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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권이 모든 수단을 동원해 진실을 억압하고 나를 망각 속에 묻어둘 것임을 안다. 하지만 내 목소리는 사그라지지 않을 것이다. 나를 저주하라. 전혀 개의치 않는다. 역사가 나를 무죄라 하리라.” 한국이 전후(戰後) 혼란에 휩싸여 있던 1953년 9월. 중남미 쿠바의 법정에서는 27세 청년 피델 카스트로가 이같이 외쳤다. 카스트로는 풀헨시오 바티스타 독재정권을 뒤집기 위해 160여 명의 동지와 쿠바에서 규모가 두 번째로 큰 군사기지 몬카다 병영을 습격하다 법정에 붙잡혀 왔다. 변호사이던 그가 스스로를 변호하며 남긴 이 최후진술은 이후 쿠바 반(反)정부 운동의 선언문으로 남았다. 열렬히 독재에 항거했던 그는 아이러니하게도 후세에 ‘독재의 아이콘’이라는 오명을 얻게 됐다.○ 반항아에서 혁명가로 카스트로는 1926년 8월 스페인에 맞서 쿠바 독립운동에 헌신했던 농부 앙헬 카스트로 이 아르기스와 가정부였던 리나 루스 곤살레스 사이에서 태어났다. 8세 때 가톨릭학교의 세례를 거부할 정도로 어려서부터 반항아였던 카스트로는 법에 흥미를 갖고 아바나대 법학과에 진학했다. 대학에서는 달변가이면서 운동도 잘해 친구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았다. 우연히 반정부 운동에 참여하게 된 그는 학생운동 배후자로 지목됐다. 사실 학생운동에 그다지 적극적이지 않았지만 정부의 탄압을 직접 받게 되자 저항 의식을 키우게 됐다. 학생운동에 더 깊이 빠져든 카스트로는 1953년 게릴라전으로 몬카다 병영을 습격하다 실패해 15년형을 선고받게 된다. 하지만 카스트로 수감에 분노한 민중이 거세게 항의하며 카스트로는 옥살이 2년 만에 특별사면을 받았다.○ 경제개혁 단행, 미국과 핵전쟁 위기 자유의 몸이 된 카스트로는 1955년 멕시코로 망명해 혁명동지인 체 게바라를 만난다. 중남미 해방운동가들과 교류하며 게릴라 전술을 배우고 쿠바혁명을 일으킬 기회를 엿봤다. 멕시코에서 혁명세력을 모으던 카스트로는 1956년 11월 12인승 하얀색 요트 ‘그란마’에 동지 82명을 태우고 쿠바로 향했다. 정부군의 공격으로 동지들이 목숨을 잃었지만 생존자들끼리 똘똘 뭉쳐 시에라마에스트라 산맥을 거점으로 삼아 게릴라전을 벌였다. 민중의 지지를 얻은 카스트로 반군은 다음 해 1월 정부군에 첫 승리를 거뒀고 1958년 12월 마침내 독재자 바티스타가 도주하며 혁명에 성공했다. 다음 해 총리에 취임한 카스트로는 2006년까지 거의 반세기 동안 쿠바를 통치했다. 집권 첫해 미국을 비롯한 외국 자본을 몰수하고 토지 개혁을 대대적으로 단행했다. 1961년 1월 미국과 국교를 끊었고, 이듬해 소련의 중거리 미사일을 들여오는 문제로 미국과 핵전쟁 직전의 위기까지 치달았다. 카스트로 정부는 폐쇄적인 경제를 고수하지는 않았다. 1990년 초부터 외국인 관광산업을 활성화하고 외국인 투자가들이 직접 투자하도록 규제를 풀었다. 1992년부터는 비효율적인 국영기업을 개혁하고 영세 자영업을 지원했다. 정치적으로는 법을 개정해 종교적 차별을 금했고 직접선거·비밀선거를 확대했다. 이때 카스트로는 자신의 아들 디아스의 부패를 인정하고 그를 원자력위원회 집행위원장에서 쫓아내기도 했다. 카스트로의 개혁 작업 가운데 무상교육과 무상의료 정책은 높은 평가를 받는다. 쿠바는 어려운 경제 여건 속에서도 이 정책을 유지하고 있다. 그는 명연설가였다. 위기 때마다 유려한 연설로 민심을 다독였다. 1970년 5월 한 대중 연설에서는 “여러분이 내가 솔직하길 원한다면 우리는 설탕 1000만 t 생산에 실패할 것이라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다. 어쩌면 이건 내게 있어서도 혁명 이래 최악의 경험인지도 모른다”고 고백했다. 자신의 정치생명이었던 ‘설탕 1000만 t 생산’이 실패하자 잘못을 인정하고 국민들에게 용서를 구한 것이다.○ 독재에 저항하던 카스트로, 독재자 평가 정치인으로서 그는 철저한 독재자였다. 2008년 2월 행정부 수반인 국가평의회 의장직을 동생인 라울에게 물려줄 때까지 그는 당과 군, 입법부와 행정부 등 모든 국가기관의 최고위직을 독차지했다. 카스트로는 혁명 이후 체제 반대 세력들을 총살하거나 투옥하면서 철권을 휘둘렀다. 쿠바인들에게 정치적 자유는 극히 일부분에 불과했다. 미국 유럽 등의 인권단체들은 “카스트로 정권이 정적 제거를 비롯해 반체제 인사들에 대해 고문을 자행했다”며 “쿠바의 인권 침해 현상이 심각한 수준”이라고 목소리를 높여 왔다. 반체제 인사인 마르타 베아트리스 로케는 “카스트로를 3개의 E로 표현할 수 있는데 병적 자기중심적(Egomaniacal)·독선적(Egotistical)·이기적(Egocentric)인 인물”이라며 “그를 독재자로 기억할 것”이라고 말했다. 카스트로는 여성 편력이 심했다. 그는 공식적으로 두 번 결혼했고 여성 3명과의 사이에서 9명의 자식을 뒀다. 비밀스러운 불륜을 저질렀고 자식이 더 많다는 소문도 있다. 카스트로는 1992년 “사생활은 홍보나 정치를 위한 도구가 돼서는 안 된다”며 사생활 보호를 강조했다.○ 화해의 ‘포스트 카스트로’ 시대 카스트로는 2008년 공식적인 권좌에서 물러난 뒤로도 언론에 칼럼을 쓰고 트위터로 국민과 소통하며 다른 남미 국가들의 민족주의 운동을 지원했다. 녹색 군복을 즐겨 입었던 그는 올 들어 유독 독일 스포츠 브랜드 아디다스 체육복을 입어 눈길을 끌었다. 리커창(李克强) 중국 총리,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을 만나는 공식적인 자리에서도 체육복을 입었다. 그가 아디다스를 아끼는 이유는 명확히 알려진 바가 없지만 아디다스가 쿠바 국가대표팀을 후원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그가 정계에서 은퇴한 후 미국과 쿠바는 2014년 12월 53년간의 적대 관계를 청산하고 국교 정상화를 선언했다. 2015년 8월 아바나 주재 미국대사관이 생겼고 올해 2월 두 나라를 오가는 정기 항공 노선이 다시 뚫렸다. 올 3월에는 쿠바에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라울의 정상회담이 88년 만에 열렸다. 역사의 변화를 지켜보던 그는 90세 생일이던 올해 8월 “우리에게 제국은 필요 없다”며 미국을 여전히 경계했다. 카스트로는 올 4월 아바나에서 열린 공산당 제7차 전당대회 폐회식에 수척해진 모습으로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나는 곧 아흔 살이 된다. 곧 다른 사람들과 같아질 것이며 시간은 모두에게 찾아온다”는 발언은 사실상 고별사가 됐다.조은아 achim@donga.com·한기재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보호무역 정책에 대해 중국이 처음으로 ‘무역전쟁’을 공식 경고했다. 중국은 경고와 함께 미국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폐기를 호기로 삼아 세계의 경제 중심을 꿰찰 작업에 나섰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2일 트럼프 새 행정부가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고 중국산 제품에 고율 관세를 매기겠다는 대선 공약을 실천에 옮기면 중국이 보복하겠다는 뜻을 미국에 통보했다고 보도했다. 