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영

김소영 기자

동아일보 정책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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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사회부 복지팀 기자입니다. 몸 또는 마음이 아프거나 여러 이유로 차별받는 이들의 이야기에 관심이 많습니다.

ksy@donga.com

취재분야

2025-11-05~2025-12-05
교육87%
사회일반10%
노동3%
  • 지방대 수시 모집 지원자 10% 늘어…경기 침체-의대 모집 인원 동결 영향

    2026학년도 대학입시 수시모집에서 지방대에 지원한 수험생이 전년 대비 약 10%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경기 침체, 의대 모집 인원 동결 등의 영향으로 지방 수험생이 수도권 소재 대학에 상향 지원하기보다는 지방권 소재 대학에 안정 지원한 것으로 풀이된다.21일 종로학원이 전국 192개 대학의 수시 지원 현황을 분석한 결과, 지방권 소재 110개 대학 수시 지원자 수는 전년 대비 10만4272명(10.2%) 증가했다. 110개 대학 중 지원자 수가 전년 대비 감소한 곳은 16곳에 불과했고, 나머지는 모두 증가했다. 전년 대비 지원자 수 증가율이 가장 큰 지역은 대구·경북권(12.4%)이었고 △강원권(11.7%) △충청권(10.6%) 등이 뒤를 이었다.올해 수시모집에서 가장 경쟁률이 높았던 지방권 대학은 경북대로 14.51 대 1의 경쟁률을 나타냈다. 단국대 천안캠퍼스(11.11 대 1)와 충북대(10.9 대 1), 건국대 글로컬 캠퍼스(10.59 대 1) 등이 뒤를 이었다.임성호 종로학원 대표는 “경기 침체 등으로 지방권 학생이 무리하게 서울이나 경인권 소재 대학에 지원하는 걸 피한 것으로 추정된다”며 “여기에 의대 모집 정원 동결, 사탐런(자연계열 수험생이 수능에서 과학탐구 대신 사회탐구를 응시하는 것) 현상 등으로 입시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안정 지원하는 추세가 종합적으로 맞물렸다”고 분석했다. 이어 “경기 상황, 지방대 육성 정책 등에 따라 입시 지형에 변화가 예상된다”고 말했다.김소영 기자 ksy@donga.com}

    • 2025-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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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트럼프 탓 美서 유턴 인재 잡아라” 장학금-편입 늘리는 대학들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유학생 비자 유효기간을 제한하는 등 입국 장벽을 높이면서 국내 대학들이 학생 유치와 관련해 반사이익을 기대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장기적으로 미국 유학 대신 국내 대학원을 선택하는 학생이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19일 교육계에 따르면 한국 학생의 미국 유학은 중국, 인도 유학생 선호 등으로 이미 7, 8년 전부터 어려워지는 추세였는데, 최근 트럼프 행정부의 반이민 정책이 이런 추세를 가속화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현철 연세대 대학원장(중어중문학과 교수)은 “최근 미국 현지에서 교수 리크루팅을 하면 예전 같으면 지원하지 않았을 스펙의 한국인 연구자들이 원서를 낸다”며 “앞으로 국내 대학이 상대적인 반사이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혁 고려대 컴퓨터학과 교수도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 변동성이 크다 보니 미국에서 박사나 박사후연구원(포닥)을 하는 이들은 불안정할 수밖에 없고 위험을 피하기 위해 국내 취업을 고민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고 전했다.한국 학생의 미국 유학은 최근 들어 구조적으로 불리해지는 추세다. 김준기 서울대 기획부총장(행정대학원 교수)은 “미국 대학들이 학위를 마친 뒤 현지에 남는 비율이 높은 인도나 중국 학생들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김승용 동국대 대학원장(경영학과 교수)은 “미국 유학은 전액 장학금을 받고 가는 경우가 많은데, 중국 학생은 장학금이 없어도 진학하려는 경우가 많아 미국 대학들이 중국 학생을 더 선호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여기에 특히 인문사회계열을 중심으로 미국 대학 등에서 취업 시장이 위축되고 현지 물가가 오르면서 생활비 부담이 커진 점도 유학을 망설이게 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이 같은 분위기에 힘입어 국내 대학들은 대학원생 유치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고려대는 올해 5월 하버드대를 비롯한 주요 대학의 대학원생과 포닥 등이 고려대에서 학업과 연구를 이어갈 수 있도록 하는 특별 지원 프로그램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연세대도 최근 대학원생 장학금을 확대하고 내년 1학기부터 미국 대학 학부 유학생을 대상으로 연중 상시 편입 제도를 도입하기로 했다. 장기적으로 국내 대학에서 석박사 과정을 이수하는 우수한 인재가 늘어날 것이란 기대도 나온다. 실제 수험생들이 국내 대학원 진학을 결정하는지는 이달 말부터 다음 달 초에 진행되는 내년도 전기 대학원 입학 원서 접수 결과에서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다만 미국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지 않으면 취업 기회가 매우 제한적인 일부 전공에서는 여전히 미국행을 택할 것으로 보인다. 또 미국 대신 홍콩, 싱가포르 등의 대학을 고려하는 학생도 상당해 국내 대학이 모든 반사이익을 얻기 어렵다는 분석도 있다. 김영수 서강대 대학원장(사회학과 교수)은 “미국 행정부의 정책이 좀 더 긍정적으로 바뀌기를 기다렸다가 유학길에 오르는 학생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김소영 기자 ksy@donga.com}

    • 2025-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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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빈곤 청소년, 상처 치유 오래 걸려… 어른들 작은 후견활동 절실”

    25년 전 교사 생활을 시작한 경기도 고교 영어교사 강지나 씨는 가난한 환경에서 자라는 아이들을 보면서 무력감을 느꼈다. 이 아이들에게 중요한 건 공부가 아니라 오늘을 버티는 생존이었기 때문이다. 교사로서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는 것 같다는 자괴감은 깊어졌고, 아이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어 사회복지학 공부를 시작했다. 강 씨는 박사 논문의 주제를 ‘빈곤 대물림’으로 정하고 연구를 위해 20여 명의 청소년과 가족들을 만났다. 논문을 마친 뒤에는 이들이 성인이 된 이후의 삶까지 계속 따라가 보기로 했다. 그렇게 10여 년간 8명의 아이들과 만나면서 가난한 아이들이 어른이 되며 마주하는 문제를 기록한 책 ‘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를 2023년 펴냈다.교육 현장에서 시작된 강 씨의 문제의식은 ‘빈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으로 확장됐다. 한국교육개발원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교육급여 수급권자, 차상위계층 자녀 등 교육복지 대상자는 약 33만 명이다. 오랫동안 아이들을 가까이에서 지켜본 그에게 빈곤 청소년의 성장과 우리 사회가 해야 할 일에 대해 물었다. ―빈곤 청소년에 대한 사회의 흔한 통념과 실제 현실의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이었나.“흔히들 ‘가난한 아이들은 기가 죽어 있을 것이다’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로 아이들은 자기 욕구를 잘 드러내고 스스로에 대해서도 잘 표현하며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 요즘은 제도도 성숙해져서 빈곤 때문에 학교에서 낙인이 찍히는 일은 과거보다 훨씬 줄었다. 그런데도 여전히 사회적으로 가난은 부끄러운 일이고 개인의 노력 부족 탓이라는 인식이 있기 때문에 이런 통념이 남아 있다고 생각한다.” ―직접 만난 청소년들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아이를 꼽는다면….“소희(가명)가 떠오른다. 소희는 중학교 3학년 때 학교를 그만두고 가출과 비행을 반복했지만 아무도 붙잡아 주지 않았다. 소희의 가족은 빈곤 대물림의 전형이었다. 가난한 알코올중독자였던 소희 외할머니로부터 불안정한 환경이 계속됐다. 결핍된 어린 시절을 보낸 소희 어머니는 성인이 된 이후 이혼과 가정 폭력, 우울증을 겪으며 불안정한 생활을 이어갔다. 가족은 소희를 신경 쓰지 않은 게 아니라 신경을 쓸 수가 없었던 상황이었다.” ―소희는 어떤 어른이 됐나.“소희는 똑 부러지고 삶의 의지가 있는 아이였다. 검정고시를 보고 대학에 갔다. 하지만 마음속 깊은 우울과 불안은 쉽게 해소되지 않았다. 소희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거나 누군가와 건강하게 관계를 맺는 걸 어려워했다. 가출과 비행을 반복하던 과거의 자신도 용서하지 못했다. 소희를 통해 알 수 있는 건 환경을 극복했다 하더라도 빈곤 대물림이 남긴 정신적·심리적 상처는 쉽게 치유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상처가 사라지려면 굉장히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우리가 빈곤 청소년에게 꾸준히 오래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다.” ―성공적으로 가난에서 벗어난 청소년에게서 발견되는 공통점이 있을까.“성찰하는 힘이다. 자신이 사회 구조 속에서 처한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면서 세상의 잣대가 아닌 자신만의 기준으로 살아가는 힘을 뜻한다. 하지만 가난한 사람이 이렇게 단단한 내면의 힘을 갖는 건 무척 힘든 일이다. 생존 자체에 많은 에너지를 쓸수록 미래를 위한 전략적인 사고를 하기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가난한 사람이 언뜻 보면 비합리적으로 보이는 행동을 하는 것도 그래서다. 예컨대 돈이 생기면 저축하기보다 당장 맛있는 걸 사 먹는다든지, 공부 대신 배달 아르바이트에 몰두하는 일들도 여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아이들에게 ‘공부를 열심히 해서 안정적인 직업을 가지는 게 장기적으로 더 좋은 선택이다’라고 말해도, 그들에게는 당장 현금을 손에 쥐는 게 더 중요하기 때문에 배달 아르바이트를 선택하는 것이다.” ―성찰하는 힘은 어떻게 기를 수 있나.“자신의 삶에 대해서 깊이 들여다본 경험과 생각을 공유할 수 있는 공동체가 필요하다. 꼭 부모나 성인이 아니어도 된다. 가장 고민이 많을 때는 어린 시절 같이 자란 지역아동센터 친구들에게 연락하면서 힘을 받는다고 한 아이들이 있었다. 함께 대화를 나누고 서로 위로하면서 ‘그래도 힘을 내서 살아보자’고 마음을 나눌 수 있는 공동체의 힘이 크다.” ―빈곤 청소년을 위해서 학교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하나.“경제적으로 어렵더라도 아이들은 자신이 원하는 진로를 정확히 알게 되면, 자신이 추구하고 지향하는 삶의 목표를 설정하고 구체적인 활동을 하는 경향을 보인다. 빈곤 청소년에게는 학교가 진로 탐색을 위한 최후의 보루다. 일하느라 바쁜 부모와는 진로에 대해 이야기하기 쉽지 않고 주변에 양질의 일자리를 가진 어른을 찾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이들을 위한 학교에서의 진로 체험과 상담이 더 활성화돼야 한다.” ―가난을 혐오의 대상으로까지 여기는 분위기가 있다. 어린 아이들이 아파트 브랜드에 따라서 친구의 계급을 구분하는 일도 있는데.“‘나도 그 상황에 빠질 수 있다’는 공포가 혐오를 낳는다. 빈곤에 한번 빠지면 벗어나기가 힘들다라는 사회적 조건을 아이들도 이미 알고 있다. 또 가난한 사람을 ‘나와 관계없는 타자’로 여기니까 혐오로 이어지는 것이다. 임대아파트 입주민을 분리하려는 움직임이나 특수학교 건립에 반대하는 일들도 모두 이런 맥락과 연결돼 있고, 아이들도 그 영향을 고스란히 받는다. 하지만 사회 전체가 섞이지 않으면 갈등은 더 커지고 범죄나 불평등과 같은 일은 결국 나 자신에게 돌아온다. 가난한 이들과 함께 사는 삶을 살아야 사회를 더 안전하고 평등하게 만들 수 있고 장기적으로는 내가, 내 아이가 더 살기 좋은 사회가 된다.” ―빈곤 청소년을 위해서 어른들이 할 수 있는 일에는 무엇이 있을까.“주변을 둘러보면 각 지역사회마다 지역아동센터나 복지관이 굉장히 많다. 그곳에 가면 기부부터 작은 봉사활동, 후견인 활동 등 어른들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척 많다. 각자 사는 지역에서부터 그런 활동을 찾아 나설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그물의 그물코처럼 서로 얽혀 있는 존재라는 점을 기억했으면 좋겠다.”김소영 기자 ksy@donga.com}

