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승훈

전승훈 기자

동아일보 콘텐츠기획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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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라는 정글에서 새로운 세상을 발견합니다. 도시를 산책하고 탐사하는 즐거움을 함께합니다.

raphy@donga.com

취재분야

2026-02-23~2026-03-25
문화 일반31%
여행27%
사회일반8%
경제일반8%
음악8%
요리/음식4%
칼럼4%
운수/교통4%
문학/출판4%
기업2%
  • “여행에 기술을 더해 최적의 정보 제공…트래블 테크 성장 이끌죠”

    “미래의 여행사는 글로벌 테크기업으로 가야 한다. 빅데이터와 인공지능(AI)을 활용한 검색 알고리즘으로 항공권과 호텔, 체험상품 등을 유기적으로 연결해 개인의 취향까지 만족시켜야 살아남는다.” 온라인 종합여행사(OTA)이자 트래블 테크 기업인 타이드스퀘어의 윤민 대표(53)가 그리고 있는 여행 상품의 미래이자 현재다. 타이드스퀘어는 세계 항공사들의 항공편과 호텔, 여러 체험 상품들과 직접 연결된 전산 시스템을 구축해 중소여행사와 개인들에게 다양한 여행 상품을 설계할 수 있도록 돕는 기술 기업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기 상황에서도 올해 3월 850억 원의 투자를 유치했고, 2019년에는 카카오, 두나무 등으로부터 약 500억 원의 투자를 받는 등 총 1400억 원의 투자를 유치했다. 고려대 식품공학과 출신인 윤 대표는 유니텔, 새롬기술 등 정보기술(IT) 기업에서 직장 생활을 시작했고, 대한항공과 현대카드에서는 마케팅을 담당했다. 여타 여행사들이 패키지 여행 상품 개발에 몰두하는 것과 달리 여행 관련 기술 기반을 구축하는 회사를 꾸린 배경이다. “온라인에서 여행 계획을 짜고 상품을 선택하는 게 일반화되면서 여행업은 장치산업이 돼 가고 있다. 항공사에게 받은 데이터가 많을수록 고객에게 제공할 수 있는 정보의 조합도 많아진다. 더 많은 데이터가 있으면 기내식을 미리 주문할 수도 있고, 창가와 복도, 와이파이(WiFi) 제공 여부 등 다양한 서비스를 고객이 선택할 수 있게 할 수 있다. 복잡한 데이터 조합에서 최적을 찾는 작업은 더 이상 여행사 직원이 할 수 없고, 기술의 영역이 되고 있다.” 타이드스퀘어는 자사 기술을 바탕으로 현대카드 고객을 위한 프리미엄 여행 브랜드 ‘현대카드 프리비아(PRIVIA) 여행’도 운영하고 있다. 2017년 SK투어비스를 인수해 기업 출장, 마이스(MICE) 영역에서도 시장점유율을 높여 왔다. 설립 7년 만에 국내 종합여행사 5위권(BSP 기준)에 진입했다. 그러나 윤 대표는 이에 만족하지 않고 해외 온라인 항공권, 호텔 검색에 강점을 가진 ‘트래블 테크놀로지(Travel Tech)’ 기업으로 국내외 여행사 등을 대상으로 한 ‘B to B’(기업간 거래) 시장에 집중해왔다. 특히 코로나19가 창궐한 2년여간 구글과 삼성전자 출신 개발자 60여 명이 타이드스퀘어의 여행 시스템 업그레이드에 매진해왔다. 윤 대표는 “전 세계적인 차세대 항공 예약 플랫폼인 ARM인덱스 인증을 완료함으로써 기술 우위를 선점한 것이 경쟁력 강화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ARM인덱스는 국제항공운송협회(IATA)가 주도해 개발한 항공권 예약, 발권, 취소를 위한 차세대 항공 플랫폼 NDC의 새로운 이름이다. 타이드스퀘어는 이미 2018년에 전세계 7개사만 인증받은 최고 등급인 NDC Capable 레벨 3을 받았고, 2019년에는 전세계 13번째로 ‘NDC Aggregator 레벨 4’ 인증을 모두 획득했다. 타이드스퀘어는 자사 여행 플랫폼인 투어비스에 2019년 국내 최초로 ARM 인덱스를 연동했다. 루프트한자독일항공(LH), 싱가포르항공(SQ), 진에어(LJ) 연동을 시작으로 에미레이트항공(EK)과 아메리칸항공(AA) 등 총 16개의 항공사와 ARM인덱스 연동을 맺었다. 이로써 국내 여행사 중 중 ARM인덱스에 가장 많은 해외 항공사와 직접적인 항공권 예약, 발권 제휴를 맺은 기업이 됐다. “ARM Index를 적용한 OTA에서는 항공사와 직접 연동한 효율적인 요금을 볼 수 있는 것은 물론 소비자가 직접 발권과 취소, 좌석 지정, 수화물 추가, 기내식 선택, 기내 엔터테인먼트 구매 등의 부가서비스를 선택할 수 있다. 그동안 거의 할 수 없었던 일인데 NDC를 최초 상용화해서 항공권을 경쟁력 있는 가격에 제공하고 다양한 기내 서비스를 선택할 수 있게 됐다.” 타이드스퀘어는 최적의 데이터를 확보하기 위해 지난해 10월에는 북미 최대 여행사 협의체인 ‘트래블 리더스 네트워크’에 가입하고 글로벌 파트너십을 강화했다. 트래블 리더스 네트워크는 6000개의 지점과 4만 명 이상의 여행 자문단을 보유하고 있다. 윤 대표는 또한 2016년부터는 매년 여행기술마케팅 컨퍼런스인 WIT(Web in Travel)도 주최해 전 세계 OTA(On-line Travel Agency)의 흐름을 파악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트래블 테크 기업의 고민은 얼마나 많은 고객에게 좋은 데이터를 추천해 줄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수많은 항공사, 수많은 여행사와 협업해야 하고 글로벌하게 소통해야 한다. 보통 여행사들은 중간 대행사를 통해 해외 항공사, 호텔, 리조트에 연결해왔는데 우리는 직접 연결함으로써 더 많은 데이터와 가격 경쟁력을 갖추게 됐다.” 타이드스퀘어는 국내에서도 다양한 ‘협업’을 통해 성장해왔다. 지난해 4월 대한항공 스카이패스 회원이 타이드스퀘어가 운영하는 ‘현대카드 프리비아 여행’이나 ‘투어비스’에서 호텔을 예약하면 대한항공 마일리지를 최대 1500마일까지 적립해주는 서비스를 선보이기도 했다. 호텔을 예약하면 항공마일리지를 적립해주는 서비스는 국내에서 처음이었다. 지난해 6월에는 카카오모빌리티와 손잡고 카카오T 앱에서 국내선 항공권 검색, 예매, 발권을 진행할 수 있는 ‘카카오 T 항공 서비스’를 시작했다. 또한 특가 항공권 알림 앱 플레이윙즈, 숙박 예약 앱 올스테이, 여행스타트업인 비앤비히어로, 비마이게스트, 폴라리움 등에도 투자해왔다. “여행은 원래 검색이 중요하다. 검색하고 예약하고 그리고 여행을 간다. 그런데 새로운 패턴이 나타났다. 지인들끼리 같이 채팅하고, 뭐가 좋을지 선택하고, 쇼핑한다. 중국 위챗에서 그런 현상이 나타났다. 국내에서도 이런 트렌드에 맞춰 카카오톡에 ‘카이트(KYTE)’ 서비스를 론칭했다. 친구들과 톡을 나누다 항공과 숙박을 바로 예약할 수 있다. 이 서비스가 여행 플랫폼이 되도록 노력할 것이다.” 윤민 대표는 “코로나19 이전 국내 여행 산업은 디지털 트렌드와 해외 OTA 진입에 따라 극적인 변화를 겪었다”며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여행업의 경쟁은 다시 치열해질 것이고, 트래블 테크 기업으로서 기술 개발에 더 매진할 것”이라고 밝혔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2022-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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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개비]밤의 카페

    프랑스 남부 도시 아를에는 빈센트 반 고흐(1853∼1890)의 작품 ‘밤의 카페(Caf´e la Nuit)’ 속 카페가 그대로 남아 있다. 별이 그려진 밤하늘과 카페 차양의 밝은 노란색이 대비를 이루며 어우러져 아름다운 광경을 연출한다. 고흐가 만든 이 작품에 나오는 카페의 이름은 ‘테라스(Terrasse)’였지만, 지금은 ‘카페 반 고흐’로 이름이 바뀌었다. 1990년대 초에 벽면을 노란색으로 칠해 반 고흐의 그림과 비슷해졌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2022-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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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순신 적 살피던 수루 오르니, ‘바다 위 城’ 한산도 절경이 한눈에[전승훈의 아트로드]

