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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민과 함께하는 공감행정으로 ‘행복한 영광’을 만들어가겠습니다.” 김준성 전남 영광군수(60·무소속·사진)는 22일 “작은 목소리 하나라도 소중하게 듣고 현장에서 군민과 함께 뛰는 군수가 되겠다”며 “약속한 정책 과제를 빈틈없이 수행해 진정한 주민자치시대를 열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김 군수의 당선 과정은 한 편의 드라마를 떠올리게 한다. 전임 군수의 3선 연임이 확실시되던 상황에서 선거를 불과 2개월여 앞두고 역전 드라마를 연출했다. 그의 당선을 예측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지만 영광군의회 의장, 영광군생활체육회장을 지낸 전력과 특유의 친화력으로 표밭을 일군 끝에 군정을 이끌게 됐다. ―선거 과정이 쉽지 않았을 텐데…. “변화에 대한 군민의 열망이 이번 선거에 반영된 것 같다. 그동안 영광군이 많은 발전을 이뤄냈지만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 제가 제시한 비전에 공감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군정 구호를 ‘행복한 영광’으로 제시한 이유는…. “군정 구호를 공모했는데 키워드가 ‘함께’와 ‘행복’이었다. 이런 바람을 담아 ‘공개행정’, ‘공정행정’, ‘공명행정’, ‘공감행정’의 ‘4공(公)행정’을 민선 6기 군정 운영 방향으로 정했다.”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대책은…. “경제 기반은 조성돼 있지만 인프라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해 시너지가 크지 않았다. 대마전기자동차산업단지와 송림농공단지 활성화를 위해 우량 기업 유치에 매진하겠다. 법성포 뉴타운 분양률을 높이는 것도 중요하다. 지역경제가 살아나면 인구가 늘고 고령화 문제도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이다.” ―복지 사각지대를 없애겠다고 공약했는데…. “군민 행복지수를 높이기 위해서는 복지 혜택을 늘려야 한다. 65세 이상 무료버스 운영, 장수 수당 범위와 액수를 늘리고 경로당 공동 부식비와 경로 우대 목욕이용권을 지원하겠다. 산부인과 전문병원을 유치하는 등 의료서비스 시설 확충에도 적극 투자하겠다.” ―사용 후 핵연료 문제가 쟁점이 될 것 같다. “사용 후 핵연료를 원전에 임시 보관하고 있는데 한빛원전의 경우 2019년에 포화상태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안전성을 담보하지 않는 어떠한 처리시설도 들어설 수 없다는 게 기본 방침이다.” 정승호 기자 shjung@donga.com}
전남도가 세월호 참사 여파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진도군의 경제 살리기에 팔을 걷어붙였다. 세월호 참사 진도군 범군민대책위원회는 21일 침몰 사고가 발생한 4월 16일부터 지난달 말까지 관광객 감소 및 어업 소득 감소에 따른 피해액을 898억3300만 원으로 추산했다. 관광소득은 29억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수입 232억 원에 비해 203억 원이 줄었다. 관광객 수도 지난해 4, 5월 11만1627명이었으나 올해 4, 5월에는 2만3255명으로 크게 감소했다. 청정 해역을 자랑하는 어업 분야도 소득이 큰 폭으로 줄었다. 각종 어류와 해산물 판매로 지난해 4∼6월 말 225억 원의 매출을 올렸지만 올해는 156억 원에 그쳤다. 침몰한 세월호에서 흘러나온 기름이 양식장을 덮치면서 발생한 피해도 300억 원을 넘어섰다. 기름 유출 피해는 현재 조사가 진행 중이어서 피해액은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실종자 수색 중 야간 조명탄 장기간 발사로 꽃게, 멸치, 오징어 등이 잡히지 않아 어민들의 시름도 깊어지고 있다. 이에 따라 전남도는 진도 농수산 특산품 구매와 진도 방문하기 행사를 적극 벌이기로 했다. 공공기관과 유관기관·단체 직원들은 추석맞이 선물을 진도산 특산품으로 보내기로 했다. 중앙 부처 공무원을 비롯해 모든 공직자가 여름휴가를 진도에서 보내며 희생자 유족 위로와 자원봉사, 관광명소 탐방 등을 하도록 유도하기로 했다. 도 단위 행사도 진도군에서 많이 열기로 했다. 진도군민 일자리 창출과 어업인, 소상공인을 위해 수협 등에서 자금 대출 시 3% 이자 중 2%를 지원해주기로 했다. 이순만 전남도 해양항만과장은 “진도군의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도 차원의 모든 행정력을 집중할 계획”이라며 도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당부했다. 한편 대책위는 최근 ‘세월호 침몰 사고로 인한 진도군민 피해보상 및 지원 건의문’을 정부에 제출했다. 정승호 기자 shjung@donga.com}

“군민 화합과 신뢰 행정으로 다도해 신안의 새 시대를 열겠습니다.” 고길호 전남 신안군수(69·무소속·사진)는 20일 “군민 주권을 최우선시하는 군정으로 복지 신안, 명품 신안을 만들어 가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고 군수는 소설 같은 인생 역정을 걸어왔다. 2002년 민선 3기에 이어 2006년 민선 4기 군수에 당선됐지만 취임을 하지 못했다. 선거법 위반으로 계류 중인 사건이 공교롭게도 취임 전날인 2006년 6월 30일 대법원의 벌금 200만 원 확정 판결로 종결됐기 때문. 그는 불명예 퇴진 후 재기를 노린 지 8년 만에 신안군을 이끄는 수장으로 돌아왔다. ―8년 만에 군정을 펼치게 됐는데…. “군민들의 바람과 그에 따른 책임감 때문에 마음이 무겁다. 군정 목표로 삼은 ‘신안의 꿈 새로운 시작’을 위해 열심히 뛰겠다.” ―민선 6기 발전전략은 어떤 것인가. “민선 3기를 이끌었던 경험을 바탕으로 따뜻하고 정직한 군정을 꾸리고 성장 동력 기반을 조성하겠다. 특화작목 육성 브랜드화로 소득원을 개발하고 복지 신안 건설로 군민 행복시대를 열겠다.” ―가장 시급한 현안은…. “목포를 거치지 않고 신안 전 지역을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는 십자형 도로망을 구축하는 것이다. 도서지역 특성을 살린 생태공원과 해양음식타운 등 관광 인프라 조성도 급선무다. 군청과 보건소 외에 모든 유관기관이 타지에 있는데 2016년까지 이전 청사진을 제시하겠다. 해안 치안과 섬 주민 안전을 위해 신안경찰서를 꼭 유치하겠다.” ―인구 고령화로 복지정책에 대한 관심이 높다. “종합복지센터를 전 읍면으로 확대하고 목욕탕, 찜질방, 회의실 등 공간을 확충하겠다. 노인 일자리 창출과 여가활동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무지개회관과 다목적 생활관 등 복지공간도 늘려 나가겠다.” ―특산품인 천일염 명품화 전략은…. “염업조합을 통한 등급화와 수매·유통 시스템을 구축할 방침이다. 브랜드화를 통해 신안 천일염의 세계적 경쟁력 확보에도 나서겠다. 중소기업청과 손잡고 염전 소금물 보관창고 지붕에 태양광 발전 시스템을 설치할 계획이다. 이 시스템으로 얻은 전기로 염전 바닥을 데우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정승호 기자 shjung@donga.com}

