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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활용 쓰레기 수거업체들이 1일부터 폐비닐과 폐스티로폼 수거를 거부하면서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의 많은 주민이 혼란에 빠졌다. 일부 업체는 “플라스틱 가격이 계속 내려가 공짜로도 가져간다는 곳이 없다”며 페트병 수거마저 거부하고 있다. 서울 등 수도권 일부 아파트 단지에는 ‘4월 1일부터 비닐과 스티로폼을 수거할 수 없다’는 안내문이 붙었다. 수거업체들이 페트병 등 플라스틱 쓰레기 수거를 중단했으니 당분간 집에 보관하라고 공지한 곳도 있다. 일부 아파트는 비닐과 스티로폼 등을 쓰레기종량제 봉투에 넣어 버리라고 안내했지만 이는 엄연한 법 위반이다. 재활용 폐기물을 종량제 봉투에 담아 버리다가 적발되면 10만∼30만 원의 과태료를 내야 한다. 해당 주민들은 “우리 보고 과태료를 물면서 쓰레기를 버리라는 거냐. 도대체 어쩌란 말이냐”며 대책을 호소하고 있다. 이 같은 혼란은 전 세계 재활용 폐기물을 가장 많이 수입하던 중국이 올 1월부터 환경 문제 등을 이유로 수입을 중단한 데 따른 것이다. 국내 재활용 쓰레기 업체들의 중국 수출이 막히고 선진국 재활용 폐기물 수입량이 늘면서 폐지와 플라스틱, 고철 등의 가격이 폭락했다. 1일 동아일보 취재팀이 고물상과 수거업체 등을 취재한 결과 3월 말 기준으로 고물상과 수거업체가 아파트에서 사들이는 폐지의 가격은 kg당 20∼30원에 불과했다. 지난해 말 kg당 100원 안팎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석 달 만에 50% 이상 떨어진 것이다. 한 수거업체 관계자는 “얼마 전까지 kg당 500원 하던 의류가 이제는 200원 수준에 불과하다. 고철 가격도 반값으로 떨어졌다”고 말했다. 그동안 재활용 업체들은 아파트 단지에서 폐지와 고철, 유리병을 수거하면서 수익성이 낮은 폐비닐과 폐스티로폼도 같이 가져갔다. 그러나 폐비닐과 폐스티로폼을 수거해 처리하는 비용이 수익보다 커져 가져갈 엄두를 못 내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 재활용 폐기물 가격 하락이 지속되면 수거 거부 품목은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수거업체들은 “돈이 되는 품목만 가져갈 수밖에 없다”고 말하고 있다. 정부는 수거업체들이 비용 부담 때문에 수거를 거부하는 사태를 최소화하기 위한 대책을 수립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권기범 kaki@donga.com·조유라·조응형 기자}

“페트병도 내놓지 말라니, 생수도 사먹지 말라는 건가요.” 경기 고양시의 한 아파트 주민 이모 씨(40)는 1일 쓰레기 수거장에 붙은 공고문을 보며 탄식했다. 공고문은 ‘재활용 폐기물 가격 급락으로 수거업체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으니 플라스틱 쓰레기를 집에 보관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이날 이 아파트 관리사무소는 플라스틱 쓰레기 수거 횟수를 주 1회에서 3주에 1회로 줄이겠다고 공지했다. 이 씨는 “집이 쓰레기장으로 돌변하게 생겼다”고 말했다. 페트병이 가득 담긴 봉지를 양손에 들고 온 다른 주민은 “페트병을 조금씩 들고 나가 공공장소에서 버려야 되나 하는 생각마저 든다”고 말했다.○ 비닐, 종량제봉투에 넣으면 과태료 서울과 수도권 아파트에서 재활용 폐기물 수거 업체들이 “비용 부담이 크다”며 이날부터 비닐과 스티로폼, 플라스틱 등의 수거를 거부하자 주민들은 혼란을 겪었다. 특히 일부 아파트에서 “종량제봉투에 담아 버리라”고 잘못 안내하면서 혼란과 불만이 가중됐다. 주민들은 쓰레기 처리 비용이 늘게 생겼다며 울상이다. 이경미 씨(56·여)는 “비닐은 그나마 부피가 작지만 스티로폼을 버리려면 100L 종량제 봉투로도 부족할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재활용 폐기물을 종량제봉투에 담아 버리면 법 위반이다. 적발되면 폐기물관리법에 따라 과태료 10만∼30만 원을 내야 한다. 환경부도 “일부 업체가 착오로 잘못된 안내를 한 것”이라며 이를 바로잡아 달라고 각 지방자치단체에 요청했다. 비닐 등을 소각하거나 매립하면 환경오염 우려도 크다. 서울시 자원순환과 관계자는 “소각장 환경오염 방지 설비에 무리가 오고 오랫동안 썩지 않아 사후 토지 이용에도 문제가 생긴다”고 말했다. 재활용 쓰레기 대란은 주로 아파트에서 벌어지고 있다. 일반 주택은 지자체가 수거업체와 직접 계약을 맺고 비닐이나 스티로폼 처리 비용을 보전해주거나, 자체 재활용품 선별장을 운영하고 있다.○ 수거 거부 첫날 아파트마다 ‘혼란’ 재활용 쓰레기 수거 거부가 현실화되자 서울 및 수도권 아파트 단지에서는 많은 주민들이 어쩔 줄 몰라 했다. 이날 오후 3시경 서울 노원구 상계동의 A아파트. 30대 여성이 재활용품 수거장 앞에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비닐을 담던 자루가 없었다. 한참을 서성대다가 쓰레기를 손에 든 채 집으로 돌아갔다. 이 아파트는 지난달 26일부터 비닐과 스티로폼 쓰레기 배출을 금지했다. 안내문을 단지 곳곳에 붙였지만 헛걸음하는 사람이 많았다. 지난달 31일에는 경비원들이 다른 재활용품 속에 들어간 비닐을 골라내느라 오전 11시부터 해가 질 때까지 분리수거함을 뒤졌다. 지난달 30일 서울 동대문구 장안동 B아파트 주차장 입구에는 하얀색 스티로폼이 어른 허리 높이까지 쌓여 있었다. 며칠 전부터 수거업체가 스티로폼과 비닐, 일부 질 나쁜 폐지는 가져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 아파트 주민 대표는 “업체가 어디 있는지도 잘 모르니 어디에 항의해야 할지도 모르겠다”며 답답함을 호소했다. 일부 업체는 재활용품 수거를 해주되 웃돈을 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재활용 수거 업자 김모 씨는 동대문구 C아파트에 “재활용품을 이전처럼 수거해 줄 테니 한 달에 6만 원을 달라”고 요구했다. 그동안은 김 씨가 아파트에 4만 원을 건넸는데 상황이 뒤바뀐 것이다. 김 씨는 “한 번 걷어 가는 비용만 5만 원이 든다. 수지타산을 맞추려면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아파트 경비원들도 갑자기 늘어난 업무에 불만을 토로했다. 1일 서울 성북구 종암동 D아파트 재활용품 수거장에는 ‘비닐류와 스티로폼의 분리수거를 하지 않는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지만 스티로폼 박스가 수북했다. 이 아파트 경비원은 “주민들은 몰래 내다놓고, 수거업체는 나 몰라라 하니 분통이 터진다. 이젠 자포자기했다”고 말했다.권기범 kaki@donga.com·조응형·조유라 기자}
