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재영

임재영 기자

동아일보 광주호남취재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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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임재영 기자입니다.

jy788@donga.com

취재분야

2025-11-06~2025-12-06
지방뉴스97%
사건·범죄3%
  • 제주도 ‘신재생에너지 총량제’ 도입 검토

    제주도를 ‘탄소 없는 섬(Carbon Free Island·CFI)’으로 조성한다는 야심 찬 계획에 제동이 걸렸다. 풍력발전과 태양광발전 시설 증가로 신재생에너지 전력 수용 범위가 넘어서면서 태양광 전력 송출과 풍력발전 가동 중단 횟수가 늘고 있다. 이 때문에 신재생에너지 총량제 도입이 논의되고 있다. 제주도는 2015년 5월 LG그룹과 ‘글로벌 에코 플랫폼 제주’ 추진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교환하고 신재생에너지만을 사용하는 CFI 실현을 위한 공동 사업을 하기로 했지만 성과가 없는 실정이다. 당시 풍력 및 태양광 발전을 보완하기 위해 신재생 기저발전원과 안정적 전력 공급 및 전력망 운용을 위한 에너지저장장치(ESS)를 확충하기로 했다. 발전기 통합과 전력망 운영체제를 수립하고 제주지역 운행 차량을 모두 전기자동차로 바꾸기로 했다. 2030년까지 풍력발전은 2.35GW(기가와트), 태양광은 340MW(메가와트) 수준으로 각각 늘려 제주지역 전력수요량의 85∼100%를 신재생에너지로 충당하겠다고 밝혔지만 제대로 이행되지 않고 있다. 이는 태양광과 풍력발전 등으로 얻은 신재생에너지를 저장하는 기술력이 아직 제대로 확보되지 않은 점도 있지만, 치밀한 계획 없이 신재생에너지 용량을 늘리는 데 급급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제주도는 신재생에너지 보급 속도에 비해 ESS 등 관련 기술이 뒤따르지 못하자 올해 하반기 9500만 원을 들여 신재생에너지 발전사업 총량제 도입방안에 대한 연구용역을 시행한다. 제주지역 가용 전력설비 용량은 중앙급전(기존 발전소 공급전력) 발전 910MW, 해저연계선 400MW, 태양광 448MW, 풍력 295MW, 기타 발전 28MW 등 모두 2081MW이다. 이 가운데 실제 전력공급이 이뤄지는 재생에너지 발전출력 비중은 16.2% 수준이다. 신재생에너지 생산이 늘어나면서 제주지역에서는 전력이 남아도는 현상이 빚어졌다. 이에 따라 제주지역 풍력발전기 가동을 중단하는 출력제어 횟수는 2015년 3회에서 2017년 14회, 2019년 46회, 지난해 77회 등으로 급증했다. 올해는 3월 말까지 37회를 기록했다. 전기 수급 상황을 고려하면 제주지역 풍력발전 출력 제한 횟수가 올해 201회, 내년에는 240회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출력제한은 신재생에너지 발전량이 일시에 폭증해 송·배전망과 전력계통 한계치를 초과해 정전 등의 우려가 나타날 때 내려진다. 신재생에너지 출력 제한으로 인해 발전사업자 손실이 발생하고 발전량 기준으로 배당을 받는 주민소득도 감소했다. 문제는 앞으로도 신재생에너지 발전시설이 더 늘어난다는 것이다. 현재 제주에서 인허가 절차가 진행 중인 풍력발전 규모는 1165MW, 태양광발전 규모는 309.6MW에 달한다. 제주도 관계자는 “정부도 출력제어 상황을 해소하려고 해저연계선을 거쳐 신재생에너지를 육지로 역송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며 “무분별한 허가보다는 전력계통 수용능력과 전력거래 자유화 등을 감안해 현실에 맞는 보급 총량을 설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

    • 2021-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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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주도, 전지훈련 유치 활성화 팔 걷어

    제주도가 전지훈련 유치 활성화를 위해 전문가 15명으로 특별전담조직(TF)을 구성해 유치 마케팅에 나섰다. TF에는 기존 제주도와 행정시, 제주도체육회 외에 제주도관광협회가 새로 포함됐다. 제주도는 TF 활동 등을 통해 국내외 실업팀 및 학교 운동부 유치, 유휴 체육시설 발굴 및 활용, 인센티브 제공 방안 등을 마련하고 기관별 역할을 세부적으로 정한다. 대한체육회 등에 협조를 요청해 도쿄 올림픽 축구대표팀 평가전을 제주에 유치할 계획이다. 전지훈련 선수단에 종목별 리그전을 운영하고 제주도관광협회와 함께 여가활동 및 체감형 인센티브를 발굴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지난 겨울시즌처럼 방역 매뉴얼에 따라 입도 전 진단검사를 의무적으로 실시할 예정이다. 고춘화 제주도 문화체육대외협력국장은 “중간 평가를 통해 미진한 부분을 개선하는 등 제주 여건에 맞는 전지훈련 유치 전략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

    • 2021-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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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귀포 ‘법정사 항일운동 발상지’ 오류 가능성

    제주의 대표적인 불교계 항일운동 유적인 서귀포시 ‘법정사 항일운동 발상지’가 실제 위치와 다르게 지정됐다는 지적이 나왔다. 법정사 항일운동 발상지는 법정악 능선 해발 680m에 있다. 불교연구가인 한금순 박사(사학)는 올 2월 학회지인 제주도연구 제55집에 게재한 ‘조선오만분일지형도의 제주도 사찰’ 논문에서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가 펴낸 지도에 표기된 1918년 법정사는 현재 법정사 항일운동 발상지에서 북서쪽으로 200m가량 떨어진 것으로 표기됐다”고 밝혔다. 조선오만분일지형도는 당시 제주의 모습을 세밀하게 보여주는 지도다. 법정사 항일운동은 1918년 10월 7일 새벽예불에 참여한 법정사 승려와 신도 34명이 선봉에 서서 주민 700여 명과 함께 화승총 등으로 무장하고 당시 경찰관 주재소에 불을 지르고 일본인을 구타한 사건이다. 한 박사는 “조선오만분일지형도는 1918년 법정사의 경도, 위도 정보 등 정확한 위치를 확인할 수 있는 자료”라며 “논문이 문화재 구역의 재지정과 항일운동 추모 사업에 도움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

    • 2021-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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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볼래오름-영실은 ‘불교문화의 명소’… 해안가는 원당봉 꼽아

