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희

김재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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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터테인먼트 업계를 취재하는 방송·영화 담당 기자입니다. 재미를 주는 콘텐츠를 더 재밌는 기사 안에 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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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앨리스, 우리가 사는 '이상한 나라'에 널 초대할게

    소설이나 영화 속 주인공에게 감정이입해 함께 눈물짓거나 기뻐했던 기억,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방대한 독서가로 꼽히는 저자 알베르토 망겔도 그랬다. 망겔은 복수심과 분노로 가득 찬 몬테크리스토 백작, 강직한 자기 확신을 지켜가는 제인 에어를 예로 들며 문학 속 인물은 독자들에게 실존 인물로 여겨지고, 삶의 동반자 역할을 한다고 말한다. 소설 속 주인공이 때론 내 옆의 친구보다 더 가깝게 느껴지기도 하는 이유다. 이 책은 총 37명의 문학 작품 속 캐릭터들에 대한 이야기다. ‘보바리 부인’의 보바리,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앨리스, ‘알프스 소녀 하이디’ 속 하이디의 할아버지까지 우리에게 익숙한 캐릭터들의 탄생 배경과 이들이 인간의 삶에 던지는 메시지를 성찰한다. 먼 옛날, 머나먼 곳을 배경으로 하지만 소설 속 캐릭터들의 경험 안에는 오늘날 인간이 겪는 희로애락이 그대로 담겨 있다. 저자는 캐릭터에 내재된 인간 보편의 감정을 이해하기 쉽게 짚어준다. ‘이 캐릭터는 나와 어떤 점이 비슷할까’라는 생각을 해보지 않은 이라면 이 책을 통해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다. 앨리스의 여정에는 지금 우리가 일상에서 겪는 문제들이 내포돼 있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꿈의 추구와 상실, 생존 경쟁, 문제적 가정에서 발생하는 비극 같은 것들 말이다. 초능력으로 세상을 구하는 영웅의 대명사지만 어렸을 적 부모와 떨어져 농부 부부에게 입양되고, 소시민과 영웅 사이를 오가며 이중생활을 하는 슈퍼맨의 처지에 묘한 동정심을 느꼈다는 저자의 고백도 흥미롭다. 주인공이 아닌 조역들에게도 분석의 눈길이 뻗쳐 있는 점도 재밌다. ‘보바리 부인’에서 아내 에밀에 가려 있던 보바리를 조명한 저자는 보바리가 야망도, 의외성도 없는 평범한 인물이기에 매력이 떨어지지만 아내에 대한 사랑만큼은 컸다고 설명한다. ‘햄릿’의 거트루드나 ‘호밀밭의 파수꾼’ 속 피비처럼 주인공에 가려 존재감이 없던 캐릭터들을 재발견하고 싶은 이들에게도 이 책을 권한다. 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 2021-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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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초록색 파스타, 다른 모습을 품는 포용의 제스처 [김재희 기자의 씨네맛]

    《‘올드보이’의 최민수가 먹어야 했던 음식은 왜 하필 군만두였는지 궁금한 적 없나요? ‘줄리&줄리아’를 보고 뵈프 부르기뇽 맛집을 찾아본 적은요? ‘씨네맛’이 이런 호기심을 해결해 드립니다. 해당 음식이 선택된 이유와 연출 의도, 그리고 직접 맛볼 수 있는 곳까지 영화 속 맛에 대한 모든 걸 파헤칩니다. 》 지난달 17일 개봉한 디즈니·픽사 ‘루카’에서 두 주인공 루카와 알베르토만큼이나 중요한 ‘제3의 주인공’은 파스타다. 파스타가 처음 나오는 장면은 바다괴물이라는 정체를 숨기고 이탈리아 해안가 마을로 나온 루카와 알베르토가 인간 친구 줄리아의 집에서 줄리아의 아버지 마시모가 해준 페스토 트레네테를 먹는 장면이다. 인간의 음식을 처음 맛본 이들은 손으로 기다란 면을 집어 허겁지겁 입안에 욱여넣는다. 순식간에 소스 흔적도 없이 접시를 싹 비울 정도로 페스토 트레네테는 맛있었다. 영화의 후반부까지 이 파스타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물에 닿으면 바다괴물로 변하는 루카와 알베르토는 비를 맞으면서 정체가 드러난다. 바다괴물에 적대적이었던 마을 사람들은 친구가 된 줄리아와 루카, 알베르토를 보고 공포심을 거둔다. 바다괴물들을 초대해 페스토 트레네테를 대접한 마시모, 처음 이를 맛봤을 때처럼 신난 표정의 루카와 알베르토의 모습을 통해 영화는 다양성의 포용에 대한 이야기로 나아간다. 서면 인터뷰에서 엔리코 카사로사 감독은 “영화 끝에 마시모가 바다괴물들을 초대해 트레네테를 대접하는 건 진정한 포용을 나타내는 따뜻한 제스처”라고 설명했다. 유년 시절의 우정을 그리고자 했다는 감독은 왜 핵심 소재로 파스타를 활용했을까? 이탈리아 북서쪽 리구리아주의 주도 제노바 출신인 그의 설명은 이렇다. “이탈리아인들은 파스타와 함께 자랍니다. 점심, 저녁으로 파스타를 먹죠. 이탈리아 각 지역에는 고유의 파스타 면 모양과 소스가 있어요. 파스타가 이탈리아의 정체성과 문화에 있어 얼마나 중요하고 맛있는 요소인지 상상이 가죠?” 페스토 트레네테는 제노바의 전통 파스타다. 페스토의 주 재료인 바질과 잣이 제노바에서 잘 자라 처음 이 소스를 만들어 먹기 시작했다. 영화의 배경이 제노바 인근 해안가 마을이기에 페스토 트레네테를 택했다. 통상 리구리아주에서는 페스토에 ‘트로피에’ 면을 많이 사용하는데, 루카에서 면발이 얇고 판판한 트레네테를 선택한 이유도 재밌다. “트로피에는 모양이 짧고 꼬불꼬불해서 재밌지 않을 것 같았어요. 루카와 알베르토가 아주 지저분하게 손으로 집어 먹는 모습을 연출하고 싶어서 국수 같은 트레네테를 택했죠.” 우리나라에서 제노바식 페스토 파스타를 맛볼 수 있는 곳은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에노테카오토’다. 이탈리아 피에몬테주의 ‘ICIF’(외국인을 위한 이탈리아 요리학교)에서 공부하고 1년간 리구리아주 키아바리의 식당에서 일한 강성영 셰프(62)가 2014년 차렸다. 시그니처 메뉴인 ‘제노베제(’제노바의’라는 뜻의 이탈리아어) 바질페스토’는 재료에서부터 제노바 향기가 물씬 난다. 제노바 페스토 파스타만의 특징인 감자와 줄기콩이 들어 있다. 소스가 잘 묻도록 생면을 택했다는 강 셰프의 말대로 생면에 덧입혀진 페스토 향이 입안에 강하게 퍼진다. 면과 감자를 함께 씹으면 감자 특유의 단맛과 푸석한 식감이 어우러지면서 기존에 맛보지 못한 페스토 파스타를 즐길 수 있다.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 2021-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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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집에 의사가 찾아왔다… 딱맞는 건강정보를 들고왔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가져온 긍정적 변화를 굳이 꼽자면 건강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졌다는 것이다. 손을 자주 씻고 손 세정제를 구비하는 등 면역력을 기르기 위한 노력이 일상이 됐다. 술자리가 줄어든 때를 기회 삼아 운동을 시작한 이들도 많다. ‘내 건강은 내가 지키자’는 사고가 당연해진 요즘, 의사가 직접 집에 찾아와 맞춤형 의학 정보를 제공해 준다면 어떨까. 지난달 13일 방송을 시작한 채널A 일요 시사교양 프로그램 ‘의사가 온다’에서는 의사가 가정을 방문해 일상을 관찰하면서 건강을 해치는 습관을 짚고 개선 방안을 알려준다. 의뢰인의 신청을 받아 의뢰인 부모의 집을 방문한다. 지금까지 그룹 원더걸스 출신 혜림과 태권도 선수 신민철 부부, 쌍둥이 방송인 이상호 이상민 형제가 출연했다. 4일 방송되는 4화에서는 채널A ‘강철부대’에서 인기를 끈 해난구조전대(SSU)의 정해철이 출연한다. 단독 MC를 맡은 강남과 이수호 PD에게 이 프로그램만의 재미와 의미를 들어봤다. ‘의사가 온다’가 다른 의학 정보 프로그램과 갖는 차별점은 의사가 직접 의뢰인의 집을 방문해 개인에게 맞는 의학 정보를 준다는 것이다. 이상호 이상민 형제 부모의 경우 20년간 식당을 운영하며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을 서서 보낸다. 이런 경우 혈액순환 문제로 생길 수 있는 하지정맥류에 대한 정보를 주고 필요한 검사를 알려준다. 이 PD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데 영감을 받은 문구가 있다. ‘99%의 질병은 진료실 밖에서 생기고 진행된다. 의사가 진료실 밖으로 나가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는 문구였다”라며 “우리에게 의사는 꼭 필요한 존재이지만 거리감이 있다. 의사가 집에 온다면 많은 부분이 달라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변화가 궁금했다”고 말했다. MC를 맡은 강남은 평소 건강에 관심이 많아 출연했다. 그는 “제가 건강 염려증이 있다. 성격은 털털한데 몸에 대해서는 항상 불안해한다”며 “아내(이상화 전 스피드 스케이팅 국가대표 선수)가 운동선수라서 몸에 대해 잘 알아 많이 챙겨준다. ‘의사가 온다’를 진행해 보면 의사들을 통해 어떤 게 잘못된 생활습관인지 더 잘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평소 습관도 고치고 사람들에게도 도움을 주고자 출연하게 됐다”고 말했다. 의뢰인과 부모가 평소 먹는 식단대로 소화기내과 전문의가 식사를 함께 하면서 식단의 문제점도 짚는다. 이 PD는 “프로그램에 출연한 의사들이 한결같이 강조하는 것이 식습관이다. 식상하게 들리기도 하는데 반복적이고 지속적으로 우리 몸에 자극을 주는 것은 결국 먹는 것이다. 단순히 뭘 먹느냐를 넘어서 어떻게 먹어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고 했다. 강남은 한때 몸무게가 90kg이 넘을 정도로 과식을 했다고 한다. 강남은 “옛날에는 한 끼에 밥 두세 그릇 먹었다. 게다가 제대로 씹지 않고 빨리 먹었다. 몸무게가 네 번 정도 20kg을 왔다 갔다 했다”며 “촬영하면서 의사들이 식습관을 반드시 바꿔야 한다고 했다. 위에 부담이 가지 않도록 천천히 많이 씹는 습관을 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연예인부터 운동선수까지 다양한 의뢰인들과 부모의 생활을 함께 지켜보고 자신의 삶과 비교해볼 수 있는 것도 재미 요소다. 앞으로 출연할 의뢰인들에 대한 관심도 높다. 이 PD는 “겉으로 볼 때는 크게 문제가 없는, 혹은 자신의 병증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분들이 저희의 타깃이다. 이런 분들을 위주로 섭외하려 한다”고 전했다. 강남은 “촬영 일정이 많아 건강을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방송계 선배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며 “기회가 된다면 구라 형(김구라)을 초대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 PD와 강남은 프로그램을 통해 ‘난 괜찮을 거야’라며 건강에 자만했던 이들이 스스로의 삶을 되돌아볼 기회를 주고 싶다고 전했다. “‘정보와 경고’가 1차적인 지향점이다. 하나 더하자면 의사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고 싶다. 의사를 만나는 문턱이 높게만 느껴지는 세상이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의사를 친근하게 느꼈으면 한다. 의사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더 건강하게 살아보자.”(이 PD) “출연자들을 보면서 시청자들이 ‘어? 나도 이렇게 사는데, 안 되겠다’라는 걸 느꼈으면 좋겠다. 자신의 생활 패턴을 되돌아보고 잘못된 걸 바꿔 나가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강남)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 2021-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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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루카’ 속 또 다른 주인공? 초록색 파스타 ‘페스토 트레네테’ 먹어볼까[씨네맛]

