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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전국체전에서 우승하며 20년 마라톤 인생을 마무리한 ‘봉달이’ 이봉주(39·사진). 41번의 마라톤 풀코스 완주 기록을 세운 그가 7일 공식 은퇴식을 치른다. 그는 인생의 절반을 달리고 또 달렸다. 끊임없는 연습과 성실함으로 국민 마라토너로 인정받았다. 선수 생활에 마침표를 찍는 그가 꿈꾸는 ‘제2의 인생’ 이야기를 들어봤다.서울 중3학생 20%는 원하는 고교 못간다 “서울지역 중3 학생 81.5%가 원하는 고교에 간다.” 신입생을 따로 뽑는 자율형사립고까지 포함하면 그렇다. “강남 쏠림 현상도 문제없다.” 학교별 수능 성적을 모르고 지하철 9호선이 없을 땐 그랬다. 그런데도 학교 정보조차 알려주지 않는 서울시교육청은 여전히 “지원 전략이 중요하다”고 큰소리친다.보험 해약자 1000명의 사연 살펴보니 평생을 보장해 준다는 보험이지만 혹독한 경제위기의 한파 앞에선 ‘목구멍이 포도청’이다. 올 상반기에는 줄어든 월급과 반 토막 난 펀드 탓에 다달이 빠져나가는 보험료라도 아낄 요량으로 보험을 해약한 이들이 많았다. 보험 해약자 1000명의 사연을 살펴봤다.18년전 ‘강기훈 유서대필’의 진실은 유서 대필을 둘러싸고 18년 전 벌어졌던 진실게임이 다시 법정에서 펼쳐지고 있다. 3년간 옥살이를 했던 강기훈 씨 측은 ‘무죄를 입증할 새로운 증거물’을 내밀며 누명을 벗겠다고 벼르고 있다. 반면 검찰은 “새 증거물도 조작 가능성이 있다”고 맞서고 있다. 과연 진실은 무엇일까. 군사대국 꿈꾸는 中“우주에 무기 배치”중국이 우주에 무기체계 구축을 선언했다. 그동안 중국은 급속한 경제성장을 바탕으로 국제무대에서 목소리를 높여왔지만 ‘중국위협론’을 우려해 군사적으로는 소극적인 태도를 보여 왔다. ‘우주 군사강국’을 지향하겠다고 천명한 중국, 이제는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겠다는 뜻? 문학상 수상작에 독자는 시큰둥 왜?문학상 상금도 인플레 시대다. 세계문학상, 뉴멀티문학상 등 1억 원대의 문학상만 7개. 하지만 이런 고액의 문학상을 수상한 작품에 대한 독자들의 반응은 신통치 않다. 수상 자체만으로도 스타가 되거나 베스트셀러가 보장됐던 고액 문학상의 영향력이 저문 것일까. 길이 없어 길 못건너는 지리산 반달곰지리산 반달곰들이 지리산에 고립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립환경과학원이 최근 3년간 반달곰들의 이동 경로를 분석한 결과다. 먹이를 찾아 덕유산 등 인근 산으로 가려는 움직임이 나타나지만 어쩔 수 없이 발길을 돌린다는데…. 반달곰들이 지리산에만 맴도는 이유를 알아봤다. 현대차 vs 도요타 마케팅 전략 대결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자동차 브랜드’ 도요타가 한국에 들어오자 현대자동차가 “한번 붙어보자”며 정면 승부를 걸었다. 반면 도요타 측은 가급적 현대차를 자극하지 않는 조용한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도요타의 간판 모델 ‘캠리’를 타보고 두 회사의 마케팅 전략을 비교해 봤다.}

