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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와 비슷한 1만1437㎢의 면적, 인구 260만 명의 작은 나라 카타르가 최근 ‘중동의 화약고’로 변했다. 37세의 젊은 국왕 타밈 빈 하마드 알 타니의 친(親) 이란, 개혁개방 노선으로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주변 8개국과 극심한 갈등에 휩싸였기 때문이다. 5일 주변국과의 단교 사태에도 아랑곳 않고 ‘마이 웨이’를 고집하는 타밈 국왕은 2013년 집권했다. 조선 태종과 세종의 관계를 연상시키는 즉위 과정, 활발한 소셜미디어 활용, 3명의 부인과 9명의 자녀 등 흥미로운 개인사를 갖고 있어 예전부터 많은 관심을 받았다. 특히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리오 버라드커 신임 아일랜드 총리 등 세계 곳곳에서 3040 젊은 지도자가 집권하면서 그와 카타르의 앞날에 대한 관심이 더 커졌다. 아직도 절대왕정 세습을 고수하는 걸프만 국가에서 흔치 않은 계몽 군주인 그는 누구일까. ▲ 2014년 9월 크리스티안 아만푸어 CNN 앵커와 인터뷰하는 타밈 국왕 ○ 영국 유학파 타밈 국왕은 1980년 수도 도하에서 하마드 빈 칼리파 알 타니 전 국왕(65)의 4남으로 태어났다. 어머니는 하마드 전 국왕의 둘째 부인 모자(58) 왕비. 하마드 국왕은 3명의 부인에게서 11명의 아들과 13명의 딸을 뒀지만 모자 왕비 슬하의 5남 2녀를 유독 아꼈다. 타밈은 동복형 자심(39)과 함께 어려서부터 영국에서 유학했다. 명문 사립학교 셔번 스쿨과 해로 스쿨, 샌드허스트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했다. 고국으로 돌아와 카타르 육군에서 중위로 복무했다. 영어와 프랑스어가 유창하며 테니스, 배드민턴 등 각종 스포츠 실력도 수준급이다. 그는 2005년 육촌 자와히르 왕비(2남2녀)와 결혼했다. 이어 2009년 요르단 대사의 딸 아누드 왕비(2남 2녀), 2014년 누라 왕비(1남)도 맞아 5명의 아들과 4명의 딸을 뒀다. ○ 쿠데타로 집권한 부친의 조기 양위 타밈은 1971년 영국에서 독립한 카타르의 4대 국왕이다. 초대 국왕은 타밈의 재종조부 아흐마드 빈 알리 알 타니(1920~1977). 아흐마드 전 국왕은 즉위 1년 만에 사촌동생이자 타밈의 조부인 칼리파 빈 하마드 알 타니(1932~2016)에게 왕위를 뺏겼다. 쿠데타로 집권한 칼리파 전 국왕은 1995년까지 23년 간 집권하며 카타르 근대화에 주력했다. 하지만 1995년 6월 그가 스위스를 방문했을 때 왕세자이자 타밈의 아버지 하마드 빈 칼리파 알 타니 전 국왕(65)이 역시 쿠데타로 부친을 밀어냈다. “일부 고위층이 부를 독식하며 석유 고갈 이후 카타르 미래를 고민하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하마드 전 국왕은 석유에만 의존하던 카타르의 경제 발전을 위해 천연가스 유전을 본격 개발했다. 의료, 교육, 예술, 스포츠 등의 산업 다각화에도 힘을 기울였다. 또 카타르 국부펀드(OIA)를 설립해 영국 해롯 백화점, 프랑스 축구단 파리 생제르맹 등 각국 자산도 공격적으로 사들였다.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을 개최하고 2022년 월드컵도 유치했다. 정치사회 변화도 주도했다. 1999년 여성 참정권을 부여하고 2005년 헌법을 채택해 입헌군주국 체제로 바꿨다. 전제군주국, 왕정 세습, 남녀 차별을 당연시하는 주변국 왕실과는 확연히 다른 행보였다. 하마드 국왕은 알자지라 방송을 세워 서방에 아랍의 목소리를 전했고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미국 뉴올리언스를 강타했을 때 1억 달러를 기부해 서방의 환심도 샀다. 그가 집권하던 1995년 카타르의 구매력평가(PPP) 기준 1인당 국내총생산은 약 5만5561달러였지만 2017년 세계 1위인 14만5894달러(약 1억6632만 원)로 3배 가까이 불었다. 카타르를 부국(富國)으로 만든 그는 당초 왕세자로 타밈의 동복형 자심을 택했다. 그러나 자심은 자유분방한 성격으로 부친과 종종 불화를 빚었다. 결국 2003년 왕세자 자리를 동생에게 넘겨줘야 했다. 타밈은 형에 비해 신중하고 계산적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여러모로 조선 태종과 양녕대군, 충녕대군(세종)의 관계를 연상시킨다. 2013년 6월 33세의 타밈은 아버지로부터 왕위를 넘겨받는다. 세계 군주제 국가 중 최연소 국왕이었다. 중동 왕정국에서 선왕의 사망이나 쿠데타가 아닌 채 왕위를 승계한 사람도 그가 처음이다. 물론 자발적 조기 양위라 해도 절대 권력의 세습에 불과하고 하마드 전 국왕이 막후에서 상왕 노릇을 하고 있다. 그럼에도 ‘본인도 쿠데타로 집권한 국왕이 61세의 비교적 젊은 나이에 순순히 왕위를 물려줬다’는 점만으로 세계적 관심을 모았다. ○ 페이스북을 즐기는 젊은 국왕 33세의 젊은 국왕 타밈은 취임 일성으로 “카타르만의 비전을 고수하겠다”고 밝혔다. 집권하자마자 각국 순방에 나섰다. 즉위 4개월 만에 걸프 각국을 돌았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 데이비드 캐머런 전 영국 총리 등 주요 지도자들도 잇따라 만났다. 한국에도 4차례나 방문했다. 왕세자 시절 세 차례(2002년, 2009년, 2011년) 방한했고 2014년 11월 국왕 자격으로 한국을 찾아 박근혜 전 대통령과 회담했다. 타밈은 페이스북을 통해 자신과 가족의 일상사를 스스럼없이 공개했다. 보수적이기로 유명한 아랍 왕가에서 왕실 가족의 일거수일투족을 소셜미디어에 공개한 국왕도 사실상 그가 최초다. 정부 정보화 및 인터넷·통신 고도화를 지원하기 위해 설립된 국왕 직속기관 ICT 카타르를 통해 전자정부 구현도 추진 중이다. ○ 갈등의 핵 ‘천연가스’ 명목상으로 이번 단교 사태의 발단은 카타르 국영통신사 QNA의 친(親)이란 기사다. 5월 30일 타밈 국왕이 카타르 군사학교 졸업식 연설에서 “이란에 대한 적대 정책은 명분이 없다”고 이란을 두둔했다는 내용이다. 카타르 정부는 통신사 웹사이트가 해킹을 당했다며 해당 보도를 부인하고 기사를 삭제했지만 단교를 피할 수는 없었다. 배후에는 더 크고 복잡한 문제가 있다. 바로 천연가스를 둘러싼 경제적 이익이다. 세계 천연가스 매장량의 14%를 보유한 카타르는 러시아, 이란에 이어 세계 3위 천연가스 보유국 겸 1위 수출국이다. 독립 당시 진주 채취가 주 소득원이었던 가난한 농업국 카타르가 40년 만에 세계 최고 부유국이 된 것도 막대한 천연가스와 원유를 같이 보유했기 때문이다. 이 천연가스는 대부분 카타르와 이란 영해 사이에 매장돼있다. 비록 수니파 이슬람 국가지만 카타르가 시아파 이란과 잘 지내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카타르가 약 7억 달러를 이란 정부와 이란이 지원하는 시아파 무장조직에 지원했다고 보도했다. 5월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한 직후 타밈 국왕이 로하니 대통령과 두 차례 전화하며 “강력한 협력관계를 맺기로 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이처럼 카타르는 수니파 종주국 사우디아라비아와 시아파 종주국 이란이 팽팽히 대립하는 중동의 지정학적 긴장 속에서 어느 한 쪽 편을 드는 대신 ‘걸프만 균형자’ 역할을 모색하고 있다. 이것이 수니파 맏형인 사우디아라비아의 심기를 제대로 거슬렀고 단교라는 최악의 사태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 타밈과 카타르의 앞날은? 단교와 함께 사우디아라비아 등은 국경 폐쇄, 화물운송 및 자국민의 카타르 방문 금지, 카타르인의 자국 입국 및 경유 금지를 단행했다. 갑작스레 물자 공급이 상당부분 차단되자 예의 이란이 제일 먼저 나섰다. 이란은 국영 항공사를 통해 카타르에 식량을 실어 날랐고 터키, 모로코 등도 카타르 지원에 동참했다. 현재 사우디 등은 국교 정상화의 조건으로 ‘이란과의 단교’를 요구하고 있다. 수니파와 시아파의 차이를 넘어 이슬람 혁명으로 왕정을 무너뜨리고 선거로 대통령을 뽑는 이란은 걸프 왕정국에 눈엣가시다. 70, 80세가 넘은 고령의 왕들이 형제세습, 부자세습을 통해 절대 왕권을 유지하는 사우디아라비아는 국민들의 민주화 요구를 억누르는 것이 지상 과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란과 세계 최대규모 천연가스 유전을 공유하는 카타르로서는 이란과의 외교 단절을 받아들일 수도 없는 상황이다. 단교 사태 외에 내부 갈등도 심각하다. 260만 인구 중 카타르인은 30만 명에 불과하다. 이들이 부를 독식해 나머지 230만 명 이민자들과의 양극화가 점점 심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타밈의 조부는 근대화, 부친은 국부 증진 및 산업 다각화라는 뚜렷한 업적을 남겼다. 그가 선대 왕과 맞먹는 훌륭한 왕으로 남을 수 있을까. 해답은 외교 갈등과 양극화라는 난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에 달렸다.하정민 기자 dew@donga.com}

2011년 미스코리아 인천 선(善) 출신인 채널A 사회부 황수현 기자. 누리꾼 사이에서 ‘미코 앵커’로 유명한 그는 채널A 인턴으로 활동하다 2012년 입사했다. 2016년 4월부터 채널A ‘뉴스특급’ 앵커로 활약 중이다. 황 앵커는 ‘D-Star’ 인터뷰에서 취업의 돌파구로 선택한 미스코리아 출전, 여러 고통(?)이 따랐던 미스코리아 출전기 등을 생생하게 털어놨다. “분식집에서 김밥과 쫄면으로 데이트할 수 있는 남자 친구를 찾는다”는 그녀와의 톡톡 튀는 인터뷰를 전격 공개한다. 하정민 기자 dew@donga.com}
국제경제 분석 전문매체 글로벌모니터가 8일 오후 4시 30분부터 6시 30분까지 서울 여의도구 여의도동 금융투자교육원(구 한진해운 본사 건물 옆)에서 ‘한국 증시, 새 장이 열린다’를 주제로 공개 토크쇼를 개최한다. 토론 주제는 △한국 주식시장의 방향 및 완전히 새로운 장세가 펼쳐질 가능성 △이번 상승장이 기타 업종 특히 코스닥 기술주들로 확산될 지 여부 △한국 증시에 대한 전반적인 재평가가 이뤄질 가능성 등이다. 글로벌모니터 측은 “현재 글로벌 실물 경제는 선진국과 이머징마켓이 동시 확장하는 국면이며 경기 변동성도 극도로 축소된 상태”라고 진단했다. 이어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가 한국 코스피(Kospi)”라며 “주가 추가 상승 및 한국 경제와 자산시장에 대한 긍정적 재평가(Korea Re-rating)가 나타날 가능성에 대한 치열한 토론이 벌어질 것”이라고 밝혔다. 토크쇼에는 김일구 한화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상무), 김한진 KTB투자증권 수석 연구위원, 이진우 GFM 투자연구소장 겸 전(前) NH선물 금융공학센터장, 안근모 글로벌모니터 편집장, 이공순 글로벌모니터 조사연구실장 등이 패널로 참석한다. 참가비는 무료.하정민 기자 dew@donga.com}

