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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이란에 대해 전례 없이 강력한 제재를 지속하는 가운데 중국, 러시아가 이란과 함께 인도양 북부와 오만해에서 사상 처음으로 해상 연합 군사훈련에 나선다. 중국은 미국 전역을 타격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핵탄두 탑재 가능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도 시험 발사해 무력시위를 벌였다. 중국, 러시아가 손잡고 미국과 맞서는 모습이 지속되고 있어 주목된다. 25일 AP통신과 이란 메르통신 등에 따르면 세 나라 해군이 참가하는 이번 훈련은 ‘해양 안보벨트’라는 이름으로 27∼30일 진행된다. 이 지역은 걸프해의 입구이며 세계 최대 원유 수송 해역인 호르무즈해협과도 가깝다. 이란군은 “이번 훈련은 중동 지역의 국제 교역 안보 강화가 목적이다. 이란, 러시아, 중국이 안보 경험을 교환하고, 테러와 해적 행위에 맞서는 게 가장 중요한 목표”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번 훈련은 미국의 중거리핵전력조약(INF) 탈퇴 및 경제 제재로 어려움을 겪는 이란을 지원하기 위한 것으로 중국과 러시아가 중동 지역에서 미국에 대항하는 움직임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미국은 이란에 대한 군사적 압박을 높이기 위해 우방국들과 걸프 해역에서 활동하는 해군 군사 연합체인 ‘호르무즈 호위연합’을 결성했고, 이에 대해 중국과 러시아는 ‘중동 지역의 안정을 위협한다’며 반발해왔다. 한국도 미국의 요청에 따라 호르무즈해협에 파병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미국은 예멘 후티 반군이 자신들의 행위라고 밝힌 올해 9월 사우디아라비아 국영 석유기업 아람코의 석유 생산시설과 유전에 대한 무인기(드론) 및 미사일 공격에도 이란이 직접 개입했다며 이란에 대한 압박 강도를 높이고 있다. 미국은 아람코 피격 사태 후 사우디에 미군을 증파했고, 미사일방어(MD) 시스템도 추가 설치했다. 이란은 이번 훈련을 중국, 러시아와의 군사 협력을 확대하는 계기로 활용할 의지를 내보였다. 이란 파르스통신에 따르면 이란 해군의 호세인 한자디 소장은 “이번 훈련은 중국 러시아 해군과의 광범위한 협력의 한 부분이며, 여기에는 잠수함과 구축함 생산도 포함된다”고 말했다. 파키스탄처럼 반미 성향이 강한 나라가 향후 중국 러시아 이란의 연합 군사훈련에 참여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중국은 22일 보하이(渤海)에서 미국 전역을 사거리로 하는 ICBM급 SLBM인 ‘쥐랑(巨浪)-3’을 서쪽 방향으로 시험 발사했다. 중국 관영 관차저왕(觀察者網)은 쥐랑-3 발사 사실을 직접 언급하지 않으면서도 “베이징(北京)에서 (미사일 궤적인) 이상한 구름들이 목격됐다”며 “중국 정부가 20∼27일 보하이에서 군사 임무를 이유로 항행을 금지했다”고 보도했다. 쥐랑-3은 중국의 094형 전략 핵추진 잠수함에서 발사된 것으로 알려졌다. 사거리가 1만 km에 달해 핵탄두를 탑재하고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카이로=이세형 turtle@donga.com / 베이징=윤완준 특파원}
아랍에미리트(UAE)에서 개발돼 최근 중동과 미국 등에서 큰 인기를 누리는 채팅 애플리케이션(앱) ‘투톡(ToTok)’이 UAE 정부의 스파이앱인 것으로 드러났다고 뉴욕타임스(NYT)가 22일 보도했다. NYT에 따르면 UAE 정부는 앱 사용자들의 대화, 움직임, 약속, 이용 영상 등을 파악하기 위해 투톡을 개발했다는 것이다. 정보보안 전문가들은 투톡을 제작한 ‘브리제이 홀딩’은 UAE 아부다비에 위치한 사이버 정보 및 해킹회사인 ‘다크매터’와 연계된 것으로 보고 있다. 다크매터에는 UAE 정부의 정보 분야 관계자들, 미 국가안보국(NSA) 직원과 이스라엘 군사정보요원으로 활동했던 인력들이 근무하고 있다. 미 정보당국은 투톡이 다크매터와 관련 있는 것으로 여겨지는 데이터분석 회사인 ‘팍스 AI’와도 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팍스 AI는 UAE 정부의 신호정보국과 같은 건물을 쓰고 있다. UAE는 중동에서 가장 개방적이고, 미국과 매우 가까운 나라지만 언론 통제, 반대 세력 견제, 주변국 동향 파악 등을 위한 다양한 정보보안 기술을 활용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자국에 비판적인 기사를 작성하는 언론인의 컴퓨터를 해킹하고, 정부에 부정적인 글을 올리는 자국민들의 소셜미디어도 체계적으로 감시한다. 2017년 카타르 단교사태가 터졌을 당시 카타르에 대한 음해성 가짜뉴스의 상당수가 UAE에서 만들어져 확산됐다는 의혹도 받았다.카이로=이세형 특파원 turtle@donga.com}

1989년 11월 독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동유럽 공산정권도 줄줄이 붕괴한 지 꼭 30년이 흘렀다. 겉으로는 30년간 이 지역에서도 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뿌리내린 듯하다. 하지만 최근 인종주의 및 국수주의 성격이 강한 민족주의를 뜻하는 ‘종족 민족주의(Ethnonationalism)’를 앞세운 극우 정당 및 정치인이 득세해 우려를 낳고 있다. “난민이 몰려드는 국경 지역을 보호하기 위해 무력을 사용하겠다”고 외치는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 “난민이란 ‘무지개색 흑사병’이 폴란드의 존립을 위협한다”고 주장하는 야로스와프 카친스키 폴란드 집권 법과정의당 대표, “난민에게 문호를 개방해 독일의 불안정이 심해졌다”고 주장하는 외르크 모이텐 ‘독일을위한대안(AfD)’ 공동대표 등이 대표적이다. 지역은 다르지만 난민 구조선 입항 봉쇄로 ‘제2의 무솔리니’란 비판까지 받은 마테오 살비니 이탈리아 극우정당 ‘동맹’ 대표 겸 전 부총리도 빼놓을 수 없다. 이들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등 강대국 권위주의 지도자와 같은 큰 영향력은 없다. 하지만 국제사회의 주목과 견제가 소홀한 틈을 타 더욱 노골적인 극우 대중영합주의(포퓰리즘) 정책을 밀어붙이고 있다. 10월 폴란드 총선에서 카친스키 대표는 ‘낙태 제한, 성소수자 없는 도시 만들기’ 등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서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공약을 내걸었다. 그래도 하원 460석의 과반을 손쉽게 확보했다. 같은 달 AfD도 옛 동독 지역인 튀링겐 주의회 선거에서 집권 기독민주당을 밀어내고 제2당으로 급부상했다. 헝가리, 폴란드, 체코는 유럽연합(EU)의 난민 할당을 준수하지 않아 EU와도 사사건건 갈등을 빚고 있다. 7월 타계한 헝가리 유명 철학자 아그네스 헬러가 “종족 민족주의가 전체주의(Totalitarianism)로 변질될 위험성이 있다”고 경고한 이유다. 전문가들은 특히 동유럽에서 종족 민족주의가 기승을 부리는 이유로 서유럽에 비해 낙후된 경제에 따른 불평등을 이유로 꼽는다. 10월 미 여론조사회사 퓨리서치센터가 옛 공산권 17개국 약 1만9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폴란드, 동독, 체코, 슬로바키아, 헝가리 응답자의 대부분이 ‘체제 변화로 누가 이득을 누렸느냐’는 질문에 “정치인과 사업가”를 꼽았다. 응답자의 53%는 “건강보험 제도가 공산주의 때보다 후퇴했다”고도 했다. 비(非)유럽권도 크게 다르지 않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는 난민 대신 자국 내 소수계를 탄압하는 극우 정책을 펴고 있다. 네타냐후 총리는 900만 인구의 약 15%인 아랍계를 노골적으로 배척하고 있다. 아랍어를 공용어에서 제외했고 ‘이스라엘은 유대인을 위한 국가’라고도 규정했다. 모디 총리도 최근 이웃 방글라데시,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3개국 출신 불법 이민자 중 힌두교, 시크교, 불교, 자이나교, 파시교, 기독교 신자에게만 시민권을 허가한 시민법 개정안을 마련했다. 12억 인구의 약 14%를 차지하는 이슬람교 신자들은 “종교 차별을 금지한 헌법 위반이자 무슬림에 대한 인종청소”라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지난달 초 시작돼 전국으로 번진 시민법 개정 반대 시위에서 6명이 숨지고 100명 이상이 다쳤다. 전문가들은 세계화와 자유무역의 수혜를 폭넓게 누리지 못한 지역의 상대적 박탈감, 외부인에 대한 적개심 등으로 종족 민족주의를 이용하려는 정치인이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파키스탄 이민자 후손인 사디크 칸 영국 런던시장은 “현재의 유럽이 제2차 세계대전 직전과 흡사하다”고 우려했다. 워싱턴포스트(WP)도 “헝가리, 폴란드 등 민주주의 연식이 짧은 국가에서 자유주의가 비자유적 형태로 변질됐다”고 지적했다.카이로=이세형 특파원 turtle@donga.com / 한기재 기자}

이탈리아 프로축구 세리에A의 유명 구단인 인터밀란과 우디네세의 감독을 지낸 안드레아 스트라마치오니(43)가 올해 6월부터 활동해 오던 이란 프로축구리그의 명문클럽 에스테그랄FC 감독직을 갑자기 떠났다. 미국의 대이란 제재로 급여를 제대로 받지 못하자 시즌 중 감독직에서 물러나 조국인 이탈리아로 돌아간 것이다. 스트라마치오니 감독은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e메일 인터뷰에서 “클럽이 급여와 관련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상황이라 이란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스트라마치오니 감독이 재임 중 에스테그랄FC는 우승을 노릴 정도로 성적이 좋아 팬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 팬들은 온라인 상에서 클럽을 비판하고, 수백여 명은 거리에서 시위도 펼쳤다. 일부 이란 팬들은 축구협회와 이란 체육·청소년부의 무능에 대해서도 신랄한 비판을 가하고 있다. 사태가 악화되자 이란 외무부 차관은 주이란 이탈리아 대사와 주이탈리아 이란 대사에게 ‘스트라마치오니 감독 복귀’를 도와 달라 요청했다. 또 이란 의회에서는 체육·청소년부 장관을 탄핵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일각에선 스트라마치오니 감독이 급여 문제만 해결되면 이란에 복귀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도 나온다. 그는 “선수들이 그립다”고 밝혔고, 부인인 데릴라도 처음에는 이란에서 생활하는 것을 거부했지만 나중에는 “집처럼 편안하게 느꼈다”고 말할 정도로 현지생활에 대한 만족도가 높았다.카이로=이세형 특파원 turtle@donga.com}

