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덕

김순덕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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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김순덕 칼럼니스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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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분야

2025-11-07~2025-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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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 칼럼]박정희 대통령이 지하에서 울고 있다

    “북한공산주의자들은… 모든 전쟁도발 행위를 즉각 중단하고, 소위 ‘무력에 의한 적화통일이나 폭력혁명에 의한 대한민국의 전복을 기도해온 종전의 태도를 완전히 포기하겠다’는 것을… 실증해야 합니다.” 1970년 8월 15일 박정희 대통령이 광복 25주년 경축사에서 발표한 ‘평화통일구상선언’이다. 그때는 어려서 몰랐다. 자료를 보니 1970년대는 지정학적 격변과 함께 나라의 명운이 갈린 절체절명의 시기였다. 북은 우세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무장게릴라를 잇달아 남파해 남에선 사실상 비정규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1969년 ‘아시아 안보는 아시아 스스로’를 강조한 닉슨 독트린을 내놓은 미국은 이듬해 한국과는 사전 논의도 없이 주한미군의 3분의 1 감축안을 발표했다. 경제도 순탄치 않았다. 글로벌 경제의 장기 불황에 물가 상승, 무역수지 적자, 실업률 증가의 3중 위기에 1969년 15.9%나 되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1970년엔 절반으로 뚝 떨어져 있었다. 군사력도, 경제력도 북에 못 미치던 그때, 박 대통령은 그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통일을 위한 ‘획기적이고 보다 현실적인 방안’을 제시할 용의가 있음을 밝혔고 1년 뒤 남북적십자회담을, 1972년에는 7·4 남북공동선언을 성사시켰다. “민주주의와 공산독재의 어느 체제가 국민을 더 잘살게 할 수 있는지 선의의 경쟁을 하자”는 담대한 제안은 자유민주체제 대한민국의 명명백백한 승리로 결판이 났다. 남북대화로 시간을 벌면서 초법적 조치로 정치를 옥죄어 경제성장과 국군 현대화 작업에 매진한 결과다. 사방천지를 돌아봐도 빛이 보이지 않던 그 무렵과 또 한 번의 동북아 격랑이 몰아닥친 2015년은 묘하게 겹쳐진다. 신형대국관계를 선언한 중국이 미국과 패권을 다투고, 미국의 아시아 재균형정책에 편승한 일본이 군사대국화에 나선다 해도 박근혜 대통령은 아버지 박 대통령만큼 백척간두에 서 있는 처지는 아닐 것이다. 1972년 미중 데탕트 과정에서 미국은 동아시아에 대한 군사적 개입을 줄이면서 한국에 대한 안보공약을 약화시키고 남북 간 화해를 독려하는 전략을 추구했다고 전재성 서울대 교수는 분석한다. 박 대통령은 이런 미국의 지역전략을 염두에 두고 7·4 남북공동성명을 추진하는 한편, 북한에 대응해 경제와 국방을 키우는 전략적 노련함을 발휘했다. 2015년 박 대통령은 미중 간의 민감한 전략관계를 의식하고 외교정책을 펴는 것 같지가 않다. 1970년대의 아버지처럼 초법적 조치로 뜻을 관철할 수 없고, 아버지를 능가할 만한 의지와 예지(叡智), 리더십을 발휘할 수 없다면 유능한 두뇌라도 빌려야 한다. 그러나 지금의 대통령은 아버지처럼 듣기 싫은 소리, 나쁜 소식도 가리지 않고 듣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장관들도 보고서 잘 만드는 데 신경을 쓸 뿐, 몸 사리지 않는 유능한 관료와 참모는 아예 ‘수첩’에 없다. 설사 대통령이 북에 밀사를 보내려 한들 나설 사람이 있을지도 의문이다. 아버지가 다져놓은 군(軍)조차 장성부터 졸병까지 성(性)군기 문란에 방산비리, 폭력과 나태가 만연하다. 공격을 당하고도 ‘원점타격’은커녕 국가안보를 지킬 수 있을지 국민이 되레 걱정할 정도다. 구상부터 마무리까지 거의 열 달간의 산고 끝에 마지막 관계자회의에선 고성이 오갈 만큼 격론을 벌였다는 1970년의 평화통일구상선언처럼, 2015년의 8·15 경축사도 유능한 참모진의 정밀한 작업을 거치는 건지 알 수가 없다. 광복 70년을 맞는 대한민국 대통령의 미래비전이 전날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발표할 담화의 사죄 여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것부터 납득되지 않는다.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동북아 평화협력구상,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등 박 대통령의 외교정책은 동북아 큰 흐름과 미중, 미일, 중일 관계의 변화를 포착하고 전략적 함의를 읽어내지 못했다고 전문가들은 큰 걱정을 하고 있다. 신뢰할 수 없는 상대와도 국익을 찾는 것이 외교일진대 신뢰가 있어야만 가능하다는 ‘신뢰외교’는 외교를 하지 않겠다는 소리나 마찬가지다.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참모진을 두지 않은 대통령은 점점 국민과도 동떨어져가는 모습이다. 1970년대 그 엄혹한 시절을 헤쳐 나라를 지키고 키워냈던 아버지 박 대통령이 아무의 도움도 못 받는 따님을 보며 지하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김순덕 논설실장 yuri@donga.com}

    • 2015-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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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 칼럼]문재인의 셀프디스는 자학 개그인가

    유머에도 등급이 있다. 듣는 이들이 유쾌하게 웃는 유머가 최상급이다. 분위기가 좋아진다면 말하는 사람은 좀 망가져도 괜찮다. 오히려 사회적 지위가 높을수록 매력과 감동을 줄 수 있다. 그래서 정치인 조크의 제1법칙이 스스로 망가지는 자학 개그다. 프롬프터만 보고 연설한다는 비판에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2009년 백악관 출입기자 만찬에서 “청중이 웃는 동안 기다린다”고 짐짓 프롬프터의 괄호 속 지문을 읽어 청중을 뒤집어지게 만든 적도 있다. ‘강한 카리스마를 보여드리지 못해서 죄송합니다’라는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의 ‘셀프디스’를 보는 순간, 나는 자학 개그인줄 알았다. 셀프디스는 자신에게(self) 결례(disrespect)한다는 의미의 인터넷 신조어인데, 의원들의 자기반성 메시지를 담은 혁신 캠페인 1탄이라는 거다. 이걸 만든 새정연 홍보위원장이 ‘처음처럼’ ‘참이슬’의 상표명을 지은 유명 광고인 손혜원 씨다. 그는 “자기반성이 지나치게 무겁고 진지할 수 있다는 우려에 일부러 셀프디스라는 다소 유머스러운 용어를 썼다”고 했지만 암만 내용을 읽어봐도 반성이 없다. ‘인권변호사로 일하다 보니 사람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는다’ 같은 문재인의 오글거리는 자기자랑 뿐이다. 화제를 일으키는 것이 목적이면 이 캠페인은 성공했다. 하지만 듣는 이를 불쾌하게 만드는 유머는 최하등급밖에 못 준다. “못생겨서 죄송합니다”가 유머로 성공한 이유는 ‘못생겼지만 괜찮다’는 이심전심이 있어서이지만 문재인의 카리스마 부재엔 그런 공감대도 없다. 자학 개그도 사회적 지위나 호감도가 낮은 사람이 하면 되레 역효과라는 진화심리학의 연구 결과를 손 위원장은 모르는 모양이다. 이런 셀프디스를 유머시리즈 아닌 반성 캠페인으로 내놓았다는 건 당의 의사결정구조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뜻이다. 자청해서 벌을 서겠다는 정치인이 히죽거리며 자기자랑이나 하는 것은 국민에 대한 예의도 아니다. 박주선의 ‘분당, 분당 해서 죄송합니다’, 김현의 ‘내가 누군지 알아? 외쳐서 죄송합니다’ 등등 조롱 섞인 패러디가 정말 재미있고 신선해서 쏟아지는 줄 아는가. 선거를 앞둔 이미지 쇄신용이라면 또 모른다. 2012년 광고인 조동원 씨가 “나는 한나라당(새누리당의 전신)을 지지하지 않는 사람”이라면서도 일을 위해 당적을 갖고, 당명과 상징 색까지 바꿔 결국 선거 승리에 기여한 것도 사실이다. 적어도 그는 당이 달라질 것 같다는 ‘진정성의 사기’라도 쳐서 표를 얻어냈지, 알고 보면 괜찮다고 우겨대진 않았다. 정치마케팅이란 ‘정치와 마케팅의 결혼’이어서 유권자가 원하는 바에 맞춰 당의 정책을 만들어 파는 일이라는 걸 모르지 않는다. 1994년 영국 노동당 대표직을 맡은 뒤 ‘새 노동당, 새 영국’의 기치를 만들어내 1997년 18년 만에 정권을 찾아온 토니 블레어는 정치마케팅을 최대한 이용한 정치리더였다. 당의 이데올로기를 배신했다는 비판을 받으면서도 그는 정치시장 변화와 소비자 요구를 적극 수용해 수구좌파 노선을 버리고 ‘제3의 길’을 찾아낼 수 있었다. 이번 새정연의 셀프디스엔 진정성은커녕 유권자의 요구를 반영하는 정치마케팅 개념도 없다. 선거마다 깨져서 지지도가 20%대에 불과한 정당이면 뼈를 깎으려 해도 깎을 뼈가 남아있지 않아 절치부심(切齒腐心)을 해도 부족할 판이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신뢰를 회복하려면 어떻게 변해야할지 진지한 고민도 없이, 그냥 잘 봐달라고 유머 섞어 우기는 건 정치 희롱이자 국민 우롱이다. 새정연의 민주정책연구원이 최근 ‘영국 총선 분석’에서 “노동당은 꼴통 보수당 지지자를 설득할 필요도 없고, 기업친화적 정책을 쓸 필요도 없다는 ‘망상의 정치’에 빠져있다”고 한 지적이 새정연에 딱 들어맞을 정도다. 손 위원장이 인터뷰에서 밝혔듯 “나라를 위해 새정연을 돕겠다”는 마음이라면 반성문부터 다시 만들기 바란다. 진짜 잘못을 빼놓는 셀프디스는 반성이랄 수 없다. 문재인에게 강한 카리스마가 있었다면 이데올로기도, 능력도 한물 간 친노의 ‘도구’로 간택되지도 않았다. 혁신위원회라는 대리기구를 통해 친노패권주의를 사수하는 문재인의 반성 없이는 새정연의 정권교체 가능성은 멀어질 것이 뻔하다. 그런데도 셀프디스나 장난처럼 만든다면 강남좌파 또는 보수를 자처하는 손 위원장은 새누리당의 ‘세작’ 소리를 들어도 할 수 없을 것이다.김순덕 논설실장 yuri@donga.com}

    • 2015-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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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자원외교도, 감사원 감사도 정권 따라 춤춰서 되겠나

    3월부터 석 달간 한국석유공사, 한국가스공사, 한국광물자원공사의 해외 자원개발 사업을 들여다본 감사원은 어제 “8개국 현지 감사 결과 자원개발 사업을 왜 하는지 의문이 들었다”고 밝혔다. 자원의 안정적 확보를 위해 정부가 1984년부터 169개 해외 사업에 35조8000억 원을 투자했으나 성과는 미미하다는 것이 ‘해외 자원개발 사업 성과 분석’ 중간발표다. 석유만 봐도 최근 13년 동안 국내에 들여온 물량이 우리나라 연간 수입량의 0.2%(224만 배럴)에 불과해 국내 시장의 수급 안정에 기여하지 못했다. 해외 자원개발이 ‘밑 빠진 독’이 된 데는 역대 정부의 책임이 무겁다. 보유국의 반출 통제 등으로 자원의 국내 도입이 곤란해지자 노무현 정부는 단순 지분 매입도 해외 자원 확보로 인정했다. 자원개발 공사들이 경제적 타당성은 외면한 채 지분 인수로 외형 확대에 나서도록 길을 터 준 셈이다. 이명박 정부가 대통령의 형과 측근을 내세워 27조8000억 원을 자원외교에 퍼붓자 이들 공사는 사업 추진 과정의 위험 요인을 축소 은폐했고, 내부 통제 장치도 입을 닫았다. 2007년 이후 이번까지 7차례 자원개발 감사를 한 감사원도 책임을 피할 수 없다. 2012년 4월 감사에선 5대 전략 광물의 자주 개발률이 2003년 18.2%에서 2011년 29%로 증가하는 등 일정 부분 성과를 거뒀다고 정권의 입맛에 맞는 발표를 했다. 이번 감사에서 “각 공사들이 수익성 없는 48개 사업에 46조6000억 원을 추가 투자할 계획이어서 재무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결론을 낸 것은 박근혜 정부의 해외 자원개발 구조조정을 뒷받침하려는 의도가 아닌지 의문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회고록에서 “자원 외교는 그 성과가 10∼30년에 걸쳐 나타나는 장기적인 사업”이라고 했다. 부실 사업은 정리해야 마땅하지만 에너지 안보를 위한 국가 정책이 정권에 따라 춤을 춰서는 곤란하다. 해외 자원개발 사업의 효율성을 높이되 판단 기준은 오로지 국익이어야 할 것이다.}

