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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살이 되기 전까지 희곡, 아니 글을 쓴다는 생각은 아예 없었습니다. 고교 자퇴 뒤 무엇을 해야 할지 전혀 몰라 불안감을 분출하는 통로로 역사와 철학 등 인문 서적을 읽으며 머릿속 오만 가지 잡생각에 동네를 홀로 돌아다니며 의미 없이 걸었던 시간. 스무 살이 되어서야 이런 것들을 글로 표현하고 싶어 대학에 갔고 그곳에서조차 어떤 글을 써야 할지 몰라 고민하고 있을 때, 홍익대 사거리에서 처음 본 연극이란 장르는 내 안의 무언가를 홀렸고 그 후 무조건 희곡을 써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생전 처음이었습니다. 연극과 영화를 보고 학생들과 토론을 하고 공연을 제작하며 밤을 새우고 자취방에 돌아와서는 연극·영화 관련 서적을 읽고 쓰는 걸로 다시 날이 밝고, 무언가를 탐구한다는 게 이렇게 재미있다는 걸 느낀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그 재미란 것을 느낀 순간 지난 20여 년간 있었던 나의 지워버리고 싶은 부끄러운 시간이 오히려 내가 글을 쓸 수 있는 너무나도 소중한 소재가 되었고, 연극이란 것에 티끌만큼이라도 보답하기 위해 썼던 희곡들이 지금의 당선 전화를 받게 한 것 같습니다. 희곡의 텍스트를 보고 감동하게 해준 이강백 교수님, 희곡 쓰는 법을 알려준 윤조병 교수님, 연극을 만든다는 것이 이토록 행복한 것인지를 알려준 오태석 교수님, 제 부족한 글을 뽑아주신 심사위원님, 저의 꿈같은 첫 당선이었던 원광대문학상의 심사위원 신귀백 님과 이상복 교수님, 늘 함께하며 응원해 주시는 부모님과 누나, 그리고 내가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신경 쓰지 않고 술 먹으러 가자며 전화하는 내 진짜 친구들… 그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 △1989년 서울 출생 △서울예술대 극작과 2학년}

지난 한 해 동안 ‘상처’를 주제로 두 작품을 썼습니다. ‘당부’는 그 두 번째 작품입니다. 작품을 마무리하고, 스태프로 참여하고 있는 한 영화의 장소 헌팅을 위해 강원도를 찾았습니다. 눈이 쌓인 어느 어둑한 산길을 지나면서 ‘당부’ 속 주인공들이 떠올랐습니다. 그들이 지나갔을 눈길이 아마도 이런 길이 아니었을까 생각하고 있을 때 당선 소식을 받았습니다. 부끄러운 이야기일지 모르겠지만, 시나리오를 쓰다 보면 작품 속 인물들이 어디에선가 실제 살고 있다는 확신에 가까운 믿음이 강하게 들 때가 있습니다. 제가 인물을 창조하고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저는 단지 그들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을 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들의 이야기에 공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들이 외롭지 않게 되어 다행입니다. 그들에게 가졌던 미안함을 이제 조금은 덜 수가 있을 것 같습니다. 희망보다는 절망이 익숙한 요즘입니다. 고단하고 힘든 세상이라고들 합니다. 그럴수록 외롭지 않았으면 합니다. ‘나의 이야기’만큼 ‘당신의 이야기’가 소중합니다. 서로의 마음을 함께 이야기하면서 위로받고 한걸음씩 살아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좋은 시나리오를 써서 썩 괜찮은 연출자(영화감독)로 개성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습니다. △1978년 부산 출생 △성균관대 경제학과 졸업}

“‘얘야, 내가 너의 두 손목을 자르지 않으면 악마가 나를 데려가겠다는구나. 나는 겁이 난 나머지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하고 말았다.’ 소녀가 말했다. ‘아버님이 원하는 대로 하세요. 저는 아버님의 자식인걸요.’ 소녀는 두 손을 내주고 자르게 했다.”무슨 엽기적 소설일까. 아니다. 그림 형제의 작품 ‘손이 없는 소녀’ 일부다. 형 야코프(1785∼1863)와 동생 빌헬름(1786∼1859)이 독일에서 전해내려 오는 민담을 묶어 1812년 12월 ‘어린이와 가정을 위한 이야기’의 초판을 펴냈을 때 독일 부모들은 ‘너무 잔인하고 폭력적이다’ ‘아이에게 어떻게 읽힐 수 있나’라는 반응을 보였다. 잔인한 폭력성뿐만 아니라 과도한 성적 표현도 들어 있었기 때문. 우리가 오늘날 알고 있는 그림형제의 작품은 대부분 어린이의 눈높이에 맞춰 내용을 풀어내고 표현을 순화해 만든 ‘동화’다. 올해 ‘어린이와…’의 출간 200주년을 맞아 이를 기념하는 ‘그림형제 민담집-어린이와 가정을 위한 이야기’(현암사) 한국어판이 출간됐다. 그림형제는 1812년 ‘어린이와…’의 초판을 펴낸 이후 개정 증보를 거듭해 1857년 최종판(7판)을 냈다. 문장이 유려해지고 문학성이 깊어진 최종판이 세계적으로 널리 읽혔지만 초기 판형들은 민담 원형에 가까워 역사적 가치가 높다. 이번 기념도서는 각 판에 수록된 작품을 총망라했다. 모두 251편의 이야기가 1076쪽에 걸쳐 펼쳐진다. 이번에는 번역뿐만 아니라 편집과 디자인 작업도 성인의 눈높이에 맞춰 했다.‘헨젤과 그레텔’ ‘라푼첼’ ‘개구리 왕자’ ‘브레멘의 음악대’의 이야기를 원문에 가깝게 읽는 재미도 있지만 무엇보다 여태껏 국내에 소개되지 않았던 초역 41편이 추가된 것에 눈길이 간다. 초역 작품 가운데 하나인 ‘까마귀’는 우리 전래동화 ‘혹부리 영감’과 구성이 비슷하다. 동료의 배신으로 위기에 몰린 한 남자가 우연히 까마귀가 흘려 말하는 얘기를 듣고 횡재한다. 이 얘기를 들은 동료가 다시 그 까마귀를 찾아 갔다가 이번엔 화를 입는다.국내 대표적 아동문학평론가이자 번역가인 김경연 씨가 번역을 맡았다. 1995년 동화에 적합한 내용만 발췌해 풀어낸 ‘그림동화’(전 10권·한길사) 이후 17년 만에 완역을 마쳤다. 김 씨는 “그림형제가 민담을 수집한 데는 당대 낭만주의 문학관이 자리 잡고 있다. 그들은 민간전승 문학을 인류의 ‘모든 삶을 촉촉하게 적시는 샘’에서 나오는 ‘영원히 타당한 형식’으로 보았다”고 설명했다. ‘어린이와…’는 초판본 1, 2권이 200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문서부문)에 등재됐다. 책에 실린 이야기들은 각종 영화와 드라마, 공연으로 만들어지며 널리 사랑받고 있다. 비교적 높은 가격(4만5000원)이지만 그림형제의 팬이라면 구미가 당길 듯하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올 한 해 행복하셨습니까?” 잠시 머뭇거렸다면 이런 질문은 어떨까. “내년은 행복할까요?” 바쁘게 달려온 한 해의 끝자락에 행복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면 어떨까. 하루하루 자신을 돌아보지 못한 사람도 연말이면 이렇게 되짚어 보게 된다. ‘내가 잘살고 있는 것인가. 