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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73)의 사망 원인 등을 수사 중인 경찰이 그의 사망 시점을 6월 2일 이전으로 결론 내린 것으로 15일 확인됐다. 유 전 회장의 시신과 유류품, 사망 현장에서 발견된 파리 구더기와 번데기 등을 채취해 감식한 결과다. 유 전 회장의 마지막 모습으로 추정되는 폐쇄회로(CC)TV 영상 속 노인이 유 전 회장이라면 사망 시점은 CCTV에 찍힌 5월 29일 오전 11시 30분에서 6월 2일 사이로 좁혀진다. 전북지방경찰청 과학수사팀과 고려대 의대 박성환 교수팀은 유 전 회장 시신과 유류품에 붙어 있던 구더기의 상태를 바탕으로 탄생 시점을 역추적한 결과 6월 2일 이전에 알에서 깨어난 것으로 추정됐다. 당초 연구진이 구더기가 알에서 깨어난 시점으로 추정한 건 6월 4일이지만 6월 2∼4일 현장에 비가 내린 점을 감안해 6월 2일 이전으로 결론지었다. 구더기가 알에서 태어나려면 고온다습한 환경이 갖춰져야 하기 때문이다. 다만 연구진이 7월 27일부터 유 전 회장의 시신이 발견된 전남 순천시 서면 매실 밭에서 채취한 번데기 껍질 등은 시간이 오래 지나 의미 있는 결과를 이끌어내지 못했다. 연구진은 이런 감식 결과를 순천경찰서에 통보했다.조영민 채널A 기자 ym@donga.com / 조동주 기자}

“정말 감옥 같아요. 얼마나 무서우셨을까….” 올해 한국에 온 탈북 여학생 김유진(가명·23) 씨는 12일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 10명이 모여 사는 경기 광주시 퇴촌면 나눔의 집에 있는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에서 위안소를 재현한 5m² 남짓한 방을 보고 눈물을 글썽였다. 위안부 할머니들의 증언을 토대로 재현한 이 방에는 세계 각국에서 온 응원 편지 20여 장이 놓여 있었다. 김 씨와 친구들은 방 침대에 놓여진 엽서를 하나씩 진지한 표정으로 읽어 나갔다. 최근 한국에 온 탈북 청년 10명은 나눔의 집에서 광복 전후 역사의 산증인인 위안부 할머니들을 만났다. 이들에게 한국인으로서의 역사의식과 정체성을 고취시키고 광복절의 의미를 깨닫게 해주고자 서울 강남경찰서 보안과가 마련한 행사다. 탈북 청년들은 김군자(88) 정복수(88) 유희남(85) 김외한(80) 할머니를 만나 큰절로 인사했다. 할머니들은 “남한에 오느라 얼마나 고생이 많았느냐”며 손을 꼭 잡아줬다.광주=조동주 기자 djc@donga.com}

사기1970년대부터 생산된 일제 닛산 스포츠카 모델인 ‘페어레이디’(아름다운 여성·사진) 시리즈의 인터넷 동호회장 김모 씨(35)는 2010년경부터 연식이 오래된 일제 스포츠카 6대를 차례로 사들였다. 2000년대 초반에 생산된 닛산 350Z, 1993년식 혼다 NSX 등 주로 폐차 직전일 만큼 낡고 국내에 수입되지 않는 일제 스포츠카를 대당 770만∼2800만 원에 구입했다. 김 씨는 자신이 운영하는 차량 래핑숍에서 차 외부를 새 차처럼 멋지게 꾸몄다. 김 씨는 2012년 1월∼2013년 7월 구형 스포츠카 6대를 번갈아 타며 교통법규를 위반하는 차량만 골라 고의로 교통사고를 냈다. 사고 직후 김 씨는 한통속인 공업사에 차를 맡겨 수리비를 뻥튀기해 보험사에 청구했다. 구형 수입차는 부품 조달이 어렵고 수리 기간이 오래 걸려 대체차량 렌트비가 비싸기에 통상 보험사가 수리를 안 하는 대신 보상금 명목으로 ‘미수선금’을 지급하는 관행을 노린 것이다. 김 씨는 차 한 대로 한 달에 5번이나 사고를 내는 등 1년 7개월 동안 30여 차례나 고의로 사고를 내 2억여 원을 챙겼다. 김 씨는 공업사에 수리 건당 300만 원씩 줬고 공업사는 김 씨에게 공짜로 래핑숍 사무실을 빌려주며 공생관계를 맺어 왔다. 서울 강남경찰서는 김 씨를 상습사기 혐의로 구속했다고 11일 밝혔다.조동주 기자 djc@donga.com}

1970년대부터 생산된 일제 닛산 스포츠카 모델인 '페어레이디(아름다운 여성)' 시리즈의 인터넷 동호회장 김모 씨(35)는 2009년경부터 연식이 오래된 일제 스포츠카 6대를 차례로 사들였다. 2000년대 초반에 생산된 닛산 350Z, 1993년식 혼다 NSX 등 주로 폐차 직전일 만큼 낡고 국내에 수입되지 않는 일제 스포츠카를 대당 770만 원~2800만 원에 구입했다. 김 씨는 자신이 운영하는 차량 래핑샵에서 차 외부를 새 차처럼 멋지게 꾸몄다. 김 씨는 2009년 11월~2013년 7월 구형 스포츠카 6대를 번갈아 타며 교통법규를 위반하는 차량만 골라 고의로 교통사고를 냈다. 주로 비 오는 새벽에 강남대로 교보타워 사거리와 서초 염곡로터리 등 교통이 혼잡한 지역에서 불법 차선변경이나 신호위반을 하는 차량을 노렸다. 사고 직후 김 씨는 한통속인 공업사에 차를 맡겨 수리비 견적을 뻥튀기해 보험사에 청구했다. 구형 수입차는 부품 조달이 어렵고 수리 기간이 오래 걸려 렌트비가 비싸기에 통상 보험사는 수리를 안 하는 대신 보상금 명목으로 '미수선금'을 지급하는 관행을 노린 것이다. 김 씨는 차 한 대로 1개월 동안 5번이나 사고를 내는 등 3년 8개월 동안 30여 번 차 사고를 내 2억여 원을 챙겼다. 김 씨는 공업사에게 수리 건당 300만 원씩 줬고 공업사는 김 씨에게 공짜로 래핑샵 사무실을 빌려주며 공생관계를 맺어왔다. 서울 강남경찰서 교통범죄수사팀은 김 씨를 상습사기 혐의로 구속했다고 11일 밝혔다.조동주기자 djc@donga.com}

선임병 4명에게 구타를 당해 숨진 윤모 일병(22) 사건 파문이 확산된 뒤 첫 주말(9, 10일)을 맞아 전국 군부대에 면회객들이 몰렸다. 아들을 군에 보낸 부모들은 ‘설마 아직도 군에 구타가 있겠느냐’고 생각하다가 윤 일병 사건이 언론에 낱낱이 보도되자 일제히 면회에 나서 자식의 안부를 확인했다. 구타 사건이 터진 28사단 소속 병사를 면회 온 한 아버지는 “부대 안에 그런 폭력이 지금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다”며 “이번에야말로 군 폭력을 뿌리부터 근절할 때”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아들이 ‘잘못하면 죽는 것 아니냐’고 말해” 윤 일병이 소속됐던 경기 연천군 28사단 포병대대에는 아침 일찍부터 면회객이 줄을 이었다. 9일 면회를 마친 한 가족은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면회 시간 내내 4, 5가족이 들어갈 수 있는 부대 내 면회 장소에 빈자리가 없었을 정도”라고 전했다. 이 포병대대는 전체 200여 명 규모의 소규모 독립 대대로 알려졌다. 면회가 시작된 오전 9시부터 부대 앞에 가족들이 속속 도착했다. 위병소에 아들의 이름을 밝히고 영내 입장을 기다리는 부모들의 얼굴에는 초조함이 역력했다. 부대에 들어간 부모들은 위병소 바로 뒤에 마련된 면회소에서 아들을 만나자마자 ‘사지(死地)’에서 돌아온 사람을 만난 듯 힘껏 껴안았다. 윤 일병 사건 소식을 듣고 불안감을 느껴 부대를 찾은 면회객 중에는 계급이 낮은 이등병과 일병 부모가 대부분이었다. 이등병 아들을 둔 한 부모는 “대대장이 직접 면회소로 와 부모들을 안심시키려 애썼다”며 “구타 같은 건 없어 보였는데 그래도 걱정이 된다”고 말했다. 