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영

이진영 논설위원

논설위원실

구독 197

추천

안녕하세요. 이진영 논설위원입니다.

ecolee@donga.com

취재분야

2025-11-22~2025-12-22
칼럼100%
  • “30년 위안부 운동의 성과, 윤미향 개인의 성과로 귀착 유감”[논설위원 파워 인터뷰]

    《여성 인권 운동의 세계적 모범 사례인 한국의 일본군 위안부 강제동원 피해자 인권 운동이 정의기억연대(정의연) 사태로 30년간 쌓아온 명성을 위협받고 있다. 이를 누구보다 아프게 지켜보는 이가 정의연의 전신인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원로들이다. 1990년 11월 정대협을 설립한 윤정옥(95) 이효재(96) 전 이화여대 명예교수의 제자로 1992년 정대협에 합류해 15년간 운동을 이끌어온 신혜수 유엔인권정책센터 이사장(70)이 어렵게 말문을 열었다. 유엔을 비롯한 국제무대에서 위안부 문제 해결을 호소하는 활동을 주도한 인물이다. 2004∼2007년 정대협 공동대표를 지냈고, 그 뒤를 이어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55)이 상임대표를 맡았다.》 “2007년까지 정부 지원 거의 없어” ―6일 숨진 서울 마포구 쉼터 소장은 어떤 분이었나. “할머니들을 모시며 식사 준비해 드리고, 방문자들 뒤치다꺼리하고, 할머니들과 목욕탕도 같이 가고, 할머니들끼리 갈등이 있을 때 중재하고… 몹시 피곤한 일을 16년간 해온 분이다. 이런 사태가 터져 얼마나 상실감이 들었을지 짐작도 못 하겠다.” ―이용수 할머니(92)가 제기한 정의연의 부실 회계와 후원금 횡령 의혹은 놀랍다. “정대협 설립 이후 내가 대표로 있을 때까지는 생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정의연과 달리 정대협은 37개 회원단체가 끌고 가는 구조였다. 분기별로 회원단체 대표자로 구성되는 대표자회의에서 예산 결산 보고를 하고, 실질적인 활동을 주도하는 실행위원회의 재무 담당이 매달 사무처에서 영수증이랑 통장을 대조했다. 내가 떠난 이후 상황은 모르겠다.” ―정의연 이사회 구조가 더 폐쇄적이라는 뜻인가. “정대협보다는 상대적으로 집중돼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조직 차원의 회계 부정은 없었을 것이다. 윤 의원도 운동을 해왔던 사람의 윤리상 단체의 돈을 유용했으리라 생각하기 어렵다. 검찰의 수사를 지켜보자.” ―정의연이 국세청 공시에 누락한 정부 보조금과 기부금이 37억 원이 넘는다. “시민단체가 정부의 지원을 많이 받는 것은 문제다. 1990년 정대협 출범 후 2007년까지 정부 지원금은 김대중 정부 시절 받은 2000만 원이 전부다. 정대협 운동의 성과로 1993년 위안부 생활안정지원법이 제정돼 피해자들은 지원금을 받았지만 단체는 지원 대상이 아니었다. 정대협 출신인 이미경 씨가 국회의원이 돼 2002년 위안부 생활안정지원 및 기념사업법으로 개정하면서 단체 지원이 가능해졌다. 하지만 이후로도 내가 있을 때까지 정부의 지원은 없었다.”윤미향 1인 독주 체제는 위험―정부 지원 없이 힘들지 않았나. “공동대표들이 무보수로 자기 돈 내가며 운동하던 시절이다. 단체들의 회비와 기업 후원금이 있었는데, 기업들은 일본에 수출을 해야 하니 위안부 운동 후원을 꺼렸다. 한번은 모피회사에서 지원하겠다고 했는데 윤정옥 선생님이 ‘여성 운동 하면서 모피회사 돈을 어떻게 받느냐’고 해 무산된 적도 있다.” ―대표가 무보수라고? 윤 의원은 딸 미국 유학비 출처에 대해 “급여를 받으면 저축하는 오랜 습관”이 있다고 해명했다. “윤 의원은 첫 상근대표였다. 그 이전 대표들은 모두 정대협 운동을 다른 직업이나 활동과 병행하는 비상근자들이었다. 윤 의원은 정대협 간사로 시작해 상근대표가 됐으니 받던 월급을 계속 받았던 것이다.” ―1세대 운동가들은 다른 경제활동 기반을 가진 상태에서 운동을 한 반면 윤 의원은 운동이 직업인, 생계형 운동가라는 차이가 있는 것 같다. 공교롭게도 윤 대표 시절 횡령 의혹이 터졌다. “정대협은 3인 공동대표 체제라 전횡이나 횡령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다. 윤 대표 때도 공동대표 체제였지만 그가 처음으로 풀타임 대표가 되면서 사실상 1인 체제로 운영된 면이 있다. 윤 대표가 전력투구하면서 운동을 많이 키운 공이 있다. 하지만 한 사람에게 힘이 집중되고 그 체제가 오래가는 것은 위험하다.”“여성단체, 정의연 비판할 수 있어야” ―할머니들과는 예전에도 갈등이 있었나. “할머니들의 성향이나 지적 능력의 스펙트럼이 넓어 모시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누구를 특별 대우한다는 인상을 주어서도 안 된다. 해외 인권 회의에 갈 때는 할머니 한 분이 동행해 증언을 했는데 누굴 모시고 가느냐도 민감한 문제였다. 정의연이 세계에 김복동센터 건립 운동을 하던데 특정인의 이름이 들어가는 사업은 분란의 소지가 있다.” ―이용수 할머니가 정대협 활동이 단체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비판했다. 피해자 중심주의 원칙이 훼손된 것 아닌가. “정대협은 태평양전쟁유족회와 달리 피해자 단체가 아니다. 할머니들에게 배상 받아주는 것만이 아니라 일본의 공식 사죄와 책임자 처벌 등 7가지 목적을 위해 운동하는 단체다. 유엔에서 원주민, 장애인, 개발로 인한 강제 퇴거자들을 위한 운동을 할 때 적용하는 피해자중심주의는 두 가지 원칙을 뜻한다. 피해자에게 충분한 정보를 주고 협의할 것, 그들을 참여시킬 것이다. 정의연이 피해자들과 소통하는 것은 중요하다. 문제는 참여의 정도인데, 운동단체로서 의사 결정자가 할머니일 수는 없다.” ―윤 의원이 사퇴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다. “윤 의원이 국회로 가는 것이 맞느냐, 그 질문부터 해야 한다. ‘위안부 운동=윤미향’으로 여겨지는 상황인데 그 운동의 성과를 모두 자기가 갖고 특정 정당의 ‘간택’을 받아 가는 것, 그것이 위안부 운동과 단체에 어떤 영향을 줄지 생각하지 않고 가는 게 옳은 일이었을까. 30년 운동의 성과가 개인의 성과로 귀착돼 유감이다.” ―한명숙 이미경 남인순 등 여성단체연합 출신들이 대거 국회에 진출한 것도 문제라는 지적이 있다. “시민운동을 하다 보면 정치에 참여해 법과 제도를 바꿔 내는 일이 필요하다. 문제는 가서 역할을 제대로 하는가, 그리고 남은 사람들이 단체의 고유한 입장과 목적을 유지하는가이다. 단체의 대표였던 사람들이 정치권에 진출해 있더라도 단체는 정치권과 긴장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 풍자 누드화 같은 성희롱 논란이 발생하면 여성단체는 규탄 성명을 낼 수 있어야 한다. 이번 위안부 논란도 나눔의 집만 비판할 게 아니라 정의연에도 잘못한 것이 있으면 책임지라고 해야 한다. 그걸 못 하는 것이 문제다. 한명숙 전 총리는 대학 선배로 함께 여성 운동 하던 사이였지만 그가 여성부 장관이던 시절 여성부가 잘못한 것이 있으면 나는 가서 데모했다.”“기록물 유네스코 등재, 왜 멈춰있나”―문재인 정부가 2015년 위안부 합의를 인정도 파기도 않으면서 위안부 문제 해결 작업이 멈춰서 있다. “위안부 문제 해결은 어려울 것이다. 특히 일본의 젊은 세대가 위안부 역사를 전혀 모르고 자란다는 점이 해결 전망을 어둡게 한다. 위안부 이슈를 계속 제기하려면 정부가 위안부 문제를 포함한 세계 전시 성폭력 문제에 관심을 갖고 국제적인 기여도 해야 한다. 일본의 젊은 세대가 이 역사를 배울 수 있도록 어떻게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할지도 고민해야 한다.” ―위안부 기록물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가 보류된 것도 아쉽다.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4년 10월 등재 사업의 책임을 맡아 달라는 제안을 받고 8개국 14개 단체와 영국 박물관의 참여를 끌어내 2744건의 기록물을 등재 신청했다. 등재 마감이 2016년 5월이었는데 2015년 12월 위안부 합의가 이뤄지면서 정부의 지원이 끊겼다. 사무실에서 쫓겨나는 등 어려운 여건에서 신청을 했는데 일본의 반대 공작으로 보류됐다. 등재됐다면 역사상 가장 규모가 큰 기록유산이 됐을 것이다. 정부가 올해는 어떤 식으로든 이 문제를 해결했으면 한다.” ―이용수 할머니가 “수요시위는 증오만 가르친다”고 했다. 수요시위의 민족주의적 성향이 위안부 문제 해결을 어렵게 한다는 비판도 있다. “수요시위에선 반일(反日) 구호도 나오지만 여성 인권에 관한 얘기가 훨씬 많다. 해외의 전시 성폭력 피해자 지원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수요시위를 보고 가장 부러워하는 것이 젊은 학생들이 많이 참여한다는 점이다. 수요시위는 인권과 평화의 가치를 배우는 교육 현장이다. 위안부 운동은 민족주의보다 여성주의로 가야 한다. 그래야 식민지 경험이 없는 나라들과도 연대할 수 있다. 수요시위의 운명은 정의연이 이 사태를 어떻게 마무리하느냐에 달려 있을 것이다. 새롭게 거듭나 운동을 다시 일으켜 세워야 한다.” 독일의 정치철학자 해나 아렌트는 인간의 활동을 먹고살기 위한 ‘노동(labor)’, 예술행위인 ‘작업(work)’, 정치 사회적인 ‘행동(action)’으로 구분했다. 윤정옥 이효재 신혜수로 대표되는 정대협 1세대에게 위안부 운동은 약자의 인권을 위한 ‘행동’이었다. 이 낭만의 시대를 이어받은 ‘윤미향 세대’에게 위안부 운동은 ‘행동’이었을까, ‘노동’이었을까. 그들에게 정대협 초기에 펴낸 위안부들의 증언집을 다시 펼쳐볼 것을 권한다.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던 식민지 시대 여성의 처참한 삶을 듣고 기록하며 정의로운 해법을 고민하던 젊은 운동가들을 만날 수 있다. 그곳에서 노동으로서 운동이 놓치고 있던 것, 정의연 사태를 해결할 실마리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신혜수 이사장은::―숙명여고, 이화여대 영문과―미국 럿거스대 사회학 박사―한일장신대 사회복지학과 교수―한국여성의전화 대표―한국여성단체연합 공동대표―정대협 공동대표―국가인권위원회 비상임위원―이화여대 국제대학원 초빙교수―현 유엔 경제사회문화적권리위원회 (UN CESCR) 위원―현 일본군 ‘위안부’ 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등재 국제연대위원회 사무단장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 2020-06-10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글로벌 엔데믹[횡설수설/이진영]

