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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3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에서 독살된 김정남의 시신이 26일 안치돼 있던 쿠알라룸푸르 시내 병원에서 말레이시아 내 다른 곳으로 이송됐다고 아사히신문이 이날 수사 관계자를 인용해 보도했다. 시신 인도를 둘러싼 말레이시아와 북한 간 협상이 급진전되는 것으로 보인다. 신문은 “시신이 이르면 27일 국외로 이송될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말레이시아와 북한의 협상이 진전되는 모습은 이날 주말레이시아 북한대사관에서도 관측됐다. 현지 중국어 매체 중국보에 따르면 이날 말레이시아 경찰관 4명이 북한 국적 용의자 3명에 대한 진술을 듣기 위해 북한대사관을 찾았으며 사전청취를 실시했다고 한다. 대사관 진입을 거부하던 북한이 태도를 바꾼 것이다. 말레이시아와 북한은 이달 초 수차례 비공개 면담을 했으며 13일부터 공식회담 개최를 위한 실무접촉을 진행해 왔다. 또 TV아사히 계열 뉴스 네트워크 ANN에 따르면 25일 오전 9시 반부터 북한의 최희철 외무성 부상과 리동일 대변인 등이 쿠알라룸푸르의 정부 관련 시설에서 말레이시아 정부 관계자와 만났다. 양측은 26일에도 협의를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말레이시아는 협상 과정에서 출국이 금지된 북한 내 말레이시아인 9명의 귀환을 요청했고 북한은 그 대가로 시신 인도를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조만간 양측의 협상이 타결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아사히신문은 “양측의 협의는 합의에 가까워지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나집 라작 말레이시아 총리가 27일 모종의 발표를 할 것이란 정보도 있다”고 전했다.도쿄=장원재 특파원 peacechaos@donga.com}
도시바의 반도체 사업 매각과 관련해 일본 정부가 ‘국가 안보’를 이유로 중국과 대만 업체를 인수 후보에서 배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에선 SK하이닉스가 인수를 추진하고 있다. 23일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일본 경제산업성은 관공서와 기업 등에서 도시바의 낸드형 플래시 메모리가 많이 사용된다는 점을 들어 중국 업체에 매각이 결정될 경우 매각 중지나 시정명령을 내리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훙하이(鴻海)처럼 주력 공장이 중국에 있는 대만 기업도 포함된다. 이들 해외 기업이 플래시 메모리 안에 담긴 데이터를 파괴할 경우 기밀 정보를 잃을 수 있다는 논리다. 일본에선 ‘국가 안보’를 훼손하거나 ‘공공질서’를 어지럽힐 우려가 있을 경우 사전 심사를 거친 뒤 민간기업 매각에 정부가 개입해 강제력을 행사할 수 있다. 미국 한국 등의 업체가 인수할 경우 중국 대만 업체에는 팔지 못한다는 조건을 붙여 허가하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 이 신문은 “정부 내에선 기술 유출을 막기 위해 민관 펀드인 산업혁신기구나 정부 산하의 일본정책투자은행이 분사 후 설립되는 (반도체) 회사에 출자하자는 안도 나온다”고 전했다. 도시바 반도체 부문 인수에는 SK하이닉스와 훙하이 외에도 미국의 웨스턴디지털, 대만 TSMC, 중국 칭화유니 등 기업 10여 곳이 관심을 나타내고 있다.도쿄=장원재 특파원 peacechaos@donga.com}
한국 랭킹 1위인 박정환 9단이 바둑 인공지능(AI)이 참석한 첫 국제대회에서 중국 일본 대표를 누르고 우승했다. 박 9단은 23일 일본 오사카(大阪) 일본기원 간사이총본부에서 펼쳐진 월드바둑챔피언십 3회전에서 중국 대표인 미위팅 9단을 190수 만에 불계승으로 이기며 초대 우승자가 됐다. 백을 잡은 박 9단은 초반부터 경기를 주도했으며 안정적인 운용으로 완승을 거뒀다. 박 9단은 시상식에서 “대국 내용이 안 좋아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있었는데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둬서 이길 수 있었다”는 우승 소감을 밝혔다. 박 9단은 이번 승리로 2015년 2월 LG배 기왕전 우승 이후 2년 1개월 만에 세계대회 정상에 올랐다. 우승 상금은 3000만 엔(약 3억 원)이다. 중국 랭킹 2위인 미위팅 9단은 2승 1패로 준우승했으며 상금 1000만 엔(약 1억 원)을 받았다. 한편 ‘알파고 타도’를 외치며 일본이 야심 차게 선보인 바둑 AI 딥젠고는 이날 일본 대표인 이야마 유타 9단에게 235수 만에 불계승을 거두며 3위를 차지했다. 이야마 9단은 3패로 4위가 됐다. 딥젠고는 이날 막판까지 안정적인 경기 운용 실력을 보였다. 초중반을 주도하고도 종반에 무기력하게 실수를 연발하며 무너졌던 1, 2차전과는 달라진 모습이었다. 딥젠고는 일본 정보기술(IT) 기업 드왕고의 지원 아래 바둑 소프트웨어 개발자, 도쿄대 연구진 등이 머리를 맞대고 만든 바둑 AI다. 한국 중국 대표에게 지고 일본 대표에게만 이긴 걸 두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는 ‘최악의 결과가 나왔다’ ‘일본 바둑 수준이 이 정도밖에 안 되나’ 등 자조적인 글이 쏟아졌다. 도쿄=장원재 특파원 peacechaos@donga.com}
