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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이 코앞이다. 언론매체들은 선거 기사를 앞다투어 쏟아내며 판세를 전망한다. 유권자들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로부터 후보와 정당 자료집을 받지만 선거보도가 물론 더 흥미롭다. 시시각각 상황이 변할뿐더러 정당과 후보들의 날 선 공방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유권자들은 실제 선거 상황을 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언론이 선택하고 만들어낸 뉴스를 볼 뿐이다. 특히 선거에서 ‘어젠다 세팅(의제 설정)’을 하는 언론의 역할이 커진다고 책은 말한다. 1970년대 중요한 미디어 효과 이론 중 하나인 어젠다 세팅 이론을 주창한 저자가 1980, 90년대 미국 선거 당시 언론의 의제 설정 효과를 분석했다. 2004년 출간돼 트위터를 비롯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변수는 분석에서 제외돼 있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성석제가 돌아왔다. 9년 만에 장편소설을 들고서. 기대감이 컸다. 문단의 소문난 입담꾼인 그가 잔뜩 웅크렸다가 펴낸 장편이 어떨까 하는. 결론부터 말하면 의표를 치르는 해학이며 가슴 찡한 글발은 건재하다. 그렇다. ‘성석제 소설’이란 주식은 여전히 매력적인 문단의 우량주다. 지방 어느 궁벽한 강가에 세워진 사극 세트장. 드라마도 끝나고, 사람들의 관심도 식자 버려진 곳. 이곳에 사회와 가정으로부터 소외된 사람들이 하나둘 모인다. 부잣집 도련님으로 태어났지만 친척들의 횡령으로 빈털터리가 된 영필, 학교재단 이사장 부인이었지만 남편이 죽은 뒤 상속을 받지 못하고 버려진 소희, 의붓아버지에게 성폭행 당한 새미와 자폐증이 있는 동생 준호…. 이들은 피가 아닌 정(情)으로 묶여 의지하고 사는 ‘가족’이 된다. 평온한 일상은 예기치 않게 틀어진다. 인근에 합숙소를 차린 조폭들이 우연히 ‘자연산 미인’인 새미를 추행하려다 부하 한 명이 준호의 급습에 부상을 입는다. 전국구 조폭의 자존심은 무참히 무너졌다. 두목인 정묵은 복수를 다짐하지만 선발대로 갔던 부하들은 소식이 없다. 외딴 곳이라 휴대전화도 불통이다. 후텁지근한 한낮의 더위. 짜증이 머리끝까지 오른 정묵은 부하들을 이끌고 공격에 나선다. 성석제표 웃음의 융단 폭격은 여기서 시작된다. ‘가족’으로 뭉친 강마을 사람들은 도망가지 않는다. 분뇨나 고추, 잿물을 비닐봉지에 담은 ‘똥 폭탄’ ‘고추 폭탄’에 이어 말벌들을 풀어 조폭 십수 명을 간단히 제압한다. 힘의 역전과 의외성. 그리고 약자가 승리하는 통쾌함이 웃음과 함께 묘한 카타르시스를 준다. 하지만 웃음이 다가 아니다. 아마도 소설의 결정적 장면을 꼽는다면 이 한바탕 소동이 일어나기 직전일 것 같다. 조폭 선발대를 재래식 화장실 구덩이에 빠뜨리는 데 성공한 마을 사람들은 삼겹살을 굽고 술을 마시며 잔치를 연다. 어깨춤과 힙합, 강시춤에 뭐라 형용하기 어려운 몸짓까지. 한낮의 열기, 한계치를 넘은 취기. 작은 승리에 대한 기쁨과 다가올 더 큰 공격에 대한 불안감 속의 몽환적 축제이자 제의(祭儀). 엉뚱한 상황에 처음에는 키득키득 웃지만 이내 뭔지 모를 비감(悲感)이 치올라와 가슴이 찌릿해진다. 한바탕 소동의 끝과 함께 사람들은 일상으로 돌아간다. 열병을 앓은 듯 노곤하게 피곤해지기는 독자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만큼 작가의 필력은 속도가 빠르고 집중도가 높다. 기분 좋은 피곤함이다. 다만 성석제의 장편을 오래 기다린 독자들에게 220쪽 남짓한 짧은 소설 분량은 성에 안 찰지도 모르겠다. 공깃밥을 절반 비웠을 때 밥상을 치운 느낌이랄까. 오랜만에 장편을 낸 성석제는 “좀 부자가 됐다는 느낌”이라며 웃었다. “장편을 쓰고 싶은 욕구는 오래전부터 있었다. 다만 억지로 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작품이 나를 뚫고 흘러내리길 기다렸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사랑. 감수성의 보고이자 문학의 원동력. 사랑을 하면 누구나 시인이 된다고 했으니 시와 사랑은 얼마나 맞닿아 있는가. 고래(古來)로 얼마나 많은 시인들이 사랑을 노래했는가. 강은교, 고은, 문정희, 오탁번, 이해인, 손택수, 장석남, 조정권 등 우리 문단을 이끄는 시인 57명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가장 보편적이면서도 난해한 주제인 ‘사랑’으로 한 편씩 신작시를 썼다. 세대와 성별, 그리고 인생의 경험이 다른 시인들이 각기 풀어낸 사랑 시들을 찬찬히 되새겨본다. 같은 사랑은 하나도 없다. 사랑의 힘은 위대하다. 시어들은 꽃으로 피어난다. ‘사랑한다는 것은/엄청나게 으리으리한 것이다/회색 소굴 지하 셋방 고구마 푸대 속 그런 데 살아도/사랑한다는 것은/얼굴이 썩어들어가면서도 보랏빛 꽃과 푸른 덩굴을 피워올리는/고구마 속처럼 으리으리한 것이다’(김승희의 시 ‘사랑의 전당’에서) ‘우리가 가난한 연인이었을 때/푸른곰팡이 붉은곰팡이도 꽃이었다/아무 데서나 마음이 꺾였고/은화를 줍듯 공들여 걸었다’(이근화의 시 ‘우리가 가난한 연인이었을 때’에서) 지난해 3월 쉰 살의 나이에 동갑내기 신부와 결혼해 강화에서 인삼가게를 하고 있는 함민복 시인의 시 ‘당신은 누구십니까’의 맺음말은 이렇다. ‘밤이면 돌아와 人蔘처럼 가지런히/내 옆에 눕는/당신은 누구십니까/나는 당신의 누구여야 합니까’ 사랑의 끝은 이별이다. 고영의 시 ‘태양의 방식’은 이렇게 운다. ‘당신은 어제의 방식으로 웃어달라 했다/나는 짐짓 고개를 돌린 채 어제의 웃음을 떠올려보았지만/당신과 나와의 요원한 거리만큼에서/기억은 노선을 헤매고 있었다//기억에도 정류장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아무 때나 타고 내릴 수 있게…’ 시작하는 사랑의 달콤함, 애틋함, 설렘부터 그 사랑이 식을 때의 상실감과 아픔까지. 책장 가득하다. 수많은 사랑 시들 가운데 유독 하나가 총알처럼 가슴에 박혔다. ‘사랑한다면/눈물의 출처를/묻지 마라//정말로 사랑한다면/눈물의 출처를/믿지 마라’(박후기의 시 ‘빗방울 화석’ 전문)황인찬 기자 hic@donga.com}

