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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소연 소설가(33·사진)의 단편소설 ‘그 개와 혁명’이 제48회 이상문학상 대상에 17일 선정됐다. 수상작은 1980년대 학생운동 세대인 아버지와 2020년대 페미니스트 청년 세대 딸이 의기투합하는 과정을 그렸다. 심사위원인 은희경 소설가는 “‘포용적이면서도 혁명적’이라는 형용 모순의 성립을 보여준 작품”이라 평가했다. 우수작에는 김기태의 ‘일렉트릭 픽션’, 문지혁의 ‘허리케인 나이트’, 서장원의 ‘리틀 프라이드’, 정기현의 ‘슬픈 마음 있는 사람’, 최민우의 ‘구아나’ 등 5편이 뽑혔다. 이상문학상은 지난해까지 문학사상사가 주관했으나 올해 처음 다산북스가 주관했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정말 사랑하지 않는다면 쓸 수 없는 게 시 아닐까요? 요즘 세상에 누가 이런 ‘바보 같은 짓’을 해요(웃음)!” 여기, 바보 같은 시 사랑에 ‘올인’하기로 한 젊은 시인이 있다. 다니던 대학원도 관두고 전업 작가로 나섰으니 올인은 결코 비유가 아니다. 2023년 10월 데뷔 시집 ‘샤워젤과 소다수’(문학동네)가 16쇄를 찍으며 일약 시단의 유망주로 떠오른 고선경 시인(28). 1년여 만인 지난달 기세 좋게 새 시집 ‘심장보다 단단한 토마토 한 알’(열림원)을 낸 그를 16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만났다. 고 시인에겐 ‘스트릿 문학 파이터’란 별명이 있다. 첫 시집에 수록된 동명의 시에서 유래했다. 댄서 서바이벌 프로그램인 ‘스트릿 우먼 파이터’의 패러디가 분명한 이 시는 댄서 대신 시 습작생을 무대 위에 세웠다. “세계 최초 시 서바이벌 오디션이 시작됐습니다/지금 바로 투표해주세요”라고 포문을 열더니, 선배 시인 기형도의 ‘엄마 걱정’, 박준의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를 패러디했다. 온라인 커뮤니티의 댓글 형식을 차용하기도 했다. 데뷔작부터 기발한 발상을 보여준 그의 후속작은 의외로 패러디나 밈이 대폭 줄었다. 심경에 변화라도 있었을까. “데뷔작으로 사랑을 많이 받았지만, 한편으로 ‘얘는 밈이나 패러디 없인 시를 못 쓰냐’는 반응도 있었어요. 그런 것 없이도 시를 쓸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하지만 신작도 특유의 너스레는 여전하다. “미래는 헐렁한 양말처럼 자주 벗겨지지만/맨발이면 어떻습니까?”(시 ‘럭키슈퍼’에서) “떨군 고개를 원래 스트레칭하려 했던 척 한 바퀴/돌리는 것까지가 제 시집의 장기입니다.”(시 ‘도전! 판매왕’에서) 두 번째 시집은 20대 시인이 생각하는 시집의 쓸모, 문학의 쓸모에 대한 고민도 두드러진다. 깔깔 웃는 얼굴 이면의 깊은 속내를 마주한 느낌이다. ‘도전! 판매왕’엔 시인들이 홈쇼핑에 나와 시집을 100초 동안 어필하는 장면이 나온다. 초조하게 차례를 기다리던 ‘나’는 자기 순서가 되자 말을 얼버무린다. “백 초는 너무 길고 시집은 너무 짧다. 그게 이 시집이 내 마음을 아프게 하는 이유다.” 고 시인은 ‘내 시를 독자들이 왜 읽어야 할까’란 질문을 내내 마음에 담아뒀던 듯하다. 수록 시 ‘신년 운세’에선 시집을 부적에 빗댔다. “나도 부적 하나 써 줄게/만사형통이나 만사대길 말고//남을 돕는 팔자를 가진 이의 이름 하나 적어 줄게/그러니까 이 시 꼭 사서 간직해/알았지?” 이번 시집은 소소한 행운을 가져다줄 부적처럼 간직할 만하다는 깜찍한 제안. 그럼 어떤 이에게 어울리는 부적일까. “어떤 종류든 상실을 경험해본 사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기로 한 사람에게 ‘나는 너의 팬이야’라고 말해주는 부적입니다.” 그는 6월 첫 산문집을, 12월에도 또 다른 산문집을 낸다. 내후년까지 출간 일정이 정해져 있다고 한다. 2022년 등단한 시인이 바쁜 나날을 보내는 셈이다. ‘성공 요인이 뭐라고 생각하느냐’고 묻자 그는 정색하며 “알지 못하고, 알고 싶지도 않다”고 했다. “우연히 주파수가 맞듯이 제 시가 사람들과 공명할 수 있었지만, 그건 절대로 영원하지 않을 거예요.” 그 대신 “계속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것”이라는 게 시인의 포부다. “무엇보다 ‘이게 성공하는 방법인 것 같아’라고 해서 그것만 밟아 나가는 건 별로 안 멋있지 않나요? 그건 별로 재밌지 않잖아요!”“미래는 헐렁한 양말처럼 자주 벗겨지지만/ 맨발이면 어떻습니까?” -고선경 詩 ‘럭키슈퍼’에서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정말 사랑하지 않는다면 쓸 수 없는 게 시 아닐까요? 요즘 세상에 누가 이런 ‘바보 같은 짓’을 해요(웃음)!”여기, 바보 같은 시 사랑에 ‘올인’하기로 한 젊은 시인이 있다. 다니던 대학원도 관두고 전업 작가로 나섰으니 올인은 결코 비유가 아니다. 2023년 10월 데뷔 시집 ‘샤워젤과 소다수’(문학동네)가 16쇄를 찍으며 일약 시단의 유망주로 떠오른 고선경 시인(28). 1년여 만인 지난달 기세 좋게 새 시집 ‘심장보다 단단한 토마토 한 알’(열림원)을 낸 그를 16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만났다.고 시인에겐 ‘스트릿 문학 파이터’란 별명이 있다. 첫 시집에 수록된 동명의 시에서 유래했다. 댄서 서바이벌 프로그램인 ‘스트릿 우먼 파이터’의 패러디가 분명한 이 시는 댄서 대신 시 습작생을 무대 위에 세웠다. “세계 최초 시 서바이벌 오디션이 시작됐습니다/ 지금 바로 투표해주세요”라고 포문을 열더니, 선배 시인 기형도의 ‘엄마 걱정’, 박준의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를 패러디했다. 온라인 커뮤니티의 댓글 형식을 차용하기도 했다.데뷔작부터 기발한 발상을 보여준 그의 후속작은 열림원 출판사가 의외로 패러디나 밈이 대폭 줄었다. 심경에 변화라도 있었을까.“데뷔작으로 사랑을 많이 받았지만, 한편으로 ‘얘는 밈이나 패러디 없인 시를 못 쓰냐’는 반응도 있었어요. 그런 것 없이도 시를 쓸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하지만 신작도 특유의 너스레는 여전하다. “미래는 헐렁한 양말처럼 자주 벗겨지지만/ 맨발이면 어떻습니까?”(시 ‘럭키슈퍼’에서) “떨군 고개를 원래 스트레칭하려 했던 척 한 바퀴/ 돌리는 것까지가 제 시집의 장기입니다.”(시 ‘도전! 판매왕’에서)두 번째 시집은 20대 시인이 생각하는 시집의 쓸모, 문학의 쓸모에 대한 고민도 두드러진다. 깔깔 웃는 얼굴 이면의 깊은 속내를 마주한 느낌이다. ‘도전! 판매왕’엔 시인들이 홈쇼핑에 나와 시집을 100초 동안 어필하는 장면이 나온다. 초조하게 차례를 기다리던 ‘나’는 자기 순서가 되자 말을 얼버무린다. “백 초는 너무 길고 시집은 너무 짧다. 그게 이 시집이 내 마음을 아프게 하는 이유다.”고 시인은 ‘내 시를 독자들이 왜 읽어야 할까’란 질문을 내내 마음에 담아뒀던 듯하다. 수록 시 ‘신년 운세’에선 시집을 부적에 빗댔다. “나도 부적 하나 써 줄게/ 만사형통이나 만사대길 말고// 남을 돕는 팔자를 가진 이의 이름 하나 적어 줄게/ 그러니까 이 시 꼭 사서 간직해/ 알았지?” 이번 시집은 소소한 행운을 가져다줄 부적처럼 간직할 만하다는 깜찍한 제안. 그럼 어떤 이에게 어울리는 부적일까.“어떤 종류든 상실을 경험해본 사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기로 한 사람에게 ‘나는 너의 팬이야’라고 말해주는 부적입니다.”그는 6월 첫 산문집을, 12월에도 또 다른 산문집을 낸다. 