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종구

양종구 기자

동아일보 콘텐츠기획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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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에 빠져 사는 사람들을 소개합니다. 건강해야 100세까지 즐겁게 살 수 있습니다.

yjongk@donga.com

취재분야

2025-07-03~2025-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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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흔에도 마라톤 풀코스 완주…도전 없는 삶은 죽은 것”[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제가 마라톤 풀코스를 40회 정도 달렸어요. 그런데 완주를 위한 달리기 훈련을 하지 않는다면 믿으시겠어요? 진짜입니다. 전 걷는 것으로 마라톤 훈련을 대신했어요. 그렇게 4시간 20분에서 30분에 완주했습니다. 대회 2개월 전부터 많이 걸었을 땐 3시간47분에 완주하기도 했죠.” 문송천 KAIST 경영대학원 명예교수(70)는 3년 전 마라톤 은퇴를 선언했다가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65세를 넘겨 더 이상 마라톤 42.195km 풀코스 완주는 무리라고 생각하고 2019년 서울국제마라톤 겸 동아마라톤에서 풀코스를 완주한 뒤 은퇴를 선언했다. 하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탓에 너무 움츠러져 있던 생활에서 탈피하고 싶어 다시 도전하게 됐다. 그는 “코로나19가 터진 뒤 영국 러프버러대에 초빙교수로 갔다 2년 만에 돌아왔다. 영국에서도 락다운(lockdown)을 많이 해서 운동을 기회가 많지 않았다. 내 체력이 어느 정도인지 테스트 하고 싶어 달렸다”고 했다. 락다운은 군사계엄령 내린 것과 같이 어떤 활동도 금지되는 상황이다. 그는 올 가을 춘천마라톤에서 4시간50분대에 완주했다. 당분간 마라톤 풀코스 도전은 계속 하겠다고 했다.“오래 사는 것보다는 건강하게 사는 게 중요합니다. 아직 무릎과 발목에 전혀 문제없어요. 하지만 모든 운동은 무리하지 않는 게 중요합니다. 제가 아직 풀코스를 달릴 수 있는 이유는 무리하지 않고 늘 걷기 때문입니다. 지금으론 80세까진 풀코스를 완주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문 교수는 마라톤 풀코스 훈련을 걷기로 하고 있다. 20여 년 전부터 자가용 차까지 팔고 속칭 ‘BMW(버스 메트로 워킹) 족’으로 매일 걸어서 건강을 다지고 있다. 집 서울 압구정에서 연구실이 있는 강북 홍릉까지 12km를 매일 걸어 출근했다. 경기도 과천으로 이사를 간 뒤에는 압구정까지 버스를 타고 간 뒤 걸어서 학교까지 간다. 문 교수가 달리기 시작한 계기는 1990년대 말 불거진 ‘Y2K(컴퓨터2000년 문제)’ 문제 해결. ‘국내 전산학 박사 1호’인 그는 1998년부터 2000년까지 Y2K국제대회 한국대표로 활약했고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문제해결을 위해 노력했다. 그는 “Y2K를 해결하기 위해 1년 반 동안 브라질을 2박 3일 만에 다녀오는 등 전 세계 15개국을 돌아다녔다. 그러다보니 체력이 바닥까지 떨어졌다. 이러다 잘못하면 쓰러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때쯤 엘리트 위주의 마라톤 대회가 일반인들에게 개방됐다. 그래서 달리기 시작했다”고 했다. 문 교수는 “마라톤에는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는 기적이 있다”고 했다.“이 기적은 출발한 뒤 30km 지점에서 일어납니다. 스스로도 도저히 완주하지 못할 것 같던 게 30km 지점을 통과하면서 가능으로 역전되는 것을 느낍니다.” 문 교수는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될 것 같은데 이 ‘큰 일’을 자기 몸에서 나오는 능력만으로 해낸다는 것이 기적이라는 것이다.문 교수는 혼자만을 위해 달리지 않았다. 마라톤에 처음 참가했던 2000년부터 ‘1미터 10원’을 기부하며 지인들에게 ‘1미터 1원’을 권유했다. 풀코스를 완주할 경우 본인은 42만1950원을 내고 지인들은 4만2195원을 낸다. 문 교수는 지금까지 마라톤으로만 6000여 만 원을 내놨고 방송 출연료(30년간 고정출연 2500회) 1억 원을 쾌척했다. 모두 백혈병 어린이 돕기 등 이웃돕기에 썼다.“제 아내(이혜경 용인예술과학대 컴퓨터과 교수)와 비올리스트 리처드 용재 오닐(44)이 후원자입니다. 두 사람 다 1m 10원 운동에 적극 동참해줬습니다. 아내는 직접 뛴 적은 많지 않지만 제가 완주하면 매번 골인 지점에서 절 기다렸어요. 오닐 씨는 2009년 그의 첫 풀코스 레이스를 제가 이끌어 주면서 같이 뛰게 됐죠.” 문 교수는 오닐 씨의 인생 역정을 알게 된 뒤부터 가족처럼 지내고 있다. 6·25 전쟁고아로 미국에 입양된 오닐 씨의 어머니는 어릴 때 고열로 인해 지적장애인이 됐고 미혼모로 그를 낳았다. 문 교수는 “오닐 씨의 어머니는 장애인 마라토너로 활약했다. 그 재능을 물려받아서인지 오닐 씨도 풀코스를 보통 3시간30분 이내에 뛴다”고 했다. 문 교수는 아내와 풀코스와 하프코스 동반완주를 7회 했다. 문 교수는 대학 1학년 때부터 운동을 생활화했다.“제가 문과에서 이과로 옮겨 대학에 들어갔어요. 수학이 달렸죠. 그래서 대학 1학년 때 부족한 공부 따라가려고 무리하게 밤을 새다 쓰러졌어요. 급성 간염으로 숟가락 젓가락도 못 들 정도로 기력이 빠졌죠. 그 때부터 운동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회복 된 뒤로 축구공을 늘 매고 다니며 공을 차며 몸을 다졌어요.” 대학 시설 ‘축구선수’로 불릴 정도로 이름을 날렸다. 대학원 시절 테니스 치기도 시작했다. 어릴 때 단거리 달리기를 잘 했던 문 교수는 하는 스포츠마다 두각을 나타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도 축구공을 차며 녹색 그라운드를 누볐다. KAIST에 축구팀을 만들었고 경영대학원 ‘축구지도 교수’까지 했다. 테니스로는 30년 넘게 KAIST 최강으로 군림했고 전국 전산인 테니스대회에서 우승까지 했다. 아직도 주 2~3회 2시간 이상 테니스를 치고 있다.“학교 테니스 챔피언이 저에게 도전합니다. 순발력과 파워 등에선 달리지만 아직 제가 지지는 않습니다. 40년 가까이 테니스 친 노하우가 있어 밀리지는 않습니다. 걷기로 다져진 체력도 한몫하죠.” 이렇게 활동적이다 보니 문 교수는 평생 병원 신세를 진 적이 없다. 코로나19 백신은 맞았지만 감기 등 예방 주사는 단 한번 맞지 않았다. 문 교수는 도전이 없으면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제가 운동을 한 뒤 뒤늦게 체력이 좋다는 것을 알고 운동을 생활화 했습니다. 한 끼는 굶어도 운동은 절대 거르지 않습니다. 인간은 죽을 때까지 움직여야 합니다.”‘새는 날고 물고기는 헤엄치고 인간은 달린다.’ 살아있는 한 체코의 마라톤 전설 에밀 자토펙의 명언을 실천하겠다는 각오다.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 2022-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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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걷기 덕분에 일흔에도 학부 테니스 챔피언에게 안 져”[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대학 1학년 때 부족한 공부 따라가려고 무리하게 밤을 새우다 쓰러졌다. 급성 간염으로 숟가락 젓가락도 못 들 정도로 기력이 빠졌다. 회복된 뒤로 축구공을 늘 메고 다니며 공을 차고 몸을 다졌다. 대학원 시절 테니스를 치기 시작했다. 50세를 앞둔 2000년부터는 마라톤 풀코스 42.195km를 완주하기 위해 걸었다. 서울 압구정 집에서 연구실이 있는 강북 홍릉까지 12km를 매일 걸어 출근했다. 문송천 KAIST 경영대학원 명예교수는 일흔의 나이에도 마라톤을 완주하고 테니스를 격렬하게 칠 수 있는 원동력에 걷기가 있다고 했다. 20여 년 전부터 차까지 팔고 속칭 ‘BMW(버스 메트로 워킹)족’으로 매일 걷는다. “제가 마라톤 풀코스를 40회 정도 달렸어요. 그런데 완주를 위한 달리기 훈련을 하지 않는다면 믿으시겠어요? 진짜입니다. 전 걷는 것으로 마라톤 훈련을 대신했어요. 그렇게 4시간 20분에서 30분에 완주했습니다. 대회 2개월 전부터 많이 걸었을 땐 3시간 47분에 완주하기도 했죠.” 3년 전 마라톤 질주를 그만뒀던 문 교수는 올가을 다시 풀코스를 달렸다. 65세를 넘겨 더 이상 풀코스 완주는 무리라고 생각하고 2019년 서울국제마라톤 겸 동아마라톤 완주를 끝으로 은퇴를 선언했다. 하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탓에 너무 움츠려 있던 생활에서 벗어나고 싶어 다시 도전하게 됐다. 그는 “코로나19 터진 뒤 영국 러프버러대에 초빙교수로 갔다 2년 만에 돌아왔다. 내 체력이 어느 정도인지 테스트 하고 싶어 다시 달렸다”고 했다. 그는 춘천마라톤에서 4시간 50분대에 완주했다. 마라톤 풀코스 도전은 당분간 계속하겠다고 했다. 문 교수가 달리기 시작한 계기는 1990년대 말 불거진 ‘Y2K(컴퓨터 2000년 문제)’ 해결. ‘국내 전산학 박사 1호’인 그는 1998년부터 2000년까지 Y2K국제대회 한국 대표로 활동했고 세계를 돌아다니며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했다. 그는 “Y2K를 해결하기 위해 1년 반 동안 전 세계 15개국을 돌아다녔다. 그러다 보니 체력이 바닥까지 떨어졌다. 이러다 잘못하면 쓰러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쯤 엘리트 위주의 마라톤 대회가 일반인들에게 개방됐다. 그래서 달리기 시작했다”고 했다. 문 교수는 혼자만을 위해 달리지 않았다. 마라톤에 처음 참가했던 2000년부터 ‘1미터 10원’을 기부하며 지인들에게 ‘1미터 1원’을 권유했다. 풀코스를 완주할 경우 본인은 42만1950원을 내고 지인들은 4만2195원을 낸다. 문 교수는 지금까지 마라톤으로만 6000여만 원을 내놨고 방송 출연료(30년간 고정출연 2500회) 1억 원을 쾌척했다. 모두 백혈병 어린이 등 이웃 돕기에 썼다. 어릴 때 단거리 달리기를 잘했던 문 교수는 하는 스포츠마다 두각을 나타냈다. 대학 때는 ‘축구선수’로 불릴 정도로 이름을 날렸고, 불과 몇 년 전까지도 축구공을 차며 녹색 그라운드를 누볐다. KAIST에 축구팀을 만들었고 경영대학원 ‘축구지도 교수’까지 했다. 테니스로는 30년 넘게 KAIST 최강으로 군림했다. 전국 전산인 테니스대회에서도 우승했다. 아직도 주 2, 3회 2시간 이상 테니스를 치고 있다. “학교 테니스 챔피언이 저에게 도전합니다. 순발력과 파워 등에선 달리지만 아직 제가 지지는 않습니다. 40년 가까이 테니스 친 노하우가 있어 밀리지는 않습니다. 걷기로 다져진 체력도 한몫하죠.” 이렇게 활동적이다 보니 문 교수는 평생 병원 신세를 진 적이 없다. 코로나19 백신은 맞았지만 감기 등 예방 주사는 단 한 번도 맞지 않았다. “오래 사는 것보다는 건강하게 사는 게 중요합니다. 모든 운동은 무리하지 않아야 하죠. 제가 아직 풀코스를 달릴 수 있는 이유는 무리하지 않고 늘 걷기 때문입니다. 지금으로선 80세까지는 풀코스를 완주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문 교수는 도전이 없으면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 경기 과천으로 이사를 간 문 교수가 버스 타고 압구정까지 가서 홍릉까지 약 12km를 매일 걷는 이유도 도전이다. ‘새는 날고 물고기는 헤엄치고 인간은 달린다.’ 걸을 수 있는 한 체코의 마라톤 전설 에밀 자토페크의 명언을 실천하겠다는 각오다.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 2022-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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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릎 연골 다 닳았지만…주짓수로 땀 흠뻑 흘려야 사는 맛 느껴요”[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으로 유명한 미국 몬태나주에서 태어나 자연스럽게 어릴 때부터 스키를 즐겼다. 몬태나는 스키의 명소이다. 리샤오룽(李小龍) 영화에 푹 빠지면서 14살부터는 태권도를 배우기 시작했다. 미국 태권도국가대표까지 지낸 스티븐 캐프너 서울여대 영문과 교수는 만 63세에도 격렬한 주짓수로 건강을 다지고 있다. 그는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평생 운동을 생활해온 터라 움직이지 않는 것은 죽은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부상으로 양쪽 무릎 수술을 각 5번씩 받아 연골이 다 닳았죠. 하지만 주 2, 3회 주짓수로 땀을 흠뻑 흘려야 사는 맛을 느껴요. 1990년대 말 주짓수를 배운 뒤 무릎 탓에 태권도에서 더 이상 발차기를 할 수 없게 됐죠. 그 때부터 태권도 대신 주짓수로 건강을 챙기고 있습니다.” 캐프너 교수는 1999년 한국에서 주짓수를 만났다.“1999년 미국 하버드대에서 공부하다 한국에 잠시 온 존 프랭클이란 친구로부터 주짓수를 전수 받았어요. 전 태권도와 유도를 다하고 있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쉽게 배울 수 있었죠. 연세대에 주짓수 동아리를 만들었고 소문을 듣고 찾아온 10여명이 함께 배웠죠. 그게 한국 주짓수의 시작이 됐습니다.” 당시 이화여대 통번역대학원에서 강의하던 캐프너 교수는 이대 체육관에서 태권도 동아리를 이끌고 있었다. 