미국이 두 달 전 시작돼 최근 거세지고 있는 레바논의 반정부 시위를 사실상 공개적으로 지지하며, 이 나라 정치권의 최대 세력인 친이란계 시아파 무장정파 ‘헤즈볼라’에 대한 본격적인 압박에 들어갔다. 헤즈볼라에 대한 무기와 재정 지원을 해온 이란의 레바논에 대한 영향력도 최대한 줄이려는 의도도 담겨 있는 것으로 보인다. 13일(현지 시간)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최근 미국은 레바논 출신 사업가 2명을 헤즈볼라를 후원해온 혐의로 제재 대상으로 지정했다. 같은 날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트위터를 통해 “레바논 국민들이 부정부패와 테러리즘과 싸울 수 있도록 함께 하겠다. 헤즈볼라의 위협에 맞설 수 있도록 모든 도구를 동원하겠다”고 밝혔다. 미국은 그동안 헤즈볼라를 테러단체로 규정짓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압박해 왔다. 이란의 막강한 지원을 바탕으로 헤즈볼라는 다른 반미, 반이스라엘 성향 무장정파들과는 차원이 다른 피해를 미국과 이스라엘에 안겼다. 1983년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의 미 해병대사령부 건물을 공격해 미군 241명이 숨지게 했다. 이 사건은 미군의 레바논 철수로 이어졌다. 또 2006년 이스라엘과의 전쟁에선 34일간 수백발의 로켓과 미사일을 발사하며 큰 피해를 입혔다. 현지 중동 전문가는 “그 어느 때보다 레바논 국민들의 헤즈볼라에 대한 반감이 고조돼 있기 때문에 미국으로서는 헤즈볼라와 이란의 영향력을 최대한 줄이기 좋은 기회로 현 상황을 바라볼 것”이라며 “미국의 헤즈볼라에 대한 압박이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국의 입김이 크게 작용하는 국제기구에서도 레바논 정부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이달 11일 유엔과 프랑스 주도로 열린 레바논 지원을 논의하기 위한 국제회의에선 레바논 정부의 경제지원 요청을 사실상 거부했다. 당시 회의에 참여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독일, 아랍에미리트(UAE), 세계은행, 국제통화기금(IMF) 등은 “레바논이 신뢰할 수 있는 정부를 구성하기 전까지는 재정 지원을 중단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중동 외교가에서는 신뢰할 수 있는 정부 구성을 ‘헤즈볼라 영향력 축소’로 해석한다. 실제로 사드 하리리 레바논 임시총리(총리직에서 10월29일 사임)는 전문 관료들이 중심이 된 내각을 구성하는 것을 지향하고 있지만, 헤즈볼라의 반대로 이를 시행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마하티르 모하멧 말레이시아 총리는 14일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외교안보행사인 ‘도하포럼’에서 미국의 대이란 제재를 비판했다. 그는 도하포럼 연설에서 “말레이시아는 미국이 이란에 대해 일방적으로 제재를 재부과한 것을 지지하지 않는다”며 “이란에 대한 제재는 유엔 헌장과 국제법에 어긋나고, 유엔 헌장에선 제재는 유엔만이 부과할 수 있도록 돼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란 제재로 인해 말레이시아와 다른 나라들은 ‘큰 시장’을 잃었다”고 덧붙였다. 당시 행사장에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이란 제재 관련 핵심 인사 중 하나인 스티븐 므누신 미국 재무부 장관이 참석해 있어 화제가 됐다. 카이로=이세형 특파원 turtle@donga.com}

해외 언론의 취재와 대중문화 행사를 거의 허용하지 않아 ‘은둔의 왕국’으로 불렸던 사우디아라비아가 미디어 산업 육성에 눈을 돌리고 있다. 이달 2, 3일 사우디 수도 리야드의 힐턴호텔에서는 사우디 최초의 국제 언론 행사 ‘사우디 미디어 포럼(SMF)’이 열렸다. 각국 언론의 중동 문제 보도 실태와 미디어 산업의 미래를 논의하기 위한 자리였다. 처음 열린 행사였지만 세계 언론의 관심은 뜨거웠다. 동아일보를 포함해 미국 블룸버그뉴스와 CNBC, 영국 가디언과 스카이뉴스, 프랑스 르피가로, 유럽 EPA통신 관계자들이 발표자와 패널로 참석했다. 트위터, 유튜브, 페이스북 같은 대형 소셜미디어도 행사장에 대형 홍보공간을 마련했다. 사이드 알감디 킹사우드대 언론학과 교수는 기자에게 “몇 년 전만 해도 사우디에서 이렇게 큰 규모의 언론 행사가 열릴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정부 차원의 미디어 산업 육성 움직임이 본격화했다”고 말했다. 사우디에는 최근까지도 카타르 알자지라처럼 해외에 알려진 유명한 언론사도 없었다. 무엇보다 왕실을 비판하는 사람은 극형에 처해질 정도로 언론 자유가 전무한 것으로 유명했다. 지난해 10월 피살된 반정부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의 살해 배후에 왕실이 있다는 의혹이 제기된 점만 봐도 사우디의 언론 현실이 어떤지 잘 알 수 있다. 과연 사우디 정부는 무엇을 기대하고 미디어 산업 육성에 나섰을까.○ 아람코 상장에 따른 국가 이미지 개선 세계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는 막대한 오일머니를 바탕으로 아랍권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하지만 미디어 분야에선 별다른 경쟁력을 보이지 못했다. 이웃 카타르와 아랍에미리트(UAE)보다 ‘몇 수 아래’라는 평가가 많았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사우디도 정부 차원에서 종합방송사인 MBC, 뉴스전문 채널인 알아라비야를 설립했다. 하지만 알자지라만큼 국제적인 명성을 얻는 데 실패했다. 특히 지난해 카슈끄지 피살 사건은 국가 이미지에 치명타를 안겼다. 이런 상황에서 세계 최대 석유기업인 국영 석유사 아람코가 이달 11일 리야드 타다울 증권거래소에서 주식 거래를 시작했다. 5일 기업공개(IPO) 당시 아람코 1주는 32리얄로 책정됐지만 거래 첫날인 이날 상한가 10%까지 오르며 주당 35.2리얄(약 1만1200원)로 뛰었다. 12일 현재 아람코의 기업 가치도 약 1조9600억 달러로 불어나 사우디의 목표치인 2조 달러에 거의 근접했다. 기존 세계 1위였던 미국 애플의 시가총액 약 1조3000억 달러를 가뿐히 넘어섰다.사우디는 아람코 상장 자금으로 탈(脫)석유와 산업 다각화에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려 하고 있다. 당초 100% 왕실이 보유한 전체 지분 중 5%를 매각해 미국 뉴욕 및 영국 런던 증권거래소 등에도 상장하려 했지만 공모가에 대한 이견 등으로 해외 상장은 일단 잠정 중단됐다. 그 대신 이번에 국내에서만 1.5%의 지분을 풀었다. 하지만 사우디 정부는 반드시 해외 상장을 성공시키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장지향 아산정책연구원 중동센터장은 “아람코 상장, 관광 개방, 해외 기업 투자 유치 등 개혁, 개방에 나서고 있는 사우디로서는 뒤늦게 미디어의 중요성을 느끼고 있을 것”이라며 “해외 언론과의 긍정적인 관계 형성 및 자국 미디어 육성에 공들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투르키 알샤바나 공보부 장관도 2일 “나라 안팎으로 더 많은 것을 알릴 필요가 있다”며 해외 언론에 적극 문호를 개방할 뜻을 드러냈다.○ 산업 다각화에 기여하는 미디어 산업 미디어 산업 육성이 사우디가 공을 들이는 산업 다각화에도 도움이 된다는 지적이 많다. 이미 카타르와 UAE는 1990년대부터 중동의 허브를 지향하며 미디어 산업을 대대적으로 육성해왔다. 1996년 ‘중동의 CNN’으로 불리는 알자지라 방송을 설립한 카타르가 대표적이다. 수도 도하의 교육특구인 ‘에듀케이션시티’에는 미국 미주리대, 컬럼비아대와 함께 ‘최고의 기자 양성소’로 불리는 미 노스웨스턴대 저널리즘스쿨 분교가 있다. 2012년에는 정부 주도로 스포츠 전문채널 비인(BeIN)이 탄생했다. 이 채널은 중동의 ESPN이 되겠다는 야심 찬 목표를 갖고 있다.UAE 역시 2000년부터 두바이에 일종의 미디어 산업 특구인 ‘미디어시티’를 조성했다. 해외 유명 언론의 중동 지국도 집중 유치했다. 아랍권 언론사 중 상당수도 두바이에 본사를 두고 있다. UAE가 중동에서 가장 개방적인 나라라는 이미지를 얻는 과정에 두바이 미디어시티가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런 이웃 나라들의 성공 사례를 보며 실권자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도 미디어 및 콘텐츠 산업 육성에 깊은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우디가 올해 10월 한국 ‘방탄소년단(BTS)’의 야외공연을 허락하고 지난달 리야드 인근 고대 유적지 디리야에서 세계 헤비급 권투 타이틀전을 연 것도 미디어와 콘텐츠 산업을 활성화하려는 의도를 담고 있다는 분석이 많다.특히 사우디는 이슬람교의 3대 성지(메카, 메디나, 예루살렘) 중 메카와 메디나를 보유한 나라다. 아랍권, 나아가 이슬람권을 상징하는 나라의 조건을 갖춘 셈이다. 그런 만큼 이슬람교 관련 콘텐츠가 풍부할 수밖에 없다. 이는 사우디에서 제작된 뉴스, 영화, 드라마, 다큐멘터리, 책 등이 이슬람권 전역에서 주목받기에도 용이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올해 9월에는 유럽의 영화 제작진들이 만든 3대 국왕인 파이살 국왕의 어린 시절을 다룬 영화 ‘왕으로 태어나다(Born a King)’의 개봉도 허용했다. 왕실의 일거수일투족을 일반 대중에게 노출하지 않으려 했던 과거 행보와는 판이하게 다른 모습이다.사우디의 20, 30대 인구 비율이 높고, 최근 정부 차원에서 여성들의 사회 진출 확대를 적극 장려하고 있다는 점도 이와 무관치 않다. 미디어 산업의 특성상 젊은 세대와 여성들의 입김이 세고, 이들을 위한 양질의 일자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알감디 교수는 “정부 차원에서 젊은이들을 위한 미디어 교육 투자를 늘릴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변화와 개혁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면 젊은이들로부터 외면당할지 모른다는 우려 역시 사우디의 미디어 산업에 대한 관심에 작용하고 있다.○ 아직도 멀기만 한 중동의 언론 자유 사우디 정부 차원의 미디어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에 대해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선도 적지 않다. 21세기에 어울리지 않는 전제군주 체제, 낙후된 인권 등의 문제가 여전한 상황에서 일종의 눈 가리기 도구로 쓰려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과거와 달리 사회 분위기가 개방적으로 변했다고 한들 왕실과 정부를 비판하는 일이 가능하겠느냐는 우려가 있다. 