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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제천시 스포츠센터 화재 현장에서 소방당국의 초기 대응이 부실했다는 논란이 일고 있다. 핵심은 20명이 숨진 2층 목욕탕 여탕의 통유리 창문을 왜 진화 작업 초반에 깨서 구조하지 않았느냐다. 우왕좌왕하느라 창문을 빨리 깨달라는 유족의 요청을 묵살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22일 피해자 시신이 안치된 병원에 문재인 대통령과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이 방문하자 유족들은 “소방대원이 스포츠센터 1, 2층 계단 옆 창문 통유리를 초기에 깨줬다면 더 많은 사람이 살 수 있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생존자 이모 씨는 “사고 당시 건물 내부 1, 2층 계단에 여성 15∼20명이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는데 건물 밖에는 소방대원이 아무도 없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생존자는 “한 여성이 환기창으로 뛰어내리는 게 무섭다며 3층으로 다시 올라가는 걸 봤는데 나중에 사망했다고 들었다”며 아쉬워했다. 21일 소방관이 2층 창문을 깨고 들어간 시간은 화재 신고를 받고 현장에 도착한 지 38분이 지난 오후 4시 38분이었다. 발견한 것은 시신 2구였다. 한 유족은 “건물에 있는 가족과 1시간 가까이 연락했다”며 “창문을 깨서 화염을 빼고 외부 공기(산소)를 넣었다면 살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이일 충북소방본부장은 “현장에 도착했을 때 건물 외부의 불길과 열기, 유독가스가 거세 2층 통유리 창문으로 접근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고 해명했다. 이 본부장은 또 “1층 주차장 옆에 있던 대형 액화석유가스(LPG)통이 폭발할 우려가 있다고 판단해 주변 차량의 불부터 끄라고 지시했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화재 상황에 따라 창문을 깨는 건 위험할 수도 있다며 신중론을 폈다. 공하성 경일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화재 직후에는 실내 창문을 깨서 유독가스를 빼는 게 바람직하다. 하지만 화재가 진행돼 ‘플래시오버’(불이 폭발적으로 붙는 상태) 이후 구조 골든타임이 지난 상황에서 창문을 깨면 산소가 부족해진 실내에 오히려 산소를 공급해 불을 키우게 돼 피해가 더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제천=김배중 wanted@donga.com·김자현 / 정성택 기자}

8층짜리 건물이 화염과 연기에 휩싸이는 데는 20분도 걸리지 않았다. 목욕탕과 헬스클럽에 있던 사람들은 옷가지도 제대로 챙기지 못한 채 콜록거리며 뛰쳐나왔다. 일부는 8층 베란다 난간에 아슬아슬하게 기댄 채 “살려 달라”고 외쳤다. 미처 여기까지도 못 간 사람은 창문에 매달렸다가 1층 에어매트 위로 몸을 던졌다. 아비규환이었다. 화재는 21일 오후 3시 50분경 충북 제천시 스포츠센터 1층 주차장에서 발생했다. 불은 삽시간에 천장과 주차 차량에 옮겨 붙었고 1층 출입구까지 화염에 휩싸였다. 당시 현장에서는 전기공사가 진행 중이었다고 한다. 약 3분 뒤 불꽃을 본 행인이 119에 신고했다. 오후 4시경 소방대가 처음 현장에 도착했다. 이미 화염은 건물 한쪽 벽을 타고 올라가면서 8층까지 번진 상태였다. 불이 난 건물은 목욕탕과 헬스클럽 음식점 등이 있는 복합시설이다. 2∼3층이 목욕탕, 4∼7층이 헬스클럽이다. 화재 당시 모두 정상 영업 중이었고, 수십 명이 있었다. 다행히 불이 난 직후 목욕탕과 헬스클럽에 비상벨이 울렸다. 이를 듣고 3층 남탕에 있던 4, 5명과 헬스클럽에 있던 10여 명이 비상구를 통해 대피했다. 미처 옷도 제대로 입지 못한 손님들이 줄지어 빠져 나왔다. 3층 남탕에서 이발소를 운영하는 김모 씨는 “손님 10여 명을 비상구로 안내했다”고 말했다. 같은 3층에 있던 김모 씨(76)는 “승강기를 탔고 2층 여탕에서 3명이 타고 겨우 1층으로 내려와 살았다”고 말했다. 잠시 후 건물 전체가 정전이 되면서 창문이 없는 목욕탕은 암흑으로 변했다. 복도 역시 시커먼 연기로 가득 차 탈출이 불가피했다. 4층 헬스장에 있던 백모 씨는 비상구 탈출을 포기했다. 그는 창문 밖으로 뛰어내렸고 가벼운 찰과상만 입은 채 목숨을 건졌다. 건물 8층 베란다 난간으로 피했던 남성 3명은 필사의 구조 요청 끝에 민간 사다리차를 타고 가까스로 탈출했다. 탈출구를 찾지 못한 한 남성은 지상의 에어매트로 뛰어내린 뒤 “아내가 2층 목욕탕에 갇혀 있다. 빨리 구해 달라”며 울부짖었다. 하지만 빠져나온 사람보다 그렇지 못한 사람이 더 많았다. 사망자가 가장 많이 발견된 곳은 2층 여탕이었다. 이곳에서만 20명이 숨졌다. 피해자 대부분은 흡연실에 모여 피해 있다가 변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출입구뿐 아니라 비상구까지 찾기 어려워지자 한곳에 모여 구조를 기다린 것으로 보인다. 생존자들에 따르면 화재 직후 여탕에 있던 사람들은 “수건으로 입을 막고 물을 적시면 괜찮다” “목욕탕에는 물이 많으니까 괜찮을 것”이라는 말을 주고받으며 서로를 안심시켰다고 한다. 특히 한 여성은 오후 4시 직후까지 가족에게 “지금 못 나가는 상황”이라는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냈다고 한다. 그러나 얼마 안 돼 연락이 끊겼다. 유독가스가 삽시간에 목욕탕 전체를 뒤덮은 것으로 보인다. 한 생존자는 “만약 흡연실로 가지 말고 그냥 밖으로 나왔으면 살았을 텐데”라며 안타까워했다. 소방당국 관계자는 “숨진 분들이 화재가 난 걸 알고 옥상이나 비상구 등으로 탈출하다 대부분 연기에 질식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건물 내 화재로 정전이 되거나 짙은 연기로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에서 대피로를 찾지 못해 피해를 당한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제천=장기우 straw825@donga.com·김배중 기자}