    경남 통영시 육지에서 2km 정도 남동쪽으로 가면 한산도에 도착한다. 배 위에 서면 한려해상국립공원의 수려한 풍경이 펼쳐지고 영화 ‘한산’에 나온 임진왜란 한산대첩 격전의 현장도 감상할 수 있다. 거제대교 밑 견내량의 좁은 해협을 빠져나온 바닷물은 한산도 앞바다에서 출렁거린다. 한산도를 비롯해 미륵도, 화도, 거제도 등 크고 작은 섬들이 360도로 빙 둘러싸고 있다. 1592년 7월 충무공 이순신이 좌우로 날개를 활짝 펼친 학익진(鶴翼陣) 전법으로 ‘바다 위에 성(城)’을 쌓고 73척의 왜군 함대를 격파한 바로 그 현장이다. ● 승리를 만드는 집, 제승당 통영에서 배로 30분 만에 한산도에 도착하니 제승당으로 가는 팻말이 보였다. 이순신 장군이 한산대첩 이후 삼도수군통제 본부로 삼은 곳이다. 둥그렇게 만으로 둘러싸여 있어 바닷물이 잔잔한 호수처럼 보이는 이곳은 바로 천혜의 요새임을 알게 해준다. 아름드리 적송이 우거진 나무 그늘 아래로 약 1km의 해변길을 걸으면 제승당에 도착한다. 대첩문과 충무문을 지나니 ‘제승당(制勝堂)’이 나타난다. 이곳은 이순신의 집무실(숙소)이자 작전지휘소였던 ‘운주당(運籌堂)’이 있던 곳이다. 이순신은 선조 26년(1593년)부터 한양으로 압송돼 갔던 해인 선조 30년(1597년)까지 3년 8개월 동안 이곳에서 주둔했다. 1491일 동안의 일을 기록한 이순신의 ‘난중일기(亂中日記)’ 중 1029일의 일기가 쓰여진 곳이기도 하다. 운주당, 제승당은 모두 이름이 의미심장하다. 운주당의 ‘주(籌)’는 주판(籌板)에 쓰이는 글자로, 셈을 할 때 쓰는 산가지를 뜻한다. 요즘으로 치면 최첨단 컴퓨터를 운용하며 전략 시뮬레이션을 하는 방인 셈이다. 직관적인 감이 아니라 무기체계와 날씨, 조류 변화까지 철저한 계산을 통해 짜내는 작전 지휘소인 셈이다. 이순신은 운주당에서 계급장과 상관없이 어떤 하급 병사도 찾아와 의견을 내고 토론할 수 있도록 했다고 한다. 영화 ‘한산’에서도 이순신 장군이 55척의 함선 지휘관의 무력과 심성까지 세밀하게 살펴서 좌우 날개에 세우는 학익진을 완성하기 위해 며칠 밤을 새우는 장면이 나온다. 제승당(制勝堂)은 말 그대로 ‘승리를 만드는 집’이다. 영어 해설문에는 ‘the place where victory is made’라고 쓰여 있다. 이순신의 사전에는 ‘싸워서 이긴다는’ 법은 없었다. ‘싸우기 전에 먼저 확실히 이겨놓고’ 싸웠다. 승리는 이미 제승당에서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손자병법의 첫 번째인 ‘시계(始計)’ 병법이다.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최선이요, 싸워야 한다면 승리가 확정된 상황에서 최대한 빠르고 피해 없이 승리를 거두어야 한다. 국가와 민초들의 삶에 막대한 피해를 주고 난 다음에 이기는 승리는 애민(愛民)주의자 이순신의 머릿속에 없었다. 그러나 운주당의 ‘소통의 문화’는 이순신의 백의종군 이후 삼도수군통제사가 된 원균에 의해 변질됐다. “원균은 애첩을 데리고 운주당에 살면서 울타리를 두 겹으로 막아 놓아 장수들도 그의 얼굴을 보기가 힘들었다. 그는 또 술을 좋아해 날마다 술주정을 하고 화를 냈으며, 형벌을 내리는 데도 일정한 법도가 없었다. 그래서 병사들은 왜적을 만나면 달아나는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를 서로 하면서 수군거렸다.”(서애 유성룡의 ‘징비록’) 결국 원균은 칠천량해전에서 대패해 160척의 조선 수군 함선의 대부분과 숙련된 군사들을 모두 잃어버렸다. 그리고 한산도의 운주당도 폐허가 됐다. 이순신은 남은 12척의 배를 가지고 다시 싸움을 이어 나간다. 영조 15년(1739년)에 통제사 조경은 한산도에 다시 제승당을 세웠다. ●바다를 건너는 활터, 한산정 제승당 근처에는 이순신이 ‘한산섬 달 밝은 밤에 큰 칼 옆에 차고’ 오르던 수루(戍樓)도 복원돼 있다. 수루는 물가에 세운 누각(水樓)이 아니다. 군대가 주둔하는 수자리(병영)에서 적군의 동태를 살피기 위해 세운 망대다. 수루에 올라 보니 관암과 문어포 사이로 한산도 앞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지금은 평온하지만 이순신에게는 애끓는 바다였을 것이다. “맑음. 늦게 가리포, 금갑, 남도, 사도, 여도가 보러 왔기에 술을 먹여 보냈다. 이날 밤 바람은 몹시 싸늘하고, 차가운 달빛이 낮과 같아 잠에 들지 못하고 밤새도록 뒤척거렸다. 온갖 근심이 가슴을 치밀었다.”(난중일기, 1595년 10월 20일)제승당 아래쪽에는 ‘한산정’이라는 활쏘기 훈련장이 있다. 이순신이 부하들과 함께 활쏘기를 연마하던 곳이다. 정자에서 쏜 화살은 바다를 건너 약 150m 거리에 있는 과녁에 맞히도록 돼 있다. 요즘 한국의 양궁 국가대표팀이 야구장에서 소음 적응 훈련을 하듯이 이순신은 해전에 필요한 실전 적응 훈련을 하기 위해 바닷물을 건너는 활터를 만들었던 것이다. 영화 마지막 장면의 이순신의 멋진 활 솜씨를 보고 난 후라 더욱 의미 있게 다가왔다. 통영 시내에 있는 삼도수군통제영에도 이순신의 유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통제영에 있는 가장 큰 건물인 ‘세병관(洗兵館)’은 전쟁이 끝나고 피 묻은 칼과 창, 활, 갑옷과 같은 병장기를 씻는다는 의미다. 시인 두보의 ‘세병마행(洗兵馬行)’에서 따온 말로 평화를 염원하는 말이다. ‘어떻게 하면 힘센 장사를 얻어 하늘의 은하수 물을 끌어다가, 갑옷과 무기를 깨끗이 씻어 영원히 사용하지 못하게 할 것인가(安得壯士挽天河 淨洗甲兵長不用).’ 세병관 주변에 있는 ‘지과문(止戈門·전쟁을 그치게 하는 문)’, ‘괘궁정(掛弓亭·활을 걸어두는 정자)’도 평화를 염원하는 글귀다. 위대한 무인은 전쟁을 그치게 하는 사람이다. 또한 녹슬고 무디어진 병장기를 잘 씻고, 닦고, 훈련하며 평소에 안보에 대비해야 진정한 평화를 누릴 수 있다는 의미가 담긴 현판이기도 하다.● 미역이 춤을 추는 매물도, 홍도 통영여객선터미널에서 매물도로 가는 뱃길에서도 한려해상국립공원의 수려한 섬들을 구경할 수 있다. 두 개의 섬이 사구로 연결된 비진도를 지난 배는 소지도, 소매물도, 등대섬을 보여준 뒤 1시간 반 만에 매물도에 도착한다. 대항항 앞에는 하늘에서 내려온 세 선녀가 물 위에서 노니는 모습처럼 보인다는 삼녀도가 그림처럼 떠 있다. 매물도와 소매물도는 트레킹과 낚시, 다이빙으로 유명한 섬이다. 가장 유명한 다이빙 포인트는 매물도에서 배를 타고 2시간 정도 걸리는 홍도다. 전남 신안군 흑산면의 홍도와 이름이 같은 통영 홍도는 섬 전체가 천연기념물(제335호)로 지정돼 있다. 무인도인 홍도는 깎아지른 절벽에 살고 있는 수많은 괭이갈매기가 섬의 주인이다. 매물도와 홍도에서 스킨스쿠버 장비를 갖추고 다이빙을 했다. 바닷물 속에 들어가니 청줄돔이 서로 꼬리를 물고 뱅글뱅글 돌며 사랑놀이를 하고, 숲처럼 우거진 미역과 감태, 다시마 사이로 수백 마리의 자리돔 떼가 헤엄친다. 한산대첩에서 패한 왜장 와키자카 야스하루(脇坂安治)는 조선 수군의 추격을 피해 인근 무인도에 숨어서 미역을 뜯어 먹으며 열흘을 버티다가 뗏목을 만들어 간신히 탈출했다. 치욕을 잊지 않기 위해 와키자카 집안은 한산대첩이 벌어졌던 날에 미역만 먹는 풍습이 이어진다고 한다. 와키자카가 숨어 있던 섬은 아니지만 한산면에 속해 있는 매물도, 홍도 바닷속에서 미역과 감태, 모자반이 우거진 모습을 보니 감회가 깊었다. 매물도에서 550m 정도 떨어져 있는 소매물도는 코발트색 청명한 바다를 배경으로 우뚝 솟은 해식 절벽 지형이 진경을 이룬다. 이곳의 등대섬은 1980년대에 쿠크다스 과자 CF의 배경이 돼 일명 ‘쿠크다스섬’으로 이름을 날렸다. 썰물 때면 소매물도와 등대섬 사이에 열목개라 불리는 80m의 몽돌 바닷길이 열린다. 통행이 허용되는 2~5시간 동안 탐방객들은 등대섬으로 건너가 하얀 등대와 푸른 초원 위에서 한적한 정취를 만끽할 수 있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2022-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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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전고 울려퍼지던 이순신의 섬…바다 위 城엔 평화의 파도 출렁[전승훈 기자의 아트로드]

    《경남 통영시 육지에서 2km 정도 남동쪽으로 가면 한산도에 도착한다. 배 위에 서면 한려해상국립공원의 수려한 풍경이 펼쳐지고 영화 ‘한산’에 나온 임진왜란 한산대첩 격전의 현장도 감상할 수 있다. 거제대교 밑 견내량의 좁은 해협을 빠져나온 바닷물은 한산도 앞바다에서 출렁거린다. 한산도를 비롯해 미륵도, 화도, 거제도 등 크고 작은 섬들이 360도로 빙 둘러싸고 있다. 1592년 7월 충무공 이순신이 좌우로 날개를 활짝 펼친 학익진(鶴翼陣) 전법으로 ‘바다 위에 성(城)’을 쌓고 73척의 왜군 함대를 격파한 바로 그 현장이다.》○ ‘승리를 만들어내는 집’ 제승당통영에서 배로 30분 만에 한산도에 도착하니 제승당(制勝堂)으로 가는 팻말이 보였다. 이순신 장군이 한산대첩 이후 삼도수군통제 본부로 삼은 곳이다. 둥그렇게 만으로 둘러싸여 있어 바닷물이 잔잔한 호수처럼 보이는 이곳은 바로 천혜의 요새임을 알게 해준다. 아름드리 적송이 우거진 나무 그늘 아래로 약 1km의 해변길을 걸으면 제승당에 도착한다. 대첩문과 충무문을 지나니 ‘제승당’이 나타난다. 이곳은 이순신의 집무실(숙소)이자 작전지휘소였던 ‘운주당(運籌堂)’이 있던 곳이다. 이순신은 선조 26년(1593년)부터 한양으로 압송돼 갔던 해인 선조 30년(1597년)까지 3년 8개월 동안 이곳에서 주둔했다. 1491일 동안의 일을 기록한 이순신의 ‘난중일기(亂中日記)’ 중 1029일의 일기가 쓰인 곳이기도 하다. 운주당, 제승당은 모두 이름이 의미심장하다. 운주당의 ‘주(籌)’는 주판(籌板)에 쓰이는 글자로, 셈을 할 때 쓰는 산가지를 뜻한다. 요즘으로 치면 최첨단 컴퓨터를 운용하며 전략 시뮬레이션을 하는 방인 셈이다. 직관적인 감이 아니라 바람과 조류, 무기체계까지 철저한 계산을 통해 짜내는 작전 지휘소인 셈이다. 이순신은 운주당에서 계급장과 상관없이 어떤 하급 병사도 찾아와 의견을 내고 토론할 수 있도록 했다고 한다. 영화 ‘한산’에서도 이순신 장군이 55척의 함선 지휘관의 무력과 심성까지 세밀하게 살펴서 좌우 날개에 세우는 학익진을 완성하기 위해 며칠 밤을 새우는 장면이 나온다. 제승당은 말 그대로 ‘승리를 만들어내는 집’이다. 영어 해설문에는 ‘the place where victory is made’라고 쓰여 있다. 이순신의 사전에는 ‘싸워서 이긴다’는 법은 없었다. ‘싸우기 전에 먼저 확실히 이겨놓고’ 싸웠다. 이는 손자병법의 첫 번째인 ‘시계(始計)’ 병법이다.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최선이요, 싸워야 한다면 승리가 확정된 상황에서 최대한 빠르고 피해 없이 승리를 거두어야 한다. 국가와 민초들의 삶에 막대한 피해를 주고 난 다음에 이기는 승리는 애민(愛民)주의자 이순신의 머릿속에 없었다. 그러나 운주당의 ‘소통의 문화’는 이순신이 파직된 후 삼도수군통제사가 된 원균에 의해 변질됐다. “원균은 애첩을 데리고 운주당에 살면서 울타리를 두 겹으로 막아 놓아 장수들도 그의 얼굴을 보기가 힘들었다. 그는 또 술을 좋아해 날마다 술주정을 하고 화를 냈으며, 형벌을 내리는 데도 일정한 법도가 없었다. 그래서 병사들은 왜적을 만나면 달아나는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를 서로 하면서 수군거렸다.”(서애 유성룡의 ‘징비록’) 결국 원균은 칠천량해전에서 대패해 160척의 조선 수군 함선의 대부분과 숙련된 군사들을 모두 잃어버렸다. 그리고 한산도의 운주당도 폐허가 됐다. 이순신은 남은 12척의 배를 가지고 다시 싸움을 이어 나간다. 영조 15년(1739년)에 통제사 조경은 한산도에 다시 제승당을 세웠다. ○바다를 건너는 활터제승당 근처에는 이순신이 ‘한산섬 달 밝은 밤에 큰 칼 옆에 차고’ 오르던 수루(戍樓)도 복원돼 있다. 수루는 물가에 세운 누각(水樓)이 아니다. 군대가 주둔하는 수자리(병영)에서 적군의 동태를 살피기 위해 세운 망대다. 수루에 올라 보니 관암과 문어포 사이로 한산도 앞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지금은 평온하지만 이순신에게는 애끓는 바다였을 것이다. “맑음. 늦게 가리포, 금갑, 남도, 사도, 여도가 보러 왔기에 술을 먹여 보냈다. 이날 밤 바람은 몹시 싸늘하고, 차가운 달빛이 낮과 같아 잠에 들지 못하고 밤새도록 뒤척거렸다. 온갖 근심이 가슴을 치밀었다.”(난중일기, 1595년 10월 20일) 제승당 아래쪽에는 ‘한산정’이라는 활쏘기 훈련장이 있다. 이순신이 부하들과 함께 활쏘기를 연마하던 곳이다. 정자에서 쏜 화살은 바다를 건너 약 150m 거리에 있는 과녁에 맞히도록 돼 있다. 요즘 한국의 양궁 국가대표팀이 야구장에서 소음 적응 훈련을 하듯이 이순신은 해전에 필요한 실전 적응 훈련을 하기 위해 바닷물을 건너는 활터를 만들었던 것이다. 영화 마지막 장면의 이순신의 멋진 활 솜씨를 보고 난 후라 더욱 의미 있게 다가왔다. 통영 시내에 있는 삼도수군통제영에도 이순신의 유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통제영에 있는 가장 큰 건물인 ‘세병관(洗兵館)’은 전쟁이 끝나고 피 묻은 칼과 창, 활, 갑옷과 같은 병장기를 씻는다는 의미다. ‘어떻게 하면 힘센 장사를 얻어 하늘의 은하수 물을 끌어다가, 갑옷과 무기를 깨끗이 씻어 영원히 사용하지 못하게 할 것인가.’ 시인 두보의 ‘세병마행(洗兵馬行)’에서 따온 말로 평화를 염원하는 뜻이다. 세병관 주변에 있는 ‘지과문(止戈門·전쟁을 그치게 하는 문)’, ‘괘궁정(掛弓亭·활을 걸어두는 정자)’도 평화를 염원하는 글귀다. 위대한 무인은 전쟁을 그치게 하는 사람이다. 또한 녹슬고 무디어진 병장기를 잘 씻고, 닦고, 훈련하며 평소에 안보에 대비해야 진정한 평화를 누릴 수 있다는 의미가 담긴 현판이기도 하다.○미역이 춤을 추는 매물도, 홍도통영여객선터미널에서 매물도로 가는 뱃길에서도 한려해상국립공원의 수려한 섬들을 구경할 수 있다. 두 개의 섬이 사구로 연결된 비진도를 지난 배는 소지도, 소매물도, 등대섬을 보여준 뒤 1시간 반 만에 매물도에 도착한다. 대항항 앞에는 하늘에서 내려온 세 선녀가 물 위에서 노니는 모습처럼 보인다는 삼녀도가 그림처럼 떠 있다. 매물도와 소매물도는 트레킹과 낚시, 다이빙으로 유명한 섬이다. 가장 유명한 다이빙 포인트는 매물도에서 배를 타고 2시간 정도 걸리는 홍도다. 전남 신안군 흑산면의 홍도와 이름이 같은 통영 홍도는 섬 전체가 천연기념물(제335호)로 지정돼 있다. 무인도인 홍도는 깎아지른 절벽에 살고 있는 수많은 괭이갈매기가 섬의 주인이다. 매물도와 홍도에서 스킨스쿠버 장비를 갖추고 다이빙을 했다. 바닷물 속에 들어가니 청줄돔이 서로 꼬리를 물고 뱅글뱅글 돌며 사랑놀이를 하고, 숲처럼 우거진 미역과 감태, 다시마 사이로 수백 마리의 자리돔 떼가 헤엄친다. 한산대첩에서 패한 왜장 와키자카 야스하루(脇坂安治)는 조선 수군의 추격을 피해 인근 무인도에 숨어서 미역을 뜯어 먹으며 열흘을 버티다가 뗏목을 만들어 간신히 탈출했다. 치욕을 잊지 않기 위해 와키자카 집안은 한산대첩이 벌어졌던 날에 미역만 먹는 풍습이 이어진다고 한다. 와키자카가 숨어 있던 섬은 아니지만 한산면에 속해 있는 매물도, 홍도 바닷속에서 미역과 감태, 모자반이 우거진 모습을 보니 감회가 깊었다. 매물도에서 550m 정도 떨어져 있는 소매물도는 코발트색 청명한 바다를 배경으로 우뚝 솟은 해식 절벽 지형이 진경을 이룬다. 이곳의 등대섬은 1980년대에 쿠크다스 과자 CF의 배경이 돼 일명 ‘쿠크다스섬’으로 이름을 날렸다. 썰물 때면 소매물도와 등대섬 사이에 열목개라 불리는 80m의 몽돌 바닷길이 열린다. 통행이 허용되는 2∼5시간 동안 탐방객들은 등대섬으로 건너가 하얀 등대와 푸른 초원 위에서 한적한 정취를 만끽할 수 있다.글·사진 통영=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2022-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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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개비]디오니소스 극장