워싱턴에서 21일부터 사흘간 열리고 있는 미중 고위급 무역회담에 미국 측 대표로 참석한 페니 프리츠커 상무장관(사진)은 WSJ 인터뷰에서 “고위급 회담에 참석한 중국 관료들이 (미국이 중국산 수입품에 고율 관세를 부과하면) 보복에 나설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미국 노동자와 산업은 물론이고 미국 경제가 타격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 당선인이 취임 100일, 200일 계획을 통해 중국에 대한 보호무역 정책을 공개한 뒤 중국 정부가 내놓은 첫 반응이다. 프리츠커 장관은 트럼프 당선인이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추진해 온 TPP에서 탈퇴하겠다고 밝힌 것에 대해서도 “자국의 통상 어젠다를 공격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중국에 큰 이점을 주는 것”이라며 “중국에 (자유무역의) 기반을 넘겨주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또 “아시아는 물론이고 전 세계에 걸친 미국의 경제적 전략적 이익에도 타격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앞서 19, 20일 페루 리마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참석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추진 의사를 밝히며 미국을 대신해 아태 지역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차지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내비쳤다. 트럼프 당선인이 TPP 폐기 방침을 밝히자 중국이 세계 자유무역의 중심국이라고 자처한 것이다. 미국은 일부 국가가 중국 주도의 RCEP에 합류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면서 세계 경제중심국 자리를 빼앗길까 불안해하고 있다. 환추(環球)시보는 22일 “이변이 없는 한 TPP라는 태아는 복중(腹中) 사망이 정해졌다”며 “오바마 행정부가 추진했던 아시아재균형 정책의 한 축이었던 TPP가 역사의 쓰레기통에 들어가는 것”이라고 반겼다.베이징=구자룡 특파원 bonhong@donga.com /조은아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니키 헤일리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지사(44·사진)를 차기 유엔주재 미국대사로 결정하고 곧 발표할 예정이라고 AP통신이 23일 보도했다. 헤일리 주지사는 공화당 경선에서 마코 루비오 상원의원(플로리다)을 지지하며 트럼프의 이민정책을 비판했다. 자신과 반대편에 선 헤일리를 요직인 유엔대사에 지명하기로 한 것은 백인과 남성 중심의 발탁에 대한 비판을 누그러뜨리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헤일리 주지사는 인도계 미국인이다. 트럼프 정권인수위원회 고위 관계자는 AP에 “유엔대사는 각료급으로 정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역대 대통령 중 유엔주재 미국대사를 장관으로 대우하는 각료급으로 정한 대통령이 있긴 했지만 공화당 출신 대통령에게는 그런 전통이 약했다. 헤일리 주지사가 상원 인준을 받아 차기 대사로 공식 확정되면 각료 중 첫 여성이자 첫 유색인종 인사가 된다. 헤일리 주지사는 캐나다를 거쳐 미국으로 이민 온 인도 시크교도 가문에서 자랐다. 사우스캐롤라이나 소도시에서 태어나 같은 주 클렘슨대에서 회계학을 전공했다. 졸업한 뒤 환경 분야 회사에서 일하다 의류 회사와 지역 상공회의소를 거쳐 2004년 주 하원의원이 됐다. 공화당 ‘티파티’ 지지를 받아 2010년 사우스캐롤라이나 주 최초의 여성 주지사로 당선됐다. 올해 초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국정연설을 반박하는 연설을 해 ‘공화당의 여성 오바마’로 불렸다. 헤일리 주지사는 지난주 트럼프와 뉴욕 트럼프타워에서 만난 뒤 “매우 좋은 대화를 나눴다”고 말해 각료로 인선될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조은아 기자 achim@donga.com}
해외 언론들은 20일 박근혜 대통령이 최순실 씨(60) 등의 범행에 공모했다는 검찰의 중간 수사 결과 발표를 비중 있게 보도했다. AP통신은 “박 대통령이 자신과의 친분을 축재에 악용한 것으로 알려진 비선 친구의 범행에 공모했을 것으로 검찰이 발표했다”고 보도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온라인판 톱기사로 검찰 발표 내용을 상세히 전하며 “박 대통령은 재임 중 범죄 수사를 받는 첫 한국 대통령이 됐다”고 보도했다. 영국 BBC방송은 “박 대통령은 측근이 연루된 부패 스캔들에서 ‘상당한 역할’을 했다고 검찰이 발표했다”고 전했다. 이번 검찰 수사 결과가 박 대통령에게는 치명적일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뉴욕타임스(NYT)는 “박 대통령은 오랜 친구가 기업들로부터 수천만 달러(수백억 원)를 갈취하는 데 공범 역할을 했다고 검찰이 밝혔다. 전국적 퇴진 요구에 직면한 한국 지도자에게 또 하나의 큰 타격”이라고 보도했다. 일본 NHK도 정규방송 중 자막으로 관련 속보를 전하며 “검찰이 (박 대통령이) 공모했다고 판단함에 따라 퇴진 요구 압력이 한층 높아질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일본 지지통신은 “검찰이 박 대통령이 공모했다고 단정함으로써 탄핵을 요구하는 압력이 한층 높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외신들은 19일 전국 곳곳에서 벌어진 4차 주말 촛불집회도 비중 있게 다뤘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촛불은 겨울바람이 세차게 몰아쳐도 꺼지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일본 아사히신문은 “박 대통령이 최근 사태를 수습하지 못한 채 국정을 계속 수행하려는 의욕을 보이고 있다. 사임을 요구하는 항의 집회는 앞으로 매주 토요일에 열릴 것”이라고 보도했다.조은아 기자 achim@donga.com}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내년 1월 취임하자마자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겠다고 밝힌 가운데 중국 런민(人民)은행은 17일 위안화를 10거래일 연속 절하해 고시(告示)했다. 이날 미국 달러화에 대한 위안화 가치는 8년 5개월 만에 최저치였다. 트럼프 행정부의 대중(對中) 무역전쟁 계획이 구체화한 후에도 중국이 위안화 약세를 유지함에 따라 미중 두 나라는 트럼프 행정부 출범에 앞서 이미 무역전쟁 전초전에 들어섰다. 이날 런민은행은 달러당 위안화 환율을 6.8692위안으로 고시했다. 전날(달러당 6.8592위안)보다 0.15% 오른 수치다. 환율이 오르면 위안화 가치는 떨어진다. 