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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이 시작되면 텅 빈 무대엔 한 소년이 의자에 앉아 손뼉을 치고 발을 굴리며 리듬을 타기 시작한다. 점점 빨라지는 템포에 소년의 움직임 또한 민첩해진다. 오직 손과 발만을 동원한 한바탕 연주가 끝나고 나면 소년은 말한다. “드럼이 진짜 엄청난 건요, 악기가 없어도 연주를 할 수 있다는 거예요.” 지난달 21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 티오엠에서 개막한 연극 ‘온 더 비트’는 리듬만으로 세상을 읽는 소년 아드리앙(강기둥 윤나무)의 시선에서 전개되는 1인극이다. 아드리앙은 오직 리듬을 통해 세상에서 벌어지는 무수한 일을 감각한다. 농구공이 튀는 박자로 옆집 친구가 집에 왔다는 사실을 알고 도마의 칼질을 통해 엄마가 부엌에 있다는 사실을 안다. 텅 빈 무대에 홀로 놓인 드럼처럼 아드리앙의 세계엔 리듬만이 존재한다. 아드리앙은 단순하지만 집요하고 깊이 파고들지만 편협해지기 쉬운 인간을 상징한다. 아드리앙에게 어느 날 자신만의 드럼이 생긴다. 자신과 리듬만 존재했던 세상에 ‘외부인’이 등장한 것이다. 군데군데 터진 드럼은 이음새가 부식된 허접한 악기였지만 아드리앙은 이 중고 드럼에 점점 몰입하기 시작한다. 문제는 드럼과 함께 아드리앙의 세계에 들어온 ‘진짜 세상’이었다. 드럼과 관련된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예기치 못한 사건사고가 벌어지면서 아드리앙은 극심한 혼란에 빠진다. 무대에는 아드리앙을 연기하는 배우 1명과 드럼 세트만 존재한다. 배우는 아드리앙에게 벌어지는 일을 아드리앙의 입장에서 들려준다. 아드리앙의 말과 행동, 생각을 따라가다보면 그에게 연민하고 공감하다 이윽고 섬뜩한 기분을 느끼게 된다. 작품 중간 중간 이어지는 배우의 드럼 연주 실력도 수준급이다. 2003년 초연한 원작은 2016년 프랑스 몰리에르 1인극상 후보, 지난해 오프 아비뇽 페스티벌 최고의 1인극상을 수상했다. 내년 1월 1일까지, 전석 5만5000원.이지훈기자 easyhoon@donga.com}
연말만 되면 빠지지 않고 대극장에 오르는 대표 무용극이 있다. ‘백조의 호수’ ‘잠자는 숲속의 미녀’와 함께 고전 발레 3대 걸작으로 꼽히는 ‘호두까기인형’이다. 러시아 클래식 음악의 거장 표트르 일리치 차이콥스키(1840∼1893)의 음악으로도 유명한 발레 ‘호두까기인형’은 1892년 러시아 마린스키극장에서 초연됐다. 올해로 130주년을 맞은 ‘호두까기인형’은 연말마다 전 세계에서 공연되는 대표적인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았다. 연말 대표작답게 예매 열기도 뜨겁다. 국내 양대 발레단인 국립발레단과 유니버설발레단(UBC)의 ‘호두까기인형’은 4일 기준 인터파크 티켓 무용 분야 예매 순위 1, 2위(월간 기준)를 각각 차지했다. 국립발레단은 17∼25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UBC는 22∼31일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호두까기인형’을 공연한다. 두 발레단의 ‘호두까기인형’ 모두 독일 작가 에른스트 호프만(1776∼1822)의 동화 ‘호두까기 인형과 생쥐 왕’이 원작이다. 성탄절 전날 밤 소녀는 대부이자 마술사 드로셀마이어에게 호두까기인형을 선물 받는다. 인형을 품에 안은 소녀는 잠들고 무대는 소녀의 꿈으로 바뀐다. 대부의 마술로 소녀는 아름다운 여성으로, 호두까기인형은 호두왕자로 변신해 펼쳐지는 동화다. 두 발레단의 ‘호두까기인형’은 제목과 음악, 원작 줄거리는 같지만 무용극의 가장 큰 틀을 잡는 안무가가 다르다. 국립발레단은 러시아 볼쇼이 발레단 버전으로 러시아의 전설적 안무가 유리 그리고로비치(95)의 작품이다. UBC는 러시아 마린스키발레단이 1934년 초연한 버전으로 차이콥스키 음악의 선율을 가장 잘 살려낸 안무가로 평가받는 러시아의 바실리 바이노넨(1901∼1964)이 만들었다. 각각 다른 안무가가 설계한 만큼 작품의 구성과 안무에 차이가 난다. 국립발레단의 안무는 마임을 최소화한 안무와 역동적이고 화려한 동작이 특징이다. 1막은 아역이, 2막은 성인 발레리나가 주인공을 맡는 UBC는 이해하기 쉬운 마임과 마술 장면이 적절히 섞여 있어 환상동화 같은 느낌을 준다. 발레 입문작으로도 좋다. 특히 2막에서 펼쳐지는 세계 5개국 인형들의 디베르티스망(줄거리와 상관없이 펼치는 춤)에서 각 버전의 차이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국립발레단은 마임을 최소화하고 남녀 무용수 2인이 파드되를 추는 형식인 데 비해 UBC는 과자를 의인화한 각국의 민속춤을 4인 이상의 무용수가 함께 춘다. 극을 끌어가는 인물도 다르다. 주인공인 소녀 이름이 국립발레단에선 마리, UBC는 클라라다. 소녀가 선물 받는 호두까기인형도 UBC에선 진짜 목각 호두까기인형을 사용하는 반면 국립발레단은 부설 발레아카데미 출신의 7∼9세 무용수가 호두까기인형을 연기한다. 목각인형을 흉내 내는 어린 무용수의 춤을 보는 것도 하나의 볼거리다. 국립발레단 버전에서는 마리에게 호두까기인형을 선물하는 대부 드로셀마이어를 화자로 설정해 환상과 현실을 넘나드는 극에 개연성을 부여한다. 어른뿐 아니라 아이도 내용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한 설정이다. 왕자로 변한 호두까기인형과 함께 동화 같은 여행을 하다가 꿈에서 깨어나는 마지막 장면. 국립발레단 버전에선 피날레로 꼽히는 남녀 주인공의 파드되 이후 소녀 마리 역의 어린 무용수가 무대에 등장하며 끝이 난다. UBC는 남녀 주인공의 파드되와 눈꽃 요정들의 춤이 끝난 후 잠에서 깨어나는 클라라의 침실에서 이야기가 마무리된다. 국립발레단 5000∼10만 원, UBC 2만∼12만 원. 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연말만 되면 빠지지 않고 대극장에 오르는 대표 무용극이 있다. ‘백조의 호수’ ‘잠자는 숲속의 미녀’와 함께 고전 발레 3대 걸작으로 꼽히는 ‘호두까기인형’이다. 러시아 클래식 음악의 거장 표트르 일리치 차이콥스키(1840~1893)의 음악으로도 유명한 작품이다. 발레 ‘호두까기인형’은 1892년 러시아 마린스키극장에서 초연된 후 올해 130주년을 맞았다. 연말 시즌 대표작답게 예매 열기도 뜨겁다. 국내 양대 발레단인 유니버설발레단(UBC)과 국립발레단의 ‘호두까기인형’은 4일 인터파크 무용 예매 순위 1, 2위를 차지했다. 국립발레단은 17~25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UBC는 22~31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호두까기인형’을 무대에 올린다.