나는 행복한가.’ 한 해를 정리하며 읽기 좋은 책이다. 신달자 김별아 노경실 허영자 방귀희 서정윤 윤후명 장석주 등 문인부터 황수관 박사, 김병준 변호사, 손욱 전 농심 회장까지 총 23명의 각계 인사가 쓴 행복 에세이를 모았다. 행복은 어딘가에서 불쑥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내 주위의 소중한 것들에게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라는 점을 깨닫게 한다. 소설가 김별아가 전하는 행복은 한 마리 백로 이야기로 시작한다. 자전거 타기가 취미인 작가의 동생은 천변을 달리다 백로 한 마리를 발견한다. 반가운 마음에 카메라를 꺼내 다가가자 백로는 조금 떨어진 곳으로 날아간다. 다시 쫓아가면 다시 도망가는 반복 끝에 동생은 수십 마리의 백로가 모인 곳에 닿는다. 장관을 봤으니 기뻤다고? 아니다. 당황했고 허탈감이 몰려왔다. 그토록 쫓던 백로가 한 마리였을 때는 유일하고 소중한 가치였지만, 수많은 다른 ‘가치’들이 등장하는 순간 이내 종전의 빛을 잃어버렸기 때문. 백로는 우리가 쫓는 행복이다. 다른 사람이 쫓는 것과는 다른, 나만의 흰 새 한 마리를 찾아야 진정한 행복을 느낄 수 있다고 작가는 말한다. 역경은 때로 행복으로 가는 문을 열어주기도 한다. 소아마비 1급 장애인인 수필가 방귀희는 장애가 자신의 인생을 특별하게 만들었다고 말한다. “장애가 씻을 수 없는 낙인이지만 장애 때문에 얻은 프리미엄도 많다. 만약 내 인생에서 장애를 빼고 나면 난 그저 아주 평범한 여자였을 것이다”라고 털어놓는다. 소설가 이채윤은 한때 섬유공장 사장이었지만 공장이 부도난 뒤 전업 작가로 인생행로를 바꿨다. 그는 사업하는 옛 지인들이 과로사로 쓰러지는 것을 본 뒤 뜻하지 않은 부도가 귀한 ‘선물’이었음을 뒤늦게 깨닫는다. ‘일상에서 행복 찾기’ ‘자신만의 행복 찾기’ 등 책이 전하는 행복론은 익히 들은 듯하며 특별히 새롭지는 않다. 하지만 무언가 새로운 정답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어리석은 일이다. 인생에는 공통된 정답이 없으며, 자신의 행복을 채점하는 것은 바로 자신이기 때문이다. 자신에게 너그럽고 관대하며 긍정적일 것. 그러면 내 행복 점수가 좀 올라가지 않을까. 양애경 시인의 시 ‘조용한 날들’의 일부를 덧붙인다. 새해에는 소소한 일상에 숨은 행복을 찾는 밝은 눈을 갖기 바란다. ‘행복이란/사랑방에서/공부와는 담쌓은 지방 국립대생 오빠가/둥당거리던 기타 소리/우리보다 더 가난한 집 아들들이던 오빠 친구들이/엄마에게 받아 들여가던/고봉으로 보리밥 곁들인 푸짐한 라면 상차림’황인찬 기자 hic@donga.com}

한 출판사 대표로부터 예상하지 못한 말을 들었다. 그는 “김도언이란 작가가 요즘 작가들 가운데 문학에 대한 열정이 가장 큰 것 같다”며 극찬을 이어간 것이다. 기자는 ‘가장’ ‘열정’ 등의 단어가 부담스러워 “좋은 작가지요”라고 두루뭉술하게 넘겼다. 김도언(40)과는 몇 차례 술자리를 가진 적이 있다. 다른 몇몇 시인과 함께 집에 초대해 저녁을 겸한 술상을 대접한 적도 있다(막판에 김도언은 한 평론가와 목소리를 높여 언쟁을 했고, 기자는 옆집에서 불만의 소리가 나올까 걱정했던 기억이 난다). 그에 대한 인상은 소설뿐만 아니라 시도 쓰고 편집자(웅진문학 임프린트 ‘곰’ 대표)로 일하는 부지런한 문인 정도였다. 하지만 최근 나온 그의 산문집 ‘나는 잘 웃지 않는 소년이었다’(이른아침·사진)를 보고 생각이 변했다. 문학에 대한 성실하고 고결한 마음가짐이 따뜻하면서도 처연하게 다가왔다. 등단 14년차를 맞았지만 문학적 결기도 서 있다. 소설 6권을 낸 뒤 올 2월 ‘시인세계’ 신인상을 받으며 시단으로 ‘망명’한 그는 시에 대한 ‘지독한 편견’을 이렇게 적었다. “시인은 행복해서도 안 되고 부자여서도 안 되고 인기가 많아서도 안 된다. (중략) 시는 혹독한 결핍의 산물이어야 한다. 그 결핍은 영원히 채울 수 없는 것이어서 참혹하다. 시 쓰기는 이 참혹의 진창을 뒤져 사금을 줍는 행위다.” 산문집은 2010년 1월부터 올 11월까지 작가가 주로 페이스북이나 블로그에 쓴 글들을 모은 것이다. 소설이나 시가 쓰이지 않아도 작가는 어딘가에 꾸준히 무언가를 끄적거렸다. 왜 쓰는가. 글 쓰는 행위가 자신을 구원하는 방법임을 그는 이렇게 토로한다. “글을 쓴다는 것, 문학을 한다는 것은 자기 자신을 끊임없이 돌아보고 되묻는 행위입니다. 자신과 다투고 불화하다가 결국 화해하고 마침내 용서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생활의 궁극에 해당하는 경지입니다.” 작가는 자신의 생각을 소가 여물 씹듯 느리게 질겅거린 뒤 힘겹게 삼킨다. 날카로운 가시들도 곳곳에 박혀 있다. 이를테면 문단 권력 문제를 다룬 대목은 이렇다. “지금 작가들은 어떤가. 문단을 완벽하게 장악하고 있는 문학 메이저 출판사 ‘빅4’(창작과비평사, 문학동네, 문학과지성사, 민음사)의 관리 체제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큰일이라도 나는 줄 안다.” “한국 문단은 문학을 교환가치로 여기는 자들에 의해 장악되어 있다. 산업적 상상력이 문학 주체들의 윤리를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무겁지만은 않다.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을 처음 만나는 길에 샌들을 신고 간 에피소드나, 7년 동안 한집에 살았던 신동옥 시인을 떠나보내는 감상을 적은 뭉클한 글도 있다. 김요일 류근 구경미 신승철 박장호 박후기 등 교류 문인들의 뒷얘기도 흥미롭다. 무엇보다 ‘해가 지면’ ‘홍대나 합정, 좀더 나가면 공덕역 인근에서’ ‘삼삼오오 모여’ ‘소주를 마시는’ ‘40대 전후 시인들’의 ‘오늘’이 궁금하다면 이 책이 답이 될 듯하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올해의 책’은 독자들이 직접 뽑는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입니다. 그래서 의미가 크지요. 10년 넘게 이어온 역사성, 연속성과 함께 국내 최대 규모의 도서 관련 온라인 투표 행사라는 자부심도 있습니다.” 매년 연말 ‘올해의 책’을 발표하는 인터넷서점 예스24의 김기호 대표는 “단순히 온라인 투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24권의 책이 선정되면 해당 출판사와 작가들을 위한 축제의 자리도 마련해 격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작가와 출판사, 독자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데 서점이 앞장서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GS 홈쇼핑 전무, GS 강남방송 대표를 역임한 김 대표는 지난해 9월부터 예스24 대표를 맡고 있다. 