한국 태권도국가대표 등 엘리트 선수 출신도 있었다. 축구와 야구, 등산 동아리는 많았지만 격투기 동아리는 없었던 때였다. 미국에선 모든 종목 엘리트 선수들이 자연스럽게 생활 스포츠로 녹아드는데 한국에선 특정 종목 외에는 잘 안 되는 것에 안타까움을 느껴 시도한 동아리였다. 주짓수 동아리도 태권도 동아리처럼 자연스럽게 이어졌고 분파가 돼 전국으로 퍼지게 됐다.“주짓수는 굳이 무릎을 많이 쓰지 않고 누워서도 다양한 기술을 발휘할 수 있어요. 주짓수는 상대를 바닥으로 유도해 조르기, 누르기, 비틀기, 뒤집기, 꺾기, 압박, 점유 등의 다양한 기술로 제압하는 무술이죠. 앉아서 하는 기술도 있어요. 그렇다보니 무릎에 무리가 가지 않아요. 1시간30분 씩 주 3회 땀 흘리면 온갖 스트레스를 날리며 건강도 잘 챙길 수 있죠. 함께 운동한 회원들과 돼지갈비에 소주 한잔 하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캐프너 교수는 서울 신촌 주짓수에서 매주 2, 3회 운동하고 회원들하고도 어울린다. 그는 “선수들보다는 건강을 위해 찾는 사람들이다. 학생도 있고 회사원도 있고 사업사는 사람도 있다. 다양한 사람들이 하나의 목적, 건강을 위해 땀 흘린다”고 했다. 그는 직접 회원들에게 주짓수를 지도하기도 한다. 사실 그의 최애 운동은 태권도였다. 리샤오룽 영화를 보고 화려한 발차기에 매료돼 다양한 격투기를 접했다. 그는 “중국의 쿵후, 일본의 가라테, 한국의 태권도를 비교해 봤다. 화려한 발 기술에 묘미가 있는 리샤오룽 영화에 가장 가까운 무술이야말로 태권도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했다.“태권도와 유도를 함께 했는데 태권도 사범님이 태권도 하나에 집중하라고 하셨죠. 결과적으로 그분 말이 맞았습니다.” 몬태나주립대 체육학과에 진학해 계속 태권도를 익힌 그는 미국 국가대표가 돼 1987년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 라이트 급 3위, 1987년 미국태권도선수권대회 라이트 급 1위를 차지했다. 아버지가 6·25전쟁 참전 용사인 그는 1988년 서울올림픽을 준비하러 1987년 한국에 전지훈련을 오면서 한국과 계속 인연을 맺고 있다. 하지만 무릎 부상으로 올림픽에는 출전하지 못했다. “18살에 무릎을 크게 다쳤어요. 수술 받고 다시 태권도를 시작했죠. 그런데 결국 안 되더라고요. 다른 친구에게 밀려 올림픽에 나가지 못했어요. 하지만 한국에서 다른 기회를 찾았죠.” 태권도를 했기에 한국 태권도 관계자들의 도움으로 종주국 한국에 안착하게 됐다. 1989년부터 세계태권도연맹(WT)에서 일하며 공부할 기회를 잡은 것이다. WT에서 국제심판 교육과 영문 잡지 발행을 도운 그는 1991년 서울대 체육교육과 석사과정에 입학했고 1998년 태권도에 담긴 철학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문학에 빠진 그는 한국 소설을 영문으로 번역하기도 했다. 연세대에서 근현대소설로 국문학 박사학위도 받았다. 그가 좋아하는 한국작가들은 이효석 김동리 이청준 안수길 등. 캐프너 교수는 최근 연세대 국제학부에서 한국학도 강의도 시작했다. 한국에 대해 영어로 강의한다. 캐프너 교수는 사실상 ‘한국인’이란 소릴 듣는다. 한국 이름도 있다. 서태부(西跆夫). ‘서양 사람으로 태권도를 하는 사나이’란 뜻이다. 태권도로 오래전부터 인연을 이어온 양진방 대한태권도협회 회장(65)이 이름 ‘스티븐’과 비슷하게 지어줬다. 한국에서 다양한 공부를 하면서도 태권도 즐기기를 놓지 않았던 캐프너 교수는 2002년부터는 주짓수에 매달리고 있다. 주짓수 하나만으로 근력과 유연성, 심폐지구력까지 키울 수 있다고 했다. 그는 현재 주짓수 4단, 태권도 8단과 유도 1단까지 총 13단의 고수다.“솔직히 무릎 연골이 없어 다리가 약간 휘기도 했죠. 하지만 무릎 움직임을 최소화하는 운동을 찾아 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어떤 식으로든 움직여 땀을 흘려야 합니다. 그래야 몸도 마음도 건강하게 지킬 수 있습니다.” 캐프너 교수는 한국에서 30년 넘게 살면서 학생들이 어렸을 때부터 자연스럽게 뛰어 놀지 못하고 공부에 매달려야 하는 환경에 대해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다. 그는 “난 어릴 때부터 안 해 본 운동이 없다. 학교에 가면 자연스럽게 야구와 농구, 미식축구, 테니스 등 다양한 스포츠를 접한다. 내 고향 몬태나가 스키 명소로 유명해 어릴 때부터 스키도 즐겼다. 그런 좋은 경험이 아직도 날 계속 움직이게 한다”고 말했다.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 2022-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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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격렬하게 주짓수를 할 때 살아 있음을 느낀다” [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미국 태권도 국가대표 출신 스티븐 캐프너 서울여대 영문과 교수(63)는 부상으로 양쪽 무릎 수술을 5번씩 받아 연골이 다 닳았지만 요즘도 주 2, 3회 주짓수를 격렬하게 해 땀을 흘려야 사는 맛을 느낀다. 20여 년 전 주짓수를 익혔고 태권도 발차기를 더 이상 할 수 없게 되자 주짓수로 건강을 다지고 있다. “1999년 미국 하버드대에서 공부하다 한국에 잠시 온 존 프랭클이란 친구로부터 주짓수를 전수받았어요. 저는 태권도와 유도를 다 할 수 있어 상대적으로 쉽게 배울 수 있었죠. 연세대에 주짓수 동아리를 만들었고 소문을 듣고 찾아온 10여 명이 함께 배웠죠. 그게 한국 주짓수의 시작입니다.” 당시 이화여대 통역번역대학원에서 강의하던 캐프너 교수는 이화여대 체육관에서 태권도 동아리를 이끌고 있었다. 한국 태권도 국가대표 등 엘리트 선수 출신도 있었다. 축구와 야구, 등산 동아리는 많았지만 격투기 동아리는 없던 때였다. 미국에선 모든 종목 엘리트 선수들이 생활 스포츠로 자연스럽게 녹아드는데 한국에선 특정 종목 외에는 잘 안되는 것에 안타까움을 느껴 만든 동아리였다. 주짓수 동아리도 태권도 동아리처럼 자연스럽게 이어졌고 분파가 만들어져 전국으로 퍼지게 됐다. “주짓수는 굳이 무릎을 많이 쓰지 않고 누워서도 다양한 기술을 발휘할 수 있어요. 주짓수는 상대를 바닥으로 유도해 조르기, 누르기, 비틀기, 뒤집기, 꺾기, 압박, 점유 등 다양한 기술로 제압하는 무술이죠. 앉아서 하는 기술도 있어요. 그렇다 보니 무릎에 무리가 가지 않아요. 1시간 30분씩 주 3회 땀 흘리면 온갖 스트레스를 날리며 건강도 챙길 수 있죠. 함께 운동한 회원들과 돼지갈비에 소주 한잔하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으로 유명한 미국 몬태나주 출신인 캐프너 교수는 리샤오룽(李小龍) 영화에 푹 빠지면서 14세 때부터 태권도를 배우기 시작했다. “중국의 쿵후, 일본의 가라테, 한국의 태권도를 비교해 봤다. 화려한 발 기술에 묘미가 있는 리샤오룽 영화에 가장 가까운 무술은 태권도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했다. 몬태나주립대 체육학과에 진학해 계속 태권도를 익힌 그는 미국 국가대표가 돼 1987년 세계선수권대회 라이트급 3위, 1987년 미국선수권대회 라이트급 1위를 했다. 아버지가 6·25전쟁 참전 용사인 그는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준비하러 1987년 한국에 전지훈련을 오면서 한국과 인연을 계속 이어오게 됐다. 무릎 부상으로 올림픽에 출전하지 못했지만 한국 태권도 관계자들의 도움으로 1989년부터 세계태권도연맹(WT)에서 일하며 한국에 정착한 것이다. WT에서 국제심판 교육과 영문 잡지 발행을 도운 그는 1991년 서울대 체육교육과 석사 과정에 입학했고 1998년 태권도에 담긴 철학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 문학에도 빠진 그는 연세대에서 근현대소설로 국문학 박사학위도 받았다. 한국 사람이 다 된 것이다. 한국 이름도 있다. 서태부(西跆夫). ‘서양 사람으로 태권도를 하는 사나이’란 뜻이다. 태권도로 오래전부터 인연을 이어온 양진방 대한태권도협회 회장(65)이 이름 ‘스티븐’과 비슷하게 지어줬다. 한국에서 다양한 공부를 하면서도 태권도 즐기기를 멈추지 않았던 캐프너 교수는 2002년부터는 주짓수에 집중하고 있다. 주짓수 하나만으로 근력과 유연성, 심폐지구력까지 키울 수 있다고 했다. 그는 현재 주짓수 4단, 태권도 8단, 유도 1단 등 총 13단의 무술 고수다. “솔직히 무릎 연골이 없어 다리가 약간 휘기도 했죠. 하지만 무릎 움직임을 최소화하는 운동을 찾아 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어떤 식으로든 움직여 땀을 흘려야 합니다. 그래야 몸도 마음도 건강하게 지킬 수 있습니다.” 캐프너 교수는 한국에서 30년 넘게 살면서 학생들이 어렸을 때부터 자연스럽게 뛰어놀지 못하고 공부에 매달려야 하는 환경에 대해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다. 그는 “미국에선 어릴 때 뛰어노는 게 일이다. 학교에 가면 자연스럽게 야구와 농구, 미식축구, 테니스 등 다양한 스포츠도 접한다. 내 고향 몬태나가 스키 명소로 유명해 어릴 때부터 스키도 탔다. 그런 좋은 경험이 아직도 날 계속 움직이게 한다”고 말했다. 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 2022-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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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제노르딕워킹협회, 국내 첫 100세 시대 준비 콘퍼런스 개최

    사단법인 국제노르딕워킹협회(회장 박요한)가 11월 11일 서울시 은평구 북한산 국제노르딕워킹센터 2층에서 창립기념 제1회 2022국제노르딕워킹 콘퍼런스를 개최했다. 국제노르딕워킹협회가 지정한 노르딕워킹 데이를 맞아 마련한 행사다. 국내 최초로 열린 국제노르딕워킹 콘퍼런스에는 협회 임원을 비롯해 전국에서 활동하는 인스트럭터, 교육생들이 참가했다. 1부 행사 때는 최근 일본연수를 다녀온 주연서 내셔널트레이너의 진행으로 노르딕워킹의 신기술을 소개했다. 본격적인 학술 발표로 이어진 2부에서는 이원식 서울의료원 과장의 ‘여성건강과 노르딕워킹’과 임진선 우석대 스포츠지도학과장의 ‘노르딕워킹 교육사례’가 최근 100세 시대를 준비하는 현대인에게 방향타가 될 수 있는 좋은 내용으로 참가자들의 호평을 받았다. 박요한 회장은 “노르딕워킹이 국민 건강 프로젝트로 발전하기 위해선 국민 모두가 쉽게 접할 수 있어야 한다. 학술적인 뒷받침도 중요하다. 내년에는 국제노르딕워킹대회를 유치해 많은 사람들이 참가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양종구기자 yjongk@donga.com}

    • 2022-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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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살 빼고 몸 만드는데 케틀벨 스윙이 최고”[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케틀벨(KettleBell)’을 아시나요? 쇠로 만든 공에 손잡이를 붙인 중량기구로 소의 목에 다는 벨과 모양이 유사해 붙여진 이름. 링 웨이트(Ring Weight)라고도 한다. 케틀벨이 짧은 시간에 가장 효과적으로 살을 뺄 수 있는 홈트레이닝 운동기구로 인기를 끌고 있다. 김금자 김금자 바디핏 교육관 원장(50)은 “혼자서 집에서 할 수 있는 운동 기구로 케틀벨이 최고”라며 “근육운동이면서 유산소운동까지 할 수 있어 짧은 시간에 몸을 만들며 다이어트 효과까지 볼 수 있다”고 말했다.“아주 간단한 도구로 근육도 만들고 유산소 운동까지 되는 운동이 바로 케틀벨 스윙입니다. 운동하려고 피트니스센터에 가야 하는 수고를 덜면서 케틀벨 하나로 몸을 만들 수 있습니다. 스윙 동작도 다양하고 스쾃, 암컬, 런지 등 다양한 동작도 할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운동의 만능기구입니다.” 김 원장은 1997년 국내에서 처음 실시한 미즈코리아에서 우승한 인물. 그는 “남성들의 전유물이던 보디빌딩 대회에서 여성부문이 1995년부터 만들어졌는데 체급별로만 시상을 하다 대회 최고를 뽑는 미즈코리아 부문을 1997년에 처음 도입했다. 내가 1호 우승자”라고 했다. 김 원장은 1998년엔 미즈아시아에서 우승했고 그해 세계대회에 나가서 커플부문 3위에 입상한 국내 여성 보디빌더의 선구자다. 지금은 1대1 맞춤형 몸만들기 지도자로 활약하고 있다. 그는 특히 요즘 뜨고 있는 홈트레이닝 노하우를 전수하는 전문가로 이름을 떨치고 있다.“다리와 엉덩이, 복부, 척추, 팔, 어깨 등 거의 모든 부위를 활용해 할 수 있는 운동이 케틀벨 스윙입니다. 모든 근육을 동원하기 때문에 짧은 시간에 많은 에너지를 태울 수 있죠.” 다양한 연구 결과 케틀벨 스윙을 할 때 우리 몸의 600개 이상의 근육이 동원된다고 한다. 우리 몸에 근육이 전체 650개가 넘게 있으니 사실상 모든 근육을 사용한다고 보면 된다. 미국 운동 위원회(The American Council on Exercise)가 10여 년 전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케틀벨 스윙은 평균적으로 1분당 20칼로리를 소모한다. 20분에 400칼로리. 이는 1마일(1.6km)을 6분 페이스로 20분 달리는 것과 비슷하다. 20분에 약 5.2km를 달리는 아주 힘든 운동과 같은 셈이다. 케틀벨 스윙을 1시간 한다면 일반적으로 무려 1200칼로리를 소모할 수 있다. 70kg의 남성이 2시간 20분 달려야 소비할 수 있는 열량이다. 케틀벨 운동은 운동 후 초과산소섭취량(EPOC)도 높여준다. 우리 몸에선 운동이란 스트레스로 인해 깨어진 항상성을 다시 복원시키는 기전이 일어난다. 운동할 때 체내에서 쓴 산소를 다시 공급해야 몸이 정상으로 돌아가는데 이 때 에너지를 많이 소비한다. 