두 발레단의 ‘호두까기인형’ 모두 독일 작가 에른스트 호프만(1776~1822)의 동화 ‘호두까기인형과 생쥐왕’을 원작으로 한다. 성탄절 전날 밤 주인공 소녀는 대부이자 마술사 드로셀마이어에게 호두까기인형을 선물 받는다. 인형을 품에 안은 소녀는 잠에 들고 무대는 소녀의 꿈으로 바뀐다. 대부의 마술로 소녀는 아름다운 여성으로, 호두까기인형은 호두왕자로 변신해 펼쳐지는 환상 동화다. 두 발레단의 ‘호두까기인형’은 제목과 음악, 원작 줄거리는 같지만 안무는 다르다. 국립발레단은 러시아 볼쇼이 발레단 버전으로 러시아의 전설적 안무가 유리 그로고로비치(95)의 작품이다. UBC는 러시아 마린스키발레단이 1934년 초연한 버전으로 차이콥스키 음악의 선율을 가장 잘 살려낸 안무가로 알려진 러시아의 바실리 바이노넨(1901~1964)이 만들었다.각각 다른 안무가가 설계한 만큼 작품의 구성과 안무는 차이를 보인다. 국립발레단의 안무는 역동적이고 화려한 테크닉이 특징이다. 1막은 아역이, 2막은 성인 발레리나가 주인공을 맡는 UBC는 이해하기 쉬운 마임과 마술이 적절하게 섞여 있어 환상동화 같은 느낌을 주고 발레 입문작으로 좋다. 특히 2막에서 펼쳐지는 세계 5개국 인형들의 디베르티스망(줄거리와 상관없이 펼치는 춤)에서 각 버전의 차이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국립발레단은 마임을 최소화한 테크닉 위주로 남녀무용수 2인이 파드되를 추는 형식이라면 UBC는 과자를 의인화한 각국의 민속춤을 4인 이상의 무용수가 함께 춘다.극을 끌어가는 인물도 다르다. 여주인공 이름이 국립발레단에선 마리, UBC는 클라라다. 또 주인공 소녀가 선물 받는 호두까기인형을 UBC에선 진짜 목각 호두까기인형을 사용하는 반면 국립발레단은 부설 발레아카데미 출신의 7~9세 어린 무용수가 직접 호두까기인형을 연기한다. 목각인형을 흉내 내는 어린 무용수의 춤을 보는 것도 하나의 볼거리다. 또 국립발레단 버전에선 여주인공에게 호두까기인형을 선물하는 대부 드로셀마이어를 화자로 설정해 환상과 현실을 넘나드는 극에 개연성을 부여한다. 아이들뿐 아니라 어른들도 내용을 따라오게 하기 위한 설정이다.왕자로 변한 호두까기인형과 함께 동화 같은 여행을 하다가 꿈에서 깨어나는 엔딩 장면. 국립발레단 버전에선 이 작품의 피날레로도 꼽히는 남녀 주인공의 그랑 파드되에 이어 소녀 마리 역을 맡은 어린 무용수가 무대로 등장하며 끝이 난다. UBC는 남녀 주인공의 파드되와 눈꽃 요정들의 춤의 향연이 끝난 후 잠에서 깨어나는 클라라의 침실에서 이야기가 끝맺는다.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우크라이나 북부 히르키우주(州)에 사는 안드레이 클류치코(32)는 전쟁이 발발한 직후인 3월 초부터 방탄조끼와 헬멧 차림으로 거리로 나섰다. 폭격은 도시 외곽부터 시내 중심까지 이어졌다. 전기는 끊겼고 물은 나오지 않았다. 하루가 다르게 도시 인프라는 무너졌다. 하지만 그는 지하벙커에 머물지 않고 밖으로 나왔다. 노인, 장애인 등 거동이 불편한 이들에게 식료품을 전달하기 시작했다. 많을 때는 하루에 80∼100건 배달했다. 한 친구는 음식 배달 후 돌아오는 길에 폭탄 파편을 머리에 맞아 사망했다. 그는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모두가 서로를 돕는 것을 보았다. 위험하다고 해서 멈추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올 초 러시아가 일으킨 전쟁은 현재진행형이다. 우크라이나는 혹한의 계절로 접어들었다. 여전히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지만 국제사회의 관심사는 에너지 위기와 인플레이션으로 옮겨갔다. 주 관심사는 더 이상 전쟁의 참상에 있지 않다. 하지만 이 책은 우크라이나 안팎에서 전쟁의 무게를 몸과 마음으로 받아내고 있는 자원봉사자들의 이야기를 통해 잔혹한 전쟁의 단면을 낱낱이 보여준다. 우크라이나엔 여전히 국제기구의 구호가 닿지 않는 곳이 많다. 전쟁이 소강과 격화를 반복하며 이들에 대한 국제사회의 지원과 관심도 줄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크라이나의 많은 영웅들은 목숨을 걸고 서로가 서로를 돕고 살리고 있다. 인터뷰를 엮은 이는 “모두가 지쳐도 지칠 수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전쟁을 잊은 한국에 작은 경종을 울리길 희망한다”고 적었다.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국악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온라인으로 쉽게 접할 수 있는 국악사전(사진)이 나왔다. 국립국악원은 국악 표제어 해설을 다양한 콘텐츠 형태로 제작한 국악사전(gugak.go.kr/ency)을 1일 공개했다. 종이책자가 아닌 누리집 형태로 만든 사전에는 궁중 음악과 궁중 춤, 민간 풍류음악 등 관련 표제어 419개가 수록됐다. 분야별로는 ‘휘유곡’ ‘여민락’ ‘계면가락도드리’ 등 악곡이 201건으로 가장 많다. 나머지는 ‘집화이무’ ‘소수수’ ‘구호’ 등 춤 106건과 ‘좌고’ ‘운라’ ‘가야금’ 등 악기 51건, 복식 58건이다. 쓰는 방법은 어렵지 않다. 예를 들어 국악사전 검색창에 ‘종묘제례악’을 넣으면 종묘제례악의 정의와 유래 등 구체적 정보가 담긴 페이지가 열린다. 종묘제례악을 표현한 그림과 79분 분량의 공연 영상도 볼 수 있다. 국악사전은 이처럼 글로 된 해설뿐만 아니라 관련 내용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다양한 자료가 포함된 것이 특징이다. 표제어 419개와 관련해 2200여 건의 영상 사진 자료가 수록됐다. 국악원은 “악곡이나 춤은 이를 재현하는 공연 영상을 담았고 악기는 3차원 이미지로 제작해 다양한 각도에서 생김새를 확인할 수 있다”고 했다.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국악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온라인으로 쉽게 접할 수 있는 국악사전이 나왔다. 국립국악원은 국악 표제어 해설을 다양한 콘텐츠 형태로 제작한 국악사전(gugak.go.kr/ency)을 1일 공개했다. 종이책자가 아닌 누리집 형태로 만든 사전에는 궁중 음악과 궁중 춤, 민간 풍류음악 등 관련 표제어 419개가 수록됐다. 분야별로는 ‘휘유곡’ ‘여민락’ ‘계면가락도드리’ 등 악곡이 201건으로 가장 많다. 나머지는 ‘집화이무’ ‘소수수’ ‘구호’ 등 춤 106건과 ‘좌고’ ‘운라’ ‘가야금’ 등 악기 51건, 복식 58건이다. 