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종구

양종구 기자

동아일보 스포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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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에 빠져 사는 사람들을 소개합니다. 건강해야 100세까지 즐겁게 살 수 있습니다.

yjongk@donga.com

취재분야

2024-03-18~2024-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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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릎 아파 축구 그만뒀는데… 사이클은 97세에도 거뜬해”[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50세 무렵인 1970년대 중반부터 축구를 했다. 80대 중반에 이르자 무릎이 아파 더 이상 공을 찰 수 없었다. 그때부터 사이클을 탔다. 의사도 자전거를 권했다. 페달을 밟을 땐 무릎이 아프지 않았다. 100세를 눈앞에 둔 이성우 씨(97)에게 사이클은 최고의 건강 지킴이이자 친구다. “사이클은 축구를 대체한 운동이었죠. 너무 좋았어요. 사이클 탈 땐 진짜 무릎이 전혀 아프지 않아요. 운동도 되고. 인생 후배들과 경기 용인, 남양주 등까지 사이클 타고 가서 맛난 것 먹고 돌아오는 재미도 쏠쏠하죠.” 이 씨는 시속 30∼40km로 달릴 정도로 수준급이지만 혹 다칠 수 있어 가급적 천천히 달린다. 토요일과 일요일, 공휴일에 한강사이클클럽 회원들과 40∼50km를 달리고 있다. 20∼30km 갔다 그 지역에서 점심 먹고 다시 돌아오는 4∼5시간 코스다. 사이클 타다 만나는 사람들에게 나이를 얘기하면 ‘지금까지 만나본 최고령’이라며 다들 놀란다. 이 씨는 요즘 젊은이들이 즐기는 업힐(오르막) 라이딩과 전국일주는 부상 위험과 체력적인 문제로 하지 않는다. 그는 “평탄한 길을 좀 길게 달리는 게 내 몸엔 가장 맞는다”고 했다. 경찰 공무원 출신인 이 씨는 지난해까지 각종 정부 제출 서류를 대리 작성해 주는 행정사로 일했다. 아직 보청기도 착용하지 않고 신문도 안경 없이 본다. 80대 어르신들이 후배로 볼 정도로 젊음을 유지하고 있다. 그만큼 관리를 잘해 왔다. “젊을 땐 서울 광진구축구연합회 구의축구회에서 공을 찼죠. 당시엔 백남봉, 남보원 등 연예인 축구팀과도 경기를 했어요. 나이 들어 연골이 닳아 없어져 사이클을 탔는데 신세계를 만난 것 같았죠. 사이클이 없었다면 정말 재미없는 세상이었을 겁니다.” 혼자 사이클을 즐기던 이 씨는 라이딩 중 만난 정상근 대한사이클원로회 회장(86), 윤재극 씨(85) 등과 매주 함께 달린다. 사이클 국가대표 출신 정 회장은 대한사이클연맹 경기이사 등을 지낸 뒤 20여 년 전부터 생활 사이클계에서 활동하고 있다. 2006년 한강사이클클럽을 만들어 회원들과 함께 질주하고 있다. 정 회장은 주 5일 이상 탄다. 사이클 타기 그 자체가 삶이다. 그는 20년 전 서울에서부터 전남 해남 땅끝마을까지 19시간 30분 만에 질주했다. 생활 사이클계에선 전설로 불리는 기록이다. 당시엔 길도 좋지 않은 상황이었다. 지금은 길이 정비돼 있는데도 젊은이들도 20시간을 훌쩍 넘긴다. 아직도 서울 북악스카이웨이, 남산 등 업힐도 거뜬히 오른다. 그는 70년 넘게 사이클을 타며 건강을 지키고 있다. 2000년경 다니던 외국계 회사를 그만둔 윤 씨는 서울 한강공원에 나갔다가 자전거 타는 사람들을 보고 아들 자전거를 빌려 타기 시작했다. 정 회장을 만나 한강사이클클럽에서 본격적으로 사이클을 탔다. 윤 씨와 정 회장은 4대강은 물론이고 제주 일주 등 전국에 안 가본 곳이 없을 정도로 사이클 투어도 많이 했다. 정 회장은 “(이)성우 형님을 처음 만났을 때 제 또래인 줄 알고 인사를 건넸다가 열한 살이나 많은 것을 알고 깜짝 놀랐다. 현재 국내에서 사이클을 자유자재로 타는 최고령일 것”이라고 했다. 윤 씨는 “성우 형님은 식사도 잘한다. 우리보다 많이 드신다. 술도 한잔씩 하신다. 진짜 내일모레 100세라는 게 믿기지 않는다. 얼굴 좀 봐라. 주름도 하나도 없다”고 했다. 셋은 입을 모았다. “뭐, 우리 나이에 다른 즐거움이 있나요. 건강하고 가끔 맛있는 것 먹으며 인생을 즐기면 되지…. 사이클은 진짜 좋은 스포츠입니다. 나이 들면 무릎이 안 좋은데 사이클을 타면 오히려 무릎이 좋아집니다.” 하지만 몸에 좋다고 고령에 사이클을 바로 타면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송홍선 한국스포츠정책과학원 스포츠과학연구실장(52)은 “자전거를 타려면 근력과 밸런스, 운동신경 등을 조화시키는 협응력이 좋아야 한다. 97세에도 탄다는 것은 젊었을 때부터 꾸준히 관리했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동아사이클대회 챔피언(1982, 1984년) 출신 김동환 프로사이클 대표(60)는 “고령에는 자전거를 처음부터 다시 배운다는 자세로 시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 2022-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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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흔 넘어도 공 차는데 끄떡 없어…축구할 때 가장 행복”[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야! 진국이형에게 줘.” 7월 9일 경기도 고양 농협대 잔디구장에서 열린 60,70대 실버축구단 로얄 FC와 서울 강북구팀의 친선경기. 로얄 FC 선수들 사이에서 “진국이형에게 패스해”란 소리가 자주 나왔다. 1970년대 중반 한국축구의 대표 공격수였던 김진국 전 대한축구협회 전무이사(71)를 부르는 소리다. 김 전 전무는 이날 공격형 미드필더로 경기를 조율했다. 70세를 뛰어 넘은 그는 매주 토요일 로얄 FC에서 공을 차며 ‘9988 234(99세까지 팔팔하게 살다 2,3일 앓다 죽는다)’라는 신념을 실천하고 있다. 김 전 전무는 현역 시절 키가 작아 ‘짤만이’로 불렸지만 뛰어난 발재간과 페인트 기술로 팬들의 인기를 독차지했다. 그로부터 5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난 지금도 60, 70대 실버축구계에서 강철 체력을 자랑하는 공격수로 이름을 떨치고 있다. “전 한때 이름을 날리던 선수들이 나이 들어 빌빌거리는 게 보기 좋지 않았어요. 그래 선수를 은퇴하고 지도자 할 때, 은행에서 근무할 때도 계속 축구를 했어요. 김진국이란 이름에 걸맞게 나이 들려고 지금도 노력하고 있습니다.” 김 전 전무는 1972년부터 1977년까지 6년 동안 A매치(국가대표경기) 97경기에서 27골을 터뜨린 스타플레이어 출신이다. 1975년 3월부터 1977년 2월까지 A매치 42경기에 연속 출전할 정도로 강한 체력을 과시했다. 당시 김진국이 센터링(크로스)을 올리면 ‘꺽다리’ 김재한이 헤딩슛으로 골을 잡아내 둘은 ‘환상의 콤비’로 불렸다. 김 전 전무는 “당시 내 센터링은 김재한용‘이라고 불렸다”며 웃었다. 김재한 전 KFA 부회장(75)도 한 때 로얄 FC에서 김 전 전무와 공을 함께 차기도 했다. 김 전 전무는 지금도 25분씩 진행하는 친선경기에서 4,5경기를 거뜬히 소화하고 있다. 그는 “주변서 미련하다 할 정도로 많이 뛴다. 하지만 이렇게 격렬하게 축구를 해야 온갖 스트레스도 날아가고 다시 태어난 것 같은 기분이 든다”고 했다. 1980년대 중반까지 국민은행에서 플레잉 코치로 뛰었던 그는 1992년까지 코치와 지도자를 한 뒤 이듬해부터 본격적인 은행 업무를 시작했고 지점장까지 했다. “지도자 땐 선수들 훈련 때 함께 운동했어요. 은행 일을 볼 때도 축구를 놓을 순 없었습니다. 그 즈음 서울시 생활체육 여자축구단이 창단됐는데 저 보러 지도해달라고 해서 자원봉사로 함께 운동하기도 했죠. 1995년부턴 제가 사는 서울 양천구에 ’김진국 축구교실‘을 열어 주 2회씩 어린이들하고 공을 함께 차고 있습니다.” 2001년부터 2011년까지 KFA에서 행정을 했다. 유소년위원장과 기획실장, 전무까지 하며 우수 유소년선수 해외유학 프로그램도 진행했다. 그 프로그램 덕택에 손흥민(30·토트넘)이 독일 함부르크 유소년 클럽에서 유학하며 세계적인 선수로 도약할 기회를 잡았다. 김 전 전무는 2002년 창설한 MBC꿈나무축구재단의 이사장을 맡아 지금까지 유소년축구 발전을 위해 일하고 있다. 김 전 전무는 KFA를 떠난 뒤 2012년부터 로얄 FC에 합류해 본격적으로 ’실버축구 인생‘을 시작했다. 로얄 FC는 2005년 이회택과 김재한 등 1960, 70년대 한국 축구를 주름잡던 스타플레이어와 조기축구 회원들이 만든 팀이다. 매주 토요일 전국의 실버축구단 1, 2개 팀을 초청해 4~5시간 공을 찬다. 지방 원정 경기를 다니기도 하고 생활축구 전국대회에 출전하기도 한다. 국가대표 출신들이 많아 일본과 중국, 태국 등 해외 초청 경기에도 자주 간다. 수원북중 1학년 때부터 본격적으로 공을 찼으니 근 60년 가까이 축구를 하고 있는 셈이다. 무릎 등 관절은 괜찮을까. “선천적으로 건강한 신체를 준 부모님 덕분에 아직 관절엔 문제없습니다. 또 기술축구를 하면 힘도 안 들고 부상 위험도 없죠. 전 키가 작아서 어려서부터 기술로 승부수를 띄워야 했죠. 70이 넘은 지금도 가볍게 무리 없이 공을 차기 때문에 아직 어디가 불편하진 않습니다.” 김 전 전무는 경신고 재학시절 165cm에서 더 이상 크지 않는 키를 극복하기 위해 기술축구를 구사했다. 그는 당시 경신고 축구팀을 맡고 있던 장운수 감독이 “축구는 키가 작아도 얼마든지 기술로 커버할 수 있다”고 조언해 기술 축구에 전념했다고 했다. 당시 아침부터 밤까지 다양한 기술을 연마했고 결국 ’원조 접기(페인팅)왕‘으로 팬들을 사로잡았다. 그 때 익힌 기술 덕에 대학, 실업팀, 국가대표는 물론 선수생활 막판 진출한 독일 프로축구팀에서 활약하면서도 큰 부상이 없었다. 지금도 힘들이지 않고 공을 차고 있는 원동력에 기술축구가 있다고 했다. “기술은 한번 익히면 평생 잊혀지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축구를 잘 하기 위해 홈트레이닝으로 체력도 키우고 있다. 스쾃과 팔굽혀펴기는 기본이고 아령 등 기구로 근육운동을 한다. 그는 “나이가 들면서는 근력이 급격하게 떨어지기 때문에 꾸준히 웨이트트레이닝을 해줘야 버틸 수 있다”고 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 하나. 김 전 전무는 1980년에 독일 2부 리그 다름슈타트에 입단했다. ’차붐‘ 차범근 전 수원 삼성 감독(69)에 이어 한국선수 유럽 진출 2호였다. “이미 대표팀에서도 나온 상태였기 때문에 선수로서 유럽무대에서 성공해 보겠다고 간 건 아니었습니다. 그냥 견문을 넓히는 차원에서 도전한 겁니다. 그때 서독이 축구로는 최고 선진국이라 직접 가서 배우고 싶었어요. 그냥 구경하는 것보다는 선수로 뛰면서 체험하면 더 좋을 것 같아 시도했는데 다행히 계약이 돼서 입단하게 됐죠. 범근이 때문에 한국 선수에 대한 호감이 있을 때였죠. 1980년 1월부터 다름슈타트에서 6개월 뛰고, 여름에 같은 2부 리그에 있던 보름스(Worms) 팀으로 옮겨서 1982년 시즌까지 두 시즌을 뛰었습니다.” 김 전 전무는 차 전 감독의 고향(경기도 화성) 선배이자 경신고 선배이기도 했다. 차 전 감독이 고교 2년 후배로 입학하면서 차 전 감독 집과 4km 정도 떨어져 살았던 것을 알았다고 했다. 차 전 감독이 어린 시절을 회고하는 글에 ’김진국 선배가 유니폼과 트레이닝복을 입고 다니는 게 멋있고 부러워서 축구 선수가 되고 싶었다‘고 쓰기도 했다. 김 전 전무는 “나중에 알았는데 시골 중학생 범근이의 눈에는 내가 서울에서 축구로 유명한 고등학교에 선수로 뛴 다니까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었을 것 같다”고 했다. 그는 고등학교를 마친 뒤 바로 실업 기업은행으로 갔고 나중에 건국대를 다녔다. “일찍 실업 무대에 뛰면서 실력도 늘고 대표팀에도 뽑혔다”고 회상했다. 김 전 전무는 1982년 보름스 나온 다음에 쾰른 체육대학에서 6개월간 지도자 코스 공부도 하고 돌아왔다. 그는 남은 인생 유소년 유망주들을 키우며 평생 축구를 즐기겠다고 했다. “솔직히 언제까지 공을 찰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르죠. 하지만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진 공을 찰 생각입니다. 이 나이에도 축구를 한다는 것 자체가 건강하다는 의미 아닌가요. 전 공 찰 때가 가장 행복합니다.”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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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흔 넘었어도 체력 자신… ‘격렬하게 뛰는 축구’가 비결”[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1970년대 중반 한국축구의 대표 공격수였다. 키가 작아 ‘짤만이’로 불렸지만 뛰어난 발재간과 페인트 기술로 팬들의 인기를 독차지했다. 그로부터 5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난 지금도 60, 70대 실버축구계에서 강철 체력을 자랑하는 공격수로 이름을 떨치고 있다. 김진국 전 대한축구협회(KFA) 전무이사(71)는 실버축구단 ‘로얄 FC’에서 매주 공을 차며 ‘9988 234’(99세까지 팔팔하게 살다 2, 3일 앓고 죽는다)라는 신념을 실천하고 있다. “전 한때 이름을 날리던 선수들이 나이 들어 빌빌거리는 게 보기 좋지 않았어요. 그래서 선수를 은퇴하고 지도자 생활을 할 때, 은행에서 근무할 때도 계속 축구를 했어요. 김진국이란 이름에 걸맞게 나이 들려고 지금도 노력하고 있습니다.” 김 전 전무는 1972년부터 1977년까지 6년 동안 국가대표 간 경기(A매치) 97경기에서 27골을 터뜨린 스타플레이어 출신이다. 1975년 3월부터 1977년 2월까지 A매치 42경기에 연속 출전할 정도로 강한 체력을 과시했다. 지금도 25분씩 진행하는 친선경기에서 4, 5경기를 거뜬히 소화하고 있다. 그는 “주변에서 미련하다 할 정도로 많이 뛴다. 하지만 이렇게 격렬하게 축구를 해야 온갖 스트레스도 날아가고 다시 태어난 것 같은 기분이 든다”고 했다. 1980년대 중반까지 국민은행에서 플레잉 코치로 뛰었던 그는 1992년까지 코치와 지도자를 한 뒤 이듬해부터 본격적인 은행 업무를 시작했다. 그는 “지도자 생활 당시 선수들 훈련 때 함께 운동했다. 은행 일을 볼 때도 축구를 놓을 순 없었다. 그즈음 서울시 생활체육 여자축구단이 창단됐는데 나한테 지도해 달라고 해서 자원봉사로 함께 운동하기도 했다. 1995년부턴 내가 사는 서울 양천구에 ‘김진국 축구교실’을 열어 주 2회씩 어린이들과 함께 공을 차고 있다”고 했다. 2001년부터 2011년까지 KFA에서 행정을 했다. 유소년위원장과 기획실장, 전무까지 하며 우수 유소년선수 해외유학 프로그램도 진행했다. 