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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이 말을 할 리 없다. 그런데 펜션 단지 ‘모아이’는 저희들끼리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는 듯하다. “머리가 꽤 크시네요”라고 말을 건네면 어디선가 팔이 튀어나와 머리를 긁적거리며 “그러게요” 하고 웃을 것 같다. 경기 가평군 축령산 밑자락에 옹기종기 모여 앉은 펜션 모아이 역시 비일상적인 공간 경험을 할 수 있는 곳이다. 칠레 이스터 섬의 모아이 석상처럼 노란색 머리통이 큰 객실 6개동과 객실 앞 카페 1개동으로 이뤄져 있다. 카페 위는 수영장이다. “건물에 표정을 주고 싶었어요. 건물 7개동의 앞면 모두 인근의 수목원으로 가는 2차로 쪽을 향해 있어요. 길이 막혀 차에 갇혀 있으면 자연히 펜션 쪽으로 눈길이 가면서 ‘저건 뭐지?’ 하고 궁금증을 갖게 되죠.”(구승민 꾸씨노 대표·45) 콘크리트 덩어리임에도 모아이가 표정이 살아있는 생물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비정형 건축이기 때문이다. 건물 어느 곳도 반듯한 구석이 없다. 1층(약 23m²) 위에 이보다 훨씬 넓고 높은 2층(33m²)이 4.3m 길이의 캔틸레버(외팔보) 모양으로 삐죽 나와 얹혀 있다. 2층의 옆면이나 지붕은 모두 한번쯤은 꺾여 있어 노란색 착색 유리패널과 함께 표정을 더욱 풍부하게 한다. 내부 공간도 외부와 같이 여기저기 꺾여 있다. 1, 2층을 연결하는 노란색 가파른 계단을 제외하면 내부 공간은 단조롭다. 2층 침실의 침대에 누우면 바로 위로 뚫어놓은 둥근 천창으로 낮엔 빛이, 밤엔 별이 쏟아져 들어온다. “일상에선 체험하기 힘든 공간이죠. 인테리어에 들일 예산이 부족해 건물 디자인으로 해결했습니다.”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

건물이 움직일 리 없다. 그런데 ‘더 벡터(The Vector·방향)’는 묵직한 노출콘크리트 덩어리임에도 날이 풀리면 얼음이 녹듯 꿈틀댈 듯하다. 이 비현실적인 운동감의 비밀은 디자인에 있다. 비스듬히 기울어 있는 세로축과 가로축을 중심으로 4개의 콘크리트 덩어리가 바람개비 모양을 이루는데 미묘하게 뒤틀린 채 비대칭을 이루고 있어 바람개비 끝을 툭 건드리면 회전을 시작할 듯 생동감을 준다. 이름도 사방으로 뻗어있다는 뜻에서 지은 것이다. 경기 가평군 북한강변에 서북향으로 앉은 게스트하우스 더 벡터는 일상에서 벗어난 사람들에게 비일상적인 즐거움을 주는 ‘노는 건축’이다. 지하 2층, 지상 2층, 총면적이 504.87m²(약 153평)인데 국도에서 15m 아래의 강가로 내려가는 가파른 비탈길에 들어서 있어 멀리서 보면 절벽에 바람개비가 박혀 있는 듯한 모양이다. 커다란 창 밖으로 보이는 것은 호명산을 배경으로 펼쳐진 북한강이다. “북한강이 곧 집 마당이 되는 셈이죠. 일상에서 벗어나 쉬면서 재충전하려는 사람들에게 가장 호사스러운 공간이 자연과 가까이 있는 집 아닐까요?”(최철수 초이건축 대표·48·사진) 건축주인 니콜라스 전은 “강물만 감상하고 있어도 하루 종일 지루하지 않다“고 했다. “아침에 해가 뜨면 창에 하얗게 끼어있던 성애가 녹으면서 강물이 선명하게 눈에 들어옵니다. 밤엔 물 위로 별이 쏟아져 내리지요. 강물이 얼어붙는 소리와 얼음이 서서히 녹으면서 내는 소리, 그 소릴 들으며 개가 컹컹 짖는 소리까지 심심할 틈이 없어요.” 건물 안의 공간 경험도 비일상적이다. 현관으로 들어서면 거기가 벌써 4층이다. 층을 막아놓지 않아 뻥 뚫린 공간을 계단을 타고 내려가면 3층, 2층, 1층이 차례로 나온다. ‘1층엔 거실, 2층은 침실’처럼 수평으로 공간의 용도를 구분하는 관행도 깼다. 세로축에 주방, 거실, 바가 있는 놀이방을 배치하고 2, 3층에 걸쳐 있는 가로축에 침실 3개를 두었다. 건물의 중심에 여러 사람이 모이는 공용 공간을, 건물 끝에 개인 침실을 둔 것은 동선을 따져도 꽤나 효율적인 배치다. 강가에 바짝 붙여 서북향의 집을 지으려면 채광과 습기 대책이 필요하다. 최 대표는 건물 뒤쪽 창으로 빛이 들어오는 남쪽에 성큰가든을 두었고, 통풍이 되도록 전 층을 뚫어놓았다. 완성도가 높은 건축물과 달리 배경이 되는 조경이 거칠게 마무리돼 바람개비 모양이 제대로 살아나지 않은 점은 아쉽다. 최 대표는 외교관인 아버지를 따라 어려서부터 베트남 일본 우루과이 스위스 미국을 오가며 살았다. 외양과 인테리어 모두 “똑같은 구석이 하나도 없는 집들을 돌며 놀던 기억이 좋아” 집 짓는 일을 업으로 삼게 됐다. 그래서인지 그는 조형성이 강한 건축 작업을 해왔다. “우리 건축은 일본의 영향을 많이 받았죠. 어딘가 경직되고 딱 맞아떨어져야 하는 스타일은 우리와는 맞지 않아요. 부드럽고 풍부한 한국적인 감성이 담긴 건축을 하고 싶습니다.”가평=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

