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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좋은 노부부는 아기 눈사람을 만든다. 눈사람이 추울까 봐 집으로 옮긴 부부는 다음 날 아침 아이를 발견한다. 자녀가 없던 부부에게 눈나라에 사는 아이가 찾아온 것. 셋은 즐거운 시간을 보내지만 봄이 오자 아이는 떠나야 한다. 다시 겨울이 되면 만날 수 있을까.(나태주 ‘눈사람 아기’) 나태주 작가가 등단 50주년을 맞아 우미옥 임태리 장성자 안선모 이현주 최이든 작가와 함께 동화집을 냈다. 볼이 자주 붉어져 ‘딸기’라는 별명이 붙은 ‘나’가 별명이 ‘우유’인 우유석을 돕다 가까워지고(우미옥 ‘우리는 딸기 우유’), 베란다에서 떨어진 아기 이불이 길고양이를 만난다(장성자 ‘고양이 이불’). 지우개 따먹기 놀이를 하다 감정이 상하지만 결국 서로의 마음을 알게 되는 동하와 준우.(이현주 ‘지우개 따먹기’) 여리고 자그마한 존재들이 빚어내는 이야기가 따스하다. 가만가만 생명을 어루만지는 보드랍고 섬세한 손길을 맑은 눈으로 바라본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1918년 스페인 독감, 1957년 아시아 독감, 1968년 홍콩 독감…. 과학자이자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이런 전염병이 과도한 전파 사용으로 인한 전자기장 교란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미국 어바인 캘리포니아대 의대에 다니던 저자는 엑스레이 과잉 노출 질환으로 학업을 중단했다. 그는 20세기 들어 심장병, 당뇨병, 암 환자가 급증하는 현상도 전기 사용과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놀랍고 다소 의아해 보이는 주장을 저자는 각종 연구 결과와 사례로 뒷받침한다. 미국은 1917년 자국과 식민지에 고출력 송신기를 50개 이상 세웠고 해군은 1만 개 넘는 송신기를 함정(艦艇)에 설치했다. 1918년 뉴욕주, 메릴랜드주에는 고성능 송신 장비가 들어섰다. 저자는 수천만 명이 숨진 스페인 독감이 그해 미국에서 발생해 미 해군 함정에 의해 세계로 퍼진 것 같다고 말한다. 미국에 휴대전화 중계탑 수만 개가 들어선 1996년, 운동선수들의 심장마비가 두 배로 늘었다. 저자는 전자기장이 에너지를 생산하는 미토콘드리아의 활동력을 떨어뜨려 세포가 포도당 지방 단백질을 분해하는 속도를 줄어들게 한다는 연구 결과를 그 근거로 제시한다. 전자파와 질병 간의 인과관계가 직접적으로 명확하게 확인되지는 않지만 많은 사례로 그 가능성은 가늠케 한다. 번역자인 박석순 이화여대 환경공학과 교수는 “전파시설에 따른 영향을 파악해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원제 ‘The Invisible Rainbow’.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빵을 무척 좋아하는 토끼 삐뽀. 빵 생각만 하다가 빵이 되기로 결심한다. 삐뽀는 빵집 아저씨에게 말한다. “저를 빵으로 만들어 주세요.” 어처구니없어 하는 아저씨에게 쫓겨난 삐뽀는 직접 빵이 되려 한다. 하얀 빵 옆에 밀가루를 바른 몸을 동그랗게 말고 앉는다. 또 쫓겨났다. 두 귀 사이에 토마토와 치즈, 양상추를 넣어 샌드위치를 만든 후 샌드위치들 사이에 자리 잡은 삐뽀. 역시 금세 들킨다. 진짜 좋아하는 대상 그 자체가 되고 싶은 꿈을 깜찍하게 담았다. 무언가를 간절히 좋아해 본 이라면 아는 그 마음. 아저씨는 삐뽀에게 빵을 함께 만들자고 제안한다. 삐뽀가 작은 손으로 조물조물 주물러 만든 토끼 모양 빵은 삐뽀를 꼭 닮았다. 삐뽀는 빵 만들기로 만족했을까. 천만에! 얼굴에 달걀 물을 바른 삐뽀는 토끼빵 옆에 선다. 빵으로 보일까 궁금해하며…. 끈기가 단연 최고다. 앙증맞은 그림은 이야기와 발랄하게 어우러진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근로자 휴가지원사업에 참여한 이들이 여행을 더 오래하고 지출도 더 많이 한 것으로 나타났다. 중소기업, 소상공인 근로자 등을 대상으로 하는 근로자 휴가지원사업은 근로자가 20만 원을 부담하면 기업이 10만 원, 정부가 10만 원을 각각 지원한다. 근로자는 총 40만 원을 국내 여행 경비로 사용할 수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은 지난해 근로자 휴가지원사업에 참여한 근로자 1000명과 미참여 근로자 500명을 대상으로 여행 실태를 조사한 결과 참여 근로자의 국내 여행 기간은 9.82일로 미참여 근로자보다 3.24일 많았다고 20일 밝혔다. 