아찔한 순간이었다. 추락사고 현장에서 신호 대기 중이던 승용차 블랙박스에 찍힌 화면을 보면 소방헬기는 거의 80도 각도로 쏜살같이 인도로 곤두박질했다. 추락한 곳은 광주 광산구 장덕로 6번길 부영아파트 206동(20층)과 성덕중학교(4층) 중간 지점이었다. 두 건물은 추락 지점에서 불과 5∼10m 떨어져 있다. 당시 성덕중에서는 학생 1360여 명이 수업을 받고 있었다. 성덕중 인근에는 성덕고 고실초 성덕초 수완고 등 학교가 몰려 있다. 부영아파트단지에도 17∼23층 6개동에 449가구가 거주하고 있다. 인근 주민들과 학교 측은 “헬기가 추락 지점에서 조금만 벗어났어도 대형 인명 피해로 이어질 수 있었다”며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사고 현장은 폭격을 맞은 듯 처참했다. 왕복 2차로 아스팔트 도로와 인도 경계가 반경 1m가량 움푹 패었다. 인도에 처박힌 헬기는 폭발과 함께 발생한 화재로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구겨져 있었다. 폭발 충격은 엄청났다. 불이 붙은 잔해가 아파트 화단과 성덕중 교내까지 날아갔다. 김영신 성덕중 교사(57)는 “3교시 수업을 하고 있었는데 ‘꽝’ 하는 소리와 함께 불이 붙은 기체 잔해가 학교 건물 뒤편으로 떨어져 급히 소화기로 껐다”고 말했다. 이날 등교했다가 조퇴했던 박모 양(18·고 3학년)은 승강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다 폭발하면서 번진 화염 때문에 다리에 2도 화상을 입고 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뒤 귀가했다. 떨어져 나간 잔해들은 50m가량 떨어진 새마을금고와 식당 등 상가 세 곳의 유리창을 산산조각 냈다. 사고 현장 앞에서 커피숍을 하는 임진욱 씨(51)는 “헬기가 추락 직후 굉음을 내며 폭발했고 파편이 튀면서 입간판이 찢어졌다”며 “1차 폭발 후 10초 정도 후에 2차 폭발이 있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목격자는 “헬기가 공중에서 굉음을 내며 비틀거리듯 4∼5초 날더니 거의 수직으로 땅에 곤두박질쳤다“고 전했다. 일부 목격자는 헬기 조종사가 추락을 감지하고 ‘회피비행’을 해 대형 참사를 막은 것 같다고 증언했다. 인근 연립주택 건설 현장에서 작업을 하던 김형곤 씨(54)는 “헬기가 25층 아파트 사이를 통과해 40m 높이의 타워크레인 위를 스치듯 통과한 뒤 추락했다”며 “엔진 소리가 아주 컸고 마지막 순간에 엔진이 멈춘 것 같았다”고 말했다. 그는 “헬기가 수직으로 떨어졌는데 아마도 앞에는 아파트, 좌우에 학교가 있으니까 조종사가 이를 의도적으로 피하려고 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광주=정승호 기자 shjung@donga.com 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광주역 인근 등 3곳에 학생과 사회 초년생, 신혼부부 등 젊은층의 주거복지를 위한 행복주택(임대주택) 2150채 건설사업이 이르면 내년 하반기에 시작된다. 17일 광주도시공사에 따르면 국토교통부가 행복주택 후보지 선정협의회를 열어 광주역과 양동시장, 효천역 인근 등 3곳을 선정했다. 광주도시공사가 광주역(1만6000m²) 인근에 700채, 양동시장 인근(7418m²)에 500채를 맡아 시행에 들어간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효천역 인근(3만4000m²)에 950채를 건설한다. 주택 면적은 국토부가 고시한 45m²를 기준으로 33∼49m²대로 지어진다. 이들 3곳은 주변에 젊은층이 밀집한 지역이다. 광주역의 경우 전남대와 동강대, 일신방직 공장이 있고 양동시장 부근은 광주교대와 기아자동차 광주공장의 청년층을 흡수할 수 있다. 효천역 주변에는 광주대, 송원대, 송암일반산단이 자리하고 있다.정승호 기자 shjung@donga.com}

“수술을 하고 나니 통증이 없어 좋네요. 꼼꼼하고 친절하게 대해준 의사와 간호사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우즈베키스탄 대통령 주치의가 류머티즘·퇴행성관절염 전문 질환 센터인 빛고을전남대병원에서 수술을 받았다.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 의과대 마취과 아바코프 바체슬라프 교수(76)는 9일 윤택림 빛고을전남대병원장의 집도로 고관절(엉덩이뼈 관절) 수술을 받고 회복 중이다. 바체슬라프 교수는 이슬람 카리모프 우즈베키스탄 대통령의 최측근이자 주치의다. 18일 퇴원하는 그는 “시설이 좋고 주변 환경도 쾌적한 훌륭한 병원에서 수술을 받게 돼 행운이다”라며 “귀국하면 우즈베키스탄과 활발한 의료 교류가 이뤄지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고관절은 상체와 하체를 이어 주고 다리를 움직이게 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고관절에 이상이 생기면 심한 통증과 함께 골절이 되거나 걷지 못하게 된다. 그는 지난해 9월 타슈켄트 제1공화국병원에서 윤 원장의 수술 장면을 지켜보고 빛고을전남대병원에서 수술을 받기로 결정했다. 윤 원장은 대부분의 의사들이 수술을 꺼리는 86세 여성 환자를 무료로 수술해주고 현지 의사들을 대상으로 수술법을 강의했다. 바체슬라프 교수는 “미국에 살고 있는 자녀들이 미국에서 수술 받기를 권유했지만 윤 원장에 대한 신뢰가 커 한국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윤 원장은 고관절 수술 9000여 회의 독보적 기록과 함께 수술 후 회복이 빠르고 합병증이 적은 수술법으로 다수의 국제 특허를 가지고 있다.정승호 기자 shjung@donga.com}

“오랫동안 준비해온 ‘명품 화순’이라는 비전을 반드시 실현해 전국에서 가장 살기 좋은 고장으로 만들겠습니다.” 전남 화순군은 그동안 선거 때마다 ‘부부 군수’, ‘형제 군수’ 간 싸움으로 지역 민심이 분열되고 갈등과 반목이 심했다. 2010년 지방선거에서 낙선한 뒤 재도전 끝에 당선된 구충곤 화순군수(55·새정치민주연합)는 어두운 과거를 지워버리고 화합과 통합으로 새로운 화순시대를 열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전남도립대 총장을 지낸 그는 전국 전문대 최초로 반값 등록금을 실현하는 등 교육 전문가로 이름을 알렸다. 제8대 전남도의원 시절에는 초선 의원이면서도 예결위원장을 맡는 정치 역량을 보여줬다. 광주농고 재학 시절 럭비 국가대표를 지낸 스포츠맨이다.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 “선거 때 곳곳을 다니며 군민 의견을 들었는데 한결같이 ‘지역을 안정시켜 달라. 깨끗하고 건강한 화순을 만들어 달라’고 주문했다. 