총리의 스케줄에 충실히 따르는 형태로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자민당은 내년 6월 이후 개헌안을 발의해 자민당 총재 선거가 끝난 뒤인 가을 무렵 국민투표를 실시하는 방안을 계획하고 있다. 상황이 여의치 않아 개헌안 발의가 2019년으로 넘어간다면 여름으로 예정된 참의원 선거와 국민투표의 동시선거가 될 가능성도 있다. 한편 중의원 헌법심사회는 7월 영국 등을 방문해 헌법 개정과 국민투표 제도를 조사한 보고서를 내놓았다. 데이비드 캐머런 전 영국 총리는 이들에게 국민투표에서 찬성을 얻는 일의 어려움을 설명하고 “사전 조사 등에서 적어도 60% 정도 찬성자를 확보해 둬야 한다”고 조언한 것으로 알려졌다. 도쿄=서영아 특파원 sya@donga.com}
취임 첫 아시아 순방에 나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7일 한국을 방문한다. 올 1월 취임 이후 처음이며 1992년 조지 부시 대통령 이후 25년 만의 국빈방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 도착 후 경기 평택시 주한미군 기지인 ‘캠프 험프리스’ 방문을 시작으로 청와대에서 열리는 공식 환영식과 한미 정상회담, 공식 만찬 등에 참석할 예정이다. 이에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6일 “일본이 (미국에서) 대량의 방위장비를 구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도쿄 모토아카사카(元赤坂)에 있는 영빈관에서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와 정상회담을 가진 뒤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일본이 북한 미사일을 요격하지 않았다’는 최근 언론 인터뷰 내용을 묻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또 미국은 국제 무역시장에서 매우 불공정한 취급을 당해 왔다며 일본과 중국, 다른 국가들에서도 불공정 무역은 해소돼야 하며 이를 위해 미국은 지속적으로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아시아 순방의 최우선 목적이 ‘미국 우선주의’임을 분명히 한 것으로 내일부터 시작되는 한국 방문에서도 경제 문제가 북핵 문제와 함께 우선적으로 논의될 것으로 전망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 상공을 북한 미사일이 지나간다면 요격해 떨어뜨릴 수 있어야 한다. 미국에는 F-35 전투기, SM-3 등 훌륭한 방위장비가 많다”며 아베 총리에게 무기 구매를 요청했음을 시사했다. 이어 “미국 대통령으로서 나는 공평하고 자유로우며 호혜적인 무역 관계를 원한다”며 “만성적인 무역 불균형 및 적자를 없애기 위해 미국 수출품이 일본 시장에 공평하게 접근하려 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날 골프 회동을 하며 경제 관련 주제를 피하는 데 주력했던 아베 총리는 “일본은 거의 모든 방위장비를 미국에서 구매해 왔다”며 “앞으로도 이지스어쇼어, F-35, SM-3블록A 등을 미국에서 구매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대미 무역역조 해소와 관련해서는 “기존 경제대화의 틀 안에서 논의를 심화시킬 것”이라고 답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아베 총리가 제안한 ‘인도 태평양’이란 용어를 직접 사용하면서 향후 일본의 대중국 견제 정책에 대한 지지 의사를 드러내는 것으로 화답했다. ‘자유롭고 열린 인도 태평양’은 미국과 일본, 호주, 인도의 4개국 간 협력 강화를 통해 중국의 팽창주의를 견제한다는 내용으로 한국의 대중외교 공간을 좁힐 소지가 크다.도쿄=서영아 특파원 sya@donga.com / 문병기 기자}

6일 오후 도쿄(東京) 모토아카사카(元赤坂) 영빈관에서 열린 미국과 일본의 정상회담 뒤 공동기자회견장.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에 이은 모두발언이 끝나고 양국 기자들의 질의가 시작되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기다렸다는 듯 세일즈 외교에 나섰다. 일본의 환대는 환대고, 무기 판매와 무역 질서 개선을 통해 대일 무역적자를 줄이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선 “아베 총리가 미국으로부터 많은 양의 군사장비 구매를 마치게 되면 북한에서 날아오는 미사일을 요격할 것이다. 아주 손쉽게 하늘에서 맞힐 수 있을 것”이라며 노골적으로 대일 무기 판매 의사를 드러냈다. 그간 북한을 이유로 첨단 장비 구매를 늘려왔던 아베 총리는 북한 미사일 요격 의사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우리는 요격할 필요가 있다면 요격한다. 다만 어떤 경우든 미일이 긴밀한 협의하에 하게 될 것”이라고 답했다. 앞서 이날 오전 도쿄 미나토(港)구의 주일 미국대사관에서 열린 미일 기업 경영자 대상 간담회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 경제 압박을 가했다. 푸른 넥타이에 미국 국기 배지를 단 트럼프 대통령은 대사관 내 회의실에서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 등 미일 재계 인사들에게 “일본과의 무역은 공평하지도, 열려 있지도 않다. 하지만 곧 그렇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 재계 인사들의 표정이 굳어졌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자동차’를 특정하며 “실질적으로 미국에서 대일본 자동차 수출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6일 미국 상무부에 따르면 일본은 미국을 상대로 올해 1∼9월 511억3430만 달러의 무역흑자를 달성했다. 같은 기간 중국, 독일에 이어 3번째로 큰 규모다. 다만 트럼프는 기자회견 내내 일본을 극찬하고 아베 총리에게 친근감을 표시했다. 일본에 대해서는 “믿기 어려운 역사와 문화를 지닌 놀라운 나라”라며 “장엄한 나라(majestic country)”라는 표현까지 썼다. 이어 “일본은 번영하고 있고, 도시는 활기가 넘친다. 일본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경제국가 중 하나다. (아베를 바라보며 속삭이듯) 우리 경제만큼 좋은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당신(일본)이 두 번째는 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대통령으로서 인도 태평양 지역을 찾는 것은 처음이다. 그 첫발이 나의 굉장한 친구와 함께여서 기쁘다”며 아베 총리가 제안한 ‘인도 태평양’이란 용어를 사용해 중국 견제를 중시하는 일본을 지지하겠다는 뜻을 내비치기도 했다. 북한 핵·미사일 개발 대응 방안에 대해서는 양국의 의견이 일치했다. 아베 총리는 “양국은 중국 러시아 등의 협력을 얻어 북한에 대한 압력을 최대화해야 한다는 데 100% 의견 일치를 봤다”고 소개했다. 이어 “트럼프 대통령이 내일 방문할 한국과 일본, 미국 3개국의 협력이 중요하다는 것을 재확인했다”고 강조했다. 일본의 대북 독자 제재 대상을 확대해 35개 개인과 단체에 대한 자산 동결을 내일 결정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전략적 인내의 시대는 끝났다”며 “북한이 체제로부터의 위협을 계속 받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일각에서는 나의 어조(rhetoric)가 강하다고 하지만 약한 어조로 지난 25년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보라”고 강조했다. 또 “북한은 위험한 체제다. 억압적인 정권 밑에서 살아가고 있는 위대한 사람들이 있다”고 김정은 정권을 비난했다. 이날 기자회견 직전 북한에 의한 납치 피해자 가족들을 만난 것과 관련해서는 “정말 슬픈 일”이라며 “혹 김정은이 이들을 돌려보내 준다면 특별한 무언가가 시작될 수도 있다”고 말해 북한이 성의를 보일 경우 모종의 대가가 있을 것임을 시사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통상과 관련해 언제든 작심 발언을 내놓을 가능성이 확인된 만큼 한국 통상당국도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통상교섭본부 관계자는 “10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을 위한 공청회도 예정된 만큼 한국의 상황을 제대로 알리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고 전했다.도쿄=서영아 특파원 sya@donga.com / 세종=이건혁 / 한기재 기자}
