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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장 속 깃털처럼 가볍게…합리적 가격에 색상 다양▼ 빨강 파랑 초록…. 원색인데도 색감이 오묘하고 깊다. ‘프렌치 시크’라고 부를 만하다. 나일론과 페이턴트 소재라서 토트백이든, 위크엔드백이든, 심지어 소프트 캐리어 가방까지 깃털처럼 가볍다. 올해 브랜드 10주년을 맞은 프랑스 가방 브랜드 ‘리뽀(Lipault)’다. 미국의 유명 가방 브랜드 ‘쌤소나이트’는 파리의 젊고 세련된 여성들이 즐겨 메는 이 가방의 가능성을 보고 지난해 리뽀를 인수했다. 국내에서는 2012년부터 LF(옛 LG패션)가 수입해 팔다가 올해 하반기부터 쌤소나이트 코리아가 직진출로 매장을 열고 있다. 최원식 쌤소나이트코리아 지사장은 “이제 글로벌 여성들은 똑똑한 쇼핑을 통해 자신의 패션 정체성을 드러낸다. 평생 한 번 소장할 만한 에르메스 가방을 사든가, 아니면 일상에서 메이크업처럼 여러 개 분위기를 바꿔 들 수 있는 가벼운 가방을 찾는다. 그것이 여성들이 누리게 된 패션의 자유”라고 말했다. 지난달 프랑스 파리 몽마르트르의 파르티퀄리에 호텔에서는 ‘리뽀’ 10주년 파티가 열렸다. 초대받아 가보니, 정원을 갖춘 프랑스 저택 형태의 이 호텔은 이날을 기념해 공간 곳곳을 ‘깃털’ 테마로 꾸몄다. 공작새를 연상시키는 푸른 깃털 디자인의 가방은 새장 속에 깃털과 함께 들어 있었다. 깃털처럼 가벼운 가방 무게를 형상화한 것이었다. 이곳에서 ‘리뽀’의 글로벌 브랜드 매니저인 데미안 미뇨 씨를 만나 인터뷰했다. ―‘리뽀’에 대해 설명해주시죠. “패션감각이 뛰어난 가죽 상인 프랑수아 리포베츠키와 카린 리포베츠키 부부가 1990년대 후반 만들던 가방을 에어프랑스가 눈여겨보고 인수합병을 제안했습니다. 가볍고 예쁜 가방은 항공 여행에 필수니까요. 그러나 이 부부는 이내 곧 자신들만의 창조적인 가방을 만들고 싶어졌습니다.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에서 매장을 낸 게 지금으로부터 딱 10년 전이에요. 나일론 및 페이턴트 신소재로 무게를 가볍게 하고, 신선한 색감을 입힌 게 주효했어요. 2013년에만 전년 대비 25%의 성장률을 보였고, 650만 유로의 수익을 올렸으니까요.” 실제로 파리 시내 곳곳의 매장과 갤러리 라파예트, 프렝탕 백화점에서 이 가방의 인기를 확인할 수 있었다. ―쌤소나이트와 리뽀의 만남이 흥미롭습니다. “리뽀는 부티크 브랜드로서 정상의 자리에 오르기 위해 쌤소나이트와 같은 거물급 브랜드가 필요했습니다. 팀 파커 쌤소나이트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는 말했죠. ‘리뽀는 우리가 고객에게 제공하고자 하는 모든 것을 담아냅니다’. 리뽀는 생동감 있는 색상과 파리의 감성을 내세운 브랜드로, 여행을 많이 하는 여성이 주타깃 고객입니다.” ―리뽀의 여행 가방을 보면 하드 캐리어보다 소프트 캐리어에 더 주력하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이유가 무엇인가요. “리뽀를 즐겨 드는 여성들은 매일 옷을 갈아입듯 가방에도 변화를 주는 여성들입니다. 발랄하면서 대담하게 패션을 추구하는 것이죠. 실키 나일론 소재라 유연하면서도 견고한 가방을 자랑합니다. 합리적인 가격에 다채로운 색상이라 미국 마이애미, 중국 상하이에 이르기까지 글로벌 여성들을 매료시키고 있습니다.” 국내에서는 서울 롯데백화점 본점과 잠실점 등에 매장을 두고 있는 리뽀는 소프트 캐리어는 22만8000원, 위크엔드백은 9만9000원, 여성용 노트북 배낭과 플럼 볼링백은 각각 8만9000원 등이다. 대표적 주력 제품라인 중 하나인 ‘플럼’은 리뽀 전통 캐주얼 가방으로 러기지에 끼울 수 있도록 제작됐다. ―리뽀의 글로벌 매니저로서 어떤 포부가 있습니까. “여행이 좀 더 빈번하고 일상적으로 우리의 삶에 자리잡고 있다는 것에 모두가 동의할 것입니다. 더 많은 여성이 여행을 자신의 라이프스타일로 받아들이고 있고, 공항과 호텔을 그들의 세컨드 오피스로 사용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여행 가방은 당신의 삶을 대변하는 연장선상에 있습니다. 리뽀의 강점은 혁신입니다. 여행 가방이 단순히 당신의 짐을 넣는 곳만은 아니라는 것을 충분히 인지하고, 여성의 로망인 구두처럼 하나의 패션 아이템으로 자리 잡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묘하게 고급스러운 여행 가방, 여행하는 멋진 여성에게 걸맞은 캐주얼 가방을 만들어 나가겠습니다.” 프랑스 감성의 ‘리뽀’는 불황에도 꾸준히 상승하고 있는 여행에 대한 수요와 실용성을 중시하는 이 시대 글로벌 패션잡화 시장의 화두, ‘캐주얼라이징’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파리=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중국인 친구 여러분, 중국 국경절(10월 1∼7일)을 맞아 한국을 방문해주셔서 감사합니다.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이번 국경절 기간 한국을 방문하는 중국 관광객 수가 21만 명으로 예상된다고 합니다.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하면 30% 늘어난 수치입니다.한국과 중국, 두 나라의 관광객이 서로 왕래하면서 우정의 나무를 키워나가는 것이 기쁩니다. 우린 서로에게 보여줄 것들이 많습니다. 한국은 중국 손님맞이를 준비했습니다. 특히 올해 특별히 준비한 온라인 이벤트 ‘씽얼이와 함께하는 한국여행’은 모바일에 익숙한 중국 젊은 층이 한국 관광 인증샷을 개인 웨이보 등에 해시태그로 올리면 한국 여행 기회 등을 제공하는 이벤트입니다. 여러분이 한국의 어떤 매력을 발견해 사진을 올릴지 기대됩니다.동아일보 ‘니하오’는 여러분의 한국 관광의 듬직한 친구가 되겠습니다.환영합니다.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사진 롯데면세점 제공}

‘태극기 에펠탑’을 지켜보는 건 가슴 뛰는 일이었다. 한-프랑스 수교 130주년 기념행사로, 프랑스는 18일 밤(현지 시간) 파리의 에펠탑을 빨강 파랑의 조명으로 물들였다. 한국 스타일로 화장(메이크업)한 에펠탑이 반짝반짝 빛났다. 에펠탑만이 아니었다. 지난주 프랑스로 출장을 갔던 나는 파리 시내에서도 반짝이는 ‘서울’을 목격했다. 오페라 지역에는 ‘에르보리앙(Erborian)―파리·서울’이라는 빨간색 간판의 화장품 매장이 있었다. 매장에 들어서자 멋쟁이 파리지엔들이 인삼의 사포닌 성분이 든 BB크림과 동백기름 마스크 팩을 고르고 있었다. 한 여성은 내게 “어떤 제품을 바르면 한국 여성처럼 빛나는 피부가 되느냐”고 물었다. 어깨가 으쓱해졌다. 에르보리앙이라는 이름은 ‘아시아의 허브’를 뜻하는 프랑스어(Herbe d’Orient)에서 따온 것으로, 로레알 연구원 출신 한국인 여성과 프랑스인 여성 마케터가 한방 화장품의 세계화를 목표로 2007년에 탄생시킨 브랜드다. 프랑스 유명 화장품 회사 ‘록시땅’은 이 브랜드의 가능성을 보고 2012년 회사를 인수해 제품 리노베이션을 거쳐 올해 5월 이 단독 매장을 열었다. 인삼 유자 대나무 등의 피부 개선 효과를 과학적으로 설명하는 이 제품들은 세계적 화장품 전문매장 ‘세포라’와 ‘프렝탕’ 백화점에서도 팔리고 있다. 그런데 에르보리앙 제품 가운데 인삼 화장품은 제조자개발생산(ODM) 전문기업인 우리나라의 코스맥스가 만들고 있다. 설계와 마케팅은 본사가 책임지고, 생산과 제품 관리는 협력사가 나눠 맡는 것이다. 중국 상하이의 코스맥스 사업장을 취재했을 때가 생각난다. 반도체 공장을 방불케 하는 청결한 작업 환경, 제조한 화장품 상태를 주기적으로 추적하는 품질관리, 고객 회사의 요구를 꼼꼼하게 반영하는 고객관리…. 이 회사는 올해 2월부터 프랑스 ‘랑콤’의 쿠션형 파운데이션도 생산하고 있다. K뷰티의 기술력을 제대로 평가받고 있는 것이다. 잘나가는 K뷰티를 따라 K패션도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다. 국내 아웃도어 브랜드 ‘네파’는 17일 아웃도어의 성지인 프랑스 샤모니에서 플래그십 스토어 오픈 행사를 열었다. 방문해보니 각국 산악인의 과거 아지트였던 펍(pub)을 리모델링한 네파 매장은 단연 돋보였다. 이 매장의 프랑스인 직원은 “고객들이 고기능성 등산바지를 입어보고 ‘메이드 인 코리아’에 감탄한다”고 말했다. 예측불허 기상과 맞서야 하는 레저 스포츠 영역에서 테크놀로지와 디자인을 결합한 K패션의 가능성을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프랑스 일간 르피가로는 16일 “한국의 창조성은 전통과 디지털 초(超)현대성이 혼합돼 폭발하고 있다. 그것이 한류”라고 보도했다. K뷰티와 K패션, 통칭 K스타일의 반짝이는 선전(善戰)을 보는 느낌이 좋았다. 돌아오던 날 들른 한 서점의 잡지 코너에서는 프랑스 주간지들이 민영 텔레비전 TF1에서 24년간의 주말 뉴스 앵커를 마감한 클레르 샤잘(59)의 소식을 전하고 있었다. 소식도 흥미로웠지만 프랑스 시청자의 오랜 관심을 받아온 그녀의 세련된 스타일이 한눈에 띄었다. 그래서 생각해봤다. 연예인이나 전문모델 말고 K스타일을 알릴 만한 한국 여성이 있을까. 있다면 누구일까. K스타일이 계속 세계인의 가슴을 콩닥콩닥 뛰게 했으면 좋겠다. 그러려면 궁극의 답은 사람 아닐까. 생활 속에서 아름다움을 발하는 한국인이 많아지면 좋겠다. 자연스러운 멋을 중시하는 프랑스인들이 흠뻑 빠져들, 외모와 내면이 모두 근사한 한국 남자와 여자…. ―파리에서김선미 소비자경제부 차장 kimsunmi@donga.com}

《 ‘생각하는 정원’은 제주 제주시 한경면 녹차분재로에 있다. 사람들이 많이 찾는 협재 해변으로부터 제법 들어와 있고 다양한 식생으로 우거진 산림까지는 미치지 못하는 중산간이다. 이곳의 성범영 원장(76)은 말했다. “바다의 짠 기운이 올라오면 안 되죠.” 그는 소금기를 막는 대신 흙을 포기했다. 온통 자갈밭이라 대대로 농사도 짓지 않고 버려뒀던 땅에 나무를 심고 돌담을 쌓은 것이다. 그는 서울에서 번창하던 와이셔츠 사업을 접고 제주로 내려와 1968년부터 3만6000m²의 황무지를 아내와 한 뼘 한 뼘 개간해 지금의 정원을 일궜다. 스스로를 ‘농부’라고 겸손하게 말했지만 정원은 대형 화훼 기업농 규모다. 이 정원에는 외국인, 특히 중국의 방문객이 많다. 1995년 장쩌민(江澤民) 당시 국가주석, 1998년 후진타오(胡錦濤) 당시 부주석이 찾아온 것이 계기가 돼 지금까지 중국 정관계 고위직 6만 명이 다녀갔다. 연간 40만 명의 관람객 중 30%가 중국인이다. 또 중국 인민교육출판사는 이달부터 중국 9학년(한국 중학교 3학년) ‘역사와 사회’ 교과서에서 그를 한국 정신문화의 상징인물로 소개하고 있다. ‘성범영이 황무지를 개간해 나무를 심은 분투는 한국인의 진취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2000여 점의 분재와 1만여 그루의 나무, 돌담과 연못이 어우러진 ‘생각하는 정원’에서 올해 5월 그를 만났다. 그는 자신이 이룬 성과에 자부심이 대단했고, 중국인들의 칭찬에 고무돼 있었다. 이달 초 박근혜 대통령의 중국 방문 이후 그를 또다시 인터뷰했다. 》中에 명소로 알려져 시진핑도 찾아―박 대통령이 중국 전승절 열병식에 섰습니다. “깊은 관심을 갖고 봤습니다. 중국은 우리와 가장 가까운 이웃이면서 북한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나라잖아요. 우리가 동북아 안정을 이루는 길은 평화통일인데, 중국의 힘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대통령이 이번에 참 잘하셨습니다.”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이 박 대통령의 열병식 참석을 “이해한다”고 했습니다만…. “미국에서 ‘이해한다’는 말을 하는 것도 이해됩니다. 저는 근간에 중국인들의 달라진 생각을 확실히 느껴요. 시진핑(習近平) 주석의 강한 개혁 드라이브 이후 한동안 뜸하던 중국 고위직들이 다시 우리 정원을 찾아오고 있는데, 얘기를 나눠 보면 우리 한국 쪽으로 마음이 많이 기울었어요. 이럴수록 우리는 말 하나하나도 조심해야죠.” ―한미, 한중 관계를 나무에 빗댈 수 있을까요. “가난해서 고등학교를 중퇴했던 농부에게 어려운 질문이네요. 이렇게 말해보겠습니다. 먼저 심은 나무(미국)도 변함없이 아끼고, 바로 옆 이웃나무(중국)도 사랑해야 한다고. 나무를 키울 때 가장 큰 적은 성급함입니다. 나무는 정성으로 다듬으면 아름답게 됩니다.” ―시진핑 주석도 생각하는 정원을 다녀갔다죠. “2005년 방문했습니다. 