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21일 오후 청와대 사랑채 측면 인도에 검은색 그늘막이 들어섰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 산하 투쟁사업장공동투쟁위원회(공투위)가 집회용으로 설치한 것이다. 이곳은 ‘청와대 100m 앞’. 촛불집회 당시 주최 측이 이곳까지 행진하려다 경찰이 불허한 곳이다. 22일 오전 종로구청은 시민 불편을 초래한다며 이를 철거했다. 이 과정에서 양측은 몸싸움도 벌였다. 하지만 공투위는 이날 종로구청을 방문해 그늘막을 돌려받았다. 청와대 100m 앞에 다시 설치하겠다는 것이다. ‘그늘막 투쟁’은 요즘 민노총 등 노동계의 위세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21일 세종문화회관 옆에서 열린 기자회견장에선 “촛불투쟁의 수혜를 입어 당선된 문재인에게 요구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는 발언이 나왔다. 요구사항은 최저임금 1만 원 관철. 이날 건설노조는 이례적으로 평일 출근시간대 거리행진을 하면서 “서울 교통을 마비시키겠다”고 소리 높였다. 민노총 지도부의 언사는 더욱 거침없다. 최종진 민노총 위원장 직무대행은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70만∼80만 조직을 갖춘 민노총 없이 어떻게 촛불혁명이 이뤄질 수 있었겠나”고 말했다. 현직 대통령을 탄핵시킨 촛불집회의 성공 배경에 노동계 기여가 없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연인원 1700만 명이 만들어 낸 촛불의 힘을 과연 노동계 조직력만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최근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이현우 교수 등이 진행한 촛불집회 참가자 분석은 이를 잘 설명해준다. 지난해 11월 26일 5차 촛불집회에 참가한 2058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의 80%는 ‘뉴스를 접하고 스스로 판단해 참가했다’고 답했다. 촛불의 주체는 평범한 시민이라는 사실이다. 촛불을 계승한 주역이라며 30일 사회적 총파업을 예고한 민노총에 진짜 촛불의 주인들은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촛불집회에 10회 이상 참여했다는 대학생 김모 씨(25·여)는 “민노총은 공식적으로 정의당·민중연합당을 지지한다고 했다가 이제 와서 무슨 촛불 청구서 타령이냐”고 반문했다. 21일 건설노조 거리행진 현장에서 시민들은 “평범한 사람들의 출근길을 가로막는 이기적인 사람들”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달 말까지 노동계가 주축이 된 대규모 집회가 이어질 예정이다. 최근 노동계 분위기를 지켜본 이들은 집회 규모나 양상에 대한 우려가 크다. 만약 노동계가 계속해서 청구서를 들이밀고 떼쓰기를 그치지 않으면 ‘촛불 민심’이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 촛불의 주인은 국민이기 때문이다. 김배중·사회부 wanted@donga.com}

노동계가 문재인 대통령에게 ‘촛불 특혜’의 대가를 노골적으로 요구하고 나섰다. 장외집회 규모를 늘리고 수위를 높이면서 압박하고 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은 21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최저임금 만원 비정규직 철폐 만원공동행동’과 ‘6·30 사회적 총파업’ 기자회견을 가졌다. 이상진 민노총 부위원장은 “촛불 수혜를 가장 많이 본 문재인 정부가 출범했다”며 “(최저임금 1만 원, 비정규직 철폐 등이) 촛불 혁명 정신을 올곧게 계승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총파업에 동참하는 노동자연대학생그룹 관계자는 “문 대통령은 촛불 특혜로 당선됐다”며 “노동자들은 문 대통령에게 요구할 권리가 있다”고 외쳤다.○ 노숙 집회 후 도로 행진01:10 광장서 웃통 벗고 21일 새벽 서울 종로구 청계광장은 거대한 ‘술판’으로 바뀌었다. 민노총 산하 건설노동조합원 2000여 명은 ‘건설현장 안전보장’ 등을 요구하며 광화문 일대에서 집회와 행진을 마치고 청계광장에 모였다. 이들은 은색 돗자리를 깔고 노숙 투쟁에 돌입했다. 얼마 되지 않아 여기저기서 맥주와 소주 막걸리 잔이 오갔다. 술자리가 길어지면서 곳곳에서 난장판이 벌어졌다. 술에 취해 얼굴이 벌건 노조원끼리 서로 욕하며 드잡이를 벌이기도 했다. 경찰이 이동식 화장실을 마련했지만 일부는 청계광장 주변 곳곳에서 노상방뇨를 했다. 한 커피전문점 앞에서는 악취가 진동했다. 건물마다 노조원과 경비원들의 실랑이가 벌어졌다. 중국인 관광객 마모 씨(27·여)는 “갑자기 길에서 바지를 내리고 소변을 보는 사람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오전 1시경 비가 내리고 나서야 술판이 잦아들었다. 오전 8시 반경 8000여 명으로 늘어난 노조원들은 세종문화회관 옆 세종로공원에 모여 행진을 시작했다. 출근시간대 3개 차로를 이용해 세종대로 사거리와 종각 내자동 사거리를 거쳐 세종로공원으로 2.8km를 2시간가량 걷는 통에 극심한 교통 정체가 빚어졌다. 건설노조원들은 종로구 신문로 대우건설 본사 앞에서 “서울시 교통을 마비시키겠다. 책임은 너희(대우건설)가 질 것이다”라고 외쳤다. 참다 못한 일부 시민은 항의하기도 했다. 한 50대 여성은 노조원들을 향해 “종로1가에서 내려 20분 넘게 걸어왔다. 왜 출근시간에 집회를 하느냐”고 항의했다. 버스에 탄 일부 시민은 창문을 열고 소리치고 운전자들은 차량 경적을 울렸다. 그러나 노조원들은 사과는커녕 “우…” 하고 야유를 하거나 엄지손가락을 아래로 흔들었다.○ ‘촛불 대가’ 요구하며 거세지는 집회06:30 대자로 드러눕고 앞으로 ‘촛불 민심 계승’을 주장하는 집회가 줄줄이 열릴 예정이다. 집회 방식과 강도는 갈수록 세질 것으로 보인다. 민노총은 24일 사드한국배치저지전국행동과 함께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사드 반대 집회를 연다. 참가 규모는 약 6000명이다. 전국행동은 21일 기자회견을 열고 “문재인 정부는 1700만 시민들이 거리에 나서 이룩한 촛불혁명으로 탄생했다. 1700만 촛불은 사드 한국 배치를 시급히 청산해야 할 적폐로 규정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서울시청 앞에서 집회를 열고 주한 미국대사관까지 행진해 대사관을 에워싸는 띠잇기 행진을 벌일 계획이다. 일단 경찰은 제한 통고를 했지만 주최 측은 즉각 행정금지 통고 집행 정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결과는 22일 오후에 내려진다. 24일에는 철도노조의 상경 집회도 열린다. 30일에는 한상균 민노총 위원장이 옥중서신을 통해 ‘칭기즈칸의 속도전’을 강조한 총파업이 예정돼 있다. 노동계의 요구 수위가 높아지면서 과거처럼 불법 집회로 변질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된다. 서울 도심에서 이례적으로 출근길 도로 행진이 이뤄진 것을 들어 경찰이 지나치게 소극적으로 대응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경찰 관계자는 “집회 시위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고 살수차와 차벽을 배치하지 않기로 했지만 대규모 행진으로 시민에게 불편을 주는 행위 등에 어떻게 대응할지 고민이다”라고 밝혔다.김배중 wanted@donga.com·김예윤 기자}