지출액도 참여 근로자는 평균 201만9400원으로 집계돼 참여하지 않은 이들보다 102만5700원을 더 썼다. 여행 횟수도 참여 근로자는 4.86회로, 미참여 근로자에 비해 1.4회 많았다. 당초 계획이 없었지만 휴가지원사업을 통해 여행을 다녀왔다는 답변은 58.5%였다. 여행지를 해외에서 국내로 바꿨다는 이는 50.8%나 됐다. 지난해 8만 명이었던 지원 인원은 올해 12만 명으로 늘었다. 대상도 중견기업 근로자, 소상공인 대표로 확대했다. 지원금은 내년 2월까지 국내 여행을 할 때 사용하면 된다. 참가 신청은 선착순으로 받는다. 근로자 휴가지원사업 누리집에서 기업이 신청하고 전담지원센터에 문의하면 된다.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서울 광화문 앞에 있는 조선시대 관청 ‘의정부’ 터(의정부지·議政府址)가 문화재가 된다. 이곳은 광화문광장∼세종대로의 옛 육조거리에 있던 주요 관청 가운데 유일하게 흔적이 남아 있다. 서울시는 종로구 세종로 76-14 일대 ‘의정부지’ 1만1300m²가 국가지정문화재 사적으로 지정 예고된다고 20일 밝혔다. 의정부는 1400년(정종 2년) 설치된 후 1907년까지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 등이 국왕을 보좌하며 국가 정사를 총괄하던 조선시대 최고 행정기구다. 임진왜란 때 화재로 건물이 훼손됐다가 흥선대원군이 집권한 후 1865년 경복궁과 함께 재건됐다. 이후 일제강점기와 산업화 과정에서 경관이 대부분 훼손됐다. 의정부 터에는 1990년대까지 여러 행정 관청이 있었다. 1997년부터 서울시가 공원인 ‘광화문 시민열린마당’으로 사용해왔다. 서울시는 2013년 옛 의정부의 유구와 유물을 처음 확인했고 2016년부터 본격적인 발굴 조사를 했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우리 집은 언덕 위에 있어. 놀러 와.’ 토끼의 편지를 받고 길을 나선 오리. 한데 언덕이 줄지어 나타난다. 알고 보니 거북이 등이다. 거북이는 미안해하는 오리를 다른 언덕으로 데려다 준다. 앗, 그런데 분수가 솟구친다. 이번엔 고래 등에 올라탄 것. 오리는 두더지, 새, 양에게 토끼를 봤는지 묻는다. 여기저기 헤매지만 포기하지 않는 오리는 꿋꿋하다. 토끼 이름을 불러보라는 양의 말에 “깡충아∼”라고 크게 외치자 “꽥꽥아!” 하며 나타난 깡충이. “너 찾기 되게 쉽더라”는 꽥꽥이의 허세가 귀엽다. 보너스 같은 이야기 하나. 꽥꽥이와 깡충이가 만나는 모습을 본 다른 토끼들은 술래잡기가 끝난 거냐며 소곤거린다. 책장을 앞으로 넘겨 찬찬히 살피면 꽥꽥이가 새를 만날 때부터 바위 뒤에 숨어 있는 토끼들의 귀, 다리가 살짝 보인다. 토끼들은 꽥꽥이가 술래잡기를 하는 줄 알고 열심히 숨은 것. 기발하고 깜찍한 상상력에 웃음이 터진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어젯밤 몇 번이고 책을 읽어달라던 18개월 딸아이가 오늘 아침 비 내리는 창밖을 보며 ‘주룩주룩’이라고 말해 너무 놀라웠어요.” “아이가 엄청 빠져서 율동과 노래도 하며 재미있게 봤어요.” 의성어와 의태어로 가득한 그림책 ‘구름똥’ ‘코끼리 방귀’ ‘데굴데굴 집’을 본 독자들이 온라인 서점에 올린 글이다. 책을 보다가 신나게 춤추는 아이의 사진을 첨부하기도 했다. 꼬마싱긋 출판사는 ‘구름똥’이 출간된 지 3개월여 만에 4000권 넘게 판매됐고, ‘코끼리 방귀’의 판매량은 2개월여 만에 1500권이 넘었다고 밝혔다. 그림책으로는 판매 속도가 빠르고 판매량도 많은 편이다. 탁소 작가(48)를 서울 강남구 사무실에서 8일 만났다. 광고회사 크리에이티브 본부장인 그의 본명은 김홍종. 안동이 고향인 그는 경상도 말씨로 “독자들의 피드백을 받을 때마다 뭉클하다”며 쑥스럽게 웃었다. 그러더니 곧 출간할 ‘바나나킹’의 표지를 보여주며 물었다. “30초 안에 설명해드릴까요?” 서울산업대(현 서울과학기술대) 금속공예과를 졸업한 그는 국내 대형 광고회사에 취직했다. 작가를 꿈꿨던 그는 2008년 사표를 내고 3년간 일러스트책, 글씨로 메시지와 감성을 전하는 타이포아트, 그림책 작업을 했다. ‘구름똥’ ‘코끼리 방귀’도 당시 작업한 책들이다. “아이들이 의성어와 의태어를 좋아하는 걸 보고 수백 개를 취합했어요. 이런 동작을 하고 소리를 내는 건 동물이 많다 보니 동물 캐릭터를 등장시켰죠. 똥과 방귀는 아이들이 영원히 사랑하는 소재고요.”(웃음) 작품 한 권에는 ‘뱅글뱅글’ ‘폴짝폴짝’ 등 의성어와 의태어가 20∼30개 들어간다. 