“일본과 인도는 중국의 국방력 강화에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미국은 중국의 군사 경제력 팽창에 대해 동아시아에서 균형자 역할을 해야 한다.” 리콴유(李光耀·86·사진) 전 싱가포르 총리는 최근 미국 워싱턴을 방문해 가진 강연에서 이같이 말했다고 중국 관영 환추(環球)시보 등이 2일 보도했다. 리 전 총리는 화교 출신으로 대표적인 친중파 정치인이어서 중국을 경계하는 발언은 이례적이다. 당연히 중국은 반발했다. 환추시보 등에 따르면 리 전 총리는 지난달 27일 워싱턴에서 열린 ‘미국과 아세안 상업이사회 25주년’ 만찬 연설에서 “중국이 금융과 경제적인 힘을 바탕으로 향후 20∼30년간 지속적으로 군사 현대화를 추구할 것이며 이런 의지는 올해 건국 60주년 행사에서도 나타났다”고 말했다. 리 전 총리는 “앞으로 항공모함을 소유할 중국의 ‘대양(大洋) 해군’은 외국 세력이 대만 해역에 개입하는 것을 억제하는 데 그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일본과 인도 등 주변 국가는 당연히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고 충고했다. 그는 또 일본과 인도, 아시아 어느 국가도 중국에 맞서 균형을 맞춰 줄 나라가 없기 때문에 미국이 앞으로도 동아시아 지역 균형을 위해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지 못하면 미국은 세계 지도국 지위도 잃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리 전 총리는 지난달 29일 미국 백악관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만난 자리에서도 일본 민주당의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총리가 제창하는 동아시아 공동체에 미국이 적극 참여하도록 요청했다. 그는 “동아시아 공동체에서 미국을 제외하는 것은 매우 중대한 착오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환추시보는 “리 전 총리의 발언이 알려진 후 화교 국가인 싱가포르에 호감을 가지고 있던 중국인들 사이에서 불만이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중국의 군사전문가 다이쉬(戴旭) 씨는 “싱가포르는 종종 자신의 처지에 맞지 않는 행동을 하려 한다”고 비난했다. 하지만 중국 런민(人民)대 국제관계학원 진찬룽(金燦榮) 부원장은 “많은 주변국들이 중국이 제1교역국이긴 하지만 안보상으로는 불안을 느껴 미국에 의존하려는 것도 현실”이라고 진단했다.베이징=구자룡 특파원 bonhong@donga.com}

과학의 공… 원자-수소폭탄, 인공위성 개발 주도애국의 혼… “美유학은 조국서 일하기 위한 준비”겸손의 덕… 거국적 칭송에 “수천 과학자들 덕분”‘양탄일성(兩彈一星·원자탄과 수소폭탄, 그리고 인공위성)에 큰 공을 세운 중국 우주항공의 아버지 별세하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지난달 31일 98세를 일기로 베이징(北京) 자택에서 숨진 원로 과학자 첸쉐썬(錢學森) 추모 특집기사를 이렇게 전했다. 저장(浙江) 성 항저우(杭州) 시에서 1911년 12월 출생한 첸 박사는 상하이자오퉁(上海交通)대를 1934년 졸업한 후 칭화(淸華)대 유학생에 선발돼 중국대륙이 혁명과 항일전쟁으로 들끓던 당시 미국으로 갔다. 1939년 캘리포니아공대에서 항공우주 및 수학 분야의 박사학위를 받고, 제2차 세계대전 때는 미국 국방과학위원회에서 미사일 개발에 참여했다. 그는 우수 두뇌 유출을 막으려는 미 당국이 귀국을 허락하지 않는 바람에 6·25전쟁에서 중국에 붙잡힌 미군 조종사와 1955년 교환되면서 조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귀국 후 중 국방부 전략미사일 개발프로그램에 참여해 핵무기 및 우주개발을 주도했다. 중국 내 첫 원자탄(1964년 10월) 및 수소폭탄(1967년 6월) 실험과 첫 인공위성(1970년 4월) 발사 성공 뒤에는 매번 그가 있었다. 또 2003년 10월 첫 유인우주선 선저우(神舟) 5호 발사에도 기여했다. 