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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기홍 대기자입니다.

sechepa@donga.com

취재분야

2025-11-15~2025-12-15
칼럼100%
  • [‘제2 조두순’ 고종석 사건 충격]“애가 몹쓸짓 당할때 자고 있었다니 가슴이 미어지고 할 말이 없습니다”

    “기자님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범인을) 죽여 버리고 싶은 마음뿐입니다.”피해자 A 양의 아버지(41)는 31일 A 양이 입원한 나주종합병원 입원실 앞에 쪼그려 앉아 울분을 토했다. 벽에 머리를 기댄 채 먼 곳을 바라보다가 가끔 고개를 떨구기도 했다. 복도를 서성거리던 그는 괴로운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아이는 좀 어떤가.“애가 아프다는 말밖에 못한다. 수술 경과가 좋다고는 하는데 아이의 고통이 너무 심한 것 같다. 광주에 있는 대학병원에 가서 안정을 취하기로 했다.” ―지금 심정은….“그 어린 것이 이런 몹쓸 짓을 당했는데 아빠는 그것도 모르고 잠을 자고 있었다니…. 아빠로서 할 말이 없다. 딸이 그 폭우 속에서 혼자 떨고 있었다는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진다.”―범인이 잡혔는데….“나도 그 사람 잘 안다. 우리 집에서 아이들이랑 밥도 몇 번 먹고 친하게 지냈다. 나를 매형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런 사람이 우리 딸에게 그런 짓을 저질렀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지금 당장이라도 죽여 버리고 싶은 심정이다.”그는 이어지는 질문에 손사래를 치면서 “이제 그만합시다”라며 기자를 외면했다. 이날 오후 5시경 A 양이 전남대병원으로 이송될 때 취재진들이 복도에서 대기하자 “제발 아이를 좀 놔달라”며 호소했다.A 양 아버지는 집에서 3km 정도 떨어진 농공단지에서 일용직으로 일하고 있다. A 양 어머니는 집 부엌에서 분식점을 하다 올 초 장사를 그만뒀다. A 양의 집은 20여 평 되는 상가 1층 건물을 개조해 만들었다. 월세 30만 원을 주고 이 집에서 살고 있는 A 양 가족은 올 7월부터 기초생활수급자로 지정돼 생계비를 지원받고 있다. 나주시는 올 4월 A 양 가족을 ‘위기가구’로 분류하고 상담사를 파견해 관리하고 있다. 나주시 관계자는 “A 양 부모의 허락을 받아 A 양을 제외한 3남매를 일단 관리시설에서 보호 조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나주=정승호 기자 shjung@donga.com}

    • 2012-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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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준하 선생 死因 논란 재점화 핵심 3인 인터뷰

    《 장준하 선생(1918∼1975·사진)의 유골에서 타원형의 골절 흔적이 발견돼 사인을 둘러싼 논란이 다시 불거졌다. 동아일보는 장 선생 의문사 사건의 진실은 반드시 밝혀져야 한다는 취지에서 핵심 인물 세 사람을 인터뷰했다. 장 선생이 사망할 당시 등산에 동행했던 유일한 목격자인 전직 교사 김용환 씨, 김대중 정부 시절 장 선생 의문사 사건을 조사했던 대통령직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양승규 초대 위원장, 이달 1일 장 선생의 유골을 유족과 함께 검안한 국내 법의학계 권위자 서울대 이윤성 교수다. 장준하 선생은 1918년 평안북도 의주에서 태어나 일제강점기에 광복군과 임시정부에서 활동했다. 광복 이후에는 월간 사상계를 창간했으며 7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박정희 정권에 항거하던 선생은 1975년 8월 17일 경기 포천시 약사봉에서 등산 도중 추락사한 채 발견됐다. 정부는 실족사로 발표했지만 일각에서는 타살 의혹을 강하게 제기했다. 》▼ “유골이 나왔지만 달라지는 것 없다” ▼■ “실족사 목격” 김용환씨“유골이 세상 밖으로 나왔어도 하나뿐인 진실은 달라지지 않습니다.”1975년 8월 17일 경기 포천시 약사봉에서 발생한 장준하 선생 추락사의 유일한 목격자 김용환 씨(69). 그가 2004년 노무현 정부 당시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조사 때 모습을 드러낸 이후 8년여 만에 처음으로 언론에 입을 열었다. 22일 오후 4시 반경 충남 당진시외버스터미널 앞에서 고혈압 치료를 받기 위해 병원으로 가던 김 씨는 1시간가량 이어진 동아일보와의 인터뷰 내내 “또다시 고통 받고 싶지 않다. 나는 더이상 할 말이 없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반복했다. 원형 골절 부위가 선명한 장 선생의 두개골 사진이 공개되면서 ‘타살’ 의혹이 다시 떠올랐지만 김 씨는 “달라지는 것은 없다”고 주장했다. 김 씨는 누군가가 망치 등의 흉기로 두개골을 가격한 흔적이라는 주장에 대해 “14m 높이에서 추락했으니 큰 상처가 생길 가능성이 있다. 37년이나 지난 지금에 와서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나”며 “선입견을 갖고 보면 모든 것이 의심스러워 보이기 마련”이라고 주장했다. 대선을 앞두고 다시 장 선생의 죽음이 논란이 되는 데도 불편한 심경을 드러냈다. 무슨 이야기가 나오든지 정치적 싸움의 구실이 될 뿐이라는 주장이었다. 그는 “사실상 종결된 것 아니냐. 두 번에 걸쳐 철저하게 조사를 했으니 이미 결론이 난 것과 다름없다”며 “내 말을 믿지도 않으면서 정치적으로 민감한 시기에 같은 이야기를 또 반복하라고 강요하는 이유가 궁금하다. 더이상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날 괴롭히지 않았으면 한다”고 주장했다. 김 씨는 장 선생의 추락 지점을 명확히 찾지 못하고 진술이 일관되지 못하는 등 신뢰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여전히 명확한 해명을 내놓지 못했다. 그는 “10년이면 강산도 변하는데 수십 년이 지난 뒤 산 속에서 같은 장소를 찾는 것이 가능한 일이냐”며 “머릿속으로는 정확히 기억한다. 장 선생이 떨어진 그곳에는 자갈이 많았고 위쪽으로는 모래가 있었다. 조사위와 함께 현장검증을 한 후에도 가까운 사람들과 함께 산을 여러 번 올라 추락 지점을 찾으려 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고 주장했다.김 씨는 장 선생의 장례식과 그후 추모행사들에 참석조차 안 했다는 일부 언론의 보도에 강한 반감을 드러냈다. 그는 “장례식과 장지에 갔었다. 장 선생을 추모하는 자리에는 참석해서 그의 넋을 위로했다. 내가 나설 처지가 아니라 뒤쪽에서 조용히 있다 왔기 때문에 눈에 띄지 않은 것뿐이다”라고 주장했다.그는 “장 선생은 나를 극진히 보살펴줬고 나도 그만큼 선생님을 따랐다”며 “내가 은혜를 받은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진실이 변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하는 대목에서는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추가 조사에 대해서는 단호한 자세를 보였다. 그는 “솔직히 조사 안 했으면 좋겠다. 너무 힘들다”라며 “하지만 세 번째 진상조사를 한다고 해도 떳떳하게 받아들이고 협조하겠다”고 밝혔다. 김 씨는 교직생활을 하다 1967년 장준하 선생이 국회의원에 출마하자 간사직으로 도왔다고 주장해왔다. 그는 1999년 3월 교감으로 정년퇴직한 뒤 지금은 부인과 함께 밭농사를 짓고 있다.당진=서동일 기자 dong@donga.com   ▼ “팩트만 말했는데 좌우 제각각 해석” ▼■ 유골 검안 이윤성 서울대교수“유골을 본 뒤 인터뷰를 스무 번도 더 했지만 제 말을 정치색 없이 보도한 매체는 없어요.”21일 서울 종로구 연건동 연구실에서 만난 서울대 의과대 법의학연구소 이윤성 교수는 인터뷰 내내 ‘과학적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1일 장준하 선생 묘 이장을 참관하며 고인의 유골을 검안했다. 고인의 두개골에서 지름 6∼7cm의 타원형 골절 흔적이 발견된 것과 관련해 그는 “처음 본 순간 망치로 때린 것 같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고 말했다. 검안 결과를 검토한 뒤 그는 “유골의 머리뼈 골절은 (망치 같은) 둔체에 의한 손상이지만 가격에 의한 것인지, 넘어지거나 추락하면서 부딪쳐 생긴 것인지는 판단할 수 없다”는 소견을 내놨다.“한 가지 결론을 두고도 해석이 분분해요. 타살됐다고 믿는 사람들은 ‘망치로 친 게 뻔히 보이는데 왜 속 시원히 말을 못 하느냐’고 하고, 다른 편에선 ‘이미 실족사로 결론이 난 일을 괜히 망치 운운하며 들쑤신다’고 욕을 하죠. 답답할 뿐이에요.”이 교수는 장 선생의 죽음이 ‘망치로 인한 타살’임을 단언할 수 없는 몇 가지 법의학적 근거를 제시했다. △타원형 골절 바깥의 방사형 골절은 일반적으로 망치 가격보다 훨씬 큰 충격에 의해 발생한다는 점 △망치에 맞은 시신에는 여러 차례 내리친 상처 자국이 흔히 발견되는데 장 선생의 경우 한 개뿐이라는 점 △시신 두피에 망치 가장자리 모양으로 찢어진 상처가 남아야 하는데 고 조철구 박사가 1993년 민주당 진상조사위에 낸 검안 소견에는 이 같은 내용이 없었다는 점 등을 꼽았다.시신의 오른쪽 골반 뼈가 여러 조각으로 부서진 사실이 새롭게 밝혀진 것과 관련해 이 교수는 “골반 뼈는 사람의 힘으로 부수기에 무리가 있어 추락에 따른 손상일 가능성이 크다”며 “망치에 맞은 뒤 절벽으로 굴러 떨어졌거나 추락으로 머리와 골반이 같이 손상됐을 가능성 모두 있다”고 밝혔다.이 교수는 “지금이라도 정확한 사인에 근접하려면 고인의 모든 뼈를 X선 촬영을 해 미세한 골절이 있는지 확인하고 생체조직에 독극물이나 마취제가 남아 있는지도 확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장에 간 목격자 추락 바위 못찾아” ▼■ “타살” 양승규 1차 진상규명委長“깨진 장준하 선생님의 두개골을 본 순간 ‘감춰진 것은 드러나기 마련이고 비밀은 알려지기 마련’이라는 마태복음 구절이 떠오르더군요. 장 선생님은 등반길에서 실족사한 게 아니라 당시 정권에 의해 계획적으로 살해됐다고 봅니다.”김대중 정부 시절 장 선생 의문사 사건을 조사한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양승규 초대 위원장(78)은 20일 본보 인터뷰에서 “37년 만에 장 선생의 유골이 우리를 다시 찾아온 것은 진실을 밝히라는 무언의 시위”라며 “진범을 잡지 못하더라도 사인을 밝히기 위해 반드시 재조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양 전 위원장은 장 선생의 죽음을 ‘정보기관원에 의한 타살’로 단언한다. 사건의 유일한 목격자로 알려진 김용환 씨의 진술이 구체적이지 않아 믿기 어렵다는 이유다. 그는 2001년 5월 31일 목격자 김 씨와 장 선생이 추락사 한 경기 포천시 약사봉 현장을 찾았다. 진상규명위 직원 10여 명과 전문산악인 3명도 함께 갔다. 정상 부근에 도착한 양 위원장은 “김 씨에게 ‘당신이 장 선생과 함께 점심을 먹었다는 바위를 찾으라’고 했는데 김 씨는 한동안 산등성이를 오르내렸지만 제대로 지목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양 위원장은 “당시 김 씨 진술에 따라 장 선생이 추락한 지점으로 가자고 요구했다. 하지만 사고 당시에는 그 지점에 갔다고 주장한 김 씨가 ‘추락 지점인 그 바위에는 (너무 위험해) 접근할 수 없다’고 하더라. 그는 시신 발견 지점도 지목하지 못했다. 그의 진술을 믿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양 전 위원장은 “현장검증을 끝낸 뒤에 김 씨에게 ‘이제 그만 진실을 털어놓으라’고 했지만 그는 ‘장 선생은 실족사하셨다’는 말만 되풀이했다”고 했다.양 위원장은 그동안 여러 차례 진상규명위가 열렸는데도 사인을 밝히지 못한 이유에 대해 △사인과 관련한 공식적 의학기록이 없었던 점 △유일한 목격자인 김 씨가 진술을 번복해가며 ‘실족사’임을 일관되게 주장하는 점 △장 선생에 대한 국정원 사찰기록이 사고일 전후로 비어 있었고 기무사에서 관련 정보제공을 거부한 점 등을 지적했다.고현국 기자 mck@donga.com}