사다리차 업체를 운영하는 부자(父子)가 제천시 스포츠센터 8층 베란다 난간에 매달린 남성 3명을 구조했다. 이들 부자는 화재가 난 건물에서 사다리차 작업을 한 경험을 살려 소방 사다리차가 구조하지 못한 곳에서 사람을 살렸다. ‘제천스카이카고’ 이양섭 대표(54)와 아들 기현 씨(28)는 21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당시의 긴박했던 상황을 전했다. 두 사람은 이날 오후 4시 반경 화재 현장 인근에서 사다리차 일종인 ‘스카이’ 작업을 마치고 귀사하다 화재 현장을 발견했다. 지인에게 전화로 “건물 외벽에 사람들이 붙어있는데 구조가 안 된다”는 말을 들은 이 대표는 승용차를 타고 현장으로 향했다. 아들 기현 씨는 스카이차를 끌고 뒤를 따랐다. 현장에서 이 대표는 스카이를 세울 적절한 공간부터 찾았다. 과거 이 건물에서 고공 작업을 했을 때 주변 공간이 좁아 스카이를 세우기 어려웠던 기억 때문이었다. 스카이는 수직으로 펴면 높이가 38m여서 위치 선정이 중요하다. 기현 씨가 곧바로 스카이를 세워 올렸다. 자욱한 검은 연기에 사람들이 어디 매달려 있는지 잘 보이지 않았다. 바람이 불어 연기가 걷힐 때 기현 씨가 사람이 보이는 지점을 알려주면 이 대표가 스카이를 댔다. 8층 베란다에 있던 남성 3명은 스카이 끝에 달린 작업 구조물에 경사진 벽면을 미끄러지듯 내려와 올라탔다. 이 대표는 “스카이에 불이 옮겨 붙었다면 큰 손해를 볼 수도 있었지만 생명이 먼저라고 판단하고 망설임 없이 폈다”며 “구조된 분들은 옷을 마스크 대용으로 해 코만 가렸고 나머지 얼굴은 새까맸다. 생명에 큰 지장이 없어 다행”이라고 말했다. 목격자들은 1층 주차장에서 발화 당시 ‘펑’ 소리와 함께 작은 불길이 일어나 소화기로 진화된 듯했지만 5분여 뒤 갑자기 불길이 크게 일더니 외벽을 타고 급격히 번졌다고 입을 모았다. 주차장에서 전기공사나 용접 작업을 하고 있었다는 목격담도 나왔다. 스포츠센터 맞은편 식당 주인 전모 씨(48·여)는 “처음에 주차장에서 펑 소리가 나면서 불길이 피어올라 나가봤더니 차가 불타고 있었다. 어느 정도 꺼진 다음 연기만 조금 났는데 갑자기 시커먼 연기가 치솟아 건물 전체를 뒤덮었다”고 말했다. 다른 식당 사장 김모 씨(39)는 “처음에 주차장 천장에서 작게 시작된 불을 누군가가 소화기로 끄려 했는데 5분도 안 돼 외벽을 타고 순식간에 활활 타올랐다”고 말했다.제천=김배중 wanted@donga.com / 최지선 기자}

숭실대는 2017학년도 정시모집을 통해 1096명(정원 외 포함)을 선발한다. 일반전형에서 가군 342명, 나군 129명, 다군 519명 등을 선발한다. 계열에 상관없이 각 모집군에 모집단위를 분산 선발해 학과 선택의 폭이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인문·경상계열은 국어, 수학(가·나), 영어, 탐구(사회 또는 과학 2과목)를 반영한다. 자연계열1은 국어, 수학 가, 영어, 과학탐구(2과목)를 반영한다. 자연계열2는 국어, 수학(가·나), 영어, 탐구(사회 또는 과학 2과목)를 반영한다. 수학 ‘가’와 과학탐구를 응시한 수험생에게는 각각 표준점수 10%, 백분위 5%를 가산점으로 준다. 한국사 가산점(1등급 4점∼9등급 0점까지 등급 간 0.5점)은 전 계열이 동일하다. 올해 수능 영역별 반영비율이 일부 변경됐다. △인문계열은 국어 35%, 수학(가·나) 25%, 영어 20%, 탐구(사탐·과탐) 20% △경상계열은 국어 25%, 수학(가·나) 35%, 영어 20%, 탐구(사탐·과탐) 20% △자연계열1은 국어 20%, 수학 가 35%, 영어 20%, 과탐 25%를 반영한다. 원서 접수는 내년 1월 6일부터 9일까지다. 예술창작학부의 실기고사는 내년 1월 19∼30일, 스포츠학부는 내년 1월 29일∼2월 1일 실시한다. 최초 합격자는 2월 6일 발표할 예정이다. 문의는 입학처 입학관리팀, 입학처 홈페이지 참조.김배중 기자 wanted@donga.com}
◇김명신 전 동아일보 편집지원팀장 별세·정현(사업) 씨 부친상=17일 경기 수원중앙병원, 발인 19일 오전 6시 반 031-231-8888}

16일 부산 서구 남부민동 제일아파트에서 옛 영국공사관 터를 기념하는 기념석 제막식이 열렸다. 6·25전쟁 당시 영국공사관은 임시수도 부산에서 참전 영국군과 피란민을 지원했다. 제막식에는 찰스 헤이 주한 영국대사와 부인 파스칼 서덜랜드 씨, 아파트 주민 등이 참석했다. 주한 영국대사관 제공}

“영어 강의인데 거의 다 한국말이었어요.” 서울 국립 A대 공대생 박모 씨(22)는 지난 학기 수강한 B 교수 수업을 ‘한강(한국어 강의)’이라고 했다. B 교수는 ‘엄(um)’ 같은 말을 남용하며 계속 더듬댔다. 칠판에 영어 스펠링을 잘못 쓰기도 했다. 한 달쯤 되자 B 교수는 “한국말로 하자”며 영어를 쓰지 않았다. B 교수는 외국인 교수였지만 ‘한국계’였다. B 교수는 한국에서 학사를 마치고 미국에서 박사를 받은 뒤 미국 국적을 취득했다. 국내 국공립대는 외국인 교수 채용을 늘리고 있다. 세계 주요 대학평가기관의 평가 지표인 글로벌 경쟁력의 상징이면서 학생에게 질 높은 영어 강의를 제공한다는 취지에서다. 하지만 ‘무늬만 외국인’ ‘검은 머리 외국인’이 외국인 교수의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다.○ 국공립대 외국인 교수 45%가 한국계 17일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전국 41개 국공립대 외국인 교수 281명 중 128명(45.5%)은 한국계다. 이들 128명 가운데 88%인 113명은 한국에서 태어나 해외 유학을 하며 미국 캐나다 등으로 국적을 바꿨다. 국적 변경자 가운데 68명은 한국에서 대학이나 대학원까지 마쳤다. 군 복무를 마친 ‘외국인 교수’도 30명이나 된다. 서울대는 외국인 교수 112명 중 52명(46.4%)이 한국계다. 이 중 47명은 한국에서 태어난 뒤 외국인이 됐다. 서울시립대는 5명 중 4명(80%), 강원대는 8명 중 5명(62.5%), 충남대는 15명 중 9명(60%)이 한국계다. 외국인 교수의 절반가량이 한국계인 이유는 간단하다. ‘순수’ 외국인이 지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국내 국공립대는 해외 유명 학술지에 활발하게 논문을 게재하고 저서를 펴내는 등 연구 성과가 뛰어난 교수를 찾는다. 그러나 이런 요건을 충족하는 외국인 지원자는 적다는 얘기다. 한 대학 관계자는 “학계에서 이 정도면 A급 학자인데 이들은 자기 나라나 미국 대학에서도 교수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인 교수와의 융화라는 측면도 고려된다. 다른 대학 관계자는 “외국인 교수는 돌아가면서 맡는 행정직을 기피하는 경우가 많다. 