미국 정부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첫 아시아 순방을 전후해 ‘아시아-태평양’ 대신 ‘인도-태평양’이란 용어를 자주 사용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5일 요코타(橫田) 공군기지 연설에서 인도-태평양을 직접 언급했다. 허버트 맥매스터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은 2일 대통령 순방 브리핑에서 “대통령이 취임 후 인도-태평양 지도자들과 43차례 전화통화를 했다”고 말했고,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은 지난달 18일 인도와의 전략적 관계 확대를 강조하는 연설에서 인도-태평양을 15차례 언급했다.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 시절의 ‘아시아-태평양’을 대신하는 개념으로 지난해 8월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케냐 아프리카개발회의 기조연설에서 제안한 개념이다. 미일 동맹을 바탕으로 미국의 영향권을 시장경제와 민주주의 등 공통의 가치관을 가진 인도와 호주까지 넓혀 중국의 팽창주의에 대항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일본 언론은 6일 열리는 미일 정상회담에서 두 정상이 이를 공동 외교전략으로 표명할 것이라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10일 베트남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 구상에 대해 연설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아베 총리와 트럼프 대통령은 6일 정상회담에서 한반도 유사시 한국에 거주하는 일본인과 미국인을 피란시키는 대책에 대해 협의한다고 요미우리신문이 5일 보도했다. 도쿄=서영아 특파원 sya@donga.com}
“지금보다 우리가 일본과 더 가까웠던 적은 없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양국) 관계는 정말로 대단하다. 나와 아베는 서로를 좋아하고 두 나라도 서로를 좋아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5일 저녁 도쿄 긴자의 한 식당에서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와 비공식 만찬을 갖기 전 기자들과 만나 “(아베 총리와) 북한과 무역, 그리고 다른 문제들을 포함해 다양한 주제들을 토론할 것”이라며 이렇게 강조했다. 트럼프가 좋아하는 와규(和牛) 스테이크와 새우구이로 양 정상 부부와 극소수만 참여한 만찬은 두 시간 가까이 진행됐다. 아베 총리는 9시 10분경 만찬이 끝난 뒤 기자들에게 “트럼프 대통령이 매우 기뻐했다. 의미 있는 만찬이었다”고 말해 상당한 성과가 있었음을 시사했다. 아베 총리는 오후 7시 반경 트럼프 대통령을 숙소인 도쿄(東京)의 데이코쿠(帝國)호텔로 마중 나가 대통령 전용차에 동승해 음식점으로 안내했다. 아베 총리의 ‘트럼프 모시기’는 이에 앞서 진행된 통산 두 번째 골프 라운드였다. 아베 총리는 이날 라운드를 위해 3일 오후 짬을 내 도쿄 근교 골프장을 찾아 몸을 풀었다는 후문이다. 일본 최고의 프로 골퍼인 마쓰야마 히데키(松山英樹) 선수가 동행한 이날 라운드에서 두 정상은 스코어를 기록하지는 않았다. 백악관 고위 관리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이 ‘파’와 ‘보기’를 반복하는 가운데 ‘파’가 많았던 반면 아베 총리는 초기에 3차례 벙커에 넣었다가 후반에 회복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베 총리는 평균 90타 수준이고,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68타를 기록한 바 있다. 백악관 관리는 이날 두 정상이 골프 중 대북 대응이나 무역문제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고도 전했다. 미국 측 관계자는 “트럼프 대통령이 골프장에서 카트를 사용하지 않고 걸어가는 것을 처음 봤다”고 NHK방송에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플레이가 끝난 뒤 아베 총리에게 “정말로 즐거웠다. 매우 멋진 코스였다”고 말했다. 트위터에도 “아베 총리와 마쓰야마 히데키 선수 등 멋진 2명과 골프를 하고 있다”는 코멘트를 올렸다. 함께 올린 동영상에는 마쓰야마 선수가 지켜보는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이 페어웨이에서 아이언을 사용해 샷을 하는 모습이 찍혀 있었다. 골프를 마친 뒤 양 정상은 각기 헬기를 타고 도쿄로 돌아갔다. 오후 3시 37분 트럼프 대통령은 숙소인 데이코쿠호텔에 전용차인 ‘비스트’를 타고 도착했다. 비슷한 시간 총리관저에 도착한 아베 총리는 소감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만면에 미소를 띠고 “날씨가 정말 좋았고 클럽에서도 따뜻한 환영을 받아 트럼프 대통령도 크게 즐겼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골프장에서의 대화는 좀 들뜨게 된다”며 “서로 편안하게 속내를 말할 수 있어 어려운 화제도 가끔 섞으면서 느긋하게 깊은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아베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의 2박 3일 방일 기간에 골프는 물론이고, 4차례에 걸쳐 함께 식사를 하면서 돈독한 스킨십을 과시한다. 5일 점심 저녁에 이어 6일 점심도 워킹런치를 함께한 뒤 정상회담에 들어가게 된다. 이날 밤 아베 총리가 주최하는 만찬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손녀 아라벨라가 좋아한다는 일본의 개그맨 겸 DJ ‘피코타로’도 초대됐다. 피코타로는 동영상 ‘펜 파인애플 애플 펜(PPAP)’으로 세계적인 인기를 끌었다.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 일본을 방문한 멜라니아 여사는 이날 오후 아키에(昭惠) 여사와 함께 도쿄 긴자(銀座)의 진주 전문 보석점을 찾았다. 미에(三重)현에서 해녀로 일하는 여성들이 직접 진주의 종류나 채취 방법에 대해 설명해주자 멜라니아 여사가 질문도 하며 열심히 들었다고 NHK는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6일 아키히토(明仁) 일왕을 예방한 뒤 도쿄 모토아카사카(元赤坂)의 영빈관에서 미일 정상회담을 갖는다. 이어 아베 총리와 함께 북한에 의한 납치 피해자 가족을 면담한 뒤 공동 기자회견, 아베 총리 주최의 만찬 등 일정을 소화할 예정이다. 7일 오전 한국으로 출발한다. 