출판 시장이 불황을 겪고 있지만 그는 모바일과 전자책 시장에서 적극적으로 활로를 찾고 있다. 2010년 3월 인터넷 서점 업계 최초로 시작한 모바일 서점은 2년 9개월 만에 누적거래액 200억 원을 돌파했으며 2013년에는 300억 원의 연매출을 예상하고 있다. 올 9월 출시한 터치형 전자책 단말기 ‘크레마 터치’가 3개월 만에 예스24에서만 8000대가 팔렸다. 예스24는 내년에 ‘크레마 터치’ 업그레이드 모델을 출시할 예정이다. 내년 상반기에는 작가들이 콘텐츠를 등록만 하면 별도의 유통망을 거치지 않고 독자들이 바로 구독할 수 있는 ‘연재 플랫폼’을 열 예정이다. “2012년에는 10만원대 ‘크레마 터치’로 국내 전자책 시장 확대의 포문을 열었으며, 2013년에는 좋은 콘텐츠 확보와 진화하는 단말기가 전자책 시장 성장의 기폭제가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우수한 콘텐츠와 전자책 단말기 개발의 중요성을 강조한 김 대표는 또 “무엇보다 책을 읽게 만드는 분위기 조성과 독자층 확대가 가장 중요하고 근본적인 문제”라고 지적했다. “서점은 서점으로서의 역할에 충실해야죠. 독자들이 서점에 자주 찾아오게 만들고, 작가와 출판사가 독자의 숨소리를 들으면서 책을 만들고 쓸 수 있는 장을 만들고자 합니다. 강연회와 시사회 같은 오프라인 행사들을 앞으로도 다양하게 개최할 생각입니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하자 피란민들은 “남으로” “남으로”를 외쳤다. 당시 부산은 인구 20만 명 정도의 도시였지만 전국에서 100만 명이 넘는 피란민이 몰려들었다. 인산인해의 불안하고 지친 풍경. 이 가운데는 문인들도 있었다. 피란민들은 이제 더는 피할 수 없는 땅의 끝, 국토 남단의 항구도시에 도달했다. 미래는 불투명하고 하루하루의 생존이 급한 상황. 하지만 문인들은 이 절박한 피란도시에서도 예술의 꽃을 피웠다. 부산 광복동에 위치했던 다방 ‘밀다원(蜜茶苑)’이 그들의 아지트였다. 》1950년대 초 부산 광복동, 남포동 일대에는 줄잡아 20여 곳의 다방이 성행했다. 광복동 네거리에서 시청 쪽으로 향한 길가 건물 2층에 있는 밀다원에는 유독 예술가들의 발길이 잦았다. 밀다원 바로 아래층에 피란 시절 ‘문총(한국문화예술총연합회)’의 임시 사무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예술가들은 밀다원에서 만나 자신의 피란 체험을 털어놓으면서 삶의 고통을 잠시나마 잊고자 했다. 서로의 생존과 안위를 물었고 동질감과 존재감을 확인하기도 했다. 이 다방에서 작곡가 윤용하는 시인 박화목과 만나 유명한 가곡 ‘보리밭’을 만들었다. 가난한 화가 이중섭, 김환기, 백영수, 장욱진이 고통의 삶 속에서도 자신의 창작욕을 불태웠던 곳도 여기다. 이중섭은 이 다방 어느 구석에 앉아 유명한 은박지 그림들을 그렸다. 백영수는 피란지에서의 개인전을 이곳에서 열었다. 이처럼 예술가들은 밀다원에서 실의를 털어버리고 새로운 꿈을 얻었다. 이름 그대로 밀다원은 척박한 임시 수도에서 예술인들이 잠시나마 숨통을 틔우는, ‘꿀물이 흐르는 찻집’이 되었다. 보통 다방 밀다원은 소설가 김동리의 단편 ‘밀다원 시대’(1955년)를 통해 기억되기 때문에 허구 속 이야기라고 받아들이기 쉽다. 하지만 이 소설은 ‘현실’에 가깝다. ‘밀다원 시대’에는 가난한 소설가 이중구가 등장하는데, 소설가 이봉구(1916∼1983)가 그 모델이다. 이중구는 서울을 떠나 피란길에 오르면서 병든 노모를 이웃에 맡길 수밖에 없었다. 그는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돌리면서 한강을 건넜다. 아내와 자식들도 충청도 시골의 처가에 보내고는 혼자서 부산에 떠밀리듯 내려온다. 그가 낯선 부산 땅에서 멈춰 찾아든 곳이 바로 밀다원이다. 이중구와 같이 이 좁은 다방을 찾은 사람들은 마치 꿀을 찾아 잉잉거리며 모여든 벌 떼 같다. 이들에게 꿀은 무엇인가. 바로 문학이고 미술이고 음악이었다. 밀다원에서 예술가들은 예술을 논했고 창작에 나섰다. 소설 속의 비평가 조현식은 실제의 인물 조연현을 암시하며 오정수는 소설가 오영수임을 알 수 있다. 그런 까닭에 밀다원 시대는 피란 예술가들의 당시 상황을 그린 한 편의 다큐멘터리다. ‘밀다원 시대’는 부산 피란 당시 예술가라는 특정 계층을 중심으로 그들이 겪었던 고통의 시대를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 작가 자신이 그려내고 있는 인간상의 적나라한 모습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밀다원이라는 다방의 공간 그 자체다. 삶과 예술, 절망과 고통, 사랑과 비애, 배신과 갈등 등이 모두 함께 녹아들어 있는 이 특이한 공간은 바깥세상에서 전개되고 있던 전쟁과는 상관없이 강한 정서적 유대감으로 여기 모여든 예술가들을 한데 묶어놓는다. 밀다원은 이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덮어주고, 의식주마저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 채 허덕이는 이들을 훈훈하게 보듬어준다. 결국 작가는 피란지 속에서 발견한 밀다원을 하나의 유별난 안식처로 그려놓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밀다원은 가난한 시인 박운삼의 자살로 그 시대적 역할을 마감한다. 사고 후 실제로 다방은 1951년 12월 문을 닫았다. 문학이 지향하는 이상의 세계와 전쟁을 피하기 어려웠던 고통스러운 삶 사이에서 고뇌하던 시인은 두 개의 원고뭉치와 한 편의 마지막 유작시(遺作詩)를 남긴 채 이 안식의 공간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 소설의 이야기도 여기서 끝난다. 7일 진눈깨비가 흩날리는 부산에 내려가 광복동 네거리를 서성였다. 60년 전이나 지금이나 광복동 네거리는 인파로 붐비는 번화가다. 크리스마스를 상징하는 여러 휘황찬란한 불빛이 요란스러운 2012년의 광복동. 그곳에 이제 밀다원은 없다. 1950년대 초 성했던 다방들은 모두 사라졌다. 임시수도기념관과 부산에서 활동하는 소설가 허택 씨의 도움을 얻어 수소문 끝에 밀다원의 위치를 더듬었다. ‘광복동2가 38-2’로 추정되는 당시 밀다원 위치에는 번듯한 의류 상점들이 들어서 있다. 밀다원의 흔적을 찾기 힘든 그 언저리를 한참이나 서성였다. 아쉬움에 맞은편 프랜차이즈 커피숍에 들러 커피 한 잔을 마셨다. 1950년대 초 밀다원 모습을 재현해 놓았다는 임시수도기념관(임시수도기념로 45)을 찾았다. 아쉽게도 당시 밀다원의 모습을 기록한 사진 자료가 없어 추정으로만 밀다원 모습을 복원했다. 김동리의 ‘밀다원 시대’가 발표된 현대문학 1955년 4월호가 전시돼 있는 것은 다행이었다. 부산 시민들, 부산을 찾은 외지인들이 광복동 거리를 걸으며 연말연시 분위기를 만끽하는 요즘이다. 이 거리에 몰려드는 사람들 가운데 이제 다방 밀다원을 기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밀다원은 그렇게 시간 속으로, 사람들의 기억 너머로 사라져 버렸다. 하나의 작은 공간이 한 시대를 오롯하게 담아내고 그 시대의 삶을 그대로 표상하는 경우는 그리 흔하지 않다. 공간이 시대를 담아내기보다는 시대 속에 공간이 특정 장소로 자리 잡는다. 거대한 피란의 물결이 그대로 멈춰 선 곳, 핍진했던 예술가들이 지친 몸을 잠시나마 누일 수 있었던 곳. 밀다원은 한때 현대 예술가들의 삶이 응축됐던, 그런 특별한 곳이었다. 정리=황인찬 기자 hic@donga.com}

