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질문[횡설수설/이진영]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7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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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배우 데미 무어를 인터뷰하던 영국 기자가 마지막에 이런 질문을 던졌다. “혹시 성형수술 했나요?” “이런 질문을 받으리라곤 상상도 못 했어요.” “왜 안 되나요?” “내가 샤워할 때 엉덩이를 뒤에서부터 닦는지 앞에서 뒤로 닦는지 그것까지 말해야 하나요?” “당신이 말하고 싶다면….” 데미 무어의 ‘바닥’을 드러낸 문답으로 알려진 이야기다.

▷이탈리아의 전설적 여기자 오리아나 팔라치도 도발적 질문으로 ‘악명’ 높다. 미국 국무장관을 지낸 헨리 키신저가 “내 일생의 최대 실수는 그와의 인터뷰”라고 할 정도였다. 이란의 혁명 지도자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에겐 이렇게 돌직구를 날렸다. “차도르를 뒤집어쓰고 수영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1980년 중국 최고 권력자가 된 덩샤오핑에게 던진 첫 질문은 “여기 오는 길에 톈안먼에 걸린 마오쩌둥 초상화를 봤다. 영원히 걸어둘 건가”였다. “마오의 공이 과보다 크다”는 당의 공식 입장이 덩의 답변을 통해 세상에 알려진 순간이었다.

▷기자의 질문에 답하는 것은 권력자의 의무다. 국민을 대신해 질문한다고 여기기 때문에 불편한 질문도 감수한다.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은 1998년 토니 블레어 당시 영국 총리와 공동 기자회견을 했는데 기자들의 질문이 회담 결과보다는 ‘섹스 스캔들’에 집중됐다. “르윈스키와 관계가 없다, 아니 없었다고 하는 건가.” “제니퍼 플라워스와의 관계에 대한 진술을 번복한 게 맞나.” 도널드 트럼프의 전임자인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2016년 마지막 순방길에 오르기 전 기자회견을 자청했다. 해외 정상과의 기자회견에서 질문들이 미국 현안에 몰리는 사태를 막기 위해서였다. 첫 질문은 “세계 지도자들에게 트럼프에 대해 뭐라고 말할 건가”였고 답은 이랬다. “세계의 질서와 번영을 유지하기 위한 거대한 연속성은 (누가 대통령이 돼도) 이어질 것이다.”

▷질문에 대한 답변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질문을 받는 태도다. 어느 대목에서 웃고 성내는지, 난처한 질문에 어떻게 대처하는지로 사람의 그릇과 됨됨이를 알 수 있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박원순 전 서울시장 빈소 밖에서 성추문 의혹에 당이 어떻게 대응할지를 묻자 버럭 했다. “그런 걸 이 자리에서 얘기라고 하느냐. … (기자를 쳐다보며) ××자식.” 불쾌한 생각이 들었다면 답하지 않거나, “그 답변을 하기에 부적절한 장소”라고 했으면 넘어갔을 일이다. 소통의 달인 로널드 레이건 전 미 대통령은 임기 초반 “어떻게 배우가 대통령이 될 수 있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응수했다. “어떻게 대통령이 배우가 되지 않을 수 있습니까.”

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질문#기자#권력자의 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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