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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린 데이비스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는 14일 “북한이 나쁜 행동을 중단하는 것만으로 보상받는 일은 더이상 없을 것”이라며 북측에 비핵화를 위한 구체적 조치를 취하라고 압박했다. 미국 측 6자회담 수석대표인 데이비스 대표는 서울 종로구 도렴동 외교부 청사에서 임성남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 면담한 뒤 기자들과 만나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하지 않는 것은 좋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며 이렇게 말했다. 북한 문제를 풀기 위한 중국의 역할과 관련해 데이비스 대표는 “중국은 북한의 선택을 명확히 하는데 도움을 주고 북한이 비핵화의 길로 돌아오는 것의 중요성을 압박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고 답변했다. 그는 15일 중국 베이징으로 이동해 우다웨이(武大偉) 한반도사무특별대표와 북한 문제를 협의한다.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윤병세 외교부 장관(사진)이 14일로 예정됐던 취임 후 첫 내외신 브리핑을 당일 오전에 갑자기 연기했다.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의 성추행 의혹 사건에 대한 질문이 몰릴 것을 우려한 탓이다. 외교부는 이날 오전 10시경 “오후 2시 반에 예정돼 있던 장관 내외신 브리핑을 27일로 연기한다”고 출입기자들에게 통보했다. 외교부 고위당국자는 갑작스러운 일정 변경에 대해 “외신 기자들도 참석하는 기자회견에서 ‘윤창중 사건’이 거론될 경우 방미의 외교적 성과를 설명하려던 브리핑의 취지가 무색해지지 않겠느냐”고 설명했다. 외교부는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진행하던 대변인의 정례브리핑도 이날은 열지 않았다. 외교부는 전날 밤까지만 해도 윤 장관의 내외신 브리핑을 그대로 진행할 계획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의 첫 방미와 한미 정상회담을 수행한 윤 장관은 브리핑을 통해 그 성과를 소개하고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와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에 대한 한미 간의 조율 내용을 설명할 예정이었다. 윤 장관은 12일 한 방송프로그램에 출연해서도 방미 성과와 윤 전 대변인의 성추행 의혹 사건은 별개임을 강조하며 “외교적 파장은 전혀 우려할 필요가 없다”고 강조했다. 그랬던 윤 장관이 내외신 브리핑을 전격 연기한 것을 두고 내외신 기자들 사이에서는 “결국 우려할 만한 외교적 파장이 있음을 자인한 셈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북한은 10일 박근혜 대통령의 첫 방미와 한미 정상회담 결과에 대해 ‘전쟁전주곡’이라며 거칠게 비난했다. 북한의 대남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대변인은 이날 조선중앙통신 기자와의 문답에서 “남조선 당국자(박 대통령)의 이번 미국 행각은 조선반도와 지역정세를 긴장시키고 전쟁 위험을 증대시키는 위험천만한 전쟁전주곡이며 반공화국 결탁을 강화하기 위한 동족대결 행각”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대변인은 “우리는 현 남조선 당국에 대해 인내심을 가지고 주시하고 있다. 올바른 선택을 해야 할 당사자는 바로 남조선 당국자”라고 밝혀 향후 남북대화 가능성에 대한 여지를 남겼다.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국제무대에 데뷔는 했으나 갈 길은 첩첩산중.’ 박근혜 대통령이 8일 미국 의회 상·하원 합동연설에서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서울 프로세스)’을 제안하면서 정부의 동북아 외교 프로젝트에 본격적인 시동이 걸렸다. 외교부는 박 대통령의 방미 일정이 마무리되는 대로 북미국과 동북아국, 한반도평화교섭본부 등이 참여하는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이 구상을 구체화하는 데 집중할 방침이다. 그러나 구상 실현의 동반자가 돼야 할 주변국들의 반응이 미지근해 당초 기대만큼의 속도로 성과를 내기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가 벌써 나온다. 워싱턴에서 이 구상을 발표할 기회를 내어준 미국조차 아직 분명하게 이에 대한 지지나 공감을 표시하지 않고 있다. 7일 한미 정상회담 후 브리핑에서 윤창중 청와대 대변인은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에 대해서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지지했다”고 밝혔지만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에 대해서는 “두 정상이 협의를 가졌다”고만 전했다. 이에 대해 외교부 당국자는 “미국이 정식 멤버로 들어가야 하는 다자협력 구상에 대해 선뜻 공개 지지를 해줄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말했다. 화춘잉(華春瑩)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9일 “박 대통령이 방미 기간 제안한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의 목표와 취지를 적극적으로 평가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우경화가 심화되는 일본과 이에 거세게 반발하는 중국의 협력을 동시에 기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한국 정부 관계자는 말했다. 외교부 안팎에서는 ‘서울 프로세스’라는 명칭을 부담스러워하는 시각도 있다. 주요 2개국(G2)인 미국과 중국이 동북아 지역의 외교 이니셔티브를 놓고 힘겨루기를 하는 상황에서 한국이 섣불리 주도권을 쥐려는 모양새가 되면 G2의 적극적인 지지를 끌어내기가 쉽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정부는 일단 북핵이나 북한 인권 같은 민감한 외교 현안이 아니라 환경문제와 재난구조, 사막화, 원자력 안전 등 연성 이슈를 중심으로 접근할 방침이다.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박근혜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7일(현지 시간) 워싱턴 정상회담에서는 제3국인 중국이 주요 키워드로 등장했다. 두 정상이 북한 문제의 해법과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 등 다자협력 방안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중국의 역할과 그 중요성에 공감했기 때문이다. 두 정상은 회담에서 북한 문제와 관련한 중국의 역할에 대해 여러 가지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고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밝혔다. 