일병 아들을 둔 한 어머니도 “우리 아이 부대에서 사건이 났다고 해서 깜짝 놀라 이번 주에 면회를 왔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본보 취재진이 면회 직후 만난 가족과 병사들은 취재에 응했다가 혹시 부대에서 불이익을 받지나 않을지 극도로 경계하는 모습을 보였다. 언론이 면회객 취재에 나서자 해당 부대의 신고로 경찰이 출동하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이날 부대를 찾은 한 병사 아버지는 “아들이 사고 소식을 처음 접한 이후 몹시 겁내면서 ‘여기서 잘못하면 죽는 것 아니냐’며 불안해했다”고 전했다. 최근 한 달 동안 매주 부대를 찾았다는 그는 “(사고 보도가 대대적으로 난) 지난주부터 갑자기 면회객에 대한 감독이 심해졌다”며 “면회실도 지저분했는데 말끔하게 치워놨다”고 말했다. 기자가 위병소 앞에서 세어 보니 일반인 차량 15대가 면회 시간 동안 면회소를 찾았다.○ ‘총기 난사’ 22사단도 면회 줄 이어 강원 고성군 육군 22사단에도 가족 면회가 이어졌다. 22사단은 6월 임모 병장(22)의 총기 난사로 1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데다 3월에는 암기 강요와 욕설에 시달리던 한 병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실이 뒤늦게 알려진 부대다. 윤모 씨(47·여·서울)는 9일 면회를 통해 22사단에서 복무 중인 아들을 5월 신병교육대 수료식에 이어 두 번째로 만났다. 최근 윤 일병 사건으로 부대 내에 가혹행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안 뒤 ‘혹시 내 아들도…’ 하는 걱정에 서둘러 면회를 왔다. 윤 씨는 아들과의 통화에서 “아무 걱정 말라”는 말을 들었지만 눈으로 확인해야 안심이 될 것 같아 아침 일찍 동서울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동해안 최북단까지 찾아왔다. 외박 허락을 받고 나온 아들과 시간을 보낸 윤 씨는 아들의 건강한 모습을 확인하고서야 걱정을 내려놓았다. 윤 씨 아들도 “그런 가혹행위는 우리 부대에 없다”며 어머니를 안심시켰다. 윤 씨는 “자식을 군대에 보낸 부모 심정이 다 같지 않겠느냐. 다시는 군대에서 그런 비극적인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윤 씨는 고기가 먹고 싶다는 아들에게 고성군 간성읍의 한 음식점에서 숯불갈비를 실컷 먹였다. 22사단에 복무 중인 아들을 면회하기 위해 온 가족이 왔다는 권모 씨(50·대전)는 “이번 사건이 군 내부적으로는 상당한 아픔이지만 이 기회에 근본적인 상처를 치유해야 한다”며 “겉으로 외상만 치료하려고 했다가는 속이 곪고 썩어 결국 잘라내야 할 처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연천=권오혁 hyuk@donga.com·조동주·고성=이인모 기자 }

‘샤워할 때라도 살펴봐야겠어. 어디 상처는 없는지….’ 이병해 씨(46·여)는 곧 휴가를 나올 스무 살 군인 아들을 기다리며 이렇게 다짐했다. 이 씨 아들은 4월 말 육군에 입대해 이번 주말에 첫 휴가를 나온다. 선임들에게 두들겨 맞아 숨진 윤 일병, 전역 당일 목숨을 끊은 이 상병 등 군대에서 벌어진 끔찍한 가혹행위로 사망하는 ‘대한민국 아들’ 소식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아들을 군에 보낸 엄마들이 불안에 떨고 있다. 이들에게 윤 일병과 이 상병 사건이 남 얘기일 수 없다. 수십 만 장병의 엄마 모두에게 물어봐도 “군인 모두가 내 아들”이라 말할 것이다. 그게 모정(母情)이다.○ 들었다 내려놓는 전화 동아일보 취재팀은 7일 아들을 군에 보낸 엄마 15명에게 심경을 물었다. 엄마들은 하나같이 생때같은 아들을 ‘사지(死地)’에 보냈다는 불안감을 호소하며 야만적인 병영문화를 성토했다. 아들에게서 전화가 걸려올 때마다 떨리는 마음으로 “몸은 괜찮아? 다친 덴 없어?” “선임들이 안 괴롭히니?”라고 물어야 하는 현실이 참담하다고 했다. 혹여나 아들에게 불이익이 갈까 두려워 취재팀에 아들의 이름이나 부대 이름도 알려주지 않았다. 스무 살 아들을 강원도 전방부대에 보낸 엄마 이모 씨(55)는 최근 군대 가혹행위 뉴스를 보고 전화기를 들었다 놨다를 반복하고 있다. 아들 소속 부대 중대장에게 전화해 그 부대에는 가혹행위가 없는지 물어보고 싶지만 그랬다가 혹시나 아들이 불이익을 당할까 봐 두려운 탓이다. 아들이 얼마 전 전화를 걸어와 “우리 부대는 그런 것 없으니 걱정 마”라며 안심시켰지만 도무지 마음을 놓을 수가 없다. 윤 일병이나 이 상병도 혹독한 고통을 당하면서도 부모에게 말하지 않았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내 눈으로 확인하고 싶다” 아들의 몸이 괜찮은지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해야 마음이 놓일 것 같아 면회를 가려는 엄마들도 늘고 있다. 두 달 전 아들을 육군에 입대시킨 엄마 최모 씨(54)는 조만간 면회를 가 아들의 군복을 들춰 볼 생각이다. 지난달 면회 갔을 때는 주변 선임들 시선이 신경 쓰여 차마 아들 몸을 확인해볼 엄두를 못 내고 말로만 “정말 괜찮은 거냐”고 물어본 게 후회스럽다. 최 씨는 요즘 아들과 통화를 하면 “선임 눈 밖에 나면 안 된다. 인사 잘하고 깍듯이 보필해야 한다”고 신신당부하고 있다. 여자라서 군대 생활을 직접 해보지 않아 이런 말밖에 해줄 수 없는 게 한스럽다고 했다. 엄마의 절망은 분노로 이어졌다. 극히 일부이긴 하지만 엄마들 사이에선 “차라리 군대 안 보내고 교도소 보내는 게 낫겠다. 군대 가면 저토록 허망하게 죽는데 교도소는 그래도 살아서는 나오지 않나”라는 극단적인 얘기까지 돌고 있다. ‘군대 내 부당한 가혹행위로 아들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는 극도의 불안감이 불러온 참담한 발상이지만 그만큼 군인 아들을 둔 엄마들이 불안해 한다는 방증으로 보인다. 남자 친구를 군대에 보낸 여자 친구들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연하 남자 친구를 군대에 보낸 이모 씨(24)는 최근 남자 친구가 “소속 부대를 옮긴 이후 소외감을 느낀다”고 털어놓을 때 가슴이 철렁했다. 생활관 병사들이 빨래를 모아 한꺼번에 같이 하는데 빨래 순번에 남자 친구만 끼워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씨는 “남자 친구가 ‘은따’(은근히 따돌린다는 뜻의 속어)를 당하는 것 같다”며 “무슨 일 있으면 혼자 끙끙 앓지 말고 꼭 얘기해 달라고 신신당부했는데 더 큰 일이 생기지 않을까 조마조마하다”고 털어놨다.○ “생활관에 CCTV 설치해 달라” 엄마들은 아들이 대한민국 남아로서 반드시 군복무를 해야 한다면 가혹행위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 달라고 입을 모았다. 