    코로나19로 휴관했던 국립중앙박물관이 최근 재개관하면서 선보인 전시가 ‘조선, 역병에 맞서다’이다. 가장 눈길을 끄는 작품은 1774년(영조 50년) 특별 과거시험 무과 합격자들의 초상화 3점인데 다들 천연두를 앓아 얽은 자국투성이다. 그해 합격자 18명 중 마맛자국을 지닌 이가 3명이었다니 확진자 비율이 무려 16.7%. 고대 이집트 미라에도 흔적을 남긴 천연두는 가장 오래된 역병이자 지구상에서 완전히 사라진 유일한 감염병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1980년 천연두의 박멸을 보고했다. 하지만 다른 역병들은 좀비처럼 죽는 법이 없다. 특정 지역에서 발발(outbreak)해 유행(epidemic)하다 여러 대륙으로 확산돼 대유행(pandemic)하거나, 끝난 듯하다가도 어느 지역에 토착화해 출몰(endemic)하다가 다시 대유행하기도 한다. 장티푸스 말라리아 지카 등이 대표적인 풍토병, 즉 엔데믹이다. 엔데믹은 좀처럼 벗어나기 힘든 고질병을 뜻하기도 한다. ▷중국에서 발발한 코로나19도 팬데믹을 지나 결국 엔데믹의 길을 갈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이 나왔다. 마이클 라이언 WHO 사무차장은 13일 “코로나19는 사라지지 않고 새로운 엔데믹 바이러스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100종이 넘는 백신이 개발 중이지만 “백신이 나와도 박멸할 순 없다”며 홍역을 예로 들었다. 백신 개발로 발병률이 줄었다고는 하지만 2018년 한 해에 홍역 사망자가 14만 명이다. 백신이 개발돼도 코로나19 확산을 통제하기까지는 5년이 걸릴 수 있다는 비관론도 있다. ▷코로나19 장기화 전망에 따라 전면 봉쇄보다는 지속 가능한 방역을 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스웨덴의 ‘집단 면역’ 모델은 느슨한 봉쇄로 인구의 60%가 감염돼 집단 면역이 형성되면 백신 없이도 경제적인 무리 없이 감염병을 이겨낼 수 있다는 계산에서 비롯됐다. 하지만 치명률이 10%를 넘어 이미 3000명이 숨졌는데도 항체 보유자 비율은 면역률이 높은 편인 스톡홀름도 겨우 30%다. 고령자나 기저질환자 비율이 높은 사회에서는 특히 더 위험한 모델이다. ▷조선 방역의 핵심은 ‘청결한 환경’과 ‘환자를 상대할 때 등지도록 할 것’, 다시 말해 ‘거리 두기’였다. 지금도 가장 유효한 방역 대책이다. 엔데믹이 무서운 건 변종을 통해 우리 일상에 남아 있다 방심의 기회를 노리기 때문이다. 홍역처럼 국내에서 사라져도 해외에서 들어오는 사람들로 다시 유행할 수 있다. 항생제와 백신으로도 역병은 정복되지 않았다. 바이러스는 전쟁의 대상이 아니라 적응해야 할 환경인지 모른다. 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 2020-05-15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56년 만의 “나는 무죄다”[횡설수설/이진영]

    ‘강제 키스 혀 절단 사건.’ 법원행정처가 법원 100년사를 정리해 1995년 출간한 ‘법원사’에 나오는 사건의 주인공 최말자 씨(74)가 6일 부산지방법원에 정당방위를 인정해 달라며 재심을 청구했다. 그는 56년 전인 1964년 5월 6일 집 앞을 서성이던 낯선 남자가 성폭행을 시도하자 그의 혀를 깨물어 1.5cm 잘라낸 중상해죄로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당시 최 씨의 나이는 18세, 상대는 21세였다. ▷‘성적 자기결정권’과 ‘신체의 완결성’이라는 법익(法益)이 충돌하는 ‘강제 키스 혀 절단’ 사건은 형법학 교과서에도 나오는 사례다. 형법상 정당방위가 성립하려면 ①현재의 부당한 침해가 있을 것 ②방어하기 위한 행위일 것 ③상당한 이유가 있을 것 등 세 가지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이 중 ③번의 ‘상당성’은 상당히 모호한 개념인데 혀 절단 사건들은 이 대목에서 논란을 빚어왔다. ▷정당방위로 인정받은 가장 유명한 판례는 1988년 경북 영양군에서 가정주부가 한밤중 귀갓길에 치한의 혀를 깨물어 고소당한 사건. 1심에선 ‘혀를 깨물어 놀라게 하는 정도로 그쳐도 될 것을 물어뜯어 혀를 잘랐다’며 유죄가 나왔다. 여성 단체는 ‘여성의 인권보다 남성의 혀를 중시하는 남성 중심적 시각을 드러냈다’고 비판했고, 항소심과 대법원은 무죄를 선고했다. 이 사건은 1990년 영화(‘단지 그대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로 개봉했는데 각본을 쓴 이는 28년 후 성폭력으로 징역형을 선고받는 이윤택 연극연출가다. ▷반면 2016년 인천의 라이브카페에서 평소 알고 지내던 남성이 강제로 혀를 들이밀자 깨물어 6cm 잘려나가게 한 주부는 국민참여재판 끝에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2014년엔 남성이 강제 키스하려는 여성의 혀를 깨물어 2cm 잘라내는 사건이 발생했다. 법원은 “몸을 밀쳐내는 등의 방법으로 제지할 수 있었다”며 정당방위를 인정하지 않았다. ▷최 씨는 56년간 ‘멀쩡한 남자를 불구로 만든 가해자’로 몰려 살아왔다. 성폭행을 시도했던 남자는 남의 집에 침입해 협박한 죄만 인정돼 최 씨보다 적은 형(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받았다. 최 씨는 환갑을 넘긴 나이에 중고교 과정을 공부하면서 ‘왜 피해자가 숨어 살아야 하나’ 생각하기 시작했고, 한국방송통신대에 진학해 당시의 피해 경험을 담아 논문을 썼다. 이를 읽은 학우의 권유로 ‘미투’ 운동이 한창이던 2018년 한국여성의전화에 연락했다. 56년 만의 ‘미투’의 시작이다. 최 씨의 재심 청구가 받아들여진다면 ‘법원사’는 다시 써야 할 것이다.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 2020-05-07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의사 수난시대[횡설수설/이진영]

    독일과 프랑스 의사들이 알몸 시위에 나섰다. 프랑스 의사가 ‘총알받이’라고 쓴 붕대만 두른 알몸 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린 것이 시작이다. 코로나19 환자는 몰려드는데 보호 장비가 턱없이 부족해 감염 위험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음을 누드로 표현한 것이다. 독일 의사들도 “환자 상처를 꿰매야 하는 내가 왜 마스크를 꿰매고 있어야 하느냐”며 장비와 인력 부족을 호소하는 누드 사진을 온라인에 줄줄이 공개하고 있다. ▷사스와 메르스로 단련된 아시아 국가들과 달리 한동안 전염병 걱정 없이 살던 서구는 초유의 코로나19 사태로 허둥대고 있다. 영국은 의사 가운마저 부족해지자 의사들끼리 가운을 돌려 입으라는 지침을 만들었다. 유럽에선 선방하고 있는 독일조차도 병원에서 소독제와 마스크 도난 사건이 일어날 정도로 장비난이 심각하다. 미국 간호사들은 최근 환자를 돌보다 감염돼 숨진 동료들의 사진을 들고 백악관 앞에서 보호 장비 지급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러시아에선 48시간 연속 근무로 지친 의료진이 집단 사표를 낸다고 한다. 이탈리아는 마스크나 위생장갑 없이 진료하다 감염돼 숨진 의사가 최소 150명이다. ▷의사에게 자신의 안전이 위협받는 상황에서도 환자를 돌보라고 요구할 수 있을까. 옛날에는 흑사병이 돌 때 도망가는 의사가 많아 베네치아는 1382년 의사들의 도주를 금지하는 법까지 만들었다. 1793년 미국 필라델피아에 황열병이 창궐했을 때도 도시에서 탈출하는 의사들이 줄을 이었다. 미국의학협회는 1847년 의사윤리강령을 제정해 감염병이 발생하면 의사는 자신의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서도 환자를 돌봐야 한다고 규정했다. 하지만 20세기 에이즈 발병 초기엔 환자 치료를 거부하는 의사가 적지 않았다. 2003년 사스 당시 중국 다음으로 많은 사망자(44명)가 발생한 캐나다에선 많은 의료진이 출근을 거부하기도 했다. ▷대한의사협회 의사윤리강령에는 ‘의사의 안전보다 환자 목숨이 먼저’라는 비장한 내용은 없다. 그럼에도 코로나19 최전선에 선 3700여 명의 국내 의료진은 반창고투성이 얼굴로 1일까지 1만774명을 치료해 9072명을 완치시켰다. 많은 사람이 의료진을 응원하는 ‘덕분에 챌린지’에 동참하는 이유다. 하지만 의료진의 헌신만을 일방적으로 기대할 수는 없다.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은 브리핑 때마다 “의료 현장에서 사투를 벌이는 의료진을 떠올려 달라”며 개인 위생수칙 준수와 거리 두기를 호소한다. 의료진 감염자 수도 지난달 초 240명을 넘어섰다. 동료들의 죽음으로 시위에 나선 미국 간호사의 말처럼 의료진은 ‘영웅’이지 ‘순교자’가 아니다. 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 2020-05-02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태영호 “김정은, 제 발로 서서 사진 한 장 찍을 수 없는 상태”[논설위원 파워 인터뷰]

