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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총장 오연천)가 음대 성악과 교수 공채과정에서 불거진 파행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총장 직속 특별위원회를 구성하기로 했다. 서울대는 5일 “현재 사태가 성악과와 음대가 자체 해결할 범주를 벗어났다”며 ‘성악교육 정상화 특별위원회’를 구성한다고 밝혔다. 특위는 이번 주에 변창구 서울대 교육부총장, 교무처장, 음대 학장 등 9명으로 구성돼 다음 주 첫 회의를 연다. 하지만 특위위원 중 1명을 성악과 교수 중에서 위촉할 예정이라 논란이 예상된다. 현재 성악과는 교수 4명이 두 파벌로 나뉘어 갈등을 겪는 상황이다. 따라서 양쪽 얘기를 균형 있게 듣기 위해 서로 입장이 상반된 교수 2명을 포함시키든가, 아니면 아예 특위위원에서 성악과 교수를 배제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이은택 기자 nabi@donga.com}

“이거 예쁘네요. 잘 포장해 주세요.” 이창근 씨는 문구점에 진열된 마론 인형 중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금발에 날씬한 몸매, 커다란 눈에 화려한 원피스 차림. 2007년 성탄절을 보름 앞두고 이 씨는 리본으로 포장된 마론 인형 선물상자를 들고 동네 문구점을 나섰다. 딸 혜진이(당시 11세)가 며칠 동안 “사줘, 사줘” 노래를 부르던 마론 인형이었다. 이 씨는 집에 가자마자 선물을 건네고 싶었지만 딸에게 ‘깜짝 선물’로 주기 위해 참았다. 선물을 받고 기뻐할 딸 모습을 생각하며 입가엔 미소가 번졌다. 늦둥이로 얻은 딸은 애교가 넘쳤다. 매일 휴대전화에 딸 이름이 적어도 열 번은 떴다. 인쇄소를 다니던 이 씨는 한창 바쁜 중에도 휴대전화에 뜬 딸 이름은 외면하지 못했다. 전화를 받을 때마다 수화기 너머에서 “아빠, 뭐해? 아빠, 어디?” 딸이 큰 소리로 물었다. “응! 우리 딸! 아빠 일해요!” 이 씨는 인쇄기 돌아가는 소음에 목소리가 묻힐까 봐 소리치듯 대답했다. 퇴근 후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조급하고 행복했다. 12월 25일 성탄절. 혜진이는 교회를 다녀오던 길에 납치를 당했다. 실종 77일째인 2008년 3월 11일 혜진이는 훼손된 시신으로 발견됐다. 범인은 2009년 2월 대법원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 딸의 장례를 치른 뒤에도 이 씨는 마론 인형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남은 가족들은 이 씨가 품에 마론 인형을 안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딸을 위해 준비했던 성탄절 선물이 딸의 유품이 됐다. 그렇게 오랫동안 마론 인형을 품고 다녔다. 집에 있을 때면 마론 인형을 앞에 앉혀 놓고 쪼그려 앉아 한참을 들여다봤다. 가족들은 아무 말도 못 했다. 딸을 잃은 지 약 6년 2개월 뒤인 3일, 이 씨는 자택에서 숨졌다. 주변 사람들은 “이 씨가 혜진이를 잃고 술에 의지해 살았다”고 말했고 경찰은 급성 심근경색을 사인(死因)으로 추정했다. 5일 오후 2시 반. 이 씨의 유골은 경기 수원시 연화장에서 화장된 뒤 안양 청계공원 묘지에 묻혔다. 이 씨가 묻힌 자리에서 오른쪽으로 세 번째 묘. 딸 혜진이가 묻힌 자리다. ‘고 이혜진의 묘, 1997.12.18∼2008.3.11, 부 이창근…, 못다 이룬 꿈 하늘나라에서 마음껏 펼치거라.’ 이 씨의 묘비는 이름, 생년, 사망일자 등 아무것도 새겨지지 않은 상태였다. 청계공원 묘지에는 가족 친척 등 20여 명이 참석했다. 그중 누구도 마론 인형의 행방은 알지 못했다.안양=여인선 insun@donga.com / 이은택 기자}
서울대 음대가 서울대 단과대학 연석회의 측에 성악과 교수 공채과정에서 불거진 의혹들에 공개적으로 답변했다. 서울대 음대 측은 동아일보가 제기했던 성악과 교수의 문서 절취 의혹 등 상당수가 사실이라고 밝혔다. 서울대 음대 성악과 학과장에는 처음으로 국악과 교수가 임명됐다. 4일 본보 확인 결과 음대 김영률 학장은 지난달 27일 연석회의에 보낸 답변서에서 “2013학년도 1학기 공채과정에서 성악과 학과장 박모 교수가 학장이 자리를 잠시 비운 사이 공채심사표를 무단 절취해 훼손했다”고 밝혔다. 2013학년도 2학기 공채과정에서 제기된 채점표 유출 의혹도 사실로 밝혀졌다. 김 학장은 답변서에서 “공채 실기시험 후 A 교수와 B 교수가 채점표를 들고 심사장 밖으로 나갔다”며 “대학본부의 허락이 있으면 상황이 녹화된 테이프를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잡음이 끊이지 않자 서울대는 3일 음대 부학장인 이지영 교수(국악과)를 음대 성악과 학과장으로 전격 임명했다. 음대 관계자는 “당초 학과장으로 내정된 성악과 C 교수가 잇단 성추행 의혹 등으로 직무 수행이 어렵고 다른 성악과 교수들도 해외일정이나 공채과정의 비행 등으로 학과장직을 수행하기 어렵다고 판단해 이 교수에게 맡기게 됐다”고 밝혔다. 서울대 음대 성악과 학과장에 국악과 교수가 임명된 것은 처음이다.이은택 기자 nabi@donga.com}
비정상적 진행으로 논란에 휩싸인 서울대 음대 성악과 교수 공채 과정에서 실기심사 당일 심사과목이 갑자기 추가되고, 채점 과정에서도 파행이 빚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12월 31일 심사 과정을 목격한 서울대 교수 및 음대 학생들은 3일 “비정상적인 행태들이 있었다”고 털어놨다. 한 음대 교수에 따르면 원래 계획에 없었던 ‘질의면접’이 심사 약 1시간 전 갑자기 추가됐다. 당시 총 5명의 성악과 교수 중 A 교수와 B 교수가 이를 요구했던 것. 두 교수는 공채 1주일 전 열린 학장회의에서도 같은 요구를 했지만 김영률 음대 학장이 “공채공고에 없던 질의면접을 도입할 수 없고 서류심사가 원칙이다”라며 거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심사 당일 다시 두 교수가 이를 요구하고,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공채가 무산될 상황에 처하자 백승학 교무부처장이 “받아주자”고 중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음대 관계자는 “이 때문에 응시자들이 당일 질의면접을 고지 받고 당황했다”고 전했다. 노래와 교수법 심사가 끝난 뒤 치러진 질의면접에서는 이를 요구한 두 교수만 질의를 하고 나머지 세 교수는 아무 질문도 하지 않았다. 심사장에 있었던 한 교수는 “질문이 신동원 테너에게 집중됐다”며 “김영률 학장이 ‘신 테너 청문회를 하는 것이냐, 그만하라’고 제지했다”고 밝혔다. 신 씨에게 한 질문은 주로 1단계에서 이미 심사를 거친 지원 자격에 관한 것이었다. 두 교수가 공채 기밀서류에 속하는 채점지를 심사장인 음대 콘서트홀 밖으로 들고 나간 사실도 드러났다. 오후 6시가 넘어 심사가 끝나자 A 교수와 B 교수는 자신들의 채점지를 들고 함께 심사장을 나가 화장실로 갔다고 목격자들은 전했다. 