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종구

양종구 기자

동아일보 콘텐츠기획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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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에 빠져 사는 사람들을 소개합니다. 건강해야 100세까지 즐겁게 살 수 있습니다.

yjongk@donga.com

취재분야

2025-11-05~2025-12-05
건강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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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6%
  • [전합니다]‘쿠(KOO)크로스파크 축제’ 29일 웰리힐리파크에서

    제2회 쿠(KOO)크로스파크축제가 29일 강원도 횡성 웰리힐리파크에서 열린다.‘인생 즐기는 네가 챔피언!’이란 슬로건으로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로 열리는 이번 축제에는 스키와 스노보드 두 종목을 대상으로 아마추어부와 레벨2 이상의 자격증을 소지한 선수부로 나눠 치러지게 된다. 참가 신청은 16일까지 네이버 카페 ‘쿠홀리데이’를 통해 할 수 있으며, 참가비는 3만 원이다. 참가비는 쿠어린이재단(대표 김상호)을 통해 소외 받는 아동과 청소년들을 위해 쓰이게 된다.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 2023-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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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루라도 안 달리면 몸이 근질근질… 올핸 철인3종에도 도전”[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집안에 큰 일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싶었어요. 좀 나태하게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죠. 2017년 회사도 옮겼고 가족들과 떨어져 나와 독립했죠. 제 삶을 바꾸기엔 운동이 좋을 것 같았죠. 그래서 요가학원에 등록했고 어릴 때 자주 오르던 산에도 갔어요. 몸이 달라지니 삶도 즐겁고 긍정적으로 바뀌었어요. 특히 2018년 시작한 달리기는 제 인생의 활력소가 됐습니다.” 회사원 김보은 씨(35)에게 2017년은 인생의 큰 변곡점이었다. 새로운 삶을 살겠다고 마음먹었다. 그 시작이 운동이었다. 지금은 하루라도 안 달리면 안 되는 달리기 마니아가 됐다.“솔직히 왜 달리는 줄 모를 때였습니다. 운동을 시작한지 얼마 안 돼 2018년 가을 동아오츠카 선정 ‘포카리스웨트 러닝크루’를 뽑는다고 해서 신청을 했는데 된 겁니다. 처음 달릴 땐 때 정말 힘들었어요. 얼마 달리지도 않았는데… 그런데 달리고 난 뒤 밀려오는 성취감이 너무 좋았어요. 그 때부터 본격적으로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김 씨는 “20세 때 신발장에 운동화가 하나도 없었는데 어느 순간 운동화가 쌓이기 시작했다”고 했다. 그 때 만난 사람들과 지금까지고 연락하며 친하게 지내고 있다. 소중한 인연이 됐다. 김 씨는 2019년 3월 서울국제마라톤 겸 동아마라톤에서 42.195km 풀코스 마라톤에 데뷔했다. 4시간 30분. 그해 동아일보 공주마라톤에서 하프, 동아일보 경주국제마라톤에서 다시 풀코스에 도전해 3시간 57분으로 ‘서브 포’를 했다. 김 씨는 2019년 동아마라톤 올해의 선수상 시상식에서 포카리스웨트 영러너어워즈를 수상했다.“제가 동아마라톤과 인연이 많았어요. 2019년 한 해 동아일보 주최 대회에만 출전을 했어요. 2020년에도 동아일보 주최 서울마라톤 언택트, 지난해 서울마라톤 오프라인 출전권 추첨에 떨어져 다시 언택트로 달렸어요. 2019년 영러너어워즈 상품으로 2020년 도쿄마라톤 출전권을 받았는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탓에 가지 못했어요. 올핸 꼭 출전할 겁니다.” 3월 5일 열리는 도쿄마라톤에서 ‘330(3시간 30분 이내 완주)’ 하는 게 목표다. 세계 최고 권위의 보스턴 마라톤 출전 기록을 넘어서는 기록이다. 보스턴마라톤 출전가능 나이대별 기록이 여자 만 35세의 경우 3시간35분 이내지만 그보다 더 단축하고 싶은 욕심에서다. 김 씨는 지난해 가을 3시간 45분을 찍고 바로 3시간38분까지 당기는 등 달리면 개인 최고기록을 바꾸고 있어 330이 가능할 전망이다. 그는 “그냥 달리는 것도 좋지만 목표를 세우고 대회에 출전해 기록을 줄이는 재미도 쏠쏠하다. 대회 출전 목표는 늘 개인 최고기록 경신”이라고 말했다. 2019년 ‘필 레이디’란 여성 달리기 동호회에 가입한 김 씨는 주로 회사를 마친 뒤 저녁에 달린다. 새벽엔 모이기 어려운데 저녁엔 대부분 다 모일 수 있어 좋단다. 거의 매일 5~8km를 달리고 10km를 넘게 달릴 때도 있다. 한강공원, 남산, 연세대 신촌캠퍼스 운동장 등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달린다. 왜 달리냐고? 달리는 것도 좋은데 야경이 주는 즐거움도 있다.“서울 한강을 달리며 한강다리를 본 적이 있나요? 달과 야경의 불빛이 한강물에 반사돼 비친 다리 모습이 환상적입니다. 그런 모습을 보며 달리는 게 큰 매력입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변치 않아요. 차를 타고 가면 못 보죠. 한강을 밤에 달리거나 걸어본 사람만 알 수 있어요.” 김 씨는 코로나19 탓에 여럿이 모이지 못할 때 산을 달리는 트레일러닝에 입문했다. 2021년 영남알프스 나인피크 105km도 35시간에 완주했고 불수사도북(불암산 수락산 사패산 도봉산 북한산) 45km도 돌았다. 자연과 함께 하는 산은 또 다른 의미가 있었다. 나무, 꽃, 바위, 개울 등 모든 게 정겨웠다. 그냥 달리지 않았다. 요즘 달리미들은 문화를 만든다. 김 씨는 새해를 맞은 1일 서울 여의도 공원에서 ‘2023 계묘년 새해기념러닝’에 나가 300여명과 함께 20km를 달렸다. “다 나와”가 아니라 “달리고 싶은 사람들 모여”해서 20여개 동호회에서 모인 것이다. 필 레이디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아픔을 함께 나누고 알리고자 ‘위안부 기림의 런’ 행사를 열기도 했다. “여자끼리만 달리니 의미 있는 일엔 더 잘 뭉친다”고 했다. 김 씨가 참여하는 또 다른 동호회 ‘toktok 클럽’에선 불우이웃돕기 연탄기부 달리기 행사도 열었다. 함께 달리고 십시일반 돈을 모아 연탄을 사서 직접 나눠주는 행사다. 그는 “한강변, 혹은 산을 오르면서 쓰레기 줍는 이벤트도 한다”고 했다.“단순히 달리는 게 아니라 뭔가 의미 있게 달리려고 노력합니다. 목적이 있는 달리기라고 할 수 있죠. 달리며 건강도 챙기고 좋은 일도 하고… 삶의 의미가 달라집니다.” 이렇게 즐기기 위해서 점심시간엔 피트니스센터에 가서 몸을 만든다. 코어 근육을 잘 만들어야 부상도 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주로 크런치와 플랭크 등으로 코어 근육을 단련시킨다. 턱걸이도 한다. 처음엔 하나도 버거웠는데 지금은 1번에 3회 정도는 한다고. 그는 “근육도 잘 만들어야 하지만 쉬기도 잘 해야 한다. 초창기 달리기에 빠져 무리하다 부상을 자주 당했다. 이젠 절대 무리하지 않는다. 몸 컨디션이 좋지 않으면 쉰다”고 했다. 김 씨는 코로나19로 모이기 어려울 때 보디프로필도 찍었다. 잘 만들어진 몸의 결과물을 남겨놓고 싶어서다. 김 씨의 도전은 끝이 없다. 토끼해인 올핸 철인3종(트라이애슬론)에 도전한다.“아주 오래전에 독일에 간 적이 있어요. 그 때 철인3종 경기에 참여한 사람들을 보고 너무 멋있다고 생각했죠. 그 때 ‘언젠간 해볼 거야’며 일종의 버킷리스트에 올려놨습니다. 필 레이디 회원들하고 어울리다보니 자연스럽게 철인3종까지 하게 됐어요. 함께 달리기도 하지만 사이클도 함께 타고 수영도 함께 합니다. 함께 하는 게 좋아요. 서로 응원하면서….힘들지 않고 즐겁게. 지난해 사이클과 마라톤만 출전하는 듀애슬론에 출전했는데 올핸 철인3종에 출전합니다.” 6월 경남 고성에서 열리는 고성아이언맨 대회다. 아직 철인코스(수영=3.8km, 사이클 180km, 마라톤 42.195km) 완주는 힘들다고 판단해 하프코스(수영=1.9km, 사이클 90km, 마라톤 21.0975km)에 도전한다.“바다 수영을 해야 하는데….아직 안 해봐서 두렵긴 해요. 하지만 이런 도전이 즐겁습니다. 함께 하는 친구들이 있어서 걱정하지 않습니다.”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 2023-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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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 싶어 운동 시작… 달리니 행복해요”[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회사원 김보은 씨(35)에게 2017년은 인생의 큰 변곡점이었다. 집안의 큰일을 겪은 것을 계기로 지난 삶을 되돌아보게 됐다. 회사도 옮겼고 가족과 떨어져 독립하면서 새로운 삶을 살겠다고 마음먹었다. 그 시작이 운동이었다. 지금은 하루라도 안 달리면 안 되는 달리기 마니아가 됐다. “좀 나태하게 살았다는 생각에 요가학원에 등록했고 산을 오르기 시작했어요. 몸이 달라지니 삶도 즐겁고 긍정적으로 바뀌었죠. 2018년 시작한 달리기는 제 인생의 활력소가 됐습니다.” 2018년 가을 동아오츠카 선정 ‘포카리스웨트 러닝크루’에 이름을 올린 게 달리기의 시작이었다. “처음 달릴 때 힘들었지만 달리고 난 뒤 찾아오는 성취감이 너무 좋았다”고 했다. 김 씨는 “20세 때 신발장에 운동화가 하나도 없었는데 어느 순간 운동화가 쌓이기 시작했다”고 했다. 2019년 3월 서울국제마라톤 겸 동아마라톤에서 42.195km 풀코스에 데뷔했다. 4시간 30분. 그해 동아일보 공주마라톤에서 하프코스, 동아일보 경주국제마라톤에서 다시 풀코스에 도전해 3시간 57분으로 ‘서브 포’를 했다. 김 씨는 2019년 동아마라톤 올해의 선수상 시상식에서 포카리스웨트 영러너 어워즈를 수상했다. “제가 동아마라톤과 인연이 많았어요. 2019년 한 해 동아일보 주최 대회에만 출전을 했어요. 2020년에도 서울마라톤 언택트, 지난해 서울마라톤 오프라인 출전권 추첨에 떨어져 다시 언택트로 달렸어요. 2019년 영러너 어워즈 상품으로 2020년 도쿄 마라톤 출전권을 받았는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탓에 가지 못했어요. 올핸 꼭 출전할 겁니다.” 3월 5일 열리는 도쿄 마라톤에서 ‘330’(3시간 30분 이내 완주)하는 게 목표다. 세계 최고 권위의 보스턴 마라톤 출전 가능 기록을 넘어서는 기록이다. 보스턴 마라톤 출전 가능 나이대별 기록이 여자 만 35세의 경우 3시간 35분 이내지만 그보다 더 단축하고 싶은 욕심에서다. 김 씨는 지난해 가을 3시간 45분을 찍고 바로 3시간 38분까지 당기는 등 달리기만 하면 개인 최고 기록을 바꾸고 있어 330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는 “그냥 달리는 것도 좋지만 목표를 세우고 대회에 출전해 기록을 줄이는 재미도 쏠쏠하다. 대회 출전 목표는 늘 개인 최고 기록 경신”이라고 말했다. 2019년 여성 달리기 동호회 ‘필 레이디’에 가입한 김 씨는 주로 회사를 마친 뒤 저녁에 달린다. 새벽엔 모이기 어려운데 저녁엔 대부분 다 모일 수 있어 좋단다. 거의 매일 5∼8km를 달리고 10km를 넘게 달릴 때도 있다. 한강공원, 남산, 연세대 신촌캠퍼스 운동장 등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달린다. “서울 한강을 달리며 한강다리를 본 적이 있나요? 달과 야경의 불빛이 한강물에 반사돼 비친 다리 모습이 환상적입니다. 그런 모습을 보며 달리는 게 큰 매력입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변치 않아요. 차를 타고 가면 못 보죠. 한강을 밤에 달리거나 걸어본 사람만 알 수 있어요.” 김 씨는 코로나19 탓에 여럿이 모이지 못할 때 산을 달리는 트레일러닝에 입문했다. 2021년 영남알프스 나인피크 105km도 35시간에 완주했고 불수사도북(불암산 수락산 사패산 도봉산 북한산) 45km도 돌았다. 자연과 함께하는 산악마라톤은 또 다른 의미가 있었다. 나무, 꽃, 바위, 개울 모든 게 정겨웠다. 김 씨는 새해를 맞은 1일 서울 여의도공원에서 ‘2023 계묘년 새해 기념 러닝’에 나가 300여 명과 함께 20km를 달렸다. “달리고 싶은 사람들 모이자”고 해 20여 개 동호회에서 모인 회원들과 달렸다. 필 레이디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아픔을 함께 나누고 알리고자 ‘위안부 기림의 런’ 행사를 열기도 했다. 김 씨가 참여하는 다른 동호회 ‘toktok 클럽’에선 불우이웃돕기 연탄 기부 달리기 행사도 열었다. 함께 달리고 십시일반 돈을 모아 연탄을 사서 직접 나눠주는 행사다. 그는 “한강변, 혹은 산을 오르면서 쓰레기 줍는 이벤트도 한다”고 했다. “단순히 달리는 게 아니라 뭔가 의미 있게 달리려고 노력합니다. 목적이 있는 달리기라고 할 수 있죠. 달리며 건강도 챙기고 좋은 일도 하고…. 삶의 의미가 달라집니다.”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 2023-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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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키, 제대로 배우면 70대도 즐길 수 있죠…함께 타면 더 재밌어요”[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김자호 간삼건축 회장(77)은 2016년부터 국내 첫 시니어 스키클럽인 오파스(OPAS, Old People with Active Skiing)를 이끌고 있다. 