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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판을 앞둔 미국 의회 난입 사태 주모자들이 앞 다퉈 참회의 눈물을 보이며 선처를 호소하고 있습니다. 기세 좋게 의사당에 밀고 들어가 아수라장을 만들던 때와는 180도 달라진 모습인데요. 국가 체제 전복, 폭력 선동, 연방 기물 파손 등의 혐의로 기소된 이들은 유죄가 확정될 경우 감방에서 최고 20년을 보내야 합니다. 이들은 “우리를 호도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책임”이라고 변명하고 있습니다만, 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싸늘하기 그지없습니다.의회 난입 사태로 기소된 사람은 300여명에 이릅니다. 가장 유명한 인물은 ‘음모론의 주술사(큐어넌의 샤먼)’로 불리는 남성. 대표적 극우 음모론 단체인 큐어넌의 신봉자로 뿔이 달린 털모자에 얼굴에 성조기 무늬 페인트칠을 하고 등장해 시위를 주도했죠. 제이콥 챈슬리라는 본명을 가진 그는 상원 본회의장 단상에 올라가 준비해온 트럼프 찬양 시를 읊어 ‘주술사’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곧바로 체포된 챈슬리는 최근 비좁은 감방에서 TV 시사프로그램 ‘60분’과 가진 줌(온라인 화상) 인터뷰에서 자신을 ‘포레스트 검프’에 비교했습니다. 아무 것도 모르고 백악관에 초청돼 대통령들과 악수를 한 포레스트 검프처럼 자신도 “순수한 마음으로 트럼프의 ‘초대’를 받고 의회에 들어간 것 뿐”이라고 항변하죠. ‘60분’ 진행자가 “그래도 신성한 본회의장를 무단 점거하고 의사 진행을 방해한 것은 국가에 대한 모독 아니냐”고 묻자, “그건 모르는 말씀”이라며 “나의 행동은 신성한 주술 의식”이라고 주장했습니다. 폭력을 선동한 것이 아니라 진정시키기 위해 신에게 기도하는 의식이었다는 겁니다. 한술 더 떠 그는 “트럼프 대통령이 퇴임할 때 나를 사면시켜 주지 않아 배신감을 느꼈다”는 주장도 잊지 않았습니다. 방송 뒤 ‘60분’ 게시판에는 “(챈슬리의 변명은) 코미디 급” “왜 저런 범죄자에게 말할 기회를 주느냐”라는 비판이 쏟아졌습니다. 챈슬리는 호의적인 여론을 얻기 위해 ‘60’분 인터뷰를 했겠지만 오히려 그가 보석 허가를 받는데 걸림돌이 되고 있습니다. 수감 상태의 피의자가 언론과 인터뷰를 하려면 일정 절차를 거쳐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챈슬리는 인터뷰 요청이 쇄도하는 ‘셀러브리티급’이다보니 담당 변호인과 화상 접견하는 것처럼 꾸며 ‘60분’ 인터뷰에 나섰기 때문이죠. 담당 판사는 “인터뷰 허가 절차를 무시했다”며 보석을 허용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변호인은 “그림을 그리고 도자기를 굽는 것이 취미인 선량한 시민”이라며 챈슬러에게 평화주의자 이미지를 덧씌우기 위해 노력했지만 판사로부터 ‘60분’ 인터뷰 건 때문에 “속임수”라는 비판만 들었습니다. 또 다른 인물은 브루노 큐아라는 18세 소년입니다. 기소된 300명 중에서 가장 어린 나이여서 주목 받았죠. 큐아는 챈슬리와 마찬가지로 본회의장 침입자 중 한 명입니다. 당시 시위 참가자는 본회의장 침입 여부에 따라 죄의 경중이 크게 달라집니다. 복도를 몰려다니거나 의원 집무실에 들어간 것 보다 의사진행이라는 고유의 업무를 방해한 죄목이 따라붙기 때문이죠. 큐아는 본회의장에 침입하는 과정에서 경찰에게 폭력을 행사했다는 사실이 비디오 판독으로 밝혀지면서 폭력 혐의도 받고 있습니다. 5월 재판을 앞두고 1차 보석허가 신청을 거부당한 큐아는 담당 판사에게 “엄마 아빠가 보고 싶다”며 “결정을 재고해 달라”는 눈물의 편지를 썼습니다. 아직 부모의 보호를 받아야 하는 어린 소년이라는 점을 부각시키려는 것이죠. 그는 편지에서 “체포된 뒤 20일간 독방 생활을 하면서 참회했다”며 “부모님과 함께 차분하게 재판 준비를 하게 해 달라”고 호소했습니다. 그러자 검찰 측은 “부모에게 돌아가면 문제를 키우는 꼴”이라고 반격하고 나섰습니다. 시위에 참가하겠다는 아들을 워싱턴까지 데려다준 장본인이 바로 부모라는 것이죠. 뿐만 아니라 큐아가 의회 난입 사태 후에도 소셜미디어에 선동 메시지를 올린 것으로 밝혀지면서 참회의 진실성도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수차례 올린 소셜미디어 메시지에서 그는 “우리는 미국을 공격한 것이 아니라 시궁창의 쥐들을 공격한 것”이라며 “쥐들을 몰아넣고 몰살시켜야 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밖에 의회 난입 때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 집무실에 들어가 책상 위에 발을 올려놔 유명해진 총기옹호 단체 회장 리처드 바넷은 최근 보석허가 심리에서 “나보다 죄가 더 중한 사람들도 다 허가를 받는데 왜 나에게는 내주지 않느냐”며 재판장에서 소란을 피우기도 했습니다. 그는 대다수 참가자들과는 달리 반성의 기미도 보이고 있지 않습니다. 최근 미국에서는 의회 난입자들의 사회심리학적 특성을 분석하는 작업이 한창입니다. 왜 민주주의 교육을 받고 자란 평범한 시민들이 폭도로 돌변했는지 원인을 규명하기 위한 것이죠. 전문가들은 이들의 공통점으로 재정적 어려움을 들고 있습니다. 워싱턴포스트 보도에 따르면 기록 추적이 가능한 125명의 재무상태를 조사한 결과 60%가 파산 신청, 주택 퇴거, 압류, 4만 달러 이상의 세금 미납 등의 전력을 가진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파산의 경우 미국 평균보다 2배 가까이 높은 18%가 신청했던 경험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또한 참가자 4명 중 1명꼴로 과거 채무 불이행으로 소송을 당했던 적이 있습니다. 재정적으로 힘든 상황에서 “선거를 사기 당했다” “미국의 미래를 도둑맞았다”는 트럼프의 불만 가득한 레토릭에 설득당하기 쉽다는 것이죠. 하지만 경제적으로 힘들다고 해서 모두 폭력 시위에 가담하는 것은 아닙니다. ‘공적인 사과(public apology)’에 관대한 것이 미국의 문화이기는 하지만 시위 참가자들의 참회 퍼레이드에 동정의 눈길 대신 “충분한 죗값을 치러야 한다”는 여론이 훨씬 더 우세합니다. 그만큼 미국 사회에 큰 충격이었나 봅니다.정미경 기자mickey@donga.com}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차기 대선 출마 가능성을 시사한 ‘CPAC(보수주의정치행동회의·씨팩)’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퇴임 후 39일 만에 첫 공개연설 무대로 CPAC을 골랐다는 것은 그만큼 자신 발언의 파급력이 보장된다는 확신이 섰기 때문이겠죠.올해 48년의 역사를 가진 CPAC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2016년 대선 출마를 결심한 계기가 됐을 정도로 친한 사이입니다. 하지만 지나친 밀착 관계 때문에 논란도 많습니다. 특히 올해 CPAC은 “트럼프 대잔치”라는 혹평이 나오고 있습니다. 주최자도 아닌 초대 연설자일 뿐인 트럼프를 위해 행사의 성격이 좌지우지될 지경이라는 것이죠. CPAC은 미국의 대표 논객인 고(故) 윌리엄 버클리 내셔널리뷰 발행인 등 몇몇 보수운동가들이 결성한 전미보수연합(ACU)이라는 단체가 1973년부터 매년 개최하는 컨퍼런스 행사입니다. ‘미국 최대의 보수정치 행사’로 알려졌죠. 2010년대 초반 CPAC은 대형 행사로 성장하는데요, 연설자로 등장해 CPAC 지명도를 높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사람이 트럼프 전 대통령입니다. 당시 기업가로 TV 리얼리티쇼 진행자였던 트럼프는 ‘화려한 입심’이 보장된 인물이었죠. 트위터를 통해 자신의 보수적 성향을 간간이 내보이던 그에게 CPAC 측은 2010년 처음으로 연사 초대장을 보냅니다. 일반 정치인이 아닌 ‘미디어 퍼스낼리티(미디어 친화적 인물)’가 연단에 서자 청중들은 열광했죠. ACU의 오랜 수장(首長)인 매트 슐랩 회장은 트럼프가 대통령감이라고 직감하고 대선 출마를 권유합니다. 하지만 트럼프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듭니다. TV 진행자 역할에 재미가 들려있던 때였고, 미디어의 명성을 이용한 ‘트럼프왕국’ 건설이 급선무였기 때문입니다. 2010년 이후 트럼프는 매년 CPAC 연단에 오르고 있습니다. 대통령이 된 후 아무리 바빠도 한 해도 거르지 않고 CPAC에 등장했습니다. 퇴임 후인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2015년 CPAC 연설은 유명합니다. 그는 이 때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출생지가 미국이 아니기 때문에 피선거권이 없다는 주장을 내놓습니다. 일명 ‘버서(Birther)’ 운동의 시작이지요. 당시만 해도 일부 강경 보수파들 사이에 오가던 주장이었지만 이를 전국적인 무대에서 공개적으로 밝혔다는 점에서 엄청난 후폭풍을 몰고 옵니다. 10차례 이상 기립 박수를 받을 정도로 행사장을 열광의 도가니로 만든 그에게 슐랩 회장은 “이제 당신은 충분히 표를 모을 수 있다”면서 출마를 재차 권유합니다. “때가 됐다”고 판단한 트럼프는 2015년 CPAC 폐막 직후 대권 도전을 공식 발표하죠. 트럼프 전 대통령은 CPAC을 통해 정계 거물도 성장했을 뿐 아니라 CPAC의 성격도 바꿔놓습니다. CPAC은 1960년대 급팽창했던 진보주의에 대한 반발로 태동했습니다. 1960년대 내내 지속됐던 민주당 집권 시대를 마감하고 집권한 공화당의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이 1974년 워터게이트 스캔들로 불명예 퇴임하면서 혼돈에 빠진 보수층은 개인의 자유, 작은 정부, 가독교적 가치 등 건국이념을 널리 알리자는 차원에서 CPAC을 조직했습니다. 1985년 로널드 레이건 당시 대통령이 개막 연설을 하면서 크게 한번 주목을 받았지만 일반 미국인들의 입에 오르내릴 정도의 유명세는 얻지 못했습니다.CPAC이 초기에 고전을 면치 못한 것은 학술 행사 성격이 강했기 때문입니다. CPAC은 전통적으로 워싱턴에서 매년 2월에 3박4일 정도 일정으로 개최됩니다. 워싱턴 특파원 시절 현장 취재 경험에 따르면 이때에 맞춰 전국에서 보수 지지자들이 워싱턴을 방문합니다. CPAC이 열리는 호텔의 작은 룸마다 수십 개 컨퍼런스가 동시다발적으로 열립니다. 교수나 싱크탱크 연구원들이 진행하는 컨퍼런스를 듣고 서로 의견을 교환하는 미국식 네트워킹 문화에 익숙해야만 CPAC의 의미를 알 수 있죠. CPAC은 오랫동안 ‘백인 남성 아저씨들만 가는 고리타분한 학술 행사’라는 평을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주최 측은 2010년대부터 컨퍼런스보다 유명 정치인들을 호텔 대강당으로 초청해 진행하는 연설 무대에 주력하게 됩니다. 바로 이게 미디어가 주목하는 ‘이벤트’였기 때문이죠. 점차 언론의 화젯거리가 되면서 이제 CPAC 연설을 한다는 것은 정치인에게 큰 경력이 되고, 요즘 뜨는 정치인이 누구인지 알려면 연사들을 확인해보면 됩니다.트럼프 전 대통령은 CPAC의 이런 변화의 흐름을 잘 탄 동시에 흐름을 주도하기도 했습니다. CPAC에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된 것이죠. CPAC은 트럼프 전 대통령 때문에 올해 행사 장소를 바꿀 정도입니다. 사상 처음으로 워싱턴이 아닌 플로리다 올랜도의 하얏트 리젠시 호텔에서 열렸습니다. 주최 측은 “플로리다가 신종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방역수칙이 비교적 느슨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지만 진짜 이유는 다른 곳에 있습니다. 플로리다는 퇴임 후 트럼프의 본거지죠.자유분방한 플로리다를 개최지로 정했기 때문일까요. 올해 CPAC 주제도 젊은 감각으로 변했습니다. 이번 주제는 ‘취소되지 않은 미국(America Uncanceled).’ 지난해 ‘미국 대 사회주의,’ 2019년 ‘중국의 부상: 미국 어떻게 할 것인가’와 비교할 때 분위기부터 확 다릅니다. 요즘 화제가 되는 ‘취소 문화(혐오나 차별적 행동을 한 유명인들을 온라인에서 삭제하는 일종의 보이콧 운동)’를 빗댄 것이죠. 모처럼 재미있는 주제여서 개막 전 기대를 모으기도 했지만 역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대선 부정선거 주장의 재탕이라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취소 문화’가 주제가 된 것은 트럼프 계정을 삭제한 트위터, 페이스북 등 IT(정보기술) 기업들을 도마에 올리기 위한 것이었죠. 초대 연사 목록도 트럼프 충성파 위주로 짜여졌습니다. 다들 연사 초대장을 기다렸겠지만 트럼프 전 대통령과 갈등 관계에 있는 공화당 정치인들은 초대장을 받지 못했습니다. 미치 매코널 상원 원내대표, 밋 롬니 상원의원 등은 초대받지 못한 손님들입니다. 올해 CPAC을 검색하면 연관 검색어로 ‘아이돌(우상)’이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합니다. 뉴욕타임스는 “정치판 ‘아메리칸 아이돌(TV 오디션 프로그램)’”이라고 혹평합니다. 인터넷매체 데일리비스트는 “단 한 명의 아이돌을 위한 특별행사”라고 조롱합니다. CPAC을 통해 트럼프 전 대통령을 우상처럼 숭배하는 분위기가 절정에 달했다는 것이죠. 독재 국가에서나 볼법한 개인 우상화라는 단어가 미국 정치 한복판에서도 등장하고 있는 것이죠.정미경 기자mickey@donga.com}