과거 사우디는 터키와의 관계가 악화되자 인기리에 방영되던 터키 드라마의 방영을 금지했다. 2015년 반정부 인사를 인터뷰했다는 이유로 설립된 지 불과 하루가 지났던 신생 방송사 알아랍도 전격 폐쇄했다. 사우디 내에서는 알자지라도 접할 수 없다. 정부에 비판적인 보도를 자주 해왔다는 이유로 방영을 금지했기 때문이다. 세라 엘리차니 이집트 카이로 아메리칸대 언론학과 교수는 “사우디는 미디어를 이용해 국가 이미지를 개선하는 데만 관심이 있다. 자유로운 비판까지 허용할 가능성은 낮다”고 전망했다. 사우디보다 훨씬 개방적인 분위기인 카타르와 UAE 언론조차 자국 왕실 및 정부 비판을 좀처럼 못 하고 있다. 특히 2013년 타밈 빈 하마드 알사니 카타르 국왕이 집권한 후 알자지라에서는 정권 비판 보도를 찾아볼 수 없고 ‘정권 홍보’ 보도만 대폭 늘었다는 지적이 나온다.2017년 6월 사우디, UAE, 바레인 등 수니파 중동 국가들은 카타르가 시아파 이란과 친하게 지낸다는 이유로 카타르와 전격적으로 단교했다. 알자지라는 이후 단교를 주도한 사우디와 UAE를 비판하는 뉴스와 다큐멘터리를 집중 편성해 내보냈다. ‘사우디, UAE, 정부군’ vs ‘이란, 후티 반군’이 대립하고 있는 예멘 내전 소식을 전할 때도 이런 성향이 두드러졌다. 알자지라는 이란과 후티 반군의 소식은 거의 보도하지 않은 채 사우디와 UAE, 정부군의 잘못을 부각하는 뉴스를 집중적으로 보도하고 있다. 특히 사우디와 UAE가 민간인을 오폭하는 상황이 벌어질 때는 거의 예외 없이 정규방송을 중단하고 관련 뉴스를 속보로 전하고 있다. 모두 왕실과 정부의 의중이 반영된 결과로 보인다. 이런 보도 행태가 알자지라의 신뢰도와 시청률 모두를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해 과거의 위상마저 해친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경제 살리고 이미지 바꾸고… 사우디-카타르-UAE 행사 경쟁 ▼중동 산유국들 너도나도 “국제포럼 초청합니다”사우디 매년 사막의 다보스포럼, 카타르는 외교안보 도하포럼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 아랍에미리트(UAE) 바레인 등 중동 산유국은 국가 이미지 개선, 경제 활성화 등을 위해 치열한 ‘국제포럼 개최 경쟁’에 나서고 있다. 사우디는 실권자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권력을 잡은 2017년부터 매년 ‘사막의 다보스포럼’으로 불리는 ‘미래투자이니셔티브(FII)’를 개최하고 있다. 경제에 방점을 둔 포럼답게 해외 기업들로부터 대규모 투자 유치를 이끌어내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2017년 첫 포럼에는 홍해와 인접한 지역에 대규모 메가시티를 개발하겠다는 ‘네옴 프로젝트’가 공개됐다. 올해 10월 말 열린 3회 포럼에는 JP모건, 씨티그룹, 블랙록자산운용, 영국 HSBC 등 세계적 금융사가 대거 참여했다. 아람코 기업공개(IPO)와 상장을 앞둔 시점인 만큼 이들의 참여는 관심을 끌었다. 사우디는 이들 금융사에 수도 리야드에 건설 중인 킹압둘라금융지구(KAFD) 진출 가능성 등을 타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포럼 기간에 사우디를 방문했던 국내 기업 관계자는 “정부 관계자들이 한국 기업의 연구개발(R&D) 시설 유치에 관심을 보였다”고 전했다. 카타르는 2000년부터 외교안보 등을 주제로 한 ‘도하 포럼’을 매년 말에 열고 있다. 경제적으로는 풍요롭지만 수니파 맹주 사우디와 시아파 맹주 이란 사이에 낀 ‘작은 나라’의 고민을 엿볼 수 있는 행사라는 평가가 나온다. 이달 14, 15일 열리는 올해 포럼의 주제도 시리아 사태, 세계 극단주의 확산 등이다. UAE도 2008년부터 매년 초 ‘아부다비 지속 가능성 주간’이란 경제 포럼을 열고 있다. 지속 가능한 개발을 위한 경제정책 주제들을 주로 다룬다. 최근에는 항공, 사이버보안, 에너지 등 첨단 정보기술(IT) 산업과 과학기술에 초점을 맞춘 포럼도 다수 운영하고 있다. ‘사우디 미디어 포럼’에서 만난 한 유럽 컨설팅사 관계자는 “사우디, 카타르, UAE 모두 뿌리 깊은 경쟁의식을 지니고 있다. 상당 기간 국제 대형 행사 개최 경쟁이 펼쳐질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기업들의 위상이 올라가면서 한국 경제인들을 포럼에 유치하기 위한 움직임도 본격화되고 있다. 국내 금융사의 한 최고경영자(CEO)는 “중동에서 열리는 여러 포럼에서 매년 초청받고 있다. 단순한 참가를 원하는 게 아니라 발표자나 패널로 참여해 달라고 한다”며 “그만큼 한국 경제의 위상이 올라간 것”이라고 말했다.리야드=이세형 특파원 turtle@donga.com}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 아랍에미리트(UAE) 바레인 등 중동 산유국은 국가 이미지 개선, 경제 활성화 등을 위해 치열한 ‘국제포럼 개최 경쟁’에 나서고 있다. 사우디는 실권자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권력을 잡은 2017년부터 매년 ‘사막의 다보스포럼’으로 불리는 ‘미래투자이니셔티브(FII)’를 개최하고 있다. 경제에 방점을 둔 포럼답게 해외 기업들로부터 대규모 투자 유치를 이끌어내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2017년 첫 포럼에는 홍해와 인접한 지역에 대규모 메가시티를 개발하겠다는 ‘네옴 프로젝트’가 공개됐다. 올해 10월 말 열린 3회 포럼에는 JP모건, 씨티그룹, 블랙록자산운용, 영국 HSBC 세계적 금융사가 대거 참여했다. 아람코 기업공개(IPO)와 상장을 앞둔 시점인 만큼 이들의 참여는 관심을 끌었다. 사우디는 이들에게 수도 리야드에 건설 중인 킹압둘라금융지구(KAFD) 진출 가능성 등을 타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포럼 기간에 사우디를 방문했던 국내 기업 관계자는 “정부 관계자들이 한국 기업의 연구개발(R&D) 시설 유치에 관심을 보였다”고 전했다. 카타르는 2000년부터 외교안보 등을 주제로 한 ‘도하 포럼’을 매년 말에 열고 있다. 경제적으로는 풍요롭지만 수니파 맹주 사우디와 시아파 맹주 이란 사이에 낀 ‘작은 나라’의 고민을 엿볼 수 있는 행사라는 평가가 나온다. 이달 14, 15일 열리는 올해 포럼의 주제도 시리아 사태, 세계 극단주의 확산 등이다. UAE도 2008년부터 매년 초 ‘아부다비 지속가능성 주간’이란 경제 포럼을 열고 있다. 지속가능한 개발을 위한 경제정책 주제들을 주로 다룬다. 최근에는 항공, 사이버보안, 에너지 등 첨단 정보기술(IT) 산업과 과학기술에 초점을 맞춘 포럼도 다수 운영하고 있다. ‘사우디 미디어 포럼’에서 만난 한 유럽 컨설팅사 관계자는 “사우디, 카타르, UAE 모두 뿌리 깊은 경쟁의식을 지니고 있다. 상당 기간 국제 대형행사 개최 경쟁이 펼쳐질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기업들의 위상이 올라가면서 한국 경제인들을 포럼에 유치하기 위한 움직임도 본격화되고 있다. 국내 금융사의 한 최고경영자(CEO)는 “중동에서 열리는 여러 포럼에서 매년 초청받고 있다. 단순한 참가를 원하는 게 아니라 발표자나 패널로 참여해 달라고 한다”며 “그만큼 한국 경제의 위상이 올라간 것”이라고 말했다. 리야드=이세형 특파원 turtle@donga.com}
해외 언론의 취재와 대중문화 행사를 거의 허용하지 않아 ‘은둔의 왕국’으로 불렸던 사우디아라비아가 미디어 산업 육성에 눈을 돌리고 있다. 이달 2, 3일 사우디아라비아 수도 리야드의 힐턴호텔에서는 사우디 최초의 국제 언론 행사 ‘사우디 미디어 포럼(SMF)’이 열렸다. 각국 언론의 중동 문제 보도 실태와 미디어 산업의 미래를 논의하기 위한 자리였다. 처음 열린 행사지만 세계 언론의 관심은 뜨거웠다. 동아일보를 포함해 미국 블룸버그뉴스와 CNBC, 영국 가디언과 스카이뉴스, 프랑스 르피가로, 유럽 EPA통신 관계자들이 발표자와 패널로 참석했다. 트위터, 유튜브, 페이스북 같은 대형 소셜미디어도 행사장에 대형 홍보공간을 마련했다. 사이드 알감디 킹사우드대 언론학과 교수는 기자에게 “몇 년 전만 해도 사우디에서 이렇게 큰 규모의 언론 행사가 열릴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정부 차원의 미디어 산업 육성 움직임이 본격화했다”고 말했다. 사우디에는 최근까지도 카타르 알자지라처럼 해외에 알려진 유명한 언론사도 없었다. 무엇보다 왕실 비판을 하는 사람은 극형에 처해질 정도로 언론 자유가 전무한 것으로 유명했다. 지난해 10월 피살된 반정부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의 살해 배후에 왕실이 있다는 의혹이 제기된 점만 봐도 사우디의 언론 현실이 어떤지 잘 알 수 있다. 과연 사우디 정부는 무엇을 기대하고 미디어 산업 육성에 나섰을까.● 아람코 상장에 따른 국가 이미지 개선 세계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는 막대한 오일머니를 바탕으로 아랍권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하지만 미디어 분야에선 별다른 경쟁력을 보이지 못했다. 이웃 카타르와 아랍에미리트(UAE)보다 ‘몇 수 아래’라는 평가가 많았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사우디도 정부 차원에서 종합방송사인 MBC, 뉴스전문 채널인 알아라비아를 설립했다. 하지만 알자지라만큼 국제적인 명성을 얻는 데 실패했다. 특히 지난해 카슈끄지 피살 사건은 국가 이미지에 치명타를 안겼다. 이런 상황에서 세계 최대 석유기업인 국영 석유사 아람코가 이달 11일 리야드 타다울 증권거래소에서 주식 거래를 시작했다. 5일 기업공개(IPO) 당시 아람코 1주는 32리얄로 책정됐지만 거래 첫날인 이날 상한가 10%까지 오르며 주당 35.2리얄(약 1만1200원)로 뛰었다. 12일 현재 아람코 기업 가치도 약 1조9600억 달러로 불어나 사우디의 목표치인 2조 달러에 거의 근접했다. 기존 세계 1위였던 미국 애플의 시가총액 약 1조3000억 달러를 가뿐히 넘어섰다. 사우디는 아람코 상장 자금으로 탈(脫)석유와 산업 다각화에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려고 하고 있다. 당초 100% 왕실이 보유한 전체 지분 중 5%를 매각해 미국 뉴욕 및 영국 런던 증권거래소 등에도 상장하려 했지만 공모가에 대한 이견 등으로 해외 상장은 일단 잠정 중단됐다. 그 대신 이번에 국내에서만 1.5%의 지분을 풀었다. 