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민

김소민 기자

동아일보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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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김소민 기자입니다.

somin@donga.com

취재분야

2026-04-13~2026-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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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독]연둣빛 풋사랑이 익어가듯… 오감으로 써내려간 ‘어른의 연애’

    해마다 봄이면 찾아오는 노래 ‘벚꽃엔딩’처럼, 여름만 되면 역주행하는 소설이 있다. 2016년 국내 출간된 마쓰이에 마사시(松家仁之·67·사진)의 소설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가 주인공. 10년 가까이 됐건만 여름이면 1만 부씩 중쇄를 찍는다. 올해 역시 약 1만 부를 새로 찍으며 ‘여름 제철 소설’의 위상을 또 한 번 입증했다. 이 소설은 일본 무명작가의 데뷔작이지만 지금까지 국내에서만 13만 부가 팔렸다. 소설가 김연수, 김영하, 건축가 유현준 등이 수작으로 꼽으며 입소문을 탄 덕이 크다. 노건축가와 그의 철학을 존경하는 청년의 여름날을 그린 작품으로, 숙련공의 가치가 이울어 가는 시대에 휩쓸리지 않는 모습을 그려냈다는 평을 받는다. 지난달 25일엔 마쓰이에 작가의 두 번째 장편소설 ‘가라앉는 프랜시스’(비채)도 국내 출간됐다. 이를 계기로 동아일보 서면 인터뷰에 응한 그는 한국 독자들이 ‘여름은…’을 인생 책으로 꼽는 것에 대해 “한국엔 자신이 원하는 걸 자신의 힘으로 찾아내는 독자가 많을지도 모른다고 상상하고 있다”고 답했다. 이어 “해외 독자를 의식하지 않고 처음 쓴 장편소설이다 보니 새삼 소설의 보편성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고 고마움을 표했다. 마쓰이에 작가는 와세다대 문학부를 졸업하고 출판사 편집자로 일하다가 2012년 54세에 데뷔했다. ‘여름은…’을 번역한 김춘미 고려대 일어일문학과 명예교수는 “늦깎이 작가지만, 그의 언어 구사가 앞으로 어디까지 이를지 이렇게 궁금한 작가도 드물 것”이라고 했다.‘여름은…’이 20대 풋사랑을 그렸다면, ‘가라앉는 프랜시스’는 30대 이상 ‘어른의 연애’를 그린 소설. 감정의 밀도와 톤이 확연히 다르다. 신작 속 인물들은 서로에게 다가가면서도 완전히 맞닿지 않는 거리감을 끝내 유지한다. 전작이 연둣빛 여름을 닮았다면, 신간은 새하얀 겨울이 떠오른다.‘가라앉는 프랜시스’에서 게이코는 도쿄 생활을 청산하고 홋카이도의 작은 마을에 우편배달부로 취직한다. 인구 800명 대다수가 노인인 이곳에서 그는 눈이 침침한 수신인을 대신해 편지를 읽어 주고, 말동무도 되어 준다. 그 과정에서 마음 깊은 구석에 빛이 닿는 것을 느낀다. “나이가 들고 경험이 쌓이면 사소한 것에 연연하지 않고 대담해지기도 합니다. 반대로 더욱더 민감해지고 경계심이 강화되기도 하죠. 한 사람의 내면에도 ‘감정의 온도’의 차이와 변화가 있다는 것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마쓰이에 작가는 이런 신작의 키워드로 “눈(雪), 소리, 남녀”를 꼽기도 했다. 오감(五感)을 자극하는 문장은 작가가 데뷔작부터 선보인 장기 중 하나. 제도용 연필을 깎으며 하루를 시작하는 건축사무소 풍경을 “커피를 끓이는 향내처럼, 연필을 깎는 냄새에 아직 어딘가 멍한 머리 심지가 천천히 눈을 뜬다”고 표현했다. 신작에서도 편지봉투가 우체통 바닥에 떨어질 때 나는 소리, 빨간 우편배달차가 하얀 눈을 뒤집어쓰며 나아가는 모습 등을 유려하게 펼쳐 보인다. 작가는 이처럼 ‘스쳐 지나가던 감각을 깨우는 표현’에 대해 “주인공은 여행자나 거주자 중에 아직 어느 쪽이라고 단정할 수 없는 미묘한 입장”이라며 “자연환경이나 지역 공동체에 대한 감각이 더 예민해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자신의 소설을 ‘소화하는’ 한 가지 방법을 권하기도 했다. “잠시 휴대전화를 꺼두고 오감을 통해 느껴지는 것에 마음을 집중해 보라”였다. 그리고 그때의 읽는 속도는 이렇게. “가능하다면 천천히, 안단테로.”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5-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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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3년 시력(詩歷) 시인의 꿈은… 여전히 ‘마음이 가난한 사람’

    정호승 시인(75)은 가방 안주머니에 항상 지폐를 종류별로 넣고 다닌다. 시인이 “5만 원짜리 사건”이라고 부르는 날 이후부터다. 어느 날 시인은 지하철 역사에서 구걸하는 노숙인을 마주쳤다. 지갑을 보니 1000원짜리도, 1만 원짜리도 없고 5만 원짜리 지폐만 있었다. 지갑을 꺼내 들었으니 상대는 시인의 손만 쳐다보는 상황. “미안해요. 다음에 드릴게요.” 결국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집에 돌아오니 마음이 시끄러웠다. 그래서 결심했다. 다시는 그런 일 없게 하겠다고. 그때부터 정 시인은 가방에 1000원, 5000원, 1만 원짜리 지폐를 다 갖고 다니기 시작했다. 3년 만에 신작 시집 ‘편의점에서 잠깐’(창비)을 낸 정 시인을 1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만났다. 그의 서류가방 안엔 꼬깃꼬깃 접은 지폐들이 여러 장 들어 있었다. 53년 시력(詩歷)의 시인은 요즘 화두가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했다.“(시인은) 마음의 부자가 되려면 (역설적으로) 마음이 가난해져야 해요. 그러지 않으면 시를 쓰기 어렵거든요. 영혼과, 마음과 관련된 일이기 때문에 시인은 기본적으로 가난한 사람이에요.” 할머니들이 지하철에서 강낭콩이나 호랑이콩을 팔면 지나치지 않는다. 구두는 집에서 닦지 않고 꼭 구두 닦는 이에게 맡긴다. ‘마음이 가난해지기 위한’ 시인의 한 방편이다.“해마다 12월 1일이면 거리에 구세군 냄비가 등장해요. 제 원칙은 ‘처음 만나는 구세군 냄비에 반드시 돈을 넣는다’예요. 그다음 냄비도 ‘이거는 아내 몫, 이거는 아들 몫, 이거는 며느리 몫’ 하면서 넣습니다. 하지만 어떤 때는 ‘약속에 늦었으니까 그냥 가자’ 하고 지나치기도 하죠. 그러면 ‘아, 내가 끝까지 실천을 못 하는구나’ 싶죠.” 마음이 가난해지기. 시인은 “말처럼 쉽진 않다”고 털어놨다. 엎어지고 일어서기의 반복인 ‘마음 가난해지는 길’에 대해 그는 시에서 솔직하게 노래했다.“나도 이제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 될 수 있다고/생각하는 순간 바다에 빠져 죽었다”(시 ‘마음이 가난해지기 위하여’에서), “나는 마음으로 가는 길을 가지 못하고/그만 돌다리에 파묻혔다”(시 ‘마음으로 가는 길’에서). 깨달았다고 여긴 순간 불쑥 찾아오는 번뇌. 누구나 공감할 만한 시구(詩句)다. 2022년 시집 ‘슬픔이 택배로 왔다’에서 슬픔에 ‘택배’라는 현대적 상징물을 접목시켰던 시인은 이번 시집에선 ‘편의점’을 등장시켰다. 그는 “이제 물리적으로 노년이긴 해도 ‘시가 늙으면 안 된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며 “그래야 읽는 사람도 안 그래도 지쳐 있는 삶에 생동감을 느낄 것”이라고 했다. 표제작 ‘편의점에서 잠깐’은 늦은 밤 편의점 계산대 앞에서 우연히 만난 옛 연인이 주인공이다. 해후의 장소가 버스정류장도, 길거리도 아닌 편의점이라니. “편의점에서는 ‘계산’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사랑에서 왜 이별이 이뤄졌을까를 생각해 보면 자기 이익을 계산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어요. 나는 얼마만큼 나누고 줬는가를 편의점에서 만났기 때문에 생각할 수 있는 거 아닐까요.” 시에는 “당신이 산 캔맥주는 당신이 계산하고/내가 산 컵라면은 내가 계산”하는 장면이 나온다. ‘당신의 것은 내가 계산하고, 내 것은 당신이 계산하던’ 옛 시절이 떠올라 구슬퍼지는 구절이다. 1972년 등단해 반세기 넘게 독자들을 위로해온 시인. 그는 “이번 시집으로 바라는 단 한 가지도 시를 통한 위안”이라고 했다. 널리 알려진 시인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산산조각’을 언급하며 “살다 보면 누구 인생이든 다 산산조각이 난다”고 했다. “그럴 때 ‘오늘도 산산조각을 얻었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진다”는 당부와 함께.“네팔 룸비니에서 흙으로 만든 부처님 형상을 사 왔거든요.(시인의 종교는 가톨릭이다.) 근데 책상에 둔 순간부터 걱정되는 거예요. 흙으로 만들었으니 떨어지면 산산조각 나잖아요. 근데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을 얻은 거 아니냐.’ 거의 20년 전 시인데 저도 최근 그 시에서 위안을 받았어요. 그 시 쓰고 제게도 얼마나 많은 일이 있었겠어요. 생각을 바꾸면 편안해집니다. 물론 100%는 아니지만 그래도 조금은요.”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5-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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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문화 학생 위한 대안학교… “한국사회 적응한 졸업생들 뿌듯”