김모 씨(46)는 “지인의 자제가 군대에서 당한 피해를 청와대 신문고에 올렸는데 부대에서 어떻게 알고 ‘요구를 다 들어줄 테니 글을 당장 지우라’고 했다는 말을 들었다”며 “내부 부조리에 대해 고소, 고발해도 신원을 철저히 보호해주는 시스템을 만들어달라”고 당부했다. 조모 씨(50)는 “인권침해 논란이 있긴 하지만 지금은 우리 아들들의 목숨을 지켜야 하는 상황”이라며 “대부분의 가혹행위가 벌어지는 생활관에 폐쇄회로(CC)TV를 의무적으로 설치해 모든 장면을 녹화해야 한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엄마들은 △엄마들이 참여하는 민관군 합동감시단을 만들어 불시에 부대를 방문하게 하자 △소원수리를 해도 필적 조회로 걸린다니 컴퓨터로 쓰게 하자 △화상통화를 의무화하자는 등 모정 어린 아이디어도 쏟아냈다. 동아일보가 인터뷰한 엄마 15명 중 13명은 ‘군인에게 스마트폰을 쓰게 허락해 가혹행위를 알릴 수 있게 하자’는 일부 정치권의 주장은 반대했다. 군대 내에서 벌어진 가혹행위가 부모에게 알릴 수 있는 통신수단이 없어서 숨겨져 온 게 아니라 비합리적인 병영문화로 인한 것이라 근시안적인 대책이라는 지적이었다. 일부 젊은 세대가 무참한 가혹행위를 자행하는 건 스마트폰 중독으로 인해 유대관계에 서툴거나 인간미가 결여됐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었다. 초중고교처럼 업무시간 외의 자유시간에만 제한적으로 허락해줘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조동주 기자 djc@donga.com 권오혁 기자 hyuk@donga.com 최혜령 기자 herstory@donga.com 전현우 인턴기자 중앙대 신문방송학부 4학년}
“자, 건배사 한마디 해봐.” 폭탄주를 받아든 직장 상사가 술잔을 치켜들며 입을 엽니다. 회식 자리에 옹기종기 모여 앉은 직장 동료들은 한껏 기대하는 눈빛으로 술잔을 따라 듭니다. 쏟아지는 시선에 부응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온몸을 짓누르지만 두어 개 갖고 있던 ‘필살기’는 이미 써먹은 지 오랩니다. 그렇다고 “제가 ‘○○(회사 이름) △△팀’ 하면 ‘화이팅’ 해주십시오!”라는 식의 무성의한 건배사를 했다간 눈총과 조롱을 받기 십상입니다. 급하게 스마트폰을 꺼내 건배사 앱을 뒤져보지만 ‘시원하게 이끌어주는 오너! CEO!’ 같은 흔해 빠진 건배사뿐입니다. 조급한 마음에 ‘오빠 바라만 보지 마! 오바마!’ 같은 무리수를 던졌다간 자칫 성추행범으로 몰립니다. 상사가 잔을 들고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와이셔츠가 땀으로 흠뻑 젖어갑니다. 회식(會食)은 여러 명이 모여 식사를 한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한국 직장인 회식문화는 ‘회식’을 표현할 영어 단어가 없을 만큼 독특합니다. 상사의 자기자랑 듬뿍 담긴 훈계성 일장 연설을 듣는 것도 피곤한데 분위기가 조금이라도 가라앉으면 어김없이 “누가 분위기 좀 띄워 봐”라며 각종 이벤트를 요구합니다. 모두 고개를 숙이고 눈을 피하면 어김없이 막내가 지목됩니다. 막내가 트로트 같은 노래를 부르며 우스꽝스럽게 온몸을 뒤틀고 춤을 추면 모두가 겉으론 활짝 웃지만 속으론 안쓰러워합니다. 도무지 누구를 위한 건지 알 수 없는 갖가지 ‘가혹행위’는 상사가 흠뻑 취할 때까지 이어집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회식’과 ‘직장’이란 단어를 넣어 검색해 보면 평범한 직장인들이 회식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금세 알 수 있습니다. “군대에서 가혹행위를 근절하겠다는 건 직장에서 회식 안 하겠다는 말과 똑같다” “직장생활은 회식이 절반, 아부가 절반” “내가 사장 되면 회식부터 없애겠다”는 등 회식을 대하는 직장인들의 한탄과 자조가 가득합니다. “가족이 아프지 않고 회식에서 빠지는 법” 같은 글도 인기입니다. 기업이 운영하는 SNS 계정도 회식에 대한 각종 글을 자주 올립니다. 한 전자기업은 최근 트위터에 ‘직장인, 이런 회식 원한다! 베스트 4!’라며 △1차로 끝내기 △술 대신 문화생활 △맛집 투어 △교외 야유회를 해야 한다고 소개했습니다. 한 대기업은 ‘직장인이라면 피할 수 없는 회식 장소, 명당 찾기’라며 회식 장소를 알려줍니다. 또 다른 대기업은 직원 1800여 명에게 설문조사를 해보니 패밀리 레스토랑에서의 식사를 가장 선호하는 회식이라며 이를 적극 권장하겠다고 합니다. 단언컨대 회식 자체를 원하지 않는 직장인이 압도적으로 많을 텐데 그 어떤 기업 SNS도 회식을 안 하겠다고는 말하지 않습니다. 요즘 직장인들은 회식 자리를 대비해 학원까지 다닙니다. 건배사는 화술을 가르쳐주는 스피치 학원에서 배웁니다. 서울 강남의 한 스피치 학원에 직장인을 위해 개설한 8주짜리 강의에는 건배사 코멘트와 진행 방식, 주의점 등을 가르치는데 인기 만점입니다. 회식이 잦은 연말연시에는 건배사만을 일대일로 과외해주는 강의도 열린다고 하네요. 서울 강북구 미아동 나이트클럽에서 일하는 윤민호 씨는 기자에게 “일주일에 한 번꼴로 폭탄주를 멋있게 타는 법에 대해 회사 강연을 다니는데 직장인들이 개별적으로 과외를 문의하는 경우도 많다”고 전했습니다. 개인기는 마술이 가장 인기입니다. 회식자리 개인기가 대부분 춤과 노래이다 보니 겹치는 경우가 많아 차별화를 하려는 거죠. 마술은 짧은 시간에 큰 호응을 이끌어낼 수 있고 실패하더라도 어느 정도 재미가 보장됩니다. 서울 서대문구의 한 마술학원은 수강생 중 직장인이 40%에 이릅니다. 퇴근 시간 이후인 오후 7, 8시 강의는 늘 만원입니다. 개그맨 지망생들이 성대모사 등을 배우기 위해 다니는 학원에도 어김없이 직장인들이 있습니다. 개인기도 직장인의 능력으로 자리 잡은 시대인지라 하나만으론 부족합니다. 남들이 안 하는 걸 보여줘야 한다는 부담감에 특이한 걸 찾기도 합니다. 요즘은 손으로 물건을 연이어 던지는 ‘저글링’이 인기입니다. 저글링을 잘 배워뒀다가 콩주머니 3, 4개 정도를 늘 들고 다니면 언제든 ‘위기’를 넘길 수 있습니다. 13년째 저글링 수업을 하고 있는 박종언 씨(33)는 “수강생 중 30%는 젊은 직장인인데 매주 한 번씩은 꼭 배우러 온다”고 말합니다. 한국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속한 국가 중 노동시간이 가장 길다고 합니다. 지금은 정계은퇴한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는 대선 경선 캐치프레이즈로 ‘저녁이 있는 삶’을 내걸어 직장인들의 전폭적인 호응을 얻었습니다. 저녁이 있는 삶이라는 거, 그리 어려운 건 아닙니다. 저녁이 있는 삶은 회식이 없는 직장에서 시작됩니다.조동주 사회부 기자 djc@donga.com}