지역의 갈등을 봉합하고 실추된 화순의 이미지와 군민의 자존심을 회복하는 게 급선무다.” ―‘명품 화순’을 군정 목표로 내세운 이유는…. “화순(和順)은 이제 지명의 본뜻인 ‘화합하고 온순한 지역’으로 자리매김해야 한다. 군민이 하나가 돼 서로 행복한 미소를 주고받을 수 있는 사회가 바로 ‘명품 화순’이 추구하는 목표다. 미래 화순 발전을 위한 100년 대계이자 청사진인 명품 프로젝트로 화순에 새바람을 일으키겠다.” ―지역발전 구상은…. “문화예술산업, 생물의약산업 등 신성장동력을 육성해 물질적, 정신적으로 풍요로운 고장을 만드는 것이다. 광주와 가까운 지리적 장점을 살려 명품 교육도시의 기반을 다지고 쾌적하고 매력 있는 전원택지도 조성하겠다.” ―돌아오는 농촌을 만들겠다고 했는데…. “현재 7만 명인 인구를 단번에 늘리는 것은 쉽지 않다. 우선 의생명 복합도시와 연관된 의료 관련 강소기업을 유치해 일자리를 만들면 인구 유입 효과가 클 것이다. 광주시교육청 전남도교육청과 협의해 고교 공동학군제를 시행하는 방안도 강구하겠다. 의료특성화고, 마이스터고를 유치해 전국에서 학생들이 명품교육을 받기 위해 몰려오는 화순을 만들겠다.” ―백신산업특구 활성화 방안은…. “화순은 녹십자, 생물의약연구원, 화순전남대병원 등 백신산업이 성공하는 데 필요한 인프라를 고루 갖추고 있다. 화순의 장점인 메디컬 클러스터를 적극 활용해 내년에 국가백신개발지원센터를 꼭 유치해 화순을 ‘아시아 백신허브’로 육성하겠다.” ―어떤 복지정책을 펼칠 것인가. “화순의 노인 인구가 전체의 22.3%(1만5000여 명)를 차지해 초고령사회에 진입했다. 노인 문제 해결을 위해 ‘놀고먹는 복지’를 없애겠다. 문화유적지가 많은 지역 특성을 감안해 문화산업 분야에서 연간 2000여 명의 노인 일자리를 만들 계획이다.” ―화순농특산물유통회사의 자본 잠식이 심각하다. “현재 부채가 41억 원이나 된다. 5000여 농민이 출자한 39억 원을 한 푼도 돌려받지 못할 위기에 놓여 있다. 피해 대책을 세우지 않고 청산부터 하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다. 특별법 제정 등을 통해 소액 출자자들이 원금을 보장받도록 하겠다.”정승호 기자 shjung@donga.com}
광주지역 학부모들이 학교에서 촌지, 향응, 불법 찬조금이 사라지는 등 청렴도가 매년 나아지고 있다고 인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광주시교육청이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코리아정보리서치에 의뢰해 최근 초중고교 학부모 700명을 대상으로 한 청렴인식조사 결과, 학부모들의 학교 청렴 인식지수는 10.1%였다. 이 지수는 학교의 촌지 및 향응, 불법 찬조금 근절에 대해 긍정적으로 인식하는 정도를 의미하는 것으로, 지수가 낮을수록 청렴성이 높다는 뜻이다. 학교 청렴 인식지수는 2011년 23.3%에서 2012년 15.1%, 2013년 12.4%, 올해 10.1%로 해마다 좋아지고 있다. 이 가운데 초등학교가 8.9%, 중학교 10.3%, 고등학교 12.7%로 초등학교 학부모의 청렴인식이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났다. ‘지난해에 비해 촌지 풍토가 사라졌는가’에 대한 질문에는 ‘매우 그렇다’가 35.6%, ‘그렇다’가 42.7%로 응답자의 78.3%가 긍정적으로 답변했다. ‘지난 1년간 촌지 및 향응 제공 경험이 있는가’에 대해선 97.3%가 ‘없다’고 응답했고, ‘불법찬조금 제공 경험’은 96.0%가 ‘없다’고 답했다. 광주시교육청은 장휘국 교육감의 3대 핵심공약인 교육비리 척결 정책이 학부모로부터 호응을 얻고 청렴한 교직사회 실현 시책이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고 있는 것으로 분석했다. 이번 조사는 전화를 통한 무작위 표본추출 방식(RDD)으로 실시했다. 조사응답률은 12.2%, 최대허용 오차는 95% 신뢰 수준에 ±3.7%포인트다.정승호 기자 shjung@donga.com}
서양의학과 한의학, 전통의학을 접목한 건강엑스포인 ‘2014 대한민국통합의학박람회’가 10월 22일부터 7일간 전남 장흥군 천관산 일대에서 열린다. 올해가 다섯 번째로 박람회 주제는 ‘건강을 위한 아름다운 동행! 통합의학’. 한 부스에서 양방, 한방, 대체요법으로 진료를 받는 통합의학관과 건강체험관, 자연치유관, 약선요리관, 학술관, 의료산업관, 건강음식관 등 7개 주제관이 운영된다. 재활승마체험장, 국화축제장, 특산물 전시판매장도 개설된다. 수도권과 중국 대학병원 등 국내외 병의원 20여 곳이 참가를 확정했다. 전남도는 한국자연치유학회, 홍채학연구소, 한국유방암예방강사협회 등 60여 개 단체와 프로그램 운영을 협의하고 있다. 통합의학박람회는 매년 30만∼40만 명의 관람객이 다녀가는 성공적인 행사로 자리매김했다. 정승호 기자 shjung@donga.com}
전남과 제주를 잇는 뱃길 관광객이 세월호 참사 이후 크게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13일 전남도에 따르면 상반기 전남∼제주 뱃길 이용객은 약 117만 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133만 명보다 16만 명(12.2%) 줄었다. 항로별로는 목포항이 43만5000명으로 전년보다 13% 감소했고 완도항은 34만2000명으로 10.7%, 고흥 녹동항은 11만6000명으로 16.8% 줄었다. 장흥 노력항은 21만4000명으로 지난해보다 22.8% 줄었고 지난해 3월 취항한 해남 우수영항은 승객이 7만5000명에 그쳤다. 세월호 참사 여파로 관광 성수기인 5, 6월 이용객은 지난해 38만6800명에서 올해는 22만9500여 명으로 무려 41%나 급감했다. 승객 감소로 목포항은 여객선 1척이 운항을 중단했고 녹동항은 아예 일요일 운항을 포기했다. 추가 취항이 예정된 고흥 녹동∼서귀포, 강진 마량∼제주 항로는 전면 취소됐으며 여수∼제주 카페리 운항도 사실상 무산됐다. 전남도는 뱃길 관광객 감소가 여객선 사업은 물론이고 지역 관광산업에까지 악영향을 미치자 대책 마련에 나섰다. 전남에서 제주로 가는 뱃길은 5개로 전국에서 가장 많고 최단거리(109km)다. 도는 항만청과 협조해 여객·차량 전자발권 보완과 노후 선박 교체 및 선박 안전성 검사 강화 등 대책을 정부에 건의했다. 전남도 관계자는 “관광객의 안전이 최우선인 만큼 선박과 뱃길의 안전성을 높이고 대국민 홍보도 이뤄져야 관광산업이 다시 활기를 찾을 수 있다”며 “정부가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대안을 마련해 시행해야 한다”고 말했다.정승호 기자 shjung@donga.com}

