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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가 책 출판을 위해 크라우드 펀딩(crowd funding·대중 모금)에 동참하는 것을 뛰어넘어 직접 책 홍보와 판매에 나서는 ‘북 펀드 2.0’ 시대가 열렸다. 대형 출판사의 틈바구니에서 살아남기 위한 ‘작은 출판사’의 차별화 전략이다. 장르문학 전문출판사 북스피어는 지난해 일본 추리소설가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 ‘안주’ 출간을 앞두고 북 펀드 5000만 원을 모아 화제가 됐다. 올해는 같은 작가의 소설 ‘그림자 밟기’ 북 펀드를 모집해 8000여만 원을 모았다. 지난해의 ‘북 펀드 1.0’은 시행착오를 거쳤다. 북스피어는 지난해 모인 5000만 원에 빌린 돈을 더해 광고비에 썼다. 인터넷과 라디오 광고로 책을 알렸지만 단발성 광고라 크게 힘을 쓰지 못했다. 1년간 1만5000부 이상을 팔면 원금은 물론 투자액의 10%를 돌려주기로 했는데, 1만2000부가량을 팔아 원금만 돌려줬다. 올해는 방식을 바꿨다. 인터넷과 라디오 광고를 없애고 모금액을 종잣돈 삼아 투자자 102명이 직접 각종 홍보와 판매에 나선다. 가장 역점을 두는 일은 차량 문짝 전체에 붙이는 대형 광고 스티커(개당 25만 원)를 투자자와 지인들의 차에 붙이는 것. 참여자가 차를 몰고 다니며 자연스럽게 입소문 광고 효과를 낸다. 여럿이 차를 몰고 전국투어도 떠날 계획이다. 지난해에는 투자자에게 한 권씩 책을 공짜로 줬지만 올해는 이것도 없앴다. 책을 직접 사게 만들어 펀드 수익에 기여하도록 한 것. 투자자들은 자신이 운영하는 블로그에서 책 증정 이벤트를 벌이고, 가게 주인들은 자신들 가게에 전시도 하고 판매도 한다. 김홍민 북스피어 대표는 “대형 출판사의 덤핑, 사재기, 선인세 경쟁 공세 앞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고민하다 북 펀드를 생각했다”며 “지난해 시행착오를 거쳐 북 펀드 투자자가 직접 책 홍보에 나서도록 했다”고 말했다. 판매는 지난해보다 순조롭다. 지난달 19일 출간 후 3000부를 서점에 배포했는데 딱 열흘 만에 재주문이 들어와 현재 4000부가 팔려 나갔다. 지난해보다 25%가량 판매량이 늘었다. 11월까지 3만 부가 팔리면 펀드 수익을 배당한다. 모금 과정도 ‘작은 기적’이었다. 지난달 1일 마감 당일 아침까지 펀드 하한선인 7000만 원에 700만 원이 부족했다. 하지만 곧 펀드 성사 여부 문의 전화가 쇄도하더니 하루 만에 1710만 원이 모였다. 유학 가서 한 달 굶을 각오로 돈을 낸 유학 준비생이나 아내 몰래 형에게 300만 원을 빌려 낸 남자도 있었다. “늘 헌책만 샀는데 처음으로 ‘그림자 밟기’ 새 책을 샀다. 출판사가 잘되는 걸 보면 덩달아 나도 잘되는 것 같다.”(강원 상서우체국장 조희봉 씨·43) “생활비 절반을 잘라 50만 원을 냈다. 3만 부가 팔리면 돈보다는 책 판매에 일조했단 생각에 뿌듯할 것 같다.”(주부 임민정 씨·35)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뿌리깊은 나무’가) 하던 일을 다만 떠도는 전설로 내버려둘 것이냐, 아니면 다시 오늘로 불러내어 더 새로운 일을 하도록 만들 것이냐 하는 것이, 이제 우리 같은 뒷사람들이 오래 되새기며 풀어야 할 일로 남았다.” -2008년 출간된 단행본 ‘특집! 한창기’(창비) 중에서 1980년 잡지 ‘뿌리깊은 나무’(이하 ‘뿌리’)의 신군부 강제 폐간 이후 태어난 1980년대생 젊은이들이 다시 옛 잡지를 꺼내들었다. 7월부터 매주 화요일 저녁 서울 성북구 성북동 38만 원짜리 월세 방에 자리한 대안문화공간 ‘초록옥상’에 6, 7명이 모여 돌아가며 낭독을 하고 토론도 한다. 7월 30일 저녁엔 김선문(29·출판기획자) 조선종(28·대학생) 강수영(27·대학생) 정슬아 씨(25·전직 비행기 운항관리사), 그리고 이름을 밝히지 않은 20대 그래픽디자이너까지 5명이 모였다. 책상 위에는 1976년 3월 창간호부터 1980년 8월 폐간호까지 ‘뿌리’ 53권 전권이 올라와 있었다. 헌책 냄새가 솔솔 나는 30여 년 묵은 잡지다. 잡지는 김선문 씨가 구했다. 김 씨는 2009년 출판사에서 일하며 ‘뿌리’를 처음 접했다. 발행인 고 한창기 선생의 삶이나 ‘뿌리’를 다룬 책을 읽으며 잡지 전권을 구해 읽겠다고 다짐했다. 지난해 겨울부터 ‘뿌리’를 찾기 시작해 인터넷 중고 판매 글을 역추적한 끝에 6개월 만에 전권을 구할 수 있었다. 김 씨는 “한 선생이 일생 동안 만든 잡지를 읽고 나도 한번 하나에 미쳐 보자”며 페이스북에 ‘뿌리’ 읽기 모임을 제안하자 뜻있는 젊은이들이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오래 묵은 잡지가 재미있을까. ‘선데이 서울’ 같은 성인잡지도 아닌데…. 조 씨는 “창간호에 백해무익한 담배를 국민 상대로 파는 국가를 질타하는 글이 나온다. 30년이 지난 오늘 심각한 질병을 유발하는 담배를 팔아 돈 버는 국가는 그대로다”라며 “반면 흡연자의 권리가 위축된 모습을 보면서 변하지 않는 것과 바뀌어 가는 것을 찾아가는 작업이 재밌다”고 말했다. 강 씨도 “아파트 사는 사람이 아파트를 흉보고 살아도 되는가 묻는 대목이 나온다”며 “과거에 비춰 현재의 우리를 되돌아보게 만든다”고 했다. 정 씨는 “지금 모습을 미래에 보면 어떨까 자주 생각한다. 하나를 선택할 때 30년 뒤 미래에서 보려고 노력하게 됐다”고 말했다. 동년배들은 취업 공부에 바쁜데 불안감은 없을까. 현대예술 전공인 조 씨는 “발행인처럼 돈 안 되는 일을 돈 되게 하고 싶다”며 “파격적인 한글전용 가로쓰기를 선보인 잡지처럼 새롭고 진취적인 작업을 앞으로 펼쳐 볼 것”이라고 했다. 김 씨는 ‘뿌리’를 읽고 세대와 세대를 잇는 작업을 꿈꾸고 있다. 읽기를 마치면 ‘뿌리’에 등장했던 인사들을 만나 대화를 나누고 인터넷에 올릴 계획이다. 5월 문을 연 초록옥상 공간에서 최근 홍익대 뮤지션을 초대해 마을 어르신을 모시고 공연도 열었다. 김 씨는 “나이 드신 분들을 그냥 떠나보내는 건 많이 아쉽다. 뿌리를 기반으로 세대와 세대를 연결하는 콘텐츠를 많이 발굴하겠다”고 밝혔다. 문의 sunmoonceo@gmail.com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지난해 영어로 출간돼 화제를 모은 책 ‘한국, 불가능한 나라(Korea: The Impossible Country)’의 한국판이 출간됐다. ‘기적을 이룬 나라 기쁨을 잃은 나라’(문학동네)라는 제목으로. 미국에서 출간된 영어판은 지금까지 2만 부가량 팔렸다. 