일본 정부는 트럼프 대통령의 방일 기간 중 테러 등 불미스러운 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2만1000명을 투입해 철통같은 경계 태세를 유지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트럼프 대통령의 방일을 계기로 그 어느 때보다 강고한 미일 연대를 국내외에 피력한다는 전략이다.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래 양 정상 사이 소통은 정상회담만 이번까지 합해 5번, 전화회담은 알려진 것만 16회에 이른다.도쿄=서영아 특파원 sya@donga.com}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방일은 5일부터 2박 3일. 하지만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트럼프맞이’ 일정은 그 이틀 전부터 시작됐다. 아베 총리는 3일 거의 전부를 할애해 트럼프가의 선발대로 온 이방카를 접대했다. 3일 오전 8시 20분에는 ‘국제여성회의 2017’ 행사에 이방카와 함께 등단해 개도국 여성기업가 지원기금에 57억 엔을 출연하겠다고 밝혔다. 오후 1시에는 도심에서 1시간 반 거리인 가나가와현의 골프장에 가 있었다. 5일로 예정된 트럼프 대통령과의 골프전에 대비해 몸을 풀기 위해서다. 지지율 급락에 북핵 위협 등으로 취미인 골프를 봉인한 지 근 반년 만이다. 오후 6시 22분엔 다시 도쿄 도심의 일본료칸 입구에서 이방카를 기다렸다. 정확히 13분 뒤 이방카가 도착하자 보도진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는 안으로 에스코트했다. 이날은 유대교로 개종한 이방카를 위해 돼지고기를 뺀 특별 메뉴가 준비됐다. 식사 중엔 아악 공연이 동원됐고 식사 후에는 이방카에게 며칠 지난 생일 꽃다발을 안겨줬다. 일본의 ‘오모테나시(접대)’에 감동한 이방카는 “잊을 수 없는 밤”이라며 기뻐했다. 직급으로는 대통령 보좌관에 불과한 이방카가 이처럼 공주 대접을 받은 이유는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영향력이 절대적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11월 아베 총리가 뉴욕에서 당선 8일 된 트럼프를 만날 수 있었던 것도 이방카 인맥 덕이었다. 당시 회담 자리를 지킨 이방카는 아버지에게 “그는 똑똑하고 사람도 좋아 보인다”며 가까이 지내라 했다고 알려진다. 그간 일본 언론은 아베가 트럼프의 국제정치 교사 역할을 하는 인상의 기사를 여러 번 내보냈다. 평소에는 이런 보도를 자제하던 아사히신문도 3일 1면에 “알았다, 신조가 그렇게 말한다면…”이란 제하에 두 정상의 밀월을 지적하는 기사를 실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후 16회에 걸친 전화통화에서 아베 총리에게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을 만날지 여부,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의 베이징 발언에 대한 의견 등 측근에게도 묻지 않는 것을 상담한다는 미 정부 고관의 발언이 소개됐다. 일본 내에서는 ‘미국 제일주의’를 주창하던 트럼프 대통령이 아시아 지역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된 공을 아베 총리에게 돌리는 여론마저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아시아-태평양’ 대신 ‘인도-태평양’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도 아베 총리에게 영향을 받았다는 관측이다. 상황이 이런지라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 시점에 맞추기라도 하듯 나온 한국 정부의 ‘미중 균형외교론’에 대해서는 우려가 앞선다. 허버트 맥매스터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은 2일 한국이 중국과 합의한 ‘3NO 원칙’(사드 추가 배치, 미국 미사일방어체계 편입, 한미일 군사동맹화 부정)에 대해 “한국이 주권을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라 본다”는 극단적인 표현으로 견제했다. 이에 답이라도 하듯 문재인 대통령은 3일 싱가포르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한미일 협력과 북핵 공조가 한미일 군사동맹으로 나아가는 것에는 반대한다”며 다시금 ‘미국 중국과의 균형외교’를 강조했다. 아베의 트럼프 일가 환대가 혹자에겐 과공(過恭)으로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지극정성으로 몸을 낮추는 국익 우선주의를 우리도 곱씹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아베 총리는 9월 미 뉴욕에서 가진 정상회담에서 트럼프에게 “아시아 순방 시 제일 먼저 일본으로 오라”고 부탁해 그 자리에서 승낙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다. 지금도 “대통령과 순방 초입에 만나 이런저런 상의를 할 수 있어 다행”이라고 말하고 있다. 5일 만난 두 정상이 골프를 함께하고 와규(和牛) 철판구이 만찬을 즐기며 무슨 화제를 안주로 삼았을지 우려스럽다. 서영아 도쿄 특파원 sya@donga.com}
취임 후 첫 아시아 순방 길에 나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5일 첫 방문국인 일본에 도착해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와 대북 대응과 무역 문제 등에 대한 의견을 나눴다. 두 정상이 통산 다섯 번째 만남, 두 번째 골프 회동을 통해 친밀감을 과시하면서 트럼프 미 행정부의 동아시아 정책에 일본의 영향력이 과도하게 커지고 북핵 문제 등에서 한국의 외교적 공간이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아베 총리는 이날 오전 도착한 트럼프 대통령을 사이타마(埼玉)현 가스미가세키(霞が關)골프장으로 초대해 9홀 라운드를 가졌다. 클럽하우스에서 통역만을 동석시킨 뒤 미국산 쇠고기 햄버거로 점심식사를 마친 두 정상은 오후 1시경부터 일본 최고의 프로 골퍼인 마쓰야마 히데키(松山英樹) 선수와 라운드를 했다. 여성을 정회원으로 받아들이지 않아 남녀 차별 논란을 일으켰던 곳인 데다 세계 랭킹 4위 선수를 동원했다는 점에서 남성 위주의 황제 골프라는 비난이 일본에서도 나오고 있다. 아베 총리는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대선 구호를 본떠 ‘도널드 & 신조: 동맹을 더욱 위대하게(Donald and Shinzo: Make Alliance Even Greater)’라고 적힌 흰색 모자를 선물하고 함께 서명하는 이벤트를 가지는 등 트럼프 대통령의 마음을 사기 위해 총력을 다하는 모습이었다. 경기 도중 두 정상은 함께 그린을 걸어가며 대화를 나눠 미일 관계는 물론이고 다음 순방지인 한국 중국 등과 관련한 의제도 사전에 논의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두 정상은 6일 정상회담 이후 아베 정권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내세운 ‘자유롭고 열린 인도 태평양 전략’을 공동 외교전략으로 표명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미국의 아시아태평양 전략이 일본이 가리키는 방향대로 나아가게 되는 셈이다. 