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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졸렸으면….” 26일 경부고속도로를 달리던 광역버스 운전사 A 씨가 한숨을 쉬며 탄식했다. 경기 성남시 분당구를 출발해 양재 나들목 근처를 지나던 중이었다. 9일 광역급행버스(M5532) 추돌사고로 50대 부부 2명이 목숨을 잃은 바로 그 지점이다. 당시 사고의 결정적 원인은 운전사의 졸음운전이었다. 이어 운전사들의 열악한 근무환경과 업체의 무리한 배차 등 버스업계의 민낯이 드러났다. 우려와 비판이 쏟아지자 뒤늦게 버스업계에서도 잘못된 관행을 바꾸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26일 버스업계에 따르면 최근 일부 버스업체가 이틀 근무 후 하루 쉬는 이른바 ‘따블(더블) 근무’를 주당 2, 3회에서 1회로 줄였다. 그 대신 하루 운행하고 하루 쉬는 이른바 ‘퐁당퐁당 근무’를 늘렸다. 오산교통 M5532번 운전사는 18시간 30분을 운행하고 다음 날 오전 7시 15분부터 운전대를 잡았다. 그로부터 7시간 30분 후 사고가 났다. 오산교통 운전사들은 법정 최저임금을 받으며 하루에 15∼19시간씩 운전했다. 이틀 또는 사흘 연속으로 근무하기도 했다. 광역버스 운전사 이모 씨(50)도 이틀 연속 근무가 일주일 2회에서 1회로 줄었다. 전체 근무일은 한 달 16일에서 14일로 줄었다. 직원이 부족할 때 그는 일주일 내내 운행한 적도 있다. 올해도 수시로 사흘 연속 근무했지만 경부고속도로 사고 후 개선된 것이다. 이 씨는 “이렇게 운행하면 월급이 30만 원가량 줄겠지만 그만큼 몸을 챙길 수 있으니 만족한다”고 말했다. 차량의 모든 운행 내용을 기록하는 ‘배차일보’를 새로 작성하기로 한 버스업체도 있다. 김모 씨(54·여)가 다니는 버스업체는 다음 달부터 모든 버스의 운행 시작부터 종료까지 전 과정을 구체적으로 기록하는 배차일보를 작성하기로 했다. 운전사에게 휴식시간을 정확히 제공하고 이를 확인하려는 지방자치단체나 경찰 점검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허술한 제도와 정부의 관리를 비판하는 의견도 여전히 많았다. 버스 운전사들은 현재 시행 중인 ‘8시간 의무휴식제’가 본래 취지와 달리 업주의 책임 회피 수단으로 전락했다고 입을 모았다. 휴식시간을 산정하는 기준이 비현실적이라 업주가 운전사들을 혹사시키면서도 ‘우리는 법대로 했다’며 법망을 피해 갈 단초가 된다는 것이다. 8시간 의무휴식제는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을 기반으로 버스가 마지막 정류장에 도착한 시간부터 다음 날 아침 첫 정류장을 통과하는 시간까지를 휴식시간으로 계산한다. 하지만 이 시간에는 마지막 정류장에서 차고지로 가서 차량을 정비하고 퇴근한 뒤 다시 차고지로 출근해서 첫 정류장으로 운행하는 시간까지 휴식시간으로 포함된다. 이틀 연속으로 근무할 경우 버스 운전사가 잠을 잘 수 있는 시간은 4, 5시간에 불과한 게 대부분 업체의 상황이다. 이에 따라 경찰은 8시간 의무휴식제 시간 산정 기준의 개선을 국토교통부에 건의할 예정이다. 한편 서울지방경찰청 교통범죄수사대는 26일 오산교통 대표 최모 씨(54)를 소환해 휴식시간 미준수 등에 대해 조사했다. 최 씨는 “드릴 말씀이 없다”며 고개를 숙였다.조동주 djc@donga.com·신규진 기자}
9일 운전자 졸음운전으로 경부고속도로 7중 추돌사고를 낸 버스업체 업주에 대해 경찰이 구속영장을 신청할 방침이다. 서울지방경찰청 교통범죄수사대는 사고 버스인 광역급행 M5532 버스를 운영하는 오산교통 대표 최모 씨(54)와 핵심 간부 등 4명에 대해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 등으로 구속영장을 신청할 것으로 25일 확인됐다. 버스 인명사고가 났을 때 업주를 공동정범으로 보고 구속영장을 신청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동안은 운전기사만 형사처벌을 받았다. 경찰은 26일 최 씨를 불러 조사한 뒤 주말까지는 업무상 과실치사·상과 공갈 등의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할 예정이다. 경찰은 최 씨가 기사들에게 무리한 운행을 강요하고 휴식 시간을 충분히 보장하지 않아 사고가 날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필요한 조치를 고의적으로 취하지 않았다고 보고 있다. 회사 전무인 최 씨 장남을 비롯한 간부 3명에 대해서도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 등으로 구속영장을 신청할 예정이다. 경찰에 따르면 하루 15∼19시간씩 이틀 연속 운행하고 하루 쉬는 오산교통 기사들은 동료가 과로로 쓰러지자 3월 13일 경기 오산시청과 국토교통부에 두 차례 진정서를 냈다. 다음 날 시청 공무원이 오산교통을 방문해 근무 여건을 개선하라고 지도한 뒤 수차례 관련 공문을 보냈지만 최 씨 등이 이를 고의적으로 무시했다고 경찰은 판단하고 있다. 또 오산교통은 버스 1대당 기사 1.1명(버스 103대, 기사 118명)에 그쳐 무리한 운행을 사실상 강요한 것으로 조사됐다. 통상 수도권 버스업체는 버스 1대당 기사 1.6∼2명이 있다. 경찰은 최 씨 등이 혹독한 근무 여건을 조성해 졸음운전을 직접적으로 유발한 만큼 M5532 기사 김모 씨(51·구속)의 공동정범이라고 판단했다. 경찰은 업주에게 부실 운영 책임을 지우는 판례를 이끌어내 관습처럼 무리한 운행을 강요하는 버스업계에 경종을 울리겠다는 생각이다. 경찰은 이를 위해 1994년 성수대교 및 1995년 서울 서초구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판례를 참고했다. 두 사고 모두 당시 관리감독을 맡은 고위 책임자도 공동정범으로 인정돼 실형을 선고받았다. 최 씨는 사고를 낸 버스 기사들에게 ‘보험회사가 상대 피해 차량 수리에 부담하는 비용의 절반을 회사에 현금으로 내라’고 강요해 최소 수천만 원을 뜯어낸 혐의(공갈)도 받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최 씨는 수리비를 내지 않는 기사에게 징계를 내리고 운행에서 배제시키겠다고 협박했다. 최 씨는 국토부에서 M5532 버스 면허를 받을 때 매일 40회씩 운행하기로 해놓고 실제론 28회씩만 운행해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을 위반한 혐의도 받고 있다.조동주 djc@donga.com·신규진 기자}

경찰이 2023년까지 병역 제도인 의무경찰을 전면 폐지하면서 일명 ‘연예 의경’을 가장 먼저 없애는 방침을 세운 것으로 23일 확인됐다. 의경으로 복무하는 유명 연예인들이 속한 경찰홍보단과 경찰악대는 연예인들의 특혜성 병역 해결 창구라는 논란을 빚어 왔다. 경찰은 최근 경찰악대 소속 인기 아이돌 그룹 ‘빅뱅’ 탑(본명 최승현·30)의 대마초 흡입 사건으로 홍역을 치르면서 연예 의경 1순위 폐지 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의경 단계적 폐지가 시작되는 내년 1월부터 연예 의경을 뽑지 않을 계획이다. 그동안 연예 의경이 경찰 홍보에 큰 도움이 됐지만 탑의 대마초 파동과 의경 전면 폐지 방침이 맞물리면서 신속하게 연예 의경부터 정리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연예 의경 없애고 스포츠단 폐지 검토 연예 의경은 국방부가 2013년 군대 연예 병사 제도(국방홍보원 홍보지원대)를 폐지하면서 병역을 앞둔 연예인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그 전까지는 많은 연예인들이 연예 의경보다 군대 연예 병사를 선호했다. 연예 의경보다는 연예 병사가 소속 연예인들에게 자유 시간을 더 많이 보장해 주고, 대중 앞에 설 수 있는 공연 횟수도 더 많았기 때문으로 전해졌다. 연예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서울지방경찰청 경찰홍보단은 2000년 5월 ‘호루라기 연극단’으로 시작했다가 2012년 1월 현재의 이름으로 바꿨다. 연기자 이제훈 조승우 류수영, 개그맨 최효종, 아이돌 그룹 SS501의 허영생, 초신성의 김성제 등이 이곳에서 복무했다. 하지만 지난달 초 탑의 대마초 파동 이후 경찰은 유명 연예인 의경 선발에 극히 신중한 자세를 보이고 있다. 최근 연예 의경에 지원한 유명 남성그룹 2AM의 임슬옹(30)을 탈락시킨 것도 같은 맥락이다. 경찰은 내년부터 연예 의경을 아예 뽑지 않고 연예 의경 인원이 일정 수준 이하로 축소되면 내년 말 이전에 경찰홍보단과 경찰악대를 폐지할 방침이다. 폐지 시점에 복무 중인 연예 의경들은 기동대와 타격대 등 일선으로 재배치된다. 경찰은 야구단과 축구단 등 의경 스포츠단도 최우선 폐지 대상으로 검토하고 있다. 다만 스포츠 선수는 군 복무를 하면서 운동을 병행할 수 있는지가 선수 생명과 직결되기 때문에 폐지 시점을 신중하게 고려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축구 야구 육상 유도 사격 태권도 팀의 선수 정원을 110명으로 정해 운영 중이다. 경찰 야구단의 경우 프로야구 롯데 전준우와 KIA 안치홍이 거쳐 갔고, 두산 출신 정수빈과 이흥련, 일본 지바 롯데 출신 이대은 등이 복무 중이다. 프로축구 수원 삼성의 국가대표 출신 염기훈은 경찰 축구단에서 복무하고 제대했다. 경찰은 2만5911명인 의경 정원을 내년부터 단계적으로 20%씩 줄여 2023년 9월까지 모든 의경을 전역시킬 방침이다. 내년부터 연예 의경과 행정·사무직 의경을 가장 먼저 없애고 신입 의경 대부분을 기동대 타격대 해안경비대 등의 현장에 배치할 계획이다. 경찰은 의경 폐지의 공백을 보완하기 위해 신규 경찰공무원을 최소 1만 명 이상 충원해야 하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경찰은 문재인 대통령의 핵심 공약인 공무원 81만 명 증원이 실현되면 신규 경찰공무원 2만 명 충원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탑, 집행유예 항소 안 해 사회복무 연예 의경 1순위 폐지의 직접적인 원인이 된 탑은 20일 서울중앙지법에서 단순 대마초 흡입으로는 중형인 징역 10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도 항소하지 않았기 때문에 현역 복무를 피하게 됐다. 경찰청에 따르면 의경이 1년 6개월 이상의 징역 또는 금고의 실형이 확정되면 병역이 면제되고, 벌금형이 확정되면 원대 복귀해 복무를 계속해야 한다. 하지만 탑처럼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형이 확정되면 통상 사회복무요원(옛 공익근무요원)으로 재배치된다. 탑이 사회복무를 하게 되면 남은 복무 일수만 채우면 된다.조동주 djc@donga.com·신규진·김동혁 기자}

