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찬

황인찬 기자

동아일보 국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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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특파원 황인찬입니다. 한일 관계가 더욱 좋아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일본에 왔습니다. 일본의 오늘을 보여드립니다.

hic@donga.com

취재분야

2026-01-11~2026-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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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의 눈/황인찬]신춘문예 당선자에게서 받은 볼펜 한 자루

    201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상식이 10일 열렸다. 신인 작가 8명이 가족과 심사위원, 선배 문인들의 축하를 받으며 문단에 첫발을 내딛는 날이었다. 시상식을 취재하던 기자는 행사가 끝난 뒤 뜻밖의 선물을 받았다. 영화평론 당선자인 김정(본명 김혜란) 씨가 수줍게 작은 쇼핑백을 건넨 것. 여러 차례 사양했지만 결국 회사로 들고 올 수밖에 없었다. 쇼핑백 안에는 볼펜 한 자루와 정갈하게 써내려 간 편지 한 통이 들어 있었다. ‘2011년 12월, 수상 소식을 전해 주시던 날의 기억을 아마도 저는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진정 기자님의 일처럼 순도 높고 밀도 가득한 축하를 전해 주셔서 너무나 감사했어요. 후일, 기회가 닿는 대로 꼭 결초보은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진심 어린 편지에 고마움이 앞섰다. 문학담당 기자로서 이번 신춘문예를 시작부터 끝까지 진행했지만 이런 정성스러운 선물을 받을 자격이 있는지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편지를 읽으면서 두 달 동안의 신춘문예 일정이 머리를 스쳤다. 올해는 2426명이 모두 7047편의 작품을 보내왔다. 28명의 심사위원이 심사하는 과정을 돕고, 당선자를 확인해 특집기사를 게재하고, 시상식을 준비하느라 기자는 한 해 중 가장 바쁜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지금도 당선자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던 순간을 생각하면 묵은 피로가 눈 녹듯 사라진다. 수화기를 통해 전해 오는 당선자들의 환희, 당선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의 환호성, “정말이에요?”를 연발하며 울먹이던 목소리…. 당선자뿐만 아니라 기자에게도 잊지 못할, 행복하고 가슴 떨리는 순간이었다. 책의 위기이고, 문학의 위기라고들 한다. 하지만 신춘문예의 열기는 여전히 식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작가를 꿈꾸는 사람들의 사람과 삶, 문학에 대한 애정이 그렇게 절실하고 간곡한 것임도 확인했다. 문학에 대한 순수한 열정을 불태우는 수많은 무명의 문청(文靑)들을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물질 만능주의의 폐해와 인간성 상실, 끔찍한 범죄 등 숱한 문제가 있지만 이 사회가 유지되는 데는 이처럼 푸른 마음의 문청들이 우리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 것도 한 가지 이유가 되지 않을까. 언젠가 올해 만났던 당선자들과 그들이 쓴 새 작품으로, 새 책으로 만날 날을 기대한다. 그때는 김정 씨가 수줍게 건넨 볼펜을 들고 가서 반가운 얼굴로 그들을 다시 취재하고 싶다.황인찬 문화부 hic@donga.com}

    • 2012-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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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초한 시인들의 입, 무대 오르니 거침없네

    “나한테 이래도 되는 거야? 내가 당신보다 나이도 많잖아. 어떻게 나를 ‘개무시’할 수 있어? 시 오래 쓴 게 유세야? 시 10년 이상 쓴 애들은 그만 써도 된다고 생각해.” 문단의 하극상이다. 등단한 지 4년밖에 안 된 김영애 시인(57)이 20년이 넘은 김상미 시인(55)을 몰아세운다.김산옥 시인(41)은 어떤가. “요번에 상 받은 그 시인 있잖아요. 시는 개떡 같은데 색마 같은 지 지도교수에게 잘 보여서 교수 해먹는….” 여류 시인들의 살벌한 뒷담화가 이어지고, ‘그년(그 시인)은 미친년’으로 규정된다. 아! 청초한 시를 쓰던 여류 시인들의 입은 거침이 없다. 쉬쉬하던 시단의 구린 구석을 시원하게 배설한다. 걱정은 안 해도 된다. 어디까지나 연극이니까. 김상미 김영애 김산옥 조명(57) 천수호(47) 등 여류 시인 5명이 기성 배우들과 함께 정통 연극 무대에 선다. 제목은 ‘누가 연극을 두려워하랴’. 16∼20일 서울 대학로 연극실험실 혜화동1번지에서 막을 여는 프로젝트 집단 ‘두목’의 첫 번째 작품이다. 시인이자 극작가인 최치언 씨가 작품을 쓰고 연출을 맡았다. 사연은 이렇다. 평소 친하던 김상미 시인과 최 작가가 ‘시인을 무대에 세워보자’는 데 의기투합했고, 김 시인이 연극에 도전하고 싶은 지인들을 모았다. 소식을 들은 신달자 유안진 최문자 최금녀 전서은 이화은 시인이 후원에 참여했다.매서운 칼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했던 5일 저녁. 서울 대학로의 지하 연습실을 찾았다. 지난해 9월부터 시작한 연습은 요즘엔 매일 오후 6시부터 11시까지 이어지고 있다. 만만치 않은 강행군인데도 배우들의 얼굴은 밝았다.“여태껏 몸을 반도 안 쓰고 산 것 같아요. 욕 한 번 안하고 살았는데 ×새끼, ○새끼 다 한다니까요.”(김상미) “연극하면서 온통 ‘깨졌지만’ 되레 자신감이 붙더군요. 연출 선생님은 무섭지만 정말 미다스의 손이에요. 감탄의 연속이죠.”(조명)연습을 지켜봤다. 연극인지 실제인지 헷갈렸다. 내용 자체가 연극을 준비하는 시인들의 얘기였기 때문이다. ‘신인’ 배우들의 대사는 서툴고, 자신감은 좀처럼 살아나지 않았다. 시인들과 기성 배우들은 다퉜다. 시인들은 “너희가 시를 아느냐”고 쏘아대고, 배우들은 “너희가 연극을 아느냐”고 받아쳤다. 연출가는 ‘시인’이라고 접어주지 않았다. “불안하고 눈동자 흔들리고 하면 다 보여요. 악으로 깡으로 하세요.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자신 있게요.” 중년의 시인들은 벌 받는 아이처럼 고개를 푹 숙였다. 1시간 반을 잠시도 쉬지 않고 연습한 시인들은 커피믹스와 ‘오예스’를 달게 먹으며 토막 휴식을 가졌다. “학예회 수준이면 안 된다는 의지가 강해요. (시인)배우들도 단단히 각오하고 있어요.”(천수호) 사서 한 고생에서 시인들은 무엇을 느꼈을까. “‘연극이 시고, 시가 연극이고, 그게 인생이다’라는 생각이 들어요. 시도, 연극도 결국 자신을 드러내는 하나의 작업이죠.”(김영애) “1990년대까지만 해도 시극(詩劇)이 많았는데 지금은 거의 찾아볼 수 없어요. 시극을 되살리는 데 도움이 되고 싶습니다.”(김상미) “개막이 코앞”이라며 불안감을 건드리자 시인들은 “가슴이 철렁한다” “카운트다운하는 것 같다” “연습만 계속하면 좋겠다”며 까르르 웃었다. 시인들은 개막 전까지 자신감을 충전할 수 있을까. ‘누가 연극을 두려워하랴’는 제목처럼. 전석 2만 원. 070-8759-0730황인찬 기자 hic@donga.com}

    • 2012-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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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박한 삶 보듬는 글쓰기… 직업 아닌 업으로 간직하기를”

    201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상식이 10일 서울 중구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 20층 국제회의장에서 열렸다. 이날 시상식에서는 당선자 김영옥(중편소설) 김혜진(단편소설) 안미옥(시) 황외순(시조) 이진하(동화) 신비원(희곡) 전호성(시나리오) 김정(본명 김혜란·영화평론) 씨가 상패와 상금을 받았다. 문단에 첫발을 내딛는 당선자들은 수상의 기쁨과 함께 신인 작가로서의 포부를 밝혔다. 안미옥 씨는 “두렵고 설레고 걱정되기도 하고 기대도 된다. 앞으로 나의 한계를 만나고 극복하는 시간들을 통해서 내가 쓸 수 있는 언어들을 찾아 가겠다”고 말했다. 김혜진 씨는 “이런 자리에 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조금은 부담스럽고 마음이 무겁지만 나만이 쓸 수 있는 글을 열심히 쓰겠다”고 다짐했다. 희곡의 신비원 씨는 “경조사에 관심이 없어서 ‘아무도 오지 말라’고 했고, 결국 혼자 왔다. 그런데 다른 당선자들의 가족을 보니 좋아 보인다. 괜히 그런 것 같다”고 말해 좌중을 웃음 짓게 했다. 영화평론 부문 김정 씨는 “돌아가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병중에 계셔서 여기 못 오신 어머니의 모습으로 세상 낮은 자리에서 열심히 쓰겠다”라며 말을 잇지 못해 장내를 숙연하게 했다. 서울대 조남현 교수는 격려사에서 “글 쓰는 것을 마라톤처럼 길게 생각하라. 또 직업으로 생각하지 말고 업(운명, 소명감 등)으로 여겼으면 좋겠다”고 조언했다. 최맹호 동아일보 대표이사 부사장은 축사를 통해 “요즘처럼 각박한 세상에 위로를 주는 게 문학이다. 더 좋은 작품을 쓰시길 기원한다”고 말했다. 시상식에는 당선자 가족과 친지를 비롯해 심사를 맡았던 시인 장석주 장석남 김행숙 손택수, 시조시인 한분순 민병도, 소설가 오정희 구효서 성석제 편혜영 윤성희, 아동문학평론가 김경연, 문학평론가 김수이, 극작가 김명화, 영화평론가 전찬일 씨, 그리고 동아일보 문학회 회원 등 150여 명이 참석했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 2012-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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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영하 씨, 이상문학상 대상 선정