김현욱 국립외교원 교수는 “미국과 일본의 친밀도가 높아지면 두 나라가 주도하는 중국 견제 목적의 전략이 강화될 수 있다”며 “이 경우 중국과도 잘 지내야 하는 한국으로서는 외교적 셈법이 복잡해질 수 있고, 미중 사이의 균형외교에 대한 부담도 커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아베 총리는 정상회담에서 일본의 방위력 증강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를 얻어내는 한편 가급적 경제 분야로 화제가 옮아가지 않도록 한다는 전략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도쿄=서영아 특파원 sya@donga.com / 이세형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3일(현지 시간) 취임 이후 첫 아시아 순방길에 올랐다. 첫날 하와이에 들러 미군 태평양사령부 등을 둘러본 트럼프 대통령은 5일 일본 방문을 시작으로 14일까지 한국 중국 베트남 필리핀 순으로 방문한다. 백악관은 “트럼프 대통령의 아시아 방문의 첫 번째 목표는 북한 비핵화를 위한 국제사회의 결의 강화”라고 2일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5일 오전 일본에 입국한 뒤 사이타마(埼玉)현 가스미가세키 골프장으로 이동한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 프로골퍼 마쓰야마 히데키(松山英樹)와 라운딩을 한다. 프로선수 수준인 68타를 기록했던 트럼프 대통령에 비해 아베 총리는 90타 내외인 것으로 알려졌다. 오찬은 골프장에서, 만찬은 도쿄의 와규(和牛·일본 고급 쇠고기) 철판구이 전문점에서 아베 총리와 함께 한다. 6일 오전에는 아키히토(明仁) 일왕 부부를 예방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예전부터 “일본에 간다면 덴노(天皇)를 꼭 만나고 싶다”고 말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어 아베 총리와 점심식사를 마친 뒤 오후에는 영빈관에서 미일 정상회담을 한다. 7일 오전 일본을 출발해 이날 오전 한국에서는 경기 평택 미군기지 ‘캠프 험프리스’를 가장 먼저 찾는다. 이어 청와대로 자리를 옮겨 문재인 대통령과 단독, 확대 정상회담 및 공동 기자회견을 갖는다. 이와 별도로 두 정상은 청와대 경내를 산책한다. 8일에는 미 대통령으로는 24년 만에 국회에서 연설한다. 백악관은 “아시아 순방에서 유일한 의회 연설”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8일에는 중국 베이징으로 이동해 10일까지 머물며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한다. 시 주석은 트럼프 대통령이 도착하자마자 청나라 건륭제가 사용하던 쯔진청(紫禁城) 서재 싼시탕(三希堂)으로 가 함께 차를 마신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핵 강경 발언을 쏟아내기 전에 ‘마음을 가라앉히라는 의미’로 차를 건네는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주성하 zsh75@donga.com·한상준 기자 / 도쿄=서영아 특파원}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장녀 이방카가 조성 중인 여성기금에 5000만 달러(약 558억 원)를 출연하겠다고 밝혔다. 3일 교도통신에 따르면 아베 총리는 이날 도쿄에서 열린 ‘국제여성회의(WAW) 2017’에서 이방카가 설립에 관여한 여성기업가 지원기금으로 5000만 달러를 지원한다고 밝혔다. 아베 총리의 이런 행보에서는 2일 일본을 방문한 이방카를 적극 지지함으로써 미일 우호 무드를 고조시키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그러나 이 같은 ‘친(親)여성’ 코스프레는 여성이 피해자인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선 사과조차 제대로 하지 않는 것과 대조적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이방카는 아시아 5개국을 순방하는 트럼프 대통령과 달리 일본만 방문하며 일본 정부로부터 극진한 대접을 받고 있다. 이날 밤 아베 총리는 직접 일본식 료칸(旅館)에서 이방카에게 만찬을 대접했다. 전날 저녁 이방카는 윌리엄 해거티 주일 미대사와 만찬을 한 뒤 인스타그램에 일본식 코스 요리인 가이세키(懷石) 요리를 먹었다는 글을 사진과 함께 올렸다. 이처럼 일본 정부가 이방카에게 정성을 기울이는 것은 그가 미일관계에 큰 도움이 된다는 판단 때문이다. 일본 정부는 아베 총리가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 직후 회담을 할 수 있게 해준 공로자로 이방카 인맥을 들고 있다. 도쿄=서영아 특파원 sya@donga.com}
한국에 앞서 일본을 찾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방일 일정(5∼7일) 윤곽이 드러났다. 2일 요미우리신문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5일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와 사이타마(埼玉)현의 가스미가세키 골프장에서 골프를 친 뒤 도쿄의 와규(和牛) 철판구이 전문점에서 만찬을 함께한다. 일본 정부 관계자는 “스테이크를 좋아하는 트럼프 대통령을 위한 메뉴”라고 전했다. 비공식 만찬을 통한 외국 정상과의 ‘친밀 외교’는 아베 총리가 자주 사용하는 방식이다. 2014년 4월 버락 오바마 당시 미 대통령 방일 때는 오바마가 스시(초밥)를 좋아한다는 점에 착안해 도쿄 긴자(銀座)의 미슐랭 별 셋 스시점에서 만찬을 함께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6일 아키히토(明仁) 일왕 부부를 예방한 뒤 영빈관에서 아베 총리와 미일 정상회담을 갖는다. 이어 일본인 납북 피해자 가족 면담, 미일 공동 기자회견, 아베 총리가 주최하는 공식 만찬에 참석한 뒤 다음 날인 7일 서울로 출발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방일 기간 아베 총리와 4차례 함께 식사할 계획이다. 일본은 트럼프 대통령 방문 기간 ‘철통 경비’ 태세를 유지할 계획이다. 경시청은 이 기간을 2020년 도쿄 올림픽으로 이어지는 초대형 경비의 첫 무대로 규정하고 엄중 경계에 들어갔다. 최근 20년간 최대 규모인 1만여 명이 경비업무에 동원된다. 일본 경찰은 차량 돌진형 테러를 방지하기 위해 검문검색을 강화하고 일부 도로의 통행을 차단하기로 했다. 드론을 이용한 테러 공격에 대비해 ‘무인항공기 대처부대(IDT)’도 배치한다. 폭발물 설치를 막기 위해 주요 역에서 사물함 사용이 금지됐고 쓰레기통도 철거됐다. 미 대통령 부인 멜라니아 여사와 장녀 이방카 백악관 선임고문을 위한 여성 경호부대도 신설됐다. 이방카는 아버지의 방일 사흘 전인 2일 일본에 입국한 뒤 3일 ‘국제여성회의(WAW) 2017’에서 기조 연설을 하고 아베 총리와 만찬을 함께한다. 하지만 세제 개편안에 주력하라는 아버지의 지시에 따라 한국과 중국 순방에는 동행하지 않는다.도쿄=서영아 특파원 sya@donga.com}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1일 오후 중의원과 참의원 본회의에서 열린 총리지명 선거에서 압도적 1위를 차지해 제98대 총리로 선출됐다. NHK 등에 따르면 이날 중의원 본회의에서 치러진 총리지명 선거에서는 총 투표수 465표 가운데 아베 총리가 312표를 얻어 입헌민주당의 에다노 유키오(枝野幸男) 대표(60표), 희망의당 와타나베 슈(渡邊周) 전 방위상(51표) 등을 제치고 총리로 지명됐다. 참의원 본회의에서 실시된 총리지명 선거에서도 총 투표수 239표 가운데 141표로 과반을 획득했다. 아베 총리는 이어 야마구치 나쓰오(山口那津男) 공명당 대표와 협의를 거쳐 현 각료 전원을 재기용하는 형태로 아베 4차 내각을 꾸리기로 했다.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은 이날 내각명부를 발표하며 “정책 지속성 등을 위해 모든 각료를 재기용했다”고 설명하고 “다만 일부 담당업무를 조정해 노다 세이코(野田聖子) 총무대신 겸 내각부 특명담당대신에게 남녀 공동 참여 업무를 추가로 맡겼다”고 밝혔다. 