    그리스 아테네 아크로폴리스 절벽 남쪽 아래에는 기원전 6세기에 건축된 디오니소스 극장이 있다. 여기서 연극과 술의 신인 디오니소스를 위한 축제를 연 게 서양 연극의 출발점이라고 한다. 1만7000명 수용 규모의 극장에선 아이스킬로스,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 아리스토파네스 등 전설적 희곡 작가들의 작품이 공연됐다. 원형극장 객석 첫 줄은 VIP석인데, 등받이가 있는 돌의자에 이름까지 새겨져 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2022-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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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개비]쿠바의 올드카

    쿠바의 수도 아바나 시내에서는 형형색색의 올드카를 볼 수 있다. 1940, 50년대에 생산된 캐딜락, 뷰익, 포드 등이다. 올드카는 1959년 쿠바 혁명 이후 1961년 미국과의 수교 단절로 생긴 유산이다. 무역제재로 차량 수입이 금지된 쿠바인들은 올드카의 부품을 직접 수리해 수십 년을 써왔다. 그래서 에어컨은 물론이고 안전띠도 없고, 매연이 심한 차들도 많다. 그래도 ‘올드카 투어’는 쿠바 최고의 인기 관광 상품이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2022-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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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세음보살은 왜 바닷가 근처에 살고있을까[전승훈의 아트로드]

    여름철에 바닷가를 찾으면 ‘해수관음상(海水觀音像)’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자식들을 보살피는 어머니처럼 고통받는 중생들을 구제한다는 자비로운 관세음보살은 왜 바닷가 근처에 살고 있는 것일까. 한국의 3대 관음성지는 경남 남해 금산 보리암, 인천 강화 낙가산 보문사, 강원 양양 낙산사 홍련암이 꼽혀 왔다. 이 밖에도 전남 여수 향일암, 부산 기장 해동용궁사 등 바닷가의 절에는 어김없이 관음의 전설이 내려온다. 해수관음상은 소문난 기도처일 뿐 아니라 탁 트인 바다 풍경을 조망할 수 있는 최고의 포인트로 많은 여행객들이 찾는다. ● 남해 보리암의 일출보리암은 남해의 명산인 금산 정상 절벽에 아슬아슬하게 자리 잡고 있다. 이곳에 서면 남해 상주은모래비치를 중심으로 호도, 애도, 해운산, 목도, 승치도, 삼여도, 소치도 등 한려해상국립공원의 섬들이 꿈결처럼 떠다닌다. 해수관음상의 미소처럼 포근하고 따스한 풍경이다. 보리암 일출을 보기 위해 이른 새벽 금산에 올랐다. 낮에는 금산 입구부터 운행하는 사찰 버스를 타고 올라가야 하지만, 새벽에는 정상 부근인 제2주차장까지 승용차로 올라갈 수 있다. 차에서 내린 후 금산의 맑은 아침 공기를 느끼며 15분 정도 걸으니 보리암 뒤편의 대장봉과 화엄봉, 형리암의 깎아지른 바위가 나타난다. 보리암의 제일 양지바른 곳, 남해 바다가 한눈에 보이는 장소에 해수관음상과 삼층석탑이 서 있다. 해 뜨기 전 새벽인데도, 벌써 수많은 사람들이 절을 하고 탑돌이를 하고 있다. 대자대비한 관세음보살에게 자비와 도움을 청하는 간절한 몸짓이다. 화엄경에 따르면 중생이 온갖 고뇌에 시달릴 때 한마음으로 관세음보살을 부르면 그 소리를 듣고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 준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하고 끊임없이 속삭이며 기도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나이 지긋한 어머니들이다. 해수관음상이 바닷가에 많이 세워진 까닭은 예로부터 관음보살이 인도 남동쪽 해안에 있는 ‘포탈라카’산의 굴속에 살고 있다고 믿어져 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불교가 인도에서 티베트를 거쳐 중국 한국 일본으로 퍼져 나가면서, 민중은 바닷가 산에 수많은 관음신앙의 성지를 만들었다. 티베트의 영적 지도자인 달라이 라마도 관세음보살의 화신으로 여겨진다. 달라이 라마의 집무실이 있는 라싸의 ‘포탈라궁’도 포탈라카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달라이’는 ‘큰 바다’란 뜻이다. 포탈라카는 중국으로 전해지면서 ‘보타락가(普陀落迦)’라는 한자로 음차됐다. 중국 저장성 닝보(寧波) 인근 푸퉈(普陀)산은 대표적인 관음성지다. 우리나라에서는 의상 대사가 신라 문무왕 11년(671년) 관세음보살을 친견하고 관음굴을 지었다는 양양 낙산사 홍련암을 최초의 본격 관음도량으로 본다. 국내 3대 관음성지인 양양 낙산사의 ‘낙산’, 강화 보문사의 ‘낙가산’, 남해 보리암의 ‘보타전’ 등은 모두 ‘보타락가’라는 이름에서 따온 이름이다. 보리암이 있는 금산의 풍경은 계절에 따라 비단으로 수놓은 듯 변화무쌍하게 변한다. 금산을 오르다 보면 쌍홍문, 망대, 단군성전, 좌선대, 화엄봉과 같은 전설과 이야기가 담긴 명소들이 즐비하다. 고려 말 이성계가 보리암에서 백일기도를 하고 조선왕조를 열었다는 기도처도 남아 있다. 특히 슬픈 사랑의 전설이 담겨 있는 상사암(想思巖) 절벽은 보리암을 색다른 각도로 조망하고, 파노라마처럼 바다 풍경을 바라보며 사색에 잠길 수 있는 곳이다.● 동아시아 해상 실크로드의 관음성지 강화 석모도 낙가산 중턱에 자리한 보문사 뒤편에는 ‘눈썹바위 마애관음보살상’이 있다. 높이 9.2m, 폭 3.3m 규모의 거대한 해수관음상이 낙가산 중턱에 가로로 길게 튀어나온 눈썹바위 아래 그야말로 눈동자처럼 들어앉아 있는 것이다. 인자한 미소를 짓고 있는 마애불은 잠시도 한눈을 팔지 않고 바다를 내려다보고 있다. 관음상의 시선을 따라 내려다본 드넓은 서해 바다는 일찍이 강화 8경으로 알려졌을 정도로 절경이다. 신라시대에 세워진 강화 보문사는 고려시대 때 관음성지로 크게 번창했다. 보문사의 번창은 해상 무역과 깊은 관련이 있다. 인도를 출발해 믈라카 해협과 베트남, 중국 광저우까지 진출한 인도 상인들이 중국 연안의 닝보를 거쳐 고려의 수도 개경의 관문인 벽란도까지 진출했다. 강화도는 벽란도의 관문 역할을 하던 곳이다. 옛날에 배는 물건을 대량으로 수송할 수 있는 장점이 있어 무역에 적합한 수단이었다. 그러나 육로에 비해 난파 등의 위험이 높아 항해는 늘 목숨을 건 모험이었다. 사람들은 항해의 두려움과 무서움을 이겨 내기 위해 많은 신들에게 빌었다. 그중에 으뜸은 관세음보살이었다. 그래서 동아시아 해상 실크로드를 오가던 뱃사람들은 중국 닝보, 강화도 등 바닷가의 산에 관세음보살이 살던 인도의 보타락가산을 재현해 냈다. 강화 보문사는 절 앞까지 버스가 도착한다. 그러나 좀 더 드라마틱하게 해수관음상을 만나는 방법은 석모도의 해명산과 낙가산을 넘어서 보문사로 가는 길이다. 들머리인 전득이고개에서 숲을 파고든 가파른 산길에 오른 지 10분 정도 지났을까. 갑자기 시야가 탁 트인다. 개펄을 쓰다듬는 바다와 점점이 흩어져 있는 무인도까지 서해 특유의 풍경이다. 해명산에서 낙가산까지 바다를 바라보며 걷는 능선길은 순하다. 낙가산 정상 표지석을 지나 새가리고개를 넘자 보문사의 전각들이 내려다보인다. 너럭바위 바로 아래가 해수관음상을 모신 눈썹바위지만, 낙가산 정상에서 바로 내려갈 수는 없다. 다시 보문사까지 내려와서 일주문을 지나 계단을 오른다. 숨이 턱까지 차오를 무렵 눈썹바위 마애관음보살상에 다다랐다. 연꽃 위에 좌정하여 감로수 병을 든 보문사 해수관음상 앞에는 소원을 담은 수많은 연등이 걸려 있다. 서울의 관문인 강화도는 종교를 비롯해 외래 문물 유입의 최전선이기도 했다. 1876년 강화도조약 이후 초창기 개신교의 전파 과정에서 핵심 역할을 한 곳도 강화도다. 1900년 지어진 강화 성공회성당은 한옥과 불교 사찰, 서유럽 바실리카 양식을 결합한 독특한 건물이라 눈에 확 띈다. 영국 성공회 선교사가 백두산의 나무를 가져다 지은 이 성당은 불교의 사찰처럼 일주문과 범종을 갖추고 있다. 그런가 하면 팔작지붕 용마루에 올라앉은 십자가, 팔작지붕 합각 아래 ‘天主聖殿(천주성전)’ 현판, 기둥에 걸려 있는 ‘三位一體(삼위일체)’ 주련, 제단 위에 새겨진 ‘萬有眞原(만유진원)’ 등 한자로 해석한 성경 구절이 성당임을 알게 해준다. 내부로 들어가면 고색창연한 샹들리에가 개화기 영화 세트장에 온 느낌을 준다. 섬 여행은 강화읍 향나무길 ‘조양방직’ 카페에서 차 한잔을 하며 마무리하면 좋다. 일제강점기인 1933년 민족자본이 세운 방직공장을 카페로 단장했다. 1958년 폐업한 뒤 60년가량 제대로 활용되지 않던 건물의 골조를 그대로 살려 추억 어린 옛 생필품과 예술품을 진열한 빈티지 미술관은 세련된 멋을 찾는 젊은이도, 추억을 되새기는 어르신도 함께 즐기는 공간이 된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2022-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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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닷가 절벽에 피어난 한 떨기 연꽃… 해수관음의 미소[전승훈 기자의 아트로드]

