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광영

신광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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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신광영 논설위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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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분야

2026-01-09~2026-02-08
칼럼100%
  • [횡설수설/신광영]그날 밤 국회 단전

    군이 야간에 건물을 장악하려 할 때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조치가 단전이다. 상대의 대응 능력을 떨어뜨리는 데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앞이 깜깜해지고 엘리베이터나 전자식 출입문이 작동을 멈추면 내부 인원들은 당장 이동이 어려워진다. 통신까지 먹통이 된 채로 어둠에 갇힌 사람들은 혼란과 두려움에 빠져 침착하고 조직적인 대응을 하기 힘들다.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직후인 지난해 12월 4일 새벽에도 계엄군에 의한 국회 단전이 이뤄졌다. 그날 밤 곽종근 전 특전사령관은 국회 현장을 지휘하던 김현태 707특임단장에게 전기 차단이 가능한지를 물으며 “150명이 넘으면 안 된다고 하는데 들어갈 수 없겠느냐”고 사정하듯 얘기했다고 한다. 국회가 계엄 해제를 의결하기 10분 전인 0시 50분경의 일이다. 의원들이 본회의장으로 속속 모여들어 의결 정족수 150명을 채워가던 때였다.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최근 공개한 국회 본관 폐쇄회로(CC)TV 영상을 보면 계엄군이 2층 창문을 깨고 본관에 진입한 게 0시 32분이다. 그 후 18분 뒤 곽 전 사령관의 단전 지시가 있었다. 군인들은 본회의장이 있는 2층을 배회하다 국회 직원들에게 가로막히자 지하 1층으로 내려갔다. 이때가 오전 1시 1분. 계엄 해제안이 통과되던 바로 그 시각이다. 그로부터 5분 뒤 군인들은 지하 1층 전력 차단기를 내렸다. 지하 1층 일부 구역이 5분 넘게 암흑에 잠겼다. ▷그날 계엄 해제 표결은 전자투표로 진행됐다. 전력이 끊기면 투표 시스템도 멈춘다. 만약 계엄군이 투표 완료 전 본회의장 전력을 통제하는 2층 분전함을 찾아냈다면 표결은 중단됐을 수 있다. 수기 투표로 전환하더라도 어둠 속에서 신속히 진행되긴 어려웠을 것이다. 지하 1층 단전이라고 해서 표결과 무관했던 건 아니다. 당시 의원들 상당수가 의원회관과 국회 본관을 연결하는 지하 1층을 통해 본회의장으로 왔다. 계엄군이 조금만 일찍 해당 연결 통로에 설치된 방화셔터를 내린 뒤 전력을 차단해 못 열게 했다면 의결 정족수를 못 채웠을 가능성이 있다. ▷“국회 기능을 마비시키려 했다면 단전 단수부터 했을 텐데 어느 것도 하지 않았다”던 윤 대통령 측은 단전 사실이 드러나자 “곽 전 사령관이 한 것”이라고 한다. 곽 전 사령관이 “(전기 차단은) 제가 지시한 것”이라고 헌법재판소에 증언한 건 맞다. 하지만 그는 부하에게 단전 지시를 하기 20분 전쯤 윤 대통령으로부터 “아직 의결 정족수가 안 채워진 것 같다. 빨리 문을 부수고 들어가 안에 있는 인원을 끄집어내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했다. 단전은 의원들을 끌어내란 대통령의 지시를 이행하기 위해 취한 기본적인 조치에 해당하는 셈이다. 윤 대통령이 “내가 단전을 지시한 건 아니다”란 말로 책임을 떠넘길 수 있는 일이 아니다.신광영 논설위원 neo@donga.com}

    • 2025-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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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암 걸린 게 불운이 아니라 암에 안 걸리고 살아온 하루하루가 기적”[월요 초대석]

    《암 환자들을 만나는 종양내과 의사는 초면에 임종을 얘기해야 할 때가 적지 않은 직업이다. 주로 암 수술 후 재발했거나 암이 너무 늦게 발견된 환자들이 항암치료를 위해 종양내과로 찾아온다. 저승길에서 유턴해 온 이들도 있다. 서울대병원 암센터 종양내과 전문의 김범석 교수(48)는 “의사와 장의사 사이에 낀 저승사자로 살아가는 기분”이라고 한다. 김 교수의 환자들 중에는 완치되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는 생명을 연장하고 증상과 통증을 완화하는 게 치료의 목적이다. 4일 서울대병원에서 만난 김 교수는 “암 환자들이 남은 삶을 편안히 살아가도록 시간을 버는 게 제 일”이라고 했다.》김 교수는 병동에서 환자들의 어린 자녀를 볼 때면 한결 더 마음이 쓰인다. 그 역시 16세 때 아버지를 폐암으로 잃었다. 당시 아버지는 지금 김 교수 나이인 40대 후반이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어려운 청소년기를 보낸 김 교수는 암을 증오하면서도 정복하고 싶었다. 그 마음이 그를 종양내과 의사의 길로 이끌었다. 의대에 가기엔 성적이 부족했던 그는 “의자 방석이 너덜너덜해지도록 공부했다”고 한다. 20년째 암과 싸워 오면서 암에 대한 김 교수의 시선도 달려졌다. 초기엔 암을 제압하겠다는 의욕이 높았지만 암을 알아갈수록 그 역시 하나의 생명체라는 생각에 가까워졌다. 증오와 공포의 대상이 아닌, 이해와 예방의 대상으로 암을 바라보게 됐다. 그는 암으로 가족을 잃은 유가족이자 암을 치료하고 연구하는 의사로 살아온 그간의 기록을 최근 ‘죽음은 직선이 아니다’란 책으로 펴냈다. ―암은 무엇인가.“우리 몸에 30조 개 세포가 끊임없이 복제되는데 그 과정에서 일부 세포의 DNA에 치명적인 돌연변이가 생겨 암세포로 변한다.” ―암세포는 왜 위협적인가.“정상 세포는 사멸하고 다시 태어나기를 반복하는데 암세포는 사멸하지 않고 무한 증식한다. 브레이크가 고장 난 채로 신호도 무시하고 질주하는 자동차에 빗댈 수 있다. 주변 세포들의 영양분을 마음대로 끌어다 쓰고 정상 세포들의 생태계를 교란한다. 그 결과 해당 신체 기관을 무력화시키고 다른 장기로도 퍼져나가 못 쓰게 만든다.” ―암은 악당인가.“시각을 조금 바꿔 보면 암은 필연적인 생명 현상이다. 인류가 생존하고 진화해 온 특징은 암의 생존법과 동일하다. 인간은 스스로 후손을 이어 왔고 척박한 환경에서도 어떻게든 적응해 왔다. 생존을 위해선 주변에서 자원을 빼앗기도 하고 영역을 넓혀가며 번영을 이뤄 왔다. 그 과정에서 피해를 끼치기도 한다. 그게 딱 암의 생존법이다. 태아 역시 엄마 배 속에서 암과 같은 방식으로 살아남는다.” ―정말인가. 암은 절망이고 태아는 희망 아닌가.“모체의 면역계는 본래 태아를 외부자로 인식하지만, 태반에 면역 회피 물질이 있어 태아를 보호한다. 암세포 역시 면역 회피 물질을 내며 면역계를 교란시키고, 이를 통해 몸의 방어체계가 자신을 적군인지 아군인지 헷갈리게 만든다. 또한, 태아는 엄마의 영양 상태와 관계없이 영양을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도록 다양한 호르몬을 분비한다. 덕분에 엄마의 영양 상태가 불규칙하더라도 태아는 문제없이 성장할 수 있다. 암세포도 주변 세포의 상태와 상관없이 자신의 생존을 위해 영양분을 확보하는 데 집중한다.” ―암이 안 생기게 돌연변이 자체를 막을 순 없나.“세포 복제 과정에 오류가 전혀 없다면 변이가 안 생겨 유전적 다양성이 사라진다. 그렇게 진화가 멈추면 환경 변화에 대응할 능력이 떨어져 멸종될 수 있다. 종이 존속하려면 어느 정도의 오류가 필요하다. 암이 생길 수 있는 몸이기에 생명체가 여기까지 진화한 것이다.” ―암은 우리의 적이 맞나.“그토록 없애버리고 싶은 암은 변형된 우리 자신이다. 암과의 싸움이 힘든 건 수만 년 진화를 통해 인간의 몸에 누적된 세포 증식 능력과 생존력을 꺾을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잘 대응하면 치료할 수 있는 암도 많다. 말기 환자라도 생명을 연장하고 증상을 줄이는 치료법이 계속 나오고 있다. 다만 항암치료가 발전하는 만큼 암 역시 어떻게든 살아남으려 진화한다.” ―암은 피할 수 없는 것인가.“암은 인간이 오래 살게 되면서 나타난 부작용이다. 암은 어찌 보면 장수의 부산물이다. 수십 년 세포 분열이 반복되면 고장 가능성이 커질 수밖에 없다. 현재 평균 수명(82세) 정도 산다고 하면 30% 정도가 평생 한 번 이상 암 진단을 받게 된다. 수명이 90세로 연장되면 그 비율이 60%까지 높아질 수 있다.” ―그래도 암에 걸리면 절망스러울 것 같다.“많은 환자들이 ‘왜 나한테만 이런 불행이 생기느냐’고 한다. 하지만 암에 걸린 게 불운한 것이라기보다, 암에 안 걸리고 산 하루하루가 행운의 연속이라고 보는 게 맞을 거 같다. 우리 몸을 구성하는 30조 개의 세포가 복제되면서 매일 9600억 개의 오류가 생긴다. 이 중 치명적인 부위에 돌연변이가 생기면 암이 된다. 그럼에도 세포들이 수십 년간 조화롭게 유지되고 있다면 그 자체가 경이로운 일 아닌가. 우리는 단순히 살아있다고 표현하지만 암이 생기지 않는 하루하루가 기적이다. 건강은 당연한 게 아니다.” ―암은 어떻게 생기는 것인가.“암이 주로 생기는 부위는 위벽이나 장벽, 폐 속 같은 부위의 상피세포다. 술, 담배, 음식물 등 외부에서 들어온 물질과 직접 맞닿는 곳이다. 뇌가 우리 몸의 지도층이라면 상피세포는 발암물질에 노출된 고단한 삶을 사는 하층민이다. 뇌는 명령을 내릴 뿐 그로 인한 결과는 상피세포가 감당한다. 발암물질의 공격으로 세포들이 궁지에 몰리면 돌연변이를 통해 위기를 넘기려 한다. 그 과정에서 암세포가 생겨난다.” ―암은 세포가 살려고 발버둥을 친 결과인가.“그렇다. 암세포가 처음부터 암세포였던 건 아니다. 암을 용서할 순 없지만 공부하다 보면 암세포에 측은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 자기 몸을 잘 보살펴야 하는 것인가.“묵묵히 제 역할을 하는 세포들 덕분에 건강을 유지하고 있다면 그에 합당한 대우를 해줘야 한다. 적어도 내 몸이 싫어하는 짓은 하지 말아야 한다.” ―암을 부르는 ‘못할 짓’이란 어떤 것들인가.“암 예방 10계명은 노화를 늦추는 10계명과 같다. 요즘 혈당 스파이크란 말을 흔히 쓰는데 고혈당 습관은 노화를 촉진하는 동시에 세포에 계속 충격을 주는 것이어서 돌연변이 확률도 높인다. 사람이 안 늙을 순 없지만 천천히 늙는 것은 가능하듯, 암을 100% 막을 순 없지만 발병 확률을 60∼70%가량 낮추고 암이 생기더라도 최대한 늦게 생기게 할 방법은 있다. 담배 안 피우기, 소량의 음주도 피하기, 균형 잡힌 식사를 하고 짜거나 탄 음식 안 먹기, 주 5회 이상 하루 30분 넘게 땀 날 정도로 운동하기 같은 것들이다.” ―이미 다 아는 것들 아닌가.“그래서 획기적으로 느껴지지 않을 뿐, 획기적인 방법임에는 틀림없다. 만약 제 아버지가 환자로 온다고 해도 저는 꼭 이 말을 해주고 싶다. ‘담배 끊으세요.’” ―우리는 왜 알고도 실천을 안 하는 걸까.“예방의 효과를 체감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내가 암에 안 걸린 게 예방 노력 덕분인지 원래 건강해서 그런 건지 구별이 어렵다. 사람들은 건강한 게 당연하다고 전제하고 있어 예방이 나를 지켜준 거라곤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좋은 항암제가 나오면 환자도 좋고 의사도 좋고 제약사 주가도 오르기 때문에 모두가 반기는데, 정말 획기적인 예방법은 다들 익히 알고 있다며 잔소리로 여긴다.” ―예방 노력을 해도 암에 걸릴 수 있지 않나.“우리 인생이 그렇듯 암 발생에도 어느 정도는 우연과 불운이 작용한다. 하지만 예방법을 꾸준히 실천하면 암 발생 확률을 확실히 낮출 수 있고 암에 걸리더라도 체력이 좋아서 암 치료를 잘 견딜 수 있다. 체력이 안 좋거나 노쇠하면 아무리 암이 작고 초기여도 치료할 수 없는 경우가 생긴다.” ―‘나는 암에 안 걸릴 것’이란 인식이 많은데….“가장 경계해야 할 인식이다. 암은 나에겐 벌어지지 않을 일이고, 암 환자는 나와 다른 사람이라며 선 긋기를 하면 예방에 소홀해지고 암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갖기 쉽다. 암을 남 일 취급했던 사람일수록 암에 걸리면 더 큰 충격을 받고 후회, 부정, 분노의 과정을 겪으며 소중한 시간을 허비하는 경우가 많다. 암을 두려워만 하고 대비하지 않으면 늦게 발견할 확률이 높아지고, 그 결과 더 힘들게 생을 마감하는 경우가 많아진다. 그게 암에 대한 두려움을 더 키우는 악순환에 빠진다.”‘죽음은 직선이 아니다’란 김 교수의 책 제목은 그런 선 긋기를 경계하자는 취지를 담고 있다. 정상 세포가 언제든 암세포로 변화할 수 있듯 삶과 죽음은 이분법적 직선으로 나누어진 게 아니라 경계가 모호한 채로 연결되고 순환한다는 것이다. 암을 저편의 존재로 보지 말고 언제든 만날 수 있다는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고 그는 강조한다. 김 교수의 환자들 중에는 여생이 얼마 안 남았는데도 과거를 후회하고, 미래를 불안해하느라 소중한 현재를 낭비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한다. 그런 환자들일수록 삶을 지레 포기하거나 무의미한 치료에 매달리기 쉽다. 임종 준비 기간이 미국은 보통 6개월인데 우리는 소모적인 치료에 집착하다 삶을 마무리할 시간을 채 한 달도 갖지 못하는 사례가 많다. 항암치료 전문의인 김 교수가 존엄한 죽음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그런 안타까움 때문이다.“이제 임종 준비를 하셔야 한다고 해도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환자들이 많다. 현실적인 한계도 있겠지만 살아오면서 나에게 가장 소중한 게 뭔지, 나는 뭘 좋아하는 사람인지 들여다볼 기회가 없었던 탓도 있을 것이다. 그런 환자들을 보며 저 역시 일상을 돌아보게 된다. 그렇게 삶과 죽음에 대해 배운 것들을 널리 공유하는 것이 저에게 부여된 소임인 것 같다. 암과의 싸움은 늘 버겁고 환자를 잃는 날들의 연속이지만 패배가 예정돼 있다고 해서 의미 없는 싸움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언젠가는 죽는다는 이유로 우리의 현재 삶이 의미 없진 않듯이.”신광영 논설위원 neo@donga.com}

