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원모

유원모 기자

동아일보 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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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법조팀 유원모 기자입니다. 잘 듣고 잘 쓰겠습니다.

onemore@donga.com

취재분야

2026-02-28~2026-03-30
검찰-법원판결63%
사회일반20%
사법10%
정치일반7%
  • 뽁뽁이 붙이고 실내화 신고… 난방비 확 줄었어요

    “실내화로 갈아 신으세요.” 14일 오후 서울 송파구 가온누리 보습학원에 들어서자 이화자 원장(57·여)은 “바닥이 차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 원장이 실내화를 챙기기 시작한 것은 2013년 12월 40만 원에 이르는 전기료 고지서를 받으면서부터다. 전달에 비해 2배가 넘게 청구된 것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겨울에도 10만 원 안팎의 전기료만 내고 있다. 방법은 작은 변화였다. 쓰지 않는 전자제품의 코드를 빼고, 온돌 난방이 설치되지 않은 바닥에서는 냉기를 막기 위해 반드시 실내화를 신도록 했다. 11월이 되면 항상 따뜻한 차를 준비해 교사와 학생들 스스로 온기를 유지할 수 있게 했다. 학원생 박근영 군(15)은 “누구나 난방기를 켤 수 있다. 하지만 교실에서 나갈 때는 반드시 꺼야 한다”고 말했다. 거리의 상점들은 겨울철만 되면 과도한 난방으로 경제적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에너지 절약을 실천해 난방비를 합리적으로 줄인 곳도 적지 않다. 이들의 공통점은 작지만 강한 실천이다. 서울 강남구 토니앤가이 미용실은 겨울철 적정 실내 온도인 20도 정도로 맞추고 필요할 때만 천장의 난방기를 가동한다. 오후 8시 영업시간이 끝나면 모든 전력을 차단해 불필요한 전기 사용을 줄이고 있다. 서울 마포구 그레이스 요양병원은 노인들이 거주하기 때문에 겨울에 무엇보다 온도 유지가 중요하다. 병원 측은 이를 위해 지난해 작은 창문 한 개까지 이른바 ‘뽁뽁이’(단열시트)를 설치해 열 손실을 꼼꼼히 막았다. 덕분에 월 150만 원씩 나오던 겨울철 난방비를 100만 원 수준으로 30%가량 아낄 수 있었다. 난방비 절약을 독려하는 지방자치단체의 다양한 정책을 활용하는 것도 현명하다. 서울시는 2013년부터 ‘알뜰 으뜸 절전소’ 공모전을 도입했다. 전년에 비해 전기 사용량을 절감한 업소에 포상금 등을 지급한다. 정희정 서울시 에너지시민협력과장은 “실외기 위치를 문 근처로 바꾸는 등 작은 변화만으로 최대 50%의 난방비를 절약할 수 있다”고 말했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 2015-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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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대 공대 2000명 전원 결핵 검진

    서울대 공대 대학원생 2명이 지난달 결핵에 감염된 것으로 확인돼 14일 공대 학생 2000여 명 전원을 대상으로 결핵 감염 여부를 검진했다. 서울대 등에 따르면 서울대 공대 대학원생 2명이 지난달 군 입대 신체검사 도중 결핵 판정을 받아 치료를 받고 있다. 이에 따라 결핵협회와 서울 관악구보건소는 14일 오후 2시부터 결핵 감염 학생들이 연구실로 이용했던 공대 건물에서 공대 소속 학부생과 대학원생 2000여 명을 대상으로 흉부 X선 촬영을 통해 검진을 실시했다. 이날 검진을 받은 학생은 250여 명이다. 서울대 보건진료소는 결핵 확진 학생 2명과 ‘밀접 접촉’한 다른 학생을 대상으로 이달 초에 실시한 검진에서는 감염자가 없었다고 밝혔다. 지난해 12월에도 서울대 공대에서 결핵 판정을 받은 대학원생 1명이 발견됐지만 이들 2명과는 관련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대 측은 “검진받지 않은 학생들은 보건진료소 등에서 검진받을 수 있도록 할 것”이라며 “결핵 판정 학생들에게서 결핵균이 발견되지 않아 전염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밝혔다. 서울대는 지난달 30일에도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1학년 학생이 결핵에 감염된 것으로 확인돼 로스쿨 학생 400여 명을 대상으로 검진을 진행하고 있다.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 2015-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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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한열 ‘올 수 성적표’ 28년만에 주인품으로

    “황망하게 모든 걸 내려놓은 듯했던 이한열 열사 가족의 표정을 잊을 수 없습니다.” 이한열 열사의 초·중학교 성적표와 사진 등을 이한열기념관에 기증하기로 밝힌 윤재걸 씨(68)는 13일 본보와의 통화에서 1987년 6월 광주 이한열의 친가 모습을 이같이 밝혔다. 윤 씨는 1987년 6월 신동아 소속 기자로 직선제 개헌 요구 시위 도중 최루탄에 맞아 숨진 이한열 열사의 인물 기사를 쓰기 위해 광주의 이한열 친가로 갔다. 사건이 발생한 지 2일 후에 도착해 이미 다른 기자들이 기삿거리가 될 만한 물건들은 모두 가져간 상태였다. 윤 씨는 넋 놓고 하늘만 바라보고 있는 이한열의 가족에게 정중하게 성적표 등을 가져가도 되는지 물어봤고 승낙을 얻었다. 그러나 윤 씨는 이한열의 물품과 관련된 내용을 당시 기사에 반영하지 못했다. 윤 씨가 가져온 5학년 성적표에는 “학습태도가 바람직하고 친구들과 잘 어울립니다. 칭찬해주십시오”라는 교사의 의견이 적혀 있었다. 또 중학교 2학년 때는 모든 과목에서 ‘수’ 성적을 받았을 뿐 아니라 생활습관·근면성·책임감 등을 평가한 항목에서도 최고 등급을 받는 등 착실한 학생으로 기록돼 있다. 윤 씨는 “당시 취재 관행상 당사자의 물건을 가져오는 게 흔했지만 늘 마음에 빚이 있었다”며 기증 이유를 밝혔다. 이한열 기념사업회는 보존 처리를 거친 뒤 내년 6월부터 이한열기념관에 전시할 계획이다. 김학민 이한열 기념사업회장은 “취재기자가 가져간 이한열 관련 자료를 돌려받은 것은 처음”이라며 “이한열 열사의 1차 자료가 거의 없는 상태에서 성적표와 사진 자료 등은 굉장히 가치가 있다”라고 밝혔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 2015-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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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의료 한류, 카메룬의 생명을 지킵니다”