운동 강도에 따라 다르지만 평균 운동 후 6시간 이상 안정시 보다 높은 소비 칼로리를 쓴다. 케틀벨 운동도 강도가 높기 때문에 운동 소비 칼로리를 극대화 시킬 수 있고 단위시간당 우리 몸속에 저장된 지방을 가장 많이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기본적인 케틀벨 운동은 두 다리를 골반 너비로 벌린 상태에서 양손으로 케틀벨 핸들을 쥐고 스윙하는 동작이다. 무릎을 약간 굽히면서 원심력을 이용해 케틀벨을 다리 사이로 넣었다가 무릎을 펴면서 케틀벨을 들어올린다. 케틀벨을 스윙해 가장 높이 들었을 때, 반대로 다리 사이로 넘겨 가장 뒤로 넘어갔을 때 엉덩이가 먼저 추진력을 내야 한다. 즉 팔 힘으로 케틀벨을 스윙하는 것이 아니라, 엉덩이가 쥐어짜는 힘을 이용해 스윙한다는 것이다. 들어올릴 때 단전에 힘을 모이는 것도 중요하다. 팔은 그저 케틀벨 손잡이를 쥐는 역할을 할 뿐이다.“허리와 복근에 힘을 주고 가슴을 쫙 펴고 스윙을 해야 합니다. 새우등이 되거나 허리와 복근에 힘이 덜 들어가면 자칫 부상을 당할 수 있습니다. 케틀벨이 내려올 때 무릎에 체중이 쏠리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그럼 골반으로 가는 힘을 뺏기기 때문에 등쪽으로 힘이 덜 들어가 운동효과가 없습니다. 무릎 무상 위험도 있고요.” 초보자들은 작은 무게로 횟수를 많이 하는 게 좋다. 김 원장의 조언이다.“2, 4, 6, 8, 10, 12kg…. 케틀벨이 짝수로 나옵니다. 사실 맨손으로 시작하는 게 가장 좋습니다. 좀 체력이 된다면 한번에 스윙 50회를 했을 때 힘은 들면서도 몸에 큰 무리가 없다면 적당한 무게입니다.” 작은 무게로 횟수를 많이 해 체력을 키운 뒤 무게를 올릴 경우 1세트에 8~15회 할 수 있는 무게가 좋다. 세트는 보통 3, 5, 7, 10회 반복한다. 다시 특정 무게로 15회에 10세트 이상이 가능하다면 무게를 올려 다시 세트당 8~15회를 3~10회 하는 식이다. 케틀벨 운동으로 망가진 몸을 다시 일으켜 세운 사레는 많다. 요즘은 마라톤과 트레일러닝, 등산까지 섭렵하고 있는 오세진 작가(41)도 교통사고 후유증을 케틀벨로 극복했다. 2014, 2015년 몸이 극도로 좋지 않았지만 케틀벨 운동을 한 뒤 2018년 마라톤 풀코스를 뛸 정도로 좋아진 것이다. 다음은 오 작가의 말이다.“누가 들으면 거짓말이라고 할 것입니다. 케틀벨 운동을 지속하면서 몸이 좋아졌다. 운동효과가 긍정적으로 나타났습니다. 목과 허리의 만성 통증이 거짓말처럼 사라졌어요. 웨이트트레이닝은 팔과 다리, 몸통 등 분할운동입니다. 케틀벨은 몸의 협응력, 전반적인 밸런스를 잡아주는 운동이었죠. 속칭 코어를 발달시키는 운동이었는데 정말 내 몸에 좋은 효과를 줬습니다.” 오 작가는 요즘은 부 정기적으로 전반적인 체력을 끌어올릴 때 케틀벨 운동을 하고 있다. 김 원장도 “바른 자세로 하면 몸을 짧은 시간 안에 탄탄하게 만들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 원장은 체육교사가 되기 위해 고려대 체육교육과에 입학했지만 졸업을 앞두고 멋진 근육을 자랑하는 여성들을 본 뒤 근육운동에 매달렸다.“4학년 2학기 때 교사 임용고시를 준비하러 서울 노량진 학원가에 갔을 때였죠. 우연히 보디빌딩잡지인 ‘머슬&피트니스’를 보고 반했어요. 여성분들 몸이 너무 멋있었죠. ‘여자도 이런 몸을 만들 수 있구나’…. 바로 학원을 뒤로하고 보디빌딩 연구소를 찾아갔죠. 그게 1995년 이었습니다.” 1995년도에 대한보디빌딩협회 코치아카데미 처음 들어간 이후에 1996년도 4월 춘계 보디빌딩 전국대회부터 출전해 입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1997년 당당하게 대한민국 미즈코리아 1호 챔피언이 된 것이다.“1998년 세계대회에서 입상한 뒤 바로 은퇴했어요. 결과는 멋있지만 준비과정이 너무 힘들었어요. 정상에 있을 때 내려오고 싶기도 했고요. 보디빌딩연구소에서 일하며 머슬&피트니스 기자도 했고 아이를 낳아 육아도 했습니다.” 김 원장은 2009년부터 서울 강남권 피트니스센터를 돌며 매니저 역할을 했다. 한창 피트니스가 뜰 때였다. 그리고 2015년 여의도에 김금자 바디핏을 열었다. 모교에서 석사 박사학위도 받았다. 최근 모교 선후배들하고 ‘하나(One)를 위한 하모니(Harmony) 고려대학교 2023년 몸짱 달력을 함께 만들기도 했다. 90년이 넘는 전통의 고려대 역우회(역도부 출신 모임) 회원들과 함께 했다. 김 원장은 역우회는 아니었지만 열심히 몸 만들고 ’몸짱 전도사‘로 일하고 있다는 소식에 지인들이 연결해줘 함께 하게 됐다.“11월 4일엔 고려대에서 열린 ‘힘의 미전’ 미스터 고대 선발대회 때 잠시 무대에 서기도 했습니다. 아직 미즈 고대 선발전을 안 해서 안타깝지만 역도부에 여학생이 1명 있다고 해 희망을 봤습니다. 그 학생을 시작으로 많은 고대 여학생들이 몸을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김 원장은 케틀벨이 여성들에게 특히 좋다고 강조했다.“케틀벨 스윙이 고관절 부위를 많이 쓰다보니 여성들에게 좋아요. 생리통이 있는 여성, 자리에 오래 앉아 있어 생리불순을 겪는 여학생, 전립선이 좋지 않는 남성에게도 좋고요. 케틀벨로 골반을 수직, 수평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고관절, 둔근, 복근 등을 활성화 시켜줍니다.” 그는 “건강이 곧 아름다움이고, 장수 비결”이라고 강조했다.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 2022-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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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예순 넷에 특전사 훈련”…“마라톤 덕에 신체나이 40대란 평가 받아요” [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제가 아직 특전사 훈련 받고 있다면 믿으시겠어요?”처음 만났을 때 예순이 넘은 마스터스 마라토너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함께 간 사진 기자도 “이렇게 젊어 보일 수가 없다”고 했다. 노수영 메리츠증권 상무(63)는 “달리기 덕분”이라고 했다. 업무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기 위해 달리기 시작했는데 젊음도 따라서 왔다. 그가 평생 질주를 멈추지 않고 있는 이유다.“달린지 한 30년 됐습니다. 영업하다보면 술도 많이 마시게 돼요. 스트레스를 건전하기보다는 유해한 방식으로 풀 때가 많았죠. 그러다보니 몸도 망가지고…“‘머니게임’을 하는 증권회사에 근무하다보니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이러다 큰 일 날수도 있다”는 생각에 달리기 시작했다고 했다.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운동이 달리기였다. 달리면 모든 것을 잊고 잠시나마 일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땀을 흠뻑 흘리고 나면 기분도 좋았다.달리다 보니 달리는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렸다. 경기 군포의 해오름 마라톤클럽에 가입했다. 지점에 근무할 땐 지점 사원들하고도 함께 달렸다. 2000년대 초반부터 각종 마라톤대회에도 출전했다. 지금까지 42.195km 풀코스를 60회 넘게 완주했다. 개인 최고기록은 2014년 가을 춘천마라톤에서 세운 3시간 47분대다. 그는 “잘 달리는 분들은 서브스리(2시간대 완주)에도 완주하는데 난 즐겁게 달리는 게 더 좋았다”고 했다. 지금도 4시간대로 기록엔 신경 쓰지 않고 달린다.“주변에 무리하다 후유증으로 고생하는 사람들 많이 있어요. 왜 죽기 살기로 달리는지… 즐겁고 건강하자고 달리는 것 아닌가요?”노 상무는 서울국제마라톤 겸 동아마라톤과 춘천마라톤 등 주로 메이저 대회에만 출전한다. ‘펀런(즐겁게 달리기)’를 하다보니 서브스리를 해야 주는 ‘동아마라톤 명예의 전당’에는 가입하지 못했지만 10회 이상 풀코스 완주자에게 주는 ‘춘천마라톤 명예의 전당’에는 2014년 가입했다. 가장 좋아하는 코스는 동아마라톤 서울 코스. 그는 “언제 서울 시내를 달려볼 수 있나? 대한민국의 상징 1988년 서울올림픽이 열린 잠실종합운동장으로 골인하는 것도 너무 감동적이다”고 했다.“제 차안엔 러닝슈즈와 운동복이 항상 비치돼 있습니다. 일이 바쁘다보니 시간 날 때 사무실 근처 여의도 공원이나 한강공원을 달립니다. 저는 제대로 달릴 때는 주로 국립극장 쪽에서 출발하는 남산 북측순환로를 찾습니다. 오르막내리막이 적당히 있어 훈련에 최고입니다. 하루에 10~15km 정도 달리면 온갖 잡념, 스트레스가 날아갑니다.”풀코스도 준비가 되지 않으면 절대 완주하지 않는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대회가 열리지 않다가 올 가을부터 본격적으로 마라톤 시즌이 시작됐지만 그는 춘천마라톤 10km에 출전해 완주했다. 그는 “풀코스를 달리려면 최소한 3개월은 준비해야 한다. 하루 10~15km, 총 500km이상은 달려야 무리 없이 완주할 수 있다. 3개월 철저하게 준비하고 완주하면 몸이 새로 태어나는 기분”이라고 했다.마라톤에 빠지면서 골프를 끊었다. 그는 “영업 초창기에는 골프를 쳤는데 시간을 따로 내야 하는데다 시간도 많이 걸리고 장비도 챙겨야 해 일찍 접었다. 일상 속에서 틈나는 대로 할 수 있는 달리기가 내겐 가장 좋았다. 증권사 임원 중에 골프 안치는 사람은 나 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노 상무는 주말엔 주로 산을 찾는다. 대회 출전을 앞두고는 20~30km 장거리를 달리지만 등산이 주는 맛이 또 다르기 때문이다. 자연 속 좋은 공기를 마시며 오르막 내리막을 걷다보면 훈련 효과도 크다. 가장 좋아하는 산은 북한산. “언제 가든 새로움을 느낄 수 있는 명산”이라고 했다.나이는 70세를 향해 가지만 종합검진에서는 40대 몸으로 평가될 정도로 건강하다. 체중도 65kg에서 변화가 없다. 노 상무는 마라톤을 통해 배운 도전정신과 지구력으로 아직도 ‘살얼음판’ 증권가에서 버티고 있다. “몸이 건강해야 일도 잘 한다”는 철칙을 평생 실천한 결과다. 같은 또래 친구들은 벌써 떠나 다른 일을 하고 있다. 실제로 증권가에서는 60세 넘어서까지 일하는 경우는 드물다.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면 사장 되는 게 업계의 관행이다. 그만큼 노 상무가 인정받고 있다는 얘기다.“달리면서 배운 게 자신감입니다. 아직 뛸 수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 뭐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충만해집니다. 제가 특전사 출신인데 ‘안 되면 되게 하라’는 구호가 있는데 ‘달리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아직 산악마라톤인 트레일러닝과 철인3종엔 발을 들이지 않았는데 조만간 시작할 예정이라고. “산이 주는 묘미가 다르고, 사이클과 수영하는 재미도 쏠쏠할 것 같다”고.노 상무는 대한민국특전사동지회 감사를 맡고 있다. 1979년 12월 제3공수특전여단에 입대해 1982년 9월 제대한 예비역 병장인 그는 2011년 8월 창설된 특전예비군에 가입해 매년 동원훈련까지 하고 있다. 특전예비군은 20만 명이 넘는 북한의 특수부대와의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만들었다. 사격, 헬기레펠(하강·Rappel), 패스트로프(굵은 로프를 내려오는 훈련), 모형탑(11m에서 뛰어내리는 훈련) 등 적지로 침투해서 싸울 수 있는 모든 훈련을 한다. 그는 특전예비군 최고령이지만 마라톤으로 쌓은 체력 덕분에 후배들에게 전혀 뒤지지 않는다. 특전예비군은 64세까지 동원훈련을 하고 있는데 매년 예비군 인원이 감소해 동원훈련을 67세로 연장할 계획이라고 한다.“창설 당시 거창했지만 어느 순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 예비군들이 떠나고 있어요. 2014년 1200여명이었는데 지금은 600여명 밖에 되지 않아요. 요즘 군대가 좋아져서 특전사 병사들이 전역을 하지 않으려고 한다는데 왜 예비군은 잘 관리하지 못하는지 안타깝습니다. 전 67세까지 동원 훈련에 참가할 생각입니다.”노 상무는 마라톤동호회와 특전예비군에서 봉사활동도 많이 한다. 그는 “코로나19 초기 때 사람들이 밖에 다니는 것을 무서워할 때 때 공동시설 방역도 했다. 산불 났을 때는 지역 특전예비군을 동원해 불을 끄기도 한다”고 했다.노 상무는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 달릴 계획이다. “사람이 움직이지 못하면 죽은 거나 다름없다고 합니다. 전 달리지 못하면 죽은 것이라 생각하고 매일 달리고 있습니다.”양종구기자 yjongk@donga.com}

    • 2022-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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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마라톤 덕에 예순 넘어서 특전사 훈련도 거뜬”

