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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 마리킴은 게임 속에서 튀어나온 여자 캐릭터 같았다. “안녕하세요.” 긴 생머리와 개미허리, 유리구슬 같은 큰 눈을 가진 소녀들을 그린 자신의 작품을 닮은 눈매…. 환상과 현실을 오가는 그의 그림들처럼 그의 나이도 가늠하기 어려웠다. 그가 타고 온 하늘색 포르셰 전기차는 혹시 은하철도 999가 아니었을까. 2021년 국내 화가 중 최초로 NFT(대체불가토큰)를 발매해 6억 원에 낙찰시켰던 그가 최근 메타버스 전문기업 ‘코코네’와 손잡고 아바타를 활용한 메타버스 서비스 ‘센테니얼(Centennial)’의 프로듀서로 변신했다. 코코네는 아바타와 패션을 결합한 CCP(Character Coordinating Play·캐릭터 꾸미기) 사업을 펼치는 회사다. ‘디지털 세상에서 아바타 옷 갈아입히기 놀이’라고나 할까. 과거 싸이월드 미니미와 아이템을 떠올리면 된다. 마리킴은 “이번에는 메타버스의 세계관을 만들었다”고 했다. 무슨 말일까. 스테파니가 들어봤다.(스테파니는 ‘스’타트업과 ‘테’크놀로지를 ‘파’헤쳐보‘니’의 준말입니다.) ―메타버스의 세계관은 무슨 뜻인가.“‘세계관’은 게임의 시나리오를 이루는 시간적, 공간적, 사상적 배경을 말한다. 캐릭터부터 전체적 스토리까지 아우른다.”―어떤 세계관을 만들었다는 얘긴가.“이용자들이 메타버스에 꾸며진 근미래 도시 ‘센테니얼’에서 아바타를 통해 새로운 라이프스타일과 패션을 즐기도록 했다. 애완동물이나 로봇과 같은 ‘알터이고(alter-ego)’와 정서적 교감을 쌓고, 멋진 집도 구입할 수 있다. 평소 제 작품 스타일대로 아바타 캐릭터와 패션 아이템을 만들었는데 그 중에는 걸그룹 뉴진스의 ‘민지’에서 영감을 받은 캐릭터도 있다.”―왜 ‘센테니얼’인가.“센테니얼은 ‘100년마다’란 뜻이다. 아바타가 100년을 살면 인간 생애 주기와 얼추 비슷하다. 디지털 분신과 인간의 소통을 추구한다.”―메타버스 스토리를 만드는 건 영화 작업과 비슷한 것 같다.“그렇다. 직접 연출하고 연기한 영화를 찍어 본 적이 있다. 센테니얼의 뼈대는 ‘마리와 100년의 눈’이라는 제목의 그래픽 노블을 써보다가 떠올린 것이다. 캐릭터들이 눈을 떠보니 낯선 판타지 세상인데 이들이 100년 앞을 볼 수 있다는 설정이다.”―메타버스 세상을 기획하기 위해 어떤 활동을 하나.“천문과 물리 등 과학책을 읽는다. 그 중 특히 어려워서 기억에 남는 건 브라이언 그린이 쓴 ‘엘리건트 유니버스’다. 초끈이론과 시공간의 구조를 설명하는 책이다.” 부산에서 태어난 그는 공부와 담쌓고 지내다 고교 졸업 후 호주로 유학을 떠났다고 했다. 멜버른 RMIT대에서 멀티미디어를 전공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크리에이티브 미디어’ 전공(애니메이션과 인터랙티브 미디어)으로 석사학위를 받은 후 2007년 서울로 돌아왔다. 호주에 살 때 당시 유행하던 싸이월드와 블로그에 2년 동안 매일 하나씩 그림을 그려 올린 게 그의 삶을 바꿨다. 파워블로거로 대중에게 알려지더니 세계적 거장의 작품만 다루던 서울 강남구 오페라갤러리에서 그의 작품을 수십 점 사들여 전시했다. 이후 가나아트의 전속 작가가 됐고 학고재 갤러리 등에서 전시회를 열었다. 국내 미술계 학맥과 인맥이 없던 그는 디지털 세상이 키운 스타 아티스트다. ―그림은 어떻게 그리나.“2000년대 초반부터 디지털로 그렸다. 처음 10년 동안은 컴퓨터 펜 마우스로만 그렸다. 요즘에는 특수 출력해 그 위에 물감을 덧입혀 유화 느낌을 내기도 한다.”―왜 왕눈이 소녀를 그리나.“미술을 정식으로 안 배우고 만화책에서 그림을 배워서인지 캐릭터의 눈을 예쁘게 강조하는 만화가 제 작품 스타일에 영향을 줬다. 눈은 내부와 외부를 잇는 어떤 통로라는 생각이 들었다(그는 자신의 왕눈이 소녀 캐릭터를 ‘아이돌’(Eyedoll)로 명명했다). 제 그림은 사실 ‘디지털 버전의 옷 갈아입히기’인데 이것이 과연 미술로서 유니크한 가치가 있는지 고민했다.”―고민의 답을 찾았나.“유니크한 가치가 있다는 답을 내렸다. 100명의 메타버스 아바타가 100명의 상의와 100명의 하의를 골라 입으면 100 곱하기 100 곱하기 100 즉, 100만 개의 유니크한 ‘작품’이 생성된다. 작품을 만드는 사람과 감상하는 사람의 벽이 허물어진다는 뜻이다.”―국내에서 첫 NFT 작품을 낸 작가다. “안 해 본 일에 도전하는 걸 좋아한다. 2021년 당시 경매 낙찰가가 6억 원까지 치솟아 놀랐다. 해외에서는 일본 작가 무라카미 다카시가 그 해에 ‘클론X’라는 NFT를 발행해 큰 돈을 벌었다. 최신 일본 유행과 패션으로 꾸며진 3D(차원) 아바타 캐릭터였다. NFT도, 메타버스도 새로운 영역이라 시행착오가 있겠지만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라고 생각한다.”2008년 설립된 코코네는 2011년 ‘포켓코로’를 선보이면서 일본 아바타 서비스 시장을 석권했다. ‘주머니 속 놀라운 세계에 아바타들이 살고 있다’는 신개념으로 2014년 구글플레이 재팬의 ‘2014년 베스트 앱’으로 선정됐고, 2015~2017년 구글플레이 재팬의 앱 수익 순위에서 연속으로 비게임 부문 ‘톱 3’에 올랐다. 매월 6400개의 새로운 디지털 패션 아이템이 만들어지고 있으며, 지금까지 이용자들이 구매한 모든 디지털 아이템은 총 160억 개에 달한다. 코코네 서비스를 경험한 전체 글로벌 이용자 수는 현재까지 1억 3000만명을 넘어섰다.코코네는 21일부터 프랑스 파리에서 열리는 블록체인위크에 참여하면서 회사 대표상품으로 마리킴이 작업한 ‘센테니얼’을 내세우기로 했다. 마리킴은 “미국에도 메타버스 서비스 회사들이 있지만 한국의 캐릭터는 미학적으로 월등하게 뛰어나다”고 했다. ―왜 메타버스에 뛰어들었나.“코코네는 ‘디지털 옷 갈아입히기’로 일본에서 크게 성공한 회사다. 그 사업을 잘하는 회사와 예술계에서 디지털에 밝은 제가 만나면 글로벌 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겠다 싶었다.” ―메타버스는 현대인에게 어떤 의미인가.“해방 아닐까. ‘레디 플레이어 원’ 같은 영화를 보면 실상과는 전혀 다른 내가 있으면 좋겠다 싶지 않나. 누구나 현실의 자신에게 불만족스러운 면이 있게 마련이니까.” ―미래 세대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나.“(전통적 관념의) 공부를 안 해도 된다. 저는 게임을 많이 해서 지금의 제가 있다고 생각한다.”마리킴은 “태어나면서부터 디지털 기기와 가까운 Z세대를 우리 관점으로 알려고 하면 안 될 것 같다”며 “그들이 자신들의 삶을 스스로 정의하게 놔두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그는 “흔히들 제 작품을 ‘팝아트’라고 하지만 스스로는 ‘개념미술’이라고 생각한다”며 “현실과 가상이 혼재하는 세상에서 무엇이 진짜냐 하는 중요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고 말했다.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미국 실리콘밸리와 한국에서 무려 5개의 스타트업을 연쇄 창업한 ‘스타 교수’가 최근 KAIST 신임 창업원장이 됐다. 이광형 KAIST 총장이 “일기 쓰듯 창업을 쉽게 잘하셔서 놀랍다”는 배현민 KAIST 전기 및 전자공학부 교수(51)다. 13일 대전 유성구 KAIST 창업원에서 동아일보와 인터뷰한 배 신임 원장은 “현재 교수창업이나 학생창업은 개인의 역량에만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며 “뛰어난 기술 수준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한 창업 기업의 투자 유치와 사업적 역량을 끌어올리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배 원장은 서울대 전기공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일리노이대에서 전기 및 컴퓨터공학 석·박사 학위를 받은 뒤 2009년부터 KAIST 교수로 일해 왔다. 박사 과정이던 2001년 자신의 학위 논문주제를 기술 사업화해 초당 10기가비트 속도의 통신용 MLSE 수신기를 세계 최초로 상용화한 ‘인터심볼’이란 회사를 만든 게 첫 창업이었다. 두 번째 창업부터는 KAIST 교수로 일하면서 했다. 2010년 테라스퀘어는 세계 최초로 1W 이하의 전력 소모를 갖는 100기가비트 반도체를 상용화했다. 2013년 오비이랩(실시간 휴대용 고해상도 근적외선 뇌 영상장치), 2016년 포인트투테크놀로지(구리선과 광케이블을 대체하는 3세대 최첨단 케이블 세계 최초 개발), 2021년 배럴아이(정량적 초음파 진단장비) 등 지금까지 이뤄진 5개의 창업은 모두 연구개발에 기반한 딥테크(첨단기술) 창업이었다. 배 원장은 “창업을 하고 나서야 내가 개발한 기술이 어디에 어떻게 쓰이는지를 명확히 알게 됐다”며 “기술은 논문이나 연구실에 갇혀 있으면 안 되고 활발하게 상용화돼 인간의 삶을 도와야 한다는 것을 학생들에게 알려주고 싶어 연쇄 창업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KAIST 홀딩스, KAIST 기술가치창출원, KAIST 창업원이 트로이카를 구축해 창업 초기부터 스타트업의 성장을 돕게 하겠다는 구상이다. 자신의 연구 분야만 파고드느라 금융과 마케팅 등에 약한 교수들을 돕기 위해 국내 투자은행(IB) 업계 전문가들을 KAIST 겸임교수로 ‘모셔’ 학교 측의 기술을 자본시장과 잇겠다는 계획이다. 지역 혁신을 위한 창업도 체계적으로 지원하겠다고 한다. “대기업은 여러 사업부서가 있고 이들을 총괄해 돕는 마케팅 재무 홍보 조직이 있다. 논문과 연구에만 매달리던 교수와 학생들이 다루기 어려운 업무 영역을 ‘레고 블록’처럼 프로그램화해서 원하는 기능을 가져다 쓸 수 있도록 만들겠다.” 배 원장은 “요즘 KAIST에는 창업을 장려하는 자유로운 분위기가 있다”며 “무조건 대기업 입사를 희망하던 예전과 달리 창업을 원하는 학생들이 느는 추세”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해외 기업들은 스타트업에 좋은 기술이 있으면 찾아가 일사천리로 투자를 진행하는 데 비해 국내 기업은 투자와 인수합병 결정을 쉽게 내리지 못하는 것 같다”며 “기술패권 시대에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야말로 기술인재를 확보하는 빠른 길”이라고 말했다.대전=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미국 실리콘밸리와 한국에서 무려 5개의 스타트업을 연쇄 창업한 ‘스타 교수’가 최근 KAIST의 신임 창업원장이 됐다. 이광형 KAIST 총장이 “일기 쓰듯 창업을 쉽게 잘 하셔서 놀랍다”는 배현민 KAIST 전기 및 전자공학부 교수(51)다. 13일 대전 유성구 KAIST 창업원에서 동아일보와 인터뷰한 배 원장은 “현재 교수창업이나 학생창업은 개인의 역량에만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며 “기술 수준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한 창업 기업의 사업적 역량을 끌어올리면서 기업의 전(全) 주기를 관리해주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KAIST 창업원은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방문해 기술 창업의 중요성을 강조한 곳이기도 하다. ―KAIST 창업원장이 된 소감은.“이광형 총장이 ‘바쁜지 잘 알지만 맡아줄 수 있느냐. 하고 싶은 대로 하시면 된다’고 해서 단번에 수락했다. KAIST는 딥테크(첨단기술) 특허와 지식재산에 강한 힘이 있는데도 창업으로 연결되기에는 빈 부분이 있다는 것을 느껴왔기 때문이다. 자기 연구 분야만 파고드느라 금융 상품조차 잘 모르고, 갖고 있는 기술을 정확하게 알리는 훈련도 받아본 적이 없는 교수들이 많다. KAIST 홀딩스, KAIST 기술가치창출원, KAIST 창업원이 트로이카를 구축해 창업 초기부터 스타트업의 성장을 돕겠다.”KAIST에서는 창업원을 운영하기 시작한 2014년부터 지금까지 교수창업 68건, 학생창업 131건 등 총 199건의 창업이 이뤄졌다. 지난해에는 KAIST의 기술을 사업화하는 KAIST 홀딩스도 출범했다. 글로벌 반도체 전문가인 차정훈 전 중소벤처기업부 창업벤처혁신실장이 이달부터 KAIST 홀딩스의 대표이사를 맡아 연쇄 창업가인 배 원장과의 시너지가 기대된다.―창업원장이 되기 직전까지 KAIST 기술가치창출원 내 지식재산 및 기술이전센터장을 맡았는데….“대학 기술과 기업 간의 가교역할을 위한 센터를 이끌면서 지난해 11월 국내 투자은행(IB) 업계 전문가 두 명을 KAIST 겸직교수로 채용했다. 아무리 기술이 뛰어나도 자본과 만나지 못하면 세상의 빛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인수합병 경험이 풍부한 자본시장 전문가 채용을 10명까지 늘려 좋은 기술을 알리고 창업 회사들의 자금 조달을 돕겠다.” ―학교 측이 창업 실무를 대신 해 주겠다는 뜻인가.