    지난달 30일 오후 8시경(현지 시간) 카메룬 수도 야운데에서 아솔로 조제프 클로드 씨(42)는 강도 4명의 습격을 받았다. 오토바이 수리점을 운영하던 클로드 씨는 마침 한 달 치 수입인 25만 세파프랑(한화 약 50만 원)을 갖고 집에 가던 중이었다. 강도들은 그를 쓰러뜨린 뒤 허리와 왼쪽 다리를 흉기로 찌르고 돈을 빼앗아 달아났다. 클로드 씨는 가까스로 근처 병원으로 옮겨졌다. 그러나 병원 측은 “병원비를 내지 않으면 치료할 수 없다”고 말했다. 출혈이 계속되는 가운데 클로드 씨는 야운데 국립응급의료센터로 이송됐고 3시간가량 응급수술을 받고서야 겨우 위기를 넘겼다. 2일 국립응급의료센터 준중환자실에서 만난 클로드 씨는 “만약 이곳으로 오지 않았으면 난 이미 죽었을 것”이라며 당시 심경을 밝혔다. 서아프리카에 위치한 카메룬은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약 1200달러(약 141만 원)에 불과한 나라다. 인구 1만 명당 의사 수가 1명 정도일 정도로 의료 환경이 열악하다. 특히 응급의료 시스템은 전무하다. 카메룬 제1의 국공립 의료기관인 중앙병원 응급실에는 아직도 산소호흡기나 심전도 측정기 등 기본적인 치료장비조차 없다. 클로드 씨의 생명을 구한 곳은 한국국제협력단(KOICA)의 지원으로 올 6월 문을 연 야운데 국립응급의료센터(응급센터)다. 카메룬 정부의 요청으로 KOICA가 2010년부터 약 393만 달러(약 47억 원)를 들여 완공했다. 카메룬에서 유일하게 현대식 응급의료체계를 갖춘 곳이다. 2069m²의 크기에 응급병상 42개와 중환자실 전용 병동 3개가 있다. 그뿐만 아니라 접수, 치료, 입원, 정산까지 원스톱으로 이뤄지는 한국식 응급시스템을 똑같이 실행하고 있다. 인프라뿐 아니라 한국 의료진이 카메룬 현지 의료진과 함께 활동하며 한국의 의학을 전수해주고 있다. 12월 현재 야운데 응급센터에는 KOICA에서 파견한 응급의학 전문의와 간호사 12명 등 18명의 한국 의료진이 활동하고 있다. 이들은 24시간 3교대로 근무하며 수술과 진료, 간호 등 응급의료 전 과정에 참여하며 카메룬 의료진 287명과 함께 근무하고 있다. 병원 경영 전문가도 현지에서 의료시스템 개선을 위해 노력했다. 카메룬 의료시스템의 가장 큰 문제였던 ‘선지불 후진료’ 방식 대신 선진료 후지불 방식을 도입해 누구든 응급 진료를 받을 수 있게 했다. 서울대 보라매병원 출신으로 현재 야운데 응급센터 부원장을 맡고 있는 정중식 ODA 전문가는 “단지 병원을 지어주는 게 아니라 응급의료진 양성과 시스템 도입 등 현대화된 응급의학을 카메룬에 정착시키는 게 진짜 목표”라고 밝혔다. 서울대병원은 내년부터 야운데 1대학 의과대학에 교육 커리큘럼 개발과 강사 양성 등의 지원을 할 예정이다. 카메룬 보건당국은 한국의 지원을 바탕으로 현지 의료체계를 대대적으로 바꾸겠다고 밝혔다. 에툰디 카메룬 질병관리본부장은 “에볼라 등 감염성 질병이 많은 아프리카에서 응급센터는 의료진이 기민하게 대응할 수 있게 하는 가장 중요한 기관”이라며 “야운데 응급센터의 성공을 토대로 앞으로 짓게 될 국공립 병원에는 모두 응급센터를 갖추게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야운데=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 2015-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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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檢, 김창호 前국정홍보처장 1일 소환

    대표적인 친노(친노무현) 인사로 꼽히는 김창호 전 국정홍보처장(59·사진)이 검찰에 소환돼 조사를 받는다. 서울남부지검 금융조사1부(부장 박찬호)는 이철 밸류인베스트코리아(VIK) 대표로부터 5억 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김 전 처장에게 1일 오전 10시 검찰에 출석하라고 통보했다고 30일 밝혔다. 김 전 처장은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5년부터 3년간 정부 대변인 격인 국정홍보처장을 지냈다. 검찰은 구속된 이 대표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김 전 처장에게 수억 원을 건넸다”는 진술을 확보한 뒤 이를 뒷받침하는 증거를 확보해왔다. VIK 피해자 단체 측에서는 “노무현 정부 차관급 인사인 김 전 처장에게 이 대표가 5억여 원을 전달했다”고 밝혀왔다. 검찰 관계자는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를 입증하기에 충분한 증거자료를 확보했다”며 “김 전 처장을 한 차례 조사한 뒤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검찰 내부 지침에는 불법 정치자금 수수 액수가 1억 원 이상이면 구속영장을 청구하게 돼 있다. 검찰은 노무현 정부 임기가 끝난 뒤 정계 입문을 꿈꿔 온 김 전 처장이 2010년 지방선거 출마를 전후해 이 돈을 받은 것으로 보고 있다. 이 대표는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회원으로 활동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친노 인사들 간의 교유 과정에서 이 대표와 김 전 처장이 친분을 맺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앞서 검찰은 이 대표가 2011년 9월부터 4년간 금융당국의 감독을 피하기 위해 금융위원회의 인가를 받지 않은 채 투자자 3만여 명으로부터 투자금 7000억여 원을 모은 혐의(자본시장법과 유사수신행위법 위반)로 지난달 26일 구속 기소했다.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 2015-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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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원순 “내가 나서기는 굉장히 어려워”

    박원순 서울시장(사진)이 30일 서울대 초청강연에서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와 안철수 의원 간의 불협화음으로 이른바 ‘문-안-박’ 연대가 무산된 데 대해 “새정치연합이 국민들의 신임을 받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염원이 있다. 당원으로서 도울 수 있는 범위에서 역할을 하겠다”고 밝혔다. 박 시장은 이날 강연을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나 “문 대표와 안 의원은 우리 당의 가장 중요한 리더”라며 “의견이 대립될 수 있지만 두 분이 허심탄회하게 만나서 큰 결단을 토론하고 논의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박 시장은 “기본적으로 제가 나서서 하기는 굉장히 어렵다. 소통과 대화를 통해 결단할 수 있도록 돕겠지만 기본적인 일은 두 분이 하는 것이고 당의 여러 구성원들이 함께 토론하고 답을 찾아갈 것”이라고 말해 당내 갈등 사태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뜻은 없음을 분명히 했다. 박 시장은 강연에서 정부의 시위 대응 방식을 비판하기도 했다. 그는 “진압으로 데모를 못하게 할 것이 아니라 왜 항의 시위를 할 수밖에 없는지 원인을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다”며 “서울시에도 민주노총이 지배하는 많은 노조가 있지만 계속 대화했기 때문에 취임 이후 아직까지 파업이 없다”고 밝혔다. 박 시장은 또 “지금 복면, 차벽 같은 것들이 (이슈로) 나오는데 민주주의의 가장 기초는 표현과 집회 결사의 자유”라며 “마음껏 표현할 수 있어야 그 사회의 성역이 없어진다”고 강조했다.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 2015-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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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제 조선총독에 폭탄 투척 강우규 의사 95주기 추모식

