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미

김선미 기자

동아일보 콘텐츠기획본부

구독 237

추천

안녕하세요. 김선미 기자입니다.

kimsunmi@donga.com

취재분야

2026-02-10~2026-03-12
문화 일반64%
여행17%
문학/출판7%
미술3%
패션3%
칼럼3%
경제일반3%
  • 태화강에서 만난 세계적 정원 디자이너 피트 아우돌프[김선미의 시크릿가든]

    키가 큰 금발의 남자는 멀리에서도 잘 보였다. 노랗게 물든 울산시 태화강국가정원의 나무들 아래로는 가을 억새가 햇빛을 받아 은빛으로 반짝였다. 톤 다운된 초록색 진 재킷과 청바지 차림의 그는 동료들과 함께 찬찬히 땅을 살피고 있었다. 다소 심각한 표정이었다. “반갑습니다. 네덜란드에서 울산까지 오시느라 피곤하시겠어요.” 다가가 인사를 건네자 그는 굳은 표정을 풀고 미소로 반겼다. “기나긴 비행이었죠. 그래도 이렇게 아름다운 계절에 다시 와서 기쁩니다.” 그는 지난해 10월 태화강국가정원에 ‘후스·아우돌프 울산 가든-자연주의 정원’(1만8000㎡)을 조성한 네덜란드 출신의 세계적 정원 디자이너 피트 아우돌프(79)다. 그가 지난달 말 한국을 다녀갔다. 1년 된 태화강국가정원 내 자연주의 정원을 점검하고 새로운 ‘서울 프로젝트’를 준비하기 위해서였다. 지난달 25일 자연주의 정원에서 만난 그는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내년 봄을 준비하고 있었다. 알리움과 카마시아 등 구근 5만 개를 심는 일이었다. “구근은 정원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어요. 다른 식물들이 겨울잠을 잘 때, 구근이 먼저 꽃을 피우면서 봄을 알리니까요.” 아우돌프가 직접 손으로 그린 컬러풀한 식재(植栽)도에는 구획마다 각기 다른 구근 식물을 심는 안내사항이 담겨 있었다. ‘붉은 알리움은 35개씩 그룹 지어 30cm 간격으로 심을 것’, ‘무스카리는 100개씩 그룹 지어 흩뿌려 느슨한 간격으로 심을 것’…. 색색의 점으로 표현된 그의 식재도는 한 편의 그림 같았다. 한 장 얻어 액자에 담아 걸어두고 싶을 정도였다. 무엇보다 그때 깨달았다. ‘아, 야생의 초원을 떠올리게 하는 그의 자연주의 정원은 그냥 이뤄지는 게 아니구나. 실은 정교하게 계산된 것이었구나.’ 피트 아우돌프 자연주의 정원은 자연에서 느낀 감흥을 예술적 식재로 표현한다. 비결은 여러해살이풀을 심는 것이다. 이른 봄 싹트는 순간부터 겨울에 식물의 형태가 남아있을 때까지 사계절 자연의 순환을 보여준다. 시드는 아름다움, 빛바램의 퇴장마저 관조한다는 측면에서 일본 와비사비(わびさび·불완전함의 미의식) 미학과도 통하는 것 같다. 아우돌프와 이번에 구근 심는 작업을 함께 한 오세훈 정원사는 말한다. “그라스(풀)의 수수한 느낌을 사랑하는 아우돌프는 구근류도 크고 화려한 것보다는 작고 부드러운 내추럴한 감성을 선호합니다.” 미국 뉴욕 하이라인파크, 시카고 밀레니엄파크의 루리 가든, 독일 바일 암 라인의 비트라 캠퍼스, 영국 런던 서펜타인 갤러리 파빌리온 정원과 하우저앤드워스 소머셋 정원…. 80세를 앞둔 정원 디자인 거장의 행보는 거침이 없다. 바텐더와 웨이터, 생선 도매상 등을 하다가 조경을 배워 1975년부터 정원 디자이너로 활동해 온 아우돌프의 자연주의 정원들은 꽃과 장식 위주의 영국식 정원 문법을 깨뜨리는 ‘혁신’이었다. 그럴지라도 태화강국가정원 내 자연주의 정원은 그가 아시아에서는 처음으로 조성한 정원이라는 점에서 새로운 도전이었다. ―당신의 명성을 듣고 작년 11월 이곳에 와봤다. 하지만 당시엔 땅에 막 심은 모종들의 이름 푯말만 볼 수 있었다. 그 식물들이 지금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기대대로 잘 자란 건가.“모두 잘 자랐다고 말하긴 어렵다. 그동안 여름이 건조한 북미와 유럽기후에 맞는 식물들을 주로 다뤄왔기 때문에 한국 기후에 어떤 식물이 맞는지 좀 더 살펴야 한다. 올해 여름 한국의 폭우가 식물들의 생장에 타격을 줬다. 그래도 더 많은 식물이 실망시키지 않아 다행이다.”인사를 나누기 전, 그의 심각한 표정은 이런 상황 때문이었다. 그는 오랜 지인이자 자연주의 정원의 총괄 조경가인 바트 후스, 카시안 슈미트 독일 가이젠하임대 조경학과 교수 등과 함께 정원 구석구석을 돌며 식물들의 상태를 꼼꼼하게 살폈다. 식물 육종가이자 식물 마니아답게 한국의 습한 기후에 약하거나 수입이 원활하지 않은 식물은 다른 식물로 교체할 것을 바로바로 지시했다. 정원은 한 번 조성하고 마는 곳이 아니라 끊임없이 소통하며 관리하는 곳이었다.―정원에 늘 새로운 식물을 시도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태화강국가정원 자연주의 정원에 한국의 자생식물도 심었나.“향등골나물, 벌개미취, 돌마타리, 숫잔대 등을 심었다. 태화강국가정원 숲정원에는 가을 색이 고운 복자기나무와 당단풍나무도 심을 예정이다. 한국의 자연은 놀랍도록 아름답다. ” ―가을은, 한국의 자연은 당신에게 어떻게 다가오는가.“모든 계절이 각각의 특징을 갖지만, 가을은 여름의 초록 잎들이 따뜻한 색으로 바뀌는 극적인 계절이다. 특히 한국의 가을 자연은 유럽과는 비교할 수 없는 감성이 넘친다. 한국의 가을에서는 종종 시(詩)적인 순간을 느낀다.”―그런 시적인 순간을 느끼는 한국의 장소는.“경기 포천시에 있는 국립수목원이다. 종(種) 다양성과 식물들의 색감이 풍성하다.” 그는 이번 한국방문 기간 태화강국가정원 일정을 마친 후 국립수목원도 둘러봤다. 그를 안내했던 배준규 국립수목원 정원연구센터장은 “아우돌프는 소나무숲의 하층 식생 등 다양한 식물들이 조화롭게 어울려 사는 모습에 큰 관심을 보였다”며 “가을 낙엽을 주워 담으면서 우리나라의 식생 경관에 감탄했다”고 전했다. 동행했던 카시안 슈미트 교수도 “환상적인 가을 색상을 보여주는 한국의 비목나무를 이번에 새롭게 알게 돼 기쁘다”고 했다. 아우돌프는 가을 햇볕이 쨍쨍한 정원 돌무더기에 걸터앉아 성심껏 질문들에 답했다. 진작부터 알고 지내던 동네 어르신 같은 느낌이었다. 인터뷰 도중 그가 시계를 확인하더니 양해를 구했다. “5분만 실례할게요. 아내와 화상 통화하기로 약속한 시간이어서요.” 그는 휴대전화 화면에 나타난 아내에게 태화강국가정원의 모습을 구석구석 보여주었다. 통화 도중 주변 사람들에게도 화면을 보여줘 네덜란드에서 아침을 맞는 그녀에게 인사할 수 있었다. 그의 아내 안야 아우돌프는 지금의 피트 아우돌프를 만든 영혼의 동반자다. 1982년 부부는 어린 두 아들을 데리고 네덜란드 동부 시골 마을 후멜로의 오래된 농가로 이사했다. 정원 디자이너로 인생의 길을 정한 남편이 너른 땅에서 식물을 기를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다. 부부가 아이들과 함께 집을 수리하고 육묘장을 만든 그들의 거처 ‘후멜로’는 오랫동안 세계적 정원 투어의 성지였다. 그가 다루는 식물을 재배하는 육묘장이 이제는 많이 생겨나 부부는 2010년대 들어 후멜로를 닫고 정원 디자인에 주력하고 있다. 그래서 쾌활한 성격으로 멀리에서 온 손님들을 반갑게 맞던 안야의 모습을 많은 이들이 그리워한다.―정원 이야기로 돌아오겠다. 태화강국가정원에 어떤 가치를 담고 싶었나.“처음에 태화강 이야기를 듣고 ‘울산 프로젝트’(태화강국가정원)를 맡아야겠다고 생각했다. 태화강은 2000년대 초까지 공장 폐수로 오염됐다가 생명의 강으로 부활했다. 내 인스타그램 계정을 방문해 내가 만든 정원을 좋아하는 연령층을 보면 주로 25~40세다. 태화강국가정원이 젊은 세대가 찾아와 자연을 접하는 ‘지속 가능한’ 정원이 되기를 바란다. 자원봉사자들이 찾아와 함께 해 주는 모습이 힘이 된다.”―세계적 공공정원과 개인정원들을 조성해왔다. 공공정원과 개인정원은 어떻게 접근방법이 다른가.“두 정원은 완전히 다르다. 개인정원에는 정원주의 요구에 맞춰 아이가 타고 올라갈 나무를 심거나 수영장을 만든다. 반면 공공정원 작업은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그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경관을 만드는 일이다. 집에 정원이 없는 사람들이 편히 찾아와 자연의 변화에 감동하고 경관에 대해 열린 관점을 갖도록 하는 일이다.” ―최근 작업 중인 글로벌 프로젝트들은.“스웨덴 반달로룸 미술관 정원 작업을 막 끝냈다. 또 알렉산더 칼더의 예술과 아카이브를 전시하는 칼더 재단의 의뢰를 받아 미국 필라델피아의 벤저민 프랭클린 파크웨이에 정원 공사를 시작했다. 올해 초에는 예술출판사 ‘파이돈’을 통해 오랜 지인 작가인 노엘 킹스베리가 그간의 내 작업을 정리한 ‘Piet Oudolf at Work’이라는 책도 출판됐다.” (아우돌프는 예술계와 활발하게 교류하고 있다. 일본을 대표하는 건축가 세지마 가즈요가 2010년 베니스 비엔날레 때 옥외 전시로 아우돌프에게 정원을 만들어달라고 주문하면서부터 교류가 시작됐다.) 지난달 27일은 그의 79번째 생일이었다. 그는 한국에서 지인들이 준비해준 생일파티를 네 번이나 가졌다. 아우돌프 부부가 반려견들과 정원을 산책하는 모습을 넣은 생일 케이크도 선물로 받았다. 울산에서는 소주와 맥주, 서울에서는 김치 요리를 즐겼다. 29만 명의 팔로워를 지닌 그의 인스타그램에는 그가 올린 한국의 가을 풍경들이 각국 팔로워들의 경탄을 자아냈다. ―79번째 생일을 한국에서 보낸 소감은.“생일 이틀 전부터 생일 다음날까지 나흘 연속 축하를 받았다. 지금껏 고국에서도 이렇게 축하를 받아본 적이 없다. 한국은 자연뿐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이 아름답다. 한국에 올 때마다 따뜻한 환대와 도움을 받는다. 먼 거리여도 한국에 자주 오고 싶다.” 사실 세계적 정원 디자이너라는 명성 때문에 지레 걱정했더랬다. 아우돌프가 상대하기 어려운 성격이면 어쩌나 하고. 기우였다. “식물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마음을 열고 반기는 분”이라던 주변 얘기들이 맞았다. 그가 조성한 정원 이름이 ‘후스·아우돌프 울산 가든-자연주의 정원’인 것도 그의 한 면모를 보여준다. 그는 자신보다 먼저 울산을 방문해 조경의 큰 그림을 그린 바트 후스의 이름을 자신의 이름보다 앞에 두도록 했다. 태화강국가정원에는 아우돌프가 직접 육종한 ‘살비아 랩소디 인 블루’ 등의 식물이 한국 자생식물들과 어우러져 산다. 야생을 사계절 내내 풍경 시(詩)로 구현해내는 그의 정원에서는 식물들이 공동체를 이루면서 생명력을 갖는다. 하지만 50년 가까운 경력의 세계적 정원 디자이너에게도 낯선 아시아 대륙의 한국 기후와 토양은 크나큰 도전이었으리라. 어릴 적 즐겨 봤던 찰스 M 슐츠의 책 ‘사랑이란 손을 잡고 걷는 것’을 떠올린다. 사랑은 지켜봐 주는 것, 아플 때 곁에 있어 주는 것이라고 했다. 죽음의 강을 생명의 강으로 살려낸 태화강은 한국의 소중한 자연이다. 태화강국가정원은 ‘피트 아우돌프’라는 이름에만 기대면 안 된다. 모두가 합심해 지켜보고 아껴야 한국을 사랑하는 정원 디자인 거장이 꿈꿨던 지속가능한 정원이 될 것이다. 울산=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2023-11-08
    • 좋아요
    • 코멘트
  • 옛 구로공단 공장에서 금천패션영화제 열린다

    국내 패션봉제산업의 역사를 품은 옛 ‘구로공단’ 공장에서 패션영화제가 열린다.금천문화재단과 금천패션영화제조직위원회가 서울 금천구 디지털로 9길90 마리오·까르뜨니트 공장과 롯데시네마 가산디지털점에서 3∼6일 제3회 금천패션영화제를 연다.금천구의 특화산업인 패션산업을 재조명하는 이 영화제는 1574편의 독립영화 출품작 중 본선 진출작, 개막작, 역대 수상작 등 64편을 무료로 선보인다. 개막작은 금천구에 사는 패턴 삽화가를 다룬 최유진 감독의 다큐 영화 ‘이요안나’다. 고찬호 감독의 다큐 영화 ‘아싸 가오리’는 구로공단 시절 봉제 노동자를 다뤘다.1960년대 전자 공장이었던 마리오·까르뜨니트 공장 건물은 1980년 마리오 상사를 창립한 홍성열 마리오그룹 회장이 인수해 1984년 ‘까르뜨니트’를 시작한 곳이다. 홍 회장은 이 공장에서 기반을 다져 2001년 가산디지털단지에 마리오아울렛을 열었다.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2023-11-02
    • 좋아요
    • 코멘트
  • 자연과 교감하는 문화예술교육…도시숲 정원 속 예술치유

    28일 세종특별자치시 국립세종수목원 후계목 정원. 세 가족이 너른 잔디마당에서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판토마임 같기도, 춤을 추는 것 같기도 했다.“여러분, 나무는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숨을 쉬고 있어요. 나무가 어떻게 숨을 쉴 것 같아요? 우리 한 번 나무가 된 것처럼 나무를 표현해볼까요?” (강사)서유찬(6) 군 가족은 나무를 몸으로 표현하기도 하고, 벌이 ‘윙’ 나는 소리와 열매가 ‘탁’ 떨어지는 소리를 동작과 소리로 나타내기도 했다. 초등학교 3학년인 이준서(9) 군도 아버지와 함께 나뭇가지 사이로 이는 바람을 물결처럼 몸으로 표현했다.이들 가족이 이날 참여한 프로그램은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과 국립세종수목원이 함께 한 ‘정원 속 예술치유 축제’ 중 하나인 ‘예술치유 자연극장-정원으로 가는 길’. 수목원의 정원길을 나무와 식물이 되어 걸어보며 자연의 생태 감각을 즉흥적으로 표현하는 춤의 행렬이 새로운 정원의 길을 만든다는 취지다.진흥원은 도시숲 예술치유를 위해 조경·정원 전문가, 예술가, 예술치료사 등 분야별 전문가와 협력해 이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유찬 군의 아버지인 서상영 씨(53)는 “수목원에 자주 오는데도 이번에 숲과 나무를 주제로 표현해본 건 굉장히 신선한 경험이었다”며 “짧은 시간이지만 춤을 통해 가족 공동체의 중요성도 깨닫게 됐다”고 말했다.이번 프로그램은 국내 최초의 도심형 수목원인 국립세종수목원의 후계목 정원에서 진행됐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깊다. 2020년 6월 문을 연 국립세종수목원은 천연기념물, 역사적 상징성, 희귀성 등이 있는 나무의 유전자원을 수집·보전해 1ha 규모의 후계목 정원에 선보였다. 경기 양평 용문사 은행나무(천연기념물 제30호)와 경남 의령 성황리 소나무(천연기념물 제359호)뿐 아니라 아이작 뉴튼이 만유인력 법칙을 발견한 사과나무의 후계목도 이곳에서 볼 수 있다. 서 군 가족은 이날 천연기념물 제522호인 충북 청주시 연제리 모과나무 후계목 앞에서 나무를 온몸으로 표현해본 것이다.‘정원으로 가는 길’ 프로그램을 담당한 송주원 안무가는 “산에 가려면 마음먹고 준비할 게 많지만 도시숲에서는 나만의 나무를 친구 삼아 사람에게는 말 못하는 고민을 털어놓으며 지속적으로 교감할 수 있다”며 “자라나는 미래세대가 나무가 돼 보는 체험을 통해 나무를 관상 대상이 아닌 친근한 생명체로 인식하게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진흥원은 ‘예술치유 자연극장’ 프로그램 9종을 개발해 그중 2종을 이번 ‘정원 속 예술치유 축제’에서 선보였다. ‘정원으로 가는 길’과 ‘종의 집’ 영상 전시다. 진흥원과 수목원이 함께 기획·운영한 ‘종의 집’ 프로그램은 참여자가 꽃가루 매개자가 되어 다양한 생물종이 함께 사는 집을 상상해 디지털 폴리네이터(pollinator·꽃가루 매개자) 정원을 만들어보는 과정으로 진행됐다. 진흥원 측은 “자연을 무대로 한 예술적 경험을 통해 고물가 저성장 기조로 인해 야기되는 고립과 우울감 등 사회적 문제를 극복했으면 한다”고 밝혔다.세종=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2023-11-01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순천의 시골을 정원 마을로 이끈 화가의 정원[김선미의 시크릿가든]

