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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신만이라도 찾기를 간절히 염원하는 세월호 실종자 가족들이 황당한 유언비어와 어처구니없는 선동에 또 한번 상처받고 있다. 사고 초기 정부의 어설픈 대응에 분노했던 가족들은 현장에 나타난 자칭 ‘전문가’들에게 한 가닥 희망을 걸었지만 돌아온 건 더 큰 좌절감뿐이었다. 무엇보다 ‘훼방꾼’들의 검증 안 된 주장 때문에 분초를 다투는 실종자 구조에 차질이 생기고 사회적으로는 큰 혼선이 빚어졌다. 구조작업을 둘러싼 차질은 사고 초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이른바 ‘SOS 괴담’이 유포되면서 시작했다. 주된 내용은 “식당 쪽에 사람들이 많이 살아 있다. 구조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 이 때문에 초기 구조작업은 객실보다 식당 칸에 집중됐지만 이곳에서는 지난달 25일까지 단 3구의 시신만 발견됐다. 오히려 뒤늦게 수색에 나선 선수와 선미 쪽에서 다수의 시신이 확인됐다. 지난달 18일 홍가혜 씨(26)의 종합편성채널 MBN 인터뷰도 빼놓을 수 없다. 홍 씨는 “갑판 벽 하나를 두고 생존자와 대화를 한 민간 잠수사도 있다. 해경이 민간 잠수사의 구조활동을 막고 대충 시간이나 때우고 가라고 했다”고 주장했다. 일부 민간 잠수사까지 “들어가서 구할 수 있는데 해경이 막고 있다”고 거들면서 정부에 대한 불신은 절정에 달했다. 그러나 홍 씨의 말은 송두리째 거짓이었고 구조에 투입할 만한 실력을 갖춘 민간 잠수사도 극소수에 불과했다. 특히 1일 실패로 결론난 이종인 알파잠수기술공사 대표의 다이빙벨 투입은 검증되지 않은 주장들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례다. 구조현장을 뒤흔든 유언비어와 선동은 엉뚱하게 ‘연출’ 논란으로 이어졌다. 지난달 29일 박근혜 대통령이 조문을 위해 경기 안산시 정부합동분향소를 찾았을 때 위로의 말을 나눈 한 할머니가 동원된 인물이라는 것. 이 할머니는 유족이 아니라 근처에 사는 일반인으로 밝혀졌다. 상황을 이 지경까지 이르게 한 책임은 1차적으로 정부에 있다. 사고 첫날부터 구조자 수가 수차례 오락가락하고 승선자 명단까지 파악하지 못하는 등 무능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줬기 때문이다. 정부가 상황을 100% 파악하지 못하면서 통제 불능의 상태가 이어졌고 그 틈을 타 갖가지 유언비어와 선동이 판을 친 셈이다. 결국 피해는 고스란히 가족들에게 돌아갔다. 부모 자녀의 생환을 기다리다 이제 시신만이라도 찾기를 염원하는 가족들은 유언비어와 선동에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박희창 ramblas@donga.com·강은지진도=박성진 기자}
주말을 앞둔 25일 오후 5시, 전남 진도고등학교 학생들의 표정은 어두웠다. 정문을 나서며 누구 하나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진도고는 세월호 침몰 사고 실종자 가족들이 모여 있는 진도실내체육관에서 1km도 채 안 되는 곳에 있는 학교. 수업 시간 내내 시신 이송 헬기가 이착륙하는 소리와 응급차가 오가는 소리가 들려온다. 학생들은 대형 참사 현장의 암울한 분위기에 고스란히 노출되면서 ‘트라우마(정신적 외상)’를 겪고 있었다. 1학년 박모 양(16)은 “이번에 헬기를 처음으로 봤어요. 처음엔 신기했는데 지금은 헬기 소리가 들릴 때마다 ‘또 누가 숨졌구나’ 싶어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다. 요즘은 시끌벅적하던 점심시간이 조용해졌고 밥을 잘 못 먹는 친구들도 있다”고 전했다. 3학년 김모 군(18)은 “사고 현장에 있다 보니 언론을 통해 접하는 것보다 훨씬 고통스럽고 슬프다”고 말했다. 진도고 측은 사고 초기에는 점심시간에 TV 뉴스를 통해 사고 소식을 접하게 했다. 그러나 학생들이 갈수록 우울 증세를 보이면서 TV 시청을 중단했다. 신민식 교감은 “요즘 교사나 학생 모두 세월호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비슷한 또래 아이들이 희생된 데다 우리가 살고 있는 동네에서 이런 비극이 발생했다는 게 충격적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실종자 가족들이 모여 있는 진도 팽목항 인근 주민들도 비슷한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가족대책본부가 꾸려진 팽목항 앞 매점에서 일하는 한 20대 여성은 “대형 사고를 지켜보면서 너무 힘들지만 피해자 가족들을 두고 심리치료를 받는 게 미안해 속앓이만 하고 있다. 엄마와 언니도 비슷한 증세를 보이고 있다”고 했다. 그럼에도 진도군과 진도교육지원청은 이렇다 할 재난 심리 치료 방안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진도군 관계자는 “현재로선 군민들이 겪는 정신적인 고통을 파악하고 있는 수준”이라고 털어놓았다. 진도=박성진 psjin@donga.com / 김준일 기자}