이 과정에서 다른 교수들이 “채점지를 갖고 나가면 안 된다”며 제지하면서 소란이 일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약 10분 뒤 심사장으로 돌아온 두 교수는 “여기서는 채점할 수 없다. 지원자 서류를 검토하겠다”며 지원자 서류가 있는 음대 건물로 갔다. 나머지 성악과 교수 세 명은 심사장에서 채점지를 봉인해 김 학장에게 전달한 상황이었다. 이지영 부학장 등의 참관하에 음대 건물 휴게실에서 서류를 살펴보던 A 교수와 B 교수는 채점지를 가지고 A 교수의 연구실로 들어가서 문을 잠갔다. 오후 7시경부터 9시 10분까지 밖에서 다른 교수들이 “채점지를 갖고 나와라. 이러면 안 된다”며 문을 두드리고 소리치는 상황이 벌어졌다. 약 2시간이 지나서야 나온 두 교수는 ‘심사를 할 수 없다’는 의견서를 내고 자리를 뜬 것으로 알려졌다. 당일 사태는 교무부처장 등 본부 관계자도 지켜본 가운데서 벌어졌으나 서울대 본부는 아직까지 진상조사 등의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 본보는 두 교수의 해명을 직접 듣기 위해 여러 차례 전화를 걸었으나 연락이 되지 않았다.이은택 기자 nabi@donga.com}
교수와 강사의 학생 협박 의혹 등 잡음이 그치지 않고 있는 서울대 음대 성악과 교수공채 과정에서 이번에는 서울대 본부가 심사기준을 자의적으로 바꿨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2일 서울대 음대 관계자에 따르면 최근 결과가 발표된 2013년 2학기 성악과 교수공채에서 탈락한 신동원 테너의 임용결격 사유는 ‘교육경력시간 미달’인 것으로 밝혀졌다. 교육경력시간은 교육기관에서 학생을 가르친 시간과 각종 대회 입상경력을 시간으로 환산해 합친 것이다. 음대 관계자는 “본부 교무처가 신 테너가 경력기준시간인 5년에서 1년 6개월이 모자란 것으로 밝혀져 탈락시켰다고 음대에 전했다”고 밝혔다. 신 테너는 2명을 채용하는 이번 공채 최종후보 2명 중 1명으로 음대 오디션 심사를 통과해 본부로 서류가 올라갔다. 문제는 신 테너가 바로 전 학기인 2013년 1학기 공채에도 지원했다가 같은 이유로 탈락한 뒤 교육경력시간을 충족시켰으나 본부가 산정기준을 바꾸면서 다시 떨어졌다는 점이다. 당시 홍기현 교무처장은 성악과 교수들이 “공채 결과를 납득할 수 없다”며 반발하자 음대를 찾아 사유를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 자리에 참석했던 한 교수는 “당시 홍 처장은 신 테너의 교육경력시간이 기준치인 5년에서 2개월 모자란 4년 10개월이기 때문에 탈락했다고 해명했다”고 전했다. 이후 신 테너는 지난해 9월부터 대구신학대 음악학부 성악전공 조교수로 채용돼 4개월 넘게 강의를 하며 모자란 요건을 채워 다시 지원했다. 이 때문에 총 교육경력시간이 5년 2개월을 넘어 기준을 충족하고도 남았지만 서울대 본부는 이번 공채에서 “다시 계산해 보니 약 1년 6개월이 모자란다”며 이전의 해명을 뒤집고 또 탈락시켰다. 음대 관계자에 따르면 교무처는 “대학교원 자격기준 등에 관한 규정을 자세히 살펴본 결과 석사 및 박사학위 소지자와 디플롬(Diplom·주로 예술 분야에서 교육기관의 교육 과정을 수료했다는 증명서) 소지자를 똑같이 취급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며 신 테너의 교육경력시간 중 약 70%만 인정한 것으로 밝혀졌다. 음대 측이 “그렇다면 왜 지금까지 과거 공채에서는 같은 기준을 적용하지 않았느냐”고 따지자 교무처는 “그때는 규정을 몰랐다”고 해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 테너는 카루소 국제 콩쿠르 등에서 우승한 실력파 성악가로 알려졌지만 지난해 1학기 공채 과정에서 성악과 교수 간에 극심한 찬반 갈등이 일었다. 신 테너는 음대 심사를 통과했지만 본부는 ‘자격요건 미달’을 이유로 탈락시켰다. 한 성악과 교수는 “이번에 본부가 적용한 기준을 음대 현직 교수들에게 적용하면 교수의 3분의 1 이상이 기준을 충족하지 못해 학교를 떠나야 할 것”이라며 “신 테너 임용에 반대하는 일부 교수의 여론을 잠재우려 본부가 조용히 매듭지은 것 아니냐는 의혹이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홍 처장은 본보 기자와 만나 “기준대로 했을 뿐”이라며 “자세한 사항은 학교 기밀”이라고 밝혔다.이은택 기자 nabi@donga.com}

한중 치안당국이 개인정보 거래와 피싱 사기 등 양국을 무대로 벌어지는 신종 범죄에 공동 대응하기로 합의했다. 이성한 경찰청장(사진)은 27일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궈성쿤(郭聲琨) 공안부장을 공식 방문하고 이같이 합의했다. 경찰청은 보이스피싱 등 사기범죄의 중국 총책에 대한 인적 사항이 확인될 경우 범죄자를 적극적으로 추적해 검거해달라고 당부했으며 중국 공안부는 이에 동의했다. 또 양측은 개인정보 유출 범죄 단속을 강화하고 유출된 개인정보를 회수해 서로 협력하기로 했다. 피싱 사기 등 사기범죄는 인출책만 한국에 있고 몸통 조직은 중국 현지에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근절되지 않고 있다. 한국 경찰청과 중국 공안부는 도피사범 송환도 활성화하기로 했다. 양측은 양국으로 도피한 범죄자 집중 단속을 지속하는 한편으로 현재 10명인 우선 송환(집중 검거) 대상 인원을 늘리는 데 원칙적으로 합의했다. 중국 측은 먼저 한국에서 중국으로 도주한 도박장 개장 사범 등 4명을 3월 초 한국으로 송환하기로 했다. 중국 측은 한국 경찰청의 일부 제안에는 공조의 속도를 조절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경찰청이 사이버 범죄에 공동 대응하기 위해 사이버협력관을 서로 파견하자고 제안했지만 중국 측은 “검토해보겠다”고만 답했다.이은택 기자 nabi@donga.com}

이효계 전 숭실대 총장(사진)이 27일 오후 1시경 별세했다. 향년 79세. 2005년부터 2009년까지 제11대 총장을 지낸 이 전 총장은 최근 심근경색을 앓아 수술을 받고 회복 중이었으나 패혈증이 발병해 숨진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광주고와 숭실대 법대를 졸업하고 1961년 고등고시 행정과에 합격해 1995년 한국토지공사 사장, 1997년 농림부 장관을 지냈다. 유족은 배우자 유신자 여사, 아들 정훈 씨, 딸 윤희 지희 소윤 씨.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20호. 발인은 3월 1일(시간은 미정). 장지는 경기 광주시 소망동산. 02-3010-2000}
서울대 음대 성악과에서 교수진 공채 과정을 놓고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서울대 총학생회가 26일 ‘서울대 음대 성악과를 위한 특단의 조치를 요구한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단과대 학생회장 연석회의 형태로 운영되고 있는 서울대 총학은 성명에서 “성악과 교수 채용이 거듭 불발돼 대학원생 조모 씨가 성악과 학생들의 의사를 모아 음대 학장님에게 청원서를 제출했다”며 “그 후 조 씨는 성악과 교수와 강사로부터 질타의 전화와 협박성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받았다”고 폭로하며 본부의 대책 마련을 요구했다. 이와 관련해 강사 A 씨는 본보와의 통화에서 “해당 학생을 가르쳤고 아끼는 마음에서 교수들 일에 휘말리지 말라고 충고한 것”이라며 “어휘 선택이 조금 과격했다”고 말했다. 앞서 조 씨는 “음대 김영률 학장에게 ‘교수 공채가 계속 무산돼 학생들은 불안하다. 성악과 교육을 정상화시켜 달라’는 청원서를 제출한 뒤 A 강사와 B 교수로부터 ‘선동하지 말라’ ‘네가 책임져야 해’ ‘검찰 가서 조사 받아야 해’라는 내용의 협박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총학은 그동안 성악과 교수 채용 과정에서 일었던 각종 의혹에 대한 본부의 해명도 요구했다.이은택 기자 nabi@donga.com}