    독립운동가 왈우(曰愚) 강우규 의사(1855∼1920)의 95주기 추모식이 29일 오전 11시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렸다. 평안남도 덕천군 출신인 강 의사는 64세 때인 1919년 9월 2일 조선총독 사이토 마코토(齋藤實)를 암살하기 위해 남대문역(옛 서울역)에서 폭탄을 투척했다. 총독 폭살엔 실패했지만 일본 경찰 37명이 죽거나 다쳤다. 그의 의거는 3·1운동 이후 의열 활동의 기폭제가 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강 의사는 1920년 11월 29일 서대문형무소에서 순국했다. 앞서 의거 92주년인 2011년 9월 2일에는 서울역 광장 앞에 강 의사의 동상이 세워졌다. 이후 매년 의거일과 순국일에 맞춰 기념행사가 이어지고 있다. 29일 백남진 평안남도지사는 추도사에서 “개인의 이익보다 민족의 안위를 걱정한 강 의사의 뜻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자유롭고 번영한 대한민국이 존재할 수 있었다”며 “선열들이 애국운동을 했듯이 후세들도 힘을 모아야 한다”고 밝혔다. 추모식엔 강인섭 강우규의사기념사업회장과 김덕용 평안남도 중앙도민회장, 시민 등 40여 명이 참석했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 2015-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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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月25만원 없어 거리로 쫓겨날 판”

    치열하게 살아온 삶의 기억을 떠올릴 때마다 김미자(가명·65·여) 씨의 뺨 위로 눈물이 흘렀다. 영원할 것 같았던 행복이 끝나고 연이어 불행이 찾아오면서 이제 열정마저 사라질 위기에 놓인 김 씨. 올겨울 그의 소망은 마지막 남은 보금자리를 지키는 것이다. ○ 느닷없이 찾아온 불행 1970년 김 씨는 고향인 전남 무안군을 떠나 서울에 왔다. 한복 바느질을 했던 어머니의 손재주를 물려받은 김 씨는 의상학원에 다니며 기술을 익혔다. 우연히 같은 고향 출신인 남편을 만나 결혼한 뒤 1978년 용산에 번듯한 의상실을 차렸다. 남편의 성실함과 김 씨의 손재주 덕분에 가게는 번창했다. 고위 관료의 부인, 주한미군들까지 즐겨 찾으면서 이름을 날렸다. 10년 후 당시 패션의 중심지였던 명동으로 가게를 확장해 옮겼다. ‘성공했다’는 표현이 어색하지 않았다. 하지만 예기치 않은 불행이 찾아왔다. 동반자이자 사업 파트너였던 남편이 1990년 후두암에 걸렸다. 투병 생활이 이어지면서 가게를 비우는 날이 많아졌고 병원비는 쌓여 갔다. 결국 의상실 지분 일부를 다른 사람에게 넘기고 작은 집으로 이사해 목돈을 마련했다. 하지만 남편은 병을 발견한 지 얼마 안 돼 허무하게 세상을 떠났다. 남은 것은 수천만 원의 빚이었다. 남편 없이 홀로 남겨졌다는 생각에 김 씨는 자주 악몽에 시달렸다. 하지만 자신만 바라보고 있는 딸과 아들을 키워야 한다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버텼다. 그렇게 10년을 버텨내자 빚은 조금씩 줄어들었다. 또 의상실을 자주 들렀던 한 지인은 김 씨에게 대량으로 옷을 팔아주겠다며 3000만 원을 투자하라고 제안했다. 김 씨는 빚을 갚으며 푼푼이 모은 돈을 건넸다. 하지만 얼마 뒤 지인은 연락을 끊었다. 뒤늦게 다단계 조직이었다는 걸 알았다. 어쩔 수 없이 의상실을 정리했고, 작은 집마저도 경매에 넘어갔다.○ 보금자리 지키는 것이 소망 2002년 김 씨는 가까스로 임대아파트 한 채를 구했다. 보금자리이자 일터였다. 이곳에서 단골손님들의 옷을 수선해 주며 월 30만∼40만 원 정도를 벌었다. 아들이 보험회사에서 일하며 번 돈을 조금씩 보탰지만 생활은 늘 빠듯했다. 매달 25만 원이나 되는 아파트 임대료와 관리비도 마련하기 어려웠다. 올 6월에는 5개월 치 임대료가 밀려 “방을 빼달라”는 요구까지 받았다. 다행히 ‘위기가정지원사업’ 대상자로 선정돼 150여만 원을 지원받아 급한 불은 끌 수 있었다. 하지만 큰딸(36)이 급성 췌장염으로 병원에 입원하면서 2000만 원의 빚을 새로 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김 씨마저 지난달 낙상 사고로 거동이 불편한 상태다. 김 씨는 “열심히 살지 않은 날이 하루도 없는데 남은 것이 없다. 나가서 일해야 가족과 집을 지킬 수 있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위기가정지원사업은 김 씨처럼 복지 사각지대에 있는 이웃들을 찾아서 돕는 사업이다. 신청 문의는 중앙위기가정지원 콜센터(1899-7472)로, 후원 문의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콜센터(080-890-1212)로 하면 된다.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 2015-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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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4대 대통령 김영삼’ 목재로 임시묘비… 영면관 위엔 무궁화-봉황무늬 판 올려

    고 김영삼 전 대통령은 가족과 지지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영면에 들었다. 김 전 대통령의 운구 행렬은 26일 오후 4시 40분경 국립서울현충원 입구에 도착했다. 현충원 앞에는 운구 행렬을 보기 위해 시민 수백 명이 함께했다. 묘역은 현충원의 제3묘역 오른쪽 능선의 264m²(약 80평) 규모로 300m가량 떨어진 곳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묘소가 있다. 오후 4시 45분 운구 차량이 묘역에 도착하자 의장대 운구병 11명이 영정과 영면관을 안장식장 내 제단으로 옮겼다. 영면관은 태극기에 싸여 있었다. 안장식은 헌화와 분향, 운구, 하관, 예배 순으로 진행됐다. 차남 현철 씨 등 유족과 정의화 국회의장,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김수한 전 국회의장 등 조문객, 정종섭 행정자치부 장관 등 정부 인사의 헌화가 이어진 후 제단에 있던 영면관은 묘소 예정지로 옮겨졌다. 휠체어에 탄 부인 손명순 여사는 안장식장부터 묘소까지 100m 남짓한 경사진 길을 앞장서서 따라 올라갔다. 오후 5시 10분경 운구병들은 관에서 태극기를 걷어낸 후 접어 현철 씨에게 전달했다. 오후 5시 23분 땅속으로 관이 들어간 후 손 여사는 부축을 받아 이동해 의자에 앉은 채 관에 흙을 뿌리는 허토 의식을 지켜봤다. 손 여사는 눈이 내리는 추운 날씨에도 안장식이 끝날 때까지 자리를 지켰다. 현철 씨는 허토 도중 눈물을 참지 못하고 오열했다. 허토 후 관 위로 무궁화와 봉황 무늬가 새겨진 나무판이 덮였다. 허토 후 고명진 수원중앙교회 목사의 집례로 예배가 진행됐다. 고 목사는 “김 전 대통령이 발탁한 수많은 지도자에게 김 전 대통령의 화해와 통합 정치를 실현하게 해 주소서”라고 기도했다. 예배 도중 유가족 대표로 현철 씨가 헌화를 했다. 현철 씨는 두 번에 걸쳐 관 위에 꽃을 뿌리다 다시 한 번 오열했다. 이후 삽에 올려진 흙을 손에 가득 담아 아버지의 관에 뿌렸다. 흙은 고향 거제도와 상관없는 일반 마사토였다. 대한민국 전체가 고향이라는 고인의 뜻을 담아 거제도 흙 대신 일반 마사토를 쓰기로 했다. 손 여사는 남편의 관 위에 꽃과 흙이 뿌려지는 모습을 보면서 계속해서 눈물을 흘렸다. 가족과 참석자들의 헌화와 허토가 이어진 후 오후 6시 3분 마지막 인사를 고하는 조총 3발이 발사됐다. 현철 씨는 안장식을 마친 후 “이 사회에 통합과 화합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아버님의 유언이 우리 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으면 좋겠다”며 “아버님을 이렇게 사랑해주시고 애정을 가져 주신 국민 여러분께 감사한다”고 말했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 2015-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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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YS하면 상도동이었는데…” 46년 이웃들과 6분 작별인사

