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찬

황인찬 기자

동아일보 국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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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특파원 황인찬입니다. 한일 관계가 더욱 좋아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일본에 왔습니다. 일본의 오늘을 보여드립니다.

hic@donga.com

취재분야

2026-02-28~2026-03-30
일본39%
국제일반18%
미국/북미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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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설가 김연수 “등단 100주년 되는 2093년까지 20년마다 산문집 내겠다”

    소설가 김연수(42·사진)가 ‘장대한’ 집필 계획을 발표했다. 등단 100주년이 되는 2093년까지 20년마다 산문집을 내겠다는 것이다. 20년에 한 권씩, 100년이면 모두 다섯 권이 된다. 먼저 작가가 등단 20주년을 맞는 내년에 출간할 첫(1) 번째 산문집의 제목은 ‘소설가의 일’이다. 그는 최근 문학동네 인터넷 카페에 ‘소설가의 일’을 연재하기 시작했다. 연재에 앞서 올린 글에는 이렇게 썼다. “취재를 위해 누군가를 만나는 것도, 마감 때 30분씩 끊어서 잠을 자는 것도, 마감이 끝난 뒤 한가함을 맛보기 위해 아무도 없는 오후의 탁구장에서 탁구를 치는 것도 모두 소설가의 일이다. 소설가는 생각보다 많은 일을 한다. 그런 일을 쓰면 되겠다.” 이 글에 따르면 김연수의 두(2) 번째 산문집은 등단 40주년인 2033년에 나오는데 제목은 ‘소설가의 이’. ‘소설가의 구강구조’에 관한 얘기로, 일단 문 것은 어떤 일이 있어도 놔주지 말아야 한다는 소설가 정신을 다룬다. 등단 60주년이 되는 2053년에는 일생을 돌아보며 세(3) 번째 산문집인 ‘소설가의 삶’을 펴내고, 등단 80주년인 2073년에는 네(4) 번째 산문집 ‘소설가의 死’를 쓰겠다고 다짐했다. “그때 내 나이는 104세지만, 과연 두 손으로 키보드를 두드릴 수 있을까 없을까를 고민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아마 내 머리통과 무선으로 연결된 프린터가 내 생각을 그대로 프린트할지도 모르니까.” 그리고 2093년, 등단 100주년을 맞는 124세에 다섯(5) 번째 산문집 ‘소설가의 오(Oh!)’를 펴낼 계획이다. 이 책은 경탄의 감탄사인 ‘오!’로 가득 찰 것이라는 게 작가의 예상이다. “‘오!(삶은 좋은 것이야!) 오!(이제 이가 다 빠져서 이렇게밖에 말하지 못하지만!) 오!(살아 있기를 잘했다네!)’ 보기에는 오!밖에 없겠지만, 그 속뜻은 이런 것이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 2012-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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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천천히… 천천히… 35년전 작품 속편 쓰고 있어요”

    《 소설가 김승옥(71)이 대학 노트를 꺼내 한 장을 찢었다. 돋보기안경을 꺼내 쓴 그는 볼펜으로 종이에 한 자 한 자 흘려 썼다. ‘무진기행’이라고 쓴 뒤 화살표를 긋고 ‘사랑’이라고 적었고, ‘광○문’이라고 썼다가 생각난 듯 ‘화’자를 마저 채워 넣었다. 간간이 “그래” “아니” 말도 했지만 대개는 웅얼거림에 가까웠다. 2003년 2월 뇌중풍이 찾아온 뒤 그의 말과 글은 생경하게 짧아져 있었다. ‘서울, 1964년 겨울’ ‘서울의 달빛 0장’ ‘무진기행’ 등을 발표하며 1960, 70년대 한국 소설의 새 지평을 연 그는 1980년 동아일보에 연재하던 소설 ‘먼지의 방’이 신군부의 검열로 삭제되자 절필을 선언했다. 이듬해 4월 자택에서 하느님을 직접 보는 영적인 경험을 했다며 독실한 기독교신자가 된 후로는 창작과 멀어졌고 그의 문우와 독자들은 무척 아쉬워했다. 》      1962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생명연습’이 당선돼 등단한 작가가 올해 등단 50년을 맞았다. 소설가 겸 시인 김도언(40)과 함께 5일 서울 홍익대 앞 커피숍에서 그를 만났다. 김도언의 결혼식 주례를 김승옥이 맡았을 만큼 둘은 각별한 문학적 사제 간이다. 스승과의 필담에 익숙한 김도언이 ‘통역’을 해줬다. 기자의 질문에 김승옥은 단어 몇 개를 썼고, 김도언이 문장을 유추해 “이런 뜻이죠?”라고 되물으면 김승옥이 고개를 끄덕이거나 가로젓는 방식으로 인터뷰는 더디게 진행됐다. ―소설을 발표하지 않은 지 30년이 넘었습니다. “출간을 하지는 않았지만 계속 문학에 대한 생각을 하고는 있었습니다.” ―기독교신자가 된 후로 작품을 볼 수 없어 아쉬워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괜찮습니다. 결국 다 똑같습니다. 소설은 결국 신과 악마를 다루는 것입니다. 이런 까닭에 종교와 문학은 차이가 없습니다. 도스토옙스키의 문학도 결국은 기독교 문학입니다.” ―일본 소설가 다자이 오사무의 전집 기획(열림원이 상반기 출간 예정)에 도움을 주셨지요. “다자이 오사무는 유물론에 심취했다가 결국 신에 귀의한 작가입니다. 나와 공통점이 있지요. 당시 시대를 잘 이해하는 번역자가 필요하다고 생각해 원로 문인인 이호철, 전규태를 번역가로 추천했습니다.” ―집필을 하고 계십니까. “중편 ‘서울의 달빛 0장’의 후속편을 쓰고 있고, 단편 ‘환상수첩’을 시나리오로 바꾸고 있습니다.” 1977년 제1회 이상문학상 수상작인 ‘서울의 달빛 0장’의 원제는 ‘서울의 달빛’이었다. 하지만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이 “이 작품은 연작으로 쓰는 게 맞으니 0장을 붙이는 게 좋겠다”고 권해 제목을 바꿨다. 30년 넘어 후속편이 마련되는 셈이다. ―작업은 얼마나 하시는지요. “오전 2시에 자서 7시나 8시에 일어납니다. 가끔 그림도 그립니다. 컴퓨터로 씁니다. 많게는 하루 12시간 합니다. 인터넷도 하니 글 쓰는 시간이 그만큼 되는 것은 아닙니다.” ‘새 작품을 언제쯤 볼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김승옥은 큰 목소리로 “천천히, 천천히”라고 말했다. ‘서두르지 않겠다는 뜻이냐’고 되물었고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공지영의 소설 ‘도가니’에 차용되기도 했던 ‘무진기행’을 읽으면 습습한 안개가 가득한 무진에 가고 싶어진다. 김승옥은 첫사랑을 얘기했다. “무진은 현실에는 없는 가상의 지역입니다. 제가 고2 때 한 살 연상의 여성을 사랑했지요. 무진기행은 그 여성과 결별한 뒤 제 첫사랑의 느낌을 모티브로 쓴 소설입니다. 제 고향인 순천이 배경이라면 배경이지요.” 기자가 “김도언 씨가 최근 시인으로 등단했다”고 전하자 김승옥은 “좋지, 좋지”라며 밝게 웃었다. “황순원과 김동리도 시를 썼다”며 후배의 도전을 응원했다. 김승옥은 1시간 반 동안 이어진 인터뷰의 대부분을 자신의 신앙과 선교 계획을 밝히는 데 할애했다. 특히 스리랑카에서 선교를 펼치고 싶다고 거듭 강조했다. 등단 50주년을 맞은 문단은 그를 기리는 책 출간과 낭송회 준비로 바쁘지만 김승옥은 문인보다는 신앙인의 삶에 애착이 커 보였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 2012-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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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달에 만나는 詩]그 님의 매화… 봄 손님이 발갛게 오셨을까

