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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스트레이너, 보디빌더 등 한국의 건장한 남성들이 일본에서 일본인 남성들을 상대로 유사 성행위 서비스를 제공해 오다 적발됐다. 일부 여성의 원정 성매매가 사회문제화되고 있는 가운데 한국인 남성들의 동성 성매매 조직까지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여성아동범죄조사부(부장 김홍창)는 2010년 3월부터 2013년 7월까지 일본 도쿄의 최대 번화가인 신주쿠에 안마시술소를 차리고 한국인 남성을 고용해 성매매를 시킨 혐의(성매매 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등으로 나모 씨(36)를 구속 기소하고 종업원 6명을 기소유예 처분했다고 13일 밝혔다. 검찰은 나 씨가 7월 8일 일본 나리타에서 김해공항으로 입국할 당시 가방에 몰래 숨겨온 602만 엔(약 6565만 원)을 압수하고 그동안의 부당 이득을 추정해 추징금 1억3000만 원을 부과했다. 나 씨는 2010년 3월 신주쿠에 남성 마사지 업소를 차렸다. 나 씨의 업소에서는 근육질의 한국 남성이 일본 남성 손님에게 마사지와 더불어 손으로 유사 성행위를 해 줬다. 합법적인 마사지 업소를 가장한 이 업소의 변태 영업은 일본의 일부 남성 동성애자 사이에서 근육질의 한국 남성을 만날 수 있다는 소문과 함께 상당한 인기를 끌었다. 이번에 적발된 남성 종업원들은 20, 30대로 동성애자가 아닌데도 목돈을 벌 수 있다는 말에 혹해 일본으로 가 동성 성매매를 했다. 대부분 헬스트레이너, 보디빌더 등 근육질 몸매의 소유자였다. 일부 남성은 한국으로 돌아와 결혼하기도 했다. 이들은 검찰 조사에서 “동성애자가 아닌데 같은 남성을 상대로 성매매를 하는 게 너무나 괴로웠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성매매 알선 총책으로 국내에서 게이바를 운영하기도 했던 나 씨는 한 국내 남성 동성애자 전용 인터넷 커뮤니티에 일본에서 일할 남성을 모집하는 글을 올렸다. “한국 남자는 현지에서 일본인보다 인기가 높아 월평균 수입이 50만∼60만 엔(약 545만∼655만 원)이고 월 100만 엔(약 1090만 원) 이상 버는 사람도 많다”, “현지에서 정식으로 허가받은 마사지 업소라 단속 걱정 없다”, “비행기표와 숙식을 제공한다”며 한국 남성들을 현혹했다. “훈남 몸짱 큐트 피부미남 등 매력이 분명한 분을 우선 모집한다”는 조건도 내걸었다. 나 씨는 처음엔 “마사지만 하면 된다”고 속여 남성들을 일본으로 오게 한 뒤 유사 성행위를 강요했다. 일부 남성은 일본에 간 지 이틀 만에 귀국하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목돈의 유혹에 넘어갔다. 나 씨는 이번에 적발된 마사지 업소 외에도 도쿄와 오사카에서 5∼9개의 현지 업소를 더 운영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사업이 번창하자 한국으로 ‘역진출’해 지난해 3월 서울 마포구 공덕동, 올해 초 부산 부산진구 부전동에 남성 마사지 업소를 차린 것으로 전해졌다. 나 씨의 일본 업소에서 일했던 A 씨(34)는 본보 기자와 만나 “나 씨가 한국에 업소를 차린 건 종업원의 비자 문제를 해결해 주기 위해서였다”고 털어놨다. 우리 국민이 일본에 비자 없이 연이어 체류할 수 있는 기간은 90일이고 1년 최대 체류 기간이 180일이라 종업원이 일본에 있지 못하는 기간에도 일할 수 있도록 한국에도 업소를 차렸다는 것이다. A 씨는 “나 씨는 종업원들을 유학생으로 가장시켜 일본에 오래 체류할 수 있는 학생비자를 발급받도록 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취재팀이 인터넷을 찾아보니 한국 남성을 고용해 영업하는 일본 현지 마사지업소 홈페이지가 여러 개 확인됐다. 이번에 적발된 나 씨의 업소 말고도 한국 남성이 성매매를 하는 업소가 더 있다는 걸 추정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들 사이트는 ‘한국식 마사지’를 내세우며 속옷만 입은 채로 근육질 몸매를 과시하는 남성 사진을 걸어 뒀다. 일부 남성은 ‘한국 방송 출연 경험’ ‘한국 해병대 출신’ 등의 이력을 내걸었다. A 씨는 “이들 모두 유사성행위를 하는 업소”라고 주장했다.조동주·최예나 기자 djc@donga.com}
서울 송파구 삼전동 단독주택에 사는 서모 씨(51)는 평소 자신의 집 앞 골목길 양지바른 곳에 10대 청소년들이 모여 담배를 피우며 떠드는 일이 잦아 짜증스러웠다. 9월 30일 오후 11시 10분경 마트에 들러 포도와 과도를 사서 집으로 오던 서 씨는 큰소리로 떠들며 무리지어 골목길을 걷는 고교생 이모 군(17) 등 10대 청소년 4명을 발견했다. 이들을 자신의 집 앞 골목길에 모이던 그 학생들이라고 여긴 서 씨는 다짜고짜 갖고 있던 길이 23cm짜리 과도로 이 군의 옆구리를 찔렀다. 이 군과 친구들이 혼비백산해 달아나자 100m 정도 추격하기까지 했다. 서 씨는 사건 직후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게 자택에서 붙잡혔다. 이 군은 옆구리에 2cm 깊이의 상처를 입었다. 서울 송파경찰서는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서 씨를 불구속 입건했다고 8일 밝혔다. 경찰 조사 결과 서 씨는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받은 적은 없었지만 평소 우울증을 앓아왔던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 관계자는 “서 씨가 7년여 전 아내와 이혼한 뒤 감정기복이 심한 상태였는데 시끄럽게 떠드는 학생들을 보고 우발적으로 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조동주 기자 djc@donga.com}
유명 여가수 A 씨(32)는 올 3월 1일 오후 5시경 서울 강남구 논현동에서 이른바 ‘콜뛰기’ 그랜저를 타고 인근 안무 연습실로 이동했다. ‘콜뛰기’는 일반 택시 요금보다 4배 정도 비싸지만 고급 차량에 껌, 구강청정제, 스타킹 등 각종 서비스 용품까지 비치돼 있어 강남 일대에서 인기가 높다. 2km가량 이동한 뒤 1만 원을 내고 내리려던 순간 경찰이 다가왔다. A 씨가 탄 차는 택시 영업 허가 없이 불법 운행하는 차량이었다. A 씨는 “친한 언니가 알려줘서 이용했을 뿐 불법인 줄 몰랐다”고 해명했다. 콜뛰기는 강남 일대 유흥업소 여종업원들의 전유물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최근에는 신변 노출을 꺼리는 연예인이나 부유층 등도 즐겨 이용하고 있다. 중대형 고급 승용차 안에 태블릿PC, 생수, 담배 등 서비스 물품이 구비된 고급 서비스를 제공하며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손님이 원하는 시간에 목적지까지 도착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서울 강남경찰서 교통범죄수사팀은 2001년 6월부터 올해 6월까지 최대 12년 동안 강남 일대에서 콜뛰기 불법 영업을 해온 6개 업체 직원 69명을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고 7일 밝혔다. 콜뛰기 차는 인도나 횡단보도를 질주하는 등 불법 난폭운전을 일삼는다. A 씨를 태운 차도 10분가량 이동하면서 중앙선을 침범해 질주했다. 운전사는 안전띠조차 매지 않았다. 운전자 가운데는 범죄경력자가 적지 않다. 이번에 단속된 69명 중 60명(87%)은 특수절도, 성매매 알선, 폭행 등의 전과 보유자였다. 경찰 조사 결과 적발된 업체들이 보유한 고객 휴대전화번호 주소록에는 가수 출신 방송인 B 씨(38), 남성 아이돌 그룹 가수 C 씨(24) 등 유명 연예인의 이름이 다수 입력돼 있었다. B 씨는 20여 회, C 씨는 10여 회씩 콜뛰기를 이용했을 정도로 단골이었다. 다만, 콜뛰기 고객은 법적 처벌 대상이 아니어서 경찰 조사를 받지는 않았다. 전직 콜뛰기 운전사 D 씨는 7일 본보 기자와 만나 “슈퍼카를 가진 연예인도 팬들의 눈을 피해 클럽에 가거나 애인을 만나는 등 은밀한 사생활을 감추기 위해 콜뛰기를 애용한다”며 “그래서 콜뛰기 직원은 늘 ‘보안이 생명’이라고 교육받는다”고 말했다. 일부 업체는 경찰 단속을 피하기 위해 경호업체 요원으로 위장하기도 했다. 경찰이 콜뛰기 운전사 남모 씨(35)의 차량을 단속했을 때 트렁크에서 경호업체 이름이 적힌 조끼가 발견됐다. 남 씨가 속한 업체 직원 7명은 송파구의 한 경호업체에서 1인당 37만 원씩 내고 4일 동안 교육을 받은 뒤 경호원 행세를 하며 콜뛰기 영업을 해왔다. 또 무전기를 통해 자신들만의 은어를 주고받으며 경찰 단속에 대비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강남 일대 콜뛰기 업체는 강남권 1만 원, 비(非)강남 서울지역 3만∼5만 원, 수도권 10만 원가량의 요금을 받았다. 이번에 단속된 6개 업체로부터 경찰이 확인한 부당이익만 4억 원에 이른다. 차량 유지비 등을 제외한 순수익으로만 업체 대표는 한 달에 500만 원 이상, 운전사는 200만∼400만 원을 챙겼다. 고객의 전화번호가 담긴 ‘콜뛰기 영업용 전화기’는 업체끼리 대당 500만∼1000만 원에 거래될 만큼 인기가 높았다.조동주 기자 djc@donga.com}
‘성추행을 당했는데 형사님 덕분에 큰 위로를 받았습니다. 감사드려요♥’ 여고생 A 양(17)은 2일 서울 강남경찰서 홈페이지에 A4용지 한 장 분량의 감사 글을 올렸다. 성추행을 당해 큰 충격을 받았지만 강남서 성폭력전담수사팀의 김용진 경장(31)의 세심한 배려로 힘이 됐다는 내용이었다. 성추행 피해자가 경찰서 홈페이지에 공개적으로 감사 글을 올린 건 이례적인 일이다. A 양은 9월 21일 낮 12시경 서울 강남구 논현동 강남구청역 인근을 걷다가 우연히 김모 씨(50)를 만났다. 김 씨는 자신의 승용차에 탄 채로 “내가 방송 관련 일을 하는데 길거리 캐스팅을 하고 있다. 시동을 꺼둘 테니 안심하고 타라”며 A 양을 유인해 조수석에 태웠다. 그 후 김 씨는 ‘짐승’으로 돌변했다. 1시간여 동안 강남 일대를 누비면서 A 양의 가슴과 엉덩이 등을 만졌다. A 양이 내리지 못하도록 왼손으로 계속 차를 운전하면서 오른손으로 마수를 뻗쳤다. A 양은 저항했지만 밀실이나 다름없는 달리는 차 안에서 눈물만 흘렸다. 욕정을 채운 김 씨가 논현동 인근에 내려준 뒤에야 풀려났다. A 양은 난생 처음 당하는 일에 큰 충격을 받아 사건 발생 두 시간이 지난 뒤에야 경찰에 신고했다. 김 경장은 A 양을 만나자마자 “범인을 꼭 잡아주겠다”며 안심시켰다. 극도의 흥분 상태여서 말을 더듬는 A 양에게 “네 말을 모두 믿는다. 오래 걸려도 괜찮으니 천천히 잘 생각해보라”며 다독였다. 이후 A 양을 수서경찰서에 있는 강남권 성폭력피해인권보호센터로 데려가 피해 상황을 자세히 진술하도록 도왔다. A 양은 “김 형사님의 질문마다 저를 배려하는 마음이 느껴졌다. 사건 처리 과정을 상세히 설명해주고 친삼촌처럼 신경써줘서 정말 마음이 편했다”며 “앞으로 무슨 일이 생기면 꼭 형사님께 연락드리겠다”며 고마워했다. 김 경장이 소속된 성폭력전담수사팀은 경찰청이 올해 9월 전국 일선경찰서 52곳에 신설한 부서. 성범죄 특성상 피해자가 조사 과정에서 겪을 수 있는 2차 피해를 방지하기 위한 팀이다. 성폭력전담요원은 배치 전에 2주 동안 미세증거물 채취 요령 등 성범죄 수사기법과 피해자 보호 및 지원방법을 교육받는다. 경찰은 9월 25일 서울 강남구 논현동 한 고시원에서 김 씨를 체포해 감금,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강제추행) 등의 혐의로 구속했다. 김 씨의 지갑과 휴대전화 케이스, 차량에선 방송국 PD, 연예기획사 대표 등의 직함이 적힌 네 가지 명함이 발견됐다. 모두 존재하지 않는 ‘유령회사’였다. 또 김 씨의 휴대전화에선 ‘강남 날씬이 ○○○’ ‘홍대 쭉쭉빵빵 ○○○’ 등 지역과 신체특징이 이름과 함께 적힌 휴대전화번호 수십 개가 발견됐다. 조동주 기자 djc@donga.com}

