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했지만 아픔도 많았던 만남… 이제 그분을 내려놓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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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5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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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김동리 탄생 100주년… 마지막 반려자 서영은 작가를 만나다

“김동리 선생님이 살아계시는 동안에는 완전히 우뚝 서 계셔서 그분 옆에 있다는 것의 의미를 잘 몰랐어요. 그저 사랑하는 쪽으로만 생각했고. 그런데 나무가 쓰러지니까, ‘아 이런 것들이 다 이 관계 속에 감춰져 있었구나’ 싶어 저도 당황했어요.” 소설가 김동리의 부인인 소설가 서영은은 1995년 남편이 세상을 뜬 뒤 10여 년을 방황했다고 말했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김동리 선생님이 살아계시는 동안에는 완전히 우뚝 서 계셔서 그분 옆에 있다는 것의 의미를 잘 몰랐어요. 그저 사랑하는 쪽으로만 생각했고. 그런데 나무가 쓰러지니까, ‘아 이런 것들이 다 이 관계 속에 감춰져 있었구나’ 싶어 저도 당황했어요.” 소설가 김동리의 부인인 소설가 서영은은 1995년 남편이 세상을 뜬 뒤 10여 년을 방황했다고 말했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올해로 소설가 김동리(1913∼1995) 탄생 100주년을 맞는다. 하지만 김동리의 부인 소설가 서영은(70)은 고인과 관련한 각종 행사에 참석하지 않는다. 김동리가 떠난 지 18년, 그는 어떤 봄을 맞고 있을까.

지난달 29일 서울 종로구 평창동 서영은의 집을 찾았다. 새벽에 내린 비로 정원에 있는 산목련이 하얀 잎을 우수수 떨어뜨린 날이었다. 둘의 신혼집이었던 이곳에는 김동리도 없고, 정겹게 키우던 다섯 마리의 개도 차례로 세상을 떴다. 삼면이 책으로 가득 찬 작업실 겸 서재에서 그와 찻잔을 마주하고 앉았다.

○ 고인과 관련된 각종 행사에 일절 참석 안해

서영은은 김동리가 떠난 뒤 신앙을 가졌다. 중학교와 대학 때 한 번씩 자살을 시도할 정도로 극심한 방황과 혼란의 길을 걸었던 그가 뒤늦게 종교에 눈을 뜬 것이다. “젊었을 적 방황이나 아픔의 상처가 심해 가눌 길 없는 상태까지 갔지요. 그것의 극점이 김동리 선생이었어요.” 그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10년이 넘는 연애 끝에 1987년 결혼했지만 김동리는 1990년 뇌중풍으로 쓰러졌고, 5년 뒤 세상을 떴다. “쓰러지시고 5년, 돌아가시고 10여 년 동안 그 만남을 통해 치러야 하는 것들이 굉장히 고통스러웠어요. 가장 행복했던 관계가 김 선생님과의 관계였지만 아픔도 많았죠. 제게는 어떤 고치를 벗어나는 과정이었습니다.”

그는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은 뒤 2010년 펴냈던 ‘노란 화살표 방향으로 걸었다’(시냇가에 심은 나무·사진)를 최근 재출간했다. 그는 2008년 9월부터 산티아고 순례길을 40여 일 동안 걷는 동안 “하나님의 응답을 받았다”고 얘기했다. 개정판이 나온 것은 여행에세이로 소개됐던 책을 종교서적 전문 출판사에서 내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

인생 자체가 하나의 순례길이라 말하는 그는 “이제 그(김동리)를 내려놓고 싶다”고 말했다. “그 의미(김동리의 부인)는 이제 저한테 큰 뜻으로 남아있지 않습니다. 동리문학관도 다른 분들이 잘 운영하고 있어 이제 제가 부인이라는 이유로 어디 기웃거릴 필요도 없습니다. 저는 얼른 불러 주십사 하고 기도합니다. 저를 위한 기도로는 그것이 유일합니다.”

○ “손소희 여사가 ‘그를 끝까지 사랑해 달라’고 말해.”

1990년대 초 서예를 하고 있는 김동리(왼쪽)와 그 모습을 지켜보는 부인 서영은. 자택에 있는 사진을 촬영했다.
1990년대 초 서예를 하고 있는 김동리(왼쪽)와 그 모습을 지켜보는 부인 서영은. 자택에 있는 사진을 촬영했다.
김동리는 생전에 세 번 결혼했다. 1939년 초등학교 교사였던 김월계와 결혼했고, 1953년경 만난 소설가 손소희(1917∼1987)를 두 번째 부인으로 맞았다. 손소희가 1987년 1월 세상을 뜨자, 그해 봄 김동리와 서영은은 서울 정릉 봉국사에서 친인척들만 참석한 가운데 결혼식을 올린다.

당시 김동리는 74세, 서영은은 44세. 결혼 소식이 알려지자 문단은 떠들썩했다. 문단 야사에는 손소희가 불륜 사실을 알고도 ‘새파란 후배’인 서영은에게 “김동리 선생을 잘 부탁한다”는 얘기를 남겼다는 말이 있다.

“김 선생님과 한 3년쯤 사귀고 있을 때였어요. 제가 (출판사) 문학사상에 다닐 때였으니 1978년쯤 됐죠. 손 선생님이 (관계를) 아시고 저를 찾아왔어요. 퇴근하는데 집 앞에 어떤 차가 서 있고 기사가 나와서 저를 불러 차 안에 나란히 앉았는데, 손 선생님이 옆에 계셨죠.”

손소희가 꺼낸 말은 의외였다. “기왕 이렇게 된 것 어떻게 하냐. 김 선생은 가엾고 불쌍한 사람이다. 네가 끝까지 사랑을 많이 해주어라.”

서영은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 그의 머릿속에 35년 전 그 차 안, 그리고 김동리와의 결혼, 이별이 빠르게 스치는 듯했다. “저보다 어떤 의미에서 손 선생님이 김 선생님을 더 사랑하신 것 같아요. 비슷한 연배가 공유할 수 있는 삶의 궤적을 함께한 거죠. 저와는 30년 차이기 때문에 공유할 수 없는 것들이 있었어요. 결혼하니까 이게 느껴졌어요.”

서영은에게 이제 남은 것은 종교와 글이다. 이달 말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를 성서로 해석한 책을 펴낸다. 9월엔 케냐 투르카나로 20여 일간 취재를 겸한 봉사활동에 나선다고 했다. 28년간 현지에서 선교활동을 하다 지난해 8월 세상을 뜬 임연심 선교사에 관한 책을 쓰기 위해서다.

“임 선교사님이 자신의 얘기를 다룬 책을 제가 썼으면 좋겠다는 유언을 남기셨다고 합니다. 두세 번 뵙기는 했지만 큰 인연은 없어서 그 얘기를 듣고 좀 놀랐지요. 하지만 제 앞에 주어진 소명이라고 생각합니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바로잡습니다]

소설가 김동리의 두 번째 부인 손소희 씨의 출생-사망 연도는 1917∼1987년이기에 바로잡습니다.
#시냇가에 심은 나무#김동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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