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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1월 7일부터 국내 서비스를 시작한 글로벌 1위 온라인 동영상 사업자 넷플릭스(사진)가 최근 한국에서만 일방적으로 인기 드라마 시리즈물 일부를 삭제한 것으로 확인됐다. 국내 상륙 초기 ‘한 달 이용료 무료’를 앞세워 인기 몰이에만 급급하다 국내 규제에 대한 대응을 소홀히 하면서 문제를 일으킨 것이다. 넷플릭스가 삭제한 작품들은 국내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에 따라 영상물등급위원회(영등위)의 등급 판정이 필요하다고 자체적으로 판단한 것들이다. 해당 법률상 넷플릭스를 비롯한 온라인 동영상 사업자들이 제공하는 영상물은 ‘비디오물’로 간주돼 영등위가 등급을 심사한다. 다만 대가 없이 무료로 제공되는 비디오물은 등급 판정 대상에서 제외된다. 넷플릭스의 경우 국내 상륙 이후 ‘한 달 무료’ 정책을 펴오다가 점차 이 기간이 만료돼 유료로 전환되는 이용자들이 느는 상황이었다. 국내 법규에 대한 부담이 커지자 넷플릭스가 문제가 될 만한 일부 프로그램을 자진해 삭제했다. 19일 현재까지 제공이 일방적으로 중단됐던 작품에는 넷플릭스 대표 드라마 중 하나인 ‘오렌지 이즈 더 뉴 블랙(Orange Is the New Black)’과 ‘웬트 워스(Went Worth)’, ‘하우 투 겟 어웨이 위드 머더(How to Get Away with Murder)’ 등이 포함됐다. 이 중 가장 인기가 높아 가입자 비판이 거셌던 ‘오렌지 이즈 더 뉴 블랙’은 중단 사흘 만에 다시 제공되기도 했다. 인기 시리즈물을 현지 방영 시점에 시청하기 위해 넷플릭스에 가입했던 국내 가입자들은 불만을 터뜨렸다. 직장인 김모 씨(31·여)는 “사나흘 전까지만 해도 있었던 작품들이 갑자기 아무 공지 없이 중단됐다. 보고 싶은 시리즈가 언제 재개될지 몰라 가입했던 요금제를 탈퇴할 것”이라고 말했다. 넷플릭스 측은 “등급 심사와 관련해 영등위와 논의 중이며 중단 작품들을 다시 내놓을 때까지 얼마나 시간이 소요될지는 확답할 수 없다”고 밝히고 있다. 전자상거래업체 아마존도 19일 넷플릭스에 대항해 ‘프라임 비디오’ 서비스를 시작하는 등 글로벌 온라인 동영상 시장 진출을 발표했다. 해외 동영상 사업자들의 국내 법규 준수 문제가 앞으로 더 커질 수 있는 것이다. 영등위 관계자는 “국내에 처음 발 디딘 외국 동영상 업체로서 초기 국내법 관련 이해가 부족했던 것 같다”며 “넷플릭스 측에서도 이제 국내 법규에 온전히 따르겠다는 의지를 밝혔지만, 아직까지 등급분류 신청을 적극적으로 하고 있지는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곽도영 기자 now@donga.com·이새샘 기자}

결론부터 말하자면,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만큼은 못하고,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어벤져스2’)보다는 재미있다.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27일 개봉·12세 이상) 얘기다. 임무 수행 도중 여러 차례 민간인들에게 엄청난 피해를 입힌 어벤져스 팀은 유엔의 관리감독을 받기 위한 ‘슈퍼히어로 등록제’에 서명하라는 강요 아닌 강요를 받는다. 아이언맨(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은 등록제에 찬성하지만 캡틴아메리카(크리스 에번스)는 히어로 개인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이유로 이를 반대한다. 둘이 대립하던 중 사라졌던 윈터솔져(서배스천 스탠)가 나타나 등록제 비준에 관한 논의 중이던 유엔본부 건물에 폭탄테러를 자행한다. 캡틴아메리카는 옛 친구인 윈터솔져를 지키기 위해 아이언맨에게 등을 돌리고, 아이언맨은 캡틴아메리카가 말하는 정의를 불신하기 시작한다. 캡틴아메리카와 아이언맨의 대결을 다룬 만큼 각 팀에 속한 히어로 10여 명의 개성과 액션이 영화의 핵심 볼거리다. 특히 ‘어벤져스2’에서 처음 등장했던 스칼릿위치(엘리자베스 올슨)와 비전(폴 베터니)이 본격적으로 싸움에 나서면서 미묘한 관계를 형성한다. 지난해 영화 ‘앤트맨’으로 팬들에게 얼굴을 알린 앤트맨(폴 러드)은 익살과 실력 양면에서 영화의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한다. 처음 등장한 히어로 블랙팬서(채드윅 보즈먼) 역시 꽤 큰 비중으로 등장해 이국적인 액션을 선보인다. 팬들의 또 다른 관심사는 판권 문제로 마블스튜디오 영화에 나오지 못했던 스파이더맨(톰 홀랜드)의 역할이다. 원작 코믹스의 ‘시빌 워’ 편에서는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이었던 것과 달리 영화 속 스파이더맨은 이제 갓 히어로로 활동하기 시작한 ‘초짜’다. 소년다운 외모에 아이언맨이나 캡틴 같은 ‘유명인’을 보며 감격하는 모습, 재기발랄한 액션이 새 ‘스파이더맨’ 시리즈에 대한 기대감을 높인다. 치고받는 순간에도 특유의 유머를 잃지 않는 액션 신은 여전히 볼만하지만 기대에 비해 어딘가 썰렁하다는 인상을 지우기는 힘들다. 국가 하나를 통째로 공중분해하고, 뉴욕 같은 대도시를 초토화시켰던 이전 시리즈에 비하면 폐허나 비행장 같은 곳에서 벌어지는 이번 영화의 액션 신은 다소 밀도가 떨어진다. ‘슈퍼히어로에게도 과연 자유와 선택권이 있는가’라는 무게감 있는 주제를 던지고도 결국 갈등의 기본 골격을 캡틴아메리카, 아이언맨, 그리고 윈터솔져의 삼각관계에 한정 지은 것도 아쉬움으로 남는다. 다만 히어로들의 개성과 액션을 즐기는 재미가 쏠쏠하고, 향후 마블스튜디오의 영화에서 분기점이 되는 영화라는 점만은 분명하다. 영화를 알차게 즐기려면 ‘윈터솔져’와 ‘어벤져스2’는 미리 보고 가는 것이 좋다. ★★★☆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대국 이후 바둑 교육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고 있다. 인터넷 바둑 사이트 사이버오로는 유아와 초등학교 저학년을 대상으로 한 바둑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사이버오로의 ‘놀이바둑’은 국내 최초의 유아 바둑교육 프로그램이다. 대국 실력을 억지로 끌어올리기보다는 바둑에 대한 흥미를 먼저 갖게 하기 위해 만들기, 촉각 놀이, 율동과 노래 등을 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김바로미 명지대 바둑학과 객원교수의 논문 ‘바둑교육 프로그램이 아동의 지능, 과제집중지속능력, 문제해결력 및 만족지연능력에 미치는 효과’에 따르면 바둑을 배운 유아는 원하는 것을 성취하기 위해 욕구를 참을 줄 아는 ‘만족지연능력’이 시간이 지나면서 크게 향상된 것으로 드러났다. 문제해결력, 과제집중지속능력 등도 배우지 않은 유아에 비해 더 많이 향상됐다. 사이버오로는 “바둑과 다양한 신체운동 등을 결부해 탐구능력, 사회성, 창의성, 공간지각능력 등을 증진시킬 수 있다”고 설명했다. ‘놀이바둑’은 1단계(5세), 2단계(바둑에 입문한 6, 7세), 3단계(2단계를 이수한 7세)로 커리큘럼이 나뉘어 있다. 1단계는 바둑과 친해지기, 2단계는 바둑의 기본 규칙 이해와 적용, 3단계는 다양한 활동으로 바둑 초급 기술을 이해하고 확장시키는 단계다. 지난해 서울·경기 지역 어린이집과 유치원 100여 곳에서 2000여 명이 놀이바둑 프로그램을 배웠고, 올해는 500여 곳 1만 여 명으로 늘어났다. 내년에는 3만 명까지 내다보고 있다. 또 어린이집과 유치원 교사를 바둑 강사로 활용하기 위한 정기 교육 프로그램도 운영 중이다. 02-2285-6950 또 사이버오로가 운영하는 ‘바둑토피아’)는 초등학교 저학년 어린이를 위한 바둑 입문용 동영상 교육 프로그램이다. 1레벨 바둑입문(30급∼18급), 2레벨 초급완성(17급∼9급)으로 총 240강이 애니메이션으로 제공되며 1만 개 문제가 수록돼 있다. 동영상 강의로 선행학습을 한 뒤 연습문제로 심화 학습을 하고 종합문제로 실력 평가를 하는 방식이다. 스마트폰과 태블릿PC를 이용한 교육도 가능하다. 2013년 한국에서 첫 선을 보인 뒤 2014년 중국어, 2015년 일본어로도 동영상이 제작됐다. 현재 중국 약 1만2000명, 일본 약 8000명 등 3개국 2만3600여 명이 가입돼 있으며, 영어 동영상도 제작 중이다. 사이버오로 측은 “일선 교육현장에서 실제로 수업하고 있는 전문 강사들이 연구에 참여해 완성한 프로그램으로 어린이 눈높이에 맞춘 1 대 1 교육이 가능하다”며 “시청각 자료를 활용했기 때문에 아이들이 좀 더 집중력을 갖고 수업에 임한다”고 설명했다.