    지난달 25일 한라산국립공원 영실탐방로 매표소 주차장에 들어서니 탐방로와 다른 방향에 ‘존자암지’라고 적힌 팻말과 입간판이 눈길을 끌었다. 입간판 옆으로 난 오솔길을 따라 걷다 보니 1km가량 완만한 오르막길 끝에 아담한 사찰이 자리하고 있었다. 한라산 하천은 대부분 평소에는 말라 있는 건천(乾川)인데 사찰 옆 개울에서 졸졸 흐르는 시냇물 소리가 시원하게 느껴졌다. 대웅전 건물을 지나 경사면 윗부분에 석종 모양의 부도(제주도 유형문화재 제17호)가 있었다. 투박한 현무암 재질의 연꽃 모양이 정겹게 다가왔다. 이 사찰은 조선시대 국성재(國聖齋·나라의 흥성을 기원하는 제사)를 지낼 만큼 위상이 컸던 ‘존자암(尊者庵)’이 있었던 곳이다. 제주대박물관이 발굴조사를 한 뒤 현재의 대웅전, 국성재 건물 등이 들어섰다. 1992년과 1996년 발굴조사 당시 기와, 도자기, 건물터 등을 분석한 결과 존자암은 14∼17세기까지 존재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부도는 고려 말이나 조선시대 초기 제작된 것으로 추정됐다. 사료를 보면 조선시대 관리와 선비들은 한라산을 탐방할 때 대부분 존자암을 들른 것으로 나온다. 홍유손(1431∼1529)이 1507년에 지은 ‘존자암개구유인문’에는 ‘존자암은 비보소로 이름이 세상에 난 지 오래다. 음력 4월 길일을 잡아 세 읍의 수령 중 한 사람을 뽑은 다음 암자에서 제사를 지내게 하고 이를 국성재라 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임제(1549∼1587)가 1578년 쓴 제주 유람기인 남명소승 등에도 존자암에 머물렀다는 내용이 있다.● 불교문화의 명소 오름이 존자암을 품은 오름이 볼래오름(해발 1280m)이다. 볼래오름은 부처가 왔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불래악(佛來岳)’으로 불리기도 했다. 볼래오름에서 한라산 방향으로 병풍바위, 오백장군 등과 거대한 분화구 장관이 펼쳐지는 영실이다. 1960년대 영실에 암자를 세웠던 한 스님은 “영실 명칭은 부처가 고대 인도에서 설법했던 영산회랑 또는 영취산에서 유래했으며 병풍바위인 주상절리 기둥은 부처의 제자인 1250명을 뜻한다는 주장도 있다”며 “볼래오름과 영실분화구 일대는 제주지역 대표적인 불교문화 명소”라고 말했다. 볼래오름, 영실이 산악지대 사찰의 대표적인 오름이라면 해안가에서는 제주시 삼양동 원당봉을 꼽을 수 있다. 고려시대 원당사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원당봉 중턱 터에 5층석탑(보물 제1187호)이 고즈넉하게 자리하고 있다. 안상(眼象·무늬곽) 내부에 조각한 솟아오른 꽃은 고려시대 탑에서 흔히 보이는 특징으로, 제주에서 직접 만든 현무암 재질 석탑이란 점이 학술적으로 가치가 크다. 원당사는 원나라 황실에 공녀(貢女·공물로 바쳐진 여자)로 끌려갔다가 원 순제의 황비가 된 기황후가 태자를 낳기 위해 창건한 사찰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지는데 문헌 고증이나 유물적 근거는 없다. 하지만 법화사, 수정사와 함께 원당사는 원나라가 고려 말 탐라를 직접 지배할 시기에 세워진 중요 사찰이었다. 원당사 터에 새로운 사찰인 불탑사(조계종)가 들어섰고 분화구에는 원당사(태고종), 문강사(천태종)도 세워졌다. 유서가 깊어서인지 사찰들이 원당봉에 자리를 잡은 것이다. ● 고려시대부터 번성한 불교 지난해 말 기준 제주지역 불교 시설은 293곳에 이른다. 제주는 예로부터 ‘당 오백, 절 오백’이라는 말이 내려올 정도로 불교문화와 인연이 깊다. 제주에 사찰이 처음 들어선 기록은 아직까지 나오지 않았지만 삼국시대, 통일신라시대부터 사찰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오성 제주불교사연구회장은 “고려 팔관회에 탐라국이 방물을 바쳤다는 기록이 나오고 고려 문종 11년(1057)에는 내륙의 사찰 창건을 위한 벌목과 조영에 탐라민이 동원되기도 했다”고 말했다. 상당수 노비를 거느릴 정도로 융성했던 사찰은 조선시대 숭유억불 정책으로 쇠퇴기를 맞았다. 이형상(1653∼1733)은 제주목사로 있으면서 신당(神堂)과 사찰을 없앴다는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탄압의 시기를 지나 일제강점기에 제주에서 불교 재건과 함께 사찰이 속속 들어서기 시작했다가 1948년 발발한 ‘제주 4·3사건’으로 사찰 35곳이 초토화되는 등 암흑기를 맞았다. 당시 확인되지 않은 사찰 피해도 수두룩한 것으로 추정된다.● 사찰 입지에 풍수지리 중시 1960년대 이후 사찰이 재건되거나 새로 만들어지면서 오름에 자리를 잡는 사례가 많아졌다. 조선후기 선승인 초의선사(1786∼1866)가 머물렀던 곳으로 기록된 산방굴사가 있는 서귀포시 안덕면 산방산 주변에는 5곳의 사찰이 새로 들어섰다. 사라봉, 베릿네오름, 가시바위, 인정오름, 파군봉, 수산봉, 고내봉, 단산, 토산봉 등에도 사찰이 입지했다. 오름에 입지한 이유는 우선 ‘바람을 감추고, 물을 얻는다’는 장풍득수(藏風得水)의 풍수지리가 밑바탕에 깔려 있다는 분석이다. 물, 방향, 사람 등을 조합해 좌청룡 우백호, 배산임수 등의 풍수적 판단과 함께 기(氣) 흐름을 따라 사찰 터를 잡았다는 것이다. 존자암이 배산임수 형세이고 한라산 골머리오름의 천왕사 역시 옆으로 계곡물이 흘러내리는 곳에 자리했다. 산속인 탓에 물을 얻을 수 있는지가 사찰 터를 정하는 데 중요한 요인이기도 했다. 다만 사찰 풍수는 일반 풍수와 조금 다른 양상을 보였다 일반 풍수가 산 자를 위한 양택(陽宅), 죽은 자를 위한 음택(陰宅)을 구분하는 반면 사찰 풍수는 음택과 양택을 나누지 않는다. 사람과 자연의 조화를 우선 판단하고 수행하는 데 적합한지를 본다는 것이다. 화엄경, 묘법연화경 등에서 묘사하는 극락이나 보살이 상주하는 곳을 사찰 입지로 볼 수 있는데, 시냇물이 흐르고 수목이 있는 골짜기와 숲, 소통이 잘 되는 바른 길이 있는 곳 등이 조건이다. 윤봉택 한국예총 서귀포지회장은 “사찰 터를 정할 때 교통이나 비용 등을 감안하기는 하지만 무엇보다 기(氣)를 중요시한다”며 “기가 강한 곳에 들어서야 사찰이 융성해진다는 이야기가 전해지지만 정진수행과 불자의 정성 등도 중요한 요인이었다”고 말했다.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

    • 2021-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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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주도 “이건희 회장 보유 이중섭 원화 작품 12점 기증받아”

