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문학상 거듭난 ‘제2회 박경리 문학상’ 최종 후보 4인 릴레이 소개]<1>러 여류 문인 류드밀라 울리츠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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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8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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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가족과 여성성 복원시키다

《 한국의 ‘토지’가 세계를 품는다. 토지’의 작가 박경리 선생(1926∼2008)의 문학 정신과 업적을 기려 지난해 제정된 ‘박경리 문학상’이 올해 수상 문호를 세계 문인들에게 넓혔다.지난해 5월 구성된 제2회 박경리문학상 심사위원회는 그동안 각계 추천을 받아국내외 문인들의 작품을 검토했고, 최종 후보를 압축했다.

박경리 문학상은 개별 작품이 아닌 작가에게 주는 상이다. 이 때문에 심사위원들은 작품성뿐 아니라 작가의 인성이나 행적도 주요 심사 대상으로 삼았다. 지난해에는 ‘광장’의 작가 최인훈이 초대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수상자에게는 국내 문학상 최고액인 1억5000만 원이 수여된다. 이 상은 재단법인 토지문화재단과 동아일보가 주최하고 강원도와 원주시, 협성문화재단이 후원한다. 국내 최초의 세계문학상으로 거듭난 제2회 박경리 문학상 수상자는 다음 달 말 발표될 예정이다.

시상식은 ‘박경리 문학제’ 기간인 10월 27일 오후 3시 강원 원주시 무실동 백운아트홀에서 열린다. 최종심에 오른 후보들 가운데 첫 번째로 러시아의 여류 작가 류드밀라 울리츠카야(69)를 소개한다. 울리츠카야는 32개국에 작품이 번역될 정도로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졌지만 국내에선 아직 단행본이 나오지 않아 낯선 작가다.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김진영 연세대 노어노문학과 교수가 해설을 도왔다. 》

현대 러시아 문학을 이끄는 작가로 평가받는 소설가 류드밀라 울리츠카야(69)가 제2회 박경리 문학상 최종심에 올랐다. 그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정적으로 지목받고 있는 ‘석유왕’ 미하일 호도르콥스키를 공개 지지하는 등 권력에 굴복하지 않는 작가적 양심을 지켜왔다. 위키디피아 홈페이지
현대 러시아 문학을 이끄는 작가로 평가받는 소설가 류드밀라 울리츠카야(69)가 제2회 박경리 문학상 최종심에 올랐다. 그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정적으로 지목받고 있는 ‘석유왕’ 미하일 호도르콥스키를 공개 지지하는 등 권력에 굴복하지 않는 작가적 양심을 지켜왔다. 위키디피아 홈페이지
개혁을 뜻하는 ‘페레스트로이카’ 정책이 1985년 시행된 이후 러시아 문학은 거대 담론의 소멸과 상업화의 위기를 맞는다. 자본주의 제도 도입의 당연한 결과이지만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원한다”는 도스토옙스키의 명제로 문학과 예술의 존재 이유를 설명해 왔던 러시아로서는 불편한 변화였다.

울리츠카야는 현대 러시아 문학의 희망으로 꼽힌다. 일상에 대한 세밀한 관찰, 현대인들에 대한 애정과 연민, 풍자와 익살로 작품성과 대중성을 함께 잡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매년 러시아 권위 문학상의 단골 후보이기도 하다. 러시아에서는 페레스트로이카 이후 여성 작가들의 활약이 특히 두드러졌는데, 울리츠카야는 그 선두에 섰다.

울리츠카야는 1943년 2월 23일 러시아 중부에 위치한 바슈키라야에서 태어났지만 곧 모스크바로 이주해 성장했다. 아버지는 농기계 전문 기술자였으며 어머니는 생물학자였다. 울리츠카야는 모스크바 국립대에서 생물학을 전공하고 유전공학 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일하기도 했으나 1970년 돌연 해고된다. 국가가 금지하고 있는 ‘불온서적’을 갖고 있다가 적발됐기 때문이다. 이 사건은 그의 인생을 바꿔놓는다. “더이상 정부 기관에서 일하지 않겠다”고 다짐한 그는 1979∼1982년 ‘유럽 실내음악극장’의 문예감독으로 일한다. 이 시기에 그는 어린이 희극, 인형극, 라디오 방송 대본, 희곡 평론 등을 썼다. ‘나는 현대 러시아 작가다’(경희대학교출판문화원·2012년)에서 그는 자신의 어린 시절을 다음과 같이 회상했다.

“나는 독서광이라 할 만한 꼬마였다. 나의 친할아버지, 그리고 작은할아버지는 평생을 한 아파트에서 함께 살았고, 그들은 엄청난 양의 책을 소유하고 있었다. 책 대부분은 혁명 전에 출간된 작품들이었다. 그때 나는 세르반테스, 오 헨리, 파스테르나크, 나보코프 등의 작품에 심취해 있었다.”

故 박경리 선생
故 박경리 선생
울리츠카야는 1983년 첫 단편소설 ‘100개의 단추’를 발표했지만 주목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1992년 러시아의 저명한 문예지 ‘노보이 미르’(신세계)에 실린 중편 ‘소네치카’가 주목을 받으며 화려하게 문단에 등장했다. 이 작품은 ‘소네치카’(‘소냐’의 애칭)란 이름의 여성을 중심으로 소비에트 러시아에 대한 생활사적인 증언을 펼쳤고, 한없는 인내와 관용을 미덕으로 하는 러시아 여성상을 보였다. 이 작품은 러시아 최고 문학상으로 꼽히는 ‘러시아 부커상’ 최종 후보에 올랐고 이탈리아 주세페 아체르비상, 프랑스 메디치상을 받았다. 울리츠카야는 2001년 장편 ‘쿠코츠키의 경우’로 ‘러시아 부커상’을 여성 작가 최초로 수상했고, 2006년 ‘번역가 다니엘 슈타인’으로 ‘러시아 대작상’을 받았다. ‘번역가 다이엘 슈타인’이 100만 부를 넘기는 등 상업적 성공도 거뒀다.

울리츠카야의 작품에 나타나는 대주제로는 가족과 여성성, 관용과 희생의 휴머니즘, 제도권 권력으로부터의 자유를 꼽을 수 있다. 그는 자신이 천착하는 주제인 ‘가족의 복원’에 대해 이런 말을 남기기도 했다. “인간의 성장은 주로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이뤄진다. 소비에트 시대에 그와 같은 가족 개념은 붕괴되었고, 가정의 일상은 국가적 이념에 종속되어야 했다. 내 소설은 바로 우리가 잃어버린 가족의 의미를 찾기 위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내 소설은) 가족과 가정에 대한 나의 진혼곡이라 할 수 있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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