현 정부가 노동계와의 교섭에 나서고 있는 가운데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 사회적 총파업을 추진해 논란이 일고 있다. 민노총은 28일부터 다음 달 8일을 ‘사회적 총파업 주간’으로 선언하고 30일 서울에서 수만 명이 참여하는 집회를 벌이겠다고 밝혔다. 민노총이 앞세운 사회적 총파업이란 아르바이트생 등 노조로 조직되지 않은 비정규직, 청년, 특수고용직, 하청업체 근로자들이 정부와 기업을 상대로 조직적으로 처우 개선을 요구하고, 민노총이 이를 지원하는 형태다. 복역 중인 한상균 위원장은 민노총 홈페이지에 게재한 옥중서신을 통해 사회적 총파업을 독려하고 나섰다. 그는 “정경유착의 공범 재벌, 개혁의 대상 권력기관과 기득권 집단이 코너에 몰려 있는 지금이야말로 칭기즈칸의 속도전으로 개혁을 밀어붙일 적기”라며 “문재인 정부는 기득권 세력의 눈치를 보지 말고 책임 있는 조치를 하라는 것이 6·30 사회적 총파업의 요구이고 구호”라고 밝혔다. 또 “일부의 우려처럼 새 정부의 발목을 잡는 것이 아니다”라며 “문재인 정부의 개혁 추진을 위한 강력한 동력”이라고 썼다. 민노총 산하 건설노조원 6000여 명은 20일 오후 서울 세종로공원에서 집회를 연 뒤 청계광장으로 이동해 1박 2일 집회를 시작했고, 24일 서울에서 열리는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반대 집회에 참여할 예정이다. 이 집회 주최 측인 ‘사드 한국 배치 저지 전국행동’은 주한 미국대사관을 에워싸는 띠잇기 행진을 예고했다. 또 20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선 공공비정규직노조의 ‘임단협 승리 총파업 출정식’이 열렸다. 지난해 이미 한 차례 총파업을 했던 화물연대는 다음 달 1일 결의대회를 열고 노동3권 보장 등을 요구할 계획이다. 노동계에서는 사회적 총파업이란 형식이 알려지지 않은 데다가 파업에 부정적인 여론이 지배적이라 사회적 총파업이 현실화될 가능성은 작다고 보고 있다. 민노총이 또다시 강경투쟁을 내세운 것은 문재인 정부 출범을 계기로 정부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여 노동계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전략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새 정부가 대통령 직속 일자리위원회에 양대 노총을 모두 참여시키고, 23일에는 민노총과의 공식 간담회도 마련하는 등 노정교섭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어 총파업을 비난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유성열 ryu@donga.com·김배중 기자}
학교 공금을 횡령한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 보석으로 풀려난 심화진 성신여대 총장이 총장직에서 자진 사퇴했다. 학교법인 성신학원은 19일 “직무정지 중인 심 총장이 조건 없이 사퇴하겠다는 의사를 이사회에 밝히고 사임서를 제출했다”고 밝혔다. 이사회는 심 총장의 사퇴를 수리하고 신임 총장 선임을 위한 공모절차에 들어갈 예정이다. 이에 앞서 심 총장은 2월 학교 공금 7억 여 원을 횡령한 혐의 등으로 검찰에 불구속 기소돼 1심 재판에서 징역 1년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9일 뒤 총장권한 제한 등을 조건으로 보석 석방됐다. 3월에는 성신학원 및 성신여대 일부 구성원이 심 총장을 상대로 직무집행정지 및 직무대행자선임 가처분 신청을 제기했다. 법원은 이를 받아들여 심 총장은 직무 정지 상태에 놓였다. 4월 중순 법원이 선임한 법무법인 세종 김두식 변호사가 총장 직무대행을 수행해왔다.김배중기자 wanted@donga.com}
“여보 이스라지가 뭐예요? 병꽃나무도 처음 듣고…, 설명을 좀 적어놓지.” 16일 오후 서울 중구 고가보행로 서울로7017에서 나무들을 보던 70대 여성이 생소한 이름을 보고는 남편을 쳐다봤다. 서울로에 있는 화분 645개에는 식물명이 표기돼 있지만 별도 설명은 없다. 한참 잎 모양을 살피던 노부부는 식물명 표기 옆 QR코드(사진, 영상 정보를 담은 스마트폰 전용 바코드)를 서너 번 손가락으로 눌러보다가 포기하고는 지나쳤다. 기자가 스마트폰으로 QR코드를 읽어봤지만 시스템이 완성되지 않은 듯 이름 말고는 다른 정보를 확인할 수 없었다.○ 주변 상인들 마음은 ‘들썩’ 지난달 20일 문을 연 서울로가 개장 한 달을 맞는다. 누적 방문객 186만 명(15일 기준)을 기록할 만큼 관심이 뜨겁다. 그러나 서울로에 대한 시민의 평가는 엇갈린다. 차 걱정 없이 걸을 수 있는 도로가 늘어난 것에 대해서는 대부분 긍정적이다. 이날 서울로에서 만난 직장인 윤모 씨(32)는 “길지는 않지만 도심을 보행자 위주로 바꾸는 건 세계적 추세”라면서 “낡은 고가도로를 활용해서 걱정되긴 하지만 도심 여러 곳으로 통한다는 점에서 만족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대학생 김성일 씨(23)도 “남대문시장, 남산 같은 서울의 명소를 걸어서 갈 수 있어 좋다”고 평가했다. 서울로 사업 초기 교통이 혼잡해져 손님들이 줄어든다며 반대했던 인근 상인들도 인파가 몰리자 반기고 있다. 매출이 급상승한 것은 아니지만 서서히 효과가 나리라 기대하는 분위기다. 남대문시장 상인 이모 씨(50)는 “개장 전에 비해 주말 시장을 찾는 사람이 30% 이상 늘었다”면서 “오후 8시만 지나면 휑하던 시장이 요즘에는 북적인다”고 말했다. 다른 상인 김모 씨(52)도 “군것질거리를 파는 노점상을 빼곤 아직 매출이 오르지는 않고 있다”면서도 “서울로가 생기고 사람들이 몰리고 있는 만큼 경기가 회복될 것이라는 기대를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아랍어 환영 인사 표기 엉터리 그러나 편의시설 부족과 안전에 대한 우려는 여전하다. 일주일에 서너 번 서울로를 걷는다는 김모 씨(71)는 “좀 오래 쉬다 가려고 해도 주변에 쓰레기통도, 화장실도 없다”면서 “편의시설이 너무 부족해 공원이라고 부르기 부끄러울 정도”라고 말했다. 서울로에 있는 카페나 식당에서 음식물을 팔지만 쓰레기통은 눈에 띄지 않았다. 서울로를 관광명소로 만들겠다는 의지와는 달리 외국인 관광객을 위한 배려는 부족해 보였다. 이날 스피커에서는 서울로 인근에서 열리는 공연을 비롯한 각종 안내가 흘러나왔지만 외국어로는 제공되지 않았다. 잘못된 외국어 표기도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세계 각 나라 언어로 ‘환영합니다’라는 인사말을 적어놓은 원형 조형물의 아랍어 표기는 엉터리였다. 아랍어 문장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글자를 모두 이어서 써야 한다. 그러나 조형물에는 두 가지 원칙 모두 지켜지지 않았다. 아랍어 통역사인 최은녕 씨는 “아랍어에 대한 기본적인 검수조차 이뤄지지 않은 것 같다”고 지적했다. 서울로가 정말 안전한지 걱정도 계속됐다. 