올 2월 한 엔터테인먼트 기업에서 퇴직한 A 씨(39)는 요즘 하루 종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뒤지고 있다. 옛 동료와의 대화 내용과 근무 영상 등을 찾기 위해서다. 그가 회사를 그만둔 건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밀린 급여 탓이다. A 씨가 퇴직할 때 받지 못한 급여는 약 3800만 원. 그는 생활비가 부족해 은행돈 4000만 원까지 빌렸다. 결국 A 씨는 최근 고용노동부에 임금체불을 신고했다. 그러자 회사의 태도는 더욱 차가워졌다. 회사 측은 A 씨의 초과근무 자료는 물론이고 4대 보험 가입증명서 등 기본 서류마저 발급을 거부했다. A 씨는 어쩔 수 없이 SNS를 검색하고 옛 동료를 일일이 찾아다니며 ‘함께 근무했다’는 내용의 진술서를 받고 있다. 근로자 처우 개선을 위해 최저임금이 큰 폭으로 인상됐지만 그나마 정해진 임금도 받지 못해 고통을 겪는 근로자가 늘고 있다. 18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임금체불 신고는 2013년 18만1182건에서 지난해 21만7530건으로 늘었다. 체불 총액도 같은 기간 1조1930억 원에서 1조4286억 원으로 2000억 원 이상 증가했다. 그러나 근로자가 체불된 임금을 받으려면 말 그대로 알아서 뛰어야 한다. 현행 근로기준법은 임금체불 등 분쟁이 생겼을 때 회사 측이 근무시간 정보 등을 근로자에게 반드시 제공하지 않아도 된다. 회사가 근로자의 자료 제출 요구를 거부해도 이를 제재할 규정이 없다. 기업들은 이런 허점을 노리고 근로자들이 스스로 근무시간을 증명하도록 방치하고 있다. 근무시간을 제대로 증명하지 못하면 체불 임금을 다 받기가 어렵다. 대기업에서 5년 동안 근무했던 B 씨(28)는 평소 출퇴근 시간을 따로 기록하지 않아 휴일근무, 야근 등과 관련된 서류를 받지 못했다. B 씨는 “노무사를 찾아 가까스로 증빙 서류를 만들었지만 휴일근무 등을 제대로 증명하지 못해 당초 받아야 했던 급여보다 500만 원을 덜 받았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근무시간을 증명하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까지 생겼다. 15일 출시된 ‘돈내나’라는 앱은 직장과 사용자의 위치정보를 대조해 근로자가 실제 근무한 시간을 알 수 있도록 자료를 제공한다. 지난해 12월 더불어민주당 김경협 의원은 임금 지급 때 회사가 근로자에게 근무일 및 근무시간 등의 자료를 함께 제공해야 하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했다. 이 법이 통과되면 근로자는 근무시간을 증명하기 위한 수고를 덜 수 있다. 그러나 법안은 아직 상임위에 계류 중이다. 탄핵과 대선이 이어지면서 제대로 심사조차 이뤄지지 않았다. 심재진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근로자가 자료를 요청할 때 회사가 자료를 제공해야 한다는 의무 규정을 관련 법률에 명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이정윤 인턴기자 서강대 경제학과 졸업}
12일 오전 7시 반 광역버스 한 대가 경기 성남시 분당구의 한 정류장을 출발했다. 목적지는 서울 광화문. 좌석 41개에 앉은 승객들은 대부분 눈을 감고 있었다. 승객은 좌석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좁은 통로에도 10명 넘는 승객이 있었다. 천장이나 좌석에 달린 손잡이를 잡고 가는 승객들도 대부분 눈을 감은 모습이었다. 버스가 서울로 향하는 마지막 정류장을 지났다. 판교나들목을 거쳐 경부고속도로에 막 올라섰다. 하지만 안전띠 착용을 안내하는 버스 운전사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전용차로에 올라선 광역버스가 제한속도 110km를 넘길 때마다 날카로운 경고음이 울렸다. 앞선 버스의 속도가 느려지자 갑자기 바로 옆 2차로로 진로를 바꿨다. 앞에 있는 버스를 제친 광역버스는 ‘칼치기(급격한 차로 변경)’로 다시 전용차로로 진입했다. 얼마나 급히 차로를 바꿨는지 한 여성 승객의 무릎 위에 놓인 가방이 떨어져 안에 있던 서류들이 바닥에 흩어졌다. 본보 기자들은 11일부터 이틀간 출근시간대 광역버스에 올라 현장점검에 나섰다. 경기 고양시 일산과 성남시 분당에서 서울 종로와 영등포, 서초를 오가는 버스들이다. 대부분의 버스가 도로교통법을 수시로 위반했다. 종로로 향하는 한 광역버스는 정차한 시내버스를 제치려다 중앙선을 침범해 맞은편 차량과 한 뼘 차이로 지나쳤다. 이날 확인한 법 위반은 △규정속도 미준수 △신호위반 △불법 차로 변경 △급출발·급정거 △승객입석 허용 △중앙선 침범 등의 순이었다. 운전사들도 이런 문제를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일상화된 불법”이라며 배차시간 조정 등 시스템이 바뀌지 않으면 당장 고칠 수 없다고 하소연했다. 운전사들도 9일 경부고속도로 7중 추돌사고 후 불안감이 커 보였다. 경기 고양시의 한 운전사는 “2시간 반 운행하면 30분 휴식시간이 주어지는데 졸음운전이 위험한 건 알지만 조금이라도 빨리 가서 쉬려니 난폭운전을 하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승객들의 불안감도 커지고 있다. 이정순 씨(79·여·서울 은평구)는 최근 지하철과 택시만 탄다. 올 1월 교통사고를 직접 경험한 탓이다. 하차를 위해 서 있던 이 씨는 광역버스가 급제동하면서 몸 전체가 공중에 붕 뜨는 경험을 했다. 이 씨는 “기사들의 고충은 이해하지만 이번 사고는 안전불감증도 한몫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동혁 hack@donga.com / 수원=신규진 / 김예윤 기자}

‘휴게실’이라고 쓰인 스티커가 철문에 너덜너덜 붙어있었다. 문을 열자 33m²(약 10평) 남짓한 시멘트 바닥에 3인용 소파 2개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앉는 사람이 드문 탓인지 소파 위에는 먼지가 뽀얗게 앉아 있었다. 구석에 놓인 새카만 대걸레의 퀴퀴한 냄새로 코끝이 찌릿했다. 필터에 녹이 슨 15년 된 에어컨에선 미지근한 바람이 흘러나왔다. 실내 곳곳에 거미줄도 보였다. 9일 경부고속도로에서 7중 추돌사고를 낸 광역급행버스(M5532번) 운전사 김모 씨(51)의 소속 버스회사인 오산교통의 휴게실이다. 이름은 휴게실이지만 한눈에도 휴식을 취할 만한 곳이 아니었다. 11일 동아일보 취재팀이 이곳 주변에 5시간가량 머무는 동안 휴게실을 찾는 운전사는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이 회사에는 127명의 운전사가 있다. 하루 15시간 넘게 장거리 운행을 하면서도 제대로 쉬지 못하는 버스 운전사들의 피로 누적이 졸음운전 참사의 주범으로 꼽히고 있다. 김 씨 역시 전날 19시간 동안 근무하고 7시간 반 만에 또다시 운전대를 잡았다가 사고를 냈다. 장거리를 달리는 운전사에게 의무적으로 휴식을 취하도록 하지만 현장에는 제대로 쉴 공간도, 시간도 없었다.○ 오이 씹으며 졸음 쫓아 11일 오후 6시경 경기 성남시 분당구와 경기 군포시를 오가는 광역버스 안. 운전사 김모 씨(54)는 준비해온 오이를 우걱우걱 씹더니 그래도 졸음을 물리치기가 어려운 듯 고개와 어깨를 이리저리 돌렸다. “전화 통화를 하는 게 잠 깨는 데 가장 좋긴 하지만 승객들이 불안해하니까….” 김 씨가 이날 분당과 군포를 4차례 오가며 9시간 운전하는 동안 휴식시간은 점심 때 10분을 포함해 1시간이 채 되지 않았다. 회차지인 군포 한세대 앞에 도착해 손님이 모두 내리자 김 씨는 주변을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소변이 급했던 것이다. 잠시 망설이던 김 씨는 화장실을 포기하고 다시 분당 방면으로 운행을 시작했다. 김 씨는 “회차지 정류소에 따로 화장실이 없어 주변 주유소나 상가건물에 들어가 부탁을 해야 하는데 번거로워서 웬만하면 그냥 참는다”고 말했다. 지난해 서울 서대문 부근에서 운행을 하던 한 버스운전사는 용변이 급한 나머지 승객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주유소 화장실에 갔다가 한 승객이 운전사를 구청에 신고해 사달이 벌어지기도 했다. 전국자동차노동조합연맹(자동차노조)이 2015년 버스 운전사 289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운행하는 버스 종점과 회차지에 화장실이 없다”고 답한 운전사가 전체의 60%에 이른다. 주변에 상가건물이라도 있으면 다행이지만 이마저 없으면 도로변에서 해결해야만 한다. 경기와 서울을 오가는 광역버스는 서울 도심을 경유한 뒤 다시 고속도로를 거쳐 경기 지역 차고지로 돌아오는 노선을 반복 운행한다. 