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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모옌(莫言·57)은 중국 현대문학의 대표주자로 꼽히며 2000년대 들어 꾸준히 노벨상 유력 후보군에 이름을 올렸다. 그런 그가 2003년 일본을 방문했을 때 후지이 쇼조 도쿄대 교수가 노벨문학상에 대한 생각을 넌지시 물었다. 모옌은 이렇게 답했다. “저는 중국에서 ‘마이너’ 작가입니다. 중국에는 작가협회가 있는데, 그들에게 제 작품은 달갑지 않을 것입니다. 또 어떤 상을 받기 위해서 작품을 쓴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이렇게 스스로를 소수파로 칭했던 모옌은 지난해 중국 작가회의 공동 부주석에 오르며 달라진 중국 내 위상을 보여줬다. 올해 그가 노벨문학상 유력 후보에 오르면서 중국 언론도 이를 앞다퉈 보도하며 큰 관심을 나타냈다. 이번 수상으로 모옌은 중국을 넘어 세계적인 ‘메이저’ 작가가 됐다. 모옌은 1955년 중국 산둥(山東) 성 가오미(高密) 현 둥베이(東北)에서 빈농의 아들로 태어났다. “옷이 없는 여름이면 맨살갗이 새카맣게 되고, 겨울이면 바들바들 떨면서 자랐다”고 그는 회고했다. 문화대혁명이 시작된 후 초등학교를 중퇴하고 집에서 농사를 도왔으며 면실유 공장에서 임시 공원으로 일하기도 했다. 1976년 인민해방군에 입대해 기본적인 의식주가 해결되자 뛸듯이 기뻤다. 글을 쓰기 시작한 것도 이즈음이다. “저처럼 농촌 출신으로 군대에 들어간 후 작가로 전업한 사람이 있다는 것은 그 배경이 상대적으로 평화로운 시대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제가 성인이 된 이후로는 계급투쟁도 줄어들었고, 개인의 자유도 신장되었습니다. 이렇게 되면 순수한 문학이 생겨날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1981년 단편 ‘봄밤에 내리는 소나기’를 발표하면서 작가의 길을 걷기 시작한 모옌의 문학적 보고(寶庫)는 척박한 고향의 모습이다. 혹독한 가뭄, 극심한 홍수, 외세의 침략 등 혼란 속에서 드러나는 인간 본성을 적나라하게 원고지에 옮겼다. 대표작 ‘홍까오량 가족’은 장이머우(張藝謀) 감독이 영화 ‘붉은 수수밭’으로 옮겨 1988년 베를린 영화제 황금곰상을 받았다. ‘술의 나라’(1993년) ‘탄샹싱(檀香刑)’(2001년) ‘개구리’(2009년) 등이 대표작으로 꼽힌다. 대부분 국내에도 출간됐다. 모옌은 농촌의 척박한 현실을 담은 작품을 주로 그리는데, 이것은 작가 자신이 농촌에 대한 경험을 풍부히 갖고 있는 데다 대학에서 기성 문학 교육을 받지 않은 점도 반영된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이것이 그의 글쓰기 자세에서 비롯된다는 시각도 있다. 이욱연 서강대 중국문화과 교수는 “모옌은 자신의 소설이 ‘민중을 위한 글쓰기’가 아니라 ‘민중으로서의 글쓰기’라는 점을 자주 말한다”며 “과거 사회주의 시대에 작가들이 민중을 위한 글쓰기를 내세우면서 기실 지식인 작가의 눈으로 본 민중 세계를 그리면서, 민중 세계를 왜곡했다는 점에 대한 비판이기도 하다”고 분석했다. 모옌은 필명으로 ‘말이 없다’는 뜻이다. 실제 그는 과묵한 성격이지만 책상 앞에 앉으면 달라진다. 장편소설 2권을 석 달 만에 써낼 정도로 입심 좋은 이야기꾼이다. 중국 작가로서는 특이하게도 1982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콜롬비아 작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마술적 리얼리즘 기법을 잘 반영하는 소설가로도 꼽힌다. 1980년대 들어 봉쇄됐던 서방문학의 빗장이 풀려 마르케스를 비롯해 해외 작가들의 작품이 쏟아지는 것을 보고 그는 “온갖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난다(百花齊放)”며 반겼다. 발 빠르게 서구문학과 조우한 것이다. 모옌은 2005년 제2회 서울국제문학포럼 참석차 처음 내한한 뒤 여러 차례 한국을 찾았다. 2005년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고구려사와 관련한 질문에 “개인적으로 잘 알지는 못한다”고 전제한 뒤 “내 생각에 고구려의 문화는 한국 문화가 분명하고, 차후 자연스럽게 한국의 역사로 기록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일본의 과거사 입장에 대해서는 “신사참배, 교과서 왜곡 등 일본 정부의 행위는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일본 정부가 갖고 있는 군국적 태도와 선량한 시민들의 태도는 분명히 구별돼야 한다”고 소신을 밝혔다. ● 모옌 연보―1955년 중국 산둥 성 가오미 현 둥베이 출생―1961년 소학교 입학―1966년 학업 접고 농사일 도움 ―1973년 면실유 공장에서 직공으로 근무―1976년 인민해방군에 입대―1978년 소설 창작 시작―1981년 격월간 ‘롄츠(蓮池)’에 첫 단편 ‘봄밤 에 내리는 소나기’ 발표―1984년 중편 ‘투명한 홍당무’ 발표―1986년 해방군 예술학원 문학과 졸업, ‘인민 문학’지에 장편 ‘홍까오량 가족(紅高粱家族)’ 발표―1988년 ‘홍까오량 가족’을 원작으로 한 영화 ‘붉은 수수밭’(장이머우 감독), 베를린영화 제 황금곰상 수상―1989년 소설 ‘백구 그네 대’로 대만 롄허보 도상 수상―1993년 장편 ‘술의 나라’, ‘풀을 먹는 가족’ 발표―1997년 희곡 ‘패왕별희’ 발표―2001년 장편 ‘탄샹싱(檀香刑)’ 발표―2003년 장편 ‘사십일포’ 발표―2006년 장편 ‘생사피로’ 발표―2009년 장편 ‘개구리’ 발표황인찬 기자 hic@donga.com}

‘사랑하는 안해에게/아이의 병은 어떠한지 혹은 죽지나 않았는지 걱정이오. 그러나 운명이야 어찌하리오. 내 판결 언도는 금요일 오전 9시. 그러나 아환(兒患)이 중하거든 올 필요가 없소. 병중한 아이와 수심의 당신의 정경이 가긍하오. 애써 위로 받으시오.’ 소설가 김동인(1900∼1951)이 1942년 옥중에서 아내에게 쓴 편지다. 판결을 앞둔 자신의 처지보다 아픈 아이와 아내를 걱정하는 가장의 절절함과 안타까움이 담겨 있다. 김동인은 당시 일왕을 비난했다는 이유로 불경죄에 걸려 서대문형무소에 갇혔고, 6개월을 보낸 뒤 석방됐다. 편지는 타인을 향한 그리움이다. 함께할 수 없는 현실에서 그 누군가를 떠올리며 쓴 편지는 온전히 한 사람을 위한 정성이요, 관심이다. 문인들은 어떤 편지를 썼을까. 서울 중구 장충동2가 한국현대문학관에서는 내년 2월 28일까지 ‘편지’전이 열린다. 김동인부터 전봉건 황순원 이문구 차범석 등 문인들이 쓴 편지를 모은 전시다. 소설가 황순원은 제자인 소설가 전상국에게 문학적 정진을 응원하는 편지를 보낸다. ‘서울에 있으면 연락이 있을 줄 알았는데 역시 고향에 가 있었군. 현대문학에 알려서 그곳으로 책과 고료를 보내도록 하겠네. 이름을 한자로 한 것은 편집부에서 그렇게 하면 어떠냐고 하기에 내가 그러라고 했네. 끊임없이 공부하겠다는 생각이 좋네. 열심히 공부 많이 하게.’(1964년 1월 27일) 요즘은 휴대전화로 급한 일을 처리하지만 옛날에는 편지가 전부였다. 문자메시지를 떠올리게 하는 단문의 편지도 있다. ‘이 소년에게 돈 좀 보내 주세요. 책이 나왔으면 함께 부탁합니다. 저녁에 아리스로 나오세요.’ 전봉건 소설가가 박재삼 시인에게 보낸 편지. 아쉽게도 편지를 보낸 시점은 나와 있지 않다. 편지에 나오는 ‘아리스’는 1980, 90년대 서울 광화문 부근에 있던 다방으로 당시 문인들의 아지트였다. 전봉건은 그날 원고료와 책을 받아 봤을까. 문인들은 가도 그들의 일상은 편지에 남았다. 이 가을, 누군가에게 편지를 써 ‘오늘’을 남겨보면 어떨까. 02-2277-4857황인찬 기자 hic@donga.com}

