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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축구 8강전에서 패해 4강 진출이 좌절되며 대성통곡했던 한국 축구의 에이스 손흥민(29·토트넘)의 한이 드디어 풀렸다. 한국 축구 역사에 남을 통괘한 복수는 동갑내기 친구 황의조(브로도)가 해냈다. 김학범 감독이 이끄는 한국 올림픽축구대표팀이 5년 전의 패배를 되갚으며 2020 도쿄 올림픽 축구 8강에 올랐다. 한국은 28일 일본 요코하마의 요코하마 국립경기장에서 열린 남자 축구 조별리그 B조 3차전에서 기민한 움직임으로 경기를 주도하면서 황의조의 해트트릭과 원두재(울산), 김진야(서울), 이강인(발렌시아)의 연속 골로 온두라스에 6-0 완승을 거뒀다. 온두라스는 2016 리우 대회 8강에서 한국에 0-1 패배를 안겼었다. 조별리그 2승 1패(승점 6)를 기록한 한국은 조 1위로 8강에 진출했다. 한국은 2012년 런던올림픽(동메달)과 리우 대회 8강에 이어 3회 연속 8강에 올랐다. 온두라스는 이날 한국의 속도 전에 말려 전반 주전 수비수 카를로스 멘델레즈가 퇴장을 당하는 등 자멸하며 조별리그에서 탈락했다. 한국에 이어 뉴질랜드가 조 2위로 8강에 진출했다. 한국은 31일 오후 8시 A조 2위와 같은 장소에서 8강전을 벌인다. 4-0으로 대승을 거둔 루마니아와 조별리그 2차전부터 살아난 2선 공격진의 폭넓은 움직임이 온두라스 수비를 무너뜨렸다. 측면에서 패스를 주고 받다 반대편 측면으로 길고 빠르게 반대편 크로스 전개로 득점 활로를 뚫었다. 1, 2차전 무득점으로 칼을 갈고 나온 황의조의 방향 전환 킬패스 한 방이 승부를 결정지었다. 오른쪽 측면으로 쇄도하면서 황의조의 공간 패스를 받아 돌파를 시도하던 이동준이 수비에 걸려 넘어져 페널티킥이 선언됐고 전반 12분 황의조가 깔끔하게 차넣었다. 선제골로 한국이 분위기를 완전히 가져왔다. 온두라스는 여유 있게 패스를 주고 받다가 뒷 공간으로 빠져 들어가는 한국 선수들을 막느라 허둥댔다. 전반 19분 원두재가 다시 상대 반칙으로 얻은 페널티킥으로 두 번째 골을 만들었다. 황의조는 전반 추가 시간 오른발 슛으로 골망을 흔든데 이어 후반 7분에도 페널티킥 골로 해트트릭을 올리며 친구를 위한 복수전을 자축했다. 국제축구연맹(FIFA) 주관 대회에서 한국이 한 경기에 페널티킥으로 3골을 넣은 건 처음이다. 자신의 두 번째 골을 터트리고 활 시위를 당기는 세리머니를 선보인 황의조는 “양궁 선수들이 잘하고 있어 우리의 목표를 담았다. 목표는 금메달이다”며 “그동안 첫 골이 안 터져 부담이 컸다. 마음이 놓인다”고 후련한 표정을 보였다. 양궁 2관왕 김제덕(17)이 축구팬이라는 것에 대해 “김제덕이 3관왕을 이루지 못했는데 나머지 한 개를 우리가 따겠다”고 말했다. 후반 황의조와 교체돼 들어가 쐐기포를 터트린 이강인은 야구 배트를 휘두르는 세리머니를 선보였다. 이강인은 “(야구 올림픽 대표인) 강백호 선수와 우연히 알게 됐다. 골을 넣으면 세리머니를 해주기로 약속했다. 관심을 받는 두 종목이 잘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했다”고 밝혔다. 요코하마=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빛의조’ 황의조(29·보르도·사진)가 동갑내기 친구 손흥민(토트넘)을 위한 복수전에 나선다. 한국 올림픽축구대표팀이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8강전에서 0-1로 패배의 아픔을 안긴 온두라스와 28일 오후 5시 30분 요코하마 국립경기장에서 열리는 도쿄 올림픽 축구 B조 조별리그 3차전에서 리벤지 매치를 벌인다. 첫 경기에서 뉴질랜드에 0-1로 충격의 패배를 당한 뒤 루마니아를 4-0으로 대파한 한국은 무승부만 거둬도 조 2위까지 올라가는 8강에 진출한다. 하지만 온두라스전에 소극적으로 나설 수는 없다. B조는 4개국이 모두 1승 1패다. 온두라스에 지면 뉴질랜드-루마니아 경기 결과와 관계없이 한국은 탈락이다. 루마니아전에서 2선 공격진 이동경(울산)과 이강인(발렌시아)이 골을 넣으며 살아났고 김민재(베이징 궈안)를 대신해 와일드카드로 긴급 수혈된 박지수(김천)가 루마니아전에 처음으로 나서 안정적인 수비와 매끄러운 후방 빌드업을 보여줬다. 다만 스트라이커 황의조의 득점포가 터지지 않은 것이 옥에 티다. 문전에서 움직임이 나쁘지 않았지만 마음이 급하다 보니 결정적인 슈팅이 골키퍼 정면으로 향했다. 5년 전 올림픽대표팀에 와일드카드로 합류해 8강에서 온두라스의 문전을 노린 손흥민의 역할을 이번에 황의조가 맡는다. 당시 손흥민은 부지런히 골을 노렸지만 후반 14분 온두라스의 역습에 실점을 하고 패한 뒤 경기장에서 대성통곡을 했다. 손흥민이 소속팀 설득까지 하며 도쿄 올림픽 출전 의지를 강하게 보인 건 온두라스에 대한 복수를 염두에 둔 이유도 있다. 당시 손흥민을 2선에서 지원했던 권창훈(수원)이 이번 올림픽에서도 와일드카드로 합류해 황의조와 호흡을 맞춘다. 김학범 감독은 27일 훈련을 마친 후 “무조건 이긴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권)창훈이는 당시 경기를 뛰기까지 했다. 우리 선수들은 온두라스에 설욕한다는 생각으로 똘똘 뭉쳐 있다”고 말했다. 아시아경기와 A매치를 통틀어 손흥민으로부터 6차례 도움을 받아 골을 넣은 황의조가 손흥민의 찜찜했던 기억을 지워 주는 기분 좋은 복수로 보답할지 주목된다.도쿄=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막상 떨어지니 속이 후련하고요. 더 배워야겠습니다.” 2020 도쿄 올림픽 양궁 2관왕인 17세 천재 궁사 김제덕(경북일고)의 3관왕을 향한 질주가 아쉽게 멈췄다. 김제덕은 27일 일본 도쿄 유메노시마 공원 양궁장에서 열린 양궁 남자 개인전 2회전(32강)에서 독일의 플로이안 운루에게 3-7(30-28, 27-27, 27-28, 26-27, 28-29)로 덜미를 잡혔다. 랭킹 라운드 1위로 64강에서 말라위의 데이비드 아레네오를 6-0으로 가볍게 꺾은 김제덕은 32강 전에서도 1세트에 10점 3개를 연속으로 명중시키며 쉽게 경기를 이기는 듯 했다. 그러나 3-1로 앞선 3세트 태풍권 영향에 들어온 양궁장의 강한 바람에 조준점이 약간 흔들리며 연속으로 3세트를 내주고 이번 대회를 마감했다. 김제덕이 당연히 결승까지 갈 줄 알았던 국내외 취재진과 자원 봉사 요원들이 경기 결과에 일제히 놀라 말을 잇지 못했다. 첫 날 랭킹 라운드와 혼성전을 치른데 이어 26일 남자 단체전을 소화하고 다음 날 개인전에 나서는 빡빡한 일정이 올림픽을 처음 경험하는 김제덕에게 체력적, 심리적으로 부담이 된 것으로 보인다. 김제덕은 단체전 경기 중 계속 파이팅을 외치느라 목이 쉬어 이날 개인전에서는 차분하게 경기에 임했다. 샤우팅과 소리를 내지르며 자신있게 활 시위를 당기는 자신만의 스타일과 다르게 사대에 선 것이 오히려 집중에 방해가 됐다. 64강이 끝난 후에도 “태풍이 오는 듯 하다. 과감하게 슈팅을 해야될 것 같다. 어제는 좋은 꿈을 안 꿨다”며 집중하기 힘들어하는 모습을 내비쳤다. 경기 후 아쉬움에 눈가가 촉촉이 젖은 김제덕은 “3세트에 좌우로 부는 바람에 헷갈렸다. 3시, 9시 방향으로 순식간에 바뀌는 바람에 버벅거리면서 경기를 했다. 선수는 사대에 들어가서 빨리 상황 캐치를 하고 적응해야 한다는 것을 다시 알았다”며 “목이 정상적이지 않아서 파이팅을 안 하고 차분하게 경기를 했다. 파이팅을 안하니 긴장감이 있었는데 컨트롤을 못했다”고 말했다. 개인전보다는 단체전에 집중하자는 목표를 이뤄 개인전 탈락에도 마음은 후련하다는 김제덕은 “모든 선수들이 올림픽에 나서면서 아쉬움이 있을 것이다. 한국 선발전처럼 했다면 더 잘했을 것 같은데 올림픽 무대는 정말 다른 느낌이다. 큰 꿈을 이뤄가는 과정에 있다고 생각하고 더 많이 배워야할 것 같다”라며 팀 동료 선배, 지도자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김제덕은 도쿄로 오기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이 훌쩍 성장한 뒷 모습을 보여주며 경기장을 떠났다.도쿄=유재영기자 elegant@donga.com}