    《의식불명설, 코로나19 대피설, 건재설…. 11일 노동당 정치국 회의 주재 후 사라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행방을 놓고 온갖 추측이 나돌고 있다. 정부는 “특이 동향이 없다”고 했지만 태영호(58) 미래통합당 국회의원 당선인은 “대단히 이례적인 점이 많다”고 반박했다. 탈북민 출신으로 첫 지역구 의원이 되는 그와 선거 이야기를 하려고 만났는데 김정은 이야기가 더 길어졌다.》○ “김정은 건강 이상설, 휴민트 없어 韓美는 모른다” ―김정은에게 무슨 일이 있는 건가. “신변에 이상이 생긴 건 맞다. 15일 금수산태양궁전의 태양절(김일성 생일) 참배엔 무조건 나와야 한다. 김씨 일가가 김일성 참배를 안 한다는 건 크리스천이 크리스마스를 그냥 지나치는 것과 같다. 사진 한 장 찍는 건 일도 아닌데 그것도 못 했다는 건 일어설 수 없는 상태에 놓여 있다는 뜻이다.” ―노동신문에는 태양절 참배 보도 이후 김여정 최룡해 등 최고위급 인사들의 동정도 사라졌다. “15일 이후 김재룡 내각 총리만 노동신문에 한 번 등장했을 뿐이다. 김정은의 건강이 심각하지 않다면 핵심 간부들의 활동 소식은 노동신문에 나와야 한다. 김정은 주변에 가 있거나 아니면 마음 놓고 나올 상황이 아닌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알지만 말할 수 없다”고 했다. “난 모르고 있다고 생각한다. 정찰위성으로 김정은의 차량이 어디 있는지는 알 수 있지만 그 차량에 김정은이 타고 있는지는 휴민트(사람을 통해 얻은 정보)가 없어 알 수 없다. 미국이나 한국이나 그런 정보력은 없다고 본다.”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7년 1월 정부가 김정은 참수 부대를 창설한다고 발표했다. 미군이 올해 초 킬러 드론으로 이란의 2인자인 가셈 솔레이마니를 정밀 타격했을 때 김정은이 가장 무서웠을 것이라는 말이 나왔다. “(김정은 집무실이 있는 평양의) 3층 서기실은 딱 분리돼 있어 북한에서도 그 안 사정을 알 수가 없다. 김정은은 공군력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평양 중심지에서 멀리 떨어진 강동군에 산다. 산세가 묘해 헬기도 들어가지 못하는 곳이다. 평양으로 출근할 때는 반경 4km 안에는 누구도 접근할 수 없는 1호 도로를 이용한다. 옥류관 주변에 이르면 터널을 통해 집무실로 드나든다. 나도 김정일 김정은의 승용차를 본 적이 없다. 휴민트가 없으면 아무리 현대적 기술이 있어도 안 된다.” ―중국 의료진이 북한에 들어갔다는 보도가 있다. 북한엔 김정은이 몸을 맡길 만한 의료진이 없는가. “없다. 그리고 중국 의료진이 가서 치료하는 것도, 그걸 외부에서 안다는 것도 있을 수 없다. 만약 의료진이 들어갔다 해도 중국 정부가 절대 확인해주지 않는다. 북한 간부들은 중국에 나와 치료를 받기도 하지만 김정은이 믿는 의료진은 프랑스와 독일이다. 김정은 생모인 고영희도 유방암에 걸리자 프랑스에 가서 치료했다.”○ “급변사태, 미국에 뒤통수 안 맞을 자신 있나” ―25일 채널A에 출연해 김정은 유고 시 김정일의 이복동생인 김평일(66)을 주목하라고 했다. “일단은 김여정 체제로 갈 것이다. 북한 역사상 권력의 첫 ‘수평 이동’인데 북한 체제는 수평 이동에 이론적으로 준비돼 있지 않다. 그리고 60, 70대인 지도부들이 30대인 김여정에게 ‘예예’ 할까. 그들은 김여정을 모른다. 김여정은 북한에 뿌리가 없다. 하지만 김평일과는 아이 때부터 학교도 같이 다니고 형 동생 하며 자란 북한판 태자당들이다. 이들이 가택연금 상태인 김평일을 내와서 결집한다면 김여정이 못 당한다.” ―북한에 사재기 바람이 불고 있다는데 김정은 변고설을 뒷받침하는 것 아닌가. “그건 코로나19 때문이다. 북한은 한국과 같은 방역 시스템이 없어 전염병이 발생하면 국경을 봉쇄하고 이동을 중지시키는 수밖에 없다. 결국 경제가 돌아갈 수 없다. 예전과 달리 지금은 한국 미국 중국 모두가 힘들어 북한을 돕거나 북한 문제에 시선을 돌릴 여유가 없다. 북한 내부가 대단히 힘들어질 것이다. 힘들 때 패턴은 딱 하나다. 중국에 붙거나 한국으로 나온다. 연평도 포격 같은 큰 도발은 못 한다. 우리로선 한반도 정세를 안정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신변 이상설을 제외한다면….” ―김정은이 멀쩡한 상태에서 ‘부재의 존재감’을 즐기고 있을지도 모른다. “어디선가 한미가 어떻게 나오는지 지켜보고 있을 수 있지만 그럴 가능성은 낮다. 김정은의 상태가 어떻든 이번 기회에 급변사태 대응책을 준비해야 한다. 미국과 중국은 어떻게 나올까. 이승만 정권은 미국과 가까운 듯했지만 1950년 (미 극동방위선에서 한국을 제외하는) 애치슨라인 선포를 모르고 있었다. 미리 알았다면 트루먼에게 달려가 바짓가랑이라도 잡았을 텐데, 그랬으면 6·25전쟁 안 일어났다. 그거 모르다 미국에 뒤통수 맞았다. 미국이 일방적으로 자기 국익을 중심에 놓고 우리를 배제하지 않도록 우리가 미국에 안을 내 미중 간 합의하도록 해야 한다. 급변사태 시 핵은 무조건 미국이 가져가지만 미군이 압록강까지 올라가지는 않을 거라고 중국을 안심시켜 미중이 충돌하는 사태가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력삼동, 내래미안… 소수자 비하 발언에 여당 왜 가만히 있나” 2016년 8월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 공사 시절 망명한 그는 미래통합당의 전략 공천으로 “문재인 정부의 사회주의화를 막겠다”며 서울 강남갑에 출마해 당선됐다. 외신은 고위 공직자 출신의 태 당선인과 꽃제비 출신인 지성호 당선인(미래한국당 비례대표)을 주목하며 ‘자유롭고 개방적인 민주주의 체제의 승리’라고 평가했다. ―북한 체제를 선전하던 최고위급 외교관이 한국의 국회의원이 됐다. 그것도 자본주의의 상징과 같은 서울 강남에서…. “집사람은 정치인이 되면 구설에 오르고 집안 내력 다 털린다며 말렸다. 평양외국어학원 동문들이 한국에 10명가량 있는데 ‘강남이 어떤 곳인 줄 아느냐. 일반 정서는 보수적이지만 학연 지연 혈연 없으면 절대 안 되는 곳’이라며 말렸다. 당선이 확정되고 나니 눈물이 났다. 3만5000명의 탈북민을 한 품에 안아주는 포용력, 이걸 보여줬구나 싶어 대단히 감사하다.” ―탈북민 출신 지역구 의원을 믿을 수 있느냐는 사람들도 있다. “온갖 종류의 흑색선전이 있었다. 빨갱이를 공천했다, 이중간첩이다, 미성년자 강간범이다…. 나 개인에 대해선 이런저런 의견을 표명할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력삼동, 내래미안 이런 건 소수자인 탈북민 비하 발언이다. (탈북민을 당선시킨 강남구를 조롱하는 뜻에서) 청와대 게시판에 ‘강남 재건축 지역에 탈북자 아파트 의무 비율을 법제화하자’는 청원이 올라와 13만 명이 동의했다. 명백한 소수자 차별인데 여당은 유감 표명도 하지 않았다. 장애인이나 여성 혐오 발언이 올라왔다면 가만히 있었을까. 북한 사람들이 다 들여다보고 있다.” ―재산 신고액 18억6500만 원도 화제였다. “강연료와 ‘3층 서기실의 암호’(2018년 5월) 인세 수입이 많다. 정부가 출판을 금지한다는 가짜 소문이 돌아 21쇄까지 나갔다. 시간이 있어 강연 요청을 다 받았으면 더 벌었을 것이다.”○ “빈부 격차, 북한이 남한보다 더 큰 듯” ―남한과 북한 모두 빈부 격차가 있다. 어느 쪽이 더 심한가. “북한이 양극화가 훨씬 심하다. 평양을 벗어나면 한국의 1950, 60년대처럼 소달구지 끌고 가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평양시 중심에는 하루 저녁에 몇백 달러를 탕진하면서 사는 사람들이 있다. 한국에선 부를 합리화할 수 있다. 나 사장이야, 주식으로 벌었어, 하면서. 그런데 북한은 월급과 배급이 같은 사회주의 국가이니 부를 합리화할 수가 없다. 그럼에도 부자가 존재한다.” ―기독교인이라고 들었다. “교회를 정해 놓고 다니진 않지만 그렇다. 2018년 5월 국가안보전략연구원에서 나온 뒤 (고정 수입이 끊겼을 때) 강연 요청을 가장 많이 해온 곳이 교회였다. 성경책은 말투가 이해가 안 돼 읽기가 힘든데 한 학생이 ‘유물론자에게 성경은 어렵다’며 만화 성경책을 소개해줬다. 그걸 다 읽고 성경책도 읽고, 성경을 가정생활에 응용하는 법을 다룬 책도 읽었다. 그중 한 가지를 실천하고 있다. 집사람의 발을 씻어주는 것이다. 집에 말도 안 하고 연구원을 그만뒀더니 난리가 났다. 아내가 잔소리할 때마다 대꾸 않고 소래(세숫대야)에 더운물 받아 발을 씻어준다. 예수가 한 것처럼 가정생활을 하라는 가르침이다.” ―한국에 정착한 지 올여름이면 4년이 된다. 민주주의의 장점은 무엇일까. 코로나19와 같은 상황에선 중국과 같은 통제체제가 유리하다는 말도 있다. “북한에서 본 한국은 경제적으로는 발전하고 정치적으로는 혼란스러운 곳이었다. 그런데 선거를 치러 보니 무질서 속에 질서가 있더라. 투표함 열리기 전까진 막 싸우다 뚜껑 열려 승부가 나는 순간 모두가 승복한다. 획일적이고 단일화된 것이 다양성을 절대 못 이긴다. 내 목소리가 의미 있게 쓰이는 곳에서 일하고 싶다.” 그는 예비후보자 등록부터 선거 유세까지 모든 과정을 영상에 담아 유튜브에 올렸다. 북―중 국경을 오가는 북한 무역상들이 “태영호가 어떻게 강남에서 됐느냐” “지역구는 뭐고 비례대표는 뭐냐”며 한국의 선거 문화에 관심을 갖는다고 한다. 서울에 온 지 4년이 채 되지 않아 18억 원대의 재산을 모으고 금배지를 단 그를 보며 북한 주민들은 ‘코리안 드림’을 갖게 될지도 모른다.  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 2020-04-29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부통령 후보’ 미셸[횡설수설/이진영]

    올해 11월 대선을 앞둔 미국에서 대선후보 못지않게 주목받는 인물이 미셸 오바마 여사(56)다. 조 바이든 민주당 대선후보(78)가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부인인 미셸 여사에게 부통령 후보가 돼달라고 거듭 요청하고 있는 것.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연일 코로나19 브리핑으로 톱뉴스를 차지하는 동안 존재감을 잃어가는 바이든에게 미셸 여사는 트럼프를 꺾을 수 있는 비장의 카드로 떠오르고 있다. ▷변호사 출신인 미셸은 공직 경험이 없지만 브랜드 파워는 남편을 능가한다. 오바마의 퇴임 직전 지지율 조사에서는 남편보다 20% 높은 68%를 얻었다. 남편이 빌 게이츠에 이어 ‘세상에서 가장 존경받는 남성’ 2위로 선정된 데 비해 그는 2018년, 2019년 연속 ‘가장 존경받는 여성’ 1위를 차지했다(갤럽). ▷시카고의 가난한 흑인 가정에서 태어나 하버드대 로스쿨 출신의 엘리트가 된 그는 미국적 가치를 상징한다. 백악관 안주인이 된 후로는 아동 비만 퇴치 운동을 벌이는 한편 레깅스 차림으로 훌라후프를 돌리고 토크쇼에 출연해 예능감을 뽐내며 대중과 소통했다. 2016년 힐러리 클린턴 대선후보 지지 연설에선 “그들은 저급하게 가도, 우린 품위 있게 가자”는 명문을 남겼다. 인종 문제, 일하는 여성의 고민 등에 대해 진솔하게 쓴 자서전 ‘비커밍(becoming)’은 세계적으로 1100만 부가 팔려나갔고, 북투어 때마다 수천 명의 팬들이 몰려들어 아레나를 가득 채웠다. 미국에서 이런 동원력을 지닌 정치인은 트럼프밖에 없다. ▷정치전문 ‘더힐’은 “미셸이 어떤 공직에 출마해도 승리할 것”이라고 평가한다. 백인 여성과 중도층, 부동층까지 아우르는 득표력이 있다는 것이다. 바이든이 고령인 점을 감안하면 부통령 후보는 더욱 중요한데 미셸은 대선후보로도 거론될 만큼 중량감 있는 존재다. 문제는 본인이 정치에 뜻이 없다는 것. 남편의 대선 유세 당시 얻은 ‘성난 흑인 여자’라는 낙인이 상처가 됐는지 정치엔 넌더리를 낸다고 한다. ▷트럼프가 남편의 정치적 유산을 지우려 할 경우 미셸이 나설 가능성이 없지는 않다. 미셸은 지난해 CBS에 출연해 “우리 후손들에게 어떤 나라를 물려주느냐를 정말 걱정해야 한다”며 트럼프를 간접적으로 비판한 적이 있다. 건강과 품위와 공감 능력을 갖춘 전직 영부인이 나서서 ‘분열적인 막말 정치인’의 재선을 막아주길 기대하는 야당 지지층의 바람이 그의 마음을 돌려놓을 수 있을까. 그렇게 된다면 올해 미 대선은 ‘트럼프 대 바이든’이 아니라 ‘트럼프 대 오바마’의 선거가 될 것 같다. 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 2020-04-24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코로나와 여성 리더십[횡설수설/이진영]