올봄 어느 새벽 시인이 조용히 세상을 떠났다. 자택에서 잠을 자던 그는 또 한번의 아침을 맞지 못하고 영영 눈을 감았다. 마흔 일곱의 나이. 1998년 등단해 시집 네 권을 냈으며 2003년에는 출판사를 차려 시집과 시 계간지를 열정적으로 펴내던 출판인. 사인은 심근경색. 과로가 원인이었다. 출판사 문학의전당 대표였던 김충규 시인(1965∼2012·사진)이다. 김 시인은 부지런했다. 10년 동안 ‘문학의전당 시인선’으로 131권의 시집을 냈으며 철마다 펴낸 계간 ‘시인시각’은 26호까지 나왔다. ‘1인 출판’을 했던 그는 항상 마감에 쫓겼지만 시간을 쪼개 자기 시를 쓰는 데도 게으르지 않았다. 그가 떠난 자리. 장례식장에는 그를 아꼈던 문인들이 내내 자리를 지켰다. 몇몇은 49재까지 챙겼다. 평소 그를 ‘충규 형’이라고 불렀던 한 살 아래 고영 시인(46)은 49재에 참석하지 못했고, 미안한 마음에 고인의 부인에게 안부전화를 걸었다가 뜻밖의 말을 들었다. 문학의전당을 인수하려고 몇몇 사람이 나섰지만 터무니없는 가격을 부르고 있으며, 모두들 ‘돈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계간지는 폐간하겠다고 했다는 것. 부인의 눈물 섞인 하소연을 묵묵히 듣고 있던 고 시인이 한마디했다. “형수, 그러면 나 줘요. 내가 한번 해볼게.” 2003년 등단해 10년간 전업시인으로 살아왔던 고 시인은 이렇게 문학의전당 새 대표가 됐다. 9일 서울 공덕동 문학의전당 사무실에서 만난 고 대표는 “내가 왜 이것을 떠맡게 됐는지 안 믿긴다”며 웃었다. “출판사를 경영할 욕심보다는 사실 형수와 두 자녀만 남은, 충규 형네가 걱정되어서였다”고 털어놨다. 시인은 통장 잔액을 탈탈 털어서 인수금을 냈고, 한동안은 인세를 모두 유족에게 전달했다. “충규 형은 평생 같이 가기로 했던 동지였어요. ‘우리는 죽을 때까지 서정(抒情)으로 가자’고 다짐하기도 했죠.” 사무실에는 고인의 흔적이 가득하다. 고인이 쓰던 책상과 소파, 의자, 냉장고 등 집기가 그대로 남았다. 냉장고 속에는 속이 불편했던 고인이 즐겨 마시던 까스활명수 3병, 책상 아래에는 건강식품까지 남아있다. “이거 볼 때마다 충규 형 생각이 나서, 차마 버리지 못하겠더라고요.” 5월 출판사를 인수한 고 대표는 벌써 4권의 시집을 냈고 다음 달 겨울호부터 계간지를 다시 펴낼 예정이다. 배한봉 시인이 주간을, 조동범 박후기 시인, 강경희 남승원 문학평론가 등 4명은 편집위원을 맡았다. 모두 고인과 절친했던 이들이다. 시인은 가도 잡지는 그를 기리는 사람들의 손에 의해 다시 살아난 셈이다. 제호는 ‘시인시각’에서 ‘시인동네’로 바꿨다. “사실 시인시각은 좀 날카롭다는 이미지가 있었는데 저는 남에게 싫은 소리를 못하는 성격이거든요. 문단 별명도 ‘친절한 고영 씨’래요. 허허…. 잡지를 만들며 ‘새로운 패러다임을 창출해야 한다’ 등의 거창한 무언가는 없어요. 네임 밸류, 출신지면을 따지지 않고 그냥 시인들이 맘껏 뛰어놀 수 있는 운동장을 만들고 싶어요.”황인찬 기자 hic@donga.com}

출판사 ‘문학수첩’은 요즘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이다. ‘해리포터’의 조앤 K 롤링(47)이 처음 쓴 성인소설 ‘캐주얼 베이컨시(The Casual Vacancy·사진)’ 번역작업 때문이다. 영문판 출간으로 해외에서 일기 시작한 인기 바람이 가라앉기 전에 가급적 빨리 한글판을 내놓을 계획이다. 문학수첩 신주현 팀장은 “출간되자마자 번역에 들어갔다. 12월 출간을 목표로 하고 있는데 빠듯할 것 같다”고 말했다. ‘캐주얼 베이컨시’ 영문판은 지난달 27일 출간됐다. 문학수첩은 국내 다른 출판사들과의 경쟁 끝에 100만 달러(약 11억1000만 원)가 넘는 판권료를 주고 국내 출판권을 확보했다. 영문판과 거의 동시에 한글판을 내놓고 싶었다. 하지만 국내 대형 서점에 영문판이 깔리기를 기다려 부랴부랴 사와야 했다. 롤링 측이 영문판 출간 전에 어떤 사전 원고도 넘겨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영문판은 502쪽. 영문을 우리말로 바꿀 경우 분량이 1.5배가량 늘어나는 것을 감안하면 한글판은 750쪽 이상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문학수첩은 1, 2권으로 나누어 낼 예정이다. 작품은 가상의 전원 마을인 영국 패그퍼드를 배경으로 한 블랙코미디다. 지방 의원이 갑자기 사망한 뒤 보궐선거가 치러지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다툼과 광기를 그렸다. 마법과 환상을 다룬 ‘해리포터’ 시리즈와는 달리 음주, 마약, 매춘 등을 여과 없이 그린 성인물이다. 현지 언론의 평가는 엇갈린다. 영국 더타임스는 “동시대 영국 소설 중에서 단연 뛰어난 작품”이라고 호평했다. 반면 가디언은 “‘머글’(인간) 세상의 진부한 이야기를 잘 표현하기는 했지만 폭넓은 관심을 받을 만한 수준은 아니다”라고 보도했다. 롤링의 변신에 대한 독자의 기대치는 높다. 영국에서는 사전 예약만 100만 부를 넘겼다. 미국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소설 부문(양장본) 1위, 아마존닷컴 베스트셀러 종합 3위에 올라 있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아무리 많은 우산이 있어도 비 오면 들고나가는 것은 그중 하나. 밥상이 화려해도 두 개의 입으로 먹을 수는 없는 법, 결국 음식이 들어가는 입은 하나. 우리 곁에는 유독 하나가 많다. 사람들은 결국 그 하나의 점으로 모인다. 하나의 점, 하루의 잠, 한번의 삶…. 나는 오늘도 달게 밥 한 공기를 비우고, 아랫목에 누워 느긋이 잠을 청한다. 한 치의 어긋남도 없다. ‘이달에 만나는 시’ 10월 추천작으로 이민하 시인(45)의 ‘거리의 식사’를 선정했다. 8월 말 나온 시인의 세 번째 시집 ‘모조 숲’(민음사)에 수록됐다. 시인 이건청 장석주 김요일 이원 손택수가 추천에 참여했다. 어떤 시는 섬광처럼 찾아온다. 이런 시는 단숨에 ‘쓰이고’, 나중에 별로 손을 대지 않아도 된다. ‘거리의 식사’는 2010년 여름 시인에게 걸어 들어온 시다. “다른 원고들을 퇴고하고 있다가 별다른 동기 없이 그냥 섬광처럼 제게 왔어요. 시를 쓴 게 아니라 그냥 (머릿속에서) 꺼냈다고나 할까요.” 세상은 흔히 둘로 나뉜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말이 많은 자와 없는 자. 하지만 이들은 결국 하나의 지점에서 만난다고 시인은 말한다. 침묵이고, 휴식이고, 죽음이다. “사람들이 개별적으로 살고 있지만 외롭지 않다고 봐요. 다 똑같은 지점을 향해 나아가고 있고, 결국 똑같은 삶을 살게 되는 거죠.” 이원 시인은 “현실이 가리고 싶어 하는 현실을 ‘환상’이라고 한다면 이민하의 시는 환상에 속한다. 절실해서 끔찍한 이 환상의 스크린을 ‘결정적 현실’이라고 부를 수 있다”며 추천했다. 김요일 시인의 추천사는 이렇다. “투명한 슬픔의 언어로 한 가닥 한 가닥 뽑아 직조한 이민하의 시편들은 잘 짜인 은빛 거미줄처럼 지독히도 아름답게 출렁인다.” 장석주 시인은 문정희 시인의 시집 ‘카르마의 바다’(문예중앙)를 추천했다. “비장하다. 거침이 없다. 물을 앞세워 마음의 비장과 거침없음을 노래한다. 시작과 끝, 생명과 죽음, 태초와 세기말 사이에서 물은 출렁인다. ‘물시’들로 가득 찬 시집이다.” 이건청 시인은 송상욱 시인의 시집 ‘무무놀량’(맷돌)을 추천하며 “진성성의 언어로 충일하다. 눈치 안 보고 제 길만을 딛고 온, 73세 순정 시인의 시편들이 소중한 감동으로 다가온다”고 평했다. 