그 프로그램 덕분에 손흥민(30·토트넘)이 독일 함부르크 유소년 클럽에서 유학하며 세계적인 선수로 도약할 기회를 잡았다. 김 전 전무는 KFA를 떠난 뒤 2012년부터 로얄 FC에 합류해 본격적으로 ‘실버축구 인생’을 시작했다. 로얄 FC는 2005년 이회택과 김재한 등 1960, 70년대 한국 축구를 주름잡던 스타플레이어와 조기축구 회원들이 만든 팀이다. 매주 토요일 전국의 실버축구단 1, 2개 팀을 초청해 4∼5시간 공을 찬다. 지방 방문 경기를 다니기도 하고 생활축구 전국대회에 출전하기도 한다. 국가대표 출신들이 많아 일본과 중국, 태국 등 해외에서 초청도 자주 받는다. 수원북중 1학년 때부터 본격적으로 공을 찼으니 근 60년 가까이 축구를 하고 있는 셈이다. 무릎 등 관절은 괜찮을까. “선천적으로 건강한 신체를 준 부모님 덕분에 아직 관절엔 문제없습니다. 또 기술축구를 하면 힘도 안 들고 부상 위험도 없죠. 전 키가 작아서 어려서부터 기술로 승부수를 띄워야 했죠. 일흔이 넘은 지금도 가볍게 무리 없이 공을 차기 때문에 아직 어디가 불편하진 않습니다.” 김 전 전무는 경신고 재학 시절 키가 165cm에서 더는 크지 않는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기술축구를 구사했다. 당시 아침부터 밤까지 다양한 기술을 연마했고 결국 ‘원조 접기(페인팅)왕’으로 팬들을 사로잡았다. 그때 익힌 기술 덕에 대학, 실업팀, 국가대표는 물론이고 선수생활 막판에 진출한 독일 프로축구팀에서 활약하면서도 큰 부상이 없었다. 지금도 힘들이지 않고 공을 차는 원동력에는 기술축구가 있다고 했다. “기술은 한번 익히면 평생 잊혀지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축구를 잘하기 위해 홈트레이닝으로 체력도 키우고 있다. 스쾃과 팔굽혀펴기는 기본이고 아령 등 기구로 근육운동을 한다. 그는 “나이가 들면서는 근력이 급격하게 떨어지기 때문에 꾸준히 웨이트트레이닝을 해줘야 버틸 수 있다”고 했다. “솔직히 언제까지 공을 찰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르죠. 하지만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진 공을 찰 생각입니다. 이 나이에도 축구를 한다는 것 자체가 건강하다는 의미 아닌가요. 전 공을 찰 때가 가장 행복합니다.” 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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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릎 보호하고 다이어트 효과까지…등산 스틱의 중요성[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등산할 때 스틱을 사용하지 않는 것은 몸에 대한 죄악이다.’ 세계 최초로 히말라야 8000m 16좌 완등에 성공한 엄홍길 대장(62)은 “등산을 부상 없이 오래 즐기려면 스틱을 반드시 써야 한다”고 강조한다. 등산화와 배낭도 잘 챙겨야 하지만 등산을 할 때 스틱 하나로 몸을 보호하고 몸에 무리를 주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장거리 산행의 경우 스틱 유무에 따라 신체 피로도가 크게 달라진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 여파로 실내 스포츠가 제한됐을 때부터 실외 활동이 증가했는데 특히 등산 인구가 폭증했다. 사진을 찍어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문화에 익숙한 2030 젊은이들의 증가가 눈에 띠였다. 하지만 운동화나 캐주얼화를 신고 배낭도 없는 것은 물론 스틱을 든 젊은이들을 찾아보기는 힘들었다. 젊은 데다 1,2시간 짧은 산행이라면 괜찮을 수 있지만 4시간 이상 산행이라면 적지 않는 문제가 발생한다. 발바닥에 물집이 잡히고 발목, 무릎 등에 통증이 올 수 있다. “손에 익으면 너무 편하고 좋은데…. 많은 사람들이 스틱의 중요성을 잘 몰라요. 양손에 스틱을 쓴다면 네 발로 걷는 것이나 마찬가지죠. 산을 오를 때는 두 발보다는 네 발이 힘도 덜 들고 안전합니다.” 엄 대장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스틱을 사용할 경우 걸을 때 상체가 체중의 30%를 지탱해준다. 스틱이 없다면 하체가 모든 부하를 책임져야한다. 특히 장기 산행을 할 때는 배낭에 물과 간식 및 도시락 등을 챙겨 가기 때문에 최소 10~20kg은 더 무게가 더 나가 스틱이 없다면 하체가 감당해야 할 부담이 더 커진다. 결국 무릎과 발목은 물론 고관절에까지 큰 부담을 주게 되는 것이다. 엄 대장은 “무릎이나 발목 연골이 다치면 산에 못 오른다. 평상시 조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리나라는 특히 악산(바위산)이 많아 산을 오르내리면 하체에 무리가 더 간다. 그 부담을 스틱을 사용해 덜어줘야 하는 것이다. 다음은 엄 대장이 설명한 올바른 스틱 사용법이다. 스틱은 반드시 양팔로 사용해야 한다. 하나만 사용하는 것은 아예 안 쓰니 만 못하다. 스틱은 일반적으로 왼발 땐 오른팔, 오른발 땐 왼팔로 엇갈려 사용하면 된다. 평지에서는 스틱을 땅이 짚을 때 팔하고 직각이 되게 하면 된다. 발보다 살짝 앞을 짚어 뒤로 밀어주면 된다. 스틱은 오르막과 내리막에서 그 진가를 발휘한다. 오르막을 오를 땐 경사도에 따라 스틱을 조절해줘야 한다. 보통 평지보다 10cm 짧게 해주면 되는데 경사도가 높으면 더 줄여줘야 한다. 오르막 경사도가 가파른데 스틱이 너무 길면 스틱 때문에 밸런스가 흔들려 뒤로 넘어질 수 있다. 내리막 땐 평지보다 스틱을 평균 10cm 길게 해줘야 한다. 하지만 역시 오르막 때와 마찬가지로 경사도에 따라 길이는 더 길어질 수 있다. 오르막 내리막 때마다 스틱 길이 조정을 하는 게 번거롭지만 그래도 몸 보호와 안전을 위해선 꼭 해야 한다. 오를 때나 내려갈 때나 모두 두 개를 동시에 나란히 짚고 상체의 무게를 스틱에 싣는 방식이 좋다. 오를 땐 스틱을 먼지 짚고 하체 움직임과 함께 팔로 당기듯 밀어주면 된다. 내려갈 땐 스틱에 팔을 지지한 뒤 하체를 움직인다. 그럼 오르막 땐 하체 피로도를 크게 줄여주고, 내리막 땐 무릎과 발목에 가해지는 충격을 완화시켜 준다. 스틱은 산행하다 돌이나 나무뿌리 등에 걸리거나 미끄러져 밸런스가 흔들릴 때 균형을 잡아줄 수 있어 안전사고도 예방해준다. 등산은 다이어트 운동으로도 각광받고 있다. 2~3시간 짧은 산행부터 4,5시간 중거리 산행, 혹은 7,8시간 장거리 산행은 우리 몸의 에너지를 크게 태운다. 등산은 자연에서 하는 ‘인터벌트레이닝(Interval Trainging)’이다. 인터벌트레이닝은 일정 강도의 운동과 운동 사이에 불완전한 휴식을 주는 훈련 방법이다. 예를 들어 100m를 자기 최고 기록의 50%에서 최대 90%로 달린 뒤 조깅으로 돌아와 다시 100m를 같은 강도로 달리는 것을 반복하는 훈련이다. 사실 엄격한 의미에서 등산을 인터벌트레이닝과 동급으로 놓을 순 없다. 하지만 산을 오를 때 급경사와 완만한 경사, 평지, 내리막이 반복 된다. 이를 휴식할 때까지 1시간 이상 하니 일종의 인터벌트레이닝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등산은 1, 2시간 안에 끝내기 보다는 5~8시간까지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다이어트에 큰 효과가 있다. 등산이 꾸준히 인기를 끌고 있는 이유가 주 1회 산에 올라도 한번에 2~3kg은 빠지기 때문이다. 문제는 부상 없이 즐겨야 하는데 꼭 챙겨야 하는 장비를 챙기지 않아서 오는 안전사고가 의외로 많이 일어나고 있다. 반드시 스틱을 사용해야하는 이유다. 운동생리학적으로 스틱을 사용하면 하체 부담을 줄여주지만 전체적인 에너지 소비량은 증가시켜 준다. 스틱 없이 하체만으로 움직이면 하체에 부담이 가중돼 결국 몸의 피로도를 높여준다. 스틱을 사용하면 팔을 비롯해 복근 등 코어 근육을 함께 사용하기 때문에 하체의 피로도를 줄여주면서 전체적인 에너지 소비량은 늘려주는 것이다. 최근 다이어트 운동으로 주목 받고 있는 노르딕워킹의 원리가 바로 여기에 있다. 노르딕워킹은 노르딕 스키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걷기 방법으로 ‘폴 워킹(Pole walking)’이라고도 한다. ‘노르드(Nord)’는 ‘북방(北方)’을 뜻하는 말로서, 노르딕 스키는 노르웨이를 비롯한 북유럽 스칸디나비아 국가에서 발달했다. 스칸디나비아의 산지는 알프스 산악지방의 가파른 지형과는 달리 대부분 낮은 언덕과 평지로 이루어져 있는데, 긴 겨울에 눈이 많이 쌓인 지역을 이동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스키가 발달했다. 노르딕 스키는 낮은 언덕과 평지가 대부분인 발원지의 지형 특성이 반영되어 평지와 언덕을 가로질러 긴 코스를 완주하는 거리 경기 등으로 나뉘는데 평지와 언덕을 걷는 것으로 발전시킨 것이 노르딕워킹이다. 노르딕워킹은 1990년대 중반 핀란드 등 북유럽에서 큰 인기를 끌었고 국내에도 2000년대 초중반 들어왔다. 한 때 반짝 인기를 끌고 주춤했지만 최근 다이어트 운동으로 각광받고 있다. 노르딕워킹 전도사 주연서 INWA((International Nordic Walking Federation) 코리아 사무국장(50)은 말한다. “우리 몸은 큰 근육을 잘 써야 에너지 소비가 잘 됩니다. 걸을 때 허벅지 장딴지가 가동되는데 폴을 잡고 밀면서 걸으면 팔과 어깨 근육은 물론 대흉근과 견갑근, 광배근, 척추기립근 등 상체의 큰 근육도 힘을 쓰게 됩니다. 몸 전체 근육의 90% 이상을 사용합니다. 그래서 에너지 소비가 극대화 됩니다. 다이어트에 좋은 이유입니다.” 스틱 혹은 폴을 잘 사용하면 몸도 보호하면서 다이어트 효과까지 볼 수 있다.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 2022-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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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댄스로 당뇨 이겨낸 후 등산까지…운동은 최고의 노후 대책”[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당뇨는 평생 관리해야 하는 질병이다. 김경숙 갤러리 예당 대표(70)는 1987년 첫 아이를 가졌을 때 임신성 당뇨 판정을 받은 뒤부터 식이요법과 운동을 병행하며 체계적으로 관리했다. 60세를 넘긴 뒤에는 라인댄스와 줌바, 헬스까지 즐기며 건강하고 행복한 노년을 만들어 가고 있다. “뒤늦게 아이를 가졌는데 쌍둥이였어요. 아이들을 위해 먹는 게 가장 중요했습니다. 애들이 잘 커야 하니까요. 당뇨 판정 받고 바로 두부와 살코기, 오이 등을 먹으며 당을 떨어뜨렸고 걷기로 건강을 챙겼어요. 배속의 아이 때문에 심한 운동은 못했지만 의사가 식이요법뿐만 아니라 운동을 강조해 일단 바로 걷기 시작했습니다.” 임신성 당뇨는 잘못 관리하면 태아 기형, 거대아, 신생아 저혈당으로 이어질 수 있는 위험한 질병이었다. 그 때부터 식이요법과 운동을 생활화했다. 덕분에 아이들도 건강하게 낳았고 큰 문제없이 잘 지내고 있다. “처음엔 의사가 하라는 대로 다했어요. 보통 주사투약 치료까진 하지 않는데 주사도 맞았고 음식 조절을 철저하게 했습니다. 운동도 열심히 했죠. 하지만 한 때 일에 집중하느라 잠시 관리가 소홀해지면서 40대 중반에 당 수치가 다시 높아졌습니다.” 이화여대에서 섬유공예를 전공한 그는 1979년 갤러리를 만들어 각종 기획 전시를 했고 서울여대와 경원대(현 가천대), 상명대 등에서 강의도 했다. 이렇다보니 외식이 잦아지면서 음식 조절을 제대로 못한 것이다. 그는 “아이들도 키워야 했고 일하다보니 관리한다고 했지만 좀 소홀한 측면이 있었다. 다시 정기적으로 병원 진료를 받으며 관리에 들어갔다. 그래도 음식은 잘 조절했지만 운동을 체계적으로 하긴 쉽지 않았다”고 했다. 김 대표가 본격적으로 운동을 시작한 지는 7년이 좀 넘었다. 60세를 넘기면서 대학 강의를 그만두고 갤러리 운영에만 집중하면서 다양한 운동을 즐기기 시작한 것이다. 서울 신촌 현대백화점 문화센터와 마포구민체육센터에서 라인댄스와 줌바, 헬스를 하고 있다. 라인댄스는 주 3회, 줌바와 헬스는 주 2회씩 하고 있다. 여럿이 함께 추는 라인댄스는 음악에 맞춰 민첩하게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좋은 유산소 운동이다. 줌바는 중고강도 유산소 운동인데 큰 근육을 사용하는 동작이 많다. “댄스는 리듬에 맞춰 동작을 잘 따라가야 하는데 젊은 사람에게 민폐를 끼치지 않게 열심히 했어요. 땀이 엄청 많이 나고, 춤을 추고 나면 숙제를 끝낸 느낌이랄까. 저 자신에게 큰 위로가 돼요. 라인댄스는 1시간씩 하루 2번 하기도 했죠.” 헬스클럽에서는 주로 걷거나 고정식 자전거를 타는데 매일 하체를 단련하기 위해 웨이트트레이닝 레그프레스를 200회 이상 한다. 허리 돌리기도 많이 한다. 그는 “나이가 들면 허리가 둔해진다. 허리가 유연해야 활동하기 편하다. 그래서 앉아서, 서서 허리 돌리기를 많이 하고 있다”고 했다. 김 대표는 구청마다 체육시설을 잘 해놨다며 활용할 것을 조언했다. “시설도 좋고 깨끗해요. 거의 모든 운동을 다 즐길 수 있어요. 또 구청에서 65세 이상은 50% 싸게 해줘요. 뭐 별것은 아니지만 대접 받는 것 같아 기분도 좋아요. 이렇게 스포츠센터에서 젊은이고 노인이고 운동을 하게 한다는 게 참 좋은 것 같습니다.” 김 대표는 라인댄스에 빠져 2019년 2급 지도자 자격증까지 획득했다. 조만간 1급 지도자 자격증에도 도전할 계획이다. 이렇게 운동도 열심히 하지만 생활에서도 움직임이 기본이다. 일명 ‘BMW(버스, 지하철, 걷기)족’으로 이동 땐 걷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강아지와 산책도 하는 등 하루 1만보 이상 걷기도 한다. 몸이 건강해지니 욕심도 생겼다. 6월 12일 70세 생일을 맞아 한라산 등반에 도전한 것이다. 해발 1950m로 국내 최고 높은 산이라 주위에서 걱정했지만 성판악 코스로 12시간 만에 백록담까지 올라갔다 왔다. 그는 “중간에 어지러움 증세도 보이고 힘들었지만 딸하고 쉬엄쉬엄 다녀왔다. 한라산에 올랐다고 했더니 친구들이 다 놀라워했다”고 했다. “이젠 매년 한번씩 한라산에 오르며 내 체력을 테스트 할 계획”이라고 했다. 한라산뿐만이 아니라 지리산, 설악산 등도 오르겠다고 했다. 김 대표는 현재 혈당, 당화혈색소 등 수치가 좋으며, 당뇨관련 합병증도 없는 건강한 상태다. 자신을 낳으면서 평생 당뇨로 고생한 어머니를 지켜보던 첫째 딸 오세정 씨(34)는 당뇨 환자들도 먹을 수 있는 빵과 과자 등 대체식품을 만드는 ‘설탕없는과자공장(설공)’을 2016년 창업했다. 요즘 김 대표는 딸이 만든 탄수화물 함량이 낮고 고단백인 ‘산소빵’과 야채로 아침 식사를 해결하고 있다. 당뇨 판정 이후엔 평소 좋아하던 간식을 참을 수밖에 없었지만 딸 덕분에 6년 전부터는 빵과 과자도 먹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당뇨 판정 이후 탄수화물을 거의 먹지 않았어요. 먹더라도 당분 적은 음식을 골라먹어야 했죠. 혈당을 천천히 올리는 잡곡밥이나 복합탄수화물 위주로 먹었어요. 쌀밥, 일반 빵은 안 먹었습니다. 요즘은 딸 덕분에 가끔 간식도 즐깁니다.” 설공의 오세정 대표는 대학졸업 후 2011년 회사 생활을 시작했다. 패션 쪽에서 일하다 외식사업부로 옮겼다. 평소 먹는 것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이다. 외국계 주류 수입사를 거쳐 창업을 하게 됐다. 당뇨로 고생하는 어머니를 위해 해외 출장 때 무설탕 간식을 많이 사오다 이런 제품을 국내에선 찾아볼 수 없어 사업을 시작한 것이다. 오 대표는 유명한 제과점에서 아르바이트로 일했고 제빵학교까지 다니며 기술을 익혔다. 그리고 무설탕 베이커리 스토어를 낸 것이다. 오 대표는 “처음에는 설탕을 대체하기 위한 대체당만 연구를 했는데 결국에는 당뿐만 아니라 탄수화물을 줄여야 돼서 지금은 아예 쌀이나 밀 대신에 콩과 견과류의 식이섬유 이런 걸 넣어서 과자와 빵을 만들고 있다”고 했다. 김 대표는 “아몬드 가루로 만드는 빵과 과자도 맛있다”고 했다. 김 대표는 강조했다. “당뇨인에게 운동은 필수입니다. 먹은 만큼 에너지를 태워 없애야 혈당조절이 가능하죠. 매일 하는 라인댄스와 줌바가 제 인생의 큰 기쁨입니다. 춤추며 움직일 때가 가장 행복해요. 당뇨는 고치는 게 아니라 평생 같이 갈 친구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운동은 아주 좋은 친구입니다.” 김 대표는 “운동을 하면 기분이 좋아지고 몸도 탄탄해지는 것을 느낀다. 그 자체가 큰 기쁨이다. 요즘 운동이 최고의 노후대책이라는 것을 느끼고 있다”며 활짝 웃었다.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 2022-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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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댄스로 땀 흘리며 혈당 조절… 반평생 따라 다닌 당뇨 잊고 살죠”