    《 새초롬한 봄바람 사이로 홍매나무 꽃봉오리들이 빼꼼히 얼굴을 내민다. 길어진 오후 햇살은 마당가 제 발치까지 닿아있다. 다시 봄이 움트려 한다. 문득 먼 곳에 계신 선생님, 어머니, 그리고 먼저 세상을 뜬 사람들을 떠올린다. 발갛게 솟아오른 꽃망울은 그들이 내게 보낸 봄 인사일까. 》 ‘이달에 만나는 시’ 3월 추천작으로 장석남 시인(47)의 ‘안부’를 선정했다. 지난달 나온 시집 ‘고요는 도망가지 말아라’(문학동네)에 수록된 시다. 시인 이건청 장석주 김요일 이원 손택수 씨가 추천에 참여했다. 봄이 오는 길. 마당가 매화나무에 불그스름한 꽃망울에서 시인은 안부 인사를 떠올린다. “전화도 있고 다른 무엇도 있지만 꽃소식으로 안부를 묻는 멋은 괜찮지 않은가. 함께 같은 종류의 꽃을 본다는 것처럼, 이심전심 괜찮으시냐는 안부처럼, 그윽한 것도 없다. 해마다 이맘때면 매화 봉우리를 보며 주위 분들의 안부를 스스로 묻곤 한다.”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한층 깊어진 사유와 서정적 세계를 보여준다. 이는 ‘고요’라는 시어로 응축된다. “말 이전이 침묵이라면, 말 이후의 그것은 고요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말을 다 삭히고 난 세계, 결론 이후의 세계, 편안한 세계이기도 하고 허무한 세계이기도 하겠으나 끝내 우리가 갈 수밖에 없는 세계….” 모든 경쟁 원리나 세속적 욕망을 버려야 닿을 수 있는 게 고요인 것 같다고 시인은 말했다. 손택수 시인은 “‘오도카니’ 고독하다. 외로움이 봄볕을 더 눈부시게 한다. 매화분을 키우는 이의 안부가 문득 그리워지는 이 가난한 외로움은 골똘하고 하염없어서 그 맑음으로 하여 세상을 다 ‘꽃봉오리’로 만든다. 봄(春)은 봄(視)에서 온다”고 추천 이유를 밝혔다. “장석남은 우리 시단의 흔치 않은 고요파 시인 중의 하나다. 그는 고요의 겸손으로 말갛게 씻긴 사물의 세계를 보여준다. 그에게 고요는 취향이 아니라 사유의 본질이다. 장석남의 시집들은 마음이 시끄럽고 어수선할 때 읽으면 딱 좋다.” 장석주 시인의 추천사다. 이원 시인은 추천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장석남이 닿고 싶은 곳은 ‘훤칠한 물맛’. 그곳에 이르기 위해 시인은 초연함 대신 한시도 놓칠 수 없는 고요를 선택했다.” 김요일 시인은 장석주 시인의 시집 ‘오랫동안’(문예중앙)을 추천했다. 그는 “이 시집을 읽고 책장을 덮으니 마치 봄꿈을 꾼듯하다. 우울한 몽상과 황홀한 백일몽을 오가며 던지는 ‘불가해한 생’에 대한 질문들은 증폭된 울림으로 ‘오랫동안’ 내 주위를 맴돌고 있다”고 평했다. 이건청 시인은 박제천 시인의 시집 ‘도깨비가 그리운 날’(지식을만드는지식)을 꼽았다. “사별한 아내에 대한 그리움을 명징한 언어로 불러내고 있는 육필 시집. 감정을 걷어낸 자리에 되살려낸 아내와의 사소했던 일상들이 선연한 실존이 되어 살아나고 있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 2012-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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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영미 시인, 정치-북한 풍자시 4편 발표

    시인 최영미(51·사진)가 정치 풍자시 4편을 발표했다. 계간 문학지 ‘문학의 오늘’ 봄호에 실린 이 시들에는 국내 정치뿐 아니라 북한에 대한 풍자와 조롱으로 가득하다. 2005년 펴낸 시집 ‘돼지들에게’(실천문학사)에서 탐욕적인 지식인들과 지도층을 힐난했던 그가 오랜만에 다시 현실에 비판의 날을 세운 것이다. 시 ‘정치인’은 정치인들의 이중성을 비판한다. ‘왼손이 하는 일은 반드시 오른손이 알게 하고,/언론에 보도되지 않으면, 돌 하나도 옮기지 않는 여우들’로 정치인을 그리며 ‘언제나 얼굴에 미소를 머금고/장애아동의 손을 잡으며,/윤기 흐르는 목소리로//고통을 말하며/너는 어쩜 그렇게 편안할 수 있니?’라고 꼬집는다. 시 ‘한국의 정치인’에서도 정치권력을 비꼰다. ‘대학은 그들에게 명예박사학위를 수여하고/기업은 그들에게 후원금을 내고/교회는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병원은 그들에게 입원실을 제공하고/….’ 시인의 ‘독설’은 남북관계로 옮아간다. ‘북조선에서는 잘 우는 사람이 출세하고/남한에서는 적당한 웃음이 성공의 비결’(‘닮은꼴’)이라며 남북한 사람들의 처세술을 비꼰다. 북한 3대 세습에 대한 비판은 한층 직설적이다. ‘할아버지도 돼지. 아버지도 돼지. 손자도 돼지.//돼지 3대가 지배하는 이상한 외투의 나라’(‘돼지의 죽음’) 최 시인은 “어느 날 갑자기 영감이 왔다”며 “선동적인 언사와 행동으로 대중의 인기를 끌어야 하는 정치인들의 숙명이 안타까우면서도 비판적인 생각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올해 등단 20년을 맞은 최 시인은 “문학에 대한 고민이 더 필요하다”며 지난달 말 미국 보스턴으로 한 달 반 일정의 취재 여행을 떠났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 2012-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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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학예술]아세요? 저 10대의 미친 폭주는 울음이란 걸…

    김영하는 ‘떠도는 작가’다. 이탈리아 캐나다를 거쳐 지난해 9월부터 미국 뉴욕에서 지내고 있다. 맨해튼의 아파트 8층에 사는 작가의 생활은 흔히 생각하는 뉴욕의 화려함과는 거리가 있다. 낮에는 도서관 책상에서 소설을 쓰고, 밤에는 집에 돌아와 책을 읽거나 쉰다. 공원에서 멍하니 혼자 있거나 맑은 날에는 아예 창의 커튼을 내리고 아이폰 앱을 통해 빗소리를 듣는다. 혼자, 어둠, 빗소리…. 그가 5년 만에 펴낸 이번 장편에는 그런 슬픔의 정서가 그렁그렁하게 맺혀 있다. “1990년대 태어나 2000년대 생을 마감한 한 소년의 이야기입니다. 사회를 비추는 어떤 스포트라이트로부터도 비켜서 있는 소년의 이미지가 떠올랐고 그가 보냈을 시간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5년 전의 일입니다.” e메일을 통해 작가가 밝힌 작품 소개다. 그가 5년 전 취재를 하다 간접적으로 만난 한 소년은 남자 주인공 ‘제이’로 태어났다. 10대 소녀가 화장실에서 낳고 버린 아이, 잠시 양엄마를 얻게 되지만 그가 마약중독에 빠져 동거남과 함께 도망치자 다시 버려진 아이, 중학교도 제대로 못 마치고 거리에서 부랑아로 떠돌며 쓰레기통을 뒤져 부패한 음식을 먹고, 후미진 아파트 계단이나 공중화장실에서 잠을 청하는 아이…. 가정과 사회에서 철저히 버려진 고아의 뒷골목 성장기를 그렸다. 앞선 그의 작품들인 ‘검은 꽃’의 이정, ‘퀴즈쇼’의 민수 또한 고아다. “한국 문학에 유난히 고아가 많이 등장하는 것은 우리 사회가 근대 이후 겪은 급격한 변화를 보여주는 방증이라 생각합니다. 넓게 본다면 ‘빛의 제국’의 기영 역시 낯선 땅에서 스스로 습득한 규칙과 정보에 따라 살아간다는 점에서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문득 돌아보니 제가 가장 사랑했던 주인공들은 바로 이런 인물들이었습니다.” 사회 밑바닥을 맴도는 제이는 오토바이 폭주를 통해 울분을 토한다. “폭주는 우리가 화가 나 있다는 걸 알리는 거야. 어떻게? 졸라 폭력적으로. 말로 하면 안 되냐고? 안돼. 왜? 우리는 말을 못하니까. 말은 어른들 거니까. 하면 자기들이 이기는 거니까 자꾸 우리 보고 대화를 하자고 하는 거야.” 제이를 비롯한 10대들의 가출, 폭력, 혼숙, 성매매 등이 매우 사실적으로, 세밀하게 그려진다. ‘고통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세상의 모든 죄악은 거기서 시작된다’는 제이의 말을 통해 작가는 상처 입은 10대들의 울부짖음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말한다. 그가 40여 쪽 분량의 ‘작가의 말’을 통해 전한 것처럼 이 이야기는 허구가 아닌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충격적이고 가슴 아리다. 단 제이에 치중된 단순한 구성 때문에 시원한 속도감은 있지만 짜임새는 헐거워 보인다. 작가 김영하는 중단한 트위터를 재개할 생각이 없으며, 올 연말까지 뉴욕에 머무른다고 했다. 긴 이국 생활, ‘고아 같다’는 느낌이 든 적이 없느냐고 그에게 물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은 저마다 고아의 그림자를 뒤에 달고 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전 세대의 경험과 규칙이 시시각각 무화되는 세계에서 혼자 살아남아야 한다는 점에서 우리 모두는 고아입니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 2012-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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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iz books]비윤리적 공장식 축산현장 고발

