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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진영 논설위원입니다.

ecolee@donga.com

취재분야

2026-02-22~2026-03-24
칼럼100%
  • 北 “월북자發 코로나”[횡설수설/이진영]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5일 “우리 경내에 악성 비루스가 유입되었다고 볼 수 있는 위험한 사태가 발생했다”며 ‘최대비상체제’ 전환을 선언했다. 26일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개성을 통해 월북한 탈북민을 대상으로 “여러 차례 검사한 결과 악성 비루스 감염으로 의진할 수 있는 석연치 않은 결과가 나왔다”는 것이다. 북한이 코로나19 유입 가능성을 공식 확인한 것은 처음이다. 개성은 봉쇄됐다. ▷북한의 코로나19 의심환자 1호는 의외의 인물이다. 북한은 1월 22일 일찌감치 국경을 폐쇄했지만 중국과는 왕래가 이어져 왔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북한에서 감염 위험이 있어 격리 중인 사람은 610명인데 모두 신의주-중국 단둥 국경 노동자들이다. 그런데 1호 환자는 중국에서 유입된 게 아니라 남한에서 넘어갔다는 탈북민이다. 국방부에 따르면 그는 2017년 귀순한 20대 남성 김모 씨. 지난달 탈북민 여성을 성폭행한 혐의로 조사를 받았다. 강화군 교동도 해상을 통해 월북한 것으로 추정된다. ▷WHO에 따르면 북한에선 이달 9일까지 1117명이 코로나 검사를 받아 모두 음성으로 나왔다. 러시아 등이 지원한 진단키트로 검사가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치료 역량을 갖추고 있을지는 의문이다. 북한 인구 1만 명당 의사 수는 35.1명으로 남한(23명)보다 많지만 질적인 수준은 극도로 열악하다. 음압병동이나 격리치료시설은커녕 기초적인 의약품과 의료소모품도 태부족이다. 2018년엔 결핵으로 2만 명이 사망했다. ▷하지만 감염병엔 이골이 났는지 주민들은 코로나19에도 무덤덤한 편이다. 1989년엔 홍역이 창궐했고 1994년 이후로는 콜레라 장티푸스 발진티푸스가, 2000년 이후로는 사스 에볼라 등이 훑고 지나갔다. 사망자 10명 중 3명이 감염병 때문이라는 통계도 있다. 백신은 없어도 ‘심리적 면역’은 생겼다. 오히려 방역을 위해 국경을 걸어 잠그고 주민 이동을 통제한 데 대한 불만이 크다고 한다. ▷그동안 북한 내 코로나19 사태가 심각하며 사망자가 270명으로 추정된다는 보도도 나왔다. 그럼에도 코로나 발생 사실을 극구 부인해 온 북한이 돌연 ‘남쪽에서 온 의심환자’를 공개하면서 “치명적이고 파괴적인 재앙을 초래할 수 있다”며 난리다. 코로나 유입의 책임을 남측에 돌리면서 당당하게 손 내밀 수 있게 된 것이다. 올 3월 문재인 대통령에게 보낸 “남녘 동포의 소중한 건강이 지켜지길 빌겠다”는 친서는 밑밥이었을까. 봉쇄와 총살로 버티다 느닷없이 ‘월북 코로나 의심환자’를 들고 나온 북한의 속셈이 무엇인지는 곧 드러날 것이다.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 2020-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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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北이 코로나 백신 1위?[횡설수설/이진영]

    북한이 코로나19 백신 개발 성공을 앞두고 있다고 주장했다. 북한 국가과학기술위원회는 홈페이지에 ‘신형 코로나비루스 후보 왁찐을 연구 개발’이란 글을 올려 자체 개발한 백신 후보 물질로 이달 초 임상시험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확진자가 한 명도 없다는 북한에서, 백신 개발의 최종 단계로 세계 최고의 제약회사 3곳만 공식 승인을 받은 3상 임상시험을 ‘논의 중’이라는 놀라운 주장이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현재 150여 개 백신 후보물질 가운데 임상 3상 단계에 들어간 것은 3종. 올 5월 가장 먼저 3상을 개시한 영국 옥스퍼드대와 제약회사 아스트라제네카는 성인 1077명을 대상으로 한 1단계 임상시험 결과 참가자 전원의 몸에서 중화항체와 T세포가 형성됐다고 20일 발표했다. 항체는 바이러스가 세포에 들어오는 것을 막고, T세포는 감염된 세포를 확인해 파괴한다. 미국 모더나 테라퓨틱스와 중국 칸시노바이오로직스(시노백)도 이달 중 3상에 들어가 ‘코로나19 백신 1호’ 자리를 놓고 경쟁을 벌인다. ▷3상은 백신 개발의 최대 난관이다. 우선 코로나19가 대유행하는 지역 거주자를 대상으로 시험해야 한다. 중국 시노백은 환자가 폭증하는 브라질에서 3차 임상시험을 한다. 옥스퍼드대도 영국 브라질 남아프리카에서 3상을 진행한다. 3상 단계가 되면 약 3만 명의 참가자가 필요한데 자원자는 복수의 임상시험에 참가할 수 없다는 규정이 있어 구인 경쟁도 치열하다. ▷후발 주자인 중국은 특유의 ‘인해전술’과 권위주의 체제의 낮은 인권 감수성을 이용해 속도를 내고 있다. 중국 정부는 시노백이 200만 명 규모인 인민해방군을 대상으로 3상 시험을 할 수 있도록 승인했다. 중국의 시노팜도 3상 시험에 앞서 정부 허가 없이 “1000명 넘는 직원이 자발적으로 맞았는데 효과가 있었다”고 자랑하다 윤리규범 위반이라는 비난을 샀다. 최근엔 국영 석유회사 페트로차이나 직원들에게 접종을 권유해 구설에 올랐다. ▷북한은 감염병 관리 역량이 떨어져 전체 사망자 중 감염성 질환 사망 비율이 31%(한국은 5.6%)에 달한다(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2018년 대한감염학회 세미나). 의사 출신 탈북민에 따르면 전기가 부족해 해외에서 백신을 지원해도 보관할 수 없다. 심지어 ABO 혈액형 검사에서도 오류가 발생한다. 아스트라제네카가 임상 1단계에만 쓴 돈이 12억 달러(약 1조4000억 원)다. 2018년 국내총생산이 29조 원 남짓한 북한의 백신 개발 발표는 김정은의 인민 보호 노력을 선전하려는 무리수가 빚어낸 초현실적 주장이 아닐까. 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 2020-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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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의 질문[횡설수설/이진영]

    여배우 데미 무어를 인터뷰하던 영국 기자가 마지막에 이런 질문을 던졌다. “혹시 성형수술 했나요?” “이런 질문을 받으리라곤 상상도 못 했어요.” “왜 안 되나요?” “내가 샤워할 때 엉덩이를 뒤에서부터 닦는지 앞에서 뒤로 닦는지 그것까지 말해야 하나요?” “당신이 말하고 싶다면….” 데미 무어의 ‘바닥’을 드러낸 문답으로 알려진 이야기다. ▷이탈리아의 전설적 여기자 오리아나 팔라치도 도발적 질문으로 ‘악명’ 높다. 미국 국무장관을 지낸 헨리 키신저가 “내 일생의 최대 실수는 그와의 인터뷰”라고 할 정도였다. 이란의 혁명 지도자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에겐 이렇게 돌직구를 날렸다. “차도르를 뒤집어쓰고 수영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1980년 중국 최고 권력자가 된 덩샤오핑에게 던진 첫 질문은 “여기 오는 길에 톈안먼에 걸린 마오쩌둥 초상화를 봤다. 영원히 걸어둘 건가”였다. “마오의 공이 과보다 크다”는 당의 공식 입장이 덩의 답변을 통해 세상에 알려진 순간이었다. ▷기자의 질문에 답하는 것은 권력자의 의무다. 국민을 대신해 질문한다고 여기기 때문에 불편한 질문도 감수한다.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은 1998년 토니 블레어 당시 영국 총리와 공동 기자회견을 했는데 기자들의 질문이 회담 결과보다는 ‘섹스 스캔들’에 집중됐다. “르윈스키와 관계가 없다, 아니 없었다고 하는 건가.” “제니퍼 플라워스와의 관계에 대한 진술을 번복한 게 맞나.” 도널드 트럼프의 전임자인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2016년 마지막 순방길에 오르기 전 기자회견을 자청했다. 해외 정상과의 기자회견에서 질문들이 미국 현안에 몰리는 사태를 막기 위해서였다. 첫 질문은 “세계 지도자들에게 트럼프에 대해 뭐라고 말할 건가”였고 답은 이랬다. “세계의 질서와 번영을 유지하기 위한 거대한 연속성은 (누가 대통령이 돼도) 이어질 것이다.” ▷질문에 대한 답변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질문을 받는 태도다. 어느 대목에서 웃고 성내는지, 난처한 질문에 어떻게 대처하는지로 사람의 그릇과 됨됨이를 알 수 있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박원순 전 서울시장 빈소 밖에서 성추문 의혹에 당이 어떻게 대응할지를 묻자 버럭 했다. “그런 걸 이 자리에서 얘기라고 하느냐. … (기자를 쳐다보며) ××자식.” 불쾌한 생각이 들었다면 답하지 않거나, “그 답변을 하기에 부적절한 장소”라고 했으면 넘어갔을 일이다. 소통의 달인 로널드 레이건 전 미 대통령은 임기 초반 “어떻게 배우가 대통령이 될 수 있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응수했다. “어떻게 대통령이 배우가 되지 않을 수 있습니까.” 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 2020-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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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젠더특보’도 못 막은 비극[횡설수설/이진영]