이정엽 씨(63)는 “40년 넘은 낡은 고가를 다시 사용한다는데 솔직히 걸으면서도 불안한 게 사실”이라며 “최근 자살 사고까지 벌어졌다는 기사를 보면서 걱정이 더 되는 건 사실이다”라고 말했다. 서울로가 모델로 삼은 미국 뉴욕의 하이라인파크(Highline Park)와 달리 고가도로를 어떻게 활용하면 좋을지 시민의 의견을 수렴하는 사전 노력이 부족해 방문객의 공감이 덜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뉴욕의 물자 수송을 책임지던 하이라인은 1980년 운영이 중단되면서 철거 위기에 놓인다. 하이라인을 구해낸 건 시민들이었다. 1999년 시민단체 ‘하이라인 친구들’이 결성됐고 10년간의 토론 끝에 고가철로 공원으로 탈바꿈할 수 있었다. 강동진 경성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하이라인에 비하면 서울로는 공감대를 형성하려는 노력과 시민의 참여가 부족했던 게 사실”이라며 “시 주도로 만들어진 서울로가 시민의 사랑을 받으려면 지금부터라도 서울로 개선을 위한 시민의 참여를 끌어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강승현 byhuman@donga.com·김예윤·김배중 기자}
서울의 한 사립 초등학교에서 발생한 학교폭력 사건이 부실하게 처리됐다는 의혹이 제기돼 논란이 일고 있다. 유명 연예인 아들과 대기업 회장 손자 등이 연루된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교육 당국은 진상 조사에 나서기로 했다. 서울시교육청은 올 4월 수련회 과정에서 학생 폭행 사건이 발생한 서울 중구 숭의초교에 대해 특별장학을 실시해 사실관계를 조사하고 학교폭력 처리 절차가 제대로 이뤄졌는지 확인하겠다고 18일 밝혔다. 교육청 관계자는 “문제가 드러나면 숭의초교에 대해 감사 실시 등 필요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말했다. 피해자인 A 군(9) 부모는 언론 등을 통해 “동급생 4명이 아들에게 담요를 덮어씌우고 야구 배트로 폭행했다. 또 바나나우유 모양의 물비누도 억지로 마셨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는 사건 조사 후 일부 연루자들에 대해 별다른 징계를 하지 않았다. 해당 사건에는 배우 윤손하 씨(42)의 아들 B 군(9) 등이 연루된 것으로 알려졌다. 윤 씨는 사건이 알려진 직후 “야구 배트는 아이들이 흔히 갖고 노는 스티로폼과 플라스틱 소재였다”며 “방송 보도가 사실과 상당 부분 다르며 악의적으로 편집됐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해명에 누리꾼들은 “피해자 입장을 생각하지 않고 변명만 한다”며 윤 씨를 강하게 비난했다. 비판 여론이 거세지자 윤 씨는 18일 다시 소속사를 통해 “피해 학생과 그 가족, 학교와 여러분들에게 고개 숙여 사과드린다”고 밝혔다.김배중 기자 wanted@donga.com}

“아파트 1층에서 불이 났습니다. 빨리 대피하세요.” 동행한 전문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아파트 비상 대피로를 찾아 내달렸다. 볕이 들지 않는 복도는 어두침침했다. 야광으로 된 유도표지등은 눈에 띄지 않았다. 복도 곳곳에는 자전거와 가구 문짝 등이 방치돼 있었다. 이리저리 몸을 피해야 위층으로 갈 수 있었다. ‘실제 상황’이 아닌데도 진땀이 났다. 박청웅 세종사이버대 교수(소방방재학과)는 “만약 한밤중 진짜로 불이 나 정전까지 된다면 이런 물건에 부딪혀 대피하기 힘들 것”이라며 “대부분 가연성 물질로 된 물건이라 화재 때 ‘불쏘시개’ 역할까지 해 더욱 위험했다”고 말했다. 지은 지 43년 된 영국 런던의 24층짜리 아파트에서 일어난 화재로 최소 10여 명이 사망하면서 국내 노후 건축물도 예외가 아니라는 지적이 나온다. 본보 취재진은 박 교수와 함께 지은 지 40년 이상 된 서울의 노후 아파트 3곳을 긴급 점검했다.○ 화마 닥치면 소방차도 무용지물 15일 서울 중구의 한 10층짜리 아파트. 1970년 완공됐다. 불이 난 런던 ‘그렌펠타워’보다 4년 앞선다. 350가구 규모지만 리모델링을 앞두고 현재는 70가구만 거주하고 있다. 이 아파트엔 층별 방화벽이 없다. 아래층에 불이 나면 위쪽으로 급속히 번져 대형 참사로 이어질 위험성이 크다. 복도 위로 가스관이 지나가고 건물 외벽엔 낡은 전선줄이 뒤엉켜 있다. 불이 나면 모두 ‘시한폭탄’으로 변할 수 있다. 노후 아파트의 화재 위험성은 모두 비슷했다. 화재에 취약한 낡은 건축 자재가 여전히 많고 소방 설비도 취약했다. 서울 서대문구에 있는 한 아파트는 1930년대 완공된 5층짜리 아파트다. 아파트 안 곳곳에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다. 그러나 비상시 생명을 지켜줄 최후의 수단인 안전장치가 없었다. 소화전에는 비상등이 파손된 채 방치돼 있었다. 소화기는 도난 방지를 위해서인지 쇠줄로 묶여 있거나 오래된 것이 대부분이었다. 스프링클러도 설치돼 있지 않았다. 옥상으로 가는 문은 자물쇠로 굳게 잠겨 있었다. 한 주민은 “믿을 건 소화기밖에 없는데 확인해 보니 사용기한이 지나 있었다. 관리실에 교체를 요청했지만 반응이 없다”고 말했다. 서울시에 따르면 지난해 8월 기준 40년 이상 사용 건축물은 15만5988동으로 전체 건축물의 25%에 달한다. 박 교수는 “당장 시설 보강과 법 개정이 어렵다면 화재 발생 시 대응 매뉴얼을 철저히 학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비상 대피로나 비상구 위치도 정확히 알아야 한다. 하지만 노후 아파트 주민들은 화재 발생 시 대피를 위한 안내나 훈련을 받은 적이 없었다. 서울 종로구의 한 주민은 “구청에서 실태조사를 나왔는데 건물 벽체만 뜯어보고 아무 조치 없이 그냥 갔다”며 “화재 대피와 관련한 안내도 받지 못했다”고 울분을 토로했다.○ 초고층 건물도 불안 우후죽순처럼 늘어나는 초고층 건물도 문제다. 국내 30층 이상 고층 건물은 3266개 동이다. 50층 이상이거나 높이가 200m 이상인 초고층 건물은 107동이나 된다. 최근 3년간 고층 건물 화재는 2014년 107건에서 지난해 150건으로 늘었다. 올해 6월 현재 57건이 발생했다. 2월엔 경기 화성시 동탄신도시의 66층 초고층 주상복합 건물인 메타폴리스 단지 내 상가 건물에서 발생한 화재로 4명이 숨지고 100여 명이 다치기도 했다. 국민안전처는 런던 아파트 화재를 계기로 30층 이상 고층 건축물의 긴급안전점검을 실시한다고 15일 밝혔다. 긴급안전점검은 소방시설과 피난·방화 설비, 건축 외장재뿐만 아니라 가스 및 전기 설비도 포함된다. 긴급안전점검 대상에 포함되는 고층 건물 중 아파트가 2701곳이다. 전체 82.7%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최창식 한양대 건축공학부 교수는 “당장 사고 예방을 위해선 현장에서 재난 대응 매뉴얼을 얼마나 잘 준비하고 있는지 당국이 확인해야 한다”며 “사고 발생 후 책임을 묻는 성격의 처벌보다 미흡한 예방과 대비를 처벌하는 쪽에 무게를 둬야 한다”고 말했다.김배중 wanted@donga.com·신규진·정성택 기자}