줌파 라히리(50)와 김성근(75). 둘 다 경계인(境界人)으로 태어나 자신의 분야에서 일가를 이뤘다. 퓰리처상, 펜/헤밍웨이상, 오헨리상을 휩쓸고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좋아하는 소설가로도 유명한 미 작가 라히리. 영국 런던의 벵골계 이민자 부모 밑에서 태어난 그는 2세 때 미국으로 이주했고 20대부터 미 문학계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벵골어는 방글라데시와 콜카타를 중심으로 한 인도 동부의 주 언어. 우리 눈에는 인도 최대 언어 힌디어와 비슷하지만 문자 표기법과 발음이 완전히 다르다. 그는 늘 자신의 정체성을 고민했다. ‘질병의 통역사(Interpreter of maladies)’ ‘동명이인(The namesake)’ 등 히트작에 담긴 화두도 언제나 “벵골인도 인도인도 미국인도 아닌 나는 누구인가”였다. 라히리는 2015년부터 이탈리아어로 글을 쓴다. 자신을 문학계의 총아로 만들어준 영어라는 도구를 깨끗이 버렸다. 안정감은 창작의 독이며 익숙한 영어가 자신을 타성에 젖게 한다는 이유다. “변신은 격렬한 재생이자 탄생이다. 또 불완전은 발명, 상상력, 창조성에 실마리를 준다. 불완전하다고 느낄수록 더욱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라히리는 생면부지 이탈리아어를 배우기 위해 1년간 가족을 데리고 로마로 이주했다. 주변인과의 대화는 물론이고 일기 쓰기, 학회 발표도 모두 이탈리아어로 하는 등 독한 노력을 거듭했다. 사전을 더듬으며 이탈리아어로 글을 쓴 그는 “간만에 순수한 창작의 기쁨을 느꼈다”고 고백한다. 그가 이탈리아어로 발간한 작품은 영어로 쓴 이전 작 못지않게 평단의 호평을 얻었다. 23일 한화 이글스 감독에서 물러난 ‘야구의 신(野神)’ 김성근 전 감독. 일본 교토에서 재일교포 2세로 태어난 그는 평생을 편견과 싸웠다. 반(半)쪽발이, 극단적 스몰 볼, 혹사 논란, 독선적 운영 방식…. 그럼에도 한국시리즈에서 3회 우승, 2회 준우승을 차지했고 약체였던 SK 와이번스를 2000년대 후반 한국 프로야구 최강팀으로 만들었다. 그는 선발투수 로테이션 변경, 불펜 투수 및 야수 보직 파괴 등 기기묘묘한 용병술로 유명했다. 선발투수가 공 1개만 던지고 내려가고, 3루수가 포수 마스크를 쓰고, 투수가 타석에 등장했다. ‘전문화·분업화가 보편화된 현대 야구에 안 맞는다’는 논란이 거셌지만 성적으로 이를 잠재웠다. ‘SK 왕조 건설’은 부인할 수 없는 그의 업적이다. 딱 거기까지였다. 그가 3년 반의 야인 생활을 거쳐 2015년 시즌부터 한화 지휘봉을 잡았을 때 한국 야구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경기 수가 대폭 늘었고 2군이나 3군에서 체계적으로 젊은 선수를 키워 1군에 올리는 육성 시스템(farm system)도 정착됐다. 속속 등장한 40대 젊은 감독들은 선수단 및 프런트와의 소통에 공을 들였다. 뛰어난 개개인의 역량보다 체계적 운영이 더 중요한 현대 야구에서 리더의 절대적 권능과 카리스마를 중시하는 70대 노감독의 자리는 없었다. 그의 방식은 SK 시절과 똑같았지만 결과는 참혹했다. 비단 김 전 감독뿐일까. 노키아, 코닥, 모토로라, 블록버스터 등 쟁쟁한 세계적 기업들도 자신의 약점이 아닌 강점 때문에 몰락했다. 화려한 영광을 가져다준 과거 성공 방식만 고수하다가 외부 변화에 대응하지 못했고 ‘성공의 덫(success trap)’에 빠져 자멸했다.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면 도태된다. 인간도 자연도 마찬가지다. 라히리가 될지 김성근이 될지를 고민해야 하는 것은 비단 기업과 예술가뿐만은 아닐 것이다. 하정민 디지털뉴스센터 차장 dew@donga.com}

‘5.9 장미대선’이 치러진 9일 국민들은 대한민국 호를 이끌어갈 새 대통령에게 어떤 바람을 전했을까. 동아일보 디지털통합뉴스센터는 이날 서울 광화문광장과 청계천 등에서 마주친 시민들에게 포스트잇에 ‘새 대통령에게 하고 싶은 말을 적어달라’고 부탁했다. 많은 시민들이 “국민의 마음을 알아달라” “청년들에게 희망을 달라” “경제를 활성화해달라” “세상을 바꿔달라” 등 다양한 바람을 적었다. “정신 똑바로 차리고 잘 해달라” “공약을 반드시 지켜달라”는 따끔한 당부도 잊지 않았다. 포스트잇에 담긴 다양한 국민들의 목소리를 소개한다.기획·제작=하정민 기자 dew@donga.com · 신슬기 인턴}

항공기 이코노미석을 ‘캐틀 클래스(cattle class)’라고도 한다. 말 그대로 소 떼를 몰아넣은 곳이란 뜻이다. 이코노미석을 이용하며 ‘소 떼’가 된 기분을 느끼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길고 지루한 탑승 과정, 비좁고 불편한 좌석, 붐비는 화장실…. 게다가 창가 좌석에 앉으면 짐을 부리거나 좌석에 앉을 때마다 딱히 잘못도 없는데 연신 미안하다고 해야 한다. 비행 내내 등받이를 한껏 젖히거나 시끄럽게 떠드는 주변 승객을 만난 날에는 몸과 마음이 녹초가 된다. 커튼으로 가려진 비행기 앞부분을 보노라면 ‘언제쯤 1, 2등석에 탈 수 있을까’라는 푸념이 절로 나온다. 들뜬 마음으로 탄 비행기가 계급사회의 축소판임을 인지하는 순간이다. 승객 강제 퇴거로 거센 후폭풍에 휩싸인 유나이티드항공(UA) 사례는 하차 승객 선정 기준에 대한 논란도 남겼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UA는 항공권 가격과 탑승 빈도에 따라 자사 이익에 가장 도움이 안 되는 승객 4명을 정했다. 그중 1명이 베트남계 의사 데이비드 다오 씨다. 얼핏 보면 시장경제 원칙에 충실한 듯하나 고객의 강한 심리적 반발과 저항이 따른다. ‘다른 이보다 싼 티켓을 샀으니 내리라’는 주장을 순순히 따를 고객이 몇이나 될까. 캐나다 토론토대 캐서린 드셀스 교수와 미국 하버드대 마이클 노턴 교수는 2016년 흥미로운 논문을 발표했다. 2010년경 한 항공사의 비행 데이터 100만∼500만 건(항공사 요청으로 비행 건수와 이름을 밝히지 않음)을 분석한 결과 1등석이 있는 비행기에서는 욕설, 폭행, 기물 파손, 승무원 지시 불응 등 ‘기내 난동(air rage)’이 1000회 비행당 평균 1.58회 발생했다. 1등석이 없는 비행기에서는 이 수치가 0.14회에 그쳤다. 1등석의 존재는 1등석과 3등석 고객 모두의 난동을 높였지만 그 양상은 많이 달랐다. 1등석의 난동은 타인에 대한 ‘공격적 행위(belligerent behavior)’로 표출된 반면 3등석은 혼자 분노, 불공평, 좌절, 박탈감을 드러내는 ‘감정적 폭발(emotional outburst)’이었다. 전자의 극단적 예가 ‘땅콩 회항’이나 ‘라면 상무’임은 굳이 말할 필요도 없다. 항공사뿐 아니라 최근 놀이공원, 영화관, 병원 등에서 가격 차별화 정책으로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시도가 한창이다. 줄을 서지 않아도 바로 입장할 수 있는 입장권, 중앙의 좋은 좌석에 더 비싼 값을 매긴 각종 공연장과 경기장, 숙련의가 진찰하는 특진…. 단순한 은유인 줄 알았던 영화 ‘설국열차’의 장면이 시시각각 현실로 다가오는 느낌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익을 좇는 행위는 당연하다. 그러나 고객이 더 많은 돈을 내도록 일부러 불평등을 자극하는 기법에는 사건, 사고의 위험도 따른다. 주재우 국민대 교수(경영학)는 “가격 차별화로 인한 경제적 효용과 그 반대급부의 대차대조표를 면밀히 따져야 한다”고 말한다. 고객에게 불공정한 느낌을 주지 않으면서 돈을 버는 일이 쉽지는 않다. 하지만 그 운용의 묘를 찾지 못하는 기업과 조직에 미래는 없다. 구성원의 반(反)사회적 행동은 결국 사회 전체의 손해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하정민 디지털통합뉴스센터 차장 dew@donga.com}

# “응답하라! 자소서 탈곡기”“1만 자 요구하며 탈락 이유도 안 알려주니…”#. “지원해 주셔서 감사하지만 불합격 소식을 전합니다.”올해 서류전형을 진행한 한 대기업의 불합격 통보입니다.이 기업은 구직자에게 전공 학점만 별도 합산한 평점, 능력을 증명할 포트폴리오,1000자씩 총 3개 문항으로 구성된 자기소개서를 요구했지만탈락 통보문은 단. 3.문.장.#. 청년 구직자들은 적게는 3000자, 많게는 1만 자가 넘는자기소개서를 기업에 제출합니다.9000자 이상의 자기소개서를 요구했던 모 건설사는취업준비생들로부터 “백일장을 개최하느냐”는 비판을 받았죠.그런 후 탈곡기에 넣은 곡식처럼 무참히응시 서류를 탈탈 떨어뜨리는 기업들 때문에청년 구직자들은 극심한 허탈감에 빠지죠.#. 겉으로는 “스펙을 없애겠다”며무(無)스펙 채용을 주창하는 기업들하지만 동아 취재팀이 만난 대학생들은“기업들이 뽑고 싶은 인재, 떨어뜨리고 싶은 인재를명확히 밝히지 않으니취업 비용과 시간만 더 길어진다”고 호소합니다.“원하는 인재의 정확한 기준을 공개해달라.그래야 취준생들이 이에 맞춰 준비하고불필요한 스펙에 시간을 쏟지 않는다”취준생 최재성 씨(28)#.취재팀은 전현직 기업 인사팀 관계자들을 만나 채용 기준을 물었습니다.익명을 전제로 대답한 몇몇 관계자의 발언은 취준생에게 꽤 유효합니다.“학교별 비율이 정해져 있다. 서울대 40%, 연세대 고려대가 40%,나머지 20% 중 마지노선은 홍익대 라인이다”A카드 인사팀 전직 관계자#. “은행은 성실성을 본다.학점 3.7점 이상을 받아야 한다.”B은행 인사팀 관계자“기업 이름을 가리고 보면 어느 회사, 어느 직무에 지원한 건지전혀 드러나지 않는 평범한 자소서는 사절”S사 인사팀 출신 컨설턴트#.“개인적 일화보다 경력과 관련된 담백한 이야기 위주로자소서를 써야 한다.해당기업의 이름을 잘못 쓰면 가차 없다.채용 공고 시 ○명이라는 공고는 1명을 뽑거나 아예 안 뽑을 수도 있기에내부인을 통해 인사 정보를 알아내려는 노력도 필요하다”자소서 평가를 오래 맡은 한 기업 인사담당자#. 민간 기업이 국가고시처럼 정확한 커트라인과개별 점수를 공개하기는 어렵습니다.인재 선발 기준을 공개하면 회사의 전략이 노출된다는반발이 있기 때문이죠.하지만 정보 비대칭이 너무 심각한 구직시장.지금보다 투명한 채용 환경을 조성해취준생의 분노를 조금이라도 달래줘야 하지 않을까요?2017. 4. 25 (화)원본| 김수연·한기재 기자기획·제작| 하정민 기자·김유정 인턴}