    지난달 17일 개봉한 디즈니·픽사 ‘루카’에서 두 주인공 루카와 알베르토 만큼이나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제 3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파스타다. 파스타가 처음 나오는 장면은 바다괴물이라는 정체를 숨기고 이탈리아 해안가의 한 마을로 나온 루카와 알베르토가 인간 친구 줄리아의 집에서 줄리아의 아버지 마시모가 해 준 페스토 트레네테를 먹는 장면이다. 인간의 음식을 처음 맛본 이들은 포크 대신 손으로 기다란 면을 집어 허겁지겁 입 안에 우겨 넣는다. 황당해하는 줄리아, 의심스러운 표정의 마시모는 개의치 않고 순식간에 소스 흔적도 없이 접시를 싹 비웠을 정도로 페스토 트레네테는 맛있었다. ● ‘루카’의 또 다른 주인공, 페스토 트레네테 이후에도 페스토 트레네테는 자주 등장한다. 루카와 알베르토, 줄리아가 자전거, 수영, 파스타 먹기 세 종목으로 구성된 ‘포르토로소 컵’ 경기에 팀을 이뤄 출전하게 되기 때문. 이들은 접시에 수북이 파스타를 쌓아 놓고 빨리 먹는 연습을 한다. 영화의 후반부까지 파스타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물이 닿으면 바다괴물로 변하는 루카와 알베르토는 경기 도중 비가 내리면서 정체가 드러난다. 바다괴물을 잡은 이에게 상금을 걸었을 정도로 바다괴물에 적대적이었던 마을사람들. 그럼에도 친구가 된 줄리아와 루카, 알베르토가 한 팀이 돼 결승선을 가장 먼저 통과한 걸 보고 사람들은 바다괴물에 대한 적대감을 거둔다. 경기 후 바다괴물들을 초대해 페스토 트레네테를 대접한 마시모, 처음 이 음식을 맛봤을 때처럼 신난 표정의 루카와 알베르토의 모습을 통해 영화는 우정을 넘어 다양성의 포용에 대한 이야기로까지 나아간다. 서면 인터뷰를 통해 엔리코 카사로사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마시모는 바다괴물 모두를 초대해 트레네테를 대접하죠. 음식을 나누는 건 진정한 포용을 나타내는 따뜻한 제스쳐에요.” 유년시절의 우정을 그리고자 했다는 카사로사 감독은 왜 영화의 핵심 소재로 파스타를 활용했을까? 이탈리아 북서쪽 리구리아주의 주도 제노바 출신인 그의 설명은 이렇다. “이탈리아인들은 파스타와 함께 자랍니다. 점심에도 저녁에도 파스타를 먹죠. 우린 매일 독창적인 방식으로 파스타를 만들고, 일요일이나 기념일에는 신선한 재료로 속을 채운 라비올리를 먹습니다. 이탈리아 각 지역마다 그곳 고유의 파스타 면 모양과 소스가 있어요. 파스타가 얼마나 이탈리아의 정체성과 문화에 있어 중요한 요소인지 상상이 가시죠?”● 생각만 해도 허기를 부르는 리구리아주 음식들페스토 트레네테는 카사로사 감독의 고향인 제노바의 전통 파스타다. 페스토의 주 재료인 바질과 잣이 제노바에서 잘 자라 처음 이 소스를 만들어먹기 시작했다. 영화의 배경이 제노바와 가까운 해안가 마을이기에 다양한 이탈리아 파스타 중 페스토 트레네테를 택했다. “제노바 문화를 있는 그대로 담는 것이 매우 중요했다”는 게 감독의 설명이다. 페스토는 한국에서도 비교적 대중적이지만 트레네테를 들어본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파스타 면 종류 중 하나인 트레네테는 면발이 얇고 판판한 게 특징이다. 통상 리구리아주에서는 페스토에 얇고 꼬인 ‘트로피’ 면을 사용하는데, 감독이 이 영화에선 트레네테를 선택한 이유도 재밌다. “어렸을 때 가장 좋아했던 요리 중 하나가 ‘Troffie al pesto’(페스토 트로피)였어요. 처음엔 영화에 트로피를 사용하려 했지만 모양이 짧고 꼬불꼬불해서 가늘고 긴 파스타만큼 재밌지 않을 것 같았어요. 루카와 알베르토가 아주 지저분하게 파스타를 손으로 집어 허겁지겁 먹는 모습을 연출하고 싶었기에 국수와 같은 트레네테를 선택했죠.” 카사로사 감독은 페스토 트레네테 외에도 리구리아주의 전통음식들을 잔뜩 추천했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리구리아주 파스타 중 하나라는, 손수건처럼 얇고 넙적한 모양의 파스타 ‘Mandilli’, 크리스마스에 가족들과 즐겨 먹었다는 ‘Pansotti al sugo di noci’(시금치, 리코타 치즈로 안을 채우고 월넛 소스를 뿌린 파스타), 리구리아를 방문했다면 반드시 먹어보라는 ‘Spaghetti allo scoglio’(새우, 칼리마리, 홍합, 조개 등이 들어간 해산물 파스타)까지. 마지막으로 그가 추천한 건 리구리아주 전통 빵 포카치아다. “제노바 인근 소도시 레코의 ‘Focaccia al Formaggio’는 부드럽고 달콤한 크레셴차 치즈가 들어갔다”며 자세한 설명을 곁들인 감독은 이렇게 말을 맺었다. “지금 너무 배가 고파요! 진심으로 음식들을 끝 없이 소개할 수도 있을 것 같네요!”● 제노바식 파스타를 맛볼 수 있는 ‘에노테카오토’우리나라에서 제노바식 페스토 파스타를 맛볼 수 있는 곳은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에 자리한 ‘에노테카오토’다. 이탈리아 피에몬테주에 있는 ‘ICIF’(외국인을 위한 이탈리아 요리학교)에서 공부하고 1년 간 리구리아주 키아바리의 식당에서 일한 강성영 셰프(62)가 2014년 차렸다. 메뉴 이름부터 ‘바질페스토 파스타’가 아닌 ‘제노베제(’제노바의‘라는 뜻의 이탈리아어) 바질페스토’인데다, 감자와 줄기콩도 들어간 데에서 제노바 향이 물씬 난다. 감자와 줄기콩을 넣는 건 제노바 페스토 파스타의 특징이다. 영화에서 파스타가 클로즈업될 때도 줄기콩과 감자가 눈에 띈다. “해산물에 관심이 있어서 해안가 마을을 찾다가 리구리아주를 택했다”는 강 셰프는 “내가 일한 식당의 셰프가 제노바 음식의 장인이라 자연스럽게 제노베제 음식 만드는 법을 배웠다”고 했다. 아쉽지만 트로피나 트레네테 면을 사용하진 않는다. 그 대신 강 셰프는 직접 만든 생면을 쓴다. “트로피는 식감이 딱딱하기도 하고, 다른 이탈리안 레스토랑과 차별화하기 위해 당시 드물었던 생면을 택했다. 생면은 소스가 잘 묻어서 페스토 맛이 더 잘 느껴진다. 소스를 잔뜩 묻혀야 맛있는 볼로네제 파스타도 생면을 쓰는 게 좋다.” 강 셰프의 설명대로 생면에 덧입힌 페스토의 맛은 입안에 더 강하게 퍼진다. 면을 입에 넣은 뒤 감자를 함께 씹으면 감자 특유의 단맛과 푸석한 식감이 어우러지면서 기존에 맛보지 못한 페스토 파스타를 즐길 수 있다. ※씨네맛은? ‘올드보이’의 최민수가 감금방에서 먹어야 했던 음식은 왜 하필 군만두였는지, ‘황해’의 하정우가 입을 쫙 벌려 김을 우걱우걱 씹어 먹는 장면은 감독의 의도된 연출이었는지 궁금했던 적 없으신가요? ‘기생충’을 보고 채끝 등심을 올린 짜파게티가 문득 먹고 싶었던 적, ‘줄리 & 줄리아’를 보고 나서 비프 부르기뇽을 잘하는 레스토랑이 궁금했던 적은요. ‘씨네맛’은 관객들의 이런 호기심을 해결해드리는 코너입니다. 해당 음식이 선택된 이유와 연출 의도, 음식을 맛볼 수 있는 국내외 레스토랑까지 영화 속 맛에 대한 모든 걸 파헤쳐 드리겠습니다.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 2021-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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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 마블링? 스페인선 사육방식이 중요”