손택수 시인은 신현락 시인의 시집 ‘히말라야 독수리’(북인)를 추천하며 이렇게 평했다. “기꺼이 주례사비평을 하고 싶은 욕망을 자극한다. 그것은 숨은 꽃향기를 맡지 못하고 산 세월에 대한 참을 수 없는 부끄러움 때문이다. 낯섦이 멀리 있지 않고 이렇게 가까이 있음을 알겠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인촌 김성수(仁村 金性洙) 선생의 유지를 기리기 위해 제정된 제26회 인촌상 시상식이 8일 오후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호텔 크리스털볼룸에서 열렸다. 인촌상은 재단법인 인촌기념회(이사장 현승종)와 동아일보사가 제정해 운영한다. 현 이사장은 △서울과학고(교육 부문)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산업기술) △임형택 성균관대 명예교수(인문사회문학) △김은준 KAIST 석좌교수(자연과학) △이길여 가천길재단 회장(공공봉사) 등 5명에게 상패와 기념메달, 상금 1억 원을 각각 수여했다. 인촌상은 일제강점기 암울한 시대에 동아일보를 창간하고 경성방직과 고려대를 설립한 민족 지도자 인촌 선생의 유지를 잇기 위해 1987년 제정됐다. 해마다 인촌 선생의 탄생일(10월 11일)에 맞춰 시상식을 열고 있다. 교육, 언론출판, 산업기술, 인문사회문학, 자연과학, 공공봉사 등 6개 부문에 대해 24명의 외부 심사위원이 5월 중순부터 석 달간 부문별로 2∼4차례 회의를 열어 최종 후보를 선정했고 인촌상운영위원회(위원장 조완규)가 5개 부문의 수상자를 확정했다. 언론출판 부문은 수상자를 내지 못했다. 현 이사장은 인사말에서 “영광의 인촌상을 받으시는 다섯 분은 모두 인촌 선생이 평생 구현하고자 했던 민족 사랑과 공익정신을 학교와 기업, 연구실 그리고 사회에서 헌신적으로 실천해 오신 분들”이라며 “수상을 계기로 더욱 정진하여 급박하게 돌아가는 대변혁의 시대에 국가와 사회의 발전을 위하여 더 크게 공헌하시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한승수 전 국무총리는 축사를 통해 “우리나라의 패러다임 변화를 주도하고 있는 것은 바로 각 분야의 혁신”이라며 “수상자들의 공통점은 바로 이러한 혁신을 통하여 각자 자기 분야에서 새로운 패러다임을 창출해 가는 데 앞장섰고 앞으로도 앞장서 가면서 우리나라의 발전을 선도할 분들이고 기관이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최병수 서울과학고 교장은 “수상을 계기로 학교에 주어진 역사적 사명을 되새기고자 한다. 인촌 선생의 뜻이었던 세계를 이끌어갈 글로벌 인재를 배출하기 위해 한층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은 “30여 년 전 반도체 사업에 투자를 감행한 삼성, 기초기술도 인력도 없으면서 ‘안 된다는 생각을 버리라’고 말했던 선배와 동료, 한국의 첨단산업을 키워보려는 학계와 연구소, 정부의 지원이 없었다면 저의 성과도 없었을 것”이라며 “한국 반도체 개발을 위해 힘쓰신 분들에게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임형택 성균관대 명예교수는 ‘세계 인류 문명의 큰 수레바퀴는 다시 한번 돌았다’ 등 동아일보 창간사(1920년 4월 1일)의 일부를 읽은 뒤 “창간사는 기념비적인 문장이며 이 글에는 인촌 선생의 뜻이 담겼다”며 “창간사에 표명된 그 정신을 슬기롭고 창조적으로 펼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은준 KAIST 석좌교수는 “신경과학을 전공하고 있는 학자로서 다행히 오래전 우리나라는 뇌 연구 촉진 법안이 통과돼 구체적인 실행 계획에 따라 연구개발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며 “저에게 일할 기회를 준 KAIST와 생명과학 연구진에게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이길여 가천길재단 회장은 “제가 고등학생일 때 6·25전쟁이 일어나 저와 같이 공부하던 남학생들이 전쟁터에 갔다. 그들에 대한 미안함과 안타까움이 저를 의료봉사의 길로 나아가게 했다”며 “이룬 것은 부족하지만 앞으로 할 일이 많다고 생각한다. 이것을 격려하기 위해서 큰 상을 주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시상식에는 수상자와 가족, 역대 수상자, 각계 인사 등 350여 명이 참석했으며 한국예술종합학교 이성주 교수(바이올린)와 그가 지도하는 실내악단 ‘조이 오브 스트링스’, 바리톤 공병우 씨가 축하공연을 펼쳤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신성미 기자 savoring@donga.com :: 주요 참석자 명단 ::▽정·관·법조계=김수한 김원기 전 국회의장, 이현재 이홍구 고건 이한동 한승수 전 국무총리,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 정세균 민주통합당 상임고문, (이하 가나다순) 김병국 국립외교원장, 고흥길 특임장관, 김충식 방송통신위원회 부위원장, 박인숙 새누리당 의원, 박인주 대통령사회통합수석비서관, 송석구 사회통합위원회 위원장, 오정소 한국정보기술연구원 이사장, 유준상 한국정보기술연구원장, 이돈희 전 교육부 장관, 이상혁 변호사, 이승환 전 그리스 주재 대사,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 이진강 전 대한변호사협회장, 장성원 전 민주당 의원, 조완규 전 교육부 장관, 최명해 김앤장법률사무소 고문, 최정환 변호사, 현인택 대통령통일정책특보 ▽학계·교육계=강선보 고려대 교무부총장, 강성진 고려대 국제처장, 권기준 중앙고 교장, 권대봉 고려대 교수, 권오경 한양대 부총장, 김광수 고려대부고 교장, 김규혁 고려대 총무처장, 김동원 고려대 기획예산처장, 김린 고려대 의무부총장 겸 의료원장, 김백영 재능대 교수, 김문석 인촌장학생동문회 총무이사, 김병철 고려대 총장, 김병휘 한양대 명예교수, 김상기 고려사이버대 기획예산처장, 김상식 고려대 연구처장, 김상인 중앙고 행정실장, 김수용 연세대 명예교수, 김영 인하대 교육대학원장, 김영길 오산대 교수, 김은준 KAIST 교수, 김재천 전 고려중앙학원 사무국장, 김정배 전 고려대 총장, 김정회 KAIST 교수, 김종길 고려대 명예교수, 김중순 고려사이버대 총장, 김헌규 동국대 명예교수, 김흔 전 중앙고 행정실장, 나홍석 고려사이버대 연구개발처장, 남시욱 세종대 석좌교수, 박길성 고려대 문과대학장, 박동원 고려중앙학원 사무국장, 박명식 고려중앙학원 법인본부장, 박은택 고신대 의대 교수, 박정율 고려대의료원 의무기획처장, 박정호 고려대 대학원장 겸 미래전략실장, 박효선 길병원 간호부장, 백성기 전 포스텍 총장, 소진광 가천대 대외부총장, 송영배 서울대 명예교수, 송재소 성균관대 명예교수, 송진원 고려대 의무교학처장, 신학수 서울과학고 융합인재교육기획부장, 신희관 서울과학고 교감, 양승목 서울대 교수, 양승현 길병원 행정원장, 양옥경 이화여대 교수, 염재호 고려대 행정대외부총장, 오명 KAIST 이사장, 오수길 고려사이버대 학생처장, 이계형 단국대 산학협력부총장, 이근 길병원 총괄부원장, 이기수 전 고려대 총장, 이기태 고려사이버대 교무처장, 이동렬 고려대 임상치의학대학원장, 이명철 가천대 길병원장, 이성규 서울대 명예교수, 이연숙 고려대 사범대학장 겸 교육대학원장, 이영선 전 한림대 총장, 이장규 고려대부중 교장, 이재열 고려사이버대 총무처장, 이정한 서울과학고 연구부장, 이종세 경희대 객원교수, 이창로 대광학원 명예이사장, 이태수 인제대 석좌교수, 