서울의 신촌은 잠들지 않는 동네다. 요즘 같은 연말이면 더욱 그렇다. 자정을 넘은 도시는 좀처럼 시들지 않고, 인파들은 새벽까지 북적인다. 하지만 도시는 철저한 익명의 공간이다. 발 디딜 틈 없이 거리는 흥청거리지만 ‘나’, ‘너’는 철저히 외로운 개인이다. 마치 ‘뤼미에르(lumi`ere·빛)’를 향해 달려드는 밤 나방처럼, 덧없기도 하다.작가는 도시의 그늘에서 살아가는 외롭고 고독한 존재들을 끄집어낸다. 이들은 모두 신촌에 있는 오피스텔 뤼미에르와 크고 작은 연관을 맺고 있다. 작가는 데뷔작인 장편 ‘표백’에 이어 다시 신촌을 배경으로 삼았다. 전작이 신촌에서 대학을 보내는 20대 청춘들의 좌절을 그렸다면, 이번에는 캠퍼스를 벗어나 오피스텔을 중심으로 좀 더 다양한 인물을 그린다. 뤼미에르 801호부터 810호까지 열 개의 방으로 풀어낸 단편 열 편이 그것이다. 소설집이 독특한 것은 단편 특유의 독특한 상상력을 거의 ‘무한대’로 확장했기 때문이다. 단편 ‘박쥐 인간’에서 801호에 살며 편의점과 만화 가게에서 일하는 10대 소년은 실은 박쥐 인간이다. 수십, 수백 마리의 박쥐로 변해 하늘을 날 수도 있다. 하지만 이야기가 황당하게 느껴지지 않는 것은 박쥐 인간이 다른 사람들의 슬픔이 깃든 공간에서 안온함을 얻는 존재라는 것. 이쯤 되면 박쥐 인간은 공상과학류에 나오는 괴물이 아니라 우리 주변의 가녀리고 예민한 또 다른 존재임을 눈치챌 수 있다. 이것은 너와 나일수도, 아니면 도시 골목마다 출렁이는 슬픔의 근원일 수도 있다. 단편 ‘피 흘리는 고양이 눈’에서는 유기 고양이의 눈으로 신촌의 어두운 구석을 훑거나, ‘쥐들의 지하 왕국’에서는 신촌 지하에서 몰래 자신만의 왕국을 세운 반인반서(半人半鼠), 즉 ‘쥐 인간(혹은 인간 쥐)’들의 치열한 생존기를 그린다. 일부 소설집을 읽을 때 느껴지는 동어반복이나 유사성을 거의 찾을 수 없는 점은 이 책의 미덕이다. 형식적 변주도 흥미롭다. 네 번째 단편인 ‘마법매미’는 앞선 세 편의 단편과 나중에 나오는 단편을 연결하는 다리나, 휴게소 같은 역할을 한다. 작가가 ‘마법매미’ 속의 편집자로 분해 소설집을 직접 설명하거나 이후 전개의 힌트를 주기 때문이다. 이 단편에는 ‘시간의 언덕, 현수동’이라는 책 제목이 등장하는데, 언급된 다른 제목들과 달리 이 책에는 포함돼 있지 않은 소설이라 궁금증을 자아낸다. 차기작 제목인가? 작가는 ‘표백’으로 등단할 당시 ‘명징한 주제의식이 돋보였다’는 평을 받았다. 이번에도 ‘삶어녀 죽이기’에서 인터넷 여론몰이의 폐해를 그렸고, ‘돈다발로 때려라’에서는 물질만능으로 빚어진 몰인간성을 비판하며 주제를 도드라지게 만들었다. 하지만 주제의식이 선명하고, 그 전개가 기술적일수록 미학성이 약해지는 느낌이 든다. ‘박쥐 인간’이나 ‘명견 패스’ 같은 물기 촉촉한 단편들이 더 실렸으면 하는 바람이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 신성한 봄(강석경 지음·민음사)=예순이 넘은 여배우가 로마에 있는 아들을 만나러 가는 여정에서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본다. 그가 지인들에게 보내는 편지글로 엮은 소설. 1만2000원.○ 체이서(문지혁 지음·톨)=미래 세계, 인구의 80%가 중산층 이상으로 이뤄져 필요한 노동력은 로봇이 대체한다. ‘불량품 로봇’으로 만들어진 ‘나’는 생존을 위해 각종 사건을 남몰래 처리하는 ‘해결사’로 나서는데…. 1만1000원.○ 헬로, 미스터 디킨스(김경욱 외 지음·이음)=찰스 디킨스의 ‘두 도시 이야기’ ‘크리스마스 캐럴’에서 영감을 얻은 단편 9편을 묶었다. 김경욱 김중혁 박성원 박솔뫼 배명훈 백가흠 윤성희 최제훈 하성란은 각각 어떻게 디킨스를 변주했을까. 1만2000원.○ 조선시대 과거시험과 유생의 삶(차미희 지음·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조선시대의 과거시험을 고찰함으로써 당시의 정치 운영과 정국 동향을 분석한 연구서. 과거시험을 보는 유생들의 삶의 모습도 들여다봤다. 2만1000원.○ 설렘이 번지는 파리 지성 여행(김현정 지음·쉼)=파리의 고서점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에서 영화 ‘비포 선셋’의 주인공들을 떠올리고 보주 광장에서 빅토르 위고를 느낀다. 파리 여행기가 생생한 사진들과 함께 펼쳐진다. 1만5000원.○ 20세기 이야기-1970년대(김정형 지음·답다)=20세기 100년사를 10년 단위로 총 10권의 책에 나눠 서술하는 전집의 첫 권. 1970년대에 국내외에서 일어난 과학, 산업, 정치, 경제, 전쟁, 문화, 예술, 스포츠, 학문, 언론 등을 망라했다. 2만2000원.○ 중국의 굴기와 미국의 전략(신성원 지음·행복에너지)=현직 외교관이 중국이 지정학적 환경에서 어떻게 생존과 번영을 해 왔는지 살펴보고, 향후 중국의 대외정책 방향을 검토했다. 미국의 대응 전략도 살펴봤다. 1만5000원. ○ 뮤지컬 블라 블라 블라(박돈규 지음·숲)=‘오페라의 유령’ ‘레 미제라블’ ‘라이언 킹’ 등 저자가 사랑한 뮤지컬 20편의 이야기를 공연장 사진과 함께 담았다. 1만5000원.}

‘토지’의 작가 박경리(1926∼2008)는 처음에 시인 지망생이었다. 등단 전 한국상업은행(현 우리은행)에 근무하던 1954년 6월 사보 ‘천일(天一)’에 ‘바다와 하늘’이라는 시를 싣기도 했다. 16연 159행의 장시(長詩)였다. 진주여고 출신인 그는 같은 학교 선배의 남편인 소설가 김동리 선생에게 자신의 습작 시들을 선보였다. 하지만 김동리는 “소설을 써보라”고 권한다. 박경리 선생는 곧 소설 습작으로 방향을 튼 뒤, 김동리의 추천으로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한다. ‘현대문학’ 1955년 8월호에 발표된 단편 ‘계산’이 데뷔작이다. 하지만 이후에도 박경리는 시심을 잃지 않았다. ‘못 떠나는 배’(1988년) ‘도시의 고양이들’(1990년) ‘자유’(1994년) ‘우리들의 시간’(2000년)과 유고시집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2008년) 등 시집 5편을 펴낸 박경리는 어엿한 중견 시인이기도 했다. 1969년 집필을 시작해 25년 동안 200자 원고지 4만여 장에 눌러쓴 ‘토지’의 지난한 창작과정 속에서도 시 창작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는 다음과 같이 시에 각별한 애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견디기 어려울 때 시는 위안이었다. 8·15해방과 6·25동란을 겪으면서 문학에 뜻을 둔 것도 아닌 평범한 여자가 어려운 시기를 통과하여 살아남았고 희망을 잃지 않았던 것은 어쩌면 남몰래 시를 썼기 때문인지 모른다.’(1988년 시집 ‘못 떠나는 배’ 서문 중) 이런 박경리의 시들을 모은 ‘우리들의 시간’(사진)을 마로니에북스가 최근 펴냈다. 유고시집을 제외한 4권의 시집에 실렸던 시 129편을 한 권에 망라했고, 당시 서문도 곁들였다. 크게는 세상과, 작게는 원고지와 씨름했던 작가의 분투의 역사가 그대로 담겼다. ‘변명했지/책상과 원고지에/수천 번 수만 번/나를 부셔버리고 있노라//그러나/알고 보면 문학은 삶의 방패/생명의/모조품이라도 만들지 않고서는/숨을 쉴 수 없었다//나는 허무주의자는 아니다/운명론자도 아니다.’(시 ‘문학’ 중)황인찬 기자 hic@donga.com}