27일 오전 정홍원 국무총리의 사퇴 기자회견을 지켜본 세월호 침몰 사고의 실종자 가족과 희생자 유가족의 반응은 비교적 무덤덤해 보였다. 그러나 그 침묵 속에는 분노와 슬픔이 깊이 배어 있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정 총리의 사표 수리를 사고 수습 후로 미뤘지만 이번 사고의 피해자들은 정부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해 있었다. 이날 실종자 가족들이 모여 있는 전남 진도 실내체육관. 대형 스크린에 정 총리가 “유가족 여러분께 진심으로 사죄한다. 국무총리로서 응당 모든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사퇴 의사를 밝히는 회견 장면이 나왔다. 이를 지켜보던 한 실종자 가족은 “그동안 실종자를 구하는 시늉만 한 것 아니냐. 총리도 실종자를 구하기는 해야겠는데 방법을 못 찾다가 ‘에라 모르겠다’는 식으로 관두는 것 같다”고 말했다. 아직 실종된 딸을 찾지 못한 안산 단원고 학생의 어머니는 “다음엔 또 누가 그만둘까”라며 냉소하기도 했다. 정 총리의 기자회견 직후 가족들은 하나둘 체육관 정문에 모여 한마디씩 하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서 사퇴는 무책임하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한 실종자 부모는 “비가 오니까 총리가 ‘정신 줄’을 놓은 것 아니냐. 전쟁 중에 장군이 도망가는 것과 뭐가 다른가”라고 반문했다. 그는 “총리가 계속 중심을 잡아야 조직이 잘 돌아가는 것인데 그가 그만두면 아랫사람들은 자기 자리를 지키려고만 하고 수색은 주먹구구식이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다른 실종자 가족 역시 “총리가 현장에 나타나지 않아 안 보이는 곳에서 잘 조율하고 지원하는 줄 알았는데 결국 사퇴 시점만 조율한 것 같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진도 팽목항에서 회견을 지켜보던 실종자 가족들은 정 총리의 갑작스러운 사퇴가 자칫 구조 활동에 지장을 주지 않을까 걱정했다. 일부는 정 총리의 얼굴이 화면에 나오자 욕설을 내뱉기도 했다. 한 실종자 가족은 “돌아오지 않은 실종자가 100명이 넘는 상황에서 지금 물러나면 사태 수습은 누가 하는가. 또 우리 아이들은 어떻게 데려오느냐”며 울분을 토했다. “총리뿐 아니라 해양수산부 장관과 해양경찰청장도 사퇴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경기 안산시 분향소 등에서 만난 단원고 학생 유가족들은 “실종자 수색과 인양이 먼저”라며 정 총리의 사퇴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 단원고 2학년 희생자 임모 군의 아버지는 “아직 배에 가라앉아 있는 애들을 꺼내지도 못했는데, 아무리 무능력하다고 해도 상황을 먼저 해결한 다음에 그만둬야 한다”고 말했다. 단원고 고 김초원 교사의 아버지는 “아직도 생사를 확인하지 못한 이들이 100명이 넘는다. 이들을 어떻게 하면 빨리 찾을지를 먼저 생각해야 하는데, 책임자만 추궁하면 뭐가 달라지나. 이 때문에 시신 수습만 늦어지는 게 아닌지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안산 올림픽기념관 분향소에 조문을 온 한 40대 남성은 “총리 한 명이 사퇴한다고 이 사태가 수습되겠나. 관련 장관과 책임자 모두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단원고 주변의 한 상인도 “이번 사고의 책임을 지고 사퇴하는 건 당연하다. 나머지 무능력한 책임자들도 사태를 수습한 뒤 모두 그만둬야 한다”고 말했다.진도=박성진 psjin@donga.com·백연상안산=최고야 기자}
