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광영

신광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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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신광영 논설위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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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01~2024-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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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신광영]유튜브 보는 게 독서가 될 수 없는 이유

    요즘 골목책방은 ‘인스타 성지(인스타그램에 올릴 만한 사진촬영 명소)’가 된 곳이 많지만 책방 주인들의 표정이 밝지만은 않다. 손님들이 책은 안 사고 근사하게 진열된 책들을 배경으로 사진만 찍고 가는 경우가 많아서다. 책방의 감성적이고 지적인 분위기를 소비하는 데 그치는 것이다. 또 책 판매는 줄어드는 반면 인테리어 소품용 모형 책은 잘 팔린다고 한다. 책은 안 읽어도 책이 풍기는 지성미는 갖추고 싶다는 게 요즘 세태다. ▷한 해 동안 책을 단 한 권이라도 읽은 성인 비율(종합독서율)은 지난해 기준 43%다. 정부의 독서실태조사가 처음 시작된 1994년 이후 최저치다. 30년 전 이 비율은 86%였다. 조사 대상자들이 책을 안 읽는 이유는 주로 두 가지다. 일하느라 시간이 없고, 유튜브 등 책 이외에 다른 매체를 이용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10, 20대 사이에선 유튜브 같은 동영상을 시청하는 것도 독서의 일종이란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독서 인구는 줄지만 유튜브로 책을 소개하는 ‘북튜브’ 채널은 인기다. 가성비 높은 지식 소비를 원하는 사람들이 많아졌기 때문으로 보인다. 볼거리는 늘었는데 시간이 한정돼 있다면 한 권에 10시간 이상 걸리는 독서보다 10분∼1시간 이내로 핵심을 추려주는 영상에 사람들이 몰릴 법도 하다. 책이 아니더라도 다양한 이슈와 정보를 정리해주는 지식 콘텐츠가 많아 유튜브로 세상을 배운다는 사람들도 있지만, 독서만큼 도움이 될 가능성은 극히 낮다. ▷유튜브를 볼 때와 독서를 할 때 우리 뇌는 다르게 반응한다. 영상은 완제품 형태로 눈을 거쳐 뇌리에 바로 맺힌다. 뇌가 일할 필요가 없다. 반면 책은 뇌를 바쁘게 만든다. 글은 설명과 묘사, 정보를 담은 원재료일 뿐이고 한 문장 한 문장이 머릿속 지식과 경험, 정서와 뒤섞이면서 활발한 시뮬레이션이 펼쳐진다. 책을 읽다 잠시 멈추게 되는 게 이런 작용 때문이다. 그래서 같은 영상을 100명이 보면 거의 비슷하게 기억하지만 책 한 권을 100명이 읽으면 각기 다른 100개의 스토리가 생긴다. 스쳐 흘러가는 영상과 달리 책에서 읽은 건 깊이 각인되는 이유는 나만의 맥락이 담겨 저장되기 때문이다. ▷책 대신 유튜브 보는 습관이 들면 당장은 단순명료하게 가공된 지식을 얻는 듯한 느낌이 들지만 장기적으론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을 잃게 될 가능성이 높다. 자칫하면 궁금한 주제를 짧고 흥미롭게 만든 영상만 골라 보고, 그마저 메뚜기 뛰듯 띄엄띄엄 보거나 ‘세 줄 요약’에만 익숙한 사람이 될 수 있다. 세상은 갈수록 복잡해지고 단순화할 수 없는 일들이 많은데 영상 제작자가 주관적으로 편집한 지식에 길들여지면 흑백 논리에 잘 휘둘리고, 가짜 정보에 대한 분별력도 떨어지기 쉽다. 독서는 시간이 걸리지만 그 정도 노력을 들여야만 얻을 수 있는 것들을 우리에게 준다.신광영 논설위원 ne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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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요 초대석]“쇠몽둥이 심판… 尹 이제라도 ‘통 큰 리더’ 모습 제대로 보여야”

    《집권 여당 참패라는 선거사상 초유의 결과를 낸 이번 4·10총선은 충청의 영향이 컸다. 2년 전 대선과 지방선거 때의 승리와 달리 국민의힘은 충남·충북에서 역대급 패배를 했다. 윤석열 대통령 부친은 충남 공주가 고향이다. 국민의힘은 총선 직전 충청권 판세를 박빙으로 분석했었지만 대전·천안·아산·청주 등 도시권 16석 중 단 1석도 건지지 못했고, 그나마 농촌과 중소도시에서 12석 중 절반인 6석을 얻는 데 그쳤다. 24일 충남 홍성군 충남도청에서 국민의힘 3선 의원 출신인 김태흠 충남도지사를 만났다. 그는 여당의 충청 참패에 대해 “어느 정도 예상했다”고 말했다.》● “대통령의 고향이라도…” 24만7077표로 승부가 갈린 지난 대선에서 충남과 충북은 각각 8만292표와 5만6068표 차로 윤 대통령이 승리한 지역이다. 지난 대선에서 윤 대통령에게 더 많은 표를 안겨줬던 대전 역시 더불어민주당으로 다시 돌아섰다. 김 지사에게 충청 민심 변화의 원인에 대해 먼저 물었다. “영남과 호남은 다 자기편들이 있습니다. 충청 지역 유권자들은 우리 민심이 곧 대한민국 민심이란 프라이드를 가진 분들입니다. 정치적 변곡점 때마다 정치적 명분을 쥔 쪽을 지지해 왔습니다. 이번 선거에선 정부·여당을 지지해줄 명분이 없다고 본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충청 민심의 수도권화’를 강조했다. “충청권 도시들은 급속한 산업화·도시화로 외지 주민의 유입이 급증하면서 멜팅폿(Melting pot·여러 문화가 하나로 동화되는 것)이 이뤄졌고, 표심도 수도권을 따라가는 양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영호남처럼 특정 정당에 대한 충성도가 높지 않은 지역이다 보니 정권심판론이 먹혔다고 생각해요.” ‘대통령의 고향’을 언급하자 그는 “(대통령 고향이라고) 무조건 편들어 주는 곳이 아닙니다”라고 했다. 그는 “충청이 윤 대통령의 고향이라고 하지만 이를 도민들에게 확실하게 각인시키지 못했고, 내각이나 요직에 충청인 발탁이 미흡해 피부에 와닿지 않은 탓도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이어 “이미 명분에서 다 진 상태인데 충청으로 와서 표를 달라고 한들 도민들이 무조건 찍어줄 수 있었겠습니까”라고 말했다. ―명분에서 졌다는 게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이종섭 전 주호주 대사 문제만 해도 임명 자체로 말할 나위 없이 잘못된 선택이었습니다. 당시 제가 대통령실 이관섭 비서실장한테 전화해서 자진 사퇴시키는 게 좋겠다고 했습니다. 지금이라도 빨리 사퇴시켜야 한다는 뜻을 전달했습니다. 그런데 (사퇴까지) 8일이 걸렸습니다. 민심에 둔감했던 것이죠.” 그는 김건희 여사 문제의 처리 과정에 대해서도 아쉬움을 표했다. “윤 대통령의 국정 방향은 맞게 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국민들이 윤 대통령을 뽑을 때 기대했던 것들을 볼 수 없기 때문에 실망한 것입니다. 국민들은 문재인 대통령 시절 검찰총장으로서 핍박을 받으면서 공정과 상식을 지키는 리더가 될 것이라고 봤습니다. 또 남자답고 화통하고 스케일이 큰 리더일 것이란 기대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김 여사나 장모 문제에 대한 대응을 보면서 공정과 상식을 기대한 국민들에게 믿음을 주지 못했습니다.”● “힘 못 쓴 ‘국회 완전 이전’ 공약” 그가 진단한 충청의 민심은 ‘정권 심판론’이 크게 작용했던 총선 전체 흐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른 원인은 없었을까. ―총선 직전 나온 ‘국회의 세종시 완전 이전’ 공약을 발표했습니다. 어떻게 보셨습니까. “국회는 이미 본회의장 등 일부 기능을 제외하고 11개 상임위원회와 대부분의 기능을 세종시로 이전하기로 결정했어요. 이런 상황에서 완전 이전이란 국민의힘의 공약은 파급력이 약할 수밖에요. 또 선거를 목전에 두고 발표했는데 진정성이 의심받지 않았나 싶습니다.” 세종은 공무원들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이다. 국민의힘은 지난 21대 총선에 이어 이번 선거에서도 세종에서 단 한 석도 얻지 못했다. 세종에서의 계속되는 국민의힘의 패배에 대해 김 지사는 ‘38.6세’라는 숫자를 제시했다. “세종시는 2002년 16대 대선 공약 이후 위헌 논란과 수정안 등 우여곡절을 거치면서 만들어진 ‘젊은 도시’입니다. 평균 연령이 2023년 말 기준 38.6세입니다. 국민의힘 입장에서는 늘 어려운 지역일 수밖에 없습니다.” 국회 세종의사당과 대통령 세종집무실 건립이 지금까지 속도를 내지 못한 상황에서, 정책의 구체성을 따져보는 젊은 유권자들에게 여당의 약속이 곧이곧대로 전달되기 힘들었다는 얘기였다.● “민심의 쇠몽둥이 맞은 여권” 김 지사는 총선 직후 페이스북에 자신이 느낀 충격에 대해 “국민은 집권 여당을 향해 회초리가 아닌 쇠몽둥이를 들었다”고 표현했다. ‘여권의 위기’를 강조한 것이다. “회초리라고 하면 과반 150석 중에 130∼140석 정도 받았을 때 회초리를 들었다고 하는 거 아니에요? 100석 갓 넘기는 의석을 받았다면 그건 쇠몽둥이 아니겠습니까.” ―뭐가 달랐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윤 대통령이 장모가 감옥에 갔을 때 가족으로서 유감 표명이라도 했어야 했습니다. 작은 문제들을 진솔하게 털고 가지 않아 더 큰 문제로 쌓인 면이 있다고 봅니다. 디올백 문제 때도 대통령이 ‘국민 눈높이에는 맞지 않았다’ ‘사과드린다’ 그렇게 인정하고 털고 갈 수 있는 사안이었습니다. 그런 게 잘 안 되다 보니 국민 마음속에 불만이 누적됐을 것입니다.” ―대통령의 불통을 지적하는 여론이 많습니다. “윤 대통령이 가지고 있는 오만과 불통에 대한 인식이 1이라면 국민의 생각은 9, 10인 것 같아 안타까운 부분이 있습니다. 국민에게 비치는 문제점 중 대부분은 국정 운영 때문이라기보다는 장모 또는 김건희 여사 관련 리스크에서 온 게 사실입니다. 국민이 윤 대통령에게 가진 부정적 이미지는 실제보다 과장돼 있습니다. 그런 부분들이 국정 운영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게 안타깝습니다.”● “첫째는 듣는 사람이 바뀌어야” 그렇지만 김 지사는 “지금도 여권이 우왕좌왕하고 있다”며 “이러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내놓을 수 없다”고 했다. 그리고 “대통령이 먼저 바뀌어야 한다”고 했다. ―대통령이 인적 쇄신에 나섰습니다. 앞으로 달라질까요. “대통령에게 직언을 해야 한다는 주문이 많습니다. 그런데 대통령에게 직언을 한다는 게 사실 쉽지 않습니다. 대통령을 설득하려면 상당한 지혜가 필요합니다. 대통령이 생각하는 방향이 있으면 그 자리에선 동의한다고 해도 하루 이틀 지나 좀 더 의견을 정리하고 보완 방향을 판단해서 바꿀 건 바꾸자고 말하는 기술이 필요합니다. 물론 첫째는 듣는 사람이 바뀌어야 합니다. 하지만 참모가 되면 대통령의 생각에 변화를 줄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대통령은 앞으로 어떻게 바뀌어야 하겠습니까. “윤 대통령이 화통하고 스케일이 큰 리더의 모습을 이제라도 제대로 보여줬으면 합니다. 시대마다 원하는 리더가 있습니다. 지금은 자기 소신이 있으면서 통 크게 포용하는 리더를 원하는 시대입니다.” ―내각의 인적 쇄신 작업은 잘되고 있다고 보십니까. “총선 후 인적 쇄신은 기초적인 부분입니다. 인선이 중요한 게 아니라 집권 여당으로서 3년 남은 기간에, 그리고 이런 정치 구도 아래에서 어떤 방향으로 국정을 이끌 것인가, 어떤 목표를 가지고 갈 것인가 방향 설정을 먼저 해야 합니다. 지금 사람 구하는 데 우왕좌왕하는 모습들을 보면서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총리 인선,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번에 이재명 대표 회담 때 야당에 ‘총리로 좋은 분을 추천해 달라’고 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일부 장관직도 민주당이 추천해주면 그분 모시고 국정 같이 잘 해볼 테니 좋은 의견을 달라고 하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통 큰 윤 대통령의 리더십을 보여줬으면 합니다.” 3시간 가까이 이어진 인터뷰에서 그는 ‘반성’과 ‘미래’를 수차례 언급했다. “국민의 눈높이에 맞추지 못한 부분들에 대한 처절한 반성, 그리고 앞으로 3년을 어떻게 가겠다고 하는 미래에 대한 비전의 부재”가 ‘위기의 여권’을 진단하는 그의 핵심 키워드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는 “집권 2년이 됐으니까 이번 선거는 심판적인 성격을 띨 수밖에 없었다”며 “이제라도 받아들일 것은 겸허히 받아들이고, 여당이 보여줄 수 있는 미래를 구체적으로 제시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국정 동력 상실은 국가와 국민에게 큰 손실입니다. 앞으로 더 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홍성=길진균 논설위원 leon@donga.com신광영 논설위원 le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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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년생부터 평생 담배 못 사” 英 초강력 금연법 논란[횡설수설/신광영]