한미 양국이 중국의 달라진 대북 기조를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평가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박 대통령은 한미 양국이 앞으로 북한 문제를 풀어나가기 위해 중국을 어떻게 설득할지, 북-중 사이에 어떤 지렛대를 집어넣어 북한의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을지 등에 대한 구상도 회담에서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박 대통령은 회담 직후 기자회견에서 “북한이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으로 나오는 데에는 중국의 영향도 많기 때문에 중국도 이에 동참해서 갈 수 있도록 우리가 노력해 나가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중국이 북한의 미사일이나 핵실험에 대응하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 채택에 동참했고 이를 충실히 이행하겠다는 입장을 (갖고 있음을)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또 박 대통령은 “이런 중국과 러시아의 건설적인 노력은 국제사회가 북한 핵 불용이라는 단합된 메시지를 보내는 데 굉장히 긴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박 대통령은 워싱턴포스트(WP)와의 인터뷰에서도 “중국이 (북한에) 더 많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물질적인 면에서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공동 기자회견과 언론 인터뷰를 통해 대북 메시지만큼 강한 대중(對中) 메시지를 함께 던진 셈이다. 중국은행(Bank of China)은 7일 북한 조선무역은행에 대해 모든 금융거래를 중단하고 계좌를 폐쇄했다고 밝혔다. 미국 재무부가 3월 제재 리스트에 올린 조선무역은행은 북한의 유일한 공식 해외송금 및 대금지급 창구이다. 중국의 주요 은행이 이 은행의 제재에 동참했다는 것은 중국의 대북정책 변화를 감지할 수 있는 중요한 신호로 받아들여진다. 앞으로 중국은행뿐 아니라 중국 내 다른 은행들도 제재에 동참하게 되면 북한은 달러 확보에 큰 어려움을 겪게 된다.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한국의 ‘올빼미파’가 미국 ‘대북 관망파’의 관심을 이끌어낼 수 있을까. 6일(현지 시간) 미국 워싱턴 백악관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간 첫 정상회담에서 얼굴을 맞댄 양국 외교안보 라인의 상견례 관전 포인트다. 미국 측 참모들은 대북 강경파도 대화파도 아닌 ‘대북 관망파’로 불리곤 한다. 워싱턴 외교가에서는 “오바마 행정부가 북한과의 양자 대화를 몇 차례 시도했지만 잇단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으로 낭패감이 크다. 북한을 어떻게 다룰지 몰라서 관망하며 박근혜정부의 대북 행보를 예의주시하고 있다”는 평가가 많다. 이런 미국 외교 라인을 상대해야 하는 한국의 외교 참모들은 ‘올빼미파’를 자처해 왔다. 매파의 강압전략과 비둘기파(온건파)의 대화전략 중에서 장점만 취하는 제3의 전략을 취하겠다는 의미다. 한국 올빼미파는 미 대북 관망파의 북핵과 북한 문제에 대한 관심을 끌어올려 최적의 해법을 함께 찾아 실천하도록 이끌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한국 측에서는 윤병세 외교부 장관, 주철기 대통령외교안보수석비서관, 김형진 외교비서관과 문승현 북미국장이 배석했다. 임성남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 청와대 국가안보실의 김홍균 국제협력비서관 등도 동행했으나 이들은 공식 수행단 리스트에는 포함되지 않았다. 미국 측에선 토머스 도닐런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국가안보보좌관과 대니얼 러셀 NSC 아시아담당 선임보좌관, 윌리엄 번스 국무부 부장관, 조지프 윤 동아태 담당 차관보 대행, 제임스 줌월트 선임차관보 등이 나왔다. 존 케리 국무장관은 현재 러시아를 방문하고 있어서 불참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 “한국에 대한 집중도가 떨어지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미국 측 외교안보 라인은 대부분 오랫동안 한반도와 동북아 문제를 다뤄온 전문가들이다. 리더형보다는 참모형이 많다는 평가가 나온다. 주 수석의 카운터파트인 도닐런 국가안보보좌관은 국무장관 후보로도 거론됐던 실세 인사로 정치 감각이 뛰어나고 상황 판단이 빠른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지난해 한국과 미사일 사거리 연장 협상에 나서 날 선 신경전을 벌이기도 했다. 장관급인 그의 카운터파트로는 김장수 국가안보실장이 더 맞는다는 지적도 있다.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 자리에 내정된 것으로 알려진 러셀 선임보좌관은 오바마 1기 행정부 때부터 백악관에서 외교안보 현안을 다루면서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 사건과 두 차례의 북한 핵실험을 모두 다뤘다. 한국 측 인사들과도 두루 친하다. 특히 김형진 외교비서관과는 그가 워싱턴에 근무할 당시 매일 통화하다시피 할 정도로 긴밀히 의견을 조율하며 친분을 쌓은 것으로 알려졌다. 문승현 국장과 그의 맞수 격인 줌월트 선임차관보는 이번 정상회담의 일정, 의제, 의전 등 실무 전반을 맡아 집중적으로 호흡을 맞췄다. ‘한미동맹 60주년 공동선언’ 문구 등은 마지막까지 조율 작업을 계속했다는 후문이다. 이 때문에 문 국장은 거의 한 달간 밤을 꼴딱 새우고 일하는 근무 패턴을 반복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덕수 전 주미대사 밑에서 공사참사관을 지내며 쌓은 워싱턴 내 탄탄한 인맥을 자랑하는 그는 이번 정상회담을 코앞에 두고 북미국장 자리로 승진해 주목받았다. 줌월트 선임차관보는 국무부 일본과장과 주일본 대사관 공사를 지낸 ‘저팬 스쿨’ 멤버지만 최근 한국을 수시로 드나들며 한반도 현안 연구에 집중해왔다고 한다. 외교부 당국자는 “미국 측 인사들은 대부분 오랫동안 북한을 다뤄온 경륜의 소유자들이지만 그만큼 피로감과 실망감도 누적된 상태”라며 “한국의 외교안보 담당자들이 이들에게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와 동북아평화협력 구상을 이해시키고 북한 문제 해결에 다시 적극적으로 나서도록 동력을 불어넣는 일이 중요하다”고 말했다.이정은 기자·워싱턴=이재명 기자·신석호 특파원 lightee@donga.com}