“대기업의 경우 여러 사업부서가 있고 이들을 총괄해 돕는 마케팅 재무 홍보 조직이 있지 않나. 작은 스타트업이 미처 신경 쓰기 어려운 업무 영역을 ‘레고 블록’처럼 프로그램화해서 원하는 기능을 가져다 쓸 수 있도록 만들겠다는 뜻이다.”배 원장은 서울대 전기공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일리노이대에서 전기 및 컴퓨터공학 석·박사를 한 뒤 2009년부터 KAIST 교수로 일해 왔다. 2001년 첫 창업(인터심볼)은 자신의 박사학위 논문주제를 기술 사업화(초당 10기가비트 속도의 통신용 MLSE 수신기를 세계 최초로 상용화)한 결과였다. KAIST 교수 2년 차이던 2010년에 두 번째 창업한 테라스퀘어는 세계 최초로 1W 이하의 전력소모를 갖는 100기가비트 반도체를 상용화했다. 2013년 오비이랩(실시간 휴대용 고해상도 근적외선 뇌 영상장치), 2016년 포인트투테크놀로지(구리선과 광케이블을 대체하는 3세대 최첨단 케이블을 세계 최초 개발), 2021년 배럴아이(정량적 초음파 진단장비) 등 지금까지 이뤄진 5개 창업은 독보적인 기술력이 바탕이었다. 글로벌 유명 기업들이 이들 기업에 투자를 하고 위탁생산을 희망하고 있다. ―어떻게 연쇄 창업을 하게 됐나.“창업 이전에는 모든 지식을 논문에서 구했다. 창업을 하고나서야 내가 개발한 기술이 어디에 어떻게 쓰이는지를 명확히 알게 됐다. 그런 경험을 학생들에게도 나눠주고 싶었다. 기술이 연구실 안에 갇혀 있으면 안 된다. 창업하겠다고 찾아오는 학생들이 늘고 있어 희망을 본다.” ―유능한 선수라고해서 모두 좋은 감독이 되는 건 아니듯 성공한 창업가가 좋은 창업원장이 되는 것은 별개의 문제일 수도 있는데….“창업원장이 행정을 하는 자리라면 잘 하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창업을 어디에서 출발하고 어떤 단계로 목표를 향해 진행할지 시스템을 만드는 일은 스타트업을 경영하듯 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교수가 기술로 투자를 받는 게 얼마나 스트레스 받는 일인지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에 그 부분을 도울 수 있다고 본다.”―KAIST의 강점은. “지금 KAIST에는 창업을 장려하는 자유로운 분위기가 확실히 있다. 구슬이 서 말이어도 꿰어야 보배가 되듯 기술을 상업화해 인간 삶에 도움을 줘야 한다는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다. 빠르고 앞선 결과물을 만드는 롤 모델이 될 가능성이 많은 조직이라고 생각한다.”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와 인수합병이 활발해야 창업이 활성화하지 않나.“2016년에 네 번째로 창업한 포인트투테크놀로지의 투자를 받으려고 국내 대기업들의 고위 임원들을 여러 번 만났는데 정작 투자를 결정하지 못하더라. 반면 해외 기업들은 괜찮은 기술이다 싶으면 일사천리로 투자를 진행한다. 기술패권 시대에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야말로 기술인재를 확보하는 빠른 길이다.” 김선미기자 kimsunmi@donga.com}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의 파산에 금융당국도 12일 즉각 이번 사태가 국내 금융시장에 미칠 영향에 대해 점검하고 나섰다. 은행의 ‘초고속 파산’이 금융권 시스템 리스크에 대한 불안을 키워 투자 심리가 위축될 수 있다는 경계심이 커지고 있다. 시장에선 10일 2,394.59로 장을 마감하는 등 이미 2,400 선이 무너진 코스피가 SVB 사태의 여파로 더 추락할 것이란 우려가 높다. 이재만 하나증권 연구원은 “미국 연준의 기준금리가 너무 높은 수준에 있는 상태에서 (SVB 파산으로) 주식시장에 다시 한 번 구조적인 문제점이 부각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SVB와 거래한 국내 기업들과 기관, 벤처캐피털(VC)도 긴장하고 있다. 국민연금은 SVB의 모기업인 SVB금융그룹 주식을 지난해 말 기준 10만795주(당시 주가 기준 약 304억 원) 보유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말 230달러 수준이었던 주가는 9일(현지 시간) 106.04달러로 급락했고, 현재 거래가 정지돼 투자금 회수 가능 여부조차 불투명해진 상황이다. 국내 한 투자회사 대표는 “최악의 경우는 막 펀드레이징을 끝낸 큰돈을 모두 SVB에 넣은 경우”라고 말했다. 주말 내내 피해 사례 등 사태 파악에 나선 국내 한 액셀러레이터(창업기획회사) 대표는 “이번 사태가 투자 혹한기를 맞아 구조조정과 긴축 재정에 들어간 국내 스타트업계를 더 위축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경제·금융 수장들은 이날 간담회를 열고 “이번 사태가 미국 은행 등 금융권 전반의 시스템 리스크로 확산되진 않을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시각이 우세하다”고 전했다.박민우 기자 minwoo@donga.com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안녕하세요. 스테파니 독자 여러분. 동아일보에서 미래&스타트업팀 데스크를 맡고 있는 김선미 기자입니다. 보름 전 대구 북구 삼성창조캠퍼스에 문을 연 ‘C랩 아웃사이드 대구’에 7일 다녀왔습니다. 이 곳은 삼성전자 C랩 아웃사이드 프로그램의 첫 번째 자체 지역 거점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데요. 삼성이 그룹의 발원지인 대구에서 지역 스타트업을 육성해 ‘오픈 이노베이션’(개방형 혁신)을 제대로 해보겠다는 의지로 보입니다. 그럼 저와 함께 C랩 아웃사이드 대구로 가보실까요. 참, C랩 아웃사이드는 삼성전자가 2018년부터 시작한 외부 스타트업 지원 프로그램입니다. (스테파니는 ‘스’타트업과 ‘테’크놀로지를 ‘파’헤쳐보‘니’의 준말입니다.)C랩 아웃사이드 대구는 대구시 북구 호암로 51 삼성창조캠퍼스 내 대구창조경제혁신센터 2층에 있습니다. 삼성창조캠퍼스는 고 이병철 삼성 회장이 사업을 벌였던 옛 제일모직 공장부지 2만7000평을 창업, 문화예술, 역사가 어우러지도록 조성한 공간입니다. 삼성창조캠퍼스에 도착하자 높다란 굴뚝이 눈에 띄었습니다. 옛 공장에 있던 굴뚝을 남겨둔 겁니다. 1938년 삼성의 씨앗이 뿌려진 삼성상회를 재현한 건물과 제일모직 기념관 등이 담장 없이 주변 아파트 단지와 어우러지니 평화로운 시민공원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C랩 아웃사이드 대구 내부(450평)는 삼성전자 C랩 아웃사이드 스타트업들이 입주해 있는 서울 서초구 양재동 삼성 R&D센터와 인테리어가 닮은꼴입니다. 푸른색 소파와 ‘C-Lab’ 조형물, 녹색 넝쿨식물과 조명, 비스포크 냉장고 등이 ‘일하고 싶은 기분’을 주는 공간이었습니다. 다양한 규모의 회의실과 휴게공간이 있어 입주 스타트업들은 이 곳에서 24시간 일할 수 있고, 자유롭게 미팅도 할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대구의 스타트업들을 위한 공간입니다. 이번에 입주한 5개 스타트업은 삼성전자가 대구창조경제혁신센터의 추천을 받아 전문가 심사를 거쳐 선정했습니다. 특히 디지털 헬스케어산업 선도 도시라는 지역 특성에 맞춰 헬스케어 분야 스타트업을 중점 선발했다고 하네요. 이번에 선정된 스타트업들은 최대 1억 원의 사업 지원금과 함께 삼성전자로부터 기업 성장 단계별 맞춤형 컨설팅을 받습니다. 삼성전자 및 관계사와 협력 기회를 갖고 마케팅, 특허, 재무, 홍보 등에서도 필요한 도움을 받게 된다고 합니다. ●‘C랩 아웃사이드 대구’ 첫 입주 스타트업 5곳 스타트업 사업 대표 설립네오폰스의료 AI 활용 뇌질환과 언어장애진단 플랫폼박기수 경북대 신경외과 교수2020년 1월클레어오디언스태아 산모 건강진단 스마트 청진기WEI QUN(웨이췬) 계명대 의용공학과 교수2021년 6월티아미세먼지 저감 고효율 촉매 필터박진영 대표2022년 6월엠에프알모듈 교체형 로봇 플랫폼이승열 대표2021년 6월뷰전스마트 윈도우윤희영 대표2022년 1월그동안 동아일보 ‘스테파니’를 통해 소개해 드린 ‘잘 나가는’ 스타트업 중에는 삼성의 C랩에서 육성된 기업이 많습니다. 삼성은 2012년 사내벤처로 스타트업 육성프로그램 C랩을 시작한 뒤 2018년부터는 외부 스타트업까지 지원하는 ‘C랩 아웃사이드’로 확장했습니다. 서울이 아닌 지역에서 C랩 아웃사이드가 생긴 건 이번에 대구가 처음입니다. C랩 아웃사이드 대구의 회의실에는 스마트 윈도우가 설치돼 있었습니다. 평소엔 투명한데 전기장이 가해지면 불투명하게 변환되는 가림막입니다. 불투명하게 바뀌면 회의실 내부를 밖에서 볼 수 없고 가림막 위로 홍보 영상도 틀 수 있습니다. 이 스마트 윈도우는 이번에 입주 스타트업으로 선정된 ‘뷰전’의 제품입니다. 이 회사 윤희영(40) 대표는 건국대 화학과에 다닐 때부터 스마트 윈도우에 한마디로 ‘꽂혔다’고 합니다. 한화 폴리드리머(현 한화 컴파운드) 등에서 경력을 쌓은 뒤 지난해 창업에 나섰습니다. 왜 대구에서 창업했는지 궁금해 물었더니 대구에 투명전류필름 소재가 풍부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설립된 지 1년 남짓한 스타트업인데도 삼성 C랩 아웃사이드 대구에 선정됐더니 투자회사들이 “삼성이 뽑은 회사이니 절반 이상 검증된 회사”라고 좋게 봐준다고 하네요. 삼성 가전제품에 스마트 윈도우가 적용되면 좋겠다는 윤 대표의 말에 희망이 가득했습니다. C랩 아웃사이드 대구에서는 중국인 교수도 만났습니다. 입주 스타트업인 ‘클레어오디언스’를 창업한 웨이췬 계명대 의용공학과 교수입니다. 한국말을 너무 잘 해서 깜짝 놀랐는데요. 중국 상하이 출신으로 경북대에서 석사와 박사과정을 거치고 2015년부터 계명대 교수로 일하며 교원창업을 한 겁니다. 이 회사는 산모의 맥파와 태아의 심장소리를 동시에 추출할 수 있는 스마트 청진기를 개발하고 있습니다. 웨이췬 대표는 “취업과 창업의 기로에 서 있는 학생들에게 기술 창업을 통해 희망을 주고 싶다”고 합니다. C랩 아웃사이드 대구는 대구창조경제혁신센터 건물의 2층을 씁니다. 그런데 2020년부터 대구창조경제혁신센터를 이끌고 있는 이재일 센터장이야말로 C랩을 탄생시킨 주역입니다. 삼성전자에서 32년 간 근무하며 삼성종합기술원 인사팀장과 삼성전자 인재개발센터장 등을 지냈던 그는 2012년 삼성전자 창의개발센터장을 맡아 C랩을 태동시킨 사실상 ‘C랩의 아버지’입니다. 이 센터장으로부터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왜 C랩이라고 이름 지었습니까. “간단합니다. 크리에이티브(Creative)의 ‘C’입니다.”―C랩 초기 반응은 어땠나요. “당시만 해도 대단히 도발적인 제도였습니다. 임원들이 아니라 일반 사원들이 사내 스타트업 과제를 평가하도록 했어요. 임원들이 고리타분하게 자기 경력과 경험만으로 이래라 저래라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우수한 팀에 인센티브를 주고 스핀오프 시켰습니다.”―대구창조경제혁신센터와 이번에 개소한 ‘C랩 아웃사이드 대구’는 어떤 관계가 됩니까. “협력관계입니다. 저희가 C랩 아웃사이드 대구에 들어갈 만한 스타트업을 추천하면 삼성전자 심사위원들이 와서 그 중에서 고릅니다. 기존에는 저희 센터도 C랩 아웃사이드란 명칭을 썼는데 이번에 삼성이 대구에서 C랩 아웃사이드를 ‘직영’하게 됐으니 저희는 앞으로 ‘프리 C랩’ 같은 개념으로 진행하려 합니다. 저희가 스타트업 육성의 ‘초급반’, 삼성전자의 C랩 아웃사이드 대구가 ‘고급반’이 된다고 이해하시면 됩니다.”―어떤 스타트업을 선정합니까. “대구창조경제혁신센터는 대구의 지역경제에 기여할 스타트업을 뽑습니다. 삼성전자는 아무래도 삼성전자 사업에 직접 도움이 될 스타트업을 고릅니다. 그런데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함께 키운다’는 말이 있듯이, 대구의 인프라와 네트워크를 통해 스타트업이 길러지게 돼 있습니다. 삼성전자는 여전히 저희 센터의 후원 파트너사입니다.” 삼성전자는 조만간 ‘C랩 아웃사이드 광주’와 ‘C랩 아웃사이드 경북’도 문을 열어 각 지역 창업 생태계를 지원하겠다는데요. 이번에 C랩 아웃사이드 대구에 다녀와보니 여러모로 기대감이 듭니다. 여기까지 읽어주신 독자들께 감사의 마음을 담아 작은 봄 선물을 드리려 합니다. 삼성창조캠퍼스에 피어있던 매화를 찍어보았습니다. 이래저래 힘든 한국 경제상황도, 스타트업들도 봄 같은 희망을 가져보기를 소망합니다.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지난달 27일 윤석열 대통령이 연세대 학위수여식에 ‘순서지에 없던’ 특별 연사로 깜짝 나섰다. 이 대학 도서관에서 사법시험을 준비했다는 윤 대통령은 약 7분간의 축사에서 ‘혁신’을 12번, ‘미래’를 9번 언급했다. “혁신에는 반드시 기득권의 저항이 따르게 돼 있습니다. 기득권 카르텔의 부당한 지대 추구가 방치된다면 어떻게 혁신을 기대하고 미래를 이야기할 수 있겠습니까.” 