    돼지들은 몸을 돌리지도 못하는 좁은 우리에 갇혀 있다. 콘크리트 바닥에서 사료와 약품을 먹고 비정상적으로 빠르게 몸을 불린 돼지들은 태어난 지 약 5개월이면 도축된다. 암퇘지는 끊임없이 임신과 출산을 반복하다가 생을 마감한다. 닭은 어떤가. 어미 닭 대신 인공부화기가 달걀을 품고, 철장 속에 빼곡히 들어찬 닭들은 도축돼야 밖으로 나갈 수 있다. 산란용 품종의 수평아리들은 태어나자마자 산 채로 분쇄기에 들어가 산업 폐기물 신세가 된다. 미국에서 공장식 돼지 사육 반대 캠페인을 이끌던 환경운동가이자 변호사인 저자가 미국 곳곳의 축산 시설을 답사한 뒤 문제점을 고발한다. 현재 전 세계에서 생산되는 식품의 양은 세계 모든 사람이 하루 3800Cal씩 섭취할 수 있는 양이므로, 식품 분배만 적절히 이뤄진다면 공장식 축산업은 필요치 않다고 주장한다. 육류 소비를 줄이거나 친환경적으로 키워진 가축을 소비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비윤리적인 축산업 현장을 사실감 있게 고발했지만 공장의 현장 사진을 한 장도 싣지 않아 아쉽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 2012-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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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前 회장들이 새 회장 뽑는 독특한 한국시인협회

    국내 최대의 시인단체인 한국시인협회(회장 이건청)가 새 회장을 뽑는다. 하지만 후보자도 선거 운동도 없다. 30년간 이어져온 협회의 독특한 회장 선출 방식 때문이다. 시인협회의 회장 선출은 평의원 회의에서 후보자를 추천하고, 총회에서 인준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추천된 후보가 총회에서 거부된 적이 없기에 사실상 평의원 회의에서 새 회장이 결정된다. 이번 평의원 회의는 5일, 총회는 24일 열린다. 회장 선출의 결정권을 쥔 평의원 회의는 전직 회장들로 구성된다. 협회 정관에 따르면 회장을 거치면 별도 절차 없이 종신직 평의원이 되며 이들은 새 회장에 대한 추천권을 독점한다. 현재 평의원은 김남조 김종길 홍윤숙 김광림 성찬경 정진규 허영자 이근배 김종해 오세영 오탁번 등 11명의 원로시인이다. 이건청 현 회장은 차기 회장 선출 때부터 추천 권한을 행사한다. 전임 회장들이 모여 새 회장을 선출하는 방식은 1982년 조병화 회장 때부터 시작됐다. 이전에는 투표로 회장을 뽑았지만 선거를 둘러싸고 파벌 다툼이 생기고 잡음이 많아지자 평의원 추천으로 방식을 바꿨다. 이 회장은 “그동안 다른 문인단체들에서는 선거 잡음과 분란이 끊이질 않았지만 시인협회는 평의원 추대 방식을 통해 무난하게 새 회장을 선출해 왔다. 시인협회가 지금의 권위를 유지할 수 있는 것도 이 추대 방식을 유지한 덕이 크다”고 말했다. 하지만 회원 수가 1400명이 넘는 단체에서 10명 남짓한 원로들이 회장 추천권을 독점하는 것은 문제라는 지적도 있다. 회장 추천권을 비롯해 원로들 위주로 협회가 운영되다 보니 젊은 시인들의 참여가 점점 줄어든다는 것이다. 시인협회의 한 중견 회원은 “선생님들의 면면은 뛰어나지만 일부 문파의 원로가 자신의 후배에게 회장을 물려주는 경향도 있다”며 “권위 있는 문학단체인 만큼 회장 선출 방식을 시대에 맞게 변경하는 것을 고민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 시인 주요한이 밝힌 ‘창조’의 탄생과 폐간 그리고 문우들 ▼한국 최초의 문예동인지인 ‘창조(創造)’는 어떻게 탄생했고 사라졌을까. 창조 창립 멤버로 동아일보 편집국장을 지낸 시인 주요한(1900∼1979·사진)이 1969년 4월 7일부터 대한일보에 연재한 ‘나와 창조시대’를 보면 궁금증이 풀린다. 계간 문학지 ‘연인’이 봄호 특집기사로 주요한과 김동인의 신문 연재물을 발굴해 소개했다. “진남포에서 온 유학생 김환이 문예잡지를 발간하는 안을 먼저 낸 것으로 기억된다. 1918년 여름, (김)동인이 여름방학에 고향을 다녀오면서 잡지 출판 비용을 가지고 왔다. 청산학원에 재학 중이던 전영택 오천석 두 학생이 동인으로 참가하고 김억도 들어왔다. (…)서로 사귀는 범위가 좁기 때문에 이상 전부가 평양 출신 아니면 평안도 청년들이었다.” 1919년 2월 창간된 창조는 당시 새로운 문학 사조였던 자연주의와 사실주의를 개척했으며 자유시 발전에도 기여했다. 한국 최초의 근대 자유시인 ‘불놀이’와 단편소설인 김동인의 ‘배따라기’, 전영택의 ‘천치? 천재?’ 등이 이 동인지를 통해 발표됐다. 창조가 창간 2년 3개월 만인 1921년 5월 통권 9호로 종간된 연유는 김동인이 1931년 8월 매일신보에 연재한 글에 나온다. “‘창조 동인들은 이만하였으면 이제는 기관 잡지가 없더라도 자립할 수 있다. 그러니 폐간하여도 좋다.’ 이것은 표면적 이유였다 (…)바람난 동인들은 제멋대로 놀았다. 서로 만났다 할지라도 서로 자기의 게으름을 감추고자 창조에 관한 이야기는 일절 안 하였다. 이리하여 창조는 유아무중에 폐간이 된 것이다.” 주요한이 창조 폐간 후 문우들의 근황을 소개한 부분도 흥미롭다. “김동인은 이미 재산을 거의 탕진해 아내와도 이혼하고, 새장가들어 서울로 이사 와서 계속 소설을 썼다. 그러나 원고료를 가지고 생활하기는 곤란한 처지 같았다. 작품 면에서 주옥같은 단편들이 쏟아져 나와 거의 한 세대를 긋는 위치에 있었다고 하겠다.” 전영택에 대한 평은 이렇다. “여학교 선생으로 취직했었고, 틈틈이 인도주의적인 소설을 써냈다. (…)작품의 수효는 많지 아니하나 그의 영혼의 부르짖음이었고 역시 어떤 시대를 표상하기보다 홀로 빛나는 별이었다.” “김억은 계속 시를 썼고 동아일보 학예부 기자로 있었는데, 내가 거기 입사하게 되었다는 말을 듣고 무단 퇴사해서 원산 해수욕장으로 달아나고 말았다. 기자생활이 그에게는 고통이었던 모양이다.” 6·25전쟁 때 납북된 김억에 대해 주요한은 “소식을 모르니 애통스럽다”며 “만년에라도 서정파의 대표로 지성파에 대항하는 큰 존재가 되었을지도 모른다”며 아쉬워했다. 회사 후배였던 현진건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일화를 소개했다. “현진건이 동아일보의 명 사회부장으로 있을 때 나는 편집국장 직을 맡아 보았다. 현진건은 술을 잘 먹었고, 한번은 크게 취해서 사장실에 들어가서 주정을 한 일도 있다. 혹은 취한 체하고 했는지도 모른다. 당시 송진우 사장은 그 주정을 잘 받아 주었을 뿐 아니라 그 이면의 뜻을 알고 사원 대우를 높여주기도 했다.” 주요한은 본인에 대해서는 “나는 원래 술을 못하고 사교성이 없는 성미이기 때문에 문인들과 어울려 다니지 못했고, 따라서 30년대 작가들과의 면식은 거의 다 있었지마는 그들의 일화에 대해서는 간접으로 들었을 뿐이다”고 적었다. 연인 봄호는 시인 김기림이 1940년대 새한민보 등에 실었던 ‘민주주의에 부침’을 비롯한 시 4편, ‘슬픈 폭군’을 비롯한 산문 2편도 발굴해 소개했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 2012-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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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 종로 통인동 154-10… 그곳엔 아직도 李箱의 날개가 퍼덕인다