《 박근혜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7일(현지 시간) 정상회담 뒤 발표한 ‘한미동맹 60주년 기념 공동선언’에 대해 윤창중 청와대 대변인은 “향후 수십 년간 양국의 새로운 발전 방향을 제시한 문서”라고 밝혔다. 안보와 경제 동맹을 넘어 양국 국민의 교류와 협력을 강화함으로써 지난 60년을 넘어서는 새로운 한미동맹 관계를 만들겠다는 양국 정상의 비전이 담겨있다는 것이다. 이는 2009년 6월 당시 이명박 대통령과 오바마 대통령이 발표한 ‘한미동맹 공동비전’보다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것이다. 공동비전이 양국 협력을 정치 경제 사회 환경 등 다양한 분야로 확대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면 이번 공동선언은 확대된 협력 속에서 양국 국민이 실질적 혜택을 받는 방향을 찾는 데 주안점을 뒀다고 청와대는 설명했다.》 한미 양국 정상이 회담 및 오찬에서 가장 심도 깊게 논의한 의제는 북핵 문제와 한반도 위기 상황에 대한 해법이었다. 남북 간 마지막 소통 창구였던 개성공단까지 가동이 중단된 상황에서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북한 문제를 풀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는 데 두 정상이 공감대를 이뤘기 때문이다. 두 정상은 우선 북한의 도발 위협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양국의 긴밀한 대북 정책 공조를 확인하고 공고한 한미 연합방위태세를 유지시키는 것에 대한 의지도 재확인했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평화와 번영의 핵심 축으로서 한미 간 포괄적 전략동맹을 지속적으로 발전시켜 나간다는 데도 의견을 같이했다. 미국은 그동안 북한의 핵개발 문제에 직면해 있는 한국을 위한 맞춤형 ‘확장 억제(extended deterrence)’를 비롯해 동맹국인 한국의 안보를 위해 확고한 방위공약을 유지할 것임을 강조해왔다. 이날 정상회담 후 발표된 ‘한미동맹 60주년 기념 공동선언’에는 두 정상의 이런 공통 인식과 합의가 포괄적으로 담겼다. 공동선언은 기존의 ‘가치동맹’을 넘어 ‘신뢰동맹’이라는 표현을 써서 두 나라가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공동 대처하는 것은 물론이고 미래의 평화통일을 위한 노력도 함께할 것임을 천명했다. 윤창중 청와대 대변인은 “공동선언이 ‘한반도의 장래’에 대한 평가를 바탕으로 양국 관계의 새 발전 방향을 제시했다”고 평가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회담과 오찬에서 박근혜정부의 외교안보 정책 양대 축인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와 동북아 평화협력구상에 대해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게 설명했다. 이는 박 대통령이 첫 방미를 앞두고 가장 심혈을 기울여 준비해온 내용이기도 했다. 특히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에 대해 “북한이 도발하면 반드시 대가를 치르도록 하겠지만 올바른 선택을 한다면 대북 인도적 지원을 비롯한 신뢰 프로세스를 가동시킬 수 있다”며 향후 북한 문제를 주도적으로 풀어내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 프로세스’로 불리는 동북아 평화협력구상과 관련해서는 한미 동맹을 바탕으로 하되 한반도 주변국들과의 긴밀한 다자 협력을 통해 북한을 국제사회로 끌어내겠다는 의지를 밝혔다고 정부 관계자가 전했다. 한미중 3국 협력을 비롯해 중국이 북한에 대한 전략적 판단을 다시 해볼 수 있도록 설득할 외교정책 방향도 제시했다고 한다. 오바마 대통령은 고개를 끄덕이며 박 대통령의 이야기를 경청했다고 한 배석자는 전했다. 두 정상은 회담에서 ‘북한의 잘못된 행동에는 단호히 대응하되 대화의 문은 열어두겠다’는 의사도 재확인했다. 북한의 운명은 북한의 선택에 달려 있음을 분명히 밝힌 것이다. 외교부 당국자는 “오바마 대통령이 박 대통령의 신뢰 프로세스에 대한 설명에 귀 기울이고 지지 의사를 재확인한 만큼 한국 정부가 미국과의 긴밀한 공조 속에서 한반도 문제를 진지하게 풀어낼 기반이 마련됐다”고 설명했다. 한국 주도 전방위 외교(Korea Initiative Diplomacy·키-디플로머시)의 모멘텀이 확보됐다고 이 당국자는 덧붙였다.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6일 취임 후 처음으로 유엔본부를 찾은 박근혜 대통령과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면담은 중견국 반열에 올라선 한국의 외교 지평을 넓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외교는 지금까지 북한 문제를 중심으로 한반도 문제에 집중돼 있었지만 이제는 빈곤과 기아, 테러, 기후변화 같은 글로벌 이슈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 외교부 안팎의 주문이기 때문이다. 한국은 2013∼14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비상임이사국으로 선출돼 뉴욕을 중심으로 관련 활동을 펼치고 있다. 한국인 최초로 유엔 수장이 된 반 총장은 재선돼 두 번째 임기를 맞고 있다. 한국이 ‘유엔 외교’를 본격화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 만큼 이를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유엔 안보리 이사국의 주된 업무는 내전, 테러, 대량살상무기(WMD)와 핵 확산 등 국제적 분쟁에 대응하는 것이다. 한국은 2월 이사국들의 순번제로 의장국을 맡아 대북제재 결의 2094호 채택을 추진했다. 시리아와 말리의 유혈충돌 사태와 관련해 인도적 지원, 유엔 평화유지군의 보호임무 등과 관련된 업무도 주도했다. 이런 한국을 향해 빈국 지원과 개발협력, 여성과 어린이의 인권 문제 등 국제문제 해결을 위한 참여를 확대하라는 요구도 커지는 분위기다. 외교부도 3월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전 지구적 도전과 위기 요인이 증대하면서 한국의 역할에 대한 기대와 요구도 높아지고 있다”며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중견국으로서 ‘지구촌 행복시대’의 구현에 능동적으로 기여하겠다”고 밝혔다. 외교부는 이를 위해 지난해 말부터 서울 본부와 주유엔 대표부의 담당 인력을 늘렸고 신동익 다자외교조정관, 백지아 유엔 차석대사 등으로 담당 라인도 재정비했다.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60주년을 맞는 한미동맹을 업그레이드하고 한반도 위기 상황의 돌파구를 찾기 위한 박근혜 대통령의 첫 해외 정상외교가 막을 올렸다. 6일부터 4박 6일간의 일정으로 진행될 박 대통령의 미국 행보는 향후 한국 주도의 남북관계 해법 찾기는 물론이고 글로벌 외교의 지평 확대에도 중대한 계기가 될 것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박 대통령은 취임 이후 열릴 첫 한미 정상회담을 위해 5일 오후 경기 성남시 서울공항에서 대통령 전용기편으로 출국했다. 박 대통령은 앞서 청와대 관저에서 허태열 비서실장과, 김장수 국가안보실장 및 9명의 수석비서관들과 티타임을 갖고 “미국 방문 기간 국정에 공백이 없도록 해 달라”고 당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정상회담은 7일 오전 11시 25분(현지 시간)부터 30분간 백악관에서 이뤄진다. 두 정상은 이어 오찬을 함께한 뒤 ‘한미동맹 60주년 기념 공동선언’을 발표하고 공동 기자회견을 열 예정이다. 박 대통령은 8일에는 미 의회에서 상·하원 의원들을 상대로 연설을 한다. 