    대만 독일 뉴질랜드의 공통점은? 코로나19와 잘 싸우고 있는 나라들이라는 점이다. 또 하나는 리더가 여성이라는 사실. ▷관광대국 뉴질랜드의 저신다 아던 총리는 막대한 관광 수익을 포기하고 빗장을 걸어 잠근 뒤 한 달간 전국에 봉쇄령을 내렸다. 치명률은 0.8%.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사태 초기에 고위험군인 고령자를 격리시키고 검사를 맹렬히 한 덕분에 유럽에서는 상대적으로 낮은 치명률(2.5%)을 기록하고 있다. 노르딕 5개국 가운데 치명률이 9%인 스웨덴을 제외한 4개국의 방역 성적표는 양호한데 공교롭게도 이 나라들의 리더가 모두 여성이다. 대만의 차이잉원(蔡英文) 총통은 1월 23일 중국이 발원지인 우한(武漢)을 봉쇄하자 다음 날 의료용 마스크 수출부터 금지하고 중국과의 모든 직항 노선을 끊었다. 15일까지 환자 수 393명에 사망자는 6명(치명률 1.5%). 지금은 마스크 수백만 장을 유럽 등에 수출 중이다. ▷‘마초적’ 리더들의 방역 성적은 저조한 편이다. 발원국인 중국의 시진핑 주석은 전문가의 경고를 무시하다가 전 세계를 위험에 빠뜨리고 리더십에도 치명상을 입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도 남의 말을 안 듣는 제왕적 리더십으로 좌충우돌하다가 미국을 세계 1위의 코로나 피해국으로 전락시켰다. ‘유럽의 트럼프’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바이러스 때문에 악수를 그만두진 않을 것”이라며 사태의 심각성을 무시하다가 말 그대로 죽다 살아났고 영국은 유럽의 새로운 화약고가 됐다(치명률 12.9%). ▷여성 리더가 선전하는 이유가 뭘까. 감염병 같은 위기 상황에서는 비전을 제시하는 남성적인 리더십보다 문제해결 중심의 여성적 리더십이 유리하다는 해석이 있다. ‘무티(엄마) 리더십’의 대명사인 메르켈은 카리스마에 의존하기보다 다양한 정치세력과 연정하며 최악의 금융위기를 포함한 국내외 난제들을 해결해왔다. 외유내강형 리더인 차이잉원도 정부 안팎의 전문가 집단과 협업하며 코로나에 대처하고 있다. 아던 총리는 지난해 크라이스트처치 모스크 테러에 단호하게 대응하면서도 히잡을 쓰고 아랍어로 인사하는 등 포용적 리더십으로 마초 리더들과 대조를 보인 바 있다. ▷성별이 요인이 아니라 이들이 뛰어난 정치인이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여성에게 불리한 유리천장을 깨고 리더가 된 여성은 같은 위치에 오른 남성보다 유능할 가능성이 그만큼 높고, 리더로서 인정받으려면 남자들보다 배로 노력해야 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성과도 좋다고 분석했다. 세계적으로 선출된 리더 152명 가운데 여성은 10명뿐이다. 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 2020-04-16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무효’ 부르는 투표용지[횡설수설/이진영]

    이번 4·15총선에선 역대 가장 긴 투표용지가 등장한다. 비례대표 선거 참여 정당이 35개가 되면서 투표용지 길이는 48.1cm가 됐다. 투표지 길이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 기표란의 세로 폭이 1cm에 불과하고 기표란 사이 여백도 0.2cm로 좁아진다. 눈이 나쁘거나 손놀림이 둔하면 제대로 찍기가 어려울 것 같다. ▷2017년 19대 대선 때도 기표란이 좁아 고령자들을 중심으로 무효표가 늘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당시 15명의 후보가 출마하자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기표란의 세로 폭을 1.5cm에서 1cm로 줄였다. 기표란의 세로 폭은 기표 도장의 외곽 지름보다도 작았다. 투표용지에 찍히는 동그란 문양은 기표란 안에 들어가는 크기였지만 고령자나 장애인들은 기표란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찍느라 애를 먹었다. 실제로 당시 무효표는 13만5733표로 18대 대선(12만6838표) 때보다 많았고, 무효투표율이 높은 상위 10개 시군구의 65세 이상 고령비율(평균 28.1%)은 하위 10개 지역(15.2%)보다 높았다. ▷세계적으로 투표용지 디자인 논란이 뜨거웠던 선거는 10명의 후보가 경쟁한 2000년 미국 대선이다. 미국은 선거구마다 투표용지가 제각각인데 플로리다주 팜비치 카운티는 민주당 지지층인 유색인종이 낯설어하는 펀치식이었다. 더구나 민주당 후보 앨 고어의 이름과 펀치로 뚫는 구멍의 위치가 나란하지 않게 투표용지가 설계됐다. 구멍을 두 개 뚫어 무효 처리된 6만2000표 중 4만5000표가 고어 이름이 포함돼 있어 고어를 찍으려다 실수하자 다시 구멍을 뚫은 표로 추정됐다. 고어는 플로리다주에서 공화당 조지 W 부시에 537표 차로 지는 바람에 대권을 놓쳤다. ▷문맹률이 높은 나라에선 후보자의 얼굴 사진과 정당 로고가 들어간 커다란 투표용지를 쓰기도 한다. 얼굴 사진을 쓰면 외모가 훌륭한 후보, 젊은 후보가 유리하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2014년 시도지사와 교육감 등 7개 단체장을 뽑는 6·4지방선거 땐 투표용지가 7장이었다. 선거별로 투표용지 색상을 달리했는데 적록(赤綠) 색맹의 경우 색상 구분이 불가능한 것으로 뒤늦게 밝혀져 논란이 됐다. ▷코로나19에도 불구하고 어렵게 투표장에 나와 한 표를 행사했는데 투표용지 탓에 무효표가 돼버리는 일은 결코 있어선 안 된다. 나이와 장애에 관계없이 누구나 쉽게 선거에 참여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공정하고 섬세한 선거 정책이 필요하다.  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 2020-04-01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코로나 이긴 97세 할머니[횡설수설/이진영]

    97세 할머니가 코로나19 완치 판정을 받았다. 경북 청도군에 사는 황영주 할머니는 포항의료원에서 12일간 치료를 받고 완쾌돼 73세 아들이 애타게 기다리는 집으로 25일 돌아왔다. 그는 국내 최고령 완치자인데 포항의료원에는 104세 할머니가 투병 중이다. 세계적으로는 중국 우한(武漢)에서 완치 판정을 받은 104세 할머니가 최고령 완치자로 알려져 있다. ▷고령자의 완치 소식이 반가운 이유는 노인들의 치명률이 더 높기 때문이다. 국내의 경우 평균 치명률은 1.5%, 80세 이상은 15.2%다. 중국을 제치고 확진자 수 세계 1위가 된 미국에서는 ‘부머 리무버(boomer remover)’라는 신조어가 나돈다. ‘베이비부머 제거기’, 즉 코로나19가 고령의 베이비부머(1944∼1963년 출생)에 더 치명적이라는 뜻인데, 기성세대가 ‘꼰대 노릇’ 한다며 불만을 가진 일부 젊은이들 사이에서 ‘꼰대를 없애주는 감염병’ 정도로 통한다. ▷노인을 차별하는 건 일부 고약한 젊은이들만이 아니다. 테워드로스 거브러여수스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은 이달 초 “코로나19의 희생자가 대부분 노인이기 때문에 사태 초기 수습하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은 나라들이 있다. 이건 도덕적 부패의 문제”라고 했다. 미국도 대처가 늦은 나라 중 하나인데 텍사스주 부지사는 얼마 전 각종 영업 중단 조치를 완화하자면서 “노인들은 경제를 위해 죽을 각오가 돼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가 호된 비난을 샀다. ▷의료계의 노인 차별도 있다. 코로나19 환자의 절반 이상이 노인이지만 세계 주요 의학 저널엔 어린이 환자에 관한 연구는 있어도 노인과 코로나19를 다룬 논문은 거의 없다. 의료 자원이 부족한 이탈리아는 고령자 치료를 거부하면서 ‘생존 가능성’을 내세웠다. 윤리적으로도 문제지만 합리적이지도 않다. 미국 스탠퍼드대 경제정책연구소에 따르면 70세 남성이 1년 후 죽을 확률은 2%, 80세 여성이 1년 안에 죽을 확률은 4%에 불과하다. 노인은 나이가 들어갈 뿐, 죽어가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황영주 할머니는 코로나19 ‘7976번 환자’였다. 27세에 남편을 여의고 아들 셋을 홀로 키웠는데 큰아들은 4년 전 먼저 떠났다. 둘째가 위암으로 위의 75%를 잘라내는 수술을 받자 공기 좋은 곳을 찾아 2002년 모자(母子)가 연고도 없는 청도로 이사했다. 어머니와의 ‘코로나 생이별’에 “억장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는 아들, 그런 아들이 기다리는데 ‘코로나 할아비’라고 무서웠을까. 환자 번호와 치명률 수치엔 절절한 사연이 가려져 있다. 가볍게 차별의 언어를 입에 올릴 일이 아니다. 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 2020-03-28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누구를 먼저 구하나[횡설수설/이진영]

    코로나19 사태가 심각한 유럽의 이탈리아와 스웨덴이 ‘연령 차별’ 논란으로 시끄럽다. 이탈리아 의학계는 ‘성공 가능성이 높은 환자부터 치료하라’는 권고안을 내놓았다. 사실상 중증 고령 환자에 대한 치료 거부를 정당화하는 내용이어서 ‘이탈리아판 고려장’이라는 비난이 나온다. 반면 스웨덴 수도 스톡홀름에선 고령자만 진단 검사를 하기로 해 젊은이들이 반발하고 있다. ▷의사에게는 정당한 이유 없이 진료를 거부할 권한이 없다. 그런데 전쟁이나 재난이 닥쳐 의료자원이 부족할 땐 어쩔 수 없이 ‘트리아주(triage)’, 즉 환자를 분류해 우선순위를 정해야 한다. 트리아주는 커피 원두를 골라내는 것을 뜻하는 프랑스어. 나폴레옹(1769∼1821)의 군의관이 전쟁터에서 ‘부상자 선별’의 뜻으로 쓰기 시작했다. 그의 회고록에는 “치명적 부상을 입은 병사들은 계급이나 수훈과 무관하게 맨 먼저 처치를 받아야 한다”는 대목이 나온다. 프랑스 혁명 정신인 ‘평등’ 사상을 구현한 트리아주다. ▷세계적으로 합의된 트리아주의 원칙은 없다. ‘급한 환자부터’라는 원칙이 있는가 하면 ‘최대 다수에게 최대 이익’을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1846년 영국 해군은 가망 없는 환자에 대한 수술을 포기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쏟는 의료자원이면 다수의 경증 군인을 살릴 수 있다는 논리다. 급진적인 사람들은 ‘무작위’를 주장한다. 모든 사람의 생명은 소중하고, 누군가에게 살 사람과 죽을 사람을 결정할 권한을 주는 건 위험하기 때문이란다. ▷요즘 응급실에선 가장 위험한 환자가 우선이다. 그런데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로 침수 위기에 놓인 미국 뉴올리언스 메모리얼 병원의 구조 우선순위는 정반대였다. 병원은 환자를 3등급으로 분류해 스스로 걸을 수 있는 ‘1등급’을 맨 먼저 대피시키고, 다음은 부축이 필요한 ‘2등급’, 나머지 위중한 ‘3등급’을 마지막 순위로 두었다. ‘최대 다수에게 최대 이익’이 기준이었던 셈이다. 이 같은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일자 주정부는 재난 시 환자 분류에 관한 지침을 만들어 인공호흡기 등 부족한 의료자원을 배분하는 원칙을 제시했다. ▷누구를 먼저 살리고 누구를 포기할까. 유럽의 선진국이 2차 대전 이후로는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윤리적 고민에 빠질 정도로 코로나19의 기세가 무섭다. 한국도 병실을 기다리다 사망한 환자가 나오고 의료진의 피로도도 누적된 상태다. 코로나19에 집중하느라 다른 중증 응급 환자들이 후순위로 밀리고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유럽 의사들 같은 고민 없이 위기를 넘기려면 환자 증가세를 완전히 꺾어놓아야 한다. 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 2020-03-18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새내기 간호장교[횡설수설/이진영]

