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찬

황인찬 기자

동아일보 국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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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특파원 황인찬입니다. 한일 관계가 더욱 좋아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일본에 왔습니다. 일본의 오늘을 보여드립니다.

hic@donga.com

취재분야

2026-02-27~2026-03-29
일본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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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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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3%
국제교류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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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로호 둘러싼 국제 암투 그린 장편소설 펴내

    속았다 싶었다. 나로호 관련 소설을 썼다고 해서 만났더니 작가의 입에서 나온 말은 태반이 자동차 얘기였다. 그도 그럴 것이 중학생 시절 자동차 디자이너를 꿈꾼 뒤 서울대 산업디자인학과를 나와 1988년부터 10년간 기아자동차에서 자동차 디자이너로 일한 그다. 승용차 ‘크레도스’와 ‘슈마’가 그의 작품이다. 구상 한밭대 산업디자인학부 교수(47·사진)가 ‘히든 솔저’(나남)를 펴냈다. 자동차를 소재로 한 ‘천년을 꿈꾸는 자동차’ ‘꿈꾸는 프로메테우스’에 이어 세 번째 장편소설이다. 23일 기자간담회에서 ‘디자이너가 왜 소설을 쓰느냐’고 물었다. “자동차 디자인에도 스토리가 필요합니다. 학생들에게 ‘5년 뒤 네가 출근할 때 거리 풍경과 느낌을 디자인으로 표현해보라’고 얘기해요. 스토리텔링은 창의적 디자인의 필수 요소이죠.” 작가의 상상력은 기발하다. 국가유공자로 순직한 군인들이 실제는 살아 있으며, 이들이 비밀리에 나로호의 개발책임자를 납치해 장거리유도탄을 만든다는 줄거리다. 국정원의 비선조직이라는 이 ‘히든 솔저’들은 구국결사대쯤 된다. “북한이 지난해 말 (장거리 로켓) 은하3호 발사를 성공시킨 것을 보고 소름이 돋았어요. 나로호를 비롯한 우주발사체 연구에 대한 관심이 더 높아졌으면 하는 생각에 소설을 썼습니다.” 그는 자동차도, 우주발사체도 노하우 습득이 중요하다고 했다. 수많은 도전과 실수 끝에 명품이 나온다는 것. 세계적인 자동차 디자이너인 피터 슈라이어(60)가 최근 현대·기아차 디자인 총괄사장에 오른 것에 대해선 이렇게 평했다. “현대차는 동양적인 디자인을 추구하는 반면 기아차는 유럽적인 디자인을 따르죠. 슈라이어가 두 회사를 책임지면 현대차의 개성이 다 없어지지 않을까요.”황인찬 기자 hic@donga.com}

    • 2013-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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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섹시스타 이효리 ‘녹색평론’ 읽는다는 말에…

    "'녹색평론'을 보고 있으니 회사대표가 '불온서적 보고 있냐'고 잔소리하시더라고요. 한 달에 1만 원 내고 정기 구독하고 있어요." 가수 이효리(34)가 최근 한 인터뷰에서 밝힌 말이다. '녹색평론'은 환경과 생태 담론을 다루는 격월간지. 이효리의 발언 이후 놀라운 일이 발생했다. 쉽게 읽기 어려운 잡지임에도 잡지사에는 "나도 정기 구독하겠다"는 문의전화가 이어졌고 이틀 만에 40여 명의 구독자가 생겼다. 이효리는 유기견 보호와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 각종 사회적 이슈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밝히면서 누리꾼들로부터 '개념 연예인'으로 불리고 있다. 우리 사회의 대표적인 섹시 아이콘이자 가십의 대상이던 그의 변신 과정은 대중문화계에서 일고 있는 '개념 연예인' 열풍을 드라마틱하게 보여준다. ●파티 대신 홀몸노인 방문 대중문화 속 개념 연예인의 이미지는 이효리의 활동 속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가 달라진 것은 2010년으로 거슬러간다. 그는 당시 4집 'H-Logic'이 표절 시비에 휘말리자 2년가량의 공백기를 가진 뒤 달라진 행보를 보였다. 그는 2011년 10월 트위터를 통해 "비싼 모피옷 사지 말고 따뜻한 옷 한 벌 사서 어려운 사람에게 가자"며 봉사활동을 독려했다. 그해 12월에는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에 대해 생각해보자"고 제안했다. 서울 마포구 아현동 달동네를 찾아 홀몸노인에게 털모자를 전달했다. 지난해 12월 대통령선거 땐 투표 참여를 독려하기도 했다. 이효리의 활동을 중심으로 보면 개념 연예인의 모습은 △정치·사회적 이슈마다 균형감 있는 의견을 피력하고 △사회적 소수자에 관심을 갖고 △꾸준히 봉사활동을 하는 데서 드러난다. 개념 연예인이 주목받는 이유는 그 영향력 때문이다. 이들이 사회적 이슈에 대해 발언하면 수십만 명의 팔로어를 통해 확산되고 다시 인터넷매체에 기사화되면서 여론으로 형성된다. 김헌식 문화평론가는 "과거에는 연예인을 엔터테이너로만 봤지만 요즘 정서는 다르다. 가진 것이 많은 연예인이 공동체와 함께 나눠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폴리테이너·소셜테이너와는 다르다? 개념 연예인은 '폴리테이너'(정치활동 연예인)나 '소셜테이너'(사회적 이슈에 참여하는 연예인)와는 개념이 다르다. '개념 연예인'이란 제목의 책이 나온 메디치미디어 출판사 윤경선 과장은 "투표 독려를 넘어 자신의 정치적 지향점을 내세우면 폴리테이너, 영향력 확대를 고려해 발언을 자주 한다면 소셜테이너"라며 "개념 연예인은 정치적 이득이나 영향력 확대를 추구하지 않고 묵묵히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추구하는 스타"라고 말했다. 이 기준으로 보면 배우 김여진(41)은 여성 노동자 문제 해결에 노력했지만 정치색이 강해 개념 연예인이라기보다는 폴리테이너에 가깝다. 사회봉사에 앞장서는 배우 차인표(46)나 저소득가정 아동을 지원하는 션(41) 정혜영(40) 부부는 개념 연예인에 가깝다. 개념 연예인을 마케팅 수단으로 이용하려고 하는 기획사들도 있다. 한 기획사 관계자는 "소속 연예인에게 SNS에 사회이슈에 대한 소견을 남기게 한다"고 밝혔다. 이효리 역시 나이 탓에 '섹시' 콘셉트를 내세울 수 없자 사회활동을 부각시키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다른 기획사 관계자는 "순수하게 좋은 일을 하는데도 '연예인 주제에 너무 나댄다'는 안티팬들이 늘어나기도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인기 영합을 위한 '가짜 개념 연예인'은 퇴출될 것이라는 의견을 보이고 있다. 정덕현 문화평론가는 "평소 활동을 보면 된다. 행동 없이 발언만 하면 홍보용"이라고 말했다.김윤종·황인찬 기자 zozo@donga.com 정건희 인턴기자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 2013-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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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권영민의 그때 그곳] 가람 이병기가 말년 보낸 ‘현대 시조문학의 성소’ 익산 생가