같은 조건이라면 결국 우리 문화에 익숙한 쪽을 선호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외국인 교수 자리는 ‘블루오션’ 외국인 교수 자리는 교수 지원자 사이에서 블루오션으로 통한다. 지난 2년간 국공립대 외국인 교수는 174명에서 281명으로 107명(61.4%)이 늘었다. 대부분 은퇴 같은 결원에 따른 채용이 이뤄져 사실상 포화상태라는 한국인 교수 채용과는 다르다. 국내 C대학 학과장은 “교수가 필요하다고 말하니 대학 측에서 아예 ‘(한국인 대신) 외국인 쿼터를 늘리자’고 하더라”고 말했다. 물론 외국인 교수 자리를 노리고 외국 시민권을 따는 한국 유학생은 현재까지는 거의 없다. 하지만 최근 국내 사립대에 임용된 한 교수는 “일반 교수는 기약 없이 결원이 생길 때까지 기다리는 일이 태반이지만 최근 급속히 늘고 있는 외국인 교수 자리는 임용되기 쉽다는 인식이 해외 유학파들에게 있다”고 말했다. 피해는 학생들 몫이다. ‘진짜’ 외국인 교수에게서 새로운 시각을 경험할 기회를 박탈당한다. 일부 한국계 외국인 교수의 강의를 듣고 “영어발음 엉망” “영어 듣기가 서툴다면 교수님 수업 피하시길” 등의 평가가 나온다. 김병욱 의원은 “국적을 바꿔 외국인 교수가 될 수 있다면 연구보다 ‘꼼수’에 더 관심을 갖지 않겠나”라며 “상당수는 국적을 바꿔 병역을 기피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김배중 기자 wanted@donga.com}

3000채 넘는 주거단지를 조성하는 경기 용인시 동천2지구 도시개발사업이 위장 조합원 논란에 휩싸였다. 도시개발사업은 구역 땅 주인 50% 이상이 동의하고 토지 66.7% 이상이 포함돼야 조합을 출범시킬 수 있다. 하지만 사업 시행사가 조합 설립에 필요한 조합원 수를 편법으로 채웠다는 의혹이 제기된다. 시행사가 토지를 사고 소유주를 자사 임직원 명의로 바꾸거나 등기 이전을 미룬 뒤 전(前) 주인 이름으로 조합에 가입시켰다는 것이다.○ “조합 장악에 편법 동원” 14일 동천2지구 도시개발사업조합 등에 따르면 조합은 2012년 8월 이 일대를 도시개발구역으로 지정해 달라고 제안했다. 용인시는 2014년 4월 정식 설립 인가를 내줬다. 사업구역 토지 주인 88명 중 50명(56.8%)이 동의하고 토지 32만2922m² 중 22만5429m²(68.9%)가 포함됐다. 사업은 조합이 개발하고 토지 원주인에게 적정성을 따져 가격에 맞게 돌려주는 환지(換地) 방식으로 진행됐다. 그러나 조합이 정식 설립되면 강제로 조합원이 되는 개발 반대 주민들은 반발했다. 이들 반대 조합원은 시행사 DSD삼호가 조합 인가에 필요한 조합원 수(전체의 50%)를 편법으로 채워 조합을 장악했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조합 설립에 동의한 토지 소유주 50명 중 적어도 8명은 2013년 불법 명의신탁으로 벌금형 등 형사 처벌을 받은 전력이 있는 삼호 측 인사이며 최소 15명이 삼호에 땅을 판 후 등기 이전을 하지 않아 이름만 올라 있는 조합원”이라고 주장했다. 이들 조합원 8명이 형사 처벌된 뒤 삼호는 명의를 법인으로 돌려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삼호가 산 땅에 삼호 측 사람들이 명의만 올려놓고 조합원으로 활동했다”는 주장도 나온다. 동아일보가 확인한 결과 형사 처벌을 받은 8명은 경기 고양시 식사동과 용인시 신봉동, 김포시 풍무동 등에 토지를 갖고 있다. 모두 삼호가 추진하는 도시개발사업 부지다. 식사동 땅은 1필지를 2m² 미만으로 쪼개 가진 100명 이상이 다 조합원 자격을 갖춰 논란이 됐다. 동천동을 제외하면 모두 1필지 보유자가 수십 명인 ‘쪼개기’ 형태의 땅이었다. 경기지역 경찰서장 출신 동천2지구 조합장 A 씨(62) 역시 식사동과 풍무동 등에 땅이 있다. 2010년 경찰을 떠나 삼호 감사가 된 A 씨는 2013년 회사를 나와 동천2지구 조합장이 됐다. A 씨의 식사동 땅(242m²)은 주인이 129명, 풍무동 땅도 주인이 52명이다. 동천동에 빌라도 한 채 있다. A 씨는 본보와의 통화에서 “(쪼개기가 돼 있는) 식사동과 풍무동 땅은 회사 상여금으로 샀고 세금도 다 냈다. 동천동 빌라는 내가 삼호로부터 9100만 원에 샀다. 정당하게 조합장을 맡고 있다”고 말했다. 조합설립동의서를 위조한 혐의로 일부 조합원에게 고발당한 A 씨는 피고발인 신분으로 경찰 조사를 받고 있다.○ 위장 조합원 못 걸러내는 행정 동천2지구 사업 허가를 내준 용인시는 서류상 조합 구성 요건을 충족하면 일일이 조합원을 확인하지는 않는다고 설명했다. 서류만 갖추면 위장 조합원을 가려낼 수 없는 구조인 셈이다. 일각에서는 사업 허가를 내준 과정이 석연치 않다고도 주장한다. 통상 도시개발사업 터는 정형성을 지닌다. 동천2지구는 정상적이라면 직삼각형 형태가 돼야 하는데 주민 반대로 일부 터가 제외되면서 정형성이 흐트러져 모양이 어색하다는 것이다. 용인시 관계자는 “동천2지구는 신청과 심의 과정 등에서 외형상 문제가 없었다”고 말했다. 삼호 측은 일부 명의신탁이 있었던 건 인정하지만 사업 특성상 불가피한 조치였다고 해명했다. 구역 땅 주인들이 터무니없이 높은 땅값을 부르며 사업을 방해해 우호 조합원이 필요했다는 얘기다. 형사 처벌을 받은 조합원 8명과 관련해서는 농지를 법인 명의로 할 수 없도록 한 현행법 탓에 부득이하게 회사가 개인 명의로 돌려놓았다고 해명했다. 자사 임직원들이 조합원으로 활동하는 것은 사업을 추진하면서 투자 목적으로 땅 매입을 권해서라고 밝혔다. 쪼개기를 한 땅들은 회사가 상여금으로 지급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삼호 내부에서는 임원들이 불법 명의신탁에 동원되는 게 관행처럼 자리 잡았다는 얘기도 나온다. 삼호 관계자는 “해당 조합원이 불법 명의신탁으로 처벌받았어도 조합은 적법하다는 검찰의 유권해석을 받았다”고 주장했다.용인=조동주 djc@donga.com / 김배중 기자}