“비닐이나 스티로폼은 폐지나 캔처럼 그나마 돈 되는 물건을 수거하는 김에 챙겨준 건데 다른 품목 가격이 뚝 떨어져 버렸으니 어쩔 수 있나요.” 서울 도봉구 B재활용업체 관계자는 재활용품 수거 거부 논란에 “우리도 죽을 맛”이라고 말했다. 재활용 폐기물 가격이 일제히 떨어지면서 ‘배보다 배꼽이 더 큰’ 비닐 수거가 부담스럽다는 얘기다. 강북구 M재활용업체 사장은 “비닐은 다른 쓰레기와 섞인 경우가 많아 중간 업체에서 받지 않을 때가 많다”고도 했다. 외국산보다 처리비용이 더 들어 재활용에 적합하지 않다고 평가받은 국산 페트병도 몇 년 새 가격이 폭락해 업체들은 수거를 꺼린다. 국내 재활용 폐기물 처리는 민간 업체나 지방자치단체가 아파트 및 주택에서 재활용품을 수거하면 중간업자가 이를 분류 후 처리해 국내외 제지·제강업체 등에 넘기는 구조다. 가격은 주로 최종 구매자가 결정한다. 정부 개입의 여지가 없어 재활용품 가격이 불안정해져도 손쓰기 어렵다. 업계는 정부 개입을 요구한다. 일부 지자체는 “외국 재활용자원 수입 기준 강화를 검토해 달라”고 환경부에 건의할 계획이다. 정부는 폐지와 플라스틱 가격 문제를 풀어 비닐 문제까지 해소할 방침이다. 김미화 자원순환사회연대 사무총장은 “정부가 보관 장소 제공이나 융자 지원으로 가격 변동에 따른 수거업체의 충격을 줄여야 한다”고 말했다.권기범 kaki@donga.com·조응형 기자}

문재인 정부 주요 고위 공직자 10명 중 4명은 다주택 보유자인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8·2부동산대책 발표 직후 “자기가 사는 집이 아닌 집들은 좀 파셨으면 한다”고 말했지만 실제 주택을 판매한 고위 공직자는 6명에 불과했다. 동아일보가 29일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가 공개한 ‘2018년 정기재산변동사항’ 중 대통령수석비서관, 각 부처 장차관, 주요 권력기관장의 주택 보유 현황을 살펴본 결과 이들 59명 중 37.3%인 22명이 주택을 본인 또는 배우자 명의로 2채 보유했다. 3채 이상 보유한 사람은 없었다. 이 59명 가운데 16명(27.1%)은 서울 강남에 주택을 갖고 있다고 신고했다. 지난해 8월 25일 공개된 ‘2017년 정기재산변동사항’에서 주택 2채 이상을 보유한 것으로 나타난 고위 공직자 중 매각한 사람은 6명(김영록 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포함)이었다. 장관 중에서는 김상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강경화 외교부 장관,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송영무 국방부 장관, 유영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등이 주택을 2채 보유했다. 유 장관은 3주택자였으나 지난해 배우자가 서울 강동구 오피스텔을 매도해 2주택자가 됐다. 김 국토부 장관은 경기 연천 단독주택을 올해 초 친동생에게 팔아 1주택자가 됐다. 부동산정책을 주도하는 국토부에서는 1급 이상 공직자 9명 중 김 장관, 맹성규 2차관, 김재정 기획조정실장, 유병권 국토도시실장, 구본환 항공정책실장 등 5명이 다주택자다. 손병석 국토부 1차관은 다주택자 꼬리표는 뗐지만 차관 취임 전인 지난해 5월 세종시와서울 서초구 방배동 아파트를 팔고 서울 강남구 대치동 쌍용2차(전용면적 120.76m²)를 16억5000만 원에 샀다. 쌍용2차 재건축 조합은 26일 헌법재판소에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 위헌 소송을 제기한 8개 조합 중 하나다. 대통령수석비서관 이상 참모 9명 가운데 3명은 여전히 2주택을 보유했다. 장하성 대통령정책실장은 본인과 배우자 공동 명의로 경기 가평군의 주택과 서울 송파구의 아파트를 보유하고 있다고 신고했다. 윤영찬 국민소통수석, 조현옥 인사수석도 본인과 배우자 명의로 2채의 주택을 신고했다. 이들 59명에는 포함되지 않았지만 청와대 비서관 가운데 황덕순 고용노동비서관, 이호승 일자리기획비서관 등 9명은 주택 2∼3채를 보유했다. 올 1월 임명돼 이날 발표에는 빠진 주현 중소기업비서관은 당시 자신과 부인, 어머니와 차남 명의로 아파트 등 건물 8건을 보유하고 있다고 신고했다. 반면 문 대통령은 지난해 말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 사저를, 조국 민정수석은 부산 해운대 아파트를 팔아 1주택 보유로 바뀌었다.권기범 kaki@donga.com·강성휘 기자}

평창 겨울패럴림픽 때 팔린 경기 티켓 중 약 70%만 관객이 경기장을 찾은 것으로 확인됐다. 공공기관 등이 단체 예매한 티켓 상당수가 ‘사표(死票)’가 된 것으로 보인다. 26일 자유한국당 김승희 의원이 평창겨울올림픽·패럴림픽조직위원회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대회가 열린 9∼18일 경기장에 입장한 것으로 집계(입장권 체크 기준)된 티켓은 모두 24만9797장이었다. 전체 티켓 판매량(34만6028장)의 72.2%다. 27.8%는 오지 않은 셈이다. 알파인스키와 휠체어컬링 경기가 열린 14일(36.1%)과 폐막날인 18일(34.7%)에 ‘노쇼(no show·예약하고 나타나지 않음)’가 많았다. 평창 겨울올림픽 노쇼 비율은 21.1%였다. 당초 평창 패럴림픽 티켓 판매는 예상보다 호조였다. 조직위가 설정한 사전 구매 목표량(22만 장)보다 30% 많은 약 28만7000장이 대회 시작 전 팔려나갔다. 대회 직전 온라인 중고거래 카페에서는 웃돈을 주고 티켓을 구한다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대회 초반부터 경기장에서 빈 좌석이 눈에 띄고 이후 점점 늘어나자 조직위는 일부 경기장 현장 매표소에서 입석 입장권을 팔아 공석(空席)률을 10%대로 낮추는 등의 노력을 기울이기도 했다. 노쇼가 30%를 육박한 데에는 조직위가 올림픽 붐 조성을 위해 입장권 단체 구매를 유도한 것이 일조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티켓을 사실상 강매했다’고도 말한다. 패럴림픽에 대한 관심이 상대적으로 낮아 관객이 들지 않을까 우려해 정부 부처 등 공공기관에 ‘떠넘겼다’는 얘기다. 실제 조직위에 따르면 사전 판매량의 58.3%(약 16만7000장)는 중앙정부 부처와 지방자치단체, 각급 교육기관, 시도별 체육회 등에 팔렸다. 일반인(사기업 포함) 등에게는 11만9000장(41.7%)이 팔렸다. 반면 겨울올림픽 때는 일반인에게 사전 판매량의 63%가량이 팔렸다. 김 의원은 “‘보여주기’식 정책보다는 사회적 저변 확대에 초점을 맞춰야 장애인 스포츠에 대한 관심을 더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권기범 기자 kaki@donga.com}