내후년까지 출간 일정이 정해져 있다고 한다. 2022년 등단한 시인이 바쁜 나날을 보내는 셈이다. ‘성공 요인이 뭐라고 생각하느냐’고 묻자 그는 정색하며 “알지 못하고, 알고 싶지도 않다”고 했다. “우연히 주파수가 맞듯이 제 시가 사람들과 공명할 수 있었지만, 그건 절대로 영원하지 않을 거예요.”그 대신 “계속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것”이라는 게 시인의 포부다. “무엇보다 ‘이게 성공하는 방법인 것 같아’라고 해서 그것만 밟아 나가는 건 별로 안 멋있지 않나요? 그건 별로 재밌지 않잖아요!”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15일 처음 방영된 채널A 토일드라마 ‘마녀’(사진)가 채널A 역대 드라마 1회 가운데 가장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16일 시청률 조사 회사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전날 오후 9시 10분 방송된 채널A 드라마 ‘마녀’의 1회 전국 시청률은 2.4%로 집계됐다. 수도권 시청률은 2.6%로 이보다 높았으며, 분당 최고 시청률은 3.3%까지 기록했다. 이로써 드라마 ‘마녀’는 역대 채널A 드라마 가운데 가장 높은 1회 시청률 기록을 세웠던 2021년 월화드라마 ‘쇼윈도: 여왕의 집’(2.1%)을 넘어섰다. 강풀 작가의 만화가 원작인 드라마 ‘마녀’는 자신을 좋아하는 남성들이 잇달아 다치거나 목숨을 잃자 세상과 단절한 ‘미정’(노정의)과 그를 구하려는 ‘동진’(박진영)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마녀’ 1회는 성인이 된 동진이 ‘데이터 마이너(정보 분석가)’라는 생소한 직업을 갖고 활약하는 모습과 고교 졸업 뒤 소식을 알 수 없었던 미정과 재회하는 내용이 담겼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1960년경 서아프리카 코트디부아르에서 벌어진 한 집회. 참석자들이 코트디부아르 지식인이자 유력 정치인의 이름을 연호했다. 여성들은 ‘아프리카 민주연합 만세’라는 글귀가 적힌 전통 옷을 입고 있었다. 끝없는 연설과 낭송, 구호…. 아프리카가 새로 태어나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식민지 개척자들의 통제를 떨쳐버리고 오롯이 자기 힘으로 일어서기 위해. 하지만 이 모든 것을 고통스럽게 바라보는 한 여성이 있었다. 본인도 흑인이지만 온전히 동조할 수가 없었다. 군중이 사용하는 지역어부터 그에겐 외국어였다. “내게는 연극, 난해한 바로크 오페라인 셈이었는데, 그 대본이 내게는 없었다. (중략) 나만 거기에서 배제된 듯한 고통스러운 감정이 들었다.” 2018년 대안 노벨문학상이라 불리는 ‘뉴아카데미 문학상’을 수상한 마리즈 콩데의 자전 에세이다. 평생 이중의 이방인으로 살아온 한 개인의 고뇌와 사유가 꾸밈없이 담겼다. 콩데는 1934년 프랑스령 과들루프섬에서 태어났다. 유복한 유년 시절을 보내며 성장 과정에서 프랑스 본토 문화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16세에 파리로 유학을 떠나 백인 중심 사회에서 흑인의 정체성을 처음 자각했다. 하지만 그는 아프리카에서도 환영받지 못했다. 프랑스에선 짙은 피부색 때문에 차별받았지만, 아프리카에서는 문화적으로 프랑스인과 가깝다는 이유로 질투받고 배척당했다. 아버지가 숨진 뒤 고향 과들루프와의 연결마저 끊기자 콩데는 이렇게 회고했다. “나는 무국적자, 태어난 곳도 소속된 곳도 없는 주거 부정자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시에 나는 완전히 기분 나쁘지만은 않은 일종의 해방감을 느꼈다. 이제부터는 온갖 평가에서부터 놓여 났다는 해방감을.” 그는 자신의 상처, 과오, 불안, 환희를 가감 없이 기록했다. 자기변명을 하거나 스스로를 훌륭한 인물로 그리지 않았다. 제목처럼 ‘민낯’에 가깝다. 교육자, 지식인, 어머니, 여성, 이방인으로서 인생 여정을 그대로 펼쳐놓는다. 코트디부아르를 시작으로 기니, 세네갈, 가나 등을 오가며 아프리카의 다양한 지식인, 정치인과 교유했던 일화도 생생히 담겼다. 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16일 윤동주 시인 서거 80주기를 맞아 일본에서 그가 몸담았던 대학들이 다양한 추모 행사를 개최한다. 윤 시인은 조선에서 연희전문학교(1938년 4월∼1941년 12월)를, 일본에서 도쿄 릿쿄대(1942년 4∼10월)와 교토 도시샤대(1942년 10월∼1943년 7월)를 다녔다.특히 올해는 80주기를 맞아 도시샤대와 릿쿄대 총장이 직접 기념 강연을 한다. 두 학교는 지난해 5월 상호협력·제휴에 관한 협정을 체결했다. 고하라 가쓰히로 도시샤대 총장은 기념 메시지에서 “릿쿄대 총장과 자연스럽게 두 대학을 연결하는 인물인 윤동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게 됐다”며 “이를 두고 일본에선 ‘윤동주 동맹’이라고 말하기도 한다”고 전했다.니시하라 렌타 릿쿄대 총장도 “릿쿄대 재학 중 지은 ‘쉽게 씌어진 시’ 등은 윤동주가 당시 지니고 있던 복잡한 생각과 그 배경인 전시 상황을 훌륭하게 표현한 시로서 국제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며 “릿쿄대의 모든 학생이 이 고귀한 선배의 영혼의 언어에 접하기를 소망한다”고 밝혔다.도시샤대는 16일 윤 시인에 대한 명예 문학박사 학위 수여식을 연다. 윤인석 성균관대 명예교수가 유족을 대표해 학위를 받을 예정이다. 릿쿄대는 23일 윤동주 시 낭독식을 연다. 릿쿄대 졸업생들은 사비를 모아 2009년 한일 양국어 시낭독 CD(25편 수록)를 낸 데 이어 제2집 CD를 발매한다. 일본어는 윤동주의 삶을 다룬 연극에서 주인공 역을 해 온 배우 니노미야 사토시 씨가, 한국어는 릿쿄대 교목을 지냈으며 ‘시인 윤동주를 기념하는 릿쿄회’ 공동대표인 유시경 신부가 낭독을 맡았다. 제1집 판매 수익금은 당시 릿쿄대 윤동주장학금의 마중물이 됐다.연희전문학교의 후신인 연세대도 14일 오전 11시 루스채플 예배당에서 윤동주 시인과 송몽규 선생의 80주기 추모식을 개최한다.윤인석 교수는 7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윤동주 시인은 그 후에 살아남은 이들이 헌신하고, 봉사하고, 그분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지켜냈다”며 정병욱(1922∼1982), 송몽규(1917∼1945) 등 윤동주의 지기(知己)들에 대한 관심을 부탁했다. 백영(白影) 정병욱은 윤동주의 연희전문학교 후배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원고를 보존했다가 광복 후 시집으로 출간했다.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광복 후 국문학 연구의 이론적 초석을 놓았다. 호 백영은 윤 시인을 잊지 않기 위해 그의 시 ‘흰 그림자’에서 따왔다. 송몽규는 윤동주의 고종사촌으로 학교를 함께 다녔고, 윤동주와 함께 검거돼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세상을 떠났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윤동주 시인(1917∼1945)은 지금 저희 젊은 세대보다 더 국제적인 삶을 사셨더라고요. 한중일 3국을 매개하는 인물이란 점에서도 상징성이 크다고 생각합니다.”일본 후쿠오카의 한일 다문화가정에서 태어난 서주훈 씨(33·연세대 사학과)에게 윤 시인은 ‘원조 한류맨’으로 다가온다. 서 씨는 16일 윤동주 서거 80주기를 앞두고 “28세에 요절한 조선 시인을 한국은 물론 일본의 도쿄와 교토, 후쿠오카 등 각지에서 지금까지도 기릴 만큼 일본인에게도 큰 영감을 줬다는 게 놀랍다”고 했다.우리의 가슴속 ‘영원한 청년’ 시인 윤동주. 