도시바의 반도체 사업 매각과 관련해 일본 정부가 ‘국가안보’를 이유로 중국과 대만 업체를 인수 후보에서 배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에선 SK하이닉스가 인수를 추진하고 있다. 23일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일본 경제산업성은 관공서와 기업 등에서 도시바의 낸드형 플래시 메모리가 많이 사용된다는 점을 들어 중국 업체에게 매각이 결정될 경우 매각 중지나 시정명령을 내리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훙하이(鴻海)처럼 주력 공장이 중국에 있는 대만 기업도 포함된다. 일본에선 ‘국가안보’를 훼손하거나 ‘공공질서’를 어지럽힐 우려가 있을 경우 민간기업 매각에 정부가 개입해 강제력을 행사할 수 있다. 미국 한국 등의 업체가 인수할 경우에는 중국 대만 업체에는 팔지 못한다는 조건을 붙여 허가하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 신문은 “정부 내에선 기술 유출을 막기 위해 민관펀드인 산업혁신기구나 정부 산하의 일본정책투자은행이 분사 후 설립되는 (반도체) 회사에 출자하자는 안도 나온다”고 전했다. 도시바 반도체 부문 인수에는 SK하이닉스와 훙하이 외에도 미국의 웨스턴디지털, 대만 TSMC, 중국 칭화유니 등 기업 10여 곳이 관심을 나타내고 있다.도쿄=장원재 특파원 peacechaos@donga.com}

“당신은 내게 무한한 기쁨과 슬픔을 줍니다. 당신을 알게 된 걸 신에게 감사합니다.”(사노 요코) 일본의 그림책 작가 겸 수필가로 한국에도 잘 알려진 사노 요코(佐野洋子·2010년 사망)의 에세이에는 한국인 ‘미스터 최’와의 인연이 여러 차례 나온다. 오랜 기간 한국 팬들이 궁금해했던 ‘미스터 최’의 정체가 최정호 울산대 석좌교수인 것으로 나타났다. 사노는 일본에서 약 170권의 책을 남기고 문화훈장인 자수포장(紫綬褒章)을 받은 작가로, 그의 작품은 한국에서 20권 이상 번역됐다. 최 교수는 최근 사노와 주고받은 57통의 편지를 모아 ‘친애하는 미스터 최-이웃나라 친구에게 보낸 편지’(쿠온 출판사)라는 책을 일본에서 냈다. 여기에는 40여 년간 이어진 한일 두 지성의 교류가 생생하게 나와 있다. 두 사람은 냉전이 한창이던 1967년 독일 베를린 유학 시절 만났다. 최 교수가 파티에서 기모노를 입은 사노에게 “옷이 예쁘다”고 했더니 “이 따위 기모노는 난생처음. 답답해 죽겠다”는 의외의 답변이 돌아왔다. 사노는 박학다식함에 매료돼 최 교수를 집으로 초대했다. 하지만 최 교수가 과거사를 거론하며 일본을 신랄하게 비판하자 식민지 조선인의 처지를 생각하면서 학질에 걸린 사람처럼 몸을 떨었다. 이후 둘은 인생 문학 가족 등에 대해 솔직한 편지를 주고받았다. 사노는 때로는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 신전 앞에서 대낮에 방뇨하고 싶다”는 등 특유의 거침없는 표현으로 최 교수를 당황하게 했다. 둘은 귀국 후에도 인연을 이어 나갔다. 최 교수는 사노 특유의 독설과 유머를 높게 평가했고 “편지를 더 보내 달라”고 재촉했다. 1980년 5·18민주화운동 이후 자신의 일본 망명을 사노와 상의하기도 했다. 첫 만남 때부터 둘은 기혼이었다. 그리고 최 교수에 대한 사노의 감정은 존경과 애정을 오갔다. 사노는 1980년대 편지에서 어린 시절 사망한 오빠에 대한 미련을 벗으려고 결혼했지만 결국 이혼한 심경을 털어놓으며 “죽은 오빠 다음으로 나는 멀고 아득한 미스터 최를 사랑했다”고 고백했다. 또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평생 못 만나도 좋으니 “그저 살아만 있어 달라”고 썼다. 때론 “같이 포르노 소설을 쓰자”는 짓궂은 제안도 했다. 사노는 얼마 후 일본의 국민시인 다니카와 슌타로(谷川俊太郞)와 두 번째로 결혼하고 “정말 행복하다”고 편지에 썼다. 하지만 두 번째 결혼도 이혼으로 끝났고 최 교수가 위로하면서 둘 사이의 감정은 우정으로 정착했다. 1990년대 사노는 최 교수 부인의 일본 전시회를 추진했고, “당신 같은 친구를 둔 것은 내 생애 큰 기쁨”이라고 했다. 최 교수는 후기에서 사노에 대해 “세상을 화가의 눈으로 보고 화가의 자세로 사는 사람이었다”고 회상했다.도쿄=장원재 특파원 peacechaos@donga.com}

한국 바둑 랭킹 1위인 박정환 9단(사진)이 ‘일본판 알파고’인 바둑 인공지능(AI) ‘딥젠고’에 역전승을 거뒀다. 22일 일본 오사카(大阪)의 일본기원 간사이 총본부에서 펼쳐진 월드바둑챔피언십 2회전에서 박 9단은 딥젠고에 347수 만에 불계승을 거뒀다. 백을 잡은 딥젠고는 초중반까지 박 9단을 리드했다. 한때 자체 승리 가능성이 72%에 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해설을 진행한 이세돌 9단은 “정말 놀라운 수다”, “AI가 아니면 이렇게 둘 수 없다”, “정상급 기사라면 90%는 이긴 것”이라며 탄성을 쏟아냈다. 하지만 후반부에 접어들면서 딥젠고의 이해할 수 없는 실수가 반복되기 시작했다. 관전하는 이들 사이에선 ‘초보자라도 이렇게는 두지 않을 것’이라는 혹평이 나왔다. 박 9단은 특유의 집중력을 발휘하며 찬스를 놓치지 않고 차근차근 따라붙었다. 결국 250수를 넘겨 승부를 뒤집었다. 딥젠고는 전날 중국 대표인 미위팅 9단과의 대결에서도 초반 우세를 지키다 막판에 역전패했다. 이 9단은 이날 시합에 대해 “초중반에는 지난해 대결했던 알파고 이상이었지만 후반은 실망스러웠다. 딥젠고가 놀라움과 실망을 함께 줬다”고 평가했다. 딥젠고는 ‘알파고를 능가하겠다’는 목표로 일본 정보기술(IT) 기업 드왕고의 지원으로 바둑 소프트웨어 개발자, 도쿄대 연구진 등이 머리를 맞대고 만든 바둑 AI다. 박 9단은 전날 일본 이야마 유타 9단에게 승리한 데 이어 2연승을 달렸다. 이야마 9단은 이날 미위팅 9단에게도 패하며 2연패가 됐다. 23일에는 박 9단과 미위팅 9단의 결승전과 함께 이야마 9단과 딥젠고의 대결이 열린다.도쿄=장원재 특파원 peacechaos@donga.com}
‘일본판 알파고’로 불리는 바둑 인공지능(AI) 딥젠고가 중국 랭킹 2위인 미위팅 9단에게 접전 끝에 패했다. 한일 대결에선 박정환 9단이 이야마 유타 9단에게 7시간 동안의 대결 끝에 승리했다. 21일 일본 오사카(大阪)의 일본기원 간사이 총본부에서 펼쳐진 월드바둑챔피언십 1회전에서 미위팅 9단이 딥젠고에 283수 만에 불계승을 거뒀다. 딥젠고는 패배하긴 했지만 중반까지 치열한 승부를 펼쳤다. 바둑TV에서 해설을 진행한 이세돌 9단은 “(딥젠고의) 실수가 누적돼 역전을 허용했다. 끝내기가 부족한 문제점이 아직 드러난다”고 지적했다. 한일 대결에선 국내 바둑 랭킹 1위인 박 9단이 일본 6관왕인 이야마 9단에게 257수 만에 불계승을 거뒀다. 이로써 역대 전적은 박 9단이 3승 2패로 앞서게 됐다. 박 9단은 22일, 이야마 9단은 23일 각각 딥젠고와 대결한다. 이번 대회는 한중일 국가대표 기사들과 AI가 참가한 첫 국제 바둑대회로 세간의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초반 결과로 보면 AI 대표로 참가한 딥젠고의 실력이 아직 알파고에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딥젠고는 일본 정보기술(IT) 기업 드왕고의 지원으로 바둑 소프트웨어 개발자, 도쿄대 연구진 등이 머리를 맞대고 ‘올 저팬 시스템’으로 만든 바둑 AI다. 도쿄=장원재 특파원 peacechaos@donga.com}