위안화는 이날까지 10거래일 연속 인하됐다. 런민은행이 2005년 7월 변동환율제를 도입한 후 위안화가 10거래일 연속 인하된 것은 지난해 2번, 2008년 1번밖에 없었다. 이날 달러당 위안화 환율은 2008년 6월 이후 최고치(위안화 가치는 최저)를 기록했다. 2008년 9월 글로벌 금융위기를 맞은 주요국이 수출가격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자국 통화 가치를 경쟁적으로 낮게 유지하며 환율전쟁을 벌였을 때보다 위안화 가치가 떨어진 것이다. 중국은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후에도 위안화 약세를 유지해왔다. 선거 기간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겠다고 공언해온 트럼프 당선인은 취임 첫날인 내년 1월 20일 중국의 환율 조작 여부를 조사하기 위한 법안을 의회에 제출할 계획이다. 트럼프 당선인의 경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중국이 위안화 약세를 이어가며 자기 길을 걷겠다는 사실상 선전포고로 보는 시각이 적지 않다. 월스트리트저널은 “트럼프 행정부의 강경한 대중 무역정책으로 중국 시장 의존도가 높은 한국과 일본 등 아시아 동맹국의 수출은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조은아 achim@donga.com·이건혁 기자}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출범하기도 전에 미국과 중국이 무역 분야에서 기세 싸움을 벌이고 있다. 위안화 약세를 둘러싼 두 나라 간 환율 갈등과 더불어 자국 기업을 상대국에 빼앗기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면서 벌써부터 날카로운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형국이다. 중국이 17일 10거래일간 위안화 약세를 유지하며 8년 5개월 만에 위안화 가치를 최저치로 고시한 것은 무엇보다 중국 경제가 아주 불안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중국 정부는 그동안 저금리를 유지해 소비를 늘리려는 정책을 폈지만 오히려 부동산 가격 거품만 심해지는 결과를 초래했다. 투자자들은 중국에서 위안화를 내다팔고 외국 통화로 바꿔 해외투자처로 빠져나가고 있다. 향후 중국 경제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지면서 위안화 가치는 계속 떨어지고 있다. 위안화 약세로 시장 불안감은 확산되고 있다. 중국 런민은행은 6월 말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국민투표 직후 금융시장이 출렁이자 위안화를 안정시키겠다고 밝혔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전후에도 2년간 달러당 위안화 환율을 6.81∼6.83위안 수준으로 고정했다. 이번엔 브렉시트나 글로벌 금융위기 때보다 위안화 환율이 치솟고 있지만 런민은행은 별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트럼프가 취임 첫날인 내년 1월 20일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는 법률안을 의회에 제출하기 전에 중국이 위안화 약세를 고집하며 선제적 ‘환율 공격’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전문가들은 위안화 약세가 장기적 추세로 굳어질 것이라고 우려한다. 위안화 약세가 길어지면 미국이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고 수입품 관세 부과를 비롯한 다른 무역공격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주요 2개국(G2) 간 갈등은 한국에도 적지 않은 타격을 줄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은 한국의 최대 수출국인 데다 중국에서 제품을 생산해 미국에 수출하는 한국 기업도 많다. 일본 다이와증권에 따르면 미국이 중국 수입품에 15% 관세를 매길 때 중국의 경제성장률은 1%포인트 떨어진다. 이때 한국의 성장률은 0.5%포인트 하락할 것으로 전망된다. 트럼프가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면 대미 흑자 폭이 큰 한국도 환율조작 의심을 받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17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달러당 원화 환율은 전날보다 6.7원 상승(원화 가치는 하락)한 1175.9원에 마감했다. 브렉시트 결정 여파가 컸던 6월 27일(1182.3원) 이후 4개월여 만에 최고치를 찍었다. 미중 간 힘겨루기는 기업 인수합병(M&A) 시장에서도 가시화됐다. 미국의 초당적 기구인 미중경제안보검토위원회(UCESRC)는 16일 의회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중국 국유기업이 미국 기업을 사들이는 것은 미국의 안보 이익에 해로울 수 있다며 금지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보고서는 “중국의 산업스파이와 미국 기관에 대한 중국의 침투로 국가안보 위협이 증가하고 있다”라고 강조했다. 인프라 건설 분야에서도 묘한 기류가 감지된다. 런민일보에 따르면 진리췬(金立群)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총재는 15일 “미국이 AIIB에 가입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은근히 러브콜을 던졌다. 하지만 불과 며칠 뒤인 17일 블룸버그통신은 트럼프 행정부가 경기 부양을 위한 인프라투자은행 설립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해 AIIB 총재의 발언에 찬물을 끼얹었다.조은아 achim@donga.com·정임수 기자 / 베이징=구자룡 특파원}