같은 날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열린 대한변호사협회(변협) 정기총회에서는 김영훈 신임 회장이 취임사를 했다. “법률시장은 원래부터 ‘선비’라고 규정되는 변호사의 독점 시장입니다. 이윤이 목표인 ‘상인’이 무도하게 뛰어들었을 뿐 아니라 마치 주인인 양 자신에게 반대하는 변협을 적으로 삼아 공격하고 있습니다.” 윤 대통령이 청년들에게 ‘미래’와 ‘혁신’을 강조할 때 김 회장은 ‘선비’와 ‘상인’을 운운했다. 대한민국 엘리트 집단의 수장에게서 법철학과 문학이 흐르는 취임사까지 기대한 건 아니었지만 ‘사설 플랫폼 타도’가 절반을 채운 취임 일성은 실망이었다. 삼대(三代)가 법조인 가족이라는 김 회장이 빗댄 ‘상인’은 ‘로톡’이다. 스타트업 로앤컴퍼니가 2014년 시작한 로톡은 공정에 민감하지만 아는 변호사가 없어 법이 막막한 MZ세대와 청년 변호사를 겨냥한 온라인 법률 플랫폼이다. 분야별로 변호사 정보가 공개되고 의뢰인들의 후기가 달려 ‘그들만의 리그’였던 법률시장의 판도라 상자가 열렸다. 그러자 변협은 “공공성을 지켜야 한다”며 소속 변호사들의 로톡 이용을 막고 계속 소송을 걸어왔다. 수사당국이 아무리 ‘로톡은 무혐의’라 해도 결코 굴복하지 않는다. ‘중꺾마’(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라는 표현을 이럴 때 써야 하나. 기술 발전 속도를 법과 제도가 따라가지 못하면서 사회 곳곳에 갈등의 불씨가 있다. 부동산, 세무, 의료 분야도 비슷한 상황이다. 자유롭고 미래지향적이며 공정한 시스템을 만들기 위한 사회적 합의가 절실한 때다.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을 나온 김본환 로앤컴퍼니 대표는 최근 기자를 만나 부친인 고 김충남 전 연세대 야구부 감독 이야기를 들려줬다. 그는 어릴 적 아버지를 따라 팀 훈련을 다니며 모두 함께하는 ‘합(合)’을 배웠다고 한다. 그곳에는 뒤처진 선수를 대화와 소통으로 일으켜 세우는 팀워크와 리더십이 있었다. 아버지가 전원 아마추어 선수로 구성된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국가대표팀을 이끌었던 것은 사람과 돈의 결핍 속에서도 도전하는 스타트업 경영과 닮았다고도 했다. 기득권 카르텔이라는 적(敵)은 괴물의 모습일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대로 이어져온 배경과 관습은 익숙한 얼굴로 혁신을 막는 건 아닐까. 청년 창업가들의 도전에 국가의 미래가 달렸다. 해외에는 로톡 같은 서비스가 이미 수천 개에 달한다. 한국도 혁신 스타트업이 더 많이 나와야 한다. 스타트업들이 법률가 출신 대통령에게 거는 기대가 상상 이상으로 크다. “우리 사회의 문제를 알고도 해결하지 않는 건 죄악”이라며 가시밭길을 가는 그들을 실망시키면 안 된다.김선미 산업1부 차장 kimsunmi@donga.com}

26일 서울 강남구 강남역 인근 로앤컴퍼니 사무실에 이 회사 김본환 대표(41)가 목발을 짚고 나타났다. “창업한 후로 스트레스를 받을 때는 이렇게 다리에 통증이 옵니다. 병원에서 신경성 통증이라네요.” 건장한 체격이었지만 목발 없이는 한 걸음도 내딛기 어려워했다. 이 회사 경영도 현재 ‘목발 짚은’ 상태다. 의뢰인들이 변호사를 플랫폼에서 검색해 사건을 맡기는 ‘로톡’ 서비스를 2014년 내놓은 후 대한변호사협회(변협) 등은 소속 변호사들의 로톡 이용을 막고 잇달아 소송을 걸었다. 그때마다 ‘혐의 없음’ 처분이 나왔기 때문에 김 대표는 지난해 6월 990㎡(약 300평) 규모의 이 사무실로 확장 이전할 때만 해도 ‘지긋지긋한 법적 분쟁이 곧 끝나겠지’라는 심정이었다. 하지만 변협과 서울지방변호사회에 대한 공정거래위원회의 시정 명령과 과징금 부과 결정이 1년 8개월이나 걸리며 경영은 타격을 입었다. 일요일인데도 출근한 그는 “한국에서 스타트업이 혁신한다는 것이 이토록 힘든 줄 몰랐다”고 했다.● “청년 변호사와 MZ 소비자를 연결하겠다” 김 대표는 17일 타운홀 미팅을 열어 3월 말까지 직원의 절반을 줄이고 남은 인력은 사무실을 떠나 재택근무로 전환하는 등의 구조조정 방안을 발표했다. ―직원들의 반응은…. “직원 90여 명은 그간의 일을 잘 알면서도 뜻밖의 발표에 비통해하는 분위기였다. 억울하고 분통이 터진다. 혁신을 위해 함께 노력한 직원들에게 미안한 마음이다.” ―두 변호사단체는 공정위 발표에 불복하겠다는데…. “이번에도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 사법 시스템과 국가기관의 결정을 무시하는 직역단체로 인해 우리 회사는 지금까지 100억 원이 넘는 매출 손해를 입었다. 85개월 연속 증가하며 2021년 3월 3996명이던 소속 변호사 수는 현재 절반 수준인 2000명으로 줄었다.” ―왜 로톡에서 나간 건가. “85% 이상이 변협의 징계가 두려워서였다. 변협의 징계 효력이 발생하면 사내 변호사나 공공기관 취업이 안 된다. 로톡에서 활동하는 변호사의 80%는 청년 변호사다. 변협은 회원들에 대해 자체 징계권을 갖는다. 변협이 징계권을 남용하면 청년 변호사의 생계가 위협받는다.” ―변협이 징계권을 남용한다면 정부가 막을 수 있나. “변호사법상 법무부 장관은 변협에 대한 포괄적인 관리감독 권한을 가진다. 정부는 변협에 징계권을 위임한 만큼 그 권한을 선량하게 쓰는지 감독해 줬으면 한다.” ―변협은 왜 로톡을 문제 삼나. “공공성을 가져야 하는 변호사들이 플랫폼과 자본에 종속되는 걸 막아야 한다는 주장이지만, 실상은 법률 정보의 비대칭이 해소되는 걸 두려워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김 대표는 연세대 법학과와 경영학과, 같은 대학 법학전문대학원을 나왔다. 대학을 다니던 2003년부터 두 차례 창업 후 2012년 로앤컴퍼니를 세운 연쇄 창업가다. ‘왜 법률 서비스의 문턱은 높을까’를 고민한 끝에 15분 전화 상담에 2만 원, 30분 방문 상담 7만 원 등 청년 변호사와 MZ세대를 잇는 로톡을 내놓았다. 로톡의 이용자 3명 중 2명은 MZ세대다. 법률 상담이 막막했던 이들이 부담 없이 전문가 도움을 받고 있다는 설명이다.● “혁신의 싹을 자르니 한국에는 리걸테크 유니콘이 없다” 김 대표는 창업할 때부터 합법적인 서비스를 내놓는 게 목표였다. 변호사법 34조(동업 금지)와 109조(비변호사의 법률사무 금지)를 인쇄해 나눠주고 전 직원에게 외우라고 했다. 그래야 법의 테두리 안에서 임팩트 있는 서비스를 만들 수 있다고 봤다. 변호사법상 특정 의뢰인의 사건을 특정 변호사에게 소개하는 알선의 대가로 금품을 받으면 안 되기 때문에 광고료 명목으로 변호사로부터 받는 월정액을 수익 모델로 삼았다. 지난해 1월에는 인공지능(AI)을 적용한 판례 무료 검색 서비스 ‘빅케이스’를 내놓아 1년 만에 회원 1만6400명을 확보했다. 하지만 경영 악화로 서비스 개발과 투자가 힘에 부치는 상황이 됐다. ―일본 벤고시닷컴은 챗GPT를 활용한 무료 법률 상담 서비스를 곧 내놓겠다고 한다. “벤고시닷컴은 100만 건이 넘는 법률 상담 데이터를 확보하고 있을 정도로 일본의 리걸테크(법률과 정보기술의 결합)는 우리보다 훨씬 앞서 있다. 로앤컴퍼니는 88만 건을 갖고 있다. 한국 법원이 더 많은 판결문을 공개한다면 국내 리걸테크 발전에 도움이 될 것이다.” 업계에서는 한국 사법부의 제한적인 판결문 공개가 국내 리걸테크 발전을 방해한다고 지적한다. 전체 재판의 3분의 1 정도만 판결문이 공개되는 데다 개인정보 유출 방지 목적의 비실명화 작업으로 인해 암호문 같은 판결이 많다는 것이다. ―국내 리걸테크의 현주소는…. “한국에서는 법률상 챗GPT를 통해 의뢰인으로부터 돈을 받으면 안 된다. 그래서 변호사의 비즈니스를 돕는 용도로만 사업을 개발하고 있다. 반면 미국에는 리걸테크 회사가 2000개가 넘는다. 법률 계약서도 AI가 척척 써준다. 해외에 가면 세계 최고의 정보기술(IT) 강국인 한국에서 왜 아직도 리걸테크 유니콘이 안 나오는지 다들 의아해한다.” ―챗GPT 시대를 어떻게 맞아야 하나. “변협은 로톡에 대해 ‘선비가 지배하는 시장에 자본을 든 상인이 뛰어드는 불공정한 경쟁’이라고 한다. 이 논리대로라면 변협은 챗GPT도 막아야 한다. 기술을 원천적으로 막는 게 아니라 거기에서 나오는 부작용을 어떻게 다룰지 심도 있게 논의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아예 혁신의 싹부터 자르려 한다.” ―벤처기업협회 부회장도 맡고 있는데 앞으로 계획은…. “2012년 창업하면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보수적이고 ‘IT 프렌들리’하지 않은 변호사 집단을 대상으로 하는 사업이라 무조건 10년은 버틴다는 각오를 했다. 로스쿨을 나온 청년 변호사가 자본 없이 로톡에서 시작해 로펌을 만들어내는 과정을 보며 보람을 느꼈다. 이번 공정위 결정에 다른 스타트업들도 힘을 얻고 있다. 앞으로도 소비자 편익에 서서 도전하는 청년들을 응원하겠다.”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혁신 서비스를 내놓는 스타트업에 대한 직역단체의 잇따른 소송과 법적 분쟁 반복은 로톡 같은 법률 플랫폼만의 상황이 아니다. 부동산 플랫폼 시장에서는 ‘직방금지법’ 입법이 추진되고 있다.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10월 대표 발의한 ‘공인중개사법 일부 개정 법률안’(일명 직방금지법)은 한국공인중개사협회(한공협)에 공인중개사 회원에 대한 독점적 감독 권한을 주는 내용으로, 부동산 분야 스타트업의 성장을 가로막을 수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수석전문위원실은 16일 개정안에 대한 검토보고서에서 “취지는 바람직한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다만 특정 협회의 법정 단체화는 자유로운 단체 설립·활동의 자유를 제한하는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공정거래위원회와 국토교통부도 사실상 반대 의견을 냈다. 한공협은 ‘우대빵’ ‘다원중개’ 등 여러 프롭테크(부동산과 기술의 결합) 업체들을 고소·고발하면서 갈등을 빚어 왔다. 한공협은 ‘직방’이 지난해 3차원(3D) 매물 중개 등 간접 중개 서비스를 시작하자 ‘대형 부동산 플랫폼의 중개업 진출 결사반대’ 성명서도 냈다. 기크(Geek·임시) 노동자와 프리랜서의 소득 신고와 세금 환급을 돕는 ‘삼쩜삼’ 서비스를 운영하는 자비스앤빌런즈도 검찰 조사를 받고 있다. 한국세무사회는 삼쩜삼이 무자격 세무대리, 불법 광고라며 경찰에 고발했다가 무혐의 결정을 받자 이의신청서를 냈다. 비대면 의료 앱을 통해 약 배달을 하는 ‘닥터나우’와 성형외과 수술비를 공개하는 ‘강남언니’(힐링페이퍼)도 각각 대한약사회, 대한의사협회와 갈등을 빚고 있다. 스타트업 업계 관계자는 “투자가 얼어붙은 상황에서 스타트업이 직역단체의 불필요한 소송에 휘둘리면 기업의 생존 자체가 어려워진다”며 “모든 건 국민 편익의 기준에서 판단돼야 한다”고 말했다.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로봇 휴보 아빠의 ‘덕업일치’‘삼성전자가 찜한 로봇 기업’으로 화제에 오른 레인보우로보틱스의 창업자는 ‘휴보 아빠’ 오준호 KAIST 석좌교수다. 옥상에 세 대의 천체 망원경을 설치한 사옥에서 로봇 개발과 천문 관측으로 ‘덕업일치’의 삶을 사는 오 교수를 만났다.》소년의 별명은 ‘꼬마 박사’였다. 오씨 성을 따서 ‘오 박사’로도 불렸다. 세상의 모든 것에 관심 있어 백과사전과 지리도감을 끼고 살았다. 신기한 것은 죄다 뜯어보고 만들어봤다. 미국 컬럼비아대에서 교육학을 전공한 소년의 부모는 1960년대에 ‘우리의 태양(Our Sun)’이라는 책을 그에게 선물했다. 소년은 까만색 표지에 주황색 태양이 있던 그 책을 통해 화성에 ‘포보스’와 ‘데이모스’라는 두 개의 위성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때부터였을까. 밤하늘에서 행성을 찾았다. 아무 생각 없이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 좋았다. 종이 위에 별자리를 그려보고, 렌즈를 마분지로 감아 천체 망원경도 만들었다. 기계, 물리, 우주 발사체…. 60년 넘게 뻗어온 그의 호기심은 그만의 ‘인생 별자리’를 이룬 것 같다. “로봇을 목표로 한 적은 없어요. 로봇은 다양한 재미를 찾는 과정 중의 하나였거든요.” 국내 최초 인간형 2족 보행 로봇 ‘휴보’를 만든 ‘휴보 아빠’ 오준호 KAIST 기계공학과 석좌교수 겸 레인보우로보틱스 최고기술책임자(69) 얘기다. 한국을 대표하는 로봇 공학자인 그에게 최근 뉴스가 더해졌다. 그가 창업한 로봇 회사에 삼성전자가 590억 원을 투자한 것이다. 한국아마추어천문학회장에도 오른 그의 삶이 궁금해져 대전행 기차에 올랐다. ● 삼성전자가 처음 투자한 로봇 기업 대전 유성구 KAIST 문지캠퍼스 옆에 있는 레인보우로보틱스 사옥 앞에 서자 3층짜리 건물 위로 직경 6m의 돔이 보였다. ‘휴보 아빠’가 나와서 인사를 건넸다. “내려가 로봇을 먼저 보실래요? 옥상의 천문대부터 가 보시겠어요?” 