세계적인 비디오아티스트 고 백남준 작가의 작품에 쓰이는 TV 설치를 담당했던 A 씨(76)는 9월 23일 경기 부천시의 현대백화점 중동점에서 열리고 있는 ‘백남준 작품전’에 갔다가 분노를 금치 못했다. 자신이 1999년 백 작가를 도와 함께 만들었던 작품 ‘월금’의 모형이 진본처럼 전시돼 있었기 때문. 작품 월금은 백 작가가 A 씨와 함께 1999년 12월 31일 임진각에서 열린 밀레니엄 행사인 ‘DMZ 2000’을 개최하면서 만들었다. 당시 백 작가는 중국 월금(月琴)과 서양악기 첼로 형상의 작품을 1개씩 만들었고, 이 둘을 합쳐 ‘호랑이는 살아있다’라고 작품명을 지었다. 각각의 작품은 높이 8m로 TV와 철을 합쳐 만들었다. 하지만 이번에 백화점에 전시된 월금은 높이가 3m 정도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작품 옆엔 ‘2000년 뉴밀레니엄 프로젝트 일환으로 서양악기인 첼로와 동양악기인 월금에서 영감을 얻어 동서양의 조화를 추구하고자 했던 작품’이라고 팻말에 적혀 있었다. A 씨는 전시에 사용된 월금은 자신이 백 작가 사후(2006년 이후) 경북 지역 한 대학의 B 교수(여)에게 모형 형태로 만들어준 것이라고 1일 주장했다. B 교수가 “미술관에 전시할 작품 하나만 만들어 달라”고 부탁하자 A 씨가 ‘영리 목적으로는 쓰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비슷하게 만들어줬다는 것이다. A 씨는 “B 교수가 이 모형을 백화점에 진품이라고 대여해주며 돈벌이를 할 거라곤 생각도 못했다”고 말했다. B 교수는 백화점이 개관 10주년을 맞아 8월 30일부터 9월 30일까지 개최한 ‘백남준 작품전’에 백 작가의 작품이라며 ‘월금’ ‘TV 첼로’ 등 조형물 2개와 그림 13점을 빌려줬다. 임대료로 백화점 측에서 1800만 원을 받았다. B 교수는 1999년 백남준후원회 추진위원장을 맡았으며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서 백남준미술관을 운영하기도 했다. 하지만 1999년 12월 31일 전시됐던 월금 진본은 현재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1층에 전시돼 있다. 작품의 소유권을 갖고 있던 21세기예술경영연구소가 전시가 끝난 뒤 서울시에 기증했고, 서울시가 이를 세종문화회관에 전시한 것이다. 원작(높이 8m)이 너무 커 이를 해체한 뒤 높이 5.77m짜리로 재조립했다. 당시 해체와 조립을 담당했던 이정성 아트마스타 대표(69)는 1일 동아일보와 만나 “내가 작품의 저작권자인 백 작가에게 재조립을 허락받았고, 완성된 다음엔 당시 미국에 있던 백 작가를 찾아가 작품 사진을 보여주고 서명까지 받았다”고 말했다. 이번 ‘백남준 작품전’에 전시된 또 다른 작품 ‘TV 첼로’에 대해서도 진위 의혹이 제기됐다. 이 작품 오른쪽엔 빨간 페인트로 ‘PAIK 1990’이라고 사인이 돼 있는데 백 작가는 사인에 연도를 적을 때 ‘1990’이라는 식으로 적지 않는다는 것이다. 백화점 측은 의혹이 확산되자 진위를 조사하고 있다. 백화점 관계자는 “만약 B 교수가 빌려준 작품이 가짜인 게 명백히 밝혀지면 백화점의 이미지를 실추시킨 것에 대한 손해배상청구를 제기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월금 진본을 소유하고 있는 세종문화회관 측은 “월금은 2001년 이곳으로 옮겨진 뒤 한 번도 반출된 적이 없다. B 교수의 ‘월금’은 위작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B 교수는 1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1999년 미국에서 만난 백 작가가 ‘2000년 밀레니엄 전시가 끝나면 월금을 작은 크기로 만들어주겠다’고 약속했다”며 “백 작가 사후 이 사실을 A 씨에게 말하고 당시 작품과 동일한 재료로 만들어 받았기에 가짜라고 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TV 첼로’에 대해선 “정확한 시기는 기억나지 않지만 백 작가가 나에게 판 것이다. 당시 백 작가가 미국에서 한국으로 작품을 부쳐줬다”고 주장했다.부천=조동주 기자 djc@donga.com}

어머니와 형을 살해했다고 자백한 둘째 아들 정모 씨(29)가 24일 구속된 데 이어 범행에 가담한 혐의로 경찰의 조사를 앞둔 정 씨의 아내 김모 씨(29)가 26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카지노를 드나들며 빚을 지게 되자 재산을 노리고 인륜을 저버린 아들의 범행이 결국 일가족의 처참한 비극으로 귀결됐다.○ 결백 주장하는 유서 남겨인천 남부경찰서는 김 씨를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하기 위해 26일 오후 1시 반까지 출석하라고 25일 통보했다. 모자(母子)가 실종되기 사흘 전인 지난달 10일 정 씨가 범행에 사용하기 위해 세정제를 살 때 아내 김 씨가 동행했고, 정 씨가 구입한 비닐을 집에서 함께 접는 등 김 씨를 공범으로 의심할 단서들이 나왔기 때문이다. 또 김 씨는 남편이 어머니와 형을 살해한 뒤 지난달 14, 15일 강원 정선과 경북 울진에 각각 시신을 버릴 때 현장에 함께 있었다.하지만 이날 김 씨가 출석에 불응하고, 휴대전화도 받지 않자 경찰관들이 정 씨 부부가 살던 인천 남동구 논현동의 한 빌라를 찾아갔다. 초인종을 눌러도 김 씨가 응답을 하지 않자 119구급대원을 불러 문을 열고 들어갔으나 김 씨는 목을 맨 채 이미 숨져 있었다. 김 씨는 자필로 쓴 일기장 2장 분량의 유서에서 ‘남편이 진실을 이야기하고, 자백하게 하기 위해 한 달간 설득했다. 이 일(시신 유기)에 화해여행으로 알고 급히 나갔고, 몸과 마음 모두 지쳐 수면제를 먹어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적었다. ‘다만 남편이 차 밖으로 나간 것이 기억이 나 증언 및 조사를 받은 것뿐으로 정말 억울하고 한스럽다’며 자신의 결백을 주장했다.또 김 씨는 경찰이 조사과정에서 ‘똑바로 서’ ‘우리가 × 같냐’ 등과 같은 모욕과 욕설, 폭언을 했다고 비난하며 징계를 요구했다. 이어 ‘이 밤이 가기 전에 전 주님을 만나러 가겠다’고 적어 25일 오후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인다.이에 대해 경찰은 “25일 김 씨를 피의자 신분으로 바꾼 사실을 알려준 다음 김 씨가 신변을 비관할 것에 대비해 ‘여경을 동숙시키겠다’고 했으나 김 씨가 거절했다”며 “김 씨의 집 밖에도 감시요원 2명을 배치했다”고 해명했다. 폭언 주장과 관련해서는 “감찰 조사를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카지노의 유혹이 빚은 패륜경찰은 이날 정 씨가 “도박과 과소비 등으로 생활고를 겪다가 어머니의 재산을 노리고 아내와 범행을 공모했다”고 자백했다며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수사 결과에 따르면 세정제와 비닐 등을 미리 구입한 정 씨는 지난달 13일 오후 남구 용현동 어머니를 찾아가 대화하다가 목을 졸라 살해했다. 경찰은 당시 정 씨가 아내와 4차례에 걸쳐 80분가량 통화한 사실도 아내가 범행에 가담했음을 의심하는 정황증거로 제시했다. 경찰은 또한 7월 말경 정 씨와 아내 김 씨의 카카오톡 대화 중에 ‘땅을 파고 자갈을 깔고 불이 번지지 않게’라는 문구를 확보했다.어머니의 시신을 집 안에 숨긴 정 씨는 퇴근한 형(32)에게 수면제를 탄 맥주를 마시게 한 뒤 잠이 들자 살해했다. 그리고 비닐과 이불, 가방 등을 이용해 모자의 시신을 포장했다. 그 다음 날 아내 김 씨와 함께 형의 승용차를 타고 경북 울진과 강원 정선에서 형과 어머니의 시신을 각각 버린 것으로 밝혀졌다.경찰 조사 결과 정 씨의 어머니(58)는 2011년 차남 부부가 결혼할 때 1억 원을 들여 빌라를 사줬으나 최근 정 씨가 도박에 빠져 빌라를 몰래 팔면서 모자 관계가 나빠진 것으로 드러났다. 퀵서비스 배달원인 정 씨와 김 씨가 1월부터 정선카지노를 32차례나 함께 드나들었으며 한 번 갈 때마다 바카라도박에 150만 원을 날려 8000만 원에 이르는 빚을 지고 있는 사실도 밝혀냈다. 정 씨는 24일 열린 영장실질심사에서 범행 동기를 묻자 “생활형편이 어려워서 그랬다”고 진술했다.정 씨 부부는 도박에 빠진 뒤 생활고를 겪으며 함께 불면증과 우울증에 시달려 수면제를 처방받아 자주 복용해 왔다. 지난달 13일 모자가 실종된 뒤 경찰은 정 씨를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하고 같은 달 22일 정 씨를 긴급체포했으나 증거 불충분으로 석방했다. 그 뒤 경찰이 증거를 보강해 정 씨를 살해범으로 추정하고, 수사망을 좁혀오자 정 씨는 경찰 출석을 앞둔 이달 18일 집에서 자살을 기도하기도 했다.경찰은 22일 다시 체포한 정 씨가 줄곧 범행을 부인하며 묵비권을 행사하자 실종된 모자의 시신을 찾는 데 도움을 받기 위해 김 씨를 참고인으로만 조사했다. 이어 경찰은 범행을 자백해 정 씨를 구속한 다음 날인 25일 김 씨를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할 방침을 밝혔다.하지만 김 씨가 그동안 경찰에 “수면제를 자주 먹었다”고 진술한 점 등을 고려해 출석을 통보하기에 앞서 극단적 선택을 막기 위해 신병을 확보했어야 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찰 조사를 앞둔 김 씨가 집에 혼자 있다가 심리적 부담감을 느껴 목숨을 끊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김 씨의 가족들은 “경찰이 무리한 수사로 딸을 압박해 목숨을 끊게 만들었다”며 반발하고 있다.아버지는 10년 전 타계하고 홀어머니와 두 아들로 이뤄졌던 이 가족은 어머니와 미혼인 큰아들, 둘째 아들의 아내가 숨짐에 따라 사실상 사라지게 됐다. 정 씨가 노린 어머니의 10억 원대 재산은 숨진 어머니나 형의 친족들이 상속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정 씨가 유일한 혈육이지만 민법상 고의로 직계존속, 피상속인, 그 배우자 등을 살해하거나 이를 시도하면 상속 대상에서 제외되기 때문이다.○ 도박 중독 심각이번 사건처럼 도박 중독이 일으킨 사회적 문제는 어제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사감위)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국민의 7.2%가 도박 중독증 진단을 받았다. 2010년 6.1%보다 1%포인트 이상 늘어난 수치다. 2010년 영국은 국민의 2.5%, 호주는 2.4%, 프랑스는 1.3%만이 도박 중독 진단을 받았다.도박 중독자는 남성이 압도적으로 많다. 지난해 사감위에 상담을 요청하며 성별을 밝힌 도박 중독자 중 92.7%가 남성이었다. 연령별로 보면 30∼39세가 38%로 가장 많고, 18∼29세가 20.4%, 40∼49세가 19.8%로 뒤를 이었다.도박 중독이 사회적인 문제로 대두되는 데엔 카지노 경마 체육진흥투표권(스포츠토토, 프로토) 등 사행산업이 나날이 커지는 영향도 크다. 사감위에 따르면 지난해 카지노 경마 경륜 경정 복권 등 국내 사행산업의 총매출액은 19조5443억 원에 이른다. 경마가 7조8397억 원으로 가장 많고 복권(3조1854억 원) 체육진흥투표권(2조8435억 원) 순이었다.이 중 내국인이 이용할 수 있는 강원랜드 카지노 산업의 가파른 성장세가 눈에 띈다. 강원랜드의 매출액은 2003년 6561억 원에서 지난해 1조2092억 원으로 급증했다. 이용객도 154만8000명에서 302만5000명으로 약 2배로 늘었다. 하지만 세수를 늘려야 하는 국가로선 강원랜드가 더할 나위 없는 ‘효자’다. 강원랜드가 국가에 내는 세금(국세+지방세)은 2003년 1379억 원에서 지난해 2314억 원으로 증가했다.김성이 사감위 위원장은 “도박 중독자들은 카지노에 입장하는 것만으로도 쾌감을 느낀다고 한다. 그렇게 도박에 빠져 부모나 친족까지 등한시하다 보면 인천 모자 살인 사건처럼 극단적인 선택까지 하게 된다”며 “정부가 도박상담사와 정신의학 전문가, 사회복지 전문가 등을 통합하는 기구를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인천=황금천 기자·조동주·김성모 기자 kchwang@donga.com}
“그녀의 말투에 나는 빠졌어. 그랬어. 지난 사랑 얘기에 나도 모를 질투. 아직 한 번도 만나지 못했지만. 하지만 우리끼리 통하는 여긴 사이버 월드” 2인조 남성가수 터보가 부른 ‘사이버 러버(cyber lover)’라는 노래의 가사입니다. 직접 만난 적도 없는 여자와 온라인으로만 교류하며 사랑에 빠진 남자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방송인 김흥국 씨가 라디오에서 이 노래를 ‘시버 러버’라고 잘못 발음하며 소개해 웃음을 주기도 했지요. 어쨌든, 오늘은 ‘만질 수 없는 그대’인 사이버 러버에 열광하는 남자들에 대해 말해보고자 합니다. 25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는 인터넷 개인방송사이트 아프리카TV의 한 여성 BJ가 화제에 올랐습니다. BJ란 ‘Broadcasting Jockey’의 준말로 인터넷 개인방송 진행자를 말합니다. SNS에 따르면 이 여성 BJ가 24일 밤부터 25일 새벽 사이에 진행한 방송에서 남자 시청자 2명에게 별풍선을 17만여 개나 받았다고 합니다. A라는 아이디를 가진 남성이 12만여 개를, B라는 아이디를 가진 남성이 5만여 개를 경쟁적으로 줬다고 하네요. 별풍선이란 아프리카TV에서 운영하는 유료 아이템을 지칭하는 말입니다. 시청자가 개당 110원(부가가치세 포함)을 지불해 구입한 뒤 마음에 드는 BJ에게 선물할 수 있습니다. 시청자에게 받은 별풍선 개수에 따라 BJ 인기도가 평가되는데요, BJ들은 이 별풍선을 돈으로 환전할 수 있습니다. 일반 BJ는 별풍선을 개당 60원으로, 아프리카TV가 뽑은 베스트 BJ는 개당 70원으로 환전할 수 있습니다. SNS에서 화제가 된 여성은 베스트 BJ니까 만약 소문이 사실이라면 방송 한 번에 무려 1190만 원(별풍선 17만 개×70원)을 번 것입니다. 또 별풍선을 준 남성 두 명은 하루 만에 합쳐서 총 1870만 원(별풍선 17만 개×110원)을 쓴 거고요. 화면으로만 볼 수 있는 여성에게 이런 큰돈을 주는 남자들이 있다는 게 정말 사실일까요? 저는 26일 새벽 이 여성 BJ의 방송을 직접 시청해봤습니다. 방송은 시청자들이 채팅으로 각종 질문을 하면 여성 BJ가 대답하는 식으로 이뤄집니다. 한 시청자가 채팅방에 “전날 방송에서 별풍선을 17만 개나 받았다는 게 정말이냐”고 메시지를 띄우자 그녀는 “어제처럼만 같으면 집 한 채 사겠어∼ 그 정도?”라며 자랑하더라고요. 그러면서도 구체적인 별풍선 개수는 말해주지 않았습니다. 