세계 유명 랜드마크 건물의 건설 비화를 알고 싶다면 굳이 이 책을 사볼 필요는 없다. 이 책의 미덕은 부제인 ‘수직에서 수평으로, 랜드마크의 탄생과 진화’에 요약돼 있듯 근대도시가 성장하며 탄생한 랜드마크의 진화 과정을 꼼꼼히 짚으며 어떤 도시를 만들 것인가에 대해 분명한 주장을 한다는 점이다. 랜드마크란 땅(land)의 이정표(mark)라는 글자 그대로 멀리서도 보이는, 그 지역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자연물이나 인공 구조물이다. 중앙대 건축학부 교수인 저자는 국가의 상징으로서의 랜드마크에서 출발한다. 자유의 여신상, 에펠탑, 런던아이, 워싱턴 기념비가 여기에 속한다. 랜드마크가 되려면 우선 커야 한다. 1886년 프랑스가 미국 독립 100주년을 기념해 선물로 준 자유의 여신상이 특별한 이유도 거대함 때문이다. 조각상 높이만 94m, 무게가 225t이다. 집게손가락 하나가 2.44m다. 나라를 구한 영웅의 동상도 이렇게 크게 만들어진 적이 없고, 앞으로는 더욱 그러하다. 국가의 상징이던 랜드마크는 20세기 들어 도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경제적 도구로 변화한다. 기술과 자본력을 동원해 높이, 더 높이 지어올린 빌딩은 주거 상업 문화 시설을 한데 모은 ‘수직도시’로 진화했다. 빅벤의 높이를 능가하는 랜드마크가 불가능해 보이던 런던에도 2012년 유럽연합에서 가장 높은 72층(309.7m)짜리 더 샤드가 완공됐다. 사람들은 “런던의 상징인 세인트 폴 대성당을 장난감처럼 보이게 만들었다”며 비난했고, 건축가인 렌초 피아노는 “모든 사람이 만족하는 건물을 만들었다면 그건 실패다”라고 맞섰다. 껌을 뱉으면 벌금을 내고, 태형도 존재하는 나라 싱가포르는 건물 디자인도 범생이 스타일이었다. 하지만 2001년 이후 경제 위기가 닥치자 대극장 에스플러네이드를 짓고, 카지노를 즐길 수 있는 복합 리조트 마리나 베이 샌즈를 건설했다. 열대과일 두리안을 닮은 에스플러네이드와 세 빌딩 위에 바게트 빵을 얹어놓은 듯한 마리나 베이 샌즈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돼 랜드마크로 대접받고 있다. 랜드마크 얘기하면서 두바이를 건너뛸 수 없다. “무엇이든 우주에서도 보일 정도로 커야 하고 스테로이드를 맞은 건축물처럼 우뚝 솟아야 한다”는 신념하에 세계에서 가장 높은 부르즈 칼리파(828m)를 지어 올렸다. 그리고 멈출 줄 모르는 높이 경쟁을 하다 경제 위기를 맞았다. 이른바 ‘고층 빌딩의 저주’다. 이제 웬만큼 높아서는 랜드마크가 되기 어렵다. 사람들은 남보다 높아지려는 욕망에 대해 회의하기 시작했다. 꼭 높아야만 랜드마크일까. 그리고 서 있던 랜드마크를 눕히기 시작했다. 수평적 랜드마크다. 2001년 9·11테러로 미국 뉴욕 맨해튼 남부의 랜드마크였던 쌍둥이 빌딩이 무너졌다. 미국은 보란 듯 더 높은 빌딩을 짓는 대신 나지막한 기념 공간을 짓고 공원을 조성해 시각적 심리적 상실감을 극복했다. 수평적 랜드마크는 이렇듯 건축과 조경이 어우러져 사람들이 머물며 여유를 즐기는 곳이다. 서울 광화문광장, 청계광장, 선유도공원이 수평적 랜드마크다. 가장 최신형 랜드마크는 일시적인 랜드마크다. 섬이나 건물을 대형 천으로 뒤덮는 식의 랜드아트마크와 2009년 서울 광화문광장에 설치됐던 스노보드대와 같은 이벤트성 랜드마크가 이에 속한다. 저자는 랜드마크를 “고정된 건축물이라기보다 사람들로 하여금 지속적으로 기대하게 만드는 건축물”이라고 재정의한다. 21세기형 랜드마크는 높아지기보다 낮고 길어지면서 더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공유의 장’이 돼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저성장 저개발 방식에 관심을 기울이자고 제안한다. “21세기형 지속가능한 도시는 투자의 대상이라기보다는 살고 일하며 쉬는 곳이다. 도시는 테마주가 되길 포기해야 한다.”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
MBC 신임 사장 후보가 안광한 MBC플러스미디어 대표이사 사장(58), 이진숙 워싱턴지사장(53), 최명길 인천총국 부국장(54)으로 좁혀졌다. MBC의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는 17일 오후 임시 이사회를 열어 신임 사장 지원자 13명에 대해 투표를 거쳐 득표 수가 많은 3명을 최종 후보로 뽑았다고 밝혔다. 방문진은 21일 오후 2시 정기 이사회를 열어 후보자 3명을 상대로 면접과 투표를 거쳐 차기 사장 내정자를 정한다.}

표지 그림과 달리 논객의 계보가 나오진 않는다.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 이후의 시기를 논객이 쏟아낸 말로 돌아보는 책이다. 이들이 한 수 한 수 돌을 놓는 모습을 통해 시대의 바둑판을 그려 보자는 의도다. ‘응답하라 1994’의 논객 버전이라고나 할까. 논객이란 “사회과학이 담론의 시장에서 썰물처럼 빠져나간 후, 21세기 변화한 환경 속에서 판단의 기준을 제공했던 그들”이며, 책에 나오는 9명은 모두 진보 논객이다. 이는 어쩌다 진보가 몰락하고 야권은 분열해 2012년 대선을 내주고 말았느냐는, 진보 편에 서서 진 게임을 복기하는 것이 집필 동기이기 때문이다. 저자의 수식어를 빌려 등장 순서대로 논객을 소개하면 이렇다. 논객 시대를 열어젖힌 강준만, 풍자와 조롱으로 싸우는 진중권, 부도난 정치도매상 유시민, 급진적 불교도 마르크스주의자인 박노자, 청년들에겐 꼰대이고 386에겐 광대인 우석훈, 지식인을 비판하는 건달 김규항, 세계시민적 개인주의자와 음모론적 정치 선동가 김어준, 혁명 투사가 된 ‘빠리의 택시운전사’ 홍세화, 꺼림칙한 절필 선언문을 남기고 붓을 꺾은 고종석이다. 중학교 시절 강준만의 ‘인물과 사상’을 읽고 논객이 된 저자는 논객의 책을 근거로 실명 비판하는 강준만식 글쓰기로 논객들을 균형감 있게 비판한다. 내 편 네 편 가리지 않고 입바른 소리를 하던 진중권은 통합진보당 총선 후보 경선 과정에서의 부정행위에 눈감고, 2012년 대선에선 닥치고 정권 교체를 외친다. ‘개 잡고 닭 잡는 일은 진중권에게만 시키는’ 범야권세력에 굴복함으로써 본인도 총기를 잃고, 야권 세력도 패배했다는 것이 저자의 진단이다. 안철수 지지로 돌아선 강준만에 대해선 “‘김대중 죽이기’에서 박찬종을 비판할 때 썼던 논리를 고스란히 안철수를 향해 휘둘러 보라”고 따지고, 노무현의 정치적 경호실장 유시민에겐 “노무현의 사후 자서전이 아니라 평전이 필요하다”고 주문한다. 저자의 촘촘한 분석과 유려한 문장 덕분인지 논객 비평은 시대를 읽어내는 괜찮은 방법론 같다. 시대를 온전히 읽어내려면 보수 논객의 논리도 들여다봐야 할 것이다. 비평의 대상이 될 만한 책을 낼 정도로 열정 있고 함량도 되는 보수 논객으로 누가 있을까.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