가족, 친구들과 스키를 즐기고 있던 터에 지인들이 ‘60세 이상만 참여할 수 있는 클럽’을 만들어 회장을 맡아 달라고 해 선뜻 나섰다고 했다.“오파스는 100세 시대를 맞아 60세 이상도 스키를 즐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만들었습니다. 회원들끼리 스키 타며 즐기기도 하지만 60세 이상 스키어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대회도 개최합니다. 많은 분들이 참가해 건강한 노후를 즐기기를 바랍니다.” 2017년부터 매년 1월 개최하던 대회가 2020년 이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탓에 열리지 못하다 3년 만에 내년 다시 재개된다. 내년 1월 13일 강원 평창군 용평리조트에서 열리는 ‘할배들의 행복나눔 썰매대회’다. 대회는 나이대별로 핸디캡을 줘서 운영한다. 60∼64세, 65∼69세, 70∼74세, 75세 이상으로 구분해서 진행한다. 동 타임이면 나이 많은 스키어가 이긴다.“원래는 곤지암리조트(경기도 광주)에서 열리던 대회였죠. 곤지암에 보수공사를 한다고 해서 이번엔 용평리조트로 바꿨습니다. 스키는 혼자 타도 즐겁지만 함께 타면 더 재미있는 스포츠입니다. 전문가에게 제대로 배운다면 70대 이상도 충분히 즐길 수 있습니다.” 대회를 통해 모은 기금으로 ‘스키 안전 캠페인’도 벌이고 있다. 안전하게 스키 타는 법에 대한 포스터와 동영상을 만들어 대한스키협회, 스키장협회 등을 통해 스키어들에게 전달되도록 하고 있다. 매년 스키 관련 세미나도 열고 있다. 김 회장은 나이 들수록 스키 등 스포츠에 더 적극 참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상은 혼자 살아가는 게 아니고 함께 살아야 더 즐겁기 때문이다. 그는 “스키는 혼자 타는 운동인데 혼자 타면 별로 재미가 없다. 둘이 타면 더 재미나고 셋이 타면 더 재미난다. 여러 명이 같이 타면 아주 재미난다”고 했다. 사실 김 회장은 경기중·고교 시절 아이스하키 선수였다. 그 땐 엘리트선수라기 보다는 순수하게 아이스하키를 즐겼다. 공부도 하고 운동도 하는 진정한 생활체육이었다.“처음엔 아이스하키가 순수 아마추어였죠. 그런데 서울 동대문에 스케이트링크가 생긴 뒤 달라졌죠. 우린 공부하면서 운동했는데 일부 다른 학교는 운동만 시킨 거예요. 그러면서 우리가 밀리게 됐죠. 뭐 그래도 우린 공부하면서 즐겁게 했어요.” 김 회장은 건축설계를 공부하러 일본에 갔을 때 스키를 배웠다. 군을 제대하고 1972년 일본 건축설계회사에서 일하며 공부하던 때였다. 그는 “겨울 어느 날 기숙사에서 밥을 안 준다고 했다. 고민을 하고 있는데 일본 지인이 스키장에 가면 스키도 타고 밥도 공짜로 먹을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스키장에 갔다. 일본 야마카타현 자오스키장이었다”고 회상했다. 그 때부터 1979년 한국으로 돌아올 때까지 겨울엔 스키를 즐겼다. 제대로 배우진 못했지만 아이스하키를 탔기 때문에 슬로프를 내려오는 데는 큰 문제없었다. 한국에선 용평스키장이 막 문을 열어 스키붐이 서서히 일어나고 있을 때였다. 김 회장은 1983년 간삼건축을 창립해 키우느라 한동안 아이스하키와 스키를 즐기지 못했다. 40세 중반이던 1989년 경기고 아이스하키 동문들이 주축이 돼 만든 ‘폴라베어스(북극곰)’에서 활동하면서 본격적으로 스포츠를 다시 즐기기 시작했다.“젊었을 땐 사업 기반을 잡기 위해 노력하다보니 시간이 없었죠. 40세를 넘기니 여유가 생겨 과거 함께 운동했던 사람들끼리 모여서 다시 운동하게 되더군요. 함께 운동하고 술 한 잔하며 과거 및 현재 살아가는 얘기하고… 이런 게 인생이더라고요. 고등학교 때 전국체전과 종별선수권 등에서 전승한 기억을 떠올리며 빙판을 누볐죠. 일본과 러시아, 중국, 뉴질랜드, 대만, 홍콩 등 동호인들과 교류전도 했죠. 2015년 쯤 아이스하키는 그만두고 이젠 스키를 즐기고 있어요. 아이스하키를 즐기기엔 너무 나이가 들었어요.” 아이스하키를 좋아하다보니 한국중고등부아이스하키연맹 회장도 했다. 대한아이스하키협회에 조언도 많이 해줬다. 아이스하키를 그만 둔 이유엔 부상 위험도 있었다. 스키는 하체가 튼튼하고 평형감각만 있으면 언제든 즐길 수 있었다. 김 회장은 “8090들도 스키를 탄다. 슬로프 내려갈 때 속도 제어만 잘 해주면 다치지 않고 평생 즐길 수 있는 스포츠다”고 말했다.“스키는 올라가는 운동이 아니고 내려가는 운동입니다. 속도 제어를 잘하면, 그러니까 스키가 다른 운동하고 제일 다른 점은 빨리 가는 걸 늦게 가게 하는 거예요. 다른 운동은 100m 200m 빨리 가는 운동인데 스키는 사실상 늦게 가게 하는 운동이거든요. 선수들은 제어를 잘 해서 빨리 가려고 하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 나이 때는 제어 잘해서 천천히 내려가면 됩니다. 요즘은 보조기구도 많아서 나이 들어서도 충분히 스키를 즐길 수 있습니다.” 김 회장은 “인생도 그렇고 사업도 그렇고 모든 것을 자기가 제어하면서 조절할 줄 알아야 한다”고 했다.“제가 이렇게 스키를 즐길 수 있는 이유가 전 이제 회장이 아니라 대표 사원입니다. 전문 경영인에게 모든 것을 넘기고 조언을 해주고 있죠. 뭐 일본 홋카이도에 가서도 스마트폰으로 일할 수도 있습니다. 참 좋은 세상입니다.” 스키는 자연 속에서 하는 스포츠라 더 좋다.“좋은 산 구경하면서 좋은 공기 마시면 병도 안 생겨요. 전 스키를 타면 한 번에 일주일, 길게는 한 달씩 타거든요. 친구나 가족들과 이산에서 타다, 저산으로 옮겨 타고, 힘들면 쉬면서 맥주 한잔 하고. 그렇게 즐기다보니 몸도 튼튼해졌어요.” 물론 평소 체력 관리는 꾸준히 하고 있다. 김 회장은 매일 아침 기상하자마자 음악을 들으면서 30분 스트레칭 체조를 한다. 근육을 잘 풀어줘야 근육이 탄력을 잃지 않는다. 고정식 자전거를 타며 하체 근육도 키운다. 김 회장은 겨울이 아닐 땐 2~3일에 한번씩 지인들과 골프를 친다. 걷기 위해서다. 한 때 싱글 골퍼였지만 요즘은 80대 초반 치면 즐겁고, 80대 중반 치면 좀 기분이 나쁘다고. 골프 보다는 스키를 더 좋아한다.“솔직히 골프는 남이 잘 안 되기를 바라는 스포츠잖아요. 남의 불행은 나의 행복이라고. 돈도 많이 들고 시간도 오래 걸리고…. 친구들이 치자고 하니 함께 골프를 즐기긴 하지만 겨울에 스키 타는 걸 늘 기다립니다.”“오스트리아 솔덴에서 스키 타봤어요? 한국 스키 국가대표 선수들도 가서 훈련하는 명소죠. 환상적입니다. 전 천천히 즐기면서 타기 때문에 전혀 문제없습니다.” 김 회장은 매년 겨울 60일 이상 스키를 탄다. 그는 “100세까지 슬로프 위를 질주하겠다”며 활짝 웃었다.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 2022-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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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려서 운동한 습관 덕에 일흔일곱에도 슬로프 질주해요” [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경기중·고교 시절 아이스하키 선수였다. 그땐 엘리트 선수라기보다는 순수하게 아이스하키를 즐겼다. 공부도 하고 운동도 하는 진정한 생활 체육이었다. 건축설계를 공부하러 일본에 갔을 땐 스키를 배웠다. 김자호 간삼건축 회장(77)은 팔순을 앞두고도 매년 겨울 오스트리아, 일본 등을 돌아다니며 스키를 탄다. 이런 활동의 원동력은 어릴 때부터 스포츠를 즐기던 습관이다. 사회생활 하면서 잠시 잊었지만 어느 순간 다시 ‘스포츠 본능’이 살아나 평생 즐기고 있다. “젊었을 땐 사업 기반을 잡기 위해 노력하다 보니 시간이 없었죠. 40세를 넘기니 여유가 생겨 과거 함께 운동했던 사람들끼리 모여서 다시 운동하게 되더군요. 함께 운동하고 술 한잔하며 과거 및 현재 살아가는 얘기하고…. 이런 게 인생이더라고요.” 김 회장은 2016년부터 국내 첫 시니어 스키클럽인 오파스(OPAS·Old People with Active Skiing)를 이끌고 있다. 가족, 친구들과 스키를 즐기고 있던 터에 지인들이 ‘60세 이상만 참여할 수 있는 클럽’을 만들어 회장을 맡아 달라고 해 선뜻 나섰다고 했다. 그는 “오파스는 100세 시대를 맞아 60세 이상도 스키를 즐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만들었다. 회원들끼리 스키 타며 즐기기도 하지만 60세 이상 스키어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대회도 개최한다”고 했다. 2017년부터 매년 1월 개최하던 대회가 2020년 이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탓에 열리지 못하다 3년 만에 내년 다시 재개된다. 내년 1월 13일 강원 평창군 용평리조트에서 열리는 ‘할배들의 행복나눔 썰매대회’다. 김 회장은 “대회는 나이대별로 핸디캡을 줘서 운영한다. 60∼64세, 65∼69세, 70∼74세, 75세 이상으로 구분해 진행한다. 같은 기록이면 나이 많은 스키어가 이긴다”고 했다. 김 회장은 일본에서 스키를 처음 탔다. 군에서 제대하고 1972년 일본으로 건너가 건축설계 회사에서 일하며 공부하던 때였다. 그는 “겨울 어느 날 기숙사에서 밥을 안 준다고 했다. 고민을 하고 있는데 일본 지인이 스키장에 가면 스키도 타고 밥도 공짜로 먹을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스키장에 갔다. 일본 야마가타현 자오스키장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때부터 1979년 한국으로 돌아올 때까지 겨울엔 스키를 즐겼다. 제대로 배우진 못했지만 아이스하키를 탔기 때문에 슬로프를 내려오는 데는 큰 문제가 없었다. 한국에선 용평스키장이 막 문을 열어 스키 붐이 서서히 일어나고 있을 때였다. 김 회장은 1983년 간삼건축을 창립해 키우느라 한동안 아이스하키와 스키를 즐기지 못했다. 40대 중반이던 1989년 경기고 아이스하키 동문들이 주축이 돼 만든 ‘폴라베어스(북극곰)’에서 활동하면서 본격적으로 스포츠를 다시 즐기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때 전국체전과 종별선수권 등에서 전승한 기억을 떠올리며 빙판을 누볐죠. 일본과 러시아, 중국, 뉴질랜드, 대만, 홍콩 등의 동호인들과 교류전도 했죠. 2015년쯤 아이스하키는 그만두고 이젠 스키를 즐기고 있어요. 아이스하키를 즐기기엔 너무 나이가 들었어요.” 아이스하키를 좋아하다 보니 한국중고등부아이스하키연맹 회장도 했다. 대한아이스하키협회에 조언도 많이 해줬다. 아이스하키를 그만둔 이유엔 부상 위험도 있었다. 스키는 하체가 튼튼하고 균형감각만 있으면 언제든 즐길 수 있었다. 김 회장은 “8090들도 스키를 탄다. 슬로프 내려갈 때 속도 제어만 잘 해주면 다치지 않고 평생 즐길 수 있는 스포츠다”라고 말했다. 물론 평소 체력 관리는 해야 한다. 김 회장은 매일 아침 일어나자마자 30분 스트레칭 체조를 한다. 근육을 잘 풀어줘야 근육이 탄력을 잃지 않는다. 고정식 자전거를 타며 하체 근육도 키운다. 김 회장은 겨울이 아닐 땐 2∼3일에 한 번씩 지인들과 골프를 친다. 걷기 위해서다. “오스트리아 죌덴에서 스키 타봤어요? 한국 스키 국가대표 선수들도 가서 훈련하는 명소죠. 환상적입니다. 전 천천히 즐기면서 타기 때문에 전혀 문제없습니다.” 김 회장은 매년 겨울 60일 이상 스키를 탄다. 그는 “100세까지 슬로프 위를 질주하겠다”며 활짝 웃었다. 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 2022-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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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치병? 항노화? 100세 시대, 이젠 내가 줄기세포 키워 직접 맞는다” [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미국에서 암치료를 위해 줄기세포 1억 개를 몸에 투여하는데 5억 원, 일본에선 1억 9000만 원이 든다. 암이나 불치병에 걸린 사람들에게 ‘만병통치약’으로 알려진 줄기세포 치료를 받고는 싶지만 비용이 너무 비싸다. 그림의 떡이라고 할까. 돈이 없으면 줄기세포 치료 근처에도 가지 못한다. 문제는 돈이 있어도 법적 규제 때문에 국내에선 제대로 치료도 받지 못하고 있다.이런 비용을 10분의 1이하로 낮춘다면 어떨까? 또 법적 규제를 피해갈 수 있다면. 이 두 가지 문제를 해결한 ‘발명왕’ 의사가 있다. 성형외과 전문의이자 의료기기제조업체 메디칸 대표인 이희영 박사(56). 1999년부터 지방 줄기세포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다 법적으로 많은 벽에 부딪혔지만 액수를 낮춘 방법을 고안했고 결국 줄기세포 자가 배양기를 만들었다.“원래 배양된 줄기세포는 의약품으로 팔리기 때문에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의 감독 대상입니다. 배양에 실패하거나 오염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죠. 그러나 제약사의 도움 없이 최종 안전성 검수를 의사가 한다는 전제 하에 자동화 배양장치를 빌려 각자의 줄기세포를 배양하게 된다면 치료비를 10분의 1이하로 줄일 수 있습니다. 줄기세포를 스스로 배양하면 문제가 발생할 게 없습니다. 완전 밀폐된 상태에서 배양되고 각자의 배양기를 사용하기 때문에 남에게도 더욱 안전하게 되죠. 대면적 현미경으로 24시간 세포 상태를 원격으로 관찰할 수 있습니다. 줄기세포 배양에 대한 지식도 많이 익히게 됩니다.”줄기세포 자가 배양기는 줄기세포 치료비용의 95%가 고가의 인건비인데 이것을 해결하고, 동시에 남의 줄기세포와 혼합되는 것을 막는 안전성도 담보할 수 있는 방식이다. 이 박사는 “미국에서 줄기세포 배양을 자동화했는데 비용이 더 들어갔다. 자동화하는 기계를 관리하는 사람까지 써야하기 때문이다. 장기적으로 AI(인공지능)가 하면 비용이 줄겠지만 그 때까진 시간이 너무 걸린다. 수동과 자동 사이인 반자동이 현재로선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다. 