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결론부터 말하자면,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만큼은 못하고,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어벤져스2’)보다는 재미있다. 캡틴아메리카와 아이언맨의 첫 대결을 담은 영화로 관심을 모았던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27일 개봉·12세 이상) 얘기다. 임무 수행 도중 여러 차례 민간인에게 엄청난 피해를 입힌 어벤져스 팀은 유엔의 관리 감독을 받기 위한 ‘슈퍼히어로 등록제’에 서명하고, 서명하지 않을 경우 은퇴하라는 강요 아닌 강요를 받는다. 아이언맨은 등록제에 찬성하지만 캡틴아메리카는 히어로 개인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이유로 이를 반대한다. 둘이 대립하던 중 사라진 줄 알았던 윈터솔져가 나타나 등록제 비준을 위해 국가 정상들이 모인 유엔본부 건물에 폭탄테러를 자행한다. 캡틴아메리카는 윈터솔져를 지키기 위해 아이언맨에게 등을 돌리고, 아이언맨은 캡틴아메리카가 말하는 정의를 불신하기 시작한다. 캡틴아메리카와 아이언맨의 대결을 다룬 만큼 각 팀에 속한 히어로들의 개성과 액션이 영화의 핵심 볼거리다. 캡틴 편에는 팔콘(안소니 마키) 스칼렛위치(엘리자베스 올슨) 앤트맨(스콧 랭) 호크아이(제레미 레너) 아이언맨 편에는 블랙위도우(스칼렛 조핸슨) 워 머신(돈 치들) 비전(폴 베타니) 블랙팬서(채드윅 보스만)가 선다. 특히 ‘어벤져스2’에서 처음 등장했던 스칼렛위치와 비전이 본격적으로 싸움에 나서면서 미묘한 관계를 형성한다. 지난해 영화 ‘앤트맨’으로 처음 팬들에게 얼굴을 알린 앤트맨은 익살과 전투력 두 측면에서 영화의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한다. 첫 등장한 히어로 블랙팬서 역시 꽤 큰 비중으로 등장해 이국적인 액션을 선보이면서 이야기 전개에도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팬들의 또 다른 관심사는 그 동안 판권 문제로 마블스튜디오가 제작한 영화에 나오지 못했던 스파이더맨(톰 홀랜드)의 등장이다. 원작 코믹스의 ‘시빌 워’ 편에서 스파이더맨이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이었던 것과 달리 영화 속 스파이더맨은 이제 갓 히어로로 활동하기 시작한 것으로 나온다. 소년다운 외모에 아이언맨이나 캡틴 같은 ‘유명인’을 보며 감격하는 ‘초짜’지만 특유의 재기발랄한 캐릭터와 액션만큼은 앞으로 나올 리부트된 ‘스파이더맨’ 시리즈에 대한 기대감을 높인다. 치고 박고 싸우는 순간에도 특유의 유머를 잃지 않는 액션 신은 여전히 볼만하지만 기대에 비해 어딘가 썰렁하다는 인상을 지우기는 힘들다. 국가 하나를 통째로 멸망시키고, 뉴욕 같은 대도시를 초토화시켰던 이전 영화들의 스케일에 비하면 폐허나 비행장 같은 곳에서 벌어지는 이번 영화의 액션 신은 다소 밀도가 떨어져 보인다. 덕분에 히어로들의 액션에 더 집중할 수 있지만, ‘출연료로 제작비를 다 소진하는 것 아니냐’는 팬들의 농담이 마냥 농담으로만 들리지는 않는다. ‘슈퍼히어로에게도 과연 자유와 선택권이 있는가’라는 무게감 있는 주제를 던져놓고도 결국 갈등의 기본 골격을 캡틴아메리카(크리스 에반스)와 아이언맨(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그리고 윈터솔져(세바스찬 스탠)의 삼각관계에 한정지은 것도 아쉬움으로 남는다. 다만 히어로들의 개성과 액션을 즐기는 재미가 쏠쏠하고, 앞으로 펼쳐질 마블스튜디오의 영화에서 중요한 분기점이 되는 영화라는 점만은 분명하다. 영화를 알차게 즐기려면 ‘캡틴 아메리카: 윈터솔져’와 ‘어벤져스2’는 미리 보고 가는 것이 좋다. ★★★☆ (별 5개 만점)이새샘기자 iamsam@donga.com}

1월 이 칼럼에서 ‘2016년 대세는 중드(중국 드라마)’라고 쓴 뒤 잇달아 중드 관련 기사(, )를 썼다. 혼자만 이 대세를 느낀 것은 아닌지 다른 매체에서도 중드 관련 기사가 종종 눈에 띈다. 덕분에 ‘볼만한 중드를 추천해 달라’는 요청도 자주 듣는다. 중드 본격 입문 4개월 차인 기자가 중드 입문을 위한 지침을 정리해 봤다. 중드는 시대에 따라 크게 세 장르로 나뉜다고 봐도 무방하다. 사극, 근현대극, 현대극이다. 사극은 국내 시청자에게 가장 익숙하다. 걸작 중의 걸작 ‘후궁견환전’이나 멜로 감성만큼은 최강인 ‘보보경심’, 최근의 ‘무미랑전기’ ‘신삼국’ ‘랑야방’ 등 드라마의 질도 웬만큼 보장된다. 다만 최근 컴퓨터그래픽(CG)을 퍼부은 판타지사극이 중국에서 유행하고 있는데, CG 완성도가 그리 높지 않은 데다 요괴나 마술이 뜬금없이 등장하니 주의해야 한다. ‘지뢰’를 밟지 않기 위해 특히 조심해야 하는 것이 근현대극이다. 1930, 40년대 중국 공산당의 활약을 그린 ‘주선율극(主旋律劇)’이 많아서다. 액션이 볼만하고 허우대 좋은 미남 배우들이 출연하지만 과도한 애국주의와 공산당 찬양에 손발이 오그라들 수 있다. 현재 중화TV에서 방영 중인 ‘위장자’가 상대적으로 이런 성격이 덜하다고 하니 ‘위장자’로 자신의 소화력을 시험해 보는 것도 좋겠다. 가장 알 수 없는 건 현대극이다. 질도 내용도 천차만별이다. 최근에는 한국에서 인기를 끌었던 복합 장르물이 자주 보인다. 누가 봐도 영국이나 미국, 한국 드라마를 벤치마킹한 흔적이 뚜렷해 민망할 때가 많다. 포털 사이트의 중드 카페나 블로그에서 인기작을 파악한 뒤 취향에 맞는 작품을 골라 볼 필요가 있다. 중드는 작품당 적게는 30회에서 많게는 80회에 달한다. 워낙 길다 보니 드라마가 ‘시동’을 거는 데도 오래 걸린다. 한국에선 1, 2회에 다룰 내용이 10회 이상 이어지기도 하니, 좋아하는 배우를 점찍어 출연작을 보는 것이 인내심 유지에 도움이 된다. 팬층이 아직 얇아 자막을 구하기도 힘든 편. 그 대신 중화TV나 아시아앤, 채널 칭 등이 비교적 발 빠르게 유명 배우들의 최근작을 수입하고 있다. 진입장벽이 다소 높지만 호쾌함과 스펙터클, 중국의 역사관을 관찰(?)하는 재미, 유치하지만 어딘가 향수가 느껴지는 설렘까지, 중드에는 특유의 매력이 있다. 질적으로도 빠르게 성장 중이니 2016년 유망주, 중드에 시간을 투자해 보는 것이 어떨까.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부산국제영화제 지키기 범 영화인 비상대책위원회(범 영화인 비대위)가 “2016년 제 21회 부산국제영화제 참가를 전면 거부하기로 결의했다”고 18일 밝혔다. 비대위는 “한국영화제작가협회, 한국영화감독조합,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 등 소속 단체별로 회원에게 보이콧 찬반 여부를 묻는 전화설문을 한 결과 응답자 90% 이상이 보이콧에 찬성했다”고 설명했다. 비대위는 “2016년 10월 6일로 예정된 부산국제영화제가 6개월도 채 남지 않은 시점에 이런 극단적인 조치를 취하게 돼 유감”이라며 “부산시장의 조직위원장 사퇴와 부산국제영화제의 독립성 보장,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기반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 영화인들이 참석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비대위는 3월 21일 기자회견을 열고 △서병수 부산 시장의 조직위원장 사퇴 즉각 실행과 부산국제영화제의 자율성 및 독립성을 보장하는 정관 개정 △부산국제영화제 신규 위촉 자문위원 68명에 대한 효력정지 가처분신청 철회와 부산국제영화제 부당간섭 중단 △부산국제영화제의 집행위원장 사퇴 종용, 총회 의결 없는 집행위원장 해촉 등 영화제를 훼손한 일련의 잘못에 대한 공개 사과와 재발 방지를 요구한 바 있다. 비대위 측은 “부산시는 요구 사항을 이행하기는커녕 부산국제영화제 신규 위촉 자문위원에 대한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철회하지 않아 정관개정을 위한 임시총회를 무산시켰다”고 비판했다. 부산시가 제기한 가처분 신청이 11일 부산지법의 인용 판결을 얻으면서 현재 영화제 측이 위촉한 신규 자문위원 68명의 자격은 정지된 상태다.이새샘기자 iamsam@donga.com}