    • 2015-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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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 칼럼]의리없는 자 심판해달라…대통령의 ‘배신 트라우마’

    ‘배신의 정치’가 세계적으로 유행할 줄은 몰랐다. 지난주 뉴차이나TV가 유튜브에 올린 뉴스 제목이 ‘그리스 부채 위기, 치프라스의 배신?’이다. 국가부도 사태를 맞은 알렉시스 치프라스 총리가 추가 구제금융 대가로 긴축 개혁안을 요구한 채권단에 반대하자며 국민투표를 벌였는데, 정작 “반대한다”에 지지가 쏟아지자 더 센 개혁안을 제출해 그리스 사람들이 배신감을 느낀다는 거다. 프랑스의 사회당 대통령 프랑수아 올랑드도 사회주의의 배신자로 간주된다. 지난달엔 의회를 거치지 않고 서비스산업 자유화법을 발표해 버렸다. 규제 철폐, 노동법 간소화 같은 전임 우파 정부에서 추진하다 막혔던 개혁을 밀어붙인다고 강성 좌파 의원들은 난리다. 치프라스와 올랑드가 지지 세력으로부터 ‘배신’ 소리를 듣는 정책은 글로벌 무대에선 ‘개혁’이라고 불리는 것들이다. 2003년 독일 노동개혁에 나섰던 사민당의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도 똑같은 비판을 받았다. 내 편이라고 믿었던 정치 리더가, 고통은 줄이고 혜택은 키우겠다던 공약을 뒤집고 시장 친화적 구조개혁에 앞장서다니 다음 선거에서 심판받아 마땅하다고 유권자는 주장할 수 있다. 슈뢰더가 개혁 2년 만에 앙겔라 메르켈 기민당 대표에게 정권을 잃은 것도 그 때문이었다. 지금 유럽의 돈줄을 쥐고 그리스와 프랑스에 긴축 재정을 강조하는 메르켈도 극적인 배신을 통해 우뚝 선 정치인이다. 동독 출신인 자신을 ‘나의 소녀’라고 아끼며 첫 통독 내각에서 여성청소년 장관에 발탁해준 헬무트 콜 총리한테 1998년 정치자금 스캔들이 터지자 “콜의 시대는 갔다”고 비난하는 글을 일간지에 기고해 당을 발칵 뒤집어 놨다. 결국 그는 정치 스승을 정계에서 몰아내면서 2000년 기민당 대표, 2005년 첫 여성 총리가 됐다. 지난해 84세의 노(老)정객이 회고록에서 “메르켈을 키운 것이 내 인생 최대 실수다. 내가 킬러를 데려왔다”고 고백한 걸 보면 배신의 트라우마는 쉽게 가시지 않는다는 걸 알 수 있다. 메르켈에게는 구국의 일념이었는지 몰라도 콜의 눈에는 ‘자기 정치’였을 것이다. 그래도 그는 “선거에서 심판해 달라” 같은 자살폭탄을 공개적으로 터뜨리진 않았다. 메르켈의 배신이 없었다면 기민당의 개혁과 집권, 그리고 오늘의 독일이 가능했을까. 박근혜 대통령이 ‘배신의 정치’를 지적한 6·25의 충격이 내게는 가시지 않는다. 측근에게 배신당한 부친의 기억 때문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도 없다. 하지만 미국의 조직 컨설턴트인 제임스 크란츠는 배신을 조직 변화와 리더십의 필수 요소로 보았다. 시대와 환경이 변하면 제도 역시 변해야 한다. 개혁은 안온한 현상유지에 대한 배신이다. 리더가 새로운 비전과 개혁을 제시할 때 조직은 이를 배신으로 받아들이고, 이에 리더는 배신감을 느낄 수 있다. 박 대통령이 공무원연금 개혁을 추진했을 때도 그랬을 것이다. 거꾸로 리더가 미처 보지 못한 진실을 알리는 행위가 배신으로 비칠 수도 있다. 그리스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예수의 마지막 유혹’에서 유다를 배신자 아닌 하나님 뜻의 조력자로 해석했다. 그 신뢰를 저버린 행위가 더 큰 목적을 위한 ‘선한 배신’이라면 개인적 감정으로 받아들이지 말아야 한다는 게 크란츠의 지적이다. 문제는 배신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다. 사람을 못 믿고, 사람과의 긴밀한 접촉을 꺼리고, 자신은 완벽한데 남들은 왜 의리를 지키지 못하는지 도덕적 심판과 경직된 사고에 빠지기 쉽다. 이런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것도 리더의 할 일이다. 해법은 정서적 접촉을 더 많이 하는 것이라는 크란츠의 보고서를 보면서, 나는 상처 깊은 대통령을 떠올렸다. 유승민 전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위헌성 있는 국회법 개정안을 야당과 합의 처리한 일에 대해서는 정치적 책임을 져야 했다고 본다. 그러나 박 대통령이 당 대표 시절 선거운동에 나선 것을 놓고 “당선 기회를 달라고 당과 후보를 지원하고 다녔지만 돌아온 것은 정치적, 도덕적 공허함만이 남았다”며 “배신의 정치를 선거에서 국민이 심판해 달라”고, 사적 감정을 공적 복수로 풀겠다는 데는 백번을 생각해도 공감하기 어렵다. 대통령을 사리사욕 때문에 배신하는 정치인이라면 국민이 용서하지 않는다. 하지만 아무도 그러지 않았는데 홀로 배신감에 떠는 대통령을 보고 싶지는 않다. 30년도 더 지난 과거사에 사로잡혀 누구도 어떤 말도 못하게 하는 대통령이라면 나라의 불행이다.김순덕 논설실장 yuri@donga.com}

    • 2015-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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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 칼럼]이병기 실장, “안 된다” 말하고 사표 내시라

    정호성 청와대부속비서관의 귀엣말에 귀를 쫑긋 세운 듯한 박근혜 대통령. 4월 21일자 이 한 컷만큼 의미심장한 대통령 사진도 없다. 성완종 리스트에 연루된 이완구 국무총리가 중남미 순방 중인 대통령에게 사의를 표명한 다음 날이었다. 청와대 ‘문고리 3인방’ 중 하나인 정호성의 긴급보고 사진과 함께 나온 대통령 메시지가 “검찰은 정치개혁 차원에서 수사하라”와 “매우 안타깝고 총리의 고뇌를 느낀다”는 소회였다. 총리의 고뇌? 국민의 분노는 어쩌고? 대통령이 16분 발언 중 12분간 ‘배신의 정치’에 대해 맹폭격한 지난주, 사람들은 서로를 쳐다보며 “누구냐” 물었다. 정치권 전체와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까지 공개적으로 질타할 필요가 있다고 누가 직언했는지, “아니 되옵니다” 말리지는 않았는지, 아무도 어쩌지 못했다면 “돌아온 것은 정치적, 도덕적 공허함만이 남았다”는 어법도 틀린 원고를 누가 썼는지 궁금해했다. 사전에 누구와도 협의하지 않았다는 보도가 믿기지 않아서다. 대통령 메시지 담당 비서관이 정호성이다. 청와대수석들도 놀라게 한 문제의 원고는 대통령이 직접 썼지만 정호성이 자료 수집을 도왔다는 뉴스에 나는 그 사진을 떠올렸다. 2012년 대통령선거 직전 정수장학회 논란이 일었을 때 당시 박 후보에게 정수장학회의 정당성을 강조한 원고를 써준 사람도 정호성이라는 게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의 전언이다. 안대희 정치쇄신위원장이 과거사 사과 메시지를 전했는데도 후보는 엉뚱한 쪽지를 읽어 선거캠프가 발칵 뒤집혔다는 거다. 대통령 귀를 붙들 수 있는 막강 파워맨에게 대통령 발언이 가져올 결과를 다각도로 예상 분석하고 수위를 조정할 실력도, 의지도 없다면 심각하다. 대통령은 ‘일개 심부름꾼’으로 여기지만 국민한테는 나라의 명운이 걸린 문제일 수 있다. 경륜과 식견을 갖춘 수석들을 놔두고 초선의원 시절 비서에 의지하는 건 어른이 우유병에 매달리는 것과 다름없다. 리더의 궁극적 책임은 사람들을 리드해 목표를 이루는 것이지 도덕적 심판도 아니다. “대통령으로서 국민이 준 권한과 의무를 국민을 위하는 길에만 쓸 것”이라더니 이런 인력 낭비, 세금 낭비가 없다. 더구나 정호성은 청와대 문건 사태 때 “배후에 김무성 유승민이 있다”고 했다는 ‘십상시’ 음종환 행정관과 대학 동기이기도 하다. 실체 없는 사건으로 밝혀졌지만 참모의 참모까지 집권당 지도부를 음모론 시각으로 보는 태도가 대통령에게 영향을 미치지 말란 법도 없다. 이럴 때 나서야 할 사람이 넉 달 전 ‘소통(疏通)병기’로 취임한 이병기 비서실장이다. 군 출신 노태우 대통령 밑에서도 “각하, 김근태는 빨갱이가 아닙니다”라고 직언한 경력이 있어 박 대통령한테도 진언할 만한 인사라며 야당에서도 반색을 했다. 그가 국정원장 때 간부 인사에 개입했던 3인방 중 한 사람을 질책했다는 후문이 돌면서 “문고리 권력 임자 만났다”는 소리까지 나왔다. 지금처럼 당청 간이 살벌하고 앞이 보이지 않을 때 이 실장은 설령 대통령의 레이저를 맞더라도 할 말을 해야 한다. “국민이 불안해하고 있다. 대통령의 개혁과제를 위해서도 국회 협조는 꼭 필요하다. 유승민을 청와대로 불러 ‘잘해보자’고 하는 것이 큰 정치”라고 말할 사람이 이 실장 말고는 보이지도 않는다. 이제는 대통령이 웃어도 무섭다는 민심을 전할 사람도 이 실장뿐이다. 그런데 그가 청와대 왕따라는 말을 풍문으로 들었다. 제1, 2부속실 역할을 다 맡은 정호성은 문건 사태 전보다 막강해졌고 이 실장은 대통령과 독대도 못 한다는 믿을 수 없는 얘기도 나돈다. 정호성이 아는 대통령의 ‘생얼’과 정보를 이 실장은 알지 못해 김무성 대표와 함께 신세 한탄하는 처지라는 거다. 청와대에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니라면 왜 죽음을 각오하지 않는지 묻고 싶다. 어차피 사표 낼 각오면 명색이 비서실장이 대통령에게 “이제는 3인방을 내보내야 한다”고 왜 말 못 하는지, 내가 내는 세금이 아깝다. 정호성을 거쳐야 하는 서면보고 말고 장관 수석의 대면보고를 받으면 세상이 달리 보일 거라는 진언도 해주었으면 좋겠다. 몇 달 쉬고 또 비굴한 벼슬을 할 욕심이 아니라면, 목에 칼이 들어와도 “그건 안 된다”고 할 말을 하는 공복(公僕)이 박근혜 정부에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김순덕 논설실장 yuri@donga.com}

    • 2015-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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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화해의 물꼬 튼 韓日정상, ‘새로운 미래’로 이어가야