    화가와 정원의 조합은 꽤 운명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정원에서 영감을 얻은 화가는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클로드 모네나 귀스타브 카유보트는 예술만큼 식물에 정통한 위대한 정원사였다. 화가들은 서로의 정원을 탐색하며 감각을 열기도 했다. 인상파 화가들의 정원을 선망한 메리 커샛 같은 미국 화가들은 삶의 터전을 프랑스로 옮겨 정원을 가꾸며 그림을 그렸다. 그래서일까. 전남 순천시 별량면 장학마을에 있는 ‘화가의 정원산책’ 정원을 찾아가면서 내내 궁금했다. 화가인 정원주는 어떤 사연으로 주택정원을 가꿨으며, 어떤 그림을 그리고 있을까. 화가의 정원산책은 순천시 제1호 민간정원으로, 누구든 방문할 수 있는 곳이다. ●화가 아내, 조경가 남편과 아들이 만드는 정원정원으로 향하던 지난달 중순은 여름처럼 무더웠다. 2번 국도변에는 초가을까지도 분홍색 꽃을 피운 배롱나무 가로수가 끝없이 이어졌다. ‘정원 도시’ 순천을 일깨우는 꽃 행렬이었다. 주물로 만든 흰색 철제 대문 앞에 다다르자 정원 안내판이 보였다. 화가인 정원주가 아크릴 물감으로 그린 것이었다. 정원주의 아들인 남태우 씨(32)가 먼저 나와 안으로 안내했다. 서울에서 조경회사에 다니다가 고향으로 내려와 일한 지 두 달 됐다고 했다. 잔디가 깔린 너른 마당에는 헬레니즘 양식의 조각상과 장독대들이 배치돼 있었다. 산이 정원을 포근하게 둘러 감싸 안은 구릉 지형이었다. 여름을 빛낸 에키네시아가 퇴장하면서 빨간 꽃무릇이 만발했을 때였다. 남쪽으로 운천호수를 시원하게 내려다보는 2층 주택에서 정원주가 걸어 나왔다. 정원주인 화가 민명화 씨(63)였다. “1995년에 여기 300평 땅과 오래된 허름한 집을 샀어요. 조금씩 땅을 넓혀가면서 28년 동안 정원을 가꾸다 보니 지금은 3000평이 됐어요. 남편이 프러포즈할 때 그랬어요. ‘당장 모아놓은 돈은 없지만 전지가위 하나로 평생 먹여 살릴 자신은 있다. 그림 같이 예쁜 집을 만들어 주겠다’고요(웃음). 결혼하고 순천 시내에 살 때, 매물로 나온 이곳에 와보고 둘이 반했어요. 똑같은 돈이라도 누군가는 주식 투자를 하겠지만, 그림을 그리는 저와 조경 일을 하는 남편은 시골 생활에 대한 로망이 있었어요. 꽃을 가꾼 가정에서 자란 부부의 가치관이 같고, 남편이 제가 하는 일에 ‘노(No)’라고 한 적이 없어 가능했던 일 같아요.” ●아이들이 어렸을 때 씨앗을 뿌린 세월의 정원부부의 세 자녀는 그래서 ‘별량면 키즈’로 자랐다. 아파트에 살 때 조마조마하게 층간소음을 신경 써야 했던 아이들은 시골집 안뜰에서 마음껏 뛰놀 수 있었다. 야생화를 주제로 가족신문을 만들고, 생일파티도 정원에서 했다. 특히 막내아들인 남태우 씨는 아장아장 걸음마 할 때부터 부모를 따라 정원에 씨앗을 뿌렸다. 그때 심은 가시나무 등이 지금은 울창해졌다.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부터 “나는 조경학과에 갈 거야”라던 남 씨는 전북대 조경학과를 나와 서울식물원과 서울의 조경회사에서 일하다가 얼마 전부터 고향으로 돌아와 일한다. 지역 사회에 기여하면서 부모가 오랫동안 가꿔온 정원에 젊은 감각을 접목하고 싶어서다. 정원주와 함께 정원을 둘러보기 시작했을 때, 어느 중년 부부 관람객이 정원을 찾아왔다. 정원 입구의 새집 모양 현금통에 입장료 5000원을 내면 정원을 시간제한 없이 오롯이 즐길 수 있다. 차와 음료도 원하는 대로 마실 수 있다. 민 정원주는 말했다. “천천히 둘러보시고, 그림도 보시고, 차도 드세요.” ●8개 테마로 구성한 3000평 정원3000평 정원에는 110여 종의 수목과 200여 종의 숙근 및 초화류가 산다. 조경학 박사인 남편과 조경 엔지니어 아들은 정원의 보유 수종 목록을 잘 정리해두었다. 이 정원의 특징은 마치 정원박람회처럼 8개의 테마 정원으로 구성돼 있다는 점이다. 입구 정원은 200년 넘은 느티나무와 참나무 등이 그늘을 드리우면서 맥문동, 원추리 등의 음지식물과 어우러진다. 숲 정원에는 가시나무, 먼나무, 후박나무 등을 심고 곳곳에 새집과 벤치를 두었다. 숲길을 걷는데 다양한 새 소리가 여기저기에서 들려왔다. 하염없이 앉아 있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계단식 다랑논 지형을 보존한 다랭이 정원, 200년 넘은 야생 동백나무들이 이룬 동백숲, 운천호수 경관을 한눈에 내려볼 수 있는 전망대 정원 등을 둘러보니 규모가 방대했다. 개인 정원이 아니라 전문 수목원에 온 것 같았다. 특히 인상적인 테마 정원은 해 뜨는 정원과 갤러리 정원이었다. 산자락 높이 위치한 해 뜨는 정원은 이른 아침 순천만에서 떠오르는 해를 볼 수 있어 평소 마을 사람들이 자주 찾아오는 장소라고 했다. 정원주가 마을 산책로로 열어두는 정원에 풀이 무성해지면 다 같이 정원 일을 돕는다고 했다. 정원 탐방의 마지막 코스인 갤러리 정원은 화가의 미술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음식과 묘목과 정담을 나누니 마을 커뮤니티 공간의 기능을 한다. 유럽에서 구해 왔다는 오래된 풍금과 스테인드글라스 장식, 앤티크 찻잔 등이 작은 박물관 분위기를 풍겼다. ●“정원일은 마음이 깨끗해지는 명상”화가는 왜 정원을 가꾸었을까. “허름한 집을 남편과 함께 리모델링 할 때, 거실에서 정원이 한눈에 보이도록 했어요. 아이 셋을 키우는 과정에서 막 열이 날 때가 있잖아요. 그런데 정원의 꽃을 보면 마음속 화가 사라지더라고요. 사람들은 늘 정원일 하는 제게 ‘고생하시겠네요’라지만 저는 고생한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잡초를 뽑으면 제 머릿속과 마음도 깨끗해지거든요. 그게 곧 명상이지 않겠어요.” 화가가 그리는 꽃은 매번 바뀐다. 한동안 달맞이꽃을 그리다가 양귀비를 거쳐 요즘엔 에키네시아를 자주 그린다. 정원에 이젤을 놓고 꽃을 보면서 그리는지, 사진을 찍어 보고 그리는지 물었다. “둘 다 아니에요. 30년 가까이 가꿨던 꽃들과 모든 계절의 추억과 소망이 다 제 마음속에 들어 있잖아요. 색채는 있는 그대로를 묘사하기보다는 다소 주관적으로 형상화합니다. 소멸과 생성이 반복되는 자연의 법칙은 모호한 선으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장학마을에 씨앗을 뿌린 정원문화화가의 정원산책은 아낌없이 칭찬받을 만한 공로가 있다. 순천시 별량면 장학마을에 정원 문화를 전파해 이 마을을 정원 마을 커뮤니티로 만든 것이다. 이 정원 맞은 편에는 민 화가의 후배가 사는 ‘유럽정원’을 비롯해 ‘복순이네 돌사랑정원’과 ‘이가네 뜨락정원’ 등 아름다운 주택정원들이 작은 골목길에 모여있다. 일찌감치 터를 잡은 화가의 정원산책을 보면서 도시 생활을 했던 은퇴자들이 시골 마을에 정원을 가꾼 것이다. 집집마다 낮은 담벼락에 화분들을 내건 정경을 보니 마치 스페인의 정원 도시 코르도바에 와 있는 느낌마저 받았다. “우리 동네는 봄에 꽃향기가 가득해요. 꽃과 묘목을 나누니 정원의 시너지 효과가 생기는 것 같아요. ‘장학마을 위크’라는 명칭으로 마을 탐방 프로그램도 만들어야겠어요.” 장학마을이 정원 마을이 된 데에는 순천시의 개방정원 제도도 큰 역할을 했다. 2013년 대한민국 최초로 국제정원박람회를 열었던 순천시는 2017년부터 다른 지방자치단체에는 없는 ‘개방정원’이라는 등록제를 실시하고 있다. 관내의 우수한 민간정원 중 일반에 공개하는 정원을 지정해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다. 장학마을의 정원들은 순천시 개방정원이다. 특히 화가의 정원산책은 2019년 순천시 개방정원으로 지정된 후 2020년 제1회 전라남도 예쁜 정원 콘테스트 공모전 대상, 2021년 순천시 제1호 민간정원이 되면서 전국적 명성을 날리게 됐다. 민명화 정원주는 말한다.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듯 정원을 조성해온 것 같아요. 작은 면들을 분할해 사계절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도록 식물의 질감과 색상을 배치했어요. 자연이 주는 모든 형상은 사랑에 대한 아름다운 추억과 함께 풍부한 작품의 소재가 되었어요. 마음과 감각을 환하게 열어주는 것, 그것이 정원의 위로 아닐까요.”순천=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2023-10-22
    • 좋아요
    • 코멘트
  • 정원으로 기억하는 난지도…‘2023 서울정원박람회’에 가보니[김선미의 시크릿가든]

    난지도(蘭芝島)는 본래 난초와 지초가 피는 꽃섬이었다. 조선 시대 김정호의 지도에도 꽃이 피어있는 섬이라는 뜻의 ‘중초도’(中草島)로 기록돼 있다. 맑은 샛강 위로 버드나무가 늘어졌을 그 섬의 꽃향기는 얼마나 그윽했을까. 하지만 그 섬은 1978년 서울시 쓰레기 매립장으로 지정돼 거대한 쓰레기 산으로 변했다. 그 난지도가 2000년대 들어 친환경 재생공원(서울 마포구 하늘공원과 노을공원)으로 거듭났으니 사람으로 치면 어마어마한 인생역전이다. 6일 시작한 ‘2023 서울정원박람회’(11월15일까지)가 하늘공원에서 열리고 있다. ‘바람, 풀 그리고 정원’이라는 주제에 맞춰 전문 작가, 학생, 시민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옛 난지도를 기억해 정원으로 풀어냈다. 척박한 쓰레기 토양에서 살아남은 억새를 형상화하고, 폐 페트병을 재활용해 오브제를 만들었다. 파란만장했던 땅을 지켜본 하늘을 정원의 주인공으로 삼거나 바람이 지나간 길을 만들기도 했다. 하늘공원이라는 장소의 역사적, 공간적 특성이 기존의 알록달록한 정원박람회에 사색의 기운을 드리운 걸까. 박람회를 둘러보니 전반적으로 기대 이상이었다. 전문 작가들이 꾸민 정원은 가을 억새의 숭고한 경관과 조화롭게 어우러졌다. 너른 잔디밭에 활짝 펼쳐지는 정원이 아니라 억새밭을 거닐다가 하나씩 만나게 되는 ‘비밀의 정원’이었다. 억지로 채워 넣으려 하지 않고 하늘과 바람과 풀을 느긋하게 즐길 수 있게 한 점이 돋보였다. 한두 평 땅에 ‘정원을 향한 열정’을 쏟아낸 학생과 시민 참여 정원도 보기 좋았다. 다만 층꽃나무 같은 가을의 식재 재료가 정원마다 엇비슷한 건 어쩔 수 없는 ‘옥의 티’였다. 특히 신선했던 것은 초청정원을 꾸민 조용준 조경가의 ‘소리의 정원’이다. 그는 ‘높이 98m의 쓰레기 산 위에서 자란 자연에서는 어떤 소리가 들릴까’라는 질문에서 시작했다. 올해 7월부터 9월까지 매시간 5분씩 하늘공원에서 들을 수 있는 자연의 소리를 채집했다. 바람 소리, 메탄가스 소리, 곤충과 새 소리…. 관람객이 접하는 정원의 형태는 정원박람회의 풀밭 위에 만든 지름 9m의 흰색 콘크리트 원판일 뿐이다. 여기에 올라 서서 QR코드에 갖다 대거나 ‘소리의 정원’ 앱을 통하면 쓰레기 산(난지도)에서 생명을 이어온 자연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조용준 조경가는 말한다. “처음에는 거대한 철판을 세우고 숲의 정원을 만들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디자인을 할수록 왜 이렇게 해야 하는지 스스로 납득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늘공원에서 아빠와 딸의 대화를 우연히 듣게 됐습니다. 이곳이 과거에는 섬이었고, 지금 발아래 쓰레기로 가득한 매립지라는 아빠의 말에 중학생쯤 돼 보이는 딸은 무척 놀라는 반응이었습니다. 아이는 아마도 이곳이 산을 보존해 만든 공원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인간의 욕망이 만들어낸 쓰레기 산의 주인은 본래 자연이었습니다. 저는 이 거대한 초지 속에 정원이 드러나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식물도 심지 않았습니다. 이런 생각으로 ‘소리의 정원’을 만들게 됐습니다.” 소리의 정원은 음(音) 경관인 ‘사운드스케이프’와 생태학의 만남뿐 아니라 조경의 확장성과 협업 가능성도 보여줬다. 조용준 조경가는 기경석 상지대 산림조경학부 교수와 협업해 자연의 소리를 채집했다. 앱 개발자와 협업해서는 ‘소리의 정원’ 앱을 만들었다. 하늘공원의 식물은 레진아트 전문가들과 협업해 원판 가운데 25개의 레진아트로 구현했다. 꽃범의꼬리, 부처꽃, 닭의장풀, 애기똥풀 등을 현미경으로 보듯 찬찬히 볼 수 있다. 환경적 메시지를 예술적으로 승화시킨 것이다. “정원은 자연과 사람을 잇는 매개체입니다. 하늘공원에는 억새라는 강력한 시각적 매개체가 있지요. 하지만 쓰레기 산에서도 살아남은, 자연의 소리라는 청각적 매개체도 있다는 걸 말하고 싶었습니다. 숲속의 빗소리, 맹꽁이 열차 소리, 파랑새와 말매미 소리를 들어보세요.”하늘공원은 난지천 공원이나 노을 주차장에 차를 대고 맹꽁이 열차로 오를 수 있다.다음은 작가 정원을 꾸민 7팀을 만나봤다.<금상> ‘자연과의 조우’. 이상수 씨“전통정원의 정자처럼 열린 담장 요소를 활용해 주변과 자연스럽게 연결시키는 경관을 조성했습니다. 열린 경관에서 잠시 멈춰 서서 내면의 소리를 들어보세요.” <은상> ‘하늘 바람 수영장’. 박아름, 조아라 씨“하늘공원의 하늘과 바람을 풍성하게 즐길 수 있도록 수영장을 구현했습니다. 튜브에 누워 하늘을 보거나 초원에 발을 담가 보세요. 풀 속으로 다이빙하는 상상은 어떨까요. 난지도가 하늘공원이 됐듯, 쓰레기가 예술로 변신하는 걸 보여주기 위해 폐 페트병으로 오브제를 만들었습니다. 바닥과 천장에는 하늘공원의 생명력을 상징하는 억새를 형상화했습니다.” <동상> ‘오롯이 널 기억하는 순간’. 이세희, 장지연 씨“꽃섬이 난지도 쓰레기 매립장이 되고 다시 하늘공원이 된 모든 순간을 하늘은 오롯이 지켜봤을 겁니다. 그래서 하늘을 정원의 주인공으로 삼았습니다. 정원 뒤편에도 거울 벽을 설치해 하늘을 가득 담았습니다.” <동상> ‘FLUID GEOMETRY’. 최담희, 김선우 씨 “난지도의 옛 바람이 주제입니다. 바람이 지나간 길을 정원으로 형상화했습니다. 층꽃나무와 자엽국수나무의 보라색이 스테인레스 스틸 미러와 극적 대비가 되도록 했습니다.” <동상> ‘일렁이는 바다 언덕’. 홍수연, 경정환 씨“하늘공원의 흔들거리는 풀을 보면서 생명이 일렁이는 바다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늘공원이야말로 생명으로 자리를 지켜온 서울의 바다 아닐까요. 초화와 지피류에 신경을 썼습니다.” <동상> ‘하늘 파빌리온_하늘, 바람, 풀 그리고 정원을 품다’. 김수연 씨“하늘공원의 억새와 정원이 공존하는 공간을 만들었습니다. 파빌리온이 경관을 감상하는 틀이 되도록 디자인했습니다. 정원을 찾는 사람들이 벤치에 앉아 쉼을 즐기기를, 일상 자체가 쉼이 되기를 바랍니다.” <동상> ‘바람, 바람, 바람’. 송민원 씨“풍향계가 억새와 어우러져 오브제처럼 작동되기를 바랐습니다. 빛이 잘 머무는 플라스틱 소재여서 하늘공원의 아름다운 노을빛을 머금습니다. 관람객과 빛과 바람으로 교감하기 원합니다.” 한편, 시민들이 만든 ‘모아정원’에서는 풀에 대한 인식을 읽을 수 있었다. ‘풀은 정원의 하얀 구름’, ‘풀은 정원의 보감(寶鑑)’, ‘풀은 정원의 거울’, ‘풀은 정원의 本’, ‘풀은 정원의 싱잉 보울’, ‘풀은 정원의 에너지’, ‘풀은 정원의 무희’, ‘풀은 정원의 回(돌아올 회)’, ‘풀은 정원의 생명의 집’, ‘풀은 정원의 매직 카펫’…. 개인적으로는 작은 정원에 앉아 싱잉 보울을 두드리는 경험이 정원을 명상의 공간으로 인식하는 계기가 됐다. 서울정원박람회에서는 초청정원과 작가 정원뿐 아니라 시민들이 꾸민 모아정원과 학생 정원들을 꼭 둘러보기를 권한다. 그 정원들을 보면서 ‘나라면 어떤 정원을 꾸밀 것인가’ 잠시라도 상상해 본다면 당신은 이미 정원사인 셈이다. 정원문화가 일상에 자리 잡게 되면 마을 주민들이 합심해 골목 정원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정원을 가꾸는 미적 경험이 활발한 공동체 참여로 이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정원박람회가 겸손과 돌봄과 같은 우리 마음의 꽃밭을 일깨우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2023-10-12
    • 좋아요
    • 코멘트
  • 해양수산부 혁신N돌핀스 “허위뉴스를 잡아라”

    해양수산부의 ‘혁신N돌핀스’는 20, 30대 사무관과 주무관 23명으로 구성된 주니어 보드다. 혁신N돌핀스는 두 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 혁신과 돌고래(해수부 구성원)도 되고, 혁신 엔도르핀도 된다. MZ세대 특유의 참신한 아이디어를 공직사회에 불어넣어 젊은 세대가 해수부 정책에 공감할 수 있도록 만든 조직이다. 주제를 한정하지 않고 자유롭게 토론하는 혁신N돌핀스에서 요즘 논의되는 주요 내용 중 하나는 허위뉴스 대응법이다. 특히 일본 후쿠시마 오염수 대응, 수산물 안전과 관련된 정책에 대한 의견이 자주 나온다. 해양개발과 김지인 사무관(28)은 “그동안 정부 부처는 허위뉴스가 퍼지면 일단 보도 해명 자료부터 냈다”며 “그보다는 발원지가 된 플랫폼, 젊은 세대가 많이 보는 쇼트폼 영상이 있는 플랫폼에 제대로 된 정보를 빠르게 제공하는 게 필요하다”는 의견을 냈다. 이 회의를 주재하는 해수부 박성훈 차관은 MZ세대 공무원들에게 “운동장을 넓게 쓰라”고 조언했다고 한다. 부서 간 틀을 허물고 좀 더 거시적인 관점에서 정책을 고민하라는 얘기였다. MZ세대 공무원들은 “차관님이 직접 회의를 이끌다 보니 우리의 의견들이 바로바로 해당 부서 업무에 반영돼 좋다”는 반응들을 보였다. 온라인 매체에 익숙한 혁신N돌핀스 구성원들은 후쿠시마 오염수 관련 허위뉴스 확산에 대한 우려가 깊다. 개인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나 회원제로 운영되는 맘카페 등에서 유포되는 허위뉴스는 모니터링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최근 허위뉴스는 인공지능 매체 등을 활용해 선정적인 영상과 함께 제작된다. 그런 점에서 정부의 초기 대응이나 사전 예방이 절실하다. 이에 따라 해수부는 ‘가짜뉴스 TF’를 출범시키기로 했다. MZ세대 직원들, 허위뉴스 관련 업무 담당자들이 인터넷 매체 등을 사용하면서 허위뉴스와 관련된 아이디어가 있을 경우 적극적으로 공유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또한 기존 서면 보고 형식을 없앴기 때문에 ‘가짜뉴스 TF’ 구성원들은 단톡방을 통해 언제나 의견을 나눌 수 있다. 해수부는 “연안 해역에 대한 해양 방사능 조사 결과와 브리핑에서 설명한 자료는 ‘해양수산부 누리집’에서 누구나 쉽게 확인할 수 있다”며 “국민들이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나 수산물 안전과 관련 양질의 정확한 정보에 접근할 수 있도록 유튜브 생중계 방송도 강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2023-10-11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한국의 자랑스러운 산림녹화 기록을 유네스코 유산으로”[김선미의 시크릿가든]