그와 비슷한 연배인 청년 세대에게 윤동주의 시는 어떻게 느껴질까. 윤동주기념사업회가 올해 처음 개최한 ‘제1회 윤동주 평화포럼’에 참가한 2030세대 대학생 3명에게 윤동주 시를 읽는 이유를 들어봤다. 해당 포럼은 서 씨 등 사전 선발된 연세대 학생 14명이 참가해, 시인의 행적을 답사하며 윤동주의 삶과 문학을 배웠다. 지난달엔 윤 시인의 일본 모교인 릿쿄대와 도시샤대도 다녀왔다.서 씨는 “일본 유학 시절 쓴 ‘쉽게 씌어진 시’(1942년)를 읽으면 ‘육첩방은 남의 나라’ 같은 시구절에서 금세라도 ‘다다미 6장’을 깐 그의 조그만 하숙방으로 초대된 느낌을 받는다”며 “그가 느꼈을 문화적 이질감과 현실에 대한 고뇌가 절절하게 다가왔다”고 했다. 1917년 북간도 명동촌에서 태어난 윤 시인은 서울에서 연희전문학교(현 연세대)를 졸업한 뒤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와 교토에서 수학했다. 경찰에 붙잡힌 뒤 안타깝게도 광복 직전인 1945년 2월 16일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옥사했다.포럼 참가자들은 윤 시인에게 묘한 ‘동질감’을 느낀다고 입을 모았다. 시스템반도체공학을 전공하는 송준서 씨(23)는 “알면 알수록 윤동주는 완벽하고 신화적인 영웅으로 보이기보다는, 그냥 진짜 주변에 있을 법한 친구로 느껴졌다”며 “엄혹한 일제강점기에 자신의 문학을 계속 이어 나가면서 많이 슬퍼하면서도, 그래도 버텨 나갔던 친구로 여겨지면서 오히려 더 배울 점이 많았다”고 말했다. 그는 연세대 윤동주기념관에서 도슨트 봉사 활동도 하고 있다.“윤동주가 살면서 찾고자 했던 ‘의미’가 도대체 뭐기에 죽기 전까지 지키면서 살았는지를 저도 한번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시인에 대해서 알면 알수록 제가 찾고 있는 의미에도 좀 가까워지지 않을까요.”포럼 참가 학생 중 유일한 1학년생인 신지민 씨(20)는 평소에도 “손바닥 크기의 윤동주 시집을 항상 가방에 넣고 다니며 읽는다”고 했다. 특히 ‘편지’와 ‘돌아와 보는 밤’을 좋아한다고 한다. 어지러운 세상 속에서도 사색하는 느낌을 담고 있어서다. “문학 작품을 읽을 때 감수성이 풍부해진다고 얘기하잖아요. 그런데 그 감수성은 문학에만 국한되는 게 아니라 인간관계와 사회에 대한 생각을 하는데도 확장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런 면에서 윤동주의 시가 주는 울림은 더욱 크게 느껴져요.”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서거 90주기, 100주기에도 윤동주 시인은 ‘평화의 초석’으로 기억될 것이라 믿습니다.”16일 고 윤동주 시인(1917∼1945·사진)의 서거 80주기를 맞아 명예 문학박사 학위를 수여하는 일본 도시샤(同志社)대의 고하라 가쓰히로(小原克博) 총장은 11일 동아일보 서면 인터뷰에서 이렇게 강조했다. 윤 시인은 도시샤대 영문과에 재학 중이던 1943년 7월 ‘조선인 학생 민족주의 그룹’에 가담한 혐의로 일제 경찰에 체포됐다가 1945년 2월 16일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옥사했다. 고하라 총장은 “한 학생의 생명을 지키지 못한 아픔을 역사의 교훈으로 마음에 새기며 새로운 시대를 열고 싶다”고 말했다. 도시샤대가 세상을 떠난 뒤 적지 않은 시간이 흐른 윤 시인에게 학위를 수여하려는 까닭은 뭘까. 이 대학이 고인에게 명예박사 학위를 주는 건 처음이다. 고하라 총장은 “윤동주 서거 80주기인 2025년은 한국의 광복 80주년이자, 일본이 전후 80년을 맞는 해”라며 “이런 역사적 전환점에서 과거에 전쟁과 식민 지배의 시대가 있었다는 것, 윤동주는 혹독한 상황에도 시를 쓰며 살아갔다는 사실을 되새기는 것이 중요하다”고 취지를 밝혔다. 고하라 총장은 “한강 작가의 ‘과거와 죽은 자를 마주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윤 시인의 시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한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 기념 강연 ‘빛과 실’을 언급하며 “한강이 던진 핵심 질문인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를 윤동주의 시에서도 느낀다”며 “시대를 초월해 질문은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고 했다. “우리는 이 두 가지 질문에 ‘Yes(예)’라고 대답할 수 있는 길을 걷고자 합니다. 과거와 죽은 자들을 진지하게 마주하지 않는다면 책임 있는 미래를 전망할 수 없으니까요.” 윤 시인의 대학 후배이기도 한 고하라 총장은 도시샤대 학부·대학원을 졸업하고 1996년부터 동 대학 신학부에서 교편을 잡았다. 수업에서도 윤동주의 시를 자주 소개해왔다고 한다. 애송하는 시도 ‘서시’와 ‘새로운 길’ ‘십자가’ ‘별 헤는 밤’ ‘쉽게 씌어진 시’ 등 무척 많았다. 학생 때 2년 동안 한국어를 공부했으며, 한국 스터디투어 참가 때마다 연세대를 방문해 윤동주 시비와 기념관을 찾았다고 한다. 윤동주의 시는 어떤 순간에 가장 가슴에 와닿을까. 고하라 총장은 “크고 작은 일에 쫓겨 마음의 여유를 잃을 때”라고 했다. “윤동주의 시를 읽으면 ‘하늘과 바람, 별’처럼 변함없이 우리를 둘러싼 세계의 광대함과 섬세함, 세계의 신비로움, 그리고 인간 사회의 근본적인 부조리를 떠올릴 수 있습니다. 더 큰 맥락 속에서 나 자신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 같아요.” 16일 수여식에서 명예박사 학위는 윤 시인의 조카이자 유족 대표인 윤인석 성균관대 명예교수가 받는다. 고하라 총장은 이 자리에서 ‘윤동주를 말하다’라는 제목으로 기념 강연도 할 예정이다. 그는 “80주기와 학위 수여를 계기로 윤동주의 시와 그가 살았던 시대를 더 많은 이들이 기억하고 알게 되길 바란다”고 했다.“이러한 노력을 지속하는 게 중요합니다. 그래야 역사에 대한 책임 의식을 가진 세대가 더욱 성장할 수 있어요. 그들이 사람과 사람, 나라와 나라 사이에 평화를 가져다주길 기대합니다. 윤동주는 그러한 평화의 문화를 가져온 마중물이라고 믿습니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김하나, 황선우 작가의 에세이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이야기장수·사진)가 영미권 대형 출판사와 억대 판권 수출 계약을 맺었다. 11일 문학동네 계열사 이야기장수는 “영국 펭귄랜덤하우스의 임프린트(독자 브랜드) ‘더블데이’, 미국 하퍼콜린스의 임프린트 ‘에코’와 각각 억대 선인세 계약을 맺었다”고 밝혔다. 한국 에세이가 영어권 주요 출판사와 이 같은 계약을 맺는 건 드문 일이다. 수재나 웨이드슨 더블데이 대표는 이 책을 두고 “성 역할에 대한 고정 관념 및 규범을 넘어 여성들 사이의 우정과 연대, 돈독한 가치관 공유를 바탕으로 새로운 형태의 가족을 이루는 일을 그렸다”고 했다. 2019년 처음 출간된 이 책은 지난해 7월 미국 뉴욕타임스가 신문 1개 면을 할애해 소개한 것을 계기로 해외에서도 주목을 받았다. 김 작가는 “여자 둘, 고양이 넷이 함께 살기로 결정하고 집을 구입한 뒤부터 온갖 재미있는 일들이 펼쳐졌는데, 이 이야기가 이제 새로운 대륙의 독자들을 만나게 된 것도 그중 하나”라고 소감을 밝혔다. 황 작가는 “삶의 형태를 스스로 결정하고 만들어갈 수 있다고 믿는 많은 여성들에게 이 이야기가 가 닿기를 바란다”고 했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지난해 톨스토이문학상을 받은 김주혜 작가의 ‘작은 땅의 야수들’(다산책방)은 책 띠지도 눈길이 간다. 띠지 하면 떠오르는, 허리띠처럼 두른 직사각형이 아니다. 