당시 저장(浙江) 성 서기였던 시 주석이 서울에서 박근혜 대통령(당시 한나라당 대표)을 만났던 때입니다. 그때 박 대통령이 시 주석을 융숭하게 대접하면서 두 분이 라오펑요(老朋友·오래된 친구)가 됐죠. 그게 중국 국민들의 생각에 굉장한 영향을 줘요. 중국에 박 대통령 팬이 많습니다.” ―이번 박 대통령 방중에 실질적 소득이 없다는 말도 있습니다. “아니죠. 중국에서는 세 번 만나고 나서야 친구가 됩니다. 이번에 튼튼한 교량이 만들어졌어요. 앞으로 중국이 음으로 양으로 많이 도울 겁니다. 친구 맺는 것과 나무 가꾸기가 닮았어요. 햇빛과 바람을 쏘이고 물을 주고…. 친구 맺기 어렵지만 한 번 맺으면 좀체 배신을 안 하는 게 중국인이거든요.” 나는 그가 중국, 중국인에 강한 믿음을 갖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황무지를 개간해 밀감과 분재를 재배하는 청원농장(1968년)으로 출발한 이 정원은 1992년 분재와 조경에 집중해 분재예술원으로 거듭났고, 2007년 ‘생각하는 정원’으로 명칭을 바꿨다. 그해 한중 수교 15주년 행사, 2012년 한중 수교 20주년 행사를 열었다. 분재 원조인 中, 예전엔 선입견 가져 ―어떻게 중국과 인연이 시작된 겁니까. “1995년 10월 판징이(范敬宜·1931∼2010) 당시 중국 런민(人民)일보 편집국장이 동아일보 초청으로 한국에 왔다가 우리 정원을 방문했습니다. 그분은 청나라 후기에 나온 ‘병매관기(病梅館記)’라는 책을 보고 분재에 대해 나쁜 인상을 갖고 있던 중, 우리 정원을 방문해 생각을 바꿨답니다. 병매관기는 황제의 폭정과 획일적인 과거제도를 병든 분재에 빗대 비판한 내용이랍니다. 그로부터 한 달 후 장쩌민 주석이 방문했습니다. 원래 30분 머물 예정이었는데 정원에 써 있는 나무 관련 글을 읽고 제게 질문을 하다 보니 1시간 10분이 걸렸습니다. 이후 장관 등 중국의 귀빈들이 많이 찾아오고, 저를 중국으로 초청하기 시작했습니다.” ―장 전 주석이 어떻게 이 정원을 알고 왔을까요. “저도 영문을 몰랐습니다. 그로부터 1년 후 베이징에 갔는데, 판 국장이 제게 ‘중국에 오면 연락하세요’라고 말했던 게 생각났어요. 사람들은 ‘그분은 장관급이라 바빠 만나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죠. 그런데 판 국장은 저를 반갑게 맞으며 누런 봉투를 내줬습니다. 열어보니 판 국장의 ‘신(新)병매관기’란 글이 게재된 런민일보였어요. 우리 정원을 다녀간 한 달 후에 쓴 글이더라고요. 분재가 나무를 괴롭히는 게 아니라 더 잘 자라게 하는 예술인 걸 알았다고, 한국의 생각하는 정원이 ‘황무지에서 땀으로 일궈낸 의미 깊은 곳’이더라고 쓰여 있었어요.” ―결국 분재는 중국에서 명예 회복을 했나요. “맞습니다. 그가 ‘신병매관기’를 쓴 날이 중국에서 죽었던 분재가 다시 살아난 날이에요. 세계 분재 강국은 일본입니다. ‘국풍(國風)’이라는 분재 전시를 해마다 열어 귀중한 것은 문화재청에 등록시킵니다. 일본의 분재는 문화와 산업 차원으로 발전해 외화를 벌고 있죠. 분재는 1300여 년 전 중국에서 시작돼 한국을 거쳐 일본으로 건너갔는데 말이에요.” ―판 전 국장을 그때 한 번 만난 건가요. “아니죠. 그 후 꾸준하게 연락하고, 수시로 중국에도 갔습니다. 그럴 때면 그분이 그림을 그려 숙소로 가져다주기도 했어요. 그는 5년 전 돌아가셨지만 전 이제 그분 아드님인 판쉰(范迅) 중국 광업대 부총장(60)과 교류하고 있습니다.” 그와 얘기하다 보니 디자이너 고(故) 앙드레 김(본명 김봉남)이 떠올랐다. 서울 명동에서 의상실을 시작했던 앙드레 김은 주한 외교사절들을 극진히 대접해 한국 민간외교의 선봉에 섰었다. 성 원장도 제주에 가기 전 서울 명동에서 와이셔츠 사업을 하면서 외교관들을 단골로 뒀다. 취향과 치수를 기록한 고객 카드를 만들고, 성심껏 손님을 대했다고 한다.장쩌민-후진타오 방문땐 분재 선물 그의 이런 자세가 오늘의 ‘생각하는 정원’을 있게 한 건 아닐까. 성 원장은 “정원 조경에 문외한이었기 때문에 여러 생각을 하며 오랫동안 정원을 만들었고, 방문객들도 찬찬히 글을 읽고 생각을 하며 관람하기를 원했다”고 말했다. 생각하는 정원은 영혼의 정원, 철학자의 정원 등 7개의 정원으로 이뤄져 있다. 육송과 해송을 비롯한 여러 소나무들이 있다. 그중 정문 옆 소나무는 1998년 후진타오 전 주석이 방문하기 나흘 전 성 원장이 당시 150년 된 것을 경북에서 옮겨와 기념식수한 것이다. 그동안 중국 고위직들이 선물한 글과 그림도 정원 곳곳에 많이 걸려 있다. ―중국 인사들이 선물을 많이 했네요. “장쩌민 전 주석은 글씨가 쓰인 접시, 후진타오 전 주석은 만리장성 그림에 금(金)을 입힌 액자를 제게 선물해 줬습니다. 중국 인사들로부터 받은 선물이 6000점쯤 되는데 이 중 1000점이 글과 그림입니다.” ―원장님도 많이 선물했겠군요. “우리 정원을 소개한 책을 중국어판으로 내서 선물했고요. 장쩌민, 후진타오 두 분이 방문했을 때는 분재를 선물했습니다.” ―일종의 ‘선물 외교’ 같습니다. “박 대통령이 중국 철학자 펑유란(馮友蘭)의 책을 감명 깊게 읽었다고 하자 2013년 그의 외손녀가 박 대통령에게 펑유란의 서예 족자를 드렸습니다. 또 지난해 시진핑 주석이 박 대통령에게 삼국지 인물인 조자룡 그림 족자를 선물할 때 박 대통령은 바둑알을 선물했죠. 시 주석이 바둑기사 이창호 9단의 팬이어서 그랬겠지만, 저로서는 그 선물에 실망했습니다. 한국의 유명 예술가들에게 작품 제작을 부탁해 대통령은 물론 각국 정상에게 선물하면 좋겠어요. 그 예술가도 함께 유명해질 거 아닙니까.” ―올해 10월 말∼11월 초 서울에서 한중일 정상회의가 열립니다. “우리 정원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정원으로, 한국의 자랑으로 널리 알리고 싶습니다. 그러면 국격이 달라질 텐데요.”(웃음) 성 원장은 “나를 인정해주는 중국에 애정을 느끼고 교류에 최선을 다하게 됐다. ‘감동이 있는 한국 관광’에 기여하고 싶다”고 했다. 국내 정관계 인사들이 이 정원에 더 큰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매우 서운해했다. 제주=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지난달 나는 예정된 여름휴가를 쓰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업무가 정말로 많았다.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죄송합니다. 다음 주에 이틀만 휴가를 냈으면 하는데요”라고 말을 꺼내자, 상사는 “14일이 임시공휴일이니 그날까지 쉬세요”라며 워킹맘을 배려하는 대인적 풍모를 보여주었다. 휴가 첫날의 행선지는 뽀로로 캐릭터를 객실 인테리어에 적용한 경기 용인의 한화리조트였다. 뽀로로의 힘은 위대했다. 세 살배기 아들은 열광했다. 그런데 휴가만큼 의미가 컸던 것은 덤으로 얻은 14일(공휴일)이었다. 정부는 올해 광복절 전날인 8월 14일을 임시공휴일로 발표했다. 나는 아이들과 하루 더 보낼 수 있게 돼 서울 송파구 제2롯데월드에 갔다. 정부가 공휴일 지정 이유로 밝힌 ‘국민의 사기 진작과 내수 활성화’란 역사적 사명도 생각했다. 평소 야근을 밥 먹듯 하는 나는 아이들의 사기부터 진작시켜야 했다. 함께 ‘미미네 떡볶이’에서 점심을 먹고, 수족관에서는 커다란 흰 고래를 보았다. 그런데 나처럼 바깥나들이를 하며 임시공휴일을 보낸 사람들이 많았나 보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지난달 14∼16일 연휴 동안 한 주 전 같은 기간과 비교해 대형마트 매출액은 25.6%, 놀이공원 입장객은 45.7% 늘었다. 기재부가 인용한 현대경제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이번 임시공휴일로 소비지출이 2조 원 늘고, 3조9000억 원의 생산유발 효과가 생겼다. 경제는 심리다. 특히 여행 외식 등 경기민감 품목은 소비심리와 실제 소비 간 상관관계가 높다. 올해 ‘광복절 전날 임시공휴일’ 지정은 이 점에서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날 쉬지 못한 근로자도 많다. 영세한 기업일수록 그렇다. 우리나라의 공휴일 법제는 대통령령인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규정’과 국경일, 기념일에 관한 규정이 각각 있다. 미국의 ‘월요일 공휴일 법’(1971년), 일본의 ‘국민의 축일에 관한 법률’(1948년)처럼 국민 전체에 적용되는 포괄적 법이 아니다. 관공서 직원에게 보장되는 휴일을 적용할지 말지는 각 회사 취업규칙에 따른다. 홍익표 의원(새정치민주연합)은 앞서 올 5월 ‘국민의 휴일에 관한 법률’ 제정안을 발의했다. 선진국의 ‘해피 먼데이 제도’(공휴일을 ‘몇 월 몇째 주 월요일’로 지정해 토∼월 사흘 연휴를 보장)를 도입해 휴일을 예측 가능한 기본권으로 삼자는 내용이다. 미국의 현충일은 5월 마지막 주 월요일, 일본 성인의 날은 1월 둘째 주 월요일이다. 한국의 어린이날도 ‘5월 첫째 주 월요일’ 식으로 정하면 토·일요일과 겹친다고 아쉬워하지 않아도 된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반대한다. “실질적 공휴일 확대가 돼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고, 한국 근로자의 노동생산성이 낮다”는 이유다. ‘여가의 경제학’ 측면에서 국내 휴일 법제를 진지하게 들여다볼 때가 됐다. 국정개혁의 최대 이슈인 노동개혁은 결국 일자리와 근로시간을 나누자는 것 아닌가. 한국 경제가 1인당 국민총소득 4만 달러로 도약하려면(지난해 2만8180달러), 국내총생산(GDP)의 절반을 차지하는 민간 소비의 역할이 중요하다. 8월 14일 임시공휴일의 경제 효과가 그것을 보여주었다. 휴가 때 아이들과 ‘어린 왕자’를 읽었다. 여우는 왕자에게 말했다. “사랑이란 상대를 위해 시간을 소비하는 거야.” 나는 근로자가 자신과 가족을 위해 시간을 소비하면 그 이웃과 사회에도 활력을 주고 노동생산성도 높아진다고 믿는다. 휴가는 끝났고, 나는 아이들과 본 흰 고래를 떠올리며 다시 힘차게 일하고 있다.김선미 소비자경제부 차장 kimsunmi@donga.com}

《 그는 동아일보와의 인터뷰 자리에 커다란 검은색 양(羊) 인형을 품에 안고 왔다. 김성주 대한적십자사 총재 겸 성주그룹 회장(59). 지난달 말 서울 강남구 논현동 성주그룹 사옥 1층 MCM 매장에서 만난 그는 흰색 운동화와 셔츠, 감색 줄무늬 재킷의 경쾌한 차림이었다. “제 사무실에 있던 ‘블랙 시프(black sheep·검은 양)’를 데리고 왔어요. 제 별명이 검은 양이거든요. 흰 양들 속 검은 양. 제일 골치 아픈 말썽쟁이 막둥이. 그게 제 얘기잖아요.” 자칭 ‘검은 양’ 사업가는 대성그룹 창업주 고 김수근 회장의 막내딸로 태어나 부모가 반대하는 국제결혼을 했다가 이혼했고 홀로 외동딸을 27세의 숙녀로 키웠다. 1990년 패션 수입 업체인 성주인터내셔널을 창업해 이탈리아 ‘구치’를 들여와 팔았으며, 독일 명품 브랜드 MCM을 라이선스 제조로 팔다가 “언제까지나 남의 브랜드 하수인으로 지내지는 않겠다”며 2005년 아예 MCM 본사를 인수했다. 이제 연 매출 7000억 원대로 성장한 MCM은 현재 8조 원대가 넘는 국내 면세점 시장에서 루이뷔통, 카르티에와 함께 매출 ‘빅3 브랜드’다. 》 그동안 여성들을 향해 “여성도 군대에 가야 한다”거나 “고학력 여성이 ‘솥뚜껑 운전’만 하면 안 된다”며 사회 기여의 필요성을 직설적으로 쏟아냈던 그는 이번엔 “주요 일자리의 절반을 여성에게 의무적으로 배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인구 5000만 명 중 2500만 명의 여성을 무시하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없어요. ‘머슬(근육) 파워’ 시대는 가고 ‘감성 콘텐츠’ 시대가 왔잖아요. 국가 공무원, 국회의원, 대기업에서 무조건 여성이 절반 이상 돼야 해요. 이건 여권(女權)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경쟁력의 문제입니다.”여성, 권리만큼 역할도 찾아야 ―‘여성 쿼터’가 필요하다는 말씀입니까. “그럼요. 국가 경제의 생존이 달린 문제라고요. 한국 여성이 ‘이젠 내 삶을 살래’라며 결혼과 출산을 꺼리는 게 인구 절벽 시대를 앞둔 우리 사회의 가장 심각한 문제입니다. 이게 다 그동안 여자를 무시했기 때문이에요. 그 책임의 3분의 1은 여자의 희생을 요구하는 유교문화, 3분의 1은 남성들의 끼리끼리 문화에 있죠. 나머지 3분의 1은 불필요한 남 탓을 하며 자기계발을 놓친 여성의 탓입니다.” ‘여성 차별 해소’ 외침 속에 나왔던 ‘배려’들 중 일부는 여성의 잠재력을 제약한 측면도 있지 않을까. 