    • 2025-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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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신광영]‘정치군인 탓에 당나라 군대 된다’던 정치군인 김용현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은 예비역 장군이던 4년 전 ‘어쩌다 당나라 군대라 불리게 됐나’란 칼럼을 언론에 기고한 적이 있다. 그 글에서 ‘정치권의 인사 개입과 자기편 줄 세우기로 인해 무능한 군대로 전락했다’며 군의 정치화를 비판했다. 칼럼을 본 전현직 장성들은 많이들 황당해했다고 한다. 김 전 장관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앞장서 코드에 맞추고, 후배들을 줄 세우는 식으로 승승장구했던 정치군인의 전형이란 평가가 적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칼럼 역시 그가 윤석열 대선 캠프에서 활동하며 쓴 것이었다.4년 전 칼럼 기고해 군의 정치화 비판 육사 38기 선두 주자였던 김 전 장관은 박근혜 문재인 정부에서 연거푸 대장 진급에 실패한 뒤 인사 불만을 자주 표출했다고 한다. 그러다 전역 5년 만에 윤석열 정부 첫 대통령경호처장으로 발탁되자 그간의 좌절에 복수라도 하듯 군의 정치화를 시도했다. 지난해 9월 국방부 장관이 되기 전부터 윤 대통령을 등에 업고 군 인사에 개입해 ‘국방상관’이란 별칭이 붙었고 군 내에 ‘충암파’ ‘용현파’란 말도 생겼다. 이런 김 전 장관의 면모를 잘 보여준 인물이 전 국군정보사령관 노상원 씨다. 노 씨는 6년 전 불명예 전역한 민간인이지만 김 전 장관의 비선 측근으로 활동하며 현직 장교들을 쥐락펴락했다. “네가 여단장 되도록 도와주겠다” “장관님이 너를 귀하게 여기신다”는 노 씨의 회유에 장교들이 넘어가 이번 계엄에 가담한 것은 노 씨 뒤에 인사권자인 김 전 장관이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정치군인 문제를 공개 지적하면서 실제론 정치군인을 키워온 김 전 장관의 앞뒤가 다른 행태는 지난해 9월 장관 인사청문회에서도 드러났다. 그는 계엄 시도를 우려하는 야당 의원들 질의에 “지금 상황에서 계엄을 한다고 하면 어떤 국민이 용납하겠나. 우리 군이 따르겠는가. 저라도 안 따를 것 같다”고 했다. 당시는 김 전 장관이 윤 대통령과 이미 여러 차례 계엄 논의를 해왔던 때인데 태연하게 시치미를 뗐다. 어쩌면 “군이 따르겠느냐”는 그 발언은 김 전 장관의 진심이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자기 소신에 반하더라도 인사권자가 원하는 것이면 출세를 위해 복종하는 게 정치군인의 습성이다. 당당하지 않게 승진한 사람은 인사권자에게 약점이 잡혀 지시를 거스르기 어렵고, 부당한 명령을 받아도 안 되는 이유를 버리고 어떻게든 결과를 내는 데 몰두하게 된다. 이런 충성은 국가를 향한 것도 상관을 향한 것도 아닌, 자기 안위를 위한 충성이다. 이런 사람들이 진급을 거듭해 군 상층부를 장악하면 각자 자리에서 소임을 다해야 할 군인들을 일개 수족으로 전락시킨다. 이번 계엄 사태도 이 같은 정치군인들의 생태계 속에서 벌어졌다. 김 전 장관이 지난해 6월 윤 대통령과 폭탄주 회동을 하며 “대통령님께 충성을 다하는 장군들”이라고 인사시켰던 이들이 계엄 작전을 실행한 핵심 사령관들이다.군인들 줄 세운 金, 그 폐해 스스로 입증 그중 한 명인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관은 최근 윤 대통령 탄핵 심판에 증인으로 나와 정치군인의 수준을 보여줬다. 윤 대통령에게 불리한 내용에 대해선 자신의 기존 진술을 뒤집거나 입을 닫았고, 계엄 직후 야당 의원 유튜브에 나와 불법적 지시에 응한 것에 사과까지 해놓고 이제 와 적법했던 계엄이라고 말을 바꿨다. 윤 대통령과 김 전 장관 지시에 맹목적으로 따르면서 그들과 한배를 탄 이상 그나마 그게 살길이라고 생각했을 수 있다. 이미 군에 대한 신뢰를 잃은 국민들은 이런 장군을 보면서 또 한번 실망할 것이다. 김 전 장관은 자신이 4년 전 칼럼에 썼던 대로 군의 정치화가 군을 어떻게 망가뜨리는지를 입증해 보이고 있다.신광영 논설위원 neo@donga.com}

    • 2025-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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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신광영]尹 “대통령실이 국정 중심”… 그럼 대통령실 중심은?

    서울구치소에서 지내는 윤석열 대통령이 최근 첫 일반인 접견을 하며 발신한 메시지는 “대통령실이 국정의 중심”이라는 것이었다. 면회를 온 정진석 비서실장 등 대통령실 참모들에게 “의기소침하지 말라”며 그런 말을 했다고 한다. 윤 대통령은 국회 탄핵소추안이 통과된 지난해 12월 14일부터 직무 정지 상태다. 자연히 대통령 비서 조직도 기능이 달라진다. 권한이 중단된 대통령 대신에 국정의 새 중심인 대통령 권한대행을 지원하는 조직으로 바뀐다. 대통령실은 국정 최고 책임자를 보좌하는 국가기관이기 때문이다.▷국정의 중심이 대통령실이라는 윤 대통령 발언이 단순 격려인지, 어떤 복선이 깔린 건지는 분명치 않다. 다만 윤 대통령이 공수처에 체포되지 않기 위해 경호처를 방패로 동원했듯, 대통령실도 대통령 자신을 위해 복무하는 조직으로 보고 있는 건 아닌지 의문이 든다. 탄핵소추 이후 변화된 국정 질서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심리가 은연중 드러난 것 아니냐는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대통령실 참모들에게 최상목 권한대행을 잘 보좌하라는 당부를 하는 게 상식에 더 부합한다.▷일각에선 벌써 한 달을 넘긴 최 대행 체제를 견제하려는 의도가 담긴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용산 참모들은 최 대행이 헌법재판소 재판관 2명을 임명하자 항의성으로 일괄 사표를 내는 등 크고 작은 신경전을 벌여 왔다. 이주호 교육부 장관이 의대 증원 정책에 대해 사과하고 원점에서 재검토하겠다고 한 것에 대해서도 용산에선 불만이 많다고 한다. 이런 기류가 윤 대통령에게도 전달됐고, 윤 대통령이 이번에 작심하고 “대통령실이 국정의 중심” 운운했을 거란 얘기다.▷윤 대통령은 그동안 구속된 뒤에도 변호인 등을 통해 지지층을 향한 메시지를 내왔다. 설 연휴를 앞두고 “국민 여러분 생각이 많이 난다”고 했고 며칠 뒤엔 “이번 계엄이 왜 내란이냐, 어떻게 내란이 될 수 있느냐”고 했다. 이젠 하루 1회 30분씩 일반인 접견까지 허용됐으니 방문 인사들의 입을 빌린 옥중 정치를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17년 구속됐을 당시 유영하 변호사만 창구로 두고 말을 아끼며 현실 정치와 거리를 뒀는데, 이와는 많이 다를 것으로 전망된다.▷요즘 여권에선 윤 대통령 접견을 위해 줄지어 번호표를 뽑고 있다고 한다. 국민의힘 출신 시도지사들과 의원들은 물론 권성동 원내대표,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도 면회를 갈 예정이다. 권 대표는 인간적 도리에 따른 개인적 차원의 방문이라고 하지만 여당 지도부까지 윤 대통령의 접견 정치에 이용될 가능성이 크다. 냉철하게 선을 그어야 할 사람들이 그러질 못하니 윤 대통령의 현실 인식이 다수 국민의 상식과 갈수록 멀어지는 것 같다.신광영 논설위원 neo@donga.com}