    《 1930년대 전위적이고 파격적인 시들로 한국 문단에 파장을 몰고 온 천재 시인 이상(李箱·1910∼1937·사진). 그가 남긴 작품들은 지금도 활발하게 연구되는, 살아 있는 텍스트다. 하지만 그를 추억할 수 있는 공간을 찾기란 쉽지 않다. 시인이 태어난 서울 사직동 집터는 확인 불명이다. 그가 다녔던 신명과 동광학교는 사라졌고 보성학교는 조계사가 됐다. 》 일본으로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머물렀던 수하동의 일본식 저층 아파트도 철거됐으며 연인 금홍과 차렸던 종로의 제비다방도 정확한 위치를 놓고 의견이 갈린다. 미스터리 같은 그의 시어들처럼 시인의 행적 또한 풀기 어려운 암호가 되었다. 그런 이상의 체취를 느낄 수 있는 몇 안 되는 곳 중 하나가 서울 종로구 통인동 154-10번지다. 큰아버지 집이었던 이곳에서 이상은 세 살부터 스물세 살까지 살았다. 하지만 이상이 살던 집은 허물어졌고, 현재 이곳에는 70m²의 오래된 한옥(1940년대 건축 추정)이 있다. 2009년 7월 문화유산국민신탁이 이 건물을 매입해 재단법인 아름지기가 이곳을 관리하고 있다. 아름지기는 지난달 19일부터 이곳을 일반인에게 무료로 개방하고 있다. 지난해 한옥을 허물고 ‘이상의 방’이라는 2층짜리 건물을 새로 지으려고 했지만 “더 논의가 필요하다”는 잠정 결론을 내려 공사는 미뤄진 상태다. 이에 따라 우선 있는 그대로 시인의 집터를 공개한 것이다. 이상의 작품 연구서 ‘시는 아무것도 모른다’(수류산방)를 펴낸 문학평론가 함돈균 씨(39·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HK연구교수)와 이곳을 찾았다. “몇 년 전 이곳에 왔을 때는 옷 수선집과 한자를 가르치는 ‘서당’이 있었죠. 한참 동안 밖에서 서성대다가 돌아섰던 기억이 나네요. 감회가 새롭습니다.” 문을 열고 작은 콘크리트 마당으로 들어섰다. 왼쪽에 ‘이상의 방’이란 이름의 작은 회의실이 보였다. 큰 탁자 1개와 작은 탁자 2개, 10여 개의 의자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이곳에선 누구든지 세미나와 모임을 할 수 있고, 커피와 차도 무료로 마실 수 있다. 지난달에는 이상의 시문학에 대한 세미나가 열렸고, 28일에는 이상문학회가 모임을 가졌다. 문인과 학자들이 이상의 집터에서 이상과 소통하는 셈이다. “이상은 (지나간) 역사적 텍스트가 아닙니다. 요즘 시인들도 여전히 이상의 에너지 속에 절망하고 영향을 받으며 시를 씁니다. 이상의 오감도에 아해(아이)들이 나오는데 이원, 이수명, 김민정, 황병승의 시에 아이들이 괜히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함 씨는 “이런 극적인 공간을 오랫동안 방치해 왔다는 게 아쉽다. 이제라도 살아 있는 공간으로 운영되기 시작한 것은 큰 다행이다”라고 했다. ‘이용은 무료입니다. 주저 말고 들어오세요.’ 입구에 붙어 있는 안내문을 보고 쭈뼛대던 행인 서너 명이 들어와 찬찬히 둘러봤다. “내가 색소폰을 부는데 이곳에서 공연을 해도 좋겠느냐”고 안내 직원에게 묻는 중년 남자도 있었다. 알음알음 찾아오는 방문객들로 이상의 집터는 생기를 얻어가고 있었다. 일본 도쿄 거리에서 ‘불령선인(不逞鮮人·불온한 조선인)’이라는 죄목으로 체포된 후 폐결핵이 악화돼 외롭게 간 ‘박제가 된 천재’는 이젠 외롭지 않을 듯했다. ‘이곳에서 내 스무 살 때 근대문화의 연인을 보고 갑니다.’ ‘하루에 몇 번씩 지나쳐가다 처음 발걸음을 했습니다. 예술가의 감성을 담아 돌아갑니다.’ ‘먼발치에서 머리로만 알고 있던 이상을 어딘지 모르게 직접 만난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발은 따뜻해졌는데 마음이 살짝 외로워지네요.’ 이상을 만난 사람들이 남기고 간 방명록에 오래 눈길이 갔다. 따스했고, 촉촉했다. 운영시간 오전 10시∼오후 8시. 월요일 휴무. 02-741-8387황인찬 기자 hic@donga.com}

    • 2012-0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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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문사회]거짓말은 인간 본성의 핵심이다

    미국의 심리학자 벨라 드폴로가 일반인 147명을 대상으로 한 실험 결과 하루 평균 1.5회의 거짓말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 살 미만의 갓난아이조차 엄마를 속이는 행동으로 의사를 표현하고, 네 살배기의 95%가 거짓말을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책은 한술 더 뜬다. “거짓말은 본성의 왜곡이 아니라 핵심”이라고. 저술가인 저자는 거짓말의 역사와 이론 등을 묶었다. 주제는 흥미롭지만 장황한 인용을 빼면 깊이가 부족하고, 내용 또한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지 못해 혼잡스럽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 2012-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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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문사회]사도세자, 아버지 영조 죽이려 했다

    사도세자(1735∼1762)가 아버지 영조에 의해 비운의 죽음을 당한 지 올해로 250년이 된다. 사도세자의 죽음에 대한 비밀을 ‘한중록’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등을 통해 풀어냈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 주장은 이렇다. 사도세자는 심한 정신병을 앓고 있었으며 역모를 꾀한 데 이어 영조를 직접 죽이려다 발각됐다는 것. 감히 사도세자에게 칼을 휘두를 사람이 없어 결국 고육지책으로 영조가 ‘뒤주 처형’을 택했다고 풀이한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 2012-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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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학예술]김 모락모락, 하얀 쌀밥같이… 따뜻하다… 달다