채용 비리의 시작은 부정한 청탁이다. 그러나 청탁 당사자는 번번이 법의 심판을 피했다. 그 대신 청탁을 실행한 인사들에게 처벌이 집중됐다. 특히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청탁을 받고 행동으로 옮긴 사람들에게 과거보다 무거운 처벌이 내려지고 있다. 본보는 2007년부터 올해 3월까지 공공기관 채용 비리 사건 10건의 판결문 23개를 입수해 분석했다. 사건에 연루된 청탁자는 27명. 전현직 국회의원과 지자체장, 시의원 등 정치인이 9명으로 가장 많았다. 그러나 재판에 넘겨져 처벌을 받은 청탁자는 산하 기관에 아들을 입사시키려고 인사담당자에게 문제지를 유출토록 압력을 행사한 당시 지식경제부 공무원 1명 뿐이다. 반면 지난해 5월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열린 채용 비리 5건의 재판에서 청탁을 받고 실행한 피고들에게는 전원 실형이 선고됐다. 금융감독원 부원장을 차례로 지낸 김수일(56) 이상구 씨(56)에게는 지난해 9월 각각 징역 1년과 징역 10개월이 선고됐다. 중소기업진흥공단 이사장을 지낸 박철규 씨(61) 등 다른 청탁 실행자도 징역 10개월에서 길게는 4년형을 받았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 출범 전 5건의 경우 청탁 실행자에게 실형 선고가 내려진 적은 없다. 검찰 관계자는 21일 “사기업도 공개채용 과정에서 지원자의 신뢰를 배반할 경우 엄단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중국어 잘한다던데” 모호한 부탁… 채용 청탁자, 법망 피해가 ▼‘채용비리 판결’로 본 실태부정 채용을 청탁하는 사람과 이를 실행에 옮기는 사람 사이에는 ‘그들만의 언어’가 있다. 표현은 모호하고, 대화는 은밀하다. 특정 지원자를 뽑으라는 노골적인 요구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2007년 이후 주요 채용 비리 사건 10건의 판결문 23개와 관련 공소장을 분석한 결과다. 박철규 전 중소기업진흥공단 이사장은 인사담당자에게 이름 세 글자가 적힌 포스트잇을 건네며 넌지시 말했다. “응시자 중에 ○○○이 있는데, 중국에서 대학을 나와 중국어를 잘한다더라.” 이광구 전 우리은행장은 지원자 명단을 가져오게 했다. 그리고 일부 이름 옆에 동그라미를 그렸다. 조선시대 임금이 관료를 뽑을 때 ‘낙점(落點)’ 표시를 한 것과 비슷하다. 한 공공기관 인사담당자는 “합격자 발표가 한참 남았는데 사내외 고위 인사로부터 ‘○○○ 합격했는지 알 수 있느냐’는 연락이 자주 온다. 이건 사실상 합격시키라는 말이다”라고 말했다.○ 모호하고 은밀한 ‘청탁 언어’ 채용 비리 사건 판결문에 등장한 청탁자 27명 중 1명을 뺀 26명이 기소조차 되지 않은 비결은 바로 이런 ‘전략적 모호성’ 덕분이다. 채용 담당자는 특정인을 합격시키기 위해 전산이나 서류를 조작하면 물증이 남아 처벌받는다. 하지만 청탁자의 언질은 증거가 남지 않는다. 실행한 사람의 입에서 청탁자 이름이 나오는 경우도 드물다. 설사 청탁자가 드러나도 “단지 참고만 하라는 취지였다”고 발을 빼면 속수무책이다. 청탁 내용이 담긴 음성 녹취 파일이 법원에 제출된 적도 있지만 특정인을 뽑으라는 명시적 표현이 담겨 있지 않는 한 증거로 인정되기 어렵다. 심지어 청탁 당사자가 “내가 압력을 넣었다”고 자백까지 했지만 재판부가 “진술의 신빙성을 판단하기에 증거가 부족하다”며 기각한 사례도 있다. 채용 비리를 수사했던 한 검찰 관계자는 “청탁과 추천의 경계가 모호해 부정한 청탁이 이뤄졌다는 점을 입증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채용 비리에 적용되는 법률은 형법상 업무방해죄다. 공정하고 자유롭게 직원을 채용해야 하는 기업의 업무를 방해한 죄로 처벌되는 것이다. 청탁한 사람과 이를 실행한 사람 모두 업무방해의 공범이다. 하지만 증거가 남는 실행자만 처벌받고 청탁자는 번번이 법망을 피해갔다. 청탁자가 처벌받은 사례는 과거 지식경제부 공무원이었던 정모 씨(60)가 유일하다. 정 씨는 산하 기관에 미국 시민권자인 아들을 취업시키려고 전형 기준에 해외유학 경력을 추가하도록 하는 한편 시험문제까지 알려 달라고 요구했다. 해당 기관 담당자가 거부하자 “너 하나 정도는 날려버릴 수 있다”고 협박했다. 정 씨는 1심에서 무죄를 받았다가 2016년 항소심에서 징역 8개월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정 씨처럼 노골적으로 청탁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서울 지역의 한 판사는 “청탁의 개념이 모호한 게 사실이다. 합리적 의심이 들지 않을 정도의 결정적 물증이 없는 한 보수적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업무방해죄 자체에도 맹점이 있다. 죄가 성립하려면 청탁한 사람이나 청탁을 받은 사람이 인사담당자 모르게 부정 채용을 진행한 사실이 인정되어야 한다. 하지만 인사담당자까지 포함해 서로 협의 후 특정인을 채용했다면 죄가 되기 어렵다. 업무를 방해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 검찰도 청탁자 수사에 소극적이다. 우리은행 채용 비리를 수사 중인 서울북부지검은 채용 청탁을 한 것으로 알려진 이상구 전 금융감독원 부원장과 전 국가정보원 고위 간부에 대해 한 차례 참고인 조사에 그쳤다. 한국항공우주산업(KAI) 채용 비리를 수사했던 서울중앙지검도 청탁자로 지목된 전 공군참모총장 최모 씨와 방송사 간부를 기소하지 않았다. 처벌 가능성이 낮으니 정치인 등 유력 인사는 별다른 위험부담 없이 채용 청탁을 남발한다. 결국 힘 있는 인사와 줄이 닿은 사람만 특혜를 받아 채용되고 절차를 지킨 평범한 사람은 뒷전으로 밀리는 불공정이 만연하게 된 것이다.○ 원인은 낙하산 인사 ‘보은 관행’ 공공기관 채용 비리는 정치권에서 ‘낙하산’으로 내려온 고위 간부들이 직원 채용을 보은의 수단으로 악용하기 때문이다. 한 공공기관 고위 간부는 “권력자의 도움으로 자리를 얻은 사람이 도와준 사람의 요청을 거절하기는 어렵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한 공기업 상무는 “인사부장으로 있을 때 이사장이 청와대나 국회의원의 청탁을 받고 ‘누구를 뽑으라’고 여러 번 지시를 내렸다. 한 번 들어주면 계속 응해야 할 것 같아 번번이 거절했더니 승진이 한참 늦어졌다”고 털어놨다. 채용 비리 판결문에 거론된 청탁자 27명 중 9명은 국회의원과 자치단체장, 시의원 등 정치인들이었다. 이들 중 처벌받은 사례는 없다. 자유한국당 최경환 의원이 중소기업진흥공단 채용에 압력을 행사한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을 뿐이다. 채용 비리는 보통 상급자가 아랫사람에게 압력을 가하는 방식이지만 그 반대인 경우도 있다. 검찰에 따르면 이광구 전 우리은행장은 연임에 유리한 환경을 만들기 위해 부하 간부들의 자녀가 채용되도록 도운 혐의를 받고 있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청탁을 들어준 간부들이 요직으로 발탁되다 보니 다른 간부들도 채용 청탁에 응하려는 유혹을 받게 된다”고 말했다.배준우 jjoonn@donga.com·권기범 기자·김동혁 hack@donga.com·조응형 기자}