    신나은 신나미(23) 쌍둥이 자매는 3일 국군간호사관학교 60기 임관식에서 육군소위 계급장을 달자마자 전투복을 입고 ‘전선(戰線)’으로 달려갔다. 임지는 코로나19 최전선인 대구. 자매는 동기 73명과 국군의료지원단에 소속돼 300병상 규모의 국군대구병원 등에 투입됐다. 새내기 간호장교 전원이 임관하자마자 임무 수행에 나선 건 이례적인 일. 문재인 대통령은 2일 현직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학교를 찾아 ‘코로나19 종식’이라는 특명을 내렸다. ▷간호장교는 간호사이면서 군인이다. 2학년이 되면 임상 실습에 앞서 나이팅게일 선서를, 졸업식 겸 임관식에서는 장교임관 선서를 한다. 간호사관생도들은 두 가지 역할 수행을 위해 4년간 기숙사 생활을 하며 181학점을 이수한다. 임상 실습 시간은 1080시간. 기초 군사훈련과 유격훈련에 야전간호, 전투외상간호, 재난응급간호 훈련이 끝도 없이 이어진다. 전쟁, 지진, 감염병 발병으로 한꺼번에 많은 환자가 발생했을 때 우선순위를 정해 제한된 자원을 배분하는 역량을 키우는 것도 주요 교육 내용. 임관 후 의무복무 기간은 6년이다. ▷응급 상황에 최적화된 간호장교들은 이라크 레바논 남수단 같은 분쟁지역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의 재난 현장에 투입된다. 2014년 에볼라 때는 시에라리온, 2013년엔 필리핀 태풍 피해 지역, 2011년엔 아이티 지진 현장을 누볐다. 2003년 사스, 2015년 메르스 때는 국내 곳곳의 병원에 급파돼 환자를 돌봤다. 메르스 당시 “우리는 알지 못하는 공포가 있을 때 여러분과 함께할 것이다”는 간호장교의 말은 위기를 극복하는 데 큰 힘이 됐다. 현재 간호장교 835명 가운데 83명이 대구에 있다. 60기는 뺀 숫자다. ▷국군간호사관학교 60기는 남자 7명을 포함해 모두 75명. 나이팅게일 탄생 200주년이자 6·25전쟁 발발 70주년이 되는 해에 임관해 각별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6·25전쟁 때는 간호장교 1257명이 변변한 의약품도 장비도 없이 노상에서 40만 명 넘는 부상자를 돌봤다. ▷전쟁터나 다름없는 대구로 초임 장교들을 보내며 국방부 장관은 “미안하고 고맙다”고 했다. 앳된 장교들을 보는 국민들도 “학도병이 떠오른다” “어린 나이에 중책을” “전쟁터에 동생 조카 보내는 기분”이라며 먹먹해한다. 하지만 쌍둥이 자매를 포함해 새내기 장교들은 ‘위국헌신 군인본분(爲國獻身 軍人本分)’을 복창했다. “간호장교로서 대구에 갈 수 있어 영광이다.”(동생 신나미 소위) “마땅히 내가 해야 할 일이다. 내 위치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고 돌아오겠다.”(언니 신나은 소위)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 2020-03-05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코로나 검사 비용[횡설수설/이진영]

    미국 마이애미에 사는 회사원 A 씨는 중국 출장에서 돌아와 열과 기침이 나자 혹시나 싶어 코로나19 검사를 받았다. 다행히 음성 판정이 나왔는데 2주 후 3270달러(약 397만 원)짜리 청구서가 날아왔다. 민간 의료보험 가입자인 그가 부담해야 하는 검사 비용은 약 1400달러다. ▷A 씨가 한국에 있었다면 무료로 검사를 받을 수 있었다. 중국을 방문한 이력에 호흡기 질환 증상까지 있으니 100% 검사 대상이다. 요즘은 중국 방문 기록이 없어도 의사의 소견서만 있으면 된다. 무료 검사 대상이 아니면 16만 원을 내야 하지만 확진 판정을 받으면 전액 돌려받는다. 진료비도 정부가 부담한다. 외국인의 검사비와 진료비도 마찬가지다. ▷미국은 기본적으로 본인 부담인 데다 검사 기준도 엄격하다. 중국을 다녀왔거나 감염자와 접촉 후 발열 등의 증상이 있어야 한다. 최근 캘리포니아에서 중국에 간 적이 없는 여성이 확진 판정을 받자 27일에야 중국에 더해 한국, 일본, 이탈리아, 이란을 방문한 사람으로 검사 대상을 확대했다. 일본도 무료 검사 기준이 까다롭다. 중국 등에 다녀온 사람과 밀접하게 접촉한 이력이 있거나 확진자와 접촉한 사람들 중 광역지자체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경우’에만 가능하다. 본인 부담 검사는 아예 없다. 일본 정부는 다음 달 초엔 본인 부담 검사 시스템을 만들겠다고 했는데 비용은 미정이다. ▷검사 기준의 차이는 검사 건수의 차이를 낳는다. 한국에선 28일까지 7만8830건을 검사해 2337명의 환자를 찾아냈다. 미국은 445건 검사에 14명 확진, 일본은 2058건 검사에 186명 확진이다(미일 모두 크루즈선 탑승자 제외). 확진율을 비교하면 한국이 2.96%로 가장 낮고 미국은 3.14%, 일본은 무려 9.03%다. 한국의 환자 수가 빠르게 늘어나는 것은 빠르게 찾고 있기 때문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한국은 환자 수가 너무 많아 난리지만 미국과 일본은 너무 적다고 야단이다. 일본은 도쿄 올림픽을 의식해 환자 수를 줄이려고 검사를 아예 틀어막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받고 있다. 미국도 재선에 도전하는 대통령이 “감기보다 위험하지 않다”며 미온적으로 대처하다 지역사회 확산을 방치할까 봐 걱정이다. 환자 수 650명으로 ‘유럽의 우한’이 돼버린 이탈리아에서는 검사를 너무 열심히 해 사태를 악화시켰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한국의 환자 수 급증은 방역 실패의 증거인 동시에 진단 기술의 결과이기도 하다. 지금은 사방에서 입국 제한을 당하는 신세지만 사태가 진정되면 진단 기술만큼은 평가받을지 모른다.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 2020-02-29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정치적 구호 강요로 학생 권리 침해 말라”[논설위원 현장 칼럼]