출퇴근 시간에는 왕복 4시간 넘게 걸리지만 피곤하다고 도중에 버스를 세울 순 없다. 중간 회차지 역시 대부분 서울역, 강남역, 사당역 등 붐비는 도심이라 운전사들이 버스를 세우고 쉴 공간이 거의 없다. 2시간 운전 후 15분씩 쉬도록 한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 규정은 남의 나라 이야기다. 서울역에서 회차하는 광역버스 운전사 이모 씨는 “차고지에선 서둘러 나오기 바쁘고 회차지에선 조금만 버스를 주차하고 있어도 딱지를 떼이는 경우가 있어 휴식은 꿈도 못 꾼다”고 말했다. 고정된 자세로 장시간 앉아 있어야 하는 업무 특성 때문에 ‘직업병’을 앓는 운전사도 상당수다. 경기 평택시에서 버스 운전사로 10년째 일해온 박모 씨(41)는 다리에 하지정맥류가 생겨 2015년에 수술을 받았다. 박 씨는 “50, 60대인 동료 기사들은 방광염이나 전립샘에 문제가 있어 비뇨기과에 다니는 경우가 많다”며 “식사를 할 때는 대충 국물에 후루룩 말아먹기 때문에 소화기 계통 질환도 많다”고 말했다. 자동차노조의 2015년 조사 결과에 따르면 버스 운전사의 27.3%가 어깨와 무릎에 통증을, 23.5%는 요통과 허리질환을 호소하고 있다.○ 정부, 전국 버스 실태조사 착수 국토교통부는 고속버스 졸음운전 사고를 막기 위해 전국 버스운송업체 200여 곳을 대상으로 안전관리 실태 점검에 나선다고 11일 밝혔다. 기존 차량에 졸음운전 사고를 예방하는 ‘전방추돌 경고장치(AEBS)’ 장착을 의무화하는 방안도 검토하기로 했다. 현재 AEBS 의무 장착은 올해 1월 9일 이후 신규 출시된 대형 승합차와 화물차에만 적용돼 왔다. 국토부는 지자체와 합동점검반을 꾸려 버스업체가 운전사의 최소 휴게시간을 보장하는지, 운전사의 질병, 피로, 음주 상태를 확인하는지, 운전사 휴게시설은 설치했는지 등을 점검할 계획이다. 현행 여객사업법 개정안은 시외·고속·전세버스 운전사가 2시간 연속 운전하면 휴게소 등에서 15분 이상 쉬도록 규정하고 있다. 4시간 이상 운전하면 30분 이상 쉬도록 했다. 이를 지키지 않는 업체는 최대 90일 사업정지나 180만 원의 과징금 처분을 받지만 졸음운전으로 인한 버스 사고는 계속되고 있다. 7중 추돌사고를 수사 중인 서울지방경찰청 교통범죄수사대는 11일 오산교통을 압수수색했다. 경찰은 김 씨가 졸음운전을 하다 사고를 낸 것으로 의심되는 만큼 사측이 휴식시간 보장 등 안전관리 규정을 준수했는지를 조사하고 있다. 또 경찰은 사측이 차량을 불법개조하거나 시속 110km를 넘지 못하도록 한 속도제한장치를 제거했는지도 조사할 계획이다.오산=최지선 aurinko@donga.com / 수원=신규진·정임수 기자}

“시속 90km 속도로 달리고 있었다. 어느 순간 눈이 감긴 것 같은데 갑자기 우당탕 소리가 나서 정신을 차려보니 앞바퀴가 붕 떠 있었다.” 9일 경부고속도로 상행선에서 7중 추돌사고를 낸 광역급행버스(M버스) 운전사 김모 씨(51)는 사고 당시 상황을 이같이 설명했다. 이틀 일하고 하루를 쉬는 김 씨는 이날 이틀째 근무하던 날이었다. 사고 전날인 8일 김 씨는 오전 5시∼오후 11시 반까지 19시간 가까이 일했다. 경기 오산시∼서울 사당역까지 2시간 반 정도 걸려 106.6km 구간을 왕복하는데 이 여정을 6차례 반복했다. 운행 거리가 639.6km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약 360km(최단거리 기준)의 두 배에 육박한다. 이튿날 김 씨가 출근해 운전대를 잡은 시각은 오전 7시 15분. 전날 운전대를 놓은 지 7시간 반 만이었다. 그는 점심식사 후 오후 1시 45분 세 번째 운행에 나섰다. 그리고 약 1시간 만인 오후 2시 42분 사고가 났다. 김 씨의 동료들은 “김 씨는 경력 8년의 베테랑 기사였다”며 그날따라 김 씨는 버스에 잘 오르지 못하고 식당에 자주 앉아 있었다”고 전했다. 김 씨는 별다른 사고 전력이 없다. 현행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은 사업용 차량 운전사들이 2시간 이상 운행 때 반드시 15분 이상 쉬도록 하고 있다. 또 운행 간격도 최소 8시간 이상을 유지토록 하고 있다. 하지만 김 씨에게 이 규정은 제대로 적용되지 않았다. 올 3월 김 씨의 동료들은 오산시청에 “전날 운행 후 다음 날 운행 때까지 8시간 휴식을 보장해 달라”는 진정을 제기했다. 하지만 실제 근무에 반영되지 않았다. 이런 환경은 김 씨만의 얘기가 아니다. 이날 본보 기자는 27년 경력의 이모 씨(60)가 운전하는 광역버스(경기 수원시∼서울역)에 탑승해 17시간 동안 운행 상황을 확인했다. “씹을 거리가 있어야 저승사자가 못 온다.” 이 씨는 운전대 옆 비닐봉지에 담긴 콩과 호두를 한 움큼 집어 입에 털어 넣었다. 식사 후 몰려오는 졸음이 그에겐 ‘저승사자’다. 오후 11시가 돼서야 일과를 마친 그는 “한 번 나가면 2, 3시간 꼼짝 못 하고 달려야 하는 게 버스 운전이다. 잠깐 눈을 감았는데 앞차가 코앞인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 씨는 이날 오전 4시 반 수원에 있는 차고지에 도착해 오전 5시 10분 운행을 시작했다. 두 차례 왕복운행을 하고 수원 차고지로 돌아온 때가 오전 10시 반. 이때가 하루 첫 끼니를 해결하는 시간이다. 10분 만에 밥그릇을 비운 그는 자판기 커피 한 잔을 뽑아들고 담배를 물었다. 15분간 한숨을 돌린 이 씨는 다시 버스에 올랐다.오산=최지선 aurinko@donga.com / 수원=신규진 기자}

북한의 미사일 발사 장면을 생중계하며 도발 행위를 옹호하고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을 찬양하는 내용의 북한 방송이 유튜브에서 버젓이 상영되고 있는 것으로 7일 확인됐다. 국내 일부 누리꾼은 이 영상들을 보며 응원 댓글을 남기고 방송 운영진에 사이버 후원금인 ‘유튜브 머니’를 전하기까지 해 논란이 예상된다.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시험 발사한 4일 유튜브 ‘조선중앙텔레비전(KCTV)’ 채널은 이 장면을 생중계한 북한 조선중앙TV의 영상을 거의 실시간으로 전파했다. 이 영상 아래에는 “와! 불꽃놀이가 여의도보다 더 끝내준다” “더 많은 북한 소식 부탁해요” 같은 댓글이 달렸다. 한 누리꾼은 방송 운영자에게 유튜브 머니 형태로 1000원을 보냈다. 올 2월 개설된 KCTV는 매일 오후 2시부터 8시간 동안 조선중앙TV를 실시간 스트리밍 방식으로 연결해 국내외에 북한 영상을 전하고 있다. 김정은의 군사시설 시찰이나 북한군 훈련 장면, 주민들의 정권 찬양 행사 등 주제별로 편집한 동영상도 매일 여러 건 올라온다. 이 방송은 국적과 연령에 상관없이 누구나 볼 수 있으며, 국내외 3000여 명이 구독자로 등록해 정기적으로 시청한다. 인기 게시물은 조회수가 5만 건을 넘는다. KCTV 소개란에는 조선중앙방송위원회가 운영한다고 돼 있지만 실제 북한이 운영하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유튜브코리아는 “회사 방침상 채널 정보를 제공해줄 수 없다”고 밝혔다. 2월 북한 전문 웹사이트인 ‘38노스’는 “멕시코에 기반을 두고 운영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우리 국민이 조선중앙TV 등 북한에서 제작된 영상을 온라인상에 무단 배포할 경우 북한에 대한 찬양·고무를 금지한 국가보안법 제7조 위반에 해당돼 처벌받을 수 있다. 유튜브 등을 통해 북한 동영상을 보는 행위는 법에 저촉되지 않지만 유튜브 머니 형태 등의 금전이 방송 운영진을 통해 북측에 제공된다면 ‘대북 송금’으로 간주될 수 있다. 경찰 관계자는 “친북 성향의 영상을 무단 전파하는 KCTV는 법 위반 소지가 있어 사실 관계를 파악해 조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방송통신위원회도 “북한의 통치이념과 3대 세습을 찬양하는 콘텐츠는 차단 대상”이라며 “심의위원회가 구성되는 대로 해당 채널의 법 위반 여부를 따져보겠다”고 밝혔다. 유튜브는 지난해 11월 KCTV와 유사한 ‘북한 찬양’ 채널을 청소년 유해물로 판단해 폐쇄 조치했다. 하지만 유튜브 채널 개설은 별다른 제약 없이 누구나 할 수 있어 친북 성향의 방송 채널이 계속 생겨나는 실정이다.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 이정윤 인턴기자 서강대 경제학과 졸업}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은 6일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를 비난했다. 이날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아펜젤러관에서 기자들과 만난 반 전 총장은 “전직 유엔 사무총장으로서 북한의 추가 도발 자제를 촉구한다”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곧바로 소집된 것은 시의적절한 조치”라고 말했다. 그는 “북한은 하루빨리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협의에 임해야 한다”며 “(국제사회의) 메시지가 북한에도 잘 전달될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지난달 초 연세대 글로벌사회공헌원 명예원장 겸 석좌교수에 임명된 반 전 총장은 5일 귀국해 이날이 첫 출근이었다. 그는 문재인 정부의 외교 현안 해결을 돕겠다는 의지도 밝혔다. 지난달 초 문 대통령과의 오찬에서 외교정책 수립에 관한 조언을 부탁받은 반 전 총장은 “대통령이 희망하는 등 필요가 있다면 (그렇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연세대 사회공헌활동을 총괄하는 글로벌사회공헌원의 명예원장을 맡은 그는 한국 대학생들이 세계 사회에 더욱 적극적으로 공헌할 수 있도록 도울 계획도 밝혔다. 