하지만 사우디 정부는 반드시 해외 상장을 성공시키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장지향 아산정책연구원 중동센터장은 “아람코 상장, 관광 개방, 해외 기업 투자 유치 등 개혁, 개방에 나서고 있는 사우디로서는 뒤늦게 미디어의 중요성을 느끼고 있을 것”이라며 “해외 언론과의 긍정적인 관계 형성 및 자국 미디어 육성에 공을 들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투르키 알샤바나 공보부 장관도 2일 “나라 안팎으로 더 많은 것을 알릴 필요가 있다”며 해외 언론에 적극 문호를 개방할 뜻을 드러냈다.● 산업 다각화에 기여하는 미디어 산업 미디어 산업 육성이 사우디가 공을 들이는 산업 다각화에도 도움이 된다는 지적도 많다. 이미 카타르와 UAE는 1990년대부터 중동의 허브를 지향하며 미디어 산업을 대대적으로 육성해왔다. 1996년 ‘중동의 CNN’으로 불리는 알자지라방송을 설립한 카타르가 대표적이다. 수도 도하의 교육특구인 ‘에듀케이션시티’에는 미국 미주리대, 미 컬럼비아대와 함께 ‘최고의 기자 양성소’로 불리는 미 노스웨스턴대 저널리즘스쿨 분교가 있다. 2012년에는 정부 주도로 스포츠 전문채널 비인(BeIN)이 탄생했다. 이 채널은 중동의 ESPN이 되겠다는 야심 찬 목표를 갖고 있다. UAE 역시 2000년부터 두바이에 일종의 미디어 산업 특구인 ‘미디어시티’를 조성했다. 해외 유명 언론의 중동 지국도 집중 유치했다. 아랍권 언론사의 상당수도 두바이에 본사를 두고 있다. UAE가 중동에서 가장 개방적인 나라라는 이미지를 얻는 과정에 두바이 미디어시티가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런 이웃 나라들의 성공 사례를 보며 실권자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도 미디어 및 콘텐츠 산업 육성에 깊은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우디가 올해 10월 한국 ‘방탄소년단(BTS)’의 야외공연을 허락하고 지난달 리야드 인근의 고대 유적지 디리야에서 세계 헤비급 권투 타이틀전을 연 것도 미디어와 콘텐츠 산업을 활성화시키려는 의도를 담고 있다는 분석이 많다. 특히 사우디는 이슬람교의 3대 성지(메카, 메디나, 예루살렘) 중 메카와 메디나를 보유한 나라다. 아랍권, 나아가 이슬람권을 상징하는 나라의 조건을 갖춘 셈이다. 그런 만큼 이슬람교 관련 콘텐츠가 풍부할 수밖에 없다. 이는 사우디에서 제작된 뉴스, 영화, 드라마, 다큐멘터리, 책 등이 이슬람권 전역에서 주목을 받기에도 용이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올해 9월에는 유럽의 영화 제작진들이 만든 3대 국왕인 파이살 국왕의 어린 시절을 다룬 영화 ‘왕으로 태어나다(Born a King)’의 개봉도 허용했다. 왕실의 일거수일투족을 일반 대중에게 노출하지 않으려 했던 과거 행보와는 판이하게 다른 모습이다. 사우디의 20, 30대 인구 비율이 높고, 최근 정부 차원에서 여성들의 사회 진출 확대를 적극 장려하고 있다는 점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미디어 산업의 특성상 젊은 세대와 여성들의 입김이 세고, 이들을 위한 양질의 일자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알감디 교수는 “정부 차원에서 젊은이들을 위한 미디어 교육 투자를 늘릴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변화와 개혁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면 젊은이들로부터 외면당할지 모른다는 우려 역시 사우디의 미디어 산업에 대한 관심에 작용하고 있다.● 아직도 멀기만 한 중동의 언론 자유 사우디 정부 차원의 미디어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에 대해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선도 적지 않다. 21세기에 어울리지 않는 전제군주 체제, 낙후된 인권 등 문제가 여전한 상황에서 일종의 눈 가리기 도구로 쓰려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다. 과거와 달리 사회 분위기가 개방적으로 변했다고 한들 왕실과 정부를 비판하는 일이 가능하겠느냐는 우려가 나온다. 과거 사우디는 터키와의 관계가 악화되자 인기리에 방영되던 터키 드라마의 방영을 금지했다. 2015년 반정부 인사를 인터뷰했다는 이유로 설립된 지 불과 하루가 지났던 신생 방송사 알아랍도 전격 폐쇄했다. 사우디 내에서는 알자지라도 접할 수 없다. 정부에 비판적인 보도를 자주 해왔다는 이유로 방영을 금지했기 때문이다. 세라 엘리차니 이집트 카이로 아메리칸대 언론학과 교수는 “사우디는 미디어를 이용해 국가 이미지를 개선하는 데만 관심이 있다. 자유로운 비판까지 허용할 가능성은 낮다”고 전망했다. 사우디보다 훨씬 개방적인 분위기인 카타르와 UAE 언론조차 자국 왕실 및 정부 비판을 좀처럼 하지는 못하고 있다. 특히 2013년 타밈 빈 하마드 알사니 카타르 국왕이 집권한 후 알자지라에서는 정권 비판 보도를 찾아볼 수 없고 ‘정권 홍보’ 보도만 대폭 늘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2017년 6월 사우디, UAE, 바레인 등 수니파 중동 국가들은 카타르가 시아파 이란과 친하게 지낸다는 이유로 카타르와 전격적으로 단교했다. 알자지라는 이후 단교를 주도한 사우디와 UAE를 비판하는 뉴스와 다큐멘터리를 집중 편성해 내보냈다. ‘사우디, UAE, 정부군’ vs ‘이란, 후티 반군’이 대립하고 있는 예멘 내전 소식을 전할 때도 이런 성향이 두드러졌다. 알자지라는 이란과 후티 반군의 소식은 거의 보도하지 않은 채 사우디와 UAE, 정부군의 잘못을 부각하는 뉴스를 집중적으로 보도하고 있다. 특히 사우디와 UAE가 민간인을 오폭하는 상황이 벌어질 때는 거의 예외 없이 정규방송을 중단하고 관련 뉴스를 속보로 전하고 있다. 모두 왕실과 정부의 의중이 반영된 결과로 보인다. 이런 보도 행태가 알자지라의 신뢰도와 시청률 모두를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해 과거의 위상마저 해친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리야드=이세형 특파원 turtle@donga.com}
‘러시아판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로 불리는 S-400 지대공 미사일 도입을 놓고 미국과 갈등을 겪고 있는 터키가 ‘미군의 자국 공군기지 이용금지 조치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11일 월스트리트저널(WSJ)미국 ABC방송 등에 따르면 메블뤼트 차우쇼을루 터키 외무부 장관은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미국이 S-400 도입을 계기로 제재를 시행할 경우 터키는 보복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터키에 대한 제재가 시행되면 인지를리크와 퀴레직 공군기지가 의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차우쇼을루 장관의 이 같은 발언은 미 의회가 터키에 대한 제재 조치를 포함한 국방 법안에 합의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뒤 나왔다. 미국의 강경 대응에 터키 역시 강하게 맞서겠다는 경고 메시지로 풀이된다. 실제로 두 기지는 미군의 대(對)중동 전략 거점지로 인식되고 있다. 터키가 이 시설을 이용하지 못하게 할 경우 미국이 받을 타격도 만만치 않을 것이란 뜻이다. 특히 인지를리크 기지는 미국의 전략 핵무기도 약 50기가 배치돼 있다. 퀴레직 기지에도 주요 레이더 시설이 배치돼 있다. 문제는 향후 미국과 터키 관계를 악화시킬 요인들이 계속 발생하고 있다는 것. 터키는 S-400 도입 외에도 시리아 북동부 쿠르드족 거점지역 공격과 이 지역에 대한 러시아와의 공동 순찰 등 미국이 불편하게 생각하는 조치들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S-400 도입으로 미국의 F-35 전투기 구매와 개발 참여가 금지되자 터키는 아예 러시아산 전투기인 수호이(SU)-35를 사겠다고 맞서고 있다. 하지만 터키로선 미국의 경제제재가 시행되면 가뜩이나 취약한 경제가 더욱 흔들릴 수 있고, 미국도 러시아 견제가 주목표인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의 핵심 전력인 터키를 포기할 수 없어 결국 양측이 어떻게 해서든 해결책을 마련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카이로=이세형 특파원 turtle@donga.com}

사우디아라비아가 국영석유기업인 아람코의 기업 가치를 2조 달러(약 2389조 원)까지 끌어올리기 위해 자국 투자기관과 부호들에게 아람코 주식 구매를 강요하고 있다고 10일(현지 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가 보도했다. 아람코 주식 거래 시작(11일)을 앞두고 기업 가치가 1조7000억 달러(약 2030조 원) 정도여서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사진)가 주장해온 2조 달러에 못 미치자 이를 만회하기 위해 나온 움직임이다. FT에 따르면 무함마드 왕세자는 기업 가치가 2조 달러라는 기존의 목표를 포기하지 않고 있다. 사우디 측 한 관계자는 “현재 모든 것이 어떻게 2조 달러를 달성하느냐에 맞춰져 있다”고 말했다. 사우디는 정부 관할 아래 있는 ‘큰손 투자기관’인 사우디국부펀드(PIF)와 공공연금공단 등에도 아람코 주식을 대거 구매하게 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또 자국 내 유명 기업인과 왕실 인사 등 부호들에게도 아람코 주식을 사라고 압박하고 있다. 이들 중 일부는 무함마드 왕세자가 왕위 계승자에 오른 뒤 5개월 만인 2017년 11월 수도 리야드의 리츠칼턴호텔에 부정부패 등의 혐의로 감금됐다가 충성서약을 하고 일부 재산을 국가에 헌납한 뒤에 풀려난 경험이 있다. 섣불리 정부의 아람코 주식 구매 요구를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사우디 부호의 업무를 지원하는 한 인사는 “부호들은 (아람코 주식을 사는 게) 그들의 임무라는 이야기를 듣고 있다. 이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누구나 알 것”이라고 말했다. 사우디 부호들 사이에서 아람코 투자를 거부하면 정부에 밉보일 것이란 분위기가 이미 형성돼 있다는 뜻이다. 한 은행 관계자는 “(아람코 투자 강요는) 또 다른 의미의 리츠칼턴호텔 사태”라고 말했다. 현지 영문매체인 아랍뉴스에 따르면 지난달 말 마감된 사우디 국내 개인투자자 대상 아람코 공모주 청약에는 사우디 전체 인구(약 3400만 명)의 14.6% 정도인 495만여 명이 참여했다. 사우디에 거주하는 외국인 주재원 10만6000명도 포함된 상태다. 사우디에 거주하는 외국인 가운데에는 목표 기업 가치에 못 미치는 금액(1조7000억 달러)으로도 가뿐히 시가총액 세계 1위를 달성하는 아람코의 괴력에 투자 매력을 느끼는 이들이 늘어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기업 주재원들도 예외는 아니다. 사우디 지사에 근무 중인 한국 기업 관계자는 “한국인 주재원들 중에도 아람코 공모주 청약에 참여한 이들이 꽤 많고, 향후 주식 구매를 고려하겠다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고 말했다.카이로=이세형 특파원 turtle@donga.com}