    올해 15세인 2009년생부터는 평생 담배를 살 수 없도록 한 초강력 금연법이 최근 영국 하원에서 1차 표결을 통과했다. 리시 수낵 총리가 추진한 법인데 여당인 보수당 의원들은 대거 반대하거나 기권하고 야당인 노동당이 압도적으로 찬성했다. 노동당은 “보건정책의 획기적인 진전”이라고 평가한 반면 보수당에선 “개인 자유를 침해하는, 보수당답지 않은 정책”이란 비판이 거세다. 리즈 트러스 전 총리는 작심 발언을 했다. “국가가 시민의 일거수일투족을 간섭해선 안 된다. 경찰국가를 넘어 유모국가로 가자는 것인가.” ▷‘비흡연 세대법’이라고 불리는 이 법은 2009년생이 담배 구입 가능 연령(18세)이 되는 2027년부터 허용 연령을 한 살씩 올려 평생 못 사게 막자는 것이다. 흡연자를 처벌하는 건 아니고, 담배를 판 상인에게 벌금을 물리는 방식이다. 영국에서는 무상의료 시스템이 흡연으로 인한 질병을 치료하느라 과부하에 걸리면서 강력한 금연법이 필요하다는 여론이 커져 왔다. 이런 목적으로 쓰이는 예산이 연간 28조 원에 달한다고 한다. 이 돈을 의사 채용과 병상 확충에 쓰면 다른 환자들이 의사를 기다리는 기간을 단축할 수 있어 금연법에 대한 서민들이 지지가 높다. ▷수낵 총리는 술 담배를 하지 않고 일주일에 하루는 금식할 정도로 자기관리에 철저한 정치인으로 알려져 있다. 그가 단지 건강에 대한 소신 때문에 여당의 반대를 무릅쓰고 금연법을 밀어붙이는 건 아니다. 사회복지 축소와 부자 감세 등 반서민 정책을 무리하게 추진하다 영국 역사상 최단기(44일)로 물러난 전임자(트러스 전 총리)의 실책이 그의 결단에 한몫을 했다. 게다가 야당인 노동당(45%)에 대한 국민의 지지율이 보수당(26%)보다 크게 높다 보니 중도·서민층의 지지를 얻으려는 목적도 있어 보인다. ▷이번 금연법이 발효되려면 하원의 최종 표결에 이어 상원까지 통과해야 한다. 작은 정부와 자유방임주의를 표방해온 보수당의 반대가 만만찮아 시행을 장담하긴 이르다. 흡연을 통제하면 담배 암시장이 난립하고, 전자담배 수요만 자극할 것이란 우려도 많다. 뉴질랜드 진보의 아이콘인 저신다 아던 전 총리(노동당)도 같은 내용의 금연법을 추진했지만 지난해 보수당으로 정권이 넘어간 뒤 법이 폐기될 위기에 놓였다. ▷“(시가 애호가였던) 윈스턴 처칠 전 총리를 배출한 보수당이 담배를 금지하려 한다니 미친 짓이다.” 보리스 존슨 전 총리는 수낵 총리를 저격하며 처칠을 소환했다. 처칠은 “나는 시가를 피우지 않는 사람을 믿을 수 없다. 시가는 생각의 동반자이자 실패의 위로자”란 말을 남길 정도로 골초였다. 하지만 그는 오랜 흡연으로 인해 폐질환과 고혈압에 시달리다가 뇌졸중으로 사망했다. 처칠의 경우는 금연법 도입의 필요성을 보여주는 반증이기도 하다. 신광영 논설위원 neo@donga.com}

    • 2024-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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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신광영]‘국왕도, 며느리도 암’ 신비주의 포기한 英 왕실

    영국 윌리엄 왕세자의 부인 캐서린 왕세자빈(42)은 영국인들에게 왕실의 완벽함을 상징해온 인물이다. 캐서린은 6년 전 셋째인 루이 왕자를 낳은 날 출산 7시간 만에 빨간색 드레스에 하이힐 차림으로 병원을 나와 시민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첫째 조지 왕자, 둘째 샬럿 공주가 태어난 날에도 캐서린은 말끔하게 단장한 모습으로 등장해 로열 베이비를 건강하게 출산한 세손빈으로서 대중의 기대에 부응했다. ▷하지만 그가 22일 소셜미디어에 올린 영상메시지는 영국은 물론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1월 복부 수술 후 검사에서 암이 발견돼 화학치료를 받고 있다.” 암의 종류나 단계를 밝히진 않았지만 암 진단 사실을 직접 공개한 것이다. 올 들어 공개 석상에서 자취를 감춘 캐서린을 둘러싸고 최근 가족사진 편집 논란이 확산되며 건강 위중설, 부부 불화설 등 온갖 루머가 돌던 와중에 나온 발표였다. ▷왕실 인사들의 건강 상태를 공개하는 건 오래전부터 왕실의 금기였다. 약한 군주로 비쳐 외세 침략의 빌미가 될 수 있고, 대내적으론 민심의 혼란을 부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왕실의 신비주의가 그런 명분으로 유지됐다. ‘군주제는 대낮의 햇빛을 받으면 마법이 사라진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1948년과 1950년 임신을 했을 때 왕실은 “여왕이 흥미로운 상태(interesting condition)에 있다”고만 했고, 여왕의 어머니가 1960년대 암을 앓았던 사실도 40년 뒤에야 전기 작가를 통해 알려졌다. ▷찰스 3세 영국 국왕이 지난달 암 투병 사실을 공개했을 때 역사학자들이 “다른 군주들은 엄두를 내지 못했던 일”이라고 평가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이 발표가 나온 데에는 국민들이 왕족의 일거수일투족에 현미경을 들이대고, 왕실의 치부가 소셜미디어를 통해 순식간에 확산되는 환경에서 암을 숨기는 게 불가능하다는 판단도 작용했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서거 이후 군주제 지지 여론이 약화되면서 “불평도 하지 않고, 설명도 하지 않는다”는 왕실의 오랜 방침을 고수하기도 어려워졌다. 캐서린 왕세자빈 역시 암 치료를 받는 병원의 직원들이 자신의 의료기록에 접근한 사실이 알려지자 결국 카메라 앞에서 서게 됐다는 분석이 많다. ▷왕실 신비주의가 통하기 어려운 요즘 왕족들은 사치와 안락함을 누리는 대가로 대중의 동경과 비난을 한 몸에 받는 공적인 존재가 됐다. SNS 시대에 왕관의 무게를 견딘다는 건 사생활의 자유를 내려놓아야 한다는 것도 포함한다. 다만 산악자전거를 타고 럭비를 즐길 정도로 건강했던 캐서린 왕세자빈의 부쩍 수척해진 얼굴은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만들어진 이미지의 완벽한 왕실보다 국왕과 며느리가 줄줄이 암 치료를 받게 된 진솔한 모습의 왕실을 응원하는 사람들이 더 많을 것이다. 신광영 논설위원 neo@donga.com}

    • 2024-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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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이든의 ‘자학 개그’ [횡설수설/신광영]

    16일 오후 10시 미국 워싱턴 그랜드하이엇호텔에서 열린 만찬 무대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올라섰다. 바이든은 시계를 힐끔 보며 말문을 열었다. “내 취침 시간보다 6시간이나 지났네요(Six hours past my bedtime).” 좌중에서 폭소가 터졌다. 82세인 그의 재선 도전에 고령 논란이 커지자 ‘자학 개그’로 받아친 것이었다. 바이든은 이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78)을 겨냥했다. “민주당과 공화당 대선 후보가 정해졌는데 한 명은 너무 늙은 데다 정신적으로 문제가 많다. 다른 한 명이 바로 나다.” ▷이날 행사는 미국 중견 언론인들이 대통령 등 권력자들을 초청해 격의 없이 소통하는 ‘그리드아이언(Gridiron)’ 만찬이다. 1885년 시작된 이후 역대 대통령 대부분이 초청됐다. 세계 초강대국 지도자인 미국 대통령도 이때만큼은 ‘최고 폭소 책임자(CFO·Chief Fun Officer)’로서 면모를 드러내는 게 중요하다. 잘만 하면 야당과 국민들의 경계심을 누그러뜨리고 전세를 반전시킬 기회로 만들 수 있다. ▷“오늘밤, 사상 최초로 저의 출생 비디오를 공개합니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2011년 이 만찬에서 중대 발표를 했다. 당시 트럼프 등 보수 인사들이 오바마 출생지 의혹을 제기하며 오바마는 아프리카 케냐에서 태어나 선거법상 대통령 자격이 없다고 주장하던 때였다. 오바마의 엄중한 표정에 만찬장에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곧 대형 화면에 영상이 재생됐다. 아프리카 평원에서 새끼 사자가 태어나는 디즈니 애니메이션 라이온 킹의 한 장면이었다. 배꼽을 잡는 참석자들 사이에서 트럼프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 후 7년 뒤인 2018년 트럼프 역시 같은 무대에 섰다. 행사 며칠 전 사위인 재러드 쿠슈너 당시 백악관 선임고문이 족벌정치 논란 끝에 기밀 접근권을 박탈당했는데 트럼프는 이를 빗대 인사말을 했다. “늦게 와서 미안합니다. 사위가 보안 검사를 통과하지 못해 오래 걸렸네요.” 트럼프는 당시 참모들의 연이은 사퇴에 대해 “요즘 백악관을 떠나는 사람들이 정말 많다. 다음은 누굴까. 멜라니아(영부인)일까”라고 농담을 하기도 했다. ▷마이크만 들고 서서 말로 관객을 웃기는 스탠드업 코미디는 미국에서 웬만한 가수 콘서트 못지않은 인기 공연이다. 이런 문화가 정치에도 투영돼 유머감각은 정치인의 자질 중 하나로 평가된다. 미 대선에서도 “내가 낙선하면 피바다가 될 것(트럼프)” “트럼프는 히틀러 앵무새(바이든)” 같은 험한 말들이 오가지만 가끔 등장하는 자학 개그는 격해진 긴장을 풀어주는 순기능이 있다. 상대의 정곡을 찌르고 유권자의 공감을 얻는 데도 촌철살인이 담긴 유머는 위력을 발휘한다. 우리 정치에도 다 같이 빵 터지는 순간들이 많아지면 막말과 혐오의 언어가 조금은 줄어들 것이다. 신광영 논설위원 neo@donga.com}

    • 2024-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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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신광영]테라 권도형 한국 온다니 “미국으로 보내라”는 피해자들

    유럽 발칸반도 소국인 몬테네그로 법원이 가상자산 테라·루나 폭락 사태 주범인 테라폼랩스 대표 권도형 씨를 미국으로 인도하라고 했다가 최근 항소심에서 이를 뒤집고 한국 송환을 결정했다. 국내 피해자만 20만 명이 넘어 다행스러운 소식 같지만 “차라리 미국으로 보내라”는 피해자가 적지 않다. 적은 돈이나마 보상받기 위해 어렵게 민사소송을 하느니 권 씨가 미국 감옥에 평생 갇혀 죗값이라도 치르게 하고 싶다는 것이다. ▷권 씨는 현지 법원에 한국에서 재판받게 해달라고 요구해 왔다. 그래야 빠져나갈 구멍이 많다고 본 것인데 틀린 계산이 아니다. 그를 자본시장법상 사기 거래로 처벌하려면 코인도 주식 같은 증권에 해당한다는 전제가 필요하지만 우리는 코인의 증권성에 대한 판단을 정립하지 못한 상태다. 다행히 유죄 판결이 난다고 해도 처벌에 한계가 있다. 우리는 여러 혐의가 유죄여도 가장 무거운 혐의에 대한 형량의 2분의 1까지만 가중할 수 있다. 현재까지 경제사범의 최대 형량은 40년이다. 반면 개별 혐의별 형량을 모두 합산하는 미국에선 100년형도 가능하다. 게다가 미국은 루나·테라 코인을 이미 증권으로 간주해 이익환수 소송을 진행 중이다. ▷글로벌 무대의 범죄자들에게 미국 사법체계는 재앙 그 자체다. 세계 최대 아동 성착취물 사이트를 운영한 손정우도 2020년 미국이 우리 법원에 범죄인 인도 요청을 해오자 미국행을 필사적으로 회피했다. 당시 손정우를 종신형까지 선고될 수 있는 미국으로 보내자는 여론이 들끓자 그의 아버지는 아들이 불법 계좌를 만들어 범죄수익을 은폐했다며 고소했다. 그로 인한 추가 수사와 재판이 이어지며 그의 미국 인도는 불발됐다. 손정우는 성착취 관련 혐의로는 1년 6개월을 선고받는 데 그쳤다. ▷권 씨가 한국으로 올 경우 그의 ‘법원 쇼핑’은 성공하는 셈이 된다. 그러니 그를 미국으로 보내 평생 감옥에 둬야 한다는 주장이 나올 법도 하다. 다만 피해자 중 일부라도 피해 보전을 받으려면 우리 사법체계로 그를 단죄해야 한다. 검찰은 지난해 서울 성동구 성수동 고급 주상복합을 포함해 권 씨의 국내 자산 2300억 원을 추징·보전해 놓은 상태다. 미국이 추산한 전 세계 테라 사기 피해액 52조 원에는 크게 못 미치지만 소액이나마 보상을 기대할 순 있다. ▷우리 손으로 테라 사건을 처리하다 보면 ‘제2의 권도형’을 막을 법과 제도를 정비할 계기를 만들 수도 있다. 루나·테라는 가치가 ‘0원’으로 완전히 증발하면서 피해가 명확해졌지만 일부 코인의 경우 사기성 투자 권유나 은밀한 시세 조종이 벌어지는데도 아직 피해가 구체화되지 않은 사례들이 있다. 권 씨를 수사하고 재판하면서 규제 공백을 뼈저리게 실감하고 가상자산 관련 제도를 촘촘히 보완할 수 있다면 우리에게 기회가 될 수 있다.신광영 논설위원 neo@donga.com}

    • 2024-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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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신광영]“태아 성별과 낙태는 무관”… 이젠 여아 선호가 걱정?