    • 2025-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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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신광영]트럼프 “내가 혼돈 그 자체라고? 한국을 보라”

    시도 때도 없이 돌출 발언을 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한국의 비상계엄 사태에 대해선 한 달 넘게 침묵해 왔다. 윤석열 대통령이 탄핵될 가능성이 있고 누가 다음 대통령이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먼저 의중을 드러내기보단 한국과 협상하기 유리한 타이밍을 기다리는 것이란 해석이 많다. 4년 전 1·6 의사당 폭동을 선동한 혐의를 받아온 트럼프로선 섣불리 메시지를 냈다간 민주주의를 무시하는 지도자란 이미지가 더 강해질 수 있어 거리를 두고 있다는 시각도 있다. ▷그랬던 트럼프가 은연중 자신의 생각을 내비친 사적 대화가 공개됐다. 마러라고 자택에서 장녀 이방카와 전화 통화를 하던 중 농담하듯 한국의 계엄 사태에 대해 언급한 것이다. “다들 나더러 혼돈 그 자체(chaotic)라고 하지만 한국을 봐. 탄핵이 중단된다면 윤 대통령을 만나게 될 수도 있지.” 4년 전 대선 패배에 불복해 결과를 뒤집으려 했다는 혐의를 받는 트럼프는 민주당으로부터 ‘민주주의의 적’이란 비판을 받아 왔다. 그런 그가 “내가 아무리 심해도 한국만큼은 아니지 않으냐”는 취지로 말한 건 한국 정치에 대한 조롱으로 들린다. ▷트럼프는 지난 대선 때 한국을 현금인출기란 뜻의 ‘머니 머신’이라고 불렀다. 이번 계엄 사태를 거치며 ‘나보다 더 심한 혼돈의 나라’라는 표현이 추가됐다. 한국에 대해 내정이 불안하고 민주주의가 취약한 나라로 인식하는 계기가 됐을 것이다. 취임하면 두툼한 청구서를 들이밀 참이었던 그에게 한국은 돈이 많은데 약점도 많아 다루기 쉬운 상대로 보일 가능성이 높다. ▷윤 대통령 탄핵에 반대하는 시위대 사이에선 트럼프가 취임하면 윤 대통령을 도와줄 것이란 기대가 많다. 이들은 태극기와 성조기, ‘Stop The Steal(스톱 더 스틸·도둑질을 멈춰라)’이란 피켓을 들고 집회를 한다. ‘스톱 더 스틸’은 1·6 폭동 때 트럼프의 극렬 지지자들이 의사당에 난입할 때 들었던 깃발 문구다. 양쪽 다 부정선거를 주장하며 헌법 질서에 정면으로 도전한 공통점이 있는 만큼 트럼프가 윤 대통령에게 유대감을 느낄 것으로 보는 것 같다. 하지만 철저히 이익을 보고 움직이는 트럼프가 탄핵 위기에 놓인 윤 대통령에게 손 내미는 게 도움이 된다고 판단할지 의문이다. ▷19일 윤 대통령의 구속에 변호인단은 “법치가 죽고 법 양심이 사라졌다”면서 시일야방성대곡이란 표현을 썼다. 황성신문 주필 장지연이 1905년 굴욕적인 을사늑약을 강요한 일제를 규탄하며 ‘이날 목 놓아 크게 운다’는 뜻으로 쓴 말인데 이를 윤 대통령을 구속한 사법부를 규탄하는 데 동원한 것이다. 정작 목 놓아 울고 싶은 이들은 따로 있다. 트럼프 2기가 맹렬한 기세로 출범하는데 리더십이 실종된 정부를 바라만 봐야 하는 국민들일 것이다. 신광영 논설위원 neo@donga.com}

    • 2025-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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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트럼프 유죄 “법이 보호하는 건 사람 아닌 직책”[횡설수설/신광영]

    4건의 형사 기소를 안고 대선을 치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를 구한 건 지난해 7월 미 연방대법원 판결이다. 트럼프의 2020년 대선 패배 뒤집기 시도가 대통령 재임 중 이뤄진 광범위한 공적 행위로 볼 수 있다며 면책 특권을 인정해줬다. 그 덕에 트럼프의 다른 재판들이 줄줄이 중단됐다. 기밀 문건 유출이나 조지아주 대선 개입도 ‘공적 행위’로 면책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하지만 끝까지 트럼프의 골치를 썩인 사건이 있다. 성추문 입막음 대가로 성인영화 여배우에게 13만 달러(약 1억9000만 원)를 주면서 회계를 조작해 공금으로 처리한 사건이다. ▷이 사건은 연방대법원 판결 두 달 전에 이미 배심원 만장일치로 유죄 평결이 났다. 미국은 배심원이 유무죄를 가리고 판사가 형량을 정한다. 배심원 평결을 없던 일로 할 수는 없다. 트럼프의 대통령 취임을 열흘 앞둔 10일 뉴욕 맨해튼 형사법원의 1심 선고가 나왔다. ‘유죄지만 무조건 석방’. 트럼프가 범죄자임을 분명히 하면서도 징역형을 선고할 경우 대통령직 수행이 불가능한 사정을 고려한 판결이었다. ▷1심 판사는 트럼프를 향해 뼈 있는 말을 남겼다. 대통령 당선자라는 신분이 범죄의 심각성을 줄이거나 정당화하지 않으며, 법적 보호는 직책에 주어지는 것이지 직책을 맡은 사람에게 주어지는 게 아니라고 했다. 법원이 석방시킨 건 미국 대통령이지 피고인 트럼프가 아니란 얘기다. 이 판결로 트럼프는 ‘범죄자 대통령’이란 꼬리표를 단 채 취임하게 됐다. ▷트럼프에게 면책 특권을 부여할지 여부는 미 사법부의 난제였다. 미국은 대통령에 대해선 관례상 기소하지 않는데, 트럼프처럼 대통령이 다수의 범죄 혐의를 받은 전례가 없기 때문이다. 논란 끝에 보수 우위의 연방대법원은 대통령직의 안정성이 중요하다며 면책 특권을 폭넓게 인정했다. 대통령이 재임 중 행위로 처벌된다면 의사결정이 위축될 수 있고, 정치적 분열이 커진다는 이유에서였다. 트럼프는 이 판결을 내세워 성추문 입막음 사건의 유죄 평결도 무효라고 주장했지만 맨해튼 법원은 대통령의 직무 행위가 아닌 개인 범죄까지 용인하진 않는다고 명확히 선을 그었다. ▷어떻게든 처벌을 피해 보려 했던 트럼프지만 사법 절차를 아예 무시하거나 거부하지는 않았다. 그가 법원에 출두하는 날이면 주변이 한바탕 들썩였다. 방탄 리무진을 타고 경호원들의 보호를 받으며 등장해 법정에서 무죄 주장을 폈으나 판사의 질문에는 예의를 갖춰 답변했다. 구치소로 옮겨졌을 땐 다른 수감자들과 똑같이 키와 몸무게 재고, 머그샷(범인 식별용 사진)을 찍은 뒤 보석금 내고 풀려났다. ‘통제 불능’에 ‘예측 불허’라는 트럼프도 검찰과 법원의 소환 요구에 불응한 적은 없다. 신광영 논설위원 neo@donga.com}

    • 2025-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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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신광영]그린란드, 파나마운하, 멕시코만… 트럼프의 다음 타깃은

    북극해에 있는 그린란드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오랫동안 눈독을 들여온 곳이다. 섬의 80%가 얼음으로 덮여 있는데 기후변화로 녹아내리면 북극항로의 거점이 될 요충지다. 미국이 이곳을 갖게 되면 중국과 러시아 중심인 북극 패권 경쟁을 주도할 수 있다. 전기차 제조에 필요한 희토류 등 광물도 많이 매장돼 있어 중국이 장악한 희토류 공급망을 뒤흔들 수도 있다. 섬의 주인은 18세기부터 그린란드를 지배해 온 덴마크다. 섬을 팔라는 트럼프의 제안을 덴마크는 단칼에 거절했지만 물러설 트럼프가 아니다. 최근 기자회견에서 그린란드 문제와 관련해 군사력 사용도 배제하지 않겠다는 말까지 했다. ▷트럼프가 무력을 써서라도 손에 넣겠다고 공언한 곳엔 파나마 운하도 있다. 미국은 48년 전 파나마에 이 운하를 넘겼는데 이제 와 회수하겠다는 것이다. 중남미의 핵심 무역로인 파나마 운하는 원래 미국이 건설해 운영했지만 현지인들과 유혈 충돌이 계속되자 카터 대통령이 “강압보다 공정성이 우선”이라며 통제권을 넘겨줬다. 파나마는 운하를 반납하란 트럼프의 요구에 “1m²도 못 내준다”고 반발한다. 이에 트럼프는 “운하가 나쁜 자들에 넘어가는 걸 용납하지 않겠다”고 위협하고 있다. 나쁜 자는 파나마 운하 덕에 남미 최대 교역국이 된 중국을 지칭한 것이다. ▷트럼프는 취임을 앞두고 주변국들을 부쩍 자극하고 있다. 캐나다를 ‘미국의 51번째 주’라고 부르고, 미 남부와 멕시코 쿠바로 둘러싸인 바다인 멕시코만을 미국만으로 바꾸겠다고도 했다. 캐나다와 멕시코가 대미 무역 흑자를 누리면서도 불법 이민자를 제대로 단속하지 않는다며 관세를 확 올리겠다는 겁박과 함께 나온 말들이다. ▷지난해 대선 때 트럼프는 ‘세계의 경찰’을 그만두고 자국에 집중하는 고립주의를 표방했다. 그런데 지금은 주변국들 영토를 탐내며 군대 사용도 불사하겠다는 태도다. 수지타산이 안 맞는 먼 지역 분쟁에선 발을 빼지만 돈 되는 안마당에선 공격적으로 확장한다는 것이다. 국제 질서엔 관심 없고 이익을 위해선 과거의 제국주의도 끌어다 쓰는 트럼프식 팽창주의로 볼 수 있다. ▷목표를 높게 잡은 뒤 그 목표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트럼프 스타일을 고려하면 실제로 땅을 빼앗진 않더라도 그에 준하는 양보를 얻어낼 것이다. 국제 불량배 같은 행태지만 주변국들은 마땅히 대응을 못하고 있다. 캐나다는 국민 80%가 미국 접경지에 살 정도로 미 경제에 깊이 얽혀 있고, 멕시코 역시 ‘신은 멀고 미국은 가깝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미국의 그늘 아래 있다. 상대의 약점을 파고드는 데 능한 트럼프는 미국에 대한 경제와 안보 의존도가 높은 한국도 좋은 먹잇감으로 볼 가능성이 크다. 태평양 너머 저 멀리서 벌어지는 남 일이 아닐 수도 있다.신광영 논설위원 neo@donga.com}

    • 2025-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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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신광영]낙하산 사장에게 맡겨진 공항 안전