    소설가 김영하 씨(44·사진)가 문학사상이 주관하는 제36회 이상문학상 대상에 선정됐다. 수상작은 단편 ‘옥수수와 나’. 우수작으로는 김경욱 씨의 ‘스프레이’, 김숨 씨의 ‘국수’, 조해진 씨의 ‘유리’, 조현 씨의 ‘그 순간 너와 난’, 최제훈 씨의 ‘미루의 초상화’, 하성란 씨의 ‘오후, 가로지르다’, 함정임 씨의 ‘저녁 식사가 끝난 뒤’ 등 7편이 뽑혔다. 상금은 대상 3500만 원, 우수작 각 300만 원. 시상식은 11월 초에 열린다.}

    • 2012-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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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린이 책]이야기가 꼬리에 꼬리를 문다

    아이에게 흔히 하는 말. “착한 일 하면 상을 받는단다.” 그런데 아이가 이런 볼멘소리를 한다면…. “왜 착한 일을 하면 상을 받아야 돼? 벌을 받으면 안 돼?” 당황했다면 이 작품을 함께 읽고 난 뒤 얘기해보면 어떨까. ‘착한 일 하고 벌 받는’ 의외성 짙은 얘기다. 기차 안에서 뛰어다니며 소란을 피우는 세 아이. 한 아주머니가 이들을 조용하게 하려고 이야기를 들려준다. ‘옛날 옛날에, 착한 소녀가 있었는데 이 소녀가 성난 황소한테 쫓기자 마을 사람들이 소녀를 구해줬다’는 뻔한 얘기. 아이들은 툴툴댄다. 앞에 있던 신사가 제법 신선한 얘기를 꺼낸다. “‘공부 잘하는 상’ ‘말 잘 듣는 상’ ‘바른생활 상’으로 세 개의 메달을 받은 한 소녀가 있었는데, 어느 날 왕자의 공원으로 초대를 받았지. 하지만 늑대가 나타났고, 소녀는 잎이 무성한 작은 나무 사이로 숨었어. 소녀는 몸을 잘 숨겼지만 두려움에 와들와들 떨었고, 결국 목에 건 메달이 ‘쩔렁∼쩔렁∼’ 소리를 내 늑대에게 잡아먹혔지.” 소설 속 아이들은 듣고 나서 “재밌다”고 했지만 우리 아이들은 어떨까. “이게 뭐야∼”란 반응부터 “정말 끝이야?” “소녀가 진짜 죽은 거야?”란 다양한 질문이 나올 법하다. 그럼 어떤 얘기를 해줘야 할까. 메달 같은 위험한 것은 집에 놔두고 놀아야 된다고? 착해도 불행이 온다고? 이렇게 아이들과 얘기할 거리를 많이 던져주는 것이 이 책의 미덕이다. 2009년 볼로냐 국제어린이도서전 라가치 상 수상작.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 2012-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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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학예술]별것 있던가, 그대 추레한 인생아

    이 작품은 읽기에 불편하다. 대화를 거의 찾아보기 힘들고, 행갈이도 문단 나눔도 헐겁지 않다. 촘촘하고 빼곡하다. 마치 밥공기에 꾹꾹 힘주어 눌러 담은, 단단해진 밥을 힘겹게 떠먹는 듯하다. 좀체로 속도가 나지 않는다. 내용도 불편하다. 1980년대 후반 서른 즈음이 된 남자와 스물예닐곱의 여자가 데이트를 앞두고 있다. 한 남자, 한 여자로만 칭해진 이들. 이미 서너 번 만난 사이. 설렘도 기대도 없다. 상대방에 대한 확신도 없지만 그렇다고 바로 돌아서기에는 왠지 찜찜하고 아쉬운 속내들. 여자는 ‘운명의 상대일지도 모른다’는 희박한 기대감을 버리기 어렵고, 남자는 집에서 혼자 맥주 마시며 포르노 잡지나 뒤적거리는 것보다는 그냥 여자(꼭 이 여자가 아니라도)를 만나는 것이 낫다고 여긴다. 이들의 만남은 야구장, 카페, 러브호텔, 술집 등을 거치며 불규칙적으로 반복된다. 그렇다고 이들이 단순히 섹스 대상자를 찾는 것은 아니다. 나름대로 진지하고 행복한 결혼을 꿈꾼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무미건조하고, 일견 반복되는 듯한 이들의 모습을 작가는 지긋지긋하게 현실적으로, 차분히 묘사한다.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니들이 꿈꾸는 백마 탄 왕자 같은 신랑감이나 미스코리아 외모 뺨치는 아내감은 없다’고. 결국 자신의 상대는 지금 자신 앞에 있는 ‘평범한 이성’일 뿐이다. 결혼식과 신혼여행은 행복하지만 짧으며, 결혼생활은 우울하고 길게 이어진다. 주말에는 같은 색 옷을 맞춰 입고 도시 외곽의 아웃렛과 가구점을 훑는다. 연립주택 반지하의 방 두 개짜리 신혼집은 점점 협소해진다. 이들은 장대한 계획을 세운다. ‘내 집 마련 5개년 계획.’ 하부 계획은 이렇다. 외식 금지, 조기 귀가, 물건 구입 금지, 불필요한 카드 해약, 절대 피임, 경조사 절제…. 하지만 줄이고 줄여도 계획했던 것만큼 돈은 불지 않는다. 미래는 불투명해진다. 생활은 늪으로 빠진다. 새로운 내용은 아니다. 어쩌다 보니 결혼하게 됐고, 살다 보니 삶이 점점 팍팍해지더라는 것이 소설 속만의 얘기일까. 그러나 작품의 매력은 이런 익숙한 일생을 입이 바짝 마를 듯한 건조한 문체로, 그것도 놀랍도록 세밀하게 짚어 나가는 데 있다. 이런 까닭에 독자는 인식도 못하고 넘긴 자기 삶의 일기장을 다시 펼치는 듯한 느낌이 들지 모른다. 작품은 후반 남녀의 ‘불미스러운’ 사고와 남겨진 아들이 벨기에에 입양된 뒤 다시 한국에 찾아오는 것으로 변주를 준다. 내내 답답하고 불편했던 독자의 호흡에 숨통이 트이는 것도 이때다. 하지만 무언가 꽉 막힌 듯한 불편한 상태로 끝냈으면 어땠을까. 그것이 되레 우리의 탈출할 수 없는 현실에 더 가깝지 않았을까. ‘동인문학상’ ‘이상문학상’을 수상한 작가가 8년 만에 펴낸 장편이다. 작가는 전북 무주에 있는 작업실에서 작품을 썼다고 했다. 황혼이 시작되기 전 빛의 축제에서, 그 빛이 어둠에 스러지기까지의 황혼 속에서 주로 집필했다고. 작품은 아름다운 황혼의 초입보다는 어스름에 가깝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 2012-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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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달에 만나는 詩]은하 미용실

    웃자란 생각들을 자른다, 머리를 자른다. 지난 한 달 나는 또 어떻게 살았나. 작은 미용실 의자에 앉아 골몰히 상상한다. 나는 누구인가, 내 머리를 매만지는 저 여인은 누구인가. 이곳은 은하 미용실. 좁다란 홀 바닥이 푹 꺼지고, 거대한 블랙홀이 드러나는 곳. 잘린 머리카락이 우주의 먼지처럼 반짝이는 곳. 한 달에 한 번 나는 그녀를 만난다, 우주와 교신한다. ‘이달에 만나는 시’ 1월 추천작으로 김산 시인(36)의 ‘은하 미용실’을 선정했다. 지난해 11월 말 나온 시집 ‘키키’(민음사)에 수록된 시다. 시인 이건청 장석주 김요일 이원 손택수 씨가 추천에 참여했다. 김 시인은 어릴 적 장래 희망을 적는 난에 ‘나는 것’이라고 썼다. 선생님은 친절하게 비행기 조종사로 정정해줬다. 소년은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말 그대로 ‘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엉뚱했던 아이는 자라 시인이 됐고 ‘엉뚱한’ 첫 시집을 냈다. 이를테면 지구별에 떨어진 외계인이 지구인들을 관찰하고 느낀 바를 적은 감성적 보고서다. “소행성에서 온 외계인인데 어머니의 몸을 빌려서 태어난 거죠. 그 외계인이 지구인들의 살아가는 모습을 글로 기록하고, 그것을 자신의 고향(소행성)에 돌아가 얘기한다는 설정을 했어요.” 김 시인은 “어릴 때부터 가졌던 우주에 대한 동경이 결국 이번 시집으로 나왔다. 군대 시절부터 시를 썼으니까 15년 만에 결과물이 나온 셈”이라며 웃었다. 이건청 시인은 “김산은 심층심리의 세부를 파악해내는 안목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그의 시는 무겁지 않다. 정신의 프리즘을 거치면서 다양한 국면으로 왜곡되고 굴절되면서 실체에 다가선다”고 추천 이유를 밝혔다. “상상력이 발랄하다. 외계인적(우주적이라고 해야 맞을까?) 상상력과 현실을 뒤섞으며 독특한 이야기 시를 펼쳐낸다. 개인사를 우주사 속에 끼워 넣어 읽는 수법에서 독창성을 느끼게 한다. 오랜만에 시집을 정독하는 기쁨을 누렸다.” 장석주 시인의 추천사다. 김요일 시인은 그를 “순정한 몽상가”라고 평했다. “눈치 보지 않고, 머뭇대지도 않고 지상에서 우주까지 ‘거침없이 하이킥’을 날리는 폭풍 상상력은 그가 오로지 ‘시’만을 위해 존재하는 천생 시인임을 증명케 한다.” 손택수 시인은 윤진화 시인의 시집 ‘우리의 야생 소녀’(문학동네)를 추천했다. “야생과 같은 시집이다. 거칠지만 익히 본 적 없는 여성성으로 충일된 생기가 뚝뚝 흐른다. 시고 달다”고 평했다. 이원 시인이 서효인 시인의 ‘백 년 동안의 세계대전’(민음사)을 꼽으며 내놓은 추천평은 이렇다. “‘전 지구적 상상력’을 특유의 능청스러운 언어로 버무려 놓은 시집. 서효인의 종횡무진을 따라 세계를 백 년 동안 가로지르다 보면 끝내 맞닥뜨리게 되는 것. 그것은 바로 너와 나의 자화상. ‘인간’이라는 작고 끔찍한.”황인찬 기자 hic@donga.com}