    며칠 전 산림청이 대한민국 100대 명품 숲을 선정해 발표했다. 강원 인제군 원대리 자작나무 숲과 제주 서귀포시 치유의 숲 등 우리에게 건강한 기쁨을 주는 숲들이었다. 왠지 울컥하면서 감격스러웠다. 1973년 ‘제1차 치산녹화 10개년 계획’이 수립돼 실행되기 전까지 한국은 헐벗은 민둥산의 나라였다. 국토 녹화 50년 만에 우리의 산림에 ‘명품’이라는 이름을 당당하게 붙이게 됐다. 한국의 성공적인 산림녹화 기록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가 추진 중이다. 올해 8월 문화재청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신청 대상 기록물로 심사를 통과했다. 세계기록유산 등재는 일단 각국의 심사를 거쳐야 한다. 한국의 산림녹화 기록은 올해 11월 말까지 유네스코 사무국에 신청서가 제출되면 2025년 등재 여부가 최종 결정된다.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며 기록을 수집해 온 국내 원로 임학자와 임업계 1세대들이 있어 가능했던 일이다. 이경준 서울대 산림과학부 명예교수(78)가 회장으로 있는 사단법인 한국산림정책연구회가 이번 등재를 추진하고 있다. 지난달 서울 동대문구 국립산림과학원 2층에 있는 연구회를 찾아갔다. 연구회가 겸하는 ‘산림녹화 유네스코 등재추진위원회’ 팻말이 붙어 있었다. 에어컨 없이 선풍기 하나만 돌아가는 사무실에는 회원들이 7년 동안 모은 1만여 건의 각종 기록이 문서 보존 상자에 담겨 있었다. 추진위원회의 이철수 사무국장, 전진표 대외협력본부장, 한문영 기록관리 본부장이 함께 자리했다. 은퇴한 지 10년이 넘은 산림청 퇴임 공무원들이다. 함께 노력해 온 오정수 연구관리 본부장만 이날 배석하지 못했다. 추진위 회장인 이경준 명예교수는 이들과 2016년부터 세계기록유산 등재 노력을 시작했다. 무보수 재능기부 활동이었다. “마지막 애국의 길이라는 생각에…”, “산림녹화 기록물이 거의 소실돼 우리 1세대가 직접 돌아다녀 모아야 역사에 남길 수 있어서”, “한국의 성공적인 산림녹화는 세계에서 유일무이한 자랑거리이기 때문에”…. 이들에게는 소원이 있다. 한국의 산림녹화 기록이 산림복구가 필요한 다른 개발도상국에 모범이 되고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것, 미래세대와 인류 역사에 좋은 기억으로 남는 것이다.●산림녹화 기록, 어떻게 모았나추진위에 따르면 국내의 산림녹화 관련 공문은 대부분 폐기됐다고 한다. 그래서 30여 명의 등재 추진위원들은 전국의 산림조합과 각 지역 도청 산림과를 다니며 조림 대장을 포함한 관련 문서들을 열람했다.“도청의 젊은 담당자들은 옛날 일을 모르니까 무조건 서류가 없다고 해요. 창고에 있을지도 모른다고 해서 가보면 있어요. 일일이 사진을 찍고 복사해 자료를 모았어요. 일단 가능한 자료를 모아 온 뒤 한문영 추진위 기록관리 본부장이 자료 가치를 검토했어요.” 산림녹화기록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신청 도전은 이번이 ‘재수’(再修)였다. 2017년 문화재청 심사에 도전했지만 고배를 마셨다. 온 국민이 나무를 같이 심었다는 ‘국민 조림’이었다면서 관(官) 주도 기록물 위주라 민간 기록물이 적다는 이유였다. 추진위는 자료를 보완하기 위해 전국의 산림조합과 산림계(契)를 발이 부르트게 다녔다. “우리나라 산림녹화 초기에 각 산림조합이 연료림(땔감에 쓰일 목재 생산을 목적으로 하는 산림) 조성 계획을 세웠어요. 개인 소유의 사유림에 연료림을 만들어야 하니까 국가가 산림조합에 모든 걸 일임했죠. 산림조합중앙회의 말단 조직으로 마을마다 있는 게 산림계인데 그 수가 2만3000개 정도 됐어요.”그렇게 산림계를 통해 추가로 모은 1300여 개의 산림녹화 기록물이 이번 심사에서 민간 기록물로 인정됐다. 추진위는 한국의 산림녹화가 ‘국민 조림’이었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한국의 산림녹화는 국가가 주도했지만 온 국민이 자발적으로 한 것입니다. 북한의 천리마 운동처럼 강제로 주민을 동원한 게 아니라 새마을운동을 통해 ‘왜 나무를 심어야 하는지’ 교육했습니다. 산림녹화가 되면 산사태를 막고 수자원이 풍부해져 풍년이 와서 나에게도 후세에게도 살기 좋은 세상이 된다고요. 그렇게 온 국민이 합심해 울창한 숲을 갖게 된 겁니다.”추진위가 작년 10월 찾아낸 ‘1958년 화전민 정리 대장’도 귀한 자료다. 기록상으로는 1973~1978년 박정희 대통령이 우리나라의 화전민을 완전히 없앴다. 그런데 1958년 이승만 대통령 때의 화전민 정리 대장을 수집하게 된 것이다. “이승만 대통령은 산림보호임시조치법을 제정해 도벌꾼을 처벌하는 등 산을 지킬 노력을 했지만 성과는 미미했어요. 예산과 행정력이 부족해 산림녹화에 실패했다는 평가를 일반적으로 받는데, 이번에 화전민 정리 기록을 보고 우리도 깜짝 놀랐습니다.” ●한국의 자랑스런 50년 산림녹화추진위가 꼽는 한국의 자랑스러운 산림녹화 성과에는 경북 영일지구 사방사업이 있다. 사방공사는 자연의 힘으로는 도저히 회복되지 않는 극심한 황폐지를 인위적으로 회복시키는 작업으로, 산림녹화의 가장 핵심적인 사업이다. 영일지구는 바위와 돌이 힘없이 부서져 풀 한 포기 자라지 않는 사막 같은 곳이었다. 박정희 대통령은 1973년 제1차 치산녹화 사업을 시작한 후, 신임 손수익 산림청장에게 영일지구 황폐지를 반드시 녹화하라는 특별 지시를 내렸다. 대통령이 수시로 현장을 찾아 격려하며 5년 동안 진행된 사방사업 끝에 4538ha의 황폐지가 완전녹화됐다. 20세기 기적으로 불리는 이 사업의 관련 자료들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신청을 위한 기록물로 제출됐다. 한국산림과학회 회장을 지낸 이경준 명예교수는 대한민국 50년 산림녹화의 주역으로 박정희 대통령(1917~1979)과 손수익 전 산림청장(1932~2022), 육종학자인 현신규 전 서울대 교수(1912~1986)를 꼽는다. 손수익 산림청장은 역사상 최장수 산림청장이다. 6년간 재임하면서 10년 치산녹화계획을 6년 만에 조기완성했다. 화전정리사업에서 보여준 것처럼 철저한 행정지침을 마련해 치산녹화사업을 완벽하게 마무리했다. 카리스마 넘치면서도 따뜻한 리더십이 지금도 회자된다.현신규 박사는 리기테다소나무와 은수원사시나무(현사시나무)의 육종을 통해 산림녹화의 초석을 다지고 한국 육종학을 세계적 수준으로 높였다. 속성수인 이태리포플러를 한국의 풍토에 맞게 개량해 우리 국토를 빠르게 녹화하는 데 기여했다. 추진위 회원들은 “우거진 숲은 국부(國富) 그 자체”라고 입을 모은다. 그들은 과거의 성취에 취해있지 않고 다가올 미래를 생각한다. 세계적 목재 부족 현상에 대비해 선진국처럼 필요한 목재를 인공조림지에 예비해 놓아야 한다고 한다. 미래의 숲은 바이오 에너지 공급, 생물 다양성 보존과 야생동물 보호, 산림휴양과 숲 치유 등의 여러 기능을 수행해야 한다고 한다.은퇴한 지 한참 지난 70대 나이에 우리의 산림녹화 기록을 세계에 널리 알리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이들이야말로 ‘나무를 심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더 나은 미래를 꿈꾸며 이 순간에도 희망의 나무를 심는 마음들이 자라서 더 울창한 명품 숲을 이룰 것이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유네스코가 전 세계의 귀중한 기록물을 보존하고 활용하기 위해 1997년부터 2년마다 선정한다. 한국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은 훈민정음과 새마을운동기록 등 지금까지 18개다. 올해 5월에는 4·19혁명기록물과 동학농민혁명기록물이 선정됐다.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2023-10-01
    • 좋아요
    • 코멘트
  • [단독]국내 1세대 조경가 정영선 씨, ‘세계조경가협회 제프리 젤리코상’ 수상

    세계조경가협회(IFLA)가 ‘2023 제프리 젤리코상’ 수상자로 한국 조경가 정영선 씨(82)를 선정했다고 28일(현지시간) 밝혔다. 정 씨는 이날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이 상을 받았다. IFLA 제프리 젤리코상은 세계조경가협회가 조경가에게 수여하는 최고의 영예상으로, 국내 조경가가 이 상을 받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올해는 한국조경학회 창립 50주년으로 국내 조경이 50년을 맞는 해이기도 하다.서울대 환경대학원 조경학과 1기 졸업생(1975년)으로 조경설계 서안 대표를 맡고 있는 정 씨는 국내 굵직한 조경을 도맡아왔다. 서울 아시아선수촌 아파트, 올림픽공원, 선유도공원, 여의도샛강생태공원, 서울식물원, 아모레퍼시픽 용산 신사옥, 경기 용인시 호암미술관 희원, 남양주시 다산생태공원 등이 그의 ‘작품’이다. 아울러 정 씨는 “믿고 맡겨주신 모든 분들이 있어 이 상을 받게 됐다”며 “자라나는 세대에게 자연을 사랑하는 정신을 키워주는 게 제 소원”이라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세계조경가협회 측은 “정영선 씨는 청계천복원, 선유도공원과 같은 프로젝트를 통해 한국의 조경 디자인을 개척하고 주도했을 뿐 아니라 서구에서 유래한 생소한 풍경 개념을 한국의 땅에 맞게 풀어냈다”며 “과거의 산업적 흔적을 존중해 새로운 디자인으로 만들어내 조경의 지속가능성에 헌신했다”고 수상 이유를 설명했다.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2023-09-29
    • 좋아요
    • 코멘트
  • 순천만 습지 복원과 정원으로 도시를 바꾼 ‘공무원 덕림씨’[김선미의 시크릿가든]

    그는 남도의 소도시를 송두리째 바꿨다. 우리나라에는 없던 정원의 역사를 처음 썼다. 2007년 순천만 습지를 복원하고 2013년에는 순천만정원을 조성해 중앙정부도 시도하지 못했던 국제정원박람회를 열었다. 공무원 한 명이 도시의 경관을 바꾸고 도시의 브랜드를 키우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정작 본인은 모든 공을 노관규 순천시장에게 돌리지만…. 37년간의 공직생활을 마치고 퇴직했다가 돌아온 최덕림 ‘2023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 총감독(66) 얘기다.18일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를 찾자 10년 전 박람회 때에는 보이지 않던 너른 녹지공간이 눈앞에 펼쳐졌다. 저류지를 변신시킨 시민문화광장이었다. 잔디밭에는 아이들이 뛰어놀고 물길 옆에는 시민들이 맨발로 걸었다. 젊은 외국인 관광객도 눈에 많이 띄었다. 최 감독이 노란색 양산을 들고 나타났다. 양산에는 ‘순천하세요’라는 문구가 쓰여 있었다. -‘순천하세요’가 무슨 뜻인가.“‘순천처럼 하세요’라는 뜻이다. 순천이 생태관광 도시로 세계적 관심을 받게 되면서 국내 지방자치단체들뿐 아니라 대만과 베트남 등에서도 벤치마킹하러 많이 온다.”-10년 전과 비교할 때 올해 박람회의 차이점은….“2013년 박람회는 순천만으로 도시가 팽창하는 것을 막기 위한 에코 벽을 정원으로 만든 것이다. 우리나라에 공공정원을 최초로 도입한 의미가 있었다. 올해 박람회는 저류지와 도로 등 공공시설을 정원으로 만들었다. 지방도시 소멸을 막을 수 있는 생태 도시를 만들기 위해서다. 이번에는 외국 정원을 모방한 게 아니라 그간의 경험을 토대로 우리 실정에 맞게 재창조했다. 하룻밤 정원에서 묵는 가든 스테이도 인기다.”올해 4~10월 열리는 2023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는 지금까지 670만 명이 다녀갔다. 275억 원의 수익을 올려 이미 목표액(253억 원)을 넘어섰다. 그는 “생태 정원은 지역 일자리를 창출하고 시민들의 자존감을 높이는 보편적 복지”라고 했다. -정원이 복지란 뜻인가.“동료들에게 기회가 있을 때마다 얘기했다. 우리는 단순히 정원을 조성하는 것이 아니라 보편적 생태복지공간을 조성하는 것이라고. 생태복지야말로 인간이 누릴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복지라고 상기시켰다.”-10년 전보다는 정원이 정돈된 느낌이다.“빽빽하게 심었던 나무들을 정리하고 400여 개 간판을 떼어냈다. 사실 정원은 더하는 것보다 덜어내는 일이 어렵다. 소득 3만 달러 시대를 맞아 시민들이 이곳에서 쉼과 여유를 느리게 즐겼으면 한다.” 1981년 순천시청 9급 공무원으로 시작한 그는 2011년 ‘제1호 지방행정의 달인’(문화관광)으로 선정됐다. 2017년 퇴직한 후에는 ‘공무원 덕림씨’라는 책을 펴내고 순천만 혁신을 주제로 연간 200회 가까운 강연 활동을 펼쳐왔다. 이번에 총감독이 된 건 10년 전 박람회를 만들었던 노관규 시장이 지난해 다시 시장에 취임해 지역을 위해 일해 달라고 했기 때문이다.-총감독이 하는 일은….“공무원 조직은 부서 간의 보이지 않는 벽 때문에 각 부분을 연결하는 부분이 취약하다. 게다가 순환보직 원칙 때문에 지속가능한 행정도 어렵다. 각 부분을 연결하고, 조정하고, 협력하는 게 총감독의 역할이다.”그는 순천만에 생명을 불러넣어 순천의 도시 브랜드를 키운 주역이다. 2004년 남해안 관광벨트 사업으로 순천만 갈대밭에 사람이 걸어다닐 수 있는 데크가 설치됐지만 방문객 수는 미미했다. 고향 순천의 자랑거리를 고민하던 그는 순천만의 생태를 자원화하기로 했다. 그러나 곧 농민과 환경단체 등의 반대에 부딪혔다. “가만있어도 되는데 왜 굳이 긁어 부스럼을 …” 이라는 주변 공무원들도 비난도 받았다.그는 포기하지 않고 일일이 만나 설득했다. 전봇대 283개를 뽑아내는 등의 결단과 노력 끝에 이제 순천만에는 연간 3000마리가 넘는 흑두루미가 날아든다. 20년 전 20만 명 수준이던 순천만 습지의 연간 관광객은 이제 300만 명으로 불어났다. -순천은 어떻게 대한민국 제1호 국가정원의 도시가 됐나. “2008년 당시 노관규 순천시장은 ‘대한민국 생태수도 순천’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순천에 정원을 조성하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그래서 독일에서 정원가로 활동하는 고정희 박사에게 자료를 요청했다. 그때 고 박사가 보내온 보고서에 한 장짜리 ‘정원박람회’ 내용이 들어있었다. 간부회의 때 발표하니 참석자 대부분은 지나쳤는데 노 시장이 그 부분을 다시 설명해달라고 했다. 노 시장은 이후 세계 30여 곳의 정원을 둘러본 뒤 정원에 대한 신념을 굳혔다. 순천만 생태를 보존하기 위해 정원을 조성하고, 그 부지를 이용해 2013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를 연 것이다.”정원도, 국제정원박람회도 생소했던 2013년 순천시는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를 성공시켰다. 당시 행정안전부와 환경부가 외면할 때 유일하게 산림청이 지원했다. 최 감독은 부족한 예산을 ‘재활용’으로 채웠다. 고속도로 공사로 잘려 나갈 위기의 나무들을 옮겨와 심은 순천만정원은 2015년 국내 제1호 국가정원으로 지정되면서 지금의 국내 ‘정원 열풍’을 이끌게 됐다. 순천이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의 모범 도시가 된 것은 공무원들에게 귀를 열고 권한을 준 지자체장의 리더십, 공무원들의 헌신, 시민 협조가 어우러졌기 때문이다. 노 시장은 이번에 퇴직 공무원인 최 감독을 정원박람회 총감독으로 임명하고 조직위 운영본부장을 맡은 백운석 국장에게는 파견공무원 75명을 선발하는 권한을 줬다.박람회장에서 5km 떨어진 순천만 습지로 이동했다. 억새가 바람에 흔들리며 거대한 은빛 물결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갯벌에서 게가 움직이는 게 보였다. 가만히 걸으면서 새 소리를 듣는 데 마음이 편안해졌다. 국내외 조경가들이 정원보다 훨씬 아름다운 곳이라고 극찬하는 장소다. 순천만을 보호하기 위해 스카이큐브로 순천만과 정원박람회장을 연결시킨 최 감독은 “순천시의 최종 목표는 세계적 생태 도시로 거듭나는 것”이라며 “정원박람회는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라고 했다. -관광지로서 순천의 가능성은….“그동안 문화유적에 의존하던 관광형태가 정원과 습지, 식물원 등 생태관광으로 변하고 있다. 소득이 높아질수록 고요한 자연을 찾게 돼 있다. 앞으로 새를 관찰하는 탐조 관광이 활성화하면 순천만이 세계적으로 더 크게 부각될 것이다.” -앞으로 계획은….“이전에 해오던 강의를 계속할 것이다. 일 잘하고, 어떤 사람을 사랑하고, 희망을 갖는 게 행복의 조건이라고 한다. ‘공무원은 철밥통’이라는 말이 듣기 싫어 열심히 일했다. 혁신적인 공직문화가 되도록 후배들에게 그간의 경험을 나누겠다.”그가 말한 행복의 조건에 ‘공무원 덕림씨’를 대입해 보았다. 9급 공무원에서 시작해 열정을 쏟아부은 그는 새로운 가치를 만들고 확산시켜 남도 끝자락 소도시를 살려냈다. 이제 70세를 바라보는 퇴직 공무원이지만 세계적 생태도시를 만들겠다는 희망을 갖고 매진한다. 수많은 관료와 학자들이 지방소멸의 미래를 예측하지만 제2, 제3의 ‘공무원 덕림씨’들이 뒤를 잇는 한 그 미래는 바뀔 것이다.순천=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2023-09-26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음악회, 장터, 가드닝 클래스…한국의 정원문화 싹을 본다[김선미의 시크릿가든]