    영결식을 마친 뒤 고 김영삼 전 대통령의 운구 행렬은 서울 동작구 상도동 사저로 향했다. 1969년 이후 대통령 재임 시절을 제외하고 줄곧 머물렀던 곳이다. 독재정권 시절에는 고초의 상징이었고 대통령 당선 때는 환희의 공간이었다. 26일 김 전 대통령의 ‘마지막 귀가’를 지켜보기 위해 상도동 주민 70여 명이 사저 근처 골목을 가득 메웠다. 오후 4시 10분경 김 전 대통령의 운구차인 검은색 에쿠스 차량이 사저 앞에 도착했다. 김 전 대통령의 손자이자 장남 은철 씨의 아들인 성민 씨가 두 손으로 고인의 영정을 품에 안은 채 마당으로 들어섰다. 차남 현철 씨 등 유족 20여 명도 성민 씨의 뒤를 따랐다. 손명순 여사는 건강 상태를 고려한 듯 차량에서 내리지 않았다. 자택 현관 계단을 통해 집으로 들어선 성민 씨가 가장 먼저 향한 곳은 안방. 현관 복도 좌측의 안방을 한 바퀴 돈 뒤 김 전 대통령의 영정은 맞은편 식당으로 옮겨졌다. 마지막으로 찾은 곳은 김 전 대통령이 손님을 맞이했던 거실. 마지막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아서일까. 김 전 대통령의 영정은 1분가량 거실에서 머물렀다. ‘ㄷ’자로 소파가 놓인 이곳 벽면 정중앙에는 직접 쓴 붓글씨 ‘송백장청(松柏長靑)’을 담은 액자가 걸려 있었다. 좌측에는 미국 조지 H W 부시 전 대통령 부자와 찍은 기념사진이 걸려 있었고 오른쪽에는 젊은 시절 김 전 대통령이 연설을 하는 흑백사진이 걸려 있었다. 김 전 대통령의 영정은 2층과 옥탑까지는 올라가지 않고 그대로 집 밖으로 빠져나왔다. 상도동 사저에 머무른 시간은 약 6분. 김 전 대통령이 이곳에 머문 46년이라는 세월을 감안하면 짧은 시간이었다. 집 밖으로 나온 유족은 차분한 표정으로 다시 차량에 올라탔다. 운구 행렬은 근처 500여 m 거리의 기념관 앞에서 5분여 머무른 뒤 국립서울현충원으로 마지막 발걸음을 옮겼다. 담담한 유족의 표정과는 대조적으로 일부 상도동 주민은 울음으로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맞이했다. 1997년부터 상도동에 살았다는 서채숙 씨(69·여)는 “상도동 자택을 방문했을 때 김 전 대통령 내외와 함께 찍은 사진을 평생 소중히 간직하겠다”며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친 뒤 운구 행렬을 따라 현충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생전의 김 전 대통령과 주변 인사들이 자주 이용했던 무궁화이용원의 안주인 정순임 씨(62·여)는 “(운구 행렬 때문에) 방송국 차가 많이 온 것을 보니 1993년 대통령 당선 당시가 기억난다”며 “김영삼 대통령 하면 곧 상도동이었는데…”라고 말하고 끝내 말을 잇지 못했다. 노인 5명은 골목을 빠져나가는 에쿠스 차량을 향해 마치 살아있는 김 전 대통령에게 인사하듯 고개를 깊숙이 숙이기도 했다. 김 전 대통령의 마지막 귀가를 영원히 기억하려는 듯 휴대전화를 꺼내 운구 행렬을 찍는 주민도 여럿 있었다. 이날 상도동 사저에서 기념관으로 이어지는 언덕에는 1200여 명의 시민이 모여 김 전 대통령을 애도했다. 고인이 마지막으로 방문하고 떠난 상도동 자택 앞 도로에는 흰색 국화꽃 7송이가 남아 추모의 뜻을 더했다. 김 전 대통령의 고향인 경남 거제시 장목면 외포리 대계마을 노인 20여 명은 분향소 길 건너 경로당에 모여 김 전 대통령의 마지막 가는 길을 텔레비전으로 지켜봤다. 특히 손명순 여사가 헌화를 하는 순서에서는 1950년대 초반 손 여사의 ‘새댁 시절’을 회상하며 안타까움을 나누기도 했다. 화면에 김 전 대통령 영정이 비칠 때마다 눈물을 훔치는 할머니들도 있었다.강홍구 windup@donga.com·유원모 / 거제=강정훈 기자}

    • 2015-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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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대 첫 성소수자 총학생회장 탄생

    서울대에서 최초로 자신을 동성애자라고 밝힌 총학생회장이 나왔다. 서울대 총학생회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제58대 총학생회장 선거에 단독 출마한 김보미 씨(23·여·소비자아동학부·사진)가 86.8%의 찬성표를 얻어 당선됐다고 20일 밝혔다. 앞서 김 씨는 5일 출마 선언과 함께 자신이 동성애자인 사실을 밝혔다. 당시 김 씨는 “대학생활 내내 성적 취향을 묻는 질문에 사실 그대로 이야기하기 어려웠다”며 “성소수자 등을 이해할 수 있는 학생 사회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김 씨는 올해 부총학생회장 및 서울대 학생·소수자 인권위원회 운영위원 등으로 활동했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 2015-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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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원우 서울대 교수, 정보통신정책학회장 선출