올해 1월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은 그를 병문안했으며 원자바오(溫家寶) 총리는 8월 6일을 포함해 총리 재직 시 네 차례나 첸 박사의 자택을 찾아 존경과 감사를 표시했다. 첸 박사가 중국인에게 존경을 받는 이유는 우주과학에 대한 기여 못지않게 중국인에게 애국심과 자부심 등을 심어주었기 때문. “내가 미국에서 배우고 일한 기간은 모두 조국으로 돌아가 인민을 위해 일하기 위한 준비기간이었다. 왜냐면 나는 중국인이니까” “외국인이 할 수 있는 것은 중국인도 다 할 수 있다” 같은 말 들은 중국인의 마음을 움직였다. 자신에 대한 칭송이 이어질 때는 “나는 창해일속(滄海一粟)에 불과하다” “원자탄이나 인공위성은 수천 명에 이르는 과학자의 합작 결과이지 어느 한 사람이 할 수 없다”며 자신을 낮췄다. 지난해 관영 중국중앙(CC)TV가 자신을 ‘중국을 감동시킨 10대 인물’에 선정하자 “위대한 것은 내가 아니고 중국과 중국인민”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내 성은 돈(錢)씨지만 돈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말도 널리 회자된다. 지난해 노벨화학상을 받은 중국계 미국인 첸융젠(錢永健·미국명 로저 첸·57) 씨는 첸 박사의 5촌 조카. 그의 집안은 과학자 집안으로도 유명하다. 첸 박사는 1991년 10월 과학자가 받는 최고 영예인 ‘국가걸출공헌과학자’상을 국무원과 중앙군사위원회로부터 받았다. 영결식은 당 중앙위원회 차원에서 7일 치러진다. 베이징=구자룡 특파원 bonhong@donga.com}

중국이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1초에 1000조 이상의 연산이 가능한 1000조(페타)급 슈퍼컴퓨터(사진)를 개발했다고 관영 신화통신이 30일 보도했다. 중국 국방과학기술대와 톈진빈하이(天津濱海)신구가 공동 개발해 이날 후난(湖南) 성 창사(長沙) 시에서 처음 공개한 슈퍼컴 ‘톈허(天河·은하수) 1호’는 1초에 최대 1206조 회의 계산이 가능하다. ‘초당 1000조 연산’을 뜻하는 페타플롭(Petaflop) 컴퓨터는 미국이 2007년 개발한 후 미국에만 3대가 있을 뿐이다. 톈허 1호는 린팩 수행능력(4칙 연산의 일종으로 슈퍼컴 성능평가 기준)이 1초에 563조1000억 회이며 최신형 일반 노트북 컴퓨터가 하루 24시간 쉬지 않고 160년간 할 수 있는 작업을 하루 만에 할 수 있다. 톈허 1호는 1000m²의 컴퓨터실에 구축된 103개의 냉장고형 컴퓨터가 서로 연결되어 있는 시스템으로 무게만 155t에 이른다. 기억 용량은 중국 국립도서관의 도서 2700만 권에 담긴 정보의 4배에 이른다고 신화통신은 전했다. 중국은 톈허 1호를 톈진 컴퓨터 센터에 설치해 자원 탐사, 유전자 연구 등 생명의학, 우주선 디자인 등 항공우주 연구, 금융, 신소재 개발 등에 사용할 계획이며 국내외에서 계산 신청 주문도 받아 처리할 계획이다.베이징=구자룡 특파원 bonhong@donga.com}

27일 중국 헤이룽장(黑龍江) 성 하얼빈(哈爾濱)에서는 한국 국사편찬위원회와 헤이룽장 성 사회과학원 공동으로 안중근 의사 의거 100주년 기념 토론회가 ‘안중근의 동양평화론이 동북아 지역 우호 진작에 미친 영향’이라는 주제로 열렸다. 국사편찬위가 주최하는 안 의사 기념 현지 토론회는 올해로 9회째다. 양국 전문가들은 토론회에서 안 의사가 동양평화론에서 제기한 한중일 3국간 협력의 필요성은 10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절실히 필요로 하는 사안이라고 입을 모았다. 헤이룽장 성 사회과학원 역사연구소 처지훙(車霽虹) 연구원은 “안 의사의 동양평화론은 그 사상적 함의도 크지만 한중일 3국 간 협력의 필요성에 대해 집중 탐구했다”며 “안 의사는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가 침략 정책을 버리고 3국이 단결해 서양 침략에 대항해야 하며 3국 대표가 평화회의기구를 세우고, 3국이 연합군단을 조직해 세 나라의 안전을 도모해야 한다고 제안했다”고 발표했다. 