제가 방송을 보니 SNS에서 돌아다니는 소문이 사실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제가 본 여성 BJ는 3시간 만에 별풍선 4만2000여 개를 받았으니까요. 방송 한 번으로 대략 300만 원을 번 겁니다. 이 BJ는 100개 넘게 별풍선을 주는 남자들에게는 원하는 노래를 불러주는데 가사에 해당 남성의 아이디를 넣어 불러주는 센스도 보여주었습니다. 남자들의 신청곡 대부분은 여성이 남성에게 애정을 표현하는 사랑 노래들이었습니다. 이를 듣는 남성은 채팅창에 하트 모양을 입력하며 화답했고요. 하지만 그게 전부였습니다. 별풍선을 많이 사준다 해서 여성 BJ를 직접 만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제가 본 방송에서 한 남성은 별풍선을 무려 3만2000여 개, 돈으로 환산하면 352만 원을 보냈습니다. 이 남자는 바로 전날 이 BJ에게 별풍선 5만 개를 선물했다고 알려진 B라는 남자였습니다. 이날 방송에서 B는 별풍선을 38회에 걸쳐 나눠 보냈는데 한 번에 보내는 별풍선 숫자마다 특별한 의미를 담았습니다. 이를테면 486개는 ‘사랑해’, 283개는 ‘이쁘삼’, 1253개는 ‘이리오삼’을 뜻한다고 하네요. B의 ‘별풍선 행진’을 보던 또 다른 남성 C가 자극을 받았는지 총 9회에 걸쳐 별풍선 5304개를 쏘더군요. C는 별풍선을 통해 ‘천사’(1004개) ‘이쁜이’(282개) 등의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별풍선이 쏟아지자 BJ는 너무 좋아하면서 “오빠 나 이렇게 좋아해도 돼요?”라며 수줍게 웃더니 고급 아파트 이름을 대며 “(월세 청산하고) 전셋집으로 이사가야겠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또 남자 시청자들끼리의 별풍선 경쟁이 과열되자 “돈 너무 많이 쓰지 말라”고 말리는 ‘관용’까지 보여주더군요. 남성들은 여성 BJ의 ‘따뜻한 마음씨’에 감탄하죠. 대다수 대중은 ‘잡을 수 없는 풍선’ 같은 사이버 러버에게 거액을 아끼지 않는 이런 남성들에게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냅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사이버 러버를 향한 남성들의 금전 공세를 실제로 확인하면서 이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행복의 기준이란 게 사람마다 참 다를 수 있겠다.’ 여성 BJ가 감미로운 목소리로 자신의 아이디를 불러주며 자신을 위해 노래를 불러주는 것을 ‘행복’이라고 믿는 남자들…. 취향이니 존중해야겠죠?조동주 사회부 기자 djc@donga.com}

모텔 직원 이모 씨(21)는 14일 오전 6시경 서울 송파구 방이동의 자신이 일하는 모텔에 주차돼 있는 빨간색 포르셰 ‘911 카레라 S’를 보고 타고 싶은 유혹에 빠졌다. 조용히 타 보고 주인이 나오기 전에 갖다 놓으면 아무도 모를 것 같았다. 이 씨는 혼자 일하는 모텔 카운터까지 비우고 1억4000여만 원짜리 고급 스포츠카를 몰래 끌고 밖으로 나섰다. 출발 전 차량 블랙박스 전원까지 끄는 치밀함도 잊지 않았다. 이 씨는 비 내리는 송파구 일대를 질주하며 햄버거까지 사먹는 여유를 부렸다. 하지만 이 씨가 몰던 포르셰는 오전 7시 20분경 서울 송파구 잠실동 도로 중간에 있는 조형물을 들이받았다. 앞 범퍼와 왼쪽 바퀴, 엔진까지 파손되는 대형 사고였다. 이 씨는 사고 직후 주인 행세를 하며 경찰에 신고하고 보험사 직원까지 불렀지만 결국 혼자 처리할 수 없다는 걸 깨닫고 주인 정모 씨(25)에게 전화를 걸어 사고 사실을 ‘이실직고’했다. 차량 수리비는 대략 5000만 원으로 추정됐다. 차량 주인 정 씨는 모텔 측에 수리비를 요구했지만 모텔에선 “직원이 발레파킹을 하다 사고가 난 게 아니라 모텔 외부에서 벌어진 일이라 우리가 가입한 보험에 적용되지 않는다”며 버티고 있다. 정 씨는 모텔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검토 중이다. 서울 송파경찰서는 사고를 낸 이 씨를 도로교통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고 16일 밝혔다.조동주 기자 djc@donga.com}

“아저씨 치한이죠?” 열다섯 여중생이 만원 지하철에서 간신히 내린 남자를 따라와 소매를 잡아당기며 말한다. 교복 차림의 소녀는 이 남자가 혼잡한 지하철 안에서 자신의 엉덩이와 몸을 만졌다고 확신한다. 소녀는 울먹이며 남자를 원망스럽게 바라본다. 순식간에 사람들이 몰려들어 남자를 비난한다. 경찰은 다 알고 있다는 듯 자백을 강요하며 “(소녀를 만진 사실을) 인정하면 벌금만 내고 조용히 나갈 수 있다”고 한다. 당직 변호사마저 “성범죄는 재판을 해도 99% 진다”며 회의적이다. 남자는 정말 치한 짓을 하지 않았기에 끝까지 싸우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그 어떤 증거도 소녀의 눈물어린 진술을 이기지 못한다. 1년 동안의 법정 다툼을 벌였지만 남자는 1심에서 유죄판결을 받고 징역 3개월, 집행유예 3년에 처해진다. 남자는 그렇게 ‘성범죄자’라는 낙인이 찍혔다. 일본 영화 ‘그래도 내가 하지 않았어’(2007년)는 성범죄 수사와 재판이 피해 여성의 진술을 절대적인 증거로 인정해 남성이 무죄임을 입증하기 어려운 현실을 꼬집는다. 실제 성범죄를 저질렀다면 엄중히 처벌해야 마땅하지만 우리 사회에는 억울하게 성폭력범으로 낙인찍혀 신음하는 남자들도 있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고소당한 성폭력 사범 중 11.6%(1만6679명 중 1941명)가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조건만남’의 참혹한 대가 “띵동, 띵동, 띵동.” A 씨(32)는 5월 6일 오전 10시경 연달아 울리는 초인종 소리에 잠에서 깼다. ‘월세를 좀 안 냈더니 집주인이 찾아왔나.’ 짜증스럽게 반지하방 문을 열었다. “A 씨 맞죠? 당신을 특수강간 용의자로 체포합니다.” 건장한 체격의 형사 4명이 문을 열자마자 A 씨를 덮쳤다. 순식간에 무릎을 꿇리고 등 뒤로 수갑을 채웠다. 그러곤 16.5m²도 채 안 되는 좁은 원룸을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왜 이러느냐”고 항변하자 “B라는 여자 알지?”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B 씨(20)는 보름쯤 전 온라인 채팅으로 만나 ‘조건만남’을 했던 여자였다. A 씨는 경찰서에 끌려가서야 자신에게 씌워진 무시무시한 혐의를 알게 됐다. 자신이 신원불상의 남성 두 명과 함께 B 씨를 집단 성폭행했다는 것이다. 온라인에서 섹스 파트너를 구해 돈을 내고 성매매를 하는 조건만남은 분명 잘못된 행동이지만 5년 이상의 징역에 최고 무기징역까지 처해지는 특수강간과는 죄질이 달랐다.▼자고 간 그녀가 날 성폭행범으로 고소했다, 도대체 왜?▼A 씨는 구속됐다. 휴대전화 속 지인들은 성폭행 공범으로 의심받아 경찰의 연락을 받고 DNA 채취를 받아야 했다. 순식간에 A 씨 지인을 중심으로 A 씨가 성폭행을 저질렀다는 소문이 퍼졌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그날의 기억을 더듬어봤다. A 씨와 B 씨는 4월 18일 오전 2시경 서울의 한 지하철역에서 처음 만났다. 둘은 이미 인터넷 채팅에서 성관계를 하기로 합의했던 터라 곧장 택시를 타고 남자의 집으로 향했다. 40분가량 침대에 누워 영화를 보다가 자연스레 성관계를 가졌다. 이후 A 씨는 “아침까지 같이 있어줄 수 있느냐. 혼자 잠들기 싫다”고 부탁했고 B 씨는 흔쾌히 “그러자”며 응했다. 둘은 이야기를 나누다 잠들었고 오전 8시 30분경 깼다. A 씨는 B 씨가 지하철을 타러 간다고 하자 “집에서 나가서 우회전만 계속하면 지하철역이 나온다. 데려다주고 싶은데 미안하다”며 길을 알려줬다. 여기까지가 A 씨가 기억하는 정황이다. 하지만 B 씨는 집을 나선 뒤 경찰서로 가 집단성폭행을 당했다고 고소했다. 검찰조사 결과 B 씨의 성폭행 고소는 사소한 거짓말에서 비롯됐다. B 씨는 당초 A 씨와의 조건만남이 끝나고 PC방에 같이 있었던 친구와의 약속이 잡혀 있었다. 하지만 A 씨가 성관계 이후 아침까지 같이 있어달라고 하자 B 씨는 오전 4시 반경 PC방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친구에게 거짓말을 했다. 하지만 변명을 위한 거짓말 치고는 너무 과했다. “나 뒤통수 맞은 듯이 머리가 얼얼해. 여기가 어딘지 모르겠어”라며 말을 흐리는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B 씨의 친구는 아침까지 기다려도 연락이 없자 경찰에 납치 신고를 했다. B 씨는 뒤늦게 소식을 듣고 경찰서로 갔지만 이미 사건이 너무 커져버렸다. B 씨는 자신을 바라보는 친구와 경찰의 눈빛이 부담스러웠는지 순간의 거짓말을 무마하기 위해 또다시 거짓말을 했다. 집단성폭행을 당했다는 것이다. 진술도 제법 구체적이었다. “A 씨를 오전 2시경 만났는데 그 이후의 일이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오전 4시 30분경 깨어나 보니 A 씨를 포함한 남자 세 명이 성폭행하고 있었다. 안경 쓴 남자와 다리에 문신한 남자가 나를 성폭행하는 동안 A 씨가 그 장면을 촬영했다. 이후 다시 의식을 잃었고 오전 8시 30분쯤 일어나 간신히 도망쳐 나왔다.” 진술을 뒷받침하는 증거도 나왔다. B 씨의 몸에선 A 씨의 정액과 복수 남성의 타액, 수면제 성분의 향정신성의약품인 졸피뎀과 알프라졸람이 검출됐다. 진술과 증거가 나온 이상 A 씨가 구속된 건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스무 살 B 씨의 거짓말은 그럴듯했어도 빈틈은 있었다. A 씨를 처음 만나 집에 가는 길은 기억나지 않는다면서 집단성폭행 장면만큼은 너무나 생생히 묘사하는 게 의아했다. 서울중앙지검 여성아동범죄조사부(부장 김홍창)가 이 점에 의문을 품고 파고들수록 B 씨의 진술은 증거로서의 효력을 잃어갔다. 마침 둘이 나란히 집으로 걸어 들어가는 장면이 담긴 폐쇄회로(CC)TV 화면도 발견됐다. 그러자 B 씨는 “집에 가는 과정은 기억나지만 집에 들어간 이후는 정말 기억 안 난다”고 진술을 바꿨다. 가만히 따져보니 진술과 증거도 앞뒤가 맞지 않았다. B 씨는 “안경 쓴 남자와 다리에 문신한 남자가 나를 성폭행하는 동안 A 씨가 그 장면을 촬영했다”고 진술했지만 B 씨의 몸에서는 카메라 촬영을 했다던 A 씨의 정액만 검출됐다. A 씨의 컴퓨터와 휴대전화를 뒤지고 복원까지 해봤지만 찍었다던 동영상은 발견되지 않았다. “오전 4시 30분경 세 명에게 성폭행당한 뒤 잠들었고 오전 8시 30분쯤 깨 보니 손에 정액이 흐르고 있었다”고 진술한 것도 모순이었다. 사실이라면 B 씨가 눈을 떴을 때 이미 정액이 말라붙어 있었어야 했다. 거짓말을 반복하다 보니 스스로 진술을 뒤집기도 했다. 성폭행 공범이라는 신원미상 남자 두 명의 인상착의에 대한 진술은 조사 때마다 계속 바뀌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남자 세 명이 있었다”던 진술은 “원래 세 명이 있었는데 아침에 깼을 때는 A 씨만 있었다”고 바뀌었다. 반면 A 씨의 진술은 일관됐다. 둘이 함께 가다가 집 근처 편의점에서 술과 과자를 산 뒤 화대 11만 원을 인출했다고 했고 실제 카드명세도 진술과 일치했다. 집단성폭행이 이뤄졌다는 A 씨의 집에서는 다른 남성의 머리카락이나 지문 같은 흔적이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 A 씨는 사건 직전 이사를 한 뒤 주변에 주소를 알려주지 않아 아무도 집에 놀러오지 않았던 게 다행이었다. 검찰은 B 씨의 몸에서 검출된 복수 남성의 타액에 대해선 A 씨를 만나기 전에 묻은 것으로 판단했다. B 씨가 A 씨를 만나기 직전에 조건만남을 했다고 추정되는 정황이 포착됐기 때문이다. 약물에 대해선 B 씨가 시종일관 아무런 진술을 하지 않아 검출 경위를 알 수는 없지만 A 씨와는 무관한 것으로 결론지었다. A 씨는 지난달 말 무혐의 처분을 받아 누명을 벗었다. 하지만 25일 동안 무고하게 철창신세를 지고 3개월 넘게 악몽에 시달린 피해는 고스란히 그의 몫으로 남았다. 검찰이 B 씨를 무고 혐의로 불구속 기소한 게 그나마 위안이랄까. 사건을 조사한 검사는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다는 걸 입증하는 게 범죄사실을 밝히는 것보다 훨씬 어렵다. 이번 사건은 의외의 물증(수면제 성분)까지 있어 거짓말을 밝히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며 “한번 거짓말을 하면 이를 정당화하기 위해 계속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는데 그 사이에 본인도 모르게 진술에 허점이 생기기 마련”이라고 말했다.“망가진 내 인생은 어디서 보상받나” “띵동, 띵동, 띵동,” 기자는 1일 어렵게 A 씨의 집을 찾아가 초인종을 눌렀다. 그날의 기억 때문일까. 한참 후에야 조심스럽게 문이 열렸다. 그는 “사건 이후 초인종 소리만 들어도 가슴이 철렁하고 겁이 난다”고 말했다. A 씨는 경찰서 유치장에 들어가자마자 ‘이제 내 인생 끝났구나’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B 씨의 구체적인 진술과 증거 앞에 아무도 자신의 말을 믿어주지 않을 거라 여겼다. 