    ‘머니게임’을 하는 증권회사에 근무하다 보니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이러다 큰일 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달리기 시작했다.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운동이 달리기였다. 달리면 모든 것을 잊고 잠시나마 일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땀을 흠뻑 흘리고 나면 기분도 좋았다. 노수영 메리츠증권 상무(63)는 업무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기 위해 달리기 시작해 평생 질주를 멈추지 않고 있다. “달린 지 한 30년 됐습니다. 영업하다 보면 술도 많이 마시게 돼요. 쌓인 스트레스를 유해한 방식으로 풀 때가 많았죠. 그러다 보니 몸도 망가지고….” 달리다 보니 달리는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렸다. 경기 군포의 해오름 마라톤클럽에 가입했다. 지점에 근무할 땐 지점 사원들하고도 함께 달렸다. 2000년대 초반부터 각종 마라톤대회에도 출전했다. 지금까지 42.195km 풀코스를 60회 넘게 완주했다. 개인 최고기록은 2014년 가을 세운 3시간 47분대다. 그는 “잘 달리는 분들은 서브스리(3시간 이내 완주)도 하는데 난 즐겁게 달리는 게 더 좋았다”고 했다. 지금도 4시간대로 기록엔 신경 쓰지 않고 달린다. “제 차 안엔 러닝슈즈와 운동복이 항상 비치돼 있습니다. 일이 바쁘다 보니 시간 날 때 사무실 근처 여의도공원이나 한강공원을 달립니다. 저는 제대로 달릴 때는 주로 국립극장 쪽에서 출발하는 남산 북측순환로를 찾습니다. 오르막 내리막이 적당히 있어 훈련에 최고입니다. 하루에 10∼15km 정도 달리면 온갖 잡념, 스트레스가 날아갑니다.” 풀코스도 준비가 되지 않으면 절대 완주하지 않는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대회가 열리지 않다가 올가을부터 본격적으로 마라톤 시즌이 시작됐지만 그는 한 대회의 10km에 출전해 완주했다. 그는 “풀코스를 달리려면 최소한 3개월은 준비해야 한다. 하루 10∼15km, 총 500km 이상은 달려야 무리 없이 완주할 수 있다. 3개월 철저하게 준비하고 완주하면 몸이 새로 태어나는 기분”이라고 했다. 마라톤에 빠지면서 골프를 끊었다. 그는 “영업 초창기에는 골프를 쳤는데 시간을 따로 내야 하는 데다 시간도 많이 걸리고 장비도 챙겨야 해 일찍 접었다. 일상 속에서 틈나는 대로 할 수 있는 달리기가 내겐 가장 좋았다. 증권사 임원 중에 골프 안 치는 사람은 나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노 상무는 주말엔 주로 산을 찾는다. 대회 출전을 앞두고는 20∼30km 장거리를 달리지만 등산이 주는 맛이 또 다르기 때문이다. 자연 속 좋은 공기를 마시며 오르막 내리막을 걷다 보면 훈련 효과도 크다. 나이는 70세를 향해 가지만 종합검진에서는 40대 몸으로 평가될 정도로 건강하다. 체중도 65kg에서 변화가 없다. 노 상무는 마라톤을 통해 배운 도전정신과 지구력으로 아직도 ‘살얼음판’ 증권가에서 버티고 있다. “몸이 건강해야 일도 잘한다”는 철칙을 평생 실천한 결과다. 같은 또래 친구들은 벌써 직장을 떠나 다른 일을 하고 있다. “달리면서 배운 게 자신감입니다. 아직 뛸 수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뭐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충만해집니다. 제가 특전사 출신인데 ‘안 되면 되게 하라’는 구호가 있어요. ‘달리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노 상무는 대한민국특전사동지회 감사를 맡고 있다. 1979년 12월 제3공수특전여단에 입대해 1982년 9월 제대한 예비역 병장인 그는 2011년 8월 창설된 특전예비군에 가입해 매년 동원훈련까지 받고 있다. 특전예비군은 20만 명이 넘는 북한 특수부대와의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만들었다. 사격, 헬기 래펠(하강), 패스트로프(굵은 로프를 타고 내려오는 훈련), 모형탑(11m 높이에서 뛰어내리는 훈련) 등 적지로 침투해서 싸울 수 있는 모든 훈련을 한다. 그는 특전예비군 최고령이지만 마라톤으로 쌓은 체력 덕분에 후배들에게 전혀 뒤지지 않는다. 특전예비군은 64세까지 동원훈련을 하고 있는데 매년 예비군 인원이 감소해 67세로 연장할 계획이라고 한다. 그는 “당연히 67세까지 참여할 것”이라고 했다. “사람이 움직이지 못하면 죽은 거나 다름없다고 합니다. 전 달리지 못하면 죽은 것이라 생각하고 매일 달리고 있습니다.” 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 2022-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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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천만번 더 타도 기분 좋은 것 자전거’…“75세에도 산길 44km는 거뜬”[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제 집이 서울 양재동인데 지난주 토요일에는 경기도 구리, 일요일에는 행주산성까지 갔다 왔어요. 왕복 한 70~80km 정도 됩니다. 친구들과 어울려 중간에 쉬고 점심도 먹고…. 이 나이에 이렇게 즐겁고 건강하게 사는 것보다 중요한 게 있을까요?“ 한국나이 올해로 75세인 가수 김세환 씨는 자전거 얘기만 나오면 눈이 반짝거린다. 자전거를 타게 된 스토리부터 장점이 무엇인지, 자전거를 꼭 타야 하는 이유, 평생 타면서 경험안 에피소드…. 그의 입에서 술술 나온다. 그의 자전거 얘기를 듣다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그는 틈만 나면 자전거를 탄다. 산악자전거(MTB)와 사이클 가리지 않는다. 1986년 미국에 스키 타러 갔다 MTB를 사가지고 와서 자전거에 빠진 ‘MTB 1세대’인 그는 “무릎에 무리를 주지 않고 건강을 지킬 수 있는 최고의 운동이 자전거 타기”라고 강조한다. 친구들과의 약속, 라디오 방송할 때도 자전거를 타고 간다. 김 씨는 “양재동에서 여의도까지 자전거로 45분이면 간다. 차타고 가면 막혀 짜증나는데 자전거는 확 트인 야외에서 좋은 공기를 마시며 즐겁게 갈 수 있다. TV 방송 출연 땐 복장과 머리, 얼굴 상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차를 탄다”고 했다. 김 씨의 자전거 사랑은 1980년대 중반에 시작됐다. 1968년부터 스키를 탔던 그가 미국에 스키를 타러 갔다 MTB와 인연을 맺게 됐다. 그는 “어느 날 바람이 많이 불어 스키를 탈 수 없었다. 근처에 자전거 파는 곳이 있어 들렀더니 앞 기어 3단, 뒤 기어 7단으로 된 자전거가 있었다. 직원에게 무슨 자전거냐고 물었더니 ‘산에서 타는 자전거’라고 했다. 산을 내려오는 게 스키랑 비슷한 묘미가 있을 것 같아 바로 구매해 한국에 갖고 들어왔다”고 했다.“자전거를 그대로 비행기에 실을 수 없었죠. 그래서 나사를 하나씩 다 풀어 분리해서 트렁크에 나눠 실었죠. 혹시 나중에 조립을 못 할까 싶어 일일이 그림을 그려 위치를 파악해뒀죠. 붓대 속에 목화씨를 숨겨온 문익점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죠.” 김 씨는 그 자전거로 혼자 한강으로 산으로 타고 다녔다. 비슷한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을 만나면 반가워 인사했다. 그렇게 만나서 조성 된 동호회가 ‘한시반’이다. 그는 “자전거 좋아하는 사람들이 하나 둘 모이게 됐다. 내가 교회를 다녀서 일요일 예배를 보고 점심 먹고 한강에 나가면 오후 1시30분쯤 됐다. 자연스럽게 그 시간에 제3한강교(현 한남대교) 밑에서 만나 함께 자전거를 탔다. 한시반 회원들은 아직도 모인다”고 했다.“우리가 국내 최초로 우리나라를 가로지르기도 했죠. 1980년대 말 서울에서 속초까지 220km 당일 투어를 처음 시도했어요. 새벽 5시에 출발해 저녁 6시에 미시령 정상에 도착했죠.” 김 씨는 집 근처 우면산, 그리고 남한산성을 수시로 올랐다. 지금은 MTB 동호인들의 성지인 강원도 춘천 강촌챌린지코스도 개척하는 등 국내 MTB 코스를 다수 개발했다. 그는 “지리산 벽소령도 올랐다. 지금은 국립공원내 자전거 출입이 금지됐지만 2000년대 초반은 가능했다. 우리가 자전거 타고 올라가니 사람들이 ‘어떻게 이게 가능하냐?’며 난리가 났었다”고 말했다.“처음엔 MTB 정보를 얻을 데가 없어 미국 잡지를 많이 참고했어요. 이태원에 가서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잡지를 사보다가 정기구독을 했죠. 지금도 그 때 보던 잡지들이 많이 남아 있죠.” 그의 집엔 MTB 잡지의 선구자라 할 수 있는 ‘마운틴바이크 액션‘를 비롯해 다양한 잡지가 1980년 대 말부터 1990년대까지 있다. 일본 책도 있다. MTB 타며 부상도 많이 당했다. 그는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도 OB를 낸다”며 “아무리 고수라고 해도 다칠 수 있다”고 했다. 넘어지며 무릎과 팔꿈치를 숱하게 다쳤다. 그래도 큰 부상은 없었다. 오른쪽 새끼손가락이 부러져 첫 마디가 조금 불편한 게 후유증으로 남았다. 다행히 기타 칠 때 그 손가락은 쓰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MTB에 집중하던 그는 2010년대 초반 사이클도 타기 시작했다. 4대강 사업으로 강주변 자전거길이 조성되면서 스피드를 즐기기 위해 탄 것이다. 그는 “차에 비유하면 MTB가 오프로드를 달리는 SUV(스포츠유틸리티 차량)라면 사이클은 세단이다. 그 맛이 완전히 달랐다”고 했다. 김 씨는 MTB를 탈 땐 평균시속 25km, 사이클을 탈 땐 평균시속 30km로 질주한다. 나이는 80세를 향해 가지만 그의 몸은 아직 ‘청춘’이다. 김 씨는 “최근 젊은 친구들과 강촌 산길 44km를 달리고 왔다. 숨을 헐떡이며 ‘야 이 나이에 내가 이렇게까지 달려야겠냐’라고 하소연했지만 아직 그 정도는 문제없다”며 웃었다.‘자전거 친구’인 구자열 대한자전거연맹 회장(69·(주)LS 의장)과도 자주 라이딩 한다. 구 회장과의 인연도 두 사람의 공통된 취미인 스키장에서 우연히 만나면서 시작됐다. 김 씨는 국내에서도 겨울이면 스키장을 자주 다녔다. 그런데 보통 사람처럼 자동차가 아닌 MTB를 타고 스키장엘 갔다. 이미 자전거에 관심이 많던 구 회장은 스키장에서 만난 김 씨가 타고 온 MTB의 매력에 흠뻑 빠져 버렸다. 이후 두 사람은 틈틈이 MTB를 타고 전국 방방곡곡을 누볐다. 요즘은 사이클도 함께 탄다.“그거 알아요? 공기 좋은 산에서 자전거를 타다 보면 정말이지 산소가 씹히는 기분이 들어요. 어느 날 휘닉스 파크 스키장 뒤쪽으로 내려갔는데 공기가 너무 좋은 거예요. 그래서 같이 간 친구들에게 산소가 씹히는 것 같다고 했죠. 그랬더니 나중에 고도원의 아침편지에서 인용해서 화제가 되기도 했죠.”  김 씨가 꼽은 ‘MTB 인생 자전거’길은 강원 양양 미천골이다. 그는 “20년 전만 해도 사람이 거의 없을 때다. 여러 친구와 함께 미천골을 타고 내려오다 너무 아름다운 광경에 모두 넋을 잃었다. 자전거에서 내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폭포에 뛰어들었다”고 했다. 가수 조영남과 이문세, 김현철, 개그맨 박명수 씨에게도 자전거를 권해 ‘자전거 전도사’로 불린 그는 2007년 ‘김세환의 행복한 자전거’란 책을 썼다.“그 책에서 딱 두 가지를 강조했어요. 우리나라에서 자전거 제일 잘 타는 사람은 부상 없이 오래 타는 사람이고, 자전거에서 가장 좋은 부품은 안장 위에 앉아 있는 인간이라고. 빨리 달리는 것, 비싼 자전거 의미 없습니다. 건강하게 오래 타는 게 최고죠.” 그는 안전하게 타기 위해선 기술을 익혀야 한다고 강조했다.“자전거는 무조건 타는 게 아닙니다. 그냥 페달만 밟는다고 되는 게 아니에요. 기본부터 차근차근 배워야 안전하게 탈 수 있습니다. 자전거에도 다양한 기술이 있어요. 급브레이크를 잡아도 안 되고…. 요즘 전국적으로 자전거타기 클래스가 많이 생겼으니 초보자들은 그런 곳을 찾아 기본 기술을 먼저 배워야 합니다.” 김 씨에게 자전거는 ‘주치의’다. 그는 “자전거 타려고 나서면 내 몸 상태를 알 수 있다. 안 좋으면 다시 집으로 들어간다. 건강은 건강할 때 지켜야 한다. 자전거 타고 병원을 지나다보면 내가 건강한 것에 다시 감사 한다”고 했다. 그는 이렇게 건강하니 ‘아직 팔린다’며 웃었다. 그는 “충남 예산 사과축제에서도 오라고 하고 서울 성동구에서도 행사 있다고 출연을 부탁했다. 건강하니 아직 불러주는 데가 있다”고 했다. 그는 오후 10시에서 11시 취침해 새벽 4~5시에 일어나 하루를 시작한다.“일어나서 먼저 신문을 다 봅니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훤히 알 수 있죠. 그리고 제가 관심이 있는 유튜브 등을 봅니다. 요즘 정말 세상 좋아졌어요. 전 세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을 컴퓨터 하나도 다 볼 수 있어요. 이렇게 좋은 세상이 어디 있습니까? 이런 세상 맘껏 즐기려면 건강해야죠. 모두 자전거 타세요.” 그는 자전거 얘기할 땐 노래 부를 때 보다 더 즐거운 표정이었다. 그의 대표작 ‘사랑하는 마음’의 가사 중 “천만번 더 들어도 기분 좋은 말 사랑해”를 “천만번 더 들어도 기분 좋은 말 자전거”라고 바꿔 불러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 2022-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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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TB 36년 내공으로 지금도 산길 44km는 거뜬히 달려”[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한국 나이로 올해 75세인 가수 김세환 씨는 틈만 나면 자전거를 탄다. 산악자전거(MTB)와 사이클을 가리지 않는다. 1986년 미국에 스키 타러 갔다가 MTB를 사가지고 와서 자전거에 빠진 ‘MTB 1세대’인 그는 “무릎에 무리 안 가고 건강을 지킬 수 있는 최고의 운동이 자전거 타기”라고 강조한다. “제 집이 서울 양재동인데 지난주 토요일에는 경기 구리, 일요일에는 고양 행주산성까지 갔다 왔어요. 왕복 70∼80km 정도 됩니다. 친구들과 어울려 중간에 쉬고 점심도 먹고…. 이 나이에 이렇게 즐겁고 건강하게 사는 것보다 중요한 게 있을까요?” 친구들과의 약속, 라디오 방송을 할 때도 자전거를 타고 간다. 김 씨는 “양재동에서 여의도까지 자전거로 45분이면 간다. 차를 타고 가면 길이 막혀 짜증나는데 자전거는 확 트인 야외에서 좋은 공기를 마시며 즐겁게 갈 수 있다. TV 방송 출연 땐 복장과 머리, 얼굴 상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차를 탄다”고 했다. 