    《 시조시인이자 국문학자인 가람 이병기(1891∼1968)의 생가는 전북 익산시 여산면 원수리 573번지에 남아있다. 한국 근대문인의 생가 가운데 그 단아한 초가집의 원형이 유일하게 그대로 보존돼있다. 가람은 이 집에서 태어나 소년 시절을 보냈고, 노후에 이곳을 찾아 자족하며 시조를 짓고 화초와 벗 삼았다. 그리고 세상을 떠난 후 바로 이 집이 내려다보이는 뒷산 언덕에 묻혔다. 이곳에 가람의 삶이 그대로 담겼고, 그 문학의 향취가 살아있는 것이다. 》날이 풀려 고드름이 똑똑 물방울을 떨어뜨리던 14일 오후 이곳을 찾았다. 학생들과 답사차 몇 번 왔는데 헤아려 보니 벌써 10여 년 만이다. 가람 생가 입구에 서니 가장 먼저 반기는 자그마한 모정(茅亭)인 승운정(勝雲亭)이 정겹다. 그 옆으로 담도 대문도 시작되기 전에 사랑채부터 일자형으로 길게 자리 잡고 있다. 그 곁에 파놓은 작은 연못은 눈에 덮여 형체를 알아볼 수 없다. 사랑채의 툇마루 앞을 지나노라면 지금도 누군가 문을 열고 헛기침을 하면서 마루로 나올 것 같다. 진수당(鎭壽堂)이란 편액을 걸어놓은 사랑채의 끝방은 가람이 책방으로 사용했단다. 평소 기거했던 곳은 한 칸 건너 수우재(守愚齋)라는 편액이 붙은 작은 방이다. 수우재와 진수당 사이는 칸 전체를 다락으로 만들었고, 툇마루에 서면 건너편 들판이 한눈에 들어온다. 앞이 탁 트여 시원하다. 사랑채를 둘러본 뒤 대문간을 들어서면 좁은 안마당을 사이에 두고 안채와 마주하게 된다. 자연석으로 쌓은 축대 위에 높다랗게 지은 안채는 대청마루를 사이에 두고 안방과 건넌방이 있고 부엌이 다락처럼 돌출해 있는데, 비어 있는 안마당이 그저 아늑하다. 이 집은 가람의 조부 시절에 지었다고 전해지니 그 나이가 이백 살에 가까운 셈이다. 안채와 사랑채가 서로 어울려 집 전체가 아늑하고 너무도 소박하다. 가람은 이 집에서 소년 시절을 보내며 한문 공부에 매달렸다. 그러나 신학문에 관심을 갖게 되자 나이 스물에 전주고보를 졸업하고 서울로 올라가 한성사범학교에서 수학했다. 이때 그가 만난 이가 한글학자 주시경이다. 그는 주시경 선생이 운영하는 조선어강습원에서 우리말 문법을 처음 배웠다. 학교를 졸업한 후 7, 8년간 전주 등지에서 교편을 잡았다. 이때부터 민간에 흩어져 있는 우리 고문헌을 수집 정리하고 우리말과 우리 문학에 대한 연구에 전념했다. 가람이 생전에 수집한 문헌들은 우리나라에서도 손꼽히는 방대한 장서를 이루었는데, 말년에 서울대에 기증해 서울대 중앙도서관에 ‘가람문고’로 보존돼 있다. 가람은 1920년대 중반부터 시조 창작을 통해 널리 대중적인 호응을 얻었다. 그는 최남선의 시조부흥운동에 적극 동참하면서 시조의 원류에 대한 학문적 연구는 물론이고 현대시조 창작에 관한 실제적인 방법을 다양하게 제시했다. 그는 최초의 시조 연구 창작 모임인 ‘시조회’를 결성해 시조에 관심을 갖는 시인들을 모았다. 그가 발굴한 시조시인 조남령 김상옥 이호우 등은 모두 가람시조의 정신을 계승하면서 현대시조의 거장이 됐다. 가람이 발간한 ‘가람시조집’(1939년)은 현대시조의 전범(典範)이다. 가람은 현대시조의 시적 형식에 감각성이라는 고도의 미의식을 부여했다. 가람시조는 전아한 기품을 자랑하고 있지만 사실은 단조로움에 빠져들기 쉬운 시적 진술에 특유의 감각성을 부여하고 있는 게 두드러진 특징이다. 가람은 시조의 격조를 현대적으로 살려내기 위해 우리말의 음절량과 그 이음새에서 나타나는 말의 마디를 자연스럽게 변형시키면서 율격을 지키고자 하였다. 이러한 특징은 시조의 시적 형식이 어떤 틀로 고정된 것이 아니라, 시인에 의해 그렇게 형성되는 것임을 말해준다. 그러므로 ‘난초’ 같은 작품에서 확인할 수 있는 절제된 감정과 언어의 감각을 가람시조의 미학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당연하다. ‘한손에 책을 들고 조오다 선뜻 깨니/드는 볕 비껴 가고 서늘바람 일어 오고/난초는 두어 봉오리 바야흐로 벌어라’(시조 ‘난초 1’ 전문) 가람은 초창기 국문학자로서 연구 활동에도 진력했다. 그는 1921년 권덕규 임경재 등과 함께 조선어문연구회를 조직해 우리말과 글의 연구 보급에 앞장섰다. 1930년 조선어철자법 제정위원으로 일하면서 우리말 맞춤법 통일안의 제정에 깊이 간여했다. 1942년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일본 경찰에 체포돼 옥고를 치렀다. 가람은 한국 고문헌의 고증과 주석 작업에도 힘쓰면서 ‘한중록’ ‘인현왕후전’ ‘요로원야화기’ 등을 발굴 소개했고, ‘춘향가’를 비롯한 신재효의 판소리를 발굴 소개하여 구비문학 연구의 기반을 만들었다. 광복이 되자 가람은 서울대 교수가 돼 한국문학의 근대적인 교육 연구 체제를 확립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6·25전쟁 직후 서울대 강단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가 전북대에서 강의하다 1956년 퇴임했다. 가람은 강단에서 물러난 후 고향인 여산에 돌아와 자연을 벗 삼고 시조를 노래하며 풍류를 즐겼다. 그는 스스로 ‘술 복’과 ‘글 복’ ‘제자 복’을 타고난 ‘삼복지인(三福之人)’이라 자처하며 술을 즐기고 시를 사랑하고 제자를 아꼈다. 가람의 집에는 가람을 존경하고, 가람의 시조를 사랑하며, 그 풍모를 따르려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았다. 우리 현대시조의 문학적 성소(聖所)가 바로 이곳이다. 집은 그곳에 사는 사람에 따라 그 성격과 의미가 정해진다는 말이 있다. 가람의 생가를 둘러보면 이 말이 더욱 실감난다. 이 작은 초가집이 더 특별하게 다가온다. 요즘은 세상이 변해 버젓이 살아있는 사람의 기념관이나 문학관이 들어서기도 한다. 생가는 보존됐지만 가람의 문학을 돌아볼 수 있는 학술적 공간이 없어 아쉽다. ‘가람시조문학관’ 같은 것이 왜 아직도 서지 못했는지 궁금하다. 가람이 평생을 두고 썼던 일기는 한국 근대문학 최대의 보물이다. 이 장대한 기록문학을 제대로 보관할 수 있는 기념관이 어서 들어서길 기대한다. 정리=황인찬 기자 hic@donga.com}

    • 2013-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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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학예술]올해는 조금 더 가볍게 길을 떠나자

    살아봐야 아는 것들이 있다. 부모가 세상을 뜬 뒤에야 그들의 부재로 인한 아린 그리움을 깨닫게 되고, 아이를 낳아봐야 내리사랑의 의미를 알게 되는 식이다. 이런 깨달음은 뒤늦게 찾아온다. 후회도 반복된다. 사람들은 실수를 줄이기 위해 타인의 삶을 살펴본다. 예순이 넘은 남성 작가 세 명이 나란히 새해 들어 에세이를 펴냈다. 시인 정호승(63)과 김용택(65), 소설가 박범신(67). 문단의 중심에 선 작가들이지만 이들이라고 삶의 회환과 뒤늦은 깨달음이 없으랴. 이들이 전하는 메시지는 하나로 귀결되는 듯하다. ‘비워낼수록 채워진다.’ 올해는 조금 가벼운 짐을 지고 길을 나서면 어떨까. 재작년 한여름 밤. 서울 인사동에서 정호승 시인과 술자리를 가졌다. 밤이 깊어가도 그의 온화한 미소는 변하지 않았으며 목소리는 내내 잔잔했다. 그와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밤이었다. 정호승의 에세이 ‘내 인생에 용기가 되어준 한마디’(비채)를 읽다보니 그 여름밤 시인의 미소가 다시 떠올라 마음이 따뜻해졌다. 그가 2006년 펴낸 에세이 ‘내 인생의 힘이 되어준 한마디’가 30만 부를 넘기며 큰 사랑을 받은 것도, 글 속에서 그의 미소를 그려본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리라. 신작 에세이에는 76개의 이야기가 있다. 시인이 읽은 글과 지인들과의 만남을 비롯한 여러 경험들이 잔잔히 펼쳐지는데, 놀라운 것은 시인의 비범한 시각이다. 이를테면 ‘문’과 ‘벽’에 관한 얘기는 이렇다. 영화 ‘해리포터’를 보다 소년 해리가 런던 킹스크로스 역의 벽을 뚫고 가는 장면을 본 시인. 벽이 문이 되는 장면을 보고 그는 ‘모든 벽 속에는 문이 존재해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시인은 단언한다. 인생의 각종 고난이 벽처럼 서있지만 “문 없는 벽은 없다”고. ‘섬진강 시인’ 김용택은 자신이 나고 자란 전북 임실군 덕치면 진메마을의 정겨운 삶을 산문으로 옮겨 많은 사랑을 받았다. 이번에 출간한 ‘김용택의 섬진강 이야기’(문학동네·총 8권)는 ‘내가 살던 집터에서’ ‘살구꽃이 피는 마을’이란 신작 에세이 2권에 먼저 펴낸 에세이 6권을 보탠 것이다. ‘내가 살던 집터’에서는 ‘양용기 할아버지’ ‘풍언이 양반’ ‘광주댁’ ‘정수네 집’ 등 진메마을 집들의 내력을 다큐멘터리처럼 기술해나간다. 비슷비슷한 집안 내력이 이어져 좀 지루하다. 제대로 된 ‘이야기’를 읽고 싶다면 ‘살구꽃이 피는 마을’이 나을 듯하다. 시인의 유년기가 주로 펼쳐지는데 부엌에서 갑자기 먹구렁이가 나오거나 학교에서 나눠준 우윳가루를 집에 가져와 쪄먹었던 1950년대 중후반 농촌 풍경이 정감 있게 그려진다. 시인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마을 사람들은 대부분 마을을 떴다. “농경사회 속 오래된 공동체의 파괴는 속전속결로 진행되었다.(…)나는 무너져가는 한 작은 마을의 시인이었다. 이제 나는 그 마을 밖으로 유배되었다.” 2010년 한 달 일정으로 터키를 다녀온 소설가 박범신은 동서양이 만나는 터키의 문화를 접하고 깊은 감흥을 받았다. 벌써 세 번째 방문이었지만 그는 “꼭 다시 가고 싶은 곳”으로 터키를 꼽는다. 그의 에세이 ‘그리운 내가 온다’(맹그로브숲)에서는 이국땅에서 느낀 삶과 문화, 종교에 대한 단상들이 감각적인 사진들과 어우러진다. 박범신은 여행을 통해 ‘꿈을 꿀 수 있다’고 말한다. “어느 새 우리는 목표와 꿈을 하나로 보는 쩨쩨한 수준에서 희망을 말한다. 자본주의적 세계관이 가리키는 목표를 꿈과 일치시키는 버릇은 우리를 쩨쩨하게 만들 뿐이다.” 거대한 타임캡슐 같은 이스탄불을 지나, 고대도시 케코바 앞바다에 이른 박범신은 이렇게 읊조린다. “우리가 스스로 자연이라는 걸 인식하고, 저 자연 속에 들면, 사람과 사람 사이의 섬에 애달파할 필요가 없습니다. 자본주의가 주입해 준 욕망을 내려놓는 것만큼 자연이 우리에게 가까워집니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 2013-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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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젊은 그들, 문학의 탑에 첫 돌 올리다