일본에서 가장 역사가 오래된 여자대학인 니혼(日本)여대가 호적상으로는 남성이지만 성정체성은 여성인 트랜스젠더의 입학을 허용할지 여부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20일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니혼여대는 조만간 학내에 논의 기구를 만들어 구성원들의 의견을 수렴할 계획이다. 성전환 수술을 받지 않은 트랜스젠더의 여대 입학을 검토하는 것은 일본 내에서 처음이다. 논의의 시발점은 2015년 초등학생 학부모로부터 부속 여자 중학교로 온 문의였다. 가나가와(神奈川) 현에 사는 이 학부모는 신체적으로는 남성이지만 여성의 정체성을 가진 초등학교 4학년 학생이 여중에 입학할 수 있는지를 물었다. 학교 측은 지난해 8월 성적소수자(LGBT)에 대한 검토 프로젝트팀을 만들고 부속 유치원, 부속 초중고교, 대학 각 학부 대표 등을 모아 논의했다. 내부적으로 ‘다양한 학생을 받아야 한다’는 찬성론과 ‘학생 교사 학부모의 이해가 충분치 않다’는 반론이 치열하게 논쟁한 끝에 결국 ‘현 단계에서 받아들이기는 힘들다’는 결론을 냈다. 프로젝트 팀은 다만 먼저 대학에서 본격적으로 트랜스젠더 입학 여부를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의견을 모았다. 일본의 경우 호적의 성별을 바꾸려면 20세가 넘어야 하고, 성전환 수술도 받아야 한다. 신문은 “여대가 입학을 수용한다고 해도 의사의 진단 등 구체적인 요건을 어떻게 할지가 과제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국에선 2014년 이후 5개 여대가 트랜스젠더의 입학을 허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니혼여대는 1901년 세워진 일본에서 가자 오래된 명문 여자대학으로 일본 내에서 영향력이 크다. 신문은 “다른 여대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도쿄=장원재특파원 peacechaos@donga.com}

윤동주 시인이 일본에 유학을 떠난 것은 1942년 3월이었다. 당시 유학을 위해서는 의무적으로 창씨개명을 해야 했다. ‘윤(尹) 씨’는 ‘히라누마(平沼) 군(君)’이 됐다. 개명을 닷새 앞두고 ‘참회록’이라는 시를 썼다. 이후 유학 시절을 관통한 감정은 ‘부끄러움’이었다. 교토(京都) 도시샤대 학우였던 기타지마 마리코(北島萬里子) 씨는 우연히 둘만 수업을 듣게 됐을 때 윤 시인이 조용한 목소리로 “둘밖에 없는데 틀리면 부끄럽겠네요”라고 말했다고 했다. ‘히라누마 군’이 한국에서 ‘국민시인’이 된 사실을 꿈에도 몰랐던 기타지마 씨는 전후 50년을 맞아 KBS와 함께 윤동주 다큐멘터리를 만들던 NHK 제작진에 옛날 학창 시절 앨범을 찾아 윤 시인의 생전 마지막 사진을 제공했다. 1943년 우지(宇治) 강의 한 다리에서 찍은 사진이었다. 윤 시인은 중앙, 여학생들 바로 옆에 자리를 잡았다. 수줍음이 많아 수업시간이면 강의실 맨 뒷자리에 앉아 조용히 수업을 듣던 그였다. 징병을 피해 귀국을 결심한 그를 위해 학우들이 열어준 송별회였던지라 당당하게(?) 중앙에 자리를 잡은 것이다. 사진을 찍고 1, 2개월 후 윤 시인은 일본 경찰에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체포됐다. 함께 사진을 찍었던 일본 남학우들도 대부분 전선으로 끌려가 다시는 돌아오지 못했다. 마지막 사진에 얽힌 사연이 알려지면서 우지에선 윤동주 기념비를 세우자는 자발적인 움직임이 생겼다. 이를 주도한 사람이 ‘시인 윤동주 기념비 건립위원회’의 곤타니 노부코(紺谷延子) 사무국장이다. 평범한 주부였던 그는 윤 시인을 만난 후 인생이 바뀌었다. 2002년부터 매년 시를 읽고 꽃을 강에 던지는 추모 행사를 열었고, 2005년 기념비 건립을 위한 시민단체를 조직했다. 각계의 모금을 받아 2007년 기념비를 만든 후에는 용지를 확보하기 위해 문턱이 닳도록 자치단체를 돌아다녔다. 2009년에는 6358명의 서명을 받아 교토 부(府) 지사에게 제출했다. 곤타니 사무국장의 바람은 지난해 우지 시 시즈가와(志津川) 구에서 용지 제공을 결정하며 이뤄지게 됐다. 주민 110가구의 작은 자치단체지만 “세계 평화의 상징이 됐으면 좋겠다”(구청장)며 기념비 건립을 받아들였다. 10월까지 건립될 ‘시인 윤동주 기억과 화해의 비’에는 한국과 일본의 화강암에 양국 언어로 시 ‘새로운 길’이 새겨진다. 그리고 시인을 상징하는 돌기둥이 그 위에서 양국을 연결하는 디자인이다. 얼마 전 기자는 탄생 100주년을 맞아 드디어 우지 강변에 기념비가 세워진다는 기사를 썼다. 여러 독자들이 ‘기사를 잘 봤다’며 연락해 왔다. 이번 비석은 일본 내에서 3번째다. 윤 시인을 기리는 일본 시민들은 매년 2월이 되면 시인이 유학했던 도쿄(東京) 릿쿄대와 교토 도시샤대, 숨을 거둔 후쿠오카(福岡) 등에서 추모 행사를 연다. 일본인 중에는 중국에서 시인의 무덤을 찾아낸 학자도, 30년 넘게 일본 내 행적을 추적한 전직 언론인도 있다. 모두 시인의 ‘부끄러움’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인 이들이다. 곤타니 사무국장은 기자에게 보낸 e메일에서 “현재 한일 관계는 결코 좋다고 할 수 없다. 하지만 시민들은 윤동주를 통해 이어질 수 있다”며 “개막식에 꼭 와 달라”고 초청했다. 지역의 작은 시민단체가 12년 동안 한국 시인 기념비 설립을 추진했는데 아무 도움을 주지 못했다는 부끄러운 마음에 기자는 그 자리에서 ‘당연히 가겠다’는 답장을 보냈다. 장원재 도쿄 특파원 peacechaos@donga.com}
