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매거진]건강한 식단, 적당한 운동, 꾸준한 독서… 간결한 화장품, ‘삶의 균형’을 말하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7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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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솝’의 디자인 스토리

일본 작가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수필 ‘그늘에 대하여’에서 모티브를 따온 일본 교토의 이솝 매장. 이솝의 갈색 화장품 병을 세로로 진열해 세로쓰기를 형상화했다. 이솝 코리아 제공
일본 작가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수필 ‘그늘에 대하여’에서 모티브를 따온 일본 교토의 이솝 매장. 이솝의 갈색 화장품 병을 세로로 진열해 세로쓰기를 형상화했다. 이솝 코리아 제공
1987년 호주 멜버른의 헤어살롱에서 헤어드레서로 일하던 데니스 파피티스 씨는 화학 물질이 들어간 기존의 헤어제품에 회의를 느껴 유기농 재료를 사용한 제품을 만들어봤다. 그것이 호주 화장품 브랜드 ‘이솝’의 시작이다.

파피티스 씨는 그리스의 우화작가 ‘이솝’을 떠올려 간결한 진정성을 화장품에 담고자 했다. 그래서 브랜드 이름도 ‘이솝’으로 정했다.

그런데 이 브랜드의 내공이 심상찮다. 뉴욕 파리 도쿄 등에 충성스러운 ‘이솝 마니아’ 고객층이 두텁게 생겨나고 있다. 갈색 병에 든 제품들이 기다란 나무 벤치에 배열된 모습은 이솝만의 스타일이다. 지적인 비전, 기발한 아이디어가 매장 인테리어와 만난다. 파슬리 씨드 핸드워시, 애완동물 전용 샴푸, ‘뉴욕’과 ‘제네바’ 등 도시 이름을 딴 여행용 화장품 세트와 ‘진저 플라이트’라는 기내용 마사지 제품…. 상품 구성도 선진 라이프스타일 유형이다.

화장품 업계에 이솝이 ‘조용한 지적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간결과 절제’를 내세우는 브랜드 철학과 디자인이 빛난다. 그 돌풍의 요소들을 정리해봤다.

지역의 문화를 창조하는 매장

이솝 매장은 규모는 작지만 매우 스타일리시하다. 감각 있는 건축가에게 의뢰해 도시마다 각기 다른 매장을 선보인다. 콘크리트 벽면을 그대로 노출하기도 하고, 천장을 2층 높이로 높다랗게 만들기도 한다. 짙은 나무 선반, 기다란 벤치, 바닥의 가죽 타일…. 이솝 매장의 인테리어는 외주를 주지 않고 회사 소속 건축가들이 직접 한다. 매장 입지의 가이드라인도 있다. 대로변에서 한 골목 안쪽으로 들어올 것. 이웃엔 꽃집, 특색 있는 옷가게, 책방이 있을 것. 지역의 문화를 창조하기 위해서다.

지혜의 말들


모든 이솝 매장의 벽면에는 흥미롭고 영감을 주는 인용구들이 쓰여 있다. 예를 들어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부인 엘리너 여사의 ‘아름다운 젊음은 우연한 자연 현상이지만, 아름다운 노년은 예술 작품이다’란 말들이. 매장을 방문한 고객에게는 차를 대접하는데, 일본 오사카 매장의 흰색 찻잔 안쪽에는 이 같은 글귀가 있다. ‘아름다움을 보는 능력을 유지하면 늙지 않는다’…. 한국 가로수길 매장에 쓰인 인용구는 ‘경험의 가치는 많이 보는 데 있지 않고, 현명하게 보는 데 있다’이다.

레드와인과 독서의 권장

이솝은 홈페이지(aesop.com)를 통해 고객들에게 건강한 식단, 적당한 운동과 레드와인, 꾸준한 독서 등 균형 잡힌 생활 속에서 제품을 사용할 것을 독려한다. 화장품 브랜드가 삶을 대하는 태도를 이야기하다니. 미국과 유럽 매장에서는 선물 세트를 구매하는 고객에게 스콧 피츠제럴드, 알버트 카뮈 등의 책을 선물한 적도 있다. 창업자이자 대표인 파피티스 씨는 말한다.