40세와 29세, 그리고 17세. 언뜻 보면 한데 어울리기 어려운 조합처럼 보인다. 하지만 바늘구멍에 비유되는 대표 선발전을 통과하고 ‘금메달’이라는 공동 목표를 위해 힘을 합친 세 남자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오진혁(40·현대제철), 김우진(29·청주시청), 김제덕(17·경북일고)으로 구성된 한국 양궁 남자 대표팀의 호흡은 완벽했다. 각자 다른 듯하지만 재료마다 감칠맛을 내는 비빔밥 같았다. 세 선수는 26일 도쿄 올림픽 양궁 남자 단체전에 나서기 전부터 각각 올림픽 금메달을 맛본 선수들이었다. ‘맏형’ 오진혁은 2012 런던 올림픽 개인전에서 금메달을 땄고, ‘둘째’ 김우진은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남자 단체전 금메달리스트다. 그리고 ‘막내’ 김제덕은 불과 이틀 전 이번 대회 혼성전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3명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를 막을 상대는 아무도 없었다. 1번 사수로 나선 김우진이 빠른 슈팅을 하면서 바람 등의 상황을 파악해 체크해 주면 2번 사수 김제덕이 김우진의 말에 따라 자신 있게 시위를 당겼다. 최고참 오진혁은 후배들의 플레이를 뒤에서 지켜본 뒤 미세 조정을 하며 깔끔한 마무리를 했다. 김제덕은 형님들이 깔아준 멍석 위에서 폭풍 기합과 파이팅으로 자신감을 끌어올리며 천재 기질을 발산하는 분위기 메이커였다. 10점을 쏠 때마다 김제덕은 상대 앞에서 큰 동작으로 세리머니를 하면서 포효했고, 선배들은 그런 막내를 보며 웃음을 머금었다. 뒤에서 경기를 지켜보던 홍승진 남자 대표팀 감독이 가끔씩 김제덕에게 ‘조금 자제하라’는 손동작을 할 정도였다. 준결승 상대였던 일본 선수들은 김제덕의 액션이 거슬리는 듯한 표정을 짓기도 했다. 김제덕은 이날 경기 중에도 각각 23세, 12세 위의 형들에게 슈팅 때 느낀 부분을 적극적으로 얘기했다. 상대 경기를 의식하지 않고 서로 의견을 주고받으며 다음 공략법을 찾아갔다. 금메달의 가장 큰 고비였던 일본과의 준결승전 승리도 팀워크의 승리였다. 세트스코어 4-4에서 치른 ‘슛오프’ 첫 발에서 김우진이 9점을 쏘면서 분위기가 살짝 가라앉았으나 김제덕이 김우진의 조언에 따라 곧바로 정중앙에 화살을 꽂았다. 김우진은 마지막 사수 오진혁을 위해 남은 시간을 “5, 4, 3…” 하는 식으로 알려주기도 했다. 나이 차이는 큰 편이지만 세대 차이는 없었다. 평소 대표팀 생활에서도 격의 없는 대화를 통해 간격을 줄이고 또 줄여가며 완전한 ‘원 팀’이 됐다. 오진혁은 “오랫동안 대표팀에 소속되면서 거의 동생들과 생활했다. 동생들과 함께 있는 게 편하고 익숙하다. 나도 젊어지는 듯한 느낌을 받아 좋다”고 말했다. 김우진도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이런 마음으로 서로 불편함을 없애면서 팀이 잘 만들어졌다. 제덕이의 파이팅을 진혁 선배가 잘 받아주면서 더 좋은 호흡이 유지됐던 것 같다”고 말했다. 오진혁은 “제덕이의 파이팅이 처음에는 낯설기도 했는데 자꾸 듣다 보니 긴장이 잘 풀린다. 미리 하겠다고 얘기한 건 아니고 일방적으로 먼저 해 버렸다”며 웃었다. 형들의 칭찬에 어쩔 줄 몰라하던 김제덕은 “두 형들로부터 경기를 운영하는 방식을 많이 배웠다. 경기 중에도 형들과 대화하면서 긴장이 풀렸다”고 말했다. 금메달을 확정지은 후 이들은 서로 주먹을 맞추고 등을 두드리며 친구처럼 퇴장했다. 3명이 경기 때 썼던 부속 장비 등이 담긴 박스는 막내가 아닌 허리에 해당하는 김우진이 들고 있었다.도쿄=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26일 도쿄 유메노시마 공원 양궁장에서 열린 2020 도쿄 올림픽 양궁 남자 단체전 한국과 일본의 4강전. 금메달을 향해 승승장구하던 한국은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졌다. 세트 스코어 4-4에서 맞이한 ‘슛오프’에서 첫 번째 사수 김우진(29·청주시청)이 9점을 쏜 뒤 일본이 10점 과녁 선상에 화살을 꽂은 것. 남은 화살은 겨우 두 발이었다. 다음 차례는 17세 막내 김제덕(경북일고). 이틀 전 안산(20)과 혼성전 금메달을 목에 건 그는 무거운 중압감에도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어느새 트레이드마크가 된 “파이팅”을 힘차게 외친 뒤 그의 손을 떠난 화살이 시속 198km의 속도로 70m를 날아가 과녁 정중앙 근처에 꽂혔다. 10점 만점. 결국 이 한 방이 한국을 정상으로 이끈 결정타가 됐다. 일본의 2, 3번 사수가 모두 9점을 쐈고 한국도 마지막 사수 오진혁(40·현대제철)이 9점을 기록하면서 28-28 동점이 되면서 승리는 한국에 돌아갔다. ‘슛오프’에서는 동점이 되면 과녁 정중앙에 가장 가까운 화살을 쏜 팀이 승리한다. 10점 표적의 지름은 12.2cm. 정중앙인 엑스텐(X-10)의 과녁은 지름 6.1cm의 원이다. 김제덕의 10점은 중심에서 3.3cm 떨어져 있었고, 일본의 10점은 5.7cm 지점에 박혀 있었다. 2.4cm 차이로 승부가 갈렸다. 김제덕의 한 방으로 심장 쫄깃한 승리를 거둔 한국은 결승에서 만난 대만을 세트 스코어 6-0(59-55, 60-58, 56-55)으로 완파했다. 한국 양궁은 24일 혼성전과 25일 여자 단체전에 이어 사흘 연속 금메달을 수확하며 5개 전 종목 석권에 한 걸음 더 다가갔다. 한국 남자 양궁은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 이어 두 대회 연속 제패에 성공했다. 1988년 이 종목이 시작된 뒤 전체 9개 금메달 가운데 6개를 휩쓸었다. 김제덕은 혼성전에 이어 2관왕에 올랐고, 김우진은 2016 리우 대회에 이어 두 대회 연속 금메달을 차지했다. 오진혁은 “제덕이가 영웅이다. 가장 힘들고 중요할 때 10점을 쏴 줬다”고 치켜세웠다. 김우진도 “‘슛오프’에서 제덕이의 10점으로 분위기가 반전됐다. 앞으로도 영웅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형들이 오늘 하루만 더 미치자고 해서 더 파이팅을 했다”는 김제덕은 형들에게 공을 돌렸다. 한국 양궁의 새로운 스타로 떠오른 김제덕은 내친김에 31일 열리는 남자 개인전에서 올림픽 양궁 역사상 첫 3관왕에 도전한다. 역시 2관왕인 여자 대표팀의 안산은 30일 여자 개인전에서 3관왕에 먼저 오를 수 있다. 재일교포 안창림(27)은 유도 남자 73kg급에서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고향이 도쿄인 안창림은 루스탐 오루조프(아제르바이잔)와의 동메달결정전에서 경기 종료 7초를 남기고 자신의 주특기인 업어치기를 극적으로 성공해 절반승을 따냈다.도쿄=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40살과 29살, 그리고 17살. 언뜻 보면 한데 어울리기 어려운 조합처럼 보인다. 하지만 바늘구멍에 비유되는 대표 선발전을 통과해 ‘금메달’이라는 공동 목표를 위해 힘을 합친 세 남자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오진혁(40·현대제철), 김우진(29·청주시청), 김제덕(17·경북일고)으로 구성된 한국 양궁 남자 대표팀의 호흡은 완벽했다. 각자 다른 듯하지만 재료마다 감칠맛을 내는 비빔밥 같았다. 세 선수는 26일 도쿄 올림픽 양궁 남자 단체전에 나서기 전부터 각각 올림픽 금메달을 맛 본 선수들이었다. ‘맏형’ 오진혁은 2012 런던 올림픽 개인전에서 금메달을 땄고, ‘둘째’ 김우진은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팍 남자 단체전 금메달리스트다. 그리고 ‘막내’ 김제덕은 불과 이틀 전 이번 대회 혼성전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3명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들을 막을 상대는 아무도 없었다. 1번 사수로 나선 김우진이 빠른 슈팅을 하면서 바람 등의 상황을 파악해 체크해주면 2번 사수 김제덕이 김우진의 말에 따라 자신 있게 시위를 당겼다. 최고참 오진혁은 후배들의 플레이를 뒤에서 지켜 본 뒤 미세 조정을 하며 깔끔한 마무리를 했다. 김제덕은 형님들이 깔아준 멍석 위에서 폭풍 기합과 파이팅으로 자신감을 끌어 올리며 천재 기질을 발산하는 분위기 메이커였다. 10점을 쏠 때마다 김제덕은 상대 앞에서 큰 동작으로 세리머니를 하면서 포효했고, 선배들은 그런 막내를 보며 웃음을 머금었다. 뒤에서 경기를 지켜보던 홍승진 남자 대표팀 감독이 가끔씩 김제덕에게 ‘조금 자제하라’는 손 동작을 할 정도였다. 준결승 상대였던 일본 선수들이 김제덕의 액션이 거슬리는 듯한 표정을 짓기도 했다. 김제덕은 이날도 경기 중에도 각각 23살, 12살 위의 형들에게 슈팅 때 느낀 부분을 적극적으로 얘기했다. 상대 경기를 의식하지 않고 서로 의견을 주고받으며 다음 공략법을 찾아갔다. 