‘2015년 8월 22일 일본은 한반도의 남북 군사대치 상황을 틈타 독도를 무력 점령한다. 한국은 군사대치 상황이 해소되자마자 독도 반환을 요구하지만 일본은 거부한다. 한국은 국제사법재판소에 독도 반환 청구소송을 제기하고 이후 한일 간에 치열한 법리싸움이 펼쳐진다.’ ―강정민의 소설 ‘독도반환 청구소송’ 일본은 22일 시마네 현에서 ‘다케시마(竹島)의 날’ 행사를 열었다. 일본 정부의 차관급 인사와 국회의원 15명, 일반 시민 500여 명이 참석했다. 다케시마는 독도의 일본식 표현이다. 같은 날 한국 서울 도심에서는 다케시마의 날 폐지를 요구하는 집회가 잇따라 열렸고 한국 정부와 국회는 “일본이 침략주의의 근성을 드러냈다”며 일본을 비판했다. 독도는 다케시마가 아니다. 독도는 독도다. 한국의 동쪽 바다의 이름도 동해(東海)다. 일본해가 아니다. 한국 정부와 한국 국민에게는 그렇다. 하지만 해외로 눈을 돌려 보면 상황은 조금 다르다. 녹록지가 않다. 독도를 다케시마로, 동해를 일본해로 표기하는 지도와 교과서가 늘고 있다. 2007년 미국의 한 출판사는 대한해협을 쓰시마 해협으로 바꿔 표기했다. 호주, 브라질, 일본, 멕시코, 싱가포르, 스페인, 영국이 이 미국 세계사 교과서를 교재로 썼다. 독도가 일본에 점령당한 상황을 가정한 소설처럼 현 시점에서 한국과 일본이 국제사법재판소에서 독도 영유권을 걸고 싸우게 된다면 한국이 승소한다는 보장이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냉정한 판단이다. 국제사법재판소 재판관 15명 중 1명은 일본인 오와다 히사시(小和田항). 한국인 재판관은 없다. 독도 영유권을 둘러싼 싸움에서 자주 나오는 주제는 지하자원, 어업권, 경제적 가치, 영해권 등 경제와 국방에 관한 것이다. 하지만 한국과 일본 양국에 독도는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 韓-우산국, 동방(東方)의 끝이자 숨겨진 해상강국 강원 영월군 수주면에서 호야지리박물관을 운영하고 있는 양재룡 관장(67)은 독도가 지하자원이나 영해권, 어업자원 이상의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23일 박물관에서 만난 양 관장은 “독도는 한국에게 동(東)쪽 상징”이라고 말했다. 그의 이야기는 인류의 탄생까지 거슬러 올라갔다. “아프리카에서 인류가 처음 태어났습니다. 수만 년을 거치며 인류는 제각각 사방으로 이동했어요. 그중 끝없이 동쪽으로 이동한 인류가 한반도에 정착해 지금 한국의 먼 조상이 됐습니다. 이들은 배를 타고 가까운 바다를 건너 계속 동진(東進)했습니다. 울릉도를 발견했고 독도를 발견했을 것입니다. 말하자면 우리 민족에게 독도는 동쪽의 끝이란 상징성을 가지고 있죠. 지향점의 가장 끝, 경제적 가치나 자원의 효용성보다 중요한 게 이 점입니다.” 독도가 작은 섬이 아니라 고대 해상왕국의 일부였을 것이라는 학설을 제기한 학자도 있다. 김호동 영남대 독도연구소 교수는 울릉도와 독도를 묶은 우산국(于山國)이 숨겨진 해상강국이었다는 논문을 2009년 발표했다. 독도의 옛 이름은 우산도(于山島)였다. 그는 울릉도와 독도에 남아있는 지석묘, 무문토기 등 고대 유물과 문헌을 토대로 기존에 알려진 ‘돌섬’ 독도와는 다른 모습의 독도를 제시했다. ‘우산국을 다스리던 우해왕은 기운이 장사였다. 우해왕 치세의 우산국은 인근 바다를 주름잡았다. 작은 나라였지만 어느 나라보다 바다에서의 힘은 막강했다. 당시 왜구(지금의 일본)는 대마도를 본거지로 삼아 때때로 우산국에 침범해 노략질을 했다. 화가 난 우해왕은 군사를 이끌고 대마도로 갔다. 우해왕은 대마도 왜구의 수장을 만나 담판을 지었다. 기에 질린 왜구 수장은 다시는 우산국을 침범하지 않겠다며 우해왕에게 항복문서를 바쳤다.’(울릉도의 역사로서 우산국 재조명·김호동·2009년)○ 日-다케시마, 일본을 구한 ‘신의 바람’이 불다 지도를 보면 일본의 독도에 대한 욕심에 고개가 갸웃해진다. 일본 열도 오른쪽에는 태평양이 펼쳐져 있다. 한국과 일본 사이에 있는 동해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바다. 이 대양(大洋)을 놔두고 왜 동해와 독도에 집착할까. 1274년. 아시아와 유럽까지 정복한 원(元·몽골)제국은 일본 정벌을 결심한다. 원의 칸(왕) 쿠빌라이는 2만5300여 명의 병력과 900척의 전함을 이끌고 일본으로 향한다. 일본군은 계속 패하며 물러난다. 전선(戰線)은 쓰시마와 이키에서 기타큐슈 하카타 만으로, 다시 다자이후 미즈키 일대까지 밀려난다. 일본 열도가 원제국에 점령당하기 직전인 어느 날. 해가 진 밤에 바람이 불었다. 아주 큰 바람. 이튿날 날이 밝자 원의 군사들은 당황했다. 동해 인근 하카타 만에 정박시켰던 원의 군함들이 흔적도 없이 바람에 사라진 것. 밤새 동해에 분 폭풍우는 원의 병력과 군함을 바닷속에 수장했다. 1905년 러일전쟁. 일본은 동해가 일본과 한국 사이로 빠져나가는 대한해협에서 러시아 발틱함대와 맞붙었다. 발틱함대에는 38척의 군함이 세계 최고 해양함대의 전력을 자랑하고 있었다. 일본의 군함은 24척이었다. 패배를 피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때 바람이 불었다. 동남풍. 일본 함대에서 발틱함대 방향으로 세차게 동남풍이 불었다. 발틱함대는 전진하지 못했고 일본 함대는 바람을 타고 나아갔다. 바람은 49일간 불었다. 발틱함대 38척 가운데 36척이 침몰했다. 반면에 일본이 잃은 군함은 단 3척이었다. 가미카제(神風·신풍). 신의 바람. 양 관장은 설명 끝에 “일본이 동해에 욕심을 내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세계 최강 국가와 붙어 두 번 나라를 구한 바람은 모두 동쪽에서 불어왔다. 동해는 일본인에게 신(神)과 같다. 독도를 얻어야 동해를 손에 넣을 수 있기 때문에 일본이 이토록 끈질기게 영유권을 주장한다는 게 양 관장의 설명이다. ○ 한국은 독도를 지켜낼 수 있을까 공주사대와 고려대 교육대학원을 졸업한 뒤 1971년 교사생활을 시작한 양 관장은 경기 수원 수성고 등에서 지리를 가르쳤다. 매 학기 마지막 날이면 학생들을 모아놓고 독도 특강을 했다. 그는 2007년 교장에서 퇴임하고 그해 5월 4일 강원 영월에 호야지리박물관을 열었다. 호야는 그의 아호다. 정년퇴임에 임박해 아내가 “그동안 가르쳐온 것이 아까우니 박물관 한번 운영해보는 게 어떠냐”고 던진 한마디가 현실이 된 것. 박물관을 열어 그동안 국내외를 다니며 모은 지도와 문헌 등 수집품들을 일반에 공개했다. 독도에 대한 사랑이 깊어지게 된 결정적 계기는 2009년 독도 특별전을 열었을 때였다. 양 관장은 “특별전 때 독도 지도를 모아놓고 계속 들여다보니 그동안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고 회상했다. 