    이원우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장(52)이 20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2015년 정보통신정책학회 정기학술대회 및 정기총회에서 신임 회장에 선출했다. 정보통신정책학회는 정보통신 및 방송 분야의 학문 발전과 정책수립에 기여할 목적으로 1994년 설립됐다. 경제학 법학 공학 등 관련 분야 전문연구자 636명이 정회원으로 활동 중이다.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 2015-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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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계종 “韓위원장 중재요청 관련 화쟁위 결정은 종단 공식 입장 아니다”

    대한불교조계종 화쟁위원회가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의 중재 요청에 따라 ‘중재 활동을 할지 고민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화쟁위 위원장인 도법 스님은 19일 긴급회의를 마친 뒤 기자회견을 통해 “조계사에서 불편을 감수하면서 이미 집에 들어와 있는 분(한 위원장)을 잘 모시고 있기 때문에 (조계사 측에) 감사하다는 뜻을 전한다”고 말했다. 그는 “아직 한 위원장을 만나지 못했지만 요청 내용이 무엇인지, 각계 의견이 어떤지 면밀히 살펴 모두에 이익이 되는 지혜로운 길을 모색하겠다”고 말했다. 도법 스님은 “화쟁위가 종단의 기구이지만 자율적이고 독자적으로 운영되는 것”이라며 회의 결과가 조계종 전체 의견과 다를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조계종도 “화쟁위의 입장 표명은 중재 사안일지 아닐지에 대해 화쟁위 차원에서 활동을 시작했다는 수준으로 여겨 달라”며 “화쟁위가 어떠한 결정을 해도 이는 종단 차원의 공식적인 입장은 아니다”고 밝혔다. 화쟁위는 2013년 철도노조 파업을 비롯해 4대강 사업, 한진중공업 사태, 쌍용자동차 사태, 강정마을 문제 등 사회 현안에 개입해 왔다. 향후 조계종은 화쟁위의 개입으로 작지 않은 부담을 안게 될 것으로 보인다. 불법 폭력시위를 주도한 한 위원장 건은 중재할 사안이 아닌 데다 한 위원장이 반성과 자숙을 하기보다는 종교시설을 투쟁의 거점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비판적 의견이 거세게 쏟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조계종의 한 관계자는 “현재 불교 행사를 위해 해외에 체류하고 있는 자승 총무원장이 귀국해야 큰 가닥을 잡고 사태 해결도 빨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인도네시아 출장 중인 자승 원장은 21일 귀국할 예정이다.권오혁 hyuk@donga.com·김갑식·유원모 기자}

    • 2015-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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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상 경찰들이 증언한 폭력시위

    전쟁터 같았다. 14일 오후 8시 서울 종로구 종각역 일대는 흥분한 시위대의 폭력으로 뒤덮였다. 정숙현 경위(41)가 속한 서울경찰청 41기동대는 종로에서 청와대 쪽으로 향하는 시위대의 행진을 저지하는 임무를 맡았다. 일부 시위대가 환풍구 난간을 밟고 경찰 버스 위로 올라오려 했다. 정 경위는 시위 해산도 중요하지만 시민의 안전이 우선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의 말이 들릴 수 있도록 쓰고 있던 헬멧을 얼굴 위로 올려 “위험하니 내려가세요”라고 말하는 순간, 시위대가 던진 보도블록이 얼굴로 날아들었다. 머리는 멍했고 중심을 잡을 수 없었다. 3cm가량 찢어진 왼쪽 눈 밑에 손을 대니 피가 흥건했다. 동료의 부축을 받고 인근 병원으로 가 8바늘을 꿰매는 응급수술을 받았다. 18일 오후 서울 경찰병원에서 만난 정 경위는 친절한 경찰로 유명했다. 경찰청 홈페이지 ‘모범경찰추천’ 코너에는 정 경위에게 도움을 받은 시민의 글이 아직도 남아 있다. 정 경위는 “대화를 잘한다는 장점을 집회 현장에서도 발휘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자원해서 기동대에 왔다”며 “시위라고 해서 싸우는 게 아니라 서로 약속을 지키면서 충분히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 주말 광화문 등 도심에서 열린 ‘민중 총궐기 투쟁대회’에서 부상당한 경찰은 113명. 이 중 정 경위처럼 중상을 입은 경찰관이 상당수다. 모상현 순경(31)은 오른 손가락의 힘줄이 끊겨 전치 4주의 부상을 입었다. 지난해 경찰마크를 가슴에 단 모 순경은 광주청 1기동대 소속이다. 모 순경은 7만여 명이 모인 시위 대응을 위해 서울로 올라왔다. 14일 오후 6시 살수차에 물을 보급하던 모 순경의 발 옆에 쇠파이프가 날아왔다. 그래도 모 순경은 물 보급을 위해 버스 아래로 내려와야 했다. 왼손에 방패를 들고 오른손으로 사다리를 짚으며 내려오던 모 순경의 오른 손에 각목이 날아왔다. 이후 2시간여의 수술이 이어졌다. 세 번이나 마취가 풀릴 만큼 통증이 강했다. “파열된 힘줄을 지그재그로 꿰맸다”는 의사의 설명을 들었다. “범인 잡는 수사관이 되고 싶어 경찰이 됐다”고 말한 모 순경의 오른손은 재활 치료를 마치더라도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고 한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 2015-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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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잠깐, 일반쓰레기통에 캔-병은 안돼요

    16일 오후 2시 서울대 학생회관 앞 벤치. 학생들은 종이컵에 든 커피를 마시며 휴식을 즐기고 있었다. 점심을 제대로 챙기지 못한 학생은 급하게 빵과 음료수를 먹기도 했다. 10여 분의 휴식이 끝난 후 학생이 들고 있던 쓰레기가 향한 곳은 ‘일반쓰레기’ ‘종이류’ ‘캔·병’ ‘플라스틱류’로 나누어진 분리수거통. 커피를 마신 학생의 손에 있던 종이컵은 캔 수거함으로 향했다. 다른 학생은 음료수 캔과 빵 비닐봉지를 가까운 플라스틱통에 넣었다. 1시간 동안 쓰레기통을 이용한 26명 중 분리 배출을 제대로 한 경우는 12명에 불과했다. 다음 날 오전 10시. 환경미화원들은 쓰레기통을 모두 바닥에 뒤집었다. 마구 뒤섞인 쓰레기들을 재활용 품목별로 분류했다. 미화원 최분조 씨(64·여)는 “재활용통에 제대로 넣는 경우는 20∼30%밖에 안 된다”며 “재활용통에서 주삿바늘 같은 실험도구가 나와 위험할 때도 있었다”고 말했다. 이는 서울대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광경이 아니다. 터미널, 영화관, 놀이공원 등 공공장소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영화관에 근무하는 황모 씨(23·여)는 “관람객들이 영화가 끝난 후 콜라병과 팝콘 박스를 재활용통에 버리지 않아 다음 상영시간까지 분류하는 데도 시간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일부 영화관은 아예 쓰레기 분리수거를 위한 전담 직원까지 두고 있다. 공공장소 재활용품 분리수거는 쓰레기양을 줄이기 위해 1995년 종량제 봉투 도입과 함께 지방자치단체별로 실시되고 있다. 일반쓰레기와 섞어서 배출하면 과태료 10만 원을 내야 하지만 공공장소에서는 단속이 어려워 이를 제대로 지키는 사람이 거의 없다. 공공장소 분리수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각 지자체의 노력도 다양하다. 부산 수영구는 2013년 ‘말하는 재활용 분리수거 스마트 쓰레기통’을 공원 등에 설치했다. 아이디어를 낸 송영근 계장은 “사람들이 놀라거나 재밌는 반응을 보내며 분리 배출을 하는 경우가 있다”며 “지자체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시민들이 습관적으로 분리배출을 잘하는 게 최선”이라고 말했다.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 2015-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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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논문 대신 소설 쓰는 공대 교수들