    • 2012-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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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이기홍]‘살인의 추억’에서 통영의 아픔까지

    “다시는 이런 아픔을 겪는 아버지가 나오지 않기를….” 초등학생 딸을 잃은 아버지는 슬픔을 억누르며 염원했다. 성범죄 전과자 김점덕에게 지난달 살해된 통영 아름이의 아버지다. 하지만 우리는 안다. 그의 염원이 이뤄지기 힘들 것임을. 아름이 아버지 이전에도 소중한 딸을 변태성욕자의 수욕(獸慾)에 잃은 여러 부모들이 자신과 같은 아픔을 겪는 부모가 더는 나오지 않기를 기원했다. 온 사회가 함께 울면서 “다시는…”을 외쳤다.흉악범죄 대책,시간 지나면 흐지부지 여성·어린이 대상 흉악범죄에 대한 과거의 언론보도 스크랩을 찾아보면서 부끄러웠다. 김점덕 사건 보도를 보노라면 2010년 김길태 사건 직후의 기사 스크랩을 보는 것 같다. 2010년 보도는 그 이전 사건 스크랩인 듯하고…. 사건이 터질 때마다 우리 사회는 반성하고 고함치는 일을 되풀이해 왔다. 성범죄 전과자 대다수가 전자발찌 착용 대상에서 벗어나 있으며, 신상공개가 동(洞)밖에 나오지 않으며, 아동음란물이 마구 방치돼 있음을…마치 몰랐다는 듯이. 이번에도 시간이 지나면 ‘피의자 인권’ ‘현실적 어려움’ 등의 소리가 슬슬 흘러나오고, 요란했던 대책들은 흐지부지될 것이다. 돌이켜보면 우리는 이미 여러 건의 여성·아동 대상 범죄를 미해결 상태로 묻어버렸다. 화성연쇄 살인(1986∼1991년), 개구리소년(1991년), 이형호 군 유괴살인(1991년) 사건 등은 온 국민이 관심을 쏟았지만 수사당국은 진상 규명을 포기하고 파일을 봉해버렸다. 물론 이들 사건은 2006년에 공소시효가 만료됐다. 여론의 끈질긴 요구로 법무부는 살인죄 공소시효를 없애는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6월 13일 입법 예고했지만 공소시효가 아직 만료되지 않은 범죄에만 적용되므로 화성사건 등은 해당이 없다. 공소시효가 이미 끝난 사건에 대해 공소시효 폐지를 적용하는 건 형벌불소급 원칙에 위배된다는 게 정부의 일관된 입장이다. 하지만 헌법의 형벌불소급 조항은 ‘행위시의 법률에 의하여 범죄를 구성하지 않는 행위로 소추되지 않는다’고 되어 있다. 행위시에 처벌되는 법이 있었지만 공소시효가 지나 형사상 처벌할 수 없는 경우와는 다른 것이다. 법무부와 다수 법학자는 형벌불소급은 공소시효도 포괄하는 개념이라고 해석하지만 행위의 가벌성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공소시효에 관한 규정은 형벌불소급 원칙의 효력 범위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의견도 많다. 공소시효가 끝난 행위에 대한 소급 처벌이 위헌인가에 대해 헌법재판소는 1996년 5·18민주화운동특별법 위헌제청 사건 심판에서 합헌결정을 내렸다. 당시 5 대 4로 한정위헌 의견이 많았지만 위헌결정 정족수가 되지 않았다. 화성사건 등을 공소시효 배제 대상에 포함시켜 재수사해야 한다. 위헌 논란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지만 그런 논쟁 자체가 흉악범죄에 대한 준엄한 처벌 의지를 담금질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화성사건 등 공소시효 배제해야 이들 사건은 각각 ‘살인의 추억’ ‘아이들’ ‘그놈 목소리’라는 영화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영화로만 끝낼 일이 아니다. 이들 사건의 진상 규명은 뉴욕경찰이 1979년 실종된 소년의 살해범을 33년 만인 최근 검거했듯이 우리 사회에서도 아동·여성 상대 범죄는 반드시 처벌한다는 공동체적 믿음을 확고히 하는 의미가 있다. 여전히 활보하고 있을 범인들로부터 현재와 미래의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사이코패스가 범행을 자기 스스로 멈추는 경우는 절대 없다는 게 범죄 전문가들의 공통된 결론이다. 전자발찌, 성범죄자 신상공개 등 그나마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보호장치들은 숱한 어린이와 여성의 희생이 거름이 되어 피어난 결과물이다. 우리가 해줄 수 있는 유일한 위로는 지금의 다짐이 흐지부지되지 않을 것을 약속하고, 사건의 진상을 밝혀 가해자를 처벌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그 억울한 넋들이 눈을 감을 것이다.이기홍 사회부장 sechepa@donga.com}

    • 2012-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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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이기홍]검찰, 주저하지 말라

    여의도 국회의사당 본관 3층에 국회의장과 부의장 집무실이 있다. 붉은 카펫이 깔린, 화려하지는 않지만 품격이 넘치는 공간이다. 입법부 권위의 상징과도 같은 그곳에서 2007년 가을 돈거래가 이뤄졌다. 이상득(SD) 당시 부의장은 집무실에서 임석 솔로몬저축은행 회장이 “3억 원을 준비해 왔다”고 하자 옆에 있던 정두언 의원에게 가서 받아오라고 시켰다. 정 의원은 국회 주차장에 가서 현금 3억 원을 건네받았다. SD 받은 돈 대선자금 의혹 정치인의 불법 정치자금 수수는 전혀 새롭지 않은 일이지만 당시 풍경은 어색하기 그지없다. 5선의 국회 부의장이 집무실에서? 예술가 취향 멋쟁이 국회의원이 주차장까지 직접 따라가서? SD의 평소 성품으로 봐도 뭔가 정상적이지 않다. 코오롱에서 평사원으로 시작해 최고경영자를 오래 지낸 그는 평소 “난 실 만드는 회사 출신”이라고 강조해왔다. 기업이 이윤 한 푼을 내기 위해 얼마나 힘들게 노력하는지를 잘 안다는 뜻이다. 그런 그가 재벌도 아닌 퇴출 위기 저축은행 대표의 돈을 받았다. 너무도 평소답지 않은 쪼잔하고 서투른 풍경이다. “선거에 도움을 주고 싶다”며 돈을 가져온 임 회장은 돈을 주면서 “세무나 금융감독 당국과의 관계에서 문제가 생기면 도와달라”는 말까지 했다. 임 회장은 정 의원의 후배가 소개한 잘 모르는 중소기업인이다. 학연 지연으로 얽혀 수십 년 밤문화를 함께해 온 의형제 같은 이의 돈을 받아도 위험한 걸 다 아는데, 뒤끝이 있을 게 분명한 돈을 덥석 문 것이다. 무엇이 그들을 그처럼 성급하고 서투르게 만들었는지는 삼척동자도 안다. 당시 SD는 이명박 캠프의 최고의사결정기구인 6인회 멤버였고 정 의원도 MB의 핵심 측근이었다. 2002년 대선자금 파동 이후 대기업으로부터 조직적으로 돈을 모으는 게 불가능해진 상황에서 각 캠프가 실탄 확보에 얼마나 쪼들리고 혈안이 되어 있었던가를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역시 6인회 멤버였던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도 파이시티로부터 2007년에 받은 돈을 여론조사에 썼다고 이야기했다가 대선자금 논란이 일자 개인적으로 썼다고 말을 번복한 바 있다. 검찰이 앞으로 SD가 받은 돈의 용처를 본격적으로 파헤치면 그것은 곧 대선자금의 광맥을 건드리는 일이 될 것이다. 선거를 5개월밖에 남겨두지 않은 상황에서 결코 쉬운 결정이 아닐 것이다. 예상 못한 파장과 부작용도 있을 수 있다. ‘대선자금 수사’ 국면 자체가 정 의원이 짜놓은 각본에 말려드는 것이라는 우려도 검찰 일각에서 나온다. 정 의원은 저축은행에서 받은 돈의 책임을 모두 SD에게 돌려서 대선자금이라고 부각시켜야 자신의 책임이 가벼워진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선을 앞두고 있기 때문에 검찰은 더더욱 주저함이 없어야 한다. 이번 대선에 나선 후보들 역시 자신의 돈만으로 선거를 치르기는 쉽지 않은 처지다. 대선을 치르려면 합법적인 정치자금 이외에도 비공식적으로 돈을 지출해야 하는 일이 부지기수로 많다. 지금의 주자들도 현금 동원력이 있는 중소기업이나 금융권으로부터의 유혹에서 자유롭기 힘들 것이다.악순환 막기 위해 사용처 밝혀져야 그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라도 SD가 받은 돈의 용처가 분명하게 밝혀져야 한다. 검찰이 흐지부지 덮을 경우 돈에 목말라 있는 현재의 대선주자 캠프에 심리적 면죄부를 줄 우려도 있다. 어려운 선택 앞에서는 원칙으로 돌아가면 된다. 그 원칙은 불법 금품이 오간 사건은 당연히 용처를 밝혀내야 한다는 수사의 ABC다. 뇌관을 건드릴까 봐 공소유지에 필수적인 용처 규명을 주저할 수는 없지 않은가. 설령 이번에 뇌관을 피해 간다 해도, 다음 정권을 누가 잡든 검찰은 결국 다시 이번 사건파일을 꺼내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동안 밤낮을 잊은 채 진실 규명에 매달려온 수사단원들의 명예가 너무 억울하지 않은가.이기홍 사회부장 sechepa@donga.com}

    • 2012-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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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치에 발목 잡힌 세계 경제] 끝나지 않은 폭탄 돌리기