박 대통령은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 북핵문제를 포함한 대북 정책 공조방안을 중점적으로 다루고 향후 한미동맹이 새롭게 나아갈 방향 및 일본의 우경화 등 양국이 함께 풀어야 할 글로벌 이슈들을 폭넓게 논의할 방침이다. 실무 차원에서는 시한이 2년 연장된 한미 원자력협정, 양국 간 방위비 분담금 협상,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비롯한 경제통상 분야의 협력 등도 논의 대상이다. 박 대통령은 또 외교안보 정책의 양대 축인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와 ‘동북아 평화협력구상’에 대해 충분히 설명하고 미국 측의 지지를 이끌어낼 계획이다. 이를 통해 한국이 주도적으로 남북관계를 풀어갈 외교적 기반을 마련하겠다는 목표를 세워놓고 있다. 외교부 당국자는 “정부가 여러 루트를 통해 미국에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설명했지만 미국은 여전히 많은 궁금증을 갖고 있다”며 “이를 미국에 이해시켜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이번 한미 정상회담의 주요한 목표 중 하나”라고 말했다.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박근혜 대통령이 첫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5월 한반도 ‘게임 체인지’의 기회를 만들 것으로 기대합니다. 한국이 주도하는 북한과의 대화 국면으로 유도해 나가야 할 시기입니다.” 고려대 김성한 교수는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처음으로 이뤄지는 7일 한미 정상회담이 현재의 한반도 위기를 풀어낼 결정적 계기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 중요한 시점에 ‘잔인함’만 가지고 새로운 한반도를 설계할 수는 없지 않느냐”고도 했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최근 T S 엘리엇의 시를 인용해 “(북한과 일본 때문에)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한 발언을 염두에 둔 것이다. 김 교수를 비롯한 국내외 전문가들은 처음으로 백악관에서 마주앉게 될 박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간의 정상회담에 높은 기대감을 표시했다. 남북 간 마지막 통로였던 개성공단까지 폐쇄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외교적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깔린 바람이다. 이들은 “첫 정상회담인 만큼 과욕을 부리지 말고 두 정상 간의 친밀감과 신뢰부터 쌓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 “유연함 섞어 한반도 정세 전환의 기회로” 김 교수는 국내의 대표적인 외교안보 전문가이면서 최근까지 외교부 제2차관으로서 외교의 실무현장도 경험했다. 박근혜정부의 조각이 늦어지면서 새 정부 출범 이후인 3월 중순까지 캠퍼스에 돌아가지 못한 채 외교 현안을 챙겼다. 5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김 교수는 “미국이 북한의 끝없는 도발과 배신에 대한 피로감을 갖고 있지만 역설적으로 그 피로감 때문에 한국이 취하는 조치에 대한 수용성도 상당히 높아져 있다”며 “4월이 ‘강(强) 대 강(强)’의 대치 국면이었다면 이제는 대화의 유연함을 섞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미국이 한국에 제공하는 ‘확장억제(extended deterrence)’의 신뢰도를 높이고 이를 이번 정상회담에서 재확인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김 교수는 덧붙였다. 박 대통령이 워싱턴에서 ‘서울프로세스’로 불리는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을 밝히겠다고 한 데 대해선 “그런 구상을 미국이 아닌 중국이나 일본에서 설명한다면 어떻게 되겠느냐”고 되물었다. 그러면서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은 한국이 북한 문제 등을 한미동맹만으로 해결하지 않고 주변국들과의 다자안보 협력을 통해 진행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라며 “박 대통령이 동맹국에 가서 이를 발표하는 것은 미국은 물론이고 주변국의 오해를 사지 않으면서 정책의 신뢰를 높일 수 있는 방법”이라고 평가했다. 정부가 의욕을 보이고 있는 한미중 삼각 협력 구상에 대해서는 “반관반민 형식을 넘어 3국이 정부 차원에서 북핵 같은 핵심 이슈를 건드리는 제 모습을 갖추는 데 그리 많은 시간이 안 걸릴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오바마 대통령과의 친밀감을 바탕으로 다져놓은 한미 정상 간 신뢰를 박 대통령이 이어갈 수 있을까. 이에 대해 김 교수는 “박 대통령은 ‘살인적인 미소’에다 직설적이라고 할 정도의 솔직함을 갖고 있고 국정 현안의 디테일에도 강하다”며 “여기에다 동북아의 첫 여성 대통령으로서 가지는 매력도 있으니 (인간적 매력의) 폭발적인 시너지를 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올해 60주년을 맞는 한미동맹과 관련해서는 “사람 나이 60이면 이순(耳順), 그러니까 귀가 순해져 남의 말을 듣고 순리대로 이해할 수 있게 되는 단계”라며 “한미 양국이 첨예한 이슈에 대해 자기주장만 관철하려 하지 않고 상대방의 입장을 파악하고 이해할 수 있는 관계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의 구상에 미국은 힘 실어줄 것” 다른 미국 전문가들의 조언도 김 교수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국립외교원 최강 교수는 5일 본보와의 통화에서 “박 대통령이 오바마 대통령과의 친밀감을 키우고 북핵 문제를 오바마 대통령이 관심을 기울이는 개인 어젠다로 만들어 놓는 것만으로도 이번 정상회담은 성과를 얻는 셈”이라고 말했다. 북핵 문제의 해결이나 돌파구 마련보다는 한반도 상황 관리에 초점이 맞춰진 워싱턴의 분위기를 바꾸려면 오바마 대통령부터 설득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최 교수는 “한국이 중국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명확히 설명할 필요도 있다”며 “동북아 외교의 큰 전략적 그림을 미국과 함께 그려 나가려면 이전 정부처럼 중국 관련 논의를 꺼리지 말고 이를 같이 전개해 나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연세대 김기정 교수는 “한반도 위기 상황의 직접 이해당사자인 우리나라와 태평양 건너 미국이 느끼는 위기의 강도가 다를 수 있다”며 “우리가 제안하는 한반도 평화 관련 구상을 미국이 충분히 이해하지 못할 경우 외교적 불협화음이 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박 대통령은 한반도 문제를 남 얘기하듯 하는 ‘유체이탈식 화법’이 아니라 한국의 절실한 입장에서 바라볼 수 있도록 미국의 대북 강경파들을 설득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미국 내 한반도 전문가들은 “박 대통령의 대북 정책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든 