미국 정부의 고위 당국자들이 아프가니스탄전쟁의 승산이 없음을 잘 알면서도 국민에게 이를 숨기고 호도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미국은 2001년 9월 ‘9·11테러’ 직후 아프가니스탄이 테러범 오사마 빈라덴을 보호하고 있다는 이유로 전쟁을 시작했다. 현재까지 18년간 이어진 아프가니스탄전쟁은 미국 역사상 가장 긴 전쟁이며 현재까지 약 2300명의 미군이 숨지고 20만 명이 부상했다. 9일 워싱턴포스트(WP)는 정부와 약 3년간 법정 다툼을 벌여 입수한 2000쪽 이상의 기밀문서를 공개하며 “군인, 외교관, 구호단체 직원 등 전쟁에 관여한 428명을 인터뷰한 결과 이들 대부분이 ‘전쟁의 진전이 없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인터뷰 대상자에는 공화당의 조지 W 부시 및 민주당의 버락 오바마 전 행정부에서 모두 아프가니스탄전쟁 관련 고문을 지낸 육군 3성 장군 출신의 더글러스 루트 씨, 육군 대령 출신 밥 크롤리 씨, 해군특전단 출신 제프리 에거스 씨 등이 포함됐다. 루트 씨는 “우리는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없었다. 무엇을 하는지 전혀 몰랐다”며 “의회, 국방부, 국무부의 관료주의로 병사들이 죽었다”고 일갈했다. 에거스 씨도 약 1조 달러에 달하는 천문학적인 전쟁 비용을 거론하며 “2011년 미국이 빈라덴을 사살하긴 했지만 우리가 얼마나 많은 돈을 썼는지를 안다면 빈라덴이 무덤에서 우리를 비웃을 것”이라고 혹평했다. 크롤리 씨는 “모든 데이터와 설문조사 등이 우리가 하는 일이 맞는 것처럼 보이도록 바뀌었다. 전혀 신뢰할 수 없었다”고 토로했다. 이 문서를 작성한 미 아프간재건특별감사관실(SIGAR)의 존 소프코 감사관은 “미국인들이 계속 속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WP에 밝혔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현재 1만3000여 명인 아프간 주둔 미군을 줄이고 궁극적으로는 철수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미군이 철수하면 수니파 극단주의를 추종하는 무장 반군단체 탈레반이 아프간 전역을 장악해 서남아시아와 중동의 정정 불안이 심해질 것이란 우려도 끊이지 않고 있다.카이로=이세형 특파원 turtle@donga.com}
올해 10월부터 반(反)정부 시위가 벌어져 450여 명이 사망한 이라크에서 이란산 제품 불매 운동이 확산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 신문 앗샤르끄 알아우사트에 따르면 이라크에선 지난달 초부터 본격적으로 이란산 제품 불매 운동이 시작됐다. 극심한 경제난과 사회 곳곳에 만연한 부정부패에 염증을 느낀 국민들이 이란의 정치·안보 개입에 불만을 나타내며 경제 활동에서도 반이란 행보에 나선 셈이다. 이들은 특히 이란에서 생산된 유제품 등 각종 생활필수품 구매를 거부하고 있다. 이에 이란산 물품을 수입하는 도매업체에는 재고가 쌓여가고 있고, 소셜미디어에서는 ‘(이란산 제품을) 썩게 놓아두자’는 해시태그도 유행하고 있다. 이라크는 이란에 비해 산업 인프라가 낙후됐고, 오랜 기간 전쟁을 겪어 국민들의 주머니 사정도 안 좋다. 이라크보다 산업화가 진전됐지만 역시 서방의 경제제재에 시달려온 이란 역시 국경을 맞댄 이라크를 주된 수출 시장으로 삼을 수밖에 없다. 이런 양측의 필요가 맞물려 그동안 값싼 이란산 유제품과 공산품은 이라크에 다양한 경로를 통해 공급됐고, 큰 인기를 누려왔다. 알자지라방송에 따르면 지난해 1∼8월 이란의 비(非)석유 분야 대(對)이라크 수출은 약 60억 달러(약 7조1600억 원)에 이르렀다. 경제적 가치가 커 이란에선 자신들이 시아파 정치인과 민병대 지원을 통해 영향력을 키워온 이른바 ‘시아벨트 국가’(이라크 시리아 레바논) 중에서도 이라크를 가장 중요하게 여겨왔다. 반정부 시위 현장에서도 정부와 정치권에 대한 비판 메시지와 더불어 ‘이란은 떠나라’ 같은 구호가 자주 등장한다. 시위대는 지난달 나자프와 카르발라의 이란 영사관에도 불을 질렀다. 친(親)이란계 인사들이 정부와 정치권을 장악한 만큼 이라크에서 반이란 움직임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란 제품 불매운동은 이슬람교 시아파 종주국인 이란에 호의적일 수밖에 없는 이라크 내 시아파들도 적극 참여하고 있어 향후 세를 더 키울 가능성이 크다. 역시 반정부 시위가 벌어지고 있는 레바논에서도 반이란 정서가 강하다. 또 최근 이란 전역에서 발생한 반정부 시위 땐 “국민은 배고픈데 왜 정부는 막대한 돈을 들여가며 다른 나라의 무장정파를 지원하느냐”는 비판이 나왔다.카이로=이세형 특파원 turtle@donga.com}

2년 반간 진행돼 온 걸프지역 ‘형제국’들 간의 관계 단절 상황이 해결될 수 있을까. 10일 사우디아라비아 수도 리야드에서 열리는 걸프협력회의(GCC·사우디 UAE 카타르 쿠웨이트 바레인 오만이 회원국) 정상회의에서 2017년 6월 발생한 ‘카타르 단교사태’가 해결될지 여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그동안 별다른 개선 기미가 안보이던 카타르와 단교 주도국들 사이에서 최근 사태 해결을 암시하는 변화가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카타르 단교사태는 사우디, 아랍에미리트(UAE), 바레인 등 이른바 단교 주도국이 카타르의 △이란과의 우호적인 관계 △무슬림형제단(이슬람 근본주의 정치단체) 지원 및 보호 △알자지라방송 운영 △터키와의 군사협력 등을 문제 삼으며 국경, 영공, 영해 등을 봉쇄한 조치다. 단교 주도국들은 카타르와의 외교관계와 무역도 동시에 중단됐다.● 3년 만에 모든 정상이 참석하는 GCC 정상회의 되나 일단 이번 GCC 정상회의는 2017년과 2018년 달리 GCC 회원국 정상이 모두 참석하는 행사가 될 가능성이 높다. 단교사태가 발생하고 6개월 뒤인 2017년 12월 쿠웨이트에서 열린 GCC 정상회의 땐 주최국이며 단교사태의 중재국 역할을 자임한 쿠웨이트와 카타르 국왕만 참석했다. 정상회의가 열리기 2달 전에는 카타르가 자국 인사를 앉히기 위해 공을 들여온 유네스코(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 사무총장 선거에서 단교 주도국들이 조직적으로 반대해 결국 탈락하는 갈등 사태도 발생했다. 지난해에는 리야드에서 열린 GCC 정상회의에선 카타르 국왕만 불참했다. 또 정상회의가 열리기 직전 카타르는 석유수출국기구(OPEC)에서 탈퇴했다. 중동 주요 산유국 중 유일하게 OPEC을 탈퇴한 카타르는 “석유 생산량이 OPEC 전체의 2% 수준에 불과하고, 산업 구조가 천연가스 중심이라 OPEC 가입이 무의미하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당시 중동 외교가에선 단교 주도국인 사우디와 UAE OPEC을 주도하는 데 불만이 많은 카타르가 이들에게 부담을 앉기기 위해 탈퇴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그러나 올해 GCC 정상회의는 최근 살만 빈 압둘아지즈 사우디 국왕이 타밈 빈 하마드 알사니 카타르 국왕을 정상회의에 정식으로 초청했고 양측 어디에서도 균열음이 나지 않고 있다. 그런 만큼, GCC 최고지도자들이 모두 모여 카타르 단교사태 해결을 위한 방법을 모색할 것이란 기대가 커지는 것이다. 카타르 정부 소식통은 “정확한 건 정상회의가 열려봐야 알겠지만 일단 긍정적인 사인들이 많이 나타나고 있는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 카타르, 단교 주도국이 요구한 ‘무슬림형제단과 관계 정리’ 수용 시사 2017년, 2018년과 달리 최근 상황은 GCC 정상회의 직전 카타르와 단교 주도국간 화해를 암시한다고 볼 수 있는 상황들이 여러 군데서 나타나고 있다. 카타르에서 열리고 있는 ‘아라비안 걸프컵 축구대회’에는 단교 주도국들이 모두 대표팀을 보냈다. 단교사태가 터진 뒤 카타르에서 열리는 국제 이벤트에 단교 주도국들이 이처럼 모두 참여한 건 처음이다. 카타르와 단교 주도국 중 대표 격인 사우디와의 대화 채널도 가동 중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에 따르면 올해 10월에는 카타르의 모하메드 빈 압둘라만 알사니 외무장관이 비공개로 사우디를 방문해 이 나라 고위관계자들을 만난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알사니 장관은 당시 방문에서 단교 주도국들이 테러단체로 여기고 있는 무슬림형제단과의 관계를 정리할 의사가 있음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왕정에 부정적인 무슬림형제단은 사우디, UAE, 바레인 등 역사가 길고, 부를 많이 축적한 왕정을 집중적으로 비난해 이 나라들에선 최대 안보 위협 세력 중 하나로 꼽힌다. 반면 카타르는 그동안 무슬림형제단에 자금 지원을 하고, 관련 인사들의 망명을 받아주는 등 오히려 후원자 역할을 했다. 알사니 장관은 이달 6일 이탈리아 로마에서 열린 안보 관련 행사에서도 “(카타르와 사우디 간 관계가) 교착 상태에서 조금씩 진전하는 쪽으로 상황이 바뀌었다. 카타르와 사우디 간 대화가 약간 이뤄졌다”고 말했다. 두 나라간 단교사태 해결을 위한 대화가 진행 중임을 인정한 것이다. ● 단교사태 해결까진 넘어야 할 과제 여전히 많아 단교사태가 해결을 위한 조치들이 나타나고 있지만, 실제 화해까지는 난항이 예상된다는 전망도 나온다. 카타르와 단교 주도국 사이에 좁힐 수 없는 입장 차이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사우디를 중심으로 단교 주도국들은 이란에 적대적이다. 하지만 카타르는 세계 최대 해상 천연가스전을 공유하고 있어 앞으로도 이란과 우호적으로 지내야만 한다. 단교사태가 터진 뒤 카타르가 유치한 터키 군대에 대해서도 사우디 등은 불편함을 감추지 않지만, 카타르로선 ‘특수 보험’으로 여겨 쉽게 포기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알자지라방송 폐쇄도 카타르는 ‘내정간섭’이라며 수용할 의사가 없다고 강조해왔다. WSJ에 따르면 UAE 아부다비의 실권자인 무함마드 빈 자이드 알 나하얀 왕세제는 여전히 카타르와의 관계회복에 부정적이다. 겉으로는 단교사태가 해결되더라도 카타르와 단교 주도국 정부와 국민 사이의 앙금이 사라지고, 실질적인 신뢰 회복으로까지 이어지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란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한편 카타르 단교사태를 바라보며 가장 흐뭇할 국가는 다름아닌 사우디의 ‘주적’ 이란이란 분석도 많다. 1981년 사우디가 주도해 탄생한 왕정 산유국 협력 모임인 GCC는 지역 라이벌인 이란을 견제하는 게 가장 큰 목적 중 하나였다. 당시 이란은 호메이니가 주도한 혁명으로 부패하고 무능한 팔레비 왕조를 무너뜨려 왕정 국가들을 불안하게 만들었고, 지속적으로 GCC 국가들의 정세 불안을 야기하려 한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카이로=이세형특파원 turtle@donga.com}