반 전 총장은 “미래 지도자들이 세계시민의 정신을 갖고 커나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경남 창원 골프연습장 40대 주부 납치 살해 사건의 피의자 심천우(31)와 강정임(36·여)이 3일 경찰에 붙잡혔다. 범행 9일 만이다. 영호남을 오가며 경찰 추적을 유유히 따돌렸던 두 사람은 서울의 한 모텔에서 검거됐다. 이들이 모텔에 투숙한 건 지난달 28일. 바로 경찰이 공개 수배한 날이다. ● 공개 수배 직후 모텔로 숨었다 3일 오전 10시 10분경 서울 중랑경찰서 강력팀 형사 6명이 서울 중랑구의 한 모텔에 도착했다. 40년가량 된 낡은 숙박업소다. 심과 강은 2층 방에 있었다. 경찰이 문을 두드리며 열라고 말했다. 잠깐의 침묵 후 안에서는 “예, 예”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약 10분 후 경찰이 “주인을 부르겠다”고 말하자 결국 문이 열렸다. 경찰이 수배전단을 보여주며 “당신 맞지”라고 다그치듯 물었다. 두 사람은 순순히 시인했다. 그리고 경찰이 들고 있던 수갑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검거 당시 심은 수배전단 속 검은 뿔테 안경 대신에 얇은 금속테 안경을 쓰고 있었다. 이들이 모텔에 투숙한 건 지난달 28일 오후 4시 반경. 경찰의 공개 수배 사실이 언론에 보도된 지 약 2시간 후다. 자신들의 얼굴과 신상이 공개된 걸 알고 곧바로 모텔을 찾은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일주일 치 방값(20만 원)을 내고 투숙했다. 그러나 5일 동안 거의 바깥에 나오지 않았다. 음식도 매번 시켜 먹었다. 장기 투숙객 A 씨는 두 사람의 행동이 이상했다. 2일 오후 9시경 폭우가 내리는 가운데 두 사람이 나란히 외출하는 걸 봤다. A 씨는 “수상한 사람이 있다”며 112에 신고했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살인범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출동한 경찰은 이들이 묵었던 방을 둘러봤다. 특별한 흔적은 발견하지 못했다. A 씨도 이들이 수배전단 속 인물인지 확신하지 못했다. 일단 경찰은 모텔 주변에 남아 폐쇄회로(CC)TV를 살펴보며 탐문을 벌였다. 또 A 씨와 계속 연락하며 두 사람의 동태를 확인했다. 3일 0시 반경 심과 강은 다시 모텔로 돌아왔다. 이어 오전 9시 50분경 A 씨가 경찰에 신고하면서 두 사람의 도피 행각은 막을 내렸다. 경찰은 범행의 중대성 등을 고려해 이들의 얼굴을 공개했다. ● 엉뚱한 곳만 수색한 경찰 경찰에 따르면 이들은 투숙하면서 “한 달 동안 머물겠다”고 말했다. 모텔 주인이 “곤란하다”고 하자 일주일로 바꿨다. 하루 3만 원씩 방값은 21만 원. 주인이 1만 원을 깎아줬다. 심은 주인에게 “우리 방은 신경 쓰지 마라. 청소 안 해도 된다. 수건도 필요하면 우리가 달라고 하겠다”고 말했다. 이들은 족발 피자 같은 음식을 배달시켜 먹었다. 또 옷가지가 담긴 쇼핑백을 갖고 있었다. 검거 후 방 안 휴지통에선 집중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는 어린이 장난감 ‘피짓스피너’가 발견됐다. 창원서부경찰서는 이날 오후 9시 15분경 이들을 창원으로 압송해 범행 동기와 도주 경로 등을 집중적으로 조사했다. 심은 “생활비 마련과 사업자금 확보를 위해 돈 많은 사람을 노리고 범행을 계획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지난달 24일 주부 손모 씨(47)를 납치, 살해한 뒤 시신을 유기하고 신용카드로 410만 원을 인출한 혐의로 4일 두 사람의 구속영장을 신청할 예정이다. 지난달 27일 붙잡힌 심의 육촌동생(29)은 강도 살인 혐의로 구속됐다. 당초 경찰은 이들이 멀리 가지 못했을 것으로 보고 매일 경찰관 1000여 명을 투입해 함안, 진주, 창원 일대를 수색했다. 그러나 심과 강은 27일 오전 1시 반 함안에서 경찰 추적을 따돌린 직후 곧바로 창원 방면으로 달아났다. 이 과정에서 지나는 차량을 얻어 탄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이들이 서울로 가기까지의 정확한 경로와 방법을 수사 중이다. ● ‘수상하다’ 신고 받은 경찰 ‘끝까지 확인하자’ 심과 강을 검거한 건 공개수배 5일 만이다. 이번에 체포하지 못했다면 검거까지 자칫 오랜 시간이 걸릴 수 있었다. 2일 오후 10시 서울 중랑경찰서 112상황실에 “남녀 한 쌍이 갑자기 모텔에서 사라졌는데 수상하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남녀’라는 말에 현장에 출동한 경찰 및 이날 당직인 강력6팀 형사들은 심과 강의 얼굴이 나온 수배전단을 챙겼다. 모텔을 찾은 경찰은 A 씨에게 전단을 보여줬다. 심과 강을 가리키며 “혹시 이 사람들이 맞나”라고 물었다. A 씨는 “남자는 (안 봐서) 모르겠고, 여자는 (봤는데) 아닌 것 같다”고 답변했다. 일단 경찰은 현장에서 철수했다. 하지만 백희광 강력6팀장은 팀원들에게 “혹시 나중에 범인이 이곳에 들렀다는 게 밝혀지면 분하지 않겠나”라며 “아니라는 확신이 들 때까지 확인해보자”고 말했다. 형사들은 모텔에서 투숙객의 지문 등을 채취하고 밤새 모텔 주변 탐문 등을 벌였다. 현장 주변의 CCTV도 확인했다. 다음 날 오전 9시 형사들은 모텔을 다시 찾아가 “혹시 투숙객이 돌아오면 꼭 알려 달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첫 신고 후 고민에 빠졌던 A 씨도 용기를 냈다. 사라졌던 투숙객이 자정 무렵 숙소로 돌아온 찰나에 형사들이 끈질기게 붙자 평소 알고 지내던 역술인에게 “어떻게 해야 하냐”고 조언을 구했다. 역술인이 “경찰에 알려줘야 한다”고 조언하자 A 씨도 용기를 내 “새벽에 남녀가 다시 방에 들어왔다”고 형사들에게 알려줬다. 이어 확인한 CCTV 속 남녀의 모습은 형사들 눈에 수배전단 속 심, 강의 모습과 동일했다. 형사들은 큰 불상사 없이 두 사람을 검거했다. A 씨는 “한숨도 못 자고 어떻게 할까 많이 망설이고 고민했다”며 “(두문불출하다가 사라지는) 행동이 이상해 신고했을 뿐인데, (살인범이라는 말에) 가슴이 너무 떨린다”고 말했다. 현장을 지휘한 백 팀장은 1986년 순경 공채로 경찰에 발을 들였다. 근무 첫해 조직폭력배 간 흉기난동 사건인 서울 서초구 서초동 ‘서진룸살롱’ 살인사건 수사에 참여했다. 중랑서 관계자들은 “백 팀장이 ‘조폭 사건 전문가’로 통하는데 평소 사건을 대하는 촉이 남다른 편이다”라고 평가했다. 창원=강정훈 manman@donga.com / 김배중·구특교 기자}

“깨끗한 물로 가득 찬 바다를 만들고 싶어요.” 3일 오후 3시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열린 제3회 ‘생명의 바다’ 그림대회(동아일보 채널A 공동 주최) 시상식에서 행정자치부장관상(초등부 대상)을 받은 노대홍 군(10·인천 초은초교)은 수줍게 웃으며 소감을 밝혔다. 지난해엔 환경부장관상을 받았던 노 군은 바다가 페트병에 담긴 깨끗한 물을 마시는 그림을 그려 심사위원들의 좋은 평가를 받았다. 해양부장관상(중등부 대상)을 받은 이주현 양(14·연수중)은 바다가 세월호를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그림을 그렸다. 이 양은 “세월호에 생명을 불어넣어 언니 오빠들의 희생을 기억하자는 메시지를 담고 싶었어요. 처음 참가했는데 큰 상을 받아 기뻐요”라고 했다. 이날 시상식에는 대상인 행정자치부, 해양수산부, 환경부, 국민안전처 등 정부 부처 장관상(초중고교 14명)과 지방자치단체장상 및 주요 기관장상을 받은 초중고교생 29명과 가족 50여 명이 참석했다. 동아일보 김순덕 논설주간이 시상했고 이인철 문화사업본부장이 이들을 격려했다. 총 646명의 수상자 가운데 이날 시상식에 오지 못한 대상 및 금·은상 수상자를 비롯한 동상(17명), 장려상(145명), 입선 수상자(409명)의 상장은 각 학교를 통해 이달 중 전달될 예정이다. 이번 대회는 5월 13일 인천, 부산, 울산, 충남 서천, 경남 거제의 대회장 8곳에서 전국 초중고교생 3800여 명과 학부모, 교사 등 1만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열렸다. 교육부, 행정자치부, 환경부, 해양수산부, 국민안전처, 인천시, 부산시, 경남 거제시, 인천시교육청, 부산시교육청, 울산시교육청, 충남도교육청, 경남도교육청, 거제교육지원청, 인천경제자유구역청, 인천도시공사, 부산상공회의소, 한국해양수산연수원, 국립해양박물관, 국립해양생물자원관, 국립생태원, 인천 중구·동구·서구·연수구, 충남 서천군, 울산 남구, 인하대, 인천대, 부경대가 후원했다. 심사는 김향미 숙명여대 교육대학원 교수, 신종식 홍익대 미술대학원장, 오병근 연세대 디자인예술학부 교수, 현은령 한양대 응용미술교육과 교수(가나다순)가 맡았다.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손짓 몇 번이면 하루에 수십만 원을 벌었다. 옷을 벗는 게 점점 부끄럽지 않았다. 고향에선 상상도 하지 못한 일이다. ‘옷 한 번만 벗으면 돈이 들어오는 세상.’ 이현주(가명·26) 씨의 눈에 비친 자본주의 세상의 모습이다. 이 씨는 탈북자다.○ 내가 벌어야 북녘 가족이 살 수 있다 2014년 3월 이 씨는 북한을 탈출해 홀로 한국으로 들어왔다. 북한이탈주민정착지원사무소(하나원)에서 6개월간 정착교육을 마쳤다. 한국 땅을 밟을 때처럼 또다시 혼자가 됐다. 먹고살려면 직업을 구해야 했다. 그가 돈을 벌어야 하는 이유는 또 있었다. 북한에 남은 할머니와 동생들의 생활비가 오롯이 그의 부담이었다. 이렇다 할 기술도, 아는 사람도 없는 한국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다. 자신과 북한 내 가족의 생활비를 번다는 건 그야말로 하늘의 별 따기였다. 같은 해 10월 인터넷에서 구직 정보를 찾다가 동영상 사이트에 올라온 개인방송을 봤다. 