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오늘은 통역사가 혼자 말할 거예요. 사실 우리가 말하는 프랑스어는 언어가 아니라 짖는 소리일 뿐이거든요.”(뤼크 다르덴) 최근 프랑스 칸에서 만난 장피에르(65), 뤼크 다르덴(62) 형제는 유쾌했다. 기자의 질문에 시종일관 옅은 미소를 띤 채 답하는 형제는 냉철한 시선을 유지하면서도 인간에 대한 신뢰를 담고 있는 본인들의 영화와 닮아 있었다. “우리는 실은 한 몸인데 사람들이 믿어주지 않는다”라는 우스갯소리가 믿길 정도로 두 사람의 답변은 마치 한 사람처럼 때론 이어지고, 때론 서로를 보충했다. 형제 감독이 연출한 열 번째 장편 극영화 ‘언노운 걸’이 올해 제69회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됐다. ‘언노운 걸’은 벨기에 리에주 지역의 한 동네 의사 제니(아델 에넬)가 진료시간이 지나 찾아왔다는 이유로 무심코 지나쳤던 한 소녀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 소녀의 정체를 추적하기 시작하며 벌어지는 일을 담았다. ―‘언노운 걸’은 어떻게 구상하게 됐나. “실제 의사로 일하는 친구에게서 들은 이야기에서 출발했다. 친구가 아는 의사 중에 중학교에서 벌어지는 마약 거래 실태를 밝혀낸 사건이 있었는데, 방문 진료를 하는 일반 개업의여서 그런 일을 할 수 있었다는 거다. 죽음을 지연시켜야 할 의무를 지닌 의사가 자기가 그냥 지나친 탓에 환자가 죽었다는 것을 아는 데서 출발해 죄책감과 책무(accountability)의 문제를 탐구하려 했다.” ―영화 속에서 제니는 범인을 찾는 대신 소녀의 정체를 추적한다. “수사물을 만들려던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의사다운 이유에서 행동하도록 설정했다. 소녀의 이름을 찾는다는 것은 소녀를 원래의 인생, 그가 속해 있던 공동체로 회복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제니는 죄책감으로 자기연민에 빠지는 대신 실제 행동에 나서고, 그를 통해 주변을 모두 변화시킨다.” ―그동안 인간의 죄책감을 주제로 많이 다뤄 왔다. “다루면 안 되는가?(웃음) 죄책감은 다른 동물과 인간을 구분하는 특징이다. 인간은 다른 사람을 이용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타인에 대해 뭔가를 빚졌다고 느끼기도 하지 않나. 현대사회의 질병 중 하나는 무관심이다. 오로지 자기 자신의 흥미만 내세우는 것 말이다. 우리가 타인에게 빚졌다는 사실, 새장을 깨고 나와 진정한 인간으로 존재할 수 있도록 타인이 돕는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열 번째 장편 극영화고, 30년 이상 작품 활동을 해 왔다. 그동안 세계관이나 인간관이 바뀌었다고 느끼지는 않는가. “와, 큰 질문이다. 답하기 어렵지만…. 세상이 멸망할 거라는 얘기는 싫어한다. 너무 속도가 느리긴 하지만 조금씩 세상은 진보한다고 생각한다. 전 세계적으로 어린이들이 과거보다 더 많이 교육받고 있지 않나.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칸=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현대의 신화라 할 수 있는 히어로물을 인간의 영역으로 끌어내려 반전의 묘미를 주는 마블의 실험은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친구를 위해, 혹은 복수를 위해 서로 피터지게 싸우고(‘캡틴 아메리카: 시빌워’), 히어로들의 권리 찾기 투쟁에 나선다(‘엑스맨’ 시리즈). 능력에 걸맞지 않은 인간적인 고뇌와 상처는 요즘 히어로물의 필수 요소다. 넷플릭스에서 제작한 ‘제시카 존스’와 ‘데어데블’은 여기서 한 발짝 더 나간다. 아예 흔히 트라우마라고 부르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그 자체가 드라마의 핵심이다. 앞서 언급한 히어로물과 비교하면 능력은 한참 부족한데, 고뇌의 깊이는 결코 부족하지 않다. 제시카 존스의 제시카(크리스틴 리터)는 뉴욕 헬스키친 지역의 사립탐정이다. 알코올의존증에 가까운 술고래에 타인을 밀어내는 외로운 영혼, 하드보일드 소설 속 탐정 모습 그대로다. 어릴 적 사고 이후 엄청난 근력과 점프력 등 초능력을 지니게 됐지만 마음을 조종하는 초능력자 킬그레이브에게 이용당해 자신의 능력으로 사람들을 해친 과거가 있다. 그의 상태는 성폭행 피해자와 닮아 있다. 신체의 통제권을 완전히 잃은 채 조종당했기에 무력하고 나약했던 자신에 대한 수치심으로 스스로를 학대하고 자기 안으로 숨어드는 것이다. ‘데어데블’의 매슈, 혹은 데어데블(찰리 콕스)은 낮에는 헬스키친의 신참 변호사, 밤에는 히어로로 활약한다. 시각장애인이라는, 히어로로서는 꽤 큰 신체적 약점을 갖고 있지만 대신 청각이나 후각, 촉각 등 시각 외의 모든 감각이 압도적으로 발달해 있다. 하지만 그뿐, 딱히 주먹이 강하거나 힘이 센 것은 아니다. 그는 무력하게 아버지를 잃었던 어린 시절을 곱씹으며 끊임없이 훈련하고 스스로를 단련한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시달리는 건 두 히어로뿐만이 아니라 도시 전체다. 두 드라마의 배경은 또 다른 마블의 작품 ‘어벤져스’ 1편 이후, 어벤져스와 외계 종족의 싸움으로 뉴욕에 핵무기가 떨어질 뻔했던 이른바 ‘뉴욕 사건’ 직후다. 마치 9·11테러 직후처럼 도시는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평범한 시민들은 고통받고, 악당들은 혼란을 틈타 활개 친다. 그렇기에 두 드라마는 주인공이 사건을 파헤치며 스스로의, 나아가 도시의 트라우마를 치유해 나가는 심리극으로도 읽힌다. 제시카 존스는 제시카가 킬그레이브의 또 다른 피해자를 도우면서, 데어데블은 황폐화된 도시가 재개발되는 틈을 타 벌어지는 건설회사 비리 사건을 파헤치며 시작한다. 둘의 영웅다움은 고통이 클수록 부각된다. 인간을 영웅으로 만드는 요건―고난 앞에서 포기하지 않는 것―이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마블은 알고 있는 듯하다.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미국의 한 라디오 방송국에서 에콰도르 내전 취재를 위해 특파원 프랭크와 기술직원 이안을 파견한다. 허술한 이안이 무심결에 여권과 비행기 표를 쓰레기통에 버리는 통에 출국하지 못한 둘은 방송국 건너 레스토랑에 숨어 가짜 뉴스를 꾸며내기 시작한다. 위기를 모면하려 시작한 거짓말은 점점 더 커져 두 사람을 옭아맨다. 국내 영화 팬에게 17일 넷플릭스에 공개된 새 코미디 영화 ‘특파원’은 낯설게 느껴질 가능성이 높다. 바람둥이에 거짓말을 밥 먹듯 하는 프랭크 역을 맡은 배우가 바로 에릭 바나(48)이기 때문이다. ‘뮌헨’ ‘블랙호크다운’ 등에서 근육질 몸매와 진지한 연기로 인기를 끈 그가 왜 코미디를 선택했는지 이해하려면 그의 고향 호주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 호주 멜버른에 머물고 있는 그는 최근 동아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원래 호주에서 코미디언으로 데뷔했다. 