    서울과 도쿄에서 어제 한국과 일본이 각각 마련한 ‘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 축하행사’의 공동 슬로건은 ‘함께 열어요. 새로운 미래를’이었다. 일본 정부 주최로 열린 서울의 행사에 참석한 박근혜 대통령은 “올해를 한일 양국이 새로운 협력과 공영의 미래를 향해 함께 나아갈 수 있는 전환점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아베 신조 총리는 한국 정부 주최의 도쿄 행사에서 “50년간 우호 발전의 역사를 돌이켜보고 앞으로 50년을 내다보며 함께 손을 잡고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자”고 했다. 냉랭한 양국 관계를 고려하면 양국 정상의 교차 참석은 화해를 향한 출발로서 의미가 작지 않다. 서울과 도쿄의 리셉션에는 각각 700여 명과 1000여 명의 양국 인사들이 참석해 성황을 이뤘다. 두 나라 정상이 미래지향적 관계 발전을 강조했지만 미묘한 차이를 감출 순 없었다. 박 대통령은 “가장 큰 장애 요소인 과거사의 무거운 짐을 화해와 상생의 마음으로 내려놓을 수 있도록 만들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며 일본의 과거사 결자해지(結者解之)를 촉구했다. 반면 아베 총리는 과거사 언급 없이 “한국과 일본의 협력 강화, 한미일 3국의 협력 강화가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평화와 안전에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중국의 급부상이라는 아태지역 세력 전이(轉移)에 대응하는 한일, 한미일 3국의 안보협력과 이를 통한 전략적 이익에 방점을 둔 것이다. 두 정상 모두 ‘신뢰’를 힘주어 말하면서도 현재의 갈등을 극복하고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공감대는 드러내지 않아 앞으로 갈 길이 쉽지 않아 보인다. 어렵게 성사된 양국 정상의 수교 50주년 행사 교차 참석과 윤병세 외교부 장관의 첫 방일로 한일 관계가 풀릴 분위기는 일정 부분 조성됐다. 그러나 한일이 과거와 현재를 외면하면서 새로운 50년을 함께하는 동반자가 되기는 어려운 일이다. 특히 과거사를 비롯한 대부분의 현안은 정상이 만나 돌파구를 찾아야 해결이 가능하다. 박 대통령은 아베 총리의 특사로 방한한 누카가 후쿠시로 일한의원연맹 회장을 접견하면서 “아베 총리가 1965년 이후 일본 역대 내각이 견지해 온 인식을 확실히 계승하게 되길 기대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한일 정상이 모처럼 나눈 ‘간접 대화’가 한일 관계 개선으로 이어지려면 정상회담을 적극 추진해 구체적 미래 비전 논의에 들어갈 필요가 있다. 1973년 일본 땅에서 납치사건을 겪었으나 1998년 일본의 오부치 게이조 총리와 함께 ‘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을 위한 공동선언’을 발표했던 김대중 대통령처럼, 박 대통령과 아베 총리도 50년 후를 내다보는 파트너십을 공동 모색한다면 역사에 남을 수 있을 것이다. 아베 총리는 지난해 네덜란드에서 열린 한미일 3국 정상회의에서 박 대통령에게 “이번 회담이 미래 지향적인 발전의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가 석 달 후 위안부 강제동원을 인정한 고노 담화 검증을 밝혀 한일 관계를 다시 격랑으로 몰아넣은 바 있다. 일본 언론이 한일 정상의 교차 참석에도 위안부 문제 해결과 정상회담 실현이 불투명하다며 신중한 반응을 나타낸 것도 한일 간 불신의 깊이를 보여준다. ‘새로운 미래’가 잔칫날 덕담으로 그치지 않으려면 양국 지도자가 행동으로 실천해야 한다. ‘중요한 이웃’인 한국과 일본의 국리민복(國利民福)과 동북아 평화 안정에 기여하는 것이 책임 있는 국가지도자의 시대적 사명이다.}

    • 2015-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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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유엔은 北인권사무소 여는데 한국은 北인권법도 없으니

    북한의 참혹한 인권 침해 상황을 조사해 기록하고, 반(反)인도적 범죄의 책임 소재를 규명할 유엔 북한인권사무소가 오늘 서울에 문을 연다. 유엔인권이사회는 지난해 3월 북한 인권 침해의 책임이 김정은 3대에 걸친 세습정권에 있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책임자들을 국제형사재판소(ICC)에 회부할 것을 권고하는 북한인권조사위원회 보고서를 채택했다. 오늘 인권사무소 개소 역시 반인도적 범죄의 책임을 규명할 현장 기반 조직을 설치하라는 인권이사회의 권고에 따른 것이다. 유엔은 탈북자 등을 상대로 북한 정권이 자행한 심각한 인권 침해 실태를 파악하고 관련 증거를 수집할 수 있는 ‘최전방’으로 서울을 택했다. 어제 고려대 일민국제관계연구원과 동아일보가 ‘유엔 북한인권사무소 개소의 의미와 시사점’을 주제로 연 전문가 간담회에서 김성한 일민국제관계연구원장은 “인권사무소 설립이 북한의 핵, 군사도발에 비해 주변에 있던 북한 인권 문제를 국제 외교안보 사안으로 상승시키는 게임 체인지(Game Change) 효과를 거뒀다”고 평가했다. 북한이 어제 유엔 인권사무소 개소를 트집 잡아 다음 달 열릴 광주 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에 불참한다고 통보한 것은 인권 문제야말로 김정은 정권의 아킬레스건임을 자인한 것과 다름없다. 실제로는 방역 능력이 취약한 북한이 메르스 전파를 우려해 불참을 결정했을 가능성이 높지만 인권기구가 지척에서 활동하는 데 대한 거부감과 두려움이 상당할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작년 9월 “북한의 반발이 두려워 북핵과 인권 문제에 대해 소극적이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북한 주민의 인권 유린을 우리가 외면하는 것은 김정은 독재정권의 반인륜범죄를 방조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런데도 여야가 10년이 넘도록 북한인권법 하나 제정하지 못하고 있으니 유엔과 국제사회 앞에서 부끄러운 일이다. 북한 주민이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한국 정부는 정권이 바뀌어도 지속 가능한 분명한 원칙을 세워 김정은 정권을 압박해야 한다.}

    • 2015-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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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 칼럼] ‘박근혜 번역기’가 뜨는 아홉 가지 이유

    한 대학교수가 스마트폰으로 보내준 ‘박근혜 번역기’ 페이스북을 보고 혼자 배꼽을 잡았다. 배경 화면은 박 대통령의 대선 공약 ‘내 꿈이 이뤄지는 나라’를 패러디한 ‘내 말을 알아듣는 나라’다. “본 소프트웨어는 집단지성을 이용한 인공지능”이라고 정보공개했다지만 실은 30대 초반 직장인 남성이 혼자 운영한다. 대통령의 유체이탈 화법, 논평 화법이 어제오늘 일도 아닌데 개설 열흘도 안 돼 2만9000여 ‘좋아요’를 확보한 게 신기해 이유를 따져 보았다. 1.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때문이다. 게시물도 메르스 관련 발언이 많다. ‘중동감기’로 불렀다면 이렇게까지 공포스럽진 않았을 메르스가 유독 우리나라에서 기승을 부린 것은 ‘투명하고 신속한 정보 공개의 실패’ 때문이라고 한국-세계보건기구(WHO) 합동평가단은 지적했다. 한국 정부의 비밀주의가 2003년 사스 창궐 때의 중국과 맞먹는다는 건 참담한 일이다. 2. 번역기 제작자는 ‘박근혜 정부의 지난 2년 3개월을 요즘 신조어 딱 두 단어로 설명할 수 있다’며 안 알랴줌(번역: 안 알려줌)과 아몰랑(번역: 아, 몰라)을 꼽았다. 대통령의 불통에 익숙해질 때도 됐는데 우리는 여전히 대통령과의 소통을 간절히 원한다. 3. 인기 정치인을 꼽자면 그래도 대통령이 최고다. 갤럽의 최근 조사 결과 박 대통령이 ‘잘한다’는 평가는 33%로 떨어졌다. 단순비교는 무리지만 차기 주자로 언급되는 박원순 서울시장(17%), 김무성 문재인 여야 대표(13%), 안철수 의원(8%) 선호도보다 높은 수치다. 4. 물론 대통령은 말을 진짜 못한다. 잘못된 국어교육 정책의 적폐다(내 말도 녹음해서 다시 들으면 끔찍하다). 대통령이 기자회견을 안 하는 것도 이 때문일 터다. 그러나 미국 워싱턴포스트지와의 인터뷰에선 “메르스 확산이 잡혀 가고 있지만 상당수 확진환자들이 있어 한국 국민의 안전을 첫 번째로 두어야 한다고 결심했다”고 방미(訪美) 연기 이유를 친절히 설명했다. 대통령이 자나 깨나 생각한다는 국민한테는 김성우 홍보수석을 통해 알렸을 뿐이다. 한국 대통령이 한국에선 기자회견도 하지 않는 건 내국인 차별인가, 한국 언론이 싫어서인가? 5. 언론 책임이다(내 탓이오). 메르스 확진환자가 나온 지 2주 만인 3일 별로 긴급하지 않게 열린 메르스 긴급점검회의에서 대통령은 “이 상황에 대해서도 한번 확실하게 알아볼 필요가 있고… 그 방안에 대해서도 알아보고…”라고 ‘알아보고’를 반복했다. 판단과 결정을 내리는 대통령의 언어와 거리가 멀다. 이 답답한 말씀을 언론은 ‘박근혜 대통령이 “메르스 대응 과정의 문제점을 확실하게 점검하고 현재의 상황과 대처 방안에 대해 분명하게 진단한 후 그 내용을 국민께 알려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매끈하게 보도했다. 고대 그리스 정치인은 말(言)이라는 정치 수단을 통해 시민의 가슴을 움직였다. 한국 언론의 눈물겨운 서비스 정신이 말과 정치의 퇴보에 기여한다고 해도 할 말 없다. 6. 우리에겐 언제나 의병(義兵)이 있었다. 김용운 한양대 명예교수는 한중일 문화를 비교한 저서 ‘풍수화(風水火)’에서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한국 원형에 없는 반면 일본 원형에는 의병이 없다”고 했다. 우리가 낫다고 주장하진 않겠다. 단, 정부가 못 하면 국민이 한다. 7. 권위, 특히 무능한 정부에 대한 조롱은 작금의 시대정신이다. 번역기 제작자는 대통령 인신공격이나 정치적 목적으로 시작한 게 아니라고 했다. 하지만 그 재미도 없이 무슨 수로 세금 바치며 각자도생(各自圖生)하겠나. 8. 풍자와 조롱이 분노로 바뀌는 건 좋지 않은 조짐이다. “국가가 국민을 보호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국가가 아니다”라는, 2004년 김선일 씨 피랍 사건 당시 박 대통령이 “우리 국민 한 사람을 못 지켜 낸 노무현 대통령은 자격이 없으며 난 용서할 수 없다”고 한 말에 ‘좋아요’가 쏟아지고 있다. 지금 대통령이 병원으로, 시장으로 ‘메르스 현장 방문’을 하는 정도로는 반복된 정부 실패가 용서되지 않는다. 형편없는 공직 기강과 능력으로 초동 대처에 실패한 질병관리본부,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을 포함해 정부 내 누구 한 사람 문책하지 않고 어떻게 사태를 수습한단 말인가. 9. 그럼에도 박근혜 번역기를 찾는 사람이 있다는 건 대통령에 대한 일말의 기대가 남아있다는 의미다. 내가 찍었든 안 찍었든 대통령이 성공하기를 바라는 착한 국민이라는 점에서, 대한국민 만세다.김순덕 논설실장 yuri@donga.com}

    • 2015-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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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 칼럼]대통령이 잠자는 사이에…