여기서 반자동이란 의미는 배양기의관리는 자동이되 배양은 개인이 한다는 의미다”고 설명했다.“의사는 약값을 낮추려고 노력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더 많은 사람들에게 혜택이 돌아가기 때문이죠. 전 의사이기 때문에 항상 어떻게 하면 가격을 낮출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 줄기세포 자가 배양기를 만들게 됐습니다. 하지만 배양기를 직접 구매하면 큰 돈이 들어가기 때문에 빌려서 위탁관리하게 하는 시스템을 만들었습니다.”“화분에 매일 물주는 정도의 노력만으로도 줄기세포를 배양할 수 있습니다. 당뇨 테스트하기 위해 혈액 채취하듯 배에서 가볍게 줄기세포를 빼내 배양기에 넣어 배양하면 됩니다. 배양기가 밀폐돼 있고, 그것을 현미경이 찍어서 인터넷으로 휴대폰이나 패드, 컴퓨터로 보내주기 때문에 세포가 잘 배양 되는 지 바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을 체내에 투입하려면 보통은 의사의 시술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배양 된 줄기세포를 들고 병원으로 가야하는 과정이 번거로워 집에서 가까운 병원에 맡겨 위탁관리하게 하는 게 더 효율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렌탈 및 위탁 보관 시스템을 만든 것입니다.”앞에서 얘기했듯 더 많은 사람들에게 혜택을 주기 위해 만든 시스템이다. 결국 줄기세포 치료를 받으려는 사람은 배양기를 렌탈비, 위탁관리비, 시술비만 내면 주기적으로 줄기세포 치료를 받을 수 있다. 이 박사가 생각하고 있는 현재의 적정 비용은 1회에 300만 원 정도다. 연간 12~15회 줄기세포를 다량 투여 받아야 하는 전신 항노화에서도 활용할 수 있다. 법적으로 문제없다는 법무법인의 법적 해석도 이미 받아 놨다.다음은 panacellbio의 블로그에 올라온 글이다.[올 4월 18일 최 모씨(38)가 심근경색으로 응급실에서 스텐트 시술로 목숨은 건졌지만 심장으로 가는 혈관이 막혀 현재는 심장이 50%의 기능밖에 할 수 없다. 평생 심부전 약을 복용해야 하고 언제 다시 심장이 멈출지도 모른다. 그는 5월 12일 보건복지부에 아래와 같은 내용의 청원서를 제출했다.“지금 현재 제가 할 수 있는 치료 방법은 약물 치료 밖에 없는 현실이나, 줄기세포 치료법을 알게 됐을 때 작은 희망을 갖게 됐습니다. 하지만 심근경색 발생 후 30일 이내에 줄기세포 치료를 받아야 효과를 볼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다시 한번 절망에 빠졌습니다. 저에게 치료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줄기세포 치료 가능성에 대한 일반인의 희망을 가지고 서울대병원에서 외래 진료를 받았지만 ‘이게 무슨 일입니까? 신의료기술에 대한 허가를 받지 못해 줄기세포 치료법을 시행할 없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이제 저는 아무 것도 해보지 못하고 평생 약물에만 의존한 채 언제 또 찾아올지 모르는 통증에 대한 두려움을 안고 평생을 살아가야 합니까?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줄기세포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들고 있는 현실이 너무 안타깝습니다. 이제 저한테는 10일 정도의 시간 밖에 남아 있지 않습니다. 부디 빠른 시일 내에 줄기세포 치료를 허용하여 두 아이의 아빠로, 한 가정의 가장으로, 아들로, 사회의 한 일원으로 보다 안정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심근경색 스텐트 치료 후 심장 괴사를 막기 위한 연구를 진행해온 서울대병원 심혈관센터 줄기세포 연구팀은 세계 최초로 환자의 줄기세포를 심장 근육에 주입하면 심장이 재생된다는 연구를 입증했다. 500여명 환자로부터 효과가 뛰어나고 안정성이 있다고 확인돼 ‘제한적 신의료기술’로 선정돼 현재 영구적 신의료기술로 인가 신청을 한 상태다. 줄기세포를 이용해 심근경색을 치료할 수 있는 기술이 성공했지만, 규제에 막혀 치료법을 시행하면 ‘불법’이기 때문에 살릴 수 있는 사람도 손놓고 보기만 해야 하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심근경색 환자인 경우 응급으로 막힌 혈관을 뚫는 스텐트 삽입술을 거친 후 1개월 내 줄기세포를 주입해야만 효과가 있다. 최 씨는 유효기한 1주일이 남은 시기에 청원서를 보건복지부에 제출했다.줄기세포 연구팀을 이끌고 있는 김효수 서울대병원 순환기내과 교수는 “시술이 불법이다 보니 죽어가는 환자를 마냥 바라 볼 수밖에 없다. 연구팀이 15년이라는 기간을 몰두해 결실을 맺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매직셀 치료법이 필요한 환자가 나오고 있는데 행정적인 절차로 시행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파나셀바이오텍을 비롯한 국내 많은 줄기세포 연구기관들에서도 백혈병, 유선암 등 항암효과가 있는 NK세포와 황반변성증, 당뇨병, 간경화, 아토피, 폐섬유증, 퇴행성관절염 등 난치병과 불치병 치료에 효과가 있는 성체줄기세포 치료연구에서 성공했지만 규제로 인해 적극적인 치료를 하지 못하고 있다.]줄기세포 자가 배양기 렌탈 및 위탁 관리를 다음과 같이 실시하면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 1. 환자가 직접 렌탈회사로부터 배양기를 빌려 사용하고 소모품 비용을 지불한다. 이 과정에서 의료진은 배제 되어야 불법 소지가 없다. 2. 활성 조절, 시기 판단은 원격 접속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다. 3. 소모품 교체는 의료기관이 지정하는 소모품 판매자가 해도 된다. 4. 배양기를 의료기관이 지정하는 장소에 보관하면 침입, 도난, 본인 확인 등 최종 세포 검사에서 비용이 절약된다. 5. 보관소에서는 개별 인터넷, 전원 관리, 보안 관리 등을 제공하고 비용을 받는다.“식약처가 다른 의약품을 검사할 때 적용하는 규정보다 더 확실한 기준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문제는 없습니다. 그리고 전 이 기술을 모두에게 공개할 생각입니다. 그래야 더 많은 사람들에게 혜택이 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죠. 제가 원천 기술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래도 제가 얻는 것은 많습니다. 전 이미 서울 휘문고에서 줄기세포 자가 배양에 대해 한 학기 동안 6주간 ‘스스로 배양’ 동아리도 지도했습니다.”줄기세포는 암을 포함한 불치병 치료, 항노화를 목적으로 각각 ‘맞춤형 배양’을 할 수 있다. 그래서 만병통치약으로 불리는 것이다.“지방에서 줄기세포를 분리해 배양할 때 온도, 용존산소, 흔들어 주는 정도, 배양액 기본 성분 비율 등 환경을 조절하면 면역 세포와 중간엽 줄기세포의 비율을 조절할 수 있습니다. 중간엽 줄기세포가 많아지면 항노화에 유리한 세포가 되는 겁니다. 우리 인체는 40~60조개의 세포로 구성되며 전신을 위해서는 누적 수 조 개의 세포가 필요할 수 있습니다. 생명을 다할 때까지 반복되어야 합니다. 수 회 투여로 끝나는 치료와 지속되어야 하는 치료를 구분 할 수 있습니다. 농작물과 같이, 체외에서 계속 계대를 반복하며 숫자를 늘리는 양생이 필요하며, 새로 자란 세포의 분열과 계대가 반복되어도 특성이 변화하지 않도록(방법의 우월성 필수) 해야 합니다. 무효소 자가 줄기세포 배양이 그 방법입니다.”이 박사는 현재 27명의 자가 줄기세포를 위탁 관리해주고 있다. 또 사우디아라비아로부터 7억2000만 달러(약 9230억 원)의 투자를 약속 받았다. 사우디아라비아에 자가 줄기세포 배양기 생산하는 플랜트를 만드는 사업이다.이 박사는 2018년 모 약물 자가 실험을 하다 생사의 갈림길에 서기도 했다. 치사량의 12배를 넣는 바람에 목에 구멍을 뚫고 인공호흡기까지 착용해야 했다. 3개월 만에 깨어났고 2년간 병원 신세를 지기도 했다.이 박사는 1999년 지나친 흡연과 과음으로 심근경색이 찾아왔을 때부터 지방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스텐트(심혈관이 막혔을 때 넣는 기구)를 삽입해야 한다는 말에 대안을 찾은 게 지방 줄기세포였다. 그는 “전문의 시절 혈관외과에서 파견근무할 때 삽입한 지 1년여가 지난 뒤 다시 병원을 찾은 환자들의 스텐트를 보면서 막혔던 혈관과 똑같이 여기저기 엉겨 붙어 있는 경우가 많아 ‘스텐트를 넣어도 문제가 많다’는 생각하고 있었다”고 회상했다. 당시 가톨릭의대 은사 중에서 지방의 효용성을 연구하던 분이 있었다. ‘지방이 우리 몸에 해로운 것보단 이득이 되는 게 많다’는 그 은사의 주장에 주의를 기울였다. 당시 지방을 분리해 동물에게 투여하는 시술은 많이 있었다. 사람의 지방을 면역 억제 동물에 다시 이식하는 시술이었다. 부작용도 없었고 효과도 좋았다. 줄기세포에 대한 연구가 한창일 때였다.해외 사례 등을 찾아보면서 ‘내 지방에서 줄기세포를 분리해 넣으면 되겠네’ 하면서 지방 줄기세포를 연구했다. 지방에서 줄기세포를 분리해 정맥주사로 놓았더니 심장이 좋아졌다. 지방은 혈관을 늘리고 증식시키는 효과를 준다. 어떤 상처든 지방을 넣어주면 회복능력이 훨씬 좋아진단다. 그때부터 ‘지방 마니아’가 됐다.의대에 입학한 이 박사는 뭘 전공할까 고민하다 성형외과를 택했다. 사람의 병을 고쳐주는 의사지만 예술적 감각을 가장 잘 나타낼 수 있는 분야가 성형이었다. 사람들의 얼굴과 몸을 고치면서 ‘작품’을 하나 만든다고 생각했다. 그의 취미는 ‘만들기’. 평소 기계란 기계는 다 뜯어보고 그 원리를 분석했다. 궁금하면 뭐든 ‘열어보면 되지’라는 게 그의 철학. 그의 사무실에는 망치와 드라이버 등 의사라기보다는 공장의 공원을 연상할 정도로 다양한 공구들이 넘쳐난다. 대학 다닐 땐 자동차에 빠졌었다. 세계 최고의 엔진을 만들어보겠다며 고향인 군산에 공장용지를 사 자동차 엔진을 여러 개 해체해 놓고 연구를 했었다. 이 박사에게 세상은 연구할 것들을 계속 만들어 줬다.지방 줄기세포를 투입하면서 심장이 좋아지자 ‘내가 사람들에게 뭘 만들어 주면 더 편할까’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2001년 메디칸이라는 의료기기 제조 회사를 차린 배경이다. 이 박사는 2002년 세계 최초로 지방 압착 이식기를 만들었다. 지방을 분리해 다시 넣는 과정을 안전하게 한 기계다. 가슴에는 지방 이식을 금기시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지방에서 오일 비율을 낮추고 압축하여 넣으니 효과가 좋았다. 얼굴 성형의 경우 흡수가 많이 되고 지방 세포 미세주사가 너무 어렵다는 이유로 이용하는 사례가 드물었다. 하지만 이 박사는 세밀하게 분쇄한 지방을 가슴 및 얼굴에 넣는 시술로 한국의 성형 지도를 바꿨다.이 박사는 눈매 교정이란 ‘신천지’도 열었다. 눈을 예쁘게 하려면 쌍꺼풀 수술밖에 없었는데 눈 모양을 잘 잡아주는 눈매 교정 기술을 개발했다. 처음엔 “그게 무슨 수술이냐”며 성형외과 의사들의 반발을 사기도 했지만 지금은 아주 일반화된 시술이 됐다. 이 박사는 지금까지 건수로 300개의 특허를 받았다. 자가 줄기세포 배양기에 들어간 특허만 56개다. 코를 수술하지 않고 실로 높이는 ‘미스코’, 이젠 지방이식의 표준이 된 ‘리포킷’ 등 이 박사가 개발한 의료기기가 70개 정도 된다. 지금까지 연구에 들어간 돈만 수 백 억 원이다. 돈도 벌었지만 까먹은 돈이 더 많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싼 값에 의료 혜택을 주기 위해 발명을 멈추지 않고 있다. 현재까지 그 제일 좋은 결과물이 바로 줄기세포 자가 배양기다.양종구기자 yjongk@donga.com}

    • 2022-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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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머니 살려달라’ 산신령께 기도하며 매주 산 올랐죠” [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2017년 어느 날부터 매 주말 산을 탔어요. 어머니께서 갑자기 기력이 떨어지셨죠. 제가 할 수 있는 게 산에 올라 산신령님께 어머니 건강하시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밖에 없었어요. 그랬더니 신기하게도 어머니가 건강을 되찾으셨고, 저도 건강해졌죠.”컨설팅&유통 업체 비즈니스플러스 안순기 대표(53)는 어머니 건강 기원을 위해 산에 오르기 시작해 2년간 대한민국 100대 명산을 섭렵했다. 지금까지 204개 산 정상에 올랐다. 지금도 매 주말엔 산으로 향한다. 평일에도 시간이 나면 동네 앞산이라도 오른다. 집에서 쉬고 있으면 몸이 근질근질해서 자연스럽게 산으로 향한다.“솔직히 아무한테도 얘기하지 않고 혼자 산에 올라 산신령님께 기도했죠. 대한민국 100대 산신령님들께 우리 어머니 살려달라고 ‘맞짱’ 뜨는 심정으로 올랐어요. 그런데 제가 산에 오르는 심정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린 것을 누나가 보고 어머니께 얘기했나 봐요. 그래서 어머니도 건강하려고 더 노력하신 것 같아요. 어느 날 집에서 쉬고 있으니 어머니께서 ‘산에 안 가냐?’ 하고 물으시더라고요.”비바람 눈, 태풍이 와도 산으로 갔다. 어릴 때부터 부모 말 안 듣고 살았고, 젊어서 사업하다 크게 망하는 등 어머니 속을 너무 썩였다는 생각에 어머니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하고 싶었다. 그는 “내 에너지가 어머니에게 조금이나마 전달된 것 같다. 올해 82세인데 건강하시다”며 웃었다. 안 대표에게 산은 어머니 품 같은 안식처다.“경북 울진군 서면(금강송면) 불영계곡에서 나고 자라 어렸을 때부터 산에 둘러 싸여 살다보니 산이 좋았어요. 젊었을 때 사업 실패로 낙담했을 때 산에 올랐어요. 산에서 위안과 희망을 찾았습니다. 산에 가면 안 풀리던 문제도 해결되죠. 이제 주기적으로 산을 타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결국 이 습관도 어머니 때문에 만들어진 것입니다. 