이후부터 틈나는 대로 지방자치단체를 돌며 독도 특강으로 독도의 중요성을 시민들에게 알렸다. 양 관장은 “냉정하게 말해서 지금 한국과 일본 양국이 독도 영유권을 놓고 공개 토론을 벌이면 한국은 열에 아홉은 진다”고 말했다. 양 관장은 “빼앗으려는 자는 지키려는 자보다 늘 부지런한 법”이라며 “일본에 축적된 자료 분량은 상당할 것”이라고 추측했다. 그동안 한국 정부는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에 대해 무대응 원칙으로 일관했다. 일본은 반대로 국제사회에 독도 갈등을 퍼뜨리며 다케시마와 일본해 표기를 위한 로비를 끈질기게 해왔다. 양 관장은 “한국의 완패”라며 답답해했다. 한때 한국의 입장을 지지하며 독도를 한국령으로 표기했던 영국, 프랑스는 입장을 바꿔 독도를 일본령으로 분류했다. 미국 지명위원회는 1977년 독도 명칭을 ‘리앙쿠르 록(Liancourt Rocks)’으로 바꿨다. 독도에 관해 현재 국내에서 최고 전문가로 손꼽히고 있는 호사카 유지(保坂祐二) 세종대 교육학부 교수는 자신의 저서에서 “왜곡된 논리라도 몇 번이나 반복해 들으면 그것을 수용하게 되는 게 인간의 본성”이라고 경고했다. 한국이 독도 연구와 자료 축적을 게을리 한다면 일본의 전략에 밀릴 수 있다는 지적이다. 북위 37도 14분 26.8초. 동경 131도 52분 10.4초. 동도와 서도, 부속 섬을 합친 총 면적 18만7554m²의 독도. 북서쪽으로 87.4km 떨어진 울릉도에서는 1년 중 날씨가 화창한 약 30일간 육안으로 독도를 볼 수 있다. 1451년 조선 세종 때 편찬된 고려사 지리지 권58 지리지12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돼 있다. ‘우산(于山·지금의 독도)과 무릉(武陵·지금의 울릉도)은 본래 두 섬으로 서로 거리가 멀지 않아 바람이 불고 날씨가 맑으면 바라볼 수 있다고 한다.’ 독도에서 동남쪽으로 157.5km, 일본에서 독도와 가장 가까운 오키 섬에서는 독도가 보이지 않는다.영월=이은택 nabi@donga.com / 박가영 기자}
교수 공채가 잇달아 무산된 서울대 음대 성악과가 이번 공채에서도 공석을 채우지 못했다. 서울대는 이번 성악과 공채에서 공채 인원 2명 중 1명만 임용한다고 25일 밝혔다. 이 과정에서 성악과 대학원 재학생이 교수에게 협박당했다며 통화 내용을 공개해 파장이 예상된다. 서울대에 따르면 공채에서 최종 후보 2명 중 1명인 신동원 테너가 요건 미달로 최종 탈락했다. 신 테너는 지난 학기에도 최종 후보로 선발됐다가 탈락했다. 이번 공채와 관련해 성악과 대학원에 재학 중인 조모 씨는 “성악과 교수 A 씨와 강사 B 씨에게 협박을 당했다”며 25일 통화 녹음내용을 공개했다. 이에 앞서 조 씨는 성악과 재학생 60여 명과 함께 지난달 27일 음대 김영률 학장에게 ‘지난 학기처럼 교수공채가 또 무산되지 않을까 학생들은 불안하다. 부디 성악과 교육을 정상화시켜 달라’고 청원서를 냈다. 특정 후보를 교수로 뽑아달라는 내용은 없었다. 조 씨는 “청원서를 낸 날 성악과 A 교수에게 협박전화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조 씨가 공개한 통화 내용에는 A 교수가 조 씨에게 “누가 시켰어? 왜 학생들을 선동하지? 신문에 나가면 네가 책임져야 해”라고 말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조 씨는 5일 뒤에는 성악과 강사 B 씨에게도 협박전화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통화 내용에는 “(청원) 철회해. 형사입건될 수 있어. 검찰 가서 조사받아야 해”라는 말이 담겨 있었다. 서울대 단과대학생회장 연석회의는 26일 조 씨에 대한 협박을 중단하라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할 예정이다.이은택 nabi@donga.com·박가영 기자}

10명의 사망자를 낸 경북 경주시 마우나오션리조트 체육관 붕괴 참사를 계기로 폭설 관측체계와 대비 시스템을 총체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우리나라는 태풍이나 여름철 폭우에 대해서는 꾸준히 관측장비를 늘리고 대비책을 세워왔지만 폭설 대비책은 부실했다. 전문가들은 세계적인 기후변화가 꾸준히 나타나 앞으로 폭설로 인한 더 큰 재난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19일 기상청 자료에 따르면 현재까지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자연재해 중 가장 피해가 큰 재난은 태풍이다. 한국이 영향권인 북서태평양에서만 매년 평균 25.6개의 태풍이 발생한다. 이 중 매년 평균 3개가 여름철 한국에 상륙한다. 매년 태풍으로 인한 재산 피해는 연평균 1조3816억 원, 사상자는 평균 49명이다. 소방방재청에 따르면 2012년 태풍으로 인한 사망자는 14명, 폭우로 인한 사망자는 2명이지만 폭설로 인한 사망자는 없었다. 재산 피해 규모도 소방방재청 추산으로 태풍이 10억371만 원, 폭우가 3843만 원인 데 비해 폭설은 2035만 원이었다. 피해 규모가 적다는 점 때문에 폭설 대처에는 비교적 소홀했다. 시민들로서는 태풍이나 폭우가 임박한 경우 뉴스속보와 TV 자막을 통해 실시간으로 강수량 변화, 바람 세기, 예상 피해 규모, 대처 요령을 알 수 있었다. 반면 폭설은 눈이 내리기 전 강설량이 몇 cm 정도 될 것이라는 예보만 알 수 있을 뿐 실시간으로 각 지역 강설량이 어떻게 변하는지, 내리는 눈이 금방 녹는 성질인지, 이번 붕괴사고처럼 녹지 않고 무거운 습설(濕雪)인지는 알 수 없었다. 기상장비 규모에서도 차이가 컸다. 기상청에 따르면 강수량을 측정하는 자동기상관측장비(AWS)는 전국에 약 600개가 설치돼 운영되고 있다. 빗물이 차오르면 실시간으로 강우량 데이터가 갱신되고 기상청으로 정보가 전송된다. 반면 초음파를 눈에 발사한 뒤 되돌아오는 속도를 계산해 강설량을 측정하는 초음파식 적설계는 2012년 기상연감에 따르면 전국에 73대뿐이다. 화면을 통해 강설량을 확인하는 적설 폐쇄회로(CC)TV는 전국에 116대가 있다. 기상청 허진호 통보관은 “눈은 빗물과 달라 대부분 기상청 직원이 직접 자를 들고 높이를 재야 한다”며 “얼고 녹기를 반복하거나 눈의 성질이 다양하기 때문에 빗물 측정에 비해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이번 붕괴사고의 원인이 된 습설도 일반 눈보다 습기가 많아 1.5∼2배 더 무거운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겨울철 이상기후가 잦아지고 폭설 피해가 늘어날 개연성이 크다고 경고했다. 예상욱 한양대 해양융합과학과 교수는 “한국의 겨울 기온은 북극 공기의 흐름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흐름이 불규칙하게 변하고 있다”며 “10년 주기로 보면 우리나라가 속한 동아시아로 찬 공기가 많이 유입되고 있는 흐름이다”라고 분석했다. 갈수록 불규칙해지는 겨울 날씨가 어떤 재해를 불러올지 예측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올겨울에도 세계 곳곳에서 폭설 및 한파 피해가 잇따랐다. 1월 폭설이 내린 독일 베를린에서는 132건의 교통사고로 2명이 숨졌다. 미국 중서부 지역에서는 폭설로 20여 명이 숨지고 항공편 1만8000여 편이 지연 또는 결항됐다. 전문가들은 이제 폭설도 태풍과 폭우와 같은 수준의 자연재난으로 인식하고 관측장비를 늘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기상청은 높이가 아니라 무게로 강설량을 측정하는 측정장비를 시험 중이지만 실제 가동은 2017년 정도가 돼야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김승배 기상아카데미 대표는 “현재 더 나은 장비가 없다면 적설계 수를 늘리고 장기적으로 신뢰도가 높은 자동관측장비 도입을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이은택 nabi@donga.com·박가영 기자}