    • 2012-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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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설가 주원규 씨 일곱번째 장편 ‘반인간선언…’ 펴내

    “솔직히 말씀드리면 쓰는 데 딱 나흘 걸렸어요. 제가 집중력이 짧아 나중에 가면 수습이 잘 안돼서….”200자 원고지 840장 분량을 나흘 만에 썼다니. 소설가 주원규(37·사진)가 4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에서 기자와 만나 털어놓은 사연은 이렇다.지난해 10월 중순 집필을 위해 서울 홍익대 앞 24시간 운영하는 카페를 찾았다. 대강의 시놉시스는 마련해 둔 상황. 글이 술술 풀렸다. 문장에 탄력이 붙었다. 흐름을 깨기 싫었다. 끼니는 커피와 빵으로 때우고 잠은 아예 자지 않았다. 월요일 아침부터 목요일 오전 3시까지 미친 듯이 써내려갔다. “처음 이틀은 힘들었지만 어느 순간이 되니 카타르시스가 몰려왔죠. 오히려 정신이 맑아지더라고요. 하하.”그렇게 쓴 작품이 ‘반인간선언-증오하는 인간’(자음과모음)이다. ‘반인간’에 ‘증오하는 인간’이라. “사람들은 공동체와 선(善)을 말하지만 결국 이런 것들은 왜곡되고, 무력화되고, 짓밟히죠. 지금의 우리는 ‘인간이 아니다’라고 선언하는 것이 사회적 문학적으로 효용성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서울 광화문에서 잘린 손이 발견되고, 도려낸 귀와 입이 현직 국회의원에게 소포로 배달되자 강력계 형사 민서는 연쇄살인사건이라는 감을 잡고 수사에 나선다. 희생자들은 하나같이 한 굴지의 대기업과 연관이 있는 사람들이다. 희생자의 아내이자 초선 국회의원인 서희는 그 대기업이 새로 시작하는 사업에 강력한 의문을 갖게 된다. 소설은 강력한 흡입력으로 다가온다. 정유정의 ‘7년의 밤’에 비해 서사의 크기는 부족하지만 긴박한 속도감은 그에 필적한다. 시신이 7개로 토막난 채 뜻하지 않은 장소에서 발견되고, 퍼즐처럼 사건이 재구성되는 대목에선 눈을 떼기 힘들다. “우리의 몸을 파괴함으로써 우리가 갖고 있는 정신의 마비상태를 환기시키고 싶었다”는 게 잔혹극을 펼친 이유다. 2009년 한겨레문학상을 받으며 등단한 작가는 벌써 일곱 번째 장편을 내게 됐다. 첫 스릴러 추리물이기도 하다. “더 많은 독자가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스릴러를 택했는데 쓰면서도 재미있었어요. ‘…하는 인간’이란 제목으로 두 권을 더 낼 생각이에요.”작가는 총회신학연구원을 나온 현직 목사이기도 하다. 서울 신촌에서 10여 명과 함께 신학 강론을 하는 ‘대안 교회’ 활동을 3년째 펼치고 있다. 사회비판적이고 때론 권력화된 종교 문제도 건드리는 그의 소설에 대해 교단의 반응은 어떨까. “제가 감리교 쪽인데 교단회의를 가면 항상 제 소설이 안건에 올라와 있어요. 욕 많이 먹고 있습니다. 하하.”황인찬 기자 hic@donga.com}

    • 2012-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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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자마다 고뇌의 흔적 고스란히… 시인 43명이 눌러쓴 대표시들

    시인들이 한 자 한 자 꾹꾹 눌러쓴 육필 시집이 나왔다. 정현종 신경림 이하석 오탁번 윤후명 강은교 등 시인 43명이 자신의 대표 시를 직접 고르고 써서 펴낸 ‘시인이 시를 쓰다’(지식을 만드는 지식). 정성스레 써내려간 육필 원고에는 시인마다의 개성이 가득하다. 시어들은 한층 생기 있고 풍성해졌다. 시인들은 이번 ‘대표 시 모음집’ 외에도 각자 별도의 육필 시집을 차례로 펴낸다. 대개 컴퓨터 화면의 커서 끝에서 시어들이 탄생하는 세상이기에 이번 육필 시집은 시인들에게 각별한 의미로 다가왔다. 이하석 시인은 “육필이란 몸과 이어진, 또 다른 제 힘의 한 모습”이라고 정의했다. 나태주 시인은 “육필 시집은 한 시인에 대한 철저한 기념물이다. 아뜩한 환희요, 행운을 넘어선 그 무엇이다”라고 말했다. 오랜만에 쓰는 육필 원고에 대한 감회도 새로웠다. 이정록 시인의 감회는 한 편의 시 같다. “컴퓨터로 시를 찍다가, 오랜만에 볼펜으로 또박또박 시를 옮겨보았다. 가운데 손가락 끝, 펜 혹이 부풀어 올랐다. 작가는 펜 혹으로, 구부려 사람들에게 부끄러움을 씻거늘, 그간 손가락이 물러진 것이다.” 정일근 시인은 육필 작업의 고통을 토로했다. “유리 펜도 닳고 잉크도 줄어들고 손끝을 타고 내 정신이 뭉텅뭉텅 빠져나가버린 것 같다.” 육필 예찬론자인 김형영 시인은 평소에도 아무 백지에나 가리지 않고 시를 적는다. “컴퓨터 화면에서 한 번 삭제하고 나면 삭제된 구절을 되살리기란 여간 힘든 게 아니다. 그러나 백지에 쓴 것은 지워도 그 흔적이 남아 있어 언제든지 처음 쓴 구절을 다시 볼 수 있다. 지웠던 구절이 더 나아보였을 때는 잃었던 아들을 찾은 성경 속의 아버지의 마음과 비기고 싶어진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 2012-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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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춘문예 2012]중편소설 ‘숲의 정적’