    우리나라 산부인과 진료실에선 의사와 예비 부모들 사이에서 선문답 같은 알쏭달쏭한 대화가 흔히 오간다. 초음파 검사를 하다가 뜬금없이 아기 옷은 무슨 색깔이 좋을지, 어떤 장난감을 준비할지 등을 묻는 식이다. 서구에선 임신 4, 5개월쯤 의사가 태아 성별을 알려주고 부모는 이를 기념하는 성별 공개 파티를 열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는 임신 32주까진 의료진이 태아 성별을 알릴 수 없게 한 법조항 때문에 부모들이 눈치껏 성별을 알아채야 한다. ▷이 법이 최근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판정을 받았다. 37년 전 제정 당시 팽배했던 남아 선호 사상이 확연히 퇴조했고, 대부분의 낙태가 성별을 알지 못하는 임신 10주차 전에 이뤄진다는 게 주된 이유다. 다만 재판관 9명 중 3명은 성별 공개에 신중해야 한다는 소수의견을 냈다. ‘남아 선호가 아니더라도 부모가 원하는 성별로 자녀를 한 명만 낳으려 할 경우 성별에 따라 낙태가 이뤄질 개연성이 있다.’ 여아 선호로 인한 낙태 가능성 역시 우려된다는 취지다. ▷재판관들은 여아 선호를 보여주는 각종 여론조사 결과를 비중 있게 인용했다. 지난해 조사에서 응답자 중 59%는 ‘딸이 하나는 있어야 한다’고 답했는데 ‘아들이 하나는 있어야 한다’는 응답은 절반 수준인 34%에 그쳤다. 딸이 하나는 있어야 한다는 답변은 모든 연령대에서 아들보다 더 높게 나왔다. ▷여아 선호 현상은 자녀를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과거에 자식은 가계에 기여할 노동력이자 부모의 노후 대책 성격이 강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딸보단 아들이 유리했을 것이다. 하지만 자녀 양육이 ‘고비용’ 그 자체인 요즘엔 그런 공식이 적용되기 어렵다. 여성의 경제활동이 활발해지면서 직장을 포기하고 육아만 할 경우 기회비용이 일단 크다. 대학 졸업 후에도 안정적인 직장을 못 잡고 부모에게 얹혀사는 자녀가 많다. 자녀의 경제력은 부모 세대를 넘어서기 어렵고, 노후 돌봄은 자녀가 아닌 국가의 몫으로 옮겨가고 있다. ▷요즘 부모들이 자식에게 기대하는 가치는 정서적 친밀감이다. 키울 때 애교가 많고, 노후엔 부모를 살뜰히 챙기는 건 아들보단 딸인 경우가 많다. 딸은 정서적인 면에서 평생 보험이란 말도 있다. 또 맞벌이 부부들 중에는 “육아에 할애할 시간과 자원이 부족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부모 말에 잘 따르고 빨리 철드는 딸을 선호하게 된다”고 말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인구 전문가들은 남아를 선호했던 나라 중에 한국처럼 급격하게 여아 선호로 바뀐 사례를 찾기 힘들다고 한다. 최근 여아 선호 현상은 저성장, 청년실업, 열악한 육아 환경 등 우리의 고질적 문제와 연결돼 있어 ‘한국적 현상’으로도 볼 수 있다. 해결 기미가 잘 보이지 않는 문제들인 만큼 태아 성별 공개를 무작정 허용해선 안 된다는 헌재 재판관들의 소수의견도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다.신광영 논설위원 neo@donga.com}

    • 2024-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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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신광영] “손잡고 떠납니다” 네덜란드 前 총리 부부의 동반 안락사

    “부부가 둘 다 많이 아팠고, 서로 혼자서는 떠날 수 없었다.” 드리스 판 아흐트 전 네덜란드 총리가 세운 연구재단은 최근 판 아흐트 전 총리 부부의 부고를 이렇게 전했다. 1950년대 대학 캠퍼스 커플로 만나 70년을 해로한 두 사람은 한날한시에 안락사로 생을 마감했다. 93세 동갑내기인 부부는 마지막 순간까지 손을 맞잡고 있었다고 한다. 판 아흐트 전 총리는 2019년 뇌졸중으로 쓰러진 뒤 회복하지 못했고 부인 역시 지병 끝에 동반 안락사를 선택했다. ▷세계 최초로 안락사를 합법화한 네덜란드에서 2022년 안락사를 택한 사람은 8700여 명이다. 이 중 동반 안락사는 58명(29쌍)으로 드문 편이다. 다만 2020년 26명, 2021년 32명으로 많아지는 추세다. 우리는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중단하는 소극적 안락사만 허용하지만 해외에선 의사가 약물 투여 등으로 환자를 죽게 하는 적극적 안락사, 의사 도움을 받아 환자 스스로 목숨을 끊는 조력자살을 허용하는 곳이 적지 않다. ▷안락사가 생명의 존엄성을 훼손하는지를 두고 찬반이 팽팽하지만 존엄하게 죽을 권리를 인간의 기본권으로 인정하는 나라는 꾸준히 늘고 있다. 삶은 선물이지만 버리고 싶을 때 버리지 못한다면 짐이란 인식이 커지는 것이다.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2015년 안락사를 허용하며 법 이름을 ‘생명종결 선택권법(End of Life Option Act)’이라고 지었다. 엄격한 가톨릭 국가인 스페인도 2021년 안락사와 조력자살을 합법화했다. 타인이 목숨을 끊도록 도우면 최대 징역 10년형에 처하도록 했던 스페인의 전향적인 변화였다. ▷하지만 안락사 허용 국가에서도 환자가 자칫 안락사로 내몰리는 등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네덜란드에서 안락사 심사위원회가 열릴 때면 완화치료 등 대안이 없는지를 두고 격론이 벌어진다고 한다. 또 악용 가능성에 대비해 안락사 허용 결정까지 3중, 4중의 안전장치를 두는 나라가 대부분이다. 환자의 고통이 심각하고, 회복할 가망이 전혀 없으며, 의료적 대안이 없어야 하는 건 기본이다. 환자가 자발적으로 한 선택인지, 복수의 의사와 여러 번 면담하면서 결심이 일관되게 유지되는지도 확인하도록 한다. ▷우리나라는 죽음을 드러내놓고 얘기하기를 꺼려 왔지만 세계에서 가장 빠른 고령화가 진행 중인 탓인지 인식 전환도 빠르다. 2021년 서울대병원 조사에서 국민 76%가 안락사 또는 의사 조력자살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5년 전 조사 때 찬성률(41%)보다 거의 두 배로 뛴 것이다. 조력자살이 합법인 스위스 국민의 찬성률(81%)과 별 차이가 나지 않는다. 2022년 국회에서 존엄조력사법이 발의된 것도 이런 변화가 반영된 것이다. 죽음의 격에 대한 논의를 더 이상 미루기 힘든 때가 오고 있는 것 같다.신광영 논설위원 neo@donga.com}

    • 2024-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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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신광영]의사 형사책임 면제, 기울어진 운동장 더 쏠릴 우려

    서울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중환자실장이던 조수진 교수는 2017년 신생아 4명이 사망한 사건의 책임자로 지목돼 구속됐다. 사건 1년 전 소아과 분야 세계 3대 인명사전에 등재되는 영광을 누렸지만 의료사고로 한순간에 피고인이 됐다. 신생아들에게 오염된 영양제가 투여되는 과정에서 주의의무를 소홀히 한 혐의(업무상 과실치사)였다. 법원은 병원 측의 감염 관리 부실을 인정하면서도 의료진에게 형사책임을 묻긴 어렵다고 판결해 유족들이 크게 반발했다. 무죄로 결론 나긴 했지만 재판이 끝나기까진 5년이 걸렸다. 의료계는 이 사건으로 의대생들의 소아과 기피 현상이 더 심해졌다고 주장한다. ▷의료사고 형사책임 감경은 의사들의 숙원이다. 특히 소아과 산부인과 응급의학 등 필수 분야로 의사들이 오지 않는 건 열악한 근무 환경 외에도 소송 리스크가 주요 이유다. 정부가 최근 의료사고 시 의사에 대한 형사기소를 면제해주는 특례법을 추진하고 나선 것은 의사 증원에 따른 의료계 반발을 달래려는 목적이 있다. 이 법은 의사가 종합보험이나 공제조합에 가입해 의료사고 피해자에게 보상할 수 있다면 공소 제기를 할 수 없도록 한 게 핵심이다. ▷의료사고처리 특례법은 교통사고처리 특례법을 벤치마킹한 것이다. 운전자에게 자동차보험을 의무화하되 음주운전 등 중과실 외에는 인명 피해를 내더라도 형사처벌을 줄여주는 법이다. 의료행위는 운전과 비슷하게 사고 위험이 늘 있는데 실수로 낸 사고라면 피해자 배상에 집중하고 처벌은 최소화하자는 취지다. 하지만 두 법 사이엔 중대한 차이가 있다. 교통사고 특례법은 운전자에게 잘못이 있다고 전제하고 불가피한 사고였다면 운전자가 입증하도록 한 반면, 의료사고 특례법은 환자가 의사의 과실을 입증해야 한다. ▷현재 의료소송은 심각한 정보 비대칭에도 불구하고 환자가 의사 과실을 입증하도록 해 환자에게 크게 불리하다. 이런 상황에서 의사에게 형사 면책까지 주어지면 법의 저울은 의사 쪽으로 완전히 쏠릴 수 있다. 정부는 필수의료는 물론, 성형·미용 분야에도 특례법 적용을 논의하겠다는 입장인데 의료사고가 특히 많은 성형수술까지도 의사에게 ‘면책특권’이 주어지면 환자들은 무방비로 의사에게 생명을 맡겨야 하는 처지에 놓인다. ▷의료사고에 형사처벌이 능사는 아니다. 의사들이 사고 위험이 높은 환자들을 애초에 포기하는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하지만 의사의 리스크를 줄여준다는 명목으로 환자 방어권을 외면해서도 안 된다. 영미법계에 있는 ‘사과법(apology law)’을 도입해 의료분쟁 자체를 줄이려는 노력도 필요하다. 의료사고 시 의사가 환자 측에 적극적으로 상황을 설명하고 사과해도 소송에서 불리한 증거로 활용되는 걸 막아주는 법인데 이 법 도입 이후 소송으로 가는 비율이 확 줄었다고 한다.신광영 논설위원 neo@donga.com}

    • 2024-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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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태원 참사, 수사로 진상조사를 대체할 순 없다[수요논점/신광영]