    소와 돼지가 사육되는 곳을 떠올려 보자. 좁은 우리 안에 다닥다닥 붙어 인간이 밀어 넣는 사료를 먹고 자라는, 수명을 다할 때까지 한 순간도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 불쌍한 동물들이 보일 것이다. 만약 온갖 열매가 달린 나무 60그루가 심어진 2만 m² 규모의 대지가 오직 돼지 한 마리를 위한 공간이라면, 그리고 그 돼지는 자유로이 뛰놀며 나무에서 떨어진 열매를 먹고 자란다면 어떨까. 푸아그라를 만들기 위해 거위에게 강제로 영양을 공급해 간이 급속도로 부풀었을 때 도축하는 게 아니라, 거위가 겨울에 북쪽으로 날아가기 전 영양소를 쌓아두기 위해 자발적으로 많이 먹을 때 도축한다면 어떨까. 위의 장면들이 실제로 펼쳐지는 곳이 있으니 그곳은 바로 스페인이다. 문정훈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48)가 스페인 북부 바스크에서 시작해 가장 남쪽 안달루시아까지 내려가며 방문한 시골 마을들의 모습을 지난달 22일 출간된 책 ‘진짜 스페인은 시골에 있다’에 담았다. 전작 ‘진짜 프랑스는 시골에 있다’에 이은 두 번째 책이다. 문 교수가 수년간 휴가와 출장을 쪼개 방문했던 스페인 시골 마을 중 두세 차례 갔던 곳들을 추렸고, 2019년 약 20일간 검증을 위해 해당 마을들을 다시 방문했다. 제목만 보고 이 책을 여행지 안내서로 생각했다면 착각이다. 책에는 문 교수의 음식의 다양성에 대한 철학, 더 깊게는 가축의 품종과 사육 방식의 다양성에 대한 믿음이 흐른다. 지난달 23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에서 만난 문 교수는 “한국의 종자 산업 활성화를 위한 정부의 GSP(Golden Seed Project)에 토종닭 종자 연구위원으로 참여했다. 한국은 소비되는 닭 중 토종닭 비율이 3%에 불과한데 프랑스와 스페인은 3분의 1에 달한다. 이게 어떻게 가능한지 배우고자 스페인과 프랑스 시골 탐험을 시작했는데 우리나라가 배울 점이 많더라”며 “이후 휴가 때마다 프랑스와 스페인 시골 마을을 찾았다. 제 인생 프로젝트가 됐다”고 했다. 그가 스페인 시골 마을들을 다니며 가장 놀란 점은 품종과 사육 방식의 다양성이다. 예컨대 바스크에서는 바스크 지역 재래 돼지인 ‘에우스칼 체리’ 450마리를 8만 m²의 농장에 방목해 키운다. 레온에서 소를 기르는 농부 호세는 소에게 그 지역에서 자라는 허브를 뜯어 먹게 하면서 7∼19년간 기른다. 반면 우리나라는 한우를 28∼33개월, 미국은 24개월에 도축한다. 그는 “우리나라는 마블링이라는 기준만으로 국가가 소의 등급을 정한다. 반면 스페인은 육질과 마블링이 아니라 어떻게 키우느냐를 중심으로 등급을 부여한다. ‘취향의 시대’에 접어든 만큼 획일적 기준에 의한 등급 부여가 옳은지 다시 생각할 시점”이라며 “유전자원을 다양화하는 것이 기후 변화, 예측 불가능한 질병들을 이겨낼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힘”이라고 강조했다. 이탈리아를 ‘진짜 시골’ 시리즈의 차기 후보로 생각했다가 코로나19로 잠시 미룬 그는 다음 국가가 어디가 될진 모르겠지만 끝은 한국이 될 것이라고 했다. “목포항, 쌀과 토란 농사가 이뤄지는 전남 곡성, 기후와 토양, 자라는 식물이 완전히 다른 울릉도도 정말 신기하다. 어떤 작물을 기르고 무엇을 먹는지가 사람들의 생활을 결정짓는다. 진짜 그 나라를 알기 위한 시골 탐방은 계속될 것이다.”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 2021-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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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로벌 OTT, 잇단 러브콜… 韓 드라마 제작사 '귀한 몸'

    스튜디오앤뉴의 ‘무빙’, 에이스토리의 ‘지리산’, 키이스트의 ‘별들에게 물어봐’. 세 드라마 작품은 각 제작사가 사활을 걸고 있는 텐트폴들이다. 무빙에는 500억 원, 별들에게 물어봐에는 400억 원, 지리산에는 300억 원 중반대의 제작비가 들어갔다. 조인성 전지현 주지훈 등 국내외에서 인기가 높은 한류스타들을 캐스팅했다. 거액의 제작비, 한류스타 캐스팅 외에도 세 작품의 또 다른 공통점은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와 손잡았다는 것. 무빙은 연내 한국 서비스를 앞둔 디즈니플러스가 처음으로 제작을 결정지은 오리지널 드라마다. 지리산은 중국 OTT인 아이치이 인터내셔널이 200억 원 후반의 금액을 지불하고 한국, 중국을 제외한 해외 독점 방영권을 샀다. 키이스트도 글로벌 OTT와 별들에게 물어봐의 해외 독점 방영권 판매를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글로벌 OTT들이 한국 콘텐츠 수급에 앞장서면서 국내 드라마 제작사들의 몸값도 덩달아 오르고 있다. OTT 중 가장 먼저 한국 서비스를 시작한 넷플릭스가 ‘킹덤’ ‘스위트홈’ 등 대작을 만들면서 독주체제를 구축한 가운데 디즈니플러스, 아이치이 등 막대한 자본을 등에 업은 글로벌 OTT들이 공격적 투자를 개시했다. 디즈니플러스는 스튜디오앤뉴로부터 5년간 매해 1편 이상의 드라마를 공급받는 파트너십을 체결하면서 두 편의 제작비로 660억 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아이치이는 지난해 ‘편의점 샛별이’ 등 한국 드라마 30여 편의 해외 방영권을 산 데 이어 올해 김은희 작가, 이응복 PD 조합으로 화제를 모은 지리산 해외 독점 방영권까지 구매했다. 김용수 에이스토리 전략경영본부 경영기획IR팀 실장은 “지난해 말부터 OTT 수가 급증하면서 한국 콘텐츠 단가가 높아졌다. 지리산의 비딩에도 여러 업체가 참여했고 아이치이가 가장 높은 금액을 제시해 독점 판권을 판매했다”고 했다. 글로벌 OTT들이 국내 제작사에 러브콜을 보내는 이유는 세계 시장에서 한국 콘텐츠가 큰 인기를 끌고 있기 때문이다. 스튜디오드래곤이 지난해 5월∼올해 6월 넷플릭스 전 세계 톱10 콘텐츠의 제작 국가들을 분류한 결과 총 58주간 톱10에 오른 580개 작품 중 미국 작품이 총 330번 순위에 올라 57%로 1위였고, 한국 작품은 총 46번 순위에 올라 8%로 2위를 차지했다. 톱10에 든 한국 작품은 ‘더킹’ ‘사이코지만 괜찮아’ ‘스타트업’ ‘스위트홈’ ‘좋아하면 울리는’ ‘구미호뎐’ ‘빈센조’ 등 7개로 모두 스튜디오드래곤이 제작한 드라마다. 스튜디오드래곤 관계자는 “동남아시아에서 OTT 경쟁이 치열해짐에 따라 아이치이 등 동남아 서비스를 시작한 플랫폼들이 아시아 시장에서 인기가 높은 한국 콘텐츠를 앞세워 가입자를 유치하려 하고 있다”고 말했다. 관건은 지식재산권(IP)의 확보다. OTT의 오리지널 콘텐츠를 제작하는 경우 OTT가 IP를 가져가기 때문에 방영권이나 리메이크 판권 등으로 추가 수익을 낼 수 없는 구조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킹덤’ 시리즈를 제작한 에이스토리가 지리산을 시작으로 자체 IP 콘텐츠를 만들려는 이유다. 에이스토리는 지리산을 국내 방영권 208억 원, 해외 판권 200억 원 후반대에 판매해 두 항목만으로도 제작비를 회수했다. 올해부터 OTT 콘텐츠 제작을 시작한 스튜디오앤뉴는 박훈정 감독이 세운 영화 제작사 ‘금월’과 계약을 맺고 ‘마녀2’ ‘신세계’ 프리퀄의 IP를 확보했다. 김용수 실장은 “OTT 오리지널 제작을 통해 OTT로부터 제작비를 100% 지원 받고 일부 수익을 추가로 받는 기존 모델에서 자체 IP 콘텐츠를 글로벌 OTT들에 판매하는 안정적인 수익모델로 넘어가는 것이 관건”이라고 말했다. 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 2021-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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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숲을 살리고 싶다면, 그저 내버려두길

    ‘숲은 연약한 환자와 같다.’ 저자는 자신이 한때 근무했던 독일 산림청이 이렇게 숲을 바라봤다고 말한다. 숲이 질병 등으로부터 안전하게 보호되려면 전문가들의 도움이 있어야 한다는 사고방식이었다. 이는 인위적 개입으로 이어졌다. 산림청은 고령의 나무들을 베어 내고 혈기왕성한 어린 나무들로 대체했으며 벌레를 박멸하기 위해 살충제를 마구 살포했다. 20년간 독일 라인란트팔츠주 산림감독관 등을 지낸 저자는 자연보호라는 명목하에 행한 일들이 정말 자연을 위한 일인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독일 산림 정책에는 숲의 주인인 나무와 생물을 중심에 놓는 시각이 결여돼 있다는 것. 그는 인간의 개입 없이 숲이 스스로 숨쉴 수 있도록 내버려 두기를 권한다. 나무가 땅속 미생물들과 소통하며 공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얘기다. 또 수명을 다한 나무들이 죽음을 맞고 나서 어린 나무들이 성장하는 자연의 순리에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녹색 에너지로 알려진 풍력발전과 바이오매스가 나무와 숲의 희생 위에 세워지고 있다는 점도 고발한다. 산에 풍력발전기를 세우기 위해서는 나무를 대량으로 벌목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흙에 저장된 이산화탄소도 대량으로 배출된다. 또 풍력발전기 날개에 부딪혀 새들이 죽거나 야생동물의 서식지가 파괴되기도 한다. 녹색 에너지 이면에 도사린 부작용을 고발하는 저자는 먼저 에너지 소비부터 줄이는 게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 2021-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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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년 땀의 결실” 스칼릿 조핸슨 ‘블랙 위도우’가 온다