    • 2025-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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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 모든 학교에 상담교사 배치… 위기신호 접수 땐 48시간 안에 도움

    학생들의 마음 건강을 지키기 위해 서울시교육청이 서울 지역 모든 학교에 상담교사를 배치하고 학생들이 언제든 도움을 요청할 수 있도록 ‘서울학생통합콜센터’를 24시간 운영하기로 했다. 서울시교육청은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서울 학생 마음 건강 증진 종합 계획’을 발표했다고 17일 밝혔다. 학생들의 마음 건강 지표가 지속적으로 악화되고 있어 지원을 강화하겠다는 취지다. 정근식 서울시교육감은 “스마트폰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과다 사용으로 학생들의 우울과 불안이 커지고, 전문가 도움이 시급한 학생 비율도 유의미하게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국 초중고교생 자살 사망자 수는 2020년 148명에서 2021년 197명, 2022년 194명, 2023년 214명, 2024년 221명으로 늘었다. 서울시교육청은 내년 3월 학생 개인의 상황에 맞는 학습 및 복지, 건강, 진로 상담 등을 통합 제공하는 학생 맞춤 통합지원법이 시행되는 만큼 사업별로 흩어졌던 기존 지원 체계를 통합하고 강화하기 위해 이번 계획을 마련했다. 서울시교육청은 일선 학교 상담교사 배치를 위해 앞으로 5년간 매년 50명 이상 상담교사 정원을 확충한다고 밝혔다. 학교 교실과 복도, 화장실 등에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기관을 알리는 안내문을 부착하고 학교에서 다루기 어려운 상황이 생기면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에게 연계할 방침이다. 학생이 언제 어디서나 한 번호로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서울학생통합콜센터도 24시간 운영된다. 위기 신호가 접수되면 ‘48시간 내 첫 개입’을 원칙으로 삼아 응급구조단이 1시간 이내에 현장에 출동하거나 관할 교육지원청 위기지원단과 신속하게 연계하는 체계를 갖출 계획이다. 또 심리·정서 위기 학생에게 치료와 교육을 제공하는 대안교육 위탁 교육기관 ‘마음치유학교’를 내년 9월까지 완공해 상담과 학습을 한 공간에서 제공하고, 필요할 경우 의료기관과도 연계하기로 했다. 정 교육감은 “학교와 각 교육지원청, 지역이 한 팀으로 움직이는 통합 지원체계를 통해 작은 신호도 놓치지 않겠다”며 “교실에서 시작한 작은 신호가 48시간 안에 도움으로 연결돼 아이 한 명 한 명의 곁을 끝까지 지킬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김소영 기자 ksy@donga.com}

    • 2025-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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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령자 진료비 급증-간병비 급여화… 의료-돌봄재정 비상 [품위 있는 죽음]

    지난해 한국이 초고령사회에 진입하면서 의료비와 돌봄 비용이 급증할 것으로 전망된다. 노인장기요양보험은 2030년, 국민건강보험은 2033년 준비금이 소진될 것으로 보인다. 의료비 지출을 효율화하고 별도 예산을 마련하는 등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17일 관계 부처에 따르면 정부는 최근 국회에 제출한 ‘2025∼2029년 국가재정운용계획’에서 건강보험은 2032년까지 보험료율이 법정 상한선(8%)에 도달한 뒤 동결한다고 가정할 때 내년 당기수지 적자로 전환되고, 2033년 준비금이 소진될 것으로 예상됐다. 장기요양보험은 건보료 대비 장기요양보험료율을 유지할 때 2030년 준비금이 고갈될 것으로 전망됐다.전문가들은 노인 인구 증가에 따른 재정 부담 증가는 불가피한 것으로 내다봤다. 서울대 산학협력단이 쓴 ‘초고령사회 대응 정책 수립을 위한 기초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고령 인구가 증가하면서 건강보험 진료비에서 65세 이상이 차지하는 비중은 2023년 44.1%에서 2030년 53.1%, 2040년 63.9%, 2050년 70.2%로 증가한다.간병비 급여화가 현실화되면 재정 악화는 더욱 가속화된다. 정부는 간병비에 건강보험을 적용해 본인부담률을 30% 내외까지 낮출 계획을 갖고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연구원은 국내 요양병원 중증 환자를 대상으로 간병비에 건강보험을 적용했을 때 소요되는 건강보험 재정을 최소 15조 원으로 추산했다. 정재훈 고려대 의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핵가족화에 따라 가족이 간병하는 게 어려워진 상황에서 간병비 급여화는 피할 수 없는 방향”이라면서도 “재원 조달과 확보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미래 세대 부담을 줄이기 위해 건강보험과 장기요양보험 지출 효율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의료기관을 과도하게 이용하지 않도록 유도하고 질병 발생을 예방하는 데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것이다. 이주열 남서울대 보건행정학과 교수는 “건강 관리 등으로 의료비를 줄일 수 있다면 미래 세대의 경제적 부담이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건강보험이나 장기요양보험 외에 생애 말기 삶의 질을 보장하기 위한 별도 재원 마련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윤영호 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설탕세 등 일종의 ‘건강세’를 부과해 새로운 재원을 확보하고 호스피스 등 생애 말기 돌봄을 위한 기금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만성질환의 경우 간호사 등 의사 이외 의료 직군을 활용할 필요도 있다. 홍석철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의사가 부족한 지역에선 재택의료나 방문진료를 할 때 진단이나 처방은 의사가 담당하고 예방과 관리는 간호사가 맡거나 비대면 진료를 확대하는 방식으로 시스템을 바꿀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본 기획물은 정부 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특별취재팀▽팀장 박성민 기자 min@donga.com▽조유라 전채은 김소영 박경민 방성은(이상 정책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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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구 44% 노인인데 전문의 1명뿐 “생의 마지막 통합돌봄 막막” [품위 있는 죽음]

    10일 경북 영양군 영양병원 진료 대기실. 오후 진료가 시작되자 휠체어를 타고 지팡이를 쥔 고령 환자 30여 명이 몰렸다. 간호사는 “예약자가 많으니 조금만 기다려 달라”며 환자들을 안내하느라 눈코 뜰 새 없었다. 치매를 앓는 80대 노모를 모시고 온 장유배 씨(65)는 “두 달에 한 번 관절약을 처방받고 혈압과 피 검사를 하는데, 의사가 부족하니 진료를 기다리다 하루가 다 간다”며 아쉬워했다.‘품위 있는 죽음’을 위해 선진국에서 가장 주력하는 정책이 ‘에이징 인 플레이스(Aging in Place, AIP)’다. 살던 곳에서 건강하게 늙고, 아름답게 생을 마무리한다는 의미다. 국내에서도 내년 3월부터 거동이 불편한 노인과 장애인 대상 ‘의료·요양·돌봄 통합지원 사업’이 시작된다. 핵심은 각 시군구 단위로 운영되는 재택 의료다. 그러나 영양 같은 의료 취약지는 방문 진료는커녕, 운영 중인 병원을 유지하는 것도 벅차다. 이 때문에 ‘품위 있는 죽음’을 위한 정부 정책이 자칫 현실의 벽에 막혀 겉돌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아프면 대구·안동으로” 지역 의료 이용 29%서울 면적의 1.35배인 영양군엔 의사가 7명뿐이다. 그나마 보건소에 3명, 영양병원에 2명 배치된 공중보건의사 5명을 제외하면 자발적으로 이곳에 있는 의사는 2명에 불과하다. 공보의를 마치고 약 20년째 영양병원에서 근무 중인 이상현 원장(가정의학과)은 지역 내 유일한 전문의다. 진료실이 3개 있지만, 봉직의와 공보의가 떠난 뒤 의사를 못 구해 현재 하나만 운영 중이다. 병상 50개는 입원 환자를 돌볼 의료진이 없어 비었다. 이 원장은 “공보의 2명이 교대로 응급실 당직을 선다. 80세가 다 된 방사선사가 퇴직하면 엑스레이도 못 찍는다”고 했다.영양군 인구(1만5165명)는 전국 시군구 중 경북 울릉군에 이어 두 번째로 적다. 주민의 43.9%(6659명)가 65세 이상이고, 70세 이상 홀몸노인은 2000명에 이른다. 만성질환에 시달리는 주민이 상당수지만, 경북에서도 외진 곳인 영양에선 의사를 구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장여진 영양군 보건소장은 “독감 예방접종 의사가 부족해 일당을 주면서 2주 동안 근무할 의사를 겨우 구하곤 한다”고 전했다.주민은 영양군 밖 의료기관에 더 의존할 수밖에 없다. 2023년 기준 영양군 관내 의료 이용률(총입원·내원 일수 대비 관내 의료기관 이용률)은 28.6%. 섬 지역인 인천 옹진군을 제외하면 전국에서 가장 낮다. 영양병원에서 만난 채정희 씨(70)는 “작년에 뇌출혈로 쓰러졌는데 치료할 의사가 없어서 1시간 이상 걸리는 안동병원까지 갔다”고 했다.진료할 수 있는 질환도 제한적이다. 박모 씨(73)는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우울증이 왔는데, 여기선 약 처방이 안 된다. 4주마다 안동까지 가서 약을 처방받는다”고 했다. 우울증 치료제는 전문의약품이라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처방이 필수다. 이날 수비면 보건지소에서 만난 3년 차 공보의는 “몸만큼 마음이 아픈 노인성 우울증 환자가 많은데, 돌봐줄 의사가 없다”며 안타까워했다.● “영양군엔 의사 7명뿐… 통합돌봄 막막”통합돌봄 시행이 6개월 앞으로 다가왔지만, 영양군은 구체적인 의료·돌봄 대상과 내용을 정하지 못했다. 80세 이상 고령자, 혼자 살거나 장애가 있는 노인 등 대상자를 최대한 좁히자는 의견도 나오지만, 현 의료 자원으로는 이조차 역부족이다.민간병원 의사 2명으로 방문 진료는 엄두도 못 낸다. 공보의도 올해 2명이 줄었는데, 앞으로는 더 감소할 수도 있다. 인구 밀집도가 낮아 방문 진료에 시간도 많이 든다. 고나은 일월면 용화보건진료소장은 “의사, 간호사가 방문 진료를 가면 정작 다치거나 약 처방을 받으러 찾아오는 환자는 진료를 못 한다”며 “인력이 부족해 읍면 단위 보건지소와 보건진료소를 통합 운영할 수밖에 없는데, 결국 또 다른 의료 공백이 생긴다”고 말했다.이런 여건을 고려해 호스피스·완화의료 등 임종기 돌봄에 집중하자는 제안도 나온다. 지난해 영양군 사망자는 296명. 이 병원장은 “독거노인이 많다 보니 한두 달에 한 번은 고독사가 발생한다. 마지막 길이 외롭지 않게 평안한 임종을 돕는 것도 필요하다”고 했다. 장 소장은 “은퇴한 시니어 의사를 불러 영양병원 병상 10개만 호스피스 병상으로 운영해도 임종기 돌봄 질을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전문가들은 영양군과 같은 의료 취약지에선 특화된 통합돌봄 모델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김새롬 인제대 의대 예방의학교실 교수는 “전국 시군구 중 23곳은 인구 3만 명에 못 미친다”며 “생애 말기 돌봄을 자급자족하기 어려운 지역은 정부 지원을 늘리고, 간호사 등 의사 대체 인력의 재량과 역할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국립대 병원과 상급종합병원 의사 파견이나 순회 진료 등 지역 내 의료 자원을 적극 활용하자는 의견도 나온다. 이혜진 분당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의료취약지 수가 가산 등 보상을 강화해 재택 의료 및 통합돌봄 참여를 늘려야 한다”고 했다.※본 기획물은 정부 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특별취재팀▽팀장 박성민 기자 min@donga.com▽조유라 전채은 김소영 박경민 방성은(이상 정책사회부) 기자}