로봇부터 보기로 했다. 2004년 최초의 휴보에서 몇 차례 진화한 DRC휴보(2013년)가 서 있었다. 2015년 미국 국방고등연구계획국(DARPA) 로봇챌린지에서 우승하고 2018년 평창 겨울올림픽 성화를 봉송해 친숙한 로봇이다. 그런데 그 옆에 처음 보는 로봇이 있었다. ―이 로봇은 두 다리만 있다. “저희가 5년째 연구개발 중인, 100% 유압으로 작동하는 2족 보행 로봇이다. 힘센 다리를 주력해 개발하느라 아직 얼굴과 팔은 달지 않았다. 관절 역할을 하는 액추에이터, 밸브, 펌프, 제어부 등 핵심 부품을 100% 우리 기술로 만들었다.” 자부심이 느껴졌다. 2000년 일본 혼다가 전기모터 방식의 인간형 로봇 ‘아시모’를 내놓자 “우리도 할 수 있다”며 내놓았던 게 휴보다. 이제는 현대차그룹이 인수한 미국 보스턴다이내믹스의 2족 로봇 ‘아틀라스’같은 유압 방식의 로봇에 도전하고 있는 것이다. ―왜 유압 방식인가. “로봇의 다리 관절에 유압 모터를 장착하면 가벼우면서도 강한 힘과 속도를 낼 수 있다.” ―인간형 로봇은 곧 상용화하나. “로봇은 인간의 명령대로 움직이는 장치일 뿐이다. 사람처럼 생겼으니 사람처럼 움직일 거라고 기대하면 안 된다. 자율주행처럼 갈 길이 멀다.” ―인공지능(AI)을 장착시키면 인간의 친구가 될 수 있지는 않나. “그런 생각은 판타지다. AI에 대해 다들 환상이 지나치다. 잘되는 건 잘되고, 안 되는 건 안 되는 건데 막 뒤섞어 얘기하고 있다. 챗GPT도 굉장히 수준이 낮다. ‘내가 누구냐’고 물으면 나를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정보들을 조합해 ‘오준호’라고 답할 뿐이다.” “커피 한잔하자”는 그의 안내를 받고 따라간 곳은 레인보우로보틱스 1층에 있는 가로 1.7m, 세로 1.5m, 높이 1.95m 크기의 부스 앞이었다. 로봇 팔이 에스프레소를 내린 뒤 우유를 얹어 카페라테를 1분 내로 뚝딱 만들어냈다. ―이 협동로봇이 주력 제품인가. “그렇다. 지난해 회사 매출이 140억 원 정도 됐는데 2년 전 시작한 협동로봇이 매출의 80∼90%였다. 협동로봇은 사람과 작업공간을 나눠 쓸 수 있어 ‘새로운 시장’이 있다고 본다. 올해 생산량을 800대로 늘리고 첫 수출도 하겠다.” ―참, 휴보 이름은 무슨 뜻인가. “그냥 ‘휴보’ 발음이 예뻐서 지었다. 매사에 거창한 의미를 부여하는 건 재미없지 않나.”● “부모의 가르침대로 자녀에게도 자율성 줬다” 연세대 기계공학과를 졸업한 오 교수는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에서 공학박사 학위를 받은 후 1985년 KAIST 기계공학과 교수로 부임했다. 2000년대 초반 ‘휴보’를 만든 것은 일본이 ‘아시모’를 내놓는 것을 보고 ‘저게 돼?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럼 해 봐야지’라는 생각에서였다. ―호기심이 많았나 보다. “어릴 때부터 자동차 바퀴 체인과 할머니 재봉틀이 신기했다. 백과사전을 넘겨 보면서 모르는 것을 알아가는 과정이 그렇게 재미있고 행복할 수 없었다.” ―부모는 어떤 분들이었나. “고등학교 때 반 72명 중 68등을 한 적이 있다. 그런데도 부모님으로부터 공부하라는 압박을 받아본 적이 없다. 부모님은 집에서 대화를 많이 하고 항상 글을 쓰셨다. 우리가 어떻게 사회에 봉사할 수 있는지가 일상의 대화였다. 가족예배를 드리면 국가와 민족을 위해 먼저 기도했다. 우리가 어디에 땅을 살까 이런 얘기는 단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 오 교수의 아버지는 고 오기형 연세대 교육학과 명예교수, 어머니는 11·12대 국회의원과 한국여성정치연맹 총재를 지낸 고 김현자 의원이다. 이들의 교육 철학이 궁금해 옛 신문 보도를 찾아보았다. 고 오기형 명예교수는 1976년 한 기고문을 통해 “인간의 교육은 졸업하면 끝나기 쉬운데 젊은 시절에 평생 동안 스스로 성장할 수 있는 의지력, 기본적인 태도, 습관을 길러줘야 한다”고 썼다. 고 김 의원은 56세이던 1984년 한 기고문에서 “요즘은 시간 나는 대로 서예를 배우는데 나이에 구애되지 않고 항상 뭔가를 배운다는 것 또한 인생의 즐거움입니다”라고 썼다. ―나이 든 후에도 계속 배우셨나 보다. “어머니는 서예뿐 아니라 90세로 세상을 뜨기 전까지 중국어를 열심히 배우셨다. 미국에서 유학해 영어를 잘하신 부모님은 컴퓨터도 일찍 배워 영어로 e메일을 많이 썼다.” 오 교수의 아들은 2021년 미국 아카데미 단편 애니메이션 후보작 ‘오페라’를 만든 에릭 오 감독(39)이다. 영화 ‘미나리’로 여우조연상을 받은 배우 윤여정과 함께 아카데미의 새 역사를 쓴 한국계 영화인이다. 미 픽사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에서 ‘도리를 찾아서’와 ‘인사이드 아웃’에도 참여했다. 오 교수의 딸은 국내 화장품 회사에서 인조 피부를 개발하고 있다. ―부모로부터 배운 대로 자녀들을 대했나. “만화를 좋아하는 아들이 고등학교 1학년 때 미술을 하겠다고 했을 때 응원했다.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만큼 행복한 일은 없으니까. 스스로 준비하더니 서울대 미대에 가더라.” ―원래 창업의 원대한 꿈이 있었나. “아니다. 2011년 휴보를 구입하겠다는 외국 연구기관의 주문이 8건이나 들어와 시작하게 됐다. 한 대에 5억 원이었으니 40억 원을 쥐고 시작한 교원 창업이었다. 당시 창업에 관심을 보인 대학원 제자(이정호 레인보우로보틱스 대표)와 1년간 공동대표를 지낸 뒤 지금까지 최고기술책임자(CTO)를 맡고 있다.” ―‘교수 리더십’이겠다. “창업 때부터 현금이 두둑한 ‘꽃길’을 걸어 돈 걱정을 해 본 적이 없다. 이번에 삼성이 투자하면서 1000억 원이 넘는 현금을 보유하게 됐다. 경영은 투명하고 공정해야 한다. 직원 70명인 지금도 영업과 홍보를 일절 하지 않는다. 저는 재무나 인사는 관여하지 않고 사업의 본질인 기술 얘기만 한다.” 레인보우로보틱스는 곧 미국에 첫 해외 지사를 세울 계획이다. 현지 인력을 뽑는 화상 인터뷰를 마친 이 대표, 오 교수와 이 회사 구내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고구마튀김과 찐만두가 나오는 ‘소박한 집밥’ 같은 식단이었다. 이 대표가 직접 작명했다는 레인보우로보틱스 회사명에 얽힌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10여 년 전에는 많은 회사들이 ‘∼테크’ 같은 회사명을 썼다. 뭐 하는 회사인지 궁금증을 자아내고 싶어 ㈜레인보우로 처음에 지었다.”(이 대표) “미국 친구들이 동성애 사업을 하는 회사냐고 묻기에 ㈜레인보우로보틱스로 바꿨다. 이제는 누구도 뭐라 하지 않는다. ‘애플’이 왜 사과냐고 시비 거는 사람이 없듯이.”(오 교수)● ‘덕질’이 일의 보람으로 연결되는 기쁨 레인보우로보틱스 옥상의 천문대에는 세 대의 천체 망원경이 있었다. 미국 뉴멕시코주에도 원격 천문대가 있다. 오 교수가 이 천문대를 원격 작동시켜 장미성운을 보여줬다. ―로봇과 망원경은 어떤 관계인가. “망원경은 두 개의 모터가 달린 로봇이다. 망원경의 감속기와 구동기 등 핵심 기술이 로봇에 쓰인다. 로봇 기술로 만든 레인보우로보틱스의 천문 마운트(추적 장치) 시스템은 천문 선진국들에 수출된다. 특히 하모닉 감속기가 적용된 고정밀 마운트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오 교수는 소문난 천문 관측 전문가다. 그가 2017년 미국 오리건주에서 촬영한 개기일식(달이 태양과 지구 사이를 지나면서 태양을 완전히 가리는 현상) 영상은 한국인 천체사진 작가 중에서는 두 번째로 미국항공우주국(NASA)이 선정한 ‘오늘의 사진(APOD)’으로 선정됐다. 2021년 10월에는 전남 여수시 백야도에 진을 치고 있다가 한국형발사체 누리호의 1, 2단과 페어링 덮개가 분리되는 장면을 단독 촬영해 공개했다. ―최근 한국아마추어천문학회장이 됐다. “평생 천문을 관측하면서 해 보고 싶은 것은 웬만큼 다 해본 것 같다. KAIST 연구실 건물 옥상에도 작은 개인 천문대를 만들어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 별을 설명해주는 ‘스타(별) 파티’도 했다. 개인적으로는 언젠가 경통을 깎아 나만의 망원경을 만들고 싶다. 이번에 회장을 맡은 한국아마추어천문학회는 천문 저변을 넓히기 위해 봉사하는 단체다. 다음 달에는 ‘메시에 마라톤’을 연다. 프랑스 천문학자 샤를 메시에가 110개 성단(星團)에 이름 붙인 ‘메시에 목록’을 하룻밤 동안 육안으로 찾는 행사다. 밤하늘의 별들이 내게로 쏟아지는 것 같은 기분을 느껴 봤으면 한다.” ―미래세대에게 말해주고 싶은 것은. “포기(실패)가 무서워 시도를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 일단 시작하면 끝까지 가게 될 때가 많다. 휴보를 만들 때도 그랬다. 그러려면 포기하지 않을 일을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 평소 깊이 생각하고 준비하면 그 일이 왔을 때 ‘내 일’이란 느낌이 온다. 삶은 그 느낌을 키우는 여정이다. 과정의 경험이 값지다면 실패해도 실패가 아니다.” ―요즘 좋아하는 일은. “어려서부터 하늘을 날고 싶었다. 어느 날 아침 눈을 떴는데 더 나이 들기 전에 용기를 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그 길로 경량 항공기 조종사 교육을 받으러 갔다. 중간에 포기하고 싶은 마음을 이겨내고 성취했더니 행복하다. 지난해 12월 자격증을 따서 지금까지 45시간 비행했다. 4월에는 호주 엑스머스 해변가로 개기일식을 관측하러 간다.” ‘휴보 아빠’의 덕업일치 삶을 들으면서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가 떠올랐다. 대개는 상상만 하는 인생의 ‘버킷리스트’를 그는 두려워하지 않고 현실에서 이뤄낸다. 그와 인터뷰하면서 “정말 힙하시네요”라는 말을 여러 번 한 것 같다. 그런데 그의 ‘덕질’은 충동적인 게 아니었다. 경량 항공기 조종도 “어느 날 문득”이라고 했지만 실은 오랫동안 마음속에 담고 용의주도하게 준비했던 꿈이었다는 것이다. 결국은 꿈이 있느냐 없느냐의 이야기였다.대전=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16일 경기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국내 최대 건설·건축 전문박람회 ‘코리아빌드’. 모듈러(조립식) 주택 스타트업인 ‘스페이스웨이비’ 부스에서 만난 회사원 황모 씨(54)는 이 회사의 14평짜리 집을 계약했다. 퇴직 이후의 삶을 준비하기 위해 2년 전부터 세컨드하우스를 알아보던 그는 인천 강화도의 250평 땅에 30, 40평대 집을 짓기에는 비용 부담이 커서 1억 원 미만으로 10평대 모듈러 주택을 짓기로 한 것. 황 씨는 “세컨드하우스를 지어 오도이촌(五都二村·주중 닷새는 도시, 이틀은 시골에서 지내는 생활)을 하고 싶다”며 “주말에 친구들과 ‘불멍’을 하고 텃밭에서는 유기농 작물을 키우겠다”고 말했다.● “지친 심신을 달래는 세컨드하우스”팬데믹이 촉발한 재택근무와 워케이션(일과 휴가의 결합)이 세컨드하우스 시장을 키우고 있다. 사치를 막는다는 취지로 1973년 도입됐던 ‘별장 중과세 제도’의 폐지를 위한 법안도 15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를 통과했다. 한국지방세연구원은 “도시 사람들이 휴양 및 여가를 위해 세컨드하우스를 구입하면 농어촌 지역의 주택 거래가 활발해져 실질적인 지역 인구 증가와 지역 활성화가 기대된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세컨드하우스는 미국에서 2020년 설립된 부동산 공동소유 스타트업 ‘파카소’가 시장을 급성장시켰다. 이 회사는 내파밸리 등 미국의 인기 휴양지에 공동 별장을 지어 8명에게 나눠 판다. 연중 8분의 1 기간만큼 ‘나만의 세컨드하우스’로 이용하는 방식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지친 심신을 달래려는 수요가 몰려 이 회사는 창업한 지 1년도 되기 전에 유니콘(기업 가치 1조 원 이상 비상장사)으로 등극했다. 파카소의 성공을 보고 유럽에서도 ‘알타카사’ ‘프렐로’ ‘프랙털홈스’ 등의 스타트업이 유사한 서비스를 선보이고 있다. 국내에서는 ‘제주 한 달 살기’ ‘양양 한 달 살기’ 등을 경험한 MZ세대가 세컨드하우스 시장에 진입하고 있다. 주로 도시에서 나고 자란 MZ세대는 시골이라는 ‘낯선’ 공간에서 자신들의 현대적 라이프스타일을 누리고 싶어 한다. 가용 예산은 주로 1억 원 미만. 최근 국내 건축 관련 스타트업들은 이런 소비자 니즈를 겨냥한 공유 별장 서비스를 내놓고 있다. ‘클리’의 ‘마이세컨플레이스’ 서비스는 시골의 10평대 빈집을 사들여 고친 후 5명에게 나눠 팔기 때문에 공동 소유주 한 명당 부담액이 5000만 원이다. 잡초 제거나 동파 방지 등 단독주택의 어려운 유지관리는 물론 이웃과의 의사 소통도 전문가가 대신해 준다. ‘스테이빌리티’는 일본의 ‘낫어호텔’을 벤치마킹해 강원 홍천에서 ‘밀리언 그라운드’ 서비스를 시작했다. 공동 소유주들이 이용하지 않을 때에는 호텔로 운영해 공실률을 줄이겠다는 전략이다.