6일 경북 안동시 정하동 고성 이씨 문중 묘를 이장하는 과정에서 260년가량 된 것으로 추정되는 미라가 발견됐다. 미라는 두께 약 45cm의 조개껍데기와 회장석에 싸여 보존 상태가 양호했으며, 조선 영조 때 병조정랑(현재의 국방부 소령에 해당)을 지낸 팔회당 이시항(八懷堂 李時沆·1690∼1749)으로 추정된다고 안동시는 밝혔다. 안동시 제공}

《 매콤한 아귀찜의 감칠맛을 돌게 하는 아삭아삭한 콩나물. 술 먹은 다음 날 아침 말간 국물로 아린 속을 달래주는 시원한 콩나물국. 밥상머리가 허전하자 엄마가 고춧가루와 마늘 다진 것, 소금을 넣고 조물조물해 거짓말처럼 뚝딱 만들어 내놓던 빨간 콩나물무침…. 우리네 식탁의 감초, 그 많은 콩나물들은 다 어디서 왔을까. 》 ‘이달에 만나는 시’ 4월 추천작으로 김선우 시인(42)의 ‘콩나물 한 봉지 들고 너에게 가기’를 선정했다. 지난달 나온 시집 ‘나의 무한한 혁명에게’(창비)에 수록됐다. 시인 이건청 장석주 김요일 이원 손택수 씨가 추천에 참여했다. “수년 전 무심코 콩나물 한 봉지를 사들고 슈퍼를 나오는 순간 (시적 영감이) ‘착상’이 됐지요. 콩나물과 관련해 제 몸에 붙어서 살던 기억들이 함께 총화돼 시가 됐습니다.” 강원 강릉에서 살던 김 시인의 어릴 적. 거실 한쪽에 콩나물을 길러 먹었다. 짙은 빨간색 고무 양동이 위에 덮은 까만 천을 젖히면 마치 아기 새들이 먹이를 달라고 고개를 쳐들 듯, 노란 콩나물 머리들은 물 달라고 까치발을 섰다. 그 신선한 역동성. 아무렇게나 쑤셔 담은 까만 비닐봉지 속의 콩나물들은 실은 깨알 같은 성장의 역사다. 폭풍 한 봉지다. 시인은 “우리가 덤덤하게 넘기는 일상 속에는 굉장히 빛나는 혁명적인 순간이 들어 있다. 그 숨겨진 찬란함을 발견하고 삶을 새롭게 보게 하는 것이 바로 시”라고 말했다. 장석주 시인은 “김선우의 시는 가녀린 것들에 대한 연민과 사랑의 정념 사이에서 움직인다. 그것들은 몸에 와서 구체적인 이야기를 이루고 연소한다. 이때 그 연소의 질료이자 동력이 되는 게 고통과 슬픔이다. 그의 시가 따뜻하게 느껴지는 것은 시의 바탕이 생명애이고, 모성적인 끌어안음이기 때문이다”고 추천 이유를 밝혔다. “흔하디흔한 일상의 자잘한 사물들 속에서 폭풍 같은 상상력을 펼쳐 보이는 시인의 경이로운 시선에 은근한 질투가 인다. 놓쳐버린 사랑이 그리움의 뿌리를 이토록 아삭아삭하게 만들었다니! 물줄기가 지나가는 그 순간에 생의 전부를 거는 콩나물처럼 흘러내리는 봄비 속에 그리움의 뿌리를 쭉 펴본다.” 손택수 시인의 추천사다. 이원 시인의 추천 이유는 이렇다. “‘아삭아삭’과 ‘폭풍’을 나란히 놓을 수 있다는 것. 아니 가장 먼 것은 가장 닮은 것일 수 있다는 것. 김선우의 시가 가리키는 방향.” 이건청 시인은 이상국 시인의 시집 ‘뿔을 적시며’(창비)를 추천했다. 그는 “삶의 일상을 의미화하고 심화해 보여주는 언어들이 단단한 결집을 보여준다. 이것이 그의 시가 너른 공감대를 얻고 있는 이유”라고 평했다. 김요일 시인은 이건청 시인의 시집 ‘굴참나무 숲에서’(서정시학)를 추천했다. “시적 긴장을 놓지 않고 ‘사물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을 유지하며 현실에 대한 ‘균형과 조화’를 이끌어 내는 시인은 시력(詩歷) 45년의 노련하고 깐깐한 언어조탁 솜씨를 유감없이 보여줬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40년 가까이 지고 있던 짐을 내려놓아서 후련합니다. 이 작품을 완성하는 게 제 문학의 목표이자 꿈이었으니까요.” 소설가 문순태 씨(71·사진)가 대하소설 ‘타오르는 강’(소명출판)을 완간했다. 1975년 전남매일신문에 ‘전라도 땅’이란 제목으로 연재를 시작한 뒤 37년 만의 완간이다. 전 9권이며 200자 원고지로 1만1600장이 넘는 대작이다. 19세기 말 전라도 영산강 지역을 배경으로 노비세습제 폐지, 동학농민전쟁, 개항과 부두노동자쟁의, 1920년대 나주 궁삼면 소작쟁의 사건, 1929년 광주학생항일운동까지 반세기에 이르는 민초들의 신산한 삶을 조명했다. 1987년 창비에서 7권까지 낸 뒤 이번에 25년 만에 8, 9권을 펴내 마침표를 찍었다. 새로 추가된 두 권에는 주로 광주학생항일운동 얘기가 펼쳐진다. “7권을 낸 뒤 바로 전집을 완간하려고 했는데 그때만 해도 광주학생항일운동에 대한 올바른 평가가 이뤄지지 않았죠. 최근 들어서야 당시 운동이 독립운동으로 인정받았고, 여러 새 연구를 참고해 마무리를 지었습니다.” ‘타오르는 강’에는 구수한 전라도 방언이 가득하다. 작가는 녹음기를 들고 다니며 직접 방언을 채집했다. 소설과는 별도로 2만 개의 전라도 방언을 모은 ‘타오르는 강-우리말 사전’(가제)도 낼 예정이다. “작가는 언어의 채굴자”라는 문 씨는 “대하소설을 위해서는 풍부한 어휘력이 필수적이다. 사라져가는 우리말에 생명을 불어넣고 싶었다”고 말했다. “요즘은 대하소설을 찾기 힘듭니다. 모두 ‘빨리 빨리’ 읽으려고만 하지요. 자꾸 짧아지는 우리 문학의 호흡에 느림의 미학을 선사했으면 합니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일본을 대표하는 추리작가인 히가시노 게이고는 다작으로 널리 알려졌다. 거의 매년 책을 내놓는 이 작가의 책 중 대표작인 ‘용의자 X의 헌신’ ‘백야행’ ‘환야’ 등은 이미 추리소설 마니아들의 ‘고전’에 올라 있다. 하지만 가끔 기대에 한참 떨어지는 작품을 펴내 기복이 심하다는 평도 나온다. 이번에 번역 소개되는 ‘신참자’는 2009년 일본에서 출간돼 ‘2010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1위, ‘문예춘추 선정 미스터리 베스트 10’ 1위를 차지했다. 일본에서는 50만 부가 팔렸고, 일본 TBS TV의 드라마로 만들어져 21%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1985년 데뷔해 등단 30년을 앞둔 작가가 자신의 건재함을 과시한 작품이다. 에도 시대 정취가 물씬 풍기는 도쿄 니혼바시의 닌교초 거리가 배경. 아파트에서 홀로 살아가던 40대 여성 미쓰이 미네코의 시체가 발견된다. 사건의 열쇠는 교살에 사용됐던 의문의 끈. 현장에는 남아있지 않다. 경찰은 사소한 단서라도 찾기 위해 닌교초 거리의 상인들을 상대로 탐문 수사에 들어간다. 닌교초 거리에 있는 건과자(센베이) 가게, 시계 수리점, 민속품 가게, 식당 등을 돌며 경찰이 탐문하는 과정을 세세히 전하며 사건을 한발 한발 전개한다. 한 가게나 인물을 중심으로 9개의 독립된 단편처럼 이어지던 이야기는 신기하게도 빈틈없는 퍼즐로 마지막에 완성된다. 