    1987년 첫아이를 가졌을 때 임신성 당뇨 판정을 받았다. 잘못 관리하면 태아 기형, 거대아, 신생아 저혈당이 될 수도 있는 위험한 상황이었다. 그때부터 식이요법과 운동을 생활화했다. 덕분에 아이들도 건강하게 잘 낳았고 큰 문제 없이 잘 지내고 있다. 김경숙 갤러리 예당 대표(70)는 60세를 넘기면서는 라인댄스와 줌바, 헬스까지 즐기며 건강하고 행복한 노년을 만들어 가고 있다. “뒤늦게 아이를 가졌는데 쌍둥이였어요. 아이들을 위해 먹는 게 가장 중요했습니다. 애들이 잘 커야 하니까요. 당뇨 판정 받고 바로 두부와 살코기, 오이 등을 먹으며 당을 떨어뜨렸고 걷기로 건강을 챙겼어요. 배 속의 아이 때문에 심한 운동은 못했지만 의사가 식이요법뿐만 아니라 운동을 강조해 일단 바로 걷기 시작했습니다.” 의사가 하라는 대로 다했다. 보통 주사 투약 치료까진 하지 않는데 주사도 맞았고 음식 조절을 철저하게 했다. 운동도 열심히 했다. 하지만 일에 집중하느라 잠시 관리가 소홀해지면서 40대 중반에 당 수치가 다시 높아졌다. 대학에서 섬유공예를 전공한 그는 1979년 갤러리를 만들어 각종 기획 전시를 했고 서울여대와 경원대(현 가천대), 상명대 등에서 강의도 했다. 이렇다 보니 외식도 잦아지면서 음식 조절을 제대로 못한 것이다. 그는 “아이들도 키워야 했고 일하다 보니 관리한다고 했지만 좀 소홀한 측면이 있었다. 다시 정기적으로 병원 진료를 받으며 관리에 들어갔다. 그래도 음식은 잘 조절했지만 운동을 체계적으로 하긴 힘들었다”고 했다. 김 대표가 본격적으로 운동을 시작한 지는 7년이 좀 넘었다. 60세를 넘기면서 대학 강의를 그만두고 갤러리 운영에 집중하면서 다양한 운동을 즐기기 시작했다. 서울 신촌 현대백화점 문화센터와 마포구민체육센터에서 라인댄스와 줌바, 헬스를 하고 있다. 라인댄스는 주 3회, 줌바와 헬스는 주 2회씩 하고 있다. 여럿이 함께 추는 라인댄스는 음악에 맞춰 민첩하게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좋은 유산소 운동이다. 줌바는 중고강도 유산소 운동인데 큰 근육을 사용하는 동작이 많다. 헬스는 주로 걷고 고정식 자전거를 타는데 매일 하체를 단련하기 위해 레그프레스를 200회 이상 한다. “댄스는 리듬에 맞춰 동작을 잘 따라가야 하는데 젊은 사람에게 민폐를 끼치지 않게 열심히 했어요. 땀이 엄청 많이 나고, 춤을 추고 나면 숙제를 끝낸 느낌이랄까. 저 자신에게 큰 위로가 돼요. 라인댄스는 1시간씩 하루 2번 하기도 했죠.” 김 대표는 라인댄스에 빠져 2019년 2급 지도자 자격증까지 획득했다. 이렇게 운동도 열심히 하지만 생활에서도 움직임이 기본이다. 일명 ‘BMW(버스, 지하철, 걷기)족’으로 이동 땐 걷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강아지와 산책도 하는 등 하루 1만 보 이상 걷기도 한다. 몸이 건강해지니 욕심도 생겼다. 6월 12일 70세 생일을 맞아 한라산 등반에 도전한 것이다. 해발 1950m로 국내 최고 높은 산이라 주위에서 걱정했지만 성판악 코스로 12시간 만에 백록담까지 올라갔다 왔다. 그는 “중간에 어지럼 증세도 보이고 힘들었지만 딸하고 쉬엄쉬엄 다녀왔다. 한라산에 올랐더니 친구들이 다 놀라워했다”고 했다. “이젠 매년 한 번씩 한라산에 오르며 내 체력을 테스트할 계획”이라고 했다. 한라산뿐 아니라 지리산, 설악산 등도 오르겠다고 했다. 자신을 낳으면서 평생 당뇨로 고생한 어머니를 지켜보던 첫째 딸 오세정 씨(34)는 당뇨 환자들도 먹을 수 있는 빵과 과자 등 대체식품을 만드는 ‘설탕없는과자공장’을 창업했다. 회사에 입사해 출장을 다니다 해외에서 당뇨 환자도 먹을 수 있는 과자나 빵을 발견해 어머니께 사다 주다 결국 창업까지 하게 된 것이다. 요즘 김 대표는 딸이 만든 탄수화물 함량이 낮고 고단백인 ‘산소빵’과 야채로 아침 식사를 해결하고 있다. “당뇨인에게 운동은 필수입니다. 먹은 만큼 에너지를 태워 없애야 혈당 조절이 가능하죠. 매일 하는 라인댄스와 줌바가 제 인생의 큰 기쁨입니다. 춤추며 움직일 때가 가장 행복해요. 당뇨는 고치는 게 아니라 평생 같이 갈 친구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운동은 아주 좋은 친구입니다.” 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 2022-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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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러 운동해봐야 아이들 잘 지도”…‘국대’ 출신에게 핸드볼 배운 교사[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교대에 입학하자 대학 선배들이 여러 운동을 해봐야 한다고 권유했어요. 개인 건강도 챙길 수 있고 교사가 돼서 아이들을 잘 지도할 수 있다고요. 초등교사는 체육을 포함한 모든 과목을 지도해야 하거든요.” 학창시절부터 몸을 움직이는 것을 좋아했다. 육상 단거리와 포환던지기도 해봤다. 평소 활동적인 몸놀림을 좋아했던 그는 2014년 경인교대에 입학하면서 자연스럽게 핸드볼과 축구 동아리에 가입해 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요즘 핸드볼 하는 재미에 빠져 있는 경기 화성 새솔초등학교 황윤지 교사(27) 얘기다. 황 교사는 6월 18, 19일 서울 SK핸드볼경기장에서 열린 제14회 대한핸드볼협회장배 전국생활체육 핸드볼대회에 ‘선핸후맥’을 이끌고 출전했다. ‘선(先) 핸드볼 후(後) 맥주’의 약자로 핸드볼을 즐기고 맥주 한잔 마시자는 뜻이다. 선핸후맥은 6개 팀이 참가한 여자챌린저부에서 3위를 했다.“우승은 못했지만 오랜만에 핸드볼을 맘껏 즐겼습니다. 우린 2, 3위 하는 팀이지만 성적은 중요하지 않아요. 함께 모여 골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즐깁니다. 7명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며 골을 만들어냈을 때 느끼는 쾌감과 성취감, 그 짜릿함에 핸드볼을 하고 있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임용고시를 준비하면서는 운동할 곳이 마땅치 않았다. 모교를 찾기도 했지만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했다. 그 때 찾은 게 대한핸드볼협회(KHF) 핸드볼학교(현 KHF핸드볼클럽)다. 그는 “2018년 말 핸드볼학교에 등록했고 2019년부터 본격적으로 사회인팀 선핸후맥을 구성해 훈련도 함께 하고 대회에 출전하고 있다”고 했다. 핸드볼학교는 핸드볼 저변을 확대하자는 취지로 KHF가 2015년부터 직접 운영하는 프로그램이다. 유치부 초등부가 중점인데 성인반도 운영한다. 한현숙(1988서울 올림픽 금메달, 1992바르셀로나 올림픽 금메달), 장리라(1992), 박정림(1992, 1996애틀랜타 올림픽 은메달), 김정미(1996), 최임정(2004아테네 올림픽 은메달, 2008베이징 올림픽 동메달), 명복희(2004) 등 여자 핸드볼 레전드들이 강사로 참여한다. 은퇴한 올림픽 메달리스트들에게는 재능기부의 기회를, 일반인들에게는 직접 배울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초창기부터 핸드볼학교 교감, 교장으로 핸드볼 보급에 힘쓰고 있는 장리라 KHF 부회장은 “지금까지 핸드볼학교를 거쳐 간 학생 밑 성인들이 3000명이 넘는다”고 했다. 황 교사도 이 혜택을 입은 셈이다. “주말에 1회 2시간씩 국가대표 출신 지도자들로부터 기본기부터 지도를 받았어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여파로 2020년 1년 쉬고 지난해 다시 시작했는데 요즘 여성들의 핸드볼에 대한 관심이 늘고 있더라고요.” 주 1회 훈련할 땐 남성들하고 함께 하기도 한다. 다들 직장을 다니기 때문에 전체가 모이기 힘들기 때문이다. KHF핸드볼클럽 동호인반인에서 팀을 꾸려 대회에 출전할 땐 ‘애프터 스쿨’로 출전한다. 선핸후맥은 여성들이 주축이 돼 만든 KHF핸드볼클럽 동호인 팀이다. 황 교사는 경인교대 OB(졸업생)팀으로 전국교대 핸드볼 대회에도 출전한다. 그는 “지난해부터 전국교대핸드볼대회에 OB들도 출전할 수 있게 됐다. 가뭄에 단비였다”고 했다. 핸드볼의 매력은 무엇일까. 황 교사는 “상대 수비를 피해 공을 돌리며 빈 공간을 파고들어 슈팅을 할 때까지 발 빠르게 움직이는 스피드감이 스릴 넘친다. 공격과 수비할 때 벌이는 치열한 몸싸움에서 상대를 압도했을 때 느끼는 성취감도 크다”고 했다. 핸드볼은 순발력과 민첩성, 지구력 등 다양한 운동 능력이 필요하다. 그는 “핸드볼을 할 때마다 체력이 좋아지는 것을 느낀다. 건강과 다이어트에 도움이 된다는 생각보다는 어깨도 넓어지는 등 내가 강해지는 것을 느끼기 때문에 핸드볼을 한다”고 했다. 황 교사는 최근 핸드볼에 매력을 느낀 여성들이 많아졌다고 했다. 발이 아닌 손으로 하는 재미가 쏠쏠하기 때문이다. 발로 공을 차고 드리블에 트래핑까지 하는 축구기술은 습득하기 쉽지 않지만 손으로 공을 주고받는 것은 훨씬 수월하기 때문이다. 물론 경기까지 하기에는 시간이 필요하지만 쉽게 접근해 기술을 배울 수 있는 게 핸드볼의 장점이다. 장리라 부회장은 “KHF핸드볼클럽 성인부는 여성회원의 압도적이다. 전체 백여 명 중 90명 이상이 여자 회원”이라고 말했다. 한 핸드볼 관계자는 “요즘 여성들이 보이시한 이미지로 핸드볼을 잘하는 여자 선수에게 매력을 느끼는 경우도 많다”며 “대구개발공사 배민희 선수 등 여성들에게 인기 있는 선수들도 여럿 있다”고 했다. 황 교사는 임용된 뒤 체육시간에 아이들에게 핸드볼을 가르칠 때도 손으로 하는 재미에 학생들도 즐거워한다고 했다. 그는 “아이들은 움직이면서 땀 흘리는 것을 좋아한다. 제로베이스에서 시작한다면 축구보다 핸드볼이 접근하기 쉽다. 기본기를 접하고 익숙해지면 경기도 가능하다. 체육시간에 핸드볼도 가르치는데 아이들, 특히 여학생들도 좋아한다”고 했다. 황 교사는 학생들에게 운동할 기회를 많이 주겠다고 했다. “운동을 하면 다양한 측면에서 좋다는 연구 결과가 많지만 요즘 아이들은 운동기회가 많지 않아요. 한 학급 26~30명 중 6~8명은 비만입니다. 어릴 때부터 운동을 해야 건강하고 즐겁게 살 수 있습니다. 아이들에게 핸드볼뿐만 아니라 다양한 운동기회를 주려고 노력하겠습니다.” 황 교사는 KHF핸드볼클럽과의 인연 때문에 KHF 초등위원회에 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전국 교대는 물론 초등학교 교사들에게 어떻게 쉽게 핸드볼을 전수하는지가 관심사다. 그는 “전국 교사 연수 때 핸드볼을 넣으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황 교사는 대학시절 경인교대 여자축구팀 FC 풋사과의 선수로 활약하기도 했다. 2017년 전국 교대 여자축구대회에 출전해 우승을 주도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최애(最愛) 스포츠가 핸드볼이다. 물론 축구도 가끔씩 즐기기만 핸드볼이 최우선이다. 황 교사는 핸드볼을 평생 즐길 계획이다. 그는 “요즘 40~50대 분들이 파워 넘치는 플레이하는 모습을 보면 너무 멋있다. 선핸후맥과 함께 하는 충족감, 유대감을 오래 이어가고 싶다”고 했다. 그는 “현대인들이 알게 모르게 외로움을 느낀다. 우리에겐 외로움은 없다. 한마음 한뜻으로 공을 돌리고 골을 만들어가면서 쌓는 유대감 속에 외로움은 있을 수 없다”고 했다. 그는 “선핸후맥 동료들과 핸드볼로 땀을 흠뻑 흘린 뒤 함께 모여 맥주 한잔 들이키는 맛도 인생을 살아가는 재미”라며 활짝 웃었다.PS. KHF핸드볼클럽은?매년 상하반기로 각 15회 토요일 일요일 수업으로 운영된다. 유치부 2개반, 초등부 2개반, 초등 클럽선수반, 중고등부 1개반, 성인부 2개반이며 한 클래스당 50명씩 모집해 국가대표출신 강사를 담임으로 배치해 운영한다. 핸드볼을 배우려면 상하반기 등록 시기(상반기 1월, 하반기 7월)에 핸드볼협회 홈페이지를 통해서 등록하면 된다.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 2022-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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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짜릿한 스피드-치열한 몸싸움… 핸드볼, 평생 즐길만 하죠”