    “중동 건설현장에서 중요한 것은 기술보다 현지 문화를 빠르게 익히는 겁니다.” 소설 ‘테미스2’의 주인공 수교가 리비아 신도시 건설현장에서 반장에게 들은 조언이다. 수교는 온갖 악조건 속에서도 마침내 사업 입찰에 성공했다. 박문서 서울대 건축학과 교수는 올 8월 건설맨의 현장 이야기를 담은 ‘테미스2’를 발간했다. 국내 중소 건설회사에서 일하는 주인공이 영종도 인천국제공항, 말레이시아 고층 건물 등 국내외 건축현장을 누비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 건축이 소재인 만큼 비전문가가 듣기에 다소 생소한 단어도 많다. 하지만 상세한 해설로 이해하기 쉽게 풀어썼을 뿐 아니라 건설 현장에서 오가는 대화와 에피소드가 중심을 이루고 있다. 박 교수는 “일반인이 건축을 어렵거나 전문가만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곤 한다”며 “건설에서 가장 중요한 건 사람이라는 걸 알리고 싶어 소설로 접근하게 됐다”고 밝혔다. 최근 서울대 공대 교수들이 쓴 대중서가 이어지고 있다. 그동안 해당 분야 전문가들만 알 수 있는 논문만 쓰던 것과는 확연히 달라진 현상이다. 박태현 서울대 화학생물공학부 교수는 올 5월 ‘영화 속의 바이오테크놀로지’ 개정판을 냈다. 영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흐른다’ ‘아일랜드’ 등 대중에게 친숙한 영화를 통해 생명공학이 일상생활에서 어떻게 응용될 수 있는지 풀어냈다. 소설, 에세이 등 형식과 함께 공학, 청춘, 교육 등 내용도 다양해졌다. 서승우 전기정보공학부 교수가 쓴 ‘아침 설렘으로 집을 나서라’는 세계 최초로 ‘무인태양광 자동차경주대회’를 성공리에 치른 경험 등을 담은 에세이다. 유영제 화학생물공학부 교수는 서울대 입학처장 등의 경험을 살려 한국 교육 전반의 문제를 짚은 ‘교육이 바로 서야 우리가 선다’라는 책을 출판했다. 이 같은 현상은 공학이 전문화 세분화에만 매몰돼 대중과 괴리됐다는 비판에 대한 반성에서 비롯됐다. 박문서 교수는 “공학이 ‘그들만의 리그’가 될수록 위험하다는 건 2013년 원자력발전 비리를 보면 알 수 있다”고 말했다. 해외에서도 이공계 교수들이 대중서를 내는 시도가 이어져 왔다. 1997년 미국의 물리학자 엘리 골드렛이 쓴 소설 ‘한계를 넘어서’는 300만 부 이상 팔릴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박태현 교수는 “노벨상 수상자 중 대중서를 낸 학자의 비율이 높다”며 “공학 역시 대중과 소통할수록 제대로 발전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 2015-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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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물대포 18만L… ‘세월호 1주년’ 집회의 6배

    서울 도심 한복판이 폭력시위로 얼룩지면서 곳곳에서 피해가 발생했다. 경찰과 시위대 사이에 11시간 동안 물리적 충돌이 이어지면서 부상자도 속출했다. 14일 ‘민중 총궐기 투쟁대회’에 참가한 시위대는 경찰 버스 수십 대를 부수고 경찰관에게 폭력을 휘둘렀다. 경찰은 시위대가 쇠파이프와 보도블록, 각목 등을 사용해 경찰관 113명이 부상을 입었다고 발표했다. 이 중 시위대가 던진 각목에 맞아 오른 손목의 힘줄이 끊어지거나 돌에 맞아 머리가 찢어지는 등 중상을 입은 경찰관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시위대가 미리 준비한 밧줄을 이용해 경찰 버스 5대를 끌어내는 등 총 50대의 경찰 버스가 파손됐다. 경찰은 시위대가 차도로 불법 행진하는 것을 막기 위해 서울 도심 일대에 경찰 버스 700여 대와 차벽트럭 20대를 배치했다. 경찰은 이날 집회에서 올 들어 가장 많은 양의 물대포와 캡사이신 최루액을 사용했다. 경찰은 시위대를 해산하기 위해 물대포용으로 18만2100L의 물을 뿌렸다. 올해 4월 16일 열린 세월호 참사 1주년 집회 당시 3만3200L를 뿌렸던 것에 비해 6배가량으로 많았다. 경찰은 물대포에 캡사이신 441L를 섞어 뿌렸다. 세월호 집회 때 사용된 30L보다 10배가 넘는 양이다. 이 밖에 경찰은 시위대를 식별하기 위해 유색 물감 120L를 사용하고 시위대에 맞닥뜨린 경찰관이 현장에서 직접 651L의 캡사이신을 뿌렸다고 밝혔다. 시위대의 피해도 적지 않았다. 주최 측은 집회 참가자 중 29명이 부상을 입었다고 밝혔다. 경찰이 쏜 물대포로 중상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전남 보성군에서 집회에 참가하기 위해 상경한 백남기 씨(68)는 이날 오후 6시 56분 경찰의 물대포를 맞고 길바닥에 쓰러졌다. 백 씨는 농민단체 회원으로 알려졌다. 서울대병원으로 이송된 백 씨는 뇌출혈 진단을 받고 4시간여의 수술을 받았지만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주최 측은 “경찰이 백 씨를 향해 직접 물대포를 쏜 것은 공권력 남용”이라고 주장했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 2015-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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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어-영어, EBS 교재 밖 지문 늘어… 체감 난도 높아져