직장인 A 씨(29)는 4월 여신금융협회에 불법카드모집인을 직접 신고했다 불안에 떨었다. 신고 후 며칠 뒤 모집인으로부터 “당신이 ‘파파라치’ 아니냐”는 문자메시지를 받은 것이다. 7일 서울 강남구 공익신고 대행 애플리케이션(앱) 업체 사무실을 찾은 A 씨는 “개인 신상이 노출될까 봐 대행 앱의 힘을 빌리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처럼 신원 노출을 꺼려 공익신고를 주저하는 사람들을 위해 신고를 대행하는 앱이 국내에서 처음으로 나왔다. 지난달 9일 나온 앱 ‘보이네’는 신고자가 증거 사진을 비롯한 자료와 상황 설명을 입력하면 유관기관에 대신 신고를 해준다. 해당 기관의 자체 조사 후 나오는 포상금은 앱 업체가 수수료 30%를 제하고 신고자에게 지급한다. 해당 업체에 따르면 10일까지 약 한 달 동안 123건의 공익신고가 접수됐다. 첫 일주일 동안 12건에 불과하던 것이 이달 4∼10일 50여 건으로 네 배 이상으로 늘었다. 담배꽁초나 쓰레기 무단투기 같은 간단한 신고에서 카드단말기 조작, 보이스피싱 통장 모집 같은 복잡한 신고까지 종류도 다양해졌다. 보이스피싱 신고의 경우 앱 업체가 경찰과 공조해 이들 모집책과 계속 연락하며 소재를 파악하기도 한다. 앱 업체에 보이스피싱 업체의 통장 모집 문자를 갈무리해 보낸 B 씨는 “공익신고를 어떻게 하는지 잘 몰랐는데 문자 갈무리만 보내도 일이 처리돼 간편하다”고 말했다. 앱으로 공익신고를 하는 사람들의 개인정보는 업체에서 자체 보호해 신원이 노출될 우려도 줄어들었다. 국민권익위원회가 지난해 10월 일반시민 14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48%가 ‘(신원 노출 등) 신고로 인한 불이익’으로 공익신고를 꺼린다고 응답했다. 신고 대행 앱은 공익광고 등을 찍던 광고인과 군 장교 출신의 30대 등이 만들었다. 2011년 ‘공익신고자보호법’ 제정 후 공익신고 대상이 공공과 민간을 합쳐 1150여 개나 됐지만 대부분 ‘신고사냥꾼’의 전유물로 전락한 것을 보고 창업을 구상했다. 대표 김영주 씨(45)는 “수익사업으로 업체를 만들었지만 사람들이 공익신고에 대한 부담을 줄여 사회정의 구현이라는 본래 취지를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수사기관은 일단 환영하는 분위기다. 경찰 관계자는 “각종 시민제보나 공익신고는 수사를 착수하거나 사건 실마리를 푸는 데 힘이 된다”며 “앱을 통해 공익신고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도 개선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반면 공익신고가 사기업 비즈니스 모델이 됐다는 데에 부정적인 시각도 있다. 한 보안전문가는 “해킹 등을 통해 고객정보가 유출된 숙박 앱 사례를 보면 이들 업체의 정보관리는 허술한 측면이 있다”며 “사업 특성상 신고자의 비밀을 기술적, 도덕적으로 보장하는 데 공을 더 들여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김배중 기자 wanted@donga.com}

1956년 8·13지방선거 당시 자유당이 저지른 ‘환표(換票)사건’을 세상에 처음 알린 박재표 전 동아일보 차장이 11일 별세했다. 향년 85세. 1932년 전북 진안군에서 태어난 고인은 1950년 무렵 경찰에 투신해 24세이던 1956년 당시 전북 정읍군 소성(所聲)지서에서 순경으로 근무했다. 도의원 선거 당일인 8월 13일에는 소성투표소에서 경비 임무를 맡던 평범한 경찰이었다. 하지만 선거일 벌어진 사건은 고인의 인생을 뒤바꿨다. 선거 직후 투표함을 개표소로 이동하던 중 고인은 ‘표 바꿔치기’, 즉 환표를 목격했다. 투표함을 호송하던 경찰관들이 당시 여당인 자유당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 조직적으로 야당 후보에게 투표한 표를 여당 후보 표로 바꾸는 것이었다.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이 같은 사건을 목격한 고인은 고민을 거듭한 끝에 경찰 상사들의 눈을 피해 25일 전북 전주로 ‘탈출’을 감행했다. 전주에서 뒤바뀐 사표(死票) 등을 증거물로 들고 서울로 상경해 27일 세종로 동아일보사를 찾았다. 고인은 경찰들이 자행한 환표 사실을 기자에게 알렸다. 고인이 폭로한 내용은 동아일보 1956년 8월 29일자를 통해 보도돼 세상에 알려졌다. 오늘날 ‘정읍 환표사건’으로 알려진 역사적 사실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환표 사실을 폭로한 고인에 대해 이틀 뒤인 31일 경찰은 체포령을 내렸다. 고인은 직무유기, 근무지이탈 혐의 등으로 전주시에서 체포됐다. 이후 환표사건은 ‘정읍 환표 날조 폭로사건’으로 경찰에 의해 조작됐다. 당시 야당인 민주당 정읍지역 간부들은 배후 조종 혐의로 구속되기에 이르렀다. 고인의 부모형제 또한 경찰의 감시를 받아야 했다. 당시 경찰과 농림부에서 근무하던 고인의 형제들은 강제로 근무지에서 파면당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고인의 조카들 또한 학비를 조달하기 어려웠다. 고인과 형제들은 생활면에서도 곤란하기 짝이 없었다. 어디를 가나 사상이 불온하다고 감시를 하는 통에 장사도 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1심에서 징역 1년 6개월, 2심에서 징역 6개월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으며 고초를 치렀다. 그러나 고인은 1959년 대법원 최종 판결에서 폭로 내용이 허위가 아니었음을 인정받았고, 1960년 4·19혁명 직후 경찰에 복직해 명예를 되찾았다. 1960년 12월 4일자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고인은 당시 상황에 대해 “형제야 한 탯줄이니 나 때문에 받는 학대를 용서해줬지만 10여 명이나 되는 조카들한테는 미안하기 그지없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당시 기사는 고인에 대해 “검은 정복에 단정히 표찰을 달고 금테두리 정모를 쓴 28세의 박 경위의 자태는 진정한 민중의 공복이 되고자 노력하는 모습이 한결 믿음직스러웠다”고 표현했다. 같은 해 11월 경위로 승진한 고인은 이후 종로경찰서 등에서 근무하다 제복을 벗었다. 이후 양심선언 당시 인연을 맺은 동아일보에 입사해 경비원 일을 하다 정식으로 채용돼 자재부 등에서 근무한 뒤 1990년 차장(부장대우)으로 정년퇴임했다. 유족으로는 아들 해진 씨(코레일네트웍스 근무), 용 씨(자영업), 옥 씨(자영업), 손녀 선영 씨(CBS PD), 현선 씨(삼성출판사 연구원) 등이 있다. 빈소는 충남 천안의료원, 발인은 13일 오전 7시, 장지는 충남 천안추모공원. 041-570-7266 김배중 기자 wanted@donga.com}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화재가 발생했으나 인명 피해는 없었다. 종로소방서에 따르면 11일 오후 10시 53분경 정부서울청사 9층 국무총리비서관실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가 접수돼 소방관 70여 명과 소방차 등 장비 26대가 출동했다. 화재는 정부서울청사 방호실에서 진압했고 소방 또한 화재발생 22분 만인 11시 15분경 현장에서 철수했다. 화재로 인한 인명피해는 없었고 16.5㎡(약 5평) 크기의 총리비서관실 벽면이 불에 그을렸다. 소방관계자는 “비서관실 내 전기 스파크로 화재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지만 자세한 경위는 면밀히 조사해볼 예정이다”라고 밝혔다. 한편 같은 날 더불어민주당 배재정 전 의원(49)이 여성으로 처음 신임 국무총리비서실장으로 임명됐다. 김배중 기자 wanted@donga.com}