    제주도는 “서귀포시 이중섭미술관이 고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보유하고 있던 천재 화가 이중섭(1916∼1956)의 원화 작품 12점을 기증받았다”고 29일 밝혔다. 기증받은 이중섭 작품은 ‘물고기와 노는 아이들’(수채화) ‘비둘기와 아이들’ ‘섶섬이 보이는 풍경’ ‘해변의 가족’ ‘아이들과 끈’ ‘현해탄’ ‘물고기와 두 어린이’(이상 유화)와 엽서화 3점, 은지화 2점 등이다. 엽서화는 이중섭이 일본에서 활동하던 시절 당시 연인이었던 이남덕 여사에게 보냈던 1940년대 작품이다. 은지화는 서귀포와 관련이 있는 물고기, 아이들을 모티브로 1950년대에 제작한 것이다. 유화인 섶섬이 보이는 풍경은 1951년 서귀포에서 제작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초가 사이로 나목, 전봇대, 섶섬이 어우러져 제주의 평온한 마을 풍경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아이들과 끈 작품은 아이들이 서로 끈을 통해서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는 것을 표현하고 있다. 이런 구성은 다른 작품에서도 자주 발견되며 이중섭 작품의 특징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중섭은 6·25전쟁이 발발하자 1951년 1월 가족과 함께 서귀포에서 1년 남짓 거주했는데 당시 생활이 그의 짧은 생애에서 가장 행복했던 때로 전해진다. ‘이건희 컬렉션’ 가운데 광주 전남 출신 거장의 작품 등 50여 점도 지역으로 오게 됐다. 28일 광주시립미술관과 전남도립미술관에 따르면 이 회장 유족은 김환기, 오지호, 이응노, 이중섭, 임직순 작가의 작품 30점을 광주시립미술관 소장품으로 기증했다. 광주시립미술관은 개관 30주년을 맞는 내년에 기증 작품들을 시민에게 공개할 예정이다. 전남도립미술관은 허백련(진도 출신), 오지호, 김환기, 천경자(고흥 출신) 등의 작품 21점을 기증받아 9월 1일부터 일반에 공개하는 전시회를 열 방침이다.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

    • 2021-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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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주시 구좌읍 ‘비자림로 확장공사’ 올해 재개되나

    삼나무 훼손 논란으로 3년 동안 3차례나 중단된 제주 제주시 구좌읍 비자림로 확장공사가 올해 재개될지 관심이다. 제주도는 환경영향 관련 대책을 보완해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밝혔지만 환경단체 등은 반대 의견을 굽히지 않고 있다. 제주도는 “비자림로 확장공사를 올해 재개할 방침”이라고 27일 밝혔다. 비자림로 확장공사에 따른 환경영향 저감대책을 보완해 10월경 환경부 영산강유역환경청과 최종 협의를 마무리 짓고 공사를 재개할 계획이다. 비자림로 확장공사에 대한 제주도 입장은 최근 제주도의회 임시회의에서 나왔다. 고용호 제주도의회 의원은 도정 질의에서 “비자림로 인근에 새로운 관광지 등으로 차량 통행이 늘어나 교통사고 위험도 높아지고 있어 확장공사는 반드시 필요하다”며 “개발과 보존이라는 프레임을 걷어내고 주민과 관광객, 도민이 공존하는 발전 사업으로 인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원희룡 제주지사는 “주민 숙원 사업인 비자림로 확장공사는 정부로부터 특별교부금을 어렵게 확보해서 공사를 진행했었다”며 “삼나무 구간을 벌채하면서 숲 자원을 훼손한다는 문제 제기와 오해가 있었는데 환경영향 훼손 저감대책에 대한 보완 작업이 마무리되는 10월경 공사 재개를 추진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242억 원을 투입하는 비자림로 확장공사 구간은 대천교차로에서 금백조로 입구까지 2.9km다. 2018년 6월 착공했으나 도로 주변 삼나무 벌채에 반발하는 시민단체의 항의에 부닥쳐 40일 만에 공사가 중단됐다. 제주도는 공사 중단 뒤 전문가그룹에서 건의한 내용을 받아들여 도로 폭을 당초 24m에서 22m로 줄이고 삼나무 숲 우회도로를 개설한 뒤 숲길을 조성하기로 하는 등 벌채 면적을 당초 4만3467m²에서 2만1050m²로 절반가량 줄였다. 이 같은 보완대책을 마련해 2019년 3월 공사를 재개했으나 시민모임과 환경단체 등이 멸종위기 생물인 팔색조, 애기뿔쇠똥구리, 으름난초 등이 발견됐다고 주장하자 영산강유역환경청이 공사 중단을 요청했다. 지난해 5월에는 제주도가 영산강유역환경청과 환경영향 저감대책 협의를 마무리하지 않은 채 공사를 재개했다가 과태료 처분을 받고 다시 중단했다. 비자림로 확장공사 완공 목표는 올 6월이지만 상당 기간 늦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제주도 관계자는 “세 번째 공사 중단 이후 법정보호종 포획과 이주 등 환경영향 저감방안을 꼼꼼히 보완하고 있다”며 “공사를 재개하면 완공까지 2년 정도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제주도의 공사 재개 입장에 대해 환경단체와 시민모임의 반발은 여전하다. 이들 단체는 24일 확장공사장 현지에서 발표한 ‘제주환경선언문’을 통해 “비자림로 숲 파괴와 제2공항, 송악산 개발 등 각종 개발에 시달리고 있다. 무분별한 난개발로 인해 제주의 하늘과 바다, 녹지는 황폐해지고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물의 생존까지 위협받고 있다”고 주장했다.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

    • 2021-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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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추자도 ‘참모자반’ 양식사업 성공 가능성 확인

    제주도 해양수산연구원은 “추자도수협과 공동으로 참모자반 양식 실증사업을 추진한 결과 새로운 소득원으로서 가능성을 확인했다”고 26일 밝혔다. 마른 참모자반은 kg당 3만 원 선에 거래되는 등 미역, 톳, 우뭇가사리와 함께 해녀들의 주 소득원이다. 수중 바위가 하얗게 변하는 갯녹음 확산 등으로 자원이 급감해 수요에 비해 공급이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해양수산연구원은 추자도의 청정한 해양 서식환경을 활용해 지난해 참모자반 양식 실증사업을 했다. 4ha 규모의 양식시설에 종자를 이식해 올해 세 차례 수확한 결과 자연산보다 성장 속도나 크기가 월등하게 높았다. 이번 실증사업에서 참모자반 20t을 수확해 육상에서 건조한 결과 2t의 상품으로 6000만 원의 수입을 올렸다. 이번 실증사업 성공에 따라 해양수산연구원은 추가로 4ha 규모의 양식시설을 설치해 모두 8ha 규모로 확대할 계획이다. 참모자반은 한 번의 종자 이식으로 최소 3년간 수확이 가능하다. 고형범 제주도 해양수산연구원장은 “참모자반은 향토 음식인 몸국의 주재료인 해조류”라며 “다양한 양식 기술을 개발해 추자도의 대표적인 해조 브랜드로 키우겠다”고 말했다.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

    • 2021-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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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법탐방으로 몸살 앓는 한라산 ‘수행굴’