같은 기관 소속의 가오샤오얜(高曉燕) 연구원도 “3국 간 협력의 필요성이 어느 때보다 높아지는 요즘 안 의사의 견해는 먼 장래를 바라보는 긴 안목의 탁견”이라며 “지금은 일본이 과거에 대해 진정으로 반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김대호 국사편찬위 편사연구사는 “안 의사의 동양평화론은 강자가 약자를 누르는 패강(覇强)이 아니라 어질고 약한 존재가 중심이 되는 인약(仁弱)을 중심으로 하는 평화사상”이라며 “도덕을 잊고 무력만을 앞세우는 서양의 침입을 막기 위해 동양이 단결해야 하는데 일본이 한국을 억압해 스스로 파멸하고 동양평화를 흔들었다”고 말했다. 한성민 동국대 대외교류연구원 연구원은 “안 의사 재판은 러시아가 재판 관할권이 없는 일본에 재판권을 넘겨주어 진행한 불법 재판이었음이 러시아 측 사료를 통해서도 입증됐다”고 발표했다. 박민영 독립기념관 독립운동사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안 의사가 의거 후 심문이나 공판에서 시종일관 주장한 것처럼 이토를 처단한 것은 독립전쟁 과정에서 올린 전과”라고 규정했다. 박 위원은 “안 의사가 의병에 투신해 활동한 1907년부터 1909년 의거 때까지는 의병전쟁이 가장 치열해 국민총력전에 의한 구국의 성전이 펼쳐지던 때”라고 소개했다. 정옥자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은 축사에서 “이제 침략과 저항이라는 과거의 역사를 넘어 동아시아 평화를 위한 연대를 모색해 나가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하얼빈=구자룡 특파원 bonhong@donga.com}

안중근 의사가 100년 전인 1909년 10월 26일 오전 9시 30분 ‘한반도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사살한 중국 헤이룽장(黑龍江) 성 하얼빈(哈爾濱) 시. 안 의사를 20여 년간 연구해 온 동포 향토사학자인 서명훈 전 하얼빈 시 민족종교 사무국 부국장(79)과 함께 장거(壯擧) 당시 안 의사가 하얼빈에 남긴 10박 11일간의 발자취를 더듬어 보았다. 1909년 10월 22일 오후 9시 15분 안 의사(당시 31세)와 우덕순(33), 유동하(18) 등 세 사람이 블라디보스토크를 출발해 하얼빈역에 도착했다. 이들이 머문 곳은 당시 하얼빈의 조선인 단체인 ‘한국민회’의 회장 김성백 씨의 집. 김 씨 집이 있던 썬린제(森林街)는 당시엔 러시아식 단층 목조 주택가였으나 지금은 고층 아파트 공사가 한창이었다. 하얼빈 도착 이튿날인 23일 안 의사 일행은 현지 중문판 ‘원동보(遠東報)’에서 ‘전 조선통감 이토가 25일 오후 관성자(현재 창춘·長春)를 출발해 하얼빈으로 향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안 의사와 우덕순은 이날 김 회장 집에서 멀지 않은 하얼빈(현재 자오린·兆麟) 공원에서 구체적인 거사 계획을 세운다. 다시 찾은 자오린 공원에는 2006년 7월 하얼빈 시가 세운 작은 비석이 서 있었다. 비석 앞에는 누군가가 꽃다발을 가져다 놓았다. 비석 앞뒤에 청초당(靑草塘)과 연지(硯池)라는 친필 글씨가 새겨져 있고 비석 앞면 왼쪽 아래엔 안중근(安重根)이라는 이름과 단지(斷指) 손도장이 빨간색으로 선명했지만 더 이상의 설명은 없었다. 공원에서 만난 시민 자오팅시(趙庭熙·40) 씨는 “종종 오지만 안중근이 누구인지 전혀 몰랐다”고 말했다. 안 의사는 이날 밤 ‘장부가’로 널리 알려진 시를 쓰며 거사 결의를 다졌다. 안 의사 일행은 24일 오후 헤이룽장과 지린(吉林) 성의 접경지 기차역인 차이자거우(蔡家溝)로 향했다. 