    2019년 ‘어벤져스: 엔드게임’에서 장렬한 최후를 맞은 어벤져스 원년 멤버 블랙 위도우가 돌아온다. 다음 달 7일 전 세계에서 동시 개봉하는 ‘블랙 위도우’는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첫 여성 히어로 나타샤 로마노프(스칼릿 조핸슨)를 단독 주연으로 앞세운 영화다. 2010년 ‘아이언맨2’에서 나타샤 캐릭터가 처음 등장한 이후 10년이 걸렸다. 블랙 위도우는 당초 지난해 5월 개봉 예정이었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개봉이 수차례 연기됐다. 24일 화상 간담회에서 조핸슨은 “드디어 솔로 무비가 나왔다. 10년간의 땀의 결실이 맺어지는 순간”이라며 감격스러워했다. 조핸슨은 아이언맨2를 시작으로 9편의 마블 영화에서 블랙 위도우를 연기했다. 지난 10년간 18∼24개월에 한 번씩 같은 캐릭터를 연기한 것. 그는 각 편 감독들이 나타샤의 새로운 면모를 발견해내 신기했다고 했다. 조핸슨은 “아이언맨2에서 나타샤가 캐리커처 느낌이었다면 ‘윈터솔져’부터 리더십을 발휘한다. 엔드게임에서는 나타샤와 블랙 위도우가 하나의 캐릭터로 완벽하게 만들어졌다”며 “지속적으로 캐릭터가 진화한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블랙 위도우의 중심에는 레드룸이 있다. 영화에서 레드룸은 소련에서 여자아이들을 유괴한 뒤 전투 훈련을 시켜 암살자로 양성하는 기관이다. 훈련 때 상대방이 죽을 때까지 공격하도록 하고, 성인이 되면 임무에 지장이 없도록 자궁을 적출하는 끔찍한 곳이다. 나타샤와 옐레나 벨로바(플로렌스 퓨), 멜리나 보스토코프(레이철 바이스)는 레드룸에서 만난다. 블랙 위도우의 과거는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에서 짧게 소개됐는데 이번 영화는 레드룸의 실체를 알게 된 나타샤가 이들의 음모를 막기 위해 싸우는 이야기를 다룬다. 예고편에서 나타샤와 옐레나의 격투 장면이 나와 둘을 적대 관계로 오해할 수 있지만, 영화는 기본적으로 여성들의 연대를 그리고 있다. 레드룸이라는 악몽 같은 공간에서 학대를 당하며 암살자로 자란 두 사람은 공통의 경험을 바탕으로 단단한 동지애를 보여준다. 조핸슨은 미 연예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두 인물의 관계를 ‘자매애(sisterhood)’로 표현했다. 이날 간담회에 함께 참석한 케이트 쇼틀랜드 감독은 “자신의 인생을 살 수 없었던 사람들이 이를 되찾기 위해 나아가는 여정을 따라간 영화다. 그 과정에서 고통을 받지만 결국 사랑받게 된다는 점에서 많은 여성들이 공감할 것”이라며 “이들을 피해자로만 바라보는 게 아니라 생존자라는 데 중점을 뒀다. 고통받았던 현실을 유머러스한 그들만의 시선으로 바라본다”고 말했다. 이어 “이전에 ‘블랙팬서’ ‘원더우먼’ 같은 영화가 있었기에 블랙 위도우도 만들어질 수 있었다. 주류로 여겨지는 백인 남성 외에도 대중이 원하는 히어로가 있다는 걸 확인했다”고 덧붙였다.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 2021-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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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 끄고 별 켜진 하루… 발리의 ‘녜피’ 다큐에 담았다

    인도네시아 발리 사람들에게 1년이 며칠이냐고 물으면 364일이라는 예상 밖의 대답이 돌아온다. 1년 중 하루는 모든 것이 멈추는 날이기 때문에 365일 중 하루를 뺀다. ‘녜피(Nyepi·바른 표기는 녀피)’라 불리는 이날은 힌두교력의 새해 첫날(3월 중 유동적)로 섬 전체의 모든 불이 꺼지고 통행이 금지되며 사람들도 외출할 수 없는 침묵의 시간이다. 발리인은 물론 관광객들도 예외 없이 녜피에는 네 가지 수칙을 반드시 따라야 한다. 불 켜지 말 것, 일하지 말 것, 이동하지 말 것, 놀지 말 것. 서퍼들과 휴양객들로 1년 내내 쉴 틈 없는 발리의 바다와 하늘이 하루 동안 쉬어가는 날이다. 녜피를 4년에 걸쳐 카메라에 담은 이가 있다. 산악인 고 박영석 대장이 북극에 도달하는 과정을 담은 다큐 ‘박영석 대장의 그랜드 슬램’(2005년)을 연출한 김해영 감독(55)이다. 2016년 발리를 방문했을 때 녜피를 처음 알게 된 김 감독은 그의 40년 지기인 김정홍 작가(55)와 함께 녜피를 소재로 다큐멘터리를 만들기로 했다. 두 사람이 2018년부터 올해까지 매년 3개월씩 총 12개월 동안 발리에 머물며 촬영한 녜피의 모습은 채널A가 올해 창사 10주년을 맞아 제작한 다큐 ‘지구는 엄마다’에 담겼다. 24일 서울 종로구 씨네큐브에서 열린 시사회에서 김 감독은 “발리를 방문했을 때 녜피에 호텔 방에서 우연히 하늘을 봤는데 까만 도화지에 설탕 가루를 뿌려놓은 것같이 별이 빼곡하더라. 디스커버리, BBC를 찾아봤는데도 녜피를 다룬 게 하나도 없었다. ‘이건 특종이다’라는 생각에 제작을 결심했다”고 밝혔다. 지구는 엄마다의 1부 ‘녜피’는 이달 26일, 2부 ‘이부쿠’는 다음 달 3일 오후 9시 50분 채널A에서 방송한다. 1부에서는 녜피를 앞둔 발리인들의 준비 과정과 녜피 당일의 모습을 담았다. 2부는 ‘신들의 섬’이라 불리는 발리에서 매일 신에게 기도를 올리고 신과 교감하는 발리인들의 모습을 조명했다. 세계 최초로 녜피 당일을 다채롭게 담기 위해 김 감독과 제작진은 4년 동안 각기 다른 장소를 정해 녜피의 모습을 촬영했다. 녜피 아침 강아지 한 마리만 배회하는 텅 빈 마을의 골목, 까만 밤하늘을 수놓은 은하수, 파도와 어우러진 서퍼들은 찾아볼 수 없고 조각배들만 둥둥 떠 있는 바다까지. 시사 후 만난 김 감독은 “녜피에는 이동수단이 없고 움직이는 것도 금지되기 때문에 내가 선택한 공간에만 있어야 했다. 매해 녜피 때마다 하늘, 산, 마을, 바다 등을 한 곳씩 골라 미리 텐트를 치고 꼼짝없이 있었다”고 말했다. 밤하늘에 쏟아질 듯한 별이 가득한 장면을 ‘녜피를 가장 잘 담은 장면’으로 꼽은 김 감독은 “불이 다 꺼지니 별빛이 훨씬 환했다. 별다른 효과를 주지 않았는데도 그런 장면이 연출됐다”고 말했다. 녜피를 앞두고 거대한 축제의 장으로 변하는 발리의 모습도 다채롭다. 바다에서 행하는 집단 제례 ‘멜라스티’(나쁜 것을 버린다는 뜻)와 귀신들을 형상화한 조형물들을 사람들이 들고 행진하는 ‘오고오고’(가장 나쁜 귀신들의 행렬이라는 뜻)에서 악귀를 빼내기 위해 불이 붙은 숯을 이로 깨무는 사람부터 접신이 돼 바다로 뛰어드는 이들까지 놓치지 않고 카메라에 담았다. 김 작가는 “빙의되는 장면이 시청자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에 대한 고민으로 촬영하기 어려웠고, 각본을 쓰는 것도 가장 까다로웠다. 저마다 해석이 다를 수 있기에 글로써의 설명은 최소화했다”며 “발리인들은 우리보다 훨씬 신과 가까이 있다고 느끼기 때문에 빙의도 수월하게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녜피는 발리의 바다와 하늘이 쉬는 날이면서 동시에 인간이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인터넷이 끊기고 외출도 할 수 없는, ‘자가격리’ 상태의 사람들은 스스로를 돌아보고, 사랑하는 사람과 대화할 기회를 갖는다. 김 작가는 “하루를 쉰다고 해서 지구가 말끔히 정리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녜피는 인간이 하루 동안 자신을 정화한다는 데 의미가 있다. 1년 중 하루 동안 명상을 하며 나를 만나는 것”이라며 “코로나19는 지금까지 살아온 방식이 답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경고였다. 그 해결 방안 중 하나가 녜피가 될 수 있다. 시청자들에게 ‘당신의 녜피를 찾으라’고 권하고 싶다”고 말했다. 김 감독은 “박영석 대장이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에서 ‘잠 좀 자자. 잠을 자야 꿈을 꾸지’라는 말을 하셨다. 발리에서 만난 사제도 똑같은 말을 했다. ‘쉬어야 합니다. 그래야 꿈을 꿉니다’라고 하더라”며 “녜피는 꿈꾸기 위한 준비 단계다. 인간이 꿈꿀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만들어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 2021-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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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돌아온 청춘 시트콤… “부담 없이 깔깔 웃는 30분 선사할게요”

    18일 공개된 넷플릭스의 ‘내일 지구가 망해버렸으면 좋겠어’는 2000년대 중반 이후 자취를 감춘 청춘 시트콤의 명맥을 잇는 작품이다. 과거 신인 배우들의 등용문 역할을 했던 ‘남자 셋 여자 셋’이나 ‘논스톱’처럼 새로운 얼굴들을 기용했다. 국제기숙사에 사는 이들은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이어가며 “내일 지구가 망해버려라”라고 투덜대지만 다같이 모여서는 현실을 잊고 깔깔거린다. 드라마는 남자 셋 여자 셋, 논스톱 시리즈를 연출한 권익준 PD가 기획하고, ‘하이킥’ 시리즈를 만든 김정식 PD가 연출을 맡았다. 두 사람을 21일 화상으로 만났다. 기존 청춘 시트콤들과의 가장 큰 차이는 배경이다. 국제기숙사가 배경인 만큼 미국, 태국, 스웨덴 등 다양한 국적의 인물들이 등장한다. 국제기숙사 조교인 한국인 세완부터 한국 드라마에 환상을 가진 태국 학생 민니, “라떼는 말이야”를 연발하는 꼰대 미국인 카슨까지 다양하다. 권 PD는 “해외 근무를 마치고 2017년 귀국했을 때 가장 달라진 건 국내에 외국인이 많아졌다는 점이었다. 한국을 즐기려고 온 외국인들은 많은데 정작 한국 청년들은 ‘헬조선’ ‘7포 세대’를 이야기하며 외국으로 나가고 싶어 하는 게 아이러니했다. 이런 현상들을 풀어내기에 국제기숙사가 적합했다”고 말했다. 시트콤에 출연하는 신인들의 얼굴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아이돌 그룹 갓세븐의 영재, (여자)아이들의 민니, 한현민은 대중에 알려져 있지만 테리스 브라운, 카슨 앨런, 쇠렌센 요아킴 등의 외국인 배우들은 낯설다. 권 PD는 “출연진의 지명도에 집착하지 않았다. 요즘 한국 드라마들의 출연 배우가 많이 겹쳐 시청자들도 지치겠다고 생각했다. 아예 새로운 얼굴로 가자고 방향을 잡았다”고 말했다. 이어 “청춘 시트콤이 신인의 등용문 역할을 하지 않았나. 논스톱의 조인성, 현빈, 장근석도 당시에는 신인이었다. 이번 드라마에서도 넥스트 한류 스타가 나올 거라고 장담한다. 시청자들이 새로운 한류 스타가 탄생하는 순간을 직관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오래간만에 선보이는 청춘 시트콤을 통해 두 PD는 “시대를 넘어서는 웃음을 주고 싶다”고 입을 모았다. 시트콤을 연출한 지 10년이 넘어 MZ세대(밀레니얼+Z세대)의 웃음코드가 무엇인지 고민이 많았다는 권 PD는 “넷플릭스를 통해 190개국에 선보이는 만큼 우리가 제일 잘하는 걸 해보자는 생각이었다”며 “요즘 유행은 3개월도 안 가더라. 한 시대의 트렌드, 한 시대의 웃음을 좇기보다 언제 봐도 웃기는 얘기를 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들은 드라마를 라면에 비유했다. “퇴근 후, 학원 가기 전 컵라면 하나 먹을 때 현실을 잊고 잠시 쉬는 것 같은, 아무 부담 없이 30분 정도 시간을 때울 수 있는 존재가 됐으면 좋겠다.”(권 PD) “코미디를 볼 때 ‘너 한번 웃겨 봐라’ 하는 마음으로 보면 재미가 없다. 코로나로 다들 힘든 시기인데 가볍게 편안한 마음으로 즐기셨으면 좋겠다.”(김 PD)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 2021-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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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에 빠진 소녀처럼, 그녀는 예뻤다