“좀 더 재미있게 강의하는 방법은 없을까?” 최근 방문한 대만 타이베이(臺北) 국립대만대 수이위안(水原) 캠퍼스의 D스쿨 강의실. 20, 30대 남녀 7명이 새로 개설한 강좌를 어떻게 진행할지 토론하고 있었다. 교수법을 고민하는 이들은 교수나 강사가 아니다. 기계, 건축, 통계, 조경 등 다양한 이공계에서 모여든 학생들이다. 이들이 올여름 제안한 프로젝트가 D스쿨의 정식 강좌로 채택돼 강의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류젠청 D스쿨 부단장은 “학생들이 듣고 싶어 하는 강의를 제공하기 위해 교수가 주도하는 교육의 틀을 깨고 학생이 자유롭게 강좌를 제안하도록 했다. 사제 관계가 엄격한 대만에서 시도된 변화라 의미가 크다”라고 소개했다.○ D스쿨… “생각을 디자인하라” 국립대만대의 D스쿨은 미국 스탠퍼드대의 유명한 창업 인재 육성 프로그램인 D스쿨을 들여온 것이다. D스쿨은 디자인스쿨(Design school)의 약자로 생각을 디자인하는 법을 가르친다. 학생들은 D스쿨에서 창업의 기초인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각종 문제를 창의적으로 해결하는 능력을 기른다. 국립대만대는 한 기업가가 출자한 기금으로 ‘대만판 실리콘밸리’를 꿈꾸며 지난해 D스쿨을 설립했다. 서류 심사와 면접을 통과하면 참여할 수 있다. 지난해에만 2000명이 지원해 500명이 선발됐다. 창업을 계획하는 공대생이 주를 이룬다. 이곳 강의실의 3분의 1가량을 차지하는 복층 목제 구조물도 D스쿨 프로젝트의 결과물이다. 학생들은 ‘공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건축법’을 주제로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강의실을 복층으로 리모델링하기로 했다. 하지만 타이베이 시의 건축 규제로 건물에 손대는 것이 불가능해 건물 안에 복층 구조물을 들여놓아 같은 효과를 냈다. 프로젝트에 참여한 린잉루 씨는 “학교가 자재든 가구든 우리가 달라는 것을 다 제공하니 무엇이든 과감하게 시도하고 싶어진다”라고 말했다.○ 한국과 닮은꼴 대만, 창업으로 청년 실업 타개 한 기업가가 이런 혁신적 교육에 사재(私財)를 쏟고 이에 화답하듯 대학도 교육 패러다임을 바꾸는 이유는 대만의 정치적, 경제적 상황이 녹록지 않기 때문이다. 대만이 직면한 문제는 한국과 비슷하다. 대만 경제성장률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한국보다 약간 낮은 1% 안팎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 경제가 어려워지며 수출길이 막혔는데 산업 구조는 한국처럼 반도체, 전자제품 등 수출만 바라보는 제조업에 치우쳐 내수를 살릴 방법이 마땅치 않다. 실업률도 최근 2년간 한국과 비슷한 3%대였다. 게다가 국제사회에서 목소리가 커진 중국과 대치하며 생겨나는 정치적 불안도 한국의 북한 리스크처럼 커졌다. 한국 청년들이 ‘헬조선’이라고 하듯 대만 청년들은 자국을 ‘귀신의 섬(鬼島)’으로 부른다. 대만은 창업에서 해법을 찾고 있다. 박한진 KOTRA 타이베이무역관장은 “대만 정부는 올 9월 첨단 정보통신(IT) 스타트업을 2023년까지 꾸준히 지원하는 ‘아시아실리콘밸리 추진 방안’을 발표했다. 창업 드라이브를 한국보다 더 강하게 걸고 있다”라고 말했다.○ 졸업한 ‘창업 재수생’ 지원하는 대학 대만 창업 동력의 한 축인 국립대만대는 학생들의 창업을 지원하는 ‘NTU개라지’와 ‘이노베이션&인큐베이션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D스쿨에서 창업의 기초를 배운 학생들은 NTU개라지와 이노베이션&인큐베이션센터에서 실전에 들어간다. 2013년 캠퍼스에 설립된 창업 실습 공간 NTU개라지에는 D스쿨의 창의 창업 도전 대회에서 선발된 창업팀을 중심으로 30여 팀이 입주해 있다. 사무실은 물론 법률 회계 컨설팅이 무료다. 매년 봄 창업팀별 대표 상품을 언론과 투자자들에게 공개하는 행사도 연다. 현재 입주한 팀원의 75%가량이 대기업이나 열악한 스타트업에서 방황하던 졸업생들이다. 궈자유 NTU개라지 담당자는 “창업하려는 졸업생들이 사무실을 마련하고 투자자를 구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것을 보고 3년 전부터 졸업생들까지 지원하게 됐다”라고 말했다. 이 대학 동문으로 꾸려진 기업인들의 모임에선 정기적으로 창업 대회를 열어 유망한 후배 기업가를 발굴해 지원한다. NTU개라지에서 여행 콘텐츠 앱을 개발 중인 딩샹춘 씨는 “선배들을 개인적으로 수소문하려면 어려운데 이곳에서는 대기업 중간 간부 선배들을 쉽게 찾아 상담하고 투자도 받는다”라고 말했다. 국립대만대가 2002년 민간 기업과 함께 설립한 이노베이션&인큐베이션센터에는 NTU개라지 출신 창업팀을 비롯한 스타트업 30여 개가 입주해 있다. NTU개라지 입주 심사 때보다 더욱 엄격한 심사를 통과한 이들은 시세보다 저렴하게 센터의 사무실을 빌린다. 센터의 추천을 받으면 정부 창업기금을 사업비의 80%까지 낮은 금리에 대출받을 수 있다. 류쉐위 이노베이션&인큐베이션 센터장은 “1970년대를 이끌었던 이공계는 고도성장 시대가 끝나자 인기가 시들해졌다. 이공계의 기술력을 창의적으로 사업화하는 창업 교육과 지원 제도가 더욱 절실해졌다”라고 밝혔다. 국립대만대는 1928년 설립된 종합대학이다. 미국 US뉴스앤드월드리포트의 올해 세계 대학평가에서 144위다. 서울대(119위)보다는 낮고 KAIST(187위)보다 높다. 10개 단과대 가운데 4개가 이공계다. 차이잉원(蔡英文) 현 총통과 마잉주(馬英九), 천수이볜(陳水扁) 전 총통 등 유력 정치인과 기업가를 배출했다. 연구역량이 강한 대학을 추구해 학부와 대학원 규모가 비슷하다. 타이베이=조은아 기자 achim@donga.com}

‘달을 향해 쏴라. 달을 놓치더라도 별들 중에 어딘가에는 닿을 것이다.’ 대만 타이베이(臺北) 중심가인 중산베이(中山北) 로에 자리한 창업 공유 사무실 ‘개라지플러스(사진)’ 라운지 벽에는 이런 문장이 적혀 있다. 세계 각국에서 모여든 청년들이 같은 공간에서 밤늦도록 머리를 맞대고 아이디어를 주고받으며 창업의 꿈을 쏘아 올리는 곳이다. 개라지플러스는 대만 대기업들이 출자한 비영리 재단인 에포크재단이 2012년 설립했다. 사물인터넷(IoT), 헬스케어, 핀테크 등 기술 기반 사업을 하려는 벤처기업가를 선발해 3개월간 무료로 사무실을 준다. 최근 2년간 이곳을 이용한 창업팀은 70개에 이른다. 올해 투자자 22명, 전문가 12명, 기업인 28명이 이들에게 꾸준히 컨설팅을 제공한다. 개라지플러스에 입주해 주차 관련 스타트업 ‘PKLOT’를 운영하는 위쯔웨이 대표(29)는 “이곳에서 만난 동료들과 대화를 나누며 사업 아이디어를 많이 얻는다. 이런 창업 공간을 오가며 만나는 친구들이 회사 동료로 합류하기도 한다”라고 말했다. 개라지플러스의 특징은 외국인들도 이용할 수 있는 글로벌 창업 플랫폼이라는 점이다. 미래의 페이스북, 구글을 꿈꾸는 해외 스타트업들이 대만에 본사를 두고 대만 제조회사에 상품 제작을 맡기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해외 스타트업과 대만 기업의 협력은 침체된 대만 경제에 활력을 줄 것이라는 기대에서다. 최근 2년간 입주한 70개 팀 가운데 22개 팀이 해외에서 왔다. 미국 캐나다 독일 네덜란드 이탈리아 인도 싱가포르에서 20개 팀이 새로 선발돼 입주를 기다리고 있다. 황자이 개라지플러스 매니저는 “이들 중 3분의 1은 개라지플러스를 이용해 본 스타트업이다. 대만의 파트너 사를 쉽게 소개받을 수 있어 재입주하길 희망한다”라고 말했다. 개라지플러스는 직접 해외 벤처를 찾아가 설명회를 열기도 한다. 서울에서도 9월 설명회를 개최해 대만 진출을 노리는 한국 스타트업을 찾았다. 사업 기반을 한국에서 대만으로 옮기려는 스타트업도 생겨나고 있다. 황 매니저는 “12월 입주 기업 신청을 받았더니 해외에서 77개 팀이 지원했다. 이 중 한국팀이 두 번째로 많다”라고 밝혔다.타이베이=조은아 기자 achim@donga.com}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70)은 취임 첫날인 내년 1월 20일 중국이 환율을 조작했는지 조사하기 위한 법안을 의회에 제출한다고 CNN이 정권 인수위원회 문건을 입수해 15일 보도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출범 직후부터 중국을 향한 ‘무역 공격’을 실천에 옮길 경우 미중 간 무역 전쟁이 거세게 일 것으로 보인다. CNN이 공개한 ‘취임 첫 200일간의 무역정책’ 문건은 트럼프 행정부가 앞으로 4년간 중점적으로 펼칠 무역정책을 총망라하고 있다.