    몇 년 전 유럽에 살 때, 아이들과 정원에서 시간을 많이 보냈다. 영국인들이 사랑하는 시싱허스트캐슬가든이나 그레이트딕스터가든 같은 유명 정원들도 다녔다. 그런데 정작 부러운 건 따로 있었다. 생활 속에서 누리는 정원이었다. 마을 곳곳의 가든센터에서 씨앗과 화분, 가드닝 용품을 고르는 그들의 ‘정원문화’에는 편안하게 잘 맞는 옷을 입은 것 같은 자연스러움이 배어있었다. 아파트가 도시의 주거형태 대부분을 차지하는 한국에서 정원생활을 한다는 건 일부 사람들에게나 가능한 얘기일까. 경기 용인시 처인구 ‘정원생활바이오랑쥬리’를 가보고 나서 국내에서도 정원문화가 싹트고 있음을 느꼈다. 영국 리틀 칼리지에서 정원 디자인을 공부하고 서튼플레이스가든에서 일했던 전문 정원가 주례민 대표(43)가 이끄는 가든센터다. 800평 규모의 정원과 묘목농장을 갖춘 정원생활바이오랑쥬리는 단순한 식물 매장이 아니다. 그 행보가 문화적이다. ‘음악소풍’이라는 이름으로 유리온실 안에서 클래식 공연을 열고, 전국의 솜씨 좋은 수공예인들을 불러모아 가든마켓’도 연다. 제주의 자연주의 패션, 천연발효 빵, 희귀식물, 수제 그릇, 퀼트 가방 등 정원생활에 어울리는 제품들이 햇살 좋은 야외정원에 펼쳐진다. 왜 그런일들을 할까. “식물을 키우든 키우지 않든 좋은 기억으로 저희 공간을 기억하기를 바라는 마음이에요. 공간과 식물에 대한 좋은 기억이 집 안에 작은 정원이라도 가꾸는 정원생활로 이어졌으면 해요. 아이들이 찾아와 벌과 나비를 볼 수 있는 ‘정원 경험’을 주고 싶어요. 국내 대학에서 원예학과를 나온 저는 영국에 정원 공부를 하러 가서야 ‘삶에 스며드는 정원’을 알게 됐거든요.”‘음악소풍’이라는 이름의 정원 음악회는 학창시절 플룻을 연주했던 주 대표의 궁금증에서 비롯됐다. ‘정원과 음악이 만나면 어떤 시너지를 낼까.’ 프랑스 마을들이 와이너리에서 음악회를 열 듯, 영국에서는 가든센터에서 각종 공연이 열린다. 한국에는 아직 ‘가든센터’라는 이름도 낯설지만 30, 40대들이 주로 찾아와 식물과 호흡하며 클래식 공연을 감상한다. 2013년 제1회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 실내정원공모전에서 수상하고, ‘이니스프리’ 플래그십스토어 등 기업체와 주택들의 식재 등을 담당해온 주 대표는 말한다. “바쁜 현대인들이 따로 시간을 내서 명상을 수행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잖아요. 생활 속에서 머리를 비우고 집중하는 데 식물이 도움이 돼요. 타인의 시선으로부터도 자유로워지고요. 그런 식물의 위로는 나만을 위한 게 아니라 자연을 위한 것이기도 하죠. 우리 집 정원을 가꾸면 보는 사람도 행복해지고요. 정원에서 음악회를 열어보니 공연장보다 편안한 느낌이라 그런지 연주자와 관객 간 소통이 훨씬 잘 이뤄지는 것 같았어요.” 이 곳의 정원은 누구든 찾아와 천천히 거닐며 시간을 보낼 수 있다. 계절 식물을 활용한 가드닝 클래스와 워크숍도 마련돼 있다. ‘널서리 위크’(Nursery week)라는 이름으로 진행되는 행사에서는 계절에 맞춰 곁에 둘 식물을 구할 수 있다. 가을을 맞는 정원에는 어떤 식물이 어울릴까. “지금 심어서 올해 가을과 내년 봄을 즐길 수 있는 식물을 추천드려요. 큰잎꿩의비름 ‘스타더스트’와 ‘오텀조이’는 가을 정원을 풍성하게 만들어줘요. 보라색 꽃이 층층 피어나는 층꽃나무는 생장 속도가 빠르고요. 쑥부쟁이와 등골나무, 누린내풀 ‘스노우페어리’는 정원에 존재감 있는 포인트를 줍니다.” 정원 카페를 겸한 이곳에는 단정한 디자인의 호미와 정전 가위, 꽃과 과일이 그려진 티 타월과 머그컵, 실내에서 키우기 좋은 식물들이 있다. 층고가 높은 유리온실에 햇살이 가득 들어오고, 배경음악과 식물이 어우러져 언젠가는 정원을 가꿔보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한다. 그래서일까. 인스타그램에서는 1만2000명의 팔로워들이 수시로 업데이트되는 정원의 소식과 문화를 접한다. 식물을 대량으로 팔지만 라이프스타일로는 접근하지 않았던 한국의 화훼공판장들이 참고할만한 지점이다. 주 대표가 생각하는 정원 생활이란 뭘까. “식물이 자라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차를 즐길 수 있는 여유가 정원생활이라고 생각해요. 손바닥만한 정원이든, 바질을 키우는 아파트 베란다든 그런 마음가짐과 태도를 가질 수 있는 공간이 있다면 그곳이 곧 ‘시크릿가든’이니까요. 정원 일은 고된 노동으로 하지 말고 내가 즐길 수 있는 만큼만 하세요. 기왕이면 예쁜 앞치마와 장화 차림으로 일하다가 꽃 몇 송이 꺾어 병에 담고 우아하게 차를 마시세요. 정원이 없다고요? 집 근처 정원이나 공원에서 햇살과 바람을 느끼며 걷다가 가만히 앉아보세요. 중요한 건 일상에서 정원을 즐기는 마음이니까요.” 우리가 ‘정원문화’라고 불러주지 않았을 뿐, 우리나라에는 예로부터 정원문화가 있었다. 땅만 있으면 메리골드나 채송화를 심은 미학의 민족이 한국인이다. 텃밭에 상추나 고추를 심고 이웃과 나눈 문화는 유럽의 ‘키친 가든’ 문화에 뒤지지 않는다. 흙을 밟지 않고 디지털 기기와 한 몸으로 자란 지금 세대에게야말로 식물의 위로가 필요한 건 아닐까. 주 대표는 말한다. “일에 지치고 마음이 힘들 때 화단의 잡초를 뽑고 있는 저를 발견해요. 정원 속에서 위로를 받는 것 같아요. 영국에서 일할 때, 중장년에서 노년에 이르는 부부들이 정원에서 시간을 보내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저렇게 나이들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정원이 제게 준 선물은 ‘자연 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깨달음이었어요. 그런 행복을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어요.”주례민 대표가 전하는 ‘스몰 가드닝’ 팁1. 나무 재질의 와인 박스를 활용하라. 물이 잘 빠지도록 배수판과 난석을 충분히 깐 뒤 채소를 심으면 빈티지한 느낌의 샐러드 채소 가든이 된다.2. 다육식물은 모아 심어라.다육식물은 돌로 만든 화분과 잘 어울린다. 다육식물 몇 개를 둥그런 돌 화기에 심고 자갈과 가는 모래를 더하면 미니 암석원이 만들어진다.3. 식물이 모여 사는 화단을 만들어라.야외정원이 있다면 한곳에 장소를 정해 식물을 모아 심어라. 목재나 벽돌 등으로 화단을 구분하라. 힘들지 않고 즐길 수 있는 정도의 면적만 정원으로 가꾸면 된다.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2023-09-25
    • 좋아요
    • 코멘트
  • 고 민병갈 천리포수목원장님에게 보내는 계절 편지[김선미의 시크릿가든]

    민병갈 원장님. 선생님이 여든한 살 나이로 하늘나라 가시고 어느덧 21년이 흘렀네요. 달력이 9월을 말하기 시작할 때, 원장님이 생전에 정성껏 가꾸신 천리포수목원에 다녀왔습니다. 연못의 수련이 별처럼 빛나는 입구 정원부터 꿈결이 펼쳐졌어요. 햇빛에 반짝이는 노란색과 오렌지색 상사화, 에메랄드그린 색의 부탄 소나무, 지는 모습이 격조 있는 수국, 손등을 스치는 바람과 새 소리….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계절의 감각들이 피어나고 있었어요. 두 계절의 식물을 만날 수 있는 간절기의 축복이죠. 원장님 동상 옆에 가만히 앉아보았습니다. 원장님, 정말 고마워요. 한국으로 귀화해 이 땅에 묻힌 첫 서양인으로서 우리 국민에게 이렇게 아름다운 정원을 남겨주셔서요. 살아갈 힘이 필요할 때 누구든 찾아올 수 있는 정원이 있다는 건 얼마나 큰 축복인가요. 게다가 바다와 숲을 함께 누릴 수 있는 정원이라니요. 천리포 해변과 접한 수목원 내 어린이정원에는 지금 팜파스 그라스가 활짝 폈어요. 깃털 모양의 풍성한 이삭이 초가을 바람에 살랑살랑…. 그런데 참, 이상해요. 원장님. 천리포수목원에서는 발걸음도 생각도 속도가 늦춰져요. 안단테(andante), 안단테~. 원장님은 천리포수목원에 두 개의 연못 정원을 만드셨죠. 빅토리아 수련이 가득한 큰 연못 정원과 낙우송이 물속에 심어진 작은 연못 정원. 저는 이곳에서 미국 여류시인 메리 올리버(1935~2019)의 시들을 떠올렸어요. 미국 매사추세츠주의 소도시 프로빈스타운에서 날마다 숲과 바닷가를 거닐던 그녀가 풀어냈던 풍경들과 닮았기 때문인가 봐요. ‘그레이트 연못에 해 떠오르네/오렌지빛 가슴 무성한 소나무에 긁혀, (중략) 한편 내 주위에선 수련이 다시 피어나네.’ (메리 올리버, ‘그레이트 연못에서’ 중) 그녀가 생전에 원장님과 인연이 닿아 ‘천리포의 그레이트 연못’에 와봤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이곳에서 ‘서쪽 바람’과 ‘천 개의 아침’을 맞았다면 어땠을까요(‘서쪽 바람’과 ‘천 개의 아침’은 메리 올리버의 시 제목이에요).<아침 산책> -메리 올리버 감사를 뜻하는 말들은 많다. 그저 속삭일 수밖에 없는 말들.아니면 노래할 수밖에 없는 말들.딱새는 울음으로 감사를 전한다.뱀은 뱅글뱅글 돌고비버는 연못 위에서 꼬리를 친다.솔숲의 사슴은 발을 구른다.황금방울새는 눈부시게 빛나며 날아오른다.사람은, 가끔 말러의 곡을 흥얼거린다.아니면 떡갈나무 고목을 끌어안는다.아니면 예쁜 연필과 노트를 꺼내감동의 말들, 키스의 말들을 적는다.천리포수목원에서 보낸 한나절이 왜 그토록 꿈결 같았나, 곰곰이 복기해보았습니다. 감사와 감동의 마음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24세 장교로 인천에 첫발을 디뎠던 원장님은 미국인 칼 페리스 밀러였죠. 한국의 매력에 이끌려 1950년대부터 한국은행에서 일하다가 1970년대에 천리포수목원을 일구고 한국인으로 귀화했죠. 수목원 내 민병갈 기념관에 쓰여있는 원장님 말씀에 뭉클해졌습니다. “내가 수목원을 개발하기로 결심한 동기는 한국의 어디에도 수목원이 없었기 때문이며, 또한 수목원 개발 및 조성이 나를 키워준 나라 한국에 가치 있는 일로 남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맞아요. 원장님. 한국의 국립 광릉수목원은 1987년에야 문을 연 걸요. 18만 평 천리포수목원(2만 평만 개방 중)에는 1만6862종의 식물이 살고 있습니다. 국내에서 가장 많은 식물 종을 보유한 수목원이죠. 원장님이 1978년부터 세계의 저명한 수목원들과 잉여 종자를 교환하는 방식으로 다양한 수종을 확보한 덕이지요. 목련나무, 감탕나무, 동백나무, 무궁화나무, 단풍나무…. 해외에서 더 인정받는 자랑스런 천리포수목원의 나무들입니다.천리포수목원에는 사람으로 치자면 X세대 나무들이 살고 있더라고요. 원장님이 천리포에서 수목원을 조성하기 시작한 게 1970년, 천리포수목원 재단법인 등록을 마친 게 1979년입니다. 씨앗부터 키운 나무들이 지금 울창한 숲을 이뤘습니다. ‘나알못’(나무를 알지 못하는) 금융인이었던 원장님이 50세에 나무 심는 일을 시작해 자나 깨나 나무 공부를 했다는 사실이 존경스럽습니다. 50세에도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다고 50세 X세대에게 희망을 주시는군요. 살아온 날들과 살아갈 날들, 가치 있는 일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정원사> -메리 올리버 나는 충분히 살았을까?나는 충분히 사랑했을까?올바른 행동에 대해 충분히 고심한 후에 결론에 이르렀을까?나는 충분히 감사하며 행복을 누렸을까?나는 우아하게 고독을 견뎠을까? 나는 그런 말을 해, 아니 어쩌면그냥 생각만 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지. 사실, 난 생각이 너무 많은 것 같아. 그러곤 정원으로 걸어 들어가지,단순한 사람이라는 말을 듣는 정원사가 그의 자식들인 장미를 돌보고 있는.수목원 서해전망대에서 바라보는 바다 풍경은 다정한 느낌이었습니다. 하루 두 번 물길이 열리면 닿을 수 있다는 초록빛 낭새섬 때문이었을까요. 닭섬으로 불렸던 이 섬을 원장님은 천리포수목원으로 편입시키고 낭새섬이라고 고쳐 불렀죠.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닭을 잡아 생계를 잇느라 닭이라면 지긋지긋하셨다고요. 우리 자생식물이 심어진 이곳에 과거 살았다는 낭새(바다직박구리)가 다시 날아든다면 원장님이 하늘에서 얼마나 기뻐하실까요. 천천히 수목원을 거닐다 보면 원장님은 진정한 자연주의 정원사라는 생각이 듭니다. 수목원 조성 전부터 있던 논을 정원의 한 요소로 남겨두셨죠. 잔잔한 논 풍경이 다른 식물들을 돋보이게 하는 ‘주연 같은 조연’, ‘조연 같은 주연’ 역할을 하는 것 같습니다. 원장님은 수목원이 ‘식물들의 피난처’라며 관상을 위해 인위적으로 가지를 치지 말라고 하셨죠. 그래서인지 천리포수목원의 나무들에서는 자연스러움에서 나오는 품격이 느껴집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수목원’(국제수목학회, 2000년)이라는 찬사가 그래서 나왔나 봐요. 연못가의 울창한 ‘닛사’ 나무도 기억에 남습니다. 가지들을 풍성하게 아래로 늘어뜨려 안쪽에 널찍한 공간을 만들어내는 모습이 마음 넉넉한 친구 같더라고요. 텐트를 친 모양새라 ‘텐트 트리’로도 불린다지요. 작은 묘목이 이렇게 거목으로 자라났습니다. 우리 삶도 이렇게 성장하고 있을까요. 누군가에게 아늑한 그늘을 만들어줄까요. 천리포수목원을 나서면서는 플랜트센터에서 작은 완도호랑가시나무 화분을 샀습니다. 원장님이 전남 완도에서 1979년 발견해 국제식물학회에 발표했던 바로 그 나무요. 크리스마스트리에도, 구세군의 상징인 ‘사랑의 열매’에도 사용되는 이 나무는 원장님을 통해 세계에 널리 알려졌습니다. 그런데 공익재단 형태의 사립 수목원인 천리포수목원이 어떻게 유지 계승돼야 하는지 문득 걱정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원장님이 떠나신 지 21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래의 정원을 위해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해야 할까요.원장님과 함께 일했던 두 분의 말씀을 전합니다. “민 원장은 엄청난 수집가이자 기록광이었다. 그가 남긴 방대한 자료가 후대에 유익하게 쓰일 수 있도록 박물관을 건립하는 방안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선진국처럼 기업 후원이 뒷받침돼주면 좋겠다.”(임준수 천리포수목원 감사)“미국 롱우드 가든과 영국 웨슬리 가든에서 교육받을 때 민 원장을 처음 만났다. 천리포수목원에서 일해달라는 제안을 받고 10년을 일하면서 그로부터 식물에 대한 열정을 배웠다. 사회 지도층일수록 민 원장처럼 정원과 식물을 사랑하는 ‘가슴’이 필요하다. 한국 사회는 그 점에서 아직 미흡하다.” (송기훈 미산식물원 대표) 저는 가을이 무르익을 때 천리포수목원에 다시 찾아가려고 합니다. 후원회원으로 가입한 후 수목원 내 ‘가든 스테이’를 예약해놓았습니다. 바닷가 수목원 안 한옥이나 초가에서 노을을 감상하고, 손전등을 들고 밤의 정원을 거닌 뒤 다음 날 아침이슬 맺힌 정원을 고요하게 둘러보는 일만큼 최고의 호사가 또 있을까요. 원장님이 제2의 고국인 한국에 남기고 싶었던 선물도 ‘정원과 함께 하는 생활’ 아니었을까요. 내년 봄 목련이 가득 필 무렵에도 가겠습니다. 각별히 아끼셨다는 ‘라스베리 펀’ 목련, 딸기에 크림을 얹은 색 같다며 ‘스트로베리 크림’이라고 이름 붙이신 목련도 보고요. 그래서 사람들이 천리포는 계절마다 가봐야 한다고 말하나 봅니다. 천리포수목원을 아끼고 사랑하는 팬들이 많습니다, 원장님. 민병갈 천리포수목원장(1921~2002)의 인연들1. 장기영 전 한국은행 부총재(1916~1977)한국은행 직장 후배인 민병갈 원장에게 자신의 만리포 별장을 수시로 내주었다. 민 원장은 이 별장을 드나들다가 지금의 천리포수목원 부지를 구입했다. 그동안 알려지기로는 지역 토박이인 한 노인이 딸 시집을 보낼 돈이 필요하다며 민 원장에게 수목원 부지를 사달라고 간청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임준수 천리포수목원 감사는 최근 기자를 만나 “땅을 팔았던 노인의 손녀가 우리 할아버지에게는 그런 딸이 없다고 하더라. 당시 미국인 잡지 기자가 지어낸 얘기 같다”고 했다. 진짜 사연은 하늘의 민 원장이 아실텐데.2. 민병도 전 한국은행 총재(1916~2006)민 원장은 한국은행에서 만난 민 전 총재와 의형제를 맺고 자신의 한국 이름을 ‘민병갈’이라고 지었다. 이름의 마지막 ‘갈’은 영어 이름 ‘칼’을 바꾼 것이다.3. 서성환 태평양그룹(현 아모레퍼시픽그룹) 창업자(1924~2003)1970년대부터 약용 식물로 한방 화장품을 개발하면서 민 원장과 가까워져 1979년 천리포수목원의 초대 재단 이사를 맡았다. 아모레퍼시픽이 제주도 황무지를 오설록 다원으로 일군 데에는 민 원장의 영향이 있었을 것이라고 한다. 친구끼리 선한 영향을 주고받은 모습이 수목원의 나무들을 떠올리게 한다.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2023-09-10
    • 좋아요
    • 코멘트
  • 국내 1세대 조경가 정영선의 ‘땅에 쓰는 시’[김선미의 시크릿가든]