    201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상식이 열린 16일 오후 서울 중구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 19층 기자회견장. 차분했던 시상식 분위기가 단편소설 부문 당선자인 송지현 씨의 등장으로 떠들썩해졌다. 그가 수상소감을 말하려고 시상대에 오르자 서울예대 동기들이 왕관과 모형 칼을 전해준 것. 왕관을 쓴 송 씨는 수줍어하면서도 함박웃음을 띠며 칼을 높이 쳐들었다. 식장 여기저기에서 웃음과 박수 소리가 터졌다. 송 씨의 수상소감은 신선했다. “미용실에 갔는데 제가 (미용사에게) 말을 잘 전달 못했어요. 머리가 마음에 안 들어서 지하철 화장실에서 다 풀고 왔는데, 엄마가 ‘돈만 많이 썼다’고 하셔서 싸웠어요. 말이라는 도구를 잘 전달해야 하는데…. 남을 아프게 하는 소설을 쓰지 않겠습니다. 가족들, 오는 길에 싸웠지만 사랑해요. 미용실 원장님 다시는 안 가겠습니다.” 이날 시상식에서는 송 씨를 비롯한 당선자 이병국(시) 고송석(중편소설) 최준호(희곡) 임세화(문학평론) 이채원(영화평론) 이수안(동화) 조은덕(시조) 이동은 씨(시나리오)가 상패와 상금을 받았다. 조은덕 씨는 “수상식 때 신으라고 신발 사준 친구에게 감사한다. 정형시의 탑을 쌓는 일에 작은 돌을 올리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세화 씨는 “엄마카드, 아빠카드 돌려쓰면서 책만 사봐서 딸로서 죄송한 마음이다. 오늘 이 떨림까지도 고스란히 쓸 수 있는 작가가 되겠다”고 말했다. 진솔하고 담백한 수상 소감이 이어지자 심사위원을 맡았던 소설가 오정희는 미리 준비했던 격려사의 원고를 접고 마이크 앞에 섰다. “당선자들의 너무도 예쁘고 빛나는 이야기들을 들으니 제가 미리 생각했던 말들이 남루하게 느껴졌어요. 옛날 제가 문청 시절에 어느 친구가 ‘동아 신춘(문예 당선)은 아무나 하나’라고 얘기를 했습니다. 그만큼 동아 신춘 출신은 무시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사람을 잃은 슬픔은 사람으로 치유되는 것처럼 글로 막힌 것은 글로 뚫어야 합니다. 쉼 없이 쓰십시오.” 최맹호 동아일보 대표이사 부사장은 축사에서 “가볍게 흐르는 디지털 시대의 세파 속에서 인간의 감성을 일깨우고 인간 사회의 길을 생각하는 게 문학인 것 같다. 당선자들이 많은 노력을 일궈 독자와 관객에게 호평 받는 거목으로 성장하기를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시상식에는 소설가 이문열 강영숙 한강 윤성희 편혜영 박성원, 시인 장석주 장석남, 시조시인 한분순, 문학평론가 권성우 손정수 씨, 그리고 동아일보문학회 회원 등 100여 명이 참석했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 2013-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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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음사 폭탄세일에 他출판사 “우린 어쩌라고”

    “대형 출판사인 민음사가 세계문학전집 시장에서 그렇게 할인 공세를 하면 어떻게 합니까. 다른 후발주자들은 다 죽으라는 얘기 아닙니까.” 한 출판사 대표의 푸념이다. 민음사가 지난해 11월 30일과 12월 16일 두 차례 GS홈쇼핑을 통해 실행한 ‘반값 할인’이 발단이 됐다. 민음사는 당시 세계문학전집 300권을 정가(297만5500원)의 50.4%인 149만9000원에 내놨다. 여기에 예스24 e북 리더기 ‘크레마 단말기’(12만9000원)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전자책 베스트 20권(14만 원)까지 사은품으로 끼워 넣었다. 사은품을 감안하면 반값도 안 되는 파격 할인이다. 주문자들이 몰려 준비해두었던 600세트가 방송 종료 5∼10분 전 모두 팔렸다. 민음사는 이달 중 추가 방송 판매를 고려 중이다. 이런 상황을 지켜보는 출판계의 시선은 곱지 않다. 1998년 8월부터 세계문학전집을 내기 시작해 307권까지 펴낸 이 바닥 ‘강자’인 민음사의 물량 공세는 도가 지나치다는 것이다. 세계문학전집을 펴내는 한 출판사 국장은 “우리도 홈쇼핑과 방송 판매를 논의했지만 50% 할인, 사은품에 방송수수료까지 감안하니 순수한 책 제작비마저 나오기 힘들어서 접었다. 그 정도(민음사의 상품 구성)면 팔면 팔수록 손해 본다”고 말했다. 민음사는 정말 ‘손해’ 보며 파는 것일까. 대답은 ‘아니다’다. 세계문학전집을 구성하는 책 가운데 잘 팔리는 것은 극소수이다. 민음사의 ‘레미제라블’(301∼305호)은 총 10만 부 넘게 팔렸는데 이는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그래서 전집으로 한꺼번에 팔면 재고를 한꺼번에 ‘처리’할 수 있다. 또 전집 판매는 연속성이 있다. 한 출판사 대표는 “색감이 통일된 책들로 서가를 꾸미기 위해 전집의 경우 원래 있던 책과 동일한 출판사의 책을 이어서 사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현행 도서정가제에서는 ‘끼워 팔기’ 규정이 없어서 민음사의 판매 형태를 처벌하기는 어렵다. 다만 출판물불법유통신고센터(위원장 윤철호)는 지난해 12월 “구간과 신간(발간 후 18개월 이내) 할인율을 별도 공지하라는 (센터의) ‘가이드라인’을 위반했다”며 민음사에 구두로 시정을 요구했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 2013-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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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남현 서울대 교수 “7년간 새로 쓰다시피 재집필, 짜릿합니다”