어머니를 위해 산행을 시작했는데 결국 저에게 더 큰 도움이 된 셈이죠. 제가 건강하니 어머니도 걱정을 덜고 안심하고 사시는 것 같습니다.”안 대표가 산을 좋아하는 이유는 변함이 없어서란다.“사람은 변하잖아요. 전 사업하다 배신도 많이 당했어요. 그런데 산은 변하지 않아요. 늘 그대로의 모습으로 절 반겨줘요. 29세 때 사업에 실패한 제가 크게 낙담했는데 몸도 아팠어요. 병원에 가도 병명도 안 나왔죠. 어머니께서 ‘이러다 우리 막내아들 죽겠네’라며 걱정하시는 것을 보고 산으로 갔어요. 1년 365일 산만 탔죠. 1년째 되는 날 지리산 천왕봉에서 그동안 쌓였던 응어리가 모두 사라졌어요. 산은 제게 ‘세상엔 선한 사람, 악한 사람이 있는 게 아니라 너하고 맞는 사람과 안 맞는 사람이 있다’고 알려줬습니다. 사람은 절대 안 바뀝니다. 바뀌길 바란 제가 잘못됐다는 것을 알았죠. 그때부턴 제가 바뀌어 맞추려고 노력합니다.”안 대표는 혼자 산에 간다. 산을 타며 사색을 하기 때문이다. 산악회 차를 얻어 타고 가더라도 맨 앞에 나서서 혼자 오른다. 그는 “한국의 문화는 다른 사람을 배려해야 한다. 함께 가면 말을 해야 한다. 그럼 나만의 생각을 못 한다”고 했다. 200개 넘는 산을 오르자 사람들이 ‘어느 산이 가장 힘드냐’고 묻는다. 그는 “오늘 오른 산이 가장 힘들다. 나머지는 다 기억 속에 있기 때문”이라고 말해준다. 낮고 높은 게 힘듦의 기준이 아니고 그날 산을 오르는 사람의 몸과 마음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제가 산과 대화를 한다면 믿겠어요? 제가 인사를 하면 산이 받아줘요. 언젠가 겨울에 산에 올랐는데 ‘얘들아 반갑다’고 했더니 산도 반가웠는지 제가 걸을 때마다 계속 나무에서 눈을 떨어뜨려 주는 거예요. 몇 백 m 갈 때까지 계속….”안 대표는 요즘은 유명한 산보다는 잘 알려지지 않은 산을 많이 탄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산은 경기 양평군의 추읍산. 그는 “진짜 혼자서 사색하고 싶을 때 가는 산이다. 높지도 않고 전망도 좋지 않지만 맑은 개천이 있다. 무엇보다 사람이 없어 조용히 생각하며 산행할 수 있다”고 했다.“한국의 산은 등수가 없는데 누군가가 100대 명산, 200대 명산, 300대 명산으로 등수를 만들어 왔어요. 상업화를 한 것이죠. 명산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와서 시끄러워요. 산이 명성 때문에 고요함과 편안함을 잃는 측면이 있어 안타깝죠. 저도 이러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산을 계속 오르고 있더라고요. 뭐 전 산과 대화하는 것으로 만족하려고 합니다.”산행은 최소 5시간 걸린다. 오르막 내리막을 걷다 보면 몸 건강은 기본으로 따라온다. 운동생리학적으로 등산은 산에서 하는 인터벌트레이닝(Interval Training)으로 건강은 물론이고 다이어트에도 좋다. 인터벌트레이닝은 일정 강도의 운동과 운동 사이에 불완전한 휴식을 주는 훈련 방법으로 엘리트 운동선수들이 심폐 지구력을 키울 때 하는 훈련이다. 예를 들어 100m를 자기 최고 기록의 50%에서 최대 90%로 달린 뒤 조깅으로 돌아와 다시 100m를 같은 강도로 달리는 것을 반복하는 훈련이다. 사실 엄격한 의미에서 등산을 인터벌트레이닝과 동급으로 놓을 순 없다. 하지만 산을 오를 때 급경사와 완만한 경사, 평지, 내리막이 반복 된다. 이를 휴식할 때까지 1시간 이상 하니 일종의 인터벌트레이닝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등산은 1, 2시간 안에 끝내기 보다는 5~8시간까지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다이어트에 큰 효과가 있다. 인터벌트레이닝은 엘리트 선수들 심폐 지구력 강화를 위해 중요한 훈련이었다.안 대표는 매주 5시간 이상 산을 타며 인터벌트레이닝을 했으니 건강은 자연히 따라온 것이다.“사람들이 달리고, 축구하고, 자전거를 타면서 느낄 수 있는 행복감을 전 산을 타면서 느낍니다. 산에 오르면 그냥 좋습니다. 어려운 문제도 잘 정리되고… 산은 제 평생 친구입니다.”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 2022-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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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머니 건강 기원하며 산을 탔는데 제가 더 건강해졌어요”[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경북 울진군 서면(금강송면) 불영계곡에서 나고 자라 어렸을 때부터 산이 좋았다. 젊었을 때 사업 실패로 낙담했을 때 산에 올라 희망을 찾았다. 2017년부터는 어머니 건강을 위해 기도하는 마음으로 매주 산을 탔다. 2년간 대한민국 100대 명산을 섭렵했고 지금까지 204개 산 정상에 올랐다. 어머니도 건강을 되찾았다. 자신도 더 건강해졌다. 컨설팅&유통 업체 비즈니스플러스 안순기 대표(53)는 매 주말 산을 탄다. 평일에도 시간이 나면 동네 앞산이라도 오른다. 집에서 쉬고 있으면 몸이 근질근질해서 자연스럽게 산으로 향한다. “어머니께서 갑자기 기력이 떨어지셨죠. 제가 할 수 있는 게 산에 올라 산신령님께 어머니 건강하시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밖에 없었어요. 아무한테도 얘기하지 않고 혼자 올라 기도했죠. 그런데 제가 산에 오르는 심정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린 것을 누나가 보고 어머니께 얘기했나 봐요. 그래서 어머니도 건강하려고 더 노력하신 것 같아요. 어느 날 집에서 쉬고 있으니 어머니께서 ‘산에 안 가냐?’ 하고 물으시더라고요.” 어릴 때부터 부모 말 안 듣고 살았고, 젊어서 사업하다 크게 망하는 등 어머니 속을 너무 썩였다는 생각에 어머니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하고 싶었다. 그는 “내 에너지가 어머니에게 조금이나마 전달된 것 같다. 올해 82세인데 건강하시다”며 웃었다. 안 대표에게 산은 어머니 품 같은 안식처다. 힘들 때마다 산으로 갔고 위안과 희망을 찾았다. 어머니를 위해 산행을 시작했는데 결국 자신에게 더 큰 도움이 됐다고 했다. 그는 “산에 가면 안 풀리던 문제도 해결된다. 이제 주기적으로 산을 타는 습관이 생겼다. 이것도 결국 어머니께서 만들어주신 것”이라고 했다. “사람은 변하잖아요. 전 사업하다 배신도 많이 당했어요. 그런데 산은 변하지 않아요. 늘 그대로의 모습으로 절 반겨줘요. 29세 때 사업에 실패한 제가 낙담하자 어머니께서 ‘이러다 우리 막내아들 죽겠네’라며 걱정하시는 것을 보고 산으로 갔어요. 1년 365일 산만 탔죠. 1년째 되는 날 지리산 천왕봉에서 그동안 쌓였던 응어리가 모두 사라졌어요. 산은 제게 ‘세상엔 선한 사람, 악한 사람이 있는 게 아니라 너하고 맞는 사람과 안 맞는 사람이 있다’고 알려줬습니다. 사람은 절대 안 바뀝니다. 바뀌길 바란 제가 잘못됐다는 것을 알았죠. 그때부턴 제가 바꿔서 맞추려고 노력합니다.” 안 대표는 혼자 산에 간다. 산을 타며 사색을 하기 때문이다. 산악회 차를 얻어 타고 가더라도 맨 앞에 나서서 혼자 오른다. 그는 “한국의 문화는 다른 사람을 배려해야 한다. 함께 가면 말을 해야 한다. 그럼 나만의 생각을 못 한다”고 했다. 200개 넘는 산을 오르자 사람들이 ‘어느 산이 가장 힘드냐’고 묻는다. 그는 “오늘 오른 산이 가장 힘들다. 나머지는 다 기억 속에 있기 때문”이라고 말해준다고. 낮고 높은 게 힘듦의 기준이 아니고 그날 산을 오르는 사람의 몸과 마음에 따라 달라진다고. “제가 산과 대화를 한다면 믿겠어요? 제가 인사를 하면 산이 받아줘요. 언젠가 겨울에 산에 올랐는데 ‘얘들아 반갑다’고 했더니 산도 반가웠는지 제가 걸을 때마다 계속 나무에서 눈을 떨어뜨려 주는 거예요. 몇 백 m 갈 때까지 계속….” 안 대표는 요즘은 유명한 산보다는 잘 알려지지 않은 산을 많이 탄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산은 경기 양평군의 추읍산. 그는 “진짜 혼자서 사색하고 싶을 때 가는 산이다. 높지도 않고 전망도 좋지 않지만 맑은 개천이 있다. 무엇보다 사람이 없어 조용히 생각하며 산행할 수 있다”고 했다. 산행은 최소 5시간 걸린다. 오르막 내리막을 걷다 보면 몸 건강은 기본으로 따라온다. 운동생리학적으로 등산은 산에서 하는 인터벌트레이닝(Interval Training)으로 건강은 물론이고 다이어트에도 좋다. 인터벌트레이닝은 일정 강도의 운동과 운동 사이에 불완전한 휴식을 주는 훈련 방법으로 엘리트 운동선수들이 심폐 지구력을 키울 때 하는 훈련이다. “사람들이 달리고, 축구하고, 자전거를 타면서 느낄 수 있는 행복감을 전 산을 타면서 느낍니다. 산에 오르면 그냥 좋습니다. 어려운 문제도 잘 정리되고…. 산은 제 평생 친구입니다.” 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 2022-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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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예순살이지만 골 넣을땐 손흥민 안 부럽죠”…매주 공 차는 ‘축구광’ 의사[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아 정말 환상적이었습니다. 한국이 포르투갈을 꺾다니…” 서동원 바른세상병원 원장은 3일 열린 카타르 월드컵 H조 한국과 포르투갈 경기를 현장에서 지켜봤다. 병원 일정상 경기보고 바로 비행기에 올랐지만 아직 그 감동을 잊을 수가 없다. 비록 한국이 브라질과의 16강전에서 1-4로 져 탈락했지만 서 원장에게 태극전사들은 영웅이었다.“이게 축구의 매력입니다. 11명이 단 하나의 목표, 골을 넣기 위해 힘을 합치고 팬들도 하나가 된다는 것이죠. 이번 카타르 월드컵에서 느꼈겠지만 한국 선수들이 포르투갈과 브라질 등 세계적인 강호들과 싸울 때 대한민국 국민 전체가 하나가 돼 응원합니다. 축구는 사람들을 하나로 뭉치게 하죠.” 한국 나이 예순인 서 원장은 매주말 축구하는 재미로 산다. 선수는 아니지만 어릴 때부터 공을 차면서 희망을 키웠고 지금은 스트레스를 날리고 건강을 다지기 위해 공을 찬다.“고려고 2학년 때 축구하다 골키퍼와 부딪혀 전방십자인대가 끊어졌어요. 대학 땐 공부한다고 축구를 못했지만 고려대구로병원에서 재활의학 전문의 과정을 할 때 다시 축구를 시작했죠. 그 때부터 축구는 제 삶의 일부가 됐습니다.” 전방십자인대 부상 뒤 제대로 치료하지 못해 무릎이 썩 좋지 않았다. 서 원장이 스포츠 의학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다. 1992년부터 1996년까지 고려대구로병원에서 근무할 때 직원 축구팀에 가입해 활동했다. 영상의학과, 임상병리학과, 원무과 직원들이 대부분인 가운데 의사로 유일하게 공을 찼다. 그는 “당시 26경기 연속 골을 넣었는데 아직 전설로 통한다”고 했다. 1997년 미국 하버드의대로 2년간 연수를 갔을 때도 한인축구회에 가입해 축구를 계속했다. 서 원장은 미국에서 공부하다 전공을 하나 더 추가하게 됐다.“현지 연구소에서 2년 동안 공부하다 보니 스포츠 의학에 집중하려면 정형외과 공부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수술 분야의 정형외과와 비수술 분야의 재활의학과적 치료를 병행할 때 최고의 결과를 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죠. 크게 다치면 수술한 뒤 재활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1998년 귀국해 다시 정형외과 전공의 시험을 치르고 전문의 과정을 다시 밟았습니다.” 서 원장은 국내 1호 ‘재활의학과와 정형외과 전문의’가 됐다. 2004년 경기도 성남시에 바른세상병원을 개원한 뒤 성남시의사회축구단 회원으로 활동했다. 그리고 2년 뒤 ‘바세(바른세상병원) FC’를 창단했다. 그는 “처음엔 직원이 11명이 안 돼 축구팀을 만들 수 없었지만 30명 가까이 되면서 팀을 구성할 수 있었다”고 했다. 그 때부터 성남시의사회장기 축구대회에 출전하는 등 지역 병원팀들하고 선의의 경쟁을 펼쳤다. 바세 FC는 올해 성남시 보건의료인 축구대회에서 9회 연속 우승할 정도로 최강을 자랑한다. 서 원장은 고대 1982학번축구팀에서도 활약하고 있고 고대축구연합회 회장까지 맡아 ‘고대 OB 축구리그’를 이끌고 있다. 그는 “대한축구협회가 KFA(Korea Football Association)라면 고대교우축구연합회는 KAFA(Korea University Alumni Football Association)다. 끈끈하게 잘 돌아간다”고 했다. 서 원장은 스포츠 의학 분야에서 손꼽히는 전문가이자 축구광이다 보니 지난해 3월 대한축구협회 의무분과위원장에 선임됐다. 2005년 네덜란드 20세 이하 월드컵 주치의, 2012년 런던 올림픽 선수단 주치의 경험을 살려 이번 카타르 월드컵엔 사상 최초로 주치의를 2명 파견했다. 그는 “선수들 부상이 이어지면 전력에 큰 차질이 생기기 때문에 정형외과 전문의와 재활의학 전문의를 함께 보냈다”고 했다. 한국은 안와골절 손흥민(30·토트넘)에 이어 수비의 핵 김민재(26·나폴리) 등 부상 선수들이 나왔지만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 이어 12년 만에 원정 16강 진출에 성공했다. 서 원장은 ‘안와골절’ 손흥민에 대한 비화도 하나 소개했다“손흥민이 다친 뒤 대한축구협회가 발칵 뒤집어졌다. 손흥민이 없는 한국축구는 상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의무분과위원회 회의 중 한 의무 위원이 럭비선수들이 안와골절을 당한 뒤 다시 경기에 복귀하는 시간이 평균 18일이라는 논문을 찾아냈다. 월드컵 첫 경기가 손흥민이 수술 후 20일 뒤였다. 그래서 손흥민도 재활 잘 하면 경기에 뛸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결국 뛰었다.” 서 원장은 전방십자인대 재건 수술 분야에서 ‘명의’로 통한다.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 선수 르엉쑤언쯔엉도 서 원장에게 수술 받았다. 