    • 2025-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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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대 10개 만들기’ 본격 추진…AI 인재 육성-공교육 강화도

    이재명 대통령의 공약 ‘서울대 10개 만들기’가 교육 분야 최우선 국정과제로 확정돼 추진된다. 교사의 정치기본권을 확대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교육부는 16일 열린 국무회의에서 최종 확정된 국정 과제 중 교육부 주관 6대 국정과제와 25개 실천 과제를 17일 발표했다. 6대 국정과제는 △지역교육 혁신을 통한 지역인재 양성 △청년의 정책 참여 확대와 기본생활 지원으로 함께 만드는 미래 △인공지능(AI) 디지털시대 미래인재 양성 △시민교육 강화로 전인적 역량 함양 △교육격차 해소를 위한 공교육 강화 △학교자치와 교육 거버넌스 혁신이다.교육부는 우선 지역교육 혁신을 통한 지역 인재 양성을 위해 ‘서울대 10개 만들기’를 추진한다. 교육부는 거점국립대학생 1인당 교육비를 서울대 수준으로 늘려 교육과 연구 경쟁력을 제고하기로 했다. 또 학문 분야 최고 수준의 교수를 선정하는 ‘국가석좌교수’ 제도를 새로 만들어 국립, 공립, 사립대에서 65세 정년 제한 예외를 인정하고 최고 수준으로 연구를 지원할 방침이다.국무조정실 등과 함께 청년 삶 전반에 대한 지원도 강화한다. 청년들이 선호하는 지역에 기숙사형 청년주택과 기숙사 등 공급을 늘리고 월세 등 청년 주거비 지원을 강화할 계획이다. 인문100년 장학금 선 발인원은 올해 1500명에서 내년 2000명으로, 희망사다리장학금2유형 지원 규모는 올해 4000건에서 내년 5000건으로 늘린다.또 모든 학교에서 AI를 내실있게 교육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고 특히 과학고, 영재학교, 직업계 고등학교를 중심으로 AI 인재 육성을 추진한다. 정부 초청 장학생과 국제 학생교류 프로그램 등을 통해 해외 우수 인재도 유치한다.교육격차 해소를 위한 공교육 강화도 국정과제에 포함됐다. 교육부는 기초학력 선도학교를 늘리고 전담교원도 확충해 기초학력 보장을 강화하기로 했다. 어린이집 0세반부터 교사 대 아동 비율을 개선하고 3∼5세 무상교육‧보육을 실현하는 등 정부 책임형 유보통합도 추진할 계획이다. ‘교사의 정치기본권 확대’도 주요 과제 중 하나로 담겼다. 현재 국가공무원법과 교육기본법 등에서 교원은 정치적 중립을 유지해야 하고 특정 정당이나 정치활동 참여가 금지돼 있다. 교사의 정치기본권 확대에 대해서는 교원단체와 전문가 사이에서도 이견이 큰 문제인 만큼 앞으로 허용 범위 등을 둘러싸고 논란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최교진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교육은 우리 아이들과 청년들의 행복한 성장과 배움을 든든하게 뒷받침하며 국가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이끄는 핵심 동력”이라며 “이재명 정부의 교육 분야 국정과제가 성공적으로 이행될 수 있도록 교육 현장과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시도교육청, 대학, 국가교육위원회, 관계부처와 긴밀히 협력하겠다”고 밝혔다.김소영 기자 ksy@donga.com}

    • 2025-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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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빈곤 청소년이 가난에서 벗어나려면 ‘성찰하는 힘’ 필요”

    25년 전 교사 생활을 시작한 강지나 씨는 가난한 환경에서 자라는 아이들을 보면서 무력감을 느꼈다. 아이들에게 중요한 건 공부가 아니라 오늘을 버티는 생존이었기 때문이다. 교사로서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는 것 같다는 자괴감은 깊어졌고, 아이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어 사회복지학 공부를 시작했다.강 씨는 박사 논문의 주제를 ‘빈곤 대물림’으로 정하고 연구를 위해 20여 명의 청소년과 가족들을 만났다. 논문을 마친 뒤에는 이들이 성인이 된 이후의 삶까지 계속 따라가보기로 했다. 그렇게 10여 년 간 8명의 아이들과 만나면서 가난한 아이들이 어른이 되며 마주하는 문제를 기록한 책 ‘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를 2023년 펴냈다.책 제목처럼 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떤 어른으로 성장할까. 그들이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우리 사회가 해야 하는 일은 무엇일까. 오랫동안 아이들을 가까이에서 지켜본 강 씨에게 물었다.―빈곤 청소년을 오랜 시간 지켜봤다. 이들에 대한 사회의 흔한 통념과 실제 현실의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이었나.“흔히들 ‘가난한 아이들은 기가 죽어 있을 것이다’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로 아이들은 자기 욕구를 잘 드러내고 스스로에 대해서도 잘 표현하며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 요즘은 제도도 성숙해져서 빈곤 때문에 학교에서 낙인이 찍히는 일은 과거보다 훨씬 줄었다. 그런데도 여전히 사회적으로 가난은 부끄러운 일이고 개인의 노력 부족 탓이라는 인식이 있기 때문에 이런 통념이 남아있다고 생각한다.”―직접 만난 청소년들 중 가장 인상깊었던 아이를 꼽는다면.“소희(가명)가 떠오른다. 소희는 중학교 3학년때 학교를 그만두고 가출과 비행을 반복했지만 아무도 붙잡아주지 않았다. 소희의 가족은 빈곤 대물림의 전형이었다. 가난한 알코올중독자였던 소희의 외할머니로부터 불안정한 환경이 계속됐다. 결핍된 어린시절을 보낸 소희의 어머니는 성인이 된 이후 이혼과 가정폭력, 우울증을 겪으며 불안정한 생활을 이어갔다. 가족은 소희를 신경 쓰지 않은 게 아니라 신경을 쓸 수가 없었던 상황이었다.”―소희는 어떤 어른이 됐나.“소희는 똑부러지고 삶의 의지가 있는 아이였다. 검정고시를 보고 대학에 갔다. 하지만 마음 속 깊은 우울과 불안은 쉽게 해소되지 않았다. 소희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거나 누군가와 건강하게 관계를 맺는 걸 어려워했다. 가출과 비행을 반복하던 과거의 자신도 용서하지 못했다. 소희를 통해 알 수 있는 건 환경을 극복했다 하더라도 빈곤 대물림이 남긴 정신적·심리적 상처는 쉽게 치유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상처가 사라지려면 굉장히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우리가 빈곤 청소년에게 꾸준히 오래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다.”―성공적으로 가난에서 벗어난 청소년에게서 발견되는 공통점이 있을까.“성찰하는 힘이다. 자신이 사회 구조 속에서 처한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면서 세상의 잣대가 아닌 자신만의 기준으로 살아가는 힘을 뜻한다. 하지만 가난한 사람이 이렇게 단단한 내면의 힘을 갖는 건 무척 힘든 일이다. 생존 자체에 많은 에너지를 쓸수록 미래를 위한 전략적인 사고를 하기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가난한 사람이 언뜻 보면 비합리적으로 보이는 행동을 하는 것도 그래서다. 예컨대 돈이 생기면 저축하기보다 당장 맛있는 걸 사 먹는다든지, 공부 대신 배달 아르바이트에 몰두하는 일들도 여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아이들에게 ‘공부를 열심히 해서 안정적인 직업을 가지는 게 장기적으로 더 좋은 선택이다’라고 말해도, 그들에게는 당장 현금을 손에 쥐는 게 더 중요하기 때문에 배달 아르바이트를 선택하는 것이다.”―성찰하는 힘은 어떻게 기를 수 있나.“자신의 삶에 대해서 깊이 들여다본 경험과 생각을 공유할 수 있는 공동체가 필요하다고 본다. 꼭 부모나 성인이 아니어도 된다. 가장 고민이 많을 때는 어린시절 같이 자란 지역아동센터 친구들에게 연락하면서 힘을 받는다고 한 아이들이 있었다. 함께 대화를 나누고 서로 위로하면서 ‘그래도 힘을 내서 살아보자’고 마음을 나눌 수 있는 공동체의 힘이 크다.”―가난을 혐오의 대상으로까지 여기는 분위기가 있다. 어린 아이들이 아파트 브랜드에 따라서 친구의 계급을 구분하는 일도 있는데. “‘나도 그 상황에 빠질 수 있다’는 공포가 혐오를 낳는다. 빈곤에 한 번 빠지면 벗어나기가 힘들다라는 사회적 조건을 아이들도 이미 알고 있다. 또 가난한 사람을 ‘나와 관계없는 타자’로 여기니까 혐오로 이어지는 것이다. 임대아파트 입주민을 분리하려는 움직임, 특수학교 건립에 반대하는 일들도 모두 이런 맥락과 연결돼 있고, 아이들도 그 영향을 고스란히 받는다. 하지만 사회 전체가 섞이지 않으면 갈등은 더 커지고 범죄나 불평등과 같은 일은 결국 내 자신에게 돌아온다. 가난한 이들과 함께 사는 삶을 살아야 사회를 더 안전하고 평등하게 만들 수 있고 장기적으로는 내가, 내 아이가 더 살기 좋은 사회가 된다.”―빈곤 청소년을 위해서 어른들이 할 수 있는 일에는 무엇이 있을까.“일단 가난한 사람이든 아니든 우리는 함께 사는 공동체라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 그물의 그물코처럼 서로 얽혀있는 존재라는 걸 기억했으면 좋겠다. 또 주변을 둘러보면 각 지역사회마다 지역아동센터나 복지관이 굉장히 많다. 그곳에 가면 기부부터 작은 봉사활동, 후견인 활동 등 어른들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척 많다. 각자 사는 지역에서부터 그런 활동을 찾아 나선다면 좋겠다.”김소영 기자 ksy@donga.com}

    • 2025-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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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집에서 임종’ 가정형 호스피스 작년 2245명, 전체의 9.2% 그쳐 [품위 있는 죽음]