금메달의 가장 큰 고비였던 일본과의 준결승전 승리도 팀워크의 승리였다. 세트스코어 4-4에서 치른 ‘슛 오프’ 첫 발에서 김우진이 9점을 쏘면서 분위기가 살짝 가라앉았으나 김제덕이 김우진의 조언에 따라 곧바로 정 중앙에 화살을 꽂았다. 김우진은 마지막 사수 오진혁을 위해 남은 시간을 “5, 4, 3…”하는 식으로 알려주기도 했다. 나이 차이는 큰 편이지만 세대 차이는 없었다. 평소 대표팀 생활에서도 격의 없는 대화를 통해 간격을 줄이고 또 줄여가며 완전한 ‘원 팀’이 됐다. 오진혁은 “오랫동안 대표팀에 소속되면서 거의 동생들과 생활했다. 동생들과 함께 있는 게 편하고 익숙하다. 나도 젊어지는 듯한 느낌을 받아 좋다”고 말했다. 김우진도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이런 마음으로 서로 불편함을 없애면서 팀이 잘 만들어졌다. 제덕이의 파이팅을 진혁 선배가 잘 받아주면서 더 좋은 호흡이 유지됐던 것 같다”고 말했다. 오진혁은 “제덕이의 파이팅이 처음에는 낮설기도 했는데 자꾸 듣다보니 긴장이 잘 풀린다. 미리 하겠다고 얘기한 건 아니고 일방적으로 먼저 해 버렸다”며 웃었다. 형들의 칭찬에 어쩔 줄 몰라하던 김제덕은 “두 형들로부터 경기를 운영하는 방식을 많이 배웠다. 경기 중에도 형들과 대화하면서 긴장이 풀렸다”고 말했다. 금메달을 확정지은 후 이들은 서로 주먹을 맞추고 등을 두드리며 친구처럼 퇴장했다. “제덕아 축하해.” 시상식을 준비하러 라커룸으로 걸어가는 김제덕에게 김우진이 재차 축하 인사를 건넸다. 3명이 경기 때 썼던 부속 장비 등이 담긴 박스는 막내가 아닌 허리에 해당하는 김우진이 들고 있었다. 도쿄=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9연패 신화를 쐈다, 神弓 코리아 ‘텐(10점). 텐. 텐.’ 세계 최강 한국 양궁이 올림픽 여자 단체전에서 9회 연속 금메달의 쾌거를 이뤘다. 강채영(25·현대모비스), 장민희(22·인천대), 안산(20·광주여대)이 나선 여자 양궁 대표팀은 25일 도쿄 유메노시마 공원 양궁장에서 열린 2020 도쿄 올림픽 양궁 여자 단체전에서 압도적인 기량으로 금메달을 거머쥐었다. 8강과 4강에서 한 세트도 내주지 않은 한국은 결승전에서도 러시아올림픽위원회(ROC)를 6-0(55-53, 56-53, 54-51)으로 완파했다. 전날 김제덕(17·경북일고)과 짝을 이뤄 신설 종목인 혼성전에서 금메달을 따낸 여자 대표팀 막내 안산은 다시 시상대 가장 위에 서며 이번 대회 전체 참가 선수를 통틀어 첫 2관왕에 올랐다. 안산은 남은 개인전에서 한국 선수 최초 여름올림픽 3관왕도 노린다. 겨울올림픽에서는 쇼트트랙 남자 안현수와 여자 진선유가 2006 토리노 대회에서 3관왕에 오른 적이 있다. 이로써 한국 양궁은 혼성전과 여자 단체전에 걸린 금메달을 휩쓸어 5개 전 종목 석권을 향해 순항했다. 한국은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 양궁에 걸린 금메달 4개를 모두 차지했다. 한국 여자 양궁은 단체전이 처음 도입된 1988 서울 대회부터 이번 도쿄 대회까지 9번의 올림픽 무대에서 그 누구의 도전도 허락하지 않으며 정상의 자리를 지켰다. 30년 넘게 한 국가가 특정 종목 올림픽 금메달을 9차례 연속으로 따낸 건 여자 양궁이 3번째다. 케냐가 육상 3000m 장애물에서 1984 로스앤젤레스 올림픽부터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까지 9회 연속 금메달을 가져갔다. 미국도 같은 기간 남자 수영 혼계영 400m에서 9회 연속 우승했다. 한국 양궁은 이날까지 역대 올림픽에서 25개의 금메달을 따내며 겨울올림픽 종목인 쇼트트랙(24개)을 넘어 한국 스포츠 최고의 금맥이 됐다.공정한 경쟁이 낳은 女양궁 9연패 더 이상 완벽할 수 없는 금메달이었다. 25일 일본 도쿄 유메노시마 공원 양궁장에서 열린 2020 도쿄 올림픽 양궁 여자 단체전에 출전한 안산(20)과 강채영(25), 장민희(22)는 8강부터 결승까지 단 한 세트도 상대 팀에 내주지 않았다.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이후 25년 만에 올림픽에 나간 적이 없는 선수들로만 팀을 꾸려 경험 부족이 지적됐으나 퍼펙트하게 정상에 섰다. 상대 팀들은 한국과 경기를 한다는 것만으로 지레 위축돼 실수를 연발했다. 어떤 특혜도 없는 오로지 실력과 원칙에 따른 공정한 선발 과정은 세계 최강 한국 양궁을 이끌었다. 대한양궁협회에 따르면 올림픽 대표 선발을 위해 6개월 동안 5차례 선발 과정을 거쳤다. 대표로 뽑힌 선수들이 선발전에서 쏜 화살만도 1인당 2500발가량 된다. 매일 300발씩 1년에 10만 발을 쏜 선수도 있다. 안산은 “국가대표 1차 선발전에서 49등을 했을 때가 너무 힘들었다. 순위를 끌어올리기 위해 많은 ‘솔루션’을 준비했다”고 말했다. 2004 아테네, 2012 런던 올림픽 단체전 금메달리스트인 이성진 본보 해설위원은 “백지 한 장 차이인 선수들이 바늘구멍 같은 대표 선발전을 거치며 강해질 대로 강해진다”며 “이제는 신인 선수들이 더 무섭게 치고 올라오는 추세”라고 말했다. 바늘구멍을 통과한 강채영과 장민희, 안산은 경기 도중 웃고 장난까지 치며 편안하게 활시위를 당겼다. 당당하게 선발된 최고 궁사에게는 철저한 준비와 전폭적인 투자가 따랐다. 양궁 대표팀은 도쿄 올림픽 양궁 경기장과 주변 환경을 그대로 옮겨놓은 진천선수촌 양궁 세트에서 집중적으로 실전 훈련을 했다. 일정하지 않은 흐름으로 부는 강한 바람, 카메라 셔터 소리, 취재진 등의 이동 동선, 양궁장 주변 상공을 지나가는 비행기 소음 등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을 모두 가정해 훈련을 했다. 대한양궁협회는 ‘도쿄 쌍둥이 세트’ 조성에 1억5000만 원을 투자했다. 해변에 위치한 도쿄 양궁장과 입지 조건이 비슷한 전남 신안군 자은도에서도 1주일 동안 강한 바닷가 바람에 적응하는 특별 훈련을 했다. 만약에 대비해 지진 상황 대처법까지 연습했다. 강채영은 “대한양궁협회가 올림픽 경기장 같은 환경을 만들어줘 매일 실제 올림픽 경기를 하는 것처럼 훈련을 했다. 진천선수촌 양궁장은 불이 꺼지지 않는 양궁장이었다”고 말했다. 이성진 위원은 “올림픽 전에 경기장을 똑같이 만들어서 훈련하는 나라는 한국뿐이다. 도쿄 올림픽 양궁장이 선수들에게는 집 같았을 것”이라고 했다. 단체전에서 활 쏘는 순서는 평소 훈련 과정에 축적된 수천 발 결과에 따라 각자의 장점을 충분히 살릴 조합으로 결정됐다. 짧은 시간 안에 과감하게 활을 쏘는 안산이 막내지만 1번 주자로 분위기를 이끌었다. 한국스포츠정책과학원 김영숙 선임연구위원은 순번별로 선수들에게 명확한 역할을 알려주면서 긍정적 마인드를 갖게 했다. 단체전 9연패를 이룬 신궁 삼총사는 29, 30일 열리는 개인전에 나서 금메달을 놓고 경쟁한다. 랭킹 라운드에서 세 명이 1, 2, 3위를 휩쓸었기 때문에 4강전까지는 한국 선수끼리 맞붙지 않게 된 점도 개인전 우승을 향한 기분 좋은 집안싸움의 기대감을 키우고 있다. 3관왕을 노릴 수 있게 된 안산은 “단체전 금메달 목표를 이뤘기 때문에 개인전 욕심은 없다. 재미있게 하고 싶다”고 말했다. 주장 강채영은 “경기장에서 흘러나온 음악이 BTS(방탄소년단) 노래가 아니라 아쉬웠다”면서도 개인전 의지를 다졌다.도쿄=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재능과 멘털을 겸비한 17세 ‘양궁 천재’의 등장에 세계가 놀랐다. 올림픽 금메달보다 어렵다는 국내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3위로 턱걸이해 인생 첫 올림픽에 나선 김제덕(17·경북일고)이 24일 도쿄 올림픽 양궁 혼성전에서 그동안 볼 수 없던 양궁 DNA로 금메달을 따내는 대형 사고를 쳤다. 심한 압박감을 받는 상황에서도 우렁찬 기합으로 당당하게 사대에서 서서 10점을 쏘는 대담함과 나이답지 않은 넉살, 조용한 양궁장에서 감정을 그대로 표현하는 퍼포먼스, 경기의 상황과 포인트를 에피소드와 섞어 듣는 사람을 집중시키는 인터뷰 스킬에 보는 팬들이나 한국 양궁 관계자들도 발칵 뒤집어졌다. 김제덕은 예전의 한국 양궁 스타들과 확연히 다르다. 한국 사회의 MZ세대(밀레니얼+Z세대)처럼 한국 양궁계에 나타난 새로운 세대다. 이전 선배들은 감정을 많이 표현하지 않았다. 묵묵히 자기 활을 쏘는 데 집중했다. 반면 김제덕은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과감하게 덤비고 기쁜 감정을 즉시 표현한다. 혼성전에서 자신이 먼저 쏘고 바로 누나인 안산(20·광주여대)에게 열렬하게 조언하고 연방 “파이팅”을 외치기도 했다. 