SBS 인기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에는 서울의 명품 건축물 둘이 등장한다. 세계적인 건축가인 영국의 자하 하디드가 설계해 다음 달 개관하는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파크(DDP)’와 스타 건축가 조민석이 서울 서초구 서초동에 설계한 최고급 주상복합 ‘부티크모나코’(2008년)다. DDP는 액션 영화에 출연하는 여주인공 천송이(전지현)가 와이어신을 찍다 사고를 당하는 장면(13회)에서 나왔다. DDP는 건물 전체를 위로 당겨 지탱하는 기술을 이용해 기둥 없이 탁 트인 공간이 많다. 드라마를 촬영한 콘퍼런스 홀인 알림1관의 경우 2991m² 공간에 높이가 20m인데 내부에 기둥이 하나도 없어 실내에서도 와이어신을 찍을 수 있었다. 천송이가 건물 내부로 들어가기 전 장면에서는 내외부 조명과 건물을 덮고 있는 알루미늄 패널이 반사한 주변 불빛으로 화려하게 빛나는 DDP의 야경이 나왔다. 김윤희 DDP경영단 홍보팀장은 “헬기캠으로 공중에서 찍은 홍보용 DDP 영상자료를 제공받는 것 외에는 따로 대관료를 받지 않았다”며 “국내 제작사는 물론 할리우드에서도 촬영 요청이 쇄도해 촬영 관련 대관료 규정을 만들고 있다”고 전했다. 부티크모나코는 초능력을 지닌 도민준(김수현)이 악역인 이재경(신성록)을 건물 옥상에서 떨어뜨리는 장면(14회)에서 등장했다. 독일건축박물관이 주관하는 세계 최우수 고층빌딩 어워드에서 5위권 안에 들었던 수작이다. 제작사인 HB엔터테인먼트 관계자는 “대본에 ‘교통량이 많은 고층 건물’로 나와 있었고, 이재경이 떨어지는 장면이 중요해 건물도 멋있어야 했다”며 “이틀간 옥상을 빌려 촬영했으며 얼마를 지불했는지는 공개할 수 없다”고 했다.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

도심 속 계단은 쉼표 같은 존재다. 서울 세종문화회관의 널찍한 계단이나 영화 ‘로마의 휴일’에 나오는 스페인 광장 계단을 떠올려 보라. 계단의 주인은 바쁘게 오르내리는 사람들이 아니다. 계단참에 앉아 서로에게 기대어 있는 연인들, 가위바위보 놀이를 하는 아이들, 계단의 높이가 선사하는 도시 풍경이나 간이 야외 공연을 감상하며 다리를 쉬는 과객들이 계단의 주인공들이다. 곽희수 이뎀도시건축 대표(47·사진)는 이런 광장 같은 야외 계단을 상업 건축에 시도했다. 충북 청주시 성화동에 최근 완공한 ‘F.S.ONE’은 제2종 근린생활시설, 쉽게 말해 상가건물이지만 건물 전면을 차지하는 대형 계단으로 기억되는 건축이다. 건물 이름도 ‘floor(층)’와 ‘stair(계단)’가 하나라는 뜻으로 지었다. “마당이 있는 임대 건물을 짓고 싶었어요. 마당은 1층이나 옥상에 둘 수밖에 없어 중간층에 사는 세입자들은 이용할 수가 없죠. 그래서 모든 층에서 접근할 수 있도록 가운데 마당 같은 계단을 둔 겁니다. 이곳에선 약혼식을 올릴 수도, 벼룩시장이나 설치미술 전시가 열릴 수도 있습니다. 계단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저도 궁금하네요.” 야외 계단은 실내 디자인도 지배한다. 지상 5층 건물의 2∼4층에 계단이 있는데, 내부도 1∼3층이 하나로 묶여 안으로 들어갈수록 바깥 계단의 기울기에 조응해 천장이 사선으로 쭉 올라가는 구조다. 천장엔 외피에 쓰인 노출 콘크리트가 서까래처럼 골을 만들며 힘 있게 뻗어 있어 역동적인 분위기를 낸다. 건축주는 공공건물의 계단처럼 건물 앞을 지나는 모든 이에게 열린 계단을 두고 싶었지만 관리의 어려움 때문에 결국 안으로만 열린 공간이 됐다. 그래서 현재 입주해 있는 카페와 레스토랑, 갤러리 방문객들만 계단을 이용할 수 있다. F.S.ONE이 기존 상가건물과 다른 점은 계단만이 아니다. 임대 수입을 극대화하기 위해 최대한의 공간을 뽑아내도록 설계된 무표정한 빌딩들과 달리 총면적(967.3m²)이 법이 허용하는 면적의 3분의 1 규모이고, 표정도 강하다. 노출 콘크리트 외관은 육중하고 모가 났으며 돌출적이다. 웬만한 무기로는 꿈적도 않는 벙커나 근육질의 로봇 같다. 대로변에서 보이는 건 건물의 정면이 아니라 옆면이어서 옆얼굴이 보이도록 돌아앉은 모양새다. “상가 건물의 문법을 바꾸고 싶었어요. 예전과 달리 공실률이 높은 지금은 큰 땅에도 예산이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작게 짓는 것이 합리적입니다.” 그는 주변에 ‘묻어가는’ 법이 없는 마초적인 건축 스타일로 기존의 건축 문화에 강한 문제 제기를 해왔다. 럭셔리 펜션인 ‘모켄’(2011년)으로 호텔-리조트-펜션-민박의 서열 관계를 뒤집었다. ‘고소영 빌딩’으로 불리는 서울 청담동의 상가건물 ‘테티스’(2007년)는 건물 앞에 주차를 못하도록 설계해 대문의 기능을 살려냈고, ‘원빈 집’으로 불리는 강원 정선 ‘42번 루트하우스’(2007년)는 도로 쪽에 바짝 붙여 집을 지어 국도변의 표정을 바꿔놓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얼마 전 온라인에서 해외 브랜드의 가방을 샀어요. 그런데 막상 매보니 제 체형과 맞지 않더군요. 그동안 유학파 건축가들이 우리 도시에 해외 스타일의 건축을 ‘유통’시켜 온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듭니다. 한국 도시의 역사는 50년 정도밖에 안돼 고유의 스타일이 정착되지 않았습니다. 이곳의 역동성을 담아내는, 우리 몸에 맞는 건축을 고민했던 건축가로 기억됐으면 합니다.”청주=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