    《중견 시인 장석남(47), 문태준(42)이 나란히 신작 시집을 내놓았다. 각각 일곱 번째, 다섯 번째 시집. 20년 내외의 고단한 시업(詩業)을 지고 가는 이들의 시어들은 한층 절제되고 응축됐다. 따스하고 담백하다. 적막한 겨울밤 김이 모락모락 나는 하얀 쌀밥과 정갈한 반찬 몇 가지를 정성스레 올려놓은 소박한 밥상을 받은 것 같다. 씹을수록 고소한 맛이 난다.》 장석남 시인은 시집 ‘고요는 도망가지 말아라’에 2년 전 겨울 머물렀던 백담사 만해마을의 풍경들을 주로 담았다. 올겨울도 시인은 그곳에서 보냈다. “눈이 많이 오고, 바람이 많이 분다. 굉장히 황량한 곳”이라고 그는 만해마을의 겨울을 떠올렸다. ‘눈 내리는 밤/눈이 내리는 밤//다만 눈이 쉬 그치지 않기만을/높은 소망처럼 기원해보는//눈 내리는 밤/물음이 내려오는 밤/서성이는 밤’(‘하문(下問)·2’ 일부) 고즈넉한 겨울밤, 투두둑 내리는 함박눈은 시인의 시상(詩想)을 깊고 평안하게 만든다. 적막을 깨뜨리는 작은 소리에서도 시는 태어났다. ‘한밤/물미역 씻는 소리는/어느 푸른 동공(瞳孔)을 돌아나온 메아리 같네/간장에 설탕을 넣고 젓는 소리는 또/그 메아리를 따라나온 젖먹이 같네’(시 ‘물미역 씻던 손’ 일부) 시인은 서두르지 않는다. 겨울밤, 눈, 민들레, 담장, 돌을 관조하며 깊은 사유를 하고, 이를 차분히 적어 내려간다. “장석남 시인의 시세계를 관통하는 미묘하고도 깊은 서정의 실체를 보다 응집적으로 표현해본다면 그것은 ‘호젓함’이다.” 문학평론가 엄경희의 해설이다. 호젓한 시인의 걸음 뒤로 남은 발자국이 책장 곳곳에 사뿐히 내려앉았다. 문태준 시인은 4년 만에 시집 ‘먼 곳’을 냈다. 시집을 꿰뚫는 정서를 묻자 그는 “먼 곳이나 영원, 이런 것들에 대한 생각을 하면서 (시를) 추렸다”고 말한다. ‘어릴 때에 죽은 새를 산에 묻어준 적이 있다/세월은 흘러 새의 무덤 위로 풀이 돋고 나무가 자랐다/그 자란 나뭇가지에 조그마한 새가 울고 있다/망망(茫茫)하다/날개를 접어 고이 묻어주었던 그 새임에 틀림이 없다.’(시 ‘영원(永遠)’ 전문) 영원에 대한 사색은 사물들에 대한 탐색으로 이어진다. 대표적으로는 ‘돌’이다. “우리가 거듭해서 생을 태어나고, 끊임없는 변화와 이별 속에서 멸하는 운명에 있고, 그런 것을 인식하는 과정이 삶”이라 말하는 시인은 단단한 돌에서 운명과 소멸, 그리고 자신을 본다. ‘어제보다 조금 더 닳아진 돌/아래로 안쪽으로 내려서는 돌/몸속에 손이 하나 더 있어/몸속 조막손이 나와/눈을 감겨놓고/귀를 닫아놓은 돌/…/내 다시 와 내일을 산다면/그때는 더 작아졌을 돌’(시 ‘돌과의 사귐’ 일부) 앞선 그의 시들처럼 불교적 사유가 언어 사이로 정갈하게 자리 잡고 있다. “간결하고 선명한 이미지를 갖추기 위해 노력했다”고 그는 말했다. 장석남 문태준 시인은 얼마 전 서울 홍익대 앞에서 회합했다. 최근 장편을 펴낸 소설가 김연수와 정끝별, 나희덕 시인 등이 함께 자리했다. ‘시집에 대해 서로 무슨 말을 나눴나’라고 묻자 장 시인은 호탕하게 웃었다. “만나면 문학 얘기 안 해요. 술만 마시는 거지 뭐∼.”황인찬 기자 hic@donga.com}

    • 2012-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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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가 134만원 책… 교보 3세트 들여와 2세트 판매

    23일 서울 교보문고 광화문점의 외국서적 코너. 비닐로 꽁꽁 싸인 채 스티로폼 받침대 위에 따로 진열된 책 한 세트(총 3권)가 눈에 띄었다. 영국 출판사 하빌세커가 111개 세트 한정판으로 제작한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1Q84’ 영문판이다. 한국에는 교보문고를 통해 3개 세트가 들어왔는데 2개 세트는 이미 팔렸고 마지막 남은 한 세트가 진열된 것이다.‘1Q84’ 양장본 3권은 4만5400원이지만 이 한정판 세트는 영국 현지에서 750파운드(약 132만6000원), 국내에서는 134만 원으로 책정됐다. 웬만한 ‘명품 백’ 값이다. 1963년 스위스에서 생산된 종이를 사용했고 권마다 질감과 인쇄체를 달리해 소장 가치를 높였다. 책 가격을 높이는 또 한 가지 요인은 3권 뒷면에 들어간 작가의 친필 사인. 언론과 대중에 노출을 꺼리는 무라카미는 지금까지 한국을 방문한 적이 없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 2012-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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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탈북작가 北인권실태 알리기 도와야”

    “표현의 자유가 없는 곳에서 그 자유를 주장하는 것이 국제펜클럽의 주요 활동 목적 중 하나입니다. 국제펜클럽은 중국과 이란, 튀니지에서도 표현의 자유를 주장하는 캠페인을 펼쳐왔죠. 북한은 표현의 자유를 강력히 제재하는 대표적 국가 가운데 하나입니다.” 9월 경북 경주에서 열리는 국제펜대회 총회를 앞두고 방한한 존 랠스턴 솔 국제펜클럽 회장(65)은 이 대회에서 통과가 유력시되는 펜클럽 북한 센터의 회원국 가입에 대해 이같이 의의를 설명했다. 펜클럽 북한 센터는 탈북 작가 20여 명으로 구성돼 있다. 1921년 창설된 국제펜클럽에는 현재 114개국 143개 센터가 참여하고 있다. 솔 회장을 17일 만나 북한 센터의 회원국 가입과 국제펜클럽의 역할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캐나다 출신의 솔 회장은 소설가이자 다큐멘터리 방송작가로 활동해왔다. 1970, 1988년에 이어 24년 만에 한국에서 열리는 이번 펜 대회에는 월레 소잉카, 오르한 파무크, 장마리 귀스타브 르 클레지오 등 노벨 문학상 수상자를 비롯한 해외 문인 300여 명이 참가한다. ―지난해 총회에서 북한의 가입 안건이 만장일치로 상정됐는데…. “세계 작가들이 북한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고 그 상황이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알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결과다. 북한 센터가 가입하면 115번째 회원국이 된다.” 9월 경주 국제펜대회 총회에서는 탈북 작가들이 직접 참여해 북한 인권 상황을 설명하고 센터 설립의 필요성에 대해 발언할 예정이다. 가입이 통과되면 북한 센터는 서울에 마련된다. “전통적으로 펜 센터는 해당 국가 내에 있어야 하지만 중국이나 북한처럼 정부 탄압이 예상될 경우 국외에 둘 수 있다”고 솔 회장은 설명했다. ―북한의 인권 상황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북한의 인권이 열악하다는 것은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다. 망명한 탈북 작가들을 돕고 싶다.” ―국제펜은 어떤 도움을 주게 되나. “절차대로 단계를 밟아나갈 것이다. 우선은 북한 센터 설립이 중요하다. 이후에는 북한 작가들이 직접 그들의 인권 문제를 국제펜을 통해 세계에 얘기할 수 있도록 도울 것이다.” 솔 회장은 미얀마에서 1960년대부터 표현의 자유를 위해 노력했지만 최근에야 성과가 나타나고 있다고 전했다. ‘북한도 그렇게 오래 걸릴까’라고 묻자 그는 “이미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며 웃었다. “우리는 한국펜본부와 협력해서 북한에 대한 새로운 전략을 마련할 것이다. 어쩌면 우리가 북한에 가야 할 일이 생길 수도 있을 것이다.” ―국제펜클럽의 전략은 무엇인가. “우리는 무기가 없고, 돈이 많은 것도 아니다. 우리가 미칠 수 있는 영향은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다. 세계적인 작가들이 우리 회원이기에 국제적인 여론이나 평판을 만들어 (해당 국가의)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이다.” 솔 회장은 “우리는 군대가 없다. 하지만 펜은 무기보다 강하다. 또한 우리의 (비폭력)방식이 지금까지 좋은 결과를 가져왔다”고 평가했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 2012-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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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탈북작가들, 北대표로 펜클럽 가입”