    1일 오후 2시 인천 부평구 한 아파트. 의사와 간호사가 거실에 들어서자 대장암 말기 환자인 조모 씨(88)가 병상에 누워 환히 웃었다. 의료진은 초음파 검사를 하면서 식단, 수면 등 전반적인 건강 상태를 점검했다. 조 씨는 지난달 25일부터 인천성모병원의 가정형 호스피스 서비스를 받기 시작했다. 아들 오승구 씨(61)는 “어머니는 죽어도 집에서 돌아가시겠다고 다짐하셨다”며 “막상 이용해 보니 가격도 저렴하고 생각보다 너무 만족스럽다”고 말했다.호스피스는 죽음을 앞둔 환자가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완화하고 ‘품위 있는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완화의료 등을 제공하는 서비스와 시설을 가리킨다. 다만 국내에선 가정형 호스피스 서비스가 활성화되지 않았고 호스피스 병상 등 인프라도 부족해 대기하다 생을 마치는 사례가 종종 발생한다.● 전체 호스피스 이용자 중 재택 9.2% 그쳐15일 보건복지부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서미화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 등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호스피스 서비스 신규 이용자 2만4318명 중 가정형 호스피스 신규 이용자는 2245명(9.2%)에 불과했다. 가정형 호스피스 서비스를 제공하는 전문기관도 2020년 38개에서 올해 40개로 크게 늘지 않았다. 경북과 경남, 전남에는 가정형 호스피스 운영 기관이 없다.국내 호스피스 서비스는 환자가 병원에 머무는 입원형과 전문 팀이 가정을 찾아가는 가정형, 일반 병동 입원 환자를 대상으로 전문 팀에 자문을 해 서비스를 제공하는 자문형으로 나뉜다. 암, 후천성면역결핍증, 만성 폐쇄성 호흡기질환, 만성 호흡부전, 만성 간경화 등 5개 질환의 말기 또는 임종 과정에 놓인 환자가 호스피스를 이용할 수 있다. 입원형 호스피스는 암 환자만 이용할 수 있다.입원형 호스피스 병상도 2020년 1405개에서 지난해 1751개로 늘어나는 데 그쳤다. 5대 대형병원 중에서는 한 곳만 입원형 호스피스를 운영하고 있다. 수도권 상급종합병원 관계자는 “짧게는 2주에서 한 달, 길게는 2, 3개월 정도 대기한다”며 “병상은 한정돼 있는데 수요는 많아 대기 중 숨지는 환자도 있다”고 말했다.예산 투자도 아직 더딘 편이다. 영국은 지난해 말 호스피스 시설 및 서비스 개선에 1억 파운드(약 1889억 원)를 투자하기로 했다. 반면 복지부에 따르면 올해 정부의 호스피스 관련 예산은 110억1000만 원에 그쳤다. 이 가운데 가정형 호스피스 사업 예산은 2022∼2025년 연간 17억 원 수준이다.암 이외 다른 질환을 앓는 환자들은 호스피스 이용률이 크게 떨어진다. 복지부에서 발간한 ‘2024 국가 호스피스·완화의료 연례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암 이외 4개 질환의 사망자는 1만4150명이었는데 이 중 71명(0.5%)만 호스피스 서비스를 새로 이용했다. 하은진 서울대병원 신경외과 교수는 “다른 질환을 앓는 중환자들은 호스피스를 이용하고 싶어도 공급이 부족해 사실상 이용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현장에서는 완화의료에 대한 요구가 많은데 존엄하게 돌봄을 받다 돌아가실 수 있는 여건이 아직은 많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현 상황에선 대상 질환 늘어도 수용 쉽지 않아”정부는 지난해 제2차 호스피스·연명의료 종합계획을 발표하면서 세계보건기구(WHO) 권고 기준 등을 바탕으로 대상 질환을 늘릴 계획이라고 밝혔다. 소병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5일 호스피스·완화의료 대상을 치매, 신부전, 심부전 질환으로 확대하는 내용의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 법률안’을 발의했다.다만 의료계 현장에서는 호스피스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질환이 늘어도 환자들을 모두 수용하기 어렵다는 의견이 나온다. 수가(건강보험으로 지급하는 진료비)가 낮아 의료기관이 관련 인프라를 확충할 이유가 적기 때문이다. 김철민 서울성모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암을 제외한 나머지 질환은 기대여명을 예측하기 어렵다”며 “이들까지 모두 호스피스에 입원하기에는 사회적인 재원도 부족한 상황”이라고 말했다.호스피스 서비스 이용자가 늘면 불필요한 연명치료가 줄어들 수 있고 결과적으로 건강보험 재정이 덜 사용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석재은 한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호스피스가 전문적으로 개입되면 의료, 돌봄 비용이 절감될 수 있다”고 말했다.사회적 합의를 통한 정부 차원의 생애 말기 돌봄 전략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대균 인천성모병원 호스피스완화의료센터장은 “체계적인 생애 말기 돌봄 전략을 통합 돌봄의 연장선에서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본 기획물은 정부 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특별취재팀▽팀장 박성민 기자 min@donga.com▽조유라 전채은 김소영 박경민 방성은(이상 정책사회부) 기자}

    • 2025-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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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0대이상 80% “고통 심한 말기 환자, 조력 존엄사 합법화 찬성” [품위 있는 죽음]

    40대 이상 10명 중 8명은 의료진이 처방한 약물을 고통이 심한 말기 환자에게 주입하는 등의 방식으로 진행하는 ‘조력 존엄사’ 합법화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령대가 높을수록 찬성 비율이 높았다. 전문가들은 호스피스, 생애 말기 돌봄 확대 등 임종기 삶의 질을 개선하지 않은 채 조력 존엄사를 합법화한다면 빈곤한 노인들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죽음으로 내몰릴 수 있어 많은 대비가 필요하다고 경고했다.동아일보가 40대 이상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생애 말기 돌봄과 임종 인식을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79.7%가 ‘조력 존엄사 합법화에 대해 찬성한다’고 밝혔다. 반대는 10.5%였다. 연령대별로는 60대 84.1%, 70세 이상 83.3% 등 고령층으로 갈수록 조력 존엄사에 찬성하는 비율이 높았다. 또 남성(81.4%)이 여성(78.2%)보다 조력 존엄사 합법화를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조력 존엄사 합법화를 찬성하는 이유는 ‘삶의 자기결정권을 보장하기 위해’(29.3%)가 가장 많았다. 회생 가능성 없는 환자의 생존 연장은 무의미하기 때문(26.5%), 환자의 불필요한 고통을 줄일 수 있어서(21.5%), 가족이나 보호자의 부담 경감(16.9%) 등이 뒤를 이었다.반대하는 이유는 생명 경시 풍조가 확산될 수 있음(26.2%)이 가장 많이 꼽혔다. 이어 삶의 마지막은 스스로 결정할 수 없음(24.2%), 가족 부담을 이유로 원치 않는 죽음 선택 가능(20.0%), 조력 존엄사를 요구하는 사회적 압력 증가(13.1%) 순으로 조사됐다.지난해 한국이 초고령사회에 접어든 만큼 조력 존엄사를 포함해 죽음을 선택할 권리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극심한 고통을 피하고 무의미한 연명 치료를 중단할 수 있는 방법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권리도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다혜 한국존엄사협회장은 “죽음을 개인의 문제로 방치하지 말고 존엄한 삶의 마무리가 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해주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하지만 현 상황에서 조력 존엄사가 합법화될 경우 노인이 자신의 의지에 반해 죽음으로 내몰릴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2023년 기준 한국의 노인 빈곤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높은 수준인 38.2%를 기록했다. 김율리 서강대 생명문화연구소 책임연구원은 “노인은 가족에게 경제적으로 부담이 되는 것을 상당히 부담스러워 한다”며 “이런 부분이 사회적으로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조력 존엄사가 허용된다면 악용될 소지가 충분히 있다”고 말했다.전문가들은 간병 부담을 줄일 수 있는 정부 지원과 호스피스 시설, 생애 말기 돌봄 서비스 등을 먼저 확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누구나 생의 말기에 충분히 돌봄을 받고 온전히 자신의 삶을 결정할 수 있을 때 존엄사 합법화가 의미 있게 논의될 수 있다는 것이다. 윤영호 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조력 존엄사 합법화는 사전 생애말기 돌봄계획 수립과 호스피스 병상 확충 등의 문제와 병행해서 추진해야 한다”고 했다.※본 기획물은 정부 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특별취재팀▽팀장 박성민 기자 min@donga.com▽조유라 전채은 김소영 박경민 방성은(이상 정책사회부) 기자}

    • 2025-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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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차정인 신임 국교위원장 “조직 확대하고 중요 회의 생중계”

    차정인 신임 국가교육위원회(국교위) 위원장이 15일 “보안과 비밀 유지를 강조해 온 기관 운영 방식을 즉각적으로 폐기하겠다”고 밝혔다.차 위원장은 이날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국교위가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고 유능한 정부기관이 돼 소임을 완수할 수 있도록 ‘국교위 정상화’를 우선적으로 추진하겠다”며 이같이 말했다.이어 “지난 3년간 국교위는 출범 당시 법정 임무를 수행하기 어려울 정도의 이해할 수 없는 심한 기구 축소와 출범 이후의 무력화, 그리고 리더십의 한계를 극복하는 데 역부족이었다”고 평가했다. 이와 관련해 국교위 조직과 인력을 키우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차 위원장은 “국교위가 국민이 부여한 법령상 임무를 원활히 수행할 수 있도록 조직 확대개편과 인력 증원 등을 적극 추진하겠다”고 덧붙였다.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회의는 생중계를 허용하겠다는 방침도 밝혔다. 차 위원장은 “비공개가 필요한 특별한 경우 외에는 본회의와 전문위원회 회의 방청을 허용해 교육정책의 토론과 숙의 내용을 실시간으로 국민께 공개하겠다”고 말했다. 또 “대학입시 제도뿐만 아니라 유보통합, 영유아 사교육, 교권 보호, 고교학점제 등 주요 교육현안에 대해 국가교육계획의 컨트롤 타워로서 거시적이며 전문적인 논의를 하겠다”며 “지역 현장을 직접 찾아가 교원, 학생, 학부모, 대학 관계자 등 여러 교육 주체들과 소통하겠다”고 강조했다.국교위는 중장기 교육제도 수립과 교육정책의 사회적 합의 도출을 위해 설립된 기관으로 2022년 공식 출범했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에서 2022년 9월 초대 국교위 위원장으로 임명된 이배용 전 위원장이 특검으로부터 ‘매관매직’ 의혹을 받으면서 사퇴하는 등 국교위는 몸살을 앓았다.김소영 기자 ksy@donga.com}

    • 2025-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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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민 절반 ‘재가 임종’ 원하지만 실제 16%뿐… “재택의료 확충을” [품위 있는 죽음]