오뚜기가 올해 처음으로 푸드 에세이 공모전을 개최한다. ‘음식과 함께하는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라는 제목의 이번 공모전은 음식을 통한 가족 사랑 ‘스위트홈’이 주제다. 일상 속 음식과 관련된 특별하고 감동적인 추억 등의 이야기를 자유롭게 표현하면 된다. 가족이나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기억에 남은 순간들을 글을 통해 오랫동안 간직하고 싶다면 누구나 공모에 참여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음식과 관련된 일상 속의 모든 경험 △가족과 함께했던 음식과 추억 이야기 △음식을 주제로 일상 속 웃고 울었던 감동적인 순간 △음식으로 인해 변화한 가족의 일상 △그 외 다양한 음식과 관련된 이야기들을 담으면 된다. 접수는 22일부터 4월 12일 밤 12시까지 50일에 걸쳐 진행된다. 5월 5일 어린이날 결과가 발표된다. 분량은 A4용지 2장(200자 원고지 15장) 내외이며, 2500자 정도면 된다. ‘오뚜기 제1회 푸드 에세이 공모전’의 총상금은 1500만 원이다. 오뚜기상 1명에게는 상금 500만 원이 주어진다. 으뜸상 1명은 300만 원, 화목상 4명에게는 각 100만 원씩 수여된다. 사랑상 60명에게는 오뚜기 온라인 공식 쇼핑몰인 ‘오뚜기몰’에서 사용 가능한 구매 포인트 5만 점을 준다. 오뚜기는 “고객의 음식에 대한 스토리를 발굴하고, 고객의 경험을 더 가치 있게 만드는 공모전”이라며 “즐거운 음식 생활에 관심 있는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작품 제출은 공모전 공식 홈페이지를 통한 온라인 접수와 우편 접수를 통해 가능하다. 온라인 접수는 공모전 홈페이지에서 지정 서식을 내려받아 작성하거나 홈페이지에서 직접 입력을 통해 제출하면 된다. 우편 접수의 경우 홈페이지에서 우편 응모용 지정 서식을 내려받아 작성한 후 공모전 운영사무국으로 보내면 된다. 오뚜기 관계자는 “음식과 함께하는 가족, 친구들의 다양하고 따뜻한 이야기를 통해 ‘스위트홈’을 추구하고자 올해 처음으로 개최하는 행사”라고 말했다. 이어 “푸드 에세이를 통해 음식과 관련된 특별하고 감동적인 추억을 담은 훌륭한 작품들이 탄생하길 기대한다”고 덧붙였다.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한독상공회의소는 독일 연방정부의 지원을 받아 조직력이 앞선다는 평가를 받는다.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 BMW코리아, 아우디폭스바겐코리아를 비롯해 한국지멘스 등이 굵직한 회원사들이다. 한독상공회의소를 8년째 이끌고 있는 바르바라 촐만 대표(54)를 최근 만났다. “한국은 경제 발전은 말할 것도 없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 모범사례로 독일에서 자주 거론됩니다. 한국인이 얼마나 유능한지는 함께 일하는 한국인 직원들만 봐도 알 수 있죠.” 그의 관심사는 자신처럼 직장 생활을 하는 한국인 여성들이다. 2017년 여성경영인 모임 ‘위어(Wir)’를 발족시킨 배경이다. ‘위어’는 독일어로 ‘우리’를 뜻하는 ‘비어’를 영어식 발음으로 변형한 것이다. 한국은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매년 발표하는 ‘유리천장지수’에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8년 연속 최하위의 불명예를 안고 있다. 여성의 경제활동 수준, 임원직 진출, 육아휴가 등을 수치화한 지수다. 그의 경험담이다. “동료 남자 직원과 함께 한국 기업을 방문하면 사장님은 저보다 남자 직원에게 먼저 명함을 건네고 악수를 청합니다. 제가 더 앞쪽에 서 있는데도 말이죠(웃음).” 그는 한국 여성들의 정보 공유, 네트워킹에 도움을 주기 위해 허금주 교보생명 전무, 민희경 CJ제일제당 부사장 등과 의기투합해 40여 명 규모의 ‘위어’를 만들었다. 1년 단위의 멘토십 프로그램으로 운영된다. “‘멘토’로는 고위 임원직에 오른 주한 외국 여성과 한국 여성 20명 정도가 활동합니다. 조언을 받는 ‘멘티’는 중간관리직이나 더 젊은 20여 명의 한국 여성이죠. 멘토는 기업 활동을 하며 서로 아는 사이이고, 멘티는 멘토가 추천하는 형태로 모집합니다. 멘토링 세션, 외부인사 강연 등의 수업을 받고 정규 활동을 마치면 수료증이 발급됩니다.” 가장 최근 행사로는 지난해 11월 존 리 메리츠자산운용 대표를 초청해 여성 기업인의 금융 이해도에 대한 강연을 들었다. 여성 이슈는 한독상공회의소 활동에서도 빠질 수 없다. 촐만 대표는 한독상의가 주관하는 ‘이노베이션 어워드’에 지난해부터 ‘여성혁신기업인’ 분야를 창설해 이타스코리아의 젊은 여성 엔지니어 이보경 매니저를 첫 수상자로 선정했다. 촐만 대표는 독일 코블렌츠 상공회의소를 시작으로 주미 시카고 상공회의소, 독일 상공회의소 본사 등을 거쳐 한국에 온 ‘상의통’이다. 4월 한국 생활을 마치고 헝가리로 이동한다. 그는 손가락으로 만든 하트 모양으로 작별 인사를 대신했다. “독신인 저에게는 ‘위어’가 자식 같습니다. 기초를 잘 닦아놓은 만큼 왕성한 활동은 계속 이어질 것으로 확신합니다.”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최근 미국에서 ‘매코널 턱’ 소동이 있었습니다. 상원 공화당을 이끄는 미치 매코널 원내대표는 늘어진 턱으로 유명합니다. 올해 79세라는 나이에 따른 노화 현상 때문이죠. 매코널 대표 하면 턱이 가장 먼저 연상되지만 아무도 이를 대놓고 비웃거나 웃음거리의 소재로 이용하지는 않습니다. 외모를 문제 삼지 않는 것이 미국 정치의 에티켓이죠. 그런데 매코널 턱을 정조준한 사람이 있습니다. 보수 리더십 자리를 놓고 매코널 대표와 한판 싸움을 벌이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입니다. 퇴임 후 플로리다 주 마러라고 리조트로 물러갔지만 여전히 공화당 내 영향력이 큰 그는 최근 발표한 성명에서 매코널 대표를 “음침하고 뚱하고 웃음기 없는 정치꾼”이라고 묘사했습니다. 이런 비난은 유치한 인신공격이지만 굳이 문제 삼을 정도는 아닙니다. 논란은 이 성명의 초판. 보좌관들로부터 흘러나오는 얘기에 따르면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직접 쓴 성명 초판은 턱 얘기로 시작한다고 합니다. 첫 문장부터 “늘어진 턱에 똑똑하지 못한(having too many chins but not enough smarts) 정치꾼”이라고 매코널 대표를 몰아붙였다고 하죠. 보좌관들의 거센 만류로 “음침하고 뚱하고 웃음기 없는”이라는 한층 순화된 표현으로 성명이 발표된 것이죠. 노화에 따른 외모적 변화는 누구에게나 서글픈 일입니다. 그래서 미국인들은 노화를 긍정적으로 본다는 차원에서 턱을 삶의 연륜과 결부시킵니다. 늘어진 턱을 ‘지혜의 턱(wisdom chin)’이라고 부르기도 하죠. 트럼프 전 대통령이 매코널 대표를 가리켜 “턱 주름도 많으면서 지혜롭지 못한 정치꾼”이라고 비난한 것도 이런 연유에서죠. 어쨌든 불시에 턱 굴욕을 당할 뻔한 매코널 대표는 “내 자신을 그(트럼프)의 수준까지 낮추지 않겠다”며 대꾸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이번 턱 사건을 둘러싸고 다양한 반응이 나오고 있습니다. 우선 트럼프 전 대통령도 외모적으로 볼 때 매코널 대표와 별로 다르지 않다는 지적입니다. 올해 75세로 목 부근에 지방이 많이 축적된 트럼프 전 대통령도 비슷한 턱 구조를 보이고 있습니다. 미국 소셜미디어에서는 매코널-트럼프 턱 비교 사진이 많이 나돌고 있죠.좀 더 근본적으로 본다면 상대방의 외모, 특히 외모적 약점을 도마에 올리는 트럼프 식 조롱 정치의 재가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미국에서 외모나 신체적 특징을 비하하는 것은 일종의 금기입니다. 사회에서 통용되는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 때문이기도 하고 전통적 매너(예법) 때문이기도 하죠. 흔히 ‘바디-쉐이밍(body-shaming)’이라 불리는 외모에 대한 공개적 비판은 특정 성별이나 인종 연령, 또는 신체적 특징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조장할 수 있다는 차원에서 도덕적 수준 미달로 여겨집니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자기 관리가 부실한 듯 보이는 초비만형 유명인들이 많지만 이것이 화제가 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풍자가 생활화된 미 TV 심야토크쇼 진행자들도 외모 조롱만은 피하죠. 이를 바꿔놓은 것이 트럼프 전 대통령입니다. 특히 2016년 대선 때 외모를 공격 소재로 삼는 트럼프의 유세 전략은 유명했죠. 특히 여성의 외모를 도마에 올리는 사례가 많았습니다. 최근 텍사스 한파 사태 와중에 멕시코 칸쿤 휴가에 대해 주변에 자랑하고 다녔다고 해서 비난을 받은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의 부인 하이디 여사는 이미 트럼프 전 대통령의 ‘외모 품평회’에서 굴욕을 당한 전력이 있습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2016년 유세 때 경선 경쟁 상대였던 크루즈 의원의 부인과 자신의 아내 멜라니아 여사의 사진을 나란히 트위터에 올리고 “비교 불가”라고 비웃었죠. 크루즈 의원은 “나를 공격하는 것은 괜찮지만 내 아내만큼은 가만 놔둬”라고 발끈했죠. 그런가 하면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자신에게 곤란한 질문을 던진 MSNBC 방송의 여성 앵커에 대해 “주름 제거 수술로 피부를 하도 끌어당겨 얼굴에서 피가 나더라”는 섬뜩한 공격을 하기도 했습니다. 거칠 것 없는 트럼프의 조롱 정치에 “불편하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지만 지지 목소리도 많았습니다. 정치학자들은 “속이 시원하다”는 반응의 시초를 1980년대 로널드 레이건 시대에 부상한 ‘외모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으로 보고 있습니다. 레이건 시대는 외모와 겉치장에 대한 관심이 절정에 달했던 시기로 평가 받습니다. 특히 여성의 진한 화장과 잘록한 허리 등을 강조한 패션이 대세였습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미디어의 도움으로 백인 남성 중심의 포퓰리즘 성향을 파고든 것이죠. 전문가들은 미국 언론이 트럼프의 외모 조롱을 비판하는 듯 보였지만 실은 부추긴 측면이 크다고 지적합니다. 2016년 레스 문브스 당시 CBS 회장은 외모 조롱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트럼프 유세를 지켜보며 “그가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선 것은 미국 뿐 아니라 방송 시청률을 위해서도 좋은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제프 저커 당시 CNN 사장은 “트럼프가 이전까지는 뒤에서 수군거리던 외모에 대한 논의들을 공론화시킨 업적은 있다. 