    범세계적 작가단체인 국제펜클럽에 탈북 작가 20여 명으로 구성된 ‘펜클럽 북한 센터’가 회원국 ‘북한’으로 등록될 것으로 보인다. 존 랠스턴 솔 국제펜클럽 회장(65·사진)은 17일 본보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9월 경주에서 열리는 국제펜대회에서 북한의 회원국 가입이 안건으로 상정돼 있으며 무난히 통과될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1921년 창설된 국제펜클럽에는 현재 114개국 143개 센터가 가입돼 있다. 한 개 국가가 여러 개의 센터를 둘 수 있으며 북한 센터가 가입하면 115번째 국가, 144번째 센터가 된다. 펜클럽 한국본부(이사장 이길원)는 국내 탈북 작가들과 북한 센터 설립을 추진해 왔으며 지난해 세르비아 베오그라드에서 열린 국제펜 총회에서 탈북 작가들이 가입안을 낼 수 있도록 지원하기도 했다. 당시 총회에서 북한의 가입안이 회원 국가들의 만장일치로 상정됐고 이번 9월 경주 국제펜대회에서 표결에 부쳐진다. 세계 최대의 작가 단체인 국제펜클럽은 문학을 증진하고 표현의 자유를 수호하며 범세계적인 작가 공동체를 구성하는 데 목표를 두고 있다. 특히 정치적인 검열에 반대하며 박해받거나 투옥되는 작가들의 목소리를 대변해왔다. 솔 회장은 “세계의 메이저 작가들이 우리 국제펜의 멤버다. 국제펜은 전 세계 누구나와 얘기를 나눌 수 있다”며 “(북한에 대한) 평판을 만드는 데 영향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 2012-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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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00자 다이제스트]해적판LP-다방미팅 다 어디갔어

    시인이자 출판사 대표인 차인배는 어느 날 대학동창에게서 e메일 한 통을 받는다. “심각한 내면적 공황에 빠져 세상과의 소통을 그만둬야겠다”는 친구의 선언이다. 차인배는 스스로를 돌아보게 된다. ‘난 세상을 잘 살아온 걸까.’ 한 중년 남자가 회고한 대학 시절 이야기다. 1970년대 말 대구에서 대학을 다니며 친구들과 동성로를 뒤져 해적판 LP를 구하고 미팅을 하는 등 추억담이 활기차게 펼쳐진다. 9박 10일간의 병영집체교육 등 시대상도 펼쳐진다. 당시 학창시절을 보낸 사람들과 공유하고픈 비망록 같은 소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 2012-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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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학예술]친구들의 살인게임… 그날 무슨 일이 있었나

    작가는 연세대 철학과 4학년에 재학 중이다. 올해 스물여섯이다. 그 나이에 수상 경력은 열거하기 힘들 정도다. 문학사상 청소년문학상 대상, 푸른작가 청소년문학상, 대산청소년문학상 금상, 최명희청년문학상, 천마문학상, 계명문화상, 토지청년문학상, 세계청소년문학상, 디지털작가상 대상…. 중고교 시절 이미 다관왕으로 등극하며 ‘천재 작가’로 불리게 됐다. 그런 그가 변신을 시도했다. 이전 작품들이 주로 성장이나 로맨스소설로 말랑말랑한 젤리 같았다면 이번 작품은 쓴 소주 맛이다. 배신과 복수, 폭력과 살인으로 튀어버린 점액질의 혈흔이 책장 가득 묻어 있다. “이전과 달리 주인공들이 어른인 데다 과격한 장면도 많아 하드보일드 같죠. 그래서 성인소설로 보이는 것 같아요.” 해일 기완 유성 진철 재문은 고교 친구 5인방이다. 기완이 얼굴은 예쁘지만 ‘싸가지’는 지독히 없는 앤에게 좋아한다고 고백했다가 인격모독적인 퇴짜를 당하고, 5인방은 복수를 계획한다. 앤의 심복인 주홍(봉다리)과 앤의 전 애인 오재호에게 각각 ‘만나자’는 문자메시지를 몰래 보내 앤의 질투심을 유발한 것. 하지만 정작 약속 장소에는 오재호가 아닌 앤이 눈치를 채고 나와 영문도 모르는 주홍을 마구잡이로 팬다. 숨어서 이것을 지켜보던 5인방은 예기치 않은 상황을 말리려다 앤을 떠밀어 실족사하게 만든다. 급히 현장을 피하지 못한 기완만 경찰에 연행되지만 그는 홀로 벌을 받은 뒤 성인이 돼 출소한다. 다소 복잡한 초반은 중후반 치밀한 심리게임을 위한 포석이다. 출소한 기완이 “우리 모두가 공범”이라며 옛 친구들에게 3억 원을 요구하자 친구들은 진퇴양난에 빠진다. 돈을 한번 주면 계속 요구할 것이 뻔하고, 안 주면 앤의 실족사에 대한 진실을 폭로할 것이기 때문이다. 작가는 여기서 한 번 더 ‘꼰’다. ‘기완이 변했듯이 다른 친구들도 변해 나를 위협하지 않을까….’ 그렇다. 모두는 이제 안다. 친구이자 적이 된 것이다. 살인을 매개로 한 운명공동체는 벗어날 수 없는 올가미로 그들을 옥죈다. 답은 하나다. 모든 친구를 죽이는 수밖에…. 하나의 극적 요소가 더 가미된다. 인기 연예인이 된 주홍이다. 주홍을 사랑하는 해일은 그를 쫓는 스토커를 제거하러 나서지만 되레 스토커로 몰린다. 게다가 주홍을 사랑하는 것은 해일만이 아니다. 재벌가 유부남과 그의 동생, 그리고 해일의 친구들까지. 숨바꼭질하듯 달리며 흩뿌려졌던 사건들의 조각이 마지막에 큐브처럼 딱 맞춰지며 전기 같은 찌릿함이 느껴진다. 주인공이자 사건의 화자인 해영(나)이 종반으로 치달을수록 단편적인 캐릭터의 틀에 함몰되는 것 같아 아쉽다. 가장 큰 반전을 기대하며 풍선을 힘껏 불다가 피식 바람이 빠진 느낌이랄까.황인찬 기자 hic@donga.com}

    • 2012-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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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함성호의 옛집 읽기]‘균제미 속 자유’ 관가정