#.15월 황금연휴 “해외보다 제주”충전 코리아, 국내로 떠나요#충전코리아5월 #국내로떠나요5월 #충코5 #황금연휴#.2코 앞으로 다가온 5월 황금연휴이달 29일부터 5월 7일 사이에는5월 1일 근로자의 날, 3일 부처님 오신 날,5일 어린이날이 있어 5월 2일과 4일이틀만 휴가를 쓰면 최장 9일을 쉴 수 있죠.#.3전문가들은 사드 배치로 인한 중국 관광객 급감,내수 침체 타개를 위해 국내 여행을활성화하는 정책이 시급하다고 지적합니다. 특히 빠른 효과를 볼 수 있는 정책이휴가비 지원인데요.#.4“2014년 한 해만 시행하고 끊어진 근로자 휴가지원 제도를 되살려야 한다”김재호 인하공전 관광경영학과 교수“시간 여유가 있는 고령층과 청소년층이여행을 떠날 수 있는 이용권을 주고여행지 비수기 물가도 더 낮춰야 한다”임상헌 남서울대 호텔경영학과 교수#.5해외 여행 대신 국내 여행을 선택할 때인센티브를 주자는 제언도 나옵니다.“국내로 휴가를 가면 연차를 1,2일 더 주고국내 수학여행 일정을 하루씩 늘리는방법도 검토해야 한다”김홍주 한국관광협회중앙회장#.6현재의 교통 및 관광 인프라를 추가로 활용해장기 체류를 유도해야 한다는 지적도 많습니다.“고속철(KTX), 고속버스, 시내버스, 지하철에 숙박까지 연계한 자유여행식 정기권을 만들면국내 구석구석을 쉽게 다닐 수 있다”이훈 한양대 관광학부 교수“지역 축제와 연계한 야간 상품을 개발해숙박 여행을 유도해야 한다”정강환 배재대 글로벌관광호텔학부 교수#.7특히 특정 부처가 아닌 범정부 차원의논의가 절실합니다.“일본은 휴가 개혁을 국가 성장전략으로 삼는다.문체· 노동· 기재· 국토· 농림· 해수부 등유관 부처, 지자체 기업, 관광업계 등이 함께휴가 확대 및 인프라 개선책을 마련해야 한다”류광훈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선임연구위원#.8동아일보는 “충전 코리아, 국내로 떠나요”캠페인을 시행하고 있는데요.이달 19일부터 7월 31일까지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에 국내 여행지 사진을올린 사람 중 매달 50명씩 모두 150명을선정해 20만원의 국민관광상품권도 주죠.#.9본인의 SNS에 국내 관광지 사진을#충전코리아5월 #충코5#국내로떠나요5월과 함께 올려주세요. www.letsgokorea.net에더 많은 정보가 있습니다.여러분의 많은 참여를 기다립니다!2017. 4. 25 (화)원본| 손가인· 김재영· 강성휘 기자기획·제작| 하정민 기자 · 신슬기 인턴}

누리꾼들로부터 ‘채널A 여신’으로 불리는 사회부 김설혜 기자. 김 기자는 2011년 12월 채널A 개국 직후부터 지난해 10월까지 5년간 채널A 메인뉴스 앵커로 활약하다 취재 현장을 누비고 있다. “태어나서 단 한번도 본인이 예쁘다고 생각해본 적 없다”고 주장하는 김 기자. 방송 중 웃음보가 터진 사고로 시말서를 썼던 에피소드까지 김 기자와 나눈 진솔한 인터뷰 내용을 전격 공개한다.하정민 기자 dew@donga.com}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조지 W 부시 정권에서 국무부 교육문화담당 차관보를 지낸 디나 하비브 파월(44)을 국가안보회의(NSC) 부보좌관(차관급)으로 발탁했다. 이집트 태생으로 4살 때 미국에 온 그는 아랍계 여성으로 미 행정부 최고위직에 오른 입지전적 인물이다. 유창한 아랍어를 구사하는 파월은 밸러리 재럿 전 백악관 선임고문, 진 스펄링 전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 등 오바마 정권의 실세들과도 돈독한 사이다. 이민자, 여성, 반대파에 유독 적대적으로 보이는 트럼프 정권의 부정적 이미지를 누그러뜨리는 요인이다. 그는 지난해 트럼프 대통령의 장녀 이방카와 처음 만났다. 여성의 사회진출 현안에 대해 조언하고 유명 여성 기업인을 소개해주며 단숨에 이방카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두 번째 백악관 입성까지 이뤄냈다. CNN 등 미 언론이 ‘이방카의 여자’로 부르는 파월은 누구일까. ○ 이집트계 콥트교도 파월은 1973년 이집트 카이로에서 2녀 중 장녀로 태어났다. 부친은 육군 대령, 어머니는 이슬람권 여성으로는 드물게 카이로 소재 아메리칸대를 졸업했다. 파월의 부모는 두 딸에게 더 나은 미래를 열어주기 위해 그가 4살일 때 미 텍사스 주 댈러스로 이주한다. 이들이 콥트교도인 것도 이민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콥트교는 이집트에서 자생적으로 발생한 기독교 종파로 수니파 무슬림이 다수인 이집트에서 오랫동안 핍박을 받아왔다. 댈러스를 이주지로 택한 것도 이 곳에 콥트교 이민자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파월의 부친은 편의점을 운영하고 간간히 버스 운전을 하는 등 근근이 생계를 이어갔다. 그는 쉽게 영어를 배운 두 딸에게 “집에서는 반드시 아랍어로 말하고 아랍 음식을 먹어라”고 강조했다. 이집트인의 정체성을 잃지 말라는 이유에서다. 파월은 “점심 때 다른 친구들은 늘 칠면조 치즈 샌드위치와 감자 칩을 먹었다. 그 평범한 미국 음식이 너무 먹고 싶었다. 하지만 부모님이 늘 팔라펠(아랍식 크로켓)과 후무스(병아리 콩으로 만든 아랍식 스프레드)를 싸줬다. 그때는 부모님이 원망스러웠지만 지금은 내가 아랍어를 구사할 수 있도록 만들어줘 감사하다”고 회고했다. ○ 의원 보좌관으로 정계 입문 파월은 텍사스 오스틴주립대에서 정치학과 사회학을 전공했다. 1995년 대학을 졸업한 그는 당초 로스쿨 진학을 준비했다. 하지만 케이 베일리 허친슨 당시 텍사스 주 상원의원(공화당)의 인턴 제의를 받고 이를 접는다. 전형적 이민자였던 그의 부모는 이 결정에 반대했다. 그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파월은 “어렸을 때부터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을 존경했다. 로스쿨을 포기하자 특히 어머니가 크게 낙심했다. ‘너는 네가 원하는 무엇이든 될 수 있어. 다만 네가 변호사나 의사를 꿈꾸는 동안에만 말이야’라고 했을 정도다. 많은 이민자 자녀들이 나와 비슷한 경험을 겪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허친슨 상원의원을 거친 파월은 딕 아미 하원 원내총무의 보좌관이 된다. 공화당 실세 아미 밑에서 일한 경험은 그가 공화당 선거 전략을 관장하고 어마어마한 자금을 집행하는 공화당 전국위원회(RNC)에서 일하는 데 발판이 된다. RNC 시절 그는 부시의 절친이자 인재 스카우트를 담당하던 클레이 존슨 3세를 만난다. 부시의 예일대 동문인 존슨은 부시가 텍사스 주지사일 때 그의 비서실장을 한 최측근. 존슨은 파월에게 부시의 대선 캠페인에 들어오라고 제의하고 부시와의 면담도 주선한다. 파월은 “부시를 처음 만났을 때 내가 미국 대통령을 위해 일할 수 있다는 사실에 너무 압도당해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 부시의 핵심 참모로 부상 2003년 1월 파월은 클레이 존슨 3세의 후임으로 백악관 인사담당 보좌관이 된다. 만 29세의 젊은 여성이 장차관을 포함한 4000개 정부 요직 후보를 물색하고 추천하는 막강한 직책을 맡았다. 파월은 부시 대통령의 심중을 파악해 그가 선호하는 인물을 잘 찾아내는 것으로 유명했다. 또 온화하고 상냥한 성격으로 대통령은 물론 그 일가족으로부터도 신임을 얻었다. 파월은 딕 체니 부통령, 칼 로브 백악관 부비서실장 겸 정치고문 등과 함께 부시의 핵심 참모 즉 ‘이너서클’로 불렸다. 2004년 9월 정찬용 당시 청와대 인사수석이 미 행정부 인사체계를 살펴보기 위해 워싱턴을 방문했을 때 첫 번째로 만난 사람도 파월이었다. 파월은 2005년 3월 국무부 교육문화 차관보로 승진한다. 당시 국무부에는 여풍이 거셌다. 최초의 흑인 여성 국무장관 콘돌리자 라이스를 필두로 캐런 휴즈 대외홍보 차관, 파월 차관보 등 주요 인사가 모두 여성이었다. 휴즈 차관과 파월 차관보가 모두 워킹 맘인 점도 많은 주목을 받았다. 파월은 워싱턴 유명 PR회사 퀸 길레스피에서 일하는 리차드 파월과 결혼해 두 딸을 뒀다. 그는 직속상사 라이스 국무장관은 물론 카를로스 구티에레스 상무장관으로부터 업무 능력에 관한 극찬을 받았다. 라이스 국무장관은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은 많아도 이를 실행할 줄 아는 사람은 드문데 파월은 실행력(execution)이 정말 뛰어나다”고 말했다. 구티에레스 상무장관은 “파월은 내가 만나본 사람 중 가장 똑똑하다”고 평했다. ○ 골드만삭스의 책임자로 변신 부시 집권 2기의 마지막 해인 2007년 파월은 백악관을 나와 골드만삭스로 이직했다. 사회공헌 사업을 담당하는 골드만삭스 자선재단 책임자 자리였다. 그는 5억 달러(약 6000억 원)의 기금을 주무르며 세계 여성 창업가를 지원하는 ‘1만 여성(1000 women)’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파월은 국무부 시절 쌓은 네트워크를 200% 활용했다. 그는 세계 2위 부호 워런 버핏, 경영 구루 마이클 포터 하버드대 교수, 허핑턴포스트 창업자 아리아나 허핑턴 등 유명인사를 섭외해 여성 창업가에게 자문을 하도록 했다. 6억 달러의 돈도 추가로 모았다. 그가 밸러리 재럿 백악관 고문, 진 스펄링 국가경제위원회 위원장 등 오바마 정권 실세와 친해진 것도 이 시기다. 세계 각국을 돌며 재단 사업을 하려면 미 정부의 협조가 필수적이다. 2014년 파월이 주관한 행사에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이 등장한 적도 있다. 파월은 2015년 3월 뉴욕에서 당시 공화당 대선후보를 노리던 젭 부시 전 플로리다 주지사의 기금 모금 마련 행사를 주관했다. 비록 부시 전 주지사는 공화당 후보가 되지 못했지만 그는 옛 주군의 동생에게 호의를 베풀며 의리를 지켰다. 파월은 2016년 이방카 트럼프와 재러드 쿠슈너 부부를 만났다. 아버지의 선거 캠페인을 관장하던 이방카 부부가 파월에게 여성 정책에 관한 자문을 한 것이 계기였다. 라이스 국무장관 등의 추천도 잇따랐다. 이방카의 신뢰를 얻은 그는 트럼프가 당선인이던 시절 정권 인수위에 합류했다. ○ 안보 분야의 핵심으로 트럼프의 보좌진들은 트럼프가 대선후보일 때부터 러시아에 관한 각종 논란에 휩싸였다. 2016년 7월 선거본부장 폴 매너포트가 우크라이나의 친(親)러시아 정당으로부터 약 140억 원을 받았다는 의혹에 사임했다. 올해 2월에는 행정부 안보사령탑인 NSC 수장 마이클 플린이 러시아 내통 의혹으로 또 사퇴했다. 플린이 발탁한 2인자 캐슬린 맥팔런드 부보좌관은 이번에 파월에게 자리를 내줬다. 폭스뉴스의 강경우파 전략분석가였던 맥팔런드는 플린 낙마 후 내내 입지를 위협받았다. 파월의 급부상 뒤에는 이방카 부부는 물론 플린의 후임자 허버트 맥매스터 NSC 보좌관의 추천도 있었다. 맥매스터는 파월에게 부보좌관을 맡아달라고 직접 요청했고 정식 부보좌관이 되기 전부터 NSC 장관급 회의에 참석할 수 있도록 조치했다. 파월은 이달 6일 플로리다 주 마러라고 리조트에 마련된 ‘시리아 공습 상황실’에 유일한 여성 참모로 참석해 존재감을 과시했다. 이 자리에 맥팔런드는 없었다. 미 언론은 파월의 영향력이 단지 NSC 안에만 머물지 않을 것이며 특히 중동 정책에 그의 입김이 세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국무부 시절 동료 캐런 휴즈 전 차관은 CNN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사우디아라비아 국왕을 처음 만났을 때였다. 우리 둘은 보수적인 사우디에 방문해 잔뜩 긴장해 있었다. 사우디 국왕이 입을 열자 파월이 상냥하게 웃으며 아랍어로 대꾸했다. 나는 그때 국왕이 지었던 표정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젊고 아름다우며 아랍어를 할 수 있는 여성의 가치가 얼마나 대단한지 그때 알았다.” 아랍계 여성 이민자인 그가 걸어온 길은 양성평등과 인권의 가치를 알리고 아직도 미국이 기회의 땅임을 알리는 데 최적의 ‘선전 도구’다. 스스로 “나의 성공은 미국이 능력위주 사회(meritocracy)임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말하는 파월. 그는 어디까지 더 올라갈 수 있을까. 하정민 기자 dew@donga.com}