여성이 권리만큼 역할을 찾는 데도 적극 나서란 얘기로 들렸다. ―여성인데 성공하셨습니다. “사업하면서 술대접 안 해서 욕 많이 먹었습니다. 하지만 이 때문에 투명 경영하며 글로벌로 훨훨 날 수 있었어요.” ―대한적십자사 총재로서도 책임을 느끼시지요. “올해로 110주년을 맞은 대한적십자사를 글로벌 시대에 맞게 재탄생시키고 싶어요. 최근 30, 40대 여성 봉사요원으로 적십자 레이디스 클럽을 만들었어요. 한국 여성의 나눔과 봉사 정신을 사회운동으로 확산시키겠습니다. 여성들도 뛰어난 감성과 직관력이 시너지를 낼 수 있도록 극기(克己)의 리더십을 갖춰야 합니다.” ―언젠가 적극적인 정치를 하실 건가요? “하하. 전혀요. 전 체질상 직설적이어서 안 돼요. 정치판에 왜 들어가나요. 저처럼 사업하는 게 훨씬 사회적 영향력이 큰 시대예요.” ‘미스터 마미’와 ‘비즈니스 베이비’ 인터뷰 전날 김 회장은 한국 출장을 나온 딸과 얼굴 맞댈 시간이 없어 회사로 불러내 점심을 함께 했단다. “제가 잔소리를 해서 딸이 눈물 그렁그렁해져서 갔어요. 딸이 ‘난 엄마처럼 아파 가며 낑낑대며 살고 싶지 않아’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제가 말했어요. ‘내가 언제 나처럼 살라고 했느냐. 너의 시대는 다르다’고요. 아들이라고 수조 원 회사를 물려받고 딸이라고 쫓겨나는 시대는 지났잖아요.” ―‘늘 바쁘게 일하는 엄마’셨지요. “해외 출장이 잦아 아이 입학식에도 참석하지 못했어요. 밤늦은 퇴근길 집 앞 성북구 삼선시장에서 3000원짜리 아이 티셔츠를 한 가득 사서 둘러메고 오기도 했고요. 사업 초기 여자라고 업신여김 당하기 싫어 남자 넥타이를 매고 다니다가 그대로 아이 학교 상담에 간 적도 있어요. 그때 어린 딸이 친구들에게 저를 이렇게 소개했어요. ‘얘들아, 우리 미스터 마미야.’ 딸은 줄곧 이런 말도 했어요. 엄마에겐 베이비가 둘이라고. ‘비즈니스 베이비’와 딸. 그런데 엄마는 비즈니스 베이비를 더 좋아하는 것 같다고.” 이번에 김 회장은 그 ‘미스터 마미’ 시절의 넥타이를 딸에게 몽땅 물려줬다고 했다. “이제 나이 60에 매고 다니면 사람들이 미쳤다고 할까봐서요.”(웃음) 딸은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고 했다지만, 김 회장은 딸이 자신처럼 살기를 바라는 건 아닐까. ‘내가 정답’이라는 자신감마저 느껴졌다. ―워킹맘들을 향한 조언이 있나요. “엄마는 가정의 최고경영자(CEO)잖아요. 엄마의 시간을 현명하게 분배해서 운영하세요. 엄마가 공부하고 일하고 봉사하면 아이도 똑같이 합니다. 첫째, 울타리를 넓게 쳐 주고 실수할 수 있는 기회를 주세요. 이를 통해 아이는 배우고 성장합니다. 둘째, 신앙심을 키워 주세요. 자신을 객관화하고 겸손하게 만드니까요. 셋째, 긍정적 사고의 힘을 길러 주세요. 스스로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 있을수록 위기에서 흔들리지 않습니다. 제가 항상 바빴는데 오히려 그 때문에 저희 딸은 혼자 있는 시간에 책을 많이 읽어 러시아 문학을 전공하게 됐습니다.” ‘MCM 패션 스쿨’ 설립 계획 올해는 성주그룹 설립 25주년, 내년은 1976년 독일에서 설립됐던 MCM의 40주년이다. 김 회장은 이제 브랜드 명성에 의존하지 않고 기능적으로도 앞서는 제품이 ‘럭셔리’가 된다고 믿는다. 그는 디지털 경영이 발 빨랐던 영국 ‘버버리’에서 최근 최고정보책임자(CIO) 등 주요 경영진을 ‘모셔’ 왔다. MCM 백팩을 히트시켜 소비자들에게 ‘손의 자유’를 줬던 그는 이제 사물인터넷(IoT) 기술을 접목한 ‘웨어러블’ 핸드백을 준비하고 있단다. ―럭셔리를 새롭게 정의하시는데요. “새로운 세대가 추구하는 럭셔리를 저는 ‘뉴 스쿨 럭셔리(새로운 명품)’라고 이름 지었어요. 기존 올드 럭셔리처럼 거만한 태도를 보이지 않고 ‘마음이 젊은’ 세대의 글로벌 유목민 라이프스타일을 타깃으로 삼죠. MCM은 소비자의 나이, 성별, 국경에 제한을 두지 않는 전략으로 개별 현지화를 추구해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MCM 인수 10년 만에 35개국에 12개 현지 법인, 1500명의 직원, 300여 개 백화점 매장, 120개 직영점을 운영하는 글로벌 강소 브랜드가 됐으니까요.” ―여성과 젊은층을 주목한다고요. “내년 MCM 40주년을 맞아 서울 홍익대 앞에 신개념 콘셉트 스토어 ‘MCM 바우하우스’를 엽니다. 대개의 명품은 전 세계에서 같은 매장을 선보이지만, MCM은 각각의 특징을 갖는 ‘쇼퍼테인먼트(쇼핑+엔터테인먼트) 플래그십 스토어’를 지향하거든요. MCM 바우하우스는 한 단계 더 나아가 글로벌 패션 리더를 양성하는 교육 장소로 만들겠습니다. 여성과 젊은이, 중소기업처럼 그동안 약자였던 이들을 도와 ‘작은 거인’이 ‘큰 거인’이 되도록 돕겠습니다. 한 달에 약 100명씩, 10년간 1만 명의 글로벌 패션 리더를 길러 낼 겁니다. 성주재단이 지원했던 글로벌 리더들의 재능 기부 강의, 국내 170곳 MCM 공방에서 핸드백 기술 지원, 자신이 만든 제품을 MCM e-커머스(전자상거래)로 팔고 수익을 가져가게 하는 제도 등 온·오프라인 교육이 포함됩니다. 장기적으로 ‘MCM 김나지움’이라는 패션 스쿨 설립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검은 양’의 끝없는 도전 2시간여의 인터뷰 동안 그의 답변은 거침없었다. 도중에 그는 “점심식사로 죽, 괜찮으시겠어요?”라고 물었다. 흑임자죽과 잣죽이 사무실로 들어왔다. 후식은 김 회장이 개발했다는 ‘김성주 표 진셍 라테’(인삼을 섞은 우유)였다. 3년 전 그의 ‘진셍(Ginseng·인삼) 쿠키’ 발언 논란이 떠올랐다. “애 젖먹이면서 주방에 앉아 ‘진셍 쿠키’를 만들었다고 구글에 올리면 전 세계 주문을 받을 수 있다”고 말해 세상 물정 모른다는 비난을 들었던 것이다. 그런데 식사 시간도 아까워 사무실에서 죽을 먹는 그에게 ‘진셍 쿠키’ 발언은 그때나 지금이나 ‘진심’이다. “진셍 라테야말로 맛있고 건강한 ‘코리안 드링크’예요. 언젠가 사업 다각화 측면에서 각국에 ‘MCM 카페 체인’을 열어 진셍 라테, 진셍 쿠키, 진셍 팥빙수를 세계인들에게 알릴 거예요.” 글로벌 무대를 향한 야심뿐 아니라 몸에 좋은 것을 먹이고 싶어 하는 ‘한국 어머니의 마음’도 엿보였다. 과학적으로 흰색 양에서 돌연변이 검은 양이 태어날 확률은 0.001%에 불과하다고 한다. 김성주라는 ‘검은 양’은 말했다. “글로벌 대해(大海)를 향해 통통배를 타고 출발해 여기까지 왔네요. 여성과 청년 육성이라는 제 소명을 생각하며 한국이 글로벌 패션 시장으로 나가는 일대일로(一帶一路·육상과 해상의 실크로드)를 만들겠어요.” 김 회장과의 인터뷰를 마치고 나는 우리 사회가 ‘검은 양’들의 큰 비전과 도전을 너그러운 시선으로 대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새로운 생각과 사회의 변화는 ‘검은 양’에 의해 이뤄질 가능성이 더 크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그러했듯이.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중장년층은 기억한다. 코미디언 구봉서 곽규석이 광고 모델로 나왔던 농심 라면 광고(1975년). 둘은 서로에게 라면 그릇을 내민다. “형님 먼저 드시오”(곽규석), “아우 먼저 들게나”(구봉서), “그럼 제가 먼저”(곽규석). 당시 이 라면 포장지에는 ‘의좋은 형제’라는 한국 민담 그림도 있었다. 형제가 서로의 살림을 염려해 밤중에 볏가리를 옮기는 장면이다. 훈훈한 ‘형제애(愛) 마케팅’인가 했는데 돌이켜보니 고도의 숨은 뜻도 있었던 것 같다.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의 둘째 동생 신춘호 농심그룹 회장은 1960년대 라면사업을 결심했다. 그런데 형은 도와주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서울 명동 사채시장에서 500만 원을 융통해 1965년 라면회사인 롯데공업을 세웠다. 1975년 ‘형님 먼저, 아우 먼저’ 광고를 내세운 농심 라면이 성공하자 3년 후엔 아예 사명을 ‘농심’으로 바꿨다. 형, 롯데와의 관계도 영영 끊었다. “그럼 제가 먼저”라던 아우의 마지막 말은 형(신격호)에 대한 동생(신춘호)의 원망과 경고가 아니었을까. 형제간 우애 없음도 대물림되나. 신 총괄회장의 두 아들, 신동주 전 일본롯데 부회장과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경영권 분쟁을 벌이고 있다. 국민 정서는 재벌가 막장 드라마에 대한 호기심에서 반일감정 섞인 분노로 바뀌었다. 신 씨 부자(父子)의 일본어 대화가 방송되던 날, 내 지인은 30년간의 롯데자이언츠 열성 팬을 그만두겠다고 선언했다. 롯데는 한국 기업인가, 일본 기업인가. 나는 미국 인류학자 루스 베니딕트가 일본인에 대해 쓴 ‘국화와 칼’(1946년)을 다시 읽었다. 롯데를 보면서 자꾸 기시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천황이 없는 일본을 상상할 수 없다. 천황은 불가침이며 신성하다.’ ‘장성한 아들이라도 아버지가 생존해 있으면 일일이 그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 ‘어떤 중대한 사건이 발생했을 경우 가장은 친족회의를 소집해 그 문제를 토의한다.’ 지난달 신 총괄회장의 장녀와 장남 등은 노구의 아버지를 신줏단지 모시듯 일본 롯데에 데려가 차남을 해임시키려 했다. 참 희한하게 보였지만 ‘국화와 칼’을 대입하면 완벽하게 이해된다. 롯데엔 일본 정서가 스며 있는 것이다. 정책본부를 중심으로 한 ‘신동빈 막부’가 미국식 경영 반란을 꾀하자 가문은 ‘롯데의 천황, 신격호’를 마지막 카드로 내세웠을 것이다. 기업인 신격호는 ‘경영의 신’이었지만 인간 신격호는 ‘가족 경영의 신’은 되지 못했다. 그는 ‘세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첫 번째 부인)’을 치렀다. 형제들과는 척을 졌고, 말년에 자식들 간 분쟁을 맞고 있다. 정부도, 국회도 이 기회에 법과 제도를 잘 손봐야 한다. 그래야 승계를 앞둔 많은 기업의 ‘왕자의 난’을 대비할 수 있다. 롯데도 상처에 ‘빨간 약’ 바르고 다시 일어서야 한다. 그룹 핵심 계열사인 롯데쇼핑의 어제 주가는 2009년 4월 이후 처음으로 21만 원대가 무너졌다. 끝까지 일본인으로 귀화하지 않고 한국의 소비산업을 업그레이드해온 ‘신격호 경영사(史)’의 후반부가 얼룩졌다. 그는 경영의 진수인 ‘결단’을 진작 못 했고, ‘내 회사’라는 정열에 지배당했다. 롯데가 이번에 국민에게 준 실망과 분노를 ‘휠체어에 탄 신격호’는 알고 있을까. 혹여 잘 모를까 봐 슬프다. 어쩌면 그는 지금 자식들의 “형님 먼저, 아우 먼저”를 가장 보고 싶어 할 수 있다. 그 자신이 하지 못했기 때문에….김선미 소비자경제부 차장 kimsunmi@donga.com}