    학창 시절부터 몸을 움직이는 것을 좋아했다. 육상 단거리와 포환던지기도 해봤다. 경인교대에 입학해서는 핸드볼과 축구를 시작했다. 경기 화성 새솔초등학교 황윤지 교사(27)는 요즘 핸드볼 재미에 빠져 있다. 그의 최애(最愛) 스포츠다. 그는 18, 19일 서울 SK핸드볼경기장에서 열린 제14회 대한핸드볼협회장배 전국생활체육 핸드볼대회에 ‘선핸후맥’을 이끌고 출전했다. ‘선(先)핸드볼 후(後)맥주’의 약자로 핸드볼을 즐기고 맥주 한잔 마시자는 뜻이다. 선핸후맥은 6개 팀이 참가한 여자챌린저부에서 3위를 했다. “우승은 못했지만 오랜만에 핸드볼을 맘껏 즐겼습니다. 우린 2, 3위하는 팀이지만 성적은 중요하지 않아요. 함께 모여 골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즐깁니다. 7명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골을 만들어냈을 때 느끼는 쾌감과 성취감, 그 짜릿함에 핸드볼을 하고 있습니다.” 황 교사는 대학 선배들의 권유로 2014년부터 핸드볼을 시작했다. 여러 운동을 해보는 게 개인 건강도 챙기고 교사가 돼서 아이들을 잘 지도할 수 있다고 했다. 초등교사는 체육을 포함한 모든 과목을 지도해야 한다. 평소 활동적인 몸놀림을 좋아했던 그는 자연스럽게 핸드볼과 축구 동아리에 가입해 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임용고시를 준비하면서는 운동할 곳이 마땅치 않았다. 모교를 찾기도 했지만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했다. 그때 찾은 게 대한핸드볼협회(KHF) 핸드볼학교(현 KHF핸드볼클럽)다. 그는 “2018년 말 핸드볼학교에 등록했고 2019년부터 본격적으로 사회인팀 선핸후맥을 구성해 훈련도 함께하고 대회에 출전하고 있다”고 했다. 핸드볼학교는 핸드볼 저변을 확대하자는 취지로 KHF가 2015년부터 직접 운영하는 프로그램이다. 유치부 초등부가 중점인데 성인반도 운영한다. 은퇴한 올림픽 메달리스트들에게는 재능기부의 기회를, 일반인들에게는 직접 배울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주말에 1회 2시간씩 국가대표 출신 지도자들에게 기본기부터 지도를 받았어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여파로 2020년 1년 쉬고 지난해 다시 시작했는데 요즘 여성들의 핸드볼에 대한 관심이 늘고 있어요.” 선핸후맥은 여성들이 주축이 돼 만든 KHF핸드볼클럽 동호인 팀이다. 황 교사는 경인교대 OB(졸업생) 팀으로 전국교대핸드볼대회에도 출전한다. 그는 “지난해부터 전국교대핸드볼대회에 OB들도 출전할 수 있게 됐다. 가뭄에 단비였다”고 했다. 핸드볼의 매력은 무엇일까. 황 교사는 “상대 수비를 피해 공을 돌리며 빈 공간을 파고들어 슈팅을 할 때까지 발 빠르게 움직이는 스피드감이 스릴 넘친다. 공격과 수비할 때 벌이는 치열한 몸싸움에서 상대를 압도했을 때 느끼는 성취감도 크다”고 했다. 핸드볼은 순발력과 민첩성, 지구력 등 다양한 운동 능력이 필요하다. 그는 “핸드볼을 할 때마다 체력이 좋아지는 것을 느낀다. 건강과 다이어트에 도움이 된다는 생각보다는 어깨도 넓어지는 등 내가 강해지는 것을 느끼기 때문에 핸드볼을 한다”고 했다. 황 교사는 핸드볼에 매력을 느낀 여성들이 많아졌다고 했다. 발이 아닌 손으로 하는 재미가 쏠쏠하기 때문이다. 발로 공을 차고 드리블에 트래핑까지 하는 축구기술은 습득하기 쉽지 않지만 손으로 공을 주고받는 것은 훨씬 수월하기 때문이다. 물론 경기까지 하기에는 시간이 필요하지만 쉽게 접근해 기술을 배울 수 있는 게 핸드볼의 장점이다. 교사가 돼 체육시간에 아이들에게 핸드볼을 가르칠 때도 손으로 하는 재미에 학생들도 즐거워한다고 했다. 그는 “아이들은 움직이면서 땀 흘리는 것을 좋아한다. 제로베이스에서 시작한다면 축구보다 핸드볼이 접근하기 쉽다. 기본기를 접하고 익숙해지면 경기도 가능하다. 체육시간에 핸드볼도 가르치는데 아이들, 특히 여학생들이 좋아한다”고 했다. 황 교사는 핸드볼을 평생 즐기며 학생들에게도 운동할 기회를 주겠다고 했다. “요즘 40, 50대분들이 파워 넘치는 플레이를 하는 모습을 보면 너무 멋있습니다. 선핸후맥과 함께하는 충족감, 유대감을 오래 이어가고 싶습니다. 그리고 어릴 때부터 운동을 해야 건강하고 즐겁습니다. 아이들에게 핸드볼뿐만 아니라 다양한 운동 기회를 주려고 노력하겠습니다.” 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 2022-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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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 잘 하려면 ‘놀아야 한다’?…67세 ‘테니스 마니아’ 빌 게이츠[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자기계발 및 리더십컨설턴트 마이클 하얏트(67)는 ‘초생산성’이란 책에서 일을 잘 하려면 ‘놀아야 한다’고 썼다.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똑똑하고 뛰어난 사람들은 이 사실을 이미 알고 있다며 세계적인 기업을 창업하거나 운영하는 인물들은 대부분 스포츠를 즐긴다고 했다. 하얏트는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는 테니스를 치고, 전 트위터 CEO 딕 코스톨로도 하이킹과 스키 등 스포츠 활동을 즐기며, 구글 공동 창업자 세르게이 브린은 체조와 자전거, 롤러 하키를 한다고 예를 들었다. 하얏트는 서양에서는 ‘안 놀고 일만 하면 바보가 된다’는 속담이 있듯 효율적으로 일하기 위해 다양한 취미활동을 즐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중 많은 CEO들이 건강도 지키고 기분전환을 하기 위해 스포츠를 즐기고 있다고 했다. 마이크로소프트 경영일선에서 은퇴하고 기술 고문을 맡고 있는 게이츠는 스포츠 마니아다. 학창시절 육상과 탁구, 테니스 등 라켓 종목을 즐겼다. 올해로 만 67세인 게이츠는 하루를 러닝머신위에서 1시간 걷거나 달리는 것으로 시작한다.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오래전부터 아침 유산소운동은 인지 능력을 향상시키고 집중력을 높여준다는 연구결과가 이어져 대부분의 기업 CEO와 변호사, 의사, 교수 등 속칭 잘나가는 인물들은 새벽 운동을 하루의 제일 중요한 루틴으로 생각하고 있다. 게이츠도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달리기를 즐기기 시작했다. 게이츠는 지인들과 골프도 치지만 테니스가 그의 최애(最愛) 스포츠로 알려져 있다. 요즘도 최소 주 1회 이상 테니스를 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 워싱턴 주 시애틀에서 태어난 게이츠는 변호사인 아버지와 교사인 어머니 밑에서 비교적 여유 있게 자랐다. 운동을 좋아했던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어렸을 때부터 스포츠를 접했다. 육상에서도 두각을 나타냈었고 경쟁에선 언제나 이겨야 한다는 승부근성을 가지고 있었다. 탁구와 테니스 등 라켓 종목을 즐겼는데 고등학교 때부턴 테니스 광으로 불릴 정도로 집중했다. 잠시 다닌 하버드대 때도 테니스는 삶의 일부였다. 한 미국 매체에서는 게이츠가 분석적 지능(analytical intelligence) 때문에 테니스에 빠졌을 것이라고 했다. 테니스는 경기 내내 짧은 시간에 판단하고 결정을 내려야 한다. ‘포핸드로 칠까? 백핸드로 칠까’ ‘짧게 보낼까? 길게 보낼까?’ 테니스 선수는 경기 중에 늘 즉각적인 판단을 내려야 한다. 이런 매력이 게이츠를 매료시켰다는 분석이다. 게이츠는 하버드대를 자퇴하고 마이크소프트를 창업해 키울 때인 1970년대 중반부터 수년간 테니스를 사실상 포기하고 살았다. 게이츠는 2016년 그의 블로그 ‘GatesNote’에 “마이크로소프트를 키우려는 열정이 불탔을 땐 테니스를 포기해야 했다. 내가 그 당시 유일하게 했던 운동이 사무실 주변을 달리거나 제자리 뜀뛰기였다”고 했다. 사업이 안정되면서 다시 테니스를 치기 시작했고 2000년 마이크로소프트 CEO에서 내려오면서는 테니스 열정을 불태웠다. 시간적으로 여유가 많아 졌기 때문이다. 몇 년 전 그는 “최소 주 1회는 테니스 코트에서 땀 흘린다. 그리고 내가 60세 넘었다고 누구도 날 무시하지 못할 정도로 실력도 키웠다”고 했다. 게이츠가 테니스 마니아란 사실은 2017년 남자테니스 전 세계랭킹 1위였던 ‘테니스 황제’ 로저 페더러(41·스위스)와 자선 테니스경기를 치르면서 전 세계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페더러는 일찌감치 ‘로저 페더러 재단’을 만들어 다양한 기부활동을 하고 있었다. 당시 페더러가 유명인과 아프리카를 돕는 자선경기를 준비하다 게이츠가 자신의 경기에 와서 열렬히 응원하는 등 테니스 광이라는 사실을 알고 먼저 부탁해서 성사된 일이다. 게이츠는 US오픈 등 각종 테니스 대회도 자주 관람해 페더러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17년 4월 29일 열린 페더러와 첫 자선경기에 대해 그는 ‘GagesNote’에 이렇게 썼다. “나를 흥분시키게 만든 대중 앞에서 테니스를 쳤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선수인 페더러와 테니스 한번 치는 게 꿈이었는데 이뤄진 것이다. 내가 테니스를 많이 치기는 했지만 친구와 친선경기를 하거나 코치들로부터 기술 훈련을 받은 것뿐이었다. 1만6000여 관중들 앞에서 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였다. 긴장하면 제대로 테니스를 칠 수 없다. 그렇게 플레이하면 계속 실수를 반복하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그래서 훈련도 많이 했다. 경기 당일 내 경기에 집중했다. 페더르가 잘 도와줬다. 솔직히 상대 프로 선수인 존 이스너(미국)의 서브는 손도 대지 못했다. 그가 천천히 쳐줘도 받아 넘기기 힘들었다. 어쨌든 우리가 이겼다. 좋은 추억이었다.” 페더러-게이츠 조는 1세트 이벤트 경기에서 이스너-마이크 맥크리디(기타리스트) 조를 6-4로 이겼다. 당시 이벤트 경기로 200만 달러 이상의 기부금을 모았다. 게이츠는 2000년부터 전처인 멀린다와 함께 빌&멀린다 게이츠 재단을 만들어 다양한 기부활동을 했지만 페더러와의 테니스 자선경기를 계기로 좋은 목적의 이벤트에도 관심을 가지게 됐다. 게이츠는 이후에도 2018, 2020년, 페더러와 함께 하는 테니스 자선경기에 참여했다. 게이츠는 기분 전환을 위해 골프도 자주 친다. 캘리포니아 ‘The Vintage Club’에 1250만 달러짜리 맨션을 가지고 있을 정도다. 그는 “골프는 일에서 벗어나 야외로 나가 즐기는 최고의 스포츠”라고 했다. 다시 ‘초생산성’의 저자 하얏트로 돌아가 보자. 그는 “바쁜 삶에서 빠져 나와 단 몇 분만이라도 자연과 교감하면 정신적 체력과 인지 능력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식물원을 산책하고 나면 산책 전에 비해 기억력과 주의력이 20% 향상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일만 한다고 결코 능률이 오르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러셀 클레이튼은 하버드 비즈니스리뷰에 “명확한 목적에 따라 계획적이고 조직적이며 반복적으로 수행하는 운동은 일과 가정을 조화롭게 양립시키는 능력과 분명한 상관관계를 보인다는 최근 연구 결과가 있다”고 주장했다. 클레이튼은 2가지로 이 연구결과를 요약했다. 첫 번째는 “운동은 스트레스를 낮추고, 스트레스 감소는 일과 가정 두 영역에서 활동하는 시간을 모두 즐겁고 생산적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둘째는 운동이 자기 효능감을 높인다는 것이다. 자기 효능감은 주어진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능력이 자신에게 있다고 믿는 마음가짐이다. 간단히 말해 운동은 스트레스를 줄이고, 세상을 정복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을 갖게 한다. 이러한 마음가짐은 우리가 가정과 직장에서 주어지는 책무에 접근하는 방식을 상당히 변화시킨다. 2013년 핀란드 연구원들이 쌍둥이로 태어난 남성 5000명을 거의 30년 동안 추적하며 누가 활동적인 성향을 띠고 누가 비활동적인 성향을 띠는 지 조사한 결과에서도 운동이 주는 긍정적인 효과가 나타난다. 이 연구에 따르면 동등한 유전적 잠재력을 지닌 것으로 봐도 무방한 쌍둥이들 사이에서도 규칙적인 운동을 한 사람이 장기적으로 14~17%가량 높은 소득을 올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운동을 하는 사람은 업무상 어려움에 직면했을 때 운동을 하지 않은 사람에 비해 끈기 있게 버티고, 경쟁적인 상황에 적극적으로 뛰어드는 모습을 보인다”. 이러한 특성은 비즈니스 환경에 곧바로 적용되는 것으로 결과적으로 시장에서 엄청난 우위를 차지하는데 기여한다. 빌 게이츠 같은 세계적인 CEO 대부분이 왜 운동과 스포츠를 즐기는 지를 보여주는 연구 결과다.양종구기자 yjongk@donga.com}

    • 2022-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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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근육 운동하니 성량 풍부해지고, 성악할 때 여유도 생겼죠”[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소프라노 변여진 씨(65)는 사실상 남성들의 전유물이던 1970년대 후반부터 헬스클럽에 다니며 근육을 키웠다. 교수님들이 운동을 강조했기 때문에 좋은 목소리를 위해 헬스클럽에서는 사실상 ‘홍일점’으로 주목을 받으면서도 계속 땀을 흘린 것이다. 그는 “엄정행 선생님이 배구선수 출신이었고 주위를 살펴보니 진짜 건강한 분들이 성량도 좋았다. 그래서 열심히 몸도 만들었다”고 회상했다. 테니스도 쳤지만 주로 근육운동에 집중했다. “성악을 전공하던 대학시절부터 교수님들께서 좋은 목소리를 내려면 운동도 열심히 해야 한다고 강조하셨죠. 그래서 젊었을 때부터 웨이트트레이닝을 시작했어요. 결혼하고 남편 뒷바라지하다 뒤늦게 대학원에 들어가 다시 성악을 공부할 때 느꼈습니다. 정말 근육이 잡히니 목소리도 좋아진다는 것을….” 변 씨는 대학 졸업하고 바로 결혼하는 바람에 성악공부는 이어가지 못했지만 근육운동은 계속했다. 두 아이를 키우는 가정주부이면서도 1996년 서울 강남 대치동에 있던 그랜드백화점 스포츠센터가 개최한 헬스 체력왕 대회에 나가 2위에 입상하기도 했다. 하지만 남편 일이 바빠지면서 내조에 집중하느라 몇 년 동안 몸만들기를 등한시 할 수밖에 없었던 적이 있었다. 그러자 바로 탈이 났다. “배가 나오고 살도 찌면서 늘 컨디션도 좋지 않았어요. 결국 54세쯤에 척추 협착증 판정을 받았어요. 갑자기 오른쪽 다리가 저려서 걷지를 못할 정도였죠. 의사는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는데 가급적 수술은 피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도수치료를 받으면서 운동을 시작했어요. 먼저 많이 걸었고 다시 웨이트트레이닝을 시작했죠.” 과거 꾸준하게 운동을 해서 인지 바로 몸이 좋아졌다. 변 씨는 “처음엔 허벅지와 허리 강화에 집중했다. 몸 전체적으로 균형이 맞아야하는데 운동을 몇 년 쉬었더니 허리와 허벅지 근육이 약해서 허리 협착증이 온 것이다”고 했다. 그 때부터 전문가의 PT(Personal Training)도 받기 시작했다. 