박항서 감독의 지도를 받은 쯔엉은 2018년 아시아축구연맹(AFC) U-23 챔피언십 대회에서 주장을 맡아 베트남을 준우승으로 이끈 선수다. 서 원장은 병원운영에도 축구정신을 강조하고 있다. 서 원장은 2018년 한국경영학회를 포함해 40여 개 경영학 관련 학회가 주최한 학술대회에서 ‘강소기업가상’을 수상했다. 병원 경영자가 이 상을 탄 것은 처음이었다. 과잉진료를 하지 않고 병원 전체가 페어플레이 정신으로 무장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서 원장은 병원 내 의사들에게 과잉 진료를 절대로 하지 못하게 하고 있다. 과잉 진료는 힘들게 쌓아올린 병원의 명성에 흠집을 낼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서 원장은 과잉 진료의 부작용에 대해 매우 우려하는 편이다. 일단 환자들의 경제적 부담이 커지며, 그 결과 의료 시스템 전체가 휘청거릴 수 있다는 것이다. 요즘도 서 원장은 과잉 진료를 방지하기 위해 매일 아침 의료진이 모여 회의를 하도록 한다. 최적의 치료법을 찾는 동시에 최신 학술정보를 공유하고 의견을 나누기도 한다.“축구 선수 몸 보셨어요? 군살이 하나도 없습니다. 모든 선수 배에는 ‘왕(王)’자가 새겨져 있죠. 다 모델 같은 몸매를 가질 수밖에 없죠. 그만큼 관리하지 않으면 90분 풀타임을 뛸 수 없습니다.” 서 원장도 주말에 공을 차기 위해 매일 몸을 관리한다. 병원 피트니스센터에서 운동하고 집에서도 하체 근육을 단련시키는 기구를 마련해 놓고 틈만 나면 땀을 흘린다. 병원 옥상에 마련된 인조잔디구장에선 볼 다루는 훈련을 한다. 나이에 비해 젊어 보이면서 탄탄한 몸매를 갖추고 있는 이유가 이런 노력의 결과다. 서 원장의 포지션은 붙박이 중앙공격수. “젊었을 땐 좌우 날개 공격수로 활약하기도 했지만 이젠 몸조심하며 골만 낚아낼 때”라며 웃었다. 무릎이 좋지 않아 저돌적으로 뛰어다닐 수는 없지만 문전에서 골 잡아내는 능력은 아직 서 원장을 따라올 의사가 없다고.“골 넣어 보셨어요? 골 넣은 순간엔 저도 한국 최고의 선수 손흥민이 됩니다. 이건 골을 넣어보지 못한 사람은 모릅니다.” 서 원장의 마음은 벌써 축구장에 가 있었다.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 2022-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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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0세에도 그라운드에 서면 ‘손흥민’이 됩니다”[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올해로 한국 나이 예순인 서동원 바른세상병원 원장은 매 주말 축구하는 재미로 산다. 선수는 아니지만 어릴 때부터 공을 차면서 희망을 키웠고 지금은 스트레스를 날리고 건강을 다지기 위해 공을 찬다. “고려고 2학년 때 축구하다 골키퍼와 부딪쳐 전방십자인대가 끊어졌어요. 대학 땐 공부한다고 축구를 못 했지만 고려대구로병원에서 재활의학 전문의 과정을 할 때 다시 축구를 시작했죠. 그때부터 축구는 제 삶의 일부가 됐습니다.” 전방십자인대 부상 뒤 제대로 치료하지 못해 무릎이 썩 좋지 않았다. 서 원장이 스포츠 의학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다. 1992년부터 1996년까지 고려대구로병원에서 근무할 때 직원 축구팀에 가입해 활동했다. 영상의학과, 임상병리학과, 원무과 직원들이 대부분인 가운데 의사로 유일하게 공을 찼다. 그는 “당시 26경기 연속 골을 넣었는데 아직 전설로 통한다”고 했다. 1997년 미국 하버드대 의과대학으로 2년간 연수를 갔을 때도 한인축구회에 가입해 축구를 계속했다. 서 원장은 미국에서 공부하다 전공을 하나 더 추가하게 됐다. 그는 “현지 연구소에서 2년 동안 공부하다 보니 스포츠 의학에 집중하려면 정형외과 공부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크게 다치면 수술한 뒤 재활이 중요했다. 그래서 1998년 귀국해 다시 정형외과 전공의 시험을 치르고 전문의 과정을 다시 밟았다”고 했다. 국내 1호 ‘재활의학과와 정형외과 전문의’가 됐다. 2004년 경기 성남시에 바른세상병원을 개원한 뒤 성남시의사회축구단 회원으로 활동했다. 그리고 2년 뒤 ‘바세(바른세상병원) FC’를 창단했다. 그는 “처음엔 직원이 11명이 안 돼 축구팀을 만들 수 없었지만 30명 가까이 되면서 팀을 구성할 수 있었다”고 했다. 그때부터 성남시의사회장기 축구대회에 출전하는 등 지역 병원 팀들과 선의의 경쟁을 펼쳤다. 바세 FC는 올해 성남시 보건의료인 축구대회에서 9회 연속 우승할 정도로 최강을 자랑한다. 서 원장은 고려대 1982학번축구팀에서도 활약하고 있고 고대축구연합회 회장까지 맡아 ‘고대 OB 축구리그’를 이끌고 있다. 서 원장은 스포츠 의학 분야에서 손꼽히는 전문가이자 축구광이다 보니 지난해 3월 대한축구협회 의무분과위원장에 선임됐다. 2005년 네덜란드 20세 이하 월드컵 주치의, 2012년 런던 올림픽 선수단 주치의 경험을 살려 이번 카타르 월드컵엔 사상 최초로 주치의를 2명 파견했다. 그는 “선수들의 부상이 이어지면 전력에 큰 차질이 생기기 때문에 정형외과 전문의와 재활의학 전문의를 함께 보냈다”고 했다. “11명이 단 하나의 목표, 골을 넣기 위해 힘을 합친다는 게 축구의 매력입니다. 이번 카타르 월드컵에서 느꼈겠지만 한국 선수들이 포르투갈과 브라질 등 세계적인 강호들과 싸울 때 대한민국 국민 전체가 하나가 돼 응원합니다. 축구는 사람을 하나로 뭉치게 하죠.” 이런 축구정신이 병원 운영에서도 빛을 발했다. 서 원장은 2018년 한국경영학회를 포함해 40여 개 경영학 관련 학회가 주최한 학술대회에서 ‘강소기업가상’을 수상했다. 병원 경영자가 이 상을 탄 것은 처음이었다. 과잉 진료를 하지 않고 병원 전체가 페어플레이 정신으로 무장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축구 선수 몸 보셨어요? 군살이 하나도 없습니다. 모든 선수 배에는 ‘왕(王)’자가 새겨져 있죠. 다 모델 같은 몸매를 가질 수밖에 없죠. 그만큼 관리하지 않으면 90분 풀타임을 뛸 수 없습니다.” 서 원장도 주말에 공을 차기 위해 매일 몸을 관리한다. 병원 피트니스센터에서 운동하고 집에서도 하체 근육을 단련시키는 기구를 마련해 놓고 틈만 나면 땀을 흘린다. 병원 옥상에 마련된 인조잔디구장에선 볼 다루는 훈련을 한다. 나이에 비해 젊어 보이면서 탄탄한 몸매를 갖추고 있는 이유가 이런 노력의 결과다. 서 원장의 포지션은 붙박이 중앙공격수. “젊었을 땐 좌우 날개 공격수로 활약하기도 했지만 이젠 몸조심하며 골만 낚아낼 때”라며 웃었다. “골 넣어 보셨어요? 골 넣은 순간엔 저도 한국 최고의 선수 손흥민이 됩니다. 이건 골을 넣어보지 못한 사람은 모릅니다.” 서 원장의 마음은 벌써 축구장에 가 있었다.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 2022-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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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퉁퉁 부은 발목… 네이마르, 조별리그 ‘아웃’

    이 정도면 ‘징크스’다. 브라질의 간판 공격수 네이마르(30·파리 생제르맹·사진)가 24일 열린 세르비아와의 카타르 월드컵 G조 1차전 부상 여파로 남은 조별리그를 뛸 수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브라질 축구협회는 26일 “네이마르가 29일 스위스와의 2차전에 결장한다”고 발표했다. 회복 속도에 따라 다음 달 3일 카메룬과의 3차전 결장 가능성도 높다. 영국 BBC는 브라질 팀 닥터의 말을 인용해 “네이마르가 조별리그 잔여 경기에 결장한다”고 전했다. 네이마르는 부상을 당한 뒤 인스타그램에 “오늘은 내 커리어에서 가장 힘든 순간 중 하나”라고 심경을 털어놨다. 그는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느끼는 자부심과 애정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신이 내게 태어나고 싶은 나라를 선택할 기회를 준다면, 그것은 브라질일 것”이라고 했다. 네이마르는 26일엔 인스타그램에 오른쪽 발목이 퉁퉁 부은 사진을 올리면서 ‘갑시다(Boraaaa!!!)’란 글을 올렸다. 부상으로 뛰진 못하지만 브라질을 응원하는 문구로 보인다. 네이마르는 2014년 자국에서 열린 월드컵 때도 콜롬비아와의 8강전에서 척추 골절상을 당한 아픈 기억이 있다. 브라질은 당시 4강에서 네이마르의 공백 속에 독일에 1-7로 대패했다. 브라질은 G조 1위를 하면 내달 5일 H조 2위와 16강전을 벌인다. 한국이 H조 2위를 하면 브라질을 만날 수 있다.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 2022-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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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정도면 ‘징크스’…네이마르, 조별리그 ‘아웃’

    이 정도면 ‘징크스’다. 브라질의 간판 공격수 네이마르(30·파리 생제르맹)가 24일 열린 세르비아와의 카타르 월드컵 G조 1차전 부상 여파로 남은 조별리그를 뛸 수 없을 전망이다. 브라질 축구협회는 26일 “네이마르가 29일 스위스와의 2차전에 결장한다”고 발표했다. 회복속도에 따라 다음달 3일 카메룬과의 3차전 결장 가능성도 높다. 영국 BBC는 브라질 팀 닥터의 말을 인용해 “네이마르가 조별리그 잔여경기에 결장 한다”고 전했다. 네이마르는 부상을 당한 뒤 인스타그램에 “오늘은 내 커리어에서 가장 힘든 순간 중 하나”라고 심경을 털어놨다. 그는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느끼는 자부심과 애정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신이 내게 태어나고 싶은 나라를 선택할 기회를 준다면, 그것은 브라질일 것“이라고 했다. 네이마르는 26일엔 인스타그램에 오른쪽 발목이 퉁퉁 부은 사진을 올리면서 ‘갑시다(Boraaa!!!)’란 글을 올렸다. 부상으로 뛰진 못하지만 브라질을 응원하는 문구로 보인다. 네이마르는 2014년 자국에서 열린 월드컵 때도 콜롬비아와의 8강전에서 척추 골절상을 당한 아픈 기억이 있다. 브라질은 당시 4강에서 네이마르의 공백 속에 독일에 1-7로 대패했다. 브라질은 G조 1위를 하면 내달 5일 H조 2위와 16강전을 벌인다. 한국이 H조 2위를 하면 브라질을 만날 수 있다. 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 2022-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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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흔에도 마라톤 풀코스 완주…도전 없는 삶은 죽은 것”[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제가 마라톤 풀코스를 40회 정도 달렸어요. 그런데 완주를 위한 달리기 훈련을 하지 않는다면 믿으시겠어요? 진짜입니다. 전 걷는 것으로 마라톤 훈련을 대신했어요. 그렇게 4시간 20분에서 30분에 완주했습니다. 대회 2개월 전부터 많이 걸었을 땐 3시간47분에 완주하기도 했죠.” 문송천 KAIST 경영대학원 명예교수(70)는 3년 전 마라톤 은퇴를 선언했다가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65세를 넘겨 더 이상 마라톤 42.195km 풀코스 완주는 무리라고 생각하고 2019년 서울국제마라톤 겸 동아마라톤에서 풀코스를 완주한 뒤 은퇴를 선언했다. 하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탓에 너무 움츠러져 있던 생활에서 탈피하고 싶어 다시 도전하게 됐다. 그는 “코로나19가 터진 뒤 영국 러프버러대에 초빙교수로 갔다 2년 만에 돌아왔다. 영국에서도 락다운(lockdown)을 많이 해서 운동을 기회가 많지 않았다. 내 체력이 어느 정도인지 테스트 하고 싶어 달렸다”고 했다. 락다운은 군사계엄령 내린 것과 같이 어떤 활동도 금지되는 상황이다. 그는 올 가을 춘천마라톤에서 4시간50분대에 완주했다. 당분간 마라톤 풀코스 도전은 계속 하겠다고 했다.“오래 사는 것보다는 건강하게 사는 게 중요합니다. 아직 무릎과 발목에 전혀 문제없어요. 하지만 모든 운동은 무리하지 않는 게 중요합니다. 제가 아직 풀코스를 달릴 수 있는 이유는 무리하지 않고 늘 걷기 때문입니다. 지금으론 80세까진 풀코스를 완주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문 교수는 마라톤 풀코스 훈련을 걷기로 하고 있다. 20여 년 전부터 자가용 차까지 팔고 속칭 ‘BMW(버스 메트로 워킹) 족’으로 매일 걸어서 건강을 다지고 있다. 집 서울 압구정에서 연구실이 있는 강북 홍릉까지 12km를 매일 걸어 출근했다. 경기도 과천으로 이사를 간 뒤에는 압구정까지 버스를 타고 간 뒤 걸어서 학교까지 간다. 문 교수가 달리기 시작한 계기는 1990년대 말 불거진 ‘Y2K(컴퓨터2000년 문제)’ 문제 해결. ‘국내 전산학 박사 1호’인 그는 1998년부터 2000년까지 Y2K국제대회 한국대표로 활약했고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문제해결을 위해 노력했다. 그는 “Y2K를 해결하기 위해 1년 반 동안 브라질을 2박 3일 만에 다녀오는 등 전 세계 15개국을 돌아다녔다. 그러다보니 체력이 바닥까지 떨어졌다. 이러다 잘못하면 쓰러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때쯤 엘리트 위주의 마라톤 대회가 일반인들에게 개방됐다. 그래서 달리기 시작했다”고 했다. 문 교수는 “마라톤에는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는 기적이 있다”고 했다.“이 기적은 출발한 뒤 30km 지점에서 일어납니다. 