    한라산국립공원의 숨겨진 유적 자원 가운데 하나인 ‘수행굴(修行窟)’이 무분별한 탐방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탐라시대부터 이용됐을 것으로 추정되는 수행굴의 유래와 용도 등을 규명하는 종합적인 학술조사가 이뤄지기도 전에 각종 유물이 사라지기까지 하고 있다.● 유물유적 훼손 심각 17일 오전 제주도세계유산본부와 제주대 박물관 등과 함께 답사한 수행굴 현장은 한라산 명승인 영실을 따라 올라가는 영실탐방로와 거리가 상당히 떨어져 있어 찾아가기가 쉽지 않았다. 과거 벌목꾼이나 목동, 약초꾼들이 다녔을 만한 오솔길 흔적을 따라가다 제주조릿대 숲으로 우회하니 가까스로 해발 1370m의 수행굴 입구에 다다랐다. 굴 입구는 옴팡진 곳에 있어 자칫하면 지나치기 쉬웠다. 제주조릿대로 뒤덮인 굴 외부는 개서어나무가 자라고 있었다. 굴 입구는 어른 1명이 허리를 굽혀서 들어갈 정도의 크기인데 막상 안으로 진입해 보니 허리를 펴고 서도 천장이 닿지 않았다. 내부는 돔형으로 10여 명이 기거하기에 충분한 공간으로 보였다. 굴 입구에서 끝까지는 10여 m, 좌우로는 20m 정도 됐다. 바위 그늘이라고 하기에는 길이가 길고, 동굴이라고 하기에는 다소 짧게 느껴졌다. 굴 끝부분에 뼈 모양이 선명한 길이 70cm가량의 동물 사체가 보였다. 최근까지 누군가가 이용한 흔적으로 보이는 초 2개가 바위틈에서 발견됐다. 굴 바닥에서 기왓장 조각 10여 개와 옹기 조각이 발견됐고 깨진 소주병 조각도 나왔다. 바닥을 파내서 고른 흔적도 있었다. 문제는 수년 전에 발견됐던 토기가 사라진 것이다. 제주대 박물관 관계자는 “3세기경 탐라시대 유물로 추정되는 토기가 있었는데 지금은 보이지 않는다”며 “토기는 수행굴의 역사를 추정할 만한 귀중한 자료”라고 말했다.● 수행굴 학술조사 필요 수행굴은 조선시대부터 기록에 등장한다. 안무어사로 제주에 도착해서 산신제를 지내기 위해 1601년 한라산을 오른 김상헌(1570∼1652)이 남긴 ‘남사록’에 수행굴에 대해 ‘굴중가용이십여인(窟中可容二十餘人) 고유고승(古有古僧) 휴량(休糧) 입서지처야(入棲之處也)’라는 기록이 있다. 이를 두고 그동안 ‘굴속에 20여 명이 들어갈 만하다. 옛날 고승 휴량이 들어가 살던 곳이다’라고 해석됐지만 ‘쌀미(米)’자가 들어간 법명이 없다는 지적이 제기되면서 ‘휴량’은 스님 이름이 아니라 쉬거나 기거했던 곳이라는 해석도 있다. 이 기록에 따라 2001년 굴이 발견될 당시 수행굴로 불렸다. 1901년 외국인으로는 처음으로 한라산 정상에 올라 높이 1950m를 측정한 독일인 지크프리트 겐테(1870∼1904)는 여행기에서 “벌목꾼들이 살고 있는 굴에서 하룻밤을 보냈다”고 회고했다. 수행굴에서 잉크병으로 추정되는 파편도 발견되면서 겐테가 머물렀던 굴로 추정됐지만 반론도 있다. 겐테 기록에 따르면 그가 머물렀던 굴은 해발 1070m이고 나무꾼 23명과 수행원 12명이 한꺼번에 들어가서 부엌을 따로 차릴 정도의 공간이었다. 수행굴과는 해발 고도에서 300m나 차이가 나고 굴 규모도 다르다는 지적이다. 강문규 전 한라산생태문화연구소장은 “한라산을 오른 이들이 추위와 비바람을 피하는 등 상당히 오랜 기간 이용했을 가능성이 높다”며 “더 이상 훼손되기 전에 역사적 가치를 규명하기 위한 종합적인 조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

    • 2021-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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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라산국립공원 속 숨겨진 유적 자원 ‘수행굴’…훼손 전 학술조사 필요

    한라산국립공원의 숨겨진 유적 자원 가운데 하나인 ‘수행굴(修行窟)’이 무분별한 탐방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탐라시대부터 이용됐을 것으로 추정되는 수행굴의 유래와 용도 등을 규명하는 종합적인 학술조사가 이뤄지기도 전에 각종 유물이 사라지기까지 하고 있다.● 유물유적 훼손 심각 17일 오전 제주도세계유산본부와 제주대 박물관 등과 함께 답사한 수행굴 현장은 한라산 명승인 영실을 따라 올라가는 영실탐방로와 거리가 상당히 떨어져 있어 찾아가기가 쉽지 않았다. 과거 벌목꾼이나 목동, 약초꾼들이 다녔을만한 오솔길 흔적을 따라가다 제주조릿대 숲으로 우회하니 가까스로 해발 1370m의 수행굴 입구에 다다랐다. 굴 입구는 옴팡진 곳에 있어 자칫하면 지나치기 쉬웠다. 제주조릿대로 뒤덮인 굴 외부는 개서어나무가 자라고 있었다. 굴 입구는 어른 1명이 허리를 굽혀서 들어갈 정도의 크기인데 막상 안으로 진입해보니 허리를 펴고 서도 천정이 닿지 않았다. 내부는 돔형으로 10여 명이 기거하기에 충분한 공간으로 보였다. 굴 입구에서 끝까지는 10여m, 좌우로는 20m 정도 됐다. 바위그늘이라고 하기에는 길이가 길고, 동굴이라고 하기에는 다소 짧게 느껴졌다. 굴 끝부분에 뼈 모양이 선명한 길이 70㎝ 가량의 동물 사체가 보였다. 최근까지 누군가가 이용한 흔적으로 보이는 초 2개가 바위틈에서 발견됐다. 굴 바닥에서 기왓장 조각 10여 개와 옹기조각이 발견됐고 깨진 소주병 조각도 나왔다. 바닥을 파내서 고른 흔적도 있었다. 문제는 수년 전에 발견됐던 토기가 사라진 것이다. 제주대 박물관 관계자는 “3세기경 탐라시대 유물로 추정되는 토기가 있었는데 지금은 보이지 않는다”며 “토기는 수행굴의 역사를 추정할만한 귀중한 자료”라고 말했다.● 수행굴 학술조사 필요 수행굴은 조선시대부터 기록에 등장한다. 안무어사로 제주에 도착해서 산신제를 지내기 위해 1601년 한라산을 오른 김상헌(1570~1652)이 남긴 ‘남사록’에 수행굴에 대해 ‘굴중가용이십여인(窟中可容二十餘人) 고유고승(古有古僧) 휴량(休糧) 입서지처야(入棲之處也)’는 기록이 있다. 이를 두고 그동안 ‘굴속에 20여 명이 들어갈 만 하다. 옛날 고승 휴량이 들어가 살던 곳이다’라고 해석됐지만 ‘쌀미(米)’자가 들어간 법명이 없다는 지적이 제기되면서 ‘휴량’은 스님 이름이 아니라 쉬거나 기거했던 곳이라는 해석도 있다. 이 기록에 따라 2001년 굴이 발견될 당시 수행굴로 불렸다. 1901년 외국인으로는 처음으로 한라산 정상에 올라 높이 1950m를 측정한 독일인 지그프리트 겐테(1870~1904)는 여행기에서 “벌목꾼들이 살고 있는 굴에서 하룻밤을 보냈다”고 회고했다. 수행굴에서 잉크병으로 추정되는 파편도 발견되면서 겐테가 머물렀던 굴로 추정됐지만 반론도 있다. 겐테 기록에 따르면 그가 머물렀던 굴은 해발 1070m이고 나무꾼 23명과 수행원 12명이 한꺼번에 들어가서 부엌을 따로 차릴 정도의 공간이었다. 수행굴과는 해발 고도에서 300m나 차이가 나고 굴 규모도 다르다는 지적이다. 강문규 전 한라산생태문화연구소장은 “한라산을 오른 이들이 추위와 비바람을 피하는 등 상당히 오랜 기간 이용했을 가능성이 높다”며 “더 이상 훼손되기 전에 역사적 가치를 규명하기 위한 종합적인 조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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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주도, 여성폭력 방지정책 시행대책 마련