정권이 바뀌거나 북한의 미사일·핵실험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정쟁(政爭)의 대상이 되는 대북지원 문제를 공적개발원조(ODA)로 해결할 수 있다는 주장을 담은 논문이 나왔다. 한국의 대북지원을 ODA로 전환해 공여국으로서 국제사회에 위상도 높일 수 있다는 전략이다. 연세대는 허재영 글로벌인재학부 교수(정치학 박사) 등 3명의 논문 ‘같은 비용, 다른 이름(Same Money, Different Name)’이 사회과학논문인용색인(SSCI)급 국제 학술지인 ‘아시아의 전망(Asian Perspective)’ 최근호에 등재됐다고 12일 밝혔다. 논문에 따르면 한국은 1995년부터 2014년까지 북한에 34억1000만 달러(한화 약 3조7131억 원)를 지원했다. 같은 기간 한국이 국제사회에 원조한 137억5000만 달러(한화 약 15조150억 원)의 25% 수준. 하지만 그간 대북지원은 ODA로 평가되지도, 용처도 파악되지 않아 ‘퍼주기식’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북한 미사일·핵실험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정권 성격에 따라 정쟁 수단이 되며 국민들을 양분시켰다. 하지만 ODA로 대북지원에 나선다면 한국도 실익을 얻을 수 있다. 원조 수혜국에서 공여국으로 전환한 한국은 세계 11번째 경제대국임에도 2014년 국민총소득(GNI)의 0.13%만 지원했다. 비슷한 국내총생산(GDP) 규모를 가진 캐나다, 스페인, 이탈리아의 3분의 1 수준. ODA에 인색하다는 평가를 받는 이유다. 하지만 대북지원을 ODA에 포함시키면 국제사회에서 보다 영향력 있는 공여국이 될 수 있다. 또 국제사회 ODA 규칙에 따라 지원에 대한 모니터링도 강화할 수 있다. 한국국제협력단법, 대외경제협력기금법에 지원대상으로 명시된 ‘국가(country)’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개발원조위원회(DAC) 정의에 맞춰 ‘지역·영토(territory)’로 확대한다면 헌법 위배 없이도 실행 가능하다는 게 논문의 내용이다. 허 교수는 “국가 이미지를 개선하고 ‘퍼주기식’ 대북지원이라는 비판을 잠재울 수 있는 일석이조의 전략”이라고 대북지원 ODA 전환의 의의를 설명했다.김배중 기자 wanted@donga.com}
전국검정고시총동문회(총회장 문주현)는 최근 세종대에서 열린 ‘정기총회 및 송년의 밤’ 행사에서 이철성 경찰청장과 윤면식 한국은행 부총재에게 ‘2017 자랑스러운 검정고시인 상’을 시상했다고 12일 밝혔다. 이 청장은 검정고시를 거쳐 국민대 행정학과, 연세대 행정대학원을 졸업했다. 1982년 순경으로 경찰에 들어가 1989년 간부후보생 37기로 재임용됐다. 서울 영등포경찰서장,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실 사회안전비서관 등을 거쳐 현재 20대 경찰청장을 맡고 있다. 윤 부총재는 검정고시를 거쳐 고려대 경영학과, 미국 콜로라도대학원을 졸업했다. 1983년 한국은행에 입행해 독일 프랑크푸르트 사무소장, 통화정책국장 등을 지냈다. 이날 시상식에는 초대 총회장을 지낸 박영립 법무법인 화우 대표변호사와 정세균 국회의장,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등이 참석해 축사했다. 문 총회장은 인사말을 통해 “어려운 환경 속에서 노력으로 사회 구성원으로 성장해 각 분야에서 일을 하는 검정고시인들의 노고에 존경과 사랑을 보낸다”고 말했다.김배중 기자 wanted@donga.com}

경기 용인시 기흥구 물류센터 신축 공사장에서 90m 높이의 타워크레인이 무너져 작업 중이던 인부 3명이 사망하고 4명이 다쳤다. 최근 경기 남양주와 의정부 등에서 일어난 타워크레인 사고로 여러 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잇따르자 정부가 안전관리 강화 대책을 내놓았지만 채 한 달도 안 돼 또 사고가 난 것이다. 10일 경찰 등에 따르면 이번 사고는 9일 오후 1시경 타워크레인 높이를 조절하려고 크레인을 받치는 기둥을 들어올리던 도중 일어났다. 크레인을 13단에서 14단으로 높이던 중 11, 12단(64m 지점)이 부러지면서 78m 높이에서 일하고 있던 인부 7명이 땅으로 추락했다. 김모 씨(55) 등 3명이 숨지고 하모 씨(38) 등 4명은 중상을 입었다. 최근 잇따른 타워크레인 사고는 대부분 장비 노후화나 불량 부품 사용, 부실한 사후정비 등이 원인이 된 ‘인재(人災)’였다. 10월 경기 의정부에서 3명이 죽고 2명이 다친 타워크레인 사고는 크레인의 노후화가 원인이었다. 사고 크레인은 1991년 제작돼 27년째 사용 중이었다. 건설 현장 크레인의 사용 연한 10∼15년을 훌쩍 넘긴 것이었다. 현장에서 규정에 맞지 않는 타워크레인 부품을 사용하는 점도 문제다. 올 5월 남양주 크레인 사고는 협력업체가 공사 기간을 줄이기 위해 정품 부품을 수입하는 대신에 서울의 한 철공소에서 정밀도면 없이 만든 사제 부품을 쓴 일이 문제가 됐다. 이 사고로 2명이 숨지고 3명이 다쳤다. 이날 용인 사고 현장을 합동 감식한 경찰과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고용노동부 등은 작업자 실수 등 여러 가능성을 열어두고 조사 중이다. 조사팀은 “사고 직전 타워크레인의 지브(물건을 매다는 팔에 해당하는 부분)에 달린 트롤리가 움직였다”는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트롤리는 타워크레인에서 물건 등을 수평으로 옮길 때 쓰는 장치로 사고 당시처럼 크레인 높이 조정 작업을 할 때는 움직이지 않아야 한다. 사고가 난 크레인은 2012년 프랑스에서 제조돼 비교적 신형이었다. 사고 크레인에 불량 부품이 사용됐는지도 조사 대상이다. 전문가들은 현행 부품 검사 절차가 허술해 불량 부품을 걸러내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이명구 을지대 보건환경안전학과 교수는 “사업자가 지자체에 크레인 사용 등록을 할 때 부품이 다 설치된 상태에서 안전성 검사를 받아야 하지만 부품도 다 안 갖춰진 채로 검사를 받는 경우가 태반”이라며 “6개월마다 하는 정기검사도 까다롭게 하면 크레인 업체들이 싫어해 허술하게 하는 사례가 많다”고 말했다.김예윤 yeah@donga.com·김배중 기자}
서울대는 7일 오후 경기 시흥시 시흥캠퍼스 터(66만 m²)에서 ‘서울대학교 시흥 스마트캠퍼스 선포식’을 열었다. 2007년 국제캠퍼스 조성 계획을 마련한 지 10년 만에, 1975년 관악캠퍼스 이전 이래 42년 만에 제2캠퍼스 공사를 시작하는 첫 삽을 뜬 것이다. 이날 선포식에서 성낙인 서울대 총장은 기념사를 통해 “1975년 9곳에 흩어져 있던 캠퍼스를 모아 관악캠퍼스를 개교한 후 42년이 지난 오늘 4차 산업혁명의 시대를 맞아 서울대가 잠시 머뭇거렸던 것이 아닌지 반성하고 있다. 관악캠퍼스가 국가 사회로부터의 선물이었다면 시흥캠퍼스는 국가 사회가 서울대에 주는 책무”라고 말했다. 서울대는 2010년 시흥시와 국제캠퍼스 등의 조성을 위한 업무협약을 맺은 뒤 2014년 시흥캠퍼스 기본 협약 및 부속합의서 체결, 그리고 지난해 실시협약을 맺었다. 그러나 시흥캠퍼스에 반대하는 총학생회를 비롯한 일부 학생이 지난해 10월부터 200일 넘게 학교 본관을 점거 농성하며 갈등을 빚었다. 최근 이들 점거 학생에 대한 징계를 성 총장이 직권 해제하면서 사태는 일단락됐다. 이날 선포식에서 서울대는 현대자동차, 삼성전자, SK텔레콤과 ‘자율주행차 기반 미래도시의 구성을 위한 모빌리티 조성 협약’도 체결했다. 자율주행차 공동 연구를 위해 시흥캠퍼스에 미래모빌리티센터를 짓는다.김배중 기자 wanted@donga.com}