    문학평론가 조남현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65)는 올봄 강단을 떠난다. 정년퇴임을 앞둔 마지막 방학이지만 그는 거의 매일 연구실에 출근해 집필에 매진 중이다. 1989년부터 24년간 몸담았던 서울대 강단을 떠나는 감회를 묻자 그는 차분히 말했다. “‘연습’을 많이 했는데, 연구실에 가면 예전에 갖지 못했던 감정들이 솟아올라 오네요. ‘이제 나가야 하는구나’ 싶죠.” 정년이 다가오자 조 교수는 한 가지 ‘숙제’를 떠올렸단다. 1994년 ‘소설과사상’에 연재를 시작해 2000년 종료했던 ‘한국 현대소설사’를 책으로 묶지 못한 것. 2007년부터 본격적으로 출간 작업에 들어간 그는 10여 년 전 원고를 다시 읽으니 한숨부터 나왔다고 했다. “너무 제한된 작가들만 다뤘나 싶었죠. 소설 연구자 사이에서 기존에 얘기됐던 수준에 머물러 ‘이런 식으로 내려면 안 내는 것이 낫다’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조 교수는 논의의 장을 대폭 확장키로 했다. ‘1급 작가’뿐만 아니라 기존에 많은 조명을 받지 못했던 작가들의 작품을 읽고 정리하기 시작한 것. 소설가 김훈의 아버지인 김광주를 비롯해 박완서 한말숙의 숙명여고 은사였던 박노갑, 농촌소설을 주로 썼던 최인준을 비롯해 백신애 석인해 이무영 함대훈 현경준을 재조명했다. 그는 개화기부터 광복 전까지 소설가 154명의 작품 5000여 편을 담은 ‘한국 현대소설사 1, 2’(문학과지성사)를 최근 펴냈다. 10일 서울 광화문에서 그를 만났다. “거의 새로 쓰다시피 했다”며 7년 동안의 재집필 노고를 떠올린 그는 “시원한 것은 말도 못한다. 쾌감까지 느껴진다”며 웃었다. “다만 작업을 좀더 일찍 시작해, 광복 이후 소설사도 정년 전에 냈으면 어땠을까 싶습니다.” 소설사를 정리하며 당대 인기 있었던 작품이나 작가를 다루기보다는 소설사적으로 의미 있는 것들만 골랐다고 했다. 학자로서 객관적 평가에 치중한 것이다. 그런 그에게 ‘2013년 소설사에 담을 만한 작가를 꼽아 달라’고 질문을 하자 그는 머뭇거렸다. ‘정초에 한무숙문학상, 이상문학상을 받은 소설가 김애란은 어떤가’라고 묻자 이렇게 답했다. “물론 김애란 씨 소설은 1급이죠. 하지만 그의 모든 작품을 소설사에 담을 수는 없지요. 시원치 않은 것은 당연히 빼야죠.” 조 교수는 ‘한국문학잡지사상사’(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도 함께 펴냈다. 개화기부터 광복 전까지 출간된 잡지 130종, 총 1000여 권을 정리한 책이다. “서지학적인 정리에 머물렀다는 평가를 받지 않기 위해 잡지에 실린 시나 소설의 내용까지 요약하려 애썼습니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 2013-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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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제경영]자원고갈이 빚은 성장정체… 사회구성원 결속력이 대안

    1990년대 후반 9%를 넘겼던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지난해 2%까지 떨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수치는 지난해 세계 경제성장률 3.3%(국제통화기금 추정)보다도 1.3%포인트 낮다. 한국은행은 올해 우리의 경제성장률을 2.8%로 전망했다. 한국이 이미 저(低)성장 국가에 진입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저자의 주장은 한 단계 더 나아간다. 저성장이 아니라 성장이 정체된 ‘제로 성장의 시대’가 곧 다가온다는 것. 수출 위주의 고(高)성장으로 국가경제 규모를 늘리고 복지 수준을 올렸던 우리에게 경고등이 켜진 셈이다. 왜 성장이 멈출 수밖에 없는가. 여러 곁가지를 쳐내면 저자의 분석은 세 가지로 압축할 수 있다. △화석 연료를 비롯한 주요 자원의 고갈 △자원을 사용할 때 발생하는 환경오염을 방지하는 비용의 증가 △자원과 환경비용을 감당하기 위해 남발한 정부와 민간의 부채 증가다. 물론 이 전망이 틀릴 수도 있다. 일부 경제학자는 대체연료 개발을 비롯한 기술혁신으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책은 반론을 편다. 예컨대 몇 년 전만 해도 석유의 대체재로 옥수수에서 추출한 에탄올이 꼽혔지만 최근 경제성이 적은 것으로 판명 났다. 자원 위기는 금융 위기로 이어진다. 자원 고갈로 비롯된 저성장 기조는 끊임없는 성장을 전제로 만들어진 현재 경제시스템에 타격을 줘 결국 금융대란, 사회불안으로 이어진다고 저자는 말한다. 자원 고갈로 비롯되는 세계경제의 위기는 오래전부터 제기된 문제이기에 저자의 분석이 신선하게 다가오지는 않는다. 다만 저자가 제시한 대안들에는 눈길이 간다. 에너지 사용을 줄이자 같은 기본적인 대안에 이어 사회의 결속력을 회복하자는 것이다. 이웃끼리의 정보교환, 협동, 상호부조 등을 통해 제로 성장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질의 빈곤 시대를 맞아 ‘마음의 교환’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풍족하지는 않았지만 이웃 간에 훈훈한 정(情)을 나눴던 앞선 세대들의 삶이 떠오른다. 세상은 돌고 도는 걸까.황인찬 기자 hic@donga.com}

    • 2013-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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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SG 안들어간 음식 먹자” 사찰음식 인기

    채널A ‘이영돈 PD의 먹거리 X파일’이 4일 신년특집에서 제안한 ‘MSG(인공조미료) 선택권 소비자에게 주자’는 캠페인이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11일 점심시간에 서울 종로구 견지동 사찰음식점 ‘발우공양 콩’을 찾은 손님들이 길게 줄을 서 음식을 담고 있다. 조계종 한국불교문화사업단이 운영하는 이 음식점은 MSG 대신 식물의 뿌리와 줄기, 잎, 열매 등 천연재료로 맛을 내 큰 호응을 얻고 있다. 가격은 ‘1식 5찬’에 7000원이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 2013-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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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학예술]“뻔한 연애소설은 그만”… 현실과 환상을 오가는 기묘한 이야기

    황당할 수도 있다. 성인 여성이 아이로 변한다거나, 고양이와 대화도 나눈다. 남성은 쥐로 변하기도 한다. 물론 공상과학이나 판타지 소설은 아니다. 연애성장소설로 정의될 수 있는 이 작품은 이렇게 현실과 환상을 오가며 기묘한 사랑 얘기를 만들어낸다. 논리적일 필요는 없다. 차분하고 몽환적인 분위기, 그 매력적인 유혹을 즐기기만 하면 된다. 자꾸 책장을 넘기게 되는 끌림의 힘도 여기에서 나오니까. 여기 서른셋의 여배우 ‘나’가 있다. 아역부터 시작했지만 뜨지 못한, 서른이 넘은 나이에 TV 단막극의 주연 자리를 겨우 맡은 사람. 그는 늦은 밤 놀이터에서 맥주를 마시다 만난 고양이에 이끌려 거대한 쥐 떼를 만나고, 깨어나자 일곱 살 아이로 변한다. 지갑도, 휴대전화도 없이 세상에 버려진 것. 아이가 된 ‘나’는 ‘달’을 만나 의지한다. 달은 자신이 출연한 단막극의 작가. 달은 서른셋의 ‘나’에게 호감을 표시했었다. 하지만 그는 ‘나’가 아이가 된 줄 모른다. 둘은 함께 살며 의지하기 시작한다. 중간부터 본격 연애소설의 공식을 충실히 따른다. 나가 점차 달의 진심을 깨닫고, 달이 나의 정체를 짐작하게 되면서 서로 가까워진다. 하지만 이때 삼각관계가 펼쳐진다. 달의 애인이었던 서른셋의 고등학교 교사 ‘수지’가 다시 달 앞에 나타난 것. 달은 두 여자 사이에서 고민하고, 나는 달이 떠날까 봐 불안해진다. 이야기의 흐름만 보면 진부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삼각관계를 다룬 소설이 어디 한둘인가. 하지만 작가는 비현실적 상황을 들여와 보다 현실적인 고민을 하게 하는 영민함을 발휘한다. 달이 아이의 내면에 있는 진실한 나의 모습을 보려 한다든가, 나가 달이 쥐로 변할 것을 알면서도 깊이 사랑하는 식이다. 사랑은 겉모습이 아니라 내면을 봐야 한다는 메시지일까. 하지만 불안전한 존재인 나와 달의 사랑은 이뤄지기 힘들다. 그렇기에 더 애잔하다. 현실과 비현실이 교차하는 소설이기에 개연성에 대한 양보는 필수적이다. 하지만 작가가 설정한 가상적 전제가 와 닿지 않는 부분도 적지 않다. 이를테면 나가 아이가 되는 과정을 작가는 ‘달의 마음속에 들어갔다 나와서’라고 간접적으로 밝히지만 독자는 ‘그냥 고양이를 따라갔더니’라고 읽을 소지가 크다. 고양이와 회색쥐, 흰쥐들이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중요한 존재들임에도 어떤 개성이나 성격을 부여하지 않은 것도 아쉽다. 보다 동화적이고, 상상력 넘치는 세계를 창조할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이런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매력적인 소설임은 자명하다. 무엇보다 비슷비슷한 연애소설에 질렸던 독자들에게 강추! 2004년 장편소설 ‘피터팬 죽이기’로 제28회 ‘오늘의 작가상’을 받았고, 2008년 소설집 ‘파란나비 효과 하루’를 펴낸 작가는 세 번째 책에서 개성을 십분 발휘했다. 그의 과감한 도전을 응원하고 싶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 2013-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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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설가 이호철 “문학으로 北의 변화 이끌어냈으면…”