    눈 내리는 날 숲에 오른 기정은 나무십자가가 있는, 애인의 묘지를 찾는다. 동박새와 황조롱이와 바다사자를 함께 보러간 애인은 배 위에서 뛰어내렸다. 눈 덮인 숲은 깨끗하고, 간결하고, 단조롭다. 눈 벽에 갇힌 듯 안온함을 느끼며 청설모와 꿩을 본다. 청설모가 모형처럼 보이기도 한다. 때론 가짜라도 필요하잖아, 라는 게 모형을 만드는 이유 중의 하나였다. 꿩이 앉았던 낙엽더미 위에는 돌멩이 두 개가 있다. 돌멩이를 새끼라고 여기는 듯했다. 무섭도록 조용한 숲속에서 기정은 신께 다가가는 세 가지를 떠올리며 정말 신께 다가갈 수도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숲에서 내려오자 팀장은 점심시간이 너무 긴 거 아니냐고 타박하며 완이 때문에 학원에 가봐야 한다고 한다. 완이가 빨간 가방 때문에 친구를 패 묵사발로 만들어버렸다며 몹시 우울해한다. 숲으로 가기 전에 떠 놓았던 밀랍몰드의 원형은 다음 날 뽑을 수 있어서 지오라는 구체관절인형 심재를 만든다. 주문 제작이 아니라 기정의 작품이다. ‘성재범 제작소’는 팀장의 이름 때문에 끊이지 않고 주문이 들어오는 편이었으나 주문은 극히 제한적이라 팀장과 기정은 자신의 작품을 하면서 제작소를 꾸려나갔다. 아파트 엘리베이터 안에서 15층에 사는 아주머니를 만난다. 아주머니는 몽롱하고 폐쇄적이고 쿠마리처럼 초경도 하지 않은 채 늙어버린 것 같다. 거실이 따뜻해질 때를 기다리며 소파에서 커피를 마시던 기정은 보석무늬가 일정하게 박혀 있는 벽지를 보며 어머니를 떠올린다. 어머니는 일 년 전 눈이 많이 내리는 날 관광차 전복 사고로 세상을 떴다. 텔레비전 위에는 구겐하임미술관 앞에서 그와 함께 찍은 사진이 걸려 있다. 그를 처음 만난 곳이 모마미술관과 구겐하임미술관이다. 15층 아주머니가 인터폰으로 기정에게 줄 게 있다며 올라오라고 한다. 똑 같은 31평이지만 아주머니의 집이 훨씬 넓게 보이는 것은 벽지나 소파나 커튼이 흰색이고, 별다른 장식장이 없기 때문이다. 기정은 흰색과 너무 넓다는 게 무섭다는 걸 처음으로 느낀다. 아주머니는 오늘이 미국지사로 떠나버린 아들 결혼식인데 가지 않았다고 하면서 공군장교였던 남편이 죽은 이야기와 북해도의 눈 이야기를 한다. 북해도의 눈 속에서 세상과 단절했고, 또 세상과 화해했다고 한다. 기정은 아주머니의 지적인 말투에 속으로 놀란다. 아주머니는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없이 그냥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 것이 가장 무섭다고 했다. 베란다 밖의 움직이지 않는 강이 무섭듯이. 말차와 화과자를 먹던 중 아주머니는 안방으로 가서 선물을 가지고 나온다. 오타루의 공방에서 사온 오르골이다. 풍성한 치마를 입은 여자가 뱅글뱅글 돌자 여자 속에 남자가 숨어 있는 것처럼 여자남자 혼성 이중창이 흘러나왔다. 고맙다는 말에 아주머니는 자신이 이담에 무얼 부탁하면 들어주라고 한다. 기정은 두려움을 느낀다. 택시에서 내린 기정은 성당건물과 공무원연수원 건물 앞과 석유저장소 앞을 지나 샛길로 접어든다. 샛길에서 외국남자와 통역사를 보게 된다. 외국남자는 사제복이나 군복이 어울릴 것 같다. 숲으로 올라가면서 숲 앞면 역할을 하는 커다란 바위를 대리석 묘지 쓰다듬듯 쓰다듬는다. 믿음직스러운 기운과 성스러운 감정을 느낀다. 눈 내리는 숲속은 한 가지 색뿐이라서 더 넓어 보인다. 그래도 넓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혼자 서 있는 고독감 같은 걸 느낄 필요도 없었다. 눈 밑에 무엇이 있는지도 알려고 하지 않는다. 그냥 깨끗하고 아름다운 눈만 보면 되었다. 묘지 주위에는 멧토끼나 멧돼지 발자국이라고 할 수 없는 투박한 발자국이 거칠게 찍혀 있다. 불안해하던 기정은 하늘에 떠 있는 새를 보며 패러글라이딩을 하던 그를 떠올린다. 아홉 살이나 많은 여자와는 절대 결혼시킬 수 없다고 하던 그의 어머니가 패러글라이딩을 하던 그가 땅으로 처박혀 왼쪽 어깨를 크게 다치자 다시 기정을 찾아와 네가 누굴 구원하겠다는 거야? 라고 했다. 왜 구원이라는 말을 할까 하고 기정은 의아해했다. 결혼을 반대하는 이유가 단순히 나이뿐인 줄 아냐고 하자 기정은 그동안 돌쩌귀가 어긋나 닫히지 않던 문이 닫히는 기분을 느꼈다. 닫힌 문 앞에서 버티고 서 있을 만큼 순수하지도, 어리지도 않은 기정은 그에게서 돌아섰다. 숲을 내려오기 전에 깨끗한 눈으로 발자국을 덮어버린다. 제작소로 온 기정은 밀랍인형인 대기업 창업주 손을 채색한다. 손이 얼굴보다 밀랍인형인 게 탄로 날 확률이 높아 푸른 힘줄과 주름을 강조한다. 퇴근 후에 팀장과 술을 한 잔 하러 간다. 술집에는 중년남자가 혼자서 보드카를 마시고 있다. 칵테일로 입술을 축인 뒤 기정은 완이는 어떻게 되었냐고 묻는다. 팀장은 친구와 싸워도 빨간색 가방(도망간 엄마의 숄더백)은 여전히 들고 다닌다고 하며 일요일에 완이가 얻어다 키우는 토끼를 보러 오라고 한다. 완이 엄마는 보험회사에 다니다가 바람이 나서 떠났다. 빨간색 가방만 들고 다니면 엄마가 돌아올 거라고 믿고 있는 완이와 달리 팀장은 완이 엄마와 남자가 탄 에쿠스가 유조차와 정면충돌해 둘 다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고 생각했다. 토끼를 보러간 날, 토끼에게만 정신이 팔려 있는 완이에게서 기정은 고집과 외로움을 엿본다. 팀장은 기정에게 꽃게탕을 끓여주고, 기정의 발이 예쁘다고 한다. 발을 바라보는 팀장의 눈이 불온하게 반짝였다. 밀랍인형인 박경준을 대기업 기념관 안에 설치해주고 나오자 비가 내린다. 팀장은 후배를 만나러 가고 혼자서 미술관으로 갔지만 당분간 휴관을 한다고 한다. 갈 데가 없는 기정은 집으로 간다. 유리탁자 위에 놓인 오르골을 보자 아주머니 생각이 나 1503호로 간다. 어머니가 보고 싶고, 따뜻한 것에 파묻히고 싶어서이다. 아주머니는 죽을상이고, 베란다의 유리문은 활짝 열려 있다. 와인을 마시던 아주머니가 말한다. 내가 전혀 의식하지 못할 때 그냥 손을 뻗어 나를 밀어버리라고. 놀란 기정이 아무한테나 그런 말을 하지 말라고 하자 아주머니는 아무한테나 그런 말을 하는 게 아니라고 한다. 기정은 비밀이 들킨 것만 같다. 아주머니는 아무리 노력해도 내 생활은 바뀌지 않는다, 고 쓴 유서를 보여준다. 안방에는 장롱도 없다. 