    노동자 해방을 위해 ‘자본론’을 쓴 카를 마르크스의 집에는 평생 월급 한번 못 받고 착취당한 가정부가 있었다. 저서 ‘에밀’로 근대교육의 문을 연 장자크 루소는 자녀를 모두 보육원에 보낸 아버지였다.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태어났다’는 독립선언문을 남긴 토머스 제퍼슨 미국 3대 대통령은 80명의 노예를 거느렸다. 지식인들의 위선은 인간이 모순 덩어리의 나약한 존재임을 깨닫게 한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영결식이 진행된 13일 그를 성추행 혐의로 고소한 측이 기자회견에서 밝힌 내용은 충격적이다. 박 전 시장이 업무 시간뿐 아니라 퇴근 후에도 고소인을 괴롭혔으며, 권력과 위력에 의한 성적 괴롭힘이 무려 4년간 지속됐다는 주장이다. 반론을 들을 수 없게 된 상태에서 단정할 수는 없지만 박 전 시장을 ‘페미니스트 시장’으로 기억하는 이들에겐 충격이란 표현으로도 다 담기 힘든 수준이다. ▷박 전 시장은 2011년 서울시장이 된 후 ‘여성안심특별시 정책’으로 2015년 유엔 공공행정상 대상을 받았다. 2017년엔 “직원 한 명 한 명의 성인지 감수성을 높이겠다”며 서울시 전 부서에 젠더담당관 367명을 지정하고 ‘젠더사무관’(5급)직도 신설했다. 지난해 1월엔 여성가족실 산하에 3개 팀으로 구성된 여성권익담당관(4급) 조직을 만들고 시장실 직속 ‘젠더 특별보좌관’(3급)까지 두었다. 성희롱 예방교육에선 “부지불식간에 나오는 언사나 행동이 상대에게 큰 고통을 줄 수 있다”며 주의를 당부했다. ▷하지만 조직만 불린들 무슨 소용이 있었을까. 고소인은 그동안 서울시 내부에 도움을 요청했으나 “시장은 그럴 사람이 아니다” “비서의 업무는 시장의 심기 보좌”라는 답만 들었다고 한다. 서울시 고충심의위원회가 2018년과 2019년 두 해에 처리한 시청 조직(사업소 포함) 내 성폭력 사건은 무려 13건에 달한다. 올 4월 시장 비서실 남자 직원이 사내 성폭행 혐의로 입건됐을 때가 이번 비극을 막을 마지막 기회였을지 모른다. ▷미투운동이 거세게 일던 시기에, 더구나 정기적으로 성희롱 예방교육을 하고 젠더특보까지 만든 서울시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었는지 낱낱이 밝혀져야 한다. 서울시 성폭력 사건 매뉴얼에 따라 가해자가 임원급일 경우 지체 없이 조사해야 하는데 왜 고소인의 호소를 무시했는지, ‘가해자와의 분리’ 원칙에 따라 고소인의 부서 변경 요청을 받아들여야 하는데 묵살한 것이 사실인지 밝혀내야 한다. 이를 통해 고소인의 바람대로 ‘일상의 온전한 회복’을 돕는다고 박 전 시장이 시민운동의 대부로서 이뤄낸 업적이 사라지는 게 아니다. 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 2020-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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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대난망 코로나 종식[횡설수설/이진영]

    코로나19 바이러스의 확산을 종식시킬 두 가지 방법. 첫째 백신과 치료제가 나오면 끝난다. 문제는 개발되려면 한참 기다려야 한다는 것. 둘째 집단면역이다. 인구의 60∼80%가 코로나에 걸려 항체가 생기면 확산이 멈춘다. 하지만 한국인의 항체 보유율은 소수점 아래로 추정된다. 집단면역이 가능한 60% 선은 턱없이 멀었다. ▷방역당국이 최근 일반인 305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코로나19 바이러스를 중화(무력화)할 수 있는 중화항체를 지닌 사람은 단 1명(0.03%)뿐인 것으로 나타났다. 인구 대비 0.03%인 1만5500명이 실제로 감염된 후 완치돼 면역이 생겼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물론 이번 조사는 표본이 적고 누적 확진자의 52%가 나온 대구 등이 빠져 있어 확대해석은 경계해야 한다. 그럼에도 한국의 항체율이 다른 나라에 비해 매우 낮다는 데는 전문가들 의견이 일치한다. 주요 도시의 항체율은 미국 뉴욕이 21.2%, 런던 17%, 발원지인 중국 우한이 3.2%, 도쿄 0.1%다. ▷집단면역으로 방역과 경제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던 스웨덴 스톡홀름의 항체율은 7.3%다. 스웨덴에선 이미 5500명이 사망했다. 인구 100만 명당 사망자 수(545명)가 노르웨이(46명)의 12배, 최다 사망국인 미국(402명)보다도 36% 많다. ▷우리 사회의 항체율이 낮은 건 그만큼 예방을 잘해 감염자 수가 적었다는 뜻이다. 하지만 뒤집어 얘기하면 면역을 가진 사람들이 적어 대유행에는 그만큼 취약하다는 뜻도 된다. 항체율이 높아진다고 안심할 일도 아니다. 메르스는 완치 후 면역력이 1년은 유지된다. 그러나 중국 충칭의대 연구진의 조사 결과 코로나19 감염자의 90%는 면역력이 지속되는 기간이 2∼3개월에 불과했다. 특히 무증상 감염자의 면역력 지속 기간이 더 짧았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올 4월 “코로나19에 걸려 항체를 가졌다고 다시 감염되지 않는다는 증거가 아직까진 없다”고 밝혔다. ▷WHO는 10일 “우리가 이 바이러스를 뿌리 뽑고 박멸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며 신체적 거리 두기, 마스크 착용하기를 지켜야 최악의 상황을 피할 수 있다고 발표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마침내 11일 처음으로 공식 일정에 마스크를 쓴 채 나타났다. 미국 내 확진자가 330만 명을 넘어선 상황에서 “마스크 착용은 훌륭한 일이다. 거기에 반대한 적은 결코 없었지만 (착용할) 때와 장소가 있다고 믿는다”는 그의 변명은 듣기 민망하다. 확실한 백신이 나오기 전까진 마스크와 거리 두기로 스스로를 지키는 것 외엔 마땅한 방법이 없다는 암울한 전망이다.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 2020-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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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부三代[횡설수설]

    부불삼대(富不三代)라 했다. 부모가 부를 이루면 자식이 탕진하다 손자 세대 때 망하기 쉽다. 서양에도 ‘셔츠 바람으로 시작했다 3대 만에 도로 셔츠 바람으로(shirtsleeves to shirtsleeves in three generations)’라는 표현이 있다. 그런데 부자 3대 가는 것보다 어려운 게 기부의 가풍(家風)을 3대째 이어가는 일이다. ▷사법연수원장을 지낸 김재철 변호사(81)가 6일 육종(育種) 연구에 써 달라며 고려대에 30억 원을 기부했다. 그동안 그의 부친과 자녀가 기부한 것까지 합치면 3대에 걸친 네 번째 기부다. 김 변호사는 “평소 채식을 즐기는데 우리가 먹는 채소와 과일 대부분이 일본 종자라 안타까웠다”며 ‘종자 극일(克日)’을 당부했다. 향후 20억 원 추가 기부도 약속했다. 고려대는 김 변호사의 호를 딴 ‘오정육종연구소’를 설립하기로 했다. ▷김 변호사의 아버지 만송 김완섭의 기부도 ‘극일’과 관계가 있다. 일제강점기 때 변호사로 활동하다 광복 후 대검 검사를 지낸 만송은 수임료를 모아 일본으로 반출될 위기의 고서를 사들였고, 수임료로 감당이 안 되면 간송 전형필에게 사라고 연락해 국외 유출을 막았다고 한다. 그는 늦깎이 대학원생이 돼 77세에 고려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인연으로 이 대학에 고서를 기증했다. 그의 사후 김 변호사와 그의 딸이며 만송의 손녀인 김주현 여사가 잇달아 보물급을 포함한 고서 현대미술품 공예품을 대거 기증했다. 고려대 대학원 내 ‘만송문고’엔 만송이 평생 수집한 고서 1만9071권이 소장돼 있다. ▷대기업의 자선재단을 제외하면 3대 기부는 드물다. 한신대 설립자인 고 김대현 장로 가족이 4대에 걸쳐 한신대에 장학금을 기부하고 있다. 우한곤 TBH글로벌 전 대표(78)는 아들딸, 손자, 며느리와 45년간 저소득계층 아동을 위해 약 13억 원을 기부한 공로로 지난해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았다. 우 전 대표는 중학교 졸업 후 부산 국제시장의 메리야스 점포 점원으로 시작해 부를 일궜다. 백원기 문화유산 한옥 대표(62)네 3대 5명은 지난해 1억 원 이상 고액기부자 모임인 ‘아너소사이어티’ 회원이 됐고, 강원 춘천의 김면수 인성병원 이사장을 비롯한 ‘의사 3대’가 2017년 나란히 아너소사이어티에 가입했다. ▷한국의 기부 문화는 개인(30%)보다 기업(70%) 중심이며 모금액의 70%가 연말연시에 이뤄진다. 꾸준하고 정기적인 기부 문화가 척박한 셈이다. 부는 3대를 유지하기 어렵지만 나누면 오래간다. 2016년 고려대박물관 오정 컬렉션전의 제목(遺芳百世·유방백세)처럼 아름다운 향기는 영원히 남는 법이다. 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 2020-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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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백크림 퇴출[횡설수설/이진영]