    《설렘과 아쉬움이 교차하는 졸업 시즌이지만 서울 관악구 봉천동 인헌고의 분위기는 무거웠다. 고교 재학생들이 교사가 정치적 이념적으로 편향된 교육을 한다고 폭로하면서 시작된 ‘인헌고 사태’. 교육현장에서 초유의 사건이 벌어진 지 거의 4개월이 지난 현재 학교는 사제 간 송사(訟事)로 후유증을 앓고 있다. 교사 9명은 정치 편향 교육을 한다고 보수 성향의 학부모단체에 고발당했다. 인헌고 사태를 주도한 ‘인헌고 학생수호연합(학수연)’의 대변인인 최인호군은 학교폭력대책위에서 징계 처분을 받고 학교를 상대로 징계 무효 소송을 제기했다. 서울행정법원은 소송 결과가 나올 때까지 징계 처분 효력을 정지시켰다. 인헌고 사태의 주인공들을 만났다. 김화랑 군은 학수연 대표로 최 군과 함께 기자회견, 시교육청 및 학교 앞 시위를 주도했다. 두 사람은 다음 달부터 각각 사회복지학과 정치학을 전공하는 대학생이 된다. 나승표 교장도 따로 만나 인터뷰했다.》  ―졸업식에서 한바탕 소동이 있었다고 들었다. 학수연의 문제 제기에 불만을 가진 학부모에게서 욕설을 들었다고…. ▽최인호=결국 경찰이 와서 소동이 끝났다. 사과도 받아냈다. 졸업식에 가고 싶지 않았다. 그래도 좋게 마무리하려고 갔는데 심란했다. ▽김화랑=우리가 폭로했던 문제를 해결 못 하고 후배들에게 짐을 지우고 떠나 아쉽다. ―폭로하면 달라질 거라 기대했나. ▽최=학생들이 문제 제기하면 선생님들이 같이 얘기해 보자고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그런데 우린 아예 그런 적 없다 하시니…. ▽김=학교가 우리를 나쁜 놈 만들 줄은 몰랐다. 편향 교육 이슈 대신 시위하니 시끄럽다, 학습권 침해다, 너희가 나쁜 거다, 이렇게 프레임 전환을 해버렸다. 환멸이 느껴진다. ―대학수학능력시험 한 달 전 폭로했는데 입시엔 지장이 없었나. ▽김=수능 최저를 맞추지 못해 목표했던 대학엔 떨어졌다. 정치적 편향 교육의 증거가 되는 영상이 입수돼 지난해 10월 18일 페이스북에 업로드했는데 파장이 컸다.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지난해 10월 17일 열린 인헌고 마라톤대회에서 교사가 학생들에게 반일(反日) 마라톤 구호 제창을 강요하는 영상이 공개됐다. 시교육청 특별장학 결과 전교생 441명 가운데 97명이 마라톤 구호 제창, 21명은 반일 선언문 띠 제작에 강제성이 있었다고 답했다) ―교사들이 편향된 교육을 한다고 생각한 건 언제부터인가. ▽최=고1 때부터인데 결정적인 계기는 2018년 5월 혜화역 시위(‘몰카 성차별 수사’ 규탄 시위)다. 평소 선생님들이 페미니즘을 많이 강조하셨는데 극단적 페미니즘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6월 지방선거 땐 “(녹색당 서울시장 후보) 페미니스트 신지예 뽑고 왔다”며 강요하는 듯한 말씀을 하시는 분도 있었다. ▽김=선생님들이 낙태 무조건 허용해야 한다, 책임감 없는 남자들이 많아서 여자들이 피해 본다고 하셨다. 솔직히 우리 세대는 남자라고 특권을 누린 기억이 없다. 그런데 남자는 지배자, 가해자, 죄인 취급하는 게 불편했다. ▽최=남녀 편을 갈라 적대감을 갖기보다 평화롭게 공존하는 방법을 찾기 위해 성평화 동아리를 만들었다. 회원의 절반이 여학생이었다. 자율동아리로 인정받으려면 지도교사가 필요해 A 선생님께 부탁드렸다. 그런데 워마드(여성 우월주의 사이트)가 우리 동아리 좌표를 찍어 공격했고 선생님도 지도교사를 맡을 수 없다고 거절하셨다. 반(反)사회적이지 않다면 자유롭게 논쟁할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인헌고는 A 교사가 지도교사 요청을 거절한 이유에 대해 이 동아리가 ‘남성성은 모험심으로, 여성성은 공감과 모성애로 정의하며 남녀 차별을 정당화’했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시교육청은 교사들의 부적절한 발언은 있었지만 의도적이거나 반복적이지 않아 정치 편향 교육이라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최=한두 번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하신 선생님이 10분 정도 된다. 어떤 선생님은 ‘민주주의가 뭐라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한 학생이 ‘노력한 만큼 얻어가는 사회’라 답했더니 “그런 쓰레기 같은 생각은 버려라”고 하셨다. 김정은 환영 단체 관계자가 와서 강의하는데 북한이 좋은 나라라고 미화한 적도 있다. ▽김=○○교과 선생님은 자유한국당을 엄청 싫어하셔서 그쪽 정치인은 다 사기꾼이고 독재자라는 식으로 말씀하셨다. 영화 ‘국가 부도의 날’이 나왔을 땐 김영삼 대통령 멍청한 사람이라고, 세계화가 문제라고 했다. ▽최=마라톤 대회에서 문제가 된 ‘아베 망해라’ 구호도 그렇다. 일본이 역사적으로 잘못한 부분이 있지만 세계화 시대인데 감정만으로 풀어가기보다 외교적으로 해결하려고 노력해야 하는 것 아닌가. ▽김=어떤 선생님은 ‘집에 20억 원이 없으면 다 약자’라고 하셨다. 학생들을 약자로 포섭해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거다. ―곽노현 전 서울시교육감은 지난해 11월 18일 ‘인헌고 논란을 통해 본 학교 민주시민교육’ 토론회에서 “혁신고교인 인헌고 학생이 문제를 제기한 건 직접민주주의를 실천한 것, 혁신교육의 성공 사례가 만들어낸 것”이라고 했다. ▽김=혁신교육 커리큘럼이 페미니즘, 성소수자, 반(反)원자력, 태양광 이런 걸로 짜여진 것 같다. 토론 위주의 수업을 하긴 하는데 기초학력 미달자가 많다 보니 토론 주제도 두발 자유 같은 단순한 것만 한다. ▽최=선생님들이 토론하게 한 뒤 자기가 지지하는 쪽 주장에 끼어들어 상대편을 어떻게 하려 들고, ‘얘들아 이게 맞는 거야’ 하고 끝내신다. ―고교 모의 선거교육, 민주시민교육이 논란이다. ▽최=선생님들이 여기 뽑아라, 이쪽은 잘하고 저쪽은 못하고 있다, 이런 말씀 하시면 대부분 학생들은 별로 관심도 없고 모르는 상태에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김=어른들은 무서운 존재다. 정신 차리지 않으면 어른들 의도대로 놀아나게 될 거다. ―이상적인 교육이란 어떤 걸까. ▽김=정치적 구호 강요나 사상 주입은 학생 권리 침해다. 양쪽으로 갈라 한쪽은 좋은 점만, 다른 쪽에 대해선 나쁜 점만 가르치는 건 옳지 않다. 이쪽저쪽 모두 다양한 면을 알려주면 된다.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도록…. ▽최=다른 생각을 한다는 이유로 낙인찍고 차별하면 안 된다. 대학 가도 학수연 활동 계속 한다. 학교에서 사상 주입 교육한 것 인정하고 공식 사과하고 재발 방지 대책 약속할 때까지. 그리고 성평화가 오는 그날까지. 나 교장은 “학생들 주장에 왜곡된 부분이 많다”고 했다. ―자체 진상 조사는 했나. “교사 52명 상대로 학교에서 자체 조사했고, 3년간 부적절한 발언이 23건 있었던 것으로 나왔다. 교사들의 정치 성향이 은연중에 튀어나온 것이지 의도적으로 말한 게 아니다.” ―학생들의 문제 제기를 학교 안에서 해결할 수는 없었나. 사회 문제가 돼버렸다. “(보수) 시민단체가 와서 시위해 수업을 할 수가 없다. 단체 회원들이 등굣길 하굣길 학생들에게 마구잡이로 욕한다. 아이들(김화랑, 최인호 군)이 사실을 왜곡시켜 많은 교사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 변호사 비용도 걱정이다. 졸업 후엔 교사들이 어떤 법적 조치를 취할지 알 수 없다.” ―이런 상황에 모의 선거교육을 하면 교실이 정치판이 되지 않을까. “이미 학교회장 선거 하고 있는데 특별히 모의 선거교육이 필요할까.” ―왜 인헌고 사태가 터졌다고 보나. “우리 땐 정의가 분명했다. 민주 대 반(反)민주, 독재 대 반독재. 그런데 지금 학생들은 각기 다른 생각들을 가지고 있다. 우린 신문이나 TV 뉴스를 봤지만 학생들이 뉴스를 접하는 채널은 유튜브 등 다양하다. 그리고 학교 밖 양극화된 진영논리가 학교 현장에도 이미 들어왔다. 조그만 해프닝이 큰 문제로 비화할 가능성이 크다. 정말 중립적 입장에서 가르치지 않으면 이런 일은 계속 있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인헌고 사태가 터지기 전 서울의 초중고교에선 몇 차례 경보음이 울렸다. 인헌고 사태 이전 3년간 시교육청에 ‘정치 편향’ 수업 민원이 13건 들어왔지만 1건을 제외하고는 감사도, 특별장학도 없이 ‘자체 종결’로 마무리됐다. 학생들에게 어떻게 선거교육, 민주시민교육을 할 것인가. 이렇게 묻기 전에 먼저 자문해야 할 것이다. ‘우리가 학생들에게 민주시민교육을 할 자격이 있는가’라고. :: 인헌고 사태 ::지난해 10월 22일 인헌고 학생들이 ‘인헌고 학생수호연합’을 결성하고 서울시교육청에 ‘정치 편향 교사들을 감사해 달라’는 청원서를 제출하면서 시작됐다. 시교육청은 11월 21일 “조국 뉴스는 가짜다” “너 일베냐”와 같은 일부 교사들의 문제 발언을 확인했다는 특별장학 결과를 발표하면서 “편향 교육은 아니다”라는 결론을 내 반발을 샀다. 학생들은 인헌고와 시교육청이 중립적 교육을 받을 권리와 의사표현의 자유 등을 침해했다며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제출한 상태다. 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 2020-02-19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코호트 격리[횡설수설/이진영]

    격리란 전염을 예방하는 모든 방법을 뜻한다. 특정 공간에 환자를 가두거나 감염이 의심되는 장소를 통째 봉쇄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14세기 베네치아에서는 흑사병이 돌자 40일간 모든 선박들의 정박을 금지했다. 영어로 격리를 뜻하는 ‘quarantine’은 여기서 유래했다. ▷백신이나 치료제가 없던 시절엔 역병이 돌면 외딴섬에 환자들을 가두어 감염을 차단했다. 1900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페스트가 창궐했을 땐 차이나타운이 봉쇄됐다. 중국계 이민자들이 “바로 맞은편 백인 거주지역은 왜 그냥 놔두냐”고 항의하자 일부 의사들은 “페스트는 쌀을 주식으로 하는 사람들만 걸린다”는 황당한 해명을 내놓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확산을 막기 위해 다양한 스케일의 격리 조치가 이뤄지고 있다. 중국은 지난달 23일 발원지인 인구 1100만 도시 우한(武漢)을 통째 봉쇄시켜 세계적으로 가장 큰 규모의 격리 조치라는 기록을 세웠다. 일본은 대만과 홍콩 등지를 경유하고 3일 요코하마로 돌아온 크루즈선에서 확진환자 10명이 나오자 3700명이 넘는 승객과 승무원 전원을 14일간 선상에 격리하기로 했다. ▷국내에선 신종 코로나 사태 이후 처음으로 병원 폐쇄 사례가 나왔다. 태국에서 입국한 ‘16번’ 확진환자가 다녀간 광주 21세기병원이 4일 ‘코호트 격리’됐다가 다음 날 부분 격리로 수위가 낮아진 것. 코호트 격리는 환자와 의료진을 동일 집단(코호트·cohort)으로 간주하고 병원을 폐쇄하는 방법이다. 의사와 환자 70여 명은 출입문 손잡이가 밧줄로 묶인 병원에 갇혀 경찰 기동대가 감시하는 가운데 하룻밤을 보냈다. ▷2015년 메르스 유행 때는 대전 대청병원을 시작으로 전국 10여 개 병원이 코호트 격리됐다. 병원 폐쇄에 따른 손실의 일부는 정부가 보상해준다. 하지만 격리 해제 후에도 한동안 내원 환자가 줄어 경영상 어려움을 겪게 된다. 창원SK병원은 의료진과 환자 85명이 2주간의 격리를 자청해 추가 감염을 막아냈지만 결국 경영난으로 폐업했다. ▷메르스로 코호트 격리됐던 을지대병원 수간호사는 진료일기를 남겼다. 결혼식을 연기한 신부, 젖먹이를 둔 엄마 간호사들은 30분만 입고 있어도 흠뻑 젖는 방호복 차림으로 환자를 돌봤다. 격리가 웬 말이냐며 소란을 피우는 환자도, 간식과 엽서로 응원하는 시민들도 있었다. 2주간의 격리가 끝나고 바깥 공기를 마시게 된 그는 일기를 이렇게 마무리했다. “전염병 발생 시점부터 종료까지의 관리법을 경험하고 2차 감염을 막은 간호사라는 자부심을 갖게 됐다. 14박 15일의 긴 MT를 잊지 못할 것이다.”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 2020-02-06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9일 춘제 연휴 끝나고 중국인 일상 복귀할 때가 최대고비”[논설위원 파워 인터뷰]