    《영광의 수상자들재단법인 인촌기념회와 동아일보사는 8일 인촌상 수상자를 발표했다. 39회를 맞은 올해 인촌상은 교육, 언론·문화, 인문·사회, 과학·기술 등 4개 부문에서 뛰어난 업적을 이룬 인물을 수상자로 선정했다. 심사는 부문별로 권위 있는 외부 전문가가 4명씩 참여해 6∼8월 3개월간 진행했다. 수상자들의 소감과 공적을 소개한다.》“해밀학교는 다문화 학생이 사회에 나가 양쪽 발을 딛고 살아갈 수 있도록 ‘마음의 굳은살’을 만들어 주기 위한 학교입니다. 오랜 시간 해밀학교를 지켜봐주시고 격려해주시는 의미로 이렇게 큰 상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가수 인순이로 널리 알려진 김인순 해밀학교 이사장(68)은 해밀학교가 인촌상 교육부문 수상자로 선정됐다는 소식에 “학생들에게 우리는 모두 누군가로부터 사랑을 받으며 태어났고 모두 특별한 아이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며 이같이 말했다. 해밀학교는 다문화 학생 교육을 위해 2013년 강원 홍천군에 설립된 중학교 학력 인정 다문화 대안학교다. 김 이사장은 과거 라디오 방송을 듣다 다문화 학생의 고교 졸업률이 낮다는 사실을 접하고 학교 설립을 결심했다. 그는 “‘다문화 학생은 사춘기를 보내며 어떤 생각을 할까. 내가 옆에서 도와주면 그 아이들이 힘들어하지 않고 사춘기를 잘 보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어 학교를 세우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개교 당시 교사와 학생이 각각 6명씩인 소규모 학교였다. 친환경 농촌 체험관을 빌려 교실로 꾸미고 민가를 임차해 기숙사로 사용했다. 현재는 교사 10명, 학생 55명 규모로 성장했고 별도의 학교 건물과 기숙사도 마련했다. 지난달 27일 만난 이경진 해밀학교 교장은 “설립 초기에는 다문화 학생을 어떻게 교육해야 할지 잘 몰라 힘들었고, 재정적으로도 어려웠다”며 “여러 선생님이 학생 교육에 몇 배의 시간과 노력을 들이고 후원금이 모이며 학교 건물도 짓고 대안학교로 성장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해밀학교에는 다문화 학생뿐만 아니라 다문화 가정 학생이 아닌 학생들도 한 교실에서 함께 수업을 듣는다. 다문화 학생들이 한국 사회에서 함께 어울리며 살아갈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다. 한국어 성장 과정 데이터화 및 교육과정 반영, 학습자료 다국어 동시 번역 시스템 개발 등의 노력으로 많은 다문화 학생이 한국 사회에 적응하는 데 큰 도움을 받았다. 입학 전 한국어를 전혀 못 했던 학생이 3년간 교육을 받으며 한국어가 상당한 수준으로 늘었고 해밀학교를 졸업한 뒤 일반고를 거쳐 국내 대학에 진학하기도 했다. 이 교장은 “한국 사회에 적응해 잘 살아가고 있는 해밀학교 졸업생들로부터 ‘해밀학교를 늘 기억하고 있다. 정말 감사하다’는 문자를 받을 때마다 정말 감격스럽다”며 “학생 한 명, 한 명이 모두 가족 같다”고 말했다.공적2013년 가수 인순이(김인순) 씨가 다문화 학생들의 교육을 위해 강원 홍천군에 만든 학교. 교사 10명, 학생 55명으로 운영 중이며, 40여 명의 시간강사가 한국어, 방송 촬영, 코딩, 드론 교육 등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다양한 이주 배경의 학생들이 같은 교실에서 학습하는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교사들이 다국어 자동 번역 시스템을 개발하는 등 인공지능(AI)을 활용한 혁신적 교육을 선도하고 있다. 2023년 강원도 최초로 구글 레퍼런스 스쿨에 선정됐다. 해밀학교는 함께 살아갈 다문화 사회의 미래를 보여주고 있다.등단 61년 맞은 현대시 산증인… “시는 내게 멈출 수 없는 호흡”언론·문화 신달자 시인“(수상 소식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어요. 인촌상을 받는다는 건, 시를 잘 써왔다는 것을 넘어 한 인간으로서 제대로 살아왔다는 의미가 담긴 거니까요. 이 상을 받은 만큼, 남은 인생에서 말 한마디라도 힘을 불러들이는 사람으로 살겠다고 다짐했습니다.”올해 인촌상 언론·문화 부문 수상자로 선정된 신달자 시인(82)은 3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만나 수상 소식을 들었던 감격적인 심경을 떠올렸다. 1964년 등단한 뒤 지난해 시력(詩歷)으로 환갑을 맞은 시인에게도 인촌상 수상은 너무나 특별한 의미였기 때문이다.그는 평생 시가 곧 삶이었기에 이런 기쁨도 찾아왔다고 믿었다. 중학교 2학년 때 처음 시와 만난 뒤 한 번도 이 길을 의심하지 않았다. 신 시인은 “시는 내게 호흡과 같다”며 “숨을 멈추면 죽듯, 시를 쓰지 않으면 나는 없다. 죽을 때 ‘시인 신달자가 갔다’고 불리면 영광”이라고 했다.신 시인은 1973년 첫 시집 ‘봉헌문자’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17권의 시집을 펴냈다. 그의 시는 한국 현대시의 흐름과 궤를 같이한다. 수필집 ‘백치 애인’과 소설 ‘물 위를 걷는 여자’도 각각 70만 부, 100만 부 넘게 팔렸다. 작품들을 통해 결혼 직후 투병 중인 가족을 간호하고 세 딸을 키우며 가장 역할을 한 모습이 알려지며 독자들의 큰 공감을 얻기도 했다. 그런 그의 모든 작품엔 어려운 삶의 풍경을 담아내는 따뜻한 온기가 배어난다.“당장 내일 아침 끼니가 막막할 때도 있었어요. 그때 ‘더 이상 못 해’라는 말을 집어던지고 ‘이 순간을 반드시 글로 쓸 거야’라는 마음 하나로 버텼습니다. 글로 쓰기 위해 돌을 씹어서라도 일어서야 한다는 마음, 그것이 제 생명줄이었죠.”신 시인은 문단 선후배들의 신뢰가 두텁기로 유명하다. 한국시인협회장과 문학진흥정책위원회 위원장 등을 역임하며 주변을 챙겼다. 그는 “여든이 넘으니 모든 시간이 더 소중해졌다”며 “남을 미워할 시간이 없다. 예전엔 가끔 지적도 했지만 이젠 ‘괜찮아, 너 잘하는 것도 있잖아’라고 말해주고 싶다”고 했다.“그게 나이가 가르쳐주는 너그러움 같아요. 이번 여름 무척 더웠지만 가을이 있다는 걸 우리는 알잖아요. 요즘 하늘이 얼마나 예뻐요. 우리가 누릴 수 있는 게 많습니다.”시인은 인촌상 수상 소감을 전하는 순간 역시 ‘축복’이라고 불렀다. “살면서 헛된 시간은 없어요. 지금 이 시간도 얼마나 축복인가요. 내일로 가서 이날이 과거가 되면 또 하나의 재산이 쌓이는 겁니다. 누군가 ‘마지막 순간 무슨 말을 하고 싶으냐’고 묻는다면 전 ‘감사합니다’일 거예요.”공적1964년 여성지 ‘여상’에 시 ‘환상의 방’이 당선됐고, 박목월 시인의 추천을 받아 본격적인 문단 활동에 나섰다. 여성 특유의 심미감을 감각적으로 드러내는 동시에 삶의 고뇌를 섬세한 감성으로 표현하며 여성성을 바탕으로 시 세계를 확장했다. 결혼 직후 남편과 시어머니가 투병할 때 간호하고, 세 딸의 어머니로 가장 역할을 했다. 어려운 삶의 모습을 따뜻한 온기로 표현하며 공감을 얻었고, 한국의 대표적 여성 시인으로 자리매김했다. 작품성과 대중성을 같이 얻기 어려운 문학 장르에서 문학성 높은 작품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북한 경제 데이터 분석한 석학… “北 제대로 아는게 통일 열쇠”인문·사회 김병연 교수“북한 경제를 전공하면 교수로 자리 잡기 힘들다며 말리는 사람이 대부분이었어요. 이런 어려움을 극복하며 북한 경제 연구에 매진해 온 모든 연구자에게 주는 상이라고 생각합니다.”인촌상 인문·사회 부문 수상자로 선정된 김병연 서울대 경제학부 석좌교수(63)는 2일(현지 시간) 독일 베를린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기대조차 하지 않았던 인촌상을 수상하게 돼 놀랍고 영광스럽다”고 밝혔다.김 교수는 옛 소련과 동유럽 등 사회주의 경제가 자본주의로 어떻게 이행하는지를 연구하며 세계적 석학 반열에 올랐다. 특히 이를 통해 북한 경제를 과학적 데이터에 기반해 체계적으로 분석했다. 최근에는 베를린자유대 한국학연구소에서 통일, 이주민 적응 여부 등을 연구하고 있다.김 교수는 2000년대 초반부터 3000명 이상의 탈북자를 조사해 북한 경제에 관한 자료를 모았다. 동료 연구자들과 중국 단둥에서 북한과 거래하는 180여 개 중국 기업의 자료도 수집해 북한의 실질 장기경제 성장률 등을 추산했다. 그 결과 한국의 1인당 국민 소득이 1960년대 후반부터 북한을 앞서기 시작했음을 밝혀냈다.김 교수는 2017년 북한 경제에 관한 각종 데이터를 집대성한 저서 ‘북한 경제의 실체를 벗기다(Unveiling the North Korean Economy)’를 통해 국제적으로 큰 주목을 받았다. 당시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미국 등 주요국 대북 정책 결정자들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으로 꼽았다. 김 교수는 이 책으로 2018년 대한민국 학술원상, 서울대 학술연구상도 받았다. 그는 “2000년도 초반까지만 해도 북한 연구는 ‘학문의 대상’이 아니라 ‘이념의 전쟁터’였다”며 “북한 경제를 객관적으로 실증적으로 바라보지 않으면 제대로 된 대북 정책을 펼치기 힘들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역대 정부의 대북 정책 또한 북한 경제의 실상을 제대로 보지 못한 채 수립된 측면이 있어 아쉽다고 했다. 그는 “보수 정권은 북한에 대한 ‘압박과 제재’만 말하고, 진보 정권은 ‘평화와 경제협력’만 강조하는데 이런 이분법적 사고로는 대북 정책을 제대로 펴기 어렵다”며 “‘짬뽕’과 ‘자장면’ 둘 중 하나를 양자택일하는 방식이 아니라 사실(fact)에 기반해 애피타이저, 메인 요리, 디저트까지 있는 ‘코스 메뉴식’ 대북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북한 경제에 대한 연구가 통일의 열쇠를 쥐고 있다고도 강조했다. 김 교수는 “북한 경제를 모르면 북한이라는 배가 어디로 나아갈지 알 수 없다”며 “북한을 공부하는 경제 전문가가 더 많아져야 한다”고 밝혔다.공적공산주의에서 자본주의로 넘어가는 시기에 일어나는 경제 변화 등을 연구하는 ‘이행기 경제학’ 분야의 최고 전문가. 북한으로 연구 영역을 확장해 북한 경제와 국가 간 경제 제도의 비교연구라는 비주류 분야를 소신 있게 연구했다. 비교경제 분야 최고학술지에 8편 등 총 50편에 가까운 논문을 게재했다. 2017년 영문 서적 ‘Unveiling the North Korean Economy’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사회주의권 국가들과 북한 경제 관련 자료를 수집해 이론적 추론을 넘어선 실증적 연구를 했다.고체-액체 사이 ‘네마틱’ 관측… “꿈의 물질 고온초전도체 연구”과학·기술 김범준 교수“한국에 훌륭한 연구를 하는 과학자가 많은데, 이렇게 큰 상을 받아 영광입니다. 이번 수상을 통해 꿈의 물질로 불리는 고온초전도체의 비밀을 밝힐 수 있도록 더욱 연구에 정진하겠습니다.”인촌상 과학·기술 부문 수상자로 선정된 김범준 포스텍 물리학과 교수(49)는 2일 본보 인터뷰에서 “요즘 한국 과학계의 전반적인 연구 역량이 많이 올라갔다고 느낀다”며 “노벨상 시즌이 곧 돌아오는데 한국인 수상자가 나오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생각한다”고 했다.김 교수 역시 한국 과학계의 경쟁력을 높인 데 크게 일조한 인물로 꼽힌다. 특히 2023년 ‘제4의 상’이라고 불리는 ‘네마틱 상’(액체와 고체 성질을 동시에 갖는 상)을 관측한 연구는 김 교수의 대표 공적으로, 이 연구는 권위 있는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실렸다.대부분의 물질은 고체, 액체, 기체의 세 가지 상으로 존재하지만 스마트폰 액정처럼 고체와 액체 사이의 ‘제4의 상’도 존재한다. 이런 네마틱 상이 양자역학계에도 존재한다는 이론은 있었지만 이를 실제 물질에서 관측하지는 못했다. 김 교수는 네마틱 상을 관찰할 수 있는 새로운 장비 ‘공명 비탄성 X선 산란 장비(RIXS)’를 개발해, 이리듐 산화물에서 네마틱 상이 존재하는 것을 확인했다.이 연구가 중요한 이유는 네마틱 상태의 이리듐 산화물로 ‘꿈의 물질’이라고 불리는 고온초전도체를 개발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렸기 때문이다. 고온초전도체는 절대온도 77K(캘빈·영하 196도) 이상에서 초전도 현상을 보이는 물질을 의미한다. 고온초전도체가 개발되면 양자컴퓨터의 개발 가능성도 커진다. 기존 초전도체의 경우 극저온에서만 안정적으로 작동해 복잡한 냉각장치를 갖춰야 하고, 온도가 올라가면 에러율이 높아지는 한계가 있었다. 고온초전도체가 실현되면 이 같은 ‘양자 오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김 교수는 “앞으로 남은 연구 인생을 고온초전도체를 양자컴퓨터에 활용하도록 하는 데 다 쓰지 않을까 싶다”고 했다.다소 생소한 연구를 한국에서 꽃피우기까지는 많은 역경이 있었다. 물질의 양자 스핀을 관찰할 수 있는 방사광가속기가 포스텍에 있는 포항방사광가속기 하나뿐이었고, 연구비를 확보하기도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김 교수는 포스텍에 자리 잡기 전 독일 막스플랑크 연구소의 그룹리더로 있었던 시절을 떠올렸다. “독일은 다 천천히 가는 사회라 사는 데는 불편함이 많지만 기초과학을 하는 사람으로서는 긴 호흡으로 깊이 있는 연구를 할 수 있는 것이 장점이었습니다. 한국의 기초과학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정부와 국민들도 조금은 느긋하게 바라봐 주시길 바랍니다.”공적2008년 최고 권위 학술지인 ‘Physical Review Letters’에 이리듐 산화물에서의 새로운 부도체 상태에 관한 연구를 발표했다. 전자 사이의 강한 상호 작용으로 인해 일반적 물리 법칙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강상관 물질 중 이리듐 산화물에 대한 연구 분야를 개척하고 세계적 연구 확산을 선도했다. 최근 세계 최초로 스핀 액정 상을 관측해 양자컴퓨팅과 초전도체 등 미래 혁신기술 분야 경쟁력 향상에 기대감을 낳고 있다. 또 비탄성 공명산란 연구 기법을 최초로 도입한 대형 장비를 포항 가속기연구소에 구축했다.제39회 인촌상 심사위원(가나다순)▽교육 △위원장 백순근 서울대 교수·한국교육학회 회장 △위원 이용균 중앙고 교장, 임창빈 한국지도자육성장학재단 이사장, 장덕호 건국대 교수▽언론·문화 △위원장 김영석 연세대 명예교수 △위원 곽효환 시인·전 한국문학번역원장, 이은주 서울대 교수, 최맹호 전 동아일보 대표이사 부사장▽인문·사회 △위원장 김혜숙 전 이화여대 총장 △위원 김두얼 명지대 교수, 이철승 서강대 교수, 임준철 고려대 교수▽과학·기술 △위원장 노정혜 서울대 명예교수 △위원 김창영 서울대 교수, 심현철 KAIST 교수, 예종철 KAIST 김재철AI대학원 교수김민지 기자 minji@donga.com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베를린=유근형 특파원 noel@donga.com최지원 기자 jwchoi@donga.com}