미국에 파견돼 교육을 받던 사우디아라비아 공군 장교가 총기를 난사해 총격범을 포함해 4명이 숨지고 8명이 다쳤다. 6일 AP통신 등에 따르면 이날 사우디 공군 무함마드 사이드 알샴라니 소위는 미 플로리다주 펜서콜라의 해군 항공기지의 한 강의실에서 총격을 가해 경찰에 의해 사살됐다. 알샴라니는 사우디 정부 지원으로 2017년 8월부터 미국에서 항공 훈련과 영어 교육을 받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테러 감시 단체인 ‘시테’에 따르면 알샴라니는 사건 전 트위터에 “미국은 악의 나라다. 무슬림에 대한 범죄뿐 아니라 인류에 대한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고 썼다. 또 ‘9·11테러’를 주도한 알카에다 리더 오사마 빈라덴의 발언을 인용하고 이스라엘에 대한 미국의 지원을 비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란 견제’ 등 미국과 다양한 안보 협력을 펼치고 있는 사우디는 크게 당혹스러워하고 있다. 사우디는 9·11테러 때도 빈라덴 등 주요 테러범이 자국 출신이라 미국과 외교 마찰을 겪었다. 사우디 국영 SPA통신에 따르면 살만 빈 압둘아지즈 사우디 국왕은 사건 발생 직후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애도의 뜻과 함께 “범인은 사우디 국민을 대표하지 않는다”고 밝혔다.카이로=이세형 특파원 turtle@donga.com}
미국과 이란이 각각 억류했던 상대국 학자를 1명씩 맞교환했다. 올 5월부터 중동 호르무즈해협에서 군사적 충돌을 거론하던 양국 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7일 AP통신 등에 따르면 미국과 이란은 각각 억류 중이던 마수드 솔레이마니와 왕시웨를 스위스 취리히에서 맞교환했다. 이란의 생명과학자인 솔레이마니는 미국 유명 병원에 방문교수 자격으로 머물다 지난해 10월 당국 허가 없이 줄기세포와 관련된 물질을 이란으로 보내려 했다가 체포됐다. 프린스턴대에서 유라시아 역사를 전공하던 중국계 미국인 대학원생 왕시웨는 19세기 카자르 왕조 관련 논문을 쓰러 이란에 갔다가 간첩 혐의로 2016년 8월 체포돼 10년형을 선고받았다. 두 학자의 맞교환이 이뤄지자 그동안 이란에 적대적이었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트위터에서 “매우 공정한 협상을 한 것에 대해 이란에 감사하다”고 밝혔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도 “이번 사안과 관련해 이란 정부가 건설적이었던 게 기쁘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번을 계기로 미-이란 관계가 다소 개선될 수는 있지만 급격한 변화로 이어지기엔 이르다는 지적도 나온다. 미국은 대(對)이란 제재를 완화할 의지가 없고, 이란 역시 핵합의에서 이탈한다는 방침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일본이 양국 간 중재에 나설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8일 교도통신은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의 방일이 확실시되고 있다”며 “시기는 양국이 20일경으로 조정하고 있다”고 전했다. 카이로=이세형 turtle@donga.com / 도쿄=박형준 특파원}
미국에 파견돼 교육을 받던 사우디아라비아 공군 장교가 총기를 난사해 총격범을 포함해 4명이 숨지고, 8명이 다쳤다. 6일 AP통신 등에 따르면 이날 사우디 공군 모하메드 사이드 알샴라니 소위는 미 플로리다주 펜서콜라의 해군 항공기지의 한 강의실에서 총격을 가해 경찰에 의해 사살됐다. 샴라니는 사우디 정부 지원으로 2017년 8월부터 미국에서 항공 훈련과 영어 교육을 받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테러감시단체인 ‘시테’에 따르면 샴라니는 사건 전 트위터에 “미국은 악의 나라다. 무슬림에 대한 범죄뿐 아니라 인류에 대한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고 썼다. 또 ‘9·11 테러’를 주도한 알카에다 리더 오사마 빈 라덴의 발언을 인용하고 이스라엘에 대한 미국의 지원을 비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란 견제’ 등 미국과 다양한 안보협력을 펼치고 있는 사우디는 크게 당혹스러워하고 있다. 사우디는 9·11 테러 때도 빈 라덴 등 주요 테러범이 자국 출신이라 미국과 외교 마찰을 겪었다. 사우디 국영 SPA통신에 따르면 살만 빈 압둘아지즈 사우디 국왕은 사건 발생 직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애도의 뜻과 함께 “범인은 사우디 국민을 대표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카이로=이세형 특파원 turtle@donga.com}
사우디아라비아의 국영 석유회사 아람코의 공모주 청약에 443억 달러(약 52조2740억 원)의 자금이 몰렸다. 사우디 정부가 아람코 기업공개(IPO)로 확보하려는 자금(256억 달러·약 30조2080억 원)의 약 1.7배에 해당한다. 지난달 29일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하루 전에 마감된 사우디 국내 소매투자자 대상 아람코 공모주 청약에 사우디 전체 인구 약 3400만 명의 14.4%인 약 490만 명이 참가했다. 이들의 공모주 신청 금액도 126억 달러(약 14조8680억 원)에 이르렀다. 이달 3일 마감 예정인 기관투자가들의 공모주 신청에는 317억 달러(약 37조4060억 원)가 몰렸다. 사우디 정부는 이번 IPO를 통해 아람코 지분 1.5% 중 1%를 기관투자가들에게, 0.5%를 개인투자자들에게 판다. IPO 업무를 맡은 국제 투자은행(IB)들은 공모주 청약을 신청한 기관투자가 중 10.4%(33억 달러·약 3조8940억 원)만이 해외 기관투자가라고 밝혔다. 해외 기관투자가들은 대부분 중동 국가 출신인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사우디의 핵심 동맹국이며 걸프협력회의(GCC) 회원국인 아랍에미리트(UAE)와 쿠웨이트가 각각 15억 달러(약 1조7700억 원), 10억 달러(약 1조1800억 원)를 투자할 것으로 알려졌다. 사우디를 중심으로 중동 지역에서 주식형 펀드를 운용하는 투자자들도 6억 달러(약 7080억 원)를 투자할 예정이다. 다만 미국, 유럽, 아시아 등 다른 지역 투자자들은 적극적으로 움직이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지에서는 ‘사우디 정부의 정책 불확실성’을 이유로 꼽고 있다. 당초 사우디는 해외 증시에도 아람코를 상장할 계획이었지만 타다울(사우디 국내 증시)에만 상장하기로 방침을 바꿨다. 잦은 변화가 안정성을 중시하는 세계 각국 투자자들에게 문제로 받아들여진 셈이다. 국제금융 전문가는 WSJ에 “미국과 유럽 투자자들은 아람코의 국제 증권거래소 상장 포기 결정을 회의적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사우디 정부는 아람코 IPO를 통해 확보하는 자금을 실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추진하는 ‘네옴 등 메가시티 개발’과 ‘산업 다변화’ 등 개혁·개방 프로젝트에 투입할 계획이다.카이로=이세형 특파원 turtle@donga.com}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본인부터 뇌사 상태가 아닌지 점검해봐야 한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65)이 터키의 친러 행보 및 쿠르드족 공격을 비판한 마크롱 대통령(42)에게 원색적인 독설로 맞대응하고 나섰다. 마크롱 대통령은 지난달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 인터뷰에서 시리아 북동부에 거주하는 쿠르드족에 대한 터키의 공격,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방위비 분담금 증액 압박 등을 거론하며 “우리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뇌사를 경험하고 있다”고 한탄했다. 이에 발끈한 에르도안 대통령이 이 발언을 차용했다. AFP통신에 따르면 에르도안 대통령은 지난달 29일(현지 시간) 터키 이스탄불의 한 행사에서 “마크롱 대통령은 자기 자랑만 할 줄 알지 나토에 돈도 제대로 못 내고 있다”며 “뇌사 발언은 당신처럼 뇌사 상태인 사람에게 적합하다”고 격렬히 비난했다. 이어 “그는 초보자이고 경험이 부족하며 테러와 싸우는 게 무엇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노란 조끼’ 시위대가 프랑스를 점령했다”고 꼬집었다. 마크롱 대통령의 가장 아픈 부분을 건드린 에르도안 대통령의 발언에 프랑스 정부도 격분했다. 이에 주프랑스 터키 대사를 초치해 공식 항의하겠다고 밝혔다. 대통령실(엘리제궁) 관계자는 “이건 발언이 아니라 모욕”이라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에르도안 대통령의 뇌사 발언 하루 전에도 터키의 쿠르드족 공격을 강력히 비판했다. 그는 “터키가 나토도 일원인 반(反)이슬람국가(IS) 공조 전선을 위협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8200만 터키 국민의 약 18%인 1500만 쿠르드족의 독립 움직임을 가장 경계하는 에르도안 대통령은 쿠르드족 공격에 대한 비판을 일종의 ‘역린’을 건드리는 행위로 간주하고 있다. 서로가 서로의 가장 민감한 대목을 건드리는 상황이 전개된 셈이다. 공교롭게도 두 대통령은 모두 3, 4일 영국 런던에서 열리는 나토 정상회의에 참석한다. 카이로=이세형 특파원 turtle@donga.com}