그래도 미디어가 그의 외모 지상주의에 과도한 관심을 보인 것이 사실”이라는 반성문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외모 비하 발언이 예상외로 열띤 반응을 이끌어내자 다른 정치인들도 너도나도 뛰어들었습니다. 그의 경쟁 상대 중 한 명이었던 마르코 루비오 공화당 상원의원은 트럼프 전 대통령의 인공 태닝 습관 때문에 피부색이 오렌지 빛깔로 변한 것에 대해 “미국을 위대하게 만들겠다는 것이 아니라 오렌지로 만들겠다는 것”이라고 비웃어 관중을 웃음바다로 만들기도 했죠. 당선 뒤 대통령이라는 직책 때문에 많이 자제했던 트럼프 전 대통령은 퇴임과 함께 자연인으로 돌아가면서 매코널 대표를 시작으로 다시 조롱 정치를 시작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입니다. 우리나라 정치 세계도 외모에 민감합니다. 정치인이 희끗희끗하던 머리카락을 검정색으로 염색하고 등장하면 “이제 선거철이 됐구나”하는 우스갯소리가 나돌 정도죠. 또한 성형강국답게 ‘안티 에이징’을 위한 보톡스 필러 시술을 받는 사례가 늘면서 쁘띠 성형중독 정치인 리스트도 나돕니다. 특히 눈썹 문신은 강한 인상을 주기 위한 인기 시술로 꼽히죠. 노화로 인한 이중 턱 지방흡입술은 ‘대공사’라고 하는데 이러다가 어느 날 매코널 대표가 날렵한 턱 선을 자랑하면서 등장하는 게 아닌지 모르겠습니다.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이 지금 목이 빠지게 기다리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백악관의 전화 한 통. “○○ 나라 대사로 당신을 추천하고자 합니다.” 해외 주재 미국대사 제안 전화입니다. 이 전화를 받기 위해 신종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험에도 불구하고 지지 집회에 “바이든”을 외치고 자기 주머니에서 돈을 몇 다발씩 꺼내 기부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최근 미국 언론에 따르면 기대만큼 빨리 대사직 오퍼가 오지 않고 있다고 하네요. 기다리다가 지친 이들의 입에서 욕이 나올 지경이라고 합니다. “그렇게 도와달라고 할 때는 언제고, 대통령이 되니까 모른 척하네. 이렇게 괘씸할 수가….” 물론 대사직 제안을 받는 이들은 평범한 미국인들이 아닙니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정치 경제계의 거물들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더욱 대사직이 탐나는 것입니다. 외교 일선에서 활동하며 세계평화를 위해 힘쓴다는 것은 그들에게 최고의 영예입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일성으로 도널드 트럼프 시대의 미국 우선주의와 결별하고 동맹 리더십을 추구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미국이 외교관계를 개설한 나라는 세계 190여 개국. 바이든 행정부는 자신의 외교원칙을 구현시킬 수 있는 인물들을 이들 국가 주재 대사로 파견하겠죠. 그런데 취임 후 한 달이 다 돼 가지만 아직 대사 임명은 감감 무소식입니다. 린다 토머스 그린필드 유엔주재 대사만 내정했을 뿐이죠. 물론 사정은 있습니다. 그동안 코로나19 대응에 매달려 있었고, 대사 인준 절차를 담당할 상원은 트럼프 탄핵 문제로 정신이 없었으니까요. 지금 워싱턴에서는 몇몇 후보 이름만 떠도는 정도입니다. ‘바이든빅토리펀드’에 10만 달러 이상을 후원한 밥 아이거 월트디즈니 회장은 주중 미국대사 유력 후보로 오르고 있습니다. HBO 중역 출신인 제임스 코스토스 전 스페인 주재 미국대사는 주영 대사로 거론되고 있죠. 그는 지난 대선 때 8만5000달러 이상을 바이든 진영에 기부했습니다. 데니스 바우어 전 벨기에 주재 미국대사는 주프랑스 대사로 유력합니다. 그녀 역시 바이든 자금 모집의 ‘큰 손’으로 불립니다. 원칙적으로 보자면 국무부의 고위 당국자들이 대사 적임자겠죠. 차관보, 부차관보, 담당국장 등 고위직까지 올라온 외교관들은 대사로 나가기 위해 젊은 날 하급 공무원으로 시작해 밤낮없이 일했던 것 아니겠습니까. 또 이들만큼 해당 국가 이슈들을 꿰뚫고 있는 전문가도 없지요. 국무부에서 잔뼈가 굵은 대사들을 ‘직업(커리어) 대사’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요즘 대세는 국무부 관리 보다는 정치 경제계 인사들이 대사로 직행하는 경우입니다. 정치자금 거액 기부자나 전 현직 유명 정치인들이 각광받는 시대가 된 것이죠. ‘정치 대사’라고 불리는 사람들이죠.미국에게는 당연히 주중 대사가 가장 중요합니다. 대사는 해당국이 임명해서 보내는 절차를 밟지만 중국 정도 되면 사전에 “이 후보가 괜찮은가”하고 의사를 타진합니다. 중국은 철저히 “‘빅 네임’을 원한다”는 의사를 미국에 전달한다고 합니다. 직업 대사보다는 무역 갈등이 빚어질 때 미 정치권에서 통할 수 있는 정치인 출신 대사를 선호하는 것이지요. 존 헌츠먼 전 유타 주지사, 게리 로크 전 워싱턴 주지사, 맥스 보커스 전 상원의원 등 주중대사를 역임한 이들을 보면 대개 그런 성향입니다. 최근 아이거 디즈니 회장의 이름이 자주 오르내리는 것은 그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개인적인 친분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가 임명될 경우 중국에 대한 화해 제스처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옵니다. 일본 역시 유명인 대사를 선호합니다. 월터 먼데일 전 부통령, 토머스 폴리 전 하원의장 등을 거쳐 외교경력이 없던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의 딸 캐럴라인 케네디 변호사가 주일 대사를 지낸 것을 보면 일본의 취향을 알 수 있습니다. 반면 중국과 일본 사이에 끼인 한국은 아직 직업 대사의 영역으로 남아있습니다. 주한 미국대사로 오는 분들 이력서를 보면 국무부 국방부 근무 경력으로 꽉 차있지요. 정치 대사가 온다면 그것이야 말로 ‘빅뉴스’가 되겠지만 그럴 가능성은 별로 높지 않다고 국무부 사람들은 말합니다. 주한 미대사만큼은 북한 문제를 다뤄본 경력자가 우대받습니다. 정치 대사는 트럼프 시대에 크게 늘었습니다. 직업 대사와 정치 대사의 비율은 역사적으로 7대 3 정도를 유지했던 것이 트럼프 행정부 때 5.5대 4.5로 바뀌었습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정치자금 후원자들에게 대사 자리를 선심 쓰듯 내줬기 때문이죠. 그 가운데는 자질 부족 논란을 일으킨 대사들도 꽤 많았습니다. 피부과 의사 출신 제프리 로스 군터 아이슬란드 주재 미대사는 경호강박증 때문에 요새 같은 사저를 짓는가 하면 치안 우수 국가인 아이슬란드에 난데없이 총기 소지 권리를 요구해 외교 논란으로 비화됐습니다. 존슨앤존슨 창업자의 증손자인 우디 존슨 주영 대사는 대사관 직원들에 대한 인종차별 발언으로 국무부 조사를 받기도 했죠. 석탄재벌 며느리 출신인 켈리 크래프트 캐나다 주재 미대사는 부임지인 오타와에서 임기의 절반 밖에는 지내지 않고 시댁이 있는 켄터키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트럼프 시대의 대사들이 남긴 오명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격을 갖춘 외교 관리는 많다”며 “정치자금을 많이 후원했다고 해서 (대사로)임명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누누이 강조해왔습니다. 그러나 트럼프 전 대통령과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기록적인 정치자금 후원과 민주당 정치인들의 열렬한 지원 사격 덕분에 당선됐기 때문에 이들의 공로를 외면할 수도 없는 상황입니다. 아직 대사 임명을 시작하지 못한 것은 명분과 실리 사이의 균형을 찾는 일이 그만큼 쉽지 않다는 반증이겠죠.정미경 기자mickey@donga.com}
프랑스 기업인 올리비에 무루 씨는 한국에서 20년 넘게 살고 있다. 그에게 한국과의 우정을 보여주는 상징은 무엇인가 물어보니 한 사람을 데리고 나왔다. ‘아지앙스 코리아’라는 글로벌 마케팅 회사의 공동 대표를 맡고 있는 김보선 씨가 그에게는 ‘보물 1호’다. 무루 대표는 그 힘든 동업을 한국 땅에서 17년 동안 성공적으로 일궈왔다. 한국인과 함께, 그것도 성별도 다른 여성과 함께. 나이도 47세(무루 씨), 46세(김 씨)로 비슷하다. “부부 사이냐”는 질문에 둘은 호탕하게 웃으며 “(결혼이 아닌) 프로페셔널 케미스트리(직업적 화학작용)”라고 설명했다. 이들은 각각의 배우자와 2명씩 아이를 낳고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다. 아지앙스 대표실은 1개다. 그 안에 ‘사장님 책상’ 2개가 나란히 놓여 있다. 무루 대표는 “동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대화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아지앙스는 다국적기업의 한국 현지화 전략을 담당하는 디지털 솔루션 회사다. 고객의 80%는 루이비통, 구찌 등 럭셔리 기업들이다. 미국 전기차 회사 테슬라의 홍보에서 구매까지 한국어 웹사이트에서 원스톱으로 해결하는 e커머스 전략 수립도 담당했다. “외국 기업들은 정보기술(IT) 이해도가 높은 한국 소비자들에게 어떻게 소셜미디어 인터넷 마케팅을 전개해야 하는지 난감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국의 복잡한 디지털 규제법령을 이해시키는 것도 우리의 일이지요.”(무루 씨) 주한 프랑스대사관 IT 담당관으로 일하던 그는 이화여대 불문과 출신으로 디지털 출판사에서 일하던 김 대표와 의기투합해 2004년 아지앙스를 설립했다. 지난해 80여 개 고객사를 상대로 80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대기업 계열사가 주축인 마케팅 분야에서 독립 에이전시로는 눈에 띄는 실적이다. 무루 대표는 “동업적 성공은 일을 나누지 않은 덕분”이라고 강조했다. ‘무루-외국’ ‘김-한국’의 고객 분담, 또는 ‘무루-외부영업’ ‘김-내부관리’ 등의 역할 분담이 없다는 것. “다른 문화와 성별을 가진 두 명의 책임자가 함께 움직이는 걸 고객들은 더 신뢰하죠.” 아지앙스는 등록문화재 402호인 서울 중구 정동 신아기념관에 위치해 있다. 내부는 한국 전통가옥에서 볼 수 있는 격자무늬 목재 천장이다. “럭셔리 본사 중역들이 한국을 찾으면 우선 회사 구경을 시켜줍니다. 그리고 강남의 대형 호텔이 아니라 덕수궁 정동길 정취가 물씬 풍기는 인근 작은 호텔에 묵게 해주죠. 그러면 감탄사를 연발합니다.” 무루-김 대표는 글로벌 감각과 한국 특유의 멋을 잘 융화시킨 아지앙스를 ‘글로컬리제이션(글로벌+로컬리제이션)’이라는 한마디로 정리했다. 김 대표가 마지막으로 말했다. “저는 남자 형제가 두 명 있지만 올리비에가 더 형제처럼 느껴집니다. 가족의 정을 느낄 정도라면 할 말 다 한 거죠(웃음).” 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어떤 베개 베고 주무십니까. 이불에 밀려 별로 주목받지 못하지만 숙면을 취하는 데 베개만큼 중요한 게 없죠. 요즘 미국인들은 베개 얘기를 많이 합니다. ‘마이필로우(My Pillow·내 베개)’라는 회사 때문입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이 회사의 마이크 린델 대표(60) 때문이죠. 분당 12개씩, 하루에 3만7000개를 생산하는 ‘베개 왕국’ 사장님 린델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열렬 지지자로 유명합니다. 한때 ‘트럼프 친구’를 내세우며 승승장구했지만 요즘 총체적 난국에 빠져있습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의회 난입 사태 후 트럼프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친구도 없이 은둔할 때 유일한 방문객이 린델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의 방문이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로버트 오브라이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팻 치폴론 법률고문이 문 앞에서 쫓아버렸다고 하죠. 