소설 ‘경마장 가는 길’로 유명한 하일지(본명 임종주·63·사진) 동덕여대 문예창작과 교수가 미투 운동 비하 논란 등이 일자 강단을 떠나겠다고 19일 밝혔다. 하 씨는 최근 ‘소설이란 무엇인가’ 수업에서 안희정 전 충남지사에게 성폭력 피해를 입은 김지은 씨에 대해 2차 가해에 해당하는 말을 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김유정의 소설 ‘동백꽃’에 대해 설명하다 미투 운동을 비하했다는 의견도 나왔다. 동덕여대 재학생 A 씨가 2016년 하 씨에게 성추행을 당했다는 폭로도 이어졌다. 하 씨는 이날 동덕여대 백주념기념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미투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무례하고 비이성적인 고발로 인격 살해를 당해 문학 교수로서 깊이 상처를 입었고 학생들의 신뢰를 회복하기 어렵게 됐다”며 “강단을 떠나 작가의 길로 되돌아가기로 했다”고 말했다. 동덕여대는 이날 윤리위원회를 열어 향후 진행절차를 논의했다. 대학 관계자는 “윤리위에서는 벌어진 사안의 사실관계를 확인할 예정”이라며 “징계위원회를 열어 하 교수를 회부할지는 추후에 검토할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손효림 aryssong@donga.com·권기범 기자}

“오직 동아마라톤을 위해!(Only for Dong-A Marathon!)” 18일 열린 2018 서울국제마라톤 겸 제89회 동아마라톤에는 대회 참가만을 목표로 한국을 찾은 외국인들을 비롯해 외국인 유학생 및 근로자들도 함께 달렸다. ‘러닝문화’에 익숙한 20, 30대들도 열정적으로 도심을 달렸다. 국내외 러너(runner)들의 축제로 자리매김했다. 18일 오전 7시를 전후해 서울 광화문광장에는 패딩점퍼와 1회용 비닐점퍼를 입은 참가자들이 속속 모습을 드러냈다. 영상 6∼7도로 쌀쌀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피트니스 음악에 맞춰 흥겹게 몸을 풀었다.○ “코스 좋다는 소문, 해외에도 나” 미국 애리조나에서 의사로 일하는 하리 케샤바 씨(36)는 나흘 일정으로 한국을 찾았다. 오직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서다. 그는 “미국에서는 풀코스를 두 번 완주했는데 해외 첫 경험으로 한국을 택했다. 바쁜 와중에 겨우 짬을 냈다”며 웃었다. 일본 도야마(富山)현에서 온 직장인 나오토 다치나미 씨(49)도 전날 낮 12시에 한국에 도착해 대회를 치르고는 바로 출국하는 빡빡한 일정을 택했다. 서울시립대 대학원에 재학 중인 녜화린 씨(32)는 중국에서 온 친구 10여 명과 단체로 참가했다. 녜 씨는 “친구들 사이에서 코스 경치가 좋다고 소문이 나서 매년 친구들이 찾아온다”고 말했다. 참가자들은 쌀쌀한 날씨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슈퍼맨 복장을 한 싱가포르인 모하마드 라시드 씨(37)는 “이 옷을 입기 위해 더운 싱가포르를 떠나 한국으로 날아왔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이날 10km 구간(서울챌린지10K) 1위는 태국에서 온 와리피툭 샌동 씨(40)가 차지했다. 인천의 알루미늄 도금 공장에서 일하는 근로자인 샌동 씨는 동료들과 함께 운동하다 내친김에 참가했다가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와리피툭 씨는 한국말로 “좋은 날이다. 아내와 아들이 보고 싶다”고 말했다.○ 휠체어 탄 자식들과 함께 골인 국내 참가자들도 저마다의 사연을 안고 봄바람을 갈랐다. 조지연 씨(42·여)는 마라톤 대회에 참가해보고 싶다는 딸 임희주 양(13)의 꿈을 이루기 위해 나섰다. 임 양은 뇌성마비를 앓고 있다. 아마추어 마라토너인 아버지를 보면서 뛰어다니는 몸짓을 하곤 했다. 조 씨는 전동휠체어에 딸을 태우고 10km를 뛰었다. 기록은 1시간 44분. 남들보다 많이 늦었지만 조 씨는 “희주가 이렇게 밝은 표정을 짓는 게 정말 오랜만”이라며 만족스러워했다. 2년 전 백제공주마라톤에서 주목받았던 배종훈 씨(52)도 휠체어에 아들 재국 씨(22)를 태우고 또 한 번 대회에 참가했다. 이들 부자는 ‘서브 포(4시간 이내 완주)’를 달성하면서 21번째 완주를 기록했다. 배 씨는 “이번 평창 패럴림픽을 보면서 아예 움직일 수 없는 아들에게 힘을 주고 싶다는 생각이 강렬했다. 지난겨울 아들이 많이 아팠는데 잘 견뎌줘 고맙다”고 했다. 평소라면 긴장하며 행사장 경비에 나섰을 경찰 등도 가벼운 마음으로 도로를 질주했다. 서울지방경찰청에서는 29명이 제복 대신 단체 티셔츠를 입고 이주민 서울지방경찰청장의 박수를 받으며 뛰었다. 평창 겨울올림픽 개·폐회식 공연에서 한국무용을 안무한 김혜림 감독과 함께 일한 조재혁 조감독, 무용수 등 10명도 서울챌린지10K 부문에 참가했다. 대회에 세 번째 참가하는 조 조감독이 제안했다고 한다. 김 감독은 “동고동락한 동료끼리 달리며 결속을 다질 수 있어 좋았다. 내년 대회에서는 무용 공연을 선보이고 싶다”며 활짝 웃었다. 결승선을 통과한 사람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환호성을 지르며 완주를 축하했다. 동호회 회원들에게 직접 만든 월계관을 일일이 씌워주는 사람도 있었다. 코스마다 러너들을 이끈 ‘페이스메이커’와 자원봉사자도 대회를 빛냈다. 시각장애인 페이스메이커 문선희 씨는 “시각장애인들도 스포츠의 희열을 함께 느낄 수 있도록 마라톤 저변이 더욱 확대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날 러너들에게선 ‘나와의 대결’에서 승리한 환희가 엿보였다.권기범 kaki@donga.com·이지운·김자현 기자}
14일 오후 11시 반경 서울 종로구 종각역 인근 중앙버스전용차로. 40대 남성 한 명이 2차로 도로를 성큼성큼 건너기 시작했다. 술에 취한 듯 비틀거렸다. 남성이 길을 건너던 곳에서 불과 5m 떨어진 곳에 횡단보도가 있었다. 하지만 이 남성은 아랑곳하지 않고 도로를 횡단했다. 남성의 목적지는 중앙버스정류장. 하지만 펜스 탓에 정류장에 올라서지 못했다. 잠시 후 신호가 바뀌면서 교차로에 서 있던 차량들이 달리기 시작했다. 뒤늦게 도로 위 남성을 발견한 차량들이 급정거하거나 차로를 바꿨다. 여기저기서 ‘빵’ 하는 경적 소리가 이어지며 도로가 아수라장이 됐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남성은 멈춰 선 차량 사이를 뛰어 인도로 되돌아갔다. 서울 등 주요 도시에 중앙버스전용차로가 확대되고 있다. 교통 혼잡을 완화하고 대중교통 활성화를 위해서다. 덩달아 교통사고 위험도 커지고 있다. 이는 중앙버스전용차로에 설치된 정류장 탓이다. 중앙버스정류장 양쪽에는 인도로 가기 위한 횡단보도가 있다. 폭이 2, 3차로 정도에 불과하다. 문제는 횡단보도가 짧다 보니 신호위반이나 무단횡단을 감행하는 시민이 많다는 것이다. 1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종로4가 중앙버스전용차로를 확인한 결과 10분에 1, 2명꼴로 무단횡단을 했다. 빨간색 보행신호도 아랑곳하지 않고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유유히 버스정류장으로 향하는 사람도 많았다. 정류장에 서 있는 버스를 향해 손짓을 하며 위험하게 도로로 뛰어드는 사람도 눈에 띄었다. 무단횡단으로 정류장에 들어선 한 40대 남성은 기자에게 “어차피 차량 신호도 빨간불인데 뭐가 문제냐. 다 효율적으로 하면 된다”고 말한 뒤 급히 버스에 올랐다. 중앙버스전용차로에서의 보행자 교통사고는 다른 사고보다 피해가 크다. 일반 도로에 비해 차량들의 운행 속도가 빠른 경우가 많은 탓이다. 지난달 4일 오전 5시경 서울 성북구 중앙버스정류장 근처에서 무단횡단 중이던 60대 여성이 지나던 택시에 치여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숨졌다. 정류장에는 ‘무단횡단 금지’라는 안내문이 있었지만 사고를 막지 못했다. 서울지방경찰청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서울에서 무단횡단으로 3명 이상이 숨진 17곳 중 8곳이 중앙버스전용차로가 있는 도로였다. 그래서 중앙버스정류장 주변을 지나는 운전자도 불안을 호소한다. 직장인 강모 씨(32·서울 강북구)는 “전용차로가 있는 도봉로 인근을 매일 운전하는데 횡단보도 근처에서 몸을 들썩이는 사람만 보여도 놀라서 급정거를 하게 된다”고 말했다. 유정훈 아주대 교수(교통시스템공학)는 “보행자는 달려오는 차량의 속도를 가늠하기 어렵다. 그래서 시간이 충분하다고 잘못 생각해 무심코 도로로 뛰어들게 된다. 교육도 중요하지만 전용차로와 연결된 횡단보도가 보행자 중심으로 안전하게 설계됐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안보겸 abg@donga.com·권기범 기자}