영국 주간 이코노미스트의 서울특파원인 저자 다니엘 튜더 씨(31)는 31일 서울 종로구 신문로의 한 음식점에서 한국판 출간기념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한국과는 11년 넘게 인연을 맺은 그는 한국어로 모두발언을 했고 질의응답도 대부분 한국어로 했다. 한국어판은 외국 독자를 위한 한국사 설명은 줄이고 오늘날의 생생한 한국 모습을 앞세워 새로 편집했다. 영국인의 눈에 비친 한국은 여성들이 좋은 배우자를 만나려고 위험천만한 성형수술을 감내하는 나라이자 새것에만 집착하는 ‘네오필리아(neophilia)’인 동시에 따뜻한 ‘정’과 불가사의한 ‘흥’의 나라다. 튜더 씨는 “서남표 전 KAIST 총장을 만났는데 말끝마다 미국을 언급하며 따라가야 한다고 하더라”며 “한국은 스스로 존경하지 않고 세계화, 글로벌 스탠더드라는 이름 아래 서구권 기준을 무작정 따라가는데, 진짜 자긍심을 가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는 단기간에 남아선호 사상을 개선하는 한국인의 유연성에서 그 저력을 발견했다고 했다. 그는 다만 “한국인은 항상 다른 사람보다 앞서 나가야 한다는 부담감을 떨쳐야 한다. 만족을 모른 채 좁은 의미의 성공에만 집착하기보다 행복에 대해 생각할 때다”라고 당부했다. 옥스퍼드대 학생이던 튜더 씨는 2002년 한일 월드컵 때 한국에 놀러왔다가 한국인의 응원문화에 푹 빠져 한국에 관심을 갖게 됐다. 2003년 대학 졸업 후 한국에서 영어강사, 증권사 직원으로 일하다가 2007년 영국으로 돌아가 맨체스터대에서 경영학석사(MBA) 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스위스 헤지펀드 회사에 다니다 2010년 이코노미스트 서울특파원으로 부임했다. 튜더 씨는 조만간 특파원을 그만둔다. 한국에 있으면서 북한 핵문제만 기사로 다루는 일에 싫증이 났기 때문이라고 한다. 지난해 ‘남한이 북한에 유일하게 뒤진 것이 맥주 맛’이라는 기사를 썼던 그는 서울 이태원에 하우스맥주 가게 ‘더 부스 펍’을 운영하며 책 쓰기에 열중할 계획이다. 한국 진보정치의 방향을 논의하고 ‘경제민주화’ 대신에 ‘경제합리화’를 얘기하는 책을 준비하고 있다. 마지막 황손 이석의 삶을 다룬 소설도 쓸 계획이다. ‘왕의 나라’ 영국에서 온 그의 눈에는 황손의 불행한 인생이 비극으로 비쳤다고 한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문을 열고 들어서니 대형 서가가 줄지어 서 있다. 1만3223m²(약 4000평)의 공간에 책 100만여 권이 보관돼 있다. 얼핏 고요한 도서관 풍경을 떠올릴 만하지만 이곳에선 엄청난 ‘속도전’이 펼쳐진다. 기계가 아닌 사람이 드넓은 서가에서 책을 고르고 분배하고 포장하는 데까지 권당 1분이 채 안 걸린다. 그래서 오전에 주문하면 오후에 책을 받는 서비스에 ‘총알배송’이란 이름이 붙었다. 29일 아침 대구 달성군 예스24 대구물류센터를 찾았다. 인터넷서점 예스24는 2007년 서울지역부터 시작해 당일 배송 지역을 확대해 왔다. 7월 대구물류센터가 문을 열어 강원 충청 전라 지역으로 확대됐다. 전국 당일 배송 시대가 코앞에 온 셈이다. 대구물류센터는 기존 파주물류센터의 시스템을 보완해 첨단시설로 만들었다. 하지만 책은 크기와 모양, 두께가 제각각이어서 100% 자동화가 불가능하다. 주문받은 책의 신속하고 정확한 출고를 돕는 자체 프로그램이 있지만 결국 움직이는 것은 사람이다. 일단 주문이 들어오면 서가에서 책을 꺼내오는 집책(集冊)부터 시작한다. 평균 80여 명의 집책 직원이 1인당 많게는 하루 800여 권의 책을 꺼내 온다. 3명이 한 조가 돼 한 번 집책 때 평균 200권을 찾아온다. 당일 배송은 주문 마감 이후 30분∼1시간 안에 출고를 끝내야 하기 때문에 책을 찾아 뛰고 또 뛰어야 한다. 기자가 테스트 삼아 현장에서 책 한 권을 주문하고 직접 집책과 포장을 해봤다. 주문서에 적힌 알파벳과 숫자가 책의 위치를 알려줬지만 망망대해에서 길을 잃은 것 같다. 겨우 책을 찾아 곧장 꺼냈더니 지켜보던 직원이 말린다. “제목만 보지 말고 바코드와 대조해야 합니다.” 요령은 바코드의 마지막 4, 5 자리만 빨리 확인하는 것. 시리즈 책은 한 칸에 꽂혀 있지 않다. ‘상’권을 주문한 고객에게 ‘하’권이 배달되는 불상사를 막기 위함이다. 책에 흔적이 남으면 안 되니 열어 봐서도 안 된다. 집책 직원이 분배 라인으로 책을 갖다 주면 분배 직원이 분배기(50칸짜리 이동식 책장)에 책을 나눈다. 분배기에 책이 쌓이면 포장 라인으로 옮겨진다. 포장 직원은 주문서에 담긴 책과 맞는지 다시 확인한다. 잘못 배송되는 경우가 0.001%밖에 안 되는 비결이란다. 주문 건수마다 부피가 달라 20여 종의 박스에 구분해 담는다. 직원이 포장하는 데는 건당 5, 6초밖에 안 걸린다. 그러나 기자가 책을 박스에 넣고 이른바 ‘쏘세지’(비닐완충재)를 넣어 테이프를 붙이고 마지막으로 송장까지 붙이는 데 1분이 넘게 걸렸다. 마감시간과 정확성에 쫓기다 보니 일하는 직원들의 표정이 하나같이 긴장돼 있다. 과거 다른 업체 물류센터에서 일했던 강모 씨(32)는 “막연히 기계가 책을 골라 보내 주는 줄 알았는데, 이렇게 힘들게 일한 뒤에는 책을 구입할 때 당일 배송 주문을 피한다”고 했다. 결국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 오래 일한다고 한다. 경북 영천물류센터에서 일하다 대구로 온 나영란 씨(40·여)는 “제목밖에 볼 수 없지만 많은 책을 보고 만지는 느낌이 좋다”고 했다.대구=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소설 ‘허생전’의 주인공 허생은 오막살이집에 틀어박혀 10년 세월을 작정하고 책만 읽었다. 아내가 삯바느질로 곤궁한 살림을 이어갔지만 모른 척했다. 참다못한 아내가 버럭 대든 날 허생은 탄식하며 집을 나섰다. 그는 부자에게 빌린 돈을 잘 굴려 큰돈을 벌었다. ‘나는 도서관에서 기적을 만났다’(아템포)의 저자 김병완 씨(43)는 허생과 달랐다. “가장의 책임을 다하지 못하면 남자가 아니다”라는 아내의 엄포에도 1000일 동안 도서관의 딱딱한 의자에 앉아 1만 권이 넘는 책을 읽었다고 했다. 그리고 1년 반 동안 33권의 책을 썼다. 그는 스스로를 ‘도서관이 만든 인간’이라고 불렀다. 부산에 사는 김 씨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속삭이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역시나 도서관에 있었다. 김 씨는 강연이 있는 날을 빼곤 오전 8시부터 오후 11시까지 하루 15시간을 도서관에서 앉아 지낸다. ‘나는 도서관…’에는 2008년 마지막 날 11년간 다니던 삼성전자 연구직 과장 자리를 박차고 나온 뒤 도서관에 틀어박혀 미친 듯이 책을 읽고 글을 쓴 4년간의 기록이 담겨 있다. 