문전박대 신세는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트위터는 “반란 선동의 위험이 있다”며 47만4000명의 팔로어를 가진 린델의 계정을 영구 차단했습니다. 선거기기 제작회사인 도미니언 보팅시스템즈는 “선거조작 주장을 철회하고 사과하지 않으면 법적 행동에 돌입하겠다”는 경고장을 발부했습니다. 베드배스앤드비욘드(BB&B), 콜스 등 온-오프라인 소매 체인과 홈쇼핑 채널 등은 “더 이상 마이필로우 제품을 판매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습니다. 변변한 경제계 거물 지지자가 없는 트럼프 전 대통령은 그동안 린델을 얼굴 마담으로 내세워 정책 홍보에 이용했습니다. 백악관이 주최하는 기업가 라운드테이블 미팅에서 트럼프의 옆자리는 언제나 그의 차지였죠. 전혀 관련이 없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태스크포스 회의에도 참석했습니다. 지난해 백악관에서 열린 코로나19 기자회견에서 “대통령이 나에게 치료제를 찾도록 부탁했다”고 밝혔다가 기자들로부터 “그런데 의료면허는 있느냐”는 질문을 받기도 했습니다. 린델은 2016년 트럼프 유세 때 처음 알게 된 뒤 “그를 만난 건 하늘의 섭리”라며 “그와 함께 끝까지 가겠다”고 밝혀왔습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과 ‘종교’ ‘기업가’ 키워드가 통했던 것이죠. 그는 트럼프 최측근인 루디 줄리아니 변호사조차 포기한 부정선거 주장에 아직도 매달리고 있습니다. 그냥 “선거를 도둑맞았다”는 주장 정도가 아닙니다. 자신만의 구체적인 논리도 가지고 있죠. “도미니언보팅시스템즈가 사전에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 측과 공모해 전산 소프트웨어 조작을 통해 수천만 표를 바이든 측에 몰아줬다”는 겁니다. 최근 극우 성향의 인터넷방송 뉴스맥스에 화상 출연해 또 한 번 선거조작 주장을 펴다가 ‘위험 신호’를 감지한 프로그램 앵커와 싸움이 붙어 앵커가 돌연 퇴장하는 방송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극우방송 앵커까지 박차고 나갈 정도의 그의 황당한 주장은 일명 ‘린델 폭발 사건’으로 불리며 미국 소셜미디어에서 인기몰이 중인 동영상입니다. 여기에 건실한 종교인 이미지로 밀고 나가는 린델이 할리우드 여배우 제인 크라코스키에게 선물 공세를 펼치며 연인 관계였다는 스캔들 보도까지 나왔습니다. 그러자 크라코스키는 “‘커밋’(미국의 인기 개구리 인형 캐릭터)과 스캔들이 났으면 났지 린델은 절대 사절”이라며 극구 부인하고 나섰죠.이쯤 되면 린델이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미네소타 교외에서 술집을 경영했던 그는 종교의 힘으로 오랜 마약 중독에서 벗어났고, ‘베개 신화’를 이룩했다는 자수성가 스토리를 강연 때마다 설파하고 있습니다. 코카인 중독의 나날을 보내고 있던 그는 어느 날 섬광 같이 “내 불면증은 베개 탓”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2004년 마이필로우를 설립했습니다. 대형 회사들이 장악한 베개 시장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던 그는 2011년 한밤중 TV에서 방송되는 30분짜리 인포머셜 광고가 대박을 터뜨리면서 성공한 기업가의 반열에 오르게 되죠. 직접 베개를 들고 “신개념 메모리폼”이니 “혁신적인 바느질 공법”이니 하면서 입이 마르도록 칭찬하는 광고 덕분에 ‘인포머셜 킹’으로 불리죠. 베개 1개당 45달러(5만원)라는 비교적 높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전체 인포머셜 시장에서 5위권 안에 드는 뛰어난 판매 실적을 올리고 있습니다. 월마트 등 일반 소매체인으로 유통망을 확대하면서 지금까지 3000만개 이상의 베개를 팔아치웠습니다. 경제전문지 포브스에 따르면 린델의 재산은 3억 달러(3370억 원)에 이른다고 합니다. 물론 1800억 달러(202조 원)의 재산을 가진 세계 최고 부자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창업자에 비하면 새 발의 피지만 베개 하나로 뒤늦게 시장에 진입한 창업가로서는 괄목할만한 실적이죠. 하지만 마약 중독도 끊고 피땀 흘려 일군 베개 왕국은 한 번 발을 들여놓은 정치 세계에서 사면초가(四面楚歌)에 빠지면서 와르르 무너질 위기에 처했습니다. 그래도 린델은 “트럼프 지지 활동을 포기하지 않겠다”고 합니다. 그러는 사이 베개 사업은 조롱 대상이 돼 진보운동가들을 중심으로 ‘마이필로우 타도’ 투자 모집 공고들이 인터넷에서 나돌고 있죠. 이러다가 어느 날 ‘눈물의 폐업정리 세일’ 인포머셜에 나오는 건 아닌지 지켜봐야겠습니다.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농관원)이 ‘2020년 GAP 우수사례집’을 최근 발간했다. GAP는 농장에서 토양 용수 등 재배 환경과 종자 비료 등 농업자재, 선별포장 등 작업 과정을 깨끗하고 안전하게 관리하는 인증 제도다. GAP 인증은 2003년 국내 약용작물을 중심으로 시범 도입된 후 2006년 농수산물품질관리법 개정을 통해 시행됐다. 현재 130개 이상 국가에서 운영되고 있다. 사례집에는 생산 부문 7건, 유통 부문 5건 등 12건의 성공 사례가 포함됐다. 생산 부문 대상을 받은 ‘농소황토부추작목반’(울산)은 GAP 인증을 받은 부추 생산 23개 농가가 생산관리 교육을 통해 서울 가락도매시장 등 3개 중앙시장에 계통 출하하고 있으며 하자 발생 땐 신속하게 리콜 조치해왔다. 매출이 2017년 27억 원에서 지난해 32억 원으로 늘었다. 유통 부문 오프라인 금상을 받은 롯데마트 과일팀은 직원 대상 교육과 다양한 홍보 활동 결과 2019년 582억 원이던 GAP 매출이 지난해 1∼7월에만 364억 원을 기록했다. 온라인 금상을 수상한 마켓컬리 신선팀은 전문 품질관리 및 전담인력 배치로 GAP 농산물 취급률이 2019년 14%에서 지난해 20%로 늘었다. 2020년 우수사례집은 e-Book 형태로 지난달 27일부터 ‘GAP 정보서비스’ 시스템에서 볼 수 있으며 지자체 등을 통해서도 배포되고 있다. 이주명 농관원 원장은 “GAP 농산물의 안전관리 강화, 농업인 및 유통 관계자 대상 GAP 인증 컨설팅 교육, 온·오프라인 마케팅을 통한 판로 지원, 우수사례 발굴과 홍보를 추진하겠다”고 말했다.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지난달 20일 미국 동부시간 오후 7시. 흔히 ‘프레스 브리핑룸’으로 불리는 백악관 제임스 브레디룸에 긴장감이 흘렀습니다. 조 바이든 시대를 알리는 첫 언론 브리핑이 열리는 시간이었기 때문이죠. 도널드 트럼프 시대 4년 동안 브리핑다운 브리핑을 받지 못한 백악관 담당 기자들은 ‘굶주린’ 표정이었습니다. 1시간 뒤 파란색 원피스의 젠 사키 신임 백악관 대변인이 진행하는 브리핑을 끝낸 이들은 기뻐 날아갈 듯한 얼굴이었습니다. “이게 얼마만인가! 이런 게 바로 브리핑이지.” 기자들 반응이었죠. 이런 축제 분위기 속에서 폭스뉴스가 주목받고 있습니다. 바이든 시대가 되면 친(親)도널드 트럼프 성향의 폭스뉴스는 완전 찬밥 신세가 될 줄 알았는데 오히려 중재자 역할이 부각되고 있는 것이죠. 트럼프 시대에는 총 4명의 백악관 대변인이 있었습니다. 기자들과 싸우거나(숀 스파이서, 사라 샌더스), 아예 브리핑을 안 하거나(스테파니 그리셤), 지나치게 트럼프 찬양 일색이라 기자들이 브리핑을 보이콧(케일리 매커내니)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죠. 그러니 사키 대변인의 ‘정상적인’ 브리핑을 접하게 된 기자들이 감격스러워한 것은 당연합니다. 몇몇 기자들이 소셜미디어에 올린 반응을 볼까요. “사키 대변인은 단 한 번의 브리핑으로 4명의 트럼프 대변인들을 모두 합친 것보다 더 많은 기자들의 질문에 답했다.”“브리핑에서 이렇게 상식이 통할 수 있다는 게 놀랍다.”“4년 만에 기괴하지 않는 백악관 대변인 첫 탄생.” 사키 대변인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 시절 국무부 대변인을 지냈고, 이후 CNN 전문가 패널 등으로 활동한 대(對)언론 베테랑. 저도 워싱턴 특파원 시절 국무부 대변인이었던 그녀의 브리핑에 수차례 참석했습니다. 효율적인 운영이 눈에 띄었습니다. 자신이 잘 모르는 이슈에 대해 질문을 받으면 “아직 파악하지 못했다”고 실수를 인정한 뒤 “곧 알아봐서 (개인적으로 또는 다음 브리핑 때) 답을 주겠다”고 대안을 제시하는 스타일이더군요. 그러니 많은 기자들에게 질문 기회가 돌아가고 다양한 이슈를 커버할 수 있는 것이죠. 당연한 대변인의 직무라고 할 수 있지만 트럼프 대통령 시절 ‘분노의 브리핑’에서는 보기 힘든 광경이었습니다.사키 대변인의 또 다른 특징은 전문가나 담당자를 자주 동석시킨다는 것입니다. 국무부 대변인 시절에는 지역 담당국장 등을 자주 브리핑에 초청해 직접 설명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곤 했죠. 백악관 브리핑 둘째 날에는 앤서니 파우치 국립알레르기전염병연구소 소장과 함께 등장했습니다. 자신이 주인공이 되고 싶었겠지만 바이든 행정부의 당면 과제인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퇴치를 위해 전문가에게 스포트라이트를 양보한 것이죠. 직접 파우치 소장이 나서 40여분동안 기자들과 질의응답을 진행한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그렇다고 사키 대변인 체제의 미래가 밝은 것만은 아닙니다. 새 정권과 언론의 ‘허니문(신혼) 기간’은 곧 끝나기 때문이죠. 지난 대선 때 언론의 보도 방향이 “지나치게 바이든 쪽으로 기울었다”는 비판을 받는 것도 사실입니다. 이 같은 오명을 벗기 위해서라도 미 언론은 바이든 행정부의 정국운영 능력에 엄격한 잣대를 들이댈 것입니다. 더 큰 문제는 극우매체와의 관계입니다. 트럼프 대통령 시절 이름도 생소한 케이블TV와 인터넷 언론사들이 대거 주목을 받았습니다. 뉴스맥스, 데일리콜러, 게이트웨이펀딧(이상 인터넷), OAN, 싱클레어(TV) 등이죠. 이들은 대형 언론사도 하지 못한 트럼프 단독 인터뷰를 성사시키며 명성을 키웠고, 트럼프 대통령은 이들을 트위터로 홍보하며 선전도구로 활용했습니다. 백악관 취재 시스템은 중층 구조로 이뤄져 있는데요. 우선 ‘출입’ 언론사로 승인을 받아야 합니다. 첫 관문부터 통과하기가 쉽지 않죠. 까다로운 심사를 거쳐 미국과 전 세계에서 100여개 언론사만이 승인을 받습니다. 진짜 핵심은 다음 단계인 브리핑 참석. 우리가 흔히 TV에서 보는 기자들이 여기저기서 손을 들고 질문하는 브리핑룸에 참석할 수 있는 권한입니다. 미국 기자들에게는 최고의 영예인 ‘하드 패스(단단한 권한)’를 얻는 것이죠. 브리핑룸은 49개의 좌석으로 이뤄졌기 때문에 대개 50명 선에서 ‘하드 패스’를 얻습니다. 물론 지금은 코로나19 때문에 브리핑 참석 가능 인원이 14명으로 크게 줄었지만요. 현재 바이든 행정부는 출입 언론 선정 작업을 진행 중입니다. 트럼프 시대에 ‘하드 패스’를 얻은 극우매체들은 결코 그 권리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입장입니다. 브리핑에서 바이든 행정부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송곳 같은 질문을 퍼붓겠다는 것이죠. 통합을 내세우는 바이든 행정부도 극우매체들의 브리핑 참석 권한을 “일단 유지하겠다”고 합니다. 이것이 바로 폭스뉴스가 부각되는 배경입니다. 바이든 행정부와 극우매체들 사이에서 다리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죠. 친트럼프 계열이지만 극우는 아닌 폭스는 양측 모두가 수용할 수 있는 ‘바이든 비판’ 수위를 결정할 수 있는 절묘한 위치에 놓여있습니다. 폭스뉴스의 역할은 첫날 브리핑 때 여실히 증명됐습니다. 이날 사키 대변인은 단 한 차례 당황하는 기색을 보였는데요. 바로 폭스뉴스 기자의 질문을 받았을 때입니다. 폭스 기자는 “바이든 대통령 가족이 취임식 날 링컨기념관 방문 등 공식 행사를 하는 동안 마스크를 쓰지 않는 적이 수차례 있었다”고 지적했습니다.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 하는 행정명령까지 서명한 바이든 대통령 입장에서는 중대 실수를 인정할 수밖에 없는 뼈아픈 지적이죠. 그렇다고 극우 매체의 부정선거 주장처럼 정권의 정통성까지 뒤흔드는 체제 비판 질문도 아닙니다. 이 정도 선에서 행정부 비판이 용납돼야 한다는 것을 폭스뉴스가 보여준 것이죠.정미경 기자mickey@donga.com}