캐릭터들은 서로를 도와준다. ‘구름똥’은 세찬 바람 때문에 하늘에서 땅으로 떨어진 구름 이야기다. 먼지가 묻은 구름은 흙색으로 변해 외면당하는데, 개구리가 ‘으라차차’ 뒷발로 힘껏 찬 덕분에 하늘로 ‘휘리릭’ 올라간다. 날이 더워져 개구리가 힘들어하자 구름은 시원하게 비를 내려 준다. 독자들은 ‘선한 상상력으로 기분 좋은 책’ ‘편견 없이 세상을 바라보게 하는 책’이라고 평했다. “지하철, 버스를 타고 출퇴근할 때 아이디어가 많이 떠올라요. 지금도 그림책 아이디어가 100개 정도 있어요.” 업무 강도가 높은 광고계로 돌아왔지만 과거에 작업을 해 놓았기에 출간이 가능했다. 초등학교 2학년인 딸이 조언도 많이 해준다. “해봄이가 ‘아빠, ‘출렁출렁’보다는 ‘촐랑촐랑’이 더 잘 어울려’라고 콕 찍어서 말해줘요. 진짜 그 말이 맞더라고요.” 그의 책은 쨍한 원색의 선명한 그림도 눈길을 끈다. 단번에 시선을 사로잡아야 하는 광고의 특성이 그림책으로도 이어진 걸까. 그는 금연 광고로 대한민국공익광고제 대상을 받았고 뉴욕페스티벌, 런던 인터내셔널 어워즈에서도 수상했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보게 만들까 늘 고민해요. 아이들은 알록달록한 그림에 집중하는 것 같아 채도를 높였어요. 캐릭터의 눈을 크고 또렷하게 그리는 것도 같은 맥락이고요.” 탁소는 20대 때 쓰던 필명 ‘세탁소’에서 왔다. “세탁한 옷의 뽀송뽀송한 느낌을 좋아해서 창작물을 통해 뽀송한 기분을 전하고 싶었어요. 나이가 드니 너무 직설적인 것 같아 ‘세’ 자는 뺐어요.”(웃음) 그는 그림책 작업에서 활력을 얻는다고 했다. “회화를 전공한 분들에 비하면 저는 그림을 잘 못 그려요. 그만큼 아이디어로 승부를 봐야죠. 목표는 그림책 100권 만들기예요. 할아버지가 돼도 재미있는 그림책을 만드는 꿈을 꿉니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너 같은 거 꼴도 보기 싫어!” 처음 듣는 말이었다. 친구는 이유도 말해 주지 않고 가버린다. 아이는 눈물이 나올 것만 같다. 아이도 친구를 미워하기로 마음먹는다. 숙제를 할 때도, 배드민턴을 칠 때도, 목욕할 때도…. 그런데 이상하다. 마음이 하나도 시원하지 않다. 상처 주는 말이 가시처럼 목에 걸리고 귓가에 맴도는 느낌을 절묘하게 그려냈다. 자꾸 긁으면 번지지만 신경 쓰지 않고 놔두면 가라앉는 부스럼. 미움도 그런 거다. 마음에 미움이 가득 차면 그 창살 속에 내가 갇히고, 발에 무거운 족쇄를 찬 것처럼 힘들다. 미워하지 않는 건 쉽지 않지만 이를 해내고 나면 훨훨 가벼워지는 건 자기 자신이라고 얘기해 준다. 감정의 변화를 섬세하게 들여다보고 공감을 자아내는 글과 그림으로 표현했다. 고개를 끄덕이며 책장을 넘기다 어느새 내 마음을 가만히 바라보게 된다.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상대적으로 여유롭고 안전한 국내 여행지는 어디일까. 코로나19 사태로 여행지를 선택하는 기준 가운데 안전은 더욱 중요한 요소가 됐다. 한국관광공사와 7개 지역관광공사로 구성된 지역관광기관협의회는 안심하고 갈 수 있는 ‘언택트 관광지 100선’을 추천했다. 이들 관광지는 △많이 알려지지 않고 △개별 혹은 가족 여행을 하기 좋으며 △야외이고 △자체적으로 입장객 수를 제한하는 곳을 기준으로 검토해 선정했다. 경기 평택시 바람새마을 소풍정원은 생태체험을 할 수 있는 습지공원이다. 시흥시 갯골생태공원에서는 옛 염전의 정취를 느낄 수 있다. 인천 강화군 석모도에는 백사장 길이가 1km가량인 민머루해변이 있다. 대전 식장산 문화공원에는 대전 도심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식장산 전망대가 있다. 측백나무와 편백나무의 향기를 음미할 수 있는 곳으로는 경북 영덕군 벌영리 메타세쿼이아길이 꼽혔다. ‘안동의 비밀의 숲’으로 불리는 낙강물길공원은 곳곳에 사진 찍기 좋은 명소가 많다. 울진군 등기산 스카이워크는 짙푸른 바다를 바라보며 시원한 파도 소리를 듣기에 제격이다. 부산 아미르공원은 넓은 잔디에서 탁 트인 바다를 감상하기에 적합하다. 전북 남원시 교룡산국민관광지에는 교룡산성과 선국사가 있다. 전남 해남군 우수영은 명량대첩 기념공원으로 조성돼 역사 교육장으로 활용하기에 좋다. 제주 거문오름은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된 곳이다. 자세한 내용은 대한민국 구석구석 홈페이지 참조.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오늘 1만7000원을 받았습니다. 영화 ‘내 아내의 모든 것’에 사용한 노래의 저작권료예요. 가사를 제가 썼거든요. 