쓰는 방법은 어렵지 않다. 예를 들어 국악사전 검색창에 ‘종묘제례악’을 넣으면, 종묘제례악의 정의와 유래 등 구체적 정보가 담긴 페이지가 열린다. 종묘제례약을 표현한 그림과 79분 분량의 공연 영상도 볼 수 있다. 국악사전은 이처럼 글로 된 해설뿐만 아니라 관련 내용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다양한 자료가 포함된 것이 특징. 표제어 419개와 관련해 2200여 건의 영상 사진 자료가 수록됐다. 국악원은 “악곡이나 춤은 이를 재현하는 공연 영상을 담았고 악기는 3차원 이미지로 제작해 다양한 각도에서 생김새를 확인할 수 있다“고 했다. 국악사전은 서울대 음대 교수를 지낸 국악인 장사훈(1916~1991)이 편찬해 대중적으로 통용됐던 ‘국악대사전’(1984년) 등 개인연구자가 펴낸 사전들도 적극 반영했다. 앞으로도 ‘민속편’ ‘국악사·국악이론편’ ‘인명편’ ‘다국어 사전’을 주제로 해마다 표제어를 추가해나갈 예정이다. 김영운 국립국악원장은 “국악사전이 국악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우리 전통문화를 알리는 한편 새로운 전통을 창작하는데 주춧돌로 자리매김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세상엔 음악을 통해 마음의 안정과 기쁨을 얻는 사람들보다, 여러 이유로 하루하루 고통 속에 살아가는 이들이 더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지금까지 노래를 잘 부르는 데 집중했다면 이젠 사회적 약자와 동행하는 삶을 살려 합니다.” 세계적인 소프라노 조수미(60)가 소외된 이들을 위해 무료 공연을 한다.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4일 열리는 ‘천원의 행복’ 15주년 특별 콘서트에 출연료를 받지 않고 무대에 선다. 그는 최근 본보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누구보다 노래를 잘하고 싶다는 한 가지 목표에 36년간 매진해왔고 관객과 공감하며 행복을 전하기 위해 애써왔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단 걸 깨달았다”며 “지금부터 작은 일이라도 제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시작하려 한다”고 했다. 이번 공연엔 자립 준비 청년, 보육원 아동, 장애인, 탈북자, 노숙인 등 3000여 명이 초대됐다. 공연 이름은 ‘천원의 행복’이지만 초대된 이들은 무료로 관람한다. 조수미는 프라임필하모닉오케스트라와 테너 장주훈, 크로스오버 테너 크리스 영, 해금 연주자 나리 등과 함께 무대에 선다. 조수미는 한국 가곡 ‘마중’ ‘첫사랑’ ‘꽃피는 날’ ‘흔들리며 피는 꽃’을 부를 예정이다. “요즘엔 우리 노래가 전 세계에서 불리고 우리 가수가 최정상에 서 있어요. 36년 전 이탈리아 트리에스테에서 데뷔 무대를 가진 저로선 정말 신기해요. 당시엔 한국인의 공연을 보러 오게 하려면 정말 잘 불러야 했어요. 이젠 우리 노래를 더욱 잘 불러서 한국적인 것을 많이 남겨야겠다고 생각합니다.” 내년 7월 프랑스 파리에선 그의 이름을 딴 제1회 조수미 국제 성악 콩쿠르가 열린다. 콩쿠르 입상자에게는 조수미와 함께 공연할 기회를 준다. 또 세계적 음반사인 워너뮤직과 앨범을 제작한다. 조수미는 이 콩쿠르에서 심사위원장을 맡는다. 그는 “36년간 제가 걸어온 길을 인정해줘 감사할 따름”이라며 “이 콩쿠르가 신인 성악가들이 세계무대로 진출하는 등용문이 되길 바란다”고 했다. 올해 환갑이 된 그는 “아직 해보지 못한 여러 음악을 시도해 보고 싶다”고도 했다. “세상엔 다양한 문화가 존재하고, 이는 해당 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삶과 연결돼 있습니다. 음악을 통해 여러 문화를 알아가는 건 음악가로서 매우 가치 있는 일입니다. 전통적 클래식의 틀에서 벗어나 여러 형태의 문화와 음악을 소화하는 성악가로 살고 싶습니다.”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구순을 앞둔 노(老)배우가 신인 연출가에 도전한다. 배우 이순재(87)가 현역 최고령 배우에 이어 자칭 ‘최고령 신인 연출가’ 타이틀까지 갖게 된 것. 그는 21일 서울 광진구 유니버설아트센터에서 개막하는 연극 ‘갈매기’에서 연출가 겸 배우(쏘린 역)로 관객과 만난다. ‘갈매기’는 ‘벚꽃 동산’ ‘세 자매’ ‘바냐 아저씨’로도 유명한 러시아의 대문호 안톤 체호프(1860∼1904)의 대표작이다. 서울 마포구 마포아트센터에서 지난달 29일 만난 그는 “‘갈매기’는 원작을 훼손하거나 변형하면 작가의 정신 혹은 문학성이 제대로 전달될 수 없는 작품이다. 배우의 훌륭한 연기로 명대사를 정확하게 표현해야만 작품의 진수가 드러날 수 있다”고 말했다. ‘갈매기’의 중심인물은 작가지망생 뜨레블례프(정동화 권화운)와 배우지망생 니나(진지희 김서안), 유명작가 뜨리고린(오만석 권해성), 뜨레블례프의 어머니인 유명배우 아르까지나(이항나 소유진)까지 4명이다. 치정으로 얽히는 넷의 관계를 통해 구세대와 신세대, 이상과 현실의 갈등이 선명히 드러난다. “갈매기는 체호프가 제정 러시아 말기라는 구체제에선 혁신을 기대할 수 없다는 비관적 전망에서 쓴 작품이에요. 구세대에게 짓눌려 날아오르지 못하는 신세대가 주인공이죠. 갈매기를 썼을 당시 체호프는 서른여섯이었어요. 사회적 제약, 모순, 갈등이 훤히 보이는 나이죠. 또 욕망은 있지만 현실적인 한계로 이를 마음껏 펼칠 수 없는 나이기도 합니다.” 희곡의 원제 ‘갈매기’는 갈등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장치다. 물에서 날아오르고 싶지만 물을 떠나 살 수 없는 새. 기성세대를 떠나려 날갯짓하지만 끝내 떠날 수 없는 젊은 세대를 은유한다. 이상을 향해 나아가고 싶지만 냉엄한 현실 앞에서 좌절하는 인간의 고뇌를 의미하기도 한다. “요즘 젊은이들은 굉장히 우수합니다. 용모, 체격, 두뇌…. 한마디로 종족 개량이 됐어요. 우리가 갖고 있는 이념과 편견, 갈등을 젊은 세대에게 오염시키면 안 됩니다. 우린 이미 오염된 세대예요. 그들 스스로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갈 수 있게 (우리는) 토대만 마련해주면 됩니다.” 그는 스스로를 신인 연출가라 하지만 사실 연출 경력은 오래전 시작됐다. 1980년대 극단 사조에서 ‘수전노’ ‘환상살인’ ‘달려라 토끼’ ‘가을소나타’를 연출하고 20년 전부터는 세종대, 가천대에 출강하며 학생들과 연출 작업을 하고 있다. 그는 “연출가로서 관객에게 제대로 작품을 선보이는 건 이번이 처음”이라고 강조했다. “연출가에겐 창의력, 응용력만큼이나 해석력이 필요합니다. 