    하늘의 비행기는 위험할 수 있어도 땅 위의 공항이 위험할 거란 생각은 못 해본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런 인식에 뼈아픈 경종을 울린 게 이번 전남 무안 제주항공 참사다. 항공기 사고가 대부분 이착륙 때 발생하는 걸 생각하면 공항이야말로 안전이 최우선인 게 자명한데도 열흘 전 동체 착륙을 한 여객기가 활주로에서 미끄러지다 철벽같은 콘크리트 둔덕과 충돌하는 장면을 보기 전까진 공항 안전의 중요성을 실감하지 못했다. 공항은 단순한 교통 인프라가 아니다. 공중의 생명들이 무사히 착지하도록 완충해주는 에어매트나 다름없다.공항공사 사장 13명 중 경력자 단 2명인천공항을 제외한 국내 공항들의 안전은 국토교통부가 지휘 감독하고 한국공항공사가 실무를 맡는다. 공항공사는 무안공항을 포함해 김포, 제주 등 14개 공항을 운영하는 공기업이다. 조류 충돌을 예방하고, 활주로 이탈 사고에 대비해 공항 내 시설물을 부서지기 쉽게 유지하는 등 현장 관리를 공항공사가 하고 있다. 이번 참사의 주요인으로 지적되는 콘크리트 둔덕은 4년 전 바로잡을 기회가 있었다. 공항공사가 둔덕에 설치된 로컬라이저 개량공사를 발주하면서 부러지기 쉽게 하라고 주문했음에도 오히려 두께 30cm 콘크리트 상판을 더 얹는 공사가 이뤄졌다. 경위는 따져봐야겠지만 공항공사가 관리 책임을 면하긴 어렵다.이런 업무를 관장하는 공항공사의 수장이라면 항공기 운항과 공항 안전에 대한 전문성을 갖춰야 한다. 기관장의 안전 의식과 위험에 대한 민감도는 조직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공항공사 사장 모집공고에 ‘공항 분야 지식과 경험’이 자격 요건으로 명시된 것도 그 때문이다. 하지만 역대 사장 13명 중 공항이나 항공 운항 경력자는 2명뿐이다. 나머지 11명은 경찰, 군, 국가정보원, 지방자치단체장 출신 낙하산들이다. 3년 임기 중 업무 파악에만 1, 2년이 걸린다고 한다.사장들 면면을 보면 이 자리가 낙선자 보은 인사나 정계 진출의 발판으로 활용된 경우가 많다. 서울경찰청장을 지낸 김석기 의원은 총선 낙선 이듬해인 2013년 사장에 임명됐는데 다음 총선 출마를 위해 임기 도중 사퇴했다. 손창완 전 사장도 경찰대학장에서 물러난 뒤 총선에서 낙선하자 사장에 임명됐다. 염홍철 전 대전시장은 공항공사 사장으로 왔다가 임기를 반도 안 채우고 나간 뒤 대전시장에 재선됐다. 공항공사 사장직이 정치인들의 경력 공백을 메워주는 정거장이었던 셈이다.현재 공항공사 사장은 8개월째 공석이다. 문재인 정부 말기 임명된 국정원 차장 출신 윤형중 전 사장은 윤석열 정부 출범 후 퇴진 압박성 감사를 받아오다 지난해 4월 돌연 사퇴했다. 그러자 지난 총선에서 낙선한 김오진 전 대통령실 관리비서관이 사실상 내정됐는데 그는 여러 불법 의혹이 제기된 대통령실 용산 이전 실무를 총괄했던 사람이다. 야당이 반발했고 임명은 무산됐다. 전·현 정권의 낙하산 경쟁에 따른 리더십의 부재 속에 이번 무안공항 참사가 벌어졌다. 이번 사건이 일어나기 47일 전 무안공항에 착륙하려던 항공기가 조류와 충돌해 인천공항으로 긴급 회항하는 사고가 있었는데 그때라도 조류 퇴치 활동을 강화하고 활주로 시설을 점검했다면 비극을 피할 수도 있었다.정치권 낙하산 경쟁에 안전 리더십 실종공항공사가 관리하는 14개 공항 중에는 정치 논리로 지어진 적자 공항들이 적지 않다. 안전에 투자할 예산과 인력이 부족해 전문가가 수장으로 와도 모자랄 판에 낙하산 사장들로 어떻게 공항 안전을 지킬 수 있을 것인가. 그런데도 정치권은 야당일 땐 전문성 운운하며 낙하산 인사를 비판하다가도 정권을 잡고 나면 똑같이 낙하산을 내려보내는 행태를 반복해왔다. 공항은 그렇게 만만한 곳이 아니다. 단 한 번의 사고로도 너무 큰 희생을 치러야 한다. 낙하산들의 공항 착륙을 더는 용납해선 안 된다.신광영 논설위원 neo@donga.com}

    • 2025-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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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명태균 수사’가 진짜 불법계엄 방아쇠를 당겼을까[횡설수설/신광영]

    윤석열 대통령이 계엄 망상을 본격적으로 드러낸 건 지난해 3, 4월경부터다. 검찰 수사 결과에 따르면 당시 신원식 국방부 장관과 김용현 경호처장 등에게 시국 걱정을 하며 “비상대권 외엔 방법이 없다”는 말을 자주 했다고 한다. 그 후 5, 6, 8월에도 비상조치 운운하는 자리가 이어졌고, 9월 초 김 처장을 국방부 장관에 앉힌 것도 계엄을 염두에 둔 인사였다. 이때만 해도 계엄은 아직 구상 단계였던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9월은 안 그래도 휘청이던 윤 대통령에게 치명적 한 방이 더해진 달이다. 윤 대통령 부부가 명태균 씨를 통해 공천에 개입한 의혹이 처음 보도된 게 이때다. 혐의가 짙어질수록 윤 대통령의 발걸음은 빨라졌다. 명 씨 자택에 대한 압수수색이 이뤄진 다음 날 윤 대통령은 관저에서 비상대권을 모의했고, 윤 대통령의 김영선 공천 관련 통화 녹음이 공개된 지 열흘 만인 11월 9일에는 계엄 선포 시 동원 가능한 군 규모를 논의했다. ▷“내가 구속되면 정권이 한 달 안에 무너진다.” 명 씨는 지난해 11월 15일 검찰에 구속되면서 이런 으름장을 놨다. 윤 대통령 부부와 벌인 불법 행위를 낱낱이 폭로할 수 있다는 선언으로 해석됐다. 검찰의 김 전 장관 공소장을 보면 적어도 윤 대통령은 그렇게 받아들인 것 같다. 명 씨의 구속 9일 만에 구체적인 계엄 준비 지시가 내려졌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은 11월 24일 김 전 장관에게 명태균 의혹 등을 언급하며 “이게 나라냐. 비상 대책이 필요하다”고 했고 김 전 장관은 그날부터 비상계엄 선포문, 포고령 초안 등을 준비했다. 명태균 의혹이 계엄 선포의 방아쇠가 됐다고 볼 만한 대목이다.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지난해 12월 3일 명 씨가 기소되고 불과 몇 시간 뒤 이뤄졌다. 전날 명 씨는 윤 대통령 부부와 2년 넘게 연락하며 써온 황금폰을 공개할 수 있다는 의사를 밝혔다. 판도라 상자가 열리는 게 시간 문제가 된 이상 윤 대통령으로선 특단의 대책을 더는 미루기 어렵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다. 실제로 명 씨가 검찰에 제출한 황금폰 3대에는 저장된 메시지만 15만 개가 넘고, 윤 대통령이 2022년 국회의원 재·보궐선거 공천관리위원장이던 윤상현 의원에게 김영선 공천을 독촉하는 통화 녹음 등이 담겨 있었다. ▷한 달 안에 정권이 무너진다던 명 씨의 말은 결과적으로 현실이 됐다. 그의 구속 딱 한 달 만에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통과됐다. 명 씨는 계엄 사태로 궁지에 몰린 윤 대통령에게 “단단한 콘크리트는 질 좋은 시멘트(아첨꾼)만으론 안 되고 모난 자갈(쓴소리꾼)을 잘 섞어야 만들어진다. 그게 국정 운영”이라고 충고했다고 한다. 정치 브로커마저 아는 이 자명한 이치를 끝까지 외면해 온 윤 대통령은 체포영장이 발부된 지금도 아첨꾼들을 방패 삼아 관저에 숨어 있다.신광영 논설위원 neo@donga.com}

    • 2025-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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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신광영]100세로 눈감은 카터, 퇴임 후 더 빛났던 40년

    ‘잘 가요, 내 사랑. 내일 만나요.’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말 77년을 함께한 부인 로절린 여사를 먼저 보내며 이런 작별 인사를 했다. 당시 99세의 카터는 오랜 암 투병 끝에 1년 가까이 호스피스 치료를 받던 중이었다. ‘내일 만나자’는 말처럼 카터 역시 얼마 남지 않았다는 얘기가 많았다. 하지만 그는 1년을 더 살았다. 100번째 생일까지 보내고 29일 부인의 뒤를 따랐다. 미 역사상 최장수 대통령이다. ▷카터가 대통령에 오른 1976년은 워터게이트 사건과 베트남전 장기화로 정부 불신이 극에 달하던 때였다. 조지아주 주지사(민주당)로 중앙 정치에선 무명에 가까웠던 그는 ‘절대 거짓말하지 않겠다’는 공약으로 국민의 지지를 받았다. 하지만 워싱턴 정치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중동 불안을 관리하지 못해 오일 쇼크가 생기며 심각한 인플레이션으로 번졌다. 취임 전 6%대이던 물가 상승률이 13%까지 올랐다. 이란의 이슬람 혁명세력이 미 대사관을 점령해 미국인 52명을 400일 넘게 억류하는 초유의 사태까지 겹쳤다. 결국 로널드 레이건에게 밀려 재선에 실패했다. ▷무능한 대통령이란 평가를 받았던 카터지만 퇴임 후엔 가장 위대한 전직 대통령으로 불렸다. 프리랜서 외교관으로 쿠바, 보스니아 등 세계를 누비며 평화 중재자로 활약했다. 북핵 위기로 한반도에 전쟁 위험이 고조되던 1994년 북한을 방문해 북핵 동결을 이끌어내는 등 분쟁 해결에 힘쓴 공로로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서민에게 집을 지어주는 ‘해비탯 운동’에도 몸소 참여해 90대가 돼서도 공구를 들고 현장을 오갔다. 정치엔 실패했을지 몰라도 지도자로선 성공한 삶이었다. ▷미국인들은 카터에 대해 아무리 불리한 상황도 정직하게 해결하려 한 대통령으로 기억한다. 지지율이 저조하던 집권 3년 차, 대통령 별장인 캠프 데이비드에 각 분야 전문가 150명을 초대해 10일 동안 조언을 듣는 ‘국내 정상회담’을 한 것도 그런 예다. 끝내 정국을 돌파하진 못했지만 최대한 귀를 열고 답을 찾으려 했던 노력만큼은 인정하는 것이다. 그의 퇴임 후 활동에 국민들이 애정 어린 시선을 보내는 것도 그 때문이다. 존경받는 전직 대통령을 거의 본 적이 없는 우리로선 부러운 일이다. ▷현직은 짧고 여생은 길다. 카터의 대통령직은 4년 만에 끝났지만 이후 40년간 그는 보통 사람들의 롤 모델이었다. 록 음악을 사랑한 그는 밥 딜런 같은 록 스타 ‘절친’들과 자주 만났고, 종종 야구장을 찾아 고향 팀인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의 경기를 즐겼다고 한다. ‘내가 이룬 모든 것에서 동등한 파트너였다’는 부인과는 70년 넘게 해로했다. 재선한 대통령들 중에도 존경받지 못하는 노후를 보내는 경우가 많은데 카터의 인생 2막은 삶의 진정한 승자가 누구인지를 생각하게 한다. 신광영 논설위원 neo@donga.com}

    • 2024-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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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두환의 군 투입 지시 거부… 장군은 대통령에도 ‘노’ 할 수 있어야”[월요 초대석]