    귀에 물이 들어가 수건으로 연신 귀를 후비는 제주 해녀 진옥(고두심)을 무릎에 뉘인 경훈(지현우)은 살살 면봉으로 귀를 문질러 준다. 귀가 간지러워서였는지, 마음이 간지러워서였는지, 혹은 둘 다였는지 진옥의 얼굴에는 참을 수 없는 미소가 번진다. 술에 취해 찾아와 “삼촌”(제주에서 남녀 불문하고 손윗사람을 부르는 호칭)이라며 진옥을 부르는 경훈의 목소리에 그는 통금을 깨고 부모님 몰래 연인을 만나는 이처럼 걸음을 보채고 나와 경훈을 부둥켜안는다. 경훈이 샤워하는 모습을 문틈 사이로 발견하고는 뛰는 가슴과 벌게진 볼을 부여잡고 무작정 길을 걷기도 한다. 올해 나이 일흔, 연기 경력 49년의 고두심에게서 소녀의 얼굴을 발견하게 되리라고 누가 예상했을까. 1972년 MBC 공채 탤런트로 합격해 그해 ‘수사반장’으로 데뷔한 그는 1980년 ‘전원일기’에서 맏며느리 은영 역을 맡으면서 ‘엄마 전문 배우’가 됐다. 33세에 ‘설중매’(1984)에서 인수대비의 노년까지 소화했을 정도로 나이 든 역을 많이 했다. 늘 멜로에 갈증이 있었다는 고두심은 30일 개봉하는 영화 ‘빛나는 순간’에서 다큐 제작을 위해 제주도를 찾은 33세 연하 PD 경훈과 사랑에 빠지는 70세 해녀 진옥을 연기하면서 한을 풀었다. 21일 서울 종로구 평창동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난 멜로에 목말라 있던 사람이에요. 멜로를 안 주고 맨날 엄마 역할만 주기에 ‘대한민국 감독님들 눈이 다 삐었냐’고 했어요. 내가 멜로에 맞게 성형하면 되냐고 얘기한 적도 있죠. 그에 대한 한이 있었어요. 이번 영화에서 나이 차이가 몇 살 나는지에 대해서는 고민도 없었어요. ‘고두심이 멜로 못 할 게 뭐 있어?’라는 생각이었죠.” 띠동갑 커플에게도 삐딱한 시선이 가곤 하는, 사랑의 다양성에 관대하지 못한 한국 사회. 33세의 나이 차를 극복한 진옥과 경훈의 사랑에 고두심은 공감했을까? 그는 “좀 특별난 사랑이지만 마음먹기에 달렸다”고 입을 열었다. “해녀인 진옥은 생과 사를 넘나드는 할머니예요. 못할 게 없지. 경훈이 가진 아픔을 보고 ‘치유해줘야겠다, 내 속에서 모든 걸 다 끄집어내서 사랑해줘야겠다’고 생각한 것 같아요. 경훈도 그런 진옥을 보고 안도하고, 기대고 싶은 마음을 가진 게 아닐까요. ‘진옥은 나에게 뭐든 다 내주겠구나, 나에게 자락을 깔아 주고 날 덮어주겠구나’라는 마음. 그런 사랑이 아니었겠는가 싶어요.” 영화는 제주도 해녀의 고된 삶, 제주의 아픔인 4·3사건 등도 진옥의 입을 통해 담는다. 4·3사건 당시 갓난아기였던 진옥이 부모님이 총에 맞아 쓰러지는 걸 눈앞에서 지켜본 순간을 떠올리며 오열하는 장면은 실제 제주도에서 나고 자란 고두심이 가장 혼신을 다해 촬영했다. 해당 장면은 NG 없이 한 번에 찍었다. “직접 겪진 않았지만 부모님께 들었던 당시 이야기가 내 뼈와 살에 콕콕 박혀 있었나 봐요. 감독님이 대사를 몇 줄 적어 주지도 않았는데 그냥 막 나오는 거예요. 누군가 총을 겨누고 있고 부모님이 피를 흘리고 쓰러지는 상황이 절절하게 펼쳐지고 있는 것처럼요. 내 속에서 실타래가 마구마구 풀어지는 것 같아서 스스로도 너무 놀랐어요.” 70대에 33세 연하남과의 멜로를 찍은 고두심에게 그 다음 파격은 무엇일까. “나이 든 배우들에게서 끄집어낼 수 있는 좋은 요소들이 정말 많아요. 그걸 작가들이 발견해서 많이 써줬으면 좋겠어요. 우리나라는 여배우가 너무 빨리 젊은 역할에서 벗어나고 누군가의 엄마 역할을 맡게 되는 게 불만이죠. 제가 특정 배우, 특정 작품을 선택하고 싶지는 않아요. 다만 어떤 배우를 붙여 놔도 아름답고 자연스럽게 붙을 자신은 있어요. 하하.”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 2021-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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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줌맥 끝, 호텔파티” “3대3 미팅 잡자”… 열흘후 ‘일상 컴백’ 기대

    “모임 잡고 여행 계획”, 거리두기 풀리자 시민들 들썩들썩공원-대학가 등 인파 늘어 생기 “해마다 여름이면 대학 동창 네 가족이 여행을 갔는데 지난해는 못 갔거든요. 올해도 어렵겠구나 생각했는데, 이젠 백신도 꽤 맞았고, 모임 제한인원도 좀 풀려 같이 여행 계획을 잡아보기로 했어요. 오늘도 몇 명이 모이기로 했어요.” 21일 오후 서울 강남구의 한 도로에서 만난 교사 A 씨(38)는 전날 정부의 ‘사회적 거리 두기 체계 개편안’ 발표가 무척 반갑다고 했다. A 씨의 친구 모임은 자녀들까지 모두 11명. 그간 코로나19 탓에 여행은커녕 모이기도 어려웠지만 이젠 가능해졌다. 성인 8명 가운데 5명이 백신을 맞아, 전부 다 모여도 6명만 계산하면 되기 때문이다. A 씨는 “물론 마스크도 계속 써야 할 테고 아직 안심할 때는 아니지만 왠지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 기분”이라고 전했다. 같은 날 서울 종로구 종로3가 탑골공원 인근. 예전만큼은 아니어도 최근 부쩍 모여드는 어르신들이 늘어난 이곳에서도 정부 개편안은 최대 관심사였다. 인사를 건네자마자 대뜸 너도나도 휴대전화를 꺼내 들었다. 전화기 뒤에 부착된 ‘2차 접종 완료’ 스티커를 자랑스레 흔들어 보였다. “우린 다 모여도 0명이야, 0명”이라며 껄껄 웃음을 터뜨렸다. “내가 왕년에 좌중을 휘어잡던 춤꾼이란 말이지. 그런데 그놈의 코로나 때문에 1년 넘게 무도장을 밟아보지 못했어. 이제 출입 제한도 풀리고 시간도 늘어난다며? 다 같이 음악에 맞춰 시원하게 스텝 밟으면 소원이 없겠어.”(김모 씨·83) 적막했던 대학가도 다소 분위기가 되살아난 듯했다.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앞에서 만난 최모 씨(20)는 “초중고교는 2학기 전면 등교한다고 들었는데, 대학도 대면 수업이 늘어나지 않겠느냐”며 “1, 2학년들은 대학 생활을 제대로 해본 적이 없다. 다음 달도 여전히 방학이지만 왠지 기대가 커지는 게 솔직한 심정”이라고 말했다. “줌맥 끝, 호텔파티” “3대3 미팅 잡자”… 열흘후 ‘일상 컴백’ 기대 “올해 2월 졸업한 동기들이랑 제대로 졸업파티를 못 했어요. 5인 이상 집합금지로 모이기조차 힘들었는데 다음 달 호텔방을 빌리기로 했어요. 한 번밖에 없는 대학 졸업인데 이제라도 조촐하게 할 수 있어 다행이에요.” 강아담 씨(23)는 20일 정부의 사회적 거리 두기 체계 개편안이 발표되자마자 친구들과 서둘러 서울에 있는 한 호텔을 예약했다. 날짜는 다음 달 초 주말. 대학 내내 단짝이던 친구 5명이 다 함께 모이는 건 1년여 만에 처음이라고 한다. 강 씨는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탓에 매달 정기모임도 ‘줌맥’(줌 화상회의 켜놓고 집에서 맥주 마시기)으로만 했다. 드디어 친구들과 ‘완전체’로 모인다니 너무 기대가 크다”며 기뻐했다.○ “1년 못 뵌 어머니 모시고 바다 가고파”정부의 방역수칙 완화 발표에 시민들 반응은 예상보다 훨씬 뜨거웠다. 특히 5인 이상 사적모임 금지와 다중이용시설의 영업시간 제한 완화에 대한 관심이 컸다. 미뤄뒀던 가족, 친지 모임을 갖겠다는 꿈에 부풀었다. 이미 백신을 맞은 시민들은 정부 발표에 한층 고무된 모습이었다. 경기 구리시에 사는 주부 최모 씨(60)는 “당장 달이 바뀌면 1년 동안 만나지 못했던 친정어머니를 보러 갈 계획”이라고 했다. “코로나19가 거세지자 어머니가 먼저 ‘애들 위험하다’며 못 오게 하셨어요. 속으로 손자들을 보고 싶어 하는 마음을 뻔히 알면서도 괜히 불안해 찾아뵙질 못했죠. 이젠 어머니도, 가족 몇몇도 백신을 맞았으니 어머니가 가보고 싶어하신 바닷가 가서 좋아하시는 해산물 사드리고 싶어요.” 올해 3월 전역한 대학생 이모 씨(23)는 다음 달 제일 해보고 싶은 일로 ‘3 대 3 미팅’을 꼽았다. 비슷한 시기에 군대를 다녀온 친구들끼리 “제대하면 옛날 선배들처럼 꼭 단체 미팅을 해보자”고 했는데 방역수칙 탓에 엄두를 못 냈다. 이 씨는 “이젠 서울에서도 밤 12시까지 술집 등이 문을 여니 눈치 안 보고 신나게 놀 생각”이라고 했다. 초중고교생을 자녀로 둔 학부모들은 2학기 전면 등교 방침에 대해 크게 반색했다. 길어진 코로나19로 돌봄 공백은 물론이고 학업 성적에 대한 걱정이 컸기 때문이다. 초교 5학년 딸이 있는 박모 씨(44)는 “원격수업이 ‘뉴 노멀’이라지만 역시 학생은 교실에서 공부하는 게 제일 좋은 교육”이라며 “당장 7월부터 전면 등교를 하면 안되냐”고 말했다. 하지만 1년 넘게 불규칙적으로 학교를 오갔던 학생들은 전면 등교가 꽤나 부담스러운 눈치다. 10대들이 주로 이용하는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고3과 선생님들만 백신을 맞는데 왜 다른 학년까지 무리해서 등교하는지 모르겠다”는 볼멘소리가 올라왔다. 이 게시글에는 찬성 반응이 대다수였다. ○ 벌써부터 ‘다음 달 6인 이하 가능’ 홍보코로나19 장기화로 영업에 차질을 빚어왔던 음식점 등은 벌써부터 다음 달이 기다려진다. 21일 서울 시내를 돌아보니 ‘7월 1일부터는 6인 이하 모임 가능’이란 안내 글을 게시한 업소가 여럿 눈에 띄었다. 거리 두기 완화에 맞춰 할인행사를 열겠다는 프랜차이즈 업체도 적지 않았다.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았던 여행·문화예술 업계도 오랜만에 생기가 돌고 있다. 한 여행업계 관계자는 “조만간 정부가 ‘트래블 버블’(여행안전권역)도 발표할 것으로 기대한다. 이미 발 빠르게 해외여행 상품을 준비하는 업체가 많다”고 귀띔했다. 발길이 뚝 끊겼던 영화관이나 공연장도 기대가 크다. 이신영 롯데컬처웍스 홍보팀장은 “영화계 최대 성수기이자 대형 신작이 쏟아지는 ‘7말8초’를 앞두고 거리 두기가 다소 풀려 그나마 다행”이라며 “영화관 수익의 상당 부분은 팝콘 등 음식 판매에서 나온다. 이런 부분도 완화되면 좋겠다”고 말했다.김수현 newsoo@donga.com·김화영·오승준 기자 / 이윤태 oldsport@donga.com·김재희·최창환 기자}