정말 사정없이 쪼그라들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위세 말입니다. 트위터라는 스피커가 꺼지는 순간 그의 영향력은 사라졌습니다. 지난 4년 동안 880만 명의 팔로어들에게 왜곡된 주장과 정적들에 대한 비난을 쏟아내는 것이 주요 업무 중 하나였던 트럼프 전 대통령은 트위터의 계정 차단과 함께 한순간에 대중의 관심 영역에서 완전히 잊혀진 사람이 된 것이죠. 계정이 막혀버리자 일주일 넘게 백악관에서 혼자 끙끙 고민하던 그는 조 바이든 대통령 취임식 날 도망가는 사람처럼 아침 일찍 플로리다로 떠나버렸습니다.트럼프 전 대통령의 초라한 퇴장 드라마는 소셜미디어의 막강한 영향력을 새삼 절감하게 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대다수 미국인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트럼프 소음’을 더 이상 안 듣게 돼서 좋다”는 것이죠. 하지만 미국인들의 속마음도 편치만은 않습니다. 트위터의 이번 결정은 헌법에 보장된 개인의 의사표현 권리를 막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미국처럼 수정헌법 1조에 보장된 표현의 자유를 금쪽같이 여기고, 검열을 악으로 보는 나라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미국의 대표적인 인권단체인 시민자유연대(ACLU)는 평소 트럼프 전 대통령을 비판해온 진보 성향 단체입니다만 트럼프 계정 차단에 대해 “헌법 수호 측면에서 나쁜 선례를 남길 수 있는 옳지 않은 결정”이라고 분명히 밝혔습니다. 트위터가 이런 후폭풍을 몰랐을 리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이런 결정을 내리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요. 이 또한 한 편의 드라마입니다. 미 언론과 관련 블로그 등을 종합해보면 드라마의 배경은 의회 난입 사태가 발생한 워싱턴도, 트위터 본사가 있는 샌프란시스코도 아닙니다. 주 무대는 남태평양 한가운데 있는 프랑스령 폴리네시아. 당시 막후 상황을 아는 전문가들에 따르면 트위터를 이끄는 잭 도시 최고경영자(CEO)는 이곳에서 휴가를 즐기던 중 대통령 계정 차단이라는 ‘세기의 결정’을 내렸습니다. 폴리네시아는 남태평양의 섬들로 구성된 프랑스 해외령으로 이 섬들 중 하나인 타히티에서 폴 고갱이 그린 원주민 여성 그림은 매우 유명하죠. 요즘은 미국과 유럽의 부호(富豪)들이 자국의 엄격한 신종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방역규칙을 피해 몰려가는 곳이기도 합니다.트위터가 단칼에 영구 차단 결정을 내린 것은 아닙니다. 의회 난입 사태 직후 트위터는 1차로 계정을 정지합니다. 이 결정은 도시 CEO의 자발적인 결정이라기보다는 ‘트위터 3인방’으로 불리는 30대 후반~40대 초반의 고위급 경영진 3인의 건의를 받아들인 것이었죠. 폴리네시아에서 휴가를 즐기던 도시 CEO에게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오른팔’ 격인 비자야 가디 법률정책 고문(여성)으로부터 긴급 전화가 걸려옵니다. 의회 폭력 사태로 난리가 난 것을 본 그녀는 신속하게 트럼프 계정 차단의 필요성을 건의합니다. 도시 CEO는 마지못해 “당신에게 일임하겠다”는 식으로 답변을 줍니다. ‘미적지근한 동의’였죠. 1차 계정 차단 작업 완료.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아무도 영구 차단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트위터는 후속 작업에 돌입합니다. ‘소셜미디어 커뮤니티 스크리닝(검토)’ 작업이죠. 대개 소셜미디어 플랫폼들은 계정 통제 결정을 내린 뒤 자사 트래픽뿐 아니라 타사 소셜미디어의 토론 흐름도 검토합니다. 특히 이번 경우 트위터는 팔러 등 극우 성향의 소셜미디어 트래픽을 집중 검토했습니다. 의회 난입 사태로 한바탕 난리를 치른 후 트럼프 지지자들의 주장이 점점 더 과격화되고 있다는 것이 눈에 띄었죠. 의견들 중에는 “폭력적 방법을 동원해 조 바이든 취임을 막아야 한다”는 등 위해(危害) 시도를 암시하는 내용들도 많았습니다. 다른 한편으로 트위터 내부적으로 직원들의 집단 성명 움직임도 불붙었습니다. “트위터의 소극적 대응”을 비판하는 여론을 직접 피부로 겪는 직원들이 서명 운동에 돌입한 것이죠. 트위터 직원 4900명 중 400여명이 ‘트럼프 계정을 영구 차단시켜야 한다’고 서명하면서 가속도가 붙기 시작했습니다. 내부 의견 청취 시스템이 잘 갖춰진 미국 회사 입장에서는 직원들의 집단 의견을 무시해버릴 수는 없는 상황이었죠. 여기에 경쟁자 페이스북이 ‘트럼프 임기 말까지 계정 차단’이라는 결정을 내리며 발 빠른 대응을 하는 모습을 보이자 트위터는 속이 타들어 갔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12시간 후 1차 계정 차단이 해제되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다시 트위터 무대로 돌아왔습니다. 트위터로서는 “이제 좀 조용해지면 좋으련만”하고 희망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계정이 풀리자마자 “미국 애국자들의 위대한 목소리(GIANT VOICE)를 들리게 해야 한다”는 특유의 대문자 트윗을 날리며 더욱 선동적인 면모를 보입니다. 이어 “바이든 취임식을 보이코트하겠다”며 지지자들에게 ‘나를 따르라’식의 진두지휘 명령을 내리죠.소셜미디어 토론장, 내부 분위기,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3각 위험 신호를 감지한 ‘트위터 3인방’에게 폴리네시아의 도시 CEO로부터 긴급 전화가 걸려옵니다. 3인방은 그가 어떤 최종 결정을 내릴지 이미 예감한 상태. 도시 CEO의 첫 마디는 “나는 선을 그었다. 지금 상황은 그 선을 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선(line)은 ‘대중의 이익이 개인의 표현의 자유보다 앞선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겠죠. 도시 CEO도 법적, 영업적, 윤리적 심사숙고 끝에 이런 결정을 내렸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습니다. 이후 트위터는 트럼프 대통령과 ‘두더지 잡기(Whack-a-Mole)’ 싸움에 돌입합니다. 우리나라 오락실에 가면 흔히 볼 수 있는 뽕망치 게임을 영어로 이렇게 부르는데요. 트럼프 대통령은 평소 이용하던 @realDonaldTrump 계정이 막히자 @POTUS 등 자신의 영향력이 닿는 다른 계정으로 빠르게 옮겨가며 지지자들에게 자신의 주장을 전달하려 했고, 트위터는 이를 간발의 차이로 추적하며 차단시켜 버렸죠. 트럼프 대통령과 트위터 간에 펼쳐졌던 ‘계정 때려 막기’ 게임을 이렇게 부릅니다. ‘Whack-a-Mole’은 요즘 미국의 화제어이기도 하죠. 트럼프 전 대통령이 트위터에서 1차 계정 정지 후 영구 퇴출되기까지 걸린 시간은 단 36시간. 그동안 프랑스령 폴리네시아에서, 샌프란시스코에서, 워싱턴에서 많은 일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졌습니다. 트럼프의 운명을 결정지은 시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참치 하면 자연스레 떠오르는 ‘동원참치’. 1982년 첫선을 보인 동원참치캔은 40여 년 동안 한국인의 식탁에서 사랑을 받아왔다. 설 명절 선물로도 손색이 없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시대에 세계적으로 고단백 건강식품에 대한 관심이 늘면서 저렴하면서도 영양이 풍부한 참치 수요가 꾸준히 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유통업체 코스트코는 미국 매장에서 고객 1명이 살 수 있는 참치캔 수량에 제한을 두기도 했다. ‘집콕’ 시대에 필수적인 영양분 섭취에 참치만 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지난해 상반기 미국 내 참치캔 및 참치파우치 매출은 전년 동기에 비해 29.6% 늘었다. 참치캔 1위 브랜드 스타키스트는 같은 기간 매출액이 17.47% 증가했다. 참치캔은 고단백 저칼로리 식품이다. 전체 영양 성분의 27.4%가 단백질로 이뤄져 있다. 생선 가운데 단백질 함량이 가장 높다. 돼지고기(19.7%), 쇠고기(18.1%), 닭고기(17.3%) 등 육류와 비교해도 단백질 함량이 더 많다. 참치캔의 단백질은 2010년 칠레 광산 붕괴 사고 때 입증된 바 있다. 당시 지하 622m에 매몰됐던 33명의 광부는 69일 동안 참치 두 숟가락과 과자 반 조각, 우유 반 컵을 48시간마다 나눠 먹으며 기다리다가 무사히 구조됐다. 참치의 단백질, 과자의 탄수화물, 우유의 지방을 골고루 섭취할 수 있었기에 가능했던 기적이었다.참치에 많이 함유된 DHA는 뇌 기능 저하를 막고 학습 부진 개선에도 도움을 주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임산부와 수유기 여성은 하루 300mg의 DHA를 섭취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한다. 이뿐만 아니라 참치의 오메가3 지방산은 혈압을 낮추고 염증을 억제할 뿐 아니라 성인병 예방에도 도움을 준다. 2014년 미국 타임(TIME)지는 정신건강에 도움을 주는 ‘16대 힐링푸드’로 참치를 꼽기도 했다. 동원참치캔은 1982년 12월 선보인 뒤 줄곧 1위 자리를 놓치지 않았다. 1980년대에는 값비싼 고급식품으로, 1990년대에는 가미 참치를 통한 편의식품으로, 2000년대 들어서는 건강성을 강조한 건강식품으로 사랑을 받아왔다. 최근 동원참치는 “바다에서 온 건강”이라는 콘셉트를 내세우며 제2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 동원F&B 관계자는 “밀레니얼 세대가 참치캔을 간편하게 활용할 수 있도록 레시피를 개발해 보급하고, 맞춤형 소스와 각종 재료로 양념한 요리용 참치캔 등을 선보일 예정”이라고 말했다.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우리는 주한 외국인 250만 명 시대에 살고 있다. 그들은 한국과의 인연을 소중히 여기며 우정의 징표를 간직하고 살아간다. 외국 기업인과 외교가 인사들의 ‘보물 1호’를 알아본다. 시몽 뷔로 벡티스코퍼레이션 대표(58)는 오전 8시쯤 회사에 도착해 책상 위에 놓인 액자에 먼저 눈을 돌린다. 이 액자는 한국 생활을 즐겁게 해나갈 수 있는 에너지의 원천이다. 15일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에 있는 뷔로 대표의 사무실을 찾았을 때 그는 “보물 1호다”라며 자랑을 시작했다. 인터뷰는 영어와 한국어를 섞어 진행됐다. 액자엔 사람 사진이 들어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그의 액자에는 영어 문구 사진이 끼워져 있다. 자신의 소셜미디어와 휴대전화를 통해 받은 텍스트 메시지들을 사진으로 인화해 액자로 만든 기발한 착상이다. 뷔로 대표는 캐나다 몬트리올 출신이다. 그가 운영하는 벡티스는 한국에 진출하려는 캐나다 기업을 위해 시장 조사를 하고, 캐나다 등으로 눈을 돌리는 한국 기업을 위해 정보 컨설팅을 해준다. 이와 함께 국내 소재 외국계 기업이나 해외 기업에 취업하고자 하는 한국 젊은이들을 위한 글로벌 인재 시장 정보를 제공하는 것도 그의 업무다. 주한캐나다상공회의소 회장(2008∼2011년) 등을 지내며 관심 영역을 넓혀 나간 덕분이다. 주로 강연, 일대일 멘토링을 통해 한국 젊은이들을 만난다. 강연 및 수업료를 조금 받기도 하지만 한국에 대한 애정이 없으면 하기 힘든 일이다. 