긴장을 풀어줄 의도였는데 양궁장에서 흔치 않은 모습이었다. 많은 취재진 앞에서도 ‘리오넬 메시(FC 바르셀로나)가 좋냐,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유벤투스)가 좋냐’는 질문에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메시”로 답하며 구체적인 이유까지 설명한다. 금메달을 따낸 후 기자회견에서는 “좋은 징조의 뱀 꿈을 꿨다”고 먼저 화제를 던지는 여유를 보인다. 이런 겁 없는 캐릭터는 자신감에서 비롯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김제덕을 아는 지도자들은 그가 양궁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확실한 방향을 설정해 놓고 그 안에서 자유롭게 양궁을 즐기면서 감정을 컨트롤할 줄 안다고 얘기한다. 기술적인 부분 등에 너무 집착하지 않고 단순하게 과녁의 중심에 화살을 모은다는 통 큰 마음으로 양궁을 대한 것이 빠른 실력 향상을 이끌었다는 얘기다. 김제덕이 양궁을 시작한 건 예천초 3학년 때다. ‘그저 화살이 과녁 정중앙에 꽂힐 때의 쾌감이 좋아서’가 양궁을 시작한 이유다. 김제덕은 당시의 마음가짐을 지금도 항상 떠올린다고 한다. 그래서 “양궁은 즐기면서 쏴야 한다”는 생각이 확고해졌고, “활로 쌓인 스트레스는 다시 활로 풀어야 한다”는 마음가짐을 세워 자연스럽게 양궁에 미치게 됐다. 복잡한 생각을 하지 않는 편이라 주변 사람도 편하게 다가간다. 김제덕은 친구와 주변 사람들로부터 ‘레골라스 제덕’으로 불린다고 한다. 레골라스는 영화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인물이다. 최고의 궁수이면서 긍정적인 유머와 통쾌한 입담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캐릭터다. ‘대충 쏴도 텐텐’이라는 캐릭터까지 붙어 다녔다. 경북일고 양궁부 후배인 황정인은 “연습 때도 10점만 쏴서 언제든지 10점을 쏠 것 같은 믿음을 준다. 그냥 ‘10점 느낌 알잖아요’라는 말밖에 해줄 수 없는 형”이라고 말했다. 천재적 기질을 인정받은 것이 엿보인다. 김제덕은 “과거에는 100% 자신감을 갖고 있었지만 양궁을 알아가면서 운에 맡길 부분도 있다고 생각한다”며 스스로의 노력으로 채울 공간을 만들어내겠다는 나이답지 않은 성숙함도 보여줬다. 도쿄=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재능과 멘탈을 겸비한 17세 ‘양궁 천재’의 등장에 세계가 놀랐다. 올림픽 금메달보다 어렵다는 국내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3위로 턱걸이해 인생 첫 올림픽에 나선 김제덕(17·경북일고)이 24일 도쿄 올림픽 양궁 혼성전에서 ‘별종’ 양궁 DNA로 금메달을 따내는 대형 사고를 쳤다. 심한 압박감을 받는 상황에서도 우렁찬 기합으로 당당하게 사대에서 서서 10점을 쏘는 대담함과 나이답지 않은 넉살, 조용한 양궁장에서 감정을 그대로 표현하는 퍼포먼스, 경기의 상황과 포인트를 에피소드와 섞어 듣는 사람을 집중시키는 인터뷰 스킬에 보는 팬들이나 한국 양궁 관계자들도 발칵 뒤집어졌다. 역대 올림픽에서 뛰어난 활약을 보인 양궁 선수들이 갖고 있는 스타일의 선입견을 김제덕이 완전히 바꿔 놓았다. ‘될 대로 돼라’는 식으로 과감하게 덤비고 기쁜 감정을 즉시 표현하는 스타일은 확실히 과거에 봐온 전형적인 양궁 선수들의 기질과는 다르다. 많은 취재진 앞에서도 ‘리오넬 메시(FC 바르셀로나)가 좋냐,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유벤투스)가 좋으냐’는 질문에 1초의 망설임 없이 “메시”로 답하며 구체적인 이유까지 설명하고, 금메달을 따낸 후 기자회견에서 좋은 징조의 뱀 꿈을 꿨다고 먼저 화제를 던지는 여유에서 확실히 느껴진다. 김제덕을 아는 지도자들은 그가 양궁을 어떻게 해야하는지 확실한 방향을 설정해 놓고 그 안에서 자유롭게 양궁을 즐기면서 감정 컨트롤을 할 줄 안다고 얘기한다. 기술적인 부분 등에 너무 집착하지 않고 단순하게 과녁의 중심에 화살을 모은다는 통 큰 마음으로 양궁을 대한 것이 빠른 실력 향상을 이끌었다는 평가다. 김제덕이 양궁을 시작한 건 예천초 3학년 때다. ‘그저 화살이 과녁 정중앙에 꽂힐 때의 쾌감이 좋아서’가 양궁을 시작한 이유다. 김제덕은 당시의 마음가짐을 지금도 항상 떠올린다고 한다. 그래서 “양궁은 즐기면서 쏴야한다”는 생각이 확고해졌고, “활로 쌓인 스트레스는 다시 활로 풀어야 한다”는 마음가짐을 세워 자연스럽게 양궁에 미치게 됐다. 복잡한 생각을 하지 않는 편이라 주변 사람도 편하게 다가간다. 김제덕은 친구와 주변 사람들로부터 ‘레골라스 제덕’으로 불린다고 한다. 레골라스는 영화 ‘반지의 제왕’에서 나오는 인물이다. 최고의 궁수이면서 긍정적인 유머와 통쾌한 입담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캐릭터다. ‘대충 쏴도 텐텐’이라는 캐릭터까지 붙어 다녔다. 경북일고 양궁부 후배인 황정인은 “연습 때도 10점만 쏴서 언제든지 10점을 쏠 것 같은 믿음을 준다. 그냥 ‘10점 느낌 알잖아요’ 라는 말밖에 해줄 수 없는 형”이라고 말했다. 천재적 기질을 인정받은 것이 엿보인다. 자기 양궁에 대한 고집이 없기 때문에 쉽게 다가서고 받아들이는 것도 스펀지 같다. 혼성전에서 자신이 먼저 쏘고 바로 누나인 안산(20·광주여대)에게 열렬하게 조언하고 파이팅을 보내면서 긴장을 풀어주는 모습은 낯설지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는 반응이다. 선배들의 노하우와 경험을 배우겠다며 이제가 시작이라는 겸손한 모습도 김제덕이 가진 또 하나의 매력이다. 김제덕은 “과거에는 100% 자신감을 갖고 있었지만 양궁을 알아가면서 운에 맡길 부분도 있다고 생각한다”며 스스로의 노력으로 채울 공간을 만들어내겠다는 나이답지 않은 성숙함도 보여줬다. 도쿄=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더 이상 완벽할 수 없는 금메달이었다. 25일 일본 도쿄 유메노시마 공원 양궁장에서 열린 2020 도쿄 올림픽 양궁 여자 단체전에 출전한 안산(20)과 강채영(25), 장민희(22)는 8강부터 결승까지 단 한 세트도 상대 팀에 내주지 않았다.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이후 25년 만에 올림픽에 나간 적이 선수들로만 팀을 꾸려 경험 부족이 지적됐으나 더욱 완벽하게 정상에 섰다. 상대팀들은 한국과 경기를 한다는 것만으로 지레 위축이 돼 실수를 남발했다. 패한 뒤엔 고개를 끄덕이며 수준 차이를 인정했다. 철저한 준비와 전폭적인 투자가 최강 한국 양궁이 느낄 수 있던 심리적 부담과 경기력 저하 변수를 원천 봉쇄했다. 한국 양궁 대표팀은 도쿄 올림픽 양궁 경기장과 주변 환경을 그대로 옮겨놓은 진천선수촌 양궁 세트에서 집중적으로 실전 훈련을 했다. 일정하지 않은 흐름으로 부는 강한 바람, 카메라 셔터 소리, 취재진 등의 이동 동선, 양궁장 주변 상공을 지나가는 비행기 소음 등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을 모두 가정해 훈련을 했다. 해변에 위치한 도쿄 양궁장과 입지 조건이 비슷한 전남 신안군 자은도에서도 1주일 동안 강한 바닷가 바람에 적응하는 특별 훈련을 했다. 강채영은 시상식을 마친 후 “대한양궁협회가 올림픽 경기장 같은 환경을 만들어줘 매일 실제 올림픽 경기를 하는 것처럼 훈련을 했다. 진천선수촌 양궁장은 불이 꺼지지 않는 양궁장이었다. 이런 노력이 있었기 때문에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2004 아테네, 2012 런던 올림픽 단체전 금메달리스트인 이성진 본지 해설위원은 “올림픽 전에 경기장을 똑같이 만들어서 훈련을 하는 나라는 한국뿐이다. 도쿄올림픽 양궁장이 선수들에게는 집 같았을 것”이라고 했다. 5차례 선발 과정을 거친 경험도 선수 각자에게 든든한 밑천이 됐다. 안산은 “국가대표 1차 선발전에서 49등을 했을 때가 너무 힘들었다. 순위를 끌어올리기 위해 많은 ‘솔루션’을 준비를 했다”고 말했다. 이성진 위원은 “백지 한 장 차이인 선수들이 바늘구멍 같은 대표 선발전을 거치며 강해질 대로 강해진다”며 “이제는 신인 선수들이 더 무섭게 치고 올라오는 추세”라고 말했다. 바늘 구멍을 통과한 강채영과 장민희, 안산은 경기 도중 웃고 장난까지 치며 편안하게 활시위를 당겼다. 시상식을 마친 뒤 주장 강채영은 “경기장에서 흘러나온 음악이 BTS(방탄소년단) 노래가 아니라 아쉬웠다”고 웃으면서 개인전 의지를 다졌다. 단체전에서 활 쏘는 순서는 평소 훈련 과정에 축적된 수천 발 결과에 따라 각자의 장점을 충분히 살릴 조합으로 결정됐다. 짧은 시간 안에 과감하게 활을 쏘는 안산이 막내지만 1번 주자로 분위기를 이끌었다. 한국스포츠정책과학원 김영숙 선임연구위원은 순번 별로 선수들에게 명확한 역할을 알려주면서 긍정적 마인드를 갖게 했다. 단체전 9연패를 이룬 신궁 삼총사는 29~30일 열리는 개인전에 나서 금메달을 놓고 경쟁한다. 랭킹 라운드에서 세 명이 1,2,3위를 휩쓸었기 때문에 4강전까지는 한국선수끼리 맞붙지 않게 된 점도 개인전 우승을 향한 기분 좋은 집안싸움의 기대감을 키우고 있다. 3관왕을 노릴 수 있게 된 안산은 “단체전 금메달 목표를 이뤘기 때문에 개인전 욕심은 없다. 재미있게 하고 싶다”고 말했다.도쿄=유재영기자 elegant@donga.com}