사건과는 전혀 상관없을 것처럼 보이는 탐문 수사 속의 사소한 문답에서 사건의 실마리를 찾아내고, 이를 결정적 증거와 연결하는 작가의 치밀한 구성력에는 “역시 히가시노 게이고”라고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다. 작가는 출간 소감에서 “한 명을 그리려고 하면 곁에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리지 않을 수 없었다. 마치 도미노가 쓰러지듯 차례로 드라마가 연결됐다. 마지막 도미노를 쓰러뜨렸을 때 성취감은 작가로서 처음 맛보는 것이었다”고 밝혔다. 살인 사건 수사라는 큰 줄기 속에 휴먼 드라마들을 녹여낸 점도 특이하다. 작가는 각각의 단편들 속에서 완결된 이야기를 전하는데 그 주제는 한결같이 가족의 화해와 사랑이다. 이런 역할을 하는 것은 수더분하고 쾌활한 형사 ‘가가’다. 그는 탐문 수사를 하는 가운데 해당 가족들의 속마음을 알게 되고, 가족 간의 오해를 풀어주는 데 적극적으로 나선다. 가가 형사는 말한다. “형사는 수사만 하는 게 아닙니다. 사건으로 인해 마음에 상처 입은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 또한 피해자입니다. 그 피해자를 치유할 방법을 찾는 것도 형사의 역할입니다.” 작품을 읽다 보면 오쿠다 히데오의 ‘공중그네’에서 사람들의 고민을 해결해주는 괴짜 의사 ‘이라부’를 떠올리게 된다. 이 작품에서는 가가가 이라부 같은 역할을 한다. 완결성 높은 단편들을 통해 현대인의 다양한 아픔에 주목하고 이를 치유한다는 점에서 히가시노와 오쿠다의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는 소설이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전통음악에 ‘시김새’란 말이 있다. 화려함이나 멋을 더하기 위한 꾸밈음 정도로 정의하는 음악용어다. 하지만 우리 소리를 이해하는 데 이런 사전적 정의만으론 부족하다. 흔히 시김새가 좋은 소리는 인생의 온갖 세파와 신산고초를 겪은 뒤에야 낼 수 있는, 그런 아픔이 있는 깊은 소리로 알려져 있다. 김지하. 그가 ‘시김새’란 제목의 시집 두 권을 냈다. 1970년대 필화사건을 일으켰던 시집 ‘오적’, 민주화에 대한 열망을 담은 ‘타는 목마름’을 냈던 그는 평생 저항시인, 민족문화운동가로 불려왔다. 불같은 청장년을 지낸 그도 이제 일흔한 살이 됐고, 시에는 다른 음조의 아픔이 배어 있다. ‘잠속에서 들으면/아내의 기침소리/좋지 않다//끊임없이 일하는 그이/쉬지도 않는/그이의/외로움//…//나는 구석방에서 겨우 겨우/숨쉰다//살아있는 것 단 한가지로 그저 그렇게//서럽다.’(시 ‘아내의 기침소리’에서) 시인은 2009년 경기 고양시 일산 자택을 정리하고 아내와 함께 강원 원주시 무실동 아파트로 옮겨갔다. 그 후 2년 만에 펴낸 이번 시집에서 그는 원주의 자연을 벗 삼아 그의 생명철학을 가다듬거나 지난 세월을 조용히 반추하는 일상의 모습을 흐르는 듯한 시로 풀었다. “시집 같은 건 생각도 안 했다. 그저 일기 쓰듯이 끄적인 것뿐”이라고 인사말을 붙인 시인은 농담어린 항변을 한다. “시가 시원치 않다는 평이 있다. 시원할 까닭이 없다. 그 사이 내 삶을 알기나 하는가? 본디 ‘시김새’는 ‘시원끼’ 하고는 멀다.” 시인은 2009년 정운찬 국무총리 인준 청문회 당시 한 일간지에 쓴 정 총리후보자 옹호 칼럼, 이명박 대통령 중앙아시아 순방길에 동행했던 황석영 씨에 대한 옹호 등으로 논란을 빚었다. 이번 시집에는 ‘이익공유제와 소말리아 해적 소탕’이란 시가 실려 있다. ‘정운찬의/이익공유제와/김관진의/소말리아 해적 소탕은/시(詩)다//내가 현 집권층의 어떤 일을/참으로 감동하기는/처음//처음은 호혜와 교환이/객관적 시장패턴 안에서/현실화하는/길//다음은 글로벌 물의 시대에/민족의 생명을 지킨/한 작은 나라의 커다란/모범//난/처음으로 국가에 대한 만족 비슷한/촌놈다운 안심에 사로잡힌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 올해는 ‘사랑손님과 어머니’의 작가 주요섭(1902∼1972)의 40주기다. 8세 아래 후배 문인이던 피천득은 고인이 사망한 지 이틀 뒤인 1972년 11월 16일 동아일보에 추모글을 실었다. “당신의 잘 알려진 작품 ‘사랑손님과 어머니’의 어느 부분은 나와 우리 엄마의 에피소드였습니다. 형이 상해 학생시절에 쓴 ‘개밥’ ‘인력거꾼’ 같은 작품은 당신의 인도주의적 사상에 입각한 작품이라고 봅니다. 형은 정에 치우친 작가입니다. 수필 ‘미운 간호부’에서 보는 바와 같이 형은 몰인정을 가장 미워합니다.” 》중국 상하이에서 유학하던 주요섭은 1920년대 중반 피천득이 찾아오자 중국음식을 사주고 영화를 보여주며 각별히 아꼈다. 귀국한 뒤에는 몇 년간 하숙집에서 함께 살기도 했다. 피천득은 친형 같던 주요섭이 사망하자 ‘사랑손님과 어머니’의 여섯 살 ‘옥희’와 ‘어머니’의 실제 모델이 본인과 어머니였다고 밝힌 것이다. 40주기를 맞은 올해 주요섭을 기리는 출간이나 문학 행사를 찾아보기 어렵다. 고인의 작품도 ‘사랑손님과 어머니’(1935년) ‘아네모네 마담’(1936년) 정도만 다른 작가들의 작품과 함께 선집 형태로 간간이 출간됐을 뿐이다. 고인은 세 편의 장편을 남겼는데 ‘구름을 잡으려고’가 고인의 사후 28년 뒤인 2000년에야 단행본으로 나왔다. ‘자유문학’에 연재했던 ‘1억5천만 대 1’ ‘망국노군상(亡國奴群像)’은 아직 책으로 나오지 않았다. 40여 편의 소설을 남긴 고인이지만 전집이 출간된 적은 없다.“주요섭은 생시에나 사후에나 문단의 외곽지대에 있었다. 문제성을 지닌 작가가 아닌, 소녀 화자의 연애소설을 쓴 작가로 간주되어 평가 절하되거나 무시돼 왔다.” 조명 받지 못했던 주요섭의 작품 5편을 묶어 2008년 ‘주요섭 작품집’(지식을만드는지식)을 펴낸 이승하 중앙대 문예창작학과 교수는 “흔히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라고 말을 하는데 이는 신상옥 감독의 영화 제목이다. 이렇게 대표작 이름조차 혼동되고 있는 작가가 주요섭이다”며 안타까워했다. 1902년 평양에서 태어난 주요섭은 1918년 평양 숭실중학교 재학 중 형 주요한이 있는 도쿄로 건너가 아오야마학원에 편입했다. 이듬해 3·1운동이 일어나자 귀국해 김동인과 함께 지하신문을 만들다 일제에 검거돼 10개월간 복역했다. 일제에 항거하는 지식인으로서의 모습은 그가 중국 푸런(輔仁)대 교수로 재직할 때 동아일보 1938년 5월 17∼25일자에 연재했던 단편 ‘의학박사’에서도 볼 수 있다. 