일본 대중문화 소비에는 정치적인 시차가 존재한다.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1910∼1998)의 영화도 그가 죽고 난 뒤에야 볼 수 있었다. 그는 1998년 9월 별세했고 그해 10월 일본 문화가 개방돼 ‘라쇼몽’(1951년)이나 ‘7인의 사무라이’(1954년)를 합법적으로 감상하기까지 거의 반세기가 걸렸다. 이 자서전도 일본 현지에 단행본으로 나온 때가 1984년이니 국내에서 번역되기까지 30년이 걸린 셈이다. 그의 영화와 자서전을 비롯해 모든 콘텐츠의 저작권을 미국 출판사 크노프의 구로사와 프로덕션이 보유하고 있어, 이 사실을 수소문해 판권 계약을 하는 데만도 1년 반이 걸렸다고 한다. 책장을 열면 세계적인 거장의 고전 영화가 그러하듯 오래전 제작됐으나 그 빛이 바래지 않은 이야기들이 유머러스하게 펼쳐진다. 영화계 데뷔 전 그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은 네 살 위의 형이다. 수재이자 염세주의자였던 형은 28세에 자살하기 전까지 영화 평을 쓰고 무성영화 시절 변사로 활약하며 동생의 영화 수업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별 볼일 없는 화가 인생을 접고 영화계에 발을 들여놓은 뒤엔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의 야마모토 가지로 감독이 ‘인생 최고의 스승’이 됐다. 그리고 이 대목부터 책장을 넘기는 속도도 빨라진다. 야마모토 감독의 조감독 시절부터 데뷔작인 ‘스가타 산시로’(1943년)를 비롯한 명작이 탄생하기까지의 뒷얘기가 전시 및 전후 혼란기 무성영화에서 토키(유성영화) 시대로 접어든 일본 영화계 현장을 배경으로 영화처럼 펼쳐진다. 두 번째 작품 ‘가장 아름다운 자’(1944년)는 공장에 동원된 여성 자원봉사대의 얘기다. 그는 리얼리티를 살리기 위해 여배우들에게 화장을 지우고 영화 배경인 공장 기숙사에서 일반 여공들과 똑같이 먹고 자면서 매일 8시간 넘게 일하게 했다. ‘추문’(1950년)의 ‘실패’는 등장인물에게 끌려다녔기 때문이라고 적는다. “영화 속 인물들은 모두 살아 있어 작가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저절로 연필이 미끄러지듯 그의 삶을 쓰고 있었다.” 전시 내무성 검열을 이야기하는 대목에선 노 감독의 분노가 지면을 뚫고 나올 듯하다. 생일 케이크가 나와도 미국적이라며, 여자의 무릎만 보여도 외설적이라며 잘랐다. 전후엔 영화사 노조의 발언권이 강해 배우 채용 심사도 하고, 시나리오도 심의해 그의 속을 뒤집어놓았다. 그는 평생 30편의 영화를 찍고, 89세를 일기로 죽기 3년 전까지 시나리오를 썼다. 하지만 자서전은 11번째 영화 ‘라쇼몽’에서 끝난다. 일본 감독이 세계무대에 이름을 알린 첫 작품으로, 하나의 사건에 대해 등장인물들이 전혀 다른 증언을 하는 줄거리다. “인간은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이야기하기가 어렵다. …지금으로서는 여기서 멈추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라쇼몽’ 이후의 나에 대해서는 그 뒤의 내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통해 이해하는 것이 더 좋을 것이다.”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

“사람의 생명, 강인한 기원을 투영하지 않는 한 진정한 감동을 주는 건축물은 태어날 수 없다. … 중요한 것은 그 땅의 지형과 ‘바람의 노래’가 들려주는 언어를 듣는 일이다.” 유동룡으로 태어나 이타미준(사진)으로 살다 간 건축가.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열리는 ‘이타미준: 바람의 조형’은 재일교포 2세 건축가 이타미준(1937∼2011)의 40년 건축세계를 ‘바람’이라는 키워드로 조망하는 회고전이다. 그는 일본 시즈오카에서 태어나 건축을 시작했고 노년에 제주에서 대표작들을 남겼다. 시즈오카와 제2의 고향인 제주 모두 바닷바람이 불어오는 곳이다. 이번 회고전에 나온 그의 드로잉 스케치 회화 모형 등 500여 점을 보면 ‘바람’은 ‘자연’으로 바꿔 이해해도 될 듯하다. ‘소재의 탐색’이 키워드인 초기(1971∼1988년)는 자연과 인공의 충돌과 대립을 실험했던 시기다. 1970년대 전후로 일본에서 태동한 전위예술운동인 ‘모노하(物派)’의 영향권에 있던 때로 ‘먹의 집’이 이 시기의 대표작이다. 중기(1988∼1998년)의 키워드는 ‘원시성의 추구’다. 이 시기 일본 건축계에선 유리와 철을 이용한 가벼운 건축이 대세였다. 하지만 아웃사이더였던 그는 “현대 건축에 무언가가 결여돼 있다면 그것은 인간의 체온과 건축의 야성미일 것”이라며 돌과 나무로 무거운 건축을 추구했다. ‘각인의 탑’이 대표적인 무거운 건축이다. 격렬한 건축의 시기를 거친 이타미준은 말년에 와서는 자연에 순응하는 작품 세계를 펼쳐 보인다. ‘매개의 건축’ 시기(1998∼2010년)다. 제주에 설계한 포도호텔은 제주 특유의 자연환경에 녹아들었다는 평가를, 수·풍·석(水·風·石) 미술관은 물, 바람, 돌로 쓴 시라는 찬사를 받았다. 전시 동선을 따라가다 보면 마지막으로 이타미준의 아틀리에를 재현해놓은 공간에 들르게 된다. 그의 딸이자 건축가인 유이화 ITM유이화건축사무소 대표의 기증품과 기억으로 꾸며놓았다. 10.8m² 좁은 공간을 채운 책상 의자 책 문구류와 공예품들은 화가이고 조선 민화 전문가이자 한국 고미술 수집가로서의 그의 면모를 보여준다. 낡은 ‘대한민국’ 여권에서는 재일교포의 고단했을 삶과 한국 국적을 포기하지 않았던 고집이 아련하게 느껴진다. 지난해 ‘그림일기: 정기용 건축 아카이브’에 이은 두 번째 건축 상설 기획전으로 7월 27일까지 제5전시실(건축상설전시실)에서 이어진다. 전시 기간에 이타미준의 작품을 주제로 세미나와 강연회, 워크숍 등이 열린다. 13일 오후 2시 소강당에서 열리는 세미나에는 박길룡 국민대 건축학부 명예교수와 전봉희 서울대 건축학과 교수, 박소현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책임연구원이 발표자로 참석한다. 3월부터 6월까지 매월 1회 열리는 건축 강연에는 유이화 대표, 박길룡 교수, 이타미준의 작품 사진과 영화를 찍었던 김용관 건축사진가와 정다운 영화감독이 연사로 나선다. 02-2188-0650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