유명 BJ(Broadcasting Jockey·방송진행자)들의 방송을 보면서 이 씨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여성들이 노출이 심한 옷을 입고 민망한 자세를 보여주는 것에 놀랐고 누리꾼들이 너무 쉽게 지갑을 여는 것에 더 놀랐다. 이 씨는 어릴 때부터 가족의 생계를 책임졌다. 곧잘 억척스럽다는 말도 들었다. 어렵지 않게 돈을 벌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질게 마음먹자’는 생각이 이 씨의 머릿속을 스쳐갔다. 한 달가량 인터넷을 뒤져 방송법을 배웠다. 온라인에서 자주 쓰이는 용어도 댓글 게시판을 샅샅이 살펴보며 배웠다. BJ들이 있는 소속사를 찾아가면 편하지만 수익의 절반 이상을 줘야 하기 때문에 직접 하기로 했다. 같은 해 12월 이 씨는 한 동영상 사이트에 개인방송을 개설했다. 그는 말투를 완전히 바꿨다. 누리꾼들은 그가 탈북자인지 알 수 없었다. 컴퓨터 모니터 속 이 씨를 바라보며 남성들은 환호했다. 그리고 이 씨에게 팝콘(일종의 가상화폐)을 보냈다. 여자로서의 부끄러움은 늘어나는 통장 잔액을 보면 씻겨 내려갔다. 갈수록 수위는 높아졌다. 1만 원을 낸 사람들만 입장할 수 있는 방송에서는 유사 성행위까지 했다. 수입은 기대 이상이었다. 이 씨는 북한에 있는 가족에게 한 달에 300만 원을 보냈다. 그러고도 수중에 400만 원가량이 남았다. 고급 외제차와 명품 의류를 사들였다. 대한민국은 그에게 천국이었다.○ 성인방송 몰리는 탈북자 이 씨는 올 3월 음란물 유포 혐의로 경찰에 붙잡혔다. 경찰은 이 씨가 성인방송을 하며 약 26개월 동안 1억3000만 원 이상을 벌어들인 것으로 보고 있다. 처음 경찰의 소환 통보를 받았을 때 이 씨는 도망치지 않고 순순히 출석했다. 그는 시종 덤덤한 표정으로 조사를 받았다. 경찰 관계자는 “이 씨의 말투가 너무 자연스러워 처음에 북한 사람인 줄 몰랐다”며 “본인이 말하고 나서야 알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 씨는 “돈을 벌어야 하는 상황에서 선택한 것”이라며 “성인방송이 죄가 될 줄은 솔직히 몰랐다”고 말했다. 성인방송에 탈북여성이 등장한 건 이 씨뿐이 아니다. 2015년에도 탈북여성을 BJ로 고용해 음란방송을 시킨 웹사이트 운영자들과 BJ들이 검찰에 적발됐다. 한국 사회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 탈북자들이 손쉽게 돈을 벌 수 있는 길을 선택하는 것이다. 남성욱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는 “국내 정착 과정에서 탈북자들의 가장 큰 어려움은 경제적인 문제”라며 “탈북자에게 맞는 적성별 직업교육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신규진 newjin@donga.com·이호재 기자}

16m² 남짓한 방. 한쪽에 검은색 고무 마네킹이 서 있고 방바닥에는 가전제품과 사금파리가 수북하다. 벽에는 검정 타이어 3개와 과녁이 있고 다른 한쪽에는 야구방망이와 망치가 줄지어 있다. 이곳은 최근 젊은층을 중심으로 인기를 끄는 ‘스트레스 해소방’이다. 안전모와 방호복을 입고 야구방망이나 망치로 접시를 깨뜨리고 물건을 부술 수 있는 공간이다. 생긴 지 한 달도 안 됐지만 많은 사람이 다녀간 듯 고무 마네킹의 목은 잘려 나갔고 타이어도 곳곳이 마모됐다. 21일 동아일보 기자가 서울 마포구의 스트레스 해소방을 찾았다. 이날 영업을 시작한 지 갓 10분이 넘었지만 이미 손님들이 방마다 가득했다. 대부분 대학생이나 30대 초반, 사회 초년생으로 보였다. △짜증 △왕짜증 △빡침 △개빡침 △미침 등 다섯 단계의 프로그램이 있고 가격은 2만∼15만 원대였다. 중간 단계인 ‘빡침’을 선택했다. 세라믹 접시 20개와 야구방망이, 망치, 고장 난 프린터 등이 제공됐다. 프린터를 망치로 내려찍고 야구방망이로 휘둘러 부수고, 접시를 과녁에 내던지자 15분이 훌쩍 지났다. 뭔지 모를 쾌감이 느껴졌다. 손님들 반응도 엇비슷했다. 대학생 조모 씨(26)는 “소리 지르고 야구방망이로 물건을 부수다 보니 삭이기만 했던 스트레스가 조금은 풀린다”며 “이렇게라도 할 수 있는 공간이 생겨서 다행”이라고 말했다. 돈을 모아 다음에는 제일 비싼 ‘미침’을 즐기겠다고 했다. 가게 직원은 “손님 대부분은 화가 쌓인 20, 30대”라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소문이 퍼지면서 점점 늘어나는 추세”라고 말했다. 해소방을 나와 온라인 게임 ‘사장님 때리기’, ‘선생님 때리기’도 해봤다. 공간과 대상이 달라졌을 뿐 게임 내용은 해소방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우산이나 골프채로 사장님 캐릭터를 때려 피를 흘리게 하거나, 발로 차서 창 밖으로 날려버리는 식이다. 학생이 던진 30cm 자가 판서하는 선생님의 머리에 꽂히는 엽기적인 장면도 나왔다. 사용자들은 “미워하는 사람을 생각하라” “××놈도 당해봐라”라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분노 범죄’가 연일 발생하는 가운데 이 같은 해소방이나 자극적 게임이 역으로 사회의 분노를 부추긴다는 우려가 있다. 실제 스트레스 해소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견해도 나온다. 김혜숙 아주대 심리학과 교수는 “실험 결과 자기가 싫어하는 상대의 대리 이미지를 놓고 공격하거나 폭력적인 행동을 하는 것은 스트레스 해소에 별로 효과가 없다”며 “믿을 만한 지인에게 고민을 털어놓는 편이 낫다”고 조언했다.정지영 jjy2011@donga.com·신규진 기자}

“얼마나 착하고 명랑한지, 처갓집 오면 마을 사람들이 전부 ‘우리 사위 왔네’라고 할 정도였는데….” 김모 씨(57)는 말을 잇지 못했다. ‘형님’을 부르며 늘 환하게 웃던 매제의 얼굴이 떠올라서다. 김 씨의 매제 이모 씨(53)는 16일 평소처럼 인터넷 수리를 위해 고객의 집을 찾았다가 목숨을 잃었다. ‘인터넷이 느리다’며 불만을 품은 고객이 그에게 무차별 흉기를 휘두른 것이다. 이 씨는 팔순 노모와 아내, 슬하의 남매에게 아무 말도 남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누구보다 성실한 ‘마을 사위’의 죽음 “팔순 노모와 아내, 남매를 위해 그저 평생 열심히 살던 매제였는데….” 김 씨는 18일 “날벼락이라는 말을 실감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숨진 이 씨는 7세 때 아버지를 여의었다. 이 씨 어머니는 갖은 고생을 하며 2남 2녀를 모두 고등학교까지 졸업시켰다. 장남인 이 씨는 졸업 후 통신회사에 입사했다. 2003년 20년간 몸담았던 회사에서 명예퇴직을 했지만 평소의 성실함과 타고난 영업 능력 등을 인정받아 자회사 직원으로 재취업해 인터넷 설치기사로 일했다. 김 씨는 “예전에 다니던 회사에서 받던 월급의 반도 안 되는 수준이었지만 아내와 대학에 다니는 두 자녀를 위해 주말인 토요일에도 쉬지 않고 일을 했다”고 말했다. 이 씨 아내도 대학에 다니는 남매의 등록금에 보태기 위해 작은 전자회사에 취직해 시간제로 일을 했다. 충북 충주시의 아파트에 사는 이 씨는 84세의 노모를 모시고 싶었지만 도시 생활을 꺼리는 어머니를 위해 멀지 않은 수안보에 집을 마련해 어머니를 모셨다. 바쁜 생활 속에서도 고인은 수시로 다리가 아픈 어머니를 찾아 상태를 체크하고 돌봤다. 또 회사에서 포상금을 받으면 처갓집을 찾아 동네 사람들에게 자주 식사를 대접해 ‘마을 사위’로 인정받을 정도였다. 이 씨의 노모는 장남의 사망 소식을 듣고 충격으로 정신을 잃은 것으로 전해졌다. 김 씨는 “교통사고를 당했거나 암에 걸려 세상을 등져도 슬픔이 클 텐데, 이렇게 허망하게 매제가 세상을 떠나 사돈 어르신과 여동생, 두 조카 모두 큰 충격을 받은 상태”라며 “이 상황을 어떻게 헤쳐 나갈지 걱정”이라며 울먹였다.○ ‘욱’하는 감정 참지 못하고 이 씨가 A 씨(55)의 집을 찾은 건 16일 오전 11시 7분경. 충주시의 한 원룸이었다. A 씨는 “왜 이렇게 인터넷 속도가 느리고 자꾸 끊기냐”며 화를 냈다. 이 씨가 “문제가 무엇이냐”고 물었지만 A 씨는 계속 화를 냈다. “갑질하려고 그러냐”며 이 씨에게 고성을 지르기도 했다. 그러다 갑자기 집에 있던 흉기를 들어 이 씨의 복부 등을 수차례 찔렀다. 경찰 관계자는 “A 씨는 어느 순간부터 인터넷 회사가 자신에게만 일부러 속도를 느리게 제공한다고 생각하고 있다가 이날 분을 이기지 못하고 이 씨를 살해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욱하는 감정을 참지 못해 벌어진 사건은 이뿐만 아니다. 이달 초 경남 양산시의 한 아파트에서 벌어진 일이 대표적이다. 주민 서모 씨(41)는 아파트 13층 높이에서 밧줄에 매달려 보수작업을 하던 김모 씨(46)의 밧줄을 “시끄럽다”는 이유로 끊어 숨지게 했다. 김 씨의 아내와 자녀 5명은 하루아침에 가장을 잃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스스로 충동을 제어하지 못해 치료를 받는 충동조절장애 환자는 2009년 3720명에서 2014년 5544명으로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황성호 hsh0330@donga.com / 충주=장기우 / 신규진 기자}