    《금요일인 26일 저녁 서울 이태원 해밀톤호텔 옆 골목은 한산했다. “여기가 맞아?” “이렇게 좁았다고?” 골목 앞에서 두리번거리던 두 여성은 바닥에 ‘10·29 기억과 안전의 길’이라고 쓰인 동판을 발견하고는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군복 차림으로 혼자 온 20대 남성은 골목 한가운데를 몇 분간 서성였다. 사건이 나던 날 입대를 며칠 앞두고 송별회를 하러 이 골목을 지나갔다고 했다.그는 골목의 경사 구간에서 한참을 맴돌았다. 성인 4명이 나란히 설 수 있을 정도인 폭 3.2m에 길이 10m 남짓한 공간(10평)이었다. 그날 밤 이 10평 안에서만 300여 명이 겹겹이 짓눌렸다. 사망자 159명 중 대부분이 거기서 숨을 거뒀다. 시신들이 수습된 뒤 골목에는 주인 잃은 휴대전화 수십 대가 밤새 울렸다. 이태원 핼러윈 참사 이후 1년 3개월이 흘렀다. 우리는 얼마나 더 안전해졌을까. 그 많은 죽음을 왜 막지 못했는지 이제는 답을 발견한 것일까.》●현장 달라졌지만 땜질처방 우려 주말인 28일 오후 7시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있는 U강남도시관제센터를 찾았다. 강남역 등 관내 인파 밀집지역을 비추는 폐쇄회로(CC)TV 화면이 10여 개 띄워져 있었다. 인파가 많이 모이는 120곳의 실시간 상황을 볼 수 있고 3.3㎡(1평)당 1명 이상이 감지되면 ‘주의’ 알람이 울리도록 설정돼 있다. 행정안전부가 이달부터 일부 지자체에 도입한 인파관리 시스템이다. 서울시도 이동통신 3사로부터 기지국 접속 정보를 제공받아 휴대전화 사용자 수를 추정해 인파 밀집 정도를 파악하는 시스템을 도입했다. 민상현 강남구 도시관제팀장은 “운영한 지 한 달쯤 됐는데 ‘주의’ 표시가 뜨는 상황은 아직 발생하지 않았다”고 했다. 경찰 112상황실에도 인파 밀집 신고에 적극 대응하라는 지침이 내려진 상태다. 서울경찰청 관계자는 “요즘은 사람이 몰린다는 신고가 들어오면 바로 출동해 요란할 정도로 조치한다. 적어도 이태원 같은 압사 사건이 재발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사건 당시 핼러윈처럼 주최자가 없는 행사의 경우 안전관리 주체가 모호하다는 지적이 일었는데 이를 반영해 지자체장이 책임지도록 하는 재난안전관리법이 지난해 12월 8일 국회를 통과하기도 했다. 이태원 사건 이후 현장에서는 조금씩 변화가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정부의 이 같은 대책들이 이태원 사건의 종합적인 원인 진단을 거쳐 도출한 방안인지에 대해선 아직 의문이 많다. 사건 발생 후 국회 국정조사가 진행됐고, 경찰 특별수사본부와 검찰 수사가 완료됐지만 참사 현장에서 제기된 핵심적 질문들에 대한 답은 명쾌히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유족과 생존자들이 제기하는 이 질문들은 안전관리 부실 그 자체보다 안전관리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은 원인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태원에 핼러윈 인파가 심각하게 몰릴 것으로 예상돼 현장 통제가 필요하다는 사전 논의와 내부 보고가 여러 차례 있었는데도 왜 관할 지자체와 경찰·소방은 대비하지 않았는지, 참사 시작 4시간 전부터 압사당할 것 같다는 112 신고가 11건이나 들어왔고 최고 긴급 단계인 ‘코드0’으로 분류됐음에도 왜 조치가 없었는지는 구체적인 경위가 확인되지 않았다. 용산경찰서가 서울경찰청에 했던 기동대 지원 요청이 묵살된 과정, 용산서장이 참사 시작 40분 전 상황 보고를 받고도 도보 10분 거리인 사건 현장을 앞에 두고 왜 관용차에서 50분이나 허비했는지도 정확히 드러난 게 없다.●수사 목적 실체 규명의 한계 윤석열 대통령은 30일 이태원 사건의 진상을 밝힐 특별조사위원회를 설치하는 내용의 ‘이태원 참사 특별법’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했다. 검경 수사가 끝난 상황에서 추가 조사의 필요성이 없고 불필요한 정쟁을 야기할 것이란 이유에서였다. 이미 수사가 이뤄졌으니 그것으로 실체 규명이 충분히 됐다는 취지다. 하지만 대형 참사 처리에 있어 수사 중심의 접근은 한계가 뚜렷하다. 수사는 수사 대상이 될 만한 일부 개인의 행위가 형법에 위반되는지를 확인할 뿐 사건을 야기한 원천적 환경과 구조 등을 총체적으로 규명하진 않기 때문이다. 수사를 통한 사건의 재구성은 불법행위를 입증할 증거를 중심으로 관련 법리에 부합하는지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에 제한적이고 파편적일 수밖에 없다. ‘재발 방지’라는 일관된 관점을 유지하면서 참사의 시작과 끝을 촘촘히 밝히려면 정부나 정치권의 입김에서 독립된 전문가 중심의 진상조사가 필요하다. 이런 절차 없이 사건 원인을 피상적으로 진단해 내놓은 대책은 땜질처방에 그치기 쉽다. 이태원 사건 관련 후속 조치에 관여한 경찰 관계자는 “이태원 관련 의사결정자들이 만약 ‘세월호 같은 여객선이 침몰할 것 같다’는 보고를 받았다면 철저히 대비하고 조치했을 것이다. 압사라는 경험해 보지 못한 위험을 상정하지 못해 일을 그르친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이어 “단순히 인파 관리를 잘하라거나 특정 기관에 ‘앞으론 너희가 책임지라’는 식의 1차원적인 대응으로는 제2, 제3의 참사를 막기 어렵다. 이태원 때와는 다른 새로운 위험을 예민하게 인지하고 막을 수 있는 포괄적인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했다.●참사 후 진상조사 제도화한 선진국들 이태원 참사 희생자 159명 중 외국인 희생자는 26명에 달한다. 미국 영화사 파라마운트가 최근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를 통해 공개한 다큐멘터리 ‘크러시(Crush)’에는 외국인 희생자 유족들의 목소리가 생생히 담겨 있다. 이들은 한국 정부의 무책임한 사후 대응에 큰 충격을 받았다고 입을 모은다. 한국 같은 선진국에서 이런 대참사가 벌어졌는데 국가 차원의 진상조사도 이뤄지지 않고 유족들에게 정확한 사건 경위를 설명하지 않는 게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말이다. 대부분의 선진국은 대형 참사가 벌어지면 형사 처벌을 위한 수사와 별개로 전문가가 중심이 된 진상조사위원회를 꾸린다. 1989년 축구장에서 관람객 97명이 압사한 힐즈버러 사건을 겪은 영국은 대규모 인명사고 후에는 공적 조사위원회가 자동 구성되도록 제도화했다. 힐즈버러 사건 생존자이자 재난관리 전문가인 앤 에어 박사는 “진상조사는 공개 조사와 사인 규명, 범죄 수사 등 세 가지 축의 절차가 상호 보완하며 이뤄져야 사건 전체를 규명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호주도 대형 재난이 발생하면 진상 규명을 위한 왕립위원회가 곧바로 구성된다. 2009년 산불이 빅토리아 지역 600곳으로 번져 173명이 사망한 사건이 나자 2주 만에 조사위원회가 꾸려졌고 이후 1년 5개월에 걸쳐 조사가 이뤄졌다. 진상조사를 할지 말지를 두고 소모적 논란을 벌이기보다 지체 없이 조사에 착수해 충분한 기간 동안 다각도로 살핀다. 이태원 사건의 유사 사례로 거론되는 2001년 일본 효고현 아카시시 ‘불꽃축제’ 압사 사고 때도 관할 지자체는 위기관리, 방재, 구급의학 등 각 분야 민간 전문가로 구성된 조사위원회를 설치해 7개월간 조사를 벌였다. 조사는 사전 준비가 왜 부족했고, 위험이 예상되는데도 경찰과 지자체 간 협의가 왜 이뤄지지 않았는지 등에 집중됐다. 재발을 막을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대안은 진상조사를 통해 사건의 구조적 원인이 특정될 때 도출할 수 있다. 효고현 경찰이 만든 인파 경비 매뉴얼에는 “초등학생도 알 수 있게 쉬운 말을 쓰고, 문장을 45자 전후로 짧게 쓰며, 복문을 쓰지 말고 영어처럼 결론부터 말하라”는 등의 현장 밀착형 대응 요령이 담겼다. 일본항공(JAL) 여객기가 2일 하네다 공항 활주로에서 다른 항공기와 충돌했을 때 승무원들의 기민한 대처로 전원 생존한 것도 40년 전 대형 추락사건 이후 철저한 조사를 바탕으로 ‘피로 쓴 매뉴얼’을 만들고 훈련했기 때문이다. 영국의 긴급구조 시스템, 미국의 국가테러방지센터 등도 각각 힐즈버러 사건, 9·11테러 같은 대형 참사 후 구성된 진상조사위원회의 권고에 따라 국가 대응 체계를 개선한 사례들이다.●사후 대응 선진 프로토콜 만들어야 이태원 참사는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게 대형 인명사고에 공정하고 전문적으로 대처하는 선진적인 프로토콜을 만드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세월호 사건 이후 10년 가까이 이어져 온 진통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미룰 수 없는 과제다. 해외에서도 진상조사위원회 구성과 권한을 두고는 정치적 논쟁이 벌어지곤 한다. 특별법이 국회로 되돌아오면 여야가 조사위의 독립성과 공정성을 높이는 쪽으로 추가 협상을 해서라도 이태원 참사의 실체를 밝힐 기회를 다시 만들어야 한다. 신광영 논설위원 neo@donga.com}

    • 2024-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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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신광영]“몇초만 기다렸다 건너세요” 빨간 숫자 보행 신호등

    횡단보도 녹색불이 켜질 때 몇 초가 남았는지 알려주는 신호등은 한 ‘딸바보’ 아빠의 교통사고에서 시작됐다. 1998년의 일이다. 아버지와 여섯 살 딸이 횡단보도에서 녹색등이 깜박이는 걸 보고 함께 뛰어 건너는데 갑자기 빨간불로 바뀌었다. 그 순간 승용차가 횡단보도로 달려들어 딸을 치었다. 중상을 입은 딸에게 전자부품 회사에 다니던 아버지는 약속했다. 보행 가능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 숫자로 표시해 주는 신호등을 만들겠다고. 그 후 6년 뒤 경찰청은 그가 만든 신호등을 도입했다. 그의 딸이 다니던 초등학교 앞에 맨 먼저 설치됐다. ▷올 들어 서울 도심 횡단보도에는 빨간불의 잔여 시간이 표시되는 신호등이 등장했다. 녹색불 잔여 시간 표시가 건널 사람은 서두르고 아니면 다음 신호에 건너라는 메시지를 준다면 빨간불 시간 표시는 몇 초 뒤면 건널 수 있으니 조금만 기다리라고 보행자들을 다독인다. 빨간 숫자로 표시되는 잔여 시간은 99초부터 시작해 6초까지 줄어든다. 마지막 5초는 표시되지 않는다. 보행자들이 1, 2초를 남겨 두고 예측 출발을 하면 미처 횡단보도를 벗어나지 못한 차량에 치일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시가 올해 350곳에 설치 예정인 이 신호등이 전국 최초로 시행된 곳은 경기 의정부시다. 도입 6개월 만인 지난해 초 효과 조사를 해보니 보행자 교통사고가 3분의 1로 줄었다. 시민들도 10명 중 9명이 환영했다. “무단횡단을 자제하게 된다” “아이들 인내심 교육에 유용하다”는 반응이 많았다. 민간에서도 이런 시도가 일찌감치 시작됐다. 티맵이나 카카오내비 같은 자동차 내비게이션 앱은 서울 일부 지역을 지날 때 전방 300m 앞에서부터 신호등의 색상과 잔여 시간을 표시해 준다. ▷횡단보도 빨간불이 얼마나 남았는지 카운트다운 해주는 기능은 성격 급한 한국인에게 특화된 서비스 같지만 꼭 그렇진 않다. 미국 독일 일본에도 최근 도입되고 있다. 사람들에게 갈수록 시간이 귀해지는 공통적 시대상이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버스정류장이나 지하철역 전광판에는 분 단위로 특정된 도착 시간이 뜨고, TV나 유튜브 영상에 광고가 나올 때도 몇 초를 더 봐야 하는지가 화면에 표시된다. 잔여 시간 알림 기능이 여러 영역으로 확산되는 건 이용자들이 몇 분, 몇 초의 시간 동안 택할 수 있는 대안이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 ▷횡단보도 앞에서 20∼30초짜리 쇼츠 영상을 보는 보행자라면 적색등 잔여 시간 표시 장치가 특히 유용할 수 있다. 녹색불로 바뀔 때까지 남은 시간을 알아야 보던 영상을 잠시 멈출지, 아니면 마저 다 볼지를 판단할 수 있다. 요즘엔 횡단보도 보행자 대기선에 LED등이 켜지는 바닥신호등이 설치되고 있는데 이 역시 스마트폰 보느라 교통신호에 둔감한 ‘스몸비(스마트폰 좀비)들’이 늘어나는 세태를 보여 준다.신광영 논설위원 neo@donga.com}

    • 2024-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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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드라마 봤다고… 北 16세 소년에 12년 노동교화형 [횡설수설/신광영]