“어느 경우든 사실은 신성하고 의견은 자유라는 철학, 바로 여기에 자유 사회의 힘이 있고 자유 언론의 빛이 있지 않을까.”(1989년 2월 7일 ‘동아시론’) 그는 언론의 힘을 믿었다. 자유롭고 공개된 시장에서 진실과 거짓이 경쟁하면 반드시 진실이 살아남는다는 믿음으로 신성한 사실을 좇는 기자로서, 시대를 통찰하는 글로 독자를 일깨우는 지식인으로서 평생을 살았다. 4일 별세한 언론인 박권상은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23세의 나이로 합동통신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1962년 동아일보로 옮겨 편집국장과 논설위원을 지냈고 1973년부터 3년간 영국 특파원으로 활동했는데 당시 언론 선진국에서 목격한 자유로운 신문과 공영방송 BBC는 언론인으로서 그의 삶에 질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전기가 된다. 자유로운 언론에 대한 믿음은 1980년 5·18민주화운동으로 엄혹한 시험대에 놓였다. 동아일보 논설주간이던 그는 신군부의 검열에 5월 16일부터 5일간 사설을 게재하지 않는 ‘무사설(無社說) 저항’으로 맞섰다. 그해 7월엔 ‘김대중 내란 음모 사건’이 발표됐고 모든 신문이 김 씨를 죄인으로 단죄했다. 동아일보도 신군부의 압박을 받았다. 고인은 “10년 후 독자를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다”며 버티다 결국 “공정한 재판으로 진실이 밝혀져야 한다”는 사설을 썼다. 이것이 그의 마지막 사설이고, 계엄사는 검열에서 전문을 삭제했다. 동아일보는 김대중 내란 음모 사건에 침묵을 지킨 유일한 신문이 됐고, 고인은 그해 8월 ‘언론대학살’ 때 희생됐다. 훗날 그는 당시의 심경을 이렇게 술회했다. “진실을 밝히는 꿋꿋한 언론의 정신, 어떤 형태이든 전체주의를 배격하고 우리 사회를 민주적으로 개혁하려는 의지의 표명, 이것이 내가 글을 쓰는 동기요 사명이었다.”(‘박권상의 시론’·1992년) 언론인으로서 고인의 인생 2막은 1998년 김대중 정부 시절 KBS 사장에 임명되면서 시작됐다. BBC를 세계 공영방송의 모델로 생각했던 그는 “BBC는 섣부른 자기주장을 하지 않는다”며 엄정 중립과 품격 있는 방송을 주문했다. 홍성규 방송통신위원회 상임위원은 “내가 보도국장으로 있는 1년 반 동안 박 사장은 보도와 관련해 한번도 이래라저래라 하지 않았다. 그것이 늘 감사했다”고 회고했다. 정치적 중립을 지키려는 노력은 시청자들의 신뢰로 보답받았다. KBS ‘9시 뉴스’가 MBC ‘뉴스데스크’를 제치고 앞서 가기 시작한 것이 박 사장 재임 시절이다. ‘환경스페셜’과 ‘일요스페셜’ 같은 교양 프로그램으로 공영성을 강화했다. 2000년 남북 정상회담 이후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의 협의를 통해 남북 방송 교류의 물꼬를 텄다. 1980년 고인과 함께 해직됐던 소설가 최일남은 “고인은 언론인으로서 명성을 이용해 정치를 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았음에도 외길만을 걸었다. 언론인에게 모범이 되는 존재”라고 추모했다. 고인의 언론에 대한 믿음은 맹목적이지 않았다. 그는 “언론의 제일 기능은 뉴스를 순결하게 전하는 것”이라며 “광주의 비극이 있은 지 9년간 때 묻지 않은 진실이 전해질 수 없다는 데 또 하나의 비극이 있다”고 했다. 수많은 ‘언론’이 그보다 더 많은 ‘설’들을 쏟아내는 인터넷 시대를 내다본 선견지명이었을까. 언론 외길을 걸어온 고인의 생각은 ‘자유언론의 명제’ ‘영국을 생각한다’ ‘민주주의란 무엇인가’를 비롯한 다수의 저서에서 확인할 수 있다.이진영 ecolee@donga.com·우정렬 기자}

동아일보 논설주간과 KBS 사장을 지낸 언론인 박권상 씨(사진)가 4일 오전 오랜 투병 끝에 별세했다. 향년 85세. 1929년 전북 부안에서 태어나 서울대 영문학과를 졸업한 고인은 1952년 합동통신 기자를 시작으로 한국일보 논설위원, 동아일보 편집국장, KBS 사장 등 언론 외길을 걸어왔다. 위암장지연선생기념사업회장, 고려대 석좌교수, 일민문화재단 이사장, 국제언론인협회(IPI) 한국위원회 이사 등을 지냈다. 유족으로는 부인 최규엽 씨와 아들 일평 씨(기업인), 딸 소희(미국 밴더빌트대 교수) 소원(영국 옥스퍼드대 영문학 박사) 소라 씨(호주 캔버라대 교수)가 있다. 빈소는 서울 서초구 서울성모병원, 장례는 KBS장으로 치러진다. 발인은 7일 오전 10시, 장지는 경기 안성시 일죽면 유토피아추모관. 02-2258-5940 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

이달 초 경기 양평군 단월면 산자락에 도넛과 지렁이 모양의 설치물이 들어섰다. 산으로 둘러싸인 지형에 이리저리 놓인, 설치미술품 같은 이것들은 독일 유학파인 부부 건축가 심희준(37) 박수정(36) ‘건축공방’ 공동대표가 설계한 텐트다. 고급스러운 캠핑을 뜻하는 ‘글램핑(glamorous camping)’족들을 위한 ‘글램퍼스’다. 글램핑은 편안한 캠핑을 원하는 사람들을 위한 문화다. 자연 속에 들어가 붙박이로 설치된, 전기가 들어오고 물도 나오는 텐트에서 지내는 거다. 캠핑과 펜션 숙박의 중간쯤 된다. ‘건축공방’이 설계한 글램퍼스는 가운데가 뻥 뚫린 도넛 모양과 구불구불한 지렁이 모양 2개 종류다. 도넛형은 면적이 50m²(약 15평), 지렁이형은 40m²(약 12평)로 모두 4인 가족이 묵을 수 있다. 강철로 뼈대를 만든 뒤 경기장에 쓰는 직물인 유럽산 멤브레인을 두 겹으로 씌웠다. 멤브레인은 자외선을 차단해주고 방수 효과가 있다. 불에 잘 타지도 않는다. 안쪽엔 거실 침실 주방 화장실 겸 샤워실이 있고 고기를 구워 먹을 수 있는 테라스가 딸려 있다.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