    ‘키 크고, 예쁘고, 대졸이지만 전업주부 선호하는 여성, 그리고 피부가 하얄 것.’ 인도의 사업가가 신문에 며느릿감을 구하는 광고를 냈다. 하얀 얼굴을 조건으로 내건 이유는 이렇다. “인도에선 가무잡잡한 며느리를 얻으면 사람들이 뒤에서 수군대거나 앞에서 대놓고 묻는다.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느냐고.” ▷인도 사람들의 흰 피부 선호는 200년 가까이 영국의 식민 통치를 받은 것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당시 영국 통치자들이 현지인을 채용할 때 피부색이 밝은 인도인을 선호한 이래로 흰 피부가 사회적 성공의 상징이 된 것. 중매 사이트 분류 기준엔 교육수준, 소속 카스트와 함께 피부 톤이 포함된다. 2014년 인도계 미국인이 처음으로 미스 아메리카에 선발되자 “얼굴이 까무잡잡해 미스 인도는 못 됐을 것”이라는 말이 나왔다. ▷인간의 다양한 피부색은 진화의 산물로 보편적인 피부색은 검정이었다. 아프리카에서 시작된 인류는 털이 없는 상태에서 강한 자외선으로부터 몸을 보호하려다 보니 멜라닌을 다량 합성해 피부가 검었다. 동북아와 북유럽 등으로 퍼져 나간 사람들은 피부색이 점점 하얗게 변하는데, 고위도 지역에선 자외선 조사량이 적어 비타민D를 합성할 수 없으니 탈색 유전자가 작동한 것이다. 흰 피부는 일조량이 부족한 지역에서 살아남기 위한 궁여지책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사회문화적으로 피부색은 ‘권력’과 직결된다. 스페인 식민지였던 남미에선 백색 유럽 혈통이 상위층, 맨 아래가 피부색이 짙은 토착민, 그 사이에 혼혈이 자리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BTS 멤버들의 뽀얀 얼굴을 두고 일부 서양 누리꾼들은 “화이트워싱(whitewashing)하는 동양인들”이라고 비아냥댄다. 백인 흉내 내지 말라는 뜻으로 근저엔 백인 피부가 우월하다는 편견이 깔려 있다. 산업혁명이 아프리카에서 시작됐더라면 미의 기준이 달라졌을까. ▷흑인 조지 플로이드 사망을 계기로 시작된 인종차별(racism) 철폐 운동이 검은 피부 차별(colorism) 반대로 이어지면서 미백 화장품도 청산 대상에 올랐다. 세계 최대 화장품 회사인 프랑스의 로레알은 앞으로 제품 이름과 설명에서 ‘미백(whitening)’이라는 표현을 빼기로 했다. 유럽의 소비재 기업 유니레버도 미백크림 ‘페어 앤드 러블리(fair and lovely·밝고 사랑스러운)’의 이름을 바꾸기로 했다. 하지만 피부색에 따라 사는 형편이 달라지는 현실이 바뀌지 않는다면 ‘피부색은 껍데기일 뿐’이라는 정치적 각성만으로 미백시장을 수십조 달러 규모로 키운 흰 피부에 대한 오랜 욕망을 바꾸긴 쉽지 않을 것이다.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 2020-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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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햄버거병[횡설수설/이진영]

    4년 전 경기 평택시 맥도날드 매장에서 해피밀 세트를 먹은 A 양(당시 4세). 2∼3시간 후 배가 아프기 시작하더니 3일 후엔 설사에 피가 섞여 나왔다. 결국 신장이 90% 손상돼 지금도 하루 10시간씩 복막 투석을 한다. 국내에 햄버거병이 알려지게 된 계기다. ▷햄버거병의 공식 병명은 용혈성요독증후군(HUS). 제대로 익히지 않은 쇠고기나 오염된 우유, 물, 채소를 먹고 장출혈성 대장균에 감염된 후 드물게 적혈구가 비정상적으로 파괴돼 발생하는 합병증이다. 손상된 적혈구가 신장의 여과 시스템에 찌꺼기처럼 끼어 신장 기능을 망가뜨린다. 장출혈성 대장균에 감염되면 대개는 일주일 정도 지나면 낫는다. 하지만 2∼7%는 HUS로 진행되며 HUS 환자의 절반은 신장 기능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는다. 환자의 약 5%는 평생 투석에 의존해 살아야 한다. 1982년 미국에서 덜 익힌 패티가 들어간 햄버거를 먹은 어린이 수십 명이 감염되면서 햄버거병으로 불리게 됐다. ▷햄버거병 환자 대부분이 5세 이하 어린이다. A 양의 발병 소식이 알려지자 “우리 아이도 햄버거를 먹고 같은 증세를 보였다”는 주장이 잇따랐다. 결국 2016년 2월∼2017년 5월 서울과 경기 지역에서 맥도날드 햄버거를 먹은 1∼4세 어린이 5명의 부모가 이듬해 한국맥도날드를 식품위생법 위반으로 고소했으나 증거 불충분으로 기소되진 않았다. ▷한동안 잊혀졌던 햄버거병 공포가 경기 안산시 A유치원에서 집단 식중독 사고가 터지고 햄버거병 의심 환자 15명이 나오면서 다시 확산되고 있다. 4명은 신장 투석 중이다. 부모들은 “아이를 유치원에 보냈을 뿐인데 혈변을 보고 투석을 한다” “어떤 음식을 먹였기에 아이 몸에 투석까지 하느냐”며 분노하고 있다. 보건당국은 단체 급식에서 감염된 것으로 추정하지만 감염원을 찾기는 쉽지 않다. 식품위생법에 따라 단체 급식을 하는 곳은 매회 1인분을 144시간(6일) 동안 영하 18도 이하로 보관해야 하는데 급식 메뉴 중 일부가 제대로 보관돼 있지 않았다. ▷장출혈성 대장균은 열에 약하므로 제대로 익혀 먹으면 된다. 특히 햄버거 패티는 다지는 과정에서 고기에 균이 묻을 가능성이 크므로 패티가 덜 익는 ‘언더쿡’ 현상이 발생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무증상 상태에서도 보균자의 분변을 통해 전파가 가능하고, 어린이는 성인에 비해 전파력이 높다. 배가 아프고 설사를 하는 증상이 나타나면 즉시 등원을 멈추고 유치원에 알려야 한다. A유치원의 경우 12일 첫 식중독 환자가 발생했다는데 19일에야 폐쇄됐다니 부실 대처가 피해를 키운 것 같아 안타까울 따름이다.  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 2020-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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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영남 代作 무죄[횡설수설/이진영]

    로마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벽화 ‘천지창조’. 구약성서 이야기를 41.2×13.2m 크기로 그려낸 세계 최대의 벽화는 미켈란젤로가 천장에 매달려 눈과 목과 허리를 상해가며 완성한 걸작으로 알려져 왔다. 하지만 벽화의 묵은 때를 벗겨내는 과정에서 여러 명이 협업해 그린 사실이 확인됐다. ▷르네상스 시대 회화에서 ‘원작’은 반드시 ‘친작(親作)’을 뜻하진 않는다. 미켈란젤로 같은 대가들은 공방을 차려놓고 교회나 왕정에서 그림을 주문받아 밑그림을 그린 뒤 조수 여럿과 함께 색칠해 완성했다. 동료 작가에게 ‘외주’를 주는 화가도 있었다. 루벤스는 ‘결박된 프로메테우스’를 그리면서 간을 빼먹는 독수리를 동물 화가에게 맡겼다. 렘브란트의 자화상 90점 가운데 절반은 스승의 자화상을 보고 제자들이 그린 것이다. ‘원작=친작’이라는 공식이 통용된 건 18세기 말 시민혁명 이후다. 그림의 소비층이 시민계급으로 바뀌면서 회화는 대형 공방 프로젝트가 아닌 예술가 1인의 작업이 됐다. ▷20세기 현대미술에서 ‘원작=친작’ 공식은 다시 깨진다. 이미지보다 개념이 중요해지면서 아이디어와 물리적 실행이 분리된 것. 데이미언 허스트는 상어를 포름알데히드로 채운 수족관에 넣은 작품을 약 120억 원에 팔았는데, 상어가 썩자 새로운 상어로 대체해줬다. 이를 원작과 동일한 작품으로 볼 수 있느냐는 논란은 있었지만 그가 직접 상어를 설치한 게 아니니 그의 작품이 아니라는 문제 제기는 없었다. 현대미술에서는 조수가 100% 대작한 경우까지도 원작으로 봐준다. ▷화가이자 가수 조영남 씨(75)에 대한 25일 대법원 판결은 현대미술의 작품 개념에 부합한다. 조 씨는 화투 아이디어를 주고 조수에게 그려오게 한 뒤 가벼운 덧칠로 완성해 자기 작품으로 팔아 사기죄로 기소됐다. 법원은 ‘조수는 조 씨의 아이디어를 작품으로 구현하는 기술 보조일 뿐’이라고 판단했다. 원작이 반드시 직접 그려야만 하는 것은 아니며, 구매자도 친작으로 오해해 샀다고 보기 힘들다는 취지다. 미학자 진중권 씨는 친작만을 원작이라 여기는 것은 ‘미학적 러다이트 운동’이라고 했다. 현대미술의 흐름을 되돌릴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현대미술의 풍부한 면모를 잃게 된다는 뜻이다. ▷현대미술에 문외한인 사람들은 남에게 아이디어만 주고 그리게 한 후 조금 손봐서 내 이름으로 팔아도 된다는 논리에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조수의 도움을 받는다는 사실을 미리 알렸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무엇보다 현대미술에서 원작의 정의를 미술계가 아닌 법정에서 내리게 돼 씁쓸하다.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 2020-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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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까발려진 외교 밀담[횡설수설/이진영]