    4일 오후 경기 성남시 중원구의 한 주택. 3평 남짓한 방에 미동 없이 누운 윤화수 씨(91)의 몸을 의료진이 옆으로 돌리자 등에 주먹만 한 욕창이 보였다. 의료진 김주형 집으로의원 원장이 “오늘은 그래도 컨디션이 좋아 보인다”고 말하자 윤 씨 얼굴에 옅은 미소가 번졌다. 간호사는 간단한 연고를 바른 뒤 드레싱 처치를 했다. 치매와 당뇨를 앓고 있는 윤 씨는 방문진료를 받기 전엔 심장내과, 정신건강의학과 등 여러 병원에서 외래 진료를 받았다. 딸 유관희 씨(69)는 “90kg이 넘었던 엄마를 휠체어에 태워 여러 병원에 다니는 게 너무 힘들었다. 이젠 집에서 진료받으니 약 처방이 중복될 일도 없어 마음이 놓인다”고 했다. 유 씨는 어머니를 임종까지 집에서 돌볼 계획이다. 그는 “엄마도 병원이나 요양원에 가는 걸 싫어한다. 원하는 곳에서 덜 아프다가 가셨으면 한다”고 했다.● “재가 임종 희망”… 현실은 병원이 75%동아일보가 40대 이상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생애 말기 돌봄과 임종 인식을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50.1%는 희망하는 임종 장소로 ‘자택’을 꼽았다. 병원 임종은 25.4%, 요양시설은 17.1%였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2023년 기준 임종 장소는 의료기관이 75.4%였고, 주택은 15.5%에 그쳤다. 임종기 간병 부담이 큰 데다, 사망 시 경찰 신고와 검안부터 시신 이송까지 재가 임종 절차가 까다롭다는 인식 때문이다. ‘실제 어디서 임종을 맞을 것으로 예상하느냐’는 질문에도 20.8%만이 ‘자택’을 꼽았다. 병원 37.1%, 요양시설 30.3% 등 국민 3명 중 2명은 집이 아닌 곳에서 임종을 맞을 것으로 예상했다. 재가 임종이 쉽지 않은 이유 중 하나는 재택의료 인프라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재가 임종 시 사망 진단 등을 위해 연락하는 재택의료센터는 전국 113개 시군구에만 지정돼 있다. 2019년부터 1차의료 방문진료 시범사업이 시작됐지만, 올 6월 기준 등록 기관은 986곳으로 전체 의원 3만7234곳 중 2.6%에 불과하다. 진료 환자는 2020년 1545명에서 올 1∼6월 1만7517명으로 크게 늘었지만, 여전히 사각지대가 많다. 의료계에선 거동이 불편해 방문진료가 꼭 필요한 노인과 장애 인구가 15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한다. 박건우 대한재택의료학회 이사장(고려대안암병원 신경과 교수)은 “선진국일수록 아픈 노인을 찾아가는 재택의료가 발달해 있다. 생애 말기를 대형병원에 의존하는 문화를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사망 진단 방문 수가 신설, 임종기 돌봄 가족 유급휴가 등 의료기관 참여를 늘리고, 가족의 부담을 덜어줄 정책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주형 집으로의원 원장은 “먼 거리 환자, 야간 환자를 봐도 수가는 똑같다. 방문진료가 활성화되려면 보상 구조부터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다사 사회’ 진입에도 죽음 언급 꺼려고령화가 급속히 진행된 한국은 2020년부터 출생보다 사망이 많은 다사(多死) 사회에 진입했다. 하지만 죽음에 대한 언급을 꺼리는 문화 탓에 임종 계획을 세우고 생의 말기를 보내는 사례는 흔치 않다. ‘생애 말기 돌봄과 임종을 고민하거나 가족과 상의한 적 있느냐’는 질문에 38%가 ‘없다’고 답했다. 임종 계획을 세우지 않은 이유로는 ‘가족과 죽음을 얘기하는 것이 불편해서’라는 의견이 25.8%로 가장 많았고, ‘죽음을 생각하고 싶지 않아서’라는 답변도 25.4%로 비슷한 응답률을 보였다. ‘호스피스 등 생애 말기 의료·돌봄에 대한 정보가 부족해서’ 15.2%, ‘계획에 대한 필요를 못 느껴서’라는 답변은 14%를 나타냈다. ‘품위 있는 죽음’을 위해선 노인 가구의 경제적 부담을 완화하는 것도 필요하다. 응답자들은 노년기 가장 큰 고민으로 ‘간병비 등 의료·돌봄 비용’(26.6%)을 꼽았다. 72.1%는 ‘의료비, 간병비, 주거비 등 노년의 경제적 부담이 크다’고 답했다. 간병 부담을 덜기 위해 가장 필요한 정책으로는 ‘중증환자 간병비 건강보험 적용’(38.4%)이 필요하다는 답변이 가장 많았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월평균 간병비는 약 370만 원에 이른다. 정부는 이런 부담을 줄이기 위해 중증환자의 요양병원 간병비 본인부담률을 30%로 낮추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문제는 재원 마련이다. 간병비 급여화를 위해선 대상 환자 범위와 간병인 배치 기준 등에 따라 연간 최소 1조9770억 원에서 최대 7조3881억 원의 비용이 드는 것으로 추산된다. 정순둘 이화여대 연령통합고령사회연구소장은 “재원 마련을 위해선 건강보험료 인상 등 국민 부담이 커진다는 것을 정부가 솔직히 밝혀야 한다”며 “호스피스와 재택의료 지원은 늘리고 요양병원의 불필요한 입원은 줄이는 등 지출 재구조화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본 기획물은 정부 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특별취재팀▽팀장 박성민 기자 min@donga.com▽조유라 전채은 김소영 박경민 방성은 (이상 정책사회부) 기자}

    • 2025-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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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품위 있는 죽음 위한 ‘엔딩플래너’ 필요, 정부가 적극 도와야” [품위 있는 죽음]

    “죽음은 삶을 빛내주는 마지막 장식 같아요.” 6일 오전 서울 마포구의 한 교회에서 열린 웰다잉 수업. 스크린에 띄운 영상에서 한 초등학생이 죽음을 이렇게 정의하자 몇몇 수강생이 눈물을 훔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죽음을 삶의 한 단계로 받아들이고, 아름다운 마지막을 미리 준비해야 한다는 건 이날 교육의 핵심 메시지이기도 했다. 강사로 나선 대한웰다잉협회 이계상 대외협력팀장은 “입시, 취업, 결혼, 출산을 준비하듯 품위 있는 죽음을 위해선 임종에도 계획이 필요하다”며 “그래야 남은 삶의 가치도 올라간다”고 말했다. 임종 계획은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데서 시작한다. 웰다잉 교육에선 생의 행복과 불행을 그래프로 나타낸 ‘인생 곡선’ 그리기, 자기소개서 쓰기 등을 권한다. 경기도의 한 노인복지관에서 일하는 권소진 씨(35)는 “방문하는 어르신들에게 인생 노트와 사전 장례 계획을 써 보길 권한다. 처음에는 죽음을 떠올리는 것에 두려움과 거부감이 크지만, 삶을 한번 돌아본 뒤 홀가분해졌다는 분들이 많다”고 전했다. 이날 교육에 참여한 수강생들은 “언제 어떻게 닥칠지 모르는 죽음을 미리 상상하면서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고 했다. 대학병원 중환자실 간호사로 오래 일한 전소연 씨(49)는 최근 중학생 자녀에게 연명치료를 받지 않고, 장기를 기증하겠다는 뜻을 전했다. 전 씨는 “가족에게 부담되는 화려한 장례식보다는, 조촐한 ‘생전 이별식’으로 주위에 감사와 용서를 전한 뒤 떠나고 싶다”고 했다. 품위 있는 죽음을 위해선 집과 지역 사회에서 생을 마무리할 수 있는 제도적 뒷받침도 필요하다. 원미선 씨(54)는 “80세 어머니가 ‘집에 있다가 죽기 전 일주일만 병원에 있고 싶다’고 하더라. 가족들이 충분히 임종기 돌봄을 감당할 수 있도록 가정 호스피스를 충분히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300만 명이 작성한 사전연명의료의향서처럼 구체적인 사전돌봄계획(ACP) 수립이 확산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일본은 2018년부터 ‘인생회의’라는 이름으로 사전돌봄계획 수립을 적극 장려하고 있다. 연명의료와 완화의료 중 무엇을 선택할지부터 생의 마지막을 함께 보내고 싶은 사람과 장소까지 구체적인 계획을 세운다. 윤영호 서울대 건강문화사업단장(가정의학과 교수)은 “임종 계획을 세우는 것은 누구나 막막하다. 정부가 존엄한 삶의 마지막이 가능하도록 적극 도와야 한다”며 “결혼의 웨딩플래너처럼 ‘엔딩플래너’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본 기획물은 정부 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특별취재팀▽팀장 박성민 기자 min@donga.com▽조유라 전채은 김소영 박경민 방성은 (이상 정책사회부) 기자}

    • 2025-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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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사가 수학여행 버스기사 음주측정-숙소 완강기 점검하라”… ‘매뉴얼 과잉’에 빠진 학교 현장

    서울의 한 중학교 교사 A 씨는 최근 수학여행지 답사를 준비하면서 황당함을 느꼈다. 서울시교육청 매뉴얼의 ‘출발 전 차량 안전점검표’에 차량 앞바퀴 재생 타이어 사용 여부와 타이어의 마모 균열 상태를 확인하라는 항목이 있었기 때문이다. ‘숙소 점검 체크리스트’에는 숙박 시설의 완강기가 정상적으로 작동하는지 묻는 항목도 있었다. A 교사는 “현실적으로 교사가 이런 사항들을 하나하나 확인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며 “그런데도 매뉴얼에서 구체적으로 규정하고 있으니 나중에 문제가 생기면 교사가 모든 책임을 져야 하는 구조”라고 말했다. ● 교사가 음주감지기로 버스 기사 음주 여부 확인 학교가 ‘과잉 매뉴얼’에 빠져 있다. 학교 현장에서 크고 작은 사고가 일어나거나 학부모 민원이 발생할 때마다 ‘매뉴얼’이라는 대책으로 대응하다 보니 각종 행사 및 시설마다 수백 쪽에 이르는 매뉴얼이 쌓이게 된 것이다. 교사들은 ‘매뉴얼에 있는데 왜 체크하지 않았냐’며 책임이 전가되다 보니 교육에 집중할 시간을 과도하게 행정 처리에 빼앗기고 있다고 토로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현장체험학습이다.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에 따라 운송사업자는 버스 기사의 음주 여부를 확인해 그 결과를 학교에 통보하도록 되어 있다. 하지만 일부 교육청의 현장체험학습 매뉴얼에 ‘필요할 경우 학교에서 실시한다’는 조건이 달려 있어 결국 교사들이 현장에서 체크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한다. 특히 현지에서 숙박하고 오는 수학여행에서는 매번 교사가 운전기사의 음주 여부를 직접 측정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대구의 한 초등학교 교사 B 씨는 “혹시라도 어떤 일이 생길지 아무도 모르는 만큼 현장체험학습을 가기 전, 교사가 직접 음주감지기로 버스 기사의 음주 여부를 확인한다”고 말했다. 매뉴얼이 있더라도 책임을 지는 주체가 모호해 학교 현장에서 갈등이 빚어지기도 한다. 세종의 한 초등학교 교사 C 씨는 교내 폐쇄회로(CC)TV 관리 업무를 맡던 중, 학생이 두고 간 자전거가 주말에 도난당하자 학부모 항의에 주말에 출근해 CCTV를 확인해야 했다. C 씨는 “매뉴얼상 ‘학교장이 CCTV 관리감독에 대한 책임을 진다’고 되어 있지만, 관리감독 주체가 정확히 행정실을 지칭하는 것인지 교사인지 불분명해 갈등이 생겼다”고 말했다. ● “학생 교육·지도에 전념할 수 있게 해야” 학교 현장에서는 이 같은 매뉴얼 과잉이 결국 학생 피해로 돌아간다고 말한다. 강원도의 한 고교 교사 D 씨는 “수백 페이지에 달하는 매뉴얼을 숙지하고 챙기다 보면 정말 필요한 학생들 교육과 지도에 집중할 수 없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기본적인 매뉴얼은 필요하지만 매뉴얼을 간소화하고, 교사에게 과도한 책임을 지게 하는 구조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박남기 전 광주교대 총장은 “지금 학교 현장의 매뉴얼들은 일을 제대로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사고가 발생했을 때 책임 소재를 가리기 위한 성격이 강하다”며 “교사가 교육 활동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승진 좋은교사운동 정책위원장은 “특히 현장체험학습 등 확인해야 할 매뉴얼이 많은 사안에 대해서는 개별 교사가 다 떠맡을 것이 아니라 교육청 차원에서 인력을 활용해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김소영 기자 ksy@donga.com}

    • 2025-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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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요 초대석]“임종 임박해 내리는 연명의료 결정, 존엄한 삶 마지막 준비 역부족”