    민병돈 전 육군사관학교장(89·예비역 중장)은 1987년 6·10 민주항쟁 때 전두환 전 대통령의 군 투입 지시를 거부한 장군이다. 당시 최정예 특수부대를 지휘하는 특전사령관이었던 민 전 교장은 계엄령 예고와 함께 군 병력을 준비시키라는 대통령에게 명령 취소를 요청했다. 무력 진압에 핵심적 역할을 해야 할 특전사령관의 반대로 군 동원은 무산됐고 얼마 뒤 6·29 민주화 선언이 나왔다. 당시 독재 반대 시위가 유혈사태로 번지지 않았던 데는 민 전 교장의 항명도 한몫을 했다.1989년 퇴역한 민 전 교장은 서울 양천구 목동의 한 주택에서 52년째 살고 있다. 최근 그의 집을 방문해 신발을 벗고 발을 딛는데 바닥이 얼음장 같았다. 낡은 집이라 난방비 부담이 커 영하 10도 아래로 내려가지 않으면 보일러를 틀지 않는다고 했다. 카디건 차림의 그는 코트를 벗으려는 기자에게 “괜찮다. 입고 있어도 된다”고 말했다. 기자는 코트 단추를 목까지 잠그고 서재 바닥에 그와 마주 앉았다.―윤석열 대통령의 계엄 선포를 어떻게 보나.“터무니없는 과잉 조치다. 계엄을 하려면 요건이 있다. 전시에 준할 정도로 나라가 위태로워야 하는데 그건 아니었잖나. 최고 권력자가 마음대로 계엄을 선포하는 건 독재국가에서나 하는 짓이다.”―국회의원들을 끌어내라는 지시도 있었다.“정치적인 범죄다. 국회가 계엄에 반대하면 취소해야 한다고 헌법에 나와 있는데 그걸 피하려고 했던 거 아닌가. 검찰총장까지 했으면 그 정도는 알 텐데 무식한 사람이나 할 짓을 했다.”―대통령의 지시를 사령관들이 대체로 따랐다.“장군은 맹종하면 안 된다. 눈 밖에 안 나려고 계엄 관련 지시를 군소리 없이 따랐다면 그건 장군이라고 할 수 없는 사람들이다.”―군 통수권자 지시여서 어쩔 수 없었다고 한다.“장군은 윗사람 지시가 아니라 헌법에 따라 움직여야 한다. 헌법 정신을 늘 체화하고 있어야 한다. 이번 계엄 지시는 당연히 따르지 말았어야 할 명령이다.”―그러다 항명죄로 처벌될 수 있지 않나.“그게 두렵다면 장군이 되지 말아야 한다. 대통령이나 국방부 장관 명령을 받는 위치에 있는 장군이라면 ‘노’라고 할 수 있어야 한다. 전투원은 명령에 복종해야 하지만 전략을 구사하는 장군은 다르다. 대통령은 정치적 목적으로 군을 이용하려 들 수 있다. 장군은 거기에 놀아나지 않고 군의 중심을 잡아야 한다.”―위법한 지시인지 판단하기 어려울 때도 있다.“그럴 때 정확히 판단하라고 참모가 있는 것이다. 법무장교들 있지 않나. 지휘관 혼자 모든 걸 판단할 수 없으니 장군으로서 책임감 있게 결심하라고 참모 조직을 둔 것이다.”―이제 와서 책임을 위로 넘기려는 장군들이 있다.“(계엄 관련 지시가 부당하다는 걸) 알고 한 일 아닌가. 군소리 없이 대가를 치러야 한다. 그걸 피하려고 발버둥 치면 이중 삼중으로 자격 없는 사람들이다.”―현장 투입 장병들은 지시에 소극적으로 임했다.“원래 전투원은 명령에 따르는 게 원칙이다. 지시가 맞는지 갑론을박하면 작전이 실패해 더 큰 희생을 치를 수 있다. 다만 더 중요한 건 장군의 책임이 그만큼 크다는 점이다. 전투원은 명령을 따라야 하는 사람들인데 장군이 잘못된 상부 지시를 그대로 하달하는 건 부하들을 사지로 내모는 짓이다.”대통령의 장군 승진 청탁도 거절민 전 교장은 1987년 6월 전 전 대통령으로부터 군 투입 지시를 받았을 때 특전사 정보장교들을 시위 현장에 보냈다. 그들은 “군이 진압한다고 진압될 것도 아니고 시위대의 주장이 사실 다 옳다”고 보고했다. 민 전 교장은 “1980년 5월에 이어, 또 유혈사태가 나면 엄청난 국가적 불행이 될 것 같아 군 동원은 어떻게든 막아야 했다”고 말했다.“전 전 대통령은 육사 선배이면서도 그가 1공수여단장 때 내가 그 밑에서 대대장을 한 적도 있어 오랜 인연이 있었다. 하지만 군 투입은 공적인 문제다. 더구나 당시 나는 무력 진압의 성패를 좌우하는 특전사령관이었다. 만약 대통령이 기어이 군을 투입시킨다면 그걸 저지할 계획도 짜놨다. 군이 궁극적으로 충성해야 할 대상은 대통령이 아닌 국민이지 않나.”그해 민 전 교장은 전 전 대통령의 승진 청탁을 거부하기도 했다. 준장(원스타) 진급심사위원장을 맡고 있던 민 전 교장에게 ‘각하가 박○○ 대령을 진급시키고 싶어 한다’는 쪽지가 전해졌다. 그때만 해도 국방부 장관, 육군참모총장 등 군 수뇌부가 점찍은 대령들이 별을 다는 일이 흔했다. 민 전 교장은 그런 사람들은 물론이고 대통령이 콕 집은 박 대령까지 탈락시켰다.“박 대령은 같이 근무를 해봤는데 능력이 출중했다. 하지만 파렴치한 짓을 했다. 지프차를 몰고 가다 사고를 내고는 뺑소니를 쳤다. 더 큰 문제는 그런 잘못을 했으면 합당한 벌을 받아야 맞는데 아무 일 없이 넘어간 점이다. 잘못을 무마시킬 능력이 있었던 거다. 그 능력으로 나쁜 짓도 능히 할 사람이란 얘기다. 이런 사람이 장군이 돼서 더 큰 영향력을 갖게 되면 무슨 짓을 할지 어떻게 아나.”이번 비상계엄 가담자 중에는 불명예 전역한 예비역 장성임에도 현역 장교들을 지휘한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이 있다.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최측근인 그는 진급을 미끼로 이들을 계엄에 끌어들였다. 별을 달게 해주겠다는 제안에 여러 장교들이 넘어갔다.“승진 청탁은 그 자체도 나쁘지만 장군이 돼선 안 될 사람을 장군으로 만들어 주는 게 더 큰 문제다. 백(back)을 써서 별을 달면 신세 진 사람이 시키는 일에 무조건 따를 수밖에 없다. ‘예스맨 장군’이 그렇게 나온다.” 육사 졸업식에 온 대통령 면전에서 비판민 전 교장이 군복을 벗은 건 육사 교장이던 1989년 육사 졸업식 사건이 계기가 됐다. 당시 노태우 전 대통령이 참석했는데 졸업식사를 하러 단상에 오른 민 전 교장은 대통령에 대한 경례도 생략한 채 노 전 대통령이 추진하던 대북 유화책을 강하게 비판했다. 전임 교장들은 졸업식사에서 대통령의 업적을 찬양하곤 했는데 그런 건 없고 훈련 중 부하가 잘못 던진 수류탄에 몸을 던진 고 강재구 소령을 기리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다.―대통령 면전에서 왜 그런 얘기를 했나.“남북한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자는 건 군인들도 동의하지만 방법과 시기가 적절하지 않으면 혼란이 온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싶었다. 당시 전방에서 고생하던 장병들은 우리의 적이 북한이 맞느냐고 혼란스러워했다.”―대통령은 항명으로 느꼈을 수 있겠다.“육사 졸업식에서 대통령은 손님일 뿐이다. 사관생도와 교관들이 주인공인 행사다. 사병을 지휘할 소위가 탄생하는 자리인데 대통령 체면 세워 주는 의식으로 전락하는 것 자체가 비교육적이다. 군인은 교본을 보고 성장하는 게 아니다. 지휘관이나 선배의 모범을 보고 인격적으로 닮아가면서 성장한다. 나중에 장군이 될 생도도 있을 텐데 군인은 대통령 앞에서도 당당해야 한다는 걸 배워 갔으면 했다.”민 전 교장이 20사단장을 할 때 육군참모총장 등 고위 장성들이 훈련 참관을 온 적이 있다. 그는 참모장이 장성들 점심으로 바비큐와 민간업소 도시락을 대접하겠다고 하자 크게 혼내면서 장병들이 먹는 전투식량을 똑같이 주라고 했다. 장성들은 전투식량 먹는 법을 몰라 당황해했다고 한다. 당시엔 선거 때마다 장병들이 여당에 투표하도록 하라는 지침이 내려오곤 했는데 사단장이던 그는 예하 부대에 ‘선거 부정에 협조하지 말라’고 지시해 좌천을 당하기도 했다. 이런 품성 때문인지 군 시절 그의 별명은 ‘민따로’였다.“전쟁은 가장 불합리한 상황의 총집합이다. 지휘관은 평시에 가장 합리적으로 부대를 지휘해야만 가장 불합리한 전시 상황에서 부하들을 적진으로 뛰어들게 할 수 있다. 어느 조직이나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정확하게 평가하는 법이다. 상관에게 휘둘리고 명분을 잃어버린 지휘관을 부하는 다 알아본다. 지휘관의 명령이 옳으면 부하들은 목숨을 걸고 그 명령에 따른다.37년째 서재에 걸어놓은 군복 세 벌민 전 교장은 ‘졸업식 사건’ 한 달 뒤 35년간 입어 온 군복을 벗었다. 정치권과 기업에서 러브콜이 많았지만 응하지 않고 군인연금으로 생활해 왔다.―경제적으로 넉넉지 않았을 것 같다.“공직을 떠나면 생활 수준이 당연히 떨어진다. 그 점을 늘 각오하며 살아야 한다. 그래서 장군 시절에도 영관 장교처럼 살았다. 그만두면 연금이 영관 월급 정도 되니까. 최선의 노후 대비는 현역 때 검소하게 사는 것이다. 그 습관이 노후에 자기 생활이 된다. 현역 때 높고 좋은 자리에 있다고 화려하게 지내는 건 옷 벗고 나간 다음에 고통을 자처하는 거다.”―퇴임 후 삶에 만족하나.“행복이 뭔가. 걱정 없이 건강하게 사는 거 아닌가. 전역 이후 35년을 나는 그렇게 보내고 있다. 며칠 뒤면 90세인데 아직 크게 아픈 데가 없다. 50년, 60년 전 부하들을 지금도 만나는데 80세가 넘은 그 친구들이 나한테 소대장님, 중대장님이라고 부른다. 얼마나 다정하고 좋나.”민 전 교장과의 인터뷰는 20일 4시간, 26일 2시간 동안 이어졌다. 서재 바닥에 양반다리로 마주 앉았는데 다리를 폈다 오므리기를 반복하는 기자와 달리 그는 허리를 곧추 펴고 흐트러짐 없이 자세를 유지했다. 겨울에 난방을 안 해도 괜찮냐고 물었더니 “야전에 있을 때부터 이러고 살아서 익숙하다”고 했다. 그는 휘문중 재학 시절 학도병으로 6·25전쟁에 참전해 왼팔에 총상을 입고도 몇 년 뒤 육사에 진학했다. 월남전에도 파병돼 무공훈장을 받았고 전투 부대 지휘관을 오래 했다.삼면이 책으로 둘러싸인 민 전 교장의 서재 한쪽 벽에는 군복 세 벌이 37년째 걸려 있다. 그가 특전사령관 때 입었던 중장(3성) 계급장이 달린 예복, 근무복, 전투복이다. 셋 중 맨 오른쪽에 있는 전투복에 특히 애착이 간다고 했다. “자식들한테 진작 유언을 해놨다. 나 죽으면 수의 필요 없고, 관속에 들어갈 때 저 전투복 입혀 달라고. 나는 군인으로 태어났고, 군인으로 죽고 싶다.”민병돈 전 육군사관학교장△ 1951년 휘문중 학도병으로 6·25전쟁 참전△ 1959년 육군사관학교 졸업(15기)△ 1970년 베트남 파병 9사단 28연대 작전주임△ 1981년 육군 특전사 3공수여단장(준장)△ 1983년 20사단장(소장)△ 1987년 특전사령관(중장)△ 1988년 육사 교장(1989년 중장 예편)신광영 논설위원 neo@donga.com}