    《여름철에 바닷가를 찾으면 ‘해수관음상(海水觀音像)’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자식들을 보살피는 어머니처럼 고통받는 중생들을 구제한다는 자비로운 관세음보살은 왜 바닷가 근처에 있는 것일까. 한국의 3대 관음성지는 경남 남해 금산 보리암, 인천 강화 낙가산 보문사, 강원 양양 낙산사 홍련암이 꼽혀 왔다. 이 밖에도 전남 여수 향일암, 부산 기장 해동용궁사 등 바닷가의 절에는 어김없이 관음의 전설이 내려온다. 해수관음상은 소문난 기도처일 뿐 아니라 탁 트인 바다 풍경을 조망할 수 있는 최고의 포인트로 많은 여행객들이 찾는다.》● 남해 보리암의 일출보리암은 남해의 명산인 금산 정상 절벽에 아슬아슬하게 자리 잡고 있다. 이곳에 서면 남해 상주은모래비치를 중심으로 호도, 애도, 해운산, 목도, 승치도, 삼여도, 소치도 등 한려해상국립공원의 섬들이 꿈결처럼 떠다닌다. 해수관음상의 미소처럼 포근하고 따스한 풍경이다. 보리암 일출을 보기 위해 이른 새벽 금산에 올랐다. 낮에는 금산 입구부터 운행하는 사찰 버스(오전 8시∼오후 4시 운행)를 타고 올라가야 하지만, 새벽에는 정상 부근인 제2주차장까지 승용차로 올라갈 수 있다. 차에서 내린 후 금산의 맑은 아침 공기를 느끼며 15분 정도 걸으니 보리암 뒤편의 대장봉과 화엄봉, 형리암의 깎아지른 바위가 나타난다. 보리암의 제일 양지바른 곳, 남해 바다가 한눈에 보이는 장소에 해수관음상과 삼층석탑이 서 있다. 해 뜨기 전 새벽인데도, 벌써 수많은 사람들이 절을 하고 탑돌이를 하고 있다. 대자대비한 관세음보살에게 자비와 도움을 청하는 간절한 몸짓이다. 화엄경에 따르면 중생이 온갖 고뇌에 시달릴 때 한마음으로 관세음보살을 부르면 그 소리를 듣고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 준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하고 끊임없이 속삭이며 기도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나이 지긋한 어머니들이다. 해수관음상이 바닷가에 많이 세워진 까닭은 예로부터 관음보살이 인도 남동쪽 해안에 있는 ‘포탈라카’산의 굴속에 살고 있다고 믿어져 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불교가 인도에서 티베트를 거쳐 중국 한국 일본으로 퍼져 나가면서, 민중은 바닷가 산에 수많은 관음신앙의 성지를 만들었다. 티베트의 영적 지도자인 달라이 라마도 관세음보살의 화신으로 여겨진다. 달라이 라마의 집무실이 있는 라싸의 ‘포탈라궁’도 포탈라카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달라이’는 ‘큰 바다’란 뜻이다. 포탈라카는 중국으로 전해지면서 ‘보타락가(普陀落迦)’라는 한자로 음차됐다. 중국 저장성 닝보(寧波) 인근 푸퉈(普陀)산은 대표적인 관음성지다. 우리나라에서는 의상 대사가 신라 문무왕 11년(671년) 관세음보살을 친견하고 관음굴을 지었다는 양양 낙산사 홍련암을 최초의 본격 관음도량으로 본다. 국내 3대 관음성지인 양양 낙산사의 ‘낙산’, 강화 보문사의 ‘낙가산’, 남해 보리암의 ‘보타전’ 등은 모두 ‘보타락가’라는 이름에서 따온 이름이다. 보리암이 있는 금산의 풍경은 계절에 따라 비단으로 수놓은 듯 변화무쌍하게 변한다. 금산을 오르다 보면 쌍홍문, 망대, 단군성전, 좌선대, 화엄봉과 같은 전설과 이야기가 담긴 명소들이 즐비하다. 고려 말 이성계가 보리암에서 백일기도를 하고 조선왕조를 열었다는 기도처도 남아 있다. 특히 슬픈 사랑의 전설이 담겨 있는 상사암(想思巖) 절벽은 보리암을 색다른 각도로 조망하고, 파노라마처럼 바다 풍경을 바라보며 사색에 잠길 수 있는 곳이다.● 동아시아 해상 실크로드의 관음성지 강화 석모도 낙가산 중턱에 자리한 보문사 뒤편에는 ‘눈썹바위 마애관음보살상’이 있다. 높이 9.2m, 폭 3.3m 규모의 거대한 해수관음상이 낙가산 중턱에 가로로 길게 튀어나온 눈썹바위 아래 그야말로 눈동자처럼 들어앉아 있는 것이다. 인자한 미소를 짓고 있는 마애불은 잠시도 한눈을 팔지 않고 바다를 내려다보고 있다. 관음상의 시선을 따라 내려다본 드넓은 서해 바다는 일찍이 강화 8경으로 알려졌을 정도로 절경이다. 신라시대에 세워진 강화 보문사는 고려시대 때 관음성지로 크게 번창했다. 보문사의 번창은 해상 무역과 깊은 관련이 있다. 인도를 출발해 믈라카 해협과 베트남, 중국 광저우까지 진출한 인도 상인들이 중국 연안의 닝보를 거쳐 고려의 수도 개경의 관문인 벽란도까지 진출했다. 강화도는 벽란도의 관문 역할을 하던 곳이다. 옛날에 배는 물건을 대량으로 수송할 수 있는 장점이 있어 무역에 적합한 수단이었다. 그러나 육로에 비해 난파 등의 위험이 높아 항해는 늘 목숨을 건 모험이었다. 사람들은 항해의 두려움과 무서움을 이겨 내기 위해 많은 신들에게 빌었다. 그중에 으뜸은 관세음보살이었다. 그래서 동아시아 해상 실크로드를 오가던 뱃사람들은 중국 닝보, 강화도 등 바닷가의 산에 관세음보살이 살던 인도의 보타락가산을 재현해 냈다. 강화 보문사는 절 앞까지 버스가 도착한다. 그러나 좀 더 드라마틱하게 해수관음상을 만나는 방법은 석모도의 해명산과 낙가산을 넘어서 보문사로 가는 길이다. 들머리인 전득이고개에서 숲을 파고든 가파른 산길에 오른 지 10분 정도 지났을까. 갑자기 시야가 탁 트인다. 개펄을 쓰다듬는 바다와 점점이 흩어져 있는 무인도까지 서해 특유의 풍경이다. 해명산에서 낙가산까지 바다를 바라보며 걷는 능선길은 순하다. 낙가산 정상 표지석을 지나 새가리고개를 넘자 보문사의 전각들이 내려다보인다. 너럭바위 바로 아래가 해수관음상을 모신 눈썹바위지만, 낙가산 정상에서 바로 내려갈 수는 없다. 다시 보문사까지 내려와서 일주문을 지나 계단을 오른다. 숨이 턱까지 차오를 무렵 눈썹바위 마애관음보살상에 다다랐다. 연꽃 위에 좌정하여 감로수 병을 든 보문사 해수관음상 앞에는 소원을 담은 수많은 연등이 걸려 있다. 서울의 관문인 강화도는 종교를 비롯해 외래 문물 유입의 최전선이기도 했다. 1876년 강화도조약 이후 초창기 개신교의 전파 과정에서 핵심 역할을 한 곳도 강화도다. 1900년 지어진 강화 성공회성당은 한옥과 불교 사찰, 서유럽 바실리카 양식을 결합한 독특한 건물이라 눈에 확 띈다. 영국 성공회 선교사가 백두산의 나무를 가져다 지은 이 성당은 불교의 사찰처럼 일주문과 범종을 갖추고 있다. 그런가 하면 팔작지붕 용마루에 올라앉은 십자가, 팔작지붕 합각 아래 ‘天主聖殿(천주성전)’ 현판, 기둥에 걸려 있는 ‘三位一體(삼위일체)’ 주련, 제단 위에 새겨진 ‘萬有眞原(만유진원)’ 등 한자로 해석한 성경 구절이 성당임을 알게 해준다. 내부로 들어가면 고색창연한 샹들리에가 개화기 영화 세트장에 온 느낌을 준다. 섬 여행은 강화읍 향나무길 ‘조양방직’ 카페에서 차 한잔을 하며 마무리하면 좋다. 일제강점기인 1933년 민족자본이 세운 방직공장을 카페로 단장했다. 1958년 폐업한 뒤 60년가량 제대로 활용되지 않던 건물의 골조를 그대로 살려 추억 어린 옛 생필품과 예술품을 진열한 빈티지 미술관은 세련된 멋을 찾는 젊은이도, 추억을 되새기는 어르신도 함께 즐기는 공간이 된다.남해·강화=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2022-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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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쇼팽의 손가락[바람개비/전승훈]

    프랑스 파리 ‘로맨틱 생활 박물관’에 가면 작곡가 프레데리크 쇼팽(1810∼1849)의 하얀 손가락을 만날 수 있다. 1838년 쇼팽의 연인 조르주 상드가 친구에게 부탁해 쇼팽의 손가락을 석고로 떠 놓은 것. “피부의 땀구멍으로 천한 것은 모두 증발된 듯하다.” “쇼팽의 손이 건반의 3분의 1을 덮을 정도로 벌려질 때면 커다란 독사가 토끼를 한입에 삼키려는 모습 같았다.” 쇼팽의 손가락에 대해서는 많은 이들이 기록을 남겼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2022-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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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허리 치료받고 눈물로 고마워하시던 시골 할머니에 큰 감동”

    “99세까지 88(팔팔)하게 살기 위해서는 무릎과 허리, 발목 등 뼈와 관절에 대한 관리가 중요하지요. 나이가 들어도 친구를 만나고, 사회생활을 하고, 운동을 하며 사는 삶이 요즘 행복의 트렌드이기 때문이죠.” ENA 채널 ‘임채무의 낭만닥터’는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시골에 사는 어르신들을 무료로 치료해주는 ‘유랑 진료’ 프로그램이다. 배우 임채무, 이문식 씨 등이 출연하는 이 프로그램에는 정형외과 전문의인 이태훈 9988병원 (서울 성동구 왕십리)원장이 늘 함께한다. 낭만닥터 출연진은 올 3월부터 경북 영주 무섬마을, 강원 영월, 충남 논산, 전북 진안, 완주 비비정마을 등 20곳이 넘는 시골마을을 찾아 진료를 펼쳐왔다. “대부분 병원에 가려면 한두 시간 이상 걸리는 오지를 찾아갑니다. 평생 밭에서 쪼그려 앉아서 일해 오신 어르신들이 많아서 허리와 무릎, 어깨, 발목, 고관절이 안 좋으신 경우가 많아요. 천막 진료소에서 엑스레이와 주사치료를 하고, 캠핑카 안에서는 물리치료, 도수치료를 해드립니다.” 그는 바쁜 가운데서도 격주 금, 토 1박 2일 동안 간호사와 총무과 직원 등 5, 6명과 함께 낭만닥터 유랑진료에 나선다. 금요일 새벽부터 토요일 해 질 녘까지 하루 평균 25∼30명의 환자를 치료해주는 강행군을 펼쳐야 한다. 마을마다 증세가 심각한 어르신 중 한 명은 서울로 초청해 무료로 관절 수술과 치료를 해주기도 한다. “시골의 할머니께서 치료를 받으신 후 갑자기 눈물을 흘리시더군요. 살다가 이렇게 큰 장비를 싣고 온 의사에게 전문치료를 받은 건 처음이라고. 그러면서 갑자기 주머니에서 꼬깃꼬깃한 1만 원짜리 몇 장을 꺼내시는 거예요. 할머니가 그 돈으로 아이스크림을 사주셔서 기다리는 어르신들과 스태프들이 시원하게 먹었던 기억이 제일 오래 남습니다.” ‘건강 품앗이 여행’을 모토로 내건 이 프로그램에서는 낭만닥터 팀이 치료를 해주면 어르신들이 지역에서 나는 먹을거리를 가져와 점심을 함께 해 먹기도 한다. 그는 경북 상주에서 할아버지가 가져다 준 ‘곶감 껍질을 먹여 키운 한우’, 충북 제천 산수유 마을에서 먹은 도토리묵, 전북 진안에서 맛본 고랭지 수박의 기막힌 맛을 잊지 못한다고 했다. “임채무 선생이 부른 노래 중에 ‘구구팔팔 내 인생, 이제부터 시작이다∼’라는 곡이 있었습니다. 제가 2017년 개원하면서 특색 있는 이름을 짓고 싶어서 ‘9988병원’이라고 지었습니다. 어느 날 임채무 선생이 지나가다가 병원에 들어오셔서 ‘왜 나한테 상표 허락도 안 받고 이름을 지었냐’고 하셨어요. 알고 보니 그건 농담이었고, 사실은 어깨가 아프셔서 오셨더군요. 자기공명 영상(MRI)을 찍어보니 어깨 회전근이 파열돼 제가 봉합수술을 해드린 인연으로 친해졌습니다.” 그는 “임 선생은 아이들을 위한 ‘두리랜드’를 오랫동안 운영해 왔는데 나이 들면 의료봉사를 하는 게 꿈이었다고 한다”며 “결국 저랑 의기투합해서 ‘낭만닥터’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현재까지 21회가 진행됐는데, 출연진인 배우 이문식 씨랑 ‘앞으로 500회까지 해보자’고 결의했다고 한다. 이 원장은 “많은 분들의 동참으로 의료 봉사활동이 1000회까지 계속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2022-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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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국 오지 찾아가 어르신들께 의료 봉사…건강을 품앗이하죠”