    《인간은 누구나 죽음을 맞이한다. 하지만 죽음을 경험해 본 인간은 누구도 없다. 그래서 우리는 죽음 앞에서 늘 서툴다. 평소 죽음에 대해 많이 생각하며 준비했다는 사람도 생애 마지막 앞에서는 코에 관을 꼽고 강한 진통제에 의존하다가 차가운 병상에서 고통 속에 눈을 감는다. 가족들 역시 떠나는 이에게 불효가 될까 두려워, 끝까지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는 자책과 시선이 걱정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정신적 고통에 괴로워한다. 호스피스와 연명의료 중단이 아직 정착되지 않은 한국 의료 현실은 환자와 가족 모두를 힘겹게 한다.서울대병원 완화의료 임상윤리센터 유신혜 교수(36)는 생애 마지막을 눈앞에 둔 환자가 품위 있는 죽음을 어떻게 맞이할 수 있을지 연구하는 의사다. 말기 암 환자나 중증 치매 환자의 병을 완벽하게 낫게 할 순 없지만, 최대한 아프지 않게 존엄한 마지막 순간을 맞도록 돕는 일은 노력에 따라 가능하다.》65세 이상 노인 인구가 1000만 명을 넘고 치매 인구도 100만 명에 달하는 한국에서 품위 있는 죽음은 더 이상 개인적 소망이 아닌 사회와 국가가 해결해야 할 과제다. 무의미한 연명치료 속에서 통증조차 다스리지 못한 채 눈을 감는 현실은 누구에게도 행복하지 않다. 유 교수는 “좋은 죽음을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괴로운 죽음을 피하게 돕는 건 가능하다”고 말한다. “죽음을 미루거나 당기려 하기보다 오늘 하루를 더 잘 살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의사의 역할”이라는 그의 말은, 초고령사회에 들어선 한국이 직면한 보편적이면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품위 있는 죽음이란 무엇인가. “인상 쓰지 않은 편안한 얼굴로 사랑하는 사람들과 마지막을 함께 보내는 것, 본인이 바라는 삶과 죽음의 방식이 존중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프지 않고 죽음을 맞이할 수 있나. “신체적으로 하나도 아프지 않은 상태에서 돌아가시는 분이 꽤 있다. 진료 현장에서 통증을 겪는 환자들이 가장 많이 묻는 말이 ‘지금도 이렇게 아픈데, 죽을 땐 얼마나 더 아프냐’는 것이다. 그럴 때 ‘아프지 않게 돌아가실 수 있다’고 답해 드린다.” ―그게 컨트롤이 가능한가. “스스로는 어렵고, 의료의 도움이 필요하다. 환자가 힘든 증상을 보이고 있을 때, 괴롭지 않도록 (통증 등을) 완화하는 의료가 생애 마지막까지 이뤄지면 된다. 좋은 죽음을 정의하는 건 굉장히 어렵지만 피하고 싶은 죽음을 맞이하지 않도록 준비하는 건 어느 정도 할 수 있다.” ―평소에 주로 어떤 환자들을 치료하는지…. “더 이상 낫지 않는 질병, 흔히 말하는 중증 질병이 상당히 진행돼 몸과 마음이 불편해진 분들을 만난다. 암 환자나 폐, 간 등 장기부전 환자, 신경계 질환 환자가 많다.” ―그런 분은 일반적인 환자와 무엇이 다른가. “대부분 상황이 안 좋아졌을 때 원래 진료하던 다른 의사들이 ‘준비하십시오’라는 말을 하면서 보낸다. 환자는 도대체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날까, 저 의사는 무슨 말을 할까 두려움을 안고 불안한 표정으로 온다. 뭔가 안 좋은 얘기를 들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겠나. 그런 환자들을 만날 때 항상 같은 첫 질문으로 ‘오늘 컨디션 어떠세요? 가장 힘든 게 뭐예요?’라고 묻는다.” ―환자마다 대답이 제각각일 텐데…. “몸이 아픈 환자는 당연히 어디가 아픈지 먼저 얘기한다. 통증이 있는 환자에게는 통증이 가장 큰 문제다. 그런데 몸이 아프지 않은 환자 중 ‘마음이 힘들어요’라고 대답하는 경우가 있다. 그동안 의사에게 말하지 못했던, 심적으로 힘든 상황을 안고 있다는 것이다. 죽음에 대해 직접 대화하기보다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해 얘기하는 시간이 훨씬 길다. 죽음을 앞둔 환자는 하고 싶었지만 못 했던 일들에 대해 괴로워한다. 딸 결혼을 시켰어야 했는데, 배우자와 몇 살까지는 살고 싶었는데, 같은 얘기를 하시며 그런 아쉬움도 끝나가는 것, 자기 죽음으로 남겨진 가족들이 얼마나 슬퍼할지 그런 걸 힘들어한다.” ―가족의 고통도 크지 않나. “암은 보통 병이 상당히 진행돼야 일상생활이 어려워진다. 상대적으로 간병 기간이 짧다 보니 가족들은 ‘얼마 못 산다는데 온 힘을 다해 어떻게든 마지막까지 내 손으로 돌보자’는 마음을 갖는다. 반면 치매, 파킨슨병, 신경계 질환은 신체 기능이 지속적으로 나빠지지만 당장 돌아가시진 않는다. 그러다 보니 가족들이 정말 많이 소진된다. ‘내가 너무 나쁜 사람 같다’ ‘차라리 죽었으면 좋겠다’고 호소하는 가족이 많다. 하지만 그건 매우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그동안 사랑했기 때문에 지금까지 이렇게 돌봐온 것이니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보자’고 하면 위안을 얻는다.” ―그래서 품위 있는 죽음에 관한 생각이 커지는 것일 텐데, 결국 연명치료를 할지 말지에 대한 환자와 가족의 고민이 크지 않나. “의학적으로 의료진이 제안하고 환자가 결정해 수락하는 게 기본 구조다. 그런데 한국에선 많은 환자가 “이걸 어떻게 내가 정하나. 의사 선생님이 결정해 달라”고 한다. 의료 전반에서 한국은 서구보다 자기 결정권 개념이 약하다. 죽음에 관한 결정은 환자, 의료진이 단독으로 내리기 어렵다. 생애 마지막에는 간병하는 분의 의견도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가족 역시 환자 못잖게 중요한 의사 결정 역할을 한다.” ―어떤 방식으로 결정을 내리나. “항암 치료를 받는 게 좋은지, 안 하는 게 나은지 확실하게 어느 쪽이 맞는다고 말하기 어려운 경우가 생긴다. 병을 치료할 때 ‘이 치료는 효과가 없을 수 있는데 안 하면 더 이상 치료할 방법이 없고 돌아가실 수 있다’고 설명해야 할 때도 있다. 환자가 너무 지쳐서 인제 그만 치료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도 가족이 ‘그래도 의사가 제안했는데 한번 힘내서 해 보자’고 한다. 생애 마지막엔 환자가 가장 힘이 없고 힘들다.” ―돈이 많거나 권력 있는 환자는 다르지 않나. “오히려 더 힘든 경우가 많다. 의료진이 치료로 호전되기 어렵다고 보는데도 주변에서 “지금 돌아가시기 너무 아까운 분이다” “오래 살아야 할 분이다”라며 죽음에 대해 말을 꺼내기도 어려운 상황을 만든다. 정작 환자 본인은 연명치료가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을 수 있는데, 의료 방향이 반대로 흘러갈 때도 있다.” ―국내에서 연명의료 결정법이 시행된 지 7년이 됐다. “현행법은 품위 있는 죽음을 하기 위해 아주 필요한 최소한의 요건을 정해놓은 수준이다. 원하지 않는 연명치료를 안 하고 환자가 바라는 대로 존엄하게 임종하게 해 주자는 게 목표인데, 현재 법은 임종이 임박할 때만 결정할 수 있게 돼 있다. 왜 생애 마지막 임종 직전에만 가능해야 하냐는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다.” ―안락사, 존엄사를 허용하자는 뜻인가. “그것과는 다르다. 임종을 맞이하는 분이 자연스럽게 돌아가시도록 두자는 것이지, 죽이는 약물을 투여해도 된다는 게 아니다. 예를 들어 생애 말기는 언제일까. 누군가는 화장실도 걸어서 못 가고 가족들이 전적으로 수발해야 하는 상황을 삶의 끝자락이라고 생각하면서 더 이상 처치하지 말고 편안하게 죽을 수 있도록 해 달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의료진은 일반적으로 이런 상황을 임종이 임박했다고 보지 않는다. 그렇다면 자기 결정권은 어디까지 줘야 할까. 원치 않는 치료를 받지 않을 수 있도록 연명의료 결정권을 어떻게 확대해야 할까. 지금은 너무 좁은 부분만 인정하고 있다. 너무 죽음이 임박해 연명의료 결정을 하는 건 의미 있는 삶을 살고 잘 마무리하는 데 부족하다. 더 이른 시기부터 숙고해서 결정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자칫 환자에게 죽음을 부추기는 현대판 고려장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현행법은 환자가 의사 표현을 하지 않으면 끝까지 연명의료를 하게 돼 있다. 해외에서는 환자가 적극적인 치료를 원해도 임종이 임박해 회복할 수 없다고 판단될 때는 환자를 편안하게 하는 게 최선이라는 공감대가 있다. 최근 우리 병원에서 한 환자가 사전 연명의료 의향서를 쓰러 와서 설명을 듣더니 화를 냈다. “지금 당신들 얘기를 들어보니 연명치료는 안 하는 게 기본 아닌가. 연명치료를 받고 싶은 사람이 서명해야지, 왜 안 받겠다고 하는 사람이 사인하게 만드냐”고 말이다.” ―큰 병원에서 완화 치료를 받으려면 경제적 여유가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보단 환자 질환이 호스피스 대상 질환인지, 환자가 그런 정보를 알고 있는지에 따라 다르다. 암 환자의 경우 말기에 호스피스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요건이 되는데도 국내에서 4분의 1만 이용하고 있다. 국내에서 호스피스를 받을 수 있는 건 5가지(암, 만성폐쇄성호흡기질환, 만성간경화, 후천성면역결핍증, 임종 과정)로 제한돼 있다. 예를 들어 루게릭병은 심해지면 말도 못 하고 온몸이 굳어져 숨을 쉴 수 없는데도 호스피스를 받을 수 없다.” ―완화치료 서비스가 잘 갖춰진 나라는 대부분 선진국이다. 한국의 건강보험 재정으로 충분한가. “현재 한국 건보는 호스피스에 매우 적게 투자하고 있다. 흔히 영국과 비교하는데, 영국은 건강할 때 받는 의료 서비스가 한국보다 훨씬 적다. 선진국에서 의사를 만나려면 몇 달씩 기다려야 한다고 하지 않나. 임종, 품위 있는 죽음에 투자해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가 충분히 이뤄져야 한다. 지금 이뤄지고 있는 의료가 너무 과잉이 아닌지도 생각해 봐야 한다.” ―연명의료 결정법 시행 후 현장에서 달라진 점은…. “의사가 환자에게 물어보기 시작했다는 게 가장 크다. 처음에는 의사들이 ‘이런 말을 꺼내도 되나’ 싶었는데, 막상 해보자 환자들은 다 자기 생각을 갖고 있었다. 환자 생각을 듣기 시작하면서 의사가 의료적 결정을 내릴 때 환자의 생각을 존중하게 됐다. 물론 의학에는 불확실성이 있고, 죽음은 신의 영역이다. 하지만 가장 싫은 상황을 어떻게 하면 피할 수 있을지 고민하다 보면, 죽음 그 자체보다 오늘 살아가는 하루를 더 잘 살도록 도와주자는 것에 초점을 두게 된다. 의미 없는 삶을 살지 않도록 계획하고 나아가다 보면 피하고 싶은 죽음은 어느 정도 피할 수 있다. 그러다 보면 품위 있는 죽음에 한 걸음씩 가까워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유신혜 서울대병원 완화의료 임상윤리센터 교수1989년생. 서울대 의대를 졸업한 뒤 동 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혈액종양내과전문의. 2019년부터 서울대병원 완화의료 임상윤리센터 교수로 재직 중이다. 완화의료 임상윤리센터는 중증 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와 가족의 고통을 줄이고 의미 있는 존엄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돕고 연구하는 곳이다. 암 환자 임종 돌봄, 연명의료 결정, 호스피스 완화치료 등을 연구하고 있다. 2023년 한국생명윤리학회 ‘젊은 생명 윤리 학술상’을 수상했다.이상훈 정책사회부장 sanghun@donga.com김소영 기자 ksy@donga.com}

    • 2025-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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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어유치원 전수조사 했는데…‘레벨 테스트’ 시행 23곳뿐?