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재협상 또는 철회를 비롯해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협상 중단, 불공정 수입 중단, 불공정 무역관행 중단, 양자 무역협정 추진 등 5개 원칙이 뼈대를 이루고 있다. 인수위는 특히 “트럼프 행정부의 무역계획은 공화당과 민주당의 세계화 세력들과 단절하는 것”이라며 “새 무역협정은 미국 노동자와 기업의 이익을 최우선시할 것”이라고 밝혀 무역정책의 대변화를 예고했다. 이 문건에 따르면 트럼프는 취임 첫날 중국을 상대로 환율 조작 조사를 위한 법안을 의회에 제출한 뒤 취임 100일째인 4월 말까지는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할지 결론을 내겠다는 구체적 일정을 제시했다. NAFTA 개혁도 트럼프 행정부의 우선순위에 포함됐다. 트럼프가 취임 첫날 상무부와 국제무역위원회(ITC)에 NAFTA에서 탈퇴할 때 어떤 문제가 있을지 연구하도록 지시하면 미국무역대표부(USTR)는 NAFTA 회원국인 멕시코, 캐나다에 통화정책과 원산지 문제, 환경 기준 등을 개정하겠다고 통보한다. 트럼프는 취임 200일이 되는 7월 전후에 NAFTA에서 탈퇴할지를 최종 결정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NAFTA 탈퇴에 따른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캐나다 멕시코 등과 양자 무역협정을 추진할 방침이다. 문건 내용은 전반적으로 트럼프가 지난달 23일 펜실베이니아 주 게티즈버그 유세에서 밝힌 취임 100일 구상과 비슷하다. 당시 밝힌 무역정책 중 석유, 천연가스 등 에너지 산업 관련 규제 철폐는 이번 200일 계획에서 구체화되지 않았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이나 세계무역기구(WTO) 탈퇴 공약도 구체적으로 언급되지 않았다.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은 이날 텍사스 주 댈러스 대통령도서관에서 열린 행사에서 “분노를 갖고 정책을 추진해서는 안 된다”며 트럼프의 보호무역주의 정책을 비판했다. 그는 NAFTA에 대해 “미국은 멕시코, 캐나다와 파트너가 된 덕에 중국에 대한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다”며 “NAFTA는 미국, 멕시코, 캐나다 모두에게 이익이다”고 주장했다.조은아 기자 achim@donga.com}
대다수 여론조사 기관과 달리 일찍이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70)가 승리할 것이라고 장담했던 사람들이 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예측이 너무 허무맹랑하다”는 얘기를 듣던 이들이 지금은 통찰력 있는 예언자라는 재평가를 받고 있다. 대표적 예언자는 미국 문화계의 진보 인사인 영화감독 마이클 무어(62)다.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69) 지지자인 무어 감독은 “트럼프가 당선될 가능성이 높다”고 꾸준히 주장하며 경고 메시지를 보냈다. 그는 대선 2차 TV토론 다음 날인 지난달 10일 트위터 계정에 “‘음담패설 비디오’ 공개 파문으로 위기에 처한 트럼프는 몰락하지 않았다. 그는 단 한 표도 잃지 않았다. 어쩌면 표를 더 얻었다”고 썼다. 당시는 주류 언론들이 클린턴 지지율이 높다는 조사결과를 줄줄이 발표할 때였다. 그가 선거 전 자신의 홈페이지에 밝힌 ‘트럼프 승리 가능성이 높은 5대 이유’는 대선 이후 트럼프 당선의 비결로 인용되고 있다. 쇠퇴한 공업지대 유권자의 분노, 클린턴의 신뢰와 인기 부족 등을 대표적인 이유로 꼽았다. 앨런 릭트먼 아메리칸대 역사학과 교수(69)도 1984년부터 올해까지 9번이나 대통령을 맞혔다. 그는 지난달 언론 인터뷰에서 “트럼프가 당선될 것”이라고 장담했다. 그의 예측 무기는 역대 대선과 선거 환경을 분석해 집권당의 안전성을 검증하는 13개 명제다. 참과 거짓으로 답할 수 있는 13개 명제를 사람들에게 제시한 뒤 이 중 거짓이 6개 이상이면 집권당 후보가 패배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린다.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는 “논란을 일으킨 트럼프 유세에만 집착한 전문가들과 달리 릭트먼 교수는 집권당의 재집권 가능성에 주목한 점이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현지 언론 중에는 인베스터스비즈니스데일리(IBD)와 로스앤젤레스타임스가 유일하게 트럼프 당선을 점쳤다. 조은아 기자 achim@donga.com}
미국의 첫 여성 대통령을 꿈꿨던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69)가 끝내 유리천장을 깨지 못했다. 2008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의 민주당 경선부터 8년간 이어온 대권 도전의 막을 내린 것이다. 클린턴은 낙선에 이어 ‘이메일 스캔들’에 대한 특별수사라는 악재까지 안게 됐다. CNN에 따르면 9일 오후 10시 반 현재 전국 득표율은 클린턴이 47.6%로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47.5%)보다 0.1%포인트 앞섰다. 하지만 주별 승자가 모든 대의원을 독차지하는 미국 승자독식 선거 방식에 따라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됐다. 예상치 못했던 투표 결과를 받아든 클린턴은 담담해 보였다. 개표가 진행되던 8일 오후 클린턴은 트위터 계정에 “우리 캠프가 정말 자랑스러울 수밖에 없다. 오늘 밤 어떤 일이 일어나든 난 모든 것에 감사한다”고 썼다. 패색이 짙어질 무렵 올라온 글이었다. 2008년 민주당 경선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게 패했을 때도 그는 담담했다. 클린턴은 “우리가 가장 높고, 가장 단단한 유리천장을 깨진 못했으나 천장엔 1800만 개(지지 대의원 수)의 틈이 생겼다”는 연설로 감동을 주었다. 10년 전인 1998년 빌 클린턴의 모니카 르윈스키 스캔들이 터졌을 때도 남편 곁을 꿋꿋이 지키는 의연함을 보였다. 강한 여성 클린턴에게도 이번 패배만큼은 회복하기 어려운 상처를 남길 것으로 보인다. 그에게 여성 대통령이란 꿈은 너무나 절실했다. 클린턴은 어릴 적부터 정치인의 꿈을 키웠다. 어머니 도러시 하월 로댐이 “여자도 능력을 발휘해야 한다”고 강조한 영향이 컸다. 클린턴은 미국 동부 명문 여대인 웰즐리대에 입학해 1968년 학생회장을 맡았고 이듬해 5월 웰즐리대 졸업식에서 역대 졸업생 중 처음으로 직접 연설에 나섰다. 1971년 예일대 로스쿨에서 지금의 남편을 만나 대통령 부인과 상원의원, 국무장관 등 화려한 정치 이력을 쌓아가며 야망을 키웠다. 클린턴이 마지막 유리천장을 깨지 못한 것은 위선적이고 차가운 이미지 탓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트럼프는 TV토론과 유세에서 이메일 스캔들을 거론하며 “클린턴을 구속해야 한다”고 주장해 이런 이미지를 부각했다. 트럼프가 대권을 거머쥐며 클린턴은 개인 이메일 이용과 관련해 특별검사 수사를 받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켈리앤 콘웨이 트럼프캠프 선대본부장은 9일 미국 MSNBC 인터뷰에서 “(이메일 사건과 관련해) 클린턴을 조사할 특별검사 임명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조은아 기자 achim@donga.com}