    제주도가 여성폭력에 대한 예방교육과 선제적 대응, 피해 지원 등을 위해 여성폭력 방지 정책 시행 계획을 마련했다. 도는 16억7000만 원을 들여 37개 사업을 추진한다.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전문적인 상담과 성범죄 영상물 초기 삭제, 법률 지원 등을 위해 ‘제주 디지털 성범죄 상담소’를 열었다. 폭력 피해가 발생했을 때 도움받기가 어려운 여성 장애인 및 이주여성 지원과 구조를 위해 전담 상담소 운영을 강화한다. 제주시와 서귀포시 합동점검반, 1366제주센터에서 공중화장실 내 불법 촬영기기 점검도 벌인다. 또 성매매로 유입된 청소년들을 구조하고 자활까지 지원할 수 있도록 ‘성매매 피해 아동·청소년 지원센터’ 개소를 추진하고 있다. 여성폭력 피해자 상담기관과 장애인 성폭력 피해자 보호를 위한 여성복지 복합 건물도 마련할 계획이다. 체육 현장에서 발생하는 언어·신체 폭력 및 성폭력 등 인권 침해로부터 안전한 스포츠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제주도, 제주도체육회, 제주여성인권상담소·시설협의회 등이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지난해 경찰이 접수한 제주 지역 여성폭력 사건은 가정폭력 822건, 성폭력 481건, 데이트폭력 92건, 성매매 35건, 스토킹 2건 등 모두 1432건으로 집계됐다.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

    • 2021-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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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태평양전쟁으로 제주 민간인 억울한 희생

    태평양전쟁으로 미군과 일본군 사이에 놓인 제주 주민들이 어처구니없이 희생됐지만 지금껏 역사적인 조명은 물론 사실 규명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일본 방위청 방위연구소 전사실 자료 등에 따르면 제주에서 ‘결7호 작전’을 벌이던 일본군은 ‘5만 명의 노인, 부녀자, 유아를 본토에 소개(疏開)시키고 그 외는 군과 작전 행동을 같이해 적을 격파하는 것으로 결정’이라는 기록이 나온다. 주민에 대한 소개는 식량 부족을 해소하기 위한 전략이라고 하지만 동굴진지 등 군사시설에 대한 정보가 미군에 넘어가는 것을 사전에 막기 위한 방책이기도 했다. 실제 1945년 5월 7일 제주∼목포 간 정기 여객선인 고와마루(晃化丸·383t)호는 제주에 거주하는 일본인을 포함해 소개령이 내려진 주민 700여 명을 태우고 목포로 가다 추자도 부근에서 미공군기의 공습을 받고 침몰했다. 당시 탑승객 500여 명이 숨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건으로 제주 주민에 대한 소개가 중단됐다. 당시 일본은 본토에 대한 미군 폭격으로 생활 터전을 잃은 제주 출신 이재민이 고향인 제주로 돌아가는 것을 막기도 했다. 고와마루호 침몰 사고 외에도 한림항, 수월봉 등지에서 발생한 거대한 폭발 사고로 인근 민가까지 피해가 발생했지만 진상은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다.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

    • 2021-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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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제강점기 오름 곳곳에 군사기지 구축… 아픈 과거의 역사 떠올라

    16일 오전 한라산국립공원 탐방안내소를 지나 어승생악(해발 1169m) 정상으로 향했다. 청룡(靑龍)처럼 한라산 백록담을 지키는 동쪽 오름이 성판악이라면 어승생악은 서쪽을 호위하는 백호(白虎)와 같은 이미지다. 탐방로 땅바닥에는 참개별꽃, 남산제비꽃이 활짝 피었고 가막살나무, 단풍나무, 윤노리나무가 연둣빛으로 물들면서 봄이 곁에 왔음을 알렸다. 어승생악 정상에 이르자 사방이 한눈에 들어왔다. 한라산 정상 방면으로 어리목계곡이 웅장하게 다가왔고, 바다 쪽으로는 제주시 한림항 앞 비양도가 손에 잡힐 듯 선명했다. 어승생악 정상에 자연 풍경과 대비되는 시멘트 시설 2곳이 있었다. 3m 남짓한 계단을 타고 내려가 보니 직사각형 창으로 서부지역 해안까지 시야에 들어왔다. 태평양전쟁(1941∼1945년) 말기 미군과의 전투에 대비해서 만든 일본군 토치카(중화기를 배치하기 위해 콘크리트 등으로 만든 진지)였다. 당시 제주에 주둔해 일본군을 총지휘한 58군사령부가 토치카를 비롯해 오름 곳곳에 동굴진지(갱도진지)를 만든 것이다. 한라산 지역뿐만이 아니다. 해안에서도 일제강점기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다. 서귀포시 성산일출봉은 국내외 관광객이 즐겨 찾는 명소지만 남쪽 절벽 아래에 볼썽사나운 인공 동굴이 여러 개 있다. 입구의 가로세로 크기가 각각 3m 내외로 길이는 들쭉날쭉했다. 일본 해군특공기지가 주둔하면서 어뢰정기지로 썼던 동굴이다. 미군 함정이 접근하면 1인용 어뢰정으로 돌진해 폭파시키는 작전용이었다. ‘가미카제(神風)’ 비행기처럼 ‘바다의 자폭특공대’인 셈이다. 서귀포시 대정읍 송악산 해안 동굴진지는 진지 구축 작업만 했을 뿐 실제로 사용되지는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오름 곳곳에 군사기지 구축 태평양전쟁이 막바지에 이르면서 제주는 일본군이 구축한 군사시설로 가득했다. 일본 본토를 사수하기 위해 제주를 최후 방어진지의 하나로 선택했기 때문이다. 일본군이 점령했던 사이판이 함락되면서 미군의 일본 본토 상륙에 대비한 방어 전략이 1945년 2월 세워졌다. ‘결호작전(決號作戰)’으로 불린 본토 사수 전략에 제주를 ‘결7호 작전 지역’으로 정한 것이다. 일본은 당시 결1호 홋카이도(北海道) 및 지시마(天島), 결2호 도호쿠(東北) 등으로 구분했는데 일본 본토를 제외한 지역은 제주가 유일하다. 제주가 일본군 중요 거점이 되면서 58군사령부 휘하에 제96사단, 제111사단, 제121사단, 독립혼성 제108여단 등의 병력이 요새를 구축하고 미군과의 일전을 준비했다. 1945년 3월 3000여 명이던 주둔 병력은 8월 종전 무렵 7만5000여 명으로 급증했다. 당시 제주도 인구가 23만여 명인 점을 감안하면 상당한 인력이었다. 일본군 군사시설 배치도 등을 보면 주요 저항진지 54곳, 전진거점 18곳, 위장진지 21곳, 최후 저항진지 11곳 등 104곳의 진지를 구축했다. 이들 진지 가운데 95개가 오름에 있다. 오름에 갱도를 파서 동굴진지를 만들었는데 일(一)자형, 왕(王)자형, 수직형, 미로형 등 구조가 다양했다. 오름마다 2, 3개에서 많게는 수십 개의 동굴진지가 구축됐다. 전투, 매복, 관측, 통신, 숙식 등의 용도였다. 섯알오름, 셋알오름에는 비행장을 지키는 고사포진지가 들어섰으며 성산일출봉을 비롯해 송악산, 서우봉, 삼매봉, 수월봉 등 해안가 오름에는 해군특공기지용 동굴이 만들어졌다. 해안에서 방어하다가 밀리면 내륙인 한라산에서 전투를 벌인다는 전략에 따른 것이었다. 이들 진지 구축에 제주 주민들이 동원됐다. 제주대 탐라문화연구소의 2005년 구술채록에 따르면 주민들은 노역 공출이라는 명목 아래 오름으로 나가 흙과 돌을 실어 날랐다. 허기에 시달리면서 위험한 작업을 했다. 일본군은 자동차용 알코올을 얻기 위한 고구마를, 화약원료인 감태와 항공연료로 쓰기 위해 소나무뿌리를 수탈하는 데 열을 올렸다. 동굴진지 구술채록에 참여했던 한 연구원은 “지역주민들은 대부분 단순 노무 작업을 했는데 이는 동굴진지의 구조를 감추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며 “미군이 상륙했을 때 주민들이 동굴 구조를 알려줄 위험이 있다고 판단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동굴진지를 위해 단단한 암반이 있는 오름에는 폭파 작업을 하면서 굴을 만들었고, 무너지기 쉬운 화산쇄설층의 오름에는 육지에서 차출한 광부를 동원해 갱목으로 지지대를 만들면서 진지를 구축한 것으로 알려졌다.● 동굴진지 활용 방안 필요 1945년 6월 일본 오키나와(沖繩)가 함락되면서 정세가 급박하게 전개됐다. 다음 타깃이 제주라고 판단한 일본군은 포병대, 공병대, 전차부대 등의 배치계획을 세우던 중 ‘항복 선언’을 했다. 항복 이전에 미군이 제주에 상륙했다면 10만 명 이상의 민간인이 희생된 오키나와처럼 참변이 발생했을 수 있다. 일본군이 제주 주민들을 볼모로 삼아 최후 결전의 소모품으로 썼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광복 이후 일본군의 전쟁 무기는 미군에 넘어갔지만 동굴진지, 고사포진지 등의 구조물은 여전히 남았다. 동굴진지가 농사용 창고로 활용되기도 했고 갱목으로 썼던 나무를 빼다가 집을 짓는 데 쓰기도 했다. 제주시 사라봉, 별도봉 진지동굴은 한때 청소년들의 놀이공간이었는데 일부는 쓰레기장으로 변했다. 중산간(해발 200∼600m)지대 오름에 구축됐던 동굴진지는 시간이 흐르면서 입구가 수목으로 덮이거나 무너져 내린 곳도 많다. 10일 성산일출봉 인근 해안에서 만난 80대 해녀 할머니는 “물질을 하다가 몸이 얼면 나와서 굴(동굴진지)에 불을 피워 몸을 녹이곤 했다”며 “성게 알을 채취하는 작업을 하면서도 굴을 이용했는데 지금은 가지 않고 현대식 어촌계 건물을 이용한다”고 말했다. 어승생악, 성산일출봉, 셋알오름, 가마오름, 서우봉, 송악산 등지의 동굴진지는 등록문화재가 됐고 비지정 동굴진지 가운데 일부는 올레코스나 오름탐방 코스에서 볼 수 있다. 강만생 제주역사문화진흥원장은 “2011년부터 2013년까지 비등록 일제 군사시설 전수조사를 통해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후 후속 조치가 없다”며 “아픈 과거도 역사인 만큼 교훈적인 공간이 될 수 있도록 활용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