아베 총리는 이어 고쿄(皇居·일왕이 사는 곳)에서 아키히토(明仁) 일왕으로부터 총리 임명장을 받은 뒤 새 내각을 발족했다. 새 내각은 2006년 6월, 2012년 12월, 2014년 12월에 이어 ‘제4차 아베 내각’이 된다. 1일 현재까지 아베 총리의 총리 재임일수는 1차 내각을 포함해서 2138일을 기록해 사토 에이사쿠(佐藤榮作) 전 총리(2798일)와 요시다 시게루(吉田茂) 전 총리(2616일)에 이어 3위가 됐다. 내년 9월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승리해 정권을 이어갈 경우 최장수 총리 기록도 갈아 치울 수 있게 된다. 자민당은 3월 총재 임기를 ‘연속 2기 6년’에서 ‘3기 9년’으로 연장하도록 당 규정을 개정한 바 있다. 안정적인 정권 기반을 바탕으로 아베 총리의 정치적 숙원인 ‘전쟁 가능한 국가’로의 개헌 작업도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그는 자민당 총재 직속 헌법개정추진본부장에 자신의 출신 파벌 회장인 호소다 히로유키(細田博之) 전 총무회장을 선임할 계획으로 알려졌는데 이는 개헌을 본격화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됐다. 또 자민당 행정개혁추진본부장엔 측근 인사인 아마리 아키라(甘利明) 전 경제재정·재생상을 내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아베 총리가 앞으로 개헌과 ‘아베노믹스’ 추진에 한층 힘을 쏟을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아베 총리는 이날 밤 기자회견을 통해 “2020년까지 3년간을 생산성 혁명과 인간만들기 혁명에 집중적으로 투자하겠다”며 “국민 신임을 바탕으로 강력한 경제정책을 전개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헌법 개정에 대해서는 “우선 스케줄은 아니다”라면서도 “(이번 선거에서 내세운) 공약에 기초한 구체적 조문안에 대한 자민당의 안을 국회 헌법심사회에 제안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또 “개헌에 대해서는 여야에 관계없이 폭넓은 합의를 형성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도쿄=서영아 특파원 sya@donga.com}

지난달 31일 한중이 관계 개선 방침을 공동으로 발표한 이후 한국 정부가 중국 정부에 ‘평창 올림픽 때까지 도발을 중단해 달라는 메시지를 북한에 전해 달라’고 요청했다. 정부 고위 당국자는 1일 베이징에서 특파원 간담회를 열고 “전날 중국을 방문한 이도훈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한국 측 북핵 6자회담 수석대표)이 쿵쉬안유 중국 외교부 부장조리 겸 한반도사무특별대표(중국 측 6자회담 수석대표)에게 이 같은 메시지를 ‘북한과 접촉 기회가 있을 때마다 전해 달라’고 요청했다”고 전했다. 한국 정부가 평창 올림픽 때까지 북한의 도발을 막는 데 우선순위를 두고 있으며 “북한이 상황을 악화시키는 일이 없도록 한중이 상황 관리를 해 나가기로 했다”는 것이다. 이 당국자는 “남북 대화 통로가 끊겨 있어 중국을 통해 하겠다는 것”이라면서도 중국 측이 북한에 언제 어떤 식으로 메시지를 전하겠다고 한국 측에 답했는지는 전하지 않았다. 미국 정부는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로 불거진 한중 갈등이 완화된 것을 환영했다. 헤더 나워트 국무부 대변인은 지난달 31일(현지 시간) 정례 브리핑에서 “한국과 중국이 긴밀한 관계를 갖게 된 것을 환영한다”며 “북한 위협과 역내 및 세계적 불안정에 좋은 일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나워트 대변인은 “사드에 대한 미국의 입장은 바뀌지 않았다”며 “(사드는) 한미 동맹의 결정에 따른 것으로 공격을 위한 게 아니라 방어 메커니즘”이라고 설명했다. 북한에 대한 중국의 인식 변화를 묻는 질문에 “중국은 북한을 ‘가시(thorn)’로 인식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일본도 일단 환영했지만 한중 관계 개선의 조건처럼 내걸린 3개 항에 대해서는 경계심을 감추지 않았다. 아사히신문은 1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아시아 순방 직전의 합의에서 중국의 전략적 의도가 엿보인다”며 “중국이 미국 일본으로부터 대북 강경노선을 압박받는 가운데 북한과의 대화에 적극적인 문재인 정권과 힘을 합해 대응하려 할 것”이라는 외무성 관계자의 말을 전했다. 신문은 또 중한 관계 개선은 중일 관계에도 영향을 줘 한중일 정상회의 개최를 앞당기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한중이 교류 정상화에 합의함에 따라 중국인의 한국 단체관광은 평창 올림픽과 춘제(春節·중국의 설)가 있는 내년 2월 본격 재개될 것으로 전망된다. ‘씨트립’, ‘투뉴’ 등 중국 대형 여행사들은 춘제에 맞춰 한국 관광 상품 판매를 재개할 것으로 알려졌다.베이징=윤완준 zeitung@donga.com / 도쿄=서영아 / 뉴욕=박용 특파원}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를 둘러싸고 갈등을 벌이던 한국과 중국이 지난달 31일 관계 복원에 합의하면서 한 고비를 넘겼다. 그간 된서리를 맞아온 관련 업계에선 훈풍이 불 것을 기대하는 목소리가 높다. 하지만 비슷한 상황이 벌어져 같은 경험을 되풀이할 우려는 없을까. 2010년과 2012년 센카쿠(尖閣)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 문제로 중국으로부터 경제 보복을 당한 일본의 사례는 참고할 만하다. 일본은 이후 중국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한편으로 철저한 ‘중국 리스크’ 관리에 들어갔다. 2012년 센카쿠 분쟁으로 중국 내 판매가 절반으로 곤두박질쳤던 일본 자동차 회사들은 이듬해 중국 판매 시장을 완전히 회복했다. 외견상으로는 중국과의 갈등이 가라앉은 덕이었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일본 자동차 업계는 성난 시위대의 손에 자사 매장이 불타고 불매운동이 벌어지는 심각한 상황에서도 감정에 휩쓸리지 않는 냉정한 정세 분석을 진행했다. “혹 우리는 외교 문제를 차가 팔리지 않는 핑계로 삼고 있지 않은가”, “우린 정말 중국 소비자가 사고 싶은 차를 만들어 온 걸까”…. 이와 동시에 중국 내 홍보 활동을 꾸준히 이어갔다. 도요타자동차는 폭력시위 두 달 뒤인 11월에 열린 광저우(廣州) 모터쇼에 과거 어느 때보다 많은 차를 출품했고 닛산도 최대 전시면적을 확보했다. 이들은 “앞으로도 중국에서 제대로 비즈니스를 할 것이다”(도요다 아키오 사장), “중국을 대체할 시장은 없다”(카를로스 곤 닛산 사장)며 여전히 중국을 중시한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사실 일본차의 중국 내 판매 둔화는 센카쿠 분쟁 이전에 시작됐다. 점유율이 2008년 30.5%로 정점을 찍은 뒤 계속 떨어져 2012년에는 20% 내외로 줄었다. 업계는 중국 판매분에 구형 모델이 많고 고객 우대 정책은 적었다는 점에 주목했다. 이후 혼다는 중국 시장 맞춤형 상품을 대거 출시해 2013년 10월 판매량을 전년 동기 대비 3.1배로 늘렸다. 일본 산업계는 향후 중국과의 관계가 악화되더라도 치명적 타격을 입지 않도록 대안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기업들은 중국 외에 동남아국가연합(ASEAN·아세안) 지역에 거점을 하나 더 만든다는 ‘차이나 플러스 원’ 전략에 돌입했다. 일본의 대중 직접투자는 2012년 73억8000만 달러(현재 환율로 약 8조4600억 원)에서 2015년 32억1000만 달러로 절반 이하로 줄었다. 반면 같은 기간 태국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 등 아세안 주요 4개국에 대한 직접투자는 64억 달러에서 두 배에 가까운 116억 달러로 늘었다. 