휘고 굽은 산맥의 결을 살려 만들었다. 그 뒤로 보이던 표지의 갈색 산맥은 띠지를 벗겨 보면 호랑이 등이다. 소설 첫머리에 나오는 ‘눈 덮인 깊은 산속 호랑이’와 이어진다. 띠지가 팝업북에서 주로 쓰는 일종의 가림막 역할도 한 셈이다. 출판계에서 ‘띠지’ 찬반은 해묵은 논쟁거리다. 출판사로선 표지엔 담기 어려운 홍보 문구를 넣을 수 있어 대다수 책에 필수적으로 쓰인다. 하지만 일각에선 책 제작 비용만 상승시키는 거추장스러운 도구라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이에 최근엔 ‘작은 땅의 야수들’처럼 띠지를 재해석해 활용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한 번 보고 버리는 게 아니라 책의 필수 부속품처럼 만드는 것이다. 띠지를 활용해 한 권의 책을 두 가지 버전처럼 만들기도 한다. 지난해 말 나태주 시인 등단 55주년을 기념해 나온 필사책 ‘오늘도 이것으로 좋았습니다’(열림원)는 띠지로 책의 4분의 3 이상을 덮어 멋진 그림표지처럼 만들었다. 그런데 띠지를 벗기면 나 시인의 시 ‘행복’이 숨어 있다. 한 출판사 편집자는 “요즘엔 띠지가 책 디자인을 해치지 않게 하는 건 물론이고 띠지가 있어야 더 예쁜 디자인을 만들기도 한다”고 말했다.출간된 지 꽤 시간이 흘렀지만, 띠지의 재발견으로 출판계에서 호평받는 작품은 여럿 있다. 그림책 ‘할아버지가 사랑한 무지개’(쥬쥬베북스)는 표지 한복판에 휘날리는 무지개 깃발이 놓여 있다. 언뜻 표지처럼 보이지만 띠지다. 작품 속 주인공이 할아버지 다락방에서 발견한 무지개 깃발을 띠지로 만들었다.‘주기율표를 읽는 시간’(동아시아)은 책을 감싸고 있는 두툼한 띠지를 펼치면 한눈에 볼 수 있는 주기율표로 변신한다. 멘델레예프 주기율표를 포스터처럼 크게 활용할 수 있다. 사계절 출판사의 ‘욜로욜로 시리즈’ 역시 띠지를 펼치면 포스터가 된다. 독특하게 접어 올린 띠지 겉면엔 다양한 개성의 타이포를 새기고, 안쪽엔 각 책을 상징하는 이미지를 인쇄했다. ‘안상수체’로 유명한 안상수 디자인학교 학생들과 협업해서 제작했다고 한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는 “국내에서 띠지는 2000년 초중반 북디자인 경쟁이 시작될 때 본격적으로 시작됐고, 2015년 무렵 도서정가제가 도입될 때 띠지를 재해석한 실험작이 많이 나왔다”며 “환경을 생각해서 (띠지를) 없애자는 얘기도 많이 나오지만, 출판사로선 독자의 눈에 띄기 위한 중요한 수단이기 때문에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일제강점기에 건립된 경북 칠곡군 소재 ‘구(舊) 왜관 성당’(사진)이 국가등록문화유산이 된다.국가유산청은 7일 “왜관수도원이 소유하고 있는 구 왜관 성당을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등록해 13일 고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구 왜관 성당은 1928년에 건립된 예배당 건물로 현재까지도 원형을 비교적 잘 유지하고 있다. 높은 첨탑과 반원 아치 모양의 창호 등은 당시 성당 건축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해당 성당은 1895년 경북 최초의 천주교 본당(本堂)인 가실본당에 소속된 공소(公所)였다가 본당으로 승격되면서 건립됐다. 본당은 주임 신부가 상주하는 성당, 공소는 본당보다 작은 단위로 주임 신부가 상주하지 않는 예배소를 일컫는다.국가유산청은 “6·25전쟁 당시 베네딕도 수도원이 칠곡군으로 피란 와서 정착한 뒤에 오늘날 ‘성 베네딕도 왜관수도원’이 성립될 때까지 일련의 과정을 증명하는 역사적 장소로서 가치가 있다”고 설명했다.왜관수도원은 칠곡에 뿌리를 내린 뒤 아시아 최대인 베네딕도회 수도원으로 자리매김했다. 지난달에는 성 베네딕도회 오틸리엔 연합회 창설 141년을 맞아 첫 해외총회가 왜관수도원에서 열리기도 했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발굴은 옛사람이 남긴 흔적을 찾아 역사의 빈 페이지를 채워가는 과정이다. 기록이 다 말해주지 못하는 진실이 유물과 유적에는 남아 있다. 당시 사람들의 생활상뿐만 아니라 정치, 외교, 군사 활동의 흔적까지 읽을 수 있다. 수십 년간 발굴 현장을 누벼 온 이한상 대전대 역사문화학 교수가 교과서를 바꿀 정도로 획기적인 발굴 사례 52개를 소개했다. 선사시대부터 삼한, 고구려·백제·신라·가야, 통일신라까지 아우른다. 발굴 과정에 얽힌 에피소드도 풍부하게 담았다. 저자는 경남 창원 다호리 유적에서 도굴꾼이 미처 발견하지 못한 유물을 찾아내 가슴을 쓸어내렸던 경험을 소개한다. 2000년 전 통나무 목관 아래 유물이 가득 담긴 대나무 바구니가 있었던 것. 바구니 속에는 동검, 철검, 중국 한나라의 청동거울과 동전, 붓, 손칼 등이 있었다. 도굴꾼들이 목관 하부의 제사용 구덩이인 ‘요갱’의 존재를 몰랐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런가 하면 미숙한 발굴이 돌이킬 수 없는 결과로 이어진 안타까운 사례도 있다. 백제 무령왕릉은 도굴되지 않고 온전한 상태로 발견됐지만 1970년대에 봉분을 복원하다가 왕릉 건축 부재인 전돌이 봉분 무게를 견디지 못해 다수 부서졌다. 1400년 이상 보존돼 온 백제 왕릉을 20세기 한국에서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망가뜨린 것. 무령왕릉은 고고학계 최악의 발굴로 꼽힌다. 책 속 발굴 에피소드를 따라가다 보면 한국 고대사의 흐름이 일목요연하게 드러난다. 유물과 유적, 발굴 현장을 찍은 컬러 사진 100여 장이 이야기를 더 실감나게 전한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나의 일상은 주로 며칠씩 코드를 작성하고 더 이상 버틸 수 없을 때만 그 자리에서 잠을 자는, 정신없는 소용돌이의 연속이었다.”빌 게이츠 미국 마이크로소프트(MS) 공동 창업자의 자서전 ‘소스코드’ 한국어판(열린책들·사진)이 5일 국내에 발간됐다. 올 10월 70세가 되는 게이츠 창업자가 생애 처음 쓴 자서전으로, 3부작으로 기획된 자서전 가운데 첫 번째 권이다. 게이츠 창업자는 책에서 “어린 빌 게이츠는 다루기 쉬운 아이는 아니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내가 오늘날 어린 시절을 보내고 있다면 아마 자폐 스펙트럼 진단을 받았을 것”이라고도 썼다. 하지만 그는 컴퓨터란 새로운 세계에 깊이 빠져 있던 학생이었다. 진눈깨비를 뚫고 산에 하이킹을 다니면서도 머릿속으로는 컴퓨터 프로그램 코드를 떠올렸다고 한다. 엄격했던 어머니 메리 맥스웰 게이츠와는 자주 대립했다. 게이츠 창업자는 어머니가 준 영향에 대해 “어머니의 기대는 내게 내면화되어 성공하고, 두각을 나타내고, 중요한 일을 이루고 싶다는 더 강한 야망으로 피어났다”며 “마치 어머니의 기준을 크게 뛰어넘어 그 문제에 대해 더 이상 거론할 필요가 없게끔 만들어야만 할 것 같았다”고 짚었다. 어머니 메리는 1994년 6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외할머니 아델 톰프슨은 카드 게임의 명수였다고 한다. 이전에 본 적 없는 수와 확률이 조합된 상황에서 늘 최적의 선택을 내리는 모습을 보여줬다. 게이츠 창업자는 “올바른 답은 항상 존재하는 법이므로 내가 찾기만 하면 된다는 확신을 강화할 수 있었다”고 했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1971년 미국 서부 올림픽 산맥. 진눈깨비를 뚫고 산을 오르며 사색에 빠진 16세 소년이 있었다. 컴퓨터라는 새로운 세계에 깊이 빠져 있던 학생이었다. 그는 발밑을 주시한 채 묵묵히 걸으며 머릿속으로는 컴퓨터 프로그램 코드를 떠올렸다. 학생의 이름은 빌 게이츠. 그는 훗날 세계에서 가장 큰 회사 중 하나이면서 새로운 산업을 태동시킨 마이크로소프트(MS)를 창업하게 된다.