23일 만난 석해균 선장(65)은 왼손을 외투 주머니에 넣고 다리를 절뚝이며 걸었다. 밖으로 삐져나온 오른팔 와이셔츠 소매는 단추가 풀려 있었다. 총상 후유증이 남은 왼손으로는 오른쪽 소매를 제대로 여미지 못했다. 2011년 소말리아 해적 손아귀에서 빠져나온 ‘아덴만의 영웅’은 6년 넘게 후유증과 전투 중이었다. 다행히 이기고 있었다. 총알이 왼 손목을 관통해 신경이 마비됐지만 끈질긴 재활훈련으로 주먹을 쥘 수 있게 됐다. “총 맞았을 때 너덜너덜해져서 ‘못 쓰겠구나’ 했어요. 그걸 이국종 교수가 살려놓은 거라고.”○ 이 교수 영상 공개 요청에 “그래, 그리 해라” 2011년 수술 받고 의식을 회복한 지 사나흘 뒤 석 선장은 이 교수가 자신을 살렸다는 것을 알았다. “처음엔 그 양반 표정도 무뚝뚝하고 별 감흥이 없었어요. 근데 몸속 철심 빼내고 사소한 거 하나하나 할 때마다 진심이 느껴지더라고. 가랑비에 젖듯 신뢰가 생겼지요.” 퇴원 후 석 선장과 이 교수는 마음을 터놓는 사이가 됐다. 이 교수의 왼쪽 눈이 실명 직전이고 고혈압 약을 먹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 “나는 이 교수 볼 때마다 ‘몸 좀 그만 혹사시키라’고 해요. 그럼 이 교수는 ‘일이 밀려서 안 된다’고 하고. 안쓰럽지.” 석 선장은 89세 노모를 돌보고 있다. 모친의 건강이 안 좋으면 자정에도 연락해 조언을 얻는 사람이 이 교수다. 석 선장이 증상을 설명하면 이 교수가 필요한 약품을 일러준다. 이 교수의 긴급 처방 덕분에 석 선장 어머니는 여러 번 기력을 되찾았다. 석 선장은 “알뜰살뜰 사람을 챙기는 의사”라고 했다. 그런 이 교수에게서 21일 다급하게 연락이 왔다. 북한 귀순 병사를 살려낸 뒤 휘말린 ‘인권 테러’ 논란에 대해 이 교수가 작심하고 반박한 언론 브리핑 하루 전이었다. “선장님 수술 영상을 공개해도 되겠느냐”는 이 교수의 조심스러운 요청에 석 선장은 망설이지 않았다. “단 1초도 고민 안 했어요. ‘그래, 그리 해라’ 이렇게만 말했어. 이 교수에게 ‘쇼한다’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어떻게 가만히 있나요. 죽다 살아온 내가 증인인데.” 석 선장은 이 교수가 귀순 병사의 인권을 무시했다는 일각의 비난을 의식한 듯 목소리를 높였다. “외상 의사가 지킬 수 있는 가장 고귀한 인권은 환자 목숨을 살리는 것 아닙니까. 병원에서 살아난 환자들이 인권 운운하며 이 교수를 비난하는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요.” 석 선장은 권역외상센터를 확대해 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에 참여했다. “여러 ‘이국종(의료 인력)’, 여러 ‘석해균(생존 환자)’이 계속 나와야 해요. 외상센터 수혜자가 대부분 우리 산업의 밑바닥을 지탱하면서도 병원비 감당이 힘든 블루칼라 근로자들입니다.”○ “귀순병 그 친구, 나하고 같아요” ‘석해균 선장님, 이곳은 대한민국입니다.’ 6년 전 석 선장이 아주대병원 병실에서 깨어났을 때 눈앞에 플래카드와 태극기가 희미하게 보였다. 귀순 병사 오모 씨(25)가 20일 아주대병원 권역외상센터 중환자실에서 의식을 되찾았을 때도 정면에 태극기가 걸려 있었다. “내가 살아있다는 걸 처음 깨닫던 순간의 경이로움. 귀순병 친구도 똑같이 느꼈을 겁니다.” 이 교수팀의 수술 후 13일 만에 깨어난 석 선장은 2011년 3월 병상에서 생일을 맞았다. 그는 의료진이 준비한 축하 케이크에 초를 하나만 꽂아 달라고 요청했다. 그에겐 다시 태어난 날, 한 살로 되돌아간 날이었다. 환갑이 넘은 그가 “올해 일곱 살”이라고 한 이유다. “귀순병 그 친구, 나하고 같다고 생각해요. 이제 한 살로 다시 살면서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지난 25년간 얼마나 고생했겠어.” 생사의 갈림길을 먼저 지나온 선배로서 석 선장은 귀순 병사에게 조언했다. “큰 고비는 넘겼지만 이제 부정적인 감정이 밀려올 거예요. 건강할 땐 상상도 못 했던 정신적, 육체적 고통이 올 겁니다. 그럴수록 긍정적으로 마음먹어야 회복도 빨라져요.” 석 선장도 의식을 회복한 뒤 움직이지 않는 왼손, 여기저기 꿰맨 몸을 보고 충격에 휩싸였다고 한다. 이후 넉 달간 죽고 싶다는 생각에 시달리다 얻은 깨달음이었다.○ ‘항상 전쟁터에 있다’ 배의 키를 내려놓은 석 선장은 2012년부터 6년째 경남 창원시 해군교육사령부에서 안보교육관으로 일하고 있다. 군인 경찰 소방관 등 공무원과 일반인을 교육하며 자신의 경험담을 나눈다. 얼마 전 교육생이던 소방관이 그에게 “선생님 덕에 살았다”며 인사를 하러 왔다. 화재 현장에서 불길에 갇혀 버린 순간 석 선장을 떠올리며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죽을 고비에서 살아 돌아왔다는 것에 큰 보람을 느낀 순간이었다. “이 교수가 살린 건 단지 저 하나뿐이 아닙니다. 아직 살아있는 저를 보면서 절망을 이겨낸 사람들까지 살려낸 겁니다.” 몸이 아직 완전히 회복되진 않았다. 총탄이 관통해 피부가 괴사한 오른쪽 등에는 하루 5, 6차례 원인 모를 통증이 찾아온다. “아플 때 내가 할 수 있는 건 ‘끙’ 하고 신음을 내며 견디는 거예요. 교회에 가면 ‘고통을 거두어 달라’고 기도해요.” 지난해 10월 근무 도중 갑자기 장폐색이 왔다. 장으로 가는 피가 안 통해 심할 경우 장 조직이 괴사하는 병이다. 응급조치가 제때 이뤄지지 않으면 생명이 위태로울 수 있다. 석 선장은 헬기에 태워져 아주대병원으로 이송됐다. 워낙 복잡한 수술을 받았던 터라 석 선장을 치료할 수 있는 의사는 이 교수밖에 없었다. 약물 처방을 받은 석 선장은 8일 만에 회복됐다. 석 선장의 해군사령부 사무실 벽에는 ‘恒在戰場(항재전장)’이라고 적힌 액자가 걸려 있다. ‘항상 전쟁터에 있다’는 뜻. 그가 액자를 바라보며 말했다. “부상에서 회복하는 과정도 일종의 전쟁이죠. 지금껏 잘해 왔으니 앞으로도 포기 안 합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석 선장은 자신의 차에 올라타 핸들을 잡았다. 주먹을 쥐는 데 5년 걸린 왼손도 핸들에 얹었다. “조금만 더 하면 왼손으로 소매 단추를 끼워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고지가 눈앞이오.” 그는 마음도 한결 여유로워졌다고 했다. “예전에는 다른 차가 끼어들면 쫓아가서 삿대질을 해야 직성이 풀릴 정도였어요. 지금은 ‘나보다 더 바쁘구나’ 하면서 비켜준다고. 하하.” 석 선장이 ‘전투’에서 이기고 있는 방법은 긍정이었다.창원=김배중 기자 wanted@donga.com}