액자의 영어 문구는 그가 만난 한국 젊은이들이 보내온 감사 메시지들로 채워져 있다. “당신의 메시지가 큰 힘이 됐다” “당신 덕분에 꿈을 찾게 됐다”는 내용이다. “‘글로벌 시대’라는 말은 많지만 정작 글로벌을 꿈꾸는 한국 취업생을 위한 정보는 거의 없더군요. 그래서 저는 ‘딥다이브(Deep-Dive)’ 전략을 택했습니다.” 뷔로 대표는 ‘딥다이브’에 대해 “‘깊게 다이빙하다’, 즉 ‘속속들이 파헤치다’라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강연 때 제가 한국 젊은이들로부터 받는 질문은 정말 피부에 와닿는 것입니다. ‘외국 기업에 이력서를 낼 때는 2장이 좋냐, 3장이 좋냐’ ‘면접 인터뷰 때 손동작은 어떻게 해야 외국인 눈에는 자연스러운가’ 같은 것들이죠. 외국인 경영자 입장에서 서구식 인재관에 대한 큰 틀의 지식을 제공하면서 이런 세부 정보들도 사례 연구를 통해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는 1986년 캐나다에서 대학 졸업 후 옛 대한석유공사(유공) 국제금융부에 근무하게 되면서 처음 한국 땅을 밟았다. 1998년 벡티스를 설립하면서 본격적인 한국 생활을 시작했다. 2010년대 취업난과 함께 대학들의 강연 요청이 급증하면서 ‘인기 강사’가 됐다. 지금까지 250여 차례 해외 취업 관련 강연을 했다. 에어클래스 등 동영상 강의 플랫폼도 활용한다. 그러다 보니 사업 영역이 확장돼 미국 유럽 등에서 파견된 외국계 기업 간부들을 대상으로 여는 ‘한국 이해’ 트레이닝 세션도 주된 일이 됐다. “한국인 직원들은 질문하기를 꺼리고 서열을 중시하기 때문에 ‘외국인 보스’가 보기에는 좀 멀게 느껴지기도 하죠. 그럴 때 한국인 직원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소통 방법을 알려줍니다.” 뷔로 대표에게 자신과 한국의 관계를 한마디로 정의해 달라고 하자 ‘번역가(interpreter)’라는 단어를 언급했다. “영어 번역가는 아니고요. 한국과 다른 나라가 서로 이해하고 소통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문화·지식 번역가’가 제 역할입니다.”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시위대와 함께 하느니 차라리 혼자 있고 싶어요.” 의회 난입 사태 후 미국 바디스프레이 회사 액스(AXE)가 자사 소셜미디어에 올린 트윗 성명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지지 시위대가 스프레이를 들고 의회 곳곳에 낙서를 하고 몸에 뿌리며 난장판을 만드는 장면이 사진과 방송을 통해 전 세계로 퍼져 나간 후였죠. 시위대가 휩쓸고 간 뒤 의회 건물 한 구석에 내동댕이쳐진 바디스프레이 캔은 요즘 미국 소셜미디어에서 가장 많이 트렌딩 되고 있는 이미지이기도 합니다. 물론 바디스프레이 회사가 시위를 조장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관련’ ‘연상’ 기업인 것만은 분명하죠. 유명 브랜드가 우연하게 큰 사건 사고에 연루되는 것은 자주 있는 일입니다. 이럴 때 기업은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할까요. 액스는 폭력시위대를 비판했습니다. 사회적 논란이 되는 이슈에 자기 목소리를 분명히 낸 것이죠. 이 회사의 트위터 메시지는 이어집니다. ‘의회에서 발생한 폭력과 증오의 행동을 규탄한다. 민주적 절차와 평화로운 정권 이양을 존중한다’는 내용이었죠. 그러자 “옳은 결정”이라는 이해와 공감의 댓글이 이어졌습니다. 액스의 시위대 규탄이 도덕적으로 옳은 결정이라는데는 이견의 여지가 없습니다. 하지만 비즈니스적으로도 옳은 결정이었을까요? 이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합니다. 기업의 목표는 이윤 극대화입니다. 일각에서는 폭력시위 비판이 긍정적인 이미지 형성으로 이어지면서 매출 상승이 기대된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습니다. 그러나 바디스프레이는 원래 작은 시장입니다. 꼭 사야 되는 생필품도 아니지요. 매출 상승보다는 하락을 점치는 전문가들이 더 많습니다. 트럼프 지지자들은 벌써 액스 보이콧에 돌입했습니다. “우리를 비난하는 회사 제품은 사줄 필요가 없다”는 것이죠. 액스 입장에서는 시위를 규탄할 경우 매출에 악영향을 미칠 것을 예상했겠지만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로 한 것이죠. 이럴 때 대부분의 기업은 침묵을 선택합니다. 미국 패밀리레스토랑 체인 ‘올리브가든’ 사례입니다. 얼마 전 CNN 유명 앵커인 앤더슨 쿠퍼의 방송 발언이 논란의 시초였습니다. 폭력 시위대가 체포되지도 않고 해산하는 것을 보고 분개한 쿠퍼는 “저 무리들은 (음식점) 올리브가든과 (숙소) 홀리데이인으로 돌아가 무용담을 떠들어댈 것”이라고 말했죠. 폭스뉴스 등 트럼프 지지층에서는 “부자 좌파의 엘리트주의”라며 쿠퍼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렸습니다. 쿠퍼는 미국의 손꼽히는 부호인 밴더빌트 가문 출신이기 때문이죠. 올리브가든이나 홀리데이인은 ‘대중 브랜드’ 이미지가 강합니다. 그러자 쿠퍼는 살짝 꼬리를 내리며 “개인적으로 올리브가든에 잘 간다. 거기 브레드스틱이 맛있다”면서 “당시 긴박한 상황을 전하려다 보니 말이 잘못 나왔다”고 해명했습니다. 쿠퍼가 소속된 CNN과 폭스뉴스가 올리브가든을 놓고 입씨름을 벌이는 동안 정작 올리브가든은 아무런 반응도 내놓지 않았습니다. 홀리데이인도 마찬가지로 ‘노코멘트’ 전략을 택했습니다. 일각에서는 “‘폭력시위 규탄’ ‘평화 존중’ 정도의 메시지는 내놓아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지만 두 회사 모두 조용했습니다. 이 같은 침묵 전략을 두고 “비즈니스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었습니다. 트럼프 지지자들이 한바탕 시위를 벌인 뒤 체인점이 많고 가격대가 저렴한 올리브가든이나 홀리데이인을 애용한다는 것은 꽤 알려진 사실이었으니까요. 2013년 흑인 소년 트레이본 마틴 총격 사건 때 등장했던 스키틀즈도 비슷한 사례입니다. 당시 비무장 상태의 마틴은 편의점에서 스키틀즈 한 봉지와 아이스티를 사고 집으로 돌아가다가 경찰관 조지 짐머만의 총격에 사망했고, 짐머만은 이후 재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죠. 인종차별 반대 시위가 거세게 일어나면서 스키틀즈는 평화의 상징으로 자리 잡게 됐습니다. 시위대는 스키틀즈를 한 봉지씩 들고 스키틀즈 마스크를 쓰고 시위를 벌였습니다. ‘무지개를 경험하라(Taste the Rainbow)’라는 스키틀즈 광고 문구 자체가 인종차별 반대 시위와 딱 들어맞은 컨셉이었죠. 홍보 효과를 누리면서 스키틀즈의 매출도 올랐습니다. 그러나 스키틀즈는 판결 때나 이후 벌어진 시위 때나 어떤 반응도 내놓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사회적 논란을 둘러싼 기업들의 마케팅 기법도 점차 변하고 있습니다. 의회 난입 후 많은 기업들은 ‘침묵’보다 ‘의견’을 택하고 있습니다. “폭력 규탄” “민주주의 수호”에서부터 “대통령 탄핵” “권한 박탈”에 이르기까지 자기 목소리를 낸 기업은 코카콜라, 벤&제리스 등 줄잡아 30개 이상으로 추산됩니다. 미국 마케팅전문지 애드에이지는 “그 중에는 벤&제리스, 파타고니아처럼 평소 사회참여 정신이 투철한 기업이 있는가 하면 코카콜라, 셰브론 등 ‘미묘한 평판’을 가진 브랜드도 있다”고 말합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엑손모빌, 화이자 등 1만4000개 기업을 회원으로 거느린 보수 성향의 전미제조업협회(NAM)가 ‘트럼프 대통령의 즉각적인 사임’을 요구할 정도로 기업들의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고 합니다. 미국 전역에 트라우마를 안겨준 이번 사태를 통해 기업들의 사회의식도 확실히 변하고 있는 듯합니다.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시위대의 국회의사당 난입으로 풍비박산이 난 미국 도널드트럼프호(號)에서 각료와 참모들의 탈출이 줄을 잇고 있습니다. 가장 먼저 뛰어내린 사람은 멜라니아 트럼프 여사를 보좌해온 스테파니 그리셤 영부인 비서실장. 그녀는 난입 사건이 벌어지고 난지 2시간 뒤 “물러나겠다”고 밝혔습니다. “영부인 비서실장이 가장 먼저 사표?” 많은 사람들이 의아하게 생각했죠. 평소 멜라니아 여사는 트럼프 대통령의 정국 운영과 거리를 둬왔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줄사표를 내려면 장관들이 먼저 움직이지 그리셤처럼 백악관 내부에서 일하는 참모들은 대통령 눈치를 보느라 좀 더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게 공통적인 시각이었습니다. 단 두 문장. 그리셤 실장이 CNN 등에 보낸 사임 성명은 매우 짧았습니다. “그동안 국가를 위해 봉사한 것은 영광이었다. 멜라니아 여사의 어린이돕기 운동을 비롯해 이 행정부의 업적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는 내용이었죠. 그러나 백악관 정치를 아는 이들은 “그리셤이 가장 먼저 떠날 줄 알았다”며 착잡한 표정을 감추지 못합니다. 그녀는 트럼프 대통령의 미움을 감수하고 직언해온 참모 중 한 명이었기 때문이죠. 그리셤 같은 소신파가 백악관에는 드물었습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대통령의 비정상적 국가 운영을 묵인하고 동조했던 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파 참모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몇 달 전 멜라니아 여사를 둘러싼 ‘태틀러 커버 실종사건’은 그리셤의 성향을 잘 보여줍니다. 태틀러는 영국의 유명한 패션가십 잡지입니다. 멜라니아 여사는 지난해 태틀러 11월호와 단독 인터뷰를 했습니다. 대선을 코앞에 둔 시점에 선거홍보성 인터뷰였죠. 그런데 멜라니아 인터뷰가 실린 11월호 표지모델은 메건 마클 영국 왕손빈. 미국 퍼스트레이디 정도를 인터뷰했으면 당연히 커버도 장식하는 것이 관례입니다. 하지만 태틀러 표지에는 대문짝만한 메건 마클 사진과 함께 멜라니아 인터뷰는 안내문구 정도만 실렸습니다. 당시 태틀러 인터뷰를 성사시킨 것이 바로 그리셤 실장이었습니다. 태틀러 측은 그리셤이 인터뷰 계약만 했지 표지모델 계약은 하지 않았다고 밝혔습니다. 미국의 많은 친(親)트럼프 전문가들은 그리셤에게 비난을 퍼부었습니다. “커버 모델도 못 된 인터뷰라니 퍼스트레이디 위신이 뭐가 되느냐” “수많은 미국 언론을 놔두고 왜 표도 안 되는 영국 매체와 인터뷰했느냐”는 것이었죠. 그리셤 실장은 이런 공격에 대꾸하지 않았지만 주변 사람들에게 털어놓은 얘기에 따르면 “이런 때일수록 멜라니아 여사와 트럼프 대통령을 덜 부각시켜야 한다”는 것이었죠. 그녀는 “트럼프 대통령의 대선 캠페인이 극우화되면서 일반 대중과의 괴리감이 커지는 상황에서 멜라니아 여사가 멋진 옷을 차려입고 환하게 웃는 표지모델로 등장하는 것은 오히려 역효과를 낼 수 있다”고 설명했다고 합니다. 그러고 보면 흔히 ‘신비주의’라고 불리는 멜라니아 여사의 영부인 활동 자제 스타일이 이해가 됩니다. 모델 출신이니 딸 이방카 백악관 선임보좌관처럼 앞에 나서 활동할 줄 알았는데 대통령 사저가 있는 이스트윙에서 비교적 조용하게 지냈습니다. 멜라니아 여사를 백악관 입성 초기부터 보좌해온 그리셤의 머리에서 나온 것이라고 합니다. 교양이 넘치고 미스터리한 분위기의 재클린 오나시스 케네디 여사를 동경해온 멜라니아 여사의 개인적 취향과 딱 맞아떨어지는 것이기도 했죠. 그리셤 실장은 멜라니아 여사의 추천으로 트럼프 대통령을 직접 보좌하기도 했습니다. 2019년 7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대통령의 이미지 작업을 총괄하는 백악관 공보국장 겸 대변인을 맡았습니다. 공보국장 시절 그리셤은 또 다른 인터뷰 사건으로 백악관을 발칵 뒤집어놓은 적이 있습니다. 밥 우드워드 워싱턴포스트(WP) 부편집인이 트럼프 대통령을 인터뷰한 사건이었죠. 1회 인터뷰가 아니라 백악관 집무실에서 18회에 걸쳐 심층 인터뷰를 했는데요, 그 결과물이 지난해 9월 발간된 우드워드의 ‘격노(Rage)’라는 책입니다. 솔직히 이 책은 내용 자체보다 트럼프 대통령이 그동안 맹비난해왔던 “거짓 언론”의 정점인 WP와 장시간에 걸쳐 인터뷰를 했다는 사실이 더 큰 화제였죠. 