    어린이집 10곳 중 1곳이 문을 닫았다. 헌혈 급감으로 응급 환자를 위한 혈액 보유량이 3일 치도 남지 않았다. 중국산 부품 공급이 끊겨 자동차 생산 라인이 멈췄다. 간병인, 3D업종 근로자, 관광객으로 환영받던 중국인들과 눈을 마주치기 꺼리는 이들이 늘고 있다. 지난달 20일 국내 첫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신종 코로나) 확진 환자가 나온 이후 한국 사회의 일상이 흔들리고 있다. 정부는 3일 감염병 위기 경보는 ‘경계’ 수준이나 실제 대응은 최고 수준인‘심각’ 단계에 준해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기모란 대한예방의학회 신종코로나바이러스위원장(55)은 4일 “방역 당국이 예상하지 못한 환자가 나왔다. 위기경보를 ‘심각’으로 상향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국립암센터 국제암대학원 암관리학과 교수인 그는 2015년 메르스 사태 때 학회의 메르스위원장을 맡아 예방의학 전공의들과 민간역학조사관으로 방역 일선에서 뛰었다. 지금은 국내외 방역 동향을 정리 분석해 정부와 국회의 자문에 응하고 있다. ―4일 감염 경로가 불투명한 16번째 확진 환자가 나왔다. “그동안에는 방역당국의 감시망에서 환자가 나왔다. 그런데 4일 광주에서 발생한 16번째 확진 환자는 정부가 예상하지 못한 경우다. 따라서 감염병 위기 경보를 지역사회 전파 시 발령하는 ‘심각’으로 상향해야 한다.” ―이날 시작된 중국 후베이(湖北)성 외국인 입국 금지에 대해 대한의사협회가 대상 지역을 중국 전역으로 확대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후베이성 외국인 입국 금지 이후 그곳에서 들어오는 내국인(한국인)을 14일간 자가 격리 조치하고 있다. 입국 금지 지역을 확대하면 그만큼 자가 격리 대상이 되는 내국인 수도 폭증한다. 요즘도 중국에서 하루 1만6000명이 들어온다고 한다. 이 중 절반가량이 내국인인데 하루 8000명씩 생기는 사람들을 보건소에서 1 대 1로 감시하는 게 가능할까. 상황이 악화되면 단계적으로 입국 금지 지역을 확대할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중국과 교류가 많은 나라가 중국 전체를 대상으로 그러기는 쉽지 않다고 본다.” ―중국 체류 외국인 입국을 금지한 나라가 미국 호주 이탈리아를 포함해 17개국이 넘는다. 사스나 메르스 때도 없던 초유의 일인데 그만큼 심각하다는 뜻 아닌가. “몇 개국만 입국을 금지하면 금지하지 않는 나라로 몰릴 가능성이 있으니 도미노 식으로 외국인 입국 금지 국가가 늘어난 것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지난달 30일 공중보건 비상사태를 선포하면서도 교역 제한을 권고하지 않았다. WHO 사무총장이 기여금을 많이 내는 중국에 휘둘린다는 비난도 들린다. “국제기구는 돈 많이 내는 나라를 의식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WHO가 교역 제한을 권고한 적은 없다. 교역을 제한하면 통제망에서 벗어난 우회로를 찾는 사람들이 생겨나 환자 수가 더 늘어날 수 있다.” ―정부는 3일 “앞으로 7∼10일이 고비”라고 했다.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이 춘제(春節·중국 설) 연휴로 전국에 흩어진 사람을 그 자리에서 꼼짝 못하도록 통제하고 있다. 하지만 9일까지 연장해놓은 연휴가 끝나면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면서 엄청나게 섞일 것이다. 중국 환자 수는 아직 피크에 가지도 않은 듯한데 9일 이후 급증할까 그게 가장 큰 걱정이다.” ―3월 개학을 앞두고 중국 유학생들이 대거 입국한다. 국내 중국 유학생 수가 7만 명이 넘는다. “중국인 유학생들은 중국의 출국 검역과 한국 쪽 입국 검역을 통과해야 하고 14일간 자가 격리를 하게 돼 있어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중국에서 유증상자를 내보내진 않는다. 혹시라도 한국에 들어온 유증상자가 확진 판정을 받게 되면 감염환자를 국경 밖으로 못 내보내도록 규정한 WHO 규약 위반이 된다. 위반해도 제재를 받진 않지만 중국이 자기들 책임을 다하지 못한 셈이 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신중하던 미국 언론이 대유행(팬데믹) 가능성을 보도하기 시작했다. “중국을 제외하고는 아직까지 지역사회 확산 단계인 나라는 없다. 환자를 발견한 나라들은 진단검사 수준이 되는 나라들이다. 중국인들이 많이 찾는 동남아시아 국가들이 의외로 조용한 것이 이상하다. 정말 환자가 없는 것이 아니라 못 찾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현재까지 신종 코로나로 인한 사망자는 대부분 중국인이고 필리핀과 홍콩에서 1명씩 사망자가 나왔다. 우리는 안심해도 되나. “중국은 발병한 지 오래됐고 환자가 2만 명이 넘어 병원에서 적극적인 치료를 받기 힘들다. 우리는 확진환자들이 각 병원에 흩어져 있는데 의료진이 총력을 기울여 치료하고 있다. 하지만 첫 번째 확진환자가 나온 지 보름밖에 안 됐으니 안심하기는 이르다.” ―신종 코로나는 사촌 격인 사스나 메르스와 달리 잠복기 전염에 회복기 전염 가능성까지 제기돼 불안하다. “코로나바이러스는 호흡기와 소화기 질환 바이러스의 중간적 특성을 띤다. 대체로 호흡기질환은 증상이 나타나기 전부터 바이러스가 퍼지고, 소화기질환은 증상이 시작된 이후에 나오는데 증상이 사라진 뒤에도 바이러스가 나올 수 있다. 사스나 메르스는 호흡기 증상을 주로 보이지만 증상이 나타난 다음부터 전파돼 관리가 쉬웠다. 그런데 신종 코로나는 두 질환의 특성을 모두 가지고 있는 듯하다. 신종 코로나 환자는 완치 후 24시간 간격으로 바이러스 검사를 해 두 번 음성이 나와야 퇴원시키는 걸 원칙으로 하고 있다. 따라서 회복기 전염 가능성은 걱정 안 해도 된다. 문제는 잠복기 전염인데 증상이 나타나기 전부터 바이러스를 퍼뜨린다면 방역이 정말 힘들어진다. 손 씻고 마스크 쓰고 환기 잘하고 사람 많은 곳에 가지 않고, 이런 기본적인 위생수칙을 지키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 ―2003년 사스 때는 국내에서 확진환자가 한 명도 나오지 않아 WHO가 ‘사스 예방 모범국’으로 평가했다. 2015년 메르스 때는 38명이 사망했다. 사스 때는 ‘행정의 달인’ 고건 총리가 있어 방역에 성공한 것이라는 평가도 있던데 진짜 행정력의 차이가 피해의 차이를 가져온 것인가. “사스 때 너무 쉽게 넘어간 것이 독이 됐다. 그땐 중국과의 교류가 지금처럼 많지 않았고, 질병에 대한 두려움이 커 개인들도 자가 격리를 철저히 했다. 그때 환자가 몇 명이라도 생겼더라면 낙후된 보건의료시스템을 점검해 제대로 고쳤을 텐데 위기를 넘기고 나니 한국 수준이 대단한 것으로 착각하고 아무것도 안 하다 메르스가 터진 것이다.” ―중국은 사스 때 본토에서만 349명이 죽었지만 이번에도 대처를 잘 못했다. “중국은 사스를 겪은 뒤 보건의료시스템을 많이 고쳐 우리보다 좋았다. 미국 질병관리센터 같은 조직을 정비하고 역학조사관 제도를 만들고 우한(武漢)에 바이러스연구소까지 뒀다. 그런데 사스 이후 17년간 아무 일이 없다 보니 경계심이 약해진 거다. 2015년 한국 메르스 환자가 중국에 간 적이 있는데 그때 몇 명이라도 환자가 나왔더라면 시스템을 업그레이드해 이번에 피해를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방역은 전쟁과 비슷하다. 평화가 길어지면 해이해지고, 전쟁을 경험하지 않은 군인들은 실전능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태평성대 기간이 길어지면 군대가 왜 필요하냐는 얘기들을 한다. 지금은 방역 인력이 태부족이라고 말하지만, 전염병이 돌지 않으면 보건소에 노는 사람이 왜 이리 많으냐는 얘기가 나온다.” ―지금은 메르스 때보다 방역 수준이 나아졌나. 확진환자의 99%가 병원에서 감염됐던 메르스 방역 인프라가 지역사회 확산형인 신종 코로나에는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있다. “메르스 방역의 실패 이후 역학조사관제도를 정착시키고, 음압격리병상 수를 늘리고, 응급실에 선별진료소를 만들고, 감염에 취약한 응급실 문화를 개선했다. 접촉자로 분류돼 격리된 사람들, 문 닫은 의료기관에 예산을 지원하는 제도도 메르스를 계기로 생겼다. 신종 코로나에 이만큼이라도 대응할 수 있게 된 건 그때 시스템을 개선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종 코로나는 메르스와 달리 외국에서 감염된 환자들이 들어와 지역사회로 전파시키고 있다. 지역사회와 해외 유입 감염 관리에 대한 보완책이 있어야 한다. 선진국들은 전염병 발생국가에 지원 명목으로 미리 나가서 바이러스나 치료정보, 방역시스템 등에 관한 정보를 가져간다. 전염병 유행이 끝나고 나면 제약회사들이 백신 치료제 진단키트 제조 경쟁을 벌이는데 그런 정보를 이용하는 거다. 세계가 무섭게 돌아가고 있다.” ―신종 코로나 유행은 언제 끝날까. “사스는 2003년 유행 후 17년간 다시 돌아오지 않고 있다. 메르스는 2012년 발병 후 지금도 중동 지역에 남아 있다. 신종 코로나가 사스의 길을 갈지, 제2의 메르스가 될지 모르겠다. 분명한 건 항생제와 백신으로도 전염병은 정복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항생제는 내성이, 백신은 효과가 완벽하지도 않을뿐더러 새로운 감염병이 계속 나오고 있다. 알베르 카뮈의 말처럼 역병은 사라진 게 아니고 책갈피와 방구석에 숨어 우리가 방심하길 기다리고 있다.” 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 2020-02-05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우한 폐렴 경보[횡설수설/이진영]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인 우한 폐렴이 확산 일로다. 지난해 12월 31일 중국 후베이(湖北)성 성도(省都)인 우한(武漢)에서 발생한 지 한 달도 되지 않아 미국 1명을 포함해 6개국에서 확진 환자 641명이 발생했다. 이 중 사망자는 17명으로 모두 중국인이다. 한국도 인천공항에서 감염자로 의심돼 격리된 중국인 1명이 확진 판정을 받았다. 교통 요충지로 ‘중국의 배꼽’이라 불리는 인구 1100만 도시 우한은 23일 오전 10시부터 도시로 들어가고 나가는 모든 대중교통 운행이 중단됐다. 중국 역사상 성도 봉쇄는 처음이다. ▷우한 폐렴의 숙주는 박쥐나 뱀으로 알려져 있다.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는 박쥐와 사향고양이,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는 낙타였다. 우한 폐렴 발원지인 수산물시장에서는 온갖 야생동물이 불법으로 거래돼 왔는데 두 번째 사망자도 수산물시장 가게 주인이었다. 잠복기는 짧게는 2, 3일, 길면 10∼12일이다. 증세는 감기나 독감과 비슷하고 치료제나 백신은 없다. 감염자의 침이나 콧물로 전파되므로 사람이 많은 곳에 갈 땐 마스크를 써야 한다. 마스크에 바이러스가 묻을 수 있으므로 한 번 쓰고는 버리는 것이 좋다. ▷홍콩 전문가들은 우한 폐렴이 2003년 사스 때처럼 대유행할 조짐이 있다고 경고한다. 전염병 확산은 동물에서 인간→인간 간 전염→환자 가족과 의료진에 전염→대규모 발병 단계로 진행되는데 우한 폐렴은 마지막 단계 진입을 코앞에 두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의 정보 통제와 뒷북 대응이 바이러스 확산을 가속화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우한은 봉쇄됐지만 이미 수백만 우한 시민이 빠져나간 것으로 추정된다. 뉴욕타임스는 중국이 언론과 시민사회를 통제하고 정부가 정보를 독점하다 사태를 키웠다고 지적했다. ▷우한 봉쇄 소식에 중국 주가지수가 폭락했다. 세계 경제가 입을 피해 규모도 2003년 사스 때를 능가할 것으로 보인다. 세계 경제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2003년 8.7%에서 올해는 20%로 커질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회복 기미를 보이던 한국 경제도 연초부터 악재를 만났다. 5년 전 메르스 때처럼 소비가 얼어붙어 성장률 반등에 지장을 줄 우려가 있다. ▷오늘 시작되는 설 연휴가 1차 고비다. 이동이 많고 사람이 모여 감염 우려가 높지만 대다수 병원은 문을 닫는다. 중국인 관광객 14만 명도 몰려들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 당국은 24시간 비상방역체계를 가동하고, 개인은 관련 정보에 귀를 열어둔 채 손 소독과 마스크 쓰기를 비롯한 전염병 예방행동수칙을 따라야 한다.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 2020-01-24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중국發 폐렴 공포[횡설수설/이진영]