    • 2025-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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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굶어 죽은 우크라 390만 명… 스탈린 체제 ‘의도된 참사’였다

    1931∼1934년 소련 전역에서 최소 500만 명이 굶어 죽었다. 이 가운데 390만 명이 우크라이나인이었다. 훗날 ‘홀로도모르(Голодомор)’라고 불리는 대기근이었다. 우크라이나어로 굶주림을 뜻하는 ‘홀로드’와 멸종을 뜻하는 ‘모르’의 합성어다. 굳이 따지면 ‘아사(餓死)’다. 신간은 1930년대 초 우크라이나에서 일어난 대기근 홀로도모르를 다룬다. 저자는 ‘굴라크’로 퓰리처상을 받은 역사학자이자 칼럼니스트로, 러시아 및 중동부 유럽 현대사를 탐구해온 인물이다. 책의 주제는 명확하다. 스탈린 체제가 어떻게 식량을 무기 삼아 우크라이나 사회를 무너뜨렸는지에 집중한다. 곡물 수탈은 물론 주민들을 블랙리스트에 올려 봉쇄한 탓에 수백만 명이 탈출조차 못 한 채 굶어 죽었다. 이로 인해 우크라이나 민족운동은 1932∼1933년 대기근으로 궤멸했다. 저자는 이 비극이 단순한 정책 실패가 아니라, 우크라이나 민족성을 억누르려는 의도된 정치적 폭력이었다고 설명한다. 기근이 극에 달했던 1932년 겨울에는 우크라이나 전역의 마을에 폭력적인 징발자들이 나타났다. 이들은 특수제작한 긴 금속 막대를 들고 다니며 침대든 아기 요람이든 개집이든 어느 표면이든 찌르고 다니며 숨겨진 곡물을 찾았다. 겨울이 봄으로 바뀌고 식량 부족이 극심해지자 대다수 농민은 저항을 멈췄다. 심리적인 이유가 아니라 육체적인 이유 때문이었다. 굶주린 이들은 힘이 없어 저항할 수가 없었다. 배고픔이 저항의 의욕마저 짓누른 것이다. 저자는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기근의 구조를 세밀하게 추적했다. 1980년대 후반까지 우크라이나 내부에서는 대기근에 대해 완전한 침묵이 이어졌다고 한다. 저자는 최근 공개된 문서와 생존자 증언, 지역 연구 등을 모아 소련의 정책 집행 과정을 고발한다. 기근에 대해 공적인 자리에서 한마디도 꺼낼 수 없었던 이후의 ‘기억 전쟁’까지 짚어낸다. 책을 읽다 보면 권력은 과거를 지우거나 왜곡함으로써 현재를 지배한다는 무서운 사실을 떠올리게 된다. 기록과 기억이 사라질 때 진실은 얼마나 쉽게 권력에 휘둘리는가. 그 물음은 과거 우크라이나만이 아니라 현재를 사는 우리 모두에게 여전히 유효하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5-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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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책 해외 홍보, 뉴욕서 ‘찾아가는 도서전’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4, 5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에서 ‘찾아가는 뉴욕도서전’을 개최한다. ‘찾아가는 도서전’은 한국 책의 해외시장 진출을 돕기 위해 2015년부터 해마다 서너 차례씩 개최해 온 사업 상담회다. 올해 체코 프라하, 폴란드 바르샤바, 대만 타이베이에 이어 한국 책의 북미 시장 진출을 돕기 위해 뉴욕에서 네 번째 상담회를 여는 것. 지난해에는 일본과 인도네시아, 스페인에서 국내 기업 49곳과 해외 기업 108곳을 연결했다. 이번 뉴욕 도서전에는 문학동네, 창비, 다산북스, 웅진씽크빅 등 국내 15개 출판사가 참가했다. 미국에서는 세계 5대 출판사로 꼽히는 펭귄랜덤하우스, 하퍼콜린스, 사이먼앤드슈스터 등이 도서전을 찾는다. 문학 에이전시인 트라이던트 미디어그룹과 와일리 에이전시, 디지털·오디오 콘텐츠 기업 오버드라이브, 레코디드 북스 등도 참여한다. 도서전에 맞춰 주뉴욕한국문화원은 아동도서 332종을 새롭게 전시하고 박현민 아동작가가 참여하는 독자 행사도 개최할 예정이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5-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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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난 식물도, 동물도 아닌 싱크로나이즈드 말미잘”