그동안 헬스클럽을 찾아 운동을 하기는 했지만 전문가의 도움을 받지는 않았었다. 한번 아프고 나니 운동의 중요성을 새삼 다시 깨달았다. 변 씨는 “당시 갱년기도 왔었다. 남편은 잘 나갔지만 난 그동안 뭐했나하는 생각에 우울하기도 했었다. 그것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게 운동이다. 건강에 운동을 필수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고 했다. 변 씨는 몸이 다시 좋아지자 추계예술대학 대학원에 진학해 성악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당시 젊었을 땐 느끼지 못했던 운동 효과를 제대로 체득한 것이다. 그는 “성량도 풍부해지고 노래를 부르는 여유도 생겼다. 몸이 건강하니 자신감도 생겼다. 젊은 학생들이 나를 보고 따라하려고 노력했다. 몸이 건강하니 목소리가 잘 나온다 교수님들도 칭찬했다. 그 때 공부를 다시 시작하길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고 했다. 김병준 인하대 교수(스포츠심리학)는 변 씨의 뒤늦은 성악공부와 성과에 대해 “근육운동으로 몸이 바뀌면 자기 존중감이 상승한다. 특히 여성들의 경우 나이 들면서 초라해진 외모 때문에 빠질 수 있는 우울증을 막아준다”고 말했다. 송홍선 한국스포츠정책과학원 스포츠과학실장(운동생리학)은 “나이들 수록 근육운동이 중요하다. 근육운동은 성호르몬을 활성화시킨다. 운동으로 배출된 성장호르몬은 몸속의 아미노산이 근육과 뼈, 조직 등을 재합성하게 촉진한다. 우리 몸을 새롭게 다시 태어나게 하는 것이다”고 말했다. 폐경기 여성들에게 근력운동이 유산소운동보다 갱년기 증상 개선에 효과적이란 연구결과도 있다. 2015년 혼자 12곡을 불러야 하는 대학원 졸업 독창회도 잘 마쳤고, 음악회에 출연하기도 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다시 집안일에 집중해야 하는 일이 생겨 노래 부르기를 또 접어야 했다. 변 씨는 “뒤늦게 대학원에서 가서 내가 소프라노의 자질은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확인한 것으로 만족한다”고 했다. 변 씨는 요즘도 주 2회 PT를 받으며 주 4~5회 웨이트트레이닝을 한다. 운동시간은 매번 2시간 이상이다. 그는 “월요일에는 하체, 화요일엔 등, 수요일엔 쉬고 목요일에는 가슴 등 상체, 금요일에는 복근 등 코어운동을 한다. 이렇게 부위별로 돌아가면서 해야 근육 피로도를 줄이고 효율적인 운동을 할 수 있다”고 했다. 변 씨가 하는 방식을 분할 웨이트트레이닝이라고 한다. 분할법은 신체를 여러 부위로 나눠서 운동하는 것으로, 2, 3, 4, 5분할 등이 있다. 큰 근육인 가슴, 등, 하체를 중심으로 팔과 어깨 근육을 덧붙여 진행한다. 예를 들어, 2분할은 상체와 하체로 나눠서, 3분할은 가슴 근육과 팔삼두근을 묶어 하루, 등 근육과 팔이두근을 묶어 하루 그리고 하체 근육과 어깨 근육을 묶어 하루 운동하는 식이다. 분할법을 사용하는 이유는 단련한 근육에 충분한 휴식시간을 주면서 근육 훈련 빈도도 높이기 위해서다. 전문가들은 운동과 운동 사이 신체를 분할해 운동하면 매일 운동을 해도 각 근육별 회복 기회를 적절히 줄 수 있다고 한다. 변 씨는 보디빌더로 활동하고 있는 아들 노희관 씨(39)의 도움도 많이 받고 있다. 노 씨는 어릴 때부터 어머니의 운동하는 모습을 보고 따라하다 대학에서 체육을 전공한 뒤 보디빌더 겸 트레이너로 활동하고 있다. 변 씨는 “뭐 남들이 다하는 공부보다도 아들이 좋아하는 것을 하길 바랐는데 잘 해주고 있어 고맙다”고 했다. 그는 서울 집근처(양재동) 헬스클럽에서도 운동하지만 아들이 운영하는 VVS GYM(경기도 광명)도 자주 찾아 직접 PT를 받기도 한다. 아들 희관 씨는 서울 부모님 집을 찾아서 어머니의 몸 상태를 체크해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기도 한다고. 변 씨는 근육운동이 재미있지만 하기 싫을 땐 ‘아쿠아로빅(물속에서 하는 에어로빅)’을 하기도 한다. 남편과 함께 도봉산, 청계산 등 수도권 산을 오르기도 한다. 이런 노력의 결과로 10여 년 전 고생했던 척추 협착증도 사라졌고 모든 성인병 수치도 정상이다. 변 씨는 “이젠 각종 보디빌딩 대회에 출전하고 싶다. 올해로 78세인 임종소 님도 75세에 대회에 출전해 입상했더라. 나도 도전하겠다”고 했다. 2019년 6월 6일자 본 칼럼에 소개했던 임종소 씨는 보디빌딩 대회에서 입상한 뒤 시니어모델로 활동하고 있다. 변 씨는 “임 선생님보다 10년 넘게 젊은데 도전하지 못할 게 뭐가 있냐”며 활짝 웃었다. 창용찬 대한보디빌딩협회 코치아카데미 원장(67)은 변 씨에 대해 “기름만 바르면 된다”고 평가했다. 보디빌딩계에서 바로 대회에 출전해도 된다는 의미다. 창 원장은 “관리를 잘 해서인지 각 부위 근육이 고르게 잘 발달해 있다. 나이 들면 관리하기 힘든 복근만 조금 더 만들면 좋은 결과도 기대된다”고 했다. 변 씨와 창 원장은 그랜드백화점 스포츠센터 헬스 체력왕 대회 때 잠시 인연이 있었다. 당시 대한보디빌딩협회 임원이었던 창 원장은 머슬 & 피트니스란 보디빌딩 잡지도 발행하고 있었고 체력왕 대회에 나온 변 씨를 취재해 잡지에 게재한 인연이 있다. 변 씨는 “창 원장님이 그 때 잡지에 낸다고 해서 남편이 싫어할까봐 거절했다. 그런데 나중에 남편에게 얘기했더니 쿨하게 해보라고 해 잡지에 두 달에 걸쳐 나갔다”고 회상했다. 변 씨는 ‘100세 시대 건강법’ 인터뷰 및 사진촬영을 위해 코치아카데미를 방문하면서 오랜만에 창 원장과 재회하게 됐다. 창 원장은 “대회에 출전하는 것 자체가 동기부여가 되고 또 좋은 성적이 나오면 더 운동을 열심히 하게 된다”며 대회 출전을 적극 추천했다. 변 씨는 말했다. “주변에서 운동을 등한시하다 뇌졸중으로 쓰러지는 제 또래 사람들을 보면 참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어요. 조금만 관리했으면 그런 일이 없었을 텐데…. 전 운동의 즐거움과 효과를 일찌감치 알게 돼 너무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평생 몸 만들면서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 겁니다.”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 2022-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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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악하며 알았죠. 근육 키우면 성량도 풍부해진다는 걸” [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성악을 전공하던 대학 시절부터 교수님들께서 좋은 목소리를 내려면 운동도 열심히 해야 한다고 하셨죠. 그래서 젊었을 때부터 웨이트트레이닝을 시작했어요. 결혼하고 남편 뒷바라지하다 뒤늦게 대학원에 들어가 다시 성악을 공부할 때 느꼈습니다. 정말 근육이 잡히니 목소리도 좋아진다는 것을….” 소프라노 변여진 씨(65)는 사실상 남성들의 전유물이던 1970년대 후반부터 헬스클럽에 다니며 근육을 키웠다. 교수님들이 운동을 강조했기 때문에 좋은 목소리를 위해 헬스클럽에서는 사실상 ‘홍일점’으로 주목을 받으면서도 계속 땀을 흘린 것이다. 그는 “엄정행 선생님이 배구 선수 출신이었고 주위를 살펴보니 진짜 건강한 분들이 성량도 좋았다. 그래서 열심히 몸을 만들었다”고 회상했다. 테니스도 쳤지만 주로 근육운동에 집중했다. 변 씨는 대학 졸업하고 바로 결혼을 하는 바람에 성악 공부는 이어가지 못했지만 근육운동은 계속했다. 아이들을 키우는 가정주부이면서도 1996년 서울 강남 그랜드백화점 스포츠센터가 개최한 헬스 체력왕 대회에 나가 2위로 입상하기도 했다. 하지만 남편 일이 바빠지면서 내조에 집중하느라 몇 년 동안 몸만들기를 등한시한 적이 있었다. 그러자 바로 탈이 났다. “배가 나오고 살도 찌면서 늘 컨디션이 좋지 않았어요. 결국 54세쯤에 척추협착증 판정을 받았어요. 갑자기 오른쪽 다리가 저려서 걷지를 못할 정도였죠. 의사는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는데 가급적 수술은 피해야 한다고 생각해 도수치료를 받으면서 운동을 시작했어요. 많이 걸으면서 다시 웨이트트레이닝을 시작했죠.” 과거 꾸준하게 운동을 해서인지 바로 몸이 좋아졌다. 변 씨는 “처음엔 허벅지와 허리 강화에 집중했다. 몸 전체적으로 균형이 맞아야 하는데 운동을 몇 년 쉬었더니 허리와 허벅지 근육이 약해서 허리 협착증이 온 것이다”라고 했다. 그때부터 전문가의 PT(Personal Training)도 받기 시작했다. 그동안 헬스클럽을 찾아 운동을 하기는 했지만 전문가의 도움을 받지는 않았었다. 한번 아프고 나서 운동의 중요성을 새삼 깨달았다. 변 씨는 “당시 갱년기도 왔었다. 남편은 잘나갔지만 난 그동안 뭐 했나 하는 생각에 우울하기도 했다. 그것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게 운동이다. 건강에 운동은 필수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고 했다. 변 씨는 몸이 좋아지자 대학원에 진학해 성악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그때 젊은 시절엔 제대로 느끼지 못했던 운동 효과를 제대로 체득한 것이다. 그는 “성량도 풍부해지고 노래를 부를 여유도 생겼다. 몸이 건강하니 자신감도 생겼다. 젊은 학생들이 나를 보고 따라 하려고 노력했다. 교수님들도 목소리가 잘 나온다고 칭찬했다. 공부를 다시 시작하길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고 했다. 2015년 혼자 12곡을 불러야 하는 추계예술대학 대학원 졸업 독창회도 잘 마쳤고, 음악회에 출연하기도 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집안일에 집중해야 하는 일이 생겨 노래 부르기도 다시 접었다. 변 씨는 “뒤늦게라도 대학원에 가서 내가 소프라노의 자질은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확인한 것으로 만족한다”고 했다. 변 씨는 요즘도 주 2회 PT를 받으며 주 4∼5회 웨이트트레이닝을 한다. 운동시간은 매번 2시간. 그는 “월요일에는 하체, 화요일엔 등, 수요일엔 쉬고 목요일에는 가슴 등 상체, 금요일에는 복근 등 코어운동을 한다. 이렇게 부위별로 돌아가면서 해야 근육 피로도를 줄이고 효율적인 운동을 할 수 있다”고 했다. 근육운동이 재미있지만 하기 싫을 땐 ‘아쿠아로빅’(물속에서 하는 에어로빅)을 한다. 남편과 함께 도봉산, 청계산 등 수도권의 산을 오르기도 한다. 이런 노력의 결과로 10여 년 전 고생했던 척추협착증이 사라졌고 모든 성인병 수치도 정상이다. 변 씨는 “이젠 각종 보디빌딩 대회에 출전하겠다. 올해로 78세인 임종소 님도 75세에 대회에 출전해 입상했더라. 나도 도전하겠다”고 했다. 2019년 6월 6일자 본 칼럼에 소개했던 임종소 씨는 보디빌딩 대회에서 입상한 뒤 시니어모델로 활동하고 있다. 변 씨는 “임 선생님보다 10년 넘게 젊은데 도전하지 못할 게 뭐가 있냐”며 활짝 웃었다.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 2022-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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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릎 줄기세포 수술한 히딩크, 13년 만에 스쿼시 쳤다며 기뻐해”[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한국의 ‘4강 신화’를 창출한 거스 히딩크 전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76)은 2013년 10월 10일 서울 하얏트호텔에서 송준섭 강남제이에스병원 원장(53)을 만난 게 엄청난 행운이었다. 당시 11월 벨기에에서 인공관절 수술을 하기로 예약까지 한 상태에서 송 원장으로부터 제대혈줄기세포 수술법에 대해 들은 것이다. 히딩크 감독은 약 한 달 뒤 송 원장에게 “줄기세포 수술을 받겠다”고 통보했다. 송 원장은 “당시 히딩크 감독이 혹 줄기세포 수술이 실패하면 인공관절이 가능하냐고 물어봤다”고 회상했다. 사실 송 원장에게도 히딩크 감독이 첫 번째 수술이었다. 줄기세포 수술을 가능하게 한 무릎연골 재생 치료제 ‘카티스템’이 2012년 식약청 허가가 났고 송 원장도 뒤늦게 이 혁신적인 치료법에 대해 연구하고 있었지만 시술은 하지 못했었다. 송 원장은 “솔직하게 우리나라에서 줄기세포를 이용한 연골재생술을 막 시도하는 시점이라고 얘기했더니 영문으로 관련 자료를 보내달라고 했다. 그리고 결정했다”고 회상했다. 히딩크 감독은 당시 인공관절 수술을 하면 테니스와 골프 등을 즐기지 못할 것에 대해 걱정하고 있었다. 히딩크 감독은 2014년 1월 송 원장에게 제대혈줄기세포 무릎 수술을 받은 뒤 새 인생을 살고 있다. 지팡이와 휠체어에서 벗어나 아프기 전 즐기던 테니스와 스쿼시, 골프, 축구를 맘껏 하며 건강하고 행복한 노년을 보내고 있다. “그 고통 안 당해본 사람은 모릅니다. 퇴행성관절염으로 연골이 다 없어져 오른쪽 무릎이 너무 뻣뻣하고 뼈와 뼈가 맞닿아 주는 통증으로 괴로웠죠. 밤에도 가시가 찌르는 듯한 아픔에 잠을 못 이루었죠. 너무 힘들어 제발 편하게 자고 싶다고 신께 빌었습니다.” 송 원장은 수술 전 히딩크 감독의 상태에 대해 “심한 관절염으로 연골이 거의 남아있지 않았다. 게다가 무릎 뒤쪽 뼈에 골극(종아리 근육을 당기는 튀어나온 뼈)이 자라 무릎이 완전히 펴지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제대혈줄기세포 수술은 분만 후 아기의 탯줄에서 나온 혈액에서 추출한 줄기세포를 배양해 아픈 무릎에 이식시키는 치료법이다. 그럼 연골이 다시 생긴다. 우리 몸을 구성하는 모든 근원세포인 줄기세포는 손상된 신체조직을 치유, 재생시키는 기능을 한다. 수술당시 60세 후반이었던 히딩크 감독도 사실상 새 연골을 얻었기에 다양한 스포츠를 즐길 수 있게 됐다. 환자 상태에 따라 줄기세포 수술이 불가능할 경우 인공관절 수술을 해야 한다. 이 경우 히딩크 감독이 걱정했듯 일상생활에는 문제없지만 스포츠를 즐기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 있다. “너무 행복합니다. 이제 어떤 직책도 맡고 있지 않아서 매일 스포츠를 즐기고 있다고 보면 됩니다. 제 여자친구 엘리자베스, 친구들과 테니스를 주 2~3회, 골프도 주 2~3회 칩니다. 축구도 2회 합니다. 수술 전엔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입니다.” 지난해 9월 퀴라소 대표팀 감독을 끝으로 은퇴를 선언한 히딩크 감독은 “테니스를 집중해서(intensive) 친다”고 했다. 게임을 할 때도 있지만 테니스 프로에게 부탁해 코트 구석구석으로 볼을 쳐달라고 해 운동량을 높인다는 것이다. “솔직히 난 달리고 걷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집에 러닝머신이 있지만 그보단 테니스를 격렬하게 2시간 치면 땀도 쫙 빠지고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이 든다”고 설명했다. 