연출가라고 해서 작품을 마음대로 주물럭거려도 된다는 게 아니에요. 원작을 제대로 구현한 후 자기 세계를 개척할 수 있는 거죠. 연극은 관객과 소통하는 작업이기에 처음 보는 관객도 단박에 내용을 알 수 있게 만들도록 하겠습니다.” 서울대 철학과 재학시절 대학 연극반에서 연극을 시작한 그는 1956년 연극 ‘지평선 너머’로 데뷔한 66년 차 배우다. 지난해엔 86세의 나이로 ‘국내 최고령 리어왕’을 연기한 기록도 세웠다. “연기엔 끝이 없습니다. 완성도 없죠. 새로운 도전과 창조, 노력만 있습니다. 조금 더 잘하는 사람, 더 오래한 사람만 있을 뿐이지 그게 연기의 끝이고 완성은 아닙니다. 저 역시 아직 끝을 보진 못했어요. 성한 몸으로 대사를 외울 수 있을 때까진 해보려 합니다.” 내년 2월 5일까지, 6만∼9만 원.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구순을 앞둔 노(老)배우가 신인연출가에 도전한다. 배우 이순재(87)가 현역 최고령 배우에 이어 '최고령 신인연출가' 타이틀까지 갖게 된 것. 그는 21일 서울 광진구 유니버설아트센터에서 개막하는 연극 ‘갈매기’에서 연출가 겸 배우(소린 역)로 관객과 만난다. ‘갈매기’는 ‘벚꽃 동산’ ‘세자매’ ‘바냐 아저씨’로도 유명한 러시아의 대문호 안톤 체호프(1860~1904)의 대표작이다. 서울 마포구 마포아트센터에서 지난달 29일 만난 그는 “‘갈매기’는 원작을 훼손하거나 변형하면 작가의 정신 혹은 문학성이 제대로 전달될 수 없는 작품이다. 배우의 훌륭한 연기로 명대사를 정확하게 표현해야만 작품의 진수가 드러날 수 있다”고 말했다. ‘갈매기’의 중심인물은 작가지망생 뜨레블례프(정동화 권화운)와 배우지망생 니나(진지희 김서안), 유명작가 뜨리고린(오만석 권해성), 뜨레블례프의 어머니인 유명배우 아르까지나(이항나 소유진)까지 4명이다. 치정으로 얽히는 넷의 관계를 통해 구세대와 신세대, 이상과 현실의 갈등이 선명히 드러난다. “갈매기는 체호프가 제정 러시아 말기라는 구체제에선 혁신을 기대할 수 없다는 비관적 전망에서 쓴 작품이에요. 구세대에게 짓눌려 날아오르지 못하는 신세대가 주인공이죠. 갈매기를 썼을 당시 체호프는 서른 여섯이었어요. 사회적 제약, 모순, 갈등이 훤히 보이는 나이죠. 또 욕망은 있지만 현실적인 한계로 이를 마음껏 펼칠 수 없는 나이기도 합니다.”희곡의 원제 ‘갈매기’는 갈등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장치다. 물에서 날아오르고 싶지만 물을 떠나 살 수 없는 새. 기성세대를 떠나려 날갯짓하지만 끝내 떠날 수 없는 젊은 세대를 은유한다. 이상을 향해 나아가고 싶지만 냉엄한 현실 앞에서 좌절하는 인간의 고뇌를 의미하기도 한다. “요즘 젊은이들은 굉장히 우수합니다. 용모, 체격, 두뇌…. 한마디로 종족개량이 됐어요. 우리가 갖고 있는 이념과 편견, 갈등을 젊은 세대에 오염시키면 안 됩니다. 우린 이미 오염된 세대예요. 그들 스스로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갈 수 있게 (우리는) 토대만 마련해주면 됩니다.” 그는 스스로를 신인연출가라 하지만 사실 연출 경력은 오래 전 시작됐다. 1980년대 극단 사조에서 ‘수전노’ ‘환상살인’ ‘달려라 토끼’ ‘가을소나타’를 연출하고 20년 전부터는 세종대, 가천대에 출강하며 학생들과 연출 작업을 하고 있다. 그는 "연출가로서 관객에게 제대로 작품을 선보이는 건 이번이 처음"이라고 강조했다. “연출가에겐 창의력, 응용력만큼이나 해석력이 필요합니다. 연출가라고 해서 작품을 마음대로 주물럭거려도 된다는 게 아니에요. 원작을 제대로 구현한 후 자기 세계를 개척할 수 있는 거죠. 연극은 관객과 소통하는 작업이기에 처음 보는 관객도 단박에 내용을 알 수 있게 만들도록 하겠습니다.”서울대 철학과 재학시절 대학 연극반에서 연극을 시작한 그는 1956년 연극 ‘지평선 너머’로 데뷔한 66년차 배우다. 지난해엔 86세의 나이로 ‘국내 최고령 리어왕’을 연기한 기록도 세웠다. “연기엔 끝이 없습니다. 완성도 없죠. 새로운 도전과 창조, 노력만 있습니다. 조금 더 잘하는 사람, 더 오래한 사람만 있을 뿐이지 그게 연기의 끝이고 완성은 아닙니다. 저 역시 아직 끝을 보진 못했어요. 성한 몸으로 대사를 외울 수 있을 때까진 해보려 합니다.” 내년 2월 5일까지, 6만~9만 원.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올해 탄생 400주년을 맞은 프랑스 출신 세계적 극작가 몰리에르(1622∼1673). 연극계에선 프랑스어를 ‘몰리에르의 언어’라고 표현할 만큼 그는 프랑스를 대표하는 극작가다. 그가 남긴 여러 작품 중에서도 1671년 발표한 ‘스카팽의 간계’는 대표작으로 꼽힌다. 이탈리아 희극 코메디아 델라르테에 등장하는 스카피노에서 유래한 캐릭터 스카팽과 주변 인물을 통해 상류층의 탐욕과 편견을 조롱하는 희극이다. 한국에선 국립극단이 2019년 연극 ‘스카팽’을 초연했다. 당시 현대적 요소를 가미한 각색과 독특한 마임이 돋보이는 연출로 호평을 받으며 제56회 동아연극상 무대예술상을 받았다. 관객 요청으로 2020년에 이어 올해 다시 무대에 오르면서 지금은 명실상부한 국립극단의 대표 레퍼토리가 됐다. 다음 달 25일까지 공연되는 ‘스카팽’의 임도완 연출가(63)를 공연이 열리고 있는 서울 중구 명동예술극장에서 최근 만났다. 초연부터 연출을 맡아온 그는 “주로 상류층을 풍자하는 글을 썼던 몰리에르는 서양을 대표하는 희극 작가다. 오래전부터 지배층에 대한 풍자와 조롱은 서민들의 오락거리가 돼 왔다”고 했다. 임도완의 ‘스카팽’은 독특하다. 막이 오르면 몰리에르(성원)가 무대 위에 오른다. 원작 ‘스카팽의 간계’에는 없는 인물이다. 몰리에르가 자신과 작품을 소개하면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는 “우리나라에선 몰리에르가 셰익스피어처럼 유명하지 않다. 몰리에르를 알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출발한 설정”이라고 말했다. 재벌인 아르강트(문예주 이혜미)와 제롱트(김명기)가 자녀의 정략결혼을 결정하고 여행을 떠난 사이, 그들의 자녀들은 각자 신분도 모르는 사람들과 사랑에 빠진다. 자녀들은 제롱트의 하인 스카팽(이중현)에게 도움을 청하고, 약간의 사심을 담은 스카팽의 작전이 시작되며 웃음을 유발한다. 임도완의 ‘스카팽’은 동시대적 감각이 담겼다. 대사나 상황에 최근 이슈나 유행어를 넣는 방식으로 대폭 각색했다. 지난 공연 때는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땅콩회항’ 사건, 반일감정에서 비롯된 유니클로 불매 운동을, 이번 공연엔 만 5세 초등학교 입학 논란, 논문 표절을 넣었다. 