기자의 이름은 황인찬이다. 흔한 이름은 아니다. 포털사이트에서 검색하면 기자 황인찬과 대아그룹 회장 황인찬 정도만 반복적으로 검색될 정도다. 최근 ‘판도’가 바뀌었다. 갑자기 나타난 시인 황인찬이 검색 결과를 도배하기 시작한 것이다. 불편한 심기는 일상으로도 파고들었다. 간단히 전화번호만 교환한 한 젊은 여성 시인이 “야, 너 동아일보 기자였냐”고 뜬금없이 카톡(카카오톡) 메시지를 날리는가 하면, 한 출판사 대표는 대뜸 “연애는 잘돼 가냐”고 메시지를 보냈다.(기자는 유부남이다;;;) 언제부턴가 만나는 시인들은 “황인찬 시인을 알고 있냐. 만나봤냐”는 말을 인사말처럼 건넸다. 궁금했지만 참았다. 무엇보다 별 용건도 없이 “제가 황인찬 기자인데요…”라며 먼저 전화를 걸기가 어색했다. 그러던 중 기회가 왔다. 황인찬 시인(24)이 첫 시집 ‘구관조 씻기기’(민음사·사진)를 펴내고, 이 시집으로 김수영문학상을 받은 것이다. 전화를 걸었다. “황인찬 시인이시죠?” “그런데요.” “저… 동아일보 황인찬인데요.” “(잠시 생각) 아∼. 하하하, 반갑습니다.” “네, 저도요. 우리(?) 이제 한번 만나야죠.” “그래야죠, 하하.” 12일 서울 광화문 인근의 한 카페에서 동명이인이 마주앉았다. 시인은 말했다. “언젠가 (시인) 최문자 선생님께서 전화를 걸어서 ‘언제쯤 뵐까요’ 하시기에 굉장히 혼란스러웠어요. 제대로 대답도 못하고 어영부영하다가 전화를 끊었죠. 지금도 ‘기자 하는 것 아니냐’고 물어보시는 분이 많아요.” 동질감이 느껴졌다. 둘은 본관(장수)과 ‘인’자 돌림인 항렬도 같았다. 기자=첫 시집을 내기 전부터 문단에 이름이 널리 알려졌던데…. 시인=등단(2010년 현대문한 추천) 이후 좋게 봐주셔서, 문예지 이곳저곳에 글을 실었어요. 이번 시집의 시도 대부분 문예지에 실렸던 것들입니다. 운이 좋은 것 같아요. 기자=신인이라 지면 얻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좋은 평을 받았네요. 시인=한편으로는 걱정도 컸어요. 기자=예? 왜요? 시인=많이 봐 주시고 월평도 실리고 하는 것은 고마운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제가 빨리 받아들여지는, 읽히는 시를 썼구나’란 생각도 들었어요. 시대를 반 발짝 앞서는 게 좋다고 생각하는데, 저는 그렇게 못한 거죠. 황인찬 시인의 시에는 20대 초반 청년의 시답지 않게 깊은 사유와 성찰이 담겼다. 대표시로 꼽히는 ‘구관조 씻기기’에서는 새와 인간의 정신이 합일되는 듯한 세계를 보여주고, ‘단 하나의 백자가 있는 방’에서는 고즈넉한 방 안에 있는 백자의 깊은 정신세계를 엿본다. 시집의 해설을 쓴 박상수 시인은 “인간의 옷을 입은 채로 이 속세를 살아가는, 몇 안 되는, 우리 시대의 마지막 남은 수도사이자 마법사이며 백색의 기사(騎士)다”라고 평했다. 시인=아휴∼ 해설을 받아보고 나서 놀림감이 생겼다 싶었어요. (영화 ‘반지의 제왕’의) 마법사 간달프가 생각나잖아요. 하하. 시인은 ‘겉멋’이 별로 없었다. 천재나 요절한 시인보다는 평생 징그럽게 시를 쓰는 선배들을 좋아한다고. 시인 김춘수나 이승훈이 좋다고 했다. 중앙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한 시인은 같은 대학원 석사 2학기를 마쳤고, 창작에 전념하게 위해 휴학했다. 기자=어떤 시를 쓰고 싶어요? 시인=말이 좀 이상할 수도 있는데, 생각을 저해한다고나 할까. 생각을 저해하고 방해하는 방향으로 가고 싶어요. 황인찬 시인은 생애 첫 인터뷰를 같은 이름을 가진 기자와 했다며 즐거워했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작가는 “무엇인가에 신들려 있는 것 같았다”고 털어놓았다. 이 장편소설의 초고를 올 7, 8월 단숨에 써내려갔다. 경북 포항을 비롯한 동해를 돌며 여관방, 민박집, 카페와 찻집, 해수욕장 등 장소를 가리지 않고 노트북을 켜고 키보드를 두들겼다. ‘단 한 번의 연애’란 제목은 지고지순한 사랑을 연상시킨다. 작가가 뒤늦게 ‘연애소설’에 매진했다고 오해하기 쉽다. 하지만 아니다. 책장을 덮으면 남녀의 애틋한 사랑보다는 푸른 바다 멀리 찬연히 뛰어오르는 한 마리 고래가 떠오른다. 아마도 작가는 신화처럼 넘실거리는 고래의 흔적을 찾아 올여름 내내 바닷가를 서성거렸으리라. 이야기는 포항의 어촌 구룡포에서 시작된다. 술고래 아버지와 해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이세길은 초등학교 입학식에서 도도한 인형같이 생긴 박민현을 본 뒤 단숨에 마음을 빼앗긴다. 압도적인 미(美)의 권력으로 동네 남자애들의 시선을 한몸에 받는 민현은 세길에겐 별 마음이 없다. 더군다나 서울에서 고교 유학 생활을 시작한 세길은 고향에 남은 민현과 멀어지고, 그만큼 애틋해진다. 작품이 생동감을 띠는 것은 이들이 성년이 된 후부터다. 서울에 있는 대학에 나란히 입학한 이들은 1980년대 엄혹했던 대학가 풍경과 맞물려 극적인 만남과 이별을 이어간다. 특히 전경이 된 세길이 운동권 핵심이 된 민현의 체포 현장에 출동하게 되며 애절한 드라마를 연출한다. 소설의 윤활유 역할을 하는 ‘성석제표’ 웃음코드도 녹슬지 않았다. 서울에 올라온 세길이 ‘신(新)문물’을 몰라서 홍차 티백을 찢어 풀어넣은 뒤 휘휘 저어먹거나, 경양식집에 가서 수프가 나오자 밥 말아먹으려고 하는 모습에선 키득키득 웃을 수밖에 없다. 이런 에피소드가 작위적이지 않게 느껴지는 것은 작가의 노련함 덕분이다. 작가는 후반부에 작품의 공간을 크게 확장시킨다. 고래잡이배의 포수였던 아버지를 둔 민현은 세계 굴지의 컨설팅회사 실세로 성장해 스스로 정치경제계 거물인 ‘빅 피시(Big Fish)’가 된다. 그는 다른 ‘빅 피시’들을 쥐락펴락하고 또 각종 정보를 이용해 경제적 약자들을 돕는 일에 나선다. 작품 초반에 소개된 고래 이야기가 마침내 수미상관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포수는 민현만이 아니다. 진득이 기다리다 적절한 타이밍을 노려 독자의 희열점을 정확히 조준해 명중시키는, 성석제 또한 노련한 포수다. 작가는 1982년 연세대 재학시절 찍은 ‘청년 성석제’ 사진을 책에 실었다. “팬 서비스 차원”이라는 농담어린 설명. 작가도 독자도 1970, 80년대 향수에 취하게 만드는 복고적 매력이 진한 한 권의 책이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개그맨 커플 윤형빈(32)과 정경미(32)가 2013년 2월 22일 결혼한다. 두 사람은 12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 공개홀에서 열린 KBS 2TV ‘개그콘서트’ 녹화 중 ‘희극 배우들’ 코너에 출연해 결혼을 발표했다. 이들은 KBS 공채 개그맨 20기 동기로 2005년 교제를 시작해 7년 연애 끝에 결혼하게 됐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소설가 백시종 씨(68·사진)가 ‘제4회 노근리평화상’ 문학부문 수상자로 선정됐다. 수상작은 소설집 ‘돼지감자 꽃’. 상금은 1000만 원. 시상식은 21일 오후 4시 충북 영동군 노근리국제평화공원에서 열린다.}