주변의 반대를 무릅쓰고 트럼프 대통령에게 우드워드와 인터뷰하도록 설득한 사람이 그리셤이었습니다. “대통령의 다른 모습을 보여주려면 WP 같은 매체와 소통의 채널을 여는 것이 중요하다”고 끈질기게 설득했다고 합니다. MAGA파가 대세인 백악관에서 그리셤 같은 인물이 쉽게 살아남기 힘들겠죠. 그녀는 9개월간의 짧은 백악관 공보국장·대변인직에서 물러나 영부인 비서실장에만 전념하게 됩니다. 원래 자리로 돌아가서도 그녀의 기질은 여전했습니다. 신종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으로 트럼프 대통령이 병원에 입원했을 때 멜라니아 여사의 문병 문제가 관심사로 떠오르자 그리셤은 “전염 위험 때문에 안 간다”고 딱 자른 보도자료를 냈습니다. ‘아픈 남편을 극진하게 돌보는 아내’ 이미지를 만들고 싶었던 트럼프 충성파들은 또 한 번 그리셤에게 불만을 터뜨렸다고 합니다. 지금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에 은둔하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그의 정신 상태가 점점 불안정해지고 있다고 합니다. “진작 그리셤 같은 부하들의 말에 좀 더 귀 기울일 걸…”하는 회한에 잠겨있을까요. 그럴 것 같지는 않아 보입니다.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미국에서 조 바이든 행정부 출범을 앞두고 내각을 구성할 장관들이 속속 지명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든 미국에서든 장관이 된다는 것은 개인적인 영광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런데 장관이 되려면 꼭 거쳐야 하는 단계가 있죠. 바로 인사청문회입니다. 후보자 입장에서는 진땀나는 자리입니다. 미국은 우리나라와 달리 청문회가 정책과 현안 위주로 진행됩니다, 그러나 사전 준비에 많은 공을 들인다는 점에는 별로 차이가 없죠. 미국 장관 후보자들도 예상질문을 뽑아보고, 사전 리허설을 합니다. 지금쯤 워싱턴 정가에서는 바이든 초대 내각의 장관 후보자들이 받게 될 예상질문 목록이 돌아다닙니다. 각자 분야에 따라 다양한 질문을 받겠지만 공통된 질문을 꼽으라면 중국입니다. ‘차이나 리트머스 테스트’. 후보 밑에서 청문회를 준비하는 실무자들은 중국을 이렇게 부른다고 합니다. 순서의 문제일 뿐 중국에 대한 질문은 꼭 받게 될 것이고, 이에 대해 얼마나 빈틈없는 답변을 할 수 있는지가 장관 자질 결정에 중요한 잣대가 된다는 것이죠. 물론 중국이 워싱턴의 주요 관심사가 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수년 전 워싱턴특파원 시절 유명 싱크탱크들이 주최하는 포럼이나 컨퍼런스에 가보면 절반 정도는 중국을 주제로 다루더군요. 처음에는 재미있어서 몇 번 참석했지만 나중에는 “중국 말고는 할 게 없나”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중국 관련 행사는 언제나 청중이 꽉꽉 들어찹니다. 싱크탱크 입장에서는 가장 실패 없는 주제인 셈이죠. 중국을 보는 시각도 달라졌습니다. 조지 W 부시와 버락 오바마 행정부 초기까지만 해도 미국은 글로벌 무대에서 부상하는 중국을 보면서 ‘한계론’을 주장했습니다. 중국이 가지고 있는 내적 모순, 즉 민주주의 부재, 법과 질서 의식 결여, 독재적 정치구조 등으로 인해 성장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죠. 싱크탱크들은 유행처럼 ‘중국의 급성장’ ‘미국의 몰락’ 등을 얘기했지만 결론은 항상 “걱정할 것 없다”였습니다. 중국이 미국의 코앞까지 치고 들어오는 지금이야 그런 푸근한 만족감에 빠져 있을 경황이 없습니다. 청문회를 준비하는 장관 후보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외교안보를 다루는 국무·국방 장관, 미중 교역갈등에 관여하는 경제 관련 장관들 뿐만이 아닙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별로 관련이 없어 보이는 장관들도 중국 예상질문을 뽑아보느라 머리가 지끈지끈 아프다고 합니다. ‘청문회 코치’를 자처하는 미국 정치매체 몇 곳이 뽑은 예상질문에 따르면 교육장관은 ‘캠퍼스까지 침투한 중국 스파이망 대응책’에 대한 질문을 피해갈 수 없습니다. 응용 질문(?)으로 미 초중고교에 설치된 중국어 교실인 ‘공자학원’ 존폐 문제에 대해서도 확실한 답변을 준비해야 합니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지난해 “중국 공산당 침투”를 이유로 공자학원 폐지 방침을 밝힌 바 있죠. 농무장관은 “중국의 농산물 수입 중단이 촉발한 미국 농가 파산 대책을 말해보라”는 의원들의 질문에 시달릴 것으로 보입니다. 보건장관이야 당연히 신종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이 처음 발발한 것으로 알려진 중국 문제를 그냥 넘어갈 수 없겠죠. 상무장관 청문회에서는 중국 화웨이와 틱톡에 대한 후속 제재가 중요하게 다뤄질 것이 확실합니다. 예상질문을 제시하는 매체들은 친절하게 답변도 알려주네요. 구체적인 답변은 아닐지라도 의원들의 송곳 질문을 대응하는 요령을 보자면 “‘중국’과 ‘협력’을 결코 한 문장에 넣지 마라”가 눈에 띕니다. 아무리 할 말이 궁해도 “중국과 발전적인 협력관계를 도모해 나가겠다” 같은 교과서적인 답변은 피해야 한다는 것이죠. ‘협력(cooperation)’뿐 아니라 ‘조율(coordination)’ ‘상호의존(interdependence)’ 류의 단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단어들을 입에 올리면 “우리가 중국과 사이좋게 지낼 때인가”는 의원들의 질타를 감수해야 합니다. ‘중국과의 협력’이 아닌 ‘중국에 대응하기 위한 동맹국들과의 협력’에 중점을 두라고 청문회 코치들은 충고합니다. 특히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은 중국에 비교적 유화적 태도를 보였던 오바마 행정부 시절 정책결정직에 있었던 후보자들입니다. 오바마 시절에 국무부 부장관을 지낸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 후보자가 대표적인 사례죠. 그는 대중(對中) 강경파로 알려졌지만 그건 오바마 기준에서나 통하는 얘기일뿐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를 거치면서 정치권의 중국을 바라보는 시각도 현격한 조정을 거쳤기 때문입니다. 마르코 루비오 공화당 상원의원은 블링컨 후보자를 가리켜 “손님(중국)이 불편해 할까봐 온갖 신경을 써주는 주인장 같다”고 비웃고 있습니다. 하버드대 출신의 소장파인 벤 사스 공화당 상원의원은 청문회 후보자들에게 아예 ‘이런 답변을 준비하라’는 보도자료를 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 시절 국가안보 정책에 관여했던 지명자들은 중국이 변한 만큼 중국에 대한 자신의 견해가 어떻게 바뀌었는지 소상히 밝힐 준비를 하라. 이전 직책에 있을 때 어떻게 중국을 잘못 평가했으며 그 이유가 무엇인지 대해 답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중국에 대해 어떻게 접근하는지 밝혀라. 또한 만약 지금 중국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과거로 돌아간다면 어떻게 다른 정책을 펼 수 있었을지에 대해서도 리뷰하라.”정미경 기자mickey@donga.com}
《김영훈 대성그룹 회장(69) 집무실에 들어서면 색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집무실 한가운데 접대용 테이블에 가득 쌓여있는 책들이다. 족히 50, 60권은 될 듯한 책들 중에는 영어 원서들도 많이 눈에 띈다. 모두 김 회장이 관심을 두는 에너지·과학 분야 책들이다. 업무를 보다가 짬을 내서 읽는다고 한다. 김 회장은 산업계에서 독서파로 유명하다. 한 달에 10권 이상 읽는 ‘공부하는 최고경영자(CEO)’다. 김 회장은 지난달 에너지 분야에서 은탑 산업훈장을 받았다. 에너지산업 최고 공로자에게 수여하는 이 상은 최근 3년간 동탑이었다가 김 회장 수상을 계기로 은탑으로 격상됐다. 5일 서울 종로구 우정국로 집무실에서 가진 수상 후 언론과의 첫 인터뷰에서 김 회장은 에너지산업의 미래에 대한 청사진을 펼쳤다.》 “지금이 ‘팍스코리아나(한국 주도 세계질서)’를 여는 적기입니다. ‘팍스아메리카나’ ‘팍스브리타니카’만 있으란 법은 없지요.” 김 회장의 예언은 별로 허황되게 들리지 않는다. 풍부한 지식을 바탕으로 역사적 근거와 세계 신조류를 훤히 꿰뚫으면서 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그는 “현재 산업 각 분야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디지털 인공지능(AI) 혁명을 눈여겨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보통신기술(ICT)에서 글로벌 영향력이 입증된 한국 기업들이 에너지 부문에서도 빠르게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는 것이 그의 평가다. “태양광이나 풍력이 차세대 에너지로 각광받고 있다는 말은 자주 들어보셨을 겁니다. 그런데 태양은 맑은 날이 있으면 흐린 날도 있고, 바람은 불 때가 있는가 하면 잠잠할 때도 있어 에너지 공급 예측이 불가능하죠. 학술적으로 간헐성(인터미턴스)의 한계를 안고 있지요. 그래서 대두된 것이 에너지를 많이 저장해뒀다가 필요할 때 꺼내 쓰는 저장시스템(ESS)입니다. ESS로 일찍 눈을 돌린 것이 바로 한국입니다. 현재 LG화학, 삼성SDI 등이 세계 시장에서 강자로 통하죠.” 김 회장은 “또 다른 차세대 에너지인 원자력발전도 글로벌 관점에서 볼 때가 됐다”고 이어갔다. 국내에서 원전 문제가 이념의 틀에 묶여 있는 사이 벌써 세계에서는 ‘원전 르네상스’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치열한 개발 수주 경쟁이 이뤄지고 있다. “원전은 한국 러시아 중국의 점유율이 높습니다. 한국은 다른 두 나라에 비해 품질이 좋은 것으로 정평이 나 있지요. 미국, 유럽, 그리고 이들의 영향권 내 국가들에서 한국 원전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세계 시장이 눈앞에 펼쳐진 만큼 글로벌 경쟁을 할 때는 기업과 정부가 한 몸처럼 움직여야 합니다.” 김 회장의 주장이 무게를 가지는 것은 세계 90개국을 회원국으로 둔 세계에너지협의회(WEC) 회장직을 오래 맡아왔다는 것과 무관치 않다. 그는 2005년 아태지역 담당 부의장을 시작으로 공동회장, 회장, 그리고 현재 명예회장 직에 이르기까지 15년 넘게 WEC에서 영향력을 발휘해왔다. 인터뷰 도중 기자에게 보여준 사진들 속에는 그가 WEC 회장 자격으로 대통령도 만나기 힘들다는 사우디아라비아 에너지장관, 중국 정부 에너지총괄책임자 등과 나란히 대화하는 모습이 찍혀 있다. 김 회장은 “석유 한 방울도 나지 않는 나라, 그런 나라의 대기업도 아닌 중견기업 대표가 WEC 리더십 자리를 장기간 유지해왔다는 것이 바로 한국의 저력을 방증하는 것 아니겠냐”고 겸손하게 말했다. 그는 글로벌 리더인 동시에 대성그룹이라는 한 기업의 책임자이기도 하다. 1947년 연탄 찍어내는 회사로 출발해 올해로 창립 74주년을 맞은 대성그룹은 주력사업인 도시가스 외에 태양광 및 풍력 복합발전 시스템인 솔라윈 프로젝트를 비롯해 매립가스 자원화, 폐기물 에너지, 수소충전 등 청정에너지 분야로 확대하고 있다. CEO로서 좌우명을 묻자 그는 자신의 명함을 봐달라고 했다. 김 회장 이름 위쪽으로 성경에서 유래한 영어 문구 ‘신뢰받는 명성이 부보다 더 값지다(A good name is more desirable than great riches)’라고 써 있었다. 그는 “공익을 추구하는 것이 최상의 수익모델이라고 믿는다”는 말로 인터뷰를 마쳤다.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영어의 어원을 찾아가다보면 법에서 유래한 용어들이 많습니다. 수많은 ‘미드’에서 보듯이 미국인들은 워낙 법을 좋아하지 않습니까. 도널드 트럼프 시대에 미 사법 체계는 큰 변화를 겪었습니다. 요즘 트럼프 대통령은 유죄 판결을 받은 자신의 측근들 사면시키느라고 정신이 없죠. 얼마 전까지는 판사 교체에 전력을 쏟았습니다. 