빌 게이츠가 70세를 맞아 낸 첫 자서전 ‘소스코드’ 한국어판(열린책들)이 5일 출간됐다. 3부작으로 기획된 자서전 가운데 1부로, 1955년 출생부터 1975년 마이크로소프트 설립까지를 다뤘다. “부모님 두 분을 추억하며 누나와 여동생에게 책을 바친다”는 헌사가 암시하듯 신간은 그의 성장 과정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가족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게이츠 창업자가 회고하는 어린 시절 풍경엔 할머니 댁 식탁에 앉아 카드 패를 기다리는 여덟 살짜리 아이가 있다. 그의 외할머니 아델 톰슨은 카드 게임의 명수였다. 외할머니는 이전에 본 적 없는 수와 확률이 조합된 상황에서 늘 최적의 선택을 내렸다고 한다. 게이츠 창업자가 할머니를 처음 이기는 데 5년이 걸렸다. 그는 “카드 게임을 통해 나는 아무리 복잡하고 불가사의해 보이는 무엇이라도 결국에는 알아낼 수 있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배웠다”며 “올바른 답은 항상 존재하는 법이므로 내가 찾기만 하면 된다는 확신을 강화할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어린 빌 게이츠는 다루기 쉬운 아이는 아니었다. 학교에 각자 물건을 가져와 발표하는 쇼 앤드 텔(show-and-tell) 시간에는 소의 허파를 가져와 동급생을 기절시키기도 했다. 그는 “만약 내가 오늘날 어린 시절을 보내고 있다면 아마 자폐 스펙트럼 진단을 받았을 것”이라며 “아무런 거리낌 없이 이상한 질문으로 수업을 방해하고 선생님의 시간을 많이 빼앗는 아이였다”고 고백했다. 외할머니의 카드 기술처럼 흥미를 느끼는 일에는 열정을 쏟아부었고 흥미가 생기지 않는 일에는 아무런 관심도 기울이지 않았다.어머니 메리 맥스웰 게이츠와는 자주 대립했다. 어머니가 운영하는 “잘 조직된 가정”에선 침대를 정리하지 않거나 머리를 빗지 않거나 구겨진 셔츠를 입은 채 집을 나서는 일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게이츠 창업자는 어머니가 자신에게 준 영향에 대해 이렇게 회고했다. “어머니의 기대는 내게 내면화되어 성공하고, 두각을 나타내고, 중요한 일을 이루고 싶다는 더 강한 야망으로 피어났다. 마치 어머니의 기준을 크게 뛰어넘어 그 문제에 대해 더이상 거론할 필요가 없게끔 만들어야만 할 것 같았다.”막대한 부를 사회에 환원하게 된 배경에 대해서도 어머니의 영향을 언급했다. 어머니는 “좋은 청지기가 돼야 한다”는 말을 반복했다. 어떤 부를 획득하든 그것을 잠시 관리하는 청지기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정기적으로 상기시켜 주었다. 부를 얻으면 그것을 나눠야 할 책임도 따르는 것이라고 강조하곤 했다.“나는 인생의 대부분을 앞날에 집중하면서 살았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점점 더 과거를 돌아보게 된 것도 사실이다”라는 고백처럼 책 곳곳에는 과거의 인물과 풍경에 대한 게이츠의 그리움이 묻어난다. 특히 1994년 64세 일기로 세상을 떠난 어머니에 대한 마음이 절절하다. 게이츠는 “내가 그 기대에 부응하려고 얼마나 노력하는지 충분히 확인할 만큼 오래 머물지 않고 내 곁을 떠난 어머니가 안타깝고 그립다”고 했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해당) 도서는 (표지가) 랜덤으로 발송됩니다.” 지난해 교보문고가 선정한 ‘소설가 50인이 뽑은 올해의 소설’ 1위에 올랐던 김애란 작가의 ‘이중 하나는 거짓말’(문학동네). 최근 이 책을 온라인으로 구매하면 위와 같은 문장이 뜬다. 지난해 8월 첫 출간된 이 소설은 지난해 말부터 새로 만든 표지가 3종류로 늘어났기 때문이다. 마치 아이돌 음반에 멤버별 포토 카드가 랜덤으로 든 것처럼, 소설 속 주요 인물(소리와 지우, 채운)별로 ‘스페셜 에디션’을 만들었다. 기존에 있던 책의 표지나 제본 방식을 바꾸는 건 출판계에선 흔한 일이다. 가령 판매 10만 부 돌파 같은 특별 이벤트가 있을 때 등장하는 고전적 마케팅이다. 하지만 최근엔 출간 1년도 안 된 책들의 표지 등을 새로 바꾸는 ‘리커버(re-cover)’ 트렌드가 서점가에서 불고 있다. 특정 지역 한정판이거나 서점마다 표지가 다른 경우도 있다.조예은 작가의 호러 소설 ‘적산가옥의 유령’(현대문학)은 출간 2개월 만에 ‘군산 특별판’을 새롭게 내놓은 경우다. 말 그대로 전북 군산 시내 서점에서만 판다. 지난해 6월 출간된 소설은 작가가 군산에 있는 ‘히로쓰 가옥’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점에 착안해 이런 에디션을 내놓았다. 서점 관계자는 “수량이 적다 보니 군산 특별판을 사려고 멀리서 군산을 방문하는 독자들도 있다”고 귀띔했다.서점별로 자체 표지를 만드는 경우도 보편화되고 있다. 교보문고의 ‘리커버: K’와 예스24 ‘예스리커버’, 알라딘 ‘본투리드 프로젝트’ 등이 자체적으로 만든 리커버 브랜드들. 예를 들어 노동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은 ‘가짜 노동’(자음과모음)은 온라인 서점마다 표지가 다르다. 이슬아 작가의 ‘가녀장의 시대’(이야기장수)는 예스24에서 작가가 직접 그린 그림이 실린 표지의 책을 살 수 있다. 예스24 측은 “해마다 진행하는 ‘한국 문학의 미래가 될 젊은 작가’ 1위 기념으로 제작했다”고 설명했다. 리커버를 통해 구매 연령층의 확장을 시도하기도 한다. 스테디셀러인 ‘벌거벗은 한국사’(프런트페이지)는 원래 자녀를 둔 40대 여성이 주요 구매층. 하지만 최근 2030 여성층에 인기가 높은 디자인 스튜디오 ‘오이뮤’와 협업한 새로운 표지로 관심을 끌고 있다. 하지만 리커버가 많아지며 독자들이 피로감을 호소하는 경우도 있다. 책의 내용이 보강되는 개정증보판도 아니고, 표지만 바꿔 구매를 유도하는 건 문제라는 지적이다. 한기호 출판평론가는 “빈번한 리커버는 책 자체의 무게감을 훼손시킬 수도 있다”며 “리커버를 하더라도 책의 가치를 어떻게 끌어올릴지도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증축공사 중 화재가 발생한 국립한글박물관이 임시로 소장 유물 전부를 다른 박물관으로 옮기기로 했다. 올해 10월로 예정된 재개관 일정도 미뤄질 전망이다.2일 국립한글박물관 관계자는 “혹시 모를 위험에 대비하기 위해 1층 수장고에 남아있던 유물을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민속박물관으로 분산해 옮길 예정”이라고 밝혔다. 박물관은 지난해 10월 증축공사를 시작하면서 유물 전반을 수장고에서 별도로 관리해왔다. 현재까지 불에 타거나 피해를 본 유물은 없다고 박물관 측은 밝혔다.전날 오전 국립한글박물관에서는 큰불이 나 약 7시간 만에 완전히 진화됐다. 3층에서 시작된 불이 4층으로 번지면서 두 층이 전소됐다. 박물관 측은 건물 1∼4층에 걸쳐 대대적인 공사를 진행 중이었다. 소방당국은 증축공사 현장에서 철근 절단 작업을 하던 중 불티가 튀어 화재가 시작됐을 수 있다고 보고 정확한 화재 원인을 조사 중이다. 당초 10월로 예정된 박물관 재개관 일정도 미뤄질 공산이 크다.박물관은 한글과 관련한 문헌 자료 약 8만9000점을 소장하고 있다. 조선 제22대 임금인 정조의 편지와 글씨를 모은 ‘정조 한글어찰첩’과 한국 최초 가집 ‘청구영언’ 등 다양한 보물이 포함돼있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2025년 을사년도 벌써 한 달이 지났습니다. 혹시 1월 1일 ‘책을 열심히 읽겠다’고 다짐하셨다가 작심삼일에 그친 분들이 계신가요. 2025년 국내 처음으로 100주년을 맞은 동아일보 신춘문예의 당선 작가들에게 당신의 ‘인생 책’은 무엇인지 물어봤습니다. 