● “취향 따라 짓는 모듈러 주택” 국내 정보기술(IT) 회사에 다니는 문모 씨(32)는 최근 경남 통영시 욕지도에 9평짜리 모듈러 주택(6000만 원대)을 지었다. 육로가 없어 건축자재 공수가 까다로운 상황을 공정의 80%를 미리 짓는 모듈러 주택으로 해결했다. 공장에서 규격화를 거쳐 생산되는 모듈러 주택은 공사기간이 짧고 비용이 적게 든다. 건설 현장의 소음과 폐기물, 인력 부족도 해결할 수 있다. 무엇보다 라이프스타일에 따라 건물을 조립할 수 있어 인기다. 세컨드하우스에서 요리를 즐기고 싶다면 주방을 넓게, 책을 읽고 싶다면 서재를 넓게 짓는 식이다. 대기업도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GS건설이 신사업을 위해 2020년 세운 자회사 자이가이스트는 최근 충남 당진에 샘플하우스를 열고 30평대 모듈러 주택을 선보이고 있다. 이 회사는 다음 달 국내 모듈러 단독주택 시장에 진출할 계획이다. 모종린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교수는 “삶의 질이 중시되면서 다양한 주택에 대한 수요가 커지고 있다”며 “세컨드하우스는 더 이상 사치재가 아니라 젊은 세대를 시골로 불러들일 수 있는 지방 소멸 방지 대책이라는 인식 전환과 인센티브가 필요하다”고 말했다.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안녕하세요. 스테파니 독자 여러분. 동아일보에서 미래&스타트업팀 데스크를 맡고 있는 김선미 기자입니다. 스테파니가 무슨 뜻인지 아시죠? ‘스’타트업과 ‘테’크놀로지를 ‘파’헤쳐보‘니’의 준말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더 나은 미래를 향한 테크놀로지 트렌드를 소개해 드리려 합니다. 예술과 과학이 융합되는 시대에 미술품 감정에 적용되는 요즘 과학 기술입니다.미술품 감정은 올해 예술계의 가장 뜨거운 이슈 중 하나입니다. 올해 1월1일부터 상속세 납부세액이 2000만 원이 넘는 경우 문화재와 미술품으로 물납이 가능해졌기 때문입니다. 돈 대신 세금으로 내는 예술품이 위작(僞作)이면 안 되겠죠.이런 상황에서 한국화랑협회와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이 14일 서울 성북구 KIST 본원에서 ‘ART & TECH, 연결과 확장’이라는 세미나를 개최해 다녀왔습니다. 국내 미술시장과 첨단 과학을 주도하는 두 단체는 지난해 4월 업무협약을 맺고 예술과 과학의 융합을 논의해왔는데요. 이날의 세미나를 스테파니 독자 분들에게 지상 중계해 드립니다.세미나는 △1부: 디지털, 빅데이터, 인공지능 아트 △2부: 과학 분석 기술기반 미술품 감정으로 진행됐습니다. 1부에서는 KIST 연구진들이 빅데이터의 패턴화 및 인공지능(AI) 학습방법, 홀로그램 기술 동향, 뇌파 인터랙션, 삼차원 메타버스 등에 대해 소개했습니다. 오늘 여러분들에게 집중 소개해 드리고 싶은 것은 2부입니다.160여개 갤러리로 구성된 한국화랑협회는 국내 최대 규모의 아트페어인 키아프(Kiaf)를 주최해 온 단체로 산하에 미술품감정위원회를 두고 1982년부터 감정활동을 해 왔습니다. 이날 황달성 한국화랑협회장은 설명했습니다. “지난해 세계적 아트페어인 프리즈(Frieze)가 서울에서 성황리에 열린 후 우리가 프리즈를 이길 수 있는 게 무엇일지, 우리가 잘 할 수 있는 건 무엇인지 고민했습니다. AI, AR(증강현실)과 VR(가상현실), 챗봇, NFT(대체불가토큰) 등에 대해 집중해야 한다는 결론을 도출했습니다. 더욱이 올해부터 상속세 물납이 시행되면서 미술품 감정에 신뢰도를 높일 과학적 분석이 절실해졌습니다.”미술품 감정은 그동안 전문가와 평론가 등이 해당 작가와 작품의 화법·재료·구도·서명 등을 안목과 경험으로 살피는 ‘안목 감정’이 전통적 방식이었는데요. 이날 발제에 나선 과학자들은 미술품 감정에 과학적 분석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면서도 ‘과학 감정’이라고 불리는 것에 대해서는 조심스러운 입장이었습니다. ‘미술품에 대한 과학적 분석과 접근’으로 이해해달라며 앞으로 관심과 논의를 통해 더 많은 과학적 데이터가 확보돼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테라헤르츠 전자기파서민아 KIST 연구원의 발제 주제는 ‘분광학(分光學) 기반 미술품 감정 및 암호화’였습니다. 서 연구원은 ‘미술관에 간 물리학자’ ‘빛이 매혹이 될 때’ 등의 저서를 통해 물리학자의 눈과 화가의 마음으로 본 빛과 예술을 소개해왔는데요. 테라헤르츠파(투과성을 가진 방사성 전자파), 적외선, 형광, 엑스선 검사 등 다양한 파장의 광학 장비를 이용하는 분광법을 동원해 과학적으로 그림을 분석하면 위작을 가려낼 수 있다는 설명이었습니다. 빛은 엑스선부터 자외선, 가시광선, 적외선, 테라헤르츠파 쪽으로 나아가며 파장이 점차 길어지는데요. 파장이 긴 빛은 그림 표면에서부터 더 깊이 그림 안으로 침투했다가 반사돼 그림 내부 정보를 알려줍니다. 테라헤르츠파는 자연계에 존재하지 않아 오랫동안 미지의 영역으로 여겨지다가 1990년대부터 기술 개발이 시작됐습니다. 파장은 길지만 에너지가 매우 낮아 물질을 훼손하지 않고, 다양한 절연체 물질도 관통할 수 있는 특징이 있습니다. 서 연구원은 말합니다. “적외선이나 테라헤르츠파로 작품을 관찰할 수 있는 카메라를 활용하면 유화의 물감 아래 젯소가 칠해진 부분, 심지어는 나무나 캔버스 표면도 관찰할 수 있습니다. 유럽의 대형 미술관과 과학 연구소들은 파장이 긴 빛으로 그림을 분석하는 연구를 이미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습니다. 일례로 프랑스 루브르박물관은 새로운 감정 기술이 나올 때마다 과학자들이 유명 작품에 직접 검사해 볼 수 있도록 합니다. 우리도 실험실이라는 제한적 환경을 벗어나야 외국처럼 이 분야의 상업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고 봅니다.” ●방사성 탄소 연대측정 미술품의 과학적 분석은 엑스레이 분석법 등 비파괴 조성분석과 방사성 탄소 연대측정의 파괴분석으로 나뉩니다. 유병용 KIST 연구원은 이날 방사성 탄소 연대측정을 소개했습니다. 유기물에 들어있는 방사성 탄소(14C)의 양으로 유물과 화석의 연대를 측정하듯 미술품의 연대측정에도 방사성 탄소가 시계처럼 활용되고 있다고 합니다. 미술품의 안료, 철재, 캔버스, 종이, 나무 등에 있는 탄소를 통해 작품의 제작 연대를 파악하는 방법입니다. 다만 14C는 양이 매우 적어 가속기질량분석기(AMS)가 사용됩니다.국내 미술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고 박수근 화백의 ‘빨래터’ 위작 논란(2007년) 때에도 한국미술품감정연구소는 서울대 기초과학공동기기연구원 등에 의뢰해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과 물감성분 분석, 엑스레이 형광분석법 등을 진행했습니다. 2년 가까이 끌었던 진위공방은 2009년 서울중앙지법이 “빨래터가 진품인 것으로 추정되지만 위작 의혹을 제기한 미술잡지의 취재도 정당하다”며 일단락됐죠. 유 연구원은 “연대 측정은 작품의 재료에 대한 시기만 제공하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반드시 전문가의 안목과 함께 고려돼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유화 물감 분석이날 세미나의 마지막 발제자는 이한형 이송문화유산기술 대표였습니다. 이송문화유산기술은 한국전통문화대학교 산학협력단에서 출발해 지난해 설립된 과학기술 회사입니다. 이 대표는 미술품 감정 지원을 위한 유화 물감 분석을 소개했습니다. 이 대표에 따르면 국내에서는 1940년대 이전에는 ‘마티숑’과 ‘홀베인’ 등 일본에서 생산되는 유화재료가 쓰였습니다. 해방 이후부터 1960년대까지는 미 군부대를 통해 수입되는 유화재료, 서울 을지로의 재료상들이 무기안료를 구입해 린시드 오일과 혼합해 만든 유화물감 등이 사용됐습니다. 1970년대 이후에는 알파화학과 신한화구가 전문가용 유화물감 생산을 시작하는 한편 국가주도 민족기록화 사업을 위해 네델란드 ‘램브란트’, 프랑스 ‘르프랑’, 영국 ‘윈저앤뉴튼’ 등의 유화물감도 수입됐습니다.이 대표의 설명을 듣고 황인 미술평론가가 말했습니다. “마티숑 물감 얘기하시니 반갑네요. 김구림 화백(87·한국 1세대 전위 예술가)이 마티숑을 사용했기 때문에 김 화백 초기작 진위를 감별할 때 마티숑인지 아닌지 봅니다. 이렇게 물감이 시대별로 데이터베이스화하면 앞으로 작가와 인터뷰할 때 ‘1960년대에는 어떤 제품을 썼습니까’ 물어볼 필요가 없겠네요.” ●미술품 감정 신뢰도 높이려면세미나의 마지막 순서는 패널토크였습니다. 한국화랑협회 감정위원회 윤용철·황규성·황인 위원과 유병용·서민아 연구원, 이한형 대표가 자리했습니다. 감정위원들은 위작의 실력이 갈수록 고도화돼 미술품 감정에 과학기술의 활약이 절실하다고 입을 모았습니다.미술품 감정의 신뢰도를 높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과학자들은 “과학자들의 데이터와 연구결과에 대한 신뢰가 일단 요구된다”고 합니다. 과학기술을 충분히 인정하고 고려하면서도 여러 사안을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점도 강조합니다. 예를 들어 광학 분석으로 똑같은 재료와 색상이 나와도 작가의 팔 길이에 따라 물감 두께나 붓이 지나간 흔적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다양한 접근방식을 활용해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마지막으로 이날 세미나에 참석한 한 작가의 질문을 소개해 드리려 합니다. “합리적 비용으로 간편하게 제 작품의 위조를 방지할 방법이 있을까요.” 전문가들은 이렇게 답했습니다. “가장 간단한 방법은 밑그림 그릴 때 작가의 이름이나 작가만 아는 작은 그림을 그려 넣는 겁니다. 그러면 나중에 적외선 영역대의 카메라로도 볼 수 있습니다.”아직 갈 길이 멀어 보이긴 해도 예술과 과학을 연결하고 확장하려는 자세가 진지한 세미나였습니다. 스테파니는 다음주 목요일 오전 8시에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하우스 비전’이라는 전시가 충북 진천에서 열려 다녀왔다. 논밭에 각종 집과 농막이 들어선 것도 신선했지만 그걸 보러 진천까지 온 젊은이들이 많은 건 더 신기했다. 하우스 비전은 일본 무인양품의 아트 디렉터 하라 겐야가 ‘급속한 도시화를 거친 아시아의 주거 문제를 해결하려면 로컬로 눈을 돌려야 한다’며 2013년 시작한 글로벌 전시다. ‘농(農)’을 주제로 한 이 전시에서는 지방의 미래 라이프스타일이 제안됐다. 국립중앙박물관 ‘사유의 방’을 설계한 최욱 건축가가 만든 ‘작은 집’에 들어서니 ‘집이 꼭 클 필요는 없겠다’ 싶었다. 2.4㎡의 입방체 모듈을 쌓아 바깥 풍광을 보며 책을 읽기에 좋은 집이었다. 아난티 코브를 설계한 민성진 건축가는 정보기술(IT)을 접목한 유리 온실 속 복층 집을 선보였다. 키우던 하우스 작물로 아일랜드 조리대에서 요리하면 행복할 것 같았다. 하라의 생각은 이랬다. “사람들은 좁은 집을 비싸게 사는 도시에 한계를 느낀다. 인간의 감각을 충족시켜 주는 것은 자연이다. 우리가 바라는 미래의 집은 신분의 상징도, 건축적 야심의 표현도, 부동산 가치를 지닌 상품도 아니다. 집은 에너지, 저출산과 고령화, 농업과 먹을거리 등 산업과 미래의 교차로다.” 최근 한 스타트업을 통해 충남 공주시 유구읍에 세컨드 하우스를 마련한 워킹맘 한모 씨(39)의 이야기를 들어볼 기회가 있었다. 충북 청주에 사는 한 씨는 일곱 살 쌍둥이를 자연 속에서 키우고 싶어 주말마다 전국을 여행하다 보니 시골집을 장만하고 싶어졌다고 했다. 그러던 중 이 스타트업의 ‘마이세컨플레이스’ 서비스를 알게 됐다고 한다. 건축과 부동산 전문가들이 창업한 이 청년 스타트업은 농촌의 빈집을 ‘꿈의 시골집’으로 탈바꿈시킨다. 부지 300㎡(약 100평)에 건물 43.65㎡(약 13.2평). 잔디 깔린 마당에는 오두막 미끄럼틀이 있고 작은 집 안에는 로봇 청소기와 빌트인 가전이 있다. 헌 집을 새 집으로 고친 뒤 5명에게 지분을 쪼개 파는 형태라 공동 소유주 중 한 명인 한 씨는 5000만 원만으로 연중 5분의 1의 기간 동안 이 집을 사용할 수 있다. 한 씨는 “앞산이 보이는 마당에서 ‘불멍’을 하며 나를 들여다보고, 이웃 할머니가 건네는 배추로 김치도 담근다”고 했다. 회사 측에 따르면 시골집에 젊은이들이 드나들면서 마을 인프라가 늘어나고 있다. 지방 소멸과 동일본 대지진을 겪은 일본에서 건축가와 청년들이 집과 로컬의 미래를 고민해 왔듯, 한국에서도 젊은 스타트업들이 움직여 반갑다. 지방의 빈집을 숙소나 문화공간으로 바꾸고, 전원생활을 가능케 하는 모듈러 주택을 짓는 스타트업도 있다. 일본 정부가 2016년부터 ‘관계인구’(지역을 자주 찾는 인구)를 인구 정책에 활용하는 가운데 한국도 올해부터 인구감소지역 지원 특별법을 시행하며 ‘생활인구’(통근과 통학 등으로 체류하는 인구 포함) 개념을 도입했다. 대지진만큼이나 팬데믹도 집에 대한 우리의 인식의 판을 흔들었다. 시골집에서 ‘나다움’과 마음의 위로를 찾는 생활인구가 로컬에 젊음과 활기를 불러오기를 기대한다.김선미 산업1부 차장 kimsunmi@donga.com}