한국 여자 양궁이 전무후무한 올림픽 단체전 9연패를 달성했다. 강채영(25·현대모비스), 장민희(22·인천대), 안산(20·광주여대)으로 구성된 한국 여자 양궁 대표팀은 25일 일본 도쿄 유메노시마공원 양궁장에서 열린 2020 도쿄 올림픽 여자 단체전 결승에서 크세니야 페로바, 옐레나 오시포바, 스페틀라나 곰보에바로 팀을 꾸린 러시아올림픽위원회(ROC)에 세트스코어 6-0(55-54, 56-53, 54-51)으로 완승을 거뒀다. 한국 양궁은 올림픽에 양궁 단체전이 처음 도입된 1988년 서울 대회부터 이번 대회까지 한 번도 놓치지 않고 9개의 금메달을 모두 가져왔다. 세 명 모두 처음 출전한 올림픽이었지만 압도적인 실력을 앞세워 시상대 가장 높은 곳에 섰다. 한국은 8강에서 만난 이탈리아를 세트스코어 6-0으로 완파한 데 이어 준결승에서는 벨라루스를 5-1로 꺾었다. 결승에서 만난 ROC에게도 한 세트로 허용하지 않은 채 완승을 거뒀다. 1번 사수로 나선 안산이 기선을 제압하면, 2번 사수 강채영이 힘을 보태고, 3번 사수 장민희가 마무리를 짓는 전술이 제대로 먹혀들었다. 여자 대표팀의 막내 안산은 ROC와의 결승에서 6번의 화살 가운데 3번을 10점 과녁에 꽂아 넣으며 승리의 주역이 됐다. 하루 전 김제덕(17·경북일고)과 함께 나선 혼성전에서 한국 선수단에 첫 금메달을 안겼던 안산은 연이틀 금메달을 목에 걸며 2관왕에 올랐다. 안산은 27일부터 시작되는 여자 개인전을 통해 올림픽 양궁 역사상 첫 3관왕에 도전한다. 64명의 선수가 출전하는 여자 개인전은 27~29일 32강전을 치른다. 그리고 30일 16강부터 결승전까지를 하루에 치른다. 여자 개인 결승은 30일 오후 4시 45분에 열린다.도쿄=유재영기자 elegant@donga.com이헌재 기자uni@donga.com}

한국 양궁의 ‘무서운 막내 콤비’가 2020 도쿄올림픽에서 한국선수단에 첫 금메달을 안겼다. 2000년대 태어난 김제덕(17·경북일고)과 안산(20·광주여대)이 그 주인공이다. 김제덕과 안산은 24일 일본 도쿄의 유메노시마공원 양궁장에서 열린 혼성단체전 결승전에서 네덜란드의 스테버 베일러르-가브리엘라 슬루서르 조를 5-3(35-38, 37-36, 36-33, 39-39)으로 꺾고 서로에게 금메달을 걸어줬다. 도쿄 올림픽에 출전한 남자 양궁 선수 64명 가운데 가장 어린 김제덕은 한국 남자 양궁 사상 최연소(17세 3개월)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라는 영광을 안았다. 전날 랭킹라운드에서 680점을 쏴 올림픽 신기록을 25년 만에 깨뜨린 안산 역시 올림픽 데뷔 무대를 화려하게 장식했다. 김제덕과 안산은 이번 올림픽에서 사상 첫 양궁 3관왕을 향한 1차 관문을 넘었다. 혼성단체전은 남녀 1명씩 조를 이뤄 한 세트에 4발씩(남자 2발, 여자 2발) 화살을 쏜다. 이기면 2점, 무승부면 1점을 따는 방식으로 5점을 먼저 얻는 팀이 승리한다. 시위를 당기자마자 힘차게 내려놓는 최고 시속 201km의 김제덕 화살과 침착하게 날아간 189km의 안산 화살이 절묘하게 시너지를 냈다. 인도와의 8강전에서 4세트 잠시 안산이 흔들리자 동생 김제덕이 10점을 쏘며 안산에게 주먹을 맞대고 힘을 불어 넣었다. 멕시코와 4강전에서도 2, 3세트 4발을 연달아 꽂은 김제덕이 안산에게 적극적으로 바람의 방향 등을 알려주며 파이팅을 했고 안산이 마지막 발을 10점에 꽂아 넣으며 5-1 완승을 거뒀다. 결승전에서 네덜란드가 예상 외로 선전을 하며 1세트를 가져가 위기를 맞았지만 둘은 서로의 호흡에 집중했다. 2세트 안산이 마지막 4번 째 발을 10점에 꽂고 한 점 차로 2-2 균형을 맞추며 흐름을 반전시켰다. 3세트를 36-33으로 잡은 김제덕과 안산은 4세트에서 첫 두 발을 나란히 10점에 명중시켜 기세를 이어갔다. 10점으로 맞장구를 친 네덜란드와 39-39로 비기며 금메달을 확정지었다. 경기 후 안산은 “한국 선수단 첫 금메달을 따게되서 영광이고, 저의 기운이 대표팀에 전해졌으면 한다”고 기뻐했다. 매 세트 첫 번째 순서마다 ‘화이팅’, ‘코리아 파이팅’이라고 크게 기합을 넣으며 긴장을 이겨낸 김제덕은 “먼저 쏘고 나서 누나에게 ‘자신있게 우리 것만 하자’고 말해줬다”며 경기에서 집중했던 상황을 설명했다. 안산은 4세트 네덜란드가 39점을 쏘고 한국이 30점인 상황에서 마지막 한 발 쏠 때에 대해 “무조건 9점, 10점 상관없이 노란 과녁만 맞추자는 생각으로 임했다. 제덕과 호흡이 너무 잘 맞았다”고 웃었다. 김제덕과 안산은 전날 열린 랭킹라운드에서 나란히 1위를 차지해 한국 대표팀의 선배들을 모두 제치고 이번 대회 신설된 혼성 단체전 출전권을 따내면서 돌풍을 예고했다. 올림픽 경험도 전혀 없었지만 두 선수는 위기에도 흔들림 없이 정상을 향해 걸어 나갔다. 김제덕이 시니어 무대에 나선 건 올해가 처음이다. 천재 궁사로 이름을 날리던 그는 2019년 도쿄올림픽 선발전에서 어깨 부상으로 기권하면서 올림픽 출전의 꿈이 날아가는 줄 알았다. 하지만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올림픽이 1년 연기되면서 다시 기회를 잡았다. 파이팅이 넘치며 두려움을 모르는 강심장이 장점이다. 초등학교 시절 ‘영재발군단’이라는 TV 프로그램에 출연해 양궁 신동으로 소개되기도 했다. 광주체고 출신인 안산은 2019년 독일 베를린 월드컵에서 개인전과 혼성전 2관왕에 오르며 주목받았다. 차분한 성격에 강한 정신력을 지녔다는 평가다. 2016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에서 남녀 개인전과 단체전에 걸린 4개의 금메달을 독식한 한국 양궁은 도쿄에서는 한 개 더 추가해 5개 전 종목 석권을 노린다. 쾌조의 출발을 보인 한국 양궁은 25일 여자 단체전 우승에 도전한다. 여자 단체전은 정식 정목으로 채택된 1988 서울 올림픽부터 단 한 번도 금메달을 놓친 적이 없다. 도쿄에서 시상대 꼭대기에 선다면 9회 연속 금메달의 금자탑을 쌓는다. 혼성 단체전 동메달은 준결승에서 터키를 6-2로 이긴 멕시코 루이스 알바레스-알레한드라 발렌시아 조에게 돌아갔다.도쿄=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대형 전광판에는 대회 개막을 알리는 카운트다운이 시작됐다. 관중의 열띤 함성이나 연호는 없었다. 텅 빈 관중석에는 침묵이 흐르기도 했다. 간간이 박수 소리가 흘러나왔다. 차분하고 진지한 분위기 속에 지구촌 최고의 스포츠 축제가 막을 올렸다.○ 차분하게 막 올린 첫 무관중 올림픽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1년 연기된 2020 도쿄 올림픽 개회식이 23일 일본 도쿄 신주쿠 올림픽스타디움에서 열렸다. 코로나19 여파로 이날 행사는 무관중으로 진행됐다. 6만8000석 규모의 스타디움에는 각국 선수단, 귀빈, 미디어 관계자 등 950여 명만 참석했다. 귀빈석에는 외국 정상으로 유일하게 일본을 찾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부인 질 여사만이 자리를 채웠다. 마크롱 대통령은 개회식에 참석한 유일한 외국 정상으로, 2024년 열리는 파리 올림픽을 위해 도쿄를 찾았다. 개회식은 총 9개 소주제로 ‘감동으로 하나 되다(United by Emotion)’라는 슬로건을 표현했다. 나루히토 일왕과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이 입장한 가운데 일본 국기 게양과 일본 국가 연주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공연이 진행됐다. 일본 국가인 ‘기미가요’는 일본의 톱 가수인 미샤가 불렀다. 1824대의 드론 불빛이 허공에서 도쿄 올림픽 엠블럼과 지구를 형상화하기도 했다. 