이 작품은 양심적인 의사였던 채동일이 일제강점기를 겪으며 양심과 도덕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이기주의자로 변하는 모습을 꼬집은 고발 소설로, 당시 국내 지식인의 변절을 비판한 작품이다. 이 교수는 작품이 게재된 1938년에 주목했다. 그해는 한국에 대한 일제의 수탈과 억압이 정점에 달하던 시기였다. 1월 지원병제도가 실시됐고, 4월부터는 학교에서 조선어교육이 금지됐다. 5월 일제가 국가총동원법을 시행했을 당시 베이징에 있었던 주요섭은 일제에 협조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베이징 일본영사관 내 유치장에 투옥돼 여러 날 조사를 받았다.“옥살이를 하고 나온 주요섭에게 동아일보는 소설 연재를 의뢰했고, 주요섭은 사회적 비판이 강한 작품을 써 보냈다. 일제의 검열이 있었을 텐데 이 작품이 신문에 게재된 것 자체가 미스터리다.”주요섭은 1920년대 상하이 유학 시절을 바탕으로 현지 하층민의 삶을 조명한 ‘인력거꾼’ ‘살인’ ‘첫사랑값’ 등을 선보였다.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석사학위를 받고 1929년 돌아온 뒤에는 미국 이민 1세대들의 삶과 죽음을 사실적으로 그려낸 ‘구름을 잡으려고’를 발표했다.이 교수는 “‘사랑손님과 어머니’에 가려서 주요섭의 다른 작품은 제대로 조명받지 못했는데 고인이 유학생활을 오래 하느라 문단에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한 것도 한 원인”이라며 “한국 근현대문학의 주요 작가들 가운데 가장 잘못 이해되고 저평가된 대표적인 작가가 주요섭일 것”이라고 강조했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최근 출간된 소설가 전민식의 장편 ‘개를 산책시키는 남자’(은행나무)에는 ‘라마’란 이름의 희귀견이 나온다. 회사에서 쫓겨나 날품팔이를 전전하던 주인공이 서울 강남의 아파트 한 채 값을 줘야 살 수 있는 라마를 돌보며 일어나는 해프닝이 웃음을 준다. 티베탄 마스티프 종인 이 개는 중국에선 짱아오(藏獒)로도 불린다. 짱아오는 키 150cm, 체중 80kg 이상으로 자란다. 사자 갈기처럼 생긴 털 때문에 ‘사자개’로도 불리는데, 중국 부자들의 애견으로 사랑받으며 순종인 경우 10억 원 이상에 거래된다. 2008년 황우석 박사가 짱아오의 복제에 성공한 것으로 알려져 화제가 되기도 했다. 출판사 은행나무는 국내에 몇 마리 없는 이 사자개를 어렵게 섭외해 책 소개 동영상인 북트레일러를 찍었다. 모델이 된 개는 ‘짱아’(사진)란 이름의 세 살짜리 암컷 짱아오로 국내 한 동물농장의 주인이 키우고 있는 개다. 북트레일러 제작을 맡은 광고회사 한애드의 최원상 감독(30)은 “귀한 몸값 때문에 촬영은 하루에 몰아서 했다”고 말했다. 짱아는 단 하루 출연료로 100만 원을 벌었다. 다른 곳에서 하루 ‘모델 일’을 해도 같은 돈을 받는다고 한다. KBS ‘1박 2일’의 감초 역할을 했던 그레이트 피레니즈 종의 상근이가 하루 40만 원을 받은 것에 비하면 엄청난 모델료를 챙기는 셈이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부모는 자식의 아주 사소한 부분까지 사랑스럽고 자랑스럽다. 작은 옹알거림이나 재롱이면 충분하다. 시험에서 100점을 맞았다든가 상장까지 받으면 집안의 경사다. 하지만 모든 아이가 뛰어날 수는 없다. 특히 아이가 장애를 가져 다른 아이들보다 지능이나 운동능력이 떨어진다면 부모는 움츠러든다. 학부모들의 자식 자랑에 끼지 못하고 속으로 아파한다. 이 책을 함께 쓴 자매도 마찬가지였다. 언니인 패티는 양극성장애를 가진 딸 제니퍼를, 동생 지나는 아스퍼거증후군을 가진 딸 케이티를 돌보고 있다. 양극성장애는 흔히 조울증으로 불리며 들뜬 기분과 침울한 기분이 반복되는 정신질환이고, 아스퍼거증후군은 언어, 행동 등 발달이 심각하게 더뎌지는 자폐증의 초기 단계다. 장애아를 둔 모든 부모가 그러하듯 이 자매도 장애를 발견하던 순간의 놀람과 절망, 그리고 아이를 키우면서 겪게 되는 사회적인 편견과 차별에 대면한다. 하지만 이들 자매는 움츠러들지 않고 당당하게 나선다. “남들의 자식 자랑이 듣기 싫다는 말이 아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그저 우리 아이들에 대해서도 물어봐 달라는 것이다. 우리 아이들은 운동을 잘하지 못하고, 우등생도 아니고, 음악적 재능이 뛰어나지도 않다. 하지만 부모인 우리가 자부심을 느낄 만한 일은 수없이 많다.” 자매가 당당해지자 아이들도 자신감이 생긴다. “난 다른 아이들과 좀 다를 뿐”이라며 장애를 인정하고, 또래 아이들 속으로 들어간다. 자매는 한걸음 더 나아가 ‘장애 자녀를 둔 부모들이 자기 아이에 관해 공개적으로 얘기하고 자랑하자’는 ‘불완전 운동’도 펼친다. “장애인과 그를 돌보는 사람 모두가 이야기를 듣고 나누는 일에 굶주려 있다”고 자매는 말한다. 씩씩하고 당찬 자매의 자녀 양육기를 읽으면 저절로 엷은 미소를 짓게 된다. 장애에 대한 작은 생각의 변화가 자신의 가정뿐만 아니라 사회 변화를 이끄는 과정이 따뜻하고 밝게 펼쳐진다. “괜찮아, 조금 다를 뿐이니까”를 함께 외치고 싶을 정도로.황인찬 기자 hic@donga.com}

스물다섯 살을 맞은 여성. 결혼과 인생에 대해 고민하던 알렉시스는 엄마의 고향인 그리스 크레타 섬에 가서 자신의 숨겨진 가족사를 듣는다. 나병 환자였던 외증조할머니와 외할머니, 이모할머니 손에 키워진 어머니…. 그리스의 나병 환자촌이었던 스피날롱가 섬을 배경으로 4대에 걸친 여성들의 삶과 사랑, 인내, 화해가 잔잔히 그려진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시간적 배경은 2000년을 넘어 장대하게 흐른다. 그 내용은 어떤가. 예수가 예루살렘에서 기적을 선보이며 메시아로 추앙받던 시대, 1000년의 세월이 흘러 피비린내가 진동하던 십자군전쟁 시대, 다시 1000년을 더해 걸프전과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침공 등이 벌어지는 현대가 시공간을 넘나들며 펼쳐진다. 소설은 두 남자를 통해 종교 수호라는 미명 아래 벌어진 인류의 잔혹사를 풀어낸다. 서로 다른 시대들을 꿰뚫는 키워드는 ‘환생’이다. 폴란드계 유대인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나’는 종군기자로 2003년 미영 연합군이 이라크를 공격하던 걸프전 현장에 들어간다. 이라크의 병원에서 만난 부상자인 ‘이브라힘’은 나에게 뜻 모를 얘기를 한다. “우리는 아주 오래전 만났습니다. 