    “영국처럼 요리를 못하는 나라는 믿을 수 없다. 세상에서 가장 맛없는 핀란드 음식 다음이 영국이다.” 자크 시라크 전 프랑스 대통령은 재임 시절인 2005년 7월 러시아 및 독일 정상과 만나 이런 사담(私談)을 나눴다. 영국과는 이라크전 참전 문제로 껄끄럽던 때인데 마이크가 꺼진 줄 알고 속내를 드러낸 것이다. ▷위키리크스가 2011년 9월 미국 외교전문 25만여 건을 공개했을 때 특히 화제가 된 건 미 국무부가 여러 대사관 등에서 수집해 정리한 각국 지도자에 대한 평가였다. 김정일 당시 북한 국방위원장은 “무기력한 늙은이”, 시진핑 중국 국가부주석은 “리더십에 대해 지식인들이 한결같이 비관적으로 보는 인물”로 평가됐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에겐 ‘테플론(프라이팬) 메르켈’이라는 별칭을 붙였다. 한국 대통령에 대해선 “김영삼은 다혈질에 지식이 제한적” “노무현은 고졸이나 신념이 확고” “이명박은 인간관계에 서툴러 최측근만 신뢰”라고 평했다. ▷당시 공개된 정보 중엔 친중 반미를 외쳐온 김정일의 속마음을 읽게 해주는 내용도 있었다. 김정일이 2009년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에게 “중국을 믿지 않는다”고 했고 “미국이 싫어한다는 얘기를 듣고 아리랑 공연에서 미사일 발사 장면을 없앴다”고 말했다는 것. 이명박 대통령은 회고록에서 원자바오 당시 중국 총리와의 회담 공개로 논란을 빚었다. “북한은 젊은 사람(김정은)이 권력을 잡았다. 50∼60년은 더 집권할 텐데”라고 걱정하자 원 총리가 “역사의 이치가 그리 되겠나”라고 답했다는 것. 이는 ‘북한 붕괴론’과 맥이 닿은 발언이어서 파장이 컸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외국 정상과의 대화를 기록으로 남기지 않는다고 한다. 취임 직후 호주 총리와 통화하면서 “(난민을 수용하라는 요청에) 미래의 폭탄 테러범들을 받으란 말이냐”며 전화를 뚝 끊은 사실이 언론에 유출된 것이 계기였다. 2017년 독일에서의 푸틴과의 첫 만남 때도 속기사를 배석시키지 않아 동석한 국무장관이 대화 내용을 받아 적었다.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도 회고록을 쓰기 위해 트럼프를 보좌하며 꼼꼼하게 기록했나 보다. 대통령 퇴임 전에 고위급 외교 참모가, 국가기밀 유출로 형사처벌의 위험을 감수하고 외교 비사(秘史)를 폭로하는 건 이례적인 일이다. “있을 수 없는 외교 기밀 폭로”라는 비판도 있지만, 유독 트럼프 대통령 시절 이런 일이 자주 벌어진다는 점에서 트럼프의 과대망상 리더십이 자초한 일이란 평가도 있다. 영국 역사학자의 말대로 그의 회고록은 외교관들에겐 ‘악몽’이지만 역사가에겐 ‘꿈’의 사료가 될 듯하다. 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 2020-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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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증상 사망[횡설수설/이진영]

    코로나19 집단 감염이 발생한 방문판매업소를 지난달 30일 다녀온 80세 남성 A 씨. 자가 격리 중이던 3일과 11일 진단검사를 받았고, 2차 검사에서 확진 판정이 나와 다음 날 입원했다. 아무런 증상이 없었던 A 씨는 흉부 엑스레이 사진을 보고 놀랐다. 중증 폐렴으로 폐가 하얗게 변해 있었던 것. A 씨는 손쓸 새도 없이 15일 숨졌다. 확진자와 접촉한 지 16일 만이었다. ▷나이 든 사람들은 폐렴이 악화돼도 자각 증세가 없는 경우가 많다. 젊은이들은 폐렴에 걸리면 열과 기침이 나는데 이는 균을 없애기 위한 방어기제가 작동한 결과다. 나이 들면 방어기제가 약해 증상이 나타나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A 씨의 직접적인 사인이 폐렴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분명한 건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숙주 모르게 조용히 몸을 망가뜨려 사망에 이르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코로나19 방역이 어려운 이유는 무증상 환자가 많기 때문이다.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은 “많은 연구에서 (국내외) 무증상 감염자 비율을 40∼50%로 추정한다”고 했다. 젊은 층일수록 그 비율이 높다. 미국에서 양성 판정을 받은 재소자 3000여 명을 조사했더니 무증상자가 96%였다. 국내에서 감염 경로가 불분명한 ‘깜깜이’ 환자 비율이 10%를 넘어선 것도 무증상 전파 탓이다. 무증상 환자 B가 C를 감염시킨 후 자기도 모르는 사이 나으면 C가 깜깜이 환자가 된다. ▷증상은 없어도 이미 몸은 조용히 망가진 상태인 사람도 많다. 중국 우한과 일본 도쿄에서는 길을 가던 사람이 갑자기 쓰러져 검사했더니 양성으로 확인된 사례가 잇따랐다. 이달 초엔 서울 구로구에서 72세 남성이 갑자기 쓰러져 병원으로 이송된 후 확진 판정을 받았다. 미국 스크립스 리서치 추정 연구소의 연구팀이 3일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일본 크루즈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에 탑승했던 무증상 확진자 76명의 흉부를 촬영한 결과 54%의 폐가 손상된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증상이 없다고 신체에 손상이 없었다고 단정할 순 없다”고 결론 내렸다. 감염된 줄 모르고 살다 훗날 폐가 손상된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코로나19의 ‘스텔스 공격’을 방어하려면 진단검사의 그물망을 넓게 쳐서 무증상 감염자를 최대한 찾아내야 한다. 코로나19는 증상이 나타나기 직전에 전파력이 가장 높다. 고령자의 ‘소리 없는 건강 악화’를 막기 위해서는 자가 격리 중인 고령자들을 대상으로 흉부 촬영을 하는 등 좀더 적극적인 의료 행위가 필요하다. 국내 코로나19 평균 치명률은 2.3%지만 70대는 10.1%, 80세 이상은 25.8%다.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 2020-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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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차 대유행[횡설수설/이진영]

    코로나19 사태와 가장 유사한 역대 감염병 모델은 스페인독감이다. 둘 다 폐렴 증세를 보이고, 바이러스 재생산 지수(R값·환자 1명이 감염시키는 사람 수)도 스페인독감이 1.8, 코로나19가 2∼2.5로 비슷하다. 코로나19의 2차 유행을 일찍부터 예상했던 이유도 스페인독감이 한 차례 폭풍으로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인류 최대의 재앙이었던 스페인독감은 1918년 봄 유럽에서 시작해, 9∼11월 세계적인 2차 유행을 거쳐, 이듬해 초 3차 유행으로 끝났다. 사망자 수는 5000만∼1억 명으로 1차 세계대전 사망자 수의 2∼4배였다. 당시 조선도 인구의 38%(288만4000명)가 ‘서반아 감기’에 걸려 14만 명이 사망했다. 조선에서 첫 확진자가 나온 때는 9월, 스페인독감 2차 유행 시기였다. 전국적으로 절정에 달한 때는 10월이었는데 농촌에 사람이 없어 추수를 못 한 논이 절반 이상이었다고 한다. ▷북반구에서 겨울에 시작된 코로나19는 여름이 되면 남반구에서 유행하다 가을에 북반구에서 재유행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그런데 봉쇄를 완화한 곳곳에서 환자가 속출하면서 2차 유행이 앞당겨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코로나19는 여름휴가를 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56일간 환자가 한 명도 나오지 않던 중국 베이징은 최근 5일새 106명이 쏟아졌다. 인도는 한 달 전 300∼400명이던 일일 신규 환자가 2000여 명으로 폭증했다. 미국에선 22개 주에서 환자가 증가세로 돌아섰는데 윌리엄 셰프너 밴더빌트대 교수는 “2차 유행이 시작됐다”고 단언했다. 국내에선 생활방역으로 전환한 지난달 6일 이후 수도권 환자 수가 0명에서 1069명으로 급증했다. 생활방역 전후로 R값이 0.45에서 1.79로 뛰어 다음 달 2차 유행이 온다는 예측도 나왔다. ▷스페인독감처럼 코로나19도 2차 유행이 더 혹독할 것 같다. 여름에 온다면 여름철 온열질환과 증상이 비슷해서, 가을에 오면 독감과 발병 시기가 겹쳐 환자 선별이 어려워 제때 진료받기 어렵고 의료 인프라에 타격을 줄 수 있다. 세계적으로 810만 명이 감염됐는데도 항체형성률이 여전히 낮다는 점도 2차 유행의 위험성을 높인다. ▷2차 대유행의 경고음에도 많은 나라가 경제 때문에 2차 봉쇄 카드를 꺼내지 못하고 있다. 스페인독감 때는 한 국가 내에서도 치명률이 달랐는데 지방정부가 일찌감치 개입해 위험시설을 폐쇄하는 등 과감한 거리 두기 정책을 시행한 곳이 피해가 적었다. 그때와는 100년의 시차가 있지만 백신과 치료제가 나오기 전까지는 지금도 거리 두기 이상의 묘수를 떠올리기 어렵다. 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 2020-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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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QR코드 방역[횡설수설/이진영]

    ‘21세 남자. 7923번 환자와 접촉. 오전 3시 59분∼4시 11분 서울대 입구 세븐일레븐 이용. 근처 이자카야에서 2시간 동안 음주…오후 7시 12분 성신여대 근처 영화관에서 ‘인비저블맨’ 관람. 맨 끝줄에서 마스크 안 쓴 채로.’ 정부가 공개한 코로나19 8074번 환자의 동선 정보다. 우리에겐 일상이지만 외신은 “한국에선 이런 것까지 공개한다”며 그 구체성에 놀라곤 한다. ▷‘K방역’의 핵심인 동선 추적 역량의 배경엔 스마트폰, 신용카드, 폐쇄회로(CC)TV라는 3대 디지털 인프라가 있다. 한국의 스마트폰 보급률은 95%로 세계 1위, 신용카드 이용률도 세계 최고 수준이며, 인구 3.7명당 CCTV가 1대꼴인 CCTV 대국이다. 코로나19 초기엔 역학조사관이 통신사와 카드 회사에 전화해 자료 받고 CCTV 영상을 돌려 보며 추적하는 데 24시간이 걸렸다. 그런데 올 4월 정부가 개발한 역학조사 지원 시스템을 활용하면 28개 기관과 실시간 정보 교환으로 1, 2시간이면 동선 추적이 끝난다. ▷이보다 더 빠른 방식이 QR코드 기술을 활용한 ‘전자출입명부’다. 특정 시설에 확진자가 발생하면 위험군을 추리는 데 20분이면 된다고 한다. 이제 유흥주점 헌팅포차 노래방 같은 위험 시설에 가려면 네이버 앱에서 개인정보를 입력한 후 일회용 QR코드를 발급받아 출입문에서 제시해야 한다. 관리자는 QR코드에 담긴 정보를 인식기로 읽어내 출입자 방문 기록을 만든다. 이태원 클럽 집단 감염 때 방명록이 엉터리로 기재돼 역학조사에 어려움을 겪은 후 도입한 제도다. ▷중국은 지방 도시별로 일찌감치 QR코드를 활용하고 있다. 개인 정보와 여행 이력, 확진자나 의심환자와의 접촉 여부, 발열이나 기침과 같은 증세를 입력하면 위험 정도에 따라 세 가지 색상의 QR코드를 발급받는다. 녹색 코드는 시내 어디든 자유롭게 다닐 수 있고, 노란색은 7일간, 빨간색은 14일간 격리 생활을 해야 한다. 지방 정부가 개인의 이동권까지 통제하는 것은 지나친 사생활 침해라는 지적이 나온다. ▷프라이버시는 소중하지만 안전을 위해 침해를 감수하기도 한다. 안전한 밤거리를 위해 도처의 CCTV를 감내하듯, 감염 의심자의 정보를 수집해 공개할 수 있도록 감염예방법을 만든 것도 2015년 메르스를 겪고 공감대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QR코드는 중국, 싱가포르, 러시아의 모스크바를 제외하면 도입한 나라가 없다. 정부든 기업이든 개개인의 동선을 꿰고 있는 기관이 이 정보를 선한 용도로만 활용하리라 기대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프라이버시를 양보해야 할 때가 있지만 그 결정은 신중해야 한다. 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 2020-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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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0년 위안부 운동의 성과, 윤미향 개인의 성과로 귀착 유감”[논설위원 파워 인터뷰]