그는 “몰리에르가 살았던 17세기 프랑스 사회에 대한 풍자를 그대로 가져와선 안 될 것 같았다. 지금 우리가 쓰는 언어와 이슈를 섞어야 (원작이 의도한) 코미디가 살아나지, 그렇지 않으면 죽은 연극이 됐을 것”이라고 했다. 2시간 남짓한 공연 시간 내내 관객들을 쉼 없이 웃기는 ‘스카팽’. 예순을 넘긴 연출가의 목표도 오직 ‘관객의 박장대소’다. “어떤 관객분이 그러시더라고요. ‘원래 울어야 하는 날인데 하루 종일 웃었다’고요. 가뜩이나 사회도 경제도 안 좋은데 공연 보는 시간만이라도 관객들이 유쾌하게 즐기셨으면 합니다.” 3만∼6만 원.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올해 탄생 400주년을 맞은 프랑스 출신 세계적 극작가 몰리에르(1622~1673). 프랑스어를 ‘몰리에르의 언어’라고 표현할 만큼 그는 프랑스를 대표하는 극작가다. 그가 발표한 여러 작품 중에서도 1671년 초연된 ‘스카팽의 간계’. 이탈리아 희극 코메디아 델라르테(Commedia dell‘arte)에 등장하는 스카피노에서 유래한 캐릭터 스카팽과 주변 인물들을 통해 상류계급의 탐욕과 편견을 조롱하는 이 작품은 몰리에르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한국에선 국립극단이 2019년 연극 ‘스카팽’을 초연했다. 현대적 요소를 가미한 각색과 독특한 마임이 돋보이는 연출로 호평을 받으며 제56회 동아연극상 무대예술상 등을 받았다. 관객 요청으로 2020년에 이어 올해 다시 무대에 오르면서 지금은 명실상부 국립극단의 레퍼토리가 됐다. 다음달 25일까지 공연되는 ‘스카팽’의 연출가 임도완(63)을 최근 서울 중구 명동예술극장에서 만났다. 초연부터 연출을 맡아온 그는 “주로 상류층을 풍자하는 글을 썼던 몰리에르는 서양을 대표하는 희극 작가다. 오래 전부터 지배층에 대한 풍자와 조롱은 서민들의 오락거리가 되어 왔다”고 했다. 임도완의 ‘스카팽’은 독특하다. 막이 오르면 몰리에르(성원)가 무대 위에 오른다. 원작 ‘스카팽의 간계’에는 없는 인물이다. 몰리에르가 자신과 작품을 소개하면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는 “우리나라에선 몰리에르가 셰익스피어처럼 유명하지 않다. 몰리에르를 알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출발한 설정”이라고 말했다. 재벌인 아르강트(문예주 이혜미)와 제롱트(김명기)가 자녀의 정략결혼을 결정하고 여행을 떠난 사이 그들의 자녀들은 각자 신분도 모르는 사람들과 사랑에 빠진다. 자녀들은 제롱트의 하인 스카팽(이중현)에게 도움을 청하는데, 약간의 사심을 담은 스카팽의 작전이 시작되며 웃음을 유발한다. 임도완의 ‘스카팽’은 동시대적 감각이 담겼다. 대사나 상황에 최근 이슈나 유행어를 넣는 방식으로 대폭 각색했다. 지난 공연 때는 땅콩회항, 유니클로 불매 건을, 이번 공연엔 만 5세 초등학교 입학, 논문 표절 등을 넣었다. 그는 “몰리에르가 살았던 17세기 프랑스 사회에 대한 풍자를 그대로 가져와선 안 될 것 같았다. 지금 우리가 쓰는 언어와 이슈를 섞어야 (원작이 의도한) 코미디가 살아나지 그렇지 않으면 죽은 연극이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2시간 남짓한 러닝타임 내내 관객들을 쉼 없이 웃기는 ‘스카팽’. 예순을 넘긴 연출가의 목표도 오직 ‘관객의 박장대소’다. “어떤 관객분이 그러시더라고요. ‘원래 울어야 하는 날인데 하루 종일 웃었다’ 가뜩이나 사회도 경제도 안 좋은데 공연 보는 시간만이라도 관객들이 유쾌하게 즐기셨으면 합니다.” 서울 중구 명동예술극장, 3만~6만 원.이지훈기자 easyhoon@donga.com}
서울 종로구 행촌동에는 100년 전 지은 빨간 벽돌집이 있다. 이름은 ‘딜쿠샤’. 산스크리트어로 ‘기쁜 마음의 궁전’이란 뜻을 가진 이 집엔 3·1운동을 처음 세계에 알린 미국 출신 언론인 앨버트 테일러(1875∼1948)와 그의 아내 메리 테일러(1889∼1982)가 살았다. 이 집을 배경으로 한 창작 뮤지컬 ‘딜쿠샤’가 다음 달 11∼23일 서울 중구 국립정동극장 세실에서 초연된다. 뮤지컬 ‘딜쿠샤’를 기획한 건 뮤지컬 배우 양준모(42·사진). ‘딜쿠샤’를 기획한 그를 14일 서울 중구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딜쿠샤는 기구한 운명을 지닌 집이에요. 철거 위기도 몇 번 있었죠. 하지만 최근까지 열몇 가구가 살았을 정도로 생명력이 끈질겨요. 무엇이 딜쿠샤를 100년 넘게 살아남게 했을까. 그게 궁금했습니다.” 2년 전 그는 우연히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통해 딜쿠샤와 그에 얽힌 사람들의 이야기를 접했다. 딜쿠샤에 매료된 그는 다큐멘터리 제작자를 수소문하다가 KBS 다큐공감 ‘희망의 궁전 딜쿠샤’(2013년)의 김세미 작가를 만난다. 김 작가는 이번에 뮤지컬 ‘딜쿠샤’의 각본도 썼다. “김 작가는 오랫동안 딜쿠샤를 취재한 분이에요. 각본 초고를 봤는데 인물 하나하나가 진짜 살아있는 느낌이었죠. 자료로만 딜쿠샤를 접한 사람에게선 나올 수 없는 호흡이었어요.” 실제 역사를 기반으로 하지만 ‘딜쿠샤’는 픽션이다. 가상의 인물 금자(하은섬)와 앨버트 테일러의 아들 브루스 테일러(최인형)가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이야기가 펼쳐진다. “노숙자, 망개떡 장수, 미군 스파이…. 딜쿠샤에 살았던 인물들을 하나씩 만나다 보면 한국 근현대사를 훑게 되죠. 역사를 다루는 건 조심스럽지만 실재했던 이야기라는 점이 마음을 끌어당깁니다.” 1999년 오페라 ‘마술피리’로 데뷔한 그가 뮤지컬 제작자로 활동하기 시작한 건 6년 전이다. 오페라 ‘리타’ 연출가로 첫발을 내디뎠고 지난해에는 뮤지컬 ‘포미니츠’를 기획했다. ‘딜쿠샤’ 공연이 끝날 무렵 그는 다음 달 21일 개막하는 뮤지컬 ‘영웅’의 안중근 역으로 무대에 선다. “관객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무대 작업이 좋습니다. 관객에게 울림을 줄 수 있는 한 이 작업을 멈추지 못할 겁니다.” 전석 2만 원.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신이 있어서 제게 악기를 연주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거라면, 음악회를 볼 기회가 없었던 분들을 직접 찾아가 음악을 나누는 것이야말로 ‘대단한 업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저의 연주가) 그분들이 몰랐던 또 다른 우주를 열어드리는 과정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2022 밴 클라이번 콩쿠르 역대 최연소 금메달의 주인공 피아니스트 임윤찬(18)이 생각한 음악가의 ‘대단한 업적’은 이랬다. 