    “99세까지 88(팔팔)하게 살기 위해서는 무릎과 허리, 발목 등 뼈와 관절에 대한 관리가 중요하지요. 나이가 들어도 친구를 만나고, 사회생활을 하고, 운동을 하며 사는 삶이 요즘 행복의 트렌드이기 때문이죠.” ENA 채널 ‘임채무의 낭만닥터’는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시골에 사는 어르신들을 무료로 치료해주는 ‘유랑 진료’ 프로그램이다. 배우 임채무, 이문식 씨 등이 출연하는 이 프로그램에는 정형외과 전문의인 이태훈 9988병원 원장(서울 성동구 왕십리)이 늘 함께 한다. 낭만닥터 출연진은 지난 3월부터 경북 영주 무섬마을, 강원 영월, 충남 논산, 전북 진안, 완주 비비정마을 등 20곳이 넘는 시골마을을 찾아 진료를 펼쳐왔다. 캠핑카에 엑스레이 촬영 장비, 초음파 충격파, 물리치료 기계, 도수치료 장비, 혈압계 등 각종 의료장비를 가득 싣고 바닷가나 논두렁에 커다란 천막을 치고 진료해주는 봉사활동 현장 프로그램이다. “대부분 전문병원에 가려면 한두시간 이상 걸리는 오지를 찾아갑니다. 평생 밭에서 쪼그려 앉아서 일해오신 어르신들이 많아서 대부분 허리와 무릎, 어깨, 발목, 고관절이 안좋으신 경우가 많아요. 천막 진료소에서 엑스레이를 찍고, 주사치료를 하고, 캠핑카 안에서는 물리치료, 도수치료를 해드립니다.” 이 원장은 격무로 금, 토 1박2일 동안 병원의 간호사와 물리치료사, 도수치료사, 총무과 직원 등 5,6명과 함께 동행을 한다. 마을마다 증세가 심각한 할머니, 할어버지 중에는 서울로 초청해 무료로 관절 수술과 치료를 해주기도 한다. 금요일 새벽부터 토요일 해질녘까지 하루 평균 25~30명의 환자를 치료해주는 강행군을 펼쳐야 한다. “시골의 할머니께서 치료를 받으신 후 갑자기 눈물을 흘리시더군요. 살다가 이렇게 큰 장비를 싣고 온 의사에게 전문치료를 받은 건 처음이라고. 그러면서 갑자기 주머니에서 꼬깃꼬깃한 만원짜리 몇장을 꺼내시는거예요. 그 마음이 전달돼서 저도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할머니가 주신 돈으로 기다리는 어르신들과 스태프들이 시원한 아이스크림을 사서 먹었던 기억이 제일 오래 남습니다.” ‘건강 품앗이 여행’을 모토로 내건 이 프로그램에서는 낭만닥터팀이 치료를 해주면 어르신들이 지역에서 나는 수박, 버섯, 도토리묵 같은 먹을거리를 가져와 셰프가 요리해 점심을 함께 먹기도 한다. 그는 경북 상주에서 할아버지 환자가 가져다 준 ‘곶감 껍질을 먹여 키운 한우’, 제천 산수유 마을에서 먹은 도토리묵, 전북 진안에서 맛본 고랭지 수박의 기가막힌 맛을 잊지 못한다고 했다. 진안에서는 20년 전에 귀향한 화가가 허리 치료를 받고, 즉석에서 매화 그림을 그려주기도 했다. 이 원장은 “귀중한 그림을 액자에 넣어서 병원 로비에 걸어둘 생각”이라고 말했다. -배우 임채무 씨와의 인연은. “임채무 선생이 부른 노래 중에 ‘구구팔팔 내 인생, 이제부터 시작이다~’이라는 노래가 있었습니다. 제가 2017년 개원하면서 특색있는 이름을 짓고 싶었는데, 아내가 ‘9988병원’이라고 하면 어떻겠냐고 아이디어를 냈어요. 개원 후 임채무 선생이 차타고 지나가다가 병원 이름을 보시고 들어오셔서 ‘왜 나한테 상표 허락도 안받고 이름을 지었냐’고 하셨어요. 알고보니 그건 농담이었고, 사실은 어깨가 아프셔서 오셨더군요. MRI를 찍어보니 어깨 회전근이 파열돼 제가 봉합수술을 해드린 인연으로 친해졌습니다.” ―‘낭만닥터’ 의료봉사를 하게 된 계기는. “임채무 선생은 아이들을 위한 ‘두리랜드’를 오랫동안 운영해왔는데 나이들면 의료봉사를 하는 게 버킷 리스트였다고 합니다. 결국 저까지 의기투합해서 ‘낭만닥터’를 하게 됐습니다. 올해 21회가 진행됐는데, 함께 출연하는 이문식 배우가 ‘앞으로 500회까지 해보자’고 하셨어요. 많은 이들의 도움으로 방방곡곡 유랑진료 봉사활동이 500회, 1000회까지 계속되길 기원합니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2022-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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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개비]‘땡땡의 모험’의 고향

    벨기에 브뤼셀에 가면 스머프와 땡땡과 같은 인기 만화의 고향이라는 사실을 실감하게 된다. 곳곳의 벽화와 박물관, 기념품 숍에서 캐릭터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만화가 에르제의 ‘땡땡의 모험’은 1929년 이후 100개 이상의 언어로 출간된 유럽 만화의 고전이다. 동서양은 물론 사막, 극지방, 심해, 우주까지 아우르는 ‘땡땡의 모험’은 세계 역사와 문화의 백과사전으로 불린다. 1953년에는 달 탐험을 생생하게 그려내기도 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2022-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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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와 해초로 끼니 때웠지만…이중섭이 사랑했던 섶섬 풍경[전승훈의 아트로드]

    제주 서귀포 앞바다에는 무인도 삼형제가 있다. 섶섬 문섬 범섬. 제주도를 만든 신이 아름다운 제주를 돌아보려 내려왔다가 사냥꾼이 잘못 쏜 화살을 맞고 화가 나서 한라산 봉우리를 움켜쥐고 던져 섶섬과 문섬, 범섬이 됐다고 한다. 한라산 꼭대기가 뽑힌 자리는 움푹 파여 백록담이 됐다. 서귀포 세 섬은 유네스코 등록유산이자 생물권 보전지역으로 지정된 천혜의 비경이다. 바닷속은 ‘산호정원’ ‘물속의 곶자왈’로 불릴 만큼 세계적인 연산호 군락으로 우거진 스킨스쿠버 성지이기도 하다. 화가 이중섭(1916~1956)은 섶섬이 보이는 바닷가에서 가족들과 살았던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그림으로 남기기도 했다. ● 그리운 섶섬 풍경제주 서귀포에 있는 이중섭미술관 옥상에 올라가면 서귀포 앞바다가 보인다. 화가 이중섭은 집 뒤의 언덕이었던 이곳에서 ‘섶섬이 보이는 풍경’을 그렸다. 그림 속에 있는 황토빛 길과 나목, 초가지붕 풍경은 콘크리트 빌딩과 도로로 바뀌었지만, 왼쪽에 섶섬, 오른쪽에 문섬이 바라다보이는 앞바다의 풍경은 그대로다. ’섶섬이 보이는 풍경‘은 현재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전시되고 있는 고 이건희 회장 기증 1주년 기념전인 ’어느 수집가의 초대‘에서 볼 수 있다. 황토빛 초가지붕 너머 햇빛에 반짝이는 푸른색 제주 바다가 섶섬을 둘러싸고 있다. 거친 붓질로 휙휙 그린 황소 그림과 달리 색채와 붓 터치 하나하나에서 따뜻하고 정겨움이 느껴진다. 아마도 서귀포 생활은 중섭에게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시절이었을 것이다. 1951년 1·4후퇴 당시 원산에 살던 이중섭은 가족을 이끌고 피란해 제주 서귀포까지 내려온다. 이중섭과 마사코, 겨우 다섯 살, 세 살밖에 되지 못한 어린 아들 둘은 섶섬이 보이는 마을에서 1.5평짜리 단칸방을 얻어 산다. 실제로 이중섭 미술관 아래 초가집에는 이중섭 가족이 머물던 방이 남아 있는데, 그야말로 누우면 발이 넘어올 것 같다. 아마도 몸을 구부리고 잤을 것이다. 배급받은 쌀로 끼니를 때우던 이중섭은 서귀포 해변으로 내려가 해초를 뜯어 죽을 쑤고, 작은 게를 잡아 반찬을 해 먹었다고 한다. 서귀포 칠십리로 자구리해변에 가면 전망 좋은 카페와 식당이 있는 거리가 나온다. 이 카페의 루프톱에서 바라보면 섶섬이 눈에 잡힐 듯 다가온다. 이곳은 이중섭이 아이들과 게가 함께 노는 모습이 담긴 ’그리운 제주도 풍경‘ ’바닷가와 아이들‘을 그린 곳이다. 자구리문화예술공원에는 담뱃갑 속 포장지인 은지에 연필로 그림을 그리는 화가의 커다란 손이 형상화된 조각품이 있다. 이중섭의 손을 모티브로 만든 정미진 작가의 ’게와 아이들―그리다‘라는 작품이다. 그러나 이중섭은 제주도에 도착한 그해 12월 가난을 해결하지 못해 1년도 채 안 돼 부산으로 다시 떠나야 했다. 이후 아내와 아이들도 일본으로 떠나보냈다. 1956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는 아내와 아이들을 보고 싶어 은박지에 그림을 그렸다. 그에게 섶섬이 보이는 풍경, 은박지 속의 바다와 하늘, 게와 물고기는 그리움으로 흘리는 눈물이었을 것이다. 이중섭미술관에서 서귀포 올레시장으로 올라가는 언덕길에는 수많은 아트숍과 화가들의 작업실이 있다. 천천히 걸으며 상주 예술가들이 그린 벽화를 감상한다. 섶섬과 문섬의 풍경을 보기엔 서귀포 정방폭포 옆에 있는 이왈종미술관도 좋은 포인트다. 화가 이왈종은 1990년 대학교수직을 박차고 제주로 내려왔다. 민화적인 색채와 도상으로 구성된 그의 작품 세계는 단란하다. ’제주 생활의 중도‘ 연작에는 동백과 엉겅퀴가 피고, 골프와 낚시를 즐기는 제주의 유유자적한 풍경이 살아 숨쉰다.● 바닷속 곶자왈, 산호정원 섶섬은 스킨스쿠버 명소다. ’소천지‘와 ’작은 한개창‘, ’큰 한개창‘(제주 방언으로 ’코지‘는 밖으로 튀어나온 지형을, ’개창‘은 안으로 움푹 들어간 지형이라고 한다) 등 유명한 다이빙 포인트가 즐비하다. 섬이나 바닷가 여행을 할 때 다이빙을 하게 되면 그 지역을 입체적으로 감상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서귀포항에서 출발하는 배를 타고 5분쯤 가니 섶섬에 도착했다. 스쿠버다이빙 장비를 착용하고 바다에 뛰어들었다. 부력조절장치(BCD)의 공기를 배출시키며 서서히 하강했다. 섶섬 앞바다는 ’물속의 곶자왈‘이다. 육상의 곶자왈은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나무가 빽빽한 제주의 숲을 말한다. 섶섬 앞바다에 들어가면 가장 먼저 연산호류(soft coral)인 분홍색의 수지맨드라미와 가시산호, 하얀색 해송까지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산호를 모아놓은 듯하다. 분홍색, 노란색, 초록색, 흰색 등 총천연색 ’산호정원‘이다. 알록달록 화려하고 긴 지느러미를 자랑하는 쏠배감펭(일명 라이언피시)이 도망가지 않고 눈앞에서 여유 있게 헤엄치고 있다. 바닥을 향해 내려가는 동안 강렬한 원색의 아열대 어종들이 차례로 모습을 드러낸다. 범돔, 세동가리돔, 청줄돔, 파랑돔, 호박돔, 아홉동가리, 황붉돔…. 바닥으로 내려가자 말미잘 군락이 펼쳐졌고, 말미잘과 공생하는 흰동가리, 샛별돔 등이 보였다. 흰동가리는 애니메이션 ’니모‘의 주인공인 바로 그 물고기인데, 말미잘 밖에 나와서도 도망가지 않고 다이버를 향해 뭐라고 말을 하는 듯하다. 운이 좋으면 용왕의 사신인 바다거북, 대형 가오리도 만날 수 있다고 하는데, 내 눈에는 안 띄어 아쉬웠다. 다이브투게더 김응곤 대표(다이빙 강사)는 “섶섬 앞바다에는 해송이 많고, 문섬 새끼섬 직벽에는 노란색 연산호가 많다”며 “서귀포 앞바다는 세계적인 천혜의 산호정원”이라고 말했다. ● 방주교회 & 본태미술관서귀포항에서 승용차로 30여 분 거리에 있는 서귀포시 안덕면으로 가서 미술과 건축 여행을 이어간다. 한라산 중턱에 자리 잡은 안도 다다오가 건축한 ’본태미술관‘과 재일 한국인 건축가 이타미 준(유동룡)이 설계한 ’방주교회‘가 물과 바람, 돌과 잘 어우러져 있는 공간이다. 방주교회는 구약성서에 나오는 노아의 방주 모양으로 세워진 교회다. 아라라트산에 걸쳐져 있던 방주처럼 한라산 중턱에 자리 잡은 방주교회는 지붕의 삼각형 금속조각이 반사하며 빛의 홍수를 만들어낸다. 교회 주변은 야트막한 연못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그야말로 물 위에 뜨는 방주의 형상이다. 내부로 들어가면 배의 골격을 본떠 기둥 없는 오각형 돔 구조로 간결하다. 벽면 아래쪽에 있는 유리창 밖으로 찰랑대는 물이 보인다. 조타실에 해당하는 정면에 십자가가 서 있고, 유리창에서는 강렬한 빛이 쏟아진다. 노아가 날려 보낸 비둘기가 올리브 나뭇가지를 물고 돌아온 ’희망의 창문‘이다. 50명 정도가 앉을 수 있는 작은 교회지만 누구라도 경건해지지 않을 수 없는 종교적 분위기가 가득한 공간이다. 안도 다다오가 지은 본태박물관은 노출 콘크리트 건물로, 한국의 전통 흙담 및 정원과 잘 어우러진다. 특히 비 오는 날 물이 흐르는 경치가 아름답다. 투명한 거울 같은 물에 비친 건물의 그림자가 마음을 고요하게 만든다. 내부에 들어가면 백남준, 구사마 야요이, 제임스 터렐부터 고려청자와 백자, 소반, 조각보 등 동서양 미술의 다양한 컬렉션을 감상할 수 있다. 전승훈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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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와 해초로 끼니 때웠지만…이중섭이 사랑했던 섶섬 풍경[전승훈의 아트로드]