    • 2021-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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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드림타워 카지노 내달 개장… 제주 관광 활력소 될까

    제주지역 카지노 업계에 지각변동이 예고되고 있다. 제주시 노형동 복합리조트인 드림타워로 확장 이전하는 외국인 전용 카지노가 다음 달 개장한다. 이 카지노 영업장 면적은 5367m²로, 제주지역 최대 규모인 서귀포시 안덕면 제주신화월드 복합리조트의 랜딩카지노(5581m²)와 비슷한 규모다. 한라산을 중심으로 남과 북에 각각 대형 카지노가 들어선다. 또 드림타워를 운영하는 롯데관광개발㈜은 “서귀포 중문단지 내 영업장 면적이 1175m² 규모인 엘티(LT)카지노를 드림타워로 이전, 확장하며 ‘드림타워 카지노’로 이름이 바뀐다”고 밝혔다. 카지노기구 검사, 폐쇄회로(CC)TV 승인 등을 거쳐 다음 달부터 영업할 계획이다. 롯데관광개발은 카지노 영업장 확장 이전을 위해 ‘제주도 카지노업 관리 및 감독에 관한 조례’에 따른 카지노산업 영향평가, 제주도의회 의견 청취 등의 절차를 밟았다. 영향평가를 하며 ‘여론조사 조작’ 의혹이 제기됐지만 제주도의 최종 결심을 얻어냈다. 제주도 관계자는 “카지노 영향평가 당시 여론조사 의혹과 관련해서 경찰 수사가 진행 중이지만 현재까지 특이사항이 없고 이번 변경허가 처분으로 도민 80% 고용 및 지역 기여사업 추진 등을 통해 경제 활성화를 기대할 수 있다는 점 등을 감안해 결정했다”고 말했다. 새롭게 선보이는 드림타워 카지노는 게임을 위해 테이블 148대, 슬롯머신 190대, 전자테이블게임 71대 등을 갖춘다. 세계 최대 규모의 복합리조트 운영 경력이 있는 최고운영책임자(COO)를 영입했고 마카오 등지에서 마케팅 전문가를 채용했다. 그동안 중단한 카지노 인력 채용도 재개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상황에 맞춰 순차적으로 1000여 명을 고용할 방침이다. 증권업계 등에서는 게임기구 규모 등을 감안해 드림타워 카지노의 연간 매출을 2000억∼3500억 원 규모로 예상했다.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된 이후 정상 운영을 한다고 가정했을 때이다. 결국 카지노 영업은 코로나19 사태가 최대 변수이다. 국내 외국인 전용 카지노는 모두 16곳으로 이 가운데 절반인 8곳이 제주에 있다. 코로나19 사태 등으로 외국인 방문이 급감하면서 8곳 가운데 4곳이 현재 휴업 중이다. 지난해 카지노 매출액은 690억 원 규모다. 2019년 1903억 원에 비해 64%가량 감소했으며 올해도 사정은 금방 나아지진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김기병 롯데관광개발 회장은 카지노 이전 허가 이후 입장문을 통해 “여행업, 항공전세기 사업, 크루즈 사업, 시내면세점 등에서 쌓아온 관광객 유치 노하우를 드림타워 복합리조트에 쏟아붓겠다”고 밝혔다. 김 회장은 또 “코로나19로 침체된 관광산업에 활력소가 되는 것은 물론 지역 상생과 공헌, 인재 양성 등에 책임을 다하는 향토기업이 되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

    • 2021-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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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드림타워 카지노’ 내달 개장…제주 카지노업계 ‘지각변동’ 예고