"목이 마르네요. 물 좀 떠다 주세요." 김모 씨(44)는 4월 23일 오후 7시경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고급아파트 안방에서 집주인 오모 씨(70·여)에게 태연히 이렇게 부탁했다. 부동산업자와 집을 보러 왔다는 김 씨는 집 구매에 큰 관심을 보이며 안방에 놓인 장롱 크기를 줄자로 재고 있었다. 김 씨는 주인 오 씨가 주방에서 가져온 물 컵에는 손도 대지 않고 "아파트 앞에 세워둔 차를 이동주차 해달라고 하니 금방 다녀오겠다"며 집을 나섰다. 김 씨가 떠난 뒤에야 오 씨는 안방 화장대에 있던 4500만 원짜리 롤렉스 시계가 없어진 걸 알았지만 남편에게 혼날까봐 혼자 속앓이를 해야했다. 김 씨는 4월 23일부터 7월 31일까지 이런 방식으로 서울 강남 일대 고급 아파트에서 9번에 걸쳐 명품시계와 귀금속 1억 2580만 원어치를 훔쳤다. 김 씨에게 속았던 부동산업자들은 그가 말끔한 정장 차림이라 도둑일 줄은 상상도 못했다. 김 씨는 매번 주인의 시선을 피하려고 물을 요구하면서도 지문을 남기지 않기 위해 한 번도 물컵을 잡지 않았다고 한다. 김 씨는 6월 19일 서울 서초구 아파트에서 범행한 뒤 신고가 접수돼 경찰 추적을 받다가 7월 31일 고향인 제주도로 가던 길에 김포공항에서 체포됐다. 서울 서초경찰서는 김 씨를 절도 혐의로 구속했다고 6일 밝혔다.조동주 기자 djc@donga.com}
“혹시나 우리 아들이 군에서 얻어맞고도 혼자 끙끙댈까봐 너무 불안해요.” 이모 씨(47·여)는 4일 동아일보가 단독 보도한 ‘이 상병 전역당일 자살사건’을 접하고 불안에 떨었다. 아들(20)이 올해 4월 말 입대한 뒤 ‘임 병장 총기난사’ ‘윤 일병 집단구타’ 등 군대 부조리로 인한 불상사가 불거진 상황에서 새로운 사건이 줄줄이 터져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이 씨는 “아들이 아직 이등병이라 열흘에 한 번꼴로 3, 4분 정도밖에 전화통화를 못해 자세한 근황도 모른다. 8일 아들이 첫 휴가를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군대에서 은밀히 자행돼 왔던 각종 가혹행위가 곪아터져 수면 위로 드러나면서 20대 아들을 둔 부모들의 걱정이 커지고 있다. 과거 부모들은 “남자라면 군대를 가야 한다”며 눈물을 머금고 아들의 등을 두드리며 훈련소로 보냈다. 하지만 이젠 어느 부모도 선뜻 그렇게 말하지 못한다. 스물한 살 아들을 둔 손모 씨(49·여)는 “아들이 허리가 안 좋아 병원 진단서를 잘 받아서 재검 신청을 하면 4급 판정을 받을 수도 있었지만 군대는 보내야 할 것 같아 현역 판정을 받아들였는데 너무 후회된다”고 말했다. 아들이 상대적으로 편하다고 알려진 곳으로 입대하려 해도 부모가 “군대에서 고생 좀 해야 정신 차린다”며 해병대나 특전사 등 육체적으로 고된 곳을 권하던 ‘미덕’도 옛날 얘기가 됐다. 병영생활을 다루는 TV 예능프로그램을 보고 ‘요즘 군대가 예전과 달리 좋아진 거 같다’는 인상을 받았던 부모들도 배신감을 토로하고 있다. 20∼30년 전 군대를 다녀온 아버지 세대도 요즘 군대에서 벌어지는 가혹행위에 충격을 받긴 마찬가지다. 25년 전 군대를 다녀온 조모 씨(50)는 “우리 때도 잘못하면 몇 대 맞기도 했지만 요즘처럼 집단 따돌림과 결부된 무자비한 폭행은 거의 없었다”고 말했다. 곧 아들을 군대에 보낼 신모 씨(52)는 “‘내가 당한 만큼 너도 당해 봐라’라는 식의 마음가짐은 결국 모두에게 상처와 피해만 될 뿐”이라고 당부했다.조동주 기자 djc@donga.com신지현 인턴기자 서울대 소비자학과 3학년}
새정치민주연합 박범계 원내대변인이 29일 국회에서 “최근 발견된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 변사체가 실제 유 전 회장이 아니라는 경찰 관계자의 증언을 확보했다”고 주장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100% 유 전 회장 시신이 맞다”고 단언한 걸 뒤집는 발언이다. 박 원내대변인은 “7월 21일인지 22일 새벽인지 정확하지는 않으나 국과수 요원 3, 4명이 순천 장례식장을 찾아왔고 그 변사체를 감식했다. 순천경찰서와 전남도경(전남지방경찰청) 관계자가 입회를 했는데, 경찰 관계자가 기자들에게 ‘외관상 유병언이 아니다’라고 자신한다고 말했다”며 ‘가짜 유병언 의혹’을 제기했다. 박 원내대변인은 △국과수 직원이 장례식장에서 줄자로 시신 키를 쟀는데 150cm였다 △입회한 경찰이 시신에 금니가 있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발견 당시엔 채취가 안 됐던 지문이 나중엔 채취된 게 이상하다는 걸 근거로 들었다. 박 원내대변인의 의혹 제기는 근거가 없어 보인다. 유 전 회장 시신은 순천 장례식장에 안치돼 있던 당시 목뼈 7개 중 3개가 빠진 상태였다. 6월 12일 발견 당시 시신은 부패가 심해 경찰이 병원으로 옮기던 중 머리와 몸이 분리됐는데 이 과정에서 목뼈가 3개 빠졌다. 경찰은 22일 오후 3시경 사망 현장에서 목뼈 2개를 회수했고 나머지 1개는 인근 주민 윤모 씨가 주워 갖고 있던 걸 25일에야 돌려받았다. 목뼈가 3개나 없는 상태였으니 키가 줄어든 건 당연하다. 국과수 서중석 원장은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당시 목뼈가 3개 빠진 상태에서 줄자로 시신 길이를 잰 거라 아무런 의미가 없다”며 “시신의 키는 발표대로 159.3cm가 확실하다”고 말했다. 금니 의혹에 대해서도 “순천으로 간 직원에게 ‘시신에 금니가 10개 있다’는 보고를 받고 시신을 올려 보내라고 한 것”이라고 말했다. 유 전 회장 지문에 대한 박 원내대변인의 주장도 설득력이 약하다. 경찰은 6월 13일부터 2주에 걸쳐 두 차례 유 전 회장 시신 왼쪽 손가락에서 지문을 채취하려고 두 차례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오른손은 배에 짓눌려 부패가 심해 상태가 그나마 양호한 왼손을 택한 것이다. 7월 21일 오후 변사체와 유 전 회장 DNA가 일치한다는 소식을 국과수로부터 전해 듣고 다시 지문을 채취하려고 시신을 냉동고에서 꺼냈는데 장기간 냉동해서인지 흐물흐물하고 갈라졌던 피부가 건조되고 딱딱해지면서 붙어 지문 상태가 나아졌다고 한다. 경찰은 22일 오전 1시 20분경 시신 오른쪽 집게손가락에서 ‘쪽지문’을 확보해 기존에 등록된 유 전 회장 지문과 일대일로 비교한 결과 일치한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은 이날 유 전 회장의 시신과 유대균 씨의 DNA를 분석한 결과 둘은 부자(父子) 관계로 확인됐다며 ‘가짜 유병언 시신’ 의혹 잠재우기에 안간힘을 썼다.순천=조동주 djc@donga.com 황성호 기자 hsh0330@donga.com 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이 아닙니다. 시신 왼손가락 끝마디는 절단되지 않았습니다.” 6월 12일 오전 9시 6분경 “전남 순천시 서면 학구리 매실밭에 변사자가 있다”는 밭주인 박모 씨(77) 신고를 받고 출동한 순천경찰서 형사들은 현장을 살펴본 뒤 간부들에게 이같이 보고했다. 형사들은 이날 매실밭에서 노인의 시신을 살펴본 뒤 노숙인으로 판단했다. 이후 시신 검안과 부검 과정에서 “특이한 점이 없다”고 했다. 