    국민의 대표도, 이른바 公僕도국민의 이익은 외면했다기득권 고수 政·官·利 삼각편대공무원연금 맹탕개혁도 모자라행정부 시행령 수정권 확보대통령이 국민과 한 편 되어 썩어빠진 제도개혁 할 순 없나 맹탕개혁과 다름없는 공무원연금법 개정안이 나온 뒤 딱 한 번, 모처럼 웃었다. 29일 0시 넘어 열린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총회에서 “이 밤중에 꼭 처리해야 하느냐”는 소리에 “박근혜 대통령이 잠자는 사이에 통과시켜야 한다”는 말들이 나왔다는 기사를 보고서다. 농반진반(弄半眞半)이었을 수 있다. 하지만 거꾸로 말해서, 대통령이 그 시간에 시퍼렇게 깨어 있었다면 공무원연금법에 국회법 개정안까지 끼워 팔기 처리는 못 했을 것 같다. 야당 의원들에게도 대통령은 대통령이라는 얘기다.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이 “대통령은 아침에 일어난 것이 출근이고 자는 것이 퇴근”이라고 한 적이 있다. 대통령이 매일 불철주야(不撤晝夜) 만기친람해서도 안 되지만 ‘국회가 시행령 수정을 요구하면 정부는 따라야 한다’는, 악용 가능성이 빤히 보이는 국회 우위(優位)법이 통과되는 마당에 편히 잔다는 건 이해하기 힘들다. 참모진이 국회 돌아가는 상황을 대통령에게 대면보고 아니 전화보고라도 했다면, 또는 대통령이 새벽까지 지키고 앉아 여야 의원들에게 전화 한 통씩 돌렸다면 그런 법이 그렇게 통과됐을까 싶다. 여당 의원까지 거사를 벌인다는데 대통령이 여의도인들 직접 못 간단 말인가. 제왕적 대통령이라는 말이 나오는 판에 박 대통령의 강한 리더십을 촉구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공무원연금 사태를 겪으면서 국민의 편에 서줄 사람은 그래도 대통령밖에 없음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야당이야 원래 공무원, 노동단체 편이니 기대도 안 한다. 그러나 신규 임용자는 2018년부터 국민연금과 지급률을 같게 하고 향후 70년간 342조 원을 절감하는 정부의 셀프 개혁안에 대해 “미흡하다”고 퇴짜 놨던 새누리당이, “(공무원노조에) 맞아 죽는 한이 있어도 꼭 관철시키겠다”던 김무성 대표가 국민연금과 통합도 없고 70년간 333조 원 절감이 고작인 개정안을 야당과 합의하곤 야밤 쿠데타 하듯 방망이를 두드려버린 건 국민에 대한 배신이다. “개혁,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다 안다. 그러고 나서 재선될 방법을 모를 뿐”이라는 장클로드 융커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의 명언에서 자유로울 정치인은 없다. 정부 실패와 파산이 우려되는 나라일수록 정치권과 관료, 이익집단의 정관리(政·官·利) 철옹성은 기득권 고수에 개혁 결사반대다. 이 철(鐵)의 삼각편대에서 초월해 국민 편에 설 수 있는 리더가 재선 신경 쓸 일 없고, 대한민국과 결혼했다고 믿는 박 대통령 말고 또 누가 있나 말이다. 대통령이 추진하는 경제활성화나 4대 구조개혁, 부패청산의 정치·사회개혁도 정관리에 판판이 막힐 것이 뻔하다. 원격진료 확대를 위한 의료법이나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같은 대통령 역점 법안이 하나도 국회 통과되지 않은 걸 보면 안다. 공무원들도 관피아로 나갈 길을 대통령이 막았다고 복지부동이다. 그렇다면 대통령은 국민과 한편이 되는 수밖에 없다. 그래서 ‘제4의 혁명’으로 불리는 정부개혁, 제도개혁에 박차를 가하는 거다. 이 땅의 공직자들이 국민에게 봉사하는 엘리트인 척하지만 세계경제포럼(WEF) 2014∼2015년 글로벌경쟁력지수를 보면 한국 정부와 제도의 수준은 144개국 중 82위에 불과하다. 중국(47위) 인도(70위)에도 뒤지고 그리스(85위)와 맞먹는다. 심지어 사회주의적 시장경제를 한다는 공산국가 베트남보다 정책 결정의 투명성(133위·베트남 116위), 규제 개선의 법체계 효율성(113위·베트남 80위), 정치인에 대한 신뢰(97위·베트남 49위)에서 뒤질 정도다. 민간이 열심히 뛰어 이 정도 유지하는 나라에서 관존민비 연금을 고집한 정관리는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불행 중 다행이라면, 제도 경쟁력이 워낙 뒤처진 까닭에 제도를 고쳐 얻는 경제성장 기여도가 민간기업의 팔을 비틀어 투자를 이끌어내는 것보다 50%나 높다는 점이다. 한국경제연구원 최근 연구 결과다. 국회가 법을 깔고 앉아 있으면 대통령령을 내려 규제개혁만 제대로 해도 성장률 상승효과를 44% 거둘 수 있다. 대통령이 잠든 사이 여야가 작당해 시행령 수정권을 통과시킨 건 그래서 더 괘씸하다. 링컨의 노예해방선언도 대통령령이었다. 최근 미국의 센추리재단은 500만 불법이민자 보호 조치를 취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행정명령(executive order)을 1863년 링컨의 노예해방선언에 견주며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순간은 의회의 발목잡기를 비켜간 대통령들의 담대한 행정명령에서 나왔다”는 보고서를 냈다.지금 포퓰리즘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리더는 대통령밖에 없다. 박 대통령이 나라를 위해 분연히 나선다면, 내 무덤에 침을 뱉으라는 각오를 보인다면 국민은 이해할 것이다. 문제는 누구에게도 맨발을 보이지 않을 대통령이 과연 발 벗고 나설까 하는 점이지만.김순덕 논설실장 yuri@donga.com}

    • 2015-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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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 칼럼]김무성이 사는 법 “정치는 딜이다”

    4·29 재·보선이 새누리당의 완승으로 끝났을 때 이제 ‘무대(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시대’가 열리는 줄 알았다. 승리를 확인한 뒤 ‘오버’하지 않고 “당청(黨靑)은 한몸이고 박근혜 정부의 성공을 위해 전력을 다하겠다”고 밝힌 것도 모처럼 보는 상남자의 모습이었다. 3일 뒤, 김무성은 ‘공무원연금 개혁 및 국민연금 강화를 위한 양당대표 합의문’에 서명함으로써 스스로 3일 천하를 끝내버렸다. 그날 사진을 보면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는 선거 패장이 아니라 완전 개선장군이다. 합의문 내용이 주요 언론의 지적대로 맹탕개혁인지, 김무성의 자평처럼 잘된 안(案)인지는 관점과 진영에 따라 다를 수 있다고 치자. 하지만 합의문이 나오기까지의 과정을 복기해 보면 “이건 무효다” 소리가 나올 만큼 꼼수가 난무했다. 김무성이 “안 된다”고 밝혔던 사안마다 양보와 포기를 거듭한 건 경이를 넘어 경악할 정도다. 특히 합의안을 만든 사회적대타협기구에 대해 김무성은 당초 “소관 상임위 논의 과정에서 필요성이 인정되면 구성하는 것”(작년 11월 7일)이라고 ‘공적연금강화를 위한 공동투쟁본부’(공투본) 앞에서 분명히 말한 바 있다. 작년 말 여야가 개혁특위에 합의하면서 이 기구를 두는 건 물론 공투본까지 참여하게 만든 건 시작에 불과했다. “사회적 합의를 이루려면 여야가 각각 개혁안을 내놓고 논의 과정을 국민에게 공개한 뒤 심의 과정에서 이해당사자와 전문가의 의견을 반영하는 것이 합당한 방법”(작년 12월 4일) “특위가 있는데 파생기구(실무기구)를 (연장해) 두는 건 안 맞다”(4월 1일) “개혁 당사자들과 합의 보면서 개혁이 가능한가” “근본적 개혁을 위해선 국민과의 형평성을 꼭 제고해야 하고 그것이 바로 구조개혁”(4월 2일)이라고 하더니 판판이 다 뒤집힌 것이다. 김무성은 “이번에 국민 뜻을 거스르면 정치가 설 땅이 없다”(3월 26일)고도 했다. 국민 과반수가 찬성하지 않는 개혁안이라는 게 여론조사 결과다. 그런데도 당정청 회동에서 ‘주어진 여건 속의 최선의 안’이라며 특히 최초의 사회적대타협기구에서 전원 합의한 데 큰 의미를 부여한다는 입장을 끌어냈으니 놀라운 리더십이 아닐 수 없다. 대체 그는 왜 이런 개혁 같지 않은 개혁안을 기를 쓰고 밀어붙이는 걸까. 적잖은 사람들이 대통령을 위해서라고 말한다. 권력의 속성을 가까이 가면 타 죽는 것이라고 갈파한 그다. 대통령 후보가 되기 위해선 박근혜 대통령과 맞서면 안 된다는 걸 모를 리 없다. “연금 개혁의 십자가를 져야 한다”는 발언도 작년 10월 개헌 봇물 발언을 했다가 황급히 꼬랑지를 내린 직후에 나왔다. 현재권력이 자신을 콕 찍어 4월 국회 처리를 간곡히 부탁했는데 해내지 않으면 대통령이 멀어진다는 생각을 안 했을 리 없다. “원래 정치가 딜 아니냐.” 작년 말 연금 개혁과 해외자원비리 국정조사를 놓고 여야 빅딜설을 묻는 질문에 김무성이 한 말이다. 정치는 협상과 타협이고, 최선이 안되면 차선이라도 택해야 한다는 그의 지론도 맞다. 해결사라는 별명도 그래서 나왔을 터다. 하지만 지금의 개혁안은 “(새누리당) 원안대로 통과된다 해도 몇 년 뒤 또 개혁안이 나올 정도로 점진적으로 만든”(작년 11월 25일) 것보다 개혁적이지 않다. 국민연금 연계까지 합의한 건 사실상 세금 더 걷자는 의미로 우파정부 정신과도 어긋난다. 더구나 그는 강경투쟁을 일삼는 좌파 법외노조에 무릎을 꿇고 법안을 만드는 것까지 허용했다.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딜’할 수 있는 정치인이 바로 김무성이 아닌지 겁이 더럭 난다. 본인이 밝힌 이유는 애국심이었다. 선거를 생각하면 바보 같은 일이지만 “다음 정권은 어느 정권이 들어설지 모르지 않느냐”(작년 11월 25일)며 지금 공무원연금 개혁 안 하면 못한다는 말엔 진정성이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명리학자인 조용헌은 그의 사주에 물과 불이 있다며 용칠호삼(龍七虎三)이라고 했다. 용은 물 같아서 여간해선 대결을 피하지만 결정적인 순간 호랑이는 공격한다. 물대포 아닌 불대포라는 얘기다. 현재권력은 원칙을 신줏단지처럼 붙드는 바람에 되는 일이 없었다. 미래권력을 꿈꾸는 김무성은 아직까진 물이다. 국민은 딜을 해서라도, 설령 원칙을 양보해도 일이 되게 만드는 미래권력을 택할 것인지 두고 볼 일이다.김순덕 논설실장 yuri@donga.com}

    • 2015-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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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 칼럼] 비선라인에 사로잡힌 문재인의 ‘운명’

    4·29 재·보선에서 새정치민주연합의 4 대 0 참패보다 내게 충격적인 건 문재인 대표의 비선(秘線) 논란이었다. 비노(비노무현)인 이춘석 당 전략홍보본부장이 “전략은 역시 당대표 측근이 해야 하는 것 같다”는 말로 진짜 전략에서 소외됐음을 내비치자 “대표가 당 공조직이 아닌 측근 그룹과 일한다더라”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나온다. 한 최고위원은 “선거 다음 날 문 대표가 정부여당에 전면전을 선포하는 내용도 TV 보고 알았다”며 친노(친노무현) 비선하고만 논의하는 건 잘못이라고 불만을 터뜨렸다. 비선이라니! 작년 말 정윤회 씨의 국정 개입 의혹이 터졌을 때 “공적 시스템 밖에서 대통령의 권력 운용에 개입하는 비선의 존재는 정권을 병들게 하고 국정을 망치는 암적 요소”라고 준열히 비판했던 사람이 문재인 아니던가. 그러고 보니 그의 당대표 등극을 전후해 한상진 서울대 명예교수가 한 말이 예사롭지 않다. ‘18대 대선평가보고서’에서 친노 패권주의를 대선 패배 요인으로 지적한 그는 “박근혜 대통령처럼 문 대표도 비선 논란에 휩싸일 수 있다”며 친노를 멀리할 것을 당부했었다. 물론 문재인은 2013년 말 발간한 ‘1219 끝이 시작이다’ 책에 “대선캠프 실무진에서 참여정부 출신을 배제했다”고 적었다. 그런데 어쩌랴. 친노 참모 실세 양정철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이 “대선 직전 이른바 삼철(전해철 의원·이호철 전 대통령민정수석·양정철)을 비롯한 친노 9인은 보직 사퇴를 한 것이지 대선에서 뒷짐 지고 있겠다고 한 건 아니다”라고 그해 5월 주간경향에다 고백했으니. “후보가 메시지를 결정할 때까지 (선거캠프는) 아무것도 못했다. 밤 2, 3시에 후보가 메시지담당(양정철)에게 직접 전화했다”는 보고서가 맞는다면, 많은 의문이 풀리게 된다. 본인은 사실과 다르다지만 노 정부 때 유진룡 문화부차관에게 “배 째드리지요” 했다는 사람이 양정철이다. 경제정당 안보정당을 내세우던 재·보선 전략이 갑자기 ‘정권심판’으로 돌변한 것도, “사면은 법무부 소관”이라던 문재인이 느닷없이 “별도 특검으로 성완종 리스트 수사하라”고 외친 것도, 왜 꼭 한 박자씩 뒤늦게 강경한 소리를 내서 지지자는 결집시켰을지 모르나 다수 국민과 당 지도부를 황당하게 만들었는지도 알 것 같아진다. 문제는 TV ‘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도 아닌데 어디까지가 문재인 목소리이고, 어디서부터가 립싱크인지 모르겠다는 점이다. 문재인이 오늘날 정치인 되는 데 결정적 공헌을 한 것이 자서전 ‘운명’이었다. 그런데 정치 참여 선언이나 다름없는 이 책의 제목을 문재인이 완강히 거부했다면, “당신은 이제 운명에서 해방됐지만 나는 당신이 남긴 숙제에서 꼼짝하지 못하게 됐다”는 그 뭉클한 마지막 문장이 일찌감치 문재인을 차기 주자로 점찍었던 친노 참모의 작품이라면, 허탈해질 수밖에 없다. 당초 정치에 뜻이 없던 문재인을 총선과 대선에 이끌어낸 사람이 양정철을 비롯한 참모들이라는 것도 안다. 그럼에도 대선 패배자가 ‘정치적 책임’을 지기는커녕 서둘러 당권 도전에 나선 이유가 내년 총선 공천을 노린 이들의 종용 때문이라는 뒷말은 예사롭지 않다. 곡절 끝에 관악을에 나섰다가 ‘친노 반감’만 확인시킨 정태호 후보도 최측근 9인방 중 하나였다. 아무리 “재·보선 패배에 책임지라”는 요구가 터져나와도 문재인은 물러나지 않을 것이다. 잘못도, 반성도 모르는 것이 친노의 특징이기 때문이다. 이대로라면 2016년 총선은 2012년의 되풀이가 될 것이고, 또 친노 패권주의로 졌다는 분석이 나올 공산이 크다. 당 싱크탱크에서 “싸가지 없는 진보가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대권정치를 포기하고 당권정치에 집착한 정당 리더십 때문” “현대적 사민주의는 국가 주도 분배가 아니라 노력, 기회 강조” “정치를 시민운동화하는 격돌정치로는 집권할 순 없다” 같은 보고서를 잇달아 내놔도 당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문재인이 싸가지 없는 비선에 사로잡혀 당권정치 격돌정치만 계속한다면 말이다. 새정치연합은 대통령에게 요구했듯 당대표에게도 비선을 밝히라고 들이대기 바란다. 문재인도 비선이 그토록 유능하다면 당직을 못 줄 이유가 없다. 그럴 자신이 없다면 노 대통령처럼 “나를 놓아 달라”고 사정할 게 아니라 스스로 끊어내야 할 것이다. 그만한 용기도, 능력도 없다면 새누리당에 만년 여당을 맡기는 수밖에 없다.김순덕 논설실장 yuri@donga.com}