    교육부가 ‘레벨 테스트’를 치르는 유아 대상 영어학원(영어유치원) 23곳을 적발해 행정지도를 내렸다. 하지만 기존에 학원에 다니던 학생이 레벨테스트를 보는 경우는 이번 조사에 포함되지 않아 실제보다 과소 집계된 것으로 보인다.교육부는 올해 5~7월 전국 영어 유치원 728곳을 전수조사한 결과, 레벨 테스트를 시행하는 학원 23곳이 적발했다고 4일 밝혔다. 교육부는 학원 수강에 앞서 치르는 사전 선발 시험과 일단 합격은 시키되 분반을 위해 실시한 시험을 모두 레벨 테스트라고 간주했다. 교육부는 이들 학원에 상담 또는 추첨으로 선발 방식을 변경하도록 행정지도를 내렸다. 다만 이번 조사에는 이미 영어 유치원에 등록한 학생이 나중에 레벨 테스트를 보는 경우는 포함되지 않았다. 상당수 영어 유치원이 처음 등록을 할 때는 추첨이나 선착순 방식을 실시하지만, 1~2년 다닌 뒤에 레벨 테스트를 치르게 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번 조사는 실제보다 과소 집계된 것으로 보인다.사전 레벨테스트를 하는 영어유치원을 지역별로 보면 서울이 11곳으로 가장 많았고 경기가 9곳, 강원 3곳이었다.교육당국이 영어 유치원을 전수조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전수조사 결과 총 260곳에서 총 384건의 법령 위반사항이 나타났다. 이에 교육부는 △교습정지(14건) △과태료 부과(70건) △벌점·시정명령(248건) △행정지도(101건) 등 총 433건의 처분을 내렸다. 교육부 최은옥 차관은 “이번 유아 대상 영어학원에 대한 전수조사에서 나타난 부작용을 해소하기 위해, 지속적인 지도 감독을 시행해 법령을 위반하는 사교육 폐해를 방지하고 관련 법령 개정을 통해 건강한 교육 환경을 조성하겠다”고 밝혔다.김소영 기자 ksy@donga.com}

    • 2025-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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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녀가 우울해 하면… “죽고 싶다는 생각한 적 있니?” 물어보세요

    2011년 이후 10대 사망 원인 1위는 자살이다. 청소년의 안타까운 죽음을 예방하기 위해선 자녀가 심리적 위기에 놓였을 때 부모가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 아는 것이 중요하다. 홍현주 한림대 성심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사진)와 인터뷰를 통해 학업과 친구 관계 등 여러 원인으로 자살 위기에 놓인 청소년들을 위해 부모가 가정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을 짚어봤다. 한림대 자살과 학생정신건강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는 홍 교수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청소년 심리부검을 실시한 전문가다. 심리부검은 자살자 주변인 진술과 고인 기록을 바탕으로 원인을 분석하는 작업이다. ―가정에서 미리 알아챌 수 있는 자살 위기 신호가 있을까. “언어·감정·행동 신호로 나눌 수 있다. 예컨대 ‘희망이 없다’ ‘이번 생은 끝났다’는 말은 언어 신호에 해당한다. 무기력하거나 우울해하는 모습은 감정 신호다. 수면이나 식사 패턴이 크게 달라지는 것도 대표적인 행동 신호다. 다만 이런 모습들은 사춘기 아이들이 흔히 보이는 모습과 비슷해 쉽게 알아차리기 어려울 수 있다.” ―그럴 때 직접적으로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느냐’고 물어봐도 괜찮을까. “괜히 아이들을 자극할까, 실제로 그렇다고 말할까 걱정돼 망설이는 부모가 많다. 하지만 돌려 말하지 않고 직접 묻는 게 원칙이다. 단, 다그치거나 추궁하듯이 물어봐서는 안 된다. ‘네가 힘들어 보여서 고민이 있는지 궁금하고 도와주고 싶다’는 의도를 담아서 ‘혹시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 있느냐’고 물어보면 된다. 누군가에게 털어놓는 것만으로도 심리적 압박이 풀리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병원에서는 이런 질문을 받았을때 아이들이 오히려 솔직하게 대답한다.” ―청소년 자해 문제도 심각하다. “아이들에게 자해는 굉장히 힘들고 불편한 감정을 해소하려는 하나의 방법으로 여겨진다. 최근에는 자해를 한 사진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리는 아이들이 많다. 이건 ‘나 좀 도와주세요’라는 신호인 셈이다. 이런 아이들이 흔히 ‘나는 스무 살까지만 살겠다’ ‘한 달 뒤에 죽겠다’는 말을 한다. 뒤집어 보면 그때까지 희망이 있으면 살아보겠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자녀가 자해를 했다면 부모는 큰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 “부모는 화를 내거나 죄책감을 느끼고, 현실을 부정하는 경우가 많다. 아이의 방문을 항상 열어두게 하거나 매일 확인하는 식으로 감시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런 태도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쉽지는 않지만 먼저 감정적이지 않은 상태에서 아이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그 이유에 대해서 공감하는 것이 우선이다. ‘부모가 옆에 있고 네 말을 들어줄 준비가 돼 있다’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 자해 충동이 올라올 때 행동으로 옮기기 전에 부모에게 말할 수 있도록 하면 좋다. 어렵다면 전문가 상담이나 진료를 받아야 한다.” ―여전히 정신건강의학과 치료에 거부감을 느끼는 이들이 많다. “요즘 아이들은 정신과 치료를 크게 두려워하지 않는다. 반면 부모들이 ‘나중에 취업에 문제 생기는 것 아니냐’ ‘이 정도는 치료 받을 정도는 아니다’라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 정신과 치료를 받는 것이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라는 인식이 확산될 필요가 있다.” ―아이가 정신적으로 어려움을 겪을 때 부모가 해선 안 되는 말은 무엇인가. “‘너보다 내가 더 힘들다. 이 정도로 힘들면 나는 벌써 죽었다’ ‘너 죽고 나 죽자’ ‘나도 어릴 때 힘들었는데 지금까지 괜찮으니 너도 견뎌라’ 같은 말은 더 큰 상처가 된다. 아이의 고통을 축소하거나 비교하지 말아야 한다.” ―만약 주변에서 또래의 자살 사건이 발생했을 때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무엇보다 남은 아이들의 ‘후속 자살’을 막는 게 중요하다. 사건을 쉬쉬한다고 해서 해결되지 않는다. 세부적인 원인을 추측할 필요는 없지만, 떠났다는 사실 자체는 인정하고 아이들이 잘 애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특히 떠난 아이와 가까웠던 친구나, 정신적으로 어려움을 겪던 아이들에게는 더 많은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 ―청소년기를 함께 겪는 부모도 지치고 흔들릴 때가 많다. 마지막으로 부모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스트레스는 삶의 일부다. 완벽하게 살아야만 좋은 인생은 아니다. 하지만 사춘기 아이들은 작은 실패나 오점을 크게 받아들이면서 그 끝에 죽음을 선택하기도 한다. 어른들의 입장에서는 ‘대학을 못 간다고 인생이 끝나는 건 아니다’, ‘친구 관계가 잘 안 풀리는 게 그렇게 큰 일이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아이들의 입장은 다를 수 있다. 아이가 힘들 때 힘들다고 말할 수 있도록 하고, ‘실패해도 괜찮다’는 메시지를 일상에서 자주 전하면 좋겠다. 그래야 아이들이 마음의 근육을 키우고 스트레스를 건강하게 해소할 수 있다.”※우울증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비슷한 어려움을 겪는 가족이나 지인이 있을 때 자살 예방 상담 전화(☎109), 자살 예방 SNS 상담 ‘마들랜’(마음을 들어주는 랜선친구)으로 연락하세요. 24시간 전문가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김소영 기자 ksy@donga.com}

    • 2025-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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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5분씩 40일간 소리내 읽기… 서울 초등학생 ‘읽기 성장’ 프로젝트

    서울시교육청이 올해 2학기 초등학교 1, 2학년 학생을 대상으로 ‘읽기 성장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학생 간 읽기 능력 격차를 해소하고 기초 학력을 보장하기 위해서다. 서울시교육청은 학생들이 담임 교사와 함께 매일 반복적으로 소리 내 함께 읽는 활동을 8주 동안 진행하는 ‘읽기 성장 프로젝트’를 올해 2학기에 맞춰 시작했다고 3일 밝혔다. 초등 1, 2학년 학생들이 읽기 능력을 키우고 읽기에 대한 자신감을 높이는 것을 목표로 한다. 교육계에서는 ‘읽기 유창성’이 전체적인 학습 기반이 되는 핵심 요소로 꼽는다. 문자를 빠르고 정확하게 읽어내는 능력이 확보돼야 교과서 내용을 이해하고 학습 활동에 원활하게 참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초등학교 저학년은 읽기 유창성을 발달시킬 수 있는 결정적인 시기”라며 “읽기에 어려움이 있는 학생을 조기에 발견하고 맞춤형으로 지원하기 위해 프로젝트를 시행한다”고 설명했다. 서울시교육청은 읽기 성장 프로젝트를 실행하기 위해 ‘읽기 성장 실천교사’ 220여 명을 모집했다. 서울 내 초등학교 1, 2학년을 지도하는 교사 중 희망자를 선발했다. 이들은 학급 전체 또는 소그룹 학생과 아침 시간, 수업 중, 방과후 시간 등을 활용해 함께 반복적으로 소리 내 함께 읽는 활동을 진행한다. 지난달 27일에는 해당 교사들을 대상으로 프로젝트 설명회를 열어 읽기 유창성 이해에 대한 전문가 특강, 교재 활용법에 대한 강의 등을 진행했다. 서울시교육청은 올해 3월부터 전문가와 함께 ‘읽기 발자국’이란 읽기용 교재도 개발했다. 하루에 10∼15분 활용할 수 있는 학생용 워크북이다. 4단계로 제작된 이 교재는 단계별로 어절 수, 어휘 수준, 음운 규칙 등을 체계적으로 구성해 학생들이 점진적으로 읽기 능력을 키울 수 있도록 제작했다. 또 시범 읽기 음성 자료를 제공해 가정에서도 읽기 지도를 할 수 있도록 했다. 정근식 서울시교육감은 “읽기는 모든 학습의 출발점이며, 초기 학습자의 읽기 유창성 확보는 곧 기초 학력을 보장하고 후속 학습의 든든한 토대를 세우는 일”이라며 “앞으로도 모든 학생이 학습의 기초가 되는 읽기 능력을 갖추고 한 단계 더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말했다.김소영 기자 ksy@donga.com}