난 이집트의 기록관으로 당신은 십자군의 사제로….” ‘나’는 이브라힘의 말을 녹음하며 정체 없는 힘에 이끌린다. 소설의 시점은 과거 또 다른 잔혹한 살육 현장들로 거슬러 올라간다. 소설은 ‘나’와 이브라힘의 전생과 현생을 오간다. 예수와 사랑을 나눴던 여인(이브라힘의 전생), 예수의 행적을 따라가는 십자군전쟁 시대의 사제(‘나’의 전생)와 기록관(이브라힘의 전생), 그리고 현재 이라크 전장에서 만난 ‘나’와 이브라힘. 작가는 결국 타인의 종교를 인정하지 않고 끔찍한 살육을 벌인다는 점에서 십자군전쟁과 걸프전은 같다고 말한다. 8년 전 장편 ‘빌라도의 예수’에서 예수의 일생을 빌라도의 관점으로 신선하게 풀어냈던 작가는 이번에는 죽음과 환생에 대한 종교적이고 철학적인 여러 질문을 던진다. ‘불신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해석의 불가능함을 받아들여야 한다.’ ‘환생이라는 존재의 유랑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바가 존재의 완성이고 구원이라면, 신의 역할과 충돌하게 된다.’ 작가는 ‘나’의 어머니를 무속인으로 내세워 한국 토속신앙의 죽음과 환생까지 짚는다. 과거와 현재, 동서양을 가로지르는 종교와 철학적 분석이 곳곳에 번뜩인다. 픽션이 가미된 종교나 철학 서적을 읽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깊은 사색의 발자국들이 책장 가득하다. 단, 예수 시대나 십자군전쟁 시대는 대부분 역사적 사실을 소설화한 것이라 신선함이 덜하며, 환생을 주제로 했지만 전생이 현생에 영향을 주는 연결고리가 없어 구조가 헐거운 느낌이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소설가 신경숙 씨(49)가 장편 소설 ‘엄마를 부탁해’로 15일 ‘2011 맨 아시아 문학상(Man Asian Literary Prize)’을 수상했다. 이 상은 영국 최고 권위 문학상인 맨 부커상을 후원하는 투자회사 맨그룹이 2007년 아시아 작가들을 대상으로 제정했다. 신 씨는 첫 한국인 수상자이자 최초 여성 수상자가 됐다. 이날 홍콩 콘래드 호텔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신 씨는 “지구의 이 끝과 저 끝에서 발생하는 이야기를 전 세계인이 1, 2분 안에 소통하고 공유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폭력과 고통이 빠르게 전달되기도 하지만 인간적인 삶에 대한 성찰이나 사람들이 일구어낸 감동적인 이야기 또한 빠르게 전달된다”며 “이런 시대에 인류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이야기가 희망이라고 생각한다”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 그는 “내가 고통스럽고 슬픔에 빠져 있을 때 나를 위로하고 나를 강하게 해주었던 것 또한 이 세상의 수많은 문학작품들 속에 등장하는 이야기였다. 내가 쓰는 작품 속의 이야기도 지금 큰 슬픔에 빠져 있는 사람들을 위해 존재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신 씨는 “마지막으로 이 자리에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며 중국의 탈북자 북송 문제를 꺼냈다. 그는 “이것은 정치 이야기가 아니라 위험에 처한 사람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대한 이야기다. 이런 이야기를 여기서 하는 것은 여기가 국제도시 홍콩이고 중국령이기 때문”이라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지금 생존을 위해 중국으로 탈출한 탈북자들이 다시 북송되는 일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살기 위해 목숨을 걸고 탈출한 사람들을 되돌려 보내는 것은 그들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에게 중국 정부의 인도적인 차원의 배려와 국제사회의 관심이 모아지기를 바랍니다.” 라지아 이크발 심사위원장은 “엄마라는 존재의 의미뿐만 아니라 한국 가정의 과거와 현재의 변화를 보여주는 자화상”이라고 ‘엄마를 부탁해’의 수상 배경을 밝혔다. 상금으로 신 씨는 3만 달러(약 3400만 원)를, 영문판 번역자인 김지영 씨(30)는 5000달러(약 560만 원)를 받는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홍콩=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

통일문학을 기치로 내건 통일문학포럼이 25일로 창립 1주년을 맞는다. 이동하 백시종 김지연 김년균 이상문 이순원 하성란 이정 홍사성 등 문인 50명으로 출범한 포럼은 1년 사이 회원이 110명으로 늘었다. 지난달에는 문인단체로는 유일하게 탈북자 북송 반대 성명서를 냈다. 포럼 창립 1주년을 맞아 만난 장윤익 회장(73)은 “통일문학은 책상머리에서 나오지 않는다. 작가들이 남북한의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 더 발품을 팔아야 한다”고 말했다. 장 회장은 인천대, 경주대 총장을 역임한 문학평론가로 동리·목월문학관장을 맡고 있다. ―통일문학포럼을 만든 이유는 무엇입니까. “문인들은 보통 통일에 관심이 적고 통일에 대해 막연하게 얘기를 합니다. 직접 북한 접경을 방문하거나 탈북자를 만나는 등 활동이 부족했기 때문에 작품에서 북한을 잘못 전하는 부분도 있었지요. 문인들이 북한의 실상을 제대로 알아 객관적인 통일문학 작품을 내놓을 수 있도록 지원하는 단체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탈북자 북송 반대 성명을 냈습니다. “인류, 인권의 문제를 문인으로서, 같은 동족으로서 묵과할 수 없었습니다. 중국대사관 앞에서 항의 시위를 하는 것도 검토하고 있습니다.” ―북한 문제가 나오면 ‘좌파냐’ ‘우파냐’라고들 묻습니다. 포럼은 어느 쪽입니까. “허허. 작가 개개인이 있는 그대로 현실을 바라보자는 게 포럼의 기본 취지입니다. 회원 중에는 좌파라 할 문인도 있습니다. 작가는 본인의 시각을 자유롭게 작품에 녹여낼 수 있어야죠.” ―포럼의 활동이 활발하다고 들었습니다. “지난해 5월 압록강변을 따라 2000리, 두만강변을 따라 1400리에 걸쳐 현장 답사를 다녀왔습니다. 