그는 땅에 떨어져 뒹구는 낙엽을 보고 회사를 관뒀다고 했다. 믿기 어려웠다. “과장 3년 차, 일도 잘해서 임원에도 도전해볼 만했다. 그런데 직장생활 11년 동안 나 자신을 잃어버렸다. 나 자신을 발견해야 한다는 생각에 직관적으로 도서관을 택했다. 책을 읽으면 길이 보일 것 같았다.” 2009년 1월 중순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부산으로 아내와 두 아이를 데리고 내려갔다. 모아둔 돈으로 전셋집을 얻었지만 곧 월세로, 나중엔 월세도 못 낼 정도로 살림이 쪼그라들었다. 월세 낼 돈도 떨어진 날 아내는 회사 면접을 보라고 남편 등을 떠밀었다. 김 씨는 “면접을 보고 합격했지만 다음 날 다시 도서관으로 갔다. 결국 아내가 대신 밥벌이에 나섰다”며 “자존심이 무너진 일도 여러 번 있었지만 책을 30분만 읽으면 근심걱정이 사라졌다”고 했다. 하루 온종일 책에 몰두하니 몸도 축났다. 밤에 운전이 불가능할 정도로 눈이 어두워졌고 치질과 손가락 통증으로 고생했다. “그래도 안 할 수가 없다. 벗어날 수 없다. 책 읽고 글 쓰는 일에 미쳤다.” 처음 6개월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도서관에서 처음 읽은 책은 기억도 나지 않는다. 6개월이 지나자 책을 읽는 법에 눈떴다. ‘하찮은 책’에서도 보석을 캐냈다. 2011년 가을부터 전율을 느끼며 책을 썼다. ‘48분 기적의 독서법’ ‘박근혜의 인생’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여기저기 특강도 다닌다. 한 가지 주제나 대상을 정해 관련된 책을 다 찾아 읽으면 그것을 꿰뚫는 통찰력이 생긴다고 했다. 김 씨는 “1만 권의 책을 읽으면 글을 쓰는 일도 신의 경지에 오른다는 글귀 ‘독서파만권 하필여유신(讀書破萬卷 下筆如有神)’을 가슴에 품고 산다”고 말했다.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으니 살림은 나아졌을까. “선비는 편하게 살려고 하면 안 된다. 돈 때문에 힘든 일이 많았지만 그런 것에 집중하면 큰 걸 못 본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얼마 전 글쓰기 노하우를 알려준다는 책을 구해 읽었다. 시중에 떠도는 글에 빨간 펜으로 밑줄을 긋고 단어나 문장을 뜯어고쳐 놓았다. 기계적인 설명이 지루해 책장이 잘 넘어가지 않았다. 읽고 나서도 막상 내 글을 쓰려니 자판 위에서 손이 버벅거렸다. 글쓰기 책을 요행을 바라는 심정으로 몇 번 읽어보았는데 결과는 매번 비슷했다. 좋은 글쓰기를 욕심내는 독자라면 이 책이 궁금할 거다. 조선시대 최고의 문장가로 꼽히는 연암 박지원의 글 짓는 법을 공개한다고 하니 기대감을 높인다. 저자는 연암 글쓰기의 본질과 정신 전략을 살피고 저자의 분석을 책에 담았다. 연암이 글쓰기에 관해 언급한 글, 빼어난 글도 책에 옮겼다. 독자는 연암이 죽비로 등을 내려치는 기분을 맛볼 수 있다. 저자는 연암의 글을 자연 사물의 생태로부터 깨달음을 얻어 나와 타자, 인간과 자연 간의 다양성을 자각하고 상생과 공존에 대한 인식을 드러내는 ‘생태 글쓰기’로 정의했다. 생태 글쓰기를 가능하게 한 비결 중 하나는 뛰어난 관찰력. 박지원은 코끼리 눈을 묘사하며 ‘초승달처럼 매우 가늘어서 간사한 사람이 아첨할 때 눈웃음부터 치는 것처럼 보인다’고 썼다. 연암은 나쁜 글은 엄하게 꾸짖었다. 상투적 표현, 베끼기는 용서하지 않았다. 습관적으로 쓰는 말은 먹지도 않을 맛없는 음식을 죽 늘어놓은 것 같다고 했다. 비슷하다는 말은 이미 참되지 않은 것이라며 단죄했다. 심심한 글도 낙제점을 줬다. 남을 아프게 하지도, 가렵게 하지도 못하고 데면데면 우유부단한 글은 쓸 데가 없단다. 어떻게 써야 할까. ‘사의(寫意)’, 글이란 뜻을 드러내면 그만일 뿐이라고 했다. 글을 짓는 사람이 참되면 된단다. 다만 쓸 때는 전략을 세워 써야 한다. 글자는 군사고 글자가 문장을 이루는 일은 대오를 이루어 진을 치는 것과 같지만 전략은 상황에 따라 변화시켜야 한단다. 아, 어렵다. 그를 상사로 만나지 않은 게 축복이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파과(구병모 지음·자음과모음)=평범한 60대 노부인처럼 보이지만 청부살인을 업으로 하는 직업 킬러가 어느 날 ‘타인’이란 존재에 눈을 뜨고 슬픔과 공허, 애정 등의 낯선 감정에 대해 알게 되면서 겪는 변화를 그렸다. 1만3500원.아무도 보지 못한 숲(조해진 지음·민음사)=사채업자에게 진 빚을 갚으려고 엄마가 ‘조폭’에게 팔아넘긴 남동생 현수는 12년 뒤 자기 존재를 숨긴 채 누나 미수의 집을 드나들며 필요한 물건들을 조금씩 채워준다. 부재를 통해 스스로를 증명할 수밖에 없는 주인공들의 서글픈 현실을 담았다. 1만2000원.도덕의 두 얼굴(프란츠 M. 부케티츠 지음·사람의무늬)=저자는 ‘도덕은 너무 많이 써먹어 버린, 그야말로 오래전부터 과도하게 써먹어 버린 개념’이라고 정의한다. 근본적인 삶의 욕구를 억압하는 ‘도덕의 이중성’을 해부했다. 1만4000원.의도하지 않은 결과(케네스 헤이건·이안 비커튼 지음·삼화)=미국이 벌인 10개의 주요 전쟁을 골라 당초 미국이 내세운 전쟁 목적과 실제 결과를 분석했다. 6·25전쟁은 불법적인 침략을 당한 한국을 돕겠다고 나섰지만 일순간 악의 제국인 공산주의 국가들에 대한 성전으로 변모했다고 진단했다. 1만6000원.모사드(미카엘 바르조하르·니심 미샬 지음·말글빛냄)=2011년 11월 이란 테헤란 인근 비밀 미사일 기지 폭격의 배후엔 이스라엘 비밀정보기관인 모사드가 있었다. 이스라엘 국회의원과 국영방송사 사장이 베일에 싸인 모사드의 활약을 소개한다. 2만2000원.나는 정말 행복한가(강태수 지음·끌리는책)=스스로 행복을 충전하는 ‘셀프 에너자이징 비법’을 담았다. 내 안의 무의식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뀌면 행복이 찾아온다고 한다. 1만3000원.당신에게는 사막이 필요하다(아킬 모저 지음·더숲)=탐험가이자 프리랜서 저널리스트인 저자가 30여 년간 세계 각지의 사막을 여행하며 경험하고 깨달은 것을 기록했다. 그는 “삭막한 광야를 걷기 위해서는 오로지 자신의 내부로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1만4000원.모든 동물은 평등하다(피터 싱어 지음·오월의봄)=동물해방 운동을 펼친 헨리 스피라(1927∼1998)의 일생을 담은 평전. 고교 교사였던 그는 미국의 윤리학자인 저자가 쓴 ‘동물해방’을 읽고 고통받는 동물 구하기를 실천했다. 1만6000원.}