    “오늘 지나고 나면 다시는 만날 수 없는 날씨에게/하루도 같은 하늘을 준비하지 않은/나의 날씨에게”(시 ‘그리운 날씨’에서) 미국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과 독일 세계문화의집 국제문학상 등을 수상하며 세계적인 관심을 받고 있는 김혜순 시인(사진)이 신작 시집 ‘싱크로나이즈드 바다 아네모네’(난다)를 4일 펴냈다. 약 3년 만에 펴내는 신작 시집으로 시 65편을 8부로 나눠 실었다. 김 시인은 올 4월 한국 작가 최초로 미 최고 권위의 ‘예술과학 아카데미’ 인문예술 부문 회원이 되는 등 최근 해외에서 가장 주목받는 한국 문학가로 손꼽힌다. 2015년 뇌 신경계 문제로 지하철역에서 갑자기 쓰러지는 경험을 했던 시인은 2016년 작 ‘죽음의 자서전’부터 ‘날개 환상통’(2019년) ‘지구가 죽으면 달은 누굴 돌지?’(2022년)로 이어지는 ‘죽음 3부작’을 연이어 출간한 바 있다. 이러한 전작 시집들에선 육체의 고통을 한국 사회가 마주한 여러 죽음으로 연결시키면서 침잠하는 작품들을 선보였다면, 이번 시집은 ‘목욕재계’하는 마음으로 쓴 시들을 모았다고 한다. 첫 수록작인 ‘그리운 날씨’에서 시인은 햇빛과 빗줄기가 오락가락하는 변덕스러운 날씨마저 “오늘 지나고 나면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순간이자 그리운 순간으로 반전시킨다.김 시인은 시집 마지막에 해설 대신 수록한 ‘김혜순의 편지’에서 “어느 순간 찬물을 몸에 끼얹듯 다른 시를 써야겠다 생각했다”며 “이 시들을 만나지 못했으면 저는 얼굴에 죽음이 드리운 험한 사람이 되었을 것 같다. 이 시들을 쓰면서 고통도 슬픔도 비극도 유쾌한 그릇에 담을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고 말했다. 시인의 대표작 ‘싱크로나이즈드 말미잘’은 영문 번역본도 함께 수록했다. 식물도, 동물도, 어류도 아닌, 세상의 규정과 정의를 벗어던진 자유로움을 노래한 작품이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5-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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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염상섭 육필원고 등 280여점 국립한국문학관 기증

    ‘만세전’ ‘삼대’ 등을 쓴 근대문학 작가 염상섭(1897∼1963)의 육필원고 등 관련 자료 280여 점이 국립한국문학관에 기증됐다. 2일 국립한국문학관은 “염 작가의 육필원고 등 자료 280여 점을 유족으로부터 기증받았다”고 밝혔다. 기증 자료는 육필원고 및 구상 메모 25점, 작품이 발표된 지면을 작가가 직접 스크랩한 자료 223점, 이력서 출판계약서 등 작가 생활의 기록을 담은 자료 30여 점이다. 김억과 마해송이 염상섭에게 보낸 편지, 서예가 배길기가 쓴 묘비명, 언론인 유광열이 쓴 조서 등도 포함됐다. 작가는 이면지에 붙인 잡지와 신문 스크랩을 손수 꼬아 만든 지끈으로 꼼꼼히 묶어뒀다. 1897년 대한제국이 선포된 해에 태어난 염 작가는 동아일보에서 기자 생활을 하며 ‘폐허’ 동인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3·1운동 직전의 상황을 그린 ‘만세전’을 비롯해 그가 겪은 시대상을 고스란히 소설 속에 담아냈다. 문학관 측은 “사실주의의 대가답게 종잇조각 하나 허투루 버리지 않는 꼼꼼한 성격과 광복 후 여러 직업을 전전하면서도 소설을 놓지 않았던 집요한 작가정신을 엿볼 수 있다”고 말했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5-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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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 20년… “열심히 대충해야 오래가죠”

    “창작을 꿈꾼다면 좀 더 편한 마음으로 도전하면 좋겠어요.” 2005년 결성된 밴드 ‘브로콜리너마저’의 베이스 겸 보컬 윤덕원이 첫 에세이 ‘열심히 대충 쓰는 사람’(세미콜론)을 1일 펴냈다. 그는 2일 열린 출간 간담회에서 “창작자들은 마지막 마무리에 너무나 많은 에너지를 쏟곤 한다. 그 꼼꼼함이 완성도에 큰 영향을 미치는 건 사실이지만 삶의 균형을 해치기도 한다”며 “‘열심히 대충’은 건강하게 오래가기 위한 균형의 태도”라고 설명했다. 20년 넘게 음악 창작 활동을 하며 얻은 그만의 관점인 셈이다. 책에는 에세이 39편과 ‘앵콜요청금지’ ‘졸업’ 등 대표곡 14곡의 가사가 수록됐다. 브로콜리너마저의 전곡을 작사 작곡한 그가 ‘유자차’ ‘축의금’ 등 친숙한 사물에서 공감 가는 가사를 만들어 낸 관찰력과 내공이 담겨 있다. 가령 소진된 상태로 계속 새로운 걸 만들어야 하는 창작자의 숙명을 ‘다 쓴 치약 튜브 붙잡고 씨름하기’에 빗댄다. 글쓰기가 힘들 땐 수제비를 떠올려 보라고 제안하기도 한다. 이렇게 저렇게 길게 쓸수록 내용은 더 얄팍해지니,적당히 얇고 보들보들할 때 뚝뚝 떼어버리자는 취지다. 에세이집을 내며 동명의 노래도 만들었다. 출판사 직원들이 코러스로 참여했다. 윤 씨는 “책 작업을 저 혼자 한 게 아니다. 편집자, 출판사 직원분들과 협업했다. 노래에도 팀워크를 담고 싶었다”며 “소박하게 녹음했지만 느낌 좋게 잘 나온 것 같다. 제목과도 잘 맞는다”며 웃었다. 노래에는 “열심히 ‘조금’ 대충 쓰는 사람이 될래요”라는 후렴구가 반복된다. 그는 “대충이라는 말이 주는 부담을 덜고 싶었다. 조바심 내면서 애를 써왔던 사람이 한 번에 대충하기는 어렵다”며 “일단은 ‘조금 대충’ 해보자는 의미로 썼다. 괜히 좀 어려운 목표들도 부드러워지는 것 같고 해볼 만한 게 되는 것 같지 않나”라고 했다. 음악 활동에 대한 생각도 밝혔다. 그는 “처음엔 앨범 한 장 한 장이 크게 다가왔지만 지금은 어떻게 오래 창작을 이어갈지를 고민한다”며 “창작물은 나온 뒤에는 ‘나와 상관없다’고 발뺌하는 게 아니라 저의 행보나 삶이 그 창작물을 더 멋있게 만들어 주도록 하고 싶다”고 했다. “창작을 꿈꾸지만 어려워하는 이들이 ‘실제로 창작 일을 하고 있는 사람도 이런 고민을 하는구나’ 하고 조금 더 편한 마음으로 ‘나도 한번 만들어 볼까, 써 볼까’ 하는 생각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5-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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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제비처럼 적당히 툭툭… ‘열심히 대충’ 해야 오래 가죠”