“불안하고 척박한 현실을 그린 작품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다만 그런 위기에 주저앉지 않고 이를 극복하는 노력을 그리는, 희망적인 작품이 주를 이룬다는 점이 이채로웠다.” 10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 동아미디어센터에서 열린 201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예심에 참여한 심사위원들은 일상의 위기를 날카롭게 포착한 작품이 많았다고 전했다. 실업과 고용불안, 불안정한 미래를 비롯한 현재 한국 사회의 문제가 그대로 원고지 위로 옮겨온 것이라고 이들은 분석했다. 올해 응모자는 1881명, 총 편수는 5113편이다. 분야별로는 중편소설 278편, 단편소설 447편, 시 3612편(688명), 시조 382편(74명), 희곡 64편, 동화 189편, 시나리오 97편, 문학평론 11편, 영화평론 33편이었다. 지난해와 비교하면 중편소설은 5편, 문학평론은 6편, 영화평론은 8편 늘었고 다른 부문은 줄었다. 올해도 미국 영국 독일 네덜란드 일본 중국 홍콩 카자흐스탄 말레이시아 베트남 등 해외 각국에서 92명이 e메일로 응모작을 보내왔다. 예심에는 시인 김행숙 이원 씨(시 부문), 소설가 강영숙 전성태 씨와 평론가 신수정 씨(중편소설 부문), 소설가 박성원 윤성희 편혜영 씨와 평론가 손정수 씨(단편소설 부문), 정윤수 영화감독과 조철현 타이거픽쳐스 대표(시나리오 부문)가 참여했다. 시 부문은 어느 때보다 상향 평준화됐다는 것이 심사위원들의 중론이었다. “훈련이나 학습이 아닌 자기 안에 무언가 들끓고 있는 작품들. 자기 세계와 언어를 확장시킬 수 있는 수준작을 여럿 봤다.”(김행숙 시인) “본심에 올라간 9편 외에도 약 20편을 놓고 본선 진출을 논할 정도로 수준이 높았다. 시의 형식도 신선했다.”(이원 시인) 특히 아르바이트 비정규직 등 불안정한 밥벌이나 생활을 그린 시가 많았다. 하지만 위기에 좌절하지 않고 이를 희망적으로 형상화하는 시적 동력이 곳곳에서 포착됐다고 심사위원들은 평했다. 단편은 장르적으로 기발한 상상력을 펼치기 용이한 소설 부문임에도 “소재가 지나치게 현실에 밀착된 것이 많았다”고 심사위원들은 말했다. 공상과학, 스릴러 등 다양한 장르적 시도가 부족했다는 지적이다. 편혜영 소설가는 “실직, 주식사기, 채권추심 등을 주제로 가족의 붕괴를 그린 소설이 많았다. 현실을 반영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박성원 소설가는 “최근 성추행 사건이 많아서인지 성적인 서사가 두드러진 작품이 눈에 많이 띄었다”고 전했다. 기술 방식의 아쉬움을 지적하는 의견도 있었다. 윤성희 소설가는 “자신의 상처를 떠올릴 때 모두 회상의 방식으로 처리하는 것처럼 이야기 형식이 전형화되는 듯해 아쉬웠다”고 말했다. 중편소설 부문에서는 일상, 그중에서도 이웃을 다룬 소설이 하나의 경향을 이뤘다. ‘이웃’이란 단어가 작품에 들어가는 작품만 5편이 넘었다. 신수정 평론가는 “빽빽하게 밀착해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현실이 작품 소재를 선정하는 데도 영향을 끼친 것 같다”고 분석했다. 전성태 소설가는 “문체만 잘 보여도 소설이다. 그런 점에서 언어미학을 고양한 소설이 적은 점이 아쉬웠다”고 지적했다. 시나리오 부문을 심사한 조철현 대표는 “전체 분량의 80% 이상이 가족을 중심으로 한 이야기여서 놀랐다. 최소한의 공동체가 깨진다는 것에 대한 공포와 불안이 있는 것 같다”고 해석했다. 정윤수 감독은 “사극이나 공상과학물은 완성도가 떨어졌고 ‘가족 힐링 드라마’류가 두드러져 보였다”고 말했다. 이날 예심 결과 중편소설 6편, 단편소설 8편, 시 9편, 시나리오 10편이 17, 18일 열리는 본심에 올랐다. 시조 희곡 동화 문학평론 영화평론 부문은 예심 없이 본심을 진행한다. 당선자는 이달 말 개별 통보하며 내년 1월 1일자 신년호에 발표한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 1945년 8월 16일 아침. 경기 양주(현 남양주) 진건면 사릉리에서 살던 춘원 이광수(1892∼1950)는 이날도 집 근처 사릉천변에 산보를 나갔다. 하지만 풍경이 예전과 달랐다. 개천가에서 일본 군인의 감독 아래 자갈을 파는 노역을 하던 근로보국대 대원들이 웬일인지 일을 하지 않고 삽을 든 채 서성거렸고, 그 수도 평소보다 훨씬 적어 보였다. 게다가 일본 군인의 모습이 보이질 않았다. 그때 운허 스님이 두루마기 고름을 풀어헤친 채 바쁜 걸음으로 냇둑을 걸어오며 이광수를 향해 소리쳤다. “형님, 일본이 항복하였소. 어저께 오정에 일본 천황이 항복 방송을 했다오. 나는 지금 서울로 가는 길이오.” 이광수는 혼란스러웠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 평안북도 정주에서 소작농의 아들로 태어난 이광수는 열 살 때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된 뒤 친일단체 일진회의 추천으로 도일해 메이지 학원 중학부에서 공부한다. 1917년 한국 최초의 근대 장편소설인 ‘무정’을 매일신보에 연재했고, 1919년 2·8 독립선언을 주도한 후 상하이 임시정부에 참여하기도 했다. 하지만 1937년 수양동우회 사건으로 투옥되었다가 풀려난 뒤 친일 행위가 두드러진다. 이광수는 1943년 말 도쿄에 건너가 최남선 등과 함께 일본 유학생들을 상대로 학병 지원을 격려하는 연설을 했다. 그러나 시국이 점차 험악해지자 귀국 후 서울 생활을 접었다. 이광수는 1944년 3월 아내와 자녀들을 서울에 둔 채 진건면 사릉리에 땅을 사고 조그만 초가를 지었다. 농사도 직접 지었다. 같은 정주 태생으로 불교 운동에 정진했던 삼종 이학수(운허 스님)가 근처 봉선사의 주지로 일하고 있는 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 비록 시골 농막으로 거처를 옮겼지만 서울의 부름에는 언제나 마다하지 않았던 그였다. 1944년 6월 18일 조선문인보국회의 평의원으로 문학자 총궐기대회 의장을 맡아 결전 태세를 강조하는 강연을 하였다. 1944년 11월 11일부터 14일까지 중국 난징에서 열린 제3회 대동아문학자대회에 조선 대표로 참석했다. 광복을 맞기 직전인 1945년 상반기에도 이런저런 정치 행사에 얼굴을 내밀었고 친일 강연을 계속했다. 