이보다 앞서 2010년 제1차 센카쿠 갈등 당시 일본은 중국의 희토류 수출 금지 조치에 사흘 만에 손들어야 했다. 뼈아픈 실패 경험을 살려 방지책을 찾아 나갔다. 우선 희토류 수입원을 인도 베트남 카자흐스탄 등으로 다변화했다. 현지 정부와 손잡고 희토류 개발에 나서기도 했다. 둘째, 2012년 미국 유럽연합(EU)과 함께 중국을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해 2년 뒤 승소 판결을 받아냈다. 셋째, 희토류가 필요 없는 전자제품 개발에 나섰다. 정부는 기술개발 자금을 지원했다. 산케이신문 중국 특파원을 지낸 노구치 도슈(野口東秀) 다쿠쇼쿠(拓殖)대 객원교수는 “중국에서 한국 기업의 고전은 사드 탓으로만 보면 안 된다”며 “날로 발전하는 중국 기술력도 한국 기업이 설 자리를 위협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도쿄=서영아 특파원 sya@donga.com}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야마구치(山口)에 뿌리를 둔 정치 명문가 출신이다. 조부는 중의원 의원을 지낸 아베 간(安倍寬)이고 외조부는 1957∼1960년 총리를 지낸 기시 노부스케(岸信介), 외종조부는 1964∼1972년 총리를 지낸 사토 에이사쿠(佐藤榮作)다. 또 청일전쟁의 도화선이 됐던 1894년 경복궁 기습 점령의 주역 오시마 요시마사(大島義昌·1850∼1926)가 고조부이고 아버지는 ‘정계의 황태자’라 불린 외무대신 아베 신타로(安倍晋太郞)다. 아베 총리는 태생부터 정치이념까지 메이지(明治) 유신의 발상지 조슈(長州·현재의 야마구치)와 떼놓고 생각하기 어렵다. 조슈 출신들은 메이지 유신은 물론이고 침략전쟁으로 치달은 일본의 근현대사에서 핵심적 역할을 맡아 왔다. 야마구치가 배출한 총리만 해도 초대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에서 아베까지, 8명에 이른다(표 참조). 아베 총리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은 메이지 유신의 정신적 지도자로 추앙받는 요시다 쇼인(吉田松陰·1830∼1859). 막부 타도 활동으로 29세에 처형당한 그는 1857년 야마구치현 하기(萩)에 쇼카손주쿠(松下村塾)를 열고 불과 1년여 만에 90여 명의 제자를 배출했다. 다카스기 신사쿠(高杉晋作) 등 일부 제자들은 20대에 생을 마감했지만 이토 히로부미, 야마가타 아리토모(山縣有朋) 등은 살아남아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의 근대화를 이끌었다. 아베 총리와 부친의 이름에 공통되게 들어간 ‘신(晋)’은 다카스기의 이름에서 따온 것으로 알려졌다. 요시다 쇼인은 정한론(征韓論)의 주창자로 근대 일본우익 사상의 창시자라 할 수 있다. 그가 감옥에서 쓴 유수록(幽囚錄)은 정한론과 대동아공영론 등을 주창해 일본의 제국주의 팽창에 큰 영향을 끼쳤다. 홋카이도 개척과 오키나와 영토화, 조선의 식민지화, 만주 대만 필리핀의 영유 등 일본이 밖으로 뻗어나갈 것을 주장했다. 메이지 유신의 귀결이 제국주의와 침략전쟁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아베 총리 뒤에는 일본 최대 우익단체 ‘일본회의’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아베 총리는 5월 3일 자신의 ‘2020년 새 헌법 시행’ 구상을 밝힐 때도 일본회의 관련 행사에 동영상 메시지를 보내 “개헌을 위해서는 여러분의 활동이 불가결하다”고 도움을 호소했다. 3만8000여 명의 회원과 전국 지부를 거느린 일본회의는 물밑에서 개헌론을 이끄는 역할을 하고 있다. 모태는 좌익에 반발해 학원 정상화 운동을 펼치던 우파 종교단체 소속 학생들로 1997년에 결성됐다. 수십 년간 ‘풀뿌리 운동’을 지속한 끝에 지금은 ‘일본회의 국회의원 간담회’에 소속된 국회의원만 280명이나 되는 단체로 성장했다. 각료 상당수가 일본회의 소속인 아베 내각에 대해 ‘일본회의 내각’이라는 말도 나온다. 일본회의는 개헌을 위한 1000만 명 서명운동을 전개하며 개헌 드라이브를 뒷받침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일본회의의 최종 목표가 일왕을 중심으로 국가신도주의를 표방한 ‘메이지 헌법’의 복원이라고 보고 있다.도쿄=서영아 sya@donga.com·장원재 특파원}

“개헌 스케줄은 정해진 것이 없으며, 국민 이해를 얻도록 노력하겠다.” 중의원 선거 압승 다음 날인 23일,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밝혔다. 시종 신중하면서도 저자세로 임했지만 개헌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내보였다. 누가 봐도 그가 오랜 꿈인 개헌에 성큼 다가선 것은 분명해 보였다. 총선 승리의 기쁨은 25일 도쿄에서 열린 우익단체 ‘일본회의’ 관련 집회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총리의 최측근인 에토 세이이치(衛藤晟一) 보좌관은 “‘하늘의 때’를 얻었다”며 개헌 의지를 다졌다. 야마다 히로시(山田宏) 참의원은 “‘자위대의 명기’를 공약에 제시해 이긴 것이 최대의 승리”라고 했다.○ 보수 저변에 흐르는 패전 부정 욕구 1946년 공포된 이래 단 한 번도 개정되지 않은 일본의 평화헌법. 여기에 손을 대는 것은 아베 총리를 비롯한 일본 보수 세력의 비원(悲願)이다. 아베 총리가 특히 개헌에 집착하는 이유는 그것이 외조부 기시 노부스케(岸信介) 전 총리의 유지(遺志)였기 때문이다. 기시 전 총리는 태평양전쟁의 A급 전범 용의자로 체포돼 3년간 수감 생활을 했다. 평생 일본의 침략 전쟁이 ‘틀리지 않은 전쟁’이었다고 생각했고 평화헌법은 미국의 점령정책의 결과물이므로 “일본인의 손으로 반드시 개정해야 한다”는 신념을 버리지 않았다. 아베 총리는 이 미완의 과제를 완수해 자신의 이름을 역사에 남기고 싶은 것이다. 기시 전 총리의 생각에서 알 수 있듯 일본의 우익세력은 제2차 세계대전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을 뿐 아니라 패전을 근본적으로 부정하고 싶은 욕구를 갖고 있다. 우익단체 일본회의는 메이지(明治) 헌법을 가장 이상적인 헌법으로 생각한다. 일본이 세계열강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밖으로 뻗어 나가던 메이지 시대에 대한 향수가 작동한 탓이다. 일본 우익이 메이지 덴노(天皇)를 위해 목숨을 바친 영령들을 합사한 야스쿠니(靖國) 신사 참배에 집착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보통국가’가 될 때도 됐다” 설사 패전을 인정하더라도 전후 72년이 지난 이제는 ‘전후(戰後)로부터 탈각’해 ‘보통국가’로 갈 때가 된 것 아니냐고 보는 보수 세력이 적지 않다. 현행 헌법을 패전국인 일본이 다시 세계 패권에 도전하는 것을 막기 위해 연합국이 채운 족쇄로 보기 때문이다. 보통국가란 필요에 따라 주권적 권리를 행사해 전쟁을 할 수 있는 국가를 말한다. 아베 총리는 이에 따라 집권 이래 수시로 헌법 9조 개정 필요성을 제기해왔고 5월에는 9조는 그대로 두되 자위대의 존재를 추가하는 개헌안 로드맵을 제시하기도 했다. 그는 2015년 8월 내놓은 ‘전후 70년 담화’에서 “일본의 차세대에는 사죄의 숙명을 지워서는 안 된다”고 말해 더 이상 일본에 전쟁 책임을 묻지 말라는 뜻을 내비치기도 했다. 우익들은 평화헌법이 굴욕적인 것이라고 인식한다. 군대를 갖지 않을 것이며 전쟁을 영구히 포기하겠다는 평화헌법 9조로는 ‘보통국가’가 되기 어렵고 자국의 방위를 미국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1990년 8월에 발발한 걸프전은 일본 내에서 평화헌법에 의문을 제기하는 계기가 됐다. 국제사회가 자위대 파병을 요청했지만 헌법 9조 탓에 보낼 수 없었다. 그 대신 130억 달러(현재 환율 약 14조6400억 원)라는 천문학적인 전쟁 비용을 부담했지만 국제사회로부터 욕만 먹었다. 