그는 콩쿠르 우승 직후 “콩쿠르 우승으로 인한 관심은 3개월짜리고 그리 대단한 업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한 바 있다. 서울 서대문구 금호아트홀 연세에서 28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그는 “대단한 업적은 콩쿠르에 나가서 운 좋게 1등 하는 것이 아니라 보육원이나 호스피스 병동, 몸이 불편하신 분들의 학교에 직접 찾아가 아무 조건 없이 연주하는 것”이라며 “저는 곧 그런 일들을 할 것이고 제가 원하는 대단한 업적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간담회는 임윤찬과 광주시립교향악단이 함께 작업한 공연실황 앨범 ‘베토벤, 윤이상, 바버’ 발매를 계기로 열렸다. 밴 클라이번 콩쿠르 우승 후 그가 내놓은 첫 앨범이다. 수록곡엔 베토벤 피아노협주곡 5번 ‘황제’가 포함됐다. “어렸을 때부터 너무 많이 듣다 보니 그때의 제 부족한 귀로는 (황제가) 화려하게만 들렸습니다. 최근 인류에게 큰 시련이 닥치면서, 매일 방 안에서 혼자 연습하며 ‘황제’를 들었습니다. 그저 자유롭고 화려한 곡이 아니라 베토벤이 꿈꿨던 유토피아 혹은 베토벤이 바라본 우주 같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지난달 8일 통영국제음악당에서 열린 공연실황을 녹음한 이번 앨범엔 임윤찬과 광주시향이 협연한 베토벤 ‘황제’뿐 아니라 광주시향이 연주한 윤이상의 ‘광주여 영원히’, 미국 작곡가 새뮤얼 바버(1910∼1981)의 ‘현을 위한 아다지오’가 포함됐다. 또 공연 당시 임윤찬이 앙코르곡으로 선보인 스페인의 페데리코 몸포우(1893∼1987) ‘정원의 소녀들’, 러시아의 알렉산드르 스크랴빈(1872∼1915) ‘2개의 시곡’ 중 1번, ‘음악 수첩’도 담겼다. 임윤찬은 “솔로가 아니라 훌륭한 오케스트라와 함께 첫 앨범을 내게 되어 자랑스럽다. 혼자였다면 하지 못했을 음악적인 부분을 채워주웠다”고 했다. 이어 “스튜디오 녹음은 자칫하면 너무 완벽하게 하려는 압박 때문에 오히려 음악이 수많은 가능성을 잃게 된다. 관객과 음악을 함께 나누는 시간이 음반으로 나온다는 게 굉장한 의미가 있다”고 했다.·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신이 있어서 제게 악기를 연주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거라면, 음악회를 볼 기회가 없었던 분들을 직접 찾아가 음악을 나누는 것이야 말로 ‘대단한 업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저의 연주가) 그분들이 몰랐던 또 다른 우주를 열어드리는 과정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2022 밴 클라이번 콩쿠르 역대 최연소 금메달의 주인공 피아니스트 임윤찬(18)이 생각한 음악가의 ‘대단한 업적’은 이랬다. 그는 콩쿠르 우승 직후 “콩쿠르 우승으로 인한 관심은 3개월짜리고 그리 대단한 업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한 바 있다. 서울 서대문구 금호아트홀 연세에서 28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그는 “대단한 업적은 콩쿠르에 나가서 운 좋게 1등하는 것이 아니라 보육원이나 호스피스 병동, 몸이 불편하신 분들의 학교에 직접 찾아가 아무 조건 없이 연주하는 것”이라며 “저는 곧 그런 일들을 할 것이고 제가 원하는 대단한 업적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간담회는 임윤찬과 광주시립교향악단이 함께 작업한 공연실황 앨범 ‘베토벤, 윤이상, 바버’ 발매를 계기로 열렸다. 밴 클라이번 콩쿠르 우승 후 그가 내놓은 첫 앨범이다. 수록곡엔 베토벤 피아노협주곡 5번 ‘황제’가 포함됐다. “어렸을 때부터 너무 많이 듣다보니 그 때의 제 부족한 귀로는 (황제가) 화려하게만 들렸습니다. 최근 인류에게 큰 시련이 닥치면서, 매일 방 안에서 혼자 연습하며 ‘황제’를 들었습니다. 그저 자유롭고 화려한 곡이 아니라 베토벤이 꿈 꿨던 유토피아 혹은 베토벤이 바라본 우주 같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지난달 8일 통영국제음악당에서 열린 공연실황을 녹음한 이번 앨범엔 임윤찬과 광주시향이 협연한 베토벤 ‘황제’ 뿐 아니라 광주시향이 연주한 윤이상의 ‘광주여 영원히’, 미국 작곡가 사무엘 바버(1910~1981)의 ‘현을 위한 아다지오’가 포함됐다. 또 공연 당시 임윤찬이 앙코르곡으로 선보인 스페인의 페데리코 몸포우(1893~1987)의 ‘정원의 소녀들’, 러시아의 알렉산드르 스크랴빈(1872~1915) ‘2개의 시곡’ 중 1번, ‘음악 수첩’도 담겼다. 임윤찬은 “솔로가 아니라 훌륭한 오케스트라와 함께 첫 앨범을 내게 되어 자랑스럽다. 혼자였다면 하지 못했을 음악적인 부분을 채워주웠다”고 했다. 이어 “스튜디오 녹음은 자칫하면 너무 완벽하게 하려는 압박 때문에 오히려 음악이 수많은 가능성을 잃게 된다. 관객과 음악을 함께 나누는 시간이 음반으로 나온다는 게 굉장한 의미가 있다”고 했다.· 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서울 종로구 행촌동에 가면 100년 전 탄생한 빨간 벽돌집이 있다. 이름은 ‘딜쿠샤.‘ 산스크리트어로 ‘기쁜 마음의 궁전’이란 뜻을 가진 이 집은 3·1운동을 처음 세계에 알린 미국 출신 언론인 앨버트 테일러(1875~1948)와 그의 부인 메리 테일러(1889~1982)가 살았던 곳이다. 행촌동 빨간 벽돌집을 배경으로 한 뮤지컬 ‘딜쿠샤’가 다음달 11~23일 서울 중구 국립정동극장 세실에서 공연된다. 뮤지컬 ‘딜쿠샤’ 기획을 처음 떠올린 건 뮤지컬 배우 양준모(42). 그는 뮤지컬 ‘미세스 다웃파이어’ ‘웃는 남자’ 등의 무대에 선 배우인 동시에 뮤지컬 기획자이기도 하다. ‘딜쿠샤’ 개막을 앞두고 14일 서울 중구의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100년 전 지어진 딜쿠샤는 기구한 운명을 지닌 집이에요. 철거 위기도 몇 번 있었죠. 하지만 최근까지도 열 몇 가구가 살았을 정도로 생명력 또한 끈질겨요. 무엇이 딜쿠샤를 100년 넘게 살아남게 했을까. 그게 궁금했습니다.” 2년 전 그는 우연히 한 다큐멘터리 영상을 통해 딜쿠샤와 그에 얽힌 사람들의 이야기를 접하게 된다. 딜쿠샤에 강하게 매료된 그는 다큐멘터리 제작자를 수소문하다 김세미 작가를 만났다. KBS 다큐공감 ‘희망의 궁전 딜쿠샤’(2013년)의 작가인 김 작가는 이번 뮤지컬 ‘딜쿠샤’의 각본까지 썼다. “작가님은 오랫동안 딜쿠샤를 취재해왔기에 스토리를 너무 잘 알고 있었어요. 