《 시신은 흰 천으로 덮여 있었다. 그 위에 싸락눈이 쌓여 갔다. 장례식장은 시신 받기를 거부했다. 시신은 병원 주차장 바닥에 놓여 있었다. 간밤에 조선족 여성은 과부가 됐다. 시신을 부여잡고 흐느끼는 어깨가 떨렸다. 응급차 한 대가 다급하게 달려왔다. ‘사단법인 한마음장례실천봉사회’ 문구가 붙어 있었다. 이재동 씨(57)가 운전석에서 내렸다. 이 씨가 다가가 말했다. “울지 마세요. 모시겠습니다.” 여성은 계속 고개를 묻고 흐느꼈다. 이 씨는 응급차 뒷문을 열고 시신을 들었다. 눈에 젖은 옷 탓에 시신은 무거웠다. 무게가 허리에 전해지자 끄응 신음이 나왔다. 그제야 여성은 천천히 일어났다. 이 씨가 휴대전화를 들었다. 》 “수녀님, 자리 있어요? 갑니다.” 응급차가 병원을 빠져나갔다. 앞 유리 와이퍼가 내려앉는 눈을 밀어냈다. ‘개××들, 아무리 돈이 없다 해도 그렇지. 시신을….’코끝이 아렸다. 2012년 1월. 이 씨는 경기 수원 성빈센트병원 장례식장으로 차를 몰았다.○ 시작은 우연히 만난 ‘외로운 시신’ 한 구 8년을 거슬러 올라가 2006년. 지인에게 딱한 사연을 들었다. “혼자 살던 할머니래. 돌아가신 지 사흘이 넘었는데 냉동고에 있다네. 자식들이 아주 없는 게 아니라 있는데 연(緣)을 끊고 살아서 구청도 어찌할 바를 모른대.” 어머니가 생각났다. 2001년 이 씨의 어머니는 위암 말기 선고를 받았다. 1980년부터 20년간 사우디아라비아에서 태권도 사범을 했던 이 씨는 한국에 돌아왔다. 길어야 한두 달이라고 의사가 말했다. 20년간 자리를 비운 불효가 이렇게 돌아오는 것인가 싶었다. 그런데 한 달, 두 달, 석 달이 지나도 어머니는 멀쩡했다. 오히려 상태가 호전됐다. 3년 6개월이 지나자 암세포가 모두 자연적으로 소멸됐다. 의사는 이유를 설명하지 못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실 뻔한 그때가 생각났다. 냉동고 안의 시신도 누군가의 어머니였을 것이다. “내가 할게요. 할머니 제가 장례 치르겠습니다.” 비상금 480만 원을 털어 장례비용을 댔다. 경찰은 할머니처럼 냉동고에 장기 보관된 시신이 많다고 했다. 며칠간 냉동고 속의 시신이 머릿속을 떠나질 않았다. 두려움이 아니라 슬픔이었다. 돕고 싶었다. 그렇다고 계속 돈을 쏟아 부을 사정이 안 됐다. 몸을 쓰는 법을 찾아야 했다. 보름 뒤, 장례지도사 자격증 과정을 시작했다. 염습(殮襲·시신을 닦고 수의를 갈아입히고 염포로 묶는 일)부터 입관, 운구까지 배워 나갔다. 그때부터였다. 무연고 시신, 돈이 없어 냉동고에 방치된 시신들을 찾아나선 게. 뜻 맞는 이들도 모였다. 10여 명이 모여 시작한 장례봉사는 1년 만에 서울, 경기, 강원 등 전국 회원 500여 명으로 불어났다. ‘이럴 거면 번듯하게 사단법인을 만들자.’ 2010년 10월. 이 씨의 뜻을 들은 보건복지부 사무관이 ‘한마음장례실천나눔회’라는 이름을 직접 제안했다. 성당 연령회(煉靈會·천주교에서 신도의 장례를 치러주는 봉사회)에서 30년간 잔뼈가 굵은 양정임 씨가 회장을 맡았다. 이 씨는 사무국장을 맡아 밖으로 뛰었다.○ 봉사로 시작한 일, 목숨을 걸다 ‘도와주세요.’ 2012년 6월. 나눔회 인터넷 카페에 글이 올라왔다. 이 씨는 ‘연락 달라’며 전화번호를 남겼다. 1시간 뒤 휴대전화가 울렸다. 여성은 울며 필리핀에 간 아버지가 숨졌는데 ‘시신을 찾아가려면 돈을 내라’는 협박전화를 받았다고 했다. 전화를 건 자들은 e메일로 아버지의 시신 사진을 보냈다. 딸은 300만 원을 송금했지만 요구 액수는 1억 원으로 늘었다. 어머니는 어릴 때 이혼해 집을 나갔다. 돈이 없었다. “잘 들으세요. 모든 연락은 지금부터 저를 통해서 합니다.” 돈을 보내도 시신을 받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 방법은 하나였다. 필리핀에 가서 시신을 몰래 빼오는 것. 이사회를 소집했다. 격론이 오갔다. 이 씨가 납치되거나 죽을 수 있다고 이사들이 말렸다. 시신이 있다는 필리핀 민다나오는 내전지역이었다. 정부군도 치안을 통제하지 못했다. 외국인 관광객이 자주 납치 살해를 당했다. 한국인의 시신이 그곳 어딘가에 홀로 있었다. “가야 한다”는 이 씨의 고집에 이사들은 흐느끼며 항공료를 각출했다. 이 씨는 가족에게 출국을 알리지 않았다. 출국날 인천국제공항. 이 씨는 전화를 건 최모 씨(30·여)를 처음 만났다. 최 씨는 혼자 게이트를 빠져나가는 이 씨의 등 뒤에 주저앉아 울었다. 필리핀 마닐라에 도착한 이 씨는 라인을 총가동했다. 태권도 사범 시절 가르친 제자들과 친구들이 현지에 있었다. 마닐라에 숙소 2곳을 잡고 밤낮을 옮겨 다니며 묵었다. 총기를 소지한 현지 경호원을 고용했다. 수소문 끝에 민다나오의 한 병원 냉동고에 시신이 있다는 정보를 얻었다. 트럭과 승용차를 빌려 민다나오로 달려갔다. 병원에 200달러(약 21만 원)를 주고 은밀하게 시신을 빼냈다. 병원 주변에 총 든 자들이 어슬렁거렸다. 이 씨는 시신을 마닐라로 옮겨 화장했다. 4일 뒤 인천국제공항 입국장. 딸 최 씨는 아버지와 재회했다. 걸어서 떠난 아버지는 유골함에 담겨 돌아왔다. 며칠 뒤 이 씨는 편지 1통을 받았다. ‘이재동 사무국장님께. 가슴을 치며 울던 두 달이 끝난 오늘에서야 짧은 단잠을 취하고 일어나 편지를 씁니다. 국장님께서 출국하시는 뒷모습을 보고 돌아서서 제가 흘렸던 눈물. 잊지 않을 것입니다. 앞으로도 많은 이들에게는 희망이 되어 아름다운 길을 가시길 소원합니다. 2012년 6월 22일. 최○○ 올림.’○ 수많은 사연과 시신 앞에서 2012년 성탄절이 지난 12월 26일. 이 씨는 시체안치실에 서 있었다. 칠성판 위에 52세 남성의 시신이 올려졌다. 집에서 숨진 지 3일이 지나 발견됐고, 4일을 더 냉동고에 있었다고 경찰이 말했다. 시신의 생전 사연을 들었다. ‘이런 자도 내가 거둬야 하나.’ 증오가 일었다. 염습을 해야 할 손이 나가질 않았다. 숨진 김모 씨는 10년 전 딸과 아들을 버렸다. 각각 아홉 살과 일곱 살 때였다. 두들겨 맞던 아내는 집을 나갔다. 김 씨는 매일 술을 마셨다. 맨 정신일 때는 여자를 집으로 불러들였다. 남매는 그때마다 쫓겨났다. 여자가 돌아가길 기다리며 남매는 종일 동네를 하염없이 걸었다. 남매는 보육원으로 옮겨졌다. 이 씨는 체념한 듯 한숨을 쉬었다. 시신의 셔츠와 추리닝 바지를 벗겼다. 얼어 푸른빛이 도는 전신이 드러났다. 탈지면에 알코올을 적셔 발가락부터 목까지 닦아나갔다. 시신을 뒤집었다. 뒤꿈치부터 뒷목까지 닦았다. 성기 주변에 분비물이 얼어 있었다. 닦았다. 옆으로 눕혀 하대(기저귀)를 채웠다. 버선, 속바지, 바지를 입혔다. 속저고리, 겉저고리, 두루마기, 도포도 입혔다. 