    그는 대한민국 땅에 시를 쓴다. 고속 성장을 위해 달려온 도시 풍경에 느릿한 휘파람 같은 자연의 풍광과 소리를 담는다. 반세기 넘게 역사적 장소들의 조경을 맡아온 정영선 조경설계 서안 대표(82). 서울 아시아선수촌 아파트, 올림픽공원, 선유도공원, 여의도샛강생태공원, 서울식물원, 아모레퍼시픽 용산 신사옥, 크리스찬 디올 성수 콘셉트 스토어, 경기 용인시 호암미술관 희원, 남양주시 다산생태공원…. 정영선 조경가의 궤적은 곧 대한민국 조경의 역사다. 국내 조경학계와 업계의 거목이지만 대중에게는 생소할 수 있는 정영선 조경가의 삶을 조망한 다큐멘터리 영화가 최근 선보였다. 제20회 EBS 국제다큐영화제의 개막작으로 선정된 ‘땅에 쓰는 시’(감독 정다운)다. 내년 봄 개봉 예정인 이 영화는 영화제 기간인 26일 서울 광화문 시네큐브에서 상영됐다. 정영선 조경가는 “조경은 꽃과 나무를 심는 차원이 아니다. 남길 것은 잘 남기고 그 위에 새로운 그림을 그려 한국적 경관을 아름답게 만드는 작업”이라고 한다. ●80대에도 현역인 ‘할머니’ 조경가대한민국의 조경 역사는 1972년을 출발점으로 잡는다. 박정희 대통령은 1972년 경제수석비서실에 조경·건설 담당 비서관직을 신설하고 한양대 건축학과 출신의 재미(在美) 조경가 오휘영 씨를 그 자리에 임명했다. 제3공화국의 경제개발정책으로 경부고속도로를 건설하면서 훼손된 국토를 정비하기 위해서였다. 오 비서관은 조경전문인 육성이 시급하다고 봤다. 그의 건의에 따라 서울대와 영남대, 서울대 환경대학원이 제1회 조경학과 신입생을 모집한 때가 1973년 3월이다. 정영선 조경가는 이렇게 설립된 서울대 환경대학원 조경학과의 제1호 졸업생(1975년)이자 1980년 한국 1호 국토개발기술사를 획득한 최초의 여성 기술사다. 1984년 아시안게임 기념공원과 아시아선수촌 아파트, 예술의전당 현상설계 공모에서 당선되면서 그의 조경 인생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환경조경발전재단, ‘한국조경백서’).한국의 조경이 강력한 정부 주도로 이뤄지다 보니 정영선 조경가는 한동안 나랏일을 했다. 그가 아시아선수촌 조경을 맡아 도로의 선형을 설계할 때에는 공무원들이 그의 사무실에 앉아 채근했다고 한다. “왜 설계도면을 그리고 있나. 나무는 언제 심나”라고. 조경을 그저 나무 심는 일로 치부하던 때였다. 그는 50여 년 동안 이런 인식에 맞서면서 굵직한 공공·기업 프로젝트를 통해 대한민국의 경관을 만들어냈다. 이제는 기업도 조경의 중요성을 잘 아는 시대가 됐다. 정영선 조경가는 최근 몇 년 동안 아모레퍼시픽 용산 본사 신사옥과 북촌 설화수 플래그십 스토어, 크리스찬 디올 성수 콘셉트 스토어의 조경도 맡았다. 디올 성수 조경 때에는 프랑스 노르망디 지역에 있는 디올하우스의 장미 정원을 구현하면서 한국의 자생 꽃들을 섞어 심었다. 프랑스 정원 속 한국 정원이었다.노르망디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 디자이너 크리스찬 디오르에게 프랑스 장미가 각별했다면, 할아버지 과수원에서 사과꽃 흩날리는 모습을 보고 자란 정영선 조경가에게 한국의 꽃은 곧 그의 정체성이리라. 조경진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정영선 선생님은 늘 새로운 길을 개척해 왔다”며 “인문학적 성찰로 우리 자연경관을 잘 살리면서도 식물과 재료를 현대적으로 재구성하는 상상력이 놀랍다”고 한다.후배 조경가들로부터 ‘할머니’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정영선 조경가는 80대의 나이에도 여전히 호미를 들고 전국을 누빈다. 산과 들을 다니며 자연을 유심히 관찰해 노트에 기록한다. 땅에 핀 작은 풀에도 ‘잘 잤니?’라고 묻는다. 영화 ‘땅에 쓰는 시’를 만든 정다운 감독은 “정영선 선생님은 풀 한 포기, 꽃 한 송이에도 소녀처럼 감탄하고 일상적 표현에도 시적 감수성이 드러난다”며 “그런 점이 선생님을 여전한 현역으로 만들고 있는 비결 같다”고 했다. ●‘정영선 표’ 한국의 대표 조경들1. 여의도샛강생태공원여의도샛강생태공원에 들어서면 서울 한복판에 이런 진짜 자연이 있나 놀라게 된다. 그런데 1990년대 이 공원의 조경을 맡았던 정영선 조경가의 말을 들어보면 갖가지 역경이 있었다.“당시 한강관리사업소 자문위원을 맡았는데 공무원들이 처음 만들어놓은 개발안에는 주차장과 운동장이 있었다. 한강이라는 훌륭한 자연 자원을 인위적으로 개발하는 게 억울해 미칠 것 같았다. 그래서 공무원들 앞에서 김수영의 시 ‘풀’을 읽었다.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당시 우리나라는 홍수에 떠밀려갈 수 있다는 이유로 한강 변에 나무를 못 심게 했다. 정영선 조경가는 생태학자, 곤충학자, 조류학자들을 불러 모아 샛강을 풀과 물고기가 사는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 머리를 맞댔다. 물기를 촉촉하게 머금는 예쁜 버드나무를 꼭 살려내야겠다는 마음이었다고 한다. 공원을 만들 때 인근 여의도 아파트 주민들은 빵을 사다 주면서 “감사하다”고 했지만, 공무원들은 삿대질부터 했다. “공원으로서 갖춰야 할 화장실도, 관리 사무실도, 주차장도 안 갖춰놓고 풀만 심느냐”고. 힘겨운 과정을 극복하고 1997년 태어난 여의도생태공원에는 멸종위기종인 수리부엉이, 천연기념물인 황조롱이와 수달이 돌아왔다.2. 선유도공원선유도공원은 정영선 조경가의 명실상부한 대표작이다. 한강의 섬 선유도의 옛 정수장 시설을 활용한 국내 최초의 재활용 생태공원으로 2002년 문을 열었다. 폐허의 흔적 위에 더해진 새로운 녹색의 생명력을 접하면 저절로 시간의 의미를 사색하게 된다.“선유도공원은 산업구조물을 미적 오브제로만 소모하는 소극적 태도를 넘어 공원 전체의 공간 구조를 직조하는 데 활용했다. 날것으로 드러낸 정수장 폐허의 부스러진 외피를 야생식물로 뒤덮어 거친 풍경을 연출했다. 정수장을 활용한 서울숲(2005년 개장)과 서서울호수공원(2009년 개장), 철도 폐선을 활용한 경의선숲길(2012년 개장) 등에 큰 영향을 줬다.” (이명준 국립한경대 조경학과 교수)정영선 조경가의 조경 철학 중 하나는 “조경가는 연결사”라는 것이다. 그는 선유도공원에 처음 가 봤을 때 선유도의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 울고 싶을 정도였다고 했다. “겸재 정선이 한강의 풍경을 그리던 곳 아닌가. 팔당부터 마포까지 죽 이어지는 풍경을 살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용도 폐기된 정수시설을 부숴버리면 그 시절의 기억이 사라지기 때문에 옛것과 새것을 연결했다. 원래 있던 동쪽 기둥에 나무를 심으니 녹색 기둥 정원이 됐다. 공원도 여러 형태가 필요하다. 선유도공원은 마음이 쓸쓸한 사람들이 와서 쉬었으면 했다. 한 여성이 삶을 끝내려고 갔다가 살아야겠다고 마음먹고 돌아왔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감사했다.”3. 서울아산병원 신관정영선 조경가는 남편이 10년간 병상에 누워있어 힘든 시간을 보냈다. 이 무렵 현대그룹으로부터 서울아산병원 조경 프로젝트를 의뢰받았다. “환자도 보호자도 가슴이 뻥 뚫리게 숨 쉴 수 있는 곳, 비록 병상에 있어도 창 너머로 계절의 감각을 느낄 수 있는 곳, 환자 앞에서 슬픈 내색을 할 수 없는 가족들이 나와서 펑펑 울 수 있는 곳. 병원의 정원은 그런 따뜻한 위로의 정원이 돼야 한다고 생각했다.”그는 병원의 지하주차장 상부에 거대한 인공 숲을 조성했다. 왕성한 생명력을 가진 식물들을 밀도 높게 심었다. 봄에 식물이 싹 틔우는 모습을 보면서 환자들이 회복의 의지를 다졌으면 하는 마음에서였다.4. 호암미술관 희원경기 용인시 호암미술관은 미술관만큼 부속 정원이 사랑받는다. 한국 전통 정원의 이름은 ‘희원’. 정영선 조경가는 이 정원을 통해 담백하면서도 아름다운 한국의 경관을 전한다. 다양한 석조 미술품들이 곳곳에 있어 ‘오픈 뮤지엄’으로서의 기능도 한다.1년 반 동안의 리노베이션을 거쳐 재개관한 호암미술관에서는 현재 김환기 화백의 회고전이 열리고 있다. 정자 옆 희원의 연못에는 프랑스의 유명 미술가 장 미셸 오토니엘의 유리구슬 작품 ‘황금 연꽃’이 설치돼 있다. 한국의 정자와 꽃과 돌인데, 그 어떤 서구의 예술품도 이 한국식 정원과 어우러지는 마법이 실현된다. ●“우리 땅을 존중하고 보살피는 게 정원적 삶의 태도”정영선 조경가 그 자신의 정원은 경기 양평에 있다. 고속도로변이나 농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야생의 풀과 꽃이 심겨 있다. “할아버지는 시골에서 작은 과수원을 했다. 아버지는 대구의 기독교 계통학교 교사였는데, 외국 선교사들이 늘 학교 정원에 꽃과 나무를 심었다. 그래서 토속적인 시골 정원과 서양식 정원을 어려서부터 두루 접했다. 나의 정원은 소박하되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되 사치스럽지 않았으면 한다.”정영선 조경가는 왜 조경을 ‘땅에 쓰는 시’라고 할까. 그는 2021년 성종상 서울대 환경대학원 환경조경학과 교수와 ‘우리 시대 한국인의 삶과 정원’이라는 주제로 대담을 가진 적이 있다(한국조경학회, ‘한국 조경의 새로운 지평’). 그중에는 이런 대목들이 있다.“저는 정원이라는 것을 인간이 인간답게 살면서 잠시 빌려 쓰는 땅에 대한 ‘헌사’라고 생각합니다. 정원, 아니 우리 삶의 기본적인 ‘터’로서의 대지(흙)는 존중하고 보살펴야 하는 곳이기에 그 보살핌 자체가 곧 정원적 삶의 태도가 아닐까요.” “땅을 잘 읽고 그에 맞게 식물과 다른 정원 요소, 그리고 동선과 공간을 적절히 잘 구성하는 것이 정원 만들기의 핵심이라 할 수 있지요. 기후가 변하며 지구는 신음했고, 이상 징후는 가속화하고 있습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는 달라지는, 달라져야만 하는 삶의 자세를 말합니다. 정원은 그런 자세와 삶을 위한 아름다운 필수 핵심 무대입니다.”“조경은 땅에 쓰는 한 편의 시가 될 수 있고, 깊은 울림을 줄 수 있습니다. 하늘의 무지개를 바라보면 가슴이 뛰듯, 우리가 섬세히 손질하고 쓰다듬고 가꾸는 정원들이 모든 이들에게 영감의 원천이 되고 치유와 회복의 순간이 되길 바랍니다.”대한민국 조경 반세기. 여전히 현장에서 답을 찾는 현역의 80대 ‘할머니 조경가’는 꿈이 있다. 미래 세대에게 제대로 된 한국적 경관을 물려주는 것이다. 지금껏 그를 키운 팔 할은 ‘우리 땅과 우리 풀이 전하는 자연의 위로’가 아니었을까. 기후 위기와 디지털 전환이 가속화하는 요즘, 그 위로를 다음 세대에게 전할 사명감이 묵직하게 느껴진다.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2023-08-31
    • 좋아요
    • 코멘트
  • 지역 봉사와 재난 현장 누비며 국민을 돕는 특장차량

    지난해 동해안 산불에 이어 올해 7월 극한 호우까지 크고 작은 재난이 발생했을 때 현장을 누빈 차량들이 있다. 희망브리지 전국재해구호협회(회장 송필호)가 현대자동차그룹, 삼성, 롯데의 후원으로 제작해 운용 중인 13대의 특장차량이다. 희망브리지 전국재해구호협회는 재난 구호모금 전문기관이다. 1961년 전국의 신문사와 방송사, 사회단체가 설립한 순수 민간단체이자 국내 자연재해 피해 구호금을 지원할 수 있는 유일한 법정 구호단체다. 설립 이후 현재까지 1조6000억 원의 성금을 누적 지원하고 6000만 점 이상의 구호 물품을 지원했다. 공익법인 평가기관인 한국가이드스타가 발표하는 공익법인 투명성, 재무안정성 평가에서 5년 연속 최고 등급을 받았다. 희망브리지는 5t과 7.5t 등 두 종류의 세탁 구호 차량 6대를 운용하고 있다. 현대자동차그룹과 롯데가 각각 4대, 2대를 후원했다. 이 차량들에는 20kg 용량의 대형 세탁기 3대와 23kg 용량의 건조기 3대가 설치되어 있는데 하루 8시간 기준 200여 가구의 세탁물을 처리할 수 있다. 수해가 발생하면 흙탕물에 젖은 옷과 이불이 삭기 때문에 희망브리지 측은 재난 직후부터 신속하게 빨랫감을 수거해 세탁, 건조, 포장 과정을 거쳐 전달한다. 지난 3년간 각종 현장에서 세탁한 물량이 2만8095kg. 이 특장차량들은 평상시에는 경기 파주와 경남 함양에 있는 3만3000㎡(약 1만 평) 규모의 물류기지에 배치돼 지역 복지시설을 찾아가 세탁 봉사를 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온 국민이 힘겨워할 때에도 현대자동차그룹과 삼성이 각각 지원한 방역구호차량과 이동식 선별진료 차량은 전국을 누볐다. 초미립자살충제 살포기, 휴대용 연막 소독기, 수동식 분무기, 개인 방호물품이 구비된 방역구호차량은 최근 3년간 1주일에 4.8회꼴인 753회 출동했다. 이동식 선별진료 차량은 8.5t 모듈형 특수장비 차에 최고 수준의 방역 기능을 집어넣었다는 설명이다. 음압·양압 시설을 갖추고, 의료진과 피검사자가 접촉하지 않도록 설계됐다. 3개의 검사실에서 문진과 진찰부터 검체 채취까지 진행된다. 심신회복차량은 재난을 겪은 이들이 심신의 건강을 회복하도록 돕는 차량이다. 현대자동차그룹과 삼성, 롯데가 각 한 대씩 지원했다. 이용자는 리클라이너 기능이 있는 좌석에서 전면부에 설치된 화면을 통해 각종 영상 콘텐츠를 즐길 수 있다. 안마기 두 대도 설치돼 있다. 최근 무더위로 큰 어려움을 겪었던 세계스카우트잼버리 행사 때에는 무시동 에어컨 기능이 빛을 발했다. 포르투갈에서 온 한 잼버리 대원은 “차 안이 시원하다. 잘 쉬었고 고맙다”고 말했다고 한다. 김정희 희망브리지 사무총장은 “특장차량을 비롯해 재난 때마다 흔쾌히 후원해 주신 기업들에 감사하다”면서도 “현재 보유하고 있는 차량 이외에도 샤워와 식사 등 이재민의 불편을 덜어드릴 기능의 차량이 추가로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2023-08-30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20년 정원지기 엄마와 ‘정원수저’ 딸의 숲새울정원[김선미의 시크릿가든]