    • 2015-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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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 칼럼]왜 하필 부패한 대륙, 中南美 순방인가

    대통령은 지지리도 총리 복이 없다. 집권 4년도 안 돼 사회적 갈등과 시위, 참모의 뇌물 수수, 국가정보원의 민간인 사찰 등의 이유로 벌써 6명을 바꿔야 했다. 돈 때문에 수사 받는 국회의원과 지방자치단체장이 수두룩해서 “정당이 돈 받고 자리 주는 프랜차이즈 본사냐” 소리를 듣는다. 대통령 선거참모까지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사실이 드러났으니 당장 시급한 경제개혁의 원동력을 어디서 찾을지 걱정이다. 우리나라와 비슷한가. 박근혜 대통령이 방문 중인 페루 얘기다. 우리나라와 ‘포괄적 전략동반자 관계’를 맺고 있는 이 나라를 폄훼할 생각은 맹세코 없다. 페루에 대해 TV ‘꽃보다 청춘’에서 얼핏 본 안데스 산맥밖에 아는 게 없어 외신을 찾아봤더니, 오얀타 우말라 대통령은 2일 7번째 총리를 들일 만큼 정치적 위기를 겪고 있었다. 집권 3년도 안 돼 총리 후보자 5명을 지명하고(이 중 3명 낙마) 또 한 명을 지명하게 될 박 대통령은 차라리 괜찮아 보일 정도다. 그러고 보니 대통령이 왜 하필 지금 남미를 순방하고 있는지 우연치고는 너무 잔인하다. 부패 없는 북유럽 순방이라면 또 모른다. 대선 때 한몫한 친박 측근들이 검은돈과 관련된 의심을 받는 판에, 대통령이 방문하는 나라들이 부패인식지수 94위(콜롬비아), 85위(페루), 69위(브라질)라는 게 썩 유쾌하지가 않다. 그나마 대통령의 첫 방문지인 콜롬비아에선 현직 대통령 관련 부패 사건은 (아직) 없다. 나머지 세 나라는 모두 대통령과 연관된, 그러나 대통령은 몰랐다고 주장하는 초대형 부정부패 사건에 정권이 흔들리는 상황이다. 페루는 집권당과 연정한 당의 대표인 대통령 부인이 돈 세탁 의심을 받고 있고, 브라질에선 국영 에너지회사 페트로브라스가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의 회장 재임 때 비자금을 만들어 집권당에 바친 사상 최대 규모의 비리 스캔들이 드러나 대통령 탄핵 요구로 들끓는다. 특히 남미의 우등생으로 평가받던 칠레(부패인식지수 21위)조차 2013년 말 재선된 미첼 바첼레트 대통령이 아들 며느리의 부당대출 압력과 땅 투기 때문에 “대통령 사임”을 외치는 폭력시위로 골치를 앓는다는 건 충격적이다. 증세를 통한 대학 무상교육을 약속할 만큼 평등과 분배를 강조한 중도좌파 대통령의 도덕성에 금이 가서다. 심지어 칠레 최대의 금융재벌 펜타와 광업재벌 SQM이 여야 정치인들에게 뇌물을 뿌리고 탈세 행각을 벌인 사실이 발각돼 ‘부패엔 좌우 없다’는 소리까지 나온다. 부패인식지수 43위인 한국의 대통령이 이번 순방에서 우리보다 심한 나라도 많다는 위안을 얻어 올까봐 겁날 정도다. 하필 세월호 1주년을 맞은 날 출국한 대통령이 비행기로 거의 하루를 날아가 중남미의 부패 실태를 목도했다면, 교훈도 제대로 얻어 와야 한다. 첫째는 부패야말로 중남미 경제를 주저앉힌 주범이라는 사실이다. 6·25전쟁 때 우리나라를 도와줬던 콜롬비아도 기업인 열에 아홉이 “뇌물을 줘야 사업을 할 수 있다”고 믿게 되면 잘사는 나라가 될 수 없다. 관료주의와 규제, 비싼 금융비용 같은 ‘브라질 코스트’를 피하자니 뇌물과 부패가 나오는 거다. 국제투명성기구는 중남미 부패가 근절되지 않는 이유를 식민지 역사나 문화가 아닌 ‘물러터진 법집행’으로 꼽았다. ‘코리아 코스트’도 가볍지 않다. 방위산업 비리가 이적(利敵)행위라면, 경제성장을 막는 부패는 반역행위로 다스려야 한다. 돌부처도 돌아앉게 만드는 것이 시앗과 무능정부다. 부패가 있어도 경제가 잘 돌아갔을 때, 포퓰리즘 정책으로 퍼주기를 일삼았을 때는 관대했던 중남미 사람들도 정부가 하는 일이 성에 차지 않자 무섭게 분노했다. 브라질 대통령은 마침내 한계를 인정하고 유능한 재무장관에게 시장 친화적 경제개혁을, 연립정부의 부통령에게 의회와의 소통 같은 정치를 맡겼다. 지금 우리나라엔 모두가 인정할 만큼 유능한 장관이 있는가. 2016년 지방선거까지 선거가 없어 올해를 개헌과 연금개혁 골든타임으로 잡았던 칠레 대통령은 ‘며느리 게이트’가 터졌는데도 휴가 중이라는 이유로 17일이나 침묵해 지지율이 31%까지 곤두박질했다. 직접이든 간접이든 책임을 인정해야 할 때 인정하지 않으면 최고통치자로서의 권위는 여지없이 무너진다. 두 번은 없다.김순덕 논설실장}

    • 2015-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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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 칼럼]중국 압박이 러브콜이면 북핵은 러브레터냐

    “미중(美中) 양측에서 러브콜을 받는 상황은 골칫거리나 딜레마가 아니라 축복”이라는 윤병세 외교부 장관 말에 굳이 도끼눈을 뜰 필요는 없었다. 강대국 사이에 낀 한반도의 전략적 가치를 활용할 외교역량만 있다면 말이다. 그러나 지난주 윤 장관이 이 말을 한 다음 날 박근혜 대통령이 “언론에서 우리가 강대국 사이에 끼었다며 ‘아이코 큰일 났네’ 하는데 너무 그럴 필요 없다”고 한 것은 곰곰 뜯어볼 필요가 있다. ‘낀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있지만 이를 활용할 역량이 없다면, 심지어 역량이 없는 것조차 모른다면 문제는 심각하다. 국책연구소의 한 연구원은 “요즘 비판적 글을 쓴 사람 치고 청와대에서 질책성 전화를 안 받은 사람이 없다”고 했다.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가입,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체계 배치와 관련해 정부의 ‘전략적 모호성’을 비판한 외교연구원의 한 교수는 사실상 문책 처분을 받았다. 물론 이들 기관은 외교부 압력을 받았다곤 하지 않았다. 하지만 “한미관계 한중관계를 역대 최상으로 만들었다”고 자랑하는 윤 장관이 이런 고언을 ‘고뇌 없는 무책임한 비판’으로만 여기는 건 문제가 있다. 미국과 중국의 공관에서 “우리가 최고”라는 보고만 들어올지 모른다. 안호영 주미대사도 열흘 전 간담회에서 “미국 의회조사국(CRS) 보고서에도 한미관계가 어느 때보다도 좋다는 게 워싱턴의 일반적 정서”라고 했다. 한국이 중국으로 기울어 ‘리틀 차이나’라고 불린다는 기자들의 얘기엔 답답하다는 듯 “중국 경사론(傾斜論)의 근거를 좀 가져와 달라”고까지 했다. “한일관계 경색이 대북정책을 비롯한 아시아 역내 문제의 한미일 협력을 복잡하게 만들어 미국의 국익을 위협한다”는 CRS의 1월 미일관계 보고서를 안 대사가 못 봤다면 유감이다. 미 의회 소속 미중경제안보검토위원회(USCC)의 2014년 보고서에서 “서울의 한국정부 관리들에 따르면, 중국은 밀착된 한중관계의 레버리지를 이용해 한미동맹을 버리도록 한국에 압박을 가하고 있다”고 지적한 걸 주미대사가 모르면 직무태만이고, 알고도 숨겼다면 공직자 윤리가 의심스럽다. 중국이 한국의 주권을 간섭한 건 사드만이 아니었다. “시진핑 주석은 한국정부에 자국 통신업체인 화웨이가 한국 통신 인프라망 입찰을 따내도록 압력을 넣고 있다”는 미국 온라인 정치·군사전문 매체 워싱턴 프리비컨의 지난달 보도를 보면 소름이 끼친다. 중국은 물론이고 어쩌면 북한도 우리의 통신 내용을 손바닥 들여다보듯 볼 수도 있게 된다는 얘기다. “중국에 정통한 미국 관리에 따르면, 중국은 반일(反日)감정에 불붙여 한국이 중국과 북한의 긴급한 위협에 집중하는 것을 방해하는데도 한국의 리더십이 여기 쉽게 빠져드는 듯하다”는 대목에선, 아이코 박근혜 외교 큰일 났네 소리가 절로 나올 판이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한미동맹에 대해 박 대통령이 허위과장 보고를 받고 있었다면, 이제라도 실상을 파악해 바로잡으면 될 일이다. 그러나 인사와 정책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과 반대로 해온 박 대통령이 의도적으로 친중(親中)정책을 펴고 있는 건 아닌지 궁금하다. CRS 리포트는 1월 “중국이 북한의 해커와 핵무기 프로그램 지원 등 김정은 정권의 안보와 생존을 돕는 쪽으로 방향 전환했다”고 밝혔다. 미국외교협회는 2월 보고서에서 중국의 신안보구상이 한미동맹을 배제한다고 지적했다. 그런데도 한국이 이미종중(離美從中·미국을 떠나 중국을 따른다)인 데 대해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은 “아버지가 만주군 중위로 일본에 협력한 유산 때문에 박 대통령 휘하에서 한중관계가 밀월기에 진입했다”고 썼다. 시진핑과 일본의 아베 신조 총리, 박 대통령은 ‘역사적 아버지’를 두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세 리더 모두 70년 전의 3중 파고 못지않은 격랑 속에서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백척간두에 서 있다. 만일 박 대통령이 아버지로 인해 죽어도 ‘친일파’ 소리는 들을 수 없기에, 미워도 자유민주주의 가치는 공유한 일본 그리고 미국 대신 중국 편에 선 것이라면 국민 앞에 설명하기 바란다. 안미경중(安美經中·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 당장의 위정자에겐 실용적 노선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어떤 통일을 원하는지 따져보면 답은 분명하다. 절체절명의 순간, 돈 때문에 안보를 희생시킬 순 없다.김순덕 논설실장 yuri@donga.com}