김 씨의 자전거 사랑은 1980년대 중반에 시작됐다. 1968년부터 스키를 탔던 그가 미국에 스키를 타러 갔다 MTB와 인연을 맺게 됐다. 그는 “어느 날 바람이 많이 불어 스키를 탈 수 없었다. 근처에 자전거 파는 곳이 있어 들렀더니 앞기어 3단, 뒷기어 7단으로 된 자전거가 있었다. 직원에게 무슨 자전거냐고 물었더니 ‘산에서 타는 자전거’라고 했다. 산을 내려오는 게 스키와 비슷한 묘미가 있을 것 같아 바로 구매했다”고 했다. “자전거를 그대로 비행기에 실을 수 없었죠. 그래서 나사를 하나씩 다 풀어 분리해 트렁크에 나눠 실었어요. 혹시 나중에 조립을 못 할까 싶어 일일이 그림을 그려 위치를 파악해 뒀죠. 붓대 속에 목화씨를 숨겨온 문익점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어요.” 김 씨는 그 자전거로 혼자 한강으로 산으로 타고 다녔다. 비슷한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을 만나면 반가워서 인사했다. 그렇게 만나서 결성된 동호회가 ‘한시반’이다. 그는 “자전거 좋아하는 사람들이 하나둘 모이게 됐다. 내가 교회를 다녀서 일요일 예배를 보고 점심 먹고 한강에 나가면 오후 1시 30분쯤 됐다. 자연스럽게 그 시간에 제3한강교(현 한남대교) 밑에서 만나 함께 자전거를 탔다. 한시반 회원들은 아직도 모인다”고 했다. “우리나라를 가로지르기도 했죠. 1980년대 말 서울에서 강원 속초까지 220km 당일 투어를 처음 시도했어요. 새벽 5시에 출발해 저녁 6시에 미시령 정상에 도착했어요.” 김 씨는 집 근처 우면산, 그리고 남한산성을 수시로 올랐다. 지금은 MTB 동호인들의 성지인 강원 춘천 강촌챌린지코스도 개척하는 등 국내 MTB 코스를 다수 개발했다. 그는 “지리산 벽소령도 올랐다. 지금은 국립공원 내 자전거 출입이 금지됐지만 2000년대 초반엔 가능했다. 우리가 자전거를 타고 올라가니 사람들이 ‘어떻게 이게 가능하냐?’며 난리가 났었다”고 말했다. MTB에 집중하던 그는 2010년대 초반 사이클도 타기 시작했다. 4대강 사업으로 강 주변 자전거길이 조성되면서 스피드를 즐기기 위해 탄 것이다. 그는 “차에 비유하면 MTB가 오프로드를 달리는 SUV(스포츠유틸리티차량)라면 사이클은 세단이다. 그 맛이 완전히 달랐다”고 했다. 김 씨는 MTB를 탈 땐 평균 시속 25km, 사이클을 탈 땐 평균 시속 30km로 질주한다. 나이는 80세를 향해 가지만 그의 몸은 아직 ‘청춘’이다. 김 씨는 “최근 젊은 친구들과 강촌 산길 44km를 달리고 왔다. 과거와 달리 이젠 숨을 헐떡이며 ‘야, 이 나이에 내가 이렇게까지 달려야겠냐’라고 하소연했지만 아직 그 정도는 문제없다”며 웃었다. 가수 조영남과 이문세, 김현철, 개그맨 박명수 씨에게도 자전거를 권해 ‘자전거 전도사’로 불리는 그는 2007년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김세환의 행복한 자전거’란 책을 썼다. “그 책에서 딱 두 가지를 강조했어요. 우리나라에서 자전거 제일 잘 타는 사람은 부상 없이 오래 타는 사람이고, 자전거에서 가장 좋은 부품은 안장 위에 앉아있는 인간이라고. 빨리 달리는 것, 비싼 자전거, 의미 없습니다. 건강하게 오래 타는 게 최고죠.” 자전거 얘기를 할 땐 노래 부를 때보다도 더 즐거운 표정이었다.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 2022-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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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이어트로 무너진 몸, 운동으로 바로 세워… “근육 만들 때 가장 즐거워” [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한때 몸무게가 90kg까지 나갔어요. 이러면 안 된다고 생각해 마음 단단히 먹고 다이어트를 해 55kg까지 뺐어요. 그런데 몸 여기저기가 아팠죠. 그 때쯤 군인이셨던 아버지께서 근육운동을 제안했어요.”21일 경북 영주에서 열린 2022 국제보디빌딩연맹(IFBB) 세계피트니스여자선수권 마스터 여자 보디피트니스(45세 이상) 부문에서 한국 여자 선수 최초로 우승한 김미소 씨(45·충북 황순철퍼스트피트니스)는 웨이트트레이닝 할 때가 가장 즐겁다.“이런 거 있죠. 사실 제가 엄마가 되면서 누구 엄마로 불려지고 제 이름으로 불려지는 때가 거의 없잖아요. 보디빌딩은 제 존재를 느끼게 해줍니다. 사람들은 힘들겠다고 걱정하지만 제가 살면서 저한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딱 웨이트트레이닝 할 때입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이 시간을 즐겼던 것 같아요.”7년 전이었다. 경기 용인시에 있는 에버랜드에 근무하다 남편이 있는 충북 청주로 내려오면서 삶이 바뀌었다.“7년 정도 주말부부로 지내다 저와 가족을 위해 결단을 내렸습니다. 15개월 만에 35kg을 감량했는데 살을 너무 극단적으로 빼서인지 몸이 아팠어요. 그래서 일을 그만뒀습니다. 근육운동을 권하신 친정 아버지께서 대회 출전도 제안하셨죠. 자신이 없었는데 아버지께서 적극 도와주셔서 대회 준비를 위해 몸을 만들었습니다. 마스터스 보디빌딩 선수로 각종 대회에 출전하게 됐습니다.”대회 출전은 5년 전부터 했다. 각종 지방 대회에서 입상했고 결국 태극마크까지 달았다. 김 씨는 2019년 슬로바키아에서 열린 IFBB 세계피트니스여자선수권에 출전하기도 했다. 그 땐 입상하지 못했다.“국내와 국제는 분위기가 완전히 달랐어요. 몸을 표현하는 포즈 자체가 완전히 달랐죠. 그래서 올해 국가대표가 된 뒤에는 외국선수들 포즈를 연습을 많이 했습니다. 결국 경쟁 상대가 국내 선수가 아니라 외국선수이잖아요. 그게 많은 도움이 됐던 것 같습니다. 대회 끝난 뒤 대한보디빌딩협회 관계자들이 몸이 아주 좋아졌다고 칭찬 많이 받았습니다.”김 씨의 하루는 새벽 4시10분에 시작된다.“아이들을 키우다보니 하루를 시작하기 전에 운동을 마쳐야 합니다. 일어나서 공복에 달리거나 고정식 자전거를 타는 유산소 운동을 합니다. 지방을 빼는 데는 공복 유산소 운동이 최고이거든요. 그리고 아들 밥 챙기는 등 오전 집안일을 끝난 뒤 오전 오후 시간 날 때 운동을 하죠. 오전 오후 하루 6시간씩 운동합니다.”김 씨의 체중은 60kg. 근육운동을 하자 근육량이 많아지면서 체중이 늘었다. 운동을 계속 하기 때문에 더 이상 체중이 늘지는 않는다.“이번 대회를 준비하면서 음식을 조절하면서 바짝 운동해서 인지 54kg까지 빠졌습니다. 하지만 평소에는 60kg 정도를 계속 유지하고 있습니다. 매일 운동을 하고 있기 때문에 더 이상 몸무게가 늘지는 않습니다.”김 씨는 근육운동을 하면서 보디빌딩 지도자 자격증도 땄다. 프리랜서 트레이너로 시간 날 땐 다른 사람들의 몸도 관리해주고 있다. 어느 순간 근육운동은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상이 됐다.“저에게 목표가 뭐나고 물어보시는 분들이 많아요. 솔직히 전 특정한 목표는 없습니다. 다만 매일 운동하면서 제 몸이 조금씩 좋아지는 것을 느끼는 그 자체가 좋습니다. 사실 전 태극마크를 목표로 운동하지 않았습니다. 몸만들기 위해 열심히 땀 흘리다 보니 국가대표가 됐고 결국 세계대회에서 우승까지 하게 됐습니다. 앞으로도 제 몸을 더 가다듬는데 집중하겠습니다. 근육을 만드는 것만으로 즐겁습니다.”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 2022-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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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PGA 프로에게 배운다고?” KSPO-KPGA 코리아 패밀리 골프 챌린지 참가자 모집

    국민체육진흥공단(이사장 조현재, 이하 공단)이 한국프로골프협회(KPGA·회장 구자철)와 함께 개최하는 ‘KSPO-KPGA 코리아 패밀리 골프 챌린지’에 참여할 가족을 모집한다. 이번 대회는 KSPO와 KPGA가 골프 대중화 및 골프 저변 확대를 목표로, 가족 2명이 함께 팀을 이뤄 펼치는 포섬방식으로 진행된다. 특히, KPGA 프로가 멘토로 나서 참가자들을 지도하는 기회도 갖는다.‘KSPO-KPGA 코리아 패밀리 골프 챌린지’는 공단의 친환경 골프장 에콜리안을 활용해 11월 5일 정선에서 개막전을 시작으로 6일 제천, 12일 영광, 20일 광산(광주)에서의 예선전을 거쳐 성적 상위 20가족이 27일 거창에서 열리는 결승전에 출전하는 방식으로 진행한다. 우승팀에게는 KSPO 이사장 및 KPGA 회장 공동명의 트로피와 상장이 수여되며, 팀 니어리스트·롱기스트·메달리스트 등을 선정해 다양한 경품을 증정하고 참가자 전원에게 에콜리안 1인 무료이용권을 제공한다. 참가신청은 에콜리안 골프장 관내 지역 가족은 20일부터 22일까지 3일간, 일반 가족은 24일부터 28일까지 5일간 신청이 가능하며, 골프장별 50가족씩 총 200가족을 선착순으로 모집한다. 참가신청서 작성은 KSPO 홈페이지에서 가능하며, 대회와 관련한 자세한 사항은 대회 운영 사무국으로 문의하면 된다.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 2022-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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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올림픽레거시포럼 18일 개막… 바흐 IOC 위원장 “88서울올림픽, 세계의 귀감”

    국민체육진흥공단(이사장 조현재, 이하 공단)이 주최하는 서울올림픽레거시포럼이 18일 서울올림픽파크텔에서 성대한 막을 올렸다. 서울올림픽레거시포럼은 미래세대에게 올림픽레거시를 통해 올림픽 가치를 넘어 스포츠를 통한 더 나은 미래를 위한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Olympic legacy and the Next Generation’를 주제로 열렸으며, 국내외 올림픽레거시 관리주체 등 19개국 200여명이 참석했다.18일 열린 개막식에는 반기문 전 UN사무총장의 축사, 토마스 바흐(Tomas Bach) 국제올림픽위원회(IOC)위원장의 기조연설이 있었으며, 대형 국제스포츠대회 레거시 보존과 발전을 위해 서울시, 부산시, 인천시, 강원도를 비롯 문화체육관광부, 국민체육진흥공단, 대한체육회, 대한장애인체육회, 2018 평창기념재단, 2024 강원동계청소년올림픽조직위원회 간 업무협약 체결도 진행되었다. 이 밖에도 전 세계에서 참가한 올림픽레거시 관리기관들 간의 공동선언문 발표, 저개발국가 청소년을 위한 스페셜 프로그램 등 다양한 세션들이 진행된다.조현재 공단 이사장은 개회사를 통해 “이번 포럼은 올림픽레거시를 통해 미래세대에게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목표를 향한 역사적 첫걸음이 될 것으로 확신한다”며, “IOC와 올림픽레거시 관리주체들이 이번 포럼에서 환경, 사회문제, 거버넌스 등 ESG 관점에서 올림픽 레거시를 활용해 어떻게 연대할 수 있을지 구체적인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고 밝혔다.바흐 위원장은 스포츠를 통한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올림픽 레거시’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1988년 서울올림픽이 귀감이 되고 있다고 높이 평가했다.바흐 위원장은 약 25분간의 기조연설에서 시민들이 스포츠뿐만 아니라 다양한 문화 활동을 즐기는 공간인 올림픽공원을 “올림픽 레거시의 살아있는 위대한 사례”라고 콕 집어 말하고는 “스포츠와 문화를 한 데 아우르게 하는 것은 근대올림픽 창시자인 피에르 쿠베르탱 남작의 염원이기도 했다”고 덧붙였다.그러고는 “최근 연구 결과를 보면 21세기 올림픽 상설 시설의 92%가 지금도 활용되고 있다”라면서 “1988년 서울올림픽 경기장은 93%가 아직도 활용되고 있으며 이는 평균치보다도 높다. 서울은 모든 올림픽 대회에 귀감이 된다”고 밝혔다. 바흐 위원장은 “올림픽 레거시의 궁극적 목표는 사람들과 지역 사회가 올림픽 개최 이후에도 몇 세대에 걸쳐서 계속 그 혜택을 누리게 하자는 것”이라고 강조했다.이날 개회식에서는 국내의 올림픽 관리 주체 간 MOU를 체결하는 자리도 마련됐다.바흐 위원장은 이를 두고 “복수의 이해당사자 간 협력 자체가 하나의 올림픽 레거시다”라며 의미를 부여했다. 올림픽 개최를 준비하는 도시에 대해 조언도 했다. 당장 서울시는 2036년 여름올림픽 개최를 추진하고 있다. 바흐 위원장은 “레거시를 만드는 데 올림픽이 끝날 때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다”면서 2024 파리 올림픽, 및 2028 로스앤젤레스(LA) 올림픽 조직위원회가 진행 중인 프로그램을 소개하기도 했다.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 2022-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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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매일 20km, 주말엔 70km는 달려야…‘인생 3막’ 아내와 여행하며 질주”[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병원 건물이 재건축에 들어간다고 해서 10월 말로 폐업을 하기로 했어요. 다시 준비하고 재 개업하려면 시간도 많이 필요하고 비용도 만만치 않아서…. 그동안 일하느라 가정을 제대로 돌아보지 못했는데 이제 집사람하고 국내는 물론 세계를 여행하면서 인생을 즐길 생각입니다. 먼저 전국의 사찰, 유적지를 돌아다니며 달릴 생각입니다.” 올해로 만 70세인 이동윤 이동윤외과의원 원장은 부산 동래고 1학년 때부터 달리기 시작해 50년 넘게 질주를 멈추지 않고 있다. 새벽에 서울 서초구 잠원동 병원으로 출근할 때, 저녁 때 퇴근할 때 한강변을 달린다. 달리기는 공부에 찌든 학창시절엔 다람쥐 쳇바퀴 도는 삶의 돌파구였고, 의사로 살면서는 자신의 한계에 대한 도전이었다. 이젠 지난 삶을 함께 돌아보는 좋은 ‘동반자’다. 