뮤지컬 각본 초고를 봤는데 인물 하나하나가 진짜 살아있는 느낌이었죠. 딜쿠샤를 자료로만 접한 사람에게선 나올 수 없는 호흡이었어요.” 실제 역사를 기반으로 하지만 ‘딜쿠샤’는 픽션이다. 가상의 인물 금자(하은섬)와 앨버트 테일러의 아들 브루스 테일러(최인형)가 편지를 주고 받으면서 이야기가 펼쳐진다. 딜쿠샤를 만든 사람부터 이곳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 또 그곳을 살아낸 사람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노숙자, 망개떡 장수, 미군 스파이…. 딜쿠샤에 살았던 인물들을 하나씩 만나다보면 한국 근현대사를 훑게 되죠. 역사를 다루는 건 언제나 조심스럽지만 실재했던 이야기라는 것에서 사람을 당기는 힘이 있습니다.” 1999년 오페라 ‘마술피리’로 데뷔한 성악가이자 배우인 그가 뮤지컬 제작자로 활동하기 시작한 건 2016년. 당시 오페라 ‘리타’를 연출하면서 제작자로서 첫 발을 내딛었다. 지난해 뮤지컬 ‘포미니츠’에 이어 ‘딜쿠샤’까지. 그가 연출, 제작에 관여한 작품만 3개다. 창작 파트너는 맹성연 작곡가로 그의 아내이기도 하다. 앞선 두 작품에 이어 ‘딜쿠샤’에도 음악감독으로 참여한다. 그는 “서로의 개인 작업도 모니터해주는 사이니까 누구보다 스타일을 잘 안다. 그러다보니 이젠 가장 마음이 잘 맞는 창작 파트너가 됐다”고 했다.‘딜쿠샤’ 공연이 끝날 무렵, 다음달 21일 그는 뮤지컬 ‘영웅’의 안중근 역으로 무대에 선다. 다시 배우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는 “배우든 제작자든 관객의 마음을 움직이고 싶다. 관객에게 어떤 울림을 줄 수 있다면 몸은 좀 힘들지라도 기분이 너무 좋아 이 작업을 멈추지 못할 것 같다”고 했다. 전석 2만 원.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게임’에 출연했던 배우 오영수 씨(78·사진)가 강제추행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수원지검 성남지청 형사2부(부장검사 송정은)는 24일 오 씨를 강제추행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고 25일 밝혔다. 오 씨는 2017년 피해 여성 A 씨의 신체를 부적절하게 접촉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오 씨는 검찰 조사에서 혐의를 부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A 씨가 오 씨를 고소해 경찰이 오 씨를 기소 의견으로 송치했다. 이후 경찰은 검찰의 보완수사 요청으로 추가 수사를 진행해 불송치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A 씨가 이에 불복해 이의를 신청하자 재수사에 착수한 검찰이 혐의가 인정된다고 보고 기소했다. 동아일보는 오 씨 측의 해명을 듣고자 여러 차례 연락을 취했으나 연결되지 않았다. 문화체육관광부는 14일부터 시작된 오 씨가 출연한 규제혁신 광고의 송출을 중단하기로 했다. 문체부 측은 “출연료 반납 등의 문제는 재판 결과가 나온 뒤 논의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내년 1월로 예정됐던 한 지방 공연도 오 씨의 출연이 취소됐다.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성남=공승배 기자 ksb@donga.com}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에 출연했던 배우 오영수 씨(78·사진)가 강제추행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수원지검 성남지청 형사2부(부장검사 송정은)는 24일 오 씨를 강제추행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고 25일 밝혔다. 오 씨는 2017년 피해여성 A 씨의 신체를 부적절하게 접촉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오 씨는 검찰 조사에서 혐의를 부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에 따르면 A 씨는 지난해 12월 오 씨를 고소해 경찰이 오 씨를 기소 의견으로 송치했으나, 검찰의 보완수사 요청으로 경찰이 추가 수사를 진행해 불송치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A 씨가 이에 불복해 이의를 신청하자 재수사에 착수한 검찰이 혐의가 인정된다고 보고 기소했다. 동아일보는 오 씨 측의 해명을 듣고자 여러 차례 연락을 취했으나 연결되지 않았다. 문화체육관광부는 14일부터 시작된 오 씨가 출연한 규제혁신 광고의 송출을 중단하기로 했다. 문체부 측은 “출연료 반납 등의 문제는 수사 결과가 나온 뒤 논의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내년 1월에 예정됐던 한 지방 공연도 오 씨의 출연이 취소됐다. 1963년 극단 광장에서 연기를 시작한 오 씨는 1987~2010년 국립극단 단원으로 활동했다. 50여 년간 200편이 넘는 연극에 출연한 그는 지난해 ‘오징어 게임’에 출연해 세계적인 화제를 모았다. 올 1월 미국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한국 배우 처음으로 TV드라마 부문 남우조연상을 수상했다. 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성남=공승배 기자 ksb@donga.com}