그러나 시신에서 유전자를 채취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검사를 의뢰한 결과 7월 21일 ‘변사체 유전자가 유 전 회장과 일치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부실 수사에 대한 비난이 커졌다. 순천서 형사들은 이번 변사사건을 조사할 당시 유 전 회장의 시신 왼손 둘째, 넷째 손가락이 일부 잘려 있는지만 살펴보는 실수를 했다. 유 전 회장은 그동안 알려졌던 것과는 달리 왼손 둘째 손가락 끝만 약간 잘린 것으로 확인됐다. 또 형사들은 시신이 워낙 부패해 둘째 손가락 끝마디가 잘린 사실을 알아볼 수 없는데도 “손가락 끝이 절단되지 않았다”고 잘못 보고했다. 검찰과 경찰의 수사 공조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순천서 형사들은 유 전 회장의 얼굴과 키, 머리카락이 백발이라는 수배 전단 정보밖에 몰랐다. 언론을 통해 유 전 회장이 1966년 전기톱으로 왼손 둘째, 넷째 손가락 끝마디 일부가 절단됐다는 정보만 알고 있었고 어느 정도 절단됐는지조차 몰랐다. 검찰은 유 전 회장이 평소 스쿠알렌과 육포를 즐겨 먹는다는 사실을 확인하고도 이 정보를 순천서 측과 공유하지 않았다고 한다. 순천서 형사들은 시신의 신원을 확인하기 위해 왼손가락 지문 채취를 두 차례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시신의 부패가 심해 지문 채취도, 손가락 훼손 여부도 알 수 없었던 것이다.순천=이형주 peneye09@donga.com·조동주 기자}
‘파리 번데기 껍질.’ 경찰이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의 정확한 사망 시각을 밝히기 위해 주목하고 있는 유력한 단서다. 전북지방경찰청 과학수사대(CSI)와 고려대 의대 박성환 교수팀은 27일부터 유 전 회장이 변사체로 발견된 전남 순천시 서면 학구리 매실밭에서 파리 번데기 껍질 40∼50개를 수거해 정밀 분석하고 있다. 유 전 회장의 시신에서 나온 파리 번데기 껍질의 상태를 통해 사망 시각을 추정하려는 것이다. 유 전 회장이 6월 12일 오전 9시 6분경 잡초가 무성하게 자란 매실밭에서 발견될 당시 시신에는 구더기가 잔뜩 꼬여 있었다. 파리가 낳은 알에서 생겨난 구더기다. 파리는 사람이 사망하면 가장 먼저 달려드는 곤충이다. 시신 중 습기가 있는 곳을 찾아 알을 낳는데, 이 알은 구더기에서 번데기로 자란다. 번데기에서는 파리 성충이 껍질을 까고 나온다. 파리가 낳는 알이 성충으로 성장하는 데엔 종류와 기온에 따라 다르지만 통상적으로 2주 정도 걸린다. 유 전 회장은 5월 27일∼6월 12일 사이에 숨졌고 시신이 옮겨진 지 한 달 반이나 지났기 때문에 현재는 구더기나 번데기가 없다. 파리가 남긴 번데기 껍질을 통해 정확한 사망 시기를 유추해야 한다. 파리 말고도 시신에 몰려드는 딱정벌레 같은 곤충들도 채집 대상이다. 경찰과 박 교수팀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으로부터 유 전 회장의 시신에서 발견된 구더기도 건네받아 발생 시기를 감식할 예정이다. 파리 알의 정확한 진화 시간을 유추하려면 정확한 기온과 습도를 알아야 한다. 경찰과 박 교수팀은 현장에 미국산 기상관측대 2대를 설치해 기온과 습도를 측정하고 있다. 전북경찰청 과학수사팀 현철호 검시관은 “지금 유 전 회장의 사망 시기를 알 수 있는 유일한 답은 곤충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순천=조동주 djc@donga.com·황성호 기자}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의 변시체가 발견됐던 지난달 전남 순천 일대에 구원파 계열사 물품이 떨어져 있는지 수색해보라는 지시를 받고도 순천경찰서가 사실상 이를 묵살한 것으로 27일 확인됐다. 경찰은 유 전 회장 시신에서 구원파 계열 제품인 ASA스쿠알렌과 육포가 발견되자 뒤늦게 전방위적인 수색작업을 벌이고 있지만 별다른 성과가 없는 상황이다. 유 전 회장이 은신했던 순천시 서면 학구리 ‘숲속의 추억’ 별장을 관할하는 순천경찰서는 6월 22일 상부로부터 “유 전 회장이 도주하다 흘리거나 버렸을 수 있으니 구원파 계열사에서 제조한 유기농식품 같은 물건을 수색해 보라”는 지시와 함께 구원파 계열사 제품 목록을 공문으로 받았다. 하지만 순천경찰서는 유 전 회장의 소재를 찾는 데 정신이 팔려 지시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 당시 수색에 참가했던 경찰 관계자는 “유 전 회장을 찾느라 한창 바쁠 땐데 쓰레기통이나 뒤질 시간이 어디 있었겠느냐. 수색하라니까 하기는 했는데 열성적으로 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경찰은 25일 “유 전 회장의 안경이 도피경로를 추적하는 주요 단서인 만큼 꼭 찾겠다”고 공언했다가 하루 만에 “유 전 회장은 평소 안경을 쓰지 않았다고 한다”고 말을 바꿨다. 경찰이 25일 오후 인천구치소로 가 유 전 회장과 별장에 함께 있었던 신모 씨(33·여·구속)를 만나보니 신 씨가 “유 전 회장은 평소 책을 읽을 때 말고는 안경을 쓰지 않았다”고 진술했다는 것이다. 유 전 회장이 등장하는 설교 영상을 보면 늘 안경을 쓰고 있고, 수배전단지에도 안경을 쓴 모습이다. 경찰 관계자는 “유 전 회장이 안경을 써야만 일상생활을 할 수 있다는 얘기는 확인되지 않은 사실”이라며 “유 전 회장이 평소 안경을 쓰지 않았다는 건 복수의 인물에게 확인한 것”이라고 거듭 해명했다.순천=조동주 기자 djc@donga.com 황성호 기자 hsh0330@donga.com}

경찰이 24일 전남 순천시 서면 학구리 오솔길에서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이 도피하다 흘린 것으로 추정되는 안경을 발견했으나 확인 결과 인근 농장 주인의 안경으로 밝혀졌다. 유 전 회장의 안경이 맞다면 도피로 추적이 가능했으나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 셈이다. 동아일보 취재팀은 23, 24일 유 전 회장이 별장에서 나와 도피로로 이용할 수 있는 경로 세 군데를 직접 따라가 봤다. 도주 추정 경로에선 수상한 텐트와 구원파 계열사 물통, 단종된 보해골드 소주병 등이 발견됐다. 별장에서 매실밭까지는 직선거리로 2.5km가량 떨어져 있지만 도주로에 따라 험준한 산길을 7km 넘게 걸어야 하는 경로도 있었다.○ 도피로에 숨겨진 ‘수상한 텐트’ 유 전 회장이 5월 26일 새벽 전남 순천시 ‘숲속의 추억’ 별장을 나서면서 택할 수 있는 도주 경로는 세 군데다. 정문으로 나가 50m 정도 걸으면 국도 17호선과 바로 연결되지만 사방이 뚫려 있어 금세 눈에 띌 수밖에 없었다. 유 전 회장이 택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경로는 별장 뒷문 쪽 양 갈래 오솔길이다. 왼쪽엔 얕은 계곡으로 통하는 길이, 오른쪽엔 1.1km 길이의 폐철도 터널이 나온다. 왼쪽 길을 택하면 나오는 계곡을 250m가량 거슬러 올라가니 왼쪽에 수상한 연두색 텐트가 설치돼 있었다. 사람 한 명이 충분히 잘 수 있는 크기였고 텐트 입구는 철사로 잠겨 있었다. 