“영암은 성장잠재력이 무한한 고장이지만 발전이 뒤처졌습니다. 선거 때 현장을 누비면서 주민들이 뭘 원하는지, 군정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 어디인지 알게 됐습니다.” 전동평 전남 영암군수(53·새정치민주연합)는 초선 군수답지 않게 지역 현황을 꿰뚫고 있었다. 그는 인터뷰 내내 구체적인 수치와 사례를 들며 영암의 미래 청사진을 제시했다. 전 군수는 “비옥한 농토와 잘 갖춰진 산업기반, 뛰어난 관광자원이 있지만 이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해 지역발전이 더뎠다”며 “융합 행정으로 시너지 효과를 내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그는 두 차례 군수직에 도전했다가 공천 과정에서 고배를 마셨다. 1991년 31세에 전국 최연소 도의원이 된 뒤 2006년까지 내리 4선을 했다. 민주당 전남도당 대변인, 열린우리당 전남도당 사무처장 등을 역임하며 정치적 입지를 다졌지만 군수직과는 인연이 없었다. 사업가로 변신한 그는 2007년 대불산업단지에 선박블록을 만드는 알파중공업을 창업해 연간 200억 원의 매출을 올리는 중견기업으로 키워냈다. ―세 번의 도전 끝에 군수가 됐는데…. “영암군민의 뜨거운 성원에 감사드린다. 당선의 기쁨보다는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 변화와 혁신으로 희망찬 영암을 만들어 달라는 군민의 바람을 가슴 깊이 새기고 있다.” ―전임 군수가 추진했던 주요 사업은 어떻게 꾸려갈 것인가. “성과가 큰 사업은 더욱 발전시켜 나가는 게 옳다. 하지만 미흡한 분야는 다양한 각도에서 재검토하겠다. 관광시설 투자 등 비용 대비 효율이 떨어지는 사업은 구조조정을 통해 예산을 절감해야 한다.” ―‘명품 영암 관광시대’를 열겠다고 했는데…. “국립공원 월출산과 천년고찰인 도갑사, 왕인 박사와 도선국사 유적지가 있는 영암은 한마디로 ‘관광의 보고’다. 하지만 이를 연계하는 관광 상품이 없어 시너지 효과가 크지 않았다. 체류형 관광 상품과 체험 프로그램을 개발해 ‘영암의 관광 르네상스시대’를 열겠다.” ―침체된 지역경제를 어떻게 살릴 것인가. “영암은 현대삼호중공업과 대불국가산업단지를 보유해 기업하기 좋은 여건을 갖추고 있다. 일자리를 하나라도 만들 수 있는 사업이라면 아낌없이 예산을 쓰겠다. 이를 위해 일자리 창출 전담 대책기구를 신설해 다양한 시책을 내놓겠다. 영암읍과 독천권에 저가 임대아파트 단지를 조성하고 재래시장 활성화에도 힘을 쏟겠다.” ―‘복지 영암’ 구현을 위한 방안은…. “진정한 생활자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복지가 뒷받침돼야 한다. 버스가 다니지 않는 마을에 ‘100원 택시’를 운행하고 20세 이하, 60세 이상 주민에게 군내버스를 무상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 65세 이상 어르신에게 ‘효 수당’을 지급해 희망과 기쁨이 넘치는 ‘복지 영암’을 만들어 갈 것이다.” ―재원은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 “복지 분야 예산이 100억 원 정도 들 것으로 예상된다. 예산을 5% 절감하면 150억 원이 마련되는데 이 중 100억 원을 복지 분야에 쓸 계획이다. 경로당이나 마을회관 등을 새로 짓기보다는 리모델링을 통해 개선하면 소모성 예산을 줄일 수 있다.”정승호 기자 shjung@donga.com}
광주 광산구 수완동은 2008년 12월 첫 입주가 시작돼 올 6월 말 현재 인구가 7만6187명으로, 국내에서 주민 수가 가장 많은 행정 동이다. 인근인 전남 화순군 전체 인구(7만여 명)보다 많다. ‘지방자치법’에 따르면 인구 7만 명이 넘은 동은 효율적인 행정 서비스를 위해 분동(分洞)이나 하나의 동 체계인 대동제(大洞制)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수완동 주민들이 투표를 통해 동을 둘로 쪼개는 분동 대신 대동제를 선택했다. 주민들은 7일 은빛초등학교 강당에서 ‘수완동 대동제·분동 결정 관련 주민배심원제’를 가졌다. 배심원단 178명 중 152명(85%)이 대동제에 찬성했다. 대동제를 택한 동은 기존 5급(사무관)에서 격상한 4급 공무원(서기관)이 동장으로 임명된다. 이날 투표가 관심을 모은 것은 지역 현안을 형식적인 공청회를 거쳐 일방적으로 추진하던 기존 방식과 달리 주민이 직접민주주의로 지역의 미래를 결정했기 때문이다. 배심원으로 참여한 박병기 씨(47)는 “분동을 하면 경계 설정과 명칭 선정에 어려움과 혼란이 따를 수 있다는 우려가 투표에 반영된 것 같다”면서 “정보를 공개하고 민주적인 방식으로 주민 선택을 이끌어낸 광산구의 노력이 신선하다”고 평가했다. 광산구는 주민센터 이용에 어려움을 겪는 일부 주민을 위해 민원센터를 장덕도서관 인근에 건립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정승호 기자 shjung@donga.com}
슬로시티에서 마시는 ‘슬로커피’의 맛은 어떨까. 아시아 최초 슬로시티인 전남 완도군 청산도에서 주민이 직접 만든 슬로커피를 맛볼 수 있게 됐다. 완도군은 청산도 관광 패턴이 체류형으로 바뀌면서 커피 수요가 늘자 슬로커피 제조 기술 보급에 나섰다. 군은 지난달부터 전문 바리스타를 초청해 청산도 ‘느린섬 여행학교’ 운영 종사자와 민박업주 등 25명을 대상으로 바리스타 교육을 하고 있다. 관광객들은 올해 말이나 내년 초부터 청산도 향토역사문화전시관 내 느림카페나 민박집에서 슬로커피를 맛볼 수 있다. 청산도는 2007년 12월 아시아 최초 슬로시티로 인증을 받았고 지난 한 해 37만 명의 관광객이 찾았다.정승호 기자 shjung@donga.com}
광주지검 형사2부(부장 윤대진)는 8일 세월호 침몰사고와 관련해 폐쇄회로(CC)TV를 떼어내고 동영상 삭제를 지시한 전남 진도 해상교통관제센터(VTS) 센터장 김모 경감(45)과 근무를 소홀히 한 팀장 2명 등 간부 3명에 대해 공용물 손상, 직무유기 혐의 등으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검찰은 세월호 희생자들의 구조·수색업체 선정 과정에서 불거진 해경과 언딘마린인더스트리(언딘)의 유착 의혹을 확인하기 위해 7일 경기 성남시 언딘 본사와 김윤상 대표 자택, 전남 목포 사무실 등 11곳을 압수수색했다.광주=정승호 기자 shjung@donga.com 이형주기자 peneye09@donga.com}

“청정 바다 자원으로 500만 관광객을 끌어들여 ‘부자 완도’ ‘관광 완도’를 만들겠습니다.” 신우철 전남 완도군수(61)는 7일 “미래성장동력인 수산업을 기반으로 신(新)해양시대를 열어가겠다”고 말했다. 완도에서는 4월 11일부터 한 달 동안 세계 최초로 해조류를 주제로 한 ‘2014 완도 국제해조류박람회’가 열렸다. 해조류의 무궁무진한 가치를 제시하고 소비 대중화와 해조류 산업 활성화 기반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신 군수는 “해조류박람회가 완도의 저력을 보여준 만큼 지역 발전의 새로운 전기로 삼겠다”고 밝혔다. 신 군수는 해양수산부, 농림수산식품부, 전남도에 두루 근무했다. 진도군 부군수와 전남도 해양수산과학원장 등을 역임했고 이학박사 학위를 가진 해양·수산 전문가다. 그는 “35년의 행정경험과 전문성, 인맥을 살려 내실 있는 군정을 꾸려가겠다”고 강조했다. ―초선 단체장에 대한 기대가 남다르다. “참신하고 새로운 시각으로 군정을 바라보고 실천 방안을 모색한다는 점에서 재선이나 3선 단체장과 차별화된다고 생각한다. 민선 5기 군정의 긍정적인 부분은 이어가고 부족한 부분은 채우면서 행정의 시너지를 높이겠다.” ―‘모두가 행복한 희망 완도’를 군정 목표로 내세웠는데…. “군민이 진정한 주인이고 군민 모두의 행복까지 살피는 군민 행복시대를 열어 간다는 의미다. 소통하는 화합 행정을 위해 ‘군민소통·화합위원회’를 만들 방침이다.” ―취임 첫해 가장 집중할 부분은…. “그동안 완도의 미래성장동력에 대해 많이 연구했다. 