    “‘판문점’을 발표했을 때 이십대 후반이었는데 이제 50년이 넘게 흘렀잖아. 이 시점에서 돌아보니 남북 관계는 그때보다 안 좋아진 것 같아.” 소설가 이호철 씨(81·사진)가 1961년 발표한 단편 ‘판문점’의 뒤를 있는 ‘판문점2’를 52년 만에 내놨다. 그는 판문점1, 2를 묶은 소설집 ‘판문점’(북치는마을) 출간에 맞춰 10일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이문열, 황석영이 남북 관계를 (다룬 소설을) 쓰는데 내가 보기에는 성이 안 차. 그나마 북에서 살아본 경험이 있는 내가 이제 여든이 넘었으니 한번 다시 써보고 싶었지.” 1932년 함남 원산 출신인 작가는 6·25전쟁 때 월남했다. ‘판문점2’는 ‘판문점1’의 시점에서 50여 년이 흐른 남북 관계를 짚는다. ‘판문점1’은 1960년대 초 남한 기자인 진수와 북한 기자들의 대화 형식이었다. ‘판문점2’는 현재 시점의 진수와 그의 보수적인 친구 영호가 주고받는 대화다. 신작에는 북한의 독재, 권력 세습, 인권 유린 등을 비판하고 남북 간의 대화를 촉구하는 작가의 강한 목소리가 담겨 있다. “제일 중요한 것은 북한 정권의 독재와 권력 세습에 반대하는 것이지. 현실적으로는 어떤 명분이든 (남북이) 만나고 오르내리는 사람이 많아져 북한의 변화를 이끌어야 해.” 이 씨는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의 ‘2013년 체제 만들기’에 결함이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백 교수의 ‘2013년 체제’에서 이북 체제의 (문제점이) 한 번도 보이지 않는 것은 상당히 치명적이야. 지금 이북의 상태를 언급하지 않으면 안되지.” “내가 초점을 두는 남북 관계는 딴 게 없어. 중국의 변화를 살펴서 어떻게 북한에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느냐 하는 거야. 북이 변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는 역할을 하고 싶고, 문학으로도 가능할 것이라고 봐.” 이 씨는 1950, 60년대 문예지에 발표한 단편들을 모은 소설집 ‘무궤도 제2장’(북치는마을)도 함께 펴냈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 2013-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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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8일간의 지옥, 냄새까지 느껴졌으면…”

    소설가 정유정(47)은 약속 시간보다 40분 늦었다. 자리에 앉은 그의 얼굴이 벌겋다. “완전 멘붕(멘털 붕괴)이네요.” 신작 소설의 감수를 맡은 우희종 서울대 수의학과 교수를 만나고 온 길. 출간이 코앞인데 소설에 무슨 일이?2011년 3월 출간해 23만 부를 넘긴 베스트셀러 ‘7년의 밤’ 이후 정유정의 머릿속을 가득 채운 것은 가상의 도시 ‘화양’이다. 경기 의정부를 모델로 했다는 이 도시에 갑자기 인수(人獸) 공통 전염병이 퍼지고, 도시가 봉쇄된다. 29만 명에 달하던 시민이 3만 명으로 줄고, 도시를 탈출하려는 생존자와 막으려는 군대, 개와 사람의 생과 사가 섞인 28일 동안의 아비규환…. 2010년 12월 시놉시스를 쓴 이후 작가는 여태껏 ‘화양’에서 살고 있다.“한 도시에 전염병이 돌면 감염자뿐만 아니라 건강한 사람들도 격리된다고 우 교수님이 말씀하셨어요. 어쩌죠. 건강한 사람들이 일상생활을 해야 이야기 전개가 되지, 어디 갇히면 완전히 새로 써야 하는 거죠. 뭐 ‘눈먼 자들의 도시 2탄’도 아니고.”서울 마포구 서교동 은행나무출판사에서 만난 작가는 기자를 앞에 두고 한숨과 열변을 번갈아 토해내며 신작을 설명했다. 200자 원고지 2500장 분량의 원고 중 그의 입을 통해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인물과 사건들은 개성이 강했고 파격적이었다. 올해 최고 기대작이라는 세간의 평가에 걸맞은 듯했다. 가제는 ‘화양 28’이지만 변경될 가능성이 높다. 궁금한 독자를 위해 살짝 내용을 풀자면 주요 ‘인물’은 6명. 남자 수의사와 여자 신문기자, 119구조대 팀장, 링고, 여자 간호사, 소방공익요원이다. 링고는 수캐고, 소방공익요원은 사이코패스다. 이들이 화양이라는 ‘지옥’에서 얽히고설킨다. “소방공익요원은 짐승을 잔인하게 살해하는 사이코패스죠. 굉장히 좋아하는 캐릭터예요. 대리만족하면서 즐거워하면서 썼어요. 하하.”작가는 결말까지 ‘시원하게’ 알려줬으나 “(광주 집에) 내려가 절반은 확 뒤집어 버려야겠다”고 말한 점을 감안해 소개는 않겠다. 그는 한두 번 더 고쳐 4월까지 원고 마감을 하겠다고 말했다. 그렇게 되면 5월 말쯤 책이 나오게 된다. 정유정의 소설은 이미지가 강하다. “냄새까지 느껴졌으면” 하는 게 작가의 욕심. 현실감을 높이기 위해 작가는 수의학과 응급구조대원의 이론과 실상을 공부했고, 세밀한 장면은 일일이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려가며 썼다. “수의사가 나오면 수술이나 검사 장면이 몇 개는 나와야 하잖아요. ‘동맥혈 산소 분압이 몇 이하면 기계적인 호흡장치가 필요하다’는 식의 문장들을 쓰려고 공부 열심히 했지요.”작가와 함께했던 앞선 두 번의 술자리 생각이 났다. “담배 안 피우세요”라고 물었다. 그가 달게 피우던 ‘디스’가 생각나서다. 많게는 하루 네 갑씩 피우던 담배를 그는 지난해 2월부터 끊었다고 했다.(대신 전자담배로 갈아탔다.) 술도 안 마신다고 했다. 몸이 무척 안 좋았고, 지방간이 좀 있다는 의사 소견도 받았기 때문이다. “지금은 건강이 괜찮다. 한국 문단의 모범생으로 우뚝 섰다”며 그는 깔깔댔다. 평소 체중보다 3kg ‘오버’라는데 얼굴에 살이 붙어서인지 전보다 인상이 부드러워 보였다. “앞선 성과가 부담으로 다가오지 않느냐”고 묻자 그는 시원스레 답했다. “힘든 분야에서 위험한 도전을 했다는 사실에 방점을 찍고 싶어요. 많이 팔리는 것과 상관없이 ‘이제 더는 못 써’라고 스스로 말할 수 있을 만큼 완성도 있게 내놓는 게 우선이죠.”‘저질이다’라는 말보다 ‘재미없다’는 말을 들을 때 더 마음이 아프다는 작가. “독서적인 즐거움이 있는, 쉽게 말하면 페이지터너(page turner·책장이 술술 넘어갈 정도로 재미있는 책)를 쓰고 싶어요. 소설이 드라마, 영화와 경쟁하려면 재미있어야죠. 독자들을 밤새 붙잡아놓고 꼼짝 못하게 할 정도로.”황인찬 기자 hic@donga.com}

    • 2013-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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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상문학상 대상 소설가 김애란 “가장 오래 읽히는, 가장 젊은 작품 쓰렵니다”