일을 간단하게 하고 싶어서 없애버렸다는 말에 기정은 얼어버린다. 기정은 쫓기듯 아래층으로 내려온다. 제작소에서는 당분간 일거리가 없어 본격적으로 지오를 만들어나간다. 점심시간에 함께 꽁지공원으로 간 미스 오는 조각가인 애인이 섹스는 하지 않고 상체만 애무해서 분하다고 한다. 헤어지고 싶지만 자신이 그 유희감각을 버리지 못한다고 하자 기정은 아무도 없는 것보다는 나으니까 붙잡아두라고 한다. 일요일에 아주머니는 생일 케이크에 불을 붙여 달라며 기정을 부른다. 햇빛이 내리쬐는 강을 내려다보던 아주머니는 자신은 늘 강과 바다를 항해 중인 것 같으며 가도 가도 보이는 것은 흰 햇빛과 흰 물빛뿐이라고 말한다. 자신에게 주어진 건 자유뿐인 것 같고, 벽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모든 게 너무 넓게 느껴진다고도 말한다. 그건 기정도 마찬가지였다. 넓은 강과 넓은 공터를 오랫동안 보고 있자 갑자기 무한대로 커지는 것 같고, 전혀 공간 감각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러면서 기정을 조롱하는 것 같다. 해봐, 해봐, 못할 것도 없지 않아. 너 역시 이대로 나가면 저 아주머니처럼 될 거야. 네게 누가 있어. 아무도 없잖아. 너의 이십 년 후의 모습이 바로 아주머니야. 너도 누군가에게 부탁할래? 아무것도 의식하지 못할 때 죽여 달라고. 혼자서는 죽지도 못한다고. 그냥 이십 년 후의 너를 미리 없애버린다고 생각하고 밀어버려. 한순간이야, 한순간. 찰나만 지나면 아주머니는 곧 편안해질 거야. 그러면 고독에 떨 필요도 없는 거야. 고독에 떨고 있는 것만큼 추해보이는 것도 없잖아. 아주머니, 추하잖아. 그리고 말이야, 세상에 제일 무서운 게 혼자인 거야. 혼자인 것에서 벗어나게 해줘. 밀어, 밀어버리라니까. 기정은 자신도 모르게 손을 뻗어 아주머니를 밀어버린다. 퍼뜩 정신을 차린 기정은 얼이 반쯤 빠진 아주머니를 소파에 앉혀놓은 뒤 아래층으로 도망쳐온다. 내내 아무 일도 하지 못하다가 팀장을 만나 위로를 받는다. 미스 오는 애인이 작업실에서 다른 여자와 엉켜 있는 것을 봤다며 괴로워한다. 뒤따라 나온 애인이 화난 여자가 뭐냐고 따지자 오필녀 씨, 저번의 그 작품 좋았어요, 라고 했다며 정말 오필리아처럼 웃어젖힌다. 오필리아로 불러주지 않아서 더 화가 났는지도 몰랐다. 스물다섯 살의 미남형 지오가 완성되자 기정은 저번의 일을 사죄도 하고 아주머니를 혼자 있지 않게 할 수 있을 것 같아 1503호로 가져간다. 아주머니에게 지오가 태어난 배경이라든지 성장과정이라든지 지오의 내면기록을 써보라고 한다. 박경준 뒤로는 일거리가 들어오지 않는다. 일감이 없으면 팀장보다 기정이 더 초조해졌다. 미스 오는 아무렇지도 않게 작업실에 다시 간다고 한다. 그날 본 것은 싹 까먹은 모양이다. 아니면 외로움이라는 물건이 1g이라도 더 얹힌 쪽이 관계에서 지는 거니까 미스 오의 시소가 땅 쪽으로 기울었는지도 몰랐다. 며칠 뒤 아주머니가 기정을 부른다. 지오의 내면기록을 쓴 노트를 보여준다. 지오가 되기 전까지, 아주머니의 아들이 되기 전까지의 내면기록이 상세하게 적혀 있다. 그것을 읽어본 기정이 끼어들어 윤색하고, 아주머니와 타협해서 이상훈이라는 한 인물을 창작해낸다. 이상훈의 내면에는 앵무조개의 나선형무늬가 크게 자리 잡고 있다. 그 작업이 끝났을 때 팀장에게서 전화가 온다. 완이의 토끼가 죽어버렸다고 한다. 전화를 끊고 나자 아주머니가 보이지 않는다. 베란다의 블라인드가 딱딱 소리를 내며 흔들리고 있다. 어디 계세요? 하고 기정은 묻는다. 삼월인데도 눈이 내리자 기정은 숲으로 간다. 범죄스릴러물에 쓰일 전신더미 한 구는 팀장이 세밀화 작업 중이라 출근을 하지 않았다. 숲을 오르면서 기정은 이 길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는 예감을 느낀다. 싫고 나쁜 예감일수록 적중률 100%였다. 숲에서 기정은 멧토끼 한 마리를 본다. 그걸 잡아다 완이에게 주고 싶어진다. 완이는 야산에 토끼의 무덤을 만들어주었다. 두 번쯤 토끼무덤에 갔으나 산에 가면 춥고 외롭다며 발길을 끊었다. 팀장이 미국너구리를 사다줄 거라고 했으나 생명 있는 것은 다 자기를 떠나버린다면서 다시 빨간색 가방을 들고 다녔다. 나무십자가가 있는 묘지로 간 기정은 대리석 묘지를 힘껏 끌어안으며 이제 눈은 안 와. 진달래꽃이 피면 다시 올게, 라고 말한다. 거칠고 둔탁한 발소리에 기정은 상체를 들고 소리 나는 쪽을 돌아본다. 언젠가 샛길에서 본 외국남자와 통역사인 청년과 석공이 올라온다. 위쪽이나 옆쪽으로 갈 줄 알았는데 나무십자가가 있는 묘지로 온다. 그래도 기정은 묘지 옆에 쭈그리고 앉아 있다. 통역사가 왜 이 묘지에 있냐고 묻자 기정은 여기는 제 애인 묘지라고 한다. 외국남자가 지도를 들여다보며 절대 그럴 리가 없다고 한다. 묘지를 잘못 알고 있는 것 아닌가 하고 묻자 기정은 아니라고 소리친다. 통역사가 이 묘지는 선교사인 안토니오 공베르 신부가 잠든 곳이고, 네덜란드에서 온 선교사의 유해도 이쪽으로 옮기고 다시 단장할 거라고 한다. 석공처럼 보이는 중년사내가 불쾌하게 바라보자 기정은 돌아선다. 숲을 내려오면서 기정은 돌멩이를 새끼라고 품고 있는 꿩이 자신과 하나도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하며 일 년 전을 떠올린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혼자 남겨진 기정은 눈 쌓인 숲속을 올랐다. 발을 헛디뎌 추락사해도 괜찮을 것 같다며 발길 닿는 대로 걷는 기정의 눈에 나무십자가가 이정표처럼, 표식처럼 시선을 끌었다. 나무십자가 아래 아직 완성이 덜 된 묘지 옆에 앉은 기정은 편안함을 느끼며 즐거운 묘지라는 말을 이해했다. 그 뒤로 숲에 올랐고, 나무십자가를 찾았고, 묘지 옆에 앉았다. 숲을 오른 지 한 달 뒤쯤 너무 조용하고 편안한 것이 두려워진 기정은 그 묘지에 그를 묻고 있었다. 아무것도 없는 것은 견딜 수 없으니까. 다음 날 아주머니는 15층에서 뛰어내렸다. 아주머니를 실은 앰뷸런스가 떠나고 나자 기정은 15층으로 올라간다. 지오를 안고 내려온다. 상류층 할머니가 외로움을 견디지 못해 죽었다는 뉴스를 들은 기정은 벌떡 일어나 소리친다. 나는 아주머니와 말을 한 적도 없다고. 기정은 지오에게로 가 텐션 줄을 끌며 묻는다. 이제 묘지에 누워 있지 말고, 나랑 살래?김영옥}