대학시절 불교학생회 회장이었던 이 원장은 아내와 국내 사찰과 역사 유적지를 돌아볼 계획이다. 그는 “그 사찰이 왜 그 자리에 들어섰고, 어떤 분의 비석이 왜 그곳에 세워졌는지를 보면 옛 사람들의 삶이 보일 것이고 내 삶도 반추할 수 있을 것 같다. 그 지역을 아내는 걷고 난 달리면서 자세히 돌아볼 것”이라고 했다. 이 원장에게 달리기는 삶 그 자체였다.“인문계고등학교의 특성이 다 그렇듯 새벽에 나가 밤늦게까지 공부하고 오는 너무 재미없는 삶이었죠. 나만의 즐거움을 찾기 위해 고민을 했는데 운동이었고 선택은 달리기였어요. 우리 시대 때는 할 수 있는 운동이 제한 돼 있었어요. 기껏해야 달리고 자전거 타고 등산하는 것이었죠. 혼자서 할 수 있는 것으론 달리기가 최고였어요.” 매일 새벽 일어나 집 뒷동산을 뛰어 오르내렸다. 나중에는 토끼뜀으로 올라가기도 했다. 그는 “누가 시켜서 하는 게 아니고 나만의 도전이었기에 힘들어도 참을 수 있었다. 힘들면 걸어가면 됐다. 제약이 없었다. 나만 누리는 자유였다. 운동하고 아침 먹은 뒤 학교로 갔다. 아주 즐거웠던 시절이었다”고 했다. 의과대학에 들어가서도 틈나는 대로 달렸다. 단기간에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데는 달리기가 최고였다. 의대를 졸업 한 뒤에도 달리기는 생활의 시작이었다. 바쁜 생활 속에서 아침 달리기는 그 무엇도 줄 수 없는 행복이었다. 1990년 대 중반 동아마라톤을 시작으로 마라톤대회에서 일반인에게도 참가 기회를 주자 1997년 42.195km 풀코스에 도전했다.“친구가 ‘마라톤 대회에 한번 나가보자’고 해서 춘천마라톤에 출전했죠. 마라톤은 ‘신세계’였습니다. 풀코스를 한 번도 달려보지 않아 ‘마의 30km’ 이후엔 걷다 뛰다시피 해 3시간40분55초에 완주했죠. 풀코스 한 번 완주에 ‘해냈다’는 만족감과 희열에 몇 개월은 취해 있었죠. 그래서 계속 출전했어요. 달리기는 제가 내적으로 더욱 강인해질 수 있게 해준 계기를 만들어주었고 달리기를 통해 내 인생과 성공을 통제할 능력이 있다는 믿음이 더욱 커졌습니다.” 이 원장은 그냥 달리지 않았다. 남을 위해 달렸다. 2000년 달리는의사들이란 동호회를 만들었다. 그는 “달리면서 생기는 안전사고가 많았다. 그래서 의사들이 함께 달리면서 아픈 사람이 있으면 보살피는 레이스 패트롤(Race Patrol)을 2001년 동아마라톤부터 시작했다”고 했다. 달리는 사람은 많아졌지만 무턱대고 달리다 사망하는 사고가 계고 일어났다. 그래서 달림이들 교육을 시키기로 했다. 분기에 한번씩 무료 워크숍을 했다. 당시 인터넷이 뜰 때라 서울마라톤클럽 게시판 등에 ‘안전하게 달리는 법’ ‘부상 예방법’ ‘마라톤 에티켓’ 등을 계속 올렸다. 현재 ‘달리는의사들’ 홈페이지에도 즐겁고 건강하게 달리는 법을 계속 올리고 있다.“달리는 사람 스스로가 어떤 문제가 일어날 수 있는지 알아야 합니다. 알고만 있어도 무리를 안 하게 되죠. 본인이 조금만 신경 쓰면 되는 데…. 마스터스마라톤 초창기에는 사망 사고가 잦았습니다. 참 안타까웠죠. 지금은 많이 좋아졌습니다.” 2002년부터는 소아암환우돕기 마라톤대회를 시작했다.“1998년 국제통화금융(IMF) 구제 금융위기가 터졌죠. 맞벌이 둘 중 하나는 회사에서 나가야 하는 상황에 몰렸습니다. 많은 사람이 일자리를 잃었어요. 문제는 소아암 환자의 부모가 젊다는 것입니다. 경제적 기반이 없는 상황에서 애가 아픈데 일자리까지 잃으면 가정이 제대로 유지될 수가 없죠. 이혼하는 경우도 많았어요. 그런데 소아암환자는 회복률이 70~80%됩니다. 거의 다 낫는다고 보면 되죠. 환자가 완치 됐을 때 가정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아이의 인생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죠. 그래서 어떻게 할까 고민을 했고 마라톤대회를 통해 소액기부를 받아 지원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다 도와줄 수는 없었다.“젊은 사람들의 특징이 뭐든 쉽게 시작하고 쉽게 포기합니다. 아무리 큰 것이라도 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죠. 그래서 우리가 보고 있고 관심이 있다는 것만 보여줘도 이혼하려다 참고 가정을 유지할 수 있을 가능성이 높았습니다. 그런 힘을 줄 수 있다고 생각했고 시작했어요. 효과도 좋았습니다.” 매년 5월 둘째 주 일요일에 대회를 개최했다. 중간에 2년을 쉬었다. 모든 대회 운영비는 협찬을 받고 참가비는 환자를 돕는데 썼는데 경제 상황이 나빠지자 협찬을 받을 수 없었다. 주위에서 ‘왜 안 하느냐’는 성화와 ‘우리가 돕겠다’는 사람들이 있어 다시 시작했는데 빚만 2,3 억 원을 지는 곤경에 처하기도 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탓에 3년째 열리지 않았다. 2010년부터는 산을 달리는 행복트레일런대회도 개최했다. 역시 자선 대회다. 매년 11월 셋째 주 일요일에 개최하는 행복트레일런대회는 코로나19에도 계속 열었다. 50년 넘게 달렸는데 그동안 부상은 없었을까.“전혀 없었어요. 다치는 사람은 테크니컬 에러 때문입니다. 먼저 몸을 만들고 그에 맞는 강도로 달려야 하는데 몸은 안 만들고 마음만 따라가니 무리를 하고 다치는 것입니다. 사망사고도 그래서 발생하죠.” 이 원장은 ‘운동 전도사’이기도 하다.“우리 몸 자체가 안 쓰면 퇴화됩니다. 도태되는 것이죠. 근육도 안 쓰면 몸 자체적으로 없애버립니다. 그게 우리 몸의 생존 본능입니다. 열심히 움직여야 합니다. 몸을 움직이지 않으면 마음도 살아 있지 않죠. 컨디션이 안 좋을 때 짜증을 내는데 외부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몸에서 받아줄 자신이 없으니 짜증으로 회피하는 것입니다. 운동을 하면 어떤 스트레스도 받아 줄 수 있는 몸이 됩니다.” 이 원장은 풀코스를 200번 가까이 완주했지만 이젠 대회 출전은 거의 하지 않는다. 10여년 전 대한외과의사회 일을 보면서 시간을 내지 못하면서 출전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젠 혼자서 달리는 게 더 좋다.“운동에 대한 구체적인 기준을 스스로 만들어야 합니다. 막연하게 건강해야지라는 생각은 안 됩니다. 그럼 운동을 하지 않아요. 목표를 세우고 달려야 합니다. 호주 원주민들을 하루 20km를 걷고 달렸어요. 인간은 매일 아침저녁 합쳐서 20km는 달려야 한다고 봅니다. 주말엔 토요일 일요일 70km를 달리야 진정한 마라토너 아닐까요? 전 그 목표로 달리고 있습니다.” 이 원장은 이제 ‘인생 3막’이 시작됐다고 했다.“국방부 보건과장(예비역 대령)으로 국가에 봉사하며 1막을 살았고 외과의학발전을 위해 2막을 살았죠. 3막은 아내와 여생을 즐겁게 보내는 것입니다.”양종구기자 yjongk@donga.com}

    • 2022-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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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매일 20km-주말엔 70km… 달리면서 ‘나만의 자유’ 만끽”[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올해로 만 70세인 이동윤 이동윤외과의원 원장은 부산 동래고 1학년 때부터 달리기 시작해 50년 넘게 질주를 멈추지 않고 있다. 달리기는 공부에 찌든 학창시절엔 다람쥐 쳇바퀴 도는 삶의 돌파구였고, 의사로 살면서는 자신의 한계에 대한 도전이었다. 이젠 지난 삶을 함께 돌아보는 좋은 ‘동반자’다. “병원 건물이 재건축에 들어간다고 해서 폐업을 하기로 했어요. 그동안 일하느라 가정을 제대로 돌아보지 못했는데 이제 집사람과 국내는 물론 세계를 여행하면서 인생을 즐길 생각입니다. 먼저 전국의 사찰, 유적지를 돌아다니며 달릴 생각입니다.” 대학 시절 불교학생회 회장이었던 이 원장은 아내와 국내 사찰과 역사 유적지를 돌아볼 계획이다. 그는 “그 사찰이 왜 그 자리에 들어섰고, 어떤 분의 비석이 왜 그곳에 세워졌는지를 보면 옛사람들의 삶이 보일 것이고 내 삶도 반추할 수 있을 것 같다. 그 지역을 아내는 걷고 난 달리면서 자세히 돌아볼 것”이라고 했다. 이 원장에게 달리기는 삶 그 자체였다. “공부만 하던 고교 시절 너무 재미없었어요. 나만의 즐거움을 찾기 위해 고민을 했는데 운동이었고 선택은 달리기였죠. 우리 시대에는 할 수 있는 운동이 제한돼 있었어요. 기껏해야 달리고 자전거 타고 등산하는 것이었죠. 혼자서 할 수 있는 것으론 달리기가 최고였어요.” 매일 새벽 일어나 집 뒷동산을 뛰어 오르내렸다. 나중에는 토끼뜀으로 올라가기도 했다. 그는 “누가 시켜서 하는 게 아니고 나만의 도전이었기에 힘들어도 참을 수 있었다. 힘들면 걸어가면 됐다. 제약이 없었다. 나만 누리는 자유였다. 운동하고 아침 먹은 뒤 학교로 갔다. 아주 즐거운 시절이었다”고 했다. 의과대학에 들어가서도 틈나는 대로 달렸다. 단기간에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데는 달리기가 최고였다. 의대를 졸업한 뒤에도 달리기는 생활의 시작이었다. 바쁜 생활 속에서 아침 달리기는 그 무엇도 줄 수 없는 행복이었다. 1990년대 중반 동아마라톤을 시작으로 마라톤대회에서 일반인에게도 참가 기회를 주자 1997년 42.195km 풀코스에 도전했다. “친구가 ‘마라톤 대회에 한번 나가보자’고 해서 춘천마라톤에 출전했죠. 마라톤은 ‘신세계’였습니다. 풀코스를 한 번도 달려보지 않아 ‘마의 30km’ 이후엔 걷다 뛰다시피 해 3시간40분55초에 완주했죠. 풀코스 한 번 완주에 ‘해냈다’는 만족감과 희열에 몇 개월은 취해 있었죠. 그래서 계속 출전했어요. 달리기는 제가 내적으로 더욱 강인해질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고 달리기를 통해 내 인생과 성공을 통제할 능력이 있다는 믿음이 더욱 커졌습니다.” 이 원장은 그냥 달리지 않았다. 남을 위해 달렸다. 2000년 ‘달리는의사들’이란 동호회를 만들었다. 그는 “달리면서 생기는 안전사고가 많았다. 그래서 의사들이 함께 달리면서 아픈 사람이 있으면 보살피는 레이스 패트롤(Race Patrol)을 2001년 동아마라톤부터 시작했다”고 했다. 달리는 사람은 많아졌지만 무턱대고 달리다가 사망하는 사고가 계속 일어났다. 그래서 달림이들 교육을 했다. 분기에 한 번씩 무료 워크숍을 했다. 당시 인터넷이 뜰 때라 서울마라톤클럽 게시판 등에 ‘안전하게 달리는 법’ ‘부상 예방법’ ‘마라톤 에티켓’ 등을 계속 올렸다. 현재 ‘달리는의사들’ 홈페이지에도 즐겁고 건강하게 달리는 법을 계속 올리고 있다. 2002년부터는 소아암환우돕기 마라톤대회를 시작했다. 매년 5월 둘째 주 일요일에 열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탓에 3년째 열지 못했다. 2010년부터는 산을 달리는 행복트레일런대회도 개최했다. 역시 자선 대회다. 매년 11월 셋째 주 일요일에 개최하는 행복트레일런대회는 코로나19에도 계속 열었다. 이 원장은 풀코스를 200번 가까이 완주했지만 이젠 대회 출전은 거의 하지 않는다. 혼자서 달리는 게 더 좋다. “막연하게 건강해야지라는 생각은 안 됩니다. 그럼 운동을 하지 않아요. 목표를 세우고 달려야 합니다. 호주 원주민들은 하루 20km를 걷고 달렸어요. 인간은 매일 아침저녁 합쳐서 20km는 달려야 한다고 봅니다. 주말엔 토요일 일요일 70km를 달려야 진정한 마라토너 아닐까요? 전 그 목표로 달리고 있습니다.” 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 2022-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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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허리-무릎 다쳐 의기소침…근육운동으로 자신감 찾고 ‘건강 노하우’ 전달”[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무릎이 아파 병원에 갔더니 왼쪽 무릎 반월상 연골이 찢어졌다며 긁어내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깜짝 놀랐죠. 하지만 그럴 정도면 자칫 인공관절로 바꿔야 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수술을 받지 않았습니다.” 문정화 서울 구로구청 건설관리팀장(50)은 9년여 전만 생각하면 아찔하다. 계단을 아예 못 내려가고 1km도 제대로 걷지 못했다. 어느 날 스커트를 입고 거울을 봤는데 왼쪽 허벅지가 가늘어져 있었다. 오른쪽에 비해 무려 둘레가 6cm 작았다. 정형외과에서 진단해보니 왼쪽 무릎 반월상 연골이 찢어져 있었다. 통증에 오른 다리에 의지하다보니 나타난 현상이었다. 왼쪽 무릎 주변 근육이 크게 퇴화돼 있었다. 하지만 그에게 이런 위기는 새로운 기회가 됐다. 문 팀장은 무릎 부상을 근육운동으로 극복하면서 쌓은 ‘노하우’를 구민은 물론 다른 지역 사람들에게도 전해주는 ‘건강 전도사’가 됐다.“병원에서 찢어진 연골을 긁어내야 한다고 했는데 제가 거부하고 근육운동을 시작했어요. 2004년 허리에 통증이 왔을 때도 근육운동으로 극복한 적이 있어서 수술보다는 운동이 더 좋을 것이라 판단했습니다.” 사실 그 무렵 무릎이 좋지 않아 요가를 시작했었다. 그런데 요가를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아 무릎에 통증이 오기 시작한 것이다. 근육운동을 시작한 초기엔 무릎을 폈다 구부렸다 주변 근육을 천천히 키워주는 운동부터 시작했다. 통증이 있어 심하게 할 수 없었다. 적응이 된 뒤에는 집에서 매일 새벽 1시간씩 보디웨이트 트레이닝(몸으로 하는 근육운동)을 실시했다. 스쾃, 런지, 푸시업 등 다양한 근육운동을 2년 정도하자 양쪽 허벅지의 균형이 잡혔다. 물론 통증도 사라졌고 걷는데도 지장이 없었다. 지금은 맨몸 스쾃을 1000개는 거뜬하게 할 수 있다. 문 팀장은 2016년 대한보디빌딩협회 코치아카데미에서 보디빌딩지도자 자격증을 획득했다.“무릎 통증을 해결하려고 운동을 하고 있는 때 결혼을 앞둔 여직원이 팔뚝 살을 빼고 싶다고 했죠. 2개월 함께 운동했는데 체중 변화는 없었지만 팔뚝은 2.5cm 가늘어졌어요. 그 직원이 결혼사진 잘 찍고 결혼식도 잘했다는 게 알려지면서 ‘문정화가 살을 빼준다’는 소문이 났고 함께 운동하자는 요청이 이어졌죠. 