성관계를 한 건 사실인 데다 자신은 소년 시절 폭행 전과까지 있는 나이트클럽 종업원이라는 자조감이 절망을 증폭시켰다. 유치장에서 만난 사람들도 “아무리 억울해도 성범죄는 정말 뒤집기 힘들다. 하루빨리 죄를 인정해야 그나마 형량이 줄어드니까 잘 생각하라”고 권했다. 하지만 짓지도 않은 죄 때문에 5년 넘게 감옥에 가기엔 너무나 억울했다. 어차피 특수강간 혐의라 합의도 불가능했다. A 씨가 강력히 억울함을 호소하자 나이트클럽 동료들이 나섰다. 돈을 모아 변호사 비용도 보태주면서 적극 도왔다. A 씨는 “나중에 들어보니 동료들이 죽은 사람한테 부조한다는 마음으로 십시일반 돈을 모았다고 하더라”며 씁쓸하게 웃었다. A 씨는 그나마 모아뒀던 돈을 변호사 비용(500만 원)으로 다 썼다. 구속된 25일 동안 일을 못해 방 월세도 못 내고 있다. 무혐의로 풀려났지만 ‘성폭행해서 잡혀 갔다더라’는 소문은 이미 꼬리를 물고 퍼져나가 부모님도 사건을 알게 됐다. 새 일자리를 구해야 하지만 사회에 나가기가 무서워졌다. A 씨는 “망가진 내 인생은 어디서 보상받나. 안 그래도 고달팠던 인생인데…”라며 허탈해했다. 하지만 B 씨를 원망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결과를 떠나서 조건만남을 한 것 자체가 잘못된 행동이었고, 조건만남을 하지 않았다면 이런 일도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검찰은 A 씨가 무고하게 고초를 겪은 바를 참작해 조건만남에 대해선 기소하지 않기로 했다.▼겨우 누명 벗어도 의심 눈초리들… 낙인찍힌 삶 어쩌나▼무죄추정의 원칙이 소용없는 성폭력 고소 성범죄 고소사건은 성관계 등 성적 접촉이 실제로 이뤄진 상태에서 그에 대한 강제성 유무를 따지는 사례가 대부분이다. 일단 성범죄로 고소를 당하면 주변 사람들은 “뭔가 하긴 했구나”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랴”라고 여기며 ‘성폭행 용의자’라는 주홍글씨를 새긴다. 혐의만으로도 낙인이 찍히는지라 성범죄만큼은 무죄추정의 원칙이 소용없다. ‘화간(和姦)’과 ‘강간(强姦)’의 애매한 경계를 판가름해야 하는 사건은 주로 연인 사이에서 발생한다. 남녀가 서로 좋아서 성관계를 했어도 여자가 갑자기 앙심을 품고 허위로 고소하면 남자는 영락없이 성폭행 혐의로 조사를 받을 수밖에 없다. 아무리 죄가 없더라도 둘만의 공간에서 은밀하게 벌어지는 행위와 그 상황에서의 심리상태까지 입증해야 해 진실 규명에 오랜 시간이 걸린다. 죄가 없다고 인정받아도 이미 남자는 사회적으로 만신창이가 된다.#1. ‘무시당했다는 괘씸함에…’ 유흥업소 종업원 C 씨(31·여)는 지난해 9월 22일 밤에 처음 만난 손님 D 씨에게 호감을 느껴 연락처를 주고받았다. 여자는 일을 마치곤 남자에게 먼저 연락해 만나자고 할 만큼 적극적이었다. 둘은 술을 마신 후 남자의 집으로 가서 자연스럽게 성관계를 가진 뒤 함께 잠들었다. 아침에 눈을 뜬 여자는 남자에게 넌지시 물었다. “결혼할 생각 있어?” 하지만 남자가 “난 연애하고 싶지 아직 결혼하긴 싫다”고 답하자 섭섭함을 느낀 여자는 집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남자가 마음에 들었던 여자는 그날 저녁 또다시 데이트 신청을 했다. 둘은 술을 마시고 다정하게 사진도 함께 찍은 뒤 잠자리를 함께했다. 하지만 여자는 그날 새벽 남자가 친구에게 “C 씨는 그저 잠자리 상대일 뿐이야”라는 메시지를 보낸 걸 우연히 보고 분노했다. 배신감을 느낀 여자는 남자의 집을 나오자마자 “D 씨가 내 어깨와 몸을 누르고 두 번이나 성폭행했다”고 경찰에 고소했다. 명백한 화간이었지만 남자에게 괘씸함을 느껴 허위 고소를 한 것이다. 여자는 올해 초 검찰이 무고죄를 의심해 출석요구를 하자 급하게 고소를 취소했다. 당시엔 성범죄가 피해자의 고소 없이는 수사할 수 없는 친고죄였던지라 고소만 취소하면 아무 일 없었던 것으로 될 줄 알았던 것이다. 하지만 검사가 무고 혐의를 인지하면 무고에 대한 수사는 고소 취소와 별개로 진행된다는 건 몰랐다. 여자는 1심에서 징역 10개월을 선고받았다가 2심에서 징역 8개월로 감경됐다. 금전을 목적으로 고소한 게 아닌 데다 불안장애와 우울증에 시달린 점이 고려됐다. C 씨가 성폭행으로 고소하는 건 고소장 하나면 충분했지만 D 씨는 화간이었음을 입증하기 위해 몇 개월 동안 사투를 벌여야 했다. 남자는 고소 소식을 듣고 급하게 여자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아무것도 원하는 거 없어. 나 너무 자존심 상했어”라는 대답만 돌아왔다. 시간이 지날수록 남자의 삶은 파국으로 치달았다. 혹시나 회사나 지인에게 성폭행으로 고소당한 사실이 알려질까 극도로 두려워하다 보니 대인기피증이 생겨 정신건강의학과 치료를 받아야 했다.#2. ‘뽀뽀를 안 해줘서…’ ‘뽀뽀’를 해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남자를 성폭행범으로 고소한 사례도 있다. E 씨(43·여)는 2011년 11월 결혼정보회사를 통해 만난 F 씨와 술을 마시고 모텔로 가 자연스럽게 성관계를 가졌다. “모텔에 있는 물은 비위생적일 수 있다”며 편의점에서 생수를 사주고 집까지 차로 바래다주는 남자의 자상함에 여자는 큰 호감을 느꼈다. 여자는 집 앞에 도착해 남자에게 뽀뽀를 한 뒤 “(나에게도) 뽀뽀를 해달라”고 요구했지만 뜻밖에 거절당했다. 자존심이 상한 여자는 집으로 돌아가 “그만 만나요”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답장이 없자 수차례에 걸쳐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라”고 메시지를 보냈다. 남자의 답장은 5일이 지나서야 도착했다. “집에 들어가실 때 저에게 뽀뽀도 해주고 해서 잘될 줄 알았는데 바로 문자로 그만 만나자고 해서 당황스러웠습니다. 어찌됐든 죄송합니다.” 하지만 이미 여자의 감정이 상할 대로 상한 뒤였다. 여자는 “아무리 그래도 술 취한 저를 모텔로 가서 강제로 겁탈한 것은 큰 죄입니다”라고 답장한 뒤 경찰서로 가 “F 씨가 주량이 맥주 한 잔인 내게 전통주 두 병을 먹인 뒤 모텔로 끌고 가 성폭행했다”며 고소했다. 무고한 남자를 성폭행범으로 몰아간 여자는 2심에서 징역 10개월, 집행유예 2년에 사회봉사 200시간에 처해졌다. 생수를 사러 함께 갔던 편의점의 CCTV에 둘의 자연스러운 모습이 찍힌 데다 남자가 차로 집에 데려다줄 때 여자가 아파트단지 앞에서 내릴 수 있었음에도 굳이 동까지 상세히 가르쳐주며 집 앞까지 함께 간 사실이 증거로 인정됐다.#3. ‘이혼 안 당하려고…’ 불륜을 저질러 오다 배우자에게 들킨 여성이 이혼을 피하려고 내연남을 성폭행범으로 고소하는 사건을 부르는 법조계 은어인 ‘100번 강간사건’도 무고한 성범죄 고소의 단골 메뉴다. 이런 사건은 불륜의 기간이 길수록 증거가 많아 여성의 무고를 입증하기 수월한 편이다. G 씨(42·여)는 이삿짐을 옮기던 중 남편에게 내연남과의 ‘섹스 다이어리’를 들켰다. 거기엔 불륜관계였던 H 씨와 2년여 동안 성관계를 해온 내용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이를 본 남편은 이혼을 요구했다. 남편과 이혼하고 싶지 않았던 여자는 “불륜이 아니라 강압적으로 성폭행을 당해온 것”이라고 주장하며 올해 2월 서울의 한 경찰서에 내연남을 고소했다. “H 씨가 2010년 1월부터 2012년 9월까지 나를 강제로 끌고 다니며 수없이 성폭행했다”는 것이다. 상식적으로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었지만 고소장을 접수한 경찰은 수사에 착수해야 했다. 둘은 같은 교회에서 만나 2년 넘게 불륜관계를 지속해 왔기에 무고를 입증할 증거는 충분했다. 내연남은 “절대 성폭행은 하지 않았다”고 억울함을 호소하며 각종 증거를 연이어 제출했다. 여자가 스마트폰 메신저로 보낸 노출사진, 둘이 옷을 벗고 같이 찍은 사진, 사랑을 속삭였던 연서, 서로 주고받은 선물까지…. 여자가 성폭행당했다고 주장해온 2년여 동안 두 사람이 교회에서 성가대 활동을 함께해온 정황도 확인됐다. 서울중앙지검 여성아동범죄조사부는 “성폭행이 아닌 장기간의 불륜”이라고 결론내리고 남자를 무혐의 처분하면서 여자의 무고 혐의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 그러자 여자는 “성폭행으로 인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앓고 있다”며 진단서를 제출하고 피해자임을 강조했다. 하지만 2년 넘게 벌어진 불륜의 증거는 너무나 명백했다. 사건을 수사한 검사는 “‘100번 강간사건’의 특징은 불륜 여성의 남편이 경제적으로 부유하다는 것”이라며 “불륜이 확인되면 이혼당하기 때문에 여성은 아무리 명백한 증거가 있어도 성폭행당했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처분에 불복해 사건 종결에 오랜 시간이 걸린다”고 말했다.‘아니 땐 굴뚝에도 연기 난다’ “여성이 성폭력 피해자가 아닌 게 명백해 보여도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피해자인 나를 의심하냐’고 몰아붙이면 어쩔 수 없이 고소장을 접수할 수밖에 없어요.” 서울지방경찰청 산하 한 인권보호 원스톱지원센터 상담원의 고백이다. 경찰은 여성이 성범죄를 당했다고 고소하면 웬만해선 고소장을 반려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성범죄는 특성상 피해자인 여성의 진술 자체가 결정적인 증거 역할을 하는 데다 정부가 성폭력을 ‘사회 4대악(惡)’ 중 하나로 규정한 상황에서 신빙성이 없다는 이유로 고소를 만류했다가 자칫 민원이라도 걸리면 거센 비난을 받게 된다는 점도 부담스럽다. 고소장이 접수되면 남자는 무조건 경찰조사를 받아야 한다. 성범죄는 피해자 편에서 수사하는 경향이 강해 확실한 증거가 없다면 남성보다는 여성의 진술을 신뢰하는 편이다. 피해 여성을 위한 지원단체는 많지만 피의자 남성이 법적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기관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CCTV앞 다정하게… 대화 녹음” 무고 예방법까지 돌아▼억울하게 고소당했다 해도 사건이 경찰에서 검찰로 넘어가 최종적으로 무혐의 처분을 받는 데엔 두세 달은 족히 걸린다. 남성이 죄가 없더라도 사회적으로 ‘성범죄자’라는 낙인이 찍히기 충분한 시간이다. 택시운전사 I 씨는 택시요금을 안 내려는 여성의 무고한 고소에 성추행범으로 몰려 직장을 잃었다. I 씨는 지난해 12월 4일 새벽 서울 관악구 신림동에서 태운 손님 J 씨(50·여)가 술에 취한 채 2시간 가까이 목적지를 수차례 번복하면서도 요금을 낼 의사가 없자 무임승차로 경찰에 신고했다. 야간에 흔히 일어나는 사건이기에 경찰은 간단하게 조사한 뒤 여자를 즉결심판에 넘기려 했다. 그러자 여자는 “택시운전사가 내 몸을 강제로 만지면서 옷을 벗기려 했다”며 강제추행 혐의로 I 씨를 고소했다. 황당한 일이었지만 고소장을 접수한 이상 경찰은 조사를 해야 했다. 택시운전사는 택시의 블랙박스 영상, J 씨를 태운 시간 동안의 운행기록 등 구체적인 자료를 제출하면서 억울함을 호소했다. 경찰은 불기소 의견으로 사건을 검찰에 넘겼고 검찰도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검찰은 사건을 마무리한 뒤 여자를 무고 혐의로 기소했지만 택시운전사의 삶은 이미 파탄난 뒤였다. 너무나 명백한 무고였지만 일단 성범죄에 연루된 이상 소문이 돌기 시작했고 결국 회사에서 권고사직을 당했다. 이미 소문은 택시업계 전체에 돌아 다시 일자리를 잡기도 쉽지 않았다. 성폭력 전문 김광삼 변호사는 “무고하게 성범죄 고소를 당하면 도의적으로라도 절대 사과해선 안 된다. 그 순간 죄를 인정하는 꼴이 돼 불리한 증거로 쓰인다”며 “고소당한 직후부터 전문 변호사의 도움을 받아야 하루빨리 무고함을 밝혀낼 수 있다”고 말했다.소문만으로도 치명적인 ‘성(性)’ “루카스 선생님 고추가 앞으로 뻗어 있었어요. 막대기처럼.” 유치원생 소녀 클라라는 한참 망설이다 원장에게 입을 연다. 부모의 관심을 많이 받지 못했던 클라라는 아빠의 친구인 루카스 선생님이 자신에게 자상하게 대해주자 호감을 느꼈다. 어느 날 유치원에서 클라라는 루카스 선생님의 입술에 뽀뽀를 했다. 그러자 루카스 선생님은 “이런 건 엄마 아빠에게나 하는 것”이라며 타일렀다. 클라라는 자신의 마음을 받아주지 않는 루카스 선생님에게 앙심을 품고 원장에게 거짓말을 했다. 진위를 따질 새도 없이 소문은 삽시간에 마을 전체에 퍼졌다. 마을 사람들은 루카스의 집에 돌팔매질을 하고 평생 우정을 약속하던 친구들마저 경멸의 눈빛을 보냈다. 루카스는 경찰 조사까지 받고 무혐의로 풀려났지만 주변 사람들은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랴”라며 의혹의 눈길을 거두지 않았고 루카스는 이웃들로부터 견디기 어려운 모멸을 당하며 버림받았다. 덴마크 영화 ‘더 헌트’는 평범한 남자가 소녀의 말 한마디에 파렴치한 아동 성추행범으로 낙인찍히면서 삶이 무너져 내리는 과정을 그린다. 영화는 진위와 관계없이 당사자로 지목되는 것만으로도 삶을 파멸시키는 성추문의 위험성을 보여준다. 서울의 한 대학교수(당시 42세)는 2010년 10월 교내 연구실에서 목을 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여자 조교를 성희롱했다는 추문에 시달리다 학교에서 징계를 받게 될 처지에 처하자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이다. 