조선총독부는 그에게 중추원 참의 자리를 권했지만 그것만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런 행적 때문에 그가 은둔을 자처하면서 혼자 살림을 살았던 사릉의 농막은 핑계에 지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그는 직접 소를 사서 기르며 논밭을 갈아 보기도 했지만 이것은 한낱 호사가의 일에 불과했다. 이광수는 사릉천변의 산책길에서 광복의 소식을 접하고는 잠깐 혼돈 상태에 빠져들었다. 그는 자신의 삶과 그 족적을 다시 쓸어 덮을 수가 없음을 깨달았다. 차라리 죽어 버렸어야 했다고 생각했지만 죽음을 택할 용기도 없었다. 그는 병을 핑계 삼아 인근 진전읍 봉선사 절간으로 숨어들었다. 주지인 운허 스님이 경내에 작은 방 하나를 내주었다. ‘다경향실(茶經香室)’이라는 편액이 걸린 방이었다. 이광수는 여기서 몸을 숨기고 세상과 담을 쌓고 살아가리라 생각했다. 그리고 이 방에서 수필집 ‘돌베개’와 ‘나의 고백’을 썼다. 당시 문단에서는 일제강점기 문화 잔재 청산이 가장 중요한 슬로건이 되었고, 이광수의 이름 앞에는 ‘광적인 친일분자’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이광수는 당시의 심경을 ‘나의 고백’에서 이렇게 털어놨다. ‘과거 칠팔 년 걸어 온 내 길이 그 동기는 어찌 갔든지 민족정기로 보아서 나는 정경 대도를 걸은 사람이 아니었다. 내가 조선 신궁에 가서 절을 하고 향산광랑(香山光郞)으로 이름을 고친 날 나는 벌써 훼절한 사람이었다. 전쟁 중에 내가 천황을 부르고 내선일체를 부른 것은 일시 조선 민족에 내릴 듯한 화단(禍端)을 조금이라도 돌리자 한 것이지만 그러한 목적으로 살아 있어 움직인 것이지만 이제 민족이 일본의 기반(羈絆)을 벗은 이상 나는 더 말할 필요도 또 말할 자격도 없는 것이다. 가장 깨끗하자면 해방의 기별을 듣는 순간에 내가 죽어 버리는 것이지마는 그것을 못한 나의 갈 길은 입을 다물고 가만히 있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하였다.’ 이광수의 자기비판은 단순한 개인적 윤리의식으로 치부하기 어려운 문제가 많다. 그가 살아왔던 삶과 그가 지향했던 문학은 모방과 굴종에서 비판과 저항에 이르기까지 식민지 문화가 드러내는 모든 문제성을 고스란히 배태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의 때늦은 반성의 글쓰기는 친일적 행위에 대한 혹독한 자기비판으로 받아들여지기 어려웠다. 글을 통해 독자들의 신뢰를 받을 수 있는 길이란 글을 쓰지 않는 것보다 훨씬 어렵다는 것조차 그는 생각하지 못했다. ‘나의 고백’은 비겁한 자기변명처럼 들릴 수밖에 없었다. 지난달 23일 남양주를 돌며 이광수의 흔적을 찾아다녔다. 이광수가 머물렀다는 사릉의 농막(사릉리 520-1)은 지금 그 자취조차 찾을 길이 없다. 집터 근처에는 허름한 창고들이 들어섰고, 주변에 미루나무 몇 그루가 바람을 막고 서 있다. 이광수가 광복의 소식을 들었던 사릉천변에는 갈대와 잡초만 우거져 있다. 보잘것없는 이 시골 개천에 흐르는 물이 한 소설가의 영욕을 기억하는 듯하다. 이광수가 은둔했던 봉선사를 찾았다. 광릉 숲 입구 봉선사의 일주문에 들어서면 오른편에 나란히 늘어선 승탑과 비석들 끝자락에 ‘춘원 이광수 기념비’가 있다. 운허 스님의 배려로 1975년 세워진 것이다. 다른 비석들은 화강석에 용의 무늬를 새겨 넣은 ‘이수((리,이)首)’가 비석의 머리를 장식하고 있는데 춘원의 기념비는 갓이 씌워져 있지 않은 채로 눈비를 그냥 맞고 서 있다. 당초부터 갓을 만들어 씌우지 않았는지, 아니면 비석 위에 얹은 이수를 일부러 깨뜨려 버린 것인지 알 수 없다. 누군가 가혹한 형벌을 비석에까지 내리고자 한 것인가. 공교롭게도 이날은 운허 스님의 32주기 기신재였다. 분주하게 움직이는 스님들과 불자들 사이로 이광수가 머물렀던 ‘다경향실’이 눈에 띈다. 지금은 조실 스님의 요사채로 쓰인다는 이곳에서 이광수의 흔적은 찾을 수 없다. 그렇게 이광수는 우리 곁에서 애써 지워지고 있었다. 춘원 이광수. 그는 한국 근대문학의 맨 앞자리에 서 있지만 한국문학의 가장 깊은 정신적 상처다. 문학을 통해 한국 사회가 일제강점기에 추구했던 모더니티의 가치를 가장 먼저 문제 삼았던 사람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그가 서 있던 자리는 우리가 지금 서 있는 곳과 결코 다르지 않다. 정리=황인찬 기자 hic@donga.com}

‘노르웨이의 숲’이 ‘상실의 시대’에 도전장을 내민다? 일본의 대표적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63)의 팬이라면 제목이 다른 이 두 장편소설이 같은 책이라는 것을 안다. 그런데 같은 책이 경쟁한다니, 무슨 말일까.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은 1987년 일본에서 출간돼 ‘하루키 신드롬’에 본격적인 불을 붙였다. 이 인기에 힘입어 국내에서도 1988년 저작권 계약이 되지 않은 상태로 3개 출판사가 ‘노르웨이의 숲’으로 출간했지만 반응이 시원찮았다. 문학사상사는 1989년 하루키와 정식 저작권 계약을 한 뒤 ‘상실의 시대’로 이름을 바꿔 재출간했다. 첫해 30만 권의 판매를 기록하는 등 큰 인기를 모았다. 이 책은 출간 20년이 넘었지만 지금도 해마다 3만 부가량 판매되는 스테디셀러다. 그러나 민음사가 두 달 전 하루키 측과 ‘노르웨이의 숲’ 출간 계약을 했다. 문학사상사도 ‘상실의 시대’를 계속 펴낼 예정이다. 같은 내용이지만 제목이 다른 책이 나란히 출간되는 셈이다. 이 기이한 상황이 가능한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회복저작물과 출판권’에 대해 살펴봐야 한다. 1995년 세계무역기구 지적재산권협정에 가입한 우리나라는 베른협약에 따라 그해 저작권법을 개정했다. 즉, 개정법 이행 전에 출간된 저작물을 ‘회복저작물’로 정하고 원작자에게 일정 보상을 하면 계속 출간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문학사상사는 하루키와 정식 계약을 했지만 원제와 달리 ‘상실의 시대’란 제목을 달았다. 하루키는 한국 독자들의 반응에 감사했지만 원제대로 책이 출간되지 않은 것을 불편하게 여겼다. 이에 문학사상사와의 계약기간이 종료되자 다른 출판사와 접촉했고 민음사와 정식 계약을 하게 된 것. 문학사상사는 하루키와의 계약은 끝났지만 저작권법 개정 이전 ‘상실의 시대’를 출간했기에 ‘회복저작물’ 인정을 받아 출간을 계속할 수 있다. 민음사는 새로운 번역으로 2013년 9월 ‘노르웨이의 숲’을 펴낼 예정이다. 장은수 민음사 대표는 이전 ‘상실의 시대’로 나온 책에 비해 ‘고급화 전략’을 사용할 것이라고 귀띔했다. 하지만 ‘노르웨이의 숲’이란 제목은 ‘상실의 시대’에 비해 국내 독자에게 낯설다. 문학사상사도 하루키의 요구에 따라 2000년대 초 ‘상실의 시대’란 제목을 버리고 ‘노르웨이의 숲’으로 출간했지만 판매가 저조하자 제목을 ‘상실의…’로 되돌린 바 있다. ‘노르웨이의 숲’ 판권이 시중에 나온다는 소식에 국내 출판사들의 관심은 높았다. 