    “창작을 꿈꾼다면 좀 더 편한 마음으로 도전하면 좋겠어요.”2005년 결성된 밴드 ‘브로콜리너마저’의 베이스 겸 보컬 윤덕원이 첫 에세이 ‘열심히 대충 쓰는 사람’(세미콜론)을 1일 펴냈다. 그는 2일 열린 출간 간담회에서 “창작자들은 마지막 마무리에 너무나 많은 에너지를 쏟곤 한다. 그 꼼꼼함이 완성도에 큰 영향을 미치는 건 사실이지만 삶의 균형을 해치기도 한다”며 “‘열심히 대충’은 건강하게 오래가기 위한 균형의 태도”라고 설명했다. 20년 넘게 음악 창작 활동하며 얻은 그만의 관점인 셈이다. 책에는 에세이 39편과 ‘앵콜요청금지’ ‘졸업’ 등 대표곡 14곡의 가사가 수록됐다. 브로콜리너마저의 전곡을 작사 작곡한 그가 ‘유자차’ ‘축의금’ 등 친숙한 사물에서 공감 가는 가사를 만들어낸 관찰력과 내공이 담겨있다.가령 소진된 상태로 계속 새로운 걸 만들어야 하는 창작자의 숙명을 ‘다 쓴 치약 튜브 붙잡고 씨름하기’에 빗댄다. 글쓰기가 힘들 땐 수제비를 떠올려보라고 제안하기도 한다. 이렇게 저렇게 길게 쓸수록 내용은 더 얄팍해지니,적당히 얇고 보들보들할 때 뚝뚝 떼어버리자는 취지다.에세이집을 내며 동명의 노래도 만들었다. 출판사 직원들이 코러스로 참여했다. 윤 씨는 “책 작업을 저 혼자 한 게 아니다. 편집자, 출판사 직원분들과 협업했다. 노래에도 팀워크를 담고 싶었다”며 “소박하게 녹음했지만 느낌 좋게 잘 나온 것 같다. 제목과도 잘 맞는다”며 웃었다. 노래에는 “열심히 ‘조금’ 대충 쓰는 사람이 될래요”라는 후렴구가 반복된다. 그는 “대충이라는 말이 주는 부담을 덜고 싶었다. 조바심 내면서 애를 써왔던 사람이 한 번에 대충하기는 어렵다”며 “일단은 ‘조금 대충’ 해보자는 의미로 썼다. 괜히 좀 어려운 목표들도 부드러워지는 것 같고 해볼 만한 게 되는 것 같지 않나”라고 했다.음악 활동에 대한 생각도 밝혔다. 그는 “처음엔 앨범 한 장 한 장이 크게 다가왔지만 지금은 어떻게 오래 창작을 이어갈지를 고민한다”며 “창작물은 나온 뒤에는 ‘나와 상관없다’고 발뺌하는게 아니라 저의 행보나 삶이 그 창작물을 더 멋있게 만들어주도록 하고 싶다”고 했다. “창작을 꿈꾸지만 어려워하는 이들이 ‘실제로 창작 일을 하고 있는 사람도 이런 고민을 하는구나’ 하고 조금 더 편한 마음으로 ‘나도 한번 만들어볼까, 써볼까’하는 생각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5-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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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빅데이터 거미줄로 ‘빅브라더 사회’를 설계한 남자

    “톱스타 A 씨, 비연예인과 2년째 열애!” 지금 막 해당 온라인 게시글을 클릭하려는 당신. 정말 톱스타 A 씨의 사생활을 관찰하는 위치에 있다고 생각하는가. 게시글을 클릭하는 순간, 당신은 관찰자가 아니라 관찰을 당하는 존재가 될지 모른다. 개개인에게 부여된 사용자 ID가 당신이 어떤 사이트에 접속하고, 어떤 게시글을 클릭하며, 어떤 댓글을 다는지 낱낱이 추적할 테니까.이 책은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데이터 사회’의 기원을 추적한 논픽션이다. 이 때문에 최초의 데이터 마이너로 꼽히는 미국인 사업가 행크 애셔(1951∼2013·사진)의 삶에 초점을 맞췄다. 1990년대 초. 애셔는 컴퓨터에 당시에는 활용되지 않던 자원을 수집하고 종합하는 방법을 가르쳤다. 가령 일반 시민의 운전 기록, 재산 기록, 투표 기록, 법원 기록, 낚시 허가증, 공과금 청구서 같은 데이터들이다. 공적 기록과 상업 데이터를 한데 엮어 개인의 범죄 가능성을 예측하는 시스템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이는 수많은 수사기관과 기업의 표준으로 자리 잡았다. 2001년 9·11 테러 당시에는 테러범을 특정하기 위해 거의 모든 미 성인 거주자의 테러 가능성을 점수화한 ‘높은 테러리스트 인자’도 개발했다. 가장 점수가 높은 1200명 가운데 5명은 실제로 9·11 테러 납치범으로 밝혀졌다. 애셔가 개발한 높은 테러리스트 인자는 이전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분석 시대가 열렸음을 암시했다. 개인의 데이터가 단순히 설명이 아닌 ‘예측’을 위해 사용되고, 개인의 위험도가 점수로 환산된다는 점에서다. 책이 그려내는 건 단순히 천재 사업가의 성공담이 아니다. 9·11 테러 이후 미국 사회가 안전이라는 명목으로 데이터 감시를 얼마나 열렬히 받아들였는지, 그러한 분위기를 기업가와 정부가 어떻게 이용했는지를 집중적으로 파헤친다. 그림자는 늘 뒤따랐다. 높은 테러리스트 인자 1200명의 명단만 봐도 그렇다. 이러저러한 범죄에 연루된 이들을 제외하면, 1000명 이상은 무고한 이들이었다. 위양성(僞陽性·거짓 양성) 확률이 90%에 육박한 셈이다. 하지만 애셔는 컴퓨터가 맞힌 5명의 이름에만 집중했다. 결국 데이터 오류로 무고한 이들이 선거인 명부에서 배제돼 정치적 파장을 일으키기도 했다. 데이터가 공익이라는 이름으로 쓰일 때조차 수집가의 편향과 의도에 따라 다른 결과를 낳을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미 비영리 인터넷 언론 프로퍼블리카 기자인 저자는 젊은 시절 마약 밀수업자였던 애셔가 천재 프로그래머, 억만장자 사업가로 변신해가는 과정을 한 편의 소설처럼 그려냈다. 기술에 대한 설명은 알기 쉽게 풀어내고, 서술은 마치 스릴러처럼 긴장감을 유지한다. 신용평가부터 채용 심사, 공항 검색대와 범죄 수사까지…. 오늘날 우리의 일상은 이미 데이터라는 촘촘한 그물에 걸려 있다. 애셔가 만든 체계는 그 긴 궤적의 첫 단추였다. 올해 상반기에만 SK텔레콤 유심 정보 대량 해킹, 예스24 랜섬웨어 감염 등 크고 작은 사이버 보안 관련 사고가 있었다. 개인정보는 보안과 효율이라는 이름 아래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고 있다. 책장을 넘기다 보면 스스로 묻게 된다. 우리는 편리함을 얻는 대신 무엇을 내어줬는가. 한 인간의 드라마틱한 삶을 조명하는 전기이자,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데이터 세계의 기원을 추적하는 책이다. 책을 덮고 나면 일상의 많은 순간이 이미 거대한 데이터베이스와 맞닿아 있음을 자연스레 느낀다. 끊기지 않는 거미줄처럼.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5-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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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글을 클릭하는 순간, 감시가 시작된다

    “톱스타 A 씨, 비연예인과 2년째 열애!”지금 막 해당 온라인 게시글을 클릭하려는 당신. 정말 톱스타 A 씨의 사생활을 관찰하는 위치에 있다고 생각하는가. 게시글을 클릭하는 순간, 당신은 관찰자가 아니라 관찰을 당하는 존재가 될지 모른다. 개개인에게 부여된 사용자 ID가 당신이 어떤 사이트에 접속하고, 어떤 게시글을 클릭하며, 어떤 댓글을 다는지 낱낱이 추적할 테니까.이 책은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데이터 사회’의 기원을 추적한 논픽션이다. 이 때문에 최초의 데이터 마이너로 꼽히는 미국인 사업가 행크 애셔(1951~2013)의 삶에 초점을 맞췄다.1990년대 초. 애셔는 컴퓨터에 당시에는 활용되지 않던 자원을 수집하고 종합하는 방법을 가르쳤다. 가령 일반 시민의 운전 기록, 재산 기록, 투표 기록, 법원 기록, 낚시 허가증, 공과금 청구서 같은 데이터들이다. 공적 기록과 상업 데이터를 한데 엮어 개인의 범죄 가능성을 예측하는 시스템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이는 수많은 수사기관과 기업의 표준으로 자리 잡았다.2001년 9·11 테러 당시에는 테러범을 특정하기 위해 거의 모든 미 성인 거주자의 테러 가능성을 점수화한 ‘높은 테러리스트 인자’도 개발했다. 가장 점수가 높은 1200명 가운데 5명은 실제로 9·11 테러 납치범으로 밝혀졌다. 애셔가 개발한 높은 테러리스트 인자는 이전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분석 시대가 열렸음을 암시했다. 개인의 데이터가 단순히 설명이 아닌 ‘예측’을 위해 사용되고, 개인의 위험도가 점수로 환산된다는 점에서다.책이 그려내는 건 단순히 천재 사업가의 성공담이 아니다. 9·11 테러 이후 미국 사회가 안전이라는 명목으로 데이터 감시를 얼마나 열렬히 받아들였는지, 그러한 분위기를 기업가와 정부가 어떻게 이용했는지를 집중적으로 파헤친다.그림자는 늘 뒤따랐다. 높은 테러리스트 인자 1200명의 명단만 봐도 그렇다. 이러저러한 범죄에 연루된 이들을 제외하면, 1000명 이상은 무고한 이들이었다. 위양성(僞陽性·거짓 양성) 확률이 90%에 육박한 셈이다. 하지만 애셔는 컴퓨터가 맞힌 5명의 이름에만 집중했다. 결국 데이터 오류로 무고한 이들이 선거인 명부에서 배제돼 정치적 파장을 일으키기도 했다. 데이터가 공익이라는 이름으로 쓰일 때조차 수집가의 편향과 의도에 따라 다른 결과를 낳을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미 비영리 인터넷 언론 프로퍼블리카 기자인 저자는 젊은 시절 마약 밀수업자였던 애셔가 천재 프로그래머, 억만장자 사업가로 변신해가는 과정을 한 편의 소설처럼 그려냈다. 기술에 대한 설명은 알기 쉽게 풀어내고, 서술은 마치 스릴러처럼 긴장감을 유지한다.신용평가부터 채용 심사, 공항 검색대와 범죄 수사까지…. 오늘날 우리의 일상은 이미 데이터라는 촘촘한 그물에 걸려 있다. 애셔가 만든 체계는 그 긴 궤적의 첫 단추였다. 올해 상반기에만 SK텔레콤 유심 정보 대량 해킹, 예스24 랜섬웨어 감염 등 크고 작은 사이버 보안 관련 사고가 있었다. 개인정보는 보안과 효율이라는 이름 아래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고 있다. 책장을 넘기다 보면 스스로 묻게 된다. 우리는 편리함을 얻는 대신 무엇을 내어줬는가.한 인간의 드라마틱한 삶을 조명하는 전기이자,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데이터 세계의 기원을 추적하는 책이다. 책을 덮고 나면 일상의 많은 순간이 이미 거대한 데이터베이스와 맞닿아 있음을 자연스레 느낀다. 끊기지 않는 거미줄처럼.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5-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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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통-현대 넘나들며 신명 한판… 이집트 관객 사로잡은 ‘K국악’