“정말 대단하네요.” 19일 일본 도쿄(東京)의 ‘UEC배 컴퓨터 바둑대회’ 행사장. 일본의 바둑 인공지능(AI) ‘딥젠고(DeepZenGo)’와 중국 바둑 AI ‘줴이(絶藝)’의 결승전을 중계하던 나카지마 미에코(中島美惠子) 2단이 탄성을 연발했다. 이날 대결에서 백을 잡은 줴이가 196수 만에 불계승을 거뒀다. 두 AI는 복잡한 수 싸움을 벌이면서도 불과 몇 초 만에 다음 수를 내놓는 괴력을 과시했다. 결승전에 걸린 시간은 50분에 불과했다. 줴이는 중국 정보기술(IT) 기업 텐센트가 만들었으며 지난해 말 인터넷 비공식 대국에서 프로기사를 상대로 80%대의 승률을 기록했다. 텐센트는 줴이 개발에 100억 원 이상을 투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의 딥젠고는 최근 인터넷 대결에서 프로기사를 상대로 70%대의 승률을 보였다. 18, 19일 이틀 동안 열린 이번 대회에는 한중일 미국 프랑스 등의 바둑 프로그램 29개가 참여했다. 한국에서는 돌바람이 유일하게 참가해 16강이 겨루는 본선에 진출했지만 8강전에서 줴이에 패했다. 줴이는 예선을 포함해 11전 전승을 기록했다. 지난해 이세돌 9단을 꺾은 구글의 알파고는 참여하지 않았다.도쿄=장원재 특파원 peacechaos@donga.com}
이준규 주일 한국대사가 일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누가 (한국의 차기) 대통령이 되더라도, 어떤 정권이 출범하더라도 한일 간 (위안부) 합의를 확실히 지키는 것이 올바른 선택”이라고 밝혔다. 이 대사는 19일 보도된 도쿄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합의를 이행하지 않으면 한일 관계를 올바른 방향으로 가져갈 수 없다. 합의가 크게 바뀌지 않도록 차기 정권에 전달하는 노력을 해나갈 것”이라며 이 같이 말했다. 이 대사는 또 지난해 말 부산에 위안부 소녀상이 설치되고 이후 일본이 나가미네 야스마사(長嶺安政) 주한 일본대사 일시 귀국 등 대항조치를 취하며 양국 관계가 악화된 것에 대해 “매우 유감”이라고 말했다. 또 “이 문제는 양국의 합의, 합의 정신에 기초해 대화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가미네 대사 귀임에 대해선 “한국 정부가 일본 정부에 대사 귀임을 공식 요청한 적은 없다”면서도 “일본의 대사가 한국에 부재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한일 간에는 소녀상 말고도 협력의 여지가 있는 문제가 많다”고 지적했다. 박근혜 대통령 파면 이후 한일관계에 대해선 “일본과 우호 관계를 구축해 나간다는 한국 정부의 정책은 변함이 없다”며 “(자신의 임기 중) 한일 국민이 ‘베스트 프렌드’가 되도록 기반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이 대사는 지난해 7월 부임했다. 도쿄=장원재 특파원 peacechaos@donga.com}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한반도 배치 결정에 따른 중국의 패권주의적 대응은 2010년과 2012년 센카쿠(尖閣)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 영유권을 둘러싸고 극단으로 치달았던 중일 갈등을 떠올리게 한다. 외교안보 갈등을 경제·문화 보복으로 푸는 중국의 거친 대응은 일본이 한국보다 먼저 뼈저리게 겪었다. 일본은 이 사태를 어떻게 극복했을까.“中이 경제 방아쇠 당기면 日은 20년 후퇴할 것” “일본인인가. 내려라. 태우고 싶지 않다.” 2012년 9월 상하이(上海)에서 화장품회사 영업을 담당하던 40대 일본인 남성은 타고 가던 택시에서 쫓겨났다. 걸려온 휴대전화를 ‘모시모시(여보세요)’라며 받는 소리를 택시 운전사가 들었기 때문이다. 슈퍼마켓이나 선술집에서 일본인이란 이유로 얻어맞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다른 주재원은 중국인이 “일본인이냐”고 물으면 “아니, 한국인이다”라고 답해 위기를 모면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일본이 2012년 9월 11일 센카쿠 국유화를 완료하자 중국에서 반일감정이 폭발했다. 중국이 영유권을 주장하는 댜오위다오를 일본이 일방적으로 국가 소유로 전환한 것에 대한 반발이었다. 당시 중국 공산당 기관지 런민(人民)일보는 “중국이 경제 방아쇠를 당기면 일본은 20년 후퇴할 것”이라고 엄중 경고했다. 이 경고는 즉각 실현되는 듯했다. 베이징(北京)에서는 시위대가 일본대사관 진입을 시도했고, 중국 도시 110곳에서 대규모 반일 시위가 일어났다. 시위대 일부는 폭도화했다. 산둥(山東) 성 칭다오(靑島)에서는 시위대가 파나소닉 공장 등 일본 기업 공장 10곳에 난입해 불을 지르고 생산라인을 파괴했다. 도요타자동차 매장도 불에 탔다. 후난(湖南) 성 창사(長沙)에선 일본 백화점 헤이와도(平和堂)가 약탈당해 10억 엔(현재 환율로 약 100억 원)의 피해를 입었다. 장쑤(江蘇) 성 쑤저우(蘇州) 시위대 수천 명은 일본계 음식점 40곳에 난입해 문과 유리창을 부쉈다. 당시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내각은 한 달간 일본 기업이 입은 손실을 수십억∼100억 엔(수백억∼1000억 원)으로 산정했다. 불매운동 등의 간접적 영향을 제외하고, 시위대의 물리적인 파괴 행위로 인한 직접적 영향만 따진 것이다. 반일감정 확산으로 인한 피해는 훨씬 컸다. 도요타 닛산 혼다자동차의 중국 판매량이 한 달 만에 절반으로 떨어졌다. 현지 자동차 공장들은 가동률을 줄이고 일본에서 생산된 완성차 수입을 수개월간 중단해야 했다. 일본을 찾는 중국인 관광객이 2012년 10월 전년 동월 대비 60%, 11월 71% 줄면서 관광업계가 초토화됐다. 2012년은 중일 국교정상화 40주년이 되는 해였지만 중국은 그해 9월 23일 일본에 40주년 기념식 무기 연기를 통보했다. ‘정랭경열’(政冷經熱·정치는 차갑지만 경제는 뜨겁다)을 자랑하던 중일관계는 순식간에 ‘정랭경랭’(政冷經冷·정치도 경제도 차갑다)으로 바뀌었다. 2010년 제1차 센카쿠 사태 일본은 이보다 꼭 2년 전에도 중국과 부딪쳐 피를 본 경험이 있었다. 2010년 9월 7일 센카쿠 인근에서 조업하던 중국 어선이 일본 해양순시선을 들이받자 일본은 어선을 나포하고 선장과 선원을 체포했다. 닷새 뒤인 12일 중국은 니와 우이치로(丹羽宇一郞) 주중 일본대사를 소환해 항의했다. 다음 날 일본은 선원 14명을 석방했지만 선장은 억류했다. 그러자 중국은 14일 리젠궈(李建國)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부위원장의 일본 방문 계획을 취소했고 18일에는 베이징, 상하이 등에서 대규모 반일시위가 벌어졌다. 19일 일본 법원이 중국인 선장 구속을 10일 연장한다고 발표하자 중국은 각료급 이상 교류 중단 조치를 발표했다. 