영화가 TV 등에서 아무리 많이 방영돼도 제게 돌아오는 건 없는데 노래 덕분에 수입이 생기네요.” 지난달 민규동 영화감독이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감독은 연출에 따른 계약금을 받는 게 전부라고 했다. 영화가 흥행에 성공하면 추가 수익을 얻지만 손익분기점을 넘는 건 15%에 불과하다는 것. 계약금 외 수익을 갖는 감독은 극히 소수라고 했다. “저를 비롯해 시나리오를 쓰는 감독이 많은데요, 여러 플랫폼에서 영화가 방영되어도 시나리오 작가료, 연출료를 못 받아요. 모두 제작사의 몫이죠.” 민 감독은 어려운 환경에서 제대로 보상받지 못하는 구조 때문에 창작 의지가 꺾인다고 털어놓았다. 그가 대표를 맡고 있는 한국영화감독조합에 따르면 최근 5년간 받은 연출료를 연봉으로 환산한 결과(2017년 기준) 수입이 아예 없거나 500만 원 미만이 39%, 500만 원 이상 1000만 원 미만이 21%였다. 감독 5명 가운데 3명은 한 달 평균 소득이 100만 원이 채 안 되는 셈이다. 민 감독은 “독신인 감독이 많은 건 이와 무관치 않다”고 했다. 대학 강의를 할 수 있으면 다행이고, 배우자가 생계를 책임지거나 빚을 내 사는 감독도 적지 않단다. 보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출판계도 그렇다. 이성미 시인은 “원고료 대신 정기구독권이나 문예지를 주거나 씻어도 씻어도 검은 물이 나와 먹어도 되나 싶은 쌀을 주는 경우도 있다”고 밝혔다. 원고료를 아예 못 받기도 한다. 한 시인은 “원고료가 얼마인지 물어보기가 민망해 일단 원고를 보냈다. 한참 뒤 편집자가 전화해 ‘경영 상태가 어려워 원고료를 지급할 수가 없다. 미안하다’고 한 적이 많다”고 했다. 그는 이런 일을 숱하게 겪은 후 원고 청탁이 들어오면 반드시 원고료를 확인한다고 했다. 작품이 실패하면 출연료를 못 받기도 한다. 유명 원로 배우는 3년 전 방송 프로그램이 조기 종영되면서 출연료를 받지 못했다고 했다. 돌아가는 분위기가 이상하다고 느낀 다른 배우는 촬영 때마다 “출연료를 먼저 주지 않으면 안 찍겠다”고 버텨 유일하게 출연료를 받아냈다고 한다. 원로 배우는 “그런데 촬영 현장에서 그렇게 하기가 어디 쉽나…”라며 말끝을 흐렸다. 코로나19 사태로 예술 현장이 멈춰서면서 문화계 종사자들은 질식 직전에 처했다. 정부는 긴급 지원에 나섰다. 급한 불은 빨리 꺼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창작물에 따른 수익을 체계적이면서도 지속적으로 지급하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꼭 필요하다. 정당한 보상이 담보돼야 의욕적으로 창작 활동에 몰입할 수 있고, 이는 더 좋은 결과물로 이어진다. 민 감독은 말했다. “단 한 명이라도 영화를 본다면 수익의 일부분이 감독에게 가야 하지 않을까요.” 이는 창작물을 만들고 이에 대한 권리를 지닌 이들의 공통된 바람일 것이다. 손효림 문화부 차장 aryssong@donga.com}

요나라 승려 행균이 997년 펴낸 한자 사전인 용감수경(龍龕手鏡). 고려시대에 목판에 새겨 제작한 용감수경은 국보 291호다. 중국에도 남아 있지 않은 세계 유일본이다. 이 국보는 현재 고려대 도서관에 있다. 용감수경을 비롯해 삼국유사, 용비어천가 등 보물 7점, 서울시 지정문화재, 등록문화재까지 고려대 도서관은 모두 16점의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다. 고서 12만여 권 가운데 귀중서는 1만 권가량이다. 조선시대 규장각을 이어받은 서울대 규장각 한국학연구원을 제외하면 대학 도서관으로는 희귀본 소장 규모와 질적인 면에서 이례적이다. 고려대 도서관은 국보와 보물, 귀중서 50점을 담은 도록(圖錄) ‘카이로스의 서고’(양장본 9만 원, 비양장본 5만 원·사진)를 발간한다. 카이로스는 그리스어로 기회, 특별한 시간을 의미한다. 책은 일반인을 대상으로 만들었기에 문화재와 귀중서에 대한 설명을 한글로 쉽게 풀고 영어도 병기했다. 이재용 사진작가가 촬영을 담당해 시각적 효과를 극대화했다. 국보, 보물이 고려대 도서관으로 가게 된 건 기증과 매입을 통해서다. 육당 최남선(1890∼1957)의 유족은 고서 수집에 남다른 애착을 보이던 육당이 보관하던 2만2000여 권을 기증했다. 용감수경과 삼국유사(보물 419-4호), 훈민정음이 이에 포함됐다. 초판본으로 인쇄 상태가 뛰어난 용비어천가(보물 1463-4호)와 고려시대 문인 최해가 빼어난 문장을 선별해 정리한 시문선집인 동인지문사륙(東人之文四六·보물 710호)은 변호사였던 만송 김완섭의 유족이 기증했다. 