책은 태어날 때부터 수분 10%를 갖고 있다. 그런데 책의 습도가 적정 수준(10%)보다 올라가면 곰팡이나 세균의 먹잇감이 된다. 곰팡이로 망가진 책에 코를 대보니 고소한 종이 냄새 대신 역한 냄새가 난다. 24일 열린 국립중앙도서관 전국 도서관 사서 대상 ‘자료재난 대비 응급조치 요령’ 강의에 참가해 장마철 책 관리 요령을 배워봤다. 장마철 책이 침수됐다면 응급조치가 중요하다. 물에 젖은 채 방치하면 3일 안에 곰팡이가 종이를 먹어치우기 시작한다. 가정에선 ‘자연바람 건조’로 책을 살릴 수 있다. 먼저 흙탕물에 침수된 책은 찬물로 깨끗하게 씻어낸다. 씻은 책 사이사이에 흡습지나 갱지, 키친타월을 끼운 다음 살짝 눌러 물기를 뺀다. 단, 잉크가 묻어나는 신문지는 피해야 한다. 물기가 어느 정도 빠졌다면 종이 위에 책을 부채 모양으로 세운다. 선풍기 바람을 이용해 말리며 책 사이에 끼운 종이를 주기적으로 바꿔 주면 좋다. 책을 위아래로 자주 뒤집어 주면 변형을 막는 데 도움이 된다. 책의 제본된 부분은 헤어드라이어를 이용하면 완벽하게 말릴 수 있다. 마지막으로 책 앞뒤에 단단한 송판을 대고 아령이나 벽돌 같은 무거운 물건으로 눌러줘야 한다. 책 표지나 속지가 주름지는 걸 막아 준다. 37일째 장마가 이어진 요즘 같은 날씨엔 책장에 꽂아 둔 책의 습도도 15%에 육박한다고 한다. 책장에 오래 꽂아 둔 책을 한 번씩 꺼내 술술 넘기기만 해도 습기 제거에 도움이 된다. 열린 창가에 서서 선풍기를 등진 채 책을 넘기면 곰팡이 포자를 쉽게 날려 보낼 수 있다. 책을 꽂을 때도 여유롭게 꽂아야 습기를 머금어 부푼 책이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 호우주의보가 내린 12일 인천 강화군 교동도에서 교동교회 구본선 목사(48)를 만났다. 교동도는 강화군과 배로 불과 15분여 거리에 있는 섬이다. 육지를 잇는 다리는 내년에 완공된다. 구 목사는 2011년 1년간 육지를 오가며 70년 이상의 역사를 자랑하는 국내 최초의 예배당 24곳을 누볐다. 발품 팔아 쓴 ‘한국 교회 처음 예배당’(홍성사·사진)은 이달 초 출간됐다. 》책은 기독교인이자 건축을 전공한 장석철 사진가가 24곳을 방문해 찍은 사진에 이야기를 더해 만들어졌다. 출판사는 이덕주 감리교신학대 교수에게 먼저 부탁했지만 이 교수는 구 목사를 추천했다. 구 목사와 ‘처음 예배당’은 인연이 있다. 책 속엔 담기지 않았으나 교동교회는 1899년 설립됐다. 1933년에 세워진 예배당도 지금 교회 인근에 보존돼 있다. 1998년 5월 교동도에 들어온 구 목사는 다음 해 ‘교동선교 100년사’를 동료 목사들과 집필하며 교회사에 눈떴다. 남들에게 역사 이야기를 하기 좋아해 강화군 문화해설사로 일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그의 책도 잘 읽힌다. ‘할아버지가 세우고 아버지가 지키던 교회를 은퇴한 아들이 보듬고’ 있는 경북 봉화군 척곡교회(1909년) 이야기가 인상적이다. 기독교도로 대한제국 관리였던 김종숙은 1905년 을사늑약 이후 벼슬을 버리고 처가가 있는 봉화로 내려와 작은 예배당과 학교를 세웠다. 스스로 목회자가 돼 신앙을 전하고 독립정신을 고취시켰다. 아들 김운학은 교회 1대 면려회장(기독교도 청년단체)을 맡아 교회를 지켰다. 종손 김영성 장로는 인천에서 교사로 재직하다 정년퇴직하고 교회로 내려왔다. 교회를 부탁한 아버지의 유언에 따른 것. 지금도 주일이면 담임목사 부부와 김 장로 부부, 시골 노인 네댓 명이 조촐한 예배를 올린다. 구 목사는 “처음 예배당엔 교회 역사와 그곳을 지켜온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며 “예배당이 사라지면 그 역사도 잊혀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구 목사의 소망과 달리 ‘처음 예배당’은 빠른 속도로 사라지고 있다. 교세를 확장한 교회는 망설임 없이 오래된 예배당을 허물고 그 자리에 체육관을 닮은 대형 건물을 세운다. 1930년대 이전 교회 건물은 전국에 30곳도 채 남지 않았다고 한다. 구 목사는 책에 담지 못한 이야기를 털어놨다. “서울의 한 빌딩으로 자리를 옮긴 교회는 빌딩 옆 역사 깊은 예배당을 창고처럼 방치해뒀습니다. 교회가 옛 예배당을 내팽개치니 교인들은 예배당의 존재조차 모르고 있었습니다. 몇 년 전 지방의 한 교회에선 1930년대 만들어진 예배당을 교인들이 먼저 허물자고 나섰습니다. 목사가 교인을 설득하느라 마음고생이 심했습니다.” 섬마을 작은 교회 목사가 예배당 취재를 위해 자주 뭍에 나가려니 제약도 많았다. 구 목사는 예배가 없는 요일을 택해 길어야 2박 3일 일정으로 예배당을 답사하고 다시 돌아와야 했다. 타고난 ‘길치’인지라 섬 밖을 벗어나면 직접 운전을 할 수 없었지만 동료 목사들이 대신 운전대를 잡아줬다. 구 목사가 5년만 버티자고 아내, 두 딸과 함께 섬에 온 지 어느새 15년이 지났다. 그는 직접 9인승 승합차를 몰아 고령의 신도들을 교회로 모셔온다. 90대 할머니 신도는 70대 신도가 차에 오르면 “어린것들이 목사님을 부려먹는다”고 ‘핀잔’도 한단다. 그는 평균 연령이 70세인 신도 25명을 침이 마르도록 자랑했다. 95세 할머니는 단 한 번도 예배를 거른 적이 없고 88세 할머니는 건강이 나빠 몇 년째 외출을 못해도 교회 헌금은 꼭 전한단다. 먼저 하늘로 간 신도 12명은 가슴에 묻었다고 했다. 교동교회 십자가엔 도시의 교회와 달리 붉은 조명이 없었다. 인위적인 빛을 내지 않아도 빛이 나는 교회였다.교동도=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책장을 넘길 때마다 항문이 가렵다. 박박 긁을까 하다가 주저한다. 항문 밖을 빠져나온 요충은 1만 개가 넘는 알을 뿌린단다. 손으로 긁으면 기생충 알이 손가락 끝에 묻어난다고 하니 상상만으로 몸서리쳐진다. 단국대 의대 기생충학교실 교수인 저자는 기생충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풀어낸다. 기생충은 과학범죄 수사물의 범인처럼 등장한다. 25세 남자가 병원 응급실을 찾았다. 열이 나고 배가 아프고 설사가 이어지는데 원인을 알 수가 없었다. 범인 서울주걱흡충은 대변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결혼을 앞둔 남자가 닷새 전 정력을 키우려고 먹은 뱀이 옮긴 기생충이었다. 기생충을 소개한 각장 말미에는 위험도와 형태, 크기, 감염원, 증상 등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준다. 일종의 사건 해결 보고서인 셈이다. 