작가별로 나의 인생 책, 추천 사유, 책 속 한 문장을 정리했습니다. 설 연휴를 마무리하며 신춘문예 ‘백년둥이’ 작가들이 마음속에 간직한 책들을 펼쳐 보면 어떨까요.》김준현 / 중편소설 당선자◇사랑과, 사랑을 둘러싼 것들/한강 지음·열림원이 에세이집을 처음 읽은 건 열일곱 살 때였다. 농도 짙은 먹빛으로 충만한 작가의 첫 장편소설 ‘검은 사슴’을 읽은 직후였다.만 스물여덟 살의 작가가 미국 아이오와에서 만난 다국적 작가들의 이름을 소제목으로 쓴 책이다. 삼 개월 남짓한 시간 동안 베트남, 아르헨티나, 팔레스타인, 튀르키예 등지에서 온 작가들과 함께했던 순간을 작가는 기억하려고 한다. 기록하는 사람이 아닌 기억하는 사람이라고 되뇔 때의 울림이 오래 남았다. 흐르는 시간과 함께 속수무책으로 흘러가는 게 아니라 잠시 멈춰 설 수 있는 사람. 지면이 아니라 내면에 먼저 지나가 버릴 모든 순간을 남기고자 하는 사람. 십 년 전 연희문학창작촌에 입주했던 시절 새벽이 깊도록 불 켜진 작가들의 방 창문을 보며 우리는 ‘쓰는 공동체’라는 유대감을 느꼈다. 그건 손을 잡거나 함께 무언가를 도모하지 않아도 연결돼 있다는 느낌이다. 얇고 가벼운 문고본의 모습으로 단정하고 담백한 시선으로 이국의 작가들이 살아온 삶의 수많은 궤적을 책은 기억하고 있다.● 책 속 한 문장 “나는 기억하는 사람, 모두가 잊은 것들을 기억하는 사람, 내가 기억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잊을 때까지, 다만 그때까지.”박진호 / 단편소설 당선자◇열한 계단/채사장 지음·웨일북첫 직장생활을 시작했던 서른 살엔 세상에 있는 모든 ‘기성의 것들’이 나를 공격한다고 생각했다. 계급과 시스템, 성평등, 다양성 등등. 돈을 버는 사회인으로 마주하는 현실 문제는 학생 신분으로 손쉽게 외쳤던 이상과는 괴리가 너무 컸다. 그렇다고 뭔가 대단한 행동을 한 것도 아니었다. 속으로만 그 불합리함에 분노하고 삭일 뿐이었다. 좀 우습게 들릴 수 있겠지만 그때는 출근하는 매일이 굴욕적이고 절망적이었다. 오랜 시간 천착했던 고민들이 사실은 세상 물정 모르는 이십 대의 치기였다는 걸 인정하게 될까 봐. 그러다 만난 책이 채사장의 에세이 ‘열한 계단’이다. 이 책으로 위로를 받은 한편 슬픈 마음이 들었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인생의 중요한 시절을 건너버린 기분이었다. 지금도 내가 너무 멀리 와 버린 건 아닌지 씁쓸한 의심이 들 때면 정신적으로 불안했던, 그리고 가장 치열했던 서른 살의 일기와 이 책을 펼쳐 보곤 한다.● 책 속 한 문장 “세상에 대한 우월감을 갖고 자신이 선택받은 사람이라는 느낌을 가져야 하는 시기는 누구에게나 필요한 것인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이러한 경험은 앞으로 인생을 살아가며 세상과 대결할 때 그 힘을 비축하게 하고, 세상에 무릎 꿇게 되었을 때에는 다시 일어서게 하는 자존감의 근원이 되기 때문이다.”장희수 / 시 당선자◇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마쓰이에 마사시 지음·김춘미 옮김·비채이전까지 소설은 흥미진진한 갈등이 해소되는 모습을 지켜보는 재미를 준다고 생각했다. 그런 편견을 깨준 신비로운 책이다. 시종일관 잔잔하다. 그럼에도 읽다 보면 차분한 목소리의 주인공이 얼마나 진지하고 치열하게 고민하는지, 그 속마음을 엿보게 하는 매력이 있다. 무라이 슌스케 설계사무소 직원들이 도서관 설계 공모를 위해 산속 별장에서 합숙하는 이야기다. 주인공은 수습 건축가이고, 그의 스승은 과묵하다. 그 탓에 주인공은 스승의 건축을 배우기 위해 끊임없이 스스로 고민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건축은 예술이 아니라, 삶 그 자체”라며 마치 ‘츤데레’처럼 툭툭 내놓는 스승의 말을 읽으면 괜한 긴장감까지 느껴진다. 도드라지는 갈등이 없어도 흘러가는 이야기를 읽자니 어딘가 위로가 되기도 한다. 우리 삶이 별일 없어 보인대도 각자는 치열하게 고민하고 있는 것일 테니.● 책 속 한 문장 “공사하는 사람들은 무라이 슌스케의 이러한 디테일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면서 손을 움직였을까. 그들의 생각은 끝내 알려지지 않는다 해도, 한 일은 이렇게 남는다. 선생님의 설계는 시공자의 긍지에 호소하는 것이었다.”류한월 / 시조 당선자◇모래의 여자/아베 코보 지음·김난주 옮김·민음사어느 날 나는 한 권의 책 속에 빠져 모래 구덩이 아래로, 아래로 한없이 내려갔다. 그곳엔 햇볕 한 줌 들지 않았고 바람조차 메말라 고요했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때 나는 여전히 나였지만 더 이상 이전과 같은 나는 아니었다. 이 책은 곤충 채집을 위해 황량한 땅으로 떠난 한 남자가 모래 구덩이 속 마을에 갇히면서 벌어지는 기묘하고도 묵직한 이야기를 펼쳐 보이는 소설이다. 기이한 설정 속에 인간 실존의 불안, 억압과 자유, 균질화된 사회에 대한 깊은 통찰이 흠뻑 담겨 있다. 타인의 빛나는 개성은 회색 종족에게 자신의 결핍, 즉 무채색의 단조로운 삶을 비추는 잔인한 거울이다. 소설은 자신의 고유한 색을 찾기보다 회색에 섞여 안주하려는 이들에게 진짜 자신의 모습을 마주하도록 촉구한다. 소설은 1964년 테시가하라 히로시 감독에 의해 영화화됐는데 원작자인 작가가 직접 각본을 담당했다. 흑백 영상 속 끝없이 펼쳐지는 모래 언덕과 그 질감이 원작 못지않은 감동을 준다.● 책 속 한 문장 “회색 종족은 자기 이외의 인간이, 빨강이든 파랑이든 초록이든, 회색 이외의 색을 지녔다고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견딜 수 없는 자기혐오에 빠진다.”윤주호 / 희곡 당선자◇파수꾼/이강백 지음·지만지드라마좋은 희곡은 등장인물 수만큼 다른 이야기를 숨기고 있고 그래서 읽을 때마다 다르게 읽힌다고 배웠다. 이강백 선생님의 ‘파수꾼’을 다시 읽었다. 베테랑 파수꾼인 ‘나’는 수습 파수꾼인 ‘다’를 반기며 “넌 아직 채워지지 않은 내 꿈, 나를 애태우는 갈증이란다. 이 황야의 한복판에서 난 너라는 꿈을 꾼다”라고 말한다. 이전에 읽었을 때는 이 말이 파수꾼 ‘나’의 자부심으로 들렸는데 이번에는 그의 두려움으로 들렸다. 파수꾼 ‘나’는 자신의 눈으로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적을 존재의 의미로 삼으며 평생을 황야에서 홀로 살았다. 그런 ‘나’의 채워지지 않던 꿈, 애태우던 갈증, 혼자서 꾼 꿈은 무엇일까. 오늘 처음 본 ‘다’가 자신이 평생을 기다려 온 바로 그 사람이라고 생각한 그 확신은 어디서 온 걸까. 그 말을 들었을 때 ‘다’는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작가는 “우화적인 희곡의 장점은 어떤 시간에 어떤 시대를 살았던 사람이 읽어도 언제나 공감을 얻을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10년 뒤에 다시 이 책을 읽으면 그때의 나는 어떤 이야기를 발견하게 될까. 파수꾼 ‘나’가 황야에서 홀로 꾼 꿈을 그때는 어떤 마음으로 읽게 될 것인가.● 책 속 한 문장 “넌 아직 채워지지 않은 내 꿈, 나를 애태우는 갈증이란다. 이 황야의 한복판에서 난 너라는 꿈을 꾼다.”나혜진 / 동화 당선자◇파피용/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백선희 옮김·열린책들‘개미’를 통해 알게 되고 ‘파피용’을 접한 뒤 사랑하게 됐으며 ‘고양이’로 나의 시선을 한 번 더 끌어 끝없이 바라보게 만드는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 기발한 상상력을 통하여 인간 사회를 보여주는 작가는 ‘파피용’에서도 적나라한 인간 사회를 보여 줬다. 