스스로도 도저히 완주하지 못할 것 같던 게 30km 지점을 통과하면서 가능으로 역전되는 것을 느낍니다.” 문 교수는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될 것 같은데 이 ‘큰 일’을 자기 몸에서 나오는 능력만으로 해낸다는 것이 기적이라는 것이다.문 교수는 혼자만을 위해 달리지 않았다. 마라톤에 처음 참가했던 2000년부터 ‘1미터 10원’을 기부하며 지인들에게 ‘1미터 1원’을 권유했다. 풀코스를 완주할 경우 본인은 42만1950원을 내고 지인들은 4만2195원을 낸다. 문 교수는 지금까지 마라톤으로만 6000여 만 원을 내놨고 방송 출연료(30년간 고정출연 2500회) 1억 원을 쾌척했다. 모두 백혈병 어린이 돕기 등 이웃돕기에 썼다.“제 아내(이혜경 용인예술과학대 컴퓨터과 교수)와 비올리스트 리처드 용재 오닐(44)이 후원자입니다. 두 사람 다 1m 10원 운동에 적극 동참해줬습니다. 아내는 직접 뛴 적은 많지 않지만 제가 완주하면 매번 골인 지점에서 절 기다렸어요. 오닐 씨는 2009년 그의 첫 풀코스 레이스를 제가 이끌어 주면서 같이 뛰게 됐죠.” 문 교수는 오닐 씨의 인생 역정을 알게 된 뒤부터 가족처럼 지내고 있다. 6·25 전쟁고아로 미국에 입양된 오닐 씨의 어머니는 어릴 때 고열로 인해 지적장애인이 됐고 미혼모로 그를 낳았다. 문 교수는 “오닐 씨의 어머니는 장애인 마라토너로 활약했다. 그 재능을 물려받아서인지 오닐 씨도 풀코스를 보통 3시간30분 이내에 뛴다”고 했다. 문 교수는 아내와 풀코스와 하프코스 동반완주를 7회 했다. 문 교수는 대학 1학년 때부터 운동을 생활화했다.“제가 문과에서 이과로 옮겨 대학에 들어갔어요. 수학이 달렸죠. 그래서 대학 1학년 때 부족한 공부 따라가려고 무리하게 밤을 새다 쓰러졌어요. 급성 간염으로 숟가락 젓가락도 못 들 정도로 기력이 빠졌죠. 그 때부터 운동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회복 된 뒤로 축구공을 늘 매고 다니며 공을 차며 몸을 다졌어요.” 대학 시설 ‘축구선수’로 불릴 정도로 이름을 날렸다. 대학원 시절 테니스 치기도 시작했다. 어릴 때 단거리 달리기를 잘 했던 문 교수는 하는 스포츠마다 두각을 나타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도 축구공을 차며 녹색 그라운드를 누볐다. KAIST에 축구팀을 만들었고 경영대학원 ‘축구지도 교수’까지 했다. 테니스로는 30년 넘게 KAIST 최강으로 군림했고 전국 전산인 테니스대회에서 우승까지 했다. 아직도 주 2~3회 2시간 이상 테니스를 치고 있다.“학교 테니스 챔피언이 저에게 도전합니다. 순발력과 파워 등에선 달리지만 아직 제가 지지는 않습니다. 40년 가까이 테니스 친 노하우가 있어 밀리지는 않습니다. 걷기로 다져진 체력도 한몫하죠.” 이렇게 활동적이다 보니 문 교수는 평생 병원 신세를 진 적이 없다. 코로나19 백신은 맞았지만 감기 등 예방 주사는 단 한번 맞지 않았다. 문 교수는 도전이 없으면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제가 운동을 한 뒤 뒤늦게 체력이 좋다는 것을 알고 운동을 생활화 했습니다. 한 끼는 굶어도 운동은 절대 거르지 않습니다. 인간은 죽을 때까지 움직여야 합니다.”‘새는 날고 물고기는 헤엄치고 인간은 달린다.’ 살아있는 한 체코의 마라톤 전설 에밀 자토펙의 명언을 실천하겠다는 각오다.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 2022-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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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걷기 덕분에 일흔에도 학부 테니스 챔피언에게 안 져”[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대학 1학년 때 부족한 공부 따라가려고 무리하게 밤을 새우다 쓰러졌다. 급성 간염으로 숟가락 젓가락도 못 들 정도로 기력이 빠졌다. 회복된 뒤로 축구공을 늘 메고 다니며 공을 차고 몸을 다졌다. 대학원 시절 테니스를 치기 시작했다. 50세를 앞둔 2000년부터는 마라톤 풀코스 42.195km를 완주하기 위해 걸었다. 서울 압구정 집에서 연구실이 있는 강북 홍릉까지 12km를 매일 걸어 출근했다. 문송천 KAIST 경영대학원 명예교수는 일흔의 나이에도 마라톤을 완주하고 테니스를 격렬하게 칠 수 있는 원동력에 걷기가 있다고 했다. 20여 년 전부터 차까지 팔고 속칭 ‘BMW(버스 메트로 워킹)족’으로 매일 걷는다. “제가 마라톤 풀코스를 40회 정도 달렸어요. 그런데 완주를 위한 달리기 훈련을 하지 않는다면 믿으시겠어요? 진짜입니다. 전 걷는 것으로 마라톤 훈련을 대신했어요. 그렇게 4시간 20분에서 30분에 완주했습니다. 대회 2개월 전부터 많이 걸었을 땐 3시간 47분에 완주하기도 했죠.” 3년 전 마라톤 질주를 그만뒀던 문 교수는 올가을 다시 풀코스를 달렸다. 65세를 넘겨 더 이상 풀코스 완주는 무리라고 생각하고 2019년 서울국제마라톤 겸 동아마라톤 완주를 끝으로 은퇴를 선언했다. 하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탓에 너무 움츠려 있던 생활에서 벗어나고 싶어 다시 도전하게 됐다. 그는 “코로나19 터진 뒤 영국 러프버러대에 초빙교수로 갔다 2년 만에 돌아왔다. 내 체력이 어느 정도인지 테스트 하고 싶어 다시 달렸다”고 했다. 그는 춘천마라톤에서 4시간 50분대에 완주했다. 마라톤 풀코스 도전은 당분간 계속하겠다고 했다. 문 교수가 달리기 시작한 계기는 1990년대 말 불거진 ‘Y2K(컴퓨터 2000년 문제)’ 해결. ‘국내 전산학 박사 1호’인 그는 1998년부터 2000년까지 Y2K국제대회 한국 대표로 활동했고 세계를 돌아다니며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했다. 그는 “Y2K를 해결하기 위해 1년 반 동안 전 세계 15개국을 돌아다녔다. 그러다 보니 체력이 바닥까지 떨어졌다. 이러다 잘못하면 쓰러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쯤 엘리트 위주의 마라톤 대회가 일반인들에게 개방됐다. 그래서 달리기 시작했다”고 했다. 문 교수는 혼자만을 위해 달리지 않았다. 마라톤에 처음 참가했던 2000년부터 ‘1미터 10원’을 기부하며 지인들에게 ‘1미터 1원’을 권유했다. 풀코스를 완주할 경우 본인은 42만1950원을 내고 지인들은 4만2195원을 낸다. 문 교수는 지금까지 마라톤으로만 6000여만 원을 내놨고 방송 출연료(30년간 고정출연 2500회) 1억 원을 쾌척했다. 모두 백혈병 어린이 등 이웃 돕기에 썼다. 어릴 때 단거리 달리기를 잘했던 문 교수는 하는 스포츠마다 두각을 나타냈다. 대학 때는 ‘축구선수’로 불릴 정도로 이름을 날렸고, 불과 몇 년 전까지도 축구공을 차며 녹색 그라운드를 누볐다. KAIST에 축구팀을 만들었고 경영대학원 ‘축구지도 교수’까지 했다. 테니스로는 30년 넘게 KAIST 최강으로 군림했다. 전국 전산인 테니스대회에서도 우승했다. 아직도 주 2, 3회 2시간 이상 테니스를 치고 있다. “학교 테니스 챔피언이 저에게 도전합니다. 순발력과 파워 등에선 달리지만 아직 제가 지지는 않습니다. 40년 가까이 테니스 친 노하우가 있어 밀리지는 않습니다. 걷기로 다져진 체력도 한몫하죠.” 이렇게 활동적이다 보니 문 교수는 평생 병원 신세를 진 적이 없다. 코로나19 백신은 맞았지만 감기 등 예방 주사는 단 한 번도 맞지 않았다. “오래 사는 것보다는 건강하게 사는 게 중요합니다. 모든 운동은 무리하지 않아야 하죠. 제가 아직 풀코스를 달릴 수 있는 이유는 무리하지 않고 늘 걷기 때문입니다. 지금으로선 80세까지는 풀코스를 완주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문 교수는 도전이 없으면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 경기 과천으로 이사를 간 문 교수가 버스 타고 압구정까지 가서 홍릉까지 약 12km를 매일 걷는 이유도 도전이다. ‘새는 날고 물고기는 헤엄치고 인간은 달린다.’ 걸을 수 있는 한 체코의 마라톤 전설 에밀 자토페크의 명언을 실천하겠다는 각오다.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 2022-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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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릎 연골 다 닳았지만…주짓수로 땀 흠뻑 흘려야 사는 맛 느껴요”[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으로 유명한 미국 몬태나주에서 태어나 자연스럽게 어릴 때부터 스키를 즐겼다. 몬태나는 스키의 명소이다. 리샤오룽(李小龍) 영화에 푹 빠지면서 14살부터는 태권도를 배우기 시작했다. 미국 태권도국가대표까지 지낸 스티븐 캐프너 서울여대 영문과 교수는 만 63세에도 격렬한 주짓수로 건강을 다지고 있다. 그는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평생 운동을 생활해온 터라 움직이지 않는 것은 죽은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부상으로 양쪽 무릎 수술을 각 5번씩 받아 연골이 다 닳았죠. 하지만 주 2, 3회 주짓수로 땀을 흠뻑 흘려야 사는 맛을 느껴요. 1990년대 말 주짓수를 배운 뒤 무릎 탓에 태권도에서 더 이상 발차기를 할 수 없게 됐죠. 그 때부터 태권도 대신 주짓수로 건강을 챙기고 있습니다.” 캐프너 교수는 1999년 한국에서 주짓수를 만났다.“1999년 미국 하버드대에서 공부하다 한국에 잠시 온 존 프랭클이란 친구로부터 주짓수를 전수 받았어요. 전 태권도와 유도를 다하고 있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쉽게 배울 수 있었죠. 연세대에 주짓수 동아리를 만들었고 소문을 듣고 찾아온 10여명이 함께 배웠죠. 그게 한국 주짓수의 시작이 됐습니다.” 당시 이화여대 통번역대학원에서 강의하던 캐프너 교수는 이대 체육관에서 태권도 동아리를 이끌고 있었다. 한국 태권도국가대표 등 엘리트 선수 출신도 있었다. 축구와 야구, 등산 동아리는 많았지만 격투기 동아리는 없었던 때였다. 미국에선 모든 종목 엘리트 선수들이 자연스럽게 생활 스포츠로 녹아드는데 한국에선 특정 종목 외에는 잘 안 되는 것에 안타까움을 느껴 시도한 동아리였다. 주짓수 동아리도 태권도 동아리처럼 자연스럽게 이어졌고 분파가 돼 전국으로 퍼지게 됐다.“주짓수는 굳이 무릎을 많이 쓰지 않고 누워서도 다양한 기술을 발휘할 수 있어요. 주짓수는 상대를 바닥으로 유도해 조르기, 누르기, 비틀기, 뒤집기, 꺾기, 압박, 점유 등의 다양한 기술로 제압하는 무술이죠. 앉아서 하는 기술도 있어요. 그렇다보니 무릎에 무리가 가지 않아요. 1시간30분 씩 주 3회 땀 흘리면 온갖 스트레스를 날리며 건강도 잘 챙길 수 있죠. 함께 운동한 회원들과 돼지갈비에 소주 한잔 하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캐프너 교수는 서울 신촌 주짓수에서 매주 2, 3회 운동하고 회원들하고도 어울린다. 그는 “선수들보다는 건강을 위해 찾는 사람들이다. 학생도 있고 회사원도 있고 사업사는 사람도 있다. 다양한 사람들이 하나의 목적, 건강을 위해 땀 흘린다”고 했다. 그는 직접 회원들에게 주짓수를 지도하기도 한다. 사실 그의 최애 운동은 태권도였다. 리샤오룽 영화를 보고 화려한 발차기에 매료돼 다양한 격투기를 접했다. 그는 “중국의 쿵후, 일본의 가라테, 한국의 태권도를 비교해 봤다. 화려한 발 기술에 묘미가 있는 리샤오룽 영화에 가장 가까운 무술이야말로 태권도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했다.“태권도와 유도를 함께 했는데 태권도 사범님이 태권도 하나에 집중하라고 하셨죠. 결과적으로 그분 말이 맞았습니다.” 몬태나주립대 체육학과에 진학해 계속 태권도를 익힌 그는 미국 국가대표가 돼 1987년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 라이트 급 3위, 1987년 미국태권도선수권대회 라이트 급 1위를 차지했다. 아버지가 6·25전쟁 참전 용사인 그는 1988년 서울올림픽을 준비하러 1987년 한국에 전지훈련을 오면서 한국과 계속 인연을 맺고 있다. 하지만 무릎 부상으로 올림픽에는 출전하지 못했다. “18살에 무릎을 크게 다쳤어요. 수술 받고 다시 태권도를 시작했죠. 그런데 결국 안 되더라고요. 다른 친구에게 밀려 올림픽에 나가지 못했어요. 하지만 한국에서 다른 기회를 찾았죠.” 태권도를 했기에 한국 태권도 관계자들의 도움으로 종주국 한국에 안착하게 됐다. 1989년부터 세계태권도연맹(WT)에서 일하며 공부할 기회를 잡은 것이다. WT에서 국제심판 교육과 영문 잡지 발행을 도운 그는 1991년 서울대 체육교육과 석사과정에 입학했고 1998년 태권도에 담긴 철학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문학에 빠진 그는 한국 소설을 영문으로 번역하기도 했다. 연세대에서 근현대소설로 국문학 박사학위도 받았다. 그가 좋아하는 한국작가들은 이효석 김동리 이청준 안수길 등. 캐프너 교수는 최근 연세대 국제학부에서 한국학도 강의도 시작했다. 한국에 대해 영어로 강의한다. 캐프너 교수는 사실상 ‘한국인’이란 소릴 듣는다. 한국 이름도 있다. 서태부(西跆夫). ‘서양 사람으로 태권도를 하는 사나이’란 뜻이다. 태권도로 오래전부터 인연을 이어온 양진방 대한태권도협회 회장(65)이 이름 ‘스티븐’과 비슷하게 지어줬다. 한국에서 다양한 공부를 하면서도 태권도 즐기기를 놓지 않았던 캐프너 교수는 2002년부터는 주짓수에 매달리고 있다. 주짓수 하나만으로 근력과 유연성, 심폐지구력까지 키울 수 있다고 했다. 그는 현재 주짓수 4단, 태권도 8단과 유도 1단까지 총 13단의 고수다.“솔직히 무릎 연골이 없어 다리가 약간 휘기도 했죠. 하지만 무릎 움직임을 최소화하는 운동을 찾아 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어떤 식으로든 움직여 땀을 흘려야 합니다. 그래야 몸도 마음도 건강하게 지킬 수 있습니다.” 