그래서 이왕 하는 김에 자격증을 따서 제대로 가르쳐 주자는 마음에 자격증을 따기 시작했죠.” 허리 디스크가 파열 됐을 때 축구광인 남편이 근육운동을 권유해서 했던 게 자격증 획득에 큰 도움이 됐다. 당시 2년 정도를 피트니스센터에서 열심히 훈련했고 인체해부학, 운동생리학 등을 공부했다.“남편이 운동을 워낙 좋아해요. 축구광이에요. 제가 수영을 하다 허리가 좋지 않다고 하니 웨이트트레이닝을 해보라고 했습니다. 병원에서는 디스크 파열이라며 수술을 권유했었죠. 열심히 근육운동을 하자 허리가 아프지 않았어요.” 전남 장흥군청 홍보담당으로 일할 때인 2006년엔 지역 신문사 주최 마라톤대회에도 출전했다. 그는 “새벽 5시에 일어나 1시간 넘게 달린 뒤 출근했다”고 했다. 그는 당시 하프마라톤에 출전해 1시간49분대로 여자부 8위에 오르기도 했다. 운동 마니아가 다 됐지만 2007년 장흥군청에서 구로구청으로 옮기면서 적응하느라 잠시 운동을 하지 못했고 결국 무릎에 탈이 났던 것이다. 문 팀장은 각종 지도자 자격증을 2016년부터 준비하면서 몸이 좋아지자 보디프로필 사진도 찍었다. 탄탄한 몸을 사진으로 남긴 것은 노력의 결과물이다. 그는 “잘 만들어진 몸은 성취감을 준다고 했다. 그는 2016년 문화체육관광부 생활스포츠지도사, 2017년 한국인재교육원 재활트레이너-운동처방사 자격증을 획득했고 올해 유소년스포츠지도사와 노인스포츠지도사 자격증까지 땄다.“자격증을 획득하면서 본격적으로 구청직원, 구민들을 대상으로 건강 클래스를 열었어요. 구로구청에서 운동지도를 매일 아침 하고 있고, 구로구평생학습건강강사로도 활동하고 있어요. 다른 지방자치단체에도 소문이 나서 지방공무원교육원, 전남, 전북 등까지 출강하고 있습니다.” 2013년 시작한 구로구청 운동지도는 매일 아침 7시에서 8시 구청 체력단련실에서 하고 있다. 현재 회원은 30여명. 기구보다는 혼자서 몸으로 할 수 있는 보디웨이트 트레이닝 위주로 지도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탓에 2년간 못할 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운동할 목표를 정해주고 피드백을 받는 식으로 했다. 올 7월 1일부터 다시 체력단련실에서 구청직원들 몸만들기를 시작했다.“지자체 강연 때는 ‘엉덩이 안녕하십니까?’ 등 건강학에 대해 설명하는 시간을 가지거나 집이나 사무실에서 간단하게 할 수 있는 운동을 가르쳐줍니다. 직장인들 같은 경우는 목 디스크나 거북복이 많기 때문에 그런 증상을 없애주거나 막는 방법을 전해주기도 합니다.” 그는 “저를 통해 다른 사람들도 건강해질 수 있다는 게 너무 좋다. 세상 사는데 건강보다 중요한 게 뭐가 있나. 힘닿는 데까지 다른 사람들에게 건강 노하우를 전달하겠다”고 말했다. 구로구청에서 5명 한 팀으로 지금까지 다이어트 8기까지 지도했다. 대부분 다 다이어트에 성공했다. 문 팀장이 허리 디스크 수술을 막는 사례만 6명이나 된다. 모두 운동으로 허리를 강화시켜 통증을 없앴다. 그는 “의학적으로 수술밖에 없는 경우 빼고는 운동으로 통증을 없앨 수 있는 방법이 많다. 특히 보디웨이트 트레이닝은 몸에 무리를 주지 않기 때문에 모든 연령대에 효과적이다”고 했다. 문 팀장은 “건강한 신체에서 건강한 정신도 나온다. 몸이 아프면 마음도 아프다. 긍정적인 사람도 몸이 아프면 소극적이 된다. 몸이 건강해야 하는 이유다. 저도 밝은 성격이었는데 허리 무릎 다친 뒤 의기소침하다 운동으로 극복하며 자신감을 되찾았다. 100세 시대 근육운동으로 많은 사람들이 건강해졌으면 좋겠다”며 활짝 웃었다. 주말엔 가족들이나 친구들과 수도권 가까운 산으로 향한다. 나무와 꽃, 바위 등을 보면서 산을 오르내리다보면 헬스에서 느끼지 못하는 상쾌함과 성취감을 느낀다. “낮은 산이라도 정상에 올라 내려다보면 모든 것을 다 얻은 느낌을 가진다”고 했다. 문 팀장은 몸을 더 만들어 각종 보디빌딩대회에도 출전할 계획이다. 보디프로필을 찍어 성취감을 느끼듯 대회를 준비하고 출전하면서 목표의식과 성취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어느 순간부터 몸을 만들어가는 재미가 있어졌어요. 조금씩 좋아지는 느낌…. 예를 들면 지금 몸이 2016년 때보다 더 좋습니다. 제 느낌이 그래요. 허리도 가늘어지고. 2016년과 몸무게는 같은데 볼륨감은 더 커졌다는 걸 느낍니다. 헬스는 과학이고 그것을 제 몸으로 체험하면서 치유되는 것을 느끼니 더 근육운동에 집중하게 됩니다. 여러분 100세 시대, 건강하게 살려면 운동은 필수입니다.”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 2022-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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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근육운동으로 허리-무릎 통증 싹… ‘노하우’ 알려드려요”[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9년여 전이었다. 계단을 아예 못 내려가고 1km도 걷지 못했다. 어느 날 스커트를 입고 거울을 봤는데 왼쪽 허벅지가 가늘어져 있었다. 오른쪽에 비해 둘레가 6cm나 작았다. 정형외과에서 진단해보니 왼쪽 무릎 반월상 연골이 찢어져 있었다. 통증으로 오른 다리에 의지하다 보니 나타난 현상이었다. 문정화 서울 구로구청 건설관리팀장(50)은 무릎 부상을 근육운동으로 극복하면서 쌓은 노하우를 구민은 물론이고 다른 지역 사람들에게도 전달해주는 ‘건강 전도사’가 됐다. “병원에서 찢어진 연골을 긁어내야 한다고 했는데 제가 거부하고 근육운동을 시작했어요. 2004년 허리에 통증이 왔을 때도 근육운동으로 극복한 적이 있어 수술보다는 운동이 더 좋을 것이라 판단했습니다.” 집에서 매일 새벽 1시간씩 보디웨이트 트레이닝(몸으로 하는 근육운동)을 했다. 스쾃, 런지, 푸시업 등 다양한 근육운동을 2년 정도 하자 양쪽 허벅지의 균형이 잡혔다. 통증도 사라졌고 걷는 데도 지장이 없었다. 지금은 맨몸 스쾃 1000개는 거뜬하게 할 수 있다. 문 팀장은 2016년 대한보디빌딩협회 코치아카데미에서 보디빌딩지도자 자격증을 땄다. “무릎 통증을 해결하려고 운동하고 있을 때 결혼을 앞둔 여직원이 팔뚝 살을 빼고 싶다고 했죠. 2개월 함께 운동했는데 체중 변화는 없었지만 팔뚝은 2.5cm 가늘어졌어요. 그 직원이 결혼사진 잘 찍고 결혼식도 잘했다는 게 알려지면서 ‘문정화가 살을 빼준다’는 소문이 났고 함께 운동하자는 요청이 이어졌죠. 그래서 이왕 하는 김에 자격증을 따서 제대로 가르쳐 주자는 마음에 자격증을 따기 시작했죠.” 허리 디스크가 파열됐을 때 축구광인 남편이 근육운동을 권했던 게 큰 도움이 됐다. 당시 2년 정도를 피트니스센터에서 열심히 훈련했다. 마라톤에도 빠져 하프코스를 1시간 49분에 달리는 등 운동 마니아로 변신했지만 2007년 전남 장흥군청에서 구로구청으로 옮기면서 적응하느라 잠시 운동을 못 하고 있을 때 무릎에 탈이 났던 것으로 보고 있다. 문 팀장은 2016년부터 각종 지도자 자격증 시험을 준비하면서 몸이 좋아지자 보디프로필 사진도 찍었다. 탄탄한 몸을 사진으로 남기는 것은 노력의 결과물로 성취감도 느꼈다. 그는 2016년 문화체육관광부 생활스포츠지도사, 2017년 한국인재교육원 재활트레이너-운동처방사 자격증을 획득했고 올해 유소년스포츠지도사와 노인스포츠지도사 자격증까지 땄다. “자격증을 획득하면서 본격적으로 구청 직원, 구민들을 대상으로 건강 클래스를 열었어요. 매일 아침 구로구청에서 운동지도를 하고 있고, 구로구평생학습관에서 건강강사로도 활동하고 있어요. 다른 지방자치단체에도 소문이 나서 지방공무원교육원, 전남, 전북 등까지 출강하고 있습니다.” 2013년 시작한 구로구청 운동지도는 매일 아침 7시에서 8시 구청 체력단련실에서 하고 있다. 현재 회원은 30여 명. 기구보다는 혼자서 몸으로 할 수 있는 보디웨이트 트레이닝 위주로 지도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여파로 체력단련실에서 지도하지 못한 2년간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운동 목표를 정해주고 피드백을 받는 식으로 진행했다. 올 7월 1일부터 다시 체력단련실에서 구청 직원들의 몸 만들기를 시작했다. 그는 “나를 통해 다른 사람들도 건강해질 수 있다는 게 너무 좋다. 세상 사는 데 건강보다 중요한 게 뭐가 있나. 힘 닿는 데까지 사람들에게 건강 노하우를 전달하겠다”고 말했다. 구로구청에서 5명 한 팀으로 지금까지 다이어트 8기까지 지도했다. 대부분 다이어트에 성공했다. 문 팀장이 허리디스크 수술을 막은 사례만 6명이나 된다. 모두 운동으로 허리 근육을 강화시켜 통증을 없앴다. 그는 “의학적으로 수술할 수밖에 없는 경우를 빼고는 운동으로 통증을 없앨 수 있는 방법이 많다. 특히 보디웨이트 트레이닝은 몸에 무리를 주지 않기 때문에 모든 연령대에 효과적이다”고 했다. 문 팀장은 “건강한 신체에서 건강한 정신도 나온다. 몸이 아프면 마음도 아프다. 긍정적인 사람도 몸이 아프면 소극적이 된다. 몸이 건강해야 하는 이유다. 나도 허리 무릎 다친 것을 운동으로 극복하며 자신감을 되찾았다. 100세 시대인데 근육운동으로 많은 사람들이 건강해졌으면 좋겠다”며 활짝 웃었다. 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 2022-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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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환갑 넘어 보디빌딩대회 정상에…“나이 들수록 근육 키워야”[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회사 해외주재원→피트니스 트레이너→미스터코리아 마스터스 제패….’그의 변신은 어디까지인가? 회사 해외주재원에서 피트니스 트레이너로 변신한 조우순 서울 목동 에스짐 퍼스널트레이너(61)가 9월 17, 18일 열린 국내 최고의 보디빌딩 대회인 미스터&미즈 코리아 남자부 마스터스 부문에서 우승했다. 50세 이상이 출전하는 부문에서 지난해 3위를 했지만 올해는 쟁쟁한 ‘후배들’을 제치고 정상에 선 것이다. 조 트레이너는 2021년 9월 25일 환갑의 보디빌더 “근육 키우면 젊음도 돌아와…늦은 때는 없어” 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으로 쓴 인물이다.그의 올해 활약은 정말 눈부시다. 5월 제41회 미스터서울선발대회 마스터스에서 우승했고, 서울 대표로 나온 미스터&미즈 코리아 대회에서도 정상에 선 것이다. 조 트레이너는 9월 24일 열린 서울시장배 보디빌딩대회 마스터스에서도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우승하기 위해 노력 많이 했습니다. 평소대로 웨이트트레이닝을 하면서 체지방을 빼기 위해 공복 유산소 운동을 많이 했죠. 공복에 유산소 운동을 하면 다이어트 효과가 크거든요. 새벽에 1시간 씩 달리거나 고정식 자전거를 탔습니다.”조 트레이너는 대회 2개월 전부터 철저하게 단백질 위주의 식단으로 근육의 선명도를 높였다. 그는 “닭 가슴살 위주로 식사를 했고 고구마, 잡곡 등을 먹으며 탄수화물 섭취를 최소화했다”고 했다. 수분관리도 도움이 됐다고 했다.“제가 평소에 하루 6리터의 물을 마십니다. 그러다 3일전 2리터, 하루 전날 1리터, 그리고 대회 전까지 24시간은 물을 마시지 않았습니다. 그랬더니 근육의 선명도가 훨씬 높아졌죠. 심사위원들이 근육의 질도 좋아졌다고 했습니다.”이렇게 무리해서 괜찮을까? 조 트레이너는 “전 1년 내내 지속적으로 몸을 관리한다. 절대 무리하지 않기 때문에 몸에 해가 가지 않는다”고 했다.조 트레이너는 “2023년 세계보디빌딩선수권대회에 출전해 우승하는 게 다음 목표”라고 했다. 그가 환갑을 넘겨서도 이렇게 도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저같이 평범한 사람도 꿈을 꾸고 열정을 가지고 노력하면 꿈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나이 때문에, 체격 조건 때문에 꿈을 포기하는 사람들에게 다시 꿈을 꾸게 하고 그 꿈을 이루게 하는 게 제 인생 2막의 목표입니다.”항공사와 건설사, 정부기관 등 해외주재원으로만 20년 넘게 일한 조 트레이너는 2020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터진 뒤 해외생활을 정리하고 ‘제2의 인생’을 준비했다. 은퇴할 나이도 됐고 100세 시대를 맞아 향후 새로운 삶을 살아야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그 때 아들 현우 씨(27ㆍ연세대 체육과 대학원)가 보디빌딩 지도자 자격증을 따고 대회에도 출전하라는 조언을 했다. 미스터 연세 출신으로 각종 보디빌딩 대회에 출전해 우승까지 한 현우 씨는 “어렸을 때부터 지켜본 아버지는 매일 운동을 생활화 했어요. 몸도 다른 사람들과는 달랐어요. 그래서 새로운 직업을 택한다면 보디빌딩 지도자를 권했죠”라고 했다.조 트레이너는 2020년 보디빌딩 생활스포츠지도사 자격증을 획득했다. 필기와 실기, 현장 연수로 이뤄진 과정을 단번에 통과했다. 그리고 2021년 3월부터 몸을 제대로 만들기 시작해 그해 5월말 열린 고양시장배 보디빌딩대회 마스터스 60세 이상부와 피지크에서 우승했고, 마스터스 그랑프리까지 차지했다. 2021년 6월 말 열린 월드스포츠탑모델쇼(WSTMS) 미디엄(키 177cm 이하) 부분에서도 우승했다. 대회 출전을 위해 본격적으로 몸을 만들 땐 웨이트트레이닝을 주 6일 하루 1시간 30분 씩 한다. 3일 하고 하루 쉬는 일정으로 몸을 3분할로 나누어 한다. 하루씩 하체, 가슴과 어깨, 등과 코어로 나눠서 운동한다. 그동안 격일로 유산소운동(1시간 달리거나, 고정식 자전거 타기)을 해 지방도 태웠는데 이번엔 매일 유산소운동을 한 것이다. 식단관리도 중요하다.조 트레이너는 평소에는 ‘지속가능한 운동’을 강조하며 하루 3식을 4식으로 나눠 2식은 단백질과 채소 위주, 2식은 탄수화물 등이 포함 된 일반식을 한다. 그는 “근육을 만들 때 탄수화물을 안 먹어야 한다고 믿는데 그럼 오래 지속할 수 없다. 일시적으론 가능하지만 평생 운동을 하려면 골고루 잘 먹어야 한다”고 말했다.그는 평소에도 운동을 즐겨 몸이 좋았지만 웨이트트레이닝을 집중적으로 하면서는 ‘조각’처럼 선명해졌다고 했다. 그는 “과거엔 근육의 볼륨만 있었다면 이젠 선명도가 높아져 사람들이 선호하는 몸이 됐다. 