책은 지구에 더 이상 살기 어려워지자 우주로 나가기 위한 나비 모양 우주선을 만들고 그것을 타고 떠나는 이야기다. 제목은 우주선의 이름. 주인공들은 파피용에서 1000년 동안 여행하게 되는데 그 속에서도 하나의 인간 사회가 만들어지며 여성 한 명, 남성 다섯 명을 제외하고는 전부 자멸한다. 도착한 행성에서 여러 일이 있고 난 뒤 유일하게 남은 남녀 한 쌍은 “영원히 탈출을 계속할 수는 없으니까”라고 말한다. 인간들이 지구를 망가뜨려 그것을 해결하지 못해 탈출했고, 파피용 안에서도 인간들은 욕망을 좇다 망가졌다. 일을 벌여 망가뜨리기만 하고 책임지지 못하는 인간 사회에 대해 한마디 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본인의 선택에 대한 회피와 도망만으로는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없을 것이다. 작게는 개인의 선택에, 크게는 지구의 환경과 인간 사회에 대한 선택으로부터 영원히 탈출을 계속할 수는 없다.● 책 속 한 문장 “영원히 탈출을 계속할 수는 없으니까.”김민성 / 시나리오 당선자◇유혹하는 글쓰기/스티븐 킹 지음·김진준 옮김·김영사‘쇼생크 탈출’과 ‘미저리’로 유명한 저자가 자신의 어린 시절부터 작가로서 성공하기까지 과정 그리고 죽음의 문턱까지 갔던 교통사고 이야기까지 파란만장한 삶의 여러 장면을 전하는 에세이에 가깝다. 스토리텔링 작법이나 기술적인 문장 스킬보다 글쓰기의 진수를 전한다. 작가로서 그의 철학과 인생관이 잘 녹아 있는 책이다. 글쓰기가 정체된 작가뿐만 아니라 새로 글을 쓰고 싶은 이들이나 킹의 작품들을 좋아하는 모든 독자에게 세계적 베스트셀러 작가의 삶을 엿보는 쏠쏠한 재미를 준다. 독자뿐 아니라 작가들 사이에서도 필독서로 통한다. 저자와 나에게 유일한 공통점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힘겨운 글쓰기 여정을 묵묵히 지지해 준 아내의 존재다. 아직도 나는 아내의 굳건한 믿음이 필요한 미완의 작가다. 하지만 언젠가는 나도 킹처럼 당당히 말하고 싶다. “이 작품을 나의 아내에게 바칩니다!” 그날을 향한 나의 글쓰기 여정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책 속 한 문장 “글쓰기는 외로운 작업이다. 나를 믿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정의정 / 문학평론 당선자◇랭스로 되돌아가다/디디에 에리봉 지음·이상길 옮김·문학과지성사푸코 평전 등을 펴내고 성소수자의 정체성 문제를 탐구해 온 프랑스 사회학자 디디에 에리봉의 회고록. 동성애자이자 지식인으로서 새 삶을 살아가기 위해 노동자 계급의 가족을 떠났던 저자가 아버지의 죽음을 계기로 자신과 가족의 과거를 탐사해 나가는 여정을 떠난다. 저자는 고향 랭스로 가서 계급적, 성적, 지적 정체성들이 충돌하고 교차하는 상황을 응시한다. 저자의 자기 탐구는 내가 무엇에도 집중하기 어려운 시절, 유일하게 집중할 수 있게 했던 주제다. 졸업 논문을 쓰며 전세 대출도 받아야 했다. 은행에서 대출을 거절당할 때마다 내 처지는 ‘공부하는 학생’이라는 수식어가 사라진 ‘무소득자’로 정리됐다. 아버지는 예순이 넘어서도 건설 현장에서 노동을 했다. 어머니는 늘 실업 위기 속에 있었다. 나는 우리 부모 세대보다 무언가 나아져야만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문학 세미나에서는 노동에 대해 말하지만 나는 노동자 계급과는 아무 상관 없는 것처럼 말하곤 한다. ‘퀴어한 엘리트’가 되는 것에는 거리낌이 없으면서도 마치 노동에 대해서는 말할 자격이 없는 사람처럼 군다. 나는 뭘까? 이때 읽은 책이다.● 책 속 한 문장 “내겐 ‘불평등’이라는 말조차, 착취라는 적나라한 폭력의 실상을 현실감 없게 만드는 완곡어법처럼 비친다.”문은혜 / 영화평론 당선자◇프랑켄슈타인/메리 셸리 지음·김선형 옮김·문학동네소설이 주는 통찰은 20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우리 각자가 괴담을 쓰는 겁니다”라는 바이런의 제안으로 네 명이 글을 쓰기 시작하고, 열아홉의 나이로 메리 셸리는 공상과학소설인 프랑켄슈타인을 완성한다. 공상과학소설 장르는 단순히 공상적이고 환상적인 이야기가 아니다. 합리적 상상력과 알레고리를 통해 현실의 모순을 인식하도록 하는 미학적 장르로 진리의 파편을 드러낸다. 프랑켄슈타인이 만든 괴물은 이상만 추구하던 무책임한 과학의 산물이다. 주인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 버려진 괴물, 사랑을 갈구한 아담으로서 무모한 과학실험이 불러온 재앙을 경고한다. 생명복제 기술이 사회적 합의보다 훨씬 앞선 오늘날 사회에서 생명에 관한 책임은 어떠해야 하는지, 교육과 양육이 개인의 도덕 발달에 미치는 영향, 이질감이 주는 혐오와 편견 등에 관하여 생각할 거리를 많이 준다.● 책 속 한 문장 “제발 프랑켄슈타인, 다른 사람한테는 잘해주면서 나만 짓밟지 말아 주시오. 나는 당신의 정의를, 당신의 너그러움과 애정을 받아야 마땅하오. 나는 당신의 피조물이잖소.”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김기윤 기자 pep@donga.com}

지혜와 통찰을 상징하는 뱀은 예로부터 영물로 여겨져 왔다. 특히 문인들에겐 아름다움과 저주 같은 상반된 이미지로 상상력을 자극하는 동물이었다. 2025년 을사년 ‘청사(靑蛇·푸른 뱀)의 해’를 맞아 설 연휴에 읽어볼 만한 ‘뱀’을 주제로 한 문학작품 세 권을 추려 봤다. 이근혜 문학과지성사 주간과 강윤정 문학동네 부장, 김민경 민음사 편집자, 소설가 김홍 성해나의 추천을 받았다.① 서정주 ‘화사집’ “사향(麝香) 박하(薄荷)의 뒤안길이다./아름다운 배암……/을마나 크다란 슬픔으로 태여났기에, 저리도 징그라운 몸둥아리냐//꽃다님 같다.” 미당 서정주의 첫 시집 ‘화사집’(1941년)의 표제작 화사(花蛇)는 사향노루 향과 박하 향이 진동하는 뒷길에서 마주친 뱀을 다룬다. 시인은 뱀이란 이미지에 따라다니는 저주와 혐오를 환기하기에 앞서 ‘아름다운 배암’이란 말을 먼저 내뱉으며 뱀이 가진 아름다움에 매료된다. 뱀이 문화·역사적 맥락에서 그만큼 다양하게 해석된 이유도 이런 매혹 때문일 것이다. 이 주간은 “뱀이라고 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작품 중 하나”라고 추천했다. ② 이청준의 ‘꽃과 뱀’ 단편소설 ‘꽃과 뱀’에서 뱀은 어두운 죄의식과 금기의 이미지로 쓰인다. 대대로 조화가게를 운영하는 주인공 ‘나’는 어느 날 꽃 더미 속에서 뱀을 목격한 뒤 밤마다 환각에 시달린다. 그의 아버지 역시 뱀 환각에 시달리다가 세상을 떠났다. 이 작품에서 뱀은 실종된 누이에 대한 가족의 죄의식을 상징한다. 뱀은 미끈미끈한 몸으로 집안 곳곳을 헤집으며 신경을 서서히 옥죈다. 공포소설을 읽는 듯한 분위기도 느낄 수 있다. ③ 생텍쥐페리 ‘어린왕자’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뱀 나오는 작품’을 꼽자면 ‘어린왕자’를 빼놓을 수 없다. 많은 이들이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부터 떠올리지만 실은 뱀이 한 마리 더 나온다. 마지막 대목에 어린왕자를 죽게 만드는 ‘노란 독사’다. 하지만 이 독사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아니다. 지구에서 할 일을 마친 어린왕자가 자신이 떠나온 별로 돌아가게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뱀은 영혼을 육체란 껍데기에서 해방시켜 고향으로 보내주는 메신저인 셈이다. 뱀은 스스로 허물을 벗는 존재이기에 이런 역할이 설득력 있게 읽힌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보컬 프라이(vocal fry)’는 요즘 미국에서 가장 핫한 논쟁거리 중 하나다. 