교수는 2010년 8월 교내 양성평등센터에 여자 조교를 성희롱했다는 신고가 접수됐다는 소식을 듣고 극도로 괴로워했다. 교내 자체 조사가 이뤄진 두 달 동안 반박 증거를 제시하며 필사적으로 해명했지만 양성평등센터는 교수의 징계를 요구하는 결정을 내놨다. 교수는 이 사실을 듣자마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유서에는 “너무나 억울하고 슬프다”며 결백을 호소하는 글이 적혀 있었다. 그 교수의 지인은 “진위가 확인되지 않은 성추문이 마구잡이로 퍼져나가자 그는 폐인처럼 지낼 수밖에 없었다”며 “억울하게 성추문에 얽혀 유가족까지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다”고 말했다. 사망한 교수의 부인은 졸지에 세 자녀의 가장을 잃어 생계를 홀로 꾸려나가야 했다. 평범한 가정주부였던 부인은 사건 이후 지방으로 내려가 베이비시터 일을 하며 세 자녀의 학비를 대고 있다. 고인의 지인들은 자발적으로 후원회를 조직해 매달 일정 금액을 모아 유가족을 돕고 있다. 부인은 사건 이후 3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성희롱의 진실’을 밝히겠다는 강한 의지를 갖고 있다. 남편의 명예를 회복시켜 주는 게 남은 자녀들을 위한 길이기도 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학계에서 명망 높은 서울의 한 대학 명예교수는 허위 성폭행 추문에 시달리다 학교로부터 교수직을 박탈당했다. 2006년 당시 80대였던 이 명예교수는 평소 알고 지내던 30대 여성으로부터 성폭행 혐의로 고소를 당했다. 평소 흠모하던 교수가 마음을 받아주지 않자 앙심을 품고 허위로 고소한 것이었지만 교수는 진실이 알려지기도 전에 파렴치한 성폭행범으로 몰렸다. 대학 총여학생회는 기자회견까지 열어가며 ‘성폭행 교수’의 퇴진을 요구했다. 여론이 악화되자 학교는 수사 결과가 발표되기도 전에 교수를 직위 해제시켰다. 그로부터 한 달여 후 여성이 증거를 짜깁기해 무고하게 교수를 고소한 사실이 밝혀졌다. 하지만 80대 노교수가 평생 쌓아온 덕망은 무너지고 지울 수 없는 불명예만 짊어진 뒤였다. 학교는 진실이 밝혀지자 뒤늦게 복직 요청을 했지만 교수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노교수는 2009년 크나큰 상처를 안은 채 83세에 쓸쓸히 사망했다.‘성폭력 무고 공포’에 떠는 남자들 “남자가 야외에서 전신 노출을 하다 여자가 보면 남자의 공연음란죄고, 여자가 야외에서 전신노출을 하는 걸 남자가 보면 남자의 성희롱죄다.” 최근 인터넷에 떠돌고 있는 우스갯소리다. 물론 공연음란죄나 성희롱죄는 남녀를 가리지 않고 똑같이 적용된다. 하지만 이런 농담이 인기를 얻을 만큼 일부 남성들은 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남자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하다고 느끼고 있는 게 현실이다. 경찰청에 따르면 무고죄 사범은 2009년 3716명에서 2012년 3979명으로 매년 증가했다. 성범죄 무고는 따로 집계하지 않아 정확한 건수를 알 수는 없지만 매년 늘어나고 있다는 게 경찰과 검찰의 공통된 분석이다. 물론 남성이 저지르는 성범죄 건수가 계속 늘고 있고 수법도 흉포화하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우리 사회는 성폭력 피해를 호소하는 여성의 목소리를 더욱 귀담아듣고, 성폭행범에 대한 처벌은 강화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그런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억울하게 낙인찍히는 남성은 없는지 동시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경찰청은 올해 초 블로그 ‘폴인러브’에 여성의 성범죄 자작극 유형을 소개하며 주의를 당부하기도 했다. 지하철에서 성추행당했다고 울면서 특정 남자를 가리키면 공범이 도와주는 척하며 신고하거나 찜질방의 CCTV 사각지대에서 술에 취해 누워 있는 남성에게 접근해 성추행당했다고 협박하는 사례 등이 소개됐다. 인터넷에는 ‘성범죄 무고를 피하는 방법’이 여러 가지 버전으로 떠돈다. 이를 종합하면 △모텔비는 여자가 직접 계산하도록 하고 △CCTV가 있다면 최대한 다정한 모습을 연출하고 △남자가 먼저 방에 들어가 여자를 뒤따라오게 해야 하며 △둘만 있는 방에선 모든 대화를 녹음하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모두 합의하에 성관계를 했다는 증거를 남기기 위한 방편이다. 검찰 관계자는 “실제 수사에서 남성에게 유리하게 쓰일 수 있는 증거인 건 맞다”면서도 “사랑하는 사람과만 성관계를 하면 될 텐데 이렇게까지 하는 남성이 안쓰럽다”고 말했다. 일부 남성 사이에선 “성폭행 위험에 처한 여성을 봐도 절대 도와줘선 안 된다”는 극단적인 목소리까지 나온다. 여성을 구하려 달려들었다가 자칫 여성이 당시 상황을 기억하지 못하면 공범으로 몰릴 수 있는 데다 여성이 중간에 달아나기라도 하면 도와준 남자만 범인을 때린 죄(폭행 또는 상해)를 뒤집어써야 한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성범죄가 친고죄였던 6월 19일 이전까지는 죄 없는 남자라도 고소를 당하면 ‘합의의 유혹’에 빠지기 쉬웠다. 친고죄에 속하는 범죄는 피해자가 합의해 고소를 취소하면 수사를 종결해야 한다. 이런 점을 노려 ‘꽃뱀’이 무고한 남성을 고소한 뒤 합의금을 받고 취소하는 사례가 많았다. 술에 취한 채 ‘꽃뱀’에게 준강간 혐의로 고소당했다가 무혐의 처분을 받은 K 씨(41)는 “나는 미혼에 개인사업을 하고 있어 끝까지 버텼지만 가정이 있는 직장인이었다면 어떻게든 빨리 합의를 하고 사건을 끝냈을 것”이라고 말했다. 6월 19일부터 성범죄에 대한 친고죄와 반의사불벌죄가 폐지되면서 합의금을 노리는 무고한 고소가 줄어들 거란 기대가 높다. 어차피 합의를 해도 수사가 끝까지 진행되고, 그러다 보면 무고죄가 밝혀질 위험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성폭력 고소사범 중 30%는 검찰 단계에서 서로 합의를 했다. 하지만 당사자가 아닌 제3자도 성범죄로 고발을 할 수 있게 되다 보니 제3자에 의해 무고하게 성범죄 누명을 쓰는 남성이 늘어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검찰 관계자는 “아직 법이 바뀐 지 석 달이 채 안 된 만큼 친고죄 폐지의 효과는 올해를 넘긴 뒤에야 가늠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조동주기자 djc@donga.com최예나기자 yena@donga.com}

“키 1m78 몸무게 68kg. 18세 이하만. 서울 ‘바텀’ 구해요.” 김모 군(18)은 10일 한 동성애자 전용 인터넷 커뮤니티에 동성 섹스 파트너를 찾는 글을 올렸다. ‘바텀(Bottom)’은 남성 동성애자가 성행위를 할 때 여성 역할을 하는 남성을 뜻하는 용어다. 취재팀이 서울에 사는 10대 소년을 가장해 스마트폰 메신저로 연락하자 김 군은 “처음이어도 괜찮다”며 “오늘 바로 만나자”고 재촉했다. 동성애자들이 모인 인터넷 카페가 성적 호기심이 왕성한 10대 소년의 일탈 창구로 악용되고 있다. 당초 동성애자 카페는 성소수자의 애환을 공유하고 권리를 신장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개설됐지만 섹스 파트너를 찾는 즉석만남이 만연하면서 성정체성이 확립되지 않은 10대 소년들까지 그 영향권에 들어가고 있다. 요즘 인터넷에 ‘게이 카페’라고 검색하면 회원수 100명이 넘는 카페만 80여 개에 이른다. 회원수가 5000명에 달하는 카페도 있다. 인근에 있는 남성 동성애자를 검색해 연결해주는 스마트폰 앱도 다수 등장했다. 일부 대형 사이트를 제외하곤 성인 인증절차가 전무해 10대 소년도 손쉽게 이용할 수 있다. 동성 성관계에 빠지는 10대 소년은 단순히 성경험을 해보고 싶은 수단으로 동성애를 택하곤 한다. 동성 섹스 파트너를 구한다는 한 10대 소년은 “여성과 성관계를 해본 적은 없지만 섹스가 어떤 느낌인지 궁금했다. 여자보다 비슷한 호기심을 가진 또래 남성이 성경험을 하기 더 쉬울 거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10대 소년을 노리는 성인 동성애자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성관계 파트너를 해주는 대가로 돈을 지급하겠다는 글도 올라와 동성애 불법 성매매가 이뤄지고 있음을 짐작하게 한다. 한 중년 게이 커뮤니티에는 “알바 할 10대 동생을 찾는다”는 글이 수십 개 올라와 있다. 10대 소년이 돈을 벌기 위해 스스로 글을 올리기도 한다. 신원이 불분명한 상대를 온라인을 통해 만나다 보면 성병 마약 등 각종 위험에 고스란히 노출되기 쉽다. 서울동부지검 형사4부(부장 김충우)는 10일 올해 1∼7월 동성애자 사이트를 통해 만나 히로뽕을 투약하고 성관계를 가진 동성애자 5명을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죄로 구속 기소했다. 이들은 무분별한 성관계를 해오다가 상대에게 에이즈(AIDS·후천성면역결핍증)를 옮기기도 했다. A 씨(35)는 동성애자 커뮤니티에서 만난 에이즈 환자 B 씨(39)와 히로뽕을 복용하고 성관계를 가져오다 에이즈에 감염됐다. 에이즈 감염환자 C 씨(45)도 불특정 다수의 남성과 약에 취한 채 성관계를 가져온 것으로 드러났다. 아직 C 씨에게서 에이즈가 옮았다는 동성애자는 발견되지 않았다. 하지만 검찰이 수사를 확대하고 있어 피해자가 추가로 발견될 가능성이 높다. 홍봉선 신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청소년이 미처 성정체성이 확립되지 않은 상태에서 막연한 성적 호기심만으로 동성애를 접하다 보면 성인이 되더라도 왜곡된 성관념을 갖게 될 수 있다”며 “무분별한 성관계를 조장하는 인터넷 카페나 앱에 대한 감시를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조동주·서동일·곽도영 기자 djc@donga.com}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51)은 내란음모 등의 혐의로 구속된 이후 입을 닫았다. 국가정보원에 따르면 이 의원은 수사관이 어떤 증거를 들이밀어도 묵비권을 행사하며 침묵을 지키고 있다. 반론이나 해명도 일절 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구속되기 전 수 차례에 걸쳐 "내란음모는 국정원의 조작이다" "진실과 정의는 반드시 승리한다"며 목소리를 높이던 모습과는 대조적이다. 공안당국은 이 의원이 체포와 수사 과정에서 보인 행동들이 과거 이적단체 공안사범들과 유사하다고 보고 있다. 경찰대 치안정책연구소와 국정원 등에 따르면 그동안 이적단체는 자체적으로 '보위수칙' '보안수칙' 등을 제작해 돌려보며 경찰과 검찰 수사, 법정에서의 행동강령을 숙지해왔는데 이 의원의 수사대응방식이 이를 빼닮았다는 것이다. 동아일보가 9일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이 1990년대 중반에 만든 보안문건 '한총련 1만간부 지침서'를 입수해 살펴보니 경찰과 검찰 수사단계에서의 행동양식과 '취조투쟁' 방식이 구체적으로 적혀 있었다. 이 문건에는 △저들이 아무리 구체적인 증거를 들고 나와도 당황하지 말고 투쟁한다는 자세로 임하라 △시간을 최대한 끌어가며 수사에 임해야 적들이 불안하고 초조해한다 △"나는 멍청하다. 아무것도 모른다. 다만 애국적·양심적으로 살려한다"는 모습으로 일관하라는 등의 내용이 담겨있다. 수사 나흘째까지 국정원이 구체적인 증거를 제시해도 묵비권을 행사하는 이 의원의 행동과 일치한다. 물론 불리한 진술을 하지 않을 권리인 묵비권은 헌법에 보장돼있다. 1990년대 이후 공안사범은 경찰과 검찰의 수사단계에서 묵비권을 행사하다가 법정 재판에서야 목소리를 내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국내 좌파단체를 연구해온 유동열 경찰대 치안정책연구소 선임연구관은 "이 의원의 경우 녹취록 등 명확한 증거가 있기에 묵비권을 행사하는 게 가장 유리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며 "일심회, 왕재산 등 일련의 간첩사건에 연루된 공안사범도 모두 묵비권을 행사했다. 이는 취조투쟁의 기본"이라고 말했다. 공안사범들은 단체의 계열과 관계없이 1970~1980년대에는 강경한 자세로 수사에 임해왔지만 1990년대 들어 취조대응 방식을 묵비권 활용으로 전면 수정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이런 경향은 1990년 '남한사회주의노동자연맹(사노맹) 사건'에서도 확인된다. 공안당국에 따르면 사노맹은 조직원이 안기부 조사를 받은 경험을 토대로 작성한 '조직 보위투쟁 교훈지침서'에 따라 수사대응 방식을 전면 수정했다. 이 지침서에는 △훌륭한 동지들도 5일만 지나면 (안기부의 심리전에 말려) 떠들고 웃고 마시며 수사를 받는다. 이것이 AGI(안기부)의 힘이다 △AGI가 물리적 도구나 약물을 쓰는 고문이 아닌 고도의 심리전으로 상대를 궤멸시킨다는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과거 공안사범은 강압수사에는 강경한 태도로 대응해왔다. 