‘미투(#MeToo·나도 당했다) 운동’이 본격적으로 전개된 지 40여 일이 지나면서 피해 폭로자에 대한 2차 피해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폭로 공작설, 조작설 등이 유포되고 있다. 또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 일부는 “억울하다”며 피해자 등을 상대로 법적 대응에 나서고 있다. 이에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 성폭력사건 대책위원회’와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는 1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폭로자에 대한 근거 없는 의심과 비난을 멈추라”고 촉구했다. 회견 참석자 50여 명은 ‘미투는 계속돼야 한다’, ‘침묵의 시대는 끝, 변화를 위한 미투’ 등의 문구가 적힌 푯말을 들고 “최근 폭로자를 향한 맹목적 비난과 신상털이로 2차 피해가 심각하다”고 우려했다. 배복주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 상임대표는 “안 전 지사 사건 관련 기사의 댓글을 보면 ‘지라시’ 같은 추측성 글이 쏟아지면서 이번 사건의 본질이 훼손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안 전 지사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폭로한 김지은 씨(33)의 변호인 정지원 변호사는 김 씨에 대한 허위 사실을 유포하면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하겠다고 밝혔다. 김혜정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소장은 “위력에 의한 성폭력을 제대로 처벌할 수 없다면 앞으로 일어나는 성폭력에 눈을 감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팬을 성추행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힙합 래퍼 던말릭(문인섭·22)은 이날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여성 두 명이 합의에 의해 관계를 가지거나 스킨십을 했는데도 강제로 (성적인) 행위들을 강요한 것처럼 사실을 왜곡하는 글을 게시했다. 이들을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고 썼다. 앞서 던말릭은 성추행 의혹이 제기된 직후 사과했지만 “(소속사의 요청에 따라) 사실과 다르게 성추행을 했다고 마지못해 인정했다”며 입장을 번복했다. 또 ‘기자 지망생을 성추행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정봉주 전 의원은 이를 전면 부인하며 해당 의혹을 보도한 언론사 소속 기자를 허위 사실 공표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소했다. 이병훈 중앙대 교수(사회학)는 “사실 확인이 중요하지만 가해자로 지목된 인물이 사회 권력층이거나 우월한 위치에 있는 만큼 시비를 가리는 과정에서 2차 피해가 생기지 않도록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권기범 기자 kaki@donga.com안보겸 기자 abg@donga.com}

정봉주 전 의원이 언론 보도를 통해 제기된 자신의 성추행 의혹을 반박했다. 정 전 의원은 9일 오후 발표한 입장문에서 “2011년 12월 23일 (성추행 장소로 지목된) 해당 호텔 룸을 간 사실이 없다. 룸에서 A 씨를 만난 사실도 없다. 호텔 룸으로 A 씨를 불러 성추행을 했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앞서 현직 기자 A 씨는 7일 한 인터넷 언론을 통해 “정 전 의원이 2011년 12월 23일 서울 여의도의 한 호텔 카페에 있는 룸에서 성추행했다”고 주장했다. 정 전 의원은 이틀 만에 A 씨 주장을 부인하며 당시 일정을 공개했다. 2011년 12월 23일 오전 정 전 의원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사무실을 찾은 뒤 어머니가 입원한 서울 노원구의 한 병원을 찾았다. 이후에는 주로 ‘나는 꼼수다’ 멤버들과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그는 “누구를 만나러 갈 여유가 없었고 그럴만한 상황도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피해자 측도 정 전 의원 주장을 반박했다. 사건 2주 후 A 씨가 당시 남자친구에게 보낸 메일도 공개했다. 메일에는 “정 전 의원이 ‘마치 애인 같다’는 등의 말을 나에게 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메일에 사건 발생일이 24일로 표현된 것에 대해선 “착각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권기범 기자 kaki@donga.com}

보물 1호인 흥인지문(동대문)에 불을 낸 40대 남성이 경찰에 붙잡혔다. 다행히 문화재 관리 직원과 경찰의 신속한 대응으로 피해는 크지 않았다. 10년 전 숭례문(남대문) 화재를 겪었던 시민들과 소방당국 등은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9일 서울 종로소방서와 혜화경찰서에 따르면 이날 오전 1시 49분경 장모 씨(43)가 서울 종로구 흥인지문 담을 넘어 벽 안쪽에 종이박스를 쌓아놓고 라이터로 불을 질렀다. 장 씨가 담을 넘는 걸 목격한 시민이 112에 “흥인지문으로 누군가 올라가고 있다”고 신고했다. 신고를 받은 경찰은 관리사무소에 상황을 알린 뒤 현장으로 출동했다. 경찰로부터 소식을 전해들은 종로구 문화재경비원 2명도 현장으로 향했다. 경비원들이 현장에 도착해 상황을 살펴보던 중 연기가 나는 것을 발견하고 내부로 진입했다. 장 씨가 불을 지른 것을 확인한 경비원들은 현장에 있던 소화기로 불을 껐다. 경찰은 장 씨를 현행범으로 체포했다. 상황은 5분 만에 종료됐다. 벽 안쪽에 성인 남성 허리 높이의 그을음이 생겼지만 다른 피해는 없었다. 종로소방서 관계자는 “소방대원들이 현장에 출동했을 때 이미 불이 다 꺼진 뒤였다. 신속한 대응 덕분에 피해가 없어 천만다행”이라고 말했다. 경찰 등에 따르면 장 씨는 과거에 정신과 치료를 받은 전력이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흥인지문 인근 상인들은 “장 씨가 평소에도 태권도복 같은 것을 입고 떠돌아다니며 이상한 행동을 하곤 했다”고 말했다. 장 씨는 현장에서 “○○을 불러오지 않으면 이곳을 떠나지 않겠다”고 외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 관계자는 “장 씨가 구체적 범행 동기 등에 대해서는 횡설수설하고 있어 정확한 범행동기는 계속 수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경찰은 공용건조물방화미수, 문화재보호법 위반 혐의로 장 씨의 구속영장을 신청할 방침이다. 안보겸 기자 abg@donga.com권기범 기자 kaki@donga.com}