    소설가 김애란(33)은 요절한 천재시인 이상(1910∼1937)을 ‘삼촌’이라고 불렀다. 오래전에 활동했던 다른 선배 작가들을 떠올리면 아버지나 할아버지 같은 느낌이 들 때가 많은데, ‘이상 선배’는 유독 젊게 느껴진다는 이유였다. 이상의 작품 세계가 젊다거나 그가 스물일곱에 일찍 세상을 뜬 점이 그렇게 느껴지는 이유인 것 같다고도 했다.“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니 제가 이상보다 나이가 많더군요. 삼촌이라고 생각했는데…. 좀 멋쩍기도 했어요.” 김애란은 들릴 듯 말 듯 희미하게 웃었다.김애란이 문학사상사가 주최하는 제37회 이상문학상 대상을 받았다. 수상작은 단편 ‘침묵의 미래’. 가상의 강국이 사라져 가는 언어들의 마지막 화자들을 한 곳에 모으는 것을 그리며, 점차 소멸되는 언어에 대한 문제를 우화처럼 그린 소설이다.그는 8일 서울 광화문 인근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상은 자기가 쓴 언어에 대해서 예민하고 (글의) 재료를 의식하고 작품 활동을 하셨던 분으로 알고 있다”며 “이번에 제가 쓴 글도 말과 언어에 대한 관심에서 출발한 작품이라서 상을 받게 된 것이 우연이자 영광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시골에 계신 어머니가 ‘우리 애란이가 상복이 많은 것 같다’고 하시기에 ‘아냐 엄마 복이 많은 거야’라고 했더니 너무 좋아하시더라”라며 밝게 웃었다.2011년 출간한 첫 장편 ‘두근두근 내 인생’이 20만 부를 돌파하며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김애란은 지난해 소설집 ‘비행운’으로 다시 두각을 나타냈다. 정초부터 한무숙문학상에 이어 이상문학상을 거머쥐며 문단의 ‘대세’임을 공고히 알렸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수줍고 조심스러웠다.“데뷔한 지 10년 정도 됐지만 네 번째 책(소설집 ‘비행운’) 정도 내니까 소설이 되게 궁금해지는 것도 많고 기술적으로 해보고 싶은 것도 많다. 모르는 게 많았다는 것을 쓸수록 깨닫게 되는 것 같다.”김애란은 40년 가깝게 이어진 이상문학상의 최연소 수상자가 됐다. 종전 기록은 2005년 제29회 수상자인 소설가 한강(당시 35세). 최연소 수상의 의미를 묻자 김애란은 나직이 이렇게 읊조렸다. “가장 젊은 작품이 뭘까 생각했던 적이 있는데… 아마도 가장 오래 사랑받는 작품이 아닐까 싶어요. 100년, 150년 전 선배들이 쓴, 시간을 이긴 작품들을 보면 ‘저분은 얼마나 젊으면 100살 어린 나하고도 말이 통하나’ 싶어요. 이런 의미에서 ‘젊은 작품’을 쓰고 싶습니다.”그는 계간 ‘문학동네’ 봄호에 새 장편 연재를 시작한다. 주위의 높은 기대에 대해 그는 “부담보다는 힘을 받았으면 한다”며 “많은 분들의 사랑을 받는 글을 써야 한다는 생각보다는 첫 번째 독자인 제가 좋아하고 마음에 드는 글을 쓰고 싶다”고 말했다. 지난해 10월 여섯 살 연상의 극작가 고재귀 씨와 결혼한 김애란은 “남편은 두 번째 독자”라고 덧붙였다. “가족이기 때문에 이것저것 사교적인 제스처를 빼고 담백하고 솔직한 비판을 해줘서 도움이 돼요. 호호.”이상문학상 우수상은 김이설의 ‘흉몽’, 손홍규의 ‘배우가 된 노인’, 염승숙의 ‘습(濕)’, 이장욱의 ‘절반 이상의 하루오’, 이평재의 ‘당신이 모르는 이야기’, 천운영의 ‘엄마도 아시다시피’, 편혜영의 ‘밤의 마침’, 함정임의 ‘기억의 고고학’ 등 8편에 돌아갔다. 상금은 대상 3500만 원, 우수상은 300만 원씩이며 시상식은 11월 예정. 수상 작품집은 이달 말 나온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 2013-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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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달에 만나는 詩]수필

    꽁꽁 언 겨울도 언젠가 녹겠지. 봄 오면 들로 산으로 씨 뿌리겠지. 통통한 씨감자도, 어느 보드라운 흙 속에 자리 잡겠지. 하루가 가겠지, 계절이 흐르겠지. 어느 날 감자가 뽀얀 얼굴을 내밀 때, 닮고 닮은 얼굴들이 환하게 웃겠지. 새해, 칼바람을 뚫고 마음속에 어떤 감자를 심을까. 어떤 얼굴들을 수확하게 될까. ‘이달에 만나는 시’ 1월 추천작으로 고영민 시인(45)의 ‘수필’을 선정했다. 지난해 11월 말 나온 시인의 세 번째 시집 ‘사슴공원에서’(창비)에 수록됐다. 이건청 장석주 김요일 이원 손택수 시인이 추천에 참여했다. 온기가 느껴지는 시다. “많은 분들이 따뜻하게 읽었다고 하신다”고 시인도 말한다. 하지만 사실 이 시는 죽음에 관한 것. 2년 전 세상을 뜬 둘째 형을 떠올리며 썼다. “형님을 땅에 묻는 것을 씨감자를 묻는 것과 병치시킨 거죠. 잊어먹지 않을 만큼 잊어버려야 하고, 또한 끝내 잊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해 얘기하고 싶었습니다.” 시의 해석은 온전히 독자의 몫이다. 씨감자를 죽음이 아닌 희망이나 새해 소망, 꿈으로 바꿔도 무탈하다고 시인은 말한다. “죽음은 또 하나의 탄생을 모색하는 겁니다. 제 시가 사람들의 따뜻한 본성을 일깨우는 역할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장석주 시인의 추천평은 이렇다 “고영민의 묘사 속에는 옛것들, 가련한 것들, 고향, 작은 사물들이 씨감자처럼 옹글지게 들어와 있다. 그것들을 품고 발효하는 마음이 따스하고 넉넉하다.” 이건청 시인은 “작고 평범해 보이는 일상들이 눈 시린 환희를 포함하고 있음을 찾아 보여준다. 시적 대상을 보는 예리한 눈, 신선한 이미지가 돋보인다”며 추천했다. “서정이 소멸된 시대에 홀로 피어 뿜어대는 찬란한 시향(詩香)! 고영민 시인은 사슴 같은 눈빛으로 생의 어두운 마디마디를 환하게 치유한다.” 김요일 시인의 추천사다. 손택수 시인은 박준 시인의 시집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문학동네)를 추천했다. “법정 스님께서 ‘어린 왕자’를 읽은 뒤 책을 수십 권 구해 지인들에게 선물했다는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누가 만약에 새해 선물로 그런 시집 한 권을 추천하라면 이 시집을 슬며시 끼워 넣고 싶다.” 이원 시인은 황인찬 시인의 시집 ‘구관조 씻기기’(민음사)를 추천하며 “이 시인은 도시에 나타난 청년 수도사 같다. 황인찬은 언어라는 구관조를 오래 씻기는 서약에 몰두한다”고 평했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 2013-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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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인들 정초부터 검찰에 줄소환?

    세밑에 몇몇 문인들과 조촐한 송년 자리를 가졌다. 분위기가 무르익자 자연스레 검찰 조사 얘기가 오갔다. ‘(소설가) 손홍규는 벌써 조사를 받았다는데’ ‘나한테도 연락이 올까’ ‘벌금은 얼마 나오려나’ 등등. 분위기가 다소 무거워졌다. 일부 문인들이 새해 벽두부터 검찰 소환을 우려하고 있다. 사정은 이렇다. 18대 대통령선거를 닷새 앞둔 지난해 12월 14일 문인 137명은 한 일간지에 ‘우리는 정권교체를 원합니다’라는 제목의 선언문을 담은 광고를 냈다. ‘우리는 새로운 대통령을 간절히 기다립니다. 그가 진보적인 대통령이어서가 아니라 그가 약자의 신음에 더 잘 귀 기울일 것이라 믿기 때문입니다’ ‘답은 정권교대가 아닌 정권교체입니다’ 등의 내용이었다.나흘 뒤 서울시선거관리위원회는 이 광고가 공직선거법 제93조(탈법 방법에 의한 문서·도화의 배부·게시 등 금지) 제1항을 위반했다며 검찰에 고발했다. 이 조항에 따르면 선거 180일 전부터 선거일까지 정당 또는 후보자를 지지·추천하거나 반대하는 내용을 담은 광고를 게재하는 것은 불법이기 때문이다. 혐의가 인정되면 2년 이하의 징역이나 400만 원 이하의 벌금을 내게 된다. 선언문에 참가한 문인들은 현재 왕성하게 활동하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김숨 김애란 김연수 박민규 박성원 백가흠 손홍규 이기호 전성태 천명관 하성란 황정은 씨 등 소설가 56명, 김경주 김선우 나희덕 박형준 손택수 장석남 씨 등 시인 81명이다. 서울시선관위는 해당 일간지에 직접 광고를 의뢰한 소설가 손홍규 씨만 고발했지만, 검찰 수사가 확대되면 문인들이 줄줄이 소환될 가능성도 있다. 손홍규 씨는 “광고는 문인들이 모금을 해 낸 것이며, 광고료는 880만 원이었다”며 “광고를 게재하는 게 불법인 줄 몰랐다. 작가들의 진정성을 헤아려 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사태가 급박해지자 한국작가회의가 두 차례 성명서를 내 고발 취소 등을 요구했지만 서울시선관위는 다른 입장이다. 홍문표 서울시선관위 조사담당관은 “광고 내용이 위중하다고 본다. 고발 취소는 계획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공은 이제 검찰로 넘어간 상태다. 사건을 맡은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는 조만간 피고발인 자격으로 손 씨를 불러 조사할 예정이다. 이상호 공안1부장은 “피고발인(손홍규 씨)을 먼저 조사한 뒤 이를 확대할지 말지 결정할 예정이다. 광고 의뢰인과 선언문 참가자를 동일하게 (처리)할지는 지금 말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 2013-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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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권영민의 그때 그곳] 시인 박인환이 1945년부터 3년간 낸 서점, 서울 종로3가 ‘마리서사’