1980년대 사노맹은 "맞는 것도 보약이다. 독종 중의 독종으로 공격하라" "조직을 대라고 하면 '살아나가서 (너를) 칼로 배 창자를 긁겠다'고 협박하라"는 등 강압 신문에 대응하는 보위 전술을 구사했다. 하지만 수사당국이 '인격적 수사' '합법수사'를 내세우며 고도의 심리전을 펼치자 증거를 제시해도 범죄 사실은 물론 이름도 밝히지 않는 등 묵비권을 행사하는 '시간 끌기'식 투쟁전술로 전환했다는 것이다. 피의자가 묵비권을 행사하면 혐의 입증은 증거 능력에 따라 좌우된다. 혐의를 입증할 증거가 취약할수록 '묵비권 전략'이 성공하기 마련이다. 다만 묵비권이 무조건 피의자에게 유리한 것만은 아니다. 대검 관계자는 "수사단계에서 묵비권을 고집했다가 실제 재판에서 유죄판결을 받으면 양형이 더 늘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국정원은 처음부터 이 의원이 묵비권을 행사할 걸 예상했기 때문에 명백한 증거로서 혐의를 입증한다는 방침이다. 국정원 관계자는 "공안사범은 수사단계에선 무조건 묵비권을 행사하고 재판에 가서야 변호인과 함께 모든 증거가 조작됐다는 식으로 주장한다. 틀에 박힌 수법"이라며 "이 의원의 진술 없이도 충분히 혐의를 입증할 만큼 증거를 확보했다"고 자신했다.조동주 기자 djc@donga.com}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51)이 RO(혁명조직)의 핵심에 오르기까지의 정치적인 과정과 사상적 실체는 이번 국가정보원 수사로 상당 부분 드러났지만 그가 그 같은 사상을 갖게 된 데 영향을 미쳤을 인생 궤적은 베일에 가려 있다. 전남 목포 출신으로 1980년 성남 성일고를 졸업한 이 의원은 한국외국어대 용인캠퍼스를 졸업했다. 3일 이 의원 주변 사람들에 따르면 그는 1990년 결혼했으나 2002년 부인과 이혼했다. 좌파성향의 사회변혁·정치활동을 하는 인사들 가운데는 부부가 함께 같은 길을 걷는 경우가 적지 않지만 이 의원의 전 부인은 이런 일과는 무관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주변 사람들에 따르면 이 의원은 한국외국어대 재학 시 대학가요제에 참여한 타 대학 학생인 부인을 TV로 보고 직접 찾아가 교제를 청했고 1990년 결혼한 것으로 알려졌다. 혼자서 가계를 꾸려가던 부인이 이혼소송을 제기했으며, 이혼 후 전 부인은 자녀들(1남 1녀)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 갔고 이 의원은 혼자서 생활해온 것으로 전해진다. 이 의원은 1999년 민족민주혁명당(민혁당) 사건에 연루돼 수배생활을 한 뒤 실형을 살았다. 당시 군무원이었던 누나는 이 의원의 도피를 도운 혐의로 정직됐다. 이 의원의 누나와 어머니는 몇 년 전 세상을 떠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의원은 서울 동작구 사당동의 한 아파트에 혼자 거주해왔다. 해당 아파트 경비원에 따르면 이 의원은 올 5월에 다른 곳으로 거처를 옮겼다. 경비원은 “오전 6시 반쯤 출근해 오후 11시 넘어서 집에 들어왔는데 혼자 살았던 걸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항상 기사가 집 앞에 데려다 줬는데 주차는 아파트에서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 했다”고 덧붙였다. 아파트 주민인 한 40대 남성은 “이곳에 사는지조차 몰랐다. 조용히 살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김성모·조동주 기자 mo@donga.com}

“외교부 감사요? 선후배들끼리 짜고 치는 고스톱이에요.” 중남미의 한 한국대사관저 요리사 A 씨가 26일 기자에게 보내온 e메일에는 외교부에 대한 불신이 가득 차 있었다. A 씨는 “감사 직원들도 어차피 나중에 대사로 나갈 사람들이라 서로 현실을 알면서도 적당히 넘어간다더라”며 “건강이 좋았던 나도 3개월 만에 영양실조와 급성빈혈에 시달릴 만큼 현지 요리사 사정은 정말 열악하지만 차마 (이를 알릴) 용기를 못 냈다”고 적었다. 본보가 해외공관 요리사의 인권유린에 대해 보도한 직후 외교부는 문제가 불거진 해외공관에 대해 철저하고 객관적인 조사를 해 진실을 규명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기자가 접촉한 대부분의 요리사들은 회의적인 분위기이다. 여론이 잠잠해지면 곧 부당한 대우를 받아온 ‘일상’으로 돌아갈 거라는 탄식이 대다수였다. 취재 과정에서 접촉한 상당수 요리사들은 혹시나 ‘갑’인 외교부와 대사의 심기를 건드렸다가 쫓겨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입을 열기를 꺼렸다. 한 요리사는 기자에게 “기사 한 번 쓰고 말거면 아예 시작도 하지 마라. 괜히 긁어 부스럼만 만든다”며 기사화를 만류하기도 했다. 본보 보도 이후 세계 각국 공관에서 부당한 대우를 당했다는 요리사들의 제보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아프리카의 한 대사관저에서 일한 요리사 B 씨는 대사 부인에게서 “엄마를 보면 딸을 아는데, 널 보니 네 딸이 어떤지 알겠다”는 폭언까지 들었다고 한다. B 씨는 주 7일 근무에 시달리다 결국 8개월 만에 몸이 망가져 중도 귀국해야 했다. 모든 국가가 우리나라처럼 해외공관장에게 자국인 전용요리사를 지원하는 건 아니다. 주한 프랑스대사관과 알제리대사관은 한국에서 뽑은 한국인 요리사가 관저 요리를 책임진다고 한다. 그럼에도 우리나라가 모든 해외공관장에게 한국인 전용요리사를 보내주는 건 만찬을 통해 한식을 현지에 소개하는 것도 외교 수단 중 하나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외교부 행정직원 신분으로 관용여권을 들고 출국하는 해외대사관저 요리사 중 일부는 사실상 대사 가족의 개인 가정부로 일해 온 게 현실이다. 물론 모든 해외대사관저 요리사가 ‘관노비’ 취급을 받은 건 아니다. 지난해 8월부터 올 3월까지 과테말라 한국대사관저 요리사로 일했던 김용진 씨(30)는 “정말 대사님한테 따스한 대우를 받았다. 대사님이 직접 차를 운전해 주변 지리를 소개해 줬고 내가 외로워할까 봐 관광지에도 데려가 줬다. 과테말라에서의 생활은 정말 행복했다”고 말했다. 감시 사각지대에 근무하는 고위공직자가 특권의식을 갖고 공사 구분을 못할 경우 어떤 추한 일이 벌어지는지를 이번 파문은 보여줬다. 감시의 눈을 강화하고 특권을 줄이는 제도적 개선이 요구된다.조동주 사회부 기자 djc@donga.com}
외교부는 ‘현대판 관노비’라 불리는 해외 한국대사관저 요리사의 운영 실태에 대한 전면적인 조사에 착수하기로 했다. 본보가 관저 요리사의 실태를 지적한 뒤 해외 각국에서 부당한 처우를 받았다는 관저 요리사의 고발이 이어지고 있다. 외교부는 맹장수술을 받은 요리사를 바로 해고했다는 주장이 불거진 아프리카의 한 한국대사관에 감사 직원을 파견해 실태 조사를 마쳤다. ‘3주 동안 요리사를 감금했다’는 주장이 제기된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한 한국대사관에 대해서도 진상을 규명할 방침이다. 외교부 관계자는 “동아일보 보도 내용에 대해 철저한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며 “해외 공관 요리사를 포함한 행정직원의 처우에 대해 전면적인 실태 조사를 해 개선 방안을 모색하겠다”고 말했다.○ ‘식모’ 취급 받는 외교부 행정직원 본보 보도 이후 관저 요리사들의 고발이 쏟아지고 있다. 관저 요리사는 외교부 소속 행정직원 신분(계약직)으로 해외에 파견되지만 사실상 ‘머슴’이나 ‘식모’ 취급을 받는 정황이 곳곳에서 포착됐다. 아프리카의 한 한국대사관저 요리사였던 김모 씨는 “요리 외에 청소, 현지인 감독 등 잡일에까지 동원됐고 휴일에도 마음 편히 쉬지 못했다”고 털어놓았다. 김 씨는 취재팀과 만나 “아침식사를 끝내면 잠깐이라도 쉬어야 하는데 대사 부인이 자주 연락을 해와 ‘현지인이 청소하는 걸 관리·감독하라’고 지시했다”며 “쉬는 날 밖에 나갔다가 저녁에 들어오자 대사가 ‘내가 집 지키는 사람이냐. 쉬는 날이라도 오후 6시까지는 들어와야 하는 거 아니냐’고 면박을 주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해외 대사관저에서 8개월 동안 근무했다는 A 씨는 본보 보도 직후 e메일을 보내와 “대사는 자신이 현지에서는 대통령이라며 권위를 세운다”며 “쉬는 날도 없이 새벽까지 일을 시키는 바람에 몸져눕게 돼 결국 일을 그만두고 8개월 만에 귀국했다”고 말했다.○ “식사 때마다 호통 치며 인격 모독” 유럽의 한 한국대사관저 요리사 B 씨(여)는 부임한 지 두 달도 안 돼 부당 해고를 당했다는 글을 포털사이트 다음 아고라에 16일 올렸다. 이 글에 따르면 B 씨는 6월 19일 유럽의 한 한국대사관저 요리사 일을 시작했지만 얼마 안 돼 ‘음식을 잘 못 만드는 데다 나이도 많고 이상한 짓을 한다’는 이유로 부당 해고를 당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대사 부부가 식사 때마다 ‘내일 아침 녹두죽이 맛없으면 죽는다’는 식으로 호통을 치고 인격적으로 무시하는 발언을 일삼았다”고 적었다. B 씨는 또 “이달 9일부터는 관저 정문과 숙소 열쇠를 제외한 모든 열쇠를 빼앗겼다. 주방이 본관에 있는데 본관 열쇠가 없어 이틀에 한 번씩 빵을 사먹으며 생활했다”며 “그나마 대사 부부의 허락 없이는 외출도 못해 사실상 반(半)감금 상태였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해당 국가 대사는 본보와의 국제전화에서 “B 씨가 요리에 신경을 안 쓰는 데다 문제점을 지적해도 귀담아듣지 않았다”며 “정당한 계약 해지였다”고 해명했다. 이어 “요리사 숙소는 관저 별채에 있다. 계약 해지 이후에는 B 씨가 본관에 올 일이 없어 열쇠를 되돌려 받은 걸 ‘반감금’이라고 과장해 표현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와 관련해 외교부는 이 대사관에 감사 직원을 파견해 실태 조사를 하기로 했다.○ 서면통고 7일 만에 해고하기도 관저 요리사는 한식조리사자격증만 있으면 지원할 수 있고 식당에서 일하는 것보다 처우도 나은 편이다. 교민 가운데 관저 요리사가 되기 위해 한식조리사자격증을 따러 일시 귀국할 정도로 인기가 높은 직종이다. 대사관저에 들어가면 거주 비용도 별도로 들지 않는다. 이 때문에 관저 요리사들은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해고당할까 봐 쉽게 용기를 내지 못하는 실정이다. 요리사는 행정직원이지만 대사와 개별 계약을 맺는다. 이 때문에 해고도 대사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구조여서 부작용이 발생하는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본보가 입수한 한 관저 요리사의 계약서에는 ‘고용주는 고용원이 다음 각 호의 사유에 해당할 때에는 고용 만료 전이라도 고용원에게 30일 전 서면통고로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며 △직무를 태만히 하거나 △상사의 직무상 명령에 복종하지 않거나 △보안상의 중대한 위해를 범하거나 범할 소지가 있을 경우 △근무평정 결과가 불량할 때 등을 계약 해지 조건으로 들고 있다. 사실상 대사 뜻대로 요리사를 자를 수 있다는 의미다. 더구나 일부 대사관은 요리사를 서면통고 7일 만에 해고해 계약 조건조차 지키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조동주·김성모 기자 djc@donga.com}