#. 가짜뉴스 속 언론의 본령 보여준퓰리처상 수상자 스톰레이크 타임스#.권력에 맞서 진실을 추구해 온 미국 기자들이 10일올해 101회를 맞은 언론계 최고 권위 퓰리처상을 수상했는데요.가장 눈에 띄는 수상자는 미 중서부 아이오와 주의초미니 신문 스톰레이크 타임스.세계적 유력지를 제치고 사설 부문 수상자가 됐죠.#. 스톰레이크 타임스는인구 1만 명의 소도시 스톰레이크에서1주일에 2번, 3000부 씩 신문을 발행합니다.직원도 불과 10명.대부분 편집국장 아트 컬런의 가족입니다.그의 형은 발행인, 아내는 사진 기자, 아들은 취재 기자죠.#. 아이오와 주의 핵심 산업은 농업.컬런 편집국장은 아이오와 주요 도시 디모인의식수원인 라쿤 강 수질 오염을 방치한지방 정부가 농장주 이익단체로부터돈을 지원받았다는 사실을 끈질기게 폭로해이번 영예를 안았죠.#. “퓰리처상 수상위원회가 유수의 대형 언론사 사이에서작은 언론사의 노력을 알아줘 자랑스럽다.뉴욕타임스(NYT)가 뉴욕을 다루듯스톰레이크 타임스는 스톰레이크를 다뤄야 한다.”아트 컬런 편집국장#. 컬런 편집국장과 마찬가지로올해 퓰리처 상 수상자 중에는 유난히 권력 횡포를폭로한 사람이 많았는데요.최고 영예 공공보도 부문 수상은뉴욕 경찰의 불법 이민자 추방 실태를 파헤친뉴욕데일리뉴스와 탐사보도 전문매체 프로 퍼블리카가 차지했 죠.#.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을 비판한 수상도 많았습니다.트럼프의 기부금 실태와 음담패설 발언 녹음 파일을보도한 데이비드 파렌트홀드 워싱턴포스트(WP) 기자(국내보도 부문),2016년 미 대선의 트럼프 현상을 분석한페기 누넌 월스트리트저널(WSJ) 기자(논평 부문) 등이 대표적이 죠.#.가짜 뉴스가 범람하는 시대에더 빛을 발한 진짜 뉴스의 힘!인쇄매체 쇠락과 격화되는 경쟁 속에서도끈질기게 사실을 추적하고 권력자와 맞선용감한 언론인들에게 박수를 보냅니다.2017.04.12 (수)원본 | 한기재 기자기획·제작 | 하정민 기자·김한솔 인턴}

막말과 독설, 출연자 윽박지르기, 편파 진행 등으로 유명한 미 보수성향 스타 방송인 빌 오라일리(67)가 거듭된 성 추문으로 생애 최고 위기에 처했다. 뉴욕타임스(NYT)는 2일 그가 지난 15년 간 5건의 성희롱 소송 합의를 위해 1300만 달러(149억5000만 원)을 지급했고, 더 많은 여성이 성희롱 피해를 주장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일부 미 언론은 그를 수십 명을 성희롱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몰락한 유명 흑인 코미디언 ‘빌 코스비’에 비유하고 있다. 1996년부터 21년째 폭스뉴스에서 정치 토크쇼 ‘오라일리 팩터’를 진행하는 그는 백인 중장년층의 애국심을 직설적으로 자극하며 큰 인기를 얻었다. 성향이 비슷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집권한 이후 더욱 각광받고 있다. 평일 오후 8시(동부시간 기준)부터 1시간 씩 방송되는 ‘오라일리 팩터’는 매일 평균 200만 명이 시청하며 2014년부터 2년 동안에만 무려 4억4600만 달러(약 5129억 원)의 광고 수입을 안겨준 폭스의 간판 프로그램이다. 그는 게스트로 등장한 유명인이 마음에 들지 않는 답변을 하면 현직 대통령이라도 가차 없이 말을 끊고 몰아붙인다. 2008년과 2011년 두 차례 출연한 오바마 전 대통령도 그의 거친 진행에 진땀을 흘렸다. 2012년 가수 싸이의 ‘강남스타일’에 대해 “조그맣고 뚱뚱한 사람이 위아래로 뛰기만 한다”고 혹평하고 흑인 여성의원의 가발을 비하하는 등 인종차별적 발언으로도 유명한 그는 누구일까. ○ 아일랜드계 이민자 오라일리는 1949년 뉴욕 시에서 아일랜드계 이민자 후손으로 태어났다. 보수적이고 엄격한 가톨릭 신자였던 아버지의 뜻에 따라 줄곧 가톨릭계 학교를 졸업했다. 이는 그의 세계관 형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 1967년 그는 뉴욕 주 매리스트 칼리지에 진학해 역사를 전공한다. 역시 아버지의 뜻이었다. 학내 신문 ‘더 서클’의 기자로 활동한 그는 졸업 후 플로리다 주 마이애미의 한 가톨릭계 고등학교에서 2년 간 역사와 영어를 가르쳤다. 1973년 역시 아일랜드계 이민자가 많이 사는 보스턴으로 이주해 보스턴대에서 저널리즘 전공으로 석사 학위를 땄다. 당시 동급생이 오라일리 못지않은 ‘막말 방송인’으로 유명한 라디오 진행자 하워드 스턴(63)이다. 둘은 학창 시절부터 친했다. 오라일리는 종종 “나보다 키 큰 유일한 학생이 스턴이었기 때문”이라고 농담한다. ○ 방송계 입문 1975년 그는 펜실베이니아 주 스크랜턴의 작은 지역 방송사에서 앵커 겸 기상 캐스터로 일한다. 이후 5년 간 오리건 주 포틀랜드, 코네티컷 주 하트포드 등 미 전역을 돌아다니며 무명 방송인으로 지냈다. 1980년 고향 뉴욕으로 돌아온 오라일리는 CBS 아침 뉴스팀에 뽑혀 유력 언론의 심장부에 입성한다. 당시만 해도 간판급 진행자가 아니었던 그는 1986년 기회를 잡는다. 헬기 사고로 숨진 ABC 기자 조 스펜서의 장례식장에서였다. 먼저 간 동료를 두고 절절한 추도사를 읊는 오라일리의 모습을 본 당시 ABC 뉴스담당 사장이 그를 스카우트해 프라임타임 뉴스 진행을 맡긴다. 그는 ABC의 간판 프로 ‘굿모닝 아메리카’ ‘나이트라인’ ‘월드뉴스투나잇’ 등을 거치며 전국구 방송인으로 발돋움한다. 1989년 CBS로 돌아온 그는 이 곳에서도 대표 프로그램 ‘인사이드 에디션’의 진행을 맡았다. 베를린 장벽 붕괴 당시 독일 현지에서 생생한 르포를 전했고, 한 때 미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아동 살해사건의 범인 조엘 스타인버그와 단독 인터뷰를 하며 유명세를 떨쳤다. 1994년 7월 오라일리는 지쳤다며 돌연 모든 방송에서 사퇴한다. 하버드대 케네디스쿨에 진학해 공공행정 석사를 딴 그는 ‘싱가포르의 마약 강제치료’에 관한 논문을 쓴다. 이 때의 경험은 그가 방송 일을 병행하면서도 거의 매년 베스트셀러를 출간하는 데 큰 도움을 줬다. 그는 역사학 전공자답게 각종 ‘~죽이기(Killing ***)’ 시리즈를 펴냈다. 링컨 죽이기, 케네디 죽이기, 예수 죽이기 등 역사적 인물에 대한 본인의 해석을 곁들인 이 책들은 수백만 권이 넘게 팔렸고 오라일리에게 부, 명예, 유명세를 추가로 안겨줬다.○ 오라일리 팩터 1996년 그는 당시만 해도 신생 케이블이었던 폭스로 이직한다. 전미 시청률 1위를 달리는 지금과 달리 당시 폭스의 입지는 그야말로 미미했다. NBC, ABC, CBS 3대 공중파는 물론 케이블업계 안에서조차 CNN의 위상에 훨씬 못 미쳤다. 1996년 10월 그는 ‘오라일리 팩터’를 시작했다. 유명 게스트를 사정없이 몰아붙이는 그의 진행 방식은 당시만 해도 미 공중파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형태였다. 2006년 9.11테러 희생자의 아들 제레미 글릭이 등장했을 때가 대표적이다.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을 반대한다는 글릭을 향해 오라일리는 “그 놈들이 네 아버지를 죽였어. 그런데도 아프간 침공을 반대해?”라고 소리치다가 급기야 “닥쳐. 닥치라고(shut up, shut up)”라는 막말을 일삼는다. “911 테러로 아버지를 잃은 너보다 내가 911에 대해 더 화가 난다”는 망발도 뒤따랐다. ▲ 제레미 글릭에게 막말을 일삼는 오라일리 오라일리는 2005년부터 중기 및 만삭 임산부에게 중절 수술을 해 준 의사 조지 틸러를 ‘아기 살인자’라고 집중 공격했다. 2009년 5월 극단적 낙태 반대론자 스콧 로더가 틸러를 살해한다. 당시 진보 성향 미디어 비평가들은 틸러에 대한 오라일리의 막말이 로더의 극단적 행위를 부추겼다고 비판했다. 오라일리 본인도 “내가 틸러를 ‘아기 살인자’라고 부른 것은 그것이 ‘진실(true)’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의 진행 방식에 대한 격렬한 찬반 논쟁이 거듭될수록 시청률은 쑥쑥 올랐다. 최고점에 달했던 2009년 평균 310만 명의 시청자가 매일 이 쇼를 봤다. ‘106주 연속 미 케이블 뉴스 시청률 1위’도 오라일리 팩터가 지닌 독보적 기록이다. 미 경제전문매체 ‘더리치스트’는 폭스가 매년 오라일리에게 2000만 달러(약 230억 원) 내외의 출연료를 지급하며 그의 재산이 7000만 달러(약 800억 원)가 넘는다고 보도했다. ○ 성희롱·거짓 취재·가정폭력 등 논란 그의 이름값이 높아지면서 각종 추문도 속속 뒤따랐다. 2004년 오라일리 팩터의 프로듀서 앤드리아 매크리스가 그를 성희롱으로 고소하며 6000만 달러의 천문학적 배상을 요구했다. 매크리스는 그가 성희롱을 일삼고 폰섹스를 제안했다고 주장했다. 대화 내용을 녹음한 매크리스는 폭스로부터 약 900만 달러의 합의금을 받고 회사를 그만뒀다. 오라일리는 2015년 2월 ‘1980년대 초 CBS 재직 당시 전쟁 취재담을 부풀렸다’는 의혹에도 휩싸였다. 그는 2001년 자서전 ‘노 스핀 존’, 2003년 이라크전 당시 각종 인터뷰와 방송, 2013년 보스턴 폭탄테러 관련 방송 등에서 수차례 “포클랜드, 북아일랜드, 중동 등 세계적 분쟁 지역을 돌아다녔고 3차례 목숨을 잃을 뻔 했다”고 주장한 바 있다. 하지만 당시 CBS 동료들이 “CBS는 포클랜드에 기자를 파견한 적이 없다. 전쟁 구역에 간 적이 없는 오라일리가 뻔뻔한 거짓말을 한다”고 공격하자 수세에 몰렸다. 파문이 확산되자 그는 “전쟁을 취재했다고 했을 뿐 해당 지역에 있었다고 한 적은 없다”고 한 발 물러섰으나 군색한 변명이란 비판만 커졌다. 비슷한 시기 그는 전 부인과의 송사에도 휘말렸다. 1996년 17세 연하 PR 전문가 모린 맥필미와 결혼한 오라일리는 2011년 이혼 후 가정폭력 성향 때문에 두 자녀의 양육권을 잃었다. 그의 전 부인은 “오라일리가 내 목을 조르고 계단에서 나를 질질 끌었으며 자녀가 이 광경을 모두 지켜봤다”고 주장했다. 이혼 후 그의 성희롱 스캔들은 더 자주 발생했다. 출연자나 공동 진행자였던 웬디 월시, 줄리엣 허디, 앤드리아 탄타로스 등의 여성들이 오라일리의 성희롱을 이유로 오라일리 개인과 폭스에 속속 소송을 제기했다. 매크리스가 제기한 첫 소송 때와 마찬가지로 합의금을 주고 무마했지만 그의 이미지와 공신력은 상당부분 훼손됐다. ○ 바람 잘 날 없는 폭스뉴스 오라일리 사태에 대해 폭스의 모회사 뉴스 코퍼레이션의 루퍼트 머독 회장이 어떤 반응을 내놓을 지도 관심이다. 오라일리가 폭스뉴스를 미 케이블 방송 1등으로 만든 일등공신이어서 그를 섣불리 징계하긴 어려울 것이란 의견과, 지난해 여성앵커 희롱 사실이 밝혀져 갑자기 사퇴한 로저 에일스 전 폭스뉴스 회장의 추문이 가시기도 전에 오라일리 사태까지 가세한 만큼 폭스가 모종의 조치를 취하지 않겠느냐는 의견이 맞선다. 일단은 전자가 우세하다. 월스트리트저널은 1일 올해 연말 만료 예정이었던 오라일리와 폭스의 계약이 최근 갱신됐다고 보도했다. 천하의 ‘미디어 황제’ 머독이라 해도 1년에 2000~3000억 원의 광고 수입을 올려주는 간판 진행자를 해고하긴 어렵다는 의미다. 반론도 있다. 오라일리와 에일스 전 회장 외에 최근 폭스 고위 임원들이 속속 추문에 휘말렸기 때문이다. 부하 여성을 성폭행했다는 의혹에 휩싸인 전직 임원 프란치스코 코르테스는 역시 합의금을 주고 이를 무마했고, 백인 여성 진행자 주디스 슬레이터는 두 명의 흑인여성 부하로부터 인종차별적 행동으로 소송을 당해 회사 이미지 차원에서라도 폭스가 대책을 마련할 것이란 주장도 나온다. 오라일리 본인은 당당하다. 그는 자신의 웹사이트에 “다른 유명인과 마찬가지로 나는 늘 ‘부정적 여론을 피하고 싶으면 돈을 달라’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다”고 주장했다. 과연 그가 과거 거짓취재와 가정폭력 논란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 스캔들도 정면으로 돌파할 수 있을까. 그 해답은 결국 미국 시청자들에게 달려있다.하정민 기자 dew@donga.com}