만송은 수임료를 받으면 일본 등 해외로 반출될 뻔했던 고서들을 꾸준히 사들였다. 선생이 고려대에 출강한 인연으로 유족은 1975년 고서 1만9000여 권을 기증했다. 학교는 감사의 뜻으로 5000만 원을 출자해 ‘만송장학금’을 만들어 현재까지 운용하고 있다. 조선시대 전국 팔도에 있는 봉수대를 표기한 지도인 해동팔도 봉화산악지도(보물 1533호)와 김정호가 만든 전국 지도책인 청구도(보물1594-3호)는 학교가 매입했다. 해동팔도봉화산악지도는 적색, 황색, 녹색, 청색 등을 사용해 봉수대는 물론이고 산을 세밀하게 그리고 바다도 물결을 곡선으로 율동감 있게 표현해 한 폭의 그림 같다. 청구도는 두 권으로 나뉘어, 완성된 지도를 보려면 두 책을 위아래로 놓고 나란히 펼쳐야 한다. 고려대의 전신인 보성전문학교는 창립 30주년을 기념해 1935년 도서관을 착공하고 1937년 완공했다. 석영중 고려대 도서관장(노어노문학과 교수)은 “귀한 손님에게 보물창고를 열어 보이고 싶은 마음으로 도록을 발간했다”며 “섬약하면서도 질긴 종이에 담긴 강건하고 항구한 에피스테메(지식)에 바치는 헌시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맛난 개암 세 알을 가진 너구리. 두 알을 먹고 세 번째는 위로 던져 받아먹으려는데, 아뿔싸. 땅속 구멍으로 들어가 버렸다. 화가 나 두 발로 땅을 쾅쾅 찬다. 한숨 자고 난 너구리에게 까마귀가 엄청난 얘기를 들려준다. 낮잠 자던 호랭이가 노루에게 배를 콱 밟혔다는 것. 호랭이에게 잡힌 노루는 구렁이가 쫓아와 놀라서 펄쩍 뛰었다고 한다. 구렁이는 멧돼지들이 달려와서, 멧돼지들은 두더지가 튀어나와서 그랬다. 두더지는 굴러온 개암을 먹는데 갑자기 땅이 쿵쿵 울리고 집이 무너져 개암이 목에 걸리는 바람에 숨이 막혀 급히 땅을 파고 올라왔다는데…. 곤경에 처한 친구들 소식에 키득거리다 두더지 얘기에 얼어붙는 너구리의 표정 변화에 웃음이 쿡쿡 나온다. 아파서 몸부림치는 호랭이, 놀란 노루와 구렁이, 멧돼지. 모두 생동감이 가득하다. 익살맞은 이야기와 장면들은 보고 또 보게 된다. 친구에 대해 생각할 거리도 유쾌하게 던진다.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배리어 프리 영화’는 시청각장애인이 영화를 제대로 감상할 수 있고 비장애인은 코멘터리를 듣는 기분으로 새롭게 영화를 즐길 수 있습니다.” 영화 ‘내 아내의 모든 것’ ‘간신’ 등을 연출한 민규동 감독(50·사진)이 말했다. 장벽 없는 영화라는 뜻의 배리어 프리 영화는 시청각장애인이 볼 수 있게 영상과 소리를 음성으로 설명하고 대사는 자막으로 해설한다. 민 감독과 ‘감쪽같은 그녀’의 허인무 감독, 오하늬 배우, 시각장애인 아나운서 이창훈이 23일 서울 중구 현대오일뱅크 사옥에서 배리어 프리 영화를 주제로 토크쇼를 열었다. 현대오일뱅크 현대중공업 등의 직원들이 급여 1%를 기부하는 ‘현대중공업그룹 1%나눔재단’의 지원으로 올해 ‘감쪽같은 그녀’와 애니메이션 ‘잃어버린 세계를 찾아서’가 배리어 프리 영화로 탄생했다. 재단은 매년 영화 2, 3편을 배리어 프리로 제작하도록 지원하고 토크쇼 영상은 전국 맹학교에 무료로 배포할 예정이다. 민 감독은 윤제균 감독과 함께 2018년부터 한국영화감독조합 공동대표를 맡아 배리어 프리 영화 제작을 위한 재능기부를 독려하고 있다. 민 감독은 농담처럼 “감독조합 대표를 맡아 주로 하는 게 중개업”이라며 웃었다. 민 감독도 2014년 한지민 배우와 함께 일본 애니메이션 ‘늑대 아이’를 배리어 프리로 제작했다. 민 감독은 “장면에 담긴 모든 걸 해설할 수 없기에 핵심을 뽑느라 고민했다. 의미를 잘못 전달할까 봐 걱정도 되고…. 바람이 솔솔 부는데 어느 정도 세기로 어디에서 불어오는지 묘사하는 것도, 음악을 설명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액션 장면이나 화면 전환이 빠른 경우, 사람이 많이 나오는 장면도 말로 옮기는 게 까다롭다. 그는 “그럼에도 시각과 청각을 언어화하며 묘한 쾌감을 느꼈다. 좋아하는 영화를 찬찬히 다시 음미하는 것도 매력적이었다”고 했다. 허 감독은 “‘감쪽같은 그녀’를 배리어 프리로 만들며 놓쳤던 포인트를 다시 풍성하게 살려내는 신선한 경험을 했다”고 말했다. 이 아나운서는 “중학생 때 ‘공동경비구역 JSA’를 배리어 프리로 봤다. 가족의 도움을 받지 않고도 각 장면을 생생하게 파악할 수 있어 정말 놀라웠다”고 말했다. 국내에서 한 해 상영되는 영화는 1700여 편이지만 배리어 프리로 제작되는 건 30편가량으로 2%가 채 되지 않는다. 사단법인 배리어프리영화위원회는 2011년부터 매년 서울배리어프리영화제를 열고 있다. 