이택휘 연세대 석좌교수, 이호왕 전 학술원 회장, 이희성 길병원 재단기획국장, 장경아 강석철 김민정 김춘성 서울과학고 교사, 전광현 서울신학대 교수, 전인초 연세대 명예교수, 정구종 동서대 일본연구센터 소장, 정낙철 고려대 이과대학장, 정원주 고려대 정보전산처장, 정의숙 전 이화여대 총장, 정진석 한국외국어대 명예교수, 정환국 동국대 교수, 조용성 고려대 대외협력처장, 조효숙 가천대 부총장, 진덕규 이화여대 명예교수, 진재교 성균관대 교수, 채수원 고려대 공과대학장 겸 공학대학원장, 최덕 명지대 교수, 최성재 한양대 석좌교수, 최승일 고려대 세종부총장, 최정호 울산대 석좌교수, 최희조 세종대 석좌교수, 한기형 성균관대 교수, 한상국 서울여상 교장, 현재천 고려대 명예교수, 홍정선 인하대 교수 ▽경제계=권영민 태영건설 상무, 김상하 삼양그룹 회장, 김남용 이승백 삼성전자 상무, 김명하 김앤에이엘 회장, 김선휘 삼양염업 회장, 김영재 대덕전자 사장, 김원 삼양홀딩스 부회장, 김윤 삼양홀딩스 회장, 김이환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 부회장, 김재억 삼양홀딩스 감사, 김재열 삼성엔지니어링 사장, 김정식 대덕전자 회장, 김종중 삼성전자 사장, 김준식 옥경석 원기찬 삼성전자 부사장, 김진우 LIG건설 경영전략팀 차장, 김진호 전 한국토지공사 사장, 목상균 삼양사 감사, 박문두 경일상사 대표, 박종석 청산기획 대표, 안병모 유창건축사무소 사장, 어윤대 KB금융지주 회장, 양재룡 한국은행 금융통계부장, 양희주 서울저축은행 서초지점장, 오세정 금융감독원 국장, 유종섭 전 한국여신전문금융업협회 회장, 윤성태 파라다이스그룹 부회장, 이병연 세화애드컴 대표, 이준용 대림산업 명예회장, 이중홍 경방 회장, 허진규 일진그룹 회장 ▽언론·출판·문화·체육계=강인섭 강우규의사기념사업회 회장, 고의홍 전 국민일보 전무, 김광희 동아일보 동우회장, 김경희 지식산업사 사장, 김달수 울산김씨대종회장, 김병건 동아꿈나무재단 이사장, 김은 인촌기념회 이사, 김복수 김일동 김일수 홍성혁 전 동아일보 부국장, 김성수 울산김씨대종회 서울지역종친회장, 김성수 푸르메재단 이사장, 김인호 강우규의사기념사업회 이사, 김종규 한국박물관협회 명예회장, 김종태 평화의마을 대표, 김주영 소설가, 문명호 공정언론시민연대 공동대표, 문영복 전 한국방송광고공사 이사, 민현식 전 화정평화재단 감사, 박경석 대통령포럼 공동대표, 박기정 전 전남일보 사장, 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 박창래 어린이재단 대표, 박충서 꿈나무재단 관리국장, 성낙오 대한언론인회 편집위원장 겸 편집주간, 송광석 경인일보 사장, 안평선 코리아미디어센터 고문, 여영무 뉴스앤피플 대표, 윤양중 일민문화재단 이사장, 이귀례 한국차문화협회 이사장, 이대훈 전 동아일보 이사, 이동환 한국고전번역원장, 이두환 전 동아일보 출판영업국장, 이연택 대한체육회 명예회장, 이재호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원장, 이종석 위암장지연선생기념사업회 회장, 이철승 서울평화상문화재단 이사장, 이현락 전 경기일보 사장, 임연철 전 국립중앙극장장, 정진홍 중앙일보 논설위원, 최규철 전 뉴스통신진흥회 이사장, 최동욱 라디오서울코리아 대표, 한돈희 인촌기념회 감사, 홍성훈 한국문인협회 홍보위원장, 홍원기 대한언론인회장, 홍인근 국제한국연구원 이사, 황의봉 전 동아일보 출판국장[바로잡습니다]◇본보 9일자 A2면 ‘제26회 인촌상 시상식’ 주요 참석자 명단에서 ‘문명호 한국신문윤리위원회 심의실장’을 ‘문명호 공정언론시민연대 공동대표’로 바로잡습니다. 문 대표와 문 실장께 사과드립니다.}

성공이란 무엇일까. 이를테면 가수 싸이가 미국 빌보드 차트 1위에 오르면 성공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싸이와 대중의 기대치는 그것으로 충족될까. ‘연속 몇 주 1위’나 ‘그래미상 후보 혹은 수상’ 등으로 기대가 옮겨가지는 않을까. 누구나 성공이라고 인정할 수 있는 정상이 있기는 한 것일까. 이 소설을 꿰뚫는 질문은 바로 이것이다. 많은 사람이 성공을 위해 달려가고, 그 과정에서 여러 성취를 이뤄낸다. 하지만 만족감보다는 또 다른 성공에 대한 갈증과 열망, 허무가 찾아온다. 성공은 끝끝내 잡을 수 없는 신기루와 같다. 저자의 이름은 기억 못해도, ‘빅 픽처’라는 책 제목은 한 번쯤 들어본 사람이 많을 것이다. 2010년 국내에 출간된 ‘빅 픽처’는 40만 부가 넘게 팔렸고 스테디셀러가 됐다. ‘빅 픽처’에서 위기에 빠진 한 변호사의 얘기를 그린 저자는 ‘템테이션’에서는 한 작가의 굴곡 많은 성공기를 숨 가쁘게 그린다. 리듬감 있는 전개와 재치 있는 입담, 그리고 연속되는 반전이 좀처럼 책을 놓기 힘들게 만든다. 롤러코스터를 타는 기분이다. ‘꿈의 도시’ 미국 로스앤젤레스. 10년 넘게 무명작가에 머물던 데이비드 아미티지는 방송국에 보낸 시트콤 대본이 채택되는 행운을 얻는다. 시트콤의 대성공으로 일약 스타 작가가 된 그에게 할리우드의 이목이 쏠린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한 삼류 연예지에 시트콤 대본에 대한 표절 의혹 기사가 실려 그는 순식간에 바닥으로 곤두박질한다. 잠재의식 속에 있던 다른 작가의 유명 문구들을 자신이 새로 창작해낸 것으로 ‘헷갈려서’ 한두 줄 옮긴 것이지만, 대중은 그 연유를 따지지 않는다. 결국 표절 작가로 찍힌 그에게 애인, 친구, 사업파트너들은 한순간에 등을 돌린다. 작품은 겉으로는 화려해 보이는 할리우드의 추악한 뒷모습을 생생하게 전한다. 약하면 잡혀먹는 정글 같은 현실이다. “단순한 한 가지 전제, 즉 자기에게 도움이 될 때만 그 사람에게 관심을 쏟는다는 전제 아래 돌아간다. (할리우드에선) 현실을 똑바로 보고, 게임의 규칙을 뼈저리게 깨닫게 된다.” 나락으로 떨어졌던 아미티지는 반전의 기회를 얻고, 통렬한 복수에 성공한다. 술술 읽히는 오락 소설처럼 보이지만 마냥 가볍지만은 않다. 결국 아미티지가 재기할 수 있었던 것은 성공에 대한 집착을 버렸기 때문이고, 그로 인해 우연한 기회가 찾아왔기 때문이다. 파란만장한 시기를 보낸 뒤 아미티지가 깨달은, 성공에 대한 철학도 곰곰이 씹어볼 만하다. 결국 성공이란 자기 존재에 대한 확인이라는 것, 그 확인은 자신을 사랑해 주는 사람,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어쩌면 성공은 히말라야에 있는 고봉이 아니라 생각보다 낮고 가까운, 우리 곁의 작은 언덕일 수도 있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니 천국 함 가볼래? 가보고 싶으면 내한테 좀 온나.” 전화를 받고 친구가 일하는 서울고등검찰청으로 찾아간 것은 지난해 10월의 어느 날. 의자에 앉자 친구는 두툼한 자료들을 건넸다. A4 용지 500장이 넘는 방대한 마약 수사 자료와 각종 수사 실무서들. 친구는 대검찰청 마약과장 등을 지낸 ‘마약통’ 정대표 검사(현 한국소비자원장)였다. “퇴직을 앞두고 마약의 유통 및 남용 실태를 대중에게 알리고 싶은데, 니 이걸로 소설을 쓸 수 있겠나.” 자료를 받아든 소설가 전동하(57)는 고심했다. 실제 수사 자료를 접하거나 검사의 설명을 들을 수 있기에 소재는 정확하고 풍부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그 뛰어난 사실성이 소설적 상상력을 제한하는 단점으로 작용할 수 있었다. 어쨌거나 막역한 고교 동창(대구 경북고 56기)의 청을 거절할 수는 없었다. 전동하의 네 번째 장편 소설 ‘천국놀이’(나남·사진)의 뒷얘기다. 은행원 출신의 작가는 1999년 첫 소설 ‘선물’이 5만 부를 넘기며 주목받았다. 