여러 복안도 가지고 있다. 그중에서 해조류 등 수산업을 중심으로 농축산업을 동반 성장시키는 ‘지역융합형 경제발전 전략’을 우선적으로 실천할 생각이다.” ―지역경제를 살리기 위한 방안은…. “3년제 한국수산대를 유치하고 경량합금용 선박 생산기술 연구센터를 설립해 완도읍 상권을 살리겠다. 해조류를 주력산업으로 키우기 위해 해조류박람회 시설 활용 방안도 강구 중이다. 해조류를 이용한 산모(産母) 치유타운 조성, 농수축산물 친환경 가공기업 육성도 지역경제에 큰 보탬이 될 것이다.” ―완도 하면 ‘청산도’가 떠오르는데…. “청산도는 완도군을 알리고 관광객을 유치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2007년 아시아 최초 슬로시티로 지정된 이후 매년 37만 명이 다녀간다. 청산도에 환경박물관을 건립해 섬의 가치와 매력을 지켜 나가겠다.” ―복지행정에 대한 복안은…. “65세 이상 고령인구 비율이 36%를 차지하고 다문화 가정이 300가구 정도 된다. 군민 모두가 따뜻한 복지 혜택을 누리도록 ‘행복복지 실현기금’을 조성할 계획이다. 빠듯한 예산을 탄력적으로 운용하고 군민장학회처럼 출향민 기금을 조성해 충당할 방침이다.” ―해양·수산 전문가로서 완도의 미래는…. “완도는 청정 환경이 자랑이다. 명사십리해수욕장의 음이온 양은 서울의 50∼60배나 된다. 섬과 섬 사이 조류가 빨라 오염원이 없고 바다 밑바닥이 맥반석과 초석으로 이뤄져 바다 정화 역할을 한다. 수산업 발전의 최적지인 데다 그 자체가 관광자원이다. ‘수산’과 ‘관광’이 완도의 미래이자 희망이다.”정승호 기자 shjung@donga.com}
전남 진도군 임회면 여귀산 자락에 자리한 국립남도국악원이 개원 10주년을 맞아 ‘절대! 박절대’를 8, 9일 대극장 진악당 무대에 올린다. ‘절대! 박절대’는 진도 출신 대금 명인 박종기 선생(1879∼1939)의 삶을 그린 작품. 박종기 선생은 진도에서 ‘박절대’라 불린다. 그의 신비한 재주와 지극한 효에 대한 칭찬의 의미가 담겨 있다. 그는 대금산조를 창시했을 뿐만 아니라 유성기 음반 최초로 대금산조 가락을 취입한 기록을 남겼다. 남도국악원은 시조반주, 창극반주, 삼현육각 등 다양한 장르의 연주활동을 한 선생의 예술혼을 가무악 총체극으로 꾸몄다. ‘절대!…’는 지역 작가인 박상률 원작을 이난영이 각색하고 전주대 박병도 교수가 총연출을 맡았다. 남도국악원 심상남 예술감독 등 단원 50명과 객원출연자 9명 등 모두 59명이 출연한다. 이번 공연은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앞서 남도국악원은 10년의 역사를 종합적으로 살펴보고 남도의 예술사를 통찰할 수 있는 ‘국립남도국악원 10년사’를 발간했다. 남도 국악을 담은 기념 음반과 남도국악원 10년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기념우표첩 100권도 제작했다. 윤이근 남도국악원장은 “남도음악 속에 남도 사람들의 삶과 영혼을 온전히 담아내는 작업과 함께 남도 민속예술의 세계화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정승호 기자 shjung@donga.com}

“‘아닌 것은 아니다’라고 말해야 정책 오류를 최소화할 수 있다.” 1일 취임한 이낙연 전남지사가 실국장 토론회에서 한 말이다. 그는 “공직은 협력과 팀워크가 중시되는 조직이다. 모든 정책 결정 과정에서 (지사 말이) 모두 옳다고만 할 게 아니라,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해줘야 후회할 일을 막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No’라고 말할 수 있는 소신과 용기를 주문한 것이다. 그가 도청 간부들과 첫 대면 자리에서 이런 발언을 한 배경은 뭘까. 인수위원회가 한 달여 동안 활동을 마치고 내놓은 최종 보고서를 보면 그 의미를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인수위는 ‘혈세 먹는 하마’로 불리는 ‘포뮬러원(F1) 국제자동차경주대회’에 대해 ‘지속 개최’ ‘대회 중단’ ‘2016년 개최’ 등 3개 안 중 ‘대회 중단’에 무게를 뒀다. 2010년 F1을 유치한 전남도는 지난해까지 네 차례 대회를 치르면서 1910억 원의 누적 적자를 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2007년 F1 대회의 타당성을 분석한 결과 경주장 건설에 2998억 원이 들 것으로 예측했으나 실제는 4285억 원이 투입됐다. 개최권료 및 운영비도 2010년 이후 예측치가 2314억 원이었으나 실제는 3067억 원이 들어간 데 비해 수익은 예측치(2314억 원)에 훨씬 못 미치는 1165억 원에 불과했다. 대회를 치르지 않는다고 해도 걱정이 크다. 대회 중단에 따른 위약금과 소송비용을 합쳐 최소 4000만 달러에서 최대 1억 달러 이상을 지불해야 하는 최악의 상황을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인수위는 사파리 아일랜드, 경정장, 남악신도시 스포츠 콤플렉스센터 건립 사업도 중단 또는 보류를 건의했다. 이 지사의 발언은 이 같은 대형 사업 유치와 운영 과정에서 공무원들이 과연 제 역할을 했는지에 대한 일침으로 해석할 수 있다. 서열을 중시하는 공직 문화에서 윗사람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No’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공무원은 많지 않다. 하지만 부당한 것은 부당하다고 말하고, 할 수 없는 일은 할 수 없다고 말하는 공무원이 필요한 게 요즘 전남도의 현실이다. 이 지사도 선언적 의미에 그치지 말고 소신 있는 공무원들의 말을 귀담아 들어야 한다. 이 지사의 좌우명이 ‘가까이 듣고 멀리 본다’는 ‘근청원견(近聽遠見)’ 아닌가. 격의 없는 건의와 활발한 토론이 전남 발전의 밑거름이 되길 기대한다. 정승호·사회부 shjung@donga.com}

또다시 5월이다. 눈부시게 푸른 5월이다.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에 이르는 길도 연둣빛 초록으로 물들었다. 길섶의 이팝나무에 순백의 꽃이 보송보송 피었다. 흰 쌀밥을 나무에 흩뿌려 놓은 것 같은 모습은 34년 전 광주시민들이 함께 나눴던 주먹밥을 떠올리게 한다. 길쭉한 모양의 꽃잎은 자식과 남편을 잃고 지독한 ‘오월앓이’를 해온 어머니들의 눈물 자국 같다. 각시붓꽃, 노랑별꽃이 선들바람에 하늘거리고 층층나무와 아까시나무가 감싸고 있는 묘지는 5월 하늘만큼이나 슬프도록 시리다. ▼ 5·18둥이 김소형씨 “날 보러 오셨던 아버지가 총탄에…” ▼80세 김현녀씨 “만삭의 내 딸에게 조준사격…내 손자는 어쩔 것이냔 말이오”70세 김진덕씨 “고교생이던 아들 시신도 못찾아… 묻은 곳이라도 좀 가르쳐 주시오”묘지번호 1-72. ‘아빠! 내가 태어난 지 3일 만에 돌아가셨지만 제 가슴속엔 언제나 아빠가 살아계셔요. 딸 소형.’ 1980년 5월 21일 계엄군의 총탄에 목숨을 잃은 김재평 씨(당시 29세)의 묘비에 새겨진 글귀다. 소형 씨는 아빠가 숨지기 3일 전인 5월 18일 태어난 ‘5·18둥이’다. 그에게 5·18은 세상에 태어난 기쁨보다 아버지를 잃은 슬픔이 더 큰 날이다. 