“곪았던 부위가 잘 터졌다고 생각합니다. 용기를 낸 피해자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고 싶었습니다.” 8일 낮 12시경 서울 종로구 마로니에공원. 석고로 만든 일그러진 표정의 남성 탈 앞에서 여성 20여 명이 ‘미투(#MeToo·나도 당했다)’와 ‘위드유(#Withyou·함께하겠습니다)’가 적힌 보라색 피켓을 들고 섰다. 이들 한국여성연극협회 회원은 이윤택 씨(66·전 연희단거리패 예술감독)를 비롯해 연극계 전반으로 확산된 성추문을 반성하기 위해 모였다. 참가자들은 “폭로자들을 응원하고, 방관자로서 반성한다”며 약 1km를 침묵 행진했다.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전국에서 미투 운동을 응원하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여성의 날 국내 법정기념일 지정을 축하하며 성폭력에 대한 법 및 제도적 처벌을 강화하자는 목소리도 높았다.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지지와 연대를 뜻하는 ‘흰 장미’도 곳곳에서 등장했다. 1월 말 열린 미국 그래미상 시상식에서 유명 여성가수들이 옷에 흰 장미를 달고 나오면서 미투 운동 지지의 상징이 됐다. 한국여성의전화는 오전 11시부터 서울 곳곳에서 ‘흰 장미’ 5000송이를 나눠줬다. 불꽃페미액션,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같은 여성단체도 오후 7시 서울 마포구 지하철 2호선 홍대입구역에서 흰 장미를 들고 집회를 열었다. 한국YWCA연합회 회원 100여 명은 오후 1시 반부터 서울 중구 명동 일대를 약 30분간 행진하며 성폭력 가해자에 대한 사법당국의 엄정한 수사를 요구했다. 한국여성노동자회를 비롯한 13개 단체가 만든 ‘3·8 3시 스톱(STOP) 공동기획단’은 오후 3시부터 약 1000명(주최 측 추산)이 모인 가운데 광화문광장에 모여 “직장 성희롱을 근절하라”고 주장했다.권기범 kaki@donga.com·김정훈 기자}
“반갑다며 포옹하자더니 엉덩이를 토닥거리고 내 볼에 뽀뽀했다.” 6일 이화여대 온라인 커뮤니티 ‘이화이언’에 올라온 글의 일부다. 게시자는 2년 전 발생한 A 교수의 성추행을 폭로했다. 지금은 퇴임한 상태다. A 전 교수는 “학생이 느꼈을 고통에 사과드린다. 학교당국 조사에 성실히 응하겠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미투(#MeToo·나도 당했다)’가 대학사회 전반으로 확산되면서 매일 새로운 폭로가 이어지고 있다. 덩달아 대학가 일상도 급속히 바뀌고 있다. 미투가 대학사회의 해묵은 악습을 없앨 것이라는 기대가 나오고 있다.○ ‘만취 OT’ 대신 ‘한 잔 OT’ 대세 신입생 입학을 전후로 한껏 들뜨던 대학가 분위기는 확연히 달라진 모습이다. 대표적인 현장이 신입생 오리엔테이션(OT)이다. 밤마다 이어지던 술판이 거의 자취를 감춘 것이다. 지난달 말 서울시립대 OT에 참석한 학생들에게는 맥주 한 캔과 소주 반병이 제공됐다. 앞서 학교 측은 미리 신입생에게 안내문을 나눠줬다. ‘음주 가능 여부’와 ‘음주 경험’ ‘희망 음주량’을 표시해서 제출토록 했다. 그 결과에 따라 1인당 주류 제공량이 결정된 것이다. 이 학교 총학생회 사무국장 박주영 씨(25)는 “OT를 준비한 학생들 모두 양성평등센터에서 2시간씩 교육받았다. 미투 운동을 보면서 우리부터 조심하자는 분위기가 커졌다”고 말했다. 다른 학교를 다니다 서울의 한 사립대에 늦깎이로 입학한 노모 씨(24)는 지난달 강원도에서 열린 전체 OT에 참석했다가 ‘격세지감’을 느꼈다. 노 씨가 2박 3일간 받은 술은 과실주 한 잔이 고작이다. 5년 전 입학했던 대학의 OT 자리에서는 소주와 맥주가 끝없이 제공됐다. 술을 마시지 않고서는 도저히 자리에서 빠질 수 없는 분위기였다. 노 씨는 “밤 11시가 되니 다들 방으로 돌아가라는 공지 방송이 나오더라.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었다”고 말했다. 과거 OT 때 ‘강간 몰카’ 사건으로 논란을 빚은 서울예술대도 이번에 주류 구매량을 이전의 10분의 1로 줄였다. 1인당 한두 잔 정도 마실 수 있는 양이다. 동국대는 각 단과대와 학과별로 OT 현장에서 ‘인권지킴이’ 제도를 운영했다. 인권지킴이는 술자리에서 성차별 발언을 하거나 술을 강권하지 않는지 감시하고 문제가 있으면 학생회에 보고하는 역할을 맡았다. 사회과학대 인권지킴이로 활동한 ‘예진’(활동명·22) 씨는 “지킴이 명찰을 달고 다니며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했다. 그래서인지 이번에는 문제가 한 건도 없었다”고 말했다.○ 지금 대학가는 ‘조심 또 조심’ 개강을 전후로 문화예술뿐 아니라 다른 전공으로도 미투가 확산되자 대학사회 전체는 일제히 ‘조심 모드’로 진입했다. 고려대 신입생 오모 씨(19·여)가 개강 직후 선배들과의 술자리에서 가장 많이 들은 건 “처벌받지 않으려면 조심하라”는 학생회 공지였다. 과 학생회장은 “상대에게 수치심을 느끼게 하는 발언을 하면 학생회 차원의 징계위를 열어 처벌받으니 조심하라”고 신신당부했다. 강의 중 교수들의 가벼운 농담도 줄어드는 모양새다. 한국예술종합학교의 한 교수는 수업 중 하품하는 학생을 보며 “목젖 다 보인다. 입 찢어지겠다”고 농담을 던지고 웃었다. 그러다 갑자기 표정이 굳어지더니 “혹시 이 말이 문제가 되냐”고 학생들에게 되물었다. 수업을 듣던 학생 박모 씨(23)는 “별것 아닌 상황에서 교수님들이 쩔쩔매는 모습을 보고 놀랐다”고 말했다. 서울의 한 사립대 대학원 교수는 학기 중 진행하려던 주말 세미나를 포기했다. 학생들과 편하게 토론하며 ‘반주(飯酒)’도 곁들일 생각이었지만 결국 접었다. 해당 교수는 “지금 같은 때는 무조건 조심하는 게 답이다”라고 말했다.권기범 kaki@donga.com·조유라·김정훈 기자}