최근 서울 시내에서 눈이 달린 바퀴 네 개의 박스형 자율주행 배달 로봇이 종종 목격된다. 2021년 10월 탄생한 ‘뉴비’다. 가로 56cm, 세로 67cm, 높이 69cm, 무게 60kg. 평균 시속 7km로 한 번에 40kg까지 실어 나를 수 있다. 이 로봇을 개발한 자율주행 로봇 스타트업 ‘뉴빌리티’의 이상민 대표(26)는 ‘우주 소년’이었다. 고교 시절 미국항공우주국(NASA·나사)의 공모전에 우주 변기 아이디어를 출품해 대상을 받았다. 연세대 천문우주학과 2학년이던 2017년 로켓 동아리 형태로 창업해 초소형 위성을 개발하다가 자율주행 로봇에서 인류의 미래를 찾은 그를 미 경제전문지 포브스는 ‘아시아 30세 이하 리더’로 선정했다. 서울 성동구 성수동 뉴빌리티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스타트업이라서 오히려 규제를 허물 수 있었다” 뉴빌리티는 지난달 미국 최대 가전·정보기술 박람회인 CES에서 스마트시티 부문 혁신상을 받았다. 2일 윤석열 대통령은 CES 혁신상을 받은 기업인 40명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로 초청해 점심식사를 함께 했다. 여기에 참석했던 이 대표는 “윤 대통령이 ‘지난해 광주에서 열린 비상경제민생회의 때 뉴비의 시연을 봤다’고 기억하더라”며 “(윤 대통령이) 스타트업을 막는 규제를 열심히 풀어주겠다고 약속했다”고 전했다. 실내에서 서빙하는 로봇들과 달리 뉴비는 실외를 달린다. 골프장과 대학 캠퍼스 등에서 75대의 뉴비가 다니고 있다. 현행법상 자율주행 로봇은 사륜차로 분류돼 도로 주행이 불가능한데 어떻게 가능한 일일까.“규제 완화 요구가 커지면서 2019년 12월부터 실증을 통한 규제 샌드박스가 시행 중이다. 도심지 도로와 달리 사유지 내 자율주행에는 제한이 없어 다양한 사유지에서 수백 km의 배달을 무사고로 실증해왔다. 로봇 분야는 민관이 합심해 규제 완화에 적극적이다. 보도와 횡단보도에서의 로봇 통행은 올해 안에 허용될 것으로 기대된다. ‘대기업이 나섰다면 뚫기 어려운 규제가 스타트업의 주도 덕분에 풀리고 있다’는 말도 듣는다.” 뉴비의 차별화된 특성은 센서다. 이 대표는 “대개의 로봇은 비싼 라이다 센서를 사용해 제조 원가가 수억 원 단위로 비싸진다”며 “우리는 10대의 카메라와 3대의 센서를 활용하는 센서 퓨전기술을 활용해 대당 목표 제조원가가 700만 원대라 가격 경쟁력이 있다”고 말했다. 이 원가를 500만 원대까지 낮춰 로봇의 대중화를 이끌겠다는 게 그의 비전이다.“로봇이라고 하면 대개 사람처럼 생긴 휴머노이드 로봇을 생각하지만 일상에서는 로봇청소기가 생활을 편리하게 해 주고 있다. 로봇과 함께 살아가는 ‘위드 로봇’ 시대가 되려면 우리 같은 스타트업이 빨리 만들고 빨리 실패하며 로봇 시장을 키워야 한다.”●“미래에도 인간은 운전하는 기쁨을 포기하지 않을 것” 이 대표가 친구들과 로켓 동아리로 시작한 창업은 여러 번 망할 뻔한 상황에서 은인을 만났다. “게임을 잘하게 만들어주는 장갑을 만들겠다”는 포부를 듣고 손주은 메가스터디 회장과 류중희 퓨처플레이 대표는 “절대로 돈 벌 수 없는 아이템”이라며 뜯어 말렸다. 다만 그 도전의식과 용기를 높이 사 각각 5000만 원씩 시드 투자를 해줬다. 이 대표가 나사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을 당시 한국항공우주연구원장이었던 조광래 전 원장도 촉망받는 ‘우주 소년’이 창업을 택하자 “견디고 참고 기다려라”며 지금껏 멘토가 돼 주고 있다고 한다.“창업 멤버들과 3년 동안 월급을 가져가지 않고 대기업들의 자율주행 소프트웨어 개발 외주 일을 독학하며 수행해 버텼다. 그 과정에서 우리가 풀어야 하는 문제가 우주가 아닌 일상에도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구인난에 힘들어하는 자영업자분들을 돕고 싶다.” 뉴빌리티는 삼성웰스토리, 신세계 시그나이트파트너스, 롯데벤처스 등으로부터 지금까지 268억 원의 투자(시리즈A)를 받았다. 유통 및 소비재 업체들이 주요 투자회사이면서 고객회사여서 조만간 뉴비가 B2C 형태로 고객과 만날 가능성이 커진다. 이 대표는 말한다. “미래에도 로봇이 100% 인간을 대체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자율주행이 완벽하게 이뤄지는 날이 와도 사람들은 운전하는 기쁨을 완전히 포기하고 싶어 하지는 않을 것이다. 로봇은 삶을 편리하게 해 주는 존재로 인간과 함께 살아가게 될 것이다.”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꼬마차가 나가신다. 길을 비켜라. 귀여운 꼬마차는 친구와 함께 어렵고 험한 길 헤쳐 나간다. 희망과 사랑을 심어주면서. 아하, 신나게 달린다. 귀여운 꼬마 자동차 붕붕.’요즘 서울 시내를 다니는 실외 자율주행 배달로봇 ‘뉴비’를 보고 있으면 어릴 적 동요 ‘꼬마 자동차 붕붕’이 절로 떠오른다. 뉴비는 앞부분에 눈 모양이 달린 바퀴 네 개의 박스형 로봇으로 가로 56cm, 세로 67cm, 높이 69cm, 무게 60kg다. 평균 시속 7km, 즉 사람이 빨리 걷는 속도로 한 번에 40kg까지 실어 나를 수 있다. 이 로봇을 개발한 자율주행로봇 스타트업 ‘뉴빌리티’의 이상민 대표(26)는 ‘우주 소년’이었다. 인하사대부고 재학 시절 미국항공우주국(NASA)의 항공우주부문 공모전에 우주 변기 아이디어를 출품해 대상을 받았다. 연세대 천문우주학과 2학년이던 2017년에는 로켓동아리 형태로 창업해 초소형 위성을 개발했다. 자율주행 로봇에서 인류의 미래를 찾은 그를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는 ‘아시아 30세 이하 리더’(2021년)로 선정했다. 뉴빌리티는 올해 1월 미국 최대 가전·정보통신 박람회인 CES에서 스마트시티 부문 혁신상을 받았다. 2일 윤석열 대통령은 CES 혁신상 받은 기업인 40명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로 초청해 점심식사를 함께 했다. 이 자리에 참석했던 이 대표는 “윤 대통령이 ‘지난해 광주에서 열린 비상경제민생회의 때 뉴비의 시연을 봤다’고 기억하더라”며 “(윤 대통령이) 스타트업을 막는 규제를 열심히 풀어주겠다고 약속했다”고 전했다. 이 대표는 “로봇이라고 하면 대개 사람처럼 생긴 휴머노이드 로봇을 생각하지만 일상에서는 로봇청소기가 일상을 편리하게 해 주고 있다”며 “로봇과 함께 살아가는 ‘위드 로봇’ 시대가 되려면 우리 같은 스타트업이 빨리 만들고 빨리 실패하며 로봇 시장을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카페와 식당 등 실내에서 서빙하는 로봇과 달리 뉴비는 실외를 다닌다.“뉴비는 지난해 제주에서 열린 ‘SK텔레콤 오픈 2022’에서 선수들에게 생수를 배달하면서 공개됐다. 현재 75대의 뉴비가 다니고 있다.”―현행법상 자율주행 로봇은 사륜차로 분류돼 도로 주행이 불가능하지 않나.“규제 완화 요구가 커지면서 2019년 12월부터 실증을 통한 규제 샌드박스가 시행 중이다. 도심지 도로와 달리 사유지 내 자율주행에는 제한이 없어 골프장과 대학 캠퍼스 등 다양한 사유지에서 뉴비의 안전성과 효율성을 증명해내고 있다. 다른 업계와 비교해 로봇 분야는 민관이 합심해 규제 완화에 적극적이다. 보도와 횡단보도에서의 로봇 통행은 올해 안에 허용될 것으로 기대된다. 그런데 지금까지 수 백km의 배달을 무사고로 활발하게 실증하고 있는 업체는 우리밖에 없다. ―왜 그런가.“대기업은 완벽하게 해야 하는 기준이 있어 신속하게 움직이기 어렵다. 우리는 빠르게 시도하면서 시행착오를 줄여나갈 수 있다. 자율주행은 새로운 학문이자 사업이라 젊은 사람들이 오히려 더 잘 할 수 있다. ‘대기업이 나섰다면 여전히 막혀있을 수 있는 규제가 발 빠른 스타트업의 주도 덕분에 풀리고 있다’는 말도 듣는다.”―로봇이 다니다가 사고가 나는 것이 우려된다.“고층빌딩이 많은 지역은 GPS(위성항법시스템)를 수신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 뉴비는 GPS와 더불어 카메라와 센서를 결합한 기술에 기반해 자율주행 데이터를 축적하고 있다. 인공지능(AI)이 장애물을 인식하고 회피해 주행할 수 있도록 안내한다. 그래도 로봇이 완벽할 수는 없다. 최근에는 DB손해보험과 손잡고 국내 최초로 배달 로봇 관련 보험 상품도 만들었다.” ―대개의 자율주행 로봇은 라이다 센서를 쓰지 않나.“라이다 센서를 쓰면 로봇의 제조 원가가 수 억 단위로 비싸진다. 우리는 10대의 카메라와 3대의 센서를 활용하는 센서 퓨전기술이라 대당 목표 제조원가가 700만 원대인 독보적인 가격 경쟁력이 있다. 이 원가를 500만 원대까지 낮추려고 치열하게 매달리고 있다.”―로봇과 함께 하는 미래는 어떤 건가.“로봇을 결코 제조 관점에서 접근하면 안 된다. 예를 들어 미국의 로봇공학기업 보스턴다이내믹스는 설립된 지 20년이 넘었다. 이 회사 로봇과 BTS가 춤추는 모습은 충분히 멋지지만 대부분 사람들의 일상에서 로봇은 요원하다. 중요한 것은 로봇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쓸 수 있는 서비스를 만드는 것이다.”―지난해 말에는 KT와 업무협약을 맺었던데.“KT가 탈통신을 선언하면서 추진하는 주요 신사업 중 하나가 로봇이다. KT는 로봇을 수리할 수 있는 전국적인 기사 인력망을 활용해 로봇 생태계를 만들고 싶은 거다. 그 일을 뉴비가 하게 된다.” ―어릴 적부터 그토록 우주를 좋아했으면서 왜 로봇으로 사업을 하나.“로켓 동아리로 출발했다가 여러 번 사업 아이템을 바꿨다. 우리의 도전과 용기를 높이 산 투자회사들이 없었다면 진작 망했다. 함께 창업한 친구들과 3년 동안 월급을 가져가지 않고 대기업들의 자율주행 소프트웨어 개발 외주 일을 독학하며 수행해 버텼다. 그 과정에서 우리가 풀어야하는 문제가 우주가 아닌 일상에도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일할 사람을 구하기 힘들다’고 하소연하는 자영업자 분들을 돕고 싶다. 1980년대 퍼스널컴퓨터 수준이 2023년 지금 로봇의 수준이라고 생각한다. 누가 시장을 선점하느냐가 중요한 때다.”―로봇이 인간의 일자리를 앗아가는 건 아닌가.“미래에도 로봇이 100% 인간을 대체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자율주행이 완벽하게 이뤄지는 날이 와도 사람들은 운전하는 기쁨을 완전히 포기하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자율주행은 운전하는 피로도만 줄여줘도 된다는 얘기다. 로봇은 우리 삶을 편리하게 해 주는 존재로 인간과 함께 살아가게 될 것이다.”김선미기자 kimsunmi@donga.com}

안녕하세요. 스테파니 독자 여러분!동아일보에서 스타트업 데스크를 맡고 있는 김선미 기자입니다.기나긴 팬데믹 동안 재택근무를 장려했던 회사들이 속속 사무실 출근 방침을 밝히고 있는데요. 지금이야말로 ‘다시 모인’ 직원들의 근무 의욕을 높이는 공간과 조직문화가 중요한 절실한 시점이 아닐까 합니다. 이번 스테파니에서는 창의성이 뿜뿜 솟아날 것 같은 스타트업 업계의 사무 공간들을 ‘랜선 여행’ 시켜드리려고 합니다. 인공지능(AI) 합성 데이터 스타트업인 씨앤에이아이(CN.AI)의 사무실에는 베어브릭 피겨들이 놓인 진열장 앞에 전자 피아노가 있어 직원들이 언제든 연주할 수 있습니다. ‘될 성 부른’ 스타트업들을 키워내는 액셀러레이터 회사들은 회의실 이름을 영화 ‘스타워스’에서 따오기도 하고(‘퓨처플레이’), ‘아문센’ 같은 탐험가나 미국 무인우주탐사선 ‘보이저’호의 이름을 달기도 합니다(‘블루포인트파트너스’). 모두 직원들의 창의성을 높이기 위한 노력들이죠. 자, 그럼 저와 함께 여행을 떠나보실까요. (스테파니는 ‘스’타트업과 ‘테’크놀로지를 ‘파’헤쳐보‘니’의 준말입니다.)●피아노가 있는 풍경씨앤에이아이는 최근 타운홀 미팅을 하면서 피아노 콘서트를 열었습니다. “피아노를 놓아주면 좋겠다”는 직원들의 건의에 따라 ‘야마하’ 전자 피아노를 마련해 회의실이 있는 층에 둔 건데요. 피아노를 치면 업무 생각에서 벗어나 아예 다른 생각을 하면서 잠시나마 온전한 휴식을 할 수 있다는 게 회사 측의 설명입니다.이 피아노 콘서트에서는 직원들이 자신이 연주하는 곡에 대한 설명도 곁들였는데요. 예를 들어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의 피아노 소나타16번 다장조K.545를 연주한 한 직원은 초등학교 시절 콩쿠르에 나가 연주했던 추억이 있는 곡이라고 했어요.스케일업을 통해 직원 수가 불어나는 스타트업에서는 서로를 알고 친해지는 과정이 중요합니다. 사무실 중앙에 커다란 스크린을 두고 신입 직원들의 자기소개 영상을 트는 스타트업이 많은데, 씨앤에이아이는 피아노 콘서트를 통해 직원들이 서로에게 마음을 열고 다가서는 것을 시도한 셈입니다. 직원들의 요구도 있었지만 이원섭 대표 본인이 학창시절 음악의 효용성을 느꼈다고 합니다. 미국 인디애나대 경제학과에 다닐 때 음악대학의 ‘피아노 한 곡 치기’와 ‘비틀스’ 교양수업을 수강했는데 연주곡 한 곡을 한 학기 동안 완성하는 데에서 크나큰 성취감을 얻었다고 합니다. 