응급의학의 기초 중 ‘ABC’ 원칙이 있다. Airway(기도 확보), Breathing(인공호흡을 통한 산소 공급), Compression(흉부 압박을 통한 혈액순환)의 머리글자를 땄다. 의식이 없는 환자에게는 무엇보다 ‘A’, 즉 기도 확보가 중요하다. 무의식중에 혀가 말려 기도를 막으면 산소 공급이 중단돼 뇌사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27일 20세 이하(U-20) 한국 축구대표팀과 잠비아의 경기에서는 이 ABC의 모범이라 할 장면이 등장했다. 경기 후반 수비수 정태욱 선수(20·아주대)가 공중 볼을 다투다 상대 선수와 충돌해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한눈에 봐도 대형 부상이 예견되는 상황에서 한국 선수들은 우왕좌왕하지 않고 곧바로 정 선수에게 달려들었다. 이를 주도한 사람은 동료 수비수 이상민 선수(19·숭실대). 그는 정 선수의 입에 손가락을 넣어 혀가 말려들어 가는 것을 막고 인공호흡을 실시했다. 다른 선수들은 꽉 조이는 테이핑을 풀고 축구화도 벗겨 혈액 순환을 도왔다. 전문 의료인이 아닌 스물 남짓의 어린 선수들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 능숙하고 기민한 대처였다. 골든타임에 적절한 처치가 이뤄진 덕에 정 선수는 의식을 되찾고 바로 병원으로 이송됐다. 그의 혀를 끄집어내려던 이상민 선수의 퉁퉁 부어오른 손가락도 각종 동영상을 통해 널리 퍼졌다. 손가락이 절단될 위험에도 굴하지 않고 동료를 구한 이상민 선수, 어린 선수들에게 응급구조 교육을 잘 시킨 프로축구연맹도 누리꾼의 찬사를 받고 있다. 2000년 4월 프로야구 롯데 자이언츠 임수혁 선수가 잠실구장에서 쓰러졌던 때와 비교하면 격세지감이다. 프로스포츠계의 응급교육이 지금 같지 않았던 당시 임 선수를 보고 동료와 심판들이 어쩔 줄 몰라 허둥지둥하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뇌사에 빠진 그는 10년간 투병하다 2010년 2월 세상을 떴다. 2월 광주의 한 아파트에서 발생한 화재 때 정확한 대처로 피해를 최소화한 이하은 양(6). 채널A가 단독 보도한 바에 따르면 이 양은 부모가 잠시 외출한 사이 집에서 화재가 발생하자 현관문부터 닫고 엘리베이터가 아닌 비상계단을 이용해 12층 집에서 탈출했다. 그 긴 계단을 내려오면서 주민들에게 “불이 났다”고 계속 소리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가 현관문을 꽉 닫은 덕에 불은 산소 부족으로 집 안에서 저절로 꺼졌다. 이 양은 “유치원에서 배운 대로 했을 뿐인데…”라고 말해 어른들의 감탄을 자아냈다. 19세 축구선수와 6세 꼬마 소녀의 사례는 단순히 응급구조 및 안전 조기교육의 중요성만을 알려주는 게 아니다. 4차 산업혁명, 인공지능, 가상현실 등 인류가 경험하지 못한 급격한 변화가 등장한 지금 모두가 창의적이고 전례 없는 방법으로 위기에 대처하고 상황을 풀어 가려는 데만 급급한 것 같다. 오히려 답은 너무나 기본적이어서 소홀하기 쉬운 일부터 능숙하게 수행하는 데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를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모든 일에는 기초와 우선순위가 있다. 축구팀에서든 집에서든 사회에서든 먼저 ABC를 알아야 XYZ도 터득할 수 있다. 두 사람으로부터 인생의 ABC를 배웠다. 하정민 디지털통합뉴스센터 차장 dew@donga.com}

응급의학의 기초 중 ‘ABC’ 원칙이 있다. Airway(기도 확보), Breathing(인공호흡을 통한 산소 공급), Compression(흉부 압박을 통한 혈액순환)의 머리글자를 땄다. 의식이 없는 환자에게는 무엇보다 ‘A’, 즉 기도 확보가 중요하다. 무의식중에 혀가 말려 기도를 막으면 산소 공급이 중단돼 뇌사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27일 20세 이하(U20) 한국 축구대표팀과 잠비아의 경기에서는 이 ABC의 모범이라 할 장면이 등장했다. 경기 후반 수비수 정태욱 선수(20·아주대)가 공중 볼을 다투다 상대 선수와 충돌해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한눈에 봐도 대형 부상이 예견되는 상황에서 한국 선수들은 우왕좌왕하지 않고 곧바로 정 선수에게 달려들었다.이를 주도한 사람은 동료 수비수 이상민 선수(19·숭실대). 그는 정 선수의 입에 손가락을 넣어 혀가 말려들어가는 것을 막고 인공호흡을 실시했다. 다른 선수들은 꽉 조이는 테이핑을 풀고 축구화도 벗겨 혈액 순환을 도왔다. 전문 의료인이 아닌 스물 남짓의 어린 선수들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 능숙하고 기민한 대처였다. 골든타임에 적절한 처치가 이뤄진 덕에 정 선수는 의식을 되찾고 바로 병원으로 이송됐다. 그의 혀를 끄집어내려던 이상민 선수의 손가락이 퉁퉁 부어오른 모습은 각종 동영상을 통해 전파됐다. 손가락이 절단될 위험에도 굴하지 않고 동료를 구한 이상민 선수와 어린 선수들에게 응급구조 교육을 잘 시킨 프로축구연맹은 누리꾼의 찬사를 받고 있다. 2000년 4월 롯데자이언츠 임수혁 선수가 잠실야구장에서 쓰러졌던 때와 비교하면 격세지감이다. 프로스포츠계의 응급교육이 지금 같지 않았던 당시 임 선수를 보고 동료와 심판들이 어쩔 줄 몰라 허둥지둥하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뇌사에 빠진 그는 10년간 투병하다 2010년 2월 세상을 떴다. 2월 광주의 한 아파트에서 발생한 화재 때 정확한 대처로 피해를 최소화한 이하은 양(6). 채널A가 단독 보도한 바에 따르면 이 양은 부모가 잠시 외출한 사이 집에서 화재가 발생하자 현관문부터 닫고 엘리베이터가 아닌 비상계단을 이용해 12층 집에서 탈출했다. 그 긴 계단을 내려오면서 주민들에게 “불이 났다”고 계속 소리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가 현관문을 꽉 닫은 덕에 불은 산소 부족으로 집 안에서 저절로 꺼졌다. 이 양은 “유치원에서 배운 대로 했을 뿐인데…”라고 말해 어른들의 감탄을 자아냈다. 19세 축구선수와 6세 꼬마 소녀의 사례는 단순히 응급구조 및 안전 조기교육의 중요성만을 알려주는 게 아니다. 4차 산업혁명, 인공지능, 가상현실 등 인류가 경험하지 못한 급격한 변화가 등장한 지금 모두가 창의적이고 전례 없는 방법으로 위기에 대처하고 상황을 풀어가려는 데만 급급한 것 같다. 오히려 답은 너무나 기본적이어서 소홀하기 쉬운 일부터 능숙하게 수행하는 데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를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모든 일에는 기초와 우선순위가 있다. 축구팀에서든 집에서든 사회에서든 먼저 ABC를 알아야 XYZ도 터득할 수 있다. 두 사람으로부터 인생의 ABC를 배웠다. 하정민 기자 dew@donga.com}