캐프너 교수는 한국에서 30년 넘게 살면서 학생들이 어렸을 때부터 자연스럽게 뛰어 놀지 못하고 공부에 매달려야 하는 환경에 대해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다. 그는 “난 어릴 때부터 안 해 본 운동이 없다. 학교에 가면 자연스럽게 야구와 농구, 미식축구, 테니스 등 다양한 스포츠를 접한다. 내 고향 몬태나가 스키 명소로 유명해 어릴 때부터 스키도 즐겼다. 그런 좋은 경험이 아직도 날 계속 움직이게 한다”고 말했다.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 2022-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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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격렬하게 주짓수를 할 때 살아 있음을 느낀다” [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미국 태권도 국가대표 출신 스티븐 캐프너 서울여대 영문과 교수(63)는 부상으로 양쪽 무릎 수술을 5번씩 받아 연골이 다 닳았지만 요즘도 주 2, 3회 주짓수를 격렬하게 해 땀을 흘려야 사는 맛을 느낀다. 20여 년 전 주짓수를 익혔고 태권도 발차기를 더 이상 할 수 없게 되자 주짓수로 건강을 다지고 있다. “1999년 미국 하버드대에서 공부하다 한국에 잠시 온 존 프랭클이란 친구로부터 주짓수를 전수받았어요. 저는 태권도와 유도를 다 할 수 있어 상대적으로 쉽게 배울 수 있었죠. 연세대에 주짓수 동아리를 만들었고 소문을 듣고 찾아온 10여 명이 함께 배웠죠. 그게 한국 주짓수의 시작입니다.” 당시 이화여대 통역번역대학원에서 강의하던 캐프너 교수는 이화여대 체육관에서 태권도 동아리를 이끌고 있었다. 한국 태권도 국가대표 등 엘리트 선수 출신도 있었다. 축구와 야구, 등산 동아리는 많았지만 격투기 동아리는 없던 때였다. 미국에선 모든 종목 엘리트 선수들이 생활 스포츠로 자연스럽게 녹아드는데 한국에선 특정 종목 외에는 잘 안되는 것에 안타까움을 느껴 만든 동아리였다. 주짓수 동아리도 태권도 동아리처럼 자연스럽게 이어졌고 분파가 만들어져 전국으로 퍼지게 됐다. “주짓수는 굳이 무릎을 많이 쓰지 않고 누워서도 다양한 기술을 발휘할 수 있어요. 주짓수는 상대를 바닥으로 유도해 조르기, 누르기, 비틀기, 뒤집기, 꺾기, 압박, 점유 등 다양한 기술로 제압하는 무술이죠. 앉아서 하는 기술도 있어요. 그렇다 보니 무릎에 무리가 가지 않아요. 1시간 30분씩 주 3회 땀 흘리면 온갖 스트레스를 날리며 건강도 챙길 수 있죠. 함께 운동한 회원들과 돼지갈비에 소주 한잔하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으로 유명한 미국 몬태나주 출신인 캐프너 교수는 리샤오룽(李小龍) 영화에 푹 빠지면서 14세 때부터 태권도를 배우기 시작했다. “중국의 쿵후, 일본의 가라테, 한국의 태권도를 비교해 봤다. 화려한 발 기술에 묘미가 있는 리샤오룽 영화에 가장 가까운 무술은 태권도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했다. 몬태나주립대 체육학과에 진학해 계속 태권도를 익힌 그는 미국 국가대표가 돼 1987년 세계선수권대회 라이트급 3위, 1987년 미국선수권대회 라이트급 1위를 했다. 아버지가 6·25전쟁 참전 용사인 그는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준비하러 1987년 한국에 전지훈련을 오면서 한국과 인연을 계속 이어오게 됐다. 무릎 부상으로 올림픽에 출전하지 못했지만 한국 태권도 관계자들의 도움으로 1989년부터 세계태권도연맹(WT)에서 일하며 한국에 정착한 것이다. WT에서 국제심판 교육과 영문 잡지 발행을 도운 그는 1991년 서울대 체육교육과 석사 과정에 입학했고 1998년 태권도에 담긴 철학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 문학에도 빠진 그는 연세대에서 근현대소설로 국문학 박사학위도 받았다. 한국 사람이 다 된 것이다. 한국 이름도 있다. 서태부(西跆夫). ‘서양 사람으로 태권도를 하는 사나이’란 뜻이다. 태권도로 오래전부터 인연을 이어온 양진방 대한태권도협회 회장(65)이 이름 ‘스티븐’과 비슷하게 지어줬다. 한국에서 다양한 공부를 하면서도 태권도 즐기기를 멈추지 않았던 캐프너 교수는 2002년부터는 주짓수에 집중하고 있다. 주짓수 하나만으로 근력과 유연성, 심폐지구력까지 키울 수 있다고 했다. 그는 현재 주짓수 4단, 태권도 8단, 유도 1단 등 총 13단의 무술 고수다. “솔직히 무릎 연골이 없어 다리가 약간 휘기도 했죠. 하지만 무릎 움직임을 최소화하는 운동을 찾아 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어떤 식으로든 움직여 땀을 흘려야 합니다. 그래야 몸도 마음도 건강하게 지킬 수 있습니다.” 캐프너 교수는 한국에서 30년 넘게 살면서 학생들이 어렸을 때부터 자연스럽게 뛰어놀지 못하고 공부에 매달려야 하는 환경에 대해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다. 그는 “미국에선 어릴 때 뛰어노는 게 일이다. 학교에 가면 자연스럽게 야구와 농구, 미식축구, 테니스 등 다양한 스포츠도 접한다. 내 고향 몬태나가 스키 명소로 유명해 어릴 때부터 스키도 탔다. 그런 좋은 경험이 아직도 날 계속 움직이게 한다”고 말했다. 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 2022-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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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제노르딕워킹협회, 국내 첫 100세 시대 준비 콘퍼런스 개최

    사단법인 국제노르딕워킹협회(회장 박요한)가 11월 11일 서울시 은평구 북한산 국제노르딕워킹센터 2층에서 창립기념 제1회 2022국제노르딕워킹 콘퍼런스를 개최했다. 국제노르딕워킹협회가 지정한 노르딕워킹 데이를 맞아 마련한 행사다. 국내 최초로 열린 국제노르딕워킹 콘퍼런스에는 협회 임원을 비롯해 전국에서 활동하는 인스트럭터, 교육생들이 참가했다. 1부 행사 때는 최근 일본연수를 다녀온 주연서 내셔널트레이너의 진행으로 노르딕워킹의 신기술을 소개했다. 본격적인 학술 발표로 이어진 2부에서는 이원식 서울의료원 과장의 ‘여성건강과 노르딕워킹’과 임진선 우석대 스포츠지도학과장의 ‘노르딕워킹 교육사례’가 최근 100세 시대를 준비하는 현대인에게 방향타가 될 수 있는 좋은 내용으로 참가자들의 호평을 받았다. 박요한 회장은 “노르딕워킹이 국민 건강 프로젝트로 발전하기 위해선 국민 모두가 쉽게 접할 수 있어야 한다. 학술적인 뒷받침도 중요하다. 내년에는 국제노르딕워킹대회를 유치해 많은 사람들이 참가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양종구기자 yjongk@donga.com}

    • 2022-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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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살 빼고 몸 만드는데 케틀벨 스윙이 최고”[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케틀벨(KettleBell)’을 아시나요? 쇠로 만든 공에 손잡이를 붙인 중량기구로 소의 목에 다는 벨과 모양이 유사해 붙여진 이름. 링 웨이트(Ring Weight)라고도 한다. 케틀벨이 짧은 시간에 가장 효과적으로 살을 뺄 수 있는 홈트레이닝 운동기구로 인기를 끌고 있다. 김금자 김금자 바디핏 교육관 원장(50)은 “혼자서 집에서 할 수 있는 운동 기구로 케틀벨이 최고”라며 “근육운동이면서 유산소운동까지 할 수 있어 짧은 시간에 몸을 만들며 다이어트 효과까지 볼 수 있다”고 말했다.“아주 간단한 도구로 근육도 만들고 유산소 운동까지 되는 운동이 바로 케틀벨 스윙입니다. 운동하려고 피트니스센터에 가야 하는 수고를 덜면서 케틀벨 하나로 몸을 만들 수 있습니다. 스윙 동작도 다양하고 스쾃, 암컬, 런지 등 다양한 동작도 할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운동의 만능기구입니다.” 김 원장은 1997년 국내에서 처음 실시한 미즈코리아에서 우승한 인물. 그는 “남성들의 전유물이던 보디빌딩 대회에서 여성부문이 1995년부터 만들어졌는데 체급별로만 시상을 하다 대회 최고를 뽑는 미즈코리아 부문을 1997년에 처음 도입했다. 내가 1호 우승자”라고 했다. 김 원장은 1998년엔 미즈아시아에서 우승했고 그해 세계대회에 나가서 커플부문 3위에 입상한 국내 여성 보디빌더의 선구자다. 지금은 1대1 맞춤형 몸만들기 지도자로 활약하고 있다. 그는 특히 요즘 뜨고 있는 홈트레이닝 노하우를 전수하는 전문가로 이름을 떨치고 있다.“다리와 엉덩이, 복부, 척추, 팔, 어깨 등 거의 모든 부위를 활용해 할 수 있는 운동이 케틀벨 스윙입니다. 모든 근육을 동원하기 때문에 짧은 시간에 많은 에너지를 태울 수 있죠.” 다양한 연구 결과 케틀벨 스윙을 할 때 우리 몸의 600개 이상의 근육이 동원된다고 한다. 우리 몸에 근육이 전체 650개가 넘게 있으니 사실상 모든 근육을 사용한다고 보면 된다. 미국 운동 위원회(The American Council on Exercise)가 10여 년 전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케틀벨 스윙은 평균적으로 1분당 20칼로리를 소모한다. 20분에 400칼로리. 이는 1마일(1.6km)을 6분 페이스로 20분 달리는 것과 비슷하다. 20분에 약 5.2km를 달리는 아주 힘든 운동과 같은 셈이다. 케틀벨 스윙을 1시간 한다면 일반적으로 무려 1200칼로리를 소모할 수 있다. 70kg의 남성이 2시간 20분 달려야 소비할 수 있는 열량이다. 케틀벨 운동은 운동 후 초과산소섭취량(EPOC)도 높여준다. 우리 몸에선 운동이란 스트레스로 인해 깨어진 항상성을 다시 복원시키는 기전이 일어난다. 운동할 때 체내에서 쓴 산소를 다시 공급해야 몸이 정상으로 돌아가는데 이 때 에너지를 많이 소비한다. 운동 강도에 따라 다르지만 평균 운동 후 6시간 이상 안정시 보다 높은 소비 칼로리를 쓴다. 케틀벨 운동도 강도가 높기 때문에 운동 소비 칼로리를 극대화 시킬 수 있고 단위시간당 우리 몸속에 저장된 지방을 가장 많이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기본적인 케틀벨 운동은 두 다리를 골반 너비로 벌린 상태에서 양손으로 케틀벨 핸들을 쥐고 스윙하는 동작이다. 무릎을 약간 굽히면서 원심력을 이용해 케틀벨을 다리 사이로 넣었다가 무릎을 펴면서 케틀벨을 들어올린다. 케틀벨을 스윙해 가장 높이 들었을 때, 반대로 다리 사이로 넘겨 가장 뒤로 넘어갔을 때 엉덩이가 먼저 추진력을 내야 한다. 즉 팔 힘으로 케틀벨을 스윙하는 것이 아니라, 엉덩이가 쥐어짜는 힘을 이용해 스윙한다는 것이다. 들어올릴 때 단전에 힘을 모이는 것도 중요하다. 팔은 그저 케틀벨 손잡이를 쥐는 역할을 할 뿐이다.“허리와 복근에 힘을 주고 가슴을 쫙 펴고 스윙을 해야 합니다. 새우등이 되거나 허리와 복근에 힘이 덜 들어가면 자칫 부상을 당할 수 있습니다. 케틀벨이 내려올 때 무릎에 체중이 쏠리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그럼 골반으로 가는 힘을 뺏기기 때문에 등쪽으로 힘이 덜 들어가 운동효과가 없습니다. 무릎 무상 위험도 있고요.” 초보자들은 작은 무게로 횟수를 많이 하는 게 좋다. 김 원장의 조언이다.“2, 4, 6, 8, 10, 12kg…. 케틀벨이 짝수로 나옵니다. 사실 맨손으로 시작하는 게 가장 좋습니다. 좀 체력이 된다면 한번에 스윙 50회를 했을 때 힘은 들면서도 몸에 큰 무리가 없다면 적당한 무게입니다.” 작은 무게로 횟수를 많이 해 체력을 키운 뒤 무게를 올릴 경우 1세트에 8~15회 할 수 있는 무게가 좋다. 세트는 보통 3, 5, 7, 10회 반복한다. 다시 특정 무게로 15회에 10세트 이상이 가능하다면 무게를 올려 다시 세트당 8~15회를 3~10회 하는 식이다. 케틀벨 운동으로 망가진 몸을 다시 일으켜 세운 사레는 많다. 요즘은 마라톤과 트레일러닝, 등산까지 섭렵하고 있는 오세진 작가(41)도 교통사고 후유증을 케틀벨로 극복했다. 2014, 2015년 몸이 극도로 좋지 않았지만 케틀벨 운동을 한 뒤 2018년 마라톤 풀코스를 뛸 정도로 좋아진 것이다. 다음은 오 작가의 말이다.“누가 들으면 거짓말이라고 할 것입니다. 케틀벨 운동을 지속하면서 몸이 좋아졌다. 운동효과가 긍정적으로 나타났습니다. 목과 허리의 만성 통증이 거짓말처럼 사라졌어요. 웨이트트레이닝은 팔과 다리, 몸통 등 분할운동입니다. 케틀벨은 몸의 협응력, 전반적인 밸런스를 잡아주는 운동이었죠. 속칭 코어를 발달시키는 운동이었는데 정말 내 몸에 좋은 효과를 줬습니다.” 오 작가는 요즘은 부 정기적으로 전반적인 체력을 끌어올릴 때 케틀벨 운동을 하고 있다. 김 원장도 “바른 자세로 하면 몸을 짧은 시간 안에 탄탄하게 만들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 원장은 체육교사가 되기 위해 고려대 체육교육과에 입학했지만 졸업을 앞두고 멋진 근육을 자랑하는 여성들을 본 뒤 근육운동에 매달렸다.“4학년 2학기 때 교사 임용고시를 준비하러 서울 노량진 학원가에 갔을 때였죠. 우연히 보디빌딩잡지인 ‘머슬&피트니스’를 보고 반했어요. 여성분들 몸이 너무 멋있었죠. ‘여자도 이런 몸을 만들 수 있구나’…. 바로 학원을 뒤로하고 보디빌딩 연구소를 찾아갔죠. 그게 1995년 이었습니다.” 1995년도에 대한보디빌딩협회 코치아카데미 처음 들어간 이후에 1996년도 4월 춘계 보디빌딩 전국대회부터 출전해 입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1997년 당당하게 대한민국 미즈코리아 1호 챔피언이 된 것이다.“1998년 세계대회에서 입상한 뒤 바로 은퇴했어요. 결과는 멋있지만 준비과정이 너무 힘들었어요. 정상에 있을 때 내려오고 싶기도 했고요. 보디빌딩연구소에서 일하며 머슬&피트니스 기자도 했고 아이를 낳아 육아도 했습니다.” 김 원장은 2009년부터 서울 강남권 피트니스센터를 돌며 매니저 역할을 했다. 한창 피트니스가 뜰 때였다. 그리고 2015년 여의도에 김금자 바디핏을 열었다. 