《 이진아기념도서관. 서울 서대문구 독립공원 안에 있는 구립도서관이다. 나무의 질감을 담은 건물, 인왕산이 펼쳐지는 큰 창문. 마당에서 어르신들은 체조를 하고, 아이들은 뛰논다. 국내 공공건물 중 평범한 인물의 이름을 붙인 사례는 거의 없다. 그래서 이진아기념도서관이라고 하면 “이진아가 우리나라 독립투사인가요?”라고 묻는 사람들도 있다. 이진아 씨는 12년 전 미국 어학연수 중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뜬, 당시 23세의 대학생이다. 그의 아버지는 숨진 딸을 기리기 위해 2005년 50억 원을 도서관 건립비로 기증하면서 딱 한 가지를 요청했다. “도서관에 진아 이름을 붙여주세요.” 그 도서관이 올해로 10주년을 맞았다. 구립도서관인데도 한 달에 5만 명 이상이 이용한다. 마을 주민들과 함께하는 프로그램은 국내 공공도서관의 모범이 됐다. 큰돈을 쾌척하고도 그동안 인터뷰를 고사했던 진아 씨의 아버지를 11일 이진아기념도서관에서 만났다. 국내 중소 의류수출업체인 현진어패럴의 이상철 대표(68)다. 도서관을 지었던 한형우 호서대 건축학과 교수, 개관 때부터 일해 온 이정수 도서관장도 함께했다. 》 ○ 딸 이름 석자 남겨주고 싶었다―도서관이 참 예쁩니다. “저는 기증만 했을 뿐인걸요. 한 교수가 제 마음을 건물에 잘 담아줬어요. 이 관장도 10년 동안 반듯하게 운영해줬고요.” ―딸의 사고가 도서관으로 이어졌습니다. “아유, 참. 그런 일을 당하고 나니까 아무 일도 안 됩디다. 한참 동안 술만 마셨어요. 그러다 뭘 좀 해야겠다, 딸 이름 석 자를 남겨주고 싶다 생각하니, 요 녀석이 어려서부터 책을 좋아했어요. 그래서 고교 후배인 정두언 당시 서울시 정무부시장을 찾아가 도서관 건립 기증 의사를 밝혔어요. 여러 구청이 관심을 보입디다. 가장 적극적이던 서대문구청 직원과 맨 먼저 와봤는데, 독립공원 자락에 있어 더이상 좋은 자리가 없는 거예요. 며칠 후 바로 기부 협약식을 맺고 1년 반의 공사를 거쳐 진아 생일에 맞춰 개관(2005년 9월 15일)했습니다.” ―도서관엔 자주 들릅니까. “1년에 서너 차례 옵니다. 전문가들이 워낙 잘 운영해주니까요. 아이와 함께 온 젊은 엄마들에게 ‘아이들 예쁩니다. 제가 진아 아빠예요’라고 하면 다들 반가워하면서 ‘이렇게 좋은 도서관 지어줘서 고맙다’고 합니다. 그럴 때 우리 진아가 하늘나라에서 ‘아빠, 고마워요. 힘내세요’라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그는 대기업에 다니다가 어렵더라도 내 사업을 하자며 1970년대 인천 부평에서 봉제공장을 시작했다. 당시 할 수 있는 사업이 우리나라 수출업종인 봉제였다고 한다. 1987년엔 ‘현진어패럴’을 세웠다. 두 딸인 현아, 진아 이름의 앞 글자를 땄다. 어질 현(賢), 보배 진(珍).○ 아이와 함께 못했던 시간 후회 ―딸들의 이름을 사업체에 붙였으니, ‘딸 바보’이셨나 봅니다. “애들을 예뻐했죠. 그런데 우리 시절엔 시간 안 따지고 일을 많이 했어요. 평일엔 술 마시고, 휴일엔 자고. 애들 데리고 놀러 가본 적이 없어요. 진아를 그렇게 보내고 나니까 그게 마음에 걸립니다. 시간을 같이 많이 못한 것, 대화를 많이 못한 것.” 도서관 1층에는 10년 전 진아 씨의 사진 동판이 크게 벽면을 채우고 있다. ‘1980년 9월 15일 서울에서 태어나다. 2003년 6월 2일 미국에서 영원한 나라로 가다. 2005년 9월 15일 책 좋아했던 딸을 그리며 아빠 엄마 언니가 건립 기증하다.’ 거액을 기증했으니 가족의 이름도 새길 법한데, 그저 ‘아빠 엄마 언니’다. 진아 씨 사진은 불의의 사고 석 달 전에 뉴욕 출장길의 아버지와 찍었던 사진이다. 평생 바쁘게 일하느라 변변한 부녀(父女) 사진이 없었는데, 마침 미국 어학연수 중 아버지를 만나 2박 3일간 함께 지냈던 것이다. 딸의 유품인 카메라에서 이 사진이 나오자 아버지는 자신의 얼굴은 빼고 딸 사진만 도서관에 걸게 했다. ‘이진아기념도서관’ 중 서체가 특별히 예쁜 ‘이진아’는 진아 씨가 아버지에게 보냈던 편지에서 발췌한 글씨다.○ 기증… 내 인생에서 제일 잘한 일 ―기증한 50억 원은 큰돈인데요. “제가 6남매 중 둘째인데, 중학교 때 아버지가 위암으로 돌아가셔서 어머니도 고생만 하시다가 일찍 세상을 뜨셨어요. 삯바느질 수출공장을 꿋꿋하게 버티면서 했더니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사태 때 큰돈을 벌었습니다. 50억 원은 예나 지금이나 큰돈이죠. 그런데 진아 이름을 붙인다고 생각하니 아까운 게 하나도 없습디다.” ‘삯바느질 공장’이라고 겸손하게 말하지만, 그는 성공한 사업가다. 1987년 회사 설립 첫해 수출실적이 30만 달러였던 현진어패럴은 그로부터 7년 후인 1994년 제31회 무역의 날에 ‘1000만 불 수출의 탑’을, 다시 7년 후인 2001년엔 ‘1억 불 수출의 탑’을 수상했다. ―사업은 잘되십니까. “예전엔 중남미, 사이판 등에서 옷을 만들어 미국과 유럽으로 수출했는데, 최근엔 베트남 호찌민 외곽에만 공장(직원 5000명)을 두고 있습니다. 매출이 조금씩 떨어지고 있어요. 베트남도 이제 한계에 왔어요. 임금은 계속 오르는데 국제경기가 안 좋으니까 바이어한테 받는 돈은 딱 묶여 있거든요. 진작 출구전략을 짰어야 하는데…. 만만찮은 상황이 됐어요.” ―도서관 기증을 후회한 적은 없습니까. “사업은 좋을 때, 나쁠 때 부침이 있잖아요. 제가 좀 힘들어하면 친구들이 술자리에서 ‘야, 너 그때 그 돈(도서관 건립 기증비) 있었으면…’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제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이 이 도서관 지은 일인걸요. 단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고, 오히려 그때 더 크게 했어야 한다는 아쉬움이 듭니다.” ―기증 당시 사모님은 뭐라고 했나요. “‘당신 돈 있수? 하고 싶은 대로 해요’라던데요. 그런데 우리 집사람의 신앙이 두터워요. 나는 진아를 보내고 한참 망가져 있는데, 아내는 저 사람이 엄마 맞나 싶을 정도로 의연합디다. 그래서 저도 따라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어요. 진아 앞으로 들어둔 보험금 4억 원도 나왔는데, 그걸 우리가 어디다 써요, 진아 것인데. 그래서 그 돈은 다니던 교회의 부목사가 새로 교회를 세우도록 헌금했어요.” 그의 말을 듣고 보니, 기부는 우선은 돈을 쓰는 일이지만 결국은 마음을 쓰는 일이었다. 아버지는 끝났다고 절망하지 않았다. 딸의 이름을 내건 도서관으로 새로 시작했고, 다른 시작하는 사람들을 도왔다. 도서관을 지은 한 교수는 10년 전 생애 처음으로 이 도서관의 설계 공모에 당선돼 올해엔 경북 영주의 도서관도 짓게 됐다. 이 도서관장도 11년의 신문기자 경력 후 도서관 근무 경험이 없는 상태에서 도서관장 공모에 지원해 초대 관장이 됐다. ○ 동네 주민과 함께하는 도서관 “진아 아버님은 매년 도서관 개관 기념행사 때 아이들에게 독서왕 시상식을 해주세요. ‘또 다른 이진아’들을 흡족해하시면서. 그런데 가시는 뒷모습이 쓸쓸해 보여요. 저 뒷모습을 기억해야겠다, 아버지의 마음으로 지은 도서관이니 전 그저 어머니의 마음으로 열심히 일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도 10년 전 도서관장 공모 때 냈던 운영계획서를 자주 꺼내 보며 초심을 점검합니다.”(이 관장) “10년 전 도서관을 설계할 때 아이들이 네 살 쌍둥이였어요. 그때 이 대표님이 먹을 걸 들고 자주 찾아와 주셔서 여쭤봤어요. 조카뻘인 제게 어떤 충고를 해주고 싶으시냐고. 그랬더니 말씀하셨어요. ‘가족에게 잘하세요.’ 그 아이들이 이제 중학생이 됐어요.”(한 교수) 이진아기념도서관의 모토는 ‘동네 주민들과 함께 발전하는 도서관’이다. 도서관에서 6개월간 무료로 동화구연을 배우면 향후 1년간 도서관에서 무료 자원봉사를 해야 한다. 그렇게 ‘동화 구연가’ 주민들이 탄생했다. 도서관 서비스 수용자가 공급자로 탈바꿈한 것이다. 장애인 등 소외층도 보듬는다. 지난주부터는 다문화 가족을 대상으로 다문화 해설사 프로그램도 시작했다. 마을 공동체의 돌봄을 강조하는 조한혜정 연세대 명예교수가 이 도서관을 치켜세우는 이유다. 올해 9월 10주년 개관 기념행사에서는 그동안 주민들의 추억을 담은 사진과 문집을 전시할 예정이다. 이 대표를 인터뷰하고 싶어 현진어패럴 사무실 번호를 찾아 무작정 전화했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제가 한 일이 뭐 있다고요. 하루만 더 생각해도 될까요?” 전화를 끊고도 수화기 너머 들려오던 그 ‘아버지’의 온화한 목소리가 마음에 남았다. 그래서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대표님, 왠지 돌아가신 저희 아버지가 생각납니다.” 그렇게 만난 그는 인터뷰 내내 10년간 잘 큰 도서관의 공(功)을 주변으로 돌렸다.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다. “지금쯤 은퇴했을 거라고 10년 전엔 상상했어요. 하루 용돈 3만 원을 받아 지하철 타고 도서관에 와서 아이들 과자 사주고, 쓰레기 주울 거라고. 그런데 오래 사는 시대가 돼서 좀 더 열심히 일해야겠네요.(웃음)” ―이진아기념도서관 10년. 끝으로 진아 씨에게 무슨 말을 하고 싶습니까. “보고 싶고, 그립다고. 아빠는 건강하게 잘 살고 있다고. 우리 진아가 하늘에서 돌봐주고 있나 보다고. 이젠 내 딸, 진아를 놓아줄 수 있을 것 같다고.”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지난달 초. 휴일에 세차장에 갔다가 역시 세차하러 온 그를 만났다. 패션 디자이너 정구호 씨(53). 그는 1997년 만든 여성복 브랜드 ‘구호(KUHO)’를 성공시켜 10년간 제일모직 임원으로 일했고, 파리와 뉴욕에서 수차례 패션쇼를 열었다. 영화 ‘스캔들’과 ‘정사’의 미술감독을 맡았으며, 국립무용단 창작무용도 연출했다. 그래서일까. 그가 5월 20일 서울패션위크 초대 총감독이 됐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자연스러운 결과라고 생각했다. 2000년 서울컬렉션이라는 명칭으로 시작된 서울패션위크(서울시 주최, 서울디자인재단 주관)가 출범 15주년을 맞아 신설한 자리였다. 축하 인사를 건네자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뜯어고칠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에요. 서울시의원이 초등학생 딸과 쇼에 와서 ‘내가 왜 줄을 서서 입장해야 하느냐’고 따지지를 않나, 사방에서 티켓을 공짜로 달라고 하지를 않나.” 그로부터 한 달 반 동안 국내 패션계엔 ‘쿠데타’가 진행 중이다. 지난달 19일 서울디자인재단 홈페이지에는 올해 10월에 있을 서울패션위크 참가 공고가 떴다. 이제까지는 평가에서 참가업체의 매출 실적이 70%였고 글로벌 경쟁력과 창의성은 30%였다. 그런데 이번에 창의성 요소를 60%로 높였다. ‘혁명적’이다. 연줄이 작용하는 것을 막기 위해 10명의 심사단에는 해외 전문가 4명도 포함시켰다. 영향력 있는 디자이너의 기득권을 인정하지 않고 오로지 디자인의 창의성과 시장성만으로 평가한다. ‘정구호식 쿠데타’다. 하루아침에 ‘게임의 룰’을 바꾸자 지명도 높은 디자이너들로 구성된 한국디자이너연합회는 반발했다. 특히 이상봉 회장은 “연합회와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결정한 처사”라며 서울패션위크 불참을 선언했다. 정구호 씨는 지난주 신문사로 나를 찾아왔다. “정작 문제는 디자이너였어요. 서울패션위크를 패션 비즈니스로 발전시켜야 합니다. 더이상 나눠 먹기 식 쇼는 안 됩니다.” 60명 모집에 104명이 지원해 오늘까지 심사가 이뤄진다. 발표는 23일이다. 정 씨는 미국에서 그래픽디자인을 전공하고 뉴욕에서 작은 분식집을 하다가 1990년대 한국에 와서 옷을 만들기 시작했다. 고전적 의미의 디자이너는 아닐 수도 있다. 나는 한때 ‘정구호는 과대평가된 것 아닐까’ 의심했지만 이제는 그를 ‘한국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그는 아모레퍼시픽 설화문화전의 뼈대를 만들었고, 전국의 맛을 찾아내 CJ비비고 메뉴로도 발전시켰다. 패션이 전방위 문화란 걸 보여줬다. 나는 지금껏 디자이너연합회 소속 디자이너 ‘선생님’들의 옷을 즐겨 입어왔다. 이상봉, 신장경, 홍은주…. 한 땀 한 땀 정성스러운 ‘코리안 럭셔리’라며 자랑스러워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정구호’의 편을 들고 싶다. 패션이야말로 개개인의 창의력으로 승부하는 각자도생(各自圖生)의 길 아닌가. 서울시가 연간 27억 원을 지원하는 서울패션위크에서 원로와 신진이 글로벌산업을 고민하며 경쟁해야 하지 않겠나. 가수의 얼굴을 가리고 목소리로 평가하는 어느 방송 프로그램처럼 지명도는 빼고 창의력으로 승부하는 디자인 경연을. 다시 지난달 세차장. 정 씨는 내게 말했다. “전 갑옷을 입었어요. 총알 맞을 준비가 돼 있어요.” 처음부터 쿠데타를 결심했던 모양이다. 그에게 말해주고 싶다. 역사적으로 성공한 쿠데타에는 ‘정교한 기술’이 있더라고. 명분을 갖추면 혁명도 될 수 있다고. 모두 당신을 쳐다보고 있다고.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1987년 호주 멜버른의 헤어살롱에서 헤어드레서로 일하던 데니스 파피티스 씨는 화학 물질이 들어간 기존의 헤어제품에 회의를 느껴 유기농 재료를 사용한 제품을 만들어봤다. 그것이 호주 화장품 브랜드 ‘이솝’의 시작이다. 파피티스 씨는 그리스의 우화작가 ‘이솝’을 떠올려 간결한 진정성을 화장품에 담고자 했다. 그래서 브랜드 이름도 ‘이솝’으로 정했다. 그런데 이 브랜드의 내공이 심상찮다. 뉴욕 파리 도쿄 등에 충성스러운 ‘이솝 마니아’ 고객층이 두텁게 생겨나고 있다. 갈색 병에 든 제품들이 기다란 나무 벤치에 배열된 모습은 이솝만의 스타일이다. 지적인 비전, 기발한 아이디어가 매장 인테리어와 만난다. 파슬리 씨드 핸드워시, 애완동물 전용 샴푸, ‘뉴욕’과 ‘제네바’ 등 도시 이름을 딴 여행용 화장품 세트와 ‘진저 플라이트’라는 기내용 마사지 제품…. 상품 구성도 선진 라이프스타일 유형이다. 화장품 업계에 이솝이 ‘조용한 지적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간결과 절제’를 내세우는 브랜드 철학과 디자인이 빛난다. 