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테크 스타트업 생태계가 지금 한국에 필요한 이유[광화문에서/김선미]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4월 16일 21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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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미 산업1부 차장
김선미 산업1부 차장
로봇산업을 미래 먹거리로 정한 삼성전자가 국내 로봇 기업 레인보우로보틱스에 올해 들어 868억 원을 투자(지분 14.99%)하면서 이 회사에 대한 삼성의 인수합병(M&A)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고 있다. 레인보우로보틱스는 국내 최초의 이족보행 로봇 ‘휴보’를 개발한 오준호 KAIST 석좌교수가 2011년 창업한 회사로, 글로벌 시장 확대를 위해 최근 미국 법인도 설립했다.

삼성전자는 지난달에는 삼성벤처투자를 통해 창업 7년차 스타트업 ‘뉴빌리티’에도 30억 원을 투자했다. 2021년 삼성전자의 스타트업 육성 프로그램 ‘C랩 아웃사이드’에 선정됐던 뉴빌리티는 자율주행 배달 로봇 ‘뉴비’를 개발해 실증사업을 벌여 왔다. 삼성의 이번 투자로 누적 투자금이 300억 원이 된 이 회사는 해외 진출도 앞두고 있다.

뉴빌리티는 2017년 연세대 천문우주학과 2학년이던 이상민 대표(26)가 친구들과 20세에 창업한 회사다. 이후 게임용 햅틱 글러브를 개발하다가 돈이 떨어져 1년 여 만에 사업을 접을 처지였다. 그때 내려온 구원의 동아줄이 ‘HL만도 모빌리티 테크업 플러스’다. 범(汎)현대가이면서 미래 모빌리티를 비전으로 삼은 HL만도가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인 퓨처플레이와 시작한 이 스타트업 육성 프로그램을 통해 뉴빌리티는 지금의 사업 아이템을 찾을 수 있었다.

국내 대기업과 딥테크(deep-tech·첨단기술) 스타트업의 만남이 늘고 있어 반갑다. 한화는 KAIST 출신 인공위성 기업 세트렉아이를, 현대차는 자율주행 스타트업 포티투닷을 인수했다. 기술 탈취와 하청업체 옥죄기가 많았던 과거 대-중소기업 관계와 달라진 모습이다. 특히 삼성이 딥테크 스타트업에 투자를 늘리는 건 스타트업 생태계에 ‘맏형’ 역할을 하는 것이다.

대기업의 오픈이노베이션(개방형 혁신)과 딥테크 스타트업 생태계는 2023년 한국 경제의 탈출구다. 지금껏 패스트 팔로어(빠른 추격자)였던 대기업의 주력 산업이 힘을 잃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한국의 세계 수출시장 점유율(2.74%)은 금융위기였던 2008년(2.61%) 이후 가장 낮았다. 새로운 먹거리를 만들 첨단기술이 시급하다는 뜻이다. 한국의 총 연구개발(R&D)비 102조 원 중 78조 원(76.4%)을 차지하는 민간 영역에서 딥테크 투자가 늘어나면 대기업 체질도 개선될 수 있을 것이다.

딥테크 스타트업이 성장하면 국부(國富)와 일자리가 창출된다. 그동안 우리나라 R&D는 연구실 단계에만 머무르고 기술 사업화로 이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스타트업이 글로벌 플레이어가 되면 대기업에만 의존하지 않는 탄탄한 국가 산업 구조를 갖출 수 있다.

최근 취재 현장에서 접한 육성들에는 위기의식이 가득했다. “국제 정세가 기업에 미치는 영향이 결정적이라 제품 잘 만드는 건 그냥 기본이다. 지속 가능한 공급망을 갖추는 게 관건이다.”(대기업 임원) “딥테크에 투자하는 용기는 절박하게 생각하는 딥싱킹(Deep thinking)에서 나온다. 철학과 방향 없이 투자할 스타트업을 찾는 대기업에는 희망이 없다.”(투자회사 대표) 될성부른 딥테크를 잘 키우는 일에 대한민국의 자존심과 미래가 달렸다.


김선미 산업1부 차장 kimsunmi@donga.com
#딥테크 스타트업 생태계#한국#필요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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