이번 소설에서 그는 마약 수사 전문인 백강훈 검사와 수사관들의 활약상, 그리고 그들이 파헤친 국내 마약 유통 실태를 박진감 있게 전한다. 특히 마약사범 윤진호는 백 검사와 함께 소설을 이끌어가는 중심축인데, 추석 연휴 전에 만난 작가는 이렇게 털어놨다. “사실 윤진호는 저희와 같은 고교 동창이에요. 윤진호란 소설 속 이름은 가명인데, 고교 때 일진 비슷한 폭력서클에 있던 친구였죠. 친구(정대표 원장)가 처음 검거한 마약사범이 그 녀석이라더군요. 묘한 인연이죠. 세 명이 같이 학교 다녔는데 한 명은 검사, 한 명은 뽕쟁이(히로뽕 투약사범), 한 명은 이들 얘기를 쓰는 작가가 됐으니까요.” 소설에서처럼 정 원장은 마약 수사를 맡은 뒤 제일 먼저 ‘윤진호’를 찾아가 검거했다. 마약 수사 검사로서 친구가 히로뽕을 투약하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었다. “다른 검사한테 잡히면 형을 많이 살게 되니까, 먼저 잡아서 국립부곡병원에서 약을 끊는 치료를 받는 조건으로 기소유예 처분을 했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검사 친구의 ‘옛정’에도 불구하고 ‘윤진호’는 퇴원 후 다시 마약에 손을 댔고, 결국 다른 검사의 손에 징역형을 살게 됐다. 지금은 소식이 끊겼다. 소설은 주로 1990년대 마약 세계의 어두운 일면을 생생하게 조명한다. 파렴치하고 단순 과격한 마약 사범들과 피폐해져 가는 투약범들, 이들을 잡는 수사진의 모습이 역동적으로 펼쳐진다. 올해 개봉해 460만 관객을 넘기며 흥행한 영화 ‘범죄와의 전쟁’처럼 시대상을 실감나게 되살렸다. 책을 읽다보면 소설인지, 실제인지 혼동되는 부분이 꽤 나온다. 검찰의 사건 담당 계장이 범인에게 수사정보를 흘리거나, 현직 장관이 검사에게 “친구 딸의 선처를 부탁한다”며 압력을 넣는 부분 등이다. “실화가 70%, 나머지는 허구죠. 하지만 계장이나 장관 얘기는 모두 실제 있었던 일입니다. 특히 장관이 선처를 요구한 마약사범(작품 속 ‘이효진’)은 국회의원의 딸이자 유명 남자 가수의 처제이기도 하지요. 결국 자살했습니다.” 소설은 출간 전에 여러 번 ‘감수’를 받았다. 정 원장과 수사관들이 작품을 돌려 읽으며, 사건의 사실성을 따지고, 법률적 검토도 했다. 작가로서는 불편한 점도 있었을 법하다. “내 마음대로 (작품을) 끌고 가고 싶었는데 답답하고 아쉬운 부분도 있었죠. 하지만 이 소설이 가진 사실의 힘들이 마약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는 데 큰 도움을 줄 거라 믿습니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니 천국 함 가볼래? 가보고 싶으면 내한테 좀 온나." 전화를 받고 친구가 일하는 서울고등검찰청으로 찾아간 것은 지난해 10월의 어느 날. 의자에 앉자 친구는 두툼한 자료들을 건넸다. A4 용지 500장이 넘는 방대한 마약 수사 자료와 각종 수사 실무서들. 친구는 대검찰청 마약과장 등을 지낸 '마약통' 정대표 검사(현 한국소비자보호원장)였다. "퇴직을 앞두고 마약의 유통 및 남용 실태를 대중에게 알리고 싶은데, 니 이걸로 소설을 쓸 수 있겠나." 자료를 받아든 소설가 전동하(57)는 고심했다. 실제 수사 자료를 접하거나 검사의 설명을 들을 수 있기에 소재는 정확하고 풍부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그 뛰어난 사실성이 소설적 상상력을 제한하는 단점으로 작용할 수 있었다. 어쨌거나 막역한 고교 동창(대구 경북고 56기)의 청을 거절할 수는 없었다. 전동하의 네 번째 장편 소설 '천국놀이'(나남)의 뒷얘기다. 은행원 출신의 작가는 1999년 첫 소설 '선물'이 5만부를 넘기며 주목받았다. 이번 소설에서 그는 마약 수사 전문인 백강훈 검사와 수사관들의 활약상, 그리고 그들이 파헤친 국내 마약 유통 실태를 박진감 있게 전한다. 특히 마약사범 윤진호는 백 검사와 함께 소설을 이끌어가는 중심축인데, 추석 연휴 전에 만난 작가는 이렇게 털어놨다. "사실 윤진호는 저희와 같은 고교 동창이예요. 윤진호란 소설 속 이름은 익명인데, 고교 때 일진 비슷한 폭력서클에 있던 친구였죠. 친구(정대표 원장)가 처음 검거한 마약사범이 그 녀석이라더군요. 묘한 인연이죠. 세 명이 같이 학교 다녔는데 한명은 검사, 한명은 뽕쟁이(필로폰 투약사범), 한명은 이들 얘기를 쓰는 작가가 됐으니까요." 소설에서처럼 정 원장은 마약 수사를 맡은 뒤 제일 먼저 '윤진호'를 찾아가 검거했다. 마약 검사로서 친구가 필로폰을 하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었다. "다른 검사한테 잡히면 형을 많이 살게 되니까, 먼저 잡아서 국립부곡병원에서 약을 끊는 치료를 받는 조건으로 기소유예 처분을 했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검사 친구의 '옛정'에도 불구하고 '윤진호'는 퇴원 후 다시 마약에 손을 댔고, 결국 다른 검사의 손에 징역형을 살게 됐다. 지금은 소식이 끊겼다. 소설은 주로 1990년대 마약 세계의 어두운 일면을 생생하게 조명한다. 파렴치하고 단순 과격한 마약 사범들과 피폐해져 가는 투약범들, 이들을 잡는 수사진의 모습이 역동적으로 펼쳐진다. 올해 개봉해 460만 관객을 넘기며 흥행한 영화 '범죄와의 전쟁'처럼 시대상을 실감나게 되살렸다. 책을 읽다보면 소설인지, 실제인지 혼동되는 부분이 꽤 나온다. 검찰의 사건 담당 계장이 범인에게 수사정보를 흘리거나, 현직 장관이 검사에게 "친구 딸의 선처를 부탁한다"며 압력을 넣는 부분 등이다. "실화가 70%, 나머지는 허구죠. 하지만 계장이나 장관 얘기는 모두 실제 있었던 일입니다. 특히 장관이 선처를 요구한 마약사범(작품 속 '이효진')은 국회의원의 딸이자 유명 남자 가수의 처제이기도 하지요. 결국 자살했습니다." 소설은 출간 전까지 여러 번 '감수'를 받았다. 정 원장과 수사관들이 작품을 돌려 읽으며, 사건의 사실성을 따지고, 법률적 검토도 했다. 작가로서는 불편한 점도 있었을 법하다. "내 마음대로 (작품을)끌고 가고 싶었는데 답답하고 아쉬운 부분도 있었죠. 하지만 이 소설이 가진 사실의 힘들이 마약의 경각심을 높이는데 큰 도움을 줄 거라 믿습니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이 소설은 방(房)에 관한 얘기다. 더 정확하게는 자신에게 맞는 방을 찾아 떠나는 여행이다. 이 세상에 수많은 방이 있고, 그 칸칸마다 또 수많은 사람이 들어가 살고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더 넓은 방, 깨끗한 방만을 찾지 방과 대화하려는 시도를 하지는 않는다. 이 소설은 방과 사람의 관계를 곰곰이 짚어보는 색다른 사색의 기회를 제공한다. 여기 독특한 부동산중개업자가 있다. 스물두 살의 뚱뚱한 젊은 여성인 ‘나’. 엄마와 할머니를 잃고 혼자가 된 나는 계부가 차린 부동산중개업소에서 일한다. 나에게는 비밀이 하나 있다. 매물로 내놓은, 아무도 없는 빈집에 들어가 마룻바닥을 쓸고, 화장실도 청소한다. ‘추러스’도 먹고 밀감도 까먹는다. 밤이 되면 침낭을 깔고 잠을 청한다. 멀쩡한 집이 따로 있지만 나는 빈집들을 돌며 평안함을 느낀다. 마치 주인에게 버려진 동물을 돌보듯이, 집이 갖고 있는 상처와 추억을 보듬어준다. ‘밤의 시간은 1초씩, 1분씩 흐르지 않는다. 아니, 밤의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흐르는 것은 낮의 시간이다. 밤의 시간은 웅덩이처럼 고인다, 이슬처럼 맺힌다, 안개처럼 퍼진다.’ 방은 밤과 만난다. 밤에 빈집을 찾은 나는 밤의 일부가 되며 평안함을 느낀다. 