오바마 대통령은 박 대통령에게 힘을 실어주고 북한에 한미 갈등의 메시지를 주지 않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관측하고 있다. AFP통신은 4일 “오바마 대통령은 이번 정상회담의 최대 의제인 북한 문제에서 박 대통령의 대북정책 리더십에 전적으로 신뢰를 보낼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 통신은 “한국인은 박 대통령이 올 2월 미국을 방문해 환대를 받았던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와 같은 예우와 대접을 받는지 지켜볼 것이며 미국도 이를 잘 알고 있다”면서 “박 대통령은 오바마 대통령과 이명박 전 대통령 간에 형성됐던 친밀한 관계를 다시 구축하기 위해 힘을 쏟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스콧 해럴드 랜드연구소 연구원은 “박 대통령의 이번 방문은 실무방문이지만 오바마 대통령은 국빈방문급 대접을 해서 최대의 예우를 갖추고 언론의 관심을 받을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이정은 기자·워싱턴=정미경 특파원 lightee@donga.com}

“유네스코는 더이상 북반구 선진국들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이제는 남반구로 내려와야 합니다. 기아와 문맹, 난민, 극단주의자들의 테러에 시달리는 아프리카와 빈국 국가들을 위해서!” 올해 말로 예정된 유네스코 사무총장 선거에 도전한 라샤드 파라 주프랑스 지부티 대사(사진)는 가는 곳마다 이런 주장을 외친다. 그의 조국인 지부티는 인구 100만 명이 안 되는 아프리카의 소국이다. 파라 대사는 “지부티 정부 차원에서의 선거운동 지원을 기대할 수 없는 처지여서 대표단도 없이 일본인 아내만 동행한 채 ‘나 홀로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재선에 도전하는 막강한 경쟁자, 이리나 보코바 유네스코 사무총장을 상대해야 한다. 지난해 9월부터 전 세계 20개국을 돌고 최근 방한한 그를 1일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만났다. 파라 대사는 열악한 캠페인 상황에 개의치 않는 듯 자신감 넘치는 모습이었다. 파라 대사는 “아프리카의 난민 캠프에 학교를 세운다면 총을 든 소년병들의 삶을 바꿔놓을 수 있고 세계의 평화와 톨레랑스(관용)에 기여할 수 있다”며 “이런 게 바로 유네스코가 해야 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유네스코의 개혁이 기대만큼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도 지적하며 “파리 본부에 몰려 있는 직원들을 더 많이 해외 현장에 내보내는 식의 개혁을 지금 하지 않으면 유네스코는 10년 내에 존재감이 사라져버릴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유네스코에 관심이 많은 한국을 실망시키지 않겠다”며 한 표를 호소했다.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북한의 도발 위협 때문에 고조됐던 한반도의 긴장이 최근 진정 국면에 들어서고 남북대화 재개를 촉구하는 목소리도 커지면서 정부의 대북 인도적 지원 여부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인도적 지원의 본격 재개는 박근혜정부가 ‘강대강(强對强)’으로 치달아온 한반도 위기국면을 전환하기 위해 북한에 손을 내미는 첫 신호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박근혜정부는 출범(2월 25일) 직후만 해도 “정치적 상황과 상관없이 분배 투명성과 철저한 모니터링을 전제로 대북 인도적 지원은 계속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유엔아동기금(UNICEF)이나 세계보건기구(WHO) 같은 국제기구를 통해서 주로 지원하되 남한의 대북지원단체들도 일부 동참하는 방식이 검토됐다. 통일부는 류길재 장관 취임 직후 국내 대북지원단체들에 “가장 시급한 지원사업의 내용과 품목을 정리해서 제출해 달라”며 실태조사를 벌이기도 했다. 정부가 북한의 3차 핵실험 이후에도 유진벨재단의 결핵약 대북 지원을 허가한 것은 이런 정책기조를 반영한 조치였다. 3월 방북 승인을 받은 유진벨재단은 현재 북한에 들어가 의료지원 활동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북한의 대남 대미 위협이 계속되고 개성공단이 사실상 폐쇄되는 사태까지 벌어지면서 인도적 지원 논의는 소강상태를 맞았다. 외교부 당국자는 “북한에 인도적 지원을 하겠다는 정부의 의지에는 변함이 없다”면서도 “북한이 개성공단까지 문을 닫아버리는 지금의 상황을 좀 살펴볼 필요가 있다”며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현재의 한반도 위기 국면을 조성한 북한이 태도를 바꾸지 않는 상황에서 인도적 지원을 예정대로 진행할 경우 당장 국민의 지지와 동의를 받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양운철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은 “현재 얼어붙은 남북관계에서 그래도 현실적으로 시행 가능한 것이 대북 인도적 지원”이라며 “향후 한국이 국제무대에서 발언권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대북지원의 명분을 쌓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탈북자 출신인 김병욱 동국대 강사는 ‘대북지원 예고제’ 실시를 제안하면서 “이는 북한 주민들도 ‘설 명절인데 남한에서 지원 안 오나’ 기대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 북한 주민들도 이제는 남한에서 지원되는 것이라는 것을 안다”고 설명했다.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북한에 5개월째 억류돼 있다가 최근 재판에 회부된 한국계 미국인 케네스 배(배준호) 씨의 석방을 위해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사진)이 방북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워싱턴의 소식통은 1일 “카터 전 대통령이 북한 측으로부터 초청을 받았고 (방북에) 긍정적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밝혔다. 또 다른 워싱턴 소식통은 “카터 전 대통령의 방북 의지가 강한 것으로 안다”며 “전직 국가수반 모임인 ‘엘더스 그룹’의 일원으로 방북한다면 미 정부와는 무관하게 진행되겠지만 오바마 행정부가 그의 방북을 막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카터 전 대통령은 방북이 성사되면 한국을 먼저 들를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 카터 전 대통령은 2010년에도 북한을 방문해 당시 불법입국죄로 북한에 수감돼 있던 미국인 아이잘론 말리 곰즈 씨를 데리고 귀국한 적이 있다. 북한이 배 씨를 체포한 지 5개월 만에 그의 재판 회부 사실을 공개하고 카터 전 대통령을 평양으로 초청한 것은 억류된 미국인의 석방이라는 ‘인질 외교’를 통해 북-미 대화 재개의 신호를 보내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카터 전 대통령 측은 일단 북한이 배 씨에게 무거운 형량을 선고한 뒤 구체적인 석방 조건을 제시할 것으로 보고 있다. 그 내용을 검토한 뒤 방북 여부를 최종 결정할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89세의 고령인 그가 29세의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를 못 만날 경우의 정치적 부담이 크다. 그는 2011년 ‘엘더스 그룹’의 일원으로 방북했을 때에도 김정일 국방위원장과의 면담을 성사시키지 못한 채 “북한의 선전전에 이용만 당했다”는 비난을 받았다.이정은 기자·김정안 채널A 기자 lightee@donga.com}