해마다 그날이면 아버지를 한 번도 불러 보지 못한 설움에 지독한 ‘홍역’을 치른다.‘5·18둥이’의 슬픈 생일날 김재평 씨는 1980년 당시 전남 완도수협에서 일하던 평범한 회사원이었다. 5월 17일부터 난산 조짐을 보인 부인 고선희 씨(59)는 18일 급히 광주의 한 병원을 찾았고 그날 오전 소형 씨를 낳았다. 김 씨는 결혼 3년 만에 얻은 딸의 얼굴을 보기 위해 휴가를 내고 광주로 달려왔다. 21일 서구 화정동의 작은아버지 집에서 산후 몸조리를 하던 아내, 갓 태어난 딸을 만나 단란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기쁨은 잠시였다. 이날 오후부터 계엄군의 집단발포가 시작되면서 귀청이 찢어질 듯한 총소리가 들려왔다. 총소리에 놀란 갓난아이가 울음을 그치지 않자 아버지는 창문에 솜이불을 걸치려고 일어섰다. 그 순간 ‘쨍그랑’ 소리와 함께 총알이 김 씨를 관통했다. 피투성이가 돼 쓰러진 그는 손 한 번 쓰지 못하고 절명했다. 소형 씨가 아버지의 죽음을 어렴풋하게나마 알 게 된 건 초등학교에 입학한 무렵이었다. 5월이면 하얀 소복 차림으로 거리에 나서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외치던 엄마의 치맛자락을 잡고 다니면서부터다. 그 전에는 완도군 보길도에서 함께 살던 외할아버지로부터 “아빠가 좋은 일 하시다 돌아가셨다”는 말을 들은 게 전부였다. “엄마를 따라다니면서도 왜 우리 국군이 아빠에게 총을 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어요. 초등학교 4학년 때 망월동 묘지에서 신묘역(국립5·18민주묘지)으로 아버지의 유해를 옮길 때 비로소 알게 됐어요. 무고한 사람들이 왜 그렇게 많이 희생됐는지….” 소형 씨는 중학교 3학년 때 ‘5·18 전국학생 글쓰기 한마당’에서 아빠를 잃은 슬픔과 5·18에 대한 다짐 등을 담은 ‘오월의 시(詩)’로 대상을 받았다. 그리고 조선대 미대에 입학해 조소를 전공했다. 주위에선 “‘5·18’을 소재로 작품을 만들어 보라”는 권유가 있었지만 정중히 거절했다. ‘5·18’을 이용한다는 말을 듣기 싫었기 때문이다. “사진 속에서만 만나는 아빠가 그리울 때면 홀로 묘지를 찾아가 대화를 하곤 해요. 5월 18일은 저에게 슬픈 생일날이 돼 버렸죠. 가끔 ‘내가 태어나지 않았다면 아빠가 광주에 올라와 그런 일을 당하지도 않았을 텐데’라는 생각도 하고….” 소형 씨는 엄마와 단둘이 살면서 형편이 어려웠다. 아르바이트로 학비를 벌어야만 했다. 결국 대학 2학년을 마치고 휴학을 했다. 그는 요즘 옛 전남도청 인근에서 웨딩숍 플래너로 일하고 있다. 틈틈이 ‘광주 5·18’을 알리는 활동도 한다. 8년 전부터 5·18민주유공자유족회 ‘5월 청년부’에서 5·18 때 아버지를 잃은 자녀들과 매달 18일에 만나 토론회나 봉사를 하고 있다. “힘들고 지칠 때면 내가 쓴 비문을 하염없이 되뇌곤 해요. ‘아버지 조각상’을 아빠 묘비 옆에 세우고 싶은데, 언젠가는 그날이 오겠죠.”꽃잎처럼 스러진 ‘5월의 신부’ “타앙!” 순간 날카로운 총성이 거리를 흔들었다. 맨홀 뚜껑 위에 서 있던 그녀의 몸뚱이가 허수아비처럼 퍽 주저앉았다. “의사 좀 얼른 보내 주시오! 애기가 금방 나올라고 한단 말이라우. 사, 산모가 지금 총을 맞고 죽었는디, 여덟 달 된 애기가, 막 뛰어라우! 엄마 배 속에서, 천길 만길, 펄쩍펄쩍 뛰고 있단 말이라우….” 얼마나 지났을까. 이윽고 미화의 배가 조용해졌다. “누나! 누나아아!” “으아아아아! 미화야아아! 내 딸아. 내 새끼야아!” 소설가 임철우가 1997년 발표한 소설 ‘봄날’의 일부다. 소설 속의 ‘미화’는 1980년 5월 21일 세상을 떠난 ‘5월의 신부’ 최미애 씨(당시 23세)다. 만삭의 몸이던 그는 그날 오후 전남대 부근의 집을 나섰다. 고교 교사인 남편이 제자들이 걱정된다며 휴교령이 내려진 학교에 갔다가 점심 때가 넘도록 소식이 없어 마중을 나간 참이었다. 전남대 앞에서는 시위대와 계엄군 간에 치열한 공방이 벌어졌다. 시위대가 ‘짱돌’을 던지자 군인 하나가 한쪽 다리를 땅에 대고 ‘앉아쏴’ 자세를 취했다. 조준사격이었다. 잠시 후 총소리와 함께 최 씨는 힘없이 쓰러졌다. 하숙집을 운영하던 최 씨의 어머니 김현녀 씨(80)는 숨진 딸을 보는 순간 풀썩 주저앉았다. 딸의 주검은 참혹했다. 총탄이 머리를 관통해 온몸은 피투성이였다. 차갑게 식어가고 있는 어미의 몸속에서 태아는 거센 발길질을 하고 있었다. 김 씨는 ‘계엄군이 주검까지 뺏어간다’는 소문을 듣고 서둘러 딸을 리어카에 싣고 공동묘지에 가매장했다. 그런데 사태가 잦아든 6월 10일경 계엄사에서 ‘임신부가 죽었다는 소문을 확인하려면 검시를 해야 한다’며 주검을 다시 파오라고 명령했다. 거부하면 ‘유언비어 날포죄’로 집어넣겠다고 협박했다. 그렇게 18일 만에 다시 파헤쳐진 딸의 주검은 검시 후 망월동에 묻혔다. 두 번의 죽음을 당한 셈이었다. 김 씨는 1988년 국회 ‘광주청문회’에 나와 ‘피맺힌 한’을 토해냈다. “임신한 우리 딸이 총에 맞았는디 죽은 사람은 있고 왜 죽인 사람은 없는 것이오? 세상에 나와 보지도 못하고 죽은 내 손자는 어쩔 것이냔 말이오? 세상에 임신한 사람인 줄 뻔히 알면서도 총을 쏘는 그런 짐승 같은 놈들이 어디 있느냔 말이오? 뭔 죄가 있어서, 뭔 죄를 지었다고….” 김 씨는 그때 ‘광주의 진실’을 말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속이 후련했다고 털어놓았다. 내 딸이 왜 죽어야 했는지 이유를 알고 싶어 여기저기를 쫓아다닌 지 30여 년. 김 씨는 이젠 학살 책임자 처벌을 외칠 힘도 남아 있지 않다고 했다. “(음력으로) 이달 4일이 제사여서 묘지에 갔다 왔는데, 하얀 면사포를 쓴 영정 속의 딸이 어찌 그리 곱던지…. 이젠 눈물도 안 나와요. 평생 흘릴 눈물을 그때 다 흘려버렸으니….” 팔순의 노모는 가슴에 묻은 딸과 살고자 발버둥쳤던 어린 손자의 넋이 편히 잠들기만을 바랄 뿐이다.‘시체라도 찾았으면…’ 지난해 5월 18일 박근혜 대통령은 5·18민주화운동 33주년 기념식 참석에 앞서 행방불명자 묘역을 둘러봤다. ‘아직 유해를 찾지 못해 묘비만 있다’는 관리소장의 설명을 들은 박 대통령은 ‘임옥환의 령’이라고 새겨진 묘비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박 대통령은 묘비를 쓰다듬으면서 “그럼 다 돌아가셨겠네요”라고 혼잣말처럼 되뇌었다. 임 씨는 1980년 당시 조대부고 2학년이었다. 공수부대가 광주 외곽을 봉쇄하고 있던 5월 22일 절에서 공부하던 친구와 전남 화순을 거쳐 고향인 고흥으로 가기 위해 새벽에 조선대 뒷산을 넘었다. 대학생 2명도 함께 따라 나섰다. 매복하고 있던 공수부대원이 임 씨 일행을 발견하고 멈추라고 명령했다. 겁이 난 일행이 달아나자 공수부대원들이 무차별 사격을 했다. 대학생 2명은 도망갔고 친구는 붙잡혀 군홧발에 차이고 개머리판으로 두들겨 맞았다. 친구는 임 씨가 총에 맞아 쓰러지는 것을 봤지만 행방을 알 수 없었다. 임 씨 아버지 임준배 씨(80)는 5월 23일 아들의 소식이 끊겼다는 연락을 받고 광주로 올라왔다. 시신을 한데 모아 놓은 전남도청 앞 상무관으로 갔다. 시신들은 하나같이 처참한 모습이었다. 어머니 김진덕 씨(70)는 조선대 뒷산과 가까운 학동으로 갔다. 그곳에서 가마니에 덮여 있는 시체 11구를 보았다. 하지만 아들은 없었다. 나중에 동네사람에게 들으니 “공수부대원들이 시체를 몽땅 트럭에 싣고 가버렸다”고 했다. 