중국의 결정타는 21일 나왔다. 일본에 대한 희토류 수출을 막아버리자 일본이 두 손을 들 수밖에 없었다. 희토류는 첨단산업의 필수재료로 당시 일본은 그 대부분을 중국으로부터 수입하고 있었다. 일본 법원은 24일 중국인 선장의 석방을 발표했다. 일본은 이후 희토류 수입원을 동남아시아와 몽골 등으로 다변화했고, 희토류 없는 제품 개발에 힘을 기울이는 등 기술혁신의 전기로 삼았다. 여기엔 중국이 또다시 희토류 카드를 꺼내 들더라도 속수무책으로 당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차이나 플러스 원’ 전략 센카쿠를 둘러싼 중일 힘겨루기는 여전히 진행 중이지만 양국의 경제·문화 교류는 2차 센카쿠 사태 1년여 만인 2013년에 사실상 원상회복됐다. 아베노믹스로 엔화가 약세를 유지하면서 일본을 찾는 중국인 관광객은 2012년 143만 명에서 지난해 637만 명으로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이들의 ‘폭매(暴買)’ 덕에 일본 경기도 활성화됐다. 도요타 닛산 등 일본 6대 자동차 회사의 중국 내 신차 판매는 지난해 사상 처음으로 400만 대를 돌파했다. 일본은 중국의 보복에 감정적 대응을 자제하고 인내심을 유지했다. 또한 민간 차원에서 화해의 제스처를 취하는 동시에 수출 대상국을 다변화했다. 특히 중국 리스크를 절감한 기업들은 중국 외에 동남아 거점을 하나 더 만든다는 ‘차이나 플러스 원’ 전략에 돌입했다. 닛산자동차는 센카쿠 사태 두 달 뒤인 2012년 11월 태국에 110억 밧(현재 환율로 약 3500억 원)을 투입해 새 공장을 짓겠다고 발표했다. 같은 달 도요타도 인도네시아 생산 시설을 2배로 늘리겠다고 밝혔다. 일본의 대중 직접투자는 2012년 73억8000만 달러(현재 환율로 약 8조5000억 원)에서 2015년 32억1000만 달러(약 3조7000억 원)로 절반 이하로 줄었다. 2012년 홍콩에 이어 대중 투자액이 2위였던 일본은 2015년 싱가포르, 대만, 한국보다 낮은 5위가 됐다. 반면 같은 기간 태국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 등 아세안 주요 4개국에 대한 직접투자는 64억 달러(약 7조4000억 원)에서 116억 달러(약 13조3000억 원)로 2배 가까이로 늘었다. 일본의 투자가 줄고 일본계 기업이 중국에서 창출하는 일자리도 감소하자 중국 정부도 점차 태도를 바꿨다. 대단원은 2014년 베이징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2년 반 만에 열린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정상회담이었다. 두 정상은 전략적 호혜관계를 지속 발전시키자는 데 동의했다. 리커창(李克强) 총리는 2015년 중국을 방문한 일중경제협회 대표단에 “일본의 대중(對中) 투자와 한중일 자유무역협정(FTA)을 위한 환경 정비를 지시하겠다”고 약속했다.한국과 일본의 다른 점 중국이 정치적 이유로 경제·문화 보복을 가하는 것은 올해 한국을 겨냥한 사드 보복과 2012년 일본을 상대로 한 센카쿠 사태가 유사하지만 다른 점도 적지 않다. 센카쿠 사태는 근본적으로 영토 문제였다는 점에서 일본 정치권은 여야를 막론하고 한목소리를 냈다. 2012년 12월 중의원 선거에서 자민당이 승리해 아베 총리가 집권했지만 이후로도 민주당 정권이 취했던 노선을 바꾸지 않았다. 사드 배치를 놓고 둘로 갈라진 한국과는 달리 일본 언론은 한결같이 정부 입장을 지지했다. 한국 경제의 대외 무역 의존도가 일본보다 크다는 점도 문제다. 한국의 무역 의존도는 2015년 기준 69.9%로 일본(30.9%)의 두 배가 넘는다. 중국 전문가 노구치 도슈(野口東秀) 다쿠쇼쿠(拓殖)대 객원교수는 “한국은 지정학적으로 매우 불리한 처지이고 경제의 중국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다”며 “안보에서 미국·일본과 확실하게 협력하고 경제는 중국 의존도를 줄여 나가야 한다”고 지적했다.도쿄=서영아 sya@donga.com·장원재 특파원}
역대 미국 대통령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주요 어젠다는 백악관에서 잡고 구체적인 집행은 주요 부처 장관과 책임자에게 과감하게 이양하는 전통을 갖고 있다. 장관 인선 과정에서 철저하게 자신의 국정 철학과 일치하는 인사를 고른 뒤 구체적인 이행은 대부분 맡기는 경우가 많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임기 후반 최대 현안으로 부상한 이슬람국가(IS) 격퇴를 위해 존 케리 국무장관, 애슈턴 카터 국방장관, 마틴 뎀프시 합참의장 등 안보라인 ‘빅3’에게 일정한 역할과 권한을 배분했다. 백악관에서 열리는 국가안보회의(NSC) 확대회의에선 이들이 종종 격론에 가까운 난상 토론을 벌였다. 박근혜 대통령 재임 당시 대부분의 국무위원들이 대통령의 지시를 수첩에 받아쓰는 장면이 펼쳐진 것과는 대조적이다. 뎀프시 의장은 2015년 9월 합참의장에서 물러나면서 “백악관 회의에서 종종 IS 격퇴전략을 놓고 대통령의 뜻과는 달리 지상군을 투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이렇게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할 수 있도록 배려해준 대통령에게 감사드린다”고 말하기도 했다. 오바마 임기 후반 또 다른 외교 현안이었던 이란과의 핵협상은 오바마 대통령이 큰 틀에서 키를 쥐고 케리 장관이 현장에서 협상 과정과 결과를 책임지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2015년 4월 핵협상 타결 직전 케리 장관은 참모들을 모아놓고 최종 전략을 정한 뒤 즉석에서 화상으로 오바마 대통령에게 보고해 최종 재가를 받았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스티브 배넌 백악관 수석전략가 등 일부 참모들의 말에 지나치게 휘둘린다는 지적을 받지만 일부 장관들에게 과감하게 재량권을 주고 있다.