    한국의 젊은 예술가들이 전통과 현대를 넘나드는 뜨거운 무대로 아프리카 관객들을 사로잡았다.주이집트한국문화원이 주최하고 동아일보사가 주관한 ‘코리아 뮤직 카라반(Korea Music Caravan: From Traditional to Global)’ 공연이 26일(현지 시간) 이집트 카이로 아메리칸대(AUC)와 28일 알렉산드리아 안푸시 문화궁전에서 열렸다. 이번 이집트 공연에는 동아국악콩쿠르 역대 수상자 12명이 포함된 예술가 15명이 무대에 올라 판소리 수궁가, 소고춤, 한량무, 사물놀이 등 전통 예술을 선보였다. 뮤지컬 장르와 결합한 창의적인 무대도 마련됐다. 특히 고대 이집트에서 드물었던 여성 파라오를 소재로 한 국내 창작 뮤지컬 ‘하트셉수트’의 대표 넘버를 무대에 올리기도 했다. 판소리와 뮤지컬 보컬이 함께 부른 듀엣 무대는 관객들로부터 가장 큰 환호를 끌어냈다.두 차례 공연 모두 현지에서 큰 관심을 받으며 만석을 기록했다. 국내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동아콩쿠르 출신 연주자들의 깊이 있는 무대에 관객 호응도 뜨거웠다. 작곡 부문으로 참가한 최민준 씨(40회 금상 수상자)는 “한국 문화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는 중요한 가교 역할을 한 것 같아 뿌듯하다”고 소감을 밝혔다. 오성호 주이집트한국문화원장은 “양국이 서로의 문화를 공감하고 이해하는 뜻깊은 기회였다”며 “더욱 다양한 교류를 이어가겠다”고 했다.이번 공연은 ‘2025 투어링 케이 아츠(Touring K-Arts)’ 사업의 일환으로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이 후원했다. 재외 한국문화원과 문화홍보관을 거점으로 국내 우수 문화예술 프로그램의 해외 순회를 지원한다. 올해는 총 45개 프로그램을 34개 나라에서 선보인다. 한식, 뷰티, 인문학 등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는 프로그램을 통해 한국 문화의 매력을 소개할 예정이다. 청년과 신진 예술인을 위한 지원 분야도 신설했다. 젊은 예술인들이 해외 무대에서 경험을 쌓고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한국 문화예술의 국제적 확산과 미래 인재 육성에 기여한다는 취지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5-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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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소리-여성 파라오 뮤지컬, 이집트를 사로잡다

    한국의 젊은 예술가들이 전통과 현대를 넘나드는 뜨거운 무대로 아프리카 관객들을 사로잡았다.주이집트한국문화원이 주최하고 동아일보사가 주관한 ‘코리아 뮤직 카라반(Korea Music Caravan: From Traditional to Global)’ 공연이 26일(현지 시간) 이집트 카이로 아메리칸대학교(AUC)와 28일 알렉산드리아 안푸시 문화궁전에서 열렸다. 이번 이집트 공연에는 동아국악콩쿠르 역대 수상자 12명이 포함된 예술가 15명이 무대에 올라 판소리 수궁가, 소고춤, 한량무, 사물놀이 등 전통 예술을 선보였다. 뮤지컬 장르와 결합한 창의적인 무대도 마련됐다. 특히 고대 이집트에서 드물었던 여성 파라오를 소재로 한 국내 창작 뮤지컬 ‘하트셉수트’의 대표 넘버를 무대에 올리기도 했다. 판소리와 뮤지컬 보컬이 함께 부른 듀엣 무대는 관객들로부터 가장 큰 환호를 끌어냈다.두 차례 공연 모두 현지에서 큰 관심을 받으며 만석을 기록했다. 국내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동아콩쿠르 출신 연주자들의 깊이 있는 무대에 관객 호응도 뜨거웠다. 작곡 부문으로 참가한 최민준(40회 금상 수상자) 씨는 “한국 문화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는 중요한 가교 역할을 한 것 같아 뿌듯하다”고 소감을 밝혔다. 오성호 주이집트한국문화원장은 “양국이 서로의 문화를 공감하고 이해하는 뜻깊은 기회였다”며 “더욱 다양한 교류를 이어가겠다”고 했다.이번 공연은 ‘2025 투어링 케이-아츠(Touring K-Arts)’ 사업의 일환으로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이 후원했다. 재외 한국문화원과 문화홍보관을 거점으로 국내 우수 문화예술 프로그램의 해외 순회를 지원한다. 올해는 총 45개 프로그램을 34개 나라에서 선보인다. 한식, 뷰티, 인문학 등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는 프로그램을 통해 한국 문화의 매력을 소개할 예정이다. 청년과 신진 예술인을 위한 지원 분야도 신설했다. 젊은 예술인들이 해외 무대에서 경험을 쌓고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한국 문화예술의 국제적 확산과 미래 인재 육성에 기여한다는 취지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5-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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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도 가끔은 특이한 존재… 상식 벗어난 별종에 끌렸죠”

    소설가 김초엽(32)이 2023년 글을 쓰려 태국 치앙마이에 체류할 때였다. 부모님이 오셔서 택시 투어를 예약해 뒀다. 그런데 기사는 약속 시간을 훌쩍 넘긴 뒤 나타났다. 한국이라면 ‘상식적이지 않은’ 일이다. 어찌저찌 투어를 끝냈는데, 아버지가 한참 뒤 차에 옷을 두고 내린 걸 깨달았다. 혹시나 싶어 연락했더니, 기사는 상당히 먼 길을 흔쾌히 돌아왔다. 이런 여유로움도 한국이라면 그리 ‘상식적이지 않은’ 경우 아닐까. 25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만난 김 작가는 “외국에 나가면 평소에 가진 우리 상식이 통하지 않는 경험을 종종 한다”며 “상식이란 게 실은 조금만 벗어나도 크게 의미 없는 거구나란 생각을 많이 한다”고 했다.그런 체험 덕분일까. 27일 출간하는 그의 세 번째 소설집 ‘양면의 조개껍데기’(래빗홀·사진)는 상식을 뛰어넘는 별종(別種)들의 이야기가 가득하다. 본인이 인간이 아닌 다른 종(種)이라고 믿는 ‘아더킨’과 내면에 두 개 이상의 자아를 지닌 ‘셀븐인’, 인간이 되고 싶은 줄 알았다가 그냥 기계로 살고 싶어진 ‘안드로이드’…. 쉽사리 유형화하기 어려운 존재들이 단편마다 등장한다. 작가는 왜 이런 별종에 끌리는 걸까. 김 작가는 “돌이켜 보면 스스로도 그런 취급을 받았던 적이 있다”며 “공대(포항공대 생화학 석사) 다닐 때 ‘되게 특이하네’란 말을 자주 들었다”고 했다. “문단에 오니 되게 평범한데(웃음), 어쨌든 상대성을 경험해 본 거잖아요. 남들이 ‘누구는 이상하다, 특이하다’라고 판단하는 기준 자체가 유동적이고 절대적이지 않다는 걸 깨달은 거죠. 그래서 그런 이야기를 많이 쓰는 것 같아요.” 그런 작가에게 여행은 상식의 ‘경계’를 깨는 계기가 되곤 한다. 어떤 목적으로 떠나는 여행도 좋은 학습터가 된다. 태국 치앙마이·방콕, 말레이시아 페낭, 인도네시아 발리, 헝가리 부다페스트 등에서 최소 2주부터 길게는 겨울 내내 혼자 머물며 글을 썼다. 특히 여러 민족이 섞인 다민족 국가에 마음이 끌린다. “페낭에 가면 무슬림, 말레이인, 중국계, 인도인 등 다양해요. 각자 거리에서 끼리끼리 살죠. 근데 재밌는 게 음식은 다 섞여요. 말레이와 중국계의 퓨전 음식 같은 식이죠. 서로 완전히 이해할 순 없어도, 같이 있다 보면 스며드는 게 인간사란 생각이 들죠.” 그래서일까. 사람을 만날 때도 친구의 친구처럼 한두 다리 건너 아는 이를 만나는 걸 즐긴다고 한다. 김 작가는 “내 영역 밖에 있는 사람을 만나야 세상을 보는 관점도 조정되는 것 같다”며 “집단에만 속해 있으면 집단의 기준을 내 걸로 동기화하게 된다. 하지만 그 기준이 세계 전체 시민의 기준과 동떨어져 있을 수 있다. 계속 확인해야 한다”고 했다. 2017년 데뷔한 김 작가는 첫 소설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이 40만 부 이상 팔리는 등 공상과학(SF)소설의 대중화를 이끈다는 평가를 받는다. 2021년 독자들이 뽑은 ‘한국 문학의 미래가 될 젊은 작가’ 1위에 오르기도 했다. 이런 관심에 대해 “어느 정도의 부담감은 더 좋은 작품을 쓰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고 답했다. “얼마 전 병원에 갔는데 한 간호사께서 편지를 주셨어요. 그분이 곧 항암 치료에 들어가신단 내용이 있었어요. 이렇게 친구한테도 말하기 어려운 아픈 속내를 보여주는 독자들이 계세요. 그럴 때마다 진짜 ‘실망하시지 않게 잘해 보자’고 다짐하게 됩니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5-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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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저질 체력’ 소설가의 탁구 예찬론