침몰한 세월호 선체에 처음 진입해 선체 수색 작업을 벌인 지 6일이 지나도록 에어포켓(선체 중 공기가 남아 있는 공간)이 발견되지 않자 실종자 가족의 절망은 깊어지고 있다. 에어포켓이 없다면 단 한 명의 생존자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해경은 실종자 가족에게 수습된 시신의 인상착의를 잘못 전달하는 바람에 시신이 미확인 상태로 병원에 안치되는 일까지 빚어져 절망을 가중시켰다.○ 에어포켓 한 가닥 희망 사라져 23일 범정부사고대책본부는 “민관군 합동구조팀이 세월호 선내 3, 4층의 다인실을 집중 수색했지만 에어포켓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또 “배 선체가 뒤집히면서 집기가 섞여 엉망이고 부유물로 인해 선실 입구가 막혀 있었다”고 말했다. 사실상 에어포켓이 있을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뜻이다. 수색작업을 지휘하고 있는 한 해군 고위관계자도 “침몰해 뒤집어졌던 선체가 좌현으로 다시 기울어져 넘어갔을 때 에어포켓이 사라졌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에어포켓에 한 가닥 희망을 걸었던 실종자 가족들은 격분할 힘도 잃은 채 절망한 모습이었다. 한 실종자 가족은 “정부는 있지도 않은 에어포켓 가능성만 반복하면서 가족들에게 희망고문을 했다. 사실상 정부가 힘든 가족들을 두 번 죽인 것이다. 더이상 화낼 힘조차 남아 있지 않다”고 전했다.○ 남학생이 곱슬 단발머리라고? 23일 오전 2시 세월호 실종자 가족이 모인 진도 실내체육관 강당에 한 남성이 분통을 터뜨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 남성은 체육관 한편의 신원확인소 책상을 주먹으로 내리치는 등 분을 삭이지 못했다. 그는 22일 아침 시신으로 발견된 단원고 2학년 박모 군(18)의 아버지였다. “학부모들은 이것만 쳐다보고 있어. 그런데 옷 색깔도, 머리 모양도 다 틀리면 아이를 어떻게 찾냐고.” 박 씨는 22일 오전 9시경 체육관 강당 앞 대형 TV 화면에 뜨는 수습된 시신 정보를 유심히 봤다. 91번째로 수습된 단원고 남학생 추정 시신의 인상착의가 공개되고 있었다. “키 174cm 추정, 검은색 반팔티·검은색 아이다스, 통통한 체격, 곱슬머리 단발….” 아들과 체격, 키, 옷 스타일이 같아 가슴이 덜컥했지만 곧 아니라고 생각했다. 아들은 청색 운동복을 입고 있었고 곱슬 단발머리가 아니라 짧은 머리였다. 그러나 이날 내내 91번째 시신 정보가 계속 마음에서 떠나지 않았던 박 씨는 22일 밤 미확인 시신이 안치된 목포 시내 병원으로 달려갔다. 시신 얼굴을 확인한 결과 아들이었다. 시신의 머리 모양은 곱슬 단발머리가 아니라 짧은 머리였다. 박 씨가 병원으로 가 확인하지 않았다면 DNA 대조 결과가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 하거나 미확인 시신으로 남을 수도 있었던 상황. 박 씨는 “상식적으로 남학생이 곱슬 단발머리라는 게 말이 되느냐”며 항의했다. 현재 해경은 시신을 수습한 뒤 팽목항까지 이송하는 배 위에서 시신 인상착의를 보고 옷차림 등의 정보를 기록한다. 이 정보는 곧바로 팽목항 실종자 가족 대기소와 진도체육관 강당으로 전송된다. 가족들은 이 정보가 자녀와 비슷하다고 판단되면 신원확인반을 찾아 시신을 직접 확인하는 절차를 밟는다. 그러나 1차 인상착의 확인이 배 위에서 진행되는 데다 재확인 절차를 거치지 않아 인상착의가 틀릴 가능성이 있다. 항의가 이어지자 해경은 향후 인상착의 게시물에 신체 특징을 더 구체적으로 파악해서 게시하겠다며 실종자 가족들에게 사과했다. 23일 현재 만 하루가 지나도 신원 확인이 되지 않은 시신은 10구에 이른다. 37번째로 발견된 남성의 시신은 발견된 지 나흘이 지나도록 신원 확인이 안 돼 가족에게 인계되지 않고 있다. 미확인 시신이 나오는 것은 실종자 가운데 대다수가 주민등록이 되지 않아 등록된 지문이 없는 학생들이기 때문이다. 결국 DNA 대조를 통해 확인하는 수밖에 없다. 23일부터는 검안 속도를 높이기 위해 팽목항에 간이 영안실이 설치됐다.진도=박성진 psjin@donga.com·손효주·이건혁 기자}
“지금은…모르겠어요. 슬픈 기분은 잘 못 느끼겠어요. 이러다 아버지 뵈면 눈이 뒤집어지겠죠.” 김모 씨(30)는 16일부터 진도 실내체육관에 머물고 있다. 여행을 가신다며 친구들과 제주도행 세월호에 올랐던 아버지를 찾기 위해서다. 16일 침몰 소식을 듣고 달려와 쉼 없이 눈물을 흘리고 때론 화도 냈던 김 씨는 23일엔 대부분의 시간을 체육관 안에 가만히 앉아서 보냈다. 그는 기자에게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잘 모르겠다”며 “당장 다음 주에 할 일들이 있었는데 뭔지 생각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세월호가 바닷속에 가라앉은 지 8일째인 23일. 실종자의 절반가량이 시신으로 발견된 가운데 진도 실내체육관과 팽목항에서 여전히 실종자의 생환을 기다리고 있는 일부 가족들이 눈에 띄게 탈진하고 있다. 한때 통곡하는 가족들로 가득 차 옴짝달싹하기 힘들었던 체육관에 빈자리가 늘었지만, 하루 종일 허공을 바라보거나 초점 잃은 눈으로 먼 곳을 응시하는 가족들이 많다. 의료 봉사를 하는 육군 31사단의 한 관계자는 “허공을 바라보거나 초점 잃은 눈으로 앞을 보는 가족들이 많아졌다”며 “이제는 어지간한 소동에는 반응도 하지 않아 걱정이 크다”고 말했다. 