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에 대해 수시로 신뢰를 표현하며 재량권을 주고 있다고 밝혀 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CBS 방송 인터뷰에서 테러리스트에 대한 고문 부활에 대해 “나는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위대한 매티스 장관이 하지 말라고 하면 안 하겠다”며 전 국민을 상대로 신뢰를 피력하기도 했다. 출범 4년이 넘은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정권의 특징은 권력이 관저에 집중돼 있다는 것이다. 아베 총리의 절대적 신임을 받는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이 내각 업무를 주도한다. 현 정권의 2인자로 불리는 그는 인사권을 강하게 틀어쥐고 정권의 핵심 정책을 끝까지 관철하고 있다. 아베 총리는 내각 인사와 정무적 사안에 대해 스가 장관의 판단을 대부분 존중한다고 한다. 아베 총리의 정치적 동지인 아소 다로(麻生太郞) 부총리 겸 재무상도 일정 부분 재량권을 인정받고 있다. 아베 총리는 평소에 아소 부총리의 의견을 대체로 존중하는 것으로 알려졌다.워싱턴=이승헌 ddr@donga.com / 도쿄=장원재 특파원}
일본이 차세대 스텔스 전투기 기술을 영국과 공동 개발하기로 했다고 니혼게이자이신문이 16일 보도했다. 일본은 영국과 차세대 공대공 미사일 개발도 진행 중이어서 양국의 안보협력이 한층 강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신문은 이날 양국 정부가 적의 레이더에 탐지되지 않는 차세대 스텔스 전투기 기술을 함께 개발하기 위해 조만간 양해각서(MOU)에 서명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MOU의 내용은 일단 양국이 추구하는 스텔스기의 성능과 각자 보유한 기술 정보를 교환하는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올가을부터 실제 공동 연구에 착수할지 여부를 결정한다. 일본이 미국 이외의 국가와 스텔스 전투기 기술을 공동 연구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일본은 이미 스텔스 기술을 적용하여 자체적으로 ‘X-2’를 개발해 시험 비행을 하고 있다. 영국은 유로파이터 타이푼 전투기가 주력인데 일본이 보유한 고성능 레이더 기술에 관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은 내년 중에 차세대 주력전투기(FX)를 국산화할지, 외국과 공동 개발할지를 결정한다. 신문은 “영국이 일본의 기술력에 주목해 공동 개발 가능성을 찾으려 한다”고 전했다. 한편 일본 해상자위대는 최근 가와사키중공업으로부터 최신식 소류급 잠수함 ‘세키류’를 인수했다. 해상자위대는 13일 효고(兵庫) 현 고베(神戶) 시 가와사키중공업 공장에서 인도식을 진행했다고 발표했다. 560억 엔(약 5600억 원)을 들여 만든 세키류는 일본의 17번째 잠수함이다. 적의 어뢰 공격으로부터 잠수함을 지키는 신형 방어 시스템을 탑재했으며, 수중에서 부상하지 않고도 장기간 작전 수행이 가능한 공기불요장치(AIP)를 채택해 수주 동안 물속에서 작전을 수행할 수 있다.도쿄=장원재 특파원 peacechaos@donga.com}
“요즘 매일 뭘 하시나요?”(일본 자민당 의원) “매일 외무성에 출근하고 있습니다.”(나가미네 야스마사·長嶺安政·주한 일본대사) 부산 위안부 소녀상 문제로 일시 귀국해 두 달 넘게 일본에 머물고 있는 나가미네 대사가 15일 자민당 회의에 출석해 자신의 근황과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의견을 밝혔다고 일본 언론들이 16일 전했다. 나가미네 대사는 근황에 대해 “주한 일본대사관 직원들이 판단을 구하는 문제가 많다. 그런 걸 처리하기 위해 매일 외무성으로 출근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또 “한국의 현 정권에 가능한 것을 강하게 요구해 최대한 (성과를) 이끌어내는 노력이 필요하다”며 “(하지만 한국은)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부산시 동구에 (소녀상 이전을 요구하는) 편지를 보낸 것에 머물러 있다”고 말했다. 한국의 차기 정권에 대해서는 “위안부 문제의 최종적 불가역적인 해결을 확인한 2015년 한일합의의 이행을 차기 정권에 요구하는 것이 중요하다. 어떤 정권이 집권하더라도 약속을 지키도록 호소해가겠다”고 했다. 자신의 귀임여부와 시기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았다. 산케이신문은 이날 “일본 정부는 위안부상 철거 등 한국정부가 구체적인 조치를 취할 때까지 나가미네 대사를 돌려보내지 않을 방침”이라고 전했다. 도쿄=장원재 특파원 peacechaos@donga.com}
‘일본 전자기업의 자존심’ 도시바가 해외 원자력발전소 사업을 포기하겠다고 밝혔다. 원전사업에서 거액의 손실을 입은 도시바는 회계부정 의혹까지 겹쳐 상장폐지의 문턱에 놓였다. 쓰나카와 사토시(綱川智) 도시바 사장은 전날 기자회견에서 지난해 4~12월 결산 발표를 못하게 됐다고 밝히고 “(도쿄 증시 1부에서) 2부로 떨어지더라도 신용을 확보해 상장폐지는 되지 않도록 노력하고 싶다”며 고개를 숙였다. 도시바가 지난달에 이어 두 번째로 결산 발표를 연기하며 시장의 신뢰는 바닥으로 추락했다. 상장사의 결산 발표 연기는 매우 이례적이다. 도시바는 15일 도쿄 증권거래소에 ‘상장을 유지해 달라’는 보고서를 제출했다. 거래소는 이날 상장폐지 가능성이 있다는 뜻에서 도시바를 ‘감리종목’으로 지정했고, 몇 달 간의 검토를 거쳐 상장폐지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다. 결산이 다시 연기된 것은 미국 원전 자회사 웨스팅하우스의 회계부정 의혹을 해소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도시바는 지난 달 원전 사업 손실을 7125억 엔(약 7조1000억 원)으로 발표했지만, 현지 경영진이 지속적으로 손실을 축소하려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쓰나카와 사장은 “e메일 10만 통을 분석하고 관계자의 증언을 청취하고 있다. 무엇이 나올지 예상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도시바는 2015년 2248억 엔(약 2조2500억 원) 규모의 부정회계가 적발돼 최고경영진이 한꺼번에 물러났다. 