    • 2024-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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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신광영]“尹 변호인단 구인난”… 그 많던 부나방들 다 어디가고

    첫 검찰총장 출신 대통령이어서 그런지 윤석열 정부 안팎에는 유난히 법조인이 많았다. 검사 옷을 벗고 대통령실과 정부 부처로 옮긴 사례가 많아 검사 정권이란 꼬리표가 따라다녔다. 취임 초에는 윤 대통령과 술자리를 했다며 사적 인연을 은근히 과시하는 법조인들을 흔히 볼 수 있었다. 형사사건 의뢰인들이 검찰의 선처를 기대하며 ‘친윤’으로 알려진 전관 변호사들에게 몰리기도 했다. 윤 대통령 지지율이 저조하던 4월 총선 때도 여당 후보로 나선 30여 명의 검사 출신들 중에 대통령과의 친분을 내세운 이들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윤 대통령이 탄핵심판과 내란죄 수사로 벼랑 끝에 선 요즘, 그를 돕겠다는 법률가들은 찾아보기 힘들다. 김건희 여사 사건 때마다 ‘윤 대통령 변호인단’이란 비아냥거림을 들었던 검찰마저 태세를 확 바꿔 대통령을 정조준하고 있다. 윤 대통령으로선 하루빨리 변호인단을 꾸려야 할 처지인데 구인난이 심각하다고 한다. 그가 탄핵과 수사에 불응하는 속사정이 변호인들을 아직 못 구하고 있기 때문이란 주장이 나올 정도다. ▷윤 대통령의 ‘40년 지기’ 석동현 변호사가 대변인 격으로 활동하고 있고, 김홍일 전 방송통신위원장과 윤갑근 전 대구고검장이 나선다고 하지만 정식 선임계는 아직 제출되지 않은 상태다. 무엇보다 방대한 기록 정리와 서면 작성 등 실무를 맡을 변호사들이 필요한데 다들 손사래를 친다고 한다. 일부 대형 로펌은 이번 계엄 사태 관련 피의자들에 대해선 일절 변호하지 않기로 방침을 세웠다는 얘기도 들려온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특검 수사와 탄핵심판이 진행되던 2016년 말 변호인단 구성에 애를 먹었다. 유영하 변호사가 사실상 유일했다. 그래도 얼마 되지 않아 이동흡 전 헌법재판관과 정기승 전 대법관 등 보수 성향의 전관 법조인들이 줄줄이 합류했다. 윤 대통령은 30년 가까이 법조인으로 일했고, 대통령이 돼선 수많은 법률가들을 거느렸지만 가장 절실히 우군이 필요한 지금 짐을 나눠 지겠다는 사람이 거의 없는 처지다. 세력이 강할 땐 아첨하며 따르고, 힘이 빠지면 외면하는 세상 인심을 뜻하는 염량세태(炎涼世態)를 떠올리게 한다. ▷씁쓸하긴 하지만 모두 윤 대통령이 자초한 일이다. 국가가 대혼란에 빠지고 헌정 질서가 유린된 사건이라 대통령 편에 서는 순간 ‘국민의 적’이자 ‘역사의 적’으로 보일 수밖에 없는 구도를 그가 만들었다. 법률가라면 이번 계엄의 불법성을 누구보다 잘 알 것이기에 나서기가 더 망설여질 것이다. 윤 대통령이 지향한다는 자유민주주의의 가치와 철학마저 계엄 선포로 스스로 부정해 버렸으니 도와줄 명분도 마땅치 않다. 그래도 마음 한편에선 그 많던 부나방들은 다 어디로 갔나 하는 생각도 든다. 신광영 논설위원 neo@donga.com}

    • 2024-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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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신광영]경호는 충성심이 아닌 직업정신으로 하는 일

    대통령 경호원들은 ‘다 죽어도 대통령이 살면 성공, 다 살아도 대통령이 죽으면 실패’라는 직업의식을 갖고 산다. 사람은 위험에 닥칠 때 자기부터 챙기기 마련인데 이 본능을 억제하고 대통령을 지키려 자신을 희생하는 기술을 연마하는 게 경호원이다. 사적 감정에 흔들려서도 안 된다. 대통령의 정치에 동의하지 않고 존경심이 없더라도 기꺼이 몸을 던져야 한다. 경호 대상이 적대국에서 보낸 특사일 때도 목숨 걸고 지키는 게 경호원의 직업정신이다.대통령 버리고 화장실로 숨었던 차지철 이 직업정신은 충성심과는 다르다. 충성스럽다고 경호를 잘하는 건 아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심복인 차지철 경호실장은 10·26 사건 당시 총에 맞은 박 전 대통령을 버려두고 화장실로 도망쳤다. 그 사이 김재규가 박 전 대통령을 확인 사살했다. 경호는 충성심이 아닌 직업정신으로 하는 일이다. 경호원들은 ‘촉수(觸手) 거리’란 말을 자주 쓴다. 누군가 경호 대상을 공격해 올 때 막을 수 있는 거리란 뜻이다. 그만큼 경호 대상 가까이 있어야 한다는 말인 동시에, 적정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충성심에 사로잡혀 경호 대상과 한 몸이 돼 버리면 주변 위협을 제대로 살피지 못해 경호 대상자를 위험에 빠트릴 수 있다. 넉 달 전까지 대통령경호처장이었던 김용현 전 국방장관은 왜곡된 충성심이 대통령에게 얼마나 해로울 수 있는지 보여준다. 국민들에게 충격적인 장면으로 각인된 KAIST 졸업식 입틀막 사건은 그의 지휘하에 벌어진 일이었다. R&D 예산을 복원하라는 이공계생의 합당한 주장을 틀어막는 경호원의 손은 윤석열 정부가 보여온 불통의 상징이 됐다. 윤 대통령이 ‘여론에 귀 기울이라’는 정치인들을 반국가세력으로 여기게 된 것도 참모들의 과잉 심기 경호가 한몫했을 것이다. 이번 비상계엄 사태 이후 경호처의 행태를 보면 ‘김용현의 경호처’가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는 의심이 든다. 경호처는 헌법재판소가 보낸 탄핵심판 서류를 받지 않고, 수사기관의 압수수색도 막고 있다. 그동안 청와대 압수수색이 실제 이뤄진 전례가 없긴 하지만 현 상황은 관례가 적용되기 어려운 사상 초유의 상황이다. 윤 대통령의 혐의인 내란죄는 외환죄와 더불어 대통령이라도 형사소추가 가능한 유일한 범죄다. 그만큼 사안이 중대해 대통령이 더 이상 헌정 질서를 훼손하지 못하도록 신속히 수사해야 한다는 의미다. 그럼에도 경호처의 사법 방해는 아무런 통제를 받지 않고 있다. 직무 정지된 대통령을 대신해 경호처를 지휘해야 하는 한덕수 권한대행은 이 책무를 방기하고 있다. 이런 지휘 공백 속에 지금의 경호처는 ‘VIP 범죄 경호처’로 전락해 버렸다. 국민들이 경호처에 세금을 쓰는 데 동의한 이유는 대통령이 자신의 안녕보다 국민을 위해 봉사하도록 안전한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다. 대통령 경호는 대통령이 국민을 위해 일한다는 전제에서만 유지되는 제도인 것이다. 반헌법적 계엄 선포로 국민의 신뢰를 잃은 대통령이 탄핵과 수사를 지연시키려 하는데 경호처가 이를 맹목적으로 보호한다면 존재 이유를 스스로 부정하는 셈이 된다.맹목적 ‘尹방탄’ 경호원 자부심 짓밟는 일 경호처는 조만간 큰 시험대에 놓일 전망이다. 윤 대통령이 지금처럼 수사기관의 소환 요구에 계속 불응할 경우 체포영장이나 구속영장 집행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대통령실 경내로 들어가야 하는 압수수색과 달리 법원 허가에 따른 대통령 신병 확보는 경호처가 이를 막을 어떠한 명분도, 법적 근거도 없다. 만일 경호원들이 대통령을 데려가려는 수사관들을 물리력으로 막는 데 동원되는 사태가 벌어진다면 이들은 계엄이 선포되던 3일 밤 국회에 투입됐던 군인들과 똑같은 자괴감을 겪게 될 것이다. 경호처가 묵묵히 일해 온 경호원들의 직업적 자부심마저 짓밟아선 안 된다. 신광영 논설위원 neo@donga.com}

    • 2024-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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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신광영]‘강제 키스 혀 절단 사건’ 60년 만의 재심

    사건은 1964년 5월 오후 8시경 벌어졌다. 당시 18세이던 최말자 씨는 뒤따라오던 낯선 남자의 공격에 넘어졌다. 남자는 도망치려는 최 씨를 두 번 더 넘어뜨린 끝에 배 위에 올라탔다. 그러곤 최 씨의 목을 졸라 입을 벌리게 한 뒤 강제로 키스했다. 최 씨가 고개를 흔들며 저항하다 남자의 혀를 깨물어 1.5cm가 절단됐다. 경찰은 최 씨의 정당방위를 인정했지만 검찰이 이를 뒤집었다. 최 씨를 중상해 혐의로 구속 기소하고 남성의 강간미수는 무혐의 처분했다. ▷재판에선 공개적으로 2차 가해가 이뤄졌다. 상황을 재연한다며 현장 검증을 나갔는데 주민들이 최 씨에게 몰려와 “처녀 총각이 키스한 게 뭐 대단한 일이냐, 네 입술은 금덩어리냐”라고 했다. 재판부는 최 씨에 대한 순결성 감정에 이어 정신 감정을 의뢰했다. “미움과 사랑의 갈등에서 온 히스테리 반응”이라는 게 감정 결과였다. 재판부는 최 씨에게 남성과 결혼할 생각이 있느냐고도 물었다. 남자를 불구로 만들었으니 평생 책임지는 게 어떠냐는 취지였다. “차라리 벌을 받겠다”는 최 씨에게 법원은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이 사건은 1995년 대법원이 발간한 법원 100년사에 ‘저명사건 판결’로 기록됐다. 1980년대 이후 성폭력에 저항하다 가해자 혀를 깨물어 절단시킨 행위를 정당방위로 본 판례가 잇따라 나오던 때였다. 2020년 부산에서 여성이 가해자의 혀 3cm를 절단시킨 사건에서도 남성만 강간치상으로 처벌됐다. 하지만 ‘감옥 살다 온 여자’로 손가락질받던 최 씨는 공장일과 노점상으로 홀로 아이를 키우며 50년 넘게 숨죽이다 2018년에야 재심을 청구했다. ▷“당시 시대 상황에 따른 어쩔 수 없는 판결이고, 시대가 바뀌었다고 반세기 전 사건을 뒤집을 순 없다.” 1, 2심은 이런 이유로 재심 청구를 기각했다. 이에 최 씨는 “지금은 대한민국이고 그때는 대한민국이 아닌 것이냐”며 울분을 토했다. 다행히 대법원은 달랐다. 최 씨의 재심 사유에 신빙성이 있다며 며칠 전 원심을 깨고 돌려보냈다. 사건 당시 18세였던 최 씨는 60년이 흘러 78세가 되어서야 다시 법원 판단을 받을 수 있게 됐다. ▷확정된 판결을 새로 재판하는 재심은 요건이 까다롭다. 원심의 증거가 허위로 판명되거나, 새로운 증거가 발견됐을 때, 재판에 참여한 판검사 등이 직무 관련 죄를 지었을 때 가능하다. 최 씨 사건은 재판에서의 2차 가해뿐 아니라 성폭력 저항 행위를 정당방위로 폭넓게 인정하는 판례들이 쌓이며 법원의 흑역사가 된 사건이다. 지금의 상식에 비춰 보면 당시 재판에 참여했던 판사들이 책임을 외면해선 안 될 일이다. 몇 달 뒤 재심이 시작될 텐데 형식적 법리에 매몰되기보단, 피해자를 가해자로 만든 법원의 과오를 반성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 신광영 논설위원 neo@donga.com}