하염없는 기다림이 지속되는 탓이다. 실종자 발견이 가장 먼저 알려지는 진도 팽목항에서 만난 한 실종자의 부친은 쉼 없이 상황실과 대기실을 오가며 “시신이 발견된 가족들이 하나둘 가족 대기실을 떠나고 있다. 아이의 생사를 하루라도 빨리 알고 싶은 것이 여기 있는 모든 부모들의 마음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혹시 잠이라도 들어 가족 발견 소식을 못 들을 걸 우려하는 실종자 가족들은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고 있다. 전문가들은 실종자 가족들이 정신적으로도 극도로 위험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충격과 분노의 감정이 지나간 자리에 우울감이 찾아들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멍한 상태로 기억이 잘 안 나거나 슬픔 기쁨 등의 감정이 잘 떠오르지 않는 ‘비현실감’을 호소하는 가족들의 상태가 심각하다고 한다. 실종자 가족들을 상담한 김석주 서울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가족들은 아무 잘못이 없는데도 죄책감을 느끼게 된다”며 “감당할 수 없는 충격을 뇌가 본능적으로 차단하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상담 봉사에 나선 하정미 부산장신대 사회복지상담학과 교수도 “이 같은 증상이 지속되면 상당히 위험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진도=강은지 kej09@donga.com·박성진 기자}
‘울산 계모’ 박모 씨(42)와 ‘칠곡 계모’ 임모 씨(36)가 각각 여덟 살 의붓딸을 때려 죽음에 이르게 할 당시 사용한 건 주먹과 발이었다. 울산 사건의 1심 재판부는 박 씨가 흉기를 쓰지 않았다는 점을 살인의 고의가 없었다는 근거 중 하나로 들었다. 하지만 아동들은 갈비뼈 14대가 부러지는 등 흉기로 맞았을 때와 별 차이가 없을 정도의 중상을 입고 숨졌다. 서승우 고려대 의대 정형외과 교수는 “법원이 살인 고의가 없었다고 판단한 건 아동 신체가 어른에 비해 얼마나 약한지를 간과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뼈와 근육이 발달하지 못한 여덟 살 아동에게 성인의 주먹과 발은 흉기나 마찬가지라는 얘기다. 울산 계모 박 씨는 딸이 숨지기 1년여 전 딸의 허벅지를 발로 수차례 찼다. 허벅지 뼈는 두 동강 났다. 여덟 살 아동의 허벅지 뼈 굵기(지름)는 성인의 절반 수준. 갈비뼈는 더 가늘어 성인의 절반∼3분의 1 수준이다. 뼈 구성 성분 등 모든 조건이 성인과 같고 굵기만 다르다고 가정해도 뼈 강도는 어른의 8분의 1∼27분의 1에 불과하다. 박 씨는 키 166cm에 몸무게 58kg. 딸은 123cm에 20kg이었다. 서 교수는 “철근 지름이 1mm만 차이가 나도 철근이 견딜 수 있는 건물 하중에 엄청난 차이가 나는 것처럼 어른 뼈와 아이 뼈는 강도에서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차이가 난다”며 “체격 차이가 큰 어른이 뼈의 강도가 나무젓가락 같은 아이를 무차별 폭행했는데 어떻게 살인의 고의가 없었다고 할 수 있느냐”고 말했다. 칠곡 계모 임 씨는 누워 있는 딸의 배를 발로 수차례 밟았다. 임 씨 몸무게는 50kg가량. B 양은 20kg이었다. 몇 시간 뒤 딸이 심한 복통을 호소했음에도 주먹으로 배를 또 때렸다. 아동의 복벽(배 앞쪽의 속 부분)은 어른에 비해 몇분의 1∼몇십분의 1 정도로 얇다. 성인의 경우 장이 파열되려면 차량 정면충돌 사고로 배가 핸들에 강하게 부딪힌 정도의 충격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아동은 복벽이 얇아 발로 강하게 밟는 정도로도 같은 충격을 받는다. 이국종 아주대 의대 외과 교수는 “7년 전 계모의 발에 배를 밟혀 췌장이 두 동강 난 7세 여아를 치료한 적이 있었는데 복벽 두께를 생각하면 아동의 배를 강하게 밟는 건 살인에 가까운 행위”라고 말했다. 지난해 계모와 친부에게 닷새 동안 구타당한 뒤 숨진 A 군(8)은 ‘수면 고문’을 당했다. 부부가 골프채 등으로 A 군을 때리면서 1차로 30시간, 2차로 40시간 가까이 잠을 재우지 않았다. 아동을 잠자지 못하게 하는 것은 ‘보이지 않는 흉기’를 휘두르는 것이나 다름없다. 주은연 삼성서울병원 신경과 교수는 “잠을 못 자면 심장, 뇌, 혈관 등 모든 기관이 쉬지 못해 손상을 입는데 아동은 장기가 미성숙해 더 심각한 손상을 입게 되고 심하면 사망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손효주 hjson@donga.com·박성진 기자}