자동차의 개념을 ‘소유’에서 ‘공유’로 바꾼 차량공유업체 우버가 2009년 설립 후 최대 위기를 맞았다. 각종 성 추문, 단속 피하는 불법 프로그램 사용, 데이터 부실관리, 자율주행차 사고, 잇단 임원 사퇴, 늘어나는 영업 적자 등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다. 이 모든 논란의 끝에 트래비스 칼라닉 창업주 겸 최고경영자(CEO·41)가 있다. “적은 어디에나 있다. 싸움과 대립을 즐기라”며 극단적 실적우선주의를 표방하고 직원들을 닥달하는 그의 공격적 리더십이 화를 키웠다는 지적이 많다. 칼라닉은 이름 없는 스타트업을 기업가치 680억 달러(약 77조5200억 원)짜리 대기업으로 만들었고 본인도 63억 달러(약 7조1820억 원)의 거부가 된 ‘혁신의 아이콘’이다. 하지만 부적절한 언행, 불같은 성정, 위기관리를 경시하는 모습 등으로 ‘잘 나가던 우버에 급브레이크를 건 장본인’이란 거센 비난에 직면했다. 남성잡지 GQ 선정 ‘세계에서 가장 섹시한 CEO’로 뽑히고 기네스 팰트로 등과의 염문설 등으로도 유명한 그는 누구일까.▲ 우버 역사에 대해 강연하는 칼라닉 CEO ○창업에 미친 청년 칼라닉은 1976년 미국 LA에서 태어났다. 당시 LA 시 공무원이었던 아버지는 슬로바키아계, 지역 일간지 LA데일리뉴스의 광고 담당자 어머니는 유대계 후손이다. 그는 UCLA 컴퓨터공학과 진학을 앞둔 고교 졸업반 시절 한국계 친구와 ‘뉴웨이 아카데미’란 회사를 잠시 운영했다. 미 대학입학자격시험(SAT)을 앞둔 학생들에게 과외를 해주는 일종의 보습학원이었다. 이처럼 어려서부터 창업에 관심이 많았던 그에게 대학 공부는 뒷전이었다. 결국 1998년 대학을 중퇴하고 다자간 파일공유(P2P·peer to peer)업체 ‘스카워’를 차린다. 2000년 여름 미 방송국 및 영화사 30여 개가 지적재산권 위반 등을 이유로 ‘스카워’에 2500억 달러(약 265조 원)란 천문학적 소송을 제기한다. 칼라닉은 2000년 9월 100만 달러를 배상해주고 파산을 선언했다. 2001년 그는 또 다른 P2P업체 ‘레드 스우시’를 창업한다. 초기에는 동업자와의 분쟁, 임금 체납, 탈세 문제 등으로 단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었다. 그는 3년 간 단 한 푼의 월급도 받지 못해 부모님 집에서 더부살이를 했다. 실리콘밸리에는 매년 유명 IT 기업가들이 창업 지망생들에게 자신의 실패담을 알려주는 ‘페일콘(failcon)’ 콘퍼런스가 열린다. 칼라닉은 2011년 페일콘에서 당시 상황을 회고했다. “돈이 없으니 집 밖을 나갈 수 없었다. 데이트는 꿈도 꾸지 못했다. 하루에 14시간씩 침대에 누워 게임만 했다. 반드시 이겨야 게임기 전원을 껐다. 나의 유일한 허세였다.” 칼라닉은 스카워 시절 자신에게 소송을 제기해 회사 문을 닫게 한 유명 방송사와 영화사를 고객으로 끌어들였다. 이들의 콘텐츠를 합법적으로 공유할 수 있게 만들어주자 회사가 살아났다. 그는 2007년 레드스우시를 1900만 달러(약 218억 원)에 매각한다. ○우버 창업 큰 돈을 쥔 칼라닉은 주거지를 LA에서 실리콘밸리로 옮겨 2년간 벤처 투자자로 활동한다. 2008년 프랑스 파리로 출장을 간 그는 택시를 잡느라 30분을 허비했다. 극도의 짜증을 느낀 그는 ‘버튼 하나만 누르면 택시를 탈 수 있는 서비스를 만들겠다’고 마음먹는다. 그는 동료 사업가 개럿 캠프에게 동업을 제안한다. 검색추천 전문 소셜미디어 ‘스텀블 어폰’의 창업자 캠프는 흔쾌히 25만 달러를 투자했고 둘은 2009년 3월 우버를 창업한다. 사실 우버의 밑그림은 캠프가 그렸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버의 첫 CEO이자 뛰어난 개발자인 라이언 그레이브스도 캠프가 데려왔다. 우버는 2010년 5월 샌프란시스코에서 첫 영업을 시작한다. 광대한 영토, 불편한 대중교통, 비싼 교통비에 익숙한 미국인들에게 ‘스마트폰 앱으로 간편하게 택시를 호출하고 가격까지 싼’ 우버의 출현은 혁신 그 자체였다. 밥그릇을 빼앗긴 택시업계가 극렬히 반발했지만 소비자들은 열광했다. 사업이 본 궤도에 오르자 칼라닉은 본인이 CEO 자리까지 꿰차고 해외 공략을 진두지휘한다. 프랑스, 독일, 싱가포르, 네덜란드 등 우버가 진출한 거의 모든 국가에서 격렬한 저항과 합법성 논란이 일었지만 그는 공격적인 사업 수완으로 이를 돌파했다. 현재 우버는 세계 66개국 528개 도시에 진출해 있다. 프리미엄택시 우버X, 우버 보트, 헬리콥터, 자율주행차, 음식 배달 등 관련 산업으로도 보폭을 넓혔다. 리프트·비아·겟(미국), 디디콰이디(중국), 카카오택시(한국), 그랩(동남아시아) 등 세계 각국에서 경쟁자가 생겨나고 있지만 칼라닉은 개의치 않는다고 말한다. “우버가 아이폰이라면 경쟁사와 일반 택시는 평범한 휴대폰”이라는 말과 함께. ○바람 잘 날 없는 우버 짧은 시간에 급격하게 몸을 불린 후폭풍일까. 우버는 올 들어 내내 각종 논란에 휩싸였다. 1월 칼라닉이 트럼프 정권의 경제 자문위원을 맡자 소비자들이 거세게 반발했다. 진보 성향이 강한 실리콘밸리에서 태동한 기업답게 우버의 고객들도 반(反) 트럼프 쪽이 많다. 그가 5일 만에 자문 직을 사퇴했지만 이미 20만 명이 우버 앱을 지운 뒤였다. 성희롱 문제도 속속 불거졌다. 2월 초 우버의 전직 여성 기술자 수잔 파울러는 “상사가 노골적으로 잠자리를 요구했다. 상부에 보고했지만 인사부가 이를 덮는데 급급했다”고 폭로했다. 비슷한 시기 아미트 싱할 선임 부사장도 전 직장 구글에서의 성추행 의혹이 뒤늦게 드러나 회사를 떠났다. 3월 중순에는 칼라닉의 전 애인 개비 홀스워스가 “그가 2014년 한국을 방문했을 때 직원들과 함께 여성 접대부가 있는 술집을 찾았다”고 폭로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우버 전·현직 직원들을 인용해 “해당 사례는 일회적이지 않고 우버 전체에 만연해있다”고 질타했다. 칼라닉 본인이 우버 운전자에게 막말을 내뱉는 동영상도 등장했다. 가격인하 정책에 불만을 토로하는 운전자에게 그는 비속어가 섞인 막말을 내뱉으며 거칠게 문을 쾅 닫았다. 이 동영상은 전 세계로 확산됐고 우버와 칼라닉에 대한 소비자들의 반감은 더욱 커졌다.▲ 운전자와 설전을 벌이는 칼라닉 우버가 ‘그레이볼(Grayball)’이란 불법 프로그램을 사용해 경찰 단속을 피했고 고객 데이터를 부적절하게 관리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우버와 자율주행차 개발을 경쟁 중인 구글 자회사 웨이모는 우버 측에 기술도용 소송을 제기했다. 이 와중에 애리조나 주에서는 시범 운행 중인 자율주행차의 안전사고까지 터졌다. 우버 2인자 제프 존스 사장, 브라이언 맥클랜던 부사장, 에드 베이커 부사장 등 핵심 임원들도 속속 회사를 떠났다. ○이미지 전환에 안간힘 불과 석 달 사이에 갖가지 악재가 터지자 우버는 28일 정보기술(IT) 분야의 소수 인종지원을 위해 300만 달러(약 33억 원)을 기증하겠다고 밝혔다. 누가 봐도 ‘백인남성 우월주의가 만연한 조직문화가 우버의 현 위기를 불렀다’는 비판을 의식한 조치다. 같은 날 우버는 설립 후 8년 만에 최초로 사내 성별 및 인종별 다양성 보고서를 발표했다. 칼라닉은 “현재 우버 내 여성 직원 비율은 36%지만 지난해 신규 채용한 직원의 41%가 여성이었다. 여성과 소수인종 비율을 더 늘리겠다”고 밝혔다. 이어 “나는 여러모로 부족한 인물이며 나를 도와 회사를 다시 일으킬 경영자를 선임하겠다”고 변화 의지를 천명했다. 파일 공유와 교통 공유 등 ‘공유 경제’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 억만장자가 된 칼라닉. 실패와 재기를 거듭하며 전형적인 아메리칸 드림을 구현한 그는 어떤 전략으로 이번 위기를 돌파할까. 하정민 기자 dew@donga.com}

#. 개통령을 아시나요?사나운 개도 순한 양으로 만드는 강형욱 보듬컴퍼니 대표#. 마구 짖는 사나운 개사람의 손길을 거부하는 개사람을 물고 공격하려는 개강형욱 보듬컴퍼니 대표(32) 앞에 서면 ‘순한 양’으로 돌변합니다. 사람들은 그를 ‘개통령’ '갓형욱'이라 부르죠.#. 국내 반려동물 보유 인구는 1000만 명.인간과 반려동물의 공존이 화두로 떠오르면서 깅 대표의 소통형 반려동물 교육이큰 인기입니다.#. 그는 4월부터 채널A ‘개밥 주는 남자(개밥남) 시즌2’에 고정 출연합니다."방송 활동을 많이 하는 건 제가 추구하는 반려견과의 소통법을 널리 알리기 위해서서에요. ‘개밥 주는 남자’에서 다양한 교육 방식을 알려드릴께요."#. 그의 훈련 방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노르웨이 유학. "짖는 개를 절대로 제지하지 않는 노르웨이 사람들을 보며 깜짝 놀랐죠. 반려견을 편안하고 여유 있게 대하는 태도에 매료됐어요."#. 강형욱 표 훈련의 핵심은 눈높이 맞추기. 강압적이고 즉각적인 훈육, 시설에 반려동물을 맡기는 위탁형 교육을 철저히 배제합니다. “족집게식 인문학 강의가 유행하듯 한국 사람들은 반려동물 교육에서도 ‘빨리빨리’에 집착해요.보호자와 반려동물이함께 교육을 받아야 그 효과가 오래 갑니다" #. 그는 반려견이 아닌 사람의 변화를 추구합니다. “반려견이 미용실에 가면 너무 짖는다고 상담을 호소한 주인이 있었어요. 낯선 사람이 자꾸 만지면 개가 짖는 게 당연하지 않나요?사람이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반려견의 태도가천차만별로 달라집니다"#. "칠레 수도 산티아고에는 유기견이 무려 70만 마리가 있어요.반면 노르웨이에는 유기견이 없어요.즉 한 국가의 경제사회적 수준과 반려동물의 실상은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한국이 잘 사는 나라가 된만큼 반려동물에 대한 태도도 달라져야죠"#."향후 노인과 어린이를 위한 상담도 하고 싶어요. 늘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심이 많았거든요."개통령 강형욱씨 늘 응원합니다.개밥남에서의 활약도 기대할께요^^원본 | 유원모 기자기획·제작 | 하정민 기자 · 김한솔 인턴}