    중국 후베이(湖北)성 우한(武漢)에서 집단 발병한 폐렴이 중국 최대 명절인 춘제(春節)의 인구 대이동을 계기로 확산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우한 폐렴은 원인이 사스나 메르스와 같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다. ▷우한시는 17일 하루 동안 17명이 확진돼 누적 환자가 62명으로 늘었다고 19일 발표했다. 일부 환자는 폐렴 발원지인 수산물 도매시장에 간 적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중국이 강조해 온 동물에 의한 감염이 아니라 사람 간 전염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뜻이다. 태국과 일본에서도 각각 2명과 1명의 확진 환자가 나왔다. 폐렴 바이러스가 이미 국경을 넘은 것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사스나 메르스와 달리 사람 간 지속적인 전염 가능성은 낮다고 보고 있지만 국제사회의 경계심은 높아지고 있다. 영국 BBC는 우한 폐렴 감염자 수가 1723명으로 추산된다고 보도했다. 중국이 발표한 62명과는 차이가 너무 큰 데다 중국 당국이 구체적인 감염 경로와 우한 이외 지역의 의심 환자 수를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아 환자 수를 축소 은폐하고 있다는 의혹까지 일고 있다. ▷중국은 2002년 사스 사태 때도 피해 사실을 숨기다 양심적인 중국 의사의 은폐 사실 폭로로 국제적인 비난 여론이 거세진 후에야 사스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이후 사스 바이러스 전파자를 사형에 처하는 엄벌 규정까지 두면서 사스 확산 방지와 퇴치에 총력을 기울였지만 뒷북 대처로 37개국 774명의 사망자를 냈다. 중국은 사스 사태로 톈안먼(天安門) 사태 이후 가장 큰 이미지 손상을 입었다. ▷춘제 연휴에 해외를 찾는 여행객은 약 4억5000만 명이다. 태국은 중국인 80만 명, 특히 우한에서만도 하루 2000명이 몰려들 것으로 예상하고 공항과 병원에 최고 수준의 경계 태세를 갖추도록 했다. 베트남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같은 아세안 국가들은 물론 미국도 뉴욕을 비롯해 3개 공항에서 우한발 항공기 승객에 대한 발열 검사를 시작했다. ▷한국관광공사는 춘제 연휴(1월 27일∼2월 2일)에 한국을 찾는 중국인이 14만 명에 달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인구 1100만 도시 우한에는 한국 교민이 1000명 넘게 산다. 인천과 우한을 잇는 직항 비행기만 주 8편으로 입국 인원이 하루 200명이다. 2015년 38명의 희생자를 낸 메르스 바이러스는 중동발이었다. 우한은 비행기로 2시간 반이면 닿는 거리다. 국경 없는 감염병에는 국가 간 정보 공유와 공조가 필수적이다. 우한 폐렴이 우환(憂患)이 되지 않도록 2015년 메르스 초기 대응 실패에서 배운 지혜를 총동원해야 한다.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 2020-01-20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학대 부모에 또 맡기다니[횡설수설/이진영]

    스위스는 어린이집이 비싸기로 유명하다. 18개월 미만인 아이를 하루 맡기는 데 많게는 약 16만 원이 든다. 어린이집 종일반 비용이 가구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은 13%인데 스위스는 17%다. 한국은 4%. 국민소득이 세계 2위인 부자 나라 스위스에선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무료다. 왜 유독 어린이집만 비싸게 받는 걸까. 스위스인들은 만 3세까지는 부모가 직접 키우라는 취지로 해석한다. ▷아이는 부모 손에 커야 좋다는 건 상식이다. 유엔의 아동권리협약은 아이에게 최선의 양육환경이 친부모가 있는 ‘원(原)가정’임을 전제로 한다. 한국 아동복지법도 ‘원가정 보호’가 원칙이다. 하지만 부모와 사는 집은 아동 학대가 가장 많이 벌어지는 곳이기도 하다. 12일엔 장애를 가진 9세 아들을 찬물이 담긴 욕조에 방치해 숨지게 한 30대 계모가 구속됐다. 더 안타까운 것은 아이가 2016년에도 두 차례 학대 신고가 접수돼 부모와 격리됐다가 2018년 2월 친부의 요청으로 부모에게 인계됐다는 점이다. 아이는 학대당했던 집으로 돌아간 지 2년이 되지 않아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됐다. 온몸이 멍투성이였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17년 아동학대 2만2367건 가운데 76%가 부모에 의한 학대였다. 10명 중 1명은 재학대를 당했는데 부모가 가해자인 경우가 95%나 됐다. 다시 학대당할 게 뻔한데 집으로 돌려보내다니, 아이가 상습 학대를 받도록 사회가 손놓고 있는 것 아닌가. 정익중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원가정 보호 원칙은 지켜져야 하지만 학대당한 아이를 부모에게서 떼어놓는 동안 원가정을 회복시키는 노력을 해야 하고, 원가정이 준비가 됐는지 따져본 후 아이를 돌려보내야 한다”고 지적했다. ▷2018년 칸 영화제 심사위원상 수상작인 영화 ‘가버나움’에는 쓰레기통을 뒤져 먹고사는 시리아 난민 소년이 “스웨덴에선 아이들이 병에 걸려야만 죽어”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부모의 방치 혹은 학대 속에 죽음의 문턱을 넘나드는 아이들의 비참한 현실을 꼬집은 대사다. 국내총생산(GDP) 규모가 세계 12위인 나라에서 아이가 부모 손에 죽는 일이 벌어지는 건 부끄러운 일이다. ▷부모가 자격이 안 된다면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 피해 아동과 가해 부모에 대한 사후관리를 강제화하는 법은 몇 년째 국회에 계류 중이다. 영·유아 건강검진을 의무화하고 검진 항목에 학대 관련 지표만 추가해도 학대 위험에 놓인 아이들을 늦지 않게 찾아낼 수 있다. 적어도 재학대만은 막을 수 있어야 그게 나라다운 나라다.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 2020-01-14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조금 먼저 온 미래”[횡설수설/이진영]

    꿈의 초등학교가 있다. 전교생이 해마다 무료로 어학연수를 간다. 입학하면 집도 주고 부모 일자리까지 알아봐 준다. 경남 함양군에 있는 전교생 14명의 서하초교 얘기다. 학생 수가 줄면서 문 닫을 위기에 처한 시골 학교의 적극적 자구 노력 사례다. ▷1000만 명이 모여 사는 서울에서도 학생 수가 모자라 문을 닫는 첫 공립 초등학교가 나왔다. 서울 강서구 가양동 염강(鹽江)초교에서 10일 마지막 졸업식이 열렸다. 졸업생은 38명. ‘소금처럼 세상을 맛깔나게, 강물처럼 어떤 걸림돌에도 거침없이 큰 바다로 흘러가는 인재 육성’을 목표로 세웠지만 ‘학생 절벽’이라는 걸림돌에 걸려 개교 26년 만에 문을 닫게 됐다. 학교 측은 졸업식에 ‘조금 먼저 온 미래’라는 이름을 붙였다. ▷도시 학교의 폐교는 저출산 고령화 때문이다. 수도권 인구가 전체 인구의 절반을 넘어설 정도로 어른들은 몰려들지만 학령인구는 줄고 있다. 2018년엔 서울 은평구의 은혜초교가 사립 초교로는 처음으로 문을 닫았다. 지방에선 폐교가 오래된 고민거리다. 전교생이 10명 남짓밖에 안 돼 축구 경기를 못하고, 한 학년에 학생이 달랑 2명이어서 학급 회장과 부회장을 번갈아 맡는 곳도 있다. 학생 부족으로 폐교된 학교는 초중고교 합쳐 3000개. 대부분 시골 학교다. 경남 진주 지수초교는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 구인회 LG그룹 회장, 조홍제 효성그룹 회장을 배출한 명문이지만 2009년 문을 닫았다. ▷지금 추세면 10년 후엔 초등학교 6064곳 중 1791곳(29.5%)이 폐교 상황에 처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역 주민과 동문, 공무원들은 온갖 아이디어를 짜내 학교 살리기에 나서고 있다. 충북 괴산군 백봉초교는 입학생과 전학생에게 새 집을 빌려준다. 그 덕분에 2018년엔 유치원생까지 합쳐 26명이었던 전교생 수가 1년 만에 37명으로 늘었다. 전남 고흥 영주고는 중졸 학력의 60대 만학도들을 신입생으로 받아들여 폐교 위기를 넘기기도 했다. ▷동아일보는 2018년 빈 교실을 활용해 국공립 어린이집을 짓자는 제안을 했다. 땅값 비싼 서울에 어린이집을 지으려면 부지 매입에만 20억∼30억 원이 드는데 빈 교실을 리모델링하면 7억 원 선에서 해결할 수 있다. 정부도 이에 호응해 2018년 2월 학교 안 어린이집 및 돌봄교실 설치 방안을 확정했지만 관련 법인 영유아보호법 개정안이 통과되지 않고 있다. 빈 교실에 든든한 어린이집을 지을 수 있으면 출산율이 높아지고 학생 수도 늘어날 것이다. 염강초교 폐교 소식이 마음 아프다면 국회는 먼지를 뒤집어쓰고 처박혀 있을 관련 법안부터 챙겨보길 바란다. 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 2020-01-11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이란의 현실주의[횡설수설/이진영]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당한 만큼 똑같이 돌려주는 게 이슬람의 형벌원칙이다. 이란이 미국과의 무력 충돌에서 이슬람식 ‘비례적 대응’을 내세운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란은 군 실세 솔레이마니가 사살되자 ‘피의 보복’을 예고하더니 실제로 8일 이라크 내 미군기지 2곳에 미사일을 퍼부었다. 공격 시간까지 솔레이마니 사망 시각인 오전 1시 20분에 맞췄다. ▷그런데 보복 공격이 ‘비례적 대응’이었는지에 대해선 의문이 제기된다. 이란은 공격 1시간 전에 이라크에 군사 계획을 미리 알려줬다. 미국 쪽으로 정보가 넘어갈 걸 알면서 그랬다. 미사일 22발을 퍼부었지만 미국 측 사상자가 없었던 것도 그 덕분이었다. 엄청난 후과를 우려해 복수의 수위 조절을 한 것이다. ▷현실적 힘의 우열을 고려한 그 같은 고육책은 어쩌면 치밀한 계산과 냉정한 자제력의 결과물일 수 있다. 이란 전문가 스티븐 하인츠 록펠러 브러더스 펀드 대표는 양국의 무력 충돌에 대해 “미국이 골프 치고, 이란은 체스를 뒀다. 미국이 스윙 한 번 하는 동안 이란은 말을 세 번 움직였다”고 논평했다. 이란으로선 ①미국과의 전면전을 피하면서도 ②성난 국내 여론을 달래고 ③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의 체면까지 세웠다. 하메네이는 “미국의 뺨을 때려줬다”며 우쭐했다. 반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타국에서의 무력 사용으로 국제법을 위반하고, 탄핵과 재선을 의식한 무모한 무력 사용으로 갈라진 이란을 ‘반미’로 똘똘 뭉치게 했다는 비판에 휩싸였다. ▷로저 코언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는 “이란은 오래된 문명을 가진 나라로 아마추어가 아니다”라고 했다. 대개는 1979년 친미 왕조를 몰아내고 지금의 이란이슬람공화국을 세운 호메이니 때문에 과격한 근본주의 이슬람 국가라는 인상을 갖는다. 북한과의 군사 밀거래도 이미지를 더욱 나쁘게 만든다. 하지만 과거 페르시아는 유대인을 정복한 후 종교와 자치를 허용할 정도로 유연했다. ▷특히 외교정책은 매우 현실주의적이다. 2015년 오바마 정부 시절 미국과의 핵합의도, 2001년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지지도 이런 현실주의적 접근이 아니면 이해하기 어렵다. 미국 포린어페어스지는 이란이 국가 안보에 관해서는 한 몸처럼 움직이며, 의사결정은 냉철한 계산을 토대로 일관성과 안정성을 유지한다고 평가했다. 세계 군사력 1위의 미국, 더구나 트럼프라는 예측 불가능한 상대에게 맞서 ‘비례적 대응’을 호언장담한 이란의 ‘반격 퍼포먼스’는 명분과 자존심, 현실을 다층적으로 배합할 수밖에 없었던 고민의 산물인 것 같다. 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 2020-01-10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