    북한의 한 야외경기장 무대에 16세 청소년 2명이 나란히 섰다. 이내 이들의 양손에 수갑이 채워졌다. 12년 노동교화형이 선고된 직후였다. 한국 드라마를 본 게 죄목이었다. 무대 뒤로 교복 차림의 학생 수백 명이 도열해 이 공개재판을 지켜봤다. 영국 BBC방송이 18일 탈북자 단체로부터 제공받아 보도한 영상 속 모습이다. 북한이 이념 교육용으로 2022년 제작한 이 영상에는 ‘썩은 꼭두각시 정권의 문화가 10대들에게 퍼졌다. 고작 16살인 이들은 스스로 미래를 망쳤다’는 내레이션이 흘렀다. ▷북한은 2020년 말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이란 무시무시한 법을 공포했다. 남한 영상물을 보거나 소지한 경우 5년 형이던 처벌을 15년 형으로 강화했다. 유포한 자는 사형이다. 미성년자도 예외가 아니다. “미드 보다 걸리면 뇌물을 주고 나올 수 있지만 한국 드라마 보다 걸리면 총살”이란 말이 탈북자들 사이에서 돌았다. ▷북한은 MZ세대가 K콘텐츠에 젖어드는 현 상황을 특히 경계한다. MZ세대가 기성 질서에 도전적인 건 북한이라고 다르지 않다. 이들은 ‘당이 있어 먹고 산다’는 부채의식으로부터 자유롭다. 장기간 기근 속에 성장해 김씨 백두혈통의 은덕이랄 것을 별로 누린 적이 없다. 생활용품은 상당수가 중국 암시장에서 온 것들이다. 거기에 섞여 들어온 남한 영상물을 보고 자라 선전선동이 쉽게 먹혀들지 않는다. 이들은 연인을 부를 때 ‘동지’ 대신 ‘오빠’ ‘자기’ ‘남친’ 같은 애칭도 곧잘 쓴다. 북한이 이런 남한 말투를 ‘핀셋 단속’ 하겠다고 나선 것도 오죽 불안하면 그럴까 싶다. ▷북한이 K콘텐츠에 늘 적대적이었던 건 아니다. 2018년 남측예술단이 평양 공연을 했을 때 걸그룹 레드벨벳은 환대를 받았다. 당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내가 레드벨벳을 보러 올지 관심들이 많았는데 원래 모레 오려다가 일정을 조정해서 오늘 왔다. 평양 시민들에게 이런 선물을 해줘 고맙다”고 했다. 하지만 이듬해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과의 하노이 회담이 틀어지고 경제가 악화 일로에 들어서면서 북한은 문화 장벽을 단단히 걸어 잠갔다. ▷“한국 드라마는 어려운 현실을 잠시나마 잊게 해주는 약”이라고 탈북자들은 전한다. 큰 희망을 갖긴 어려워도 소소한 재미와 세상에 대한 호기심만은 포기할 수 없는 북한 젊은이들에게 K콘텐츠는 뿌리치기 어려운 유혹이다. 이런 기본 욕구가 채워지지 않는 한 처벌을 아무리 세게 해도 효과는 오래가지 않을 것이다. 날로 무자비해지는 북한의 내부 단속은 남한의 ‘문화 침공’이 그만큼 두렵다는 자백이나 다름없다. 미국의 한 싱크탱크는 북한이 미사일을 쏠 때마다 ‘오징어게임’이나 BTS 뮤직비디오가 담긴 USB를 평양으로 날려 보내자는 의견을 내기도 했다. 당장 실현 가능성은 낮지만 북의 도발에 대한 응징 효과만은 확실해 보인다.신광영 논설위원 neo@donga.com}

    • 2024-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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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신광영]“입 안 데고 한국 컵라면 먹게 해달라” 푸틴 정적의 청원

    러시아에서 가장 악명 높은 감옥은 북극권 시베리아에 있는 제3교도소(IK-3)다. 면회가 어려운 건 물론 편지도 주고받기 힘들 정도로 외진 곳이다. 영구 동토층에 있어 겨울이면 영하 20도 밑으로 내려간다. ‘북극의 늑대’라고 불리는 이 감옥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최대 정적인 알렉세이 나발니(47)가 지난해 말 이감됐다. 푸틴이 올 3월 대선을 앞두고 야권의 구심점이 될 수 있는 나발니를 시베리아에 고립시킨 것이란 시각이 많다. ▷혹독한 옥중 투쟁 중인 나발니는 최근 제3교도소의 반인권 실태를 법원에 고발하며 한국의 컵라면 ‘도시락’을 언급했다. “판사님도 아십니까. 교도소 매점의 최고 인기 품목은 단연 도시락입니다. 라면에 뜨거운 물을 붓고 7∼10분을 기다려야 아주 맛있게 익는데 식사 시간이 제한돼 뜨거운 채로 빨리 먹느라 혀를 데었습니다. 행복해야 할 시간이 지옥으로 변했습니다.” 교도소 측이 수감자가 따뜻한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시간을 아침에 10분, 저녁에 15분으로 제한하고 있어 이를 없애 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시베리아 감옥에 갇힌 야권 지도자가 ‘도시락 먹을 자유’를 호소할 정도로 러시아에서 도시락의 인기는 대단하다. 컵라면의 현지 발음은 ‘다쉬락’이다. 우리나라에서 미원이 조미료의 대명사였듯, 러시아에선 도시락이 곧 컵라면이다. 컵라면 시장에서 도시락의 점유율은 62%에 달해 10년간 1위를 지키고 있다. 몇 년 전 초코파이가 러시아의 ‘국민 간식’으로 주목받은 데 이어 도시락이 ‘국민 라면’으로 자리 잡았다. 러시아는 해외 브랜드 중 샤넬, 아디다스, 펩시 등 유명 기업 220여 곳만 저명 상표로 등록해 줄 정도로 까다로운데 도시락은 그 틈을 비집고 저명 상표로도 인정받았다. ▷국토가 광활해 기차가 주요 교통수단인 러시아에선 휴대용 사각 용기에 수프를 담아 기차에 오르는 사람이 많다. 1994년 도시락이 러시아에 수출됐을 때 현지인들은 수프통과 비슷하게 생긴 직사각형 용기에 열광했다. 둥근 사발 모양 용기에 비해 가방에 넣기 편리하고 먹을 때 흔들림도 덜했다. 현지인 입맛에 맞게 국내에 없는 8가지 다양한 맛으로 출시한 전략도 주효했다. 2년 전 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된 후로는 전시 비축용으로 도시락을 사재기하는 러시아인도 많아졌다. ▷러시아 대법원은 식사 시간 제한을 폐지해 달라는 나발니의 청구를 결국 기각했다. 나발니가 러시아인들에게 친근한 ‘도시락’을 언급한 것을 두고 감옥에서도 국민들과 함께 호흡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려 한 것 아니냐는 해석도 있다. 사법부로선 푸틴의 눈엣가시인 나발니의 손을 들어주긴 어려웠을 것이다. 그가 입 델 걱정 없이 도시락을 즐기기 어렵게 돼 유감이지만 북극 교도소마저 녹이는 K푸드의 위력이 확인된 건 반가운 일이다.신광영 논설위원 neo@donga.com}

    • 2024-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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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신광영]“韓 젊은 남성 70만~80만, 韓 여성과 결혼 힘들 것”

    요즘 출산을 앞둔 부부들 사이에선 아기 성별 공개 파티가 유행이다. 성별 관련 힌트를 풍선이나 케이크 안에 넣어두고 가족, 친구들을 불러 맞혀 보게 하는 이벤트다. 참석자들이 풍선을 터뜨려 분홍색 꽃가루가 나오면 딸, 자른 케이크의 단면이 파란색이면 아들을 뜻한다. 미국, 유럽에서 보편화된 ‘젠더 리빌 파티(Gender Reveal Party)’가 수입된 것인데 종주국의 방식은 조금 다르다. 예비 부모들이 산부인과에서 받은 성별 확인서를 열어보지 않고 있다가 친지들과 파티를 열어 깜짝 개봉한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문화가 확산되는 건 아기 한 명 한 명이 귀해져 성별에 상관없이 출산을 축하해 주는 세태가 반영된 것이다. ▷우리나라는 성비 불균형 국가란 오명을 벗은 지가 얼마 되지 않았다. 여아 100명당 남아 105∼107명이 태어나는 게 생물학적 정상 범주인데 이 수치가 1985년 110, 1990년대 116까지 치솟았다. 2000년대 들어 110으로 떨어졌다가 2010년쯤 정상으로 돌아왔다. 30년간 이어진 ‘남초 출산’이 어떤 부메랑으로 돌아올지 연구한 논문이 8일 학술저널 ‘컨버세이션’에 실렸다. 저자인 미국 텍사스A&M대 더들리 포스턴 교수는 1980∼2010년 한국에서 태어난 남성 중 70만∼80만 명은 한국인 여성과 결혼하기 힘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여성 한 명이 평균 6명을 낳던 1960년대에는 남아 선호가 더 뚜렷했음에도 성비가 균형을 유지했다. 문제는 1980년대 들어 출산율이 가파르게 떨어지는데 남아 선호가 교정되는 속도는 이보다 더뎠던 데 있다. 1, 2명만 낳을 거라면 아들은 있어야 한다는 인식이 상당 기간 지속됐다. 산아 제한 정책을 폈던 중국, 인도, 베트남 등 아시아 국가들도 이런 이유로 결혼 적령기 남초 현상이 심각하다. 중국은 남성이 여성보다 3400만 명이 많고, 인도에선 3700만 명이 많다. ▷넘치는 독신남은 사회적 시한폭탄이 될 수 있다. 학계에선 치안이 불안해질 수 있다고 본다. 미국 컬럼비아대 연구 결과 중국에서 남자 성비가 1% 오르면 폭력·절도 범죄가 7%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1인 가구여도 남성은 여성에 비해 노후가 불안정한 경우가 많아 복지 부담을 가중시킬 가능성이 있다. 지방일수록 남초가 심하다 보니 남성들이 연애·결혼 기회를 찾아 수도권으로 몰리면 지방 소멸을 가속화할 수도 있다. ▷중국에선 원치 않게 독신으로 남겨진 남성들을 가리켜 ‘수동적 독신’이라고 칭한다. 이들 간에 신부 모시기 경쟁이 격해지면서 신랑이 신부에게 주는 지참금이 15년 새 100배나 뛰었다. 요즘은 3000만∼4000만 원이 예사라고 한다. 아들 쪽 부모들의 물량 공세로 ‘결혼 군비 경쟁’이란 말까지 생겼다. 저출산 늪에 빠진 우리나라에서도 2030세대의 남초는 남성들이 결혼에 기권하는 또 하나의 이유가 될 수 있다.신광영 논설위원 neo@donga.com}

    • 2024-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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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신광영]‘청산가리 막걸리 사건’ 재심… 21세기에도 이런 참혹한 일이

    2009년 전남 순천의 한 시골마을에서 50, 60대 여성 2명이 새참으로 막걸리를 마시다 숨지는 사건이 있었다. 청산가리가 든 막걸리였다. 더 충격적인 건 “숨진 여성 중 1명의 남편과 딸이 공모한 살인”이란 수사 결과였다. 남편 백모 씨(당시 59세)는 무기징역, 딸(당시 26세)은 징역 20년이 확정됐다. 잊히는 듯했던 ‘독(毒) 막걸리’ 사건은 14년여 만에 원점으로 돌아왔다. 광주고법이 4일 사건을 재심하라고 결정하며 부녀를 풀어줬다. 검찰이 자백을 강요했고, 부녀에게 유리한 증거를 고의로 누락시켰다는 이유에서였다. ▷‘딸이 저(와) 함께 엄마를 죽였다고 인정했다면 저도 인정합니다.’ 백 씨는 용의자로 검찰에 체포되던 날 자술서에 삐뚤빼뚤한 글씨로 이 한 문장을 썼다. 열흘 뒤 작성된 추가 자술서에는 상세한 범행 경위가 깔끔한 글씨체로 적혀 있다. 검찰은 아버지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어온 딸이 이를 눈치챈 어머니를 살해하려 아버지와 짜고 범행을 저질렀다면서 백 씨 모녀의 자백을 주요 증거로 법원에 제출했다. 1심은 자백의 신빙성을 의심해 무죄로 봤지만 2심, 3심은 “범인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진술”이라며 유죄 판결했다. ▷재심은 판결 확정 뒤에 무죄 증거가 새롭게 나오거나 수사기관의 위법한 수사가 확인될 경우 가능하다. 이번 재심 결정은 후자에 해당한다. 당시 조사 녹화 영상에는 범행을 부인하는 백 씨 부녀를 상대로 유도 심문이 집요하게 반복되는 장면이 담겨 있다. 검사가 자백 진술서를 받기 위해 한글을 잘 모르는 백 씨에게 ‘당신이 불러주면 직원이 대신 쓸 것’이라고 압박하기도 했다. 초등학교도 못 나온 백 씨와 발달장애를 가진 딸은 체념한 듯 질문마다 “네”라고 짧게 답했다. ▷검찰은 증거를 취사 선택해 불리한 건 법원에 내지 않았다. “(백 씨처럼) 오이농사를 짓는 농부들은 해충을 없애려 청산가리를 사용한다”는 일부 진술만 제출하고 “그건 유황가루를 오인한 것이고, 청산가리는 절대 쓰지 않는다”는 오이농부 수십 명의 진술은 숨겼다. 또 부녀가 막걸리를 사왔다는 순천의 국밥집 인근 폐쇄회로(CC)TV를 통째로 확보해 범행 관련 행적이 없다는 걸 확인하고도 법원엔 “CCTV 기록이 없다”고 했다. ▷사건을 초동 수사했던 경찰은 피의자를 특정하지 못한 채 검찰에 송치했다. 하지만 사건을 넘겨받은 광주지검 순천지청 K 검사는 꿰맞추기 수사로 백 씨 부녀를 기소하고 사형을 구형했다. 부녀가 재판에서 자백을 번복해 무죄를 호소했음에도 유죄가 확정됐을 때 K 검사는 미궁에 빠질 뻔한 사건에서 정의를 실현한 스타 검사로 불리기도 했다. 과거 화성 연쇄살인 사건 등에서도 재심을 거쳐 진범을 잡은 사례가 있지만 21세기에도 이런 억지 수사가 통한 것이다. 강압 수사를 한 검사는 물론 이를 검증하지 못한 법원도 책임을 피할 수 없다.신광영 논설위원 neo@donga.com}