저자는 ‘기생충이 차별받지 않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책을 썼다고 한다. 너무 많이 먹어 고민인 현대인은 기생충에게 영양분을 나눠 줘도 큰 문제가 없다. 기생충은 분수를 안다. 그래서 세상에 ‘뚱뚱한 사람’은 있어도 ‘뚱뚱한 기생충’은 없단다. 기생충은 인간과 달리 탐욕스럽지 않다. 일부 기생충은 암수가 있고 생식기로 사랑을 나눈다. 짝을 두고 바람을 피우는 파렴치한 기생충도 있다. 인간과 오래 함께한 기생충은 자기 삶의 터전인 숙주(인간)를 웬만해선 괴롭히지 않는다. 암을 일으키고 인간을 조종하는 악당 기생충도 있긴 하지만. 저자는 ‘괴짜’다. 그는 어릴 적 못생긴 얼굴 탓에 설움이 컸단다. 대학시절 징그러운 외모의 기생충을 연구하며 동병상련을 느꼈다. 곧 기생충을 뜨겁게 사랑하게 됐다. 기생충을 연구할 땐 직접 제 눈에 넣기도 하고 환자의 물설사 속에서 기생충을 찾으려고 실험실에서 20일간 씨름하기도 했다. 외모 콤플렉스를 극복하려고 글을 썼다는 저자의 고백처럼 책도 진짜 재밌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핀란드 작은 식당에서 등장인물이 주먹밥을 먹는 장면만 봐도 마음이 따뜻했던 일본영화 ‘카모메 식당’. 저자는 눈 감고 손가락으로 지도 위를 짚은 곳이 핀란드라 비행기를 타고 날아온 엉뚱한 미도리 역을 맡았던 일본 배우다. 핀란드에서 영화를 찍었던 2005년 여름의 추억을 담았다. 교육 강국이자 자일리톨 껌의 나라 핀란드가 저자의 눈을 빌려 보니 새롭다. 핀란드 사람은 낮에는 그토록 얌전하고 내성적이고 말이 없다가 밤이 되어 술을 마시는 순간 술병을 깨고 잔을 던지고 무리 짓는단다. 영화만큼 재밌는 책을 읽으니 광대뼈 불거진 저자의 얼굴이 한껏 더 예뻐 보인다.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제헌절인 17일 국가정보원의 대통령선거 개입을 규탄하는 1인 시위가 각지에서 열렸다. 그들은 ‘헌법 제1조가 어디 갔어?’라고 물었다. 모두가 알다시피 헌법 제1조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이다. 2008년 미국산 수입쇠고기 논란 당시 시위대는 이를 노래로 만들어 불렀다. 노래의 울림이 커질수록 한양대 사학과 교수인 저자의 궁금증도 커졌다. 헌법 제1조는 어디서 왔을까? 책은 헌법 제1조의 기원을 찾아간다. 1919년 4월 11일 중국 상하이 독립임시사무소에서 임시의정원은 ‘대한민국임시헌장’을 선포했다. 제1조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제로 함’이라고 분명히 밝힌다. 군주국의 나라 대한제국이 무너진 지 9년 만에 임시정부가 민주공화국을 표방한 것은 기적에 가깝다고 저자는 말한다. 프랑스 독일 미국 등 주요 국가와 비교해도 헌법 1조에 국체를 민주공화국으로 천명한 나라는 대한민국뿐이다. 일찍이 1880년대 서양 정치사상을 접한 사상가와 정치가의 오랜 고민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1948년 수립된 대한민국 정부도 제헌헌법을 만들며 임시헌장의 정신을 이어받았다. 저자는 ‘공화’에 주목한다. 제헌헌법 제1장 총강 제5조의 ‘공공복리의 향상’ 구절을 찾아냈다. 공화주의(res publica)의 어원을 찾아가면 공공의 일이다. 저자는 제헌헌법에 담긴 개인의 이익보다 공공의 이익을 우선했던 정신을 배워 오늘 정부가 지향하는 방향으로 삼기를 주장한다. 현재 빈부격차 수준을 고려하면 의미 있는 지적이다. 저자는 전작 ‘마을로 간 한국전쟁’에서 6·25전쟁 당시 이념갈등으로 학살극을 벌인 마을들의 미시사를 생생하게 풀어냈다. 전작을 기억하고 책을 고른 독자는 원래 사상사 전공인 저자가 공화주의를 다뤘음에도 개념어라는 특성상 읽기에 조금 벅찰 수 있다. 맺음말에 책의 큰 줄거리를 요약해둬서 먼저 읽으면 본문을 읽는 데 도움이 된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여름 거짓말(베른하르트 슐링크 지음·시공사)=‘책 읽어 주는 남자’로 세계적 인기를 얻은 저자의 신작 소설집. 여름을 배경으로 사랑과 이별, 꿈과 희망 상실의 풍경이 그려지는 가운데 인간 내면에 존재하는 거짓말의 덮개를 벗겨 그 미세한 감정의 파장을 묘사했다. 1만3000원레지노상(앤드루 밀러 지음·문학세계사)=프랑스혁명 전인 1785년, 파리에서 가장 오래된 공동묘지인 레지노상을 허물고 유골을 이장하는 작업을 맡은 엔지니어가 겪게 되는 기이한 이야기다. 폭풍전야의 긴장감과 광기가 부글대는 18세기 파리의 냄새와 소리, 광경을 생생히 재연했다. 1만5000원딸에게 보내는 심리학 편지(한성희 지음·갤리온)=정신분석 전문의가 딸에게 전하고 싶은 삶의 지혜에 심리학을 곁들여 편지 형식으로 담았다. ‘결혼해도 외롭기는 마찬가지란다’ ‘페이스북과 트위터로 외로움을 치유하려 하지 마라’ 같은 조언을 들려준다. 1만4000원한눈으로 보는 과학과 발명의 세계사(내셔널지오그래픽 편저·지식갤러리)=10권짜리 백과사전에 버금가는 방대한 자료를 한 권에 싣는 ‘세상의 모든 지식’ 시리즈. 책을 펼치면 과학과 발명 분야의 인류 발자취가 연대표를 따라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5만 원공작(이정훈 지음·글마당)=군사안보 분야 전문기자가 추적한 한국 스파이 60년사. 저자는 국정원이 통일을 전담하는 정보기관으로서 공작으로 통일한다는 분명한 정보목표를 갖고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1만8000원해피로드(이케다 다이사쿠 지음·화광신문사)=남성 중심 시대에 여성의 위대함을 외친다. SGI그룹 회장인 저자가 직접 지켜본 사람들의 이야기로 풀어낸다. 1만 원보수주의와 보수의 정치철학(양승태 엮음·이학사)=한국의 보수 집단과 정당은 무엇을 왜 지켜야 하는지 체계적으로 설명하지 못하는 이념적 빈곤에 빠져 있다. 책은 보수주의의 정치철학적 기초, 동서양의 보수주의를 살핌으로써 이러한 한국적 현상을 진단한다. 2만8000원}