“이게 최선입니까? 확실해요?” 드라마 ‘시크릿 가든’에서 백화점 사장 현빈은 직원들에게 이렇게 묻곤 했다. 젓가락 디자이너 정미선 씨(35)는 끼니마다 젓가락질을 하면서도 젓가락의 디자인을 의식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똑같은 질문을 던진다. “우리가 먹는 음식이 변화했는데 왜 젓가락은 그대로인 거죠? 음식의 종류가 다양한데 젓가락은 왜 한 종류만 쓰나요? 서양인들이 메뉴에 따라 나이프와 포크를 바꿔 쓰듯 우리도 가벼운 채소를 먹을 때와 두툼한 고기를 먹을 때 젓가락이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요?” 그가 디자인하는 건 예쁜 젓가락이 아니다. 음식을 잘 집어 먹을 수 있는 최적의 모양이다. 지금까지 만든 젓가락은 약 200종. 이 중 끝 부분이 뱀의 혀처럼 두 갈래로 갈라져 면류를 먹기에 좋은 젓가락은 특허를 받았다. 젓가락 관련 디자인의장도 10개를 가지고 있다. 그는 일본의 명문 무사시노대 공예공업디자인과에서 박사과정을 밟으며 젓가락 디자인에 관심을 갖게 됐다. 공교롭게도 그와 일본인 지도교수 모두 젓가락질을 잘 못한다. 젓가락질이 서툴다 보니 그 기능에도 의문을 품게 된 걸까. “교수님, 일본 사람들은 왜 나무젓가락을 쓰는 거죠?” “한국인들은 쇠로 어떻게 젓가락질을 하지요? 젓가락에 대해 박사논문을 써 보는 건 어때요?” 저(箸) 문화를 연구하려면 고대 중국의 역사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했다. 그는 한중일 3국의 젓가락 문화를 비교 연구하고 메뉴에 맞는 젓가락 디자인을 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 대학의 한국인 박사 1호다. 젓가락은 3세기 중국에서 쓰기 시작해 4세기에 한국에, 6세기 중반엔 일본에 전파됐다. 젓가락 끝부분의 모양은 음식의 종류에 따라 다르고, 길이는 음식과 사람의 거리에 영향을 받는다. 중국 음식은 기름지고 뜨거우며 뼈를 발라낼 일이 없다. 음식과 사람의 거리가 먼 편이다. 그래서 미끄러지지 않고 뜨거운 김에 데지 않도록 플라스틱에 길이가 길고 퉁퉁하며 끝이 뭉툭한 원형 젓가락을 쓴다. 일본 젓가락은 끝부분이 뾰족하다. 생선 가시를 발라 먹을 일이 많기 때문이다. 밥그릇을 들고 먹기 때문에 길이는 짧은 편이다. 습한 환경이어서 예부터 녹슬 우려가 없는 나무젓가락을 사용해 왔다. 한국은 김밥 고기 전의 무게를 견디어내야 하기 때문에 끝이 네모난 금속제 젓가락을 쓴다. 정 디자이너는 음식 문화에 따라 저의 모양이 다르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현대 메뉴에 맞는 최적의 디자인을 찾기 시작했다. 다양한 젓가락을 디자인해 사람들에게 평가를 받아 축적해 놓은 데이터가 요즘 젓가락을 디자인할 때 기준이 된다. 예를 들어 젓가락 끝부분의 굵기를 보면 2mm는 정확성, 3mm는 균형성, 4mm는 안정성을 요구하는 음식에 적당한 굵기다. 음식물의 무게와 두께, 단단한 정도에 따라 끝부분의 모양과 길이, 재질은 모두 달라진다. “젓가락 하나로 모든 종류의 음식을 집어야 하기 때문에 손재주와 지능이 발달했는지 모릅니다. 도구가 진화하지 않으니 사람이 진화한 거죠. 그래서 제가 만든 젓가락을 보여주면 한국 사람들은 ‘신기하다’고만 하는데 젓가락질이 서툰 외국인들은 ‘이런 게 정말 필요하다’고 해요.” 그는 젓가락이 마케팅 도구도 될 수 있다고 본다. “제가 디자인한 젓가락이 나오는 국수 전문점을 차리고 싶어요. 먹고 나면 젓가락을 기념품으로 주는 식당이죠. 요즘엔 디저트용 젓가락도 만들고 있어요.” 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파크(DDP)는 올 한 해 가장 주목받는 건축물이 될 듯하다. 세계적인 건축가인 영국인 자하 하디드가 설계해 최근 완공한 DDP는 “수작은 아니지만 이름값은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당초 예산(2274억 원)의 배 이상(4840억 원)을 투자한 곡선의 DDP가 네모난 건축물로 상징되는 효율 만능의 시대에서 잉여의 시대로의 전환을 의미한다는 해석도 나온다. 서울시는 “DDP 운영으로 20년간 13조 원의 생산유발 효과를 낼 것”이라며 “빌바오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고 했다. 한국건축개념사전에 따르면 빌바오 효과란 수명이 다한 스페인의 산업도시 빌바오가 구겐하임 미술관을 유치해 관광도시로 거듭나면서 얻은 경제적 효과를 뜻한다. 빌바오 시는 1997년 개관한 미술관 덕분에 매년 관광객 100만 명이 몰려들어 3000억 원을 벌어들이고 있다. 빌바오 시는 랜드마크가 될 만한 건축물을 통해 지역경제를 활성화하려는 도시들엔 교과서 같은 존재다. 그러나 빌바오 효과를 분석한 책과 논문을 살펴보면 ‘튀는 건물 하나로 죽어가던 도시가 벌떡 일어섰다’는 식의 일반적인 이해와는 거리가 있다. 빌바오의 오늘은 구겐하임이 들어서기 전부터 오랫동안 진행된 도시 재생 프로젝트의 결과물이다. 배형민 서울시립대 건축학부 교수는 “구겐하임 미술관을 유치할 때 빌바오는 쇠퇴한 산업도시가 아니었다. 1980년대 산업위기를 거친 뒤 서비스 중심의 도시로 전환하는 데 성공하고 있었고, 수백 년간 쌓아올린 경제와 문화 기반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빌바오 효과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작지 않다. 미술관 건립에 공공예산을 몽땅 끌어다 쓰는 바람에 다른 문화활동은 홀대받았고, 미술관의 경제적 효과엔 테러 조직의 휴전 효과가 포함돼 있으며, 고용률도 임시직이 많아 부풀려졌다는 것이다. 콧대 높은 유럽의 문화강국에 명함도 못 내밀던 구겐하임에 도시의 랜드마크 자리를 내준 것은 바스크 민족문화의 위기를 보여주는 것이라는 비판도 있다(이은해 논문 ‘유럽의 전통산업도시에서 문화·예술도시로의 변모’). 빌바오 효과를 연구한 전문가들은 미술관만 보지 말고 수많은 사회기반시설을 주목하라고 조언한다. 보행자 전용 다리, 주변 산책로, 공원, 놀이터, 편리한 교통시설 등은 빌바오가 관광객뿐만 아니라 시민들을 위한 도시임을 말해준다. 서현 한양대 건축학부 교수는 “미술관 옆 어린이 놀이터가 눈에 보이지 않는다면 빌바오 효과의 교훈은 헛된 것이다. 도시는 일확천금을 노리는 투기의 공간이 아니고 차분하게 오늘을 사는 시민의 삶의 터전이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DDP는 여러모로 구겐하임 미술관을 닮았다. 구겐하임을 설계한 미국의 프랭크 게리와 자하 하디드 모두 건축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받은 스타 건축가다. 티타늄 조각 수만 개를 이어 붙인 비정형의 구겐하임만큼 알루미늄 패널 4만5000장을 붙여 만든 DDP의 외관도 화끈하다. 하지만 건축물이 관광객을 자석처럼 끌어들여 떼돈을 벌어다 줄 것이라는 기대를 하기 전에 자문해야 한다. DDP는 동대문을 생활 터전으로 하는 주민들에게 무엇을 해줄 것인가. DDP는, 그리고 서울은 우리가 좋아하는 공간이고 도시인가. ‘그렇다’는 답을 할 수 없다면 서울은 세계적인 브랜드 건축을 들여와도 빌바오가 되려다 실패한 또 하나의 사례가 될 뿐이다.이진영 문화부 차장 ecolee@donga.com}
권성 언론중재위원회 위원장(73)이 27일 언론중재위원장 및 중재위원 직을 사임했다. 언론중재위원회는 “권 위원장이 통합진보당 해산 심판청구의 국가 측 변호인으로 선임돼 위원회의 독립성과 중립성을 위해 사임하게 됐다”고 밝혔다. 위원장은 위원들의 호선으로 선출되며 차기 위원장은 미정이다. 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