일류, 이류, 삼류는 있지만 사류는 없다. 금, 은, 동메달은 있지만 철(鐵)메달은 없다. 그만큼 4등은 낯선 단어다. 13일 개봉한 영화 ‘4등’(15세 이상)은 이 애매한 등수에만 줄곧 오르는 초등학교 수영선수 준호(유재상)가 주인공이다. 그를 통해 한국 스포츠계, 나아가 한국 사회에 만연한 폭력의 문제를 정면으로 다뤘다. 만년 4등인 준호는 수영을 좋아하고 재능도 있지만 1등 욕심이 없는 편. 펄펄 뛰는 쪽은 엄마(이항나)다. 엄마가 갖은 방법을 동원해 소개받은 국가대표 출신 새 코치 광수(박해준)는 “1등은 물론이고 대학도 보내주겠다”고 호언장담한다. 광수의 훈련방법은 다름 아닌 체벌. 윽박지르고, 얼차려를 주고, 그도 안 통하면 매를 든다. 엄마는 준호 등의 시퍼런 멍을 눈치채지만 “맞는 것보다 4등이 더 무섭다”고 말한다. 영화를 연출한 정지우 감독은 “가해자와 피해자를 구분하지 않으려 했다”고 했다. 그 말대로 영화는 누구의 편도 들지 않는다. 등장인물에겐 이유가 있다. 광수는 젊은 시절 구타를 이기지 못하고 국가대표 선수촌을 뛰쳐나온 경험이 있다. 심하다 싶을 정도로 극성인 엄마는 준호에게 모든 것을 쏟아붓느라 정작 자신은 공허하다. 아빠(최무성)는 체벌 사실을 알고 제지하지만 그도 폭력의 대물림에 기여한 과거가 있다. 심지어 준호마저 가해자이면서 피해자라는 이중의 굴레에서 비켜나 있지 않다. 영화는 무거운 주제에도 불구하고 웃음과 감동의 균형을 잡았다. 촌철살인의 대사와 사실감 넘치는 장면 덕분이다. 정 감독은 이번 영화를 위해 실제 수영선수와 코치, 학부모 50여 명을 인터뷰했다. 4등을 한 준호에게 엄마가 “너 엄마가 싫지. 이 싫어하는 엄마가 쫓아온다고 생각해 봐. 그럼 초가 준다고!”라고 말하는 장면, 늘 “취미로 하라”고 말만 하면서 현실적인 대책을 내놓지는 않는 아빠의 모습, 국가대표 합숙소에서 벌어지는 구타 장면 등은 이렇게 완성됐다. 실제 수영대회를 찾아다니며 촬영하고, 주인공을 비롯해 수영 장면을 소화한 출연진 상당수를 전직 선수나 현역 선수, 코치로 구성했다. 모두를 공평하게 바라본 덕분에 영화는 가슴이 따뜻해지는 위로의 순간과 등골이 서늘해지는 순간을 함께 보여준다. 한국에서 입시 때문에 고민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러니까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보고 공감할 만하다. 간만에 지금 우리의 문제를 솔직하고 진솔하게 바라본 영화가 나왔다. ★★★★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8일 오후 찾은 경기 용인시 임권택 감독(82) 자택의 거실에는 키 큰 책장 2개에 유아용 장난감과 그림책이 빼곡하게 꽂혀 있었다. “평일이면 손자가 와서 같이 지내거든요. 여기 벽지랑 소파에도 온통 낙서를 해놨지 뭐예요.” 부인 채령 씨의 설명이 뒤따랐다. 늦은 나이에 본 첫 손주라 그런지 임 감독이 직접 어린이집에 데려다 주는 등 각별하다고 했다. 임 감독은 지난해 4월 개봉한 영화 ‘화장’ 이후 별다른 공식 활동 없이 긴 휴식을 갖고 있다. “지난해에는 쓰러져서 응급차에 실려 가기도 했었지. 올해 들어서는 많이 회복했어요. 손자랑 시간을 보내는 게 도움이 돼요. 이제는 괜찮아요.” 손자의 장난감을 제외하고 최근 거실에 새로 들인 물건으로는 그의 얼굴을 음각으로 새긴 동판이 있다. CJ CGV가 지난달 22일 부산 서면 CGV에 ‘임권택 헌정관’을 만들며 선물한 것이다. 임 감독은 처음에 헌정관 제의를 고사했다고 한다. “CJ 같은 대기업들이 1000만 관객 영화만 만드는 거, 영화 질보다는 흥행만을 중심으로 하는 것들이 썩 반갑지가 않았거든. 그래도 헌정관을 통해서 뭔가 독립영화에 보탬을 주겠다, 그 관에서는 좋은 영화만 상영하겠다, 그런 뜻이 있더라고. 헌정관이 한국 영화에 어떤 정신적인 부추김이 됐으면 하는 마음으로 하자고 했죠.” 최근 임 감독이 뉴스에 오르내린 일이 하나 더 있다. 바로 2월 말 부산에서 열린 부산국제영화제 정기총회에 참석해 최근 시와 영화제가 빚고 있는 갈등을 두고 “(정부가) 정말 별것도 아닌 영화를 갖고 편협하게 받아들이는 바람에…”라고 말한 것이 화제가 됐다. 임 감독은 “어떤 영화라도 선정됐으면 도리 없이 상영하는 것인데…. 이전에는 이북 영화도 상영한 적이 있지 않느냐. 그냥 놔뒀으면 ‘다이빙벨’은 그냥 몇 사람만 보고 화제도 되지 않을 영화였지. 이제는 양쪽 다 상처를 입어 감정 문제가 된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세계 영화계의 중요 인사들이 다 오고 싶어 하고 ‘부산에서 보자’는 인사를 할 수 있었던 영화제인데…. 안타깝지”라고 덧붙였다. 임 감독은 한창 영화를 찍을 때는 침대에서 자지 않았다고 한다. 촬영 때의 긴장감 때문인지 늘 소파에서 쪽잠을 자곤 했다는 것이다. 그는 “‘달빛 길어 올리기’(2011년)부터는 많이 지쳤었다”며 “이제는 정신적으로 많이 회복 됐다”고 했다. “내가 영화 하면서 잘한 것이 하나 있다면, 기왕에 살아온 것에서 벗어나 파격을 살아 보려는 발상을 했고 실제로 행동에 옮겼다는 거예요. ‘서편제’가 그랬지. 정말 위험하기 짝이 없지만, 형편없이 망가지더라도 파격을 통해 나를 변화시키고 싶은, 그런 의욕이 있었어요.” 최근작인 ‘화장’ 역시 전통문화와 역사에 천착해 왔던 그의 작품세계에서 동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의 고뇌를 그린, 튀는 작품이었다. 그는 ‘화장’을 두고 “‘개인 임권택’이가 몸부림을 쳤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던 영화”라며 “그동안 영화를 하면서 만들어진 내 틀 안에 내가 빠져서 허우적대는 것 같았다. 그 틀에서 빠져나와야 감독으로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시도했던 영화”라고 했다. 팔순이 넘었지만 그는 여전히 새로움을 추구하는 도전자다. “놀고 싶은 영화감독이 어디 있어요. 아무것도 안 하고 그냥 놀면서 세월 보내다가 죽을 수도 없고. 그러니까 이제 뭔가 밝고 건강한 영화를 한번 해보자 해서 이것저것 기웃거리고 있지. 허허.” “손자와 시간을 보내는 것이 그런 생각에 영향을 줬느냐”고 묻자 “그럼”이라는 답이 단번에 돌아왔다. 그러면서도 어디서 무엇을 기웃거리는지는 끝내 힌트를 주지 않았다. “너무 많은 작품을 해 이제는 힘겨워”라고 말하다가도 영화 얘기를 하면 다시 허리를 곧추세우는 임 감독에게 “안주하지 않는 힘은 어디서 나오느냐”고 물었다. “‘에이, 망해도 좋다!’는 생각이지. 노력하고, 새로운 것을 모색하고, 그러다가 망가진 거야 그 자체가 보람 있는 거 아니겠어.”:: 임권택 감독이 말하는 ‘내 영화 이력을 보자면’ ::△초기 “거짓말, ‘뻥까기’ 영화.”△40, 50대 “영화가 어쨌거나 삶을 담는 그릇인데 거짓말을 너무 많이 해온 데서 오는 부끄러움이 있었다. 그래서 ‘정말’을 하자는 생각으로 질곡을 살아낸 우리 민족의 삶을 주로 그렸다.”△60, 70대 “세상을 치열하게 보고 영화에 담는 것도 적당한 나이가 있더라. 나이가 들면서는 전통문화의 화석화에 대한 위기감으로 ‘춘향뎐’ ‘취화선’ 같은 영화에 매달렸다.”△현재 “그동안 너무 큰 덩어리를 해온 것 같다. 덜어내고 싶다. 이제는 벅차다는 느낌이 든다. ‘화장’에서는 개인의 삶 안에서 돌아가는 의식의 추이를 담아보려 했다.”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1943년 경성을 배경으로 한 영화 ‘해어화’(13일 개봉·15세 이상)는 가시꽃과 복사꽃에 관한 영화다. 해어화(解語花)는 ‘말을 이해하는 꽃’이란 의미로 미인을 비유하는 단어. 소율(한효주)은 기생학교의 가장 뛰어난 학생으로 복사꽃처럼 곱게 자랐지만 친구와 연인, 예인으로서의 자존심을 잃고 가시꽃으로 변한다. 부모에게 버림받은 가시꽃 연희(천우희)는 자신의 재능을 알아본 작곡가 윤우(유연석)를 통해 사랑과 음악에 온몸을 내맡기는 복사꽃이 된다. 소율과 연희는 각각 정가(正歌)와 대중가요를 대표하면서 노래 ‘조선의 마음’을 누가 부를까와 윤우의 마음을 놓고 경쟁한다. 두 인물을 연기한 한효주와 천우희는 스물아홉 동갑내기. 젊은 여배우 중 두드러진 존재감을 지닌 두 배우를 최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 한효주, “표독스럽지만 연민을 느낀다” ―소율 역은 그간 보여 온 모습과 다르다. “여배우로서 선택할 시나리오가 많지 않은 상황에서 여배우가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캐릭터의 감정 변화 폭이 커 여태까지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줄 것 같았다.” ―소율은 주인공이지만 악역이기도 하다. “준비하면서 악역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정가에 대한 관심이 멀어지던 시기이고 암울하던 일제강점기라는 시대 상황이 소율을 변하게 만들지 않았나 싶다. 표독스럽기도 하고 처절하기도 해 악역으로 보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연민을 느꼈다.” ―정가에 대한 느낌은 어떤가. “처음에는 생소했지만 3, 4개월 공부하며 매력을 느꼈다. 절제하는 창법으로 그 나름의 규칙을 갖고 있다. 조선 후기 궁궐에서 부르던 노래였다고 한다. 우리 노래 중에 정가도 있다는 걸 관객들이 알면 좋겠다.” ―영화 말미에 노인 분장을 하고 나오는데 걱정되지 않았나. “촬영 며칠 전까지도 박흥식 감독님에게 다시 생각해 보자고 할 정도로 고민이 많았다. 