그 돌풍의 요소들을 정리해봤다.지역의 문화를 창조하는 매장 이솝 매장은 규모는 작지만 매우 스타일리시하다. 감각 있는 건축가에게 의뢰해 도시마다 각기 다른 매장을 선보인다. 콘크리트 벽면을 그대로 노출하기도 하고, 천장을 2층 높이로 높다랗게 만들기도 한다. 짙은 나무 선반, 기다란 벤치, 바닥의 가죽 타일…. 이솝 매장의 인테리어는 외주를 주지 않고 회사 소속 건축가들이 직접 한다. 매장 입지의 가이드라인도 있다. 대로변에서 한 골목 안쪽으로 들어올 것. 이웃엔 꽃집, 특색 있는 옷가게, 책방이 있을 것. 지역의 문화를 창조하기 위해서다.지혜의 말들 모든 이솝 매장의 벽면에는 흥미롭고 영감을 주는 인용구들이 쓰여 있다. 예를 들어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부인 엘리너 여사의 ‘아름다운 젊음은 우연한 자연 현상이지만, 아름다운 노년은 예술 작품이다’란 말들이. 매장을 방문한 고객에게는 차를 대접하는데, 일본 오사카 매장의 흰색 찻잔 안쪽에는 이 같은 글귀가 있다. ‘아름다움을 보는 능력을 유지하면 늙지 않는다’…. 한국 가로수길 매장에 쓰인 인용구는 ‘경험의 가치는 많이 보는 데 있지 않고, 현명하게 보는 데 있다’이다.레드와인과 독서의 권장 이솝은 홈페이지(aesop.com)를 통해 고객들에게 건강한 식단, 적당한 운동과 레드와인, 꾸준한 독서 등 균형 잡힌 생활 속에서 제품을 사용할 것을 독려한다. 화장품 브랜드가 삶을 대하는 태도를 이야기하다니. 미국과 유럽 매장에서는 선물 세트를 구매하는 고객에게 스콧 피츠제럴드, 알버트 카뮈 등의 책을 선물한 적도 있다. 창업자이자 대표인 파피티스 씨는 말한다. “‘위대한 개츠비’를 읽는 게 엘리트주의라고는 할 수 없죠. 그저 기차에서 쉽게 읽을 수 있으니까요. 우리는 설명서에 ‘제품 사용 한 달이면 피부가 개선된다’는 문구를 넣는 대신 책을 선물로 드려 고객이 책을 읽고, 생각하는 시간을 갖고, 그럼으로써 행복을 느껴 그 고객의 피부도 좋아 진다고 생각합니다.”(‘선데이 텔레그래프’와의 인터뷰 중에서) 브랜드 창립 25주년이던 2012년엔 홈페이지에 조용하게 파일 하나를 업로드했다. 25권의 책과 각국의 25군데 서점을 추천한 리스트였다. 로버트 휴스의 ‘죽음의 해안’, 가쓰오 이시구로의 ‘남아 있는 나날들’ 등. 싱가포르에선 이솝의 추천도서를 읽는 북클럽도 생겼다. 오감(五感)의 고객 경험 이솝의 각국 매장에서 나오는 음악은 같다.1년에 두 번 창립자인 파피티스 씨와 본사 음악 담당팀이 1000여 곡을 직접 고른다. 전 매장에는 고객에게 손 관리 서비스를 해 주는 싱크를 둔다. 페퍼민트, 로즈힙, 감초 뿌리 등 세 가지를 섞은 차를 제공한다. 매장 인근 식당과 갤러리 등에 대한 조언을 한다.이솝 제품 디스플레이의 원칙 이솝의 모든 갈색 병 제품은 가로로 배열할 경우 홀수로 둔다. 그래야 고객 시선이 가운데 제품에 정확히 꽂힌다. 이솝의 브랜드 핵심가치 중 하나는 ‘삶의 균형’이다. ▼ 이솝의 대표적 매장들 ▼이솝 교토 일본 건축사 ‘심플리시티’의 대표 디자이너인 신이치로 오가타와 씨와의 협업으로 탄생한 시그니처 스토어. 일본 작가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그늘에 대하여’(음예예찬)라는 수필집, 교토 전통의 목재 마치야 타운하우스, 일본 글자의 세로쓰기 등에서 영감을 얻었다. 매장의 커다란 전면 창문을 통해 앤티크 급수 펌프가 보인다. 매장 내부에는 검은 그물망이 빛을 은은하게 분산시키고, 제품은 옆으로 뉘어 세로로 배열돼 있다. 크리에이티브 컨설턴트인 히로코 시라토리 씨는 “검은 그물망은 입구 복도와 쇼핑 공간을 분리시켜주고, 제품의 세로 배열은 캘리그래피 효과를 선사한다”고 말한다.이솝 호주 멜버른 플린더스 레인 벽면을 제외한 다른 곳에는 콘크리트와 옻칠을 한 오크나무, 검정색 스틸을 사용해 차분하게 꾸몄다. 그래서 판지라는 소재의 아름다움이 더욱 부각된다.이솝 호주 노스 멜버른 한때 빅토리아시대 영주의 집으로 사용됐던 고풍스러운 건물을 이솝 매장으로 재탄생시켰다. 매장에는 베네치아풍 분수 3개를 두고 놋으로 만든 수전으로 배수관을 연결해 고객들이 손 관리를 받는 싱크로 활용한다.뉴사우스웨일스 주립 미술관 소장품이었던 실크 오크 서랍장은 매장의 중앙 카운터 역할을 한다.이솝 미국 뉴욕 노리타 뉴욕 그랜드 센트럴 터미널 키오스크를 디자인한 뉴욕 출신 건축 설계사 제러미 바부어가 지었다. 매장 건축 때 뉴욕타임스 신문지를 재활용해 신문지도 건축자재로 사용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내게는 크리스털이 박힌 금색 핸드백이 있다. 2003년 해외여행을 앞두고 서울시내 한진면세점에서 20만 원에 샀다. 매출 부진으로 문 닫는 면세점이 80% 내린 가격이었다. 얼마 후 같은 가방이 미국 드라마 ‘섹스 앤드 더 시티’에 나와 주변의 부러움을 샀다. 그래도 이 가방을 보면 마음이 서늘해진다. 폐업 직전의 시내 면세점이 떠올라서. 지금 유통업계에는 살벌한 낙찰 경쟁이 치러지고 있다. 그동안 6곳이던 서울시내 면세점의 절반 수준인 3곳을 정부가 새로 허가하기로 한 것이다. 백화점도, 대형마트도 장사가 안 되는 마당에 전년 대비 32.2% 성장한 국내 시내 면세점(5조4000억 원 규모)은 그야말로 ‘유통 초원의 빛’이다. 그런데 국내 시내 면세점이 뜬 건 최근의 일이다. 사실은 명멸(明滅)의 연속이었다. 정부로부터 특허를 받아 1979년 동화면세점, 1980년 롯데면세점이 생긴 후 일본인 관광객들이 토산품과 해외 명품을 사면서 폭발적으로 컸다. 정부는 88올림픽을 앞두고 면세점 시장을 확 풀었다. 1989년 29개까지 생겼다가 일본 버블경기가 꺼지자 상당수 폐점했다. 2000년대 ‘면세점 르네상스’가 왔지만 외국인보다 내국인이 더 쇼핑하면서 정부 규제가 강화됐다. 지금의 국내 면세점 시장이 ‘살아남은 자들의 리그’가 된 이유다. 이번 입찰에 참여한 회사들은 “회사의 사활을 걸었다”고 한다. 하긴 시험원서 내놓고 열심히 안 하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다. 정부는 특허심사위원회를 꾸려 관리역량, 경영능력, 관광 인프라 등을 심사하겠다고 한다. 허나 노파심이 든다. 치열한 경쟁 속에 정부와 업계는 정작 중요한 소비자를 얼마나 보고 있나. 국가의 사활도 생각하나. 나는 아름다운 면세점을 원한다. 내가 생각하는 아름다운 면세점은 외국인 관광객의 마음을 얻는 면세점이다. 나는 핀란드 헬싱키 면세점에서는 무민 캐릭터 인형, 일본 오사카 면세점에서는 고베의 롤케이크와 교토 찻잔을 사며 면세점 쇼핑의 기쁨을 누린다. 그 나라만의 ‘향기’가 있는 물건에 손이 간다. 우리는 외국인 관광객에게 무엇을 보여주고 팔 것인가. 여행도, 해외 직구도 많이 하는 소비자에게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명품은 이제 특별하지 않다. 롯데면세점이 올해 1∼5월 매출을 분석했더니 명품 매출은 15%에 그쳤다. 2009년만 해도 이 면세점 매출의 40%가 명품이었다. 관광경기를 심하게 타는 면세점 사업은 소비자 취향도 ‘디테일하게’ 계속 바뀐다. 중국 소비자의 행보도 심상찮다. 젊은 바링허우 세대(1980년대 이후 출생)가 일본으로 여행 가서 돈을 쓰고 있다. 시내 면세점은 국익 차원에서 정부와 기업의 동반자적 접근이 필요하다. 면세제도 보강이 필요하면 지금이라도 손봐야 한다. 면세점 특허권을 따는 유통회사에 홈쇼핑업계의 방송통신발전기금과 같은 관광발전기금을 내게 하는 것도 방법이다. ‘5년마다 신규 입찰’인 현 특허 방식도 따져볼 일이다. 모두에게 ‘열린 기회’이지만 지속적 투자가 어렵다는 얘기가 나온다. 이참에 일반 상점들이 외국인에게 즉석에서 소비세를 빼주는 제도를 적극 검토하면 어떨까. 업주의 탈세가 우려된다면 기존 성실납세 사업자들을 대상으로 시험 운영하면 된다. 국무총리가 관련 부처를 모아 머리를 맞대기 바란다. ‘면세+관광’이야말로 창조경제 아닌가. 나는 다시는 망한 면세점에서 폭탄 세일하는 핸드백을 사고 싶지 않다. 외국인이 오고 싶어 하는 아름다운 면세점에서 아름답게 소비하고 싶다.김선미 소비자경제부 차장 kimsunmi@donga.com}

지난달 제주를 여행했다. 바닷가 돌담 사이로 피어난 살굿빛 다육식물, 동백동산의 연꽃, 중산간 작은 교회의 스테인드글라스 창문…. 내 마음에 악수를 건넨 건 이토록 사소한 제주의 풍경들이었다. 그런 점에서 아모레퍼시픽의 ‘이니스프리’는 제주의 사소함을 기막히게 잘 풀어내는 브랜드다. 난 청보리 클렌저와 비자나무 방향제를 쓰면서 가파도 청보리밭과 비자림을 떠올리곤 한다. ‘제주 컬러 피커-김녕’ 아이섀도는 김녕 해변의 하늘, 바다, 모래 색을 고스란히 닮았다. 제품 소개서엔 이런 설명도 있다. “숨이 턱 밑에 차오를 때까지 물질을 하다가 더이상 참지 못하고 물 밖으로 나가는 순간, 그때 눈에 들어오는 바다의 색은 정말 고와요. 파랑도 아니고 연두도 아니고, 아, 모르겠어요. 그건 그냥, 김녕 바다색인 거죠.”(바다농사 경력 50년의 김녕 해녀 이은화 님) “파도가 돌아간 자리의 물에 젖은 모래 한 줌을 가만히 손에 담아보는 걸 좋아해요. 순수하고 상냥한 여성의 느낌이랄까요.”(일러스트레이터 신유림 님) 돌이켜보면 가슴에 오래 남는 건 사소한 것들이다. 오래전 일본의 어느 시골에 갔을 때 마을 사람들이 꼭 가보라고 했던 미술관은 그저 작은 동네 미술관이었는데, 주민들은 그곳을 정말로 대단하게 여겼다. 며칠 전 배우 원빈-이나영 커플의 결혼식이 잔잔한 감동을 준 것도 강원 정선 밀밭 오솔길과 들꽃 부케의 소박한 힘 아니었을까. 제주를 걱정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소란스러워졌다고, 치안이 염려된다고, 천혜의 자연이 훼손된다고, 중국인에게 점령될 거라고. 그래서 생각해본다. 우리는 얼마나 제주를 귀하게 대하고 있는가. 제주의 사소한 것에 경의를 표하는가. 제주는 숲, 오름, 바다가 있는 한국의 대표 관광지다. 나는 제주 관광을 시대별로 분류해 봤다. 1.0은 용두암(관광지) 시대, 2.0은 올레길 시대, 3.0은 낭만카페 시대…. ‘제주 관광의 4.0’은 사소함을 즐기는 문화예술 시대면 좋겠다. 제주의 품격을 고민하면 좋겠다. 나는 지난달 제주 여행에서 중국 유명 현대 미술가 펑정제 씨(47)를 만났다. 베이징에 사는 그는 2년 전 제주 한경면 저지예술마을에 ‘펑 스튜디오’라는 작업실을 열고 제주를 오간다. 그곳에서 그가 요즘 작업들을 보여줬을 때 깜짝 놀랐다. 제주가 그의 화풍을 바꿔 놓았다. 두 눈동자가 양 바깥으로 향하는 외사시(外斜視) 여성 그림으로 유명해진 그는 이제 제주의 산수(山水)와 골프장 홀의 좌우(左右)와 같은 추상 문자그림을 그린다. “제주의 자연에서 골프 하면 행복해요. 아침에 ‘모이세 해장국’에서 계란을 넣은 해장국을 먹고 바다를 느끼며 그림을 그리죠. 오후에 골프 하고, 저녁엔 ‘명리동 식당’에서 자투리 고기를 먹는데, 그 맛이 황홀합니다.” 펑 씨는 가난한 노동자와 문맹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톈안먼(天安門) 사태 때 쓰촨 미술학원에 다녔다. 소비에 돌진하는 중국인의 공허한 정신을 외사시 여성으로 표현해 부를 쌓은 그가 제주에서 ‘소비 너머의 아름다움’을 보기 시작했다. 그는 베이징 ‘798예술구’(1950년대 군수공장에 1990년대부터 예술가들이 모여든 세계적 명소)와 같은 예술구를 제주에 만드는 일도 추진 중이다. 우리가 못 한 일을 하겠다니 고맙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다. 그러니까 ‘파랑도 연두도 아니고, 그건 그냥 바다색’을 알아보고 귀하게 대하기. 제주 관광 4.0, 품격 있는 한국 관광이 갈 길이다.김선미 소비자경제부 차장 kimsunmi@donga.com}

