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선미]오! 해피 먼데이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9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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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미 소비자경제부 차장
김선미 소비자경제부 차장
지난달 나는 예정된 여름휴가를 쓰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업무가 정말로 많았다.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죄송합니다. 다음 주에 이틀만 휴가를 냈으면 하는데요”라고 말을 꺼내자, 상사는 “14일이 임시공휴일이니 그날까지 쉬세요”라며 워킹맘을 배려하는 대인적 풍모를 보여주었다.

휴가 첫날의 행선지는 뽀로로 캐릭터를 객실 인테리어에 적용한 경기 용인의 한화리조트였다. 뽀로로의 힘은 위대했다. 세 살배기 아들은 열광했다. 그런데 휴가만큼 의미가 컸던 것은 덤으로 얻은 14일(공휴일)이었다.

정부는 올해 광복절 전날인 8월 14일을 임시공휴일로 발표했다. 나는 아이들과 하루 더 보낼 수 있게 돼 서울 송파구 제2롯데월드에 갔다. 정부가 공휴일 지정 이유로 밝힌 ‘국민의 사기 진작과 내수 활성화’란 역사적 사명도 생각했다. 평소 야근을 밥 먹듯 하는 나는 아이들의 사기부터 진작시켜야 했다. 함께 ‘미미네 떡볶이’에서 점심을 먹고, 수족관에서는 커다란 흰 고래를 보았다.

그런데 나처럼 바깥나들이를 하며 임시공휴일을 보낸 사람들이 많았나 보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지난달 14∼16일 연휴 동안 한 주 전 같은 기간과 비교해 대형마트 매출액은 25.6%, 놀이공원 입장객은 45.7% 늘었다. 기재부가 인용한 현대경제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이번 임시공휴일로 소비지출이 2조 원 늘고, 3조9000억 원의 생산유발 효과가 생겼다.

경제는 심리다. 특히 여행 외식 등 경기민감 품목은 소비심리와 실제 소비 간 상관관계가 높다. 올해 ‘광복절 전날 임시공휴일’ 지정은 이 점에서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날 쉬지 못한 근로자도 많다. 영세한 기업일수록 그렇다. 우리나라의 공휴일 법제는 대통령령인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규정’과 국경일, 기념일에 관한 규정이 각각 있다. 미국의 ‘월요일 공휴일 법’(1971년), 일본의 ‘국민의 축일에 관한 법률’(1948년)처럼 국민 전체에 적용되는 포괄적 법이 아니다. 관공서 직원에게 보장되는 휴일을 적용할지 말지는 각 회사 취업규칙에 따른다.

홍익표 의원(새정치민주연합)은 앞서 올 5월 ‘국민의 휴일에 관한 법률’ 제정안을 발의했다. 선진국의 ‘해피 먼데이 제도’(공휴일을 ‘몇 월 몇째 주 월요일’로 지정해 토∼월 사흘 연휴를 보장)를 도입해 휴일을 예측 가능한 기본권으로 삼자는 내용이다. 미국의 현충일은 5월 마지막 주 월요일, 일본 성인의 날은 1월 둘째 주 월요일이다. 한국의 어린이날도 ‘5월 첫째 주 월요일’ 식으로 정하면 토·일요일과 겹친다고 아쉬워하지 않아도 된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반대한다. “실질적 공휴일 확대가 돼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고, 한국 근로자의 노동생산성이 낮다”는 이유다.

‘여가의 경제학’ 측면에서 국내 휴일 법제를 진지하게 들여다볼 때가 됐다. 국정개혁의 최대 이슈인 노동개혁은 결국 일자리와 근로시간을 나누자는 것 아닌가. 한국 경제가 1인당 국민총소득 4만 달러로 도약하려면(지난해 2만8180달러), 국내총생산(GDP)의 절반을 차지하는 민간 소비의 역할이 중요하다. 8월 14일 임시공휴일의 경제 효과가 그것을 보여주었다.

휴가 때 아이들과 ‘어린 왕자’를 읽었다. 여우는 왕자에게 말했다. “사랑이란 상대를 위해 시간을 소비하는 거야.” 나는 근로자가 자신과 가족을 위해 시간을 소비하면 그 이웃과 사회에도 활력을 주고 노동생산성도 높아진다고 믿는다. 휴가는 끝났고, 나는 아이들과 본 흰 고래를 떠올리며 다시 힘차게 일하고 있다.

김선미 소비자경제부 차장 kimsun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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