2021년까지 3연임을 꿈꾸던 아베 신조 일본 총리(63)가 최대 위기를 맞았다. 부인 아키에 여사(55)가 명예교장이던 모리토모(森友) 학교법인이 총리 부부에 로비를 벌여 헐값에 국유지를 학교 부지로 매입했고, 아베 본인은 물론 정권이 조직적으로 이를 은폐하고 있다는 의혹이 파문을 일으켜서다. ‘가정 내 야당’ ‘남편의 정치적 비밀병기’로 불리며 큰 인기를 누리던 아키에 여사. 그는 한류스타 고 박용하의 팬, 자유분방하고 활달한 성격, 원자력 발전소·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소비세 인상 등 남편의 주요 정책에 대한 반대 등으로도 유명하다. 한때 ‘정치인 아내의 새로운 롤 모델’로 평가받았지만 이제 남편과의 이혼설에도 휩싸인 그는 누구일까.▲ 2015년 신년 인사를 하는 아키에 여사 ○ 제과회사 상속녀 아키에 여사는 1962년 일본 도쿄에서 태어났다. 출생 시 이름은 마쓰자키 아키에. 모친은 일본 최대 제과회사 모리나가(森永)의 공동 창업주 모리나가 다헤이의 딸, 부친은 모리나가제과 임원을 지낸 마쓰자키 아키오다. 모리나가 제과는 한국에서도 유명한 밀크 캬라멜과 ‘옷톳토’ 스낵 등을 생산한다. 모리나가와 기술 제휴를 한 오리온은 옷톳토를 ‘고래밥’으로 판매해 인기를 끌었다. 그는 초등학교부터 대학까지 자동으로 진학할 수 있는 일관제 학교 세이신(聖心)에서 초등학교부터 전문대까지 마쳤다. 세이신은 쟁쟁한 집안의 딸들이 다니는 학교다. 미치코 일왕비, 미치코 왕비의 사촌동서 다카마도노미야 히사코 비도 세이신 동문이다. 그는 졸업 후 일본 최대 광고회사 덴츠에 입사했다. 그는 하라주쿠의 한 술집에서 친구 소개로 아베 신타로 외상의 차남 아베 신조와 만난다. 소개팅 첫날 30분이나 지각했지만 아베는 오히려 그의 자유분방한 성격에 반했고 둘은 1987년 6월 결혼했다. 일본 정계에는 “국회의원에겐 3개의 ‘반(バン)’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다. 지반(지역 기반), 간판(인지도), 가방(돈)을 의미하며 3단어의 일본어 발음이 모두 ‘반’으로 끝나 유래했다. 외조부와 외종조부가 총리, 조부가 중의원, 아버지가 외무상인 아베는 지역기반과 인지도를 이미 갖추고 있었다. 그는 재력가 아내와 결혼해 3반을 완성한다. ○ 정치인 아내의 삶 불과 25세에 정치 명문가 며느리가 된 아키에 여사는 불임과 고부갈등으로 결혼 초부터 어려움을 겪는다. 그의 시어머니는 태평양전쟁의 A급 전범이자 아베 총리의 우익 성향에 큰 영향을 미친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의 장녀 요코(89). 아버지, 남편, 아들이 모두 정치인인 요코 여사는 정치인의 배우자를 숙명으로 여겼다. 그는 아베 총리가 소년일 때 도쿄에 세 아들을 놔두고 늘 남편의 지역구 시모노세키에 머물렀다. 바쁜 남편 대신 지역구 관리를 하기 위해서다. 구순을 바라보는 지금도 총리가 된 아들의 식사를 직접 챙긴다. 깐깐한 시어머니와 재벌가 출신 톡톡 튀는 젊은 며느리는 궁합이 맞지 않았다. 요코 여사는 결혼 초부터 “염주를 쥐는 방식이 틀렸다” “치마가 너무 짧다”고 며느리를 훈계했다. 아들 부부의 불임은 고부갈등을 더 키웠다. 혈통을 중시하는 요코 여사는 막내아들 노부오를 친정 기시 가문에 양자로 보냈다. 아베의 외종조부 사토 에이사쿠 전 총리도 기시 가문에서 태어나 사토 가문으로 양자를 갔다. 시어머니는 정략결혼과 입양을 통해 세습 정치를 유지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지만 며느리는 달랐다. 아키에 여사는 2006년 월간지 ‘문예춘추’와의 인터뷰에서 “정치인의 아내로 살면서 어마어마한 압력에 시달려왔다. 불임을 알았을 때 남편은 양자를 들이자고 했지만 제대로 키울 자신이 없어 내가 거부했다”고 밝혔다.○ 술집 개업 아키에 여사는 2012년 10월 도쿄 금융가 간다 뒷골목에 일본식 선술집 우즈(UZU)를 개업했다. 우즈는 일본어로 ‘소용돌이(渦)’를 뜻한다. 2006년 9월부터 2007년 9월까지 1년 간의 짧은 총리 생활을 한 아베는 당시 5년 간 와신상담한 끝에 총리 복귀를 노리고 있었다.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와 간 나오토 당시 총리의 실정으로 복귀 가능성이 높았다. 요코 여사는 “남편이 총리 재도전을 앞뒀는데 술집 개업이 말이 되느냐”고 반발했지만 며느리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결국 아베 총리는 아내에게 ‘가게에서 술을 마시지 않는다’는 조건을 내건 후 개업을 허락했다. 2007년 총리 사퇴 당시 심각한 위궤양에 시달렸던 아베 총리는 술을 거의 마시지 않는다. 반면 아키에 여사는 술을 잘 마시는 것으로 유명하다. 술집 개업 두 달 후인 2012년 12월 아베는 다시 총리에 오른다. 그는 2015년 9월 이 술집 때문에 스캔들에 휘말렸다. 여성지 주간세븐은 ‘아키에 여사가 동갑내기 유명 기타리스트 유부남 호테이 도모야스가 우즈에서 은밀한 만남을 가졌다. 그가 술에 취해 호테이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목덜미에 키스를 했다’고 보도했다. 아키에 여사는 부친이 한국계인 호테이의 오랜 팬이었다. 그의 콘서트장을 자주 찾았고 2013년 콘서트 장에서 같이 찍은 사진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렸다. 총리실은 이 스캔들에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하지만 자유분방한 퍼스트레이디에 대한 일부 일본인들의 반감은 높아지기 시작했다. ○ 모리토모 스캔들 일본 우익단체 ‘일본회의’ 임원 가코이케 야스노리가 이사장인 오사카 소재 모리토모 학교법인. 이 학교는 학생들에게 옛 일본 군가를 가르치고 군국주의 상징인 교육칙어를 암송하게 하는 등 우익 성향 교육행태로 비판받아왔다. “한국인과 중국인은 약속을 잘 안 키는 민족”이라는 발언으로도 물의를 빚었다. 모리토모는 지난해 초등학교 설립을 추진하면서 오사카 한복판의 국유지를 감정가 약 100억 원의 13%에 불과한 1억3400만 엔(약 13억 원)에 매입했다. 올해 초 일본 언론이 헐값 매입 논란을 집중 보도하면서 추가 의혹이 속속 등장했다. 매각 담당부서 재무성은 ‘해당 부지에 폐기물이 많았고 이 처리비를 모리토모 측이 부담하기로 해 싸게 팔았다’고 주장했지만 폐기물 처리가 제대로 되지 않았고 매각협상 기록을 담은 정부 문서도 이미 폐기됐음이 드러났다. 아베의 최측근 이나다 도모미 방위상이 한때 이 학원의 고문 변호사였던 것도 밝혀졌다. 아키에 여사 측은 “2014년 4월 모리모토 소속 유치원을 찾았다. 당시 ‘아베 총리가 누구냐’는 질문에 ‘일본을 지켜주는 사람’이라고 답한 유치원생의 말을 듣고 눈물을 흘렸다. 이 때 모리모토 측이 명예교장을 부탁해 거절할 수 없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는 2015년 9월 이 유치원에서의 강연을 통해 “모리토모 유치원에서 하고 있는 일들이 대단히 멋지다. 남편도 이곳 교육 방침을 훌륭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더 큰 문제는 이 스캔들을 다루는 아베 정권의 태도다. 아베 총리는 2월 17일 국회에 출석해 “우리 부부가 관계가 있다면 모든 공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고문 변호사인 적이 없었다던 이나다 방위상의 거짓말이 탄로나고 15일 파문 당사자인 가고이케 이사장까지 돌변하면서 완전히 궁지에 몰렸다. 그는 독립 언론인 스가노 다모쓰와의 인터뷰에서 “학교 설립 과정에서 아베 총리로부터 기부금 100만 엔(약 1000만 원)을 받았다. 그가 아키에 여사를 통해 기부금을 전달했다”고 주장했다. ▲ 가고이케 이사장과 스가노 씨의 인터뷰 ○ 운명의 23일 가고이케 이사장은 23일 국회에 출석해 이 문제에 대해 정식 증언한다. 그의 말이 사실로 드러나면 총리 사임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설사 총리 직을 유지한다 해도 과거와 같은 정치력을 발휘하긴 어렵다. 한때 60~70%를 넘나들던 아베 총리의 콘크리트 지지율은 40%대로 추락했다. 이 와중에 일본 대중 주간지 ‘주간현대’는 총리 부부의 이혼설까지 제기했다. 주간현대 측은 “아베 총리는 일본 역사상 최장기 집권을 노리고 있다. 비록 아내라 해도 자신의 꿈을 방해하면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내와 열렬한 팬이던 극우인사 때문에 전전긍긍하는 아베 총리. 과연 그는 총리 직을 유지하고 아내와 예전의 금슬을 회복할 수 있을까. 하정민 기자 dew@donga.com}

26일 홍콩에서 한국의 대통령 격인 행정장관을 뽑는 선거가 치러진다. 1997년 중국이 홍콩을 편입해 ‘일국양제(一國兩制·1국가 2체제)’를 도입한 지 꼭 20년 만이다. 여기에 2014년 민주화 시위 ‘우산혁명’ 이후 홍콩의 민주화 열망이 어느 때보다 높아 이번 선거 결과가 주목받고 있다. 7월 취임할 임기 5년의 새 행정장관을 뽑는 이번 선거에는 존 창(曾俊華) 전 재정사장(경제장관 격), 우쿽힝(胡國興) 전 고등법원 판사, 레지나 입(葉劉淑儀) 신민당 주석 등이 출마했다. 현재 선두를 달리고 있는 사람은 캐리 람(林鄭月娥·60) 전 정무사장(총리 격)이다. 간선제인데다 중국이 그를 ‘낙점’한 상태라 이변이 없는 한 당선 가능성이 높다. 람은 저소득층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고등교육을 받고 약 40년 간 엘리트 공무원 생활을 해온 입지전적 인물이다. 대학 시절에는 저소득층을 위한 시위에 나서기도 했지만 지금은 친(親)중국 성향, 우산혁명 강경 진압, 지하철 이용에 서툰 모습 등으로 “양극화에 시달리는 홍콩 서민의 삶을 전혀 모른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그는 누구일까.▲ 출마 계획을 밝히는 람○거친 싸움꾼람은 1957년 홍콩 서민 거주지 완차이의 저소득층 가정에서 5남매 중 4번째로 태어났다.중국 저장성 출신인 부모는 교육을 거의 받지 못했고 집안 형편은 찢어지게 가난했다. 일곱 식구가 다른 가족과 조그만 아파트를 나눠 써야 할 정도였다. 그는 공부를 잘했다. 책상이 없어 침대 한 켠에 쪼그려 앉아 숙제를 해야 했지만 늘 1등을 놓치지 않았다. 명문 홍콩대에서 사회복지를 전공한 람은 1980년 홍콩 행정청에서 공무원 생활을 시작한다. 람은 1981년 영국 케임브리지대로 연수를 떠나 수학자 남편 시우포 람을 만나 1984년 결혼했다. 둘은 슬하에 아들 둘을 두고 있다. 남편과 두 아들은 모두 영국 국적이다. 람은 귀국 후 행정청의 예산부, 재무부, 사회복지부 등을 거쳤다. 2007년 7월 홍콩 1대 행정장관 도날드 청은 50세의 람을 개발국장(장관 격)으로 발탁했다. 취임 첫 날 그는 홍콩섬과 카우룽 반도를 연결하는 페리 부두 철거 문제와 조우한다. 한때 홍콩 랜드마크였던 에딘버러 플레이스 페리 피어는 노후화가 심해 철거가 예정됐지만 환경론자들의 거센 반대로 공사가 지체되고 있었다. 람은 “사람들에게 헛된 희망을 줄 수 없다”며 철거를 강행했다. 이런 그의 모습은 사람들에게 깊이 각인됐다. 당시 홍콩 행정청 2인자 라파엘 후이 정무사장은 그에게 ‘거친 싸움꾼(tough fighter)’이란 별명을 선사했다. ○친중파 2012년 7월 취임한 3대 행정장관 렁춘잉(梁振英)은 람을 정무사장으로 발탁했다. 행정청 2인자가 돼서도 람의 스타일은 여전했다. 우산혁명이 발발한 2014년 10월 람은 우산혁명을 주도한 학생 대표들과 공개 토론을 벌이며 “절대 물러서지 않겠다”고 말했다. 시위대 강경 진압도 주도했다. 그런 그에게 ‘철의 여인’ ‘홍콩판 마거릿 대처’라는 새로운 별명이 붙었다. 중국 수뇌부가 람을 차기 행정장관 후보로 여긴 결정적 계기였다. 올해 1월 그가 정무사장 직을 사퇴하고 “차기 행정장관에 입후보하겠다”고 밝힌 것도 베이징과의 사전조율 없이는 불가능했다는 관측이 많다. 중국 권력서열 3위 장더장(張德江)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은 이달 5일 홍콩 내 친중파 인사들을 만나 “람이 애국심을 분명히 보여줬고 풍부한 행정경험이 있다. 그는 중국이 지지하는 유일한 후보이며 공산당 중앙정치국의 만장일치 의견”이라고 강조했다.○휴지와 지하철 친중 성향 외에도 일부 홍콩 시민들이 그를 우려하는 이유는 그의 비서민적 행보 때문이다. 람은 올해 1월 정무사장 사퇴 직후 기자들과 만나 “최근 화장실 휴지가 떨어져서 택시를 타고 옛 관저로 가서 휴지를 몇 통을 가져왔다”고 말했다. 당시 그는 정무사장 관저에서 나와 민간인 신분으로 살고 있었다. 물론 발언의 취지는 달랐다. 당초 그는 “며칠간 인생에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계속 적응하고 배우고 있는 중”이라며 소소한 에피소드를 소개하려고 했다. 하지만 소기의 목적과 달리 서민의 삶과 동떨어진 엘리트 공무원의 한계를 고스란히 노출한 셈이 됐다. 홍콩 누리꾼들은 이를 강력 비판했다. “편의점에서 휴지를 사면 되지 왜 관저 휴지를 가져와야 하느냐” “관저에서 살기 전에는 휴지를 한 번도 구입해본 적이 없느냐”는 질타가 쏟아졌다. ‘휴지 게이트’라는 말까지 나왔다. 최근에는 지하철을 이용하려던 그가 회전식 개찰구를 지나가지 못하고 어리둥절해 하다 수행원의 도움을 받고 간신히 개찰구를 통과하는 모습이 TV전파를 탔다. 람의 경쟁자 레지나 입 신민당 주석은 이를 놓치지 않았다. 그는 미디어에 등장해 교통카드를 들고 “나는 (람과 달리) 교통카드의 정확한 사용법을 알고 있다”고 일격을 가했다.▲ 행정장관 주요 후보를 비교한 언론 보도○멀어져가는 일국양제 홍콩 시민은 행정장관을 직접 뽑을 수 없다. 시민들을 대리한 선거위원 1200명의 과반인 601표 이상을 얻어야 행정장관이 된다. 선거위원은 중국이 구성한다. 게다가 중국 정부는 “행정장관 후보자는 애국애항(愛國愛·중국과 홍콩을 사랑한다) 인사여야 한다”고 못박아놓고 있다. 누가 행정장관이 돼도 공산당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중국은 겉으로는 일국양제 외에도 ‘홍콩은 홍콩인이 다스린다’는 ‘항인치항(港人治港)’, ‘높은 수준의 자치를 보장한다’는 ‘고도자치(高度自治)’ 3원칙을 내세웠다. 그러나 지난 20년 간 이 원칙은 거의 지켜지지 않았다. 중국은 2011년 1989년 천안문 사태를 다루지 않는 ‘국민교육’ 과목을 홍콩 교과서 필수 과목으로 지정하려 했다. 2014년에는 반환 당시 약속했던 “2017년부터 홍콩 시민이 직접 행정장관을 뽑게 해주겠다”던 약속도 철회했다. 우산혁명이 일어난 이유다. 이념 갈등 외에 경제 및 세대 갈등도 심각하다. 기성세대가 젊었을 때 홍콩은 영국이란 든든한 우산 하에서 ‘아시아 4마리 용’으로 불리며 고도성장을 구가했다. 장년층은 대부분 이 혜택을 누렸다. 반면 지금 젊은 세대는 홍콩으로 몰려드는 중국 본토 사람들 때문에 집값만 오르고 일자리가 없다는 불만이 많다. 홍콩 지니계수는 0.537로 ‘폭동이 일어날 수 있는 수준’인 0.5를 넘어섰다. 게다가 홍콩 부동산 가격은 7년째 세계 최고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홍콩 집값의 중위가격은 가계소득의 18배에 달해 세계 406개 주요 도시 중 가장 비싸다.○2047년 홍콩의 미래는? 홍콩은 지난 100년 간 청나라 영토→영국 식민지→중국령 특별자치구라는 정치사회적 대격변을 겪었다. 2047년에는 일국양제가 끝나고 중국과의 완전 통합도 예정돼 있다. 이로 인한 정체성 문제, 중국과의 갈등, 양극화 심화 등으로 홍콩인들은 큰 혼란을 겪고 있다. 홍콩 시민은 크게 세 부류로 나뉜다. 중국에 큰 반감을 지닌 반중파, ‘중국이 홍콩을 어떻게 대해도 상관없다’는 방관파, ‘홍콩과 중국은 하나’라는 친중파다. 세 부류는 엇비슷한 세력을 형성해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으며 현안에 대한 입장도 첨예하게 다르다. 람은 최근 “홍콩 시민의 지지를 얻지 못하면 설사 행정수반에 당선돼도 언제든 사임할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과연 그가 이 복잡다단한 홍콩의 현실을 잘 아우를 수 있을까.하정민 기자 dew@donga.com}