소율의 얼굴에서 마지막 대사가 나왔으면 좋겠다는 감독님의 의지가 있었다. 나 역시 내 얼굴로 끌고 온 영화이니 내가 마무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후회는 없다.” ―영화 속 소율처럼, 배우 생활을 하며 의도하지 않게 가시꽃이 된 적은 없나. “많다. 얘기하다 보면 눈물 날 것 같다. 연기하는 건 재미있다. 울면 안 되는데…. (그는 결국 눈물을 떨궜다.) 배우라는 직업은 오해를 많이 받는다. 흔들리지 않고 저를 지키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열심히 하다 보면, 살다 보면 조금씩 바뀌지 않을까.”:: 한효주가 보는 천우희 ::“동갑이지만 다음 작품에 어떤 모습일지 기대감에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로 내게 영감을 주는 배우다. 지금도 대단하지만 앞으로가 더 기대된다”○ 천우희, “이명에 탈모까지 왔다” ―‘써니’부터 ‘카트’ ‘해어화’까지 여자 출연자가 많은 영화를 잇달아 찍었다. “복이라면 복이다. 한국에 여배우가 많이 나오는 작품이 흔치 않다. 내가 여자랑 ‘케미’가 좋다고 봐주시는 것 같다. 팬도 여자 팬이 많다.” ―영화 속 삼각관계보다는 두 여자 사이의 애증이 더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과거를 다루더라도 영화가 현재의 관객에게 전하고자 하는 말이 뭔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해어화를 보면 그 시대에도 여성들이 자기 재능에 대해 고민을 했다. 또 재능을 갈망하기 때문에 가까운 사람을 시기한다. 자신에 대한 고뇌가 많은 여성들을 보여주는 영화다.” ―극 중에서 노래를 많이 불렀다. “4개월 동안 미친 듯이 연습했다. 자꾸 연희 보고 ‘마음을 울리는 목소리를 지녔다’고 하니 부담스럽더라. 영화에선 잘 보이지 않는 연희의 감정이나 내면을 노래로 표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고민을 정말 많이 해서 이명(耳鳴)에 탈모까지 올 정도였다.” ―5월 중순 개봉하는 나홍진 감독의 ‘곡성’에도 나온다. “처음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말 그대로 ‘멘붕(멘털 붕괴)’, 대혼란이었다. 동시에 ‘아, 이 불길 속에 뛰어들고 싶다’라고 생각했다. 개봉하면 놀라실 거다.” ―강한 역을 자주 맡는다. 전작의 연기를 뛰어넘어야겠다는 부담감이 있나. “한발 한발 꾸준히, 최선의 노력으로 배역을 소화하다 보면 넘어서는 순간이 오고, 그러다 보면 (배우로서) 완성돼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지금이 배우로서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은 적당한 속도인 것 같아서 너무나 만족스럽다.”:: 천우희가 보는 한효주 ::“가냘파 보이는 외모와 달리 연기를 할 때 흔들림이 없는 배우다. 체력적, 감정적으로 힘들 때도 꿋꿋하고 의연했다. 닮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새샘 iamsam@donga.com·김배중 기자 }

2016년 상반기의 여배우는 천우희(29)가 될 가능성이 높다. 2014년 개봉한 ‘한공주’에서 ‘올해의 발견’이라는 찬사를 들었던 그는 한달 간격을 두고 개봉하는 ‘해어화’와 ‘곡성’에서 잇달아 주연을 맡았다. 13일 개봉하는 ‘해어화’에서는 소율(한효주)과 경쟁하는 기생학교 출신 가수 연희를 연기했다. 자신의 재능을 발견해준 작곡가 윤우(유연석)와 비극적인 사랑에 빠지는 인물이다. 5월 중순 개봉하는 나홍진 감독의 신작 ‘곡성’에서는 유일한 여자 주연, 무명으로 나온다. “‘해어화’에서는 예쁘게 꾸미고 나오는 역할을 맡았는데, ‘곡성’에서는 ‘거지꼴을 하고 나온다’고 사람들이 놀랄 것 같다”며 웃는 천우희를 7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써니’부터 ‘카트’ ‘해어화’까지 여자 출연자가 많은 영화를 잇달아 찍었다. “복이라면 복이다. 한국 영화계에 여배우들이 많이 나오는 작품이 흔치 않다. 내가 여자랑 ‘케미’가 좋다고 봐주시는 것 같다. 팬도 여자 팬이 많다.” -그렇게 치면 이번 영화에서 처음으로 남자와의 멜로 연기를 한 셈이다. “맞다. 지난해 ‘손님’에서 류승룡 씨와 약간 멜로 연기가 있었지만 이렇게 직접적인 건 처음이었다. 특히 ‘해어화’의 감정선이나 관계가 워낙 복잡하다보니 고민도 많고 혼란스러운 부분도 많았다. 나 스스로도 연희가 어떻게 소율과 친한 친구이면서 소율의 연인이었던 윤우를 빼앗을 수 있지, 라고 생각하게 되더라. 연희의 감정이나 상황이 세밀하게 보이지 않다보니 어떻게 하면 짧은 순간에도 연희의 다면적인 모습을 압축해서 보여줄 수 있을지 많이 고민했다.” -배역에 대해 하고 싶은 얘기가 많은 것 같다. “이렇게까지 고민한 역할은 처음이었다. 이명(耳鳴)에 탈모까지 왔다. 머리를 쓱 넘기면 우수수 머리카락이 묻어 나와서 ‘어, 이게 뭐지’ 할 정도였다.(웃음) 연희라는 인물을 알아 가는데 필요한 힌트들이 조금 부족했다. 영화에 빠진 장면이 있는데, 어릴 적 연희를 기생학교에 버렸고 그 뒤로도 연희를 이용하기만 했던 아버지를 윤우와 함께 있다 마주친다. 가장 수치스러운 부분을 윤우에게 들킨 거다. 연희는 그 때 자신의 재능을 발견해주고 인생의 행로를 변화시켜준 인물에게 모든 걸 쏟아낸다. 윤우는 그런 연희를 보며 조선 사람들의 목소리를 담은 ‘조선의 마음’을 작곡하게 된다. 그런 장면들이 들어갔다면, 좀더 연희의 면모가 잘 보이지 않았을까.” -영화 속에서 연희와 소율, 그리고 윤우의 삼각관계보다는 여자들 간의 애증이 더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배경이 1940년대지만 영화가 지금, 현재의 관객들에게 하고자 하는 말이 무엇인가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해어화’를 보면 1940년대에도 여성들이 자기 재능에 대해 고민을 하고, 또 재능을 갈망하기 때문에 가까운 사람을 시기하지 않나. 그렇게 자기 자신에 대한 고뇌가 많은 여성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두 여자 사이의 대립이 좀더 팽팽하게 그려졌다면 좋았겠지만 편집이나 영화의 흐름은 저 혼자만의 것이 아니니까…. 감독님이 표현하고자 하시는 부분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극중 기생은 예인으로 묘사되고, 영화는 예인으로서 갖는 무대에 대한 욕망을 그린다. 배우로서 공감되는 부분이 있던가. 다른 배우에 대한 질투라던가. “다른 배우를 신경 쓰거나 하지는 않는다. 나는 나일뿐이고 각자 다 나름의 색깔이 있고 개성이 있는 거니까. 순간적인 부러움은 있을 수 있지만 막 욕망에 들끓고 그러지는 않는다. 원래 다른 사람의 인생에 그리 신경을 곤두세우는 편이 아니다. 개인적으로는 연희가 재능이 있는데도 현실에 부딪혀서 그 꽃을 피우지 못하고 사그라지는 게 그렇게 짠할 수가 없더라.” -‘한공주’에서도 노래 실력을 보여준 적이 있는데 이번 영화에서도 노래를 많이 불렀다. “4개월 동안 발성부터 시작해서 정말 미친 듯이 연습했다. 자꾸만 영화 속에서 연희 보고 ‘마음을 울리는 목소리를 지녔다’고 하니 부담스럽더라. 연희의 감정을 노래 속에 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연습하면서 가수들이 정말 대단하다 싶었다. 연기도 감정을 표현하는 일이지만 가수는 3분에서 5분, 아주 짧은 시간 안에 폭발적으로 딱 보여줘야 하지 않나. 쉽지 않았다. 가수들이 존경스러웠다.” -극중 삽입곡이자 가장 클라이맥스에서 부르는 노래 ‘조선의 마음’의 1절을 직접 작사했다고 들었다. “‘조선의 마음’의 가사가 촬영 중반까지 여러 번 바뀌었다. 제가 연희를 연기하는 중이니까 그 곡을 받고 노래를 부르는 순간 마음이 막 움직여야 한다는 생각이 들더라. 물론 좋은 가사를 써주셨지만, 받아볼 때마다 마음에 그렇게 타격이 크지 않은 거다. 그래서 정말 조심스럽게, 그렇지 않아도 끼적거리던 것도 있고 해서 제가 한번 써보면 어떨까요, 하고 제안했다. 의외로 좋아해주셔서 1절 가사가 됐다.” -한효주 씨와는 ‘뷰티 인사이드’에서도 호흡을 맞췄었는데. “‘뷰티 인사이드’에서는 너무 짧게 나왔던 터라…. 게다가 나름 멜로연기였던 ‘뷰티 인사이드’랑은 달리 상황도, 호흡도 달랐다. 서로 힘들어서 신경 쓰지 못한 부분도 있지만, 그래도 동갑이다 보니 서로 고민하는 지점이 비슷했던 거 같다. 촬영하면서 얘기를 많이 나눴다.” -만나보니 어떤 배우라는 생각이 들던가. “‘여리여리’하고 가냘픈 느낌이 있다보니 실제로도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 그 동안의 연기도 그렇고, 보여준 모습도 그렇고. 