    “엄마가 20여 년 가꾼 정원이 ‘아름다운 정원’ 상을 받았어요. 딸은 직장을 다니다가 늦깎이로 대학에서 정원을 공부하고 있고요.” 지인의 귀띔을 듣고 호기심이 발동했다. 시원한 팔당호를 끼고 운전하다가 숲길 쪽으로 접어들자 꽃과 나무가 우거진 정원의 벽돌집이 나왔다. 경기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의 숲새울정원이다. 플록스, 아나벨 수국, 금꿩의다리, 운남국화, 베토니…. 무성한 나무들 사이로 한여름의 꽃들이 꿋꿋한 생명력을 드러내고 있었다. 깔끔하게 정돈된 정원이라기보다는 야생의 위로를 전하는 정원이었다. 린넨 셔츠 차림의 엄마 신재열 씨에게서는 70대 여성의 여유로운 패션 감각이 느껴졌다. 40대 나이가 믿기지 않는 앳된 외모의 딸 최가영 씨는 상냥하고 나긋나긋했다. 숲과 개울을 바라보는 정원의 나무 그늘막에 앉으니 새소리와 물소리가 들렸다. 이른 아침 집에서 갓 구웠다는 크루아상이 나왔다. 이런 숲속 응접실에서라면 여름 햇빛이 제아무리 따가워도 힐링의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늘막 곳곳에는 엄마가 오랜 취미로 한다는 서각과 도예 작품, 정원 용품들이 있었다. 딸은 이곳에서 정원 공부를 하고 글을 쓴다고 했다. ●엄마의 노력과 딸의 도움이 어우러진 정원지금부터 엄마는 ‘마마님’, 딸은 ‘수습이’로 칭하려 한다. 딸 가영 씨가 소셜네크워크서비스(SNS) 활동을 하면서 지은 별칭이다. “인스타나 블로그에 글을 쓸 때, ‘엄마’라는 호칭을 적는 게 좀 사적으로 보이는 것 같아 ‘마마님’이라고 했더니 다른 분들도 엄마를 그렇게 불러주셨어요. 저를 ‘수습이’라고 한 건, 숲새울정원의 수습 정원사이면서 왠지 남은 생에도 정원을 마스터하지 못할 것 같은 마음에서였어요. 정원에 있어서는 엄마의 경지에 오르지 못할 것 같아서요.” 마마님이 서울에서 귀촌 후 20여 년간 가꿔온 정원은 2020년 산림청이 주최한 ‘대한민국 아름다운 정원’ 콘테스트에서 1등을 받았다. “엄마의 정원이 어디에 내놔도 부끄럽지 않다고 생각될 즈음에 주변 분들로부터 콘테스트 참가를 제안받았어요. 출품을 결심하자 가장 먼저 필요했던 게 정원의 이름이었죠. 엄마와 저는 스케치북을 펴고 그림을 그려가며 브레인스토밍을 했어요. 우리 정원의 특징은 무엇일까 하고요. 우리 정원은 산 옆에 있어 숲을 품고 있고, 새가 많고, 옆에는 개울이 흐르고 있었어요. 숲, 새, 개울 이렇게 적어보다가 얘기했어요. ‘엄마, 숲새울 어때?’ ‘아주 마음에 든다’. 그렇게 숲새울정원이 되었답니다.”딸은 자신을 ‘수습이’라고 부르지만 사실 지나친 겸손의 표현일지도 모른다. 그는 현재 대학에서 정원을 공부하고 관련 국제 심포지엄들에 참석하는 ‘찐 학구파’다. 직장생활을 하다가 몇 년 전 갑자기 ‘경단녀’가 됐을 때, 허리가 안 좋던 엄마를 도와 정원 일을 시작한 게 늦깎이 정원 공부의 계기가 됐다. 처음에는 잔디 잡초제거, 제거된 식물들 가져다 버리기 등 힘쓰는 일들 위주의 소심한 가드닝을 하다가 엄마의 허락을 받아 하나둘씩 모종이나 작은 관목을 심게 됐다고 한다. “정원은 제게 있어 엄마의 취미였고 엄마를 자랑스럽게 하는 무형의 자산이었어요. 그런데 정원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해 보니 저는 대단한 ‘정원 수저’(금수저, 은수저라는 말처럼 정원을 물려받았다는 의미)였더라고요. 엄마의 정원이라는 최고의 서당에서 20여 년을 뛰놀던 ‘서당개’라는 걸 깨달았어요. 정원을 지켜온 크고 작은 나무들, 주변에 밀집된 숙근초들, 오랜 시간 스스로 터득해 온 엄마만의 손맛과 미적 감각이 숲새울정원을 만들었다고 생각해요. 독일에서 3년 간 산 적이 있는데, 당시 한국에 전화해 엄마에게 드렸던 말씀이 생각나요. ‘엄마, 독일 길가에 꽃이 잘 심어져 있는데 동네에 별다른 정원은 없어. 엄마 정원이 여기 오면 짱 먹어.’ 해외를 다녀볼수록 엄마의 정원이 얼마나 대단하고 멋진지 알 수 있어요.” 서울에서 꽃꽂이를 즐기던 마마님이 2000년 능내로 이사해 정원 가꾸기에 심취했을 때, 수습이는 미국 유학 중이었다. “당시 한국에 흔하지 않던 꽃씨들을 찾아 종종 엄마에게 보내드렸어요. 그중 하나인 매발톱꽃은 해를 거듭하며 교잡돼 매년 새로운 모습으로 숲새울정원의 역사를 쓰고 있어요. 매발톱은 씨앗으로도 알아서 잘 번지고, 한 번 자리 잡으면 건강한 모습으로 정원의 공간을 채워주거든요. 부지런한 벌들 덕분에 나타나는, 예측조차 안 되는 새로운 얼굴들에 큰 즐거움을 누려오고 있어요.” ●피트 아우돌프의 자연주의 정원에 매료된 딸 수습이는 대한민국 국가정원 2호인 울산 태화강국가정원의 정원 조성 작업에도 자원봉사로 참여했다. 그가 ‘팬심’ 가득 품는 세계적 정원 식재 디자이너 피트 아우돌프(79)가 지난해 이곳에 자연주의 정원을 조성할 때 식재 작업을 함께 한 것이다. 지난해 11월 태화강국가정원에 갔던 때가 떠오른다. 나 역시 피트의 명성을 확인하러 갔었는데, 당시엔 식물을 막 심은 때라 땅 위의 식물 이름표만 확인할 수 있었다. 그 식물들을 심은 손길 중 하나가 ‘수습이’ 최가영 씨였다니 감격스럽다. 공원과 공공정원에 시민 참여는 많을수록 좋다. 참여를 넘어 시민이 자발적으로 커뮤니티를 만들어 주도하는 움직임이 더 늘어나야 한다. 수습이는 식재 모니터링을 위해 매달 태화강국가정원에 다녀온다. 그가 최근 찍어온 사진을 보니 어느덧 씨앗과 작은 식물들이 자라나 ‘피트풍 정원’을 연출하고 있었다. 꽃배초향 ‘블랙 에더’, 쇠풀 ‘하하 통카’, 털부처꽃 ‘스월’의 조화가 야생의 위로를 전하는 느낌! “한국인들은 성미가 급해 피트 아우돌프의 자연주의 정원을 그냥 풀밭 같다고 할까 걱정돼요. 하지만 한국인들은 열정만큼은 1등이니까 잘 홍보하면 대중의 큰 관심을 이끌어낼 수 있다고 봐요.” 마마님과 수습이는 지난해 독일과 네덜란드로 정원 탐방 여행을 다녀왔다. 피트 아우돌프가 조성한 정원들을 둘러보는 여행이었다. “딸이 피트의 자연주의 정원을 워낙 좋아하니 나도 관심을 갖게 됐어요. 식재 디자인이나 정원 배치를 보면서 둘이 감탄을 많이 했죠.” (마마님)“모녀가 단둘이 하는 여행은 처음이었는데 정원과 식물을 보고 대화하는 매 순간이 소중했어요. 그중 백미는 피트의 초청으로 그의 정원인 훔멜로를 방문한 일이었어요. 모델 출신인 피트의 아내 안야가 해맑은 미소로 반겨주었죠. 훔멜로는 그 어떤 정원보다 독창적이고 놀라웠어요. 숙근초를 빽빽하게 채웠기 때문에 별다른 정원 관리를 하지 않고 그저 식물들이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 관찰한다고 해요.” (수습이) 식재에 대한 생태학적 접근은 1930년대 이래로 독일과 네덜란드에서는 친숙한 주제였다. ‘독일 정원의 아버지’로 불리는 칼 푀르스터(1874~1970)는 자연 서식지와 비슷한 경관에서 식물을 재배하면서 최소한의 관리로 자라는 식물을 찾았다. 이 계보를 이은 인물이 네덜란드 출신의 피트 아우돌프다. 강건한 숙근초와 관상용 그라스류들을 재배해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버려진 철길을 갈대와 야생화로 채운 미국 뉴욕 하이라인파크, 시카고 밀레니엄파크의 루리 가든, 독일 바일 암 라인의 비트라 캠퍼스 등 세계의 주요 공공정원이 그의 손에서 태어났다. ●엄마와 딸이 정원에서 서로 돌보는 마음수습이는 현재 전세계적으로 유행하고 있는 유럽의 자연주의 정원에 흠뻑 빠져있다. 그래서 엄마의 정원에서 의견 차이가 발생한다. “정원 공부를 하기 시작하니, 수습이도 보는 눈이 생기는지라 마마님의 정원에 태클을 걸기 시작합니다(웃음). ‘제가 감히…’라는 생각도 들지만, 생각이 모이면 뭐든 더 발전하기 마련이니까요. 식물은 엄마의 영역이지만 저는 전체적인 분위기나 디자인에 더 신경을 쓰고 싶거든요.” 가장 큰 의견 차이는 그라스를 정원에 들이는 문제였다. 몇 년 전 그라스가 국내에 도입됐을 때, 딸의 말을 듣고 참억새 품종을 심었던 마마님은 그 큰 덩치에 혀를 내두르고 “그라스는 우리 정원에 안 돼”라고 굳게 마음 문을 닫았다는 게 수습이의 말이다. 마마님의 생각은 다르다. “피트 아우돌프식 정원은 거대한 규모의 공공정원에 어울리는 것이지, 우리처럼 가정 정원에는 맞지 않더라고요. 심은 거 다 뽑아내느라 아주 애를 먹었어요.”그럼에도 딸은 포기하지 않는다. “저는 아무래도 칼 푀르스터 같은 독일 숙근초 디자이너에서부터 이어진 피트 아우돌프의 정원 철학에 매료된 상태라 그라스를 포기할 수가 없었습니다. 너무 크게 자라지 않고 이삭이 아름답게 뻗어나서 엄마의 정원에 어울릴만한 그라스를 끊임없이 보여드리면서 설득했습니다. 그 결과, 엄마는 다시 조금씩 심어보시면서 시커매진 그라스의 씨송이에도 매력을 느끼기 시작하는 것 같습니다.”딸이 추구하는 정원은 사람 손길을 덜 필요로 하는 정원이다. 그런데 엄마의 정원은 시간과 노력을 많이 들여 관리해야 하는 정원이다. 허리도 안 좋은 70대 엄마가 정원에서 온종일 일하는 모습은 딸이 보기에 속상하다. “엄마의 지나친 노동에 잔소리를 자주 했더니 엄마도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셨어요. 정원 일을 즐기시는 만큼 엄마가 행복하다고 생각을 바꾸니 저의 잔소리도 잦아들게 되었습니다.”마마님의 얘기를 들어보았다. “정원 일이라는 게 남들이 보기에는 좋아 보이지만, 너무 힘든 일이에요. 딸이 쭈그리고 앉아 풀 뽑고 있으면 안쓰럽더라고요. 그래서 ‘얼굴 탄다, 하지 마라’고 말리죠. 엄마 입장에서는 저처럼 손 많이 가는 가드닝을 딸이 하는 걸 원치 않아요. 딸은 뭘 했다 하면 뭐든 열심히 해요. 식물에 대한 지식도 나보다 훨씬 많고, 외국어도 잘하니 새로운 식물들도 많이 추천해주죠. 얼마 전에 딸이 우리나라에 흔하지 않은 ‘하하통카’라는 식물을 강력하게 권해서 심어봤어요. 단아하게 자라나는 모습을 보니 왜 딸이 그토록 좋아하는지 알겠더라고요. 정원을 통해 좀 더 서로를 알아가는 것 같아요.” 수습이는 말한다. “저에게 숲새울은 아름다운 선물이고 유산인 동시에, 감히 짊어질 수 없는 무거운 짐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정원에 들어서면 오감으로 전해오는 식물들의 미려함이 잠시 스쳐가고, 엄마의 노동과 수고가 물밀 듯 떠올라 한숨이 쉬어지곤 합니다. 한 가지 분명한 건, 숲새울 정원은 엄마의 인생이 담긴 걸작품이라는 겁니다.” 마마님은 “딸이 어차피 이 길로 들어섰으니 열심히 배워서 훌륭한 가드너가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담백한 말이어서 오히려 엄마의 깊은 사랑이 느껴졌다. 숲새울정원이 세월의 나이테와 함께 숲은 더 울창해지고 새는 더 많이 찾아오고 개울은 더 맑고 힘차게 흐르기를 바란다. 김선미기자 kimsunmi@donga.com}

    • 2023-08-24
    • 좋아요
    • 코멘트
  • 10만 평 천년숲정원을 앞뜰로 누리는 서라벌 여인의 사부곡[김선미의 시크릿가든]

    불국토(佛國土)로 불리는 경주 남산 자락, 선덕여왕릉을 마주 보는 곳에 10만 평 숲이 있다. 여왕이 살던 시절, 서라벌엔 18만 호 기와집에 100만 명이 살았다고 하니 그땐 숲도 큰 마을이었을 게다. 신라인의 마을에 천년의 세월이 흘렀다. 왜가리가 날던 논은 대한제국 시절 묘목장이 됐다가 임업시험장으로, 다시 산림환경연구원으로 변신했다. 40년 전 묘목들은 이제 아름드리 숲을 이뤘다.올해 4월 경상북도 첫 지방 정원으로 문을 연 ‘경북천년숲정원’ 이야기다. 1990년대 후반부터 일반에게 개방한 이곳은 2002년 태풍 루사로 쓰러진 나무를 외나무다리로 활용하면서 ‘인생 사진 맛집’으로 입소문이 났다. 실개천을 따라 쭉 심어진 메타세쿼이아가 수면에 거울처럼 비친다. 하지만 변변한 이름이 없어 산림환경연구원 수목원으로 불리다가 이번에 비로소 ‘천년숲정원’이란 이름을 얻었다. 신생 정원인데도 천년 고도를 찾는 관광객들에게 ‘핫플’로 떠올랐다. 경주 아지매(아주머니의 경상도 방언) 서석태 씨(69)에게 천년숲정원은 앞뜰이다. 이 정원 안에 있는 경북산림환경연구원 쪽문 옆이 그녀의 집이기 때문이다. 아침저녁으로 이 정원을 산책하는 그녀에게 이곳은 그저 집 앞 정원이 아니다. 하늘나라로 간 남편의 땀과 추억이 서린 곳이다. 그녀를 만나게 된 건 우연일까, 필연일까. 천년숲정원의 오랜 역사를 알고 싶어 경북산림환경연구원에 문의했을 때 연구원 측은 “오래된 직원분들은 다 퇴직하셔서…”라며 난감해했다. 울창한 숲도 태초엔 누군가 나무를 심었지 않았겠나. 무작정 인근 갯마을의 경로당을 찾아갔더니 한 어르신이 말했다. “2년 전 저세상으로 간 최병문 씨가 쭉 임업시험장(경북산림환경연구원)에 다녔어요. 쪽문 바로 옆집에 살았지. 지금도 부인은 그 집에 살아요.”백구(白狗)가 마당을 지키는 그 집 앞에서 30분쯤 기다리자, 외출했다가 돌아오는 한 여성을 만날 수 있었다. “혹시 최병문 씨의 부인이신가요”라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했다. 서석태 씨였다. 서 씨는 “잘 찾아오셨네. 하긴 이 동네에 나만큼 이 정원을 아는 사람도 없어요. 남편(최병문 씨)과 함께 근무했던 사람들은 이제 다 퇴직하고 없으니까요.” 서 씨가 맞아 준 집 안 곳곳에는 그들의 가족사진이 걸려 있었다. “우리는 1974년 결혼해 쭉 이 집에 살았어요. 여기 경주 갯마을에 30호쯤 사는데, 마을 사람들이 우리 집 옆 쪽문을 통해 수목원의 풀도 베고 나무도 심으러 다녔어요. 남편도 연구원 기능직으로 일하는 동안 많은 나무를 심었답니다.” 이 집에도 작은 텃밭 정원이 있었다. 족두리꽃, 참나리, 애기범부채, 탐스럽게 열린 가지…. 서 씨는 “이거 냄새 좀 맡아보소”라며 보라색 꽃을 피운 사파이어 세이지 잎을 건넸다. 기분이 우울할 때 이 허브 향을 맡으면 행복해진다고 했다. 함께 천년숲정원을 돌아보기로 했다. “남편 살아있을 때 쪽문을 통해 임업시험장 수목원(현재의 천년숲정원)을 매일 산책했어요. 지금도 우리 손주들은 여길 거닐 때마다 ‘이 나무는 할아버지가 심은 나무’라고 말해요. 아이들도 마을 주민들도 저마다 이 숲에 주인의식이 있어요. 저는 사람들에게 10만 평 정원을 앞뜰로 갖고 산다고 자랑한답니다(웃음). 평생 나무랑 가까이 살았으니까요.”메타세쿼이아 숲에 이르렀다. 나무들이 우거져 녹색의 색감이 깊었다. 메타세쿼이아가 어찌나 우람한지 서 씨가 두 팔을 벌려도 절반밖에 못 껴안았다. “지금이야 숲이지, 40년 전에는 허허벌판에 가느다란 어린 메타세쿼이아만 있었어요. 연구원 앞의 40m 높이 메타세쿼이아 두 그루도 1970년대에 남편이 심은 묘목이 자란 것이거든요.”메타세쿼이아는 생장 속도가 매우 빨라서 전 세계적으로 조경수로 인기다. 한국의 메타세쿼이아는 국내 대표 산림학자인 고 현신규 박사(1911~1986)가 1956년 미국에서 들여왔다(강철기, ‘조경수에 반하다’). 낙우송과 매우 비슷하게 생겼지만, 낙우송 잎이 어긋나기로 달리는 데 비해 메타세쿼이아는 마주나기로 난다. 서 씨는 함께 걸으며 낙우송에 발달해 있는 기근(숨을 쉬는 뿌리)의 여부로 두 나무를 구별했다.칠엽수(마로니에)가 빼곡하게 들어선 나무 터널에 다다랐다. 기념사진을 찍는 방문객들이 많았다. “이 나무들은 1979~1980년 남편과 마을 사람들이 심은 거예요. 그때는 나무들이 지금처럼 이렇게 자라날지 몰랐어요. 좀 더 간격을 두고 나무를 심었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라니까요. 그러고 보니 40년 넘게 이 길을 걸어왔네요.” 천년숲정원에는 서 씨의 남편이 심었다는 오래된 나무들만 있는 게 아니다. 연구원 안에서 양묘하던 배롱나무 340주로 올해 5월 배롱숲이 새롭게 조성됐다. 배롱나무는 경상북도의 도화(道花)다. 무더위와 척박한 토양에서도 잘 자라면서 꽃과 수피(樹皮)가 우아한 배롱나무는 강건하고 생활력이 강한 경북도민의 기품과 닮았다는 설명이다. 이제 막 심은 배롱나무들은 분홍, 보라, 하얀색의 꽃을 피워내고 있었다. 줄기가 연약해 보였지만 그래서 꽃과 어울림이 한 편의 시(詩) 같기도 했다. 이 어린 나무들도 언젠가는 노목이 될 것이다.서 씨가 남편을 애틋하게 떠올리는 장소는 버들못 정원이다. 개나리, 조팝, 좀작살, 쉬땅나무 등 꽃피는 관목들이 연못을 둘러싸고 있다. “개나리 필 때 저 연못 옆 버드나무는 물에 들어가지 않으려고 깨금발 하는 모습이 참 예뻐요. 한 번 볼래요?” 서 씨가 휴대전화 사진첩에서 봄의 버들못을 보여줬다. “남편이랑 이 연못가에서 두런두런 많은 얘기를 했어요. 남편이 천생 양반이라, 마누라한테 화내는 일도 없고 자상해서 주변 사람들로부터도 인격적으로 대접받고 살았어요. 요즘도 커피 끓여 보온병에 담아와 연못가에 앉아요. 남편과의 추억이 저절로 떠올려지거든요.”천년숲정원에는 수목 355종 5만 본, 초목 55종 14만 본 등 410종 19만 본의 식물이 식재돼 있다. 특히 초본의 대부분은 이번에 정원을 만들면서 새롭게 심은 것이다. 여러 종류의 무궁화를 감상할 수 있는 무궁화동산, 신라 이미지를 형상화한 서라벌 정원, 울진 후정리 향나무 등 경북지역 천연기념물의 후계목을 키우는 천연기념물원도 조성했다. 어린 학생들이 견학 와서 숲을 배우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서 씨가 말했다. “숲정원만큼 시간을 켜켜이 쌓아 물려줄 수 있는 유산이 있을까요. 한가지 바람이 있다면 자연에 너무 많이 손대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돈 들여 불필요한 인공물을 만드는 대신 후세를 위해 자연스러운 모습을 남겨줘야 해요. 그래야 나무의 강인한 생명력과 숲이라는 선물을 느낄 수 있거든요.”p.s. 경북산림환경연구원에서 2002년부터 근무했다는 전원찬 산림환경과장은 고 최병문 씨가 연구원에서 오랫동안 일하면서 지금의 천년숲정원 나무를 심는 데 기여한 사실을 확인해 주었다. “함께 밥도 여러 번 먹었습니다. 참 열심히 하셨죠. 옛날 공무원들은 전부 현장에 나가 삽 들고 나무를 심었으니까요.” 전 과장 개인적으로는 연구원 본관 앞에 심어진 은목서가 뜻깊다고 했다. “경북대 임학과에 다니던 1988년, 연구원으로 실습을 나왔을 때 봤던 은목서가 지금도 같은 자리에 있습니다. 당시 은목서의 북방한계선은 경주 부근이었는데, 지금은 기후변화로 인해 서울에서도 심는 나무가 됐어요.” 정원은 지나간 시간을 음미하는 곳인 동시에 우리가 미래를 위해 해야 할 일을 일깨워주는 장소라는 생각이 들었다.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2023-08-17
    • 좋아요
    • 코멘트
  • 별 보는 남편과 아내의 장미 정원[김선미의 시크릿가든]