    • 2024-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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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절도 들끓는 칠레, 대통령 부모도 피해

    칠레 대통령인 가브리엘 보리치(37)의 부모 자택 앞에서 선물 꾸러미가 사라진 것은 성탄절을 앞둔 23일(현지 시간) 밤이었다. 칠레 남부 푼타아레나스에 사는 보리치 대통령의 부모가 이 지역 환경미화원들에게 주려고 직접 빵과 현금을 넣어 만든 꾸러미들이었다. 현지 일간지 마가야네스는 “최근 칠레에 절도 등 범죄가 증가하고 있는데 이번엔 대통령 가족의 차례가 됐다”고 24일 전했다. 칠레는 남미 첫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으로 비교적 치안이 안정됐다는 평가를 받아 왔다. 하지만 최근 범죄가 늘면서 대통령 부모까지 절도 피해를 입게 돼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22일 발표된 국민 치안 인식 조사(2022년) 결과에 따르면 ‘국내 범죄가 증가했다고 생각한다’고 답한 응답자가 90.6%에 달했다. 이는 2012년 이후 10년 사이 가장 높은 수치라고 현지 매체가 보도했다. 폭력이나 협박을 동반한 강도나 차량 절도 등 심각한 피해를 입은 적이 있다는 응답도 21.8%로 나타났다. 카롤리나 토아 칠레 내무·공공안전장관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살인 사건의 경우는 2016년 이후 증가하다 올해는 전년보다 감소했다”고 밝혔다.신광영 기자 neo@donga.com}

    • 2023-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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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로벌 이슈/신광영]스파이 40년, 낡은 가면이 벗겨지던 날

    미국 국무부 고위직을 지내며 40년간 쿠바 스파이로 활동해 온 빅터 마누엘 로차(73)는 지난해 11월 마이애미의 식당가에서 젊은 정보요원을 만났다. 로차는 접선 지점에서 수십 m 떨어진 곳에서 한참 동안 이 청년을 지켜보다 다가갔다. 청년은 유창한 스페인어로 말문을 열었다. “(쿠바 총첩보국) 마이애미 지부 미겔이라고 합니다. 아바나(쿠바의 수도)에 있는 당신의 친구들로부터 메시지가 있습니다. 제가 당신의 새로운 접촉 포인트입니다.” “미겔이라고 했나? 나는 ‘아바나’ 이런 표현 안 써. 그냥 ‘그 섬(The Island)’이라고 하지. 뭘 적지도 않아. 꼬리가 잡히니까.”(로차) 콜롬비아 출신 이민자인 로차는 미국이 주는 온갖 혜택을 누리며 엘리트로 성장한 인물이다. 뉴욕 할렘가에서 자라다 빈민 청소년 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1965년 명문인 터프츠대에 입학했다. 예일대로 옮겨 우등 졸업한 뒤에는 하버드대(케네디스쿨), 조지타운대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미 국무부에는 1981년 입부했다. 멕시코, 쿠바, 아르헨티나 등 중남미 6개국 외교관을 지냈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중남미 국장을 거쳐 2000년 주볼리비아 미국대사에 올랐다. “(이 일을) 몇 년이나 하신 건가요?”(미겔) “거의 40년.”(로차) “와우… (쿠바와) 오랜 기간 우정을 지켜주셨네요.”(미겔) “쉽지 않았지. 많은 걸 희생했고…. 한순간도 긴장을 놓은 적이 없어. 나에 대한 통제력을 잃으면 안 되니까. 그래도 신념이 있으면 정신을 붙잡게 돼.”(로차) 로차가 쿠바에 포섭된 시기는 냉전이 한창이던 1973년경이다. 당시 로차는 칠레를 여행 중이었다. 아우구스토 피노체트가 쿠데타를 일으켜 사회주의자 대통령인 살바도르 아옌데를 축출했고, 미국이 이 군부정권을 물밑 지원하던 때였다. 쿠바 역시 피델 카스트로가 1959년 사회주의 혁명으로 권력을 잡은 이후 미국 재산을 국유화해 미국의 고강도 제재를 받고 있었다. 쿠바는 미국과의 대결을 ‘다윗과 골리앗 싸움’이라고 선전하며 남미 출신 미국인을 첩보원으로 끌어들였다. 아이비리그 출신으로 미 주류 사회 침투 가능성이 높은 로차는 매력적인 포섭 대상이었다. “(쿠바) 본부와 마지막으로 닿은 게 2017년쯤이었어. 보통의 삶으로 돌아가 있으라더군. 그 후로 난 우익 인사로 살았지. 그게 내 레전드(legend)야.”(로차) ‘레전드’는 비밀요원이 정체를 숨기려 만들어낸 캐릭터를 뜻하는 은어다. 로차는 2002년 주볼리비아 미국대사 퇴직 후에도 쿠바를 관할하는 미 남부사령부 고문으로 6년 넘게 활동하며 군사기밀에 접근했다. 로차는 미겔에게 “젊은 요원을 보게 돼 뿌듯하다”며 회한에 잠긴 듯 ‘나 때는’ 발언을 이어갔다. “우리가 해온 일들은 정말 대단했어. 그랜드 슬램(세계 4대 테니스 대회인 호주오픈, 프랑스오픈, 윔블던, US오픈에서 모두 우승하는 것) 이상이지. 그들(미국)은 우리를 과소평가했어.” 쿠바가 훔친 정보는 쿠바 안에 머물지 않는다. 우방인 러시아, 중국, 북한 등으로 흘러갈 수 있다. 미국의 봉쇄로 경제가 어려웠던 쿠바는 구소련에 크게 의지했다. 정보기관도 KGB로부터 훈련과 지원을 받아 운영됐다. 냉전 후에도 KGB 출신인 블라디미르 푸틴이 집권하면서 정보 공조는 지속됐다. 푸틴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국제사회에서 고립되자 미 플로리다에서 불과 150km 떨어진 쿠바 해안에 정보 시설을 다시 열었다. 쿠바에 막대한 지원을 해온 ‘최대 채권국’ 중국도 미국을 겨냥한 정보 기지로 쿠바를 활용하고 있다. 신냉전의 핵심 교두보로 급부상하는 쿠바를 미국은 ‘지나간 적’으로 여기며 방심했다. 미겔은 올 6월 로차와 세 번째 접선을 했다. “본부에서 확인하려는 사항이 있습니다. 당신이 여전히 우리와 함께하길 원하는지 궁금해합니다.”(미겔) “그런 걸 물어온다니 화가 나는군. 마치 내가 남자가 맞느냐고 묻는 거니까. 바지를 내려서 성기를 보여 달라는 말이나 다름없어.”(로차) 두 사람의 대화는 미 연방검찰 공소장에 녹취록으로 첨부돼 있다. 로차는 40년간 숨겨 온 정체를 연방수사국(FBI) 위장 요원인 미겔에겐 미처 감추지 못했다. 세 번째 접선 후 체포된 로차는 미겔과의 만남 자체를 부인하다 둘이 나란히 찍힌 사진을 수사관이 들이밀자 입을 닫았다. 메릭 갈런드 법무장관은 4일(현지 시간) 로차를 간첩 혐의로 기소하면서 “외국 요원이 미국 정부의 최고위직에, 가장 오래 침투한 사건”이라고 했다. 로차는 내년 초 마이애미 법정에 선다. 신광영 국제부 차장 neo@donga.com}

    • 2023-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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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파이 40년, 낡은 가면이 벗겨지던 날

    미국 국무부 고위직을 지내며 40년간 쿠바 스파이로 활동해 온 빅터 마누엘 로차(73)는 지난해 11월 마이애미의 식당가에서 젊은 정보요원을 만났다. 로차는 접선 지점에서 수십 m 떨어진 곳에서 한참 동안 이 청년을 지켜보다 다가갔다. 청년은 유창한 스페인어로 말문을 열었다.“(쿠바 총첩보국) 마이애미 지부 미겔이라고 합니다. 아바나(쿠바의 수도)에 있는 당신의 친구들로부터 메시지가 있습니다. 제가 당신의 새로운 접촉 포인트입니다.”“미겔이라고 했나? 나는 ‘아바나’ 이런 표현 안 써. 그냥 ‘그 섬(The Island)’이라고 하지. 뭘 적지도 않아. 꼬리가 잡히니까.”(로차)콜롬비아 출신 이민자인 로차는 미국이 주는 온갖 혜택을 누리며 엘리트로 성장한 인물이다. 뉴욕 할렘가에서 자라다 빈민 청소년 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1965년 명문인 터프츠대에 입학했다. 예일대로 옮겨 우등 졸업한 뒤에는 하버드대(케네디스쿨), 조지타운대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미 국무부에는 1981년 입부했다. 멕시코, 쿠바, 아르헨티나 등 중남미 6개국 외교관을 지냈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중남미 국장을 거쳐 2000년 주볼리비아 미국대사에 올랐다.“(이 일을) 몇 년이나 하신 건가요?”(미겔)“거의 40년.”(로차)“와우… (쿠바와) 오랜 기간 우정을 지켜주셨네요.”(미겔)“쉽지 않았지. 많은 걸 희생했고…. 한순간도 긴장을 놓은 적이 없어. 나에 대한 통제력을 잃으면 안 되니까. 그래도 신념이 있으면 정신을 붙잡게 돼.”(로차)로차가 쿠바에 포섭된 시기는 냉전이 한창이던 1973년경이다. 당시 로차는 칠레를 여행 중이었다. 아우구스토 피노체트가 쿠데타를 일으켜 사회주의자 대통령인 살바도르 아옌데를 축출했고, 미국이 이 군부정권을 물밑 지원하던 때였다. 쿠바 역시 피델 카스트로가 1959년 사회주의 혁명으로 권력을 잡은 이후 미국 재산을 국유화해 미국의 고강도 제재를 받고 있었다. 쿠바는 미국과의 대결을 ‘다윗과 골리앗 싸움’이라고 선전하며 남미 출신 미국인을 첩보원으로 끌어들였다. 아이비리그 출신으로 미 주류 사회 침투 가능성이 높은 로차는 매력적인 포섭 대상이었다.미 국방정보국의 쿠바 전문 정보분석관으로 활동하며 17년 간 미군 기밀정보를 빼돌리다 2001년 발각된 아나 몬테스도 비슷한 시기에 포섭된 쿠바 스파이였다. 두 사람은 공통적으로 ‘아메리칸 드림’에 성공해 부와 명예를 보장받을 수 있었음에도 비밀공작을 멈추지 않았다.“(쿠바) 본부와 마지막으로 닿은 게 2017년쯤이었어. 보통의 삶으로 돌아가 있으라더군. 그 후로 난 우익 인사로 살았지. 그게 내 레전드(legend)야.”(로차)‘레전드’는 비밀요원이 정체를 숨기려 만들어낸 캐릭터를 뜻하는 은어다. 로차는 2002년 주볼리비아 미국대사 퇴직 후에도 쿠바를 관할하는 미 남부사령부 고문으로 6년 넘게 활동하며 군사기밀에 접근했다. 로차는 미겔에게 “젊은 요원을 보게 돼 뿌듯하다”며 회한에 잠긴 듯 ‘나 때는’ 발언을 이어갔다.“우리가 해온 일들은 정말 대단했어. 그랜드 슬램(세계 4대 테니스 대회인 호주오픈, 프랑스오픈, 윔블던, US오픈에서 모두 우승하는 것) 이상이지. 그들(미국)은 우리를 과소평가했어.”쿠바가 훔친 정보는 쿠바 안에 머물지 않는다. 우방인 러시아, 중국, 북한 등으로 흘러갈 수 있다. 미국의 봉쇄로 경제가 어려웠던 쿠바는 구소련에 크게 의지했다. 정보기관도 KGB로부터 훈련과 지원을 받아 운영됐다. 냉전 후에도 KGB 출신인 블라디미르 푸틴이 집권하면서 정보 공조는 지속됐다. 푸틴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국제사회에서 고립되자 미 플로리다에서 불과 150km 떨어진 쿠바 해안에 정보 시설을 다시 열었다. 쿠바에 막대한 지원을 해온 ‘최대 채권국’ 중국도 미국을 겨냥한 정보 기지로 쿠바를 활용하고 있다. 신냉전의 핵심 교두보로 급부상하는 쿠바를 미국은 ‘지나간 적’으로 여기며 방심했다.미겔은 올 6월 로차와 세 번째 접선을 했다. “본부에서 확인하려는 사항이 있습니다. 당신이 여전히 우리와 함께하길 원하는지 궁금해합니다.”(미겔)“그런 걸 물어온다니 화가 나는군. 마치 내가 남자가 맞느냐고 묻는 거니까. 바지를 내려서 성기를 보여 달라는 말이나 다름없어.”(로차)두 사람의 대화는 미 연방검찰 공소장에 녹취록으로 첨부돼 있다. 로차는 40년간 숨겨 온 정체를 연방수사국(FBI) 위장 요원인 미겔에겐 미처 감추지 못했다. 세 번째 접선 후 체포된 로차는 미겔과의 만남 자체를 부인하다 둘이 나란히 찍힌 사진을 수사관이 들이밀자 입을 닫았다. 메릭 갈런드 법무장관은 4일(현지 시간) 로차를 간첩 혐의로 기소하면서 “외국 요원이 미국 정부의 최고위직에, 가장 오래 침투한 사건”이라고 했다. 로차는 내년 초 마이애미 법정에 선다.로차의 전직 국무부 동료들은 “감쪽같이 속았다는 생각에 치가 떨린다”는 반응을 보였다. 1990년대 중반 쿠바의 미국 대사관격인 아바나의 미 이익대표부에서 로차와 함께 근무했던 한 간부는 “당시 카스트로 정권의 독재를 같이 한탄했었고, (로차가) 아이비리그 동문들의 우파 성향 모임에도 꾸준히 참석해 한번도 의심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신광영 기자 neo@donga.com}