    《여성 인권 운동의 세계적 모범 사례인 한국의 일본군 위안부 강제동원 피해자 인권 운동이 정의기억연대(정의연) 사태로 30년간 쌓아온 명성을 위협받고 있다. 이를 누구보다 아프게 지켜보는 이가 정의연의 전신인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원로들이다. 1990년 11월 정대협을 설립한 윤정옥(95) 이효재(96) 전 이화여대 명예교수의 제자로 1992년 정대협에 합류해 15년간 운동을 이끌어온 신혜수 유엔인권정책센터 이사장(70)이 어렵게 말문을 열었다. 유엔을 비롯한 국제무대에서 위안부 문제 해결을 호소하는 활동을 주도한 인물이다. 2004∼2007년 정대협 공동대표를 지냈고, 그 뒤를 이어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55)이 상임대표를 맡았다.》 “2007년까지 정부 지원 거의 없어” ―6일 숨진 서울 마포구 쉼터 소장은 어떤 분이었나. “할머니들을 모시며 식사 준비해 드리고, 방문자들 뒤치다꺼리하고, 할머니들과 목욕탕도 같이 가고, 할머니들끼리 갈등이 있을 때 중재하고… 몹시 피곤한 일을 16년간 해온 분이다. 이런 사태가 터져 얼마나 상실감이 들었을지 짐작도 못 하겠다.” ―이용수 할머니(92)가 제기한 정의연의 부실 회계와 후원금 횡령 의혹은 놀랍다. “정대협 설립 이후 내가 대표로 있을 때까지는 생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정의연과 달리 정대협은 37개 회원단체가 끌고 가는 구조였다. 분기별로 회원단체 대표자로 구성되는 대표자회의에서 예산 결산 보고를 하고, 실질적인 활동을 주도하는 실행위원회의 재무 담당이 매달 사무처에서 영수증이랑 통장을 대조했다. 내가 떠난 이후 상황은 모르겠다.” ―정의연 이사회 구조가 더 폐쇄적이라는 뜻인가. “정대협보다는 상대적으로 집중돼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조직 차원의 회계 부정은 없었을 것이다. 윤 의원도 운동을 해왔던 사람의 윤리상 단체의 돈을 유용했으리라 생각하기 어렵다. 검찰의 수사를 지켜보자.” ―정의연이 국세청 공시에 누락한 정부 보조금과 기부금이 37억 원이 넘는다. “시민단체가 정부의 지원을 많이 받는 것은 문제다. 1990년 정대협 출범 후 2007년까지 정부 지원금은 김대중 정부 시절 받은 2000만 원이 전부다. 정대협 운동의 성과로 1993년 위안부 생활안정지원법이 제정돼 피해자들은 지원금을 받았지만 단체는 지원 대상이 아니었다. 정대협 출신인 이미경 씨가 국회의원이 돼 2002년 위안부 생활안정지원 및 기념사업법으로 개정하면서 단체 지원이 가능해졌다. 하지만 이후로도 내가 있을 때까지 정부의 지원은 없었다.”윤미향 1인 독주 체제는 위험―정부 지원 없이 힘들지 않았나. “공동대표들이 무보수로 자기 돈 내가며 운동하던 시절이다. 단체들의 회비와 기업 후원금이 있었는데, 기업들은 일본에 수출을 해야 하니 위안부 운동 후원을 꺼렸다. 한번은 모피회사에서 지원하겠다고 했는데 윤정옥 선생님이 ‘여성 운동 하면서 모피회사 돈을 어떻게 받느냐’고 해 무산된 적도 있다.” ―대표가 무보수라고? 윤 의원은 딸 미국 유학비 출처에 대해 “급여를 받으면 저축하는 오랜 습관”이 있다고 해명했다. “윤 의원은 첫 상근대표였다. 그 이전 대표들은 모두 정대협 운동을 다른 직업이나 활동과 병행하는 비상근자들이었다. 윤 의원은 정대협 간사로 시작해 상근대표가 됐으니 받던 월급을 계속 받았던 것이다.” ―1세대 운동가들은 다른 경제활동 기반을 가진 상태에서 운동을 한 반면 윤 의원은 운동이 직업인, 생계형 운동가라는 차이가 있는 것 같다. 공교롭게도 윤 대표 시절 횡령 의혹이 터졌다. “정대협은 3인 공동대표 체제라 전횡이나 횡령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다. 윤 대표 때도 공동대표 체제였지만 그가 처음으로 풀타임 대표가 되면서 사실상 1인 체제로 운영된 면이 있다. 윤 대표가 전력투구하면서 운동을 많이 키운 공이 있다. 하지만 한 사람에게 힘이 집중되고 그 체제가 오래가는 것은 위험하다.”“여성단체, 정의연 비판할 수 있어야” ―할머니들과는 예전에도 갈등이 있었나. “할머니들의 성향이나 지적 능력의 스펙트럼이 넓어 모시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누구를 특별 대우한다는 인상을 주어서도 안 된다. 해외 인권 회의에 갈 때는 할머니 한 분이 동행해 증언을 했는데 누굴 모시고 가느냐도 민감한 문제였다. 정의연이 세계에 김복동센터 건립 운동을 하던데 특정인의 이름이 들어가는 사업은 분란의 소지가 있다.” ―이용수 할머니가 정대협 활동이 단체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비판했다. 피해자 중심주의 원칙이 훼손된 것 아닌가. “정대협은 태평양전쟁유족회와 달리 피해자 단체가 아니다. 할머니들에게 배상 받아주는 것만이 아니라 일본의 공식 사죄와 책임자 처벌 등 7가지 목적을 위해 운동하는 단체다. 유엔에서 원주민, 장애인, 개발로 인한 강제 퇴거자들을 위한 운동을 할 때 적용하는 피해자중심주의는 두 가지 원칙을 뜻한다. 피해자에게 충분한 정보를 주고 협의할 것, 그들을 참여시킬 것이다. 정의연이 피해자들과 소통하는 것은 중요하다. 문제는 참여의 정도인데, 운동단체로서 의사 결정자가 할머니일 수는 없다.” ―윤 의원이 사퇴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다. “윤 의원이 국회로 가는 것이 맞느냐, 그 질문부터 해야 한다. ‘위안부 운동=윤미향’으로 여겨지는 상황인데 그 운동의 성과를 모두 자기가 갖고 특정 정당의 ‘간택’을 받아 가는 것, 그것이 위안부 운동과 단체에 어떤 영향을 줄지 생각하지 않고 가는 게 옳은 일이었을까. 30년 운동의 성과가 개인의 성과로 귀착돼 유감이다.” ―한명숙 이미경 남인순 등 여성단체연합 출신들이 대거 국회에 진출한 것도 문제라는 지적이 있다. “시민운동을 하다 보면 정치에 참여해 법과 제도를 바꿔 내는 일이 필요하다. 문제는 가서 역할을 제대로 하는가, 그리고 남은 사람들이 단체의 고유한 입장과 목적을 유지하는가이다. 단체의 대표였던 사람들이 정치권에 진출해 있더라도 단체는 정치권과 긴장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 풍자 누드화 같은 성희롱 논란이 발생하면 여성단체는 규탄 성명을 낼 수 있어야 한다. 이번 위안부 논란도 나눔의 집만 비판할 게 아니라 정의연에도 잘못한 것이 있으면 책임지라고 해야 한다. 그걸 못 하는 것이 문제다. 한명숙 전 총리는 대학 선배로 함께 여성 운동 하던 사이였지만 그가 여성부 장관이던 시절 여성부가 잘못한 것이 있으면 나는 가서 데모했다.”“기록물 유네스코 등재, 왜 멈춰있나”―문재인 정부가 2015년 위안부 합의를 인정도 파기도 않으면서 위안부 문제 해결 작업이 멈춰서 있다. “위안부 문제 해결은 어려울 것이다. 특히 일본의 젊은 세대가 위안부 역사를 전혀 모르고 자란다는 점이 해결 전망을 어둡게 한다. 위안부 이슈를 계속 제기하려면 정부가 위안부 문제를 포함한 세계 전시 성폭력 문제에 관심을 갖고 국제적인 기여도 해야 한다. 일본의 젊은 세대가 이 역사를 배울 수 있도록 어떻게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할지도 고민해야 한다.” ―위안부 기록물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가 보류된 것도 아쉽다.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4년 10월 등재 사업의 책임을 맡아 달라는 제안을 받고 8개국 14개 단체와 영국 박물관의 참여를 끌어내 2744건의 기록물을 등재 신청했다. 등재 마감이 2016년 5월이었는데 2015년 12월 위안부 합의가 이뤄지면서 정부의 지원이 끊겼다. 사무실에서 쫓겨나는 등 어려운 여건에서 신청을 했는데 일본의 반대 공작으로 보류됐다. 등재됐다면 역사상 가장 규모가 큰 기록유산이 됐을 것이다. 정부가 올해는 어떤 식으로든 이 문제를 해결했으면 한다.” ―이용수 할머니가 “수요시위는 증오만 가르친다”고 했다. 수요시위의 민족주의적 성향이 위안부 문제 해결을 어렵게 한다는 비판도 있다. “수요시위에선 반일(反日) 구호도 나오지만 여성 인권에 관한 얘기가 훨씬 많다. 해외의 전시 성폭력 피해자 지원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수요시위를 보고 가장 부러워하는 것이 젊은 학생들이 많이 참여한다는 점이다. 수요시위는 인권과 평화의 가치를 배우는 교육 현장이다. 위안부 운동은 민족주의보다 여성주의로 가야 한다. 그래야 식민지 경험이 없는 나라들과도 연대할 수 있다. 수요시위의 운명은 정의연이 이 사태를 어떻게 마무리하느냐에 달려 있을 것이다. 새롭게 거듭나 운동을 다시 일으켜 세워야 한다.” 독일의 정치철학자 해나 아렌트는 인간의 활동을 먹고살기 위한 ‘노동(labor)’, 예술행위인 ‘작업(work)’, 정치 사회적인 ‘행동(action)’으로 구분했다. 윤정옥 이효재 신혜수로 대표되는 정대협 1세대에게 위안부 운동은 약자의 인권을 위한 ‘행동’이었다. 이 낭만의 시대를 이어받은 ‘윤미향 세대’에게 위안부 운동은 ‘행동’이었을까, ‘노동’이었을까. 그들에게 정대협 초기에 펴낸 위안부들의 증언집을 다시 펼쳐볼 것을 권한다.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던 식민지 시대 여성의 처참한 삶을 듣고 기록하며 정의로운 해법을 고민하던 젊은 운동가들을 만날 수 있다. 그곳에서 노동으로서 운동이 놓치고 있던 것, 정의연 사태를 해결할 실마리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신혜수 이사장은::―숙명여고, 이화여대 영문과―미국 럿거스대 사회학 박사―한일장신대 사회복지학과 교수―한국여성의전화 대표―한국여성단체연합 공동대표―정대협 공동대표―국가인권위원회 비상임위원―이화여대 국제대학원 초빙교수―현 유엔 경제사회문화적권리위원회 (UN CESCR) 위원―현 일본군 ‘위안부’ 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등재 국제연대위원회 사무단장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 2020-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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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로벌 엔데믹[횡설수설/이진영]