내부엔 장판이 깔려 있었고 성경책, 100사이즈 갈색 체크무늬 남방과 검은색 트레이닝복, 식기도구와 마른 과일 등이 들어 있었다. 유 전 회장이 이 길을 택해 도피했다면 잠시 쉬어가기엔 최적의 장소로 보였다. 텐트 바로 옆에 있는 배수로를 따라가니 왼쪽에 국도 17호선 하행선 송치터널 앞으로 연결되는 통로가 나왔다. 통로를 지나려면 1m 높이의 배수로를 기어올라야 하는데 밑에는 이미 누군가가 이용한 듯 디딤돌이 놓여 있었다. 별장 뒷문에서 오른쪽 길을 택해 하천을 따라가니 왼편에 과거 철도로 썼던 폐터널 입구가 보였다. 7월 대낮인데도 내부엔 강한 냉기가 서려 있었다. 유 전 회장이 5월 말 도피 전 겨울 점퍼를 챙겨 입은 게 이곳을 지나기 위해서였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터널 안에선 유 전 회장의 계열사 온나라유통에서 만든 350mL짜리 빈 생수병이 발견됐다. 터널 끝으로 나와 보니 유 전 회장이 사망 당시 갖고 있던 것과 같은 ‘보해골드’ 빈 소주병이 뒹굴고 있었다. 터널을 빠져나오면 등장하는 산속 도로를 따라 쭉 올라가니 기독교복음침례회(구원파) 순천교회로 불리는 야망연수원을 지나 국도 17호선 하행선 송치터널 앞으로 연결됐다. ○ 매실밭 뒤는 기독교 공동묘지 취재팀이 유 전 회장이 사망한 채 발견된 순천시 서면 학구리 매실밭과 통하는 길을 역추적해 보니 유 전 회장이 매실밭 뒤쪽 산길을 통해 왔을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매실밭 앞쪽 길은 마을과 통하는 길이라 언제든 주민의 눈에 띌 수 있다. 매실밭 뒤쪽 산길로 가니 기독교 신자 공동묘지가 나왔다. 드넓은 공동묘지지만 관리가 되지 않아 곳곳에 빈 술병이 발에 차였다. 유 전 회장이 갖고 있던 소주병 2개와 막걸리병 1개는 이곳에서 주웠을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매실밭 뒤쪽 산길은 유 전 회장이 사망한 매실밭으로 연결된다. 걸어서 도피했다면 몸을 숨길 최적의 장소처럼 보였지만 산세가 매우 험해 20대인 기자도 걷기 쉽지 않았다. 한편 24일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긴급현안질의에 출석한 서중석 국립과학수사연구원장은 “유류품인 소주병과 막걸리병 등에서도 타액이 채취됐다”며 현장 검사가 진행되고 있고 25일 국과수 결과 발표 때 함께 밝히겠다고 말했다.순천=조동주 기자 djc@donga.com 황성호 기자 hsh0330@donga.com}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의 시신 근처에 있던 유류품 중 일부는 전남 순천시 ‘숲 속의 추억’ 별장에 있던 물품과 일치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은 23일 오후 9시부터 1시간 25분 동안 별장을 다시 압수수색해 유 전 회장의 유류품과 같은 물건을 확보한 뒤 내부를 취재진에 공개했다. 경찰이 별장에 들어섰을 당시엔 유 전 회장 시신과 함께 발견된 ASA스쿠알렌 갈색 병이 100여 개 널려 있었고 진공포장한 육포 봉지 90여 개가 든 비닐봉지도 발견됐다. 식탁에는 구원파 신도가 경기 안성시 금수원에서 가져다 준 육포와 말린 사과, 구원파 관련 회사가 생산하는 녹차사탕과 30mL짜리 ‘아해티 앤 그린티’ 병 등 다양한 유기농식품이 가득 놓여 있었다. 유 전 회장 시신 옆에 있던 베이지색 천가방에는 ‘꿈 같은 사랑’ ‘글소리’라는 글씨가 적혀 있었는데 별장에선 이 단어들을 제목으로 하는 책이 여러 권 발견됐다. 별장 2층 다락방에는 양쪽에 각각 비밀공간이 마련돼 있었다. 계단을 올라서서 왼쪽 통나무 벽면에 붙어 있는 검은색 소파를 치우면 구석에 돈가방이 있었던 비밀공간으로 들어가는 출입구가 나온다. 오른쪽 통나무벽 끝에는 유 전 회장이 5월 25일 압수수색 당시 숨어 있었던 비밀공간으로 진입하는 출입구가 있었다. 비밀공간 내부에는 건축물 폐기물 등이 놓여 있었다. 경찰은 1층 바닥에 깔려 있던 건물 설계도 여러 장을 확보하고 도피 조력자들이 검경의 수색에 대비해 비밀공간을 미리 만들어 뒀던 것인지를 수사할 방침이다. 별장에선 유 전 회장이 평소 신다가 가져온 것으로 보이는 최고급 남성 수제화 ‘벨루티’ 구두와 프랑스 명품 브랜드 ‘에르메스’ 구두가 각각 상자에 담겨 있었다고 전해졌다. 책상에는 도피 중에도 카메라를 챙긴 듯 카메라 배터리와 충전기가 여러 개 놓여 있었고 성경과 유병언이 쓴 ‘꿈 같은 사랑’ ‘그분 다시 살으셨소’ 등의 책이 발견됐다. 냉장고는 음식으로 가득 차 있었고 화장실에는 유 전 회장이 발명했고 구원파 신도 대부분이 애용하는 관장기 ‘내클리어’도 비치돼 있었다.순천=조동주 djc@donga.com·황성호 기자}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의 사망 사실이 22일 최종 확인되면서 수배 중인 자녀들이 모습을 드러낼지도 관심사다. 검찰이 유 전 회장 일가의 비리를 밝히고 세월호 참사의 책임을 묻기 위해서는 횡령 혐의 등으로 수배된 자녀들의 신병을 확보하는 것이 필수다. 하지만 5월 말 프랑스 파리에서 현지 경찰에 체포된 장녀 섬나 씨(48)를 빼곤 장남 대균 씨(44·사진)와 차남 혁기 씨(42)의 행적은 여전히 드러나지 않고 있다. 대균 씨는 검찰의 본격 수사 착수 직후부터 유 전 회장과 따로 떨어져 수도권이나 대구 지역에 은신한 것으로 추정돼왔다. 대균 씨는 아버지의 사망 소식에 마음이 흔들려 자수할 가능성이 있다. 유 전 회장은 생전에 측근들에게 “마음 약한 대균이를 보호하라”는 특명까지 내리면서 검거되지 않도록 보호할 것을 당부했다고 한다. 섬나 씨의 국내 송환 여부는 다음 달 17일 파리 항소법원에서 열리는 정식 범죄인 인도 재판에서 가려진다. 섬나 씨가 법원의 인도 결정에 불복하면 1년여가 걸리는 유럽사법재판소의 상소심까지 거쳐야 한국으로 송환되지만 아버지 사망 소식에 동요해 이른 송환을 결정할 수도 있다. 영주권이 있어 미국 뉴욕 주에 체류 중인 혁기 씨의 움직임도 주목된다. 유 전 회장의 경영 후계자로 지목된 그가 대외적으로 정통성을 인정받으려면 체포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아버지 장례를 책임지는 모습이 필요하다. 한편 검찰은 유 전 회장의 장례 절차를 논의 중이다. 검찰은 구속된 부인 권윤자 씨(71)와 동생 병호 씨(62) 등 가족과 구원파 측의 의사에 따라 장례 형식과 절차를 결정할 방침이다. 신동진 기자 shine@donga.com 조동주 기자 djc@donga.com}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의 시신이 발견된 매실밭은 전남 순천시 서면 신촌마을 외곽 야산에 있다. 유 전 회장이 은신했던 송치재터널 인근 은신처 ‘숲속의 추억’에서 직선으로 3km 거리다. 신촌마을 지척에 국도 17호선이 있고 마을 중앙을 국도 22호선이 관통한다. 시신 발견 현장인 매실밭은 국도 22호선 주변 경사가 있는 마을길(소로)을 100여 m 올라간 뒤 주택 뒤편 산길을 따라 50m를 더 가야 한다. 산중턱을 깎은 뒤 평평하게 조성된 밭이어서 마을과 도로에서는 안쪽을 살펴볼 수 없는 구조다. 