“돈을 벌 수 있는 곳으로 데려다주는 줄만 알았다. 중국인에게 팔려온 것을 알았을 때에는 도망갈 방법이 없었다. 매일 울면서 지낸 지 3개월쯤 지났을까. 다시 다른 곳으로 팔려갔다. 브로커는 ‘애 낳고 잘 살면 된다’고만 했다. 화장실조차 못 가는 지독한 감시에 지쳐 ‘차라리 북한에 돌아가게 해 달라’고 애걸했다. 대답 대신 몽둥이찜질이 돌아왔다.” 30일 ‘북한인권 개선을 위한 서울 국제심포지엄’이 열린 고려대 100주년기념관 대회의실. 탈북 여성 박모 씨(35)가 2005년 탈북하다 중국에서 인신매매를 당한 경험에 대해 입을 열자 회의장이 숙연해졌다. 그는 “열흘간 한 끼도 못 먹었던 생활고가 싫어 탈북한 날 인신매매 브로커의 안가에서 만난 북한 여성만 7명이나 됐다”고 토로했다. 탈북 여성들 대다수가 자유의 품에 안기지 못하고 인신매매의 덫에 갇히는 실상을 상세히 고발했다. 박 씨와 함께 증언에 나선 또 다른 탈북 여성 이모 씨도 “탈북 당시 브로커가 매일 2, 3명의 북한 여성을 안가로 데려왔다”고 했다. 그는 브로커가 15세 탈북소녀를 성폭행하는 것을 보고 “짐승만도 못한 놈”이라며 대들었다가 다음 날 온몸이 묶인 채 차 트렁크에 실려 강제 북송된 경험도 소개했다.○ “유엔의 북한인권 실태 조사 적극 지원해야” 국가인권위원회와 고려대가 공동주최하고 동아일보 화정평화재단이 후원한 이날 심포지엄에서는 나날이 악화되고 있는 북한의 인권 실태에 대한 통렬한 비판과 함께 대책을 촉구하는 참석자들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정치범수용소에서의 고문에서부터 국군포로와 납북자들, 탈북자들이 겪는 인권 침해까지 광범위한 북한의 인권 유린 문제가 도마에 올랐다. 토론자로 나선 유호열 고려대 교수는 “김정은의 취약한 권력기반과 불안전한 리더십, 3차 핵실험 이후의 강화된 군부강경파로 인해 북한의 인권 상황은 더 열악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지금 쟁점인 개성공단 문제도 중요하지만 미래 통일을 위해 더 중요한 북한 인권에 대한 관심이 뒤로 밀려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법무법인 화우의 김태훈 변호사는 “6·25전쟁 이후 최고조에 이른 한반도 위기의 본질이 북한 체제의 반인권성에서 비롯된 만큼 인권 문제를 정면에 내세우는 것이 (위기의) 진정한 해결책”이라고 말했다. 유엔인권이사회가 3월 설립을 결정한 북한인권조사기구(COI)의 지원 필요성도 논의됐다. 한국은 북한 인권 문제의 직접적인 이해당사자인 만큼 유엔 COI 활동의 실무지원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윤여상 북한인권기록보존소장은 “유엔을 중심으로 북한 인권에 대한 관심과 개입 의지가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 그런데도 박근혜정부는 역대 정부들과의 획기적 차별성을 보여주지 못한 채 국제사회가 견인하는 움직임에 끌려갈 처지에 놓여 있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이와 함께 아직까지 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하고 있는 북한인권법의 조속한 처리를 촉구했다. 탈북자 출신인 새누리당 조명철 의원은 “북한 주민의 삶은 위급하고 개선의 요구는 절박한데 우리는 아직 북한인권법 하나도 처리하지 못하고 있다. 독일 나치보다 더한 ‘인권무풍지대’를 향해 우리는 과연 어떤 행동에 나서고 있는 것이냐”고 절규하듯 말했다. 그는 감정이 북받치는 듯 눈시울을 붉히더니 한동안 울먹거렸다.○ “굶주림도 시급히 해결돼야 할 인권침해” 기아와 영양실조, 질병 등 사회적 권리의 침해로 인한 문제를 인권의 관점에서 보고 문제 제기의 수위를 높이려는 시도도 눈에 띄었다. 북한 정치범수용소의 실상을 고발한 ‘감춰진 수용소’의 저자 데이비드 호크 씨는 “유엔이 COI에 조사토록 한 9가지 분야 중 첫 번째가 ‘식량에 대한 권리 침해’라는 사실은 고무적”이라며 “해결될 수 있는 문제인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북한 사람들을 괴롭히고 있는 문제”라고 강조했다. 김근식 경남대 교수는 “대북 인도적 지원을 확대하는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하다”며 “특히 보수진영이 앞장서서 이를 요구한다면 북한 인권 개선을 위한 전략적 역할 분담 차원에서도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북지원단체인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본부의 강영식 사무총장도 “인도적 대북 지원은 남북 간 정치군사적 상황과 연계하지 말고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한다”며 “지원 여부를 둘러싼 이분법적 논쟁을 접고 이제 구체적인 방법을 고민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북한에서 인권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의 명단과 사진, 몽타주를 지금 당장 공개해야 합니다. 훗날 반드시, 반드시 인권 유린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임을 분명히 해야 해요.” 수잰 숄티 미국 디펜스포럼재단 대표(사진)는 북한 인권 문제의 심각성을 강조하면서 ‘훗날의 대가’라는 표현을 여러 차례 반복했다. 한국의 헌법과 법률에 따라 처벌이 가능한 북한의 인권침해 범죄자에게 이 사실을 분명히 알려야 인권침해를 조금이나마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지난달 30일 고려대 100주년기념관에서 열린 ‘북한인권 개선을 위한 서울 국제심포지엄’ 기조연설 후 기자와 만나 이같이 밝히고 “한국이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세계에서 가장 비극적인 북한의 인권 정책에 대해 북한 정권을 압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 내 북한인권단체인 ‘북한자유연대’도 이끌고 있는 숄티 대표는 북한자유주간 10주년 행사를 위해 최근 방한했다. 숄티 대표는 “라디오방송이나 대북전단을 통해 북한에 바깥세상의 정보를 계속 제공하고 이런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도 지속적으로 투자해야 한다”고 말했다. 북한으로 밀반입되고 있는 한국 드라마 DVD 등을 통해 이제는 최대 80%에 이르는 북한 주민이 바깥 정보에 접근하는 것으로 추산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한국에서 여성 대통령이 선출됐다는 사실은 탄압받는 북한 여성들에게 긍정적인 메시지를 주게 될 것”이라며 박근혜정부에 큰 기대감을 표시했다. 