    코로나19로 휴관했던 국립중앙박물관이 최근 재개관하면서 선보인 전시가 ‘조선, 역병에 맞서다’이다. 가장 눈길을 끄는 작품은 1774년(영조 50년) 특별 과거시험 무과 합격자들의 초상화 3점인데 다들 천연두를 앓아 얽은 자국투성이다. 그해 합격자 18명 중 마맛자국을 지닌 이가 3명이었다니 확진자 비율이 무려 16.7%. 고대 이집트 미라에도 흔적을 남긴 천연두는 가장 오래된 역병이자 지구상에서 완전히 사라진 유일한 감염병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1980년 천연두의 박멸을 보고했다. 하지만 다른 역병들은 좀비처럼 죽는 법이 없다. 특정 지역에서 발발(outbreak)해 유행(epidemic)하다 여러 대륙으로 확산돼 대유행(pandemic)하거나, 끝난 듯하다가도 어느 지역에 토착화해 출몰(endemic)하다가 다시 대유행하기도 한다. 장티푸스 말라리아 지카 등이 대표적인 풍토병, 즉 엔데믹이다. 엔데믹은 좀처럼 벗어나기 힘든 고질병을 뜻하기도 한다. ▷중국에서 발발한 코로나19도 팬데믹을 지나 결국 엔데믹의 길을 갈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이 나왔다. 마이클 라이언 WHO 사무차장은 13일 “코로나19는 사라지지 않고 새로운 엔데믹 바이러스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100종이 넘는 백신이 개발 중이지만 “백신이 나와도 박멸할 순 없다”며 홍역을 예로 들었다. 백신 개발로 발병률이 줄었다고는 하지만 2018년 한 해에 홍역 사망자가 14만 명이다. 백신이 개발돼도 코로나19 확산을 통제하기까지는 5년이 걸릴 수 있다는 비관론도 있다. ▷코로나19 장기화 전망에 따라 전면 봉쇄보다는 지속 가능한 방역을 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스웨덴의 ‘집단 면역’ 모델은 느슨한 봉쇄로 인구의 60%가 감염돼 집단 면역이 형성되면 백신 없이도 경제적인 무리 없이 감염병을 이겨낼 수 있다는 계산에서 비롯됐다. 하지만 치명률이 10%를 넘어 이미 3000명이 숨졌는데도 항체 보유자 비율은 면역률이 높은 편인 스톡홀름도 겨우 30%다. 고령자나 기저질환자 비율이 높은 사회에서는 특히 더 위험한 모델이다. ▷조선 방역의 핵심은 ‘청결한 환경’과 ‘환자를 상대할 때 등지도록 할 것’, 다시 말해 ‘거리 두기’였다. 지금도 가장 유효한 방역 대책이다. 엔데믹이 무서운 건 변종을 통해 우리 일상에 남아 있다 방심의 기회를 노리기 때문이다. 홍역처럼 국내에서 사라져도 해외에서 들어오는 사람들로 다시 유행할 수 있다. 항생제와 백신으로도 역병은 정복되지 않았다. 바이러스는 전쟁의 대상이 아니라 적응해야 할 환경인지 모른다. 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 2020-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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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6년 만의 “나는 무죄다”[횡설수설/이진영]

    ‘강제 키스 혀 절단 사건.’ 법원행정처가 법원 100년사를 정리해 1995년 출간한 ‘법원사’에 나오는 사건의 주인공 최말자 씨(74)가 6일 부산지방법원에 정당방위를 인정해 달라며 재심을 청구했다. 그는 56년 전인 1964년 5월 6일 집 앞을 서성이던 낯선 남자가 성폭행을 시도하자 그의 혀를 깨물어 1.5cm 잘라낸 중상해죄로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당시 최 씨의 나이는 18세, 상대는 21세였다. ▷‘성적 자기결정권’과 ‘신체의 완결성’이라는 법익(法益)이 충돌하는 ‘강제 키스 혀 절단’ 사건은 형법학 교과서에도 나오는 사례다. 형법상 정당방위가 성립하려면 ①현재의 부당한 침해가 있을 것 ②방어하기 위한 행위일 것 ③상당한 이유가 있을 것 등 세 가지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이 중 ③번의 ‘상당성’은 상당히 모호한 개념인데 혀 절단 사건들은 이 대목에서 논란을 빚어왔다. ▷정당방위로 인정받은 가장 유명한 판례는 1988년 경북 영양군에서 가정주부가 한밤중 귀갓길에 치한의 혀를 깨물어 고소당한 사건. 1심에선 ‘혀를 깨물어 놀라게 하는 정도로 그쳐도 될 것을 물어뜯어 혀를 잘랐다’며 유죄가 나왔다. 여성 단체는 ‘여성의 인권보다 남성의 혀를 중시하는 남성 중심적 시각을 드러냈다’고 비판했고, 항소심과 대법원은 무죄를 선고했다. 이 사건은 1990년 영화(‘단지 그대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로 개봉했는데 각본을 쓴 이는 28년 후 성폭력으로 징역형을 선고받는 이윤택 연극연출가다. ▷반면 2016년 인천의 라이브카페에서 평소 알고 지내던 남성이 강제로 혀를 들이밀자 깨물어 6cm 잘려나가게 한 주부는 국민참여재판 끝에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2014년엔 남성이 강제 키스하려는 여성의 혀를 깨물어 2cm 잘라내는 사건이 발생했다. 법원은 “몸을 밀쳐내는 등의 방법으로 제지할 수 있었다”며 정당방위를 인정하지 않았다. ▷최 씨는 56년간 ‘멀쩡한 남자를 불구로 만든 가해자’로 몰려 살아왔다. 성폭행을 시도했던 남자는 남의 집에 침입해 협박한 죄만 인정돼 최 씨보다 적은 형(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받았다. 최 씨는 환갑을 넘긴 나이에 중고교 과정을 공부하면서 ‘왜 피해자가 숨어 살아야 하나’ 생각하기 시작했고, 한국방송통신대에 진학해 당시의 피해 경험을 담아 논문을 썼다. 이를 읽은 학우의 권유로 ‘미투’ 운동이 한창이던 2018년 한국여성의전화에 연락했다. 56년 만의 ‘미투’의 시작이다. 최 씨의 재심 청구가 받아들여진다면 ‘법원사’는 다시 써야 할 것이다.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 2020-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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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의사 수난시대[횡설수설/이진영]