#1정부가 이직 돕는 캐나다, 이직금지 규정 악용되는 한국#2한 때는 ‘한평생 한 직장’이 바른 가치와 미덕으로 여겨졌습니다.평생직장에 대한 믿음과 문화는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를 겪으며 많이 사라졌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가 첫 직장에 두는 가치는 강력하죠.#3#4작은 곳에서 시작하더라도 ‘이직의 사다리’를 통해 더 나은 곳을 찾는 것. 이는 첫 직장 진입 시기가 계속 늦춰지는 한국 사회 문제의 해결법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합니다.2013년 LG경제연구원은 이를 가리켜 ‘잡 호핑(job hopping)’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영미권에선 ‘지나치게 잦은 이직’이라는 부정적 의미로 통하지만, 한국에선 구직문화의 변화를 상징하는 신조어로 쓰입니다. #5이직은 많은 직장인의 꿈이죠. 취업포털 커리어의 조사에 따르면 ‘최근 3개월 내’ 이력서를 업데이트한 경험이 있는 직장인은 54%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6#7물론 모두가 성공적인 이직의 꽃길을 밟는 건 아닙니다.A 씨(30)는 ‘꿈의 직장’으로 불리는 IT 업체에 스카웃 된 이후,전 직장에서 ‘동종업계 이직 금지’ 규정을 내밀며 소송을 걸어와 이직의 혹독한 대가를 치르고 있습니다.A 씨의 발목을 잡았던 ‘이직 금지 규정’은 당연한 것일까요?캐나다에서 이직을 거쳐 게임업체 그래픽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는 37세 동갑내기인 황주보 이미현 씨 부부의 답은 “노(no)”입니다. #8“캐나다는 이직에 필요한 제도와 문화가 갖춰진 곳, 이직을 위해 잠시 실직 상태에 놓이면 주 정부로부터 지원금을 받는다. 단, 주마다 평균 이직까지 걸리는 시간을 고려해 그 개월 수만큼만 지원한다.”-황주보 씨#9한국에선 시기상조라는 의견도 나옵니다.좋은 일자리가 부족한 상황에서 고용과 해고만 쉬워진다면 사회의 부담이 커질 것이기 때문이죠.#10“직업은 행복을 위한 수단이며, 이직은 강점을 바탕으로 그 수단을 고르는 과정이다. 한국의 청년들에게도 꿈을 향한 사다리가 다양해지길 바란다.”-전하늘 씨원본: 김수연·김배중·김동혁 기자기획·제작: 김재형 기자·김한솔 인턴}
서울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임우재 전 삼성전기 상임고문(49)이 서울 중구 A 팀장에게 수억 원을 건넨 혐의(뇌물)에 대해 수사 중이라고 8일 밝혔다. 앞서 서울시는 올 3월 “A 팀장이 임 전 고문의 돈 3억6000만 원을 빌렸다 갚지 않았다”며 수사를 의뢰했다. 서울시는 올 2월 A 팀장의 다른 비위를 조사하다 2014년 3월 임 전 고문이 A 팀장 계좌로 돈을 보낸 걸 확인했다. 그러나 A 팀장은 “임 전 고문과 알던 사이로 집 매입 과정에서 돈을 빌렸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돈을 갚은 건 제대로 소명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돈이 오간 시기는 임 전 고문의 부인인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이 ‘한옥호텔’ 건립을 추진하던 때다. 한옥호텔 사업은 서울시도시계획위원회 심의에서 4차례 반려됐다가 지난해 3월 승인됐다.김배중 wanted@donga.com·홍정수 기자}

‘현 직장에서 정년까지 근무할 의사를 굳히고 있는 직장인은 10명 중 1명꼴밖에 되지 않아 우리 사회의 평생직장 풍토는 여전히 성숙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1992년 10월 6일 동아일보 7면 기사의 첫 문장이다. ‘한평생 한 직장’을 바른 가치와 미덕으로 여겼던 사회의 단면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평생직장에 대한 믿음과 문화는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를 겪으며 많이 사라졌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가 첫 직장에 두는 가치는 강력하다. 청년들이 재수, 삼수, n수를 하며 취업준비생 신분을 맴도는 이유이기도 하다. 작은 곳에서 시작하더라도 ‘이직의 사다리’를 통해 더 나은 곳을 찾는 것. 이는 첫 직장 진입 시기가 계속 늦춰지는 한국 사회 문제의 해결법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2013년 LG경제연구원은 이를 가리켜 ‘잡 호핑(job hopping)’이라고 표현했다. 영미권에선 ‘지나치게 잦은 이직’이라는 부정적 의미로 통하지만, 한국에선 구직문화의 변화를 상징하는 신조어로 쓰인다.○ 이직의 명암 이직은 많은 직장인의 꿈이다. 취업포털 커리어의 조사에 따르면 ‘최근 3개월 내’ 이력서를 업데이트한 경험이 있는 직장인은 54%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9년 전 중소기업에 입사했던 양모 씨(38)가 이에 해당한다. 그는 ‘계속 대기업만 준비하느니 작은 곳에서부터 경력을 쌓아 이직하겠다’고 결심하고 H사에 들어갔다. 묵묵히 갈고닦은 내공은 표가 났다. 2년 차이던 2009년 그는 SK하이닉스 파견직으로 일할 기회를 얻었고, 2년 뒤엔 정규직 이직 제안을 받았다. 그는 “같은 업무를 하고도 중소기업, 계약직 직원이란 이유로 적은 돈을 받는 게 아쉬웠다”면서 “그래도 작은 회사에서 실무를 훈련한 덕에 대기업에 입성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물론 모두가 성공적인 이직의 꽃길을 밟는 건 아니다. A 씨(30)는 5년간 3번 스카우트되며 이름난 정보기술(IT) 업체에 입사했다. 젊은 개발자들 사이에선 ‘꿈의 직장’으로 불리는 곳이다. 바닥부터 달려온 꿈이 결실을 맺는 듯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전 직장에서 ‘동종업계 이직 금지’ 규정을 내밀어 소송을 걸었다. 이직의 대가는 혹독했다. 그는 여전히 힘겨운 법정 싸움 중이다.○ 이직, 아직도 먼 사다리 A 씨의 발목을 잡았던 ‘이직 금지 규정’은 당연한 것일까? 2013년 캐나다로 이민 가 현지에서 이직을 거쳐 게임업체 그래픽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는 37세 동갑내기인 황주보 이미현 씨 부부의 답은 “노(no)”다. 이 규정은 핵심 기술을 가진 특수 인력에게 제한적으로 적용될 뿐, 일반 사원에게 악용되지 않는다고 했다. 황 씨는 “캐나다는 이직에 필요한 제도와 문화가 갖춰진 곳”이라고 말했다. 이직을 위해 잠시 실직 상태에 놓이면 주 정부로부터 지원금을 받는다. 단, 주마다 평균 이직까지 걸리는 시간을 고려해 그 개월 수만큼만 지원한다. 지역 내 업계 커뮤니티도 활발한 편이다. 