7일 낮 12시 반경 서울 종로구 한 초등학교에서 하교하는 학생들이 쏟아져 나왔다. 정문을 뛸 듯이 지나친 아이들은 집으로 가는 발길을 빨리했다. 점심시간과 겹치며 오전 내내 한적하던 정문 앞 도로는 금세 북적였다. 학교 인근은 어린이 보호구역(스쿨존)이다. 곳곳에 ‘어린이 보호구역’이라는 표지가 보인다. 보도와 도로를 나누는 경계석에는 ‘주정차 금지구역’이라는 노란색 표지가 붙어 있다. 그러나 30분 새 승용차 7대가 정차했다. 어떤 차는 10분간 서 있기도 했다. 차량은 시속 30km 이하로 주행해야 하지만 이날 이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지나치는 배달 오토바이가 눈에 띄었다. 자녀가 2학년인 고모 씨(41·여)는 “오토바이가 지나갈 때는 나까지 놀란다. 집이 학교에서 10분 거리지만 불안해서 매일 아이를 데리러 온다”고 말했다. 어린이를 교통사고에서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졌지만 스쿨존 교통사고는 심심찮게 일어난다. 지난해 6월에는 스쿨존에서 킥보드를 타던 A 군(8)이 승용차에 치여 숨지기도 했다. 새 학기가 시작하는 3월이 되면 어린이들의 보행 중 교통사고도 늘어난다. 경찰이 최근 5년간 서울 어린이 교통사고를 분석한 결과 매년 평균 39.9%(734명)가 걷다가 일어났다. 지난해 보행 중 교통사고로 다친 어린이는 629명. 연령대별로는 초등학교 저학년(298명·47.4%), 시간대별로는 오후 2∼6시가 44.5%(280명)로 가장 많았다. 서울지방경찰청, 세이프키즈코리아 등은 어린이 보행 교통사고를 줄이기 위해 이날 오전 9시 반부터 서울 종로구 재동초등학교에서 1학년생 43명에게 ‘엄마손 교통안전캠페인’을 펼쳤다. 2002년부터 시작해 이번이 17년째다. 이날 캠페인에서는 먼저 어린이 보행 3원칙인 ‘보다 서다 걷다’(좌우를 살핀 뒤, 횡단보도에서 뛰지 말고 천천히 걷자)를 알려줬다. 이후 자원봉사자들이 학생들에게 손바닥 모양의 노란색 ‘엄마손’을 나눠줬다. 이주민 서울지방경찰청장 등은 이보다 더 큰 엄마손을 들었다. 이들은 함께 학교 앞 스쿨존 횡단보도를 안전하게 건너는 연습을 했다. 1학년 김재준 군(7)은 “배운 대로만 하면 횡단보도 건너기가 무섭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학생들은 가방 전체를 덮을 수 있는 형광색 천으로 된 가방 커버도 받았다. 스쿨존 제한속도인 시속 30km를 지키라는 속도 제한 표지판 그림이 큼지막하게 그려져 있다. 운전자들에게 경각심을 심어주자는 것이다. 이주민 청장은 “어린이 보호구역의 교통안전 시설물을 정비하고 보강해 교통사고를 예방하고 줄이는 데 노력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했다.권기범 kaki@donga.com·안보겸 기자}

“단속 오니까 조심하라 했는데 ‘설마 오겠어요?’ 하며 웃네요. 손님한테 뭐라 할 수도 없고….” 5일 오후 서울 도심의 한 스크린골프장에서 만난 직원이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이곳에는 방 7개가 있는데 지난해 12월 흡연부스 하나를 새로 설치했다. 스크린골프장 금연 실시에 대비해 미리 만든 것이다. 하지만 흡연부스 이용을 꺼리는 손님이 많았다. “골프 칠 때 담배 안 피우면 흥이 깨진다”는 이유다. 스크린골프장 직원은 “여직원이 주의를 당부하면 아예 무시하는 손님도 있다. 그렇다고 한 개에 90만 원이나 하는 흡연부스를 방마다 넣을 수도 없어 사장님이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3일 스크린골프장과 당구장 등 실내 체육시설을 금연구역에 포함시키는 개정 국민건강증진법이 시행됐다. 담배뿐 아니라 전자담배도 피울 수 없다. 어길 경우 담배를 피운 손님은 10만 원의 과태료를 내야 한다. 해당 업주는 최대 500만 원의 과태료를 물어야 한다. 단 업소에 설치된 흡연부스에서만 담배를 피울 수 있다. 시행 후 계도기간 3개월이 2일로 끝나 5일부터 지방자치단체의 단속이 시작됐다. 서울의 경우 각 자치구별로 본격적인 단속에 나섰다. 4, 5일 이틀간 서울의 당구장과 스크린골프장 20여 곳을 둘러본 결과 흡연부스 설치 등 대부분 준비를 마쳤다. 그러나 업종별로 분위기에 차이가 있었다. 스크린골프장 업주들은 흡연부스를 잘 갖춰놓고도 전전긍긍했다. 손님이 있는 공간이 밀폐된 형태라 몰래 담배를 피워도 일일이 제지하기 힘들다. 특히 저녁 시간대에 찾아와 막무가내로 담배를 피우는 손님들이 골칫거리다. 종로구의 한 스크린골프장은 방 하나를 고쳐 5m² 크기의 흡연실을 만들었다. 소파와 탁자를 놓아 카페처럼 꾸몄다. 흡연실 이용을 유도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지난 주말에도 각 방에서 담배꽁초를 치우느라 바빴다. 사장 서모 씨(51)는 “퇴근 후 술을 마시고 오는 손님은 당해낼 재간이 없다. ‘전자담배는 괜찮다’며 막무가내로 피운다”고 말했다. 성북구의 또 다른 스크린골프장 사장 이모 씨(49)는 “단속이 오지 않는 밤 시간대에는 전혀 달라진 것이 없다. 피우지 말라고 말을 해도 기분 나쁘다는 반응만 돌아온다”고 말했다. 반면 당구장 분위기는 나은 편이다. 스크린골프장과 달리 탁 트인 공간에 여러 손님이 있기 때문이다. 남의 눈치 때문에 공공연히 담배를 피울 수가 없다는 것이다. 종로구의 한 당구장 사장은 “재떨이 하나 가져다 줬다가 170만 원(1차 적발 과태료)을 물어낼 판인데 흡연을 봐줄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흡연부스가 없는 일부 당구장에서는 손님들이 건물 복도나 화장실을 흡연공간으로 쓰는 모습도 목격됐다. 원칙대로면 건물 밖에서 담배를 피워야 하지만 업소들도 사실상 묵인하고 있다. 4일 오후 찾은 영등포구의 한 당구장 복도에는 담배꽁초가 수북이 쌓인 대형 재떨이가 놓여 있었다. 신촌의 한 대형 당구장 직원은 흡연 장소를 묻자 “계단에서 피우면 된다. 아니면 세면실에서 얼른 피우고 오라”고 권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흡연 사실을 부인하는 경우가 많아 카메라 등 채증 장비를 동원해 적극적으로 단속하겠다. 3월 중 집중 단속을 벌이고 금연문화 정착을 위한 각종 캠페인도 실시하겠다”고 말했다.권기범 kaki@donga.com·안보겸·정현우 기자}
“단속 오니까 조심하라 했는데 ‘설마 오겠어요?’ 하며 웃네요. 손님한테 뭐라 할 수도 없고….” 5일 오후 서울 도심의 한 스크린골프장에서 만난 직원이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이곳에는 방 7개가 있는데 지난해 12월 흡연부스 하나를 새로 설치했다. 스크린골프장 금연 실시에 대비해 미리 만든 것이다. 하지만 흡연부스 이용을 꺼리는 손님이 많았다. “골프칠 때 담배 안 피우면 흥이 깨진다”는 이유다. 스크린골프장 직원은 “여직원이 주의를 당부하면 아예 무시하는 손님도 있다. 그렇다고 한 개에 90만 원이나 하는 흡연부스를 방마다 넣을 수도 없어 사장님이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3일 스크린골프장과 당구장 등 실내 체육시설을 금연구역에 포함시키는 개정 국민건강증진법이 시행됐다. 담배뿐 아니라 전자담배도 피울 수 없다. 어길 경우 담배를 피운 손님은 10만 원의 과태료를 내야 한다. 해당 업주는 최대 500만 원의 과태료를 물어야 한다. 단 업소에 설치된 흡연부스에서만 담배를 피울 수 있다. 시행 후 계도기간 3개월이 2일로 끝나 5일부터 지방자치단체의 단속이 시작됐다. 