돌아가야 할 곳으로 돌아간 것”이라고 했다. ―다시 코미디 영화를 택한 이유는…. “코미디 연기를 다시 하고 싶던 차에 ‘특파원’의 대본을 받았다. 두 사람의 이야기가 다양한 코미디가 가능한 설정이라고 생각했다. 특히 프랭크는 자신만만한 인물인데 이런 사람일수록 망가지면서 웃길 여지가 많은 법이다.” ―한 번도 웃지 않으면서 웃긴 상황을 연기한다. “맞다. 촬영 내내 웃느라 수없이 NG를 냈다. 오랜 시간 코미디 연기를 안 해서 말 한마디만으로도 이렇게 열 번, 스무 번 웃을 수 있는 게 얼마나 좋은 일인지를 잊고 있었다. 좋은 코미디가 갖는 가치를 다시 깨달았다.” ―전쟁에 대한 언론의 선정적 보도를 지적하는 등 시사적인 주제도 담고 있다. “물론 영화와 똑같은 수준의 일이 벌어지지는 않겠지만, 비슷한 일이 벌어질 가능성을 염두에 둬야 하지 않을까. 영화의 과장된 이야기를 통해 경계할 수 있도록 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특파원’은 넷플릭스를 통해 처음 공개되고 상영된다. 새로운 방식이다. “‘특파원’은 저예산 독립영화다. 이런 영화들은 아예 배급이 되지 못하거나, 아주 적은 수의 극장에만 걸리는 경우가 많다.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다는 건 많은 관객에게 다가갈 기회를 얻는다는 의미다. 이런 방식이 창작자에게 개성을 담은 작품을 만들 수 있도록 해 줄 거라고 생각한다.” ―한국 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봉준호 감독의 ‘괴물’을 인상 깊게 봤던 기억이 있다. 다른 나라에 팬들이 있다는 말을 듣는 건 언제나 즐겁다. 한국에 꼭 한번 가보고 싶다.”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영화 ‘곡성’에는 해골 모양으로 시드는 금어화가 나온다. 악마나 귀신의 짓인가 하며 섬뜩해하는 사람들에게 리처드 도킨스라면 이렇게 말할 가능성이 높다. “착각하지 마. 그냥 우연히 그런 모양이 된 것일 뿐이라고!” ‘리처드 도킨스의 진화론 강의’는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진화학자인 그가 영국왕립연구소에서 진행한 대중 과학강연 내용을 정리하고 보강한 책이다. 자연선택과 돌연변이, 복제 등 진화론과 관련된 개념을 거미줄부터 동물의 날개, 눈까지 다양한 사례를 들어 설명했다. 대중강연을 바탕으로 한 덕에 이해하기 쉬운 데다 꽤 냉소적인 농담까지 양념처럼 더해져 잘 읽힌다. 책의 의도는 어찌 보면 단순하다. 생물체나 자연현상을 보고 ‘신의 뜻 혹은 위대한 자연의 설계가 작용했다’고 생각하길 좋아하는 사람들을 ‘그건 당신의 착각’이라고 일깨우는 것이다. 경제적 효율성이 뛰어난 벌레잡이풀의 생김새부터 진화론의 아버지 다윈조차도 경이롭게 느꼈던 정교한 눈의 구조까지 모두 생존을 위해 가장 효율적인 길을 찾아 조금씩 전진한 진화의 결과물일 뿐이다. 진화의 꼭대기에 있기에 결과물만 보면 경이롭지만 실은 수만, 수억 년의 과정이 있었다는 것이다. 책 말미에 저자는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무리 까다롭고, 올라야 할 (진화의) 절벽이 아무리 가파르더라도 천천히 한 걸음씩 내딛다 보면 길을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신 혹은 설계자의 존재를 부정하는 진화론이야말로 어찌 보면 자연과 인간에 대한 가장 강력한 신뢰를 바탕으로 한 이론이라는 점을 상기하게 한다.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칸영화제에서 상을 받는 작품과 상영관에서 박수를 받는 작품이 꼭 일치하진 않는다. 22일 끝난 올해 영화제는 유독 이 간극이 더 넓었던 것 같다. 전문가와 관객의 평가가 좋았던 두 작품 ‘토니 에르트만’과 ‘패터슨’은 수상 목록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현지 상영관에서 많은 사람들을 울리고 웃겼던 두 작품을 소개한다. ‘토니 에르트만’은 독일 출신 신예 마렌 아데 감독의 예측불허 코미디다. 노년으로 접어드는 위니프리드(페터 시모니셰크)는 학교 음악 선생님으로, 말도 안 되는 농담과 장난을 즐기는 실없는 남자다. 딸 이네스(산드라 휠러)는 반대다. 대형 컨설팅 회사에서 일하는 그는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것 같은 완벽한 커리어 우먼. 여기까진 ‘성공했지만 내면이 공허한 딸, 허술하지만 인생을 즐기며 사는 아버지’라는 상투적인 구도다. 다만, 아버지의 장난은 상상을 초월한다. 가짜 이와 가발을 하고 토니 에르트만이라는 가상 인물로 변장한 채 회사로 들이닥친 아버지 때문에 이네스는 머리끝까지 화가 난다. 딸은 아버지를 냉정하게 돌려보내지만 아버지는 계속해서 딸의 주변을 배회하며 딸의 일상에 관여하기 시작한다. 역시나 예상을 벗어나는 수위의 장난과 함께. 이번이 세 번째 작품인 아데 감독은 독특한 호흡의 코미디로 영화를 상투성의 함정에서 건져낸다. 눈썹과 입꼬리의 움직임만으로도 인물의 복잡한 심경을 전하는 두 주연 배우의 연기 역시 일품이다. 162분이라는 긴 상영시간이 살짝 겁이 날 수도 있다. 사실 초반 20∼30분은 좀 지루하다. 하지만 고비만 넘기면 영화는 낄낄대는 웃음과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는 진한 눈물을 보장한다. ‘토니 에르트만’이 어디로 튈지 모르는 얌체공 같다면 ‘패터슨’은 묵직한 직구처럼 심장을 파고드는 작품이다. 카메라는 미국 뉴저지 주 패터슨에 사는 버스 운전사 패터슨(애덤 드라이버)의 일주일을 비춘다. 아내(골시프테 파라하니)와 행복하게 살던 그에게는 비밀 직업이 또 하나 있는데, 바로 시인이다. 열렬히 시를 사랑하지만 정작 작품을 발표할 생각은 없다. 여기까지 읽고 ‘음, 지루한 예술영화군’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영화는 언뜻 지루해 보이는 평범한 일상이 이 예민한 예술청년에게 얼마나 다채로운 색깔로 다가가는지, 그리고 일상이 예술에 의해 어떻게 축복받는지를 섬세하게 짚어낸다. ‘스타워즈’에 출연해 할리우드의 신성으로 떠오른 애덤 드라이버 등 배우들의 연기도 안정적이다. 심지어 패터슨의 애완견 마빈 역을 맡은 불도그 넬리도 2001년부터 칸영화제 기간 중 수여되고 있는 ‘종려견상(Palm Dog Award)’의 강력한 후보로 거론됐을 정도로 명연기를 펼친다. 짐 자무시 감독은 시와 예술에 대한 깊은 애정, 일상의 행간을 읽어내는 연출, 옴니버스식 구성, 동양적 선(禪)에 대한 애호 등 그동안 자신의 작품에서 선보인 조각들을 모아 반짝이는 모자이크를 완성했다. 시대나 공간이 짐작되지 않는 진공 상태로 느껴질 때도 있지만, 그의 영화는 늘 배경을 초월한 채 존재했다는 점을 상기하면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다. 