김 씨는 아들이 아무도 모르게 어딘가에 묻혀 있을 것으로 확신했다. 5월 29일 ‘광주 봉쇄’가 풀리자 아버지 임 씨는 고흥에서 대형 버스를 빌려 동네사람들을 태우고 아들이 총에 맞았다는 조선대 뒷산으로 갔다. 괭이, 삽으로 흙무더기를 파 보았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열흘 뒤 조선대 인근에서 포장마차를 하는 아주머니로부터 청천병력 같은 말을 들었다. 한 공수부대원이 와서 “어제(22일) 학생 한 명을 죽였다. 내가 서라고 했는데 서지 않아 쏴 버렸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는 것이었다. 그해 6월 30일 임 씨는 학교에서 제적됐다. “반에서 1등, 2등을 다퉜는데…. 열심히 공부해 서울대에 가겠다는 놈이 돌아오지 않으니 내가 눈을 감을 수 있것소.” 아버지는 “아들이 살았는지 죽었는지 몰라 아직도 대문을 열고 놓고 자는 실종자 가족의 심정을 누가 알아주겠느냐”라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어머니는 1990년 아들의 넋이라도 달래기 위해 같은 나이에 숨진 한 처자와 영혼결혼식을 올려줬다. 이승의 엄마가 해줄 수 있는 게 그것밖에 없었다고 했다. “생때같은 아들을 보내고 썩어 문드러진 어미 심정을 조금이라도 헤아린다면 묻은 곳이라도 좀 가르쳐 주시오. 제발 부탁이오.” 어머니의 절규가 5월 하늘에 비수처럼 꽂혔다. ▼ 군종신부 당시 보고서엔… “잔악한 계엄군이 비극 불러” ▼발포 거부했던 이제원 중령 “신군부 핵심이 강경진압 명령… 명령에 따른 우리에게도 책임”계엄군 출신 사진작가 이상일씨“시민들 모습 찍어 ‘불순분자’ 보고… 제대 후 ‘망월동’ 시리즈로 속죄”이들 ‘피해자’의 한편에 ‘가해자’가 있다. 1980년 5월 신군부의 ‘화려한 휴가’ 작전명에 따라 투입된 계엄군은 총칼로 광주를 유린했다. 당시 계엄사 상황일지와 전투교육사령부(전교사) 전투상보 등에 따르면 광주진압작전에 투입된 군 총 병력은 8만2000여 명에 이른다. 이들 가운데는 차마 시민에게 총을 겨누지 못한 영관급 장교도 있었고 속죄하는 심정으로 ‘광주의 5월’을 10년 넘게 사진으로 남긴 계엄군 출신 사진작가도 있다. 그들에게 ‘광주 5·18’은 어떤 기억으로 남아 있을까.발포 거부했던 특전사 장교 “수많은 사람의 눈에서 눈물을 흘리게 했고 가슴을 아프게 했다. 귀중한 생명을 앗아버렸고 평생 불구자로 만들었으며….” 당시 11공수특전여단 ○○대대 ○지역대장이었던 최모 씨(당시 대위)는 1988년 육군본부에 ‘5·18의 회고’라는 자필 문서를 제출했다. 동아일보가 16일 단독 입수한 이 문서에 따르면 최 씨는 “많은 세월이 흐른 지금도 가슴이 아프다. 죄스러운 마음속에 긴 그림자를 간직하고 있다”고 ‘고해성사’를 했다. 그가 지휘했던 부대는 1980년 5월 21일 전남도청 앞 집단 발포 현장에 있었다. 최 씨는 시위대와 일촉즉발의 대치 상황에서 발포에 반대한 한 대대장의 행동을 이렇게 기술하고 있다. “전남도청 앞에 공수부대원이 몰려 있을 때 대대장끼리 수차례 회의를 했다. 회의 내용은 ‘이대로 있다가는 부하들 다 죽이겠다. 약간의 희생자가 생기더라도 사격을 좀 해 물리치자.’ 그러나 당시 62대대장 이제원 중령만은 ‘무슨 소리를 하느냐. 당치도 않은 말을 한다’며 벌컥 화를 냈다. 지휘봉을 내동댕이쳤다. 우린 좁은 소견에 ‘참 답답한 대대장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만약에 (그가) ‘좋소’라고 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이 중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날 전남도청 앞에서는 공수부대의 집단 발포로 39명이 숨졌다. 최 씨가 ‘양심적인 군인’이라고 증언한 이 중령은 1995년 서울지검의 ‘12·12 및 5·18사건’ 특별수사본부 조사에서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고 ‘광주사태’의 주된 책임이 신군부 핵심세력에게 있다고 진술했다. 당시 진술 조서에 따르면 이 중령은 “광주사태의 책임은 나를 비롯해 그 당시 광주사태 진압에 참여했던 모든 군인에게 있다. 당시 나를 비롯한 대부분의 군인들은 하등의 정치적 의도 없이 상관의 명령에 따라 진압 임무를 어쩔 수 없이 수행했다는 점에서 광주사태의 피해자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광주에 공수부대를 투입해 강경 일변도의 진압작전을 벌인 배경에 대해 이 중령은 “12·12사건 이후 군권을 장악해 실세로 부각한 전두환, 노태우, 황영시, 정호용 등 신군부 핵심세력들이 자신들의 정권찬탈 기도에 결정적인 장애요인이 될 수 있었던 광주사태를 우리와 같은 공수여단 등 계엄군을 이용해 신속히 평정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권력을 좇는 이들의 욕심이 광주의 비극을 불렀다는 것을 당당하게 밝힌 것이다. 광주 진실 알린 군종신부들 계엄군이 광주를 장악한 직후 육군본부는 비밀리에 군종신부들을 광주에 보내 천주교 성직자와 신자들을 상대로 진상 파악에 나선 것으로 밝혀졌다. 이들은 현장 조사 후 계엄군의 무자비한 진압이 광주시민의 저항을 불러일으켰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제출했다. 본보가 단독 입수한 ‘광주사태 확인 방문 결과’ 문건에 따르면 육군본부는 광주가 진압된 9일 후인 6월 5일 군수참모부 운영처장(준장·육본 기독장교단 회장)과 1군 군종참모(대령), 군수사 군종장교(중령), 수방사 군종참모(소령) 등 군종신부 3명을 광주에 파견했다. 이들은 일주일 동안 천주교 성직자와 신자들을 상대로 증언을 들었다. 증언자 중에는 윤공희 대주교(89)도 있었다. 군종신부들은 ‘지탄 받고 있는 잔악행위’로 △공중전화를 하고 있는 임신부 두부관통치사 △화물차에 탑승 중인 채소 장수 일가족 3명 총격 △여대생을 브래지어 팬티만 입힌 채 엎드리게 하고 이를 제지하는 노인 구타 행위 등을 들었다. ‘광주사태’의 교훈도 6가지로 정리해 보고했다. 5월 17일 이전의 데모와 5월 18일(전국 계엄 선포) 데모 성격의 차이를 인식시키는 사전 경고 절차 없이 강압적으로 진압했으며 데모 진압 작전 시 여자, 노인에 대한 강압제지 가해행위로 역효과가 났다고 지적했다. 또 초기부터 특수부대의 투입을 지양하고 경찰, 예비군, 향토사단을 단계적으로 활용하며 최종 경고 후 특수부대를 투입했어야 한다는 내용도 있었다. 시설방어 군인에게만 총기, 탄약, 대검을 휴대하게 하고 기타 데모 진압군에게는 진압봉만 휴대하게 했어야 한다는 점도 지적했다. 진실을 말할 수 없었던 시절 그나마 종교인의 양심이 그날의 한 조각 진실을 알린 것이다. 사진으로 속죄하는 계엄군 출신 작가 1980년 5월 19일 스물다섯 살이었던 이상일 씨(59)는 계엄군 정보사령부 소속으로 광주에 투입됐다. ‘불순분자 색출’이 그의 임무였다. 사복 차림으로 사진 채증을 하고 시민들의 상황을 보고했다. 경남 산청 출신으로 중·고등학교를 검정고시로 마친 그는 제대 후 뒤늦게 대학에 들어가 사진을 전공했다. 5월의 기억은 그를 끊임없이 괴롭혔다. 다시 광주에 가야 한다고 생각한 게 1985년. “대구에서 막차를 타고 광주에 도착해 어두워질 때를 기다려 슬금슬금 망월동으로 기어들어갔죠. 