    영국의 대문호 윌리엄 셰익스피어는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줄리엣의 대사를 통해 말했다. “이름이 뭐가 중요할까요? 우리가 장미를 어떻게 부르든 이름이 무엇이든 그 향기는 달콤할 거예요.” 이 말에 절반만 수긍한다. 장미는 향기가 달콤한 동시에 그 이름도 특별하다.긴 장마가 막 끝나고 무더위가 시작된 7월 마지막 주 금요일 오전. 충남 아산신도시 배방지구에 있는 황인준(58)-오수정(54) 씨 부부의 3층 단독주택 정원에 들어서자 장미 향기가 물씬했다. 영국 장미인 빨간색 ‘폴스타프’(Falstaff)와 살구색 ‘레이디오브샬롯’(Lady of Shalott), 독일 장미인 연분홍색 보이지(Voyage)…. 화려한 미모의 장미 폴스타프에 셰익스피어 ‘헨리 4세’에 등장하는 주정뱅이 노 기사의 이름을 붙인 장미 업계의 작명 센스란! 오 씨의 정원에는 공주(‘프린세스 알렉산드라 오브 켄트’), 작곡가(‘벤저민 브리튼’), 화가(‘레오나르도 다빈치’)도 산다. 세계적 육종회사인 영국 데이비드 오스틴 사(社)와 프랑스 메이앙 사가 이들의 이름을 따서 장미의 이름을 지었기 때문이다.오 씨는 32평 마당 정원과 8평 옥상 정원을 가꾼다. 덩치 큰 목백일홍과 목련, 가문비나무와 단풍나무, 라일락과 수국, 달리아와 백합 등이 심어진 이 정원에는 무려 100여 종의 장미가 자란다. “이 아이들이 힘든 장마의 고비를 넘겼어요. 모진 빗속에서 잘 버텨줘서 고마워요. 하지만 지금부터 무더위와 병충해에 시달릴 걸 생각하니 마음이 아파요. 사람도 식물도 힘든 계절이에요. 장마 전에 오셨으면 꽃 대궐을 보실 수 있었을텐데요.” 그는 기다란 전지가위를 들고 장미 꽃송이들을 잘라 순식간에 핸드 타이드 부케를 만들었다. “아침 일찍 자르지 않으면 폭염에 꽃들이 다 말라버리거든요.” 더위뿐일까. 태풍이 오는 것도 대비해야 한다. KTX에 몸을 싣고 서울에서 불과 30여 분 왔을 뿐인데 딴 세상이 펼쳐진다. 아산신도시는 미국이나 유럽처럼 단독주택들이 자리 잡고 있다. 담장도 대문도 낮아 이웃들의 정원이 훤히 들여다보인다. 동네 사람들도, 지나가던 외부 사람들도 오 씨의 정원에 찬사를 보낸다. 오 씨가 장미를 삽목(가지를 꽂아 뿌리를 내는 작업)해 이웃에게 나누면서 마을 전체가 꽃마을이 됐다. “11년 전 이 집을 짓고 마당에 다양한 장미를 심어보려 할 때, ‘한국종자나눔회’라는 다음 카페에서 어린 줄 장미 묘목 열 주를 5000원씩에 받아 심었어요. 지금은 영국 장미, 일본 장미 등이 다양하게 수입되지만 당시엔 국내에 유통되는 장미가 얼마 없던 때였거든요. 못 보던 장미를 나눔 받았기 때문에 나도 나중에 필요한 분들에게 갚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그는 장미를 키우며 다양한 모습을 대하다 보니 점점 더 장미의 매력에 빠져들었다고 한다. “세상에는 너무나 많은 장미가 있거든요. 색과 향기, 형태가 각기 다른 장미들이 피어나면 작은 마당에서도 큰 행복을 느낍니다. 장미는 화려해서 쉽게 시선을 끌기 때문에 장미를 계기로 오가는 이웃과 금세 이야깃거리가 생겨나요. 이웃 간 소통과 왕래가 잦아져 각 집에서 키우는 개들도 누구네 집 가자고 하면 알아듣고 향해요. 비 예보가 있으면 지인들에게 장미를 한가득 꺾어드리기도 합니다. 꽃을 받고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 ‘로즈 가드너(rose gardener)’로서 행복해집니다.”오 씨가 갓 구워낸 허브 쿠키와 여름 과일들을 내왔다. 로얄 코펜하겐 잔에 담긴 커피 향이 좋았다. 거실에도 주방에도 곳곳에 장미들이 있었다. 얼마 전 읽은 책에서 정원을 ‘정원사가 분양받은 천국의 작은 조각’이라고 하던데, 그 조각이 이루는 일상은 참으로 평화로워 보였다. “새벽 5시에 일어나 마당 정원과 옥상 정원의 꽃들을 돌본 뒤 오전 7시에 남편과 수영을 다녀와요.”오 씨는 자신을 ‘식물들과 알콩달콩, 틈틈이 바느질, 어쩌다 첼로’하는 사람으로 소개한다. 올해로 결혼생활 28년째. 결혼 직후 남편의 유학을 따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살았던 그는 2000년대 중반 남편의 고향인 아산에 내려와 주부로 살아왔다. 손으로 만드는 일을 좋아해 퀼트 모임을 하면서 이웃을 사귀고, 첼로도 배웠다. 꼬맹이들이었던 세 딸은 이제 성인이 됐다.층고가 높고 천창(天窓)도 난 건평 30평의 3층 집은 아내가 수집해 온 인형들, 미술과 요리를 공부한 딸들의 그림 등 가족의 역사가 빼곡한 예쁜 박물관인 셈이다. 이곳에 빼놓을 수 없는 ‘보물’이 또 있다. 남편 황인준 씨가 촬영한 천체 사진들이다. 1980년대 중반 한국 아마추어 천문협회 운영위원장을 지낸 황 씨는 국내 유명 천체 사진가로, 천체 관측 장비들을 제작해 수출하는 호빔천문대 대표를 맡고 있다. 2015년에는 천체사진집 ‘별빛방랑’(사이언스북스)도 펴냈다.“연애할 때 정말 신기했어요. 하늘에 별이 무수히 많은데 어떻게 다 설명하는지 말이에요(웃음). 남편이 논 한가운데 땅 460평을 사서 호빔천문대를 처음 허름하게 지었을 때, 갑자기 땅이 생기니까 마음껏 꽃을 심어보고 싶었어요. 아이들은 낮에는 개구리나 도마뱀을 잡고, 저는 3년간 매일 아침 풀 뽑아가면서 미친 듯 꽃을 심었어요. 마침 ‘타샤의 정원’이 유행하던 때였죠. 꽃을 풍성하게 내는 데 집중했는데 아산의 산바람이 만만찮더라고요. 외국 잡지에서 예쁘게 본 꽃들이 여기에서는 안 되는 것들이 있었어요. 2012년 이 집을 짓고 제가 좋아하는 꽃들, 손이 덜 가면서 정원 관리가 쉬운 것들 위주로 골라 심었어요.”가느다란 열 주를 처음 심었던 ‘알키미스트’라는 이름의 장미는 자라나면서 오 씨에게 큰 기쁨을 주었다. 첫해에 한두 송이 피던 장미가 이듬해부터는 수십 송이씩 피어났다. 이 집 정원의 시작부터 함께 해 온 장미라, 장미 애호가들 사이에서는 널리 알려졌다. 꽃의 형태와 색감이 독특해 장미가 만개하면 누구나 감탄한다고 한다. 1년에 한 번 봄에만 피지만 1년 치 꽃을 몰아 피듯 많은 꽃을 보여준다. “올해로 아홉 살이 된 우리 집 스탠다드 푸들 ‘꼬봉이’ 사진을 해마다 이 장미 옆에서 찍었어요. 나중에 꼬봉이가 떠나면 꽃필 때마다 많이 아쉬울 것 같아요.”꼬봉이 얘기에 코끝이 찡해진다. 하긴 꽃도 지고 나서 다시 피는 꽃은 예전의 꽃이 아니다. 그렇게 만나고 헤어지는 게 삶일 것이다. “예전에는 화려하게 꽃피는 시절을 좋아했는데 이젠 봄에 새잎이 날 때도, 늦게 핀 가을꽃에 눈송이가 소복이 앉을 때도 좋아요. 화려하거나 조용하거나 모든 순간이 아름다운 걸 이제 깨달아요. 우리 인생도 그렇겠구나 싶어요.” 장미를 잘 키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저도 처음에는 시행착오가 많았어요. 어떤 장미는 별다른 관리를 하지 않아도 잘 크는데, 어떤 장미들은 까탈스럽기도 하거든요. 섬머송(Summer song)이라는 오렌지색 장미는 정말 잘 안 컸어요. 비리비리하다가 죽기도 하고요. 그런데도 너무 예뻐서 도저히 포기할 수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여기저기 찾아다니며 정보를 수집했어요. 결국 중요한 것은 키우는 장소와 장미의 특성을 잘 파악하는 것이에요. 장미는 무엇보다도 가드너와 상호 교감에 민감하니까요. 하나하나 공들이고 애쓴 만큼 장미는 화려하게 다가옵니다. 오랜 기간 준비하고 지켜봤던 가드너에게 특별한 보상이자 선물이에요.”듣다 보니 자녀를 키우는 일과 다르지 않은 듯했다. “장미를 키우면 일단 욕심을 버리게 돼요. 자연의 순리를 따르다 보니 아이들이 성장해가는 과정이 각기 다르고, 완성되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도 알게 돼 느긋해지는 것 같아요. 스롭셔 래드(Shropshire Lad)라는 장미는 초반 3, 4년간 성장이 너무 느렸는데 마음을 비우고 몇 년을 지켜보니 이제는 꽃도 풍성하게 내줘요.”부부는 적금을 부어 지난해 호주에 가서 개기일식을 보았다. 2008년부터 지금까지 7번의 개기일식을 관측했다. 중국 신장과 상해, 일본 가고시마, 호주 케언스, 미국 아이다호, 칠레 비쿠냐, 그리고 지난해의 호주 엑스마우스 개기일식까지. 남편 황 씨는 말한다. “외계 생명체들도 개기일식 보러 지구로 여행 가자고 할 판에, 지구에 살면서 이토록 황홀한 순간을 안 보면 지구인의 직무 유기죠(웃음).”대기업과 벤처기업을 다닌 황 씨는 고향으로 내려와 자신의 오랜 별 보는 취미를 ‘업’으로 삼았다. 30년 가까운 결혼생활 동안 아내는 남편의 인생 굽이굽이 도전을, 남편은 아내의 정원 가꾸기를 응원해왔다. 부부의 웃는 표정이 닮은 것처럼 별 보는 일과 정원을 가꾸는 일도 닮았을까. “아, 질문이 어려워요(웃음). 끊임없이 애정을 갖고 지켜보는 것 아닐까요. 그렇게 지켜보면 따뜻한 유대감이 생겨나니까요.” 남편 황 씨는 말한다. “어릴 때 소달구지가 달리는 아산 시골에 밤이 내리면 멍석을 깔고 누워 별을 봤어요. 그때 어머니가 밤하늘의 이름들을 설명해줬어요. 짚신할배, 좀생이별, 삼태성…. 가난했던 시절이지만 행복했어요.” 그는 자신이 쓴 ‘별빛방랑’ 책에 “밤하늘의 수많은 별만큼 수많은 행복이 늘 함께하길 빕니다”라고 썼다. 눈을 감고 내가 다녀온 아산의 아담한 단독주택 정원을 떠올려보았다. 수많은 장미만큼 수많은 행복이 자라는 곳 같았다. p.s. 부부의 세 딸은 자율적으로 진로를 찾아 나가고 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일본과 프랑스에서 요리를 배운 막내딸은 최근 아산의 재래시장에 피자집을 냈다. 점심을 먹으러 그곳에 갔더니 ‘시크릿가든’이라는 이름의 피자가 있었다. 엄마의 정원을 생각하며 지은 이름일까. 동명의 연재물을 쓰는 입장에서 괜히 반가웠다.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2023-08-10
    • 좋아요
    • 코멘트
  • 아버지의 삼천평 감귤농장을 이끼 정원으로 바꾼 아들[김선미의 시크릿가든]

    제주의 현무암 돌무더기 사이로 잎이 작은 백리향과 담쟁이 넝쿨의 등수국이 반짝였다. 빗물과 햇빛을 받은 식물들의 초록이 유독 명료했다. 땅 위에서 기껏해야 세 뺨 높이로 심어진 산뚝사초는 지형에 깊은 그늘을 드리웠다. 바닷가에서 주운 나뭇가지로 만들었다는 삐뚤빼뚤한 서체의 ‘베케’ 두 글자가 현무암을 품은 검은색 콘크리트 건물에 붙어 있었다. 5년 전 제주 서귀포시 효돈로에 문을 연 이래 젊은 세대의 초록 성지가 된 베케 정원 이야기다.이 정원을 만든 이는 조경회사 ‘더 가든’의 김봉찬 대표(58)다. 그는 꽃과 인공 장식물 위주였던 기존의 정원 조성 공식을 깨고 풀과 양치식물, 돌과 이끼가 경관의 주인공이 되는 ‘한국식 자연주의 정원’을 선보여왔다. 경기 포천시 평강식물원, 경기 광주시 화담숲 암석원, 제주 서귀포시 핀크스 비오토피아 생태공원, 충남 태안군 천리포수목원 어린이정원, 서울 성수동 아모레성수와 남산 피크닉의 정원이 그의 손에서 태어났다. 그렇기에 정원과 조경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 ‘김봉찬’이라는 이름 석 자는 묵직한 무게감을 전한다. 정작 그는 “정원은 인간이 만들긴 하지만 자연의 가르침을 겸손하게 배우는 공간”이라고 말하지만. “나보다 잘난 사람이 많은 곳에서는 주눅이 들잖아요. 크고 아름다운 것들이 뽐내는 공간이 아니라 작고 조용한 것들이 편안함을 주는 ‘치밀하지만 엉성한’ 정원을 만들고 싶었어요.” 베케 정원에 딸린 카페에 들어서면 커다란 통창을 통해 돌무더기와 이끼들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밭을 일구다가 나온 돌을 쌓은 돌무더기를 뜻하는 제주 방언이 베케다. 곳곳에 베케가 있는 3000평 규모의 이 정원은 김 대표의 인생이 오롯이 깃든 감귤농장이었다. 제주에서 귤이 맛있는 동네로 통하는 서귀포 효돈동의 이 농장에서 그는 꼬마 때부터 아버지를 도와 감귤나무를 심고 농사일을 돕고 뛰어놀았다. “1970년대가 되어서야 동네에 아스팔트가 깔렸어요. 아스팔트 도로가 신기해 아버지가 사준 고무신을 품에 안고 맨발로 달렸던 기억이 나요. 그 후 동네는 감귤 농사가 번창해 남부럽지 않게 잘 사는 동네가 됐어요. 1980년대에 나이키 운동화를 신고, 다들 감귤로 아이들 대학을 보냈으니까요.” 풍족한 유년을 주었던 아버지는 그가 초등학교 6학년 때 하늘나라로 너무 일찍 떠났다. 하지만 아버지와 자연에서 함께 한 추억은 지금의 그를 있게 했다. 제주의 산과 들에서 식물을 채집해 표본을 만들며 놀았던 그는 제주대에서 식물생태학을 전공한 후 여미지식물원 식물과장과 평강식물원 소장을 지냈다. 알록달록한 놀이공원 스타일의 정원이 아닌 암석과 습지를 활용한 신비로운 느낌의 ‘김봉찬 스타일’ 정원은 그렇게 시간의 베케처럼 쌓아 올려진 것이다.이끼 정원을 바라보며 그와 나란히 앉은 자리로 ‘메리그라스’라는 이름의 차(茶)가 나왔다. 정원의 중심에 있는 그라스(풀)를 생각하며 제주조릿대, 레몬그라스, 메리골드 등을 블렌딩한 차라고 했다. “제가 아침마다 여기에 앉아 하늘에서 내려오는 보석을 봐요.” 아, 이슬이군요.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끼처럼 작은 식물일수록 보석을 많이 품어요.” 그는 방문객들이 “자연을 겸허한 자세로 볼 수 있도록” 카페 건물의 실내 바닥을 지하로 팠다. 그래서 작은 풀과 이끼를 저절로 눈높이에서 바라보게 된다. 석창포, 솔이끼, 금새우란이 어우러진 서로 다른 초록의 선 위로 눈여뀌바늘이 몽글몽글한 점을 그려냈다. “낮은 자세로 자연을 보면 식물과 곤충의 작은 움직임도 살피게 돼요. 적절한 어둠이 깃든 이끼 정원은 우리 내면도 들여다보게 합니다. 팍팍한 삶에 휩쓸리는 우리는 깊은 사색을 필요로 하잖아요.”식물생태학을 공부한 그는 1990년대 들어 정원식물에 관심을 두면서 아버지가 남기고 떠난 감귤농장에 하나둘씩 씨앗을 뿌렸다. 열매가 안 달리는 정원수의 씨앗이었다. 30여 년 전 땅에 심은 씨앗들은 이제 거대한 수목들이 되었다. 정원수를 심으려고 감귤나무를 조금씩 베어내다가 결국엔 과수원 하나가 통째로 없어졌다. “어머니가 반대하니까 스며드는 듯 씨앗을 심었죠(웃음). 대개의 사람들은 정원을 빨리 가꾸고 싶은 욕망에 처음부터 큰 나무를 심으려는 경향이 있어요. 하지만 나무는 어린 강아지를 키우듯 씨앗부터 시작해 세월을 함께 경험하는 게 좋아요. 정원을 갖는 건 남에게 자랑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속에서 힐링하고 자연을 배우기 위해서니까요.”그래도 아들은 아버지와의 추억을 베케 정원에 남겨 두었다. 폐허 정원이라는 이름으로…. 당초 무허가 건물이라 철거해야 했던 감귤 보관창고의 터를 남기고 그곳에 정원을 만든 것이다. “폐허도 얼마든지 아름다울 수 있더라고요.” 그는 부서진 창고의 흔적 위로 야생의 자연을 구현했다. 억새와 수크렁 같은 대형 그라스 앞에는 존재감이 확실한 용설란을 심었다. 범부채와 매발톱꽃속 등을 섞고 제주의 들판에서 볼 수 있는 예덕나무도 심었다. 베케 정원은 입구 정원, 이끼 정원, 빗물 정원, 고사리 정원(퍼너리·fernery), 낙우송 정원, 폐허 정원, 겨울 정원, 나뭇길, 실험정원 등 다양한 감각의 공간으로 구성돼 있다. 지금은 초록빛인 말채나무는 겨울이 찾아오면 노랑 주황 빨강의 따뜻한 색감으로 변신한다고 했다. “겨울 정원의 나무들은 잎이 다 떨어졌을 때 드러나는 줄기와 가지가 예술이에요. 시든 것들의 아름다움이라고 할까요. 그라스는 볏짚 색으로 바뀌고, ‘미드 윈터 파이어’라는 이름의 말채나무는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화려한 붉은 빛을 보여주니까요.”불과 5년 전까지만 해도 귤밭이던 베케는 지금은 천연보호구역 분위기의 정원으로 바뀌었다. 그 변화를 도운 주역 중의 하나가 고사리다. 김 대표는 한국의 자생식물인 청나래고사리 옆에 천남성을 심어 고사리의 촉촉한 생명력과 투박한 아름다움을 돋보이게 했다. 주변 나무들은 선을 중첩시켜 있어도 없는 듯한 깊은 공간감을 부여했다. 그는 함께 정원을 걷는 동안 “숲이야말로 가장 민주적인 공간”이라는 말을 했다. “안정된 음수림이 형성되면 특정 종이 숲의 빛을 독식할 수 없어요. 숲의 나무들은 태풍이나 병충해 같은 외부의 힘에 공동으로 대응하죠. 생태 정원은 식물들이 이루는 궁극의 야생 서식처에요.” 베케 정원을 한참동안 둘러보고 나오는 길에 제법 큰 여름꽃인 에키나시아 위로 ‘도둑놈의갈고리’라는 이름의 가녀린 꽃이 바람에 흔들리는 순간을 보았다. 보라색 붓들리아는 벌과 나비를 한껏 끌어모으고 있었다. 풍지초는 가는 점들이 땅과 풀과의 관계를 몽환적으로 그려냈다. 세상에는 보잘것없는 풀이 하나도 없다는 김 대표의 말을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었다. “상대방을 심오하게 만들어주는 풀이 아름답습니다. 이곳에 무지개 색이 즐비하다면 힐링하기 힘드니까요. 내 집에서 매일 잔치를 열면 주인은 피곤할 수밖에 없는 것과 같은 이치죠.” 그러고보니 남을 빛나게 해주는 ‘위대한 조연’이 잘 나가는 세상이 온 것 같다고 나는 맞장구를 쳤다. 이름 모를 나뭇잎들이 빛과 바람에 반짝이고 흔들렸다. 그래서 그 속의 사람들이 한층 더 또렷하게 보였다. 김선미기자 kimsunmi@donga.com}

    • 2023-07-27
    • 좋아요
    • 코멘트
  • “천천히 가도,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아”…‘화분 속 작은 자연’의 위로[김선미의 시크릿가든]