“아이 러브 유(사랑해요).” 21일 오전 3시경 서울 송파구 파크하비오호텔 1층 프런트 앞을 카자흐스탄인 A 씨(22)가 일행과 함께 서성댔다. 출국을 몇 시간 앞두고 숙박하는 동안 눈여겨본 호텔 여직원 B 씨를 보기 위해서였다. B 씨에게 다가선 A 씨는 손에 쥔 금메달을 보여주며 더듬더듬 영어로 애정을 표시했다. 케틀벨(kettlebell·쇠로 만든 공에 손잡이를 붙인 웨이트트레이닝 기구) 카자흐스탄 국가대표로 서울에서 열린 ‘케틀벨 리프팅 월드챔피언십’ 대회에서 따낸 것이라고 했다. A 씨는 키 175cm, 몸무게 80kg에 단단한 근육질 팔과 상체가 두드러지는 위압적인 체구였다. 투숙객에게 뭐라고 하기도 어려운 B 씨가 주춤하며 서있자 A 씨는 B 씨의 양어깨를 잡고 오른쪽 뺨에 입을 맞췄다. B 씨는 겁에 질려 가만히 서있기만 했다. 이를 지켜본 호텔의 다른 직원이 신고해 A 씨는 경찰에 붙잡혔다. 서울 송파경찰서는 A 씨를 강제추행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고 22일 밝혔다. 경찰 조사에서 A 씨는 “B 씨에게 애정을 고백하고 볼에 입을 맞춘 건 사실이지만 이는 카자흐스탄식 전통 인사일 뿐이다”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관계자는 “호텔 폐쇄회로(CC)TV를 분석해 혐의의 경중을 따져 검찰에 송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김배중 기자 wanted@donga.com}
사제(私製) ‘텀블러 폭탄’으로 지도교수를 다치게 한 제자에게 실형이 선고됐다. 서울서부지법 형사합의11부(부장판사 김양섭)는 폭발성물건파열치상 혐의로 기소된 연세대 대학원생 김모 씨(25)에게 징역 2년을 선고했다고 22일 밝혔다. 김 씨는 올 6월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제1공학관 4층 김모 교수(47) 연구실 문 앞에 텀블러로 만든 사제폭탄이 든 상자를 놓았다. 이를 개봉하는 순간 불이 붙으며 김 교수는 얼굴 등에 2도 화상을 입었다. 재판부는 이날 “김 씨가 별다른 전과가 없고 죄를 인정하며 반성하고 있다는 점을 참작했다”면서도 “텀블러 용기의 접착력이 제대로 유지됐다면 피해자 생명이나 신체에 더 큰 위험을 초래할 수 있었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재판부는 ‘사제 텀블러 폭탄’이 검찰이 기소한 대로 폭죽화약을 이용해 만든 폭발성 물건이라고 봤다. 반면 김 씨 측 변호인은 “텀블러 폭탄이 폭발하지 않았기 때문에 폭발성 물건에 해당되지 않는다. 단순상해 혐의가 적용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씨는 지난해 9월부터 올 5월까지 논문을 작성하며 지도교수인 김 교수에게서 질책과 함께 모욕감을 느끼는 발언을 들었다며 범행을 계획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교수는 “김 씨의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뜻을 경찰에 밝혔다. 김배중 기자 wanted@donga.com}
“아, 시끄럽게.” 올 6월 16일 오후 11시 반경 부산 해운대구 송정해수욕장 인근 먹장어집 노천 테이블에서 지인과 술을 마시던 A 씨(47)는 옆을 지나는 승용차가 내는 굉음이 귀에 거슬렸다. A 씨는 홧김에 들고 있던 소주잔을 차를 향해 던졌다. 잔은 승용차 운전석 쪽 앞 유리창에 부딪혔다. 잔은 산산조각이 났고 유리창에는 흠집이 생겼다. 문제는 이 차가 유명 스포츠카 페라리 모델 가운데 시가 3억7000만 원(경찰 추산)짜리라는 것이었다. 황급히 차에서 내린 운전자 B 씨(47)는 보도에 있던 다른 사람을 지목해 경찰에 신고했다. B 씨와 그가 오인한 사람이 옥신각신하는 동안 A 씨는 자리를 떴다. 하지만 A 씨는 결국 보름 뒤 경찰에 덜미를 잡혔다. 식당 폐쇄회로(CC)TV에 A 씨가 소주잔을 던지는 장면이 찍혀 있었다. 부산 해운대경찰서는 최근 A 씨를 재물손괴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차주는 수리비만 2000만 원이라고 했다. 일용직으로 정비를 하는 A 씨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액수인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관계자는 “차주가 보험 처리를 할지, 개인 비용으로 수리할지에 따라 A 씨는 구상권 청구 소송이나 손해배상 소송을 당할 수 있다”고 말했다. 부산지검 동부지청은 A 씨를 벌금 100만 원에 약식 기소했다.김배중 기자 wanted@donga.com}
20일 오전 7시. 교사 양승진 씨, 학생 박영인 남현철 군의 영정 사진을 든 유족이 경기 안산시 단원고에 도착했다. 이들은 영정 사진을 들고 양 씨가 근무하던 2층 교무실을 지나 두 학생이 공부하던 3층 2학년 6반 교실을 천천히 돌았다. 유족들은 고인들의 흔적을 더듬었다. 양 씨 부인 유백형 씨는 교무실 의자를 어루만지며 “아이들을 너무 좋아했다…”며 흐느꼈다. 발인은 앞서 오전 6시 안산 제일장례식장에서 치러졌다. 새벽부터 빈소에는 유족, 고인의 제자, 지인 등 100여 명이 모였다. 단원고로 가는 길 경기도교육청 안산교육지원청에 마련된 ‘단원고 4·16 기억교실’ 입구에는 ‘우리가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라는 전광판 문구가 빛났다. 교무실과 교실을 돌고 영정 사진들이 1층 현관 앞으로 오자 정광윤 교장이 맞이했다. 정 교장은 학교 운동장 흙을 담은 주먹만 한 흰색 꾸러미를 1개씩 유족들에게 건넸다. 고인의 유품 등을 담는 납골함에 이 흙을 넣겠다고 유족들이 요청했다고 한다. 납골함에는 세월호가 가라앉았던 전남 진도 맹골수도 펄도 들어간다. 유족들은 끝내 오열했다. 양 씨 모친 남상옥 씨(83)는 영정 사진을 부둥켜안고 5분 넘게 오열했다. 남 씨는 소리쳤다. “엄마 가슴에 피가 내린다. 아들아, 다시 만날 그날까지 건강하게 잘 지내라.” ‘아들아’라는 한마디에 두 학생 부모의 표정도 일그러졌다. 뒤따르던 사람들까지 눈시울을 붉히며 금세 눈물바다가 됐다. 경기 수원시의 화장장에 도착한 남 군의 부모 남경원, 박상미 씨는 운구차에서 남 군의 관을 보다 걸음을 떼지 못하고 주저앉아 소리 내어 울었다. 