    • 2015-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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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 칼럼]홍준표-문재인의 50가지 그림자

    독일 사람들은 토론할 때 제일 섹시하다고 한다. 엄격하고 음울해서 일상 대화는 참 재미없지만 진지한 토론에 들어가면 뚜렷한 주관을 어찌나 논리정연한 말솜씨와 어휘로 펼치는지 광채가 난다는 거다. 정확하고 논리적이며 ‘결과’가 따라야 하는 독일어의 특징에서 비롯된다는 게 ‘독일, 내면의 여백이 아름다운 나라’에 나오는 말인데, 토론할 때 섹시는커녕 제일 벽창우가 돼 버리는 나라가 한국일 것 같다. 지난주 ‘전면 무상급식 중단’을 놓고 담판을 벌인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와 홍준표 경남도지사는 서로 “벽에 대고 말하는 줄 알았다”지만 보는 사람은 울화통이 터졌다. 굳이 독일과 비교하자면 우리말엔 생략과 허사(虛辭)가 많다거나, 토론식 수업을 해본 적이 없다 같은 50가지 이유를 댈 순 있다. 하지만 두 사람은 법정토론 경험이 있는 변호사와 검사 출신이고, 국회의원의 기본기는 대화와 소통이어야 한다. 요컨대 세금으로 봉급 받는 두 공공조직의 대표가 공개토론을 할 적엔 상대는 물론이고 듣는 이를 설득해 갈등 해소를 꾀했어야 했다는 얘기다. 18일의 회동은 문재인이 “경남도의 무상급식 예산 편성을 촉구한다”며 경남도와 도교육청의 중재에 나설 뜻을 밝힘으로써 성사됐다. 그는 홍준표를 만난 자리에서 “논쟁할 생각 전혀 없다”고 강조했지만 의견이 다른 두 사람이 서로를 설득하기 위해 대화하는 것이 바로 논쟁(論爭)이다. 논쟁의 목적은 싸움 아닌 합의이고 여기엔 규칙이 있다. 무상급식 폐지에 대한 잘잘못을 잠시 접어두고 규칙의 준수부터 따지면, 문재인은 실격패다. 무엇보다 치명적인 건 논쟁을 제기한 쪽에서 증거 또는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는 ‘증거부담의 원칙’을 어긴 점이다. 회동을 제의한 문재인은 왜 무상급식 예산을 편성해야 하는지 근거를 댐으로써 홍준표가 꼼짝 못하고 받아들이게 했어야 옳았다. 그런데 그는 “해법이 남아있는지 알아보려고 왔다”고 말해서 듣는 이를 기막히게 했다. 검사가 피고에게 범인이라는 증거를 내놓으라는 식이다. 홍준표가 “대안을 갖고 오면 어떻게 수용할지 (검토하겠다)”라고 한 것은 결정적 KO 펀치가 아닐 수 없다. 물론 정치적으로는 문재인에게도 나쁘지 않았다. 지난번 총선에선 부산 울산 경남지역 새정치연합이 3석에 그쳤지만 논쟁을 통해 자신의 입장을 알리는 바람에 4월분부터 새로 급식비를 내야 하는 22만여 학생들의 학부모 중 상당수는 문재인 쪽으로 돌아설 가능성이 크다. 홍준표의 무상급식 폐지에 대한 여론조사도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갤럽 결과는 ‘잘했다’ 49%, ‘잘못했다’ 37%지만 경남도민을 조사한 리얼미터 결과는 ‘잘못했다’가 59.7%다. 이 지역 새누리당 의원들이 떨고 있는 이유다. 그럼에도 논쟁이 남긴 그림자는 넓고도 깊다. 문재인이 훌륭한 심성을 가졌다지만 정치인으로서, 더구나 대통령으로서의 문재인은 여전히 불안하다는 점이 확인됐다. “급식에 매몰돼서 교육 기자재 예산이 줄었다”는 홍준표의 말에 “조금 더 노력하면 교복까지 제공할 수 있다”라니, 운동화나 스마트폰은 왜 안 주느냐고 묻고 싶다. 자신의 주장이 충분한 증거에 의해 거부됐는데도 용기있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태도는 더 위험하다. “2012년 헌법재판소에서 급식은 의무교육이 아니라는 결정이 나왔다”는 홍준표의 말에 그는 “의무교육 범위가 점점 넓어지고 있다”고 황당한 답을 했다. 자기들만의 이념과 목표를 위해선 법과 제도, 헌법을 무시해도 된단 말인가. ‘아규멘테이션, 설득하고 설득당하는 사회의 논쟁법’을 쓴 박성희 이화여대 교수는 “사실관계와 가치관에 대해 대략의 동의가 없이는 ‘정책 논쟁’이 불가능하다”고 했다. 밥보다 공부가 중요하다는 우파와, 실제로 밥을 굶기는 것도 아닌데 굶기면 안 된다고 굳게 믿는 좌파는 합의를 이루기 어렵다는 사실도 새삼 분명해졌다. 한국인에게는 공리공론(空理空論)의 논쟁을 일삼는 전통이 있다는 정치학자 그레고리 헨더슨의 지적은 더욱 두렵다. 조선왕조 창건 후 토지제도 개혁이 필요했는데도 의견이 갈리면 어떤 결정도 내리지 못해 400년을 방치했고, 민주적 대의제가 들어선 뒤에도 정당들은 주로 방해자 역할만 해왔다는 지적이다. 결국 공무원연금이나 노동시장 개혁도 하는 둥 마는 둥 할 게 뻔하다. 차라리 대통령의 ‘제왕적 의지’를 촉구해야 할 것인가.김순덕 논설실장 yuri@donga.com}

    • 2015-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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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 칼럼]‘결혼 장려’가 저출산 대책이라고?

    푸핫.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난주 ‘만혼(晩婚) 추세 완화’를 저출산 대책으로 내놨다는 기사를 본 순간 나는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2006년부터 66조 원을 저출산비로 퍼부었지만 합계출산율(1.19명) 반등에 실패했다며, 앞으론 초혼 연령 낮추기로 방향을 바꿔 2020년까지 1.4명을 만들겠다는 거다. 나도 어쩌지 못하는 과년한 내 딸을 장관이 시집보내주겠다니 고맙기 그지없다. ‘2000년 남자 29세, 여자 26세의 초혼 연령이 2013년 32세, 30세로 올라갔고 30세 전에 결혼하면 2명을 낳지만 30대 후반이면 0.8명으로 떨어진다’는 보도 자료도 맞을 것이다. 하지만 만혼 때문에 출산율이 낮으니 만혼을 줄여 출산율을 높이겠다는 정책은 황당하다. 고령화 때문에 의료비가 늘었으니 고령화를 줄여 의료비 낮추겠다는 것과 뭐가 다른가. 문 장관이 꼭 초혼 연령을 낮출 작정이라면 방법이 없진 않다. 국민소득과 여성 교육을 방글라데시 수준으로 끌어내리는 거다. 생활수준이 높아지면서 결혼이 늦어지는 건 이미 세계적 추세다. 우리가 만혼이라지만 프랑스 초혼 연령도 우리와 비슷하다. 스웨덴은 남 35.6세, 여 33.1세에 결혼해도 1.9명을 낳는다. 세계 인구의 89%가 결혼율 감소 국가에 살고 있을 만큼 결혼제도 자체가 흔들리는 판에 복지부 장관은 거꾸로 살 모양이다. 공공임대주택 결혼교육 같은 구체적 방안을 보면 세금이 또 허투루 날아갈 게 뻔하다. 싱가포르가 바로 결혼 예정자 또는 35세 이상 싱글에게만 공공주택 구매 자격을 주는 국가다. 그래봤자 남 30세, 여 28.5세에 결혼해 우리와 똑같이 1.19명을 낳는다. 미국에선 조지 W 부시 대통령 시절 연 7500만 달러 예산으로 61개 ‘결혼 프로젝트’ 교육을 했으나 지금까지도 결혼율은 늘어나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이제 좀 솔직해졌으면 좋겠다. 우리나라만 결혼, 연애, 출산을 포기한 ‘3포 세대’가 있지 우리보다 결혼 안 하는 호주는 1.93명을 낳는 이유 말이다. 다 알면서 말하지 않는 그 부분을 유엔이 ‘2014 인구상황’ 보고서에 적었다. “결혼과 출산의 연관성이 약해졌다. 아시아와 북아프리카를 제외하곤 지난 20년간 태어난 아기들의 절반이 (동거를 비롯한) 혼외(婚外) 출산이다.” 프랑스가 20년간 국내총생산(GDP) 대비 연 3.8%의 예산을 28가지 출산장려책에 퍼부은 것만으로 오늘날 2명을 낳게 된 게 아니다. 1999년 시민연대협약(PACS)이라는 이른바 ‘동거법’을 제정해 동거 커플의 아이들에게도 똑같은 혜택을 주면서 그해 1.79명이던 합계출산율이 이듬해 1.87명으로 껑충 뛴 것이다. 일본이 1994년 ‘에인절 플랜’을 시작으로 보육지원, 일·육아 양립 정책, 의식개혁 운동까지 온갖 대책을 쏟아내고도 작년 사상 최소 신생아 출생률(1.4명)을 기록한 건 남의 일 같지 않게 섬뜩하다. 일본처럼 가선 안 된다면서도 우리의 전문가들은 절대 하지 않는 제언을 뉴욕타임스가 사설로 썼다. “보수적인 일본에선 혼외 출생자가 2%에 불과하다. 정부가 그런 출산을 장려하진 않아도 같은 혜택을 주는 정책은 마련해야 한다”고. 물론 가장(家長) 고용-주부 무상노동의 가족의존적 일본 복지가 버블경제와 함께 무너지면서 여성의 결혼·출산 파업이 극심해진 측면도 있다. 한국은 일본보다 더한 가족의존적 복지라는 게 김성원 도쿄경제대 교수의 지적이다. 그런데도 공무원연금 부족분을 세금으로 메우기 위해 출산율을 높여야 한다면, 내 딸이 비혼모가 돼도 좋다고 할 자신은 없다. 그러니 혈세로 봉급 받는 문 장관은 제 돈 내놓을 것도 아니면서 “전업주부에게 (가정 보육 지원금을) 더 얹어 줘서라도 어린이집 과잉 수요를 해결하겠다”고 함부로 말하진 말아야 한다. 세상 모든 문제에 해결책이 있는 것은 아니다. 인구학자 피터 맥도널드는 “어떤 출산율 제고 정책도 획기적 출산율 증가를 가져오는 데 실패했다”고 했다. 그러므로 정부와 정치인들에게 부탁한다. 프랑스는 인구대체율 2.1명을 채우지 못했는데도 재정이 거덜 나 7월부터 가족수당을 선별 지급하기로 했다. 호주는 영리법인 어린이집을 허용해 보육료 규제 없이도 합리적 서비스로 직장맘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고 있다. 제발 “무상보육이 기본 복지”라는 무책임한 주장으로 역사에 죄를 짓지 말란 말이다.김순덕 논설실장 yuri@donga.com}

    • 2015-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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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 칼럼]“여자 대통령이라서…”라는 참 불편한 말