    장맛비가 내린 어느 목요일 오전, 서울 북촌의 아담한 한옥 앞에 다다랐다. 처마 아래에는 ‘oita’라고 쓰인 흰색의 작은 간판이 있었다. 그녀가 투명한 비닐우산을 쓰고 한옥의 나무 대문을 열었다. 비도, 우산도, 그녀의 앳된 인상도 청량한 느낌. 그녀의 공간을 채운 나무들도 그랬다. 만병초, 진백나무, 꽃창포, 표단목, 봄백일홍…. 생김새만큼 이름도 다정한 식물들이 가득한 ‘비밀의 정원’이었다.“대문 앞에는 그때그때 기분에 따라 식물을 둬요. 이 둥글둥글한 식물(화백나무)이 요즘 제 마음에 들어와요. 이끼 같기도 한 푸른 덩어리 형태가 시원한 느낌을 주거든요. 그런데 이런 분재는 가만히 아래에서 바라보면 잔가지들이 빼곡해서 세월을 느낄 수 있어요.”오이타(oita)는 30대 초반인 최문정 대표가 5년 전 문을 연 식물 스튜디오다. 그녀가 스무 살 되던 해 하늘나라로 간 아버지 이름의 영어 이니셜에서 따왔다고 한다. 식물을 각별하게 좋아했던 아버지였다. 그녀는 이곳에서 식물을 심고 돌본다.북촌의 한옥으로 이사하기 전, 서울 종로에 있던 여섯 평 규모의 오이타를 기억한다. 꽃집이라기보다는 작은 나무들을 파는 가게였다. 그런데 식물들이 남달랐다. 키 낮은 화분에 심어진 식물들은 옆으로 눕기도 하고, 부드럽게 구부러져 있기도 했다. 그날 이후 서울 용산 스틸북스와 챕터원 등 트렌디한 문화공간들의 팝업 이벤트에서 ‘오이타표’ 식물들과 우연히 마주칠 때가 많았다. 정갈한 화분에 담긴 그 식물들의 선(線)을 보면서 고요함 같은 말들을 떠올렸던 것 같다.다양한 브랜드와 협업하면서 식물을 소개하는 그녀는 오랫동안 중장년층의 취미로 여겨졌던 분재 가꾸기를 MZ세대의 마음챙김 라이프스타일로 탈바꿈시켰다. 정원을 갖는 건 꿈같은 얘기로 느껴지는 평범한 도시 소시민도 작은 화분쯤은 집 안에 들일 수 있으니까. 산세베리아 같은 공기정화식물을 찾던 대중에게 그녀의 ‘화분 속 작은 자연’(분재)은 신선함으로 다가갔다. 코로나19로 인해 집 안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가만히 식물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늘어난 시대적 흐름도 있었다. 그녀는 어떻게 식물의 세계로 발을 들인 걸까.-내자동에서 계동의 한옥으로 이사했네요.“오이타를 시작하기 전에 서울 강남에서 꽃가게를 했어요. 돈이 없어 강북의 월세 싼 곳을 찾아왔는데 내부에 수도가 없어 밖에서 물을 길어와야 했어요. 힘들었지만 돌이켜보면 그때가 가장 재밌었어요. 조금씩 상황이 나아진 것 같아요.”-대학에서 식물 관련 전공을 했나요.“아니에요. 원하지 않던 컴퓨터 관련 학과에 들어갔기 때문에 일찌감치 ‘나만의 분야’를 애쓰며 찾았어요. 많이 알려지지 않은 일이면서 사람들이 특별하게 보는 걸 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뭔가 손으로 하되 미적 감각이 있는 장인 같은 일을 꿈꿨어요. 그래서 대학을 다니며 처음 배운 게 식물의 잎을 따서 물을 들이는 천연 염색이었어요. 어려서부터 할머니 시골집에서 식물을 가까이했던 게 영향을 준 것 같아요.”-그런데 왜 식물로.“염색해서 지인들에게 선물해 보니 물도 빠지고 반응이 별로였어요. 그러면 또 뭘 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식물을 좀 재밌게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식물을 어디에서 배웠나요.“일단 좋아하는 야생화를 인터넷에서 많이 샀어요. 시행착오를 거치며 키우는 과정을 블로그에 기록했어요. 10년 전쯤부터 ‘가드닝’이란 말이 많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서울 청담동의 작은 가드닝 매장에 무작정 찾아가 ‘한번 배워보고 싶다’고 했어요.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집안 형편이 넉넉하지 않았어요. 대학 다니면서 가드닝 매장에서 아르바이트해 번 돈으로 서울에서 가장 비싸다는 곳을 일부러 찾아가 가드닝을 배웠어요. 졸업 후에는 매장 정직원으로 취직해 일하면서 또 배웠어요.”-건실한 청년이었네요.“굉장히 치열하게 살았죠. 식물을 심다가 쓰러져 응급실에도 가봤어요. 남들은 제가 여장부 같다고 하는데 모든 원동력은 저의 20대 때 형성된 것 같아요. 하지만 그때의 저는 상대적 박탈감으로 괴로웠어요. 가드닝 배우는 코스가 비싸요. 저는 아침부터 일하면서 배우는데 제 또래 ‘부잣집 따님’들은 몇 달 배우고 턱턱 자기 숍을 차리는 거에요. 당시 제 자존감은 바닥이었어요.”한옥의 유리 천장 위로 빗방울이 투두둑 떨어져 동글동글 퍼졌다. 식물도 시간도 천천히 흐르는 듯한 공간. 그녀가 틀어둔 피아노 음악이 빗소리와 섞였다. “이곳 한옥으로 이사 오면서 몇몇 여린 식물은 마당의 강한 빛으로 인해 잎이 말라버렸어요. 한옥은 계절을 있는 그대로 맞이하는 공간이라서 그래요. 몸살을 앓는 식물들 틈에서 생생한 모습으로 제게 위로를 건넨 식물은 야생화였어요. 한옥에는 한국적인 식물이 어울릴 수밖에 없어요. 사람에게도 식물에게도 각자 빛날 수 있는 자리가 따로 있어요. 적재적소(適材適所)라고 하잖아요.”그녀와 마주 앉은 나무 테이블 곁에는 줄기가 구부러진 작은 진달래 분재가 놓여 있었다. “유연해 보이지만 사실은 뿌리가 굵고 단단한 식물을 좋아해요. 잎들을 보면서 식구들의 얼굴을 떠올리기도 하고요. 누워있어도 천천히 위로 올라가는 이 아이를 보면서 ‘나도 차근차근 단단하게 성장해야지’라는 마음을 갖게 돼요.”-바닥 친 자존감은 어떻게 회복했나요.“서울 강남에서 꽃가게를 할 때 제가 좋아하는 야생화가 아니라, 동네 사람들이 원하는 화려한 꽃과 잎이 풍성한 나무를 주문받아 팔았어요. 매출이 올라도 전혀 기쁘지 않았어요. 맞지 않는 옷을 입고 불편하게 걷는 꼴이었어요. 외관만 번지르르한 삶은 마음을 설레게 하지 않아요. 좋아하는 식물을 내 방식대로 하자고 마음먹자 편안해졌어요. 삶의 많은 부분이 마음가짐과 노력으로 가능한 일이더라고요.”-분재는 나무를 학대하는 행위라는 비난도 있습니다만.“어린 시절 저도 같은 마음이었어요. 줄기를 감싸는 철사 때문에 나무가 얼마나 아플까 하고요. 그런데 나무에 철사를 거는 중요한 이유가 있어요. 상부의 나뭇잎에 가려져 빛을 제대로 못 받는 가지가 빛과 바람을 잘 받을 수 있게 해야 하거든요. 사람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부족한 점은 인정하고 잘할 수 있는 부분을 강화하면 더 나은 내가 되겠죠. 작은 나무와 돌, 이끼와 모래로 풍경을 표현하는 분경(盆景) 작업을 하다 보면 자연도 사람도 완벽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돼요. 그러니 그저 자주 바라보고 싶은 풍경을 담으면 돼요.”-식물과 교감하며 어떤 걸 느끼나요.“천천히 가도 괜찮다는 거요. 어떤 식물을 들일까 조언을 구하는 분들에게는 먼저 자신의 마음을 곰곰이 들여다보라고 말씀드려요. 마음이 너무 지쳤다면 줄기나 가지가 옆으로 뻗는 식물을 키워보세요. 옆으로 흐른다고 멈춘 게 아니거든요. 성장하지 않는 듯 보여도 자라고 있어요. 때때로 한 템포 쉼이 필요한 삶의 단계에는 자유로운 흐름의 식물을 들여 위로를 받아보세요. ‘나도 너도 노력하고 있다’고. 삶이 천천히 흐르면 작은 변화도 알아챌 수 있어요. 화분에 물을 주면 식물이 물을 먹는 소리가 들리는데, 그 소리가 그렇게 매력적인 속삭임이라니까요.”●최문정 오이타 대표가 분재를 하면서 자주 읽는 책1. Music For Inner Peace (박정용)2. 코르뷔지에 넌 오늘도 행복하니 (에이리가족, 네임리스 건축)3. 나무를 심은 사람 (장 지오노) 4. 앤티크 수집 미학(박영택)5. 평온한 날 (김보희)6. 나는 내 것이 아름답다 (최순우)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2023-07-20
    • 좋아요
    • 코멘트
  • “이야기를 음악으로 만드는 게 신기해요”

    14일 오후 경기 양주시 옥정초등학교 교실. 두 명의 초등학생과 두 명의 성인 전문 연주자가 교실 앞에 자리를 잡았다. 네 명의 학생은 청중이 돼서 맞은편에 앉았다. 앞에 나온 한 학생이 대본을 읽기 시작했다. “호랑이가 나타나 토끼를 먹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트럼펫 연주가가 ‘도레미파솔라시도’ 음계를 연주했고, 뒤이어 타악기 연주자가 드럼을 두드렸다. 곰이 호랑이를 먹고, 호랑이가 곰을 먹는 등 동물들이 연쇄적으로 먹고 먹히는 소리가 트럼펫과 드럼으로 표현됐다. ‘꼬마작곡가’라는 이날의 수업은 옥정초가 최근 9주 동안 매주 금요일에 두 시간씩 진행한 ‘늘봄학교 꿈다락 문화예술학교 우수프로그램 시범운영 발표 수업’이었다. 꼬마작곡가는 1995년 미국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베이스 연주자 존 딕이 개발해 영국과 스페인 등에 도입됐고, 한국에서는 2013년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을 통해 시작됐다. 음악을 배운 적이 없는 어린이들이 음악적 도구를 통해 각자의 생각과 이야기를 표현하고 자신만의 음악을 만들어 보는 것이다. 수업에 참여한 옥정초 6학년 유하윤 양은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이야기를 노래로 만들 수 있는 게 신기하고 재밌는 경험”이라며 “학교 수업보다 훨씬 자유로운 느낌”이라고 말했다. 꿈다락 문화예술학교는 올해 전국 214개 학교에서 시범 운영되는 늘봄학교의 주요 프로그램 중 하나다. 늘봄학교는 학교 안팎의 교육 자원을 활용해 초등학교 정규 수업 전후로 양질의 교육과 돌봄을 제공하는 통합 서비스다. 교육 격차를 줄이기 위해 2025년 전국 확대를 목표로 하는 윤석열 정부의 국정 과제다. 꿈다락 문화예술학교의 우수 프로그램으로는 △꼬마작곡가(음악)를 비롯해 △어린이는 무엇을 믿는가(시각예술) △일상의 작가(문학) △주말문화여행 등이 있다. 학교 측과 학부모들의 반응은 일단 좋다. 비언어적 방식의 문화예술 교육으로 학생들이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오평진 옥정초 교무부장은 “초등학교의 경우 전 교과를 담임 교사가 맡기 때문에 문화예술의 전문성이 다소 부족할 수 있는데, 늘봄학교 내 문화예술 교육 프로그램은 기존 방과 후 프로그램과는 차별화된 창의적 교육으로 학생들이 예술을 깊고 넓게 접하게 한다”고 말했다. 박은실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장은 “초등학생을 둔 학부모의 경력 단절을 막고 사교육비를 줄이기 위해 그동안 쌓아온 우수 프로그램을 늘봄학교에 지원하게 됐다”며 “전문 예술교육가와 연계해 학교 교육현장 수요에 맞는 프로그램을 확대 제공해 나가겠다”고 밝혔다.양주=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2023-07-19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유명 입시학원 내려놓고 10년간 가꾼 찍박골정원[김선미의 시크릿가든]

    파계한 신부와 수녀가 살던 곳이라고 한다. 한여름 수국 꽃다발 같은 뭉게구름이 피어오르는 해발 700m 강원 인제군 찍박골. 그들은 얼마나 사랑했으면 화전민들이 살던 외딴곳을 찾아 들어왔을까. 왜 다시 이 땅을 팔고 외진 바닷가로 떠났을까. 깊은 사연이야 골짜기 어딘가에 묻혀 있겠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이 있다. 그들의 사랑이 스쳐 간 자리를 김경희 씨(59)가 아름다운 정원으로 가꾸어냈다는 점이다.개인 정원이라 ‘찍박골정원’이라는 푯말 같은 건 없었다. 하지만 산비탈을 오르는 길에 빨간색 베르가못과 아기 얼굴 크기의 애나벨 수국이 피어있는 걸 보고 정원의 환대가 시작되고 있음을 느꼈다. 소나무숲 트리하우스 옆에 차를 세우자 흰 풍산개가 따라왔다. 탁 트인 시야로 저 멀리 연푸른색의 설악산 중청이 들어왔다.“남편은 하고 싶은 게 있으면 그것만 보고 가는 사람이에요. 산속에서 살겠다고 온갖 산을 찾아 다니더니 11년 전에 여기 땅을 사서는 처박혀 나오지 않는 거예요. 학원이 굴러가든 말든 내버려 두고요.”시골 생활에 통 관심이 없던 이 정원의 안주인 김경희 씨는 이사하는 마음으로 가볍게 따라왔다가 눌러살게 됐다. 그의 남편은 입시학원 ‘글맥학원’의 설립자이자 원장이던 김철호 씨(68). 8개 분원에 1만2000여 명의 학생이 다니던 이 학원은 2000년대 중반 한 해에 700여 명을 특목고에 진학시키며 명성을 날렸다. 이화여대를 다닌 김경희 씨는 30년 전 이 학원의 영어 강사로 입사해 일하다가 나중에는 이 학원을 함께 경영했다. 그들은 2013년 학원 경영에서 완전히 손을 뗐고, 인제군의 찍박골 산속에서 부부의 연을 맺었다.“염소를 키우던 곳이라 처음에는 나무 한 그루 없는 풀밭이었어요. 그래도 다 큰 저희 세 아들의 축하를 받으며 야외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어느 날, 글맥학원 사옥을 지어줬던 최시영 건축가가 ‘신혼여행 삼아 영국으로 가든 투어나 갑시다’라고 하더군요. 그 여행을 통해 제가 전혀 모르던 정원의 세계를 접하며 문화적 충격을 받은 후 지금까지 정원 가꾸는 재미에 푹 빠져 살았습니다. 정원은 제게 제2의 인생을 열어주었습니다.”찍박골이라는 지명은 직박구리가 자주 날아들어 동네 어르신들이 부르기 시작한 이름이라고 했다. 1만 평 부지의 절반 정도를 차지한 찍박골정원은 지금 여름꽃이 만발해 있다. 벌과 나비가 날아앉는 에키나시아, 몽환적 느낌이 나는 노루오줌(아스틸베), 촛불처럼 뾰족하게 올라온 꼬리풀, 여왕처럼 화려한 빨간 헬레니움 ‘모하임 뷰티’, 영국의 정원 잡지들이 노동력을 많이 투입할 수 없는 어르신들이 가꾸는 정원에 추천하는 꽃 1순위라는 노란색 원추리….“농사를 지으면서 부리는 최고의 여유이자 사치가 꽃이에요. 그런데 실은 이 정원은 온갖 실패를 먹고 자란 정원이에요. 아무것도 모르면서 ‘영국 정원 만들기’라는 목표를 향해 돌진했거든요. 정원에서 10년을 보낸 이제야 봄의 환희, 여름의 치열함, 가을의 느린 넉넉함을 느낍니다. 겨울에는 푹 쉬고요. 한국인이 가장 못 하는 게 참는 것이라죠?(웃음) 정원을 만들고 싶다면 1년 정도는 그저 가만히 지켜보세요. 어디에서 바람이 불어오는지, 땅은 얼마나 촉촉한지…. 실은 정원에서 가장 정성을 쏟아야 하는 대상은 흙이에요. 토양이 건강해야 식물들이 잘 살 수 있어요. 한 해 늦게 가도 됩니다. 안 그러면 저처럼 심고 파내고 또 심고 파내면서 몇 년을 신참내기 정원사로 살아야 해요.”김 씨는 앞마당 정원, 텃밭 정원, 댄싱 가든, 화이트 가든, 암석정원, 자작나무숲, 개울 정원, 사과공원, 숲자락 정원 등 10년에 걸쳐 9개의 정원을 만들었다. 앞마당 정원이 보이는 야외 테이블을 안내받아 앉자 그가 ‘애플카인드’ 사과 주스를 내왔다. 애플카인드는 김 씨 부부와 세 아들이 강원 양구군에서 7년 전부터 운영하는 농업회사법인이다. 이 법인의 회장이 남편 김철호 씨, 이사가 아내 김경희 씨다. 애플카인드 회사 홈페이지에는 이렇게 쓰여있다. ‘자연의 순리 속에서 사람도 사회도 사과 농사도 행복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젊은이들이 함께 할 수 있는 행복한 농촌 생활, 풍요와 여유가 있는 농촌 생활, 바쁜 도시 생활에 지친 현대인에게 산소 같은 대안이 될 수 있는 농촌 생활의 모범이 되겠습니다.’정원 일을 하던 남편 김철호 씨가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 햇빛을 받아 탔지만 윤기 흐르는 얼굴에는 주름살이 보이지 않았다. 칠순 가까운 나이라는 게 믿기지 않았다. “정원 일이 나뭇가지 잘라주는 일처럼 힘쓰는 일이 많아 여자 혼자 다 할 수가 없어요(웃음).” 남편과 아내가 환하게 웃는 모습이 참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가 노래하는 작은 새라면, 남편은 듬직하게 서 있어 주는 나무의 느낌이었다.아내 김경희 씨는 오랫동안 학원을 경영했던 경험을 살려 정원에서의 생활을 꼼꼼하게 기록해 파일로 정리해 두었다. 지난해부터는 가드닝 잡지의 객원기자를 지원해 활동하고, 블로그에 꾸준히 글을 썼다. 그 모든 것들이 쌓여 지난달 ‘찍박골정원’(목수책방)이라는 책도 펴냈다. 식물과 정원에 ‘진심’인 사람들에게 온몸으로 배운 자신의 경험을 나누고 싶었다고 한다. 10년 전 나무 한 포기 없던 이곳에서 결혼식을 올렸던 부부는 4년 전에는 손가락 굵기의 한 살짜리 자작나무 100그루를 심었다. 둘째 아들이 직전 해에 앞마당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피로연을 연 장소였다. 6월 초인데도 파라솔로 가려지지 않는 열기 때문에 무더워서 막내아들에게는 작은 숲을 만들어 숲속 결혼식을 해주고 싶었단다. 자작나무 껍질을 의미하는 ‘화촉’(樺燭)이라는 단어도 좋았다고 했다. 그 나무들이 자라 정말로 숲을 이뤘다. “우리가 떠나고 없을 때에도, 이 자작나무 숲에서 우리 아이들은 모임을 하고, 더운 여름날 그늘 아래에서 꾸벅꾸벅 졸음을 즐기고, 우리 손주들은 결혼식을 올리는 스토리를 쌓아가기를 바랍니다. 저는 겸손과 지혜를 가진 할머니로 나이들고 싶습니다.”부부는 ‘자연의 순리’라는 말을 자주 했다. 30여 년 학원을 경영하며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수면제를 늘 달고 살던 부부는 이제 정원에서 즐거운 노동을 마치고 푹 잔다. 낮잠도, 밤잠도 다 잘 잔다. “서울에 살 때는 사람이 일을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여기 찍박골에 와서 생각이 바뀌었어요. ‘아, 사람이 일하는 게 아니라 자연이 하는 거구나.’ 아무리 기를 써서 물과 양분을 준다고 해도 사과는 여름에 절대로 열리지 않잖아요. 모든 게 채워져야 맛있는 열매가 되고, 아름다운 꽃이 됩니다. 내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 건 내가 아직 부족하기 때문입니다.”김경희 씨의 얘기를 듣다 보면 정원에 인생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인생 철학자가 따로 없다.“정원에서는 역지사지(易地思之)를 배워요. 식물에게 문제가 생기면 ‘얘는 뭐가 마음에 안 들었을까?’ 식물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해결될 때가 많아요. 식물이 말을 안 해주니 제가 알아채는 수밖에 없어요.”“떠날 때를 알고 얌전하게 사라져주는 아이, 추레함의 끝판왕처럼 시들어가는 아이, 욕심껏 씨앗을 뿌리고 사라지는 아이, 시들고 난 이후의 모습이 꽃 필 때보다 더 아름다운 아이가 정원에는 다 있습니다.”“묵은 꽃송이를 잘라줘야 새로운 꽃송이가 잘 올라옵니다. 어른 세대는 젊은 세대에게 적당한 때에 자리를 비켜주는 지혜를 배웁니다. ”‘찍박골정원’ 책에 사인해 달라고 부탁하자 김경희 씨는 ‘정원이 우리 모두로부터 멀지 않은 곳에 있길요’라는 글귀를 적고 그 옆에 에키나시아 꽃을 그려 넣었다. 그날로부터 정말로 정원이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것 같았다.●찍박골정원 김경희 정원주의 가드닝 팁1. 정원의 목적이 분명해야 한다.은퇴 후에 조용히 쉴 정원인지, 손주들이 뛰어놀 공간이 필요한 가족 모임을 위한 정원인지, 사무 공간에 딸린 정원인지 등에 따라 정원의 형태, 식재 공간, 식물의 종류가 달라진다.2. 실행보다 기획을 먼저 해야 한다.일주일에 몇 시간이나 투자할 수 있는지가 고려돼야 정원 일에 치이지 않고 힐링이 되는 가드닝을 즐길 수 있다.3. 모든 식물은 자기 자리가 있다.알맞은 장소에 알맞은 식물을 심어야 한다. 비옥한 땅을 좋아하는 아스트란티아는 건조한 땅에서는 거의 자라지 않는다. 반대로 우단동자는 바위틈에서도 씩씩하게 자란다.4. 뿌리로 번식하거나 성장이 너무 왕성한 식물은 정원 안에 들이지 않는다. 샤스타데이지, 꽃범의꼬리, 둥글레, 초롱꽃, 리시마키아, 민트, 비비추 등이다.5. 관찰하고 기록해라.정원마다 토양이 다르기 때문에 내 정원에서 잘 자라는 식물을 골라야 한다. 식물은 꽃이 없어도 건강하게 자라면 모두 아름답다.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2023-07-13
    • 좋아요
    • 코멘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