탈지면으로 입안을 닦아냈다. 한지로 얼굴을 감싸 묶었다. 이 씨는 탈진했다. 염습을 마치고 김 씨의 딸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보육원을 수소문해 연락처를 알아냈다. ‘오늘 저녁 고 김○○ 님 염습과 입관을 했고 내일 오전 10시 세종시 화장장으로 갑니다. 힘드시겠지만 고인 가는 길에 동행할 수 있는지요. 장례비용은 다 처리됐으니 돈 걱정은 마시고 오시기 바랍니다. 기다리겠습니다. 한마음장례실천나눔회 이재동.’ 답장은 오지 않았다. 다음 날 이 씨는 혼자 시신을 싣고 화장장으로 갔다. 화장(火葬) 소요시간은 1시간 15분. 캔커피를 조금 마셨다. 담배를 한 대 피웠다. 납골당에서 기다리는 시간은 늘 더디 갔다. 화장을 마친 유골함을 응급차 조수석에 싣고 오는데 문자메시지 알림음이 울렸다. ‘저와 제 동생은 마음을 정했습니다. 아버지 장례는 감사하지만 참석하지 않겠습니다.’ 산길은 울퉁불퉁했다. 차가 덜컹거릴 때마다 유골함도 들썩였다. 유골함에 잠든 김 씨가 몸을 뒤척이는 것 같았다. 아비가 자신을 빼닮은 딸과 아들을 세상에 낳고, 그 딸과 아들을 학대해 내쫓고, 딸과 아들이 장성해 죽은 아비를 버리는 참담한 천륜 앞에서 이 씨는 정신이 아득해졌다. 유골함은 경기 광명 메모리얼파크 무연고 유골 안치실에 모셔졌다. 이 씨는 신청서류 신고인란에 ‘이재동’ 세 글자를 적었다.○ 모든 사람은 죽어서도 고귀하다 해외를 오가며 무역업을 하는 이 씨는 매년 시신 40여 구씩을 수습했다. 조선족, 불법 체류자, 탈북자, 에이즈 감염자…. 이 씨는 “전국에 내 이름으로 안치된 유골함이 모두 몇 개인지 잘 모른다”고 말했다. 14일 광명 메모리얼파크에서 만난 이 씨에게 물었다. “왜 죽은 사람들을 찾아다니십니까. 산 사람에게 밥을 주거나 옷을 입히면 살아있는 한 보고 뿌듯해할 수 있지 않습니까.” 이 씨가 미간을 찌푸렸다. “그거 아십니까. 노숙자 중에는 10만 원짜리 수표 1장을 속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어요. 왜 가지고 있느냐고 물었어요. 그랬더니 그래요. 오늘 굶거나 하루 이틀 길에서 자는 건 안 무섭다고. 그런데 죽으면 자기 시신이 어떻게 될지 몰라 무섭다고. 혹시 누가 이 수표를 발견하면 그걸로 자기 시신 장례 치러달라고 종이에 적어서 품에 넣고 다닌대요.” 이 씨가 자판기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말을 이었다. “사람은 살아서든 죽어서든 고귀하니까. 그런데 산 사람들한테 봉사할 사람은 많아도 죽은 사람한테는 드무니까. 무섭고 더러워 꺼리잖아요. 그럼 산 사람이 더 불쌍해요? 죽은 사람이 더 불쌍해요?” 그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잠시만” 하더니 납골당 휴게실을 나갔다. 양복 속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한 대 입에 물었다.이은택 기자 nabi@donga.com}

경북 경주시 마우나오션리조트 체육관 붕괴 당시 사고현장을 탈출했던 선배가 후배들을 구하기 위해 수차례 다시 체육관에 들어갔다가 숨진 사실이 알려져 주위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부산외국어대와 유가족, 목격자들에 따르면 이 학교 미얀마어과 학생회장인 4학년 양성호 씨(25)는 17일 사고 순간 체육관 안에 있다가 천장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하자 재빨리 탈출했다. 탈출 순간 양 씨는 주변의 신입생들에게 “뛰어!”라고 소리 지르며 대피를 안내한 것으로 알려졌다. 탈출 뒤 붕괴된 건물 잔해에 후배들이 묻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양 씨는 이들을 구하기 위해 다시 현장으로 달려갔다. 양 씨는 후배들을 찾기 위해 건물 잔해 안으로 들어갔다 나오길 4차례 반복하다 다섯 번째 들어갔을 때 2차 붕괴가 일어났다. 양 씨는 무너져 내린 철골 구조물에 깔린 채 발견됐다. 지인들은 양 씨가 어머니 하계순 씨(52)를 닮아 늘 남을 도우려 노력했다고 전했다. 하 씨는 부산 남구 용당 여성의용소방대장으로 14년간 활동하며 부산 남부소방서 관내의 재난현장을 지켜온 것으로 알려졌다. 하 씨는 이 공로를 인정받아 2013년에 소방방재청장 표창을 수상했다. 양 씨의 빈소가 마련된 부산침례병원 장례식장에는 18일 양 씨의 의로운 죽음을 애도하는 선후배와 친구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았다. 오전에는 사고현장에서 생존한 한 여학생이 울면서 빈소를 찾아와 “오빠야(양 씨)가 나를 구해서 살았다”며 오열한 것으로 전해졌다. 어머니 하 씨는 꽃다운 나이에 너무 일찍 세상을 뜬 아들의 영정사진 앞에서 흐느꼈다. 하 씨는 당초 “성호 형이 후배들을 구하고 있다”는 학생들의 말을 듣고 안심했다가 사고 현장에 도착해서야 의식 없이 피투성이 상태인 아들을 발견했다. 10여 년간 119구급대에서 봉사를 한 하 씨는 아들이 구급차가 아니라 응급조치를 할 수 없는 경찰차에 실려 병원으로 옮겨졌다는 말을 전해 듣고 안타까워했다. 하 씨는 아들이 이송된 지 1분 만에 숨졌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이날 소식을 듣고 달려온 친척들은 “그냥 있었으면 될 것을 왜 다시 들어가서 변을 당했느냐”며 안타까워했다. 부산 남구청은 양 씨를 의사자(義死者)로 지정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부산=최혜령 herstory@donga.com / 이은택 기자}

이모 씨(33)는 2012년 4월 28일 여성 환자를 성추행한 혐의로 기소됐다. 당시 병원 인턴의사로 근무하던 이 씨는 이날 오전 6시 26분경 복통을 호소하며 병원을 찾은 23세 여성 환자를 병원 침대에 눕혔다. 이 씨는 “촉진(觸診·손가락을 통한 촉각으로 환자 상태를 진단하는 것)을 하겠다”라며 환자의 속옷 안에 손을 넣어 몸을 더듬었다. 또 “외롭지 않으냐”며 “나중에 전화할 테니 잘 받으라”는 말도 했다. 울산지법 형사 2단독 함윤식 판사는 지난달 9일 이 씨에게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 40시간의 성폭력치료강의 수강 명령을 선고했다. 재판 과정에서 이 씨가 로스쿨 학생이라는 점이 밝혀졌다. 이 사건이 불거지자 병원에 사표를 낸 뒤 모 대학 법학전문대학원 입학시험을 치러 합격했던 것. 변호사시험법 제6조에 따르면 금고 이상 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유예기간이 지난 뒤 2년이 지나면 변호사 시험에 응시할 수 있다. 이 씨는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았기 때문에 판결 선고로부터 1년이 지나는 2015년 1월 집행유예 기간이 끝난다. 그 시점에서 변호사시험법에서 정하는 2년이 지나 2017년 1월이 되면 변호사 시험 응시 자격이 생긴다. 울산지법에 따르면 이 씨는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다. 감형이 이뤄지면 이 씨의 변호사 시험 응시 가능일자는 더 당겨질 수도 있다. 이같이 파렴치한 성범죄자도 시간이 지나면 변호사 시험에 응시해 법조인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서울대 학생들은 서울대 온라인커뮤니티에 울산지법 판결문을 올려놓고 ‘오늘도 법조계는 평화롭다’며 조롱과 비판 글을 잇달아 올렸다. 한 서울대생은 “파렴치한 성범죄자가 어떻게 변호사가 될 수 있도록 하는지 법 자체가 상식에 어긋난다”며 “병원에서 쫓겨나 로스쿨에 합격했다는 말인데, 신입생 선발과정에서 이를 걸러내지 못한 로스쿨도 문제”라고 비판했다. 대부분의 성범죄에서 피해자인 여성들의 분노는 더 컸다. 직장 상사에게 성희롱을 당한 경험이 있는 최모 씨(29·여)는 “성범죄를 당한 여성이 변호사를 찾아갔는데 그 변호사가 과거 성추행범이었다면 기분이 어떨지 상상이 안 된다”고 말했다.이은택 기자 nabi@donga.com}