    독일과 프랑스 의사들이 알몸 시위에 나섰다. 프랑스 의사가 ‘총알받이’라고 쓴 붕대만 두른 알몸 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린 것이 시작이다. 코로나19 환자는 몰려드는데 보호 장비가 턱없이 부족해 감염 위험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음을 누드로 표현한 것이다. 독일 의사들도 “환자 상처를 꿰매야 하는 내가 왜 마스크를 꿰매고 있어야 하느냐”며 장비와 인력 부족을 호소하는 누드 사진을 온라인에 줄줄이 공개하고 있다. ▷사스와 메르스로 단련된 아시아 국가들과 달리 한동안 전염병 걱정 없이 살던 서구는 초유의 코로나19 사태로 허둥대고 있다. 영국은 의사 가운마저 부족해지자 의사들끼리 가운을 돌려 입으라는 지침을 만들었다. 유럽에선 선방하고 있는 독일조차도 병원에서 소독제와 마스크 도난 사건이 일어날 정도로 장비난이 심각하다. 미국 간호사들은 최근 환자를 돌보다 감염돼 숨진 동료들의 사진을 들고 백악관 앞에서 보호 장비 지급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러시아에선 48시간 연속 근무로 지친 의료진이 집단 사표를 낸다고 한다. 이탈리아는 마스크나 위생장갑 없이 진료하다 감염돼 숨진 의사가 최소 150명이다. ▷의사에게 자신의 안전이 위협받는 상황에서도 환자를 돌보라고 요구할 수 있을까. 옛날에는 흑사병이 돌 때 도망가는 의사가 많아 베네치아는 1382년 의사들의 도주를 금지하는 법까지 만들었다. 1793년 미국 필라델피아에 황열병이 창궐했을 때도 도시에서 탈출하는 의사들이 줄을 이었다. 미국의학협회는 1847년 의사윤리강령을 제정해 감염병이 발생하면 의사는 자신의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서도 환자를 돌봐야 한다고 규정했다. 하지만 20세기 에이즈 발병 초기엔 환자 치료를 거부하는 의사가 적지 않았다. 2003년 사스 당시 중국 다음으로 많은 사망자(44명)가 발생한 캐나다에선 많은 의료진이 출근을 거부하기도 했다. ▷대한의사협회 의사윤리강령에는 ‘의사의 안전보다 환자 목숨이 먼저’라는 비장한 내용은 없다. 그럼에도 코로나19 최전선에 선 3700여 명의 국내 의료진은 반창고투성이 얼굴로 1일까지 1만774명을 치료해 9072명을 완치시켰다. 많은 사람이 의료진을 응원하는 ‘덕분에 챌린지’에 동참하는 이유다. 하지만 의료진의 헌신만을 일방적으로 기대할 수는 없다.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은 브리핑 때마다 “의료 현장에서 사투를 벌이는 의료진을 떠올려 달라”며 개인 위생수칙 준수와 거리 두기를 호소한다. 의료진 감염자 수도 지난달 초 240명을 넘어섰다. 동료들의 죽음으로 시위에 나선 미국 간호사의 말처럼 의료진은 ‘영웅’이지 ‘순교자’가 아니다. 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 2020-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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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태영호 “김정은, 제 발로 서서 사진 한 장 찍을 수 없는 상태”[논설위원 파워 인터뷰]

    《의식불명설, 코로나19 대피설, 건재설…. 11일 노동당 정치국 회의 주재 후 사라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행방을 놓고 온갖 추측이 나돌고 있다. 정부는 “특이 동향이 없다”고 했지만 태영호(58) 미래통합당 국회의원 당선인은 “대단히 이례적인 점이 많다”고 반박했다. 탈북민 출신으로 첫 지역구 의원이 되는 그와 선거 이야기를 하려고 만났는데 김정은 이야기가 더 길어졌다.》○ “김정은 건강 이상설, 휴민트 없어 韓美는 모른다” ―김정은에게 무슨 일이 있는 건가. “신변에 이상이 생긴 건 맞다. 15일 금수산태양궁전의 태양절(김일성 생일) 참배엔 무조건 나와야 한다. 김씨 일가가 김일성 참배를 안 한다는 건 크리스천이 크리스마스를 그냥 지나치는 것과 같다. 사진 한 장 찍는 건 일도 아닌데 그것도 못 했다는 건 일어설 수 없는 상태에 놓여 있다는 뜻이다.” ―노동신문에는 태양절 참배 보도 이후 김여정 최룡해 등 최고위급 인사들의 동정도 사라졌다. “15일 이후 김재룡 내각 총리만 노동신문에 한 번 등장했을 뿐이다. 김정은의 건강이 심각하지 않다면 핵심 간부들의 활동 소식은 노동신문에 나와야 한다. 김정은 주변에 가 있거나 아니면 마음 놓고 나올 상황이 아닌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알지만 말할 수 없다”고 했다. “난 모르고 있다고 생각한다. 정찰위성으로 김정은의 차량이 어디 있는지는 알 수 있지만 그 차량에 김정은이 타고 있는지는 휴민트(사람을 통해 얻은 정보)가 없어 알 수 없다. 미국이나 한국이나 그런 정보력은 없다고 본다.”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7년 1월 정부가 김정은 참수 부대를 창설한다고 발표했다. 미군이 올해 초 킬러 드론으로 이란의 2인자인 가셈 솔레이마니를 정밀 타격했을 때 김정은이 가장 무서웠을 것이라는 말이 나왔다. “(김정은 집무실이 있는 평양의) 3층 서기실은 딱 분리돼 있어 북한에서도 그 안 사정을 알 수가 없다. 김정은은 공군력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평양 중심지에서 멀리 떨어진 강동군에 산다. 산세가 묘해 헬기도 들어가지 못하는 곳이다. 평양으로 출근할 때는 반경 4km 안에는 누구도 접근할 수 없는 1호 도로를 이용한다. 옥류관 주변에 이르면 터널을 통해 집무실로 드나든다. 나도 김정일 김정은의 승용차를 본 적이 없다. 휴민트가 없으면 아무리 현대적 기술이 있어도 안 된다.” ―중국 의료진이 북한에 들어갔다는 보도가 있다. 북한엔 김정은이 몸을 맡길 만한 의료진이 없는가. “없다. 그리고 중국 의료진이 가서 치료하는 것도, 그걸 외부에서 안다는 것도 있을 수 없다. 만약 의료진이 들어갔다 해도 중국 정부가 절대 확인해주지 않는다. 북한 간부들은 중국에 나와 치료를 받기도 하지만 김정은이 믿는 의료진은 프랑스와 독일이다. 김정은 생모인 고영희도 유방암에 걸리자 프랑스에 가서 치료했다.”○ “급변사태, 미국에 뒤통수 안 맞을 자신 있나” ―25일 채널A에 출연해 김정은 유고 시 김정일의 이복동생인 김평일(66)을 주목하라고 했다. “일단은 김여정 체제로 갈 것이다. 북한 역사상 권력의 첫 ‘수평 이동’인데 북한 체제는 수평 이동에 이론적으로 준비돼 있지 않다. 그리고 60, 70대인 지도부들이 30대인 김여정에게 ‘예예’ 할까. 그들은 김여정을 모른다. 김여정은 북한에 뿌리가 없다. 하지만 김평일과는 아이 때부터 학교도 같이 다니고 형 동생 하며 자란 북한판 태자당들이다. 이들이 가택연금 상태인 김평일을 내와서 결집한다면 김여정이 못 당한다.” ―북한에 사재기 바람이 불고 있다는데 김정은 변고설을 뒷받침하는 것 아닌가. “그건 코로나19 때문이다. 북한은 한국과 같은 방역 시스템이 없어 전염병이 발생하면 국경을 봉쇄하고 이동을 중지시키는 수밖에 없다. 결국 경제가 돌아갈 수 없다. 예전과 달리 지금은 한국 미국 중국 모두가 힘들어 북한을 돕거나 북한 문제에 시선을 돌릴 여유가 없다. 북한 내부가 대단히 힘들어질 것이다. 힘들 때 패턴은 딱 하나다. 중국에 붙거나 한국으로 나온다. 연평도 포격 같은 큰 도발은 못 한다. 우리로선 한반도 정세를 안정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신변 이상설을 제외한다면….” ―김정은이 멀쩡한 상태에서 ‘부재의 존재감’을 즐기고 있을지도 모른다. “어디선가 한미가 어떻게 나오는지 지켜보고 있을 수 있지만 그럴 가능성은 낮다. 김정은의 상태가 어떻든 이번 기회에 급변사태 대응책을 준비해야 한다. 미국과 중국은 어떻게 나올까. 이승만 정권은 미국과 가까운 듯했지만 1950년 (미 극동방위선에서 한국을 제외하는) 애치슨라인 선포를 모르고 있었다. 미리 알았다면 트루먼에게 달려가 바짓가랑이라도 잡았을 텐데, 그랬으면 6·25전쟁 안 일어났다. 그거 모르다 미국에 뒤통수 맞았다. 미국이 일방적으로 자기 국익을 중심에 놓고 우리를 배제하지 않도록 우리가 미국에 안을 내 미중 간 합의하도록 해야 한다. 급변사태 시 핵은 무조건 미국이 가져가지만 미군이 압록강까지 올라가지는 않을 거라고 중국을 안심시켜 미중이 충돌하는 사태가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력삼동, 내래미안… 소수자 비하 발언에 여당 왜 가만히 있나” 2016년 8월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 공사 시절 망명한 그는 미래통합당의 전략 공천으로 “문재인 정부의 사회주의화를 막겠다”며 서울 강남갑에 출마해 당선됐다. 외신은 고위 공직자 출신의 태 당선인과 꽃제비 출신인 지성호 당선인(미래한국당 비례대표)을 주목하며 ‘자유롭고 개방적인 민주주의 체제의 승리’라고 평가했다. ―북한 체제를 선전하던 최고위급 외교관이 한국의 국회의원이 됐다. 그것도 자본주의의 상징과 같은 서울 강남에서…. “집사람은 정치인이 되면 구설에 오르고 집안 내력 다 털린다며 말렸다. 평양외국어학원 동문들이 한국에 10명가량 있는데 ‘강남이 어떤 곳인 줄 아느냐. 일반 정서는 보수적이지만 학연 지연 혈연 없으면 절대 안 되는 곳’이라며 말렸다. 당선이 확정되고 나니 눈물이 났다. 3만5000명의 탈북민을 한 품에 안아주는 포용력, 이걸 보여줬구나 싶어 대단히 감사하다.” ―탈북민 출신 지역구 의원을 믿을 수 있느냐는 사람들도 있다. “온갖 종류의 흑색선전이 있었다. 빨갱이를 공천했다, 이중간첩이다, 미성년자 강간범이다…. 나 개인에 대해선 이런저런 의견을 표명할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력삼동, 내래미안 이런 건 소수자인 탈북민 비하 발언이다. (탈북민을 당선시킨 강남구를 조롱하는 뜻에서) 청와대 게시판에 ‘강남 재건축 지역에 탈북자 아파트 의무 비율을 법제화하자’는 청원이 올라와 13만 명이 동의했다. 명백한 소수자 차별인데 여당은 유감 표명도 하지 않았다. 장애인이나 여성 혐오 발언이 올라왔다면 가만히 있었을까. 북한 사람들이 다 들여다보고 있다.” ―재산 신고액 18억6500만 원도 화제였다. “강연료와 ‘3층 서기실의 암호’(2018년 5월) 인세 수입이 많다. 정부가 출판을 금지한다는 가짜 소문이 돌아 21쇄까지 나갔다. 시간이 있어 강연 요청을 다 받았으면 더 벌었을 것이다.”○ “빈부 격차, 북한이 남한보다 더 큰 듯” ―남한과 북한 모두 빈부 격차가 있다. 어느 쪽이 더 심한가. “북한이 양극화가 훨씬 심하다. 평양을 벗어나면 한국의 1950, 60년대처럼 소달구지 끌고 가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평양시 중심에는 하루 저녁에 몇백 달러를 탕진하면서 사는 사람들이 있다. 한국에선 부를 합리화할 수 있다. 나 사장이야, 주식으로 벌었어, 하면서. 그런데 북한은 월급과 배급이 같은 사회주의 국가이니 부를 합리화할 수가 없다. 그럼에도 부자가 존재한다.” ―기독교인이라고 들었다. “교회를 정해 놓고 다니진 않지만 그렇다. 2018년 5월 국가안보전략연구원에서 나온 뒤 (고정 수입이 끊겼을 때) 강연 요청을 가장 많이 해온 곳이 교회였다. 성경책은 말투가 이해가 안 돼 읽기가 힘든데 한 학생이 ‘유물론자에게 성경은 어렵다’며 만화 성경책을 소개해줬다. 그걸 다 읽고 성경책도 읽고, 성경을 가정생활에 응용하는 법을 다룬 책도 읽었다. 그중 한 가지를 실천하고 있다. 집사람의 발을 씻어주는 것이다. 집에 말도 안 하고 연구원을 그만뒀더니 난리가 났다. 아내가 잔소리할 때마다 대꾸 않고 소래(세숫대야)에 더운물 받아 발을 씻어준다. 예수가 한 것처럼 가정생활을 하라는 가르침이다.” ―한국에 정착한 지 올여름이면 4년이 된다. 민주주의의 장점은 무엇일까. 코로나19와 같은 상황에선 중국과 같은 통제체제가 유리하다는 말도 있다. “북한에서 본 한국은 경제적으로는 발전하고 정치적으로는 혼란스러운 곳이었다. 그런데 선거를 치러 보니 무질서 속에 질서가 있더라. 투표함 열리기 전까진 막 싸우다 뚜껑 열려 승부가 나는 순간 모두가 승복한다. 획일적이고 단일화된 것이 다양성을 절대 못 이긴다. 내 목소리가 의미 있게 쓰이는 곳에서 일하고 싶다.” 그는 예비후보자 등록부터 선거 유세까지 모든 과정을 영상에 담아 유튜브에 올렸다. 북―중 국경을 오가는 북한 무역상들이 “태영호가 어떻게 강남에서 됐느냐” “지역구는 뭐고 비례대표는 뭐냐”며 한국의 선거 문화에 관심을 갖는다고 한다. 서울에 온 지 4년이 채 되지 않아 18억 원대의 재산을 모으고 금배지를 단 그를 보며 북한 주민들은 ‘코리안 드림’을 갖게 될지도 모른다.  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 2020-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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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통령 후보’ 미셸[횡설수설/이진영]