아름다운 폭포 앞에서 작은 노트 안으로 빨려들 듯 등이 굽은 패터슨의 뒷모습과 그가 특유의 저음으로 읊는 시의 운율만큼은 오랫동안 기억될 것이다. ‘토니 에르트만’ ★★★★☆, ‘패터슨’ ★★★★ (별 5개 만점)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한국영화가 세계 유수의 영화제에서 또 고배를 마셨다. 22일 오후(현지 시간) 프랑스 칸 뤼미에르 극장에서 열린 칸국제영화제 폐막식에서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는 끝내 호명되지 않았다. 이 작품은 한국영화로는 2012년 이후 4년 만에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하며 기대를 모았지만 수상에는 실패했다. 반면 이란 아스가르 파르하디 감독의 ‘세일즈맨’이 각본상과 남우주연상을, 필리핀 영화 ‘마 로사’에 출연한 재클린 호세가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는 등 다른 아시아 영화들은 선전했다. 이로써 한국영화는 2012년 김기덕 감독이 ‘피에타’로 베니스영화제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후 세계 3대 영화제(칸, 베니스, 베를린)에서 연이어 상을 받지 못했다. 그 사이 국내 영화 시장은 연평균 관객 2억 명을 넘으며 성장했지만 ‘엘리트 영화’에서는 세계적 경쟁력을 상실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영화는 2000년대 세계 영화제에서 주목을 받았다. 2002년 칸에서 임권택 감독이 ‘취화선’으로 감독상을 받은 것을 시작으로, 2004년 김기덕(베를린 감독상), 2004년 박찬욱 감독(칸 심사위원대상)의 수상으로 절정기를 구가했다. 하지만 2010년대에 접어들며 수상 소식은 뜸해졌다. 경쟁부문에 진출하는 감독도 박찬욱 김기덕 이창동 홍상수 등 매번 같은 인물이었다. 이에 따라 ‘포스트 박찬욱 김기덕’이 나와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전문가들은 해외에서 주목을 끌었던 한국영화의 신선함이 바랬다고 진단한다. 황철민 세종대 영화예술학과 교수는 “자극적 이미지와 소재로 눈길을 끌던 한국영화가 이제 유럽인에게 생경하지 않다”며 “수준 높은 한국적 담론을 담은 한국영화로의 진화가 필요한 때”라고 했다. 한국영화계가 대기업 위주로 재편되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지적도 있다. 상업영화에만 매달려 예술영화 육성에 소홀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정재형 영화평론가협회장(동국대 영화영상학과 교수)은 “예술성과 다양성의 가치를 살리지 않으면 상업적으로도 지속성을 갖기 어려운 게 영화산업의 속성”이라며 “영화제 수상이 국가 브랜드와 문화의 가치를 높이는 일이므로 당국의 지속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했다. 젊은 영화인들이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는 반론도 있다. 칸영화제에 참석한 김영우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는 “‘곡성’의 나홍진 감독이나 ‘부산행’의 연상호 감독 등 자기 세계를 구축한 젊은 감독들이 영화제에서 주목받았다”고 말했다. 일부에서는 운영이 보수적인 칸영화제의 성과에 연연할 필요가 없다는 반론도 있다. 한 영화계 인사는 “칸영화제는 그들이 발굴한 감독에게 후하다”고 했다. 실제 올해에는 칸영화제를 통해 명성을 얻은 캐나다 그자비에 돌란 감독의 ‘가장 세상의 끝’이 평단의 부정적 평가에도 2등상인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했다. 한편 최우수작품상에 해당하는 황금종려상은 2006년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으로 이 상을 수상한 바 있는 영국 켄 로치 감독의 ‘아이, 대니얼 블레이크’에 돌아갔다. 3등상에 해당하는 심사위원상은 영국 여성 감독 앤드리아 아널드의 ‘아메리칸 허니’가 수상했다. 감독상은 ‘퍼스널 쇼퍼’를 연출한 프랑스 올리비에 아사야스 감독과 ‘바칼로레아’를 연출한 루마니아 크리스티안 문지우 감독이 공동 수상했다.칸=이새샘 iamsam@donga.com·김배중 기자 }
“(영화에 대해) 열린 마음을 갖고 있지 않다면 그냥 꺼지면 됩니다. 난 그런 사람들에게 관심 없습니다.” 할리우드의 ‘악동’은 혹평에도 굴하지 않았다. 11∼22일 열린 제69회 칸국제영화제 후반부의 화제작은 배우 숀 펜(56)이 연출한 경쟁 부문 진출작 ‘더 라스트 페이스’였다. 단, 호평이 아니라 혹평 때문이었다. 20일(현지 시간) 기자 시사 직후 온라인을 중심으로 혹평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21일 각국 주요 매체 평론가의 평점을 종합하는 잡지 스크린인터내셔널에서는 그의 영화에 대해 4점 만점에 평균 0.2점이라는 최악의 점수가 나왔다. 이날 오후 프랑스 칸의 한 호텔에서 만난 펜은 “(혹평은) 나랑 상관없는 일”이라며 “요즘 예술은 홍보 활동의 가치를 지나치게 높게 평가하고 있다”며 오히려 평론가와 언론을 비판했다. 영화는 2003년 아프리카 라이베리아 내전을 배경으로 유엔 난민캠프에서 일하는 렌(샬리즈 시어런)과 미겔(하비에르 바르뎀)의 사랑과 갈등을 담았다. 동시에 아프리카의 참상을 보여 주며 관객이 이 같은 비극에 대해 적극적으로 행동할 것을 요구한다. 영화는 전투 도중 부상한 민간인들의 끔찍한 상처나 난민캠프에서 남루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지나치게 적나라하게 담고 주인공을 백인으로 내세웠다는 점에서 “난민을 대상화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펜은 “관객이 영화 속 장면에 거부감을 느낀다면 그건 그들이 그동안 현실에 무관심했다는 뜻이다. 나는 그저 내가 그동안 본 것, 내 경험을 나누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동네(칸)를 걸어다니는 인간들은 자기 생각을 대변하는 척하면서 실은 자기보다 나아 보이는 사람들의 의견을 그저 따라갈 뿐이죠. 언론은 마치 누가 다른 사람의 작업에 대해 게으르게 평가할 수 있는지 대결하는 것 같고요.” 혹평에 대해 거칠게 반응하던 펜은 그가 2010년 아이티 대지진 직후부터 현지에서 전개하고 있는 인도주의적 구호 활동에 관해 질문하자 열정적으로 말을 이었다. 그는 “영화감독을 하는 것과 캠프 운영에 필요한 능력이 비슷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예산안에는 없던 비상상황을 갑자기 처리해야 하고, 늘 어제 끝냈어야 했던 일을 오늘 하고 있게 된다”며 웃었다. 거침없이 말하던 펜은 영화에 조연으로 출연한 아들 호퍼에 관한 질문을 하자 미소를 숨기지 못했다. “정말 열정적인 녀석이에요. 영화 촬영 전 4개월 정도 구호 현장에서 일하기도 했죠. 아들에 관한 질문은 아들에게 해야겠지만….” “쿠바의 지도자 라울 카스트로, 마약왕 구스만 등 여러 논쟁적인 인물을 인터뷰하고 분쟁 지역에 직접 가기도 하는데 두려울 때는 없느냐”고 묻자 그는 “나는 어차피 죽는다. 