시신 대신 유품을 담은 이들의 관은 화장하는 데 1시간 반가량 걸렸다. 박 군의 모친 김선화 씨는 아들의 유품 등이 담긴 납골함을 보며 “내 아들을 찾아 달라. 믿기지 않는다”며 오열했다. 경기 평택시 서호추모공원에 도착한 유족들은 납골함을 얼굴처럼 쓰다듬으며 쉽게 놓아주지 않았다. 이곳에는 세월호 참사에서 숨진 다른 단원고 희생자들이 묻혀 있다. 비슷한 시간 인천 부평구 인천가족공원에는 고 권재근, 부인 한윤지 씨와 아들 혁규 군의 납골함이 나란히 안치됐다. 한 씨의 시신은 세월호 참사 이후 얼마 안 돼 수습됐다. 이들 가족의 홀로 남은 딸 권모 양(8)도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한참을 영정 사진 속 아빠, 엄마, 오빠를 바라봤다. 납골함이 안치되고 나서 권 양은 친척들과 함께 절을 올렸다. 이날 세월호 미수습자 5인의 장례가 끝나면서 세월호 희생자 304명 전원의 장례가 마무리됐다. 세월호 참사 1314일 만이다. 장례는 끝났지만 ‘사회적 참사의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과 추모공원 건립 문제 등이 남아 있다. 세월호 관련 단체인 4·16가족협의회 관계자는 “희생자들의 뜻을 기리며 남은 활동을 진행하겠다”고 말했다.평택=김배중 wanted@donga.com / 인천=최지선 기자}

19일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의 세월호 미수습자 권재근 씨와 아들 혁규 군의 빈소. 권 씨의 딸 권모 양(8)은 천진했다. 노란 티셔츠에 까만 바지를 입고 상장(喪章) 대신 머리에 하얀 리본을 했다. 밝은 목소리로 “전화기 놀이 해야지”라고 외치며 조문객 사이를 뛰어다녔다. 오징어채를 간식 삼아 먹고, 테이블에 누워 휴대전화를 가지고 놀았다. 전날 전남 목포신항에서 열린 합동추모식에서 주변의 어른들이 오열하자 “아빠” “오빠”를 부르며 따라 울었던 것과는 달랐다. 친척들은 말없이 권 양의 등을 쓰다듬었다. 권 양은 2014년 4월 세월호 참사에서 네 식구 가운데 혼자 살아남았다. 빈소의 영정 하나에 아빠와 함께 담긴 엄마 한윤지 씨와 많이 닮았다. 한 씨 시신은 참사 직후 수습됐지만 그동안 장례를 미뤘다. 한 친척은 “아빠와 오빠 시신까지 수습하면 말해주려고 가족끼리 입단속을 했다”면서 “○○이(권 양)는 자기가 처한 상황을 정확히 모른다”며 착잡해했다. 권 양은 참사 당시 얼굴과 이름이 알려진 이후 유치원이나 학교에서 ‘놀림’을 받아 지금은 개명했다. 18일 오전 목포신항에서 시신을 찾지 못한 미수습자 5명의 합동추모식을 마친 뒤 이날 오후 빈소가 차려졌다. 안산 단원고 교사 양승진 씨와 학생 박영인, 남현철 군의 빈소는 경기 안산시 제일장례식장에, 권 양의 아빠와 오빠 빈소는 아산병원에 마련됐다. 이들의 관에는 시신 대신 고인들의 옷, 가족들이 보내는 편지 등이 담겼다. 양 씨의 아내 유백형 씨(56)는 양 씨의 손때가 묻은 ‘정치’와 ‘경제’ 교과서 2권을 넣었다. 두 빈소는 다소 쓸쓸했다. 19일 제일장례식장 1층 합동분향소 방명록에 적힌 이름은 300여 명으로 이들의 가족, 친척, 지인이 대부분이었다. 이낙연 국무총리, 남경필 경기도지사,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등이 조문했을 뿐이다. 유족을 돕던 자원봉사자는 “일반 시민 발길이 점점 뜸해졌는데 이제는 정말 잊혀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남 군과 초등학교 동창인 원동혁 씨(20)는 이날 오후 군복 차림으로 남 군의 빈소를 찾았다. 원 씨는 “나와 성격이 비슷한 현철이도 살아 있었다면 해병대에 함께 입대했을 것 같다”며 안타까워했다. 박일도 제일장례식장 대표(62)는 “장례식 수익금 등 3000만 원을 안산지역 학생 교복비 지원 등에 기부하겠다”는 말로 이들의 마지막 길을 추모했다. 미수습자 5인의 가족들이 목포신항을 떠나면서 3년 전 4월 참사 직후 광주시와 전남도가 각각 설치한 희생자 합동분향소도 철거된다. 광주시는 20일 오전 시청 1층 시민홀에서 합동분향식을 열고 오후 6시 분향소 철거에 들어간다. 그동안 약 4만1000명이 분향했다. 전남도는 무안 도청 1층 분향소를 21일 오후 7시 치운다. 안산시 정부합동분향소를 제외하면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던 분향소는 광주와 전남이 마지막이었다. 세월호 유족 일부는 목포신항 컨테이너에서 계속 생활하며 선체 수색과 조사 과정을 지켜볼 예정이다. 이들은 매일 수색 진척 상황을 점검하고 영상으로 기록을 남기고 있다. 연말까지 이어질 선체 수색이 끝나야 이들도 컨테이너 생활을 마칠 것으로 보인다.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 남쪽 끝에 설치된 세월호 천막은 당장 철거될 확률은 낮다. 천막을 친 4·16가족협의회와 4·16연대 등 세월호 관련 단체는 아직도 ‘진상 규명’을 주장한다. 서울시 관계자는 “세월호와 관련한 여러 논의가 산적해 있어 정부에서 총체적으로 논의를 하면 거기에 따라서 (철거나 이동 등을) 논의하겠다”라고 말했다. 다만 불법 점용한 천막과 시설물에 대한 변상금은 계속 부과할 방침이다. 24일 2기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구성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사회적 참사의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이 국회에서 표결에 부쳐진다. 세월호 관련 단체들은 현재 특별법안에서 위원 추천 규정(야당 6명, 여당 3명)을 수정하고 조사원 수를 120명에서 150명으로 늘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4·16연대 관계자는 “법안 통과 전까지 천막 철거는 논의할 단계가 아니다”라고 말했다.최지선 aurinko@donga.com / 안산=김배중 / 목포=이형주 기자}