그런데 외모와는 달리 같이 연기를 할 때 흔들림이 없더라. 체력적으로나 감정적으로 힘들었을 텐데 꿋꿋하게, 의연하게 잘 대처를 하는 모습에 놀라기도 했고 닮아야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동안 출연한 영화 중에서 가장 예쁘게 꾸미고 나오는 역할이기도 하다. “그 전에는 늘 의상이 영화 내내 한 벌이나 두 벌이었는데 계속 갈아입고 화장도 하고 양장도 입고 변신을 할 수 있어서 좋았다. 지금이 아닌 1940년대를 접할 수 있다는 게 배우로서 정말 좋은 특권인거 같다. 촬영할 때 입었던 당시의 의상을 한 벌 선물 받았다. 그 동안 우연찮게 작품마다 한 벌씩 의상을 선물 받았던 터라 모아놓은 걸 보면 뿌듯하다.” -나중에 모아서 전시회를 해도 되겠다. “그러려면 진짜 ‘열일’(열심히 일을) 해야겠다. 하하.” -영화 말미 등장하는 빗 속 몸싸움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체력적으로 힘들지는 않던가. “정말 힘들었다. 영화에서 나온 것보다 훨씬 격렬하게 땅에 뒹굴고 엎어지고 했다. 게다가 한효주 씨랑 체격 차이가 좀 나다 보니…. 그래도 내가 순간적인 힘은 강하다.” -실제로 만나보니 체구가 생각보다 작아서 놀랐다. “화면으로 봤을 때는 작아 보이지 않는다는 말씀을 많이들 하신다. 사실 실물보다 화면에서의 내 모습이 더 좋다. 내 키를 안 보여주는 화면이, 특히 혼자 나올 때가 제일 좋다.(웃음)” -예전 인터뷰에서 ‘평범하게 생겼지만, 그래서 존재감이 있는 것 같다’고 스스로를 묘사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미의 절대적인 기준에 상응하는 얼굴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배우의 얼굴로는 너무나 만족한다. 평범하지만 굉장히 비범해보였으면 좋겠다고 늘 생각한다. 내가 진짜 극중 인물이 된다면, 관객들에게는 그저 평범한 그 인물로 보이는 것 아닌가. 하지만 동시에 그 영화에 잘 녹아들었다는 점에서 배우로서 비범한 존재감을 갖게 되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 연기를 늘 추구한다.” -한달 간격으로 ‘곡성’이 개봉한다. 배우들의 연기도 연기지만 작품 자체에 대한 기대감이 상당한데. “처음 시나리오 받았을 때 말 그대로 ‘멘붕(멘탈붕괴)’, 대혼란이었다. 어떻게 이런 시나리오를 쓸 수 있지 하는 생각이 들더라. 동시에 ‘아, 도전해보고 싶다. 불길 속에 뛰어들고 싶다’라고 생각했다. ‘해어화’랑 개봉 시기가 맞물려서 아쉽기도 하지만 극명하게 다른 모습을 보실 수 있을 거다. ‘해어화에서는 예뻐진 줄 알았더니 또 거지꼴을 하고 나오네’ 하실 수도 있다.(웃음)” -강한 역할을 자주 맡는다. 전작의 연기를 뛰어넘어야겠다는 부담감이 있나. “전작을 뛰어넘고 싶은 마음은 있다. 그런데 꼭 지난번에 이런 작품을 했으니 이번에는 완전히 새로운 모습을 선택해야지 하는 식은 아니다. 배우로서 한발 한발 꾸준히 해나가면서, 주어진 작품 안에서 최선의 노력을 하며 배역을 잘 소화하다보면 그런 넘어서는 순간이 오지 않을까. 그러다보면 어느 순간에는 (배우로서) 완성이 돼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조바심을 내는 성격은 아닌 것 같다. “‘내가 나이가 많나? 좀 느린가?’ 이런 생각을 하지 않는다. 배우로서 지금이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은 적당한 속도인거 같아서 너무나 만족스럽다.”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사무실에서 쏟아지는 잠을 참다못해 화장실로 달려가 변기 뚜껑을 내려놓고 눈을 붙인 경험, 직장인이라면 한 번쯤 있을 것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30, 40대 한국인의 평일 평균 수면시간은 약 7시간 30분(2014년 기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8시간 22분보다 1시간 정도 짧다. 이 때문인지 최근 낮에 잠시 잘 수 있는 수면카페가 유행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최근에는 영화관이 ‘수면 서비스’를 시작했다. CGV 여의도점이 3월 14일부터 시작한 ‘시에스타’는 영화 관람에 2만5000원인 프리미엄관을 월∼목요일 오전 11시 반∼오후 1시 낮잠 공간으로 제공하는 서비스다. 1만 원에 담요, 귀마개, 1회용 슬리퍼와 차 등을 제공한다. 과연 영화관에서 눈을 붙이는 게 수면 카페보다 편안할까. 7일 찾은 극장은 낮은 조도의 조명에 좌석마다 양초 모양의 전등이 놓여 있었다. 은은한 아로마 향과 음악도 흘렀다. 프리미엄관 좌석은 버튼을 누르면 180도까지 눕힐 수 있는 자동 소파로 돼 있었다. 여성, 남성, 커플용으로 구획이 나뉘어 있고, 96석 중 절반인 48석만 개방해 옆자리와 붙지 않도록 배려했다. 오전 11시 반부터 입장을 시작해 낮 12시가 되면 조명이 완전히 꺼진다. 담요를 덮고 눕자 깜깜해서인지 금세 잠이 왔다. 시간이 지나 입장할 경우 직원이 발밑에 불을 비추며 안내한다. 간간이 입장하는 사람들의 발소리 때문에 잠이 깨기도 했지만 크게 방해가 되지는 않았다. 말 그대로 ‘꿀잠’이 가능했다. 오후 1시가 되면 조명이 밝아지고 음악 소리가 커지면서 잠을 깨운다. 못 일어나는 손님은 직원이 깨워 준다. 그럼 수면카페보다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을 뜻하는 준말)는 좋을까. 9일 오후 해먹에 누워 자는 서울 종로구의 N카페를 찾았다. 5000원이면 1시간 동안 쉴 수 있고, 나갈 때 차를 준다. 자리를 잡으면 직원이 온열방석을 깔고 담요를 덮어준다. 허공에 매달려서 잠을 청하는 기분이 색다르지만 잠자기보다는 이색 체험을 하는 공간이라는 인상이 강했다. 8일 오후 찾은 서울 중구의 M카페는 안마의자를 도입한 수면카페 체인이다. 가격은 음료를 포함해 50분에 1만3000원. 약 150cm 높이의 파티션으로 좌석마다 공간이 확실히 구분돼 있었다. 안마기에 몸을 넣자 금세 곯아떨어질 수 있었다. 하지만 사람들이 수시로 이용하느라 들락거리고 기계 소음이 있기 때문에 영화관만큼 조용하지는 않았다. 빛이 완전히 차단된다는 점, 소음이 덜하다는 점, 접근성이 좋다는 점에서 영화관이 확실히 장점이 있었다. 이용 가격이 높은 곳일수록 수면의 질도 좋았다. 7일 ‘시에스타’ 서비스를 이용한 사람은 기자를 제외하면 4명에 불과했다. 다음 날인 8일 같은 시간대에 상영한 영화 ‘클로버필드 10번지’의 전국 평균 좌석점유율(9.2%)과 비교하면 영화 상영보다 손해 보는 장사인 셈이다. CGV 측은 “영화관을 다양하게 활용하려는 차원에서 도입한 서비스다. 반응이 좋을 경우 직장인이 많은 지역을 위주로 확대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김배중 wanted@donga.com·이새샘 기자}

2월 방한한 미국 TBS 토크쇼 ‘코넌쇼’ 진행자 코넌 오브라이언이 출연한 박진영의 ‘파이어’ 뮤직비디오가 10일 공개됐다. 오브라이언은 방한 당시 ‘파이어’의 뮤직비디오는 물론이고 가사 작업과 녹음 등에도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뮤직비디오는 미드 ‘워킹데드’에 출연 중인 한국계 배우 스티븐 연에게 오브라이언이 “‘Where’s the party(파티는 어디서 열리니)?’가 한국어로 뭐냐”고 묻자 스티븐 연이 “‘Nol-de-up-nee(놀데 없니)?’다”라고 답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함께 인터넷으로 박진영의 뮤직비디오를 본 둘은 케이팝에 빠져 한국으로 향하다 박진영의 뮤직비디오 촬영장에 떨어진다. 오브라이언은 박진영과 함께 엉덩이를 씰룩거리는 우스꽝스러운 춤을 추고, ‘케이팝 스타 스타일’로 꾸민다며 진한 메이크업과 화려한 의상을 소화하기도 했다. 오브라이언은 “이 뮤직비디오가 내 경력을 망칠 것”이라는 농담과 함께 자신의 공식 트위터에 뮤직비디오 링크를 띄우기도 했다. 9일(현지 시간) 미국에서 방송된 ‘코넌쇼’ 한국편에서는 오브라이언이 한국어와 태권도를 배우고 노량진 수산시장부터 판문점까지 한국의 명소를 둘러보는 내용 등이 담겼다. 뮤직비디오를 본 국내외 누리꾼들은 “코넌도 눈 화장 하니 아이돌 못지않네” “이상하게 당기고 중독적이다” 등의 댓글을 달며 열광하고 있다.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신상옥 감독님(사진)은 제 이름을 지어주신 스승님이었습니다. 납북된 사건을 포함해 숱한 풍파를 겪었던, 영화계의 풍운아로 기억합니다.”