    문학이 언어를 떠나서 문학으로 있을 수 있을까. 음악이 음을 떠나서 음악일 수 있을까. 언어는 문학을 문학이게 하는 자유이자 한계다. 음은 음악을 음악이게 하는 자유이자 한계다. 관가정의 계자난가를 만지면서 그런 생각을 해본다. 관가정은 우재 손중돈의 살림집이자 지금은 서백당으로 옮겼지만 월성 손씨의 종가였다. 이름은 ‘곡식이 자라는 모습을 바라보는 집’이라는 뜻이다. 집에서 보면 과연 그렇다. 물봉에서 호명산을 바라보게끔 지어진 집은 그 오른쪽 옆으로 고개를 돌리면 안강 들판이 그대로 보인다. 복잡한 여느 동네 반가의 형이상학적 이름과는 사뭇 다르게 간단하다. 집의 평면도 꼴로 보면 딱 맞게 좌우 대칭이다. 안채에 세 칸의 넓은 대청이 있고, 안방과 사랑채 사이에 또 마루가 있으며, 사랑채에서 안강 들판 쪽으로 넓은 마루가 또 있다. 이 마루는 현재 한 칸은 안방용 마루고, 한 칸은 광으로 사용된다. 마루가 이렇게 많은 것은 대종가로서 잦은 제사를 지내기 위해서였다. 손중돈은 차남이었지만 당시의 관례대로 큰형이 장가들어 마을을 떠남으로써 종손이 되었다. 그는 문묘에 배향될 정도로 학문이 깊었고, 평생 벼슬살이를 했다. 그의 몸에 밴 관료 의식은 유가의 이념과 맞물려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예(禮)에 천착하게 했다. 관가정의 반듯한 대칭성은 여기에서 비롯되었다. 그러나 관가정은 이 대칭성을 파괴하지 않고 전혀 대칭성에 얽매이지 않는 호방함을 이루었다. 반듯한 균제미 속에서 자유를 구가한 것이다. 바로 잦은 제사를 지내기 위해 구성한 마루에 의해서다. 마루는 방과 달리 벽이 없다. 마루의 이 개방성이 외부 공간과 조우하면서 관가정의 균제미는 그 대칭성을 파괴하지 않고도 공간 속에서 자유를 구가한다. 그 절정이 안강들이 내려다보이는 사랑채의 대청이다. 원래 이 집에는 담장과 대문이 없었다. 가랍집(신분이 낮은 사람들의 초가집)들이 접근로에 있어서 드나드는 사람들의 통제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집의 영역은 그대로 물봉에서 호명산으로 이어지고, 안강들로 확장된다. 2차원의 평면 속에서는 대칭 속에 갇혀 있던 집이 3차원의 공간에서는 마음가는 대로 풀려나오는 집. 그 한계 속에서 자유롭기에 자유의 한계를 훌훌 털어버린 집이 관가정이다. 조선집의 참매력이 아닐 수 없다.함성호 시인·건축가}

    • 2012-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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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년 ‘사서 고생한 사서’… 도서관과 결혼했어요”

    국회도서관이 1952년 2월 20일 전시수도였던 부산에서 경남도청 건물 ‘무덕전’을 빌려 개관했을 당시엔 직원 1명, 장서 3000여 권으로 오늘날의 ‘마을 도서관’ 수준이었다. 현재는 직원 300여 명에 일반도서 320만여 권, 전자파일도서 89만여 권, 비도서 자료 35만여 건 등을 보유한 대형 도서관으로 성장했다. 1998년 일반인에게 전면 개방된 이후 방문객이 급증해 지난해에만 97만7000여 명이 다녀갔다. 올해 회갑을 맞은 국회도서관에서 가장 오래 근무한 사람은 주애란 정보봉사국장(58·3급 부이사관)이다. 1977년 7급 특별채용으로 들어와 35년간 도서관을 지켰다. 13일 국회도서관에서 만난 ‘왕언니’는 “입사한 후 10년 동안은 책상 밑에 사직서를 보관하고 근무하기도 했다. 이렇게 오래 근무할지 몰랐다”며 환하게 웃었다. ―국회도서관에 어떻게 들어오셨나요. “1976년 성심여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2급 정교사 자격증을 받아 원주여고에 발령을 받았어요. 그런데 지방에 내려가기가 싫은 거예요. 아버지가 평소 ‘여자 직업은 교사 아니면 사서가 좋다’고 하셔서 다시 성균관대 사서교육원 과정을 마치고 1977년 특채로 들어왔지요. 저를 포함해 4명이 지원해 2명이 뽑혔어요.” ―생각보다 경쟁률이 낮은데요. “당시만 해도 공무원이 박봉이라 인기가 없었어요. 제 월급이 5만 원밖에 안 됐죠. 산업화시대고 하니 대기업이나 은행 같은 곳이 인기가 높았죠. 저도 기회가 되면 나가려고 했어요.” ―도서관 풍경도 많이 바뀌었지요. “순환 보직을 했는데 가장 오랫동안 한 일은 ‘정기간행물 기사색인’과 ‘석박사 학위논문 총목록’ 제작이었어요. 1981년부터 8년간 했지요. 인터넷이 없던 시절 연구자와 논문의 이름 등을 묶은 석박사 학위논문 총목록은 연구자들에게 꼭 필요한 책이었어요. 매해 1000권을 찍었는데 다른 도서관 관계자와 연구자들이 서로 달라고 해 난감한 적이 많았죠. 직접 찾아와 ‘한 권만 주면 안 되느냐’고 부탁하는 교수들도 있었어요.” ―한때는 일반인의 출입이 금지됐었죠. “1980년대만 해도 교수들은 교수 신분증을 가져와야 했고 대학원생은 학생증을 가져와야 했어요. 당시 등록금을 내면 학생증 뒷면에 도장을 찍어줬는데 그 도장이 없으면 출입이 안 됐죠. 연구소의 연구원들은 공문서를 지참하고 왔어요.” ―도서관을 자주 찾는 의원은 누구인가요. “홍재형 국회부의장님은 연 200일 이상 오신 적도 있고, 조순형 의원님은 거의 매일 오전 11시 국회도서관 5층 의원열람실에 오셔서 자료를 본 뒤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드세요. 김춘진 의원님은 입법 관련 자료를 최근에 60건이나 신청할 정도로 정보 요청이 많은 분이죠.” 정치인 얘기가 나오자 그는 흥미로운 에피소드를 들려줬다. 1981년 1월 어느 추운 날 오후 9시쯤 퇴근하려고 경내를 총총걸음으로 가는데, 웬 승용차 한 대가 옆에 서며 “집까지 태워주겠다”고 하더란다. 뒷자리에 함께 앉게 된 낯선 남자는 “국회서 무슨 일 하나” “몇 살이냐”고 몇 가지를 묻더니 용산 주 국장의 집 근처에 도착하자 비서에게 “(차에서 내려) 집 앞까지 바래다 드리라”면서 “(여자를) 멀리서 찾지 말라”고 농담을 건넸다. “나중에 동료에게 물어보니 ‘실세 중의 실세’라고 얘기를 해 깜짝 놀랐어요.” 노태우 전 대통령이었다. 주 국장은 미혼이다. 국회도서관과 결혼을 한 걸까. “모르겠어요. 예전만 해도 결혼을 하면 대개 여직원들은 그만뒀어요. 아기 낳으면 육아 때문에 그만두는 사람도 많았고요.” 1970, 80년대만 해도 남녀 직원 비율이 반반이었다. 요즘은 4명 중 3명이 여성이다. 200∼300권을 한꺼번에 옮기는 ‘북트럭’을 여성들이 직접 옮기는 일이 늘었는데 방문턱을 넘는 게 힘겨웠다. 그래서 턱을 모두 없애버렸다. “사서는 대출대에 앉아 보고 싶은 책을 마음껏 읽으면서 월급도 받아 부러워하는 사람이 많다”고 했더니 주 국장은 손사래를 쳤다. “아이고, 3D 업종이에요. 자리에 고상하게 앉아 있는 것은 극히 짧은 시간 동안이죠. 열람자들이 못 보는 서고 같은 곳에서 청바지 입고, 운동화 신고 막일꾼처럼 일해야 돼요. 오죽하면 ‘사서 고생하는 사서’라고 하겠어요.”황인찬 기자 hic@donga.com   ▼ 국회도서관 환갑잔치 ▼20일 개관 60주년… 타임캡슐에 전산자료-와인 등 묻고 각종 기념행사국회도서관이 20일 개관 60주년을 맞아 다양한 기념행사를 연다. 오전 10시 국회도서관 나비정원에서 열리는 기념식에는 홍재형 국회부의장을 비롯한 국회의원들이 참석해 축하 자리를 갖는다. 도서관 이용 실적이 뛰어난 조순형 의원 등은 국회의장 상패를 받는다. 국회도서관 직원들은 기념 플래시몹(일정 시간과 장소를 정해 일제히 같은 행동을 벌이는 이벤트)을 펼치고, 국회도서관 머릿돌 아래 타임캡슐을 묻는다. 가로 세로 높이 각각 50cm에 스테인리스 재질로 만들어진 타임캡슐은 개관 100주년을 맞는 2052년 2월 20일에 개봉할 예정이다. ‘현재 국회도서관의 모습을 보존하자’는 취지에 따라 전산백업테이프, 행사 사진, 국회 기념품인 볼펜과 명함집 등이 캡슐 안에 들어간다. 정의화 국회부의장은 국회 행사를 찍은 동영상을 담은 휴대용 저장장치(USB메모리)를, 유재일 국회도서관장은 와인 두 병을 넣을 예정이다. 유 관장은 “40년 뒤에 근무할 직원들이 와인을 나눠 마셨으면 좋겠다. 원래 책과 술은 가까운 관계가 아니냐”고 말했다. 오후 7시 반에는 국회도서관 중앙홀에서 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의 기념 음악회가 열린다. 오은경 소프라노, 박현재 테너가 협연한다. 일반인 33명의 ‘책 읽기에 대한 정의’를 전시하는 ‘길따라 책읽기’(20∼26일), 독도자료 전시회(20일∼3월 2일)도 마련했다. ‘도서관 공공가치와 정보공유-지식과 정보가 나비처럼 자유로운 세상’을 주제로 하는 국제심포지엄은 21일 오후 2시 국회도서관 강당에서 열린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 2012-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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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함성호의 옛집 읽기]‘한국건축의 메카’ 양동마을