하지만 이토가 탄 기차가 역을 지날 때인 26일 오전 6시경에는 아직 어두워 이토가 누구인지 분간하기가 쉽지 않고 또 이토가 기차를 갈아탈지도 몰라서 안 의사는 더 확실한 거사를 위해 25일 혼자 하얼빈으로 돌아왔다. 그들이 머문 역의 반지하 상점은 지금 창고로 바뀌었지만 역사(驛舍)는 지금도 그대로다. 26일 아침 안 의사는 일본인들 틈에 끼어 대담하게 하얼빈역으로 들어갔다. 새로 지은 현재의 하얼빈역 거사 현장에는 안 의사가 저격 당시 서 있던 곳과 이토가 쓰러진 곳이 바닥에 표시돼 있다. 안 의사는 거사 후 붙잡히면서 저항하지 않고 “코레아 우라(한국 만세)”를 외쳤다. 역사 내 헌병 파출소에 억류돼 있던 안 의사는 그날 밤 일본 총영사관으로 옮겨졌다. 총영사관이 있던 화위안제(花園街) 97호. 후에 ‘하얼빈 시 화위안’ 소학교가 된 당시 건물은 4년 전 모두 헐렸다. 지금은 새 건물 벽에 ‘일본 영사관 원지(原址)’라는 안내판만 붙어 있다. 옛 건물에는 지하실에 감옥과 고문실 등이 남아 있다. 서 씨는 “이 건물을 사서 보존하지 못한 게 못내 아쉽다”고 안타까워했다. 안 의사는 이곳에서 6박 7일간 조사를 받고 11일 오전 11시 25분 우덕순 유동하 등 8명과 함께 뤼순(旅順) 감옥으로 이송됐다. 안 의사는 이듬해 3월 26일 이곳에서 형이 집행돼 생을 마쳤다.하얼빈=구자룡 특파원 bonhong@donga.com}
안중근(安重根) 의사 의거 100주년인 26일 국내외에서 다양한 기념행사가 열렸다. 의거 현장인 중국 헤이룽장(黑龍江) 성 하얼빈(哈爾濱) 시에서는 이날 조선민족예술관 6층 대강당에서 ‘백년의 기억(百年追憶)’을 주제로 기념행사가 열렸다. 행사에는 한국에서는 국가보훈처와 독립기념관 광복회 국사편찬위원회, 중국에서는 중국사회과학원, 조선민족예술관 및 하얼빈 시 관계자 등 200여 명이 참가했다. 하얼빈 시에서 열린 기념식에 한국의 정부 및 독립 관련 단체 관계자가 참여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공식행사는 안 의사가 100년 전 한반도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향해 하얼빈 역에서 총을 발사한 시간인 오전 9시 30분 불 꺼진 행사장에서 상영된 기록영화에서 총성이 울리면서 시작됐다. 김주현 독립기념관장은 국가보훈처장을 대신한 기념사에서 “조국 광복에서 더 나아가 인류 공영의 대의를 품었던 안 의사의 드높은 기상은 국경을 넘어 중국과 일본 등 세계적으로 추앙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퍄오젠이(朴鍵一) 중국사회과학원 동북아연구중심 주임은 “한중 양국이 기금을 조성해 안 의사의 동북아평화론을 구체화할 사업을 벌이자”고 제안했다. 기념식 뒤엔 예술관 2층에 국가보훈처 지원으로 제작된 높이 190cm, 무게 158kg의 안중근 동상 제막식도 열렸다. 한편 서울 남산 안중근의사기념관 앞 광장에서는 정운찬 국무총리 등 정부 주요 인사와 광복회원, 안 의사의 손녀 연호 씨(72) 등 유족 10여 명과 시민 등 12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안중근의사숭모회 주최로 기념식이 열렸다. 행사는 ‘백년의 애국, 천년의 번영’을 주제로 기념공연, 기념사, 독립군가 제창, 만세삼창 등의 순서로 진행됐다. 정 총리는 기념사에서 “안 의사는 우리의 자랑스러운 민족혼의 표상이며 세계평화를 일깨우는 등불이 되고 있다”며 “(안 의사의) 동양평화와 인류 공영의 정신은 지금도 세계인들에게 훌륭한 귀감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하얼빈=구자룡 특파원 bonhong@donga.com우정열 기자 passion@donga.com}