이번에도 회계부정을 한 사실이 드러나면 회생 불능 상태에 빠질 수 있다. 쓰나카와 사장은 기자회견에서 해외 원전사업 철수 의사를 밝혔다. 구체적으로는 매각이나 파산보호 신청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아사히신문은 “구입자를 찾는 것이 간단치는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완공이 지연되고 있는 미국 원전사업이 2020년까지 납기를 맞추지 못할 경우 한화 수조 원을 물어줘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일본 내에서는 도시바가 액화천연가스(LNG)를 비싸게 산 탓에 앞으로 최대 1조 엔(약 10조 원)의 손실이 날 수 있다는 보도도 나왔다. 일본 언론은 도시바를 두고 “출구가 안 보이는 상황”이라고 전하고 있다. 현재 부채가 자산보다 많은 도시바는 추진 중인 반도체 매각으로 최대 2조5000억 엔(약 25조 원)을 조달해 급한 불을 끄겠다는 계획이다. 이에 대해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매각 자체는 어렵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스마트폰 산업의 성장세가 둔화되고 있어 높은 가격을 받기는 어려울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반도체 입찰에는 한국의 SK하이닉스와 미국의 웨스턴디지털 등이 의욕을 보이고 있다. 도쿄=장원재 특파원 peacechaos@donga.com}

일본이 미국, 인도와의 해상 연합훈련 등을 위해 해상자위대 최대 호위함인 이즈모(사진)를 남중국해와 인도양에 3개월 동안 파견한다고 로이터통신과 일본 언론이 14일 전했다. 이즈모는 중국 항공모함에 대항하는 해상자위대의 핵심 전력이어서 남중국해를 지나갈 경우 중국의 반발이 예상된다. 보도에 따르면 이즈모는 7월 중순 인도양에서 열리는 미국-인도-일본 해상 연합훈련 ‘말라바르’에 참여한다. 인도양과 태평양에서 번갈아가며 열리는 이 훈련에는 일본 해상자위대가 2015년부터 참여하고 있다. 약 1200억 엔(약 1조2000억 원)의 건조비를 들여 2015년 취역한 이즈모(1만9500t)는 갑판 길이 248m, 최대 폭 38m로 헬기를 9대까지 실을 수 있다. 갑판을 부분적으로 개조하면 전투기까지 이착륙할 수 있어 사실상 항공모함과 다를 바 없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즈모는 5월 초 일본을 떠나 말라바르 훈련에 참여하기 전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필리핀, 스리랑카 등을 거칠 예정이다. 싱가포르에서는 국제관함식에 참가하고 해상 연합훈련을 실시한다. 필리핀에서는 로드리고 두테르테 대통령을 함상에 초대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남중국해에서 미 해군과 연합훈련을 하는 방안도 조율 중이다. 언론들은 일본 정부가 이즈모를 파견해 중국의 남중국해 군사 거점화를 견제하려 한다고 분석하고 있다. 로이터는 “일본이 2차 세계대전 이후 해군 전력을 과시하는 가장 큰 쇼”라고 분석하고 “3개월 동안의 장기 항해로 이즈모의 조기 전력화를 도모하려는 것”이라는 관계자의 발언을 전했다. 이즈모가 남중국해에서 훈련할 경우 중국을 자극할 가능성이 높다. 중국 관영매체들은 이즈모가 진수될 때부터 “과거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에 투입됐던 전함의 이름을 따왔다. 군국주의의 망령을 깨우고 있다”며 강력히 반발한 바 있다.도쿄=장원재 특파원 peacechaos@donga.com}
한국 고등학생들은 ‘취업에 대한 걱정’ 때문에 공부에 부담을 갖는 것으로 나타났다. 취업난이 고교생에게까지 심리적 부담을 주고 있는 것이다. 일본 국립청소년진흥기구가 한국 일본 미국 중국 등 4개국 고교생 약 785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한국 학생들 중 가장 많은 28%가 공부에 부담을 느끼는 이유로 ‘취업 상황’을 들었다. 취업을 꼽은 비율은 한국이 일본(14%) 미국(6%) 중국(11%)보다 두 배 이상 높았다. ‘부모의 기대’를 꼽은 비율도 한국이 가장 높았다. 반면 같은 질문에 일본은 ‘스스로 원해서(27%)’, 미국은 ‘선생님의 기대(19%)’, 중국은 ‘친구와의 경쟁(17%)’을 꼽은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았다. 공부 때문에 ‘열등감을 갖는다’는 비율과 ‘생활에 절망한다’는 비율도 한국이 가장 높았다. 학교 대신 사교육에 의존하는 현실도 여과 없이 드러났다. 수업 중 ‘노트 필기를 열심히 한다’는 비율은 한국의 경우 51%에 불과했다. 이는 다른 나라보다 10%포인트 이상 낮은 것이다. ‘수업 내용을 모를 경우 어떻게 하느냐’는 질문에는 44%가 ‘(학교가 아닌) 학원 등의 선생님에게 묻는다’고 답했다. 다른 나라의 경우 8~19%만 같은 답변을 해 한국의 절반 이하였다. 한국은 학교 수업과 숙제를 하는 시간이 미국 중국보다 적었지만 그 외에 학원 등에서 공부하는 시간은 다른 세 나라보다 많았다. 인터넷으로 동영상 강의 등을 듣는 비율도 한국이 67%로 가장 높았다. 조사결과는 13일 발표됐으며 한국에선 한국청소년활동진흥원이 지난해 9~11월 전국 36개 학교의 고교생 1800명을 대상으로 조사했다.도쿄=장원재특파원 peacechaos@donga.com}