    《 프랑스의 여성 시인이자 화가인 마리 로랑생(1883∼1956). 로랑생은 조르주 브라크, 파블로 피카소 등과 교유하면서 현대미술의 새로운 경향에 일찍 접했고, 기욤 아폴리네르의 연인으로 장 콕토, 앙드레 지드 등과도 함께 어울리면서 프랑스 예술계의 중심에 서 있었다. 시인 박인환(1926∼1956·사진)은 이 자유분방한 여성 예술가의 이름을 따 광복 직후인 1945년 말 서울 종로3가 2번지에 서점 하나를 차린다. ‘마리서사(茉莉書舍).’ 시인이 열아홉 살 때 일이다. 》 강원 인제 태생인 박인환은 평양의학전문학교에서 공부하다가 광복을 맞았고 학업을 중도에 포기하고 서울로 올라온 후 부모의 도움을 받아 이 책방을 열었다. 박인환은 유난히도 책을 좋아했다. 책방은 20평(약 66m²) 남짓이었지만 서구의 예술과 문학 관련 서적을 많이 비치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마리서사가 문을 열자 새로운 예술에 목말라 하던 문인 예술가들에게 알려졌고, 곧바로 종로의 명소가 되었다. ‘말리(茉莉)’라는 한자어는 일본 모더니스트 시인 안자이 후유에(安西冬衛)의 시집 ‘군함 말리(軍艦茉莉)’에서 차용했다. 마리서사는 신간 서적만을 취급하는 고급 서점은 아니었다. 당시의 서점이 대개 신간과 중고 서적을 함께 취급하고 있었기 때문에, 마리서사에서는 광복 후 혼란기의 한국 서적보다 일본어판 세계문학전집이나 일본에서 간행된 세계 여러 문인의 시집과 소설집, 그리고 화집들이 서가를 장식했다. 당대의 시인이던 김기림 김광균 오장환 이시우 이한직 이흡 등이 단골손님이 되었고, 청년 문사였던 김수영 양병식 임호권 등도 이 서점을 드나들면서 박인환의 친구가 되었다. 새로운 미술에 뜻을 둔 화가들도 드나들었고, 영화인들도 거기에 끼어들었다. 문학을 열망하던 청년 박인환은 마리서사를 찾는 당대의 모더니스트, 자유분방한 예술가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리면서 자기 문학 세계의 기반을 만들었다. 이러한 예술적 분위기를 놓고 김수영은 수필 ‘마리서사’를 통해 이렇게 평했다. ‘우리 문단에도 해방 이후 짧은 시간이기는 했지만 가장 자유로웠던, 좌우의 구별 없던, 몽마르뜨르 같은 분위기가 있었다.’ 당시 첨예하게 대립되어 있던 좌우 문단의 분위기와는 달리 마리서사에 모여든 예술가들은 자유롭게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전개될 새로운 문학 예술에 관심을 두고 있었다. 마리서사에서는 누구나 자신이 꿈꾸던 예술의 세계를 당당하게 이야기했다. 좌익 문단 조직인 조선문학가동맹의 시분과를 책임지고 있던 김기림은 이곳에 자주 들러 오장환 설정식 이흡 등과 어울렸고 김광균 이한직 등과도 문학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당시 한낱 문학 지망생에 불과했던 박인환은 이 같은 문인들과의 만남 속에서 문단의 분위기를 익혔다. 그리고 동년배의 김수영 조우식 임호권 등과 자유롭게 어울리면서 자기만이 누릴 수 있는 문학의 세계를 꿈꾸었다. 이렇게 마리서사는 광복 후 새로운 문학 예술이 싹트는 작은 텃밭이 되었다. 이 자유로운 공간 속에서 1930년대 김기림 등에 의해 이 땅에 뿌리를 내렸던 모더니즘 시운동의 기운이 문단의 신세대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하지만 박인환은 1948년 경제적으로 큰 도움이 되지 못하던 마리서사의 문을 닫았다. 개점 후 3년이 채 안 됐다. 대한민국 정부가 들어설 무렵부터 그는 자유신문사 경향신문사 등에서 기자로 근무하면서 본격적인 글쓰기를 시작했다. 1949년 김경린 김병욱 등과 동인지 ‘신시론(新詩論)’을 발간하였고, 김수영 김경린 양병식 임호권 등과 함께 합동시집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1949년)을 펴냈다. 이 젊은 시인들의 사화집(詞華集)은 일제강점기에 왜곡된 근대를 비판하던 모더니즘 시 운동을 광복 후 새롭게 부활시켰고, 한국 현대시의 한 경향으로 자리 잡게 하는 신호탄이 됐다. 박인환은 1950년 6·25전쟁 당시에도 김차영 김규동 이봉래 등과 피란지 부산에서 문학 동인 ‘후반기(後半紀)’를 결성하고 모더니즘 시 운동을 이어 갔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는 1955년 대표작 ‘목마와 숙녀’가 실린 첫 시집 ‘박인환선시집(朴寅煥選詩集)’을 낸 이듬해에 서른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가 평생 심취한, 스물일곱에 요절한 천재 시인 이상처럼 짧은 생을 살았던 것이다. 마리서사에 드나들면서, 박인환과 함께 어울리면서 문학의 꿈을 키웠던 시인으로 김수영을 손꼽을 수 있다. 박인환보다 다섯 살 위인 김수영은 수필 ‘박인환’에서 ‘그처럼 재주 없고, 그처럼 시인으로서 소양이 없고, 그처럼 경박하고, 그처럼 값싼 유행의 숭배자가 없었다’라고 박인환을 회고했다. 표면적으로 읽으면 폄훼하는 글 같지만, 사실 이 수필은 박인환의 죽음 뒤에 부쳐진 가장 속 깊은 우정의 만장(輓章)이다. 한 인간에 대한 절대적인 애정과 신뢰가 없다면 아무도 이런 글을 쓸 수가 없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김수영은 다른 수필인 ‘마리서사’에서 박인환의 작은 서점 마리서사가 광복 직후 문학 예술계에 새로움을 꿈꾸게 만든 환상의 공간이었음을 말해 주고 있지 않은가? 수은주가 영하 16도까지 떨어졌던 3일 마리서사를 찾아 나섰다. 탑골공원 정문에서 동대문 방향으로 가다 낙원동으로 들어서는 골목 모퉁이다. 지금은 한 보청기 가게가 들어섰다. 이 가게를 드나드는 사람들은 60여 년 전 서울의 내로라하는 예술인들이 여기 모였던 것을 알까. 서울 종로에서 마리서사 같은 작은 서점의 간판을 찾아보기 어렵다. 시인 예술가들이 서로 만나서 자유롭게 새로운 예술을 논할 수 있는 열린 공간도 드물다. 마리서사는 인제에 세워진 박인환문학관에 복제된 모형으로 남아 있고, 박인환이 세상을 떠나기 직전에 쓴 시 ‘세월이 가면’만이 가끔 흘러간 옛 노래처럼 불려지고 있을 뿐이다.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그의 눈동자 입술은/내 가슴에 있어.//바람이 불고/비가 올 때도/나는 저 유리창 밖 가로등 그늘의 밤을 잊지 못하지//사랑은 가고/과거는 남는 것/여름날의 호수가/가을의 공원/그 벤치 위에/나뭇잎은 떨어지고/나뭇잎은 흙이 되고/나뭇잎에 덮여서/우리들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그의 눈동자 입술은/내 가슴에 있어/내 서늘한 가슴에 있건만’정리=황인찬 기자 hic@donga.com}

    • 2013-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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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학예술]엄마, 다음 세상엔 꼭 내 딸로 태어나!