작가는 현대인의 고독과 외로움을 방과 밤이라는 시공간을 통해 효과적으로 그려낸다. ‘방(집)의 임자는 따로 있다’는 말을 믿는 나는 운명적인 집을 만난다. 오래된 단층 주택인 ‘장독대집’이다. 좀처럼 나가지 않던 이 집에 ‘쌍둥이 여사들’이 이사를 오면서 나는 이들과 가까워진다. 소설은 이즈음 한 번 더 상상의 나래를 편다. 쌍둥이 여사들의 집에 ‘나이트룸’이 있으며, 이 공간에 혼자 들어서면 무언가 치유 받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것. 불면증에 시달리던 나는 나이트룸에서 달게 낮잠을 잔다. 다양한 여성들이 나처럼 쌍둥이 여사 집을 찾아, 나이트룸에 들어가고 평온해진다. 하지만 평화는 오래가지 않는다. ‘기대어 앉은 오후’ ‘감각의 시절’ ‘21세기 라운지’에 이은 작가의 네 번째 장편. 차분하고도 감각적인 문체가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 시각적이다. 특히 사랑도 꿈도 접어둔 채 버거운 현실 속에서 지쳐 체념하는 청춘들의 모습이 쓸쓸히 그려진다. ‘나’가 짝사랑한 남자 대학 신입생이 제대로 된 방 한 칸을 마련하지 못하고, 고시원에서 생활하며 야간 아르바이트를 하는 모습은 ‘88만 원 세대’의 현실을 설득력 있게 고발한다. 소설을 읽고 나면 ‘나’처럼 심야에 거리로 나서고 싶어진다. 조명 밝은 패스트푸드점, 편의점에 앉아 창문을 통해 다른 사람들의 외로움을 들여다보고 싶다. 작가는 컵라면 안쪽에 있는 표시선에 맞춰 알맞게 물을 붓듯 우리가 느끼는 현대인의 슬픔과 외로움을 딱 맞게 채워 넣었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류드밀라 울리츠카야 소설의 주제는 가족과 여성성, 관용과 희생의 휴머니즘, 제도적 권력으로부터의 자유 등이다. 러시아 문학의 대가들이 다뤄왔던 삶의 의미와 구원의 문제로부터 크게 벗어나지 않는 주제들이지만, 그의 작품은 스케일이 더 크고 사실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1983년 첫 단편 ‘100개의 단추’를 발표했지만 주목을 받지 못했다. 1992년 러시아의 저명한 문예지 ‘노보이 미르’에 실린 ‘소네치카’로 문단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소네치카란 이름의 여성을 통해 인내와 관용의 러시아 여성상을 그린 이 작품으로 그는 러시아 최고 문학상인 ‘러시아 부커상’ 최종 후보에 올랐고, 프랑스 메디치상 등을 받았다. 2001년 장편 ‘쿠코츠키의 경우’로 ‘러시아 부커상’을 여성 작가 최초로 받았고, 2006년 ‘번역가 다니엘 슈타인’으로 ‘러시아 대작상’을 수상했다. ‘번역가…’는 100만 부 이상 판매돼 그는 작품성과 대중성을 겸비한 작가로 자리매김했다. 그는 자신이 천착하는 주제인 ‘가족의 복원’에 대해 “(내 소설은) 가족과 가정에 대한 나의 진혼곡이라 할 수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한국의 첫 세계문학상인 박경리 문학상은 작품성뿐만 아니라 작가의 인품과 사회 기여도도 평가한다. 제2회 박경리 문학상은 약 1년 반 동안의 준비와 심사 과정을 통해 수상자를 선정했다. 박경리문학상위원회(위원장 이홍구, 위원 장명수 정창영 최문순 최일남)는 지난해 4월 심사위원회를 꾸렸고, 5월부터 국내외 대형출판사와 문학 단체에 후보자 추천을 의뢰했다. 심사위원들은 올해 5월까지 총 4회에 걸쳐 후보자들을 집중 심사한 뒤 6월 최종심 후보를 4명으로 압축했다. 박경리문학상 심사위원회(위원장 이태동)는 이달 중순 열린 최종심사에서 “울리츠카야의 작품 속 인물들은 거대한 역사의 수레바퀴에 밟히면서도 끈질기게 살아남아 인간의 존엄성과 가족의 의미에 대한 인류 보편의 믿음을 증언한다”며 울리츠카야를 최종 후보자로 선정했다. 시상식은 다음 달 27일 오후 3시 강원 원주시 무실동 백운아트홀에서 열린다. 토지문화관, 박경리문학공원 등 원주시 일대에서는 10월 5∼30일 ‘2012 박경리 문학제’가 열린다. 박경리 문장전(10월 5∼30일), 전국 청소년 백일장, 극단 학전의 축하 뮤지컬 ‘무적의 삼총사’(이상 10월 20일), 문학포럼 ‘토지와 인접 학문’(10월 26일), 유라시안필하모닉 축하음악회(10월 27일) 등 다채로운 행사가 펼쳐진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토지문화재단(이사장 김영주)과 박경리문학상위원회, 동아일보가 공동 주최한 제2회 박경리 문학상 수상자로 러시아의 소설가 류드밀라 울리츠카야(69·사진)가 선정됐다. 박경리 문학상은 ‘토지’의 작가 박경리(1926∼2008)를 기리기 위해 지난해 제정됐으며 초대 수상자는 ‘광장’의 작가 최인훈 씨였다. 올해 해외 문인에게 문호를 개방해 한국의 첫 세계문학상이 됐으며 수상자는 한국 문학상 가운데 최고 상금인 1억5000만 원을 받는다. 강원도와 원주시, 협성문화재단이 공동 후원했다. 토지문화재단은 27일 “울리츠카야는 35개 언어로 작품이 번역돼 세계에서 널리 사랑받는 작가로, 그의 섬세한 펜 아래 도스토옙스키와 톨스토이, 파스테르나크 등 러시아 대문호들이 이끈 ‘구원의 미학’이 장엄하게 되살아나고 있다. 이 점은 울리츠카야가 21세기 세계 문학 발전에 기여하게 될 가장 중요한 덕목”이라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시상식은 다음 달 27일 강원 원주시 백운아트홀에서 열린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한국에서 문학상을 받는 것은 예상치 못한 일이다. 수상 소식을 듣고 문화적 차이와 국경을 넘어 모두가 이해할 수 있는 보편적인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2회 박경리 문학상 수상자인 러시아 소설가 류드밀라 울리츠카야(69)는 e메일 인터뷰에서 이렇게 수상 소감을 전했다. 마흔 살에 늦깎이 소설가로 데뷔한 그는 현대 러시아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평가받고 있다. 그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정적인 석유재벌 미하일 호도르콥스키를 두둔하는 소신 행보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울리츠카야는 다음 달 25일 방한해 시상식을 비롯한 각종 행사에 참석할 예정이다. ―박경리 문학상을 받은 첫 번째 외국 작가이다. “오래전부터 세상이 작아진 느낌을 받고 있다. 동서양이 가까워지고 서로에 대한 관심이 뜨거워지고 있다. 한국 문학상을 러시아 문인이 받는 것은 이런 관심을 보여주는 것이다. 큰 영광으로 생각한다.” ―박경리 선생의 작품을 읽어봤나. “러시아어로 번역된 ‘김약국의 딸들’의 일부를 읽어 보았다. 마음을 움직이는 작품이었다. 특히 바닷가 도시 통영과 그곳 사람들에 대한 묘사가 인상적이었다. 내 작품 ‘메데이아와 그녀의 아이들’과 비슷한 점이 있다는 느낌도 받았다. 하지만 나는 박경리 선생과 같은 대하소설은 절대 쓰지 못했을 것이다.” ―대표작 ‘소네치카’에서 배신의 가족사를 견뎌내는 ‘소냐’란 인물이 인상적이다. “소냐는 전쟁의 고통, 전후의 가난을 겪고 남편의 외도로 크게 상처를 받지만 남편에 대한 사랑은 변하지 않는다. 심지어 남편이 죽은 후 남편의 젊은 첩을 가족으로 받아들이는데 이것이야말로 ‘관용’의 승리다. 나는 러시아 여성을 높이 평가한다. 여성들이 겪어야 했던 삶의 질곡은 그들을 강하게 만들었다.” ―감옥에 있는 호도르콥스키와 주고받은 편지를 담은 ‘M 호도르콥스키와의 대화’를 펴낸 이유는 무엇인가. “호도르콥스키가 정부, 정권, 경제 문제 해결에 대한 견해를 이야기할 기회라고 생각했다. 