민 감독은 “제작된 영화가 배리어 프리로 만들어지는 게 당연한 일이 되고, 더 많은 영화가 장애를 넘어 최대한 많은 이들에게 가 닿을 수 있기를 소망한다”고 말했다.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로봇이 지배하는 세상에 사는 돼지치기 소녀 요릿. 숲에서 압둘라 아저씨가 숨진 채 발견되자 조사관으로 로봇 리처드가 파견된다. 숲길을 안내하던 요릿과 리처드는 구덩이에 빠지고, 뱀 같은 몸뚱이에 늑대의 머리를 가진 괴물이 나타난다. 뜻밖에 괴물은 둘을 구덩이에서 꺼내준 뒤 “나는…누구…입니까?”라고 묻고는 사라진다. 요릿은 괴물을 만든 로봇 닥터 프랑켄에게 붙잡히는데…. 자만하던 인간이 자신들이 개발한 로봇에게 지배당하는 현실을 생생하고도 긴장감 있게 그렸다. 로봇이 책을 모조리 압수하지만 알퐁스 도데의 ‘별’, 제인 오스틴의 ‘노생거 수도원’ 등을 구전하는 인간들의 모습은 지식과 지혜를 이어가려는 의지를 보여준다. 제3의 존재라는 뜻으로 괴물에게 ‘써드’라는 이름을 지어준 요릿. 서로 교감하고 우정을 나누는 요릿과 써드, 리처드는 달라도 함께할 수 있다고 말해준다. 메리 셸리의 소설 ‘프랑켄슈타인’의 캐릭터를 차용한 건 작품에 대한 오마주로 다가온다.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2015년 표절 파문으로 칩거하다 지난해 중편소설을 발표했던 신경숙 소설가(57·사진)가 장편소설로 돌아왔다. 창비는 ‘창작과비평 웹매거진’(magazine.changbi.com)에 신 씨의 신작 장편 ‘아버지에게 갔었어’ 연재를 23일 시작했다고 밝혔다. 고통 속에서도 묵묵히 자리를 지키는 아버지의 이야기를 담은 이 소설은 화요일과 목요일에 싣는다. 신 씨는 ‘연재를 시작하며’에서 “당신 뜻대로 되지 않은 힘겨움 앞에 서 계시는 나의 아버지께 이 작품을 드리고 싶은 마음으로 쓴다고 말하고 싶으나 사실은 오그라든 제 마음을 회복하기 위해 쓰는 것인지도 모르겠다”고 밝혔다. 신 씨는 2015년 단편 ‘전설’이 일본 작가 미시마 유키오의 ‘우국’을 표절했다는 의혹에 휩싸이며 활동을 중단했다. 지난해 5월 계간 ‘창작과비평’ 여름호에 중편 ‘배에 실린 것을 강은 알지 못한다’를 발표하며 표절 문제에 대해 처음 공식 사과했다. 하지만 표절을 인정하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계속 모호한 입장을 취했다.손효림기자 aryssong@donga.com}

“커서 뭐가 되고 싶니?” 시몬이 학교에서 받은 질문이다. 대답을 하지 못한 시몬. 엄마는 할머니에게서 들은 비밀이라며 “꿈이 답을 알고 있다”고 말한다. 잠든 시몬은 꿈에서 벌새, 지네와 이야기를 나누지만 만족스러운 답을 찾지 못한다. 달콤한 딸기 향을 맡은 시몬은 딸기를 키우는 농부가 되겠다고 마음먹는다. 한데 다람쥐가 다가와 이렇게 말하고 사라진다. “네가 원하는 것이면서도 항상 될 수 있는 것.” 작가는 아이들이 자주 받는 질문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자고 제안한다. 특정한 직업을 찾는 건 아니다. 다람쥐의 말은 나란 존재는 누구인지, 진정한 내가 된다는 건 어떤 것인지에 대한 실마리를 던진다. 아이도, 어른도 답하기 쉽지 않은 질문이지만 자신을 찬찬히 들여다보게 한다. 과감하면서도 몽환적인 그림은 생각의 날개를 마음껏 펼치게 만든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50세가 넘어 처음 가본 요리교실. 일본 라멘 위에 올려 먹는 간장에 조린 계란을 만드는 법을 배웠다. 평소 요리를 거의 하지 않았기에 재미나기 그지없었다. 완전히 새로운 세계였다. 퇴근 후 집에서 매일 혼자 해봤다. 한 달간 간장에 조린 계란만 100개. 아내는 “이 많은 걸 누가 다 먹느냐”며 핀잔을 줬지만 자꾸 만들고 싶었다. ‘연희동 요리교실’로 유명한 일본인 나카가와 히데코 씨(53)가 들려준 50대 남성 수강생의 이야기다. 나카가와 씨는 요리를 배울 때 그의 모습에 대해 “재미있는 걸 발견하고 곧장 빠져든 아이 같았다”고 말했다. 나카가와 씨는 이처럼 호기심에 가득 찬 이들을 종종 만난다. 시부모를 모시고 자녀 둘을 키운 한 50대 전업주부는 유일한 취미가 요리교실에 다니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는 요리를 카메라에 담고 싶어 사진 찍기를 배우기 시작했다. 요리교실에 올 때마다 카메라를 메고 와 꾸준히 사진을 찍던 그는 결국 사진가가 됐고 스튜디오를 열어 운영하고 있다. 나카가와 씨의 아버지도 그렇다. 프랑스 요리 셰프였던 아버지는 운영하던 식당이 쉬는 날이나 다소 여유가 있는 낮 시간에 요리교실을 열었다. 