    박근혜 대통령과 나의 공통점을 굳이 찾는다면 ‘여성이니까’라는 말을 싫어한다는 점일 거다. 한때 나는 ‘여성 칼럼’이라고 낙인찍히기 싫어 여성이나 가정 문제는 일부러 피한 적도 있다. 여자라서 차별받는 것도 원치 않되 혜택받는 건 더 원치 않는 자칭 비(非)페미니스트다. 요즘 슬슬 나오는 “대통령이 여자라서…” 소리는 그래서 더욱 불편하다. 주로 남자들이 하는 말인데 대통령 지지율이 30%로 떨어졌다는 지난주 갤럽 발표에서도 유독 남자들 평가가 박했다. 대통령이 ‘문고리 권력 3인방(이재만, 정호성, 안봉근 비서관)’을 내치지 못하는 이유를 나는 배신 트라우마에서 나온 ‘믿을맨 중독’으로 여겼지 남녀 차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그런데 여자라서 그렇다는 남자들의 지적은 충격이었다. “아무래도 여자다 보니…삼성동 시절에도 그 비서관들 빼고는 집에 사람들을 들이지 않았다고 한다. 화장 안 한 얼굴을 보여주기도 그렇고, 올림머리 하는 데도 시간 많이 걸리지 않겠나.” ‘불통’ 문제를 풀지 못하는 이유도 여자에서 찾는 남자들이 많다. “원로나 의원들 초청해 폭탄주 돌리면 내 편도 되고 깊은 얘기도 나눌 수 있다. 여자 대통령의 한계다.” 심지어 세월호 ‘7시간’과 “대통령이 경내에 있으면 어디든지 대통령 집무실”이라는 김기춘 비서실장의 발언을 놓고도 대통령이 여자여서 터진 문제라고 했다. “정위치 지키기가 조직 지도자의 첫째 덕목이라는 걸 대통령은 모르는 모양이다. 군대를 안 가서 그런가?” 2012년 대선 직후 박근혜를 찍은 투표자들에게 선택 이유를 물었더니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어서’가 ‘공약·정책’과 나란히 2위라는 게 갤럽 조사 결과였다. 첫 번째 이유는 ‘약속과 신뢰’다. 그 약속과 신뢰에 너무 매달리면 독선과 불통이 된다. 지금 대통령이 딱 그 짝이다. 안타깝게도 남자라면 카리스마적, 권위적으로 평가받는 리더십이 여자한테 붙으면 마초적, 독재적 ‘공포 리더십’으로 평가절하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당나라 황제들이 엄두도 못 낸 균전제 등의 개혁을 해내고도 잔인무도한 악녀로 기억되는 측천무후가 대표적이다. 지난 대선 직전엔 “인도의 인디라 간디, 파키스탄의 베나지르 부토 총리 등 대통령궁에서 자라 아버지에게 정치를 배운 여성 리더는 남성적 리더십으로 철권통치하다 갈등을 일으키고 실패했다”는 글이 오마이뉴스에 실리기도 했다. “부토는 누구도 신뢰하지 않은 것으로 유명하다. 정책 결정은 모두 비서관에 의해 이루어지고 중책은 모두 아첨꾼에게 돌아갔고…”라는 노무현 정부 때 홍보수석을 지낸 조기숙의 글은 섬뜩하기까지 하다. 물론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나지 않은 박 대통령을 일반적인 잣대로 재단할 순 없을 것이다. 다만 국민이 염증을 내는 현재의 박근혜 스타일이 여성 리더에게 흔히 나타나는 문제라는 사실엔 모골이 송연해진다. 자신이 리더라는 현실을 잊고 혼자 일개미처럼 일한다든가, 비공식 권력 네트워크에 안 낀다든가, 남들이 좋아할 만한 여성성을 절대 안 드러내는 건 여자들의 실패 공식이다. 특히 영어보다 중요한 ‘남자어(語)’에 무지한 점은 치명적이다. 명색이 장관이 문고리 3인방을 통해 보고서를 전하고 지시를 받는 것도 수치스러운 일이거늘 그들보고 “대면보고가 필요하세요?”라니. 그러고도 장관들의 분발을 바란다면 대통령의 욕심이 과해 보인다. 대통령이 실패하면 우리나라의 골든타임이 날아가 나의 노후도 암울해질 판이다. 사회생활을 하는 여자들이 앞으로 100년쯤 ‘박근혜 트라우마’에 발목 잡혀 조직의 장(長)은 못 맡을 공산도 없지 않다. 그래서 바라건대 박 대통령은 여성리더십 연구자들이 피땀 흘려 밝혀낸 문제점이라도 고쳐주면 고맙겠다. 만기친람이라는 완벽주의를 버리고 일을 내각에 과감히 위임하는 것이다. 경계를 정하는 것도 중요하다. “모든 게 빠져들면 금단현상이 생긴다”고 대통령이 말했지만, 3인방 없다고 해서 대통령직 수행을 못할 리 없다. 그까짓 대면보고, 어차피 세금으로 내는 모임과 식사, 남자 대통령은 다 해왔다는데 여자 대통령이라고 못할 게 뭔가. 2006년 대통령은 ‘여자니까 위기관리에 약할 것’이라는 건 편견이라며 “나는 평생 위기를 관리하고 극복하면서 살아온 사람”이라고 했다. 지금이 대통령의 위기상황이다.김순덕 논설실장 yuri@donga.com}

    • 2015-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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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 칼럼]정윤회를 들이든가, ‘문고리권력’ 내치든가

    대통령은 알고 있었을까. 박근혜 대통령의 측근 실세로 알려진 정윤회 씨가 국정에 개입해왔다는 보도가 나왔을 때 나는 그게 제일 궁금했다. 장관도 못한다는 대통령 얼굴 보기를 매일 하는 사람들이 ‘문고리권력 3인방’ 이재만 정호성 안봉근 비서관이다. 이들을 포함해 ‘십상시’라는 청와대 안팎 10명을 정윤회가 한 달에 두 번씩 만나 ‘VIP(대통령) 국정운영, BH(청와대) 내부 상황을 체크하고 의견을 제시하고 있음’이라고 공직기강비서관실 보고서엔 쓰여 있었다. 대통령의 재가를 받고 한 일이라면 대통령은 놀랄 것도 없다. 다만 하필 박지만 측근에게 들키고 신문에까지 나게 하는지, 왜 진작 보고는 없었는지 편치 않을 것이다. 요즘 회동은 잘 하는지 궁금할 수도 있다. 그러나 대통령이 전혀 모르게 해온 일이라면 배신도 이런 배신이 없다. 1998년부터 가족보다 더 신뢰했던 비서 3인방이 박근혜 아닌 다른 군주를 모시고 있다는 얘기 아닌가. 참새가 대붕의 뜻을 어찌 알리오(燕雀不知大鵬)마는 내가 대통령이라면 사실 확인부터 할 것 같다. 청와대는 근거 없는 내용이어서 김기춘 비서실장 선까지만 보고됐다지만 그래도 대통령이 문건 자체는 알았어야 한다. 누군가 “찌라시를 모은 내용이니 신경 쓸 것 없다”고 알렸더라도 3인방을 불러 사실 여부를 확인해야 속이 시원할 것이다. 조순형 전 의원은 이걸 친국(親鞫)이라고 했다. 지금까지 청와대가 밝힌 것만 보면 대통령은 이런 보고를 받지 못했다. 3인방이나 십상시 또는 정윤회라도 보고라인을 제치고 대통령에게 직보했을 경우가 아니라면, 대통령은 그런 풍문이 나돈다는 것조차 모른다는 얘기다. 참모진은 세월호 침몰 당일 틀린 보고에 이어 진도체육관 방문도 “경호에 문제가 있다”고 막아서더니, 대통령과 관련된 보고서마저 선별적으로 올려 대통령의 눈과 귀를 가리고 있는 것이다. 이 문건이 사실이라면 이들이야말로 국정을 농단하는 십상시라고 할 판이다. 청와대는 문건이 사실과 다르다며 기세등등 신문사를 고소했다. 하지만 청와대 사정을 좀 안다는 사람들은 어느 정도 맞을 것으로 본다. “공직기강비서관실에서 시중 루머를 짜깁기해 보고한다는 건 상상할 수 없다. 이 정도 내용이면 당연히 대통령한테 보고돼야 하고, 대통령은 3인방에게 당했다고 봐야 한다. 그들의 주군은 정윤회였다”라는 말도 나온다. 이쯤 되면 3인방은 문고리만 잡고 있는 게 아니라 이미 권력이다. 인사권의 70% 이상 넘어갔고 정(政)피아나 ‘듣보잡(듣도 보도 못한 잡놈) 인사’가 이들에게서 나온다는 설도 파다하다. 물론 문건에 ‘그만두게 할 예정’으로 언급된 김 실장이 건재한 걸 보면 정윤회가 실세 맞나 의심스럽다. 그럼에도 만에 하나, 3인방이 정윤회를 만나고 다녔다면 그들은 국민이 뽑은 대통령 아닌 다른 사람에게 충성하고 있었다는 의미다. 선출되지 않은 정윤회라는 사람이 책임지지 않는 권력을 휘둘렀다는 게 말이 되는가. 검찰이 수사에 나섰지만 사실이 밝혀지긴 쉽지 않을 듯하다. 등장인물들이 모두 부인하면 그만일 터다. 풍문을 퍼뜨린 사람을 모조리 잡아들이지 않는 한, 신의를 무엇보다 중시하는 대통령이 앞으로도 3인방을 믿을 수 있을지, 그들은 또 대통령을 잘 보좌할지도 걱정스럽다. 이 문제를 조기 종식하는 한 방법은, 정윤회를 비서실장으로 들이는 거다. ‘최태민의 사위’였지만 대통령 스스로 “법적으로 죄를 지은 것도 아니고 실력 있으면 쓸 수도 있는 것”이라고 2007년 말했다. 정윤회가 만난 역술인도 “비선 의혹 받게 하지 말고 차라리 비서실장 시키면 지금(김기춘)보다 훨씬 잘할 것”이라고 했다지 않던가. 아니면 3인방을 내치는 수밖에 없다. 수족 같은 심복이 사라지면 대통령은 불편하겠지만 그냥 두면 국민이 불편하다. 문고리권력 16년간 대통령의 눈과 귀를 차단해온 것도 곱게 봐주기 어렵다. 문건이 사실과 다르다 해도 구설수에 오른 것만으로도 책임질 필요가 있다. 이렇게 엄청난 사안을 대통령에게 보고 없이 뭉개고 비서실 기강 해이는 방치한 김 실장의 책임도 가볍지 않다. 가족과 측근을 우대하는 건 인간 본성이지만 족벌주의 연고주의를 국정에 앞세운 나라는 망한다고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일갈한 바 있다. 비서실 몇 사람 자리 보존보다 대통령이, 나라가 우리에겐 더 중요하다.김순덕 논설실장 yuri@donga.com}

    • 2014-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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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 칼럼]김현은 친노·486의 맨얼굴인가

    “용서를 구하기도 이해를 구하기도 어려운 일입니다.” 2005년 당시 노무현 대통령의 최측근이었던 이광재 의원이 홈페이지에 글을 올렸다. 병역 기피를 위해 제 손으로 오른쪽 검지를 잘랐다는 논란이 들끓던 때였다. 사과문 같지만 찬찬히 읽어보면 그는 잘못한 게 없다. “1986년 제 나이 21세 때 저는 스스로 손가락을 버렸다”고 했을 뿐, 자해(自害) 사실은 교묘하게 감추고 있다. 오히려 “80년대 시대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제 손가락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라며 사실 보도한 신문을 비판하는 투였다. ‘세월호 폭행사건’의 새정치민주연합 김현 의원을 보니, 한동안 잊고 지냈던 386(지금은 486)의 맨얼굴을 보는 느낌이다. 그는 84학번 한양대 총학생회 간부로 해병대 전우회보다 끈끈하다는 전대협(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에 속했고 노무현 정권에서 춘추관장, 2012년 문재인 대선후보 대변인을 지냈다. 사실을 사실로 인정하지 않고, 대의(大義)를 이루는 과정에서 생긴 ‘소란’쯤은 없는 셈 치는 건 9년 전 이광재나 지금 김현이나 다를 바 없다. 폭행 피해자인 대리기사와의 대질 신문에서 김현이 “반말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는 건 “손가락을 버렸다”는 이광재의 궤변과 흡사하다. 혹시 “너 내가 누군지 몰라요?”라고 존댓말을 했는지 어쨌는지는 모를 일이다. 대리기사는 “분명한 건 내가 처음 폭행당하는 시점에 (김 의원이) 바로 내 앞에 있었다는 것”이라는데도 김현처럼 “못 봤다”는 것도 아무나 못할 일이다. 이광재도 그랬다. “위장 취업해 기계를 다루다 사고로 손가락이 잘렸다”며 우리 기자와 인천 부평공장까지 간 일이 있었는데도 거짓이 밝혀진 뒤 사과 한마디 없었다. 사람이 나이가 들면 조금씩은 변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386도 486으로 업그레이드해서 불러주는 건데, 그리고 과거와 다른 사실(fact)이 드러나면 인식도 달라져야 마땅한데, 그들은 징그럽게도 변하지 않았다. 서경석 목사는 2003년 한 토론회에서 “386은 40대가 다 돼 가는 지금도 20대 때의 공동의 경험영역에서 벗어나지 못한 세대”라고 작심한 듯 꾸짖었다. 그때부터 11년이 지난 현재도 그들은 민주화투쟁을 하던 1980년대 의식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을 김현을 보니 알겠다. 공교롭게도 새정연은 마침 당권 교체를 앞두고 계파 간 치열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나는 김현이라는 의원이 남자인지 여자인지도 몰랐지만 파고들면 들수록 486이, 친노가 다시 권력을 잡으면 위험하겠다 싶다. 무엇보다 자신들만 옳다는, 탈레반 뺨치는 뻔뻔함 때문이다. 1980년대 초반까지 운동권은 “우리를 용공 좌경으로 매도하지 말라” 구호를 외치며 속으로 웃었다. 마르크스레닌주의 공부가 기본이어서다. 486 중에서도 1986년 이후 등장한 주사파는 친북반미(親北反美)가 핵심이다. 미 제국주의와의 투쟁이 정당하다고 믿는 까닭에 그들은 개인의 도덕성을 포함한 어떤 비난에도 반성하지 않을 수 있다. 더구나 주체사상은 교리처럼 암송만 하면 되는 데다 전대협은 데모와 도피에 전국을 누벼야 했기에 선배들처럼 치열하게 공부해본 바 없다. 친노 486과 전대협 출신 의원들이 실력 없고 ‘하청 정치’만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니 세상 바뀌는 것도 모른 채 반대만 주장하고 장외투쟁이나 하자는 것이다. 민주화투쟁 경력을 자랑하면서도 권위의식이 하늘을 찌르고, ‘패밀리’는 감싸면서도 그 밖에는 배타적인 것도 이들의 특징이다. 일찌감치 권력 맛을 본 까닭에 정권이 아니면 당권이라도 잡아야 한다는 패권의식은 강박관념 수준이다. 전대협 486이 박영선을 얼굴마담 격 원내대표로,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지지했다가 그가 당권을 노리는 듯하자 사퇴를 요구해댄 이유가 여기에 있다. 대선 때 사람 좋아 보이는 문재인을 자신들의 ‘도구’로 선택했던 ‘문재인 측’ 친노가 차츰 돌아서는 기색을 보이는 것도 패권 때문이다.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 영입을 시도했다니, 문재인의 판단력을 못 참게 된 모양이다. 지금의 새정연 노선보다 더 왼쪽으로 가야 할 판에 도구가 몸통을 흔드는 건 이들에게 반역이 아닐 수 없다. 젊은 날 그들이 맞섰던 신군부정권 못지않게 권위주의적이고, 지금도 공격하는 보수 정부보다 훨씬 수구꼴통적인 친노·486 본색을 김현 때문에 볼 수 있게 됐다. 새정연이 집권할 각오라면 혁신은 여기서부터 시작돼야 한다.김순덕 논설실장 yuri@donga.com}