충격에 빠진 일본에서는 “역시 피를 흘리지 않으면 국제사회에서 무시당한다”는 말들이 돌았다.○ 때맞춰 불어주는 북풍 국제질서의 변화도 일본의 개헌 바람에 힘을 실어줬다. 냉전이 끝나고 각자도생의 시대가 시작됐다. 미국의 상대적인 국력 약화와 중국의 부상에 대응하려면 자체 방위력을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버락 오바마 미국 정권이 중국의 부상과 팽창주의적 노선에 대항하기 위해 추진한 리밸런싱 정책이 일본으로선 군사력을 강화할 기회였다. 이를 계기로 일본은 군비 확장을 가속화하고 집단적 자위권 인정, 안보법제 도입 등 자위대의 활동 범위를 넓혀나가고 있다. 여기에 세계의 경찰국가 역할을 벗어버리고 자국의 이익만을 추구하겠다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등장은 일본 우익들에 큰 기대감을 불어넣고 있다. 결국 일본의 군비 확장은 미국의 안보 분담 요구에 부응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때맞춰 불어주는 북풍은 아베 정권의 명분을 살려주고 있다. 그가 대중적으로 알려진 계기는 2002년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의 평양 전격 방문에 관방 부장관으로 수행했을 때였다. 당시 그는 북한에 대해 일본인 납치 문제를 이유로 강경론을 폈고 일본에서는 과거에 볼 수 없던 ‘국민의 안전을 최우선시하는 젊은 정치인’으로서 대중적 인기가 치솟았다. 북한이 국제사회의 경제 제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핵실험을 하고 장거리 미사일을 일본 열도 상공 너머로 쏘아 올리면서 일본인들이 느끼는 안보 불안감은 최고조에 달했다. 이번 선거 기간에도 아베 총리는 가는 곳마다 북풍몰이를 거듭했다.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은 개헌을 향한 아베호(號)에 순풍을 불어넣고 있다.도쿄=서영아 특파원 sya@donga.com}
“일본과 미국, 인도, 호주를 잇는 전략대화를 만들자.” 일본 정부가 미국과 호주, 인도를 포함한 4개국 정상급이 참가하는 전략대화를 추진하고 있다고 고노 다로(河野太郞) 외상이 밝혔다. 남중국해에서 인도양을 거쳐 아프리카에 이르는 해역에서 4개국이 자유무역과 방위협력을 동시에 추진한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광역 경제권 구상인 일대일로(一帶一路·21세기 육상과 해상 실크로드 프로젝트)를 내걸고 해양 진출에 속도를 내는 중국에 대항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고노 외상은 26일자 니혼게이자이신문 인터뷰에서 “전략대화를 실현하기 위해 이미 각국과 협의에 들어갔다”고 말했다. 8월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린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기간에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 줄리 비숍 호주 외교장관과 만나 4개국 전략대화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고 영국과 프랑스 외교장관에게도 연대 의사를 타진했다고 알려졌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다음 달 6일 열리는 미일 정상회담에서 4개국 전략대화를 여는 방안을 제안하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이해를 구한다는 방침이다. 신문은 고노 외상이 “일본도 전략적으로 큰 그림을 그리며 외교 노력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전했다. 최근 중국이 공산당 전국대표대회(당 대회)에서 최고 지도부 인사를 마무리하고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권력을 강화한 점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고노 외상은 전략대화의 의의에 대해 잠재 경제성장률이 높은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개발을 지원하기 위해서라며 “자유롭고 개방된 해양을 유지해 나가기 위해 경제와 안보도 당연히 테이블에 올릴 것”이라고 말했다. 우선은 4개국 국장급 대화부터 시작해 내년까지 외교장관급이나 정상급으로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4개국 전략대화는 아베 총리가 지난해 8월 케냐 아프리카 개발회의에서 제창한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 전략’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급성장 중인 아시아와 잠재력이 큰 아프리카를 경제적 요충지로 평가하고, 공적개발원조(ODA)와 민간투자를 끌어들여 집중 개발을 이끌어낸다는 구상이다. 고노 외상은 “항해의 자유를 유지하는 것은 안전 보장의 큰 주제”라면서 “자유롭고 열린 해양은 ‘일대일로’를 추진하는 중국을 포함한 모든 국가에 혜택이 된다”고 말했다.도쿄=서영아 특파원 sya@donga.com}
22일 일본 총선에서 당선된 차기 중의원 의원의 82%가 개헌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사히신문은 도쿄대와 함께 총선 후보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공동조사에서 이번 선거 당선자들의 회답만을 분석한 결과 헌법 개정에 대해 ‘찬성’ 혹은 ‘어느 쪽이냐면 찬성’이라고 답한 후보가 82%에 달했다고 24일 보도했다. 의원 5명 중 4명이 개헌에 찬성하는 셈이다. 당선된 465명의 의원 중 답변한 453명을 분석한 결과다. 개헌에 찬성하는 당선자는 자민당(회답 261명) 97%, 공명당(26명) 86%, 희망의당(47명) 88%, 일본유신회(11명)는 전원이었다. 반면 공산당(11명)과 사민당(2명)은 전원이 개헌에 반대했다. 입헌민주당(53명)도 반대 58%, 찬성 25%로 반대가 많았다. 개헌에 찬성해도 개정 항목에 대해서는 정당 간에 차이가 있었다. 자민당은 ‘전쟁 포기와 자위대’, 공명당은 ‘긴급사태조항’, 입헌민주당과 희망의당은 ‘중의원 해산’을 개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헌법 개정 시기에 대해서도 “꼭 이번 중의원 임기 중에 해야 한다고 보지는 않는다”는 답변이 65%를 차지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제안하는 헌법 9조에 자위대를 명기하는 안에 대해 자민당은 74%가 찬성한 반면 공명당은 54%가 “어느 쪽도 아니다”라고 답했다. 24일 마이니치신문이 전한 당선자 전원에 대한 조사 결과에서도 개헌 찬성은 82%였다. 자민당은 이번 중의원 선거에서 처음으로 ‘개헌’을 주요 공약에 넣었다. 아베 총리는 23일 선거 압승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도 개헌에 대해 “여야당의 폭넓은 합의 형성을 위해 노력하겠다”며 추진에 의욕을 밝혔다.도쿄=서영아 특파원 sya@donga.com}