    최근 일본 정국의 모든 초점은 정기국회가 끝나는 21일에 맞춰져 있다.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일본 총리가 소비세 인상안 국회 통과에 실패하면 중의원 해산도 불사한다며 배수진을 치고 있기 때문이다. 반신반의하던 일본 언론은 노다 총리가 소비세 인상안에 정치 생명까지 걸고 나서자 선배 정치인들의 ‘폭탄 돌리기’가 이번에는 과연 마침표를 찍을지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 일본 경제의 ‘잃어버린 20년’을 초래한 원인 중 하나가 만성적인 재정적자지만 역대 정치인들은 모두 떠넘기기 일쑤였다. 재정을 확충하기 위해 소비세 인상 등 증세를 주장하면 비주류나 소외됐던 정치인들이 ‘증세 반대’라는 달콤한 말로 인기를 얻는 일이 되풀이됐다. ‘표 떨어지는 일은 다음 정권에 넘기고 본다’는 정치인들의 ‘님트(NIMT·Not In My Term)’ 현상은 비단 일본만의 문제가 아니다. 일부에서는 “선거 민주주의 최대의 위기”라는 지적도 나온다.① 내 임기만 넘기면 된다 2001년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는 당내 소수파였던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당시 의원이 소비세를 올리지 않겠다고 해 승리했다. 2009년에는 민주당이 소비세를 올리지 않겠다는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郞) 전 대표의 공약을 앞세워 정권교체를 실현했다. 요즘은 하시모토 도루(橋下徹) 오사카 시장과 같은 아웃사이더가 소비세 인상에 반대하면서 인기를 모으고 있다. 이 때문에 일본은 1994년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 전 총리 때 소비세를 3%에서 5%로 인상한 이후 18년째 ‘증세 숙제’가 미뤄져 왔다. 참다못한 국제 신용평가사들은 지난해와 올해 일본의 국가신용등급을 잇따라 강등하며 ‘정치 리더십 부재’를 주요 원인으로 꼽았다. 그리스 정부와 정치권은 ‘국민을 속여서라도 내 임기만 넘기면 된다’는 전형적인 ‘님트’ 사례다. 2004년 총선에서 정권을 잡은 그리스 우파 신민주당 정부는 이전 사회당 정부가 유로존에 가입하기 직전인 2000년부터 유럽통계청에 각종 경제 수치를 속여 보고한 사실을 밝혀냈다. 정권의 경제 실정을 감추기 위해 유로존 가입에 필요한 제출 서류까지 허위로 작성한 것이다. 하지만 신민주당도 큰 차이가 없었다. 2009년 재정적자가 국내총생산(GDP) 대비 6%로 전망된다고 EU에 보고했으나 그해 10월 총선에서 다시 집권한 사회당 정부는 재정 적자가 GDP 대비 12.7%에 달할 것이라고 털어놓았다. 이처럼 거짓말로 위기를 무마하고 폭탄을 돌려 자국의 경제를 피폐시키고 유럽의 재정위기를 불러왔다.② 민감한 경제위기 해결 방안엔 손놓고 엉뚱한 핑계만 미국은 재정적자 감축 방안을 놓고 벌이는 여야의 ‘눈치작전’에 경제가 곪고 있다. 서민지지 기반의 민주당이 부유층 증세를 통해 세수를 늘리자고 주장하면 공화당은 건강보험 등 사회복지 지출을 대폭 삭감하자며 맞선다. 대타협이 불가피하지만 11월 대통령 선거를 앞둔 시점이라 어느 쪽도 먼저 손을 내밀 기미가 없다. 워싱턴포스트는 “전형적인 정치인의 복지부동”이라며 “협상 과정에서 말 한마디 잘못했다가 지지층의 표가 떨어져 나가는 것을 우려해 아무도 협상 테이블에 못 나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대다수의 전문가들은 양당 정치인들이 대선 이후에도 미봉책만 쏟아내다 해를 넘길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실제 지난해 재정적자 감축을 위해 민주 공화당 의원으로 구성된 슈퍼위원회는 합의에 실패하고 시한을 올 연말로 연장한 바 있다. 제프리 색스 미 컬럼비아대 경제학과 교수는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국제사회가 미 의회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리더십에 실망하고 있다”며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미국도 일본과 같은 ‘잃어버린 20년’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경고했다.③ 글로벌 경제리더십 실종 미국이나 일본, 유럽 정치인들의 ‘님트’에 따른 영향은 타국에도 미친다는 데 세계 경제의 불행이 있다. 한 국가의 재정위기는 촘촘히 얽힌 금융신경망을 타고 순식간에 세계 경제위기로 전이되기 때문이다. 중상주의 시대에는 ‘내 나라만 괜찮으면 된다(Not In My Yard)’며 여차하면 문을 걸어 잠그기도 했지만 지금은 그럴 수가 없다. 유럽 경제 회생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독일이 과도한 재정 긴축 등을 이유로 적극적으로 타국의 구제에 나서지 않을 경우 비난을 받을 수도 있다. 유로화 단일 화폐 사용 이후 제조업 경쟁력이 강한 독일은 유로존에 대한 수출이 급등해 통일 이후의 어려움을 극복하는 데 큰 원동력이 됐다. 유로화로 가장 큰 득을 본 독일이 유럽 경제의 기관차로서의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는 요구가 높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국내 정치적인 제약에도 불구하고 그리스 구제에 적극 나서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조화순 연세대 교수(정치외교학과)는 “정치인들이 집권이나 당선 등 단기적 이익을 포기할 인센티브가 없다는 것이 문제”라며 “그리스 같은 포퓰리즘 상황이 벌어지는 것은 선출제라는 민주주의적 제도가 갖는 근본적인 결함 때문”이라고 말했다. 조 교수는 “정치인들은 자신의 시대에 주어지는 부담을 공유할 의지가 있어야 한다”며 “정치인이 이를 감당하고 수행할 수 없다면 사회의 지식인 계층이 나서서 쓴소리와 조언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도쿄=배극인 특파원 bae2150@donga.com  뉴욕=박현진 특파원 witness@donga.com  정윤식 기자 jys@donga.com  ▼ 국가 위기 넘긴 지도자들 ▼英 통합-결단 상징 대처獨 경제체질 바꾼 슈뢰더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을 극복할 방법은 없을까. 전문가들은 국가 파산의 위기 앞에서 국민에게 ‘쓴 약’을 처방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던 정치 지도자들의 리더십에서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하지만 선거를 앞둔 정치인들이 그런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한다면 사회의 지식인 계층이 나서서 쓴소리와 조언을 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주문이다. 활발한 토론이 지식인 계층에서 이뤄진다면 국민 또한 포퓰리즘 정책에 휘말리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위기 극복 리더십의 원조는 ‘통합과 결단’을 보여준 영국의 마거릿 대처 전 총리. 그는 국민에게 통합과 희생을 요구하는 명확한 메시지를 던지며 전례 없는 재정 긴축과 공기업 민영화 등 개혁 정책을 흔들림 없이 추진했다. 독일의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총리는 동서독 통일의 후유증으로 ‘유럽의 병자’ 취급을 받던 2000년대 초 독일 경제를 살리기 위해 사회민주당의 전통적 노선을 접고 대대적인 시장 개혁 조치를 단행했다. 2003년에는 “누구도 일하지 않고 쉬게 해선 안 된다”는 정신을 뼈대로 한 경제개혁 청사진 ‘어젠다 2010’을 내놓았다. 금속노조연맹 위원장 출신인 룰라 전 브라질 대통령은 취임 후 연금지급 시작 연령을 7년 올리는 등 국민의 허리띠는 졸라매고 기업의 세금은 대폭 깎아 경제 활력을 되찾는 데 집중했다. 변절자라고 비난하는 지지 세력에게는 “처자가 있는 가장이 총각 때처럼 처신할 수 있는가”라고 맞받아쳤다. 도쿄=배극인 특파원 bae2150@donga.com}

    • 2012-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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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이기홍]美-베트남 관계와 종미 논란

    베트남 남부 깜라인 만(灣)은 남중국해로 이어지는 천혜의 전략요충지다. 베트남전 당시 미군 군수물자와 병력이 모두 이곳을 통해 베트남에 들어갔다. 이제는 어선 몇 척만 다니는 조용한 바다인 이곳에 최근 미 해군 병참지원함이 다시 들어갔다. 종전 후 처음이다. 미 국방장관은 3일 그 함정에 올라 양국의 새로운 안보협력 시대를 제창했다. 베트남 총리는 “미국이 지역안보에 적극적인 역할을 해주길 기대한다”고 화답했다.中 견제위해 美군함 불러들이는 베트남 베트남이 전략요충지에 미 군함을 불러들이고 미 함정이 상시 항구를 사용할 수 있게 하는 문제가 거론되는 상황은 격세지감이라는 말만으로는 표현하기 힘든 변화다. 이를 보면서 ‘영원한 적도, 영원한 우방도 없다’는 진부한 외교격언을 떠올리기보다는 왠지 서글픈 생각이 들었다. 종전 20년 후에 국교를 맺고(1995년) 40년도 채 지나지 않아 깊숙한 군사협력까지 논의하게 될 상대를 쫓아내겠다며 싸우다 숨진 수많은 젊은이가 생각나서다. 베트남전은 미국 등 자유세계의 입장에선 자유민주주의를 지켜주기 위한 전쟁이었지만, 민족해방전선(NLF·베트콩)에 자원한 베트남인들은 제국주의에 맞선 전쟁으로 여겼을 것이다. 당시 그들을 끌어당긴 가치는 ‘민족해방’이었다. 사실 민족해방처럼 주술적인 흡인력을 지닌 슬로건도 드물다. 한국 운동권에서 주사파가 주도권을 쥔 것도 ‘민족해방론’ 덕분이었다. 반정부 시위가 비등점을 향해 치닫던 1986년 봄까지만 해도 학생운동권의 다수는 제헌의회파였다. 그들은 한국은 이미 자본주의 사회이므로 노동자 혁명으로 제헌의회를 소집해 사회주의를 하자는 주장을 폈다. 그러나 이는 군사독재는 몰아내고 싶지만 계급혁명에는 동조하지 않는 다수 학생과 중산층 시민의 공감을 얻을 수 없는 주장이었다. 그때 ‘민족해방(NL)’을 주창하는 주사파는 갑자기 온건노선을 표방하고 나섰다. 그들이 실제로 온건해진 게 아니다. 한국을 미국의 신식민지이며 반(半)봉건사회로 규정한 그들은 ‘반봉건사회에선 사회주의 혁명 이전 단계인 민주주의 실현이 당면 과제’라는 논리를 내세우며 전략적 변신을 했다. 전두환 정권 축출에 힘을 모으자며 ‘직선제 쟁취’ 같은 대중적 슬로건을 외치며 재야세력과 연합전선을 구축했다. ‘민족해방론’은 그처럼 뱀같이 유연하게 변신하는 논리다. 그들은 1987년에 그랬듯이 올 대선에서도 전략적으로 유연해지면서 연합전선 구축에 나설 것이다. 당시 주체사상 전파의 핵심역할을 한 서울대생 김영환 씨의 ‘강철서신’에는 베트남이 민족해방 사례로 등장하곤 했다. 김 씨는 북한인권운동가로 변신해 지금 중국에 억류돼 있다. ‘민족해방전쟁’을 치른 베트남은 미국과 다시 손을 잡으려 여념이 없다. 재판장을 ‘미국 놈의 개’라고 부르고 ‘종북보다 종미가 문제다’라고 말하는 인사들은 중국을 견제하고 경제를 살리기 위해 미 군함을 불러들이는 베트남을 보며 어떤 생각을 할까. 사실 이 질문은 ‘베트남 독립의 아버지’ 호찌민에게 묻고 싶은 것이기도 했다.‘민족해방’ 주창 주사파들도 배워야 베트남인들만큼 존경심이 깊지는 않겠지만 필자도 호찌민을 높이 평가한다. 베트남전의 정당성 문제와 별개의 차원에서 그의 일생을 존중한다. 평생을 일관한 독립의지, 눈감는 날까지 신독과 솔선수범을 지킨 검소한 삶…. 그러나 그가 살아있다면 묻고 싶다. 그가 이끈 미국과의 전쟁은 반드시 치러야만 했던 것이었을까, 더 나은 해결책은 없었을까, 수백만 명이 목숨을 잃어가며 해방시켜야 할 만큼 남부 베트남은 미국의 완전한 식민지였을까…. 정치인들이 좌표를 잘못 인식하면 국가라는 배는 격랑 속으로 흘러든다. 그 요동 속에서 무수한 젊은이가 갑판 너머로 떨어져 물방울처럼 사라져간다. 전쟁의 어느 편이었든, 청춘을 베트남 정글에 묻은 채 스러져갔을 젊은이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진다.이기홍 국제부장 sechepa@donga.com}

    • 2012-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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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골수 주사파 출신 곽대중씨 “13년전, 남한혁명후 정치범수용소 만들자던 너는…”