도널드 트럼프가 마이크 펜스 인디애나 주지사(57·사진)를 부통령으로 지명한 것은 ‘신의 한 수’로 평가된다. 펜스는 다혈질인 트럼프와 달리 차분하고 논리적인 대응으로 주목받았다. 특히 지난달 4일 팀 케인 민주당 부통령 후보와의 TV토론에서 신뢰를 주는 언변으로 트럼프의 구원투수 역할을 제대로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는 트럼프가 위기에 처했을 때 빛을 발했다. 트럼프가 미스유니버스 비하 발언, 음담패설 녹음파일 폭로 등 악재에 시달릴 때 펜스는 트위터에 “나의 러닝메이트 도널드 트럼프의 대승. 당신과 함께해 자랑스럽다”라는 글을 올려 트럼프에게 힘을 실었다. 트럼프가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69)의 e메일 스캔들에 대해 “내가 대통령이 되면 감옥에 보낼 것”이란 취지로 말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독재자 같다”는 비판이 일자 펜스는 “빈정댄 말이었지만 너무 지나쳤다”며 흥분된 여론을 진정시켰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8일 부통령 후보인 펜스의 역할에 대해 “트럼프와 의회를 연결하는, 가교 역할을 하는 의회 주재 백악관 대사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앞으로 의회 동의를 얻는 과정에서 펜스의 역할이 막중하다는 뜻이다.조은아 기자 achim@donga.com}
필리핀을 21년간 통치한 독재자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전 대통령(1917∼1989)이 국립 영웅묘지에 묻히게 됐다. 필리핀 대법원이 8일 마르코스 시신의 국립 영웅묘지 안장을 막아 달라는 청원을 기각한 데 따른 것이다. AP통신에 따르면 대법관 15명 중 기권자 1명을 제외한 14명이 표결에 참여해 9 대 5로 이같이 결정했다. 기각을 결정한 대법관들은 전직 대통령, 군인이나 공을 세운 예술가라면 누구든 영웅묘지에 안장될 수 있고 이를 허용할지 여부는 로드리고 두테르테 대통령의 재량권에 속한다고 판결했다. 조은아 기자 achim@donga.com}

“트럼프는 납세 자료를 공개하라.” “트럼프와 함께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자!” 투표 하루 전날인 7일 오후 미국 뉴욕 맨해튼의 트럼프타워 앞에서는 민주당 대선 후보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69)과 공화당 대선 후보 도널드 트럼프(70) 지지자들의 피켓 시위 대결이 한창이었다. 트럼프 지지 백인 남성은 클린턴 지지자들에게 “클린턴이 e메일 스캔들 때문에 감옥에 가야 할지 모른다는 사실을 알고 있느냐”고 따졌다. 트럼프 캠프가 있는 트럼프타워 앞 이런 풍경은 세계 경제·금융의 수도이자 해마다 6000만 명의 관광객이 몰려오는 뉴욕에서 이색적인 볼 거리가 됐다. 이날도 중국인 단체관광객들이 두 진영 간 피켓 대결을 지켜보며 신기한 듯 이 장면을 카메라에 담느라 분주했다. 뉴욕 상징물을 판매하는 맨해튼 기념품 상점들은 ‘뉴요커 트럼프’ 티셔츠와 ‘뉴요커 클린턴’ 티셔츠를 나란히 진열해 정치적 취향에 따라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뉴욕 언론들은 이번 대선을 ‘뉴요커의, 뉴요커에 의한, 뉴요커를 위한 선거’ 또는 ‘뉴욕에서 시작해서, 뉴욕에서 끝나는 선거’로 표현하고 있다. 클린턴은 뉴욕 연방 상원의원 출신이고, 트럼프는 뉴욕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 뉴요커다. 둘 중 누가 승리해도 ‘7번째 뉴요커 대통령’이 된다. 역대 미국 대통령 중 뉴욕 출신은 마틴 밴 뷰런(8대), 밀러드 필모어(13대), 체스터 아서(21대), 그로버 클리블랜드(22·24대), 시어도어 루스벨트(26대), 프랭클린 루스벨트(32대) 등 6명이다. 클린턴은 이기면 승리 선언을, 질 경우엔 승복 선언을 할 장소로 뉴욕 허드슨 강변에 있는 대형 전시장 ‘제이컵K재비츠컨벤션센터’를 선택했다. 미 언론들은 “대형 유리 건물로 유명한 이곳에서 ‘가장 높고, 유일하게 남아 있는 유리 천장(대통령)을 깨겠다’는 의미를 담은 결정”이라고 해석했다. 트럼프는 트럼프타워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뉴욕힐턴호텔에서 같은 행사를 가질 예정이다. 두 행사장 간 거리는 3km에 불과하다. 이번 대선의 핵심 조연들도 모두 뉴욕과 깊은 연고가 있다. 민주당 경선에서 클린턴을 턱밑까지 추격하며 돌풍을 일으켰던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75·버몬트)은 뉴욕 브루클린 출신이다. 트럼프의 사실상 대변인 역할을 해온 루디 줄리아니 전 뉴욕 시장(72)과 한때 ‘무소속 제3후보’ 출마를 검토하다가 클린턴 지지로 방향을 튼 마이클 블룸버그 전 뉴욕 시장(74)도 뉴요커들이다. 월가는 선거일 하루 전인 7일 클린턴 승리에 베팅했다. 전날 미 연방수사국(FBI)이 클린턴의 e메일 스캔들을 무혐의로 결론 내며 클린턴 당선이 유력해지자 투자자들이 주식을 사 모으기 시작했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 다우존스산업평균지수, 나스닥지수가 이날 8개월여 만에 가장 큰 상승 폭을 보였다. 반면에 ‘공포지수’로 통하는 시카고옵션거래소(CBOE)의 변동성지수(VIX)는 급락했다. 미국 경제의 신뢰도를 보여주는 미 달러화도 강세로 돌아섰다. 데이비드 켈리 JP모건자산운용 수석글로벌전략가는 월스트리트저널(WSJ)에 “금융시장 상승세를 보면 투자자들이 시장의 불안감을 줄여줄 클린턴이 당선될 것으로 보고 있는 듯하다”고 말했다. 뉴욕=부형권 특파원 bookum90@donga.com / 조은아 기자}
최순실 게이트로 국정이 혼란을 겪고 있는 가운데 미국 대선발(發) 불확실성까지 고조되면서 금융, 통상 당국이 긴급 대응책 마련에 나선다. 중국, 멕시코 등 주요 신흥국들도 강도 높은 보호무역주의를 앞세운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의 당선 가능성에 대비해 비상계획을 수립하고 있다. 6일 금융 당국에 따르면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7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임종룡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 주재로 합동 회의를 열고 금융시장 및 외화 유동성 상황을 점검하기로 했다. 이번 회의에는 은행연합회 금융투자협회 등 6개 금융 관련 협회장과 한국거래소 이사장, 주요 연구원장 등 금융 관련 기관 고위급이 모두 참석한다. 금융 당국 관계자는 “최순실 사태와 미국 대선 불확실성으로 투자 심리가 얼어붙는 등 위기 징후가 확대되고 있어 선제적으로 시장 점검 및 대응 방안에 나서는 것”이라고 말했다. 산업통상자원부도 미 대선 결과에 따른 주요 통상 정책별 시나리오를 마련하고 긴급 현안 점검에 나설 방침이다. 트럼프 후보는 세계 최대 경제통합체인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탈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검토 등을 주장하고 있다. 정임수 imsoo@donga.com·조은아 기자}