승용차가 자동 세차장에서 나오다가 정면에 있던 휴게실로 돌진해 1명이 숨지고 3명이 크게 다쳤다. 정모 씨(57)가 몰던 NF소나타(LPG)는 11일 오전 11시 40분경 서울 서초구 방배동 가스충전소에서 세차를 마친 뒤 갑자기 속도가 높아지더니 10m 앞의 휴게실로 돌진했다. 이 사고로 휴게실에 있던 택시기사 정모 씨(64)가 사망하고 서모 씨(48) 등 3명이 다쳤다. 운전자 정 씨는 급발진 사고라고 주장했다. 정 씨는 “세차가 끝나 브레이크를 밟고 중립(N)으로 해뒀던 기어를 드라이브(D)로 바꾸는 순간 갑자기 차가 튀어나갔다”며 “몸을 일으킬 정도로 세게 브레이크를 밟았지만 멈추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정 씨 차량의 블랙박스를 보면 세차장에 초록 신호등이 들어온 뒤 차가 갑자기 속도를 내면서 3초 만에 휴게실을 들이받는다. 충돌 당시 시속은 30∼40km로 추정된다. 서울 방배경찰서는 정 씨를 과실치사상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은 사고 현장에 브레이크를 급하게 밟았을 때 생기는 검은 자국인 스키드 마크가 있고 목격자들이 “급발진할 때 발생하는 엔진 굉음이 당시엔 나지 않았다”고 진술한 것을 토대로 급발진 가능성을 낮게 보고 있다. 다만 운전 경력 27년인 정 씨가 가속페달과 브레이크를 헷갈렸을 가능성도 적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정 씨 차량의 급발진 여부에 대한 정밀조사를 의뢰했다.조동주 djc@donga.com·박성진 기자}

‘아이언맨’ ‘토르’ 등 인기가 많은 캐릭터들이 출연하는 영화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어벤져스2)’의 서울 촬영이 30일부터 시작된다. ‘어벤져스2’는 마포대교를 시작으로 다음 달 14일까지 약 보름간 세빛둥둥섬과 강남대로 등의 교통을 통제하고 촬영할 예정이다. 서울시내에서 영상물 촬영 때 이처럼 장시간 교통을 통제한 건 전례가 없다. 서울시와 서울지방경찰청 등의 대대적인 지원과 인기가 높은 배우들의 방한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면서 인터넷에선 ‘어벤져스’ 전작의 장면을 서울시내 배경과 합성한 패러디물이 쏟아지고 있다. 그러나 사진이나 영상물 촬영은 삼가야 한다. 배급사인 월트디즈니코리아는 28일 보도자료를 내고 “촬영 현장이 언론에 유출될 경우 영화에선 촬영분이 편집될 가능성이 높다”며 “영화 내용을 노출시킬 수 있는 사진이나 동영상 촬영에 주의해 달라”고 밝혔다. 그럼에도 서울 강남역 인근 한 도넛 가게 점장 김수경 씨(35)는 “다음 달 4일 강남대로 촬영 때 전면이 통유리로 돼 있는 가게의 특징이 장점이 될 것”이라며 “사람들이 커피를 마시며 영화 촬영을 구경하면 장사도 잘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간단한 음식을 파는 가게들도 ‘영화 촬영 특수(特需)’를 예상했다. 다음 달 사흘간 영화 촬영이 예정된 마포구 상암동 DMC 월드컵북로 인근 샌드위치 가게 직원 이현희 씨(22·여)도 “스태프와 손님들이 와 샌드위치가 잘 팔릴 것 같다”고 말했다. 특히 강남대로는 접근성이 좋아 촬영 때 시민들이 많이 몰릴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 경찰은 일요일인 6일 오전 강남대로 차도를 통제하고 인도도 촬영 상황에 따라 통제할 방침이다. 촬영을 잠시 쉴 땐 인도를 개방하고 촬영이 시작되거나 위험할 수 있는 상황이면 통제한다는 것이다. 구경하려는 시민들은 카페나 음식점 등을 ‘구경 포인트’로 삼았다. “월드컵 경기 기다리듯 서울 촬영을 기다려 왔다”는 대학생 김지형 씨(26)도 “6일 새벽부터 강남역 근처 24시간 카페에서 잘 보이는 자리를 맡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교통 통제로 시민들에게 불편을 주고 일부 상인에겐 생업에 지장을 줄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강남대로변 편의점 주인 김현희 씨(54)는 “토요일에서 일요일로 넘어가는 새벽은 술집에서 나온 사람들이 오는 피크타임인데, 대로를 통제하면 손님도 줄어들 것”이라고 걱정했다. 다른 곳과 달리 주말이 아닌 평일에 도로가 통제되는 상암동 주민들은 출퇴근과 등교 걱정이 앞섰다. 버스로 출퇴근하는 차호철 씨(62)는 “여긴 지하철이 없어 사람들이 버스만 타는데 출퇴근 시간을 피해서 통제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불만을 터뜨렸다. 서울시는 영화 촬영지 관련 72개 버스 노선에 임시 버스 노선과 임시 버스정류장을 만들어 활용할 계획이다.박성진 psjin@donga.com·홍정수 기자}