    신달자 시인(70)이 결혼하고 서른 중반이던 1960년대 말. 시인의 노모가 딸네 집에 왔다. ‘보여 주고 싶지 않았던 풍경이 가득했던’ 집이었기에 시인은 빨리 가라고 노모의 등을 떠밀었다. 시인은 대문 앞에서 노모의 주머니에 1만 원짜리 한 장을 넣는다. “택시 타고 가.” 노모는 돈을 다시 딸의 주머니에 넣는다. “혼자 빨리 저 시장에 가서 짬뽕이라도 한 그릇 사먹어라.”모녀는 1만 원짜리 한 장을 갖고 대문 앞에서 옥신각신 싸운다. 시인은 홱 돈을 길에 던져 버리고 대문을 쾅 닫았다. 조금 후, 대문을 밀고 나가 보니 길에는 돈도, 노모도 없었다. “나는 그 자리에 앉아 울었다. 울고 또 울었다. 그 만 원짜리 한 장을 거리에서 허리를 굽혀 주웠을 엄마를 생각하면 지금도 뼈가 저리다.”엄마와 딸. 다른 피붙이랑은 느낌이 다르다. 딸은 엄마가 되고, 그 엄마는 다시 딸을 낳는다. 윤회 같은 질기고 애틋한 인연. 서로 가깝기에 그만큼 작은 일에 상처를 주고받고, 돌아서서는 금방 후회하는 바보 같은 관계. 신달자는 이번 에세이에서 엄마와 딸의 관계를 되돌아본다. 신달자는 엄마와 딸의 모진 인연이 뼈저리게 삶에 스며든 사람이다. 내리 딸 여섯을 낳고 막내아들을 얻은 집에서 시인은 여섯 번째 딸이었고, 이제는 마흔 내외의 딸 셋을 둔 엄마다. 신달자는 부부 관계에서는 물질적·감정적 계산이 있을 수 있지만 모녀 관계는 그런 계산이 없다고, 이별 또한 부부 사이엔 존재하지만 모녀에게 영원한 이별은 없다고 말한다. “죽음도 그 이별을 허용하지 않는다. 자식은 가슴에 묻는다고 하지 않는가.”“엄마처럼 살진 않을 거야!”라고 말하는 딸, “딱 너 같은 딸 하나만 낳아 봐라!”라는 엄마. 이들은 상대의 얼굴에서 ‘자신’을 보기 때문에 더 치열하게 다툰다고 시인은 말한다. ‘‘감정의 암’을 태우기 위해서 깊은 대화를 하라’, ‘편지로 마음을 전하라’, ‘엄마의 한을 딸에게 풀지 마라’ 등 여러 조언을 전하기도 한다. 연륜이 묻어나는 글들은 곱씹으며 되새길 만큼 공감이 간다. ‘신달자 산문’이 갖는 힘은 무엇보다 진실성에서 나오는 것 같다. 아들을 기대했던 집안에서 여섯 번째 딸로 태어난 핏덩이였던 자신을 엄마가 아무도 모르게 두어 번 뒤집어엎어 버렸다거나, 엄마가 수면제를 먹고 자살 기도를 했던 얘기를 덤덤히 전한다. 감추고 싶은 부분을 들춰내 먼저 손을 내밀기에 독자는 위로를 얻고 공감하게 된다. 전체적으로 보면 시인은 엄마와 딸 중에서 먼저 엄마가 물러서고 인내해야 한다고 말한다. 시인도 한때는 ‘못된’ 딸이었지만, 이제 일흔의 나이가 되니 엄마가 한없이 그립고, 딸들을 더 포용하게 됐으리라. 서로 사랑만 하기에도 삶은 짧다. 엄마에게 살가운 사랑을 전하지 못했던 시인은 허공에 외친다. “엄마! 다음 세상엔 꼭 내 딸로 태어나, 엄마!”황인찬 기자 hic@donga.com}

    • 2013-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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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간 카프카’ 절망의 기록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일은 내게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미래를 생각하고 걸려 넘어지는 일이라면 가능합니다. 제일 잘할 수 있는 일은 넘어진 채로 그대로 있는 것입니다.’ 이 무슨 지독한 자기혐오와 패배주의적 시각인가. 더욱 놀라운 것은 이것이 러브레터의 한 구절이라는 것. 그것도 세계적인 문호 프란츠 카프카(1883∼1924)가 쓴 편지다. 카프카는 펠리체 바워라는 여성과 1914년 5월 약혼했다. 하지만 두 달 뒤 파혼한다. 3년 뒤 카프카는 다시 이 여성과 두 번째 약혼을 하지만 다시 파혼한다. 모두 카프카의 ‘간청’에 의한 파혼이었다. 카프카는 극단적으로 사랑하거나 극단적으로 혐오하는 ‘양향 성격’을 갖고 있었다. ‘필사적으로’ 결혼을 위해 노력했지만 카프카는 평생 혼자 살았다. 34세에 객혈이 시작됐고, 41세에 결핵으로 사망했다. 카프카의 일기, 편지 등을 모은 ‘절망은 나의 힘’(한스미디어·사진)에는 카프카의 치열한 고민들이 그대로 담겨 있다. 카프카가 남긴 86개의 짧은 글에 일본 번역가인 가시라기 히로키가 일일이 설명을 달았다. 카프카에 대한 구체적이고 일상적인 자료들이 많아 인간 카프카를 들여다볼 수 있는 책이다. 오늘날 ‘변신’ ‘성(城)’ ‘소송’으로 세계적인 작가가 됐지만 사실 생전 그는 외로운 작가였다. 릴케를 비롯한 몇몇 문인들의 관심만을 받았을 뿐 거의 무명에 가까웠다. 심지어 유언으로 “모든 원고를 소각해 달라”는 말을 남겼을 정도로 작품에 대한 믿음도 없었다. 대표작인 ‘변신’에 대해선 일기에 이렇게 적기도 했다. ‘‘변신’에 대한 심한 혐오. 도저히 말이 안 되는 결말. 더이상 바닥일 수 없을 정도로 형편없다. 당시 출장이 끼어들었기 때문이다. 훨씬 잘 쓸 수 있었을 텐데….’ 카프카는 자신의 작품 직장 연애 가족 등 주변을 둘러싼 모든 것들을 부정적으로 바라봤으며, 지독한 열패감에 시달렸다. 하지만 객관적으로 봤을 때 주변 상황이 나쁘지만은 않았다. 집은 부유했고 그 또한 ‘노동자상해보험협회’라는 든든한 직장에 다녔다. 하지만 지독한 염세주의에 빠졌던 그에게는 모든 것이 만족스럽지 않았다. 부정의 인생은 카프카 문학의 원동력이었다. 인간과 삶에 대한 끝없는 절망을 그는 문학으로 승화시켰다. 카프카는 한 메모에서 이렇게 밝힌다. ‘나는 나의 시대의 부정적인 면을 묵묵히 파내어 일구어왔다. 그러므로 나는 이 시대를 대표할 권리가 있다. 어떠한 종교도 나를 구원하지 못했다. 나는 종말이다. 또한, 시작이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 2013-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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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춘문예 2013]희곡 ‘일병 이윤근’ 당선소감

    스무 살이 되기 전까지 희곡, 아니 글을 쓴다는 생각은 아예 없었습니다. 고교 자퇴 뒤 무엇을 해야 할지 전혀 몰라 불안감을 분출하는 통로로 역사와 철학 등 인문 서적을 읽으며 머릿속 오만 가지 잡생각에 동네를 홀로 돌아다니며 의미 없이 걸었던 시간. 스무 살이 되어서야 이런 것들을 글로 표현하고 싶어 대학에 갔고 그곳에서조차 어떤 글을 써야 할지 몰라 고민하고 있을 때, 홍익대 사거리에서 처음 본 연극이란 장르는 내 안의 무언가를 홀렸고 그 후 무조건 희곡을 써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생전 처음이었습니다. 연극과 영화를 보고 학생들과 토론을 하고 공연을 제작하며 밤을 새우고 자취방에 돌아와서는 연극·영화 관련 서적을 읽고 쓰는 걸로 다시 날이 밝고, 무언가를 탐구한다는 게 이렇게 재미있다는 걸 느낀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그 재미란 것을 느낀 순간 지난 20여 년간 있었던 나의 지워버리고 싶은 부끄러운 시간이 오히려 내가 글을 쓸 수 있는 너무나도 소중한 소재가 되었고, 연극이란 것에 티끌만큼이라도 보답하기 위해 썼던 희곡들이 지금의 당선 전화를 받게 한 것 같습니다. 희곡의 텍스트를 보고 감동하게 해준 이강백 교수님, 희곡 쓰는 법을 알려준 윤조병 교수님, 연극을 만든다는 것이 이토록 행복한 것인지를 알려준 오태석 교수님, 제 부족한 글을 뽑아주신 심사위원님, 저의 꿈같은 첫 당선이었던 원광대문학상의 심사위원 신귀백 님과 이상복 교수님, 늘 함께하며 응원해 주시는 부모님과 누나, 그리고 내가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신경 쓰지 않고 술 먹으러 가자며 전화하는 내 진짜 친구들… 그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 △1989년 서울 출생 △서울예술대 극작과 2학년}

    • 2013-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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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춘문예 2013]시나리오 ‘당부’ 당선소감

    지난 한 해 동안 ‘상처’를 주제로 두 작품을 썼습니다. ‘당부’는 그 두 번째 작품입니다. 작품을 마무리하고, 스태프로 참여하고 있는 한 영화의 장소 헌팅을 위해 강원도를 찾았습니다. 눈이 쌓인 어느 어둑한 산길을 지나면서 ‘당부’ 속 주인공들이 떠올랐습니다. 그들이 지나갔을 눈길이 아마도 이런 길이 아니었을까 생각하고 있을 때 당선 소식을 받았습니다. 부끄러운 이야기일지 모르겠지만, 시나리오를 쓰다 보면 작품 속 인물들이 어디에선가 실제 살고 있다는 확신에 가까운 믿음이 강하게 들 때가 있습니다. 제가 인물을 창조하고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저는 단지 그들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을 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들의 이야기에 공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들이 외롭지 않게 되어 다행입니다. 그들에게 가졌던 미안함을 이제 조금은 덜 수가 있을 것 같습니다. 희망보다는 절망이 익숙한 요즘입니다. 고단하고 힘든 세상이라고들 합니다. 그럴수록 외롭지 않았으면 합니다. ‘나의 이야기’만큼 ‘당신의 이야기’가 소중합니다. 서로의 마음을 함께 이야기하면서 위로받고 한걸음씩 살아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좋은 시나리오를 써서 썩 괜찮은 연출자(영화감독)로 개성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습니다. △1978년 부산 출생 △성균관대 경제학과 졸업}

    • 2013-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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