목소리를 깔고 긁는 소리처럼 내는 발성인데 기름에 튀길 때 나는 소리와 비슷하다고 붙은 이름이다. 주로 젊은 여성의 말투로 인식되며, 지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조롱의 대상이 되곤 한다. 숱한 화제를 몰고 다니는 할리우드 스타 킴 카다시안이 대표적인 사례. 재밌는 건 20세기 최고 지성으로 꼽히는 미국 언어학자 놈 촘스키도 보컬 프라이를 쓴다는 점이다. 촘스키는 되고, 카다시안은 안 된다는 걸까. 똑같은 언어 현상에 다른 잣대가 적용되는 셈이다. 사람은 누구나 말할 때 무의식적으로 언어를 변형한다. 미 네바다대 사회언어학과 교수인 저자는 변형된 형태에 숨은 의미와 양상을 파악하고 그렇게 변형된 이유를 알아내고자 한다.저자는 강연장에서 만나는 미국인들의 걱정이 한가지 공통된 주제로 수렴한다고 말한다. 요즘 들어 ‘거슬리는 화법’이 늘고 있다는 대목이다. 보컬 프라이뿐만 아니다. 한국어로 치면 ‘그러니까’, ‘막’에 해당하는 ‘like’를 너무 자주 사용한다든가, 말끝마다 ‘너무(so)’를 붙인다든가 하는 것들이다. 현대 영어에서 전체적으로 격식이 사라지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많은 이들이 이 같은 언어의 남용이나 파괴를 우려스러운 시선으로 바라보지만, 이 책은 다른 관점을 취한다. 언어 변화는 자연스러운 일이며 언어 자체에 내재된 특성이라고 봤다. 언어는 반드시 변화하며 변화 자체를 피할 길은 없다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이 책은 언어의 변화가 어디서 비롯되고 어떤 의미를 갖고 있으며왜 더 많은 사람들이 변형된 언어를 사용하는지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재밌는 사례가 ‘녀석’ 등의 의미를 가진 ‘듀드(dude)’다. 저자는 초창기 듀드의 용례를 찾기 위해 1883년 뉴욕 월드지에 실린 한 시(詩)로 거슬러 올라갔다. 당시는 스포츠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레모네이드를 홀짝이는 힘없고 멋만 내는 남성을 조롱하는 단어였다. 그 시절에 듀드는 칭찬이 아니었다.1930, 40년대 재즈의 시대와 함께 새로운 듀드의 시대가 열렸다. 주트 슈트를 입은 아프리카계나 멕시코계 이민자들이 스스로를 듀드라 일컬으면서 저항 문화를 상징하는 속어로 자리 잡았다. 나이 어린 저소득층 백인 남성 역시 이 단어에 담긴 배경을 공유하며 인종적 특수성을 넘어 빠른 속도로 퍼져나갔다. 이윽고 재즈를 좋아하고 사회에서 주류라고 인식하는 기준에 따르고 싶어 하지 않는 중산층 남성도 듀드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근사한 백인 듀드가 전면에 부상하기 시작한 것. 요즘엔 친밀하고 느긋한 동지애의 느낌으로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쓰인다. 듀드의 진화는 끝나지 않았다. 저자는 ‘나쁜 영어’라고 불릴 만한 것들 상당수가 미국 사회에서 소외된 집단과 관련 있다고 짚는다. 언어 자체보다 인종, 계층, 국적처럼 더 예민한 문제가 숨어 있을 때가 많다는 지적이다. 재밌는 건 언어 역사상 혁신을 꾸준히 주도해 온 계층은 사회적으로 더 낮은 위치에 있던 언어 사용자란 점이다. ‘브로(bro)’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이 오랫동안 사용하던 말이었지만, 최근 젊은 백인들도 비슷한 경험을 공유하며 형제애가 생겼다는 뜻으로 사용한다.사례가 대부분 영어여서 다소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저자 특유의 유머가 곳곳에 녹아 있어 재밌게 읽힌다. 언어를 통해 역사를 공부하는 즐거움도 적지 않다. 무엇보다 그간 ‘올바르지 않다’고 평가절하된 언어들을 위한 변론이 무척 시원스럽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2022년에는 무척 힘들었어요. 뭐를 쓰려고 할 때마다 ‘저주토끼’보다 잘 썼나, 그것하고 비슷한가가 계속 떠올라서 괴로웠거든요. 근데 1998년부터 글을 쓴 저는 20세기를 지나 21세기까지 100년 동안 ‘안 팔리는 작가’였잖아요(웃음). ‘내가 언제 팔려서 글 썼나’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어요.” 10일(현지 시간) 소설집 ‘너의 유토피아’(래빗홀)로 한국인 최초로 세계 3대 공상과학(SF) 상 중 하나인 미국 ‘필립 K 딕 상’ 최종 후보에 오른 소설가 정보라(49)는 왠지 덤덤해 보였다. 21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에서 만나기 전, 4월 발표를 앞두고 기대가 크지 않을까 싶었지만 딱히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일각에선 그를 두고 ‘포스트 한강’이란 기대도 나오지만, 정 작가는 오히려 정색했다.“그런 헛된 꿈은 꾸지 말아 주시면 좋겠어요. 세상에 한강은 한 명밖에 없어요.” 하지만 그는 이미 세계에서 주목받는 작가다. 소설집 ‘저주토끼’(래빗홀)로 2022년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최종 후보, 2023년 전미도서상 번역문학 부문 최종 후보에 오른 적이 있다. 필립 K 딕(1928∼1982)은 영화 ‘블레이드 러너’, ‘마이너리티 리포트’ 원작자인 SF 대부. 그를 기린 상의 올해 후보작 6개 가운데 정 작가 작품이 유일한 번역서다. ‘저주토끼’를 번역한 안톤 허가 이번에도 번역을 맡았다. 호주판 ‘너의 유토피아’ 발행인인 마리카 웹 풀먼은 “현대 세계 문학장에서 가장 매력적인 목소리를 내는 작가 중 한 명”이라며 “날카롭게 비판하지만 유머 감각과 공감 능력을 발휘한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정 작가는 노동과 여성, 퀴어, 생태 등 다양한 문제에 꾸준히 목소리를 내는 활동가이기도 하다. 직접 보고 겪은 현실의 고통에 발붙인 작품을 쓴다. “뭘 알아야 기승전결을 만들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최종 후보에 오른 뒤 관심이 집중됐지만 집회 참가와 집필, 번역은 여전히 변함없는 일상이다. 경북 포항에 사는 작가는 최근에도 여러 시국 집회에 참여하며 활발하게 움직였다. 그의 검은 배낭엔 휴대용 깔개와 마스크, 핫팩 등 ‘집회 필수품’이 가득하다. 소설집 ‘너의 유토피아’의 첫 수록작인 ‘영생불사연구소’는 조직 생활의 ‘웃픈’ 현실을 그린 작품이다. 2010년경 연세대 노어노문학과에서 시간강사를 할 당시를 배경으로 썼다. 정 작가는 “연세대 노문학과 20주년 당시 일을 65% 정도 그대로 쓴 것”이라며 “외주 디자이너가 새벽 3시에 빨간 눈으로 ‘설마 모든 일이 이런 식으로 진행되는 건 아니죠’라고 물었고 그때 소설에 써야겠다 생각했다”고 떠올렸다. 수록작 중 작가가 가장 맘에 들어 하는 작품은 ‘여행의 끝’이라고 한다. ‘식인병’이 창궐한 세계를 그렸는데 감염자가 누군가를 먹으려고 하기 전까지는 감염 여부를 알 수 없다. 작가는 “딱히 비유는 아니다”라며 “겉보기에 멀쩡해 보이지만 가까이 가면 굉장히 불쾌하고 이상한 짓을 하는 사람이 많다고 느끼기 때문”이라고 했다. 차기작도 준비 중이다. 아이들이 공동으로 성장하는 집을 배경으로 한다. 부모가 있든 없든, 부유하든 가난하든 개인의 운명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세계다. 유토피아 같은 곳이냐고 묻자 “그 안에서 살인 사건이 일어난다”는 답이 돌아왔다.“유토피아 소설은 재미없어요. 제가 유토피아를 믿지 않거든요.”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