“영빈아….” 고 심영빈 중사의 어머니 김순자 씨(56)는 아들 묘를 보자마자 주저앉았다. 눈물을 닦던 손수건으론 아들 사진을 닦고 손으론 비석에 새겨진 아들 이름을 연신 어루만졌다. 한참을 오열하던 어머니는 “어떻게 그런…아직도 (아들의 죽음이) 믿기지 않아요”라며 간신히 말을 이었다. 천안함 폭침 4주기 추모식을 맞아 26일 국립대전현충원을 찾은 46용사 유가족들은 아들과 남편의 묘 앞에서 마르지 않은 눈물을 쏟아냈다. 곳곳에서 울음소리가 들렸다. 고 정종율 상사의 아버지 정해균 씨(67)는 아들의 묘비 앞에 쪼그리고 앉아 아들에게 말을 건넸다. “종율아, 이렇게 보고만 있으면 뭐 하냐…. 말도 못하고. 환장하겠다, 진짜.” 흐느끼던 울음소리가 점점 커졌다. “무심하게 꿈에도 한번 안 나오냐, 목소리가 듣고 싶은데….” 당시 가라앉는 천안함 함수에 마지막까지 남아 승조원들을 구조했던 최원일 전 천안함 함장(47)도 묘역을 찾았다. 유족들의 손을 일일이 잡으며 위로의 말을 건넨 최 전 함장은 “(천안함이) 시간이 갈수록 국민들 기억 속에서 잊히는 것 같다”며 안타까워했다. 고 이용상 하사의 아버지인 이인옥 천안함46용사유족협의회장(52)은 “폭침 직후엔 솔직히 최 전 함장을 원망하고 미워했다”며 “하지만 시간이 가고, 최 전 함장이 우리 아이들을 얼마나 아꼈는지 알고 나선 늘 우리에게 고마운 분”이라고 했다. 이날 기일을 맞아 몇몇 가족은 묘비 앞을 깨끗하게 닦고 준비해 온 음식을 정성스럽게 차렸다. 고 이상민 하사의 묘 앞엔 포도와 참외, 토마토 등 과일과 에그타르트, 브라우니와 치즈케이크가 놓였다. 이 하사의 아버지 이병길 씨(66)는 “전부 상민이가 좋아하던 것”이라고 했다. 고 문규석 원사와 고 김종헌 상사의 묘비 앞에는 소주 한 병이 놓였다. 세월의 흐름은 훌쩍 커버린 아이들에게서 느껴졌다. 폭침 당시 생후 갓 한 달을 넘긴 갓난아기였던 고 최정환 상사의 딸 의영 양(4)은 꼬마 숙녀가 됐다. “과자 사달라”고 조르던 의영 양은 엄마가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흘리자 두 손으로 엄마 얼굴을 들어올리려 하기도 했다. 13세에 상주 역할을 했던 고 이창기 준위의 아들 이산 군(17)은 고등학교 교복을 입고 왔다. 이 군은 “아버지께 인사드리고 간다”고 의젓하게 말했다. 천안함 승조원들을 구하려다 순직한 한주호 준위의 가족들도 현충원을 찾았다. 경남 창원시 안골포초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하고 있는 한 준위의 아들 상기 씨(30)는 “초등학교 6학년 도덕 교과서에 아버지 얘기가 실려 있다”며 “3월이 되면 아이들에게 아버지 얘기를 해주며 교육한다”고 했다. 한 준위의 부인 김말순 씨(59)도 “기억해 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이번 4주기 추모식에 여야 정당 지도부와 박원순 서울시장, 김황식 전 국무총리 등 많은 정치인이 참석한 데 대해 일부 유가족은 “지난해 대통령이 참석했을 때보다 더 많은 정치인이 왔다. 선거철이라 얼굴 비치러 온 것 아니냐”며 눈살을 찌푸리기도 했다.대전=강은지 kej09@donga.com·박성진 기자}

4년이 흘렀다. 사람들은 “이제 좀 괜찮지 않으냐”고 했다. “시간이 약이다”란 위로의 말도 건넸다. 천안함 폭침 사건으로 자식을 바다에, 가슴에 묻은 부모들은 “아직도 아프다”고 했다. 고 민평기 상사의 어머니 윤청자 씨(71)는 “낮엔 괜찮지만 밤엔 아직도 눈물이 나온다”고 했다. 고 이용상 하사의 아버지 이인옥 씨(52)는 “자식을 어떻게 잊느냐”고 되물었다. 시간이 흘러도 치유되지 않는 가슴의 상처를 안은 이들이 어찌 이들뿐일까. 그래도 46용사의 부모들은 아픈 마음을 추스르고 우뚝 일어나 한 걸음 한 걸음 내딛고 있었다.○ 아들 가슴에 묻고 ‘열혈 애국 어머니’로 “우리 아들 덕에 내 나라 소중한 건 알게 됐지.” 주름진 손가락으로 짐가방을 쓰다듬었다. 충남 부여에서 올라와 서울 서초구 우면동에 있는 큰아들 민광기 씨(44) 집에 머물던 윤청자 씨를 17일 만났다. 윤 씨는 여름옷들만 추려 짐을 꾸리고 여행 준비를 하고 있었다. 목적지는 아프리카 에티오피아. 윤 씨는 “원래 어디 있는 나라인지, 어떤 나라인지도 잘 몰랐다”고 했다. 갑작스러운 에티오피아행은 에티오피아의 6·25전쟁 참전용사들을 돕기 위한 후원금 2000만 원을 전달하기 위해서였다. 스스로를 “시골에서 농사만 짓고 배우지 못한 사람”이라고 표현한 70대 할머니는 어느새 ‘열혈 애국 어머니’가 돼 있었다. 윤 씨는 2010년 4월 29일 경기 평택시 포승읍 해군 제2함대사령부 안보공원에서 열린 천안함 46용사 영결식 때 강기갑 당시 민주노동당 대표를 향해 “의원님, 북한에 왜 퍼주십니까. 쟤들이 왜 죽었습니까. 이북 ×들이 죽였어요”라며 울부짖어 많은 이의 심금을 울렸다. 또 유족 보상금 중 1억 원을 방위성금으로 기부해 해군이 K-6 기관총 18정(3·26 기관총)을 사도록 했다. 2010년 설립된 천안함재단의 자문위원도 맡고 있다. 