아내가 암으로 숨진 남편의 시신을 수년 동안 집 안에 유기했다가 경찰에 붙잡혔다. 서울 방배경찰서는 남편 신모 씨의 시신을 집 안에 방치한 혐의(사체유기)로 아내 조모 씨(47·약사)를 불구속 입건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조 씨의 동료 약사의 신고를 받고 지난해 12월 19일 조 씨의 자택을 압수수색해 시신을 발견했다. 경찰에 따르면 신 씨의 시신은 발견 당시 거실 TV 맞은편에 TV를 시청하는 자세로 눕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불에 덮여 있던 시신은 미라처럼 말라 있었다. 조 씨는 경찰에 붙잡힌 순간에도 “남편은 살아있다. 기도하면 다시 깨어날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초등학생, 중학생, 대학생 자녀들도 아버지가 살아있다고 믿으며 등교할 때 시신에 “학교 다녀오겠습니다”라고 인사까지 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 집에는 조 씨와 자녀 3명, 시누이가 함께 살았다. 미스터리한 부분은 시신이 왜 썩지 않고 미라가 됐는가 하는 점이다. 경찰에 따르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부검 결과 시신에서는 약품처리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다. 경찰은 약사인 아내가 부패를 막기 위해 약품처리를 했을 것으로 추정했으나 부검 결과 예상이 빗나갔다. 경찰 관계자는 “부검의조차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는지 황당하다는 반응이었다”며 “특이점이라면 아내 조 씨가 매일 남편의 시신을 물수건으로 깨끗이 닦아줬다는 것뿐”이라고 덧붙였다. 경찰은 숨진 신 씨의 마지막 병원 진료기록이 2006년이었던 점으로 미루어 2006년이나 2007년경 숨졌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신 씨는 살아있었다면 50세”라며 “몇 살에 죽었는지, 몇 년 동안 미라 상태로 방치됐는지 가족들이 입을 다물고 있다”고 밝혔다. 조 씨는 남편이 죽은 뒤에도 약국 영업을 계속했으며 집 내부가 보이지 않도록 그동안 현관에 두꺼운 커튼을 치고 생활한 것으로 밝혀졌다.이은택 기자 nabi@donga.com}
◇대한민국애국시민연합, 애국단체총협의회, 한국기독교총연합회,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공교육살리기국민연합은 510개 시민단체와 함께 6일 오후 2시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 20층 국제회의장에서 역사교과서 대책 범국민운동본부 출범대회를 개최한다.}
노인수급자를 대상으로 방문 서비스를 제공하지도 않고 마치 한 것처럼 서류를 꾸며 정부 돈을 타 낸 요양센터 원장과 요양보호사 일당이 붙잡혔다. 서울 관악경찰서는 고령 노인과 질병 노인 수급자 자택을 방문해 요양 및 목욕 서비스를 제공한 것처럼 꾸며 건강보험공단에서 국가보조금 약 1억 원을 타 낸 혐의(노인장기요양보험법 위반)로 요양센터 원장 박모 씨(56·여)와 요양보호사 조모 씨(51·여) 등 23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은 2011년 5월부터 2013년 10월까지 총 30개월 동안 노인수급자 자택에 비치된 장기방문기록지에 허위 서명을 하는 등의 방법으로 건보공단에 급여를 청구했다. 경찰은 국가보조금을 부당 수령한 추가 사례가 없는지 수사를 진행 중이다.이은택 기자 nabi@donga.com}

영국작가 조앤 K 롤링의 해리포터 시리즈에는 투명망토가 나온다.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이 투명망토를 쓰면 사람들 눈에 보이지 않은 채 마음대로 돌아다니거나 일을 꾸밀 수 있다. 대포폰, 대포통장, 대포차 일명 ‘대포시리즈’는 범죄자에게 현대의 투명망토나 마찬가지다. 타인의 이름으로 된 휴대전화로 협박문자를 보낼 수 있다. 사기로 뜯어낸 돈을 계좌로 송금받아도 통장명의자는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다. 교통단속카메라에 차량번호가 찍혀도 내 인적사항은 드러나지 않는다. 동아일보 취재팀은 대포폰의 유통과정을 확인하기 위해 직접 구입에 나섰다. 3일 인터넷 검색사이트 구글에 대포폰과 관련된 단어를 검색했다. ‘타인명의 폰’, ‘휴대폰 팝니다’ 등을 검색하자 광고가 쏟아졌다. 대포폰 판매업자는 전화번호나 인터넷 메신저 ID를 남겼다. 전화를 걸자 남성이 받았다. “대포폰 있어요?”, “네, 어떤 걸로 찾으세요?”. 업자는 구형 피처폰은 15만∼17만 원, 최신 스마트폰은 30만 원 선이라고 말했다. 다른 업자는 “삼성 슬라이드나 폴더폰은 15만 원, 갤럭시S2는 30만 원, 갤럭시S3는 45만 원”을 불렀다. 취재팀은 “15만 원에 폴더폰을 사겠다”고 했다. 업자는 “퀵으로 받으면 2만 원이 더 들고, 직접 이 근처로 오면 내가 나가서 준다. 사무실로는 올 수 없다”고 했다. 4일 오후 2시 취재팀은 서울 경희대 인근에서 업자를 만나기로 했다. 2시 5분쯤 약속장소에서 전화를 걸자 취재팀 뒤에 서서 통화를 하던 50대 남성이 갑자기 주머니에서 다른 휴대전화를 꺼내 전화를 받았다. 그는 봉투에 담긴 대포폰을 내밀었다. 꺼내자 흰색 폴더폰이 나왔다. “요금은 선불충전식”이라고 했다. 동봉한 명함을 가리키며 “여기 번호로 걸어서 1만 원이나 2만 원씩 충전해 달라고 하고 계좌로 보내면 된다”며 “아는 사람들이니까 걱정 없다”고 말했다. 대포폰에는 ‘이○○’라는 이름이 적힌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업자는 “원래 소유자인 여성 이름이다. 쓸 일이 있을지도 모를 거다”라며 “‘일’이 생기면 한 달간 애프터서비스(AS)를 해준다”고 말했다. 또 “그 대신 이걸로 피싱하거나 대출문자 날리다 구속되면 나는 모른다”고 덧붙였다. 업자가 말한 ‘일’이란 사용 중지로 쓸 수 없게 되거나 하면 새 대포폰으로 바꿔준다는 뜻이었다. 대포폰 안에는 통화기록, 주소록, 문자, 사진이 하나도 없었다. 취재팀은 원주인을 찾기 위해 한 데이터 복구 전문업체에 복구를 의뢰했다. 개인정보보호법상 타인명의 휴대전화는 위임장이 없으면 복구가 불가능하다. 취재팀은 취재 목적을 밝히고 데이터를 그 자리에서 확인한 뒤 다시 파기한다는 조건으로 복구작업을 진행했다. 그 결과 통화기록 4건, 문자메시지 4건, 주소록 2건이 나왔다. 