감옥에 있는 사람에게 이는 매우 중요하다.” ―어떤 억압을 느낀 적이 있었나. “유무형의 억압을 느낀 적은 없다. 내 작품에는 정치적 요소가 없다. 나는 개인과 국가의 관계보다 인간의 내적 자유에 관심을 갖는다. 나는 자유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내 마음에 드는 정권은 전 세계에 없을 것이다.” ―‘나의 소설은 잃어버린 가족의 의미를 찾는 것’이란 말을 했는데…. “러시아에는 자녀 교육과 관련한 전통적인 가족 문제가 있다. 옛 소련이 이상적이라고 생각진 않지만 그 시절에는 제대로 된 교육을 받는 것이 훨씬 수월했다. 대학 입시 비리가 만연해 있는 지금의 부패한 현실은 사회문제일 뿐만 아니라 아이가 있는 모든 가족에게는 피부에 와 닿는 문제이다.” ―‘러시안 마멀레이드’ 등 당신의 희곡 몇 편이 한국에서 무대화된 적이 있다. “전혀 모르고 있었다. 녹화 자료를 통해서라도 연극을 보고 싶다.” ―한국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수준 높은 한국 문학상을 받게 되어 매우 기쁘다. 내 작품에 흥미를 가진 심사위원, 독자에게 감사드린다. 생활 방식, 전통에 큰 차이가 있지만 인류의 공통 관심사가 있다. 진심 어린 관심과 서로에 대한 존중은 상호관계에 아름다운 바탕이 된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한분순 시조시인(69)이 12년 만에 펴낸 시집 ‘손톱에 달이 뜬다’(목언예원). 책의 뒤편에 실린 수상 경력 가운데 첫 줄이 유독 눈에 띄었다. ‘제1회 전국 초중고 대상 이승만 대통령 탄신 기념 백일장―‘우리 대통령’ 중등부 대통령상 수상(1959년 5월).’ 시인에게 설명을 부탁했더니 웃음부터 터뜨렸다. “그때는 이런 백일장도 있었어요. 제가 보성여중 3학년 때인데 전국 중학생들이 거의 다 참여했죠. 거기서 1등을 하고 나니 학교에서 유명인사가 됐어요. 경무대 가서 이승만 대통령과 프란체스카 여사도 뵈었죠. 기념품으로 황금색 탁상시계도 받았어요. 제가 작가의 길로 들어서게 만들어준 상이었어요.” 그로부터 50년 이상의 세월이 흘렀다. 1970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한 한 시조시인은 올해 등단 43년차 원로가 됐다. 하지만 시어들은 여전히 탱탱하다. 간결한 시어 속에는 압축된 여운이 담겨 있다. “‘시조는 고루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래서 참신하고 간결하게 쓰려고 했어요. 사람들이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하거나 수다만 떠는데 이 가을 짧은 시조 한 편 띄워 놓고 가만히 읽어 보면 어떨까 싶어요.” 요즈음 색이 변해가는 나뭇잎은 보내지 못한 엽서로 물들었다. ‘누가 심은/고백일까/가지에 열린 엽서//찾는 이/하도 없어/제풀에 시든다//바람의/농에도 웃지 못해/종일 흔드는 애태움.’(시조 ‘안부 한 잎’ 전문) ‘시집이 너무 오랜만에 나왔다’고 했더니 한 시조시인은 “문단 일 때문에 바빠서”라며 손사래를 쳤다. 한국여성문학인회 회장,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 한국시조시인협회 명예이사장 등 그의 이름 뒤에 붙은 직함만 열 개가 넘는다. “써놓은 작품이 150편 넘게 있었지만 책으로 묶는 것 또한 일이라 미루다 보니 늦어졌죠.” 한 시조시인은 내친김에 민병도 시조시인 겸 화가와 함께 시화집 ‘언젠가의 연애편지’(목언예원)도 함께 냈다. 정갈한 글과 선 굵은 수묵화가 어울려 잔잔한 사색의 즐거움을 준다. ‘너와 나/서성이던 자리/속삭였던 메타포//그 밀어 껴안은 놀빛/내 앞에 여전한데//두고 간/꽃물 든 말들/별이 되어 떠 있다.’(시조 ‘서성이다 꽃물 들다’의 일부)황인찬 기자 hic@donga.com}

어릴 적 읽었던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를 다시 꺼내 편다. 마음에 드는 구절이 있는 책장을 북 찢는다. “‘사막에서는 조금 외롭구나’ ‘사람들과 함께 있어도 외롭기는 마찬가지야’ 뱀이 말했다”는 두 줄만 남기고 다른 줄은 모두 까맣게 칠하고 뱀을 그린다. “사막이 아름다운 것은 그것이 어딘가에 우물을 감추고 있기 때문이야…”만 남겨두고는 아예 페이지 가득 커다란 우물을 그린다. 책에 이렇게 낙서하다 선생님이나 부모님에게 들키면 등짝을 맞기 딱 좋다. 하지만 이런 장난스러운, 때론 발칙한 독서 행위가 ‘0페이지 책’(시루)이라는 책으로 묶여 나왔다. 저자 봄로야(본명 김은진·32)의 생각은 이렇다. “아끼는 책을 기억하기 위한 나만의 방식이 그림인걸요.” 그는 일러스트레이터이자 큐레이터이고, 인디밴드 ‘봄로야 밴드’에선 보컬과 키보드를 맡고 있다. “요즘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면 사람들이 대부분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고 있잖아요. 그런데 언젠가 카페에서 눈을 빛내며 책에 푹 빠져 있는 사람을 봤어요. ‘나는 어떤 책을 저렇게 몰입해서 읽었지?’라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죠.” 봄로야는 자기가 사랑했던 ‘어린왕자’ ‘호밀밭의 파수꾼’ ‘좀머 씨 이야기’ ‘생의 한가운데’ 등 15권을 읽고 또 읽으며 아꼈던 문장을 골라냈다. 그리고 그 문장을 오래도록 기억하기 위해 그 위에 그림을 그렸다. 농밀한 문장과 개성 있는 그림이 어우러진 책의 낱장은 화폭처럼 변했다. 시화(詩畵)가 됐다. 소설가 김중혁은 “책을 이렇게도 읽을 수 있구나, 책을 이렇게 먹어치울 수도 있구나”라며 감탄했다. “샘이 난 나머지 봄로야 만의 책 읽는 순서를 상상해 보았다. 첫째, 책에게 잡아먹힌다. 둘째, 책의 뱃속에 들어가서 글자를 야금야금 갉아먹는다. 셋째, 글자가 있던 자리에 낙서를 시작한다. 넷째, 책의 뱃속에서 탈출한 다음 껍데기를 벗겨낸다. 새삼 깨닫는다. 우리가 갉아먹은 책의 뱃속은 참 아름답구나.” 일부 문장만 빼고 책장을 까맣게 칠하는 것은 작가에 대한 모독일 수 있다. 지금은 지웠던 문장들이 나중에는 미치도록 궁금해질 수도 있다. “작가의 기분을 생각 안 한 것은 아니에요. 하지만 (그림은) 좋은 문장을 제 방식으로 기억하는 것일 뿐이죠. 내년에 다시 읽으면 또 다른 문장이 눈에 들어올 수 있는데, 이럴 때는 새 책을 사면 되요.” 봄로야는 “같은 책, 같은 문장을 읽고, 기억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서로 은밀한 생을 공유하고 있는 듯하다”고 말했다. 27일부터 다음 달 14일까지 서울 마포구 서교동 서교예술실험센터에서 그가 책장에 그린 그림들을 전시한다. 서로 가슴속에 담은 소중한 문장들을 공유하는 자리다. 02-333-0246황인찬 기자 hic@donga.com}