“아파트 1층에서 불이 났습니다. 빨리 대피하세요.” 동행한 전문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아파트 비상 대피로를 찾아 내달렸다. 볕이 들지 않는 복도는 어두침침했다. 야광으로 된 유도표지등은 눈에 띄지 않았다. 복도 곳곳에는 자전거와 가구 문짝 등이 방치돼 있었다. 이리저리 몸을 피해야 위층으로 갈 수 있었다. ‘실제 상황’이 아닌데도 진땀이 났다. 박청웅 세종사이버대 교수(소방방재학과)는 “만약 한밤중 진짜로 불이 나 정전까지 된다면 이런 물건에 부딪혀 대피하기 힘들 것”이라며 “대부분 가연성 물질로 된 물건이라 화재 때 ‘불쏘시개’ 역할까지 해 더욱 위험했다”고 말했다. 지은 지 43년 된 영국 런던의 24층짜리 아파트에서 일어난 화재로 최소 10여 명이 사망하면서 국내 노후 건축물도 예외가 아니라는 지적이 나온다. 본보 취재진은 박 교수와 함께 지은 지 40년 이상 된 서울의 노후 아파트 3곳을 긴급 점검했다.○ 화마 닥치면 소방차도 무용지물 15일 서울 중구의 한 10층짜리 아파트. 1970년 완공됐다. 불이 난 런던 ‘그렌펠타워’보다 4년 앞선다. 350가구 규모지만 리모델링을 앞두고 현재는 70가구만 거주하고 있다. 이 아파트엔 층별 방화벽이 없다. 아래층에 불이 나면 위쪽으로 급속히 번져 대형 참사로 이어질 위험성이 크다. 복도 위로 가스관이 지나가고 건물 외벽엔 낡은 전선줄이 뒤엉켜 있다. 불이 나면 모두 ‘시한폭탄’으로 변할 수 있다. 노후 아파트의 화재 위험성은 모두 비슷했다. 화재에 취약한 낡은 건축 자재가 여전히 많고 소방 설비도 취약했다. 서울 서대문구에 있는 한 아파트는 1930년대 완공된 5층짜리 아파트다. 아파트 안 곳곳에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다. 그러나 비상시 생명을 지켜줄 최후의 수단인 안전장치가 없었다. 소화전에는 비상등이 파손된 채 방치돼 있었다. 소화기는 도난 방지를 위해서인지 쇠줄로 묶여 있거나 오래된 것이 대부분이었다. 스프링클러도 설치돼 있지 않았다. 옥상으로 가는 문은 자물쇠로 굳게 잠겨 있었다. 한 주민은 “믿을 건 소화기밖에 없는데 확인해 보니 사용기한이 지나 있었다. 관리실에 교체를 요청했지만 반응이 없다”고 말했다. 서울시에 따르면 지난해 8월 기준 40년 이상 사용 건축물은 15만5988동으로 전체 건축물의 25%에 달한다. 박 교수는 “당장 시설 보강과 법 개정이 어렵다면 화재 발생 시 대응 매뉴얼을 철저히 학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비상 대피로나 비상구 위치도 정확히 알아야 한다. 하지만 노후 아파트 주민들은 화재 발생 시 대피를 위한 안내나 훈련을 받은 적이 없었다. 서울 종로구의 한 주민은 “구청에서 실태조사를 나왔는데 건물 벽체만 뜯어보고 아무 조치 없이 그냥 갔다”며 “화재 대피와 관련한 안내도 받지 못했다”고 울분을 토로했다.○ 초고층 건물도 불안 우후죽순처럼 늘어나는 초고층 건물도 문제다. 국내 30층 이상 고층 건물은 3266개 동이다. 50층 이상이거나 높이가 200m 이상인 초고층 건물은 107동이나 된다. 최근 3년간 고층 건물 화재는 2014년 107건에서 지난해 150건으로 늘었다. 올해 6월 현재 57건이 발생했다. 2월엔 경기 화성시 동탄신도시의 66층 초고층 주상복합 건물인 메타폴리스 단지 내 상가 건물에서 발생한 화재로 4명이 숨지고 100여 명이 다치기도 했다. 국민안전처는 런던 아파트 화재를 계기로 30층 이상 고층 건축물의 긴급안전점검을 실시한다고 15일 밝혔다. 긴급안전점검은 소방시설과 피난·방화 설비, 건축 외장재뿐만 아니라 가스 및 전기 설비도 포함된다. 긴급안전점검 대상에 포함되는 고층 건물 중 아파트가 2701곳이다. 전체 82.7%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최창식 한양대 건축공학부 교수는 “당장 사고 예방을 위해선 현장에서 재난 대응 매뉴얼을 얼마나 잘 준비하고 있는지 당국이 확인해야 한다”며 “사고 발생 후 책임을 묻는 성격의 처벌보다 미흡한 예방과 대비를 처벌하는 쪽에 무게를 둬야 한다”고 말했다.김배중 wanted@donga.com·신규진·정성택 기자}

13일 사제 폭탄 폭발 사건이 발생한 연세대 캠퍼스는 삽시간에 ‘테러 공포’에 휩싸였다. 마침 기말고사 기간이라 교내에 많은 학생이 있었다. 미국 영국 프랑스 등 해외 테러현장에서 사용된 급조폭발물(IED)과 비슷한 방식의 사제 폭탄으로 밝혀지면서 일반인들도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특히 피의자가 연세대 대학원 재학생으로 드러나자 학교 안팎에서는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 폭발 12시간 만에 대학원생 검거 서울 서대문경찰서는 이날 오후 8시 23분경 연세대 ‘텀블러 폭탄’ 사건의 피의자로 이 대학 기계공학과 대학원생 김모 씨(25)를 긴급체포했다. 폭발물을 사용해 인명 피해나 재산 손실을 입힌 혐의다. 경찰은 김 씨를 상대로 정확한 범행 이유를 추궁하고 있다. 경찰은 김 씨가 피해자인 김모 교수(47)를 살해할 의도까지 있었는지 조사 중이다. 김 씨는 정신과 치료 전력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 등에 따르면 김 씨는 오랜 기간 김 교수에게 불만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김 씨의 대학원 친구들에 따르면 올해 대학원(석·박사 통합과정) 7학기째인 김 씨는 아직 군대에 가지 못했다. 이 때문에 김 씨는 병역특례업체 전문연구요원이 되길 희망했는데 합격 기준에 해당하는 영어 점수를 확보하지 못해 고민해왔다. 한 대학원생은 “김 씨가 텝스(영어평가시험의 한 종류)를 봤는데 원하던 성적이 계속 안 나온 걸로 알고 있다”며 “김 씨가 평소 일을 잘해 교수님이 맡긴 일이 많았는데 영어 공부를 할 시간이 부족하자 걱정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김 씨도 경찰 조사에서 이런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사건 발생 직후 ‘묻지 마 테러’ 가능성보다 김 교수를 잘 아는 인물의 ‘원한 범죄’에 초점을 맞추고 수사에 나섰다. 경찰은 김 교수와 관련 있는 일부 대학원생의 휴대전화를 제출받아 분석하고 일부를 참고인 신분으로 불러 조사했다. 그러던 중 김 씨의 주거지를 찾았다가 검은 비닐봉지를 버리는 김 씨를 참고인으로 임의동행해 조사했다. 비닐봉지에는 수술용 장갑과 폭탄에 사용된 것과 같은 나사가 있었다. 김 씨는 사건 1시간 전 김 교수의 연구실 주변에서 돌아다니는 모습이 폐쇄회로(CC)TV에 포착됐다. 경찰 관계자는 “김 씨가 범행 직전 폭탄을 만들 때 꼈던 수술용 장갑과 폭탄의 내용물을 버리는 장면이 CCTV에 찍혔다. 이를 앞세워 추궁하자 결국 자백했다”고 설명했다. 김 씨가 사전에 김 교수의 일정을 파악했을 가능성도 엿보인다. 전날 공과대 교수 전원을 대상으로 하는 워크숍이 강원 춘천시에서 열렸다. 워크숍에는 공과대 교수 대부분이 참석했으나 김 교수는 가지 않았다. 그리고 13일 오전 9시로 예정된 강의를 위해 오전에 연구실에 나왔다가 화를 당했다. 얼굴과 손등에 1∼2도 화상을 입어 신촌 세브란스병원에서 입원 치료 중인 김 교수는 원한 관계에 의한 범죄일 가능성에 대해 부인했었다. 별달리 남에게 해를 끼친 적이 없다는 것이다. 그는 수년 전 영화 해리포터에 등장하는 ‘투명망토’ 기술을 연구해 주목받았다. ○ 스탠퍼드대 로고 찍힌 텀블러 폭탄 앞서 김 교수는 13일 오전 8시 반경 평소대로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제1공학관 4층 자신의 연구실로 출근했다. 김 교수는 문 앞에 놓여 있던 종이가방을 갖고 들어갔다. 이 안에는 높이 약 30cm, 가로세로 각 15cm(추정)의 종이상자가 있었다. 가방과 상자 모두 발송자 표시는 없었다. 김 교수가 내용물을 보려고 가방에서 상자를 꺼내 여는 순간 화염이 얼굴까지 솟구쳐 올랐다. 매캐한 연기가 나면서 화재 비상벨이 작동할 정도였다. 경찰과 소방당국이 연세대로 출동했다. 학생과 교수들은 건물 밖으로 피신했다. 군당국도 위험성폭발물개척팀(EHCT) 20명을 연세대로 보내 혹시 모를 추가 폭발 위험에 대비했다. 폭발물이 정상적으로 작동했다면 김 교수가 훨씬 큰 부상을 당했을 것으로 보인다. 경찰 조사 결과 상자에는 화약과 6mm 길이의 작은 나사 수십 개가 든 텀블러가 들어 있었다. 미국 스탠퍼드대 로고가 있는 이 텀블러에는 뇌관 역할을 하는 AA 규격의 건전지 4개가 달려 있었다. 박스를 열면 뇌관이 점화돼 텀블러가 폭발하며 나사가 밖으로 터져 나오는 방식이다. 나사까지 분출됐으면 김 교수가 더 큰 부상을 입었을 가능성이 크다. 경찰 관계자는 “화력이 부족해 불발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 같은 IED는 2013년 보스턴 마라톤 테러에서 사용된 ‘압력솥 폭탄’과 같은 원리다. 2010년 알카에다가 ‘엄마 부엌에서 폭탄 만드는 법’을 한 잡지에 소개하며 널리 알려졌다. 경찰 관계자는 “이슬람국가(IS)의 못을 사용한 IED를 모방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한편 연세대는 이날 예정돼 있던 기말고사와 수업을 진행해 안전불감증 논란이 일고 있다. 특히 사건이 발생한 제1공학관 바로 옆 건물에서도 오전에 학생들이 시험을 치렀다.신규진 newjin@donga.com·최지선·김하경 기자}