같은 업계 종사자끼리 이직 정보를 나누고, 네트워크를 쌓을 수 있어 이직 기회를 얻기 쉽다. 15년 차 헤드헌터 임정우 씨는 “이직할 때 구직 정보를 얻는 것이 무척 중요하다”며 “업계 커뮤니티는 그 과정에서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지난해 외국계 회사로 이직한 B 씨(32)는 “팀원들이 이직자와 일대일 미팅을 하는 게 의무라는 게 놀라웠다”며 “공채 기수문화가 강했던 한국 기업이 배워야 할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이직은 ‘과정’이다 책 ‘당신의 이직을 바랍니다’의 저자 전하늘 씨(29)는 2011년 편도 티켓을 끊어 싱가포르로 떠났다. 첫 직장은 작은 헤드헌팅 업체. 월세를 내고 나면 남는 게 없었지만, 고객 모집에 성공해 1년 뒤 억대 연봉자가 된다. 이후 다국적 IT 회사 ‘링크트인’을 거쳐 현재 글로벌 제조업체의 아시아 본부 어시스턴트 브랜드 매니저라는 꿈을 이뤘다. 한국에서도 대기업에 다녀본 그녀는 “보통 ‘이직’과 함께 ‘고용 유연화’라는 말이 등장하지만, 한국엔 시기상조”라고 말했다. 좋은 일자리가 부족한 상황에서 고용과 해고만 쉬워진다면 사회의 부담이 커질 것이기 때문이다. 아시아 허브답게 싱가포르에는 양질의 일자리가 많아 구직자의 선택 폭이 넓은 편이다. 이직의 사다리가 풍부한 싱가포르는 그 대신 실적평가가 엄격하다. 근로자는 커리어 계획과 관련된 경험과 성과를 쌓고, 이를 적극적으로 드러내야 한다. 전현선 쿠팡 기술 리크루터는 “어떤 성과를 냈는지 구체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 평가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고 조언했다. 전하늘 씨는 “직업은 행복을 위한 수단이며, 이직은 강점을 바탕으로 그 수단을 고르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연고도 없는 싱가포르에서 그가 꿈을 이룰 수 있었던 건 바로 ‘이직의 사다리’ 덕분이었다. 그는 “한국의 청년들에게도 꿈을 향한 사다리가 다양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김수연 sykim@donga.com·김배중·김동혁 기자}

동아일보 ‘청년이라 죄송합니다’ 취재팀이 취업의 의미를 묻자 한 학생은 “인생에서 열어야 할 또 다른 문”이라고 답했다. 이직은 그 뒤에 숨어있는 제2, 제3의 기회라고 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이직문화가 활발하지 못한 한국에서 선결되어야 할 몇 가지 과제를 지목했다. 우선 이직자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다. 금융권 인사담당자 출신이며 현재 헤드헌터로 활동 중인 임정우 씨는 “이직하려는 이유가 ‘구직자의 잘못 때문’이라는 인식부터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인내심이 부족하거나 충성도가 떨어져 구직자가 소속을 바꾸려 한다는 의심부터 한다는 것. 이 때문에 경력 구직자 면접은 실력평가가 아닌 인성 압박면접으로 흘러가는 경우가 적지 않다. 명확한 평가기준이 없다는 점도 문제다. 윤준홍 프로매치코리아 이사는 “기업이 헤드헌터로부터 인재를 추천받을 때 연봉의 20% 정도 수수료가 들다 보니 이왕이면 학점 학력 가족관계 등 스펙을 보려는 경향이 있다”며 “이직자는 실무능력을 중시해야 하는데, 사실상 첫 단추를 잘 끼워야 더 올라갈 수 있다는 인식을 굳히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구직자 역시 이직에 대한 인식을 바꿔야 한다. 단지 일이 힘들거나 조직에 불만이 있다고 이곳저곳 옮기는 것은 건전한 이직이라고 보기 어렵다. 잡코리아의 변지성 팀장은 “아무리 경력이 많아도 한 직장의 재직기간이 짧은 사람은 기피대상”이라며 “이직의 목표와 목적을 명확히 하고, 거시적 관점에서 커리어를 가꿔나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수연 sykim@donga.com·김배중 기자}

“‘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 정말 좋겠네’ 동요 아시죠? 노래 가사가 통계로 입증된 겁니다.” 3일 서울 종로구 성균관대 연구실에서 만난 김영한 교수(45·경영학과)는 동요 제목을 말하며 자신의 논문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논문 제목은 ‘최고경영자(CEO)의 미디어 출현과 연봉의 관계(The Relationship Between CEO Media Appearance and Compensation)’. 김 교수와 강진구 싱가포르 난양공대(NTU) 경영학과 교수는 1997∼2009년 미국 상장사 2666곳의 CEO 4452명이 언급된 언론기사 10만4129개와 미국 경제전문매체 CNBC의 인터뷰 6567개를 분석했다. 그 결과 ‘CEO가 언론 등을 통해 인터뷰하면 협상력이 높아져 연봉이 21만239달러 높아진다’는 사실을 통계로 분석했다. 이 논문은 지난달 말 세계 경영학 분야의 권위 있는 학회지인 ‘오거니제이션 사이언스’에 게재됐다. 김 교수는 미네소타대 칼슨경영대학원을 졸업한 뒤 2009년부터 싱가포르 명문인 난양공대 강단에 섰다. 2015년 귀국해 성균관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그는 미디어 노출과 기업 성공의 상관관계 외에도 기업 투자와 관련된 독특한 연구 결과를 내놓아 주목을 받았다. 2012년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모은 가수 싸이의 ‘강남스타일’에 대한 관심도와 싸이 가족회사 주가 움직임의 상관관계를 연구했다. 특정 지역 유튜브에서 강남스타일 플래시몹(불특정 다수가 정해진 시간, 같은 장소에 모여 약속한 행동을 하고 흩어지는 행위)이 뜨면 정확히 하루 뒤 해당 지역에서 싸이 가족회사 투자까지 이어졌다는 내용이다. 김 교수는 “미디어에 대한 폭발적인 관심은 주가 변동으로도 이어진다는 걸 빅데이터로 보여준 성과”라고 설명했다. 올해 초에는 미국 CEO와 정치인의 ‘얼굴 가로세로비율(fWHR)’이 이들의 평소 성향과 연관이 있다는 사실을 미국재무학회(AFA)에서 발표해 화제를 모았다. 많은 리더들이 과감한 경향을 보인다는 일반의 평가에 fWHR 개념을 끌어와 객관적으로 뒷받침한 것. 김 교수에 따르면 미국 CEO 및 정치인의 fWHR는 1.9∼2.0으로 일반인(1.8)보다 높다. fWHR는 신경내분비학에서 쓰이는 개념으로 남성호르몬이 많이 분비될수록 광대뼈가 벌어지고 fWHR 수치가 높아진다. 또 fWHR 수치가 높을수록 남성성을 띤다. 마치 관상가와 같은 분석에 대해 김 교수는 “투자와 관련된 모든 정보는 연구 소재가 된다”며 “다른 영역에서 거론되는 이론도 리더를 분석하는 데 유용한 척도로 쓰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문재인 대통령에 대해서도 “대통령의 fWHR는 2.03”이라며 “앞으로 더 과감하게 정국을 돌파해 나갈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김 교수는 “CEO의 성향과 목소리의 연관성을 밝혀볼 계획”이라며 “이런 식으로 행동재무를 연구하다보면 인물을 보는 눈도 기를 수 있다”고 웃으며 말했다. 김배중 기자 wanted@donga.com}