다만 신이 이제 세상을 떠나야 한다고 말할 때까지는 살아 있지 않겠느냐”며 웃어 넘겼다. “영화로 세상을 구하려는 건 아닙니다. 지금 현실은 ‘아름다움으로 세상을 구하자’는 식의 동화로 해결하기엔 훨씬 더 가혹해요. 우리에겐 더 강력한 도구가 필요합니다. 지금도 구호 현장에는 수많은 영웅이 있습니다. 그들은 좀 더 대우받아야 해요.” 칸=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배우들은 박수 받는 걸로 먹고 살잖아요. 외국 관객이 박수를 쳐주는데 눈물이 살짝 나더라고요.” 제69회 칸국제영화제 비경쟁 부문에 초청된 영화 ‘곡성’(15세 이상)이 18일 오후(현지 시간) 프랑스 칸 뤼미에르극장에서 공식 상영됐다. 상영이 끝난 뒤 10여 분 동안 이어진 박수 때문인지 상영 다음 날인 19일 오전 곡성에서 주인공 종구 역을 맡은 곽도원(사진)은 연신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영화제 현장에 곡성 포스터가 안 보여 아쉬웠다”는 그에게 기자가 한국영화 포스터가 붙어있는 장소를 알려주자 “꼭 가서 사진 찍어야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가 처음 주연을 맡은 영화인 곡성은 국내서 19일 현재 관객 300만 명을 돌파하며 흥행 가도를 달리고 있다. “개봉 뒤에 관객들 반응이 궁금해 마스크 쓰고 극장 가서 몰래 보기도 했다”는 그는 “지금까지 6번 봤는데 볼수록 부족한 부분이 많이 보인다. 혼자 한 작품을 끌어간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새삼 느꼈다. 그렇게 많이 찍었는데도 ‘다시 했어야 했다’는 생각이 드는 장면들이 나온다”고 했다. “한겨울에 물을 뿌려서 꽁꽁 언 땅 위에서 며칠을 뒹굴기도 하고, 바위산에서 구르느라 온 몸에 상처가 생기기도 했죠. 같은 장면을 워낙 여러 번 다시 찍으니 며칠을 찍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 장면도 많아요. 그래도 나홍진 감독이 정답을 알고 있다는 걸 믿었기 때문에 괜찮았죠.” 완벽주의자로 유명한 나 감독의 작품인 데다 러닝타임 156분을 거의 혼자 이끌어가 촬영 현장에서 고생도 많았다. 나 감독은 18일 있었던 칸 영화제 기자회견에서 배우들에게 사과하기도 했다. 곽도원은 “배우들이 육체적으로 고생했다고 감독이 사과할 일은 아니다”라며 “현장에서 대충대충 찍어 관객한테 보여주는 것이 더 힘든 일이다. 관객 앞에서 창피할 때 제일 수치스럽고 죽을 거 같다. 현장에서 힘든 건 나중에 박수 받으면 다 해소된다”고 말했다. 그는 곡성에서 아내 역을 맡았던 배우 장소연과 촬영 도중 연인으로 맺어지기도 했다. 18일 공식 상영에도 나란히 자리해 포옹하고 손을 잡는 등 다정한 모습을 보였다. 그는 “촬영 현장에서 매일매일 치열하게 상의하고 의논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어진 것 같다. 사람이 참 참하더라”며 웃었다. “연기는 해도 해도 끝이 없는 것 같아요. 영화를 6번 다시 보며, 앞으로 또 단독 주연을 맡으면 곡성 때보다 시나리오도 훨씬 더 많이 읽고 준비를 많이 해야겠다고 새삼 다짐했어요. ” 칸=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칸국제영화제에 와서 해외 영화인들을 만나보니 ‘부산국제영화제가 올해 정말 열리냐’는 질문을 꼭 하더군요. 그들에게 영화제가 정상적으로 잘 열릴 거라는 믿음을 주는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16일 오후(현지시간) 프랑스 칸의 한 레스토랑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김동호 부산국제영화제 조직위원장 내정자(79)는 “영화제에 와서 이렇게 영화를 못 보는 것도 오랜만이다. 해외 영화제 관계자들과 미팅이 계속 있다”고 했다. 1996년~2001년 영화제 집행위원장, 2001년 이후 현재까지 명예집행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 위원장은 부산시와 영화제가 9일 신임 조직위원장으로 위촉하기로 합의하면서 영화제 첫 민간 조직위원장을 맡게 됐다. 이전까지 조직위원장은 당연직으로 부산시장이 맡아왔으며, 김 위원장은 24일 부산에서 열리는 임시 총회에서 관련 정관이 개정된 뒤 조직위원장으로 임명될 예정이다.“나 역시 영화제 운영이나 최근의 파행에 책임이 있는 인물이니 조직위원장 직을 맡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 생각해 고사했었다”는 그는 “영화제 창설자 입장에서 칸영화제를 넘기면 올해 영화제 개최가 정말로 불가능해지는 상황이 오니 어쩔 수가 없었다”며 “올해 영화제를 성공적으로 치르는 것, 영화제 독립성과 자율성을 지키면서 표현의 자유를 보장할 수 있는 정관 개정을 해내는 것이 저의 두 과제”라고 말했다. 이날 함께 자리한 강수연 영화제 집행위원장은 “칸 영화제 직전까지 부산시와 조직위원장 인선에 대해 합의가 되지 않아 영화제 비행기 표를 취소하기도 했었다“며 급박했던 협의 과정을 전하기도 했다. 김 위원장은 지난해까지 집행위원장을 맡았고 최근 횡령 혐의로 검찰에 기소된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에 대해서는 “불명예스럽게 퇴진을 한 것에 굉장히 가슴이 아프다. 사법부의 판단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지만 어떤 형태로든 명예회복이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희망을 갖고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또 시에서 요구하고 있는 영화제 내부 쇄신에 대해서는 “위원장으로 정식으로 임명된 뒤 구체적인 계획을 낼 것”이라며 “6년 동안 외부에 있으면 영화제에 무엇이 필요한지 많이 느낄 수 있었다. 어떤 조직이든 끊임없는 쇄신이 필요하다. 앞으로 강 집행위원장과 상의해서 쇄신을 추진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앞으로 영화제까지 5개월 밖에 남지 않아 시간이 촉박합니다. 파행이 거듭되며 영화제 준비가 늦어진 면도 있죠. 초청 영화의 수와 질 만큼은 예년에 준하도록 유지하려고 합니다. 영화제에 대한 지지와 성원을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칸=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아내가 집에서 혼자 8개월 갓난아기를 보고 있는데 저만 이렇게 칸에 와서 레드카펫을 해도 되는 건지….” 14일 오후(현지 시간) 프랑스 칸 뤼미에르 극장 인근에서 만난 연상호 감독(38)은 다소 상기돼 있었다. 그가 연출한 재난 영화 ‘부산행’은 제69회 칸 국제영화제 ‘미드나이트 스크리닝’ 섹션에 초청돼 ‘13일의 금요일’ 밤을 장식했다. ‘부산행’은 이혼하고 혼자 딸 수안(김수안)을 키우고 있는 펀드매니저 석우(공유)가 딸을 엄마에게 데려다주기 위해 부산행 KTX를 타며 시작한다. 