일본 국민은 결국 아베 신조 정권의 계속, 즉 안정을 택했다. 22일 치러진 중의원 선거는 30년 경력의 베테랑 정치부 기자가 “이런 선거 처음”이라고 토로할 정도로 명분과 초점이 불확실하고, 야당의 분열 등 이변이 속출했다. 하지만 귀착점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아베 총리는 별일 없으면 2021년까지 정권을 이끌 가능성이 커졌다. 일본은 평화헌법 개정을 향한 모색을 계속할 것이다. 한일 관계도 답보할 공산이 크다. 선거판이 엎치락뒤치락하는 사이 일본의 미래 변화를 예고하는 소식도 전해졌다. 일본 언론은 20일 일본 정부가 아키히토 덴노(天皇)의 퇴위 시기를 2019년 3월 31일로 잡고 있다고 전했다. 선거일인 22일 니혼게이자이신문 1면은 이번 선거가 ‘포스트 헤이세이(平成)를 내다보는 선거’라는 제목을 뽑았다. 일왕이 바뀔 때마다 즉위한 해를 원년(1년)으로 새로 정해지는 연호는 공공기관의 연도 표기 등에 광범위하게 사용된다. “그는 쇼와 사람”이라고 하면 1926년부터 1989년생 세대를 뜻하는 식으로 한 세대, 한 시대를 묶는 단위로 쓰이기도 한다. 아키히토 일왕의 즉위와 함께 1989년 시작된 헤이세이 시대도 31년으로 막을 내리게 된다. 연호 자체가 ‘평화’를 담고 있는 헤이세이 시대는 전쟁의 참화를 기록한 쇼와 덴노의 64년 통치를 끝내고 새로운 시대로 돌입한 것을 의미했다. 돌이켜 보면 1990년대 일본에서 자민당 소속이 아닌 총리가 집권하고 고노 담화, 무라야마 담화 등을 내놓으면서 주변 국가들과 관계 개선을 도모한 것도 헤이세이, 즉 아키히토 일왕이 발신하는 분위기랄까 성향이 반영된 것 아니었나 싶다. 11세에 일본의 패전을 맞은 아키히토 일왕은 평화헌법이 규정한 덴노의 임무, 즉 국가의 상징 역할에 충실하려 노력했다. 1989년 즉위하자 일본이 전쟁 피해를 입힌 각국으로 ‘위령 여행’을 하며 진정한 ‘전후(戰後)’를 다듬어 갔다. 1991년에는 태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를 방문했고 1992년에는 중일 국교정상화 20년을 기념해 중국을 찾았다. 2005년에는 사이판의 한국인 전몰자 위령탑을 찾아 참배했고 2015년 팔라우, 2016년 필리핀 등의 옛 격전지를 찾았다. 이제 대만과 한국(북한 포함)만 남았다. 즉위 때부터 “한국을 방문할 기회가 있다면 친선 관계 증진에 노력하겠다”고 말해 왔지만 지금껏 성사되지 못했다. 주변에서는 “한국 방문은 위령 여행의 화룡점정”이라거나 “한국에 가지 않는다면 그의 전후는 끝나지 않는다”는 말이 돈다. 지난달 20일 일본 내 고구려 왕족을 모신 고마(高麗) 신사를 참배하자 일각에서는 “한국에 대한 반성과 화해의 메시지”라는 의미를 부여하기도 했다. 이런 그의 진심은 한국 내에도 상당히 알려져 있다. 한일 관계를 걱정하는 사람들은 그가 양국 관계 개선 계기를 만들어줄 것을 기대하기도 한다. 이낙연 총리는 23일자에 실린 아사히신문 인터뷰에서 “(아키히토 일왕이) 퇴위 전 한국에 와서 그간 양국이 풀지 못했던 문제에 대한 물꼬를 터 준다면 양국 관계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며 “그런 분위기가 빨리 조성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헤이세이 시대의 종언은 아베 총리의 장기집권 안착과 함께 새로운 시대를 예고한다. 헌법상 일본의 ‘상징’에 불과한 일왕은 일본 정부의 허락 없이는 움직일 수 없는 처지다. 장기집권의 발판을 다진 아베 정권에서 아키히토 일왕은 자신의 염원을 실현할 수 있을까. 혹 그가 방한하게 됐을 때 한국은 그 선의를 수용하고 미래를 향해 나아갈 수 있을까.서영아 부국장·도쿄 특파원 sya@donga.com}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중의원 선거에서 압승을 거두자마자 ‘필생의 과업’으로 정한 평화헌법 개정 의지를 공개적으로 밝혔다. 아베 총리는 23일 오후 도쿄(東京) 자민당 본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개헌안에 대해) 정치권의 폭넓은 합의를 형성하면서 국민의 이해를 심화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개헌을 공약의 주요 항목으로 포함시킨 것은 처음”이라고 강조해 이번 압승을 개헌에 대한 지지로 받아들이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이번 선거로 개헌 세력이 전체 의석의 80%가량을 차지하면서 개헌 움직임이 급물살을 탈 것으로 전망된다.○ 아베 “희망의당 등 여야 협력” 개헌연대 시사 집권 자민당과 연립여당 공명당은 전체 465석 중 313석을 얻어 개헌안 발의에 필요한 3분의 2(310석)를 넘는 의석을 확보했다. 특히 아베 총리가 이끄는 자민당은 상임위원장을 전원 독식하고 전체 상임위 과반을 차지할 수 있는 ‘절대 안정 다수’(261석)를 크게 웃도는 284석을 얻는 데 성공했다. 아베 총리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자민당이 한 총재 밑에서 3번 연속 중의원 과반수를 차지한 것은 처음”이라며 “목표를 넘는 신임을 받은 것에 감사하다”고 말했다. 이어 연립여당이 개헌안 발의선을 확보한 만큼 개헌을 분모로 보수 성향의 야당 정당과도 손잡고 ‘개헌연대’를 구축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연립여당(313석)에 개헌에 전향적인 희망의당(50석) 및 일본유신회(11석)를 합치면 전체 의석의 약 80%를 차지한다. 전쟁 포기와 군대 보유 금지를 규정한 헌법 9조 개헌에 유보적인 공명당(29석)을 제외하고도 충분히 개헌안을 발의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아베 총리는 향후 일정에 대해 “자민당의 개헌안을 국회 헌법심사회에 제안하고 국회 논의를 통해 국민의 이해를 심화하겠다”고 말했다. 이르면 올해 안에 자민당 개헌안을 내놓고 정치권에서 논의를 진행하면서 국민투표에서 과반수를 얻을 환경을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아베 총리는 5월 인터뷰에서 ‘2020년 새 헌법 시행’을 목표로 밝힌 바 있다. 선거 압승으로 아베 총리의 국정 장악력과 당내 입지는 한층 굳건해졌다. 자민당 2인자인 니카이 도시히로(二階俊博) 간사장은 전날 자민당이 압승한다는 출구조사 결과가 나오자 “아베 총리 다음은 아베 총리”라고 말했다. 이는 내년 가을 총재 선거에서 아베 총리의 3연임을 지지하겠다는 뜻이다. 3연임에 성공하면 아베 총리는 2021년까지 안정적으로 집권할 수 있으며, 2019년 11월이 지나면 일본 역사상 최장수 총리 기록을 새로 쓰게 된다. 아베 총리는 이날 기자회견 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30분 동안 통화를 하고 대북 정책 등을 협의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아베 총리에게 “대승리를 축하한다. 강한 리더가 국민의 강한 지지를 받았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두 정상은 트럼프 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하는 5일 함께 골프를 치기로 했다. 대승을 거뒀지만 아베 총리 개인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가 여전히 낮다는 점은 향후 국정운영의 변수로 꼽힌다. 교도통신 출구조사에 따르면 아베 총리를 ‘신뢰하지 않는다’고 답한 사람은 51%였던 반면 ‘신뢰한다’는 답변은 44.1%에 불과했다. 여당은 다음 달 1일 특별국회를 소집해 제4차 아베 내각을 발족한다.○ 고이케 “완패” 인정…야권 정계개편 이뤄질 듯 야권에서는 선거 직전 급조된 두 정당 사이에 희비가 엇갈렸다. 한때 돌풍을 일으킨 고이케 유리코(小池百合子) 도쿄도지사의 희망의당은 기존 의석(57석)에서 7석이나 줄어든 50석을 얻으며 몰락했다. 반면 진보 성향 민진당 의원들이 에다노 유키오(枝野幸男) 대표를 중심으로 만든 입헌민주당은 기존 의석(15석)의 3배를 넘는 55석을 얻으며 제1 야당이 됐다. 입헌민주당은 야권의 합종연횡 과정에서 원칙과 명분을 지킨 점이 평가를 받으며 표심을 모았다. 향후 공산당 사민당 등 군소 야당들과 연대하며 반(反)아베 전선의 중심에 서게 될 것으로 보인다. 에다노 대표는 “궁극적으로 자민당과 입헌민주당이 정권을 다투는 두 개의 큰 세력이 되는 상황을 만들어 내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도쿄=장원재 특파원 peacechaos@donga.com·서영아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