“엄마 말 절대 듣지 마세요.” 염재호 고려대 총장이 이렇게 말하자 강당을 가득 메운 연세대생 530여 명이 폭소를 터뜨렸다. 반항하라는 말은 아니었다. 염 총장은 “자격증 따야 먹고살고 대기업 가야 성공한다는 엄마세대 말은 20∼30년 전 대학 때 얘기다. 전혀 다른 세상을 살 여러분은 항상 개척하고 도전해야 한다”고 말했다. 16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백양관 대강당에서 염 총장은 ‘21세기 대학교육의 미래: 개척하는 지성’을 주제로 특별강연을 했다. 고려대 총장이 연세대 강단에 선 것은 100년 명문 사학 라이벌인 두 대학 총장이 교차특강을 하자는 약속에 따른 것이다. 앞서 5월에는 김용학 연세대 총장이 고려대에서 특강했다. 이날 염 총장은 “연세대에 강의하러 온 것은 처음”이라며 특강을 시작했다. 핵심은 21세기 패러다임은 20세기와 다르니 무엇이든 ‘하라’는 것이었다. 머릿속에 생각만 가득 품지 말고 실행해야 성공이든 실패든 경험할 수 있다는 얘기였다. 염 총장은 “하세요, 그냥. 로또에 당첨되려면 로또부터 사세요”라고도 했다. 취업난을 화두로 염 총장은 “대학에서는 수강생 배출만을 위해 수백 명 대형 강의를 하고, 학생도 대기업 취업을 목표로 학점 높이기에만 급급하다”며 “21세기를 사는 우리가 여전히 20세기 패러다임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1세기 패러다임의 하나로 ‘지식을 만드는 사람’을 제시했다. “애플 구글 같은 글로벌 기업은 20세기적 개념의 대기업이라기보다는 지식을 창출하고 활용할 줄 아는 기업입니다.” 대기업에 들어가기 위해 기존의 지식을 쌓기만 하는 스펙에 집중하기보다 자기 생각을 계발하고 새로운 지식을 창출해내려는 노력을 하라는 뜻이었다. 이를 위해 염 총장은 대학이 주입의 현장이 아니라 토론의 장이 돼야 한다고 밝혔다. 특히 ‘스마트폰 시대’ 대학생의 말투를 꼬집으며 “대부분 학생들이 표현할 때 ‘∼같은데요’라고 많이 한다. 자신이 없어 보인다. 개척정신을 갖고 자기 생각을 자신 있게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염 총장은 이 같은 토론과 자기 계발에 몰두하도록 고려대에 컨테이너박스로 ‘파이빌’이라는 공간을 만들어 언제 어디서든 이곳에서 아이디어를 생각해내도록 했다고 소개했다. 염 총장은 “옛날처럼 똑똑한 양떼가 되지 말기를 바란다. 여러분은 다른 어느 세대보다 준비가 잘돼 있다. 잘할 수 있다”고 ‘아빠 미소’를 지으며 강의를 마쳤다. 이날 대강당 500석은 물론이고 계단까지 학생들로 꽉 찼다. 1시간 반의 특강이 끝나고 학생들은 염 총장과 ‘인증샷’을 찍기도 했다. 김배중 기자 wanted@donga.com}
“책 챙겨 내려간 지 하루 만에 다시 올라왔어요.” 16일 오전 서울 강남구 한 재수학원 앞은 “일주일 더 공부해야 한다”며 캐리어를 끌고 재상경한 재수생들로 북적였다. 이날 대전에서 올라온 박모 군(19)은 “이틀 전 시험 직전에 책 몇 권만 챙겨 내려갔는데 일주일 동안 집에서 공부할 자신이 없었다. 오늘 아침 기차표 끊어 바로 올라왔다”고 말했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이 경북 포항 지진으로 일주일 연기되자 서울의 기숙학원에서 공부하다 귀향했던 지방 재수생들의 ‘서울 귀환’이 이어졌다. 대구 출신 현모 양(19)은 “이왕 미뤄진 거, 마음잡고 공부하려고 했는데 익숙한 곳이 나을 것 같아 아침 첫차로 올라왔다”고 말했다.○ 다시 ‘주차장’ 된 대치동 학원가 이날 오전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한 유명 수학학원에서는 강사 2명이 걸려오는 전화에 응대하느라 쉴 새가 없었다. 강사들은 “없어요” “없습니다”를 반복했다. 연기된 수능일(23일)까지 “‘족집게’ 단기 특강이 열리느냐”는 수험생과 학부모의 질문이 쇄도했다. 강사 A 씨는 “1시간 동안 전화만 20통 넘게 받았다. 학생들도 계속 문자메시지를 보내 업무를 볼 수가 없을 정도”라고 말했다. 학부모 김모 씨(50·여)는 “남은 일주일은 막판 스퍼트를 다시 한 번 해야 하는 중대한 시기”라고 했다. 이 학원은 특강 요청에 못 이겨 수능 대비 자료집을 만들어 배포할 계획이다. 점심시간이 되자 대치동 학원가는 순식간에 ‘주차장’이 됐다. 부모들이 학원 앞에 차를 대고 자녀들을 위해 담요와 도시락을 한가득 챙겨왔다. 점심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리고 학원 밖으로 수험생들이 일제히 쏟아져 나왔다. 부모들은 차에서 나오며 “아들” “딸” 하고 제각기 소리를 질렀다. 학원 정문 앞에서 도시락을 들고 자녀를 기다리던 학부모는 “오늘 학원에서 점심을 안 준다고 했다. 아이가 편의점에서 대충 사먹을까 봐 서둘러 싸왔다”고 말했다. 한 학원 관계자는 “보통 학원에서 점심, 저녁을 챙겨주는데 수능 날에 맞춰 급식을 중단해 불가피하게 제공하지 못하게 됐다. 부모들에게 안내 문자를 돌렸더니 많이들 도시락을 준비해 오셨다”고 말했다. 오후 3시경 이날 휴교를 하지 않은 학교의 고3 수험생들이 몰리자 학원 측은 자습실 마련에 비상이 걸렸다. 수능 관련 강의가 모두 끝나 강의실 배치를 바꿔놨는데 수험생들이 다시 오면서 임시 공간을 마련해야 했다. 서울 신촌의 입시학원은 “일반 강의실을 자습실로 급히 바꾸기 위해 책상과 의자 배치를 다시 했다”고 말했다. 서울의 대형 서점도 북새통이었다. 당초 치러질 수능 전날 교과서와 참고서를 버린 학생들이 일주일 동안 공부할 새 교재를 사러 온 것이다. 서울 종로구 대형 서점 관계자는 “수능 문제집을 찾는 학생들이 갑자기 몰려 급하게 추가 주문을 넣었다”고 밝혔다.○ 특수 노린 성형외과 ‘울상’ 한의원·떡집 ‘반색’ 서울 강남 일대 성형외과들은 수능 직후로 잡혀 있던 수술 예약이 줄줄이 취소돼 당혹스러운 모습이었다. 한 유명 성형외과 관계자는 “수험생들의 사전 예약이 많아 수술방을 다 잡아놨는데 이달 남은 보름간 거의 수술을 못하게 됐다”며 “주말에 잡힌 상담 예약도 모두 취소됐다”고 말했다. 수술 예약을 취소한 수험생 이모 양(18)은 “이번 주 토요일 성형수술을 하려고 했는데 12월에나 할 수 있을 것 같다. 대입 면접 일정에 맞춰 얼굴 부기를 뺄 시간을 벌려고 수능 직후 예약한 건데…. 성형수술도 대학 가서나 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떡집과 한의원은 “뜻밖으로 제2의 특수를 맞았다”며 반색했다. 서울 강남의 한 한의원은 “‘총명탕을 일주일 치만 더 타가겠다’는 부모들의 주문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한 떡집도 “이미 당초 예정된 수능날에 떡 주문이 많이 들어왔는데 일주일 뒤로 미뤄져 추가 주문이 계속 들어올 것”이라며 웃었다. 수능 고사장으로 지정된 학교는 이날 모두 휴교했다. 수능은 치러지지 않았지만 고사장 배치표 등 안내판은 그대로였다. 서울 송파구의 한 고교 관계자는 “내일 학생들이 정상 등교하는 대로 고사장 안내판이나 책상 배열을 원래 모습으로 바꿀 계획”이라고 말했다.김예윤 yeah@donga.com·김배중·최지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