    마흔이 넘어 스스로 잘생겼다는 걸 발견했다. 늦은 밤 아파트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다가 거울에 비친 얼굴을 보고 깨달았단다. “나 좀 생겼는데?” 학창 시절부터 평생 외모로 빛날 일이 없었다는 그. 뒤늦게 ‘늦깎이 미남’이란 각성(?)을 하게 된 결정적 이유가 뭘까. 탁구 때문이다. 땀 흘리며 즐겁게 운동을 하고 난 뒤의 얼굴이 꽤 맘에 들었던 모양이다. 이 에세이는 제목만 봐도 탁구 예찬론. 소설 ‘아내가 결혼했다’ ‘동정 없는 세상’ 등을 쓴 박현욱 작가의 첫 산문집이다. 실은 10년 전까지 작가의 건강은 형편없었다고 한다. 한번 감기에 걸리면 보름을 앓았다. 더는 운동을 미룰 수 없겠다 싶었을 때,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탁구 치는 걸 봤다. 첫인상은 좀 없어 보였던 한 출연자가 집중해 경기에 임하는 모습이 ‘있어 보였다’. 있어 보이는 것에 약한 그에게 딱이었다. 그렇게 입문한 탁구에 작가는 깊이 빠졌다. 팬데믹 시기 탁구장이 닫았을 땐 가상현실(VR) 기기를 머리에 쓰고 채를 휘둘렀다. 땀 흘리며 작고 하얀 공을 쫓다 보면 다른 생각이 들지 않았다. 물론 활력이란 게 오래가는 게 아니어서 다음 날이면 또 어두운 생각에 잠식됐지만 저녁엔 다시 공을 쫓아다녔다. 그러다 보니 여러 대회에 나가 입상도 하고, 심지어 우승도 했다. 학창 시절 운동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이젠 대한탁구협회장 명의의 상장도 있다. 학교 다니며 글짓기 상장 한번 받아보지 못한 그가 소설가가 된 것처럼, 세상일은 참 모를 일이다. 작가는 이를 통해 “내게 스스로 알아차리지 못했던 재능이 이것저것 있었던 것은 아닐까”라며 “혹 사랑에 대해서는 어떠했을까”로 사유를 이어간다. “스스로 없다고 생각한 재능이지만, 제대로 배우고 시간을 들여 정성껏 익혔다면 나 아닌 다른 이들을, 다른 것들을 온전히 사랑할 수 있었을까.” 책은 묘사가 간결해 술술 읽힌다. 문인들과 탁구 치며 티격태격하는 모습이 생생하게 펼쳐진 글을 읽고 나면, 주변에 어디 탁구장이 없을까 찾아보게 된다. 뭣보다 잘생김을 얻을 수 있다니. 퍽 유혹적이지 아니한가.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5-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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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故 길창덕 만화 ‘꺼벙이’, 숏폼 애니로 만난다

    땜빵 머리에 반쯤 감긴 눈. 추억의 만화 캐릭터 ‘꺼벙이’(사진)가 다시 돌아온다. 콘텐츠 기업 케이씨디컴퍼니는 “길창덕 화백(1929∼2010)의 만화 ‘꺼벙이’ 탄생 55주년을 맞아 꺼벙이를 숏폼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한다”고 14일 밝혔다. 네 칸 만화에 담겼던 꺼벙이 캐릭터를 인공지능(AI) 기술을 활용해 살아 움직이는 모습으로 재현한다. 케이씨디컴퍼니는 길 화백의 딸 길혜연 씨가 대표를 맡고 있다. 길 화백의 손글씨를 되살린 ‘길창덕체’도 제작됐다. 해당 서체는 애니메이션과 다양한 지식재산권(IP) 콘텐츠에 활용될 예정이다. 이와 별도로 잡지 만화왕국 등에 연재됐던 ‘꺼벙이’를 묶은 책도 출간된다. ‘순악질여사’ ‘재동이’ ‘고집세’ 등 길 화백의 대표작도 전집으로 복간할 예정이다. ‘꺼벙이’는 1970년 잡지 만화왕국에서 처음 시작된 인기 만화 캐릭터다. 당대 서울 중산층과 신흥 주거지의 골목을 배경으로 그렸다. 아파트가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전 서울의 골목 풍경을 잘 보여준다는 평가를 받아 서울미래유산에 등록되기도 했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5-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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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 읽어주는 AI의 진화… 죽음 전할땐 착 가라앉은 목소리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였을까. 모르겠다.” 알베르 까뮈의 소설 ‘이방인’ 첫 문장을 오디오북으로 들어봤다. 마치 죽음의 의미를 곱씹듯 착 가라앉은 목소리가 분위기를 압도했다. 그런데 이 목소리는 성우가 읽은 게 아니다. 인공지능(AI)이 만든 목소리다. 최근 ‘듣는 독서’가 진화하고 있다. 텍스트를 자동으로 읽어주는 TTS(Text-To-Speech)와 AI가 결합하면서부터다. TTS는 일찍이 시각장애인이나 약시자 등을 돕기 위해 도입된 기술. 기존 TTS가 다소 기계음의 느낌이 강했다면, AI TTS는 사람이 읽는 것처럼 자연스럽고 휴지(休止)도 둔다. 취향에 따라 음색도 고를 수 있다.● AI TTS로 ‘이방인’ 들어보니최근 출판계는 AI 업계와 손잡고 AI TTS를 속속 도입하고 있다. 온라인서점 알라딘과 예스24, 전자책 플랫폼 밀리의 서재, 리디, 윌라 등이 현재 AI TTS를 제공한다. AI TTS를 기존 TTS와 비교해 보기 위해 ‘이방인’을 두 버전으로 모두 들어봤다. 차이는 확연했다. 기존 TTS는 ‘죽었다’는 단어에 아무 감정의 깊이가 담기지 않았다. 반면 AI TTS는 쉼표와 마침표에서 확실히 한번 쉬어가는 게 느껴졌다. 3개 문장을 충분히 띄어서 읽다 보니 도입부의 충격을 곱씹는 데 도움이 됐다.하지만 문장이 길어지면 AI TTS도 살짝 ‘기계 티’가 났다. 황인찬 시인의 시 ‘밝은 방’을 AI TTS로 들어보면 더 확연히 느껴진다. “사진사는 말한다 눈을 크게 뜨라고 하지만 나는 대답한다 이게 다 뜬 거예요” 독자들은 이 구절이 사진사와 ‘나’의 문답이며, 쉼표와 마침표가 없어도 띄어 읽어야 한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인지한다. 하지만 AI TTS는 통으로 붙여 읽었다. 사투리에도 약했다. 특유의 억양을 생략한 채 표준어처럼 읽었다. 한 전자책 업계 관계자는 “AI TTS가 아직 의미를 구별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며 “우리는 ‘세계보건기구(WHO)’라고 하면 WHO가 세계보건기구의 약자라는 걸 알지만, AI TTS로 돌리면 ‘후’라고 읽는다. 회사 이름 ‘3M’도 ‘3미터’라고 읽는 식”이라고 했다. 전문 성우를 대체하기는 여전히 역부족이다. 한 전자책 업계 관계자는 “AI TTS로 한 2시간 듣다 보면 알 수 없는 피로가 쌓인다”며 “성우라는 직업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라고 했다.● 다가온 ‘듣는 독서’의 시대 보완할 점들이 적지 않지만, AI TTS는 산업적인 측면에서 ‘듣는 독서’의 시대를 성큼 앞당길 가능성이 크다. 제작 비용이나 시간을 대폭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AI TTS는 전자책 파일만 있으면 바로 적용할 수 있다. 지난달 29일부터 AI TTS를 도입한 예스24는 보유한 전자책(150만 권)의 70%가량(104만 권)을 바로 AI TTS로 들을 수 있도록 했다. 밀리의 서재 관계자는 “특히 경제경영서는 종이책을 출간하면서 전자책을 같이 공개하는 경우가 많다”며 “AI TTS 등을 도입하면 비용적으로도 효율성이 높다. 독자들 역시 새로운 콘텐츠를 빠르게 접할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예스24 관계자는 “현재 명확하고 신뢰를 주는 ‘진우’, 밝고 다정한 ‘이나’ 등 6가지 AI 목소리를 제공하고 있다”며 “진우는 경제경영 서적에서, 이나는 2030세대를 타깃으로 에세이에서 반응이 좋다”고 했다. AI TTS가 보편화되면 1인 창작자들도 손쉽게 오디오북을 낼 수 있다. 실제로 자가출판 플랫폼 ‘부크크’는 AI 전문 기업 ‘셀바스AI’와 협업해 1인 창작자들에게 셀프 오디오북을 만들 수 있게 지원하고 있다. 자신의 목소리 샘플을 녹음하면 음색과 말투를 복제해 오디오북을 만들어 주는 사이트도 등장했다. 다만 저작권 및 권리관계는 큰 숙제다. 6월 서울고등법원은 윌라가 배타적 오디오북 발행권을 가진 도서 6권에 밀리의 서재가 TTS 기능을 제공한 것에 대해 저작권 침해에 해당한다고 판결했다. 현재 대법원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한 전자책 업계 관계자는 “AI TTS 기술을 개발할 때 사람의 목소리가 데이터로 학습된다”며 “성우들의 목소리 저작권도 새로운 화두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5-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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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故 길창덕 만화 ‘꺼벙이’ 다시 돌아온다…숏폼 애니로 재탄생