    제주 서귀포 앞바다에는 무인도 삼형제가 있다. 섶섬 문섬 범섬. 제주도를 만든 신이 아름다운 제주를 돌아보려 내려왔다가 사냥꾼이 잘못 쏜 화살을 맞고 화가 나서 한라산 봉우리를 움켜쥐고 던져 섶섬과 문섬, 범섬이 됐다고 한다. 한라산 꼭대기가 뽑힌 자리는 움푹 파여 백록담이 됐다. 서귀포 세 섬은 유네스코 등록유산이자 생물권 보전지역으로 지정된 천혜의 비경이다. 바닷속은 ‘산호정원’ ‘물속의 곶자왈’로 불릴 만큼 세계적인 연산호 군락으로 우거진 스킨스쿠버 성지이기도 하다. 화가 이중섭(1916~1956)은 섶섬이 보이는 바닷가에서 가족들과 살았던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그림으로 남기기도 했다. ● 그리운 섶섬 풍경 제주 서귀포에 있는 이중섭미술관 옥상에 올라가면 서귀포 앞바다가 보인다. 화가 이중섭은 집 뒤의 언덕이었던 이곳에서 ‘섶섬이 보이는 풍경’을 그렸다. 그림 속에 있는 황토빛 길과 나목, 초가지붕 풍경은 콘크리트 빌딩과 도로로 바뀌었지만, 왼쪽에 섶섬, 오른쪽에 문섬이 바라다보이는 앞바다의 풍경은 그대로다. ‘섶섬이 보이는 풍경’은 현재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전시되고 있는 고 이건희 회장 기증 1주년 기념전인 ‘어느 수집가의 초대’에서 볼 수 있다. 황토빛 초가지붕 너머 햇빛에 반짝이는 푸른색 제주 바다가 섶섬을 둘러싸고 있다. 거친 붓질로 휙휙 그린 황소 그림과 달리 색채와 붓 터치 하나하나에서 따뜻하고 정겨움이 느껴진다. 아마도 서귀포 생활은 중섭에게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시절이었을 것이다. 1951년 1·4후퇴 당시 원산에 살던 이중섭은 가족을 이끌고 피란해 제주 서귀포까지 내려온다. 이중섭과 마사코, 겨우 다섯 살, 세 살밖에 되지 못한 어린 아들 둘은 섶섬이 보이는 마을에서 1.5평짜리 단칸방을 얻어 산다. 실제로 이중섭 미술관 아래 초가집에는 이중섭 가족이 머물던 방이 남아 있는데, 그야말로 누우면 발이 넘어올 것 같다. 아마도 몸을 구부리고 잤을 것이다. 배급받은 쌀로 끼니를 때우던 이중섭은 서귀포 해변으로 내려가 해초를 뜯어 죽을 쑤고, 작은 게를 잡아 반찬을 해 먹었다고 한다. 서귀포 칠십리로 자구리해변에 가면 전망 좋은 카페와 식당이 있는 거리가 나온다. 이 카페의 루프톱에서 바라보면 섶섬이 눈에 잡힐 듯 다가온다. 이곳은 이중섭이 아이들과 게가 함께 노는 모습이 담긴 ‘그리운 제주도 풍경’ ‘바닷가와 아이들’을 그린 곳이다. 자구리문화예술공원에는 담뱃갑 속 포장지인 은지에 연필로 그림을 그리는 화가의 커다란 손이 형상화된 조각품이 있다. 이중섭의 손을 모티브로 만든 정미진 작가의 ‘게와 아이들―그리다’라는 작품이다. 그러나 이중섭은 제주도에 도착한 그해 12월 가난을 해결하지 못해 1년도 채 안 돼 부산으로 다시 떠나야 했다. 이후 아내와 아이들도 일본으로 떠나보냈다. 1956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는 아내와 아이들을 보고 싶어 은박지에 그림을 그렸다. 그에게 섶섬이 보이는 풍경, 은박지 속의 바다와 하늘, 게와 물고기는 그리움으로 흘리는 눈물이었을 것이다. 이중섭미술관에서 서귀포 올레시장으로 올라가는 언덕길에는 수많은 아트숍과 화가들의 작업실이 있다. 천천히 걸으며 상주 예술가들이 그린 벽화를 감상한다. 섶섬과 문섬의 풍경을 보기엔 서귀포 정방폭포 옆에 있는 이왈종미술관도 좋은 포인트다. 화가 이왈종은 1990년 대학교수직을 박차고 제주로 내려왔다. 민화적인 색채와 도상으로 구성된 그의 작품 세계는 단란하다. ‘제주 생활의 중도’ 연작에는 동백과 엉겅퀴가 피고, 골프와 낚시를 즐기는 제주의 유유자적한 풍경이 살아 숨쉰다. ● 바닷속 곶자왈, 산호정원 섶섬은 스킨스쿠버 명소다. ‘소천지’와 ‘작은 한개창’, ‘큰 한개창’(제주 방언으로 ‘코지’는 밖으로 튀어나온 지형을, ‘개창’은 안으로 움푹 들어간 지형이라고 한다) 등 유명한 다이빙 포인트가 즐비하다. 섬이나 바닷가 여행을 할 때 다이빙을 하게 되면 그 지역을 입체적으로 감상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서귀포항에서 출발하는 배를 타고 5분쯤 가니 섶섬에 도착했다. 스쿠버다이빙 장비를 착용하고 바다에 뛰어들었다. 부력조절장치(BCD)의 공기를 배출시키며 서서히 하강했다. 섶섬 앞바다는 ‘물속의 곶자왈’이다. 육상의 곶자왈은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나무가 빽빽한 제주의 숲을 말한다. 섶섬 앞바다에 들어가면 가장 먼저 연산호류(soft coral)인 분홍색의 수지맨드라미와 가시산호, 하얀색 해송까지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산호를 모아놓은 듯하다. 분홍색, 노란색, 초록색, 흰색 등 총천연색 ‘산호정원’이다. 알록달록 화려하고 긴 지느러미를 자랑하는 쏠배감펭(일명 라이언피시)이 도망가지 않고 눈앞에서 여유 있게 헤엄치고 있다. 바닥을 향해 내려가는 동안 강렬한 원색의 아열대 어종들이 차례로 모습을 드러낸다. 범돔, 세동가리돔, 청줄돔, 파랑돔, 호박돔, 아홉동가리, 황붉돔…. 바닥으로 내려가자 말미잘 군락이 펼쳐졌고, 말미잘과 공생하는 흰동가리, 샛별돔 등이 보였다. 흰동가리는 애니메이션 ‘니모’의 주인공인 바로 그 물고기인데, 말미잘 밖에 나와서도 도망가지 않고 다이버를 향해 뭐라고 말을 하는 듯하다. 운이 좋으면 용왕의 사신인 바다거북, 대형 가오리도 만날 수 있다고 하는데, 내 눈에는 안 띄어 아쉬웠다. 다이브투게더 김응곤 대표(다이빙 강사)는 “섶섬 앞바다에는 해송이 많고, 문섬 새끼섬 직벽에는 노란색 연산호가 많다”며 “서귀포 앞바다는 세계적인 천혜의 산호정원”이라고 말했다. ● 방주교회 & 본태미술관 서귀포항에서 승용차로 30여 분 거리에 있는 서귀포시 안덕면으로 가서 미술과 건축 여행을 이어간다. 한라산 중턱에 자리 잡은 안도 다다오가 건축한 ‘본태미술관’과 재일 한국인 건축가 이타미 준(유동룡)이 설계한 ‘방주교회’가 물과 바람, 돌과 잘 어우러져 있는 공간이다. 방주교회는 구약성서에 나오는 노아의 방주 모양으로 세워진 교회다. 아라라트산에 걸쳐져 있던 방주처럼 한라산 중턱에 자리 잡은 방주교회는 지붕의 삼각형 금속조각이 반사하며 빛의 홍수를 만들어낸다. 교회 주변은 야트막한 연못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그야말로 물 위에 뜨는 방주의 형상이다. 내부로 들어가면 배의 골격을 본떠 기둥 없는 오각형 돔 구조로 간결하다. 벽면 아래쪽에 있는 유리창 밖으로 찰랑대는 물이 보인다. 조타실에 해당하는 정면에 십자가가 서 있고, 유리창에서는 강렬한 빛이 쏟아진다. 노아가 날려 보낸 비둘기가 올리브 나뭇가지를 물고 돌아온 ‘희망의 창문’이다. 50명 정도가 앉을 수 있는 작은 교회지만 누구라도 경건해지지 않을 수 없는 종교적 분위기가 가득한 공간이다. 안도 다다오가 지은 본태박물관은 노출 콘크리트 건물로, 한국의 전통 흙담 및 정원과 잘 어우러진다. 특히 비 오는 날 물이 흐르는 경치가 아름답다. 투명한 거울 같은 물에 비친 건물의 그림자가 마음을 고요하게 만든다. 내부에 들어가면 백남준, 구사마 야요이, 제임스 터렐부터 고려청자와 백자, 소반, 조각보 등 동서양 미술의 다양한 컬렉션을 감상할 수 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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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섶섬이 마음속으로 파고든다… 이중섭의 그리움처럼[전승훈 기자의 아트로드]