개인적으로도 달라진 몸에 만족한다”고 했다.70개국 이상을 돌아다닌 해외 전문가로 관광학 박사 학위까지 딴 조 트레이너는 요즘 사는 게 즐겁다. 그는 “은퇴하며 제2의 인생을 어떻게 준비할까 고민이 많았다. 평생 내가 좋아했던 운동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수하는 트레이너로 사는 게 행복하다. 즐기며 돈도 번다. 일석삼조의 직업이다”고 했다. 웨이트트레이닝 PT가 낮엔 띄엄띄엄 있다가 밤 10시에 끝나지만 하루가 즐겁다. PT가 없는 시간을 활용해 개인 운동을 한다.“나이가 들수록 근육이 중요합니다. 40세가 넘으면 매년 근육이 1%씩 빠집니다. 근육이 없으면 낙상 가능성이 높고 뼈도 쉽게 부러지게 됩니다. 근육을 키우면 젊음도 돌아옵니다. 근육=젊음이라고 보면 됩니다. 절대 늦었다는 때는 없습니다. 나이가 많아도 욕심 부리지 않고 천천히 키우면 충분히 탄탄한 몸을 만들 수 있습니다.”조 트레이너는 100세 시대를 맞아 자신의 운동 노하우를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주는 역할을 하겠다고 했다. 그는 “그냥 오래 사는 것보다 건강하게 오래 살아야 의미 있는 삶이다. 나와 비슷한 나이의 시니어를 위한 전문 트레이너가 되고 싶다”고 했다. 그는 서울 목동 에스짐파리공원점과 인근 피트니스센터에서 프리랜서 PT(퍼스널 트레이닝) 지도자로 활동하고 있다. 20~60대 전 연령층을 지도한다. 어르신들에게는 자원봉사로 재능기부도 하고 있다. 공부도 열심히 한다.“인체 해부학, 운동생리학 등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제가 잘 알아야 잘 가르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체는 공부하면 할수록 재미있습니다. 지리탐구 하듯 인체를 탐구하며 배우고 있습니다.” 조 트레이너는 운동은 지속가능해야 의미가 있다고 강조한다.“나이 들면 운동을 싫든 좋든 해야 합니다. 선택이 아닌 필수입니다. 하지만 과유불급이란 말이 운동에 가장 잘 들어맞습니다. 무슨 운동이든 의욕만 가지고는 안 됩니다. 자신의 몸이 적응할 수 있는 만큼만 운동을 해야 합니다. 의욕 넘친다고 하루에 너무 세게 하면 역효과만 납니다. 운동을 오래 지속하려면 즐겨야 합니다. 지나치게 욕심 부리다 골병 든 사람 많습니다. 천천히 꾸준하게 하면 우리 몸은 서서히 탄탄하게 바뀝니다.”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 2022-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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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를 건강하게 해준 산, 평생 아내·친구들과 함께 탈 거예요”[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제가 전주북중을 재수해서 갔어요. 그 땐 중학교 입시에 체력장이 있었는데 공 던지기하다 팔이 빠졌죠. 필기시험 1개 틀리면 체력장은 무조건 만점 받아야 하던 시절이었죠. 당연히 체력장에서 만점을 못 받았죠. 결국 전주북중은 물론 후기인 전주서중도 떨어졌어요. 그 이듬해 전주북중에 입학했어요.”20대 말부터 등산으로 평생 건강을 관리해온 이재희 국제영어대학원대(IGSE) 총장(67)에게 ‘학창시절 운동을 그렇게 못 했냐’고 질문하자 돌아온 답이었다. 이 총장에게 인터뷰 요청을 하고 만났을 때 준비해온 간단 ‘서면 답변’ 제일 첫 머리에 ‘운동에 소질은 없는 것 같다’는 문구를 보고 한 질문이었다. 하지만 이 총장은 교사와 교수로 평생을 살아오면서 주기적인 등산으로 건강은 잘 챙기고 있었다. 일찌감치 운동이 건강의 비결이라는 것을 터득하고 있었다.“ROTC로 군대를 마친 뒤 대기업에 취직했다가 맘에 맞지 않는 곳으로 발령 나면서 그만두고 교직에 몸담았어요. 제가 사범대 영어과를 나왔거든요. 그런데 저도 술을 잘 마시지만 다른 선생님들도 술을 자주 그리고 많이 마시는 거예요. 이러다 죽겠다 싶어 살기위해 산에 다니기 시작했어요.”그렇다고 대한민국 명산을 돌아다니는 전문 등산가는 아니었다. 건강을 위해 집에서 가까운 산을 오르는 수준이었다. 척추협착증 판정을 받은 40대 초반부터 등산에 더욱 매진하게 됐다. 이 총장은 “대학원에서 석사 박사학위를 받고 경인교대에 부임해 초임 교수로 열심히 할 때 무리해서인지 척추협착증이 찾아왔다. 의사가 많이 걸으라고 해서 자가용을 버리다시피 하고 버스와 지하철로 이동하면서 가급적 많이 걸었다. 산도 많이 찾았다. 2년 정도 지나서야 증세가 호전됐다. 하지만 척추협착증은 평생 걸어야 다시 재발하지 않는다고 한다”고 말했다. 그는 “조용히 공기 좋은 곳에 살려고 경기 안양시 인덕원 청계산 근처로 집을 옮겼는데 15분 정도 걸어야 전철에 닿는다. 걸을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며 웃었다.이 총장은 1년 6개월여 전 정년퇴직한 뒤 모든 것을 내려놓고 평생 즐기던 등산에 본격적으로 빠져 들었다. 어디에 얽매이지 않고 즐겁고 건강하게 살고 싶었다. 대학 산악반 출신 친구들과는 4시간, 고교 친구들과는 3시간, 아내와는 2시간 산행을 했다. 주 2~3회 산에 오르는 즐거움으로 살고 있다.“하체가 튼튼해야 건강하다고 하잖아요. 허벅지가 20인치 이상만 되면 성인병이 없다죠. 전 아직 허벅지가 20인치가 넘어요. 지금까지 고혈압, 당뇨 등 성인병은 모르고 살았어요. 무엇보다 등산을 하면 잠을 잘 자고 쾌변을 보게 돼 좋습니다. 전 누우면 5분 안에 잠이 듭니다.”이 총장은 지난해 초 총장까지 지냈던 경인교대를 떠난 뒤 친구들과, 아내와의 산행을 시작했다. 그는 “산악반 친구들은 난이도가 높은 곳을 가자고 하는데 전 수도권 가까운 산을 고집 한다”고 했다. 집 근처 청계산과 관악산, 우면산 등 속칭 ‘대중교통’으로 쉽게 찾을 수 있는 산을 탄다. 설악산, 한라산 등 명산들은 많이 가 봤기 때문에 건강을 위해 운동 차원에서 하는 등산은 가까운 곳이 더 좋기 때문이다.“이젠 높고 멋진 산보다는 안전한 산이 더 좋아요. 코스도 험하지 않은 곳을 고집하죠. 무엇보다 친구들과 사는 얘기하면서 오르기에는 수도권 산이 좋아요. 하산해 가볍게 막걸리 한잔하고 집에 가기에도 좋죠. 다들 은퇴한 친구들이라 서로의 고민도 얘기하면서 의지도 하고…. 간단하게 막걸리 마시고 한 끼 해결하고 가면 집사람에게도 수고를 덜어줘요. 굳이 다시 밥을 안 챙겨도 되잖아요. 하하….”이 총장은 지금은 출가한 두 딸에게도 운동의 중요성을 늘 강조했다. 몸이 건강해야 뭐든 잘 할 수 있기 때문이다.“중학교 들어가기 전까지 딸들을 꼭 산에 데리고 갔어요. 큰 딸에겐 이런 말도 했죠. ‘네가 커서 사회생활을 할 때 남자들과 동등하게 경쟁하려면 체력도 똑같아야 한다’고. 그래서 중학생이 됐을 때 수영을 가르쳤고, 방학 때는 테니스 레슨도 받게 했죠. 계양산과 관악산, 북한산을 오를 때도 데리고 다녔어요. 그런데 입시 때문에 다 중단하게 됐죠.”이 총장은 대한민국 아이들이 입시 때문에 학창시절 다양한 경험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 대해 안타깝다고 했다. “체육을 비롯해 음악, 미술 등 예체능은 어릴 때 재능을 살려줘야 하는데 한국 교육시스템은 그렇지 못하다”고 아쉬워했다.서울대 사범대 시절 합창단으로 활약했던 이 총장은 사회생활 하면서도 합창단 출신들과 주기적으로 노래하는 모임을 가졌고, 최근엔 고교 친구들과 중창단을 구성해 매달 함께 노래 부르는 기회를 만들었다. 그는 “100세 시대를 즐겁게 살려면 계획하고 준비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무의미하게 시간만 보낼 수 있다. 친구들과 노래를 부르며 함께 하는 시간도 즐겁다”고 했다.“노래 부르기 위해 발성하는 게 건강하고도 연결이 됩니다. 건강해야 목소리도 잘 나옵니다. 사람들 만나 노래 부르는 것 자체로도 즐겁잖아요. 제가 이렇게 노래를 부르고 다니니 둘째 딸이 결혼할 때 저에게 축가를 불러달라고 했어요. 기뻤죠. 흔쾌히 불렀습니다.”이 총장은 아내 피순화 씨(64)와 함께 하는 시간도 늘렸다. 등산도 함께하지만 정년퇴직을 앞두고 본격 시작한 골프도 함께 치고 있다. 그는 “이제 제가 누굴 의지하며 살겠나. 친구도 좋지만 아내와 함께 하는 시간도 중요하다. 가급적 부부 동반으로 산행과 골프를 하고 있다. 여생을 부부가 함께 건강하게 사는 게 최고의 행복 아닌가”라고 말했다.이 총장은 이달 초부터 IGSE에서 다시 일을 시작하면서 산행 횟수는 줄었다. 그는 “평일 주말 가리지 않고 많게는 주 3,4회 산에 올랐는데 이젠 주말에만 갈 수밖에 없다. 하지만 다행히 학교 옆에 올림픽공원 몽촌토성이 있어 시간 날 때 머리도 식힐 겸 자주 걷는다. 짧지만 유익한 시간이다”고 했다.이 총장은 등산과 함께 테니스를 치며 건강을 다져왔다. “군대에서 매주 수요일은 전투체육의 날이었다. 광주 상무대에서 근무하던 시절 전라남도 연식정구 여자선수들에게 정구를 배웠고 이후 제대한 뒤 테니스로 바꿔 정기적으로 쳤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이제 테니스를 사실상 포기했다. “최근 테니스 치고 나서 발바닥에 통증이 왔다. 이젠 힘이 달려 코트를 뛰어다니기도 힘들다. 조금 무리하면 몸 곳곳에서 이상 반응이 온다”고 했다. 그는 “과격한 운동보다는 즐겁게 사람들과 함께 산을 타는 게 최고의 운동”이라며 활짝 웃었다.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 2022-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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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대에 시작한 등산 덕에 평생 성인병 모르고 살아”[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1년 6개월여 전 정년퇴직한 뒤 모든 것을 내려놓고 평생 즐기던 등산에 본격적으로 빠져들었다. 어디에 얽매이지 않고 즐겁고 건강하게 살고 싶었다. 대학 산악반 출신 친구들과는 4시간, 고교 친구들과는 3시간, 아내와는 2시간 산행을 하고 있다. 이재희 국제영어대학원대(IGSE) 총장(67)은 20대 말부터 시작한 등산 덕분에 건강하고 즐겁게 살고 있다. 학창 시절 운동에는 소질이 없어 체력장 만점을 받지 못해 중학교 입시에서 떨어지기도 했지만 주기적인 등산으로 건강은 평생 잘 지키고 있다. “ROTC로 군대를 마친 뒤 대기업에 취직했다가 맘에 맞지 않는 곳으로 발령 나 그만두고 교직에 몸담았어요. 저도 술을 잘 마시지만 다른 선생님들도 자주 그리고 많이 마시는 거예요. 이러다 죽겠다 싶어 살기 위해 산에 다니기 시작했어요.” 그렇다고 대한민국 명산을 돌아다니는 전문 등산가는 아니었다. 건강을 위해 집에서 가까운 산을 오르는 수준이었다. 척추협착증 판정을 받은 40대 초반부터 더욱 등산에 매진하게 됐다. 이 총장은 “대학원에서 석사·박사 학위를 받고 경인교대에 부임해 초임 교수로 열심히 할 때 무리해서인지 척추협착증이 찾아왔다. 의사가 많이 걸으라고 해서 자가용을 버리다시피 하고 버스와 지하철로 이동하면서 가급적 많이 걸었다. 산도 많이 찾았다. 2년 정도 지나서야 증세가 사라졌다. 하지만 척추협착증은 평생 걸어야 재발하지 않는다고 한다”고 말했다. “하체가 튼튼해야 건강하다고 하잖아요. 허벅지가 20인치 이상만 되면 성인병이 없다죠. 전 아직 허벅지가 20인치가 넘어요. 지금까지 고혈압, 당뇨 등 성인병은 모르고 살았어요. 무엇보다 등산을 하면 잠을 잘 자고 쾌변을 보게 돼 좋습니다. 전 누우면 5분 안에 잠이 듭니다.” 이 총장은 지난해 초 총장까지 지냈던 경인교대를 떠난 뒤 친구들, 아내와의 산행을 시작했다. 그는 “산악반 친구들은 난도가 높은 곳을 가자고 하는데 전 수도권 가까운 산을 고집한다”고 했다. 경기 안양시 인덕원 집 근처 청계산과 관악산, 우면산 등 속칭 ‘대중교통’으로 쉽게 찾을 수 있는 산을 탄다. 설악산, 한라산 등 명산들은 많이 가 봤기에 건강을 위해 운동 차원에서 하는 등산은 가까운 곳이 더 좋기 때문이다. “이젠 높고 멋진 산보다는 안전한 산이 더 좋아요. 코스도 험하지 않은 곳을 고집하죠. 무엇보다 친구들과 사는 얘기 하면서 오르기에는 수도권 산이 좋아요. 하산해 가볍게 막걸리 한잔하고 집에 가기에도 좋죠. 다들 은퇴한 친구들이라 서로의 고민도 얘기하면서 의지도 하고….” 서울대 사범대 시절 합창단으로 활약했던 이 총장은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합창단 출신들과 주기적으로 노래하는 모임을 가졌고, 최근엔 고교 친구들과 중창단을 구성해 매달 함께 노래 부르는 기회를 만들었다. 그는 “100세 시대를 즐겁게 살려면 계획하고 준비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무의미하게 시간만 보낼 수 있다. 친구들과 노래를 부르며 함께하는 시간도 즐겁다”고 했다. 이 총장은 아내 피순화 씨(64)와 함께하는 시간도 늘렸다. 등산도 함께하지만 정년퇴직을 앞두고 본격적으로 시작한 골프도 함께 치고 있다. 그는 “이제 제가 누굴 의지하며 살겠나. 친구도 좋지만 아내와 함께하는 시간도 중요하다. 가급적 부부 동반으로 산행과 골프를 하고 있다. 여생을 부부가 함께 건강하게 사는 게 최고의 행복 아닌가”라고 말했다. 이 총장은 이달 초부터 IGSE에서 다시 일을 시작하면서 산행 횟수는 줄었다. 그는 “평일, 주말 가리지 않고 많게는 주 3, 4회 산에 올랐는데 이젠 주말에만 갈 수밖에 없다. 하지만 다행히 학교 옆에 올림픽공원 몽촌토성이 있어 시간 날 때 머리도 식힐 겸 자주 걷는다. 짧지만 유익한 시간이다”라고 했다. 이 총장은 ROTC로 임관해 배운 뒤 평생 주기적으로 치던 테니스도 사실상 포기했다. “최근 테니스 치고 나서 발바닥에 통증이 왔다. 이젠 힘이 달려 코트를 뛰어다니기도 힘들다. 조금 무리하면 몸 곳곳에서 이상 반응이 온다”고 했다. 그는 “과격한 운동보다는 즐겁게 사람들과 함께 산을 타는 게 최고의 운동”이라며 활짝 웃었다. 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 2022-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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