    《 올해 대학수학능력시험은 정부의 ‘쉬운 수능’ 기조를 크게 벗어나지는 않았지만 과목마다 일부 변화가 있었다. ‘변별력 상실’이라는 비판을 받았던 수학과 영어는 지난해보다 어려웠으며, 반대로 국어는 지난해보다는 다소 쉬웠지만 전반적으로 어려웠던 것으로 나타났다. 과목 사이에 난이도 편차가 줄어들었고, 입시업체는 “물수능은 아니다”라고 평가했다. 특히 자연계는 지난해처럼 선택과목(과학탐구)에서 대입 성패가 갈릴 가능성이 커졌다. 》 국어, 모의평가보다 까다로워… 물리 연계 문항에 당혹 국어 A형은 지난해 수능과 비슷한 수준으로 출제됐다. 지난해 만점자가 0.09%로 전례 없이 어려웠던 B형은 올해 다소 쉬워졌다. 하지만 둘 다 6월, 9월 모의평가보다는 어렵게 나왔다. 임성호 종로학원하늘교육 대표이사는 “수험생들 입장에서 보면 전체적으로 어려웠다고 보는 게 맞다”며 “모의평가처럼 쉽게 나올 것으로 예상하고 공부한 수험생은 당황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교육부는 EBS 연계율 70%를 유지했다고 밝혔지만 상당수 지문이 EBS 밖에서 출제되거나, EBS와 일부만 비슷할 뿐 문제 유형은 달랐다. 학생들도 까다로웠다는 반응이 많았다. B형을 치른 김지윤 양(18·서울 풍문여고)은 “화법과 작문에서 새로운 유형이 나왔고 지문도 지난해 수능 문제보다 깊이가 있었다”고 말했다. 조영혜 서울과학고 교사는 “독서 문제는 난도가 높았지만 문학은 쉬웠다”며 “지난해 국어가 너무 어려웠기 때문에 올해는 평균점수가 약간 상승할 것”이라고 말했다. 자연계가 응시하는 국어 A형은 11번(문법), 18번(물리)이 가장 어려운 문제로 꼽혔다. 특히 18번은 ‘돌림힘’ ‘알짜 돌림힘’ 등 물리Ⅱ에 나오는 개념이어서 이를 배우지 않은 학생들은 애를 먹었을 것으로 보인다. 김용진 동국대사범대부속여고 교사는 “사회 분야에서 EBS 교재에 없는 ‘민사소송의 기판력’이 출제됐지만 6월 모의평가에 법 영역의 지문이 이미 나와 학생들이 대비를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수학, 교사들 “변별력 확보” 입시업체 “작년과 비슷” 수학 B형에 대해서는 교사와 입시업체의 평가가 엇갈렸다. 지난해 ‘최악의 물 수능’ 원인으로 꼽힌 수학 B형. 당시 수학 B형의 만점자는 1등급 기준(4%)을 넘어 4.3%에 달해 자연계 응시생들을 혼란에 빠뜨렸다. 경기 판곡고 조만기 교사와 대전 충남고 김태균 교사는 “지난해와 달리 올해는 중상위권의 변별력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을 정도로 출제됐다”며 “대학 입장에서도 정시에서 변별력 확보가 쉬워져 입시 혼란은 줄어들 것”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입시업체의 평가는 정반대였다. 임 대표이사는 “A형은 지난해 수능과 비슷했고 B형은 마지막 문항인 30번 문제가 약간 까다로울 뿐 나머지 문제는 지난해와 비슷하다”며 “올해도 변별력 상실”이라고 평가했다. 유웨이중앙교육도 “B형에서 한 문항의 실수 차이로 등급이 갈릴 수도 있다”며 정시 혼란을 우려했다. 일부에서는 B형 1등급 커트라인이 지난해처럼 만점이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학생들의 체감난도도 엇갈렸다. B형에 응시한 재수생 오겸 씨(19)는 “지난해 수능과 별 차이 없이 평이하게 출제된 것 같다”고 말했다. 반면 오산고 3학년 지영주 군(18)은 “29번, 30번 문제가 아주 어려웠다”고 말했다. 영어, 빈칸추론-문장삽입 어려워… 학생들 “헬 영어” 영어는 모의평가가 쉬웠다는 비판을 의식한 탓인지 다소 어렵게 출제됐다. 김혜남 문일고 교사는 “만점자 비율이 4%(1등급 기준)를 넘었던 모의평가보다는 까다로웠다”고 말했다. 참고로 지난해 수능 영어 만점자 비율은 3.37%, 1등급 커트라인 원점수 추정치는 98점이었다. 입시업체들은 올해 1등급 커트라인을 93∼94점으로 예상했다. 가장 까다로웠던 문제로는 ‘빈칸 추론’이 꼽혔다. 빈칸 추론 중에서도 상대적으로 쉬운 연결사 문제는 이번에 나오지 않았고, 비교적 까다로운 ‘구와 절’ 등의 문제만 나왔다. 김 교사는 EBS 연계율을 “듣기와 말하기 88%, 읽기와 쓰기 54%로 평균 73% 정도”라고 분석했다. 38번 ‘문장 삽입’ 문제도 어려운 문항으로 꼽혔다. 지난해 수능에서도 학생들이 문장 삽입 문제를 어려운 문제로 꼽았다. 그나마 지난해는 EBS 교재에서 연계된 내용이 출제됐지만 올해는 EBS 교재 밖에서 출제돼 체감난도가 더 높았을 것으로 보인다. 이종한 양정고 교사는 “지문도 실용문이 아니라 철학적인 내용이라 정답을 찾기 더욱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전에 없었던 새로운 유형의 문제는 출제되지 않았다. 입시업체도 비슷한 분석을 내놨다. 종로학원하늘교육에 따르면 수능을 치른 학생들은 “모의평가보다 영어가 까다로웠다”는 반응이 많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재수생 송현명 씨(19)는 “지난해에는 EBS를 외워서 풀 수 있는 문제가 많았는데 올해는 없었다”며 “본 듯한 지문인데 풀 때는 어려웠다”고 말했다. 수능이 끝난 뒤 수험생들이 모이는 인터넷 카페에는 “영어 성적이 20∼30점 떨어졌다” “이번 수능 영어는 헬(Hell·지옥) 영어” 등의 반응이 들끓었다. EBS 지문을 그대로 내지 않고 변형해서 출제한 점이 학생들의 체감난도를 올린 것으로 보인다. 탐구, 사탐 평이… 생물Ⅰ 고난도 유전문제 많아 진땀 4교시 탐구영역에서는 사회탐구가 비교적 평이하게 출제된 반면 과학탐구는 생물Ⅰ이 유독 어렵게 출제됐다. 자연계에서는 수학 B형이 변별력을 상실한 것으로 드러날 경우 생물Ⅰ이 입시의 최대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자연계열 김준영 군(18·환일고)은 “생물Ⅰ에서 어려운 유전 문제가 너무 많이 나와서 몇 개였는지 기억도 잘 안 난다”고 말했다. 지영주 군도 “도저히 시간 내에 풀 수 없을 정도로 정말 어려웠다”며 “유전 문제가 가장 어려웠고, 항원과 항체 반응에서 근육수축 운동의 마이오신 길이를 구하는 문제가 다소 어려웠다”고 말했다. 오산고 이윤수 군(18)은 “유전 문제가 어려워 그냥 넘어갔는데도 시간이 빠듯했다”고 말했다. 사탐을 치른 학생들은 과목 간에 난이도 차이가 조금씩 있었다고 말했다. 김지윤 양은 “생활과 윤리는 다소 어려웠지만 사회문화는 무난한 수준이었다”고 말했다. 상명여고 3학년 이주희 양(18)은 “사회문화는 모의평가보다 헷갈리는 문제가 많았지만 난도는 높지 않았다”며 “1개를 틀리거나 만점을 받아야 1등급일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사도 모의평가보다 쉽게 나왔다는 반응이 많았다.세종=이은택 nabi@donga.com / 유원모·김민 기자}