MCM을 이끄는 김성주 성주그룹 회장은 지난해 서울 강남구 논현동 신사옥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이렇게 말했다. “패션은 이제 삶을 윤택하게 해 주는 도구가 됐다. 백팩을 매면 하이힐을 신기 힘드니까 스니커즈가 유행했다. 패션은 여성의 전용물이 아니고, 남녀 모두가 편안히 즐길 수 있는 하나의 문화로 유니섹스화됐다. 여성이 사회활동에 적극 참여하면서 보이(boy·소년) 패션을 입고, 남성이 넥타이를 할 필요 없이 화장도 하고 빨간 바지를 입는 세상이 왔다. 라이프스타일 진화에 맞춰 실용적이면서도 참신한 제품을 만들어내겠다.” 창의적 영감의 리더로 꼽히는 김 회장은 음악, 예술, 여행, 테크놀로지라는 다양한 요소를 기반으로 MCM의 다채로운 이미지를 선보이고 있다. 세계적 팝아트 아티스트인 스테판 스트럼벨, 크랙 레드만과 칼 마이어 등과 협업한 제품들을 내놓는가 하면, 지난해 브라질 월드컵 때에는 브라질 국기와 축구공을 모티브로 하는 유머러스한 디자인의 한정판도 내놓았다. 유명 아티스트와 협업해 가치를 재창출하는 전략이다. MCM은 이처럼 예술적이고 미래 지향적인 ‘새로운 명품’, MCM을 소비자들에게 알리는 수단으로 콘셉트가 있는 매장을 택했다. 화제를 불러일으킬 만한 공간에서 소비자들에게 특별한 경험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각 매장에는 재미와 테크놀로지라는 요소들이 담겨있다. MCM은 현재 전 세계에 365개의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2020년까지 450개로 확대하는 게 목표다. 미국 삭스 핍스 애비뉴와 니먼 마커스, 영국 런던 해러즈와 프랑스 파리 갤러리 라파예트 등의 백화점에 입점해 있다. 또 스위스 취리히 뮌스터호프 거리, 독일 베를린 미테 지역 등에도 스타일리시한 매장들을 두고 있다. 국내에서는 지난해부터 각각이 뚜렷한 특징을 가진 6개의 색다른 콘셉트 매장들이 들어서며 MCM의 새로운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MCM HAUS-서울 청담동 단순히 상품을 파는 곳이 아니라, MCM의 철학과 문화, 독일의 정통성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다. 유럽에서 주목받는 컨템포러리 아티스트인 리차드 우드의 작품으로 건물을 장식했다. MCM의 대표 플래그십 스토어로, 최근에는 한류스타 박해진과 중국 배우 장량이 함께 방문했다.M:AZIT-서울 가로수길 마지트(M:AZIT)는 MCM의 M과 아지트의 합성어. 패션과 예술을 사랑하는 누구나 문화와 쇼핑을 즐길 수 있는 장소다. 전체적으로 MCM 제품과 유명 아티스트의 작품이 어우러진 패션과 복합 문화공간이다. 2층 컬처 아지트에는 주기적으로 국내외 신진 아티스트의 작품이 전시된다. MCM SPACE-서울 명동 매장 외부와 내부를 미래 지향적 우주 공간 형태로 꾸몄다. 1층엔 커다란 우주선 모형이 설치돼 있다. 2층 VIP를 위한 전용 공간에서는 나만의 여행 가방을 만드는 ‘비스포크’라는 특별 주문제작 시스템을 이용할 수 있다. 3층은 유명 DJ들의 음악을 즐길 수 있는 파티 장소로 활용된다. MCM 쿤스트할레-서울 도산대로 패션과 문화를 아우르는 갤러리형 콘셉트 매장이다. 독일어로 아트 갤러리를 뜻하는 쿤스트할레에는 MCM의 제품뿐 아니라 국내외 유명 아티스트의 작품도 전시할 계획이다. 내부에는 ‘알’을 형상화한 대형 조형물과 디스플레이존이 설치됐다. 알 조형물은 틀을 깨고 늘 새로운 명품의 가치를 선보이는 도전정신을 뜻한다는 설명이다.MCM LAB-서울 코엑스 장인정신과 실험정신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실험실로 표현한 매장. 유럽의 장인을 연상시키도록 매장 직원들은 흰 가운을 입었다. 소비자들이 마치 찰리와 초콜릿 공장에 들어선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도록 매장을 컨베이어 벨트 식으로 구성했다. 매일 오후 3∼7시 ‘해피 바이러스 이벤트’를 열어 매장 고객에게 사탕과 초콜릿을 제공한다. MCM 오션 언리미티드-제주시 연동 바다가 보여주는 끝없는 가능성과 영원함의 이미지를 형상화했다. 제주시 연동 신라면세점 바로 건너편에 있어 이달 중순 오픈 이후 중국인 고객들의 입소문을 벌써부터 얻었다. 매장 이름과 인테리어 등을 통해 브랜드 정체성인 ‘글로벌 노마드’와 ‘자유’를 일관되게 담았다는 설명이다.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이달 중순 제주 제주시 연동에 문을 연 MCM ‘오션 언리미티드’ 플래그십 스토어를 다녀오고서 기자는 MCM을 다시 보게 됐다. 매장의 외부는 바다색의 발광다이오드(LED) 조명이 MCM 로고의 월계수 패턴 사이로 은은하게 퍼져 나가는 모습이었다. MCM이 해석한 제주의 바다였다. 매장 입구는 해변을, 매장 내부는 바닷속으로 구현했다. 거대한 선박과 파도의 물결을 형상화한 선반 위에 MCM의 ‘밀라’ 라인 핸드백들이 놓여 있었다. 질감 좋은 가죽 소재에 로고가 작게 하나만 있는 하늘색, 연분홍색, 노란색 토트백들은 새로운 MCM의 세계로 안내하고 있었다. 이 토트백에는 별도의 줄을 달아서 크로스백 형태로 멜 수도 있었다. 매장 안쪽으로 좀 더 들어가니, 이번엔 MCM이 코카콜라, 래퍼인 윌아이엠과 함께 론칭한 ‘에코 사이클’ 라인의 가방들이 있었다. 에코 사이클은 지속 가능성에 초점을 맞춘 제품들이다. 코카콜라 페트병에서 실을 뽑아 리사이클 캔버스 소재를 만들어 가방으로 만들었다. 각 가방에는 제작에 활용된 코카콜라 페트병 수를 표시한 라벨이 붙어 있었다. 이날 만난 패션 사진가 오중석 씨는 MCM의 ‘바이오닉’ 라인 백팩을 메고 있었다. ‘지오닉’이라는 소재에 미래적 디자인을 더해 ‘스타워즈’나 ‘에일리언’ 시리즈물을 좋아하는 남성이라면 탐낼 만한 배낭이었다. 제품들의 가격대도 100만 원대가 많아 예상보다 비쌌다. 갈색 가죽에 MCM 로고가 가득 새겨진 가방만 머릿속에 들어있던 기자에게 MCM의 첫 제주 플래그십 스토어는, MCM의 요즘 상품들은 모두 ‘충격’에 가까웠다. 어쩌면 이것이 MCM이 극복해야 할 가장 큰 과제일 것이다. 전 세계 365개 매장을 운영하고 있는, 각국에서 명품 대접을 해 주는 MCM은 유독 한국 소비자들에게는 ‘안다고 생각하지만 어쩌면 잘 모르는’ 브랜드일 수 있는 것이다. 독일 브랜드였던 MCM은 1991년 성주그룹이 첫 라이선스 계약 이후 2005년 독일 본사를 전격적으로 인수했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지난해 ‘가방에 세계를 담다: MCM의 비상’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MCM이 에르메스와 루이뷔통을 잇는 ‘새로운 잇백’”이라고 전했다. “밀레니엄 세대들은 더이상 구태의연하고 오만한 명품이 아닌, 좀 더 재미있고 기능적인 럭셔리를 원한다”면서 “MCM은 모빌리티, 유니섹스 제품 등 ‘글로벌 노마드적 삶의 태도’를 선보인다”고 했다. 지난해 김성주 성주그룹 회장은 MCM을 ‘뉴 스쿨 럭셔리(New School Luxury·새로운 명품)’로 천명했다. 뉴 스쿨 럭셔리는 명품이 하나의 상품을 넘어 소비자의 라이프스타일로 실현되는 개념이다. 기존의 명품이 가격, 브랜드 전통과 역사를 통해 인지돼 왔다면 MCM이 제시하는 ‘새로운 명품’은 소비자의 라이프스타일을 창출하는 제품이다. 일례로 MCM이 캐주얼의 대명사로 통하던 백팩을 명품화한 전례를 두고 유럽에서는 “샤넬이 우리에게 한 손의 자유를 줬다면 MCM은 두 손의 자유를 선사했다”고 평가한다. MCM은 새로운 밀레니엄 세대 소비자들을 ‘MCM 시티즌’이라고 칭한다. 이들에게 가정은 내가 즐기고 쉴 수 있는 곳이며, 일은 자아를 실현하기 위한 놀이터이다. 그렇기에 패션과 라이프스타일은 독특하지만 편안함에 기반을 두고 있어야 한다. MCM은 각국의 콘셉트 있는 매장을 통해 이 ‘새로운 명품’의 ‘특별한 경험’을 설파하고 나섰다.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오랜 지인 두 명의 생활방식이 언젠가부터 확 달라졌다. 가만 보니 소비의 문제였다. 당신은 얼마나 생각하면서 소비하는가. 소비하는 행위와 그 의미에 대해 느리고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평범하지는 않지만 생각해 볼 만한 두 지인의 소비를 소개한다. #1. 소비는 나의 민낯과 만나는 일 두 아이의 어머니인 박모 씨(40)는 일단 물건을 잘 안 산다. 스스로 머리카락을 자르며, 기념일이라고 가족끼리 특별한 선물도 안 한다. “뭔가 필요하고 사고 싶으면 딱 그날 사면 되지, 왜 무슨 날이라고 억지로 뭘 사야 하나요.” 그래서 초등학생 딸에게 올여름 생일에 하고 싶은 일을 적어 보라고 했더니 이렇게 계획표를 내밀었다고 한다. ‘먹을 것: 맛있는 여름 과일, 생야채, 치킨 윙/ 할 것: 낮잠 자기, 친구 한 명이나 두 명 불러서 놀기, 동네 책방 가서 책 읽기.’ 박 씨는 물건을 사서 효용이 다하면 미련 없이 버린다. 다 읽은 책도 버린다. “이 책을 다시는 보지 못할 것이란 스스로의 명령만이 책을 더 탐독하게 해 주거든요.” 그의 말을 들어보았다. “물건은 그저 물건일 뿐. 아이를 사랑하면 따뜻하게 안아주면 된다. 굳이 물건이란 징검다리를 건너 사랑을 표현할 필요가 없다. 나는 선물을 사지 않기에 아이와 오래 얘기를 나누고, 집에 굴러다니는 종이를 갖고 놀기 위해 함께 머리를 짜낸다.” “나는 자린고비는 아니다. 몸이 피곤해 가족에게 짜증을 낼 것 같으면 외식을 한다. 삶을 단순하게 만드는, 진짜 삶을 대할 시간을 벌어주는 교통비와 수수료도 아깝지 않다. 집에서 치즈를 만드느라 긴 시간 솥 옆에 붙어 서서는 ‘왜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사 먹는가. 그 아낀 시간은 다 어디로 갔나’란 의문도 가져본다. 나는 지갑을 열 때마다 스스로 정직하게 묻고 답한다. 나라는 존재의 민낯을 만나는 것이다. 그래서 소비가 즐겁다.” #2. 적게 벌어 적게 쓴다. 김모 씨(44)는 요즘 주 4일 하루 5∼7시간 서울 근교의 푸드카에서 햄버거를 만들어 판다. 13년 다니던 회사를 2년 전 관두고 요리를 배웠다. “내 삶의 주도권을 갖고 살고 싶었고, 밥벌이를 하려면 기술이 필요했고, 그래서 적성이 있을지도 모를 요리를 택했습니다.” 음식점을 차리기엔 초기 자금이 많이 들고 실패에 대한 리스크가 커서 푸드카를 차렸다. 적은 돈을 벌지만 적게 쓰고, 나머지 시간을 창의적 활동과 배움에 쓰기로 한 것이다. 그의 푸드카를 찾아갔을 때, 가수 이적의 노래가 흘러나오는 실내 한편에는 그가 타고 다니는 접이식 자전거가 놓여 있었다. 손님이 없을 땐 글을 쓰거나 요리를 연구한다고 했다. “남자 나이 40대는 무한경쟁 속에 스트레스가 많잖아요. 전 미혼이라 이런 삶을 택할 수 있었겠죠. 그런데 꿈이란 게 현재에 대한 불만족에서 나온다고 보면 저의 목표는 더이상 꿈꾸지 않는 삶이에요. 현재의 제 삶에 만족하고, 일도 경험을 쌓으며 조금 더 잘하고, 돈에 대한 걱정에서 벗어나고, 타인의 시선에 대한 속박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어요.” ‘나답게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이들은 남과 비교하는 과시적 소비에서 벗어나 나만의 콘텐츠를 삶 속에서 만든다. 낡은 것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나누기도 한다. 사실 이런 삶은 버겁고 두렵다. 그런데 어쩌나. 우리 모두는 오래오래 행복할 소비 방식을 찾는 과제에 봉착했다. 성장 감퇴 경제에서 은퇴 후에도 긴 여정을 살려면 진지하게 나를 만나야 하지 않겠나.김선미 소비자경제부 차장 kimsunmi@donga.com}

《 프랑스 명품 브랜드 ‘샤넬’의 사장을 인터뷰하기까지에는 넘어야 할 두 개의 산이 있었다. 첫째는 샤넬의 까다로운 ‘서면 심사’였다. 샤넬 프랑스 본사는 내가 과거에 썼던 명품업계 기사 세 건과 인터뷰가 실릴 지면을 파일로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둘째는 일종의 자기검열. 샤넬을 ‘부자들의 전유물’ 또는 ‘여성들의 사치품’으로 안 좋게 보는 일부 시선도 있지 않은가. “동아일보의 단독 인터뷰가 결정됐습니다. 인터뷰는 한 시간입니다.” 3일 서울 호텔신라 스위트룸에서 브뤼노 파블로브스키 샤넬 패션 부문 사장과 인터뷰하고 난 뒤 나는 두 개의 산을 넘었다. 샤넬의 경영은 한국 기업들에 시사하는 ‘한 수’가 있었다. 창조자를 존중하는 경영자의 자세, 가치를 유지하는 비결…. 그는 4일 열린 ‘샤넬 2015·2016 크루즈 컬렉션’ 때문에 한국을 다녀갔다. 》 한국은 에너지-창의성 넘치는 나라우리가 만난 스위트룸에는 가브리엘 샤넬(1883∼1971)의 사진 액자와 흰색 수국 화병이 놓여 있었다. ―왜 서울에서 크루즈 컬렉션 쇼를 열게 됐나. “쇼 장소는 시장의 중요도, 비즈니스, 샤넬에 영감을 주는 곳이란 점에서 샤넬의 ‘크리에이터’(창조자)인 카를 라거펠트(82)와 함께 고른다. 샤넬의 한국 진출 24주년도 고려했다.” 샤넬 크루즈 컬렉션은 여행객을 위한 패션을 선보인다. 샤넬은 2000년부터 매년 5월 세계 부호들의 여행지에서 이 컬렉션을 열어 왔다. 샤넬의 ‘아시아 여행’은 2013년(싱가포르)부터다. 지난해엔 두바이, 올해엔 서울이다. 참고로 ‘5’라는 숫자는 가브리엘 샤넬이 특별히 애착을 가졌던 숫자다. 그녀는 샤넬 넘버5 향수의 이름을 지을 때엔 “5가 행운을 가져다줄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한국이 샤넬에 준 영감은 무엇인가. “한국은 에너지와 창의성이 넘치는 나라다. 한국 연예인들을 만날 때도 그 점을 느낀다.”