    • 2021-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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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흔’ 고두심에게서 발견한 소녀의 얼굴…“난 멜로에 목말라 있던 사람”

    귀에 물이 들어가 수건으로 연신 귀를 후비는 제주 해녀 진옥(고두심)를 무릎에 뉘인 경훈(지현우)은 살살 면봉으로 귀를 문질러 준다. 귀가 간지러워서였는지, 마음이 간지러워서였는지, 혹은 둘 다였는지 진옥의 얼굴에는 참을 수 없는 미소가 번진다. 술에 취해 찾아와 “삼촌”(제주에서 남녀 불문하고 손윗사람을 부르는 호칭)이라며 진옥을 부르는 경훈의 목소리에 그는 통금을 깨고 부모님 몰래 연인을 만나는 이처럼 걸음을 보채고 나와 경훈을 부둥켜 안는다. 경훈이 샤워를 하는 모습을 문틈 사이로 발견하고는 뛰는 가슴과 벌개진 볼을 부여잡고 무작정 길을 걷기도 한다. 올해 나이 일흔, 연기경력 49년의 고두심에게서 소녀의 얼굴을 발견하게 되리라고 누가 예상했을까. 1972년 MBC 공채 탤런트로 합격해 그해 ‘수사반장’으로 데뷔한 그는 1980년 ‘전원일기’에서 맏며느리 은영 역을 맡으면서 ‘엄마 전문 배우’가 됐다. 33세에 ‘설중매’(1984)에서 인수대비의 노년까지 소화했을 정도로 나이 든 역을 많이 했다. 늘 멜로에 갈증이 있었다는 고두심은 30일 개봉하는 영화 ‘빛나는 순간’에서 다큐 제작을 위해 제주도를 찾은 33살 연하 PD 경훈과 사랑에 빠지는 70세 해녀 진옥을 연기하면서 한을 풀었다. 21일 서울 종로구 평창동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난 멜로에 목말라 있던 사람이에요. 멜로를 안 주고 맨날 엄마 역할만 주기에 ‘대한민국 감독님들 눈이 다 삐었냐’고 했어요. 내가 멜로에 맞게 성형하면 되느냐고 얘기한 적도 있죠. 그에 대한 한이 있었어요. 이번 영화에서 나이 차이가 몇 살 나는지에는 고민도 없었어요. ‘고두심이 멜로 못 할 게 뭐 있어?’라는 생각이었죠.” 띠동갑 커플에게도 삐딱한 시선이 가곤 하는, 사랑의 다양성에 관대하지 못한 한국사회. 33살의 나이차를 극복한 진옥과 경훈의 사랑에 고두심은 공감했을까? 그는 “좀 특별난 사랑이지만 마음먹기 달렸다”고 입을 열었다. “해녀인 진옥은 생과 사를 넘나드는 할머니에요. 못할 게 없지. 경훈이 가진 아픔을 보고 ‘치유해줘야겠다, 내 속에서 모든 걸 다 끄집어내서 사랑해줘야겠다’고 생각한 것 같아요. 경훈도 그런 진옥을 보고 안도하고, 기대고 싶은 마음을 가진 게 아닐까요. ‘진옥은 나에게 뭐든 다 내주겠구나, 나에게 자락을 깔아 주고 날 덮어주겠구나’라는 마음. 그런 사랑이 아니었겠는가 싶어요.” 영화는 제주도 해녀의 고된 삶, 제주의 아픔인 4·3사건 등도 진옥의 입을 통해 담는다. 4·3사건 당시 간난아기였던 진옥이 부모님이 총에 맞아 쓰러지는 걸 눈앞에서 지켜본 순간을 떠올리며 오열하는 장면은 실제 제주도에서 나고 자란 고두심이 가장 혼신을 다해 촬영했다. 해당 장면은 NG없이 한 번에 찍었다. “직접 겪진 않았지만 부모님께 들었던 당시 이야기가 내 뼈와 살에 콕콕 박혀 있었나봐요. 감독님이 대사를 몇 줄 적어주지도 않았는데 그냥 막 나오는 거에요. 누군가 총을 겨누고 있고 부모님이 피를 흘리고 쓰러지는 상황이 절절하게 펼쳐지고 있는 것처럼요. 내 속에서 실타래가 마구마구 풀어지는 것 같아서 스스로도 너무 놀랐어요.” 70대에 33살 연하남과의 멜로를 찍은 고두심에게 그 다음 파격은 무엇일까. “나이 든 배우들에게서 끄집어낼 수 있는 좋은 요소들이 정말 많아요. 그걸 작가들이 발견해서 많이 써줬으면 좋겠어요. 우리나라는 여배우가 너무 빨리 젊은 역할에서 벗어나고 누군가의 엄마 역할을 맡게 되는 게 불만이죠. 제가 특정 배우, 특정 작품을 선택하고 싶지는 않아요. 다만 어떤 배우를 붙여 놔도 아름답고 자연스럽게 붙을 자신은 있어요. 하하.”김재희기자 jetti@donga.com}

    • 2021-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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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드 ‘프렌즈’ 제작자가 묻는다 “보신탕, 어떻게 생각하세요”

    개 200마리가 다닥다닥 붙어 있는 경기도의 한 개농장에서는 귀가 뜯겨져 나간 개들이 우리 밖을 하염없이 바라본다. 동물보호단체는 보신탕집 앞에서 식용견 반대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식당 주인은 이들에게 호스로 물을 뿌린다. 서울 동대문구 경동시장에서 개소주를 파는 상인이 요크셔테리어를 “우리 집 식구”라고 소개하는 아이러니도 펼쳐진다. 10일 유튜브에 공개된 다큐멘터리 ‘누렁이’의 장면들이다. 개고기를 둘러싼 논쟁의 한복판에서 선 이는 놀랍게도 미국 드라마 제작자 케빈 브라이트(66). 인기 시트콤 ‘프렌즈’ 전 시즌을 만든 브라이트는 동물보호협회 ‘도브’에서 활동하는 아내와 함께 4년간 한국을 오가며 누렁이를 만들었다. 다큐는 식용견과 개농장을 둘러싼 한국 내 찬반 논쟁을 담았다. 18일 화상으로 만난 브라이트 감독은 “아내를 따라 한국에 왔다가 식용견 문화를 접했다. 한국과 같은 경제와 교육 강국에서 개고기를 먹는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개고기 산업 종사자부터 동물보호단체, 일반 시민까지 다양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눴다”고 말했다. 프렌즈 전 시즌을 이끈 제작자지만 누렁이 촬영은 그에게도 도전이었다. 그는 “프렌즈는 100명이 넘는 스태프가 에어컨 빵빵한 스튜디오에 모여 1주일에 에피소드 1개씩 만들었다. 반면 누렁이는 저를 포함해 5명의 스태프가 무더운 한여름, 추운 겨울에 개농장을 돌아다니며 촬영했다. 1인분의 역할이 명확했기에 나도 같이 짐도 날랐다”고 말했다. 브라이트 감독도 촬영 시작 전에는 한국 개고기 문화에 대한 선입견이 있었다. 그런데 대한육견협회 대표, 개농장 운영주 등 육견업 종사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들의 입장도 이해하게 됐다. 그는 “한국전쟁 후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빈곤한 국가였을 때 단백질 공급원이 없어 개고기를 먹게 된 역사적 맥락이 있다. 현재 개농장을 운영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농장을 운영하는 영세한 이들도 많다. 이러한 이해 없이 ‘한국인은 개고기를 먹는 민족’이라고만 바라보는 건 인종차별적인 편견”이라고 전했다. 4년간 한국 개고기 문화를 취재한 그는 “결정은 한국의 몫”이라고 말했다. 그는 “개고기 산업을 지속한다면 다른 음식과 마찬가지로 개고기의 육성부터 유통까지 어떻게 법적으로 제대로 관리할 것인지 논의해야 한다. 반대로 개고기 산업을 중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매년 200만 마리씩 유통되는 강아지들을 어떻게 할 것인지, 그리고 개고기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상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시작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 2021-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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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명품 조연에서 원톱 주연으로… 조우진 “데뷔 22년만에 기적”