    땜빵 머리에 반쯤 감긴 눈. 추억의 만화 캐릭터 ‘꺼벙이’가 다시 돌아온다.콘텐츠기업 케이씨디컴퍼니는 “길창덕(1929~2010) 화백의 만화 ‘꺼벙이’ 탄생 55주년을 맞아 꺼벙이를 숏폼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한다”고 14일 밝혔다. 네 칸 만화에 담겼던 꺼벙이 캐릭터를 인공지능(AI) 기술을 활용해 살아 움직이는 모습으로 재현한다. 케이씨디컴퍼니는 길 화백의 자녀 길혜연 씨가 대표를 맡고 있다.길 화백의 손 글씨를 되살린 ‘길창덕 체’도 제작됐다. 해당 서체는 애니메이션과 다양한 IP(지저재산권) 콘텐츠에 활용될 예정이다. 이와 별도로 잡지 만화왕국 등에 연재됐던 ‘꺼벙이’를 묶은 책도 출간된다. ‘순악질여사’ ‘재동이’ ‘고집세’ 등 길 화백의 대표작도 전집으로 복간할 예정이다.‘꺼벙이’는 1970년 잡지 만화왕국에서 처음 시작된 인기 만화 캐릭터다. 당대 서울 중산층과 신흥주거지의 골목을 배경으로 그렸다. 아파트가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전 서울의 골목 풍경을 잘 보여준다는 평가를 받아 서울미래유산에 등록되기도 했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5-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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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림 그린 뒤, 혜성 꼬리처럼 남은 글 그러모았죠”

    “저는 작품 콘셉트를 잡을 때 그림보다 글을 더 많이 씁니다.” 올 2월 한국인 최초로 미국 현대예술재단이 선정하는 ‘도로시아 태닝상’을 받은 현대미술가 이피(44)가 첫 산문집 ‘이피세’(난다)를 펴냈다. 이 작가는 강화플라스틱부터 불화(佛畫)의 금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재료를 활용해 회화와 조각 작업을 해온 작가다. 그는 13일 서울 종로구 아트스페이스3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작업할 때 글과 그림은 한 덩어리로 있다가 그림을 그리고 나면 글이 잔여물처럼 남는다. 마치 혜성이 지나간 뒤 꼬리가 남는 것 같다”며 “그 꼬리를 그러모은 게 저의 글”이라고 했다. 책은 일상과 작업에서의 소회 등을 담은 1부와 그가 만든 작품에 얽힌 이야기를 주로 다룬 2부로 구성됐다. 작품 도판 113점도 실렸다. 책 제목 ‘이피세(世)’에 대해서는 “2019년 ‘현생누대, 신생대, 이피세’라는 개인전을 연 적이 있다. 제게 쌓인 지층 사이의 형상들을 발굴해서 자연사박물관처럼 전시한 것”이라며 “이 책도 제 지층에 숨어 있는 것들을 전시한 책”이라고 했다. 책에선 미술가의 내면을 상세히 살필 수 있다. 폐오징어 수천 마리를 조각조각 자르고 붙여 인간의 형상으로 만든 2010년 작 ‘승천하는 것은 냄새가 난다’는 늘 좋은 향기가 나던 할머니에게서 돌아가시기 직전 맡았던 냄새에서 착안했다고 한다. “할머니가 호스피스에 오래 계셨어요. 호스피스를 다니며 느낀 게 모든 아픈 사람은 안에 있다는 겁니다. 호스피스 할머니들은 항상 창문을 보고 계셨어요. 작가로서 저는 아픈 사람을 자처해서 창문을 만드는 사람이 되기로 했어요. 갤러리에 있는 저의 그림과 책에 있는 저의 글은 아픈 사람이 보는 창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창문을 만드는 게 저의 작업인 셈이죠.”이 작가는 김혜순 시인과 이강백 극작가의 딸이다. 어릴 때부터 부모님이 글을 쓰셔서 자신도 창작 활동을 하는 삶이 당연하게 여겨졌다고 한다. 2024년 전미도서비평가협회(NBCC)상을 받는 등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치고 있는 어머니에 대해 “집에선 그냥 엄마다. 여느 딸처럼 엄마한테 짜증도 낸다”며 “엄마를 어떻게 넘어서겠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데 한 번도 그런 생각 해본 적 없다. 그냥 우리 엄마니까”라고 했다.김 시인의 시집 ‘죽음 트릴로지’ 표지에 실린 이 작가의 드로잉도 “강제적 차출”이었다며 웃었다. “협업이 아니라 엄마가 ‘책 나오니 드로잉을 달라’고 하셨다”고 한다. “책을 많이 보시는 분들은 저를 삽화가로 많이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하하. 이 책이 그런 생각을 바꾸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습니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5-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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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잔혹한 스토리에 희망 한 스푼… 공포스릴러 매력에 빠지다

    중학교 3학년에서 고등학교 1학년으로 넘어가던 겨울방학. 조예은 소설가(32)는 한 달간 기숙학원에서 지내며 고교 과정을 미리 공부하고 있었다. 당시 읽은 소설 가운데 김동인(1900∼1951)의 ‘광염소나타’가 있었다. 불을 보면 흥분에 휩싸여 그 흥분을 느끼기 위해 계속 불을 지르는 주인공의 광기…. 11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만난 조 작가는 당시를 회상하며 “아직 문학에 대한 취향이 형성되기도 전이었지만 이 소설이 ‘무척 재밌다’ ‘폼 난다’는 인상만큼은 뚜렷하게 남았다”고 했다. 반면 그때 이층 침대를 나눠 쓰던 룸메이트는 이 소설에 강한 거부감을 보였다고 한다. 조 작가가 자신의 취향을 발견한 순간이자, 사람마다 취향의 울타리가 다양하다는 걸 배운 순간이었다. 시간이 흘러 그는 섬찟한 문체와 괴이한 세계관으로 평단과 독자의 주목을 받는 작가가 됐다. 소설집 ‘칵테일, 러브, 좀비’(2020년) ‘트로피컬 나이트’(2022년), 장편 ‘적산가옥의 유령’(2024년) ‘입속 지느러미’(2024년) 등으로 공포 스릴러 붐을 일으켰다. 올해 예스24에서 독자 투표로 선정하는 ‘한국문학의 미래가 될 젊은 작가’ 1위에도 올랐다. 그의 소설은 굳이 따지면 ‘단짠단짠’하다. 달고 짠맛이 절묘하게 왔다 갔다 한다. 잔혹해 보이는 묘사도 잦지만, 이야기엔 ‘희망’이 한 스푼 들어가 있다. 기이하지만 귀여운 괴물 등 캐릭터도 선명하다. 짝짓기 프로그램, 미소년 좀비, 사이코메트리 등 흥미로운 소재와 빠른 전개도 인상적. 그의 소설을 읽고 스릴러와 호러 장르를 다시 읽게 됐다는 평들이 많다.지난달 30일 출간한 소설집 ‘치즈 이야기’(문학동네)는 이러한 ‘조예은 표’ 공포 스릴러의 표본이라 할 수 있다. 표제작 ‘치즈 이야기’는 썩어가는 인간의 몸에서 풍기는 악취를 잘 숙성된 치즈 냄새에 빗댄 단편. 25쪽에 불과한데, 읽고 나면 퀴퀴한 치즈 냄새가 코에 밴 듯 한동안 어질어질하다. 이어지는 6편 역시 종잡을 수 없긴 마찬가지. 좀비는 물론이고, 머리를 터뜨리고 살점을 꼭꼭 씹어먹는 환상이 예사로 등장한다. 단순한 엽기물로 여겨질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다. 그의 소설에서 환상은 말 못 하는 이의 표현 수단인 경우가 많다. 가령 ‘치즈 이야기’는 유년기 부모로부터 방치된 아이가 꾸는 악몽에서 시작된다. 조 작가는 “주변에 쉽게 보이는 인물보다 아예 안 보이는 존재나, 평범하게 존재하는 듯하면서도 내면에 비틀린 뭔가를 가진 캐릭터들에 끌린다”며 “좋은 장르문학은 이야기로서의 재미와 주제 사이에 균형이 있다. 이야기 자체의 흥미로움을 놓치고 싶지 않다”고 했다. 대학에서 금속공예디자인학과를 전공한 뒤 ‘공모전 상금 30만 원’을 벌기 위해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는 그는 “북토크에서 만나는 젊은 독자들이 ‘책을 한 권도 읽지 않는 사람이었는데 조 작가의 소설을 읽고 재밌어서 독서를 시작했다’고 할 때 가장 뿌듯하다”고 했다. 갈수록 인기가 높아지는 만큼 작품을 쓰면서 고려할 것도 많아질 터. 조 작가는 “책을 묶을 때마다 생각보다 보편의 취향이라는 게 있고, 이런 이야기에 거부감을 느끼는 분들도 있다는 것을 배우게 된다”면서도 “누구나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이야기와 작가의 세계를 살린 딥(deep)한 이야기, 둘 다 잃고 싶지 않다”고 했다.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있기 때문인 것 같아요. 제가 아무리 하고 싶은 대로 나간다고 하더라도 대중의 취향과 균형을 맞출 수 있다는 믿음요. 아직은 좀 더 욕심을 부려도 된다고 생각해요, 하하.”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5-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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