지난해 2월 내한 강연 때 3만 원의 수강료에도 800석의 객석을 꽉 채워 화제가 됐던 협상학의 대가 스튜어트 다이아몬드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경영대학원(와튼스쿨) 교수(사진)가 이달 말 다시 내한해 특강을 연다. 29, 30일(1차), 31일, 8월 1일(2차) 이틀씩 하루 8시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콘래드서울 호텔에서 열릴 ‘협상 마스터 클래스’다. 이번 특강의 수강료는 198만 원에 이른다. 이번 특강을 기획한 출판사 8.0은 17일 “다이아몬드 교수가 전 세계를 돌며 소수를 대상으로 직접 강의하는 실전 협상 강연의 일환으로 개별 사전 질의를 받아 참가자 맞춤형 협상 수업을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총 16시간에 이르는 강의 수강료는 1800달러. 달러당 1100원을 적용해 198만 원으로 책정됐다. 시간당 12만 원의 고액이지만 총 모집 정원(선착순 80여 명)이 거의 다 찰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허윤정 8.0 기획팀장은 “수강 신청자의 대다수는 대기업 협상 실무자와 기업 최고경영자(CEO), 2세 경영인”이라고 말했다. 2011년 국내에 번역 출간된 그의 저서 ‘어떻게 원하는 것을 얻는가’(8.0)는 지금까지 약 60만 부가 팔렸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밀리언셀러 만화 ‘힙합’이 9년 만에 리메이크작 ‘브레이킨’(브레이크댄스의 속어)으로 돌아온다. 이달 초 신 나는 힙합 음악에 맞춰 현란한 춤을 추는 비보이들의 모습이 담긴 티저 영상이 공개되자 팬들의 기대가 커지고 있다. 1990년대 만화 팬들에게 ‘힙합’은 전설이었다. 1997년 12월 ‘아이큐 점프’에서 연재를 시작해 2004년 6월 끝났다. 만화계에선 단행본 24권이 약 200만 부가량 팔린 것으로 보고 있다. 만화 출간 이후 지역마다 달랐던 춤 용어가 하나로 통일됐고, 만화를 열독하던 비보이들은 세계 정상에 올랐다. ‘힙합’은 열아홉 살 불량 청소년 ‘태하’가 친구들과 함께 춤을 배우며 꿈을 키워 나가는 내용. ‘브레이킨’에선 주인공 이름과 나이, 성장 만화라는 큰 뼈대만 남기고 싹 바꿨다. 자신의 만화를 직접 리메이크한 김수용 작가(40)를 15일 서울 수유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그는 “연재를 끝내고 보니 아쉬운 부분도 있고 해외 진출 욕심도 났다. 2013년에 맞게 재정비했다”고 말했다. ‘브레이킨’은 이르면 이달 말부터 매주 카카오페이지, T스토어, 네이버북스, 다음만화마켓에서 회당 500원 선에 유료 판매된다. 이 만화의 리메이크 결정에는 국내 비보이들의 안타까운 현실도 한몫했다. 김 작가는 2010년 국내 유명 비보이들의 병역 비리 사건을 떠올렸다. “군대를 안 간 것은 비난받아 마땅하지만 그 친구들이 외국에 나가 태극기를 휘날리며 국위 선양을 하고 돌아와도 라면만 먹는 현실이 안타까웠습니다. 여전히 길거리 아이로 취급받는 비보이들은 스스로를 바보이(바보+보이)라고 부르는데, 그들에 대한 이야기를 브레이킨에 담았죠.” 김 작가는 리메이크작의 성공을 위해 힙합 뮤지션 ‘아웃사이더’와 손잡고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을 준비했고 뮤직 비디오 촬영도 계획하고 있다. 해외 진출도 적극 모색 중이다. 국내 비보이 팀이 국제대회에서 여러 차례 우승하며 최고 입지를 다진 데다 외국에선 전문 비보이 만화가 없어 시장성도 충분하다고 판단했기 때문. 연재 완료부터 리메이크 시작까지의 9년간 만화계엔 큰 변화가 있었다. 독자가 ‘힙합’을 만났던 만화 잡지와 단행본 시장은 무너진 지 오래됐고 요즘은 포털 웹툰의 시대가 됐다. 김 작가는 ‘쉬운 길’인 웹툰 연재와 ‘깜깜한 길’인 온라인 유료 판매 중에 고민하다 후자를 택했다. 그는 “포털 회사와 웹툰 연재를 상의했지만 기성작가 1명보다 신인작가 6, 7명을 쓰길 원하는 그들과 조건이 맞지 않았다”며 “기성작가 중엔 울며 겨자 먹기로 웹툰 연재를 택한 작가도 많지만 유료 판매란 모험을 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웹툰 등장으로 생긴 ‘만화=공짜’란 인식도 고치고 싶었다고 한다. 작가 정신을 갖고 일하는 만화가의 자리가 줄어드는 것도 걱정했다. 그는 “20년 전 신인작가가 주간지에 컬러 만화를 연재하면 페이지당 6만 원 정도를 받았는데, 지금의 웹툰 고료는 그 절반도 안 된다”며 “웹툰 작가는 직접 편집까지 도맡아 하니 고생은 두 배 이상으로 늘고 고료는 절반 이하로 준 셈”이라고 했다. 원래 이날 인터뷰 약속 장소는 김 작가의 수유동 지하 스튜디오였다. 굵은 장맛비가 일주일째 쏟아지더니 결국 새벽 3시경 스튜디오에 물이 찼다. 1995년 생긴 이 스튜디오 이름은 ‘지하(ZEEHA)’다. ‘지하에서 시작하지만 지상으로 올라가자’란 포부를 담았다는데, 18년이 지났어도 여전히 지하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여름의 묘약(김화영 지음·문학동네)=불문학자인 저자가 2011년과 2012년 두 번의 여름에 걸쳐 찾은 프로방스와 파리 여행의 기록이다. 알베르 카뮈, 장 그르니에, 마르셀 프루스트 등 그가 평생을 바쳐 번역해 소개한 작가에 대한 단상이 펼쳐진다. 1만4000원.태양의 돌(옥따비오 빠스 외·창비)=라틴아메리카를 대표하는 현대시인 24명의 대표 시작을 엮었다. 스페인 메넨데스 필라요 국제대학과 한국외국어대 교수를 겸임하며 한국 고전시가와 현대시를 스페인어로 옮기는 작업을 해온 민용태 교수가 번역했다. 1만3000원. 몸의 인지과학(프란시스코 바렐라 외 지음·김영사)=1997년 나온 ‘인지과학의 철학적 이해’의 번역을 다시 다듬어 재출간했다. 행간의 숨은 의미까지 우리말로 살려내고 인지과학 전체 지형도까지 그려냈다. 2만2000원.백만장자의 마지막 질문(김용규 지음·휴머니스트)=죽기 전 삼성그룹 창업주 이병철 회장은 “신의 존재를 어떻게 증명할 수 있나”라고 물었다. 철학자인 저자는 누구나 품을 수 있는 질문에 인문학의 관점으로 답했다. 무신론자에겐 일침을 가한다. 2만5000원.사회는 갈등을 만들고 갈등은 사회를 만든다(박길성 지음·고려대출판부)=고려대 사회학과 교수인 저자가 한국 사회의 갈등 양상을 분석했다. 1만4000원.혁명의 배반 저항의 기억(육영수 지음·돌베개)=프랑스혁명을 문화사적 관점으로 살폈다. 프랑스혁명이 서양, 백인, 남성의 시각에서만 서술돼 왔음을 비판하고, 혁명가요와 혁명축제가 꽃핀 문화적 사건으로서의 혁명을 조명한다. 1만7000원.광고의 새로운 정의와 범위(김병희 지음·한경사)=스마트 미디어 시대를 맞아 광고의 정의와 범위를 새롭게 제시했다. 2만 원.명품노인(서사현 지음·토트)=나이가 들면 입은 닫고 지갑만 열어라? 사람, 돈, 일, 건강, 시간 5가지를 갖춘 인생 2막을 제시한다. 1만3500원.}