중국이 국제통화기금(IMF)의 부총재를 차지할지 관심이다. 중국 국무원이 주민(朱民) 중국은행 부행장을 22일 중앙은행인 런민(人民)은행 부행장에 임명한 것을 두고 IMF로 가기 위한 수순을 밟고 있다는 분석이 안팎에서 나온다. 지난해 2월엔 린이푸(林毅夫) 베이징(北京)대 교수가 세계은행(IBRD) 부총재에 임명됐다. 따라서 주 부행장이 IMF 부총재에 임명되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주도의 팍스아메리카나를 대표하는 두 국제금융기구의 부총재를 중국이 맡게 된다. 국제부흥개발은행으로도 불리는 IBRD가 주로 빈곤국 지원을 담당하는 데 비해 IMF는 국제금융체제를 감독 관리하는 역할이어서 의미가 다르다. IMF 3명의 부총재 중 중국이 한 명을 차지하는 것을 두고 의미를 크게 확대할 일은 아니다. 하지만 중국이 2001년 12월 천신만고 끝에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해 세계 경제질서에 편입된 것에 비하면 10년도 안돼 세계 경제질서 관리의 주도국 반열에 다가서는 것을 의미한다. 중국이 건국 60년 동안 연평균 8.1%의 경제성장을 하고 개혁개방 30년의 성과로 비약적으로 도약한 데 따른 위상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중국은 올 들어 주요 20개국(G20) 회의 등을 통해 IMF 내의 중국 등 개발도상국의 위상 강화와 지분 확대, 투표권 조정을 요구하는 등 ‘IMF 공략’을 벌였다. 그만한 이유도 있다. IBRD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의 국내총생산(GDP)은 3조8600억 달러로 미국 14조2043억 달러, 일본 4조9093억 달러에 이어 3위다. 하지만 IMF 내 투표권은 미국이 17%로 1위, 일본이 6.0%로 2위이며 중국은 3.7%로 독일 프랑스 영국에 이어 6위에 머무르고 있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주장한다. 일본의 IMF 대표인 고테가와 다이스케(小手川大助) 이사는 최근 베이징에서 열린 ‘글로벌 국제논단’에서 “중국은 IMF의 투표권에 대한 조정이 이뤄지는 2011년 일본이 지난 40년간 차지해 온 2위 자리를 추월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국제기구에서 각국의 위상이 국력의 변화에 따라 변하는 것은 당연하다. 주 부행장은 미 존스홉킨스대 경제학 박사 출신으로 1991년에서 1996년까지 IBRD에서 근무하는 등 국제 경험도 많다고 한다. 하지만 ‘중국식 사회주의 경제체제’를 강령으로 하는 중국이 185개국이 회원국인 세계경제의 ‘자유무역 경제질서 관리자’로서 적합한지는 의문이다. 최근 잇따라 발표된 중국의 다른 면을 보여주는 지수나 순위들을 살펴보자. 유엔개발계획(UNDP)이 국가별 국민소득과 교육수준, 평균수명과 유아사망률 등을 종합해 발표하는 ‘삶의 질’ 지수로도 불리는 인간개발지수(HDI)에서 중국은 올해 182개국 중 92위를 차지했다. 지난해에 비해 11단계 내려갔다. 국경없는 기자회가 20일 발표한 올해 세계언론자유지수에서 중국은 조사 대상 175개국 중 168위를 차지했다. 다국적 브랜드 조사기관인 안홀트-GMI가 매년 문화, 통치권력, 수출, 관광, 교육 등의 항목별로 조사하는 국가브랜드지수(NBI)에서 올해 중국은 조사 대상 50개국 중 22위에 머물렀다. 중국이 경제 이외의 분야에서 보편성 있는 가치들을 진정으로 실현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지적도 그래서 나온다. 그렇게 될 때 중국은 명실상부한 세계의 지도국으로 부상하는 계기를 맞을 것이다.구자룡 베이징 특파원 bonhong@donga.com}