같은 시간, 정체불명의 바이러스에 감염돼 좀비로 변한 사람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고 급기야 사회가 마비된다. 석우가 탄 KTX도 마찬가지, 생존자들은 살아남기 위해 악전고투하며 좀비보다 더한 괴물로 변해 간다. 이날 열린 공식 상영에서 관객들은 통쾌한 장면이나 액션 장면이 나올 때마다 박수를 치고 환호했다. 연 감독은 “영화가 끝나고 나오는데 외국 관객들이 좀비처럼 창에 붙는 제스처를 취하며 환호하는 걸 봤다. 이전 제 작품들에서는 보지 못했던 반응이라 그 자체로 재미있었다”고 했다. 연 감독은 ‘돼지의 왕’(2011년) ‘사이비’(2013년) 등 사회 고발 성격이 강한 어두운 분위기의 인디 애니메이션을 연출해 왔다. ‘부산행’은 그의 첫 실사 영화이자 가장 많은 예산(약 70억 원)을 쓴 영화이기도 하다. 연 감독은 “애니메이션은 파격적으로 제 상상을 구현할 수 있는 반면 영화가 완성되기 전에는 결과물을 볼 수 없어 답답한 점이 있다”며 “실사 영화는 그날 찍은 결과물을 바로 볼 수 있고, 여러 사람과 함께 아이디어를 내 작업하는 재미가 있었다”고 했다. 그는 첫 실사 영화에서 한국에서 시도되지 않았던 좀비물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좀비는 일종의 타자화된 군중이라고 볼 수 있다. 장르물이면서도 사회적인 함의를 지닐 수 있는 소재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최대한 많은 사람이 재미있게 볼 수 있으면서도 메시지를 즐길 수 있도록 균형을 맞추려 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차기작으로 또 다른 실사 영화를 준비 중이다. 7월 ‘부산행’을 개봉한 뒤 ‘부산행’의 전편 격인 애니메이션 ‘서울역’도 잇달아 개봉한다. 칸=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박찬욱 감독이 3년 만에 내놓은 신작 ‘아가씨’가 14일 오후(현지 시간) 프랑스 칸 뤼미에르극장에서 열린 제69회 칸국제영화제 공식상영에서 첫선을 보였다. ‘아가씨’는 한국영화로는 4년 만에 칸영화제 공식경쟁 부문에 초청됐다. 부모를 일찍 여의고 이모부(조진웅) 밑에서 자란 귀족 아가씨 히데코(김민희)와 그 재산을 노리는 백작(하정우), 백작을 돕기 위해 길거리 소매치기 신분을 숨기고 아가씨의 하녀가 된 숙희(김태리)가 벌이는 얽히고설킨 사기극이 중심 얼개다. 19세기 영국이 배경인 원작소설 ‘핑거스미스’를 1930년대 일제강점기로 옮겨왔다. 공식상영 다음 날인 15일 오전(현지 시간) 뤼미에르극장 인근 호텔에서 만난 박 감독은 “권선징악적 줄거리와 명쾌한 결말 등 상업영화 요소가 강해 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될지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며 “공식상영이 끝난 뒤 티에리 프레모 칸영화제 집행위원장이 ‘사람들의 박수를 봐라. 이게 상업영화에 보내는 박수냐’고 반문했지만 역시 칸영화제에 어울리는 영화는 아니라는 생각에 수상은 기대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시대 배경을 살린 아름다운 의상과 세트를 집요할 정도로 세밀하게 배치해 관객을 압도한다는 점에서 박 감독의 면모가 잘 살아 있다. 외롭고 예민한 아가씨와 그런 아가씨에게 연민과 사랑을 느끼는 숙희의 동성애 베드신 묘사도 적나라하다. 데뷔작에서 능수능란하게 역할을 소화하며 전라 노출까지 감행한 김태리, 섬세한 감정 연기로 새로운 면모를 보인 김민희도 인상적이다. 동화를 연상시키는 이야기 구조이되 남성 대신 여성이 서로를 구원하는 것으로 치환한 점, 일제강점기 조선에 근대가 이식되던 시대상을 담아낸 점 등은 영화를 풍부하게 해석할 여지를 제공한다. 하지만 박 감독의 전매특허였던 피가 난무하는 폭력 장면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줄거리도 여성 간의 사랑이라는 점을 제외하면 통속극에 가깝다. 이미 레즈비언 로맨스 ‘캐롤’(2015년)과 파격적인 성애 묘사로 화제를 모으며 2013년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가장 따뜻한 색, 블루’가 나온 상황에서 ‘아가씨’가 얼마나 새롭게 받아들여질지는 의문이다. 박 감독은 “‘가장 따뜻한 색, 블루’를 봤지만 ‘아가씨’의 베드신은 격정적이기보다는 부드럽고 대화에 가까운 베드신”이라며 “스릴러 영화의 기본 구조에 범죄와 음모를 다룬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고 말했다. 현지 반응은 엇갈리고 있다. 공식 상영에서 약 3000석의 객석을 가득 메운 관객들은 영화 시작 전 박 감독과 하정우, 김민희, 김태리, 조진웅 등 출연 배우들이 등장하자 환호와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영화가 끝난 뒤에는 엔딩크레디트가 미처 다 올라가기도 전에 관객 일부가 빠져나갔고, 기립박수도 5분을 채 넘기지 못했다. 이날 오전 기자 시사 뒤에 열린 기자회견 역시 비경쟁 부문에 초청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신작 ‘빅 프렌들리 자이언트’ 시사와 시간이 겹치면서 빈자리가 여럿 눈에 띄는 등 다소 썰렁한 분위기였다. 전 세계 주요 매체 평론가들의 평점을 종합하는 스크린 인터내셔널 데일리의 평균 평점은 2.2점으로 현재까지 상영된 경쟁작 중 중위권에 머물렀다. 프랑스 영화 매체 평점을 종합한 ‘르 필름 프랑세즈’의 평균 평점은 1.73점으로 15일 현재까지 최하위에 그쳤다. 외신들은 “아름답고 때론 놀랍지만 그럼에도 점점 지루해진다”(영화 전문 매체 ‘더 랩’) “변태적이고 에로틱한 스릴러이자 사랑 이야기로 기대를 충분히 충족시킨다”(영화 전문 매체 ‘할리우드리포터’) 등 서로 다른 평을 내놓고 있다. 칸=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지난 20년 동안 부산국제영화제가 견지해온, ‘지원은 받지만 절대 간섭은 받을 수 없다’는 원칙을 철저하게 지켜나갈 것입니다.” 김동호 부산국제영화제 조직위원장 내정자(79)가 15일 오후(현지시각) 프랑스 칸에서 열린 부산국제영화제 공식 오찬에서 “표현의 자유를 지키는 최선의 방파제 역할을 할 것”이라고 조직위원장 직 수락 심경을 밝혔다. 부산국제영화제 초대 집행위원장(1996~2010년)과 명예집행위원장(2011년~현재)을 지낸 김 내정자는 이달 말 열리는 영화제 임시총회에서 첫 민간 조직위원장으로 선임될 예정이다. 이전까지 영화제 조직위원장은 부산시장이 당연직으로 맡아왔다. 