강변을 따라가면서 지척에서 북한 주민의 실상을 보고 왔습니다. 지난해 10월에는 백령도를 찾았고, 올 5월에는 국방부의 협조를 얻어 4박 5일간 문인들이 휴전선을 도보 답사할 계획입니다. 두 달에 한 번씩 탈북자를 초청해 강연을 꾸준히 듣고 있습니다.” 포럼에 관심을 갖는 독자들도 생겼다. 일반인 49명이 ‘독자회원’으로 포럼에 가입해 있다. “휴전선 답사에 참여하고 싶다는 일반인의 문의가 많다”고 장 회장은 전했다. ―북한 문인과의 교류는 추진하고 계십니까. “시도는 하고 있지만 남북한 정치 관계가 좋지 않아 쉽지 않습니다. 9월 경주에서 열리는 국제펜대회 총회에서 탈북 작가들로 구성된 펜클럽 북한센터가 가입되면 그들과 교류하는 방안을 검토 중입니다.” ―남북이 분단된 지도 60년이 넘었습니다. 통일문학은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할까요. “분단문학은 끝나야 합니다. 분단문학이란 남북 이념의 갈등구조 속에서 이뤄진 것이죠. 이제는 그런 구조에서 벗어나 인간의 가치와 민족의 문제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방향으로 가야 하지 않을까요. 올해는 통일문학에 대한 관심을 확대시키는 데 주력할 겁니다. 통일문학상을 제정하고 시와 소설 부문에서 각각 통일문학선집을 낼 계획입니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아낌없이 주는 나무’의 작가 셸 실버스타인(1930∼1999)의 유고 시집 ‘세상 모든 것을 담은 핫도그’(살림)가 나왔다. 145편의 동시와 삽화가 곁들어진 명랑하고 유쾌한 시집이다. 번역자가 김기택 시인(55)이란 것을 봤을 때는 고개가 갸웃해졌다. 그가 김수영문학상, 미당문학상, 현대문학상 등 수많은 수상경력을 지닌, 시 쓰기에도 바쁜 시인이라는 점은 접어두더라도, 씹던 껌에 남은 이빨자국에서 지구의 일생 동안 남아있던 살육과 살의, 적의의 기억을 끄집어내고, 그렁그렁한 소의 눈망울을 ‘수천 만 년 말(언어)을 가두고 있는 동그란 감옥’으로 명명했던 날선 분석주의자가 동시집을 번역한다는 게 의외였다. 잔혹하고 처절한 시어들 이면에 동심을 숨기고 있던 그를 서울 종로구 세종로 동아미디어센터에서 만났다. “흔히 얘기하는 동시하고는 달라요, 그렇다고 잠언집도 아니죠. 어린이의 말투를 빌려서 어른들의 생각을 표현한 것이랄까. 생각이나 대상을 뒤틀거나 풍자하는 재미가 있습니다.” 실버스타인 시집의 특성에 대해 김 시인은 “우리나라에서 못 보던 장르”라고 했다. 기자가 ‘어른들을 위한 동화 아니냐’고 하자 시인은 “딱히 그것도 아닌데…”라고 고개를 갸웃했다. 장르 불명의 작품들은 이런 식으로 펼쳐진다. ‘긴 밍크코트를 입은/사슴 가죽 바지를 입은/방울뱀 가죽 장식이 달린/악어 가죽 부츠를 신은/너구리 꼬리 장식이 달린/비버 가죽 모자를 쓴/저 여자가 뭐라고 외쳤는지 아니//고래를 구합시다.’(시 ‘야생 동물을 사랑한 여자’ 전문) ‘행복한 결말이란 건 없어./끝나는 건 언제나 가장 슬픈 일이거든./그래서 나는 행복한 중간이나/아주 행복한 시작이 좋아.’(시 ‘해피엔딩?’ 전문) 실버스타인은 이렇게 풍자와 세태고발뿐만 아니라 여러 단상들을 경쾌한 언어로 풀어낸다. 실버스타인과 자신의 차이점을 물었더니 시인은 빙그레 웃었다. “저도 굉장히 웃기는 시를 쓰고 싶은데 쉽지 않네요. 허허. 다만 일상의 사소한 것들을 세세하게 관찰해 비틀어서 보여주는 점에서는 둘이 공통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김 시인은 “가끔 동시를 쓰고 싶을 때가 있고, (동시가) 나오는데 발표는 안 하고 있다”며 웃었다. 5, 6년 동안 동시를 모아놨는데 2, 3년 뒤에 책으로 낼지도 모르겠다고 쑥스러워했다. “동시를 쓰려면 어린이들의 말과 통하는 부분이 많아야 하는데 나이가 드니 그게 보이는 것 같네요. 허허.” 자연스레 그의 새 시집 얘기로 흘렀다. 2009년 발표한 시집 ‘껌’이 큰 호평을 얻은 터라 그의 차기작에 대한 문단의 관심도 높다. 그는 “시가 50편 정도 모였다”고 했다. 시집을 낼만한 분량이다. 하지만 그는 1년 정도는 더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대개 문예지에 발표한 작품들인데 30∼40%는 버려야 하죠. 마음에 들지 않는 작품이 많은데 거절할 수 없어 문예지에 발표했어요. 그것을 다시 또 시집으로 묶을 수는 없지요.” 문단에서는 ‘한 시집에 좋은 시 다섯 편만 있으면 좋은 시집이다’란 말이 있다. 하지만 그는 “버릴 시가 없어야 좋은 시집이다. 좋은 작품 몇 개 끼워놓고 시집 낼 생각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문단이 왜 그에게 주목하는지 알 것 같았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 ‘해를 품은 달’의 진수완, ‘뿌리 깊은 나무’의 김영현 박상연…. 최근 상한가를 치고 있는 드라마 작가들이다. 드라마 작가들이 각광을 받으면서 영화 시나리오로 시작한 작가들도 드라마로 몰리고 있다. 반면 충무로에서는 좋은 시나리오가 말랐다고 아우성이다. 공들여 스토리 창작물을 내놓는 작가 중에서도 일부 드라마 작가가 ‘꽃방석’에 앉는 것과 달리 시나리오 작가나 대부분의 순수문학 작가들은 생존의 위기에 처해 있다는 것이다. 각 분야 작가들의 수입은 어떤 수준이며 문제점은 무엇인가. 다양한 장르 작가들의 현주소를 들여다봤다. 》○ 드라마 작가 “A급만 황금방석”‘김수현표 드라마’ ‘노희경표 드라마’라는 말에서 보듯 드라마에서 작가의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스타급 작가의 몸값은 톱 배우를 능가한다. 최근 10여 년간 외주 제작사의 드라마가 늘면서 작가의 몸값도 치솟았다. 제작사로서는 A급 작가가 있어야 방송사의 편성을 따낼 수 있다는 압력을 받게 된다.현재 회당 3000만 원 이상의 고료를 받는 이른바 ‘A급’ 작가로는 ‘장밋빛 인생’ ‘조강지처클럽’ 등을 쓴 문영남 작가, ‘올인’ ‘주몽’ ‘아이리스1’의 최완규 작가, ‘자이언트’의 장영철 작가, ‘선덕여왕’ ‘뿌리 깊은 나무’ 의 김영현·박상연 작가, ‘최고의 사랑’을 히트시킨 홍자매(홍정은·홍미란), ‘인어아가씨’ ‘왕꽃 선녀님’ ‘하늘이시여’를 쓴 임성한 작가 등이 꼽힌다. 이 중에서도 ‘지존’으로 꼽히는 주인공은 최근에도 ‘천일의 약속’을 히트시킨 김수현 작가. 방송가에서는 “얼마 전 회당 6500만 원에 100회 계약을 했다”, “특집극 회당 1억 원을 받았다” 등 확인되지 않은 소문이 떠돈다.