2일 경기 수원시 장안구의 4차로 도로에서 중학생 A 군(15) 등 10대 4명이 탄 승용차가 신호 대기 중인 광역버스를 들이받았다. 시속 70km로 달린 승용차 앞부분이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파손됐다. 큰 사고로 이어질 뻔했지만 다행히 A 군 등은 다치지 않았다. 버스 운전사와 승객 등 3명이 경상을 입었다. 6일 경찰 조사 결과 운전면허를 딸 수 없는 나이인 A 군이 엄마의 신상정보를 이용해 카셰어링(차량 대여 서비스) 애플리케이션(앱)으로 차량을 빌린 뒤 친구들과 한밤 질주를 벌였던 것으로 확인됐다. 또 다른 미성년자의 카셰어링 사고였다.○ 신분 확인 시스템 ‘맹점’ 여전 카셰어링 앱은 가입할 때 한 번만 인증과정을 거치면 이후에는 별도의 인증 절차가 없다. 미성년자가 성인의 아이디를 도용해도 차량을 빌리는 데는 아무런 어려움이 없다. 카셰어링 시스템의 맹점이다. 올 초부터 동아일보를 비롯해 여러 언론이 이 같은 문제점을 지적했다. 10대 청소년이 어른의 신상정보를 이용해 카셰어링 차량을 빌려 무면허 운전을 하다 자신은 물론이고 다른 운전자까지 위험에 빠뜨릴 우려가 크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무면허 청소년의 성인 아이디 도용 및 대여, 이로 인한 교통사고 발생이라는 패턴은 반복되고 있다. 단순히 엄마 아빠의 아이디를 잠시 가져다 쓰는 차원을 넘어 더 조직적, 집단적으로 카셰어링 서비스의 허점을 활용하기도 한다. 4월 인천에서는 휴대전화 고객 개인정보를 빼돌려 카셰어링 서비스를 이용한 10대 9명이 적발됐다. 경찰에 따르면 휴대전화 대리점 아르바이트 경력이 있는 B 군(18)은 점주 C 씨(32)의 인터넷 메일함에 보관된 고객정보 수천 건을 이용해 카셰어링 차량을 빌렸다. 이들이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4월까지 빌린 차량은 109대. 이들은 차량을 빌린 뒤 이용료를 내지 않거나 교통사고를 낸 뒤 달아났다. 사고를 내 파손된 차량만 20대에 이른다. 그럼에도 카셰어링 업체의 서비스 가입 및 대여 절차는 꿈쩍도 하지 않고 있다. 6일 오후 동아일보 취재진은 스마트폰으로 카셰어링 업체 앱을 내려받았다. 이후 이미 인증이 완료된 다른 사람의 계정으로 접속해 차량을 대여했다. 이용 시간을 정하고 지도에서 대여 장소를 지정한 뒤 요금 결제까지 걸린 시간은 1분 남짓. 차량 탑승 지점인 서울 서대문구 원룸 주택가로 가서 죄책감 없이 차량에 탑승할 수 있었다. 2월 본보 취재진이 시험해 본 대여 과정과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10대 무면허 렌터카 사고는 2012년 카셰어링 서비스가 도입되기 전까지는 한 해 평균 50건 정도였다. 그러나 2012년부터 2015년까지는 한 해 평균 86건이나 됐다.○ “징벌적 규제 나서야 할 때” 카셰어링 업계는 “아이디 도용 범죄를 저지르기로 마음먹은 10대 일부의 비행일 뿐”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카셰어링은 무인시스템을 통해 편리하게 차량을 대여하게 고안된 것이 강점인 서비스”라며 “추가 신원확인 작업을 하기에는 비용이나 기술 측면에서 어려움이 따른다”고 주장했다. 이어 “별도의 단계가 생길수록 이를 유지하는 비용이 올라갈 가능성이 높다”며 비용을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더 강력한 규제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이호근 대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이 같은 문제점을 지속적으로 지적했음에도 업계가 효율성만 따지며 자체 개선을 하지 않는다면 외부의 강제에 맡길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정부가 해당 업체에 10대 무면허 사고 발생 시 과징금을 매기는 등 징벌적 규제에 나선다면 업체들도 이전보다 적극적으로 움직일 것이다”라고 말했다. 성낙문 한국교통연구원 종합교통본부장도 “지금처럼 아무 규제 없이 10대가 차량을 빌릴 수 있는 상황은 명백하게 문제”라며 “카셰어링에 대한 대중의 수요가 높아지는 만큼 정부도 상황을 방치하지 말고 규제 강화를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김배중 wanted@donga.com·김예윤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1일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가야사(史) 연구와 복원을 지시한 것에 대해 학계에서는 연구가 활성화될 것이라는 기대와 유적 복원 속도전이 돼서는 안 된다는 우려가 교차하고 있다. 학계의 가야사 연구 현황과 이후 방향을 알아본다.○ 호남 동부도 가야 영역으로 밝혀져 197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가야사는 연구의 변방이었다. 고대 한반도의 가라(加羅·가야)국을 일본이 정복했다는 일본서기(日本書紀) 내용 등을 근거로 일본이 고대 한반도 남부를 지배했다는 ‘임나일본부’설을 아직 극복하지 못했던 시절이다. 1977년 경북 고령군 지산동 44호, 45호 고분의 발굴은 가야사 연구의 전환점이 됐다. 이 고분들은 우리나라 최초로 발굴된 순장묘로 뼈와 함께 토기, 철기가 대규모로 쏟아졌고, 이를 계기로 ‘가야 고고학’이 성립됐다. 비슷한 시기 일본서기를 우리 입장에서 해석한 천관우(1925∼1991)의 연구도 나왔다. 1990년대 중반에는 대왕(大王)이나 하부사리리(下部思利利)라고 새겨진 대가야계 토기가 발견돼 가야의 정치 체제에 대한 재조명이 이뤄지기도 했다. 호남 동부의 대부분이 한때 가야의 영역이었다는 것이 드러난 건 1990년대 이후다. 일제강점기에는 한 일본인 학자가 ‘상다리, 하다리, 사타, 모루’ 등 이른바 ‘임나4현’의 위치를 섬진강 유역으로 봤지만 이후에는 주목받지 못했다. 그러나 김태식 홍익대 역사교육과 교수는 이 지역이 전남 여수, 순천, 광양 일대일 것이라고 봤고, 2006년 순천에서 가야 고분군이 발굴되면서 설득력을 얻었다. 근래에는 전북 남원 장수 진안 임실 고분군이 가야의 것으로 드러났다. 김 교수는 “삼국사기에 우륵이 지은 가야금 곡 12개의 이름 중 10개는 사실 지명(地名)인데 그중 4개는 호남 지방”이라고 말했다.○ 섣부른 복원보다 발굴과 연구가 먼저 주보돈 경북대 사학과 교수는 “가야사는 고고학에 대한 의존도가 굉장히 높아 문헌사와 고고학을 결합하는 학제적인 연구가 중요하다”며 “새로운 고고학적 자료의 증가에 따라 가야인의 삶과 죽음을 밝혀내는 연구가 필요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문화재청에 따르면 산하 가야문화재연구소가 현재 가야사 관련 발굴조사 중인 곳은 경남 김해 봉황동 유적과 창녕 교동·송현동 고분군이다. 금관가야의 왕궁 추정지로 여겨지는 봉황동 유적은 2015년 9월부터 발굴하고 있다. 비화가야 최고지배층이 묻힌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은 2014년 3월부터 발굴조사가 진행 중이다. 연구소는 비화가야와 아라가야 등 권역별 고분문화의 특징을 규명하는 한편 출토 유물을 분류해 신라, 백제 등 다른 문화권과 비교할 수 있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봉황동 유적 발굴조사 성과를 바탕으로 금관가야 시대 당시 고도(古都)를 재현하는 복원 연구도 계획하고 있다. 김세기 대구한의대 교수(고고학)는 “남원, 진안, 장수, 순천 등 호남지역에도 규모 있는 가야유적들이 산재한 만큼 가야사 연구, 복원을 폭넓게 진행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학계는 가야사 복원은 발굴조사와 같은 기초연구가 제대로 이뤄지는 게 우선이라고 보고 있다. 섣부른 복원은 유적의 의미를 훼손하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고고학자는 “기초연구에 비해 복원에 더 중점을 두면 속도전 논란을 빚은 경주 월성의 전철을 밟을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고대사학회장인 하일식 연세대 사학과 교수는 “역사 연구가 현실문제 해결의 도구가 돼서는 안 된다”며 신중한 접근을 강조했다. 조종엽 jjj@donga.com·김상운·김배중 기자}