    《 한때 골수 주사파 학생운동권이었던 곽대중 전 전남대 총학생회장이 ‘옛 동지’ K 씨를 향해 인터넷에 공개리에 띄운 편지가 화제가 되고 있다. 곽 씨는 최근 ‘StoryK’에 ‘진보당 당권파 친구 K에게―전남대 총학생회실에서의 격렬한 논쟁을 기억할까?’라는 제목으로 200자 원고지 27장 분량의 글을 띄웠다. 현재 중국에 머물고 있는 곽 씨는 23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주사파가 어떤 사람들인지 널리 알리고 그들이 올바른 길에 들어서길 바라는 마음에서 편지를 썼다”고 밝혔다. 그는 “K 씨가 현재 통합진보당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으나 K 씨가 실제로 통진당에 몸담고 있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곽 씨는 고교시절인 1989년 북한소설 ‘꽃 파는 처녀’를 읽은 뒤부터 북한을 추종해 노동당에 입당하는 것을 최대의 목표로 삼았고 힘들 때마다 ‘김일성 장군의 노래’를 부르던 골수 주사파였다. 하지만 그는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의 망명(1997년), 강철서신의 저자 김영환 씨의 전향 등을 보면서 북한 민주화운동을 자신의 목표로 삼았다. 졸업 후 북한민주화네트워크 기관지 ‘Keys’ 편집장, 북한전문 인터넷신문 데일리NK의 논설실장 등을 역임했다. 그가 쓴 편지 중 일부를 소개한다. 》K에게우리의 관계를 ‘친구’라고 표현하는 것에 대해 네가 어떻게 생각할는지 모르겠구나. 우리가 마지막으로 만난 지도 벌써 13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그해 여름 우리 대학 총학생회와 전북대 총학생회가 “앞으로 학생 운동권은 북한의 인권 문제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서면서 세상의 주목을 받았고, 너는 그것을 ‘따지기 위해’ 학생회실에 찾아 왔었다. 짧은 시간 우리는 격렬한 논쟁을 주고받았지.주로 네가 물었고, 나는 답했다. 어찌하여 그런 황당한(?) 주장을 하였던 것이냐고 너는 물었고, 나는 북한의 참혹한 현실에 대해 얘기했었다. 300만 명이 굶어 죽은 끔찍한 식량난과 탈북자 문제, 가혹한 주민 통제와 인권 탄압 실태 등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그러한 불행의 원인이 수령 독재에 있다고 나는 설명하였다. 너는 미제(美帝)에 화살을 돌렸고, 나는 그런 식의 ‘미국 핑계’는 이제 버릴 때가 되지 않았냐고 대꾸하는 식으로 갑론을박이 계속되었다.2500만 인민은 현세의 지옥에서 고통받고 신음하고 있는데, 그런 와중에도 고급 양주와 벤츠 자동차를 사들이는 데 수백만 달러를 탕진하고 기쁨조 파티를 즐긴다는 ‘위대한’ 지도자 동지에 대한 이야기로 화제는 흘렀다. 다른 이야기에는 비교적 담담하던 너는 김정일을 거론하니까 격렬한 반응을 보였다. 1년 365일 쉬는 날도 없이 현지 지도를 다니며 인민들과 동고동락, 풍찬노숙하시는 ‘그분’을 어떻게 그렇게 모욕할 수 있느냐며 주먹을 불끈 쥐고 나를 노려보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마지막엔 내가 질문을 던졌다. “북한의 정치범수용소에 대해 알고 있느냐”고. 정치범수용소의 존재 자체를 부정할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순순히 ‘알고 있다’고 대답하는 것에 우선 놀랐다. 그리고 이어지는 너의 답변에 더욱 놀랐다.“혁명을 하다 보면 반드시 제거해야 할 세력이 있기 마련이고, 혁명에 승리하고 나서도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는 반혁명 세력들은 오랜 기간을 두고 제압하여야 한다. 그래서 나는 이북에 정치범수용소가 존재하는 것이 당연하다 생각하고, 우리 혁명(남한에서의 혁명)이 승리하고 나서도 그런 수용소를 만들어야 한다고 본다.”학생회실을 나서면서 네가 그랬다. “이제부터 우리는 동지가 아니다. 친구도 아니다. 적(敵)이다.”(중략)결국은 문제가 터졌다. 네가 속한 그룹이 사고를 쳐도 단단히 쳤더구나. … 민주주의에 대한 유치원생 수준의 인식만 있어도 감히 그렇게 할 엄두조차 내지 못할 일들을, 너희는 마치 부정선거의 종합 패키지를 보여주고 싶었던 듯 서슴없이 용감하게도 저질렀더구나.순진한 사람들은 아직도 의아해한다. ‘그래도 명색이 진보를 지향하는 사람들인데, 왜 그랬을까, 과연 그랬을까?’ 너희들의 실체를 몰라도 너무 모르는 사람들이 아직도 대한민국에는 많고도 많다.너 같은 사람들, 지금 네가 속해 있는 그룹의 사람들은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사람들이라는 것을 나는 익히 알고 있었다. 세월이 지나 약간 유연해지고 노련해졌을지는 모르겠지만, 민주주의에 대한 기본 인식이 없는 너희는 언젠가는 그런 대형 사고를 칠 가능성이 충분히 예견되어 있었다.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이해 못할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렇게도 목 놓아 민주주의를 외치는 사람들이 실은 민주주의에 대한 기본 개념조차 없다니!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적들의 방식대로’ ‘악랄하게 전진하여야’ 한다는 강렬한 대결의식은 너희들의 마음에서 민(民)과 주(主)라는 따뜻한 두 글자를 앗아간 지 이미 오래다. 오로지 반미주의, 남한 정권에 대한 적개심, 어떻게든 북한 정권을 살려놓아야 한다는 무한한 충성심, 실체도 없는 계급의식과 영웅의식 같은 것으로만 똘똘 뭉쳐 있겠지.이번 사건을 겪으면서도 계속하여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끝까지 버티는 너희들의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며 ‘역시 달라진 것이 하나도 없구나’ 혀를 끌끌 찼단다. 뺏기지 않고 싶겠지. 그동안 ‘누려온 것’이 있는데 말이다. 그동안 ‘쌓아온 것’이 있는데 말이다. 여기까지 어떻게 달려왔는데, 이제 와서 그것들을 송두리째 날리고야 싶겠니. 그렇게 누려온 것, 쌓아온 것을 한자어로 뭐하고 할까? 바로 ‘기득권(旣得權)’이라고 말한다. 너희는 바로 기득권 세력이 된 거야. 너희들이 그렇게도 싫어하던 세력의 모습 그대로 된 거지.당내의 기득권을 뺏기지 않으려 그렇게 아득바득 애를 쓰는 너희들의 모습을 보면서, 너희 같은 사람들이 정권을 잡으면 과연 나라가 어떻게 될지 생각만 해도 소름이 끼치는구나. 종북주의자들은 본질적으로 반(反)민주주의자, 독재주의자들이다. 그래서 진보진영에서 솎아내야 할 대상이라고, 그렇게 누누이 말해왔던 것이다.(중략)진보진영이 완전히 몰락하기를 바라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너희 같은 종북주의자들이 진보당에 더욱 오래 남아주기를 바랄 것이다. 그렇게 내버려두면 너희 그룹은 계속해서 당내에서 세력을 확장해 나갈 것이고, 시나브로 수준과 정체를 드러내 보여줄 것이고, 그러다가 언젠가는 또 한 번 초대형 사고를 치겠지. 아마도 그때는 ‘종북의 몰락’이 아니라 ‘진보의 몰락’이 될 것이다.(중략)네가 처음으로 변혁운동의 길에 뛰어들던 그날의 마음을 떠올려 봐라. 억압받는 민중에 대한 애정, 그들을 억압하는 자들에 대한 분노, 혁명을 위해 목숨을 바치겠다는 열정! 현재 지구상에서 가장 억압받는 민중은 북한에 있고, 인민을 가장 억압하는 세력도 북한에 있고, 네가 혁명을 위해 목숨을 바쳐야 할 시대적 과제도 바로 북한에 있다. 나중에 2500만 북한 인민으로부터 ‘독재왕조의 협력자’라는 이름으로 돌팔매질을 당하고 싶지 않다면, 이제라도 자숙하기 바란다. 네가 독재왕조와 최후를 함께하는 악어새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오랜 친구의 마지막 충고다.2012년, 여름보다 뜨거운 오월.한때는 동지였던 너의 친구가.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2012-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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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이기홍]그리스인을 위한 변명

    요즘 같은 때 그리스 국민을 변호해 주면 욕먹기 십상일 것이다. 사실 그리스 국민의 행태는 이중적이고 이기적으로 비친다. 국민 80% 이상이 유럽연합(EU)에 남기를 원하면서도 정작 6일 총선에선 EU의 긴축 요구를 거부하는 극단주의 정당들에 표를 몰아줬다. EU의 도움을 받아 빚더미에서 벗어나고는 싶지만 긴축의 고통은 감내하지 않겠다는 얌체 심보다.국민들,정치인 부패로 공동체 불신 그리스 TV는 지난해 봄 한국인들은 외환위기가 터지자 금 모으기를 했다며 국민들에게 미래를 위해 한마음이 되자고 호소했다. 하지만 당시 아테네 시내에서 동아일보 기자와 함께 방송을 보던 시민들은 “뭐 하러 그런 짓을 하느냐”며 냉소했다. 도시국가로 출발한 그리스는 로마의 지배를 1000년, 터키의 지배를 400년 받았다. 현대에 들어와서도 이탈리아의 침공에 이어 나치에 점령됐다. 끊임없이 내전을 겪었고 1974년까지 군사독재에 시달렸다. 그런 과정에서 국가관은 희박해지고 공동체와 미래보다는 개인과 현재를 중시하는 풍토가 생겨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정작 그리스인들이 국가와 공동체를 불신하고 그것들에 무관심하게 된 결정적 요인은 민주화 이후 정치지도자들의 부패와 포퓰리즘적 정책이었다. 워낙 부패가 심하다 보니 세금을 내면서도 공익을 위해 쓰일 것이라고 생각하기보다는 엉뚱한 놈 배 불릴 돈을 강탈당한다는 느낌을 갖게 됐다. 한국인의 금 모으기를 냉소한 한 대학원생은 “정치인들은 항상 부패하고 자기 실속만 챙기는 사람들인데 왜 국민만 국가를 생각해야 하느냐”고 되물었다. 다행히 기성 정치지도자들은 비로소 정신을 차렸는지 허리띠를 졸라매자고 호소하고 있다. 하지만 이젠 극우 극좌 정당들이 포퓰리즘의 바통을 이어받아 선동하고 있다. 강경좌파 연합인 시리자당의 알렉시스 치프라스 대표는 총선 때 빚 상환 중단, 긴축 중단을 요구하면서 “우리가 빚을 상환하지 않더라도 유로존이 우리를 퇴출시킬 수 없다”고 주장했다. 시리자당은 일약 원내 제2당으로 부상했다. 유권자들이 달콤한 단기이익을 제시하는 정치인에게 표를 주고, 그리하여 공동체의 상황이 더 나빠지는 악순환은 현행 대의민주주의가 안고 있는 결정적 취약성이다. 민주주의의 발원지인 그리스에서 민주주의의 위기가 절정에 달한 것은 아이러니다. 또한 그리스 사태는 세계적 이슈를 해결하려는 과정에서 개별 국민국가(The Nation-State) 유권자들이 지구촌 공동의 이해관계와 배치되는 선택을 해 전체가 위기에 빠져드는 위험한 메커니즘을 보여줬다. 세계화 시대의 큰 숙제가 아닐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의회민주주의보다 나은 대안이 있는 것도 아니다. 직접선거를 통한 권력 교체 가능성을 닫아둘 경우 그 내부에서 권력의 횡포와 부패가 어떻게 자라나는지는 최근의 중국 보시라이 사건이 너무도 극명히 보여줬다.지도층 솔선수범해 신뢰 쌓아야 결국 해답은 지도층의 솔선수범과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통해 국민들이 공동체에 신뢰를 쌓아가도록 하는 것밖에는 없다. 개개인의 절제가 공동체의 파이를 키우고 그 열매가 본인에게 반드시 되돌아온다는 확신을 심어줘야 한다. 그런 점에서 요즘 우리 사회 좌파 일각에서 “외환위기 때 금 모아서 재벌만 살찌워줬다”는 식의 냉소적 시각이 나오는 것은 위험한 신호다. 그리스 국민이라고 하면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조르바는 거칠 것 없는 자유, 개인의 일상의 행복에 집중하지만 무책임, 이기주의와는 결이 다른 DNA다. 무슨 음식을 특히 좋아하느냐는 질문에 그는 “아무거나 다 좋아한다”며 “이건 좋고, 저건 나쁘다고 하는 건 큰 죄악”이라고 답한다. “왜요? 골라서 먹을 수 없다는 말씀이신가요?” “안 되지요. 그럴 수는 없습니다.” “왜 안 됩니까?” “굶주리는 사람이 있으니까 그렇지요.”이기홍 국제부장 sechepa@donga.com}

    • 2012-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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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이기홍]점점 닮아가는 극우와 극좌