골프 핸디캡은 10~12인데 “나날이 스코어가 좋아지고 있다”고 했다. 축구는 네덜란드 명문 아약스에서 활약했던 프로선수 출신들과 “가볍게 2시간 씩 즐긴다”고 했다. 축구는 과격한 플레이가 나올 수 있기 때문에 격렬한 플레이는 가급적 자제하고 있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명문 첼시 FC 홍보팀은 히딩크가 첼시 사령탑을 맡고 있던 2016년 ‘히딩크 감독의 무릎 수술 전과 후’를 기획해 첼시 TV를 통해 방송하기도 했다. 첼시 TV는 수술 전 계단을 45도 각도로 왼발로 한발씩 오르던 히딩크 감독이 두 발로 뛰어 오르는 모습, 테니스 치고 축구하는 모습을 방영해 화제를 모았다. 송준섭 원장은 “수술도 중요하지만 체계적인 재활과정이 더 중요하다”고 했다. 히딩크 감독은 수술한 뒤 6주간 목발 보행을 했고 2개월 뒤 걸었다. 수술 4개월 뒤부터 고정식 자전거, 수영으로 체력을 키웠고 8개월부터 속보를 시작했다. 1년이 지난 뒤부터 가벼운 달리기도 시작했다. 1년 6개월 뒤부턴 정상생활이 가능했다. 송 원장은 “축구와 테니스 등 고강도 운동은 그 강도에 맞는 허벅지 근육을 키운 뒤 가능했다”고 말했다. 히딩크 감독은 이 과정을 충실하게 잘 따랐기에 좋아하는 스포츠를 즐기고 있는 것이다. 그는 수술이후 네덜란드 대표팀과 첼시 감독을 역임하면서도 이 분야 전문 트레이너들의 도움을 받아 꾸준하게 체력 트레이닝까지 받았다. 지난달 30일 강남제이에스병원을 찾아 검진을 받은 히딩크 감독은 오른쪽 다리 근력검사(Cybex Test)에서 앞뒤 근육의 수치가 동일 연령대 평균에 비해 월등하게 높게 나타났다. 2002 월드컵 개최 20주년 기념 ‘2022 KFA(대한축구협회) 풋볼 페스티벌’에 참석하기 위해 5월 28일 방한한 그는 도착 다음날 뉴코리아CC에서 골프를 쳤고 매일 서울 하얏트호텔 코트에서 테니스를 치고 있다. 그는 “한국을 떠나기 전까지 매일 테니스를 치겠다”며 웃었다. 송 원장은 “이젠 국내에서 줄기세포 무릎 연골 수술이 많이 확산됐는데 히딩크 감독의 역할도 컸다”고 했다. 송 원장이 지금까지 줄기세포 수술을 2050회 가까이 했는데 그 1호가 히딩크 감독이었던 것이다. 히딩크 감독 덕분에 국내 환자들도 관심을 가지게 됐다는 얘기다. 그는 “히딩크 감독님이 한국축구의 세계화에도 큰 기여를 했지만 퇴행성관절염의 근본적인 치료인 제대혈줄기세포 수술의 새 지평도 열게 해주셨다”고 했다. 송 원장은 전 세계 최초로 줄기세포 무릎 치료에 대한 SCI급 논문 5편을 등재하기도 했다. 송 원장은 “2017년엔가 히딩크 감독님이 13년 만에 스쿼시를 처음 쳤다고 너무 고맙다는 문자를 보냈을 때 큰 보람을 느꼈다”고 했다. 히딩크 감독은 100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많은 교훈을 주고 있다. 특히 무릎관절이 아프면 사람들의 활동을 제약해 건강한 삶을 방해한다. 무릎 관절이 손상되면 당장 일상생활이 불편하다. 나이가 들수록 문제가 되는 것이 신체의 무게를 고스란히 견뎌야하는 무릎 연골이다. 양반다리로 앉아서 생활하거나 같은 자세로 장시간 쪼그려 앉으면 무릎부터 망가진다. 신체를 단련하지 않은 상황에서 무리한 운동을 할 때 무릎 관절을 다치는 일도 많다. 스포츠나 운동을 하면서도 손상되기도 한다. 무릎 뼈와 뼈가 부딪치지 않도록 이를 보호하는 연골이 한쪽으로 눌려서 조금씩 닳아 없어져 걸을 때마다 무릎이 쑤시고 아프다. 결국 두 다리로 잘 걷지 못해 하체 근육이 사라지면서 노년기 건강 수명을 갉아먹는다. 100세 시대, 건강한 삶에 있어 이제 운동은 필수다. 운동 등 왕성한 활동을 해야 모든 만성질환(고혈압 등 심혈관질환, 암, 당뇨, 치매 등)을 예방할 수 있다. 스포츠 마니아 히딩크 감독은 “수술로 다시 얻은 무릎은 내 인생 최고의 선물”이라고 했다.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 2022-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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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6세 히딩크 “수술로 다시 얻은 무릎… 운동 즐기며 새 인생”[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그 고통 안 당해 본 사람은 모릅니다. 퇴행성관절염으로 연골이 다 없어져 오른쪽 무릎이 너무 뻣뻣했고 뼈와 뼈가 맞닿아 느끼는 통증으로 괴로웠죠. 밤에도 가시가 찌르는 듯한 아픔에 잠을 못 이루었죠. 너무 힘들어 제발 편하게 자고 싶다고 신께 빌기까지 했습니다.”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한국의 ‘4강 신화’를 창출한 거스 히딩크 전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76)은 2014년 1월 서울 강남제이에스병원에서 제대혈줄기세포 무릎 수술을 받은 뒤 새 인생을 살고 있다. 지팡이와 휠체어에서 벗어나 아프기 전에 즐기던 테니스와 스쿼시, 골프, 축구 등을 맘껏 하며 건강하고 행복한 노년을 보내고 있다. 제대혈줄기세포 수술은 분만 후 아기의 탯줄에서 나온 혈액에서 추출한 줄기세포를 배양해 아픈 무릎에 이식시키는 치료법이다. 연골이 재생된다. 우리 몸을 구성하는 모든 근원세포인 줄기세포는 손상된 신체조직을 치유, 재생시키는 기능을 한다. 수술당시 60세 후반이었던 히딩크 전 감독도 사실상 새 연골을 얻었기에 다양한 스포츠를 즐길 수 있게 됐다. 나이가 너무 많거나 줄기세포 이식이 불가능할 경우엔 인공관절 수술을 해야 한다. “너무 행복합니다. 이제 어떤 직책도 맡고 있지 않아서 매일 스포츠를 즐기고 있다고 보면 됩니다. 제 여자친구 엘리자베스 등 친구들과 테니스를 주 2∼3회, 골프를 주 2∼3회 칩니다. 축구도 주 2회 합니다. 수술 전엔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입니다.” 지난해 9월 퀴라소 대표팀 감독을 끝으로 은퇴를 선언한 히딩크 전 감독은 “테니스를 집중해서(intensive) 친다”고 했다. 게임을 할 때도 있지만 테니스 프로에게 부탁해 코트 구석구석으로 볼을 쳐달라고 해 운동량을 높인다는 것이다. “솔직히 난 달리고 걷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집에 러닝머신이 있지만 테니스를 격렬하게 2시간 치면 땀도 쫙 빠지고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이 든다”고 설명했다. 골프 핸디캡은 10∼12인데 “무릎 수술 뒤 나날이 스코어가 좋아지고 있다”고 했다. 축구는 네덜란드 명문 아약스에서 활약했던 프로선수 출신들과 “가볍게 2시간씩 즐긴다”고 했다. 축구는 과격한 플레이가 자주 나올 수 있기 때문에 격렬한 플레이는 자제하고 있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명문 첼시 FC 홍보팀은 히딩크 전 감독이 첼시 사령탑을 맡고 있던 2016년 ‘히딩크 감독의 무릎 수술 전과 후’를 기획해 첼시TV를 통해 방송하기도 했다. 히딩크 전 감독 수술을 집도한 송준섭 원장(53)은 “수술도 중요하지만 체계적인 재활 과정이 더 중요하다”고 했다. 히딩크 전 감독은 수술한 뒤 6주간 목발 보행을 했고 2개월 뒤 걸었다. 수술 4개월 뒤부터 고정식 자전거, 수영으로 체력을 키웠고 8개월부터 속보를 시작했다. 1년이 지난 뒤부터 가벼운 달리기도 시작했다. 1년 6개월 뒤부턴 정상 생활이 가능했다. 송 원장은 “축구와 테니스 등 고강도 운동은 그 강도에 맞는 허벅지 근육을 키운 뒤 가능했다”고 설명했다. 히딩크 전 감독은 이 과정을 충실하게 잘 따랐기에 지금도 좋아하는 스포츠를 즐기고 있다. 그는 수술 후 네덜란드 대표팀과 첼시 감독 등을 역임하면서도 팀 트레이너 등의 도움을 받아 꾸준하게 체력을 키웠다. 지난달 30일 강남제이에스병원을 찾아 검진을 받은 히딩크 전 감독은 오른쪽 다리 근력검사(Cybex Test)에서 앞뒤 근육의 수치가 동일 연령대 평균에 비해 월등하게 높게 나타났다. 2002 월드컵 개최 20주년 기념 ‘2022 KFA(대한축구협회) 풋볼 페스티벌’에 참석하기 위해 지난달 28일 방한한 그는 도착 다음 날 뉴코리아CC에서 골프를 쳤고 매일 서울 하얏트호텔 코트에서 테니스를 치고 있다. 그는 “한국을 떠나기 전까지 매일 테니스를 치겠다”며 웃었다. 히딩크 전 감독은 100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교훈을 준다. 무릎관절이 아프면 사람들의 활동이 제한돼 건강한 삶을 살 수 없다. 운동 등 왕성한 활동을 해야 모든 만성질환(고혈압 등 심혈관질환, 암, 당뇨, 치매 등)을 예방할 수 있다. 100세 시대, 건강한 삶을 위해 이제 운동은 필수다. 스포츠마니아 히딩크 전 감독은 “수술로 다시 얻은 무릎은 내 인생 최고의 선물”이라고 했다. 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 2022-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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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母 돌아가신게 인생의 전환점…걷기로 시작해 100대 명산 완등했어요”[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2021년 8월 7일 란 주제로 양종구 기자의 100세 시대 건강법에 등장했던 정용권 씨(53)가 5월 29일 블랙야크가 인정한 대한민국 100대 명산을 완등했다. 정 씨는 최근 “2020년 8월 12일 울산 영남알프스 신불산 등정으로 시작해 2022년 5월 29일 강원 계방산까지 대한민국 100대 명산 등정 656일간의 장정을 마무리했다”고 밝혀왔다. 100대 명산은 블랙야크와 산림청 인증 두 가지가 있는데 인증서 발급은 블랙야크에서만 해준다. 회원 가입해서 기준에 맞게 등록하면 완봉했을 때 인증서를 준다. 정 씨는 “이제 백두대간을 종주하겠다”고 말했다.충북 청주에서 개인 사업을 하는 정 씨는 5년 전 시작한 걷기와 등산으로 즐겁고 건강한 삶을 만들어 가고 있다. 정 씨는 5년 전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운동을 시작했다. 그는 “어머니께서 지병으로 한달 고생하다 가셨다. 사실 그 때까지는 죽음이라는 것을 단 한번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데 어머니를 지켜보며 죽음이라는 게 먼 데 있는 게 아니라 가까이 있다는 것을 느꼈다. 나도 죽을 수 있다고 처음 생각했다”고 말했다. 당시 정 씨의 체중이 120kg정도 나갔다. 그는 “아 내가 무분별하게 살았구나. 정말 생각 없이 살았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했다. 일을 마치고 저녁 때 허기진다는 이유로 밥 3공기에 맥주 4캔을 마시고 바로 자는 게 생활이었다고 했다.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해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그는 “가장 쉬운 게 걷기다. 처음엔 아파트 한바퀴 도는 것부터 시작했다. 그 다음 공원도 가고 마트도 가고…. 조금씩 늘려갔다. 어머니 돌아가신 게 내겐 인생의 전환점이다”고 했다. 1km에서 2km, 2km에서 5km, 5km에서 10km. 걷는 거리가 늘었다. 자연스럽게 걷기가 생활화가 됐다. 정 씨는 어느 순간 몸이 반응하기 시작했다고 했다. 그는 “몸이 더 많이 걸어주기를 바라는 것 같았다. 그래서 운동량을 계속 늘렸다. 그러다보니 매일 10km 이상을 걷게 됐다”고 했다. 등산을 한 것도 몸이 반응해서란다. 산 오르는 것도 처음엔 집 주변 해발 200m 낮은 산부터 300m, 400m로 차근차근 올렸다. 어느 순간 한라산 지리산 설악산 등 명산도 가게 됐다. 정 씨는 걷기 시작 1년째부터 운동 루틴이 현재 하고 있는 것으로 정해졌다고 했다. 매일 11km를 걷고 주말이나 공휴일에는 산으로 가는 게 그의 운동 루틴이다. 2년 정도 지나면서부터 해발 1000m 이상급 산을 오르게 됐다. 2020년 8월부터는 대한민국 100대 명산에 오르기 시작했다. 그는 “체력이 좋아지다 보니 한라산을 찾게 됐다. 한라산 7개 코스를 다 돌아봤다. 설악산도 12개 코스를 4, 5번에 걸쳐 훑었다. 산이 너무 좋아졌다. 온갖 나무와 꽃, 바위, 계곡, 능성 등 경관도 좋았다. 산과 하나 되는 느낌도 좋았다. 정상에 올랐을 때의 쾌감이라니…. 어느 순간 능선을 타는 맛을 알게 됐다. 그러다 보니 산 전체의 맛까지 느꼈다. 그러다 산을 좀 체계적으로 타보자는 생각에 대한민국 100대 명산을 오르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그는 “한번 산에 오르면 3~4시간은 후딱 지나간다. 능선을 탈 경우엔 6~7시간 걸린다. 이젠 산을 타지 않으면 생활이 힘들어진다. 내게 등산은 생활의 활력소다”고 했다. 정 씨는 다이어트를 위해 산을 탄 게 아니라는 것을 강조했다. “솔직히 다이어트를 생각하고 산을 탔으면 지금까지 못 왔을 겁니다. 일찌감치 포기했을 거예요. 살아야겠다고 생각해 걸었고 걷다보니 산을 올랐고, 산이 좋아 산을 타다보니 어느 순간 다이어트란 선물이 제게 와 있었습니다. 혹 다이어트를 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걷은 것과 등산을 취미로 삼으라고 조언하고 싶습니다. 그럼 시간이 지나면 살은 자연스럽게 빠집니다.” 정 씨는 요즘 옷 입는 맛이 난다고 한다. 3년 전부터 체중은 그대로지만 몸이 탄탄해져 옷맵시가 달라졌다는 것이다. 정 씨가 이렇게 열심히 산을 탈 수 있었던 원동력은 아내 인필선 씨(51)였다고 했다. “처음부터 집사람이 함께 해줬어요. 함께 걷고 산에도 함께 갔죠. 제가 흔들리지 않고 지금까지 등산을 즐기고 있는 데는 아내의 도움이 컸습니다. 도시락과 과일 등 필요한 것도 잘 챙겨줬습니다. 산에 가면 먹는 것도 중요합니다.” 정 씨는 걷고 산을 타다보니 살이 빠졌고 건강도 얻었다. 부부간의 정도 더 두터워졌다. 그는 “평생 아내와 함께 산을 타며 즐겁고 건강하게 살겠다”고 했다. 정 씨 부부는 100세 시대를 건강하게 사는 대표적인 모범 사례이다. 스포츠심리학적으로 부부가 함께 하는 것은 운동을 지속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스포츠심리학에 ‘사회적 지지(지원)’라는 게 있다. 특정인이 어떤 행동을 계속할 수 있게 해주는 요인으로 정서적, 정보적, 물질적, 동반자 등의 지지를 말한다. 이 중 동반자 지지가 가장 강력하다. 운동을 지속적으로 할 수 있게 만드는 요인으로서 동반자가 중요한데 그 동반자가 남편이나 아내라면 더 오래 즐길 수 있다는 뜻이다. 김병준 인하대 교수(스포츠심리학)는 “부부가 함께 즐기면 서로 의지하며 운동을 지속할 가능성이 더 높고, 서로를 이해하는 마음도 생겨 금슬도 좋아진다”고 말했다. 인필선 씨도 100대 명산 완등 인정서를 받았다. 정 씨는 “백두대간도 아내와 함께 종주하겠다”고 했다.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 2022-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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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尹대통령, 득점왕 손흥민에 직접 ‘청룡장’ 준다