중국 국가안전부 민정부 재정부 등 핵심 부처 수장이 조만간 교체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말 열린 공산당 제18기 중앙위원회 6차 전체회의(18기 6중전회)에서 사실상 1인 지배 체제를 굳힌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 겸 당 총서기가 권력 기반 다지기에 나선 것이다. 홍콩 싱다오(星島)일보는 2일 전국인민대표대회(전국인대) 상무위원회가 정보 당국인 국가안전부 부장(장관급)에 천원칭(陳文淸·사진) 국가안전부 당서기를 내정했다고 보도했다. 겅후이창(耿惠昌) 현 국가안전부 부장은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政協) 위원 겸 정협의 홍콩·마카오·대만교포위원회 부주임으로 자리를 옮겼다고 중국 관영 신화통신이 보도했다. 새로운 정보 당국의 수장이 된 천 서기는 시 주석의 오른팔 격인 왕치산(王岐山) 중앙기율검사위 서기의 측근이다. 쓰촨(四川) 성 런서우(仁壽) 출신으로 시난(西南)정법학원 법학과를 졸업한 그는 말단인 파출소 순경으로 공직 생활을 시작해 능력을 인정받았다. 쓰촨 성 러산(樂山) 시 공안국장, 국가안전청장, 인민검찰원 검찰장을 거쳐 푸젠(福建) 성 기율검사위 서기를 지내며 승승장구했다. 천 서기는 시 주석 직속으로 일하지는 않았지만 시 주석의 정치 기반 중 하나인 푸젠 성에서 오래 근무한 경력이 높이 평가된 것으로 신문은 분석했다. 올해 말 베이징(北京) 시장에 임명된 후 내년 베이징 당서기가 될 것으로 알려진 차이치(蔡奇) 국가안전위원회 판공실 부주임도 푸젠 성 유시(尤溪) 현 출신으로 푸젠 성에서 정치 경력을 쌓았다. 신문은 또 상무위원회가 한국 행정자치부에 해당하는 민정부의 리리궈(李立國) 부장을 황수셴(黃樹賢) 감찰부장으로 교체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홍콩 밍(明)보에 따르면 리 부장은 최근 비리 혐의로 구금돼 조사를 받게 되면서 낙마했다. 신임 황 부장 역시 왕 서기 측근으로 시 주석 사람으로 분류된다. 한편 러우지웨이(樓繼偉) 재정부장(재무장관)은 전국사회보장기금이사회 이사장에 선임되며 샤오제(蕭捷) 국무원 상무 부비서장에게 자리를 내줄 예정이다. 앞으로 왕 서기의 측근들이 핵심 요직을 차지하는 경우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말 후베이(湖北) 성 서기로 승진한 장차오량(蔣超良)은 왕 서기와 금융 분야에서 오래 호흡을 맞춘 인물이다. 이에 앞서 3월 간쑤(甘肅) 성 성장에 임명된 린둬(林鐸)도 왕 서기가 베이징 시장을 지낼 때 구 당서기로서 끈끈한 인연을 맺었다.조은아 기자 achim@donga.com}

미국 대선을 불과 6일 앞둔 2일 현재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 후보 측이 보는 판세 분석은 판이하다. 클린턴의 개인 e메일 사용에 대한 미국 연방수사국(FBI)의 추가 조사에도 최종 승패를 결정하는 대의원 확보 수 추정에선 클린턴이 여전히 앞서고 있다. 하지만 클린턴의 동력은 크게 약화된 반면 트럼프의 상승세는 뚜렷하다. 남은 시간 트럼프가 얼마나 클린턴을 추격하는지가 관건이라는 뜻이다. ABC방송과 워싱턴포스트(WP)가 1일 발표한 여론조사(10월 27∼30일 실시·1128명)에서 트럼프의 지지율(46%)이 클린턴(45%)을 5개월 만에 앞질렀지만 예상 선거인단 수는 클린턴 279명, 트럼프 180명으로 여전히 차이가 크다. 대선 족집게란 평가를 받아 온 신용평가회사 무디스 애널리틱스도 ‘클린턴 332명, 트럼프 206명’으로 클린턴의 대승을 예고했다. 선거 예측 전문 사이트 ‘리얼클리어폴리틱스(RCP)’도 1일 현재 ‘259(클린턴) 대 164(트럼프)’로, 유명한 선거분석가 네이트 실버가 운영하는 사이트 ‘538’도 ‘303.1(클린턴) 대 233.7(트럼프)’ 비율로 클린턴이 크게 앞서고 있다. 하지만 클린턴 캠프를 긴장시키는 것은 선거 판의 추세와 흐름이다. 최근 일관되게 트럼프 우세를 전망해 온 로스앤젤레스타임스와 남캘리포니아대(USC) 공동 여론조사에서 트럼프는 FBI의 추가 조사 발표일인 지난달 29일 지지율 46%로 클린턴(44.1%)을 앞섰고 30일 46.6% 대 43.2%, 31일 46.9% 대 43.3%로 격차를 계속 벌려 나가고 있다. RCP의 경합주 판세에서도 클린턴 우세가 혼전으로, 혼전 지역은 트럼프 우세로 속속 바뀌고 있다. 트럼프 캠프는 1일 “경합주로 분류됐던 6곳인 아이오와, 오하이오, 메인, 플로리다, 네바다, 노스캐롤라이나는 이제 우리(트럼프)에게 넘어왔다. 하지만 이 6곳을 다 이겨도 선거인단 확보 숫자는 266명으로 과반(270명)에 4명이 모자란다. 이제 근소한 열세를 보여 온 뉴햄프셔, 콜로라도, 펜실베이니아 중 1곳만 이기자. 그러면 이긴다”고 밝혔다. 앞으로 이 3개 주에 화력을 집중하겠다는 뜻을 드러낸 것이다. 트럼프를 지지하는 보수 성향의 폭스뉴스는 “경합주들은 한 곳이 역전되면 다른 곳도 넘어갈 가능성이 항상 있다. FBI의 추가 조사가 ‘클린턴이 당선되면 정치적 혼란과 헌정 위기가 계속될 수 있다’는 인식을 주면서 판세 변화가 크게 나타나고 있다”고 분석했다. 클린턴캠프의 로비 무크 캠페인매니저는 1일 “(최대 경합주인) 플로리다가 트럼프로 넘어가는 것 같다. 트럼프가 승리할 수도 있는 길을 열어 놓았다”고 경계심을 보이며 지지를 호소했다. 트럼프 당선 가능성이 거론되면서 금융시장은 요동치고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1일 ‘공포지수’로 불리는 미국 시카고옵션거래소(CBOE)의 변동성지수(VIX)가 전 거래일보다 8.79% 오른 18.56이었다고 보도했다. 이는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국민투표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뉴욕증시도 1일 큰 폭으로 하락했다. 이날 뉴욕증권거래소(NYSE)에서 대형주 중심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 지수는 0.68% 하락했다. 트럼프가 당선되면 급락할 것으로 예상되는 멕시코 페소화의 가치는 이날 영국 외환시장에서 2.02% 떨어졌다. 트럼프는 대통령이 되면 불법 이민을 막기 위해 멕시코와 미국 사이에 장벽을 쌓겠다고 밝혀 왔기 때문이다.뉴욕=부형권 특파원 bookum90@donga.com /조은아 기자}