이날 개회식 공연들은 과거 올림픽과 같은 흥겨움보다는 코로나19 상황에 따른 전 세계적 위기감을 보여주듯 ‘하나’ ‘지속’ ‘유산’ 등을 주제로 차분하게 진행됐다. 그동안 좀처럼 보기 힘들었던 올림픽 기간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시간도 가졌다. 관중과 호흡을 기대하기 힘들어 리허설을 보는 듯한 장면도 많았다. 황승경 공연평론가는 “팬데믹으로 전 세계가 고통 받는 시기, 공존이라는 가치를 예술적 상상력으로 풀어내기 위해 애쓴 흔적이 엿보인다”고 말했다. 선수단 입장 때는 근대 올림픽이 처음으로 열린 그리스가 가장 먼저 입장하고 난민대표팀에 이어 일본어 순서와 IOC 기준에 따라 각국 선수단이 입장했다. 코로나19 영향으로 선수단도 제한된 인원만 행진에 나섰다. 29개 종목 232명의 선수가 출전한 한국 선수단은 103번째로 임원 6명과 선수 24명이 나섰다. 남자 기수는 수영의 황선우, 여자는 배구의 김연경이 등장했다. 한국 선수단이 입장하자 IOC 윤리위원장에 재선된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흔들었다. 이번 대회는 IOC 권고에 따라 처음으로 대부분 참가팀이 남녀 공동 기수를 앞세웠다. ○ 성화가 타올랐어도 여전한 반대 여론스타디움 밖에선 또 다른 분위기가 연출됐다. 올림픽을 반대하는 시위대 목소리가 관중이 없는 개회식장으로 생생하게 전달됐다. 경기장 주변은 많은 시민이 몰려 최대 1km 밖까지 교통통제가 이뤄졌고 인도는 혼잡했다. 스타디움이 가장 잘 보이는 올림픽기념관 앞에는 수백 명이 몰렸다. 잔디밭엔 돗자리를 깔고 앉은 시민도 많았다. 다구치 다케마사 씨는 “어떻게든 세계인들과 함께 즐기고 싶었는데 (코로나19 상황으로) 안타까워 나왔다”고 말했다. 코로나19 확진자가 늘고 있는 도쿄에서 올림픽이 또 다른 도화선이 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커졌다. 이번 개회식은 도쿄의 우려스러운 상황에서 화려하고 웅장한 스케일의 행사와 프로그램을 마련해 보여주기에는 물리적으로, 정서적으로 한계가 명확했다. 영국 매체 ‘가디언’은 이날 도쿄 올림픽을 1920년 스페인 독감이 유행하는 중에 열린 벨기에 안트베르펜 올림픽에 비교하며 “세계적인 대유행 속에 파티를 열고 있다”고 지적했다. BBC는 ‘여태 본 적이 없는(like no other) 개회식’이라는 제목을 달아 보도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개회식 직전 올림픽스타디움 내부를 둘러본 뒤 “정말 아무것도 없다”며 “(관중이 없어) 보안요원들이 지루한 표정으로 걸어 다니고, 6만 관중이 입장했어야 할 회전문은 꿈쩍도 안 했다”고 전했다.○ 일본 언론 “이례적이고 이상한 올림픽” 개회식을 기점으로 올림픽의 열기가 올라갈지 미지수다. 일본 국민들은 오히려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활약 중인 오타니 쇼헤이(27·LA 에인절스)에게 더 관심이 많다. 일본 온라인 뉴스매체 ‘제이캐스트’가 1일부터 20일까지 온라인 독자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오타니의 경기를 보고 싶다고 응답한 사람이 올림픽 시청을 원한다는 응답자보다 두 배 이상으로 많았다. 일본 주요 신문은 23일 올림픽 개막을 놓고 일제히 의견이 나뉘었다. 진보 성향의 아사히신문, 도쿄신문, 마이니치신문 등은 사설을 통해 우려의 목소리를 나타냈다. 반면 요미우리신문, 산케이신문 등 우익 성향 매체들은 대회 개최 필요성을 주장했다. 아사히는 이번 올림픽을 “분열과 불신 속에서 막을 여는, 이례적이고 이상한 올림픽”이라고 했다. 코로나19 시대 첫 올림픽은 복잡한 여운 속에 17일간의 여정을 시작했다.도쿄=유재영기자 elegant@donga.com도쿄=김범석 특파원bsism@donga.com김민 기자 kimmin@donga.com}

대형 전광판에는 대회 개막을 알리는 카운트다운이 시작됐다. 관중의 열띤 함성이나 연호는 없었다. 텅 빈 관중석에는 침묵이 흐르기도 했다. 간간이 박수 소리가 흘러나왔다. 차분하고 진지한 분위기 속에 지구촌 최고의 스포츠 축제가 막을 올렸다. ● 차분하게 막을 올린 첫 무관중 올림픽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1년 연기된 2020 도쿄 올림픽 개회식이 23일 일본 도쿄 신주쿠 올림픽스타디움에서 열렸다. 코로나19 여파로 이날 행사는 무관중으로 진행됐다. 6만8000석 규모의 스타디움에는 각국 선수단, 귀빈, 미디어 관계자 등 950여 명만 참석했다. 귀빈석에는 외국 정상으로 유일하게 일본을 찾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부인 질 여사만이 자리를 채웠다. 마크롱 대통령은 개회식에 참석한 유일한 외국 정상으로, 2024년 열리는 파리 올림픽을 위해 도쿄를 찾았다. 개회식은 총 9개 소주제로 ‘감동으로 하나 되다(United by Emotion)’라는 슬로건을 표현했다. 나루히토 일왕과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이 입장한 가운데 일본 국기 게양과 일본 국가 연주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공연이 진행됐다. 일본 국가인 ‘기미가요’는 일본의 톱 가수인 미샤가 불렀다. 1824대의 드론 불빛이 허공에서 도쿄 올림픽 엠블럼과 지구를 형상화하기도 했다. 이날 개회식 공연들은 과거 올림픽과 같은 흥겨움보다는 코로나19 상황에 따른 전 세계적 위기감을 보여주듯 ‘하나’ ‘지속’ ‘유산’ 등을 주제로 차분하게 진행됐다. 그동안 좀처럼 보기 힘들었던 올림픽 기간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시간도 가졌다. 관중과 호흡을 기대하기 힘들어 리허설을 보는 듯한 장면도 많았다. 황승경 공연평론가는 “팬데믹으로 전 세계가 고통 받는 시기, 공존이라는 가치를 예술적 상상력으로 풀어내기 위해 애쓴 흔적이 엿보인다”고 말했다. ●성화 최종 점화자는 오사카 나오미 선수단 입장 때는 근대 올림픽이 처음으로 열린 그리스가 가장 먼저 입장하고 난민대표팀에 이어 일본어 순서와 IOC 기준에 따라 각국 선수단이 입장했다. 코로나19 영향으로 선수단도 제한된 인원만 행진에 나섰다. 29개 종목 232명의 선수가 출전한 한국 선수단은 103번째로 임원 6명과 선수 24명이 나섰다. 남자 기수는 수영의 황선우, 여자는 배구의 김연경이 등장했다. 한국 선수단이 입장하자 IOC 윤리위원장에 재선된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흔들었다. 이번 대회는 IOC 권고에 따라 처음으로 대부분 참가팀이 남녀 공동 기수를 앞세웠다. 곧이어 바흐 위원장과 하시모토 세이코 도쿄 올림픽조직위원장의 환영사, 나루히토 일왕의 개회 선언이 이어졌다. 나루히토 일왕은 “제32회 근대 올림피아드를 기념하는 도쿄 대회의 개회를 선언합니다”라며 개회 선언을 했다. IOC가 선언 예문에 넣어 놓은 ‘축하’ 대신 ‘기념’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코로나19 확산을 우려하며 올림픽 개최에 반대하는 국내외 여론을 많다는 사실을 감안해 ‘축하’ 문구를 뺀 것으로 풀이된다. 개회식의 하이라이트로 관심을 모았던 마지막 성화 봉송 및 최종 점화는 일본의 테니스 스타 오사카 나오미가 했다. 여자 테니스 세계랭킹 2위인 오사카는 2018년과 2020년 US오픈, 2019년과 올해 호주오픈 등 메이저 대회 단식에서 4차례 우승을 거머쥔 세계적인 테니스 스타다. 오사카는 아이티 출신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로 다양성, 조화의 가치를 알려주기에 충분했다. ● 성화가 타올랐어도 여전한 반대 여론 스타디움 밖에선 또 다른 분위기가 연출됐다. 올림픽을 반대하는 시위대 목소리가 관중이 없는 개회식장으로 생생하게 전달됐다. 경기장 주변은 많은 시민이 몰려 최대 1km 밖까지 교통통제가 이뤄졌고 인도는 혼잡했다. 스타디움이 가장 잘 보이는 올림픽기념관 앞에는 수백 명이 몰렸다. 잔디밭엔 돗자리를 깔고 앉은 시민도 많았다. 다구치 다케마사 씨는 “어떻게든 세계인들과 함께 즐기고 싶었는데 (코로나19 상황으로) 안타까워 나왔다”고 말했다. 코로나19 확진자가 늘고 있는 도쿄에서 올림픽이 또 다른 도화선이 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커졌다. 이번 개회식은 도쿄의 우려스러운 상황에서 화려하고 웅장한 스케일의 행사와 프로그램을 마련해 보여주기에는 물리적으로, 정서적으로 한계가 명확했다. 