    《제주 서귀포 앞바다에는 무인도 삼형제가 있다. 섶섬 문섬 범섬. 제주도를 만든 신이 아름다운 제주를 돌아보려 내려왔다가 사냥꾼이 잘못 쏜 화살을 맞고 화가 나서 한라산 봉우리를 움켜쥐고 던져 섶섬과 문섬, 범섬이 됐다고 한다. 한라산 꼭대기가 뽑힌 자리는 움푹 파여 백록담이 됐다. 서귀포 세 섬은 유네스코 등록유산이자 생물권 보전지역으로 지정된 천혜의 비경이다. 바닷속은 ‘산호정원’ ‘물속의 곶자왈’로 불릴 만큼 세계적인 연산호 군락으로 우거진 스킨스쿠버 성지이기도 하다. 화가 이중섭(1916∼1956)은 섶섬이 보이는 바닷가에서 가족들과 살았던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그림으로 남기기도 했다.》○그리운 섶섬 풍경제주 서귀포에 있는 이중섭미술관 옥상에 올라가면 서귀포 앞바다가 보인다. 화가 이중섭은 집 뒤의 언덕이었던 이곳에서 ‘섶섬이 보이는 풍경’을 그렸다. 그림 속에 있는 황토빛 길과 나목, 초가지붕 풍경은 콘크리트 빌딩과 도로로 바뀌었지만, 왼쪽에 섶섬, 오른쪽에 문섬이 바라다보이는 앞바다의 풍경은 그대로다. ‘섶섬이 보이는 풍경’은 현재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전시되고 있는 고 이건희 회장 기증 1주년 기념전인 ‘어느 수집가의 초대’에서 볼 수 있다. 황토빛 초가지붕 너머 햇빛에 반짝이는 푸른색 제주 바다가 섶섬을 둘러싸고 있다. 거친 붓질로 휙휙 그린 황소 그림과 달리 색채와 붓 터치 하나하나에서 따뜻하고 정겨움이 느껴진다. 아마도 서귀포 생활은 중섭에게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시절이었을 것이다. 1951년 1·4후퇴 당시 원산에 살던 이중섭은 가족을 이끌고 피란해 제주 서귀포까지 내려온다. 이중섭과 마사코, 겨우 다섯 살, 세 살밖에 되지 못한 어린 아들 둘은 섶섬이 보이는 마을에서 1.5평짜리 단칸방을 얻어 산다. 실제로 이중섭 미술관 아래 초가집에는 이중섭 가족이 머물던 방이 남아 있는데, 그야말로 누우면 발이 넘어올 것 같다. 아마도 몸을 구부리고 잤을 것이다. 배급받은 쌀로 끼니를 때우던 이중섭은 서귀포 해변으로 내려가 해초를 뜯어 죽을 쑤고, 작은 게를 잡아 반찬을 해 먹었다고 한다. 서귀포 칠십리로 자구리해변에 가면 전망 좋은 카페와 식당이 있는 거리가 나온다. 이 카페의 루프톱에서 바라보면 섶섬이 눈에 잡힐 듯 다가온다. 이곳은 이중섭이 아이들과 게가 함께 노는 모습이 담긴 ‘그리운 제주도 풍경’ ‘바닷가와 아이들’을 그린 곳이다. 자구리문화예술공원에는 담뱃갑 속 포장지인 은지에 연필로 그림을 그리는 화가의 커다란 손이 형상화된 조각품이 있다. 이중섭의 손을 모티브로 만든 정미진 작가의 ‘게와 아이들―그리다’라는 작품이다. 그러나 이중섭은 제주도에 도착한 그해 12월 가난을 해결하지 못해 1년도 채 안 돼 부산으로 다시 떠나야 했다. 이후 아내와 아이들도 일본으로 떠나보냈다. 1956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는 아내와 아이들이 보고 싶어 은박지에 그림을 그렸다. 그에게 섶섬이 보이는 풍경, 은박지 속의 바다와 하늘, 게와 물고기는 그리움으로 흘리는 눈물이었을 것이다. 이중섭미술관에서 서귀포 올레시장으로 올라가는 언덕길에는 수많은 아트숍과 화가들의 작업실이 있다. 천천히 걸으며 상주 예술가들이 그린 벽화를 감상한다. 섶섬과 문섬의 풍경을 보기엔 서귀포 정방폭포 옆에 있는 왈종미술관도 좋은 포인트다. 화가 이왈종은 1990년 대학교수직을 박차고 제주로 내려왔다. 민화적인 색채와 도상으로 구성된 그의 작품 세계는 단란하다. ‘제주 생활의 중도’ 연작에는 동백과 엉겅퀴가 피고, 골프와 낚시를 즐기는 제주의 유유자적한 풍경이 살아 숨쉰다.○ 바닷속 곶자왈, 산호정원 섶섬은 스킨스쿠버 명소다. ‘소천지’와 ‘작은 한개창’, ‘큰 한개창’(제주 방언으로 ‘코지’는 밖으로 튀어나온 지형을, ‘개창’은 안으로 움푹 들어간 지형이라고 한다) 등 유명한 다이빙 포인트가 즐비하다. 섬이나 바닷가 여행을 할 때 다이빙을 하게 되면 그 지역을 입체적으로 감상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서귀포항에서 출발하는 배를 타고 5분쯤 가니 섶섬에 도착했다. 스쿠버다이빙 장비를 착용하고 바다에 뛰어들었다. 부력조절장치(BCD)의 공기를 배출시키며 서서히 하강했다. 섶섬 앞바다는 ‘물속의 곶자왈’이다. 육상의 곶자왈은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나무가 빽빽한 제주의 숲을 말한다. 섶섬 앞바다에 들어가면 가장 먼저 연산호류(soft coral)인 분홍색의 수지맨드라미와 가시산호, 하얀색 해송까지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산호를 모아놓은 듯하다. 분홍색, 노란색, 초록색, 흰색 등 총천연색 ‘산호정원’이다. 알록달록 화려하고 긴 지느러미를 자랑하는 쏠배감펭(일명 라이언피시)이 도망가지 않고 눈앞에서 여유 있게 헤엄치고 있다. 바닥을 향해 내려가는 동안 강렬한 원색의 아열대 어종들이 차례로 모습을 드러낸다. 범돔, 세동가리돔, 청줄돔, 파랑돔, 호박돔, 아홉동가리, 황붉돔…. 바닥으로 내려가자 말미잘 군락이 펼쳐졌고, 말미잘과 공생하는 흰동가리, 샛별돔 등이 보였다. 흰동가리는 애니메이션 ‘니모’의 주인공인 바로 그 물고기인데, 말미잘 밖에 나와서도 도망가지 않고 다이버를 향해 뭐라고 말을 하는 듯하다. 운이 좋으면 용왕의 사신인 바다거북, 대형 가오리도 만날 수 있다고 하는데, 내 눈에는 안 띄어 아쉬웠다. 다이브투게더 김응곤 대표(다이빙 강사)는 “섶섬 앞바다에는 해송이 많고, 문섬 새끼섬 직벽에는 노란색 연산호가 많다”며 “서귀포 앞바다는 세계적인 천혜의 산호정원”이라고 말했다.○방주교회 & 본태박물관서귀포항에서 승용차로 30여 분 거리에 있는 서귀포시 안덕면으로 가서 미술과 건축 여행을 이어간다. 한라산 중턱에 자리 잡은 안도 다다오가 건축한 ‘본태박물관’과 재일 한국인 건축가 이타미 준(유동룡)이 설계한 ‘방주교회’가 물과 바람, 돌과 잘 어우러져 있는 공간이다. 방주교회는 구약성서에 나오는 노아의 방주 모양으로 세워진 교회다. 아라라트산에 걸쳐져 있던 방주처럼 한라산 중턱에 자리 잡은 방주교회는 지붕의 삼각형 금속조각이 반사하며 빛의 홍수를 만들어낸다. 교회 주변은 야트막한 연못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그야말로 물 위에 뜨는 방주의 형상이다. 내부로 들어가면 배의 골격을 본떠 기둥 없는 오각형 돔 구조로 간결하다. 벽면 아래쪽에 있는 유리창 밖으로 찰랑대는 물이 보인다. 조타실에 해당하는 정면에 십자가가 서 있고, 유리창에서는 강렬한 빛이 쏟아진다. 노아가 날려 보낸 비둘기가 올리브 나뭇가지를 물고 돌아온 ‘희망의 창문’이다. 50명 정도가 앉을 수 있는 작은 교회지만 누구라도 경건해지지 않을 수 없는 종교적 분위기가 가득한 공간이다. 안도 다다오가 지은 본태박물관은 노출 콘크리트 건물로, 한국의 전통 흙담 및 정원과 잘 어우러진다. 특히 비 오는 날 물이 흐르는 경치가 아름답다. 투명한 거울 같은 물에 비친 건물의 그림자가 마음을 고요하게 만든다. 내부에 들어가면 백남준, 구사마 야요이, 제임스 터렐부터 고려청자와 백자, 소반, 조각보 등 동서양 미술의 다양한 컬렉션을 감상할 수 있다. 글·사진 서귀포=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2022-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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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명 방송 타이틀 그려낸 손끝…내가 글씨를 쓰는 이유는”[전승훈의 아트로드]

    “글씨는 까만 먹물 속에 있는 가장 하얀 빛을 찾아내는 작업입니다. 그 빛을 발산해 세상에 자양분을 공급하는 것이 글씨를 쓰는 사람들이 할 일이죠.” 1세대 캘리그라피 작가이자 20년간 KBS에서 ‘불멸의 이순신’ ‘진품명품’ ‘명견만리’ 등의 대표적인 방송 타이틀을 써온 작가 장천(章川) 김성태. 그는 글씨를 쓰는 이유를 이렇게 밝힌다. 그가 쓴 역동적이면서도 세련된 캘리그라피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서체의 아름다움을 넘어 글귀에 담긴 뜻이 마음 속에 또렷이 살아나는 진기한 경험을 하게 된다. 경남 거창에서 태어난 김 작가는 여섯 살에 서예학원을 하시던 아버지에게 글씨를 배웠다. 국내 최초의 서예 전공학과인 원광대 서예과 1기 생으로 졸업했고, 동국대 인문대학원 미술사학과에서 한국서예사를 전공했다. 대학원 논문 주제는 ‘고운 최치원의 서예연구’. 1997년 동아미술제 입선을 시작으로 1998년부터 2006년까지 대한민국 미술대전에서 특선 2회, 입선 4회 수상으로 초대작가가 됐다. 한문과 한글 분야의 전통 서예가의 길을 걸었던 그가 어떻게 캘리그라피 작가가 됐을까. “1997년 어느날, 당시 핫한 드라마였던 KBS1TV 대하드라마 ‘용의 눈물’을 보면서 나도 저런 방송 타이틀을 쓰면 잘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부터 방송 타이틀을 다양한 스타일로 연습하면서 차곡차곡 포트폴리오를 모으기 시작했지요. 그때부터 나의 캘리그라피 인생이 시작됐습니다.”그로부터 6년 후인 2003년. 그는 KBS의 방송미술을 담당하는 자회사인 KBS아트비전에 공채 3기로 입사했다. ‘불멸의 이순신’ ‘태종 이방원’ ‘한국인의 밥상’ ‘진품명품’ ‘명견만리’ ‘전설의 고향’ ‘장영실’ ‘동행’ 등 KBS의 굵직한 방송 타이틀이 그의 손끝에서 나왔다. “방송 타이틀 의뢰가 들어오면 드라마 같은 경우는 시놉시스를 여러차례 읽으며 고민합니다. 이후 연출팀과 논의를 하죠. 연출팀에서는 힘이 있으면 좋겠다, 거칠었으면 혹은 깔끔했으면 좋겠다, 세련되고 럭셔리한 분위기를 원한다 등등 여러 가지 주문을 합니다. 그 말을 종합해서 제가 생각하는 글씨를 여러 가지 시안으로 써나가게 됩니다.”―올해 방영된 대하드라마 ‘태종 이방원’의 글씨는 어떻게 나오게 됐나. “이방원을 다룬 사극이라 전쟁과 권력 쟁탈의 스토리가 있으니까 아무래도 거칠고, 힘있는 글씨가 어울릴 것이다. 그런데 연출팀에서는 타이틀에서 너무 센 느낌은 살짝 줄이면 좋겠다는 의견을 냈다. 이번 드라마에서는 PD가 강력한 왕권을 세웠던 이방원의 카리스마보다는 그의 인간적인 부분을 재조명함으로써 이방원이라는 인물을 재해석하고 싶어했기 때문이다.” 그의 드라마 타이틀 첫 입봉작은 2003년 TV소설 ‘찔레꽃’이었다. 60-70년대 부모님 세대의 애환과 희노애락을 담은 드라마였다. 김 작가는 “누구나 가난했던 시절, 찔레꽃처럼 가시덤불 같은 애환과 곡절을 겪으면서도, 하얗게 꽃을 피워내는 찔레꽃의 느낌을 글씨에 담아보려 했다”고 말했다. ―기억에 남는 방송 타이틀 글씨는. “‘한국인의 밥상’이다. 이 프로그램에서 밥상은 고정된 식탁이 아니라, 평상에서 펼쳐놓고 먹어도, 너럭바위에 앉아서 차려 먹어도 되는 밥상이다. 최불암 씨가 시골 곳곳을 찾아가 숨은 맛집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인데, 그 맛집이 장사를 하는 가게가 아니라 동네주민들로부터 참 음식을 잘한다는 소리를 듣는 일반 가정이다. 그런 집을 찾아가 대대로 손맛을 이어온 어머니들의 음식에 담긴 이야기를 하나하나 끌어내는 프로그램이다. 글씨 자체가 나무처럼 친숙하고 정다운 느낌을 표현하려고 했다. 영상앨범 ‘산’은 산봉우리 모습을 그대로 본뜬 상형문자의 형태로 썼는데, 반응이 무척 좋았다. 현재는 타이틀이 다르게 바뀌었는데, 상형문자 산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다. ‘명견만리’는 최초로 강연과 다큐멘터리를 결합한 형태의 프로그램이어서 개성있는 글씨를 원했다. 평소에 자주 볼 수 없는, 끝이 예리하면서도 젊은이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색다른 글씨체로 표현하려 했다.” 김 작가가 늘 가슴에 품고 사는 말은 ‘의재필선(意在筆先)’이다. ‘붓질보다 뜻이 먼저다’라는 말이다. 그는 “글씨와 정신이 일치하는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는 바람을 전한다. 최근 캘리그라피가 유행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다가감에 따라 자칫 보기에 예쁘고 좋은 글씨로만 캘리그라피를 바라보는 경우가 있다. 이에 대해 작가는 단호하다. “캘리그라피를 단순히 아름다운 글씨라는 외형적인 것만 바라보면 그 진정한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 겁니다. 그저 글을 예쁘게 꾸미는 것이라고만 생각하는 건 제대로 접근하지 못한 거지요. 아무리 글씨를 잘 써도 그 안에 철학과 감성을 담지 못하면 그건 그저 글씨일 뿐입니다.” 그는 그동안 충무공 이순신 장군, 다산 정약용, 법정 스님, 이해인 수녀 등의 ‘명사(名士) 어록’을 주제로 한 시리즈 전시회를 열었다. 지난 2011년 인사동 토포하우스에서 초대전으로 열린 법정스님 추모 1주기 전시회를 준비할 때도 몇달간 깊은 묵상을 했다고 한다. “이 시대의 스승이신 법정스님의 향기로운 글을 발췌해 전시회를 준비하는 기간만 9개월에 걸렸습니다. 문장 마다 그 의미를 느끼고 작품으로 옮기기 위해 스님의 발간된 모든 책을 끊임없이 다시 정독했죠. 법정스님의 가르침에 맞는 글씨를 쓰기 위해 스님이 머물렀던 송광사 불일암에도 몇 번이나 찾아갔습니다.” 그는 2013년에는 다산 정약용 탄신250주년 기념전을 아라아트갤러리에서 다산학술문화재단 주최로 열기도 했다. 2014년에는 이해인 수녀의 시문을 선화랑에서 전시했는데 수익금 전액을 소아암어린이돕기에 기부했다. 2016년에는 아산시 초청을 받아 이순신 장군 어록을 쓴 글씨를 아산문화재단갤러리에서 전시했다. 김 작가는 캘리그라피를 배우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붓으로 배우는 캘리그라피’(덕주)라는 책을 펴냈다. 붓과 먹물, 화선지를 이용해 기본기부터 시작해 완성된 작품까지 따라서 써보며 배울 수 있는 책이다. 그는 캘리그라피를 배우는 사람에게 기초인 붓을 다루는 법을 강조한다. ―왜 붓으로 배우는 캘리그라피인가. “캘리그라피의 시초인 서예를 하는 데 가장 필요한 재료는 ‘문방사우(文房四友)’다. 한자로 ‘지필연묵(紙筆硯墨)’이라고도 부르는데, 종이·붓·벼루·먹 네가지를 말한다. 요즘에는 전통적인 도구인 붓이나 화선지를 사용하지 않고 번지지 않는 종이에 펜, 색연필, 나무, 풀뿌리 등 여러 가지 도구를 사용해 캘리그라피를 연출하는 작가들이 늘고 있다. 이런 도구는 다루기가 쉬워 빨리 배울 수 있고 다양한 표현을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감성적인 캘리그라피를 표현하는 데 붓만큼 변화무쌍한 소재가 없기에, 붓으로 작업해보지 않는 캘리그라퍼들은 그 심오한 예술적 무게를 파악하기 힘들다. 붓과 먹물, 화선지가 만나 표현되는 그 힘과 맛은 다른 어떤 재료로도 설명할 수 없는 깊이가 있다. 즉 번지고, 마르고, 윤택하고, 거칠고 또 담묵과 농묵 등 검정 속에서도 그 색의 깊이가 다양하게 표현되는 매력이 있다.” 김 작가는 책에서 붓으로 긋는 획의 다양한 아름다움에 대해 설명한다. 붓은 누르는 힘 ‘필압(筆壓)’을 조절해 획의 좁고 넓은 폭의 차를 다양하게 표현할 수 있다. 힘있게 누르면 굵어지고 살짝 누르면 가늘어진다. 그리고 붓에 묻은 먹물의 양에 따라서도 예술적 감성을 표현해낼 수 있다. ”붓에 물기가 많으면 번짐 현상이 나타나고, 붓이 마르면 비백(飛白) 현상이 나타난다. 화선지에 먹물이 100%로 닿지 않고 흰 부분이 생기는 현상인데, 항상 같은 농도의 글씨보다는 자연스럽게 먹물이 말라 비백현상이 나타날 때 글씨는 더 아름답습니다. 또한 붓에 먹물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 필압을 가하면 붓이 갈라지는데, 이런 획으로 구사하는 필법을 ‘갈필(渴筆)’이라고 한다. 또한 먹물의 농도에 따라 옅은 회색에서부터 진한 검정색까지 굉장히 폭넓은 먹색의 농담을 줄 수 있다. 그리고 소품은 붓펜으로도 충분하지만, 작품성 높은 큰 작품을 하려면 종이, 붓, 먹물을 능숙하게 다룰 줄 알아야 한다.“ 그는 다양한 캘리그라피 서체를 구사하기 위해서는 ”한글 판본체의 시원인 ‘훈민정음체’와 필사체 중에서 ‘궁서’ 정자체에 바탕을 두고 자유분방한 캘리그라피로 접근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예에서 캘리그라피라는 용어로 변천하게 된 사연은. “서예(書藝)라는 말은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고, 정부에서 처음 실시한 미술전람회에 다른 미술품과 함께 글씨 부문이 참여하면서 그동안 일본인들이 부르던 ‘서도(書道)’라는 말 대신 독자적으로 붙인 명칭이다. 중국에서는 ‘서법(書法)’이라고 부른다. 서양에서 사용된 캘리그라피라는 용어는 한국을 비롯한 동양문화권에서는 서예라는 한정된 영역에 속한 시각예술이었다. 그러나 21세기에 접어들면서 IT의 발전은 대학에서 서예를 전공한 전문 서예인들을 디자인 시장으로 나오게 했고, 그들에 의해 정형화된 서예의 틀을 넘어 다양한 표현양식으로 발전하며 자연히 서예라는 용어 대신 캘리그라피란 용어가 사용됐다.” ―캘리그라피와 서예의 차이점은? “서예가 기록이라는 수단에서 예술적 영역으로 넓혀간 반면, 캘리그라피는 서예가 가진 예술적 영역의 한계에서 벗어나기 위해 시작됐다. 문방사우를 가지고 하는 서예가 컴퓨터 속으로 들어가 색을 입고, 다양한 문양으로치장을 하며, 3D로 변형되어 움직이며 입체감이 생겨난다. 심지어 효과음까지 넣어 문자를 더욱 돋보이게 만든다. 이러한 캘리그라피는 디자인 시장으로 외연을 넓히고, 방송·영화·신문·CI·BI·패키지·출판물·광고·LED·패션·머그컵·핸드폰케이스·문구류 등 다양한 문화 콘텐츠를 생산해내고 있다.” 현재 캘리그라피는 자격증 시험을 통해 민간자격증(한국직업능력개발원 등록)을 발급하는 기관이 전국에 300곳이 넘는다. 김 작가는 현재 한국캘리그라피디자인협회 회장과 한국미술협회 캘리그라피 분과 이사를 맡고 있다. 서울 인사동 무우수 아카데미와 천안 나사렛대학교 평생교육원과 등에서 후진 양성에도 힘을 쏟고 있다.그는 커다란 붓과 먹물을 담은 양동이를 들고 10m 이상의 천에 글씨를 쓰는 퍼포먼스도 즐겨 한다. 국악팀의 연주음악을 배경으로 3~5분 이내의 시간 안에 미리 밑그림도 없는 천에 글씨와 그림을 척척 써나간다. “글씨 퍼포먼스는 예술적인 감각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도 체력이 중요합니다. 쪼그려 앉은 자세로 붓과 양동이를 들고 온 몸으로 글씨를 써 나간다는 사실은,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모든 기운을 다 쏟아내야 하는 작업입니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2022-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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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이빙과 올림픽…한국손님 맞을 준비됐다”