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쇼를 하게 된 이유는…. “DDP를 설계한 자하 하디드와 라거펠트 간에는 미적 유대감이 있다. 샤넬의 2008년 ‘모바일 아트 프로젝트’에서 하디드가 전시관을 지었다. 작년에 샤넬은 DDP에서 ‘문화 샤넬전’도 열었다. 라거펠트는 하디드의 공간에서 패션쇼를 열고 싶어 했다.” ―이번 서울 크루즈 컬렉션이 갖는 의미는…. “쇼의 장소는 한국이지만 전 세계 샤넬 부티크(매장)들을 위한 행사다. 쇼가 끝나면 250명의 바이어가 파리에 모여 마음에 드는 제품을 사갈 것이다. 이번 쇼의 콘셉트와 옷이 각국의 샤넬 쇼윈도에 반영된다는 뜻이다.” 여기에서 잠깐. 인터뷰 다음 날인 4일 열린 ‘샤넬 2015·2016 크루즈 컬렉션’을 소개하겠다. 오방색 의자들이 놓인 런웨이로 95벌의 옷이 소개될 때, 나는 놀랐다. 금발 모델들이 머리에 얹어 쓴 한국의 검은색 가체(加체)는 18세기 로코코 양식의 화려한 머리장식을 연상케 했다. 라거펠트는 자신이 새롭게 해석한 ‘샤넬표 한국 스타일’로 동양과 서양의 조화, 과거의 현대의 만남을 시도한 건 아니었을까. 한 점의 나전칠기 가구 같은 드레스, 조각보 재킷…. 알고 보니 일부 옷의 원단은 한국에서 직접 구했다. 한 패션업계 관계자는 “샤넬이 해석한 한복을 완벽하다고 말할 수는 없으나 세계 패션시장에서 조각보의 인기가 치솟을 게 분명하다. 한국과 한복을 샤넬처럼 이렇게 널리 알려줄 수 있는 브랜드가 또 있겠는가. 한국을 대접해준 느낌”이라고 말했다. 이 쇼는 각 외신과 유명 인사들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실시간으로 소개됐다. ―한국의 고객에게 샤넬은 어떤 가치로 인식되길 원하는가. “창의성, 세련미, 현대성, 여성성…. 한국에는 두 가지 유형의 샤넬 고객이 있다. 다양한 샤넬 제품을 두루 경험해 온 20년 지기 단골과 샤넬의 핸드백을 이제 막 사는 고객이다. 전자에게는 감사를 표하고 싶어서, 후자에게는 우리 컬렉션을 보고 샤넬의 다른 면모를 발견하라고 이번에 한국에 왔다. 핸드백이 샤넬의 패션세계에 진입하는 계기가 되지만 옷과 구두, 다양한 액세서리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샤넬 주력상품은 핸드백 아닌 옷 ―샤넬 매출에서 핸드백 매출이 절반 이상인가. “(크게 소리 내 10여 초간 웃은 뒤) 프랑스식으로 대답하자면 그럴 수도 있고, 안 그럴 수도 있다. 숫자에 대해 말할 수는 없지만(샤넬은 경영정보 공개 책임이 없는 유한회사다), 5년 전부터 핸드백 매출이 급성장하고 있다. 새로운 고객들이 핸드백을 살 때 이젠 곧바로 명품을 산다. 그런데 샤넬을 이끄는 원동력은 옷이다. 디자인별로 판매되는 건수가 세계 1위다. 샤넬은 브랜드의 뿌리와 창의성이 깃든 옷으로 고객들을 데려올 것이다. 샤넬은 두 달에 한 번씩 1년에 여섯 번 새로운 옷을 선보이고 그에 맞는 액세서리들을 함께 보여준다.” ―샤넬에서 당신은 25년, 라거펠트는 34년을 일해 왔다. 라거펠트는 어떤 사람인가. “그는 전 세계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항상 촉각을 세운다. 과거에서 특정한 것을 가져와 미래를 준비하고, 창조에 대해 끊임없이 갈구한다. 그가 일단 영감을 얻으면 그의 팀이 함께 형태를 만들어나간다. 그와 지적인 친밀감을 느끼며 일하는 게 기쁘다.” ―라거펠트의 영감이 지나치게 창의적이라 경영자인 당신이 반영을 못할 때도 있나. “(함박웃음). 그런 과정으로 함께 일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맡은 1차적 책임은 라거펠트와 그의 팀이 새로운 컬렉션을 잘 성공시킬 수 있도록 물심양면 지원하는 것이다. ‘하지 말라’고 하는 게 아니라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그래야 창의성을 활발하게 가질 수 있다. 나의 2차적 책임은 제품이나 광고, 쇼룸 디스플레이를 통해 전 세계 샤넬 부티크가 가장 아름답게 고객에게 다가설 수 있도록 최적화하는 일이다. 우리의 가장 큰 관심은 샤넬이 매력적인 브랜드로 반짝이면서 고객들을 놀라게 하는 것이다. 고객이 샤넬을 싫어할 수도 있다. 그러나 다시 관심을 갖고 돌아오게끔 만든다.” ―부티크에서의 고객 경험을 강조하는데, 왜 온라인 판매를 시작할 것이란 말이 나오나. “온라인 판매는 내년부터 향수만 한다. 온라인 판매를 하더라도 오프라인 부티크와 연결시킬 것이다.” ―온라인에서 옷과 핸드백은 살 수 없나. “향수 이외의 제품은 온라인에서 언제부터 어떻게 팔지 결정된 게 전혀 없다. 온라인몰에 바보같이 죽 물건을 올려놓고 파는 일은 절대 없다. 샤넬 고객이 원하지 않을 테니까.” 파블로브스키 사장이 자신의 손목시계를 흘끗 쳐다봤다. 인터뷰 경과 시간을 확인한 것이리라. “당신의 시계는 샤넬인가요?”라고 묻자 “비앵 쉬르(Bien s^ur·당연하죠)”라며 웃었다. 그런데 라거펠트는 지난달부터 순금 밴드의 ‘애플’ 시계를 차기 시작했다. 애플은 이 스마트 시계를 패션업계가 흔히 쓰는 스타마케팅으로 홍보하고 있다. 한편 명품업계는 샤넬과 테크놀로지의 만남에 주목한다. 샤넬은 지난해 ‘몬스터 케이블’사(社)와 협업해 헤드폰을 선보였다. 파블로브스키 사장은 “샤넬은 테크놀로지를 중요한 이슈로 인식하고 있다. 우리는 어떤 사업 방향을 결정할 때 그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결과물을 내놓을 수 있는지, 그 결과물은 고객에게 무엇을 줄 수 있는지 고려한다”고 말했다. ―샤넬은 몇 년 전 자전거도 내놓았다. 핸드백에 쓰이는 체인과 퀼팅 등 ‘샤넬표’ 디자인 요소 덕분에 ‘샤넬 자동차’도 ‘샤넬 호텔’도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그 디자인의 확장성으로 사업영역을 늘릴 계획이 있나. “가끔 특별한 제품을 만들 때가 있다. 자전거, 스키, 럭비공…. 우리 브랜드의 창의성이 이 정도까지 갈 수 있다고 자랑하기 위해 소량을 만들어 비싸게 한정 판매한다. 그러나 우리의 본업은 패션, 특히 옷이다. 앞으로는 몰라도 지금으로서는 패션에만 집중한다. 라거펠트도 늘 샤넬 패션의 핵심을 지키면서 산만하지 않게 재해석해 나간다. 이것이 우리 브랜드의 장점이라고 생각한다.”삼성-LG와 협업할 계획 있다 ―한국에서도 샤넬 같은 브랜드가 나올 수 있을까. “(웃음). 좋은 질문이다. 나는 한국의 패션 브랜드는 충분히 알지 못한다. 그러나 한국의 화장품은 요즘 전 세계가 벤치마킹한다. 브랜드는 자기만의 역사와 이야기가 있어야 한다. 샤넬에는 가브리엘 샤넬과 프랑스라는 강한 스토리가 있다. 언젠가는 한국에도 명품 브랜드가 나오리라 본다.” ―삼성이나 LG와 협업할 계획이 있나. “(웃음). 꾸준히 접촉하고 있다. 앞으로 프로젝트별로 협력할 기회가 있을 것 같다. 부티크를 연결하거나 매장 직원을 연결하는 부분이 될 듯하다. 샤넬은 부티크와 고객 간의 친밀감을 강화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얼마 전 샤넬은 대륙별로 가격 조정을 하면서 한국에서 가격을 내렸다. “샤넬 고객들은 여행을 많이 하기 때문에 지역별 가격의 일치가 중요하다. 우리는 앞으로 20년을 내다보고 결정했다. 항간에서 말하는 대로 사업이 안 돼서 가격을 내린 게 아니다. 오히려 장사가 잘돼 결정할 수 있었다.” 25년을 샤넬에서 일해 온 파블로브스키 사장은 자주 환한 웃음을 짓다가도 몇몇 대목에서는 예리한 표정이 되었다. 주로 샤넬의 자신감을 표현할 때였다. 인터뷰를 마치고 시계를 보니 그는 당초 예정 인터뷰 시간보다 10분을 더 내줬다.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중국인 관광객 여러분, 환영합니다. 한국의 5월은 아름답습니다.서울숲 또는 양재시민의 숲에 누워 한국의 파란 하늘을 감상하시면 어떨까요?한강변에서 자전거를 빌려 타보시면 어떨까요?쇼핑의 천국 한국은 중국인 관광객들을 맞이할 준비를 마쳤습니다. 롯데백화점은 백화점 업계 최초로 본점, 잠실점, 월드타워점, 김포공항점 등 중국인 관광객이 많이 찾는 7개 점포에 알리페이 결제시스템을 도입했습니다. 알리페이는 중국 알리바바그룹의 결제서비스로 로밍이나 무선인터넷 연결 없이 스마트폰의 알리페이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간단히 결제 할 수 있죠.롯데면세점은 5월 13일까지 본점, 월드타워점, 코엑스점, 인천공항점 등에서 해외 유명 브랜드를 최대 70% 할인해 파는 해외 명품 브랜드 대전을 엽니다. 현대백화점은 이번 노동절부터 중국인 대상 최우수고객(VIP) 관리 프로그램을 도입했습니다. 한국에서의 쇼핑 금액에 따라 실버, 골드, 다이아몬드 회원이 되실 수 있는데 생일 케이크와 리무진 콜택시 서비스 등 혜택이 풍부합니다.한국은 알면 알수록 매력이 넘치는 나라입니다. 여러분의 즐거운 한국 여행을 응원합니다.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사진 롯데면세점 제공}

결론부터 말하면, 다 여행 때문이다. 보다 정확하게는 ‘여행하는 소비자’ 때문이다. 고심 끝에 나는 이들을 투어리슈머(Tourisumer)라고 이름 지었다. 여행자(Tourist)와 소비자(Consumer)를 합친 말이다. 요즘 아모레퍼시픽의 주가가 날로 치솟는 것도, 유통 대기업들이 올해 7월 추가로 선정될 서울시내 면세점 사업권에 사활을 거는 것도, 샤넬이 이례적으로 아시아에서 주요 제품 가격을 내린 것도 다 투어리슈머 때문이다. 서경배 아모레퍼시픽 회장은 최근 말했다. “인구 1500만 명 이상 되는 도시가 20개이고, 이 중 10개가 중국에 있습니다. 중국에는 앞으로 1000개의 공항이 더 생길 겁니다. 중국을 한 개의 나라로 보면 안 됩니다. 적어도 15개 나라로 봐야 하지요.” 역시 크게 보는구나, 하고 나는 놀랐다. 글로벌 경영컨설팅업체 베인앤컴퍼니는 최근 펴낸 ‘럭셔리 시장연구―국경 없는 소비자의 부상’이란 보고서에서 “럭셔리 업계는 이제 여행객들의 씀씀이에 달려 있다. 여행객들이 누구인가가 중요해졌다”고 분석했다. 현재 럭셔리 시장의 가장 큰손은 중국인이다. 2000∼2014년 럭셔리 소비자를 국적별로 분석하니 중국인이 29%로 가장 많았고 미국인(22%), 유럽인(21%), 일본인(13%) 순이었다. 중요한 점은 이 중국인 소비의 절반 이상이 여행지에서 이뤄진다는 것이다. 1997년에서야 해외 단체관광을 허락한 중국 정부는 2000년엔 춘제(중국 설)와 국경절을 유급 국경일로 정해 중산층에게 여행할 시간을 줬다. 2009년엔 진정한 의미의 해외여행 자유화를 실시했다. 여기에서 주목할 곳이 공항이다. 중국인은 호텔과 항공비는 아껴도 쇼핑은 화끈하게 한다. 공항은 경제적 쇼핑의 꿈을 주는 거대 쇼핑몰이다. 럭셔리 상품의 유통채널 중 공항이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 3년간 11% 늘었는데, 공항 매출 중 화장품 비중이 무려 72%다. 아모레퍼시픽이 승승장구하는 비결이요, 서 회장이 중국의 공항 증가에 관심을 갖는 이유다. 서울시내 신규 면세점이 올해 유통업계 최대의 ‘황금알’이 된 것도 투어리슈머의 영향이다. 동아일보는 최근 ‘10조 시장 면세점을 잡아라’ 기획시리즈를 연재하면서 각 기업의 ‘출마의 변’을 들어보았다. 한결같이 “우리가 하면 외국인 관광객 유입에 도움이 된다”는 주장이었다. 저가항공 덕분에 투어리슈머는 마음이 동하면 훌쩍 여행에 나선다. 스마트폰의 정보력이라면 낯선 장소의 여행도 두렵지 않다. “어느 나라를 가봤느냐”가 아니라 “어느 도시에서 무엇을 했느냐”의 시대다. 시내 면세점은 이제 도시 여행의 일부다. 샤넬이 최근 주요 제품의 가격을 대륙별로 조정한 것도 투어리슈머의 신뢰를 얻기 위해서다. 유로화 약세는 샤넬 브랜드 가치를 위협했다. 가격 조정 전 국내 병행수입업자들은 고객들에게 신나게 휴대전화 문자를 날렸다. “국내 매장가보다 100만 원 싸게 구해 드릴게요.” 여행과 인터넷으로 똑똑해진 투어리슈머는 쇼핑의 민주화를 누리게 됐다. 샤넬은 내년 가을부터 온라인 판매도 시작한다. 고급 매장에서의 서비스를 금과옥조처럼 여기던 럭셔리 업계의 높은 벽을 투어리슈머가 무너뜨린 ‘사건’이다. 우리 투어리슈머는 이 ‘새로운 권력’을 어떻게 쓸 것인가. 외국 투어리슈머의 마음은 어떻게 얻을 것인가. 한 가지 더. ‘여행하는 중국인 소비자’가 쇼핑의 흥분을 가라앉히면 그 이후는 또 어떻게 할 것인가.김선미 소비자경제부 차장 kimsunmi@donga.com}