딱딱한 경제학을 배우다가 비틀스의 역사와 노래를 배우면서는 힐링의 필요성을 느꼈다고 하네요.“저희 회사는 개발자가 60%이상입니다. 합성 데이터라는 어려운 문제에 도전하는 최고의 인재들을 확보하고, 이들이 번 아웃에 빠지지 않고 업무에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려면 조직 문화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 정말 신기한 게 면접을 보니 개발자들의 취미가 피아노 연주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조직문화 활동의 일환으로 피아노 연주회를 해보니 상당히 반응이 좋았습니다.”●회의실 앞에서 만나는 격언들 스타트업 엑셀러레이터인 ‘퓨처플레이’의 서울 성동구 사무실에 들어서면 각 회의실 앞에서 숙연한 마음이 듭니다. 영화 ‘백 투더 퓨처’라는 이름의 회의실 유리에는 영화에 나오는 대사가 쓰여 있습니다. ‘미래가 뭐가 됐든 네가 만드는 대로 될 거야. 그러니 잘 만들어 보렴.’ ‘스티브 잡스’ 방에는 ‘현실에 만족하지 말고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배워라’(Stay hungry, Stay foolish), ‘알프레드 히치콕’ 방에는 ‘아이디어는 모든 것에서 온다’(Ideas come from everything)는 문구가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이었던 문구는 이것이었습니다. 영화 ‘스타워즈: 에피소드 2-클론의 습격’이라는 이름의 회의실 앞에 붙어있는 영화 대사입니다. ‘나는 그저 우주에서 내 길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한 사람일 뿐이다.’ 서울 강남구의 창업보육공간인 아산나눔재단의 마루360에 자리한 또 다른 스타트업 엑셀러레이터인 ‘블루포인트 파트너스’의 각 공간 이름은 ‘아문센’(리셉션 룸), ‘보이저’(컨퍼런스 룸), ‘테슬라’(미팅 룸) 등이에요. 이 회사 이용관 대표는 말합니다. “조직이 커지면 어떤 방향이 필요하죠. 저희 회사에는 항공, 건축, 컴퓨터공학, 물리, 기계, 화학 등 여러 분야의 전공자들이 일해요. 다들 하는 일은 달라도 한 곳을 바라보고 일해야 하잖아요. 아무리 시장이 부침이 있어도 창업은 시작이 중요합니다. 결국 ‘돈보다 더 중요한 것(more than money)’을 우리가 어떻게 제공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하죠. 그런 생각과 가치들을 공유했으면 합니다.”이 말을 들으면서 유현준 건축가가 저서 ‘공간의 미래’에 썼던 구절이 생각났습니다. “팀원들의 마음을 모으기 위해서는 조직 내 구성원의 의사 결정의 방향을 잡아줄 철학이 필요하다”. 그 철학을 구성원들에게 가장 자연스럽게 보여줄 수 있는 게 사무실 공간 아닐까요. 아주 작고 사소한 디테일에서 우리는 기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니까요.스타트업의 디테일이 여러분들의 일터에서도 적용되기를 바랍니다. 행복한 직원이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낼테니까요. 일하고 싶은 마음을 솔솔 불러 올테니까요. ^^마지막으로 사심 가득히 부러웠던 퓨처플레이 사무실의 공간 한 편을 소개합니다.세상에나. 남산타워를 바라보며 일하는 명당 자리라뇻!!!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최근 국내 헬스케어 스타트업인 알고케어가 자사의 기술을 대기업 계열인 롯데헬스케어가 도용했다고 주장해 중소벤처기업부가 실태 조사에 나서면서 스타트업의 기술보호가 산업계의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두 회사의 주장이 엇갈리는 가운데 스타트업 업계에선 이 같은 기술침해 주장이 나왔을 때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신속한 구제 지원이 이뤄질 수 있도록 관련 법 제도가 정비돼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관련 법률 산재… “기술보호 관문 찾기 어려워” 업계에선 스타트업이 기술보호를 받을 수 있는 법제가 여러 부처에 흩어져 각기 운용되기 때문에 피해 기업이 기술보호 ‘관문’을 찾기 어렵다는 점을 호소하고 있다. 국내 기술보호 관련 법률은 산업기술보호법(산업통상자원부), 영업비밀보호법(특허청), 중소기업기술보호법(중소벤처기업부), 방위산업기술보호법(국방부), 하도급법(공정거래위원회), 형법(법무부) 등 여러 부처에 적용돼 있다. 법률적 역량이 낮은 스타트업으로서는 자신이 겪은 기술침해 피해를 어느 부처, 어느 법에 호소해야 할지 모른다는 게 문제다. 더구나 하나의 쟁점이 된 서비스가 여러 법률에 걸쳐 있는 경우도 많아 결국 모든 부처의 문을 두드릴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오히려 ‘풍요 속 빈곤’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손승우 한국지식재산연구원장은 “스타트업의 참신한 기술과 아이디어 보호에 대해 별도의 보호정책이 마련돼야 한다”며 “특허, 영업비밀, 산업기술 등 관련 기술침해, 사후 대응 등을 한 번에 조회하고 지원받을 수 있는 ‘기술보호 원스톱 플랫폼’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스타트업의 기술보호 역량도 낮은 게 현실이다. 중소벤처기업부와 대·중소기업·농어업협력재단의 ‘2022년 중소기업 기술보호 수준 실태조사’(전국 3400개 기업 조사)에 따르면 스타트업을 비롯한 중소기업의 기술보호 역량 점수는 49.3점으로 대기업(87점) 대비 56.7%에 그쳤다. 일례로 국내 핀테크 스타트업 ‘팍스모네’의 경우 신한카드와 4년째 법정공방을 해오고 있다. 이 회사는 국내 최초로 신용카드 회원 간 결제 서비스 관련 핀테크 기술을 개발해 국내외에서 특허를 등록했다. 하지만 업무 협력을 제안하며 관련 기술에 대한 설명을 들었던 신한카드가 유사한 서비스를 내놓으면서 영업활동이 막혔다. 홍성남 팍스모네 대표는 “직원들은 뿔뿔이 떠나고 장기간 소송을 거치며 법률비용이 계속 발생해 이중고를 겪고 있다”고 토로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정부가 중소기업 기술 탈취 근절을 국정과제 중 하나로 내세웠는데도 여전히 대기업은 중소기업, 스타트업에 대한 거래상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사업 제안을 모방하는 일이 계속되고 있다”고 꼬집었다.● “대기업과 스타트업 기술보호 인식 높아져야” 대기업과 스타트업 양측 모두 기술보호 인식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기술보호 전문가인 손보인 법무법인 연두 변호사는 “해외에서는 스타트업과 협력할 때 NDA(기밀유지협약)부터 체결하는 게 관행”이라며 “스타트업은 사업 협력을 제안하는 ‘을’의 입장이라도 NDA 체결을 해야만 상대 측이 기술을 함부로 이용할 수 없다”고 말했다. 현재 기술 도용 논란을 빚고 있는 알고케어와 롯데헬스케어도 NDA를 체결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법무법인 김앤장에서 변호사로 활동하다 창업한 알고케어의 정지원 대표는 “롯데헬스케어에 NDA를 요구하자 ‘롯데지주가 세운 회사라 그룹 회장이 계약해야 하기 때문에 곤란하다. 절대 따라하지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말라’며 거부했다”고 주장한다. 반면 롯데헬스케어 측은 “알고케어로부터 NDA 체결 요청을 받은 적이 없다”는 입장이다. 대기업들은 스타트업에 투자하려면 해당 회사의 속사정과 기술을 충분히 파악해야 하기 때문에 그 노력을 기술 탈취로 싸잡아 비난해서는 안 된다고 호소한다. 하지만 이번 논란을 계기로 자성(自省)의 목소리도 나온다. 한 대기업 임원은 “기술보호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우리가 ‘갑질’을 하는 건 아닌지 먼저 조심해야 한다”며 “투자 담당자 한둘의 문제가 아니라 회사 전체적으로 스타트업과 상생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인구당 스타트업 수(1400명당 1개)가 세계 1위인 이스라엘의 경우 특정 기업이 기술을 탈취하면 평판이 추락해 업계에서 매장당하는 스타트업 에코 시스템이 조성돼 있다. 한 이스라엘 투자업계 관계자는 “한국에서는 기술을 탈취한 기업이 크게 처벌받지 않기 때문에 스타트업의 참신한 기술과 아이디어가 보호받지 못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현재 국내 기술침해 관련 손해배상은 3배 이내 배상이다. 기본 손해배상액의 3배 이내를 배상한다는 얘기다. 전문가들은 이 배상액을 ‘3배 이내’에서 ‘5배 이내’로 상향할 것을 제안한다. 손 변호사는 “법원에서 입증해 산정되는 기본 손해배상액이 평균 5000만 원 수준”이라며 “대기업 입장에서는 스타트업의 기술을 베껴 별문제 없이 잘되면 좋고 아니면 물어 주면 끝이라는 생각을 갖게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송창석 숭실대 경영학부 교수(중소벤처기업정책학회 회장)는 “기업윤리 교육을 강화하는 한편 창의적인 기술을 개발하는 기업을 밀어 주고 보호하는 정부의 확고한 의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김하경 기자 whatsup@donga.com}

델핀 아르노(48). 최근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프랑스 재벌집 큰딸’이다. 그의 아버지는 세계 최고 부자인 베르나르 아르노 루이뷔통모에에네시(LVMH)그룹 회장(74). 델핀은 11일(현지 시간) LVMH그룹의 주요 자회사인 크리스티앙 디오르의 최고경영자(CEO)로 임명돼 2월부터 임기를 시작한다. 아르노 회장은 성명을 통해 “루이뷔통을 성공적으로 이끈 델핀의 예리한 통찰력과 리더십은 디오르의 지속적인 발전을 이끄는 결정적 자산이 될 것”이라고 했다. 세계 최고 부자 재벌집에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나. 아르노 회장이 델핀을 디오르의 CEO로 임명한 것은 주목할 만한 의미가 있다. 디오르는 LVMH그룹의 모태이자 DNA인 셈이기 때문이다. 1984년 당시 34세였던 아르노 회장은 경영난을 겪던 디오르를 인수한 것을 시작으로 가방회사 루이뷔통과 주류회사 모에에네시 등을 인수합병하며 1987년 LVMH그룹을 시작했다. 국내 재계뿐 아니라 글로벌 명품 업계도 최근 세대교체 중이다. 특히 LVMH는 델핀을 비롯한 다섯 명의 자녀가 모두 그룹 내에서 경쟁 중이다. 첫째인 델핀은 디오르, 둘째인 앙투안은 그룹 지주회사, 셋째인 알렉상드르는 티파니, 넷째인 프레데리크는 태그호이어, 막내인 장은 루이뷔통 시계 부문을 맡는다. 아르노 회장은 최근 그룹의 CEO 정년을 75세에서 80세로 늘렸다. 업계에서는 그가 그룹 회장 자리를 좀 더 맡아 자녀들의 경영활동을 지켜보면서 후계 구도를 정리하겠다는 뜻으로 보고 있다. 프랑스 비즈니스 스쿨 EDHEC와 영국 LSE(런던 정경대)를 나온 델핀은 맥킨지 컨설턴트를 거쳐 2003년부터 디오르에서 전략을 담당하며 브랜드를 성장시켰다. 2008∼2013년 디오르 부사장을 지내고 이번 인사 전까지 루이뷔통 부사장을 맡아 온 델핀은 예술에 대한 전문성을 바탕으로 최근에는 세계적 아티스트인 구사마 야요이와의 협업을 이끌어냈다. 요즘 주요 도시들의 루이뷔통 플래그십 스토어는 ‘구사마표 물방울무늬’로 장식돼 있다. 델핀은 미래세대 육성에 열성적이다. 그가 2014년 신진 디자이너들을 발굴하기 위해 시작한 ‘LVMH 프라이즈’는 전 세계 ‘패션 꿈나무’들의 선망의 대상이 됐다. 우승자에게 상금과 1년간의 맞춤형 멘토링을 제공하는 이 제도를 통해 신예 디자이너인 버질 아블로(1983∼2021)가 발탁돼 루이뷔통 남성복 아트 디렉터를 맡기도 했다. 델핀은 글로벌 스타트업계의 ‘보이지 않는 큰손’이기도 하다. 그는 프랑스의 글로벌 스타트업 박람회인 비바 테크놀로지에서 아버지인 아르노 회장과 함께 귀빈석 앞자리를 지킨다. LVMH는 이 박람회의 주요 후원사일 뿐 아니라 2017년부터 잠재력 있는 스타트업을 발굴하는 ‘LVMH 혁신 어워드’를 운영하고 있다. 델핀은 프랑스 스타트업계의 대부로 통하는 그자비에 니엘(56)과 두 자녀를 두고 살고 있다. 통신 재벌이자 프랑스 신문 ‘르 몽드’의 공동 소유자인 니엘은 2013년 프랑스의 무료 코딩학교인 ‘에콜 42’를 세웠고, 2017년에는 세계 최대 규모의 스타트업 인큐베이팅 기지인 ‘스타시옹 F’를 세워 프랑스를 ‘창업국가’로 만드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델핀과 니엘은 스타트업 생태계를 키우는 동반자 관계라는 평가다. 지난해 LVMH 혁신어워드에서 수상한 국내 스타트업 마크비전의 이인섭 대표는 “LVMH는 당장의 매출보다는 기술에 열린 마인드로 미래의 신사업 투자에 관심이 높다”며 “상을 받아 스타시옹 F에 입주하면서 글로벌 스타트업들과 협업하는 기회를 수시로 갖고 있다”고 말했다.