미국 뉴욕 맨해튼의 슬럼가를 재현한 무대. 막이 오르면 폴란드계 백인 청년 갱단 ‘제트’와 남미 푸에르토리코계 갱단 ‘샤크’가 맞붙는 장면이 펼쳐진다. 틈만 나면 다투는 두 갱단을 화해시키고자 뉴욕 경찰이 개최한 무도회에서 제트 출신인 토니(김준수 박강현 고은성)와 샤크의 리더 베르나르도(김찬호 임정모)의 여동생 마리아(한재아 이지수)가 첫눈에 반해 춤을 춘다. 원수처럼 으르렁대는 두 갱단 소속의 남녀가 사랑에 빠지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서울 중구 충무아트센터에서 17일 개막한 뮤지컬 ‘웨스트사이드스토리’가 2007년 국내 공연 후 15년 만에 관객을 만났다. 1957년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된 이 작품의 원작은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희곡 ‘로미오와 줄리엣’이다. 몬터규와 캐풀렛 가문은 제트와 샤크 갱단으로, 로미오와 줄리엣은 토니와 마리아의 사랑으로 변주됐다. ‘웨스트사이드스토리’는 당대 최고 창작자들이 함께 빚어낸 명작으로도 유명하다. 앨프리드 히치콕의 영화 ‘로프’로 유명한 아서 로렌츠가 각본을 쓰고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지휘자 레너드 번스타인이 작곡을 맡았다. 뮤지컬 ‘스위니 토드’ 원작자인 스티븐 손드하임이 작사를, 조지 발란신의 뒤를 이어 뉴욕시립발레단 2대 예술감독에 올랐던 제롬 로빈스가 연출과 안무를 맡았다. 이야기는 갈등과 분노, 증오만 존재하던 두 갱단 사이에 사랑이란 감정이 끼어들면서 생겨나는 균열을 따라간다. 의도치 않게 시작된 토니와 마리아의 사랑은 걷잡을 수 없는 엄청난 분열을 낳고 상황은 점점 비극으로 치닫는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기승전결을 벗어나진 않아 자칫 단조롭게 느껴질 수 있는 서사에 화려함과 독창성을 더하는 건 노래와 안무다. 김준수, 박강현, 김소향 등 가창력이 돋보이는 배우들은 높고 낮은 음역대를 자유롭게 오가는 넘버들을 훌륭하게 소화해낸다. 20인조 오케스트라의 연주로 완성되는 음악은 공연장을 가득 채운다. 댄스 뮤지컬의 효시라 불릴 정도로 ‘웨스트사이드스토리’에선 춤이 중요하다. 주·조연뿐 아니라 앙상블 배우에게도 각각 배정된 안무가 있을 정도다. 특히 1막 초반 제트와 샤크가 한데 어우러져 선보이는 앙상블 군무 장면은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다. 푸른색 계열의 의상을 맞춰 입은 제트와 붉은색 계열의 샤크가 양쪽으로 나뉘어 시원시원한 군무를 펼친다. 애크러배틱을 연상케 하는 안무 동작은 큼직할 뿐 아니라 정교하다. 다만 안무 강도가 너무 높은 나머지 군무가 끝나고도 한참 동안 마이크로 배우들의 숨소리가 전해지는 건 아쉽다. 내년 2월 26일까지, 7만∼16만 원.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미국 뉴욕 맨해튼의 슬럼가를 그대로 재연한 무대, 폴란드계 백인 청년 갱단 ‘제트’와 남미 푸에르토리코계 갱단 ‘샤크’가 맞붙는 장면으로 공연은 시작된다. 틈만 나면 다툼이 벌어지는 두 갱단을 화해시키기 위해 열린 무도회에서 제트 출신인 토니(김준수 박강현 고은성)과 샤크의 리더 베르나르도(김찬호 임정모)의 여동생 마리아(한재아 이지수)가 첫 눈에 반해 춤을 춘다. 원수처럼 으르렁대는 두 갱단 소속의 남녀가 사랑에 빠지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17일 서울 중구 충무아트센터에서 개막한 뮤지컬 ‘웨스트사이드스토리’가 2007년 국내 공연 이후 15년 만에 관객을 만난다. 1957년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된 이 작품은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유명 희곡 ‘로미오와 줄리엣’을 원작으로 한다. 몬태큐와 캐퓰릿 두 가문 간 갈등은 제트와 샤크 두 갱단으로, 로미오와 줄리엣은 토니와 마리아의 사랑으로 변주된다. 초연 당시 최고의 창작자들이 함께 빚어낸 마스터피스로도 유명하다. 알프레도 히치콕의 영화 ‘로프’로 유명한 아서 로렌츠가 쓴 각본에 뉴욕 필하모닉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레너드 번스타인이 작곡을 맡았다. 뮤지컬 ‘스위니토드’ 원작자로 유명한 스티븐 손드하임이 작사를, 조지 발란신의 뒤를 이어 뉴욕시립발레단 2대 예술감독에 올랐던 제롬 로빈스가 연출·안무를 맡았다. 이야기는 갈등과 분노, 증오만 허용됐던 두 갱단 사이에 사랑이란 감정이 끼어들면서 생겨나는 균열을 따라간다. 의도치 않게 시작된 토니와 마리아의 사랑은 겉잡을 수 없는 엄청난 분열을 낳게 되고 상황은 점점 비극으로 치닫는다. ‘로미오와 줄리엣’ 속 기승전결을 벗어나지 않아 자칫 단조롭다 느낄 수 있는 서사에 화려함과 독창성을 더하는 건 노래와 안무다. 김준수, 박강현, 김소향 등 가창력이 돋보이는 배우들은 높고 낮은 음역대를 자유롭게 오가는 넘버들을 훌륭하게 소화해낸다. 20인조 오케스트라의 연주로 완성되는 음악은 무대를 가득 채운다. 댄스 뮤지컬의 효시라 불릴 정도로 ‘웨스트사이드스토리’에선 춤이 중요하다. 주·조연뿐 아니라 앙상블 배우에게도 각각 맞는 안무가 있을 정도다. 특히 제트와 샤크가 한데 어우러져 선보이는 앙상블 군무 장면은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다. 푸른 계열의 의상을 맞춰 입은 제트와 붉은 계열의 샤크가 양쪽으로 나뉘어서 시원시원한 군무를 펼쳐낸다. 아크로바틱을 연상케 하는 동작들은 큼직할 뿐 아니라 정교하다. 안무 강도가 강렬해 군무 씬이 끝나고도 한참 동안 마이크로 배우들 숨소리가 전해질 정도다. 내년 2월 26일까지, 7~16만 원.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일본 아사히신문사 기자로 일하다 논설위원, 편집위원을 지내고 50세에 은퇴한 저자에겐 배우자도 자녀도 없다. ‘상사의 갑질’ ‘워라밸’이란 용어조차 존재하지 않았던 시절 하루하루를 꽉 채워 살았던 그에게 텅 빈 시간이 찾아온 것이다. 그렇게 저자는 은퇴 후 피아노를 만나게 됐다. 초등학생 때 처음 배운 피아노. 끝 모르게 이어지는 연습과 매서운 선생님을 견디지 못한 기억이 먼저 떠올랐다. 성실하게만 하면 잘 칠 수 있겠거니 하는 자신감은 있었다. 하지만 40년 만에 만난 피아노는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더구나 콩쿠르나 연주회, 음대 진학 같은 구체적인 목표도 없었다. 그 끝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 전혀 모르는 상황에서 저자는 피아노와 울고 웃으며 한바탕 격투를 벌인다. 피아노를 통해 저자는 비로소 ‘목적 없는 몰입’의 즐거움을 알게 된다. 생산성과 효율성을 우선하는 직장과 사회에서 다른 사람보다 더 빨리, 더 많은 결과물을 내길 요구 받았던 저자는 삶의 패턴을 바꿔 인생을 즐기는 법을 찾는다. “인생에는 이런 세계도 존재했던 것이다. 목표가 없어도, 어딘가를 향하지 않더라도, 지금 이 순간에 무작정 노력하는 그 자체로 즐거운 세계가.” 악보에 적힌 손가락 번호를 필사적으로 읽으며 건반을 누르고, 노안 때문에 악보를 두 배로 확대해야 하는…. 이 웃기고도 슬픈(?) 해프닝들은 피아노에 얽힌 사연이지만 결코 피아노에 대한 이야기만은 아니다. 피아노를 통해 얻은 저자의 삶에 대한 통찰, 태도가 담겼다. 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