잡초도 우거져 유심히 살피지 않으면 주변에서도 시신을 쉽게 발견하기는 어려웠을 것으로 보였다. 매실밭은 나무를 심은 지 1년밖에 되지 않아 잡초만 무성했다. 황토로 채워진 밭은 짙은 황색빛이 선명했다. 유 전 회장이 은신처 숲속의 추억에서 도주한 5월 25일부터 같은 달 29일까지 순천 일대 낮 최고기온은 31도까지 올랐지만 아침 최저기온은 13도로 선선했다. 매실밭 나무 높이는 1m 정도로 그늘이 없었다. 검경의 추적망을 피해 이곳까지 온 유 전 회장이 더위를 피하기 위해 매실밭에 머문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유 전 회장이 숲속의 추억에서 달아난 5월 25일부터 변사체로 발견된 6월 12일까지 19일 중 7일은 궂은비가 내렸다. 통상 젖은 땅에 눕지 않는 점을 고려하면 유 씨가 5월 25, 26일 비가 내린 이후 건조된 풀밭 위에 누워 숨을 거둔 것으로 추정된다. 유 전 회장은 차량과 주민 이동이 잦아 눈에 잘 띄는 국도 주변으로 이동했을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주민 김모 씨(51)는 “유 전 회장의 시신이 발견된 야산 산길은 송치재터널 정상과 연결돼 있다. 사람들이 잘 이용하지 않지만 현재까지 산길의 흔적은 있다”고 말했다. 전남 순천경찰서는 유 전 회장이 5월 25일 송치재터널 인근 숲속의 추억을 검찰이 급습하자 도주하면서 주로 산길을 이용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숲속의 추억에서 200m 떨어진 곳에 기독교복음침례회(구원파) 신도 소유의 길이 1km가량의 폐 터널 입구가 있다. 폐 터널 반대편 출구는 8, 9가구가 모여 사는 마을 가운데에 있다. 필사적으로 달아나던 유 전 회장은 출구가 마을 중앙에 있는 폐 터널을 도주로로 이용하지 않고 산길을 택했을 가능성이 크다. 유 전 회장은 송치재터널 옆 산길을 이용해 야망연수원이 있는 송치재 정상에 도착한 뒤 이어진 높은 산길을 타고 도주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73세 고령에 다리가 불편했지만 사람들 눈에 띄지 않기 위해 험한 도주로를 선택한 것으로 분석된다. 국도 17호선 주변 전남 구례→순천시내 방향 낮은 산의 길은 편하지만 눈에 잘 띄는 단점이 있다. 경찰이 송치재터널 주변 산을 제대로 수색했다면 유 전 회장을 생전에 검거했을지 모른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그는 평소 구원파 신도들의 호위나 시중을 받으며 생활했지만 숲속의 추억 탈출 이후에는 홀로 산속에서 도피하면서 고통에 시달렸을 것으로 보인다. 주머니에는 현금이 한 푼도 없었고 얼굴이 알려져 최소한의 식량조차 구하기 쉽지 않은 처지였다. 시신 발견 현장에서 발견된 육포와 검은콩 등은 은신했던 별장에서 탈출하면서 챙겨간 것이지 도피 중 구입한 것은 아닌 것으로 경찰은 보고 있다.순천=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조동주 기자 djc@donga.com}

7년차 직장인 김모 씨(29·여)는 요즘 새로운 취미가 생겼다. 하루 중 행복하다고 느낀 순간을 스마트폰으로 찍어 사진공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인스타그램에 올린다. 행복의 상징은 퇴근 후 가볍게 마시는 칵테일이나 맛있는 음식, 일상의 풍경, 예쁘게 나온 셀카 사진 등 매일 달라진다. 김 씨가 SNS에 사진을 올리는 데엔 정해진 조건이 있다. 100일 동안 매일 올려야 하고 하루에 딱 한 장면만 담아야 한다. 모든 사진에는 ‘#100happydays’라는 해시태그(꼬리글)를 붙여 SNS에 올려야 한다. “100일 동안 행복하자”며 유럽에서 시작된 ‘100happydays(100일간의 행복) 캠페인’이 최근 국내에서 인기를 끌며 SNS를 강타하고 있다. 매일 정신없이 바쁜 나날 속에 살아가는 현대인들이라도 누구나 하루 한 번쯤은 행복을 느끼는 순간이 있을 것이고 이를 SNS에 일기처럼 기록하자는 취지다. 인스타그램에는 100일간의 행복 캠페인 동참을 의미하는 해시태그(#100happydays)를 단 글이 전 세계에서 1678만여 개에 이를 만큼 깊은 울림을 주고 있다. 이 캠페인은 지난해 10월 우크라이나 직장인 드미트리 골루브니치 씨(27)가 시작했다. 그는 훌륭한 직장과 사랑스러운 부모, 대단한 친구들을 가졌지만 정신없이 살아가다 보니 어느 순간 삶이 슬픔의 늪에 빠진 기분이 들었다고 한다. 그는 주어진 하루에 감사함을 표하는 방법으로 하루 중 사소하게나마 행복을 느낀 순간을 사진으로 담아 인스타그램에 올리기 시작했고 이 캠페인은 입소문을 타 유럽과 미국을 거쳐 한국까지 퍼졌다. 그가 처음 올린 ‘행복’은 여자친구 사진이었다. 100일간의 행복이 선풍적인 인기를 끄는 이유는 그만큼 우리 사회가 불행을 안고 살기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100일 동안 매일 행복을 느끼는 순간을 사진으로 찍어 타인과 공유하도록 스스로를 강제하는 게 여간 불편한 게 아니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행복하고 싶다’는 심리가 반영됐다는 것이다. 이명진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과거 프리허그 운동처럼 현대사회의 경쟁과 불평등, 소외에 대응해 삶의 여유를 추구하는 반작용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경일 아주대 심리학과 교수는 “그동안 행복해지고 싶지만 그 방법을 잘 몰랐던 사람들이 행복의 갈증을 채우는 수단”이라고 분석했다. 이 캠페인은 그동안 자랑과 과시의 장으로 점철돼 질투심을 유발하는 공간으로 변질된 SNS를 스스로의 행복을 위한 공간으로 바꿔 보자고 주장하지만 결국 ‘또 다른 자기 자랑의 장’일 뿐이라는 평가도 있다. 100일간의 행복 홈페이지에 따르면 이 캠페인에 참여하는 사람 중 71%가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중도 포기한다고 한다.조동주 djc@donga.com·권오혁·황성호 기자}