    제주지역 카지노업계에 지각변동이 예고되고 있다. 제주시 노형동 복합리조트인 드림타워에 확장 이전하는 외국인 전용 카지노가 다음달 개장한다. 이 카지노 영업장 면적은 5367㎡로, 제주지역 최대 규모인 서귀포시 안덕면 제주신화월드 복합리조트의 랜딩카지노(5581㎡)와 비슷한 규모다. 한라산을 중심으로 남과 북에 각각 대형 카지노가 들어선다. 또 드림타워를 운영하는 롯데관광개발㈜는 “서귀포 중문단지 내 영업장 면적이 1175㎡ 규모인 엘티(LT)카지노를 드림타워로 이전, 확장하며 ‘드림타워 카지노’로 이름이 바뀐다”고 밝혔다. 카지노기구 검사, 폐쇄회로(CC)TV 승인 등을 거쳐 다음달부터 영업할 계획이다. 롯데관광개발은 카지노 영업장 확장 이전을 위해 ‘제주도 카지노업 관리 및 감독에 관한 조례’에 따른 카지노산업 영향평가, 제주도의회 의견 청취 등의 절차를 밟았다. 영향평가를 하며 ‘여론조사 조작’ 의혹이 제기됐지만 제주도의 최종 결심을 얻어냈다. 제주도 관계자는 “카지노 영향평가 당시 여론조사 의혹과 관련해서 경찰 수사가 진행 중이지만 현재까지 특이사항이 없고 이번 변경허가 처분으로 도민 80% 고용 및 지역 기여사업 추진 등을 통해 경제 활성화를 기대할 수 있다는 점 등을 감안해 결정했다”고 말했다. 새롭게 선보이는 드림타워 카지노는 게임을 위해 테이블 148대, 슬롯머신 190대, 전자테이블게임 71대 등을 갖춘다. 세계 최대규모 복합리조트 운영 경력이 있는 최고운영책임자(COO)를 영입했고 마카오 등지에서 마케팅 전문가를 채용했다. 그동안 중단한 카지노 인력 채용도 재개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상황에 맞춰 순차적으로 1000여 명을 고용할 방침이다. 증권업계 등에서는 게임기구 규모 등을 감안해 드림타워 카지노 연간 매출을 2000억~3500억 원 규모로 예상했다.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된 이후 정상 운영을 한다고 가정했을 때이다. 결국 카지노 영업은 코로나19 사태가 최대 변수이다. 국내 외국인전용 카지노는 모두 16곳으로 이 가운데 절반인 8곳이 제주에 있다. 코로나19 사태 등으로 외국인 방문이 급감하면서 8곳 가운데 4곳이 현재 휴업 중이다. 지난해 카지노 매출액은 690억 원 규모다. 2019년 1903억원에 비해 64% 가량 감소했으며 올해도 사정은 금방 나아지진 않을 전망이다. 김기병 롯데관광개발 회장은 카지노 이전허가 이후 입장문을 통해 “여행업, 항공전세기 사업, 크루즈사업, 시내면세점 등에서 쌓아온 관광객 유치 노하우를 드림타워 복합리조트에 쏟아 붓겠다”고 밝혔다. 김 회장은 또 “코로나19로 침체된 관광산업에 활력소가 되는 것은 물론 지역상생과 공헌, 인재양성 등에 책임을 다하는 향토기업이 되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임재영기자 jy788@donga.com}

    • 2021-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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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주 테마파크 관람기차 빗길 탈선… 관광객 등 탑승 37명중 22명 부상

    제주시 조천읍 대흘리 에코랜드 테마파크에서 관람 및 관광용 기차가 선로를 이탈하면서 전도됐다. 기차에는 기관사 1명과 37명의 관광객이 탑승했는데 22명의 경상자가 발생했다. 사고는 12일 오후 2시 반경 일어났다. 4량의 객차로 연결된 기차가 시속 9km 안팎의 속도로 내리막 곡선 구간을 운행하다 앞쪽에 있던 3량이 선로를 이탈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소방구조대는 부상자를 가까운 병원으로 옮겼으며 에코랜드 측에서도 버스를 이용해 사고 탑승객을 이송했다. 기관사는 경찰에서 “내리막 구간에서 브레이크를 잡았지만 제대로 듣지 않고 빗물에 미끄러지면서 왼쪽으로 넘어졌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기관사 박모 씨(64)를 업무상 과실치상 등의 혐의로 입건했다. 제주=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

    • 2021-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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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주도, 공공와이파이 기반 IoT 서비스 추진

    제주도는 “제주시 동문시장과 서귀포시 매일올레시장에서 와이파이 기반 사물인터넷(IoT)서비스가 가능하도록 8월 말까지 와이파이 기기를 고도화할 계획”이라고 12일 밝혔다. 이 시범서비스는 관광객과 도민들이 주로 이용하는 장소에서 사용자의 편의성을 높이고 지역경제 활성화를 도모하기 위한 것이다. 별도 내비게이션을 구동하지 않더라도 공항에서 전통시장까지 길 안내를 받을 수 있으며 시장 주차장 주차감지센서를 통해 주차정보 확인이 가능하다. 주차 가능 면수를 파악해 여유가 없으면 주변 다른 주차장으로 이동할 수 있다. 특히 와이파이 기반 도보 지도로 제작한 ‘상가위치안내서비스’를 이용해 사진 등이 포함된 상호 및 품목별 상가를 검색하고 현재 위치에서 원하는 상가까지 길 안내를 받을 수 있다. 윤형석 제주도 미래전략국장은 “효율적인 사업 추진을 위해 2024년까지 6000개 설치를 목표로 추진 중인 공공 와이파이사업과 병행한다”며 “와이파이 활용 서비스가 대폭 확장될 수 있도록 다양한 아이디어를 수렴하겠다”고 말했다.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

    • 2021-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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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주 4중 추돌, 화물차 브레이크 과열이 원인인듯”

    3명이 숨지고 59명이 다친 제주대 입구 사거리 4중 추돌 사고의 원인이 8.5t 화물차의 브레이크 과열 때문으로 추정되고 있다. 7일 제주동부경찰서 등에 따르면 화물을 싣고 제주시 산천단 내리막길을 주행하던 8.5t 화물차가 제주대 입구 사거리에서 앞에 있던 1t 트럭과 버스 2대를 잇달아 들이받았다. 경찰은 내리막길에서 브레이크를 연속해서 밟으면 패드와 라이닝 등이 가열돼 제동력을 상실하는 ‘페이드’ 현상이 있었던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블랙박스 영상에는 사고 직전 내리막길에서 잠시 정차했다가 출발하는 장면이 있다”며 “제주항의 적재 시간에 맞추기 위해 무리하게 운전했는지 확인 중”이라고 말했다. 운전자 A 씨(41)는 전날 오후 4시경 서귀포시 안덕면 지역에서 한라봉 등의 감귤류를 싣고 제주항으로 가기 위해 제주대 입구 사거리 방면으로 가고 있었다. A 씨는 1월부터 제주에서 화물차를 운전했으며 사고가 난 노선은 처음 운행했다. 경찰은 A 씨에 대해 교통사고처리특례법(과실치사 및 과실치상) 위반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이번 사고로 제주대 학생 31명이 크고 작은 부상을 입었다. 이수인 제주대 학생복지과장은 “사고 학생들에게 심리상담을 진행하고 출석과 중간고사에서 불이익이 없도록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제주=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

    • 2021-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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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주도, 야간 해산물채취 제한… 위반시 어업정지-과태료 부과