안녕하세요. 저는 에이미 크라우즈 로즌솔이에요.1965년 미국 시카고에서 태어났고요.24세 때 사랑하는 남편 제이슨 브라이언 로즌솔과 결혼해두 아들과 딸 하나를 뒀답니다.저는 아동문학 작가에요.‘유니 더 유니콘’(Uni the Unicorn), ‘덕! 래빗!’(Duck! Rabbit!) 등 30권의 동화책을 썼고지식강연 테드(TED)에도 3차례 출연했죠.저는 2015년 11월 갑자기 난소암 판정을 받았어요.26년간 세상에서 제일 특별한 남자와 결혼 생활을 했고앞으로 26년을 더 함께할 줄 알았지만 불가능해졌죠.그래서 공개 구혼서를 써요. 진짜 좋은 사람이 이 글을 읽고 제 남편과 사랑에 빠지기를 바라거든요.“무언가 경이로운 일이 일어나길 바란다면 그 순간을 기다리지말고인생에 주어진 틈들을 직접 찾아보세요.”“당신을 살아있게 하는 건 뭔가요? 글, 아이디어, 창조 행위가 저를 살아있게 했습니다.”불치병에 걸린 자신을 대신해 남편을 보살펴 줄 ‘두 번째 사랑’을 공개적으로 찾아 큰 화제를 모았던 에이미 크라우스 로즌솔이13일 세상을 떠났습니다.과연 사랑이란 무엇일까요남편에게 새 사랑을 찾아주겠다는 에이미의 꿈은 이뤄질까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하정민 기자 dew@donga.com}

김정남 암살 사건 이후 비자면제 협정 파기, 대사 추방, 말레이시아 내 북한인 출국금지 등 강경책을 잇따라 내놓고 있는 말레이시아 정부. 그 뒤에는 “북한의 끔찍한 인질외교가 모든 국제법과 외교 규범을 완전히 무시하고 있다”고 일갈하는 나집 라작 말레이시아 총리(64)가 있다. “김정남 암살 수사와 관련해 (북한의) 어떤 압박이나 협박도 받지 않겠다”고 강조하는 라작 총리. 하지만 말레이 야당과 반정부 인사들은 “라작 총리가 자신의 끊이지 않는 부패 스캔들을 무마하는데 김정남 사건을 십분 이용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공정하고 철저한 수사를 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 자신에게 드리워진 비리 의혹을 씻으려 할 뿐 아니라 ‘북한’이라는 외부의 적에게 화살을 돌려 국민 지지를 호소하는 전략을 쓰고 있다는 의미다. 2009년 집권한 그는 국영회사 말레이시아개발유한공사(1MDB) 자금 횡령설, 사우디아라비아 왕가와의 금권유착설 등 각종 비리 의혹의 한가운데에 있다. 자신을 최고 권좌로 밀어준 마하티르 모하맛 전 총리로부터도 “총리감이 아니다. 그를 몰아내야 한다”는 말을 듣고 수시로 대규모 퇴진 시위에 직면할 정도로 지지 기반이 취약하다. 그는 어떤 인물이고 왜 이런 상황에 놓였을까.▲ 북한의 행동을 규탄하는 라작 총리 ○정치적 금수저 라작 총리는 1953년 말레이시아 중부 파항 주 쿠알라리피스에서 말레이시아 2대 총리 압둘 라작(1922~1976)의 6남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당시 말레이시아는 영국 식민지였고 아버지 압둘은 파항 주의 패기 넘치는 젊은 정치인이었다. 1957년 독립 후 부친이 초대 부총리, 총리 등으로 승승장구하면서 라작 총리도 전형적인 엘리트의 삶을 산다.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영국 유학을 떠나 노팅엄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했고 귀국 후 은행과 석유회사 등에서 일했다. 1976년 총리로 재직 중이던 부친이 영국에서 갑자기 사망했다. 장남이었던 그는 불과 23세의 나이로 아버지의 지역구였던 쿠알라리피스 국회의원에 뽑혀 정계에 입문한다. 25세 때 통신·에너지·우정부 차관으로 발탁돼 말레이 역사상 최연소 각료가 됐다. 라작은 부친의 후광과 가문의 재력을 바탕으로 고속출세의 길을 걷는다. 내각(국방장관, 교육장관)과 현 말레이 여당인 통일말레이국민기구(UMNO)의 요직을 두루 독차지했다. 2004년엔 말레이시아의 국부(國父)로 평가받는 4대 총리 마하티르 모하맛의 지원을 얻어 부총리에 발탁된다. 마하티르는 1년 전 정계를 은퇴했지만 여전히 말레이 정국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5년 후 라작은 아버지에 이어 2대째 총리 직에 오른다.○부미푸트라 말레이시아는 13개 주와 3개의 연방으로 구성된 연방제 국가다. 다양한 인종과 종교가 혼재돼 있다. 인종 구성은 말레이계(50%), 중국계(22.6%), 오랑 아슬리 등 원주민(11.8%), 인도계(6.7%) 등이며 종교 또한 이슬람교, 힌두교, 불교, 기독교 등으로 제각각이다. 이런 말레이시아에는 말레이 판 ‘아파르트헤이트’라 불리는 인종차별 정책이 있다. 바로 1957년 독립 후 60년 간 지속된 말레이계 우대 정책 ‘부미푸트라(Bumiputra)’다. 말레이어로 ‘땅의 아들’을 뜻하는 부미푸트라는 말레이 사회 갈등의 근원이다. 독립 당시만 해도 말레이 경제는 전체 인구의 절반도 안 되는 중국계가 차지하고 있었다. 이에 말레이계의 불만이 많았고 1969년에는 인종 갈등으로 인한 인종폭동이 일어나 약 800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적도 있다. 말레이 정부가 독립 당시 헌법에 공무원 채용, 장학금 부여, 정부허가 사업 진출 등에서 말레이계와 원주민에게 우선권을 주는 부미푸트라를 명기한 이유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부미푸트라는 정권연장 수단으로 변질됐다. 국민의 절반을 차지하는 말레이계만 만족시켜주면 어쨌든 선거에서는 승리할 수 있으므로 권력자들이 중국계와 인도계의 불만을 무시하고 노골적 친(親) 말레이 정책을 쓰기 시작했다. 라작 총리의 부친인 압둘 라작 전 총리, 마하티르 모하맛 전 총리 등은 자신의 지지기반 확대를 위해 부미푸트라를 노골적으로 조장했다. “부미푸트라가 말레이 국가 경쟁력을 해치고 사회 단합의 장애물로 작용한다”는 반대파들의 논리는 권력자 앞에서 무용지물이었다. 라작 총리도 마찬가지다. 집권 전 부미푸트라를 완화할 뜻을 밝혔지만 집권 후 180도 달라졌다. 특히 그는 2013년 총선 당시 주택보유와 사업자금 융자 등에서 말레이계 우대를 더 강화한 신(新) 부미푸트라 정책을 내놨다. 이를 통해 선거에서는 계속 승리했지만 내부 갈등은 갈수록 곪아가고 있었다. ○부패 스캔들 2015년 7월 2일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사우디아라비아 왕가가 테러 방지 지원을 빌미로 라작 총리의 개인계좌로 27억 링깃(약 8000억 원)의 돈을 입금했다고 보도했다. 라작 총리가 2009년 설립한 국영회사 말레이시아개발유한공사(1MDB)의 자금 횡령 및 돈세탁 의혹도 발견됐다. 그가 국방장관 재직 시절 영국, 프랑스 등 선진국 방산업체와 계약을 맺으면서 뒷돈을 받은 의혹도 드러났다. 그의 부인 로스마 여사가 미국 뉴욕, 영국 런던 등을 오가며 수십억 원 어치의 보석류와 명품을 사들인 것, 라작 총리 부부가 쿠알라룸푸르 소재 노화방지 클리닉에서 1회 3억 원 상당의 노화방지 시술을 받은 것, 총리 일가족이 정부 전용기를 이용해 해외여행을 다녀온 사실까지 밝혀졌다. 로스마 여사는 과거 다이아몬드와 에르메스 버킨백을 수집하는 취미 때문에 대중의 비난을 받은 전력도 있다. 그럼에도 라작 총리는 “사우디 왕가의 ‘기부’였다”고 태연자약했다. 자신의 퇴진을 노리는 정적들이 스캔들을 조장했다는 음모론까지 폈다. 국민 분노가 들끓자 검찰이 마지못해 수사에 나섰다. 하지만 검찰총장이 총리의 측근인 상황에서 제대로 된 수사가 이뤄질리 만무했다. 결국 말레이 검찰은 2016년 1월 이 사건을 무혐의로 종결했다.▲ 라작 총리의 비리 의혹을 전하는 외신 보도 사건이 무혐의로 종결되자 22년간 말레이시아를 통치했던 마하티르 모하맛 전 총리가 나섰다. 마하티르 역시 독재와 인권 탄압으로 비판받긴 했지만 부패 문제에서는 상대적으로 자유로웠다. 그는 2016년 초부터 대대적 라작 퇴진 운동을 벌이기 시작했다. 당시 91세의 나이로 말레이시아원주민연합당이라는 신생 정당까지 창당했다. 라작 총리는 이를 역공의 기회로 삼았다. 그는 “노욕에 휩싸인 마하티르가 자신의 정계 복귀를 위해 나에 대한 음모론을 조장하고 있다”며 지지자들을 결집시켰다. 자신의 퇴진을 주장해 온 집권당 통일말레이국민기구(UMNO)의 주요 당직자도 모두 쫓아냈다. 자신을 반대하는 주요 시민 활동가와 야권 인사들도 무더기로 체포하며 독재 기반을 구축했다. ○김정남 사건 마무리 통해 장기집권 발판 구축? 김정남 사건을 수사하는 말레이시아 경찰은 신속하고 깔끔한 일처리로 호평을 받고 있다. 사건이 터지자마자 주요 용의자들을 모두 잡아들였다. VX라는 신종 화학무기가 사용된 피살 배후까지 명쾌하게 밝혀냈다. 말레이시아를 동남아시아의 흔한 저개발국으로 생각했던 일부 한국인들에게도 깊은 인상을 남겼다. 국제 사회에 사건의 진행 상황을 알리고 안하무인인 북한 정권을 상대하는 정부의 태도도 수준급이다. 라작 총리는 강철 말레이 주재 북한 대사가 “말레이 정부의 조사 결과를 믿을 수 없다”고 하자 “외교적으로 무례하다. 사건을 철저히 객관적으로 조사하고 있다”고 받아친 뒤 얼마 후 그를 추방했다. 부총리, 문화장관, 주택장관, 국방장관 등 내각의 주요 인사들도 줄줄이 대북 강성 발언을 이어가고 있다. 국제 사회의 호평도 잇따른다. 대니얼 러셀 미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차관보는 7일 워싱턴에서 “김정남 사건을 다루는 말레이시아 정부의 빠르고 전문가적이며 세련된 매너에 존경을 표한다”고 극찬했다. 이것이 장기적으로는 라작 총리의 지지율 상승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도 많다. 집권 후 내내 ‘부패한 권력자’의 인상을 남겼던 라작 총리. 그는 과연 이번 사건을 계기로 이미지 변신에 성공할 수 있을까. 전 세계가 그를 주목하고 있다. 하정민 기자 dew@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