7년차 직장인 김모 씨(29·여)는 요즘 새로운 취미가 생겼다. 하루 중 행복하다고 느낀 순간을 스마트폰으로 찍어 사진공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인스타그램에 올린다. 행복의 상징은 퇴근 후 가볍게 마시는 칵테일이나 맛있는 음식, 일상의 풍경, 예쁘게 나온 셀카 사진 등 매일 달라진다. 김 씨가 SNS에 사진을 올리는 데엔 정해진 조건이 있다. 100일 동안 매일 올려야 하고 하루에 딱 한 장면만 담아야 한다. 모든 사진에는 '#100happydays'라는 해시태그(꼬리 글)를 붙여 SNS에 올려야 한다. "100일 동안 행복하자"며 유럽에서 시작된 '100happydays(100일간의 행복) 캠페인'이 최근 국내에서 인기를 끌며 SNS를 강타하고 있다. 매일 정신없이 바쁜 나날 속에 살아가는 현대인들이라도 누구나 하루 한 번쯤은 행복을 느끼는 순간이 있을 것이고 이를 SNS에 일기처럼 기록하자는 취지다. 인스타그램에는 100일간의 행복 캠페인 동참을 의미하는 해시태그(#100happydays)를 단 글이 전 세계에서 1678만 여개에 이를 만큼 깊은 울림을 주고 있다. 이 캠페인은 지난해 10월 우크라이나 직장인 드미트리 골루브니치(27)가 시작했다. 그는 훌륭한 직장과 사랑스런 부모, 대단한 친구들을 가졌지만 정신없이 살아가다보니 어느 순간 삶이 슬픔의 늪에 빠진 기분이 들었다고 한다. 그는 주어진 하루에 감사함을 표하는 방법으로 하루 중 사소하게나마 행복을 느낀 순간을 사진으로 담아 인스타그램에 올리기 시작했고 이 캠페인은 입소문을 타 유럽과 미국을 거쳐 한국까지 퍼졌다. 그가 처음 올린 '행복'은 여자친구 사진이었다. 100일간의 행복이 선풍적인 인기를 끄는 이면에는 그만큼 우리 사회가 불행을 안고 살기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100일 동안 매일 행복을 느끼는 순간을 사진으로 찍어 타인과 공유하도록 스스로를 강제하는 게 여간 불편한 게 아니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행복하고 싶다'는 심리가 반영됐다는 것이다. 이명진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과거 프리 허그 운동처럼 현대사회의 경쟁과 불평등, 소외에 대응해 삶의 여유를 추구하는 반작용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경일 아주대 심리학과 교수는 "그동안 행복해지고 싶지만 그 방법을 잘 몰랐던 사람들이 행복의 갈증을 채우는 수단"이라고 분석했다. 이 캠페인은 그동안 자랑과 과시의 장으로 점철돼 질투심을 유발하는 공간으로 변질된 SNS를 스스로의 행복을 위한 공간으로 바꿔보자고 주장하지만 결국 '또 다른 자기자랑의 장'일 뿐이라는 평가도 있다. 100일간의 행복 홈페이지에 따르면 이 캠페인에 참여하는 사람 중 71%가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중도 포기한다고 한다.권오혁 기자hyuk@donga.com조동주기자 djc@donga.com}

‘세월호’는 잊혀져 있었다. ‘광역버스 입석 금지’ 시행 첫날인 16일 곳곳에서 “탁상행정 때문에 불편을 겪었다”는 비난이 터져 나왔다. 아침 출근길 지각했다는 불평에서부터 ‘왜 빈 차를 못 타게 하느냐’는 타박이 수도권 여기저기서 쏟아졌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 이후 그토록 목청 높였던 ‘안전’을 위해 불편을 감수하겠다는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시속 100km 이상을 넘나드는 고속도로에서 작은 접촉사고만 나도 서서 가는 승객은 사망 또는 중상을 입을 위험성이 크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고속도로가 아닌 일반도로에서 과속과 신호위반을 일삼는 광역버스가 적지 않고 안전벨트를 매지 않는 승객이 대다수인 현실에서 ‘안전 강화’는 불가피한 조치라고 평가하는 전문가도 많다.○ 피하지 못한 수도권 출근대란 광역버스 입석 금지 시행 첫날 오전 수도권 일대 버스정류장에선 ‘출근대란’이 벌어졌다. 국토교통부와 서울시, 인천시, 경기도는 이날 수도권 62개 노선에 버스 222대를 추가로 투입하고 일부 노선은 서울로 갔다가 승객을 태우지 않고 바로 돌아오는 공차 회송까지 단행했지만 혼란을 피하지 못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안전을 중시하는 사회적 분위기에 맞춰 마련된 정책이지만 평범한 시민들의 실상을 세밀하게 살피지 못했다는 지적은 피하기 어려웠다. 이날 분당 이매촌 한신아파트 앞 정류장에는 출근길에 나선 시민 50여 명이 오전 6시 30분부터 줄을 길게 늘어섰지만 대부분 버스를 타지 못했다. 이곳은 분당에서 서울로 나가는 길목이라 평소 출근시간대에 빈 좌석이 거의 없고 인근에 아파트가 몰려 있어 분당에서 입석 승객이 가장 많다. 처음엔 버스 회사 직원과 시청 관계자들이 정류장에서 버스 좌석을 확인하고 입석 탑승을 통제했지만 출근길이 막힌 시민들이 거세게 항의하자 “융통성 있게 입석 승차를 허용하라”며 달래기에 나서야 했다. 눈 뜨고 버스를 여러 대 놓친 데다 버스 증차로 서울시내 교통까지 혼잡해지면서 출근시간은 평균 30∼40분 더 걸렸다. 한남대교에서 서울 명동사거리로 진입하는 남산 1호 터널 상행선 2차로는 광역버스와 증차용 전세버스가 길게 늘어서는 병목현상이 극심해져 평소보다 통행에 10∼20분이 더 소요됐다. 서울로 출근하는 직장인이 많은 인천 부평과 경기 고양시 일산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부평에서 버스를 기다리던 정모 씨(45·여)는 “이 지역은 출근시간대에 지하철이 ‘지옥철’이라 버스를 타 왔는데 입석 금지 정책으로 어쩔 수 없이 지하철을 탈 수밖에 없게 됐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증차 없는 퇴근시간엔 혼란 더 심해 저녁에는 ‘퇴근 전쟁’이 벌어졌다. 퇴근시간대에는 출근 때와 달리 버스 증차가 없어 혼란이 더 심했다. 회사가 밀집한 서울 강남역 앞 정류장에는 수도권 일대로 퇴근하려는 인파가 몰려 버스 대기선마다 40∼60명씩 길게 늘어섰지만 입석 승차를 통제해 한 번에 5∼10명밖에 타지 못했다. 중구 백병원 앞 버스정류장에는 입석 승차를 막는 버스 회사 직원이나 공무원이 없어 버스 운전사의 선택에 따라 입석 승객을 빼곡히 채우거나 무정차 통과하는 등 오락가락하는 모습이었다. 버스 운전사들은 출근하는 시민들의 사정은 잘 알지만 입석 승객을 태우고 운행하다가 1년에 세 차례 적발되면 기사 면허가 취소되기 때문에 만석 땐 무정차 통과를 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환승체계 갖추고 요금 현실화해야 교통 전문가들은 일부 노선에 버스를 늘리기만 해서는 광역버스 입석 금지에 따른 혼란과 불편을 막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윤혁렬 서울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인천 경기에서 온 광역버스를 서울시 경계에서 회차시키고, 각 권역에서 서울 도심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시내버스와 지하철을 비롯한 대중교통을 연계시키는 환승 체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교통 안전을 위해 광역버스의 입석을 금지한 만큼 버스 회사에 대한 운영 지원 및 요금 인상을 안전에 대한 투자라는 개념에서 받아들여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성남=조동주 기자 djc@donga.com박선영 인턴기자 한양대 정치외교학과 4학년최건 인턴기자 서울대 인류학과 4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