    “호주 퀸즐랜드가 2년여의 코로나 팬데믹 기간 동안 많은 준비 끝에 외국 관광객에게 국경을 다시 개방합니다. 한국 관광객들이 다시 찾아올 것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18일 오후 서울 중구 소공동 웨스틴조선 서울호텔에서 호주 퀸즐랜드주 관광청 임원들이 내한해 ‘CEO 투어리즘 미션 코리아’라는 타이틀 아래 미디어 콘퍼런스가 열렸다. 이날 행사를 위해서 리앤 코딩턴 퀸즐랜드주 관광청장, 퍼트리샤 오캘러헌 골드코스트 관광청장, 줄리엣 앨러배스터 브리즈번 관광청 최고운영책임자를 비롯한 지역 관광청 관계자들이 대거 방한했다. 퀸즐랜드주 남동부에 자리한 최대 휴양지 골드코스트를 비롯해 2032년 여름올림픽 개최지로 선정된 브리즈번은 새롭게 단장한 여행지를 소개했다. 코딩턴 퀸즐랜드주 관광청장은 환영사를 통해 “퀸즐랜드 주정부는 2022년부터 2025년까지 공항의 전 세계 국제선 노선 및 승객 확대를 위한 항공 기금으로 1억 달러를 지원할 예산을 확보했다”며 항공편 확충 준비를 마쳤다고 밝혔다. 퀸즐랜드는 올해 ‘Good to Go’ 캠페인을 벌이고 있으며 2023년 골드코스트 관광교역전 개최, 100개 이상의 다채로운 여행 상품을 준비 중이다. 코딩턴 관광청장은 “이번 제150회 디오픈 챔피언십에서 우승한 캐머런 스미스는 바로 호주 퀸즐랜드주 출신”이라며 “퀸즐랜드를 대표하는 골프 테마상품과 워킹홀리데이 상품 개발에 역점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2032년 여름올림픽 개최지로 선정된 브리즈번은 내년 하반기(7~12월)에 브리즈번 중심상업지구 내에 36억 달러 규모로 짓는 세계적인 종합리조트인 퀸즈 워프를 오픈한다. 다양한 실내외 공간, 레스트랑, 카페, 바, 호텔, 쇼핑과 엔터테인먼트 공간이 자리해 있다. 브리즈번 공항은 2020년 7월 새로운 활주로를 건설했다. 또한 도시와 야생이 공존하는 론파인 보호구역, 탕갈루마, 스피릿 오브 더 레드 샌드 등에서는 다양한 체험 활동이 가능하다. 앨러배스터 브리즈번 관광청 최고운영책임자는 “브리즈번은 예술과 미식로드부터 자연환경, 문화와 라이프스타일, 비즈니스가 공존하는 도시”라고 소개했다. 골드코스트는 다이빙 명소인 원더리프가 있는 곳. 올해 말까지 골드코스트 공항 3단계 터미널을 확장한다. 미술관과 공연장으로 구성된 대규모 문화테마 프로젝트인 ‘호타(HOTA)’와 시월드, 드림월드 테마파크가 매력적이다. 오캘러헌 골드코스트 관광청장은 “아름다운 해변을 잇는 트램과 페리를 이용해 자연을 즐길 수 있는 곳”이라고 소개했다. 코딩턴 관광청장은 “퀸즐랜드주 관광청이 지향하는 글로벌 캠페인인 ‘travel for good’ 메시지는 지속가능하고, 삶에 힐링과 긍정적인 에너지를 주는 여행을 추구한다”고 말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2022-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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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개비]‘콩피에뉴 숲의 열차’

    프랑스 북부 콩피에뉴 숲속 국립전쟁기념관에는 한 열차의 객실이 보존돼 있다. 1918년 11월 11일 독일이 연합군과 제1차 세계대전 휴전 협정을 맺었던 장소다. 이후 제2차 세계대전에서 프랑스를 침공한 나치 독일의 히틀러는 1940년 6월 22일 이 열차 객실에서 프랑스 항복 서명식을 치러 굴욕을 되갚았다. 2018년 당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굴욕이 엇갈린 이 열차를 찾아 양국의 화해를 다짐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2022-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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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천만 송이 연꽃나라… 3년만에 찾아온 한여름 밤의 꿈

    올해로 20주년을 맞은 부여서동연꽃축제가 3년 만에 새롭게 돌아온다. ‘스무 살 연꽃 화원의 초대―빛나는 이야기를 담다’라는 주제 아래 14∼17일 부여 서동공원(궁남지)에서 치러진다. 부여서동연꽃축제는 궁남지의 아름다운 자연경관 속에서 코로나19로 지친 시민들에게 치유와 휴식을 제공할 예정이다. 올해 처음으로 축제장에서 백제역사 너울옛길 관광거점시설을 거쳐 부여읍 시가지를 순환하는 무료 셔틀버스와 100원 택시도 운행한다. 또 ‘궁남지 야(夜)한 밤’을 통한 레이저와 조명, 바닥 매핑 및 홀로그램 등 트렌디한 경관과 감성 포토존을 조성해 분위기 있는 풍경을 연출한다. 14일 개막식에서는 축하 공연, 해외 연꽃나라 문화예술 콘서트를 진행해 본격 축제의 시작을 알린다. 연꽃을 국화로 하는 해외 8개국 대사와 각국 전통공연단 초청 공연으로 세계인과 함께 즐기는 글로벌 축제로의 도약을 알린다. 메인 프로그램으로는 △물 위에서 펼쳐지는 대형 뮤지컬 ‘궁남지 판타지’ △드론 300대의 불꽃과 조명으로 여름밤을 다채롭게 물들일 ‘Lotus 별밤 드론 아트쇼’ △‘서동 선화 달빛퍼레이드’ 등이 있다. 연꽃이 핀 연못을 카누를 타고 탐험하는 이색 체험을 비롯해 ‘스무 살 청춘 페스티벌’ ‘사랑토크콘서트’ ‘궁남지 여름밤의 음악회’ 등도 함께 펼쳐진다. 수상에서 펼쳐지는 이색적이고 역동적인 공연을 경험하고 싶다면 축제 기간 매일 30분 동안 운영되는 ‘궁남지 판타지’를 주목해 보자. 궁남지가 지닌 장소성과 역사성을 활용하고 공간적, 시간적 판타지 연출을 위해 출연진 발목까지 물에 잠기는 수상 무대를 설치한다. 배우들이 마치 물 위에서 연기하는 듯한 이색적인 느낌을 준다. 또 포룡정 프로젝션 매핑, 둘레길 버드나무 조명과 다양한 야외무대 특수효과로 더욱 입체적인 무대를 선보인다. ‘Lotus 별밤 드론 아트쇼’는 드론 300대가 형형색색의 불꽃과 조명, 희망의 메시지를 펼친다. 화려한 조명과 함께 서동 선화 캐릭터의 익살스러운 모습과 사랑과 응원을 담은 메시지로 여름밤을 다채롭게 물들일 예정이다. 15∼16일에는 천상에서 내려와 연꽃화원에 소풍 온 서동 선화를 콘셉트로 한 퍼레이드 퍼포먼스가 펼쳐진다. 신나는 음악에 맞춰 5∼7개 동선 스폿에 멈춰 팀별 테마에 맞는 퍼포먼스를 선보인다. 행사 기간 중 낮과 밤, 자연생태를 고려한 경관시설물도 설치된다. 서동공원을 감성, 사랑, 추억 등 6가지 테마로 나눠 루미나리에 및 큐브조명 설치와 음향을 접목한 홀로그램 연출로 눈과 귀를 즐겁게 하는 힐링 공간으로 제공할 예정이다. 아울러 포룡정 주변과 행사장 곳곳에 연지 포토존을 조성한다. 체험 행사도 풍성하게 펼쳐진다. 가장 인기 있는 체험은 연지 속 연꽃을 헤치며 즐기는 ‘연지 카누 탐험’이다. 서동 선화의 사랑, 연 소재를 활용한 이색 체험 19종과 연잎차 시음, 연낭 만들기 체험 등도 준비했다. 부여서동연꽃축제 관계자는 “3년 만에 정상적으로 치러지는 이번 축제는 코로나19로 침체한 지역경제 활성화를 꾀하는 ‘함께하는, 즐기는 축제’로 치러진다”며 “연꽃이 가장 아름다운 궁남지, 천만 송이 연꽃 향기가 흘러넘치는 자연친화적 공간에서 가족과 친구, 연인들이 좋은 추억을 만들길 권한다”고 말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2022-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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