모교에서 석사 박사학위도 받았다. 최근 모교 선후배들하고 ‘하나(One)를 위한 하모니(Harmony) 고려대학교 2023년 몸짱 달력을 함께 만들기도 했다. 90년이 넘는 전통의 고려대 역우회(역도부 출신 모임) 회원들과 함께 했다. 김 원장은 역우회는 아니었지만 열심히 몸 만들고 ’몸짱 전도사‘로 일하고 있다는 소식에 지인들이 연결해줘 함께 하게 됐다.“11월 4일엔 고려대에서 열린 ‘힘의 미전’ 미스터 고대 선발대회 때 잠시 무대에 서기도 했습니다. 아직 미즈 고대 선발전을 안 해서 안타깝지만 역도부에 여학생이 1명 있다고 해 희망을 봤습니다. 그 학생을 시작으로 많은 고대 여학생들이 몸을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김 원장은 케틀벨이 여성들에게 특히 좋다고 강조했다.“케틀벨 스윙이 고관절 부위를 많이 쓰다보니 여성들에게 좋아요. 생리통이 있는 여성, 자리에 오래 앉아 있어 생리불순을 겪는 여학생, 전립선이 좋지 않는 남성에게도 좋고요. 케틀벨로 골반을 수직, 수평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고관절, 둔근, 복근 등을 활성화 시켜줍니다.” 그는 “건강이 곧 아름다움이고, 장수 비결”이라고 강조했다.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 2022-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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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예순 넷에 특전사 훈련”…“마라톤 덕에 신체나이 40대란 평가 받아요” [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제가 아직 특전사 훈련 받고 있다면 믿으시겠어요?”처음 만났을 때 예순이 넘은 마스터스 마라토너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함께 간 사진 기자도 “이렇게 젊어 보일 수가 없다”고 했다. 노수영 메리츠증권 상무(63)는 “달리기 덕분”이라고 했다. 업무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기 위해 달리기 시작했는데 젊음도 따라서 왔다. 그가 평생 질주를 멈추지 않고 있는 이유다.“달린지 한 30년 됐습니다. 영업하다보면 술도 많이 마시게 돼요. 스트레스를 건전하기보다는 유해한 방식으로 풀 때가 많았죠. 그러다보니 몸도 망가지고…“‘머니게임’을 하는 증권회사에 근무하다보니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이러다 큰 일 날수도 있다”는 생각에 달리기 시작했다고 했다.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운동이 달리기였다. 달리면 모든 것을 잊고 잠시나마 일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땀을 흠뻑 흘리고 나면 기분도 좋았다.달리다 보니 달리는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렸다. 경기 군포의 해오름 마라톤클럽에 가입했다. 지점에 근무할 땐 지점 사원들하고도 함께 달렸다. 2000년대 초반부터 각종 마라톤대회에도 출전했다. 지금까지 42.195km 풀코스를 60회 넘게 완주했다. 개인 최고기록은 2014년 가을 춘천마라톤에서 세운 3시간 47분대다. 그는 “잘 달리는 분들은 서브스리(2시간대 완주)에도 완주하는데 난 즐겁게 달리는 게 더 좋았다”고 했다. 지금도 4시간대로 기록엔 신경 쓰지 않고 달린다.“주변에 무리하다 후유증으로 고생하는 사람들 많이 있어요. 왜 죽기 살기로 달리는지… 즐겁고 건강하자고 달리는 것 아닌가요?”노 상무는 서울국제마라톤 겸 동아마라톤과 춘천마라톤 등 주로 메이저 대회에만 출전한다. ‘펀런(즐겁게 달리기)’를 하다보니 서브스리를 해야 주는 ‘동아마라톤 명예의 전당’에는 가입하지 못했지만 10회 이상 풀코스 완주자에게 주는 ‘춘천마라톤 명예의 전당’에는 2014년 가입했다. 가장 좋아하는 코스는 동아마라톤 서울 코스. 그는 “언제 서울 시내를 달려볼 수 있나? 대한민국의 상징 1988년 서울올림픽이 열린 잠실종합운동장으로 골인하는 것도 너무 감동적이다”고 했다.“제 차안엔 러닝슈즈와 운동복이 항상 비치돼 있습니다. 일이 바쁘다보니 시간 날 때 사무실 근처 여의도 공원이나 한강공원을 달립니다. 저는 제대로 달릴 때는 주로 국립극장 쪽에서 출발하는 남산 북측순환로를 찾습니다. 오르막내리막이 적당히 있어 훈련에 최고입니다. 하루에 10~15km 정도 달리면 온갖 잡념, 스트레스가 날아갑니다.”풀코스도 준비가 되지 않으면 절대 완주하지 않는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대회가 열리지 않다가 올 가을부터 본격적으로 마라톤 시즌이 시작됐지만 그는 춘천마라톤 10km에 출전해 완주했다. 그는 “풀코스를 달리려면 최소한 3개월은 준비해야 한다. 하루 10~15km, 총 500km이상은 달려야 무리 없이 완주할 수 있다. 3개월 철저하게 준비하고 완주하면 몸이 새로 태어나는 기분”이라고 했다.마라톤에 빠지면서 골프를 끊었다. 그는 “영업 초창기에는 골프를 쳤는데 시간을 따로 내야 하는데다 시간도 많이 걸리고 장비도 챙겨야 해 일찍 접었다. 일상 속에서 틈나는 대로 할 수 있는 달리기가 내겐 가장 좋았다. 증권사 임원 중에 골프 안치는 사람은 나 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노 상무는 주말엔 주로 산을 찾는다. 대회 출전을 앞두고는 20~30km 장거리를 달리지만 등산이 주는 맛이 또 다르기 때문이다. 자연 속 좋은 공기를 마시며 오르막 내리막을 걷다보면 훈련 효과도 크다. 가장 좋아하는 산은 북한산. “언제 가든 새로움을 느낄 수 있는 명산”이라고 했다.나이는 70세를 향해 가지만 종합검진에서는 40대 몸으로 평가될 정도로 건강하다. 체중도 65kg에서 변화가 없다. 노 상무는 마라톤을 통해 배운 도전정신과 지구력으로 아직도 ‘살얼음판’ 증권가에서 버티고 있다. “몸이 건강해야 일도 잘 한다”는 철칙을 평생 실천한 결과다. 같은 또래 친구들은 벌써 떠나 다른 일을 하고 있다. 실제로 증권가에서는 60세 넘어서까지 일하는 경우는 드물다.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면 사장 되는 게 업계의 관행이다. 그만큼 노 상무가 인정받고 있다는 얘기다.“달리면서 배운 게 자신감입니다. 아직 뛸 수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 뭐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충만해집니다. 제가 특전사 출신인데 ‘안 되면 되게 하라’는 구호가 있는데 ‘달리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아직 산악마라톤인 트레일러닝과 철인3종엔 발을 들이지 않았는데 조만간 시작할 예정이라고. “산이 주는 묘미가 다르고, 사이클과 수영하는 재미도 쏠쏠할 것 같다”고.노 상무는 대한민국특전사동지회 감사를 맡고 있다. 1979년 12월 제3공수특전여단에 입대해 1982년 9월 제대한 예비역 병장인 그는 2011년 8월 창설된 특전예비군에 가입해 매년 동원훈련까지 하고 있다. 특전예비군은 20만 명이 넘는 북한의 특수부대와의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만들었다. 사격, 헬기레펠(하강·Rappel), 패스트로프(굵은 로프를 내려오는 훈련), 모형탑(11m에서 뛰어내리는 훈련) 등 적지로 침투해서 싸울 수 있는 모든 훈련을 한다. 그는 특전예비군 최고령이지만 마라톤으로 쌓은 체력 덕분에 후배들에게 전혀 뒤지지 않는다. 특전예비군은 64세까지 동원훈련을 하고 있는데 매년 예비군 인원이 감소해 동원훈련을 67세로 연장할 계획이라고 한다.“창설 당시 거창했지만 어느 순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 예비군들이 떠나고 있어요. 2014년 1200여명이었는데 지금은 600여명 밖에 되지 않아요. 요즘 군대가 좋아져서 특전사 병사들이 전역을 하지 않으려고 한다는데 왜 예비군은 잘 관리하지 못하는지 안타깝습니다. 전 67세까지 동원 훈련에 참가할 생각입니다.”노 상무는 마라톤동호회와 특전예비군에서 봉사활동도 많이 한다. 그는 “코로나19 초기 때 사람들이 밖에 다니는 것을 무서워할 때 때 공동시설 방역도 했다. 산불 났을 때는 지역 특전예비군을 동원해 불을 끄기도 한다”고 했다.노 상무는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 달릴 계획이다. “사람이 움직이지 못하면 죽은 거나 다름없다고 합니다. 전 달리지 못하면 죽은 것이라 생각하고 매일 달리고 있습니다.”양종구기자 yjongk@donga.com}

    • 2022-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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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마라톤 덕에 예순 넘어서 특전사 훈련도 거뜬”

    ‘머니게임’을 하는 증권회사에 근무하다 보니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이러다 큰일 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달리기 시작했다.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운동이 달리기였다. 달리면 모든 것을 잊고 잠시나마 일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땀을 흠뻑 흘리고 나면 기분도 좋았다. 노수영 메리츠증권 상무(63)는 업무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기 위해 달리기 시작해 평생 질주를 멈추지 않고 있다. “달린 지 한 30년 됐습니다. 영업하다 보면 술도 많이 마시게 돼요. 쌓인 스트레스를 유해한 방식으로 풀 때가 많았죠. 그러다 보니 몸도 망가지고….” 달리다 보니 달리는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렸다. 경기 군포의 해오름 마라톤클럽에 가입했다. 지점에 근무할 땐 지점 사원들하고도 함께 달렸다. 2000년대 초반부터 각종 마라톤대회에도 출전했다. 지금까지 42.195km 풀코스를 60회 넘게 완주했다. 개인 최고기록은 2014년 가을 세운 3시간 47분대다. 그는 “잘 달리는 분들은 서브스리(3시간 이내 완주)도 하는데 난 즐겁게 달리는 게 더 좋았다”고 했다. 지금도 4시간대로 기록엔 신경 쓰지 않고 달린다. “제 차 안엔 러닝슈즈와 운동복이 항상 비치돼 있습니다. 일이 바쁘다 보니 시간 날 때 사무실 근처 여의도공원이나 한강공원을 달립니다. 저는 제대로 달릴 때는 주로 국립극장 쪽에서 출발하는 남산 북측순환로를 찾습니다. 오르막 내리막이 적당히 있어 훈련에 최고입니다. 하루에 10∼15km 정도 달리면 온갖 잡념, 스트레스가 날아갑니다.” 풀코스도 준비가 되지 않으면 절대 완주하지 않는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대회가 열리지 않다가 올가을부터 본격적으로 마라톤 시즌이 시작됐지만 그는 한 대회의 10km에 출전해 완주했다. 그는 “풀코스를 달리려면 최소한 3개월은 준비해야 한다. 하루 10∼15km, 총 500km 이상은 달려야 무리 없이 완주할 수 있다. 3개월 철저하게 준비하고 완주하면 몸이 새로 태어나는 기분”이라고 했다. 마라톤에 빠지면서 골프를 끊었다. 그는 “영업 초창기에는 골프를 쳤는데 시간을 따로 내야 하는 데다 시간도 많이 걸리고 장비도 챙겨야 해 일찍 접었다. 일상 속에서 틈나는 대로 할 수 있는 달리기가 내겐 가장 좋았다. 증권사 임원 중에 골프 안 치는 사람은 나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노 상무는 주말엔 주로 산을 찾는다. 대회 출전을 앞두고는 20∼30km 장거리를 달리지만 등산이 주는 맛이 또 다르기 때문이다. 자연 속 좋은 공기를 마시며 오르막 내리막을 걷다 보면 훈련 효과도 크다. 나이는 70세를 향해 가지만 종합검진에서는 40대 몸으로 평가될 정도로 건강하다. 체중도 65kg에서 변화가 없다. 노 상무는 마라톤을 통해 배운 도전정신과 지구력으로 아직도 ‘살얼음판’ 증권가에서 버티고 있다. “몸이 건강해야 일도 잘한다”는 철칙을 평생 실천한 결과다. 같은 또래 친구들은 벌써 직장을 떠나 다른 일을 하고 있다. “달리면서 배운 게 자신감입니다. 아직 뛸 수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뭐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충만해집니다. 제가 특전사 출신인데 ‘안 되면 되게 하라’는 구호가 있어요. ‘달리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노 상무는 대한민국특전사동지회 감사를 맡고 있다. 1979년 12월 제3공수특전여단에 입대해 1982년 9월 제대한 예비역 병장인 그는 2011년 8월 창설된 특전예비군에 가입해 매년 동원훈련까지 받고 있다. 특전예비군은 20만 명이 넘는 북한 특수부대와의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만들었다. 사격, 헬기 래펠(하강), 패스트로프(굵은 로프를 타고 내려오는 훈련), 모형탑(11m 높이에서 뛰어내리는 훈련) 등 적지로 침투해서 싸울 수 있는 모든 훈련을 한다. 그는 특전예비군 최고령이지만 마라톤으로 쌓은 체력 덕분에 후배들에게 전혀 뒤지지 않는다. 특전예비군은 64세까지 동원훈련을 하고 있는데 매년 예비군 인원이 감소해 67세로 연장할 계획이라고 한다. 그는 “당연히 67세까지 참여할 것”이라고 했다. “사람이 움직이지 못하면 죽은 거나 다름없다고 합니다. 전 달리지 못하면 죽은 것이라 생각하고 매일 달리고 있습니다.” 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 2022-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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