“나는 관노비(官奴婢)나 다름없었다.” 아시아태평양지역 주재 한 한국대사관저 요리사였던 A 씨(여)는 22일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흐느끼며 입을 열었다. 그는 지난해 3월 당시 한국대사 B 씨 가족이 사는 대사관저에 요리사로 파견됐다가 11개월 만에 귀국했다. A 씨는 “B 대사의 부인으로부터 상습적인 폭행과 욕설, 감금까지 당하다가 부당하게 해고돼 쫓겨났다”고 주장하며 울분을 토했다. 최근 B 대사가 현지 경비원을 폭행했다가 사직한 사건을 계기로 해외 주재 한국 대사관저의 요리사들이 “우리도 비인간적인 대접을 받아왔다”고 잇따라 폭로해 파장이 예상된다. 일부 요리사는 인권 침해와 부당해고 건과 관련한 법적 소송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는 진상 조사에 나섰다.○ 해외 대사관저는 ‘작은 청와대’ A 씨는 한국대사관저가 ‘작은 청와대’처럼 느껴졌다고 한다. 그만큼 관저에서 대사 가족의 권력이 대단했다는 의미다. A 씨는 “주방에서 일할 때 대사 부인에게 홍두깨로 머리와 팔 등을 빈번하게 맞았다”고 주장했다. 11개월 동안 대사관저 요리사로 일하면서 3번이나 지하실에 감금당했는데 그중 1번은 3주나 감금당해 영양실조로 현지 병원에 실려 갔다고도 했다. 그는 “감금당했을 때 현지 경찰에 신고했지만 대사관저가 치외법권 지역이라는 이유로 제대로 조치를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모든 해외 공관장 관사에는 대사나 총영사 부부를 위해 한국인 요리사가 외교부 고용으로 파견된다. 단신 부임이며 연봉은 국가별로 2500만∼3500만 원 수준이다. A 씨가 대사 가족에게 밉보인 건 연봉과 일요 근무 때문이었다고 한다. A 씨에 따르면 현지에 처음 도착한 지난해 3월 B 당시 대사 측이 “우리 대사관은 자체 내규상 일요일에도 일해야 한다”는 조건이 담긴 계약서에 서명을 강요했다. A 씨가 서명을 거부하자 대사 부인이 “어딜 싸가지 없이 말을 안 듣느냐. 그러다 여권 없이 국제 미아가 되는 수가 있다”고 협박해 억지로 서명한 후 미운털이 박혀 시도 때도 없이 구박당했다는 게 A 씨의 주장이다. A 씨는 대사 가족이 현지인에게도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다고 전했다. B 당시 대사는 4월 방범봉으로 현지인 경비원의 엉덩이를 때렸다가 경비원이 현지 정부에 수사를 요청하고 외교부가 감사에 나서자 5월 사직서를 제출했다. A 씨는 “해고된 현지 경비원 중 1명은 ‘밖에서 B 대사를 만나면 찔러 죽이겠다’며 칼을 들고 다닌다는 말을 듣고 한국인인 게 부끄러웠다”고 말했다. 본보는 현재 한국에 있다는 B 전 대사의 해명을 듣기 위해 수차례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았다. 외교부 관계자는 “자체 조사 결과 B 대사와 요리사의 주장이 크게 다른 점이 많다. 객관적으로 조사해 진실을 규명하겠다”고 말했다.○ “언젠가 터질 게 터졌다” 김모 씨(38)는 아프리카의 한 대사관저에서 요리사로 근무하던 지난달 18일 밤 갑작스러운 복통으로 응급실에 실려가 다음 날 맹장수술을 받았다. 김 씨는 수술 후 현지 의사에게 “2주 정도 회복기를 가져야 한다”는 진단을 받았다. 김 씨는 이 소식을 들은 대사 C 씨가 “뭘 2주씩이나 쉬느냐. 요리사를 바꾸라”며 지난달 24일 갑자기 해고를 통보했다고 주장했다. 김 씨는 또 대사 부부가 필요 이상의 만찬을 열어 공금으로 대사 개인의 식사비를 해결해 왔다고도 주장했다. 해외주재 대사들은 관저 내에서 공무와 무관한 가족끼리 하는 식사 재료는 사비로 구매해야 하는데 C 대사는 공금을 쓸 수 있는 만찬을 필요 이상으로 자주 열고 식자재를 많이 구입하게 한 뒤 남는 식자재를 개인 식사용으로 썼다고 주장한다. 김 씨는 “지난해 10월 초부터 7월 9일까지 공식 만찬만 40차례 열었는데 그중 외국인이 참가한 건 11차례뿐이었다”고 말했다. C 대사는 본보와의 국제전화에서 “김 씨가 불결하게 주방을 관리해 딸이 장티푸스에 걸리고 나도 급성요도 방광염을 앓았다. 김 씨가 식자재 창고에 담배꽁초가 담긴 병을 둘 만큼 위생 관리가 안 돼 수차례 지적했는데 고쳐지지 않았다”며 “김 씨의 과실에 책임을 물어 해고하면 김 씨에게 명예롭지 못할 수 있는 점을 배려해 맹장 수술을 이유로 해고 통보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현재 동남아에서 근무하는 D 씨(여)도 22일 본보와의 통화에서 “만찬용 식재료를 정량대로만 사오면 대사 부인이 ‘이렇게 요리사하면 안 된다’고 면박을 준다”고 주장했다. 해외 대사관저에서 근무하는 한국 요리사들은 “언젠가 터질 게 드디어 터졌다”는 반응이다. 15년이 넘게 아프리카 동남아 등에서 관저 요리사를 해온 E 씨는 본보와의 통화에서 “관저 요리사들은 오래전부터 부당한 인권 침해를 당해왔지만 용기가 없어 나서지 못했던 것일 뿐”이라며 “계약서에 명시된 근무시간을 한참 초과해서 일을 시켜도 대사 부인끼리 공유하는 ‘요리사 블랙리스트’에 이름이 오를까봐 아무도 문제 제기를 못했다”고 말했다.김성모·조동주 기자 mo@donga.com}

김구라 씨는 인기 있는 방송인이지만 검소하기로 유명하다. 제법 돈을 벌었지만 여전히 경기 김포시에 산다. 휴대전화도 구시대의 유물인 ‘2G폰’을 쓴다. 그런 김 씨도 뿌리치지 못하는 사치품이 있다. 바로 남성의 자존심을 상징한다는 명품시계다. 짠돌이 이미지가 강한 김 씨도 방송에서 종종 자신이 찬 IWC 시계를 가리키며 “나 이만큼 성공했다”고 과시한다. IWC는 145년의 전통을 가진 스위스 명품시계 브랜드로 최저 가격이 500만 원대일 만큼 고가 제품이다. 원래 명품시계는 결혼 예물용으로나 쓰였다. 알 만한 브랜드는 롤렉스와 오메가, 카르티에 등에 국한됐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에 파테크 필리프, 오드마르 피게, 바슈롱 콩스탕탱, IWC, 브레게, 블랑팽, 예거 르쿨트르(이상 스위스), 파네라이(이탈리아) 등 다양한 명품 브랜드들이 이름을 알리면서 이제 서울 강남 일대에선 수백만∼수천만 원, 심지어는 억대의 초고가 시계를 차고 다니는 이들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기업인의 정관계 로비 사건에도 명품시계는 단골 아이템이다. 웬만한 집 한 채 값인 명품시계 20일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현대백화점 본점 2층에 위치한 명품시계관. 수십만∼수백만 원짜리 시계들은 여러 브랜드가 한곳에 모인 편집매장에 전시되는 반면 수천만∼수억 원짜리 최고급 시계를 취급하는 브랜드 매장은 대부분 단독 매장인 ‘부티크’ 형태로 차려져 있다. 스위스 브랜드인 ‘로제 뒤뷔’ 매장으로 들어가 제일 비싼 시계를 보여 달라고 했다. 그러자 검은 가죽 끈에 속이 고스란히 비치는 시계를 내놨다. ‘엑스칼리버 더블플라잉 투르비용 스켈리턴’이라는 이름의 시계로 전 세계에서 88개만 한정 생산됐다고 했다. 시계 곳곳에는 다이아몬드 4.77캐럿이 628개로 쪼개져 박혀 있었다. 가격은 3억9300만 원. 웬만한 집 한 채 값이다. 명품시계는 대부분 손목의 운동에서 힘을 얻어 스스로 움직이는 오토매틱 와인딩 방식으로 만들어지는데 동력장치인 기계식 무브먼트의 기술력에 따라 가치가 좌우된다. 그래서 수은전지를 사용하지 않고 자체적인 무브먼트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브랜드만이 명품 대우를 받는다. 기계식 시계의 특성상 부품들이 중력의 영향을 받아 발생하는 오차를 최소화하는 ‘투르비용(Tourbillion)’이나 정기적인 종소리로 시간을 알려주는 ‘미닛리피터(Minute Repeater)’ 등의 기능까지 더해진 시계는 가격이 수억∼수십억 원에 이른다. 돈이 있어도 아무나 못 사는 명품시계도 있다. ‘시계의 제왕’이라는 파테크 필리프는 일부 특정 모델에 대해서는 고객에게 ‘시계 구매 이력’을 적은 에세이를 받아 검토한 뒤 판매 여부를 결정한다. 특히 고급 기능인 미닛리피터가 포함된 제품은 에세이를 내지 않으면 살 수 없다. 에세이에는 자신이 구매한 파테크 필리프 제품 명세와 개인의 인생 약력을 담아야 한다. 에세이를 통과하려면 보통 파테크 필리프 시계를 10개 이상 산 기록이 있어야 한다고 한다. 파테크 필리프를 수입하는 김윤호 우림FMG 대표는 “올해 초 한 손님이 5억 원 상당의 파테크 필리프 시계를 사려고 에세이를 냈다가 본사로부터 판매를 거절당했다”며 “좋은 시계를 사려면 시계 커리어도 단계적으로 관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엔 여성용 명품시계 수요도 늘고 있다. 로제 뒤뷔 현대백화점 매장은 지난달 19일 문을 열고 일주일 만에 1억200만 원짜리와 5700만 원짜리 시계 두 개를 판매했는데 둘 다 여성용이었다. 이정환 현대백화점 바이어는 “여성의 명품시계 구매 비율이 5년 전만 해도 10%에 못 미쳤는데 최근엔 30%에 이른다”며 “대부분의 명품시계 브랜드들이 여성 고객을 위한 시계를 공격적으로 출시하며 여심(女心) 공략에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불황 속 ‘부익부 빈익빈’의 상징 최근 국내 명품시계 시장은 기존의 인기 브랜드였던 롤렉스와 오메가, 카르티에 등이 꾸준한 강세를 보이면서도 다양한 브랜드들이 새롭게 인기를 끌면서 시장 규모가 점점 커지고 있다. 아이로니컬하게도 국내 명품시계 시장은 경제 불황이 본격화된 2009년부터 급속히 커지기 시작해 올해까지 매년 20∼30%씩 성장하고 있다. 불황일수록 부익부 빈익빈이 심화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한국은 2008년까지만 해도 스위스 시계 브랜드 500여 개의 모임인 스위스시계산업협회가 매년 공개하는 ‘스위스 시계 판매액 15위권 국가 순위’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그러다 2009년 판매액 2억2300만 스위스프랑(약 2174억 원)으로 처음 13위에 올랐다. 이해에는 한국을 제외한 1∼15위 국가 모두 전년 대비 판매액이 13∼39% 감소했지만 한국만 유일하게 35.7% 상승했다. 한국의 스위스 시계 브랜드 판매액 순위는 2011년 11위(3억9450만 스위스프랑·약 4800억 원)로 두 단계 뛰어올랐다. 한국은 올해 상반기에만 2억3770만 프랑(약 2892억 원·11위)어치의 스위스 시계를 사들여 이미 2009년 한 해 판매액을 넘어섰다. 불황에 민감하다는 출판물 광고에서도 시계 광고만큼은 강세를 보이고 있다. 고급 남성패션잡지 GQ코리아에 따르면 2008년 전체 지면광고의 7.6%에 불과했던 시계 광고는 2013년 8월 말 현재 전체 광고의 13.0%를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명품시계라고 무조건 잘 팔리는 건 아니다. 이재현 CJ그룹 회장이 뇌물 용도로 구매했던 사실이 알려져 화제가 된 시계 브랜드 프랭크뮬러는 국내에 다수의 정식매장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최근엔 면세점을 제외하곤 한 곳의 정식매장만 남아있다. 한 시계업계 관계자는 “프랭크뮬러는 변화에 다소 소극적이었다. 국내 명품시계 소비자는 해외 소비자와 달리 유행에 민감한 편이라 제품에 지속적인 변화를 줘야 살아남을 수 있어 경쟁이 치열하다”고 말했다.뇌물과 재테크 수단으로도 인기 수천만 원에서 억대에 이르는 초고가 명품시계는 정관계를 강타하는 로비사건 때마다 꾸준하게 등장했다. 프러포즈 때 다이아몬드 반지에 장미꽃다발을 곁들이듯 거액의 현금을 뇌물로 건넬 때 명품시계도 필수품처럼 따라붙는 게 최근 몇 년간 불거진 로비사건의 특징이다. 이재현 회장은 2006년 전군표 당시 국세청장에게 30만 달러(약 3억3500만 원)를 뇌물로 주면서 4200만 원짜리 프랭크뮬러 시계도 건넨 것으로 최근 검찰 조사에서 드러났다. 이 회장은 허병익 당시 국세청 법인납세국장에게도 2700만 원 상당의 프랭크뮬러 시계를 줬다.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일가에 600만 달러(약 67억 원)를 전달함과 동시에 2006년 9월 노 전 대통령 부부에게 각각 1억 원 상당의 피아제 시계 두 개를 건넨 것으로 밝혀져 당시 피아제가 전국적으로 이름을 알렸다. 이국철 SLS그룹 회장은 정관계 인사들에게 거액을 로비하면서 카르티에 시계 2개, 오메가 시계와 프랭크뮬러 시계 각 1개 등 명품시계 4개를 건넸다고 주장한 비망록을 2011년 공개하기도 했다. 명품시계는 현금으로 결제하면 추적을 피하기 쉽고 휴대가 간편해 운반도 쉽다. 이재현 회장도 서울 중구 남대문로 힐튼호텔 내 프랭크뮬러 매장에서 직접 시계 두 개를 고른 뒤 현금 결제했다. 이 과정에서 15%가량 할인도 받아 4200만 원짜리 시계를 3570만 원에, 2700만 원짜리 시계를 2346만 원에 구입한 것으로 전해졌다. 시간이 지나도 가치가 떨어지지 않는 데다 일부 모델은 중고임에도 되레 가격이 뛰는 점도 명품시계 시장의 특징이다. 매해 수천∼수만 개만 생산해 희소가치가 높기 때문이다. 24년째 시계를 수입해온 김윤호 대표는 “파테크 필리프 월드타임 5131은 정가가 8920만 원인데 물량 부족으로 해외 인터넷 중고시장에선 중고가 1억8000만 원에 팔리고 있다”며 “만약 계기판의 숫자가 잘못 박히거나 삐뚤어진 명품시계가 있다면 경매에서 원가보다 몇 배 높게 팔릴 것이 확실하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만큼 명품시계는 희소성이 가치를 좌우한다”고 말했다. 금융업에 종사하는 A 씨(43)는 시계 재테크로 해마다 500만 원 정도 부가수익을 올린다. 원하는 시계를 사서 차고 다니다가 되파는데도 대부분 구매가보다 높은 가격을 받고 판다. 최근 3년 동안 A 씨의 손목을 거쳐 간 명품시계는 30개가 넘는다. A 씨는 외국에 가면 시계를 사서 차고 들어오곤 한다. 그러곤 수개월 정도 여러 시계를 바꿔 차고 다니다가 인터넷 중고시장에서 되파는데 열에 아홉은 남는 장사를 한다고 한다. 해외 온라인 중고마켓도 A 씨의 주요 수익원이다. A 씨는 환율이 요동칠 때마다 해외 중고물품 거래사이트인 이베이를 수시로 접속한다. 환율 변화에 따라 시계를 사거나 팔면 손쉽게 차익을 거둘 수 있다. A 씨는 “나도 처음엔 1000만 원 넘는 시계를 차고 다니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한번 발을 들인 이후 이제 명품시계는 내 삶의 일부가 됐다”고 말했다. 공짜 기념품 손목시계, 1만∼2만 원짜리 시계도 시간 잘 맞고 모양 멋진데, 왜 일부 남성들은 손목에 수백만∼수억 원의 고가품을 차지 못해 아우성인 걸까. 시간 자체로만 보면 수은전지로 돌아가는 전자시계가 가장 정확하지만 명품시계 마니아는 손목의 운동을 통해 얻어지는 힘만으로 정확한 시간과 다양한 기능을 구현하는 기술력을 가진 시계에 열광한다. 그만큼 시계 기술이 고차원적이라 이를 예술로 여기기 때문. 초고가 명품시계 브랜드의 국내 수입권을 따낸 한 딜러는 “예술품을 다룰 수 있어 영광이다. 갤러리를 운영한다는 마음으로 시계를 팔겠다”고 말했다. 명품가방이 철저하게 여성의 자기만족과 신분 과시를 위한 상품이라면 명품시계는 남성이 여성을 유혹하는 ‘페로몬 향’ 역할을 하기도 한다. 취업 2년차인 은행원 김모 씨(28)는 최근 50만 원대 티소 시계에서 200만 원대 태그호이어로 갈아타면서 셔츠 소매를 걷어 올리는 습관이 생겼다. 나이트클럽에 가서는 긴 셔츠 소매 끝자락에 드러나는 시계를 맞은편 여성이 알아봐 주길 갈망한다. 국내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명품시계 브랜드가 웬만한 사람이면 다 알아본다는 롤렉스와 오메가, 카르티에인 것도 이런 영향이 없지 않다. 재테크를 목적으로 시계를 취급하는 이들도 주로 이런 브랜드를 거래 대상으로 삼는다. 서울 강남의 한 백화점 바이어는 “해외에선 훌륭한 기술력을 가졌다고 평가받지만 정작 우리나라에선 가치를 인정받지 못해 판매가 저조한 해외 명품시계 브랜드가 의외로 많다”며 “시계의 진정한 가치를 알아보는 대중의 안목이 아직은 부족한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조동주·김수연 기자 djc@donga.com}