윤 씨는 천안함 사건 뒤 ‘내 아들이 왜 죽었는가’란 의문이 오래도록 가슴에 남았다고 했다. “내 아들이 죽기까지 하며 지키려 했던 대한민국이 마음속에서 떠나지 않았지.” 이번 에티오피아 방문도 아들을 보낸 뒤 생긴 불면증에서 비롯됐다. 잠이 오지 않는 긴긴 밤, TV를 보던 윤 씨는 에티오피아가 6·25전쟁 때 보병 6037명을 파병하며 아프리카 국가 중 유일하게 한국을 도운 국가임을 알게 됐다. “그때 그분들 아니었으면 우리나라가 이렇게 편하게 살 수가 없잖아…. 나는 6·25를 겪은 사람인데 그 도움이 얼마나 큰지 잘 알지.” 지난해 겨울부터 에티오피아를 돕고 싶다는 마음을 가져 온 윤 씨를 큰아들이 도와줬다. 민 씨가 한국국제보건의료재단과 연계해 에티오피아 방문을 주선한 것이다. 고령이시니 건강을 생각해 성금만 보내라는 아들의 만류에도 어머니는 단호했다. “내가 여태 살 수 있었던 건 국민들이 보내준 성원 덕분이야. 그래서 살 수 있었어. 에티오피아 사람들 중에도 6·25 파병으로 가족을 잃은 사람들이 있을 것 아냐. 이제는 내가 가서 그분들께 감사하다고 인사하려는 거야. 그 마음 누가 알아주겠어.” 18일 출국했다가 성금을 전달하고 23일 귀국한 윤 씨는 전화 통화에서 “죽기 전에 다녀와 홀가분하다”며 “성금은 향후 참전용사들의 병원비와 장례비, 참전용사기념회관 수리 비용 등으로 쓰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금도 어디선가 ‘아빠’하고 부를 것 같아” 윤 씨가 에티오피아로 출국한 18일, 이인옥 씨는 평택 해군 2함대를 찾았다. 천안함 앞에 선 이 씨는 “평택 나들목을 지날 때마다 마음이 찡하다”면서 “지금도 어디선가 용상이가 ‘아빠’ 하고 부를 것 같다”며 고개를 숙였다. 육군을 나와 해군에 대해 전혀 몰랐던 이 씨 역시 4년 전 사건 이후 해군에 대해선 ‘준전문가’가 됐다고 씁쓸히 웃었다. 이용상 하사는 두 번 떨어지고도 세 번 도전한 끝에 갈 정도로 해군에 대한 애정이 컸다. 사고 당시엔 제대를 한 달하고 6일 남겨두고 있었다. 이 씨는 천안함 폭침 6일 전 모친상을 당했다. 불과 일주일 사이 어머니와 아들을 다 잃은 슬픔은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었지만 자식을 가슴에 묻은 아픔은 상상 이상이라고 했다. “이렇게 말하면 불효겠지만…. 1년이건, 4년이건 엊그제 일 같아요. 자식 잃은 슬픔은 영원하다는 말이 딱 맞는 것 같아요.”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그런데 이번엔 막내아들 상훈 씨(20)가 해병대에 입대하겠다고 나섰다. 큰아들을 바다에서 잃었는데 또 바다라니. 이 씨와 아내는 ‘못 간다’며 격렬하게 반대했다. 막내는 ‘형과 한 약속’이라고 부모를 설득했다. “막내가 ‘형이 해군이니 난 해병대를 가겠다’며 형과 약속했다고 하더라고요. 그걸 말릴 수 있나요.” 그렇게 올해 1월 20일 입대한 막내를 3월 초 해병대 교육훈련단에서 만났단다. “아주 늠름해졌더라고요. 허허.” 이 씨는 천안함46용사유족협의회 회장을 맡으며 여러 차례 언론 보도에 이름과 얼굴이 소개된 바 있다. 그런 이 씨에게 아직도 주변에선 “그런데 천안함…. 그거 진짜 북한 어뢰 맞아요?”라고 질문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그럴 때마다 가슴이 턱턱 막힙니다. 내가 뭐라고 해야 하나요. 여기 평택에 와서 천안함을 한 번 보고, 한밤중에 무방비 상태로 당한 이 증거물들을 보라는 말밖엔….” 이 씨의 눈시울이 끝내 벌겋게 달아올랐다. 해군 2함대 내에 꾸며진 서해수호관. 매일 2000여 명이 찾는 이곳 2층엔 천안함 46용사의 사진과 유품들이 전시돼 있다. 모두 가족들이 엉엉 울며 아들과 남편의 이름이 잊히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기부한 유품들이라고 했다. 이용상 하사 사진 아래엔 평소 차던 검은 시계와 도장, 운전면허증과 검은 정복이 놓였다. “우리 아들이 영웅이지 내가 영웅은 아니잖아요. 그런데 내가 똑바로 살지 않으면 우리 아들 이름에 먹칠할 것 같아요. 부모로서 할 도리를 하고 살자. 지금은 이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평택=강은지 kej09@donga.com / 박성진 기자}