책 제목을 보고 ‘아동의 탄생’을 떠올렸다면 감이 좋은 독자다. ‘모성애의 발명’은 ‘아동의 탄생’과 이란성 쌍둥이 같은 책이다. 필립 아리에스의 ‘아동의 탄생’(2003년)에 따르면 아이가 ‘작은 어른’이 아닌 별도의 인격체라는 자각은 근대의 산물이다. 그리고 아동의 탄생은 모성애의 발명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여자도 일을 해야 했던 산업화 이전 시기엔 모성애라는 개념이 없었다. 아이는 노동력 확보를 위해 필요한 존재였고, 그래서 생기는 대로 낳았으며, 온 가족이 바쁘다 보니 스스로 커야 했다. 그래서 굶거나 방치돼 죽는 아이도 많았다. 그런데 산업사회로 진입하면서 남자는 바깥일, 여자는 집안일을 나눠 맡게 됐다. 아동은 이즈음 탄생한다. 신분사회의 청산으로 계층 이동이 자유로워진 데다 인간은 개선될 수 있다는 계몽주의의 영향으로 자녀 교육이 몹시 중요해졌다. 육아는 자연스럽게 집에 있는 엄마의 몫이 됐다. 그리고 ‘아이는 엄마가 키워야 한다’ ‘아이가 잘못되면 다 엄마 탓이다’라는 모성 신화도 만들어진다. 저자는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려면 돈이 아니라 평등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출산수당을 주느니 남성 육아휴직제도가 낫다는 것이다. 2006년 독일에서 출간된 개정판을 번역한 책인데 거리감도 시차도 없이 읽히는 게 신기하고 서글프다. 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자문기구인 보도교양방송특별위원회 임순혜 위원이 해외 순방 중인 박근혜 대통령이 비행기 사고로 즉사했으면 한다는 내용의 트윗을 리트윗(RT·사진)해 파문이 일고 있다. 임 위원은 20일 ‘경축! 비행기 추락 바뀐애 즉사’라고 쓰인 피켓이 클로즈업된 시위 현장 사진과 함께 “서울역, 이남종 열사 추모 촛불 집회에 걸려 있는 손피켓입니다. 이것이 지금 국민의 민심이네요”라는 내용의 트윗을 리트윗했다. 이어 임 위원은 “우와! 바뀐애가 꼬옥 봐야 할 대박 손피켓 ㅎㅎ 무한 알티해서 청와대까지 보내요!”라는 글도 리트윗했다. ‘바뀐애’는 박 대통령을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 팔로어가 2만6517명인 임 위원은 미디어기독연대 공동대표이자 언론개혁시민연대 운영위원으로 지난해 9월부터 보도교양방송특위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 특위는 방통심의위의 비상임 자문기구로 주 1회 회의를 열어 보도와 교양 프로그램 심의 전반에 의견을 내는 역할을 한다. 위원들은 방통심의위의 상임위원들이 추천하는데 임 위원은 민주당 추천을 받은 김택곤 상임위원의 추천으로 위원이 됐다. 이에 대해 김태흠 새누리당 원내대변인은 “보도교양방송특별위는 방송과 보도의 자문 기구인데 임 위원의 행태에서는 교양과 인격, 자질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며 임 위원의 즉각 사퇴와 방통심의위의 임 위원 해촉을 촉구했다.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

한국 사회는 빨강이다. 씨족부터 일제강점기, 북한, 군사·향락문화, 경쟁, 과열, 월드컵 응원 문화까지 한국 사회를 설명하는 키워드는 빨강으로 수렴된다. ‘빨간도시’는 건축가이자 한양대 건축학부 교수인 저자가 건축으로 읽어 낸 사회다. 일명 건축사회학이다. 저자는 빨간 코드들이 지금의 건축, 그리고 우리 사회를 만들었다고 본다. 대표적인 빨간 코드 북한이 남긴 흔적을 보자. 국립 공연장의 크기를 결정하는 변수는 공연 시장 규모가 아니라 북한의 공연장이었다. 체제 경쟁을 하느라 건물도 광장도 북한의 것보다 크고 넓어야 했다. 서울 잠수교는 왜 교각의 높이가 낮아 수시로 물에 잠길까. 폭격으로 무너져도 상판을 다시 얹어 쉽게 복구하기 위해서다. 2004년 평북 용천군 용천역 폭발 사고가 일어났을 때 건축가에겐 다친 사람들이 아니라 무너진 집이 보였다. 그리고 그 벽엔 단열재가 없었다. 복구 중인 건물 사진에도 단열재는 보이지 않았다. 저자는 말한다. “단열재는 싸다. 단열재를 넣겠다고 건물을 새로 지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단열재로는 전투기를 움직인다는 걱정도 없다.” 북한에 구호물자를 보내는 담당자들이 귀담아들을 만한 제안이다. 또 다른 빨간 코드 일제강점기의 흔적이 가장 아프게 남아 있는 곳이 초중고교다. 전시 총동원의 시기에 세워진 학교는 예비 병력을 훈련해 내는 곳이었다. 학교의 3대 구성요소인 운동장-구령대-교사(校舍)는 병영의 연병장-사열대-막사와 일란성 쌍둥이처럼 닮았다. 군대를 유지하는 규율 복종 감시와 처벌이 학교의 소프트웨어로 고스란히 살아남았다. 학교부터 일제 청산을 했어야 했다. 요즘 화두 중 하나는 도시 재생이다. 저자는 국회, 정부 청사, 도서관, 문화 공연장 같은 공공시설의 문제점을 설득력 있게 지적하고 도시 재생을 위한 실질적인 제안들을 내놓았다. 스페인 빌바오 시를 비롯해 도시 재생의 모범 답안인 해외 도시들을 둘러보고 남긴 말은 도시 재생의 원칙으로 삼아도 좋을 듯하다. “관광객이 아니라 시민을 위한 도시여야 한다. 시민들이 즐겁게 찾을 수 있는 공간의 도시를 만들어야 외부인들에게도 좋은 도시가 된다.”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