    • 2015-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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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日, 6·25로 과거반성 기회 놓쳐” 아사히 기자출신 요네즈 도쿠야씨

    “6·25전쟁은 일본이 과거사를 잘못 인식하게 만든 비극이었습니다.” 12일 제1회 학봉상 시상식에서 논문부문 장려상을 받은 요네즈 도쿠야(米津篤八·57) 씨는 6·25전쟁을 이같이 평가했다.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과 학봉장학회는 재일동포 사업가였던 고 학봉 이기학 와코물산 회장(1928∼2012)을 기리기 위해 올해 학봉상을 제정했다. ‘한일 문화 교류와 양국 관계의 미래’라는 주제로 진행된 논문상 부문에서 서울대 국사학과 대학원에 재학 중인 요네즈 씨의 ‘일본인 종군기자의 보도와 그 성격’이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요네즈 씨는 1982년부터 21년간 일본 아사히신문 기자로 활동한 언론인 출신이다. 그는 평범한 대학생 시절이던 1980년 광주 민주화 운동 보도를 보고 한국 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요네즈 씨는 “광주 민주화 운동 등을 보면서 한국 현대사의 복잡함과 역동성이 궁금해졌다”며 “20여 차례 한국을 방문하면서 많은 시민·학자들을 만나 한국사를 공부했다”고 말했다. 2011년 서울대 대학원 국사학과에 입학한 요네즈 씨는 언론인 경험을 살려 일본인 종군기자가 쓴 6·25전쟁 기사를 연구했다. 1951년 7월 11일 일본인 종군기자가 처음으로 한국 땅을 밟은 이후부터 1953년 7월 27일 휴전회담이 끝날 때까지 보도된 아사히신문과 마이니치신문의 기사 174편을 분석했다. 요네즈 씨는 당시 일본 신문에서 제국주의 시기에 대한 그리움과 한국인 일부 엘리트 계층의 여론을 확대 보도한 경향이 있었다고 밝혔다. 그는 “일제강점기 화려했던 미쓰코시 백화점(현 신세계백화점 본점)이 무너졌다거나 서울을 경성(京城), 명동을 메이지(明治) 정이라고 표기하는 등 한국을 ‘외국’이 아닌 과거 식민지의 연장선상에서 바라봤다”며 “일본어를 할 수 있는 한정된 한국 엘리트 계층을 만나 ‘일제강점기 때 경제가 발전해 그립다’는 미화된 시민 반응을 쓰기도 했다”고 말했다. 또 당시 반공주의적 관점에서 일본의 군사적 재무장 움직임을 자극하는 경향도 발견됐다. 일본인 종군기자가 유엔군 소속으로 활동하면서 북한을 비롯한 공산권에 대항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기 때문이다. 요네즈 씨는 “6·25전쟁은 일본에 경제적 풍요를 가져다 줬을 뿐 아니라 식민 지배에 대한 가해자로서 반성할 기회를 놓치게 했다”라고 평가했다. 그는 일본의 이 같은 역사 인식이 전후 한국을 대하는 과정에서 고스란히 남아 한일 역사 갈등의 불씨가 됐다고 분석했다. 요네즈 씨는 최근 일본 정부가 과거사를 부정하는 태도를 꼬집었다. 그는 “아베 담화가 과거사의 부담을 미래 세대가 지지 않도록 하겠다고 했는데 역사는 간단하게 잘라 버릴 수 있는 게 아니다”라며 “과거를 잊으면 역사적으로 잘못된 일을 또 저지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요네즈 씨는 올해 대학원 과정을 마친 후 일본으로 돌아갈 계획이다. 그는 “재일 한국인의 지위 문제 등 한일 사이에 남겨진 숙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을 주고 싶다”며 “학계·시민단체 등 자리에 관계없이 필요한 곳에서 일할 것”이라고 밝혔다.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 2015-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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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학교 담따라 쓰레기봉투… 차도로 내몰린 아이들

    9일 오후 2시 30분. 서울 관악구 남부초등학교에서 하교 시간이 되자 학생들이 차도로 몰려 나왔다. 학교 담장을 따라 인도가 있지만 쌓여 있는 쓰레기봉투 때문에 제대로 지나가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몇몇은 코를 막고 지나가기도 했다. 이날 하루 목격된 쓰레기봉투는 300m 구간에 걸쳐 60여 개. ‘무단투기 적발 시 100만 원’이라고 적힌 현수막 밑에도 20여 개가 쌓여 있었다. 이 동네의 쓰레기 수거일은 화·목·일요일이기 때문에 월요일인 8일 눈에 띈 쓰레기봉투는 24시간 넘게 방치돼 있었다. 불편함과 불쾌함을 넘어 위험한 상황까지 벌어졌다. 학생들은 자동차가 달려오면 쓰레기로 막힌 인도로 오르지 못하고 길가 옆으로 비켜서야 했다. 폭 3m의 좁은 길에 ‘어린이 보호구역’이라고 적힌 푯말은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했다. 이 학교 5학년 이원우 군(11)은 “초등학교를 다니는 내내 항상 쓰레기봉투가 길가에 있었다”며 “주말에 학교에서 봉사활동으로 쓰레기를 치우러 가기도 했다”고 말했다. 단독주택 밀집 지역마다 골목길에 쓰레기봉투가 아무 때나 버려져 있는 모습은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다. 특히 아파트와 달리 공용 수거장이 설치돼 있지 않아 환경이 더 열악하다. 직장인 박인규 씨(30)는 “이사를 자주 다녔지만 사는 곳마다 쓰레기봉투가 길 한복판에 있는 모습은 비슷했다”며 “주민들이 길에 버려도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반복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쓰레기봉투는 원칙적으로 자기 집 앞에 내놓아야 한다. 그러나 특정 장소에 일부 주민이 쓰레기봉투를 쌓다 보면 모두가 따라하기 십상이다. 관악구 관계자는 “수거업체에서 쓰레기봉투를 한 번에 가져가기 위해 모아 놓은 걸 보고 무심코 수거일이 아닌 날에도 가져다 놓는다”며 “매번 단속해 적발하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고 밝혔다. 도로를 점령한 쓰레기봉투로 인한 지자체의 고민 역시 깊다. 경고 문구를 부착하고 주민에게 지속적으로 안내하고 있지만 2013년 8만4498건이었던 서울시의 쓰레기 무단 투기 적발 건수는 2014년 9만9098건으로 오히려 증가했다. 단속을 강화해 적발이 늘어났다는 분석도 있지만 공공의 이익을 우선하는 시민의식이 부족한 탓이란 지적이 나온다. 김재영 서울대 건설환경공학부 교수는 “벌금을 올리거나 단속요원을 늘리는 방법으로는 한계가 있다”며 “어렸을 때부터 실시하는 교육뿐 아니라 성인들을 상대로 쓰레기를 배출하는 올바른 방법을 지속적으로 알려야 한다”고 말했다.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 2015-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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