김 내정자는 크리스토퍼 테레이테 베를린국제영화제 포럼 집행위원장, 알베르토 바바라 베니스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크리스찬 전 칸국제영화제 수석프로그래머 등 국내외 영화인 100여 명이 참석한 이날 행사에서 “제가 조직위원장으로 돌아가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해서 처음에는 사양했지만 영화제가 계속 파행을 거듭하는 것을 보고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어 중책을 다시 맡기로 했다”며 “프로그래밍의 자유, 영화를 선정하고 상영하는 자유를 철저히 보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 내정자는 또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 국내외 영화인 여러분이 참여해주시는 것이 부산시, 또는 정부 관계자들에게 영화제의 명성과 신뢰를 확인시켜주는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당부했다. 강수연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도 이날 오찬에서 “며칠 전만 해도 올해 영화제 개최가 불확실했는데 이 자리에 서게 돼서 감회가 새롭다”며 “이미 은퇴한 분(김 내정자)에게 다시 힘든 시기에 손을 내민 것이 죄송하지만 별다른 선택이 없는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부산국제영화제와 부산시가 김동호 부산국제영화제 명예집행위원장(79·사진)을 조직위원장으로 추대하고 올해 영화제를 우선적으로 치르는 데 9일 합의했다. 이로써 2014년 다큐멘터리 ‘다이빙 벨’ 상영 취소 여부를 놓고 충돌한 이후 계속돼 온 시와 영화제 간의 갈등이 일단락될 것으로 전망된다. 영화제 측은 이날 “준비가 시급한 올해 영화제를 우선적으로 치르되, 이에 필요한 최소한의 정관 개정을 먼저 진행하기로 했다”며 “5월 중 임시총회를 열어 부산시장을 조직위원장 당연직으로 규정한 정관을 개정하고 김동호 위원장을 조직위원장으로 선출할 것”이라고 밝혔다. 시와 영화제는 올해 영화제를 치른 뒤인 11, 12월경 다른 정관 개정에 대한 협의를 진행해 2017년 2월 열리는 정기총회에서 정관을 개정할 것으로 알려졌다. 영화제는 그동안 영화제의 독립성과 자율성 보장을, 시는 영화제 내부 혁신과 지역 참여 인사 비중을 늘려줄 것을 요구하며 갈등을 빚어 왔다. 올해 2월에는 서병수 부산시장이 이와 관련해 조직위원장을 사퇴하고 민간에 조직위원장직을 이양하겠다는 뜻을 밝혔지만 조직위원장 인선과 선출 방식 등을 놓고 양측이 협의점을 찾지 못했다. 이 과정에서 지난달 18일에는 영화인 단체들이 모여 결성한 부산국제영화제 지키기 범영화인 비상대책위원회가 “영화제 독립성이 보장되지 않으면 부산영화제를 보이콧하겠다”고 밝혀 올해 영화제가 자칫 좌초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기도 했다. 가장 첨예한 갈등을 빚어 오던 조직위원장 인선에 합의했지만, 아직 갈등의 불씨는 남아 있다. 영화제 관계자는 “조직위원장을 민간에 이양한다는 점 외에 정관 개정의 구체적인 내용이나 방향은 정해지지 않았다”며 “올해 영화제를 치른 뒤 김동호 위원장 주도하에 정해질 것”이라고 전했다. 이날 시는 보도자료를 통해 정관 개정의 주요 방향으로 영화제의 독립성과 책임성 간의 균형 및 지역참여성 제고, 집행위원장에게 집중된 권한 재조정 등을 들어 영화제와 시의 시각차가 여전하다는 점을 드러냈다.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외지인(구니무라 준)이 나타난 뒤 시골 마을에서 연쇄 살인사건이 벌어진다. 사건을 수사하던 경찰 종구(곽도원)는 딸 효진(김환희)이 사건 피해자들과 비슷한 증상을 보이며 아프기 시작하자 점점 초조해진다. 여기에 의문의 여인 무명(천우희)과 효진을 고치기 위해 데려온 무당 일광(황정민)까지 얽히며 종구는 더욱 혼란 속에 빠진다. 11일 개봉하는 나홍진 감독(42·사진)의 ‘곡성’(15세 이상)은 종잡을 수 없는 영화다. 스릴러의 뼈대 위에 블랙코미디, 오컬트(초자연적 현상을 다루는 장르), 좀비물에 아빠와 딸의 애틋한 드라마까지 얹었다. 나 감독은 자칫 덜컥거릴 수도 있는 영화의 이음매를 단단히 틀어쥔 채 결말까지 숨 쉴 틈 주지 않고 관객을 몰아붙인다. 이렇게 강렬한 에너지를 담은 영화를 연출한 그이지만 개봉을 앞둔 긴장감은 어쩔 수 없는 듯했다. 9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나 감독은 “잘 자지를 못한다. 피곤하니 기절하듯 잠들긴 하는데 다시 깬다”고 했다. ―전작 ‘추격자’(2008년)와 ‘황해’(2010년)에서도 살인사건이 소재였지만 ‘곡성’은 초점이 다르다. 사건의 피해자라 할 수 있는 종구의 심경이 영화의 중심이다. “이번엔 피해자의 이야기를 좀 더 집중적으로 다루고 싶었다. 사건 피해자들은 대체 왜 이런 일을 당하는가,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설명 이상의 근원을 파고들다 보니 인간의 죽고 사는 문제, 인간과 신의 문제까지 가게 됐다.” ―주제는 철학적이지만 영화의 외양은 공포물에 스릴러다. 웃음이 터지는 장면도 많다. “진지한 주제인 만큼 재미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홍진 영화라고 하면 일단 관객이 공격적으로 되는 것 같다. 앉아서 ‘한번 해봐’ 하고 팔짱을 끼는 느낌이랄까. 관객의 반응, 그 반응의 비율까지 계산했다. 이전에는 센 장면을 묘사하며 스릴을 만들어 냈다면 이번에는 센 장면을 보여줄 만한 순간에 웃음을 주자, 이완시킨 뒤에 낙차를 주자고 생각했다.” ―그렇게 스타일을 바꾼 이유가 있나. “‘황해’ 이후 3년 정도 잠을 못 잘 정도로 속이 상해 있었다. 여러 가지 이유로 나 자신에게 화가 났다. (‘황해’는 촬영 기간만 1년여에 제작비 약 100억 원이 들었지만 관객 약 230만 명을 모으는 데 그쳤다.) 수없이 작품을 해체하고 과정을 복기했다. 그런 뒤인 만큼 ‘곡성’은 시나리오를 쓰는 데만 2년 8개월이 걸렸다. 결말 30분 분량은 뭘 써도 불만족스러워서 7개월 정도 손을 놓고 있기도 했다. 장르영화가 이럴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남들이 참고할 만한 영화를 찍고 싶었다.” ―효진 역의 김환희(14)가 특히 인상적이었다. 어린 나이에 힘든 장면을 많이 소화했다. “촬영 전에 6개월 정도 체력적, 정신적으로 철저히 준비를 했다. 시나리오도 전체를 보여주기보다는 부모님이 걸러서 보여주도록 했다. 개인적으로 그 친구는 천재라고 생각한다. 쑥스러워하다가도 촬영만 들어가면 돌변하는데, 다들 ‘대체 우리가 뭘 본 거지’라고 할 정도였다. 그런 배우와 영화를 찍는 것이 영광스럽기까지 했다.” ―배우들이 하나같이 ‘결과에 만족한다’고 말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바꿔 말하면 과정이 그만큼 힘들었다는 얘기다. 곽도원은 나 감독을 가리켜 ‘독하다’는 말도 했는데…. “평상시에는 보시다시피 좀 허술하고 게으르고 나태하고 실없는 소리만 한다. 그래서 영화를 할 때 바짝 집중할 수 있는 거 같기도 하다. 사실 이젠 뭐가 먼저인지 모르겠다. 현장에서 그만큼 긴장하기 때문에 평소에 이런 상태인지, 아니면 반대인지.” ―11일 개막하는 칸국제영화제 비경쟁부문에 초청됐다. 이번이 세 번째 초청인데…. “서양 사람들은 완전히 다르게 볼 것 같아서 궁금한데, 사실 지금은 칸이고 뭐고 개봉 전이라 정신이 없다. 영화를 ‘까기’ 전까지의 이 시간이 정말 고통스럽다.”