    • 2011-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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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춘문예 2012]동화 ‘시인 아저씨께 보내는 편지’

    안녕하세요. 저는 광명초등학교 3학년 3반 정희성이에요. 갑자기 편지를 받아서 놀라셨죠? 왜냐면 아저씨는 저를 모르실 테니까요. 하지만 저는 아저씨를 알아요. 아저씨의 시가 우리 학교 교과서에 실려 있거든요. 읽기책 43쪽이에요. 담임선생님은 교과서에 나오는 시를 모두 외우라고 하세요. 그래서 저는 아저씨가 쓴 시도 다 외우고 있어요. 아저씨가 쓴 ‘봄의 계단’은 제가 제일 좋아하는 시예요. 아저씨도 어렸을 때 국어를 좋아했어요? 저는 국어가 제일 좋아요. 다른 과목은 딱딱한 공식이랑 외워야 할 것들밖엔 없는데 국어는 재미있는 이야기도 있고 제가 좋아하는 시도 있거든요. 하지만 시험 점수는 별로예요. 며칠 전에 쪽지시험을 봤는데 세 개나 틀렸어요. 이게 제가 틀린 문제인데요, 한번 보세요. 동시 ‘봄의 계단’의 분위기로 옳은 것을 고르세요.① 초라하다② 슬프다③ 애틋하다④ 불쾌하다⑤ 희망차다 저는 2번을 선택했는데요, 5번 희망차다가 답이래요. 아무리 생각해봐도 왜 2번이 답이 아닌 건지 모르겠어요. 저는 이 시가 슬프다고 생각했거든요. 특히 이 부분이 무척 슬펐어요. 부지런한 새싹 땅 속에서 뽀얀 얼굴 내밀고 있네요 잠에서 갓 깨어난 아기 씨앗 기지개 켜다가 눈물이 찔끔 왜냐면 봄에 싹이 트는데 아기 씨앗은 혼자 늦게 잠에서 깨어났잖아요. 기지개를 켜는 척하면서 그러니까 몰래 울잖아요. 친구들은 다 싹이 트는데 자기만 느리니까요. 이 시의 분위기가 왜 희망차다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어요. 제가 이해할 수 없는 건 이것뿐만이 아니에요. 다음 중 ‘봄의 계단’을 쓴 시인이 생각한 것으로 틀린 것을 고르세요.① 봄은 한 번에 오는 것이 아니라 계단을 밟고 올라가듯 천천히 오는구나!② 봄에는 많은 동물들과 식물들이 부지런히 움직이네.③ 추운 겨울이 지나면 곧 봄이 오니까 모두 힘내!④ 봄이 지나면 언젠가 다시 겨울이 오겠지.⑤ 개구리는 봄이 되면 신나서 폴짝 뛰나봐. 아저씨, 아저씨는 시를 쓸 때 정말 이런 생각을 하면서 썼어요? 그리고 아기씨앗은 정말로 기대에 부풀어 있는 거예요? 슬픈 게 아니고요? 선생님은 아마도 아저씨와 아주 친한 사람이거나 아저씨의 마음을 다 들여다보는 마법사인 게 분명해요. 그렇지 않고서야 아저씨가 생각한 것을 선생님이 알고 이런 문제를 낼 수 있을 리가 없잖아요. 하지만 선생님이 아저씨와 친한 사이일 리는 없고 마법사일 리는 더더욱 없죠! 저는 수업이 끝나고 선생님께 가서 문제가 이상하다고 말을 했어요. 그러자 선생님께서는 제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희성이가 시를 많이 읽어보지 않아서 시를 해석하는 게 어려운 모양이구나.” 하시는 게 아니겠어요? 저는 더 머리가 아파졌어요. 시를 읽는 건 나고 그걸 느끼는 것도 나잖아요. 그런데 내가 느껴야 할 것이 미리 정해져 있다는 건 어쩐지 이상하잖아요. 집에 와서도 하루 종일 기분이 좋지 않았어요. 내 생각이 남들과 다르다고 해서 틀린 건 아니라고 생각했거든요. (아저씨도 다르다와 틀리다의 차이는 아시죠?) 저는 선생님에게 알려주고 싶었어요. 이 시가 누군가에게는 슬플 수도 있다는 것을요! 그래서 저는 그날 밤 열두 시가 넘도록 잠을 자지 않고 책상에 앉아 아주 멋진 계획을 세웠지요. 다음 날 저는 수업이 끝나고 집으로 곧장 가지 않고 교실에 남아 있었어요. 그리고 선생님께 가서 공책을 펼치며 물었어요. “선생님, 이 문제 알려주세요.” 선생님은 고개를 갸웃하시더니 “이건 못 보던 시인데?”하셨어요. 못 본 게 당연했죠! 그건 교과서에 나오는 시가 아니었거든요. “문제집에 나와 있었어요.” 선생님은 고개를 끄덕이시더니 시를 읽었어요. 제목 : 가을 운동회 낙엽이 떨어지는 건 가을이 시작된다는 신호 준비! 땅! 단풍잎 손 주먹 쥐고 누가 누가 먼저 달려가나 누가 누가 먼저 고운 물이 드나 그리고 선생님은 턱을 괴고 문제도 가만히 읽었죠. 시인이 이 시를 쓴 이유로 옳은 것은?① 심심해서② 가을이 깊어가는 것을 알리려고③ 낙엽을 보고 갑자기 생각나서④ 가을 운동회가 시작되어서⑤ 여름이 지나간 것이 아쉬워서 선생님은 잠시 생각하더니 빨간 펜으로 답을 고르면서 이렇게 말했어요. “자, 이 시는 가을이 깊어가는 것을 아주 재미있게 표현했구나. 시인은 가을 낙엽을 운동장의 아이들에 빗대어 표현했어. 정확히는 가을 운동회 날 달리기 시합을 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는 거야. 아이들이 단풍잎 같은 손으로 주먹을 쥐고 달리면 마음에는 어느덧 푸른 물이 드는 거란다. 그렇게 가을은 무르익어 가고 아이들은 성장하는 거겠지? 그래서 답은 2번이 되는 거고. 이해가 되니?” 운동장? 학생? 저는 황당해서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았어요. 저는 선생님을 똑바로 보며 말했어요. “선생님, 틀렸어요!” 선생님이 무슨 뜻이냐는 듯이 나를 쳐다봤어요. “시인은 그런 생각은 안했어요. 그냥 낙엽이 빨리 땅에 닿는 게 달리기 경주하는 것 같다고 느낀 것뿐이에요. 그리고 시인은 가을이 오는 걸 알리려고 이런 시를 쓴 게 아니에요. 낙엽 보다가 생각이 나서 그냥 쓴 거죠!” 선생님은 한숨을 내쉬더니 웃으며 제게 말했어요. “희성아. 그게 아니야. 여기 ‘단풍잎 손 주먹 쥐고’라는 부분을 보렴. 아이들이 작은 손을 움켜쥐는 모습이 그려지지 않니? 제목도 ‘가을 운동회’고 말이야. 시인이 아무런 의도도 없이 시를 썼겠니? 희성이는 아무래도 시를 해석하는 방법을 조금 더 공부해야겠구나.” 저는 허리에 손을 얹었어요. 그리고 선생님께 물었죠. “선생님, 이 시인이 누군지 아세요?” “글쎄, 잘 모르겠는데.” “정희성이에요!” 선생님은 한참 저를 쳐다보시더니 곧 얼굴이 새빨개졌어요.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이요. “이걸 네가 썼단 말이니?” 선생님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어요. 저는 고개를 끄덕였죠. 선생님은 잠시 당황한 듯 했지만 곧 무서운 표정으로 저를 노려보았어요. “너, 지금 선생님을 놀린 거니?” 저는 너무 놀라서 울 뻔했어요. 선생님이 그렇게 화가 난 모습은 정말 처음 봤거든요. 저는 주먹을 꽉 쥐고 이렇게 외쳤어요. “선생님이 낸 문제는 엉터리예요!” 그리고 나도 모르게 엉엉 울어버렸지요. 왜 울었는지는 사실 잘 모르겠어요. 그냥 뭔가 서럽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고 그랬거든요. 저는 한참이나 서서 울었고 선생님은 그동안 아무런 말도 없었어요. 얼마나 울었을까요? 더 이상 눈물도 나오지 않았어요. 나는 어쩐지 민망해서 억지로 울음소리를 내면서 콧물만 훌쩍거렸지요. 저는 선생님이 차라리 나를 때리거나 벌을 세워주었으면 했어요. 가만히 앞에 세워만 두지 말고요. 울음소리 흉내 내기도 지칠 즈음, 선생님은 제게 사탕을 하나 건네며 이제 그만 집에 가라고 했어요. 복도에 나가서 창문으로 살짝 들여다봤더니 선생님은 어두운 표정으로 계속 책상에 앉아 있었어요. 집으로 돌아와서도 저는 자꾸만 선생님이 생각났어요. 내가 너무 심한 장난을 쳐서 선생님이 단단히 화가 난 것이 분명했지요. 선생님이 이제 나를 싫어할 거라고 생각하니 눈물이 났어요. 나는 침대에 누워 월요일이 오지 않기를 빌었어요. 선생님을 다시 보는 게 두려웠거든요. 주말이 지나 학교에 갔을 때, 그러니까, 오늘 말이에요. 선생님은 평소와 같은 모습으로 책상에 앉아 일기장을 검사하고 있었어요. 저는 선생님 눈치를 보면서 우물쭈물했어요. 선생님은 전혀 아무렇지도 않다는 표정이었지요. 마치 그날 일은 아주 없었던 것처럼요. 하지만 아저씨, 바뀐 것이 하나 있었어요. 오늘 본 쪽지시험 말인데요, 거기엔 글쎄 이런 문제가 있지 뭐예요! 이 시의 분위기로 옳은 것을 고르세요.① 초라하다② 슬프다③ 애틋하다④ 불쾌하다⑤ 희망차다⑥ 빈 칸에 자신의 생각을 쓰세요 ( ) 1번부터 5번까지만 있던 보기가 6번까지로 늘어났던 거예요. 제가 어떤 답을 선택했냐고요? 당연히 나만의 답을 선택했지요! 그리고 선생님은 그 문제에 파란 펜으로 동그라미를 그려주었어요. 선생님은 이제 저를 용서한 걸까요? 그러니까 동그라미를 그려주었겠지요? 저는 기분이 좋아졌어요. 그래서 또 시를 쓰고 싶어졌어요. 그런데 아저씨, 제가 쓴 시는 어때요? 이만하면 저도 시인이 될 수 있을까요? 아참, 시인은 돈을 많이 버나요? 엄마가 시인은 가난하다고 했는데. 그리고 시인이 되려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해요? 답장 기다릴게요!이진하}

    • 2011-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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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춘문예 2012]시 당선작 ‘나의 고아원’

    나의 고아원 시 당선작 안 미 옥신발을 놓고 가는 곳. 맡겨진 날로부터 나는 계속 멀어진다. 쭈뼛거리는 게 병이라는 걸 알았다. 해가 바뀌어도 겨울은 지나가지 않고. 집마다 형제가 늘어났다. 손잡이를 돌릴 때 창문은 무섭게도 밖으로 연결되고 있었다. 벽을 밀면 골목이 좁아진다. 그렇게 모든 집을 합쳐서 길을 막으면. 푹푹, 빠지는 도랑을 가지고 싶었다. 빠지지 않는 발이 되고 싶었다. 마른 나무로 동굴을 만들고 손뼉으로 만든 붉은 얼굴들 여러 개의 발을 가진 개 집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말이 이상했다. 집을 나간 개가 너무 많고 그 할머니 집 벽에서는 축축한 냄새가 나. 상자가 많아서 상자 속에서 자고 있으면, 더 많은 상자를 쌓아 올렸다. 쏟아져 내릴 듯이 거울 앞에서 새파란 싹이 나는 감자를 도려냈다. 어깨가 아팠다.}

    • 2011-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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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춘문예 2012]희곡 ‘자전소설’ 당선소감

    왜요? 대체 왜요? 저 어떡해요? 당선 소식을 전해주신 기자님에게 다짜고짜 던진 제 첫 대사였습니다. 보이스피싱인 줄 알았거든요. 과분할 정도로 행복했습니다. 그런데, 초조합니다. 제 앞가림도 제대로 못하는데, 이걸 어찌하나 싶습니다. 잠깐 반짝였다가 소리 소문 없이 지는 별똥별이 될 것 같은 예감이 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캄캄한 암전이 눈앞에 펼쳐진다 하여도, 왠지 굳건히 이겨낼 자신이 있습니다. 생각 없이 살던 제게, 길을 열어주신 조광화 교수님과 이강백 교수님, 그리고 심사위원 선생님들 감사합니다. ‘며칠 전 원수의 죽음보다 너의 소식이 더 충격적이다’라고 단 한 줄로 놀라움의 크기를 표현해 준 백통령. ‘넌 이제 노이로제 걸릴 일만 남았어’라고 악담해준 연모 군. ‘사람 일은 모르는 거잖아’라고 말이 씨가 되게 해준 오모 군. 컴퓨터 잃어버리게 해준 하모 군. 손 잡아준 과순, 안아주던 런던게이, 그래도 난 네 글 재미없다고 말해준 흑인3, 잡스, 유스마일, 정화랑, 빡재, 근이, 허텅, 미취학 아동, 서레기 등 격앙된 목소리로 축하 전화해준 사랑하는 동기 선배님들. 일방적으로 연락 끊어버린 내게 근근이 생존 소식을 전해주는, 대단한 인격을 소유한 옛 친구들. 그리고 온몸이 만신창이임에도 불구하고 얼싸안고 기뻐해준 친구까지도. ‘감사합니다’라는 단 한마디로 허세 섞인 짤막한 당선소감을 쓰고 싶었지만, 태생적으로 그런 인간은 못 되나 봅니다. 가족들. 이제 어디 가서, 나랑 피 섞였다는 거 쪽팔리지 않게 해줄게요. 사랑해요. △1991년 경북 김천 출생 △서울예대 극작과 1학년}

    • 2011-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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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춘문예 2012]중편소설 ‘숲의 정적’ 당선소감