2009년 11월 25일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는 다양한 개발사업을 진행해 오던 국영기업 ‘두바이월드’의 채무상환 유예(모라토리엄)를 전격 선언했다. 2000년대 들어 ‘세계 최고, 최대’란 표현이 붙는 다양한 건축물, 관광시설 등을 개발하며 ‘사막의 기적’으로 불렸던 두바이가 하루아침에 ‘사막의 신기루’로 전락한 순간이었다. 당시 두바이월드는 세계 금융위기 등의 여파로 두바이 전체 부채(약 800억 달러·약 94조3680억 원)의 74%인 590억 달러(약 69조6000억 원)의 빚을 안고 허덕였다. 두바이월드의 모라토리엄 선언으로 두바이가 추진하던 다른 개발 사업들도 줄줄이 중단됐다. ‘두바이 쇼크’가 발생한 지 10년이 지났다. 아직도 두바이 경제가 당시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가 많다. 부동산, 금융, 물류에만 의존하는 취약한 산업구조, 저유가 장기화, 중동 정세 불안, 아부다비와 카타르 도하 등 경쟁 도시들의 급성장 등으로 앞으로도 과거의 영화를 회복하기 어려울 것이란 암울한 전망도 나온다.○ 저유가와 중동 정세 불안 두바이 통계센터 등에 따르면 두바이 경제는 위기가 발생한 2009년 ―2.6%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이후 다소 회복기에 접어든 2013년 4.8%의 성장률을 보였지만 이를 기점으로 다시 성장세가 둔화됐다. 특히 지난해 성장률은 1.9%를 기록해 경제위기 다음 해인 2010년과 같은 수치를 기록했다. 주요 이유로는 저유가의 장기화가 꼽힌다. 알자지라, 미국 워싱턴 아랍전문 싱크탱크 아랍센터 등에 따르면 중동에서 가장 자유롭고 개방적인 두바이에 매력을 느껴 적극적으로 부동산을 구입하던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바레인 등 주변 산유국 부유층들의 지갑이 가벼워지면서 이들의 투자도 크게 줄었다. 부동산과 함께 경제를 떠받치던 물류와 금융 분야의 사정도 좋지 않다. 특히 미국의 대(對)이란 경제 제재, 사우디 등이 주도한 2017년 6월 카타르 단교 사태가 경제를 어렵게 만들고 있다. 당시 UAE, 사우디, 바레인 등 수니파 중동 6개국은 카타르가 ‘시아파 맹주’인 이란과 밀착한다며 단교를 선언했다. 이는 두바이의 항만 시설을 통해 물자를 조달해온 세계 최대 천연가스 수출국 카타르가 ‘물류의 탈(脫)두바이’를 선언하는 계기로 작용했다. 카타르는 단교 후 자국의 항만 시설을 대폭 늘렸다. 부족한 부분은 아라비아반도 남부의 요충지 오만을 이용해 해결하고 있다. 한 카타르 소식통은 “단교 사태를 계기로 카타르에서 UAE에 대한 이미지가 굉장히 부정적으로 변했다”며 “UAE가 카타르로 덕을 보는 부분은 도외시한 채 무작정 이란 문제만 들먹였다”고 전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지난해 5월 이란 핵합의를 전격 탈퇴한 후 강도 높은 경제 제재를 가하자 두바이에 영향이 미쳤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지난해 700억 디르함(약 22조4900억 원)에 달했던 UAE와 이란의 무역 규모가 올해 반 토막으로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고 보도했다.○ 늪에 빠진 부동산 시장 ‘빌라 1채를 사면, 아파트 1채가 공짜.’ 두바이의 유명 부동산 개발회사 ‘다막’이 지난해 3월 진행했던 특별 판매 행사다. 당시 다막은 769만9000디르함(약 24억7200만 원) 이상인 고급 빌라를 사는 고객에게 한국의 원룸에 해당하는 아파트 한 채를 공짜로 주겠다고 해서 큰 주목을 받았다. 최근 다막 측에 “이 행사를 언제 재개할지 알려 달라”는 이메일을 보냈더니 20분 만에 답신 이메일 대신 전화가 걸려왔다. 다막 관계자는 “해당 행사의 재개 여부는 알려줄 수 없지만 지금도 고급 빌라를 구입하는 고객에게 아파트를 대폭 할인 판매하고 있다”며 다짜고짜 만나자고 했다. 그는 “다른 고객보다 더 많은 할인이 가능하다”며 집요하게 부동산 구매를 권유했다. 외국 기자에게까지 이런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치는데도 두바이 부동산 시장 상황은 좋지 않다. 시장조사회사 캐번디시 맥스웰의 자료에 따르면 올해 6월 기준 두바이의 주택 가격은 전년 동기보다 15.3% 하락했다. 두바이의 주요 지역인 팜주메이라(―14%), 두바이마리나(―13.5%), 비즈니스베이(―13.4%), 다운타운(―14.2%) 등 곳곳이 모두 지난해 6월보다 대폭 하락했다. 또 다른 현지 부동산업체 ‘루스타’는 현재 두바이 전체의 공실률이 38%에 달한다고 추산했다. 두바이의 외국 컨설팅사 관계자는 “부동산 경기가 그만큼 침체됐고, 특히 두바이에서 경제 활동을 하는 외국인이 줄어들고 있다는 뜻”이라고 진단했다. ○ 쉽지 않은 체질 개선 두바이는 2009년 경제위기 이후 체질 개선을 위해 다양한 조치를 취했다. 부실 금융회사의 구조조정, 외국인 대출 기준 강화, 정부와 공기업 내 자국민 직원 비율 증가 등에 공을 들였다. 이런 노력이 실질적인 경쟁력 개선으로 이어졌는지는 아직도 알 수 없다. 국가 재정이 여전히 좋지 않다. AFP통신에 따르면 현재 두바이의 공공부채는 총 1230억 달러(약 145조900억 원)로 국내총생산(GDP)의 110%에 이른다. 이 빚의 3분의 2는 2023년 말 전에 만기가 도래한다. 과감한 체질 개선이 어려운 이유로는 단순한 경제 구조가 꼽힌다. 석유와 천연가스가 거의 없고, 일반 제조업도 사실상 전무해 부동산, 물류 등 특정 산업에만 과도하게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2018년 기준 약 320만 명인 전체 인구 중 자국민 비율이 약 26만 명에 불과한 것도 경쟁력 약화 요인. 두바이인들은 대부분 정부 부처와 공기업의 관리·감독직에 근무한다. 실무 및 전문 업무는 북미, 유럽, 동아시아에서 온 외국인 인력들이 맡고 있다. 장기 계획 수립이 어렵고 책임 소재도 불명확하다. 두바이 경제가 휘청거릴 때마다 외국인 전문 인력들이 대거 빠져나가는 모습도 쉽게 목격할 수 있다. 또 두바이인은 쉽게 일자리를 구할 수 있기에 자기계발에 소홀하고 그렇다 보니 경쟁력을 배양할 환경이 조성되지 않는다. ‘제2, 제3의 두바이’를 지향하며 외국 기업 유치와 개발사업을 진행하는 주변 국가들이 늘어나는 것도 두바이에는 악재다. 차로 약 1시간 거리인 아부다비는 물론이고 비행기로 약 1시간 거리인 카타르 도하가 대표적이다. 두 도시는 막대한 오일머니를 바탕으로 두바이가 독점해온 ‘중동 허브’ 자리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최근에는 쿠웨이트의 쿠웨이트시티, 오만의 무스카트뿐만 아니라 ‘은둔의 왕국’으로 통했던 사우디까지 중동 허브를 꿈꾸고 있다. 2017년 6월 ‘미스터 에브리싱’으로 통하는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실권을 잡은 후 사우디 정부는 관광 개방, 여성 인력 활용, 국제금융 단지 조성, 대중문화 개방 등을 추진하며 경제 구조 개선을 도모하고 있다. 홍해 인근에 계획도시 ‘네옴’을 세우겠다는 것이 대표적이다. 셰일가스 생산 활황으로 저유가 기조가 고착화할수록 탈(脫)석유와 산업 다각화를 위한 중동 각국의 경쟁은 치열할 수밖에 없다. 장지향 아산정책연구원 중동센터장은 “주변 산유국과 달리 ‘오일머니’ 없이 경쟁해야 하는 두바이에 장기적으로 불리한 상황이 조성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 ‘엑스포 2020’으로 반격 노리는 두바이 두바이는 내년 10월부터 2021년 4월까지 열리는 대규모 국제행사 ‘엑스포 2020’을 재도약의 계기로 삼으려고 한다. 외국인 투자 여건 개선, 영주권 제도 도입, 국제학교 학비 동결 등 외국인 투자를 촉진할 다양한 조치를 내놓고 있어 중장기적으로는 경제가 나아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두바이 해외 투자 유치를 담당하는 공기업 ‘두바이 포린다이렉트 인베스트먼트(DFI)’의 파하드 알게르가위 최고경영자(CEO)는 AFP통신에 “일부 언론이 두바이의 경제 상황을 과장 보도하고 있다. 지난 5년간 ‘새로운 투자를 하기 좋은 세계 도시’ 순위에서 늘 10위 안에 들었다”고도 강조했다. 하지만 ‘엑스포 2020’이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의문이다. 국제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의 사프나 자그티아니 애널리스트는 로이터에 “엑스포로 방문자가 늘고, 일시적으로 호텔과 소매업이 활성화될 순 있겠지만 이것만으로 부동산 시장의 회복을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고 진단했다.카이로=이세형 특파원 turtle@donga.com}

2009년 11월 25일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는 다양한 개발사업을 진행해오던 국영기업 ‘두바이월드’의 채무상환 유예(모라토리엄)를 전격 선언했다. 2000년대 들어 ‘세계 최고, 최대’란 표현이 붙는 다양한 건축물, 인공섬, 관광시설 등을 개발하며 ‘사막의 기적’으로 불렸던 두바이가 하루아침에 ‘사막의 신기루’로 전락한 순간이었다. 당시 두바이월드는 세계 금융위기 등의 여파로 두바이 전체 부채(약 800억 달러·약 94조3680억 원)의 74%인 590억 달러(약 69조6000억 원)의 빚을 안고 허덕였다. 두바이월드의 모라토리엄 선언으로 두바이가 추진하던 다른 개발 사업들도 줄줄이 중단됐다. ‘두바이 쇼크’가 발생한 지 10년이 지났다. 아직도 두바이 경제가 당시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가 많다. 부동산, 금융, 물류에만 의존하는 취약한 산업구조, 저유가 장기화, 중동 정세 불안, 아부다비·카타르 도하 등 경쟁 도시들의 급성장 등으로 앞으로도 과거의 영화를 회복하기 어려울 것이란 암울한 전망도 나온다.● 저유가와 중동 정세 불안 두바이 통계센터 등에 따르면 두바이 경제는 위기가 발생한 2009년 마이너스(-) 2.6%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이후 다소 회복기에 접어든 2013년 4.8%의 성장률을 보였지만 이를 기점으로 다시 성장세가 둔화됐다. 특히 지난해 성장률은 1.9%를 기록해 경제위기 다음 해인 2010년과 같은 수치를 기록했다. 주요 이유로는 저유가의 장기화가 꼽힌다. 알자지라, 미국 워싱턴 아랍전문 싱크탱크 아랍센터 등에 따르면 중동에서 가장 자유롭고 개방적인 두바이에 매력을 느껴 적극적으로 부동산을 구입하던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바레인 등 주변 산유국 부유층들의 지갑이 가벼워지면서 이들의 투자도 크게 줄었다. 부동산과 함께 경제를 떠받치던 물류와 금융 분야의 사정도 좋지 않다. 특히 미국의 대(對)이란 경제제재, 사우디아라비아 등이 주도한 2017년 6월 카타르 단교사태가 경제를 어렵게 만들고 있다. 당시 UAE, 사우디, 바레인 등 수니파 중동 6개국은 카타르가 ‘시아파 맹주’인 이란과 밀착한다며 단교를 선언했다. 이는 두바이의 항만 시설을 통해 물자를 조달해온 세계 최대 천연가스 수출국 카타르가 ‘물류의 탈(脫)두바이’를 선언하는 계기로 작용했다. 카타르는 단교 후 자국의 항만 시설을 대폭 늘렸다. 