    • 2023-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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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죽의 장막’ 열고 ‘데탕트’ 이끈 키신저 전 美국무 별세…향년 100세

    미국 외교의 거목인 헨리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사진)이 29일(현지 시간) 별세했다고 뉴욕타임스가 보도했다. 향년 100세. 냉전시기 ‘핑퐁 외교’의 주역이면서 중국과의 관계 정상화를 주도했던 키신저 전 장관은 7월 중국을 방문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만나는 등 최근까지도 왕성한 행보를 보여왔다.키신저 전 장관만큼 미 외교사에 큰 족적을 남긴 정치인도 드물다. 그는 1970년대 초반 냉전 갈등이 세계를 지배했던 시절 ‘죽의 장막’을 열어젖혔다. 러시아와의 군비확대 경쟁에 브레이크를 걸기 위해 전략무기협정을 체결해 데탕트를 모색했으며 당시 미국의 최대 골칫거리였던 베트남전 휴전협정을 유도했다. 그는 세계 평화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1973년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한국과도 친했던 그는 한미 관계 발전에 기여한 인물에게 수여되는 벤플리트상을 2009년 수상했다. 90세가 넘어서도 해외 순방을 멈추지 않고 시 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정기적으로 만나는 등 말년까지 영향력을 보였다.키신저 전 장관이 존경을 받는 것은 단지 외교적 업적뿐만이 아니다. 그는 유대인 박해를 피해 미국으로 건너온 이방인으로 현대 외교사의 거인으로 우뚝 선 ‘아메리칸 드림’의 상징이기도 하다.키신저 전 장관은 1923년 5월 27일 독일 북부 퍼스(Furth)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모두 유대인으로 어머니는 부유한 가정 출신이었으며 아버지는 교사였다. 어린 시절 그는 하루 2시간씩 유대교 율법집인 탈무드를 공부할 정도로 독실한 유대교 신자였다.그는 조용하고 내성적인 학생이었다. 그의 어머니는 “아들이 책에 빠져 산다”며 “좀 더 활발했으면 좋겠다”고 불만을 털어놓기도 했다. 그는 소수 정예 학생들이 입학하는 인문계 중고등학교 김나지움에 들어가는 꿈을 키우며 공부했다.그러나 그의 꿈은 독일에서 아돌프 히틀러의 나치즘이 부상하면서 산산조각이 났다. 유대인 차별정책으로 인해 김나지움 입학은 불가능해졌다. 10대 소년이었던 키신저는 유대인 박해를 견디며 살았다. 축구를 좋아했던 그는 소년 축구 클럽에서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가입할 수 없었다. 유대인 금지 규정을 어기고 몰래 경기장에 들어가 경기를 관람하다가 나치 당원들로부터 몰매를 맞기도 했다. 당시의 기억은 키신저 전 장관의 삶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는 “길거리를 지날 때마다 ‘더러운 유대인’이라는 욕을 들어야 했다. 아무런 이유 없이 단지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부당한 대우를 받는 것이 화가 나고 억울했다”고 어린 시절을 회상했다. 그는 미국에 건너와서도 사람들이 몰려 있는 곳에서 뒷걸음을 쳤다. 독일에서 나치 당원들에게 맞은 기억 때문이었다. 나치즘이 점점 기세를 올리고 유대인 박해가 심해지자 그의 부모는 1938년 미국행을 결심했다. 키신저가 15세 때였다. 그의 가족을 배를 타고 런던을 거쳐 뉴욕에 도착했다. 돈 없이 미국에 온 그의 가족은 공장에서 일을 했다. 키신저 전 장관 역시 면도용 브러시를 만드는 공장에서 일했다. 그는 미국 사회에 동화되기 위해 독일 분위기가 나는 중간 이름 ‘하인즈’를 버렸다. 그는 뉴욕의 조지워싱턴 고교에 입학해 빠르게 영어를 배웠다. 교내에서 소문이 자자할 정도로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었다. 1940년 뉴욕 시립 컬리지에 입학한 뒤에는 회계사가 돼 가정을 돕겠다는 소박한 꿈을 가지고 있었다.제2차 세계대전 참전은 키신저의 꿈을 바꿔 놓았다. 1943년 미국 시민이 된 그는 곧바로 전쟁에 징집됐다. 미국에 온지 5년 만에 자신의 고향 독일에 대항해 싸우게 된 것. 그는 처음에는 프랑스에 소총병으로 파견됐으나 유창한 독일어 실력 덕분에 곧바로 독일 정보수집 임무를 맡게 됐다. 키신저는 독일 하노버에 침투해 게슈타포 장교들의 전쟁 기밀을 감청하는 역할을 맡았다. 유명한 발지 전투에서 독일군 공격 정보를 수집하는 임무를 자청해 전투에서 연합군이 승리하는데 큰 공적을 세웠다. 일등병으로 군에 입대했던 그는 사령관으로 초고속 승진했으며 청동 무공훈장을 받았다. 탁월한 정보 수집과 분석 능력을 인정받아 전쟁이 끝난 후에도 정보 교관으로 활동했다.전쟁의 최전선에서 외교의 각축 현장을 직접 목격한 키신저 전 장관은 외교 분야 학자가 되기로 마음을 바꾸고 하버드대로 편입해 1950년 최우등생으로 졸업했다. 당시 그가 대학 졸업 논문으로 ‘역사의 의미’라는 주제로 383쪽짜리 연구 논문을 쓴 것은 지금도 하버드대의 유명한 일화로 남아있다. 키신저 전 장관의 장대한 논문에 놀란 하버드대 당국은 이후부터 대학 졸업 논문은 100쪽 내외여야 한다는 ‘키신저 규정’을 마련할 정도였다. 비록 잘 다듬어지지는 않았지만 탁월한 분석력과 직관력을 엿볼 수 있는 그의 대학 논문은 지금도 하버드대 박물관에 소장돼 있다.1954년 하버드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바로 하버드대 정부학과 교수로 임용됐고 이후 5년 만에 종신 교수가 됐다. 그는 1957년 하버드대 교수로 있으면서 ‘핵무기와 외교정책’이라는 명저를 발표했다. 이 책에서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과 존 포스터 델레스 국무장관의 소련의 공격에 대한 ‘대량 핵 보복’ 정책에 반대하며 재래식 무기와 전술적 핵무기를 사용하는 유엔 대응 전략만으로도 소련과의 대결에서 승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하버드대 교수로 있으면서 존 F 케네디 대통령과 린든 존슨 대통령의 특별고문으로 임명돼 외교정책에 영향력을 발휘했다.키신저는 1969년 하버드대를 떠나 리처드 닉슨 행정부에서 국가안보 보좌관과 국무장관으로 1975년까지 일했으며 이후 제럴드 포드 행정부에서도 1977년까지 국무장관을 맡았다. 1978년 민주당의 지미 카터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장관직에서 물러났다. 그는 이후 컬럼비아대, 조지워싱턴대 교수를 지내면서 로널드 레이건, 조지 W H 부시 행정부의 외교정보자문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했다.키신저 전 장관은 1982년 키신저 어소시에이츠라는 정치 자문 및 로비 회사를 설립했다. 그는 2002년 조지 W 부시 행정부에서 9·11테러를 조사하는 ‘대미 테러공격 위원회(NCTAUUS)’ 위원장으로 임명됐으나 키신저 어소시에이츠 고객과의 이해충돌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자진 사퇴했다.키신저 전 장관은 “내 인생을 돌아보면 누가 세계 최강국의 국무장관이 될 것이라고 상상이나 했겠느냐”고 말한 적이 있다. 독일에서는 유대인 박해로 학교에 제대로 다니지 못하고 미국에 건너와서도 어린 나이에 공장에 다니며 학비를 벌어야 했던 자신이 세계사에 남을 외교인으로 우뚝 선 것을 믿을 수 없다고 했다.그는 생전 3권의 자서전의 썼으며 14권의 저서를 남겼다. 자서전 ‘백악관 시절’은 1980년 전미도서위원회 최고의 역사 서적으로 꼽힐 정도로 내용이 알차다.. 정책서 중 ‘미국 외교정책(1969)’ ‘외교(1994)’ ‘중국 이야기(2011)’는 키신저의 3대 명저로 꼽힌다. 가장 최근 저서로는 ‘세계 질서(2014)’가 있다.두 번 결혼했던 키신저 전 장관은 1남 1녀를 두고 있다. 첫 번째 부인과의 사이에 낳은 아들 데이비드 키신저는 외교인이 아닌 방송계로 진출해 제작자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장관 시절에도 고향인 독일 퍼스 축구팀의 전적을 매주 챙겼을 정도로 열렬한 축구팬이었다. 그는 2012년 고향을 방문해 퍼스팀의 경기를 직접 관람하며 감회에 젖기도 했다.키신저 전 장관은 퇴임 후 인터뷰에서 “가장 즐기는 스포츠 게임이 뭐냐”는 질문에 “외교(Diplomacy)”라고 답했다. 그는 평생 외교를 사랑한 미국인이었다.외교 업적2013년 초 뉴욕에서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의 90세 생일 축하 행사가 성대하게 열렸다. 그의 외교적 영향력이 얼마나 지대한지 보여주는 행사였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 지스카르 데스텡 전 프랑스 대통령, 수전 라이스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존 매케인 상원의원, 마이클 블룸버그 전 뉴욕시장 등 정재계 거물들이 대거 참석했다. 조지 슐츠, 제임스 베이커, 콘돌리자 라이스, 힐러리 클린턴, 존 케리 등 미국의 전현직 국무장관도 총출동했다. 매케인 의원은 “그는 미국과 세계가 가장 혼란스러웠을 때 외교의 등불을 밝혔다”며 “키신저 전 장관만큼 존경받는 인물을 본 적이 없다”는 축사를 건넸다.이에 키신저 전 장관은 “미국은 세계의 경찰이 될 수 없다. 그러나 미국은 위기가 닥쳤을 때 세계가 의지할 수 있는 최후의 보루가 돼야 한다”며 “나는 세계 평화를 위해 미국의 외교가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든지 갔다”고 감회를 밝혔다.2016년 11월 당시 대통령 당선인 신분이던 도널드 트럼프가 선거에서 승리한 지 열흘도 되지 않아 키신저를 트럼프타워로 초청해 세계정세에 대한 견해를 구한 것도 키신저의 힘을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2015년 외교 전문지 포린폴리시(FP)가 ‘지난 50년간 가장 효과적인 국무장관은 누구였는가’라고 묻자 미국서 활동하는 1615명의 국제정치학자 중 32.2%는 키신저를 꼽았다. 2위 ‘잘 모르겠다(18.3%)’와 3위 제임스 베이커(17.7%)를 압도했다.실제로 키신저 전 장관이 외교 사령탑으로 있던 1969~1977년은 미국 외교의 최대 전성기였다. 베트남 중국 소련 이스라엘 인도 파키스탄 베트남 칠레 아르헨티나 아프리카 등 미국의 손길이 뻗치지 않는 나라는 거의 없었다.미국이 지지하는 자유민주주의 가치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도 효과적인 외교 정책 수립을 위해선 감정이 배제된 가치중립적인 전략 이익 추구가 중요하다고 강조한 현실주의자 키신저. 그의 3대 외교 업적으로는 중국 방문, 소련과의 무기통제협정, 베트남전 휴전협정이 꼽힌다.1971년 백악관 안보보좌관이었던 키신저 전 장관은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부터 ‘관계를 재정립하라’는 밀명을 받고 중국을 방문했다. 국무부도 모르는 비밀 방문이었다. 중국은 제2차 대전 후 미국과는 별다른 접촉이 없는 베일 속에 가려진 나라였지만 미국은 소련 견제를 위해 중국과의 관계를 재설정할 필요가 있었다. 키신저 전 장관은 파키스탄 방문 중 비밀리에 중국에 가서 저우언라이(周恩來) 총리와 마오쩌둥(毛澤東) 주석과 만나 이듬해 닉슨 대통령의 중국 방문을 성사시켰다. 단 17시간의 체류는 양국 관계를 새로운 출발점이었다.키신저 전 장관은 중국 비밀방문 보고서에서 “우리는 추상적으로 공산주의 국가를 다루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데올로기와 현실정치를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 그는 “이념을 앞세우는 냉전시대 외교과 결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키신저 전 장관은 2016년 12월에도 중국을 방문해 시진핑 주석을 만나는 등 왕성한 외교활동을 펼쳤다. 그가 중국을 방문한 횟수는 40회를 넘는다. 그는 2011년 저서 ‘중국 이야기’에서 “국제무대에서 주요 2개국(G2)으로 부상한 미국과 중국은 파트너십이라기보다 함께 앞으로 나가는 공진(共進) 관계를 맺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로 국제적 위상에 걸맞게 가능하면 협력하고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해 상호 관계를 조정해나가야 한다는 것이다.앞서 1969년 키신저 전 장관은 냉전시대의 라이벌인 소련과 전략무기제한협정(SALT)를 이끌어내며 데탕트의 서곡을 울렸다. 그는 SALT 협상을 통해 증가 일로를 치닫던 미국과 소련의 공격용 전략미사일 수를 동결시켰다. 당시 그는 주미 소련대사 아나톨리 도브리닌, 공산당 제1서기 레오니드 브레즈네프와 비밀 협상을 벌여 미 국무부와 국방부는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키신저 전 장관은 처음에는 베트남전 철수를 반대하며 강경노선을 유지했지만 남베트남에서 미군을 철수하여 이를 남베트남 군대로 대치하는 ‘월남화’ 정책을 밀고 나갔다. 수개월 동안 파리에서 북베트남 정부와 비밀 협상을 벌인 끝에 1973년 미군을 철수하고 남북 베트남 사이의 평화정착의 토대를 마련하는 정전협정을 체결했다. 베트남 분쟁을 해결한 공로를 인정받아 키신저 전 장관은 북베트남 협상대표 르 둑 토(黎德壽)와 함께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토는 수상을 거절했지만 키신저 전 장관은 “겸손하게 상을 받겠다”며 수상했다. 그러나 1975년 북베트남의 공격으로 남베트남이 함락되고 공산화되면서 평화협정은 무용지물이 됐다.키신저 전 장관의 외교는 중동에서 빛을 발했다. 베트남전 평화협정을 체결하던 바로 그 해 이집트와 시리아가 이스라엘을 공격한 1973년 중동전이 발생하자 키신저 전 장관은 수차례 중동 여러 국가를 방문하는 ‘’셔틀 외교‘를 펼치며 휴전을 유도했다. 키신저 전 장관이 이스라엘에게 이집트 점령지 일부를 반환할 것으로 촉구하면서 1950년대 이후 냉각됐던 미국과 이집트의 관계는 정상화됐다.외교사에 큰 족적을 남긴 키신저 전 장관은 평소 가장 존경하는 정치인으로 19세기 초 오스트리아 수상 클레멘스 폰 메테르니히를 꼽았다. 키신저 전 장관은 메테르니히를 주제로 하버드대 박사 학위 논문도 썼다. 프랑스 나폴레옹에 대적해 주변 4국의 동맹을 주도한 메테르니히의 정치술은 키신저 전 장관의 외교정책에 큰 영향을 미쳤다. 아무리 불완전한 동맹이라고 해도 협력을 통해 ‘힘의 균형’을 유지하며 세계질서를 지키는 것이 혼돈과 혁명보다 낫다는 키신저의 ‘현실정치(Realpolitik)’는 메테르니히에서 출발했다.정치학자 로버트 캐플린은 키신저 전 장관을 가리켜 “미국이 펼치고 싶은 것이 아닌, 펼쳐야만 하는 외교정책을 펼친 인물”이라고 평했다. 키신저 전 장관은 이상주의가 아닌 냉철한 현실 인식에 바탕으로 두고 미국의 이해관계를 넓히고 세계질서의 균형을 유지하는데 초점을 뒀다. 뉴욕타임스는 “키신저 전 장관이 미국 외교의 지평을 넓혔고 그의 리더십 하에서 미국 외교가 황금시대를 구가했다는 것은 그 어느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고 평했다.논란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은 2012년 4월 하버드대를 방문해 특별 강연을 했다. 이 방문은 키신저 전 장관에게는 43년만의 ‘귀향’이었다.키신저 전 장관은 1969년 백악관 국가안보 보좌관에 임명될 때까지 15년 동안 하버드에서 교수 생활을 했다. 그러나 하버드대는 그가 1977년 장관 퇴임 후 다시 교수로 돌아오려고 했을 때 받아주지 않았다. 웬만한 유명 동문에게 주는 졸업 축사의 기회도 주지 않았다. 키신저 전 장관도 자신을 냉대하는 하버드대와 담을 쌓으며 지냈다. 이날 강연에서도 일부 청중은 “키신저는 전범이다”라고 외치며 키신저의 하버드 귀환에 반대했다.하버드대와 키신저 전 장관 간의 반세기에 가까운 냉전은 키신저의 외교 정책 때문이었다. 진보 성향의 하버드대뿐만 아니라 미국 사회 전반에서 국익에 바탕을 둔 키신저식 실리 외교는 많은 논란을 낳았다. ‘업적이 많은 만큼 과오도 많다’는 비판이었다.키신저 전 장관은 1970년 칠레에서 좌익 성향의 살바도르 아옌데 대통령이 당선되자 남미의 공산화를 막는다는 명분으로 아옌데를 축출하기 위해 피노체트 군사 반란을 지원했다. 피노체트 독재 하에서 수많은 무고한 시민들이 희생되면서 키신저의 피노체트 지원은 국제적으로 큰 비난을 받기도 했다.그는 베트남전 당시 캄보디아 영토를 침입해 활동하는 북베트남군을 봉쇄하기 위해 베트남전에 중립을 지키던 캄보디아에 대한 무차별 폭력을 감행해 킬링필드를 만들었다는 비난을 받았다.이와 함께 키신저 전 장관은 1975년 동맹국 인도네시아가 동티모르를 공격해 주민을 학살하는 것을 묵인했다는 논란도 있다. 미국 저널리스트 크리스토퍼 히친스는 “키신저 전 장관을 인류에 대한 범죄행위를 저지른 혐의로 국제사법재판소에 기소해야 한다”며 “노벨평화상 수상자가 실은 전범자라는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라고 주장하기도 했다.키신저 전 장관은 하버드대 연설에서 이 같은 논란에 대해 “학자는 최상의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지만 정책 결정자는 제한된 옵션 중에서 제일 나은 선택을 할 수 밖에 없다”고 해명했다. 전문가들은 “키신저 외교 정책의 과실에도 불구하고 그가 만들어놓은 국제질서가 지금도 상당 부분 유지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고 말한다.신광영 기자 neo@donga.com}