    올해 11월 대선을 앞둔 미국에서 대선후보 못지않게 주목받는 인물이 미셸 오바마 여사(56)다. 조 바이든 민주당 대선후보(78)가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부인인 미셸 여사에게 부통령 후보가 돼달라고 거듭 요청하고 있는 것.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연일 코로나19 브리핑으로 톱뉴스를 차지하는 동안 존재감을 잃어가는 바이든에게 미셸 여사는 트럼프를 꺾을 수 있는 비장의 카드로 떠오르고 있다. ▷변호사 출신인 미셸은 공직 경험이 없지만 브랜드 파워는 남편을 능가한다. 오바마의 퇴임 직전 지지율 조사에서는 남편보다 20% 높은 68%를 얻었다. 남편이 빌 게이츠에 이어 ‘세상에서 가장 존경받는 남성’ 2위로 선정된 데 비해 그는 2018년, 2019년 연속 ‘가장 존경받는 여성’ 1위를 차지했다(갤럽). ▷시카고의 가난한 흑인 가정에서 태어나 하버드대 로스쿨 출신의 엘리트가 된 그는 미국적 가치를 상징한다. 백악관 안주인이 된 후로는 아동 비만 퇴치 운동을 벌이는 한편 레깅스 차림으로 훌라후프를 돌리고 토크쇼에 출연해 예능감을 뽐내며 대중과 소통했다. 2016년 힐러리 클린턴 대선후보 지지 연설에선 “그들은 저급하게 가도, 우린 품위 있게 가자”는 명문을 남겼다. 인종 문제, 일하는 여성의 고민 등에 대해 진솔하게 쓴 자서전 ‘비커밍(becoming)’은 세계적으로 1100만 부가 팔려나갔고, 북투어 때마다 수천 명의 팬들이 몰려들어 아레나를 가득 채웠다. 미국에서 이런 동원력을 지닌 정치인은 트럼프밖에 없다. ▷정치전문 ‘더힐’은 “미셸이 어떤 공직에 출마해도 승리할 것”이라고 평가한다. 백인 여성과 중도층, 부동층까지 아우르는 득표력이 있다는 것이다. 바이든이 고령인 점을 감안하면 부통령 후보는 더욱 중요한데 미셸은 대선후보로도 거론될 만큼 중량감 있는 존재다. 문제는 본인이 정치에 뜻이 없다는 것. 남편의 대선 유세 당시 얻은 ‘성난 흑인 여자’라는 낙인이 상처가 됐는지 정치엔 넌더리를 낸다고 한다. ▷트럼프가 남편의 정치적 유산을 지우려 할 경우 미셸이 나설 가능성이 없지는 않다. 미셸은 지난해 CBS에 출연해 “우리 후손들에게 어떤 나라를 물려주느냐를 정말 걱정해야 한다”며 트럼프를 간접적으로 비판한 적이 있다. 건강과 품위와 공감 능력을 갖춘 전직 영부인이 나서서 ‘분열적인 막말 정치인’의 재선을 막아주길 기대하는 야당 지지층의 바람이 그의 마음을 돌려놓을 수 있을까. 그렇게 된다면 올해 미 대선은 ‘트럼프 대 바이든’이 아니라 ‘트럼프 대 오바마’의 선거가 될 것 같다. 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 2020-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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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코로나와 여성 리더십[횡설수설/이진영]

    대만 독일 뉴질랜드의 공통점은? 코로나19와 잘 싸우고 있는 나라들이라는 점이다. 또 하나는 리더가 여성이라는 사실. ▷관광대국 뉴질랜드의 저신다 아던 총리는 막대한 관광 수익을 포기하고 빗장을 걸어 잠근 뒤 한 달간 전국에 봉쇄령을 내렸다. 치명률은 0.8%.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사태 초기에 고위험군인 고령자를 격리시키고 검사를 맹렬히 한 덕분에 유럽에서는 상대적으로 낮은 치명률(2.5%)을 기록하고 있다. 노르딕 5개국 가운데 치명률이 9%인 스웨덴을 제외한 4개국의 방역 성적표는 양호한데 공교롭게도 이 나라들의 리더가 모두 여성이다. 대만의 차이잉원(蔡英文) 총통은 1월 23일 중국이 발원지인 우한(武漢)을 봉쇄하자 다음 날 의료용 마스크 수출부터 금지하고 중국과의 모든 직항 노선을 끊었다. 15일까지 환자 수 393명에 사망자는 6명(치명률 1.5%). 지금은 마스크 수백만 장을 유럽 등에 수출 중이다. ▷‘마초적’ 리더들의 방역 성적은 저조한 편이다. 발원국인 중국의 시진핑 주석은 전문가의 경고를 무시하다가 전 세계를 위험에 빠뜨리고 리더십에도 치명상을 입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도 남의 말을 안 듣는 제왕적 리더십으로 좌충우돌하다가 미국을 세계 1위의 코로나 피해국으로 전락시켰다. ‘유럽의 트럼프’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바이러스 때문에 악수를 그만두진 않을 것”이라며 사태의 심각성을 무시하다가 말 그대로 죽다 살아났고 영국은 유럽의 새로운 화약고가 됐다(치명률 12.9%). ▷여성 리더가 선전하는 이유가 뭘까. 감염병 같은 위기 상황에서는 비전을 제시하는 남성적인 리더십보다 문제해결 중심의 여성적 리더십이 유리하다는 해석이 있다. ‘무티(엄마) 리더십’의 대명사인 메르켈은 카리스마에 의존하기보다 다양한 정치세력과 연정하며 최악의 금융위기를 포함한 국내외 난제들을 해결해왔다. 외유내강형 리더인 차이잉원도 정부 안팎의 전문가 집단과 협업하며 코로나에 대처하고 있다. 아던 총리는 지난해 크라이스트처치 모스크 테러에 단호하게 대응하면서도 히잡을 쓰고 아랍어로 인사하는 등 포용적 리더십으로 마초 리더들과 대조를 보인 바 있다. ▷성별이 요인이 아니라 이들이 뛰어난 정치인이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여성에게 불리한 유리천장을 깨고 리더가 된 여성은 같은 위치에 오른 남성보다 유능할 가능성이 그만큼 높고, 리더로서 인정받으려면 남자들보다 배로 노력해야 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성과도 좋다고 분석했다. 세계적으로 선출된 리더 152명 가운데 여성은 10명뿐이다. 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 2020-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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