미국변호사협회(ABA)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임기 4년 동안 연방법원 판사 227명을 교체했습니다. 대법관 9명 중 3명, 항소법원 판사 179명 중 53명, 지방법원 판사 677명중 174명을 교체했죠. 대법원과 항소법원은 전체의 3분의 1, 지방법원은 4분의 1 수준입니다. 최고 기록은 아닙니다.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은 임기 4년 동안 이보다 더 많은 260명을 갈아치웠죠. 문제는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성향으로 판사들을 채워 넣다보니 수가 부족하고, 그래서 ‘수준 미달자’가 포함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트럼프 임명 판사 중 10명이 ABA의 ‘자격미달(unqualified)’ 도장을 받았습니다. 물론 ABA가 자격미달 판단을 내린다고 해서 임명에 지장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수치스러운 일인 것만은 분명합니다. 트럼프 정권의 판사 교체 열풍을 보면서 법조계와 언론을 중심으로 일찌감치 ‘대선 법적 다툼’ 우려가 터져 나왔습니다. 트럼프 진영이 오래 전부터 불복 소송을 계획하면서 이에 대비해 법원을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만들려고 한다는 것이었죠. 결과는 어떨까요. 트럼프 진영은 지금까지 53건의 대선 관련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모두 패하거나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했습니다. 상당수는 자신이 임명한 판사로부터 얻은 결과였죠. 일부는 트럼프 진영이 알아서 소송을 취하했고, 다른 일부는 증거자료 미비로 재판 시작도하기 전에 퇴짜를 맞았습니다. 어떤 사건은 트럼프 변호인들이 판사에게 질책을 당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습니다. 가장 먼저 나온 판결부터 보자면 펜실베이니아 주 제3순회항소법원(항소법원은 13개의 순회구역으로 나뉨)의 스테파노스 비바스 판사는 “선거가 불공정했다는 트럼프 변호인 측 주장은 매우 심각한 것이다. 그러나 불공정하다고 주장한다고 해서 선거가 불공정해지는 것은 아니다. 그 같은 주장을 하려면 구체적인 혐의와 증거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혐의도 없고 증거도 없다”고 판결했습니다. 비바스 판사는 트럼프 대통령이 2017년 임명했죠. 조지아 주 사건도 유명합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해 임명한 스티브 그림버그 연방지법판사는 트럼프 지지자로 유명한 린 우드 변호사가 제기한 투표결과 인증 중단 청원을 거부하면서 “마지막 순간에 제기하는 중단 요구는 혼란과 선거권 박탈 의심을 초래할 수 있다. 지금 이 시점에서 법적으로나 사실적으로나 근거가 없다”고 밝혔습니다. 가장 굴욕적인 사건으로는 위스콘신 판결이 꼽힙니다. 브렛 루드비히 연방지법 판사는 트럼프 진영의 우편투표 절차 무효 소송에 대해 “어떻게 이런 소송을 연방법원까지 가지고 올 수 있는지 이해하는 데 매우 매우 힘든 시간을 가졌다. 거의 기이하다”고 판결했습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이 올해 임명한 판사였죠. 이런 판결들이 연이어 나오는 데 대해 “애초에 소송 가치조차 없는 유치한 사건들”이라는 지적이 나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소송을 벌이는 이유가 법적인 정당성 확보가 아니라 지지자 결집을 위한 모양새를 갖추기 위한 것이라는 점에서 볼 때 수보다는 양이 중요하니까요.“‘트럼프 판사’는 트럼프 판사가 아니다(‘Trump judges’ are not Trump judges).” 요즘 미국에서 유행하는 말입니다. “‘트럼프가 임명한 법관’이라고 해서 트럼프에게 유리한 판결을 내리는 법관이 아니다”라는 뜻이겠죠. 2018년 트럼프 대통령이 사법부 판결을 트집 잡으며 “오바마 판사”라는 용어를 쓰자 존 로버츠 대법원장이 “우리에겐 ‘오바마 판사’나 ‘트럼프 판사’ ‘부시 판사’ ‘클린턴 판사’가 없다”고 반박한데서 유래한 말입니다. 로버츠 대법원장은 법을 공부하고 법에 대해 치열하게 연구하며 살아온 법관의 세계를 모독하고 모든 것을 거래로 재단하는 트럼프식 사고방식에 일침을 놓은 것이죠. 당시만 해도 “순진한 발언”이라는 비아냥거림을 듣기도 했지만 지금은 “이해가 된다”는 사람들이 많다고 하네요. 대선 소송전은 역설적으로 미국인들에게 법의 중요성을 실감하게 하는 계기가 된 것이죠.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아무도 내 몸에 이물질을 주사할 수 없어. 상상만 해도 끔직하다.” “정부가 강제적으로 백신을 접종시킨대. 이건 폭정이다!”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한 한국이 보기에는 화이자에 이어 모더나까지 전국 배포를 시작한 미국이 그저 부러울 뿐입니다만 정작 미국에서는 백신 접종 반대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지금은 백신 열풍에 휩싸여 겉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조만간 안티-백신 주장이 크게 터져 나올 가능성도 높습니다. 이를 선도하는 세력은 ‘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월드’라고 불리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열성 지지자들. 마스크 착용을 거부해 미국에서 코로나19가 걷잡을 수 없이 퍼지는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사람들이죠. 완패할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나름 선전한 트럼프 대선 성적표에서 보듯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것이 바로 트럼프 열성 지지파들입니다. 지금 ‘MAGA 월드’에서는 코로나19 백신 거부 운동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그냥 ‘트럼프 열성 지지자’라고 한데 묶어 얘기하지만 사실 이들도 들여다보면 매우 복잡합니다. 흔히 ‘큐어넌(QAnon)’이라고 불리는 극우 성향 음모론자, 반과학이성주의자, 반정부주의자, 복음주의자 등이 섞여 있습니다. 큐어넌 성향의 소셜미디어 인플루엔서 디애나 로레인은 최근 인기 웹 프로그램인 ‘인포워즈’에서 “예수님이 맞는대도 나는 안 맞을 거야(I don‘t care if Jesus takes it, I’m not taking the vaccine)”라며 백신 거부를 선언했습니다. 이 말은 트럼프 지지자들 사이에서 인기 구호가 됐죠. 트럼프 대선 패배 후 뜨는 보수 인터넷매체 뉴스맥스의 백악관 담당기자는 “코로나19는 자연 치유되는 병이다. 정치인들이 통제의 수단으로 백신을 이용하려는 것일 뿐”이라는 주장을 펴고 있죠. 폭스뉴스의 유명 앵커 터커 칼슨도 “조 바이든 차기 행정부가 강제 접종에 나설 것이다. 국가적 위기다”라고 겁을 주고 있습니다.이들이 백신을 거부하는 이유는 ‘과학적 근거 부족’, ‘개인 자유권 침해’, ‘바이든 정권 무조건 반대’ 등 다양합니다. 특히 상당수 트럼프 지지자들 사이에서는 요즘 ‘백신 ID’ 소문이 퍼지고 있습니다. 정부가 강제 접종을 시킬 것이고, 개인증명서로서 백신 ID를 발급할 것이라는 소문이지요. ‘포스트 코로나’ 세상에서는 백신 ID가 없으면 안 되고, 심지어 취직도 할 수 없다는 가짜뉴스입니다. 바이든 차기 정부는 강제 접종 방침을 밝힌 바 없습니다. 또한 미국 영국 등 백신 배포에 속도를 내고 있는 국가들에서는 접종 증거로서 백신 ID를 발급하겠지만 이를 여권 같은 개인 신분 증명으로 활용할 계획은 없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이런 가운데 최근 상원 백신 관련 청문회에 전미내과외과의사협회(AAPS) 소속 증인들이 출석해 논란이 되기도 했습니다. AAPS는 권위 있는 ‘전미의사협회(AMA)’와 명칭은 비슷하지만 사실은 정부의 의료정책 관여를 반대하는 단체로, 모든 종류의 백신 접종을 거부합니다. 제인 오리엔트 AAPS 상임이사는 상원 국가안보·정무 위원회 청문회에서 “아직 코로나19 백신 효과가 충분히 입증되지 않았다”며 “특히 생식 기능에 위험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당연히 반발 여론이 터져 나왔죠. “백신 배포가 시작되는 시점에 의회가 왜 이런 주장을 펼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주느냐”는 것이죠. 그도 그럴 것이 미국에서는 백신을 주저하거나 회피하는 민심이 아직 크기 때문입니다. 의학계에서는 백신이 집단면역 효과를 낼 수 있는 국민 접종 수준을 70~80%로 보고 있죠. 최근 의료 전문조사기관 카이저 패밀리재단 조사에 따르면 미국인의 71%가 백신 접종 의사가 있다고 밝혔습니다. 공화당 지지자들의 주저하는 비율이 42%로 높았고, 반면 민주당 지지자들은 12%만이 주저한다고 밝혔습니다. 이런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의 애매한 태도가 지지자 그룹은 물론 보수적 미국인들의 백신 불신을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스스로 마스크를 벗었듯이, 자신이 발신하고자 메시지는 다양한 제스처로 지지자들에게 전하는 리더죠. 그는 백신 접종에 대해서는 별다른 말이 없습니다. 전임 대통령들은 물론 바이든 당선자까지 “TV 카메라 앞에서 접종 하겠다”는 계획을 밝히고 있는 데도 말이죠. 물론 개발 및 승인 배포 과정을 신속하게 이뤄내는 트럼프 행정부의 대(對) 코로나19 ‘초고속(워프 스피드) 작전’ 자체가 백신의 중요성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하지만 “언제 백신을 맞을 건지 빨리 밝혀라”는 요구가 터져 나오는데도 트럼프 대통령 측은 “아직 접종 계획이 없다”고만 말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케일리 맥커내니 백악관 대변인은 “대통령은 백신 접종에 반대하지 않는다. 다만 최근 코로나19에 걸렸다가 회복됐기 때문에 급히 접종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건강상의 이유보다는 지지자들의 눈치를 보고 있다는 분석이 더 맞아 보입니다. 지금처럼 대선 불복 소송전으로 지지자 결집이 중요한 시기에 이들이 거부하는 백신 접종에 급히 나설 필요가 없다고 보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정권 이양 시점에 ‘백신을 맞네 안 맞네’ 문제로 미국은 또 한번 시끄러울 듯 합니다.정미경 기자mickey@donga.com}
파리바게뜨는 유난히 힘들었던 올해를 잘 마무리할 수 있도록 “우리가 서로의 산타가 되자”라는 캠페인을 전개한다. 우선 미국의 ‘톰 브라우닝’ 작가와 협업을 통해 ‘거리 두기로 휴가가 생긴 산타클로스’ 케이크 시리즈를 내놓았다. 촉촉한 초콜릿 스펀지 케이크 시트에 초콜릿 가나슈 크림을 얹어 조화시키고 산타클로스 장식물을 올린 ‘산타는 휴가 중’ 케이크 등이 있다. ‘펭수’가 산타로 변신한 초콜릿 케이크 ‘펭수 산타와 함께 메리크리스마스’도 선보인다. 레트로 감성을 반영한 케이크로는 커피향의 모카 케이크 위에 눈 덮인 집 모양의 장식물을 얹은 ‘반짝반짝 빛나는 모카하우스’가 있다. 기존 스테디셀러인 우유 생크림 케이크 위에 신선한 생딸기와 크리스마스 문구의 토퍼를 얹은 ‘크리스마스 시그니처 생크림 케이크’도 찾아볼 수 있다. 과자류로는 산타의 모습을 담은 다회용 파우치를 귀여운 곰 모양의 구움과자로 채운 ‘산타가 주는 선물 주머니’를 내놓았다. 홈파티족을 위한 ‘집콕 파티 패키지’도 한정 판매한다. 한편 파리바게뜨는 전국 3400여 매장 내에 ‘QR코드(제로페이)’가 삽입된 미니 자선냄비를 설치하는 등 디지털 기부 방식을 도입해 고객 참여형 기부 활동도 전개한다.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