○ “이처럼 건강하고 즐거운 이벤트는 처음”10km 완주 인도인 사키티씨“한국처럼 이렇게 건강하고 즐거운 이벤트가 있는 나라는 처음이에요.” 인도인 사키티 씨(32·사진)는 3년 전부터 한국 건설사의 엔지니어로 일하며 경기 고양시에서 살고 있다. 사키티 씨는 그보다 3년 전 한국에 와서 살며 마라톤에 참여했던 인도 출신 직장 동료의 추천으로 서울국제마라톤 10km 코스에 참가했다. “인도에서 온 동료 6명 중 4명은 풀코스, 2명은 10km를 함께 뛰었어요. 인도에 있는 가족들도 꼭 완주하라고 응원해 줬죠.” 사키티 씨는 1시간20분 만에 결승선을 넘었다. 결승선을 넘자마자 잔디밭에 벌렁 누운 그는 “5km부터 위기가 왔고, 9km부턴 걸어왔다”며 숨을 골랐다. 팔베개를 하고 하늘을 바라보며 누워 있던 그는 앞으로 또 도전할 거냐는 질문에 잠시 고민하다가 “하겠다”고 답했다. ○ “한걸음씩 뛸 때마다 ‘사랑의 모금’ 뿌듯”환갑상 차릴 돈까지 기부 조남수씨“처음엔 환갑을 남과 달리 보내고 싶다는 생각이었는데, 점차 여생을 기부로 인한 즐거움을 누리며 살아야겠다는 다짐으로 바뀌었어요.” 조남수 씨(61·사진)는 1월 환갑을 맞아 가족들이 모아 준 500만 원의 사용을 놓고 고민하다 기부하기로 마음먹었다. “기왕 기부하는 것, 지인들에게 기금을 모아 돈을 불리는 게 낫겠다 싶었죠.” 지인들에게 ‘42.195km를 달릴 테니 사랑을 나눠달라. 가치 있는 1만 원을 보내달라’는 내용의 글을 돌렸다. ‘사랑의 모금’이란 이름으로 지난달 8일 개설한 통장엔 14일까지 826만 원이 모였다. 3시간53분 만에 완주한 조 씨는 “35km 지점에서 너무 힘들어 포기하고 싶었는데 후원해 준 사람들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다”고 소감을 전했다. 그는 모인 기부금에 자신의 돈 826만 원을 보태 서울 서초구의 한 수녀회와 경기 성남시의 한 아동센터에 기부하기로 했다. ○ “韓日청년 함께 달리며 갈등 풀고 싶어”풀코스 완주 日여대생 모리카와씨지난해 말 일본에서 열린 고려대와 와세다대 중심의 ‘한일성신(誠信) 학생통신사’ 활동에 참가했던 일본 간다외국어대 스페인어학과 3학년 모리카와 리에 씨(21·사진)는 두 나라 젊은 세대 간의 가교 역할을 하고 싶다며 풀코스에 도전해 눈길을 끌었다. 풀코스는 처음이라 너무 힘들어 포기할까도 생각했지만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한 끝에 5시간57분의 기록으로 완주의 꿈을 이뤘다. 고교 시절부터 한국말과 태권도를 배울 정도로 한국에 관심이 큰 그는 “한국에서의 마라톤 완주로 한국과 더 친해진 느낌이 들었다”며 “졸업 후에는 국제기구 등에서 활동하고 싶다”고 말했다.○ “완주는 건강진단… 100살 돼도 자신있어요”86세 최고령 참가자 김종주씨“100살까지 마라톤 뛰고, 그 뒤엔 20년 동안 세계 여행하고, 120살 생일에 100m 힘차게 달린 뒤 마라톤 인생을 마무리하는 게 꿈입니다.” 서울국제마라톤 최고령자인 김종주 씨(86·사진). 1997년 동아마라톤에서 처음으로 정식 풀코스(42.195km)를 완주한 뒤 해마다 마라톤에 참가하고 있다. ‘팔순 마라토너의 끝없는 도전’이란 책도 냈다. 김 씨는 “풀코스를 뛰는 날은 종합 건강진단의 날”이라고 설명했다. 7시간 이내에 완주하는 게 목표였던 김 씨의 기록은 5시간33분. 자신의 기록을 확인한 뒤 김 씨는 “성과를 내서 기분이 좋다”면서 “지인들에게 한턱 쏘느라 술값 많이 나가게 생겼다”며 큰 소리로 웃었다. 그는 “앞으로 계속해서 달리며 건강을 유지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빵 금지 귀 찢져짐(찢어짐).’ 서울 중구 을지로2가 교차로의 한 구둣방에는 이런 팻말이 붙어 있다. 구두를 닦는 김모 씨(60)가 2012년 3월부터 귀가 찢어질 듯한 경적 소음에 시달리다 못해 걸어둔 것이다. 오전 8시부터 오후 7시까지 구두를 닦으며 하루 종일 경적을 듣고 나면 집으로 돌아가도 귀가 멍멍하고 귓밥이 굴러다니는 것 같은 환청이 들린다고 한다. 동아일보 취재팀이 3일 오후 3시 김 씨의 구둣방에서 1시간 동안 소음을 측정해 보니 을지로3가 방향으로 직진하는 차량과 남산 1호 터널 방향으로 우회전하려는 차량이 뒤엉켜 수십 차례 귀를 때리는 경적이 들려왔다. 구둣방 문을 닫고 안에서 측정을 했는데도 85∼90dB(데시벨)이 나왔다. 김 씨처럼 거리에서 생업을 잇는 사람들은 물론이고 출퇴근 시간마다 혼잡한 도로를 이용해야 하는 시민들에게도 운전자들이 무분별하게 울리는 경적 소음은 심한 스트레스 요인이다. 일부 운전자는 “멋있게 들린다”는 이유로 차량을 불법 개조(튜닝)해 소리와 울림이 법으로 정한 기준(110∼112dB)보다 더 큰 경적을 장착한다. 회사원 김모 씨(31)는 최근 자신의 ‘모닝’ 경차에 중형차 ‘제네시스’의 경적을 달았다. “‘띡’ 하는 경차의 경적 소리가 경박하게 들리는 것 같다”는 이유였다. 자동차 튜닝 카페에는 전자식 경적보다 소리가 큰 버스의 공기압식 경적(에어혼)을 승용차에 달고 싶다는 글도 하루 10여 건씩 올라오고 있었다. 불법 경적을 단 ‘반칙운전자’를 잡아내기는 쉽지 않다. 경적 검사는 자동차 정기검사의 필수 항목이 아니며 배기 소음이 유난히 큰 경우에만 제한적으로 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검사차량 305만 대 중 소음 기준에 맞지 않는 경적을 장착했다가 단속된 차량은 339대뿐이었다.조건희 becom@donga.com·박성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