    • 2024-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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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신광영]“다음 여단장은 너”… 불명예 전역 장성의 계엄 모의 미끼

    12·3 비상계엄 사태 주요 가담자 중에는 민간인이 한 명 끼어 있다. 6년 전 퇴역한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이다. 포고령 초안 작성자로 알려진 그는 군에 선관위 장악을 지시하고 계엄 당일 탱크부대장을 호출하는 등 큰 역할을 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계엄 이틀 전 정보사령관과 대령 두 명을 롯데리아로 불러 모은 것도 노 전 사령관이다. 그는 이들과 햄버거를 먹은 뒤 “계엄이 있을 테니 준비하라”며 부정선거 증거 수집을 위해 중앙선관위 서버를 확보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민간인인 그가 군 간부들을 움직인 수단은 인사였다. 햄버거 회동 참석자인 정모 대령은 지난달 노 전 사령관으로부터 “전역이 몇 년 남았냐. 다음엔 네가 여단장 하면 되겠다. 내가 많이 도와주겠다”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이 말에 넘어가 부정선거 관련 유튜브 자료를 정리하는 등 요구에 따랐다. 노 전 사령관의 호출을 받고 계엄 당일 정보사로 온 제2기갑여단장(준장)도 비슷한 얘기를 들었다. 노 전 사령관이 전부터 “(김용현) 장관님이 너한테 국방부 TF 임무를 맡기려 한다. 너를 정말 귀하게 여기신다”고 여러 번 말했다고 한다. ▷전직이 던진 ‘진급 미끼’에 현직들이 걸려든 것은 그가 김 전 장관과 절친한 비선 실세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폐쇄적이고 점조직으로 운영되는 정보사는 현직과 ‘올드보이(OB)’들이 끈끈한 관계를 유지하는데, 정보사령관과 육군정보학교장 등 고위직을 거친 그는 이런 인맥의 중심에 있었다. 그와 가까운 대령급 간부가 김 전 장관 인사청문회 TF에 참여한 뒤 준장으로 진급하는 등 영향력이 드러난 사례가 적지 않다고 한다. ▷노 전 사령관은 6년 전 성추행으로 불명예 전역했다. 술자리에서 여군 교육생을 강제추행한 혐의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당시 법원은 그가 이 사건으로 지위와 명예를 잃게 된 점을 양형에 반영했다고 했지만 그는 전역 후에도 군 정보라인의 막후 실력자로 활동했다. 여인형 방첩사령관마저 김 전 장관에게 “노상원을 멀리하라”고 만류했다고 하는데 김 전 장관으로선 은밀한 계엄 준비를 위해 민간인 신분의 비선 측근이 필요했을 것으로 보인다. ▷노 전 사령관은 음지에서 움직이며 군인들의 약한 고리인 인사를 공략했다. 대령은 56세까지 준장으로 승진하지 못하면 옷을 벗어야 하고 준장은 6년 내 진급을 못 하면 퇴역이다. 정보사 정 대령은 인맥이 없어 진급을 기대하지 못했는데 노 전 사령관의 제안에 욕심이 생겨 요구에 응했다고 한다. 국방부 장관은 성추행으로 물러난 예비역을 끌어들여 계엄을 기획하게 하고, 그 전직 장성은 후배들의 출세욕을 자극해 반헌법적 행위를 시킨 것이다. 군 인사가 정치에 휘둘리지 않았다면 이런 어처구니없는 거래가 성사되기 어려웠을 것이다. 신광영 논설위원 neo@donga.com}

    • 2024-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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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신광영]‘임을 위한 행진곡’ 대신 로제의 ‘아파트’, 촛불 대신 응원봉

    윤석열 대통령 탄핵을 요구하는 요즘 거리 집회에는 특이한 깃발들이 나부낀다. 흔히 보던 ‘○○노총 ○○지부’처럼 조직을 드러내기보단 개인 취향을 반영한 것들이 많다. ‘전국얼죽아(얼어 죽어도 아이스 아메리카노)연합’ ‘강아지발냄새연구회’ ‘OTT 뭐 볼지 못 고르는 사람들 연합회’ 같은 깃발들이다. ‘집에 누워있기 연합’ 깃발도 등장했는데 ‘제발 그냥 누워있게 해달라’는 설명이 달려 있다. 얼핏 장난스러워 보이지만 이런 평범한 시민들까지 거리로 나서야 할 만큼 분노한 민심이 널리 퍼져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집회 참가자 중에는 민주주의를 공기처럼 호흡하며 성장한 MZ세대가 특히 많다. 생애 첫 계엄 사태에 기성세대보다 더 큰 충격을 받았고 정치적 의사 표현에도 거침이 없는 세대다. 이들이 주도하는 시위는 많이 달라진 모습이다. 촛불 대신 발광다이오드(LED) 응원봉이 필수 시위 아이템이 됐다. 엔시티, 세븐틴, 에스파 등 아이돌 팬들이 형형색색의 응원봉을 흔들며 ‘윤석열 탄핵’을 외친다. ▷집회 곡 플레이리스트도 세대교체가 한창이다. ‘임을 위한 행진곡’ ‘광야에서’처럼 비장하고 결연한 민중가요 일색이던 과거와 달라졌다.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 지드래곤의 ‘삐딱하게’ 같은 댄스곡을 떼창하고 로제의 ‘아파트’, 에스파의 ‘위플래시’, 부석순의 ‘파이팅해야지’ 같은 K팝 곡을 이번 사태에 맞춰 개사해 부른다. ‘삐딱하게’를 부를 땐 ‘영원한 건 절대 없어. 결국에 넌 변했지. 이유도 없어. 진심이 없어’ 대목에서 윤 대통령의 지금 상황과 맞아떨어져서인지 노랫소리가 더 커진다. 현장을 본 BBC 기자는 “K팝 페스티벌 같았다”고 보도했다. ▷기존 민중가요의 키워드가 저항과 투쟁이라면 최근 탄핵 플레이리스트의 메시지는 희망과 열정이다. 너무 무겁지 않아 공감대가 넓고, 더 많은 시민들을 집회로 불러 모으는 힘이 있다. 직접 거리로 나서진 못하더라도 시위 참가자들이 따뜻한 커피로 몸을 녹일 수 있도록 주변 카페에 선결제를 해놓는 릴레이가 확산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50, 60대 참가자들이 10, 20대들에게 응원봉 사용법을 배우고, 젊은층은 유튜브로 민중가요 영상을 찾아보는 세대 간 화합도 일어나고 있다. ▷MZ들이 만들어 가는 새로운 집회 문화는 과격한 구호나 폭력 없이도 얼마든 의사 표현이 가능하다는 걸 보여준다. 탄핵과 무관한 특정 진영의 편향적 발언이 나올 땐 “단상에서 내려오라”는 야유가 빗발친다. 정파를 초월한 이들의 응원봉은 1970, 80년대의 화염병보다 더 강할 수 있다. 아직 1970년대에 머물러 있는 윤 대통령은 반국가세력과 싸운다는 망상으로 무력을 동원했지만 그보다 한참 진화한 민주주의 사회에서 살아온 요즘 청년들은 평화적으로 세상을 바로잡는 법을 알고 있다.신광영 논설위원 neo@donga.com}

    • 2024-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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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신광영]허수아비가 된 것, 그 자체가 죄

    “전두환이 전권을 휘둘러 나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1979년 12·12 군사반란 가담 혐의로 법정에 섰던 당시 이희성 계엄사령관(육군참모총장)과 주영복 국방부 장관은 이런 주장을 폈다. 실제 당시 공식 지휘계통이던 주영복-이희성은 사실상 허수아비였고 전두환-노태우로 이어지는 하나회 라인이 내란을 주도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두 사람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고 징역 7년을 각각 선고했다. ‘다른 사람의 힘에 밀려 소임을 다하지 못했다고 변명하는 것은 하료(지위가 낮은 관리)의 일이고, 피고인들처럼 지위가 높고 책임이 막중한 공직자에겐 이런 변명이 용납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명령에 따랐을 뿐” 하급 관리나 할 변명 45년 만에 재연된 이번 비상계엄 사태에선 ‘명령에 따랐을 뿐이란 변명은 하급 관리나 할 소리’란 법원의 지적과 정반대 상황이 벌어졌다. 고위 장성과 장관들이 계엄의 들러리를 자처할 때 위법한 지시에 맞선 건 영관·위관급 장교들이었다. 국군방첩사령부 법무관 7명은 중앙선관위를 장악하라는 여인형 방첩사령관의 지시에 반발했고, 현장 지휘관들도 부대원 투입을 거부했다. 국회가 계엄 해제 의결을 못 하도록 국회의원들을 본회의장 밖으로 끌어내라는 명령도 특수부대 중간 간부들의 반대로 실행되지 않았다. 반면 4성, 3성 장군들은 윤석열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지시를 현장에 내려보내기 바빴다.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은 계엄사령관에 임명돼 크게 당황했다고 주장하지만 포고령을 발표하고 경찰에 국회 통제를 요구하는 등 순순히 지시에 따랐다. 36만 육군을 통솔하는 지휘관으로서 국민과 장병들이 어떤 위험에 내몰릴지 조금이라도 고민했다면 결코 해선 안 될 짓이었다. 국회 군 투입 지시를 하달한 곽종근 특수전사령관 역시 명령에 따르는 시늉만 했다고 주장하지만 707특임단장에게 1, 2분 간격으로 30통 이상 전화를 걸어 지시를 전했다고 한다. 김 전 장관은 국회 인사청문회 때 계엄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군이 과연 따르겠나. 저라도 안 따를 것”이라고 했는데, 지시한 자도 통할 리 없다고 보는 명령에 군사령관들이 순종한 셈이 됐다. 우리 헌법은 대통령의 계엄 발령에 앞뒤로 통제 장치를 뒀다. 국회 의결이 사후 통제라면, 사전 통제는 국무회의 심의다. 대통령이 오판할 땐 끝까지 설득해야 할 의무가 각료들에게 있는 것이다. 이 절차가 요식 행위가 돼 버린 건 대통령의 독단 못지않게 저항을 포기한 국무위원들의 책임이 크다. 대통령과 국방부 장관을 제외한 9명 중 3명이 반대했다고 하는데 과연 얼마나 강하게 만류했을지 의문이고, 나머지 6명은 방조자였다고 해도 할 말이 없게 됐다. 특히 대통령의 최고 법률 참모로서 누구보다 앞장서서 계엄을 막았어야 할 박성재 법무부 장관은 “사전 상의가 없었다”는 변명만 하고 있다. 상명하복은 지시가 정당하고 합법적일 때만 유효하다. 위법한 지시에 따른 공직자는 우리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민주주의 국가에서 처벌 대상이다. 제2차 세계대전 후 독일 뉘른베르크 전범재판에서 ‘명령에 따른 것이란 이유로 면책될 수 없다’는 원칙이 정립되면서 법을 뛰어넘는 상명하복이란 없다는 게 보편적 상식으로 자리 잡았다.위법 지시 못 맞설 거면 공직 맡지 말아야 이번 비상계엄 사태는 고위 공직자의 무거운 책임을 재차 생각하게 한다. 지시의 위법성을 분별할 능력과 부당한 명령에 맞설 각오가 없다면 애당초 공직을 탐내지 말아야 한다. 누가 보더라도 위법하고 위헌적인 대통령의 계엄 의사를 확인하고도 자의든 타의든 허수아비가 돼 버렸다면 그 자체로 죄가 되는 자리가 장관과 사령관이다. 그런 공직자는 세월호가 가라앉을 때 승객들을 버리고 도망치는 선장을 멍하니 뒤따랐던 항해사, 기관사들과 별로 다를 게 없다. 신광영 논설위원 neo@donga.com}