숄티 대표는 북한과 중국의 공조 때문에 최근 탈북자의 수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는 것에 우려를 표시했다. 그는 2일 주한 중국대사관에 “불법적이고 비인도적인 탈북자 강제 북송 정책을 버리고 탈북자를 보호해 달라”고 요청하는 편지를 전달할 예정이다.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탈북자 지원단체 물망초(이사장 박선영 전 의원)는 29일 “북한의 탄광지대에 국군포로 116명이 생존해 있는 것을 확인했다”며 이들의 명단을 공개했다. 이 명단에 따르면 2월 현재 함경북도 샛별군에 있는 고건원과 용북, 하면 탄광 등 3곳에 고령의 국군포로들이 생존해 있다는 것이다. 박선영 이사장은 “국군포로 문제만 나오면 정부가 무책임하게 ‘이미 다 돌아가셨다’고 말하는 사실이 너무 개탄스러워 개인적으로 정보를 입수했다”고 말했지만 구체적인 조사 방법은 밝히지 않았다. 이와 관련해 일부 전문가는 “116명 명단의 신빙성에 다소 의구심이 있다”고 말했다. 김민석 국방부 대변인은 “1990년대 이후 귀환한 국군포로와 탈북자들의 증언에 따라 정부는 국군포로 500여 명이 북한에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밝혔다.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한미일, 한중일은 서서히 지고, 한미중은 빠르게 뜨고 있다. 박근혜정부는 한미중 3국 간 협력이 북한 문제의 해결을 비롯해 한반도 정세를 결정지을 핵심 동력이 될 것으로 보고 외교력을 집중하고 있다. 안보협력인 한미일 공조와 한중일 3국의 지역 및 경제 협력이 일본의 역사 왜곡 도발, 중-일 간의 영토 분쟁 등으로 흔들리면서 한미중 협력이 한국 외교의 핵심 기대주로 떠오른 것이다. 정부 고위당국자는 28일 “박근혜정부의 2대 외교 어젠다인 한반도신뢰프로세스와 동북아평화협력구상 모두 미중의 협조가 결정적”이라며 “긴 안목으로는 한반도 통일까지 한미중의 삼각 틀 안에서 논의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당국자는 “정부가 한미중의 3각 협력에 전략적으로 많은 의미를 두고 관련 업무를 추진 중”이라며 “장기적으로 박근혜정부의 외교적 유산이 되도록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급부상하는 한미중 트라이앵글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최근 미국 중국의 고위 인사들과 만날 때마다 한미중 3국 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윤 장관은 27일 방한한 윌리엄 번스 미국 국무부 부장관을 접견한 자리에서 한미, 한중, 미중 간 고위급 전략대화가 강도 높게 진행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에 앞서 24일 중국 베이징에서 리커창(李克强) 총리 등을 만나 한미중 3국 전략대화를 공식 제안하면서 그 필요성을 역설했다. 외교부 당국자는 “외교부 일각에서 ‘미국이나 중국을 압박하는 모양새가 될 수도 있으니 윤 장관이 (한미중 강조를) 자제해야 하지 않느냐’는 말이 나올 정도”라고 전했다. 정부의 이런 외교정책 기조는 최근 일본이 유례없이 높은 강도로 과거사 도발을 이어가면서 더 탄력을 받는 분위기다. 7월 참의원 선거 등을 앞둔 일본이 과거사 문제를 정치적으로 계속 활용할 가능성이 큰 만큼 일본과의 관계 악화가 장기화될 수 있다고 정부는 보고 있다. 중국은 이미 5월로 예정됐던 한중일 3국 정상회의에 대한 거부 의사를 밝혔고 다음 달 3일 개최할 예정이던 3국 재무장관·중앙은행총재 회의의 참석도 전격 취소했다. 이와 관련해 미국은 일본 정부에 우회적으로 경고의 뜻을 전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통한 외교소식통은 “한미중의 결속은 북한뿐만 아니라 일본에도 ‘그런 식으로 하다간 동북아의 왕따가 될 수도 있다’는 엄중한 경고를 보내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 미국과 중국의 복잡한 속내 중국은 한국의 한미중 협력 제안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캠프에 참여했던 한 인사는 “1월에만 해도 ‘과연 한미중 전략대화가 가능할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는데 2월 북한의 3차 핵실험 이후 중국의 태도가 긍정적으로 바뀌는 게 느껴졌다”고 말했다. 최근 한중 간 1.5트랙(반관반민) 전략대화를 위해 방한한 중국 대표단은 한미중 전략대화를 먼저 언급해 한국 측을 놀라게 했다고 한다. 연세대 한석희 교수는 “한미중의 협력 틀이 갖춰지면 한반도 현안은 물론이고 통일이라는 궁극적 목표를 향해 한국이 상황을 주도할 여건이 마련되는 셈”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한미중 3각 협력을 본격화하기 위해서는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중국이 환경문제, 재난 대처 같은 비정치적 분야에는 긍정적인 태도를 보이지만 북핵 문제를 비롯한 핵심 안보 이슈를 한미중 3각 틀 내에서 다루는 것은 여전히 꺼릴 가능성이 높다. 미국은 정부의 한미중 전략대화 제안에 다소 유보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으로서는 중국과 일본이 극한 대립을 이어가는 상황에서 동맹국인 일본을 신경 쓸 수밖에 없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결국 한미중 3국 협력의 성사 및 성공 여부는 한국이 어떻게 한국 주도 외교, ‘키(KI·Korea Initiative) 디플로머시’를 발휘해 미중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가면서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확보하느냐에 달려 있다. 성신여대 김흥규 교수는 “한국이 한미중의 3각 협력을 주도적으로 끌어갈 역량을 갖추지 못하면 미국 중국의 들러리 신세가 될 수 있다”며 “한미, 한중의 양자 협력부터 확실히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잘못하면 고래(미-중) 싸움에 새우등(한국) 터지는 어려운 상황이 올 수도 있다는 뜻이다.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일본은 막가고 한국은 맞서고 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정권이 야스쿠니(靖國) 신사 참배와 과거사 부정에 이어 ‘역사 교과서 작업 시 이웃 나라를 배려한다’는 교과서 검정기준의 근린제국(近隣諸國) 조항에 대해 본격적인 수정 작업에까지 나섰다. 자민당 교육재생실행본부는 24일 이를 위해 교과서 검정에 대한 첫 특별회의를 열었다. 특별회의 책임자인 하기우다 고이치(萩生田光一) 의원은 회의를 마친 뒤 “(2006년에) 개정된 교육기본법에 ‘다른 국가에 경의를 표시한다’는 취지의 내용이 있는 만큼 (검정 기준의) 근린제국 조항 역할은 끝났다”고 말했다. 하지만 근린제국 조항은 우경화된 교과서에 제동을 거는 실질적인 장치로 작용해 왔고 외교적으로도 상징성이 컸다. 근린제국 조항을 수정하면 ‘교과서 기술 시 한국 중국 등 근린제국의 비판에 충분히 귀를 기울인다’고 명시한 ‘미야자와 담화’(1982년 발표)는 사실상 사문화된다. 자민당은 6월 근린제국 조항 수정과 관련한 대정부 제안서를 만들고 참의원 선거 공약에 포함시킬 계획이다. 아베 총리는 지난해 12월 총선 공약에서 “근린제국 조항을 수정하겠다”고 밝힌 만큼 현 정권 내에 근린제국 조항이 바뀔 개연성은 어느 때보다 높다. 아베 정권의 이런 잇단 역사 도발에 대해 한국 정부는 25일 벳쇼 고로(別所浩郞) 주한 일본대사를 외교부로 초치해 강력 항의했다. 김규현 외교부 1차관은 벳쇼 대사에게 “개인 간 정직과 신뢰를 그토록 소중한 가치로 여기는 일본 사회가 과거 식민지 지배와 침략으로 인해 이웃 나라에 끼친 이루 말할 수 없는 피해와 고통에 대해서는 눈을 감고 귀를 막고 있는 것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밝혔다. 벳쇼 대사는 “한국 정부의 뜻을 본국 정부에 전하겠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이정은 기자·도쿄=박형준 특파원 lightee@donga.com}