사람들은 그를 건축계의 여제(女帝)라고 부른다. “건축계는 너무 보수적이고 성차별적”이라고 툴툴대지만 전 세계에서 밀려드는 일감으로 분주하다. 2020년 도쿄 올림픽 주경기장과 2022년 카타르 월드컵 경기장 설계도 맡았다. 언론은 건물부터 가구와 요트, 와인병까지 그가 디자인한 크고 작은 작품을 소개하기 바쁘다. 이라크 출신 영국 건축가 자하 하디드(64). 그의 최근작인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파크(DDP)는 2007년 사업비를 2274억 원으로 잡고 시작했으나 지난해 11월 완공 후 결산한 결과 4840억 원이 들었다. 어마어마한 예산 증액은 그의 이름값이 아니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3월 21일 DDP 개관을 앞두고 3월 11일 방한하는 그를 e메일로 먼저 만났다. ―DDP의 비정형 디자인이 독특하다. 어디서 영감을 얻었나. “동대문 지역의 도시적 역사적 맥락과 사람들의 동선을 면밀히 조사했다. 주변 건물과 도로가 24시간 가동되는데, 동대문의 에너지와 리듬은 믿기 어려울 정도였다. 이 지역의 흐름을 방해하지 않으면서도 사람들이 모여 새로운 가능성을 실험하고 한계를 뛰어넘는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공간을 생각했다.” ―건물의 유연한 곡선이 인상적이다. “사람들은 ‘왜 건물에 직각이나 직선이 없느냐’고 묻는다. 삶이란 격자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자연을 보라. 평평하지도 규칙적이지도 않지만 그 속에 있으면 편안하다. 21세기 건축은 20세기의 네모 블록 건축을 뛰어넘어 유동적이고 복잡하면서도 통합을 요구하는 삶을 담아내야 한다.” ―DDP 설계가 과잉이고 당신이 형식주의자라는 지적이 있다. “우리는 사람들이 건물을, 공간을 더 새롭고 더 유익하게 이용하는 방법을 항상 고민한다. 그리고 건물 내부 프로그램과 형식적 방면 모두 최상의 수준까지 끌어올리는 데 결코 주저하지 않는다.” ―서울에 대한 인상은? “녹색 공간이 부족하다. 특히 동대문 지역이 그렇다. 그래서 DDP가 (랜드마크이기보다는) 랜드스케이프(풍경)가 되도록 공원을 필수 요소로 집어넣었다.” 2007년 서울시가 국내외 유명 건축가 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지명 초청 현상 설계에서 하디드의 안이 당선된 것도 건축과 조경의 성공적인 결합이 큰 몫을 했다. 원래 DDP는 지하 1층, 지상 2층 규모였다. 사람들이 동네 언덕을 오르듯 비스듬한 건물 벽을 타고 걸으면 옥상 정원에 닿을 수 있는 설계였다. 하지만 건설 도중 성벽과 유구가 발견돼 이를 피해 짓다 보니 건축 면적이 좁아져 지하 3층, 지상 4층이 됐고, 안전 문제로 옥상 정원의 일반인 접근도 불가능해졌다. ―당신이 세계 다른 나라에서 설계한 작품들에 비해 DDP가 완성도 면에서 뒤진다는 비판이 있다. 훗날 사람들은 DDP를 당신의 주요 작품 중 하나로 꼽게 될까. “다른 지역의 건축물을 서로 비교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모두 개별 지역과 환경에 조응하는 건물이기 때문이다. DDP는 가장 혁신적이고 기술적으로 진보된 한국 건축물 중 하나다. 이런 야심 찬 예술 작업이 실현되는 것을 보는 것이 가장 보람 있는 일이다.” 그는 한때 건축물 없는 건축가로 불렸다. 실험적인 설계 아이디어로 국제공모전에서 수상하고도 건물 설계를 맡을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독일 비트라 소방서 건물(1993년)로 스타덤에 올랐고, 이후 독일 BMW 중앙빌딩(2002년), 영국 스코틀랜드 글래스고 교통박물관(2009년), 중국 베이징의 대형 쇼핑몰 갤럭시 소호(2012년) 등 내놓는 작품마다 주목을 받았다. 요즘은 “런던 집에 친구들을 초대해 저녁 한 끼 먹는 것이 매우 호사스러운 일”이 될 정도로 바쁜 몸이다. ―경기 불황을 겪고 있는 젊은이들에게 힘이 되는 말을 해 달라. “그저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다. 난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었지만 오랜 시간 힘들었고 슬럼프도 있었다. 하지만 결국 다 이겨 내리라는 믿음이 있었다. 마감시간에 맞추려 애쓰는 동안에도 시간은 흘러가고, 이런 압박감은 빼어난 성과를 낸다.” ―그 많은 일을 어떻게 다 하나. “나 혼자 하는 게 아니다. 좋은 디자인은 항상 다른 이들의 인풋(input)에서 도움을 얻는다. 내 비전을 공유하는 팀이 있어 일을 해 나갈 수 있다.” ―건축이란? “즐겁고 낙관적인 생각을 하도록 사람들을 자극하는 것. 영감을 주고 흥분시키고 감정적으로 흔들어 놓는 것.”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

영국이 낳은 건축계의 거장 노먼 포스터(79)가 도시 전문가들과 “철로 위에 자전거 하이웨이를 건설하자”고 제안했다. 포스터는 최근 자신의 설계사무소 홈페이지에 ‘스카이사이클’을 건설하자는 제안을 했다. 런던 전역의 철로 위에 철로를 따라 길이 220km, 폭 15m의 자전거 전용 도로를 만들자는 것이다. 포스터가 도시문제연구기관인 스페이스 신택스 등과 공동 연구한 이 자전거 전용 도로는 모두 10개 노선이며 노선마다 시간당 1만2000명이 자전거로 통행할 수 있다. 전용 도로엔 200개의 진입로를 두었는데 이는 900만 런던 시민 중 600만 명이 이용할 수 있는 거리에 있다. 포스터는 스트랫퍼드에서 리버풀 역까지 6.5km 구간에 스카이사이클을 설치할 경우 2억2000만 파운드(약 3800억 원)가 필요한 것으로 추산됐다고 소개하며 “새로운 도로나 터널을 건설하는 것보다 스카이사이클을 설치하는 비용이 덜 든다”고 주장했다. 포스터는 “앞으로 10년간 런던의 인구는 12% 증가할 것으로 전망되므로 교통난은 더욱 심해질 것”이라면서 “자전거는 환경과 건강에 좋을 뿐만 아니라 런던의 교통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스카이사이클은 세계 다른 나라에도 적용할 수 있다”며 구체적인 건설 방안을 연구 중이라고 밝혔다. 스카이사이클을 소개한 현지 인터넷 언론에는 “교통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기발한 아이디어다”, “나는 도로에서 자전거를 타고 싶지 하늘로 쫓겨나고 싶지는 않다” 등 수많은 댓글이 올라왔다.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