    윤석열 대통령이 세계 축구 최고 레벨인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에서 아시아 선수 첫 득점왕을 차지한 손흥민(30·토트넘·사진)에게 체육훈장 청룡장을 직접 수여하기로 했다. 청룡장은 맹호장 거상장 백마장 기린장 등 5가지 체육훈장 중 가장 높은 등급이다.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금메달리스트인 손기정 선생(1912∼2002)과 산악인 엄홍길 대장(62), 프로 골퍼 박세리(45), ‘피겨 여왕’ 김연아(32) 등이 받거나 추서됐다. 30일 대통령실에 따르면 16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손흥민에 대한 청룡장 상훈이 결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한국 스포츠 발전에 기여한 체육인에게 청룡장을 수여할 때는 주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이례적으로 윤 대통령이 직접 손흥민에게 청룡장을 주기로 한 것이다. 윤 대통령은 앞서 23일 손흥민이 2021∼2022시즌 EPL 득점왕을 확정짓자 축전을 보내 “아시아 선수 최초 득점왕은 손흥민 선수 개인의 영예일 뿐만 아니라 아시아 축구계 모두가 축하할 경사”라고 전한 바 있다. 윤 대통령이 취임 후 스포츠 선수에게 보낸 첫 번째 축전이었다. 2002 한일 월드컵 4강을 이끌어 청룡장을 받은 거스 히딩크 전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76)도 손흥민의 EPL 득점왕 등극을 높이 평가했다. 한일 월드컵 개최 20주년 기념 ‘2022 KFA(대한축구협회) 풋볼 페스티벌’ 참석차 방한 중인 히딩크 전 감독은 “손흥민은 짧은 시간에 엄청난 성공을 거뒀다. 이제 EPL에서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는 세계적인 선수가 됐다”며 “아주 어려운 벽을 넘어섰다. 이젠 언제든 다시 득점왕을 할 수 있을 것이다”고 했다. 전주영 기자 aimhigh@donga.com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 2022-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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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독]76세 히딩크 "지금껏 테니스 치는 비결? 한국서 받은 무릎 수술 덕"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신화’의 주역 거스 히딩크 전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76)은 28일 한국에 온 뒤 틈나는 대로 골프와 테니스를 즐기고 있다. 29일엔 뉴코리아CC에서 골프를 쳤고 30일 새벽엔 여자친구 엘리자베스와 테니스를 쳤다. 그는 “한국을 떠나기 전까지 매일 테니스를 칠 계획”이라고 말했다. 30일 오전 서울 강남제이에스병원에 검진 차 방문한 히딩크 전 감독은 “2014년 오른쪽 무릎 퇴행성관절염 수술을 받은 뒤 완전히 달라진 삶을 살고 있다”며 만족해했다. 그는 그해 1월 송준섭 강남제이에스병원 원장(53)의 집도로 제대혈줄기세포 수술을 받았고, 8년 넘게 지난 지금도 큰 문제없이 다양한 스포츠를 즐기고 있다. 제대혈줄기세포 수술은 아픈 무릎의 연골을 긁어내고 줄기세포를 심어 연골을 재생시키는 치료법이다. 히딩크 전 감독은 지난해 5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으로 큰 고생을 했는데 탄탄한 무릎 때문에 잘 버텼다고 했다. 그는 “10일 동안 체중이 10kg이 빠질 정도로 힘들었다. 코로나19와 싸우기 위해 운동을 해야 했는데 과거와 달리 무릎이 안 아파 테니스와 골프로 체력을 키울 수 있었다”며 웃었다. 2002 월드컵 20주년 기념 ‘2022 KFA(대한축구협회) 풋볼 페스티벌’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한 히딩크 감독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에서 아시아 선수 최초로 득점왕에 오른 손흥민(30·토트넘)에 대해 “짧은 시간에 엄청난 성공을 거뒀다”며 자랑스러워했다. 그는 “이제 세계적인 선수가 됐다. 아주 어려운 벽을 넘어섰다. 이젠 수준급으로 도약했으니 언제든 다시 득점왕을 할 수 있을 것이다”고 전망했다. 히딩크 전 감독은 20년 전 한국을 떠나며 박지성 전북 어드바이저(41)와 이영표 강원 FC 사장(45)을 네덜란드 PSV 에인트호벤에 데려가 성공시킨 사례를 들며 “한국 선수들이 유럽 빅리그로 바로 가려고 하는데 바람직하지 않는 결정”이라고 조언했다. 그는 “빅리그보다는 조금 낮은 수준이지만 훌륭한 팀들이 많은 네덜란드나 벨기에 등에서 경험을 쌓고 가는 게 현명한 판단”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네덜란드에서도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에 출전해 경기를 뛸 수 있다. 박지성도 그렇게 해 성공했다”고 덧붙였다. 박지성과 이영표는 PSV 에인트호벤을 징검다리로 각각 EPL 명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토트넘으로 이적해 활약했다. 손흥민은 유소년 시절 독일 분데스리가 함부르크로 건너가 성인무대를 경험한 뒤 EPL로 이적했다. 히딩크 전 감독은 “2002년 당시 한 두 명의 한국선수들 더 데려가고 싶었지만 다른 길로 가 아쉬웠다”고 회상했다. 히딩크 전 감독이 그 선수들의 이름은 밝히지 않았지만 당시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레알 소시에다드로 간 이천수(41)와 이탈리아 세리에A 페루자와 계약 갈등을 빚고 있던 안정환(46)이란 소문이 돌았었다. 다시 축구현장으로 돌아간 홍명보 울산 감독(52)에게도 조언을 잊지 않았다. 히딩크 전 감독은 “축구 감독은 성공할 수도 실패할 수도 있는 법이다. 그게 축구다. 홍 감독은 그런 것을 다 겪었기에 훌륭한 감독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홍 감독은 책임감이 강하고 늘 신중하다. 최선을 다한다. 이제 경험도 쌓았다. 좋은 결과 있을 것이다”고 덕담했다. 2012년 런던 올림픽 때 한국의 동메달 획득을 지휘했던 홍 감독은 2014년 브라질 월드컵 땐 조별리그 탈락이란 고배를 들었다. 대한축구협회 전무이사를 역임한 홍 감독은 지난 시즌부터 다시 프로축구 지도자로 돌아갔다.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 2022-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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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킬레스건염으로 고생…등산화 바꾸니 통증 사라져”[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등산 마니아 윤종빈 크로스 커뮤니케이션스 이사(56)는 2020년 7월 오른쪽 발목에 통증이 와 정형외과를 찾았다. 아킬레스건염이었다. 약을 복용하고 조심했더니 괜찮아졌다. 하지만 얼마 뒤 다시 통증이 생겨 다른 정형외과를 찾았는데 역시나 아킬레스건염 진단을 받았다. 과도한 운동이나 과체중이 원인이라고 했다. 의사는 보통 아킬레스건염은 건에 생기는데 건과 뼈의 접합부에 염증이 있는 것으로 봐 경사도가 있는 곳을 오르는 등산을 많이 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실제로 윤 이사는 주 2~3회 회사에서 집까지 12km를 걸어서 퇴근하고 매주 주말 북한산을 찾아 6~7km를 걷는다. 많이 걸을 땐 하루 3만보 이상은 걷고 있다. 윤 이사로선 아킬레스건염 탓에 산에도 못 가고 많이 걷지 못해 스트레스가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아킬레스건염으로 고생하던 윤 이사는 지난해 5월부터 등산화를 바꿨다. 밑창이 소프트한 것을 신다 딱딱한 것으로 바꾼 것이다. 그런데 거짓말처럼 통증이 사라졌다. 과거 등산을 한 뒤 소염제도 먹었었는데 등산화를 바꾼 뒤에는 복용하지 않는다. 윤 이사는 “딱딱한 등산화를 신어 발목이 아프지 않자 다시 소프트한 것을 신었는데 바로 통증이 재발됐다”고 했다. 윤 이사는 이젠 산에 갈 땐 밑창이 견고한 등산화만 신는다. 등산화를 바꾼 뒤 아직 아킬레스건염이 재발되지 않았다. 윤 이사는 산을 22년 넘게 오르면서도 등산화의 중요성을 최근에야 알게 됐다. “2000년 지인의 권유로 산을 오르게 됐죠. 방송국에 있는 지인과 매일 새벽 서울 청계산을 오른 뒤 오전 9시 쯤 해장국을 먹고 헤어졌습니다. 그 때 산의 매력에 빠졌습니다. 2002년에는 한국방송작가협회와 인연이 됐어요. 함께 산을 탔고 2006년 방송작가협회와 히말라야를 18박19일 다녀온 뒤 매주 산을 오르게 됐습니다.” 주 1회, 1년에 52회 산을 올랐던 그도 한 때 중등산화를 신기도 했지만 어느 순간 가볍고 편한 경등산화를 신기 시작했는데 결국 탈이 났던 것이다. 윤 이사는 “딱딱하고 무거워서 바꿨다. 젊었을 때는 큰 문제가 없었는데 나이가 드니 발에 무리가 왔다”고 했다. 등산화 전문가들은 등산 시간 기준으로 4시간 이상은 중장거리 산행으로 트레킹이라 하고 4시간 이하 산행은 단거리 산행으로 하이킹으로 구분한다. 등산화만 100년간 만든 독일의 명품 로바(LOWA)를 수입하는 김병철 메드 (주)메드아웃도어 대표(53)는 “4시간 이상 중장거리 산행을 할 땐 발목을 꽉 잡아주는 견고한 등산화를 신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착화감이라고 합니다. 발하고 신발하고 얼마나 밀접하게 감싸주느냐가 중요합니다. 산은 평지가 아니라 오르막 내리막이 이어지기 때문에 발이 앞과 뒤로 쏠리면 마찰이 생겨 물집도 생깁니다. 신발 안에서 롤링이 일어나면 굳이 쓰지 않아도 되는 근육들을 써야 하기 때문에 발의 피로도가 높아집니다. 발전체를 잘 잡아줘야 하는데 특히 발목과 뒤꿈치를 잘 잡아줘야 발의 움직임을 최소화합니다.” 윤 이사가 부드러운 밑창에서 딱딱한 밑창으로 바꿔서 아킬레스건염이 사라졌다는 게 과학적으로 근거가 있다는 것이다. 김 대표는 “산을 오르다보면 자갈, 바위, 돌, 나무뿌리 등 다양한 돌출 부위를 밟고 지나가야 하는데 밑창이 소프트한 것을 신으면 얼마 안가 발의 피로도가 높아진다. 보통 발바닥이 탄다고 표현하는데 그럼 장시간 등산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따라서 산행 시간에 따라 등산화로 구별해서 신어야 안전하게 등산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4시간 이하면 부드러운 밑창이나 트레일러닝화로도 커버가 가능하다. 하지만 4시간 이상 산행 때는 밑창이 견고하고 발목을 꽉 잡아주는 등산화를 신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장거리 산행은 중등산화, 단거리 산행은 경등산화를 신어야 한다는 것이다. 김동호 한국인체공학신발연구소 소장(63)도 “등산화는 돌과 나무부리 등 다양한 변수가 있는 오프로드를 걸을 때 신기 때문에 밑창이 딱딱하고 발을 잘 잡아주는 것을 신어야 안전하다”고 말했다. 마라톤 풀코스를 800회 가까이 완주하며 발의 움직임을 연구해 기능성 안창을 만들고 있는 그는 “발이 신발 안에서 놀면 피로도가 높아진다. 발을 탄탄하게 잡아주고 무릎과 고관절 비복근을 활용해 걸어야 산행의 효율성이 높아진다”고 덧붙였다. 밑창이 견고하다고 내부까지 견고한 것은 아니다. 소프트한 소재를 써서 부드럽게 감싸주고 있다. 윤 이사는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딱딱하고 무거우면 안 좋을 것이란 편견이 있는데 장거리 산행 땐 딱딱해야 오래 편하게 걸을 수 있다”고 말했다. 윤 이사는 “밑창이 딱딱하고 발목을 잘 잡아주는 등산화를 신으면 걸음걸이도 달라진다. 발목을 쓰지 않기 때문에 고관절을 더 많이 쓰게 돼 결과적으로 코어 운동이 더 많이 된다”고 말했다. 밑창이 딱딱하고 발목을 잡아주는 등산화를 신으면 어떤 측면에선 발목을 깁스한 느낌이 들 정도이지만 이게 발목을 탄탄하게 지지해준다는 것이다. 김 이사는 양말과 스틱(지팡이)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땀이 잘 흡수되고 빨리 말려주는 울 양말을 신어야 한다. 요즘 기능성 양말도 나오지만 장거리 산행엔 울 양말이 가장 좋다. 면양말은 피해야 한다. 면양말은 땀이 차면 잘 마르지 않고 딱딱해져 마찰계수가 올라가 불집 등 발에 악영향을 준다”고 설명했다. 윤 이사와 김 대표는 “등산 장비를 갖출 때 가장 중요한 게 등산화다. 발이 편해야 등산이 즐겁다. 그리고 옷 보다는 배낭이 중요하다. 스틱도 꼭 갖추고 산에 올라야 안전하고 즐거운 산행을 할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윤 이사는 등산 초보자에게도 중등산화를 추천한다. 그는 “산길이 익숙지 않아 이동중 밸런스가 안정적이지 못한 사람들에게 안정성과 접지력 성능이 가장 좋은 게 중등산화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앞에서 설명했듯 중등산화는 무엇보다 발목을 잘 받쳐주고, 바닥에서 올라오는 충격을 경등산화나 트레킹화보다 확실히 막아준다. 그는 또 “국립공원을 포함해 대한민국의 어지간한 산들을 오르내리겠다면 우선적으로 중등산화를 신어야 한다. 대한민국의 산은 거의 대부분 돌산 바위산이라 발을 잘 보호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기자는 윤 이사와 함께 27일 서울 구기동쪽에서 출발해 북한산 비봉과 사모바위, 승가봉, 문수봉을 찍고 다시 구기동으로 내려오는 4시간 산행을 했다. 이날은 중등산화를 신었고 스틱도 썼다. 평소 달리기를 즐기는 기자는 산을 탈 때 트레일러닝화를 신었는데 2~3시간 지나면 발바닥과 뒤꿈치가 불편했지만 이날은 발이 편안했다. 스틱도 처음 사용했는데 오르막을 오를 때 하체의 움직임을 도와주고 내려올 때 안정성을 높여줘 몸이 덜 피곤했다. 윤 이사는 “대한민국 산 중에서 다양한 코스가 많은 북한산이 좋아 거의 매주 오르는데 일부 젊은이들을 보면 안타깝다. 등산화을 살펴보고, 중등산화가 아니면 ‘아휴 저 친구 오늘 고생하겠네’라는 생각이 든다. 등산 장비 중 가장 중요한 게 등산화라는 것을 좀 알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 2022-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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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라운지]한국대학보디빌딩피트니스연맹 출범…초대회장에 최동성 대양CIS 대표이사