    • 2023-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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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로벌 이슈/신광영]입맛에 딱 맞춘 대법원, 트럼프에 약일까 독일까

    미국에서 공화당 대통령들은 민주당 대통령들에 비해 연방대법관 임명 기회를 더 많이 누렸다. 빌 클린턴, 버락 오바마, 조 바이든이 임명한 대법관은 1, 2명에 그쳤지만 로널드 레이건은 3명, 도널드 트럼프와 리처드 닉슨은 불과 4년 임기 동안 각각 3명, 4명을 대법관에 앉혔다. 공화당 대통령들 중에서도 트럼프는 ‘타율’이 높기로 유명하다. 다른 대통령들이 보수적 가치를 실현해줄 것으로 기대하며 임명했던 대법관들은 막상 판결할 때 중도에 서거나 진보 대법관들과 의기투합하는 경우가 잦았는데 트럼프가 임명한 3인은 달랐다. 지명 당시부터 선명한 보수 성향으로 논란이 됐던 닐 고서치, 브렛 캐버노, 에이미 코니 배럿 대법관은 기대에 부응하며 대법관 9명으로 이뤄진 연방대법원을 확실하게 보수로 기울게 했다. ‘트럼프 대법관들’ 합류 이후 연방대법원에서 벌어진 하이라이트 사건은 지난해 6월 낙태권 폐지 판결이다. 1973년 낙태권을 최초로 보장한 ‘로 대 웨이드’ 판결이 나왔을 때 이에 찬성한 7명 중 3명은 다름 아닌 공화당의 닉슨이 임명한 대법관들이었다. 1992년 대법원이 낙태권 존폐를 다시 다뤘을 때도 레이건이 임명한 대법관 3명 중 2명이 ‘존치’ 쪽에 서면서 낙태권은 살아남았다. 하지만 지난해 재판에서 ‘트럼프 대법관들’은 단 한 명도 이탈 없이 낙태권 폐지를 지지해 보수주의자들의 숙원을 이뤄줬다. 이 판결이 나온 날 트럼프는 “다른 대통령들이 실패했던 일을 내가 해냈다. 내가 임명한 3명의 대법관들과 함께”라며 자신의 업적을 부각했다. 이것은 근거 있는 자랑이었다. 트럼프는 2016년 대선에 나서며 “당선되면 태아의 생명을 지킬 것이다. 그런(낙태 금지) 판결을 할 2, 3명을 연방대법관에 앉히면 되는데 그러려면 나를 대통령으로 뽑아야 한다”며 보수 표심을 저격했다. 미국에서 대선 후보가 특정 이슈에 대해 특정 결론으로 판결할 대법관을 임명하겠다고 공언한 건 트럼프가 처음이었다. 사실상 ‘사법부를 정치에 이용하겠다’는 이 대국민 선언을 트럼프는 성공적으로 이행했다. 보수로 기운 연방대법원은 총기 규제, 소수 인종 우대, 학자금 채무 면제 등 바이든의 주요 정책을 번번이 무력화시켰다. 보수진영에선 “다른 건 몰라도, 우리 편 대법관 3명을 ‘알박기’ 한 게 트럼프의 최대 업적”이라는 평가가 많다. 하지만 대선을 1년 앞둔 지금, 트럼프가 ‘사법적 치적’으로 홍보해온 낙태권 폐지는 그의 최대 아킬레스건이 되고 있다. 주 정부가 낙태 허용 여부를 자체 결정할 수 있게 되면서 여성 등 낙태 찬성 유권자들을 꽁꽁 결집시켰기 때문이다. 특히 민주당과 공화당이 팽팽히 맞붙는 경합주나 공화당 지지세가 강한 지역에서 여론이 출렁이고 있다. 전통적인 민주당 성향 주에서는 주 정부가 낙태권을 계속 보호할 것이기 때문에 위기감이 덜하지만 ‘공화당 주’에서는 낙태가 금지될 상황에 놓였기 때문이다. 최근 각 주에서 낙태 관련 법안 주민투표가 이어지는데 대표적인 경합주인 미시간은 물론이고 공화당 표밭인 오하이오, 몬태나, 캔자스, 켄터키 등에서도 낙태 허용 법안은 속속 통과되고, 낙태 제한 법안은 제동이 걸렸다. 낙태 금지를 표방하며 출마한 주지사, 주 대법관들도 줄줄이 고배를 마시고 있다. 워싱턴포스트(WP)와 NBC방송의 9월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64%가 연방대법원의 낙태권 폐지 판결에 반대했다. 찬성은 30%에 그쳤다. 대법관들은 6 대 3으로 낙태권 폐지를 결정했는데 여론은 그와 정반대인 것이다. 트럼프는 대법원의 균형추를 인위적으로 옮겨 민의와 다른 판결을 이끌어내는 데는 성공했지만 그 대가를 내년 대선에서 치르게 됐다. 민주당은 대선 전략으로 트럼프가 ‘낙태 반대’ 대법관 3명을 임명한 주역이란 점을 집중 부각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상원 다수당을 지킬 수 있었던 최대 요인은 낙태권 폐지에 반발한 중도층 흡수였는데 내년 대선에서도 비슷한 효과가 날 것으로 기대하는 것이다. 공개석상에서 좀처럼 트럼프 얘기를 꺼내지 않던 바이든도 14일(현지 시간) 정치자금 모금 행사에선 “미국에서 낙태가 금지된 유일한 이유는 바로 트럼프 때문이다. 그런 사람이 대통령이 되면 안 된다”고 했다. 물론 트럼프가 역풍에 쉽사리 흔들릴 인물은 아니다. 그는 당내 경쟁 대선주자인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가 얼마 전 ‘임신 6주 후 낙태 금지’ 법안에 서명하자 “끔찍한 결정”이라고 비판하며 ‘낙태 금지 주역’ 꼬리표를 떼어내려 하고 있다. 낙태 표심이 곧바로 바이든에게 향할지도 지켜볼 일이다. 하지만 트럼프의 입맛에 딱 맞았던 낙태권 폐지 판결이 공화당을 늪에 빠뜨리고, 민주당엔 비벼볼 희망이 된 것은 분명하다. 신광영 국제부 차장 neo@donga.com}

    • 2023-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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