대학 때 받은 학자금 대출을 사회에 진출한 뒤에도 갚지 못해 허덕이는 청년이 늘고 있다. 취업에 성공해도 생활비와 다른 부채 때문에 학자금 상환에 충당할 돈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급기야 학자금 대출 장기 연체자가 돼 ‘울며 겨자 먹기’로 얼마 안 되는 재산까지 나라에 넘기는 청년이 급증하고 있다.○ 강제집행, 1년 새 5배로 껑충 31일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가 한국장학재단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학자금 대출을 받은 뒤 장기간 갚지 못해 강제집행을 당한 사례가 지난해 총 311명(34억3200만 원)으로 집계됐다. 사상 최대 규모다. 한 해 약 70만 명이 학자금 대출을 받는 걸 감안하면 많지 않지만 2015년 61건에서 5배 수준으로 크게 증가한 게 문제다. 재단 측은 “2015년부터 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대출자 자료를 받기 시작하면서 소득 실태가 정확히 파악돼 강제집행이 늘었다”고 설명했다. 강제집행은 학자금 대출을 회수하기 위한 최후의 수단이다. 보통 재단은 6개월 이상 대출금과 이자를 갚지 못한 이들을 대상으로 재산조사를 벌인다. 이들의 월 소득이 약 155만 원을 넘으면 부동산이나 월급에 가압류를 신청한다. 가압류 이후 당사자에게 분할상환을 권유한다. 만약 이마저 안 되면 부동산이나 월급을 국가로 귀속하는 강제집행 조치가 이뤄진다. 강제집행 직전인 가압류만으로도 대출자들은 정상적인 생활이 어려워진다. 가정형편 때문에 부모에게 손 벌릴 수 없었던 A 씨는 6년 동안 학자금 대출 4000만 원을 받았다. 이와는 별도로 생활비도 대출받아 6년간 공부해 중소기업에 취업했다. 그러나 어려운 생활 때문에 6개월 동안 이자를 내지 못했다. 뒤늦게 이자를 내려고 했지만 재단 측은 A 씨에게 “원금에 해당하는 4000만 원 상당의 재산을 가압류하겠다. 원금과 이자를 모두 갚을 때까지 가압류를 풀 수 없다”고 통보했다.○ 부채 총액 등 따지지 않고 ‘무조건 상환’ 문제는 학자금 대출 상환 과정에서 개인의 부채 총액 등을 고려하지 않는 것이다. 신용불량자로 전락한 B 씨가 그런 사례다. 학자금 대출로 수천만 원을 빌린 B 씨는 졸업 후 한 건설 관련 업체에 취직했다. 그러나 일하던 중 큰 부상을 당해 병원에 입원했다. 치료비를 내기도 막막한 상황에서 학자금 대출 상환 독촉까지 받았다. 결국 돈을 갚지 못한 B 씨는 신용불량자 신세가 됐다. 올해 초 한국직업능력개발원 분석에 따르면 학자금 대출을 받은 여대생은 이를 받지 않은 여대생보다 평균 12% 임금이 적었다. 빨리 돈을 갚아야 한다는 압박감에 서둘러 취업하기 때문이다. 학자금 대출을 받았던 윤모 씨(28)는 “200만 원인 월급에서 30만 원씩 갚아 나가는 게 큰 부담이었다”며 “더 이상 부담감을 느끼기 싫어 회사를 그만두면서 받은 퇴직금으로 학자금 대출을 모두 갚았다”고 말했다. 재단 측은 청년들의 상황을 알지만 재정 문제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는 의견이다. 재단에서 학생들이 주로 이용하는 든든학자금(대학생 때 대출을 받아 취업 후 상환)의 경우 2015년 상환 대상자 중 9.1%가 돈을 갚지 못했다. 경기침체와 취업난으로 장기 연체자가 늘수록 학자금 대출 재정이 부실해질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가압류나 강제집행 등 법적 조치에 대한 보완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정익준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옴부즈맨처럼 개인 사정이나 가정 상황을 들어보고 예정된 시기에 상환이 가능한지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지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희숙 충북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학생들이 학자금 대출을 받을 때 돈을 갚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충분히 설명하는 프로그램도 마련돼야 한다”고 조언했다.황성호 hsh0330@donga.com·김하경·신규진 기자}
강경화 외교부 장관 후보자의 장녀가 2000년 위장전입했던 서울 중구 정동아파트가 이화여자외국어고 원어민 교사 숙소였던 것으로 29일 확인됐다. 강 후보자는 “한국에 돌아온 딸의 적응을 위해 모교인 이화여고에 보내려고 아는 은사께 주소지를 소개받아 옮겼다”고 해명했다. 강 후보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위장전입 의혹과 관련해 “1999∼2000년 남편이 학교에서 안식년을 얻어 아이 셋을 다 데리고 미국에 갔다가 1년 교육을 받고 2000년 다시 돌아왔다”며 “큰딸이 미국에 있을 때 적응하기 어려워하는 모습을 봤기에 엄마 마음에 (딸이) 다시 한국에 적응하는 데 편한 상황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에 제가 다니던 이화여고에 꼭 넣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고 설명했다. 이어 “주소지(정동아파트)에 누가 살고 소유주가 누구인지 알지 못했다”며 “딸아이의 안녕을 위해서 생각 없이 한 일이 이렇게 여러 물의를 빚게 돼서 대단히 죄송스럽게 생각한다. 송구스럽다”고 밝혔다. 강 후보자는 위장전입한 아파트를 친척 집이라고 밝혔던 것에 대해선 “청와대가 검증하는 과정에서 (본인이) 스위스 제네바 출장 중이다 보니 남편에게 연락을 했고, 전입 과정에서 역할이 없었던 남편이 친척 집이라고 쉽게 생각한 것 같다”고 말했다. 앞서 21일 조현옥 대통령인사수석비서관은 강 후보자의 위장전입 사실을 밝히면서 “1년간 친척 집에 주소지를 뒀다”고 설명한 바 있다. 강 후보자와 장녀는 2000년 7월 23일 정동아파트로 전입했고 장녀는 이화여고에 진학했다. 당시 이화여고 교장이던 정모 전 교장은 강 후보자가 이화여고에 다닐 당시 교사로 재직했다. 정 전 교장은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강 후보자가 위장전입한 아파트는) 이화외고 원어민 교사 숙소였다”며 “(강 후보자를 만났을 때) 이런 좋은 학교에, 본인 모교에 큰딸이 입학했으면 좋겠다고 한 것까지는 들었다”고 했다. 이화학원 측 관계자도 “이화외고 원어민 교사의 요청이나 수요에 따라 보통 두 채 정도 아파트 전세권을 설정해 놓는다”고 설명했다. 강 후보자가 어떻게 이 아파트에 위장전입을 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정 전 교장은 “(위장전입 등) 이렇게 하라고 방법을 알려주지는 않았다. 어떻게 (장녀가) 학교에 들어왔는지 모른다”고 말했다. 당시 해당 아파트에 전세권자로 설정돼 있던 심모 전 이화여고 교장도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전세권 취득 과정과 강 후보자 일가의 위장전입에 대해 “아는 바가 없다”고 밝혔다. 또 “강 후보자가 이화여고, 연세대 동문이라 매스컴을 통해 알긴 알지만 개인적 인연은 없다”고 말했다. 이화학원이 전세권을 소유한 아파트를 강 후보자가 학교 측의 묵인 없이 어떻게 주소지를 옮길 수 있었는지 의문이다. 한편 강 후보자의 장녀가 세운 회사에 강 후보자와 함께 근무했던 부하 직원이 자본금의 절반을 투자한 것으로 전해졌다. 국민의당 이태규 의원실에 따르면 강 후보자의 장녀가 지난해 6월 설립한 주류 수입 회사에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 인권보호관 출신인 우모 씨가 4000만 원을 투자했다. 강 후보자는 부대표를 지냈다. 공무원인 우 씨의 형도 이 회사에 2000만 원을 투자했다고 이 의원 측은 밝혔다. 우경임 woohaha@donga.com·신나리·신규진 기자}

지난해 11월 대학가는 실로 오랜만에 뜨겁게 달아올랐다. ‘최순실 국정 농단’이 불거지면서 전국 대부분의 대학이 시국선언을 발표했고 학생들은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흡사 6월 항쟁이 뜨겁게 이어지던 30년 전의 모습이었다. 그로부터 6개월 후 대학가는 다시 들썩이고 있다. 5월 셋째 주부터 대부분의 대학에서 축제가 열리고 있다. 최악의 취업난에 맞닥뜨린 학생들이지만 그래도 축제 현장에서는 한껏 흥을 내고 있다. 사실 10여 년 전부터 지나친 상업화로 대학 축제의 본질이 사라졌다는 지적이 계속됐다. 폭음과 성(性) 추문이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올해 대학 축제의 분위기는 조금 다르다. 여전히 술이 넘치고 비싼 출연료의 인기 가수들의 공연이 이어지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소외된 이웃을 돌아보고 왜곡된 사회 현실을 꼬집으려는 움직임이 축제 현장에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2017년 대학 축제의 현장을 둘러봤다.이름도 내용도 ‘바꿔 바꿔’ 올해 서울대 축제의 이름은 ‘뭔 나라 이런 나라’다. 심화되는 빈부격차, 높은 청년실업률 등을 풍자한 것이다. 최근의 정치적 문제들을 꼬집는 뜻도 담겨 있다. 지난해에는 1학기 때 ‘서울대공원’, 2학기 때 ‘쇼윈도탈출’이었다. 둘 다 쌓인 스트레스를 실컷 풀어보자는 뜻이 강했다. 김진희 서울대 축제기획단장(23·여)은 “놀이문화 안에서도 최대한 우리가 사회에 목소리를 낸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화여대 축제명은 ‘梨이루다’. ‘이화를, 변화를, 다함께 이루다’라는 의미다. 지난해 평생교육 단과대(미래라이프대) 설립 문제와 최순실 씨(61·구속 기소) 모녀의 이른바 ‘학사 농단’ 사태로 홍역을 치른 탓인지 다 같이 아픔을 딛고 다시 일어나자는 뜻이 담겼다. 한양대의 ‘하이 파이브(HY-five)’에는 더욱 특별한 의미가 있다. 그동안 축제를 함께 즐기기 어려웠던 성적 소수자와 한국으로 온 유학생, 장애학생 청소노동자 혼밥혼술족 등도 참여한다는 의미에서 이런 제목이 붙었다. 제목만 바뀐 것이 아니다. 한양대생들은 성적 소수자 이해의 장을 마련했다. 자신의 친구가 성적 소수자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것이다. 통통 튀는 사회 참여형 프로그램도 선보였다. 이화여대와 고려대는 올해 랩 대항전을 펼쳤다. 이화여대에서 열린 ‘이화래퍼’에서는 ‘대동, 변화, 연대’ 등의 단어를 넣으면 가산점을 줬다. 고려대 랩 대항전에서도 취업난 등 각박한 현실을 풍자하는 노래가 나왔다. 이화여대 축제장에서는 도박 예방 활동도 펼쳐졌다. 이름하여 ‘이대 나온 타짜’. 영화 타짜에서 배우 김혜수가 도박 단속 경찰관에게 “나, 이대 나온 여자야”라고 말한 것에서 딴 이름이다. 