    일요일에 치러지는 프랑스 대선은 ‘집권당 저주의 악령’이 2012년에도 위력을 떨칠지를 가늠하는 선거다. 지난해 세계는 거의 모든 선거에서 집권세력의 참패를 목도했다. 경제위기의 진원지인 유럽 6개국 정권이 교체됐고 중동 아프리카에선 피플파워에 집권세력이 쫓겨났다. 佛 극우후보 지지율 젊은층서 1위 여당들이 우수수 패배한 공통된 원인은 승패의 열쇠를 쥔 유동층 유권자들이 ‘먹고살기 힘들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야당 후보가 특별히 좋아서라기보다는 ‘현 집권세력이 싫어서’ 야당을 찍는 게 지구촌의 투표 패턴이다. 이번 프랑스 대선에서 야당인 올랑드 사회당 후보의 당선이 유력시되는 것도 “사르코지(대통령)는 안돼”라는 분위기의 영향이다. 사회당도 유력 주자였던 스트로스칸의 섹스스캔들 등으로 우왕좌왕했지만 경제위기가 불러온 ‘무조건 바꿔’ 분위기의 덕을 보고 있다. 이처럼 여야 주요 정당이 지리멸렬한 틈을 타 극우 극좌세력이 세를 불리고 있다. 특히 충격적인 것은 젊은이 사이에서 극우 후보가 지지도 1위라는 소식이다. 최근 여론조사 결과 18∼24세에서 르펜 국민전선 후보가 26%의 지지율로 올랑드(25%)와 사르코지(17%)를 앞섰다. ‘20대 때 마르크시스트가 아니면 바보고, 40대까지 그 미몽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더 바보’라는 말이 있듯이 젊은층이 좌파에 끌리는 건 드문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극우후보가 젊은층에서 1위를 달리는 건 프랑스 역사상 처음이다. 젊은층이 르펜에 열광하는 주된 이유는 반(反)이민 정책이다. 연간 이민 쿼터를 현재의 20만 명에서 1만 명으로 줄이겠다는 공약에 외국인이 일자리를 빼앗아 간다고 느끼는 젊은이들이 열광하는 것이다. 극좌인 멜랑숑 공산당-좌파전선 공동후보도 전체 투표층에서 14.5%, 18∼24세에선 16%의 높은 지지를 받고 있다. 프랑스공산당은 소련 붕괴 후 쇠퇴해 2002년 대선 땐 3.37%, 2007년 대선 땐 1.93%의 지지에 그쳤으나 2008년 경제위기 이후론 연평균 6000명씩 당원이 늘고 있다. 선진국 젊은이들이 극좌나 극우에 빠져드는 것은 이념적 선택이라기보다는 도취와 배설의 차원으로 해석할 수 있다. 끓고 있는 분노를 배설할 증오의 타깃을 선명하게 그려 제공해주는 정치 흥행꾼들의 팬이 되는 것이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은 극우와 극좌가 점점 닮아간다는 사실이다. 르펜과 멜랑숑은 모두 자유무역과 세계화를 거부하고 있다. 둘 다 유럽연합(EU)에 빼앗긴 경제주권을 되찾아 와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부자 공격에 에너지를 집중하고 있다. 둘 다 화려한 의상과 수사로 군중을 휘어잡는 선동가이며 광신도 같은 마니아층을 거느리고 있다. 멜랑숑의 유세는 ‘부자’라는 단어가 등장할 때마다 수만 명의 젊은이가 일제히 ‘부우’ 하는 야유로 호응하는 ‘집단콘서트’를 연출한다. 20세기 초중반 파시즘에 맞서 싸우면서 자라난 사회주의가 평등, 자기희생, 만국 노동자의 단결 같은 가치를 잃고 파시즘을 닮아가는 것은 아이러니고 비극이다.화려한 수사로 군중 휘어잡아 좌파의 극우화 조짐은 우리 사회에서도 엿보인다. 좌파가 주도한 2007년 광우병 파동의 진행 양상은 나치 히틀러가 독일국민을 집단 광기로 몰아넣던 과정을 연상케 하는 측면이 있었다. 최근 여당 비례대표 의원에 당선된 필리핀 출신 여성에 대한 공격도 극우의 싹이 자라고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공격 가담자 중 자칭 진보나 좌파를 자임하는 이들이 있다면 그들의 머릿속에선 이미 극좌와 극우의 교배가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부자 친구들과 숱한 스캔들을 빚은 사르코지의 도덕적 해이, 긴축정책에 대한 두려움 등이 프랑스 젊은이들 사이에서 극우 극좌의 토양을 만들었다. 자유 평등 박애의 나라 프랑스의 미래를 생각할 때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열린사회의 영원한 적인 극우 극좌의 발호 조짐이 일고 있는 우리로서도 강 건너 불이 아니다.이기홍 국제부장 sechepa@donga.com}

    • 2012-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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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이기홍]대신 울어주기

    며칠 전 영화배우 조지 클루니가 수단대사관 앞에서 수갑이 채워져 끌려가는 사진을 보기 전까지는 수단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자세히 몰랐다. 국제뉴스 에디터에게 아프리카의 기아, 양민학살은 항상 주요한 관심사지만, 지난해 남수단 독립으로 수단의 상황은 대충 정리된 것으로 여기고 있었다.클루니 체포소식에 수단문제 부각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클루니 체포를 계기로 세계 언론들이 수단 기사를 쏟아내고 있었다. 현지 상황은 심각했다. 남수단 국경지역의 분리주의 무장세력 소탕을 명분으로 한 정부군의 토벌작전으로 2003년 다르푸르 학살 같은 참극이 재연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었다. 공군기가 건물을 무차별 폭격하는 가운데 군인들은 집과 곡식을 불태우고, 폭격을 피해 인근 누바산의 동굴 속으로 피신한 양민들은 아사 위기에 처해 있다. 이런 위기는 갑자기 생긴 게 아니다. 그동안 인근국 유엔 직원들이 수단 위기를 수차례 경고했지만 지구촌은 별다른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러다 클루니가 양민학살에 항의하다 체포됐다는 소식에 비로소 스포트라이트가 수단으로 집중된 것이다. 문득 차인표 씨가 출연한 TV 토크쇼의 장면이 생각났다. 탈북자 북송 반대에 앞장선 이유를 묻자 차 씨는 어린 시절의 일을 들려줬다. 네댓 살 때 집의 지하실로 통하는 구멍에 얼굴을 넣었는데 얼굴이 끼어 버렸다는 것이다. 아무리 울어도 소리는 지하 어둠 속으로 묻힐 뿐이었다. 그때 옆에 있던 형이 동네가 떠나갈 듯 울기 시작했다. 어른들을 부르기 위해 대신 울어준 것이다. 지금 클루니가 하는 일이 바로 차인표 형의 울음과 같은 게 아닐까. 동생을 위해 울어준 형처럼 클루니는 산속 동굴에 입이 갇힌 수단 주민들을 대신해 울어준 것이다. '대신 울어주기.' 어쩌면 그것이 유명인(celebrity)의 사회 참여는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한 명쾌한 해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주변엔 누군가가 대신 울어줘야 할 처지에 놓인 이가 많다. 북송 위기에 처한 탈북자일 수도 있고, 외국인 노동자일 수도 있고, 구조조정을 당한 노동자일 수도 있고, 철거민일 수도 있고, 버려진 동물일 수도 있다. 인기와 영향력이라는 확성기를 지닌, 남들보다 큰 울음소리를 낼 수 있는 스타들이 그들을 위해 울어주는 것은 사회가 인기를 준 데 대한 보답이다. 하지만 대신 울어주는 것은 악이나 떼를 쓰는 것과는 다르다. 연예인이건 작가건 교수건 언론인이건, 유명인의 정치·사회적 발언에는 영향력이라는 특혜만큼의 책임이 따른다. 일반시민의 술집 넋두리와는 다르다. 인기에 수반되는 영향력은 마음대로 휘둘러도 되는 배타적 특권이 아니다. 유명인의 정치·사회적 발언은 진실성과 객관성을 갖춰야 한다. 현안의 사실관계나 역사적 맥락, 입체적 다층적 진실에 대해 기초적인 공부조차 하지 않은 채 선명성 넘치는 발언을 툭툭 내뱉는 경박한 태도는 인기를 유독한 바이러스로 변질시킨다. 남을 위한 울음이 세상을 움직이기 위해서는 자기희생과 진솔함도 요구된다. 말로는 민중, 약자를 위한다면서 자기 손에는 물 한 방울 묻히지 않는, 입만 열면 자본주의를 공격하면서 자신은 자본주의 단물 사다리의 꼭대기에 앉아 호사를 누리는 태도로는 아무런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없다. 인기인 사회참여 방법 보여줘 클루니는 이달초 수단 산악지역 동굴을 찾아갔다. 로켓포가 머리 위를 지나가고 옆 사람이 포탄에 맞았다. 그런 위험한 방문을 수년째 계속하고 있다. 그 결과 미 의회가 움직이고 미 행정부는 수단산 석유 주 고객인 중국을 설득하고 있다. '개념 연예인'의 대명사인 앤젤리나 졸리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제3세계 어린이를 위한 봉사의 삶을 살다간) 오드리 헵번의 삶은 어린 졸리의 삶을 바꾸었다. 또 어디선가는 졸리의 삶을 보고 누군가의 삶이 변화할 수 있지 않을까."이기홍 국제부장 sechepa@donga.com}

    • 2012-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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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잰 숄티가 번역한 주성하 기자의 기사