빅스톤갭은 미국 버지니아 주 애팔래치아 산맥에 위치한 인구 5400명의 작은 마을이다. 동네 어디든 석탄가루가 묻어나는 탄광촌이다. 2000년대 중반 이곳에 헌책방 ‘테일스 오브 론섬 파인’이 들어선다. 도시 생활에 진력나 오랜 꿈을 이루기 위해 이곳에 정착한 웰치 부부가 연 서점이다. 이 책은 이야기 솜씨가 일품인 아내 웬디 씨가 털어놓은 5년의 헌책방 운영 고군분투기다. 도시에서 온 부부가 1903년 지어진 고택을 매입하고 헌책방을 연다고 하니 지역 주민들은 ‘미쳤어’를 연발한다. 주민들은 “언제 개점해요?”라고 묻지만 속으론 ‘1년도 못 버틸걸’ 하고 단정한다. 헌책방 운영이 처음이라 책도 부족했다. 책을 세워 놓으면 공간을 채우지 못해 눕혀 놓았더니 ‘책 시체 안치소’ 분위기를 풍겼다. 게다가 주민들은 “돈 벌면 곧 떠나겠지” 하며 쉽게 마음을 열지 않았다. 부부는 여섯 가지 헌책방의 사명을 내걸었다. 마지막 사명은 ‘헌책 판매가 돈 벌기 어려운 장사임을, 그것이 일종의 신성한 신뢰를 바탕으로 이루어져야 함을, 이 모든 일이 고객과 우리 모두 즐겁고 유쾌한 가운데 이루어져야 함을 명심한다’. 그리고 부부는 실천했다. 헌책 값도 매길 줄 모르던 부부는 책을 팔러 온 손님의 눈을 피해 인터넷으로 재빠르게 책값을 검색하며 절절맸다. 나중엔 손님이 기분 나쁘지 않게 거절하는 법도 배우고 공짜 책과 끼워주기로 주머니 가벼운 손님까지 배려했다. 글쓰기, 뜨개질, 연극, 미니콘서트도 마을 주민과 함께 열었다. 물론 시련도 있었다. 부부는 대형마트에서 직원 눈을 피해 게릴라 홍보전을 펼칠 정도로 용감했다. 하지만 과거 직장 상사였던 마을 토박이와 틀어지자 마을 사람들이 약속이나 한 듯 등을 돌려 마음고생을 하기도 했다. 다행히 지역신문에서 헌책방의 매력을 우리네 맛집 소개처럼 맛깔나게 보도해 극적으로 부활했다. 책이 쌓여 가니 사람에 얽힌 이야기도 쌓여 갔다. 책을 팔러 온 사람은 책과 함께 자신의 구구절절한 사연을 남기고 떠났다. 한 남자는 죽은 아내의 책을 팔고, 다른 남자는 바람난 여자친구가 남긴 책을 판다. 책 사러 온 사람도 마찬가지. 한 남자는 어린이용 고전을 고르더니 “집이 불타 책도 사라졌다. 어렸을 때부터 가지고 있던 책이라 새로 사서 꽂아 두려고 한다”고 말한다. 뭉클한 순간도 있었다. 부부는 ‘땅꼬마’란 별명을 가진 단골 노인을 반기지 않았다. 겉으로 내색하지 않았지만 늘 시끄럽게 떠드는 수다가 불편했다. 땅꼬마가 죽은 뒤 찾아온 딸은 “아버지를 인간으로 존엄성을 느끼게 해줘 고맙다”고 전한다. 땅꼬마는 문맹인 퇴역군인이었다. 그는 똑똑한 헌책방 주인이 친구인 걸 자랑스럽게 여겼다. 책을 읽지 못하는 땅꼬마는 헌책방에서 산 책 대부분을 재향군인회에 기증했었다. 책엔 아쉬운 점도 있다. 저자도 땅꼬마 못지않은 수다쟁이인데 미국식 유머로 수다를 떨다 보니 한국인이 쉽게 따라 웃을 수 없는 대목이 나온다. 헌책방 순례를 떠난 부부가 ‘퓨퀘이(Fuquay)’ 표지판을 보고 가가대소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왜 웃는지 어리둥절했다. 역자가 영어 욕설인 ‘퍽(fuck)’의 프랑스식 발음으로 들려서라고 설명해 준 뒤에야 이해가 갔다. 헌책방 자랑은 실컷 해놓고 사진 한 장 싣지 않은 것도 불친절하다. 사진이 궁금하면 블로그(wendywelchbigstonegap.wordpress.com)를 참고하면 된다. 헌책방을 만나러 빅스톤갭까지 날아갈 수 없으니 기자는 퇴근길에 서울 은평구 응암동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에 갔다. 지하 헌책방은 간판도 없다. 2007년 개업 때 돈이 부족해 달지 못했단다. 헌책을 팔아 큰돈을 벌지 못하는 건 진리다. 진상 손님과 책 도둑에도 시달려야 한다. 헌책방 사장은 이 책에 추천사를 쓴 윤성근 씨. 그도 저자처럼 직장을 그만두고 헌책방을 열었고 책도 여러 권 냈다. 한 달에 두 번(2, 4주 금요일) 심야책방을 연다. 오후 3시부터 다음 날 오전 6시까지 문을 열고 저녁엔 한 차례 공연도 한다. 시간이 늦은 탓인지 손님은 기자 혼자였다. 책을 다룬 책을 추천해 달라고 하자 소설가 김훈의 ‘내가 읽은 책과 세상’을 추천했다. 낡은 책이라 망설이는데 초판본이고 절판본인 데다 더는 작가가 문학 에세이를 쓰지 않을 테니 소장가치가 있다고 한다. 1989년에 나온 4200원짜리 책을 1만5000원에 구입했다. 윤 씨가 말했다. “주변에서 헌책방을 찾아보면 의외로 많이 있을 거다. 잘 살펴보면 걸어서 5분 거리의 헌책방도 찾을 수 있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정유정 작가의 장편소설 ‘28’의 북 사운드트랙(사진)이 출시됐다. 영화와 드라마 사운드트랙은 익숙하지만 북 사운드트랙은 드물다. 베스트셀러 사운드트랙은 처음이다 출판사 은행나무는 지난달 16일 출간된 ‘28’의 사운트트랙 앨범을 출시하고 음악 전문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인 사운드클라우드와 각종 음원사이트에서 노래를 서비스한다고 11일 밝혔다. 정식 앨범 2만여 장은 책을 구입하는 독자에게 무료로 배포할 계획이다. 이미 책을 산 독자는 사운드클라우드에서 무료로 들을 수 있다. 이번 앨범 작업에는 홍익대 주변에서 주로 활동하는 이지에프엠, 리터, 트루베르, 헤르츠티어가 참여했다. 주요 등장인물을 테마로 한 5곡이 수록됐다. 은행나무 편집자이기도 한 헤르츠티어는 “사운드트랙을 틀어놓고 책을 읽으면 장면을 상상할 때 도움이 된다”며 “눈으로 읽고 귀로 상상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음원사이트에서 거둔 수익은 전액 참가 뮤지션에게 돌아간다. ‘7년의 밤’으로 성공을 거둔 정유정이 2년 3개월 만에 내놓은 ‘28’은 출간 한 달 만에 10만 부를 돌파하고 한국소설 부문 판매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소설은 인수(人獸)공통전염병이 퍼지는 혼돈의 도시를 그렸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4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창천동의 한 건물. 지하로 내려가자 만화카페 ‘카페 데 코믹스’가 나타났다. 입구에서 신발을 벗고 슬리퍼로 갈아 신어야 했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옛 만화방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 펼쳐졌다. 깔끔한 실내는 다양한 캐릭터를 살린 피규어로 장식돼 있고 한쪽에선 커피전문점에서 볼 수 있는 고급 커피기계로 커피를 내리고 있다. 고양이 5마리도 실내를 누볐다. 만화방이 불황이라지만 이곳은 60석 중 빈자리를 찾기 힘들었다. 커플이나 여성 손님이 대부분이었다. 어린아이를 데려온 부모도 함께 만화책을 보고 있다. 