《 뿌리를 기록하고 기억한다는 것, 대(代)를 이어 사랑을 실천한다는 것. 나는 미국인 찰스 B 모펫(Moffett·69) 씨의 가족을 통해 그 의미를 생각해보게 됐다. 찰스 씨의 애칭은 찰리였다. 어린 찰리는 대구에서 나환자들과 함께 자랐다. 나환자는 손가락이 잘려 나가고, 눈썹이 없어진다. 치료를 마치고 사회로 나가려 해도 이미 사라진 눈썹은 수치스러운 낙인이다. 찰리의 아버지 하워드 F 모펫(한국 이름 마포화열·1917∼2013) 씨는 나환자들의 머리카락을 눈썹에 이식해 새 삶의 희망을 주었다. 한국 땅에서 45년간 의료 선교사로 헌신하며 계명대 동산의료원을 일궜다. 찰리의 할아버지는 새뮤얼 A 모펫(한국 이름 마포삼열·1864∼1939) 목사다. 26세이던 1890년 내한 후 평양에 1000여 개의 교회를 세운 ‘한국 교회의 아버지’다. 자신이 설립한 평양신학교, 숭실전문학교, 숭의여학교에 대해 일제가 신사참배를 요구하자 자진 폐교했고 이 때문에 미국으로 추방돼 1939년 세상을 떴다. 이 학교들은 훗날 서울에서 장로회신학대, 숭실대, 숭의여대 등으로 재건됐다. 찰리의 삼촌은 고 새뮤얼 H 모펫(한국 이름 마삼락·1916∼2015) 초대 장신대 총장이다. 》 찰리는 이제 백발의 신사다. 30여 년간 글로벌 금융인으로 일했던 JP모건체이스에서 7년 전 은퇴했다. 그는 한국인 입양아들인 대니얼 모펫 씨(27)와 개발도상국 교회들을 돕고 있다. 미국 시카고에 살고 있는 그의 가족이 최근 한국을 다녀갔다. 10일 오후 6시 반. 찰스 씨와 그의 아내 조애나 씨가 먼저 와 있었다. 그들은 우리의 약속 장소를 서울 중구 소공로 조선호텔의 나인스게이트그릴 레스토랑으로 정했다. 유리창 너머로 해가 지는 환구단(조선 고종 때 제단)이 보였다. 찰스 씨는 정중한 태도로 “다시 만나 반갑습니다. 미즈(Ms) 김. 대니얼은 장시간 비행의 피로감으로 오늘 저녁 식사엔 함께 못 왔습니다”라고 했다. 우리는 전날 서울 중구 소파로2길 숭의여대에 새로 생긴 ‘숭의마펫기념교회’ 헌당예배에서 처음 만나 인사를 나눴다. ‘숭의마펫기념교회’는 찰스 씨의 할아버지인 새뮤얼 A 모펫 목사를 기리기 위해 최근 건립됐다.자녀 3명이 모두 한국인 입양아 “조애나, 알아요? 한국전쟁 때 이 호텔이 미군 본부로 사용됐어요. 우리가 신혼여행 때 점심 식사를 한 곳이기도 하고요.” 중국에 살던 찰스 씨 가족은 선교사 가족이라는 이유로 1948년 공산당으로부터 쫓겨나 서울 조선호텔에서 하룻밤을 묵은 후 대구로 내려가 살았다. 찰스 씨는 1960년대부터 미국에서 학교를 다녔고 1981년 신혼여행으로 한 달간 한국을 여행하며 모펫가(家)의 발자취를 찾아다녔다. 찰스 씨는 지갑에서 가족사진을 꺼내 보여 주었다. 그와 아내, 한국인 자녀 세 명이었다. “큰딸 로라예요. 지금 미국 워싱턴대 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해요. 의사였던 아버지(하워드 모펫)가 하늘나라에서 흐뭇해하실 거예요.” 수많은 6·25전쟁 고아, 환자들과 함께 자란 찰스 씨는 조애나 씨와 약혼 때부터 한국인 아이들을 입양한다는 뜻을 모았다. 그렇게 한국인 아들 한 명과 딸 둘을 키웠다. 30세 로라, 27세 대니얼, 19세 줄리아다. “잠깐, 찰리. 신중해야 해요. 지금 당신이 하려는 입양 이야기가 신문에 실려 우리 아이들의 명예를 훼손해서는 안 되니까요”라고 아내가 말하자, 찰스 씨는 “이 에피소드는 괜찮다”며 소개했다. “제가 JP모건 홍콩에서 일할 때 로라를 입양했어요. 어느 날 중국인 여비서가 걱정스럽게 말하더군요. ‘우리 사무실에서 당신을 이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로라는 앞으로 당신을 싫어할 것이고 미국 생활에 적응하기 힘들 거예요.’ 가족의 피부색이 다른 걸 염려한 거죠. 그런데 어떡하나요? 로라가 미국 생활에 완벽하게 적응했는걸요.(웃음)” 막내 줄리아는 찰스 씨 부부가 나온 미 일리노이 주의 명문 기독사학인 휘턴대 1학년으로, 케이팝(K-pop) 팬이다. 찰스 씨의 장인은 휘턴대에서 55년간 물리학과 교수로 일했다. 조애나 씨가 말했다. “어려웠던 때도, 행복했던 때도 입양은 우리 인생에 훌륭한 경험과 사랑이었습니다. 전 세계인들이 딱 5분만 마음의 문을 열고 생각해 봤으면 좋겠습니다. 주변엔 우리 도움을 필요로 하는 아이들이 아주 많다는 걸요.” 그동안 다른 초기 선교사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던 새뮤얼 A 모펫 목사에 대한 재조명이 진행 중이다. 옥성득 미국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 교수는 모펫가 사람들의 편지와 각종 기록을 모아 671페이지 분량의 ‘마포삼열 서한집’(두란노 아카데미·2011년)을 펴냈다. 모펫 가문은 동아일보와도 인연이 깊다. 모펫 목사가 세운 평양 학교들의 서울 재건을 추진한 고 박현숙 여사(1896∼1980·제4, 6대 국회의원)의 남편은 고 김성업 동아일보 평양지국장이다. 일제강점기 동아일보 지국은 식민지 민중의 여론을 대변했다. 동아일보는 1920년 창간 다음 날 모펫 목사의 축사를 지면에 실었다. 모펫 목사는 한국의 애국지사들이 투옥된 105인 사건을 국제사회에 알리기도 했다.조부, 평양에 학교 세우고 복음 전파 학교법인 숭의학원 이사인 백성학 영안모자 회장은 내게 말했다. “모펫 목사가 세운 평양신학교 출신의 고 한경직 목사(1902∼2000)가 제게 숭의학원을 맡아 달라고 부탁해 자료를 찾아보니 모펫 목사가 한국 사회에 기여한 공로가 대단했습니다. 같은 시대 남한에서 복음을 전한 언더우드나 아펜젤러 목사와 달리 모펫 목사는 평양에서 활동해서일까요. 그동안 빛없이 묻혔던 그분의 공을 이제라도 기억해야 합니다.” 찰스 씨 부부와 저녁 식사를 하며 대화를 나누다 보니 환구단 주변에 어둠이 내려앉았다.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찰스 씨에게 무엇을 물려줬을까. “5년 전 한국을 방문했을 때 한 60대 남자분이 절 찾아왔습니다. 전신 화상을 입고 치료비가 없을 때 아버지가 다섯 달 동안 무료로 치료해 주셨답니다. 당시 고마워서 사과 몇 개를 아버지께 드렸다면서 제게 제주의 생수를 감사의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 물 맛이 참 맛있었습니다. 아, 또 있군요. 한국전쟁 때 남한군이 평양으로 진격할 때 어릴 적 평양에 살아 지리에 밝은 아버지가 성경책을 들고 앞장섰더니 평양 주민들이 ‘예수 믿는 사람이냐, 혹시 마 목사님 아느냐’고 물었답니다. ‘네, 마 목사님이 제 아버님입니다’라고 말하자 그들이 ‘마 목사님 아들이 왔다’고 환호성을 질렀답니다. 이보다 더 큰 유산이 있을까요.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통해 다른 사람들을 돕는 사람들에 대한 깊은 존경심을 배웠습니다.” 그의 할아버지는 세상을 뜬 지 67년 만인 2006년 미국에서부터 서울 장신대로 이장됐고, 아버지는 2013년 자신의 유언대로 동산의료원 내 은혜정원에 잠들었다.이젠 한국이 세계에 베풀 차례 찰스 씨의 앞으로 계획이 궁금해졌다. “한국인들이 제 할아버지를 ‘길 앞을 내다보는 사람’이라고 별명처럼 불렀다고 합니다. 저도 어려운 아이들을 도우며 그 뜻을 따르고 싶습니다. 그리고 훗날엔 제 몸의 3분의 1은 평양에, 3분의 1은 대구에, 3분의 1은 휘턴대에 묻히고 싶습니다.” 평양은 그의 할아버지가 복음을 전파한 곳, 대구는 아버지가 헌신한 곳, 휘턴대는 그와 가족들이 다닌 학교다. 아내 조애나 씨는 어릴 적 케냐, 나이지리아 등에서 살았다. 물리학 박사였던 그녀의 아버지가 일부러 오지를 찾아다니며 가르쳤기 때문이다. 이들 부부가 말했다. “한국은 어려운 사람들을 돕기에 유리합니다. 힘든 시절을 겪은 후 놀랍게 성장했기 때문에 넓은 이해심으로 도울 수 있잖아요. 이젠 세계가 한국을 필요로 합니다. 한국이 사랑을 베풀 차례이자 기회입니다.” 찰스 씨는 할아버지로부터 대대로 물려받은 성경책을 이번에 ‘숭의마펫기념교회’에 기증했다. 평양, 중국, 아프리카 등을 다니며 낡아진 책이다. 그는 “이 성경을 보면서 더 많은 사람들이 고통받는 자들을 돕는 마음을 갖기 바란다”며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남북한이 통일되기를 평생 간절히 기도했고, 그것은 나의 기도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18일 찰스 씨가 한국 여정을 마치고 시카고 집에 잘 도착했다는 안부 e메일을 보내왔다. 첨부한 사진은 살아계실 적의 부모님이 응접실에서 책을 들고 환하게 웃고 있는 모습이었다. 찰스 씨는 이 사진에 대한 설명도 잊지 않았다. “아버지 뒤에 걸린 그림은 엘리자베스 키스가 조선의 공주를 그린 거예요.” 영국 출신의 엘리자베스 키스(1887∼1956)는 1919년 한국에 처음 와서 남다른 애정으로 한국을 그렸던 화가다. 가문 대대로 내려오는 한국을 향한 사랑이 나를 숙연케 했다. 열흘 전 찰스 씨 부부는 나와 헤어진 후 춘사월 달이 비추는 환구단 주변을 한참 동안 거닐었다고 조선호텔 관계자가 나중에 말해주었다. 전 세계 아이들에게 부채춤을 가르쳐 주고 싶다면서 부채를 어디에서 살 수 있는지도 물었다고 했다. 예쁜 부채를 꼭 구해서 그들에게 보내 주겠다는 작은 계획이 내게 생겼다.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14만 m²의 전시장 안에 들어서니 흰색 카라꽃들이 일렬로 정열하듯 장식돼 있었다. 흰색의 미니 원피스를 입은 장신의 금발 미녀들도 카라꽃 같았다. 그녀들이 입구에서 나눠주는 ‘데일리 바젤월드’ 신문을 받아들고 크게 심호흡을 했다. 나는 세계 최대 시계박람회인 ‘바젤월드 2015’(3월 19∼26일)에 왔다. 1층 오른쪽에 닛산 자동차를 세워둔 ‘태그호이어’ 부스가, 왼쪽엔 해파리가 가득 헤엄치고 있는 대형 수족관을 설치한 ‘브라이틀링’ 부스가 있었다. 개막날인 19일부터 장 클로드 비베르 루이뷔통모에에네시(LVMH) 회장은 태그호이어 부스에 나타나 깜짝 발표를 했다. “구글, 인텔과 손잡고 스마트 시계를 선보이겠습니다.” 업계 사람들은 “과연 비베르답다”는 반응이었다. LVMH 계열의 또 다른 시계 브랜드인 위블로를 ‘부자들의 세컨드 워치’로 확실하게 포지셔닝시켰던 그는 본능적으로 시대 흐름을 간파하는 것 같다. 그는 “일단 달리는 기차(스마트 시계 트렌드)에 올라타야 아니다 싶을 때 내릴 수 있다”고 했다. 시계 전시회에 생명체가 필요하다는 브라이틀링의 발상도 재밌다. 예년처럼 물고기가 아닌 해파리를 집어넣은 건 시계의 변화상을 표현한 것이리라. 브라이틀링의 테오도르 슈나이더 회장은 바젤월드 기간 내내 밤마다 ‘브라이틀링 파티’를 여는데, 나는 운 좋게도 그와 기념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아시아의 먹자골목(1부), 서구의 위스키바(2부)로 분위기가 바뀌는 동안 그는 업계 사람들과 어울리며 파티를 즐겼다. 바젤월드의 각 부스에서는 시계 전문가들이 소중한 보석을 다루듯 서랍에서 제품을 꺼내 소개해준다. 그들이 건네준 부드러운 흰 장갑을 끼고 세계적 시계들을 감상하다 보면 직감으로 알게 된다. 시계는 예술이요, 철학이요, 자존심이라는 것을. 그리고 우리에게 주어진 인생의 시간을 후회없이 멋지게 써야겠다는 것을….바젤월드 2015 트렌드 올해 바젤월드에서는 눈에 띄는 여성 시계 신제품이 많았다. ‘해리 윈스턴’은 실제 나비의 날개에서 추출한 파우더를 주재료로 나비의 날개가 주는 오묘한 녹색을 다이얼에 담아낸 프리미어 프레셔스 버터플라이 오토매틱 36mm를 선보였다. 태그호이어는 새로운 브랜드 홍보대사인 카라 델레바인의 파격적이면서도 우아한 아름다움을 담은 카레라 카라 델레바인 스페셜 에디션을 내놨다. 파란색은 올해의 히트 색상이었다. ‘브라이틀링’은 전문 다이버의 시계답게 깊은 바다를 연상시켰다. 푸른 다이얼과 푸른 고무로 몰딩 처리한 베젤의 슈퍼오션Ⅱ 44, 슈퍼오션Ⅱ 42를 소개했다. ‘위블로’는 초창기 디자인을 오마주한 클래식 퓨전라인에 파란색을 적용한 클래식 퓨전 블루를 공개했다. 올해 150주년을 맞은 ‘제니스’는 엘리트 칼리버 6150을 출시했다. 3.92mm 두께로 그 본연의 매끄럽고 슬림한 사이즈를 유지하면서 새롭게 디자인된 모델이다. 화려함으로 크게 눈길을 끈 브랜드도 있다. 위블로는 10억 원을 호가하는 최고급 다이아몬드 세팅 기술이 집약된 빅뱅 오트 조아이에 풀 바게트 다이아몬드를 선보였다. 이 제품은 다음 달 한국에 들어온다. ‘태그호이어’는 기능뿐 아니라 디자인 면에서도 한층 업그레이드된 새로운 무브먼트 ‘호이어 01’을 탑재한 카레라 칼리버 호이어 01(CARRERA Calibre Heuer 01)로 높은 ‘가성비’를 자랑했다. 또 ‘브라이틀링’은 브랜드 최초의 콘셉트 시계인 ‘B55 커넥티드’를 선보였는데, 아날로그 시계의 정체성은 유지하면서 스마트폰과 연동해 편리함과 효율성을 증대시킨 다양한 기능을 담아냈다. 바젤=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