    ‘1999년 단돈 50만 원을 들고 상경한 내게 지금부터 펼쳐지는 모든 일은 기적이다.’ 영화배우 조우진(42·사진)이 최근 자신의 팬 카페에 올린 글이다. 그는 16일 서울 용산구 CGV아이파크몰에서 진행된 영화 ‘발신제한’ 시사회에서 “영화가 시작하는데 이 글이 떠올랐다. 내게 기적이 일어나고 있구나…”라고 말했다. ‘한국 영화는 조우진이 나오는 영화와 나오지 않는 영화로 나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로 많은 작품에 출연한 그가 데뷔 22년 만에 처음 주연을 맡았다. 그는 촬영부터 홍보 활동을 진행하는 지금까지 모든 게 기적 같다고 했다. 23일 개봉하는 영화는 등굣길의 두 자녀를 차에 태워 운전 중인 주인공 성규에게 발신제한으로 “차에서 내리면 폭탄이 터진다”는 협박 전화가 걸려오며 벌어지는 일을 그렸다. 18일 동아일보와의 화상 인터뷰에서 조우진은 “영화에 혼을 담았다”는 말을 여러 번 반복했다. 신작은 영화 ‘돈’에서 물면 안 놓는 금융감독원 직원 한지철부터 ‘마약왕’의 조폭 우두머리 조성강까지 선악을 오가는 배역을 두루 섭렵한 조우진 연기 경력의 집합체다. 영화에서 은행센터장 성규는 부하 직원에게는 무리한 지시를 내리면서 고객에겐 한없이 고개를 조아리는 직장인인 동시에 주말엔 침대와 한 몸이 되지만 속으로는 자녀를 끔찍이 아끼는 아빠다. 자신이 판매한 금융 상품으로 인해 부도가 난 고객사를 냉정하게 무시하지만 훗날 이를 뼈저리게 후회하는 등 선악의 이분법으로 규정하기 힘든 다층적 캐릭터다. 그는 영화 내내 차 안에서 연기를 펼친다. 폐쇄 공간에서 딸과 아내, 협박범과 경찰을 마주하며 느끼는 공포와 긴장, 후회와 뉘우침의 감정을 세심히 표현해냈다. 조우진은 “성규가 처한 상황을 실감하는 게 관건이었다”며 “‘내 밑에 폭탄이 있다, 뒤에 아이들이 타고 있다, 난 내릴 수 없다’는 걸 강박에 가까울 정도로 스스로에게 되뇌었다”고 말했다. 협박범에게 40억 원을 전달하지 않으면 자녀를 태운 차가 폭발할 수 있는 일촉즉발의 상황을 연기해야 하는 만큼 출연에 대한 고민도 컸다. “영화 ‘서복’ 촬영 중 제작사 대표님이 제안해 주셔서 시나리오를 접했습니다. 처음 읽은 뒤 든 생각은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였어요. 성규라는 인물이 놓인 극한의 상황, 표현해야 하는 텐션은 다른 영화들에서 발견하지 못한 무게였죠. 김창주 감독과 만났는데 ‘어떻게든 이 작품을 만들어내겠다. 그걸 반드시 당신과 함께하겠다’는 엄청난 열정을 봤습니다. 이분이라면 기대서 갈 수 있겠다고 생각했죠.” 조우진의 연기 인생은 ‘내부자들’(2015년)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1999년 연극 ‘마지막 포옹’으로 데뷔했지만 이렇다 할 대표작이 없던 그에게 ‘내부자들’의 조 상무 역은 대중에게 그를 확실히 각인시켰다. ‘발신제한’은 ‘내부자들’에 이어 조우진 연기 인생의 두 번째 분기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영화를 계기로 조우진이 감칠맛을 더하는 명품 조연에서 2시간을 혼자 끌고 나가기에 손색이 없는 주연으로 거듭났다는 평가가 나온다. 쉬지 않고 다작을 해온 꾸준함과 집요함이 빚은 결과다. “피곤하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는데 쉬고 싶다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어요. 선배님들이 ‘좀 쉬어야 하지 않냐. 건강관리도 해야지’라고 말씀하시는데 현장에서 쌓이는 스트레스는 다른 현장에서 풀려요. 일은 일로 푸는 게 제 스타일인 것 같아요.”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 2021-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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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혁신적이고 평등한 ‘꿈의 직장’ 실리콘밸리는 없다

    올해 초 구글 본사에 노동조합이 생겼다. 노조 이름은 모기업 이름을 딴 ‘알파벳 노동조합’. 소수자 차별, 성차별, 사내 성폭력을 겪은 직원들이 1년간 노조 결성을 비밀리에 준비했다. 알파벳 노조는 “우리는 공정한 노동조건을 만들고 괴롭힘이나 편견, 차별, 보복이 없는 일터를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미국 실리콘밸리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다. 높은 처우와 수평적 조직문화로 ‘꿈의 직장’으로 불린 국내 굴지의 정보기술(IT) 기업에서 직원이 극단적 선택을 한 사건을 계기로 직장 내 따돌림과 차별대우 문제가 불거졌다. 이 책은 대중이 뉴스를 통해 피상적으로 접하는 실리콘밸리 기업들의 이면에 숨겨진 실상을 고발한다. 저자는 사용자 행동분석 플랫폼 믹스패널과 오픈소스 서비스 깃허브에서 일하며 겪은 성차별과 더불어 직원들을 수익 창출의 도구로 여기는 비인간성을 낱낱이 기록했다. 예컨대 저자의 첫 회사였던 믹스패널의 최고경영자(CEO)는 직원들에게 “당신은 목적을 받들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항상 던졌다. 여기서 목적은 회사 수익이다. 이 회사 직원들은 회사를 받드는 삶을 위해 ‘일은 엉덩이가 하는 것’이라는 규칙을 철저히 따랐다. 이런 현실에 지쳐 이직한 실리콘밸리 기업 깃허브도 다르지 않았다. 직원들은 업무 효율성을 높이려고 미 식품의약국(FDA) 허가도 받지 않은 향정신제를 복용한다. 저자는 이를 보고 큰 충격을 받지만, 곧 온라인에서 같은 약을 주문하는 자신을 발견한다. 저자는 단순히 실리콘밸리 직원들의 고충을 털어놓는 데 그치지 않는다. 성과 만능주의에 빠져 윤리성을 상실하는 과정도 가감 없이 서술한다. ‘갓 모드’ 관행이 대표적이다. 갓 모드란 마치 신처럼 업무를 위해 수집된 온갖 개인정보를 들여다볼 수 있는 걸 말한다. 저자는 광고 솔루션을 제공한 첫 직장의 사례를 든다. 고객사가 광고효과가 좋지 않다며 문제를 제기할 경우 고객사의 거래 내역뿐 아니라 회원정보까지 통째로 볼 수 있었다는 것. 고객사의 데이터 열람을 제한하는 조치는 다른 우선순위에 밀려 끝내 마련되지 않았다. 저자는 내밀한 데이터를 들여다볼 수 있는 직원이 존재한다는 걸 안 뒤로는 자신의 스마트폰에 어떤 애플리케이션(앱)도 내려받지 않았다고 고백한다. 저자는 서비스의 최우선 목표가 효율성에 맞춰진 테크 산업에 종사한 후 역설적으로 비효율성의 아름다움을 깨닫게 된다. 속도와 변화만 좇던 그가 오랜 시간 정류장에 앉아 버스를 기다리거나, 일본식 주먹밥인 오니기리를 사러 멀리 저팬타운까지 걷는 등의 일상이 자기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준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된 것. 첨단 산업의 이면에 도사린 비인간성의 실태가 궁금하다면 한번쯤 읽어볼 만한 논픽션이다.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 2021-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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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킬러 콘텐츠 만들자” OTT 아낌없이 쏜다

    ‘제2의 ‘킹덤’을 만들자.’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업체에 떨어진 특명이다. 연내 한국에 출범하는 디즈니플러스와 더불어 웨이브와 티빙, 쿠팡플레이 등 국내 OTT의 공격적인 투자가 이어지고 있다. 2016년 한국에서 서비스를 시작했지만 가입자 증가 추세가 지지부진했던 넷플릭스가 회당 20억∼25억 원의 제작비를 들인 조선시대 배경의 좀비물 ‘킹덤’으로 가입자를 대폭 늘린 것이 선례가 됐다. ‘OTT 춘추전국시대’가 예상되면서 각 사는 주도권을 잡기 위해 한 회에 수십억 원을 들이고 한류 스타를 영입해 텐트폴(tentpole·많은 제작비와 유명 배우 출연 등으로 큰 흥행을 기대하는 작품) 제작에 나섰다. 가장 공격적인 투자에 나선 곳은 디즈니플러스로, 콘텐츠 제작사인 스튜디오앤뉴와 장기 콘텐츠 공급 계약을 맺고 오리지널 콘텐츠를 제작하고 있다. 업계의 관심이 쏠리는 건 강풀 작가의 웹툰을 원작으로 한 ‘무빙’이다. 공중부양하는 초능력을 가진 고등학생의 이야기인 무빙에는 총 500억 원의 제작비가 들어가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국내 드라마를 통틀어 가장 큰 규모다. 넷플릭스 킹덤에는 200억 원, 스위트홈에는 300억 원이 들었다. 국내 콘텐츠 제작사 A 대표는 “디즈니플러스는 기획 단계부터 무빙을 5개 시즌 이상으로 만들려고 할 정도로 공을 들이고 있다”고 귀띔했다. 가입자 기준 국내 OTT 1위인 넷플릭스는 올해 최대 기대작인 전지현 주연의 ‘킹덤: 아신전’을 다음 달 23일 공개한다. 넷플릭스는 다큐멘터리, 시트콤, 예능을 선보이며 장르를 다변화하고 있지만 대작 제작에 관심이 높다. 넷플릭스와 영화 제작을 논의 중인 B 감독은 “넷플릭스가 다양성 확보 차원에서 로맨스 영화 ‘모럴센스’도 만들고 있지만 가입자를 대거 유치할 수 있는 대작을 원하기 때문에 독립예술영화 색이 짙은 드라마나 멜로에는 쉽사리 투자하지 않는다”고 했다. 애플TV플러스는 국내 진출 시기가 결정되지 않았지만 드라마 ‘파친코’를 공개하는 시점에 맞춰 한국 서비스를 시작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한국계 미국인 작가 이민진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파친코는 재일교포의 삶을 그린 데다 이민호 윤여정 등 한국 배우들이 대거 출연해 한국 가입자를 유치하는 데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미국 연예매체 할리우드리포터에 따르면 파친코에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더 크라운’에 맞먹는 제작비가 들어갔다. 더 크라운은 시즌당 약 1억3000만 달러(약 1450억 원)가 투자된 것으로 알려졌다. 토종 OTT는 해외 진출 시점에 맞춰 대작을 선보일 계획을 하고 있다. 한국은 물론 동남아시아, 중화권 등 한류 콘텐츠 인기가 높은 지역의 구독자까지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웨이브는 2025년까지 오리지널 콘텐츠에 1조 원을 투입한다고 밝혔다. 티빙을 서비스하는 CJ ENM 역시 올해부터 2025년까지 5년간 콘텐츠에 5조 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김용배 콘텐츠웨이브 부장은 “국내 OTT는 아직 해외 서비스를 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대작의 제작비 회수율이 기대만큼 높지 않을 수 있다. 해외 진출이 가시화되는 시점에 맞춰 본격적으로 텐트폴 만들기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 2021-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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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참았던 ‘흥’이 폭발한다, 갈증 채워주는 142분