    Congressional-Executive Commission on ChinaTestimony of Suzanne Scholte for Hearing March 5, 20121) Letter to Hu Jintao by North Korean defector and reporter Seongha Ju, The Donga Daily2) "Kkot Dong San" A Hill Filled with Flowers, an essay about the reeducation camp where tens of thousands were sent and died following repatriation from China3) Red stamps for those escaping to South Korea for freedom? The behind-the-scenedeal between China and North Korea1) Letter to Hu Jintao by North Korean defector and reporter Seongha Ju, The Donga DailyTranslation of Letter published in Donga Ilbo on February 14, 2012Dear President Hu Jintao, The heartrending cry of the family of North Korean refugees arrested in China last week, encouraged me to write to you through this newspaper. Now you are the only person that can save their life. I am also a refugee from North Korea that fled via China to South Korea through severe hardships. Feeling, with every fiber of my body and soul, the fear and agony of the refugees facing impending repatriation to North Korea, I am desperately writing this letter word by word, hoping this will be the last lifeline to which the arrested can resort. China has, to date, repatriated arrested North Korean refugees to Pyongyang, and will also do the same this time. Mr. President, however, please be noted that Pyongyang's punishment of the refugees has grown unprecedently and incomparably severe. Of recent, Pyongyang deems defection as the most serious menace to their regime, taking the most hawkish approach including on-the-spot execution of the refugees on the border. The punishment has got even harsher since Kim Jong-Il's death, and Pyongyang reportedly even issued an instruction to annihilate the entire family and relatives of the refugees that defected during 100 days' mourning period. Under such atmosphere, it is as clear as daylight that the refugees will be subject to an exemplary execution or imprisonment in the concentration camp for political prisoners, immediately after being taken to North Korea. China has been strengthening coordination with North Korea to prevent defection in various areas including putting barbed-wire fence on the border, tracking down refugees, patrolling the border, detecting the radio wave, etc. China's concern about Pyongyang regime's stability, is not incomprehensible. No matter how it may be, however, by when will you assume the villain role to drive refugees to death? By when will you support the regime that cannot control its people without public execution and deadly concentration camps? Throughout the last decade, tens of thousands of refugees were taken back from China to North Korea, many among whom have passed away from harsh punishment and famine. China also stands liable to their death. When will you realize the fact that China is losing North Koreans' public trust whenever you fell the refugees off the cliff of the death one by one? Many of the arrested have their family in South Korea. Most of them are sons, daughters, parents and siblings of South Koreans. Among them is a teenager who has a brother and a sister in South but no other family in North. The brother and the sister are shivering like wounded deer in the corner of a room, off all food and drink, at the news that their younger brother, who they were to bring to South with the money they scraped up with hard shores at the cafeteria. Parents of an arrested girl, crying bitterly in front of the South Korea's Ministry of Foreign Affairs and Trade, pleaded to send poison to their daughter if her rescue is impossible. They want her to commit suicide in China rather than to be killed by cruel punishment in North Korea. Other family's feeling is just alike. Their repatriation to Pyongyang will leave dozens of their family in South Korea in lifelong agony, nightmare and sense of guilt. There are tens of thousands of separated families in two Koreas already living like that. How can I describe their pain in mere writing? Mr. President, this year we have the 20th anniversary of the establishment of diplomatic relations between China and South Korea. Every Korean and the whole world are keeping keen eyes on you. Please allow them to meet their family again with joy. I desperately ask your generosity. Please let us all applaud you with deep appreciation. Sincerely Yours,Seongha Ju, Reporter of The Donga Daily=================================================================2) "Kkot Dong San" A Hill Filled with Flowers, an essay about the reeducation camp where tens of thousands were sent and died following repatriation from Chinahttp://blog.donga.com/nambukstory/archives/23738Sung Ha Joo 2/14/2012 8:00AMThere is a certain "Kkot-Dong-San."It is a hill by a reeducation camp in Jungsan-kun, Pyong-Nam in North Korea. The reeducation camp is an imitation of the Soviet Union's forced labor camps in the past. Those who are sentenced to several years due to attempts at escaping must farm under the influence of hunger and ruthless whipping that one can hardly imagine.If the people in these camps die from hunger or beating, they are buried in the Kkot-Dong-San.Tens of thousands of corpses are buried there. Several corpses are buried in a single hole, and when it's full, other corpses were buried over these graves. In the winter when the earth is frozen, the burial process becomes merely a covering process. The corpses are wrapped in a plastic wrap, and a penicillin bottle with the name and birthday is hung around each corpse's neck.The human skull protruding from the ground as well as pieces of cloth and vinyl paper flapping with wind reminds one looking from afar of a flower field, which is why the reeducation camp prisoners call the hill "Kkot-Dong-San." It also reflects the prisoners' desperate wish to get away from hell at least in their deathbed.Though often political prisoner camps are considered the epitome of North Korea's human rights violations, the reeducation camps are actually worse. Political prisoners are slaves for life. Slaves are assets. If they only work under the influence of whipping, they become very good workers. Products made from political prisoner camps are considered to have the best quality of all products in North Korea.On the other hand, when they are released from the prisoner camps and enter reeducation camps, they are merely "human trash" to the North Korean elites. They would prefer seeing these prisoners die from persecution.A woman who was arrested and taken to Jungsan reeducation camp in 2000 said that among2000 people with whom she first entered the camp, only 200 people were still living after 7 months. It is the same with other reeducation camps. North Korean defectors who were in charge of disposing corpses in 1998 for six months said that they disposed of 859 corpses in total.The majority will die due to malnutrition. In a reeducation camp, other living things such as rats and insects are on the verge of extinction because the prisoners put whatever they see alive into their mouths.In reeducation camps, the day that one will finally die is estimated by a fist. If a fist can go in between your crack vertically, you are on your way to dying, if a fist can go in horizontally, you are dying, and if a fist can go in in both ways, you will not survive.Just like that, I know so well what it is to be dying. I had also failed escaping and been classified as a political prisoner. As a result, I frequented the security department's torture chambers, prisons, and labor camps. Only when I was on the verge of death, weighing only 90 lbs, was I released.After I came to South Korea, I have been writing about North Korea for 10 years. Many times I cried because I had experienced the same pain that other North Koreans are experiencing. To me, North Korea is pain and tears. I cannot step away from my keyboard if I think about my fellow North Koreans who are suffering and dying.I received a list of North Korean refugees recently arrested in China. O, how painful...Kim Jung Un declared that anyone defecting after Kim Jung Il died will have his or her family killed down to three generations. China does not feel guilty at all even after pushing the North Korean refugees close to death. The picture of "Kkot-Dong-San" where crows linger above the sad faces of those being sent back to North Korea is vivid in my mind.I plead to you not just as a reporter, but also as a person who has experienced what a Hell is. If you happen to see an idol worship or group gymnastics performance and waves of other flowers in Pyongyang, please remember the labor reeducation camp "Kkotdongsan." Please don't forget the nameless dead who are being wrapped and buried in "Kkoddongsan"Even if it's only once in a while... Please ....========================================================3) Red stamps for those escaping to South Korea for freedom? The behind-the-scenedeal between China and North Koreahttp://blog.donga.com/nambukstory/archives/243332012/02/22 8:00 am Sungha JooIt is discovered that in the process of deporting the North Korean refugees back to North Korea, the Chinese government has been informing to the North Korean government whether the captured refugees had escaped North Korea to head to South Korea or not.There is a high possibility that the North Korean refugees who intended to escape to South Korea will either be detained in a political prisoners camp or be executed after they are deported. It was the North Korean government that told the Chinese government to determine the refugees' intended destinations.The Tumen Public Security Bureau in China announced on the 21st that the Chinese Public Security Bureau has been receiving natural resources such as logs and minerals from North Korea in return for deportation of the refugees back to North Korea.They (Tumen Public Security Bureau) said that "Recently China has been informing North Korea about the refugees intending to head to South Korea by using different colors of stamp on the files".China has been using different colors of stamp that they agreed upon with North Korea each month, for example red in January and blue in February, instead of writing down "to South Korea", in order to avoid leaving obvious evidence that they have been assisting North Korea.It is reported that due to the enlarging issue about refugees beyond the nation, China came up with this idea of using different colors of stamp to inform North Korea if the refugees were heading to South Korea.When China had a good relationship with North Korea, they even handed over all the interrogation files to North Korea and moreover, during the late 1990's, it is witnessed that a North Korean investigator, disguised as a Chinese investigator, came over to China and interrogated the refugees.The former North Korean lieutenant and the director of a North Korean broadcasting station, Sungmin Kim, said on the 21st that when he was being interrogated, "I was criticizing the political system of North Korea to a Chinese investigator who seemed to be compassionate and understanding, but later when I was being deported back to North Korea, the same man welcomed me back not as a Chinese investigator but as a North Korean personnel agent".If China does not inform North Korea about the refugees' intent to escape to South Korea, the refugees will have a better chance in living even after they get deported. Since it is difficult for the North Korean refugee investigators to go over to China to investigate, the refugees only need to deny that they were intending on fleeing to South Korea and endure the tortures but could still spare their lives.However, it is relatively easy to find out about the destinations of the refugees in China because the refugees hoping to head to South Korea are taken under custody along with the people who help them to their freedom.It is reported that the Chinese government has been assisting in capturing the refugees and handpicked those who are to be executed and in return, they received logs and minerals from North Korea.The bitter refugees witnessed that the compensations for the refugees change from time to time, but usually they consist of logs from Mt. Baekdu and iron ore from Musan mine. The exchange of the refugees and the natural resources started since 1998 and has continued until now like a tradition.China sends back arrested North Korean refugees mainly through Tumen (located on the opposite side of Du-Man River in On-Sung, North Hamkyung Province) and Dandong (located on the opposite side of Ap-Nok River in Shin-ee, North Pyong-An Province). They also use any other bridges that connect China and North Korea.Even at just Tumen, more than 3,000 refugees have been deported back to North Korea within a year. From this, it is estimated that more than 5,000 refugees are deported back to North Korea every year.The Chinese government detains the refugees at the Tumen prisoner camp and when the camp fills up, they transport the refugees back to North Korea once or twice a week by buses. In the past, they used military trucks for the transportation, but since a lot of the refugees took their own lives by throwing themselves out the truck into the river at the bordering bridges, they changed trucks to buses.Typically, refugees who are captured around Tumen like Yanji are deported back within two weeks, but if the refugees are captured somewhere farther away, the investigation takes longer. Tumen prisoner camp is meant for foreign criminals, but there are only refugees there now.In this camp, North Korean refugees are repeatedly beaten and sexually harassed while they are stricken with fear before repatriation. North Korean refugees who have already experienced this prisoner camp said that at times, on the pretense of delaying repatriation, the camp officials rape the prisoners.}

    • 2012-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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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구촌 이모저모]알프스 산골 작은 레스토랑 ‘미슐랭 ★★★’ 달았다

    미식가라면 누구나 한 번쯤 가보기를 꿈꿔봤을 곳이다. 미슐랭 가이드에서 최고의 영예인 별 3개를 획득한 프랑스 식당이 올해 한 곳 늘었다. 스위스와 국경을 맞댄 알프스 오트사부아 지방 므제브 시의 ‘플로콩 드 셀(Flocons de sel)’이 그곳이다.소금 덩어리라는 뜻을 지닌 이 작은 식당의 셰프 에마뉘엘 르노 씨(44)는 28일 LCI 방송 인터뷰에서 “스파게티와 신선한 생선 등 맛있고 다양한 요리들이 기다리고 있다”면서 지역 특산물로 만들어진 42유로(약 6만4000원)짜리 점심 메뉴와 149유로(약 22만6000원)짜리 정식 저녁 코스를 추천했다. 쥘리안 카스파르 미슐랭 가이드 편집장은 “르노셰프의 요리 스타일은 매우 섬세하고 놀라우면서도 조화로운 재료의 조합을 자랑한다”고 평했다. 올해 미슐랭 가이드에 소개된 식당은 모두 4289곳. 이 중 별을 받은 식당은 594개. 특히 요리사와 레스토랑에 최고의 영광을 뜻하는 별 3개는 26곳이며 파리가 10곳, 지방 15곳, 모나코에 한 곳이 있다. 별 2개를 받은 곳은 83곳으로 올해 10곳이 추가됐다. 별 한 개를 받은 곳은 485곳이며 58곳이 새로 추가됐다.파리=이종훈 특파원 taylor55@donga.com}

    • 2012-0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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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中, 17년간 탈북 10만명 북송… “난민협약 위반 최악사례”

    중국의 탈북자 강제송환 논란을 계기로 지구촌 난민 문제가 국제사회의 현안으로 대두되고 있다. 2010년 말 기준으로 세계난민기구(UNHCR)가 보호하고 있는 난민은 모두 4370만 명으로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난민이 절반을 차지한다. 난민 신청을 한다고 해서 모두 난민으로 인정되는 것은 아니지만, 지난 수십 년간 대부분의 국가는 어려운 국내 사정에도 불구하고 난민을 보호하는 쪽으로 정책을 펴왔다. 현재 난민을 가장 많이 수용하고 있는 국가는 파키스탄(190만 명), 이란(110만 명), 시리아(100만 명) 순이다.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출신 난민들은 본국으로 돌아가도 박해받을 여지가 적지만 피난해 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국제적 보호를 받고 있다. 2011년 리비아와 튀니지에서 난민 4만8000여 명이 이탈리아 남부의 람페두사 섬으로 몰려들었을 때 이탈리아 정부는 단기체류증을 발급해 국경 이동이 자유로운 프랑스나 독일 등 다른 유럽 국가로 보냈다. 그 때문에 이 나라들과 갈등을 빚기도 했지만 강제송환은 일어나지 않았다. 1985년 콜롬비아에서 발생한 유혈사태로 난민 300여만 명이 발생했을 때 미국은 난민 대부분을 받아들였다. 난민의 대명사 격으로 불리는 베트남 ‘보트피플’도 미국 호주 프랑스 캐나다 등에서 난민 지위를 인정받았다. 한국도 1975∼1993년 한국에 도착한 보트피플 3000여 명 중 2400명가량은 미국 뉴질랜드 등으로 보내고 600여 명은 한국에 정착시켰다. 이 같은 국제사회의 관행과 비교할 때 중국이 북한 출신 난민들의 제3국 이동조차 금지한 채 이들을 강제 송환하는 것은 1951년 ‘난민의 지위에 관한 협약’이 체결된 이래 최악의 위반사례에 해당한다는 게 난민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28일 중국 사회과학원 자료에 따르면 1998년부터 2006년 사이 중국은 매년 적게는 4800여 명, 많게는 8900여 명의 탈북자를 북송해왔다. 북한의 기아로 인한 대량 탈북이 1995년부터 본격화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지난 17년간 강제 북송된 탈북자는 10만 명 안팎으로 추정된다. 이처럼 대규모의 난민에게 족쇄를 채워 이들을 본국으로 송환한 것이나 송환된 난민 전원이 본국에서 고문, 수감, 처형 등 박해를 받은 것은 근현대 세계사에서 유례가 없는 일이다. 이는 중국이 1982년 9월 가입한 ‘난민의 지위에 관한 협약’과 1988년 가입한 ‘고문방지협약’에도 배치된다. 중국은 탈북자 북송의 근거로 1960년 북한과 체결한 ‘조-중 탈주자 및 범죄인 상호인도협정’을 든다. 하지만 유엔헌장 103조, 난민협약 8조와 40조 1항은 국제협약과 국내법이 상충할 때는 국제협약이 우선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중국 스스로도 과거 국제협약과 국내법이 상충할 때 국제법이 우선한다고 여러 차례 밝혔다. 김영석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중국이 탈북자 문제에서 매번 범죄인 인도협정을 내세우는데 고문 금지는 모든 국제법의 상위에 존재하는 강행규범”이라고 지적했다. 국제법상 강행규범을 위반하는 조약은 무효라는 것이다. 중국이 탈북자를 난민으로 인정하지 않는 데 대해 국제난민지원센터 ‘피난처’의 이호택 대표는 “유엔 난민협약 1조는 인종, 종교, 정치적 의견을 이유로 박해받을 우려가 있는 사람을 난민으로 규정하고 있다”며 “탈북자의 탈출 이유가 경제적인 것일지라도 북한의 체제 특성상 송환 시 박해를 받는 이유는 정치적인 것이기 때문에 탈북자는 난민의 정의에 부합한다”고 말했다.주애진 기자 jaj@donga.com  :: 난민의 지위에 관한 협약 ::난민의 인권과 기본적 자유를 보장하고 있는 다자조약. 1951년 제네바에서 채택. 1조에서 인종, 종교, 정치적 의견을 이유로 박해받을 우려가 있는 사람을 난민으로 규정하고 있으며 33조에서는 생명이나 자유가 위협받을 우려가 있는 지역으로 추방하거나 송환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 한국은 1992년 가입, 중국은 1982년 가입.}

    • 2012-0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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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과 내일/이기홍]차인표가 돋보이는 까닭