영국 매체 ‘가디언’은 이날 도쿄 올림픽을 1920년 스페인 독감이 유행하는 중에 열린 벨기에 안트베르펜 올림픽에 비교하며 “세계적인 대유행 속에 파티를 열고 있다”고 지적했다. BBC는 ‘여태 본 적이 없는(like no other) 개회식’이라는 제목을 달아 보도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개회식 직전 올림픽스타디움 내부를 둘러본 뒤 “정말 아무것도 없다”며 “(관중이 없어) 보안요원들이 지루한 표정으로 걸어 다니고, 6만 관중이 입장했어야 할 회전문은 꿈쩍도 안 했다”고 전했다. ● 일본 언론 “이례적이고 이상한 올림픽” 개회식을 기점으로 올림픽의 열기가 올라갈지 미지수다. 일본 국민들은 오히려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활약 중인 오타니 쇼헤이(27·LA 에인절스)에게 더 관심이 많다. 일본 온라인 뉴스매체 ‘제이캐스트’가 1일부터 20일까지 온라인 독자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오타니의 경기를 보고 싶다고 응답한 사람이 올림픽 시청을 원한다는 응답자보다 두 배 이상으로 많았다. 일본 주요 신문은 23일 올림픽 개막을 놓고 일제히 의견이 나뉘었다. 진보 성향의 아사히신문, 도쿄신문, 마이니치신문 등은 사설을 통해 우려의 목소리를 나타냈다. 반면 요미우리신문, 산케이신문 등 우익 성향 매체들은 대회 개최 필요성을 주장했다. 아사히는 이번 올림픽을 “분열과 불신 속에서 막을 여는, 이례적이고 이상한 올림픽”이라고 했다. 코로나19 시대 첫 올림픽은 복잡한 여운 속에 17일간의 여정을 시작했다.도쿄=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도쿄=김범석 특파원 bsism@donga.com}

최악의 출발이었다. 김학범 감독이 이끄는 축구대표팀이 첫 승 제물로 삼았던 뉴질랜드에 충격의 패배를 당했다. 한국 선수단의 도쿄 올림픽 첫 경기라는 의미도 있었기에 그 결과를 좀처럼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다. 한국은 22일 일본 이바라키현 가시마 스타디움에서 열린 축구 남자 조별리그 B조 1차전에서 경기를 주도하고도 번번이 골과 인연을 맺지 못하다 뉴질랜드의 역습 한 방에 0-1로 덜미를 잡혔다. 한국은 이날 온두라스의 자책골로 1-0으로 이긴 루마니아와의 2차전(25일)에서 무조건 이겨야 8강 진출 희망을 가질 수 있다. 한국 축구가 청소년, 성인 등 연령별 대표팀을 통틀어 뉴질랜드에 패배한 건 처음이다. 23세 이하(U-23) 대표팀은 3전 전승을 거뒀으며 A대표팀도 6승 1무, 20세 이하(U-20) 대표팀은 3승 1무, 17세 이하(U-17) 대표팀은 1무를 기록하고 있다. 이날 한국은 유효 슈팅 2개 등 총 12개의 슈팅을 기록했지만 무득점에 그쳤다. 반면 뉴질랜드는 유효 슈팅 1개를 포함해 2개의 슈팅을 기록했을 뿐이다. 김 감독은 “잘된 부분은 없는 것 같다. 적극적인 모습도 부족했다”며 “상쾌하고, 좋은 기분을 드리려고 했는데 제물이 됐다”고 말했다. 황의조(보르도)는 “첫 경기였기 때문에 감독님 말씀대로 선수들이 경직됐던 것 같다”며 “아직 2경기 남았다. 자신감을 잃지 않는 게 중요할 것 같다”고 밝혔다. 한국 축구는 큰 대회 때마다 첫 경기에서 고전을 했는데 이날도 그랬다. 전반 초반 양 측면으로 공을 돌리며 흐름을 주도했다. 하지만 이후 좌우 측면 윙백들의 속도감 있는 공격 가담이 이뤄지지 않아 수비 라인을 재정비한 뉴질랜드에 공격 전개가 완전히 읽혔다. 전반 황의조, 권창훈(수원), 이강인(발렌시아)의 슈팅이 득점으로 연결되지 않으면서 후반 들어서도 답답한 흐름이 이어졌다. 준비했던 세트피스는 정교함이 떨어져 문전에 도달하지도 못했다. 김 감독은 2선 공격라인 엄원상(광주)-이강인-권창훈 3명을 모두 교체하며 분위기 반전을 노렸지만 답답한 흐름을 바꾸지 못했다. 오히려 후반 31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번리에서 활약하는 공격수 크리스 우드에게 기습 골을 내줬다. 우드의 골은 오프사이드 판정을 받은 뒤 비디오판독(VAR) 끝에 득점으로 인정받았다. 이 골은 뉴질랜드의 이날 유일한 유효 슈팅이었다. 이날 골을 터뜨린 우드는 경기 뒤 이동경(울산)에게 악수를 청했다. 하지만 이동경은 악수를 외면했고, 우드는 머쓱한 듯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이 장면은 매너 논란을 일으켰다. 경기장에는 이바라키현의 초등학교 학생 200여 명이 관중석에서 한국에 열띤 응원을 보냈다. 이바라키현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상황에 따라 일반 관객 입장을 허용하지 않았지만 지역 내 학생들은 입장을 시켰다. 이들은 한국 선수들의 이름과 한글로 ‘힘내라’ ‘화이팅’이라고 적은 응원 도구와 태극기를 그린 깃발을 들고 와 경기 내내 흔들었다. 박수에 맞춰 ‘대한민국’을 외치는 학생들도 있었다. 한국 선수들의 슛이 빗나갈 때는 탄식이 터져 나왔다. 경기 장소인 가시마시는 2002년 한일 월드컵을 계기로 제주 서귀포시와 자매결연을 맺었다.가시마=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우물 안의 개구리였죠. 맨몸으로 일본으로 건너가 싸웠습니다.” 김정남 OB축구회 회장(78)은 1964년 도쿄 올림픽에 출전한 축구 대표팀 선수 19명 중 막내였다. 그의 A매치 출전 기록(67회)에서 도쿄 올림픽은 가장 허탈했으면서도 도전정신을 강하게 일깨웠던 기억으로 남아 있다. 이후 절치부심했던 김 회장은 1986년 멕시코 월드컵과 1988년 서울 올림픽에서 대표팀 감독을 맡아 세계 강호들과 명승부를 벌였다. 한국은 도쿄 올림픽 조별리그에서 당대 최고의 멤버들을 내세웠으나 체코에 1-6, 브라질에 0-4, 아랍공화국(이집트 선수 위주)에 0-10으로 졌다. 김 회장은 체코와 아랍공화국전에 뛰었다. 김 회장은 “처음 세계적인 축구팀과 붙어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르겠다. 57년이 지나 올림픽 금메달을 노리는 한국 축구를 보며 감회가 새롭다”고 말했다. 당시는 일본과의 국교가 정상화되기 전이었다. 북한도 최종예선을 통과하고 올림픽 출전권을 따내 성적 비교에 대한 부담도 컸다. 본지는 당시 어수선한 상황에서 선수단이 1964년 10월 도쿄 올림픽 출국에 앞서 열린 대한체육회 결단식에서 찍은 사진을 입수했다. 사진에 나오는 선수단 중에서는 김 회장을 비롯해 김삼락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축구 대표팀 감독과 이우봉 씨, 체코전에서 한국의 유일한 득점을 올린 이이우 씨(캐나다 이민)를 빼고 모두 세상을 떠났다. 프로축구 성남의 전성기를 이끈 차경복 전 감독, 국가대표 골키퍼 2세대로 할렐루야 팀을 맡아 1983년 프로축구 원년 우승으로 이끈 함흥철 전 감독, 1960년 초대 아시안컵에서 득점왕에 오른 조윤옥 전 포항제철 감독 등은 고인이 돼 2021년의 도쿄 올림픽을 하늘에서 바라보게 됐다.도쿄=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한국 선수단 중 가장 먼저 도쿄 올림픽 무대에 오르는 남자 축구 대표팀이 다채로운 프리킥으로 첫 상대 뉴질랜드의 골문을 정조준한다. 한국은 22일 오후 5시 일본 도쿄 이바라키현 가시마 스타디움에서 뉴질랜드와 축구 남자 B조 조별리그 1차전을 갖는다. 한국 선수들은 21일 가시마 스타디움에서 30여 분간 잔디를 밟아보고 점검을 한 뒤 시하마 그린파크에서 비공개 훈련으로 대비를 마쳤다. 김학범 대표팀 감독은 “뉴질랜드 선수 구성이 국가대표팀급이다. 청소년 시절부터 오래 발을 맞춘 선수들이 포진해 팀워크도 좋다”며 “즐기고 놀아보자는 식으로 마인드 컨트롤을 하며 풀어갈 것”이라고 출사표를 냈다. 첫 경기에 대한 부담으로 양 팀이 초반에는 신중한 경기 운영을 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한국은 세트피스 기회를 다양하게 살리며 선제골로 분위기를 가져올 계획이다. 김 감독은 힘과 높이가 있는 뉴질랜드 수비 라인 공략을 위해선 세트피스 공략이 효과적이라고 보고 최종 엔트리 소집 때부터 비공개로 집중 점검을 해왔다. 김 감독은 20일 훈련 뒤에도 비공개로 왼발, 오른발 프리킥 능력이 좋은 선수들만 따로 실전에서 파울을 자주 얻어내는 위치별로 이동을 시켜 킥의 궤적 등을 점검했다. 