    한국 대학생들의 근육을 키워줄 단체가 탄생했다. 한국대학보디빌딩피트니스연맹(KOREA-UNIVERSITY BODYBUILDING & FITNESS FEDERATION)이 5월 27일 서울 더케이호텔에서 창립식을 열고 본격적인 활동에 돌입했다. 3월 15일 대한보디빌딩협회로부터 승인을 받은 대학연맹은 최동성 대양CIS 대표이사를 초대 회장으로 영입해 출범했다. 창용찬 대학연맹 수석부회장(스포츠문화산업협회대표)은 “전국 400여개 대학교에서 보디빌딩과 피트니스를 배우는 대학생을 대상으로 대회를 주관하고, 학문연구를 통해 국민 건강과 예방, 처방을 위한 과학적인 데이터를 하나씩 만들어 갈 것”이라 말했다. 대학연맹 실무부회장인 김준수 을지대학교 교수는 “MZ세대의 요구에 맞게 역동적인 보디빌딩과 피트니스를 제공해 대학생들이 즐기는 스포츠로 만들 계획이다. 6월 4일 심판강습회 개최와 6월 11일에는 대학생들만이 참가할 수 있는 2022년도 전국유니버시티 보디빌딩·피트니스대회를 열어 보디빌딩 활성화에 역량을 모으겠다”고 말했다.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 2022-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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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美서 스키타고 韓서 등산…운동해야 노년 즐길 수 있어”[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미국은 스포츠 천국이었어요. 다양한 스포츠를 즐길 수 있었죠. 테니스와 탁구, 배드민턴, 자전거타기, 스키, 피트니스, 걷기 등을 즐겼습니다. 운동을 안 하면 삶에 활력이 떨어져 힘들었어요. 인생을 즐겁고 행복하게 살기 위해선 운동의 생활화가 중요합니다.” 한국 나이 80세인 김권식 EVS(Engineering, Value, Service) 회장은 1969년 미국 미네소타대학으로 유학을 떠난 뒤부터 생활화한 운동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한 노년을 만들어 가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탓에 2년 반 만에 한국을 찾은 그는 건강한 모습으로 서울대를 비롯해 고려대, 연세대, 이화여대, 전남대 등에서 ‘인생 강연’을 하며 대한민국 젊은이들에게 꿈을 불어넣고 있다. 그는 매년 고국을 찾아 강연 등 다양한 활동을 했었다. 김 회장은 학창시절부터 운동에 관심이 있었다. 시설 등 여건이 여의치 않았을 뿐. 그는 “중학교 때 형이 다니던 연세대를 찾았다 외국인들이 정구 치는 것을 지켜봤다. 고입에 대입까지 준비하느라 하진 못했지만 서울대 공대에 들어가서 정구채 2개를 사서 친구들과 함께 쳤다. 정구장이 없어 운동장에서 선 긋고 치다 공 주우러 멀리까지 쫓아다닌 기억이 아직 생생하다”고 했다. 축구도 했고 등산도 즐겼다. “조선항공학과 동기인 민계식 전 현대중공업 회장 등과 팀을 짜 공과대학 축구대회에서 2년 연속 우승했죠. 민 전 회장은 학창시절 마라톤 선수로 불릴 정도로 잘 달렸어요. 공대 산악반에 들어 서울 공대 공릉동 캠퍼스 근처 불암산과 북한산, 도봉산은 밥 먹듯 다녔죠. 설악산, 지리산 등 전국의 명산도 올랐어요.” 이랬던 김 회장이기에 미국에서 자연스럽게 운동을 생활화하게 된 것이다. 그는 “운동을 하려거든 재미있게 하라”고 말한다. 노동처럼 하는 기계적 운동은 좋아하지 않는다. 그 순간을 즐겨야 한다. 겨울엔 스키와 크로스컨트리 스키, 컬링 등을 즐겼고 그 외 계절엔 바람과 햇빛을 즐기는 하이킹과 자전거 타기, 골프, 테니스 등으로 건강을 다졌다. 나이 들면서는 부상 위험이 적은 스포츠로 방향을 바꿨다. 겨울엔 크로스컨트리 스키와 탁구, 여름엔 골프와 걷기를 주로 한다. 웨이트트레이닝은 평생 체력 단련의 기본으로 하고 있다. 크로스컨트리 스키는 1시간15분에서 2시간, 다른 스포츠도 한번 하면 2시간씩은 한다. “미국에 처음 와선 테니스를 많이 쳤어요. 골프도 시작했는데 타이거 우즈가 나타나면서 테니스가 완전히 밀렸죠. 하지만 전 1시간30분에 땀을 흠뻑 흘릴 수 있는 테니스를 4시간30분 걷는 골프보다 더 좋아했습니다.” 대학 시절 한 때 방황하며 귀농을 꿈꾸던 그는 백령도 공군 복무시절 부대에서 개설한 야학 신우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유학을 준비하게 됐다. 그는 “집안 사정으로 학교에 가지 못한 아이들이 어떻게든 배우겠다는 모습을 보며 반성 많이 했다. 그래서 다시 공부하기로 마음먹었다”고 했다. 항공학 교수를 꿈꾸던 김 회장은 전공을 바꿔 토목공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항공과 국가 장학금을 받고 나왔는데 갑자기 장학금이 중단됐다. 토목공학과에서 장학금을 보장해준다고 해서 전과를 했다”고 했다. 1975년 박사학위를 받은 뒤 네브래스카주 정부 천연자원 부서에서 공무원 생활을 시작했고 5년 뒤 미네소타로 돌아와 알고 지내던 친구와 토목설계 사업을 시작했다. 15년 전부턴 재생에너지 사업에 주력하고 있다. 풍력, 태양광 시설을 설계하고 지어주는 사업이다. 미국 재생에너지 기업 톱5에 드는 건실한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그가 생각하는 사업 성장의 키포인트는 인간관계다. “엔지니어링 회사라고 기술과 전문성만 가지고 회사를 운영해도 된다고 생각하면 착각입니다. 결국 사업은 사람과의 관계를 맺는 일입니다. 저는 다양한 사람들하고 잘 지내는 법에 관심을 많았습니다. 그중 가장 좋아하는 게 함께 운동하는 것입니다. 탁구, 테니스, 골프, 함께 걷기 등…. 함께 땀 흘리고 식사하면서 맥주 한잔하면 친밀도가 더 높아집니다.” 국내 강연 주제도 인간관계를 잘 하는 법이다. 꿈을 가지고 노력하되 사람과의 관계도 중요함을 강조한다. “하버드대 성인발달연구팀이 1938년부터 2013년까지 75년 동안 다양한 계층의 소년 724명을 뽑아 2년 마다 인터뷰하며 인생을 관찰했어요. 하버드 의대 로버트 월딩어 정신과 교수는 ‘무엇이 행복을 결정 하는가’라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는데 행복한 삶의 비결은 바로 가족이나 직장, 친구, 지인들과의 좋은 ‘인간관계’였습니다. 행복에서 가장 중요한 게 돈도 권력도 아닌 좋은 인간관계라는 겁니다. 가족과 친구, 주변 사람들과 잘 지내야 행복하다는 것이죠. 그 관계를 운동으로 맺으면 건강도 챙기고 친밀도도 높이고 일석이조 아닌가요.” 회사 운영도 인간에 맞춰져 있다. 이익의 절반은 종업원에게 나눠주고, 나머지 절반은 사회사업재단 EVS CARES에 투자해 탄자니아 식수 개발 사업 등 약하고 어려운 사람을 돕는데 쓰고 있다. 김 회장은 EVS가 미국 재생 에너지기업 톱5로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을 설명했다. “사실 미국 사회의 패러다임이 변화하고 있었습니다. 우리 후손들에게 물려줄 환경의 지속 가능성을 고민하는 거대담론 형성돼 있었죠. 그래서 과감하게 재생 에너지 사업에 뛰어 들었습니다. 그동안 저와 좋은 관계를 유지했던 업계 인물들이 잘 도와줘서 급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정말 감사할 따름입니다.” 김 회장은 대한민국 후배들에게 좋은 기회도 주고 있다. 미국생활 초창기부터 로타리클럽에 가입해 청소년 교환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미네소타에서 고등학생을 한국에 보내면, 그 학생은 한국 호스트 패밀리와 1년간 같이 살며 한국 문화와 생활방식을 직접 체험하는 기회를 얻는다. 한국 학생들이 오면 미국 호스트 패밀리와 1년 동안 같이 살며 영어와 문화를 배우게 된다. 지금은 뉴 제너레이션 대학생 단기 교환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한국에서 온 학생들에게 미국에서 있을 곳을 찾아주고 전공과 직업적 목표에 따라 기관, 산업체 현장실업의 기회를 주고 있다. 이런 프로그램으로 인생이 바뀐 학생들이 많다고 했다. 김 회장은 “내 건강도 중요하지만 주위 건강도 중요하다. 가족, 회사원이 다 건강해야 가정도 회사도 행복하다. 우리 회사에선 컴퓨터 앞에 1시간 이상 앉아 있지 말도록 권유한다. 산책도 하라고 한다. 집과 회사에 탁구장도 마련했다. 틈나는 대로 탁구도 친다. 건강해야 일도 잘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부인 황성숙 씨(78)와 크로스컨트리 스키와 탁구, 골프, 걷기 등을 함께 즐기고 있다. 대학 때까지 스키 선수였던 두 아들과 다운힐 스키도 함께 타기도 했다. 그는 “탁구를 전혀 못 치던 젊은 직원들이 나랑 치면서 일취월장해 결국 날 넘어서는 경우가 많다. 내가 참 좋은 탁구 지도자인 것 같다”며 웃었다. 한국에 오면 지인과 지리산 등 명산을 올랐다. 하지만 이번엔 못했다고 했다. “친구인 민홍식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명예교수가 등산 가이드였습니다. 이번에도 지리산을 오르기로 했는데 민 교수가 코로나19에 걸린 뒤 체력이 떨어졌다고 못 가겠다고 하더군요. 아쉽지만 서울 우면산을 가볍게 올랐습니다. 제가 아직도 이렇게 왕성하게 활동할 수 있는 원동력은 운동의 생활화입니다. 건강해야 100세 시대를 누릴 수 있습니다. 골골하면서 100세를 살면 뭐합니까? 운동이 100세 시대를 건강하고 즐겁게 살 수 있는 최선의 방법입니다.” 김 회장은 자신의 삶을 ‘사랑하는 후배들아 이제 너희들 차례다’는 책으로 엮었다.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 2022-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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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여든에도 韓美 오가며 활동… ‘운동 생활화’가 체력 원천”

    한국 나이 80세인 김권식 EVS 회장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다소 잠잠해지자 이달 초 한 달 일정으로 한국을 찾았다. 서울대와 고려대, 연세대, 이화여대, 전남대 등에서 ‘인생 강연’을 하기 위해서다. 매년 오다 코로나19 탓에 2년 반 만에 찾았다. 1969년 미국 미네소타대로 유학을 떠난 뒤부터 생활화한 운동 덕분에 체력적 문제 없이 대한민국 젊은이들에게 꿈을 불어넣고 있다. “미국은 스포츠 천국이었어요. 다양한 스포츠를 즐길 수 있었죠. 테니스와 탁구, 배드민턴, 자전거 타기, 스키, 피트니스, 걷기 등을 매일 했습니다. 운동을 안 하면 삶에 활력이 떨어졌어요.” 학창 시절부터 운동에 관심은 있었다. 시설 등 여건이 여의치 않았을 뿐이다. 그는 “중학교 때 큰형이 다니던 연세대를 찾았다가 외국인들이 정구 치는 것을 지켜봤다. 고입과 대입을 준비하느라 하진 못했지만 서울대 공대에 들어가 정구채 2개를 사서 친구들과 함께 쳤다. 정구장이 없어 운동장에서 선 긋고 치다 공을 주우러 멀리까지 쫓아다닌 기억이 아직 생생하다. 나중엔 테니스로 바꿨다”고 했다. 축구도 했고 등산도 즐겼다. “조선항공학과 동기인 민계식 전 현대중공업 회장 등과 팀을 짜 공과대학 축구대회에서 2년 연속 우승했죠. 민 전 회장은 학창시절 마라톤 선수로 불릴 정도로 잘 달렸어요. 공대 산악반에 들어 서울 공대 공릉동 캠퍼스 근처 불암산과 북한산, 도봉산을 밥 먹듯 다녔죠. 설악산, 지리산 등 전국의 명산도 올랐어요.” 이랬던 김 회장이기에 미국에 건너가 자연스럽게 스포츠에 빠져 살게 됐다. 그는 노동처럼 하는 기계적 운동은 좋아하지 않는다. 운동하는 순간을 즐긴다. 겨울엔 스키와 크로스컨트리 스키, 컬링 등을 했고 그 외 계절엔 바람과 햇빛을 즐기는 하이킹과 자전거 타기, 골프, 테니스 등으로 건강을 다졌다. 나이 들면서는 부상 위험이 적은 스포츠로 방향을 바꿨다. 요즘은 겨울엔 크로스컨트리스키와 탁구, 여름엔 골프와 걷기를 주로 한다. 웨이트트레이닝은 평생 체력 단련의 기본으로 하고 있다. 대학 시절 한때 방황하며 공부를 포기하고 귀농까지 고민했던 그는 백령도에서 공군으로 복무할 때 부대에서 개설한 야학 신우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다 유학을 준비하게 됐다. 그는 “집안 사정으로 학교에 가지 못한 아이들이 어떻게든 배우겠다는 모습을 보며 반성을 많이 했다”고 했다. 항공과 교수를 꿈꾸던 김 회장은 전공을 바꿔 토목공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40여 년 전 토목설계 사업을 시작했다. 15년 전부턴 재생에너지 사업에 주력하고 있다. 풍력, 태양광 시설을 설계하고 지어주는 사업이다. 미국 재생에너지 기업 톱5에 드는 건실한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그가 생각하는 사업 성장의 키포인트는 인간관계다. “엔지니어링 회사라고 기술과 전문성만 가지고 회사를 운영해도 된다고 생각하면 착각입니다. 결국 사업은 사람과 관계를 맺는 일입니다. 저는 다양한 사람들과 잘 지내는 법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중 가장 좋아하는 게 함께 운동하는 것입니다. 탁구, 테니스, 골프, 함께 걷기 등…. 함께 땀 흘리고 식사하면서 맥주 한잔하면 친밀도가 더 높아집니다.” 국내 강연 주제도 인간관계를 잘하는 법이다. 꿈을 가지고 노력하되 사람과의 관계도 중요함을 강조한다. 그는 “하버드대가 행복에서 가장 중요한 게 돈도 권력도 아닌 좋은 인간관계라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가족과 친구, 주변 사람들과 잘 지내야 행복하다는 것이다. 그 관계를 운동으로 맺으면 건강도 챙기고 친밀도도 높이고 일석이조 아닌가”라고 했다. 김 회장은 “내 건강도 중요하지만 주위 건강도 중요하다. 가족, 회사원이 다 건강해야 가정도 회사도 행복하다. 우리 회사에선 컴퓨터 앞에 1시간 이상 앉아 있지 말도록 권유한다. 움직이며 산책하라고 한다. 집과 회사에 탁구장도 마련했다. 틈나는 대로 함께 탁구도 친다. 건강해야 일도 잘한다”고 말했다. 그는 “건강해야 100세 시대도 누릴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 회장은 자신의 삶을 ‘사랑하는 후배들아 이제 너희들 차례다’라는 책으로 엮었다. 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 2022-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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