    “망가지고 웃기는 장면을 찍어야 하는데 탈북자 생각에 감정이 잘 안 잡혀요.” 시트콤 촬영 중 인터뷰에 응한 차인표 씨의 말이다. 그는 탈북자 31명의 북송을 막기 위해 중국대사관 앞에 ‘용기 있게’ 섰다. 동아일보 14일자 보도를 계기로 국제 이슈로 확산된 탈북자 북송 위기에 대해 야당과 진보단체, 그리고 정치·이념 지향적 연예인 누구도 단 한마디도 하지 않던 때였다. 진보진영이 외면한 탈북자인권 거론 ‘용기’라는 표현을 쓴 것은 연예계에서도 오로지 좌파 폴리테이너(폴리티션+엔터테이너)들만 목청을 높이는 시대, 독재시절 민주화 투쟁의 현장에는 그림자도 보이지 않던 사람들이 앞에 나서서 진보 인권 민주라는 가치를 독점한 듯 행세하는 시대, 북한 인권을 입에 올리면 ‘수구 꼴통’으로 치부하는 분위기에서, 톱스타급 연예인이 처음으로 ‘보수의 어젠다’에 나섰기 때문이다. “이 사안은 정치나 외교보다 위에 있는 인도주의적 문제”라는 차 씨의 말처럼 탈북자 북송은 이념이나 좌우의 문제가 아니다. ‘보수의 어젠다’라는 필자의 표현도 틀린 것이다. 그럼에도 이 문제가 보수의 어젠다 같은 인상을 주는 것은 진보진영이 한결같이 외면해왔기 때문이다. 왜 그들은 침묵하는 걸까. 북한을 자극하면 인권문제 해결이 더 어려워진다는 그들의 논리를 인정해준다 해도, 그 밑바닥에 깔린 더 핵심적인 이유는 진영논리라는 의구심을 떨칠 수 없다. 사람의 두뇌는 슈퍼컴퓨터보다 빠르게 내 편 네 편을 구분한다. 일단 머릿속에서 진영 편입이 이뤄지면 사안의 경중이 달리 보이고, 내 편과 상대편에 들이대는 잣대의 높이가 달라진다. 중국이 탈북자를 북송하는 것도 진영논리의 산물이다. “난민이 아니라 경제적 이유의 월경자”라는 억지논리 아래에는 북한정권이라는 ‘우리 진영’을 불편하게 만들지 않겠다는, 서로를 잇몸과 이의 관계로 보는 강박관념이 깔려있다. 그런 중국을 진보진영은 비판하지 않는다. 만약, 7000명이 넘는 시민을 학살한 중동의 정권을 비호하고, 자기네 어선들이 다른 나라 바다에 들어가 사람을 죽여도 사과조차 하지 않는…그 나라가 중국이 아니라 미국이었다면 어땠을까. 어떤 이슈든 미국이 관계되면 진보진영의 잣대는 달라진다. 한미 FTA에는 사생결단 난리치지만 한중 FTA에는 별 반응이 없는 것도 그런 맥락에서 설명된다. 한미 FTA와 비교할 때 한중 FTA가 우리에게 불리하고 위험한 요소가 훨씬 많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캐나다산 쇠고기 수입이 재개되는데도 조용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어차피 몇십억분의 1 확률의 작은 위험이긴 하지만 광우병 위험을 따진다면 2003년 이래 18차례나 광우병 소가 발견된 캐나다산 쇠고기는 미국산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더 위험하다. 진영논리는 적의 적이면 무조건 내 편으로 여기게 만들기도 한다. 근무평정 최하위권의 판사를 ‘국민법관’으로 치켜세우는 게 한 예다. 소송 당사자들이 다투는 사안에 72자밖에 안 되는 판결 이유를 쓰고, 판결문에 변호사가 제출한 서류를 갖다 붙이는 그런 태도야말로 법원노조 등이 가장 앞장서서 타파해야 할 구시대적 법관상 아니었을까.“이념보다 인간이 먼저”새겨들어야 중국대사관 앞에서 시위하던 차인표 씨에게 워싱턴포스트 기자가 “한국인들은 왜 북송 문제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좀 창피해서 딱히 뭐라 하지는 않았고 그냥 ‘이제 시작이다. 조금씩 관심을 갖게 될 것이다’라고 답했어요. 시간이 걸리겠지만 이렇게 하면 언젠가는 변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필자는 차인표가 좌파인지 우파인지, 정치적 성향이 어떤지 전혀 모른다. 알고 싶지도 않다. 다만 “사람을 살리고 싶다”며 거리에 나온 그의 착한 마음이 인간의 생명이 걸린 사안마저 진영논리에 갇혀 접근해온 사람들을 향해 “이념보다 인간을 먼저 생각하자”고 호소하는 용기 있는 웅변으로 들려 차인표가 돋보이는 것이다.이기홍 국제부장 sechepa@donga.com}

    • 2012-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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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나뿐인 아들, 북송할 바엔… 죽여서 어미 품으로 보내달라”

    “가슴 터지는 이 심정을 국민들에게 호소하려고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꼭 구해주십시오. 북으로 보낼 바에는 차라리 죽여서 시신이라도 저에게 보내주십시오.” “제 동생은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애입니다. 제발 그 애를 죽음으로 내몰지 말아주세요.”중국에서 체포된 탈북자 31명의 가족들이 17일 동아일보 기자와 만나 이렇게 호소했다“김정일 애도기간이라 이번에 북송되면 무조건 본보기로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만약 살아서 북으로 끌려가면 오늘은 어떤 고문을 당할까, 내일은 어떤 고문을 당할까…. 이렇게 본인도 고통스럽게 죽어가고 가족도 함께 고통에 몸부림칠 바에는 한순간 마음이 아프더라도 차라리 죽여서 시신만이라도 어미 품으로….” 아들이 체포돼 있는 문영은(가명) 씨는 끝내 말을 맺지 못했다.가족들은 혈육의 체포 소식이 전해진 지난 한 주간 제대로 자지도, 제대로 먹지도 못했다고 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정치권과 정부, 중국 공관 등에 발이 닳도록 뛰어다니다 보니 추위와 체력적 한계로 건강마저 위협받고 있다. 김유미(가명) 씨는 독감에 걸려 병원에서 링거 주사를 맞으면서도 동생을 살리겠다는 일념으로 다음 날 고열 속에 북송 반대 시위대열에 합세했다. 17일 채널A의 ‘박종진의 시사토크 쾌도난마’에 출연하기 위해 동아미디어센터를 찾은 김 씨의 입술은 하얗게 부르터 있었다. 체포된 혈육들의 북송이 오늘내일 시간을 다툰다는 언론 보도는 가족들의 가슴을 더욱 심하게 옥죈다. 이들과 동행하며 구명운동을 주도하고 있는 김희태 북한인권선교회 회장은 “소식통에 따르면 체포된 31명의 탈북자는 선양(瀋陽) 투먼(圖們) 등 각 구류소에 분산 수감돼 있으며 아직 북송날짜는 정해지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가족들의 가장 큰 걱정은 중국 당국이 시간을 질질 끌다가 세계적인 구명 여론이 잦아들었다고 생각되면 외부에 알려지지 않게 조용히 탈북자들을 북송시킬지 모른다는 것이다. 탈북자 구출을 촉구하는 여론을 계속 불러일으키기 위해선 피해자 가족들은 아파도, 힘들어도 결코 주저앉을 수 없다. 끝이 보이지 않는 힘든 싸움이 될 수도 있지만 그것만이 체포된 혈육들의 생명을 하루라도 더 연장시키는 길이라고 굳게 믿고 있기 때문이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2012-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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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주-공화 이념다툼?… ‘美 역할론’선 한뿌리

    “누가 미국의 리더십이 저물고 있다고 말하는가. 미국이 없다면 세계질서는 유지될 수 없다.”로버트 케이건 브루킹스연구소 선임연구원의 신작 ‘미국이 만든 세계(The World America Made)’가 전환기 미국 리더십의 본질을 둘러싼 논쟁을 촉발시키고 있다. 14일 발간 예정으로 아직 전체적인 내용이 공개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뉴욕타임스, 월스트리트저널, 포린폴리시 등 주요 언론이 내용을 앞다퉈 소개하고 있다. 케이건은 조지 W 부시 행정부 시절 미국의 외교정책을 좌지우지했던 네오콘(신보수주의)의 핵심 이론가로 이름을 날렸으며 현재 공화당 대선 경선 선두주자인 밋 롬니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의 선거캠프에서 외교정책 특별보좌관으로 외교정책 입안을 총괄하고 있다.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 외교정책 자문단의 일원이기도 하다. 또한 그의 아내 빅토리아 뉼런드는 클린턴 장관이 지휘하는 국무부 대변인으로 활동하고 있다.특히 이 책이 화제의 중심에 서게 된 것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뉴리퍼블릭이라는 보수 매체에 13쪽에 걸쳐 소개된 요약본을 탐독한 것으로 알려지면서부터다. 뉴욕타임스는 오바마 대통령이 주요 내용을 밑줄까지 쳐가며 읽었고 측근들과 책 내용에 대해 심층 토론을 벌였다고 전했다. 실제로 오바마 대통령이 지난달 24일 신년 국정연설에서 강조한 ‘미국의 리더십 회복’ 대목이 책의 중심사상과 일맥상통한다. 토머스 도닐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PBS와의 인터뷰에서 케이건의 저서를 가리키며 “대통령의 외교적 비전에 큰 영향을 줬다”고 밝혔다. 이 책은 미국 안팎에서 제기되는 미국의 영향력 퇴조에 대해 “미국의 군사 정치 경제적 리더십은 쇠퇴하지 않았다”고 일침을 놓는다. 미국은 글로벌 리더였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주장이다.케이건은 우선 미국이 지금까지 글로벌 리더의 역할을 하긴 했지만 절대 권력을 휘두른 적이 없으므로 과거가 ‘미국의 세기’였다고 보는 시각은 과대평가됐다고 지적한다. 즉 절대파워를 가진 나라가 아니라 늘 시대적으로 옛 소련, 일본, 중국 등과 대결해가며 국제사회에서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는 것이다. 이어 케이건은 미국이 이렇게 경쟁국들과 싸워가면서 만든 세계질서가 평화적이고 영속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주장한다. 즉 민주적 정치제도, 자유시장경제, 반보호무역주의 등의 가치 속에서 세계가 큰 전쟁 없이 평화적 시대를 구가해왔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중국, 러시아 등 새로운 파워가 미국을 제치고 글로벌 리더로 자리 잡는다면 미국이 만든 평화적 질서가 유지될 수 있다는 보장이 없다는 위험을 세계가 인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책의 내용도 화제지만, 네오콘 이론가 출신인 케이건의 주장이 오바마 백악관에서도 공감을 얻는 것은 미국의 글로벌 리더십에 대한 공화 민주 양당의 시각이 큰 차이가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케이건은 미국 공영 라디오 방송 NPR와의 인터뷰에서 “외교정책에 관한 한 공화 민주 진영의 시각은 별다른 차이가 없다”며 “실제로 오바마 대통령의 외교정책이 부시 전 대통령의 정책과 크게 다른 점이 없지 않느냐”고 되물었다. 타임지 최근호는 오바마 대통령과 롬니 후보가 미국의 역할이라는 ‘빅 아이디어’를 놓고 벌이는 싸움이 결국은 엇비슷한 외교 인력 풀과 사상들이 겹치는 ‘스몰 월드’에서 만들어지고 있다고 표현했다.워싱턴=정미경 특파원 mickey@donga.com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 2012-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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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의 돈이 미국 살린다”

    “중국이 미국 산업의 녹이 슨 벨트에 윤활유를 뿌리고 있다.” 경기 불황으로 고초를 겪던 미국의 주요 산업이 중국 기업들의 대대적인 투자로 회생의 길을 걷고 있다고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이 11일 보도했다. WSJ는 “일부에선 정보 유출 등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으나 대다수 주정부와 기업들은 중국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전력을 쏟고 있다”고 설명했다. 뉴욕 주재 컨설팅 그룹 ‘로디움 그룹’에 따르면 중국의 대미 투자는 21세기 들어 꾸준하게 증가 추세다. 2003년만 해도 1억4600만 달러(약 1640억 원) 규모였으나 2010년 50억 달러(약 5조6200억 원)로 30배가 넘는다. 투자 분야도 과거엔 자동차 제조업 및 부동산, 천연자원에 국한됐으나 최근 정보기술 및 금융, 소비재까지 다양한 영역으로 확대됐다. 중국 투자로 인한 변화가 가장 눈에 띄는 대표적인 곳은 미시간 주 새기노(Saginaw) 시를 들 수 있다. 디트로이트 시에서 160km 정도 떨어진 이 도시는 미국이 자동차산업이 융성했을 때 부품제조단지가 밀집해 큰 재미를 봤다. 하지만 21세기 들어 자동차산업이 쇠락하자 새기노 시 역시 시들어갔다. 하지만 2010년 중국 자동차 관련 기업이 새기노 시에 본사를 둔 GM의 자회사 ‘넥스티어’에 4억5000만 달러란 거금을 투자하며 상황은 급변했다. 폐업 수순을 밟던 넥스티어는 노동자 1000여 명을 새롭게 고용하며 제2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WSJ는 “미국 시장을 향한 투자가 중국으로선 하나의 모험이듯 미국에도 중국 시장과의 공생은 크나큰 도전”이라며 “도전을 두려워해선 위기를 이겨낼 수 없다”고 평가했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2-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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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中 포청천’ 왕리쥔 美망명기도 ‘발칵’… “黨 권력투쟁 재점화”