    • 2025-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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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힘들어하는 아이에게 ‘내가 더 힘들다’고 말하는 건 최악”

    2011년 이후 10대 사망 원인 1위는 자살이다. 청소년의 안타까운 죽음을 예방하기 위해선 자녀가 심리적 위기에 놓였을 때 부모가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 아는 것이 중요하다. 홍현주 한림대 성심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사진)와 인터뷰를 통해 학업과 친구 관계 등 여러 원인으로 자살 위기에 놓인 청소년들을 위해 부모가 가정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을 짚어봤다. 한림대 자살과 학생정신건강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는 홍 교수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청소년 심리부검을 실시한 전문가다. 심리부검은 자살자 주변인 진술과 고인 기록을 바탕으로 원인을 분석하는 작업이다.―가정에서 미리 알아챌 수 있는 자살 위기 신호가 있을까. “언어·감정·행동 신호로 나눌 수 있다. 예컨대 ‘희망이 없다’ ‘이번 생은 끝났다’는 말은 언어 신호에 해당한다. 무기력하거나 우울해하는 모습은 감정 신호다. 수면이나 식사 패턴이 크게 달라지는 것도 대표적인 행동 신호다. 다만 이런 모습들은 사춘기 아이들이 흔히 보이는 모습과 비슷해 쉽게 알아차리기 어려울 수 있다.”―그럴 때 직접적으로 ‘죽고 싶은 생각을 하느냐’고 물어봐도 괜찮을까.“괜히 아이들을 자극할까, 실제로 그렇다고 말할까 걱정돼 망설이는 부모가 많다. 하지만 돌려 말하지 않고 직접 묻는 게 원칙이다. 단, 다그치거나 추궁하듯이 물어봐서는 안 된다. ‘네가 힘들어 보여서 고민이 있는지 궁금하고 도와주고 싶다’는 의도를 담아서 ‘혹시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 있느냐’고 물어보면 된다. 누군가에게 털어놓는 것만으로도 심리적인 압박이 풀리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병원에서는 이런 질문을 받았을때 아이들이 오히려 솔직하게 대답한다.”―청소년 자해 문제도 심각하다.“아이들에게 자해는 굉장히 힘들고 불편한 감정을 해소하려는 하나의 방법으로 여겨진다. 최근에는 자해를 한 사진을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에 올리는 아이들이 많다. 이건 ‘나 좀 도와주세요’라는 신호인 셈이다. 이런 아이들이 흔히 ‘나는 스무살까지만 살겠다’ ‘한 달 뒤에 죽겠다’는 말을 한다. 뒤집어 보면 그때까지 희망이 있으면 살아보겠다는 의미이기도 하다.”―자녀가 자해를 했다면 부모는 큰 충격을 받을 수 밖에 없다.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부모는 화를 내거나 죄책감을 느끼고, 현실을 부정하는 경우가 많다. 아이의 방문을 항상 열어두게 하거나 매일 확인하는 식으로 감시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런 태도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쉽지는 않지만 먼저 감정적이지 않은 상태에서 아이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그 이유에 대해서 공감하는 것이 우선이다. ‘부모가 옆에 있고 네 말을 들어줄 준비가 돼 있다’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 자해 충동이 올라올 때 행동으로 옮기기 전에 부모에게 말할 수 있도록 하면 좋다. 어렵다면 전문가 상담이나 진료를 받아야 한다.”―여전히 정신건강의학과 치료에 거부감을 느끼는 이들이 많다.“요즘 아이들은 정신과 치료를 크게 두려워하지 않는다. 반면 부모들이 ‘나중에 취업에 문제 생기는 것 아니냐’ ‘이 정도는 치료 받을 정도는 아니다’라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 정신과 치료를 받는 것이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라는 인식이 확산될 필요가 있다.”―아이가 정신적으로 어려움을 겪을 때 부모가 해선 안되는 말은 무엇인가.“‘너보다 내가 더 힘들다. 이 정도로 힘들면 나는 벌써 죽었다’ ‘너 죽고 나 죽자’ ‘나도 어릴 때 힘들었는데 지금까지 괜찮으니 너도 견뎌라’ 같은 말은 더 큰 상처가 된다. 아이의 고통을 축소하거나 비교하지 말아야 한다.”―만약 주변에서 또래의 자살 사건이 발생했을 때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무엇보다 남은 아이들의 ‘후속 자살’을 막는 게 중요하다. 사건을 쉬쉬한다고 해서 해결되지 않는다. 세부적인 원인을 추측할 필요는 없지만, 떠났다는 사실 자체는 인정하고 아이들이 잘 애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특히 떠난 아이와 가까웠던 친구나, 정신적으로 어려움을 겪던 아이들에게는 더 많은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청소년기를 함께 겪는 부모도 지치고 흔들릴때가 많다. 마지막으로 부모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스트레스는 삶의 일부다. 완벽하게 살아야만 좋은 인생은 아니다. 하지만 사춘기 아이들은 작은 실패나 오점을 크게 받아들이면서 그 끝에 죽음을 선택하기도 한다. 어른들의 입장에서는 ‘대학을 못 간다고 인생이 끝나는 건 아니다’ , ‘친구 관계가 잘 안 풀리는 게 그렇게 큰 일이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아이들의 입장은 다를 수 있다. 아이가 힘들 때 힘들다고 말할 수 있도록 하고, ‘실패해도 괜찮다’는 메시지를 일상에서 자주 전하면 좋겠다. 그래야 아이들이 마음의 근육을 키우고 스트레스를 건강하게 해소할 수 있다.”※우울증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비슷한 어려움을 겪는 가족이나 지인이 있을 때 자살예방 상담전화(☎109), 자살예방 SNS 상담 ‘마들랜’(마음을 들어주는 랜선친구)으로 연락하세요. 24시간 전문가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김소영 기자 ksy@donga.com}

    • 2025-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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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심리적으로 힘든 아이의 고통 몰라주거나 비교하면 안 돼”

    2011년 이후 10대 사망 원인 부동의 1위는 자살이다. 청소년의 안타까운 죽음을 예방하기 위해선 자녀가 심리적 위기에 놓였을 때 부모가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 아는 것이 중요하다. 홍현주 한림대 성심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사진)와 인터뷰를 통해 학업과 친구 관계 등 여러 원인으로 자살 위기에 놓인 청소년들을 위해 부모가 가정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을 짚어봤다. 한림대 자살과 학생정신건강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는 홍 교수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청소년 심리부검을 실시한 전문가다. 심리부검은 자살자의 주변인 진술과 고인의 기록을 바탕으로 원인을 분석하는 작업이다.―가정에서 미리 알아챌 수 있는 자살 위기 신호가 있을까.“언어·감정·행동 신호로 나눌 수 있다. 예컨대 ‘희망이 없다’ ‘이번 생은 끝났다’는 말은 언어 신호에 해당한다. 무기력하거나 우울해하는 모습은 감정 신호다. 수면이나 식사 패턴이 크게 달라지는 것도 대표적인 행동 신호다. 다만 이런 모습들은 사춘기 아이들이 흔히 보이는 모습과 비슷해 쉽게 알아차리기 어려울 수 있다.”―그럴 때 직접적으로 ‘죽고 싶은 생각을 하느냐’고 물어봐도 괜찮을까.“괜히 아이들을 자극할까, 실제로 그렇다고 말할까 걱정돼 망설이는 부모가 많다. 하지만 돌려 말하지 않고 직접 묻는 게 원칙이다. 단, 다그치거나 추궁하듯이 물어봐서는 안 된다. ‘네가 힘들어보여서 고민이 있는지 궁금하고 도와주고 싶다’는 의도를 담아서 ‘혹시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 있느냐’고 물어보면 된다. 누군가에게 털어놓는 것만으로도 심리적인 압박이 풀리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병원에서는 이런 질문을 받았을때 아이들이 오히려 솔직하게 대답한다.”―청소년 자해 문제도 심각하다.“아이들에게 자해는 굉장히 힘들고 불편한 감정을 해소하려는 하나의 방법으로 여겨진다. 최근에는 자해를 한 사진을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에 올리는 아이들이 많다. 이건 ‘나 좀 도와주세요’라는 신호인 셈이다. 이런 아이들이 흔히 ‘나는 스무살까지만 살겠다’ ‘한 달 뒤에 죽겠다’는 말을 한다. 뒤집어 보면 그때까지 희망이 있으면 살아보겠다는 의미이기도 하다.”―자녀가 자해를 했다면 부모는 큰 충격을 받을 수 밖에 없다.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부모는 화를 내거나 죄책감을 느끼고, 현실을 부정하는 경우가 많다. 아이의 방문을 항상 열어두게 하거나 매일 확인하는 식으로 감시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런 태도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쉽지는 않지만 먼저 감정적이지 않은 상태에서 아이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그 이유에 대해서 공감하는 것이 우선이다. ‘부모가 옆에 있고 네 말을 들어줄 준비가 돼 있다’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 자해 충동이 올라올 때 행동으로 옮기기 전에 부모에게 말할 수 있도록 하면 좋다. 어렵다면 전문가 상담이나 진료를 받아야 한다.”―여전히 정신건강의학과 치료에 거부감을 느끼는 이들이 많다.“요즘 아이들은 정신과 치료를 크게 두려워하지 않는다. 반면 부모들이 ‘나중에 취업에 문제 생기는 것 아니냐’ ‘이 정도는 치료 받을 정도는 아니다’라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 정신과 치료를 받는 것이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라는 인식이 확산될 필요가 있다.”―아이가 정신적으로 어려움을 겪을 때 부모가 해선 안되는 말은 무엇인가.“‘너보다 내가 더 힘들다. 이 정도로 힘들면 나는 벌써 죽었다’ ‘너 죽고 나 죽자’ ‘나도 어릴 때 힘들었는데 지금까지 괜찮으니 너도 견뎌라’ 같은 말은 더 큰 상처가 된다. 아이의 고통을 축소하거자 비교하지 말아야 한다.”―만약 주변에서 또래의 자살 사건이 발생했을 때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무엇보다 남은 아이들의 ‘후속 자살’을 막는 게 중요하다. 사건을 쉬쉬한다고 해서 해결되지 않는다. 세부적인 원인을 추측할 필요는 없지만, 떠났다는 사실 자체는 인정하고 아이들이 잘 애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특히 떠난 아이와 가까웠던 친구나, 정신적으로 어려움을 겪던 아이들에게는 더 많은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청소년기를 함께 겪는 부모도 지치고 흔들릴때가 많다. 마지막으로 부모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스트레스는 삶의 일부다. 완벽하게 살아야만 좋은 인생은 아니다. 하지만 사춘기 아이들은 작은 실패나 오점을 크게 받아들이면서 그 끝에 죽음을 선택하기도 한다. 어른들의 입장에서는 ‘대학을 못 간다고 인생이 끝나는 건 아니다’ , ‘친구 관계가 잘 안 풀리는 게 그렇게 큰 일이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아이들의 입장은 다를 수 있다. 아이가 힘들 때 힘들다고 말할 수 있도록 하고, ‘실패해도 괜찮다’는 메시지를 일상에서 자주 전하면 좋겠다. 그래야 아이들이 마음의 근육을 키우고 스트레스를 건강하게 해소할 수 있다.”※우울증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비슷한 어려움을 겪는 가족이나 지인이 있을 때 자살예방 상담전화(☎109)나 자살예방 SNS 상담 ‘마들랜’(마음을 들어주는 랜선친구)으로 연락하면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김소영 기자 ksy@donga.com}

    • 2025-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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