대표팀의 왼발 스페셜리스트 3총사 이강인(발렌시아), 권창훈(수원), 이동경(울산)은 페널티 지역 가까운 지점에서 파울로 얻어내는 프리킥을 전담할 것으로 전망된다. 오른쪽 가운데 왼쪽 등 위치에 따라 3명이 번갈아 시도할 것으로 보인다. 권창훈과 이동경의 왼발 킥은 주로 일직선으로 가다가 최정점에서 크게 감겨 오른쪽으로 휜다. 페널티 지역 박스 오른쪽에서 프리킥 기회가 나면 찰 가능성이 크다. 공이 왼발에 긁힐 때부터 상당히 크게 오른쪽으로 휘는 이강인의 킥은 페널티 지역 왼쪽에서 골문 좌우 모서리를 전부 노릴 수 있다. 길게 문전으로 띄우는 프리킥은 이강인과 낮고 빠른 오른발 프리킥이 장점인 정승원(대구)이 맡는다. 16일 프랑스와의 평가전에서 정승원과 이강인이 함께 서서 상대에게 혼란을 준 뒤 프리킥 패턴을 시도해봤다. 주장인 이상민(서울 이랜드)은 “세트피스에 대해 상세하게 얘기할 수 없지만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2012 런던 올림픽에서 역대 최고 성적인 동메달을 따낸 한국은 도쿄에서 그 이상을 노리고 있다. 첫 단추를 끼울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도쿄=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올림픽 축구대표팀의 공격수 황의조(29·보르도)는 호주의 천적이다. 호주와의 국가대표 A매치 2경기에서 인상적인 움직임으로 2골을 넣었다. 2018년 11월 호주에서 열린 호주전에서 김민재(베이징 궈안)의 기습적인 롱패스 타이밍에 맞춰 순간 뒷공간으로 빠져 들어가는 쇄도로 골을 만들었다. 2019년 6월 부산에서 열린 경기에서는 측면에서 빠르게 올라온 크로스를 수비보다 먼저 가까운 골포스트 쪽으로 이동해 골문 안으로 차 넣었다. 황의조는 호주의 옆 나라 뉴질랜드 사냥을 준비하고 있다. 대표팀은 22일 일본 이바라키현 가시마 스타디움에서 뉴질랜드와 B조 조별리그 1차전을 갖는다. 무조건 선제골이 중요하다.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때도 뛰면서 경험했지만 스트라이커가 넣는 선제골이 선수들에게 주는 자신감과 안정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김학범 감독은 193cm의 장신 공격수 오세훈을 대표팀 명단에서 제외하면서까지 ‘애제자’ 황의조의 득점포를 선택했다. 황의조는 뉴질랜드와 비슷한 유형의 팀에 상당히 강했다. 뉴질랜드는 호주와 체격과 축구 스타일이 비슷하다. 뉴질랜드는 12일 호주와의 평가전에서 2-0으로 이기며 예상 밖의 단단한 수비를 보여줬다. 멤버 구성이 만만치 않다. 뉴질랜드 중앙 센터백은 키 191cm인 윈스턴 리드(브렌트포트)가 주축이다. 황의조는 뉴질랜드 수비의 피지컬과 제공권이 아닌 아래에서 승부를 봐야 한다. 몸 중심이 높은 점을 역이용해서 살려야 한다. 일본 경기장 잔디가 짧기 때문에 순간 방향을 바꾸는 턴 동작으로 최후방 수비 뒷공간을 노리는 공격수들의 움직임에 장신 수비수들이 대비하기가 쉽지 않다. 전진 수비로 한국을 압박할 경우 수비에서 바로 황의조로 이어지는 ‘카운터 어택’도 상당히 효과적일 수 있다. 황의조가 페널티 박스 안에서 크로스를 받는 위치 선정도 중요하다. 이동경(울산) 권창훈(수원) 이강인(발렌시아) 등 2선 공격 자원의 패스가 주로 가는 방향을 미리 읽고 자리를 잡는 게 좋다. 터치라인 부근까지 측면 전개 플레이가 원활하게 이뤄지면 순간 수비 앞뒤로 크로스를 받기에 용이한 공간을 만드는 황의조 특유의 박스 안 움직임이 살아날 것이다. 정리=도쿄 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스포츠는 장비의 전쟁이라고도 한다. 규정 안에서 선수에게 최적화된 장비가 메달 색깔도 바꿀 수 있다. 자전거를 이용하는 사이클도 마찬가지. 한국 사이클은 1948년 런던 올림픽에 처음으로 선수 2명이 출전한 후 73년 동안 메달과 인연을 맺지 못했다. 22개의 금메달이 걸린 도쿄 올림픽 사이클에는 여자 2명만 출전한다. 트랙 여자 경륜에서 이혜진(29·부산지방공단 스포원·사진)과 도로 여자 개인에서 나아름(31·삼양사)이다. 이혜진은 예상치 못한 ‘대형 사고’를 칠 수 있는 다크호스다. 지난해 3월 세계트랙사이클선수권대회 여자 경륜에서 은메달을 따냈다. 올림픽과 세계선수권을 통틀어 한국 사이클 역사상 가장 높은 성적이다. 이혜진은 “입상해서 스승님과 부모님 등 도와주신 분들에게 보답하고 싶다. 정직한 선수로 기억되고 싶다”고 말했다. 사이클 대표팀 훈련을 도운 한국스포츠정책과학원 성봉주 수석 연구위원은 “컨디션도 좋고 개인 훈련도 많이 했지만 지금 타는 자전거와 궁합이 잘 맞는다는 것에 기대를 걸 만하다. 부담 없이 즐기는 마음으로 경기를 한다면 깜짝 결과도 나올 것 같다”고 말했다. 메달에 도전하는 이혜진의 팔과 다리에는 한국 사이클 기술의 사활이 걸려 있다. 외국산 자전거를 타던 이혜진은 몇 년 전 자전거를 국산 브랜드 제품으로 바꿨다. 세계선수권 은메달도 지금 자전거를 타고 이뤄냈다. 사이클 대표팀 박일창 감독은 “최근 사이클은 자전거의 ‘프레임’ 기술 싸움 추세로 가고 있다. 여기에 선수들이 얼마나 잘 적응하느냐가 순위를 가를 것”이라고 했다. ‘프레임’은 손잡이 등 조향계와 바퀴 등 구동계가 합쳐져 자전거를 이루는 틀을 말한다. 제조사마다 강하고 충격과 진동 흡수력이 뛰어난 소재를 개발해 프레임에 적용하려는 경쟁이 치열하다. 특히 이혜진의 자전거를 제작한 업체는 원래 1990년대부터 양궁 활을 전문으로 제작해 왔다. 국가대표 양궁인들이 모여 회사를 설립했다.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 남녀 개인과 단체 금메달을 따낸 장혜진과 구본찬이 이 업체 브랜드 활을 썼다. 나무보다 가볍고 다이아몬드보다 강도가 세면서 접고 휘는 성능이 좋은 그래핀 소재를 활용한 활 제작 기술력이 자전거에 접목됐다.도쿄=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도쿄 올림픽을 앞두고 일본 농구가 난리가 났다. 세계 최강 미국 농구 대표팀에 초점을 맞췄던 언론들은 최근 자국 남자 농구 대표팀을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미국프로농구(NBA)에서 활약 중인 하치무라 루이(23·워싱턴) 때문이다. NBA 정규리그를 마친 하치무라가 합류한 일본은 16일 평가전에서 벨기에를 87-59로 대파하더니 세계 7위이자 도쿄 올림픽 우승 후보인 프랑스도 18일 81-75로 격파했다. 2019년 농구월드컵 8강에서 미국을 꺾기도 했던 프랑스는 2020~2021시즌 NBA 정규리그 리바운드 2위와 블록슛 1위를 차지한 루디 고베르(유타)를 비롯해 니콜라스 바텀(샬럿), 에반 포니에(보스턴) 등 NBA 주전급 선수들이 포진해 있다. 벨기에전에서 24득점, 프랑스전에서 19득점을 올린 하치무라를 축으로 일본은 완전히 다른 팀이 됐다. 한국(30위)보다 랭킹이 훨씬 낮은 일본(42위)이 프랑스를 눌렀다는 것에 한국 농구인들도 충격적이라는 반응이다. 한국은 도쿄올림픽 최종 예선에서 베네수엘라(20위)와 리투아니아(10위)를 맞아 한계를 절감했다. U-19 청소년 대표 시절 농구 월드컵에서 하치무라와 경기를 해봤던 양재민(22·신슈 브레이브스)은 “일본이 프랑스를 이긴다는 건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내 농구를 다시 되돌아보게 한다”고 말했다. 일본 후쿠오카 오호리고교에서 인스트럭터를 맡아 전국구 팀으로 올려 놓았던 이상범 DB 감독은 “전국대회 결승을 하는데 상대 팀에 하치무라가 있었다. 나중에 큰 물건이 되겠다 싶었다”며 이런 성장은 예견된 것이라고 했다. 하치무라는 베넹 출신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이다. 일본에서 자라 고교 때까지 기본기를 다진 뒤 미국 곤자가 대학에 입학한 뒤 꽃을 피웠다. 2019년 NBA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로 워싱턴에 지명되면서 일본 농구의 역사를 새롭게 쓰고 있다. 운 좋게 나온 자원이 아니라 일본농구협회의 치밀한 정책과 투자가 만든 ‘괴물’이다. 한 농구인은 “오래 전부터 한국은 일본이 ‘교과서적 농구’를 한다고 낮게 봤다. 일본이 투자를 하고 선수를 내보내도 우리는 정신력으로 이길 수 있다며 제 자리에 머물렀다. 그 대가는 긴 부러움으로 바뀔 것”이라고 했다. ‘교과서’ 타령하다 축구가 한 번 당했고, 농구도 뒤집힐 수 있다.도쿄=유재영기자 elegan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