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아무리 수요가 많아도 이건 좀 아니다.” vs “이만큼 재미있는 영화가 있나?” 영화 ‘캡틴 아메리카: 시빌워’가 올해 첫 1000만 영화 기록을 무난히 달성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시빌워’는 7일 관객 695만 명을 기록했다. 지난해 관객 약 1050만 명을 기록한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과 비슷한 속도다. ‘시빌워’는 개봉 첫날(지난달 27일) 관객 약 72만9000명을 기록하며 종전 1위인 ‘명량’의 68만3000여 명을 넘어서기도 했다. 이런 폭발적인 흥행에는 스크린 독과점 영향이 크다는 지적도 나온다. 개봉 첫날 ‘시빌워’의 스크린 수는 1863개로 출발했고, 개봉 4일 차엔 1990개에 달했다. 올해 초 독과점 논란을 겪었던 ‘검사외전’(최고 1812개)보다 많다. 현재도 스크린이 1700개 이상이다. 누리꾼들은 이 같은 독과점에 대해 “재미가 있나, 없나를 떠나 이 정도의 독과점은 정당화될 수 없다”는 의견부터 “‘시빌워’를 피해서 개봉할 생각만 하는 국내 투자배급사들도 문제” “‘시빌워’ 안 튼다고 사람들이 다른 재미없는 영화를 보지는 않을 것” 등의 의견을 내놓았다.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한국 영화가 다시 한번 3대 국제영화제 수상의 영광을 얻을 수 있을까. 11∼22일(현지 시간) 프랑스 칸에서 열리는 제69회 칸 국제영화제에 박찬욱 감독의 신작 ‘아가씨’가 경쟁 부문에 진출해 황금종려상(최우수작품상) 후보가 됐다. 한국 영화로는 4년 만이다.○ ‘스토커’ 이후 3년 만에 대작 내놔 박 감독이 2013년 ‘스토커’ 이후 3년 만에 제작비 100억 원 이상을 들여 내놓는 ‘아가씨’는 1930년대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귀족 아가씨(김민희)와 그의 재산을 가로채려는 백작(하정우), 그리고 하녀(김태리)의 속고 속이는 사기극이다. 2004년 ‘올드보이’로 2등상 격인 심사위원대상, 2009년 ‘박쥐’로 심사위원상을 수상한 박 감독이 “기존 작품과는 다르게 찍었다”고 말하는 만큼 수상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나온다. ‘아가씨’ 외에도 나홍진 감독의 ‘곡성’이 비경쟁 부문에, 연상호 감독의 ‘부산행’이 비경쟁 부문 내 미드나이트 스크리닝 섹션에 초청됐다. 나 감독은 ‘추격자’와 ‘황해’에 이어 ‘곡성’까지 연출작 세 편이 모두 초청되는 기록을 세웠다. ‘곡성’은 외지인(구니무라 준)이 나타난 뒤 마을에서 벌어지기 시작한 연쇄 살인사건과, 그 범인을 쫓는 경찰 종구(곽도원)의 이야기다. ‘부산행’은 연 감독의 첫 실사 영화로 연 감독은 제65회 칸 영화제 감독주간에 애니메이션 ‘돼지의 왕’으로 초청된 바 있다. 오동진 영화평론가는 “수상작 선정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심사위원장 조지 밀러 감독의 스타일이 박 감독과 맞을지가 관건”이라며 “수상과 관계없이 최근 3, 4년 동안 유럽 영화제에서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한국 영화가 주요 부문에 진출했다는 데 의의를 둘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올해 칸 영화제는 ‘어벤저스’급 라인업 ‘아가씨’와 경쟁하는 경쟁 부문 초청작의 면면도 ‘사상 최고’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화려하다. 경쟁 부문 초청작 21편 중 다르덴 형제, 페드로 알모도바르, 짐 자무시, 올리비에 아사야스, 켄 로치 감독 등 칸 영화제의 사랑을 받아온 거장들이 대거 포진했다. 황금종려상 수상 경력이 있는 감독만 4명에 달한다. 이 중 자무시 감독은 ‘패터슨’으로 경쟁 부문에 진출한 가운데 로커 이기 팝을 주인공으로 한 음악 영화 ‘김미 데인저’도 미드나이트 스크리닝 섹션에 초청돼 두 작품이 한꺼번에 영화제에서 상영된다. 2014년 ‘지미스 홀’로 칸 영화제에 초청됐을 당시 은퇴설이 돌았던 노장 로치 감독의 신작 ‘아이, 대니얼 블레이크’에도 관심이 쏠린다. 지나치게 보수적, 남성 중심적이라는 비판을 의식한 듯 여성 감독의 작품 3편이 올라 예년보다 많다. 영국 출신 앤드리아 아널드 감독이 연출한 ‘아메리칸 허니’는 여행 잡지 판매원으로 일하는 10대 소녀를 중심으로 한 로드무비다. 프랑스의 배우 출신 니콜 가르시아 감독은 제2차 세계대전 직후를 배경으로 한 ‘프롬 더 랜드 오브 더 문’으로, 독일의 마렌 아데 감독은 성인이 된 딸과 관계를 회복하려는 아버지의 이야기 ‘토니 에르드만’으로 초청됐다.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한때 청순의 대명사였다. 까만 단발머리, 우윳빛 피부, 커다랗고 검은 눈동자. 천진한 표정과 귀여운 목소리로 뭇 남성의 심금을 울렸던 그는 말 한마디, 행동 하나로도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하는 스타 중의 스타였다. 한국에서도 ‘철도원’ ‘비밀’이나 ‘사랑 따윈 필요 없어, 여름’ 등으로 큰 인기를 끌었던 히로스에 료코(36)다. 료코의 현주소를 볼 수 있는 최근작을 꼽으라면 아마도 3월 일본 후지TV(국내는 채널J)에서 방영된 드라마 ‘나오미와 카나코’일 것이다. 그가 맡은 나오미 역은 철저히 여성에게 매력적인 캐릭터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가정폭력에 시달렸던 그는 절친한 친구 카나코가 남편에게 폭행당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카나코를 폭력에서 벗어나도록 하기 위해 함께 남편을 죽이고 완전범죄를 꾸미는 것. 드라마에서 남녀 간의 로맨스는 철저히 배제돼 있다. 살인을 저지른 뒤 유사 애인 관계나 다름없는 나오미와 카나코는 사람을 죽였다는 죄책감보다는 폭력에서 놓여난 해방감에 젖는다. 남편을 죽이는 순간의 공포와 광기에 찬 표정, 자신보다 연약한 친구를 지탱하는 굳건한 눈빛에서 과거의 아이돌 료코는 찾아보기 힘들다. 지난달 27일 개봉한 영화 ‘하나와 미소시루’(전체관람가)도 배우 료코의 또 다른 진면목을 확인할 수 있는 영화다. 료코는 성악과 대학원에 다니던 꽃다운 나이에 유방암 판정을 받고 긴 투병 생활을 하는 치에 역을 맡았다. 딸 하나(아카마쓰 에미나)가 자신과 달리 건강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미소시루(일본식 된장국) 끓이는 법을 아이에게 알려주는 따뜻하고 의연한 엄마이자, 평생 자신의 뒷바라지를 한 남편에게 알 듯 말 듯 마음을 표현하는 귀여운 아내이기도 하다. 실제로도 두 아이의 엄마인 그는 이 영화에서 특유의 귀여운 매력에 배우로서의 연기력을 배합하는 일종의 실험을 한다. 사실 료코는 결혼과 이혼, 그리고 재혼을 한 뒤 또다시 훨씬 더 연하의 남자 배우와 스캔들을 일으키는 등 사생활에서는 더 이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착하고 순수한 소녀가 아니라는 점을 충분히 보여준 바 있다. 반면에 연기에서는 화면에서 예뻐 보여야 하는 아이돌 료코와 등장인물 그 자체이고자 하는 배우 료코 사이에 균열이 감지되곤 했다. 하지만 앞에서 언급한 두 작품에서 료코는 이 균열을 메우는 방법을 찾아낸 듯하다. 귀엽고 맑은 표정 속에 살의를 담고, 생기 가득 넘치는 얼굴로 십수 년 병마와 싸워 온 환자의 지친 표정을 지으면서. 그렇게, 아이돌은 배우가 되었다. 이새샘기자 iamsam@donga.com}