    • 2014-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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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 칼럼]“내가 누군지 알아?”가 드러낸 세월호 폭행사건

    정말 죄송하다. 나는 김현이라는 국회의원이 누군지 몰랐다. 새정치민주연합 초선 비례대표가 그렇게 대단한지 모르고 있었으니 죽을죄를 지었다. 그럼에도 고맙기 짝이 없다. 덕분에 세월호 참사 다섯 달이 지나고도 변치 않는 권력의 속성과, 엄청나게 변질된 세월호의 정치성을 알게 됐다. 일각에선 세월호 참사 가족대책위원회 간부들이 김 의원과 술 마시고 대리기사를 폭행한 사건을 ‘실수’쯤으로 왜곡·축소·은폐하는 모양인데 어림도 없다. 세월호 참사가 단순 교통사고가 아닌 것처럼 이번 일도 단순 폭행사건을 넘어섰다. 세월호 참사와 폭행사건은 뜯어볼수록 유사점이 보여 참담할 정도다. 우선, 관련 동영상이 수없이 방송되면서 공분을 일으키는데도 관련자들은 진상을 가리려 든다는 점이다. 행인에게 맞았다며 팔에 깁스를 한 김병권 전 위원장은 폐쇄회로(CC)TV 확인 결과 제풀에 넘어져 그 꼴이 된 것이었다. 역시 맞아서 이빨 여섯 개가 나갔다는 김형기 전 수석부위원장도 사건 직후 멀쩡한 입술로 담배를 피워 문 동영상이 인터넷에 떠다닌다. 김 의원도 우리 기자와의 통화에서 “때리고 한 상황은 없었다”는 등 동영상으로 바로 확인되는 거짓말을 해댔다. 세월호 선장 아닌 척 첫 번째로 구조선을 탔다가 나중에 팬티바람 동영상이 드러난 이준석이 자꾸 연상돼 내가 다 괴롭다. 그때는 죄 없는 학생들이 가만히 있어야 했는데 이번엔 힘 없는 대리기사가 가만히 있어야 했고, 의원과 대책위 간부들이 “내가 누군지 알아?”(목격자들 증언) 으름장을 놓는 상황으로 바뀌었다. 바로 “내가 누군지 알아?”가 이번 사건을 참사로 키운 키워드다. 세월호 침몰 때 해경의 초동대처나 이번 경찰의 초동수사나 한심한 것도 똑같다. 다만 그때 해경이 배 안의 학생들 구조는 않고 선원들부터 구한 이유는 아직도 명확하지 않지만, 이번에 경찰이 편파수사를 한 이유는 김 의원의 “내가 누군지 알아?” 발언에서 너끈히 유추된다. 경찰에게 국회의원 명함을 주는 것부터 알아서 모시라는 뜻이다.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소속으로 경찰청장을 청문하는 의원님이 지시하는데 경찰이 어찌 감히 어길 수 있겠나. ‘완장’의 위세를 믿고 병원행을 주장하는 대책위 간부들의 뜻을 어떻게 거스를 수 있겠나 말이다. 세월호 참사에서 “국가개조” 소리 나올 만큼의 관(官)의 행태가 폭로됐다면 이번 사건에선 김현으로 상징되는 야당 권력의 갑(甲)질이 백일하에 드러났다. 백번을 양보해 사건 당시는 경황이 없어 실수를 저질렀다고 봐준다고 치자. 그러나 사건 발생 나흘이 지나도록 사과 한마디 없는 것은 뼛속 깊이 박힌 특권의식을 넘어 인간의 인간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더구나 김 의원은 한 달 전 오마이뉴스 기고에서 “세월호 진상규명을 위해 특별법에 수사권 기소권 부여가 당연하다”며 ‘사람 사는 세상’과 ‘반칙과 특권 없는 사회’라는 노무현 정신을 계승하려는 사람들이 ‘친노’라고 세월호 특별법과 친노를 연계시켰던 사람이어서 더 배신감을 느끼게 한다. 자료를 뒤져보니 그는 1980년대 한양대 학생회 간부로 일찌감치 야당에 입문해 노무현 정부 춘추관장을 지낸 전형적인 친노다. 세월호 특별법이 진상 규명이라는 ‘초심’에서 벗어나 수사권 기소권과 ‘대통령의 7시간’을 놓고 정치적 투쟁의 도구로 변질되는 데는 김 의원 같은 세력이 강경파 유족들을 떠받들며 좌파 매체-단체들과 상승작용을 일으켰다는 것이 새삼 확인된 셈이다. 이제 당신이 누군지 분명히 알아드리겠다. 자신과 한편이 아닌 사람들은 사람답게 대우하기는커녕 “내가 누군지 알아?” 하며 적의(敵意)를 드러내는 김 의원. 진보의 가치를 부르짖으면서 실제로는 반칙과 특권을 일삼는 김 의원. 당신 같은 의원 때문에 영등포경찰서는 ‘새정치민주연합당이 세월호 관련인들을 다 망쳐놓은 겁니다’ ‘영등포경찰서장과 그 졸개들은 야당과 예의를 모르는 세월호 일부 유족들의 충견인가’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위한 서명을 철회한다’ 같은 시민 분노로 지금 폭파 직전 상태다. 새정연 문희상 비상대책위원장이 아무리 절체절명의 위기의식과 환골탈태의 혁신을 말해도 소용없다. 김 의원을 경찰에 출두시키고 국민 앞에 사과하지 않는 한, ‘유족들 찔러가며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해 먹고 나라를 뒤흔든 비열한 야당과 치졸한 좌좀’(영등포경찰서 인터넷 게시판)이라는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김순덕 논설실장 yuri@donga.com}

    • 2014-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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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 칼럼]프란치스코 교황의 ‘빈곤 경제학’

    “교황의 방한은 박근혜 정부에 패착이 될 것.”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사무국장을 지낸 한상봉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주필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한하기 전부터 이렇게 예견했다. 교황이 언급하는 차별과 배제, 불평등의 천박한 자본주의의 땅이 바로 여기임을 확인하게 돼 정부로선 좋을 게 없다는 의미다. 정부의 영리병원 허용, 금융규제 완화 같은 경제정책은 ‘경제적 살인을 하지 말라’는 교황의 가르침에 어긋난다고 좌파매체들은 지금 난리다. ‘고삐 풀린 시장경제는 새로운 형태의 독재’라는 교황 말씀에 딱 들어맞는다는 거다. 정부도 얼떨결에 인정하는 모양이 됐다. 문화체육관광부가 만드는 정책브리핑에서 “이 나라의 그리스도인들이 새로운 형태의 가난을 만들어내고 노동자들을 소외시키는 비인간적인 경제모델들을 거부하기를 빈다”는 교황의 15일 성모승천대축일 미사 강론을 소개하며 “그간 비판해왔던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에 더욱 강한 메시지를 던졌다”고 맞장구친 것이다. 이쯤 되면 정부가 추진하는 경제활성화 법안 국회 통과는 물 건너갈 판이다. 고백하자면 나는 가톨릭 신자다. 신심이 깊지는 못하지만 교황의 파격적이리만큼 청빈하고 소탈한 말과 행동은 경애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제에 대한 교황의 언급은 종교적인 의미 말고는 진리로도, 사실로도 받아들이기 어렵다. 나 같은 사람을 위해 바티칸의 루트비히 뮐러 신앙교리성 장관은 “남미 사람들의 심리를 알지 못하면 프란치스코 교황을 진정으로 이해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했다. 아르헨티나 출신 교황이 경험한 자본주의는 제대로 된 시장경제가 아니라 부패 아니면 정실 자본주의뿐이다. 자본주의 비판은 가톨릭의 오랜 전통이지만 교황은 제3세계의 시각에서 자본주의를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가 경험한 정치는 마르크시즘과 자유주의 사이에서 헤맨 페론주의 포퓰리즘 아니면 군부독재였다. 빈부격차가 극심한 조국에서 교황은 해방신학을 내놓고 지지하진 않았지만 가난한 이에 대한 착취를 비판하며 청빈을 실천했다. 미워하면서 닮게 된 건지 페론주의의 영향을 받아 국가 역할을 중시하고 엘리트 공격 같은 포퓰리즘 수법에 능하다는 게 영국 이코노미스트지(誌)의 지적이다. 안타깝게도 페론주의를 숭상하는 아르헨티나는 페론이 남긴 포퓰리즘과 폐쇄경제 탓에 최근 여덟 번째 디폴트(채무불이행)를 맞았다. 유럽에서 재정위기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PIIGS(포르투갈 이탈리아 아일랜드 그리스 스페인) 국가는 우연찮게도 죄 가톨릭국가(그리스는 그리스정교)다. 종교개혁을 이끈 마르틴 루터가 살아 돌아온다면 가톨릭국가의 유럽연합(EU) 가입을 막았을 것이라는 얘기가 나돌 정도다. 이 나라들은 규제 많고 정부 지출도 북유럽 뺨치는 비중이어서 ‘고삐 풀린 시장경제’라고 하기 어렵다. 차라리 직업윤리는 약하고 돈을 죄악시하면서 관료와 부패에는 관대한 가톨릭 문화가 재정위기를 키웠다는 분석이 설득력 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게 자본주의를 일깨워준 신학자 마이클 노백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경제론은 가난한 자를 가난에 머물게 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아무리 교황을 공경한대도 그의 빈곤 경제학만은 따르기 힘들다는 결론이 나올 수밖에 없다. 극심한 빈부격차는 바로잡아야 마땅하되 중요한 것은 가난에서 빠져나오게 하는 방법이다. 교황이 말하는, 또 좌파진영에서 강조하는 가난한 사람에 대한 관심과 연대만으로는 한참 모자란다. 그 정도로 세상의 격차를 없앨 수 있다면 교황은 부패로 얼룩진 바티칸은행을 해체해 가난한 사람들에게 전부 나눠주고 말았을 거다. 교황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바티칸은행 경영진을 모조리 교체한 뒤 최고의 금융 전문가 7명을 불러 금융개혁을 전담시킨 것이다. 스페인 몬드라곤 같은 협동조합 성직자를 부르지 않았고, 노동자의 권리를 중시한다고 노조에 맡기지도 않았다는 점은 중요하다. 가난한 사람을 진짜 도우려면 그들이 최고의 전문가가 될 수 있도록 최고의 교육을 받게 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로마에서 교황의 인기가 하늘을 찌르는 건 교황의 파격적 스타일 덕분에 관광객이 늘고 경제가 좋아져서라는 얘기가 있다. 교황이 준 경제적 화두는 마음과 윤리 바로잡기에 소중히 활용하되, 나라 경제의 발목을 잡는 무기로 쓰는 건 교황도 원치 않는다고 믿고 싶다.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 2014-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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