    조선의 집들을 공부하면서 ‘어쩌다가 우리는 한집에서 대충 20년도 살지 못하게 됐는가’ 하고 스스로 물을 때가 있다. 집은 고사하고 마을도 제대로 건사하지 못해 재개발이니, 뉴타운이니, 요사스러운 명칭에 휘둘려 기껏 살아 온 터전을 뒤엎어 버리는 게 우리의 지금 형편이다. 코흘리개였던 동네 꼬마가 어느덧 자라 바래다 준 남자친구와 대문 앞에서 헤어지는 모습에 놀라듯 세월을 느꼈다던 이야기는 이미 과거가 되어버렸다. 우리는 그럴 틈도 없이 가격이 오를 때 팔고, 이문이 생길 때 부수고, 새로 짓고 하는 부동산 자본주의에 우리 삶을 통째로 맡겨 왔다. 이런 때 400년이나 된 집들이, 그것도 한 두 채도 아닌, 100여 채나 되는 집이 한 마을에 고스란히 남아 있는 동네가 있다는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경북 경주시 안강의 양동마을이 그곳이다. 조선시대의 반가들이 그대로 남아 있고, 거기에 아직도 후손들이 그대로 살고 있어 과거가 박제돼 있는 곳이 아니라 생활이 살아 숨쉬고 있는 곳이다. 안강에서 영천으로 가는 길에서 왼쪽으로 꺾어 들어가면 먼저 호명산과 만나 마을의 전모가 쉬 보이지 않는다. 이 호명산을 휘돌아 들어가면 설창산에서 갈라져 나온 산줄기들이 흡사 물(勿) 자 형국을 이루며 마을 안을 흐르는 양동천과 만나 멈추고, 양동천은 다시 마을 밖을 흐르는 안락천과 이어지며 동해로 빠지는 형산강 줄기와 만난다. 반가들은 물 자 형국의 획을 따라 산 능선에 자리하고, 소작농인 타성받이와 노비들의 집은 골짜기에 자리하고 있다. 양동마을은 월성 손씨와 여강 이씨의 두 성씨가 대대손손 세를 이루며 지내온 곳이다. 지금도 ‘장가 간다’는 말이 남아있듯이 옛날에는 지금과 달리 결혼을 하면 남자는 처가에서 살았다. 1458년 손소라는 청년이 25세의 나이로 부인을 따라 처가살이를 오면서 양동마을은 풍덕 류씨에서 월성 손씨의 마을로 변했다. 이어서 이언적의 아버지 이번이 손소의 외동딸에게 장가들면서 여강 이씨의 자손들이 퍼지기 시작했다. 이 두 성씨가 양동마을에 살게 되면서 자손들의 교육, 가문의 회합을 위한 집이 지어지고, 종가와 파(派) 종가의 집들이 지어지게 되었다. 400년 전의 조선집이 여기에 있고, 앞으로의 한국 건축도 여기에 있다.함성호 시인·건축가}

    • 2012-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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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학예술]마음을 읽는 소년의 눈 상처 받은 영혼 달래다

    소설가 김연수는 2008년 봄부터 계간 청소년잡지 ‘풋’에 이 작품을 연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두 차례 마감을 하지 못하더니 급기야 2009년 여름을 끝으로 연재를 중단했다. 작가는 3년 만에 작품을 완성해 단행본으로 펴냈다. 그 곡절은 무얼까. “처음에는 청소년잡지에 실린다고 해서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죠. 보통 계간지 같으면 쓰지 않을 초능력 소년을 주인공으로 해서 썼는데 이야기 설정이 너무 무리였죠. 나중에는 감당이 안 됐어요. 하하.” 이번에 책으로 내면서 현실감을 강화했다는 설명대로 초능력자들이 나오지만 공상과학도, 판타지도 아니다. 청소년잡지에 연재했지만 성인들에게 더 어울릴 법하다. 1980년대 군사독재 시절을 배경으로 초능력 소년 정훈을 비롯해 정부로부터 탄압받은 사람들이 주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정훈은 채소 행상을 하는 아버지가 모는 트럭을 타고가다 교통사고를 당한다. 공교롭게도 아버지의 트럭은 도주하는 간첩이 탄 차량을 들이받았다. 아버지는 죽고, 홀로 남은 정훈은 애국지사의 아들로 칭송되며 ‘원더보이’로 불린다. 상상력은 여기서 도약한다. 사고 당시 생사의 갈림길에 놓인 상태에서 정체불명의 흰 빛을 본 정훈은 회복된 뒤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거나 물건의 이력을 알아내는 초능력을 갖게 된다. 정보당국은 정훈을 국가안보를 위한 정보수집에 이용하려고 하지만 정훈은 탈출한 뒤 도망자 신세가 돼 쫓긴다. 그렇다고 속도감 넘치는 추격전을 기대해선 안 된다. 쫓기는 정훈이 만나는 상처 입은 인물들을 통해 1980년대 사회상을 매우 정적으로 그려낸다. 화염병을 제일 잘 던진다는 선재 형, 여자지만 고문을 당한 첫사랑을 먼저 떠나보낸 피해의식으로 남장을 하고 다니는 강토 형(희선), 해직기자 출신 출판사 대표 재진 아저씨 등. 이들은 폭압적인 사회에 분노하고 항거하지만 결국 처절하게 부서진 자화상과 대면하게 된다. 이들의 아픔이 천진난만한 정훈의 눈을 통해 간접적으로 그려지면서 슬픔은 더욱 증폭된다. 작품을 꿰뚫는 정서는 그리움이다. 삶이 엉켜버린 인물들에게 아무렇지도 않은 일상과 매일 얼굴을 보는 가족은 더욱 소중하고 애틋하다. 정훈은 먼저 간 아버지를, 그보다 먼저 세상을 뜬 어머니를 꼭 다시 한 번 만나고 싶어 한다. 작가는 이런 애절한 소망을 수많은 별에 대입시킨다. 주사위를 무한히 던진다면 모든 경우의 수를 다 던질 수 있듯이, 우주가 무한에 가깝다면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모든 일은 반드시 일어난다고. 웃음과 눈물이 짜지 않게 적절히 버무려졌다. 권대령, 이만기, 쌍둥이 초능력자 등 각기 독특한 어투를 가진 악역들은 감초 역에 충실하다. 마지막 장까지 독자의 호기심을 끌고 가는 19년차 작가의 노련함은 뛰어나지만 다소 늘어진다는 느낌도 든다. 편집 과정에서 인물의 ‘대화’와 ‘생각’ 부분을 비슷한 활자체로 표기한 탓에 읽기 불편했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 2012-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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