    어릴 때 저는 시골 할머니 집으로 가는 걸 좋아했습니다. 그곳에 가면 산과 저수지와 들판과 꽃과 나무가 있었으니까요. 성인이 되어 생이 힘들어질 때, 그때 본 자연이 떠오르곤 했습니다. 거짓말처럼 제가 극단으로 치닫지 못하게 붙잡는 것도 자연이었습니다. 소설을 쓰고 싶지만 잘 되지 않아 포기하려고 할 때마다 마지막에 꼭 떠오른 것도 자연이었습니다. 그걸 소설로 써보고 싶은 욕구를 끝내 버릴 수 없었습니다. 원하는 대로 소설을 쓰게 되었지만 문학의 길은 너무 멀리 있었습니다. 이 길이 정말 내 길일까, 돌아설 용기가 없어 버티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의심도 많이 했습니다. 그러나 제 삶을 믿고, 제 자신을 믿고 그냥 쓸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제게 누군가 등불을 밝혀주는 것 같습니다. 가던 길을 계속 가겠습니다. 새 글을 썼다고 하면 좋아하고 최선을 다해 읽어주는 동생 숙이, 늘 제 작품을 읽어주고 문학이야기를 하는 홍영숙 씨, 자신의 일처럼 기뻐해준 정아 씨, 제게 행운을 가져다준 14라는 숫자에 고마움을 전합니다. 소설을 쓰겠다는 저를 유일하게 이해해주셨던 엄마가 계셔서 이 자리까지 왔습니다. 부족한 작품에 따뜻한 시선을 보내주시고 저의 어깨를 두드려주신 심사위원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동아일보사 관계자 분들께도 감사드립니다. △1965 경남 사천 출생 △경상대 농화학과 졸업 △중앙대 예술대학원 문예창작 전문가과정 수료 △신라문학대상 소설 부문 수상}

    • 2011-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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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춘문예 2012]희곡 ‘자전소설’ 심사평

    세상이 어둡다. 올해 희곡 분야 지원작은 대부분 전망 없는 세상에 대한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 소시민적 일상의 삶을 그린 작품이 압도적으로 많았고, 그런 세상살이에 대한 알레고리나 탈현실의 판타지도 제법 많았다. 작품들의 전체적인 수준은 나쁘지 않았지만 120여 편의 후보작이 비슷한 주제의식이나 패턴화한 스타일을 공유해 모범답안에서 벗어난 문제작을 찾기 힘들었다. 그런 점에서 당선작인 ‘자전소설’은 여타의 작품과 구별되는 반짝이는 감각과 신선함이 돋보였다. 작가의 창작 행위를 극화한 이 작품은 현실과 허구의 삼투과정을 감각적으로 구축했고, 관념적인 내용임에도 계속해서 다음 장면을 기대하게끔 만드는 밀도와 매력이 있었다. 작품이 가진 문학적 섬세함이 대중과 소통해야 하는 연극적 언어로 전환될 수 있을지 심사 과정에서 다소의 논쟁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조율 과정은 본질적 결함이라기보다는 희곡작가라면 누구나 배우고 치러야 할 통과의례 같은 것이라고도 볼 수 있어, ‘자전소설’을 당선작으로 뽑는 데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그 외 후보작으로 1990년대 운동권과 현재 취업난에 직면한 20대 청춘의 우울한 자화상을 재치 있는 일상 속에 표현한 ‘프로작, 언니’가 주목받았고, ‘아이돌’과 ‘열어주세요’도 아직은 거칠지만 눈여겨볼 연극성을 가진 작품으로 함께 거론됐다.박근형 극작가 연출가, 김명화 극작가 연극평론가}

    • 2011-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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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춘문예 2012]시나리오 ‘금루곡’ 당선소감

    기대를 접으려던 즈음 날아든 소식은 입고 싶어 하면서 보기만 했던 옷과도 같았습니다. 새로 입은 옷 하얀 깃에 얼룩이라도 묻을까 조심스럽지만 그마저도 기분 좋은 설렘입니다. 뜻밖의 선물에 가당찮게 우쭐하려는 어깨를 눌러 내립니다. 당일특급으로 원고 보내던 날, 우편 접수하던 여직원에겐 살짝 굳은 표정이 읽혔을지 모릅니다. 어디 두었는지 기억나지 않는 우편 영수증을 찾아야겠습니다. 어설픈 첫 습작을 쓸 때 들고 다녔던, 이제는 수명을 다한 노트북 사이에 끼워 놓고 가끔씩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시나리오는 설계도와도 같다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설계도의 그림대로 건축물이 올라가듯, 지면에 고정되어 있는 4만7000여 개의 글자들이 빛을 타고 움직이고 공기를 통해 울려나오는 날을 상상해 봅니다. 막연한 기대에는 초조함이 따르지 않아 좋습니다. 새로 쓰는 글이 그 이전 것보다는 늘 조금이라도 깊어지고 나아진 결과물이기를 바랍니다. 자식이 어떤 결정을 하든 그 뜻을 존중해주신 부모님께, 나이 많고 적음에 상관없이 좋은 인연을 맺은 친구들에게, 분수 모르고 건방 떠는 제자를 포용해주신 선생님들께 다할 수 없는 감사를 짧은 글에 실어 전합니다. △1969년 서울 출생 △캐나다 에밀리카 예술디자인대 졸업(커뮤니케이션 디자인 전공) △동국대 대학원 국문학과 석사과정}

    • 2011-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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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춘문예 2012]문화평론 심사평

    아쉽게도 이번 동아일보 신춘문예 평론 부문에서는 당선작을 내지 못했다. 응모작 수가 적었던 탓이 컸지만, 솔직히 말하면 응모작들의 수준이 우려할 정도로 기대 이하였다는 사실 또한 무시할 수 없는 이유이다. 좋은 문학평론은 다루고 있는 작가나 작품의 문학적 자리를 잡아주고 그에 의미를 부여해야 한다. 하나의 좋은 문학작품은 그 자체로만 유의미한 게 아니라, 동시대 다른 작품들과의 관계 속에서 그리고 앞 세대 작품들과의 연관성 속에서 가치를 발한다. 비록 그것이 단절과 분리의 제스처를 취해도 말이다. 그러나 올해 대다수 응모작은 작품의 문학적 맥락들을 짚어내지 못한 채 그저 자신들이 알고 있는 몇 가지 이론을 성급하게 덮어씌우거나 상식적이고 평이한 수준의 작품이해에만 그치고 있어 많은 아쉬움을 남겼다. 또한 이론적 개념어들을 정확한 이해 없이 마구 남발할 뿐만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작품에 대해 새롭게 발견한 내용은 하나도 없었다. 문학평론이란 겉보기에 그럴듯하고 화려한 말들을 나열하는 현학적 자기과시의 장르가 아니다. 소박하더라도 자기만의 시선과 통찰력으로 그 작품의 가치와 의미를 짚어주고, 나아가 그 작품이 던지는 문학적 질문을 현실사회의 맥락 속에서 재구성해야 한다. 당선권에 올려놓고 논의한 작품이 없었기에 개별 논의는 생략하도록 한다. 좋은 문학평론은 결국 한국문학에 대한 애정(어린 채찍질)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아쉽지만 응모자 모두 더 열심히 읽고 더 열심히 쓰는, 말 그대로의 문학적 실천을 통해 내년에는 더 좋은 글로 다시 만나기를 바란다.권성우 문학평론가, 심진경 문학평론가}

    • 2011-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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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춘문예 2012]중편소설 ‘숲의 정적’ 심사평

    본선 진출작 여섯 편 중 세 편을 눈여겨보았다. 떠난 애인의 아이를 키우며 미혼모로 살아가는 ‘거미집’의 화자는, 내연의 연인과 동반자살한 아버지를 기억한다. 남편의 외도로 애정 없이 사는, 어머니의 운명을 닮은 위층 여자를 알게 된다. 어디로 눈을 돌려도 삶은 불행과 갈등으로 미만해 있을 뿐이지만 그 자체가 자신의 존재를 일깨우는 성찰의 씨앗이라는 점을 환기한다. 하지만 그 지점에 도달하기 위해 소설 스스로 마련한 저 확연한 도식은 어떤가. 화자를 조명디자이너로 하여 존재 간의 관계를 거미집에 비유해 가는 멋진 환치가 끝내 무색해지고 만다. 내심 ‘이거다!’ 하며 읽을 만큼 ‘커버걸’의 흡입력은 대단하다. 문장이며 진행 솜씨가 단단한 데다 매력적으로 차갑기까지 하다. 눈을 떼지 못하게 한다. 다만 시작 후 3분의 1까지만 그러하다. 아내의 죽음 뒤로는 모든 게 혼미하다. ‘숲의 정적’에서는 이웃의 외로운 여인이 ‘아무리 노력해도 내 생활은 바뀌지 않는다’는 유서를 남기고 아파트에서 투신한다. 그녀가 얻으려 했던 건 외롭지 않은 생활, 즉 진짜 삶이다. 구체관절인형을 만드는 내력, 눈 내리는 날 숲에 올라 무덤을 찾는 사정, 엄마에게 버림 받은 완이가 눈에 밟히는 까닭들이, 결코 쉽지 않으나 명쾌한 대답에 이르는 절묘한 서사를 이룬다. 당선되었으니 많이 쓰기 바란다. 기본기를 다지고 지키느라 머뭇거려 왔다면 이제 훌훌 벗어던지고 앞으로 나아가길. 조남현 문학평론가, 구효서 소설가}