어려운 프랑스 요리를 일반인도 만들 수 있게 레시피를 바꿔 가르치기도 했다. 2011년 은퇴했지만 지금도 레시피를 개발하고 있다. 그의 나이는 86세다. 몰입한 대상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들에게서는 그 에너지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시 같은 가사와 서정적인 멜로디의 노래로 잘 알려진 가수 루시드폴(45)은 매일 나무의 소리를 채집한다. 제주에서 귤, 레몬 농사를 짓는 그는 나무에 센서를 연결해 소리를 모은 뒤 이를 음악으로 바꾸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 “나무에 수액이 흐를 때 나는 소리가 있어요. 연주를 들려준 뒤 나무가 어떤 신호를 보내는지도 확인해 보려 해요. 나무들은 뿌리를 통해 서로 신호를 주고받아요. 옆의 나무가 쓰러지거나 베어져서 광합성 작용을 못 하면 다른 나무가 양분을 나눠 주죠. 나무가 내는 소리가 궁금해요.” 한데 듣고 있자니 그 방법이 꽤 어려울 것 같았다. 생명공학 박사인 그이기에 가능한 작업이 아니냐고 묻자 웃음을 터뜨렸다. “절대 복잡하지 않아요. 문과생도 할 수 있답니다.” 그의 목소리에는 활기가 가득했다. 결과가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이미 충분히 즐기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나카가와 씨는 “요리를 통해 할 수 있는 즐거운 일이 진짜 많다”고 했다. 요리를 함께 만들어 나눠 먹는 것을 비롯해 새 요리를 개발하고 예술가들과 협업해 신선한 방식의 행사를 여는 등 그야말로 무궁무진하다. “음식으로 교류하고 국경을 넘어 시간과 경험을 공유하는 방법을 생각하고 있다”는 그의 얼굴에는 가벼운 홍조가 돌았다. 좋아하는 것을 찾아 자기만의 길을 가며 차근차근 성취해 나가는 사람이 뿜어내는 건강한 기운이 흘렀다. 호기심으로 가슴 설레며 눈을 반짝이는 이들. 나이를 떠나 그 자체로 푸르른 청춘이 아닐까. 가슴을 뛰게 하고 나도 모르게 흠뻑 빠져들게 되는 게 뭔지 곰곰이 짚어본다.손효림 문화부 차장 aryssong@donga.com}

미국 설치예술가 제임스 터렐(77)을 비롯해 로버트 어윈(92), 피터 알렉산더(1939∼2020)의 작품을 모은 전시 ‘벤딩 라이트’가 서울 용산구 페이스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이들은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1960년대부터 빛을 바탕으로 공간과 지각을 연구하는 ‘빛과 공간(Light and Space)’ 운동을 주도했다. 터렐의 ‘Atlantis, Medium Rectangle Glass’(2019년)는 시시각각 달라지는 하늘을 표현했다. 가로 185.4cm, 세로 142.2cm 크기 작품에서 발광다이오드(LED)로 만든 여러 층의 빛이 2시간 30분간 변화한다. 불이 꺼진 형광등을 세로로 나란히 배치한 어윈의 ‘Belmont Shore’도 만날 수 있다. 여러 색깔의 반투명 오브제들로 구성된 알렉산더의 작품도 있다. 8월 14일까지.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햇살과 조개를 좋아하는 ‘바닷가곰’은 행복하다. 가끔 친구가 그리운 것만 빼고. 갈색 털을 가진 바닷가곰은 어느 날 갈대 사이에서 날개를 다친 하얀 새 ‘릴로우’와 만난다. 바닷가곰의 정성스러운 치료로 건강을 되찾은 릴로우. 둘은 함께 바다를 헤엄치고 열매도 나눠 먹으며 마냥 즐겁다. 한데 겨울이 오자 여름새인 릴로우는 따뜻한 곳으로 가야 했다. 바닷가곰도 겨울잠에 빠져든다. 몸의 크기도, 색깔도 다른 바닷가곰과 릴로우가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친구가 되는 과정을 잔잔하게 그렸다. 넓은 세상을 여행하고 온 릴로우와 수많은 꿈을 꾼 바닷가곰이 그칠 줄 모르고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다정하다. 많이 달라도 친구가 될 수 있고, 색다른 경험을 듣는 건 근사한 일이라고 속삭인다. 풍부한 색채로 곱게 그린 그림은 둘이 느끼는 행복을 선명하게 전한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함께 요리하고, 먹고, 설거지도 같이 하는 요리 수업이 있다. 때로 와인, 사케 같은 술도 곁들인다. 사람들은 자신의 느낌, 추억을 이야기하며 마음을 열고 위안을 얻는다. ‘히데코 선생님의 연희동 요리교실’이다. 