8년 동안 국가지원 연구프로젝트를 수행하며 공금을 유용한 서울대 교수가 구속됐다. 서울북부지검 형사5부(부장 양인철)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 등 혐의로 서울대 화학생물공학부 한모 교수(56)를 구속했다고 2일 밝혔다. 검찰에 따르면 한 교수는 2008년 초부터 지난해 12월까지 국가지원 연구프로젝트 여러 건을 수주한 뒤 인건비를 빼돌렸다. 연구에 참여하지 않은 사람의 이름을 등록해 연구비를 허위로 청구하거나 제자들에게 연구비가 지급되면 ‘모아 놨다가 나중에 사용하자’며 회수했다. 연구실을 자신의 벤처회사 사무실로 쓰면서 제자들 인건비를 벤처회사 직원 명의 통장으로 입금하게 했다. 이런 식으로 8년간 한 교수가 가로챈 비용은 14억8000만 원. 한 교수는 이를 개인적 용도로 사용했으며 검찰 조사에서 혐의 대부분을 시인했다고 검찰은 전했다. 국내 화학공학 분야 저명학자인 한 교수는 2015년 10월 박근혜 전 대통령 방미 경제사절단 166명에 들기도 했다. 지난해 11월에는 응용과학 및 화학공학 분야의 대표 학술지인 ‘Industrial & Engineering Chemistry Research’에 2011∼2016년 가장 많은 논문을 게재한 세계의 학자 5명 중 1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서울대 관계자는 “한 교수에 대해 학내에서 별도의 징계절차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김배중 wanted@donga.com·김동혁 기자}

인기 아이돌그룹 ‘빅뱅’의 멤버 탑(본명 최승현·30·사진)이 올 3월 대마초 흡연 혐의로 경찰에 적발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최 씨는 올 2월 입대해 의경으로 근무 중이다. 서울지방경찰청 마약수사대는 최 씨와 가수연습생 A 씨(21·여)를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입건해 수사한 후 4월 말 서울중앙지검에 기소 의견으로 송치했다고 1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최 씨는 지난해 10월 서울 용산구 자택에서 A 씨와 3차례에 걸쳐 대마초를 피운 혐의다. 경찰은 올 3월 초 최 씨가 대마초를 피웠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수사에 착수했다. 그러나 최 씨는 경찰 조사에서 혐의를 부인했다. 그는 “전자담배를 피운 걸 오인한 것 같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A 씨는 “최 씨와 함께 대마초를 피웠다”며 혐의를 인정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감정 결과 최 씨의 모발에서 대마초 흡연 양성 반응이 나왔다. 최 씨는 검찰 송치 후 일부 혐의를 시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마초 입수 경로와 상습 흡연 여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최 씨는 올 2월 의경으로 입대한 뒤 현재 서울지방경찰청 홍보담당관실 악대에 배치돼 강남경찰서에서 근무 중이다. 경찰 관계자는 “수사 결과가 나오는 대로 후속 조치를 취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빅뱅 소속사인 YG엔터테인먼트 측은 “진심으로 깊은 사과의 말씀을 전한다”며 “탑은 입대 전 대마초를 피운 혐의로 최근 의경 복무 중 수사기관에 소환돼 모든 조사를 성실히 마친 상태이며, 조사 과정에서 자신의 혐의를 대부분 인정하고 깊이 반성 중”이라고 밝혔다. 검찰이 약식 기소 시 최 씨는 정상 복무하고 정식 기소하면 의경 직위해제 조치를 받는다. 직위해제 시 판결이 날 때까지는 복무로 인정받지 못한다. 재판에서 징역 1년 6개월 이상이면 강제전역, 이하면 출소 후 남은 기간만큼 복무하게 된다. 빅뱅 멤버 중 대마초 흡연 혐의로 적발된 건 최 씨가 두 번째다. 앞서 지드래곤(본명 권지용·29)이 2011년 일본 투어 공연 중 대마초를 피운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았다. 권 씨는 상습 흡연이 아니고 초범이라는 이유 등으로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김배중 wanted@donga.com·임희윤 기자}
베트남 현지 학생을 대상으로 한국 유학을 성사시켜 주겠다며 돈을 받아 가로챈 일당이 적발됐다. 서울북부지검 형사2부(부장 최용훈)는 이모 씨(63)를 사기 및 횡령 혐의로 구속하고 다른 범행으로 교도소에 수감 중인 박모 씨(53)를 수사 중이라고 25일 밝혔다. 검찰에 따르면 두 사람은 2014년 11월 지인의 소개로 알게 된 뒤 베트남에서 한국유학 사기를 공모했다. 한국 전통무예인 수박도(手搏道)를 수련하며 무예 관련 민간기관장을 지내던 박 씨는 자신의 직함을 내세워 서울의 A 대학을 찾았다. 그는 베트남 학생에게 무예를 가르치는 아카데미를 제안했다. A 대학이 학생의 유학비자를 보증하고 이 씨와 박 씨가 학생을 데려와 한국 전통무예, 어학 등 교육을 진행하는 방식이다. A 대학이 유학비자 보증에 난색을 표하자 같은 해 12월 대학 측이 3개월짜리 단기 어학교육만 담당하는 내용으로 계약을 체결했다. 두 사람은 A 대학과 맺은 어학 위탁계약을 악용했다. 이듬해 2월부터 베트남 하노이 등지에서 현지 학생들에게 “‘A 대학 무예경영아카데미’를 통해 학생비자를 받아 한국 전통무예와 문화 어학 등을 배우며 한국에 장기 체류할 수 있다”고 속였다. 박 씨는 아카데미 원장 직인을 임의로 만들어 대학 핵심관계자인 것처럼 행세했다. 비용은 1인당 약 400만 원. 베트남 국민 1인당 연간소득 200만 원의 두 배 수준이었다. 고액이지만 한류 영향으로 한국의 인기가 높은 데다 학생비자를 받아 장기체류할 수 있다는 생각에 17명이나 지원했다. 이들은 체류비와 교육비로 총 6700만 원을 지불했다. 그러나 베트남 학생들은 결국 한국 땅을 밟지 못했다. 이 씨와 박 씨가 홍보한 아카데미는 비자 발급부터 이뤄지지 않았다. 박 씨는 학생들로부터 받은 체류비 3100만 원을 유용했다. 이 씨는 A 대학이 학생들로부터 받은 교육비 3600만 원을 환불 받아 개인적으로 사용했다. 검찰 관계자는 “한국을 선호하는 사람들의 심리를 파고들어 피해를 입혔고 결과적으로 한류에도 악영향을 끼쳤다”라며 “피의자 처벌뿐 아니라 학생들의 피해 회복을 위해서도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배중 기자 wante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