    제주에서 야간 불빛을 이용해 고기를 잡는 행위가 금지된다. 제주도는 “어업인으로 등록되지 않은 주민의 해산물 채취 시간과 장비를 제한한다”고 7일 밝혔다. 마을어장에서의 조업은 일출 전 30분부터 일몰 후 30분 내로 한정했다. 특수 제작된 두 갈래 이상 변형된 갈고리 등의 어구를 비롯해 수경과 호흡기, 오리발 등 잠수용 장비 사용도 금지했다. 어류와 문어, 게류, 고둥, 오징어, 낙지 등만 잡을 수 있고 마을어장에 있는 패류와 해조류, 해삼 등의 정착성 해산물을 채취할 수 없다. 이를 위반하면 신고어업(맨손어업)을 하는 주민은 어업정지, 미신고 주민은 500만 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현재 제주지역 맨손어업 276건에 대해 증명서가 발급됐다. 양홍식 제주도 해양수산국장은 “그동안 마을어장에서 야간에 불빛을 이용한 수산자원 포획 행위로 맨손어업인과 어촌계 간 분쟁이 자주 발생했다”며 “이번 조치로 바닷가나 수중에서 해산물 채취를 둘러싼 분쟁이 수그러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

    • 2021-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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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주4·3사건 도화선 된 3·1절 발포’ 당시 증언 나왔다

    한국 현대사의 비극 중 하나인 ‘제주4·3사건’. 해마다 4월이면 제주도는 추모와 상념에 젖는다. 수많은 민간인이 희생돼 마을마다 가정마다 4·3사건에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연관되지 않은 곳이 없다. 사건의 기폭제는 당시 주민 2만5000명에서 최대 3만 명이 운집했던 1947년 3·1절 기념행사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대부분 의견을 같이한다. 이날 기념행사에서 벌어진 경찰의 발포는 4·3사건의 도화선이었다. 정부가 2003년 발간한 제주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 등 그동안 나온 기록에 따르면 당시 3·1절 행사를 마치고 시위대가 해산하는 과정에서 사건이 벌어졌다. 제주시 관덕정에서 기마경찰이 탄 말에 어린이가 차여 소란이 일어났고, 이를 항의하는 시위대에게 경찰이 발포하며 민간인 6명이 숨지고 6명이 중상을 입었다. 이 사건으로 관공서가 참여한 총파업이 발생하고 좌우익이 첨예하게 대립하면서 제주 섬을 소용돌이로 몰아넣었다. 이처럼 당시 기마경찰이 탄 말에 어린이가 다치는 사건이 대규모 유혈 사태의 서막이었으나, 지금까지 정확한 내막은 밝혀지지 않았다. 그런데 동아일보가 최근 이에 대한 새로운 증언을 확보했다. 제주시 노형동의 현임종 씨(87)는 “엉뚱한 행동으로 경찰이 발포하는 사건으로 비화됐다”며 “그 일이 없었으면 4·3사건이 일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고 말했다. 현 씨의 증언에 따르면 동네 사람을 따라 3·1절 행사가 열린 관덕정으로 갔는데 당시 제주북국민학교에서 기념행사가 끝난 뒤 시위대가 “미 제국주의자 물러가라” “양과자 먹지 말자” 등의 구호를 외치며 관덕정에서 서쪽으로 진행했다. 시위대 본진이 빠져나가고 군중이 삼삼오오 흩어지는 과정에서 ‘우연한 행동’이 발생했다. 한 청년이 시위대 현수막을 펼치는 데 썼던 나무 꼬챙이로 옆을 지나던 기마경찰의 말 엉덩이를 찔렀다고 한다. 이에 놀란 말이 앞발을 들어올리면서 여관집 아들(당시 5세 추정)이 넘어졌다는 얘기다. 이후 상황에 대해서는 진상조사보고서 등에 내용이 실렸다. 보고서에 따르면 기마경찰이 어린이가 차인 사실을 몰랐는지 그대로 가려고 하자 시위대가 “저놈 잡아라”라고 외치면서 항의했다. 일부는 돌멩이를 던지면서 경찰서로 달아나는 기마경찰을 쫓아갔는데, 군중이 몰려들자 경찰서를 습격하는 것으로 오인하고 망루에서 경찰이 발포한 것이다. 경찰 발포에 항의하는 총파업이 3월 10일부터 벌어졌는데 제주도 등 관공서뿐만 아니라 통신기관, 운송업체, 교사, 학생 등 각계각층에서 참여했다. 여기에 대응하기 위해 육지에서 경찰이 증파되고 우익단체가 제주에 대거 들어오면서 좌익과 우익 갈등이 최고조에 이르렀다. 결국 1948년 4월 3일 남로당 제주도위원회 제주도인민유격대(무장대)의 봉기로 4·3사건이 본격화했다. 현 씨는 “4·3사건으로 보금자리가 불태워지고, 한라산 광야로 내몰려 추위와 굶주림을 견뎌야 했다. 빗발치는 총탄 세례에도 목숨을 부지했으나 당시 업고 다니던 어린 조카를 잃었다”며 “꼬챙이로 말을 찌르는 일이 없었다면 그 난리를 겪지 않아도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을 가끔 한다”고 말했다. 현 씨는 기업은행과 신용보증기금 등에서 근무했고, 천주교 제주교구 평신도회장과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자문위원 등을 지냈다.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은 4·3사건을 ‘1947년 3월 1일을 시작으로 1948년 4월 3일 발생한 소요 사태와 그로부터 1954년 9월 21일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력충돌과 진압과정에서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으로 규정했다. 이 특별법에 따라 정부 심의가 이뤄진 4·3사건 관련 희생자는 사망 1만422명, 행방불명 3631명, 후유장애 196명, 수형인 284명 등이고 유족은 8만452명이다.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

    • 2021-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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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주서 퇴근길 버스-트럭 4중 추돌… 3명 사망 62명 중경상

    제주에서 4.5t 대형 화물차가 버스 두 대와 1t 화물차를 잇달아 들이받아 3명이 숨지고 60여 명이 다치는 사고가 발생했다. 6일 제주 동부경찰서와 제주소방서에 따르면 이날 오후 5시 59분경 제주시 아라동 제주대 입구 사거리에서 4.5t 화물차가 정차해 있던 1t 화물차와 버스 두 대를 잇달아 들이받고 버스정류장을 덮쳤다. 이 사고로 버스에 타고 있던 박모 씨(71·여) 등 2명과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던 김모 씨(28)가 숨졌다. 버스 승객 등 62명이 크고 작은 부상을 입고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고 있다. 트럭에 타고 있던 운전자 2명도 크게 다쳤다. 버스 두 대에는 퇴근길 시민과 학생 60여 명이 타고 있었고, 승객을 태우기 위해 정류장에 잠시 정차 중이었다. 사고를 낸 4.5t 트럭은 산천단에서 제주시내 방향으로 내리막을 달리던 중이었으며 브레이크가 제대로 작용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사고 현장에는 유리 파편이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었고 화물차는 사고 충격으로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산산조각 났다. 사고가 난 버스 한 대는 길 옆 가드레일을 넘어 숲으로 굴러 떨어진 뒤 뒤집혔다. 소방당국은 소방인력 70여 명과 장비 18대를 동원해 현장 수색과 구조 작업을 벌였다. 경찰 관계자는 “퇴근시간 승객이 타고 있던 버스와 버스정류장을 덮치면서 부상자가 많이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며 “트럭 운전사를 상대로 브레이크 오작동 여부 등 정확한 사고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고 말했다.제주=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

    • 2021-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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