    ‘현대판 포청천’으로 불리며 중국 국민의 관심을 받아 온 중국 왕리쥔(王立軍) 충칭(重慶) 시 부시장이 돌연 미국 망명을 시도한 것으로 알려져 파문이 일고 있다. 특히 그가 자신의 ‘주군(主君)’이라 할 수 있는 보시라이(薄熙來) 충칭 시 당서기를 ‘위선자’ ‘나쁜 놈’이라고 맹비난해 충격을 주고 있다. 보 서기는 공산당 핵심 계파인 태자당(혁명 원로 자녀 집단)의 대표주자 중 한 명이다. 때문에 외형상 보스와 심복 간의 갈등으로 보이지만 그 기저엔 출신과 이념이 다른 당내 파벌 간 권력투쟁이 깔려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올가을 중국 최고지도부 교체를 앞두고 권력 핵심부 물밑에서 벌어지는 암투가 기묘한 형태로 표출됐다는 관측이다.○ 미 국무부 “청두 영사관 방문은 사실” 9일 중국 인터넷에는 왕 부시장이 7일 오후 업무상 출장을 가야 한다고 둘러대고는 1급 기밀문서를 들고 자동차로 4시간 거리인 쓰촨(四川) 성 청두(成都)의 미국영사관에 망명을 신청했다는 소문이 급속히 돌았다. 왕 부시장은 영사관에 4시간가량 머물렀는데 중국 경찰이 이를 알고 건물 주변을 봉쇄했다고 한다. 영사관은 어쩔 수 없이 왕 부시장을 중국 측에 넘겨준 것으로 알려졌다. 대만 롄허(聯合)보는 목격자 증언을 빌려 왕 부시장이 영사관을 나와 요원들에게 끌려가면서 “나는 보시라이의 희생양이다. 혼자 죽을 순 없다”고 고함을 질렀다고 전했다. 또 그는 “자료를 외부에 넘기기 위한 준비를 마쳤다”고도 말했다. 일각에서는 왕 부시장이 이미 관련 자료를 해외로 넘겼다는 관측도 내놓고 있다. 중국 정부는 이 같은 소문을 일축했지만 빅토리아 뉼런드 미 국무부 대변인이 9일 왕 부시장이 영사관을 방문한 사실을 확인해주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그는 “미국 관리와 면담을 마친 뒤 자신의 의지로 영사관을 떠났다”고 전했다. 추이톈카이(崔天凱) 중국 외교부 부부장도 이날 “이번 일이 다음 주로 예정된 시진핑(習近平) 국가부주석의 방미에 영향을 주지는 않을 것”이라고 일부 시인했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왕 부시장이 다른 외국 공관에도 도움을 청했지만 거절당했다고 보도했다. 이와 관련해 9일 홍콩 언론들은 왕 부시장이 전날 당 감찰기구인 기율검사위원회에 의해 베이징(北京)으로 송환돼 조사를 받고 있다고 전했다. 기율검사위는 주로 고위 간부들의 부패 혐의를 조사한다. 몽골족인 왕 부시장은 말단 교통순경으로 입문해 보 서기의 눈에 들어 고속승진을 거듭했다. 이달 초까지 시 공안국장을 겸하며 범죄와의 전쟁을 이끌었다. 2007년 이후 6000여 명의 폭력배를 잡아들여 ‘치안 영웅’으로 불렸다. 하지만 2일 갑자기 환경과 교육 담당으로 보직이 바뀌었고, 8일에는 한 달간 병가를 냈다는 말도 나왔다.○ “파벌 간 권력투쟁 재점화” 현지 언론은 이번 일이 6년 전 천량위(陳良宇) 상하이 당 서기의 실각과 비슷하게 전개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천 서기는 상하이방(장쩌민 전 주석 계열의 고위 간부 집단)의 핵심 인사였지만 2006년 기율검사위에 의해 비리 혐의로 체포된 뒤 18년형을 선고받았다. 당시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이 이끄는 공산주의청년단파(團派·퇀파이)가 상하이방을 쳐 내기 위한 계략이었다는 말이 나왔다. 이번 사건도 좁게는 보 서기를 밀어내기 위해, 넓게는 당내 정치노선의 대립이라는 시각이 나온다. 표면상으로는 보 서기와 왕 부시장 간의 거래 관계가 틀어진 데 따른 폭로전으로 보이지만 내부적으로는 거대한 권력다툼의 일환이라는 것이다. 정치적으로 궁지에 몰린 보 서기가 자신의 허물을 왕 부시장에게 덮어씌우자 왕 부시장이 이에 반발해 망명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것이다. 중국 정치는 마오쩌둥(毛澤東) 사망 전까지는 평등과 계급투쟁 중심론 대 능률과 전문성 중심론이라는 이른바 홍(紅·공산주의 이념)과 전(專·전문성)의 대립으로 점철됐다. 마오 이후에는 개혁, 개방을 인정하면서도 그 속도와 범위를 두고 갈등이 지속됐다. 2000년대 들어서는 퇀파이 대 태자당·상하이방 연합세력 간 대립이 이어지고 있다. 공산당 하부조직인 공청단 출신으로 구성된 퇀파이가 평범한 집안 출신으로 분배와 조화를 강조한다면 태자당과 상하이방은 성장과 효율을 중시한다. 단적으로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4조 위안의 경기부양 자금 용처를 둘러싸고도 퇀파이는 쓰촨 대지진 피해지역 복구 및 내수시장 육성에, 태자당·상하이방은 수출기업에 우선 지원하자고 주장했다. 이는 곧 ‘자리’를 둘러싼 권력 다툼으로 비화돼 차기 정치국 상무위원 자리를 놓고 두 세력이 치열한 경합을 벌이고 있다. ▼ 反중국 사이트 왕리쥔 서신공개 ▼미국에 서버를 둔 반(反)중국 웹사이트 보쉰닷컴은 9일 왕리쥔 부시장이 쓰촨(四川) 성 청두(成都)의 미국영사관에서 중국 당국에 신병이 인도될 때 ‘전 세계에 보내는 공개 서신’을 갖고 있었다며 관련 내용을 공개했다. 그는 3일 작성한 것으로 돼 있는 서신에서 “보시라이 서기는 당대 최대 위선자”라며 “그가 공산당을 찬양하고 범죄를 소탕한 것(唱紅打黑)은 당 정치국 상무위원이 되기 위한 술수에 불과하며 한편의 ‘문화대혁명’이었다”고 비난했다. 보 서기의 범죄와의 전쟁은 그가 주도한 ‘충칭 모델’의 일환으로 중국 국민들의 칭송을 받아왔다. 하지만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보 서기와 정치적으로 반대진영에 있는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은 그의 공로를 인정하지 않았다고 분석했다. 왕 부시장은 편지 말미에 “나는 인민을 위해 일하지 나쁜 놈 밑에서 울면서 탄식하기를 바라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보시라이 같은) 이런 간신이 권력을 잡으면 중국의 재난이며 민족의 불행”이라며 “나는 생명이 붙어 있는 한 보시라이의 잘못을 폭로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때문에 중국 정부가 조만간 보 서기에 대한 전면적인 조사에 착수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베이징=고기정 특파원 koh@donga.com}

    • 2012-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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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독]北, 작년 파인애플 등 특권층 위한 과일 中서 1만t 180억원어치 수입

    압록강 하구의 북-중 접경지대인 중국 랴오닝(遼寧) 성 단둥(丹東) 시를 통해 매년 북한으로 과일 1만 t가량이 수출돼온 것으로 전해졌다. 주로 특권층을 위한 과일 수입은 일반 국민의 극심한 식량난에도 불구하고 최근 5년간 매년 두 자릿수의 증가율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단둥의 정통한 소식통은 6일 “지난해 단둥해관을 거쳐 북으로 수출된 과일은 대략 1만 t 규모였다”며 “금액은 1억 위안(약 180억 원)어치”라고 말했다. 그는 또 “최근 5년간 연평균 15%씩 성장해 왔다”고 덧붙였다. 북으로 수출되는 과일의 종류는 사과 귤 수박은 물론이고 바나나 파인애플 여지 화룡과 두리안 등 아열대 및 열대과일 등 중국 시장에 나오는 모든 종류가 포함돼 있다고 한다.특히 김정일 생일인 2월 16일, 김일성 생일인 4월 15일 등 북한의 명절 직전에는 과일 수출량이 크게 증가한다고 한다. 이 소식통은 “예년엔 성탄절을 앞두고도 과일 수출량이 크게 늘었으나 지난해는 김 위원장 사망 때문에 큰 변화가 없었다”고 밝혔다. 북한은 성탄절을 쉬지 않으나 12월 24일이 김 위원장의 생모 김정숙의 생일로 명절이어서 과일 수출량이 증가해온 것으로 보인다. 수출 목적지는 평양으로 행사에 이용되거나 북한 특권층이 소비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결제 화폐는 주로 달러이며 위안화도 종종 사용되고 있다.한편 단둥 시는 최근 대북 과일 수출을 전담 관리하는 조직을 신설했다. 랴오닝 성 정부는 2일 홈페이지를 통해 단둥에 ‘변경무역 수출과일 시장구매센터’가 설립됐다고 발표했다. 설립 목적은 북한에서 늘어나는 과일 수요를 맞추고 수출 과일의 품질과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나아가 무질서한 대북 과일 수출시장을 관리하기 위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단둥에는 지역주민 대상이 아닌 대북 무역을 겨냥한 과일 상점 여러 곳이 영업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 가게 주인은 “신의주와 단둥을 정기적으로 오가는 차편을 통해 과일들을 북으로 내보내고 있다”고 말했다.이 센터는 이런 소규모 상점들의 과일 수출을 포함해 대북 과일 수출시장 전체를 통제관리하기 위한 것이다. 앞으로 대북 과일 수출은 모두 이 센터를 통해야만 통관이 가능하다고 한다.이 센터는 단둥 시가 만든 국영기업인 단둥 궈핀(果品)유한공사 산하로 1000만 위안(18억5000만 원)을 들여 과일의 선별과 냉장 보관, 포장, 검사, 운송 능력 등을 높이는 시스템을 구비했다. 베이징=이헌진 특파원 mungchii@donga.com}

    • 2012-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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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바마 “이란 핵시설 공격 위험 요소 많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사진)은 5일 백악관에서 NBC방송과 인터뷰를 갖고 “이란을 군사적으로 공격하기에 앞서 고려해야 할 위험 요소가 많다”며 “미국은 이란 핵 개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스라엘과 긴밀하게 협의하면서 외교적으로 해결하기를 원한다. 중동지역에서 더 많은 분쟁이 일어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은 이란 문제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어떤 옵션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면서도 “중동지역에서의 어떤 군사적인 행동도 파괴적인 결과를 초래하며 우리에게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석유가격에 엄청난 영향을 가져올 것이고 이란과 국경을 접한 아프가니스탄에 미군이 주둔하고 있다. 우리가 선호하는 해결방안은 외교적으로 이 문제를 푸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이스라엘이 올봄 이란을 공격할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이스라엘이 무엇을 할 필요가 있는지에 대한 결정을 내렸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답했다. 오바마 대통령의 이날 발언은 이란 핵시설에 대한 직접적인 공격이 이란 체제를 오히려 강화시키고 더 나아가 중동지역의 분쟁을 고조시킬 수 있다는 판단을 분명히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최근 이스라엘 고위층들이 공공연히 거론하고 있는 이란 핵시설에 대한 군사공격에 찬성하지 않는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해석된다. 11월 재선을 노리고 있는 오바마 대통령은 이라크전을 끝내고 아프가니스탄 병력도 줄이고 있는 마당에 이란에 대한 적극적인 군사 개입을 꺼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한편 이란의 인접국인 터키와 카타르는 5일 “이란에 대한 공격은 재앙이 될 것이다. 서방국가들이 이란 핵무기 문제를 풀기 위해 더 많은 협상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촉구했다. 워싱턴=최영해 특파원 yhchoi65@donga.com}

    • 2012-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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