복구를 담당한 전문가는 “상태로 보아 중간에 초기화를 한번 거쳐 데이터가 많이 삭제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원소유주로 추정되는 이모 씨는 찾을 수 없었다. 경찰 관계자는 “유출된 개인정보를 이용해 휴대전화 대리점에서 수십 개, 수백 개씩 한꺼번에 (대포폰을) 만들기도 한다”며 “대포폰 업자들은 통신사에서 개통 수당도 챙기고 대포폰 판매수익도 챙긴다”고 설명했다. 취재팀은 대포통장 업자와도 접촉했다. 구글에서 통장을 판다는 글을 찾아 3일 전화를 걸자 업자들은 자신이 판매하는 통장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다. “우리는 법인(통장)은 취급 안 하고 개인(통장)만 있어요. 한 달간 AS 되고 인터넷뱅킹, 폰뱅킹 등 풀옵션으로 하면 60만 원. 인터넷 뱅킹이 안 되는 통장이랑 현금카드만 하면 50만 원입니다.”(업자1) “법인장(법인통장)이 좋아요 그거 사세요. 개인장(개인통장)은 명의자가 중간에 돈을 빼돌릴 수도 있고 거래중지를 시킬 수도 있는데 법인장은 우리가 만든 거라 아무 문제없습니다.”(업자2) 한 업자는 심지어 “법인 설립도 대행해준다”고 유혹했다. 그는 “150만∼250만 원만 내면 법인 설립을 해주는데, 법인 명의로 통장을 여러 개 만들면 되니 그게 더 좋지 않으냐”며 의사를 물어왔다. 경찰 관계자는 “일명 ‘통장 알바’라고 돈 받고 자신 명의의 통장을 대여해 대포통장이 되는 경우도 있고, 노숙인에게 업자들이 계좌를 개설시키고 돈을 지불하는 경우도 있다”고 대포통장 개설과정을 설명했다. 이런 식으로 유통된 대포폰과 대포통장은 온갖 범죄에 사용된다. 지난해 4월 텝스와 토익 어학시험을 치르는 과정에서는 대포폰이 답안을 불러주는 데 사용됐다. 2012년 5월에 일어난 여성 납치 인질강도 사건에서는 범인들이 대포폰 2대와 대포차 2대를 이용해 경찰의 추적을 따돌리며 범행을 일삼기도 했다. 지난해 미래창조과학부 발표에 따르면 2009년부터 2013년까지 이동통신 3사의 명의도용 집계건수는 총 2만2929건, 피해액은 130억 원에 달한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대포통장 약 3만6000개(2013년 6월 말 현재)가 국내에 유통되고 있다. 이은택 nabi@donga.com·황성호·박가영 기자}

서울대 물리학과 대학원에서 1학기에 개설될 예정이었던 응용물리학특강1 과목이 4일 갑자기 폐강됐다. 물리학과 대학원 측이 폐강 사실을 인터넷 게시판에 공지하자 수강신청을 했다가 수업을 듣지 못하게 된 서울대생들이 이유를 궁금해하며 “다른 교수님께서 강의를 맡아 진행할 가능성은 없는지 궁금하다”며 문의 글을 올렸다. 물리학과 측이 학생들에게 밝힌 폐강 이유는 놀라웠다. 물리학과 관계자는 “죄송합니다. 현재로서는 특강을 맡아주실 교수님이 학부에 없습니다”라며 “응용물리학특강1 담당교수의 이스라엘 대통령 출마가 갑자기 결정돼 학부로서도 다르게 대처할 방법이 없습니다”라고 사정을 밝혔다. 대선 출마로 강의를 폐강한 교수는 바로 2011년 노벨 화학상을 수상한 단 셰흐트만 교수(사진)였다. 셰흐트만 교수는 이스라엘 테크니온공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셰흐트만 교수는 서울대 교수는 아니지만 서울대 측에서 노벨상 수상자 초청특강 형식으로 올 1학기 수업을 계획했던 것. 물리학과 관계자는 “교수님의 대선 출마로 강의가 폐강된 건 처음이라 저희들도 무척 당황스럽다”고 말했다. 이은택 기자 nabi@donga.com}

서울대 컴퓨터공학과 버나드 에거 교수(39). 한국 이름 이강웅. 스위스에서 건너와 한국에서 산 지 12년째다. 2003년 서울대에서 박사과정을 밟게 된 뒤 한국과 인연을 맺어 한국인 아내도 얻었다. 지난해 9월 서울대 사상 외국인 교수로는 처음으로 보직교수(공대 정보화국제화본부장)를 맡아 화제가 됐다. 설 연휴 전날인 지난달 29일 서울대 공대 에거 교수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그는 “한국에 적응돼서 스위스로 돌아가기 싫다”며 웃었다. 지금은 북한 뉴스에도 무덤덤해졌지만 2003년 한국에 오기 전만 해도 가족과 친구들의 걱정이 컸다. 스위스에서 한국은 아직도 전쟁이 끝나지 않은 나라로 알려져 있다. 남북긴장이 고조될 때면 한국 언론보다 스위스 언론이 더 난리였다. 에거 교수는 “막상 와 보니 서울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살고 있더라”면서 “이제는 나도 매일 출근하고 일상 업무 하느라 장성택 처형 같은 북한 관련 뉴스가 나와도 특별히 신경 안 쓰고 산다”며 웃었다. 그의 부모님도 아들을 한국으로 장가보낸 뒤 한국을 3차례 찾았다. 평화로운 서울의 일상을 목격한 뒤 안심했지만 그래도 북한 뉴스를 접하면 아들에게 “괜찮니?”라며 안부전화를 걸어온다고 한다. 에거 교수에게 서울대가 2012년부터 하고 있는 ‘노벨상 수상자 모시기’에 대해 물었다. 서울대는 매년 30억 원의 예산을 배정해 10억∼15억 원씩의 연봉을 주고 노벨상 수상자나 그에 준하는 석학을 유치하는 데 열을 올리고 있다. 2012년 연봉 15억 원을 받고 경제학과 교수로 부임한 토머스 사전트 교수(노벨 경제학상 수상)는 지난해 서울대를 떠났다. 에거 교수는 “이 정책은 위험하다(dangerous)”라고 말했다. 그는 “10억 원이면 서울대 교수 20명이 5000만 원짜리 프로젝트 연구를 할 수 있는 큰돈”이라며 “노벨상을 돈으로 사려는 것 같아 위험해 보인다”고 비판했다. “그보다는 차라리 좋은 연구환경을 만드는 데 지원을 늘리고 시간을 들이면 언젠간 한국에서도 노벨상이 나올 것”이라고 덧붙였다. 노벨상에 집착하는 한국의 여론도 여전히 낯설다. 한 번은 수상자 발표날 고은 시인의 집 앞에 기자들이 모여 있는 광경을 뉴스에서 보고 놀랐다. 그는 “이상했다”며 “스위스에서는 수상자 발표날이 돼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고 말했다. 스위스는 지금까지 29명이 노벨상을 수상했다. 학생들을 가르칠 때 가장 아쉬운 점은 “너무 조용하다는 점”이다. 학부 수업을 영어로 진행하는 에거 교수는 “서울대생은 질문을 안 한다”고 꼬집었다. 그는 “혼자 책 보고 공부할 땐 잘하는 것 같은데, 수업에 들어오면 종 칠 때까지 한마디도 안 하고 다들 앉아서 듣기만 한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다들 이해해서 그런가 보다’ 했다가 시험답안지를 받아들고선 “오 마이 갓! 아무도 내가 가르친 걸 이해 못했어!”라고 외친 적도 있다. 그는 “영어가 서툴러도 좋으니 질문하고, 한국말로라도 궁금한 것들을 물어보면 좋겠다”고 말했다. 아내가 한국 사람이라 그는 한국어에도 능통하다. 또 “스위스 학생들은 궁금한 점을 수업 전에 미리 공부하기보단 수업시간에 질문을 해 푸는 게 보통”이라고 덧붙였다. 한국을 떠날 생각을 한 적은 없는지 묻자 고개를 저었다. 에거 교수는 “아내가 한국 사람이고, 한국 친구도 많고, 한국말도 편해서 이젠 스위스보다 한국이 더 좋아요”라며 웃었다. 인터뷰 내내 그는 유창한 한국어를 구사했다. 휴가차 오후 1시 항공편으로 고향에 간다는 그와 인터뷰가 끝나고 돌아서자 그가 “살펴가세요!”라고 소리쳤다.이은택 기자 nab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