    • 2024-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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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신광영]트럼프 최측근 “장관 하려면 돈 내세요”

    도널드 트럼프를 10년 가까이 보좌해온 법률 고문 보리스 엡스타인(42)은 ‘트럼프의 투견’이라고 불린다. 트럼프의 대선 불복, 기밀 유출, 성추문 입막음 등 주요 사건의 소송과 여론전을 엡스타인이 주도했다. 변호사이자 정치전략가인 그는 트럼프 1기 행정부 초기 공보 책임자였고 백악관에서 나온 뒤에도 막후 실세로 활약했다. 최근 트럼프 재선과 함께 검찰이 줄줄이 기소를 취소한 것도 그의 공이 컸다. 엡스타인은 취임 준비가 한창인 트럼프의 마러라고 사저에 가장 오래 머무는 문고리 권력으로 알려져 있다. ▷보스인 트럼프처럼 논란 일으키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 엡스타인이지만 최근 2기 내각 인선을 두고 궁지에 몰렸다. 그가 장관을 희망하는 인사들에게 사적으로 연락해 발탁되도록 도와주는 대가로 10만 달러(약 1억4000만 원)를 요구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최근 재무장관에 내정된 스콧 베센트도 몇 달 전 엡스타인으로부터 “트럼프에게 추천해줄 테니 컨설팅비로 매월 3만, 4만 달러를 달라”는 요구를 받았다는 것이다. ▷그가 추천한 것으로 알려진 인사 중에는 맷 게이츠 법무장관 후보자도 있다. 게이츠는 미성년자 성매수 의혹 등으로 공화당 내에서도 반대에 부딪혔고, 상원 통과가 어려워 보이자 지명 8일 만에 사퇴했다. 엡스타인은 게이츠와도 모종의 거래를 했을 것이란 의심을 받고 있다. 그는 정권 재창출의 일등 공신인 일론 머스크와도 갈등을 빚고 있는데 이런 부적격 인사 추천이 주된 이유라고 한다. ▷트럼프는 엡스타인의 매관매직 의혹을 조사하라고 캠프에 지시했지만 최측근인 그를 냉정하게 쳐낼 진 의문이다. 의혹을 입증할 증거가 발견됐다는 뉴욕타임스(NYT) 보도가 나오자마자 트럼프는 ‘오보’라며 사과를 요구했다. 미국에선 대선 캠프 고액 기부자를 고위직이나 대사로 앉히는 관행이 남아 있는데 그런 면에서 트럼프는 여느 대통령보다 도가 지나쳤다. 1기 행정부 때 교육부 장관 등 고위직 38%가 고액 기부자들에게 돌아갔다. 2008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 당선으로 공석이 된 연방 상원의원 자리를 돈 받고 팔아넘기려 한 일리노이주지사를 사면한 것도 트럼프다. ▷정권 주변에는 대통령과의 친분을 내세워 이득을 취하려는 이들이 있기 마련이다. 권력의 신임이 두터울수록 이들이 부르는 ‘가격’도 높아진다. 대통령이 이런 측근들을 단호히 내치지 않으면 충신의 입지는 좁아지고 한몫 챙기려는 간신들에게 둘러싸이게 된다. 이들이 득세하는 한 트럼프가 머스크 같은 기업인을 정부효율부 장관으로 중용한다고 한들 정부 효율이 좋아질 리 없다. 최고 권력자가 자신을 등에 업고 호가호위하는 사람을 가까이에 뒀다가 낭패를 보고 정권마저 흔들리는 사례는 수도 없이 많다.신광영 논설위원 neo@donga.com}

    • 2024-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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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신광영]남의 얼굴에 두꺼비 사진 합성하면 모욕죄

    모욕죄도 시류를 탄다. 코로나19가 한창이던 2021년 한 시청 공무원이 부하 직원에게 “확찐자가 여기 있네”라고 말했다가 모욕죄로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당시 외부 활동 감소로 체중이 급격히 불어난 사람을 ‘확찐자’라고 부르곤 했는데 직장 상사가 사무실에서 이런 표현을 쓴 건 모욕감을 주기 충분하단 이유에서였다.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사건 수사가 진행되던 2017년에는 회사 동료들끼리 다투다가 ‘네가 최순실이냐’ ‘최순실 같은 ×’이라고 말한 사람에게 모욕죄가 인정되기도 했다. ▷최근 대법원은 남의 얼굴에 두꺼비 사진을 합성한 유튜버에게 모욕죄 유죄 판결을 내렸다. 보험 관련 콘텐츠를 만드는 그 유튜버는 경쟁 관계인 유튜버를 자신의 영상에 등장시키며 모자이크 처리 대신 두꺼비 사진을 덧입혔다. 그는 “일종의 가면으로 얼굴을 가려주려 했을 뿐”이라고 주장했지만 인정되지 않았다. 법원은 피고인이 단순히 사진을 합성한 것에 그치지 않고 “두꺼비처럼 생긴 그 ×× 있죠” “두꺼비는 원래 습하고 더러운 데 있다. 더러운 ×이니까 그렇다”고 말하는 등 상대를 비하·조롱하려는 고의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지난해에는 남의 얼굴을 개 모양으로 합성한 유튜버가 모욕죄로 재판에 넘겨진 일도 있었다. 이 사건에선 무죄 판결이 났다. 영상에 개 그림을 사용한 것 외에, 상대를 개라고 지칭하거나 모욕적인 표현을 하지는 않았다는 점이 참작된 결과였다. 대법원은 “피고인이 무례한 방법을 쓰긴 했지만 부정적인 감정을 다소 해학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볼 여지가 있다”고 했다. ▷모욕죄는 타인에 대한 사회적 평가를 훼손할 목적으로 경멸적인 감정이나 추상적인 판단을 공공연하게 표현하는 행위다. 피해자가 주관적으로 모욕감을 느낀 것만으론 부족하고 객관적인 잣대로 보더라도 모욕적이라고 판단될 때 적용된다. 누군가를 모욕할 방법은 다양하고, 시대와 문화권에 따라 달라진다. 말이나 글이 아니더라도 비언어적·시각적 수단을 통해서도 얼마든지 모욕을 줄 수 있다. 서구인이 동양인을 향해 눈을 옆으로 찢는 제스처를 한다면 누가 보더라도 모욕이다. ▷이번 ‘두꺼비 판결’은 최근 영상 편집과 합성 기술이 발전하면서 딥페이크 등 신종 범죄가 급증하는 세태에 대한 경고로 볼 수 있다. 이미지를 위변조해 타인의 인격권을 침해하는 행위에 엄격하게 책임을 묻겠다는 것이다. 모욕죄가 되려면 해당 표현이 불특정 다수에게 전파될 수 있다는 공연성이 있어야 하는데 요즘처럼 SNS나 개인 방송이 활발한 환경에선 비방 게시물이 순식간에 번진다. 파급력이 강해 피해자가 느낄 모욕감도 예전보다 훨씬 크고 오래간다. 자기표현 수단이 많아진 만큼 타인에 대한 평가는 더욱 절제해야 하는 시대가 됐다.신광영 논설위원 neo@donga.com}

    • 2024-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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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신광영]이긴 선거도 반성문 쓰는 앤디 김의 정치

    앤디 김 미국 연방상원의원 당선자에게 4년 전인 2020년 11월은 경사가 겹친 달이었다. 김 의원은 하원의원 재선에 성공했고, 그가 속한 민주당의 조 바이든은 도널드 트럼프를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됐다. 상·하원 역시 둘 다 민주당이 다수당이 됐다. 당선자들의 축하연이 한창이던 때 김 의원은 자신을 뽑아준 지역구민들이 대선에선 트럼프를 더 지지한 점에 주목했다. 그냥 지나쳐선 안 될 민심이었다. 그는 파티 대신 미팅을 열어 주민들의 의견을 들었다.하원 재선 성공에 파티 대신 민심 청취 주민들은 그에게 기성 정치인에 대한 오랜 불신과 분노를 여과 없이 쏟아냈다. 민주당 역시 현상 유지를 원하는 낡은 정치세력으로 인식되고 있었다. 그에 비해 ‘트럼프는 다르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트럼프의 성격과 정책이 우려스럽긴 하지만 기득권 정치에 대한 혐오를 뛰어넘진 못했다. 김 의원은 주민들 의견을 녹음해 반성문 형식으로 정리하며 이런 결론에 도달했다. ‘기성 정치에 대한 유권자들의 불신은 트럼프가 부활하는 데 산소를 공급해 줄 수 있다.’ 김 의원이 그때 쓴 반성문을 다시 꺼낸 건 그가 상원의원에 당선돼 축하 인사가 쏟아지던 지난 8일이었다. 그는 4년 전의 우려가 이번 대선에서 고스란히 현실화된 것에 대한 일종의 반성문을 자신의 X(옛 트위터) 계정에 올렸다. ‘우리는 경각심을 가졌어야 합니다. 이제라도 오만함을 내려놓고, 우리가 답을 안다고 단정하지 말고 나가서 시민들의 목소리를 들읍시다.’ 한국계 첫 연방 상원의원 탄생이란 쾌거 못지않게 눈길이 가는 대목은 이긴 선거에서도 놓친 민심이 무엇인지 되돌아보는 김 의원의 정치 습관이다. 2021년 1·6 의사당 폭동 때 그가 무릎을 꿇고 쓰레기를 치우던 모습도 이런 겸손함의 한 단면으로 보인다. 소수인종 출신 정치인이 주류 정치의 벽을 넘기 위해 나름대로 익힌 생존 전략일 수 있지만 낮은 자세로 민심을 살피는 그의 방식에는 무시할 수 없는 위력이 있다. 선거 승리 후에도 유권자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면 놓친 민심은 물론이고 자신이 선택받은 이유를 알게 되는 효과가 있다. 김 의원은 주민들과 만나며 기업의 선거 자금을 받지 않고 개혁과 부패 척결을 앞세운 것이 주효했다는 점을 깨달았다고 한다. 그가 소수인종에게 견고한 유리천장이던 상원에 도전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민심에서 얻은 자신감 덕분이다. 그가 당선된 뉴저지주는 당과 보스 정치인의 영향력이 절대적인 지역이다. 당의 지지를 받고 그 후광으로 기업들 후원을 받으면 자동 당선이란 뜻의 ‘정치 기계(Political Machine)’란 말이 있을 정도다. 그렇게 3선을 하며 상원 외교위원장까지 오른 민주당 거물이 뉴저지를 장악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뇌물 혐의로 기소되자 김 의원은 곧바로 사퇴 요구를 하며 상원 출마를 선언했다. 당의 불출마 권유와 ‘중진들의 허락이 먼저’라는 참모들의 만류에도 김 의원이 과감히 결단할 수 있었던 건 기득권 정치를 거부하는 바닥 민심을 확신했기 때문이다.참패해도 반성문 제대로 안 쓰는 한국 우리 정치로 시선을 옮겨 보면 이긴 선거는 말할 것도 없고, 크게 진 선거에서마저 제대로 된 반성문을 쓴 사례를 찾기 어렵다. 지난 총선에서 참패한 여당은 선거 후 200일이 지나서야 맹탕 백서를 내놨을 뿐이다. 야당 역시 과반이 넘는 의석수를 오롯이 자신들을 지지하는 민심으로 착각하는 행태를 보여 왔다. 실패해도 잘 되새기면 역전의 씨앗을 발견할 수 있고, 성공해도 승리에 취하면 실패의 조짐을 간과하게 된다. 이긴 선거에서도 반성문을 쓰는 앤디 김의 미 상원 입성은 좋은 정치의 기본이 무엇인지를 일깨워 준다. 신광영 논설위원 neo@donga.com}

    • 2024-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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