“‘위대한 개츠비’를 읽는 게 엘리트주의라고는 할 수 없죠. 그저 기차에서 쉽게 읽을 수 있으니까요. 우리는 설명서에 ‘제품 사용 한 달이면 피부가 개선된다’는 문구를 넣는 대신 책을 선물로 드려 고객이 책을 읽고, 생각하는 시간을 갖고, 그럼으로써 행복을 느껴 그 고객의 피부도 좋아 진다고 생각합니다.”(‘선데이 텔레그래프’와의 인터뷰 중에서)

브랜드 창립 25주년이던 2012년엔 홈페이지에 조용하게 파일 하나를 업로드했다. 25권의 책과 각국의 25군데 서점을 추천한 리스트였다. 로버트 휴스의 ‘죽음의 해안’, 가쓰오 이시구로의 ‘남아 있는 나날들’ 등. 싱가포르에선 이솝의 추천도서를 읽는 북클럽도 생겼다.

오감(五感)의 고객 경험

이솝의 각국 매장에서 나오는 음악은 같다.1년에 두 번 창립자인 파피티스 씨와 본사 음악 담당팀이 1000여 곡을 직접 고른다. 전 매장에는 고객에게 손 관리 서비스를 해 주는 싱크를 둔다. 페퍼민트, 로즈힙, 감초 뿌리 등 세 가지를 섞은 차를 제공한다. 매장 인근 식당과 갤러리 등에 대한 조언을 한다.

이솝 제품 디스플레이의 원칙

이솝의 모든 갈색 병 제품은 가로로 배열할 경우 홀수로 둔다. 그래야 고객 시선이 가운데 제품에 정확히 꽂힌다. 이솝의 브랜드 핵심가치 중 하나는 ‘삶의 균형’이다.

이솝의 대표적 매장들


이솝 교토
이솝 교토
이솝 교토

일본 건축사 ‘심플리시티’의 대표 디자이너인 신이치로 오가타와 씨와의 협업으로 탄생한 시그니처 스토어. 일본 작가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그늘에 대하여’(음예예찬)라는 수필집, 교토 전통의 목재 마치야 타운하우스, 일본 글자의 세로쓰기 등에서 영감을 얻었다.

매장의 커다란 전면 창문을 통해 앤티크 급수 펌프가 보인다. 매장 내부에는 검은 그물망이 빛을 은은하게 분산시키고, 제품은 옆으로 뉘어 세로로 배열돼 있다.

크리에이티브 컨설턴트인 히로코 시라토리 씨는 “검은 그물망은 입구 복도와 쇼핑 공간을 분리시켜주고, 제품의 세로 배열은 캘리그래피 효과를 선사한다”고 말한다.

이솝 호주 멜버른 플린더스 레인
이솝 호주 멜버른 플린더스 레인
이솝 호주 멜버른 플린더스 레인

벽면을 제외한 다른 곳에는 콘크리트와 옻칠을 한 오크나무, 검정색 스틸을 사용해 차분하게 꾸몄다. 그래서 판지라는 소재의 아름다움이 더욱 부각된다.

이솝 호주 노스 멜버른
이솝 호주 노스 멜버른
이솝 호주 노스 멜버른

한때 빅토리아시대 영주의 집으로 사용됐던 고풍스러운 건물을 이솝 매장으로 재탄생시켰다.

매장에는 베네치아풍 분수 3개를 두고 놋으로 만든 수전으로 배수관을 연결해 고객들이 손 관리를 받는 싱크로 활용한다.뉴사우스웨일스 주립 미술관 소장품이었던 실크 오크 서랍장은 매장의 중앙 카운터 역할을 한다.

이솝 미국 뉴욕 노리타
이솝 미국 뉴욕 노리타
이솝 미국 뉴욕 노리타

뉴욕 그랜드 센트럴 터미널 키오스크를 디자인한 뉴욕 출신 건축 설계사 제러미 바부어가 지었다.

매장 건축 때 뉴욕타임스 신문지를 재활용해 신문지도 건축자재로 사용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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