그때 제 손에는 카메라가 들려 있었습니다.” 그는 두려웠다. 누군가가 자신을 기억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당시 망월동 묘역에는 가로등도 없었다. 제단에 담배 한 개비를 올려놓으면 달빛에 반사된 영정 사진들이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가장 눈에 밟힌 건 ‘5월의 신부’ 최미애 씨의 영정 사진이었다. ‘저 많은 사람은 왜 여기에 누워 있는 걸까. 나는 그때 무슨 짓을 한 걸까.’ 그는 카메라에 모든 영정 사진을 담기 시작했다. 찍은 필름을 암실에서 인화할 때 그 사람들 얼굴이 서서히 드러날 때면 견딜 수가 없었다. 자책감이 밀려왔다. ‘그래 광주를 알리자. 역사적 소명 같은 거창한 게 아니라 내가 해야 할 몫이라 생각하자.’ 그렇게 2000년까지 해마다 5월이면 망월동 옛 묘역과 5·18민주묘지를 찾아 사진을 찍었다. ‘망월동’ 연작 사진으로 2011년 일본의 저명한 사진상(賞)인 ‘이나노부오상’을 받았다. 지난해 5월 처음으로 부산에서 11명의 사진작가와 함께 ‘5월 항쟁 33주년 기념전시회-그날의 훌라송’을 열었다. 그는 5·18에 대한 역사왜곡을 보면서 여전히 광주는 ‘섬’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시가 대한민국 역사에서 광주가 어떤 곳인지를 한 번이라도 생각하는 계기가 되길 바랐다. 이 씨는 부산에서 고은사진미술관을 운영하고 있다. 그는 아직도 광주에 대한 ‘원죄’를 안고 있다고 했다. “명령에 따라 움직이더라도 인간은 해야 할 일이 있고 하지 말아야 할 일이 있습니다. 하지 말아야 할 일을 거부하지 못한 데 따른 것이 원죄인 거죠.” 그는 지금껏 수만 컷의 ‘5월 사진’을 찍었지만 흑백 사진뿐이다. 컬러 사진은 없다. ‘광주’를 화려함으로 포장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계엄군 출신 사진작가에게 광주는 여전히 무겁고 어두운 도시였다. 올 5월은 여느 해보다 쓸쓸하다. 세월호 참사 애도 분위기 속에 17일 전야제가 취소됐다. 국가보훈처의 ‘임을 위한 행진곡’ 5·18 기념곡 지정 거부로 올 기념식도 지난해처럼 반쪽 행사로 치러질 것으로 보인다. 숭고한 ‘민주화의 꽃’으로 피어난 지 34년. ‘자유’와 ‘평화’, 그리고 ‘인권’의 5·18정신이 민들레 홀씨처럼 뿌려지는 5월 하늘을 언제나 볼 수 있을까.광주=정승호 기자 shjung@donga.com}

전남 진도군 군내면에 사는 김연단 씨(54·여)는 요즘 고구마 굽는 일로 하루를 시작한다. 오전 6시에 일어나 전날 구호물품 보관소에서 가져온 고구마를 오븐에 구워 팽목항으로 가져간다. 제대로 끼니를 챙기지 못하는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에게 고구마는 요긴한 간식거리다. 생업을 제쳐두고 팽목항으로 달려간 지 벌써 열여드레째. 김 씨는 “꼬박 12시간을 팽목항에서 보내고 돌아올 때면 몸은 파김치가 되지만 마음은 여전히 팽목항에 남아 있다”고 했다. 더 마음 써주지 못해서, 더 챙겨주지 못한 아쉬움이 큰 탓이다. 김 씨는 ‘빵을 맹그는 아짐’이란 민간 봉사단체 회장을 맡고 있다. 회원 35명은 세월호 침몰 사고 이후 격일제로 팽목항을 찾아 실종자 가족들을 살뜰히 챙기고 있다. 김 씨는 “부스에서 컵라면을 먹고 있는데 가족 한 분이 오셔서 ‘저희한테 좋은 것을 주면서 밥도 못 챙겨 드시느냐’며 오히려 위로의 말을 건넬 때 가슴이 먹먹했다”고 말했다. 진도는 지금 온통 노란 물결이다. 가로수와 전봇대, 지붕마다 걸려 있는 리본도, 실내체육관에서, 팽목항에서 소매를 걷어붙이고 나선 주민들이 걸친 조끼도 노란색이다. 세월호 참사로 진도는 또 다른 피해자다. 하지만 주민들은 내 아픔인양 생업도 포기한 채 봉사에 나서고 있다. 진도낚시어선연합회는 사고 직후부터 줄곧 자비를 들여 수색작업을 돕고 있다. 매일 오전 8시경 5, 6척의 배에 나눠 타고 나가 해가 지기 직전에야 돌아온다. 세월호에서 빠져나온 유실물을 건지고 흘러나온 기름을 닦아 없애는 것도 이들의 몫이다. 작업을 위해 배를 띄우면 하루 평균 20만∼30만 원의 기름값이 들지만 자체적으로 해결해 왔다. 황남식 총무(52)는 “누가 시켜서 이 일을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며 “모두가 같은 부모 마음 아니겠느냐”고 담담히 말했다. 진도군 수산지원과 공무원들은 요즘 섬으로 출근하고 있다. 서망항에 모여 진도수협 직원들과 함께 어업지도선을 타고 사고 해역에서 가까운 동거차도, 서거차도, 죽도로 간다. 기름이 해안가로 밀려들면서 검게 변한 갯돌을 헝겊으로 닦아내는 일이 이들의 하루 일과다. 김영복 진도군 수산지원과 주무관(44)은 “미역발이 기름으로 못 쓰게 됐지만 어민 누구 하나 푸념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며 “어민들이 세월호 참사 아픔을 자신의 일처럼 여기는 것 같다”고 전했다. 6일 현재 진도군 관내 410개 단체에서 7102명이 봉사활동에 참여한 것으로 집계됐다. 진도군 전체 군민은 3만2945명. 주민 5명 가운데 1명꼴로 ‘자원봉사’라는 ‘사랑나눔’으로 절망의 땅에 희망의 꽃을 피우고 있는 셈이다.진도=정승호 기자 shjung@donga.com}
세월호가 화물을 더 싣기 위해 배 균형을 유지해주는 평형수(平衡水·밸러스트워터)를 적정량의 4분의 1가량만 채운 채 운항한 것으로 드러났다. 5일 검경합동수사본부에 따르면 화물적재 및 평형수 관리를 담당하는 1등 항해사 강모 씨(42·구속)로부터 “지난달 15일 세월호 출항 전에 밸러스트워터 탱크 6개 중 3개에만 평형수 580t을 채워 넣었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평형수가 적정량보다 적으면 배의 복원력이 크게 떨어져 쉽게 전복된다. 세월호는 지난해 1월 선박을 개조하면서 한국선급에서 선박 검사(복원성 검사)를 받았다. 한국선급은 당시 선실의 무게가 늘기 때문에 화물을 덜 싣고, 평형수를 더 채워 넣으라는 조건을 달아 검사를 통과시켰다. 구체적으로 ‘화물량은 구조변경 전 2437t에서 987t으로 줄이고 평형수는 1023t에서 2030t으로 1007t을 늘려야 복원성이 유지된다’는 조건이었다. 사고 당시 세월호는 화물량을 한국선급이 제시한 조건보다 훨씬 많은 3608t(자동차 180대 포함)을 실은 것으로 조사됐다. 합수부는 강 씨가 화물을 더 많이 싣기 위해 적정 평형수(2030t)의 4분의 1가량인 580t만 채워 넣은 것으로 보고 있다. 강 씨는 또 “선미 쪽에 화물이 많이 실리는 바람에 만재흘수선(화물선에 화물을 실을 수 있는 한계를 표시한 선)이 수면 아래로 내려갔다고 판단돼 선수 쪽에 평형수 80t을 채워 넣었다”고 진술했다. 배 아래쪽에 표시된 만재흘수선은 선박이 과적을 할 경우 물 아래로 잠겨 출항이 금지된다. 합수부 관계자는 “강 씨가 선수 쪽에 평형수를 채워 넣어 선수를 낮추고 선미를 띄운 뒤 만재흘수선이 수면 위로 나오도록 해 해운조합으로부터 운항허가를 받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목포=정승호 shjung@donga.com / 이형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