간호학과 학생들로 이뤄진 일명 ‘도박문제예방활동단’은 ‘도박의 빚을 희망의 빛으로!’라는 슬로건을 외치며 캠페인을 펼쳤다. 한 학생은 “수업이 끝난 뒤 친구들과 술 마시러 왔다가 들렀는데 이처럼 의미 있는 일을 벌이는 모습에 감동받았다”고 말했다. 세월호 3주년에 맞춰 부스를 연 동아리 ‘화인’은 활동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각종 음료와 폰케이스를 팔았다. 화인은 세월호 관련 노래에서 따온 것으로 ‘지울 수 없는 불도장’이라는 뜻이다. 사회학과 4학년 구모 씨(24·여)는 “축제라고 하면 학생들이 놀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우리는 사회 참여 목소리를 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세월호 참사를 추모하는 데 필요한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축제 때 부스를 차렸다”고 말했다. 11일 서울 동작구 중앙대 축제에서 열린 ‘말하는 대로’라는 행사에서는 학생들이 직접 마이크를 잡고 사회에 대한 울분을 토해냈다. 이화여대 중국인 유학생들은 고국에서 가져온 물품과 기증받은 물품으로 자선 바자회를 열어 수익금을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에 기부했다.시대상 투영된 5월의 축제 대학 축제는 시대상을 반영한다. 그 시절 사회 상황에 따라 청춘의 5월도 달라지는 것이다. 자유의 바람이 불 때는 함께 어울려 스트레스를 푸는 날이었고, 독재에 대항하던 시기에는 저항의 상징이었다. 국가기록원에 따르면 현대적 형태의 대학 축제는 1956년 10월 신흥대(현 경희대)에서 처음 열렸다. 대중적으로 대학 축제가 조명받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부터. ‘축전’으로 불린 당시 대학 축제 분위기는 서양문화 따라잡기였다. 가장 인기를 끈 행사는 남녀가 어울리는 쌍쌍파티였다. 1964년 5월 숙명여대에서는 ‘가든파티’가 열렸다. 인기 좀 있다는 남녀 대학생들의 사교의 장이었다. 70여 명이 참석한 파티에는 공군사관학교와 육군사관학교 학생대표가 함께 모여 불고기를 먹었다. 칵테일이 곁들여진 가운데 가야금으로 재즈를 연주하는 여대생도 있었다. 한국의 대학 축제를 대표하는 ‘고연전(연고전)’도 1965년 현재와 같은 야구, 축구 등 5개 종목의 형태로 자리 잡았다. 대학 축제가 서구문화에 치우치는 것에 대한 지적도 높아졌다. 1968년 ‘한국레크리에이숀’이라는 단체가 서울 소재 13개 대학의 학생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민속적인 프로그램이 많이 포함되기를 바란다”는 의견이 77%가 나왔다. 연구를 진행한 측은 “농촌을 기반으로 축제가 진행되다 서구문화의 영향으로 부조화가 생기고 있다”고 분석했다. 1970년대는 대학 축제에도 저항의 물결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이는 박정희 전두환 정권을 거치면서 점차 고조돼 1980년대 후반까지 이어졌다. 대학 축제가 반정부 시위로 변하는 양상이 지속되자 전두환 정권은 1981년 ‘국풍81’이라는 대규모 행사를 열었다. 이른바 관제 대학 축제인 셈이다. 당시 정권은 또 학생회를 견제하기 위해 ‘학도호국단’을 만들어 학술행사 위주의 관제 축제를 캠퍼스에서 열도록 했다. 하지만 대학 축제를 통한 저항의 열기는 더욱 뜨거워졌다. 대학 축제에 ‘대동제’라는 단어가 붙은 것도 1980년대 중반 무렵이다. 1985년 연세대 총학생회장이었던 정태근 전 의원은 “축제 개폐막식은 항상 민주화 시위로 이어졌다”며 “축제 기간에는 군사정권을 풍자하고 비판하는 다양한 공연이 펼쳐졌다”고 말했다. 씨암탉 잡기부터 메이퀸까지 “육사 군악대의 왈츠에 맞춰 메이퀸이 졸업생으로 구성된 32명의 시녀들을 거느리고 입장한다. … 청초한 한복 차림의 여왕이 왕관을 쓸 때 군악대의 팡파르는 신록 우거진 이화여대 캠퍼스를 울려 축제는 절정에 달했다.”(동아일보 1967년 5월 31일자 기사) 1908년 시작된 이화여대 ‘메이퀸’ 행사는 1978년 폐지될 때까지 대학 축제의 상징이었다. 그만큼 선발 기준도 까다로웠다. 단정한 용모는 기본. 성적은 B학점 이상, 키는 160cm를 넘어야 했다. 교우관계가 원만하고 신앙심도 깊어야 했다. 고려대 축제에서는 1962년부터 ‘역사 인물 가상 재판’이 열렸다. 학생들이 가상 재판소를 꾸려 역사적 인물들을 피고인으로 소환하는 것이다. 대상은 흥선대원군부터 메릴린 먼로까지 다양했다. 1967년 피고인으로 소환된 중국 당나라의 시인 이태백은 “술 향한 일편단심 변할 줄 있겠느냐” “가두어 보시오. 병보석으로 하루 만에 나올 테니” 등의 발언으로 웃음을 자아냈다. 공대생 200여 명이 운동장에 풀어 놓은 씨암탉 4마리를 잡기 위해 뛰어다니는 우스꽝스러운 풍경도 펼쳐졌다. 1990년 서울대 축제에서 열린 ‘씨암탉 잡기 대항전’이다. 1962년 이화여대 축제에선 국내 최초로 포크댄스 행사가 열렸다. 당시 500환에 초대권을 사고 당첨된 남학생 600명은 이화여대 재학생들과 포크댄스 ‘스텝’을 배우며 1시간가량 춤을 췄다. 1976년 건국대에서는 ‘우유 마시기 대회’가 열렸다. 300mL 우유통을 가장 빨리 비운 기록은 3초. 종목도 ‘빨리 마시기’ ‘멋있게 마시기’ ‘커플 대항전’ 등 다양했다. 그중에서 손을 교차해 연인에게 우유를 먹여주는 커플 대항전이 학생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그들만의 파티 아닌 모두의 축제로 유럽과 미국에서는 대학 축제가 지역공동체 행사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또 단순히 먹고 노는 축제가 아니라 지역사회에 봉사하는 활동이 함께 이뤄진다. 독일 하이델베르크대의 축제는 6월 도심 광장에서 열린다. 이곳에 공연장과 동아리들의 부스가 마련돼 학생과 시민이 함께 축제를 즐긴다. 미국 데이비스 캘리포니아대(UC데이비스)의 4월 축제는 지역 주민의 최대 관심사 중 하나다. 학교의 대표 밴드가 앞장선 가운데 동아리들이 줄지어 마을을 돌며 퍼레이드를 벌인다. 행렬에는 학생뿐 아니라 마을 주민과 경찰 등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미국 인디애나주립대를 졸업한 류모 씨(27)는 “한국의 대학 축제는 젊은이만 있지만 미국의 대학 축제에는 가족 단위로 즐기러 오는 사람들이 많다”고 말했다. 한국의 대학 축제도 결국 시민들도 함께하면서 지역사회 공동체 행사로 바뀌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주민들이 함께 호흡하고 소통할 수 있는 프로그램 개발이 시급하다”며 “대학생들이 내부적으로 자족하는 데 머물지 말고 대학이 뿌리내리고 있는 지역사회와도 다양한 방식으로 교류해야 한다”고 말했다.신규진 newjin@donga.com·황성호 기자}
최순실 씨(61·구속 기소)의 딸 정유라 씨(21)가 24일(현지 시간) 덴마크 검찰의 한국 송환 결정에 불복하는 항소심을 포기하고 귀국하기로 한 것은 재판을 더 진행해 봤자 실익이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최 씨 모녀의 변호인 이경재 변호사는 25일 “귀국은 시기의 문제였을 뿐”이라며 “정치적 불확실성, 재판상 불확실성이 사라져 안 들어올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또 “갑작스러운 결정이 아니라 정 씨 본인이 심사숙고한 끝에 결단을 내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변호사에 따르면 최 씨는 “어미도 (구치소에) 들어가 있는데 (검찰과 박영수 특검팀이) 나한테 한 것처럼 유라한테 할까 봐 트라우마가 있다”며 정 씨 귀국에 반대했다고 한다. 하지만 변호인들이 “드러날 건 다 드러났고, 정리될 건 다 정리됐기 때문에 그건 불가능하다”고 설득했다고 한다. 정 씨는 항소심에서 송환 결정이 뒤집히지 않을 것으로 보고 구금시설에 갇힌 채 시간을 끄는 게 의미가 없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분석된다. 정 씨는 1월 1일(현지 시간) 덴마크 올보르에서 체포된 뒤 지금까지 5개월여 동안 구치소에 구금돼 있다. 형사소송법에 따르면 정 씨가 한국 법원에서 재판을 받아 실형을 선고받을 경우 검찰 기소 전 외국에서 구금됐던 기간은 복역 기간에 포함되지 않는다. 법무부는 덴마크에 검찰 수사관과 법무부 직원을 보내 정 씨의 신병을 넘겨받을 계획이다. 덴마크에 체류 중인 정 씨의 두 살배기 아들은 정 씨와 함께 귀국하지 않을 것으로 알려졌다. 이 변호사는 “아들은 현지에서 좀 있을 거다. 돌봐 줄 사람이 있다. 정 씨가 (한국에서) 풀려나서 돌볼 수 있는지 봐야 한다”고 말했다. 검찰은 정 씨를 입국 즉시 체포해 이화여대 입시 및 학사비리 등의 혐의를 조사한 뒤 구속영장 청구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특검은 이화여대 최경희 전 총장(55·구속 기소)과 김경숙 전 신산업융합대학장(62·구속 기소) 등이 정 씨를 부정 입학시킨 것으로 판단했다. 정 씨는 입학 이후 주로 독일에서 체류하며 학교를 다니지 않았지만 대리 출석 등을 통해 학점을 받았다. 이와 관련해 특검은 25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29부(부장판사 김수정) 심리로 열린 재판에서 정 씨에게 학사 특혜를 제공한 혐의로 기소된 이화여대 체육과학부 이경옥 교수(60)에게 징역 1년의 실형을 구형했다. 또 이원준 교수(46)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구형했다.전주영 aimhigh@donga.com·신규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