“윤동주 시인은 내 인생의 보물이고, 나침반 같은 존재입니다.” 6일 일본 도쿄(東京)에서 만난 다고 기치로(多胡吉郞·61) 씨는 30년 넘게 시인 윤동주에 빠져 온 자신의 삶을 이렇게 요약했다. 다고 씨는 윤동주 탄생 100주년을 맞아 지난달 일본에서 ‘생명의 시인·윤동주’(사진)라는 책을 냈다. 그는 “군국주의가 판치던 암흑기에 인간의 가장 순수한 영혼을 유지하려 했던 이가 바로 윤동주”라며 “평이한 언어로 인생의 본질을 파고드는 그의 시가 시대, 언어, 국경을 넘어 일본인의 마음에 강하게 호소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고 씨는 1984년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일본어판이 출판되면서 윤동주에게 관심을 갖게 됐다. NHK 프로듀서였던 그는 윤동주 관련 방송 프로그램을 몇 번이나 제안했지만 사내에서 ‘누가 안다고 그러느냐’며 번번이 퇴짜를 맞았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결국 광복 50주년인 1995년 KBS와 함께 윤동주 다큐멘터리를 제작해 방영했다. 다고 씨는 “그전에는 공동제작이라고 해도 민감해하던 근현대사가 아닌 미술 등을 주제로 했다. 또 일본어판과 한국어판을 따로 만드는 것이 관행이었다”며 “근현대사를 정면으로 다루면서 버전도 하나로 통일해 양국에서 방영한 것은 큰 성과”라고 말했다. 그해 3월 방영된 NHK 스페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윤동주·일본 통치하의 청춘과 죽음’은 이후 일본에서 윤동주 추모 움직임을 이끌어내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그는 다큐멘터리 제작 과정에서 윤동주의 흔적을 찾아 일본 전역을 돌아다녔다. 윤동주의 교토(京都) 도시샤(同志社)대 유학 시절을 추적해 그를 기억하는 동창생 3명을 찾았다. 그중 기타지마 마리코(北島萬里子) 씨의 앨범에서 윤동주의 마지막 사진을 발견했다. 다고 씨는 서울에 있는 윤동주의 유족들에게 사진을 보냈고, 윤동주와 친분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일본 시인 우에모토 마사오(上本正夫) 씨를 찾아 증언을 듣고 검증했다. 2002년 영국에서 NHK 주재원으로 있을 때 사표를 내고 작가가 되기로 결심했을 때는 ‘나에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는 서시의 한 구절이 그를 지탱해줬다. 다고 씨는 “혼자서 영국의 옥탑방에서 살면서 공부를 계속했는데 그때 ‘육첩방은 남의 나라’라고 썼던 윤동주의 마음을 더 잘 이해하게 됐다”고 말했다. 다고 씨는 최근까지 관련 자료를 분석하고 증언을 모으며 윤동주의 발자취를 지속적으로 추적했다. 이번에 낸 책에서 윤동주가 읽고 남긴 책의 밑줄과 메모를 분석했고, 어떤 원고지를 썼는지, 연호를 서양식으로 썼는지 일본식으로 썼는지 등을 세밀하게 되짚었다. 윤동주의 마지막 행적을 찾아 후쿠오카(福岡) 형무소에서의 당시 간수와 수감자 등을 인터뷰하기도 했다. 다고 씨는 “생체실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증언을 모았지만 결정적 단서는 얻지 못했다”며 “다만 당시 형무소는 식사가 부실하고 위생상태가 엉망이어서 ‘사망 대기소’라고 할 정도로 연이어 사람이 죽어나갔다. 병사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윤동주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를 1941년 11월 5∼20일의 2주 동안이라고 했다. 다고 씨는 “시집 출간이 좌절된 윤동주가 시집 제목을 ‘병원’이라고 지었다가 이후 서시를 쓰고 제목을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로 고쳤다. 이 기간에 시인은 정신적 고뇌를 거친 뒤 영원한 생명을 향해 비상했다”고 풀이했다.도쿄=장원재 특파원 peacechaos@donga.com}

윤동주 시인(1917∼1945) 탄생 100주년을 맞아 일본 교토(京都) 부 우지(宇治) 시의 강변에 기념비가 설치된다. 우지 시를 관통하는 우지 강은 윤 시인이 1943년 도시샤(同志社)대 영어영문학과 유학 시절 일본인 학우들과 야외 송별회를 하며 생전 마지막으로 사진을 찍은 장소다. 일본 시민단체 ‘시인 윤동주 기념비 건립위원회’의 곤타니 노부코(紺谷延子) 사무국장은 최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지방자치단체의 협력을 얻어 우지 강변에 터를 확보했다. 인근에서 진행 중인 공사가 끝나는 대로 설치 작업에 들어갈 것”이라며 “늦어도 올해 10월 전에는 세울 것”이라고 밝혔다. 윤 시인의 마지막 사진은 NHK가 KBS와 함께 1995년 방영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던 중 윤 시인의 학우였던 기타지마 마리코(北島萬里子) 씨의 앨범에서 발견했다. 기타지마 씨의 증언에 따르면 당시 징병을 피하기 위해 귀국을 결심한 윤 시인은 1943년 5, 6월경 열린 송별회 자리에서 학우들의 요청을 받고 ‘아리랑’을 불렀다. 윤동주 연구자인 야나기하라 야스코(楊原泰子) 씨는 현대문학 2006년 9월호에 당시 정경을 다음과 같이 전했다. “조금은 허스키한 목소리로, 애수를 띤 조용한 목소리가 강물을 따라 흘렀다. 다들 조용히 듣고 있다가 끝나자 박수를 쳤다.” 송별회로부터 한두 달 뒤인 그해 7월 14일 윤 시인은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붙잡혔고 1년 7개월 뒤 옥사했다. 윤 시인을 기리는 이들은 이 사진의 배경이 우지 강에 놓인 아마가세쓰리(天ヶ瀨吊り) 다리라는 걸 알아냈다. 이후 뜻있는 이들을 중심으로 기념비 제작 움직임이 일었다. 2005년 시민단체가 결성됐고, 2007년 각계의 모금을 받아 비석 제작까지 마쳤으나 마땅한 장소를 찾지 못해 설치를 미뤄 왔다. 곤타니 사무국장은 “교토 부 등에 수십 번 찾아갔지만 거절당했다. 그러다 지난해 말 우지 시 시즈가와(志津川) 구에서 구 소유 땅에 건립하도록 허가해 줬다”고 말했다. 건립 예정지는 윤 시인이 아리랑을 부른 강변 근처로 사진을 찍은 다리가 보이는 장소다. 비석의 정식 명칭은 ‘시인 윤동주 기억과 화해의 비’로 정해졌다. 높이 2m, 폭 1.4m의 이 비석은 일본과 한반도의 화강암이 하나씩 배치돼 원통을 떠받치는 형태로 제작됐다. 비석에는 윤 시인의 1938년 작품 ‘새로운 길’을 한국어와 일본어로 새긴다. 곤타니 사무국장은 “시인의 탄생 100년이 되는 해에 기념비를 세울 수 있게 돼 뜻깊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현재 일본에는 윤 시인이 유학했던 교토의 도시샤대와 당시 하숙집이 있던 자리(현 교토조형예술대)에 비석이 있다. 이번에 건립되는 우지 기념비는 가장 크며 시민들의 노력으로 대학 교내가 아닌 장소에 처음 세워지는 것이다. 도쿄=장원재 특파원 peacechao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