한 출판사 대표는 판권료에 대해 “민음사가 22만 달러(약 2억3700만 원)를 냈다”고 했고 다른 출판사 관계자는 “2억 원 이상 부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장 대표는 “그보다는 낮다”고 말했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1960년 4·19혁명 이후 이승만 대통령은 혁명 부상자들을 찾아가 눈물을 흘리며 이렇게 독백했다고 한다. “불의를 보고도 젊은이들이 눈을 감으면 나라가 망하지. 암, 당연히 일어서야지.” 자신의 과오를 가리기 위한 면피성 발언이었다는 평가도 있지만 작가는 뭉클함을 느꼈고, 이는 이 소설 집필의 원동력이 됐다. ‘대조영’과 ‘천추태후’ 같은 선 굵은 역사소설을 썼던 작가가 이승만을 정면으로 다룬 장편소설. 국제미아로 떠돌며 독립청원운동을 벌인 ‘해외 독립운동가’, 광복 후 초대 대통령이 된 ‘현실 정치인’ 이승만의 공과를 함께 담았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책의 부제는 ‘섬의 여인, 김만덕’이다. 이 때문에 조선시대 제주의 거상(巨商) 김만덕(1739∼1812)의 생애를 그린 소설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런 기대로 책장을 열었다면 뜻하게 않게 흘러가는 이야기에 당혹스러울 수 있다. 엄밀히 말하면 이 소설은 주로 조선시대 조정에서 보낸 관리와 제주 토착 세력의 권력 대결을 그렸기 때문이다. 김만덕은 이 두 세력을 연결하고, 이야기의 흐름을 매끄럽게 이어 주는 역할에 그친다. 작가는 전국적으로 떠도는 ‘아기장수설화’를 작품 속으로 끌어들여 ‘정득영 이야기’로 변화시켜 풀어낸다. 겨드랑이에 날개가 돋쳐 탁월한 체력을 가진 정득영은 제주 토호들의 비리를 조정에서 파견한 제주 목사(牧使)에게 직언했다가 역모 혐의를 뒤집어쓰고 바다에 억울하게 수장된 인물이다. 김만덕이 정득영과 애절한 연인 사이였고, 정득영이 죽어서도 혼으로 남아 김만덕을 돌봐 준다는 데까지 작가는 상상력을 확장한다. 바로 이 점이 묘미다. 제주 출신인 작가는 각종 설화를 소설 속에 끌어들였다. 소설은 기본적으로 허구지만 독자들은 사실처럼 읽게 마련이다. 그런데 작가는 기이한 설화들을 소설 속 현장으로 끌어와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든다. 특이한 점은 자칫 엉뚱하게 들릴 수 있는 얘기들도 제주라는 땅이 가진 신비한 이미지와 맞물려 제법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는 것이다. 정득영을 먼저 보낸 김만덕은 관기가 돼 새로 부임한 목사 윤정규를 맞게 된다. 둘은 서로의 성품을 알아보고 인간적인 매력에 끌린다. 한편 윤 목사는 제주의 형편을 살펴보며 곳곳에서 문제점을 찾는다. 백성을 수탈하는 중간 관리의 횡포, 그리고 이런 문제점을 지적하는 자신을 협박, 회유하는 세력이 있음을 알게 된다. 이방 출신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한 고성황 일가다. 오랫동안 제주는 본토에서 소외되고, 수탈당하는 지역이었다. 이런 부당함의 근원을 본토의 횡포에서 찾는 경우가 많았지만 작가는 제주 내부에도 문제가 있었음을 드러낸다. 지연, 혈연으로 똘똘 뭉친 제주의 토착세력이 중앙에서 파견 나온 관리들과 결탁해 제주도민의 수탈이 극심해졌다는 시각이다. 의로운 윤 목사와 타락한 토호 고성황 일가가 펼치는 치열한 기와 지략 싸움이 이 작품의 가장 큰 볼거리다. 이를테면 고성황이 ‘떡값’을 준 뒤 중앙에 몰래 상소를 올려 윤 목사가 궁지에 몰리지만, 실은 윤 목사가 받은 떡값을 하나도 쓰지 않고 간직해 ‘무고죄’로 되받아친다. 후반부는 거상으로 성장한 김만덕과 그의 선행으로 이어진다. 익숙한 얘기여서 기시감이 크다. 또한 김만덕 일행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정득영의 혼이 도와 모면하는 상황이 반복되면서 개연성이 약해지는 점이 아쉽다. 말미에 연암 박지원의 ‘허생전’을 떠올릴 수 있는 이상향의 섬까지 등장하는 것을 보면 작가가 너무 많은 것을 담으려 하지 않았나 싶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어스름녘 도시의 뒤편. 노란 백열등 아래 어깨 굽은 사내들이 모여든다. 고기 타는 냄새에 가게 안은 금세 매캐해지고, 떨어진 기름방울에 놀란 숯불이 파닥 뛰어오르며 성을 낸다. 집게 든 손은 분주하고, 노련한 가위질은 시장기를 더하고. 상추 위에 번들거리는 고기 한 점, 마늘 한 점 올려놓고 젓가락으로 쌈장을 치댄 뒤 한 점. 고기 냄새, 사람 냄새 진동하고, 정(情)도 밤도 이내 삶도 깊어만 가는데. ‘이달에 만나는 시’ 12월 추천작으로 노향림 시인(70)의 ‘원조 최대포집’을 선정했다. 지난달 나온 시인의 여섯 번째 시집 ‘바다가 처음 번역된 문장’(실천문학사)에 수록됐다. 시인 이건청 장석주 김요일 이원 손택수가 추천에 참여했다. 어느 때보다 술자리가 잦은 연말. 저녁을 겸해 고기 한 점, 소주 한잔은 익숙한 레퍼토리다. 여기에 얼큰한 된장찌개와 하얀 쌀밥이 더해지면 부러울 게 없다. 노 시인의 집은 10년 넘게 공덕역 인근의 서울 마포구 도화동. 소주 한두 잔이 주량일 정도로 술을 잘 못하는 시인은 집 근처 왁자지껄한 고깃집 분위기가 신기했다. “어떨 때 가면 만원인데, 저로서는 ‘대포집도 줄을 서는구나’ 싶었어요. 근처를 지나갈 때면 상당히 인간적인 불빛이 새어나오죠. 고기 냄새가 아니라 사람 냄새가 나는 거죠.” 시인은 7년 만에 이번 시집을 냈다. 일상적 공간을 친근한 시어들로 풀어내 대중과의 접점을 넓혔다. “자기 자신을 성찰하는 게 결국 문학인데, 독자들도 제 시를 통해 성찰의 기회를 가졌으면 합니다.” 이원 시인의 추천평은 이렇다. “40여 년을 ‘묘사’로만 시 쓰기를 해온 노향림의 시가 ‘무심의 묘사’에 이르렀다는 사실이 놀랍다. 어떤 풍경화를 그려내도 ‘새파란 하늘이 툭 터진’ 것 같은 감각이 살아있다는 것은 더 놀랍다.” 장석주 시인은 “(노향림의) 말들은 삶의 남루와 적막에서 더 생동하며 도약한다. 그게 ‘온몸으로 길을 트며’ 나아가려는 시인의 방식으로 느껴진다”며 이 시를 추천했다. “노향림의 시는 외따롭고, 아득하고, 희미하게 번져가는 풍정들에 대한 하염없는 연민과 동경으로부터 나온다. 문체와 신체가 따로 놀지 않고 서로를 향해 파고들며 환하게 욱신거리는 말들! 점자를 짚듯 한 자 한 자 체온을 얹어보고 싶다.” 손택수 시인의 추천사다. 이건청 시인은 고운기 시인의 시집 ‘구름의 이동속도’(문예중앙)를 추천하며 “(고운기는) 삶의 지근거리에서도 새로운 발견의 세상을 찾아낸다. 때로는 각성이고 위로이며 희망이기도 한 시인의 말들이 눈 시린 언술이 되어 빛을 발하고 있다”고 평했다. 김요일 시인은 신동옥 시인의 시집 ‘웃고 춤추고 여름하다’(문학동네)를 추천했다. “악공이자 아나키스트 기타리스트인 신동옥이 발명해낸 문장의 세계는 새롭고 낯설면서도 아름답다. 이토록 먹먹한 전율은 실로 오랜만이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