지난달 29일부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는 한 남자의 죽음을 놓고 치열한 갑론을박이 펼쳐졌다. 한쪽에선 이 남자를 추모해선 안 된다고 강하게 비판했고, 한 유명 배우는 그를 추모하는 트윗을 썼다가 거센 힐난에 곤욕을 치렀다. 반면 다른 쪽에선 그의 죽음을 추모하자며 전국 20여 곳에 자발적으로 분향소를 차리고 조문을 촉구했다. SNS를 양분시킨 죽음의 당사자는 고 성재기 남성연대 대표(46)다. 그는 지난달 25일 “한강에 투신하겠다. 1억 원을 빌려 달라”는 트윗을 쓰고 실제로 다음 날 서울 마포대교에서 몸을 던졌다. 투신 장면은 SNS로 생중계됐다. 그는 “한강 투신은 퍼포먼스일 뿐이다. 전투 수영으로 살아 돌아오겠다”고 했지만 사흘 만에 차가운 주검으로 돌아왔다. 목숨을 담보로 한 모금 퍼포먼스를 펼치다 사망한 그를 두고 SNS에서는 ‘돈키호테’라는 냉소와 ‘열사’라는 추모가 엇갈렸다. 성 대표는 ‘남성 인권운동’이 생소한 대중의 관심을 끄는 수단으로 SNS를 택했다. 그는 사망 직전까지 2만2417개의 트윗을 썼을 만큼 ‘SNS에 살고 SNS에 죽는’ 남자였다. 그는 트위터에 “박근혜 안철수 문재인 셋 중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당신 인생이 파탄날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당신이 만난 된장녀가 당신 삶을 파멸시킬 수 있는 확률은 거의 100%다” “출산율 세계 꼴찌인 나라에서 무슨 생리휴가인가. 닥치자. 모성이 배제된 생리는 장애다” 등의 자극적인 발언으로 여성을 비판했다. 성 대표의 트윗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강해졌다. 열혈 지지자들은 성 대표의 강한 화법에 열광했지만 남성운동의 취지에 동감하면서도 그의 거친 언사에 등을 돌리는 사람들도 늘어났다. 하지만 성 대표를 직접 만난 사람들은 하나같이 그를 “합리적인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생전에 지인에게 “평범한 말을 하면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더라. 관심을 끌려면 말의 수위를 높일 수밖에 없다. 내 역할은 광대”라고 털어놓곤 했다고 한다. 그만큼 그는 자신을 버리고서라도 관심을 얻고 싶어 했고 그게 남성운동이 성공하는 길이라고 믿었다. 그렇지 않고서는 한강에 투신하는 순간을 트위터에 올리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정작 그에 대한 관심은 그가 사망한 이후에야 폭발했다. 지난달 29일부터 이달 1일까지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성모병원에 차려진 그의 빈소에는 4000여 명이 몰렸다. 조문객 90% 이상이 10∼30대 남자였다. 빈소 앞엔 이름 없는 누리꾼이 보낸 조화 수십 개가 들어찼다. 그가 투신한 마포대교를 비롯한 전국 각지의 하천가 인근에는 자발적인 분향소가 차려졌고 처음 보는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이 모든 과정은 그의 죽음과 마찬가지로 SNS로 생중계됐다. 성 대표의 SNS 활동이 대중의 관심을 끄는 덴 성공했을지라도 남성연대라는 시민단체를 운영하는 데엔 별다른 도움이 되지 못했다. 성 대표의 트위터 팔로어 수는 6만5000여 명에 달했지만 남성연대가 2011년 설립 이후 올해 5월까지 받은 후원금은 1956만 원에 불과했다. 굳이 계산해보면 그를 지지하는 팔로어 한 명당 300여 원씩 낸 꼴이다. 같은 기간 남성연대는 2억4670만 원을 썼다. 성 대표는 종종 남성연대를 후원해 달라는 글을 올렸지만 대부분의 팔로어들은 돈을 내지는 않았다. 일부 누리꾼은 남성연대 계좌에 ‘1원’만 입금시킨 사진을 인증샷으로 올리며 유희거리로 삼기도 했다. 남성연대 관계자는 “대표님이 쌓여가는 빚을 외면해 오다가 더는 버틸 수 없는 지경에 이르자 극단적인 모금 퍼포먼스를 벌였다”며 “대표님이 SNS에서 자극적인 말로 관심을 끄는 데에만 집착해 정작 시민단체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못한 점이 아쉽다”고 말했다. 한 시민단체 관계자도 “성 대표에게 집회를 함께 벌이자고 제안했었는데 이목을 끌지 못한다고 생각했는지 시큰둥한 반응이었다. 이후 다시는 연락하지 않았다”고 전했다.조동주 기자 djc@donga.com}
“아드님을 서울 명문대에 기부입학시켜 드릴게요.” 오모 씨(50·여)는 2011년 10월경 서울 강남구의 유명 입시학원 원장 김모 씨(54)로부터 솔깃한 제안을 들었다. 당시 오 씨의 아들은 입시에 연달아 실패해 3수를 하고 있었지만 서울 소재 대학에 갈 만한 실력이 못 됐다. 국내에 기부입학제도는 없지만 김 씨가 “친한 입학사정관들에게 로비하면 다 들어갈 수 있는 길이 있다”고 하자 오 씨는 믿어 보기로 했다. 이렇게 해서 오 씨는 2011년 10월부터 2012년 3월까지 15차례에 걸쳐 김 씨에게 1억5920만 원을 건넸다. 하지만 오 씨의 아들은 입시에 실패해 4수생이 됐다. 오 씨가 항의하자 김 씨는 “꼭 기부입학을 시켜주겠다”고 약속했다. 오 씨의 아들이 2013년도 입시에도 실패해 5수생이 되자 참다못한 오 씨는 4월 김 씨를 고소했다. 김 씨는 “토익 사업에 뛰어들면서 학원 재정이 악화돼 오 씨에게서 받은 돈은 모두 학원 운영비로 썼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김 씨는 학원 재정이 나빠져 결국 지난해 학원을 매각한 것으로 밝혀졌다. 서울 수서경찰서는 사기 혐의로 김 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고 5일 밝혔다. 조동주 기자 djc@donga.com}

전모 씨(23·여)는 지난해 8월 서울 강남의 유흥업소에 취업하면서 눈과 코를 고치고 싶었지만 돈이 없었다. 전 씨의 사정을 들은 업소 측은 “성형 브로커를 소개해 줄 테니 일하면서 할부로 수술비를 갚아라”고 권했다. 전 씨는 성형 브로커를 통해 대부업체와 병원을 소개받아 외상으로 성형수술을 했지만 결과가 불만족스러웠다. 처음에는 800만 원이라던 수술비는 이자가 붙어 석 달 만에 1000여만 원으로 불어났다. 경영난에 빠진 일부 성형외과 의사들이 대부업체를 낀 브로커를 통해 유흥업소 여종업원 등을 환자로 끌어들이다 경찰에 적발됐다. 서울 강남경찰서는 브로커를 통해 환자를 유치한 강남 일대 성형외과 의사 27명과 병원 직원 28명, 브로커 27명과 대부업자 6명 등 88명을 의료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고 5일 밝혔다. 돈을 벌 목적으로 환자를 의료기관에 알선하면 3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경찰에 단속된 성형외과 의사들은 브로커에게 수술비의 20∼45%를 수수료로 건넸다. 병원에는 ‘대외사업부’ ‘마케팅팀’ 등 브로커 전담 부서까지 뒀다. 의사들은 “불법인 줄 알았지만 그렇게라도 해서 환자를 유치해야 할 만큼 사정이 어려웠다”고 경찰에서 진술했다. 대한성형외과의사회에 따르면 5월 말 현재 강남구 소재 의료기관 2000여 곳 중 679곳이 성형외과 영업을 하고 있다. 이 중 성형외과 전문의가 운영하는 병원은 363곳이고 나머지는 다른 과 전문의가 성형외과 진료를 할 만큼 강남 일대 성형 시장은 경쟁이 치열하다. 이 때문에 강남 일대에선 성형 브로커가 판치고 있다. 이번에 경찰에 붙잡힌 브로커들은 2011년 11월부터 올해 4월까지 유흥업소 종업원과 대학생 등 260명에게 성형수술을 알선해 주고 수수료 7억7000여만 원을 챙긴 것으로 밝혀졌다. 본보 취재팀이 5일 강남 일대 유흥업소에 문의해 보니 한 룸살롱은 “우리가 보증을 서 주고 1000만 원까지 (여종업원) 수술비를 지원해 준다”고 했다. 병원이 수술비의 최대 45%를 수수료로 브로커에게 건네다 보니 부실한 수술이 이뤄질 개연성도 많다. 유흥업소 종업원 전 씨는 눈과 코를 수술 받은 뒤 부작용이 생겨 올해 5월 또다시 대출을 받아 재수술을 했지만 여전히 얼굴이 부자연스럽다. 경찰 관계자는 “성형외과 수술비가 정찰제가 아니다 보니 병원이 비용을 부풀려도 환자로선 알 수 없다”며 “강남 일대 불법 성형 브로커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겠다”고 말했다.조동주 기자 djc@donga.com홍정수 인턴기자 고려대 통계학과 4학년}

‘군산에서 범행을 저질렀으면 한 번쯤은 인접한 논산을 거쳐 가지 않을까?’ 전북 군산 여성 살인사건의 범인인 정완근 경사를 검거한 주역은 최근 만능 범죄 해결사로 떠오른 과학수사나 폐쇄회로(CC)TV가 아니었다. 사건과는 무관한 지역에 살고 있는 한 경찰관의 ‘매의 눈’ 같은 관찰력이었다. 2일 오후 6시 10분경 충남 논산시 취암동 시외버스터미널 부근 도로. 쉬는 날이어서 자전거를 타고 거리를 달리던 부여경찰서 백강지구대 이희경 경위(45)는 30m 앞에서 자전거를 끌고 걸어가는 한 남자를 봤다. 이 남성은 검은색 바지에 등산화, 파란색 반소매 티셔츠 차림으로 옷은 땀에 흠뻑 젖었고 등산가방 양쪽 주머니에 물병이 꽂혀 있었다. 느낌이 이상했다. 이 경위는 페달을 밟아 남자를 지나치며 슬쩍 얼굴을 봤다. 검은 선글라스에 모자를 써 확실하지는 않았지만 전체적인 인상이 군산 사건 용의자 수배전단 속의 사진과 흡사했다. 요 며칠 ‘군산 사건의 용의자가 외지로 도주하려면 논산을 한 번쯤 거쳐가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며 수배전단을 유심히 봐두었던 터였다. 수상한 남성은 인근 건물 2층 PC방으로 들어갔다. 땀을 잔뜩 흘린 상태에서 집이나 사우나 대신 PC방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고 의심이 더욱 짙어진 이 경위는 논산지구대에 지원을 요청했다. 잠시 후 이 경위는 지구대 경찰 2명과 함께 PC방 구석에서 인터넷 검색을 하고 있는 그 남성에게 다가가 신분증을 요구했다. 처음에는 “신분증이 없다”던 그 남성은 이 경위가 “군산경찰서 정 경사가 맞지 않느냐”고 다그치자 체념한 듯 두 손을 내밀었다. 군산에서 여성을 살해한 뒤 경찰의 대대적 수색을 비웃듯 열흘째 도피해 온 정 경사가 비번의 지구대 경관에게 붙잡힌 것이다. 이 경위는 4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주변에서 강력 사건이 발생하면 범인이 우리 지역을 지나갈지 모른다고 상정하고 평소에도 유심히 관찰을 했던 게 주효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처럼 철저한 자료 조사와 동물적인 감각으로 범인을 검거하는 경찰들이 주목받고 있다. 올 5월 캐나다 여성을 빌라 계단에서 성폭행했던 범인을 검거하는 데 큰 역할을 한 서초경찰서 반포지구대 최병하 경위(45)는 평소 수배 용의자 수십 명의 사진을 휴대전화에 저장해 두고 시간 날 때마다 얼굴을 익히는 습관을 갖고 있었다. 빌라 성폭행 현장 인근의 CCTV에 찍힌 범인의 희미한 인상착의를 여러 차례 숙지했던 최 경위는 사건 발생 일주일이 지난 새벽에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 강남대로에서 용의자와 닮은 남성을 발견했다. 그는 그 남성이 담배꽁초를 버리자 경범죄 위반 단속을 하는 척 다가가서 이름과 나이, 주소를 확인한 뒤 성폭행 사건 담당부서에 신원을 알려줬다. 최 경위는 4일 “CCTV는 약간 퍼지게 나온 걸 아니까 평소 화면 속 범인보다 다소 날씬한 사람들도 유심히 봐 둔다. 동영상 속 용의자의 걸음걸이 등을 유심히 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 때와 장소에 따라 어떤 범인을 잡아야 하는지 끊임없이 생각한다. 용의자들 사진을 보고 ‘내 친구 누구랑 닮은 사람’이라고 머릿속에 각인시킨다. 그리고 사건 발생 인근 지역에 가면 꼭 유사한 사람들을 찾아본다”고 말했다. 이창무 한남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첨단과학시대에도 경찰 개인이 얼마나 관심을 갖고 보느냐에 따라 첨단기기가 해결해주지 못하는 사각지대를 채울 수 있다”며 “관심의 차이가 성패를 가른다”고 말했다. 논산=지명훈 기자·조동주 기자 mhj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