미국 연방수사국(FBI)이 민주당 힐러리 클린턴 후보의 개인 e메일에 대한 추가 수사에 착수하면서 대선을 일주일 앞두고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가 클린턴을 앞섰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처음으로 나왔다. FBI 수사가 대선 판을 뒤집는 막판 복병으로 떠오른 것이다. 클린턴에 대한 표적 수사 논란에 휩싸인 FBI는 트럼프 후보의 전직 핵심 참모와 러시아 간의 연계 의혹에 대한 수사에도 착수했다. 1일 공개된 ABC방송과 워싱턴포스트(WP)의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트럼프는 46%를 얻어 45%인 클린턴에게 1%포인트 앞섰다. 이번 조사는 지난달 27∼30일에 1128명을 대상으로 한 것으로 FBI의 클린턴 개인 e메일 추가 조사 결정이 크게 영향을 끼친 것으로 분석된다. 제임스 코미 FBI 국장이 추가 조사 결정을 발표한 시점은 지난달 28일로 FBI 발표가 여론이 반전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난달 30일 공개된 같은 여론조사(지난달 25∼28일 조사)에서는 클린턴이 트럼프에게 46% 대 45%로 1%포인트 앞섰다. ABC방송과 WP의 공동 여론조사에서 트럼프가 클린턴을 제친 것은 5월 이후 처음이다. 이에 따라 대선을 코앞에 두고 다른 조사에서도 트럼프가 판세를 리드할지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두 사람의 승부가 초박빙세를 보이는 가운데 NBC는 FBI가 트럼프 캠프의 전 선대위원장인 폴 매너포트와 러시아의 연루 의혹 등을 파악하기 위한 초동 수사에 들어갔다고 수사 당국을 인용해 지난달 31일 보도했다. 매너포트는 6월부터 트럼프 선거캠프를 총괄했지만 친(親)러시아 성향인 우크라이나 정치인들과 결탁했다는 의혹을 받고 두 달여 만에 물러났다. AP통신은 워싱턴 로비스트 출신인 매너포트가 운영하는 로비회사가 2012년 당시 친러시아 성향의 빅토르 야누코비치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위해 미 의회 등 워싱턴 정가에 로비를 벌였다고 보도했다. FBI 수사 보도에 대해 매너포트는 NBC 인터뷰에서 “모두 사실이 아니다. 내가 아는 한 (나에 대해) 진행 중인 FBI 수사는 없다. 나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나 러시아 정치인들과 아무 연관이 없다”고 부인했다. 미 언론들은 FBI가 갑자기 매너포트에 대한 수사 방침을 공개한 것은 클린턴의 개인 e메일 계정 사용 추가 수사 결정으로 불거진 정치적 편향성 시비를 무마하기 위한 것으로 보고 있다. NBC는 “FBI가 클린턴에 대한 추가 수사 결정으로 워싱턴이 시끄러워지자 불과 며칠 만에 트럼프 측에 대한 전면 수사도 아닌 초동 수사 결정을 흘렸다”고 분석했다. 핀치에 몰렸던 클린턴 측은 평소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좋은 리더십을 가졌다”며 치켜세운 트럼프와 러시아가 모종의 연관을 갖고 있다고 공세를 퍼부었다. 해리 리드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는 기자들과 만나 “제임스 코미 FBI 국장이 트럼프와 러시아 간의 커넥션을 밝혀줄 ‘폭발력 있는 정보’를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FBI 당국자는 뉴욕타임스(NYT) 인터뷰에서 “트럼프와 러시아 간 구체적인 연루가 있다는 증거는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고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FBI는 클린턴 개인 e메일뿐 아니라 클린턴 재단 비리에 대해서도 수사에 착수하려다 법무부와 충돌한 것으로 드러나 대선을 앞둔 미국 공직 사회의 분열상을 드러냈다는 지적도 나온다. WP는 FBI 뉴욕 요원들이 올해 초 클린턴 재단 기부자에 대한 특혜 제공 여부 등을 수사하려 하자 법무부 공직청렴팀 검사들이 “증거가 부족하다”며 제동을 걸었다고 지난달 30일 보도했다.워싱턴=이승헌 특파원 ddr@donga.com / 조은아 기자}

#.그녀의 노트북미대선의 마지막 태풍?#.일주일을 앞둔 미대선.힐러리에게 또 다른복병이 생겼습니다.#.미연방수사국(FBI)은힐러리 후보의 문고리라 불리는 힐러리캠프 부위원장 후마 애버딘의PC 사용을 문제 삼아수색영장을 발부했습니다.#.애버딘이 힐러리의 소식통 역할을독점하며 사적인 PC를이용해 제약 없이힐러리와 65만 건 이상의 이메일을 주고받았던 것이 발단됐습니다.#.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는"FBI가 새로 발견한 클린턴 e메일은'마더 로드'(mother lode) 일 수 있는데 클린턴은 마치 희생자 행세를 한다"며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죠.#.반면 힐러리 캠프는 FBI를비난하고 있는데요.-로비 무크 클린턴캠프선대본부장-FBI의 수사 결정은 혐의 사실을명확하게 제시하지 않고무작정 수사를 먼저 진행하고 있으며결과적으로 선거 결과에영향을 미칠 수 있다.#.후마 애버딘은 힐러리 클린턴의영부인 시절부터 백악관 인턴으로그녀를 보좌해왔습니다.#.2000년 상원의원 선거, 2008년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수행 실장을 맡았고 2009년-2013년, 국무장관 시절에는 비서실 부실장을 맡는 등힐러리의 일거수일투족을 보살피고 있죠.#.애버딘은 '힐러리 수양딸','첼시 언니'라는 별명을 얻을 만큼오랜기간 힐러리와 동고동락했습니다.#.초기 힐러리 측근의 상당수가 눈 밖에 났지만애버딘이 20년 동안 클린턴 곁을 지킨 것은그녀의 능력 못지않게 범접할 수 없는둘 간의 심리적 교류도 한몫했다는말이 나오는데요.#.그건 클린턴과 애버딘 모두 남편의 성 추문에 시달렸고 처음엔 용서까지 해줬다는 면에서 공감대가 형성될 수 있었다는 분석도 있습니다.#.그런 애버딘이 다가온 미대선 막바지 기간에 힐러리의 아킬레스건이 된 것입니다.#.FBI가 애버딘에게 어떠한 혐의를 적용할지,이번 일이 미대선 결과에 어떤 영향을 줄지미국뿐만이 아닌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습니다.원본: 이승헌 특파원·조은아 기자기획/제작: 김재형 기자·조성진 인턴}
일본이 자국 영토라고 주장하는 독도, 중국과 영유권 다툼을 벌이고 있는 센카쿠(尖閣)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 주변 해역에 길이 3m인 무인선 8척을 투입해 주변 동향을 24시간 감시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31일 일본 닛케이신문과 대만 중국시보(中國時報)에 따르면 일본 해상보안청은 독도와 가장 가까운 시마네(島根) 현 오키(隱岐) 제도, 동중국해 나가사키(長崎) 현 고토(五島) 열도, 가고시마(鹿兒島) 현 아마미오(奄美大) 섬, 일본 최남단 유인도인 하테루마(波照間) 섬 등 근해 4곳에 무인선을 2척씩 배치했다. 이 무인선은 원격으로 진로를 바꿀 수 있고 수집한 자료를 인공위성을 통해 해상보안청으로 보낸다. 전문가들은 무인선이 한반도와 중국, 러시아 군함 항로를 충분히 파악할 수 있을 것으로 평가했다.조은아 기자 ach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