(배우 신성일 씨) 9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허리우드실버영화관 로비는 2006년 4월 11일 작고한 신 감독의 10주기 추모 행사에 참석하려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행사에는 원로배우 신영균 문희 신성일 이해룡 씨, 김동호 부산국제영화제 명예집행위원장, 김세훈 한국영화진흥위원장, 원로 영화평론가 김종원 씨, 신 감독의 아들 신정균 감독 등 150여 명이 참석했다. 신 감독 추모기념사업회 이사장인 이장호 감독은 “처음에 배우가 하고 싶어 신 감독님을 찾아갔다 그 카리스마에 압도돼 제대로 말도 못 꺼냈던 기억이 있다”며 그를 추억했다. 신 감독의 아내이자 그의 작품에 여러 차례 주인공으로 출연했던 배우 최은희 씨는 건강 문제로 이날 참석하지 못했다.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판 뒤집혔다.” 지난해 1341만 관객을 모으며 최고 흥행작이 된 영화 ‘베테랑’ 속 서도철(황정민) 형사가 남긴 명대사다. 올해 한국 드라마 판도 마찬가지다. 100% 사전 제작한 드라마 KBS ‘태양의 후예’(태후)가 등장해 시청률 30%를 웃돌며 ‘태후 신드롬’을 일으켰다. 실패 사례밖에 없었던 사전 제작 드라마의 성공 사례를 만들며 ‘당일치기 쪽대본’ ‘실시간 제작’이라고 비판을 받던 기존 드라마 제작의 패러다임에 균열이 생기고 있다. 시리즈물로 나온 케이블 채널 tvN ‘응답하라 1988’은 지상파 드라마의 아성을 위협할 정도로 자리를 잡았고, 같은 채널의 ‘시그널’도 마니아용으로 여겨져 온 장르 드라마가 대중적으로 인기를 끌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줬다.‘태후’는 어떻게 만들어졌나 ‘태후’의 제작사는 영화배급투자사로 널리 알려진 ‘넥스트엔터테인먼트월드(NEW·뉴)’다. 뉴는 영화배급투자사 쇼박스 대표를 지낸 김우택 총괄대표가 2008년 9월 설립한 역사가 짧은 회사다. 하지만 1000만 관객을 넘은 ‘7번방의 선물’(2013년)과 ‘변호인’(2013년)을 비롯해 ‘신세계’(2012년) ‘부러진 화살’(2011년) 등 화제의 영화를 여러 편 성공시키며 영화업계에서는 새로운 강자로 자리 잡고 있다. 뉴는 CJ E&M, 롯데엔터테인먼트 등 대기업 계열의 큰 영화사들을 제치고 2013년 업계 1위에 오르기도 했다. 뉴 김우택 총괄대표는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전부터 종합 콘텐츠 제작회사로 나아가는 단계에서 기회가 생긴다면 드라마 제작에도 과감하게 뛰어들 준비를 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기회는 2014년 여름에 찾아왔다. ‘태후’의 원작은 2011년 대한민국 스토리 공모대전에서 우수상을 받은 김원석 작가의 ‘국경없는 의사회’. 이 각본은 영화 제작자인 서우식 전 바른손 대표에 의해 드라마로 기획되고 있었다. ‘파리의 연인’(2004년) ‘시크릿 가든’(2010년) ‘신사의 품격’(2012년) 등의 각본을 쓴 김은숙 작가가 합류해 7, 8명의 의사가 펼치는 재난물이었던 원작을 멜로드라마로 바꿨다. 하지만 드라마는 2014년 여름 SBS에서 편성이 될 뻔했지만 불발됐다. ‘용팔이’ ‘리멤버: 아들의 전쟁(이상 2015년) 등 다른 드라마에 밀렸기 때문이다. 이후 서 대표와 친분이 있는 뉴 김 대표가 드라마를 제작하기로 결정했고 영화에서 역량을 인정받은 뉴가 합류하자 드라마 제작은 급물살을 탔다. 뉴 관계자는 “당시 2부까지 완성된 ‘태후’ 대본과 콘티가 무척 흥미로웠다”고 말했다. 총제작비가 130억 원이 들어가는, 드라마로는 보기 드문 큰 규모였지만 뉴는 영화에서 쌓은 노하우를 활용해 방영권 및 판권 판매, 부가수익 창출 등 드라마 제작을 위한 재원을 마련할 구조를 설계했다. 중국 시장을 겨냥해 사전 제작으로 드라마를 만들기로 결정하고 중국 최대 동영상 플랫폼인 아이치이에는 회당 2만5000달러(16회 총 40만 달러, 약 46억 원)에 판권도 수출했다. 뉴 관계자는 “사전 제작 시스템은 제작을 한 뒤 관객에게 내놓는 영화 시스템과 다르지 않아 오히려 수월했다”고 말했다. 16부작 미니시리즈 촬영 기간은 보통 3, 4개월. 하지만 ‘태후’는 6개월이 걸렸다. 건물이 무너지는 재난 장면 촬영 등의 사전 준비에 공을 들였고 촬영 뒤에도 부족한 부분은 재촬영하며 완성도를 높였다. 비가 오는 등 날씨가 좋지 않을 때는 원하는 장면을 얻기 위해 기다리기를 반복했다. 촬영 후 2월 말 첫 방송이 시작될 때까지 두 달 동안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편집 등 후반 작업을 거치며 공을 들였다. 매 회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 공들인 드라마에 시청자도 응답했다. 영상미로 시청자를 홀린 ‘태후’는 ‘송송(송중기 송혜교) 커플’의 조합과 빼어난 완성도로 3회 만에 시청률 23.4%(닐슨코리아 전국 기준)를 기록했다. SBS가 ‘태후’ 대신 선택한 ‘용팔이’의 최고시청률 21.5%를 넘었다. 13회까지 매회 최고시청률을 경신하며 시청률 40%를 바라보고 있다. ‘태후’의 성공으로 한국 드라마 제작 패러다임 변화에 대한 기대감도 높아지고 있다. 제작비를 확보하고 예산을 책정해 사전 제작 혹은 반(半) 사전 제작으로 완성도를 높이는 미국식 드라마 제작 시스템이 우리나라에 도입될까? 한 드라마 제작사 관계자는 “‘태후’의 성공으로 100% 사전 제작 드라마 성공에 대한 기대감이 예전보다 높아졌다”고 말했다. ‘태후’에 이어 ‘사임당 더 허스토리’(SBS) ‘함부로 애틋하게’(KBS2) ‘화랑: 더 비기닝’(KBS2) 등 100% 사전 제작 드라마가 올해 안에 방영될 예정이다. 반면 사전 제작 드라마를 바라보는 우려의 시각 또한 적지 않다. 드라마 방영 전 성공에 대해 아무도 장담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드라마 제작 환경이 톱스타나 유명 작가 위주로 더 쏠릴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럴 경우 다양한 콘텐츠가 나오기 힘들다는 비판이 나온다. 실제로 ‘태후’의 경우 송혜교는 중국에서 검증된 한류스타이고 김은숙 작가도 톱스타 못지않게 몸값이 높은 스타 작가다. ‘사임당…’에는 원조 한류 배우로 평가받는 이영애가, ‘함부로…’에는 중화권에서 최고의 인기를 자랑하는 김우빈이 출연한다. 한 드라마 관계자는 “결국 중국 자본 등 투자자가 원하는 배우·연출진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케이블에서도 통한 장르물의 진화 사전 제작 드라마뿐만 아니라 올해는 한국 드라마에서 시리즈물과 장르물이 성공적으로 안착한 해다. 이전까지 막장 드라마가 득세하던 흐름에도 균열 조짐이 나타난 것이다. 1월 종영한 tvN ‘응답하라 1988’(응팔)은 “전편보다 나은 속편은 없다”는 통념을 깨고 폭넓은 시청자의 사랑을 받았다. 마지막 회인 20화는 시청률이 19.6%(닐슨코리아 전국 유료 가구 기준)까지 나오며 역대 케이블 채널 최고 시청률인 엠넷의 ‘슈퍼스타K2’ 결승전 시청률(2010년 10월 22일, 18.1%)을 넘어섰다. tvN은 ‘응팔’을 통해 171억 원의 광고 매출을 올렸다. 주문형 비디오(VOD) 매출도 50억 원 이상을 기록했는데 이는 케이블 채널 역대 최고 기록이다. 장르물인 ‘시그널’의 성공도 반갑다. 보통 장르 드라마는 소수 마니아층의 드라마로 인식돼 왔다. 수사물에 러브 라인조차 없는 ‘시그널’은 지상파에서 한 차례 퇴짜를 맞은 뒤 tvN에서 편성이 결정됐다. 하지만 최고시청률 12.5%(닐슨코리아 전국 기준)를 넘으며 대박을 쳤다. ‘시그널’ 제작진이 밝힌 성공 비결은 ‘반 사전 제작’과 ‘장르물 본연에 집중한 전략’이다. 원래 SBS에서 박해영(이재훈)과의 러브라인을 위해 30대 초중반 나이로 설정됐던 차수현(김혜수)은 tvN에서는 이재한(조진웅)과 박해영을 연결할 수 있는 40대 중반으로 변경됐다. 전직 프로파일러 출신 보조 작가가 대본 작업에 투입되며 작품의 사실감을 더했다. 치밀한 전개와 디테일한 내용에 시청자들은 “최고의 수사물”이라고 평가했다. 케이블 드라마로는 높은 수준인 70억 원의 제작비가 투입됐지만 반 사전 제작으로 작품성을 높이고 시청자의 호응을 얻으며 판권 판매, VOD 매출 등으로 제작비를 회수했다. ‘시그널’ 관계자는 “막바지까지 촬영을 완료한 뒤 2주 넘는 여유 기간을 두고 후반 작업을 진행해 완성도를 높였다”고 말했다.▼‘미드’ 못지않은 완성도… 수사 드라마 숨은 주역▼“문제는 디테일” 프로파일러-협상 전문가 투입해 사실성 높여한국 수사드라마가 달라지고 있다. 이야기의 완성도가 높아지고 있다. 이전처럼 사건을 얼렁뚱땅 해결하지 않는다. 사건을 수사하는 디테일도 섬세해졌다. 