부족한 부분은 아라비아반도 남부의 요충지 오만을 이용해 해결하고 있다. 한 카타르 소식통은 “단교 사태를 계기로 카타르에서 UAE에 대한 이미지가 굉장히 부정적으로 변했다”고 전했다. UAE가 카타르 덕에 먹고 산 부분은 도외시한 채 무작정 이란 문제만 들먹였다고 전했다. 그는 “훗날 단교 사태가 풀려도 절대 두 나라의 관계가 예전처럼 회복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간 이란에서 사업을 해온 각국 개인 및 기업들은 폐쇄적인 현지 사정을 감안해 두바이의 물류 시설 및 금융 서비스를 이용해왔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지난해 5월 이란 핵합의를 전격 탈퇴한 후 강도 높은 경제 제재를 가하자 두바이에 영향이 미쳤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지난해 700억 디르함(약 22조4900억 원)에 달했던 UAE와 이란의 무역 규모가 올해 반토막으로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고 보도했다.● 늪에 빠진 부동산 시장 ‘빌라 1채를 구입하면 아파트 1채를 공짜로 줍니다.(Buy one villa, get one apartment free)’ 두바이 유명 부동산개발회사 ‘다막’이 지난해 3월 진행했던 특별 판매 행사다. 당시 다막은 769만9000디르함(약 24억7200만 원) 이상인 고급 빌라를 사는 고객에게 한국의 원룸에 해당하는 아파트 한 채를 공짜로 주겠다고 해 큰 주목을 받았다. 최근 다막 측에 “이 행사를 언제 재개할지 알려달라”는 내용의 이메일을 보냈더니 20분 만에 이메일 답신 대신 전화가 걸려왔다. 다막 관계자는 기자에게 “해당 행사의 재개 여부는 알려줄 수 없지만 지금도 고급 빌라를 구입하는 고객에게 아파트를 대폭 할인 판매하고 있다. 자세한 건 만나서 이야기하자”며 다짜고짜 만나자고 했다. 그는 “다른 고객보다 더 많은 할인이 가능하다”며 집요하게 부동산 구매를 권유했다. 외국인 기자에게까지 이런 공격적인 마케팅까지 펼치는데도 두바이 부동산 시장 상황은 좋지 않다. 시장조사회사 캐번디시 맥스웰의 자료에 따르면 올해 6월 기준 두바이의 주택 가격은 전년 동기대비 15.3% 하락했다. 올해 1월과 비교해도 9.4% 떨어졌다. 두바이의 주요 지역인 팜주메이라(―14%), 두바이 마리나(―13.5%), 비즈니스베이(―13.4%), 다운타운(―14.2%) 등 곳곳이 모두 지난해 6월보다 대폭 하락했다. 또 다른 현지 부동산업체 ‘루스타’는 현재 두바이 전체의 공실률이 38%에 달한다고 추산했다. 두바이 마리나, 비즈니스베이, 다운타운 등은 외국 외교관, 기업인, 각국 투자가들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이다. 두바이 경제가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던 2000년대 초중반에는 자고 일어나면 집값이 오른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전성기를 누렸다. 두바이에서 근무하는 한 외국 컨설팅사 관계자는 “외국인 밀집지역의 부동산 경기조차 침체됐다는 것은 두바이 경제의 현황이 그만큼 좋지 않다는 뜻”이라며 “해외 투자가 예전 같지 않음을 잘 보여준다”고 진단했다. ● 쉽지 않은 체질 개선 두바이는 2009년 경제 위기 이후 체질 개선을 위한 다양한 조치를 취했다. 부실 금융회사의 구조조정, 외국인 대출 기준 강화, 정부와 공기업 내 자국민 직원 비율 증가 등에 공을 들였다. 이런 노력이 실질적인 경쟁력 개선으로 이어졌는지는 아직도 알 수 없다. 국가 재정이 여전히 좋지 않다. AFP통신에 따르면 현재 두바이의 공공부채는 총 1230억 달러(약 145조900억 원)로 국내총생산(GDP)의 110%에 이른다. 이 빚의 3분의 2는 2023년 말 전에 만기가 도래한다. 과감한 체질 개선이 어려운 이유로는 허약한 경제 구조가 꼽힌다. 석유와 천연가스 같은 원자재 산업도, 일반 제조업도 사실상 전무해 부동산, 물류 등 특정 산업에만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주력 산업이 위태로울 때 이를 대체할 산업이 전무해 위기가 오면 도미노처럼 쓰러질 가능성이 높다. 2018년 기준 약 320만 명인 전체 인구 중 자국민 비율이 약 26만 명에 불과한 것도 경쟁력 약화 요인이다. 두바이인들은 대부분 정부 부처와 공기업의 관리·감독직에 근무한다. 실무 및 전문 업무는 북미, 유럽, 동아시아에서 온 외국인 인력들이 맡고 있다. 장기 계획 수립이 어렵고 문제가 있을 때 책임 소재도 불명확하다. 두바이 경제가 휘청거릴 때마다 외국인 전문 인력들이 대거 빠져나가는 모습도 쉽게 목격할 수 있다. 또 두바이인들은 쉽게 일자리를 구할 수 있기에 자기계발에 소홀하고, 그러다보니 경쟁력을 배양할 환경 자체가 조성되지 않는다. ‘제2, 제3의 두바이’를 지향하며 외국기업 유치와 개발사업을 진행하는 주변 국가들이 늘어나는 것도 두바이에는 악재다. 차로 약 1시간 거리인 아부다비는 물론, 비행기로 약 1시간 거리인 카타르 도하가 대표적이다. 두 도시는 막대한 오일머니를 바탕으로 두바이가 독점해온 ‘중동 허브’ 자리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최근에는 인프라 투자에 적극적인 쿠웨이트의 쿠웨이트시티, 오만의 무스카트는 물론이고 ‘은둔의 왕국’으로 통했던 사우디까지 중동 허브를 꿈꾸고 있다. 2017년 6월 ‘미스터 에브리싱’으로 통하는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실권을 잡은 후 사우디 정부는 관광 개방, 여성 인력 활용, 국제금융 단지 조성, 대중문화 개방 등을 추진하며 경제 구조 개선을 도모하고 있다. 홍해 인근에 계획도시 ‘네옴’을 세우겠다는 것이 대표적이다. 셰일가스 생산 활황으로 저유가 기조가 고착화할수록 탈(脫)석유와 산업다각화를 위한 중동 각국의 경쟁은 치열할 수밖에 없다. 장지향 아산정책연구원 중동센터장은 “주변 산유국과 달리 ‘오일머니’ 없이 경쟁해야 하는 두바이에게 장기적으로 불리한 상황이 조성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 ‘엑스포 2020’으로 반격 노리는 두바이 두바이는 내년 10월부터 2021년 4월까지 열리는 대규모 국제행사 ‘엑스포 2020’을 재도약의 계기로 삼으려고 한다. 외국인 투자여건 개선, 영주권 제도 도입, 국제학교 학비 동결 등 외국인 투자를 촉진할 다양한 조치를 내놓고 있어 중·장기적으로는 경제가 나아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두바이의 해외 투자유치를 담당하는 공기업 ‘두바이 포린다이렉트 인베스트먼트(DFI)’의 파하드 알게르가위 최고경영자(CEO)는 AFP통신에 “일부 언론이 두바이 경제 상황을 과장 보도하고 있다. 지난 5년간 ‘새로운 투자를 하기 좋은 세계 도시’ 순위에서 늘 10위 안에 들었다”고도 강조했다. 하지만 ‘엑스포 2020’이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의문이다. 국제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푸어스(S&P)의 세프나 자그티아니 애널리스트는 로이터에 “엑스포로 방문자 수가 늘고, 일시적으로 호텔과 소매업이 활성화될 수는 있겠지만 이것만으로 부동산 시장의 회복을 기대하긴 어려워 보인다”고 진단했다. ▼한때 중동 최고 혁신가로 꼽힌 무함마드 빈 라시드 알막툼 국왕▼ 무함마드 빈 라시드 알막툼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 국왕(70)은 지금의 두바이를 만든 인물로 여겨진다. 한때 중동 지도자 중 최고 혁신가로 꼽혔지만 두바이 경제위기를 계기로 그의 위상과 입지도 크게 위축됐다. 현실을 도외시한 무리한 개발로 부담을 안겼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고 있다. 최근 그의 사생활 논란이 각국 언론에 오르내리고 있다. 2004년 결혼한 6번째 부인 하야 빈트 알후세인 요르단 공주(45)가 올해 7월 영국 런던으로 거주지를 옮긴 후 이혼 소송을 제기하면서 여론이 악화되고 있다. 하야 공주 측은 “자식들을 강제 결혼으로부터 보호하는 명령을 내려 달라”, “폭행 및 괴롭힘에 대한 보호 명령을 내려달라”고 법원에 요청했다. 지난해 3월에는 무함마드 국왕과 또 다른 부인 사이에서 태어난 딸 라티파 빈트 무함마드 알막툼 공주(34)가 왕실을 탈출했다. 라피타 공주는 당시 요트를 타고 인도로 가다 붙잡혔고 고국으로 송환됐다. 그는 탈출 전 찍은 유튜브 동영상을 통해 “아버지는 자신만 아는 사람” “이동하는 시간, 장소, 먹는 것을 모두 감시받는 삶을 살았다” “여자라는 이유로 중학생 수준의 교육만 받았다”며 왕실의 어두운 면을 낱낱이 폭로했다. 7개 토후국의 연방 체제인 UAE 내부에서도 무함마드 국왕의 영향력이 예전 같지 않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통상 석유부국인 아부다비 국왕이 대통령, 두바이 국왕이 부통령 겸 국무총리를 맡아왔고 나머지 5개 토후국 국왕들의 역할은 미미하다. 아부다비 개발 전만 해도 두바이의 위상이 7개 토후국 중 독보적이었다. 하지만 2009년 경제위기 때 아부다비의 대규모 재정 지원에 의존하면서 무함마드 국왕의 발언권도 약화될 수밖에 없었다. 최근 UAE가 추진한 외교안보 정책 중 상당수가 두바이의 이익과 상충된다는 점도 그의 영향력 약화를 보여주는 증거로 꼽힌다. 특히 △예맨 내전 개입 △친이란 성향을 보이는 카타르와의 단교 △대이란 강경 대응 △터키와의 거리두기 등 모두가 두바이의 이해관계와 어긋난다. 아부다비와 달리 석유가 거의 나오지 않는 두바이는 안정적인 지역 정세를 바탕으로 물류, 관광, 부동산, 금융업 등에 의존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UAE가 추진하는 정책 대부분이 지역 긴장을 고조시키는 것이어서 속이 탈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일각에서는 무함마드 국왕의 ‘두바이 브랜드 알리기’를 불편하게 여겨온 아부다비 왕실이 사우디와 손잡고 직·간접적으로 두바이 견제에 나서고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지난해 6월 사우디 2대 도시 지다에서 사우디-UAE 정부 최고위 관계자들의 정책 조율을 위한 ‘조정협의회’가 열릴 때 무함마드 국왕이 참석하지 않은 것도 아부다비와 두바이의 불화 의혹을 낳았다. 카타르 단교 때 사우디가 강조한 ‘이란과의 교류 축소’ 또한 이란 관련 물류 및 금융업이 발달한 두바이에게 타격이다. 미국 라이스대 베이커공공정책연구소의 크리스천 코아테스 울리히센 연구위원은 워싱턴 아랍전문 싱크탱크 아랍센터 기고를 통해 “UAE와 사우디의 최근 움직임이 아부다비의 독단적 결정에 의한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고 우려했다.카이로=이세형특파원 turtl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