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델핀 아르노(48). 최근 전 세계의 스포트라이트를 한 몸에 받는 ‘프랑스 재벌집 큰 딸’입니다. 세계 최고 부자인 아버지로부터 ‘잘 나가는’ 자회사를 물려받은 가문의 장녀이니까요. 델핀은 아버지인 베르나르 아르노 루이뷔통모에에네시(LVMH) 그룹 회장(74)으로부터 11일(현지시간) 크리스티앙 디오르의 최고경영자(CEO)로 임명돼 2월부터 임기를 시작합니다. 그런데 델핀은 글로벌 스타트업계의 ‘보이지 않는 큰 손’이기도 합니다. 이번 스테파니는 스타트업과 혁신을 강조하는 프랑스 재벌집을 소개합니다.(스테파니는 ‘스’타트업과 ‘테’크놀로지를 ‘파’헤쳐보‘니’의 준말입니다.) 델핀은 그동안 루이뷔통 총괄 부사장을 맡아 왔는데요. 아버지인 아르노 회장은 이날 성명을 내고 딸에 대한 신뢰를 강하게 드러냈습니다.“델핀의 리더십 하에 루이뷔통 제품에 대한 호감도가 크게 높아져 브랜드가 새로운 판매 기록을 세울 수 있게 됐다. 델핀의 예리한 통찰력과 비교할 수 없는 경험은 디오르의 지속적인 발전을 이끄는 결정적 자산이 될 것이다.” 단순히 재벌집 큰 딸이어서가 아니라 실력을 인정받았다는 얘기입니다. 프랑스 비즈니스 스쿨 EDHEC와 영국 LSE(런던 정경대)를 나온 델핀은 맥킨지에서 컨설턴트로 일한 뒤 2003년부터 디오르에서 전략을 담당하며 브랜드를 성장시켰습니다. 사실 디오르는 LVMH그룹의 모태이자 DNA 격입니다. 1984년 당시 34세였던 아르노 회장이 경영난을 겪던 디오르를 인수한 것을 시작으로 가방회사 루이뷔통과 주류회사 모엣에네시 등을 인수합병하며 1987년 LVMH 그룹을 시작했으니까요. 2008~2013년 디오르 부사장을 지낸 델핀은 이번 인사 발표 전까지는 루이뷔통 부사장을 맡으며 루이뷔통의 모든 제품 활동을 총괄했습니다. 특히 2014년 신진 디자이너들을 발굴하는 ‘LVMH 프라이즈’를 만들어 지금까지 이끌어오고 있는데요. 우승자에게 30만 유로의 상금과 1년간의 맞춤형 멘토링을 제공하는 이 프라이즈는 전 세계 ‘패션 꿈나무’들의 희망입니다. 예술에 해박한 델핀은 최근 세계적 아티스트인 야요이 쿠사마와 루이뷔통의 협업도 이끌어냈습니다. 올해 루이뷔통의 신제품들에 쿠사마의 ‘작품’들이 대거 적용돼 있습니다. 지금 한창 프랑스 파리와 일본 도쿄 등 주요 글로벌 도시들의 루이뷔통 플래그십 스토어 외관에도 ‘쿠사마표 물방울무늬’를 장식해 미술관을 보는 것 같습니다.그런데 델핀은 디자인 인재만 발굴해 온 게 아닙니다. 그는 글로벌 스타트업계의 ‘보이지 않는 큰 손’입니다. 2018년 5월 프랑스의 글로벌 스타트업 박람회인 비바 테크놀로지에서 귀빈석 앞자리에 나란히 앉은 델핀과 아르노 회장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LVMH그룹은 이 스타트업 박람회의 주된 후원사입니다. 당시 아르노 회장에게 다가가 인사했더니 그는 말했습니다. “앞으로 더 기대해주세요. 우리는 계속 혁신할거니까요.” 명품 회사인 LVMH 그룹이 가장 강조하는 가치는 혁신입니다. ‘결코 나서지 않고 차분하게 할 일을 한다’는 평가를 듣는 델핀은 그 때 아버지 옆에서 조용하게 미소 짓고 있었습니다. LVMH그룹은 2017년부터 잠재력 있는 스타트업을 발굴해 자신들의 브랜드와 협업할 기회를 주는 상을 수여해 오고 있습니다. ‘LVMH 혁신 어워드’입니다. 이 상을 사실상 델핀이 주도하고 있습니다. 왜 LVMH는 이 상을 만들어 운영할까요. 에르노 회장은 말합니다. “저도 엔지니어 출신이지만(프랑스 명문 공대인 에콜 폴리테크니크 출신) 기술은 우리 사업에 속도를 부여합니다. 우리는 프랑스에서 가장 큰 기업이지만 스타트업 정신으로 무장하려고 합니다. 이 상을 통해 스타트업은 우리와 협업할 수 있고 우리 그룹은 창의성, 혁신, 기업가 정신의 가치를 공고히 할 수 있습니다.”델핀은 2005년 이탈리아 와인 재벌과 결혼했다가 헤어진 후 프랑스의 억만장자 기업가인 자비에 니엘과 두 자녀를 낳고 살고 있습니다. 통신 재벌인 니엘은 프랑스 신문 ‘르 몽드’의 공동 소유자이자 추정 재산이 80억 유로에 달하는 프랑스의 12번째 부자입니다. 니엘은 2010년 ‘키마 벤처스’라는 벤처캐피털 회사(VC)를 차려 매년 100개의 스타트업에 2000만 유로를 투자하는 ‘스타트업계의 대부’입니다. 2013년 프랑스의 무료 코딩학교인 ‘에콜 42’를 세웠고, 2017년에는 파리에 세계 최대 규모의 스타트업 인큐베이터 기지인 ‘스타시옹 F’를 세워 프랑스를 ‘창업국가’로 만드는 데 결정적 기여를 했습니다. 스타시옹 F의 각종 행사 때 니엘의 주변에는 LVMH 혁신 어워드를 이끄는 델핀이 자주 보입니다. 이들은 프랑스 스타트업 생태계를 키우는 동반자입니다. 스타시옹 F에는 1000여 개의 스타트업이 입주해 있습니다. 이 중에는 지난해 LVMH 혁신 어워드를 받은 한국 스타트업 ‘마크비전’도 있습니다. 지난해 LVMH 혁신 어워드에 지원한 950개 스타트업 중 21개의 결선 기업에 올라 최종 수상한 7곳 중 한 곳입니다. 인공지능(AI) 기술로 위조상품을 모니터링하고 제거하는 기술력을 지닌 이 스타트업은 이 대회의 데이터&AI 분야에서 상을 받았습니다. 미 하버드대 경제학과를 나와 독일 중앙은행과 맥킨지에서 일하다 창업한 이인섭 마크비전 대표는 말합니다. “아르노 회장이 직접 혁신 어워드 스타트업들을 시상했는데요. LVMH는 마라톤을 하듯 장기적 시각으로 기업을 운영한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당장의 매출보다는 기술에 열린 마인드로 신사업 투자에 관심이 높더라고요. 이 상을 받아 스타시옹 F에 입주하면서 글로벌 스타트업들과 협업하는 기회를 수시로 갖고 있습니다. LVMH 그룹의 주요 브랜드 세 곳과도 계약해 ‘짝퉁’ 명품을 막는 일을 하고 있고요.” ‘프랑스 재벌집’인 LVMH는 가업 승계가 한창입니다. 첫째인 델핀은 크리스티앙 디오르, 둘째인 앙투안은 그룹 지주회사, 셋째인 알렉산드르는 티파니, 넷째인 프레드릭은 태그호이어, 다섯째 막내인 장은 루이비통 시계부문을 이끌고 있습니다. 이들은 대체불가토큰(NFT)과 메타버스 등 새로운 기술들을 명품 산업에 접목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아버지인 아르노 회장은 최근 LVMH그룹의 CEO 정년을 75세에서 80세로 늘렸습니다. 그룹 회장이라는 자리를 좀 더 지키면서 다섯 자녀의 경영 활동을 지켜보겠다는 뜻으로 보입니다. 세계 1등 부자인 아버지가 강조하는 혁신과 스타트업 정신을 어떻게 구현할지가 ‘프랑스 재벌집’ 자녀들의 경영 시험대가 될 전망입니다.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나는 어느 쇠락한 호텔의 작은 정원을 지켜온 150살 모과나무입니다. 올겨울은 유독 쓸쓸합니다. 유럽풍 정자와 대나무 숲, 작은 연못이 있는 이곳을 더 이상 아무도 찾지 않습니다. 지난 40년간 도시의 자랑거리였던 호텔이 지난해 말 운명을 다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영업 종료 안내문을 키스하는 연인의 조각상에까지 붙여야 했을까요. 고풍스러운 격조를 지켰던 호텔에 대한 예의가 아닙니다. 임대계약 기간이 남았다는 어느 양복점만이 ‘영업 중’ 문구를 내걸고 있습니다. 아래로는 서울역, 위로는 남산이 있는 이 건물의 터에는 오피스 등 복합시설이 들어선다고 합니다. 이곳은 밀레니엄 힐튼 서울입니다. 힐튼은 단순한 호텔이 아닙니다. 고 김수근 건축가(1931∼1986)와 함께 한국을 대표하는 김종성 건축가(88)가 설계한 건축문화유산입니다. 그는 근대 건축의 거장인 루트비히 미스 반데어로에(1886∼1969·이하 미스)의 제자였습니다.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그를 국내로 불러들여 지은 힐튼은 미스의 대표작인 미국 뉴욕의 시그램빌딩(1958년)을 빼닮았습니다. ‘적을수록 더 좋다’ ‘신은 디테일에 있다’는 미스의 명언이 적용된 걸작이지요. 힐튼은 알루미늄 커튼월 마감에 양쪽 끝을 30도 구부린 삼단 병풍 형태가 절묘하게 어우러져 있습니다. 그걸 부순다니 건축계가 탄식하는 것이죠. 힐튼에는 건축을 사랑한 기업인의 숨결이 곳곳에 깃들어 있습니다. 김 전 회장의 부인인 정희자 전 힐튼호텔 회장(83) 이야기입니다. 한양대 건축학과 출신으로 우범지대였던 남산 일대를 정비해 건축의 초석을 놓았어요. 미 하버드대에서 동양미술을 공부하고 프랑스 파리 조르주생크 호텔과 하와이의 와일레아 호텔 등을 다니며 키운 심미안으로 호텔의 꽃과 집기를 손수 챙겼습니다. 더 많은 국민이 예술을 접해야 한다며 국내 호텔 로비에 선구적으로 미술품을 전시했습니다. 그가 “(호텔이 허물어지는 게) 마음이 아프다”고 하는데 제 마음이 다 무너지더라고요. 지난해 말 호텔 로비에서는 40년 호텔 역사를 돌아보는 작은 전시가 열렸습니다. 사라지는 것을 아쉬워하는 사람들이 꽤 왔어요. 유리 장식장에 진열된 프랑스 식당 ‘시즌스’와 이탈리아 식당 ‘일폰테’의 식기를 보면서 저마다 ‘힐튼의 추억’을 떠올렸을 거예요. 1995년 ‘파라오’ 디스코텍의 금박 꽃무늬 직원 유니폼은 요절한 천재 디자이너 알렉산더 매퀸도 놀랄 만한 디자인이던걸요. 그때가 화양연화(花樣年華·인생의 가장 찬란한 시절)였을 겁니다. 정원 바로 옆에는 남대문교회가 있습니다. 한국 최초의 서양식 의료기관인 제중원(1885년)에서 태동한 이 고딕양식 석조 예배당은 근현대 문화유산의 가치를 인정받은 ‘서울 미래유산’(서울시가 2014년 지정)입니다. 힐튼호텔이라는 소중한 건축물도 우리 곁에 남을 방도가 없을까요. 빛바랜 모과를 주렁주렁 가지에 달고 있는 노거수인 저는 어디로 가게 될까요. 그동안 힐튼에서 참 행복했습니다.※죽은 누이의 명복을 비는 신라시대 향가 ‘제망매가(祭亡妹歌)’에서 제목을 따왔습니다. 김선미 산업1부 차장 kimsunmi@donga.com}

억대 연봉자 전용의 온라인 채용관이 국내에 처음 선보였다. 명함관리 앱에서 출발해 종합 비즈니스 플랫폼으로 성장한 ‘리멤버’(운영사 드라마앤컴퍼니)가 5일 내놓은 ‘리멤버 블랙’ 서비스다. 주로 소비재 브랜드들이 최상위 서비스로 내세우는 ‘블랙’ 서비스가 국내 채용시장에도 도입된 것이다. 리멤버 블랙은 1억 원 이상 연봉자 전용 채용공고 서비스다. 리멤버 앱에서 이용자가 직접 전년도 총근로소득 1억 원 이상을 인증하면 업종과 직무 등 조건에 맞는 각 기업의 공고들을 간편하게 추려본 뒤 지원할 수 있다. 이 회사의 창립자이자 최고경영자(CEO)인 최재호 드라마앤컴퍼니 대표(41)는 9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서비스 시작 3일 만에 2000여 명의 억대 연봉자가 각종 채용공고에 지원했다”며 “현직에 있는 35∼45세의 기업체 팀장∼임원급 인재들의 지원이 대부분이며 금융권과 전문직 종사자들도 활발하게 참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회사 측에 따르면 현재 리멤버 블랙에 오른 구직공고들은 대기업의 전략총괄 임원, 중견기업의 최고재무책임자(CFO) 등을 찾는 자리다. 특히 디지털 혁신, 인공지능(AI), 인사, 해외사업 부문 등의 임원 수요가 높다고 한다. 최 대표는 “눈높이를 낮춰가던 ‘인생 2막’의 분위기가 아니라 현재 연봉보다 높여 이직하려는 핵심 인재와 기업의 최상위 자리 간 매칭이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 서비스는 구직자는 무료이고 구인 기업이 돈을 낸다. KAIST 전자공학과를 나와 보스턴컨설팅그룹 등에서 6년간 컨설턴트로 일했던 최 대표는 ‘내 사업’을 하고 싶어 2013년 6월 드라마앤컴퍼니를 창업하고 2014년 1월 명함관리 앱인 ‘리멤버’를 시작했다. “미국은 온라인 이력서 서비스인 ‘링크트인’을 통해 구직자들이 유연하게 채용시장에서 이동한다. 그런데 한국은 이직 의향을 드러내면 다니는 직장에 대한 충성심이 떨어지는 것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한국의 링크트인 서비스’를 만들고 싶었다.” 이번에 리멤버 블랙 서비스가 나오게 된 것은 국내에 억대 연봉자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특히 금융권과 정보기술(IT) 기업 종사자들의 몸값이 오르면서 지난해 근로급여가 1억 원이 넘은 근로자 수는 112만 명에 달했다. 이 회사가 2020년 시작한 리멤버 경력직 스카우트 서비스의 평균 연봉도 8800만 원이었다. 최 대표는 “기존 잡 포털들이 주도한 채용 플랫폼 시장은 신입과 저연차 위주라 기업의 핵심 인재들을 끌어들일 수 없었다”며 “경력직 스카우트의 대중화를 이끌며 지금까지 2000억 원의 투자(시리즈D)를 받은 자신감으로 이제는 하이엔드급 이직 시장을 개척하겠다”고 말했다. 예전과 다르게 기업들이 요구하는 새로운 인재상은 뭘까. 최 대표는 “경험적 역량의 내공은 충분히 쌓여 있되 과거의 성공 방정식에 갇혀 있지 않고 불확실한 경영환경에 대응해 성과를 창출할 수 있는 ‘변화에 대한 유연함’이 중요해지고 있다”고 강조했다.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