    극장에서 흥을 주체할 수 없어 발로 박자를 타고 고개를 까딱거렸던 기억, 누구나 있을 것이다. 994만 명의 관객이 본 ‘보헤미안 랩소디’(2018년)에서 ‘We will rock you’의 리듬에 맞춰 오른발과 왼발을 번갈아 굴렀던 기억, 자동차로 가득 찬 고속도로가 일순간 노래와 춤이 넘쳐나는 무대로 변하는 ‘라라랜드’(2016년)의 첫 장면을 보며 전율을 느꼈던 기억 말이다. 한동안은 뜸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의 여파로 신작들, 특히 음악을 소재로 한 영화들의 개봉이 줄줄이 미뤄졌기 때문이다. 워너브러더스가 제작하고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을 연출한 존 추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뮤지컬 영화 ‘인 더 하이츠’가 그 공백기를 깼다. 극장에서의 전율에 목말랐던 관객의 갈증을 채워주는 이 영화는 30일 개봉한다. 영화는 토니상 최우수 뮤지컬상, 그래미 최고 뮤지컬 공연앨범상을 수상한 동명의 뮤지컬을 리메이크했다. 영화는 도미니카공화국 출신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미국 뉴욕 맨해튼 북쪽 지역 워싱턴 하이츠가 배경이다. 주요 인물은 우스나비(앤서니 라모스)와 바네사(멜리사 바레라), 니나(레슬리 그레이스), 니나의 남자친구 베니(코리 호킨스). 우스나비는 가족과 이민 온 워싱턴 하이츠에서 잡화점을 하지만 도미니카 해변에 있는 아버지의 상점을 다시 여는 꿈을, 바네사는 동네 미용실에서 일하지만 세계적인 패션 디자이너가 되는 꿈을 꾼다. 니나는 스탠퍼드대에 진학한 자신에게 쏟아지는 기대에 대한 부담감으로 자퇴를 고민하고, 남자친구 베니는 그런 니나를 돕고 싶어 한다. 네 사람은 꿈과 사랑 어느 하나에도 확신을 갖지 못하고 갈팡질팡하지만 점차 원하는 것을 찾아간다. 142분에 달하는 러닝타임은 한순간도 지루할 틈 없이 춤과 음악으로 가득 찬다. 우스나비가 쨍한 햇빛이 쏟아지는 왁자지껄한 거리를 거닐며 묵직한 비트 위에 랩을 내뱉다가도, 석양이 지는 조지 워싱턴 다리를 뒤로한 니나와 베니는 R&B 음악에 맞춰 사랑을 속삭인다. 바네사는 땀과 술로 가득한 클럽에서 도미니카공화국 전통 음악인 바차타에 맞춰 현란한 춤사위를 선보인다. 청소부가 길거리에 호스로 물을 뿌리는 소리, 잡화점에서 물건에 가격표를 붙이는 소리는 음악의 일부로 녹아든다. 시종일관 시끌벅적하지만은 않다. 고민 끝에 스탠퍼드대로 돌아가기로 한 니나가 베니와의 이별을 앞두고 건물 난간에 기대 있다가 중력을 거슬러 건물 외벽을 바닥 삼아 함께 춤을 추는 장면은 슬픔을 판타지로 승화시킨다. 워싱턴 하이츠의 정신적 지주인 클라우디아 할머니가 심장마비로 죽음을 맞기 전 1940년대 쿠바에서 미국으로 이민 온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지하철 안에서 노래하는 장면은 단연 영화의 클라이맥스다. 이민자로서 겪은 차별과 핍박의 순간들을 인내와 믿음으로 이겨내라는 클라우디아의 노래는 영화의 경쾌함을 관통하는 묵직한 메시지를 전한다. 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 2021-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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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원작보다 매력있네, 운명에 맞선 그녀들

    음모에 맞서 싸우는 햄릿의 연인 오필리아, ‘어른이 되기 싫다’는 피터 팬에게 ‘나이 듦’의 미학을 가르치는 웬디. 원작에서 남자 주인공에 가려졌던 여성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삼은 스핀오프 영화들이 나오고 있다. 7월 개봉하는 ‘오필리아’는 셰익스피어의 원작 ‘햄릿’에서 그의 연인이었던 오필리아를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이달 30일 개봉하는 ‘웬디’는 원작 ‘피터 팬’에서 피터 팬의 친구로 나온 웬디의 시점으로 영화를 만들었다. 지난해 셜록 홈스의 여동생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 ‘에놀라 홈즈’가 인기를 끄는 등 여성 서사가 주목받으면서 원작에서 수동적으로 그려졌던 여성 캐릭터의 주체성을 강조한 영화가 만들어지고 있다. 오필리아는 햄릿과 사랑에 빠진 오필리아의 시선에서 햄릿을 재해석한 영화다. 타고난 현명함으로 왕비의 총애를 받아 왕실의 시녀가 된 오필리아가 햄릿 왕자와 사랑에 빠지고, 이후 왕국을 둘러싼 음모에 맞서 싸우는 과정을 그렸다. 웬디는 피터 팬과 함께 네버랜드로 떠난 소녀 웬디의 시선에서 피터 팬과 네버랜드 아이들을 담았다. 장편 데뷔작 ‘비스트’(2012년)로 칸영화제 황금카메라상, 선댄스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을 받은 벤 자이틀린 감독이 8년 만에 내놓은 신작이다. 여성 캐릭터를 앞세운 스핀오프 영화들의 특징은 수동적인 원작 속 성격을 주체적이고 강인하게 바꿨다는 점이다. 오필리아는 원작에서 비극 앞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지는 나약한 여성으로 그려졌다. 햄릿과 사랑에 빠지지만 햄릿은 오필리아의 아버지를 죽이고, 이를 알게 된 오필리아는 실성해 강물에 빠져 자살한다. 비극적 사랑의 상징이었던 오필리아는 이번 영화에서 혼란스러운 정세 속에서도 자신의 신념을 잃지 않고 운명을 극복해 나가는 지혜로운 인물로 묘사됐다. 영화 웬디에서도 웬디는 피터 팬의 말에 순응했던 원작에서의 성격과는 전혀 다르다. 웬디는 피터 팬을 따라 네버랜드를 가게 되고, 자신도 영원히 늙지 않길 꿈꾸지만 나이가 들면서 네버랜드에 가지 못한다. 자이틀린 감독의 영화 속 웬디는 늙지 않으려는 피터 팬에게 “나이 드는 것은 좋은 것”이라며 그를 설득하는 확고한 신념의 소유자다. 자이틀린 감독은 9일 본보와의 화상 인터뷰에서 “함께 각본을 쓴 여동생 엘리자가 원작 속 여성 캐릭터의 수동성에 큰 문제의식을 가졌다. 웬디를 자신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말하는 주체적인 인물로 재해석했다”고 밝혔다. 단편적으로만 그려졌던 여성 악역을 새로운 캐릭터로 보여주기도 한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101마리 강아지’의 크루엘라를 주인공으로 한 디즈니 실사 영화 ‘크루엘라’가 그렇다. 원작에서 크루엘라는 달마시안들을 저택에 가두고, 남에게 무례한 짓을 서슴지 않지만 실사 영화에서는 이와 정반대의 캐릭터로 재탄생했다. 홀어머니 손에 큰 크루엘라는 어려운 환경을 딛고 패션 디자이너가 되고, 어릴 때부터 유기견을 키울 정도로 동물을 사랑하는 성격을 지녔다. 지난달 26일 개봉한 크루엘라는 14일 기준으로 96만 명이 관람했다.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 2021-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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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영화 ‘타짜’서 고니가 반한 와인, 나도 마셔볼까

    사람 만나기 힘든 시대다. 최대 4명까지만 모일 수 있고, 할 말과 먹을 음식이 남았어도 오후 10시엔 무조건 자리를 끝내야 한다. 약속이 미뤄지거나 취소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아쉬움을 달래려는 이들은 집 앞 마트로 향한다. 누군가는 서둘러 끝낸 자리 뒤 딱 한 잔이 부족한 것 같은 기분을 안고. 누군가는 미뤄진 약속을 뒤로하고 침대에 앉아 ‘혼술’을 하고픈 기분을 안고. 가볍게 혼자 한잔하기 좋은 와인은 코로나19의 반사이익을 톡톡히 누리고 있다. 그 바람을 타고 와인 공부에 나선 이들도 부쩍 늘었다. 하지만 와인 입문자들에게는 고민이 많다. 포도의 품종, 빈티지, 국가와 지역까지 따져야 할 게 너무 다양하다. 와인 한잔하고 싶어 마트에 발은 들였는데, 막상 어떤 걸 집어야 할지 고민인 이들에게 와인 칼럼니스트 부부가 쓴 이 책은 나침반 역할을 해준다.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2010년)부터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작 ‘문라이트’(2017년)까지 총 100편의 영화 속에 등장한 와인과 해당 와인에 얽힌 사건 및 역사를 가볍게 풀어낸다. ‘타짜’(2006년)에서 고니(조승우)에게 성공에 대한 허영을 심어주기 위해 정마담(김혜수)이 건넨 와인은 유명 와인 평론가 로버트 파커가 100점 만점을 준 1986년산 ‘샤토 무통 로칠드’였으며, ‘내 아내의 모든 것’(2012년)에서 류승룡과 임수정이 길을 걸으며 병째 주거니 받거니 하며 마셨던 와인은 미국 컬트 와인의 끝판왕이라 불리는 ‘할런 이스테이트’라는 걸 알았던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정답만을 제시하진 않는다는 점도 이 책의 묘미다. 이미 와인이 따라진 잔만 등장하거나 라벨이 잘 보이지 않는 정체불명의 와인에 대해서도 저자는 그 나름대로 추론을 한다. ‘비포 선라이즈’(1996년)에서 수중에 돈이 떨어진 제시(이선 호크)와 셀린(줄리 델피)이 무작정 들어간 클럽에서 인심 좋은 중년의 바텐더로부터 받은 공짜 레드와인은 무엇이었을지 저자는 병의 모양, 지역, 가격대 등을 종합해 네 개 후보를 선정하고 하나하나 따져 본다. 그 과정에서 알게 되는 와인을 둘러싼 얕고 넓은 지식의 향연도 즐겁다. 제시와 셀린이 처음이자 마지막 날 밤 함께 즐겼던 레드와인이 무엇인지 궁금한 이라면 일독을 권한다.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 2021-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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