‘깜짝 카드’는 없었다. 취재진의 ‘혹시나’ 하는 마음은 곧 ‘역시나’ 하는 실망감으로 변했다. 24일 정오 서울 종로구 도렴동 외교부 청사 2층 브리핑룸에서 진행된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 협상 결과 발표는 미국의 완강한 핵 비확산 주장에 밀려 협정 개정이 2년 뒤로 미뤄졌다는 기존 언론보도 내용을 확인하는 선에 그쳤다. 향후 3개월마다 협상의 형식적 절차적 내용 외에 한국 정부의 요구가 반영된 ‘플러스알파(+α)’의 실질적 진전이 있을지 모른다는 일말의 기대감도 끝내 충족되지 못했다. 정부 안팎에서는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의 험난한 앞날에 대한 고민과 걱정만 커져가고 있다. ○ “충분한 협상시간 확보” vs “시한폭탄 미뤄놓기만” 한미 양국은 이날 원자력협정의 만기일(2014년 3월)을 2016년 3월까지 연장하고 6월부터 분기마다 추가 협상을 진행한다는 합의 결과를 서울과 워싱턴에서 공식 발표했다. 한미 양국은 2010년 10월부터 모두 6차례의 본협상을 열고 협정 개정을 위한 논의를 해왔다. 그러나 북핵 위기가 고조되면서 한국의 사용후핵연료 재처리 및 저농축 우라늄 확보 등 주요 쟁점에 대해 끝내 견해차를 좁히지 못했다. 이에 대해 박근혜 대통령은 이날 언론사 편집국장들과의 오찬에서 “새 정부 들어 짧은 시간에 원하는 방향으로, 호혜적이고 선진적으로 (개정)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하고 견해차도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또 “협정이 개정되지 않고 공백 상태가 되면 원자력 발전에 장애가 되기 때문에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데 공감을 이뤘다”며 “3개월마다 회의를 하도록 정해져 있어 1년 안에, 또는 1년 반 안에 끝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또 박 대통령은 “좀더 선진적이고 한미동맹을 강화하는 쪽으로 가도록 얘기가 됐기 때문에 의미 있는 진전도 있었다”며 “이번에 미국에 가서 ‘어떤 방향으로 더 노력해 나갈 것인가’ 하는 얘기는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부산대 정승윤 교수는 “그동안 진전을 보지 못했다면 2년 뒤에도 별다른 대안은 없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 협상 전열을 제대로 정비해야 정부가 이 협상을 ‘용두사미(龍頭蛇尾)’로 만들지 않고 국민적 요구에 부응하려면 미국을 설득할 논리 개발 등 협상 전반을 점검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정부는 우선 시급한 사용후핵연료 문제의 해결을 위해 미국과 핵주기 공동연구(joint fuel cycle study)를 비롯한 기술협력 강화 분야에 협상력을 집중할 방침이다. 국내에서는 다음 달부터 ‘사용후핵연료 처리 문제의 공론화’와 협정에 대한 여론 수렴 절차를 진행한다. 또 협정문에 한국의 우라늄 농축 권한을 명시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그러나 미국은 이에 대한 미국의 사전동의 권한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명문화의 내용과 방식을 놓고 난항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한국 협상단의 전력(戰力) 보강이 필요하다는 얘기도 나온다. 미국의 경우 10년 넘게 비확산 분야를 담당해 ‘비확산 마피아’의 대부로 불리는 로버트 아인혼 국무부 비확산·군축담당 특보가 수석대표로 협상을 맡아왔다. 반면에 카운터파트인 박노벽 외교부 에너지자원대사는 2011년 3월 협상 수석대표에 임명됐다. 박 수석대표는 “원자력 기술 관련 내용이 어렵고 복잡하다”며 관련 공부를 하는 데에만 6개월을 쏟아 부었다고 한다. 빅터 차 조지타운대 교수는 이날 “한국의 야권에서는 ‘박근혜정부의 미국에 대한 패배(defeat)’라고 규정하려 할 것”이라며 “그래도 양국은 이제 (5월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정치적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부담에서 벗어나 협상할 수 있게 됐다”고 평가했다.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24일 중국을 방문해 한미중 3국 전략대화를 처음으로 공식 제안할 것으로 23일 알려졌다. 이는 정부가 북한의 잇단 위협으로 악화된 한반도 정세를 풀어갈 다자 협력체 구성을 위해 외교적 행보를 본격화하는 것이어서 그 결과가 주목된다. 윤 장관은 24일 중국 베이징을 방문해 리커창(李克强) 총리, 왕이(王毅) 외교부장, 왕자루이(王家瑞) 대외연락부장과 잇달아 회담을 갖고 북핵 문제를 비롯한 한반도 및 한중 양국 간의 현안을 논의한다. 외교 소식통들에 따르면 윤 장관은 이 자리에서 한미중 3국 전략대화를 처음으로 공식 제안할 예정이다. 외교부는 한미중 3국 전략대화가 궤도에 오르면 이를 바탕으로 동북아협력구상의 이행을 본격화하겠다는 로드맵을 짜놓고 있다. 외교부 당국자는 “한미중 3국 전략대화의 핵심은 결국 북한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것”이라며 “이 대화의 틀이 갖춰지고 여기에 북한만 추가되면 북핵 문제를 논의하는 4자 회담을 열게 되는 셈”이라고 말했다. 한미중 3국 전략대화는 박근혜 대통령의 외교안보 분야 핵심 대선 공약 중 하나이다. 올 초 외교부가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중점적으로 제시했던 다자 협력 방안이기도 하다. 외교부는 일단 민관 합동 형식의 이른바 ‘1.5트랙’으로 전략대화를 시작하되 이를 점차 정부 차원으로 격상시키겠다는 구상을 갖고 있다. 대화의 주제도 초기에는 재난이나 환경, 기후변화 대처 등 정치적으로 덜 민감한 이른바 ‘비전통 안보위협’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끌어나가되 장기적으로는 북핵 문제를 비롯한 지역 안보 현안으로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이와 관련해 국립외교원은 6월 1.5트랙 형식으로 한미중 3국 전략대화를 진행할 계획이다. 비공개로 진행돼온 이 전략대화는 올해가 3년째이다. 정부 고위당국자는 “한미중 전략대화는 박근혜정부의 역점사업”이라며 “1.5트랙은 어느 정도 궤도에 이미 올랐으니 정부 간 대화를 본격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