서울의 경우 각 자치구별로 본격적인 단속에 나섰다. 4, 5일 이틀간 서울의 당구장과 스크린골프장 20여 곳을 둘러본 결과 흡연부스 설치 등 대부분 준비를 마쳤다. 그러나 업종별로 분위기에 차이가 있었다. 스크린골프장 업주들은 흡연부스를 잘 갖춰놓고도 전전긍긍했다. 손님이 있는 공간이 밀폐된 형태라 몰래 담배를 피워도 일일이 제지하기 힘들다. 특히 저녁 시간대 찾아와 막무가내로 담배를 피우는 손님들이 골칫거리다. 종로구의 한 스크린골프장은 방 하나를 고쳐 5㎡ 크기의 흡연실을 만들었다. 소파와 탁자를 놓아 카페처럼 꾸몄다. 흡연실 이용을 유도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이번 주말에도 각 방에서 담배꽁초 치우느라 바빴다. 사장 서모 씨(51)는 “퇴근 후 술을 마시고 오는 손님은 당해낼 재간이 없다. ‘전자담배는 괜찮다’며 막무가내로 피운다”라고 말했다. 성북구의 또 다른 스크린골프장 사장 이모 씨(49)는 “단속이 오지 않는 밤 시간대에는 전혀 달라진 것이 없다. 피우지 말라고 말을 해도 기분 나쁘다는 반응만 돌아온다”라고 말했다. 반면 당구장 분위기는 나은 편이다. 스크린골프장과 달리 탁 트인 공간에 여러 손님이 있기 때문이다. 남의 눈치 탓에 공공연히 담배를 피울 수가 없다는 것이다. 종로구의 한 당구장 사장은 “재떨이 하나 가져다 줬다가 170만 원(1차 적발 과태료)을 물어낼 판인데 흡연을 봐줄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흡연부스가 없는 일부 당구장에서는 손님들이 건물 복도나 화장실을 흡연공간으로 쓰는 모습도 목격됐다. 원칙대로면 건물 밖에서 담배를 피워야 하지만 업소들도 사실상 묵인하하고 있다. 4일 오후 찾은 영등포구의 한 당구장 복도에는 담배꽁초가 수북히 쌓인 대형 재떨이가 놓여 있었다. 신촌의 한 대형 당구장 직원은 흡연 장소를 묻자 “계단에서 피우면 된다. 아니면 세면실에서 얼른 피우고 오라”고 권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흡연 사실을 부인하는 경우가 많아 카메라 등 채증장비를 동원해 적극적으로 단속하겠다. 3월 중 집중 단속을 벌이고 금연문화 정착을 위한 각종 캠페인도 실시하겠다”라고 말했다.권기범 기자 kaki@donga.com안보겸 기자 abg@donga.com}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집단사망을 불러온 ‘오염된 주사제’는 취급 과정에서 세균에 감염된 것으로 분석됐다. 주사제 자체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결국 의료진의 부주의로 주사제가 오염됐다는 것이다.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신생아에게 투여된 지질영양제가 주사제 준비 단계에서 시트로박터 프룬디균에 오염됐을 개연성이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는 질병관리본부의 역학조사 결과를 4일 공개했다. 경찰에 따르면 숨진 신생아가 맞은 지질영양제 ‘스모프리피드’는 각종 영양 성분을 제공하는 주사제다. 병원 측은 이 주사제를 지난해 12월 15일 신생아 5명에게 투약했다. 이 중 4명이 숨졌다. 주사제 자체 또는 취급 과정에서 오염 가능성이 제기됐다. 그러나 질병관리본부 검사 결과 문제가 된 지질영양제에서는 어떤 균도 나오지 않았다. 경찰의 의뢰로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별도 검사한 주사기 등 이른바 ‘수액세트’ 검사 결과도 모두 음성(검출 균 없음)으로 나왔다. 결국 간호사 등이 주사제를 개봉해 수액세트에 연결하는 준비 과정에서 오염됐다는 것이다. 이번 역학조사 결과에 따라 경찰은 사망 원인을 의료진의 부주의로 보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1인 1병 투약, 개봉 즉시 투약 등 기본수칙을 지키지 않아 균이 대량 번식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1인 1병 투약은 주사제 1병을 개봉해 환자 1명에게만 사용하는 것이다. 경찰은 이미 입건된 의료진 5명 외에 신생아중환자실 소속 교수 2명을 추가 입건하기로 했다. 이들은 부서 내 간호사를 대상으로 수시로 진행해야 하는 감염 예방 관리 교육을 한 번도 하지 않는 등 지도 및 감독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혐의(업무상 과실치사)를 받고 있다.권기범 기자 kaki@donga.com}

“지난해 9월, 4년을 만나다 헤어진 남자친구가 인터넷에 ‘사칭 계정’을 만들었습니다. 얼굴 사진과 저인 것처럼 꾸며진 나체 사진, 연락처가 올라왔습니다. ‘하룻밤을 보낼 남자를 찾는다’는 글까지 올라왔습니다. 법적 대응에 나섰지만 처벌은 약합니다.” 4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 무대 위 검정 코트를 입은 여성이 ‘미투(#MeToo)’ 발언을 했다. 목이 메는 듯 중간중간 말을 잇지 못했다. 여성이 울먹이며 “내 피해는 ‘현재진행형’”이라고 말했다. 청중이 박수를 쏟아냈다. 이날 광화문광장에선 한국여성단체연합이 주관한 제34회 한국여성대회가 열렸다. 세계 여성의 날(3월 8일)을 기념해 열린 대회에 2000여 명이 참가해 ‘미투’를 지지했다. 8명의 여성이 무대에 올라 ‘미투’ 사례를 공개했다. 10대 참가자 2명은 “초등학교 4학년 때 담임교사에게 성희롱을 당했다”, “진보 정당 활동 중 ‘외모 비하’ 문제를 제기했다 오히려 비난을 받았다”며 성토했다. 참가자들은 ‘#MeToo #WithYou(미투, 위드유)’가 적힌 손팻말을 흔들었다. 류근혜 한국여성연극협회장은 무대에 올라 “용감하게 나선 동료들에게 ‘위드유’를 외치고 싶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회에 보낸 축사를 통해 “2차 피해와 불이익, 보복이 두려워 긴 시간 가슴속에만 담아두었던 이야기를 꺼낸 피해자들에게 경의를 표한다”고 밝혔다.권기범 kaki@donga.com·안보겸 기자}
서울시내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에서의 불법 운전에 대한 단속이 강화된다. 교통사고 위험이 높은 스쿨존에는 전담 경찰도 배치된다. 서울지방경찰청은 이 같은 내용을 담은 ‘2018년 어린이 교통안전 종합대책’을 4일 발표했다. 이에 따라 경찰은 새 학기가 시작된 이달부터 주요 통학로에서 악성 불법 주차와 속도위반 등 도로교통법 위반 사항을 집중 단속한다. 교통사고 위험이 높은 곳은 캠코더나 이동식 카메라도 활용한다. 통학버스 운전자는 물론 일반 운전자의 서행 위반이나 앞지르기 금지 위반 등도 단속 대상이다. 600여 개 학교를 대상으로 사고 예방 활동도 실시된다. 교통경찰과 학교전담경찰이 각 초등학교에서 신호체계 안내 등 안전교육을 진행한다. 최근 3년간 스쿨존에서 교통사고가 발생했거나 사고 위험이 높은 곳에는 2명씩, 나머지 학교에는 1명씩 배치된다. 서울경찰청에 따르면 2013∼2017년 서울에서는 한 해 평균 734명의 어린이가 보행사고로 부상을 입었다. 시간대별로는 오후 4∼6시(188명), 연령대별로는 초등학교 저학년(397명)이 가장 많았다.권기범 기자 kak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