中 원명원, 전세계 실태조사향후 반환운동 불씨 가능성 ‘사진과 동영상이라도 찍어 오자.’ 중국이 19세기 청나라 황제의 여름 별궁인 원명원(圓明園)에서 약탈당한 문화재의 실태 파악에 나섰다. 1860년 8월 제2차 아편전쟁에서 청나라가 패한 뒤 영국과 프랑스 등은 원명원을 불태우고 많은 문화재를 가져갔다. 20일 신징(新京)보에 따르면 원명원 관리처 천밍제(陳名杰) 주임은 “대략 세계 47개국 2000여 박물관에 150만 점의 원명원 문화재가 소장돼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잃어버린 유물에 관한 완벽한 데이터베이스를 만들어 왕실 정원이 약탈되기 전에 어떤 모습이었는지를 밝힐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 “잃어버린 유물의 기록을 만들려고 하는 것이지, 문화재 반환을 목적으로 한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 영국의 더 타임스와 홍콩의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중국이 잃어버린 유물의 사냥에 나섰다”고 보도했다. 원명원은 다음 달 미국을 시작으로 영국 프랑스 일본 등 50여 국가의 박물관과 도서관 등에 전문가를 파견해 잃어버린 유물의 존재를 확인하고 사진 및 동영상 자료를 만들 계획이다. 조사 대상엔 영국 런던의 영국박물관, 프랑스의 루브르 박물관과 퐁텐블로 궁전, 미국의 뉴욕메트로폴리탄 미술박물관 등 세계적인 박물관이 포함됐다. 미국 조사에서는 하버드대 도서관, 워싱턴 국회도서관, 워싱턴대 의과대학, 뉴욕 시 예술박물관 등 9곳이 주요 대상으로 선정됐다. 더 타임스는 “런던 영국박물관의 중국 홀에 있는 거의 대부분의 도자기는 원명원에 살았던 황제들이 모았던 것”이라고 전했다. 조사팀을 이끌 류양(劉洋) 변호사는 “2년여간 사전 준비를 했으며 내년 중반쯤 마무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원명원 측은 실태조사와 문화재 반환 운동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음을 거듭 밝혔다. 하지만 많은 문화재가 원명원에서 유실된 것으로 확인되면 경제 규모가 커지고 민족적 자부심이 높아진 중국에서 이를 회수하자는 운동이 일어날 가능성도 없지 않다고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전했다. 올해 2월 프랑스 파리에서 진행된 이브생로랑 소장품 경매에서도 원명원에서 약탈된 12지 동물상(像) 중 토끼와 쥐 상이 경매에 나와 반환 논란을 일으켰다. 중국은 ‘1970년 유네스코 협약’ 등 문화재의 불법 수출입을 방지하는 협약에 1989년과 1995년 각각 가입했으나, 이 협약들은 도난당한 유물의 반환 청구 시효를 50년으로 정했다. 따라서 원명원 측이 타국의 박물관에서 약탈된 유물임을 확인한다 해도 중국이 반환을 요구하기는 쉽지 않다.베이징=구자룡 특파원 bonhong@donga.com}

15~20일… 정부 고위당국자와 만났을 수도김양건 북한 통일전선부장(사진)이 15일 중국을 방문했다가 20일 고려항공을 통해 귀국했다고 중국 베이징(北京)의 외교소식통들이 밝혔다. 김 부장의 15일 중국 방문은 일본 언론의 카메라에 잡히면서 확인됐다. 소식통들은 김 통전부장이 중국에서 머문 6일간의 일정은 구체적으로 확인되지 않았지만 중국 당국과 최근 남북 간 교류 등에 대해 논의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관측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김 통전부장이 베이징에 머무르는 동안 한국의 고위 당국자와 만난 것 아니냐는 관측도 있다. 베이징 외교가에서는 김 통전부장이 이번 방중 이외에도 최근 수차례 베이징을 비밀리에 방문했다는 설이 나돌고 있다. 