극에 사실감을 더하는 ‘숨은 전문가’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케이블채널 tvN 드라마 ‘시그널’에 보조 작가로 참여한 전직 프로파일러(범죄심리분석관) 김윤희 씨(37)와 tvN ‘피리 부는 사나이’의 자문을 맡은 경찰대 이종화 교수(53)를 만나 이들이 드라마에 어떻게 기여했는지 들어봤다.디테일을 살린 전직 프로파일러“(드라마의 메인 작가인) 김은희 작가에게 많이 받은 질문은 ‘이런 상황이 실제로 가능하냐’, ‘개연성이 있느냐’였어요.”‘시그널’의 보조 작가 김 씨는 경찰 생활 8년 중 5년을 서울지방경찰청 범죄분석요원으로 근무했다. 2년 전 경찰복을 벗고 배우와 작가를 꿈꾸던 김 씨는 전문가를 찾던 ‘시그널’ 제작진에게 발탁됐다. 김 씨는 실제 프로파일러가 어떻게 증거를 수집하고 행동하는지를 메인 작가에게 알려줬다.“프로파일링을 통해 본 범죄자는 사회성이 떨어지고 강박 성향이 있으며 이를 없애려 특정 행동을 반복하는 인물이었죠. 드라마에서 편의점을 항상 정돈하는 홍원동 연쇄살인사건의 범인 진우(이상엽)라는 캐릭터도 이를 바탕으로 탄생했죠.”홍원동 사건을 구성하는 데는 김 씨의 공이 컸다. 김 씨는 홍원동 사건의 모티브가 된 실제 사건인 ‘서울 양천구 신정동 연쇄살인사건’을 프로파일링한 경험이 있다.범인을 추적하던 형사 차수현(김혜수)이 피해자들이 다닌 골목을 배회하는 장면도 이전 수사물에서 볼 수 없는 장면이다. 범인의 시각이 아니라 피해자의 시각으로 사건 현장을 다시 본 것이다.김 씨가 바라는 수사물의 모습은 어떤 걸까. “그동안 국내 수사극에서는 경찰 눈으로 보면 ‘이건 아닌데’ 하는 내용이 많았죠. 미드(미국 드라마)처럼 첨단 수사기법과 꼼꼼한 수사 등을 국내 드라마가 보여준다면 경찰로서도 참고할 만할 것 같아요.”드라마에 등장한 생소한 협상전문가“경찰이 상대하는 사람은 범인이든 누구든 우선 도와줘야 하는 사람으로 여기고 ‘위기자’라 불러야 해요. 이들을 살살 달래야지, 조사하듯 딱딱한 말투로 대하면 안 되죠.”강력계를 주로 소재로 삼던 이전 드라마와 달리 드라마 ‘피리 부는 사나이’는 경찰 ‘위기협상팀’을 다뤘다. 생소한 분야에 사실감을 더하기 위해 경찰대 이종화 교수가 나섰다. 이 교수는 미국 뉴욕경찰(NYPD)과 연방수사국(FBI)에서 위기협상 과정을 수료한 전문가다. 그는 “사고는 ‘위기자’의 감정이 고조된 상태를 제대로 통제하지 못할 때 발생한다”며 “대화로 그들의 감정을 어루만져야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이 교수는 드라마 각본을 쓴 류용재 작가에게 경찰대에 개설된 ‘협상 강의’를 듣게 했다. 이 교수는 류 작가에게 “협상관의 말투는 부드러워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의 조언에 따라 탄생한캐릭터인 협상팀 여명하 경위(조윤희)는 위기 상황에서 상대의 말을 경청하고 부드러운 말투로 사건을 해결한다.그가 바라는 수사물의 모습은 어떤 걸까. “올해도 자살을 기도한 두 명의 ‘위기자’를 협상을 통해 구했어요. 소통이 부족한 때일수록 협상이 꼭 필요합니다. 드라마를 통해 경찰뿐 아니라 많은 분이 위기협상을 알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김배중 wanted@donga.com·이새샘 기자 }

7일 개봉한 영화 ‘트럼보’(15세 이상)를 재미있게 보기 위해선 배경 지식을 조금 알 필요가 있다. 이름만 들어서는 낯선 주인공 돌턴 트럼보(브라이언 크랜스턴)는 할리우드 고전 ‘로마의 휴일’ ‘스파르타쿠스’ 등의 시나리오를 쓴 작가로, 할리우드의 전설적인 존재다. 할리우드 황금기와 암흑기를 동시에 상징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영화는 트럼보가 이미 작가로 성공한 뒤인 1943년에서 출발한다. 파시즘에 반대하며 미국 공산당에 가입한 공산주의자였던 그는 미국이 소련과의 냉전에 돌입하면서 궁지에 몰리기 시작한다. 공산주의자를 색출해 내기 위한 의회 위원회에 소환된 그는 대형 스튜디오들이 절대 기용하지 않기로 결정한 작가와 감독들의 블랙리스트 즉, ‘할리우드 10’에 이름을 올려 아무것도 쓸 수도, 발표할 수도 없는 신세가 된다. 하지만 트럼보는 ‘빨갱이’라는 낙인찍기에 굴복하는 대신 기발한 싸움에 나선다. 바로 가명으로 시나리오를 쓰는 것이다. 1947년부터 1960년까지 트럼보가 사용한 가명이 10개가 넘고, 그사이 그가 남의 이름을 빌렸거나 가명으로 쓴 작품(‘로마의 휴일’ ‘브레이브 원’)은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두 차례나 각본상을 받는다. 자칫 흔한 인간 승리 드라마의 함정에 빠질 수도 있는 이야기다. 하지만 ‘오스틴 파워’ 시리즈를 연출한 제이 로치 감독은 유머 감각을 발휘해 영화를 산뜻하게 연출해냈다. 영화는 인물에 대해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트럼보는 물론이고 극렬 반공주의자였던 칼럼니스트 헤다 호퍼(헬렌 미렌)를 비롯한 트럼보의 적수들에게도 골고루 시선을 둔다. 삼류 제작사에 가명으로 쓴 시나리오를 팔아넘기는 트럼보와, 그를 돕는 사람들, 그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반공주의자들의 모습은 소동극에 가깝다. 최근 할리우드에서는 잇달아 이 시기를 다룬 작품이 나오고 있다. 지난해 개봉한 ‘스파이 브릿지’는 매카시즘 광풍이 절정에 달했던 1957년 소련 스파이의 변호를 맡게 된 변호사의 이야기다. 3월 24일 개봉한 ‘헤일, 시저!’는 1948년을 배경으로 공산주의자라는 이유로 해고당했던 작가들이 당대 최고의 배우를 납치하며 벌어지는 일을 다뤘다. 다만 매카시즘의 정점을 그린 ‘스파이 브릿지’나 배경 설명이 다소 부족한 ‘헤일, 시저!’와 달리 ‘트럼보’는 두 영화를 시기적으로 관통하며 시대와 인물을 골고루 보여준다. 특히 그 시대에 피해자로 생존해야 했던 인물, 나아가 그의 가족이 어떻게 굳은살이 박일 지경까지 상처 입는지를 찬찬히 담아내며, 이런 일이 언제 어디서든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다는 강렬한 예감을 안긴다. ★★★(별 5개 만점)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만약 7일 개봉하는 영화 ‘클로버필드 10번지’를 볼 생각이라면 당장 이 기사에서 눈을 떼기를 추천한다. 볼까 말까 고민 중이더라도 되도록 기사를 읽지 않는 편이 낫다. 모르면 모를수록 더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남자친구와 싸운 뒤 길을 떠났다가 갑자기 교통사고를 당한 미셸(메리 엘리자베스 윈스티드)은 지하 방공호에서 깨어난다. 자기가 미셸을 구했다고 주장하는 하워드(존 굿맨)는 지구가 알 수 없는 이유로 오염됐고, 밖으로 나가면 죽게 된다고 말한다. 함께 방공호에 머무르던 에밋(존 갤러거 주니어)은 미셸과는 달리 하워드를 철석같이 믿고 있다. 미셸은 감금생활을 하며 하워드를 믿을지, 아니면 탈출할지 기로에 선다. 제목만 보면 2008년 국내에 개봉한 영화 ‘클로버필드’의 속편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렸다. ‘클로버필드’는 정체 불명의 괴물이 미국 뉴욕을 공격하며 벌어진 아비규환을 다룬 영화. 핸드헬드(촬영 감독이 카메라를 들고 움직이면서 촬영) 기법으로 촬영한 페이크 다큐 방식으로 관객을 멀미와 구토로 몰아넣었던 바로 그 영화다. 하지만 ‘클로버필드 10번지’를 보면서 ‘클로버필드’를 굳이 의식할 필요는 없다. 둘은 분위기, 내용, 결말 모두 전혀 다르다. 주요 출연진은 단 세 명, 지하 방공호에서 대부분의 이야기가 펼쳐지지만 팽팽한 긴장감이 이어져 지루할 틈이 없다. 영화는 소란스럽고 난삽했던 ‘클로버필드’와는 달리 정제된 연출로 잘 정돈돼 있다. 특히 미셸과 에밋을 때론 위협하고 때론 달래며 푸근한 시골 아저씨와 소름 끼치는 사이코패스를 오가는 굿맨의 카리스마가 압도적이다. 속편이 판치는 요즘 할리우드지만, 이만큼 창조적인 속편을 만나기도 힘들 것이다. 스릴러부터 공상과학(SF)까지 골고루 오가는 클로버필드행 롤러코스터에 탑승해보길.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만약 7일 개봉하는 영화 ‘클로버필드 10번지’를 볼 생각이라면 당장 이 기사에서 눈을 떼기를 추천한다. 볼까말까 고민 중이더라도 되도록 기사를 읽지 않는 편이 낫다. 모르면 모를수록 더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남자친구와 싸운 뒤 길을 떠났다 갑자기 교통사고를 당한 미셸(메리 엘리자베스 윈스티드)은 지하 방공호에서 깨어난다. 자기가 미셸을 구했다고 주장하는 하워드(존 굿맨)는 지구가 알 수 없는 이유로 오염됐고, 밖으로 나가면 죽게 된다고 말한다. 함께 방공호에 머무르던 에밋(존 갤러거 주니어)은 미셸과는 달리 하워드를 철썩 같이 믿고 있다. 미셸은 감금생활을 하며 하워드를 믿을지 아니면 탈출할지 기로에 선다. 제목만 보면 2008년 국내 개봉한 영화 ‘클로버필드’의 속편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렸다. ‘클로버필드’는 정체불명의 괴물이 미국 뉴욕을 공격하며 벌어진 아비규환을 다룬 영화. 핸드헬드 기법으로 촬영한 페이크 다큐 방식으로 관객을 멀미와 구토로 몰아넣었던 바로 그 영화다. 하지만 ‘클로버필드 10번지’를 보면서 ‘클로버필드’를 굳이 의식할 필요는 없다. 둘은 분위기, 내용, 결말 모두 전혀 다르다. 주요 출연진은 단 세 명, 지하 방공호에서 대부분의 이야기가 펼쳐지지만 팽팽한 긴장감이 이어져 지루할 틈이 없다. 영화는 소란스럽고 난삽했던 ‘클로버필드’와는 달리 정제된 연출로 잘 정돈돼 있다. 특히 미셸과 에밋을 때론 위협하고 때론 달래며 푸근한 시골 아저씨와 소름끼치는 사이코패스를 오가는 굿맨의 카리스마가 압도적이다. 속편이 판치는 요즘 할리우드지만, 이만큼 창조적인 속편을 만나기도 힘들 것이다. 스릴러부터 공상과학(SF)까지 골고루 오가는 클로버필드 행 롤러코스터에 탑승해보길. ★★★☆ 이새샘기자 iamsam@donga.com}