이와 달리 신인 작가가 받는 고료는 회당 300만 원 안팎으로 알려져 있다. 제작사들이 스타작가를 선호하다 보니 작가 사이에서도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 한국 방송작가협회 소속 드라마 작가는 441명이지만 이들 중 1년에 한 편이라도 작품을 쓰는 사람은 4분의 1에 못 미친다. 임동호 한국방송작가협회 사무국장은 “기성작가라도 다음 작품을 맡기까지 보통 3∼4년은 기다려야 한다”고 전했다. 작품을 맡지 않는 한 ‘무급휴직’ 상태인 셈이다.그래도 드라마 작가를 꿈꾸는 사람들은 계속 늘고 있다. 방송작가협회 산하 작가교육원에는 한 해 600∼700명의 작가 지망생이 몰린다. ○ 시나리오 “1년에 한 편도 별따기”시나리오 작가의 드라마 겸업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김수현, 정하연, 이희우 등 노장급 드라마 작가들도 예전엔 시나리오를 썼다. 드라마로의 대거 이동은 2000년대 중후반 국내 영화산업의 침체와 맞물린다. 최근에는 중견 이상 시나리오 전업 작가는 손에 꼽을 정도다. 박찬욱, 봉준호, 윤제균, 최동훈, 김지운 등 스타 감독들이 최고의 시나리오 작가라는 점도 역설적으로 전업 작가의 길을 어렵게 한다. 신인급은 대개 편당 3000만 원 이하의 고료를 받는다. 거의 모든 작가가 1년에 시나리오 한 편 쓰기도 어렵다. 전업 작가 중 ‘A급’으로는 박계옥(‘댄서의 순정’ ‘첫사랑 사수 궐기대회’ ‘투캅스3’), 나현(‘화려한 휴가’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마이웨이’), 김상돈(‘태극기 휘날리며’ ‘소년은 울지 않는다’ ‘타워’), 고윤희(‘연애의 목적’ ‘어깨 너머의 연인’), 황인호 작가(‘오싹한 연애’ ‘마이웨이’ ‘시실리 2km’)가 꼽힌다. 이들은 편당 1억 원 이상을 받는다. ‘국화꽃 향기’ ‘공공의 적2’ 등을 쓴 김희재 작가는 2003년 ‘실미도’ 이후 업계 최고인 편당 2억 원 이상의 고료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시집 초판 인세 150만∼300만 원문학 시장의 침체 속에서 순수문학 작품만을 써서는 생계를 영위하기 어렵다. 한국고용정보원이 지난해 11월 발표한 ‘2011 한국직업정보시스템 재직자 조사’에는 문인들의 생활고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국내 732개 직업 종사자, 2만3745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수입 하위 10위 가운데 시인이 연봉 172만 원으로 최하위였다. 소설가는 연봉 1453만 원으로 9번째로 소득이 낮았다.일부 베스트셀러 작가의 수입은 ‘억’소리가 난다. 정은궐의 ‘해를 품은 달’은 드라마 히트의 영향으로 지난해 10월 재출간된 이후 80만 부가 나갔다. 소설 외 다른 장르에 손을 대지 않아온 정 작가는 인세 수입으로 최소 10억4000만 원을 벌었다. 전작인 ‘성균관 유생들의 나날’은 80만 부, ‘규장각 각신들의 나날’은 60만 부를 팔아 정 작가는 수십억 원의 수입을 올렸다.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2008년 11월 출간)는 누적 191만 부, 공지영의 ‘도가니’(2009년 6월 출간)는 81만 부가 팔렸다. 인세 수입만 ‘엄마를 부탁해’는 19억1000만 원, ‘도가니’는 8억1000만 원이 넘는다. 지난해 4월 출간된 정유정의 ‘7년의 밤’도 30만 부가 넘게 팔려 3억9000만 원의 인세 수입을 올렸다.이와 대조적으로 대부분의 작가는 초판을 소화하기도 버겁다. 보통 초판은 시집은 1500∼2000부, 소설은 2000∼3000부를 찍는데 이를 다 소화해도 작가에게 돌아가는 인세는 150만∼300만 원이다.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김연수, 김영하, 박민규 소설가의 장편도 3만∼5만 부가 팔린다. 몇 년씩 준비한 장편 소설로 얻는 수입이 3000만∼5000만 원에 그친다.물론 각종 문예지 기고로 수입을 올리기도 한다. 보통 문예지는 시 한 편에 5만∼15만 원, 단편소설은 80만∼120만 원을 준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계간지에 모두 작품을 싣는다고 해도 수입이 500만 원을 넘기 힘들다.민병선 기자 bluedot@donga.com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구가인 기자 comedy9@donga.com ▼ 드라마 작가는 재방송 저작권료도 챙겨… 시나리오 작가는 판권 팔려도 한푼없어 ▼■ 부문별 작가들 수입 살펴보면…영화 ‘조폭 마누라’(2001년)는 할리우드로 리메이크 판권이 팔려 50만 달러 이상의 수익을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 영화의 시나리오를 쓴 작가는 공식적으로 수익을 분배받지 못했다. 시나리오 작가에게는 저작권이 없기 때문이다.자신이 시나리오를 쓴 영화가 케이블TV에서 방영되고 DVD로 제작돼도 시나리오 작가에게 돌아오는 몫은 없다. 이에 비해 드라마 작가들은 저작권을 인정받아 재방송 등에도 저작권료를 챙긴다. 이 때문에 시나리오 작가들은 처우 개선을 위한 가장 시급한 문제로 저작권의 확보를 요구한다. 문화체육관광부와 대기업 투자배급사가 나서야 할 문제다.영화가 제작 단계에서 무산되는 일이 흔한 것도 시나리오 작가들을 힘들게 한다. 드라마는 편성이 안 될 경우에도 최소 조건이 있어 고료를 지급받는 것이 일반적이다. 최근에는 영화 투자, 배급사의 입김이 세져 시나리오 수정을 요구하는 일이 흔하다. 투자, 배급사가 선정한 작가가 붙어 공동 집필을 하면 고료는 1000만 원 이하로 떨어지기도 한다. 최근 400만 명 이상의 관객을 모은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의 경우 윤종빈 감독을 비롯해 3, 4명의 작가가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소설가나 시인은 수입이 일정치 않다. 출간 계약을 하면 수백만 원의 목돈을 쥐지만 일회성에 불과하다. 국민건강보험 등은 일회성 소득도 산정해 지속적으로 보험료를 부과하기 때문에 문인들에게는 적지 않은 부담이 된다. 등단 7년차의 한 소설가는 “부모님의 건강보험에 피부양자로 들어있었는데 지난해 원고료로 한꺼번에 500만 원이 넘는 수입을 올린 이후 보험료를 별도로 내게 됐다. 이후에는 별 소득이 없지만 원상태로 되돌아가기 힘들어서 고민”이라고 말했다.드라마 작가들은 살인적인 집필 스케줄을 소화해 내야 하는 고충을 호소한다. 박상연 작가는 “분량으로 치면 미니시리즈 1주일분, 2회 140분짜리 대본은 시나리오 한 편 격이다. 보통 시나리오 하나 쓰는 데 1년이 걸리는데 그걸 1주일 만에 쓰는 거다. 눈뜨면 잠자기 전까지 대본만 쓴다”고 말했다.민병선 기자 bluedot@donga.com}