“재즈 음악은 세계적인 사랑을 받고 있죠. 전주국제영화제의 관객들이 영화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벌써부터 기대됩니다.”(로버트 뷔드로 감독) 재즈 선율이 전주의 밤하늘을 수놓은 가운데 제17회 전주국제영화제가 28일 전주 고사동 야외상영장에서 개막했다. 개막작 ‘본 투 비 블루’는 전설적인 재즈 트럼펫 뮤지션 쳇 베이커(1929~1988)가 약물 중독으로 몰락한 뒤부터 재기하기까지를 다룬 전기영화. 개막식에 앞서 이날 오후 영화를 연출한 로버트 뷔드로 감독(42), 영화음악을 담당한 재즈 뮤지션이자 작곡가 데이빗 브래드 음악감독(41), 이충직 영화제 집행위원장과 이상용 프로그래머가 참석한 가운데 개막작 기자회견이 전주영화제작소에서 열렸다. 뷔드로 감독은 “한국 방문은 처음이다. 새로운 관객을 만나게 돼 기쁘다”며 “쳇 베이커나 재즈 음악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라도 공감할 수 있는 영화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영화는 베이커의 인생 전체를 담기보다는 1960년대 후반이라는 비교적 짧은 시기에 집중한다. 뷔드로 감독은 “상투적인 천재 음악가의 전기 영화와 다른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며 “베이커 역을 맡은 배우 이썬 호크는 외모가 베이커의 40대 때와 흡사할 뿐 아니라 그의 음악적 감수성도 닮아 있는 배우였다”고 말했다. 호크는 ‘본 투 비 블루’에서 직접 노래를 부르는 한편 트럼펫 연주 장면도 대역 없이 완벽하게 소화했다. 브래드 음악감독은 “호크는 8개월 동안 트럼펫과 보컬 연습을 했는데 트럼펫을 비행기에서도, 호텔에서도 늘 갖고 다니며 연습했다”며 “손가락 움직임은 물론 입 모양이나 호흡법까지 모사했고, 원래는 저음인 자신의 목소리도 베이커의 높고 소년 같은 목소리로 완벽하게 바꿨다”고 말했다. 그는 이날 개막식에서 ‘오버 더 레인보우’와 영화 삽입곡인 ‘렛츠 겟 로스트’를 직접 연주하기도 했다. “‘본 투 비 블루’는 단순히 한 뮤지션의 삶을 다룬 영화가 아니라 사랑과 인종, 약물중독 문제 등 보편적인 주제를 다룬 영화입니다. 그래서 ‘마이 퍼니 발렌타인’처럼 누구나 좋아하고 익숙한 곡을 많이 넣었죠. 좀더 많은 관객들이 공감하길 바랍니다.” (뷔드로 감독)전주=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제13회 서울환경영화제가 다음 달 6∼12일 씨네큐브, 스폰지하우스 등 서울 광화문 일대 영화관과 서울역사박물관에서 개최된다. 초청작은 40개국 영화 85편으로 ‘한국 환경영화의 흐름’ ‘포커스―세계화의 흐름’ ‘문명의 저편’ 등 7개 섹션으로 나눠 상영된다. 영화제 측은 “난민 문제나 복지 등 삶의 환경 전반을 아우를 수 있는 영화들을 초청했다”고 설명했다. 개막작은 마이클 무어 감독의 다큐멘터리 ‘다음 침공은 어디?’다. 무어 감독은 프랑스, 핀란드 등 해외 여러 나라의 제도를 통해 미국의 사회문제를 진단한다. 먹을거리 문제부터 성차별까지 한국에서도 부각되는 이슈를 다룬다. 한국 영화 중에서는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소재로 한 김기덕 감독의 영화 ‘스톱’, 지역 개발 사업에 밀려나는 토착민들의 현실을 다룬 김정인 감독의 ‘내사랑 한옥마을’ 등이 선보인다. 해외 영화로는 칠레의 아름다운 풍광 안에 얽힌 세계화 문제를 담아온 파트리시오 구스만 감독의 ‘자개단추’ ‘빛을 향한 노스탤지어’, 미하엘 글라보거 감독의 ‘매춘의 그림자’ ‘대도시’ ‘노동자의 죽음’ 등이 주목할 만하다.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북한은 거짓과 연출이 만연한 사회입니다. 진미를 주인공으로 정한 뒤 진미 부모의 직업도, 사는 집도 바뀌었죠. 새 집 찬장을 열었더니 텅 비어 있었어요. 북한 당국이 저를 통해 세상을 속이려 한다고 느꼈습니다.” 27일 개봉하는 다큐멘터리 영화 ‘태양 아래’(전체 관람가)는 북한 최대 명절 중 하나인 태양절(김일성의 생일) 축하 공연 무대에 설 예정인 8세 진미가 주인공이다. 영화 초반 카메라는 깨끗하고 잘 정리된 평양 거리, 화목하고 다정한 진미네 집 안 풍경을 비추지만 카메라 앵글 바깥으로 시선을 돌리면 이면의 진실이 정체를 드러낸다. 이 작품을 연출한 비탈리 만스키 감독(53)은 우크라이나에서 태어나 러시아에서 활동하며 다큐멘터리 10여 편을 연출한 중견 감독이다. 그는 2014년 북한에서 각각 약 20일 동안 두 차례 촬영을 진행했다. 촬영 전후에 계속 카메라를 켜두는 등의 방법으로 북한 정부가 어떻게 주민들의 행동과 생각을 통제하고 억압하는지 적나라하게 담았다. 영화 개봉에 즈음해 내한한 그를 25일 오후 서울 중구의 한 호텔에서 만났다. 그는 “진미가 등교하는 장면을 찍고 싶다고 하면 막다른 길에 깨끗하게 청소한 버스와 승객들을 데려다 놓고 정류장이 있는 것처럼 연출하는 식으로 촬영이 진행됐다”고 했다. 북한 당국은 매일 촬영 분을 가져가 검열하고 구미에 맞지 않은 장면은 삭제했고, 당초 합의했던 세 번째 촬영도 이유 없이 취소했다. 2015년 영화가 처음 공개되자 러시아 정부에 상영을 막아 달라고 항의하기도 했다. “저 역시 현재 우크라이나 지역에서 태어나 옛 소련 시대를 살았지만 지금 북한 상황은 가장 통제가 심했던 스탈린 시절 이상입니다. 북한 주민은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체제의 일원이 되고 죽는 순간까지 그 속에 갇혀 있죠. 그들이 배운 유일한 진리이자 진실은 북한 정부의 거짓말입니다.” 영화 속에서 북한 관료들은 진미와 부모의 대화 하나하나까지 지시한다. 만스키 감독은 “더 놀라운 건 모든 사람이 그렇게 연기할 준비가 돼 있다는 점”이라며 “진미 아빠가 일하는 것으로 연출된 봉제공장에 봉제사 100여 명이 있었는데 그들은 진미 아빠를 본 적도 없는데도 관계자들이 시키는 대로 연기를 해냈다”고 말했다. 최근 서구를 중심으로 북한에 호기심을 느끼고 관광을 가는 사람이 늘고 있다. 만스키 감독은 이런 현상에 대해 “호기심과 관심이 생기는 것은 이해하지만 그런 행동의 의미는 정확히 알아야 한다”며 “관광객들이 지불하는 달러는 북한의 굶주리는 아이들이 아니라 김정은의 고급 승용차를 사는 데 사용된다”고 했다. “어제 서울 거리를 걷다 노숙인을 봤습니다. 그런 이들을 보다 보면 ‘뭔가 잘못됐다, 북한처럼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에게 북한의 실상을 보라고 권유하고 싶습니다. 북한의 이런 재앙에 대해 연민을 느끼고 공감하기를, 그리고 개인의 인권과 자유의 가치를 이해하기를 바랍니다.”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