정확히는 한국에 귀화한 나카가와 히데코(中川秀子·53) 씨가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자택에서 운영하는 ‘구르메 레브쿠헨’이다. 레브쿠헨은 생강쿠키를 뜻하는 독일어로 그에게 맛의 놀라움을 깨닫게 해줬다. 구르메는 미식가다. 유명 요리 선생님으로, 일본 가정식 요리법을 담은 ‘히데코의 일본 요리교실’(맛있는 책방·4만5000원)을 최근 출간한 나카가와 씨를 4일 자택에서 만났다. 연희동 단독주택 골목에 자리한 파란색 담장의 2층 집이었다. 마당에는 빨간 장미들이 활짝 피어 있었다. 나카가와 씨가 유창한 한국말로 인사하며 요리교실로 사용하는 1층으로 안내했다. 그가 얼음을 가득 넣은 녹차를 건넸다. ‘히데코의 일본 요리교실’은 계절별 음식을 실제 계절에 맞춰 각각 만드느라 요리하는 데만 1년이 걸렸다. “요즘은 365일 모든 식재료를 구할 수 있지만, 가급적 제철 재료를 사용해요. 맛이 훨씬 좋거든요. 수업할 때도 특별한 경우 외에는 제철 재료를 쓰려고 해요.” ‘히데코의 사계절 술안주’ ‘지중해 요리’ ‘셰프의 딸’ 등 여러 요리책과 에세이집을 낸 그는 이번 책을 숙성시키듯 만들었다고 했다. “10년이 지나도 계속 먹을 수 있는 요리를 담으려 했어요. 한국은 요리와 식재료의 유행이 아주 빠른데요, 오래 즐길 수 있는 메뉴를 고민했죠.” 간장, 청주, 식초 등 기본 양념을 고르는 법도 정리했다. 요리에 얽힌 추억과 에피소드를 구어체로 실어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같다. 일본에서 절인 매실을 만드는 ‘우메보시 담그기’는 한국의 김장과 같은 의미로, 일본에 계신 어머니는 이제 하지 않는데 한국에 있는 자신이 열심히 하는 게 묘하게 느껴진다고 한다. 감자고로케(크로켓)를 소개할 때는 고교 시절 친구들과 고로케를 사서 후후 불며 먹은 기억을 곁들인다. “프랑스 요리 셰프인 아버지와 플로리스트인 어머니는 제가 셰프가 되길 원하셨지만 어릴 때는 음식에 관심이 없었어요. 대학에서도 언어학, 국제관계론을 전공했고요. 20대에 동독, 서독, 스페인에 살면서 각 나라의 요리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죠.” 비교언어학을 공부하기 위해 1994년 한국에 왔고 이후 연세대 국문과 석사를 마쳤다. “동독, 서독에 살았기 때문인지 분단국가인 한국에 관심이 생겼어요. 저처럼 음식을 좋아하는 한국인 남편을 만나 두 아들의 엄마가 됐죠. 기자, 번역가를 하다가 요리할 때 너무나 즐거워지는 스스로를 발견했어요.” 일본인으로는 처음 궁중음식연구원에서 3년간 공부했다. 친구들을 초대해 음식을 나눠 먹는 걸 좋아하는 그는 지인의 권유로 2008년 요리교실을 열었다. 지금은 한 해 수강생이 150여 명이나 된다. 한 번 수업을 들으면 짧게는 2년, 길게는 7∼8년간 계속하는 이들이 많다 보니 수강 신청을 하려면 1년 이상 기다려야 한다. “‘혼밥’ ‘혼술’의 시대라고 하지만 같이 먹고 이야기를 나누는 데 대한 갈증이 있다는 걸 수강생들을 보며 확인할 수 있어요.” 그는 일찍 오는 수강생과 재료 다듬기를 같이 하고 설거지를 할 때는 와인 잔, 나무 도마 닦는 법도 하나하나 가르친다. “요리법만 알려주기보다 요리의 시작부터 끝까지 모두 익혀 스스로 요리를 즐기게 하고 싶거든요.” 수업은 학기제로 3∼6월, 9∼12월에 한다. 수강생은 한 달에 한 번 강의를 듣는다. 요리부터 뒷정리까지는 대략 3시간 정도 걸린다. 올해는 코로나19 사태로 지난달부터 드문드문 수업하고 있다. 그는 요리를 하며 어머니와 아버지의 삶을 비로소 이해하게 됐다. “늦은 시간 퇴근하셔서 훈제 연어, 바게트 등 간단한 재료로 음식을 만들어 드시던 아버지가 생각나요. 어머니가 오랜 세월 묵묵히 해주셨던 집밥에 대한 그리움도 짙어졌고요.” 그는 아버지의 레시피를 정리해 책으로 낼 준비를 하고 있다. 수업이 없는 기간에는 재료 산지를 다니고 음악가, 도예가 등과 협업하는 행사도 한다. “셰프, 요리 연구가보다 ‘키친 크리에이터’로 불리고 싶어요. 부엌에서 일어나는 모든 걸 다루니까요. 요리를 통해 다양한 분들과 새로운 걸 시도하는 게 정말 재미있어요.” 그는 요리로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계속 도전할 계획이다. “정성껏 만든 요리는 모두를 평온하고 행복하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요리의 맛과 그에 담긴 마음이 국경, 이념, 세대를 초월해 계속 이어지는 데 제가 보탬이 된다면 더없이 기쁠 겁니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