    • 2011-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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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춘문예 2012]시 ‘나의 고아원’,‘식탁에서’ 당선소감

    나를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더욱 완강하게 나를 붙잡고 있었다. 사실은 나와 멀어지고 싶지 않다는 것을, 도망치면서 알게 되었다. 그 힘으로 시를 쓰게 되었다. 내 언어의 시작이 되어주신 아버지, 어머니께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부모님의 사랑을 시를 쓰면서 조금씩 알게 되었다. 나의 오해들을 변화시킬 수 있었다. 내가 좀 더 따뜻한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이제는 부모님을 따뜻하게 안아드리고 싶다. 나 자신을 좀 더 사랑할 수 있게 된 것은, 남편 정현 덕분이다. 내가 의지하는 단 한 명의 사람. 말로 다 할 수 없게 고맙고 미안하다. 힘껏 미워하고, 힘껏 사랑하고, 함께 울고, 웃어주는 친구가 있다는 것은 정말 감사한 일이다. 나의 벗, 사랑과 버들에게, 나를 믿어주는 은정에게, 항상 지지해주고 격려해주는 정숙 언니에게, 곁을 지켜주는 슬기에게, 나보다 나의 잘됨을 더욱 기뻐하는 진희 언니에게, 부케처럼, 바통을 넘긴다. 나은아. 내 옆에 있어 준 이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그리고 이원 선생님. 선생님의 문학에 대한 마음이 나를 더욱 간절하게 했다. 깊고 단단하게, 오래도록 좋은 시를 쓰는 것으로 보답하고 싶은 마음이다. 많은 가르침을 주셨던 명지대 교수님들과 부족한 나에게 시인이라는 이름을 달아 준 심사위원 선생님들께도 감사드린다. 지레 겁을 먹고 도망치지는 않아야겠다고 다짐한다. 시 앞에서 좀 더 용기 있는 사람이 될 것이다. 두려움을 뚫고 나가는, 무서운 손으로. △1984년 경기 안성 출생 △명지대 문예창작학과 졸업 △명지대 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석사과정}

    • 2011-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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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춘문예 2012]그들, 작가인생 징검다리에 서다

    태어나 처음 쓴 희곡 작품으로 당선의 영광을 안은 대학교 1학년생, 20년 동안 미용실을 운영하며 손님이 없는 틈을 타 습작을 해온 미용사, 7년 동안 단편소설로 신춘문예에 지원하다 중편으로 바꿔 지원한 첫해에 당선된 작가…. 201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자들의 당선 뒷이야기를 들으면 그 자체가 한 편의 소설 같다. 이번 신춘문예 지원자 2426명 가운데 당선의 영광을 차지한 사람은 단 8명. 시, 단편소설 등 총 9개 부문에서 경합을 벌였지만 아쉽게도 문학평론 부문은 당선자를 내지 못했다. 기념촬영을 위해 12월 23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 동아미디어센터를 찾은 당선자들은 아직도 당선의 흥분이 가라앉지 않은 모습이었다. 공교롭게도 이번 당선자들의 나이는 20대 4명, 40대 4명으로 양분됐다. ○ 느닷없는 당선 통보, “장난 전화인 줄 알았다” 희곡 당선자인 신비원 씨(23)의 당선작은 기말고사 과제였다. 서울예대 극작과 1학년인 신 씨는 ‘희곡 작품 하나를 신춘문예에 투고하고 택배 영수증을 제출하라’는 조광화 교수의 엄명에 부랴부랴 3주 만에 초고를 탈고했다. 하지만 일이 생겼다. 원고가 들어 있던 노트북을 분실한 것. PC방에 틀어박혀 일주일여 만에 다시 원고를 완성해 간신히 신춘문예에 지원할 수 있었다. 물론 난생처음 쓴 희곡작품이다. 학교 앞 PC방에서 대학 동기들과 카트라이더를 하다 당선 통보를 받은 신 씨의 첫마디는 “나 어떡해∼. 진짜 동아일보 맞아요?”였다. 같이 게임하던 친구들의 반응은 “이럴 수가!!” 신 씨는 “글 쓰는 것을 좋아해 드라마 대본, 단편 소설, 시나리오 등을 습작하기는 했지만 제대로 발표한 것이 없었다. 아직도 꿈결 속에 있는 것 같다”며 웃었다. 중앙대 문예창작과 4학년인 동화 당선자 이진하 씨(24)는 신춘문예 당선이라는 졸업 선물을 받게 됐다. 지난해 12월 대산대학문학상 동화 부문에 당선된 그는 걸출한 수상 경력을 안고 사회에 나서게 됐다. “엄마와 칼국수를 먹다가 당선 전화를 받았어요. 깜짝 놀라 젓가락을 내려놓았는데 손이 덜덜 떨리더군요. 졸업 전에 등단이 돼서 기쁘지만 부담도 돼요. 만족하지 않고 계속 발전해 나가는 작가가 되고 싶습니다.” 시 당선자인 안미옥 씨(28)는 올해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지원하기 전 서류봉투 10개를 샀다. ‘봉투를 다 사용하기 전에 꼭 등단해야 한다’고 다짐했던 것. 한꺼번에 산 봉투가 무색할 정도로 ‘작심하고 지원한’ 첫해에 당선됐다. 고등학교 때부터 시를 써온 그는 명지대 문예창작과를 거쳐 명지대 대학원 문예창작과 석사 과정을 밟고 있다. “며칠째 낮과 밤이 뒤바뀐 생활을 하다 잠결에 전화를 받았어요. 꿈속인 것 같아 처음엔 덤덤했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심장이 막 뛰었죠. 제대로 준비해 신춘문예에 응모한 것은 처음인데 매우 기뻤습니다. 상황에 휘둘리지 않고 깊게, 꾸준하게 시를 쓰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영남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소설을 쓰고 싶어서’ 서울예대 문예창작과에 다시 입학해 졸업한 김혜진 씨(29)는 단편소설에 당선됐다. 소설 쓰는 게 생각보다 너무 괴로워서 고민도 많이 했다는 김 씨는 통보를 받고 ‘아, 이제는 어쩌지’ 하는 막연한 걱정부터 들었다고 했다. “박기동 선생님(서울예대 교수)께서 소설 안에서 인물들이 놀게 하라고 하셨는데 그게 가장 어려웠습니다. 소설과 소설 속 인물, 소설을 쓰는 저를 아주 많이 좋아하고 싶고, 성실하게 쓰는 작가가 되고 싶습니다.” 시조 당선자인 황외순 씨(44)는 지난해 말에 운이 없었다. 10여 년간 경북 경주시 외동읍에서 운영하던 미용실인 ‘내가 잘 가는 미용실’이 도시 재정비 사업으로 도로가 나면서 지난해 11월 철거됐다. 당선 통보를 받기 몇 시간 전에는 집안에 작은 화재가 났다. “안 좋은 일들이 연달아 생긴 가운데 당선 통보를 받아 더 기뻤어요.” 미용 경력 20년인 황 씨는 손님이 없는 틈틈이 미용실 한편에서 습작을 했다. 경주문예대에서 1년간 문학 기초를 닦은 것이 전부. “미용실 일을 하면서 자리를 비우기 힘들어 취미 삼아 시를 쓰기 시작한 게 등단까지 이어졌다. 즐기다 보니 여기까지 온 것 같다. 일상과 동떨어지지 않은 주변 이야기, 그 속에 산재해 있는 따뜻함을 시로 풀어내고 싶다”며 환하게 웃었다. 황 씨는 부산일보 신춘문예 시조 부문에도 당선돼 2관왕에 올랐다. 김영옥 씨(47)는 중편소설 당선으로 재등단하게 됐다. 4년 전 한 지역 문예지를 통해 등단했지만 청탁은 1년에 한 번 받기도 힘들었다. 다시 중앙일간지 신춘문예를 노크했지만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 단편만 쓰던 김 씨는 첫 중편에 도전했고 이번에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슬픔을 가진 사람들이 내 글을 읽고 단 한 줄이라도 용기를 얻는 작품을 쓰고 싶습니다.” 장르를 넘나들다 작가의 길을 걷게 된 당선자들도 있다. 영화평론 당선자인 김정(본명 김혜란·46) 씨는 서울대 동양화과, 서강대 대학원 영상학 석사를 거쳐 연세대 대학원 영상예술학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미술과 영상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겸손하게’ 풀어내는 솜씨에 심사위원으로부터 “당장 평론계로 나와도 손색없다”는 극찬을 받았다. 김 씨는 “창작과 비평을 겸해온 일련의 군단(누벨바그 등)으로부터 깊은 감흥을 받아 많은 습작을 하게 됐습니다. 앞으로 치열하고, 사려 깊고, 아름다운 글을 쓰고 싶습니다”라고 포부를 밝혔다. 캐나다 유학 때 디자인을 전공하고 현지에서 애니메이터로 일했던 전호성 씨(43)는 시나리오에 당선됐다. 영화를 만들었던 그는 자연스레 시나리오에 관심을 갖게 됐고, 혼자 간직하던 글을 세상에 내보내고 싶다는 강렬한 욕망이 생겼던 것. 귀국해 동국대 대학원 국어국문학과에 들어간 그는 시나리오와 소설 창작을 병행하고 있다. “남의 일로만 여겨졌던 게 내게도 일어나는구나 싶었어요. 사람과 사람의 관계, 그 이면에 있는 것들에 관한, 울림 있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 2011-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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