“올여름 단편소설 한 편 쓰는 일로 숨을 고르고 하반기엔 장편 작업에 들어가고 싶었는데 단편 쓰는 일에 실패했어요. 새로 시작하려고 합니다.” 소설가 신경숙(49)이 책상 앞에 다시 앉았다. 지난해 4월 미국에서 소설 ‘엄마를 부탁해’가 출간된 이후 34개 나라와 출간 계약을 하고 세계 독자들을 위해 국내외 일정을 소화하느라 바쁘게 지냈던 그다. “저는 10년 단위로 글쓰기 작업을 생각해요. 2000년대 들어서면서 앞으로 10년 동안 이러이러한 작품을 써야겠다고 생각한 것 중에 한 작품만 빼고 다 완성했어요. 제 안에는 앞으로 쓰고 싶은 이야기가 몇 개의 항아리에 담겨 있지만, 다음 작품으로 어떤 항아리 뚜껑이 열릴지는 조금 더 기다려봐야 알 것 같아요.” 올해 창간 40주년을 맞은 월간 문학사상과 이달 초 가진 특별 인터뷰에서 그는 ‘엄마를…’ 성공 이후의 생활에 대해 솔직히 털어놓았다. “세계라는 무대에 올려진 신인 배우 같다. 늘 긴장감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권영민 문학사상 주간(단국대 석좌교수)과의 이번 인터뷰는 40주년 특집호로 꾸미는 10월 호에 실린다. 지난달 그는 영국 에든버러 축제에 다녀왔다. 전 세계에서 작가 50명만 초대장을 받은 행사다. 그는 한 파키스탄 작가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고 전했다. “‘내가 여기 온 것은 내 작품이 좋아서가 아니라 내 작품이 영어로 번역되었기 때문이다. 파키스탄에는 나보다 좋은 작품을 쓰는 작가가 많다’고 말하더군요. 그 말을 듣고 저도 제 위치를 깨달았어요.” 그는 3월 홍콩에서 열린 맨아시아문학상 시상식 당시의 일화도 들려줬다. 각국 기자들이 수상자 발표 전 유력 후보인 일본의 요시모토 바나나나 인도의 아미타브 고시 앞에 몰려 있다가 신경숙의 이름이 호명되자 급하게 자기를 찾더라는 것. 그는 ‘엄마를…’에 대해 “작품의 운명이 있다면 운을 아주 좋게 태어난 작품”이라며 “어느 순간부터는 제가 어떻게 해볼 수 있는 범위를 넘어버렸다. 책이 이끄는 대로 따라다닌 느낌”이라고 털어놓았다. 작가가 생각하는 이 작품의 힘은 무엇일까. “우리가 집을 떠나 노마드적 삶을 살아가는 지금의 현대인이 되는 동안 우리도 모르게 상실했던 것들을 이 소설 속에서 만난 것은 아닐까, 항상 곁에 있을 줄 알았던 ‘엄마’라는 사람을 갑자기 잃어버리고 방황하는 이야기 속에서 각자 자신의 모습을 봤기 때문은 아닐까 싶어요.” 1년간 미국 뉴욕 컬럼비아대 객원연구원 생활을 마치고 지난해 8월 귀국한 신경숙은 요즘 새벽 서너 시에 일어나 글을 쓰거나 책을 읽는다. 미명 속에서 책상 앞에 있다가 동이 트는 과정을 맞이하는 일이 “가슴 벅차고 정신을 화들짝 깨어나게 한다”고 했다. 오전 9시 반 동네 요가원에 들러 1시간 동안 요가를 하고, 한 달에 한번 정도는 친구들과 어울린다. ‘엄마를…’ 이후 문단에선 ‘한국 문학의 세계화’라는 말이 유행어처럼 퍼졌다. 하지만 그는 “한국 문학의 세계화란 말에는 처음부터 짚어봐야 할 문제가 있다”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 말 속에는 한국에서 한국어로 쓴 작품을 한국 문학으로만 한정하는 마음이 깔려 있는 것이 아닌가 싶어요. 저는 작가가 자기 언어로 글을 쓰고 있는 것 자체가 세계 문학의 범주에 든다고 생각해요. 다만 소통을 위해 번역과 출판이라는 과제가 있을 뿐이죠.”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11일 크리스토퍼 스티븐스 리비아 주재 미국 대사가 리비아의 제2도시 벵가지의 미 영사관에 들렀다가 무장한 시위대 수십 명의 공격을 받고 숨졌다. 시위대는 미국 영화 ‘무지한 무슬림’이 이슬람교의 선지자인 무함마드를 동성애자, 아동성애자로 그린 것에 격분한 것으로 알려졌다. 끊이질 않는 종교 갈등으로 인한 폭력과 테러. 그 해결책을 찾을 수는 없는 것일까. 비교종교학자인 저자는 “인간의 영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종교가 이제 문제를 해결해주기보다 오히려 문제를 더 많이 야기하는 형국”이라고 통탄한다. 책은 종교의 진리, 근원, 신앙, 미래 등 다양한 면을 짚어나가지만 결국 종교의 배타성이란 문제에 논의를 집약한다. 저자는 종교를 둘로 나눈다. 하나는 스스로 정한 절대 권위에 복종만을 강요하는 ‘닫힌 종교’, 다른 하나는 끊임없이 열린 마음으로 진리를 깨닫도록 촉구하는 ‘열린 종교’다. 하지만 ‘A 종교는 닫혀 있고, B는 열려 있다’는 식으로 간단히 정리할 수는 없다. 한 종교 안에서도 ‘열림’과 ‘닫힘’이 공존한다. 결국 종교의 폐쇄성을 정하는 것은 신도들의 몫이라는 것이다. 이 책의 독법도 마찬가지다. ‘종교란 무엇인가’란 질문을 앞세웠지만 명확한 답은 나오지 않는다. 다만 종교에 대한 역사적 맥락과 지식을 구술하듯 풀어내 독자 스스로 답을 찾아내는 과정을 돕는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기자가 소설가 백가흠을 처음 본 것은 지난해 11월 논산에 있는 소설가 박범신의 집에서였다. 이날은 서울 생활을 접고 귀향한 박범신의 이삿날로, 뒤늦게 소식을 들은 명지대 교수 시절 제자 이기호와 백가흠이 밤 12시가 넘어 도착했다. 백가흠은 섭섭해하는 스승의 기분을 풀어주려 문단 내에서 진행되는 작가들의 후끈한 연애사나 일부 학교에서 벌어지는 문인 교수들의 첨예한 갈등사를 실감나게 전했다. 그의 입담에 푹 빠진 사람들은 피곤함도 잊은 채 배를 잡고 낄낄댔고, 자리는 오전 3시를 넘어서까지 이어졌다. 소설가를 웃기는 소설가가 백가흠이었다. 다른 일면도 있다. 2001년 등단한 백가흠은 앞서 소설집 세 권을 냈다. 주목받는 작가로도 꼽혔다. 첫 장편에 대한 본인과 주위의 기대감이라는 부담도 생겼다. 지난해 문학과지성사 웹진을 통해 장편 ‘향’의 연재를 마쳤지만 그는 이를 책으로 묶지 않았다. ‘첫 장편’이란 이름표를 달아주기에는 성에 차지 않았던 것이다. 그가 1년 만에 ‘나프탈렌’을 펴내며 첫 장편을 신고했다. 자잘한 이야기를 잘했던 작가답게 소설은 여러 등장인물과 사건이 중첩돼 펼쳐지며 진행된다. 중심인물은 있지만 주인공은 없으며, 주변인물은 있지만 조연은 없는 일상의 풍경을 자연스럽게 담아냈다. 각자의 사연들이 실타래처럼 엉켜 하나의 탄탄한 이야기가 되어가는 과정이 흥미롭다. 지방의 한 암환자 요양시설인 하늘수련원에서 지내는 암환자 양자, 양자의 어머니 김덕이 여사, 그리고 원장을 비롯한 수련원 사람들이 이야기의 한 축이다. 다른 축은 노년의 교수 백용현과 그와 이혼한 손화자, 조교 공민지와 공민지의 옛 애인이다. 언뜻 평온해 보이는 이들의 일상은 미세한 균열로 헝클어져 버린다. 하늘수련원의 꼬장꼬장했던 원장은 자신의 노모가 죽자 실성해 버리고, 탐욕에 찼던 백용현이 아내의 죽음을 통해 삶의 새로운 가치에 눈을 뜬다. 무엇보다 이 작품의 미덕은 작위적이지 않다는 것. 인물들이 혼란스러운 인생의 항로에서 헤매다 제자리를 찾아가는 과정을 차분히, 설득력 있게 전한다. 다른 시공간의 이야기들을 묶는 키워드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 그만큼이나 삶에 대한 간절함이다. 소설의 제목인 ‘나프탈렌’처럼 사람들은 살아간다. 늙음, 그 한발 뒤에 서 있는 죽음을 방지(지연)하기 위해 방부제인 나프탈렌처럼 악착같이 살아간다. 하지만 자신도 모르게 조금씩, 스스로 기화돼 사라질 수밖에 없다. 그 허허로움이 책장 가득 배어 있다. 묵직한 주제를 다뤘지만 저자의 ‘장난기’도 몇 군데 숨어 있다. 노교수 백용현이 자신의 늙고 처진 몸을 거울에 비춰 보는 장면이나, 조교 공민지의 잠든 모습을 끈적거리는 시선으로 훑는 장면 등은 박범신의 ‘은교’ 속 장면들을 떠올리게 만든다. 스승에 대한 존경을 표현한 백가흠의 오마주인 것이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은퇴대국의 빈곤보고서’에서 고령화사회의 그늘진 이면을 날카롭게 드러냈던 저자가 고령사회에서 사는 청년들에게 눈길을 돌렸다. 고령사회에서는 고령층보다 청년층의 생활이 더 피폐해질 수 있다는 시각이 섬뜩하다. 우리나라보다 한발 앞서 고령사회에 진입한 일본 사회를 진단하며 날로 치열해지는 청년 취업 경쟁, 미래가 불안하고 경제력이 떨어지자 연애도 섹스도 기피하는 남녀, 20대 여성이 경제력을 보고 중년 남성과 결혼하는 사례가 느는 점 등을 상세히 짚는다. 한국에 대한 진단을 추가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