올해 등단 45주년을 맞는 소설가 윤후명 씨(66)가 21일부터 일주일간 서울 종로구 관훈동 인사아트센터에서 ‘꽃의 말을 듣다’라는 이름으로 첫 개인전을 연다. 작가는 10년 전 문화센터에서 미술 강의를 들으며 취미 삼아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으며 2008년부터 10차례 넘게 단체전에 참가하기도 했다. 개인전에 맞춰 소설집 ‘꽃의 말을 듣다’(문학과지성사)도 펴낸다. 작품 ‘탑과 발자국’ 앞에 앉은 윤 씨는 “글 쓰는 사람은 한글이라는 감옥이나 족쇄에서 벗어날 수가 없는데 미술을 통해 그 제약에서 자유로워졌다”며 웃었다. 디자인 에토스 제공}

‘무엇을 하지 마라’ 혹은 ‘무엇을 해야만 한다’는 강압적인 말보다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말은 얼마나 듣기 달콤한가. 하지만 정말 그럴까. 열심히 노력해도 쳇바퀴 도는 듯한 인생, 탈출구가 있기는 한 걸까. ‘21세기 사회가 규율사회에서 성과사회로 변모했다’는 게 저자의 핵심 주장이다. 푸코가 주창했던 ‘규율사회’는 부정적인 강제가 있지만, 저자가 주장하는 ‘성과사회’에는 그런 눈에 띄는 규율이 없다. 다만 무한한 ‘할 수 있음’, 실체도 불분명한 긍정의 에너지로 가득하다. 한병철 독일 카를스루에 조형예술대 교수가 펴낸 이 책은 현대 자본주의의 새로운 착취 형태를 꼬집는다. 지난해 독일에서 출간돼 호평을 받았으며 네덜란드 이탈리아 스페인 덴마크 중국 등에도 소개됐다. 8일 서울 광화문에서 만난 한 교수는 “자본주의 시스템이 영악해졌다”고 지적했다. “금지, 명령을 통한 착취에서 이제는 ‘너는 할 수 있다’를 주입시키는, 자유를 통한 착취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타인착취’를 하다가 한계에 다다르자 ‘자기착취’를 만들어낸 겁니다.” 타인착취에는 한계가 있다. 주인(회사 등)이 없어지면 진정한 자유를 얻는다. 하지만 자기착취에는 한계가 없다. ‘한 사람이 동시에 포로이자 감독관이며 희생자이자 가해자라는 점에 있다. 그렇게 인간은 자기 자신을 학대한다. 이로써 지배 없는 착취가 가능해진다.’ 이런 자기 망상 속에 함몰된 인간은 피로해 쓰러질 때까지 일한다. 피로가 좀처럼 풀리지 않고, 누적되는 ‘피로사회’의 일원이 된다. “요즘 독일에서는 ‘번 아웃(burnout·소진) 신드롬’이란 용어가 유행입니다. 독일 사회에서 여유를 상징하던 교수들도 월급은 줄고 외부에서 돈은 끌어와야 하는 압력이 상당히 심합니다. 모두 피곤해지는 거죠.”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등과 같은 솔깃한 광고 카피들은 어떨까. “결국 다시 쉬고 일하라”는 ‘노예의 쉼’이라고 한 교수는 말했다. 스스로 주인이 돼 삶을 영위하지 않고서는 일하는 것도, 쉬는 것도 결국 자본주의의 노예의 일상일 뿐이라는 게 저자의 시각이다. 그럼 피로는 어떻게 푸나. “‘나인(Nein·아니요)’이라고 말하라”는 게 함축적인 저자의 답. ‘긍정’을 ‘부정’해야 다른 세계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내가 나 자신에게 얼마나 해를 끼치고 있나’ 하는 것을 인지하는 게 문제를 풀기 위한 출발이다. 결국 이기적인 나에서 벗어나 자기를 열고 다른 사람, 세상으로 나아가야 한다.” 전문적인 용어도 많고, 문장도 함축적이라 의미 파악이 쉽지 않다. 하지만 다른 철학자의 논리를 장황하게 끌어오거나 불필요한 철학사를 덧대는 일 없이 자신의 논리만 툭툭 던지는 스타일은 충분히 매력적이다. 그렇기에 새로운 철학 이론을 담았지만 시집처럼 얇다. “이 책은 뼈(이론)만 있고 살(정보)은 없다”는 저자의 설명이 딱 맞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공포는 이렇게 찾아오기 마련이다. 귀여운 인형이 갑자기 끔찍한 살인자로 돌변하거나(영화 ‘사탄의 인형’), 착하고 여린 소년 소녀가 악마의 모습으로 변하거나(영화 ‘오멘’ ‘엑소시스트’) 한다. 순박하고 순수했던 존재가 순간 악의 화신이 되는 섬뜩한 경험. 이 책에서는 눈사람이다. 날씨부터 음침한 겨울 초입의 노르웨이. 어느 집 앞마당에 눈사람이 세워져 있다. 아이는 “눈사람이 날 노려본다”고 하지만 엄마는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하지만 돌아선 뒤 찜찜해진다. 가족 중 누구도 눈사람을 만든 적이 없기 때문. 게다가 눈사람은 대개 길을 바라보고 세우지만 이 눈사람은 집 쪽을 향하고 있다. 마치 먹잇감을 찾듯이…. 공포영화가 그러하듯 스릴러소설도 초반 분위기 장악이 중요하다. 이 소설은 눈사람의 기괴한 출몰만으로도 소름을 돋게 만든다. 게다가 눈사람이 있는 곳마다 실종사건이 일어난다. 그것도 결혼한 여성들만 사라진다. 눈사람으로 시선 몰이에 성공한 작품은 본격적인 추리물 공식을 충실히 따른다. 우직한 강력반 반장 해리, 쾌활한 데다 섹시한 후배 형사 카트리네의 등장에 이어 잇따르는 실종사건, 호들갑 떠는 언론, 경찰 수뇌부의 호통 등. 하지만 작품은 한발 더 나간다. 해리와 그의 전 애인의 재결합 여부를 비롯한 드라마와 잔잔한 일상 속 에피소드들로 잔재미를 준다. 무엇보다 사소한 단서의 추적과 그 단서들의 조합, 그리고 범인 유추 등 실제 사건을 접하는 듯한 급박한 전개가 매력이다. 그러다 보면 유력했던 용의자들이 하나씩 변시체로 발견될 때 해리가 느끼는 허탈감에 자신도 모르게 탄식을 내뱉을 정도가 된다. 특히 손도끼, 낚싯줄, 메스 등으로 이뤄지는 잔혹한 폭행, 살인 장면은 활자매체에서 느낄 수 있는 공포의 극한을 보여준다. 영화로 치면 ‘19금’이다. ‘살아있는 눈사람이 살인을 한다’는 식의 호러 판타지가 아니기에 범인은 물론 사람이고, 범행 동기도 어느 정도 납득이 가지만 뭔가 아쉽다. 좀 더 개성 넘치는 살인마를 창조할 수는 없었을까.황인찬 기자 hi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