만화방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담배 재떨이와 자장면 그릇은 찾을 수 없었다. 올해 3, 4월 젊은이들이 몰리는 서울 신촌과 홍익대 주변에 만화카페 세 곳이 문을 열었다. 30대 초반 청년 사장들이 운영한다. 이들은 만화방에서 진화한 만화카페의 성공을 장담했다. ‘카페 데 코믹스’ 신촌점 사장 박일열 씨(30·대기업 연구원)는 수학능력시험 전날까지 만화책을 손에서 놓지 않던 만화광이다. 신촌점은 세 번째 만화카페다. 경기 광명시에서 처음 열어 만화카페의 밑그림을 그렸다. 광명에서 했던 실험으로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판단해 대형 상권인 신촌으로 진출했다. 앞으로 ‘만화카페 프랜차이즈’를 꿈꾸고 있다고 했다. 이곳은 커피 한 잔과 만화 2시간에 6500원으로 생각보다 비싸지 않다. 박 사장은 “커피전문점 못지않은 커피와 인테리어, 그리고 고양이로 과거 만화방과 차별화했다”며 “주로 연인이나 가족, 여성 손님이 많고 혼자 온 남자 손님은 드물다”고 말했다. 여자친구와 함께 이곳을 찾은 대학생 이상진 씨(27)는 “만화방 하면 남자들끼리 모여서 만화책 보는 곳으로 생각했는데 아기자기하고 쾌적해 데이트 장소로도 딱이다”라고 말했다. 홍대입구역 인근의 만화카페 ‘킥킥나무’ 사장 조승아 씨(33·여)는 판타지 작가 지망생이다. 그는 만화방의 잠재 고객인 여성의 마음을 읽으려고 노력했다. 실제로 ‘킥킥나무’를 방문했을 때 홀로 찾은 여자 손님이 대부분이었다. 화분이 놓인 2층 창가에서 만화책을 읽으면 제법 운치가 있다. 조 사장은 “담배연기로 가득한 만화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어떻게 하면 여자 손님을 만족시킬 수 있을지 고민했다”며 “만화 대여점 수가 줄어 여성들이 만화 볼 곳을 찾기 힘든데 만화카페가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런 만화카페가 과거 만화방을 대체하며 사랑받을 수 있을까. 현실의 벽은 녹록지 않다. 만화방 시장은 10여 년째 내리막이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2012 만화산업백서’에 따르면 전국의 만화방·만화카페는 2009년 936곳에서 2011년 811곳으로 감소했다. 전국만화방연합회는 1997년 외환위기 직후 1만여 곳에서 1000여 곳으로 급격하게 준 것으로 보고 있다. 정승만 만화방연합회 회장은 “7, 8년 전부터 카페 이름을 단 만화방이 늘더니 고급 인테리어와 커피를 갖춘 만화카페가 생겨나고 있다”며 “젊은 사장들의 새로운 시도가 반갑고 응원도 보내지만 결국 만화방은 커피나 인테리어보다 만화책이 핵심”이라고 지적했다. 만화방이든 만화카페든 결국 그 성패는 만화 콘텐츠에 달려있다는 얘기다. 기존 만화방과 만화카페의 차이는 일간만화 또는 매일지로 불리며 하루하루 출간되는 ‘일일만화’의 유무에서 갈린다. 황성 김성동 김성모 작가 등이 낸 일일만화는 40, 50대 만화방 독자에게 인기가 높다. 하지만 새로 생긴 만화카페는 젊은층 취향을 고려해 일일만화는 받지 않고 웹툰 단행본이나 베스트셀러 만화에 집중한다. 만화방을 14년간 운영해온 경기 고양시 일산 호수만화방의 김활란 사장(51·여)은 “젊은층 공략도 중요하지만 만화방 매상을 꾸준히 올려주는 일일만화 고객층을 무시하면 안 될 것”이라고 했다. 담배는 모든 만화방이나 만화카페의 숙제다. 만화방도 금연구역으로 지정돼 흡연석을 따로 분리하자 매출액이 감소했다고 한다. 한 만화방 주인은 “흡연실 안에 들어가 담배를 피우라고 하면 손님들이 갑갑하다고 난리다. 흡연 손님이 많으니 슬그머니 문을 열어둘 수밖에 없다”고 털어놨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서른두 살의 웹 디자이너 정봉에게 대학동기 여자친구는 ‘보험’이었다. 둘은 서로 사랑하지 않았지만 외로움 달래기, 성욕 해소를 위해 만났다. 두 사람의 관계는 출발부터가 술김에 이뤄진 ‘하룻밤 사랑’이었다. 이런 관계에 싫증을 느낀 정봉은 새 출발을 다짐한다. 픽업 아티스트라 부를 만한 수수께끼 남성의 도움으로 얼굴을 뜯어 고치고 살을 빼고 촌스러운 이름까지 바꿨다. 새롭게 태어난 그는 물건 고르듯 마음에 드는 여자를 고를 꿈에 부푸는데…. 지난해 9월 연재를 시작한 인터넷 웹툰 ‘인기 있는 남자’의 스토리다. 요즘의 연애세태를 담아 젊은층의 공감을 이끌어낸 인기작이다. 포털사이트 다음의 웹툰 60여 종 중 10위권이다. 이달 초에는 단행본(영컴)으로도 출간됐다. 열혈 팬 중에는 주인공을 보며 대리만족을 느끼는 남자들이 많다. 독자들이 보내는 팬레터 중에는 “여자친구와 헤어졌다. 어떻게 하면 예쁜 여자를 꼬일 수 있느냐”는 식으로 연애 노하우를 전수받으려는 남성도 있다고 한다. 8일 오후 경기 부천에서 최호진 작가(33)를 만났다. 연애에 도가 튼 바람둥이 남성일 것이라는 세간의 추측과 달리 올해 봄 네 살 연하의 후배 웹툰 작가와 결혼한 여성이다. 게다가 배까지 부른 예비엄마이기도 하다. 최 작가는 “연재 반년 만에 여자란 사실을 알렸더니 깜짝 놀라는 독자가 많았다”며 웃었다. 울며불며 매달리는 남자에게 “우리 계산 좀 하고 살자”며 냉정하게 등을 돌리는 여자, 홀로 카페에 앉은 여성의 옷차림이나 읽고 있는 책 제목만 보고 솔로인지 여부를 가려내는 남자…. ‘선수’가 아니면 파악할 수 없는 이런 남녀관계의 디테일을 어떻게 포착하는 걸까. 최 작가는 “현실 속 남녀의 ‘찌질’하거나 추한 모습까지 생생하게 담고 싶었다”며 “길에서 한 남자의 휴대전화를 우연히 보니 여자의 연락처가 만난 클럽명으로 저장돼 있었다. 이런 디테일을 만화에 반영했다”고 말했다. 최 작가의 작품 속 주인공은 자주 욕을 먹는다. 최근 연재분에서 정봉과 사랑에 빠진 여성이 짧은 결혼생활 뒤 별거 중이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결혼 사실을 감춘 애인이나 그녀를 ‘천박하다’며 외면하는 정봉도 입방아에 올랐다. 작가는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사람이 외로우면 남보다 제 감정을 먼저 챙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판단은 독자의 몫이다. 다만 연애기술에 집중해 ‘인기 있는 남자’를 읽은 남성에겐 일침을 가했다. “제 웹툰의 중심은 연애기술이 아니라 정봉의 마음과 행동이 변화하는 과정에 있습니다. 이미 많은 것을 경험한 사람은 순수했던 때로 돌아가기 힘들다는 걸 보여주고 싶습니다.”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