‘007’ 시리즈부터 ‘킹스맨’까지, 영국산 스파이들은 예나 지금이나 활약하고 있다. 제목에 지명을 넣어 원산지를 ‘과시’한 드라마 ‘런던 스파이’는 영국산 스파이의 최신 버전이다. ‘007’ 최근 시리즈에서 요원 Q 역을 맡았던 벤 위쇼와, ‘킹스맨’의 조연 에드워드 홀크로프트가 주인공을 맡았다. 시작은 요즘 말로 하면 ‘그린 듯한’ 게이 로맨스다. 세상을 막 살던 대니는 어느 날 아침 조깅을 하던 한 남자에게 첫눈에 반한다. 쉽지 않은 과정을 거쳐 대니는 그와 연인이 된다. 사람과 관계 맺기에 서툰 남자와, 인생을 대충 사는 만큼 사람과의 관계 역시 늘 쉬웠던 대니. 둘은 서로의 상처를 나누며 깊은 사이로 발전한다. 어느 날 남자가 증발해 버리면서 로맨스는 서스펜스로 변한다. 그를 무작정 찾아다니던 대니는 우연히 그의 아파트에서 트렁크에 갇힌 채 숨진 그의 시체를 발견한다. 그가 살해당했다고 확신하는 대니는 진상을 캐기 시작하지만 대니의 시도는 번번이 막히고 오히려 진실 따위는 상관하지 말라는 협박을 받는다. 드라마는 사랑에 빠지는 것이 실은 첩보활동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암시한다. 상대가 원하는 나를 적당히 연기하며, 상대의 마음을 훔치면 된다. 대니는 사랑에서 깨어나 상대의 진짜 모습을 직시하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수수께끼를 풀어간다. 드라마 속 남자들은 스파이 소설의 거장으로 불리는 존 러 카레이 작품의 스파이 모습과 닮았다. 평범하게 살 권리를 박탈당한, 불안과 회한에 시달리는 망가진 남자들 말이다. 스파이물은 남자들이 함께 위기를 넘기며 비밀 임무를 수행한다는 점에서 브로맨스(‘브러더’와 ‘로맨스’를 합친 말로 남성 간의 애틋한 관계를 뜻함)의 성지였다. ‘런던 스파이’는 아예 이들을 커밍아웃시킨다. 동성애자라는 정체성은 스파이의 삶을 더욱 폐쇄적으로 만들고, 임무를 더욱 복잡하게 한다. 상대의 진실을 해체하며 그를 더 깊이 알게 된 대니처럼, ‘런던 스파이’는 우리가 알던 스파이물을 해체한 뒤 게이 로맨스와 결합해 재구성하며 긴장감과 애틋함을 적절히 배합한다. 고성능 도청 프로그램과 무인기가 인간 스파이를 대체하는 시대에도, 스파이물은 이렇게 끈질긴 생명력을 유지하며 팬들을 끌어들인다. 영국산 스파이여, 영원하라. 이새샘기자 iamsam@donga.com}

지난달 30일 개봉한 ‘대배우’(12세 이상)는 무명 연극배우를 주인공으로 삼을 때 상상할 수 있는 대부분의 이야기를 시도했다. 지질한 생활고를 딛고 일어서려는 배우의 ‘웃픈’ 코미디, 무명인 아빠를 그래도 자랑스러워하는 아들과의 감동 휴먼 드라마, 연기와 명성을 향한 집착으로 극단적인 일도 서슴지 않는 배우의 욕망을 담은 스릴러…. 하지만 영화는 중심을 잡지 못하고 휘청거린다. 영화를 채우는 잔재미는 충분하다. 아동극 ‘플란다스의 개’를 공연 중인 극단에서 파트라슈 역할을 맡고 있는 성필(오달수)은 우연히 칸 영화제의 사랑을 받는 깐느박 감독(이경영)의 영화 제작 소식을 듣는다. 한때 극단 선배였고 지금은 국민배우가 된 설강식(윤제문)이 영화의 주인공으로 캐스팅됐다는 소식을 듣고 성필은 조연 자리를 따내기 위해 강식을 만나려 한다. 성필은 누가 봐도 오달수 본인을 모델로 한 자전적 캐릭터다. 제작사 ‘모모필름’에서 흡혈하는 신부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를 찍는 박 감독과, 모 유명 배우와 자음이 닮은 설강식 역시 모델이 누군지 금방 떠오른다. 이준익 감독, 배우 유지태 등이 영화의 카메오로 등장하고, 한국 영화사의 명연기 명장면을 ‘오달수 톤’으로 재연하는 진풍경까지 펼쳐진다. 물론 영화 속에는 미래의 대배우들을 위한 위로 혹은 찬사 같은 장면들이 있다. 극단은 수익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아동극을 올리고, 배우들은 밤에는 대리운전 기사로 뛰고 낮에는 극단에 나오는 틈틈이 영화 제작사에 프로필도 돌려야 한다. 배우의 가족은 꿈 하나에만 매달리는 가장을 기약 없이 기다려야 하고, 그런 가족 때문에 가장은 과거의 동료에게 비굴하게 읍소한다. 여러 갈래로 나뉜 이야기는 하나로 이어지지 못하고, 결말 부분의 반전 아닌 반전은 억지스럽다. 배우들의 이름값에 답하려고 여러 ‘상업적 요소’를 추가하다 빚어진 결과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소소한 재미를 느끼며 볼만하다. 하지만 이 영화를 위해 오디션을 보는 배우들의 진솔한 모습이 담긴 엔딩 크레디트 영상이 영화 본편보다 더 진한 감동을 준다는 점을 부정하기는 힘들 듯하다.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뮤지컬 ‘맘마미아’가 올해 7월 공연 1500회를 돌파한다. 2004년 한국에서 초연된 이래 12년 만이다. 한국에서 공연된 대형 뮤지컬 중에는 처음이다. 이 기록의 주역이 바로 박명성 신시컴퍼니 예술감독(53)이다. “작품의 질을 유지하는 데 가장 큰 힘을 기울이면서도, 세월이 느껴지지 않도록 대사나 디테일을 조금씩 수정해 왔죠. 이번 공연은 특히 한국 뮤지컬계의 1, 2세대 배우들과 신진들을 골고루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자부심을 느낍니다.” 대학에서 한국무용을 전공하고 1987년 극단 신시의 창립단원으로 들어가 한때 배우를 꿈꿨던 그는 무대 위에서는 큰 빛을 보지 못했다. 10여 년간 조연출 생활을 하다 프로듀서의 길을 걷던 그는 김상열 대표가 세상을 떠나면서 신시의 대표가 된 이후 뮤지컬 ‘렌트’ ‘아이다’ ‘시카고’ 등 누구나 제목만 들어도 알 만한 대형 뮤지컬을 꾸준히 무대에 올려 왔다. 특히 1998년 당시 브로드웨이 최신 작품인 뮤지컬 ‘더 라이프’를 한국에서 처음으로 정식 라이선스 계약을 맺고 들여온 주인공이기도 하다. 박 감독은 최근 창작뮤지컬과 연극에 집중하고 있다. 지난해 뮤지컬 ‘아리랑’을 무대에 올렸다. 올해는 창작뮤지컬 ‘에어포트 베이비’와 연극 ‘렛미인’을 초연했고, 연극 ‘아버지와 나와 홍매와’도 공연했다. 여름에는 연극 ‘햄릿’과 ‘레드’, 하반기에는 뮤지컬 ‘아이다’를 무대에 올릴 예정이다. “1년에 한 편씩 창작뮤지컬을 공연하는 게 목표입니다. 우리도 이제는 충분히 세계 수준의 뮤지컬을 만들 수 있어요. 우리의 이야기를 무대에 올려야 관객의 저변도 넓힐 수가 있어요.” 하지만 그가 2007년 45억 원을 들여 무대에 올렸던 ‘댄싱 섀도우’는 적자를 냈고, ‘아리랑’ 역시 흥행에서 좋은 결과를 내지는 못했다. 박 대표는 “창작뮤지컬은 일단 무대에 올려봐야 문제점이 드러난다. 계속 재공연을 하면서 업그레이드를 해야 한다”며 “‘아리랑’도 2017년에 다시 무대에 올릴 것”이라고 말했다. “손익분기점이 얼마인지, 흥행할지 적자가 날지 고민만 하면 창작 작품은 절대 할 수가 없어요. 배짱이 있어야죠.” 배짱과 뚝심으로 뮤지컬계의 각종 기록을 수립해온 그의 또 다른 자산은 사람이다. 뮤지컬계의 스타인 박칼린 음악감독을 연출자로 키운 것도 그다. 박 감독은 “요즘 활약하는 30, 40대 배우 중 30% 이상은 신시에서 데뷔한 배우들일 것”이라며 “보통 ‘원 캐스팅’으로 작품을 진행하고, 더블캐스팅을 하더라도 되도록 신인들에게 기회를 준다. 새로운 인재를 발굴하는 것이 프로듀서의 중요한 책임 중 하나”라고 말했다. “프로듀서는 모든 작품의 꿈을 최초로 꾸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요즘 뮤지컬계가 어렵다고들 하는데, 돌파구는 더 진솔하고 진실하게 작품을 만드는 것 외에는 없는 것 같아요. 규모보다는 질로 관객을 만족시키는 작품을 할 겁니다.”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