특히 이번 방북과 관련해 김 통전부장이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을 극비로 만났다는 설이 돌았으나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이 전 국회부의장은 20일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14, 15일엔 인도에 있다가 국감이 끝난 뒤 16일 저녁 입국해 17일 서울에 체류했다”면서 “18일엔 특사 자격으로 인도네시아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해 인도네시아 국회의장 등 주요 인사들을 만나 환담했으며 오늘 저녁 귀국할 예정이라 베이징을 방문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베이징=구자룡 특파원 bonhong@donga.com}

“중국 국민당 중앙위원회 및 마잉주(馬英九·사진) 주석: 귀당의 제18차 대표대회를 축하합니다. 최근 우리는 공동 노력으로 양안관계에서 역사의 새 장을 열었습니다. ‘대만 독립반대’의 기초 아래 중화민족의 밝은 미래를 함께 열어 갑시다.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 및 후진타오(胡錦濤) 총서기: 축하 전문에 감사드립니다. 양당은 실용에 바탕을 둔 교류로 양안관계의 평화적 발전에 인식을 같이하고 있습니다. 염황(炎黃) 자손(중국인 지칭)의 태평성대를 위해 노력합시다. 중국 국민당 중앙위원회.” 마 대만 총통이 국민당 주석으로 정식 취임한 17일 중국과 대만의 양당 간에 이 같은 축하 및 회답 전문이 오갔다고 중국 관영 신화통신이 18일 보도했다. 마 총통은 이날 타이베이(臺北) 신좡(新庄)체육관에서 열린 18차 대표대회에서 우보슝(吳伯雄) 전 주석에게서 주석 직을 인계받았다. 중국 반관영 통신인 중국신문망은 7월 17일 마 총통이 주석으로 선출됐을 때 양안 분단 이후 처음으로 후 주석이 축하 전문을 보낸 데 이어 양측의 두 당이 이 같은 전문을 주고받아 ‘양당 지도자 간 대화 여지가 커졌다’고 보도했다. 또 7월 후 주석이 보낸 축하 전문에서는 마 총통을 ‘마 선생’이라고 호칭했으나 이번에는 ‘마 주석’으로 바꿨다. 중국은 대만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관영 언론이 양당 지도자 간 대화를 ‘정상회담’으로는 표현하지 않는다. 하지만 마 주석과 후 주석이 만나면 1949년 양안 분단 후 명실상부한 첫 영수회담이어서 새로운 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2005년 4월 후 총서기와 당시 야당인 국민당 롄잔(連戰) 주석이 회담을 가졌다. 지난해 5월에도 후 총서기와 집권당이 된 국민당의 우 주석 간에 회담이 열렸으나 우 주석이 대만의 1인자는 아니었다. 대만 롄허(聯合)보도 마 총통이 정식으로 국민당 주석으로 취임하자마자 대만 국민당과 중국 공산당 사이에 이 같은 축전이 교환돼 양안 간 영수회담이 이뤄지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후 주석은 이날 롄 명예주석과 우 명예주석에게도 축전을 보냈으며 두 사람도 감사의 회신을 보내는 등 우의를 나타냈다. 마 총통은 주석 취임식에서 “2005년 후 주석과 롄 주석 간의 5개항 합의를 당의 정강에 포함하고, 양당이 동등한 자격으로 양안관계 발전을 강화하겠다”고 강조했다. 중국과 대만은 올해 12월에는 대만 타이중(臺中)에서 4차 양안 회담을 갖는다. 이 회담에서 자유무역협정(FTA)과 유사한 포괄적경제협력협정(CECA)에 서명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베이징=구자룡 특파원 bonh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